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北正脈에서 分岐하는"
"왕방지맥" 첫번째 산행기
축석령-지맥분기점-어하고개-회암고개-천보산-회암사
존재하는 것들의 합법칙적 조화 속에 현실을 믿지,
인간의 운명과 행위에 관여하는 神은 믿지 않는다.
"神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아인슈타인>
[왕방지맥]
"왕방지맥 王方枝脈"은 "한북정맥"의 '축석령' 근처 천보산맥의 한 봉우리에서 분기하여
어하고개-회암고개-천보산-해룡산-오지재-왕방산-국사봉-개미산"을 지나
"영평천"과 "한탄강"이 합수하는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8.5km"의 산줄기 입니다.
"한북정맥"과 "명성지맥", 그리고 "왕방지맥"이 감싸고 있는 분지가 "포천시"이며
"포천시"에 흐르는 개천이 "포천천-영평천"이라고 생각 하면 됩니다.
[구글어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에 있는 "축석교회"에서 출발하여
"왕방지맥 분기점"에 오르고, "어하고개"와 "회암고개"를 지나 "천보산"을 오르며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회암사"까지 GPS 측정으로 14km를 갑니다.
구글어스에서 보는바와 같이 "천보산맥"이 거대한 '만리장성'같이 "양주시 고읍지구"를 감싸고 있습니다.
"한북정맥"이 지나는 마루금에서 "포천시"와 "양주시"를 가르고 있는 "천보산맥"을 따라 가는
산줄기가 "왕방지맥"이 되겠습니다.
['축석교회' 앞] 9:23
2015년 6월 7일 (일) 구름 조금 연무
강남 "신논현역 버스정류장"에서 [3100번 광역버스]를 타고 55분 정도가 걸려 "축석령버스정류장"에 내려
오늘 산행 들머리가 되는 "축석교회"로 갑니다.
앞에 보이는 고개가 "한북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축석령 祝石嶺"이며,
"의정부시"와 "포천시"의 경계가 되는 곳입니다.
[한북정맥-축석교회 주차장 입구]
"의정부시"와 "포천시"의 경계를 알리는 해태상이 있는 "축석교회주차장입구"로 들어 갑니다.
[산행들머리] 9:28
주차장으로 올라 가면 주차장 공터가 있고, "한북정맥"이 이어지는 곳에는 정맥 종주자들의 표지기가
길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오름길]
"한북정맥"을 따라 완만한 오름길을 15분여 오르면.....
[왕방지맥 분기점봉]
"왕방지맥 분기점 봉우리"에 도착합니다.
"한북정맥"에서 분기하는 지맥은 여덟개가 있지요
"명성지맥" "화악지맥" "명지지맥" "천마지맥" "수락지맥" "왕방지맥" "감악지맥" "오두지맥"입니다.
너무 쉬운코스라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서야 "왕방지맥"을 찾아 왔습니다.
[왕방지맥 분기점 삼거리] 9:44
"王方枝脈 分岐峰"에서 [어하고개 4.2km →] 방향으로 갑니다.
약간 혼동을 주는 것은 이정표에 [축석령고개 0.6km →]이라고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축석령"에서 올라 왔는데 다시 [축석령고개]로 길을 알리고 있어 모르고 가면 어리둥절하겠죠?
'축석령'은 뭐고 '축석령고개'는 또 뭔가? ㅎ 조금 있다가 알려 드림니다.
[왕방지맥 마루금길]
마루금을 이루고 있는 "천보산맥"은 좌우에 "양주시"와 "포천시"가 가까이 포진하고 있어
주민들의 건강산행길로 발달해 있어 통행흔적은 무척 믾으며,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평지 수준의
산책로로서 걷기에 매우 쉬운 코스이더군요.
[사거리-(축석고개)] 10:00
"왕방지맥 분기점"에서 15분 정도 산책을 즐기며 걸으면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에 도착하는데,
이곳이 "오백주"라는 조선 숙종때의 효자가 아버지의 병환을 낫게하려고 '석청'을 구하러 다니던 곳이랍니다.
이 주변에 암벽이 많아 '석청'이 있었었다는군요.
"축석령"의 유래는 "한북정맥 산행기"에서 언급 한바 있습니다만, 간단하게 알려 드리자면...
조선 숙종 때에 이 근처 '어룡동'에 살던 "오백주"라는 효자가 아버지 병환을 낫게 하려고 약을 구하러
다니다가 호랑이를 만나는데, 밤새도록 호랑이에게 약을 구해 달라고 빌었는데,
아침에 보니 호랑이가 있던 자리엔 바위가 하나 있었고 그 옆엔 "석청"이 있었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
호랑이가 있었던 그 바위를 "祝石"이라고 했고, 그 "祝石"이 있는 고개를 "축석령"이라고 했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곳에도 조그마한 안내판이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정표에 돈을 들이는 것도 좋지만 이왕 돈을 들여 안내를 한다면 설명도 해 주면 좋겠다는 의견입니다.
[삼거리] 10:02
다시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축석령 1.2km →]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축석령고개'와 '축석령 1.2km'....뭔가 이정표가 문제 있지요?
[오름길]
삼거리를 지나면 암벽이 있는 전망명소를 지나 완만한 오름길을 진행합니다.
[쉼터] 10:11
그러면 쉼터가 나오는데...
이정표에 [양주GS자이아파트1단지 0.8km→]라고 알리고 있는것으로 보아
"양주고등학교 뒷산"이 되겠군요.
[양주 고읍지구 조망]
양주시 삼숭동 '자이아파트'가 잘 보이는군요.
[숲길]
길 찾기는 무지무지 쉽습니다.
구글어스에서 본 바와 같이 거의 일직선이며, 길도 넓고 선명하며,
이정표도 필요 이상으로 설치 해 놨기 때문에 지맥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유명한 산책로 같습니다.
[천보산맥] 10:18
이정표의 종류도 몇가지가 설치되 있는데
"천보산맥"이라는 이정표가 눈길을 끄는데....
[쉼터] 10:21
녹색 이정표도 있고.....
이 쉼터에서 진행 방향으로 조망이 됩니다.
[조망]
앞에 보이는 산에 "암봉"이 있습니다.
높이는 대략 380m 정도 되는듯 했습니다.
"축석령"에서 "어하고개" 사이에 있는 산줄기에선 제일 높은 산봉우리인데 이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높이 표기도 지도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숲길]
쉼터에서 13분 정도 내리막길을 잠시 내려가 다시 완만한 오름길을 진행하면....
[암봉 쉼터] 10:34
이름없는 암봉에 도착합니다.
이 지역 지명위원회에서 이름 하나 붙여 줄법도 한데...
여하튼 제법 봉우리 다운 봉우리입니다.
고도계로 보니 대략 380m정도 되었습니다.
[암봉]
조망을 하려고 암봉을 올라 갔더니...
[암봉 정상]
조망은 별루였습니다.
그래서 10여분 능선을 따라 더 진행하니....
[전망명소] 10:43
조망이 좋은 전망명소가 나왔습니다.
여기서 조망을 하면....
[천보산맥]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봅니다.
'의정부 천보산'에서부터 뻗어 오는 "천보산맥"이 거대한 댐 같아 보이기도하고...
그 뒤로 "도봉산"이 연무 속에서 흐릿하게 보입니다.
조금전에 지났던 쉼터에서 내려다 봤던 "삼숭동 GS자이아파트단지"도 보이는군요.
[양주 고읍지구-불곡산 조망]
서쪽으로 방향을 약간 돌리면
"양주 고읍신도시"가 펼쳐지며 "한북정맥"이 지나는 "큰테미산"과 "불곡산"이 조망됩니다.
[칠봉산 조망]
북쪽으로는 "칠봉산"이 조망되고....
[포천 소흘읍-죽엽산 조망]
남쪽으로는 "포천 소흘읍"과 "한북정맥"의 "죽엽산"이 조망됩니다.
"죽엽산"에 "세조의 릉-광릉"이 있죠?
[마루금] 10:45
전망명소에서 "어하고개"로 진행합니다.
['GS자이5단지' 갈림길] 10:53
"양주천보산림욕장"까지 0.3km만 가면 된다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지나고...
5분 정도 더 진행하면....
['376.2m봉' 정상] 10:58
"376.2m봉"
삼각점과 지리좌표가 있는 봉우리에 오릅니다.
이 봉우리도 그 흔해빠진 이름 하나 붙여주지....
[삼각점 바위] 11:02
조금 떨어진 곳에도 암봉이 있고 바위에 삼각점을 설치해 놨습니다.
[삼거리] 11:03
[양주천보산림욕장. 자이아파트5단지 1.5km→]라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지나
20여분 진행을 하면....
['어하고개' 갈림길] 11:22
[어하마을]과 [어하고개] 갈림길을 만나 [어하고개] 방향으로 진행하고
[숲길]
다시 숲길을 7분여 진행하면....
[갈림길] 11:29
[천보산자연휴양림 8.0km→]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양주천보산림욕장]과 [천보산자연휴양림]은 완전히 다른 곳에 멀리 떨어져 있으니 구별해야겠더군요.
[내림길]
15분 정도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 가면....
[어하고개] 11:34
[어하고개]에 도착 합니다.
"축석령고개"에서 3.6k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어하고개]
"어하고개 御下고개"
이 지역의 이름들은 대부분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에 얽힌게 많더군요.
'양주디지털문화대전'에는 "어하고개"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조선 태조가 무악대사와 회암사(檜巖寺)를 찾았을 때 산세를 보려고
봉양리의 칠봉산[당시 어등산이라 했음]을 올랐다가 천보산맥을 따라
남쪽으로 20리쯤 되는 이 고개로 내려와서 어하고개라 하였다고 전한다."라고...
'무학대사'를 '무악대사'라고 잘못 표기한것 외에는 그럴듯하군요.
현재는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와 '양주시 삼숭동'을 잇는 고개인데....
이 고개 아래로 [어하터널]을 뚫어 이 고개로 넘나드는 차량은 거의 없습니다.
['석문이고개' 들머리] 11:36
[어하고개]를 지나 "석문이고개"로 가는 길입니다.
"석문이고개"까지 2.5km이고 [정상(율정동)]까지는 3.2k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정상(율정동)]이라고 표기한것은 봉우리의 이름이 없기 때문에,
"율정동에 있는 봉우리 정상"이라는 뜻으로 받아 드림니다.
[급경사 오름길]
[어하고개]에서 급경사 오르막이 5분 정도 이어집니다.
잠시 오르면...
[이정표] 11:41
[회암고개 5.2km→] [정상(율정동)]까지 3.1km라는 이정표를 지나고....
[오름길]
완만한 오름길을 7분 정도 오르면....
[삼각점] 11:48
삼각점이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으로 가야 합니다. 길조심
[오름길]
다시 6분여 완만한 오름길을 진행하면...
[삼각점] 11:54
길섶에 있는 삼각점을 하나 지나고...
[군사격경고] 11:57
이어서 군사격장 위험 경고문을 지납니다.
[바위지대]
바위가 특징으로 보일 정도로 볼거리 없는 지루한 능선길을 계속 진행 합니다.
[삼거리] 12:06
여기서 길조심을 해야 하는데 [석문이고개]방향으로 진행 하면 되겠습니다.
저는 모르고 직진해서 잠시 알바...
[바위길]
다시 바위길을 잠시 더 진행하면....
[천보산-칠보산 조망] 12:10
이름없는 암봉에 올라서서서 조망을 합니다.
진행방향 '양주시'방향으로는 "천보산"과 "칠봉산(옛 어등산)"이 조망되며
그 뒤로 "소요산"까지 흐릿하게 조망되는군요.
오늘 안개 때문에 사진빨이 좋지 못해 아쉽습니다.
[해룡산-왕방산 조망]
진행방향의 '포천시'방향으로는 "해룡산"과 "왕방산"이 점점 가까워 집니다.
[군훈련장] 12:20
전망바위봉에서 10여분 완만한 내림길을 내려 가면 군훈련장이 나오고...
[석문이고개] 12:21
"천보샘"이라는 약수터가 있는 "석문이고개"에 도착합니다.
군훈련시설이 여기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천보샘] 12:22
"천보샘"에 가 보았는데 갈수기여서인지 물은 병아리 눈물 많큼씩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마셔 보려고했으나 쟌차 타는 분들이 줄을 서서 물을 기다리고 있어 포기...
[숲길]
"석문이고개"에서 8분여 완만한 오름길을 진행하면....
[삼거리] 12:30
삼거리를 만나는데
[등산로입구 0.63km] [정상 0.83km]라고 알리는 삼거리입니다.
아마도 이제까지 이정표에서 알리고 있는 [정상(율정동)]이 가까워졌나 봅니다.
[오름길]
4분 정도 진행하면...
[하산길 삼거리] 12:34
[정상 0.63km] [하산길 0.91km]이라고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지나고...
우측으로는 '포천시 송우리'와 가까이 연결되는 등산로 같았습니다.
[오름길]
10여분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율정동 정상]
이름없는 봉우리 정상에 도착하는데....
[천보정] 12:45~1:25
이름없는 봉우리 정상에는 "천보정"이라는 육각정이 있습니다.
이 이름없는 봉우리가 이정표의 [정상(율정동)]인가 봅니다.
이곳에서 약40분간 아침겸 점심을 먹고....
[조망 1]
먼저 남서쪽으로 지나온 "왕방지맥"이자 "천보산맥"인 산줄기를 뒤돌아 보고...
봉우리 이름들이 없으니 표기하기도 좀 그렇습니다.
표기를 안하니 보기가 불편하지요? ㅎㅎ
[조망 2]
"소요산"이 조망됩니다.
그 좌측으로 "마차산"과 "감악산"이 안개로 아주 흐릿하게 보이는군요.
[조망 3]
진행방향의 '포천시' 방향으로는 "해룡산"과 왕방산"이 조망되는데....
그 뒤로는 "명성산"등이 보여야 하는데 안개 때문에....
[조망 4]
동쪽으로는 '포천시'와 그 뒤로 "운악산"이 안개 속에 어렴푸시 보입니다.
[조망 5]
남쪽으로는 "한북정맥"의 "죽엽산"이 한북정맥의 추억을 떠울리게 합니다.
[이정표] 1:25
[정상(율정동)]에서 "회암고개"로 출발합니다.
[삼거리] 1:27
정상을 내려 서면 [체육공원 2.5k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지나고...
다시 6분 정도 편안한 숲길을 진행하면...
[천주교묘지 갈림길] 1:33
이정표와 안내문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여기서 우측이 "천주교 금호동교회 천보묘원"이더군요.
길은 좌측 직진길로 가도록 되있습니다만, 묘지 안으로 들어가 묘지 포장도롤를 따라 가도 되더군요.
[해룡산-왕방산 조망]
"해룡산"과 "왕방상"이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해룡산 정상"은 군부대가 점령하고 있어 우회해야 하겠더군요.
"천주교묘지"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해룡산" 아랫자락엔 "중문의대"가 보이고...
그 뒤 "왕방산" 아랫자락으로는 "대진대"가 보이는군요.
[계단 내림길]
제법 긴 계단 내림길을 내려 가며....
[천보산-칠봉산 조망]
계단 중턱에선 진행방향으로 "천보산"이 보이고, 그 뒤로는 오늘은 가지 않을 "칠봉산"이 보입니다.
[천주교묘지] 1:41
계단을 내려 가면 "천주교묘지" 화장실이 있는 묘지 도로와 잠시 만나서 통과하고...
[내림길]
7분여 완만한 내림길을 내려 가면....
[회암고개 위]
"회암고개" 위에 도착합니다.
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회암고개] 1:49
"회암고개"에선 도로를 건너 건너편 계단으로 올라 가면 되겠습니다.
"회암고개"에는 매점과 음식점이 있었으며, 자동차들의 통행량이 제법 많았습니다.
[뒤돌아 본 '회암고개'] 1:53
"회암고개 檜巖嶺"
'양주시 회암동'에서 '포천시 송우리'를 잇는 고개입니다.
마을버스가 10여분에 한대씩 지나 다닐 정도로 교통량이 많은 "회암고개"였습니다.
'디지털양주문화대전'에서 지명의 유래를 인용합니다.
"회암령은 회암사(檜巖寺) 인근에 있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회암사는 고려 후기에 건립된 절로 지공선사·나옹선사·무학대사의 부도(浮屠)와 비가 있어 유명하다.
회암령이라는 이름은 19세기 중반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에서 확인된다.
일명 투바위고개라고도 불린다. ‘투바위’는 6·25 전쟁 후 미군들이 작전상 이곳에 매긴
부호 ‘2Y[투와이]’라는 영어 발음을 잘못 알아듣고 옮겨 말한 데서 생긴 변형어이다."
[비포장도로] [숲길]
"회암고개"에서 계단을 올라서면 비포장도로를 만나 잠시 진행하고, 그 후 좁은 산길로 들어 갑니다.
[이정표] 2:01
"회암고개"에서 8분여 오르면 이정표가 있는 곳을 지나고...
[숲길]
다시 숲길을 7분 정도 진행하면...
['해룡산' 조망] 2:08
"해룡산 정상"이 아주 가깝게 보입니다.
오늘 "왕방지맥"을 시작하며, 저 "해룡산"을 넘어 "오지재"까지 가려고 했습니다만,
그리고 지맥을 가면 지맥에 충실하게 마루금을 밟아야 하지만
이번 첫구간은 그 동안 꼭 가 보고 싶었었던 "회암사-회암사지 檜巖寺址"를 탐방하려고
집에서 부터 맘 먹고 왔습니다.
"해룡산" 정상부는 군부대가 점령하고 있어 볼거리도 없을듯 하여 ....ㅎ
[오름길]
등산객들이 제법 있는 "천보산" 오르는 길이입니다.
[바위] 2:12~2:42 (30분간 휴식)
정상 느낌을 주는 바위가 있는 곳에서 30여분간 낮잠을 자고....ㅎ
[이정표]
"축석령"에서 10.2km를 왔다는 이정표를 지나면....
[회암사 갈림길] 2:44
"회암사"로 빨리 갈수 있는 삼거리가 나옵니다.
그래도 직진해서 "천보산 정상"을 오르고 "회암사"로 가겠습니다.
[오름길]
마사토와 바위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천보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6분 정도 오르면...
[천보산 정상] 2:50~2:55
"천보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천보산]
"천보산 天寶山 423m"
"천보산맥"에는 '양주시 마전동'의 [정상(마전동)] 335m 봉우리라고 불리우는 "천보산 335m"가 있고
이곳 '양주시 회암동'에 "천보산 423m"라는 "천보산" 두개가 "천보산맥"의 시작과 끝을 알리며 있습니다.
[조망 1]
지나온 "천보산맥-왕방지맥"이 줄을 서 있고 멀리 "도봉산"까지 보입니다.
[조망 2]
서쪽 '양주시'방향 아래로는 "회암사지"가 조망됩니다.
[조망 3]
북쪽으로는 "소요산"이 조망되고, 그 좌측으로는 "마차산"과 "감악산"이 안개 속에서 가물거립니다.
[조망 4]
"해룡산"과 "왕방지맥"이라는 이름의 대표산인 "왕방산"이 가까이 조망됩니다.
[조망 5]
북동쪽으로는 "한북정맥"의 "운악산"이 보이며 그 앞으로 "포천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조망 6]
동쪽으로는 "포천시"가 펼쳐지며 그 뒤로 "한북정맥"이 지나며 "운악산"이 안개 속에 조망되는군요.
안개만 없었으면 멋진 조망이 되겠는데 안타갑습니다.
[갈림길] 2:55 ★ 길조심 ★
"천보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20m 정도 가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왕방지맥"으로 가는 길은 이정표가 안내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우측길로 가야 하고...
좌 직진하면 "장림고개"를 지나 "칠봉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회암사"는 좌측길로 내려 가야하고...
[천보산 전망봉 조망]
"천보산 정상 갈림길"에서 "회암사"방향으로 방향을 틀면 "천보산 전망봉우리"가 앞에 보이고
[천보산 전망봉우리] 2:58~3:09
전망봉우리에 가면 천길 낭떨어지 위에 멋진 소나무가 자라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칠봉산 감악산 조망]
"칠봉산" "소요산"을 조망하고....
[이정표]
이정표를 따라 "회암사"로 내려 갑니다.
"회암사"까지 0.7km라고 알리고 있는데 급경사 내리막이더군요.
조금 내려 가면....
['회암사' 조망]
쟌~~
"회암사"가 분명하게 조망되는 암봉위에 서는데, "회암사지"까지 완벽한 조망입니다.
버스정류장은 "회암사박물관" 앞에 있더군요.
[급경사 내리막]
급경사 내리막을 조금 더 내려가서...
[뒤돌아 본 '천보산']
"천보산"과 "전망봉우리"를 뒤돌아 보고...
[급경사 내리막]
로프가 쳐진 급경사 내리막을 잠시 내려 가면....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 3:20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직진해도 "회암사"로 가고, 좌측으로 가도 "회암사"로 간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통행이 적은 좌측길로 내려 갑니다.
왜냐하면 좌측길로 내려 가야 "나옹선사-지공선사-무학대사 부도와 비석"으로 바로 갈수 있기에...
['회암사' 조망]
"회암사"를 더욱 가까이서 조망 합니다.
[급경사 내리막]
급경사 내리막을 8분 정도 내려 가면....
[회암사]
"회암사"에 도착합니다.
['나옹선사' 부도] 3:29
산길을 내려 가면 제일 먼저 "나옹선사 부도"를 만납니다.
"부도 浮屠"라는 말을 한자로 해석 하려고 하면 뭔 말인지 더 모르게 됩니다.
여러 설이 있지만 산스크리트語 "Buddah"를 중국어로 음역한 것이라는게 일반적이랍니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사리탑"으로 사용되고 있지요.
['나옹선사' 부도]
"나옹선사 懶翁禪師, 1320-1376"
고려 말 '공민왕'의 王師였으니 요즘 말로 대통령의 멘토였던 대단한 인물이었답니다.
다음에 있는 부도인 "지공선사"의 제자이고,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경북 영덕 출신으로 출생설화도 유명하지요.
혼탁한 부정부폐 가렴주구의 고려말에 아버지가 세금을 내지 못해 도망가 버려서
어머니가 대신 관헌에 끌려 가다가 개울가에서 그만 애를 낳고 관헌으로 가지요.
치마에 피를 본 사또가 연유를 알고는 빨리 가서 애기를 구하라고 하는데, 가 보니 수백마리 까치들이
'나옹선사'를 에워싸고 보호하고 있었다는 탄생설화는 유명하다면 유명합니다. ㅎ
"나옹선사"의 부도는 "여주 신륵사"에도 있지요?
"회암사"에서 불법을 강론하면 인근 부녀자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는데, 이에 생업을 할수 없다는 상소가
'공민왕'에게 수없이 올라 가니 '공민왕'도 어쩔수 없이 "밀양 영원사"로 내려 가라고 어명을 내리지요.
마포나루에서 서해를 통해 밀양으로 가야 하는데, 지병이 있던 "나옹선사"는 스스로 입적의 시기를 알고는
뱃머리를 여주로 돌려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게 되었답니다. 사리가 155과가 나왔다는군요.
그래서 두곳에 부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보다도 이 양반의 詩가 더 유명하지요?
"나옹선사"의 유명한 詩는 원문으로 감상해 보세요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료무애이무증혜)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료무노이무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절간 내부 조망]
"나옹선사 부도"에서 내려 가면 계단 아래엔 "지공선사 부도"가 있고
새로 지은 "회암사"가 보입니다.
['지공선사' 부도]
"지공선사 부도 指空禪師"
'指空스님'에 대해 알아야합니다
'指空스님'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인디안'입니다.
'指空스님'의 본명은 "디야나바드라(Dhyanabhadra·提納薄陀)"로 인도의 마가다국(摩竭提國) 출신입니다
당시 인도에는 불교가 거의 몰락하고 힌두교가 성행 할때여서 아직도 불교를 믿는 나라로 탈출여행을
한것인데, 그는 히말라야산맥을 넘고 원나라 수도 연경을 거치게 되는데, 그 때 '원나라'로 유학을 갔던
"나옹선사"를 만나 충숙왕 13년(1326년)에는 고려에 들어와 불교를 國敎로 믿는 고려에서 '환생한 부처'로
극진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양반은 우리나라에 약2년 정도만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의 행적을 보면 일반 대중들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지공'은 티베트에서는 주술사가 독약을 타놓은 차를 마셔야 했고,
하성(蝦城)에서는 이교도들로부터 얻어맞아 이가 부러졌으며,
중국의 양자강 상류에 속하는 대독하(大毒河)에서는 도적을 만나서 다 뺏기고 알몸으로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1361년 겨울 중국 연경에서 입적했는데 그의 유골을 네 사람이 나눠 그 중 두개를 고려로 가져와
이곳 "회암사"와 "장단 화장사", "묘향산 안심사"에 안치 했다는 것입니다.
"환생한 부처"가 아니라 그도 이 세상의 수많은 인간 중에 한사람이었을 뿐이라고 단정 짓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指空'의 행적은 '목은 이색'이 지은 '지공의 회암사 부도비명 병서', 즉 위의 비석에 자세히 전했는데
조선 중기에 "숭유억불정책"의 유생들이 저 비석을 깨부수고, 순종 때에 다시 세웠지만,
1821년에 유생 이응준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다시 없애버렸답니다.
윗 사진의 오른쪽 '귀부'에 오리지날 비석이 있던 자리이고, 좌측 비석이 새로 세워진 비석이랍니다.
아랫쪽에 있는 "무학대사 비"도 같은 맥락입니다.
[무학대사 비]
"무학대사비"
"무학대사"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알려져 있어 제가 다시 언급 할 필요는 없겠지만...
"무학대사"는 한자로 "無學大師"로 쓰지요? 혹시 "舞鶴"으로 알고 있지 않나요? ㅎ
한마디로 "춤추는 학"이 아니라 "못 배운 놈-무식한 놈"이라는 뜻이지요? ㅎ
스스로를 낮추어 지은 법명이라고 할수 있지만, 여러 재미있는 일화들이 있습니다만 생략하고...
그리고 "무학대사"의 본명은 "박 자초 朴自超"이며, 경남 합천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지요.
아버지는 삿갓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그러한 그가 불도를 성실히 닦아 중국 원나라의 연경으로 유학을 가서 "지공선사"에게서 사사를 받고오지요.
혼탁한 정치 경제상황으로 멸망해 가는 고려 말에 "이성계의 꿈 해몽"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조선 개국 후에는 "태조 이성계의 王師"가 되어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큰 역활을 했죠
불교를 국교로하던 고려에서 유교를 국교로하는 조선으로 나라가 바뀌면서 불교 수난의 시대가 왔죠
당연히 "무학대사"도 신군부 정치 세력들에 의해 폄하의 대상이 되었고 수난의 시대는 '순조' 때까지 이어지죠
앞에 보이는 좌측 비석도 새로 만든 것이고, 오리지날 비석은 우측에 귀부만 남아 있고, 파괴되었습니다.
누가 파괴했냐구요? ㅎ 당연히 유교를 신봉하는 유생들에 의해...
['무학대사' 부도]
"무학대사 부도 無學大師 浮屠" 보물 388호
조선왕조를 세우는데 일등 공신이라고도 할수 있지만,
종교적 대립으로 유교에 밀린 불교의 "무학대사"는 수난의 세월을 보내며, 기록에는 어디서 죽었는지도
나타나 있지 않고, 전국을 떠돌며 방황하다가 '경남 안의'에서 은신하며 살다 갔다는 설이 있고,
금강산에 들어가 죽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또한 죽어서 '사리'도 나오지 않은 스님으로 매도 당하기도 했죠.
"부도"라는게 '사리'나 '유골'을 모시는 일종의 납골당이니 "무학대사"가 실제 '사리'가 나오지 않았을수도
있겠습니다만, 역사의 승자들이 쓴 시나리오여서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회암사'와 '천보산']
현재의 "회암사"는 현대식 건물로 단촐하게 몇개동이 있을 뿐입니다.
"회암 檜巖"은 그 뜻이 "노송과 큰 바위"라는 뜻인데, 이 사진을 보면 그럴듯 하게 보이지요? ㅎ
[내려 가는 길] 3:41
신축한 "회암사" 구경을 마치고 내려 갑니다.
도로를 따라 15분 정도 내려 가면....
[회암사지] 3:47~3:50
옛 "회암사"의 전설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듯한 "회암사지"를 만납니다.
현재 발굴조사 중이라 절터만이 휭하니 있습니다만.....
전망대도 만들어져 있어 구경하고 갑니다.
[회암사 복원 추정도]
이 복원 추정도를 보면 절간이 아니라 王宮같아 보입니다.
경복궁 경회루 부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대단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군요.
[뒤돌아 본 '회암사지'와 '천보산']
인디언 "지공선사"에 의해 개산하게 되고 "나옹선사"에 의해 중창하게된 "회암사"는
"무학대사"가 주지를 맡으며 최고의 번성기를 구가 하게 되었다죠.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의 王師가 되고, "태조 이성계"가 퇴임 후 이곳에 머물기도 해서
조선왕조 초기엔 우리나라 최대의 절간이었답니다. 아니 세계적이었답니다.
얼핏보면 王宮같아 보이지 않습니까?
정치와 종교...
권력과 신앙...
신앙이라는 매개체로 권력을 쥐려는 인간들....
보아라!
이 얼마나 허망한가!~
"회암사터"를 바라보니 저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이 생각 납니다.
존재하는 것들의 합법칙적 조화 속에 현실을 믿지,
인간의 운명과 행위에 관여하는 神은 믿지 않는다.
"神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神이 수많은 인간들의 삶의 행위에 일일이 간섭하며 償과 罰을 줄수 있는가!~
자기를 충실히 믿는 인간들에겐 福을 주고, 믿지 않는 인간들에겐 罰을 준다고 외치는 종교.
그렇다면 神은 聖人으로서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을 쫄다구로 삼고 자신의 영달을 지키려는 절대권력을 가진 독재자라는 말인가!~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神이 인간의 운명과 행위에 절대적으로 관여하며 자기에게 충실한
인간들과 불충한 인간들을 구별해 "神의 권력"으로 償罰을 준다면 그런 神이 神인가!~
神은 人間의 운명과 행위에 관여하지 않으며 관여 할수도 없습니다
관여 한다면 그 자체로 神이 아니라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神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으며 던질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神을 믿지 않고, 인간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믿은 것이었죠.
"파란문" 개인적인 생각일뿐이니 반론 하고 싶으신 분들...반론 할 필요 없습니다~ㅎ
[회암사지 박물관] 4:00
'양주시'가 "회암사"를 발굴 복원하면서 공원과 역사박물관등 어마어마한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절간을 관광 상품화 하겠다는 냄새가 풍기는듯 하군요.
[구글어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14km였으며, 6시간반정도 걸린 "왕방지맥"은 난이도가 초급수준의 쉬운 코스였습니다.
특히 "회암사"를 탐방 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 올수 있었습니다.
[송우리 터미널 앞] 4:20
"화엄사지박물관" 앞에서 10여분에 한대꼴로 자주 있는 [78번 마을버스]를 타고
'송우리터미널'로 가서 [3100번 광역버스]를 타고 강남 '신논현역'으로....
"송우리"가 옛날 "송우리"가 아닌 무척 번화한 신도시가 되었더군요. 아파트도 무지 많고....
그래서 지하철을 연결해야 한다고 아우성이라죠?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遊山者不可以無錄 而有錄之有益於遊山也
유산자불가이무록 이유록지유익어유산야
산을 즐기는자 기록이 없어서는 아니되고,
기록이 있음은 산을 즐기는데 유익하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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