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둘레길』
  『버섯공원-비석공원-송파공원-오금공원』 



  ['가락동 구글어스']             
  
  이번엔"송파 松坡=소나무 고개"가 실제 어디인지 찾아 보고
  '송파구 가락동-오금동'의 근린공원 몇군데를 다녀 보려 합니다.


  ['송파역 1번출입구']                  1:10
  
  2021년 8월 30일 (월)  구름               
  오늘은 <송파역 1번출입구>에서 출발합니다.


  ['송파대로' 잠실방향]
  
  <송파역 1번출입구>에서 <잠실> 방향으로 <롯데월드타워>를 바라 보며 5분 정도 진행하면...



  ['송파사거리']                     1:15
  
  "송파사거리"를 만납니다.
  이 사거리에서 우측 <방이동 방향 모퉁이>를 보면...


  ['송파유래비']

  ['송파유래비건립취지']
  
  "송파유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한양>과 <삼남지방>을 연결하던 <한강>의 주요 나룻터 중에 하나인 "송파진 松坡津=송파나루"를 
  이용하기 위해 넘어야하는 나즈막한 고개가 하나  이 근처에 있었는데, 
  고개에 소나무가 많아 "송파 松坡=소나무고개"라고 한데서 지명이 유래한다고...
  또한 <송파나루> 근처에 살던 270여 가구가 비만 많이 내리면 잠겨 살수 없어 이곳 <소나무고개>로 
  이주했는데, 지대가 다소 높은 고갯길 주변이다 보니 비가 내려도 걱정이 없어 너무 살기 좋았다고 
  <송파> 주변을 특히 "가락골 可樂里"라 하였고 <송파=소나무고개>는 <可樂洞>으로 대변되었답니다.


  ['가락시장사거리']                     1:23
  
  <소나무고개=송파>를 둘러 보고 뒤돌아 다시 <가락시장 사거리>로 가면 우측에 <가락시장>이 있고
  좌측 건너편엔 "버섯분수공원"이 있습니다.


  ['버섯분수공원']                    1:24~1:27

  "버섯분수공원"
  독특한 버섯모양의 분수대가 눈길을 끌어 구경거리라고 들려 보았습니다.



  ['버섯분수']
  
  분수가 가동되면 더 좋았을 텐데....



  ['버섯분수공원']                        
  
  버섯분수 뒤에는 제법 너른 녹지가 조성되 있었고, 점심식사 후 산책하는 분들도 보였습니다.


  ['송파대로']                        1:28
  
  계속해서 <송파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진행하면


  ['가락시장몰']
  
  "가라시장몰"을 만나며


  ['비석거리공원' 앞]                1:33
  
  <가락시장몰> 건너편에 관심 가지지 않으면 무심결에 지나치는 <비석거리공원>이 있습니다.


  ['비석거리공원' 입구]                   1:33~1:39

  ['안내석']                      
  
  "비석거리공원" 입구에 도착하여 안내석을 살펴보고 올라 가면...


  ['비석거리공원']
  
  몇백평 되지 않을 조그마한 공원이었는데 가운데에 느티나무가 한그루 우뚝 서 있고
  비석 11개가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습니다.


  [비석] 

  [공원 안내문]

  ['비석 안내문']
  
  11개 비석은 모두 <선정비 善政碑>로 이 지역을 다녀간 지방 관리들..즉 요즘 관직으로 하면 
  市長 군수 쯤 되는 관리들 중에 선정을 베푼 관리들의 공적을 칭송하는 비석이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비석거리공원' 출구]                 1:39
  
  공원 입구에는 <가락시장.가락시장역 버스정류장>이 있으니 찾기 쉽습니다.
  지나다 시간 나면 한번쯤 들려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가락시장역3번출입구']                 1:41

  ['가락시장역 사거리']                     1:44
  .
  <가락시장역 사거리>로 내려 가면 
  <서울공항-성남군비행장>에 이착륙하는 군용기들이 수시로 굉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건너편엔 비싼 금싸라기 땅에 엄청난 면적을 차지하며 항상 문이 닫혀있고 
  지도엔 지명 표기도 없는 곳이 있는데, 평상시 뭐하는 곳인지 궁금했습니다.
  사거리를 건너 정문 앞으로 가면....
  

  ['중앙전파관리소']
  
  정문으로 가 보니 <중앙전파관리소>라고 하며 정문은 굳게 닫혀있고....
  대략 궁금증은 풀렸습니다...ㅎㅎ 짐작하시겠죠? 국가정보기관....
 

  ['중대로']

  ['중앙전파관리소']
  
  <가락시장역 사거리>에서 좌회전 하여 <중앙전파관리소> 담장을 따라 <경찰병원> 방향으로 갑니다.
  <중앙전파관리소>는 매우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도심 한가운데에 있군요.
  앞으로 아파트로 탈바꿈 하면 엄청 인기 있을듯....ㅎ


  ['경찰병원사거리']                     1:51

  ['경찰병원']
  
  이어서 "국립경찰병원"을 만나는데, 뒤에 보이는 <가락근린공원>을 둘러 보고 갑니다.


  ['가락근린공원' 입구]                    1:56
  
  <가락근린공원>으로 올라 가는데 제법 높은 동산이더군요.
  올라 가서 뒤돌아 보면....


  [뒤돌아 본 입구]                      1:58
  
  <가락근린공원> 정상에 올라 뒤돌아 보면 높이를 가늠할수 있고
  여기서 우측을 바라보면...


  ['경찰병원' 조망]
  
  <경찰병원>이 전체적으로 조망되고


  ['정자']
  
  정상부에 있는 정자와 운동시설이 주민들의 건강생활을 돕고


  [공원길]

  ['배드민튼장' 조망] 

  [공원길]                     2:06
  
  <가락근린공원>은 많은 운동시설과 산책로가 긴 매우 너른 공원이었습니다.


  ['옛 성동구치소']                       2:11
  
  <가락근린공원>을 나와 동쪽 <오금역> 방향으로 조금 가면, 우측에 "옛 성동구치소"가 있습니다.
  현대식으로 지은 <동부구치소>로 제소자들을 이전 하고 비어 있던 구치소를 철거하고 있었습니다.


  ['옛 성동구치소' 담장]

  [철거공사중']
  
  <옛 성동구치소> 담장을 따라 <오금역>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구치소의 크기를 짐작 할수 있습니다.
  주변 아파트엔 무수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그 내용은 대부분 <오세훈은 사퇴하라. 구치소를 공원으로 개발하라>등등 이었습니다.
  송파주민 대다수 자기들이 뽑은 시장인데도 이젠 자기들 이익에 배치된다고 사퇴하라는 뜻이겠죠?
  기존 아파트 주인들은 자기 집 주변에 엄청 큰 공원이 들어 서면 집값이 뛰겠지요? ㅎㅎ 
  서울시 입장에선 이런 부지를 이용해 아파트를 지어 주거난을 줄일려고 할테고...


  ['오금역 사거리']                    2:16
  
  <옛 성동구치소>를 지나면 "오금역 사거리"에 도착합니다.
  건너편 <오금근린공원> 입구에 폭포가 보입니다.


  ['오금공원 폭포']                      2:18
  
  오늘은 가는 곳 마다 폭포는 가동되지 않고 있군요.
  폭포 위 정자로 올라 갑니다.


  ['오금역2번출입구']

  ['오금근린공원']
  
  <오금역2번출입구> 옆에 공원 입구가 있습니다
  잘 꾸면진 공원길을 잠시 올라 가면...


  ['오금공원 폭포' 위 정자]
  
  <오금폭포> 위 정자를 조망하고


  [공원길]

  [이정표]                       2:22
  
  공원길을 진행하는데 이정표가 보입니다.
  <중앙광장>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배드민튼장']

  [지압길]
  
  주민들을 위한 운동시설들이 여기도 많이 있는데
  특히 지압길이 매우 길었습니다. 그런데 지압을 위한 말뚝과 돌들이 너무 커 지압은 커녕
  신발을 신고도 걷기 어려웠습니다. 거의 장애물 수준이더군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이용한 흔적은 전혀 없더군요. 전시행정의 표본 같았습니다.


  ['류희림 부부 합장묘']                  2:28

  ['류복룡 부부 묘']

  [안내문]
  
  지압길을 지나면 "류희림-류복룡 묘"가 이 공원의 주인인듯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신선경 묘' 가는 길]
  
  <류희림 묘>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신선경과 류인호 묘"를 만납니다.


  ['신선경' '류인호' 묘]                  2:32

  [안내문]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거창 신씨>는 중국 송나라의 "신수 慎修"가 시조인데 고려에 출장 왔다가 주저 앉은 중국인이죠.
  사실 <거창>하고는 원래 연고가 전혀 없고 후손이 거창에 내려가 은신하며 살아서 <거창신씨>가
  되었는데, 이들은 분명 중국인 인데 고려에 정착하고는 조선시대까지 과거에 150여명의 급제자를
  배출하여 조선 초기 조선의 정치권력을 장악한 집안이죠.
  대표적 인물이 <단경왕후>의 아버지인 <신수근>이죠. <중종>의 장인 어른이었지요.
  <연산군>의 장인이 <신승선>으로 딸이 <연산군>의 왕비가 된 <폐비 거창신씨>이고 <신수근>의 여동생.


  [내림길]

  [공원입구]

  [공원안내도'와 현위치]                     2:37
  
  묘지에서 내려 가면 <오금근린공원>의 <중앙공원>을 만납니다.


  ['오금동 유래비']                      2:39

  [안내문]
  
  <송파도서관> 방향으로 산책로를 잠시 진행하면 "오금동 유래비"를 만나는데
  <송파둘레길>을 돌며 여러번 언급한 내용입니다. 한번 더 언급하면...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도망가는데 경호원들까지 대부분 도망가서 
  직접 걸어 이 지역을 통과하는데 평시 운동 부족인 <인조>는 "오금이 져려" 이 근처에서 주저 앉았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걷지도 못하는 <인조>를 비아냥 거렸답니다. "오금이 저려 걷지도 못하는 쬬다~~"라고..
  <오금동>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는 설화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답니다.
  현재는 <오동나무 梧>와 <가야금 琴>을 사용하고 있지만..


  [공원]
  
  공원 산책로를 거니는데 이 공원은 매우 큰 공원이었습니다.


  [내림길]

  ['송파도서관']
  
  <송파도서관>으로 내려 가면


  ['송파도서관']                     2:44
  
  "송파도서관"을 만나며 답사를 마침니다.
   이 도서관 앞에는


  ['인조'와 '서흔남' 동상]                     2:45


  [안내문]
  
  "인조와 서흔남 동상"이 있습니다.
  <인조14년 (병자년) 1636년 12월 14일>
  그날의 [인조실록]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日晩, 大駕將發, 而太僕人盡散, 內乘李星男, 牽御馬而來. 駕到崇禮門, 聞賊兵已到良鐵坪,
  上御南大門樓, 令申景禛結陣于門外. 崔鳴吉請赴虜陣, 以觀變, 遂遣鳴吉, 請成於虜, 以緩其師.
  上還從水溝門, 出向南漢山城。 是時, 變出倉卒, 侍臣或有步從者, 城中人父子、兄弟、
  夫婦相失, 哭聲震天. 初更後, 大駕到南漢山城.
  해가 저물 무렵에 대가(大駕)가 출발하려 할 때 태복인(太僕人)이 다 흩어졌는데,
  내승(內乘) 이성남(李星男)이 어마(御馬)를 끌고 왔다. 대가가 숭례문(崇禮門)에 도착했을 때
  적이 이미 양철평(良鐵坪)까지 왔다는 소식을 접했으므로, 왕이 남대문 루(樓)에 올라가
  신경진(申景禛)에게 문 밖에 진을 치도록 명하였다. 최명길(崔鳴吉)이 노진(虜陣)으로 가서
  변동하는 사태를 살피겠다고 청하니, 드디어 명길을 보내어 오랑캐에게 강화를 청하면서
  그들의 진격을 늦추게 하도록 하였다.
  왕이 돌아와 수구문(水溝門)을 통해 남한 산성(南漢山城)으로 향했다.
  이때 변란이 창졸 간에 일어났으므로 시신(侍臣) 중에는 간혹 도보로 따르는 자도 있었으며,
  성 안 백성은 부자·형제·부부가 서로 흩어져 그들의 통곡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다.
  초경이 지나서 대가가 남한 산성에 도착하였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항복하러 내려 간길은 [서문]에서 [삼전도]로 갔다고 실록에 분명히 나와
  있지만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인조]가 몽진을 하며 [남한산성]으로 올라 갈때엔 어느 길을 이용해 
  [남한산성]으로 올라 갔는지에 대해선 실록에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해가 저물 때 <한양성>의 <수구문>인 <광희문>을 출발하여 '초경 (밤 9시경)'이 지나서야 [남한산성]에 
  도착했다고만 나와 있습니다.
  [남한산성]의 정문이라 할수 있는 [남문]을 통해 올라 갔다는 설도 있습니다만....
  <인조>가 눈 내리는 가파른 <남한산성>으로 올라 갈때 
  대부분 아시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거의 정설화 되다시피 전해 내려 옵니다.
  1636년12월 14일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황급히 피난을 갔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인조실록]에서 보는 바와 같습니다 
  사태가 다급해지자 '인조'를 모시던 신하들은 하나 둘 흩어져 도망가 버리고, 
  '인조'는 얼마 남지 않은 신하들과 함께 송파강을 겨우 건널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강은 건넜으나 날은 어두워지고 설상가상으로 눈까지 흩날려 '인조' 일행은 남한산성까지
  올라 갈 일이 아득했답니다. 인조는 신하들의 등에 번갈아 업혔으나 지친 신하들은 얼마 못 가서
  주저 앉기를 거듭했다고 합니다. 살찐 비만의 [인조]를 업고 간다는 것은 무지 힘들었겠죠?
  그래서 업혔다 걷다가를 반복했다는데, 현재의 [송파구 오금동] 쯤을 지날 때에는 [인조]가 다리가 아파
  주저 앉았는데, 후세의 백성들은 "살찐 임금 인조는 오금이 져려 체면이고 뭐고 주저 앉았다"고
  비아냥거리며, 그통에 이 동네 지명이 [오금동]으로 불리워진 사연 중 하나라고 놀려 댓답니다.
  [오금동]은 [오동나무 梧]와 [가야금 琴]으로 오동나무가 많아 가야금을 많이 만드는 마을에서 
  지명이 유래하는데도....
  에구~~왕이나 신하나 모두 쪽팔리는 도망을 해서 백성들로부터 비아냥을 받은 븅신들~
  더구나 [남한산성]으로 올라 가는 산길은 험했고, 
  때마침 눈이 깊이 쌓여 걸어서 올라가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는건 당연지사... 
  그때 한 총각이 굽 높은 나막신을 신고 나무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고 하네요. 
  '인조'는 그 총각에게 "나를 좀 업어서 성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이에 그 총각은 나막신을 거꾸로 돌려 신더니, <인조>를 업어서 성까지 단숨에 모시고 올라 갔답니다.

  윗 사진에서 보는 <인조와 서흔남 동상>이 그날의 그 상황을 조금 알려 주고 있습니다.
  바로 나무꾼 "서흔남"이 <인조>를 업고 올라 가려는 순간인거죠.
  [남한산성]에 무사히 도착한 인조는 산성으로 들어 갈 때, 
  그 총각이 불편하게 나막신을 거꾸로 돌려 신은 것이 못내 궁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왜 나막신을 거꾸로 신었느냐?"고 물었고. 
  이에 총각은 "임금님은 피난하는 것 같은데, 만약 신을 바로 신고 오르게 되면 눈 위에 발자국이 나서
  적군에게 들키게 되는 위험에 처하게 될까봐, 나막신을 거꾸로 신었다."고 말했답니다. 
  인조는 그 총각이 너무나 신통하고 고마워서, 무릎을 탁 치면서  "너 나보다 낫다"
  "너의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라. 무엇이던 들어 주겠다"고 하였답니다. 
  이에 총각은 <인조>가 입고 있던 곤룡포(袞龍袍)가 너무 좋아 보여서, 
  "입고 있는 옷을 벗어 달라."고 하였답니다. 
  '인조'는 두말없이 흔쾌히 자신이 입고 있던 곤룡포를 그 총각에게 벗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조]를 업고 무사히 산성 안으로 피신시킨 총각이 바로 '서흔남'이라는 천민 나뭇꾼이었는데,
  <인조>는 보답으로 그에게 '종2품' '嘉義大夫同知中樞府事"의 지위를 내리며
  생명의 은인으로 대우했답니다.

             
          [남한산성 관리 사무소와 역사기념관 앞 주차장 가에 있는 '서흔남 묘비']
 
  ['서흔남 묘비']                                        ['인조'가 내린 '서흔남 공적비']

     산성안에 들어 가서도 서흔남은 여러 활약을 펼쳤다고 합니다. 
     청나라의 군사가 철통같이 포위하여 산성 안과 밖의 교통이 끊어지자, 
     남한산성 주변 지리를 손바닥 보듯 잘 알고 있는 그는 거지 행세를 하거나 적군으로 변장하기도 하고, 
     심지어 미친 사람처럼 행세를 하면서 적진을 속여 통과하여 
     삼남지방과 강원도 등지로 가서 위급한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였답니다. 
     이렇게 서흔남은 전국 각지의 근왕병 진영에 뜻을 전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수삼 차 왕래하여 적의 동태를 보고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고합니다. 
     뿐만 아니라 청과의 전투에도 참여하여 청군 3∼4명을 죽이는 공을 세웠다고도 하네요.
     [서흔남]은 죽을 때 자기 관 위에 [인조]로 부터 받은 '곤룡포(袞龍袍)'를 올려 달라고 하여
     '곤룡포(袞龍袍)'를 덮어 쓰고 죽은 우리나라 유일의 천민이었답니다.
     [인조실록]에도 밀사로 [서흔남]을 내 보냈다는 기록이 실제로 나옵니다.
     1637년 1월7일자에는 
     ○城中居徐欣男及僧人斗淸, 應募出去, 持都元帥金自點、黃海兵使李碩達、全羅監司李時昉狀啓而來。
    "서흔남과 승려 두청이 도원수 김자점 등의 장계를 가지고 오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하찮은 천민 임에도 불구하고 인조는 서흔남에게 
     "종2품의 가의대부(嘉義大夫)"라는 파격적인 품계를 내렸으며 그 공적비가 바로 위 사진입니다.
     이것은 野史가 아니고 正史입니다


  [도보여행 실트랙]
  
  오늘 걸은 거리는 5.7km였으며, 1시간 3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송파둘레길』
      『성내천길-장지천길』 


  ['송파둘레길 종합안내도']          ★ 사진 클릭하면 무지 확대 됨 ★         
  "송파둘레길"은
  <송파구> 외곽을 따라 흐르는 4개 하천(성내천, 장지천, 탄천, 한강)을 하나로 연결하는 길로 
  도시와 사람, 하천이 어우러진 순환형 수변관광코스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성내천길 6Km, 1시간 30분 코스
  장지천길 4.4Km, 1시간 10분 코스
  탄천길   7.4Km, 2시간 코스
  한강길   3.2Km, 50분 코스로서 총 21km  라고 하는군요.


  ['성내천길 안내도']           ★ 사진 클릭하면 무지 확대 됨 ★       
  
  오늘은 <송파둘레길> 4개 코스 중에 "성내천길-장지천길"을 진행합니다.
  <성내천길>은 <성내천>이 <한강>과 합수하는 지점에서 <성내천>이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와
  만나는 곳인 <성내4교>까지 이며 거리는 6k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성내천길' 개념도]                        
  
  요약 정리한 개념도도 미리 숙지하고 가면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수 있습니다.


  ['잠실나루역' '잠실한강공원 출입구']                12:25
  
  2021년 8월 22일 (일)  구름               
  지난번 <송파둘레길-한강길>을 종료했던 <잠실나루역>에서 출발합니다.
  <잠실나루역> 2층에 <잠실철교>를 이용하여 <잠실한강공원>으로 나가는 출입문이 있더군요.
  이 문으로 나가면...


  ['잠실나루역' '잠실철교 통로'']                12:26
  
  <잠실철교>로 가는 통로가 있고


  ['잠실철교' '한강공원 출입구']               12:29
  
  이어서 <88올림픽대로>를 건너 <잠실한강공원>으로 내려 가는 길이 <잠실철교> 위에서 이어집니다.


  ['잠실공원 한강길']                         
  
  강변 자전거 도로로 내려가서 동쪽으로 진행하면...


  ['잠실철교' 밑]                       12:33
  
  <성내천>이 <한강>과 합수하는 곳 위로 <잠실철교>가 지나고 있으며


  ['성내천길 갈림길']   

  ['성내천길' 출발지점]                     12:35

  이어서 "송파둘레길-성내천길"의 출발지를 알리는 안내판을 만납니다.
  지금부터 <성내천둑방길>을 따라 <송파둘레길-성내천길>이 이어집니다.
  6분 정도 진행하면...


  ['아산병원' 샛길]                   12:41
  
  <아산병원>과 <잠실나루역>을 직접 연결해 주는 샛길을 만나는데
  여기서 <잠실나루역>과 <아산병원>을 연결하는 길을 알아 보면...


  ['잠실나루역' 조망]                        
  
  먼저 서쪽에는 <잠실나루역>이 <성내천> 건너편에 보이고


  ['아산병원' 조망]    
  
  동쪽에는 <아산병원>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매우 가깝죠?
  <아산병원>을 갈땐 <잠실나루역>을 이용하면 간단하겠군요.
  이 길을 몰랐으니 <잠실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빙 돌아 <아산병원>을 다녔으니...


  ['성내천 둑방길']
  
  둑의 높이가 엄청난 <성내천둑방길>을 진행합니다.
  홍수가 났을 때 이 둑이 만약 무너지면 <잠실>은 완전히 잠기는거죠.
  둑방길을 10여분 진행하면...


  ['몽촌토성' 앞 '올림픽로']                   12:50
  
  <잠실로타리>에서 <천호동>으로 연결되는 <올림픽로>를 만나는데
  다리 밑으로 도로를 통과하면...


  ['현위치']                      
  
  <현위치>를 알리는 안내도가 있고


  ['송파여성축구장']                       12:54
  
  <송파여성축구장>과 <장애인축구장>이 고수부지에 있습니다.
  <성내천> 우측에는 "몽촌토성"이 시작됩니다.


  ['성내천둑방길'] 

  ['포토존']                        1:01
  
  둑방길을 진행하면 포토존도 있는데 <몽촌토성>과 <롯데월드>를 배경으로 찰깍~ 할수 있군요.


  ['몽촌역사관' 입구]                    1:01

  [둘레길 쉼터]
  
  이어서 <몽촌역사관> 출입구를 지나는데 입구에 둘레길 쉼터가 있습니다.


  ['몽촌토성' 조망]                   
  
  건너편 <몽촌토성>과 <성내천>을 보면서 6분여 더 진행하면...
  

  ['올림픽공원 북2문' 앞 쉼터]                      1:07  
  
  <몽촌토성>의 남쪽엔 <88올림픽경기장>들이 많이 있죠.
  여기도 쉼터가 조성되 있고
 

  ['청룡2교']                 1:09
  
  <올림픽공원 북2문>으로 연결되는 <청룡2교>라는 다리 밑을 지나면


  ['벼농사 체험장']                        1:11
  
  "벼농사 체험장"이 도심 속에 구경거리로 만들어져 있으며


  ['얕은다리']                        1:14
  
  이어서 <올림픽체조경기장>으로 연결되는 <얕은다리>라는 다리를 건너
  건너편 수변길로 진행합니다.


  ['한국체대']
  
  <한국체고> <한국체대>를 바라보며 10여분 더 진행하면...


  ['오륜교']                         1:23
  
  <지하철 5호선-9호선>이 다니는 <올림픽공원역>이 있는 곳에 도착하며


  ['물소리광장']                        1:24
  
  이어서 예전 <88올림픽> 때에 선수촌 입구였던 "물소리광장"에 도착합니다.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

  ['장독대']                 
  
  <물소리광장>을 지나면 <올림픽선수촌아파트촌> 사이를 지나는데
  장독대도 구경거리로 만들어 놨더군요.


  ['오금1교']                       1:31
  
  이어서 <오금1교>를 만나는데 우측 직진성 길로 진행합니다.


  ['남한산성' 조망]                      1:32
  
  <오금1교>를 지나면 치욕의 역사 현장인 <남한산성>이 성큼 다가 오며
  <병자호란>에 얽힌 갖가지 설화들이 동네 이름으로 남아 있는 <오금동> <방이동>등등이 다가 옵니다.


  ['논밭]                    
  
  <오금1교>를 지나면 논밭이 아직도 남아 있는 <송파구>를 지납니다.
  <서초구>에도 있더니 <송파구>에도 아직 미개발 농지가 남아 있군요.



  ['성내천보행터널']                    1:37
  
  이어서 "성내천보행터널"이라는 굴다리를 지나고



  ['수변공원']
  
  <오금동>의 "성내천 수변공원"이 이어집니다.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도망가는데 경호원들까지 대부분 도망가서 
  직접 걸어 이 지역을 통과하는데 평시 운동 부족인 <인조>는 "오금이 져려" 이 근처에서 주저 앉았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걷지도 못하는 <인조>를 비아냥 거렸답니다. "오금이 저려 걷지도 못하는 쬬다~~"라고..
  <오금동>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는 설화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답니다.
  반명네 <방이동>은 <막을 방 防>에에 <오랑캐 이 夷>로 <누루하찌>의 떼놈들을 막아 싸운 곳이라고...
  물론 현재는 동네 이름을 이쁘게 고쳤죠.
  <오금동>은 <오동나무 오 梧>와 <거문고 琴>으로 고치고, <방이동>은 <꽃다울 방 芳>에 <개나리꽃 이 荑>로



  ['물빛광장']                     1:47
  
  "물빛광장"이라는 쉼터도 만나고...
  콘서트도 가끔 열리는 수변공원이랍니다.


  ['이정표']                      
  
  "물빛광장"에 있는 이정표인데 <개롱역>이 가까이 있군요.
  "개롱 開籠"은 잠시후 상세히 알게 되지만 "<임경업장군>이 농을 열고 갑옷을 꺼내 입은 곳"이라고
  붙여진 지명이랍니다.


  ['은하수산책로' '성내천물놀이장']                       1:49
  
  계속해서 "은하수산책로"를 거닐면 



  ['성내4교' 앞]                        1:54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가 지나는 곳을 만나는데 "성내4교"가 있으며
  이곳이 <송파둘레길-성내천길>의 종점이 되며 <장지천길>이 시작되는 곳이었습니다.
    <송파둘레길>은 여기서 <성내천>을 버리고 우측 도로로 올라 갑니다.


  ['성내4교 사거리']                  1:55
  
  <성내4교사거리>로 올라 가서 대각선 건너편으로 건너가고


  ['오금로']        
  
  <수도권제1순환로> 교각 밑을 진행합니다.
  곳곳에 <송파둘레길> 안내와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7분여 진행하면....


  ['거여동사거리']                  2:02  
  
  <거여동사거리  巨餘洞>에 도착하는데 여기가지가 <송파둘레길-성내천길>이고
  건너편에 보이는 근린공원 부터는 <송파둘레길-장지천길>이 시작됩니다.


  ['거여동사거리 근린공원']                   
  
  <거여동사거리 근린공원> 에는 <장지천길 안내판>이 길손을 반기고


  ['장지천길 안내도']                        ★ 클릭하면 무지 확대됩니다 ★
  
  <장지천길 안내도>가 있습니다.


  ['장지천길' 개념도]                        
  
  요약 정리한 개념도도 미리 숙지하고 가면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수 있습니다


  ['거여동사거리 근린공원']                    2:04~2:31

  [현위치]
  
  세월도 빠릅니다. 8년전 <서울둘레길>을 할때 이곳을 통과 했는데...
  그때도 연락해 만났던 이곳 근처에 사는 친구를 다시 만나 약30분간 환담을 나누고...


  ['임경업장군 설화']

  ['마천동' 지명의 유래]

  ['천마산' 지명의 유래]

  ['임경업장군 출생설화']

  ['개롱' 설화]

  ['장사바위-장사약수터']
  
  이 지역이 "임경업장군"과 관련이 있다고 하네요.
  지명의 유래가 재미있습니다.
  이 지역과 <임경업장군>에 대해선 다음번 <송파 고개>를 탐방 할때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지근린공원' 오름길]  

  ['서울둘레길']


  ['장지근린공원']
  
  <장지근린공원>을 통과합니다.
  <서울둘레길>과 대체로 함께 가더군요.


  [갈림길]                     2:47
  
  <장지근린공원>을 통과하면서 길조심을 해야 할곳이 한군데 있는데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이정표가 있는데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으니 유의 해야 하겠고



  ['유아체험장']                       2:52
  
  조그만 동산으로 올라 가면 정상부에 유아체험장이 있으며


  ['장지근린공원']

  ['아이코리아' 앞 사거리]                 2:58
  
  <장지근린공원>을 벗어나면 <아이코리아>라는 장애인 학교 앞 사거리를 만나는데
  <서울외곽고속도로>로 막혀있는 <장지동>과 <위례신도시>를 연결하는 도로였고
  


  ['장지천변길'로 내려 가는 곳]                   3:08
  
  <외곽순환도롤>를 따라 잠시 직진하면
  <장지천 수변로>로 내려 가는 곳을 만나 내려 가고


  ['장지천']                        3:11
  
  <장지천>이 <탄천>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지난 <송파둘레길-탄천길>의 출발지점이었던 "장지교"에서 둘레길 답사를 마치고 


  ['장지교']                    3:12
  
  <장지교>로 올라가서


  ['송파 IC'] 

  ['복정역 1번출입구']                   3:19
  
  <송파 IC >를 통과하여 <복정역1번출입구>에서 <송파둘레길>을 종료합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공식적으로 10,4km라고 합니다만 
  실제 걸은 거리는 접속거리 포함하여 11.5km로서 2시간 54분이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송파둘레길』
      『탄천길-한강길』 


  ['송파둘레길 종합안내도']          ★ 사진 클릭하면 무지 확대 됨 ★         
  "송파둘레길"은
  <송파구> 외곽을 따라 흐르는 4개 하천(성내천, 장지천, 탄천, 한강)을 하나로 연결하는 길로 
  도시와 사람, 하천이 어우러진 순환형 수변관광코스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성내천길 6Km, 1시간 30분 코스
  장지천길 4.4Km, 1시간 10분 코스
  탄천길   7.4Km, 2시간 코스
  한강길   3.2Km, 50분 코스로서 총 21km  라고 하는군요.


  ['탄천길 안내도']           ★ 사진 클릭하면 무지 확대 됨 ★       
  
  오늘은 <송파둘레길> 4개 코스 중에 먼저 "탄천길-한강길"을 진행합니다.
  <탄천길>은 <장지천>이 <탄천>과 합수하는 지점에서 <탄천>이 <한강>과 합수하는 곳까지 이며
  거리는 7.4k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탄천길' 개념도]    


  ['복정역1번출입구']                11:44       
  
  2021년 8월 17일 (토)  구름 약간 맑음                
  <복정역1번출구>에서 답사를 시작 합니다.
  뒤돌아 서면...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송파IC']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의 <송파 IC>가 보이는데, <송파 IC> 밑으로 직진하면...


  ['장지동']

  ['장지교']                     11:50                
  
  '서울특별시 송파구 장지동'을 알리는 안내판이 반겨 주며
  바로 "장지교 長旨橋"를 만나고....
  동네의 이름은 "손가락 중에 가장 긴 가운데 손가락"을 일컷는 "장지 長旨"처럼 길죽하게 생겼다고
  "장지동 長旨洞"이 되었답니다.


  ['장지천' 조망]                         
  
   "장지교 長旨橋"에서 우측인 동쪽을 바라보면 <남한산성>이 지척에 보입니다.
   <장지천> 수변길이 <송파둘레길-장지천길>인데, 앞에 화살표로 표기한 계단으로 내려가
   <송파둘레길>을 시작합니다.


  ['송파둘레길 입구']             11:52       
  
  <송파둘레길>의 들날머리는 많이 있습니다만 저는 <장지교>에서 출발합니다.
  이곳은 "송파둘레길-장지천길"입니다. 수변길로 내려 가서...


  ['장지천길']   
        
          ['가든파이브 안내문']            

    <장지천길>을 약1km 정도 걸어 <탄천>으로 갑니다
    <장지천> 우측에는 <가든파이브>가 있고, 좌측엔 <서울복합물류센타>가 보입니다.


  ['버들1교']                   
  
  <버들1교>를 지나면...


  ['분당-수서 고속도로']                        
  
  <분당-수서 도시고속도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장지천-탄천 합수부']                  12:04       
  
  <분당-수서 도시고속도로> 밑에 <장지천>이 <탄천>과 합류하는 합수부를 만납니다.
  <탄천> 건너편엔 <강남구>의 <대모산>이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조망되며


  ['송파둘레길-탄천길 시종점']               12:05   
  
  "송파둘레길-탄천길"의 시종점이 합수부에 있습니다.
  지금부터 <탄천>이 <한강>과 합수하는 곳까지 7.4km가 <탄천길>이라고 소개하고 있군요.
  그리고 이 길은 <서울둘레길>이기도 하죠.


  ['숯내교']

  ['현수막']  
  
  <장지천-탄천 합수부>에서 <탄천길>을 진행하면 먼저 <숯내교>를 지나게 되는데
  금년 7월1일에 순환형 둘레길을 완성했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설치되 있더군요.


  ['탄천길']                      
  
  <서울둘레길>과 잠시 함께하는 <탄천길>을 17분 정도 진행하면...


  ['광평교' 앞]

  ['광평교' 앞 갈림길]                 12:22        
  
  "광평교"를 만나는데
  <서울둘레길>은 좌측으로 가고 <송파둘레길-탄천길>은 여기서 직진합니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송파둘레길-탄천길>은 직진길이 없어서 좌측, 그러니까 <탄천> 건너편 수변길을
  이용 했었는데, 지난 7월1일에 직진길을 개통해서 편리하게 되었답니다.
  "세종대왕"의 다섯번째 아들-"광평대군"의 묘가 <수서역> 근처에 있어서
  다리 이름이 <광평교>가 되었다는거 아시나요.
  자세한 내용은    『강남둘레길』"제4코스 둘레숲길" 답사기 를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송파둘레길 완성 기념비']           
  
  둘레길 완성 기념비까지 세워 자랑하고 있습니다.


  [新개통 '송파둘레길-탄천길' 입구]                     
  
  새로 개통한지 달포 밖에 안되는 따끈따끈한 <송파둘레길-탄천길>을 진행합니다.


  [新개통 데크길]                   
  
  길이 없는 곳엔 데크길도 새로 만들고...
  

  ['탄천유수지체육공원' 갈림길]                   12:37           
  
  <탄천유수지체육공원> 앞 갈림길을 만나는데 안내도가 설치되 있습니다.
 

  ['新개통 탄천길' 안내도]                 
  
  <광평교>에서 <삼성교>까지 구간을 새로 개통했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삼전역' 갈림길]              12:48            
  
  이어서 <삼전역> 갈림길을 지나면..


  ['탄천교']                       12:55~1:07    (8분간 휴식)

  ['탄천길']                            
  
  <탄천교>를 만나고


  ['탄천1교']

  ['탄천1교' 밑]                 1:19~1:27      (8분간 휴식)            
  
  이어서 <탄천1교>를 만나는데 다리 밑에서 좀 쉬었다 갔습니다.


  ['강남 운전면허 시험장']               1:33            
  
  <탄천1교>를 지나면 "강남 운전면허 시험장"을 만나는데 아직도 여기서 면허시험을 보고 있더군요.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불합격입니다.차에서 내리세요"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하지만 수험생들이 거의 없어 예전의 북새통을 그립게 하고 있었습니다. ㅎ ^*^



  ['삼성교' 통과]                  1:38                 
  
  <삼성교>를 통과하면...


  ['탄천주차장']                   1:41             
  
  <탄천주차장>으로 내려 가게 되는데 주차장을 폐쇄했더군요.
  수많은 관광버스들이 주로 주차했는데....텅빈 주차장이 을씨년스럽습니다.


  ['봉은교']                   1:46      
  
  이어서 <봉은교> 밑을 지나면, <올림픽대로>가 보이는데


  ['한강길' 시종점]                  1:53                     
  
  <올림픽대로>가 지나는 <청담1교> 밑에 "송파둘레길-한강길"의 시종점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한강길>의 길이는 3.2km라고 알려 줍니다.


  ['송파둘레길-한강길' 안내도]        ★ 사진 클릭하면 무지 확대 됨 ★             
  
  안내도를 참고하고


  ['한강길' 개념도]    
  
  미리 숙지하고 가면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수 있죠


  ['탄천-한강 합수부']                1:54   
  
  <탄천-한강 합수부>를 지나면...


  ['뚝섬' '용마산' 조망]                     
  
  북쪽으로 <뚝섬>이 건너편에 보이는데 옛날엔 <살곶이목장>이었죠.
  <용마산>과 <아차산>이 조망되는군요.


  ['한강길']                      
  
  <한강잠실공원>을 진행합니다.
  <예봉산>과 <검단산>이 가깝게 조망되며
  <롯데월드타워>가 <잠실> 뿐만 아니라 <서울>을 빛내고 있습니다.


  ['동방명주'}                   2:05        
  
  <동방명주>라는 중국집이 여전히 성업 중에 있고


  ['GS25-잠실공원4호점']                  2:20~2:27              
  
  편의점에서 시원한 물 한병 사서 마시며 쉬어 가는데


  ['천마산' 조망]

  [약간 줌인한 '천마산']              
  
  <천마산>이 조망되어 약간 줌인해 봅니다.
  <태조 이성계>가 '하늘을 어루 만지는 산'이라고 언급하여 <天摩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죠.
  <天馬山>이 아니고 <天摩山>이란거 아시나요?


  ['잠실유람선 선착장']                 2:29         
  
  한강 유람선을 타고 내리는 <잠실선착장>이 코로나사태로 조용하고


  ['잠실한강공원']                    
  
  잠실한강공원 주차장을 통과합니다.


  ['잠실대교' 조망]

  ['북한산' 조망]               2:44       
  
  이어서 <잠실대교>를 통과하는데 <북한산 총사령부>인 <백운대-인수봉-만경대>가 
  <북한산>의 원래 이름은 <삼각산>이라고 증명해 주고


  ['잠실한강공원' 통과]

  ['잠실과 뽕나무']                       
  
  "상전벽해 桑田碧海"
  현재의 <잠실>은 <잠실도>라는 섬이었죠.
  섬 이전에는 북쪽 자양동에 붙어 있는 반도였는데 을축년 대홍수로 섬이 되고..
  그러니까 현재의 <잠실>은 원래 <강북지역>이었답니다.
  여름철만 되면 홍수로 몸살을 앓아 사람 살기가 어려워 뽕나무 재배지가 되었는데....
  이젠 <한강개발>로 <강남지역>이 되어 금싸라기땅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 桑田碧海"가 되었죠.


  ['잠실나루 나들목']                 2:56         
  
  이어서 <잠실나루 나들목>을 지나면...


  ['잠실나루역' 나들목]                2:59        
  
  <지하철2호선>이 다니는 <잠실나루역>으로 바로 갈수 있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바로 앞에 보이는 <잠실철교> 뒤에 <성내천>이 흐르고 있어
  <송파둘레길-성내천길>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오늘은 날씨도 더워 여기서 답사를 마치고 우측 <잠실나루역>으로 갑니다.


  ['잠실철교' 오름길]         
  
  <잠실철교>로 올라가면...


  ['잠실철교']                     
  
  <지하철2호선>이 다니는 <잠실철교>에 갓길이 있어 자전거와 사람이 통행 할수 있군요.


  ['잠실나루역']               3:07       
  
  <잠실철교> 남쪽 끝에 <잠실나루역>이 있었습니다.


  ['잠실나루역' 정문]                  3:09      
  
  <잠실나루역>에서 답사를 마치고 귀가했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공식적으로 <탄천길 7.4km>와 <한강길 3.2km>로서 총 10.6km입니다만
  <장지천길> 일부와 접속거리를 포함하여 실제 걸은 거리는 13.5km였으며 3시가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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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송파구 이곳저곳』
   『'잠실도'와 '부리도'의 흔적을 찾아서』

  ['카카오맵']

  <9호선 삼전역>에서 출발하여 <잠실본동 주민센타>와 붙어 있는 <잠실근린공원>을 찾아 가서
  그곳에 세워진 "새내 내력비""부군당지 표지석"을 찾아 보고,
  <잠실종합운동장> 건너편에 있는 <아시아공원>으로 이동하여 "부리도 표지석"을 탐방합니다.


  ['잠실근린공원']
  2021년 4월 27일 (화) 흐림 
  <삼전역 1번출구>에서 가까운 "잠실근린공원"을 찾아 갔습니다.
  이 공원 주변에는 <잠실본동 주민센타>와 <서울잠전초등학교>가 붙어 있었습니다.


  ['새내 내력비']

  <잠실근린공원>에는 "새내 내력비"가 세워져 있더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2호선>이 통과하는 <잠실종합운장역>과 <잠실역> 사이에는 
  "신천역 新川驛"이 있었는데, 2017년 1월에 그러니까 불과 4년 전에 역명을 <신천역>에서 
  "잠실새내역"으로 바꾸었답니다.
  역명을 바꿔 달라는 주민들의 요구 중에는 <신촌역>과 발음이 비슷하다라던가 뭐 큰 의미없는 
  사항이었지만, 비싼 강남지역의 이미지를 살리고 집값 땅값에서 <강북의 신촌>과 차별화를 위한
  것은 아닌지 논란이 많았죠. 여하튼 이제는 <지하철2호선>이 통과하는 <송파구>에는 
  <잠실종합운장역>→<잠실새내역>→<잠실역>→<잠실나루역>으로 "잠실"이라는 명칭을 모두 
  붙이게 되었지요. "잠실 蠶室"이라는 그 의미가 "뽕나무밭"이라는 것인데도....
  이곳에 건립된 내력비에는 옛날 "새내 新川"이라는 샛강이 이 지역에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잠시후 <부리도 내력비>에 가서 종합적으로 알아 보겠습니다.

     
      ['부군당지 표지석']

  <잠실근린공원>에는 또한 "부군당 표지석"이 설치되 있는데
  <남한산성> 축성의 일등 공신이었던 "이회"와 그의 부인 "송씨 宋氏"에 관한 사연이 담겨 있으며
  부인 <송씨>가 남편의 뒤를 따라 이 근처 <새내>에서 투신자살한 그 절개를 기리기 위해 
  <부군당 府君堂>을 지어 추모했던 곳이라고 하는데...
  이들에 대한 공식적 추모 사당이 <남한산성>의 <수어장대>옆에 건립되어 있죠.
  <이회>와 그의 부인에 대한 사연은 위 안내문을 참고 하면 되겠고
       <남한산성 수어장대> 옆에 있는 "청량당 淸凉堂"을 참고로 보여 드립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옆에 있는 '청량당']
  간신들에 의해 희생된 충직한 관리들이 어디 한두명이겠습니까만 <이회>와 같이 억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으랴.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몇해 전 [인조}때에 <남한산성> 축성 책임자로 <벽암대사>와 <이회>가
  지명되고, <벽암대사>는 계획보다 빨리 성을 쌓고 공사 비용도 남아 반납까지 했다죠?
  그런데 <이회>는 공사에 차질을 빚으며 늦어지고, 공사비도 모자라 추가 비용을 요구했답니다.
  이에 간신들이 <이회>를 무능과 횡령등으로 모함하여 사형시켜버렸지요.
  그런데 나중 알고보니 <이회>는 성을 꼼꼼히 쌓느라 시간이 더 걸렸고, 모자르는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부인 <성씨>까지 팔도를 돌며 쌀을 모아 일꾼들의 식사를 대접하며 남편을 도왔다는게 밝혀졌답니다.
  부인이 남편을 돕기 위해 그렇게 했는데도 남편이 처형당한 것을 알고 비통한 마음에 <새내>에 몸을 
  던졌다고..그리하여 그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을 지었다는 것인데, '사후약방문'의 대명사라 
  할수있겠죠. 무고한 사람을 죽인 그 간신들을 사형 시켰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ㅠ

      
        ['서거정 선생'의 '삼전도 가는 길에'라는 詩]

  "서거정 선생"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식인 겸 정치인이셨죠?
  "徐居正 선생"은 우리 역사 속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대단한 관료이셨습니다.
  "徐居正 선생"은 45년간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의 여섯 임금을 모시며 
  6조판서를 모두 지낸 엄청난 인물입니다. 
  특히 권력의 꽃이라는 대제학을 23년간 지냈으며 숱한 시를 남겼죠.
  하지만 권력이 바뀔 때마다 권력에 빌붙어 따라 다녀 '해바라기' 정치인의 대명사이기도 하죠.
  <단종>을 죽이고 권력찬탈을 한 쿠데타 주역의 <수양대군> 편에 붙어 <계유정란>의 공신이 되며... 


  ['잠실종합운동장']

  "상전벽해 桑田碧海"
  <동국여지비고>와 <대동지지>에는 "이 지역이 여주, 충주로 가는 길목으로 뽕나무밭이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조선 초기부터 양잠을 장려하여 "잠실 蠶室"이 된거죠.
  그런 뽕나무밭에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고, <105층 롯데월드>와 우후죽순 같은 아파트들이 
  즐비한 도시로 완전 탈바꿈 했으니 그야말로 <桑田碧海>라는 사자성어의 원산지가 아닌가요.

      
        [치욕의 '삼전도비']
  1960년대의 "삼전도비 三田渡碑"입니다.
  누가 찍은 사진인지 모르지만 <삼전도비>와 <남한산성>을 절묘한 각도로 기록을 남겨서 퍼온 
  사진입니다. <삼전도비>는 정식 이름이 아니고 <대청황제공덕비>이지만 항복을 만천하에 
  알리는 <항복비>이죠.
  강남지역이 개발되기 전..그러니까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을 때의 <잠실 지역>이 펼쳐집니다.
  <잠실지역>이 어떻게 <桑田碧海>라는 사자성어의 진원지인지도 알려 주는 사진입니다.
  1637년 1월 30일 눈 내린 <삼전도>에 칼바람이 휘몰아 치던 날에 치욕의 <남한산성>을 뒤에 
  두고 <인조>가 <청태종>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하던 <삼전도>가 펼쳐 집니다.
  오욕과 수난의 <삼전도비>는 홍수로 땅 속에 뭍히기도 했고, 민족 자긍심에 불타는 사람들에 
  의해 홰손되기도 했는데, 비극의 역사도 역사라고 현재는 <석촌호수 서호>에 지붕도 있는 
  누각에 안치되 있는데 <105층 롯데월드>와 우후죽순 같은 아파트들의 호위를 받으며 있습니다.
  다음 사진입니다.

 
    [현재 "롯데월드' 앞 '석촌호수 서호'에 있는 '삼전도비']
    
'몽고어' '만주어' '한자' 세개로 세겨진 '삼전도비'의 비문을 번역하여 알려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리석은 조선 왕은, 위대한 청국 황제에게 반항했다.
          청국 황제는 어리석은 조선 왕을 타이르고, 자신의 대죄를 납득시켰다.
          양심에 눈을 뜬 조선 왕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맹성하고, 
          위대한 청국 황제의 신하가 되는 것을 맹세했다.
          우리 조선은 이 청국 황제의 공덕을 영원히 잊지 않고,
          또 청국에 반항한 어리석은 죄를 반성하기 위해서, 
          이 석비를 세우기로 한다.

  <파란문>이 [인조]를 '최악의 왕'이라고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이유 중에 하나 입니다.


  ['종합운동장억 2번출입구']

  <잠실종합운동장> 정문 맞은편에는 <잠실운동장역 2번 출입구>가 있고
  그 옆에는 "아시아공원"이 있습니다. 
  이 공원은 <1986년 아시안게임>이 열릴 때 조성된 공원이랍니다.


  ['아시아공원']

  <아시아공원>과 <정신여중고> 사이에 "부리도 浮里島"라는 안내석이 있습니다.
  이 지역이 옛날 "부리도 浮里島"라는 섬이었다는거죠.


  ['부리도 표지석']

  [안내문]

  "부리도 浮里島" <뜰 浮>에 <마을 里>, <섬 島>이니 한마디로 "떠내려 온 마을"이라는데
  저는 여름철에 비만 오면 잠기는 섬이어서 "물 위에 떠 있는 마을"이란게 더 설덕력이 있습니다.
  <잠실>도 <뽕나무 밭>에서 온 지명이라고 하지만, 
  <비만 내리면 잠기는 마을>에서 온 지명이기도 하답니다.
  <부리도>를 추억하는 주민들이 표지석을 세웠다고 하는데 읽기 어렵더라도 안내문을 꼭 읽어 
  보시기 바람니다. 제가 모르고 지나온 세월을 되돌려 주는군요.
  제가 여러 자료를 검토하여 요약하면...
  "잠실섬 蠶室島"은 <중종 15년> 그러니까 1520년 여름까지는 
  <한강> 건너편 <자양동>에 붙어 있던 <자양반도> 였답니다.
  그런데 그해 여름 엄청난 홍수가 발생하여 샛강이 생기며 <자양반도>는 <잠실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잠실섬> 아랫쪽엔 <부리도>라는 조그마한 섬이 만들어 졌다는군요.
  그리고 모두 잘 아시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엔 이 지역 지형이 완전 바꼈답니다.
  그후 홍수를 막기 위한 제방공사 등을 하다가 1980년대 초 <한강의 기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한강개발로 현재 모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 역사적 사진들을 보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대동여지도']
                  
                      ['조선총독부' 발행 당시 지도]
     
       ['1920년대 한강의 섬']
  일제강점기 시대의 이 지도들을 보면 <중종 15년> 그러니까 1520년 대홍수가 있었던 
  여름철 이전까지는 <잠실도>는 <자양반도>에 붙어 있었고, 그때 <샛강>이 생기며 <잠실도>라는 섬이 
  되었다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에 <한강>의 본류와 지류가 뒤바뀌며 지형까지 완전 바뀌고
  현재는 <한강의 본류>였던 <송파강>이 <석촌호수>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석촌호수>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전엔 <한강의 본류>가 흐르던 <송파강>이었다는 
  것을 알수있으며, <잠실도>는 상당부분 <한강>에 침식되었다는 것도 알수 있습니다.

       
         [1960년대 잠실지역 항공사진]
  이 사진이 현재의 <석촌호수>가 옛날 <한강의 본류>인 <송파강>이였다는 것을 확실히 알수 있게 해 
  주는데...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자양반도>에 있던 <新川>이 <한강의 본류>가 되어 엄청 넓어 
  졌다는 것을 알수 있으며 <한강의 본류>가 흐르던 <송파강>이 현재 <석촌호수>로 그 흔적만 남아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한강개발>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확연히 느낄수 있지요?
  그리고...현재는...


  ['카카오맵']

  현재는 이런 모습으로 완전 "상전벽해 桑田碧海"가 되었습니다.
  바로 위 <1960년대 항공사진>과 현재의 <카카오맵>...그리고 <조선총독부 지도>를 비교 해 보면
  <잠실도>와 <부리도>, 그리고 현재의 <석촌호수>와 <송파강>의 옛 모습을 상상해 볼수 있습니다.
  도한 <뚝섬지역>인 <저자도>까지 비교해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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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백제의 유적을 찾아서"   
   [한성백제왕도길] 한성백제를 가다 답사기  
     천호역-풍납근린공원-풍납토성-풍납재래시장-경당지구-백제문화공원-풍납토성-
     백제우물-성내교-몽촌정-올림픽파크텔-곰말다리-몽촌토성-몽촌역사관-백제집자리전시관-
     야생화학습장-한성백제박물관-방이동고분군-석촌동고분군-석촌호수-삼전도비-잠실역
                                      
             고구려의 시조 "주몽"....
             '졸본부여'의 여인 "소서노"
             그들 사이에서 탄생한 "비류"와 "온조"
             그리고 "百濟"
             오늘은 "백제"의 발상지 '하남위례성'이라고 추정되는 곳을 속하는
             [서울 송파구-한성백제왕도길]로 도보 여행을 떠납니다

                             

        
          ['송파구 유적 위치도']

        '서울특별시 송파구'는 "한성백제시대 도읍지"라고 추정되는 유적이 있는 곳이죠.
        "풍납토성""몽촌토성"이 그것이랍니다.
        그리고 그 당시 왕족이나 귀족들의 무덤이 산재해 있는데 
        "방이동 고분군""석촌동 고분군"이 대표적이라 합니다.
        특히 "석촌동 3호고분"은 '백제'의 황금기를 이루었던 "근초고왕의 왕릉"으로 추정된답니다.
        그리고 "병자호란"의 비극....치욕의 "삼전도비"가 있는 "송파구"로 여행을 떠납니다.

       
        ['한성백제왕도길' 안내도>
  
  '송파구'에서 [역사 문화 탐방길]을 만들어 효과적으로 답사 할수 있도록
  [한성백제왕도길]이라는 길을 만들어 놨더군요.
  코스는 [천호역 10번출구]에서 출발하여 [풍납토성-몽촌토성-방이동고분군-석촌동고분군-석촌역]까지로
  거리는 약9k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만, 저는 [삼전도비]를 경유하여 [잠실역]까지로 연장하여 진행하였는데
  GPS로 측정된 거리는 약13km였으며 4시간 15분 정도 걸렸습니다


  ['천호역 10번출입구']                   10:26

  2017년 5월 20일 (토) 맑음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동'과 '송파구 풍납동'의 행정구역 경계에 있는 [천호동 사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천호동 사거리]에 있는 [지하철 5호선 8호선 천호역]에 내려서...


  ['천호역 10번출입구']
  
  [천호역 10번 출구]로 나가 [천호대교] 방향으로 40m쯤 직진하면...


  ['풍납근린공원']                  10:27

  "풍납근린공원"을 만납니다.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에 있는 "풍납토성"의 입구 이기도 합니다.
  "풍납동 風納洞"
  글자 그대로 '바람이 많이 불어 들어 오는 곳'이라고, "風納洞"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근린공원엔 풍차와 바람개비가 돌아 가고 있고...


  ['풍납근린공원 화장실']              4분간 여행준비

  "풍납근린공원"에는 화장실과 휴식시설이 있는데
  화장실 옆으로 돌아 들어 가면...


  ['풍납토성']                    10:31

  "풍납토성 風納土城"을 만납니다.
  "백제 百濟"
  678년 동안 존속한" 백제"는 그 역사의 전개과정을 수도 변천을 중심으로 보면
  제1기 : 한성도읍기(漢城都邑期: 기원전 18∼기원후 475),
  제2기 : 웅진도읍기(熊津都邑期: 475∼538), 
  제3기 : 사비도읍기(泗沘都邑期: 538∼660)로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제1기 : 한성도읍기"의 왕궁이 이곳 "풍납토성" 일것이라고 똑부러지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합리적 추론을 할수 있다는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한성백제 중심 유적지"를 답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울풍납토성' 안내문]

  "풍납토성"에 대한 공식적 안내는 위의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저는 조금 더 깊이 있게 디테일한 내용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풍납토성"이 이천여년의 세월을 벗고 우리에게 나타나게 된 동기부터 알아 보겠습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城인지 뭔지도 모르는 언덕배기 속에 뭍혀있던 토기, 항아리, 기와등이
  무더기로 지상으로 올라와 이곳이 '삼국사기'에 나타나 있는 "한성백제"의 진원지가 아닌지 의심하고
  그이후 발굴을 하게 되었고, 발굴 결과 '삼국사기'에 기록된 "하남위례성"이라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가 기원전 18년에 한강 유역으로 이주하여 도읍으로 정한 곳이란거죠.


  ['풍납토성' 단절지점]                 10:33

  [풍납근린공원]에서 "풍납토성" 옆길을 따라 잠시 진행하면 토성이 끊어지고 도로와 시장을 만납니다.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들어 가게 되는데...


  ['풍납재래시장']                

  "풍납토성"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인데 城 안에는 재래시장이 왁자지껄...
  이 시장이 "풍납재래시장"이라고 하는데 "풍납동 도깨비시장"이라고도 하는 곳이랍니다.
  갑자기 길찾기가 어려워 집니다.
  [한성백제왕도길]에는 그 어떠한 길안내 표지판도 없습니다.
  그러니 미리 열심히 공부를 하고 가야 하는데 그런 자료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한성백제왕도길]은 여기서 시장 안으로 3~40m 직진해 들어 갑니다.


  [시장삼거리]                   10:38           ★ 길조심 ★

  길조심을 해야하는 시장 안 삼거리를 만나는데 
  보시는 바와 같이 "형제쌀상회"가 있는 곳입니다.
  저도 여기서 직진했다가 알바를 하고 다시 돌아 와서 좌측 골목으로 들어 갔으니
  후답자들은 조심하시기 바람니다. ㅎ  ^*^


  [골목]

  "형제쌀상회"에서 좌회전하면 시장을 벗어나 주택가 골목이 이어집니다.
  100m정도 진행하면...


  ['경당지' 후문]                    10:40~10:47

  별도의 안내가 없는 "경당 후문"이 우측에 나타나는데 모르고 가면 그냥 지나 칠듯합니다.
  길안내가 전혀 없기 때문에 미리 숙지하고 가는게 좋겠습니다.


  ['경당터']

  "경당"
  "경당"이 있었던 곳이라는데 "경당"은 '국가의 제사를 주관하는 신전' 같은거라고 합니다.
  또한 이곳이 [풍납토성]의 "왕궁터"라고 추정 된답니다.
  그렇다면 "온조"가 이곳에 거주하며 나라를 건립 하지 않았을까
  "백제"의 혼이 살아 움직이는듯 하군요.

               

  ['경당' 안내문]              

  "을축년 대홍수"로 이천여년의 베일을 벗은 "풍납토성과 경당".
  일제시대였던 1925년에 발생했던 어마어마했다는 "을축년 대홍수"에 대해 잠시 알아 보겠습니다.
  1925년 여름에 대홍수가 일어 났는데 네번 연이어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쳤다는군요.
    첫번째 : 7월 7일 태풍이 한반도 중부지방을 관통해 지나 가면서 엄청난 비를 뿌렸다는데
             이때는 '낙동강유역'이 제일 큰 피해를 입었고 '한강유역'은 수위가 10.57m 였답니다.
    두번째 : 이어서 7월 15일에서 18일까지 4일 동안  다시 엄청난 태풍이 불어와 '중부지방'을 관통했는데
             비가 어느 정도 왔는지 쉽게 이해 할수 있게 말하자면 "숭례문"이 잠길 정도였다니
             어느 정도 인지 이해 할수 있죠? 우리는 이때를 주로 "을축년 대홍수"라고 하는데...
             7월7일 비가 엄청나게 내려 피해를 입고 있는데 다시 일주일만에 이런 비가 내려 홍수가
             발생해서 업친데 덮친격으로 피해가 더더욱 컷답니다.
             그리고 '한강유역'의 지형이 완전히 바꼈다고 하는데...
             현재의 잠실지역은 지금의 '여의도'와 같이 "잠실섬"이라는 이름의 섬이었는데
             "잠실섬"과 "송파" 사이에 흐르던 샛강이 "송파강"으로 원래 '한강'의 본류였는데 
             홍수로 본류가 현재의 본류인 북쪽으로 바뀌고 "송파강"이라는 한강의 본류가 없어지고 
             "송파강"이라는 본류 한강의 흔적은 현재의 "석촌호수"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재의 "석촌호수"는 1925년 이전까지는 '한강'의 본류가 흐르던 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뚝섬지역"이 "뚝섬"이라는 섬었는데 이 홍수로 오히려 섬이 육지에
             붙어 버려서 현재는 섬도 아닌데도 현재까지도 "뚝섬"이라고 하는 그 이유를 알수 있습니다.
             '북한산성'의 행궁들과 성곽등도 유실되어 사라지는등 문화재가 엄청나게 타격을 입었지만
             하지만 이때의 대홍수로 이천여년의 베일을 벗고 우리에게 나타난
            "풍납토성"과 "암사동 선사주거지"가 발견되었으니 다행이라 해야하나...불행이라 해야하나..
             당시의 지형과 '을축년 대홍수'로 피해를 입은 지역 지도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잠실섬"과 "송파강"을 유의하여 보시기 바람니다.
             
    세번째와 네번째 " 8월과 9월초에도 큰비가 내렸답니다. 이 "을축년 대홍수"로 전국에서
            사망자 647명, 6천여 호의 가옥이 유실되고, 1만 7천여 호의 가옥이 붕괴되고,
            4만 6천호의 가옥은 침수되었고, 3만 2천단보의 논과 6만 7천 단보의 밭이 유실되었답니다.
            홍수로 인한 피해액만 1억 300만원에 달하였다는데 
            이는 당시 조선총독부의 1년 예산의 58%에 달하는 금액이었다고 합니다.


  ['경당' 정문]

  "을축년 대홍수"로 베일을 벗은 "경당"
  "경당지구"를 답사하고 정문으로 나와 "풍납백제문화공원"을 다녀 와야 하겠습니다.
  "경당 정문"에서 가는 길을 보면...


  ['경당' 정문앞 사거리]                 10:47        ★ 길조심 ★

  위의 사진의 반대 방향인 "경당 정문"에서 바라보면 앞에 사거리가 있는데 
  화살표 방향으로 "풍납백제문화공원"을 갔다가 다시 돌아 와야 하더군요.


  ['풍납백제무화공원' 입구]                        10:49~10:55

  [한성백제왕도길]에는 공식적으로 들어 있는 답사지는 아니지만
  꼭 가봐야 하는 "한성백제 유적지"라고 생각되어 다녀 왔습니다.
  안으로 들어 가면...


  ['풍납백제문화공원']

  예상보다 훨씬 넓은 유적지가 공원화 되어 펼쳐 집니다.

 
  ['풍납백제문화공원' 안내문]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시고...


  ['지상식건물지']

  [안내문]

  이곳이 '왕궁터'라고 짐작된다는 '지상식 건물지'가 상당한 규모로 있는데
  "공주산성"의 왕궁터와 비슷하다고 하는군요.


  ['풍납토성' 모형과 유물 발굴위치]

  그리고 "풍납토성"의 모형을 만들어 유물이 발굴된 지점등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 중에 중국에서 수입된 도자기등이 발견 될 정도로 생활 수준이 높아
  왕족등 엄청 부유층이 살았던 왕궁터로 추정한답니다.

        
           ['풍납토성' 발굴조사 현황도]

         [현위치]가 빨간색으로 표기된 "풍납백제문화공원"입니다.
         제가 답사한 루트는 빨간색선으로 표기했으니 참고하면 되겠는데
         [풍납토성]은 한강변에 "ㄷ자 모양"으로 축성했다는 것을 알수 있고
         현재는 성 안에 아파트등 주택들이 점령하고 있어 좀 아쉽고 
         '토성'과 '경당' '문화공원'만이 복원 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 안내도를 보고 "백제우물"이 어디 있는지 감을 잡고 가는게 좋습니다.


  ['경당' 정문 앞 사거리 회귀]                          10:57

  다시 "경당 정문" 앞에 있는 사거리로 돌아와 "경당" 옆길로 나가서


  ['풍납토성'으로 나가는 길]
 
  도로를 따라 5분 정도 진행하면.....


  ['풍납토성' 입구]                  11:03
 
  "풍납재래시장"에서 끊어졌던 "풍납토성"이 다시 시작되는 곳에 도착합니다.


  ['풍납토성']

  복원된 "풍납토성"을 따라 4분여 진행하면...


  [도로]                          11:07

  '풍납동'과 '도심을 연결하는 도로를 건너고...


  ['풍납토성']

  다시 "풍납토성"을 따라 5분 정도 진행합니다.
  '북한산성' '남한산성' 수원화성'등 조선시대 城과는 비교되는 고대 토성이라
  새로운 느낌을 받습니다.


  [도로]                       11:12

  "풍납토성" 안의 '풍납동'과 도심을 연결하는 제법 넓은 도로를 다시 만나는데 
  행단보도를 이용하여 도로를 건너 가서


  ['풍납토성']                   ★ 주위 - '백제우물' 조망 ★

  다시 "풍납토성"을 따라 진행합니다.
  여기서 유의 해야하는 것은 "백제우물"을 구경하고 가는 것입니다.
  모르고 가면 무조건 그냥 지나칠수 있으니 관심 가지고 가야 합니다.


  ['백제우물']

  "백제우물""송파 헤모로 아파트 102동"앞에 있습니다.
  '풍납토성'으로 현장 답사를 나온 학생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아마 숙제인듯...


  ['백제우물']                  11:19

  ['백제우물' 안내문]

      우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다
      오랜 세월 숱한 왕조의 흥망성쇠와
      끊임없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아름다운 옛 풍광은 잃었으나
      풍납토성 언저리인 내부와 외부에는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발자취가
      소중하게 담겨있다

  우물에서 많은 백제시대 유뮬이 나와서 귀중한 문화재가 되었답니다.
  현재는 우물 속에 물은 없었고 물을 떠서 주는 아낙네 조형물이 있습니다.


  [도로]                             11:24

  토성 안의 '풍납동'과 도심을 연결하는 가장 큰 도로를 만나고 횡단보도를 이용해 건너 갑니다.
  좌측으로 가면 [풍납사거리]이더군요.


  ['풍납토성']

  다시 "풍납토성"을 따라 진행하는데 "풍납종합사화복지관" 건물을 만나고
  그뒤로 '롯데월드'와 우측엔 '아산병원'이 조망됩니다.
  "풍납토성"은 '아산병원' 앞 '올림픽대교' 도로에서 우측으로 휘어집니다.


  ['풍납종합사회복지관']                       11:30

  "풍납토성길"에서 "몽촌토성"으로 가려면
  "풍납종합사회복지관" 샛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되고


  [근린공원]

  "풍납종합사회복지관" 샛문을 통과하면 조그마한 근린공원이 있으며


  ['올림픽대교 남단사거리' 방향]                 11:32

  "아산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을 사는 "약방 거리"
  "올림픽대교"와 연결되는 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3분 정도 진행하면...


  ['올림픽대교 남단사거리']                          11:35

  [오림픽대교 남단사거리]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우측 '잠실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갑니다.


  ['잠실사거리' 방향]

  좌측에 "칠지도 조형물"이 보입니다.
  뒤로 보이는 "올림픽파크텔"로 가야 합니다.


  ['칠지도']

  백제가 일본에 하사했다는 "칠지도 조형물"입니다.
  백제의 철기문화를 상징하는 칼이죠.


  ['성내교']                        11:41

  "성내교"를 만나는데 다리 밑으로 길을 건너 갑니다.


  ['성내교' 다리 밑 통과]

  "성내교" 다리 밑을 통과하여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구중교']

  "성내천"을 건너 "몽촌토성' 안으로 들어 가는 "구중교"라는 다리를 건너 갑니다.
  다리를 건너 좌측에 있는 "몽촌정"에 들렸다가 "올림픽파크텔" 앞으로 가는게 좋습니다.


  ['몽촌정']                   11:45~11:57              12분간 간식및 휴식

  "몽촌정 夢村亭"
  夢村이라고 하면 '꿈꾸는 마을'로 해석될수 있지만 지명의 유래는 상식을 벗어 나더군요.
  두가지의 유래가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가 '망월봉이 솟아 있는 마을'이라하여 "망달(망월)마을"이라고 불리워지다가 음운변화로
  "멍마을.멍말'등으로 불리워지다가 한자음 표기 때에 "夢村"으로 바뀌었다는군요.
  두번째는 옛날 삼한시대에 이곳을 "검마을" "곰말"이라고 불리워 졌는데 "곰"이 "꿈"으로 변하여
  "몽촌"이라 했다는 것입니다. 어찌 좀 이상한데 공식적으로 표기하고 있으니 믿어야지요 ㅎㅎ


  ['곰말다리' 조망]

  "몽촌정"에서 서쪽으로 "곰말다리"가 보입니다. 저 앞으로 가야 하고요.
  여기서 "성내천"에 대해 알아 보고 가겠습니다.
  왜냐하면 "몽촌토성"을 알기 위해선 "성내천"을 반드시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에서 발원하여 내려 오는 이 개천은 "몽촌토성" 근처를 흐르는데
  "몽촌토성"을 축성할때 성곽 방어를 위해 토성의 외곽을 휘돌아 나가도록 하여 이중 방어선을
  만들어서 "성내천"이라고 한다는데 한자로 쓰면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城內川"으로 쓰니 확실히 알수 있죠?


  ['올림픽파크텔' 앞]
 
  "올림픽파크텔" 앞을 지나면


  ['곰말다리']                     12:02
 
  "올림픽공원 정문"에서 "몽촌토성"으로 연결되는 "곰말다리"를 만나 건너 갑니다.


  ['올림픽공원 호수]
 
  "곰말다리" 위에서 "성내천"이 만드는 "몽촌호"와 음악분수대가 있는 수변무대가 멋있게 보이고


  ['몽촌토성' 입구]                 12:03
 
  "몽촌토성"으로 들어 가는 입구를 지나 올라 가면....


  ['몽촌토성']                         12:05

  "몽촌토성"에 도착하는데, [한성백제왕도길]은 좌측으로 토성 위를 돌아 가도 되지만


  [토성 안길]

  토성 안을 가로 지르는 안길을 이용하여 "몽촌역사관"으로 진행합니다.


  ['산수유길' 사거리]                         12:09

  [산수유길]이라는 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가면


  [피크닉장]

  단체 피크닉장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놀고 있고


  [현위치 안내도]

  "몽촌토성"에서는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되겠습니다만
  처음 가시는 분들은 "몽촌역사관"과 "한성백제박물관" 만큼은 다녀 가야 겠습니다.


  [피크닉장]

  다체 행사객들이 게임을 하고 있는 피크닉장 뒤로 "몽촌역사관"이 보입니다.      


  ['몽촌역사관']                       12:17~12:25

  "몽촌역사관"
  '암사동'의 선사시대, '명일동-가라동-역삼동'의 청동기시대,
  백제의 도읍이었던 '풍납토성-몽촌토성'등을 소개하는 역사의 타임캡슐이라고 자랑



  ['몽촌역사관' 내부]

  여느 역사관과 비슷했는데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많이 나왔더군요.
  간단하개 역사관을 둘러 보고


  [산책로]

  "몽촌토성"의 남쪽 문 방향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진행합니다.
  우측에 나무 바리게이트가 보이는데 "몽촌토성"의 남쪽에는 "성내천"이 없어 방어를 위헤
  별도로 저런 나무 바리게이트를 쳤다고 하는군요.


  ['88올림픽 수영장']                     12:30

  "몽촌토성"의 끝지점에 도착하면 성밖에 "88올림픽 수영장"이 보이는데
  [한성백제왕도길]은 여기서 우측 토성으로 올라갑니다.


  ['백제집자리 전시관' 가는 길]

  "백제집자리전시관"으로 올라 갑니다.
  코스푸레하는 여자들이 기모노를 입고 쑈를 하는군요.


  ['백제집자리 전시관']                        12:35

  "백제집자리전시관"을 지나



  ['88마당'과 올림픽경기장들]

  "몽촌토성" 성곽 위에서 "올림픽공원"을 바라봅니다.
  "올림픽체조경기장"과 "올림픽헨드볼경기장"등 올림픽 경기장들이 자리 잡고 있고
  뒤로 보이는 산이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입니다.


  ['야생화 학습장']

  ['야생화 학습장' 사거리]                   12:41

  "야생화학습장"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 갑니다.


  [순환로]

  "몽촌토성"을 전체적으로 둘러 보려면 무척 많이 걸어야 하겠더군요. 규모가 커서...


  [올림픽공원 호수]                          12:49
 
  "몽촌호수" 서남쪽에 도착해서 조망을 하고




  [조형물공원]

  조형물공원을 지나면


  ['한성백제박물관']                            12:53~1:10

  "한성백제박물관"에 도착합니다.
  예상보다 상당한 규모인데 조목조목 둘러 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간단하게 한바퀴 빙 둘러 보고 가겠습니다.


  ['한성백제박물관 로비']

  박물관 로비인데 규모가 커서 간단하게 돌아 보기도 시간이 많이 걸리겠군요. ㅎ


  ['온조'의 남하 장면 모형]

  전시된 많은 유물들에 대해선 지식이 없어 그냥 지나치는데 이 모형은 관심이 가더군요.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이 "졸본부여"의 여인인 "소서노"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 "비류"와 "온조"가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따뜻한 땅을 찾아 가는 상황을 모형으로 만들어 놨군요.
  "비류"는 배를 타고 내려와 지금의 "인천지역"에 정착하게 되었고, 
  "온조"는 육로를 이용해 이곳 "한강유역"으로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하였답니다.


  ['비류'가 타고 왔을 배 모형]

  "비류"가 타고 왔을 모형 배가 눈길을 끌고


                          [칠지도]
                   

  "백제"가 일본"의 형님 나라라고 자부하는 '철기문화'의 화려한 상징인 "칠지도"가
  자랑스럽게 전시되 있습니다. 물론 모형이지만...
  오리지날 "칠지도"는 일본 "이소노가미 신궁[石上神宮]"에 봉안되 있는데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 있습니다.
  "칠지도"가 유명하게 된 것은 칼의 앞뒷면에 글자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죠.

  <앞면〉 泰△四年五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練銕七支刀出(生)辟百兵宜供供侯王△△△△祥(作)
 〈뒷면〉 先世以來未有此刀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傳示後世

  우리말로 해석을 하면
 〈앞면>
  태△ 4년 5월 16일은 병오인데, 이 날 한낮에 백번이나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에게 나누어 줄만하다. △△△△가 만들었다.
 〈뒷면〉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 지(旨)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한성백제박물관' 출입구]                   1:12

  박물관을 나가 올림픽공원을 나가는 "한성백제박물관 출입문"을 통과하여 길을 건너
  [방이초교삼거리] 방향으로 갑니다.


  ['방이동 고분군' 가는 길]

  "한성백제박물관 출입문"을 나와 길을 건너 [방이초교삼거리]로 가는 길인데
  [방이초교삼거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고


  ['방이초등학교' 앞]

  "방이초등학교 버스정거장]을 지나 10여분 직진하면...


  ['방이동 고분군']                        1:23

  좌측에 "방이동 고분군"을 만나는데


  ['방이동고분군 사거리']                  1:24

  [방이동 고분군 사거리]에서 좌측 "방이동고분군"을 갔다가 다시 돌아와 직진해 가야 합니다.
  좌측으로 50m쯤 가면


  ['방이동 고분군' 정문]                   1:26~1:36


  [고분]

  [안내문]

  "방이동 고분군"
  자세한 내용은 안내판을 참고 하시고...
  "방이동 芳荑洞"의 지명의 유래를 알아 보고 가겠습니다.
  "방이동"은 원래 "막을 방(防)", "오랑캐 이(夷)"를 사용하는 "오랑캐를 막는 곳"이라는 뜻이었답니다.
  이 주변 동네들의 유래는 대부분 "병자호란"에서 유래한다고 하지요? 
  "남한산성"으로 도망친 "인조"를 잡으로 진을 친 '청나라군'을 방어 하자는 곳이었다는 뜻이랍니다.
  '청나라' "누루하치"가 오랑캐였으니...."누루하치"의 뜻은 "맷돼지 가죽"이라는 몽골어라죠?
  동네 이름이 좀 전투적이고 치욕의 기억을 일깨운다고 1914년 지명 개정 때에
  동네 이름을 좀 예쁘게 "꽃다울 방(芳)", "흰비름 이(荑)"로 고쳤다고 합니다.


  ['송파2동' 통과]                        1:41

  "방이동 고분군"을 나와 [송파동]을 통과해 15분 정도 진행하면....


  ['송파사거리']                            1:51~1:56

  [송파대로]가 지나는 [송파사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서도 [석촌동] 방향으로 직진해 갑니다.
  이 사거리엔 "송파유래비"를 세워 놨는데 지명의 유래는 없고 동네 자랑만 늘어 놨더군요.
  "송파동 松坡洞"
  '고개'를 나타내는 단어는 많습니다. "재, 티, 현, 치, 령....등등"
  그런데 "파 坡"도 고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송파"는 "소나무 언덕 고개"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죠.


  ['롯데월드' 조망]

  [송파사거리]에서 가까이 있는 "롯데월드"를 조망하고
  [석촌동]을 15분여 통과하면...


  ['우리은행 가락동지점' 앞]                      2:09          ★ 길조심 ★

  "우리은행 가락동지점"을 만납니다.
  은행 우측 골목으로 들어 가면....


  ['돌마리어린이공원']                       2:13

  "돌마리어린이공원"을 만나는데
  공원 안으로 들어가 후문으로 나가 우측으로 가면....


  ['석촌동 고문군' 조망]                      2:14

  "석촌동 고분군"이 보이기 시작하고


  ['석촌동 고분군' 입구]                            2:15~2:22

  [안내문]

  "석촌동 고분군"으로 들어 갑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백제식 고분]

  [고구려식 고분]

  돌을 쌓아 만든 무덤인데 계단식으로 만들어 "한국의 피라밋"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답니다.


  ['3호분']

  ['근초고왕릉'으로 추정하는 안내문]

  특히 [3호고분]은 "한성백제시대"를 꽃피운 "근초고왕 왕릉"이라고 추정한답니다.


  [석촌동 골목길]

  "석촌동 고분군"을 돌아보고 직진하여 "석촌동" 골목길을 5분 정도 통과하면...



  ['석촌호수']                            2:28

  "석촌호수"에 도착합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전에는 "송파강"이라는 "한강의 본류"가 흐르는 "한강"이었는데
  "을축년 대홍수" 때에 지형이 바뀌고, 그후 다시 개발되어 지금은 호수로 남아 있는 "석촌호수" 랍니다.
   그러니까 이곳은 1925년 이전에는 "한강"이었다는거죠.


  [둘레길]

  "석촌호수" 둘레길을 따라 [잠실역]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삼전도비' 조망]

  "삼전도비"가 있는 곳을 조망하고


  ['송파대로']

  [송파대로]로 올라 가 [잠실역] 방향으로 조금 가면...


  ['삼전도비' 앞]                        2:35

  [잠실역환승센타 2번출입구]가 있는곳 앞에서 좌측에 "삼전도비"가 있습니다.


  ['삼전도비']

  [안내문]                       2:35~2:40

  "삼전도비 三田渡碑"
  먼저 안내문을 자세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조선왕조 27명의 왕들 중에 제가 가장 싫어하는 왕인 "인조"가 
  "병자호란"으로 '치욕의 삼배고구두례'를 하며 목숨만 살려 달라고 남긴 "치욕의 비석"입니다.
  포로로 "소현세자" "봉림대군"을 주축으로 수십만여명을 포로로 보냈으며 여자가 대부분이라죠.
  정조를 짓밟힌 여자를 "화냥년"이라 하죠? 이때 포로로 잡혀 갔다가 돌아온 여자들을 "환향녀"라고 했는데, 
  "환향녀"가 음운변화로 "화냥년"이 되었으니 "인조"는 자신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화냥년"으로 만들었습니다.
  여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조선은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 오는 "환향녀"들을 구제하기위해
  지금 "홍제동"에 있는 "홍제천"에서 그곳을 씻기만 하면 처녀로 구제해 준다고 했으며
  그래서 개천 이름이 "모두 구제헤 주는 개천"이라고 "弘濟川"이 되었다는 겁니다.
  비극의 역사...치욕의 역사 입니다. 


  ['삼전도비']

  "대청황제공덕비 大淸皇帝功德碑"가 오리지날 이름이죠.
  "삼전도비"라고 하는 것은 이 비를 '삼전도'에 세워서 부르는 일반명사입니다.
  "삼전도"는 이곳 잠실나루터 부근인데 밀물 때에도 잠기지 않는 밭이 세곳 있었다고 "三田渡"라고 했답니다.
  이 비석의 전면 좌측에는 '몽골글자'로 우측에는 '만주글자'로 새겼으며 뒷면에는 '한자'로 새겨 놨습니다.
  글의 내용을 번역하면....

          어리석은 조선 왕은, 위대한 청국 황제에게 반항했다.
          청국 황제는 어리석은 조선 왕을 타이르고, 자신의 대죄를 납득시켰다.
          양심에 눈을 뜬 조선 왕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맹성하고, 
          위대한 청국 황제의 신하가 되는 것을 맹세했다.
​          우리 조선은 이 청국 황제의 공덕을 영원히 잊지 않고,
          또 청국에 반항한 어리석은 죄를 반성하기 위해서, 
          이 석비를 세우기로 한다.


  ['귀부']

  "대청황제공덕비 大淸皇帝功德碑" 옆에 비석이 없는 "귀부 龜趺"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정말 우리 백성들로는 쪽 팔리는 "귀부"인데, "청태종"이 너무 작다고 크게 다시 만들라고해서
  좌측의 "귀부"로 만들어 비를 세우고, 이것은 옆에 ...


  ['삼전도비']

               역사란 삼전도비를 땅속에 묻는다고해서 가릴수도 없고, 
               파괴한다고해서 지울수도 없습니다 
               이 비를 역사적인 교훈으로 삼아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듯 합니다.


  [구글어스 GPS 트랙]

  [고도표]

  [한성백제왕도길]은 안내 이정표가 없어서 미리 공부를 하고 가지 않으면 길찾기가 어렵더군요.
  제가 이번에 직접 걸으며 만든 [GPS 트랙]을 첨부하오니 다운 받아 가시면 길찾기가 쉬울 것입니다.
  무료로 다운 받아 갈수 있습니다.
  고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든 구간이 거의 평지성이어서 걷기엔 쉬운 코스였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GPS 측정으로 13km였으며, 4시간 1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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