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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포구』 
   『마포종점 마포-서강-양화나루 망원정까지』

      
      "麻浦八景"  
     ① 용호제월(龍湖霽月) - 비 개인 날 저녁 용산강에 뜬 달 모습  
     ② 마포귀범(麻浦歸帆) - 삼개나루로 돌아오는 돛단배들의 풍경  
     ③ 방학어화(放鶴漁火) - 방학교 부근 샛강에서의 밤낚시 등불 풍경  
     ④ 율도명사(栗島明沙) - 밤섬 주변에 쌓인 고운 백사장  
     ⑤ 농암모연(籠岩暮煙) - 농바위 부근 인가의 저녁 짓는 연기  
     ⑥ 우산목적(牛山牧笛) - 와우산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목동들의 피리소리  
     ⑦ 양진낙조(楊津落照) - 양화진 강 하늘에 붉게 물든 낙조와 노을  
     ⑧ 관악청람(冠岳晴嵐) - 맑은 날 어른대며 피어오르는 관악산 아지랑이
     

  ['네이버지도']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5호선 마포역"에서 출발하여
  "복사꽃어린이공원-마포종점터-마포어린이공원-박우물터-마포고터-정구중가옥-토정집터-마포나루터
  -박세채집터-율형정-서강나루터-서강나루공원-점검청지-당인리발전소-절두산성지-양화나루-망원정"을
  답사하고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합정역"까지 "11.5km"의 즐거운 麻浦도보여행을 합니다.


  ['마포역4번출구']              12:25            
  2021년 1월 6일 (수) 맑음 
  <5호선 마포역 4번출구>로 나가면 [도원빌딩]이 좌측에 있고 빌딩 뒤로 "전차"가 쬐끔 보입니다.
  "전차"가 있는 "복사꽃어린이공원"에서부터 "즐거운 麻浦 도보여행"은 시작됩니다.
  <파란문>이 나름대로 최초로 개발한 "즐거운 麻浦 도보여행 코스"를 먼저 지도를 통해 알아 보고 가면
  지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죠? ㅎ


  ['마포종점 부근 탐방 지도']                  
  그래서 제가 다녀온 실트랙을 지도에 적용해서 
  먼저 <복사꽃어린이공원→마포종점터→마포어린이공원→박우물→복사꽃어린이공원→마포역4번출입구>
  까지를 보여 드리고 출발합니다.


  ['복사꽃어린이공원']                        
  "복사꽃어린이공원"
  저는 이제까지 [마포대교] 북단 지역이 온통 "마포동"인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포동]은 마포대교 북단의 아주 일부였고 이곳이 온통 "도화동 桃花洞"이라는건 몰랐는데
  '새우젓동네'로만 알던 "마포"가 예전에 '복사꽃'이 만발하던 과수원이었다는 것에서 출발하여
  이 지역 대부분이 "도화동 桃花洞"이 되었다는 것에 저의 좁은 견문을 탄했습니다.

 
  ['도화 낭자']                                                     ['도화 아빠 김씨']

  ['도화동의 유래']                     
  이 공원엔 [도화동의 유래]에 대한 안내가 있습니다만, 그 내용은 좀 실망스러워 언급하기가 좀 그렇군요.
  [도화동 유래]에 대한 상징적인 "도화낭자와 김씨 조형물"을 세워놨습니다.
  그리고 안내판의 글자는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희미해서 읽기 어려워 제가 간략히 요약하면....
   
  옛날 이곳에 예쁘고 착한 <도화낭자>와 아버지 <김씨>가 살고 있었는데
  예쁘고 착하니 이 소녀를 옥황상제가 하늘로 데리고 가 며느리로 삼았답니다.
  졸지에 외톨이가 된 아버지는 딸을 애타게 그리워하니 그 마음을 안 옥황상제가 딸에 대한 댓가로
  '복숭아씨'를 보내주고 김씨는 복숭아를 심어 딸같이 가꾸어 번성하게 되어 마을의 자랑이 되었고
  그리하여 마을의 이름을 "복사골"이라고 불렀다...라고 합니다. ㅎㅎ
   
  착하고 예쁘면 옥황상제까지 지맘대로 탐내도 되나요? 아비는 어쩌라고 허락도 없이 데리고 가나요.
  옥황상제는 자기 꼴리는데로 해도 되나요? 그 댓가로 고작 복숭아씨 하나 보내줘?
  하늘나라로 간다는건 세상과 이별을 의미하지 않나요?
  이런 옥황상제라면 아주 나쁜 놈이죠?  ㅎ
  그래도 이곳에 이런 볼거리를 마련했다는 것에 동정표를 보냅니다.  ^*^


  ['전차']  
  제가 이 공원을 찾은 진짜 이유는 이 전차 電車"에 있습니다.
  [마포종점]에 전차가 있는지 없는지 관심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마포종점>은 버스종점도 아니고 인생의 종점도 아닌 "전차 종점 電車終點"이었기 때문인데...
  당시 서울엔 6곳의 "전차종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독 "마포종점"만 우리들에게 각인되 있을까
  여러 의견이 있을수 있지만 <은방울자매>가 불러 공전의 힛트를 친 노래 때문이 아닐까 ....
  [마포종점]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電車를 찾아온 [마포종점]인데
  그런데 사진 속에 보이는 이 전차는 유물을 전시한게 아니고 '전차 모양 화장실 건물'이었습니다. ㅎㅎ
  좀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마포종점]을 추억 할수 있게해서 찾아 온 것입니다.

  '마포종점'이라는 노래는 단순히 '마포의 전차 종점'을 노래 하는 것일까
  이 노래를 작사한 그 유명한 "정두수선생"도 저 먼 나라로 갔고
  이 노래를 작곡한 그 유명한 "박춘석씨"도 수많은 가수들 놔두고 갔고
  이 노래를 부른 그 유명한 "은방울재매"도 화려한 박수갈채를 뒤로하고 갔습니다.
  '마포종점'이라는 노래가 우리들에게서 지워지지 않는 이유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리는 밤깊은 마포종점은 우리들의 인생살이 같아서가 아닐까....
 
[ 추억의 전차표와 노선도]
추억의 전차를 타고 다니던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리는 밤깊은 마포종점 같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까지 이용했었습니다. 위의 1원50전짜리 전차표를 내며... 시골 학생들은 서울로 수학여행 와서 '창경원' '비원'등 고궁을 보기 위해 전차를 타 본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할 정도였다니, 봉건왕조 속에서 새로운 문화문명혁명의 시대로 가는 전차였다 할수도... ['마포대교' 방향의 '불교방송'] ['불교방송-다보빌딩'] <복사골어린공원>을 둘러보고 다시 [마포역4번출입구]로 돌아 나와 [마포대교] 방향으로 가면 "불교방송"이 있는 [다보빌딩]을 만납니다. 이 빌딩의 끝지점까지 가면.... ['마포종점' 표지석] ['마포종점' 안내판] 12:34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세운 "마포종점 표지석"이 있습니다. "3.1독립운동기념터"라는 안내와 함께... 이곳에 전차의 종점 정류장이 있었다는 안내이고 전차 차고지는 '도화동 39번지'에 있었었다는군요. ['마포대교' 북단] <마포종점 표지석>을 확인하고 [마포대교] 좌측으로 접근하면.... ['마포어린이공원'] 12:39 "마포어린이공원"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마포종점 유래비""마포종점 노래비"가 있어서 찾아 본 것입니다. ['마포종점의 유래'] [마포종점유래비]에도 [마포종점]이라는 노래 덕분에 마포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알림니다. 전차는 1899년 5월 17일에 개통되어 1968년 11월 30일까지 70여년을 운행했답니다. [마포종점]이라는 노래는 1967년에 발표되었는데 그 다음해에 전차가 운행 중지되어 마포종점이 없어져 아쉬움을 남겼는데, 그 노래는 그래서 우리 가슴에 더욱 남은게 아닌지... ['마포동' 뒷골목'] [마포어린이공원]에서 <박우물>로 가는 길입니다. 자세한 길은 서두에 보여드린 지도를 참고하고... <마포도화우성아파트 정문>을 찾아 가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서 가깝더군요. 앞에 보이는 [쌍용아파트] 뒷쪽에 있습니다. ['마포도화 우성아파트 정문'] 12:48 ['벅우물 터'] "박우물" 수많은 아낙네들이 물을 깃고 빨래를 하던 <도화동>의 대표 우물터 중에 하나랍니다. "박우물"이라는 우물 이름이 뭔 뜻인지, 어떻게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는 안내가 없어 알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전국의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다 보니 여러 곳에서 같은 이름의 우물들을 볼수 있었습니다. "박우물"이라는 의미는 우물이 크고 물이 넘쳐나 바가지로 풍덩풍덩 물을 퍼낼수 있어서 "박우물"이라고 하는 곳이 많았으며, '박석', 즉 돌맹이를 우물의 바닥과 주변에 박아 우물을 청결하게 해서 "박우물"이라고 하는 곳도 있었는데 이곳도 대략 그런 저런 의미를 가진 "박우물"이 아닐지 추측해 봅니다. 아낙네들의 수다 떠는 소리가 아직도 정겨웁게 들리는듯 한데... 안내판이나 모형 우물이라도 만들어 놨으면... ['복사골어린이공원'-'마포역4번출입구'] 12:53 [마포종점표지석]과 [마포어린이공원], 그리고 [박우물]을 둘러 보고 다시 [복사꽃어린이공원]이 있는 <마포역4번출입구>로 돌아 왔습니다. 대략 30분 정도 걸렸군요. 여기서 <마포역4번출입구>로 들어가 <1번출구>로 나갑니다. ['마포중.고등학교 터'] 1:06 <마포역4번출입구>에서 <1번출입구>로 나가면 우측 화단에 "마포중고등학교터" 표지판이 있는데 사철나무가 가리고 있어 관심 가지지 않으면 찾기 어렵습니다. [마포중고등학교]는 강 건너 [가양대교] 남단 <강서구>로 이사 갔습니다. '마포'를 대표하던 학교는 이제 다른 곳 <강서구>에서 '마포'라는 이름으로 활약하고 있으니 쫌 아쉬운데 마포는 다시 엄청난 발전을 하며 인구가 날로 늘어나며 옛 명성을 되찾고 있으니 다시 돌아와야 할듯...ㅎ ['토정 집터' 부근 탐방 지도] 지금부턴 '마포구 <용강동>과 <토정동>을 탐방하게 됩니다. [마포역1번출입구]에서 <용강맛깨비길>로 들어가 [토정선생 동상]이 있는 사거리에서 <정구중가옥>을 다녀와 <토정터>를 찾아보고 [마포나루터]로 나갑니다. ['용강동 맛깨비길'] [마포역1번출입구] 앞에 있는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용강동 맛빼기길"이라는 음식거리가 이어지고 "용강동"이란 지명은 "용산"과 "서강"의 글자를 하나씩 따서 만든 이름이라고 ['토정선생의 어업활동'] [맛빼기길] 중간에 물고기 조형물이 가로공원을 꾸미고 있는데 <토정 이지함 선생>의 어부활동을 연상케 하고 있었습니다. <토정 이지함선생>을 [토정비결]의 저자로만 알고 있지는 않나요? 점쟁이로... 선생은 독창적인 방법으로 어업활동 해서 떼부자가 된 어부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업활동으로 모은 富를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며 구휼활동을 한 "양반어부"였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앞으로 알아 보기로 하고... ['토정사거리'] 1:06 [맛빼기길]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큰 사거리에는 [토정 이지함선생]과 관련된 조형물들이 있습니다. ['토정 이지함' 선생 상] [맛빼기길]의 큰 사거리 건너편엔 "토정 이지함선생"의 동상이 있습니다. 선생에 대해선 안내문을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다만, 안내문에 <토정비결>의 저자로 안내하고 있으나 [이지함선생]이 <토정비결>의 저자라는 것은 사실여부가 논란이 크게 일고 있는데 공식적으로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됩니다. TV에도 자주 나오는 [건국대 신병주 교수]는 "누군가가 토정의 이름을 빌려서 썼을 가능성이 크다"며 가탁설(빌려서 썼다는 설)을 주장합니다. 후손인 '이정익'이 선생의 유고를 모아 펴낸 숙종 때 문집인 <토정유고>와 조선 후기 세시풍속 서적인 '홍석모'의 <동국세시기>나 '유득공'의 <경도잡지> 등에도 <토정비결>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이 결정적 이유라고 합니다. [토정비결]=[토정 이지함]이라는 등식은 증거가 없어 사실여부가 불확실한 사항입니다. ['소금 배급'] 앞에서도 언급 했습니다만 <토정선생>은 독창적인 방법으로 고기를 잡아 富를 축적하고 그 富를 빈곤한 백성들을 구휼하는데 사용한 자선사업가라 할수 있지요. 고기를 잡아 바꾼 소금을 배급하는 장면을 이곳에 조형물로 설치했는데... 강아지가 입에 바가지를 물고 눈웃음 치며 소금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 예쁩니다. ㅎㅎ 조각가 김석희씨에게 감사드림니다. ['토정사거리'] 1:10 [토정터 표지석]이 있는 곳은 앞에 보이는 좌측 아파트인 [한강삼성레미안아파트] 안에 있는데 먼저 뒷쪽에 있는 [정구중가옥]을 다녀와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거리에서 뒤돌아 10여분 가면... ['정구중 가옥'] 1:20 [안내문] "정구중 가옥"을 만납니다. 이 집은 일제시대 부농 "이씨"가 외동딸에게 주기 위해 지은 가옥이라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구중 가옥"이라고만 안내하고 있어 "정구중"은 누구야?라는데에 궁금증이 집중됩니다. 그래서 "정구중"을 찾아 보니 이 분은 '국정교과서 사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정구중"이라는 분이었고 1973년 이 가옥을 매입하였고 1999년 돌아가실 때까지도 거주했던 집이라고 하네요.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는 않는듯 ['토정사거리'] 1:27 [정구중 가옥]을 구경하고 다시 <토정사거리>로 돌아와 좌측 앞에 보이는 [한강삼성레미안아파트]로 갑니다. ['한강삼성레미안아파트'] 1:29 아파트 앞에는 상가가 있는데 [서울남부교회]와 [토정약국]이 눈에 띄는군요. 아파트 안으로 들어 가면... ['토정경로당'] 1:31 이 아파트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토정 土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레미안아파트]로 들어 가면 [토정경로당]이 있는데 경로당 앞에 표지석이 있더군요.
['토정 집터']
"토정터 土亭址" 조선중기 저명한 역학자(易學者}였던 토정(土亭} 이지함(李之函}의 집터 <토정 이지함선생>이 흙으로 둔덕을 만들고 그 위에 정자를 짓고 둔덕을 파고 그 속에서 살았다는 곳입니다. "토정지 土亭址"에 대해선 이곳 주변에 있는 몇개의 안내판에 모두 다르게 표기되 있어 혼란을 주는데 뭐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 이곳을 "토정지 土亭址"로 생각하고 떠나 갑니다. 다만 선생을 "역학자 易學者"로만 표기하는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드시 유감입니다. <토정 선생>은 살아생전 기인, 도사, 사또, 큰선비로 유명했습니다.'포천 현감','아산 현감'도 지낸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토정비결>이라는 운세풀이 책과 야사에 사로잡혀 선생을 떠돌이 예언가 점쟁이 정도로 알고 있지는 않나요? 선생은 <목은 이색>의 6대손이자 동인의 영수 <이산해>를 조카로 둔 명문가 출신으로 <화담 서경덕>에게서 배웠습니다. <율곡 이이>와 <남명 조식>등 당대 최고의 학자와 교류한 성리학자이자 애민정신을 실천한 '경세가'로 보는 것이 타당한데도 떠돌아 다니는 점쟁이로 보는 것은 잘못되도 너무 잘못된 것입니다. 독창적 방법으로 무지 많이 고기를 잡고 소금과 바가지를 팔아 백성을 구제한 조선 최초의 양반 상인이었고, 영국의 <애덤 스미스>보다 먼저 '국부론'과 비슷한 내용을 주창했습니다. 광산과 염전 개발, 걸인청 개청, 해외 통상론을 임금에게 상소한 개혁주의자였죠. <우암 송시열>은 <토정선생>을 '율곡 이이', '성혼'과 함께 세분의 스승 중 한분으로 꼽았습니다. <우암 송시열>이 자기 스승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래도 <토정 이지함선생>을 한낱 '역학자 易學者'라고 폄하하겠습니까? <서울시-마포구>는 안내판부터 먼저 수정하시기 바람니다. ['한강삼성레미안아파트' 정문] 1:34 <토정터 표지석>을 둘러 보고 다시 [레미안아파트] 정문으로 나가는데 장문에도 아파트 주민들이 세운 표지석이 또 있습니다. 정문으로 나가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마포공영주차장'] 1:35 앞에는 "마포공영주차장"이 있는데 유수지를 복개하여 주차장을 만들었더군요. 한강 제방을 쌓기 전엔 여기까지 한강이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가 "마포나룻터"였다는 것입니다. 기록에 보면 나룻터 좌우에 모래 둔덕이 있어 배들이 접안하기 좋았다고 하니 이 주차장 자리가 나룻터였으며 <토정 이지함선생>의 [土亭]도 [레미안아파트] 근처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룻터 표지석은 제방공사와 유수지 복개공사로 한강변에 설치해 놔서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여기서 이정표가 안내하는 [마포걷고싶은길] 방향인 우측으로 나가면... ['한강공원 진입로'] 1:37 <강변북로>를 통과하여 [한강공원]에 있는 <마포나루 표지석>으로 나가는 진입로가 있습니다. 진입로 계단으로 올라 가면... ['마포나들목'에서 '토정 집터' 조망'] [강변북로]를 통과하는 나들목의 이름이 "마포나들목"이군요. 나들목에선 조금전 [삼성레미안아파트]안의 <토정터 표지석>이 있던 곳이 울타리 너머로 조금 보이고 ['삼개포구' 표지석] [안내문] 1:39 <강변북로> 굴다리를 통과해 강변으로 내려가 한강변에서 뒤돌아 본 광경입니다. "마포나룻터 표지석"은 이곳에 설치했더군요. 표지석엔 "삼개포구"라고 표기되 있습니다. 내용은 안내문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마포>는 '세개의 포구'를 의미하는 "三浦"인데 "三"을 삼베를 만드는 "삼나무=麻"로 쓰게 된 것이 <麻浦의 유래>라는게 신기 할 정도죠? ㅎ 이렇게 다녀봐야 알수 있는 것들이죠. ['마포나루'에서 바라보는 '밤섬'과 '여의도'] <마포나루>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는데 [밤섬]과 [여의도]가 <강변북로> 교각 사이로 보입니다. "영등포의 불빛"은 보이지 않고... ['당인리발전소' 조망] 서쪽으로 수증기를 내 뿜고 있는 "당인리발전소"는 보입니다. ㅎ 노래 가사에 나오는 명칭들을 하나씩 확인하고 있죠. 다음 탐방지는 <박세채집터>여서 이 강변길을 따라 서쪽으로 진행합니다. 5분 정도 전진하면... ['토정나들목'] 1:45 <토정나들목>을 지나고 10여분 더 전진하면... [영화촬영지] ['밤섬''여의도' 조망] ['현석나들목'] 1:54 '괴물' '김씨표류기'등 영화촬영지라고 안내하는 곳에서 <현석나들목>을 만납니다. [박세채선생]의 호가 "현석 玄石"이니 이 나들목으로 나가야 [현석 박세채선생 집터]로 갈수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아파트가 [밤섬현대아파트]인데 저 아파트 정문에 [박세채선생 집터 표지석]이 있습니다. 나들목을 통과해 나가면... ['현석나들목' 북단] 2:00 <현석나들목>을 빠져 나가 뒤돌아 가야합니다. 뒤돌아 서면 사진의 근린공원이 있는데 <현석마을마당>이라는 공원이었습니다. 이 공원 앞으로 직진해 나가면... [회전로타리] 2:01 회전교차로를 만나는데 이곳에 옛날 "만휴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곳이랍니다. 이곳 한강변에는 수많은 정자가 있었었다는군요. 지금은 그 자리에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여기서 좌측 첫번째 골목으로 들어 가면.... ['박세채 정승 살던 곳'] 2:06 [밤섬현대아파트] 정문에 "박세체 정승 살던 집 표지석"이 있습니다. 선생에 대해선 표지석에 나와 있는데, [숙종] 때에 우의정, 좌의정을 지낸 '예학의 대가'라고 하는군요. 이분의 호가 <현석 玄石-검은돌>이어서 이 동네 이름이 <현석동>이 되었답니다. ['율형정'] 2:08~2:18 <빅세체선생 집터 표지석>이 있는 [밤섬현대아파트]를 지나면 "율형정 栗馨亭"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현대에 지은것인지 옛날부터 있던 것인지는 알길이 없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밤섬 栗島"는 최고라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율형정 栗馨亭"이라 한듯... ['이덕무'의 詩-"율도"] '이덕무'라는 분이 "밤섬"을 노래한 詩碑도 있고... [남쪽 조망] <율형정>에서 남쪽을 조망합니다. 가까이엔 [강변북로]가 자동차들을 가득 안고 주차장이 되 있으며 그 뒤로 "밤섬 栗島"가 조망되며 [관악산] [청계산]까지 잘 보입니다.
[서쪽 조망] 서쪽으로는 [서강대교]와 [당인리발전소]가 조망되는군요. ['율형정'에서 강변으로 내려 가는 길] <율형정> 아래로 내려 가서 [올려다 본 '율형정'] <율형정>을 올려다 보고 도로를 따라 직진하면... ['서강대교'] <서강대교> 북단을 만나고 모퉁이를 돌아 가면... ['봉원빗물펌프장'] 2:22 ['서강나루터 표지석'] <봉원빗물펌프장> 좌측 길가에 "서강나룻터 표지석"이 쓸쓸히 있습니다. [마포나루]와 같이 유슈지가 있는 곳이 대부분 나룻터였더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강나루표지석> 옆에 <공세청터 안내판>도 있었다는데 어찌된 일인지 <공세청터> 안내판은 없어 졌습니다. [서강대교] 북단 방향으로 조금만 더 직진하면.... ['서강나루공원'] 1:29 "서강나루 공원"을 만납니다. 공원에는 돛단배 조형물이 있어 이곳이 옛날 [서강나루]였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공원의 우측에는... ['구수동 사거리'] [구수동 舊水洞 사거리]가 있으며 ['하중동 사거리'] 1:30 [서강나루공원]의 좌측에는 [서강대교] 북단 교각 밑에 [하중동 賀中洞 사거리]가 있습니다. 이 사거리의 우측에는 [6호선 광흥창역]이 있고 지난번에 답사한 "광흥창터""공민왕사당"이 아주 가까이 있어 [서강나루]로 옛날에 얼마나 많은 세곡들을 운송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지금은 나룻터 대신 [서강대교]가 그런 운송을 육로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삼거리] 2:40 <서강대교>가 있는 [하중동사거리]에서 서쪽으로 10여분 진행하면 길이 쪼개지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100m 정도 가면 ['점검청지'] 2:42 "점검청지 點檢廳址" 표지석은 <제이앤씨 빌딩> 좌측 화단에 있는데 나무그늘로 표지석이 잘 보이지 않는군요. 점검청지 點檢廳址 조선후기에 조운선(漕運船)을 검문하고 화물(貨物)에 세를 부과하던 호조{戶曺) 소속 관아터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 좀 무시무시 했던 곳이었군요. ㅎ ['당인리발전소' 가는 길] 2:45 "점검청지 點檢廳址"를 확인하고 다시 삼거리로 나와 <당인리발전소> 방향으로 5분 정도 진행하면.... ['당인리발전소 후문'] 2:50 ['서울화력발전소'] 2:56 "서울화력열병합발전소" <당인리발전소>로 1930년에 건설되어 이름 변경이 1969년...그러니까 [마포전차종점]이 폐쇄 될때 쯤 그때 이미 <서울화력발전소>로 이름이 바뀌었는데도 이제서야 바뀐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서울에 설치된 최대 규모의 화력발전소로 <당인리발전소>로만 각인되 있는 '파란문'에겐 신선한 충격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당인리발전소>로 우리들의 교과서에도 나왔을 정도이니 고정관념으로 남아 있었던거죠. 석탄 발전소여서 씨꺼먼 연기가 굴뚝에서 뿜어져 나왔지만 환경오염이라는둥 그런 시비도 없이 그저 전기를 공급해 준다는 고마움이 앞섯었죠. 지금은 무공해 LNG를 연료로 사용하며 지하화 하고 지역에 온수도 함께 공급하는 열병합발전소로 거듭나 전기 부족사태가 발생하면 예비전력공급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답니다. 오래된 석탄화력발전소는 폐쇄하고 그 자리에 복합문화공간이 조성되고 있다네요. 해방전까지만 하더라도 즁국놈들을 일반적으로 "당인 唐人" "당나라놈들"이라고 했다죠. 떼놈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진을 치고 있던 곳이라고 "당인리 唐人里"라는 지명이 생겼답니다. ['절두산성지' 가는 길] ['양화진지하차도'] 3:02 <서울화력발전소>에서 5분 정도 더 진행하면 [2호선]이 한강을 건너는 [당산철교] 밑으로 [양화진 지하차도]를 만납니다. 여기서 좌회전 하면... ['절두산순교성지' 입구] [안내문] "절두산순교성지" 정문을 만납니다. 안내문을 읽어 보고 올라 가면... [순교성지 입구] 3:06 ['망나니의 칼'] 순교성지가 열리며 입구엔 무시무시한 "망나니의 칼"이 전시되 있습니다. 이런 칼로 기독교인들을 "효수형-칼로 목을 베 죽이는 형벌"을 가했다는 걸 알리기 위함일듯.... 그런데 이런 전시물이 내방객들에게 교육적 도움이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순례길] [순례광장-서울화력발전소 조망] ['김대건 신부'] 짧은 거리지만 순례코스도 있고 중앙엔 <김대건 신부 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품을 받고 순교 했다고 추앙하는가 본데.... <김대건 신부>는 중국에 가서 사제품을 받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6개월 정도 활동을 했는데 그는 불어를 잘해서 프랑스 선교사들이 <백령도>로 밀입국 할때 통역관으로 도와 주다가 우리나라 조정에 스파이 혐의로 잡혀 '새남터'에서 효수형에 쳐해졌죠. 그 때 나이는 고작 25세. 성당에 다니며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겐 聖人으로 추앙 받지만, 일반 역사적으론 별 특별한 사람은 아니죠 이 분에 대한 글은 부록으로 첨부 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읽어 보세요 ['한국천주교 순교자 박물관'] 천주교를 믿다가 죽은 신도들의 유품등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박물관도 있고 ['김대건 신부'와 '척화비'] [안내문] "척화비"도 있는데.... 안내문을 참고 하고 ['양화나루터' 조망] [척화비]에서 <양화나루터 표지석>이 보입니다. 전에는 여기서 바로 내려 갈수 있었는데 출입구를 막아놔서 [순교성지 입구] 3:20 들어 올때 입구였던 곳으로 다시 나가 좌회전하면 ['한강공원'] <2호선 당산철교> 밑으로 강변으로 내려 가는 길이 있습니다. 내려 가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잠두봉'] 3:23 "잠두봉 蠶頭峰 20m"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고 "잠두봉 蠶頭峰"이라고 하는 높이 20m짜리 조그마한 봉우리인데 천주교 신도들을 목 짤라 죽인 사형장으로 더 유명해져 "절두산 切頭山"이라고 일반적으로 부르죠. <겸제 정선>선생이 그린 "양화진과 잠두봉"을 감상 하고 갑니다. ['겸제 정선'이 그린 "양화환도 楊花喚渡"] 그림 가운데에 "잠두봉"이 보입니다. ['양화나루터 표지석'] 3:25 "양화진 나루터 楊花津 표지석" <양화진 나루터>라는 표지석이 [절두산성지] 아래에 설치되 있습니다. 버드나무가 많아 버드나무꽃이 필때는 장관을 이루었다는 곳입니다. 지금은 버드나무 보기가 어렵고 ['여의도' 조망] [강변북로] 교각 사이로 <국회의사당>이 가까이 조망됩니다. 저 건물만 보면 희망보다 성질이 나는데....ㅎ 그런데 저곳이 에전에 "양말산"이었다는거 아시나요? '양'과 '말'이 합쳐진 ['당산철교'] 3:29 ['양화대교' 조망] ['양화대교' 운동시설] 3:34 다시 뒤돌아 <2호선 당산철교>를 지나 <양화대교> 밑에 있는 운동시설들을 보며 ['망원한강공원'] 13분 정도 <망원한강공원>을 진행하면.... ['망원초록길' 입구] 3:47 "망원초록길"입구라는 이정표를 만나 계단으로 올라 가면... ['망원초록육교'] 3:49 <강변북로>와 <망원동>을 연결하는 생태육교를 건너 가게 되는데 ['강변북로' 조망] 생태육교에서 <강변북로>를 조망하는데 지나온 마포의 명소들이 일렬로 조망되는군요. <강변북로> 가운데 차선에 화물차량들이 줄서 주차하고 있는데 이 차량들은 눈이 내리면 재빨리 출동할 제설차들이더군요. 많이 발전한 우리나라입니다. ['안산' 조망] 생태육교를 지나 나가면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 鞍山"이 조망됩니다. 햐 ~~ 이렇게 가까운가 ['망원정 마당'] 3:53 생태육교를 지나면 우측에 "망원정 마당"이라는 근린공원이 있는데 이 공원을 통과해 나가면 ['망원정' 가는 길] 3:56 <망원정>으로 가는 길이 <강변북로> 옆으로 열립니다. ['망원정 후문'] 3:57 ['망원정' 안내문] "망원정 望遠亭" 후문을 만나는데 <망원정>에 대해선 안내문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망원정'] "아름다운 산과 강을 잇는 경치를 멀리 바라본다"라는 의미의 <망원정>은 이 동네의 이름까지 <망원동>으로 만들었다죠. ['희우정'] <세종대왕>이 농사 상황을 시찰하러 나왔다가 때마침 단비가 내려 들판을 촉촉히 적시자 "기쁜 비를 만난 정자"라고 정자 이름을 "희우정 喜雨亭"으로 고쳐 부르기도 했답니다. ['망원정 정문' 조망] ['망원정 정문'] 4:03 <망원정 정문>을 통과하여 ['강변북로' 사잇길] 다시 <강변북로> 옆길을 따라 진행하여 <합정역>으로 갑니다. ['합정역8번출입구'] 4:15 <합정역8번출입구>에서 답사를 마치는데.... 얼마전 국민MC라는 "유재석"이 부른 <합정역5번출구>라는 노래 아시죠? 가사 중에 "합치면 정이 되는 합정인데 왜 우리는 갈라서야 하나"라는 구절이 있죠 <합정동>의 유래가 <合情>으로 오해 될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합정 蛤井"은 '조개 합蛤''과 '우물 정井'자를 쓰는 우물 이름이었으며, 우물 바닦에 조개껍질이 많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후에 쉬운 한자 '合'으로 바뀌어 <合井>이 되었다는 유래를 갖고 있더군요. 그 우물은 현재의 <절두산> 근처에 있었으나 한강개발로 지금은 없어진 우물이랍니다. ['실트랙 지도'] 오늘 걸은 거리는 11.5km 정도 였으며 3시간 50분이 걸렸습니다. "삼덕의 길 : 은이성지-미리내성지 답사기" 관심 있으면 클릭해서 보고 가세요.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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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용산구-마포구』 
     『'경의선 숲길'과 '효창공원' '와우산'』

                               

  ['네이버지도']

  ['구글맵']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에 있는 "삼각지로터리"에서 출발하여
  "경의선 숲길" "효창공원" "와우산"을 답사하며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불광천-모래내고가차도"까지 "12.5km"를 갑니다.


  ['경의선숲길 개념도']  
  "경의선 숲길"에 대한 안내도는 <마포구청>에서 만든 것 밖에 없더군요.
  <용산구구간>에 대한 안내도가 없어서 좀 아쉽지만, [경의선숲길]의 대부분이 <마포구>에 있기에
  <마포구구간 5km> 안내도를 참고 합니다.
  제가 직접 걸은 전체적인 구간은 위의 실트랙 지도를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삼각지역7번출입구']                 11:10  
  2021년 1월 2일 (토) 맑음 
  2021년의 첫 나드리는 "경의선 숲길"로 정하고 길을 나섯습니다.
  <삼각지역 7번출입구>에서 답사를 시작하는데...


  ['삼각지로타리']  
  <삼각지로타리>는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라는 노래 속의 "삼각지"는 이젠 추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삼각지로타리>의 랜드마크였던 <입체회전교차로>도 철거되어,  '삼각지'가 아니라 '사각지'가 되었으며
  훨씬 넓어진 로타리여서인지 [남산]과 [옛 용산미군기지]가 새로운 각도로 조망되는군요.
  "용산 龍山"이라는 이름은 '龍이 한강물을 마시기 위해 머리를 내 뻗은 지형'이라는데서 유래한다죠.
  그래서 이 지역은 700여년이 넘는 동안 외국군대가 주둔해온 침략의 전초기지였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죠.
  <고려시대>에 '징기스칸'의 '몽고군'이 쳐들어와 진을 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엔 쪽바리들이
  점령하고, '청일전쟁'시에는 '청나라'의 '위안스카이'가 군기지로 사용하고, 이어서 '일제강점기'시대엔
  일본놈들의 우리나라 식민지화의 핵심군사 거점이 되었었죠.
  '6.25전쟁' 이후에는 '미국놈'들이 대한민국 점령의 사령부로 이용하다가 
  이제서야 우리나라의 품으로 돌아 오고 있는 중이죠.
  [남산]에서 이곳 [삼각지]까지 이렇게 가까운줄 몰랐는데, 
  새롭게 시원하게 조망되는 경관이 왠지 씁쓸한 느낌을 주며 마음 속을 스쳐 지나 갑니다.
  서울의 면적이 천만명 이상을 수용하기는 엄청 좁아 어려움을 격어 왔는데
  100만평이 넘는 알토란 같은 서울의 땅이 그 동안 외국놈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는거...
  외세침략의 본거지였던 '용산미군기지'를 국립공원도 아닌 더 높은 차원의 "국가공원"으로 만든다는데
  어떤 모습으로 변모 될지 ....여튼 기대해 봅니다.


  ['삼각지고가도로' 입구-원효로 방향]

    [엘리베이트]                   11:13  
  [삼각지로타리]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경부선 철로>를 건너는 [삼각지고가도로]를 만나고
  고가도로를 쉽게 힘들이지 않고 건너라고 엘리베이트가 설치되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틀 타고 올라 가면


  ['삼각지고가도로']  
  [서울역]과 [용산역] 사이의 엄청 넓은 <경부선>을 건너는 [삼각지고가도로]를 통과하게 되는데
  때마침 "KTX열차"가 지나 가고 있었습니다.


  ['용산역' 조망]  
  고가도로 위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용산역]이 조망되는데
  <경의선>의 출발역이기도 합니다만 <경의선>은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철로도 있죠.
  오늘 답사하려고 하는 "경의선 숲길"은 앞에 보이는 <오리온제과 본사> 뒤에서 출발합니다.


  [엘리베이트]

  [ '당고개성지' 방향]                 11:17  
  고가도로를 건너 다시 엘리베이트를 타고 내려가 첫번째 삼거리에서 좌회전 합니다.
  삼거리에는 <당고개순교성지> 방향이라고 알리고 있더군요.
  [4호선 종점]인 [당고개]와는 다른 당고개더군요.
  150m 정도 직진하면...


  ['경의중앙선']                     11:19~11:23  
  <경의중앙선> 전철이 지나는 철도 굴다리를 만납니다.
  [용산역]에서 [신의주]로 연결되는 철도입니다.
  여기서 우회전 하면...


  ['용산문화체육센터' 조망]  
  앞에 "용산문화체육센타"가 보이고
  좌측은 <경의중앙선>이 지상에서 지하로 들어 가고 있습니다.


  ['용산문화체육센터' 옆길]                   11:25  
  [용산문화체육센타] 좌측으로 <경의선 숲길>로 진입하는 통로가 있더군요.
  올라 가면....


  ['경의선 숲길' 출발지]                       11:26  
  "경의선 숲길 출발지"가 열립니다.
  <경의선>은 이 철길 밑으로 지하화 되어 옛 철길은 공원으로 변모 된것이지요.
  출발지인 이곳에는 "경의선 숲길 사랑방"이라는 열차 카페가 있는데 코로나사태로 휴업중이었습니다.
  이 철길을 따라 150m쯤 진행하면....


  ['원효로']                        11:29  
  [원효로]를 만납니다.
  여기가 "원효대사"를 인용하여 "원효로"가 되었다는데, '신라'의 '서라벌'이 본거지인 "원효대사"가
  어이하여 이곳 '용산'과 연관되어 "원효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조금 가면 [현대차써비스센타]가 있죠. 그 근처에 [용산문화원]이 있는데
  거기엔 "왜명강화지처 倭明講和之處"라고 쓰여진 기념 비석이 있죠.
  임진왜란 때에 1593년 정초부터 패퇴하던 '일본군'과 '명나라군'사이에 휴전교섭이 이루어졌는데,
  한강의 정경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던 현재의 [용산문화원] 자리에 있었던 <심원정 心遠亭>에서 
  명나라의 '심유경'과 일본의 '가토 기요마사'등이 화의를 맺고 강화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곳 [용산]에는 이런 외세 침략의 흔적들이 곳곳에 있어 마음 아프게 합니다.


  [철로공원]                      11:31  
  [원효로]를 지나 다시 <경의선 숲길>로 들어 갑니다.
  [용산구]에 있는 <경의선 숲길>엔 이용객이 거의 없더군요.
  잠시 진행하면...


  ['효창공원역' 앞]

  ['효창공원앞역 5번출입구']                      11:34  
  "효창공원앞역"을 만납니다.
  여기서 학창시절 이후 언제 찾아봤는지 기억조차 없는 "효창공원"을 다녀 오기로 합니다.
  언제 또 다시 여길 오겠나 싶어....
 

  ['금양초등학교']                        11:38  
  [효창공원앞역 사거리]에서 북쪽인 우측으로 발길을 옮기면
  먼저 [금양초등학교]를 만납니다.
  "이봉창의사"가 살던 집이 저 [금양초등학교] 뒷쪽에 있죠.
   

  ['효창동주민센터']                    11:42  
  [효창공원앞 사거리]에서 [금양초등학교]를 지나 5분 정도 올라 가면
  <효창동주민센터>를 만나고...


  ['효창공원''효창운동장' 정문]                       11:43~12:10  
  이어서 서로 마주하고 있는 "효창운동장 정문""효창공원 정문"이 나타 납니다.


  ['효창공원' 정문 통과]  
  서울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어도 학창시절 이후 이렇게 변모된 [효창공원]은 처음 방문하게 됩니다.
  <효창공원> 정문을 들어 서면 좌측엔 [삼의사묘]가 있고 우측으로 가면 [임정요인묘역]이 있더군요.
  앞에 보이는 조형물은 "효창공원 상징조형물"이라고 하는데 "점지(點指)"라고 하는군요.
  '우리의 정기 뿌리와 같은 의미를 지니며 생명의 근원을 이루는 땅의 내부(땅과 연결되는 수면의 홀)로
  귀결되어 소통한다'는 의미라고...


  ['삼의사' 묘소]  
  "삼의사 묘소 三義士墓"
  "이봉창의사" "윤봉길의사" "백정기의사"를 모신 묘역
  "안중근의사"의 시체를 찾으면 모실려고 한 자리를 비워 놨다는군요.


  ['백정기 무궁화']  
  [삼의사 묘소] 앞에는 "백정기 무궁화"라는 무궁화가 자리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안내판이 있었습니다.
            모자 하나의 영토
            모자 하나의 대지
            모자 하나의 아들
       “중절모 하나에 의지해 망명 혁명가로 살다간 백정기의 이름으로
        나무 한 그루의 영토에 꽃 한 송이를 심고 대지에 모자를 씌운다” 


  ['삼의사' 묘소]   
  [삼의사 묘소]는 코로나사태로 들어 갈수 없어 옆에서 바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효창공원"은 독립투사들의 묘역이기 전에 역사를 간직한 묘소이기도 합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정조대왕의 장남-문효세자"입니다.
  지난번 [동대문구역사탐방]에서 "배봉산"을 탐방하며 언급한적 있는 
  "의빈 성씨"와 그녀의 아들 "문효세자"를 기억하시나요.
  여자 복도 없고 자식 복도 없었던 [정조대왕]의 로맨스를 알아야 이 묘소의 주인공들을 확실히 알수있죠.
  정비인 "효의왕후"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후궁을 들이라는 상소가 이어졌는데
  정치적 가례를 싫어한 [정조]는 어쩔수 없이 후궁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녀가 당시 최대 정치세력이었던
  "홍국영의 딸-원빈 홍씨"였지요. 그런데 1년도 못되 이 여자는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후궁을 들이라는 상소가 이어지자 이번에도 당대 정치세력인 "윤창윤의 딸-화빈 윤씨"를
  두번째 후궁으로 들이는데, 정치적 가례를 싫어한 [정조]가 [화빈 윤씨] 거소에 억지로 드나들다가 
  [화빈 윤씨]를 시중드는 무술이와 눈이 마주치고, 정식 후궁 "화빈 윤씨"는 뒷전에 놔두고 
  그녀를 보필하는 무술이와 짝짜쿵 사랑을 꽃 피우며 로맨스를 즐겼지요.
  <드라마 이산> 기억하시나요? '한지민'이 연기한 "성송연"이 바로 그 무술이입니다.
  그녀는 [정조]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까지 낳으니 그 아들이 바로 "문효세자"이죠.
  하지만 뭔 운명의 장난인가,,간신히 얻은 장남 "문효세자"는 불행이도 5살에 죽어버리고 그녀도 죽어버렸죠.
  [정조]는 유일한 아들 장남과 사랑했던 여인까지 죽자 엄청 슬퍼하며 "문효세자"의 묘를 썻는데 
  그 묘의 이름이 "효창원 孝昌園"이었고, 그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당파싸움이 치열했던 당시 였으니 세자와 그의 어머니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답니다.
  [영조] 때부터 완전 금기시되던 무술이와 무술이가 낳은 세자의 배척이 정적들로부터 표적이었던 때이니..
  [정조]까지 암살 당할뻔 하는 사건까지 있었으니 독살설을 충분히 추리 할수 있지요.
  "효창원 孝昌園"은 해방을 전후해 현재의 [서삼릉]으로 이장하고 이곳은 공원으로 조성되었는데
  현재의 "효창공원"은 원래 "문효세자"의 왕실 묘역인 "효창원 孝昌園"에서 유래한다는거 아셨나요.


  ['숙명여대' 조망]  
  [효창공원] 우측에는 [숙명여대]가 있는데, [숙명여대]도 옛날엔 [효창원]의 일부 였답니다.
  [효창운동장]도...


  [공원]

  [후문]  
 공원 중심부를 통과해 올라 가면 공원 후문을 만납니다.
 '공덕동' '만리동' '청파동' '남영동'등 동네들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재개발이 이루어지며 아파트들이 공사중에 있군요.




  ['공원']  
  이 공원은 주민들의 생활건강체육공간이기도 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혹시 현재의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있었던 [서울CC]라고 생각하고는 있지 않나요?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은 바로 이곳 [효창원] 자리였답니다.
  그러니까 [효창운동장][숙명여대]를 포함하는 "효창원" 묘역을 일제가 골프장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1921년에 만들어 3~4년 운영하다가 1924년에 없애버렸지만 왕실 묘역을 골프장으로 만든 쪽바리들.
  그리고 해방후 임정요원들의 묘역으로 꾸며진 이후에는 '군사쿠데타 세력'이 독립투사들을 부정하기
  위해 묘역 앞에다 거대한 운동장을 만들어 성스러운 독립투사 묘역을 놀이터로 만들어버렸죠.


  ['의열사']

  [안내문]  
  "의열사"에 대해선 안내문에 자세히 안내하고 있고...


  ['백범 김구선생' 묘소]  
  "백범 김구선생 묘"
  일제에 의해 공원화 된 "효창원"을 해방 후 독립투사들의 묘역으로 조성하신 분이 "김구선생"이시죠.
  그리고 자신도 이곳에 뭍히고...


  ['이봉창의사' 동상]  
  "이봉창의사 동상"도 있습니다.
  일본 '히로히또 왕'에게 수류탄을 던져 죽일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져 결혼도 못하고 32살의 젊은 나이에 순국했지요.
  이 근처 [금양초등학교] 근처에서 살며 '청파동' [문창보통학교]를 다녔고
  용산역 철도공무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답니다.


  ['백범 김구 기념관']  
  "백범 김구 기념관"은 코로나사태로 휴관 중이었습니다.


  ['경의선숲길-마포구구간' 출발지]                      12:16  
  "효창공원"을 둘러 보는데 40여분이 걸려고, 다시 <경의선 숲길>로 돌아왔습니다.
  [효창공원앞역] 사거리부터는 <경의선숲길-마포구구간>이 시작되었고
  [공덕역]까지 "새창고개 구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옛 능선을 복원하고 우리 민족의 상징나무인 대형 소나무를 심어 특색 있는 공원으로 조성했다는군요.
  여기서 부턴 이용객들이 많아지더군요.


  ['백범교']

  ['공덕동']

  [공덕동 종점 공원]

  ['경의선숲길 관리 사무소']                       12:27  
  10여분 <새창고개구간>을 통과하면 [공덕역] 근처에 있는 [경의선숲길관리사무소]에 도착하고


  ['공덕역']                         12:28  
  이어서 "공덕역"을 만납니다.
  [지하철5호선][6호선][경의중앙선][공항철도]가 통과하는 역이며 곧 [신안산선]까지 통과 할 역이어서
  우리나라 지하철 역 중에서 [왕십리역]과 함께 가장 많은 노선이 교차하는 역이 될 것입니다.


  ['공덕오거리' 만리동 방향]

  ['공덕오거리' 아현동 방향]

  ['공덕오거리' '마포대교' 방향]  
  "공덕오거리"에서 엄청 번화해진 거리를 조망하고


  ['공덕오거리' '서강대' 방향]

  ['경의선숲길' '대흥동-염리동' 구간]                  12:39  
  [서강대] 빙향으로 진행해서 끊어졌던 <경의선숲길>을 다시 만나 진행합니다.
  [공덕역]에서 [대흥역]까지를 "대흥-염리동 구간"이라고 하며
  특히 4월에 벚꽃이 만발하여 꽃구경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답니다


  ['겨울나무' 옷입히기]                      12:41  
  나무에 겨울옷을 입힌 곳도 있고...


  ['대흥역']                       12:49  
  "대흥역" 앞 도로를 건너면...
  [대흥역]에서 [서강대역]까지를 "신수동 구간"이라고 하는데
  일제강점기 마포의 범람을 막기 위해 만들었던 인공하천인 '산통물천'과 
  무쇠솥이나 농기구를 만들어 팔던 공장이 많았던 마을의 옛 기억을 재현하고 있답니다.


  [기차소리]                       12:43
 
  [추억]  
  설명이 필요없는 추억의 기찻길을 재현하고 있고


  ['신수동구간']


  ['서강대' 정문]                     1:00  
  [서강대학교] 앞을 지나면...


  ['서강대역']                       1:02  
  "서강대역"을 만나고


  ['서강하늘다리' 입구]

  ['서강하늘다리']                      1:06  
  이어서 "서강하늘다리"라는 육교를 건너게 됩니다.
  이 육교가 있는 곳은 옛날 [경의선 철교]가 있던 자리이죠.


  ['신천로터리' 방향 조망]  
  육교에서 북쪽으로 [신촌로타리]가 보입니다.
  옛날에 [강화] 가는 시외버스 타는 곳이었죠.
  지저분한 길이었는데 맑끔하게 단장되었군요. 정말 오랜만에 와 봅니다.


  ['와우산' 방향 조망]  
  남쪽 "와우산" 방향을 조망하는데 산은 보이지 않고 아파트들만 보입니다.
  1960년대 말 서울로 서울로 몰려드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서민들의 무허가 판잣집은
  서울을 뒤덮을 지경이었죠. 주택 정책의 일환으로 처음 지은 아파트가 바로 앞에 보이는 "와우산"
  비탈에 지은 시민아파트였고 이름하여 "와우아파트"였는데...
  <네이버지식백과>를 인용하면..
  1970년 4월 8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 와우지구 시민아파트 15동 건물 전체가 붕괴,
  33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 69년 12월 26일에 준공한 후 불과 4개월 만에
  일어난 이 붕괴사고는 조사 결과 아파트의 받침기둥에 철근을 제대로 쓰지 않아 기둥이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때문으로 밝혀져, 아파트 부실 공사에 대한 인책문제가 국회에까지 비화되어
  서울시장 김현옥(金玄玉)이 물러나는 사태까지 빚었다. 사고가 발생하자 경찰·군·예비군·미8군 등
  1천여 명이 동원되어 구조작업을 벌였다. 이 사고를 계기로 경찰은 전국 697개 아파트에 대한
  안전도검사에 나섰는데, 85동이 날림공사였음이 밝혀져 한때 아파트 기피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도시빈민의 주거문제가 새롭게 대두하기 시작했다.

  노래 가사를 바꿔 ♬ "아우아파트가 우루루 무너지는 소리 ~~"♬라고 부르고 다니다 박통에게 걸려
  한동안 가수 활동을 못하게 되었된 "조영남"도 두고 두고 회자되었죠.
  그런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현재는 브랜드가 있는 현대식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게 
  "와우산" 보다 높게 건설되어 "와우산"을 보이지 않게 감싸고 있군요.
  말로만 듣던 "와우산"을 이번 기회에 다녀 오기로 합니다.
  "와우산"을 올랐다가 내려 올때의 루트는 붉은선으로 표기했습니다.


  ['서강하늘다리' 밑 통과]                      1:08  
  [서강하늘다리]를 내려가 [와우산]으로 갑니다.
  자칭 산꾼이라면서 서울에 있는 "와우산"도 올라보지 못해서 이번 기회에 꼭 올라 보고 싶었고
  특히 "공민왕 사당""광흥창터"도 찾아 보기 위해서입니다.


  ['서강대교' 가는 길]  
  [서강하늘다리]에서 [서강대교] 방향으로 12분 정도 진행하면...


  ['광흥창역]                          1:20  
  [서강대교] 입구에 있는 "6호선 광흥창역"을 만납니다.
  여기서 우회전 하면...


  ['합정역' 방향]  
  [합정역] 방향으로 가는 [독마로]라는 도로로 진행하는데 우측엔 [쌍용예가아파트]가 줄서 있습니다.
  [쌍용예가아파트]가 끝나는 지점까지 가면...


  ['공민왕 사당' 입구]                        1:24  
  이정표가 [공민왕 사당] 가는 길안내를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은 [마포걷고싶은길]이기도 했습니다.
  우측 골목으로 잠시 들어 가면...



  ['공민왕 사당'과 '광흥창터']                        1:27  
  "공민왕 사당과 광흥창터"
  고려 제31대 왕인 "공민왕"의 사당이 어찌하여 이곳에 있을까..궁금해서 찾아 왔습니다.
  몽골의 식민지가 되어 고려 왕들의 마빡에 "충 忠"자를 써붙이게하고 '몽골'에 충성을 강요 당하며
  왕자들을 인질로 보내야만 했던 치욕의 군주들..."충렬왕-충선왕-충숙왕-충혜왕-충목왕-충정왕"
  [공민왕]은 [충숙왕]의 아들인데 '원나라'로 볼모로 잡혀가 그곳 "노국공주"와 정략 결혼하고
  우리나라로 돌아 와 "忠"자를 떼고 왕위에 오르는 고려릐 희망이었죠.
  무신정권들을 타파하고 나라 다운 나라를 만들어 '원나라'에 복수를 하려했던 개혁 군주였지요.
  하지만 개혁은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 수구세력들의 반발로 어려움에 쳐했고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죠.


  ['광흥창 터']

  "광흥창 터"
  고려 '충선왕' 때 정해진 '광흥창'이란 이름은 조선 건국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는데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관제 개편 때 '광흥창'은 모든 관리의 녹봉을
  수입·지출하는 일을 맡는 관청으로 정해졌다고 하며 그 터가 있던 곳이랍니다.
  [서강나루] [마포나루]를 통해 들어 오는 세곡을 관리하는 곳이었다는거죠.
  이곳 앞이 "창전동 倉前洞"인데 이제서야 그 의미를 알겠군요.
  [광흥창]  창고 앞 동네라고 "창전동"이 되었답니다.


  [사당 내부]  
  "노국공주"를 무지무지 사랑한 "공민왕"
  그들의 사랑 이야기와 당시 '원나라'의 "기황후" 이야기는 너무 유명해 생략하고...
  결국 그 지고지순한 사랑 때문에 비극적으로 암살 당했다고도 할수 있죠.
  이곳에 그를 기리는 사당이 있는 이유는 불분명하답니다.


  ['와우산' 오름길]                    1:32  
  [공민왕 사당] 옆에는 "와우산'으로 올라 가는 계단이 길게 뻗어 있습니다.
  이 길은 [마포걷고싶은길]이기도 했습니다.
  계단을 끝까지 올라 가면....


  ['중앙하이츠아파트']  
  [중앙하이츠아파트]라고 하는 아파트가 있고


  ['중앙하이트아파트' 정문]                    1:42~1:47  
  아파트 정문 앞에는 마을버스 13번 종점이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정자에 올라가 잠시 쉬는데


  ['와우근린공원' 안내도]  
  정자 옆에는 "와우근린공원안내도"가 있어 참고하고


  [이정표]                     1:47  
  버스 종점 앞 사거리에 있는 이정표를 참고하여 "와우산"을 통과합니다.
  [마포걷고싶은길] 방향으로 가면 되더군요.


  [군부대]  
  "와우산 臥牛山 101.9m"이 왜 우리에게 가깝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는 "와우산" 정상은 군부대가 아직도 점령하고 있어서라고 생각되는데
  그래도 정상 옆구리로 길을 만들어 걸을수 있도록해서 다행입니다.


  ['관악산' 조망]  
  "와우산"에서 바라보는 "관악산"과 "63빙딩"입니다.
  "♬ 와우아파트"가 우루루 무너지는 소리 ♬'는 간데 없고 더 높은 아파트와 건물들이 펼쳐집니다.


  ['와우산체육공원']                     1:52

  ['마포팔경']  
  군부대가 끝나는 곳에 "와우산체육공원"이 상당히 큰 규모로 자리 잡고 있는데
  안내도에 [마포팔경] 중에 하나를 소개 하고 있습니다.


  [안내도]                     
  현위치를 확인하고 [신촌금호어울림아파트]를 통과하여 [창전삼거리] 방향으로 내려 갑니다.


  ['노고산''남산' 조망]  
  "와우산"에 바라보는 "노고산"과 "남산"입니다.
  "노고산"은 [서강대] 뒷산이죠.


  ['금호아파트 103동']                       2:00  
  [금호아파트 103동] 앞으로 하산하면...


  ['서강하늘다리' 조망]                      2:01  
  [서강하늘다리]가 바로 아래에 보입니다.
 

  ['와우교 구간']                     2:08  
  약 1시간이 걸려 [와우산]을 둘러 보고 다시 <경의선 숲길>로 돌아 왔습니다.
  여기서부터 <와우교구간>이 이어지고




  ['홍대땡땡거리']                      2:10  
  예전에 건널목이 있었던 곳을 재현해 놨습니다.
  이름하여 "홍대땡땡거리"라고 합니다. 잼있죠? ㅎ


  ['말'조형물]

  ['경의선책거리']

  ['경의선 책거리']                      2:20  
  이어서 "경의선책거리"가 이어지며 다양한 조형물이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홍대입구역']                     2:25  
  [2호선][경의중앙선][공항철도]를 탈수 있는 "홍대입구역"을 지나는데
  이 역은 [애경그룹] 빌딩이 있는 복합건물이더군요.


  ['동교동 삼거리']  
  [김대중대통령] 시절부터 더욱 알려진 [동교동 삼거리]가 새로워졌고


  ['서교동' 방향]  
  [양화대교] 방향으로 뻗은 [서교동] 방향 길이 빌딩으로 좁아진듯 느껴질 정도입니다.




  ['연남동 구간']                    2:32~2:44   
  <연남동구간>을 7분여 진행하는데 변화를 몸소 느낄수 있었습니다.
  여기는 저의 죽마고우가 아직도 살고 있는데 40여년 전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로
  화려하게 변모했습니다.


  ['불광천 사천교 교차로']                     2:47  
  [불광천]이 흐르는 개천 위로 [서울내부순환도로]가 지나고, [경의선] 철도가 지상으로 나오는 곳에서
  <경의선 숲길> 답사를 마침니다.


  [네이버지도']  
  오늘 걸은 거리는 12.5km 였으며 3시간 4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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