『경기옛길-봉화길』
       『제9길 설성산길』
        "옛 陰竹縣의 도읍지를 가다" 
      
           설성면사무소-성호저수지-설성산-설성산성-선읍리-설성천-청미천-장호원교
['9코스 설성산길' 안내도] "경기옛길-봉화길 제9길 설성산길"의 공식 안내도입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경기옛길-봉화길 제9코스""설성면사무소"에서 "성호저수지"를 돌아 보고 "설성산"을 오르고 "장호원교"까지 "16km"를 가는 코스입니다. ['이천역'] 10:25 2024년 3월 16일 토요일 맑음 연무 <분당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이천역 1번출구"로 나가 다시 버스를 타고 "설성면 금당리"로 가기 위해서, 시내버스 시간표를 참고하는데.... <이천역>에 있는 <25번 시내버스>의 시간표는 <이천버스터미널> 출발 시간표더군요. <이천버스터미널>에서 이곳 <이천역>까지는 약15분 정도 걸린다는 것을 참고해야 하더군요. 저는 터미널에서 10:10에 출발하는 버스를 이곳 <이천역>에서 10:27분에 타고 갑니다. ['설성면행정복지센터' 앞] 11:10 <이천역>에서 약43분이 걸려 "금당리-설성면행정복지센터"에 도착하여 답사를 시작합니다. ['금당리' 통과] 면사무소 우측 골목으로 <금당리> 마을을 7분여 진행하면.... ['장능1리'] 11:17 "장능1리"입구를 만나 좌측 임도로 진행하고 ['성호저수지' 조망] 11:20 이어서 바로 지난 <8코스>에서도 만났던 "성호저수지"와 잠시후 올라야 할 "설성산"이 연무 속에 나타나며.... ['장능리' 임도] <금당리>와 <장능리>를 분리하는 임도를 따라 8분정도 진행하면.... ['성호저수지' 앞] 11:28 <성호저수지>에 도착합니다. ['성호저수지'] 주말을 맞아 낚시꾼들이 저수지를 빙 돌아 가며 저마다의 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열혈 낚시꾼>을 <강태공>이라 부르지요.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냥 하는 말인데 실제 중국 <강태공>은 소를 도살하는 백정도 했으며, 중국 역사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친 병법가이며 제상이었는데, 후에 <제나라>의 시조가 되어 춘추전국시대의 큰 역사인물이 되었죠. 그가 쓴 병법서 <육도>의 끝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이 지금까지도 명언으로 남아 있는데 "天下非一人之天下, 乃天下人之天下也. 同天下之利者則得天下"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천하니 천하와 이익을 함께 하는 자만이 천하를 얻을 수 있다." ['성호교'] 11:34 <성호저수지> 댐으로 내려 가면 <성호교>라는 다리가 있는데 다리를 건너 바로 우측으로 가야하며 <설성산>과 <우주위성전파감시센터>의 "우주위성안테나"가 있는 곳으로 진행합니다. ['신필리' 통과] '이천시 설성면 신필리' 들판길을 25분여 진행하면..... ['신필2리 마을회관'] 11:50 "신필2리 마을회관"을 만나고 ['설성산'과 '위성전파감시센터'] 다시 8분 정도 더 진행하면... [등산로 입구] 11:58 자동차 도로를 만나는데, <설성산 등산로> 입구가 있는 곳입니다. 우측엔 "위성전파감시센터"가 있습니다. ['설성산' 등산로 들날머리] 앞으로도 12km를 더 가야 한다는 안내판이 있는 등산로 입구로 들어 가서 [오름길] 비교적 완만한 오름길을 30분 정도 올라 가면 ['설성산 정상부'] 12:24 <설성산 정상부>가 보이기 시작하고 ['설성산 정상'] 12:28~12:39 "설성산 雪城山 290.6m" 정상에 도착합니다. 정상석엔 "280m 높이"라고 합니다만 국토지리원 지도와 각종 지도에는 모두 "290.6m"라고 표기되 있고 정상엔 정자가 있는데 <설성산정>이라는 현판과 <봉화정 烽火亭>이라는 현판이 두개가 있더군요. 옛날엔 봉화대도 있었나 봅니다. ['국립전파시험인증센터' 조망] 북서쪽이 조망되는데, "국립전파시험인증센터"가 보이는데, 뒤엔 <독조지맥> 산줄기가 보입니다. ['장호원' 방향 조망] 연무가 심해 <장호원> 방향으로는 오리무중.....아쉽군요. [내림길] 정상에서 10여분 쉬고,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잠시 내려 가면... ['신흥사' 조망] <신흥사>가 보이기 시작하고 ['신흥사'] 12:47 "신흥사"에 도착하는데 수많은 절간 중에 하나라고 여겨져 그냥 패스... ['관세음보살'] <신흥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제법 날씬한 <관세음보살>을 입니다. [내림길] <신흥사>부터는 포장도로가 이어지는데 조금 내려 가면.... ['설성산성'] 12:50 "설성산성 雪城山城"을 만나는데 이곳은 <동문 東門>이 있었던 곳이라고.... [내림길] <동문>에서 내림길을 7분여 더 내려 가면... ['스탬프함'과 '석불입상'] 12:57 <스탬프함>과 <석불입상>이 있는 곳을 만나는데 ['음죽군 읍치 이야기'] 이 지역이 옛날 <음죽현 陰竹縣(音竹縣)>의 도읍지 였다는 안내판이 있는데 새로운 내용이 있어 요약하면 1. <장호원 長湖院>은 원래 <장해원 長海院>이라는 "역원 驛院"이 있었던 곳이고 2. <청미천 淸渼川>은 원래 <천민천 天民川>이었는데 <천미천 天尾川>으로 변하고 다시 <淸渼川>이 되었다고... ['선읍리 석불입상'] . 안내문을 참고하고 ['선읍리' 조망] "선읍리 善邑里"를 조망하며 내려 가는데, 옛날엔 <음죽현 陰竹縣>의 도읍지였답니다. <선읍리>는 옛날 <음죽현>의 중심지여서 <선읍리 先邑里>였는데 <착할 善>으로 바꾼듯... ['음죽현 쌈지공원'] 1:11 "음죽현 쌈지공원"을 만나는데 "붓" 조형물이 눈길을 끕니다. ['이인상'] <이인상>이라는 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안내도 있습니다. ['선읍리' 통과] <설성천 雪城川>이 제법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는 <장호원읍 선읍리> 들판을 2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 1:33 <장호원의 진산>이라는 <백족산>이 보이기 시작하며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百足山>은 다리가 백개인 "지내"가 살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지난 <경기둘레길 38코스>에서 알아 보았습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기 전에 먼저 뒤돌아 보면.... ['설성산' 조망] 지나온 <설성산>과 <여주 남한강 세물머리>로 향하는 <독조지맥>이 조망되는군요. ['선읍1리' 조망] 갈림길에서 좌회전하면 <선읍1리>와 <원하리>가 조망되는데 옛날 <음죽현>의 <원院> 아랫 마을이라 <院下里>라 하는듯.... ['원하리(선읍1리) 버스정류장] 1:36 시내버스가 다니는 <원하리(선읍1리) 버스정류장>을 만나 도로를 따라 13분쯤 진행하면... ['원하삼거리'] 1:49 <3번국도>가 지나는 "원하삼거리"를 만나 우회전하고 ['3번국도'] <3번국도>를 100m 정도 가면... ['풍계리 입구'] 1:51 "풍계리 입구 삼거리"를 만나 길을 건너 가야 하더군요. 그런데 이곳 도로를 건너기 위해선 신호 변경을 해야 하는데 수동으로 보행자가 직접 "보행자 신호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 두기 바람니다. 모르면 계속 서 있어야 하니 먼저 <보행자 신호 버튼>을 찾아 누르기 바람니다. ㅎㅎ ['풍계새마을교'] 1:55 <풍계리 입구삼거리>에서 <풍계리>로 들어 가면 <풍계새마을교>를 바로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 건너편 둑방길을 이용해 <설성천>을 따라 진행합니다. ['설성천변길'] <설성천변길>을 25분 정도 진행하면 ['풍계교' 앞 삼거리] 2:19 <풍계교>를 만나는데 다리 앞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야합니다. ['노탑리' 조망] <노탑리>가 보이는데 농로를 진행해 마을로 들어 가면 ['노탑1리 마을회관'] 2:31 '산수유'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노탑1리 老塔1里 마을회관"을 지나는데 오래된 탑이 있는 마을인가 봅니다. ['37번국도] 2:34 마을회관을 지나면 <여주-장호원>을 잇는 <37번국도>가 지나는 곳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길을 건너 직진합니다. ['청미천'] 2:37 그러면 바로 "청마천 淸渼川"을 만나며, 건너편엔 <강동대학교>와 <오갑산>이 보입니다. <오갑지맥>과 <독조지맥> 사이에 흐르는 개천이 <청미천> 입니다. ['청미천변길'] 2:38 이어서 둑방길을 버리고 <청미천변길>로 내려 가라고 하는데 좌측 청미천 징검다리가 <경기둘레길 37코스>가 지나는 곳입니다. 즉, <충청북도>와 <경기도>의 道界가 되는 곳이란걸 알수 있습니다 ['감곡장호원역'] "KTX중부내륙선"이 지나는 <청미천철도교>를 지나 "감곡장호원역"을 조망합니다. "매산"이 보이죠? <임오군란> 때 <여주 장호원>으로 도망친 <명성왕후>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건너편 <매산> 아래 <매괴고등학교> 자리로 피신했죠.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제가 쓴 <경기둘레길 37코스 답사기>를 찾아 읽어 보세요~~ ['감곡장호원역' 줌인] "감곡장호원역" <감곡>은 <충북 음성군 감곡>이고 <장호원>은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인데 역명을 합쳤습니다. 뒤로 <극동대학교>가 보입니다. 프로야구 원년 홈런왕이었던 <김봉연 선수>를 기억 하십니까? 그 선수가 이 대학 교수를 지냈지요. 이 시골에 <강동대학교>와 <극동대학교> 두개가 있습니다. ['경기둘레길37코스' 갈림길] 3:05 "경기둘레길37코스 갈림길" 이어서 <경기둘레길 37코스>는 여기서 우측 <장호원버스터미널>로 가고 <봉화길>은 직진합니다. ['장호원교'] <청미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충청북도>와 <경기도>가 나뉘는 "장호원교"를 만납니다. 좌측이 <충북 음성군 감곡>이고 우측이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입니다. ['경기옛길-봉화길' 종점] 3:12 <장호원교>로 올라 가면 "경기옛길-봉화길 종점"이 있으며 <스탬프함>과 안내판이 있습니다. 이곳은 <청미천 자전거길 쉼터>이기도 하더군요. ['청미교 사거리'] 3:13 이곳의 다리는 <장호원교>인데 다리 앞 사거리의 이름은 <청미교 사거리>라고 해서 혼돈을 줍니다. ['고도표'] <설성산>의 높이가 매우 뾰쪽하게 나왔습니다만 290m 정도라는 것을 참고하기 바람니다. 16km 거리를 압축하다 보니 높이가 상대적으로 올라 갔습니다. ['봉화길 전체 안내도'] "경기옛길 봉화길" <경기 하남시>에서 <남한산성>을 오르고 <경안천><곤지암천>을 따라 <앵자지맥>이 지나는 <넋고개(넓고개)>를 넘고, <이천 설봉산>을 또 오르고, <봉화길>이 아닌 <참배길>인 <세종대왕릉>을 다녀와 <여주-이천쌀>의 본향인 <자채방아마을>을 지나, <설성산>을 오르고 <충청도>와 <경기도>의 경계인 <장호원>까지 총 135km를 걸었습니다. <경기문화원>이 <영조시대> 인물 <여암 신경준>선생이 집필한 "도로고 道路考"를 참고하여 만든 "경기옛길"을 모두 걸어 보았습니다. 원형의 옛길과는 큰 차이가 있는 "걷기코스"였지만 그런대로 한번쯤 걸어 볼만한 코스였다고 생각 됩니다 마지막으로 <칼의 노래><남한산성>등 역사 소설로 유명한 <김훈 작가>가 쓴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 속에 <여암 신경준> 선생에 대해 언급 한 글을 인용하면서 답사를 마침니다. 신경준에게 길은 삶의 도덕적 가치와 상징 들 사이로 뻗어나간 공적 개방성의 통로이다. 이 공적 개방성의 통로 위에서, 길을 가는 일은 달리기가 아니라 '행함'이고, 길의 의로움은 집의 어짊에서 출발해서 집의 어짊으로 돌아온다. 신경준의 지리책을 읽을 때, 집에서 길로 나가는 아침과 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은 본래 이처럼 신선하고 새로워야 마땅하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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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가는 금북정맥 여섯번째구간 산행기 각흘고개-구만봉-봉수산-천방산-부엉산- 극정봉-명우산-절대봉-서재-차동고개 길을 가다.... 깊은 산골에서 만나는 것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호랑이도 폭풍우도 아닌 人間이라고 합니다. 人間 ! 많은 불행은 人과 人사이에서 발생합니다 속이고 위협하고 뺏고 죽이고..... 만나지 말아야 할 인간들이 우굴대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또 길을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길 위에서 만나는 인간들이 모두 惡緣이 되는 것은 아니죠 더불어 더 많은 즐거움도 人과 人사이에서 만들어 집니다 "錦北正脈" 그 끝에 닿으면 여름이려나~ 가을이려나~눈이 내릴려나~ 산길따라 바람따라 세월따라 흘러 가는 산행길 [금북정맥 전체구간] "금북정맥 錦北正脈"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이 세개의 정맥이 분기하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칠장산"에서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안흥리'까지 약280km의 산줄기인 "금북정맥"을 갑니다. [6구간 산행개념도] 2012년 6월 27일 (수) 맑음 '금북정맥'의 여섯번째 구간은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문금리'를 잇는 "각흘고개"에서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녹천리'를 잇는 "차동고개"까지 도상거리 약 18.3km를 갑니다. ['전철1호선'을 타고 '온양온천역'으로 ] [전철 1호선]의 첫차에 대해 알면 '금북정맥'을 다니는데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온양온천역'으로 가는 첫차는 오전 5시에 "구로역"과 "병점역"에서 동시에 출발합니다. '병점역'에서 출발하는 5시 첫차를 타면 여유있게 '온양온천역'에서 '각흘고개'로 가는 [100번 시내버스]첫차를 탈수 있고, 두번째 5시 30분 전동차를 타면 '온양온천역'에 6시 36분에 도착하여 무척 바쁘게 뛰어야 [100번 시내버스] 첫차를 탈수 있습니다. ('구로역'등에서 출발하는 첫차등은 각자 검색하여 시간에 맞추어 가면 됩니다) 저는 '병점역'에서 두번째 5시 30분 전동차를 타고 가는데 손님은 거의 없었으며, '온양온천역'에 내리자마자 뛸 준비를 하고 갑니다. [온양온천역 1번출구] 6:40 전철에서 내리자 마자 뛰는데도 규모가 큰 '온양온천역' 때문에 시간은 급합니다. [1번출구]로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내려가, 앞에 보이는 큰 도로 좌측으로 30여m 가면... [온양온천역 버스정류장] 6:41 '온양온천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6시 41분이었고, 시간표를 촬영하고 있으니 [100번 시내버스] 첫차는 6시 42분에 바로 도착하고 급히 출발했습니다. 종점인 '용화동생활관'에서 6시 40분 출발인데 2분여만에 '온양온천역'에 도착했습니다. 한시간에 한번씩 매시간 40분에 계속 출발하고 있으니 편리한 시간의 버스를 타면 됩니다. [버스 시간표] [100번] [101번] [102번]이 합쳐서 매시 40분에 출발하니 어느 버스를 타도 됩니다. 이 버스시간표를 참고해서 전철시간을 역으로 맞추면 됩니다. 종점에서 '온양온천역'은 매우 가까워서 2분이면 도착하니 참고해야겠죠? [각흘고개 버스정거장] 7:27 '온양온천역'을 6시 42분에 출발한 [100번 시내버스]는 45분이 걸려 '각흘고개'에 도착합니다. 이 버스 정거장의 이름은 "거산2리-금계령"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각흘고개'라는 안내는 어느 곳에도 없으니 "거산2리-금계령"정류장에서 내려야 합니다. [각흘고개] '금북정맥'의 여섯번째 구간인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문금리'를 잇는 "각흘고개"에 다시 돌아 왔습니다. "빨래판구간"이라는 지난구간의 날머리가 미풍에 날라간 하룻밤의 꿈처럼 옛일로 멀어집니다 여섯번째구간의 들머리는 해태상 옆으로 나 있습니다. [각흘고개 산행 들머리] 7:30 오늘도 단 한명의 산객도 만날수 없었던 산길로 홀로 떠납니다. 먼저 이 지역에선 그나마 이름있는 "봉수산"까지 4km라는 안내가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山路의 우측은 "아산시"이고, 좌측은 "공주시"라는 것입니다. [묘지에서 포스트 송전탑 조망] 7:36 '각흘고개' 들머리에서 다소 가파른 등로를 오르면 먼저 묘지가 나타나고, 묘지에 서면 '금북정맥' 능선에 있는 송전탑이 보입니다. 송전탑을 포스트로 삼으며 자연 속으로 여행을 시작합니다. ['각흘고개'에서 '부엉산'까지 구글어스] 출발을 하며 이 주변의 山勢를 구글어스를 통해 전체적 상황을 파악하고 갑니다. 눈여겨 볼 점은 '봉수산 갈림봉'에서부터는 "예산군"과 접경을 이루며 간다는 것입니다. '경기도 안성'에서 출발했는데 벌써 '충남 예산'으로 진입합니다. ['119 구조목 01-01번'] 묘지를 지나 된비알 숲속으로 들어서면 "119 구조목 01-01번"을 만납니다. 이 "119구조목"은 "봉수산 정상"까지 11개가 세워져 있으니 거리 측정에 도움이 됩니다. [된비알] 초장부터 급경사 오르막을 13분 정도 오르면..... ['351m봉' 능선 삼거리] 7:49 "351m봉-능선 삼거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면 먼저 이정표가 반기며 오른쪽 방향으로 길안내를 합니다. ['봉수산'으로 가는 길] 정맥길은 다시 평온을 되찾으며 완만한 오름길을 갑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햇살이 오늘의 기온을 가늠케 해 줍니다. 104년만의 가뭄이라는 뜨거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안개가 없어 가시거리는 매우 좋아 사진 촬영에는 도움이 됩니다. ['385m봉'에서 조망] 8:03 "351m봉-능선삼거리"에서 14분 진행하면 "385m봉"에 오르며 시야가 처음으로 트입니다. 먼저 서남쪽으로 건너편 "천방산"이 방긋 웃고, 서쪽 멀리 "예산군"이 조망됩니다. ['385m봉'에서 '봉수산' 조망] 북쪽으로는 가야할 "봉수산"이 조망되는데, 그 앞에 있는 "정맥 갈림봉"에서 "봉수산"을 갔다가 되돌아와 "460m봉"으로 가야합니다. ['385m봉' 이정표] "385m봉"을 지나면 [119 구조목 01-04번]을 만나며 계속 완만한 흐름을 보이는 길을 갑니다. ['구만봉' 갈림길] "385m봉"에서 1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며, 직진 오르막으로 올라 갑니다. 이곳이 "구만봉"으로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구만봉' 정상] 8:21 "구만봉 392m" '진혁진씨 개념도'에는 "390m"로 표기된 곳인듯합니다. 이정표의 거리표시는 이정표 마다 애매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금북정맥'은 어디를 말하는 곳인고? [숲길] "구만봉"에서 부터는 길섶에 바위들도 제법 보였습니다. '아산시 온양'에 오면 생각나는 인물은 뭐니 누구니 해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입니다 이순신장군은 전국민이 존경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물 중 한분이란거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위대한 영웅이십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있어 왔으며, 특히 영화나 드라마로 여러번 방영되어 그의 생과 업적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장군의 죽음"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어서 오늘은 "이순신장군의 죽음"에 대해 한번 생각 해 볼까 합니다. 이 글은 제가 2009년 1월 24일(토) 설명절 첫날에 "광덕산-망경산-설화산"을 종주하면서 산행기에 한번 쓴 글입니다만, 못 보신 분들을 위해 한번 더 올려 드림니다. ['380m봉' 정상] 8:30 "봉수산"까지 1.4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는 "380m봉"을 지나 갑니다. 봉우리라는 느낌은 거의 없는 봉우리입니다. "이순신장군의 죽음" 이순신장군은 임진왜란-정유재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적군의 흉탄에 맞아 戰死했다고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날이 1598년 11월 19일이며 이순신장군의 나이가 54세였던 해입니다. 그러나 세간에는 이런 저런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으며, 이순신장군에 대한 평가도 임진왜란이 끝난후 200여년이 지난 1792년에 정조대왕이 공식적으로 "이충무공전서" 편찬을 지시하고, 장군을 영의정에 추증하며 '어제신도비'를 세우고 나서 1795년에 '이충무공전서'가 발간되고 나서야 장군은 정조대왕에 의해 새로운 빛으로 우리 역사 속에 우뚝 서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는 위대한 영웅이 찬밥 신세였습니다. 그리고 근현대에 와서는 '5.16 군사정권'에 의해 "軍人 이순신장군"으로 더욱 영웅화 됩니다. 광화문 앞 "세종로"에 있던 "세종대왕 동상"이 어느 날에 갑자기 없어지고, "충무로"에 있어야 할 "충무공 동상"이 "세종로"에 우뚝 서는 일이 생겨난것도 군사정권 때의 일입니다 그래서 세종로에는 세종대왕이 없고, 충무로에는 충무공이 없다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것이지요 그러한 과정에서 "이순신장군의 죽음"은 영웅적 죽음인 戰死로 굳어 졌습니다. 그러나......의문은 1598년 11월19일부터 계속되 오고 있습니다 저는 영웅 이순신장군의 위대함에 대해 조금이라도 누가 되게하려는 취지가 아니고 오로지 수많은 세월 속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들의 내용을 간추려서 알려 드리려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떠한 의도도 없음을 미리 알려 드림니다. [오르막] "380m봉"을 지나면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25분 정도 된비알을 오르면..... "이순신장군의 죽음"에 대해서는 戰死했다는 공식적 죽음 이외에 크게 두가지의 說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자살설"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은둔설"입니다 이순신장군이 戰死했던 자살했던, 또 은둔했던 그것이 뭔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 괜히 까발려 문제없이 존경 받는 이순신장군의 명예를 실추시킬수도 있는 일이 아니냐고 항변하시는 분들도 있을것입니다만, 한번쯤 그러한 설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도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길상사' 갈림길] 8:55 ['길상사' 갈림길 이정표] "길상사 갈림길" '길상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간은 전국에 무지 많지요? 저는 서울 성북동에 있는 "법정스님"의 "길상사"를 제일로 인정하는데.... ['봉수산'으로 오르는 된비알] "길상사 갈림길"에서 잠시 된비알을 오르면.... "이순신 장군 자살설" 1598년 11월19일 노량해전 이순신장군은 1598년 11월19일 노량해전 당시 우연히 戰死한 것이 아니라, 戰死의 형식을 빌어서 갑옷마저 벗어 두고 함대의 선두에 서서 일부러 장열하게 자살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살설"은 실제로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200여년에 걸쳐 많은 이들에 의해 끈임없이 설왕설래 된바 있으며 아직까지도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봉수산' 갈림봉] 8:59 "봉수산-정맥 갈림봉" 이 봉우리는 큰 의미를 주는 중요한 봉우리입니다. 먼저 '금북정맥'에서 "봉수산"으로 가는 갈림봉이기도 하지만, "공주시-아산시-예산군"의 행정구역이 갈리는 市郡界 갈림봉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주시'의 최북단이랍니다. 정맥길은 이곳에서 부터 "예산군"을 만나, "공주시-예산군"의 경계를 따라 갑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으니 "봉수산 정상"을 다녀 와야겠지요? (사진 속의 "봉화산"은 "봉수산"입니다. 죄송~ ^.^) ['봉수산' 갈림봉 이정표] 갈림봉에서 '봉수산 정상'까지는 100m라는데 4~5분 걸렸습니다. ['봉수산' 정상 갈림길] '봉수산 정상'으로 가는 길 앞에는 갈림길이 있습니다만, 직진해서 올라 갑니다. [봉수산 정상] 9:05 [봉수산 정상석] [이정표] "봉수산 鳳首山 536m" 따가운 아침 햇살이 범상치 않은 더위를 예고하는 "봉수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봉수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들은 전국에 수없이 많습니다. 대부분 한자로는 "烽燧山"으로 쓰며 "봉화 烽 봉"과 "부싯돌 燧 수"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곳의 "봉수산"은 "봉황의 머리 - 鳳首"라고 하는 것이 다소 이채롭습니다. ['광덕산' 조망] "봉수산"에서 동쪽으로 "광덕산 廣德山"이 조망됩니다. "광덕산"은 천안시의 산으로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아산시의 진산"입니다. 높이가 699.3m로 이 주변에선 가장 높은 산입니다. [아침식사] 9:05~9:30 새벽 4시에 일어나 멀리 '봉수산 정상'에서 이제서야 아침을 먹습니다. 아침식사라 해 봐야 빵쪼가리와 삶은 계란과 물이지만 먹어야 걸을수 있으니... 이때에 SBS 오국장의 격려 문자가 왔습니다. 더운 날씨에 무탈하게 다녀 오시라고... 오늘 단 한명의 산객도 산길에서 만나지 못했지만, 수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있어 외롭지 않다고 생각되는 건 이런 격려 문자나 전화 한통입니다. 감사~ ['봉수산 갈림봉' 우횟길] 9:33 "봉수산 정상"에서 약25분간 식사와 휴식, 조망을 한후에 다시 "정맥갈림봉"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다시 "정맥갈림봉"으로 올라 갈 필요없이 우측으로 지름길이 있군요. 아주 짧은 우횟길이지만 오늘 갈길이 멀어 체력 비축을 위해 우측길로 갑니다. [금북정맥길] "정맥갈림봉"에서 5분 정도 숲길을 내려 갑니다. "이순신 장군 자살설"이 계속됩니다. 자살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논거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은 사천해전 당시 어깨 관통으로 고생한 이래 새로이 개발된 방탄 조끼 '환삼'도 있었는데, 노량해전에는 방탄쪼끼 '환삼'은 커녕 아예 처음부터 갑옷도 입지 않고 삼도수군통제사의 붉은 융복만을 입은 채 이른 아침 빛나는 태양 앞에서 왜군의 조총 정조준사거리 4∼5m 앞에 우뚝 선 것이라니 스스로 죽기를 결심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금산군 이성윤[1570∼1620]"이 "노량 충렬사"에 써 붙인 詩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心知功大 終難賞志 決身殲 意露肝" "공로 커도 상 못탈것 미리 알고서 제 몸 던져 충성 뵈러 결심했던가" 전쟁에서 이겨도 자신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政派들과 백성들의 우상이 된 이순신으로 인해 왕권의 위협을 느끼는 선조(宣祖)로 부터 분명 '토사구팽(狡兎死良狗)' 당할 것을 미리 예견하고 자살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지금까지의 "이순신장군 자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논거입니다 [송전탑에서 지나온 길 조망] 9:38 송전탑이 지나는 곳에서 조망이 트입니다. 동남쪽으로 오늘 지나온 정맥능선이 나열된 송전탑과 함께 보이며, 그 뒤로 지난 구간에 올랐던 "무성지맥분기점봉"이 조망됩니다. (사진속의 "탑골리"는 "탑곡리"입니다. 죄송~ ^.^) [송전탑에서 가야할 길 조망] 가운데 "공주시 유구읍 탑곡리"를 두고, 우측 능선을 따라 정맥길은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내려 가는 정맥길에 가야할 "천방산"과 "부엉산"이 보이며, 그 뒤로 계속 정맥은 이어지고... [내림길] 송전탑에서 13분 정도 내림길을 내려 갑니다. "이순신장군의 은둔설" 이순신장군은 戰死한것도 아니고, 더더욱 자살한 것도 아니며, 노량해전에서 적군의 흉탄에 우연히 맞아 죽은 것도 아니며 그 이후 70세가 될때까지 약16년간 은둔하며 살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은둔설"을 믿는 편입니다. 오로지 개인적 생각임을 강조합니다 [내림길에서 뒤돌아 본 '봉수산'] 9:51 내림길에서 뒤돌아 보니 조금전 조망을 했던 송전탑이 보이고, 그 뒤로 "봉수산"과 "정맥갈림봉"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또한 "광덕산"도 조화를 이루며 멋을 풍깁니다.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이야기 하기 전에 당시 상황과 조선의 제14대 왕인 宣祖에 대해 먼저 알아봐야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제가 산행기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나쁘게 평가하는 조선의 왕인 "宣祖". '宣祖'는 '중종'의 일곱째 아들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셋째아들입니다. 도저히 왕위에 오를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중종'은 누구입니까? 연산군을 무력으로 내몰고 권력을 장악한 쿠데타 정권 아닙니까? 그러한 대물림으로 오를수 없는 왕위에 오른 宣祖는 언제나 왕권에 대해 불안해 하였습니다 원래 宣祖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이러한 정치적 배경으로 항상 불안에 떨었고 정통성 없는 왕이었기에 항상 정적에 대해 의심을 많이 가지며, 조금만 의심이 가도 의심이 가는 놈은 죽여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이 당시 백성들의 민심은 흉작과 무리한 세금 징수등으로 무척 흉흉해서 "이괄의 난"등 반란이나, 농민 봉기등 民亂이 왕권을 무수히 위협했고, 극기야 '임진왜란'까지 터지는 시대였다는 것을 알아야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백성들의 영웅으로 떠오르는 '이순신장군'을 '宣祖'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460m봉'으로 오르는 길] 내려 가면 다시 오르는게 정맥길...이번 구간도 엄청 많은 오르내림이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이 끊임없이 제기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조선왕조실록"에서 "宣祖實錄"만이 유일하게 "수정宣祖實錄"이 다시 쓰여지고 두개의 판이하게 다른 내용의 實錄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순신장군에 대한 기록도 다르게 기록되 있습니다. 희안하죠? 지금부터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에 대해 하나 하나 근거가 되는 것들을 함께 생각해 보자구여 ['460m봉' 정상] 9:55 "460m봉" 잠시 오름짓을 하니 금새 "460m봉" 정상입니다. 여기서부터 봉우리의 정상엔 이런 벤치가 있으니, 벤치가 있는 곳은 봉우리 정상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460m봉" 정상에서 정맥길은 우측으로 90도 꺽여 서쪽방향으로 내림질을 합니다. ['460m봉'에서 '천방산' 조망] 이번 구간에는 지난 구간과 달리 산이름이 있는 산들이 많아 地名을 표기하기 쉽습니다. 오늘 가야할 산들이 "천방산" "부엉산" 뒤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데, "천방산-부엉산" 이외에는 여기선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습니다 ['460m봉' 내림길에서 보이는 '예산'] "460m봉"에서 내려 가는 길에선 서쪽으로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의 "방산저수지"가 보입니다. ['460m봉' 내림길] "460m봉" 내림길은 잡목과 잡풀들이 길을 덮고 있어 길이 잘 보이지 않으며, 급경사 내림길인데, 요즘 가뭄으로 흙이 메말라 매우 미끄러웠습니다. 특히 가시나무 때문에 애를 먹었습니다.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을 잘 뜯어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이 일어 나는 날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이미 죽어 조선 침략 전쟁을 포기하고 철군의 명령이 떨어진 상태였으며 조선과 明나라에 의해 이미 패배한 일본군은 대부분 도망갔는데 '고니시 유키나카(小西行長)'도 전라도 순천에서 그 근처의 해안 지역인 왜교(倭橋)로 이동하여 해상 경로를 통해 철수하려 하였는데, 퇴각하는 적을 노량 앞바다에서 섬멸작전을 벌이던 이순신장군은 불행이도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합니다.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 1598년 11월 19일 퇴각하는 적과 노량 앞바다에서 대전을 치르는 선상에서 장군은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며 죽음의 순간에도 아군의 동요를 염려하며, 곁에 있던 맏아들 '회'와 조카 '완'에게 위와 같은 아주짧은 말을 유언으로 남깁니다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마지막 말은 "이충무공행록"에 기록되 있읍니다. 그러나 이 유언은 단순한 유언이 아니고, 유언 속에 "은둔설"의 실체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천방산'으로 가는 길] "천방산"으로 가는 능선으로 내려 가니 지난 구간에 올랐던 "무성지맥 분기점봉"과 가야 할 "천방산"이 보입니다. 각도에 따라 산의 모양과 위치가 아주 다르게 보입니다. 퇴각하는 적군들이 도망 가기도 바쁜데, 사정거리가 10m도 않되는 조총에 맞아 죽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순신장군이 조총에 맞았다면 정말로 자살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도져히 있을수 없는 상황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이 전사하는 광경을 본 사람은 맏아들 '회'와 조카 '완', 몸종 '김이(金伊)' 이 세명 이외에는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순신장군은 그 동안의 전투에서 데리고 다니지 않던 맏아들 '회'와 조카 '완'을 데리고 그리고 몸종 '김이(金伊)'까지 데리고 이미 끝난 전쟁터로 나가 싸웠을까요? 그리고 왜 친족인 맏아들과 조카, 몸종 김이(金伊)만이 장군의 죽음을 보았을까요? [뒤돌아 본 '460m봉'] 10:12 "460m봉"을 내려가 "천방산"으로 가는 능선에서 지나온 "460m봉"을 뒤돌아 봅니다. '금북정맥 마루금'을 경계로 '공주시' 땅에는 벌목을 해서 경계가 분명해 보입니다. 로마 군인들의 투구처럼... 노량해전에 나갈 때 이순신장군은 이미 마지막 전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답니다 조선이 왜놈들에게서 승리 했다는 사실을 알고 도망가는 마지막 놈들을 소탕하러 갔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거취를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고 판단하고 있었답니다 왜일까? 그 동안 宣祖는 이순신장군을 두번이나 죽일려고 했습니다. 첫번째는 이순신장군이 육군일때 모함으로 그렇게 된것이고 두번째 이유는 부산항에 진을 치고 있는 일본군들을 쳐 부수라는 宣祖의 어명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장군은 부산항에 쳐들어 가는 것은 휘발유통을 메고 불속에 뛰어 드는 것과 같다고 어명을 어겼습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조선 해군이 몽땅 자멸한다고 어명을 거두어 달라고 하소연을 했지만 그러한 하소연이 항명이라 여기는 宣祖는 더더욱 뿔따구를 내며 이순신장군을 잡아 들여 국문을 하며, 쫄병으로 강등시키고 고문으로 반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 대신에 '원균'에게 부산항을 공격하라는 어명을 내리지요. '원균'은 어명을 받들어 부산항을 공격하다가 조선 해군 모두와 함께 장렬하게 산화합니다. 이순신장군 대신에 어명을 받든 '원균'이 부산항을 공격하다가 조선 해군 모두와 함께 작살이 나 버리니, 조선 해군을 복원시키는데 없어서는 않될 인물은 오로지 '이순신장군' 밖에 없다는 것을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수 없이 인정하며, 사형을 시키려던 이순신장군을 감옥에서 석방하지요 모두 알다시피 그래서 '白衣從軍'을 두번이나 하게 된것입니다. 이때에 '이순신장군'은 宣祖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저 '파란문'같으면 적군은 '쪽바리들'이 아니라 '宣祖'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355m봉'으로 가는 길] 산길은 다시 평온을 되찾으며 완만한 길을 갑니다. 노량해전이 끝나면 전쟁이 완전히 끝나므로 이순신장군은 살아서 육지에 올라 가나, 죽어서 올라 가나 결국 宣祖와 붕당세력들에 의해 다시 죽임을 당할것이란 사실을 똑똑한 이순신장군은 스스로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어명을 따른 '원균'에 의해 초토화되버린 조선해군에 남아있는 배 겨우 13척으로 승리를 하면 이순신을 반대했던 인간들로부터 다가 올 위험은 불을 보듯 더욱 뻔한것이었답니다. 이순신에게 적군은 왜놈들이 아니라 우리나라 왕과 붕당세력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순신장군은 "戰死"라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노량해전 선상에서 만들어 세상에는 죽은 것으로 만들고, 자신은 몰래 조용히 아무도 모르는 어느 곳에서 여생을 보내려고 알리바이를 조작했다는 것입니다.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한 깊은 뜻을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이 마지막 말은 이순신장군이 직접 말한것이 아니고, 장군의 아들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이 말을 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린 것 뿐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옆에는 많은 참모들이 항상 명령을 기다리며 함께 있어야하는데도 그 장면을 본 사람이 오로지 맏아들 '회'와 조카 '완', 몸종 '김이(金伊)' 이외에는 없었다는 이 묘한 사실을 미루어 이해하시겠습니까? ['355m봉' 정상] 10:15 "355m봉" 벤치가 있으면 봉우리 정상이라고 앞에서 언급했죠? 위에서 제가 언급한 이야기들은 "이충무공 전서"에 부록으로 수록된, 이순신장군의 조카인 '이분(李芬)'이 기록한 행록(行錄)에 나오는데 장군의 최후의 상황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그 기록에는 이순신장군이 적의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을 당시 장군의 사망을 알았던 인물은 아들 '회'와 조카 '완', 그리고 몸종 '김이(金伊)'밖에 없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이 사망한 뒤 임시로 함대의 지휘를 맡은 이 역시 아들 '회'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참모들과 부하장수들로 가득한 기함 지휘소에서 함대 사령관이 저격을 당해 사망하였는데도 그것을 단지 가족 3명밖에 알지 못했다는 점을 어떻게 해석 해야하겠습니까? 더더욱 삼도수군통제사의 지휘권이 고참 부하장수가 아닌 신출내기인 아들과 조카에게 돌아갔다는 점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극히 의심스러운 점입니다. "은둔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도 들춰냅니다 "조선 수군은 원거리 포격전을 주로 구사하였기에, 야간보다는 주간에 해전에 임하였다. 하지만 노량 해전만큼은 야간에 이루어져 새벽에 끝나는데, 이것은 야음을 틈타 이순신을 도피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충무공 전서"의 "행록(行錄)"을 미루어 보며 결국 이순신장군은 은둔을 위해 "戰死"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조작한 것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이러한 설은 믿던 말든 생각과 판단은 여러분들의 몫이라는 것을 밝혀 둡니다. ['340m봉'으로 가는 길] 다시 거의 평지 수준의 길을 10여분 갑니다. 이순신장군의 죽음에서부터 그 이후의 상황을 날짜별로 정리를 하면.... 이순신장군은 1598년 11월 19일에 노량해전 선상에서 "공식적으로 사망"하여 그 시신은 20일 뒤인 12월 10일에 어머니의 고향인 아산으로 옮겨집니다. 하지만 국가가 삼도수군통제사의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룰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장례는 그로부터 80일이 경과한 다음 해 2월 11일에 치러지며 "가묘"에 장군을 모십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5년 뒤인 1614년에 정식으로 묘를 만들어 장군을 안치합니다. 이것은 이순신장군이 1598년 11월 19일 노량 해전 선상에서 알리바이를 위해 "戰死"한 이후 宣祖와 붕당세력들을 피해 은둔하며 살다가, 16년 후 장군의 나이 70세인 1614년에 실제로 사망하여 장례를 치렀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라고 "은둔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장합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순신장군은 그렇게 쉽사리 죽을 하수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340m봉' 정상] 10:25 이번엔 벤치도 없는 봉우리 같지도 않은 "340m봉"을 지나게 되고.... 이순신장군이 쓴 詩 한수 속에서 장군의 마음을 읽을수 있습니다 아득하다 북쪽 소식 들을 길 없네, 외로운 신하가 때를 잘못 만나 한이구나. 소매 속엔 적을 꺾을 병법 있건만, 가슴 속엔 백성 구할 방책이 없네. 천지는 캄캄하여 서리 엉키고, 산과 바다엔 피비린내 진동하네. 말을 풀어 화양으로 돌려보낸 뒤, 복건 쓴 처사되어 살아가리라. 이순신장군은 노량해전 이전에 이런 詩를 지었습니다. 이미 장군은 자신의 처지와 앞으로의 계획을 예견하고 있는 듯 하지 않습니까?. "복건 쓴 처사되어 살아가리라" ['천방산' 조망] "천방산" 정상이 가까워져 옵니다. '이순신장군' 이야기는 여기쯤에서 끝내고 "천방산"으로 올라 갑니다.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임도] "340m봉"을 내려 가니 우측에 임도가 나타나 함께 동행합니다. 안내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산군'에서 오르는 "천방산 등산로 입구"인듯... 10여m 전진하니.... [임도-탑곡리 여섯갈랫길] 10:34 "임도-탑곡리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섯갈래로 길이 난 갈림길이었습니다. 정맥길은 직진입니다. 이곳이 우측 "예산 임도"에서 올라오는 "천방산 등산로 입구"인듯 [임도-탑곡리 여섯갈래길 이정표] 이정표엔 "천방산 방향" 표시는 없습니다. 아무 표시가 없는 직진방향으로 갑니다. ['천방산'으로 가는 길] "임도-탑곡리 갈림길"에서 봉우리 하나를 넘어 가면.... ['ㅏ' 갈림길] 10:41 이정표가 있는 "ㅏ"자 갈림길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도 우측 "예산 임도"에서 오르는 '천방산 등산로 입구"인듯 합니다. ['천방산'으로 오르는 된비알] "천방산 정상"으로 약23분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물론 중간에 전위봉들이 있습니다. [갈림길] 11:02 된비알을 20여분 치고 오르면 갈림길을 만납니다. 좌측길은 "천방산 정상"으로 가는 지름길 인듯한데, 확신할수가 없어 직진해서 오릅니다. 쬐끔 편할려고 하다가 왕창 알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ㅎ [천방산 갈림길] 11:04 정맥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천방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을 곧 바로 만납니다. 여기서 "천방산 정상"을 갔다가 되돌아 와 우측길로 가야합니다. ['천방산' 정상으로 가는 길] 갈림길에서 '천방산 정상'까지는 100m로 3분 정도 걸렸습니다. [천방산 정상] 11:07 "천방산 千方山 479m" 글자대로 하자면 조망이 좋아야 하는데 숲으로 갑갑했습니다. 멀리서 볼때는 제법 멋진 조망이 있을걸로 예상했는데.... [천방산 정상 이정표와 표지판] 11:07~11:20 "대구 비실이 부부" 표지기가 눈에 확 들어 왔습니다. 정맥길을 걸으며 이제까지도 많이 보며 왔습니다만, 오늘 특별히 눈에 들어 오는 것은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 이신 "聖本님"이 "대구 비실이부부산악회"와 함께 산행을 하고 있다고 알려 주었기 때문일것입니다. ㅎ [천방산 갈림길 회귀] 11:23 "천방산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정맥길을 갑니다. 베낭을 이곳에 두고 "천방산 정상"을 다녀 왔는데 그대로 잘 있군요. ㅎ ['385m봉'으로 가는 길] ['385m봉' 정상] 11:38 '천방산 갈림길'에서 15분 정도 진행하면 벤치가 있는 "385m봉"을 지나고... ['탑곡리-이치리' 갈림길] 11:42 ['탑곡리-이치리' 갈림길 이정표] "385m봉"에서 5분여 내림질을 하면 갈림길을 만납니다. 이름하여 "탑곡리-이치리 갈림길" 좌측은 '공주시 유구읍 탑곡리'이고, 우측은 '예산군 대술면 이치리'랍니다. 정맥길은 "극정봉"을 향해 직진합니다. ['부엉산' 정상] 11:49 ['부엉산' 정상 표지판] "탑곡리-이치리 갈림길"에서 7분 정도 오름짓을 하니 바로 "부엉산"이었습니다. "부엉산 403m" 지명의 유래는 알수 없었습니다. 부엉이가 많이 서식해서일까? ㅎ '진혁진씨'의 개념도에는 이곳이 "403m봉"으로만 표기되 있고, 다음 봉우리인 "400m봉"을 "부엉산"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별다른 의미는 없는 私的인 표기인듯하여 그냥 지나칩니다. ['400m봉'으로 가는 길] "403m봉 부엉산"에서 10여분 진행하면 바로 "400m봉"이 나옵니다. ['400m봉' 정상] 11:59 벤치가 두개 있는 400m봉"을 지나갑니다. '진혁진씨의 개념도'에는 "부엉산"이라고 표기한 곳입니다. [이정표] 12:08 개념도 상으로 볼때엔 이곳 근처가 "억새밭"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방향이 우측으로 급하게 꺽인다는 것을 알려 주는 이정표 외에는 특징없는 곳입니다. ['350m봉'으로 가는 길] 무성하게 자란 수풀로 길이 보이지 않는 곳을 헤치고 나갑니다. 그러면 길은 다시 안정을 찾고.... ['유구읍 덕곡리' 조망] 12:21 좌측으로 오늘 산행을 시작했던 "각흘고개"방향으로 지난 구간에 올랐던 '무성지맥분기점봉'과 계곡 사이로 '공주시 유구읍 덕곡리'가 보입니다. ['350m봉'] 12:23 "350m봉" 이번엔 벤치는 없고 이정표만 있는 "350m봉"을 지나 갑니다. "극정봉" 까지 1.3km가 남았다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오지재'로 내려 가는 길] 울창한 리기다 소나무 숲을 10여분 지나며 "오지재"로 내려 갑니다. [오지재] 12:34 [오지재] "오지재" 좌측 계곡에 "공주시 유구읍 덕곡리"에 "머그네미"라고 하는 마을이 있고, 우측 계곡에는 "예산군 대술면 이치리"에 "소거리"라고 하는 마을이 있군요. 누군가 "오지재"라고 써붙여 놨으니 우리는 그냥 그렇게 알고 지납니다. [벌목지대로 오르는 길] "오지재"에서 오름길을 10여분 올라 갑니다. [벌목지대] 12:44 갑자기 시야가 트이는데 그 이유는 우측 '예산'지역에 벌목을 해 놨기 때문입니다. "봉수산" 아래에는 '공주시'지역에 벌목을 해 놨더니, 이번엔 '예산'지역입니다. ['가야산' 조망] 이나저나 벌목 때문에 조망이 확 트입니다. 무었보다도 서쪽으로 "가야산"이 조망되는군요. '금북정맥'은 다시 저 "가야산"으로 이어집니다. 몇구간 후에 올라야하는 "가야산"이며, 충청남도 도립공원이기도 합니다. [오서산 조망] 남서쪽으로는 '금북정맥'에서 가장 높은 산인 "오서산"이 조망됩니다. 정맥길은 남쪽으로 충남 보령시 "백월산"까지 내려 갔다가 다시 북진해야 합니다. [극정봉 조망] 12:52 벌목지대를 지나 내려 가니 "극정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극정봉'으로 오르는 길] 20여분 오름짓을 하면.... ['극정봉' 정상] 13:09 ['극정봉' 삼각점] [극정봉 표지기] 13:09~13:25 "극정봉 極頂峰 424m" "극정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높이가 "424m"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공식적으로 세운 삼각점에는 "421m"로 표기해 놨군요. 그 동안에 산의 키가 줄어 들었나 봅니다. 이곳에서 또 휴식을 취하며,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입맛도 없어서 꾸역꾸역... 물만 마십니다. 아무리 마셔도 소변은 안나옵니다. 땀으로 다 나가니.... 물 3L를 준비했는데 아직 갈길이 먼데 벌써 1L도 남지 않아서 물을 아껴 마시기 시작합니다. ['400m봉'으로 가는 길] 낙엽이 푹신푹신하게 해주는 편안한 산길을 15분 정도 진행하니... ['400m봉'으로 가는 갈림길] 13:41 ★길조심★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6시간이 지났기에 피로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길을 만나면 직진하는 길이 "우횟길"인 경우가 99%입니다. 그리고 올라 가 봐야 별거도 없는 단순한 봉우리가 또한 99%입니다. 그래서 "휴~ 힘도 든데 우회 할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들을 생각해서라도 올라 가봐야지?"라고 생각하며 우측으로 무거운 발길을 옮깁니다. ['400m봉' 오르는 된비알] 오르는 길은 짧은 거리이지만 무척 가파랐습니다. ['400m봉' 정상] 13:44 봉우리에 오르니 "400m봉"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맥길이 이 봉우리에서 방향을 우측으로 완전히 바꿔 가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전 갈림길에서 직진길이 우횟길인줄 알고 우회 했더라면....생각만 해도 끔직합니다. 아마 엄청난 알바를 할뻔 한것이었습니다. ㅎㅎ "君子大路" "君子正路"로 가야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곳이었습니다. 이렇듯 홀로 가는 적막한 산길에서 "휴~큰일 날뻔 했군!~"이라는 독백을 자주 하며 갑니다 ['명우산'으로 가는 길] "400m봉"을 내려가고...다시 오르고.... [공터봉] 13:53 10여분 오르면 공터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는데 ['명우산' 조망] 앞에 "명우산 鳴牛山 368m"이 조망됩니다. 그런데 "명우산" 정상을 얼떨결에 옆으로 우회하여 정상 촬영은 못했습니다. ['절대봉'으로 가는 길] 무심결에 "명우산"을 통과하여 오르락 내리락하며 "절대봉"으로 갑니다. [벌목지대] 14:03 "오지재"에서 "극정봉"을 오를 때 있었던 벌목지대와 아주 비슷한 벌목지대가 나오고 다시 시야가 트입니다. [길없는 길] "절대봉"으로 가는 길은 무성한 수풀로 길을 알수 없을 정도입니다. 수풀 속으로 나있는 길의 윤곽을 찾으며 헤메며 올라 갑니다. 수풀 속에 있는 뭔 괴물이라도 밟으면 어쩌지?라고 독백하며 조심조심 오릅니다. 어휴~~무서워.... 가시나무를 비롯해 잡목가지들이 뒤에서 잡아 당깁니다. ['절대봉' 조망] 14:11 수풀 속에서 헤집고 나오니 "절대봉"이 보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지만 '불문리고개'와 중요한 '340m봉'도 보였습니다. ['절대봉' 오르는 길] 肉山에서 구경하기 어려운 바위들도 제법 있는 구간을 지나 "절대봉"으로 갑니다. [절대봉 정상] 14:24 [절대봉 표지판] 14:24~14:40 "절대봉 353m" 휴식시간은 점점 더 잦아지며 시간은 길어 집니다. 제가 걸음도 느리기도 하지만 사진촬영과 감상문을 쓰느라 시간이 다른 분들보다 훨씬 더 걸립니다. 이번 구간도 다른 분들은 평규 7시간 정도에 완주를 하지만 저는 8시간 40분 정도 걸렸으니 알만 하죠? ㅎㅎ 하지만 저는 빨리 걷는데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는 것...다 아시죠? ㅎ 이 산길과 이에 얽힌 사연들을 얼마나 더 깊이있게 느끼며 공부하며 가느냐가 중요하다는거.. 아무 관찰없이 빨리 가기만 한다면 저도 빨리 갈수 있어요~~ ㅎ 에휴~ 그건 변명이고 세월 가며 점점 더 느려지기 시작합니다. ['절대봉' 정상에 있는 굴] "절대봉" 정상에는 엄청나게 큰 굴이 하나 있습니다. 거의 직각으로 뚫어 파 내려간 굴이었습니다. 많은 선답자들이 이 굴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다는 후기를 보았습니다. 다음 구간에서 아주 자세하게 알려 드릴 예정입니다. 미리 먼저 조금 알려 드리자면, 이 지역 금북정맥 산줄기에 우리나라 최대의 金鑛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일제침략시대에 다 파먹고 폐광이 되었지만, 당시 금광을 찾기위해 이 지역 산줄기를 뚫고 파헤치며 곳곳에 흉터를 남겼는데, 이 굴도 그 중에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불문리고개'로 내려 가는 길] "절대봉"에서 휴식을 취하고 "불문리고개"를 찾아 내려 갑니다. ['불문리고개'로 추정] 14:55 "절대봉"에서 15분 정도 내려 가니 "불문리고개"로 추정되는 안부가 나옵니다. 이곳 이외에는 고개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340m봉'으로 오르는 길] 다시 10여분 오름짓을 합니다. 오늘도 지긋지긋하게 오르고... 내려 가고...또 오르고...또 내려 가고...를 반복합니다. ['340m봉' 정상] 15:05 ['340m봉' 표지기] 봉우리 같지 않은 봉우리에 올랐는데 어느 선답자가 표지기에 매직으로 표기한 "340m봉"이 없었다면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벌목지대] 15:13 "340m봉"을 벗어나니 다시 벌목지대가 나타나며 시야가 트입니다. ['명곡저수지' 조망] 15:14 동쪽으로 '공주시 유구읍 명곡리'에 있는 "명곡저수지"가 가까이 보이며, 뒤로 멀리 "무성산"이 조망됩니다. ['서재'로 가는 길] 완전 벌거숭이가 된 벌목지대를 지나고, 다시 리기다소나무 숲을 지나 "서재"로 갑니다. [서재] 15:26 "서재"에는 실제 차량이 다니는 비포장도로급 임도가 지나고 있으며, 간이화장실이 하나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차동고개"로 가는 정맥길은 우측으로 올라 갑니다. [서재] "서재"로 내려와 "차동고개"로 가는 길을 반대 방향에서 본 것입니다. [불모골고개(?)] 15:29 "서재"에서 조그만 둔덕을 하나 잠깐 넘어 가니 "불모골고개"로 추정되는 고개를 지나고... [임도] 잠시 편안한 임도를 만나 따라 올라 갑니다. [임도 갈림길] 15:36 편안한 임도도 잠깐...다시 산길로 올라 가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 근처가 "275m봉"인듯 합니다. ['260m봉'으로 가는 길] 임도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어 어디인지도 모를 "서낭당고개"를 지납니다. "서낭당고개"는 무성하게 자란 수풀로 흔적을 찾을수 없었습니다. ['260m봉'] 15:38 "260m봉"은 우회하여 진행하고.... [묘지] 15:40 묘지를 지나 갑니다. [길 없는 길] 묘지를 지나니 무성하게 자란 수풀로 또다시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수풀을 헤치며 땅바닥에 난 길을 찾으며 헤집고 올라 갑니다. 숲 속에서 모르고 뱀이라도 밟으면.... 와락 덤벼 들것같아 심히 무시무시한 공포를 느낌니다 그래서 뱀이 제일 싫어 한다는 꽃냄새가 나는 "봉숭아"라는 곡을 배경음악으로 올렸습니다. 봉숭아를 "禁蛇花"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런 연유라고 합니다. 봉숭아꽃으로 손톱을 붉게 물들이던 풍습도 붉은 빛을 귀신이 싫어하기 때문에 못된 귀신이나 질병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것이 이 민속의 본디 뜻이었다는 것이랍니다. 노래가 너무 좋아 올렸다는 것은 말 안해도 다 아시져? ㅎㅎ 야하튼 "뭐 해먹고 살일 있다고 이런 위험한 고생을 하고 있는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집에 돌아 가면 다시 다음 구간으로 갈 생각 뿐입니다. ㅎㅎ [산불 난 지역] 15:46 수풀을 헤치고 산꼭대기로 올라 가니 어느 정도 길은 열리는데.... 산불이 났었던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뒤돌아 본 '절대봉' '극정봉' '봉수산'] 산불이 났었던 봉우리를 지나며 뒤돌아 보았습니다. 이제서야 지나온 정맥길이 조망됩니다. 먼저 오전 9시경에 올랐던 "봉수산"이 삐쭉 쬐끔 보이는데 무척 반갑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오후 1시경에 올랐던 "극정봉"과 오후 2시경에 올랐던 "절대봉"이 조망됩니다 ['294.2m봉'으로 가는 길] 조망을 끝내고 다시 막바지 오름짓을 합니다. [정맥 마루금 같지 않은 길] 15:56 "294.2m봉"으로 가는 길엔 마루금 같지 않은 길도 있고... [뒤돌아 본 '절대봉' '극정봉' '봉수산'] 15:58 다시 한번 지나온 산봉우리들을 뒤돌아 보며 홀로 감개무량 해 합니다. [294.2m봉'으로 가는 길] 다시 수풀로 뒤덮힌 길없는 길을 헤치고 올라 갑니다. 이제까지의 금북정맥길 중에 이번 구간이 제일 더럽습니다. 무셔버~~ㅎ ['294.2m봉' 정상] 16:09 ['294.2m봉] "294.2m봉" 이번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별다른 특징은 없으며 수풀로 조망도 없었습니다. ['차동고개'로 가는 길] 숲 속으로 난 길을 따라 하산 합니다. 차량들이 질주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묘지에서 '당진-대전 고속도로' 조망] 16:16 잠시 내려 가니 묘지가 나오며 "당진-대전 고속도로"가 조망됩니다. "차동고개"에 거의 다 온 것입니다. [갈림길] 16:17 묘지 상단을 따라 내려 가는데 갈림길이 있습니다. 선답자들의 표지기도 없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직진합니다. 다행이 바른 길이었습니다. [차동고개 들날머리] 숲속을 빠져 나오니 "차동고개"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음 구간 들머리] 16:23 [32번 국도]로 나오니 건너편에 다음 구간 들머리가 보이고.... [차동고개] "차동고개 車東고개 해발 215m" 대간 정맥꾼들의 지침서인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에는 "차유령 車踰嶺"으로 나옵니다 순수 우리말로 해석하면 "수레넘이 고개"가 되며, 이런 고개 이름은 전국에 산재해 있습니다 즉, 수레가 넘어 갈수 있는 넓은 고갯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산"과 "공주"를 넘나드는 대표 고개가 이 "차유령 車踰嶺"이었고 현재도 대표 고개입니다. 다만, 이 "차유령 車踰嶺" 밑으로 고속도로 터널이 뚫려 "차유령 車踰嶺"의 역활이 없어졌습니다. 아주 옛날에 '차서방'이 산삼을 동쪽 산에서 찾아 노모에게 먹여 병환을 낳게했다는 설화에서 "차동고개"라고 했다는 설화는 단순히 효도 설화일뿐.... ['차동고개' 예산 방향] 터널화로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쓸쓸한 "차동고개"에는 수레를 끌고 힘겹게 오르내리던 옛 선조들의 거치른 숨소리만 적막 속에 감도는듯.... ['차동고개' 공주 방향] "공주 公州" 백제의 수도로 64년간 다섯명의 왕이 즉위했던 천혜의 요새였답니다. 북으로는 '금북정맥'이 방어벽이 되고, 남으로는 '금강'이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곳이라서... 옛날에는 "웅주 熊州"였다죠? "웅 熊"을 우리말로 하면 "곰"입니다. 이 "곰"이 세월따라 음운변화를 이르으켜 "공"이 되어 "공주"가 되었다는 설이 공식적인 '공주시 홈피'에 나와 있어 재미있어 첨언합니다. [차동휴게소] [새로산 아쿠아 샌달] 폐업한 "차동휴게소" 옆 평상에서 옷을 갈아 입고, 무겁고 갑갑한 등산화도 새로 산 '아쿠아샌달'로 갈아 신었습니다. 워~ 시원해~ ^*^ '아쿠아샌달'은 39,800원에 삿는데 잘 삿다고 생각됩니다. (이것 보고 사시는 분들 무지 많겠내요~ㅎㅎ) [유구 택시] 16:44 유구터미날로 가려고 히치를 시도했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 이 휴게소에 들려 잠시 쉬고 가는 사람에게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태워 주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금북정맥을 하며 충청남도 지역을 몇달째 다니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충청도 사람들...특히 운전기사분들은 무척 불친절하고 배타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됫습니다. 길을 묻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일언지하에 퉁명스런 부정어가 한마디 튀어 나올 뿐.... 제가 그들에게 부정적으로 보여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며 나에게만 일어 난 나 만의 문제였기를 기대하며, '유구택시'를 불렀습니다. '유구택시'는 호출 6분만에 도착하여, 6분이 걸려 "유구버스터미날"에 내려 주었습니다. 메타요금이 6,400원이 나왔는데 6,000원만 받겠다고 합니다. 웬일? ^.^ 충청도 사람에 대한 인식이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ㅎㅎ 제가 사전에 이 개인택시 기사분의 전화번호를 미리 알아서 호출한게 적중한것이었습니다. 다음에 가실 분들은 꼭 적어 가세요 ☏ 041-841-5959 [유구 터미날] 16:50 "차동고개"에서 6분만에 "유구터미날"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온양온천역"으로 가는 [100번 시내버스]의 종점입니다. 앞으로 다음 구간을 위해 한번 더 이곳에 와야 하겠습니다. [100번 버스 시간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7:00 7:40 8:20 9:20 10:10 11:10 12:10 13:10 14:10 15:10 16:10 17:10 18:10 19:10 20:10 참고로 '온양온천역'까지 버스요금은 3,000원이었으며, 카드로 2,950원이었습니다. '공주시'와 '아산시'의 경계인 '각흘고개'를 기준으로 추가요금을 무려 1,800원을 더 받습니다.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요금체계인데, 전철 환승 요금도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유구읍내] "유구읍 維鳩邑" 한자를 풀이 해 보면 "밧줄로 동여 맬 維 유"에 "비둘기 鳩 구"입니다. 비둘기가 날아 가지 못하게 밧줄을 든든하게 매어 둔다는 뜻이겠습니다. 임진왜란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관련있는 전설이 있는데 알 필요 없는 전설이라 생략합니다. '유구읍내'를 휘 둘러 보고 5시10분 차를 타고 1시간5분이 걸려 '온양온천역'에 내려 급히 뛰어 6시 26분 전철을 타고 귀가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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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발역-SK하이닉스-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무우정-성호연꽃단지-설성면사무소
['8코스 자채방아길' 안내도] "경기옛길-봉화길 제8길 자채방아길"의 공식 안내도입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경기옛길-봉화길 제8코스""부발역"에서 "SK하이닉스" 지역을 돌아 보고 "자채방아마을"을 지나 "설성면행정복지센타"까지 "20km"를 가는 코스입니다. ['부발역 1번출구'] 11:55 2024년 3월 11일 월요일 흐림 <분당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부발역 1번출구"로 나가 직진성 우측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8코스 출발지>는 좌측 <죽당천 다리> 옆에 있는 <7코스 출발지>와 같습니다만, <6-7코스>때에 두번이나 갔었기에 생략하고 바로 진행합니다. ['아미초'] 11:56 <부발역 1번출입구>에서 50m쯤 진행하면 "아미초등학교"를 만나고 200m 정도 더 진행하면.... ['영동고속도 이천 나들목'] 12:00 "영동고속도로 이천 나들목"이 지나는 굴다리를 통과합니다. [사거리] 12:02 굴다리를 나서면 바로 <부발 아파트단지>를 만나는데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가 좌측으로 진행하면.... ['이천 IC 톨게이트'] <영동고속도로 이천톨게이트> 옆 도로를 5분여 통과합니다. [사거리] 12:07 그러면 <부발>에서 가장 번화한 사거리를 만나서 좌회전 합니다. 정면에 보이는 공장이 "SK하이닉스"인데 "SK하이닉스"의 주변은 신도시를 방불케 하는군요. <부발>은 "SK하이닉스의 도시"라는걸 실감할수 있군요. [중심상가지역] 완전한 신도시 형태를 갖추고 있는 <부발>의 중심가를 통과하면서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를 조망하며 7분여 진행하면.... ['아미사거리'] 12:15 <옛3번국도>였던 <경충대로>를 만나며, <아미사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길을 건너 건너편 보행로를 이용해야 하더군요. "아미리 牙美里" '어금니 아牙'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마을 지형이 <어금니>를 닮은듯.... ['사동교'] 12:20 <아미사거리>를 지나면 "영동고속도로 사동교" 밑을 지나고... ['사동삼거리'] 12:23 이어서 <사동삼거리>를 만나는데 "사동리 巳洞里"는 '뱀을 닮은 지형'이라고 합니다. ['사동3리'] <옛3번국도-경충대로>와 헤어져 <사동3리 중심가>를 통과하여 1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 12:32 횡단보도가 없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이천물류사거리'] 12:33 <337번지방도>가 지나는 "이천물류사거리"를 만나는데 길을 건너 건너편 보행로를 이용하여 8분여 <337번지방도>를 진행합니다. ['등안사거리'] 12:41 그러면 "등안사거리"를 만나고... 계속해서 8분을 더 직진하면.... ['대월교차로'] 12:49 "대월교차로"를 만나는데 여기에 "대월면 大月面 행정복지센터"가 있더군요. <8코스>의 이름을 "자채방아길"이라고 만든 핵심 지역이 <대월면 大月面>이니 관심 가져야 되겠습니다. ['초지사거리'] 12:58 <대월교차로>에서 10여분 진행하면 "초지사거리 草芝"를 만나는데 여기서 좌측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방향으로 가야하고 ['효양산' 조망] 방향을 틀어 북쪽을 바라보면 지나온 "SK하이닉스" 굴뚝과 고려시대 외교의 달인이라 불리우는 "서희 장군"이 탄생한 "효양산"이 조망됩니다. ['기독교박물관' 입구] 1:02 <초지사거리>에서 좌측으로 200m 쯤 진행하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 골목으로 들어 갑니다. ['기독교 박물관'] 1:04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월요일이라 휴관 중이어서 들어 가 보지 못하고 ['기독교 박물관' 조망] 박물관 뒤에 있는 한옥집이 "평양 장대현교회"를 이곳에 재현 한것이라 합니다. ['한나요양원'] 박물관을 지나면 상당한 규모의 "한나요양원"을 만나는데 요양원을 빙 돌아 가면.... ['초지리' 조망] 1:09 <대월면 초지리>의 들판이 펼쳐지는데 <목장>이라고 표기한 곳으로 10여분 걸려 가면... [목장 앞 다리] 1:19 <도리천>이라는 조그만 개천을 건너는 이름모를 다리를 건너 우회전하여 ['구시리' 가는 길] <구시리>를 20여분 진행하면.... ['구시리 마을회관'] 1:38~1:48 "구시리 九時里 마을회관"을 만납니다. ['구시리 쉼터'] 마을회관 앞에 있는 정자에서 10여분 쉬어 갑니다. ['구시리' 들판] 1:48 계속해서 <구시리 九時里> 들판을 진행하는데, 젖소들이 봄맞이를 하고 있어 봄이 다가 오고 있음을 젖소들로 부터 느낄수 있었습니다. 저 앞에 보이는 <양화천>으로 가면.... ['양화천' 만나는 곳] 1:54 . 지난 <7코스>에서도 만났던 <양화천>을 다시 <양화천>의 상류에서 만납니다. ['양화천 둑방길'] "양화천 楊花川" 버드나무가 개천가에 많아 붙여진 이름이지만 버드나무는 이제 거의 찾아 볼수 없군요. 이 <양화천> 주변에서 우리나라 토종쌀인 "자채미 紫彩米"가 아직도 소량 생산되는 곳이랍니다. 다시 말해 이번 코스의 이름을 "자채방아길"이라고 만들어 준 지역이 되겠습니다. 15분 정도 진행하면.... ['군량교' 앞] 2:08~2:22 ★길조심★ "군량교 郡梁橋"를 만나는데 길찾기에 유의해야 하는 곳이더군요. 왜냐하면 "무우정""자채방아마을"을 우측으로 들어 가 둘러 보고 다시 이곳으로 나와 직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채방아마을'] <군량교>에서 우측으로 조금 들어 가면 "자채방아마을"을 만납니다. 내용을 모르는 분들은 <자채방아>가 뭔 뜻이지?라고 대부분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토종"이라는 말과 "재래종"이라는 말의 뜻부터 깊이 있게 알아야 겠는데.... "토종"은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처음부터 자생하며 재배되어 온 작물이나 동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재래종"은 외국에서 수입되었지만 우리나라에 토착화 된 식물이나 동물을 의미하죠. 우리나라 토종이거나 재래종인 쌀의 대표 중에 "자채미 紫彩米""자광미 紫光米" 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8코스>의 이름인 <자채방아길>은 <자채미>를 생산하고 도정을 하는 방아가 있던 마을을 가는 길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되며 여기가 그곳이라고 확신합니다. 조선시대 왕실에 진상되던 쌀은 "이천의 '자채미'""김포의 '자광미'"인데, "여주-이천의 자채미 紫彩米"는 쌀의 색깔이 자줏빛이 나서 붙여진 이름인데 한반도에서 매년 가장 일찍 수확되어 7월말이나 8월초면 거둘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밥맛도 좋지만, 한반도에서 매년 처음으로 수확한 쌀이니 왕실에 바쳤을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품질도 품질이지만, 최초로 생산되는 햇쌀이라는데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죠. "김포의 자광미 紫光米"도 자줏빛 광채가 난다고 붙여진 쌀인데 수확기는 <자채미>보다 다소 늦은 9월초인데 그래도 추석 이전에 추수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김포시 농업기술센터>의 자료에는 진상미로서의 '자광미'를 “자광벼는 약 300년 전 중국 길림성에 갔던 사신들이 밥 맛이 좋다는 볍씨를 가져와 당시의 통진현-현재 김포시 월곶면 '밀다리'밑에서 심은 것으로부터 유래되어 "밀달쌀"이라고 불렀다." 라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천의 '자채미'""김포의 '자광미'"는 현재 이런 품종은 전국 어느 곳에서도 재배하지 않죠. 경제성과 맛에서 현대 개량 품종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고, 더 좋은 품종으로 모두 바꾸었답니다. 이곳 <이천시 대월면 군량리 자채방아마을>에서 소량 생산 될뿐.... 그러니까 "임금님표 이천쌀"이니 "대왕님표 여주쌀"이라던가 "김포 금쌀"이니 하며 "임금님 진상미"라고 광고하는 것들은 옛날 생산하던 <자채미>와 <자광미>에 물타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진상미와는 전혀 관계없는 현대 품종들이고, 값만 비싸다는게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오로지 광고 선전을 위한 "상표"일 뿐이니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무우정' 입구] "무우정 舞雩亭" 입구에는 사적비와 <스탬프함>이 설치되 있습니다. 사적비는 사라진 <무우정>을 자비로 새로 세운 <김병일>이라는 분의 "고향사랑"을 칭송하는 비더군요. ['무우정'] "무우정 舞雩亭" '춤출 무舞'에 '기우제 지낼 우雩'를 사용하는 <무우정>입니다. <이승만 전대통령>의 호가 <우남 雩南>이어서 기억하는 '기우제 지낼 우雩'입니다. <무우정>에 대해선 안내문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안내문을 참고 하고... ['무우정' 앞] 옛날 <자채미>를 생산하던 <이천평야>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서 가뭄이 오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었겠는데, 사방이 조망되는 곳이었습니다. <무우정>에서 다시 <군량교>로 나가면.... ['군량교' 앞] 2:22 <무우정>에서 다시 <군량교> 앞으로 나와 <양화천 둑방길>을 16분 정도 진행하면.... ['군량2교'] 2:38 <군량2교>를 지나는데 ['노성산''마국산' 조망] 오늘 코스의 종점인 <설성면사무소>가 있는 <금당리>에 있는 "독조지맥 노성산".과 "독조지맥 큰바래기산"에서 분기하는 "해룡지맥""마국산"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독조지맥>과 <해룡지맥> 사이에 흐르는 개천이 <양화천>인데, "여주-이천쌀" 생산에 젖줄이 됩니다. "독조지맥-해룡지맥"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제가 두발로 쓴 산행기를 참고 하시고... ['군량1교'] 3:00 <군량2교>에서 22분 정도 직진하면 <군량1교>를 지나고 ['양화천' 합수부] 3:15 <군량1교>에서 다시 15분 정도 황량한 둑방길을 진행하면 두갈래 <양화천>이 합수하는 곳을 만나는데 우측 <복평교>로 우회하여야 합니다. ['복평교'] 3:22 <복평교>에서 지나온 <양화천 합수부>를 조망하고 ['복평교' 앞 '보뜰마을'] <복평교>를 건너 직진하면... ['미꾸라지 체험장'] 3:26 이 지역이 "이천시 모가면 서경리"인데 <농촌체험마을>로 <미꾸라지 체험장>이 있더군요. ['양화천' 가는 길] <미꾸라지 체험장>을 돌아 다시 <양화천>으로 나가서 ['양화천변길'] <양화천변>을 20여분 진행하면.... ['영산교'] 3:48 <영산교>라는 다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다리를 건너야 하고 ['영산교'에서 '공간미술' 조망] 3:49 <봉화길>은 <영산교>를 건너 바로 우측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건너편에 "공간미술"이라는 조각품 전시장이 있어 다녀 오도록 합니다. [조각품] 여러 조각품이 널려 있는데 "Greeting Man"은 유명해서 아는데 여기서 제작되는가 봅니다. ['설성면 수산리'] <부발읍>에서 <대월면>을 지나 <모가면>을 지나면 드디어 <설성면>으로 들어 가는데 "설성면 수산리"를 20여분 통과하면.... ['장천2리' 입구] 4:12 "설성면 장천2리" 입구를 만납니다. 이곳은 "독조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곳으로 두번째 방문이 되겠습니다. ['장천2리 마을회관'] 4:18 "장천2리 미을회관"을 지나고 ['장천리' 통과] <장천리>를 17분여 통과하면... ['성호호수 연꽃단지'] 4:35 "성호호수연꽃단지"를 만납니다. <성호저수지> 상류지역으로 연꽃단지를 만들어 놨군요. ['스탬프함'] ['연화십덕'] "성호호수연꽃단지"에 <스탬프함>이 있고 [정문] 4:37 연꽃단지 정문으로 나가면... ['성호교'] <성호저수지>를 건너는 <성호교>를 만나고 ['성호저수지'] 4:40 <성호교>에서 "성호저수지 星湖貯水池"와 다음 코스에서 오를 "설성산 雪城山 290,6m"을 조망하고... ['성호 가로공원'] 4:43 <성호교>를 건너면 가로공원에 <이천의 보금자리>라는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 ['노성산' 조망] <노성산>을 바라보며 10여분 진행하면.... ['금당리 버스정류장'] 4:53 "설성면행정복지센터" 입구가 있는 "금당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며 오늘 답사를 마침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20.5km였으며 약5시간이 걸렸습니다. 개량품종에 완전히 밀려 거의 사라진 <자채미 紫彩米>라고 하는 임금님 진상품이었던 <여주-이천쌀>의 本鄕을 찾아 본 <봉화길>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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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봉화길』
       『제7길 세종효종길』
        "세종대왕의 빛과 그림자를 생각하며" 
      
            세종대왕릉역-이인손묘-번도5리-영릉-세종산림욕장-대로사-한글시장-여주역
['7코스 세종효종길' 안내도] "경기옛길-봉화길 제7길 세종효종길"의 전체 안내도입니다. <7코스>는 <세종대왕릉역>에서 <한글시장>까지는 <여강길 4코스>와 함께 하더군요.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경기옛길-봉화길 제7코스""세종개왕릉역"에서 "세종대왕 영릉"을 돌아 보지 않고 "여주역"까지 "11km"거리라고 안내합니다만, 필자는 두 왕릉을 돌아 보고 "옛 수여선 여주역 터"를 찾며 보고 걸은 거리는 "14.4km"였습니다. 지도에 <빨간색선>은 <파란문>이 직접 걸은 코스이고, <파란색선>은 <경기문화원>의 정규코스입니다. <파란문>이 가는 길은 정규코스 주변 관심지역을 둘러 보고 가기 때문에 정규코스와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세세종대왕릉역'] 10:45 2024년 2월 29일 목요일 흐림 <분당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세종대왕릉역 1번출구"로 나가 우측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세종대왕면 世宗大王面" 이 지역은 <세종대왕 영릉>의 서쪽에 있는 고을이라고 "여주시 능서면 陵西面" 이었는데 지지난해 2022년 1월1일부로 <세종대왕면 世宗大王面>으로로 개명했답니다. ['역전사거리'] <세종대왕릉역 1번출입구>에서 나와 우측으로 돌아 서면 <역전사거리>가 있으며 "경기옛길-봉화길 제7코스 세종효종길" 안내판과 "이인손 스토리텔링"이 있습니다. <역전사거리>를 건너 가면... ['아파트 예정지 입구'] 10:50 "여주 능서역세권 도시개발구역" 입구를 만나는데 <여주 여강길>과 <봉화길> 이정표가 여럿 길안내를 합니다. 특히 <여주 여강길 4코스>의 시종점인데, <여강길>과 <봉화길>은 <한글시장>까지는 함께 가는군요. 예전 제가 <여강길 4코스>를 할 때엔 <영릉>이 시종점이었는데 코스가 이곳까지 연장되었군요. 이번 기회에 답사하지 못했던 <여강길 4코스 연장코스>를 <봉화길>을 하면서 함께 진행하게 됩니다. '일거양득' ㅎ ['여주 능서역세권 도시개발구역'] <성남시 분당>에서 40여분 거리에 있는 <세종대왕릉역>이어서 주변에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루어 지고 있군요. 하지만 요즘 부동산 경기 악화로 중단 된듯.... <경강선> 철로 옆으로 10여분 진행하면..... ['중부내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는 굴다리를 만나고 [굴다리] 11:00 굴다리엔 <세종대왕 관련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앞으로 만나는 굴다리엔 모두 이런 벽화가 있더군요. ['이인손묘' 가는길] <중부내륙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면 바로 <이인손 묘>로 가는 길이 열리는데 250m 정도 진행하면.... ['이인손묘' 앞 갈림길] 11:04 <이인손 묘> 앞 갈림길에 도착하는데 <봉화길>은 우측으로 가라고 안내 합니다만 좌측 뒤에 있는 <이인손 묘>를 보고 우측 <이인손 재실>로 나가는게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이인손>은 좋던 싫던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람이기도 하며 더더욱 <세종대왕릉>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들리고 가야 하겠습니다. ['이인손 묘'] [안내문] "이인손 李仁孫, 1395(태조 4년)∼1463(세조 9년)" <세종대왕> 시절 지금의 <서울시장>급의 <한성부윤>까지 오른 인물이지만, <수양대군>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는 <계유정란>에 참여한 쿠데타 세력으로 <2등 원종공신>이 되어 <우의정>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한명회><신숙주>등이 <1등공신>이고 <이인손>은 그 뒤를 잇습니다. 하지만 <이인손>은 <수양대군-세조>로 부터 결국엔 토사구팽 당하며 씁쓸하게 퇴장했습니다. [이이인손 재실'] 11:11 <이인손의 묘>가 유명하게 된 이유가 단연 토픽감입니다. 1.<이인손의 묘>는 원래 잠시후 들릴 <세종대왕릉=英陵> 자리에 있었습니다. <세조>가 죽고 뒤이어 오른 <예종> 때에 <세종대왕릉=英陵>을 천장해야 한다는 이슈가 강력하게 떠오릅니다. <세종대왕릉>은 현재 <서울 내곡동 대모산> 기슭에 있는 자기 아버지 <태종릉=헌릉> 옆에 있었는데, <세종>이 죽고 왕실이 <계유정란>등으로 풍지박살이 나자 <세종대왕 왕릉>을 잘못써서 그런거라는 루머가 돌며 천장해야한다는 상소가 빗발치자 새로운 왕릉 물색에 나섯던 것입니다. 2.<이인손>은 <경기광주 이씨>로 엄청 화려한 조상과 자손이 있는 가문이었습니다. <서울 둔촌동>의 지명을 만들어준 <둔촌 이집>이 그의 할아버지입니다. <이인손>은 아들을 다섯 두었는데 모두 지금의 장관급 이상의 관직까지 올랐습니다. <이극배-영의정>, <이극감-형조판서>, <이극증-병조판서>, <이극돈-우의정>, <이극균-좌의정> 이 당시 <조선>은 <전주이씨 왕조>가 아니라 <경기광주이씨 왕조>라고 할 정도였답니다. 3.<이인손의 묘>가 있던 현재의 <세종대왕릉=영릉>에서 이곳으로 묘를 옮길 때 유명한 일화가 있죠. <예종>의 어명으로 묫자릴 찾아 나선 <지관 안효래>가 찾아 낸 곳이 바로 현재의 <여주 영릉>인데 <이인손의 묘>를 파 내자 유해 아래에 비단에 쓰여진 글이 있었답니다. "이 자리의 주인이 새로 나타나면 이곳에서 연을 날려 하늘 높이 떠오르거든 연줄을 끊어라. 그리고 연이 떨어지는 곳에 나의 묘를 옮겨라"라고 적혀 있었답니다. 글대로 연을 날리자 연은 바람에 날려 서쪽으로 약 10리 밖에 떨어졌고 그곳이 바로 이곳이랍니다. '연이 떨어졌다'고 <연당> 혹은 <연주리>라고 부르며 현재의 <세종대왕면 신지리>가 되었답니다 <파란문 생각> 당시 <이인손 가문>이 요직을 두루 섭렵하고 있었으니 왕릉 천장지 물색에 대한 어명을 받은 <지관 안효례>는 <이인손>이 <묘>를 잘 써서 가문이 번성 한다고 느끼고 <이인손의 묘>가 명당자리라고 확신하고, <한양>에서 멀고 먼 <여주>까지 찾아와 <이인손의 묘>를 점지 했다고 봅니다. <조선왕조> 27명의 왕릉은 모두 서울근교에 있는데 <세종대왕릉>만 멀고 먼 <여주>에 있는 이유라고 <파란문>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시 <예종>은 <평안도 관찰사>로 있던 <이인손의 장남>인 <이극배>를 <의정부 우참찬>으로 승진 시키고, 후엔 <영의정>까지 오르게 된 것으로 보아 <예종>이 묫자리를 위력으로 빼앗았다고 생각됩니다. ['영릉' 가는 길] 11:11 <이인손 재실> 앞에 <봉화길>과 <여강길>이 조그만 동산을 넘어 갑니다. 100m쯤 넘어 가면... ['번도5리' 가는 길] 11:13 도로를 만나며 도로를 건너 가면.... ['신지리' 조망] '세종대왕면 신지리'가 펼쳐지는데, "서여주IC"라고 표기 한곳까지 진행합니다. ['서여주IC' 굴다리] 11:22 그러면 "서여주IC"의 날개부분 굴다리를 만나는데 ['세종' 관련 벽화들] "서여주IC" 날개부분 굴다리 세개를 통과 합니다. 모두 <세종대왕> 관련 벽화들이 <영릉>을 찾는 분들을 친근하게 맞이합니다. ['번도4리' 조망] 11:27 굴다리를 통과하면 '세종대왕면 번도리 番都里'가 시작되는데 보이는 마을은 <번도4리>더군요. <번도4리>를 통과하여 우측 "고개"라고 표기한 곳으로 진행하면... [고개] 11:34 <여강길-세종대왕릉 걸어 가는 길>은 좌측 숲 속으로 가라고 하며, <봉화길>은 직진하라고 안내합니다. 진행 해 본 결과 어디로 가나 곧 다시 만나게 됩니다. 좌측길이 약간 지름길이더군요. ['번도5리' 조망] 고개를 넘어 가면 <번도5리 番都里>가 펼쳐지는데 조금만 더 내려 가면... ['보말칼국수' 앞'] 11:38 <보말 칼국수>라는 제법 유명한듯한 음식점 앞에서 방향을 바꿔야 하더군요. "보말"은 제주도에 많이 서식하는 바다 고등으로 "팽이고등"의 방언이랍니다. 양식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본듯한데.... ['여강길'과 만나는 곳] 11:41 <보말칼국수>에서 골목으로 조금 들어 가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이 조금전 고개에서 헤어졌던 <여강길>과 다시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영릉전원마을'] "영릉전원마을"이라고 하는데 <영릉>은 여기서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전원마을을 잠시 통과하면... ['여여사'] 11:48 <여여사 驪如寺> 앞에 있는 <여강길 쉼터>를 지나고 ['번도5리'] 5분 정도 <번도5리>를 통과하면... [사거리] 11:53 사거리를 만나는데 좌측으로 200m쯤 가면 <영릉>인데 우측으로 돌아 가라고 합니다. 알고보니 <영릉>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하여 이쪽 출입구는 폐쇄했더군요. ['영릉' 가는 길] 약1.2km를 우회하며 고개를 넘어 가면... ['영릉' 입구 교차로] 12"07 <영릉입구교차로>를 만나며 좌측으로 들어 가면... ['세종대왕역사문화관'] 12:08 <영릉 입구>와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이 있습니다. 입구와 문화관의 위치가 많이 바뀌었군요. ['역사문화관' 옆문 입구] 먼저 <역사문화관>부터 관람을 합니다. <'세종대왕'> . "세종대왕 世宗大王 1397~1450, 재위 1418~1450"을 알현합니다.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정치 경제 문화 국방의 정치지도자. 과학, 음악, 문학, 인문사회학의 천재적 자질을 가진 훌륭한 학자. 무엇보다 백성을 가슴으로 사랑하고 아끼고, 백성들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키려고 혼신을 다한 따뜻한 사람. 어서 빨리 제2 제3의 "세종대왕"의 출현을 학수고대하며 감사와 사랑의 참배를 올립니다. [생애] "세종대왕 世宗大王"의 공적에 대해선 한국인이면 잘 알고 있겠습니다만 조선왕조 최악의 불행한 왕일수 밖에 없었던 그 분의 "그림자"에 대해선 모르는 분들이 많아 이번엔 "그림자"에 대해 알아 보려고 합니다. 행복한듯 보이는 "세종대왕"이지만 우리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왕이었다는 것을 아시나요?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유명한 고사성어를 모두 아시지요? 그런데 '세종대왕'은 "治國平天下"는 최고인데 "修身齊家"는 마이너스 백점입니다. 왜냐구요? 먼저 후궁들에게서 낳은 서자들은 빼고 정통파 "소헌왕후"에게서 낳은 아들들을 살펴 볼까요? 첫째 아들 : 문종 (외아들 '단종'에게 왕위를 물려 주고 일찍 죽었습니다) 둘째 아들 : 수양대군 → '세조' (삼촌인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습니다) 셋째 아들 : 안평대군 (형인 '수양대군'과 권력 다툼을 벌이다 '계유정란'때 형한테 사형당했습니다) 넷째 아들 : 임영대군 ('수양대군'의 편으로 왕위찬탈에 협조하여 '세조'의 신임을 얻었고) 다섯째 아들 : 광평대군 (스무살에 요절) 여섯째 아들 : 금성대군 ('수양대군' 반대파로 '단종복위'를 도모하다가 형한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일곱째 아들 : 평원대군 (천연두로 어려서 사망) 여덟번째 아들 : 영응대군 ('수양대군'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보좌하여 천수를 누렸고) '세종대왕'은 '소헌왕후'와 아들을 여덟명이나 생산했습니다만,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콩가루 집안도 이런 콩가루 집안은 할아버지인 "태조 이성계"의 집안과 유사한 처참한 집안입니다. 형제들 끼리 싸우고 죽이고...권력을 위해 눈에 보이는게 없는 이런 형제를 형제라 할수 있겠습니까? 형제들과 조카까지 죽이고 권력을 찬탈하는 그런 아들을 둔 아버지 - "세종대왕"입니다. '세종대왕'의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이도 친형제 이복형제들을 살해하며 왕권을 찬탈했죠? 그리고나선 아들 '세종'의 장인어른 (소헌왕후 아버지)와 외가집도 누명을 씌워 죽이고... "태종 이방원"이의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는 그런 나쁜 아들 "이방원"이를 죽일려고 수없이 시도했죠. '살인마들의 집안'이라고 아니 할수 있겠습니까? 조선왕조는 먼저 이렇게 형제들끼리 피를 흘리며 시작되었습니다. 자식을 많이 낳아 다복하다는 것은 이런 집안엔 해당되지 않는 것이죠. ['악기 전시실'] 예전 <역사문화관>과는 많이 달라져 대부분 디지털화 해서 실물보다 영상물이 많았습니다. 음악을 엄청 좋아했던 <세종대왕>은 악기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실물이 전시되 있었습니다.. "월인천강지곡 月印千江之曲" <세종대왕>은 부인 <소헌왕후>가 죽자 그녀를 추모하는 글을 짓게 했는데 그 글이 <월인천강지곡>이죠. "부처가 백억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 교화를 베푸는 것이 마치 달이 즈믄 강에 비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한글로 지은 두번째 작품이죠. 첫번째가 <용비어천가> ['영릉' 입구] 12:20 입장료는 500원으로 팜플릿값도 않되는 거의 공짜. 2015년도에 왔었는데 그 때도 500원이었습니다. ['세종대왕 동상'] 12:23 <세종대왕>의 위대함에 대해선 두말할 필요도 없으니 생략하고 앞에서 <세종대왕>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그림자" 이야기들을 알려 드린다고 했죠? ㅎ 먼저 <세종대왕>의 술 마시는 실력이 어떠했는지 기록을 통해 알려 드릴까요? ㅎ "술을 좀 마실줄 알았던 충녕대군"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장남인 <양녕대군>과 차남인 <효령대군> 대신에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을 제4대 왕에 앉히는 이유 중에 하나를 "술을 좀 마실 줄 알아서.."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ㅎ [태종실록]에서 인용합니다. "중국의 사신을 대해 주인으로서 술 한 모금도 능히 마실 수 없다면 어찌 손님을 권해서 그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겠느냐? 충녕은 비록 술을 잘 마시지 못하나 적당히 마시고 그친다. 효령대군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니, 이것 또한 불가하다. 그런면에서 충녕대군이 대위를 맡을 만하니, 나는 충녕으로서 세자를 정하겠다." <양녕대군>은 술을 너무 마시며 저잣거리에서 깽판을 쳐서 불가하고, <효령대군>은 술을 전혀 못마셔 않되고, 술을 적당히 마시는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이유를 "태종 이방원"이 직접 설명했습니다. 이제 "세종대왕"의 술 실력을 아시겠죠? ㅎ ['재실'] 12:27 새로 복원한 "재실"을 지나 갑니다. 10여년 전엔 이곳에 매표소가 있었습니다. ['연지' 앞] <재실>을 지나면 경내로 들어 가는데 먼저 좌측에 <연못>이 있습니다. ['금천교'] 12:33 "금천교 禁川橋" 임금의 혼령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임을 알리며 이곳을 지날 때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참배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홍살문' 앞] "홍살문"은 "신성한 영역임을 알리는 붉은 기둥문"이고 우측 옆에는 "판위 版位"라는 돌 디딤판이 있는데 임금이 말이나 가마에서 내리는 디딤판이랍니다. "향로 香路"는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고 "어로 御路"는 임금이 다니는 길 ['정자각'과 '비각'] "정자각 丁字閣"은 "제향을 지내는 중심 건물로 건물 모양이 "丁"자를 달았다"고... 우측에 있는 "비각 碑閣"은 "세종대왕의 표석"을 세워 둔 곳입니다. <세종대왕릉>을 좌측으로 올라 갔다가 내려와 우측으로 <효종릉>으로 갈 예정입니다. *이인손의 묘 터* 앞서 <이인손의 묘>에서 언급 했습니다만 <영릉>은 <이인손의 묘>가 있었던 곳인데 <예종>이 빼앗아 자기 할아버지인 <세종대왕>의 릉을 '서울 내곡동'에서 이곳으로 천장했습니다. 앞에서도 조금 언급랬습니다만 당시 상황을 조금 깊이 있게 알아 보겠습니다. <세종대왕>은 자기가 죽으면 반드시 우리 아버지 <태종릉=헌릉> 곁에 뭍어 달라고 유언했습니다. 형이 두명이나 있었는데도 자기를 왕으로 등극시켜준 아버지에 대한 충효였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죽자 자식들이 서로 싸우고 죽이고..조카까지 죽이는 난장판이 되며 집구석은 풍지박살나며 콩가루 집안이 되었죠. 단연 주인공은 <수양대군=세조>가 살육의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많은 충신들은 이러한 변란이 모두 <세종대왕의 릉>을 잘못써 일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육의 중심 인물 <수양대군=세조>가 살아 있었을 때엔 이 "천장 문제"를 입 한번 뻥긋 못하다가 <세조>가 죽고 그의 아들 <예종>이 왕위에 오르자 바로 "세종대왕릉 천장문제"를 꺼내 상소를 올리며 천장을 추진한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 했습니다만 <파란문 생각> 당시 <이인손 가문>이 요직을 두루 섭렵하고 있었으니 왕릉 천장지 물색에 대한 어명을 받은 <지관 안효례>는 <이인손>이 <묘>를 잘 써서 가문이 번성 한다고 느끼고 <이인손의 묘>가 명당자리라고 확신하고, <한양>에서 멀고 먼 <여주>까지 찾아와 <이인손의 묘>를 점지 했다고 봅니다. <조선왕조> 27명의 왕릉은 모두 한양근교에 있는데 <세종대왕릉>만 멀고 먼 <여주>에 있는 이유라고 <파란문>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英陵"은 조선왕조가 500여년 지속 될수 있었던 "옴파로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릉'] 12:42 "영릉 英陵" 조선왕조 최초의 왕-왕비 합장묘로서 "소헌왕후"와 함께 영원히 평안히 잠들고 있습니다 조선왕조 왕비들 중에 자식을 가장 많이 낳은 왕비가 "소헌왕후"입니다. '청송 심씨'이지요. 8남2녀. 세종대왕과 금술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만하죠? ㅎ 또한 세종대왕은 "소헌왕후" 이외의 여섯명의 후궁들로부터도 열명의 아들을 더 낳았는데...총 18명 세종대왕은 낮일뿐만 아니라 밤일도 무지 잘했다는 것을 알수 있지요? ㅎ 그러니까 '세종대왕'은 政事도 잘 보았지만 情事에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영릉'에서 조망] 예전과 달리 출입금지 구역이 대부분이라 근접해서 촬영하기가 어려웟습니다. 그래서 10여년전에 촬영한 사진을 보여 드림니다. ['영릉' 뒤에서 조망] 2015년 9월 15일에 촬영한 사진 <英陵> 뒤에서 조망합니다. 풍수지리를 모른다 해도 이 자리가 왜 명당자리인지 느낄수 있나요? 앞에 보이는 산이 <6~7코스>를 걸으며 보아 왔던 "북성산 北城山257.6m"입니다. 영의정까지 올랐던 <이인손의 묘>를 만든지 불과 몇년만에 국가가 빼앗아 <세종대왕릉>을 조성했는데 천하명당 같나요? ['비각'] ['세종대왕 표석'] ['표석' 번역문] <비각>에 대해선 안내문에 자세히 설명되 있습니다. ['왕의 숲길'] 12:48 <세종대왕릉>에서 <효종릉>으로 가는 숲길 입구입니다. <세종대왕>은 앞에서도 언급한 '자식 복'이라곤 정말 하나도 없는 불행한 아버지였는데 거기다가 '며느리 복' '사위 복'까지도 지지리 없었습니다. "세종대왕의 며느리들"에 대해 알아 보면.... 그 중에서 "동성애-레즈비안" 이야기입니다. 독자들은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훨 많으실테니까...ㅎㅎ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들의 성욕은 똑 같습니다. 정상적 남성 100%가 자위를 하고, 여성도 별반 차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동성애를 하는 자들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많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의 장남인 <문종>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세자빈 김씨'는 학문에만 열중할 뿐 자신을 모른 체하는 남편을 견디다 못해 "압승술 壓勝術"을 행하다가 시아버지 '세종대왕'에게 적발되었다고 합니다. "압승술"이란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일종의 민간 미신이랍니다. 구체적으로 "압승술"은 남편이 좋아하는 여자의 신발 뒷굽을 태워 가루를 내고 나서 그것을 술에 타 남편에게 먹이는 일종의 미신인데요. "세자빈 김씨"는 세자가 자주 출입하는 궁녀의 신을 훔쳐다가 그 신을 태워 세자의 술이나 차에 섞어 마시게 하거나, 교미하는 뱀을 잡아 가루를 만들어 먹이는 등 세자를 곁에 두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게 되지만 당연히 이 모든 일은 허사가 되고 오히려 그녀의 행각은 탄로 나서, '세종대왕'은 장차 왕비가 될 큰며느리가 그런 요상한 짓을 한다는 걸 용납할 수가 없었고 국모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여 큰며느리 '김씨'를 곧바로 쫓아내 버렸지요. 그러나 '김씨'가 쫓겨난 후 들어온 두번째 큰며느리 '봉씨'도 외로움을 견디기 힘든 것은 여자이니 마찬가지였답니다. . "문종"의 두번째 와이프 "세자빈 봉씨" 이 여자가 세종실록에 아주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는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세자빈이 궁녀와 동성애-레즈비안을 한것이죠. 궁녀들 사이의 동성애를 그 당시 보통 <대식 對食>이라고 했답니다. 물론 '대식'은 궁녀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행해지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어쩌다가 예기치 않은 일로 드러나곤 할 뿐이었다고 합니다. 당연하겠죠?ㅎ 이렇듯 은밀하게 행해지던 궁녀들의 동성애가 겉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사건이 '세종대왕'의 첫째 아들인 '문종'의 두번째 와이프가 주인공이었던 사건입니다. 세종대왕은 궁녀들 사이의 '대식'이 적발되면 곤장 70대~100대씩 때려서라도 금지시키려고 했답니다. 당시 세종대왕을 비롯하여 조정관료들의 성 윤리가 대단히 엄격하여 동성애를 절대 용납하지 못했던 때였습니다만, 조물주가 인간에게 준 성욕은 왕의 위력으로도 막을 길이 없었던 것이죠. '세종대왕'의 장남인 '문종'의 두번째 와이프인 '세자빈 봉씨'가 궁녀와 동성애를 벌이다 적발되어 쫓겨나는 이 사건에 대해 『세종실록』에 자세하게 기술되 있는데 세자빈과 궁녀의 동성애에 관한 기록은 이때의 상황이 처음이랍니다. 그 이유는 '세종대왕'이 큰며느리 '봉씨'를 내치면서 부득이하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다 보니 내용이 구체적으로 실록에 기록된 것이죠. 세종이 큰며느리를 내친 이유는 근본적으로 아들, 즉 '문종'에게 있었답니다. '문종'은 학문을 좋아하고 여색을 멀리한 모범적인 왕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일 밤 독수공방을 했다는 말이 됩니다. 다만 '봉씨'는 '김씨'처럼 "압승술"을 쓰는 대신 동성애에 빠져 궁녀들과 성욕을 불태우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는 노발 대발 난리가 났고 결국 폐서인을 시켜 추방합니다. 쫏겨난 '봉씨'는 반성은 커녕 성욕을 해결한게 뭔 죄가 되냐고 항변하다가 결국 자기 친아버지로 부터 비참하게 목 졸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남자 구실 못하는 '문종'이 이혼 대상이고 위자료를 줘야 할텐데... 이러한 와중에 '문종'이 꼴깝을 합니다. 자신의 부인들이 성욕을 해결 못해 "압승술"이나 '동성애'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궁중의 어느 궁녀와 관계를 맺어 아들을 낳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유일한 아들 "단종"이며, 그 궁녀가 "단종"의 어머니인 "양원 권씨"로서 '문종'의 세번째 부인인 "현덕왕후"가 됩니다. '수양대군'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탄생한 '단종'을 더욱 인정하려하지 않았고, 그렇지 않아도 왕권찬탈의 빌미를 찾으려 혈안이었는데 이것은 좋은 미끼여서.... 이로서 '세종대왕' 자식들과 며느리들의 불행은 극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큰며느리들은 성욕을 해결하지 못해 "압승술" "동성애"를 하다 쫏겨나고 "모락산"이라는 산 이름을 만든 "임영대군"의 와이프는 정신질환자로 시아버지인 세종대왕에게 반말 막말을 하는 등 '미친년'이었으니 지지리도 '며느리 복'이 없는 '세종대왕'이었던 것입니다. ['효종릉' 가는 길] '세종대왕'에게는 사위도 있었는데 그 '사위 복'까지도 없었습니다. 한글창제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고 하는 "정의공주"는 모두 아시죠? 우이동 근처 "연산군 묘" 건너편에 그녀와 그녀의 남편 "안맹담"의 묘가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안맹담"이라는 선비였는데, 사위가 되고 난 다음부터 이 놈은 술을 무지 무지 무지 좋아해 요즘 말로 알콜 중독자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안맹담" 사위와 술 함께 마시는 놈들은 혼내 주기도 하며 극기야 술 함께 마시는 놈들을 감옥에 보내기도 했을 정도 였다고 합니다. 자식들끼리는 살인을 하고, 며느리들은 동성애에 빠지고, 사위는 알콜중독자이고.... '세종대왕'은 治國平天下는 훌륭하게 했습니다만, 집안은 어쩔수 없었던 그런 평범한 아버지였습니다. 또한 <세종대왕>은 살아 있는 종합병원이었답니다. 평생 당뇨병과 함께, 풍질과 부종, 수전증 같은 병을 안고 살았다고 합니다. 특히 35살 이후에는 당뇨병 때문에 하루에 물을 한 동이 넘게 마실 정도였다고하며 당뇨 후유증 때문에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부종 때문에 마음대로 돌아 누울 수도 없어 잠을 잘수도 없을 정도 였답니다. 여기에 후궁들만 다섯명이나 되었으니 상상하지 않아도 성생활은 문란 할수 밖에 없었을거고 이런 과정에서 '세종대왕'은 임질에 걸려 정사를 돌보지 못할 정도였다니.... 이런 와중에서도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끝이 없어서 불행한 가정사, 건강문제를 딛고 역사에 길이 빛나는 "세종대왕" 聖君이 되었습니다. ['효종릉 寧陵'] 12:58 <세종대왕릉>에서 10여분 <왕의 숲길>을 진행하면 "효종릉 寧陵"에 도착합니다. "효종 1619(광해군11)~1659(효종10)(재위 1649∼1659)" "북벌정책" '김상헌' '송시열'등 강경 북벌파들을 중용하여 '청나라'에 대해 복수의 칼을 갈았던 왕입니다. 여담입니다만, "하멜의 조선 표류기" 아시지요? '효종'시대인 이때에 제주도 남단 '가파도'에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표류하게 되었지요. "효종"은 "하멜"일행을 훈련도감에 배속시켜 신식 총기를 제작하게 하며 '청나라'에 대한 복수의 일념'을 불테우기도 했죠. 그런데 이 총기의 개발로 청나라를 친게 아니라 러시아를 치게 되죠? ㅎ 청나라가 러시아 침공에 대항하기 위해 조선에 군대 파견 요청이 왔는데 거절할수 없어 파병하는데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북벌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지요. 하지만 청나라에 대한 북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고 엄청난 군사비로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며 특히 "우암 송시열"과의 견해차이로 북벌계획은 유야무야되어 갔습니다. "효종"은 오로지 복수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우암 송시열"은 우리가 먼저 수련을 한후에 하자는 것이었는데....
['효종릉' 안내문]
[효종릉 재실] <효종릉>에선 꼭 들려야 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재실>입니다. 그 이유는... ['회양목'] [안내문] 바로 "천연기념물 회양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큰 <회양목>은 찾을수 없다고 ['효종릉' 정문] 1:07 <효종릉> 정문을 나서면.... ['효종릉교차로'] 1:10 <효종릉교차로>를 만나는데 길을 건너 안쪽 길로 진행해야 하고 ['여주천후양궁훈련장'] 1:15 "여주 전천후 양궁훈련장"을 지나면... ['세종산림욕장 입구 공원'] 1:16~1:18 화장실도 있는 "세종산림욕장 소공원"을 만나며 ['세종산림욕장' 입구] "세종산림욕장" 정문으로 들어 가 조금 올라 가면... [갈림길] 1:19 갈림길을 만나는데 직진길은 <여강길 6코스>이고 <여강길 4코스>와 <봉화길 7코스>는 우측으로 올라 갑니다. 여기서 북쪽을 바라보면... ['여주양궁훈련장' 조망] <여주 전천후 양궁훈련장>이 전체적으로 조망되고 [오름길] 약 8분간 산림욕장을 통과하며 올라 가면... [산림욕장 정상] 1:27 정상에 도착합니다. <해발 92.53m>라는 삼각점이 있는 산림욕장 정상입니다. [조망 1] <세종대교> 아래에 있는 "양섬 羊島"이 서울 <여의도> 축소판처럼 보이는데 야구장등 운동장이 여럿 있습니다. <남한강> 건너편 <여주시>의 <현암동><오학동><천송동>등이 조망되며 <신륵사>까지 보이는군요. ['여주시내' 조망] <여주시내>가 한눈에 들어 오는군요.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잠시 내려 가면 소공원을 만나는데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좌측 정자 뒤로 내려 가야 합니다. 옛 <여강길>은 우측으로 그냥 나갔는데.... ['한강종주자전거길'] 1:38 <한강종주자전거길>로 내려 서서 7분여 직진하면.... ['하리보도교'] 1:45 <소양천 昭陽川>을 건너는 <하리보도교>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갑니다. ['여강 산책로'] <여주시 하동>의 <남한강 산책로>를 15분여 진행하는데.... 이곳의 <남한강>을 "여강 驪江"이라고 하죠 ['대로사' 입구] 2:00 . <대로사> 갈림길을 만나면 우측 골목으로 들어 가고 ['대로사'] 2:02~2:07 "대로사 大老祠"를 구경하고 갑니다. ['추양재'] 좌측에 <추양재>라는 관리실이 있고 가운데 작은 문으로 들어 가면 ['대로사'] 우측에 "우암 송시열"을 모시는 "대로사 大老祠"가 있는데 출입할수 없고 ['강한사'] [안내문] "대로서원 大老書院"이 있는데 "강한사 江漢祠"라고도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강한사'에서 조망] "大老"는 큰 어른을 의미하는데 <우암 송시열>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대원군>이 서원철폐를 할때 이 서원은 남겨 두었답니다. 그러면서 "大老"는 <대원군> 자신이지 <송시열>이 아니라고 <대로사>를 <강한사>로 이름을 바꾸었답니다. ['여주성당'] 2:10 <대로사>를 나와 <한글시장> 방향으로 잠시 진행하면 "여주성당"을 지나고 ['한글시장' 출입구 앞] 2:11 이어서 <한글시장 입구>를 만나는데 <여강길>은 좌측 <한글시장> 안으로 진행하고, <봉화길>은 직진합니다. 저는 <옛 수여선 여주역터>를 찾아 보기 위해 <한글시장> 안으로 진행합니다. ['한글시장' 출입구] "여주 한글시장" 5일장으로 매월 5일. 10일에 장이 얼림니다. 장날 와야 좋은데.... 올때마다 들리는 꽈배기집에서 찹살도넛과 꽈배기를 만원어치 사들고 갑니다. [어린시절 '세종'] <충녕대군> 시절 <이 도>의 앳띤 모습도 볼수 있는데 잼있죠? ㅎ 들고 있는 책은 천자문이더군요. ['여주시청' 조망] 2:18 <한글시장>을 나가면 <여강길>이 가는 북쪽방향에 <여주시청>이 보이며 ['세종로'] 남쪽으로 <여주 세종로>가 이어집니다. <여주시민회관>으로 표기한 곳으로 가면.... ['여주시민회관'] 2:21 "옛 수여선 여주역 터"였던 곳엔 "여주시민회관"이 자리 잡고 있어서 옛 "여주역"의 흔적은 찾을수 없습니다.
['옛 여주역'] 수여선 열차의 종착역인 <여주역>은 유감스럽지만 현재 주택지에 덮여서 흔적을 찾을 수가 없으며, 단지 지금의 <여주시민회관>에 자리했다고만 알려져 있습니다. 비록 현재는 남은 게 없지만, 수운교통을 밀어내고 지역사회에 큰 존재감을 드러내며 등장하여 영동고속국도에 배턴을 넘겨주기까지 약 40년간 기적소리를 울렸던 곳입니다.
['여주경찰서'] ['옛 수여선 철길] 2:23 시민회관 건너편에 있는 <여주경찰서> 뒷골목으로 <옛 수여선 철길>이 이어졌었답니다. 이 골목이 그 철길이었답니다. 5분여 골목을 진행하면.... ['문화교'] 2:28 <옛 수여선>의 철교가 있었던 다리를 만나는데 이름은 "상리철교"였답니다. 지금은 "문화교"라고 하는군요. ['봉화길' 재회] <문화교>를 건너면 다시 <한글시장 입구>에서 직진하여 오는 <봉화길> 정규코스를 만납니다. <옛 수여선>은 직진하는데, <봉화길>은 좌측 <소양천>을 따라 진행하게 되겠습니다. ['소양천변길'] <소양천변길>을 15분 정도 진행하면.... ['향교교'] 2:44 "향교교 鄕校橋"를 만납니다. <봉화길>은 우측에 있는 <향교>를 다녀 오라고 합니다. ['여주향교' 조망] ['여주향교' 줌인] <향교교>에서 바라보는 "여주향교"입니다. 여느 향교와 큰 차이가 없어 괜히 시간 낭비 할 필요없이 줌인한 사진만 찍고 <여주역>으로 갑니다. ['향교교'] 2:47 <향교교>에서 <여주역> 방향으로 7분여 진행하면... ['봉화길' 안내판] 2:54 <경강선> 다리 밑에 <봉화길 7코스 안내판>이 서 있고 우측으로 들어 가면 ['여주역'] 2:55 "여주"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조형물이 나그네를 반기며 "경기옛길-봉화길: 제7길 세종효종길"을 마침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14.4km였으며, 왕릉과 문화역사관등을 돌아 보느라 4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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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길] 충청남도 구간을 가다 '오산천교'에서 '두정역'까지 답사기 안성천교-홍경사갈기비-성환천-성환역-성환천-직산역-한국기술교육대-두정역 [구글지형맵] [구글어스] [삼남길]의 "충청남도 구간"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경기도'와 '충청남도'의 道界가 되는 "1번국도 오산천교"에서 출발하여 주로 "경부선 철도"를 따라 "성환역-직산역-두정역"까지 "20.3km"를 진행합니다. ['평택역'] 9:30 2017년 1월 8일 (일) 맑은 후 흐림 뭐 특별할것도 없지만 여튼 2017년의 첫 발길을 [평택역]으로 돌렸습니다. [평택역 1번출입구] 광장 앞 [옛1번국도]에서 우측으로 100m 정도 가면.... ['평택공용버스터미널'] [평택공용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오산천교"로 가는 버스는 터미널엔 없고 터미널 정문이 있는 [옛1번국도]에 있으니 유의해야 하더군요. ['터미널 버스정류장'] 터미널 정문 앞 [옛1번국도]에 있는 버스정류장입니다. 버스정류장의 이름은 [터미널]이고 "안성천교"로 가는 버스는 [110번] [130번] [131번]이 있는데 시간표는 위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8:25 9:20 9:40 10:05 10:35 ....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더군요. 택시비는 4,500원정도이고...버스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택시를 타고가도 무방하겠습니다. 넷이 택시타면 버스보다 교통비가 싸겠지요? ㅎ ['안성천교' 북단] 9:53 [경기옛길-삼남길]의 종점이며, [삼남길-충남구간]의 출발지점인 "안성천교" 북단에서 답사를 시작합니다. ['삼남대로의 역사적 가치'] 안내판에는 "삼남대로"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 못하고 얼렁뚱땅 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추가로 언급하자면... "삼남대로"는 "충청지방" "영남지방" "호남지방"으로 가는 길인데 공통으로 통과하는 구간이 "한양"에서 "충청남도 대전" 쯤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삼남대로]를 확실히 언급할려면 "한양"에서 "대전"까지라고 해야 하고 그 이후 "영남대로"와 "호남대로"로 나뉘어진다고 생각됩니다. ['안성천교'에서 뒤돌아 본 '평택'] "안성천교"를 통과하며 뒤돌아 본 "경기도 평택시"이고 ['안성천'] '경기도'와 '충청남도'의 道界를 이루고 있는 "안성천"을 건너서 ['안성천교' 남단] "충청남도 천안시"로 진입합니다. [삼남길]은 다리 남단에서 좌측 "안성천 뚝방길"로 연결시켜 놓았더군요. 오리지날 [삼남길]이야 직진해 가겠지만, [도보여행코스-삼남길]을 이렇게 뺑뺑이 돌리는 이유는 아마도 위험하고 매연이 많은 자동차 도로를 피해 가도록 하기 위함이 주목적이겠죠. 여기서 직진해서 [1번국도]를 따라 가도 잠시후 다시 만납니다. ['안성천 둑방길'] 10:00 "안성천" 뚝방길로 [삼남길]은 안내되는데 가드레일로 막혀있어 가드레일을 넘어 가야 하더군요. 조금 거시기하죠? ㅎ ['안궁교회' 조망] "안성천" 뚝방길을 15분 정도 진행하면...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안궁3리'에 있는 "안궁교회"가 조망되는데 [삼남길]은 "안궁교회" 앞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안궁3리' 조망] 10:15 "안궁교회" 앞에서 방향을 바꾼다는 것을 미리 알고 가면 이해가 쉽겠지요. "안궁교회" 앞을 지나면... ['안궁3리 경로당'] 10:18 "안궁교회" 앞을 지나면 "안궁3리 충효교실"이라는 경로당을 지나게 되는데 계속해서 직진해 갑니다. 농로를 7분 정도 직진하면... ['안궁한식부페' 조망] 10:25 좌우로 지나는 도로를 만나는데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며 앞에 보이는 [한미래아파트] 방향으로 가면... ['1번국도' '안궁한식부페'] 10:31 "안궁한식부페"와 "위더미편의점"이 있는 [1번국도] 사거리를 만납니다. ['삼남길' 가는 길] "안성천교"에서 오는 [1번국도]를 다시 만나 건너편으로 [삼남길]은 이어지는데 저 멀리 앞에 보이는 "성환천 뚝방"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국보 제7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를 구경하고 가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도보 삼남길]을 잠시 벗어나 좌측 [1번국도]로 방향을 바꿉니다. ['1번국도'] "국보 제7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를 구경하기 위해 [1번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진행합니다. [1번국도]는 갓길이 비교적 넓어 걷기에 위험이 없어 다행이었습니다. 12분 정도 진행하면.... ['대흥삼거리'-'연암대학교' 입구] 10:43 [대흥삼거리]를 통과하는데 "연암대학" 입구이기도 하더군요. "연암대학"은 "LG그룹"이 건립하고 지원한다고 하는군요. 다시 7분 정도 더 진행하면... ['천안봉성홍경사갈기비' 조망] 10:50 "국보 제7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국보7호]가 도로변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다소 초라하게 있습니다. ['천안봉성홍경사갈기비' 입구] "국보 제7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를 처음으로 알현합니다. 국보1호는 알아도 그 다음 국보들은 잘 모르는데, 국보7호라고 하니 더욱 관심이 갑니다. 지금까지 전국 많은 곳을 다녀 보았다고 하는 저도 이런 곳에 국보7호가 이런식으로 서 있다는 것은 다소 생소했습니다. ['갈기비']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안내문] "국보 제7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에 대해선 안내문을 참고 하세요~~ 저는 덧붙일 지식이 전혀 없어서...ㅎ ['삼남길' 가는 길] "홍경사 갈기비"에서 다시 [삼남길 도보코스]로 돌아 가는 길입니다.[1번국도]를 건너 직진합니다. 이 길은 "국보 제7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를 구경하기 위해 제가 나름대로 지도를 보고 만들어 가는 길이니 단지 참고 자료라는 것이니 참고만 하시고... ['삼남길' 조망] 10:57 [삼남길 도보코스]로 가는 농로입니다. 6분 정도 농로를 따라 가면... ['성환천 둑방길'] 11:05 [성환천 뚝방길]에 도착하는데... [삼남길 도보코스]는 이제부터 [성환천 뚝방길]을 따라 "직산역"까지 진행합니다. 아마도 자동차 도로를 피해 가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삼남길]이라고 생각됩니다. [뒤돌아 본 '홍경사 갈기비'] [성환천 뚝방길]에서 뒤돌아 본 "국보 제7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가 있는 곳이고 ['성환천 둑방길'] [성환천 뚝방길]을 따라 18분여 진행하면... ['1번국도' 다리 밑 통과] 11:23 (6분여 휴식) [1번국도] 다리 밑을 통과하며 ['경부선' 다리 밑 통과] 11:31 이어서 [경부선] 밑을 지나고 ['성환천 둑방길'] 계속 [성환천 뚝방길]을 10여분 더 진행하면... ['장천교' 앞 통과] 11:40 "장천교"를 지나 7분여 더 진행하면 ['성환역' 조망] 11:47 좌측에 "성환역"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성환역"으로 가야 하더군요. 전봇대에 [삼남길] 방향 안내판이 있습니다. ['성환8리' 통과] "성환역"으로 가는 마을길을 7분여 통과하는데 이 마을은 '천안시 성환8리'이더군요. ['성환역'] 11:54 "성환역 成歡驛" [2번출입구] 우측길로 진행합니다. ['경부선' 옆길] [경부선] 철로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삼남길 도보코스]는 이어 집니다. 8분여 진행하면... ['매주육교' 앞] 12:02 [경부선] 위를 횡단하는 "매주육교" 앞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고... [갈림길] 12:05 방향을 바꿔 100m쯤 진행하면 전봇대에 길안내표지가 보입니다. 이런 길안내표지를 놓치면 무지 고생하게 되겠죠? ㅎ [농로] 농로를 따라 가면 다시 [경부선 철로]와 나란히 걷게 되고... 오늘은 대부분 [경부선]과 [성환천] 갓길을 진행합니다. 25분 정도 진행하면.... ['성환천'으로 가는 길] 12:29 [경부선 철로]에서 우측 [성환천]으로 가라는 길안내 표지가 우측으로 가라고 길안내를 하는데 우측으로 건너가 [성환천 뚝방길]과 다시 합류합니다. ['성환천 둑방길'] 다시 [성환천 뚝방길]을 8분여 진행하면.... ['경부선' 다리 통과] 12:37 다시 [경부선] 다리 밑을 통과하고 ['성환천' 둑방길] 12:43 ★ 길조심 ★ 이어서 갈림길을 만나는데 여기서부터 [직산역]까지는 길안내 표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환천]을 건너 건너편 뚝방길을 진행합니다. ['금북정맥' 조망] [성환천 뚝방길]을 진행하여 [직산역]으로 가는데... "천안시"를 감싸고 돌아 가는 "금북정맥"이 조망됩니다. 聖人이 거주하고 있다는 "성거산 聖居山"과 '천안'의 진산이라고 하는 "태조 왕건의 태조산", 그리고 "취암산"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북정맥"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흑성산"까지 보이는군요. "흑성산" 남쪽 기슭에 "독립기념관"과 "유관순기념관"이 있지요. 30여분 뚝방길을 진행하면.... ['직산역' 조망] "직산역"이 보이고 ['직산교' 앞 건넘] 1:16 [직산역]과 도심을 연결하는 "직산교"에 도착합니다. 우측에는 ['직산역'] "직산역 稷山驛" 백제의 시조인 "온조"가 개국하고 도읍하였다는 곳입니다. "직산 위례성"이 있었다고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데, 실제 이곳인지 아닌지 학설이 분분하다는군요. ['직산역' 앞 통과] [삼남길 도보코스]는 "직산역" 앞으로 가도 됩니다만 [직산교]를 지나 직진하라고 합니다. ['직산역'] 1:21 돌아 가면 다시 "직산역" 옆에 도착하며 좌측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모시지하차도' 가는 길] 다시 [경부선 철로]와 나란히 5분 정도 직진하면 ['모시지하차도'] 1:26 "모시지하차도"를 만나 지하도를 통과하여 [경부선] 건너편으로 건너 갑니다. [뒤돌아 본 '직산역'] 1:29 "모시지하차도"를 통과하여 뒤돌아 본 "직산역"입니다.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모시리' 통과]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모시리'를 6분여 통과하면 ['경부선' 옆길] 1:35~1:51 [경부선 철로]를 다시 만나는데 이곳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갑니다. ['천안시 서북구 업성동' ] 1:52 '천안시 서북구 업성동' 이라는 곳을 지나는데 계속 [성환천]을 따라 7분 정도 더 진행합니다. ['업성동'에서 ''업성저수지'방향으로 가는 길] 1:59 그러면 [성환천]을 건너 가는 다리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 갑니다. 다리를 건너 마을을 지나면 ['업성저수지' 방향] "업성저수지" 둑이 보이는데 [삼남길 도보코스]는 [경부선] [성환천]과 헤어져 앞에 보이는 "업성저수지 둑" 옆 좌측 야산으로 이어집니다. 야산으로 가면... ['한국기술교육대학'으로 넘어 가는 길] 2:21 "두정동"으로 넘어 가는 비포장도로를 만나고 ['두정동'으로 넘어 가는 길] 이어서 "천안중앙교회"와 "한국기술교육대학"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14분 정도 더 진행하면... ['한국기술교육대학교'] 2:35 "한국기술교육대학 제2캠퍼스" 앞을 통과하고 ['두정동 성당' 조망] 2:40 [삼성대로]가 지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건너편에 "두정동 성당"이 보입니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7분 정도 직진하면... ['북부고가교'] [삼성대로]가 지나는 "북부고가교" 밑을 통과하여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북부고가교' 통과하여 '두정역' 가는 길] 2:47 다시 [경부선 철로]를 만나 나란히 직진합니다. 6분 정도 직진하면... ['두정1교'] 2:53 [경부선 철로]를 건너가는 [두정1교]를 만나 건너고 ['두정역' 가는 길] "두정역"으로 갑니다. ['두정역' 앞 주차장] "두정역" 주차장에서 [삼남길 도보코스]는 직진하는데 오늘은 교통이 편리한 여기서 답사를 마치고 ['두정역'] 3:00 "두정역 斗井驛"에서 전철을 타고 귀가합니다.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GPS 측정거리로 "20.3km"였으며 5시간정도가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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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山者不可以無錄 而有錄之有益於遊山也 유산자불가이무록 이유록지유익어유산야 산을 즐기는자 기록이 없어서는 아니되고, 기록이 있음은 산을 즐기는데 유익하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말씀-



        "이천 산수유 축제"
      "정개산-천덕봉-원적산-산수유마을" 산행기

               동원대-범바위약수터-주능1봉-주능2봉-정개산-봉현고개-
               주능3봉-천덕봉-원적산-도립리 산수유마을

 
                         산다는거...

                                        경허선사

                        天地如是廣(천지여시광)    此生可笑乎(차생가소호)   
                        半生已過了(반생이과료)    餘年復幾餘(여년부기여)    
                        憂愁長侵汨(우수장침골)    幾時得安居(기시득안거)     
                        如醉不覺悟(여취불각오)    空然得疇躇(공연득주저)   

                        천지는  이렇게 넓은데 이리 산다는 것은 가소롭구나
                        반평생 벌써 지나갔으니 남은 해는 얼마나 될까 
                        근심 걱정에 늘 시달리고 편안한 시간은 얼마나 될까
                        취한듯 깨지 못하니 공연히 주저만 하네 
                          


  [구글어스 지형사진]

  [구글어스]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신촌리'에 있는 "동원대학교"에서 출발하여
  "앵자지맥" 산줄기에 있는 
  "주능1봉-주능2봉-정개산-봉현고개-주능3봉-천덕봉-원적산"을 지나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에 있는 "이천 산수유축제장"까지 "11.2km를 갑니다.





  ['동원대' 버스종점]          10:00

  2017년 4월 8일 (토) 약간 흐리고 연무  
  금년도 봄나들이로는 최고로 좋은 날에 산행에 나섯습니다.
  봄꽃들이 만발하는 그런 날이기 때문이지요.
  [분당선 모란역 5번출구]에서 [500-1번] 또는 [500-2번] 직행버스]를 타고 "동원대학교 종점"에 내렸습니다.
  켐퍼스 뒤로 오늘 오를 "앵자지맥 능선"이 조망되는군요.
  버스 종점이 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어, 버스에서 내려 다시 정문 방향으로 조금 내려 가면....





  ['범바위약수터' 가는 길]

  서울 방향으로 출발하는 출발지점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정개산-천덕산-원적산-산수유마을"로 가는 등산로는 저 버스 정류장 건너편인 좌측에 있는데
  바로 이 산줄기가 "앵자지맥"이기도 합니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임도 합류]             10:02
  
  "앵자지맥" 산줄기로 진행해도 됩니다만 출입금지 지역이고, 또한 오늘은 "산수유마을 축제장"으로 가는
  산행이기에 일반등산로를 이용하기 위해 자동차도 다니는 임도로 내려 가서 좌측으로 진행합니다.





  ['이천걷기좋은길']

  이 넓은 임도는 "이천걷고싶은둘레길"로서 이 임도를 계속 따라 가도 "산수유축제장"에 갈수 있답니다.
  "동원대"에서 15분 정도 임도를 진행하면.....
  




  ['범바위약수터']         10:17~10:27

  "범바위약수터"를 만납니다.
  "범바위약수터"라면 어딘가에 "범바위"가 있을 텐데 "범바위"는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곳은 "정개산-천덕봉-원적산 등산로 입구"이기도 합니다.
  오늘 금년 들어 기온이 가장 높다는 날이어서 간편 차림으로 옷을 벗으며 산행 준비를 하고
  출발합니다.





  [등산로 들머리]

  약수터 바로 옆에 등산로 들머리가 있습니다.
  임도인 "이천걷고싶은둘레길"을 계속 따라 가도 "산수유축제장"에 갈수 있답니다만
  임도는 변화가 없어 지루하겠죠?
  산객은 산으로 올라 가야 하겠습니다. ㅎ





  [계단 오름길]

  약수터에서부터 가파른 계단 오름길이 이어지는데 5분 정도만 헥헥거리면 되겠습니다.
  계단 오름길을 오르면...





  ['주능1봉']           10:32

   "주능1봉"
  "주능1봉" 정상에 오르며 "앵자지맥 마루금"에 합류하게 됩니다.





  ['주능2봉' 조망]

  "주능1봉"에서  "주능2봉"을 바라보면서 이제부터 "앵자지맥 마루금"을 진행하게 되겠습니다.





  [오름길]

  7~8분 오름길을 오르면....





  ['주능2봉']          10:51

  "주능2봉 433.4m" 정상에 오릅니다.
  삼각점과 정상 이정표가 있을 뿐 별다른 시설들은 없고





  ['정개산' 조망]

  오늘 안개가 껴 시야가 매우 나빠 아쉬웠습니다.
  "주능2봉"에서 가야할 안개 속에 희미하게 비치는  "정개산"을 조망하고...
  10여분 오르면...





  [전위봉]          11:01

  "정개산"의 전위봉에 오르고




  [송전탑과 '정개산']            11:14

  거대한 송전탑이 있는 "정개산 정상"을 조망합니다.
  5분 정도 진행하면...




  ['정개산' 정상 갈림길]          11:19

  "정개산 정상 갈림길"에 도착하는데 "정개산 정상"이 우측 옆에 있어
  모르고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여기서 우측을 바라보면...




  ['정개산' 정상부]

  암봉으로 이루어진 "정개산 정상"이 10m 정도 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반드시 다녀 오는게 후회 없습니다.




  ['정개산' 정상]        11:20~11:35

  "정개산 鼎蓋山 467m -소당산"
  "솥뚜껑을 엎어 놓은 듯한 모양"이라고 우리말로 "소당산", 한자로 "鼎蓋山"이라 한답니다
  "정개 鼎蓋"가 "솥뚜껑"이라는 뜻의 한자이죠.




  ['설봉산' 조망]

  안개가 없었다면 "이천시"와 "설봉산"이 시원하게 보일텐데...
  그래서 예전에 촬영한 사진을 보여 드림니다.

      
        [2011년 5월 22일에 촬영한 사진]



  ['천덕봉' '원적산' 조망]

  동쪽으로는 안개가 조금 덜하군요.
  오늘 진행 해야할 "천덕봉"과 "원적산"이 조망됩니다.
  능선길이라고 평평한게 아니고 오르락 내리락 하며 가야하는 제법 힘드는 구간입니다.




  ['정개산' 내림길]

  "정개산 정상"을 내려 서서 급경사 내리막을 10여분 내려 가고
  




  [오름길]

  다시 가파른 오름길을 20여분 오르면...





  [쉼터봉]           12:08

  장의자가 있는 이름없는 봉우리에 오르는데 '네이버 지도'에는 "서당봉"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확실한건 알수 없습니다.





  [뒤돌아 본 '정개산']

  이 이름 모를 봉우리에서 뒤돌아 본 "정개산"입니다.
  오르내림이 심하다는 걸 알수 있죠?





  ['주능3봉' 조망]

  또 올라야할 "주능3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계곡에 "봉현고개"가 있더군요.
  30여분 내리막을 내려가서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주능3봉']         12:36

  "주능3봉 492m"에 도착합니다.
  별다른 시설은 없고 이정표만 있습니다.





  ['천덕봉' '원적산' 조망]           1:00~2:00  (1시간 점시식사)

  "주능3봉"을 지나면 "천덕봉"이 조망되기 시작하는데....
  근처 길섶에서 1시간여 점심식사를 하고 갑니다.





  ['앵자봉' '양자산' 조망]
 
  북쪽으로는 "앵자지맥"이라는 이름을 만든 "앵자봉"이 연무 속에 하늘거리고
  그 옆으로 "앵자지맥"에선 벗어 나 있지만 '광주시'에선 가장 높다는 "양자산"도 조망됩니다.





  [군사격장]

  남쪽 계곡에는 군사격훈련장이 있고 '이천시'가 펼쳐집니다.





  ['원적산 능선']

  동남쪽으로는 "산수유마을"의 뒷산인 "원적산" 산줄기가 보이고





  ['천덕봉' 가는 방화선]         2:19
 
  동쪽으로는 올라야 할 "천덕봉"이 우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측 계곡에 있는 군사격훈련장 때문에 '방화선'이 "천덕봉"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10여분 헥헥거리며 방화선을 오르면...





  ['천덕봉' 정상]       2:39~2:49

  "천덕봉 天德峰 632.1m"
  "천덕봉"은 '광주시'와 '여주시', 그리고 '이천시'의 市界가 되는 봉우리이죠.
  그래서 정상석을 '여주시'에서도 세웠고, '이천시'에서도 세워 놨습니다.

  "앵자지맥"은 여기서 북쪽으로 가고 "산수유마을"로 가려면 남쪽 "원적산"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뒤돌아 본 '정개산']

  "동원대"에서부터 지나온 "앵자지맥 마루금"에 있는 "정개산"과 "주능3봉"등 산줄기를 뒤돌아 보고





  ['원적산' 조망]

  '이천시'에서 세운 정상석 방향으로 가야할 "원적산"이 조망됩니다.





  ['원적산' 가는 능선길]

  "천덕봉"에서 "원적산"으로 가는 방화선이 있는 능선길입니다.
  보통 하나의 "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를 "산"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그 보다 낮은 봉우리들에겐 "봉"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지요.
  그런데 이곳은 "봉"보다 산"이 낮은 "원적산 천덕봉"이라는게 특이 합니다.
  "원적산"이 "천덕봉" 보다 확실히 낮아 보이지요? ㅎ
  이런 경우는 전국에 여러 곳 더 있더군요.
  예를 들면 이 근처에 있는 "백마산 용마봉 발리봉"이 "봉"이 "산"보다 높고...

  가운데 보이는 헬기장에는 비박을 하는 비박꾼들이 진을 치고 있더군요.





  ['원적산' 가는 길]

  15분여 능선을 진행하면....





  ['원적산' 정상]           3:05~3:19

  "원적산 圓寂山 559.2m"
  '이천시 백사면 경사리-도립리-송말리'의 뒷산이랍니다.
  "산수유마을"은 좌측 "영원사" 방향으로 갑니다.





  ['산수유축제장' 조망]

  [줌인한 '산수유축제장']

  "원적산 정상"에서 '백사면 도립리'에 있는 "산수유축제장"을 조망합니다.
  "산수유축제"는 매년 4월 둘째주말에 열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금년엔 4월 7일~9일 3일간 산수유축제가 열리는데, 오늘이 8일 (토요일)이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여기서도 알수 있으며 행사하는 소리가 여기서도 들립니다.





  ['영원사' 방향 산줄기]        3:19

  "원적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잠시 내려 가면...
  30여m 아래에 바로 "산수유축제장"으로 가는 갈림길 삼거리가 있습니다.
  잠시 내려 가면...





  [삼거리]          3:21

  이정표가 길안내를 하는 "산수유마을 갈림길"을 만나는데
  안내에 따라 우측으로 내려 갑니다.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15분여 내려 가면...





  ['낙수제 삼거리']           3:37

  이정표가 있는 "낙수제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 [산수유축제장] 방향으로 갑니다.






  [내림길]

  다시 10여분 내림길을 내려 가면....





  ['원적산등산로' 들날머리]           3:46

  '이천시 백사면 경사리'에 있는 "원적산 등산로 들날머리"를 만나고





  ['산수유마을 안내도']

  들날머리엔 "산수유마을 종합안내도"도 있어 참고하고





  [뒤돌아 본 '원적산']

  지나온 "원적산"을 뒤돌아 봅니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그 모양은 완전히 달라지는군요.
  "천덕봉"에서 바라 볼땐 방화선으로 벌거숭이 산이었는데





  ['산수유축제장' 갈림길]        3:51

  이어서 "도립리 산수유 축제장"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나서
  "도립리"로 내려 가면





  [그네타기]

  "도립리 산수유 축제장"이 펼쳐 집니다.
  "그네타기" 행사를 하고 있는 곳이 제일 먼저 보이고










  [산수유]

  "산수유 축제장"을 통과해 내려 갑니다.
  산수유꽃이 만발했고 탐방객들도 많았습니다.
  12분 정도 산수유 군락지를 통과하면...




  ['육괴정']             4:03
 
  '도립리'의 '경복궁'인 "육괴정"에 도착하고...




  ['육괴정' 앞]
 
  "육괴정" 앞에도 행락객들이 줄을 잇고




  [농악]
 
  농악대들도 행사의 흥을 더욱 돋구고




  [행사거리]           4:16
 
  상가가 줄을 서있는 행사장을 빠져 나가 주차장 근처에서 파전에 '산수유막걸리' 한잔하고
  행사장에서 운행한다는 셔틀버스를 타고 '이천역'으로 갑니다. 요금은 1,000원/인




  ['이천역']            5:36

  [경강선]으로 유명해진 "이천역"에서 전철을 타고 귀가했습니다.




  [구글어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GPS 측정으로 11.2km였으며, 6시간 15분이 걸렸습니다.


  이번 구간과 직접적 관계가 있는 "앵자지맥 4구간"에 대한 산행기는
                "앵자지맥 4구간 산행기 http://cafe.daum.net/paraanmoon/KJ4e/4 여기 클릭




              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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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코스 남천주길' 안내도] "경기옛길-봉화길 제6길 골내근길"의 전체 안내도입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경기옛길-봉화길 제6코스""부발역"에서 "수여선 水驢線"의 흔적을 찾아 보고 "세종대왕릉역"까지 "14km"거리라고 안내합니다. 이 지도에선 <용은교>에서 <세종대왕릉역>까지 진행한 루트가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두가지입니다. <파란색선>은 <경기문화원>이 정한 오리지날 길인데, 저는 <빨간색선>으로 진행했습니다. 그 이유는 <경기문화원>이 강조하는 이 코스의 하일라이트인 "수여선 매류역 터"를 탐방하기 위해서 황량한 둑방길 대신 역사유적을 탐방한 것이니 참고하기 바람니다. ['부발역'] 12:15 2024년 2월 22일 목요일 흐림 <분당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부발역 1번출구"로 나가면 "큐빅상자"같은 조형물이 있는데 "천년의 도약"이라는 조형물로 "세계 정상의 한국 반도체산업을 이끄는 이천시"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천 SK하이닉스"를 지칭하는듯 합니다. "부발역 夫鉢驛" 지명이 독특하여 찾아 보니 이 지역은 원래 <부모곡면(夫毛谷面)>과 <발산면(鉢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 면을 합치며 첫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것이라 합니다. ['철도다리'] <부발역 1번출입구>에서 나와 좌측으로 돌아 서면 <경강선 철도교>가 있으며 ['죽당천 삼거리'] <철도교>를 통과해 나가면 <죽당천 삼거리>가 있는데, 우측 다리로 가면 ['6-7코스 안내판'] 지난 <5코스>의 종점이자 <6코스><8코스>의 출발지를 안내판과 함께 알려 줍니다. ['6-7코스'와 '8-9코스' 분기] "경기옛길-봉화길"은 다른 <경기옛길>과 좀 다른 길입니다. 안내판을 보면 <한양>에서 <태백산 史庫>가 있는 <봉화>까지 <왕조실록>과 <왕실족보>등 역사기록물을 운반하던 길이라고 합니다만.... <6~7코스>는 이곳 <부발역>에서 <봉화길>을 벗어나 <여주>로 분기하고 있습니다. 안내서를 보면 <세종대왕릉>과 <효종릉>을 참배하러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길은 <영릉 참배길>이 되겠으니 갔다가 다시 돌아 와 <봉화길 8~9코스>를 이어가야 겠습니다. ['죽당천산책로'] 12:21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지난 <5코스>에서도 진행했던 <죽당천 산책로>를 이어서 5분여 진행하면... [다리] 12:27 <죽당천>을 건너는 다리를 만나는데 건너서 건너편 갓길로 가고 ['죽당천로'] 자동차 도로인 <죽당로>를 따라 1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 12:36 ★길조심★ ★길조심★을 해야 하는 곳을 만나는데 횡단보도도 없는 곳에서 느닺없이 길을 건너야 하더군요. [농로'] 농로로 들어 가면 우측 멀리 <경강선>이 보이는데 <'KTX중부내륙선'>이 <부발역>에서 분기하는 곳을 만나는데 저 철도교 아래로 진행합니다. ['경강선'] 12:45 <경강선>에서 <'KTX중부내륙선'>이 분기하는 고가철도교 아래를 통과하면 ['KTX중부내륙선'] 1:00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려 눈 구경 겸 답사를 위헤 갑자기 길을 나선 것입니다. '부발읍 아미리' 들판이 이어지다가 <'KTX중부내륙선'>이 남쪽으로 휘어져 가는 곳을 만나며 [사거리] 1:04 <'KTX중부내륙선'> 아래 사거리를 만나면 직진하여 좌회전하고 ['이천축산농협 경제사업장'] 1:09 <이천 섬유질사료공장>과 <이천축산농협 경제사업장>을 지나면 ['여주이씨 이광규 공적불망비'] 1:11 "여주이씨 이광규 공적불망비"와 묘소를 지나 갑니다. 이곳이 "해룡지맥"이 지나는 마루금입니다. <해룡지맥>은 <한남정맥>에서 분기하는 <앵자지맥>에서 다시 분기하는 <독조지맥>으로 이어지다가 <큰바래기산>에서 다시 북쪽으로 분기하는 지맥으로 <마국산-해룡산-기관산>을 지나 <남한강>에 입수하는데 <복하천>과 <양화천>의 분수령이 되는 지맥이죠. [337지방도' 사거리] 1:14 <이광규 불망비>를 지나면 <337번지방도> 사거리를 만나는데 직진합니다. ['부발읍 송온리' ] 이어서 <부발읍 송온리> 논밭으로 나가면 <3번국도>가 지나는 굴다리가 보이며 ['3번국도' 굴다리] 1:24 <3번국도 굴다리>를 통과하면... ['송온리'] 다시 <송온리>가 이어지는데 8분여 진행하면.... ['수정2리마을회관' 조망] <수정2리 마을회관>이 보이기 시작하며 ['수정2리 마을회관'] 1:32 "수정2리 마을회관 "에 도착합니다. <스탬프함>이 있습니다. <수정리 水井里>에는 물이 용솟음치는 우물이 있다고 생겨난 이름이라고... ['여주 안내판'] <여주 지명 유래 안내판>이 있는데, 여긴 아직 <이천시 부발읍 수정리>인데 <여주 안내판>이 성급하게 있군요. <여주>의 원명은 <골내근>이었다고...<여흥→여주>로 바뀌었답니다. ['수정리 버스정류장'] 1:34 이어서 <수정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직진성 좌측길로 진행하면.... ['이천-여주시 경계'] <이천시>와 <여주시>의 법정경계지역을 통과합니다. ['여주시 양거리'] 그러면 <여주시 세종대왕면 양거리>로 들어 가고 ['양거리 버스정류장'] 1:54 <양거리 버스정류장>엔 <여주시내버스 시간표>가 있어 이제부터 <여주시>라는 걸 알수 있습니다. 많이 걸었다고 느껴지는데도 아직 9.4km를 더 걸어야 한다는군요. [삼거리] 1:56 이어서 삼거리를 만나는데 삼거리를 조금 지나 보이는 다리로 가면.... ['양거1교'] 1:58 <양거1교>라는 다리 앞에서 좌회전하고 ['양거리 둑방길'] . 농수로 둑방길을 따라 7분여 진행하면 ['양화천' 합류지] 2:05 <양화천>과 합류하는 합수부를 만나 좌회전합니다. ['양화천 둑방길'] 우측 멀리에 <세종대왕릉> 앞에 있는 <북성산>이 조망되는데 지금부터 "양화천 둑방길"을 약40분간 진행합니다. ['원적산'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앵자지맥>이 지나는 <정개산>과 <천덕봉>, 그리고 <원적산> 이 조망되는데 <이천시내>를 감싸고 있는 산줄기죠. 사진을 클릭하면 지난 <4코스>에서 지났던 <넋고개>까지 조망됩니다. ['용문산''추읍산'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북쪽 정면으로는 <양평군>의 <용문산>과 <추읍산>이 보이는데 사진을 클릭하면 분명하게 볼수 있습니다. <추읍산>이 <용문산>에게 업드려 절을 하며 읍소하는 형상이란걸.... ['매화교'] 2:25 <영주시 세종대왕면 매화리>에서 흘러 내려 오는 <매화천> 위에 건립된 <매화교>를 만나면 ['설봉산'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매화교> 위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지난 <5코스>에서 올랐던 <이천의 진산>인 <설봉산>이 보입니다. 사진을 클릭 해 보세요~~ 다시 15분여 더 진행하면.... ['용은교' 조망] 2:41 "수여선 水驢線" 1931년부터 1972년까지 운행된, <경부선 수원역>을 기점으로 <용인>을 지나 <이천·여주>에 이르는 철도였던 <수여선 水驪線>이 지났던 <용은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봉화길 6코스>에서 <경기문화원>이 중점적으로 강조하는 <수여선의 흔적>입니다. ['수여선' 설명] <수여선>의 <죽당역-매류역 구간>에 대한 설명은 <경기문화원>의 안내를 참고하시고.... ['용은교' 앞] 2:45 <용은교>로 올라 가기 전에 우측을 바라보면... ['현 용은교'] ['옛 매류교'] 현재 자동차용 다리로 건설된 "용은교 龍隱橋""양화천 楊花川"을 건너는 다리인데 옛날 <수여선>이 다니던 "매류교 梅柳橋"였답니다. <양화천>을 기준으로 서쪽은 <용은리>이고 동쪽은 <매류리>여서 다리 이름도 그런 연유인듯합니다. ['옛 수여선 기차'] 일제가 <여주-이천쌀>을 수탈하기 위해 건설한 <수여선>은 다시 <수원-인천>을 연결하는 <수인선>과 연결되어 <인천항>까지 한번에 운행되었는데, 당시 운행되던 "옛 수여선 기차" 사진입니다. 협괴열차로 규모가 작은 증기기관차였던 시절에 황소가 들이 받으면 기차가 넘어졌다는 일화도 있더군요. ['용은교'] 옛날 <수여선>의 "매류교 梅柳橋"였던 이 다리는 이제 "용은교 龍隱橋"라는 자동차도로가 되었고 "용이 숨어 있는 다리"인지 이 마을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갈림길] 2:50 <용은교>를 건너면 다리 끝에서 <봉화길>은 좌측 <양화천 둑방길>로 안내 됩니다. 그런데 이번 코스에서 하일라이트라고 할수 있는 <수여선의 흔적>을 찾아 보기 위해선 직진하여 앞에 보이는 <매류리>로 가야 합니다. 저곳에 <매류역>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봉화길>을 좌측 둑방길로 돌리는 이유는 아마도 직진길에 갓길이 없어 위험하기 때문이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하일라이트를 체험하지 않는다면 <6코스>를 갈 이유도 필요도 없을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약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진했는데 그런데로 진행 할만했습니다. ['봉화길 정규코스'] <양화천> 둑방길로 연결되는 정규 <봉화길>을 흘깃보는데 구경거리 없는 둑방길을 정말 아무것도 없는 황야를 가야 합니다. 그래서 <매류리>로 직진하여 <수여선의 흔적>을 답사하고 사람 사는 곳으로 가라고 저는 추천합니다. ['매류삼거리'] 2:55 <옛 수여선>이 지났던 <능여로> 도로를 5분 정도 진행하면.... <매류삼거리>를 만나는데, 다시 조금 더 직진하면... ['매류보건소-옛 매류역터''] 2:57 "매류보건소""역전슈퍼"를 만나는데 이곳이 옛 "매류역 梅柳驛"이 있었던 곳이랍니다. ['매류역' 항공사진] 이해를 돕기 위해 <산림청 홈피>에서 1970년대 <매류리> 항공사진을 쎄비해 왔습니다. 동서로 철길이 선명하며 가운데 <매류역>이 분명히 보입니다. ['역전슈퍼'] <매류역> 역사가 있었던 곳에는 그 흔적이라도 느끼라고 "역전슈퍼"라는 상호의 구멍가게가 남아 있는데 지금은 폐업하고 빈집이더군요. "그래도 여기가 옛날 매류역이었다구~ 도로는 철로였었구~ 추억 속으로 가보시라구~" ['옛 매류역 벽화'] ★ 이 사진 꼭 클릭 해 보세요 ★ <역전슈퍼> 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나그네들을 위해 마을분들이 그 추억을 남겼답니다. <수여선>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하니 이 사진 꼭 클릭해 보세요~~ ['매류역' 그림] <역전슈퍼 벽화>에 있는 옛 <매류역사>를 별도로 촬영 했는데 다음 오리지날 옛사진과 비교해 보세요~~ ['옛 매류역' 사진] <여주박물관>에 있는 <옛 매류역사 사진>입니다. 역장님과 직원이 기념사진 찍은듯 하죠? ㅎ ['수여선 마지막 운행열차'] ['신문기사'] <여주 이천쌀> 수탈을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수여선>은 해방과 함께 지역 주민들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변모해서 학생들의 통학에 이용되고, <신륵사 여행> 열차로 엄청 유명해 졌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등 교통의 발달로 <수여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답니다. 그 마지막 운행열차와 신문기사가 애처롭게도 여겨집니다. ['매류2리마을회관'] 3:02 폐업한 <역전슈퍼> 옆에는 "매류2리 마을화관"이 번득하게 서 있고... ['매류리 회전교차로'] 3:04 이어서 <매류회전교차로>를 만나는데 <옛 수인선>은 여기서 우측 <능여로>를 따라 <여주>로 가고 <봉화길>은 좌측 <세종대왕릉역>으로 갑니다. ['매류1리' 가는 길] <세종대왕릉역>으로 가는 <양화로>를 잠시 진행하면.... ['매류교'] 3:07 <매류천>을 건너는 <매류교>를 만나는데, ['매류천'] <매류교> 위에서 <양화천> 방향을 바라봅니다. 오리지날 <봉화로>는 멀리 있는 <양화천 둑방길>에서 좌측 <매류천 둑방길>로 와서 이곳 <매류교>에서 <매류천>을 건너고, 다시 <양화천 둑방길>로 나깁니다. 이 길이 오리날인데 후답자들은 이 길을 선택 할것인지, 제가 걸은 <매류역사> 흔적길로 걸을 것인지 선택하시면 되겠습니다. [정코스 갈림길] 3:08 <매류교> 끝에서 오리지날 <봉화길>은 좌측으로 갑니다만, 저는 의미없다고 생각되어 사람 사는 길을 따라 직진하여 <세종대왕릉역>으로 갑니다. 비교해 보니 약1km 정도 단축되더군요.(서두의 지도를 참고하세요) ['세정중학교' 조망] ['세정중학교'] 이 마을이 <매류리>의 중심인 <매류1리>인데 대학캠퍼스같은 <세정둥학교>가 있습니다. ['신지2리 입구'] 3:31 <세정중학교>에서 20여분 진행하면 "신지2리 마을 입구"를 지나고 ['세종대왕릉역'] 3:37 "세종대왕릉역"에 도착하여 답사를 마침니다. "세종대왕면"은 <세종대왕 영릉>의 서쪽에 있다고 원래 "능서면 陵西面"이었는데 3년전 2021년에 좀 더 멋진 이름인 <세종대왕면>으로 이름을 바꿨답니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13.1km였으며 3시간 15분 정도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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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8코스 화천 평화의 길』
             화천 비수구미와 평화의 댐 
                      해산령-비수구미 계곡-비수구미-평화의 댐
                       

        
            ['8코스 안내도']                   
       "강원도 평화누리길 8코스"는 <한묵령>에서 <북한강>을 건너는 <안동철교>를 건너
       "평화의 댐"까지 가는 "12.5km" 구간이라고 합니다.
       
       <강원평화누리길> 총20개 코스 중에 아직까지 개통되지 못한 곳이 2개 구간이 있는데
       <8코스 화쳔평화의 길>과 <10코스 두타연길>입니다.
       하지만 이 두 구간은 <민통선> 안을 통과하는 곳이어서 아직까지 개통을 못하고 있답니다.
  


    ['화천 풍산리 삼거리']            9:20    
    2024년 2월 18일 일요일   맑은 후 흐림    
  오늘은 <8코스 화천 평화의 길>의 대체코스를 답사하려고 이곳 <화천읍 풍산리> 삼거리에 도착했는데
  이 삼거리는 지난 <7코스 한묵령>으로 가는 직진길인 <한묵령로>와  우측 <평화의 댐>으로 가는
  <460번지방도-평화로>가 분기하는 삼거리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위성지도를 편집해 보여 드리면....



    ['8코스'와 대체코스 지도]                  
  오리지날 <8코스>는 지도에 빨간색 선으로 표기한 <한묵령>에서 <평화의 댐>까지 입니다.
  <현위치>가 윗 사진에서 보는 삼거리이며 대체코스 출발점으로 <해산터널>을 지나 <평화의 댐>으로 
  가는 "22km" 거리랍니다.



    ['해산가든' 앞]                    
  <현위치 삼거리>에는 <해산가든>이라는 매점과 휴게소가 있는데, <평화의 댐>까지 "22k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간은 <해발 700m급>의 <해산령>을 올라야 하는 체력소모가 많은 구간이고
  또한 오늘 안개와 쌓인 눈으로 힘들거 같아 버스로 <해산령>까지 약20여분이 걸려 이동하였습니다.
  


    ['해산터널 앞']              9:40         
  "해산터널"은 <'제안산 在安山 1060m'>과 <'해산 日山 1194m'> 사이에 있는 터널로 
  1990년 개통 될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징 긴 터널로 "1.98km"라고 합니다.
  "해산령 日山嶺"은 이 터널 윗 고개입니다만 이곳에 정상석을 세워 놨군요.
  이곳의 해발은 약700m 정도로 쌓인 눈의 높이가 해발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해산령 휴게소']                 
  <해산터널>을 통과하면 좌측엔 <해오름휴게소>라는 음식점 겸 숙박업소가 있으며 주차도 할수 있어
  <비수구미>를 다녀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비수구미 입구']                     
  휴게소 건너편엔 "비수구미"로 가는 입구가 있는데 "6km"라고 알리고 있으며
  좌측 <460번지방도-평화로>는 <평화의 댐>으로 가는 자동차 도로로 "아흔아홉구빗길"이라고 하는데 ..

     
         『비수구미 트렉킹 코스』


    ['비수구미 트렉킹 코스']              
  윗 지도의 <초록색 도로>가 <아흔아홉구빗길>로서 좀 위험한 꼬불꼬불 도로를 통과해야 합니다.
  빨간색 선으로 표기된 코스가 오늘 제가 진행한 "화천 비수구미 트렉킹 코스"로 
  "KBS인간극장"에 방영되어 유명해진『비수구미 마을』을 통과하여 <평화의 댐>으로 가는 "11.6km"입니다.



    ['비수구미 출입문']            9:42       
  저는 두번째 방문인데 예전엔 큰 문은 잠겨 있었고 좌측 샛문을 통과해 내려 갔었습니다.



    [뒤돌아 본 '해산령']                
  <비수구미 출입문>을 통과하여 뒤돌아 본 <해산령>이고    
    

  
    [내림길]         
  <비수구미 마을>은 1,200m급 <해산>이 만들어 내는 첩첩산중 계곡이 <화천댐>으로 인해
  완전 고립되면서 <화천>에서 배를 타고 <파로호>로 가야 갈수 있는 육지 속의 섬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자동차가 다닐수 있는 도로가 있어 "산간오지"라는 명칭은 이젠 어울리지 않습니다.
  
  해빌 700m급의 계곡이어서 비포장도로는 하얀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데
  30여분 미끄러지며 내려 가면....



    [다리]            10:13          
  첫번째 다리를 건너고
  


    [흔적]            10:18       
  주변엔 화전민들이 살았던 흔적이 보이기도 하는데....


  
    [내림길]                    
  다시 10여분 더 내려 가면...




               
                     ['과부터골']            10:24        
    "과부터골"
    <6.25한국전쟁>으로 남편 잃고 자식 잃은 과부들이 어디 한두명이었겠습니까...
    기델데 없는 그 여인들 중에 오로지 목숨 부지를 위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 화전을 일구며 
    모진 목숨을 연명하던 아홉명의 여인들이 살았던 곳이랍니다.
    남편이 없으니 자손을 잇지 못하고 사라져 간 그 여인들이 이 계곡에서 서성거리는듯 하군요.
    정치권력들이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저지른 전쟁이 만들어 낸 죄없는 비극의 여인들....
    그 여인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메이는군요.
    

  
    [내림길]                      
   <과부터골>에서 15분여 내림길을 더 내려 가면....
  



    [다리]             10:39              
  계곡은 점점 계곡 다워지며 폭포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비수구미>까지 "2km"만 더 가면 된다고 예쁜 강아지가 빼꼼 내다보며 알려 줍니다. 
  그러니까 <해산령>에서 "4km"를 내려 왔군요.
    



    ['차량 차단기]             10:52          
  길은 점점 평탄해 지고 계곡은 제법 개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는데
  비포장길을 다시 13분여 더 내려 가면




    [마을 입구]             11:00           
  <비수구미 계곡>이 계곡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눈은 녹아 잘 보이지 않으니 낮아진 해발을 느낄수 있습니다.
  드디어 <미수구미 마을> 입구를 통과하면....
  


    [집]             11:08    
  단 세가구가 산다는 <미수구미 마을>의 첫번째 주택을 지나면
    


    ['비수구미 이장집']             11:13     
  "KBS인간극장"의 주인공들이 사는 "비수구미 이장집"을 만나게 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들 며느리가 눈코 뜰새 없이 일을 한다는데....
   
   할아버지가 또한 엄청 유명해진 분인데, 이곳에 자생하는 이름 모를 예쁜 꽃을 취미로 키웠는데
   <국립광릉수목원>에만 있는 멸종위기의 세계적 희귀종인 "광릉요강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광릉수목원> 직원들이 나와 확인하고 국가 예산으로 엄청 큰 수목원을 만들어 주었답니다.
   그래서 요즘은 <광릉요강꽃>이 많이 번식되어 일반인들도 쉽게 만날수 있게 되었답니다.
 
              
                 ['광릉요강꽃'] 
         <식물학백과>에서 인용합니다.
      "광릉요강꽃, 영문명 Korean lady's slipper"
     우리나라 자생식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꽃을 가진 식물로 일컬어질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여러해살이 난초이다. 곰팡이가 뿌리에 공생하여 난균근을 형성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이식과 재배가 매우 어렵다. 경기도, 강원도, 충청북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등지에 매우 드물게 
     자라며, 세계적으로는 일본과 중국에 분포한다. 무분별한 채취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멸종위기에 놓여 있고,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세계 적색목록에도 
     위기(EN, endangered) 범주에 등재되어 있다.
     
  <광릉요강꽃>의 영문명이 재미있는데, " Korean lady's slipper" 한국여인의 슬리퍼라고 해석되는군요.ㅎ
  원래 "요강"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영문명으로는 "슬리퍼" 같다고 하는군요.
  특히 "한국여인의 슬리퍼" 같다고 한 이유가 뭔지 각자 상상해 보세요. ㅎㅎ
    
 


    ['이장집']                  
  봄부터 가을까지 <화천군>이 운영하는 <파로호 유람선>이 <화천댐>에서 <평화의 댐>까지 운행하며
  이곳을 들려 가는데, <산채비빔밥>을 제공하는 음식점으로도 유명해져 엄청 돈을 벌고 있다는 집입니다.
  요즘은 <파로호>가 얼어 유람선이 다니지 못하고 육로엔 눈으로 통행이 불편하여 손님이 없기도 하고
  특히 요즘은 <고로쇠> 채취로 매우 바빠 음식점은 쉬고 있다고 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아주머니가 며느리라는데 4월부터 다시 영업한다고 합니다.
  


    [다리]         
  이장집에서 <도토리묵>에 막걸리라도 한잔 하고 싶었는데 못하고 다시 다리로 나가면서


       
    [현수교 조망]                      
  <비수구미 계곡물>이 <파로호>에 합수하는 곳을 바라보면 <현수교>가 보입니다.
    
 

    [갈림길]             11:18        
  갈림길에서 <현수교> 방향으로 진행하면...
  



    [현수교' 통과]           11:20           
  <비수구미 트렉킹코스>의 하일라이트인 <현수교>를 건너 갑니다.
    


    [이장집 조망]               
  다리에서 점점 더 부자가 되어 간다는 이장집을 조망하고




    [다리]                   
  산 옆구리에 <평화의 댐>으로 가는 "비수구미 트렉킹코스"로 조성한 길을 잠시 진행하면....
   


    ['비수구미']              
  "비수구미"의 眞景이 펼쳐집니다.
  <비수구미>라는 지명의 유래는 몇가지 설이 있더군요.
  
  한자로 "飛水口尾"로 쓴다는 설도 있고, "秘水口尾", "非水口尾"라는 설도 있더군요.
  첩첩산중 계곡이  <화천댐>으로 <북한강>이 <파로호>를 이루어 "육지 속의 섬"이 되어 버린 곳이어서
  "파로호 물길의 들머리이자 날머리"로서 아름다운 물의 나라를 의미한다고 여겨집니다.

 





    [트렉킹 코스]                       
  산 옆구리에 조성된 트렉킹코스를 따라 15분여 진행하면....

 


    [전망대에서 '파로호' 조망]              11:34               
  전망대를 만나는데 "파로호 破虜湖"가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러시아 정벌을 목적으로 에너지 확보를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수력발전용 댐인 <화천댐>을 건설하면서 만들어진 호수이므로 <화천호>라고 해야 하는데
  6·25전쟁의 화천전투 때 북한군과 중공군 수만 명을 수장(水葬)한 곳이라 하여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破虜湖"라고 명명하였답니다.
 



    [산허릿길 끝]            11:41         
  20여분 걸리는 산허릿길이 끝나면....
  


    [비포장도로]           11:42       
  비포장도로 수준의 <파로호 수변길>을 만나고




    ['파로호' 수변길]                  
  20여분 수변길을 진행하면....
  



    ['평화의 댐 공원' 조망]            12:00          
  <평화의 댐> 하부 공원인 <국제평화아트파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종점입니다.
  가깝게 보입니다만, 좌측으로 깊은 계곡을 돌아 가야 해서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차량 차단기]             12:07            
  좌측 계곡으로 들어 가면 차량 차단기가 있고
  



    [도로 삼거리]             12:20         
  도로로 올라 가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비수구미 들날머리"이기도 합니다.
  <비수구미>를 가려면 여기서 가는게 훨씬 가깝고 쉽겠습니다.
  <비수구미 2.7km >이고 <평화의 댐 2.1km >라고 알려 줍니다.
  


    [도로]                       
  삼거리에서 도로를 따라 15분여 진행하면....



    ['평화의 댐 오토캠핑장']            12:36     
  <평화의 댐 오토캠핑장>을 만나고
    


    [캠핑장 입구]                 
  이어서 <평화의 댐> 아래 캠핑장 입구를 만나며
    


    ['평화나래교']           12:40         
  <평화나래교>를 건너 갑니다.



    ['평화의 댐']                      
  다리를 건너며 <평화의 댐>을 조망합니다.
  사진엔 댐 가운데가 뚫린듯 하지만 입체적 그림일 뿐입니다.
  
  댐의 목적은 홍수조절이라던가, 물을 가두어 발전에 사용하거나, 농업-생활용수로 이용하기 위함이죠.
  그런데 <평화의 댐>은 수문이 없는 독특한 댐인데, 대신에 배수구가 다섯개로 터널이 뚫려있습니다.
  그러니까 물을 가두는 기능이 전혀 없는 이상한 댐인데, 북한 <금강산댐>이 붕괴되거나 폭파되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 오는 물의 흐름을 완충시키는 역활을 하는 것 뿐이죠.
    


    ['평화나래교' 통과]                   
  <평화나래교>를 건너 가면....



    ['국제평화아트파크']             12:49                     
  "국제평화아트파크" 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F-5전투기']                    
  <'F-5전투기'>는 현재도 우리 공군이 개량하여 사용하는 전투기라고 하는군요.
  하지만 요즘도 간혹 고장으로 추락하는 뉴스를 접하죠.
  
  "이카루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죄를 지어 감옥에 갖혔는데 밀납으로 만든 날개를 붙이고
  탈출했으나 너무 높이 날아 태양열에 의해 밀납 날개가 녹아 떨어져 죽었답니다.
  전투기에 "이카누스"를 상징적으로 사용하기엔 좀 그렇죠?
  


    [평화 조형물]                      
  "평화"를 강조하는 조형물들이 있는데.....
  탱크의 포신은 "평화의 나팔"로 묘사하고, 탱크 위엔 "평화의 비둘기"가 날고....
  손에 손 잡고 함께 사는 세상을....



    [주차장]            12:52~1:12    
  주차장으로 올라 가 식사를 하는데 점심을 제공하는 유일한 산악회라고 생각되는 <청마산악회>는
  특히 전라도 토종 밑반찬이 진미입니다. 소주 맥주 막걸리는 무제한 제공하니 애주가들은 환호하죠?




    ['국제평화아트파크' 조망]             
  평화 조형물을 주차장 전망대에서 다시 감상합니다.
  하늘로 솟은 금속 막대는 "포신"이군요.



    ['염원의 종']             1:15      
  <평화의 댐> 하류에 세워진 "염원의 종"은 소리가 나지 않는 "나무"로 만든 종이군요.
  남북 분단의 아픔을 담아 울리지 않게 만든 슬픈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는데....
  침묵을 깨고 우렁차게 울려 퍼지길 학수고대합니다.
    


    ['파로호' 조망]                            
  <염원의 종> 전망대에서 <파로호>를 조망하고....



    ['평화의 댐' 조망]              
  <평화의 댐>도 다른 각도에서 조망합니다.
  
       "물을 저수하지 않는 이상한 댐"
       "북한 금강산댐이 붕괴 될때 완충 역활만 하기를 기다리는 괴상한 댐"




    ['세계평화의 종공원']             
  <평화의 댐> 근처엔 수많은 종이 설치되 있습니다.



    ['평화의 댐']              
  <평화의 댐> 상부 도로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출발합니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11.6km"였으며 약3시간이 걸렸습니다.

 
               가까운 길이 있는데도 
               멀리 돌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인생이란 먼 길을 도는 것.....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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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과 "돌아 오지 않는 강" 여기서 저는 이중섭의 그림 세계라던가 생애를 이야기 하려는게 아니고 조용필의 "돌아 오지 않는 강"이란 노래가 어떤 배경 속에서 만들어 졌는가에 촛점을 마추어 이 글을 씁니다 이중섭은 일제 강점기에 오산학교를 나와 일본 동경제국대학에 입학하고... 무슨 미술학원에 들어 갑니다. 선묘낭자와 그의 아버지 유지인이 '의상대사'를 한눈에 범상치 않은 훌륭한 분이란걸 알았듯이 같은 미술 학도였던 일본인 여학생 '야마모또 마사꼬'는 첫눈에 이 중섭이 범상치 않은 위대한 화가라는걸 느끼고 존경과 사랑에 빠지게됩니다. "마사꼬"는 제가 알고 있기로는 일본 굴지의 그룹인 미쓰시비 회장의 손녀딸인가 되는 그런 가문있는 집의 예쁘디 예쁜 아가씨 "마사꼬'양이라고 알고 있는데 정확치는 않습니다만, 그런 아가씨가 조선의 가난한 화가 이중섭에게 시집을 오고, 함경도 원산에서 살림을 꾸밉니다. 아기도 낳고,( 이 자식들이 요즘 가짜 그림으로 아버지를 욕 보이고 있습니다만) 행복을 꿈꿉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황폐화된 조선반도에선 순수그림쟁이가 먹고 살수가 없었습니다 '마사꼬'는 가난을 도저히 이기지 못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납니다. 홀로 남은 이중섭은 부인과 아이들이 보고싶어 심각한 수준의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일본으로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 부인을 그리워하며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 "돌아 오지 않는 강"이라는 그림입니다. 1956년 어느날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은 대부분 보셨을법한 유명한 영화 --추억 속에 살아 있는 영화 마리린 몬로와 로보트 밋참이 주연한 영화 "돌아 오지 않는 강"이라는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 그린 마지막 그림..."돌아 오지 않는 강" 금광을 가지려는 허영과 욕망, 사랑이 허무하게 돌아 오지 않는 강으로 떠내려 가는 그 영화를 보고 자기 곁을 떠나간 사랑하는 '마사꼬'.... "마사꼬" 그녀 만큼은 곧 자기 곁으로 올것같은 예감을 느끼며 그리는 "돌아 오지 않는 강"..... "돌아 오지 않는 강"이란 그림은 그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알지 못하면 단순한 스케치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님이 올것 같은 예감을 가지고 팔벼개를 배고 비스듬이 창가에 걸터 있는 이중섭.. 처마 끝에 앉아있는 삐싹마른 새 한마리가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전해 주려는가 이 모두가 꿈인가! 처마 끝에서 엿장사 가위같은 입을하고 무슨 반가운 소식을 전하려는 듯한 삐싹 마른 저 새를 보면.. 저는 그리움이 쌓여 한맺혀진 이중섭의 마음을 읽는 것같아 가슴이 찌저지는 듯합니다 이 중섭 작 "돌아 오지 않는 강" (이중섭은 몇장의 "돌아 오지 않는 강"을 그리곤 꾸겨 버리고를 반복했답니다) {그래서 몇점의 "돌아 오지 않는 강"이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 무렵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 애뜻한 사랑을 느낄수 있으리라 "나의 최고, 최대, 최미의 기쁨. 그리고 한 없이 상냥한 최애의 사람, 오직 하나인 현처 남덕군. (중섭은 '마사꼬'를 南德君이라 불렀습니다) 하루 종일 제작을 계속 하면서 남덕군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줄까, 하고 그것만을 마음속에서 준비하고 있다오.... 어서 아고리의 두 팔에 안기어 긴 입맞춤을 해 주오, ('아고'는 일본말로 '턱'이란 뜻이고 '리'는 李 중섭을 말한답니다. 이중섭이 턱이 좀 크더군요) 언제나 내 가슴은 상냥한 당신으로 가득 차 있소, 하루 빨리 기운을 차려 내가 좋아하는 발가락 군을 마음껏 어루만지도록 해주오, 나는 당신을 아침 가득히, 태양 가득히, 신록 가득히, 작품 가득히 사랑하고 있소, 내 머릿속은 당신을 향한 사랑의 말로 가득 차 있소."


돌아오지 않는 강-

조용필

당신의 눈속에 내가 있고
내 눈속에 당신이 있을때
우리 서로가 행복했노라~
아~ 그 바닷가 파도소리 밀려오는데
겨울나무 사이로 당신은 가고
나는 한마리 새가 되었네
제가 이글을 쓰는 더 중요한 이유는 이 노래에 있다고 서두에 말씀드렸습니다 '겨울나무 사이로 당신은 가고... 나는 한마리 새가 되었네'..로 대변되는 이 노래의 가사와 曲이 이중섭의 '돌아 오지 않는 강'이란 그림과 이중섭의 그리움을 너무도 잘 표현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 노래를 대중 가요라 할것인가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면 그 당시 이 중섭의 마음을 읽는 것 같아 가슴 아파 옵니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아시는 분들은 아실만한 임택수 교수... '정이란 무었일까~♬'로 시작되는 "情"이라는 노래도 작곡했으며 KBS 드라마 음악 작곡가이기도 한 그도 지난해에 암으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이 중섭 보다 못하다고 말할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歌辭 하나에도 이렇게 숨겨져 있는 깊은 사연이 많습니다 여러분! 망우리에 가면 쓸쓸히 빈 바람만 부는 언덕에 이제는 들을수도 말할수도 없이 대자연 속에 뭍혀 "돌아 오지 않는 강"을 건너간 한국의 피카소, 빈센트 반 고흐, 李 仲燮이 잠들어 있습니다 어쩌다 들리게 되면 江이 아닌 하늘을 보고 이 노래를 한번 불러 보세요~~ "돌아 오지 않는 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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