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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봉화길』
       『제9길 설성산길』
        "옛 陰竹縣의 도읍지를 가다" 
      
           설성면사무소-성호저수지-설성산-설성산성-선읍리-설성천-청미천-장호원교
['9코스 설성산길' 안내도] "경기옛길-봉화길 제9길 설성산길"의 공식 안내도입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경기옛길-봉화길 제9코스""설성면사무소"에서 "성호저수지"를 돌아 보고 "설성산"을 오르고 "장호원교"까지 "16km"를 가는 코스입니다. ['이천역'] 10:25 2024년 3월 16일 토요일 맑음 연무 <분당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이천역 1번출구"로 나가 다시 버스를 타고 "설성면 금당리"로 가기 위해서, 시내버스 시간표를 참고하는데.... <이천역>에 있는 <25번 시내버스>의 시간표는 <이천버스터미널> 출발 시간표더군요. <이천버스터미널>에서 이곳 <이천역>까지는 약15분 정도 걸린다는 것을 참고해야 하더군요. 저는 터미널에서 10:10에 출발하는 버스를 이곳 <이천역>에서 10:27분에 타고 갑니다. ['설성면행정복지센터' 앞] 11:10 <이천역>에서 약43분이 걸려 "금당리-설성면행정복지센터"에 도착하여 답사를 시작합니다. ['금당리' 통과] 면사무소 우측 골목으로 <금당리> 마을을 7분여 진행하면.... ['장능1리'] 11:17 "장능1리"입구를 만나 좌측 임도로 진행하고 ['성호저수지' 조망] 11:20 이어서 바로 지난 <8코스>에서도 만났던 "성호저수지"와 잠시후 올라야 할 "설성산"이 연무 속에 나타나며.... ['장능리' 임도] <금당리>와 <장능리>를 분리하는 임도를 따라 8분정도 진행하면.... ['성호저수지' 앞] 11:28 <성호저수지>에 도착합니다. ['성호저수지'] 주말을 맞아 낚시꾼들이 저수지를 빙 돌아 가며 저마다의 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열혈 낚시꾼>을 <강태공>이라 부르지요.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냥 하는 말인데 실제 중국 <강태공>은 소를 도살하는 백정도 했으며, 중국 역사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친 병법가이며 제상이었는데, 후에 <제나라>의 시조가 되어 춘추전국시대의 큰 역사인물이 되었죠. 그가 쓴 병법서 <육도>의 끝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이 지금까지도 명언으로 남아 있는데 "天下非一人之天下, 乃天下人之天下也. 同天下之利者則得天下"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천하니 천하와 이익을 함께 하는 자만이 천하를 얻을 수 있다." ['성호교'] 11:34 <성호저수지> 댐으로 내려 가면 <성호교>라는 다리가 있는데 다리를 건너 바로 우측으로 가야하며 <설성산>과 <우주위성전파감시센터>의 "우주위성안테나"가 있는 곳으로 진행합니다. ['신필리' 통과] '이천시 설성면 신필리' 들판길을 25분여 진행하면..... ['신필2리 마을회관'] 11:50 "신필2리 마을회관"을 만나고 ['설성산'과 '위성전파감시센터'] 다시 8분 정도 더 진행하면... [등산로 입구] 11:58 자동차 도로를 만나는데, <설성산 등산로> 입구가 있는 곳입니다. 우측엔 "위성전파감시센터"가 있습니다. ['설성산' 등산로 들날머리] 앞으로도 12km를 더 가야 한다는 안내판이 있는 등산로 입구로 들어 가서 [오름길] 비교적 완만한 오름길을 30분 정도 올라 가면 ['설성산 정상부'] 12:24 <설성산 정상부>가 보이기 시작하고 ['설성산 정상'] 12:28~12:39 "설성산 雪城山 290.6m" 정상에 도착합니다. 정상석엔 "280m 높이"라고 합니다만 국토지리원 지도와 각종 지도에는 모두 "290.6m"라고 표기되 있고 정상엔 정자가 있는데 <설성산정>이라는 현판과 <봉화정 烽火亭>이라는 현판이 두개가 있더군요. 옛날엔 봉화대도 있었나 봅니다. ['국립전파시험인증센터' 조망] 북서쪽이 조망되는데, "국립전파시험인증센터"가 보이는데, 뒤엔 <독조지맥> 산줄기가 보입니다. ['장호원' 방향 조망] 연무가 심해 <장호원> 방향으로는 오리무중.....아쉽군요. [내림길] 정상에서 10여분 쉬고,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잠시 내려 가면... ['신흥사' 조망] <신흥사>가 보이기 시작하고 ['신흥사'] 12:47 "신흥사"에 도착하는데 수많은 절간 중에 하나라고 여겨져 그냥 패스... ['관세음보살'] <신흥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제법 날씬한 <관세음보살>을 입니다. [내림길] <신흥사>부터는 포장도로가 이어지는데 조금 내려 가면.... ['설성산성'] 12:50 "설성산성 雪城山城"을 만나는데 이곳은 <동문 東門>이 있었던 곳이라고.... [내림길] <동문>에서 내림길을 7분여 더 내려 가면... ['스탬프함'과 '석불입상'] 12:57 <스탬프함>과 <석불입상>이 있는 곳을 만나는데 ['음죽군 읍치 이야기'] 이 지역이 옛날 <음죽현 陰竹縣(音竹縣)>의 도읍지 였다는 안내판이 있는데 새로운 내용이 있어 요약하면 1. <장호원 長湖院>은 원래 <장해원 長海院>이라는 "역원 驛院"이 있었던 곳이고 2. <청미천 淸渼川>은 원래 <천민천 天民川>이었는데 <천미천 天尾川>으로 변하고 다시 <淸渼川>이 되었다고... ['선읍리 석불입상'] . 안내문을 참고하고 ['선읍리' 조망] "선읍리 善邑里"를 조망하며 내려 가는데, 옛날엔 <음죽현 陰竹縣>의 도읍지였답니다. <선읍리>는 옛날 <음죽현>의 중심지여서 <선읍리 先邑里>였는데 <착할 善>으로 바꾼듯... ['음죽현 쌈지공원'] 1:11 "음죽현 쌈지공원"을 만나는데 "붓" 조형물이 눈길을 끕니다. ['이인상'] <이인상>이라는 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안내도 있습니다. ['선읍리' 통과] <설성천 雪城川>이 제법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는 <장호원읍 선읍리> 들판을 2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 1:33 <장호원의 진산>이라는 <백족산>이 보이기 시작하며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百足山>은 다리가 백개인 "지내"가 살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지난 <경기둘레길 38코스>에서 알아 보았습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기 전에 먼저 뒤돌아 보면.... ['설성산' 조망] 지나온 <설성산>과 <여주 남한강 세물머리>로 향하는 <독조지맥>이 조망되는군요. ['선읍1리' 조망] 갈림길에서 좌회전하면 <선읍1리>와 <원하리>가 조망되는데 옛날 <음죽현>의 <원院> 아랫 마을이라 <院下里>라 하는듯.... ['원하리(선읍1리) 버스정류장] 1:36 시내버스가 다니는 <원하리(선읍1리) 버스정류장>을 만나 도로를 따라 13분쯤 진행하면... ['원하삼거리'] 1:49 <3번국도>가 지나는 "원하삼거리"를 만나 우회전하고 ['3번국도'] <3번국도>를 100m 정도 가면... ['풍계리 입구'] 1:51 "풍계리 입구 삼거리"를 만나 길을 건너 가야 하더군요. 그런데 이곳 도로를 건너기 위해선 신호 변경을 해야 하는데 수동으로 보행자가 직접 "보행자 신호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 두기 바람니다. 모르면 계속 서 있어야 하니 먼저 <보행자 신호 버튼>을 찾아 누르기 바람니다. ㅎㅎ ['풍계새마을교'] 1:55 <풍계리 입구삼거리>에서 <풍계리>로 들어 가면 <풍계새마을교>를 바로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 건너편 둑방길을 이용해 <설성천>을 따라 진행합니다. ['설성천변길'] <설성천변길>을 25분 정도 진행하면 ['풍계교' 앞 삼거리] 2:19 <풍계교>를 만나는데 다리 앞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야합니다. ['노탑리' 조망] <노탑리>가 보이는데 농로를 진행해 마을로 들어 가면 ['노탑1리 마을회관'] 2:31 '산수유'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노탑1리 老塔1里 마을회관"을 지나는데 오래된 탑이 있는 마을인가 봅니다. ['37번국도] 2:34 마을회관을 지나면 <여주-장호원>을 잇는 <37번국도>가 지나는 곳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길을 건너 직진합니다. ['청미천'] 2:37 그러면 바로 "청마천 淸渼川"을 만나며, 건너편엔 <강동대학교>와 <오갑산>이 보입니다. <오갑지맥>과 <독조지맥> 사이에 흐르는 개천이 <청미천> 입니다. ['청미천변길'] 2:38 이어서 둑방길을 버리고 <청미천변길>로 내려 가라고 하는데 좌측 청미천 징검다리가 <경기둘레길 37코스>가 지나는 곳입니다. 즉, <충청북도>와 <경기도>의 道界가 되는 곳이란걸 알수 있습니다 ['감곡장호원역'] "KTX중부내륙선"이 지나는 <청미천철도교>를 지나 "감곡장호원역"을 조망합니다. "매산"이 보이죠? <임오군란> 때 <여주 장호원>으로 도망친 <명성왕후>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건너편 <매산> 아래 <매괴고등학교> 자리로 피신했죠.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제가 쓴 <경기둘레길 37코스 답사기>를 찾아 읽어 보세요~~ ['감곡장호원역' 줌인] "감곡장호원역" <감곡>은 <충북 음성군 감곡>이고 <장호원>은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인데 역명을 합쳤습니다. 뒤로 <극동대학교>가 보입니다. 프로야구 원년 홈런왕이었던 <김봉연 선수>를 기억 하십니까? 그 선수가 이 대학 교수를 지냈지요. 이 시골에 <강동대학교>와 <극동대학교> 두개가 있습니다. ['경기둘레길37코스' 갈림길] 3:05 "경기둘레길37코스 갈림길" 이어서 <경기둘레길 37코스>는 여기서 우측 <장호원버스터미널>로 가고 <봉화길>은 직진합니다. ['장호원교'] <청미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충청북도>와 <경기도>가 나뉘는 "장호원교"를 만납니다. 좌측이 <충북 음성군 감곡>이고 우측이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입니다. ['경기옛길-봉화길' 종점] 3:12 <장호원교>로 올라 가면 "경기옛길-봉화길 종점"이 있으며 <스탬프함>과 안내판이 있습니다. 이곳은 <청미천 자전거길 쉼터>이기도 하더군요. ['청미교 사거리'] 3:13 이곳의 다리는 <장호원교>인데 다리 앞 사거리의 이름은 <청미교 사거리>라고 해서 혼돈을 줍니다. ['고도표'] <설성산>의 높이가 매우 뾰쪽하게 나왔습니다만 290m 정도라는 것을 참고하기 바람니다. 16km 거리를 압축하다 보니 높이가 상대적으로 올라 갔습니다. ['봉화길 전체 안내도'] "경기옛길 봉화길" <경기 하남시>에서 <남한산성>을 오르고 <경안천><곤지암천>을 따라 <앵자지맥>이 지나는 <넋고개(넓고개)>를 넘고, <이천 설봉산>을 또 오르고, <봉화길>이 아닌 <참배길>인 <세종대왕릉>을 다녀와 <여주-이천쌀>의 본향인 <자채방아마을>을 지나, <설성산>을 오르고 <충청도>와 <경기도>의 경계인 <장호원>까지 총 135km를 걸었습니다. <경기문화원>이 <영조시대> 인물 <여암 신경준>선생이 집필한 "도로고 道路考"를 참고하여 만든 "경기옛길"을 모두 걸어 보았습니다. 원형의 옛길과는 큰 차이가 있는 "걷기코스"였지만 그런대로 한번쯤 걸어 볼만한 코스였다고 생각 됩니다 마지막으로 <칼의 노래><남한산성>등 역사 소설로 유명한 <김훈 작가>가 쓴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 속에 <여암 신경준> 선생에 대해 언급 한 글을 인용하면서 답사를 마침니다. 신경준에게 길은 삶의 도덕적 가치와 상징 들 사이로 뻗어나간 공적 개방성의 통로이다. 이 공적 개방성의 통로 위에서, 길을 가는 일은 달리기가 아니라 '행함'이고, 길의 의로움은 집의 어짊에서 출발해서 집의 어짊으로 돌아온다. 신경준의 지리책을 읽을 때, 집에서 길로 나가는 아침과 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은 본래 이처럼 신선하고 새로워야 마땅하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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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봉화길』
       『제8길 자채방아길』
        "여주-이천쌀의 본향을 찾아 가는 여정" 
      
           부발역-SK하이닉스-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무우정-성호연꽃단지-설성면사무소
['8코스 자채방아길' 안내도] "경기옛길-봉화길 제8길 자채방아길"의 공식 안내도입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경기옛길-봉화길 제8코스""부발역"에서 "SK하이닉스" 지역을 돌아 보고 "자채방아마을"을 지나 "설성면행정복지센타"까지 "20km"를 가는 코스입니다. ['부발역 1번출구'] 11:55 2024년 3월 11일 월요일 흐림 <분당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부발역 1번출구"로 나가 직진성 우측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8코스 출발지>는 좌측 <죽당천 다리> 옆에 있는 <7코스 출발지>와 같습니다만, <6-7코스>때에 두번이나 갔었기에 생략하고 바로 진행합니다. ['아미초'] 11:56 <부발역 1번출입구>에서 50m쯤 진행하면 "아미초등학교"를 만나고 200m 정도 더 진행하면.... ['영동고속도 이천 나들목'] 12:00 "영동고속도로 이천 나들목"이 지나는 굴다리를 통과합니다. [사거리] 12:02 굴다리를 나서면 바로 <부발 아파트단지>를 만나는데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가 좌측으로 진행하면.... ['이천 IC 톨게이트'] <영동고속도로 이천톨게이트> 옆 도로를 5분여 통과합니다. [사거리] 12:07 그러면 <부발>에서 가장 번화한 사거리를 만나서 좌회전 합니다. 정면에 보이는 공장이 "SK하이닉스"인데 "SK하이닉스"의 주변은 신도시를 방불케 하는군요. <부발>은 "SK하이닉스의 도시"라는걸 실감할수 있군요. [중심상가지역] 완전한 신도시 형태를 갖추고 있는 <부발>의 중심가를 통과하면서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를 조망하며 7분여 진행하면.... ['아미사거리'] 12:15 <옛3번국도>였던 <경충대로>를 만나며, <아미사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길을 건너 건너편 보행로를 이용해야 하더군요. "아미리 牙美里" '어금니 아牙'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마을 지형이 <어금니>를 닮은듯.... ['사동교'] 12:20 <아미사거리>를 지나면 "영동고속도로 사동교" 밑을 지나고... ['사동삼거리'] 12:23 이어서 <사동삼거리>를 만나는데 "사동리 巳洞里"는 '뱀을 닮은 지형'이라고 합니다. ['사동3리'] <옛3번국도-경충대로>와 헤어져 <사동3리 중심가>를 통과하여 1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 12:32 횡단보도가 없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이천물류사거리'] 12:33 <337번지방도>가 지나는 "이천물류사거리"를 만나는데 길을 건너 건너편 보행로를 이용하여 8분여 <337번지방도>를 진행합니다. ['등안사거리'] 12:41 그러면 "등안사거리"를 만나고... 계속해서 8분을 더 직진하면.... ['대월교차로'] 12:49 "대월교차로"를 만나는데 여기에 "대월면 大月面 행정복지센터"가 있더군요. <8코스>의 이름을 "자채방아길"이라고 만든 핵심 지역이 <대월면 大月面>이니 관심 가져야 되겠습니다. ['초지사거리'] 12:58 <대월교차로>에서 10여분 진행하면 "초지사거리 草芝"를 만나는데 여기서 좌측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방향으로 가야하고 ['효양산' 조망] 방향을 틀어 북쪽을 바라보면 지나온 "SK하이닉스" 굴뚝과 고려시대 외교의 달인이라 불리우는 "서희 장군"이 탄생한 "효양산"이 조망됩니다. ['기독교박물관' 입구] 1:02 <초지사거리>에서 좌측으로 200m 쯤 진행하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 골목으로 들어 갑니다. ['기독교 박물관'] 1:04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월요일이라 휴관 중이어서 들어 가 보지 못하고 ['기독교 박물관' 조망] 박물관 뒤에 있는 한옥집이 "평양 장대현교회"를 이곳에 재현 한것이라 합니다. ['한나요양원'] 박물관을 지나면 상당한 규모의 "한나요양원"을 만나는데 요양원을 빙 돌아 가면.... ['초지리' 조망] 1:09 <대월면 초지리>의 들판이 펼쳐지는데 <목장>이라고 표기한 곳으로 10여분 걸려 가면... [목장 앞 다리] 1:19 <도리천>이라는 조그만 개천을 건너는 이름모를 다리를 건너 우회전하여 ['구시리' 가는 길] <구시리>를 20여분 진행하면.... ['구시리 마을회관'] 1:38~1:48 "구시리 九時里 마을회관"을 만납니다. ['구시리 쉼터'] 마을회관 앞에 있는 정자에서 10여분 쉬어 갑니다. ['구시리' 들판] 1:48 계속해서 <구시리 九時里> 들판을 진행하는데, 젖소들이 봄맞이를 하고 있어 봄이 다가 오고 있음을 젖소들로 부터 느낄수 있었습니다. 저 앞에 보이는 <양화천>으로 가면.... ['양화천' 만나는 곳] 1:54 . 지난 <7코스>에서도 만났던 <양화천>을 다시 <양화천>의 상류에서 만납니다. ['양화천 둑방길'] "양화천 楊花川" 버드나무가 개천가에 많아 붙여진 이름이지만 버드나무는 이제 거의 찾아 볼수 없군요. 이 <양화천> 주변에서 우리나라 토종쌀인 "자채미 紫彩米"가 아직도 소량 생산되는 곳이랍니다. 다시 말해 이번 코스의 이름을 "자채방아길"이라고 만들어 준 지역이 되겠습니다. 15분 정도 진행하면.... ['군량교' 앞] 2:08~2:22 ★길조심★ "군량교 郡梁橋"를 만나는데 길찾기에 유의해야 하는 곳이더군요. 왜냐하면 "무우정""자채방아마을"을 우측으로 들어 가 둘러 보고 다시 이곳으로 나와 직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채방아마을'] <군량교>에서 우측으로 조금 들어 가면 "자채방아마을"을 만납니다. 내용을 모르는 분들은 <자채방아>가 뭔 뜻이지?라고 대부분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토종"이라는 말과 "재래종"이라는 말의 뜻부터 깊이 있게 알아야 겠는데.... "토종"은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처음부터 자생하며 재배되어 온 작물이나 동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재래종"은 외국에서 수입되었지만 우리나라에 토착화 된 식물이나 동물을 의미하죠. 우리나라 토종이거나 재래종인 쌀의 대표 중에 "자채미 紫彩米""자광미 紫光米" 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8코스>의 이름인 <자채방아길>은 <자채미>를 생산하고 도정을 하는 방아가 있던 마을을 가는 길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되며 여기가 그곳이라고 확신합니다. 조선시대 왕실에 진상되던 쌀은 "이천의 '자채미'""김포의 '자광미'"인데, "여주-이천의 자채미 紫彩米"는 쌀의 색깔이 자줏빛이 나서 붙여진 이름인데 한반도에서 매년 가장 일찍 수확되어 7월말이나 8월초면 거둘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밥맛도 좋지만, 한반도에서 매년 처음으로 수확한 쌀이니 왕실에 바쳤을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품질도 품질이지만, 최초로 생산되는 햇쌀이라는데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죠. "김포의 자광미 紫光米"도 자줏빛 광채가 난다고 붙여진 쌀인데 수확기는 <자채미>보다 다소 늦은 9월초인데 그래도 추석 이전에 추수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김포시 농업기술센터>의 자료에는 진상미로서의 '자광미'를 “자광벼는 약 300년 전 중국 길림성에 갔던 사신들이 밥 맛이 좋다는 볍씨를 가져와 당시의 통진현-현재 김포시 월곶면 '밀다리'밑에서 심은 것으로부터 유래되어 "밀달쌀"이라고 불렀다." 라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천의 '자채미'""김포의 '자광미'"는 현재 이런 품종은 전국 어느 곳에서도 재배하지 않죠. 경제성과 맛에서 현대 개량 품종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고, 더 좋은 품종으로 모두 바꾸었답니다. 이곳 <이천시 대월면 군량리 자채방아마을>에서 소량 생산 될뿐.... 그러니까 "임금님표 이천쌀"이니 "대왕님표 여주쌀"이라던가 "김포 금쌀"이니 하며 "임금님 진상미"라고 광고하는 것들은 옛날 생산하던 <자채미>와 <자광미>에 물타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진상미와는 전혀 관계없는 현대 품종들이고, 값만 비싸다는게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오로지 광고 선전을 위한 "상표"일 뿐이니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무우정' 입구] "무우정 舞雩亭" 입구에는 사적비와 <스탬프함>이 설치되 있습니다. 사적비는 사라진 <무우정>을 자비로 새로 세운 <김병일>이라는 분의 "고향사랑"을 칭송하는 비더군요. ['무우정'] "무우정 舞雩亭" '춤출 무舞'에 '기우제 지낼 우雩'를 사용하는 <무우정>입니다. <이승만 전대통령>의 호가 <우남 雩南>이어서 기억하는 '기우제 지낼 우雩'입니다. <무우정>에 대해선 안내문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안내문을 참고 하고... ['무우정' 앞] 옛날 <자채미>를 생산하던 <이천평야>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서 가뭄이 오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었겠는데, 사방이 조망되는 곳이었습니다. <무우정>에서 다시 <군량교>로 나가면.... ['군량교' 앞] 2:22 <무우정>에서 다시 <군량교> 앞으로 나와 <양화천 둑방길>을 16분 정도 진행하면.... ['군량2교'] 2:38 <군량2교>를 지나는데 ['노성산''마국산' 조망] 오늘 코스의 종점인 <설성면사무소>가 있는 <금당리>에 있는 "독조지맥 노성산".과 "독조지맥 큰바래기산"에서 분기하는 "해룡지맥""마국산"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독조지맥>과 <해룡지맥> 사이에 흐르는 개천이 <양화천>인데, "여주-이천쌀" 생산에 젖줄이 됩니다. "독조지맥-해룡지맥"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제가 두발로 쓴 산행기를 참고 하시고... ['군량1교'] 3:00 <군량2교>에서 22분 정도 직진하면 <군량1교>를 지나고 ['양화천' 합수부] 3:15 <군량1교>에서 다시 15분 정도 황량한 둑방길을 진행하면 두갈래 <양화천>이 합수하는 곳을 만나는데 우측 <복평교>로 우회하여야 합니다. ['복평교'] 3:22 <복평교>에서 지나온 <양화천 합수부>를 조망하고 ['복평교' 앞 '보뜰마을'] <복평교>를 건너 직진하면... ['미꾸라지 체험장'] 3:26 이 지역이 "이천시 모가면 서경리"인데 <농촌체험마을>로 <미꾸라지 체험장>이 있더군요. ['양화천' 가는 길] <미꾸라지 체험장>을 돌아 다시 <양화천>으로 나가서 ['양화천변길'] <양화천변>을 20여분 진행하면.... ['영산교'] 3:48 <영산교>라는 다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다리를 건너야 하고 ['영산교'에서 '공간미술' 조망] 3:49 <봉화길>은 <영산교>를 건너 바로 우측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건너편에 "공간미술"이라는 조각품 전시장이 있어 다녀 오도록 합니다. [조각품] 여러 조각품이 널려 있는데 "Greeting Man"은 유명해서 아는데 여기서 제작되는가 봅니다. ['설성면 수산리'] <부발읍>에서 <대월면>을 지나 <모가면>을 지나면 드디어 <설성면>으로 들어 가는데 "설성면 수산리"를 20여분 통과하면.... ['장천2리' 입구] 4:12 "설성면 장천2리" 입구를 만납니다. 이곳은 "독조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곳으로 두번째 방문이 되겠습니다. ['장천2리 마을회관'] 4:18 "장천2리 미을회관"을 지나고 ['장천리' 통과] <장천리>를 17분여 통과하면... ['성호호수 연꽃단지'] 4:35 "성호호수연꽃단지"를 만납니다. <성호저수지> 상류지역으로 연꽃단지를 만들어 놨군요. ['스탬프함'] ['연화십덕'] "성호호수연꽃단지"에 <스탬프함>이 있고 [정문] 4:37 연꽃단지 정문으로 나가면... ['성호교'] <성호저수지>를 건너는 <성호교>를 만나고 ['성호저수지'] 4:40 <성호교>에서 "성호저수지 星湖貯水池"와 다음 코스에서 오를 "설성산 雪城山 290,6m"을 조망하고... ['성호 가로공원'] 4:43 <성호교>를 건너면 가로공원에 <이천의 보금자리>라는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 ['노성산' 조망] <노성산>을 바라보며 10여분 진행하면.... ['금당리 버스정류장'] 4:53 "설성면행정복지센터" 입구가 있는 "금당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며 오늘 답사를 마침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20.5km였으며 약5시간이 걸렸습니다. 개량품종에 완전히 밀려 거의 사라진 <자채미 紫彩米>라고 하는 임금님 진상품이었던 <여주-이천쌀>의 本鄕을 찾아 본 <봉화길>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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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봉화길』
       『제7길 세종효종길』
        "세종대왕의 빛과 그림자를 생각하며" 
      
            세종대왕릉역-이인손묘-번도5리-영릉-세종산림욕장-대로사-한글시장-여주역
['7코스 세종효종길' 안내도] "경기옛길-봉화길 제7길 세종효종길"의 전체 안내도입니다. <7코스>는 <세종대왕릉역>에서 <한글시장>까지는 <여강길 4코스>와 함께 하더군요.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경기옛길-봉화길 제7코스""세종개왕릉역"에서 "세종대왕 영릉"을 돌아 보지 않고 "여주역"까지 "11km"거리라고 안내합니다만, 필자는 두 왕릉을 돌아 보고 "옛 수여선 여주역 터"를 찾며 보고 걸은 거리는 "14.4km"였습니다. 지도에 <빨간색선>은 <파란문>이 직접 걸은 코스이고, <파란색선>은 <경기문화원>의 정규코스입니다. <파란문>이 가는 길은 정규코스 주변 관심지역을 둘러 보고 가기 때문에 정규코스와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세세종대왕릉역'] 10:45 2024년 2월 29일 목요일 흐림 <분당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세종대왕릉역 1번출구"로 나가 우측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세종대왕면 世宗大王面" 이 지역은 <세종대왕 영릉>의 서쪽에 있는 고을이라고 "여주시 능서면 陵西面" 이었는데 지지난해 2022년 1월1일부로 <세종대왕면 世宗大王面>으로로 개명했답니다. ['역전사거리'] <세종대왕릉역 1번출입구>에서 나와 우측으로 돌아 서면 <역전사거리>가 있으며 "경기옛길-봉화길 제7코스 세종효종길" 안내판과 "이인손 스토리텔링"이 있습니다. <역전사거리>를 건너 가면... ['아파트 예정지 입구'] 10:50 "여주 능서역세권 도시개발구역" 입구를 만나는데 <여주 여강길>과 <봉화길> 이정표가 여럿 길안내를 합니다. 특히 <여주 여강길 4코스>의 시종점인데, <여강길>과 <봉화길>은 <한글시장>까지는 함께 가는군요. 예전 제가 <여강길 4코스>를 할 때엔 <영릉>이 시종점이었는데 코스가 이곳까지 연장되었군요. 이번 기회에 답사하지 못했던 <여강길 4코스 연장코스>를 <봉화길>을 하면서 함께 진행하게 됩니다. '일거양득' ㅎ ['여주 능서역세권 도시개발구역'] <성남시 분당>에서 40여분 거리에 있는 <세종대왕릉역>이어서 주변에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루어 지고 있군요. 하지만 요즘 부동산 경기 악화로 중단 된듯.... <경강선> 철로 옆으로 10여분 진행하면..... ['중부내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는 굴다리를 만나고 [굴다리] 11:00 굴다리엔 <세종대왕 관련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앞으로 만나는 굴다리엔 모두 이런 벽화가 있더군요. ['이인손묘' 가는길] <중부내륙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면 바로 <이인손 묘>로 가는 길이 열리는데 250m 정도 진행하면.... ['이인손묘' 앞 갈림길] 11:04 <이인손 묘> 앞 갈림길에 도착하는데 <봉화길>은 우측으로 가라고 안내 합니다만 좌측 뒤에 있는 <이인손 묘>를 보고 우측 <이인손 재실>로 나가는게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이인손>은 좋던 싫던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람이기도 하며 더더욱 <세종대왕릉>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들리고 가야 하겠습니다. ['이인손 묘'] [안내문] "이인손 李仁孫, 1395(태조 4년)∼1463(세조 9년)" <세종대왕> 시절 지금의 <서울시장>급의 <한성부윤>까지 오른 인물이지만, <수양대군>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는 <계유정란>에 참여한 쿠데타 세력으로 <2등 원종공신>이 되어 <우의정>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한명회><신숙주>등이 <1등공신>이고 <이인손>은 그 뒤를 잇습니다. 하지만 <이인손>은 <수양대군-세조>로 부터 결국엔 토사구팽 당하며 씁쓸하게 퇴장했습니다. [이이인손 재실'] 11:11 <이인손의 묘>가 유명하게 된 이유가 단연 토픽감입니다. 1.<이인손의 묘>는 원래 잠시후 들릴 <세종대왕릉=英陵> 자리에 있었습니다. <세조>가 죽고 뒤이어 오른 <예종> 때에 <세종대왕릉=英陵>을 천장해야 한다는 이슈가 강력하게 떠오릅니다. <세종대왕릉>은 현재 <서울 내곡동 대모산> 기슭에 있는 자기 아버지 <태종릉=헌릉> 옆에 있었는데, <세종>이 죽고 왕실이 <계유정란>등으로 풍지박살이 나자 <세종대왕 왕릉>을 잘못써서 그런거라는 루머가 돌며 천장해야한다는 상소가 빗발치자 새로운 왕릉 물색에 나섯던 것입니다. 2.<이인손>은 <경기광주 이씨>로 엄청 화려한 조상과 자손이 있는 가문이었습니다. <서울 둔촌동>의 지명을 만들어준 <둔촌 이집>이 그의 할아버지입니다. <이인손>은 아들을 다섯 두었는데 모두 지금의 장관급 이상의 관직까지 올랐습니다. <이극배-영의정>, <이극감-형조판서>, <이극증-병조판서>, <이극돈-우의정>, <이극균-좌의정> 이 당시 <조선>은 <전주이씨 왕조>가 아니라 <경기광주이씨 왕조>라고 할 정도였답니다. 3.<이인손의 묘>가 있던 현재의 <세종대왕릉=영릉>에서 이곳으로 묘를 옮길 때 유명한 일화가 있죠. <예종>의 어명으로 묫자릴 찾아 나선 <지관 안효래>가 찾아 낸 곳이 바로 현재의 <여주 영릉>인데 <이인손의 묘>를 파 내자 유해 아래에 비단에 쓰여진 글이 있었답니다. "이 자리의 주인이 새로 나타나면 이곳에서 연을 날려 하늘 높이 떠오르거든 연줄을 끊어라. 그리고 연이 떨어지는 곳에 나의 묘를 옮겨라"라고 적혀 있었답니다. 글대로 연을 날리자 연은 바람에 날려 서쪽으로 약 10리 밖에 떨어졌고 그곳이 바로 이곳이랍니다. '연이 떨어졌다'고 <연당> 혹은 <연주리>라고 부르며 현재의 <세종대왕면 신지리>가 되었답니다 <파란문 생각> 당시 <이인손 가문>이 요직을 두루 섭렵하고 있었으니 왕릉 천장지 물색에 대한 어명을 받은 <지관 안효례>는 <이인손>이 <묘>를 잘 써서 가문이 번성 한다고 느끼고 <이인손의 묘>가 명당자리라고 확신하고, <한양>에서 멀고 먼 <여주>까지 찾아와 <이인손의 묘>를 점지 했다고 봅니다. <조선왕조> 27명의 왕릉은 모두 서울근교에 있는데 <세종대왕릉>만 멀고 먼 <여주>에 있는 이유라고 <파란문>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시 <예종>은 <평안도 관찰사>로 있던 <이인손의 장남>인 <이극배>를 <의정부 우참찬>으로 승진 시키고, 후엔 <영의정>까지 오르게 된 것으로 보아 <예종>이 묫자리를 위력으로 빼앗았다고 생각됩니다. ['영릉' 가는 길] 11:11 <이인손 재실> 앞에 <봉화길>과 <여강길>이 조그만 동산을 넘어 갑니다. 100m쯤 넘어 가면... ['번도5리' 가는 길] 11:13 도로를 만나며 도로를 건너 가면.... ['신지리' 조망] '세종대왕면 신지리'가 펼쳐지는데, "서여주IC"라고 표기 한곳까지 진행합니다. ['서여주IC' 굴다리] 11:22 그러면 "서여주IC"의 날개부분 굴다리를 만나는데 ['세종' 관련 벽화들] "서여주IC" 날개부분 굴다리 세개를 통과 합니다. 모두 <세종대왕> 관련 벽화들이 <영릉>을 찾는 분들을 친근하게 맞이합니다. ['번도4리' 조망] 11:27 굴다리를 통과하면 '세종대왕면 번도리 番都里'가 시작되는데 보이는 마을은 <번도4리>더군요. <번도4리>를 통과하여 우측 "고개"라고 표기한 곳으로 진행하면... [고개] 11:34 <여강길-세종대왕릉 걸어 가는 길>은 좌측 숲 속으로 가라고 하며, <봉화길>은 직진하라고 안내합니다. 진행 해 본 결과 어디로 가나 곧 다시 만나게 됩니다. 좌측길이 약간 지름길이더군요. ['번도5리' 조망] 고개를 넘어 가면 <번도5리 番都里>가 펼쳐지는데 조금만 더 내려 가면... ['보말칼국수' 앞'] 11:38 <보말 칼국수>라는 제법 유명한듯한 음식점 앞에서 방향을 바꿔야 하더군요. "보말"은 제주도에 많이 서식하는 바다 고등으로 "팽이고등"의 방언이랍니다. 양식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본듯한데.... ['여강길'과 만나는 곳] 11:41 <보말칼국수>에서 골목으로 조금 들어 가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이 조금전 고개에서 헤어졌던 <여강길>과 다시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영릉전원마을'] "영릉전원마을"이라고 하는데 <영릉>은 여기서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전원마을을 잠시 통과하면... ['여여사'] 11:48 <여여사 驪如寺> 앞에 있는 <여강길 쉼터>를 지나고 ['번도5리'] 5분 정도 <번도5리>를 통과하면... [사거리] 11:53 사거리를 만나는데 좌측으로 200m쯤 가면 <영릉>인데 우측으로 돌아 가라고 합니다. 알고보니 <영릉>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하여 이쪽 출입구는 폐쇄했더군요. ['영릉' 가는 길] 약1.2km를 우회하며 고개를 넘어 가면... ['영릉' 입구 교차로] 12"07 <영릉입구교차로>를 만나며 좌측으로 들어 가면... ['세종대왕역사문화관'] 12:08 <영릉 입구>와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이 있습니다. 입구와 문화관의 위치가 많이 바뀌었군요. ['역사문화관' 옆문 입구] 먼저 <역사문화관>부터 관람을 합니다. <'세종대왕'> . "세종대왕 世宗大王 1397~1450, 재위 1418~1450"을 알현합니다.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정치 경제 문화 국방의 정치지도자. 과학, 음악, 문학, 인문사회학의 천재적 자질을 가진 훌륭한 학자. 무엇보다 백성을 가슴으로 사랑하고 아끼고, 백성들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키려고 혼신을 다한 따뜻한 사람. 어서 빨리 제2 제3의 "세종대왕"의 출현을 학수고대하며 감사와 사랑의 참배를 올립니다. [생애] "세종대왕 世宗大王"의 공적에 대해선 한국인이면 잘 알고 있겠습니다만 조선왕조 최악의 불행한 왕일수 밖에 없었던 그 분의 "그림자"에 대해선 모르는 분들이 많아 이번엔 "그림자"에 대해 알아 보려고 합니다. 행복한듯 보이는 "세종대왕"이지만 우리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왕이었다는 것을 아시나요?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유명한 고사성어를 모두 아시지요? 그런데 '세종대왕'은 "治國平天下"는 최고인데 "修身齊家"는 마이너스 백점입니다. 왜냐구요? 먼저 후궁들에게서 낳은 서자들은 빼고 정통파 "소헌왕후"에게서 낳은 아들들을 살펴 볼까요? 첫째 아들 : 문종 (외아들 '단종'에게 왕위를 물려 주고 일찍 죽었습니다) 둘째 아들 : 수양대군 → '세조' (삼촌인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습니다) 셋째 아들 : 안평대군 (형인 '수양대군'과 권력 다툼을 벌이다 '계유정란'때 형한테 사형당했습니다) 넷째 아들 : 임영대군 ('수양대군'의 편으로 왕위찬탈에 협조하여 '세조'의 신임을 얻었고) 다섯째 아들 : 광평대군 (스무살에 요절) 여섯째 아들 : 금성대군 ('수양대군' 반대파로 '단종복위'를 도모하다가 형한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일곱째 아들 : 평원대군 (천연두로 어려서 사망) 여덟번째 아들 : 영응대군 ('수양대군'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보좌하여 천수를 누렸고) '세종대왕'은 '소헌왕후'와 아들을 여덟명이나 생산했습니다만,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콩가루 집안도 이런 콩가루 집안은 할아버지인 "태조 이성계"의 집안과 유사한 처참한 집안입니다. 형제들 끼리 싸우고 죽이고...권력을 위해 눈에 보이는게 없는 이런 형제를 형제라 할수 있겠습니까? 형제들과 조카까지 죽이고 권력을 찬탈하는 그런 아들을 둔 아버지 - "세종대왕"입니다. '세종대왕'의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이도 친형제 이복형제들을 살해하며 왕권을 찬탈했죠? 그리고나선 아들 '세종'의 장인어른 (소헌왕후 아버지)와 외가집도 누명을 씌워 죽이고... "태종 이방원"이의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는 그런 나쁜 아들 "이방원"이를 죽일려고 수없이 시도했죠. '살인마들의 집안'이라고 아니 할수 있겠습니까? 조선왕조는 먼저 이렇게 형제들끼리 피를 흘리며 시작되었습니다. 자식을 많이 낳아 다복하다는 것은 이런 집안엔 해당되지 않는 것이죠. ['악기 전시실'] 예전 <역사문화관>과는 많이 달라져 대부분 디지털화 해서 실물보다 영상물이 많았습니다. 음악을 엄청 좋아했던 <세종대왕>은 악기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실물이 전시되 있었습니다.. "월인천강지곡 月印千江之曲" <세종대왕>은 부인 <소헌왕후>가 죽자 그녀를 추모하는 글을 짓게 했는데 그 글이 <월인천강지곡>이죠. "부처가 백억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 교화를 베푸는 것이 마치 달이 즈믄 강에 비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한글로 지은 두번째 작품이죠. 첫번째가 <용비어천가> ['영릉' 입구] 12:20 입장료는 500원으로 팜플릿값도 않되는 거의 공짜. 2015년도에 왔었는데 그 때도 500원이었습니다. ['세종대왕 동상'] 12:23 <세종대왕>의 위대함에 대해선 두말할 필요도 없으니 생략하고 앞에서 <세종대왕>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그림자" 이야기들을 알려 드린다고 했죠? ㅎ 먼저 <세종대왕>의 술 마시는 실력이 어떠했는지 기록을 통해 알려 드릴까요? ㅎ "술을 좀 마실줄 알았던 충녕대군"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장남인 <양녕대군>과 차남인 <효령대군> 대신에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을 제4대 왕에 앉히는 이유 중에 하나를 "술을 좀 마실 줄 알아서.."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ㅎ [태종실록]에서 인용합니다. "중국의 사신을 대해 주인으로서 술 한 모금도 능히 마실 수 없다면 어찌 손님을 권해서 그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겠느냐? 충녕은 비록 술을 잘 마시지 못하나 적당히 마시고 그친다. 효령대군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니, 이것 또한 불가하다. 그런면에서 충녕대군이 대위를 맡을 만하니, 나는 충녕으로서 세자를 정하겠다." <양녕대군>은 술을 너무 마시며 저잣거리에서 깽판을 쳐서 불가하고, <효령대군>은 술을 전혀 못마셔 않되고, 술을 적당히 마시는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이유를 "태종 이방원"이 직접 설명했습니다. 이제 "세종대왕"의 술 실력을 아시겠죠? ㅎ ['재실'] 12:27 새로 복원한 "재실"을 지나 갑니다. 10여년 전엔 이곳에 매표소가 있었습니다. ['연지' 앞] <재실>을 지나면 경내로 들어 가는데 먼저 좌측에 <연못>이 있습니다. ['금천교'] 12:33 "금천교 禁川橋" 임금의 혼령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임을 알리며 이곳을 지날 때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참배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홍살문' 앞] "홍살문"은 "신성한 영역임을 알리는 붉은 기둥문"이고 우측 옆에는 "판위 版位"라는 돌 디딤판이 있는데 임금이 말이나 가마에서 내리는 디딤판이랍니다. "향로 香路"는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고 "어로 御路"는 임금이 다니는 길 ['정자각'과 '비각'] "정자각 丁字閣"은 "제향을 지내는 중심 건물로 건물 모양이 "丁"자를 달았다"고... 우측에 있는 "비각 碑閣"은 "세종대왕의 표석"을 세워 둔 곳입니다. <세종대왕릉>을 좌측으로 올라 갔다가 내려와 우측으로 <효종릉>으로 갈 예정입니다. *이인손의 묘 터* 앞서 <이인손의 묘>에서 언급 했습니다만 <영릉>은 <이인손의 묘>가 있었던 곳인데 <예종>이 빼앗아 자기 할아버지인 <세종대왕>의 릉을 '서울 내곡동'에서 이곳으로 천장했습니다. 앞에서도 조금 언급랬습니다만 당시 상황을 조금 깊이 있게 알아 보겠습니다. <세종대왕>은 자기가 죽으면 반드시 우리 아버지 <태종릉=헌릉> 곁에 뭍어 달라고 유언했습니다. 형이 두명이나 있었는데도 자기를 왕으로 등극시켜준 아버지에 대한 충효였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죽자 자식들이 서로 싸우고 죽이고..조카까지 죽이는 난장판이 되며 집구석은 풍지박살나며 콩가루 집안이 되었죠. 단연 주인공은 <수양대군=세조>가 살육의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많은 충신들은 이러한 변란이 모두 <세종대왕의 릉>을 잘못써 일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육의 중심 인물 <수양대군=세조>가 살아 있었을 때엔 이 "천장 문제"를 입 한번 뻥긋 못하다가 <세조>가 죽고 그의 아들 <예종>이 왕위에 오르자 바로 "세종대왕릉 천장문제"를 꺼내 상소를 올리며 천장을 추진한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 했습니다만 <파란문 생각> 당시 <이인손 가문>이 요직을 두루 섭렵하고 있었으니 왕릉 천장지 물색에 대한 어명을 받은 <지관 안효례>는 <이인손>이 <묘>를 잘 써서 가문이 번성 한다고 느끼고 <이인손의 묘>가 명당자리라고 확신하고, <한양>에서 멀고 먼 <여주>까지 찾아와 <이인손의 묘>를 점지 했다고 봅니다. <조선왕조> 27명의 왕릉은 모두 한양근교에 있는데 <세종대왕릉>만 멀고 먼 <여주>에 있는 이유라고 <파란문>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英陵"은 조선왕조가 500여년 지속 될수 있었던 "옴파로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릉'] 12:42 "영릉 英陵" 조선왕조 최초의 왕-왕비 합장묘로서 "소헌왕후"와 함께 영원히 평안히 잠들고 있습니다 조선왕조 왕비들 중에 자식을 가장 많이 낳은 왕비가 "소헌왕후"입니다. '청송 심씨'이지요. 8남2녀. 세종대왕과 금술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만하죠? ㅎ 또한 세종대왕은 "소헌왕후" 이외의 여섯명의 후궁들로부터도 열명의 아들을 더 낳았는데...총 18명 세종대왕은 낮일뿐만 아니라 밤일도 무지 잘했다는 것을 알수 있지요? ㅎ 그러니까 '세종대왕'은 政事도 잘 보았지만 情事에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영릉'에서 조망] 예전과 달리 출입금지 구역이 대부분이라 근접해서 촬영하기가 어려웟습니다. 그래서 10여년전에 촬영한 사진을 보여 드림니다. ['영릉' 뒤에서 조망] 2015년 9월 15일에 촬영한 사진 <英陵> 뒤에서 조망합니다. 풍수지리를 모른다 해도 이 자리가 왜 명당자리인지 느낄수 있나요? 앞에 보이는 산이 <6~7코스>를 걸으며 보아 왔던 "북성산 北城山257.6m"입니다. 영의정까지 올랐던 <이인손의 묘>를 만든지 불과 몇년만에 국가가 빼앗아 <세종대왕릉>을 조성했는데 천하명당 같나요? ['비각'] ['세종대왕 표석'] ['표석' 번역문] <비각>에 대해선 안내문에 자세히 설명되 있습니다. ['왕의 숲길'] 12:48 <세종대왕릉>에서 <효종릉>으로 가는 숲길 입구입니다. <세종대왕>은 앞에서도 언급한 '자식 복'이라곤 정말 하나도 없는 불행한 아버지였는데 거기다가 '며느리 복' '사위 복'까지도 지지리 없었습니다. "세종대왕의 며느리들"에 대해 알아 보면.... 그 중에서 "동성애-레즈비안" 이야기입니다. 독자들은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훨 많으실테니까...ㅎㅎ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들의 성욕은 똑 같습니다. 정상적 남성 100%가 자위를 하고, 여성도 별반 차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동성애를 하는 자들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많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의 장남인 <문종>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세자빈 김씨'는 학문에만 열중할 뿐 자신을 모른 체하는 남편을 견디다 못해 "압승술 壓勝術"을 행하다가 시아버지 '세종대왕'에게 적발되었다고 합니다. "압승술"이란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일종의 민간 미신이랍니다. 구체적으로 "압승술"은 남편이 좋아하는 여자의 신발 뒷굽을 태워 가루를 내고 나서 그것을 술에 타 남편에게 먹이는 일종의 미신인데요. "세자빈 김씨"는 세자가 자주 출입하는 궁녀의 신을 훔쳐다가 그 신을 태워 세자의 술이나 차에 섞어 마시게 하거나, 교미하는 뱀을 잡아 가루를 만들어 먹이는 등 세자를 곁에 두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게 되지만 당연히 이 모든 일은 허사가 되고 오히려 그녀의 행각은 탄로 나서, '세종대왕'은 장차 왕비가 될 큰며느리가 그런 요상한 짓을 한다는 걸 용납할 수가 없었고 국모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여 큰며느리 '김씨'를 곧바로 쫓아내 버렸지요. 그러나 '김씨'가 쫓겨난 후 들어온 두번째 큰며느리 '봉씨'도 외로움을 견디기 힘든 것은 여자이니 마찬가지였답니다. . "문종"의 두번째 와이프 "세자빈 봉씨" 이 여자가 세종실록에 아주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는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세자빈이 궁녀와 동성애-레즈비안을 한것이죠. 궁녀들 사이의 동성애를 그 당시 보통 <대식 對食>이라고 했답니다. 물론 '대식'은 궁녀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행해지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어쩌다가 예기치 않은 일로 드러나곤 할 뿐이었다고 합니다. 당연하겠죠?ㅎ 이렇듯 은밀하게 행해지던 궁녀들의 동성애가 겉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사건이 '세종대왕'의 첫째 아들인 '문종'의 두번째 와이프가 주인공이었던 사건입니다. 세종대왕은 궁녀들 사이의 '대식'이 적발되면 곤장 70대~100대씩 때려서라도 금지시키려고 했답니다. 당시 세종대왕을 비롯하여 조정관료들의 성 윤리가 대단히 엄격하여 동성애를 절대 용납하지 못했던 때였습니다만, 조물주가 인간에게 준 성욕은 왕의 위력으로도 막을 길이 없었던 것이죠. '세종대왕'의 장남인 '문종'의 두번째 와이프인 '세자빈 봉씨'가 궁녀와 동성애를 벌이다 적발되어 쫓겨나는 이 사건에 대해 『세종실록』에 자세하게 기술되 있는데 세자빈과 궁녀의 동성애에 관한 기록은 이때의 상황이 처음이랍니다. 그 이유는 '세종대왕'이 큰며느리 '봉씨'를 내치면서 부득이하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다 보니 내용이 구체적으로 실록에 기록된 것이죠. 세종이 큰며느리를 내친 이유는 근본적으로 아들, 즉 '문종'에게 있었답니다. '문종'은 학문을 좋아하고 여색을 멀리한 모범적인 왕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일 밤 독수공방을 했다는 말이 됩니다. 다만 '봉씨'는 '김씨'처럼 "압승술"을 쓰는 대신 동성애에 빠져 궁녀들과 성욕을 불태우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는 노발 대발 난리가 났고 결국 폐서인을 시켜 추방합니다. 쫏겨난 '봉씨'는 반성은 커녕 성욕을 해결한게 뭔 죄가 되냐고 항변하다가 결국 자기 친아버지로 부터 비참하게 목 졸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남자 구실 못하는 '문종'이 이혼 대상이고 위자료를 줘야 할텐데... 이러한 와중에 '문종'이 꼴깝을 합니다. 자신의 부인들이 성욕을 해결 못해 "압승술"이나 '동성애'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궁중의 어느 궁녀와 관계를 맺어 아들을 낳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유일한 아들 "단종"이며, 그 궁녀가 "단종"의 어머니인 "양원 권씨"로서 '문종'의 세번째 부인인 "현덕왕후"가 됩니다. '수양대군'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탄생한 '단종'을 더욱 인정하려하지 않았고, 그렇지 않아도 왕권찬탈의 빌미를 찾으려 혈안이었는데 이것은 좋은 미끼여서.... 이로서 '세종대왕' 자식들과 며느리들의 불행은 극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큰며느리들은 성욕을 해결하지 못해 "압승술" "동성애"를 하다 쫏겨나고 "모락산"이라는 산 이름을 만든 "임영대군"의 와이프는 정신질환자로 시아버지인 세종대왕에게 반말 막말을 하는 등 '미친년'이었으니 지지리도 '며느리 복'이 없는 '세종대왕'이었던 것입니다. ['효종릉' 가는 길] '세종대왕'에게는 사위도 있었는데 그 '사위 복'까지도 없었습니다. 한글창제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고 하는 "정의공주"는 모두 아시죠? 우이동 근처 "연산군 묘" 건너편에 그녀와 그녀의 남편 "안맹담"의 묘가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안맹담"이라는 선비였는데, 사위가 되고 난 다음부터 이 놈은 술을 무지 무지 무지 좋아해 요즘 말로 알콜 중독자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안맹담" 사위와 술 함께 마시는 놈들은 혼내 주기도 하며 극기야 술 함께 마시는 놈들을 감옥에 보내기도 했을 정도 였다고 합니다. 자식들끼리는 살인을 하고, 며느리들은 동성애에 빠지고, 사위는 알콜중독자이고.... '세종대왕'은 治國平天下는 훌륭하게 했습니다만, 집안은 어쩔수 없었던 그런 평범한 아버지였습니다. 또한 <세종대왕>은 살아 있는 종합병원이었답니다. 평생 당뇨병과 함께, 풍질과 부종, 수전증 같은 병을 안고 살았다고 합니다. 특히 35살 이후에는 당뇨병 때문에 하루에 물을 한 동이 넘게 마실 정도였다고하며 당뇨 후유증 때문에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부종 때문에 마음대로 돌아 누울 수도 없어 잠을 잘수도 없을 정도 였답니다. 여기에 후궁들만 다섯명이나 되었으니 상상하지 않아도 성생활은 문란 할수 밖에 없었을거고 이런 과정에서 '세종대왕'은 임질에 걸려 정사를 돌보지 못할 정도였다니.... 이런 와중에서도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끝이 없어서 불행한 가정사, 건강문제를 딛고 역사에 길이 빛나는 "세종대왕" 聖君이 되었습니다. ['효종릉 寧陵'] 12:58 <세종대왕릉>에서 10여분 <왕의 숲길>을 진행하면 "효종릉 寧陵"에 도착합니다. "효종 1619(광해군11)~1659(효종10)(재위 1649∼1659)" "북벌정책" '김상헌' '송시열'등 강경 북벌파들을 중용하여 '청나라'에 대해 복수의 칼을 갈았던 왕입니다. 여담입니다만, "하멜의 조선 표류기" 아시지요? '효종'시대인 이때에 제주도 남단 '가파도'에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표류하게 되었지요. "효종"은 "하멜"일행을 훈련도감에 배속시켜 신식 총기를 제작하게 하며 '청나라'에 대한 복수의 일념'을 불테우기도 했죠. 그런데 이 총기의 개발로 청나라를 친게 아니라 러시아를 치게 되죠? ㅎ 청나라가 러시아 침공에 대항하기 위해 조선에 군대 파견 요청이 왔는데 거절할수 없어 파병하는데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북벌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지요. 하지만 청나라에 대한 북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고 엄청난 군사비로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며 특히 "우암 송시열"과의 견해차이로 북벌계획은 유야무야되어 갔습니다. "효종"은 오로지 복수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우암 송시열"은 우리가 먼저 수련을 한후에 하자는 것이었는데....
['효종릉' 안내문]
[효종릉 재실] <효종릉>에선 꼭 들려야 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재실>입니다. 그 이유는... ['회양목'] [안내문] 바로 "천연기념물 회양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큰 <회양목>은 찾을수 없다고 ['효종릉' 정문] 1:07 <효종릉> 정문을 나서면.... ['효종릉교차로'] 1:10 <효종릉교차로>를 만나는데 길을 건너 안쪽 길로 진행해야 하고 ['여주천후양궁훈련장'] 1:15 "여주 전천후 양궁훈련장"을 지나면... ['세종산림욕장 입구 공원'] 1:16~1:18 화장실도 있는 "세종산림욕장 소공원"을 만나며 ['세종산림욕장' 입구] "세종산림욕장" 정문으로 들어 가 조금 올라 가면... [갈림길] 1:19 갈림길을 만나는데 직진길은 <여강길 6코스>이고 <여강길 4코스>와 <봉화길 7코스>는 우측으로 올라 갑니다. 여기서 북쪽을 바라보면... ['여주양궁훈련장' 조망] <여주 전천후 양궁훈련장>이 전체적으로 조망되고 [오름길] 약 8분간 산림욕장을 통과하며 올라 가면... [산림욕장 정상] 1:27 정상에 도착합니다. <해발 92.53m>라는 삼각점이 있는 산림욕장 정상입니다. [조망 1] <세종대교> 아래에 있는 "양섬 羊島"이 서울 <여의도> 축소판처럼 보이는데 야구장등 운동장이 여럿 있습니다. <남한강> 건너편 <여주시>의 <현암동><오학동><천송동>등이 조망되며 <신륵사>까지 보이는군요. ['여주시내' 조망] <여주시내>가 한눈에 들어 오는군요.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잠시 내려 가면 소공원을 만나는데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좌측 정자 뒤로 내려 가야 합니다. 옛 <여강길>은 우측으로 그냥 나갔는데.... ['한강종주자전거길'] 1:38 <한강종주자전거길>로 내려 서서 7분여 직진하면.... ['하리보도교'] 1:45 <소양천 昭陽川>을 건너는 <하리보도교>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갑니다. ['여강 산책로'] <여주시 하동>의 <남한강 산책로>를 15분여 진행하는데.... 이곳의 <남한강>을 "여강 驪江"이라고 하죠 ['대로사' 입구] 2:00 . <대로사> 갈림길을 만나면 우측 골목으로 들어 가고 ['대로사'] 2:02~2:07 "대로사 大老祠"를 구경하고 갑니다. ['추양재'] 좌측에 <추양재>라는 관리실이 있고 가운데 작은 문으로 들어 가면 ['대로사'] 우측에 "우암 송시열"을 모시는 "대로사 大老祠"가 있는데 출입할수 없고 ['강한사'] [안내문] "대로서원 大老書院"이 있는데 "강한사 江漢祠"라고도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강한사'에서 조망] "大老"는 큰 어른을 의미하는데 <우암 송시열>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대원군>이 서원철폐를 할때 이 서원은 남겨 두었답니다. 그러면서 "大老"는 <대원군> 자신이지 <송시열>이 아니라고 <대로사>를 <강한사>로 이름을 바꾸었답니다. ['여주성당'] 2:10 <대로사>를 나와 <한글시장> 방향으로 잠시 진행하면 "여주성당"을 지나고 ['한글시장' 출입구 앞] 2:11 이어서 <한글시장 입구>를 만나는데 <여강길>은 좌측 <한글시장> 안으로 진행하고, <봉화길>은 직진합니다. 저는 <옛 수여선 여주역터>를 찾아 보기 위해 <한글시장> 안으로 진행합니다. ['한글시장' 출입구] "여주 한글시장" 5일장으로 매월 5일. 10일에 장이 얼림니다. 장날 와야 좋은데.... 올때마다 들리는 꽈배기집에서 찹살도넛과 꽈배기를 만원어치 사들고 갑니다. [어린시절 '세종'] <충녕대군> 시절 <이 도>의 앳띤 모습도 볼수 있는데 잼있죠? ㅎ 들고 있는 책은 천자문이더군요. ['여주시청' 조망] 2:18 <한글시장>을 나가면 <여강길>이 가는 북쪽방향에 <여주시청>이 보이며 ['세종로'] 남쪽으로 <여주 세종로>가 이어집니다. <여주시민회관>으로 표기한 곳으로 가면.... ['여주시민회관'] 2:21 "옛 수여선 여주역 터"였던 곳엔 "여주시민회관"이 자리 잡고 있어서 옛 "여주역"의 흔적은 찾을수 없습니다.
['옛 여주역'] 수여선 열차의 종착역인 <여주역>은 유감스럽지만 현재 주택지에 덮여서 흔적을 찾을 수가 없으며, 단지 지금의 <여주시민회관>에 자리했다고만 알려져 있습니다. 비록 현재는 남은 게 없지만, 수운교통을 밀어내고 지역사회에 큰 존재감을 드러내며 등장하여 영동고속국도에 배턴을 넘겨주기까지 약 40년간 기적소리를 울렸던 곳입니다.
['여주경찰서'] ['옛 수여선 철길] 2:23 시민회관 건너편에 있는 <여주경찰서> 뒷골목으로 <옛 수여선 철길>이 이어졌었답니다. 이 골목이 그 철길이었답니다. 5분여 골목을 진행하면.... ['문화교'] 2:28 <옛 수여선>의 철교가 있었던 다리를 만나는데 이름은 "상리철교"였답니다. 지금은 "문화교"라고 하는군요. ['봉화길' 재회] <문화교>를 건너면 다시 <한글시장 입구>에서 직진하여 오는 <봉화길> 정규코스를 만납니다. <옛 수여선>은 직진하는데, <봉화길>은 좌측 <소양천>을 따라 진행하게 되겠습니다. ['소양천변길'] <소양천변길>을 15분 정도 진행하면.... ['향교교'] 2:44 "향교교 鄕校橋"를 만납니다. <봉화길>은 우측에 있는 <향교>를 다녀 오라고 합니다. ['여주향교' 조망] ['여주향교' 줌인] <향교교>에서 바라보는 "여주향교"입니다. 여느 향교와 큰 차이가 없어 괜히 시간 낭비 할 필요없이 줌인한 사진만 찍고 <여주역>으로 갑니다. ['향교교'] 2:47 <향교교>에서 <여주역> 방향으로 7분여 진행하면... ['봉화길' 안내판] 2:54 <경강선> 다리 밑에 <봉화길 7코스 안내판>이 서 있고 우측으로 들어 가면 ['여주역'] 2:55 "여주"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조형물이 나그네를 반기며 "경기옛길-봉화길: 제7길 세종효종길"을 마침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14.4km였으며, 왕릉과 문화역사관등을 돌아 보느라 4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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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봉화길』
      『제6길 골내근길』
       "옛 水驪線"의 흔적을 찾아 
            부발역-수정2리마을회관-양화천-용은교-매규역터-세종대왕릉역
['5코스 남천주길' 안내도] "경기옛길-봉화길 제6길 골내근길"의 전체 안내도입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경기옛길-봉화길 제6코스""부발역"에서 "수여선 水驢線"의 흔적을 찾아 보고 "세종대왕릉역"까지 "14km"거리라고 안내합니다. 이 지도에선 <용은교>에서 <세종대왕릉역>까지 진행한 루트가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두가지입니다. <파란색선>은 <경기문화원>이 정한 오리지날 길인데, 저는 <빨간색선>으로 진행했습니다. 그 이유는 <경기문화원>이 강조하는 이 코스의 하일라이트인 "수여선 매류역 터"를 탐방하기 위해서 황량한 둑방길 대신 역사유적을 탐방한 것이니 참고하기 바람니다. ['부발역'] 12:15 2024년 2월 22일 목요일 흐림 <분당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부발역 1번출구"로 나가면 "큐빅상자"같은 조형물이 있는데 "천년의 도약"이라는 조형물로 "세계 정상의 한국 반도체산업을 이끄는 이천시"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천 SK하이닉스"를 지칭하는듯 합니다. "부발역 夫鉢驛" 지명이 독특하여 찾아 보니 이 지역은 원래 <부모곡면(夫毛谷面)>과 <발산면(鉢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 면을 합치며 첫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것이라 합니다. ['철도다리'] <부발역 1번출입구>에서 나와 좌측으로 돌아 서면 <경강선 철도교>가 있으며 ['죽당천 삼거리'] <철도교>를 통과해 나가면 <죽당천 삼거리>가 있는데, 우측 다리로 가면 ['6-7코스 안내판'] 지난 <5코스>의 종점이자 <6코스><8코스>의 출발지를 안내판과 함께 알려 줍니다. ['6-7코스'와 '8-9코스' 분기] "경기옛길-봉화길"은 다른 <경기옛길>과 좀 다른 길입니다. 안내판을 보면 <한양>에서 <태백산 史庫>가 있는 <봉화>까지 <왕조실록>과 <왕실족보>등 역사기록물을 운반하던 길이라고 합니다만.... <6~7코스>는 이곳 <부발역>에서 <봉화길>을 벗어나 <여주>로 분기하고 있습니다. 안내서를 보면 <세종대왕릉>과 <효종릉>을 참배하러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길은 <영릉 참배길>이 되겠으니 갔다가 다시 돌아 와 <봉화길 8~9코스>를 이어가야 겠습니다. ['죽당천산책로'] 12:21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지난 <5코스>에서도 진행했던 <죽당천 산책로>를 이어서 5분여 진행하면... [다리] 12:27 <죽당천>을 건너는 다리를 만나는데 건너서 건너편 갓길로 가고 ['죽당천로'] 자동차 도로인 <죽당로>를 따라 1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 12:36 ★길조심★ ★길조심★을 해야 하는 곳을 만나는데 횡단보도도 없는 곳에서 느닺없이 길을 건너야 하더군요. [농로'] 농로로 들어 가면 우측 멀리 <경강선>이 보이는데 <'KTX중부내륙선'>이 <부발역>에서 분기하는 곳을 만나는데 저 철도교 아래로 진행합니다. ['경강선'] 12:45 <경강선>에서 <'KTX중부내륙선'>이 분기하는 고가철도교 아래를 통과하면 ['KTX중부내륙선'] 1:00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려 눈 구경 겸 답사를 위헤 갑자기 길을 나선 것입니다. '부발읍 아미리' 들판이 이어지다가 <'KTX중부내륙선'>이 남쪽으로 휘어져 가는 곳을 만나며 [사거리] 1:04 <'KTX중부내륙선'> 아래 사거리를 만나면 직진하여 좌회전하고 ['이천축산농협 경제사업장'] 1:09 <이천 섬유질사료공장>과 <이천축산농협 경제사업장>을 지나면 ['여주이씨 이광규 공적불망비'] 1:11 "여주이씨 이광규 공적불망비"와 묘소를 지나 갑니다. 이곳이 "해룡지맥"이 지나는 마루금입니다. <해룡지맥>은 <한남정맥>에서 분기하는 <앵자지맥>에서 다시 분기하는 <독조지맥>으로 이어지다가 <큰바래기산>에서 다시 북쪽으로 분기하는 지맥으로 <마국산-해룡산-기관산>을 지나 <남한강>에 입수하는데 <복하천>과 <양화천>의 분수령이 되는 지맥이죠. [337지방도' 사거리] 1:14 <이광규 불망비>를 지나면 <337번지방도> 사거리를 만나는데 직진합니다. ['부발읍 송온리' ] 이어서 <부발읍 송온리> 논밭으로 나가면 <3번국도>가 지나는 굴다리가 보이며 ['3번국도' 굴다리] 1:24 <3번국도 굴다리>를 통과하면... ['송온리'] 다시 <송온리>가 이어지는데 8분여 진행하면.... ['수정2리마을회관' 조망] <수정2리 마을회관>이 보이기 시작하며 ['수정2리 마을회관'] 1:32 "수정2리 마을회관 "에 도착합니다. <스탬프함>이 있습니다. <수정리 水井里>에는 물이 용솟음치는 우물이 있다고 생겨난 이름이라고... ['여주 안내판'] <여주 지명 유래 안내판>이 있는데, 여긴 아직 <이천시 부발읍 수정리>인데 <여주 안내판>이 성급하게 있군요. <여주>의 원명은 <골내근>이었다고...<여흥→여주>로 바뀌었답니다. ['수정리 버스정류장'] 1:34 이어서 <수정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직진성 좌측길로 진행하면.... ['이천-여주시 경계'] <이천시>와 <여주시>의 법정경계지역을 통과합니다. ['여주시 양거리'] 그러면 <여주시 세종대왕면 양거리>로 들어 가고 ['양거리 버스정류장'] 1:54 <양거리 버스정류장>엔 <여주시내버스 시간표>가 있어 이제부터 <여주시>라는 걸 알수 있습니다. 많이 걸었다고 느껴지는데도 아직 9.4km를 더 걸어야 한다는군요. [삼거리] 1:56 이어서 삼거리를 만나는데 삼거리를 조금 지나 보이는 다리로 가면.... ['양거1교'] 1:58 <양거1교>라는 다리 앞에서 좌회전하고 ['양거리 둑방길'] . 농수로 둑방길을 따라 7분여 진행하면 ['양화천' 합류지] 2:05 <양화천>과 합류하는 합수부를 만나 좌회전합니다. ['양화천 둑방길'] 우측 멀리에 <세종대왕릉> 앞에 있는 <북성산>이 조망되는데 지금부터 "양화천 둑방길"을 약40분간 진행합니다. ['원적산'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앵자지맥>이 지나는 <정개산>과 <천덕봉>, 그리고 <원적산> 이 조망되는데 <이천시내>를 감싸고 있는 산줄기죠. 사진을 클릭하면 지난 <4코스>에서 지났던 <넋고개>까지 조망됩니다. ['용문산''추읍산'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북쪽 정면으로는 <양평군>의 <용문산>과 <추읍산>이 보이는데 사진을 클릭하면 분명하게 볼수 있습니다. <추읍산>이 <용문산>에게 업드려 절을 하며 읍소하는 형상이란걸.... ['매화교'] 2:25 <영주시 세종대왕면 매화리>에서 흘러 내려 오는 <매화천> 위에 건립된 <매화교>를 만나면 ['설봉산'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매화교> 위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지난 <5코스>에서 올랐던 <이천의 진산>인 <설봉산>이 보입니다. 사진을 클릭 해 보세요~~ 다시 15분여 더 진행하면.... ['용은교' 조망] 2:41 "수여선 水驢線" 1931년부터 1972년까지 운행된, <경부선 수원역>을 기점으로 <용인>을 지나 <이천·여주>에 이르는 철도였던 <수여선 水驪線>이 지났던 <용은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봉화길 6코스>에서 <경기문화원>이 중점적으로 강조하는 <수여선의 흔적>입니다. ['수여선' 설명] <수여선>의 <죽당역-매류역 구간>에 대한 설명은 <경기문화원>의 안내를 참고하시고.... ['용은교' 앞] 2:45 <용은교>로 올라 가기 전에 우측을 바라보면... ['현 용은교'] ['옛 매류교'] 현재 자동차용 다리로 건설된 "용은교 龍隱橋""양화천 楊花川"을 건너는 다리인데 옛날 <수여선>이 다니던 "매류교 梅柳橋"였답니다. <양화천>을 기준으로 서쪽은 <용은리>이고 동쪽은 <매류리>여서 다리 이름도 그런 연유인듯합니다. ['옛 수여선 기차'] 일제가 <여주-이천쌀>을 수탈하기 위해 건설한 <수여선>은 다시 <수원-인천>을 연결하는 <수인선>과 연결되어 <인천항>까지 한번에 운행되었는데, 당시 운행되던 "옛 수여선 기차" 사진입니다. 협괴열차로 규모가 작은 증기기관차였던 시절에 황소가 들이 받으면 기차가 넘어졌다는 일화도 있더군요. ['용은교'] 옛날 <수여선>의 "매류교 梅柳橋"였던 이 다리는 이제 "용은교 龍隱橋"라는 자동차도로가 되었고 "용이 숨어 있는 다리"인지 이 마을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갈림길] 2:50 <용은교>를 건너면 다리 끝에서 <봉화길>은 좌측 <양화천 둑방길>로 안내 됩니다. 그런데 이번 코스에서 하일라이트라고 할수 있는 <수여선의 흔적>을 찾아 보기 위해선 직진하여 앞에 보이는 <매류리>로 가야 합니다. 저곳에 <매류역>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봉화길>을 좌측 둑방길로 돌리는 이유는 아마도 직진길에 갓길이 없어 위험하기 때문이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하일라이트를 체험하지 않는다면 <6코스>를 갈 이유도 필요도 없을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약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진했는데 그런데로 진행 할만했습니다. ['봉화길 정규코스'] <양화천> 둑방길로 연결되는 정규 <봉화길>을 흘깃보는데 구경거리 없는 둑방길을 정말 아무것도 없는 황야를 가야 합니다. 그래서 <매류리>로 직진하여 <수여선의 흔적>을 답사하고 사람 사는 곳으로 가라고 저는 추천합니다. ['매류삼거리'] 2:55 <옛 수여선>이 지났던 <능여로> 도로를 5분 정도 진행하면.... <매류삼거리>를 만나는데, 다시 조금 더 직진하면... ['매류보건소-옛 매류역터''] 2:57 "매류보건소""역전슈퍼"를 만나는데 이곳이 옛 "매류역 梅柳驛"이 있었던 곳이랍니다. ['매류역' 항공사진] 이해를 돕기 위해 <산림청 홈피>에서 1970년대 <매류리> 항공사진을 쎄비해 왔습니다. 동서로 철길이 선명하며 가운데 <매류역>이 분명히 보입니다. ['역전슈퍼'] <매류역> 역사가 있었던 곳에는 그 흔적이라도 느끼라고 "역전슈퍼"라는 상호의 구멍가게가 남아 있는데 지금은 폐업하고 빈집이더군요. "그래도 여기가 옛날 매류역이었다구~ 도로는 철로였었구~ 추억 속으로 가보시라구~" ['옛 매류역 벽화'] ★ 이 사진 꼭 클릭 해 보세요 ★ <역전슈퍼> 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나그네들을 위해 마을분들이 그 추억을 남겼답니다. <수여선>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하니 이 사진 꼭 클릭해 보세요~~ ['매류역' 그림] <역전슈퍼 벽화>에 있는 옛 <매류역사>를 별도로 촬영 했는데 다음 오리지날 옛사진과 비교해 보세요~~ ['옛 매류역' 사진] <여주박물관>에 있는 <옛 매류역사 사진>입니다. 역장님과 직원이 기념사진 찍은듯 하죠? ㅎ ['수여선 마지막 운행열차'] ['신문기사'] <여주 이천쌀> 수탈을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수여선>은 해방과 함께 지역 주민들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변모해서 학생들의 통학에 이용되고, <신륵사 여행> 열차로 엄청 유명해 졌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등 교통의 발달로 <수여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답니다. 그 마지막 운행열차와 신문기사가 애처롭게도 여겨집니다. ['매류2리마을회관'] 3:02 폐업한 <역전슈퍼> 옆에는 "매류2리 마을화관"이 번득하게 서 있고... ['매류리 회전교차로'] 3:04 이어서 <매류회전교차로>를 만나는데 <옛 수인선>은 여기서 우측 <능여로>를 따라 <여주>로 가고 <봉화길>은 좌측 <세종대왕릉역>으로 갑니다. ['매류1리' 가는 길] <세종대왕릉역>으로 가는 <양화로>를 잠시 진행하면.... ['매류교'] 3:07 <매류천>을 건너는 <매류교>를 만나는데, ['매류천'] <매류교> 위에서 <양화천> 방향을 바라봅니다. 오리지날 <봉화로>는 멀리 있는 <양화천 둑방길>에서 좌측 <매류천 둑방길>로 와서 이곳 <매류교>에서 <매류천>을 건너고, 다시 <양화천 둑방길>로 나깁니다. 이 길이 오리날인데 후답자들은 이 길을 선택 할것인지, 제가 걸은 <매류역사> 흔적길로 걸을 것인지 선택하시면 되겠습니다. [정코스 갈림길] 3:08 <매류교> 끝에서 오리지날 <봉화길>은 좌측으로 갑니다만, 저는 의미없다고 생각되어 사람 사는 길을 따라 직진하여 <세종대왕릉역>으로 갑니다. 비교해 보니 약1km 정도 단축되더군요.(서두의 지도를 참고하세요) ['세정중학교' 조망] ['세정중학교'] 이 마을이 <매류리>의 중심인 <매류1리>인데 대학캠퍼스같은 <세정둥학교>가 있습니다. ['신지2리 입구'] 3:31 <세정중학교>에서 20여분 진행하면 "신지2리 마을 입구"를 지나고 ['세종대왕릉역'] 3:37 "세종대왕릉역"에 도착하여 답사를 마침니다. "세종대왕면"은 <세종대왕 영릉>의 서쪽에 있다고 원래 "능서면 陵西面"이었는데 3년전 2021년에 좀 더 멋진 이름인 <세종대왕면>으로 이름을 바꿨답니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13.1km였으며 3시간 15분 정도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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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봉화길』
     『제5길 남천주길』
      이천의 옛이름 '남천주'와 '설봉산'을 가다 
            신둔도예촌역-사기막골-설봉산-설봉공원-애련정-복하천-부발역
['5코스 남천주길' 안내도] "경기옛길-봉화길 제5길 남천주길"의 전체 안내도입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경기옛길-봉화길 제5코스""신둔도예촌역"에서 <이천시>의 진산인 "설봉산"을 오르고 "안흥지 애련정"을 둘러 보고 "부발역"까지 "16.8km"거리였습니다. ['신둔도예촌역'] 10:58 2024년 2월 12일 월요일 맑음 안개 미세먼지 설날 연휴의 마지막날 <분당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신둔도예촌역 1번출구"로 나가면 "천년의 혼魂"이라는 <도예촌> 다운 조형물이 먼저 반겨 줍니다. ['4코스 안내판'] 역에서 나가면 <5코스 출발지>인 <봉화길 안내판>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어렵습니다. 역 안내판 뒤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 와서 뒤돌아 보니 안내판이 보이고... ['역 삼거리'] 11:00 <신둔도예촌역 삼거리>로 나가서 길을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 진행해야하고 ['앵자지맥' 조망] 지난 <4코스>에서 넘었던 <앵자지맥>의 <넓고개(넋고개)>와 <정개산>이 조망됩니다. <광주시>와 <이천시>의 경계가 되는 <앵자지맥>입니다. <임진왜란>에서 최악의 육군 패장인 <신립장군>의 시신을 <충주 탄금대>에서 <곤지암>으로 운구 할때 저 고개에 이르러서야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넋고개>라 한다는 거 지난 답사기에서 언급했습니다. [삼거리] 11:05 <부발역>까지 "14.5km" 남았다고 알려 주는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를 지나면 ['청풍김씨 세장천'] 11:06 "월천제"라는 제실과 <청풍 김씨> 묘소가 있는데... 수많은 <김씨> 중에 <청풍 김씨 淸風金氏>는 처음 들어 봅니다. ['남정사거리'] 11:08 이어서 <옛3번국도>였던 <경충대로>가 지나는 "남정사거리"를 만나는데 "신둔면 新屯面의 마스코트"가 있습니다. <신둔 新屯>은 <新洞>과 <둔지산(屯之山>의 앞글자를 따와 만든 지명이라고... ['설봉산' 조망] 안개와 미세면지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지만, 잠시후 오를 "설봉산 雪峰山"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고 ['소정교차로'] 11:18 <소정교차로>를 직진해 지나면... ['근천교'] 11:23 <신둔천>이 흐르는 "근천교"를 만나는데, <봉화길>은 다리를 건너 좌회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진행 해 본 결과 직진해도 아무런 차이가 없더군요. 후답자들에겐 직진을 권장합니다. [삼거리] 11:25 <근천교>에서 좌회전 하자마자 바로 삼거리를 만나는데, 바로 우회전하고... ['경충대로' 뒷길] 구경거리 없고 하수구 냄새만 나는 <경충대로> 뒷길을 10여분 진행합니다. ['도예촌사거리'] 11:35 그러면 다시 <경충대로>를 만나는데 이곳이 "도예촌사거리-사음2통 입구"였으며 굴다리를 통과하면.... ['사기막골 입구'] '이천시 사음동'에 위치한 "사기막골 입구"로 들어 가게 됩니다. ['사기막골 도예촌'] "사기막골 도예촌"이 10여분 이어집니다. <이천시>는 2010년 7월 대한민국 최초로 공예 및 민속예술분야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되었다는데 <이천 도자기>의 대표 도예촌이라고 하는 <사기막골 도예촌>이랍니다. ['한국국제예술학교'] 11:45 <사기막골 도예촌>은 주로 이천 도자기를 판매하는 상가였습니다. <도예촌 상가>가 끝나는 곳 우측에 <한국국제예술학교>가 있고 [삼거리] 11:47 이어서 삼거리를 만나는데 직진하면 <한국국제예술학교>로 가고 <봉화길>은 좌회전 합니다. ['화계사' 입구] 11:48 이어서 바로 "화계사"입구를 만나는데, <봉화길>은 우측 등산로로 진행해야 하며 <설봉산 정상>까지 "1.43km"라고 알려 줍니다. [계곡길] 완만한 계곡 오름길을 20여분 진행하면... [고개 사거리] 12:07 <고개 사거리>를 만나는데 이정표가 길안내를 잘하고 있습니다. [오름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20여분 올라 가면... ['화계사 삼거리'] 12:28 조금전 <화계사 입구>에서 <화계사>를 통과해 올라 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를 만나고 ['설봉산' 조망] 12:29 삼거리 봉우리에서 <설봉산 정상부>가 조망되는데, <설봉산 갈림길>까지 6분여 오름짓을 하면... [삼거리] 12:35 설봉산 정상 100m 전에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봉화길>은 좌측 <호암약수> 방향으로 안내하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정상을 다녀 오기로 합니다. 정상까지 100m로 거의 평지 수준이더군요. ['설봉산 정상'] 12:37~12:47 <"설봉산 雪峰山 394m"> 정상에 도착했는데, <설봉산의 정상 봉우리>는 "희망봉"이라 하는군요. [정상석] "설봉산 雪峰山 394m" <이천시>를 수호하는 "진산(鎭山)"으로 설경이 아름다운 산이랍니다. 봄엔 진달래가 유명하고....건강산행코스로 좋은 산이죠.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이천 利川의 유래" 고려 이전에는 남천(南川), 남매(南買), 황무(黃武) 등으로 불리어 오다가 고려 왕건이 후백제군과 일전을 벌이기 위하여 복하천(福河川)에 이르렀을 때 홍수(洪水)로 인하여 내를 건널 수 없는 상황에서 서목(徐穆)이라는 사람이 인도하여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후에 왕건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가상히 여겨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글귀에서 첫글자 '利'와 끝글자 '川'을 따와 '利川'이라는 명칭을 하사한 이래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 누정편"-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말은 원래 <주역(周易)>에 18번이나 나오는 말로 『학문과 덕을 쌓고 몸을 기르면 험난한 과정이라 할 수 있는 大川을 건너 큰 공(功)을 세울 수 있으며 온 天下가 이롭게 된다』라는 의미로 쓰인다죠. [정상 쉼터] 정상 쉼터에서 우측으로 내려 가는 길에 <봉화길> 안내표지가 부착되 있습니다. 정상에서 조금전 삼거리로 되돌아 가지 않고 이 길로 내려 가도 된다고 합니다. [삼거리] 12:52 . 저는 삼거리로 돌아가 우측길로 내려 왔습니다만, 가운데 계단은 정상 쉼터에서 바로 내려 오는 길이나 후답자들은 참고하세요. [능선길] <칼바위능선>이라고 하는 능선을 10여분 진행하면.... ['설봉산성'] 1:02 "설봉산성"을 만납니다. ['사직단'] 1:04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시 했던 "농사의 神"인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죠. 드라마에서 자주 듣는 "전하~~종묘사직을 보전하옵소서"라는 말에 "종묘사직"의 "사직社稷"입니다. 즉 "국가 존재의 이념"을 말한다고 할수 있죠. 조선왕조의 <宗廟종묘>는 역대 왕들의 位牌(위패)를 모신 사당인데 '종로3가'에 있고. <사직단社稷壇>은 <경복궁> 서쪽 '사직동'에 있죠. ['남장대터'] <설봉산성>의 군지휘소인 "남장대터"도 <사직단> 위에 있습니다. ['봉화대' 조망] <남장대터>에서 바라보는 <사직단>과 <봉화대>입니다. <봉화대>로 가면... ['봉화대'] 1:09 <봉화대>가 있는 이 산봉우리는 <성화봉>이라고 하는군요. [내림길] <봉화대>에서 조금 내려 가면.... ['남문'] 1:13 <설봉산성>의 <남문>을 통과해 나가고 [내림길] 10여분 내림질을 하면... ['호암약수'] 1:24~1:26 "호암약수 虎岩藥水"와 주변 공원을 만납니다. 약수터는 폐쇄되었더군요, [내림길] 다시 10여분 내려 가면.... ['설봉생활체육공원'] 1:35 "설봉생활체육공원"에 도착합니다. 주차장에 있는 <설봉공원 안내도> 근처에 <스탬프함>이 있고 ['설봉호수 둘레길'] <설봉호수>를 한바퀴 돌아야 하는데, 우측으로 돌라고 합니다만 저는 좌측으로 돌아 갑니다. [댐] 1:50 댐을 건너 가면서 [조망] 지나온 <설봉산 정상>을 조망하고 [시내방향 조망] 댐 위에서 동쪽 <이천시내> 방향도 조망합니다. 이곳은 '이천시 관고동'인데 옛날 <이천관아>의 <창고>가 있던 곳이라고 <관고동 官庫洞>이라 한다고 ['이천육교' 앞] 1:54 <설봉호수>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다시 <경충대로>가 지나는 다리를 만나는데 다리 우측으로 올라 갑니다. ['이천중앙교회'] 그러면 상당히 큰 <이천중앙교회> 앞을 지나고, 두번째 육교를 만날 때까지 10여분 계속 직진하면... ['서희로' 입구] 2:05 <공설운동장> 방향을 알리는 교통표지판을 만나면 육교를 건너 좌측길로 들어 갑니다. ['이천공설운동장'] 2:07 이 길이 <고려시대> 최고의 외교관이라고 하는 <서희장군>의 얼이 살아 있다는 <서희로>이며 좌측에 <이천공설운동장>이 있습니다. 저 앞 언덕으로 올라 가면... ['서희동상 오거리'] 2:10 "서희동상 오거리"를 만나는데 "서희장군 동상"이 있습니다. <효양산>은 여기서 먼 <부발역>근처에 있는데...... ['이천남초등학교'] 2:11 <서희동상 오거리>에서 우측길로 접어들면 바로 "이천남초등학교"를 만나고 ['이천터미널'] 2:17 이어서 <이천시>의 중심부인 <터미널사거리>를 통과하게 됩니다. 주변 산 다니느라 여러번 이용한 <이천버스터미널>입니다. ['안흥지' 앞 사거리] 2:20~2:32 터미널을 지나면 <안흥지 앞 사거리>에 도착하고 ['안흥지'] <이천의 명소>이자 <이천9경> 중에 하나인 "안흥지 安興池"에 도착했습니다. <봉화길>은 <안흥지>를 반바퀴 돌아 가라고 안내합니다. ['안흥지' 둘레길] 학생들이 그린 그림이 전시되 있는 <안흥지둘레길>을 따라 조금 가면.... ['애련정' 시비] "이천온천랜드" 앞에 <애련정 詩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천온천>은 옛부터 유명했다죠. 피부병이 심했던 <세종대왕>과 <수양대군 세조>가 피부병 치료를 위해 다녀 갔다고 합니다. ['애련정' 조망] <안흥지> 중앙엔 작은 섬이 있고 <애련정>이라는 정자가 하나 있습니다. ['애련정'] "애련정 愛蓮亭"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조선왕조실록 정조편>에 "애련정"에 대한 기록이 있더군요. 1779년에 <정조>가 '여주행궁'에 갔다가 <정창성>과 "애련정"에 대해 대화를 나눈 기록이 있습니다. “행궁의 뜰 가에 연정이 있는데 이것이 이른바 애련정인 것인가?“ “애련이라는 이름은 그 유래가 이미 오래 되어 국초부터 전해오고 ‘여지승람’에도 실려 있으며 지금도 임원중이 지은 기문이 있습니다” “애련의 뜻은 주염계의 애련설에서 딴 것인가? 이 정자를 세운 것은 어느 때인가?” “고을 안의 고로에서 물으니 이세보가 처음 이 정자를 세웠고 신숙주가 애련이라 편액하였다 합니다.” “풍월정집(월산대군의 문집)에 ‘파서 새 못을 만들고 연도 심으니, 풍류 사랑스럽고 주인 어질다’라 한 것이 있는 데 이 정자를 이른 것인가” “그렇습니다” ['서거정'의 시] 대구 출신 대문호인 <서거정 선생>도 글을 남겼습니다. 그 누가 염계를 뒤이어 애련을 말했는고 정자를 명명함이 옛 현인에 꼭 부합되네 그대는 응당 덕을 닮아 평생 좋아했겠지 나는 또한 속 텅 빈 걸 죽도록 사랑한다오 열매가 말처럼 둥글단 말은 이미 들었지만 꽃이 피어 배보다 큰 것도 일찍이 보았네 다시 재배하는 노력을 열심히 기울이게나 풍월 실은 장래에 흥취를 주체 못할 걸세 - 서거정의 시 ‘애련정’- (김동완선생 번역) ['미란다호텔' 앞 교차로] 2:35 <안흥지>를 돌아 나오면 <미란다호텔> 정문 앞 교차로를 만나는데 화살표 방향으로 건너 갑니다. ['미란다호텔' 조망] 2:37 교차로를 건너 가서 뒤돌아 본 <미란다호텔>입니다. <이천온천>을 대표하는 호텔이었는데... <미란다>는 <지구의 위성인 달>처럼 <천왕성의 위성>이죠. ['롯데케슬스카이아파트'] 2:37 <이천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는 <이천롯데캐슬골드스카이아파트> ['중리천생태공원'] <중리천>을 둑방을 따라 나가면 "중리천 생태공원"이 나타나며 <"SK하이닉스">와 <"이마트후레쉬센타">가 보이기 시작하고 ['진리교' 앞] 2:51 <미란다호텔>에서 <중리천>을 따라 15분 정도 진행하면 "진리교 옆 쉼터"를 만납니다. 이곳은 <중리천>이 <복하천>에 합수하는 곳이더군요. ['복하천'] <이천시>를 관통하는 "복하천 福河川"이 이어집니다. 저 앞에 보이는 <복하교>까지 갑니다. ['설봉산' 조망] . 지나온 <설봉산>이 멀어져 가고... ['복하천 제1수변공원'] 3:00 <복하교> 앞에는 "복하천 제1수변공원" 이 있으며 자전거 대여점이 있는데 휴무중 ['복하교'] 3:00 "복하교 福河橋"를 건너 갑니다. ['복하천' 조망] 『利涉大川』은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로 『큰 내(大川)를 건너 이로웠다』는 뜻인데 바로 이 <복하천>이 <이천>을 만든 개천이라는거죠.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려고 했을 때 홍수로 이 개천을 건너지 못하고 있을 때 <서목>이라는 사람의 안내로 무사히 건널수 있어서, 후에 『利涉大川』에서 『利川』이라는 명칭을 하사 했다고 하니 <복하천>이 곧 <이천>이라 해도 무방 하겠습니다. ['복하I.C.'] 3:03 <복하교>를 건너면 <"복하 I.C">가 있고 ['OB맥주 이천공장' 조망] 3:08 <"복하 I.C">에서 5분 정도 진행하면 <"오비맥주 이천공장">과 <"SK하이닉스">가 다가 오고 ['OB맥주 이천공장'] 3:14 "OB맥주 이천공장" 정문을 지나면 ['안복하 입구'] 3:16 <오비맥주> 울타리 끝에 "안복하마을 입구"가 있는데 좌회전 하면.... ['OB맥주공장' 뒷길] <오비맥주공장> 뒷길로 들어 가고.... [고개 조망] 잠시후 넘어야 할 고개가 보이는데, 10여분 진행하면.... [고개] 3:25 고개에 도착하고 ['기쁨의 교회'] 3:30 "기쁨의 교회"에 도착하는데 [갈림길] 3:35 이어서 <예수그린교회>가 있는 <신하3리버스정류장>을 조금 지나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들어 갑니다. ['죽당천산책로'] 그러면 <경강선 철도>를 만나며 철도 옆 <죽당천>을 따라 <부발역>으로 갑니다. 15분 정도 진행하면... ['부발역' 조망] 3:49 <죽당천>을 건너는 다리를 만나는데 <부발역>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기 전에 ['봉화길 안내도'] "봉화길 제6코스.제8코스 안내도"가 있습니다. 이곳은 <6코스>와 <8코스>가 나뉘는 곳으로 <6코스>를 할 때는 다시 와야 하지만 <8코스>를 할 때는 못 오겠군요. ['부발역'] 3:52 "부발역 夫鉢驛"에 도착하며 <5코스>를 마침니다. ['구글어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16.8km"였으며 4시간 50분이 걸렸군요.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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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봉화길』
     『제4길 곤지바위길』
      곤지암역에서 봉현리를 지나 신둔도예촌역까지 
                곤지암역-열미리-오향리-봉현리-동원대-넓고개-신둔도예촌역
['4코스 곤지바위길' 안내도] "경기옛길-봉화길 제4길 곤지바위길"의 전체 안내도입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경기옛길-봉화길 제4코스""곤지암역"에서 <광주시>와 <이천시>의 경계인 "넓고개"를 넘어 "신둔도예촌역"까지 걷는 "11.5km"거리입니다. ['곤지암역 2번출입구'] 12:00 2024년 2월 1일 목요일 흐림 <분당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곤지암역 2번출구"로 나가서 남쪽방향으로 50m 갑니다. 좌측에 보이는 <곤지암읍사무소>로 진행하게 되겠습니다. ['4코스 안내판'] 12:01 <곤지암역2번출구>에서 50m쯤 진행하면 <광여로>를 만납니다. <광여로>는 <광주>와 <여주>를 잇는 도로. 이곳에 "경기옛길-봉화길 제4코스 안내판"이 있습니다. [삼거리] 12:02 다시 50m쯤 진행하면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안내판의 방향 표시가 이상합니다. 안내리본은 직진하라고 알려 주는데 안내표지판만 우측을 가리키고 있어 혼돈을 주더군요. 여기선 우측으로 건너 가는게 아니고 직진해야하더군요. 도로 우측엔 보행도보가 없어 위험. ['곤지암읍사무소 앞 버스정류장'] 12:06 삼거리에서 300m쯤 진행하면 <곤지암읍사무소> 버스정류장을 만나고 ['곤지암읍사무소'] <곤지암읍사무소>를 흘깃 들여다보고 ['98번지방도-광여로'] ['상열미' 갈림길] 12:19 계속해서 <광여로>를 따라 가게 되는데, <광여로>는 <광주>와 <여주>를 연결하는 도로로서 <98번지방도>가 되겠습니다. <곤지암읍사무소>에서 13분 정도 <광여로>를 진행하면 "GS칼텍스 태평양주유소"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GS칼텍스 주유소'] 12:20 "GS칼텍스 태평양주유소" 앞에서 길을 건너 건너편 보행로로 가야 하더군요. [이정표] <98번지방도>인 <광여로>는 현재 도로확장공사를 하고 있어 통행이 불편했습니다. 주유소에서 5분 정도 진행하면 도로안내판이 나타나는데 <열미리>와 <봉현리> 갈림길이 300m 앞에 있다고 안내합니다. 그런데 <봉화길>은 이 도로안내판 바로 뒤에서 우측으로 가더군요. "열미리 悅美里" 옛날 이곳에는 명당자리가 많아 고관들의 묘가 많았다고 합니다. 고관들의 묘가 열개가 있어 처음에는 "십묘(十墓)"라 부르다가 발음이 좀 그렇다고 이를 "열묘"라 하였는데, 이 말이 다시 세월 속에서 변하여 "열미"라고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봉현리' 가는 길] 12:25~12:31 (6분간 알바) ★길조심★ <봉화길 리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라하는데도 <길안내 표지판>은 직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직진해서 6분여 알바를 하고 돌아 왔는데, 관계자는 수정 해야겠습니다. ['곤지암천 둑방길'] 12:35 눈이 녹아 질퍽한 농로를 5분여 진행하면 <곤지암천> 둑방길을 만나고 [한우 축사] 12:38 제법 큰 규모의 한우농가를 지나면... ['오향교'] 12:40 <3번국도>가 지나는 <오향교>를 만나는데, 다리 밑을 지나 직진해야 하더군요. ['하오향1교'] 12:43 <오향교>를 지나면 "하오향1교"를 만나는데 길안내표지판이 있습니다. 앞으로 "8km"만 더 가면 되겠습니다. ['곤지암천변길'] 데크로 맑끔하게 조성된 보행로를 따라 6분여 진행하면... [갈림길] 12:49 갈림길을 만나며 <봉화길>은 우측 <곤지암천>을 건너 건너편 둑방길로 안내됩니다. 10여분 진행하면... ['부항교'] 1:00 <부항교>라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는데.... <곤지암천>의 상류로 가면 갈수록 개천은 좁아지며 좌우측 둑방길로 왔다리 갔다리 하며 진행합니다 ['기쁨의 교회' 앞] 1:06 <기쁨의 교회>라는 조그만 교회 앞에서 <3번국도> 좌측 옆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하오향1교>에서 이곳까지 "3km"를 왔군요. ['봉현리' 조망] 1:10 '곤지암읍 봉현리'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공장들이 가옥보다 더 많은듯.... ['봉현리 입구'] 1:15 <봉현리입구 버스정류장>이 있는 사거리를 지나 직진합니다. [삼거리] 1:23 ★길조심★ <봉현리 입구>에서 8분 정도 진행하면 길조심을 해야하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야 하는데... 이 마을의 이름을 "봉현리 鳳峴里"로 만들어 준 "봉현 鳳峴"이 <앵자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산줄기인 <정개산>과 <천덕봉> 사이에 있는데 <이천시>와 연결되는 고개입니다. 그리고 우측으로는 잠시후 넘어야 할 "부처재고개"도 어림 보이는군요. ['웃개마을천'] 1:24 <웃개마을천>이라는 도랑 옆으로 진행하게 되고... ['앵자지맥' 조망] 들판에 서있는 노거수 아래에 <봉현정>이 나타나는데 "봉황"이 넘나들었다는 <봉현>이라는 고개가 <앵자지맥>에 있는데 <이천>으로 가는 고개입니다만 현재는 고개 뒤에 <군 중화기 사격장>이 있어 현재는 통행이 불가능하더군요.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나요? 제가 쓴 <[이천산수유축제] 정개산-천덕봉-원적산-산수유축제장 산행기>와 <앵자지맥 산행기>를 참고하세요. ['봉현정' (스탬프함)] 1:28 노거수 아래엔 "봉현정"이라는 정자와 <스탬프함>이 있습니다. ['곤지암 이야기'] <곤지암 스토리텔링>이 이곳에 있는데 안내판을 설치한 장소가 잘못 된듯합니다. <곤지암>은 지난 <3코스>에서 가 봤던 <곤지암초등학교> 옆에 있죠? ['봉현1리 마을회관' 앞] 1:31 이어서 "봉현1리 마을회관" 앞에 도착하는데 버스정류장도 있더군요. <봉화길>은 여기서 다리 우측으로 건너 진행합니다. ['봉현육교'] 1:36 <봉현1리마을회관>에서 5분 정도 오르면 <봉현육교>를 만나는데 아래엔 <3번국도>가 <앵자지맥 정개산>을 뚫고 <이천>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부처재고개' 정상] 1:46 <봉현육교>에서 10여분 완만한 고갯길을 오르면 "부처재고개"라는 고개 정상에 도착하고 ['신촌리' 조망] 이어서 <곤지암읍 신촌리>로 내려 가게 됩니다. ['신촌리 마을회관'] 1:54 . "신촌리 마을회관"을 지나면... ['경충대로'] 1:58 다시 <서울>과 <충주>를 연결하는 <경충대로:옛3번국도>를 만나 좌회전하고 ['동원대/넋고개앞 버스정류장] 1:59 <동원대학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넓고개'] 2:00 "동원대학교 정문"과 <앵자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넓고개 (넋고개)"를 만나는데 <봉화길>은 <동원대> 안으로 안내됩니다. ['동원대 정문'] <동원대 정문>을 통과하여 조금 올라 가면... ['동원대 효암관'] '국민체력인증센터'라는 <동원대 호암관> 앞을 지나고 ['동원대 버스정류장'] 2:05 이어서 <동원대 교내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데, 우측 낮은 산줄기도 <앵자지맥 마루금>입니다. <봉화길>은 우측 앞 화살표 방향으로 갑니다. ['앵자지맥 비득재'] 2:06 <동원대 건물배치도>가 있는 곳에서 <봉화길>은 우측으로 내려 가야하는데 ['앵자지맥 표지기'] <앵자지맥>을 종주한 열혈산객들의 표지기가 여럿 펄력이고 있습니다. <파란문>은 12년 전에 종주 한바 있으며 두발로 쓴 산행기가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 하세요. 몇십m 내려 가면... ['정개산 임도'] 2:07 <정개산 임도>를 만나는데 <이천시 산수유 둘레길>이기도 합니다. 우측 <넓고개(넋고개)> 방향으로 가면.... ['이천의병전적비' 가는 길] 내림길이 8분여 이어지고... ['이천의병전적비'] 2:15 "이천의병전적비"에 도착합니다. <을미사변>이라고 하는 구한말 <명성왕후 민비>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양평><여주><이천>등의 지역에서 일본군의 만행에 항거하는 의병들의 봉기가 일어났죠. <이천> 지역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전적비랍니다. ['프레데리 메켄지'의 기사] <을미사변> 당시 한국에 취재 온 <영국 런던 '데일리 메일' 특파원>이었던 <프레데릭 메켄지>가 쓴 <대한제국의 비극>이라는 책의 내용 일부분을 안내하고 있군요. ['의병전적비' 앞 주차장] 의병전적비 앞 주차장에서 <스탬프함>을 다녀 가야 하겠죠? 그냥 지나칠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스탬프함] 2:17 <봉화길 4코스>에는 <스탬프함>이 두개 있으니 유의해야겠습니다. ['넓고개' 이야기] <앵자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넓고개""넋고개"로 통용되는 사연을 알려 드리면... <임진왜란> 때의 사연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팔도순변사 신립 八都巡邊使 申砬"장군이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 背水陣"을 치고 저항하다가 남한강에 투신 자살하였다고 하죠?. 당시 나이 47세. 그러니까 戰死했다기 보다는 물에 빠져 익사했다는 표현이 어떨지... "신립장군"은 '조선 최고의 쪼다리 왕'인 "선조"와 사돈지간이고 당시 요즘으로 치자면 국방부 장관 격인 '도원수 권율장군"의 사위이기도 하죠.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도 "권율장군"의 사위여서 "신립장군"과 "백사 이항복"은 동서지간인데 "백사 이항복"은 영의정까지 올랐죠. 그도 결국엔 토사구팽 당하여 귀양가 죽지만 "충주 탄금대"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 물에서 "신립장군"을 건졌을 때 장군의 모습은 두 눈을 부릅뜨고 당장이라도 호령할 것 같은 기세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부하들이 시체를 건져 한양으로 오는 도중 '장군님'하고 부르면 관속에서 '오냐'하는 대답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이천시'를 지나 "기치미 고개"에 이르러 또 '장군님'하고 부르니까... 대답 대신 '에헴'하는 기침소리가 나는 것이었답니다. "넋고개"에 이르러 또다시 '장군님'하고 부르니까 그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는군요. 그때부터 사람들이 "신립 장군"의 넋이 기침을 한 고개라 하여 "기치미고개"라 하고 장군의 넋이 완전히 떠난 고개라 하여 "넋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치미고개"는 '이천 설봉산' 근처 "다산고등학교" 근처에 있고 "넋고개"는 '이천시'와 '광주시'의 경계이며 [동원대학교]가 있는 이곳에 있습니다. 장군의 시신은 "기치미고개"와 "넋고개"를 지나 현재의 이곳 근처까지 운구되었는데 운구된 장군의 관이 이곳에 이르자 관이 땅에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아 이곳에 묘를 만들었다고... [내림길] <넋고개>에서 옛날 <신립장군의 시신>이 운구 되었을 고갯길을 10여분 <이천시>로 내려 가면.... ['삼리정'] 2:28 <삼리정>이라는 정자를 지나고... ['원앞들삼거리'] 2:33 이어서 <원앞들삼거리>를 만나면 우측에 <신둔도예촌역>이 보입니다. ['신둔도예촌역'] 2:35 "신둔도예촌역"에 도착하며 <봉화길 4코스 곤지바위길>을 마침니다. ['구글어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GPS측정으로 "11.5km"였으며, 2시간 35분이 걸렸습니다. [부록] "[광주 곤지암 여행] 신립장군묘-경기도자박물관-곤지바위" "[이천산수유축제] 정개산-천덕봉-원적산-산수유축제장 산행기" "앵자지맥 4구간 산행기"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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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봉화길』
     『제3길 너른 고을길』
      청석공원에서 국수봉을 오르고 곤지암으로 
           경기광주역-청석공원-쌍령동-국수봉-도평초-곤지암천-곤지암-곤지암역


    ['3코스 너른 고을길' 안내도]                    
  "경기옛길-봉화길 제3길 너른 고을길"의 전체 안내도입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경기옛길-봉화길 제3코스""경기광주역"에서 <청석공원>을 지나 "국수봉"을 오르고
  <도평초등학교>로 내려가 "곤지암천"을 따라 "곤지암역"까지 걷는 "15km" 거리입니다.



    ['경기광주역 1번출입구']           10:16             
    2024년 1월 28일 일요일   약간 흐림    
  <분당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경기광주역 1번출구"로 나가면 



    ['경안천 육교']              
  좌측 바로 앞에 <경안천 육교>가 보입니다.
  <봉화길 3코스>는 반드시 저 육교를 이용해야 합니다.



    ['경안천 육교' 입구]                     
  "경안천 육교" 입구에는 "봉화길 3코스 안내도"가 설치되 있고
  육교에는 계단과 엘리베이트가 있으니 각자 좋을데로 편리하게 이용 할수 있습니다.
  


    ['경안천 육교']                 
  <경안천 육교>로 올라 가면 <경안천>과 건너편 <양벌동 아파트단지>와 그 뒤로 <마름산>이 보이는데
  <경기광주역>과 <양벌동>을 이어주는 이 육교는 매우 길군요. 약700m
  <마름산>은 "백마산-태화산 능선"에 있는 산으로 신설된 <3번국도>가 터널로 통과합니다.



    ['경안천 육교 승강기']            10:23         
  <경안천 육교>를 건너서 내려 서면 이런 모습인데 가운데 길로 뒤돌아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둑방길을 바로 만나고



    ['경안천 둑방']            
  둑방길에서 다시 <경안천 산책로>로 내려 갑니다.
  종점인 <곤지암역>까지 "14.3km"라고 알려 줍니다.. 
  그러니까 육교의 길이가 약700m 정도 되는군요.



    ['경안천 산책로']            10:24       
  <경안천 육교>에서 13분여 <경안천 산책로>를 진행합니다.
  <칠사산>과 <국수봉>이 조망되는데, <칠사산 산행기>는 부록에 첨부했습니다.



    ['경안교']               10:37          
  <구 3번국도>가 이젠 <경충대로>로 바뀌어 지나고 있는 "경안교 京安橋" 밑을 지나가고
  


    ['청석공원']            10:40        ★길조심★    
  이어서 "청석공원"을 만나는데 우측에 "하늘색 통로"가 있습니다.
  <봉화길>은 우측 "하늘색 통로"로 올라 가는데 아무른 안내표시가 없어 지나치기 쉽더군요.
  관계자는 이곳에 안내표지기를 설치해야 겠습니다.
    


    ['청석공원' 조망]                        
  지난 <2코스>에서 통과했던 "청석공원"을 조망하고 "하늘색 통로"로 올라 가면...



    ['청석로']             10:42     
  이곳엔 표지판이 있습니다.
  여기서부턴 길안내가 좀 좋아 집니다.



    ['쌍령동' 가는 길]            10:42         
  신호등이 있는 2차선 도로를 건너서 골목길로 진행합니다.



    ['국수봉' 조망]              
  <쌍령동 1통 마을>을 150m 정도 진행하는데...
  잠시후 올라 야 할 <국수봉>의 <육각 정자>가 육안으로도 잘 보이고, 
  계속해서 진행 해야 할 <뒤창개산> <서방산>등이 보입니다.



    ['쌍령동 버스정류장']             10:45           
  골목길을 직진해서 150m 정도 진행하면 <구3번국도-경충대로>를 만나는데
  "쌍령동 버스정류장"을 지나 50m쯤 진행하면...
  


    ['국수봉' 입구]             10:48    
  첫번째 좌측으로 들어 가는 골목을 만나는데 안내판이 있습니다.
    


    ['쌍령1통' 통과]                 
  골목을 5분여 통과하면....



    ['국수봉 등산로' 입구]             10:53     
  <샘물교회>를 만나는데,  교회 못미쳐서 좌측으로 등산로가 시작됩니다. 안내판도 있고
    

  
     [오름길]                        
  등로는 임도 수준으로 넓고 차량 통행 흔적도 뚜렸합니다.
  7분여 오름짓을 하면....
  


    ['온양 방씨 묘역']             11:00         
  <온양 방씨 묘역>을 만나고
        

  
    [오름길]            
  다시 5분여 더 올라 가면...
    
 

    ['만석탑']                

    ['경주이씨  익제공파 추모원']             11:05       
  <만석탑 萬石塔>을 만나는데, <경주 이씨 익제공파 묘역>이었습니다.
  묘지 좌측 뒤로 올라 가면...
  


  
    [계단 오름길]                      
  계단 오름길이 시작되는데 제법 가파릅니다.
  5분 정도 계단을 오르면...


       
    ['스탬프함']            11:15               
   "봉화길 3코스 스탬프함"을 만나는데, <국수봉 정상>까지 260m 남았다고 알려 줍니다.
   
   <봉화 태백산 史庫> 모형이라고 하는 스탬프함입니다.
    
 
  
    [계단 오름길]                   
  다시 계단 오름길을 5분여 더 올라 가면....
  


    [산불감시 카메라탑]             11:20~11:23      
  "산불감시 카메라탑"을 만나고
    

  
    [오름길]                   
  또 다시 오름짓을 3분여 하면...
   


    ['국수봉 정상']             11:26~11:31         
  "국수봉 정상"에 도착합니다.
  정상에는 <사각정자>와 <육각정> 두개가 설치되 있으며
 


    ['사각정자']            
  운동시설도 제법 많이 설치되 있습니다.



    ['육각정자']                        
  <육각정자>는 전망대로 조망이 좋았습니다.

 


    ['국수봉' 유래]                   
  <육각정자>에 오르면 "국수봉 國守峰 373m" 안내석이 보입니다.
  
  <병자호란>을 떠 올리면 먼저 <남한산성>만 떠 오름니다.
  하지만 <병자호란> 당시 남쪽 각 지역에 있던 우리나라 수만명의 군대들이 <남한산성>을 지키기 위해 
  이 지역 <광주 쌍령동>으로 진군해 왔는데 이들에 대한 역사는 잘 알지 못하죠. 
  왜냐구요? 거의 전멸 당했으니까......<경안천>과 <곤지암천>이 피바다를 이루었다죠.
  
  후세의 우리 국민들은 영호남에서 올라 와 <남한산성>을 보위하려 했던 수만명의 군사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염원을 담아 이 산봉우리의 이름을 "국수봉 國守峰"이라 했다고...
  
  <임진왜란>은 실제 우리나라가 승리한 전쟁이었습니다. 
  바다에선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맹활약 했으나
  육지에선 정규군 보다 자발적으로 봉기한 민초들인 의병의 활약이 컸습니다.
  그런데도 의심많은 쪼다리 <선조>는 나라를 애국심으로 지킨 "의병"들을 오히려 적대시하고
  "의병장"들을 사형시키거나 유배시켰습니다. <이순신>을 비롯한 정규군의 장군들도 토사구팽 당했으니...
  
  그래서 이어서 터진 <병자호란> 때에는 백성들이 스스로 국가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의병"이 일어 나지 않았죠.
  목숨 걸고 싸워 봤자 국가는 <임진왜란> 때처럼 대우해 주지 않고 오히려 팽 당할 것이 뻔하기에...
  
  그래서 <임진왜란>은 승리한 전쟁이었지만 패배한 전쟁처럼 기억되고, 
  <병자호란>은 힘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완전 굴욕적 패배로 끝났죠. 
  백성들의 힘이 뒷밭침 되지 않는 국가란 존재 못한다는 교훈을 남기면서....
 .
 

 
    [조망 1]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되며 설명이 있음★ 
  정자 전망대에서 조망을 합니다.
  북서쪽으로 그 날의 치욕적 패전이 생각나는 <남한산성>이 조망되며 
  <봉화길 2코스>가 전체적으로 그려집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설명과 함께 큰 화면이 나옵니다.


 
    [조망 2]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되며 설명이 있음★ 
  서쪽으로는 출발지인 <경기광주역>과 그 뒤로 <광주태전지구 아파트단지>와 
  <문형산> <영장산>등이 조망되는군요


 
    [조망 3]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되며 설명이 있음★ 
  남서쪽으로는 <광주시 오포읍>이 조망되며, 그 뒤로 <향수산>과 <수원의 광교산>까지 보이는데
  사진에는 흐릿...
    


    ['국수봉 능선' 출발]           11:31              
  <국수봉 정상>부터 <서방산>까지는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는 평지 수준의 능선길이었습니다.
  조금 내려 가면...



    ['쌍령2통' 갈림길]             11:35          
  <쌍령2통 마을회관>과 연결되는 고개 갈림길을 만나고
    

  
    [능선길]              
  20여분 능선길을 눌루날라 진행하면....



    ['쌍령배수지 갈림길']            11:54         
  <쌍령배수지>에서 연결되는 갈림길 고개 쉼터를 지나 갑니다.
  이 산줄기 좌우에 마을이 많기 때문에 등산로 갈림길이 많았습니다.
  


    ['두갈래길']            11:55     
  어디로 갈지 생각해 봐야하는 두갈래길이 이어서 펼쳐지는데
  어디로 가나 다시 만나지만 좌측길에 안내 리본이 보입니다.



    ['서방산 가는 길']                     
  5분여 완만한 오름길을 진행하면....



    ['서방산 정상']            12:00       
  <카카오맵>에서 "서방산 222.2m"라고 표기된 봉우리에 오릅니다.
  <국수봉 정상>에서 이곳까지 "1.6km" 거리라고 알려 주며, <도평초등학교>까지는 "550m"남았다는군요.



    ['무갑산' 조망]                   
  동쪽에 있는 "무갑산 武甲山 580.7m"을 조망합니다.
  진달래가 제법 유명한 산입니다. 제가 쓴 <무갑산-관산-의안대군묘 산행기>를 참고하시고...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 가는데 어린이들도 올라 오고 있습니다.
  5분여 내려 가면
  


    [갈림길]              12:05        
  마지막 갈림길을 지나고....
    


    [삼거리]              12:09          
  이어서 <←신일.우림아파트> 방향으로 조금 내려 가면



    ['도평초등학교' 조망]              

    [내림길]            12:13       
  '광주시 초월읍 도평리'에 있는 "도평초등학교"를 만나 학교 울타리 우측으로 내려 갑니다.



    ['피오레 아파트']           12:15          
  그러면 "피오레아파트"를 만나는데



    ['피오레아파트 105동 앞]           12:17   
  <피오레아파트 105동> 앞으로 내려 가게 됩니다.
  지금까지 <국수봉 능선>에 있었던 이정표의 <신일아파트>는 이 아파트 다음에 있더군요.
  아마도 <피오레아파트>가 요즘 새로 만들어졌기에 이정표는 옛이정표가 되버렸나 봅니다.



    [아파트단지 진출입로]

    ['피오레아파트' 출입구]            12:21       
  <피오레아파트> 단지 내 진출입로를 따라 정문으로 나가면 도로를 만나고
  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조금 내려 가면...
  


    [삼거리]            12:22     
  삼거리를 만나는데 직진합니다.
    


    ['곤지암천변길']                 
  그러면 "곤지암천"을 만나며



    [뒤돌아 본 '무갑산']                  
  뒤돌아 보니 <무갑산>이 새로운 각도로 보이고
    


     ['초월읍'과 '백마산' 조망]                        
  <초월읍>과 <백마산>을 바라보며 5분여 진행하면....
  


    ['곤지암천 산책로' 입구]          12:30          
  "곤지암천 昆池岩川 수변산책로"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 약1시간50분 정도 지루한 수변산책로를 걷게 됩니다.
        




    ['곤지암천 산책로']            
  맑끔하게 조성된 수변산책로를 30여분 진행하면...
    
 

    ['초월역']             1:02     
  <경강선> 전철이 지나는 "초월역"을 지나고...
  


    ['경강선']             1:06         
  이어서 <경강선>이 지나는 철도교를 통과하고..


       

    ['중부고속도로']             1:32           
  <초월역>에서 25분여 더 진행하면 <중부고속도로>가 지나는 다리를 통과합니다.
    
 


    ['곤지암천 산책로']                   
  다시 25분여 산책로를 진행하면...
  


    ['곤지암2교' 앞 갈림길]            1:58       
  "곤지암2교" 앞 갈림길"을 만납니다.
  <봉화길>은 직진합니다만, 
  여기까지 왔으니 <곤지암>이라는 지명을 만들어 준 "곤지암 昆池岩"이라는 바위는 보고 가야겠죠?
  이런 기회가 아니면 찾아 보기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건 아니니 <곤지암>이라는 바위도 구경하고 <곤지암중심가>도 통과하는게 좋습니다.
  우측으로 올라 가면...
    


    ['경충대로 사거리']            1:59       
  <구3번국도-경충대로>를 다시 만나며 사거리가 있는데,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갑니다.
   


    ['노곡천-곤지암천 합수부']                      
  <신 곤지암교> 아래는 <노곡천>이 <경안천>에 합류하는 곳이고
 


    ['구 곤지암교']           2:02       
  <구 곤지암교> 앞으로 가면 코미디언 <배연정>씨가 운영하는 <배연정 소머리국밥집>이 보이는데
  시간 나시는 분들은 소머리국밥 한그릇 하고 가도 좋습니다.
  
  여기서 좌회전 하면...



    ['곤지암초교' 조망]                        
  <곤지암초등학교>가 보이는데 정문으로 갑니다.

 

    ['곤지암초교 정문']          2:06          
  <곤지암초등학교 정문>을 지나 학교 담장이 끝나는 곳에 <곤지암>이 있습니다.
 


    ['곤지암']          2:07

    [안내문]                       
  "곤지암 昆池岩"
  갈리진 바위 틈으로 400년 수령의 향나무가 자라고 있는 특이한 바위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항거했던 <신립장군>의 설화가 있는 바위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제가 쓴 <신립장군묘-경기도자공원-곤지바위 여행기>를 참고하시고



    ['곤지암 중심 상가']

    ['(구)곤지암버스터미널']           2:13       
  <곤지암 중심상가 지역>을 통과햐면 <구 곤지암 버스터미널>을 만나는데 
  여기서 좌측 큰 도로로 나가야 합니다.
  
  <곤지암 버스터미널>은 폐쇠되고 이 자리엔 주상복합건물을 짓는다고 하는군요.
    


    ['곤지암역' 조망]              2:14           
  큰 도로인 <경충대로>로 나가면 다시 <봉화길>과 합류하며
  오늘의 종점인 <곤지암역>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곤지암역']             2:18           
  육교를 건너 "곤지암역"에서 <봉화길 3코스>를 마침니다.
    


    ['구글어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15km"였으며, 4시간이 걸렸습니다.
  
  <국수봉> 오르는 계단길이 좀 힘들지만 거리가 짧아 큰 무리는 없었고,
  <곤지암천변 산책로>가 좀 길어 지루했습니다.
  
  
  『부록』
     1. 『경기 광주 명소를 찾아서』 [곤지암] 신립장군묘-경기도자공원-곤지바위 여행기
  
    2. 『廣州의 名山을 찾아서』 "무갑산-관산" 산행기
  
   3. 『광주 칠사산 산행기』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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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봉화길』
     『제2-2길 한양삼십리길』
      목현동에서 청석공원을 지나 경기광주역 
          목현동-목현동장승-제청교-탄벌동-광주공설운동장-청석공원-경기광주역


    ['2코스 한양삼십리길' 안내도]                    
  "경기옛길-봉화길 제2길 한양삼십리길"의 전체 안내도입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경기옛길-봉화길 제2-2코스"는 <광주시>가 이미 만들어 놓은 "한양삼십리누리길"의 시종점인
  "목현1통마을회관"에서 <광주시>의 대표 공원인 "청석공원"을 지나 "경기광주역"까지 "약7km" 거리입니다.



    [한양삼십리누리길 목현동입구'']          12:10        
    2024년 1월 16일 화요일   맑음    
  <광주시 한양삼십리누리길>을 할때 찾았던 이곳 "한양삼십리누리길 목현동입구" 버스정류장에 
  만5년만에 다시 찾아서 "경기옛길-봉화길 제2-2코스"를 시작합니다.
  엊그제 같은데 세월도 빠릅니다.
  
  <성남시>와 <광주시>를 연결 시켜주는 "이배재로"를 따라 동쪽으로 내려 갑니다.
  150m쯤 내려 가면....



    ['목현동 장승']             12:13     
  "목현동 장승"을 만납니다.
  마을의 안녕과 길운을 비는 마을의 수호신 같은 거죠
  이 마을에선 매년 <단오제>에 "목현동 장승제"을 열고 제례를 올리며 마을의 번영을 빈다고 합니다.



    [갈림길]              12:20         
  <목현동 장승>에서 7분여 진행하면 <목현천>을 건너는 다리를 만나는데
  <봉화길>은 다리를 건너지 않고 좌측길로 안내 됩니다.
  


    ['군두레봉] 등산로 입구]            12:21      
  다리를 지나면 바로 <군두레봉> 등산로 입구를 지나고



    ['덕우제']            12:23        
  이어서 <덕우제>라고 하는 어는 가문의 묘소와 제실을 지나 갑니다. 



    [갈림길]            12:27         
  삼거리를 만나고



    [갈림길]              12:29             
  이어서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를 만나는데 우회전 합니다.
  <군월산>은 <광주시청>의 뒷산입니다.



    ['제청교']             12:31     
  다시 <목현천>을 만나는데 <제청교>라는 다리를 건너 좌회전하여 <목현천 수변길>을 따라
  <청석공원>까지 진행하게 되겠습니다.
  


    ['군월산' 조망]          
  <군두레봉>인지 <군월산>인지 학실치 않습니다만...<군월산>인듯...
  <제청교>부터 <목현천>을 따라 "하늘을 바라 봐"등 여러 문귀들을 군데군데 설치해 놨더군요.
    


    ['목현천']           12:35            
  "목현천 木峴川"은 <이배재>에서 부터 흐르는 개천인데 <경안천>까지 이어집니다.



    ['목현천 도시숲']            12:36         
  어린이 놀이터도 지나고



    [군부대]             12:40            
  이어서 군부대를 지나는데 담장에 <광주시 자랑> 벽화들이 이어지고



    ['탄벌동']             12:44     
  군부대를 지나면 "탄벌동 炭筏洞"이 펼쳐집니다.
  옛날 "숯"을 많이 만드는 곳이었나 봅니다.



    ['탄벌초교']              12:47          
  <탄벌초등학교>가 제법 큰 규모로 있고
  


    ['탄벌대교']              12:49            
  계속해서 "탄벌대교"를 지나는데, <45번국도>가 지나는 다리입니다.
    


    ['광주시 보건소' 앞]           12:53      
  <탄벌대교>를 지나면 우측에 "광주시 보건소"가 있고



    ['광주공설운동장']                  
  이어서 "광주공설운동장"을 지나 갑니다.
    


     ['목현천공원 배드민튼장']           12:58        
  공설운동장 끝에는 <배드민튼장>이 있는데
  


    [화장실]                    
  이곳에 있는 화장실이 눈길을 끕니다.
  "도자기의 고장" 임을 나타내는듯
        


    ['파발교']           1:00       
  "파발교 擺撥橋"
  <공설운동장>을 지나면 <광주시>의 중심지인 <경안동 京安洞>이 시작됩니다.
  <한양>과 우리나라 동남부 고을을 잇는 <역참>이 있던 곳으로 말을 갈아 타는 곳이었답니다.
  <파발>은 나라의 중요 문서를 전송하는 것을 의미하죠.
  특히 <병자호란> 당시엔 <남한산성>으로 기밀 서류를 전송하는 중요한 <파발청>이 있었답니다.
    
 

    [통로]                
  복개 공사를 한 다리 밑으로 길은 이어지고
  


    ['목현천-경안천 합수부']            1:07            
  이어서 <목현천>이 그 수명을 다하고 <경안천>에 합수하는 곳을 만납니다.
  
  건너편에 <국사봉>이 보이는데 다음 <3코스>에 올라 야 할 산봉우리입니다.


       
    ['청석공원']             1:08               
  "청석공원 靑石公園"
  <경안천> 고수부지 약44,000㎡에 조성된 체욱공원으로 <광주시>의 대표 공원이랍니다.
  
  <봉화길>은 우측 둘레길을 이용하라고 하는군요. 
    
 

    [화장실]                   
  화장실 앞쪽으로 난 둑방길을 이용하면 되겠습니다. 
  


     ['청석공원 둘레길']                    

    ['청석공원의 유래']                     
    <청석공원>의 유래에 대해선 안내문을 참고하고
    


    ['광주시 경안동']                   
  공원 둘레길 우측엔 <광주시 버스종합터미널>과 <이마트>등이 보입니다.
  <광주시>의 중심가입니다.
   


    ['국사봉-쌍령동' 조망]                      
  다음 <봉화길 3코스>가 지나는 <쌍령동>과 <국사봉>이 조망 됩니다.
 



    ['경안교']              1:18             
  <청석공원>이 끝나는 곳에서 <경안천 수변길>로 내려 가서 앞에 보이는 <경안교> 밑을 통과합니다.



    ['경안천 수변길']                          
  <경안교>에서 <경안천 수변길>을 따라 16분쯤 진행하면....

 

    ['경강선 전철교']             1:34          
  <경기광주역>에서 <여주>로 가는 <경강선 전철교>를 만나고
 


    ['광주역' 가는 계단]              1:35         
  이어서 바로 <경기광주역>으로 올라 가는 계단을 만납니다.
  


    ['경기광주역' 건널목]                         
  계단을 오르면 <경기광주역>이 건너편에 있고



    ['경기광주역']              1:40            
  "경기광주역"에서 답사를 마침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약7km 였으며 1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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