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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감악지맥3구간] 간파고개-마차산-아마니고개-도감포

길은 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 오기 위해 존재합니다 시간도 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날을 맞기 위해 다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새로운 길을 떠납니다

          
          [감악지맥3구간 산행 지도]
          '마차산'을 대표산으로 하는 [한북감악지맥3구간]
     
     [구글어스 산행 괘적도]
     요즘은 산향괘적을 알기도 쉬워졌습니다.
     GPS가 인공위성으로부터 한 인간의 움직임을 알려주고
     다시 구글어스 맵에 입력 시키면 이렇게 괘적도가 나오니
     세상은 무섭도록 빠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동두천 중앙역]
     3월22일(일) 오전8시45분경에 "동두천 중앙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남북분단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 동두천이라고 합니다.
     美軍基地가 동두천을 거의 잠식하고,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모를 정도로
     不夜城을 이루던 美軍들의 요람이었기에 한국적 발전은 철저히 봉쇄되었던 곳
     그 미군들이 상당수 철수하고 또 나머지는 다른곳으로 이전하기에
     새로운 발전을 하고 있다는 동두천은 전철역이 네개나 있었습니다.
     "지행역", "동두천중앙역", "보산역", "동두천역"
     날로 발전하는 동두천을 보니 빨리 남북통일이 되어 더욱 발전하길 바래봅니다
               
               [동두천 중앙역에서 (구)터미날 가는 길]
                한북감악지맥3구간의 들머리는 "간파고개"입니다
                그러므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야하는데, 간파고개 가는 버스는
                (구)동두천시외버스터미날에서 출발하므로 그곳 정류장으로 가야합니다.
               '동두천중앙역'에서 약 5분 거리에 있습니다
       
     [간파고개 가는 버스 정류장과 시간표]
     동두천에서 간파고개로 가는 버스는 52번 버스로서 한시간에 한대꼴로 있으니
     버스 사간표를 참고하여 시간에 맞춰야 합니다.
     저희는 9시 10분 버스를 탑니다.
     올때도 같은 버스를 '아마니고개'와 '어유지리' 사이의 삼거리에서 타고 오면 됩니다
     
     [간파고개와 어유지리 가는 52번 버스]
     감악지맥3구간은 대중교통수단이 편리하기 때문에 비싼 관광버스로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은 52번 버스를 전세 낸듯 우리가 독차지하고 떠났습니다
     동두천에서 '간파고개'까지는 약20분이 걸렸습니다
     
     [간파고개]
     동두천에서 약 20분이 걸려 '간파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지난 2구간의 감악산 들머리 이기도 했기 때문에 두번째 찾아 옵니다
     
     [간파고개 산행 들머리]
     감악지맥3구간의 산행 들머리입니다.
     산행 준비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산행 출발]
     9시30분경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늘도 무척 긴 산길을 걸어야합니다
     
     간파고개에서 마차산까지는 길찾기가 어렵습니다.
     앞으로 이 구간을 종주 하실 분들은 미리미리 길을 잘 책크하시고 떠나기 바람니다
     
     [간파고개]
     마차산으로 올라 가며 '간파고개'를 뒤 돌아 봤습니다.
     이제 가면 언제 또 올지 알수 없기에 바라 보는 마음이 아쉬움으로 가득찹니다
     지난 2구간을 걸어 올라 가던 감악산 코스가 보이는 군요.
     "길은 길에 연이어 끝이 없으므로....내가 다시 돌아 올것을 의심하며...."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공부했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詩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 생각납니다
     
     다른 산객들을 만나기 어려운 등산코스입니다
     물론 지맥을 다니는 우리는 사람들을 피해 한적하고 여유로운 산행을 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枝脈을 다닙니다만 그래도 그렇지 마차산까지 단 한명의 산객도 못만났습니다
     
     20여분 오르니 더워지기 시작합니다
     산마루금에 올라 옷을 벗고 더위에 대비합니다
     이곳에서 "늦은고개" 가는 길에 알바하기 쉬운 곳이 한곳있습니다
     처음으로 삼거리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직진하면 않됩니다
     반드시 좌측으로 가야합니다.
     우리 팀에서도 알바를 한 분들이 있으니 앞으로 가실 분들은 조심해야합니다
     
     [늦은 고개]
     간파리 전곡초등분교에서 동두천 안흥동으로 넘어 가는 고개가 나오는데
     "늦은 고개"라고 합니다.
     왜 "늦은 고개"라고 하는지는 알수가 없었습니다.
     이 고갯길로 다니면 시간이 늦는다는 의미일까요?
               
               [늦은 고개 이정표]
                이정표가 가리키는 "마차산 정상 3.8km"를 따라 임도를 걷습니다
     
     [임도]
     "늦은 고개"에서 제법 긴 거리를 임도를 따라 걸어야합니다
     
     [마루금 들머리]
     "다솜농장"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임도를 따라 와서
     여기서 임도를 버리고 북쪽 마루금으로 올라 가야합니다
     "다솜농장"으로 가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마차산 가는 길]
     낙엽이 쌓여있는 마차산 등로를 따라 호젓한 산행을 즐기며 오릅니다
     "담안리" 갈림길을 지나.....
  
     [마차산 가는 길]
     조그만 공터를 지나, 어느 봉우리를 치고 올라 갑니다
     
     [헬기장]
     10시 35분경에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간파고개에서 약1시간5분 걸렸군요
     힘든 오르막은 대략 여기까지입니다
     저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마차산" 정상입니다
     헬기장에서 마차산 정상까지 구간이 "마차산"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니
     경치를 음미하며 여유로운 산행을 하시기 바람니다
     
     [마차산 암릉 구간]
     오늘 구름이 잔뜩 끼어 외부 조망이 꽉 막혀 사진 촬영을 다양하게 못했습니다.
     오로지 앞에 보이는 것들만 촬영할수 있었으니 산행기가 재미 없을수 있습니다
     
     [마차산 암릉 구간]
     동두천 시가지, 소요산, 감악산, 종자산, 보장산, 적성 등등 촬영하려고 했던 곳들을 
     한곳도 촬영하지 못했으니 "마차산 암릉구간"이나 감상하시길....ㅎㅎ
     
     [마차산 암릉 구간]
     지금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곡은 너무나 유명한
     베에토벤 바이올린 쏘나타 5번 "봄"입니다.
     요즈음 크래식 한곡 듣기 어렵지요?
     이런 기회에 클래식 한곡 감상하며 산행기를 읽으시라고 특별히 올립니다
     봄이 성큼 성큼 다가 오고 있지요?
     
     [마차산 암릉 구간]
      봄이 오는 날에 한북감악지맥 마지막 구간을 걸으며 詩 한수 선물합니다
 
            이른봄의 詩  
                    - 천양희 
           눈이 내리다 멈춘 곳에 
           새들도 둥지를 고른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웃으며 걸어오고 있다 
           바람은 빠르게 오솔길을 깨우고 
           메아리는 능선을 짧게 찢는다 
           한줌씩 생각은 돋아나고 
           계곡을 안개를 길어올린다 
           바윗등에 기댄 팽팽한 마음이여 
           몸보다 먼저 산정에 올랐구나 
           아직도 덜 핀 꽃망울이 있어서 
           사람들은 서둘러 나를 앞지른다 
           아무도 늦은 저녁 기억하지 않으리라 
           그리움은 두런두런 일어서고 
           산 아랫마을 지붕이 붉다 
           누가, 지금 찬란한 소문을 퍼뜨린 것일까 
           온 동네 골목길이 
           수줍은 듯 까르르 웃고 있다. 
                       *작가약력 
                     1942년 부산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1965년<현대문학>지로 등단 
                     시집으로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사람 그리운 都市> 
                     <하루치의 희망>등 다수 
  
     [동두천역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
     동두천 시가지에서 직접 오르는 등산코스로 오르면 이곳으로 올라 옵니다
          
          [마차산 암릉 구간]
          오늘 산행기는 쉽게 꽁짜로 씁니다. ㅎㅎ
          눈에 뵈는 것이 없으니 쓸 얘기꺼리가 없어 어쩔수 없는 일 아닙니까? ㅎㅎ
          
          [마차산 암릉 구간]
          "도감포" 쯤에 가서 재미있는 얘기 해 드릴께요...ㅎㅎ
     
     [마차산의 명물- 소나무]
     간파고개에서 마차산 오르는 길에서는 최고의 볼거리입니다.
     암벽 위에서 몇백년은 자랐을 소나무는 아직도 튼튼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마차산의 명물- 소나무]
          저에게는 마차산 최고의 볼거리이자 유일한 볼거리이기도 했습니다
          구름으로 외부는 조망이 없으니....
     
     [수원 홍성목선생님]
     마차산 최고의 볼거리 앞에서 수원에 사시는 홍성목선생님이 포즈를 잡았습니다
     홍성목 선생님도 산을 엄청나게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백두대간, 9정맥은 당연히 완주하시고, 이산 저산 시간 나는데로 무조건 산을 찾습니다
     연세가 칠학년이 넘었는데도 제가 따라 가지 못할 정도로 활기찬 산행을 하십니다
     전국의 산에서 홍성목선생님의 표지기 "수원 홍성목"을 보시거던 감사히 기억해 주세요
     다음에 오실 산객들을 위해 길 안내 표지기를 항상 붙이고 다니십니다
     
     [마차산 암릉 구간]
     
     [정상부근의 城廓]
     암릉구간이 끝나면 정상부근에 城廓 같은 것이 나타납니다
     마차산 정상에 온것입니다
     
     [마차산 정상부]
     城廓 같은 봉우리에 올라 서면 "마차산" 정상이 보입니다.
     앞서 가신 분들이 정상에 서있군요.
     구름으로 시야가 가려 다른 경치를 촬영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마차산 정상]
     마차산정상에 도착하니 10시50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간파고개에서 1시간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구름으로 시야가 막혀 눈에 뵈는 것이 없어 오로지 걷다보니 무지 빨리 온것입니다. ㅎㅎ
 
     [마차산 정상석]
     마차산 정상석의 뒷면에는 "마차산"의 내력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標碑記
     "우리의 古 종교에서는 그 고장의 높고 영험한 산을 골라
     하느님과 선조의 신령을 위하였으니 예가 바로 삼신할머니(麻姑:마고)께서
     主宰하시는 갈뫼(磨岳:마악)이다
     多産과 풍요를 베푸시고 하루밤 사이에 앞쪽의 石城을 쌓으시기도하신
     삼신할머니는 세상만사를 어우르시는 여기의 수리바위에 앉으셔서
     玉비녀와 구슬을 갈고 매무새를 고치셨다는 전설에서 그 이름에
     갈 마(磨) 비녀 차(叉)를 붙여 마차산 磨叉山이라 명명하여 오늘에 이른다."

     
     [마차산 정상 - 수리 바위]
     동두천 시가지가 선명하게 보여야 하는데 구름으로 깜깜합니다
     마차산 정상석에 쓰여있는 '마차산' 이름의 유래는 歷史的 사실을 왜곡하여
     나름대로 美化시켜놨습니다.
     제가 조사한 내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고산자 김정호선생이 작성한『대동지지(大東地志)』 양주편 산수조에는 
    “마차산(摩嵯山)은 양주군 치소에서 북으로 60리에 위치한다"고 하였고, 
     기타 모든 古地圖 및 邑志에도 “摩嵯”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는 "山 우뚝 솟을 차", "山이 울쑥불쑥할 차"라는 한자입니다
     올라 오면서 사진으로 보셨겠지만, 실제로 이 산의 외형은 정상부로 올라가면서 
     암석으로 이루어진 뾰족한 삼각형을 취하고 있어,
     높고 험준한 모양의 뜻을 가진 ‘摩嵯’가 옳은 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이후 행정구역 통폐합 및 국토 전역의 세부 측량 당시 
    ‘馬車’로 오기하여 사용되지기도 했다고합니다. 

     삼신할미가 玉비녀를 갈고 다듬었다고 안내한 정상석의 설명은 이 지역을
     조금이라도 더 튀게 보이게 하려고 지어낸 소설같은 이야기입니다.
     이 지역 발전협의회나 공무원들이 요즘 하는 짖거리가 이런 것들이지요
     이 산의 이름은 磨叉山이 아니라 摩嵯山입니다
     고산자 김정호선생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
     
     [마차산 정상에서 하산]
     
     [댕댕이 고개]
     마차산 정상에서 내려오면 "댕댕이 고개"가 나옵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하산하면 동두천시입니다
               
               [댕댕이 고개 이정표]
                핵교 수업시간에 도망 쳐 이곳으로 놀러 가서 '댕댕이"인가?
                으~음 그건 "땡땡이"인데....
     
     [431m봉 가는 길]
      산행길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431m봉 가는 길]
     멀리 431m봉우리가 보입니다
     30분 정도 걸어야 합니다
     
     [431m봉 중요한 갈림길]
     431m봉우리에 왔습니다.
     431m봉우리는 봉우리 같은 느낌이 없이 불쑥 나타나기 때문에 주의 해야합니다
     길이 오른쪽으로 나 있는데 이 길로 가면 玉女峯으로 가는 길입니다.
     감악지맥을  종주하시는 분들은 90%이상 옥녀봉으로 가서 한탄교로 갑니다.
     그러나 진짜 감악지맥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 "아나미 고개"를 지나 "도감포"로 가야합니다
     
     [점심식사]
     431m봉우리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점심식사는 약 1시간 10분간 흥겨웁게 진행됬습니다
  
     [개구리 식사]
     오늘의 특별식 - 개구리
     '봉자언냐'가 저에게 특별한 음식을 선사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개구리'였습니다. 
     요즘 개구리 잡아 먹으면 벌금이나 감옥 간다고합니다. 중국산이라고 해 놓고...ㅎㅎ
     처음 접해 보는 식용 개구리를 난생 처음 먹어 보았습니다.
     처음엔 약간 거부감을 느꼈으나, 먹어보니 그런대로 먹을만 했습니다.
     '봉자언냐'가 특별히 선사한 개구리를 먹고...힘이 솟나? 난 어떡하라구~
     오른쪽 사진의 개구리 가운데 까만것이 '개구리 알'입니다
     살다 보니 별거 다 먹어 봅니다. 여하튼 '봉자언냐' 고맙습니다~
          
          [낙엽길]
           점심을 먹고 정말 한적하고 낭만적인 낙엽길을 걷습니다
          
     
     한적하고 낭만적인 낙엽길도 잠깐이고, 오르막과 내리막은 계속됩니다
     
     [밤골재]
     간파리에서 전곡읍 양원리로 넘어 가는 고갯길입니다
     
     [밤골재]
  
     [397.8m봉]
     가파른 387.8m봉을 치고 올라 갑니다
     
     [397.8m봉]
     이 봉우리도 암봉이었습니다
     
     [397.8m봉]
     
     [397.8m봉]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가는데 길이 없습니다.
     오리지날 감악지맥3구간에는 산객들의 흔적이 거의 없어 길이 없는 곳이 많습니다
     전곡읍 양원리가 내려다 보입니다.
     오후가 되니 구름이 조금 걷혀 시야가 트이기 시작합니다
     
     [397.8m봉]
     397.8m봉에서 내려 가니 군훈련장이 나타납니다
     
     [군훈련장]
     군훈련장을 지나갑니다
     
     [파주시 적성]
     군훈련장에서
     좌측으로 파주시 적성읍이 보입니다
     
     [연천군 전곡읍 양원리]
     군훈련장에서
     우측으로 연천군 전곡읍 양원리가 보입니다
     
     [군훈련장을 뒤로 하고...]
  
     이름 모를 봉우리를 또 올라 갑니다.
     300m정도 되는 봉우리를 수없이 넘어야 "도감포"로 갈수 있습니다.
     의외로 감악 마지막 구간이 힘들더군요
     
     [아마니 고개]
     무명봉을 넘으니 군교통호 시설들이 있는 "아마니 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아마니 고개]
     우리나라 남쪽에서는 최북단 국도로서 동서를 연결하는 [37번 국도]가 지나가는
     "아마니 고개"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아마니 고개]
     전곡읍 양원리(兩遠里)와 파주시 적성면 적암리 경계에 있는 아마니 고개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고 연천군 홈페이지에 쓰여 있습니다.. 

     예전에 양원리에 어떤 과부가 어린 아들을 하나 데리고 살고 있었답니다. 
     과부는 살기도 어렵고 남자 생각도 나서, 
     이 고개를 넘고, 고릉리 쪽에 있는 서방고개를 넘어, 
     밤나들이를 다니면서 몰래 남자를 사귀었답니다. 
     이 사실을 안 어린 아들이 어머니를 말리기 위하여 '기와 마을' 뒤의 고개에 올라가 
     바람피러 가지 말고 돌아 오라고 어머니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후 그 고개를 ‘부른고개’라고 하였는데, 
     오늘날에는 말소리가 바뀌어 ‘부릉고개’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 어머니가 넘어 다니던 이 고개는 ‘어머니고개’라고 불렀는데, 
     역시 오늘에 이르러는 말소리가 바뀌어 ‘아마니고개’라고 불려진다는 것입니다.

     
     [아마니 고개]
     호~~
     어머니도 어머니이기 전에 여자이라, 바람피러 다니며 넘나 들던 고개라고 어머니 고개라고 했다니..
     그리고 그것이 음운변화를 거쳐 아마니 고개가 됬다고하니
     아까 먹은 개구리가 자꾸 신체변화를 일으키는군요...~
     
     [아마니 고개]
     봉우리에 올라 가며 뒤 돌아 본 "아마니 고개"
     일산에서 아들 군대 면회 가며 넘나 들었고,
     '다이너스티 C.C.'에 자치기 다니러 또한 무지 넘나 들었으며,
     속초나 화진포로 놀러 갈때 숱하게 넘나 들던 이 고개가
     바람난 어머니가 넘나 들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니
     다시 한번 더 뒤 돌아 보게 되는군요. ㅎ
     
     아마니 고개 봉우리에 올라 서니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도감포"가 보이는 봉우리가 보입니다.
     
     [도감포 가는 길]
     그냥은 쉽게 종착역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걷고 또 걷고를 반복해야합니다.
     
     [임진강]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에 오르니 좌측으로 임진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임진강(臨津江)은 274km로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로 큰 강입니다. 
     함경남도 덕원군 두류산에서 시작하여 남서 방향으로 254km를 흘러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전망대'가 있는 곳에서 한강과 합류합니다. 
  
     [도감포 가는 길]
     임진강의 이름은 원래 新知江이었지요
     우리나라 왕들 중에서 제가 가장 싫어하는 왕인 宣祖에 의해 강 이름이 바뀌지요
     정통성 없는 왕이라 언제나 정적들을 의심한 宣祖는 임진왜란이라는 쪽바리들의 침략으로
     삶의 터전인 한양을 버리고, 백성을 나몰라라 하고  의주로 도망을 가지요
     몽진을 가는 날 밤,新知江에 도착하니  비바람 천둥 번개가 휘몰아 쳤다고 합니다
     新知江, 즉 지금의 臨津江을 밤중에 비바람 풍랑까지 일어 건너 갈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파평에 있는 이율곡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신지강 가의 화석정에 불을 질러
     江을 밝히고 간신히 신지강을 건넜답니다.
     화석정에 불을 지르는 아이디어는 '백사 이항복'이 냈다고합니다
     선조 27년(1593) 10월 宣祖는 전쟁이 끝나  환도할 때, 이 강에 당도하여 국가민족을 위하여 
     순국한 장병들의 영혼의 넋을 달래고자 나루터 강변 모래사장에 제물을 차려놓고 위령제를 지내면서 
     의주 파천당시 4월 그믐밤 폭풍우속 노심초사 고생 끝에 이 나루를 건너게 된 쓰라린 아픔과 
     이 강을 지키고져 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용감한 충신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가운데 宣祖는 
     통곡하며 그래도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天佑神助)로 나루를 다시 돌아오게 되었구나 하였다하여 
     신지강(神智江)이 임진강(臨津江)으로 개칭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감악지맥 마지막 봉우리]
     마지막 봉우리에 도착했습니다
     수 많은 봉우리를 넘고 넘어 왔습니다
     
     [도감포]
     漢北紺岳枝脈이 그 수명을 다하고 臨津江과 漢灘江이 합치는 두물머리에서
     길고 긴 줄기를 강물 속으로 담금니다
     이 한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할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험난한 길없는 길을 헤치고 오지 않고는 볼수 없는  臨津江과 漢灘江이 합치는 
     두물머리입니다.
     아~!! 도감포의 두물머리~
     漢北紺岳枝脈의 끝
     
     [도감포에서의 환희]
     이곳에서 모두 漢北紺岳枝脈 완주를 축하하며 환희에 젖습니다
     
     [도감포]
     한탄강 漢灘江
     태봉국의 궁예가 패망의 恨을 품고 건넜다던가!~
     6.25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피로 물들어 恨맺힌 江이라던가!~
     우연히도 슬픈 사연이 많아  ‘恨灘江’으로 불리며 전해왔기 때문에
     진정한 한탄강의 의미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고산자 김정호선생은 『大東地志』에서 大灘江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큰 여울"이라는 뜻입니다. 灘이 여울 탄이기 때문입니다
     '크다. 넓다. 높다.'라는 말을 통칭하는 순수한 우리말이 "한"이지요. 
     한아름, 한가득, 한강..등등과 같이.....
     그래서 大灘江이 세월이 흐르면서 순수 우리말로 음운변화를 거쳐 한탄강이 되고,
     한자로 漢灘江이라고 씁니다만 진정한 의미는  "큰 여울"이라는 뜻입니다
     漢灘江은 우리나라 유일의 火山江입니다.
     철원 위 북한 평강의 오리산에서 35만년전에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이 흘러 내리며 만들어진 강입니다. 그래서 한탄강에는 주상절리가 귀괴하게 발달해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평강의 오리산에서 11번이나 분출한 용암이 흘러내려 
     철원평야와 연천 은대리평원의 기반암이 되었고, 강은 시커멓고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이 지천이며 
     협곡이 절경을 이룬 풍경이 곳곳에 펼쳐져있습니다.
     비교하자면 한국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옆에 있는 枝川]
     
     [도감포]
     앞에 보이는 큰 강이 "한탄강"이며, "임진강"은 한탄강 너머에 있어 보이지 않는군요
     바로 앞은 양원리에서 내려 오는 枝川입니다.
     도감포[都監浦, 陶哥湄, 陶家湄, 甕岩灘]
     도감포는 임진강과 한탄강이 합류하는 곳에 있던 포구 마을 이름입니다.. 
     옛날 한강에 새우젓배가 들어와 육지의 농산물과 물물교환을 하던 나룻터였다고하며
     항아리 형태의 지형 안에 있는 포구란 뜻으로, 독안포라고 불리워 지다가
     한자로 지명을 옮겨 쓰는 과정에서 여러 한자어로 표현되었다고하며,
     세월이 흐르며 음운변화를 거쳐 독안포 → 도감포로 불리워 졌다고 합니다
     
     후미 그룹이 뒤따라 도감포로 내려 오고 있습니다
  
     [枝川을 건너...]
     
     [징검다리를 건너고....]
     漢北紺岳枝脈의 끝을 만끽합니다
  
     [兩遠里 가는 길]
     버스를 타기 위해 37번 국도로 나가는 길입니다
     
     [兩遠里 가는 길]
     도감포에서 37번 국도까지가 또 먼 길입니다.
     兩遠里는 연천에서 제일 먼곳에 있는 두곳의 마을이라고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는군요
  
     [양원리 버스 정류장]                         [마을버스]
     양원리 버스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어유지리 삼거리로 와 
     다시 오전에 타고 왔던 52번 버스를 타고 동두천으로 갔습니다
     
     [구글어스 산행 괘적도]
     
     [뒷풀이]
     오늘의 뒷풀이는 "漢北紺岳枝脈 卒業式"이었습니다.
     그 동안 수고하신 횐님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동두천 중앙역]
      어둠에 뭍혀가는 동두천중앙역에서 전철을 타고 귀가합니다
      2월 22일 장흥의 '말머리고개'에서 시작한 漢北紺岳枝脈은 
      한강이 보인다는 한강봉을 넘고, 봉황이 숨어 있었다는 '은봉산'을 지나,
      소사고개, 팔일봉, 하우고개, 노아산, 게너미고개, 264m봉,세우개고개를 넘어
      미사일이 북녁을 향해 겨누고 있는 노고산을 지나 수레너미고개까지 1구간
      19.5km를 6시간 25분이 걸려 완주하였습니다
     
     [1호선 전철 안]
     3월8일에는 간파고개에서 역으로 시작한 2구간
     임꺽정과 설인귀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감악산을 오르고,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말을 타고 훈련을 했다는 설마치고개를 지나고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게 항복하러 가던 어룡고개를 지나
     무건이고개, 수레미고개, 수레너미고개까지 18.7km를 8시간 15분이 걸려 완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간파고개에서 마차산을 오르고, 아마니 고개를 지나, 도감포,
     양원리 버스 정류장까지 14.8km를 7시간 40분이 걸려 완주하였습니다
     총 53km를 쉬는 시간 합쳐 모두 22시간 20분에 완주하였습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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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北紺岳枝脈2區間』

       간파고개-감악산-설마치고개(어룡고개)-
       무건이고개-수레미고개-수레너미고개
     2009년 3월 8일
     春三月 두번째 일요일
     약간의 안개가 끼었으나 화창한 봄날씨에 바람도 없는 산행하기 좋은 날
     漢北紺岳枝脈2區間을 정복하기 위해 발길을 옮깁니다
     오늘도 "서울백두클럽"과 함께 합니다
     
     
     [간파고개]
     경기도 양주시와 연천군의 경계선이 되는 "간파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원래 1구간 날머리였던 "수레너미고개"에서 감악산을 넘어 이곳으로 오려고 했으나
     2區間 거리가 다소 길어 逆으로 진행합니다
     
     [간파고개]
     이 고개 이름은 지도에 따라 다르게 표기하고있습니다. 주로 간패고개라고들 하더군요
     정확한 이 고개 이름은 간파고개입니다.
     방패 干, 고개 坡로서 양주시에서 연천군 전곡읍 간파리로 넘어 가는 고개입니다
     
     [간파고개]
     漢北紺岳枝脈3區間 들머리가 되기도하는 '간파고개' 동쪽으로 "마차산" 가는 길입니다
     이곳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출발합니다.
     이 길은 다음 한북감악지맥3구간 들머리가 됨으로 3월22일에 다시 이곳에 와
     앞에 보이는 길로 "마차산"을 오르고 "도감포"로 갈것입니다
     
     [간파고개]
     지맥 마루금은 앞의 건물을 가로 질러 가야합니다만, 피해서 좌측으로 내려가
     우회하여 감악산을 오릅니다
     9시45분 산행을 시작합니다
     
     [간파고개]
     약간 양주 방향으로 내려가 감악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비탈길을 치고 오릅니다
     
     비탈길을 치고 올라 "간파고개"를 뒤돌아 봅니다
     저 멀리 漢北紺岳枝脈3區間의 핵심 봉우리인 마차산이 보이는군요
     3월22일에 저곳으로 올라,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도감포"로 가서,
     漢北紺岳枝脈을 졸업할 예정입니다
  
     "간파고개"에서 감악산 정상까지는 거의 오르막입니다
     된비알을 치고 올라 가야합니다
     
     [감악산]
     약 30분 정도 된비알을 치고 오르면 멀리 감악산 정상과 '임꺽정봉'이 보이기 시작하며
     오늘 산행은 저 감악산 정상을 보며 오르고, 감악산을 뒤돌아 보며 목적지까지 내려 갑니다
     그러므로 오늘 산행기에는 '감악산 임꺽정봉'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너무 자주 등장하여 다소 식상할수도 있겠으나 
     그것마저 없었다면 우리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알수 없었을 것입니다
     '길은 길에 연이어 끝이 없으므로....'
     
     감악산은 모두 아시다시피 京畿5岳인 개성의 송악산, 서울의 관악산,
     포천의 운악산, 경기도에선 가장 높은 가평의 화악산과 함께 명성을 날리고 있는 산입니다
     
     [임꺽정봉]
     감악산의 대표 봉우리는 감악산 정상이라기 보다 "임꺽정봉"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감악산을 京畿5岳에 들어 갈수 있게 해준 봉우리라 할수 있으니
     감악산에 가면 반드시 "임꺽정봉"을 올라 보아야합니다
     
     오르는 길엔 소나무가 제법 많으며,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헬기장]
     '간파고개'에서 쉬지 않고 1시간을 오르니 '헬기장'이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산행을 할때엔 30분 정도 오르면 한번 쉬는데
     "서울백두클럽"의 횐님들은 1시간에 한번정도 쉽니다
     산행 초보들에겐 다소 벅찰수 있는 진행입니다만....
     여하튼 걷는데는 모두 도사들입니다. ㅎㅎ
     
     [헬기장]
     10시55분에 헬기장에 도착했으니 간파고개에서 1시간10분 걸렸습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휴식
     감악산 정상이 바로 보입니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20분 정도 걸립니다
     감악산 정상에는 KBS DMB 방송 전파송출탑이 어마어마한 크기로 솟아 있어
     양주,파주,연천 어느 곳에서나 감악산을 알아 볼수 있습니다.
     
     [헬기장]
     헬기장에서 남서쪽으로 보이는 웅장한 암봉이 '임꺽정봉'입니다
     옛날 임꺽정이 관군에 쫏겨 도망칠때 저곳 봉우리 낭떨어지 중간에 나있는
     조그만 굴에 들어가 숨었다고해서 '임꺽정굴'이라고 한답니다
     '임꺽정굴'은 일반인들은 가 볼수 없는 낭떨어지에 있는데 남선굴(南仙屈)이라고도 한다는군요
     고려말의 문신인 '남을진'은 정치가 문란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사천현으로 낙향하였답니다
     이성계가 쿠데타로 조선을 개국한 후 벼슬에 나오기를 청하였으나 고사하였다고 합니다
     이성계는 두임금을 섬기지 않으려는 충절을 높이 사 사찬백(沙川伯)에 봉하였는데 
     남을진이 통곡하기를 "내가 산속 깊이 들어가지 못하여 이런일이 벌어졌노라"고 하면서 
     쿠데타로 왕이 된 이성계로부터 벼슬을 받는 것이 무지 부끄러워, 머리를 풀고 감악산 석굴속에 들어가 
     눈으로 해를 보지않고 발로 석굴밖의 땅을 밟지 않으면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합니다
     그래서 후세사람들은 이곳을 '남을진'이 神仙이 되었다하여 '南仙屈'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1842년에 쓰여진 "양주목읍지"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이성계의 쿠데타는 수많은 고려충신들을 '두문불출'하게 만들었습니다
     
     [헬기장]
     헬기장에서 북쪽을 바라 보면 북능선이 보이고, 중간에 있는 암봉이
     '자라바위'라고하는데 여기서는 그 모양새를 알아 볼수 없군요
     
     헬기장에서 지나온 '간파고개'와 3구간에서 갈 '마차산'이 아득하게 보입니다
     마차산 뒤로 '소요산'이 운해 위에 떠있습니다
  
     [감악산 정상 오르는 길]
     헬기장에서 감악산 정상까지가 가장 가파른 오르막입니다
     경치 구경 할 틈도없이 숨막히는 된비알을 오릅니다
     
     [감악산 정상 오르는 길]
     京畿5岳 다웁게 바위들이 웅장함을 자랑합니다
     
     [감악산 정상 오르는 길]
     
     [감악산 정상 오르는 길]
     정상부 북쪽사면에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고 그 수명을 연장하려는듯
     서로 꼭 껴안고 봄기운을 무서워하고 있는듯합니다
     
     [전망대]
     
     [전망대]
     전망대에서 천길 낭떨어지 아래로 펼쳐지는 양주시 은현면과 남면, 
     그리고 좌측 '봉암저수지'와 우측 제법 큰 '원당저수지'가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감악산 정상]
     감악산 정상이 다가 옵니다
     
     [성모 마리아 상]
     북녁을 향해 서있는 성모 마리아상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감악산에서 성모 마리아상이 북녁을 향해 평화를 호소하고...
     성모 마리아상을 보니 생각나는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지난 2월 16일 선종(善終)하신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께서 
     2003년 11월 18일 서울대 초청강연 중 하신 말씀을 옮겨 봅니다.
     삶이 뭔가, 삶이 뭔가 생각하다가 너무 골똘히 생각한 나머지 기차를 탔다 이겁니다. 
     기차를 타고 한참 가는데 누가 지나가면서 `삶은 계란, 삶은 계란`.(웃음) 
     추기경이 하신 말씀이니 더욱 재미있게 느껴져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은 그렇게 화려한것도 아니고, 그러게 초라한 것도 아닌
     그냥 사는 모습 그 자체이지요.
     
     [KBS DMB 방송 전파송출소]
     감악산 정상에는 "KBS DMB 방송 전파송출소"를 큰 규모로 지었습니다
     지난해에 왔을 때엔 공사중이었는데 이젠 완공이 되었고
     감악산 정상까지 자동차도로를 포장까지 했더군요
     요즘은 산 정상을 군부대 대신에 방송이나 통신사들의 건물들이 차지하고있습니다
     
     [감악산 정상]
     감악산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오르막
     
     [감악산 정상]
     감악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제법 넓은 정상부입니다만 많은 산객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올라온 '간파고개'에서의 감악지맥 마루금을 따라 오르는 코스에선 일반 산객들을
     단 한명도 볼수 없었습니다만, 정상에 오르니 무척 많은 산객들이 우굴거리는군요
     이유는 감악산 등산코스는 주로 '설마리' 감악 계곡의 "법륜사"에서 원점회귀 산행을 하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지맥 종주자들이 다니는 길에는 일반 등산객이 힘들고 길찾기도 어려워 
     쉽게 접근할수 있고 주차하기도 편리한 일반 등산로를 좋아하고, 지맥길은 싫어하기 때문이지요.
     프로와 아마의 차이라 할수 있을려는지....ㅎㅎ
     지맥을 다녀 보면 일반 등산로를 다니는게 너무 재미없다는 것을 확연히 알수 있을텐데....
     
     [감악산 정상]
     감악산 정상은 現代와 古代가 공존하고 있는듯합니다
     모든 글자가 세월의 풍상에 이기지 못하고 사라진 이름 모를 비석과
     미래의 방송이라하는 초현대식 DMB방송 송출 안테나가 천하를 내려다 보는 감악산 정상
     그리고 군부대의 초소
     많은 것을 생각하게합니다
          
          [감악산 정상석]
          감악산은 감색 紺. 큰산嶽
     
     [감악산 정상]
     뒤에 보이는 비석은 세월의 풍상에 비석의 표면은 모두 마모되어 글자를 젼혀 알수 없어서 
     공식적인 안내판에 추측으로만 이 비석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설인귀 제단"이라는 설과 "진흥왕 순수비"라는 설 두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설인귀는 당나라 태종때 요즘 말로 하자면 쫄병으로 군대에 입대해서 
     사령관이 되는 입지전적 인물이었죠. 주로 우리 고구려를 침략하는 앞잡이 역할을 하였으며, 
     결국 고구려를 멸망 시키는 핵심 장군이었답니다
     진흥왕 순수비라는 설은 모양이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와 매우 흡사하다는데서 유래하였답니다
     그러나 모두 추정만 할 뿐 정확한 사실은 모르고 있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모로 조사한 내용을 '설마치고개'로 하산할때 알려 드리겠습니다
     
     [감악산 정상]
     감악산 정상에서 북서쪽 '까치봉'으로 가는 길로 나가면
     군부대 초소와 통신사들의 안테나가 있는데 이곳으로 나가면
     1,600년전에서 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로 차지하려고했던
     "임진강"의 "고랑포"와 적성평야가 펼쳐집니다
     
     [감악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적성과 임진강]
     오늘은 안개로 조망이 트이지 않는군요.
     이곳에서 京畿五岳이 모두 보인다는 곳인데....
     특히 개성의 '송악산'이 맑은 날에는 잘 보인다는데 앞에 임진강도 희미하게 보이는군요
     앞에 펼쳐진 마을이 적성이며 城이 있었다고 積城입니다. 그 앞으로 임진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임진강 주변에는 고구려시대와 고려시대의 수많은 城이 있으나 발굴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임진강을 건너는 '고랑포'가 있습니다. 고랑포는 영남지방에서부터 개성으로 가는
     핵심 교통로였다고합니다.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화신백화점 분점"이 이곳에 있었다고하니
     그 옛 명성을 짐작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6.25는 그러한 영화를 송두리째 앗아 가 버렸습니다
     '도라산'은 잘 보이는데 안개 때문에 오늘은 보이지 않습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향 '서라벌'로 돌아 가지 못하고 뭍힌 곳이기도합니다
     新羅의 都邑인 경주로 돌아 가지 못하고 낙랑공주와 함께 고향을 바라 보며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했다는 것이 '都羅山'의 이름이 지어지게 된 동기라 하니 
     이곳이 어떤 곳인지 가히 짐작할수 있습니다
     
     [감악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임꺽정봉]
     감악산 정상과 임꺽정봉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으며 '감악지맥 마루금'은 
     앞 봉우리 우측으로 나있습니다. 
     임꺽정봉을 올랐다가 다시 마루금으로 되 돌아 와야합니다
  
     [어름골재]
     감악산 정상과 임꺽정봉 사이에 법륜사에서 올라 오는 계곡 등산로를 만나는데
     이곳이 '어름골재'입니다.
     법륜사에서 이곳까지 얼음이 오래토록 남아 있어 그렇게 불리워졌다지만
     이 계곡엔 숯을 굽는 가마가 많이 있었다고합니다
  
     [임꺽정봉 정상으로 가는 길]
  
     [임꺽정봉 안부]
     
     [임꺽정봉]
     임꺽정봉을 오르는 코스에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좌측으로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야합니다
     
     [임꺽정봉]
     암벽에 로프 하나 걸려있어 오랜동안 줄을 서서 오르고 내려야합니다
     
     [임꺽정봉]
     암벽을 오르면 임꺽정봉 설명안내판이 있는데 글자들이 모두 지워져 알아 볼수 없습니다
      임꺽정은 홍길동(洪吉童)·장길산(張吉山)과 함께 조선의 3대 도적으로 일컬어집니다
     도적도 그냥 도적이 아니라 의적으로서 백성들에게 인기있는 도적이었습니다
     조선 명종시절 몰락농민과 백정·천인들을 규합하여 지배층의 수탈정치에 저항하며
     요즘 말로 하자면 민주주의를 부르짖었지요
     
     [임꺽정봉]
     임꺽정봉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 안내판이 있는 곳을 바라봤습니다
     林巨正은 경기도 양주 '불곡산' 아래에서 백정 신분으로 태어나 황해도에서 주로 생활했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비슷한 처지의 농민 수십 명과 그 가족으로 집단을 이루어 
     황해도의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도적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날쌔고 용맹스러우며 지혜로웠던 그는 1559년경 황해도·경기도·평안도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이 지역의 관청이나 양반·토호의 집을 습격, 이들이 백성에게서 거두어들인 재물을 빼앗았습니다. 
     또한 서울·평양 간 도로와 그밖의 주요교통로를 장악하여 정부가 농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인 
     토지세·공물·진상물 등을 탈취했습니다. 빼앗은 재물을 빈민들에게 나누어주어 의적으로서의 
     성가를 높이고 이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기에 오랜동안 세를 유지 할수 있었습니다
     관군의 끈질긴 추격으로부터 도망하던 중 마침내 1562년 1월 서흥에서 부상을 입고 체포당해, 
     15일 만에 죽음을 당했습니다.
     
     [임꺽정봉에서 바라 본 '장군봉'과 지맥 마루금]
     감악산에서 가장 아름운 곳이 이곳입니다.
     '임꺽정봉-장군봉-병풍바위-악귀봉'능선
     
     [임꺽정봉에서 바라 본 '악귀봉'과 지맥 마루금']
     바로 앞 가운데 능선이 '설마치고개'로 가는 지맥 마루금입니다
     
     [임꺽정봉에서 바라 본 '신암저수지'와 지맥 마루금]
     가운데 오른쪽 능선이 지맥 마루금이며, 신암저수지를 옆에 끼고 내려갑니다
     오른쪽 멀리 보이는 하얀 부분에 있는 도로가 '설마치고개'입니다
     
     [임꺽정봉을 내려 갑니다]
          
           감악지맥 마루금은 임꺽정봉 앞 능선으로 올라 가야합니다
  
     [부도골 내려 가는 길]
     저는 부도골로 내려 가는 길로 내려가 오른쪽 으로 올라가 마루금을 올라 탓습니다
     
     [장군봉]
     장군봉 마루금에 올라 경치를 구경하며....
     
     [악귀봉과 신암저수지]
     장군봉 능선에서 바라 본 악귀봉과 신암저수지입니다
     마루금은 '악귀봉'을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신암저수지' 방향으로 내려 가야합니다
     
     [장군봉 능선에서 바라 본 감악산 정상]
     감악산 정상은 岳山이라 할수 없고, 이곳 임꺽정봉과 장군봉, 악귀봉이 岳山입니다
     
     [병풍바위-얼굴바위]
     사람의 얼굴 옆모습처럼 보인다고 얼굴바위라고도 하며, 병풍바위라고도한답니다
     '임꺽정봉'이 멀리 보입니다. 임꺽정굴에서 관군의 추격을 뿌리치기위해 숨었을 임꺽정.
      봉건사회에 저항하며 짧은 한 생애를 보낸 임꺽정........
      요즘에 태어 났더라면 국회의원 정도는 했을텐데...
     
     [병풍바위 내려가는 계단]
     
     [악귀봉]
     아래 안부에서 앞에 보이는 '악귀봉'을 우회하여 지맥 마루금으로 가야합니다
     
     지나온 병풍바위 계단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악귀봉' 안부에서 우회합니다
      앞으로 '한북감악지맥2구간을 종주 하실 분들은 '서울백두클럽' 표지기를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것입니다
     
     [지맥 갈림길]
     매우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일반 등산객들은 모두 이곳에서 법륜사로 하산합니다
     그러나 지맥 종주하는 산객들은 여기서 앞으로 직진하여 '악귀봉'을 우회하여
     전진해야합니다. 이곳에서 알바를 많이 하니 유의하여야합니다
     
     [서울백두클럽 표지기]
     서울백두클럽의 초록색 표지기를 따라 가면 길찾기가 매우 쉽습니다
     
      '악귀봉'을 돌아 내려 와서 뒤돌아 본 '임꺽정봉'입니다
      절벽에 굴도 보이는 듯합니다
  
     [어룡고개로 하산 하는 길]
     일반 등산객을 단 한명도 찾아 볼수없는 지맥길
     조용하고 한산합니다
     
     [군 유격 훈련장]
     조금 내려 가니 군 유격훈련장이 나왔으며,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이곳에 12시 45분에 도착했으니 '간파고개'에서 3시간이 걸렸습니다
     
     [군 가스 실습실]
     현역으로 군대를 갔다 오신 분들은 한번쯤은 들어 가 봤을 '가스실'이 있습니다
     이곳은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이었으나 해제되어 이렇게 이런 시설을
     추억으로 삼으며 다닐수 있게 됬으니 격세지감이 듭니다
     
     가스실에서 바라 본 임꺽정봉
  
     추억의 가스실을 지나 지맥 마루금을 따라 갑니다
     
     [신암 저수지]
     신암저수지는 지금으로부터 약30년전에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만들어 졌다고하며
     면적은 95ha이고 저수량은 387,000t이라고 합니다
     
     신암저수지를 조금 지나니 우측으로 '설마치고개' 971번 지방도로가 보입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시는 沈熔輔 先生]
     저의 산행기를 읽으시는 분들에게 꼭 소개해 드리고 싶은 분이십니다.
     이 분의 연세가 72세이신데 아직도 일주일에 평균 4~5일은 등산을 다니신답니다
     지난번에 우리나라 4,000산 등정 기록 기념도 했더군요. 축하드림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백두대간 9정맥은 물론, 전국 대부분의 산에는 이 분의 표지기가 달려있습니다.
     산행하시다가 4,000산 등정, 서울 陽川 沈熔輔라는 표지기가 보이면
     이 분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72세에 이렇게 산을 오를수나 있을려는지 그게 더 관심이 갑니다. 에구~
     
     [설마치고개 - 어룡고개 ]
     오늘 산행의 반환점 정도 되는 "설마치고개'가 보입니다
     오전에 '간파고개'에 우리를 내려 놓았던 관광버스가 이곳에 와 다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로를 느끼는 분들을 위해서 산로를 탈출할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산행을 하니 초보 산객들도 얼마던지 참여 할수 있습니다
     
     [설마치고개]
     설마치고개에는 터널화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설마치고개 - 어룡고개 ]
     오후 2시 5분에 '설마치고개'에 도달하였으니, '간파고개'에서 4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앞으로도 4시간을 더 가야 합니다
  
     [설마치고개 - 어룡고개 ]
     양주시 남면 시낭ㅁ리에서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로 넘어 가는 고개 이름입니다
     당나라 장수 설인귀(薛仁貴)가 말을 타고 달리던 고개라고 붙여졌다고합니다
     설마치고개는 한자로 薛馬馳라고 쓰는데 가 "말 달릴 치"라는  말이므로
     설인귀가 말을 타고 '무건리'에서 감악산으로 무술 훈련을 하던 속이라는 말입니다
     
     [설마치고개 - 어룡고개 ] 
     설마치고개를 지나 지맥길을 오르며 내려다 본 설마치고개
     이제는 설인귀도 임금도 간곳없고 산객들과 차량들이 넘나들고 있습니다 
     薛馬馳고개어룡고개라고도 하는데, 한자로 御龍이라고 쓰며
     여기서 은 전설 속의 동물 용이 아니라 언덕 룡입니다
     즉 임금이 넘어 간 고개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전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고려를 세운 '왕건'에게 항복을 하러 이 고개를 넘어,
     고랑포를 지나 개성으로 갔다고 합니다. 항복하러 가며 禮物을 수레에 싣고 갔는데
     그 수레의 행렬이 십리를 넘었다고 합니다.
     '경순왕'의 맏아들 "金一"은 항복을 거절하고 신라를 재건하기 위해 금강산으로 가지요.
     프로 레스링 선수 金一과 이름이 같은 그가 바로 그 유명한 "麻衣太子"이지요
     "麻衣太子"는 왕건의 고려군사들에게 들키지 않기위해 거지 행각을 하기위해
     삼베옷을 입고 갔다고해서 얻어진 닉네임이지요. 본명은 "金一"입니다
     
     설마치고개를 지나 반대편 마루금에 올라 감악산쪽 신암저수지 전망대가 있었던
     봉우리를 뒤돌아 보았습니다
  
     [삼거리]
     날등에 올라 서면 첫번째 삼거리가 희미하게 나오는데 우측으로 갑니다
     설마치고개에서 수레너미고개까지는  알바하기 쉬운 갈림길이 많으므로
     주의를 많이 요합니다
     
     [멀어져 가는 감악산 임꺽정봉]
     이제부터 감악산 임꺽정봉을 뒤로하며 계속 전진합니다
  
     [무건이고개 가는 길]
     
     [무건이고개 가는 길]
     '서울백두클럽 회원' 이외의 산객들은 단 한명도 만나지 못한
     호젓한 산길을 봄바람 맞으며 걷고 또 걷습니다
  
     [군 유격 훈련장]
     이곳 능선도 군 훈련장이었습니다
     탱크들이 다니는 넓은 길이 나오면 직진하여 마루금으로 올라 갑니다
     
     [무명봉]
     철조망을 끼고 매우 가파른 된비알을 올라 갑니다
     이미 많은 시간을 걸었기에 피로를 많이 느낌니다
     
     [무명봉]
     사진에서는 완만하게 보이는 봉우리이지만 실제는 경사가 심합니다
     
     [무명봉]
     봉우리 정상에 올라 휴식을 취했습니다.
     '설마치고개'에서 약 1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파평산]
     북서쪽으로 '파평산'이 보이는군요
     
     [탱크 훈련장]
     탱크들 보이시나요?
     한북정맥에 붙어있는 지맥에는 군부대 투성이였지요
  
     [무건이고개 가는 길]
     薛仁貴에 대해 제가 조사한바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중국의 경극(京劇) 독목관(獨木關)에는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과 설인귀(薛仁貴), 
     그리고 연개소문(淵蓋蘇文)이 등장합니다. 
     그 경극의 내용은 이세민이 고구려 영토인 봉황산(鳳凰山)에서 연개소문에 패해 위기에 빠졌을 때 
     설인귀가 나타나 구해준다는 이야기입니다.
     '구당서(舊唐書)'에 나오는 '설인귀 열전(列傳)'은 고구려 침략에 실패하고 돌아온 이세민이 
     설인귀에게 "짐(朕)은 요동(遼東)을 얻은 것에 기뻐하지 않고, 경을 얻은 것에 기뻐한다"
     (朕不喜得遼東,喜得卿也)라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한쪽 눈을 잃고 애꾸 눈이 되어 패주한 주제에 “요동을 얻었다”는 말은 허세에 불과하지만 
     당태종 이세민에 의해 이후 설인귀는 중국인의 영웅이 됩니다. 
     서기 670년에는 지금의 감숙성(甘肅省)과 신강성(新疆省) 일대를 공격해 큰 공을 세우기도 하지만 
     중국인들이 설인귀를 좋아하는 근본 이유는 
     그가 일개 농민 출신으로 대장군까지 된 입지전적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무건이고개 가는 길]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이제는 힘드는 봉우리가 되겠습니다
     설인귀는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제사를 지내던 인물입니다. 
     '세종실록 지리지’ 경기도 적성현(積城縣)조는 감악산(紺嶽山)을 설명하면서
     "세상에 전하기를, '신라 사람이 당나라 장수 설인귀를 제사 지내어 산신(山神)을 삼았다'고 
     한다”라고 기록했으며, 또한‘신증동국여지승람’적성현 조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이러한 것에 대한 배경은‘한국지명총람' 파주 조에 실려 있습니다. 
     "설인귀는 적성 부근에서 태어나 감악산에서 무술을 익혔는데, 
     당나라에 가서 모국인 고구려를 쳤다. 
     그리고 후에 이를 자책해 죽은 뒤 감악산의 산신이 되어 우리나라를 도왔다"는 것입니다. 
     황현(黃玹)도 ‘매천야록’에서 “전설에 의하면 적성현 설마치(薛馬峙)는 설인귀가 
     말을 달리던 곳이다”라고 전하고 있는데 이것는 아마도 설인귀를 고구려 출신으로 
     만들고 싶었던 후세인들의 창작일 것이라 여겨집니다.
     
     [무건이고개 가는 길]
     지금 배경 음악으로 흐르고 있는 음악은 콜럼버스 미대륙발견 500주년 기념영화 주제곡입니다. 
     70년대 초부터 꾸준히 솔로 앨범을 발표해 온 반젤리스가 
     1992년에 발표한 영화 <1492 Conquest Of Paradise>에서 특유의 웅장한 사운드를 들려주며 
     자신의 작곡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곡으로 유명합니다
     
     [무건이고개 가는 길]
     "지구는 둥글다"라는 신념 하나로 당시엔 낭떨어지라고 하던 수평선을 넘어 
     新大陸을 찾아 나선 '컬럼버스'
     그래서 이 음악의 제목이 Conquest Of Paradise입니다
     컬럼버스는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스페인의 도움으로 신대륙 탐험에 나섰지요
     그는 죽을 때까지도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라고 믿었답니다.
     그래서 아직도 아메리카 원주민을 미국 이외의 나라에선 '인디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미국 사람들은 '인디언'이라고 하지 않고 'Native American'이라고 부름니다
     미국에 갔을 때 원주민을  '인디안'이라고 하면 않된다는걸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감악산 임꺽정봉]
     감악산 임꺽정봉이 점점 더 멀어져 갑니다
  
     [무건이고개 가는 길]
     
     [무건이 고개]
     3시 35분에 무건이고개에 도착했습니다
     '무건이고개'에는 초소가 있으며 갈림길이었습니다
     양주시 남면 점말에서 파주시 적성면 무건리로 넘어 가는 고개입니다.
     즉 '무건리고개'가 음운변화를 거쳐 '무건이고개'로 불리워지고 있다고합니다
     '무건리'는 武建里로 쓰며 '설인귀'의 전설이 있더군요
     '설인귀'는 구척 장신으로 어려서부터 기골이 수려하고 힘이 센 장사로서 
     당시 세도가인 '상산 김씨'묘를 쓸 당시 술을 세동이나 마시고 난 후 
     아름드리 나무들을 캐내는데 무밭에서 무 뽑듯이 하였다 합니다. 
     그 후 율포리 임진강변 벼랑에 갔을 때 석벽에 있는 바위가 갈라지면서 용마가 뛰어나와 
     말을 타고 감악산 천왕봉 아래 백운동을 가니 밭을 갈던 농부가 쟁기에 걸려 캐낸  
     큰 궤짝속에서 갑옷과 투구를 얻었으며 백운대 삼태봉(4체봉) 칼바위에서 보검을 얻은 후 
     武建里 골짜기에서 감악산을 오르내리며 군마훈련을 익혀 
     무훈을 세웠다하여 武建里로 호칭하였다고 합니다
     
     [군부대 시설]
     
     [수레미고개]
     수레를 밀고 올라야 한다고 붙여진 '수레미고개'가 나타납니다
     
     [수레미고개]
     '수레미고개'는 양주시 남면과 광적면의 경계이며,
     파주시 적성면의 경계가 됩니다
  
     [고도계 307m봉]
     막바지 제일 높은 봉우리를 오릅니다.
     이제까지 많이 걸었기에 무척 힘이 듭니다
     
     [고도계 307m봉]
     
     [고도계 307m봉]
     
     [고도계 307m봉]
     마지막으로 높은 봉우리를 올라 주변을 조망합니다
     
     [고도계 307m봉]
     감악산은 점점 더 멀어져 갑니다
     
     [고도계 307m봉]
     멀리 "마차산'과 그 뒤로 아득히 '소요산'이 보이는군요
     
     [고도계 307m봉]
     고도계 307m봉에서 바라 본 "노고산"
     
     
     [군 화생방 훈련봉]
     
     [불곡산과 도락산]
     
     마지막 봉우리에서 마지막으로 뒤 돌아 본 감악산과 마차산, 
     
     마지막 봉우리에서 바라 본 1구간의 노고산
     
     [수레너미고개]
     오늘 산행의 종착역 '수레너미고개'에 저녁 6시 정각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간파고개'를 오전 9시 45분에 출발하였으니 8시간 15분이 걸렸습니다
     '수레너미고개'는 '수루네미고개', 수루너미고개', '수르레미고개'등등으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조사한바로는 수레너미고개"가 정확한 표현이었습니다
     
     [수레너미고개]
     이곳은 양주시 광적면에서 파주시 법원읍 오현리로 넘어 가는 고개입니다.
     옛날 중국으로 넘어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답니다.
     그래서 이 고개는 수레가 끊임없이 넘어가 '수레넘이'-'수레너미'로 음운변화 하였다고하며
     한문으로는 車踰嶺, 또는 車踰峴으로 대동여지도와 조선화유승람에
     나와 있다고 하니 수레너미고개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의 地名은 이렇듯 세월과 사투리등으로 많이 변해서 語原을 알기 어려워졌는데
     국토지리원에서 재정립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뒷풀이]
     긴 산행을 끝내고 함께하는 뒷풀이 시간은 정말 즐겁습니다
     그러나 너무 즐거운 나머지 필요 이상으로 뒷풀이를 오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일회용품 줄이기, 적당한 음주문화 창달, 고품위 분위기 조성 등으로
     좀더 발전된 산악회 모임을 만들기 위해 서로 더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뒷풀이]
     18.7km를 걸었으며, 8시간 15분이 걸렸습니다
     서로 완주를 축하하며, 시원하게 술 한잔~~!!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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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北紺嶽枝脈 1區間』 말머리고개-한강봉-은봉산-소사고개-팔일봉-하우고개-노아산- 게너미고개-264m봉-세우게고개-노고산-수레너미고개 눈이라도 펄펄 내렸으면..하고 기대도 했는데 비가 내릴려면 가뭄도 심한데 주룩주룩 내리던지 겨울답지 않은 보슬비가 아주 쬐끔 내리는 2월22일 오전 9시 20분경에 이름도 재미있는 '말머리고개'에 왔습니다. 명성지맥을 끝내고, 새로이 시작하는 한북감악지맥의 들머리 - "말머리고개" [산행 개념도] 북한산 뒷자락 송추에서 장흥계곡을 지나 양주시 백석으로 넘어 가는 고개에서 크고 작은 산봉우리와 고개를 여럿 넘어 미지의 세계로 나아 가려합니다 지맥 접속 거리까지 합쳐 약 20km의 거리를 걸어서 가려고 합니다 [말머리고개] 오전 9시 20분경에 도착한 '서울백두클럽' 횐님들이 산행 준비를 합니다 '말머리고개에는 잔설이 조금 남아 있었으며, 보슬비가 아주 쬐끔씩 내리고 있습니다 [말머리고개] '말머리고개'는 한북오두지맥이 지나는 마루금입니다. 말머리고개'에는 전망대를 만들고 있어서 앞으로는 양주군 백석읍과 '한북감악지맥'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겠더군요 [말머리고개] 말머리고개에 만들고 있는 전망대에서 '한북감악지맥'을 조망했습니다 우측 멀리 송전철탑이 보이는 봉우리가 "은봉산 隱鳳山"이며, 은봉산 좌측 능선을 타고 가운데 보이는 고개가 "소사고개 所沙고개"입니다 '소사고개' 좌측으로 八日峰가는 길입니다. 앞으로 여기서 우측으로 올라 '한강봉'을 지나 저 산줄기를 모두 걸어 갈것입니다. [말머리고개] '말머리고개'와 '소사고개' 사이에 "기산저수지"가 있으며, 저수지 주변에는 유락단지가 조성되어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기산 관광 유원지"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관광안내도] 관광안내도가 제법 세밀하게 안내하고 있습니다만, '한북감악지맥'에 대한 안내는 없어 아쉬웠습니다 [말머리고개 - 산행 들머리] 말머리고개 정상부에 좌측으로 산행 들머리가 나 있으며 9시 25분경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말머리고개 - 산행 들머리] 조금 올라와서 '말머리고개'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올지 몰라 '말머리고개-산행 들머리'를 뒤돌아 봅니다 [한강봉 오르는 길] 말머리고개에서 한강봉 오르는 길에는 "꾀꼬리봉"이 좌측에 있습니다만 큰 어려움 없이 비교적 잘 나 있는 등로를 따라 오릅니다 [한북오두지맥 분기점] 꼭 알아 두어야 할 중요한 갈림길이자 분기점입니다. 말머리고개에서 약 20여분 오르면 漢北正脈을 만납니다 이곳에서 "오두지맥"이 분기하여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오두산'까지 갑니다. 자유로 '오두산 전망대'까지 간다면 이해가 쉬울것입니다 [한북정맥 안내판] "한강봉산사랑산우회"라는 단체가 친절하게 설치해놓은 "한북정맥과 오두지맥"에 대한 안내와 설명을 해 놨습니다. 그러나 이게 왠일입니까? 상식 이하의 오류를 이렇게 크게 설치를 해 놨으니 눈을 의심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위의 "이정표"와 "안내문"이 한북정맥과 오두지맥(도봉지맥)을 완전히 뒤죽박죽으로 말도 되지 않는 설명을 해놔 놀라울 뿐입니다 이정표와 지도, 설명이 모두 엉터리입니다. '한북정맥'을 '도봉지맥'이라고 해 놨으며, '오두지맥'을 '한북정맥'으로 표기하고 있으니 어인 일? "한강봉산사랑산우회"라는 단체는 챙피하지도 않을까요? 그리고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이 오류를 지적하지 않았단 말인가요?? 모두 그냥 지나쳤을 뿐인가? 아니면 제가 바보입니까? [한북오두지맥 분기점] 한강봉 방향으로 조금 와 "한북오두지맥 분기점"을 뒤 돌아 봤습니다 똑 바로 가면 "한북정맥"이며, 우측으로 가면 지금 올라온 '말머리고개'를 지나 "오두산"으로 가는 "오두지맥길"입니다 똑 바로 가는 한북정맥은 "챌봉"으로 가 송추에서 의정부로 넘어가는 "울대고개"를 지나 "사패산", "도봉산"을 지나 북한산의 "상장능선"을 타고 "솔고개"를 지나 예비군 훈련소가 있는 노고산, 일산의 고봉산, 파주의 "장명산"으로 갑니다 참고로, 저 분기점을 지나면 한북정맥상의 "챌봉"이 나오는데, "챌봉"은 제일높은 봉우리라는 뜻의 '제일봉'이 변한것이라고도 하고 옛 문헌에는 차일봉(遮日峯)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봉우리 모양이 마치 차일을 친것과 흡사하다는 뜻이라고합니다 [한강봉 가는 길] '한북오두지맥 분기점'에서 북쪽으로 바로 "한강봉"이 보입니다 분기점에서 약 10분쯤이면 한강봉 정상에 오를수 있습니다 [한강봉 정상] 너무 쉽게 한강봉 漢江峰에 오릅니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봉화를 올렸다고 하여 '봉화봉'이라고도 한답니다 9시 55분에 도착했으니 '말머리고개'에서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한강봉 정상] '한강봉' 정상에는 깃대가 있고 이정표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강"이 보인다고 "한강봉"이라 했다는데.... 오늘은 산행하기엔 좋은 날씨이지만, 雲霧로 시야가 막혀 외부 세계를 조망 할수 없는게 큰 단점이었습니다 [한강봉 이정표] 오늘 '감악지맥 1구간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인 "한강봉"입니다 한강봉에는 별도의 정상석은 없고 이정표로 정상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한강봉'은 한북감악지맥의 분기점으로 유명합니다 이제부터 실제 "한북감악지맥"을 답사하게 되겠습니다 이곳에서 '호명산'과 '챌봉', 그리고 "불곡산"을 조망해야하는데, 雲霧로 멋진 경치를 촬영하지 못하는군요 [한강봉] "한북감악지맥"이 서쪽방향으로 뻗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머나 먼 "한북감악지맥"을 걸어 갑니다. 신이 납니다 [은봉산 가는 길] 감악지맥 마루금은 비교적 완만한 능선으로 걷기에 편했으며 울창한 소나무들이 호위해 주어 산책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정표] '기산리'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느르미 고개] 한강봉과 은봉산 사이에 잇는 느르미 고개입니다 양주시 백석읍 신지마을에서 기산리로 넘는 고개입니다 10시 25분에 이곳을 통과합니다 [송전철탑] 아까 산행 시작하기 전 '말머리고개'에서 바라 보았던 은봉산의 '송전철탑'입니다 '말머리고개'에선 멀리만 보였지만 와서 보니 또 금방입니다 [은봉산 가는 길] 송전철탑을 지나 잘 뚤려있는 임도를 따라 갑니다 이곳 '감악지맥'의 地名에 대해 알아 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나 자료를 구할수 없었는데 다행히 "양주문화원에서 '양주 지명의 유래"라는 책을 펴 냈더군요. 어렵싸리 그 책을 구해 궁금했던 감악지맥의 여러 地名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알려 드리는 것들은 양주문화원의 검증을 받은 것을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리는 것이오니 믿어도 좋습니다 [은봉산 정상] 은봉산 정상도 어렵지않게 왔습니다 은봉산 정상은 군사훈련장이었으며 철문을 열고 들어 가야 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감악지맥 1구간에 있는 軍部隊는 모두 空軍이었습니다 이런 산줄기 전방에는 陸軍이 방어를 하고 있는데 '空軍'이 주둔하고 공군의 훈련장이 육군의 훈련장과 다름이 거의 없었습니다 [은봉산 정상] 은봉산 隱鳳山의 유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옛날 옛적에 이 근처에 사는 南氏일가가 이산에 장례를 치르는데, 지관이 말하길 "이곳을 파다가 바위돌이 나오면 시신을 그위에 올려놓고 묻으라" 하였답니다. 그러나 자손들은 조상을 차마 돌위에다 장례 지낼 수 없어 바닥에 깔려있는 바위돌을 들어 내었더니 그 바위 아래에 숨어있던 봉황 鳳凰이 날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은봉산 隱鳳山봉황 鳳凰이 숨어 있던 山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보시는 바와 같이 空軍들의 훈련장으로 모두 파헤쳐져 방카와 훈련시설 만이 있습니다 鳳凰은 어디가고... 그래서 鳳凰을 찾으려 육군 대신에 공군이 와 있나? ㅎㅎ [은봉산에서 바라 본 '말머리 고개'] 은봉산에서 '말머리고개'를 뒤 돌아 봤습니다. '오두지맥'은 선명합니다만 '말머리고개'는 운무로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은봉산에서 소사고개로] 은봉산에서 소사고개로 내려 가는 길은 군사도로가 잘 나있습니다 은봉산은 봉황이 숨어 있었다고 隱鳳山이라 하지만 일설에는 일제시대 때 일본놈들이 이곳에서 銀을 채굴하였다고 하며 산중턱에는 당시에 채굴했던 은굴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銀과 관련이 있다고도하는군요 [소사고개] 은봉산에서 조금 내려 오면 바로 "소사고개"가 나옵니다 불쌍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방호벽'과 군방어시설이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습니다. 명성지맥에서 수없이 보아 온 슬픈 시설들입니다 [소사고개] 소사고개는 한자로 所沙峴으로 쓰며, 소새고개라고도 한답니다 이 고갯길을 기산저수지에서 보면 기다란 산줄기가 마치 뱀의 모양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라 하는데 풍수지리설에는 만약 이 근방에 묘지를 쓰면 "소새"라는 새가 뱀을 쪼는 모양이 되므로 家勢가 기운다고 하는데 실제로 허씨집안이 묘소를 쓰고 망했다고 하는군요. ㅎㅎ [소사고개] 소사고개에서 바라 보는 기산 저수지 방향 기산 저수지 아랫쪽에는 '마장저수지'가 있고 그 부근에 "감사원 감사교육원"이 있지요 18세기 중반의 문헌인 여지도서(1757~1765)에서 이 '소사고개'는 읍치에서 서쪽으로 30리 거리에 있으며 영조의 생모 최무수리의 묘인 소령원(昭寧園)으로 가는 통로라고 설명하고 있답니다 소령원은 광탄에 있으며 무지하게 큰 능입니다. 시간 날때 한번쯤 가 볼만한 곳이지요 최무수리는 궁의 무수리였는데 숙종의 눈에 들어 숙종의 후궁이 되지요 그래도 영조의 친어머니이고, 정조의 증조 할머니가 됩니다 [팔일봉 오르는 길] '소사고개'에서 짧은 된비알을 치고 올라 갑니다 팔일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초소] 된비알을 오르면 능선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듯한 군초소인지 산불 감시소인지 잘 모르는 초소가 있습니다 [팔일봉으로 가는 능선에서 뒤돌아 본 '은봉산'] '소사고개'를 지나 '팔일봉'으로 가는 능선에서 옆으로 본 '은봉산' [팔일봉으로 가는 능선길] '감악지맥 1구간'은 등산이라기 보다는 '트랙킹'이었습니다 [팔일봉 갈림길] 11시 15분에 이곳에 도착했으니 '말머리고개'에서 여기까지 1시간 50분 정도 걸렸군요 감악지맥 마루금에서 '팔일봉'은 약간 벗어나 있습니다. 이곳 삼거리에서 우측으로는 '감악지맥길'이며, '팔일봉'은 좌측으로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 와야 합니다. 저는 힘들어도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를 위해서 '팔일봉'을 갔다가 오려 합니다 항상 무지하게 친절한 '파란문'....ㅎㅎ 오로지 팬들을 위해서 고생합니다. ㅎㅎ [팔일봉 갈림길에서 뒤 돌아 본 감악지맥] '팔일봉 갈림길 삼거리'에서 뒤 돌아 봤습니다 가운데 움푹 파인 곳이 조금 전에 지나온 "소사고개"이며 좌측 산봉우리가 '은봉산'이며, 윗쪽으로 '느르미고개'와 '한강봉'이 잘 보입니다 [팔일봉 가는 길] 갈림길 삼거리에서 등로로 올라 서니 '팔일봉'이 멀리 보입니다 가까운지 알았는데 제법 먼 길이었습니다 여기 쯤에서 괜히 왔다고 생각합니다만 엎질러진 물이니 계속 갑니다 [팔일봉 헬기장] 가파른 오르막을 헐떡이며 15분 정도 오르니 헬기장이 나왔으며 [팔일봉 가는 길] 다시 5분 정도 더 올라 갑니다 [팔일봉 정상] '팔일봉 정상입니다. '팔일봉'에는 정상석 대신에 이런 팻말을 하나 세워 놨습니다. '팔일봉'은 한자로 八日峰으로 쓰며, 8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산에서 해를 맞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463m높이로서 오늘 산행코스에선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입니다 다른 말로는 거룻봉이라고도 했는데 산등성이 생김새가 마치 거룻배와 같다고 합니다 봉화를 올리던 봉화터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군요 [팔일봉에서 바라 보는 '마장저수지 방향] 사실 제가 힘들어도 '팔일봉'을 오른 이유는 주변 경관을 촬영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운무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랫쪽에 보이는 건물이 '감사교육원'인듯.... '송추칸츄리클럽', 서원벨리C.C. 마장저수지, 오두지맥....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요 이러줄 알았으면 편하게 그냥 가는건데..ㅉㅉ [삼거리 갈림길] 감악지맥 갈림길로 되돌아 왔습니다 올때는 15분 걸렸으니 이곳에서 '팔일봉'까지 왕복 약40분이 걸렸습니다 오르막 경사가 있기 때문에 제법 힘들었습니다 [삼거리] 지맥길을 따라 '하우고개' 방향으로 가는데 갈림길이 나오며 우측길로 갑니다 이런 지맥길은 이런 갈림길을 만날때 가장 당혹스럽지요 잘못하면 알바를 합니다 ['하우고개' 가는 길에서 뒤 돌아 본 '소사고개'] 이 사진 잘 봐 두세요~ 아주 귀한 사진입니다. 맨 끝에 오늘 산행을 시작했던 "말머리고개"가 선명하게 보이고, 가운데 조금 전에 지나온 "소사고개"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S字를 그리며 산행을 하고 있습니다 [하우고개] '팔일봉' 갈림길에서 금새 '하우고개'에 도달합니다 '팔일봉'을 갔다 오느라 늦어져 홀로 걷고 있습니다 [하우고개] '하우고개'는 4거리였습니다 하우고개에 대한 자료는 양주문화원이 펴낸 '地名의 유래'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청계산에 있는 '하우고개'에 대한 유래를 알려 드리니 이것은 그져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왜냐하면 그곳의 유래와 이곳은 틀릴수 있으니까요. 아시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경기도 의왕에서 판교로 넘어 가는 고개가 하나 있는데 '한남관악지맥'상에 있는 청계산과 우담산 사이에 있는 "하우고개" 입니다 제가 '서울백두클럽'과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된 뜻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광교산에서 청계산을 지나 양재동 화물터미날까지 종주 할때에 이곳에서 우연인지 필연인지 서울백두클럽의 산행 리더인 '산산산님'을 만났지요. 그곳 '하우고개'는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자면 '외곽순환고속도로' "청계산 톨게이트" 앞에 있는 "청계터널" 위로 지나는 옛고개길이라면 짐작이 가시나요? 그곳도 '하우고개'입니다 지금은 4차선 고속화도로가 뚤려있어 찻길을 무단횡단하기가 겁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산산산님'의 길안내로 水路를 통해 건넜고 , 이것이 저의 산행기에 올려져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하오고개 넘는 방법'이 되었답니다 저의 산행기 찾아 읽어 보세요~ [하우고개] 청계산 '하우고개'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안산 바닷가에 사는 鹽夫(염전일 하는 사람) 둘이 다툼이 있었는데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아서 광주에 있는 관아로 재판을 받으러 이 고갯길을 넘어 갔답니다 그런데 이 고갯길을 넘을 쯤에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和解하였다고 하는군요 그 이후부터 이 고갯길을 넘으면 서로 和解한다는 전설이 생겨나 '화해고개'로 불리워지다가 오랜 세월동안 音韻변화를 거쳐 "하우고개"가 되었다고 하더군요..ㅎㅎ 이곳의 '하우고개'도 그와 같은 유래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하우고개','도마치고개', '갈마치고개' 등등은 전국에 많이 분포되있습니다. 고유명사라기 보다는 보통명사에 가깝기 때문일겁니다. 도마치고개는 말을 타고 가다가 말이 힘들어 내려서 말과 함께 걸어 고개를 넘는다고 "도마치"고개라 하지요? 또 "갈마치고개"는 말이 갈증을 느낄때 물을 먹여 올라야 한다고 "갈마치고개"라고 한답니다 모두 고개 넘기가 힘든 곳이지만 중요한 교통고개인 곳에 주로 붙여져 있습니다 [하우고개] 햐~ 기가 막힙니다. 여기서 뒤돌아 보니 "말머리고개"와 "소사고개", 그리고 여기 "하우고개"가 일직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말 절묘합니다 아마도 이런 사진을 알고 찍은 사람은 저 밖에 없지 않을까요? ㅎㅎ [점심식사] '하우고개'에서 언제나 즐거운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오늘은 많은 산객들이 참여하여 왁자지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새로 참여하신 분들이 다섯분 정도 있었으며, 모두 산에 대해선 한소리하는 베테랑들이었습니다. 특히 연세가 높으신 어르신들이어서 저 같은 나이는 아주 젊은 얘들 나이였습니다. ㅎㅎ 앞으로는 산행 예약을 미리 미리 하지 않으면 함께 할수 없을것 같습니다. 이번에 29인승 넓직한 좌석의 버스였는데 27명이 참여했으니 앞으로 부지런 하지 않으면 함께하지 못할수 있으니 미리미리 예약하시기 바람니다 앞으로는 버스 몇대 전세 낼까요? ㅎㅎ [노아산 가는 길] '하우고개'에서 '노아산'까지는 탱크들이 다니는 군사도로입니다 멀리 '노아산'이 보입니다만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더군요 [노아산 가는 길에 뒤 돌아 본 '팔일봉'] 노아산 가는 길에 뒤 돌아 보니 '八日峰'이 그 윤곽을 확연히 더러냅니다 [노아산 가는 길] 완만한 경사를 따라 탱크길을 진행하는데 얼었던 땅이 녹아 질퍽됩니다 노아산 가는 길은 이곳이 제일 경사가 심한 곳이니 얼마나 쉬운지 아시겠죠 [노아산 갈림길]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이 노아산과 '게너미고개'로 가는 갈림길입니다 앞에 보이는 군초소가 있는 곳이 '노아산' 정상입니다만, 갔다가 되 돌아 와야하고, 특별히 볼거리도 없으며, 군부대들이 주둔하고 있어 '노아산' 정상은 피하고 지맥 마루금을 따라 오른쪽 '게너미고개'로 향합니다 '노아산'은 한자로 老兒山이라고 씁니다. 그러니 '노인과 어린이'라는 뜻인데, 주로 묘를 쓸때 풍수지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군요 또한 老兒山은 월암산(月岩山)이라고도 하는데 산에 바위가 많아 달빛이 바위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합니다 그러나 바위는 커녕 찐한 황토만이 걷는 길을 어렵게 합니다 [노아산에서 뒤 돌아 본 '소사고개'와 '말머리고개'] [노아산에서 게너미고개 가는 길] 노아산 공터에서 오른쪽으로 지맥길이 나있습니다 [게너미고개 가는 길] 갈수록 산높이가 낮아지며 마을들이 잘 보이기 시작합니다 [양주시 연곡리] 한우를 키우는 목장과 한우들이 한결 따뜻해진 봄을 만끽하는듯합니다 정겨운 시골이 옆에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게너미고개 가는 길] 게너미고개 가는 길에는 무덤이 많았습니다. [게너미고개] 드디어 '게너미고개'에 왔습니다. 우리를 '말머리고개'에서 내려줬던 관광버스가 우리는 걷게하고 자기는 빈차로 쌩~하니 편하게 '게너미고개'에 와서 지친 사람은 여기서 버스를 타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버스를 타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더군요 모두 산에 대해선 일가견을 가진 분들이기도 하겠지만, 감악1구간은 보신바와 같이 걷기에 편한 길이기도 해서일겁니다 1시 20분에 도착하여 1시 35분에 다시 출발합니다 '말머리고개'에서 약 3시간 정도 걸렸군요 [게너미고개] 지도마다 地名 표기가 틀림니다만 오늘 저의 산행기를 보신 분들은 감악지맥에 나오는 地名에 대해선 확신을 갖게 될것입니다 게너미고개는 한자로 蟹踰嶺 해유령으로 씁니다 蟹는 '게'를 말하는 '해'이며, 踰는 넘을 '유'입니다 다시 말해 "게가 기어 넘는 고개"라고 "게너미고개"가 된 것입니다 '게네미고개'는 잘못 표기 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수 있겠죠? [게너미고개] '게너미고개'의 유래는 조금 재미있더군요 이곳 임진강 주변의 개천에는 '민물 게'가 지금도 많이 살고 있답니다 옛날 아주 옛날이었답니다. 앞으로 가야할 노고산(老姑山)에는 老姑할머니가 살고 있었답니다. 老姑할머니는 늙은 시할미를 말하겠지요? 어느날 하루는 노고할미가 다리 한쪽은 노고산에 걸치고, 다른 한쪽은 광적면 도락산에 걸친 후 황새등고개에 있는 요강바위에 오줌을 쌌다고 합니다. 가랭이가 무지 길었군요. ㅎㅎ 이 노고할미 오줌통이 얼마나 컷으면 이때 요강바위가 넘치면서 인근 개울에 뜨거운 오줌이 넘쳐 흐르게 되었답니다. 하여간 무지 많이 싼 모양이죠? ㅎ 이때 개울에 살던 민물게들이 노고할미의 뜨거운 오줌에 깜짝 놀라, 살기 위해 이고개를 넘어 비암리와 파주시 발랑리쪽으로 허겁지겁 넘어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광적 연곡리 일대에는 민물게가 전혀 보이지 않고, 비암리와 발랑리에서만 민물게가 있다고 하니 우연의 일치가 아니고 진짜로 노고할미가 찐~하게 오줌을 갈기긴 갈긴 모양입니다. ㅎㅎ 이런 유산한 얘기들 중에 개구리와 관련된 얘기, 즉 어느 처녀가 앉아 오줌을 싸는데 개구리가 앗 뜨거~!!하며 굴(?)속으로 뛰어 들어가 뭐~ 어떻게 되었다나? ㅎㅎ 그런 얘기는 들어 본적이 있어도 '민물 게' 얘기는 "게너미고개"를 넘으며 처음으로 듣습니다. 蟹踰嶺 해유령 이곳 '게너미고개', 즉 蟹踰嶺 해유령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전투가 있었던 곳입니다 다시 떠 올리기도 싫은 "임진왜란"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는 일본군에게서 최초로 승전보를 올리는 전투가 바로 蟹踰嶺 戰鬪입니다 그래서 이 고개 조금 아래에 해유령전첩비를 세우고 기념하며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있습니다 [해유령전첩비] (가까운데 못갔다 와 자료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해유령 전첩지는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병과의 육지 싸움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둔 곳이람니다. 그 당시에 신각·이양원·이혼의 합동작전으로 지형적으로 유리한 해유령에서 왜병 70여명의 목을 베는 승리를 거둬 조선군대의 사기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고합니다. 그러나 도성 남쪽 한강 방어선에서 왜군을 막지 못한 김명원은 자신이 전투에서 이기지 못한 책임을 당시 부원수 신각 장군에게 뒤집어 씌워 장군은 처형되었다고하는 안타까운 역사가 있는데 해유령전첩비은 1977년 국난극복의 전승을 기념하고, 억울하게 죽은 신각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노고산 가는 길] '게너미고개'를 지나 "264m봉"을 지나면 건너편에 "노고산"이 나타납니다. [세우개고개 가는 길] '게너미고개'에서 노고산으로 가려면 "264m봉"을 지나 "세우개고개"를 지나 가야합니다 [세우개고개] 최근에 포장을 하고 야생동물 이동통로 '에코 브릿지'를 만들어 놨습니다 세우개고개는 한자로 三峴이라고 쓰며, 앞에 보이는 터널의 이름도 三峴터널이라고합니다. 마을이름을 '안새우개'라 부르는데 이 마을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세고개', '우골고개(점말고개)', '언굴고개(갈곡령)', '자작고개(화암령)'를 넘어야 한다는데서 유래한다고합니다 세고개에서 음운이 변한것으로 보기도 한답니다 [세우개고개] '에코 브릿지'를 지나 '노고산'으로 향합니다 [노고산 오르는 길] 오늘 등산의 마지막 오르막이 되겠습니다 솔잎이 떨어져 쌓여 가는 경삿길을 더욱 미끄럽게합니다 붉은 솔닢이 인상적입니다 [군사도로] 소나무 숲을 지나 오르면 군사도로가 나타납니다. 이곳은 중요한 곳이니 앞으로 이 산행기를 보고 가실 분들은 메모를 해 둬야 할것입니다 지맥 마루금은 앞의 능선을 타고 '노고산'으로 올라야 합니다. 그러나 노고산 정상까지 갔으나 군부대와 지뢰 매설 경고문으로 더 이상 진행할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잘 나있는 군사도로를 따라 가면 쉽게 하산 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르고 앞에 보이는 지맥길을 따라 올라 갔습니다 [노고산] 지맥 능선에 올라 서니 노고산 老姑山정상이 보입니다 [갈림길] 노고산 정상에 올라 갔던 선답자들이 다시 내려와 더 이상 길이 없다고 해 상의한 끝에 좌측 군사도로 우횟길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우회길] 급경사 내리막길로 내려 갑니다. [군사도로] 지맥 마루금을 버리고 군사도로로 다시 내려 올수 밖에 없었습니다 [노고산 군부대] 감악지맥 마루금을 버리고 군사도로로 전진하니 군부대 입구가 나왔습니다 [老姑山] 老姑山 정상은 空軍의 미사일 부대가 온통 차지하고 있으니, 도져히 지나 갈수가 없었습니다 는 시어머니 이지요. "고부간의 갈등" 할때의 "고"입니다 그러니 老姑山은 늙은 시어머니산이란 뜻이 되겠지요. '게너미고개'에서 얘기했던 "老姑할미"는 늙은 시할미가 되겠는데, 시할미가 얼마나 오줌보가 컷으면 오줌이 넘쳐 민물 게가 줄행랑을 쳤겠습니까 아마도 이런 얘기는 며느리들이 어려운 시집살이 속에서 시어미를 뒤에서 욕할때 하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老姑山] 보이십니까? 미사일 !! 아무리 깡다구가 좋아도 저 미사일 부대는 통과 못하겠더군요. 어휴~ 무서워~ 사실 미사일 보다 보초가 더 무섭지요? ㅎㅎ 감악지맥의 군부대는 미사일 부대까지 모두 공군이 관할하고 있는게 특징입니다 최전방 산삐알에 '空軍'이라~....은봉산에서 이미 말씀드린바와 같이 감악지맥1구간에는 모두 '空軍'이 지키고 있습니다 저런 미사일을 보니 조금은 든든하기도 합니다. 북한이 함부러 침범 할수는 없겠지요? [수레너미고개로 하산 하는 길] 미사일 부대 때문에 어쩔수 없이 감악지맥 마루금을 버리고 군부대 도로를 이용합니다 명성지맥2구간에서 탱크포사격장도 가로 질러 들어 갔는데....... [56번 국도] 군부대 도로를 따라 20여분 내려 가니 56번 국도가 나왔습니다. 이 길을 따라 북동쪽으로 올라 가야 "수레너미고개"가 나옵니다. [수레너미고개 방호벽] 진짜 '수레너미고개'는 이 사진의 끝 지점에 있습니다만 제2구간에서 만나기로 하고 "감악지맥 1구간"을 여기서 끝냅니다 총산행 거리 지맥 접근 거리 포함하여 약 19.5km이며, 6시간 25분 정도 걸렸습니다 산행길이 평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뒷풀이] 그리고 바로 '서울백두클럽'의 자랑인 뒷풀이가 시작됩니다 군부대 입구 공터에 자리 잡고 굽고, 찌지고, 마시고..... 이 시간이 언제나 제일 행복한 시간이지요.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림니다 [GPS60님] 돌아 오는 버스 안에서 .... 제가 이분을 특별히 소개해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분의 아이디는 "GPS60님"입니다. 그런데 1934년生이라고 하시니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더 잘 걷는거 있지요. 저는 이제 어디 가서 산 얘기를 할수 없게 됬습니다.ㅎㅎ 그 동안 GPS 들고 홀로 이산 저산 유람하시다가 이번에 2년만에 이런 모임에 동참했다고 하는군요 홀로 산행도 의미 있지만, '서울백두클럽'과 함께한 산행이 무척이나 즐거웠던 듯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감악지맥 전구간을 함께 하실듯 즐거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즐겁고 안전한 산행 많이 하시기 바람니다 [둥글레님] 그리고 또 한분 더 소개해 드려야 겠습니다 오늘 '서울백두클럽'에 처음으로 함께하신 분이신데 아이디 "둥글레님"이라고 이분도 연세가 7학년이십니다. 그런데도 힘차게 걷는 산행 능력은 물론이고, 집으로 돌아 가는 관광버스를 세워 모두에게 생맥주를 한잔씩 대접하셨습니다. '서울백두클럽'과 함께한 오늘 하루가 너무 즐거웠다고 한방 쏘신겁니다. 그러니 더더욱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참여 해 주시길 바라옵니다 3월 8일 한북감악지맥 2구간에서 다시 만나요~~!! 감사합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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