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동정맥 17구간]
숲재-부산富山-청천봉-독고불재-땅고개-단석산-OK그린-소호고개
길은 길에 연이어 끝이 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 올 것을 의심하면서....
오늘도 부산 다대포 몰운대를 향하여
그 끝없는 낙동정맥 길을 갑니다
[낙동정맥 17구간 산행 개념도]
2010년 5월 14일(금) 밤11시
양재역 서초구민회관 앞에서 경주로 출발했습니다
이번 17구간은 경상북도 경주시를 벗어나 "울산광역시"로 접어 드는 곳까지 가는
무척 긴 거리를 걸어야 하는 힘든 구간입니다.
경주시 산내면 우라리 "숲재"에서 "부산 富山"을 지나 "단석산 斷石山"을 거쳐
울산광역시 울주군 내와리 "소호고개"까지 도상거리 30.1km, 실거리 약38km가 되는
머나 먼 거리입니다.
[숲재 도착] 새벽 4시 20분
25인승 조랑말 같은 미니 버스를 타고 경북 경주시 산내면 우라리에 있는 "숲재"에
도착했습니다.
[우라리 '우라생식마을' 입구]
'숲재'는 지도에 따라서는 "숙재"라고도 표기하는데 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이곳에는 '우라생식마을'이라는 조금 이상한 느낌을 주는 마을 형태의
집단 주거시설이 "사룡산" 정상까지 산 옆구리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지난 16구간 산행기를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역전의 용사들]
힘들고 어려운 구간이며 볼거리도 별로 없는 구간을 지나 오다 보니 회원님들이
많이 참가하지 않아, 소수의 정예부대가 특전대 처럼 전의를 불태웁니다
['숲재'에서 '富山城'까지 구글어스]
1.숲재(4시25분 출발) →35분→ 富山城 西門(5시 도착)
완만한 오르막을 오릅니다
[부산성 富山城 가는 길] 4시 25분 출발
'숲재'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 가면 좌측으로 임도가 있으며,
시멘트 임도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약20분 정도 올라 갑니다.
['도솔암 입구' '건천농장 입구' - 정맥 갈림길] 4시 44분
임도를 따라 약20분 정도 오르면 임도에 "도솔암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으며
철문으로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있는 곳을 만납니다. '건천농장 입구이기도 합니다
정맥 마루금은 여기서 '도솔암 입구' 안내판 앞쪽 숲속으로 직진해 들어 갑니다.
[632m봉] 4시 50분
'도솔암 입구'에서 산길을 약6분 정도 된비알을 오르면 첫번재 봉우리인 "632m봉"이
어둠 속에서 진달래와 함께 나타 납니다.
[富山 729.9m] 5시 정각
'632m봉'에서 10분쯤 오르면 갑자기 광활한 신천지가 앞에 훤히 나타납니다.
이곳이 경주국립공원에서도 유명한 "부산 富山"입니다
5시 이지만 벌써 여명이 밝아 옵니다
[富山城 西門에서 바라보는 '오봉산'] 5시 5분
카메라를 수동으로 놓고 촬영을 했습니다.
여명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밝아 오고 경주 건천읍과 멀리 지난온 "낙동정맥" 줄기들이
행로의 흔적으로 다가 옵니다
바로 앞에는 지난 16구간을 오면서 여러번 등장했던 "오봉산 五峰山"이 있습니다.
이곳은 중요한 곳이라 사진을 확대해서 다음 사진으로 보충 설명을 합니다.
[富山城 西門에서 바라보는 '오봉산']
지난 16구간에서 볼거리였던 "관산 冠山"이 멋지게 여명 속에 조망되며,
그 뒤로 삼성산, 도덕산, 봉좌산등등 낙동정맥 산줄기가 뻗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저 산들을 넘고 넘어 여기까지 와서 뒤돌아 보니 왠지 뿌듯한 마음도 생깁니다.
"富山"과 "五峰山"은 서로 연결이 되어 있으며, 연결선상으로 "山城"을 쌓았다고 하는데
그것이 "富山山城"이라고 하며, '오봉산' 우측 계곡이 "여근곡 女根谷"이라는
유명한 계곡입니다.
[富山城 西門에서 바라보는 '단석산']
東南쪽으로는 가야할 "단석산 斷石山"이 조망되며,
"富山山城"안은 채소밭으로 변해 있는 넓은 평원이 옛날을 상기 시킵니다.
[富山城 西門에서 바라보는 '단석산']
이곳에서 보이는 "낙동정맥 마루금"이 종합적으로 보여 사진을 확대하여....
정맥길은 바로 앞에 보이는 "651m봉"을 지나 "단석산'으로 가고, 다시 다음 구간에 갈
"백운산"과 "고헌산"이 보이며 계속 그 유명한 "영남알프스"가 펼쳐 집니다.
그리고 "백운산"에서 동쪽으로 "포항의 호미곶"으로 가는 "호미지맥 虎尾枝脈"이 선명합니다.
오늘 우리는 "백운산" 바로 앞 "소호고개"까지 엄청 먼 거리를 갑니다.
도상거리 29km이고, 전원주택단지 도로까지 접속구간 2km를 합쳐 약 31km를 갑니다
실제 거리는 약37km정도 됩니다. 에휴~
이나저나 "富山山城"안은 평온하고 ....
그러나 그 옛날에는 피투성이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반드시 알고 가야할 유명한 일화가 "삼국사기"에 전해 오고 있어
자세히 집고 넘어 가겠습니다
[富山城 西門에서 바라보는 '日出']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에서 최초의 女王인 "선덕여왕 善德女王"의 유명한 이야기가
'김부식'이가 쓴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책 "삼국사기"와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에 전해 옵니다.
"富山山城"에서 바라보는 "日出"은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富山城 西門에서 南門까지 구글어스]
富山城 西門(5시5분) →구경시간 포함 20분 → 富山城 南門 (5시25분)
일연스님이 쓴 유명한 "三國遺事"의 "기이(紀異)편" 에 "선덕여왕의 지기삼사(知機三事)설화"가
나옵니다. "知機三事"란 '선덕여왕'의 지혜가 돋보인 세가지 사건을 일컷는데
그 중에서 이곳 "女根谷"에 대한 설화를 "三國遺事" 원본을 토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이 일이 있었던 날을 "즉위 5년인 636년 5월"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선 '삼국유사'에 나와 있는 원본을 보여 드림니다
第二十七 德曼(一作萬) 諡善德女大王 姓金氏 父眞平王以貞觀六年壬辰卽位 御國十六年 凡知幾有三事
"於靈廟寺 玉門池 冬月衆蛙集鳴三四日 國人怪之問於王 王急命角干閼川 弼呑等 鍊精兵二千人
速去西郊 問女根谷 必有賊兵 掩取殺之 二角干旣受命各率千人問西郊 富山下果有女根谷 百濟兵
五百人 來藏於彼 竝取殺之百濟將軍于召者 藏於南山嶺石上 又圍而射之又 有後兵一千二百人來
亦擊而殺之 一無孑遺----- 當時群臣啓於王曰 何知花蛙二事之然乎 ---- 蛙有怒形 兵士之像 玉門者
女根也 女爲陰也 其色白 白西方也故知兵在西方 男根入於女根卽必死矣 以是知其易捉
於是群臣皆服其聖智".....
어려워서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요? ㅎㅎ
친절한 '파란문'이 짧은 가방끈으로 풀이해 드림니다
'영묘사 靈廟寺'(지금의 흥륜사) '옥문지 玉門池'에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개구리들이 모여
3∼4일동안 개굴 깨굴하며 요란스럽게 울었답니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찾아와 "선덕여왕"에게 물었답니다.
그 말을 들은 여왕은 깜짝 놀라며 급히 각간(角干)인 '알천,필탄'에게 다음과 같이 긴급명령을 합니다.
"훈련된 정병 2천명을 데리고 속히 서쪽으로 나가서 '여근곡'이란 곳을 들어가면
반드시 적병이 있을 것이다. 습격하여 잡아라.어서 가라" 독촉합니다
각간 '알천과 필탄'은 명령을 받들어 각각 군사 1천명씩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가 "여근곡"이 어딘지
물으니 "富山" 아래 과연 "여근곡"이 있었답니다.
백제 군사 5백명이 거기에 숨어 있었고 신라군은 곧 그들을 즉시 사살했습니다.
백제 장군 '우소 于召'가 남산고개에 숨었으므로 그도 에워싸 사살했답니다.
또한 백제의 후속부대로 1천3백명이 오는 것도 모두 죽였습니다.
[富山城에서 바라보는 "영남 채석장"]
백제군을 섬멸하고 돌아온 군신들은 여왕의 예견을 신기하게 여겨 왕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개구리를 통해 백제군이 숨어있는 줄 알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왕은 폼을 잡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개구리는 성내는 형상이니 군사의 상징이다.
玉門이란 女根이요, 여자는 음(陰)인데 그 색은 희고, 흰(白) 것은 서(西)쪽이다.
그러므로 서(西)쪽에 군사가 있을 것을 알았다.
또한 '男根'은 '여근 女根'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으므로 쉽게 잡을 것을 알았다"
요즘 같아도 좀 이야기 하기가 민망한 이야기를 시집도 아직 가지 않은 선덕여왕이 했답니다
이 Sexy한 이야기를 통해 신라의 전통적인 자유분방한 연애관에 '음양오행사상 陰陽五行思想'을
합류시켜 사상 최초의 여왕의 권위를 높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당시 신라의 남녀 연애는 지금보다도 더 자유분방하였고, 근친상간이 많았답니다.
당시 처녀였던 "선덕여왕"은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옥문지 玉門池"의 '옥문 玉門'과
"여근곡 女根谷"의 "여근 女根"을 연결시키고......
"성난 개구리"와 "백제군"을 연관시켰습니다.
여기에 '여성=음=백색=서쪽'이라는 음양오행의 원리를 적용하여
적군의 위치를 정확히 지목해낸 것입니다.
이런 사건이 있을 때쯤에는 "선덕여왕"이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을 때인데 어떻게 그런걸 알았을까
제 생각에는 후대에 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女王"이라는 헨디캡을 메우는 설화를
교묘히 역사책에 올려 그 권위를 높이려 한게 아닐지 여겨집니다. 믿거나 말거나...ㅎㅎ
[삼국유사에 나와있는 글] [경주 건천읍 전망대에서 바라본 '여근곡']
☆자료사진☆
男根入於女根卽必死
이 한자 구절을 잘 외워 두면 술자리에서 유식하다는 말 듣습니다. ㅎㅎㅎㅎ
그리고 우측 사진은 제가 어디서 구해 온 사진인데 진짜 그곳(?)을 닮았지요? ㅎㅎㅎ
이런 친절한 산행기는 어디에도 없는데...구경만 하고 그냥 가시는 분들은 어떤 분? ㅎㅎ
[富山城 南門] 5시 25분
富山城을 지나 남족으로 조금 가니 그야말로 옛城터가 아주 쬐끔 남아 있는 "富山城 南門"을
통과하여 "청천봉'으로 향합니다.
[富山城 南門에서 "독고불재"까지 구글어스]
구글어스로 보면 "富山城"과 "女根谷"의 모양을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건천읍 전망대에서 바라본 자료사진의 "女根谷"을 이쪽에서 구글어스를 통해 보아도
女性의 그 부분 모양과 비슷하게 느껴 지시나요? ㅎㅎ
3. 富山城 南門 → 독고불재 [53분]
"富山城 南門"(5시 25분) →28분 → 청천봉(5시53분)→25분→ 독고불재(6시18분)
["청천봉" 헬기장] 5시 43분
富山城 南門에서 30분 정도 평이한 능선을 따라 가면 "청천봉"의 헬기장이 나옵니다
['청천봉' 산불감시초소] ['청천봉' 751m 정상표지판]
751m높이의 청천봉에는 산불감시초소와 정상표지판이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조망은 최고였습니다
['청천봉'에서 바라 보는 "단석산"]
동쪽으로는 651m봉과 "단석산"이 확연하게 조망됩니다.
이 사진은 길 안내에 중요하므로 확대해서 다음에 설명합니다
['청천봉'에서 바라 보는 "단석산"]
이 구간 낙동정맥 마루금을 한눈에 볼수 있는 사진입니다
낙동정맥 마루금은 앞에 보이는 "독고불재"를 지나 "651m봉"으로 올라가
그 능선을 타고 "땅고개"로 갑니다.
다시 "땅고개"에서 "단석산"을 오르고 사진의 오른쪽 끝 희미하게 보이는
"백운산"으로 갑니다.
['청천봉'에서 바라 보는 "백운산"과 "고헌산"]
가운데 봉우리가 뾰쪽하게 두개가 있는것이 "백운산"이고 그 우측 조금 둥근 모양이
"고헌산"입니다.
['청천봉'에서 바라 보는 "고헌산"과 "영남 알프스"]
"고헌산'에서 우측으로 "영남알프스"의 "가지산" "운문산" "제약산"등이 보입니다.
[富山城 西門에서 조망한 사진]
앞 사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까 "富山城 西門에서 조망했던 사진"을 다시 보여 드림니다
다음 구간에 갈 "영남알프스"구간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6월4일(금) 밤 11시에 출발하는 "낙동정맥 18구간-영남알프스구간"은 낙동정맥과
연관 짓지 않고 독자적으로 가도 좋은 곳이지요?
18구간과 19구간은 많은 분들이 참여해도 절대 밑지는 장사가 아닐 것입니다.
(게스트 손님 회비는 45,000원/무박2일 - 좌석관계상 부킹을 빨리 해야 합니다)
['청천봉'에서 바라 보는 '日出'] 5시 48분
5시 48분인데도 태양은 중천을 향해 올라 가고 있습니다.
[영남 채석장]
'어두목장'이 있는 '독고불재'로 가는 길에서 보이는 "영남채석장"
'영남채석장'이 있는 산봉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651m봉"입니다.
[독고불재] 6시 15분
"청천봉"에서 20분 정도 내리막을 내려 가면 '어두목장'과 "독고불재"가 보입니다.
건너편 산봉우리가 "651m봉"입니다
산행기를 위해 사진을 찍을 때 유의 사항 하나 알려 드릴까요?
사진을 찍을 때엔 "독고불재"에 가서는 "독고불재"를 찍을 수 없습니다.
항상 가지 전에 높은 곳에서 "독고불재"의 전체 사진을 찍어야 이해하기 쉽습니다
[독고불재] 6시 18분
'독고불재'에는 '어두목장'이라는 목장이 있어 행인들은 지나 다닐수가 없더군요
정맥길은 '어두목장 정문'을 지나 직진하여 "651m봉"으로 올라 갑니다.
["독고불재"에서 "땅고개"까지 구글어스]
4. 독고불재 → 땅고개 [1시간 22분]
독고불재(6시18분) →20분→ 651m봉(6시38분) →1시간2분→ 땅고개(7시40분)
이 구간은 알바를 많이하는 구간이니 길 조심을 해야 합니다.
[651m봉 오르는 등로]
된비알을 오릅니다
가끔 철죽들이 땀흘리는 산객들을 위로해 줍니다.
[651m봉 정상 삼각점] 6시 38분
된비알을 20분 정도 치고 오르니 삼각점이 있는 "651m봉"입니다.
여기서 한숨 돌리고 우측으로 꺽어 가는데 이제부터 땅고개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길입니다
["땅고개" 가는 길에서 보이는 "단석산"]
구글어스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낙동정맥길은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어 '땅고개'로 갑니다
정맥길 능선의 좌측으로 "단석산"이 위용을 뽐내고 올라와 볼테면 올라와 봐라~~라고 합니다
짜~아~씩! 아주 옛날 김유신이도 오르락 내리락 했는데 21세기에 사는 내가 못 올라 갈줄 알고?
['임도' 직전 무덤] 7시 16분
"651m봉"에서 약30분 정도 가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같은 무덤이 하나 나옵니다.
이 무덤에서 '임도'까지는 8분 정도 걸립니다.
[임도 갈림길] 7시 24분
임도 갈림길이 나오면 좌측, 즉 동쪽으로 조금 갑니다.
그러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사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우측, 남쪽 방향으로 틀어 갑니다
['땅고개' 가는 길] ★길 주의★
사거리에서 30m정도 남쪽방향으로 오면 다시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갈림길이 나옵니다.
그리곤 선답자들의 표지기를 유심히 관찰하며 좌측 숲속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땅고개]
제법 높은 봉우리를 하나 넘어 가면 드디어 "땅고개"가 나옵니다
[땅고개-산내면으로 가는 길] 7시 40분 [땅고개 휴게소-건천읍,경주로 가는 길]
"땅고개"는 "국도20번"이 지나는 중요 도로입니다.
경주시 건천읍과 산내면을 잇는 고개로서 "당고개"라고도 했다는데
지금은 공식적으로 "땅고개"라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땅고개 이정표]
"땅고개 휴게소" 바로 옆에는 "단석산 일반 등산로 입구"가 있습니다.
'단석산'까지 3.4km
정맥길과 일반 등산로는 구별되니 이곳이 아닌 정맥길을 따라 올라 가시기 바람니다.
[땅고개 안내판]
건천읍 방향으로는 "땅고개 휴게소"가 보이고,
산내면 방향으로는 "땅고개 공원"이 있습니다
[땅고개 '산내면 표지석']
'낙동정맥 마루금'은 사진의 앞에 보이는 "산내면 표지석" 뒷쪽 길로 10m쯤갑니다.
[땅고개에서 단석산으로 가는 정맥 들머리]
"20번국도" 산내면 표지석 뒷길로 10m쯤 오면 좌측으로 정맥길이 나있습니다.
하지만 이길은 대부분의 산객들이 이용하지 않는지 희미합니다.
이 길을 따라 조금 올라 가면 '땅고개 휴게소' 바로 옆에서 오르는 일반 등산로와 만납니다.
["땅고개"에서 "단석산"까지 구글어스]
5. 땅고개 → 단석산 [1시간 30분]
땅고개(7시54분 출발)-1시간4분-단석산 갈림봉(8시58분)-2분-정맥갈림길(9시정각)
-23분-단석산(9시23분)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입니다
하지만 "단석산"은 꼭 갔다 와야 "낙동정맥"을 종주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설명 드림니다
['단석산'으로 오르는 길]
'단석산'으로 오르는 길은 비교적 잘 나 있습니다.
주말에는 산객들이 많이 찾는 유명산이기 때문이겠죠.
우리가 가는 시간이 오전 9시경이라 아직은 산객들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단석산'으로 오르는 길의 이정표]
"선덕여왕 善德女王"
한반도 최초의 여성 왕, 신라 27대왕, 첨성대, 황룡사등을 지으며 화려한 신라문화를 창달한 여인.
TV드라마, 영화에도 수없이 등장하는 그 여인은 누구인가
신라 26대 진평왕은 어찌된 영문인지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없으니 왕위계승 문제가 골칫거리로 대두되었는데......
진평왕은 언제나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김용춘을 누르고,
자신의 장녀인 "덕만공주 德曼"를 화백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추대하게 되는데,
그녀가 한반도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 善德女王"입니다.
김용춘의 아들이 "김춘추"였으니 "김춘추"를 누른 것과 같습니다.
['단석산'으로 오르는 길]
"선덕여왕善德女王"은 자신의 라이벌인 "김 춘추"를 과감히 등용하여 외교 전반에 대한
권한을 부여하니, "김 춘추"는 "선덕여왕" 재위 기간 동안 충성을 다했습니다.
政敵을 곁에 두면서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하게 하여 자신에게 이롭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선덕여왕의 탁월한 카리스마요, 용병술이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침공하여 멸망시킨 "금관가야"의 왕족 출신 "김 유신"을
지금으로 말하자면 '국방부장관' 자리에 앉히고, 결국 삼국통일의 초석을 다지기도 했습니다.
최근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라이벌이었던 "힐러리 클린튼"을 국무장관으로 임용하여
원만한 국정운영을 하는 것과 비스무리하지요. 한편 현재 우리나라는 "이명박 대통령"이 라이벌이었던
"박근혜"씨를 받아 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골이 더 깊어 지는 듯하죠? 수준 차이 나죠?
재미있는 것은 "김 춘추"가 "김 유신"의 누나를 덮쳐 임신을 시켰는데
당시에는 혼전 잉태는 국법에도 명시되 있을 정도로 엄격히 금지되고 있던 시기이라
간통을 빙자하여 政敵인 "김 춘추"를 처형 시킬수 있었는데도
처형 시키지 않고 결혼을 시키는 지략을 발휘하여 자기에게 충성을 다하게 했던 일화가 있지요
['단석산'과 '정맥' 갈림삼거리] ★길 유의★ 9시 정각
"당고개 갈림길"이라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단석산"을 갔다가 되 돌아와 여기서 "OK그린연수원"방향으로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단석산 정상'으로 가는 된비알과 특이한 나무]
'단석산'으로 오르는 마지막 된비알에 바위를 뚫고 자라고 있는 나무가 신기했습니다
['단석산 정상' 바로 밑에서 뒤돌아 본 "정맥 갈림봉"]
'단석산' 정상 바로 아래에서 지나온 봉우리들을 뒤 돌아 봤습니다.
바로 앞 가운데 있는 봉우리가 "단석산-정맥 갈림봉"인듯 합니다.
와서 보니 별거 아닌데 올 때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斷石山 정상]
드디어 "단석산 정상"에 도착 합니다.
지금 이 시각에는 우리 대원들 외에는 단석산을 오른 산객들이 아직 없었습니다.
[斷石山 정상 이정표] 9시 23분
"땅고개"에서 1시간반이 걸려 "단석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斷石山 정상의 "斷石"]
앞 돌무덤 옆에 "쩍 갈라진 바위" 보이시나요?
이 바위를 보기 위해 여기를 힘겹게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바위가 그렇게도 유명한 "단석 斷石"입니다.
신라시대 최고의 화랑이었던 "김 유신"이 17살 때에 이 산을 오르 내리며 무술을 연마하며
심신을 단련하고 있을 때에 "난승"이라는 도승을 만나 그로부터 '보검'을 얻습니다.
그리고 단련한 무술 솜씨로 보검을 내리쳐 바위를 두부 짜르드시 쩍 갈라 놓습니다.
그 바위가 바로 앞에 보이는 斷石 바위입니다.
그리하여 이산의 이름이 "단석산 斷石山"이 됩니다.
꽁짜로 좋은 거 구경하지요? ㅎㅎ
[斷石山 정상석]
쩍 갈라진 바위로 정상석을 만들었으면 더 이상적이었을텐데....
[斷石山 정상석에서의 斷想]
827.2m높이의 "단석산 斷石山"은 경주의 지붕이라고 할 정도로 경주 일대에서는 가장 높고,
우람한 산세가 일품이며, 봄에는 능선에 피는 진달래가 또한 아름답다고 합니다
斷石山 정상석에 기대 앉아 옛날 이 산을 오르 내렸을 "김 유신 장군"을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인간의 속성은 모두 같은것,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기본 욕망은 변함없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김 유신"이 17살 때쯤..그러니까 사춘기 때쯤에 있었던 '첫사랑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주 유명한 이야기이라 아시는 분들도 많으실겁니다.
그리고 다음 글은 저의 "천관산 산행기"인 "천자의 면류관을 쓴 천관산을 가다"에
이미 한번 올린 적이 있습니다
[斷石山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주']
신라의 김유신 장군의 첫사랑 "천관녀"를 들어 보신 분들이 많으실겁니다
"삼국사기" 위인열전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김유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에
"천관녀"가 등장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 "천관녀".......
그녀는 정말 천관산으로 가 "천관보살"이 되었을까?
신라에 의해 멸망한 '금관가야국'의 왕족인 '김 유신'
신라에 빌붙어 잘 살아 가려면 신라 진골세력들에게 잘 보여야 했겠습니다
철저한 품골 계급사회였던 신라에서, 패망한 나라의 왕족은 더욱 경계시 되었습니다
그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김유신의 어머니는 아들 김유신을 공부 잘하고 튼튼한 사나이로 키워
진골세력에 들어 가 신라의 핵심 권력 속으로 들여 보내고 싶어했습니다
어느 어머니나 모두 같은 마음이겠지만 특히 김유신의 어머니는 자식 교육을 철저히 했죠
현대 교육학에서도 김유신 어머니의 가정교육은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斷石山 정상에서 바라보는 '금오산(남산)']
김유신이 화랑 훈련병 시절 - 그러니까 사춘기 때 쯤이겠지요
이 놈의 씨끼가 엄마가 하라는 공부는 않하고 어떤 여자를 무쟈게 좋아해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그 년한테 가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김유신의 어머니는 머리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뿔따구가 났습니다
어느 날, 참다 못한 엄마는 김유신을 불러 꿇어 앉혀 놓고 작살을 냅니다
"너 이놈!!~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새파란 놈이 기생 치마 폭 속에서 노닥거려서 되겠냐?"
" 다시 한번 더 그 뇬한테 가서 연애질 하면 다시는 너를 안볼것이야!!~~"
김유신은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않겠다고 어머니에게 맹세를 합니다
그 뇬이 "天官女"라고 하는 기생이었답니다
삼국사기에 '娼家의 女'이라 표기해 놔서 "天官女"를 역사학자들이 기생이라고 추측했습니다만
요즘 새로운 학설에는 "天官女"가 왕실에서 제사를 지내는 관직을 가진 여자였다고 합니다
일종의 왕실 무당 같은 것이란거죠. 아직 확실한 결론이 난 것은 아닙니다
[斷石山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주']
어머니에게 다시는 "천관녀"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다음날....
김유신이 화랑 무예 수련을 마치고 자신의 말을 타고 집에 돌아 오는 도중
너무 피곤해서 말위에서 잠이 들었답니다
"히이~이히힝" 하며 우는 말 울음 소리에 잠이 깬 김유신 앞에는
언제나 처럼 "天官女"가 화려한 옷을 입고 요염한 모습으로 김유신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잠자고 있는 사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말은 천관녀의 집으로 간것이었습니다
김유신은 어머니와 한 약속이 뇌리를 때리고 지나갔겠죠
성질 무쟈게 난 김유신은 그 자리에서 말의 목을 베어 버렸습니다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이 놈의 말이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갔다는 보복이죠
말의 목에서 터져 나오는 피를 흠벅 맞은 "천관녀"
여자의 온갖 자존심 다 망가지는 치욕의 순간이었죠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지 개쎄이가 왜 죄없는 말의 목까지 짜르고
내몸에 개피도 아닌 말피를 퍼 붓고 스타일 꾸기게 개지랄이야?
내가 세상에 남자가 한둘이냐? 이 씨~세이야~!!
김유신과 천관녀는 이렇게 볼썽사나운 이별을 했습니다
말(馬)이 죽어 영혼이 하늘 나라로 가며 김유신에게 이렇게 씨부렸겠지요
"이 쎄파라~ 니가 매일 가던 곳으로 간것 뿐인데~~ 왜 나한테 화풀이를 하냐? XX씨끼"
내가 잘못한게 뭐가 있냐? 어제는 딴대로 간다고 지랄하더니...
아이구~ 내 목아지 어디갔어? 내 목아지 내놔~~개쎄이"
[정맥 갈림길 삼거리] 9시 44분
단석산 정상에서 다시 "땅고개-단석산-OK그린연수원 갈림길"에 되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이 근처에서 약45분간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단석산"에서 "OK그린"까지 구글어스]
6. 단석산 → OK그린연수원 [1시간37분-식사시간 45분 포함]
단석산(9시30분 출발)-14분-당고개-정맥 갈림길(9시44분)-아침식사(10시 30분까지)
-- OK그린연수원(11시7분)
['단석산'에서 'OK그린' 가는 길]
말의 목을 베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했다는 대장부 기질을 묘사하기위해
김부식이는 다소 과장해서 삼국사기를 썼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천관녀"와 헤어진 이유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다른 이유를 대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천관녀"는 기생이 아니라 왕실에서 제사를 관장하는 궁중무당같은 여자이라 왕궁에 자주 드나 들어
김유신과 뗄래야 뗄수없는 관계에 있던 "김춘추"와 서로 "짝사랑"을 했던 삼각관계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김춘추는 후에 무열왕이 되며 삼국통일을 이루는
신라 최고의 왕이 되는 진골계급이어서, 패망한 금관가야의 김유신이 김춘추에게
잘 보이기 위해 "천관녀"를 양보 할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김유신과 천관녀와의 관계를 잘 아는 김유신의 어머니가 김춘추를 의식해서
천관녀를 만나지 못하게했다는 설도 유력하다고 생각 됩니다
男子란 묘한 동물이라 무당 같은 기괴하게 신들린 듯한 여자들로부터
더욱 쌕씨함을 느낀다네요.
그런데 저는 아님니다~~ 저는 마눌만 좋아합니다ㅎㅎ
['OK그린 연수원'] 11시 7분
임도를 따라 가다 보니 갑자기 멋진 건물이 하나 나옵니다.
하지만 이 건물은 겉만 번지르 할뿐 부도 난 회사의 연수원이었습니다.
8~90년대에 규모가 상당했던 (주)옥방 이라고 하는 섬유회사의 연수원이었지요
어떻게 아느냐고요? ㅎㅎ 제가 80년대 중반에 몇년간 이 회사의 해외본부장을 한적이 있거던요
그 당시에는 사장이었던 박종옥씨가 주말이면 이곳에 와서 홀로 트랙트를 몰며 개간을
하던 중이었는데 서울사무소에 근무하던 저는 밤중에 이곳에 한번 온적이 있는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몰락으로 이 회사도 부도 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아마도 채권단 소유로 넘어 갔겠지요
이런식으로 여기를 다시 올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OK그린 연수원'에서 바라보는 '백운산'.'고헌산']
이곳에 서니 다시 멋진 경관이 조망됩니다.
더 설명할 필요 없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습니다
"호미지맥 虎尾枝脈", "백운산", "고헌산", "영남알프스".......
낙동정맥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관입니다
[뒤 돌아 본 'OK그린 연수원']
세월이 흘러 삼국통일을 이룩한 후 김유신의 나이가 환갑을 넘을 쯤
서라벌의 어느 길모퉁이에서 김유신이 "그 때 그 여인"을 만납니다
"천관녀"임을 알아 본 김유신이 달려가 아는 척 합니다
다음은 제가 그냥 날라리로 꾸며 본 그들의 대화입니다
김유신 : 천관녀!!~~ 천관녀 맞지요?
천관녀 : (눈을 아래로 깔며 약간 튕기며) ......
김유신 : 이게 얼마만입니까? 정말 오랜만이군요
천관녀 : .......
김유신 : 그 때는 정말 내가 잘못했소... 엄마가 하도 야단을 쳐서....
천관녀 : .......
김유신 : 용서해 주구려~ 그리고 이젠 같이 살자구요~
천관녀 : (아주 작은 목소리로)이제 모두 지나간 추억일뿐입니다.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옥황상제께서 저를 내려 보내며
삼국을 통일 시킬 인물을 찾아내라는 명을 내렸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군을 선택하여 삼국을 통일 시키게 하였으니
저의 임무는 이제 끝난것입니다
김유신 : 무신 말씀을.... 이제 삼국통일도 했으니 나랑 같이 백년해로하자꾸여~
나 이젠 돈도 무지하게 많어~ 사 달라는거 모두 사 줄께~ 집도 새로 짓고
(김유신은 진짜로 천관녀를 기리는 "천관사"라는 절을 지었습니다.)
(현재 경주에 복원하고 있습니다)
천관녀 :(쭝얼쭝얼 ~주문을 외우니 하늘에서 날개 달린 백마가 내려 옵니다.백마를 타고 날라 가며)
안뇽~~ 빠이 빠이 잘 먹고 잘살아라~
김유신 : (자신의 말을 몰고 백마를 빠지게 따라 갑니다)
같이 가!!~~ 왜? 내가 이젠 늙었다고 싫은거야? 이 할망구야!!~~
너도 이젠 할망구야!!~~ 아직도 니가 2x8청춘인줄 아냐? 가지마!!~~
김유신이 한없이 따라 갔는데 어느 산에서 갑자기 천관녀가 탄 백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산이 바로 "天冠山"이라는 것입니다
위에 이야기는 제가 각색을 해서 약간 재미있게 꾸민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내용과 비슷할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확실한 것은 천관산과 천관녀의 한자 표기가 서로 다른
天冠山과 天官女이라 같은 천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天冠은 면류관이라는 뜻이고, 天官은 어떤 관직을 뜻하는데 궁중무당이 아니었는지 한답니다
재미있었나요? ㅎㅎ
[뒤 돌아 본 'OK그린 연수원']
'메아리 농장'으로 넘어가는 봉우리로 올라 서며 뒤돌아 보니
몰락한 (주)옥방의 부귀 영화가 한눈에 들어 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천국을 만들다 뇌졸증으로 간 박종옥사장이 눈에 선하군요
욕심이 너무 많았던게 아닌지....대구상고 야간을 2학년까지 밖에 못 다닌 한을 품고
대구 서문시장에서부터 이를 악물고 돈을 벌어 우리나라 굴지의 섬유회사를 만들고
인재들을 많이 기용하여 거느리며 巨富가 되기도 했었는데.....
['OK그린"에서 "산내고원 관광 주택단지 개발지"까지 구글어스]
7. OK그린 → 산내고원 관광주택 개발단지 [2시간3분]
OK그린(11시7분) -1시간16분- 메아리농장(12시23분)
-47분- 산내고원 관광주택 개발지(1시10분)
[512m봉-무선통신탑] ['메아리 농장']
OK그린을 뒤로 하고 둔덕을 하나 넘어 갑니다.
둔덕엔 이동통신중계탑이 있습니다.
임도를 따라 가면 조각공원도 있으며 곧 바로 '메아리농장'이 나옵니다
[메아리 농장] 12시 22분
중간에서 약15분 정도 누워 휴식을 취하고 조금 오니 '메아리 농장'이었습니다
[메아리 농장] 12시 40분
'메아리 농장'에서 또다시 휴식을 조금 취하고 출발합니다.
★'메아리 농장' 바로 아래에 음식점이 하나 있는데, 이 음식점은 토종닭을 방목하여
키우며 직접 잡아서 제공 한다고 해서 뒷풀이 장소로 이 집을 선택하고
예약을 했습니다. 산행이 끝난후 버스로 이곳으로 돌아와 백숙으로 배를 불렸습니다.
[605m봉 오르는 길]
'메아리 농장'에서 임도를 따라 남서쪽 방향으로 올라 갑니다.
에고~~ 힘들어~~
[605m봉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 본 "斷石山"]
뒤 돌아 보니 "단석산"과 "OK그린"과 "메아리 농장"이 그림처럼 나열해 있습니다.
낙동정맥 마루금입니다.
[605m봉 오르는 길]
다시 '605m봉'을 치고 올라 갑니다.
[산내고원 관광 주택단지 개발지] 1시 10분
'605m봉'을 넘으면 바로 이런 곳이 나오는데
지도에는 "청우농산 관광단지 개발지구"라고 표기되 있으며....
[산내고원 관광 주택단지 개발지]
이곳 안내판에는 "산내고원 관광 주택단지 개발지"라고 해놨습니다.
우측 도로를 따라 올라 갑니다
[산내고원 관광 주택단지 개발지 "쉼터"]
주택개발단지 도로를 따라 가면 정맥 마루금에는 멋진 쉼터를 지어놨습니다.
대신 자연은 많이 홰손되고 있습니다.
["산내고원 관광 주택개발단지"에서 "소호고개"까지 구글어스]
8. 산내고원 주택개발단지(1시 10분) → 소호고개(3시30분) [2시간 20분]
산내고원 주택개발단지(1시10분)-2시간6분-700.1m봉(3시16분)-14분-소호고개(3시30분)
'소호고개"에서 "전원주택단지"까지 탈출로를 잘 보아 두시기 바람니다.
"전원주택단지"까지 대형버스는 진입 할수 없고, 25인승 버스 정도까지 갈수 있습니다
[535.1m봉 가는 길]
조그만 봉우리를 하나 힘들게 넘습니다.
지금부터 "산경표 山經表"에 나와 있는 "낙동정맥 洛東正脈"의
산 이름들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낙동정맥 洛東正脈"에는 산22개, 령1개, 치1개, 현6개, 봉1개, 대1개로 표기해 놨습니다
분기점은 백두대간의 "태백산 太白山"이라고 포괄적으로 표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기점을 백두대간상의 "천의봉(매봉산 1,303m)" 동쪽 능선상에 있는
"1,145m봉"에서 시작하여 "피재"를 출발 선상에 놓고 있습니다.
[산내면 내일리~내남면 박달리를 잇는 임도]
'535.1m라는 조그만 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임도'가 하나 나옵니다.
"山經表"에는 낙동정맥을 우리가 요즘 쓰는 "마루금"으로 표기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산줄기"가 "正脈"이기 때문에 '산 전체'를 포괄적으로 표기하였기 때문입니다
[산내면 내일리~내남면 박달리를 잇는 임도 안내판]
이 임도는 산내면 내일리와 내남면 박달리를 잇는 임도인데 많이 이용해 달라는군요
"山經表"에 나와 있는 "洛東正脈의 산 이름"
太白山
유치(楡峙)
마읍산(麻邑山)
말흔산(末欣山)
백병산(白屛山) ★현재 지명과 같음
고초산(高草山)
검마산(劒磨山)★현재 지명과 같음
백령산(白嶺山) ★ "백암산"으로 추정
덕현(德峴)
서읍령(西揖嶺)
용두산(龍頭山)
임물현(林勿峴)
죽현(竹峴)
주방산(周方山) ★현재 周王山으로 표기
어화산(於火山)
보현산(普賢山) ★현재 지명과 같으나 현재 낙동정맥으로 인정하지 않음
응봉(鷹峯)
육현(六峴)
성현(成峴)
무학산(無鶴山)
주사산(朱砂山)
사룡산(四龍山) ★현재 지명과 같음
지화산(只火山)
단석산(斷石山) ★현재 지명과 같음
운문산(雲門山) ★현재 지명과 같으나 현재 낙동정맥으로 인정하지 않음-백운산으로 추정
가지산(迦智山) ★현재 지명과 같으나 한자 표기는 틀림, 현재는 加智山
천화현(穿火峴)
취서산(鷲栖山) ★현재 지명과 같음
원적산(圓寂山) ★현재 지명과 같음
금정산(金井山) ★현재 지명과 같음
화지산(花池山)
엄광산(嚴光山)
몰운대(沒雲臺) ★현재 지명과 같음
"山經表"를 정말 우리의 지침서로 인정 할만 합니까?
너무 단순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공식 국가기관인 "국토지리원"은 山經表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알고 어디가서 "山經表"이야기를 합시다.
[700m봉 오르는 등로]
이제부터 마지막 있는 힘을 쏟아부어 "700m봉"과 "700.1m봉"을 넘어야 합니다.
체력이 많이 떨어진 후라 '단석산' 오르는 것 보다 더 힘듭니다.
[동거동락]
두개의 낡은 헬기장을 지나면 "절묘한 나무"가 있는 쉼터에 도착합니다.
이 나무들 어떻게 보이십니까?
"동거동락"입니까? 아니면 "시기 질투 홰방"입니까?
생각은 자유~
[700.1m봉 가는 길]
'700m봉'에서 '700.1m봉'까지는 고원과 같은 평평한 길이었습니다.
[700.1m봉 정상 삼각점] 3시 16분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700.1m봉"에 올랐습니다.
삼각점 하나가 덩그러이 있을 뿐 볼것이 없습니다.
[소호고개] 3시 30분
"700.1m봉"에서 14분 정도 내리막을 내려오면 "소호고개"가 나옵니다.
반갑습니다.
"소호고개"는 "태종고개"라고도 하더군요
이곳부터 남쪽으로는 "울산광역시"입니다.
경북에서 경남으로 접어 드는 것입니다.
[소호고개에서 '전원주택단지로 가는 길] ★길 주의★
"소호고개"에서 오늘 마루금 산행은 끝내고 버스를 타기 위해 도로로 하산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산길을 조심해야 합니다.
느낌으로는 임도를 따라 남서쪽으로 가야 할것처럼 보이지만,
임도는 "소호령'으로 가는 길이고, "전원주택단지"로 가는 길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바로 옆 계곡 우측으로 빠져야 합니다.
[전원주택]
계곡을 약15분 정도 따라 내려 오면 전원주택이 앞을 가로 막습니다
그러면 이 집 앞마당을 가로질러 지나 갑니다.
[전원주택 단지] 3시 45분
첫번째 주택 마당을 나오면 주택단지 골목이 나오고,
골목을 500m정도 다시 내려 갑니다.
총거리 : 도상거리 31km
실거리 : 약 37km
총산행시간 : 11시간 30분
[뒷풀이 음식점]
뒷풀이를 위해 버스를 타고 "메아리 농장"이 있었던 "OK그린"입구로 다시 왔습니다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이곳에서는 방목하는 토종닭들을 잡아 준다고 해서 미리 연락을 하고 온것입니다.
[뒷풀이]
토종닭 백숙에 한잔하며 오랜만에 긴 산행의 여독을 풀었습니다
오늘의 명언 :
"혼자 가면 빨리 갈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수있다"
 
  파란문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