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경흥길』
 『제8길 한탄강세계지질공원길』
  "끝나지 않은 관북대로-경흥로를 그리워 하다"


  ['제8길 한탄강세계지질공원길' 안내도]

  ['제8길 네이버위성지도 실트랙'] 

  ['제8길 국토지리원지도 실트랙']                 
  <경기도>가 조성한 걷기코스인 <경기옛길-경흥길>의 마지막 코스를 갑니다.
  <한탄강세계지질공원>에서 출발하여 <한탄강 멍우리계곡>을 통과하여
  <경기-강원 도계>가 있는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까지 갑니다.


  ['포천시청앞 버스정류장']                9:20            
  2022년 3월 8일 (화)  약간 흐림 연무       
  <잠실광역버스환승센타>의 <25번gate >에서 <3006번직행버스>를 타고 <포천시청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지난 <7코스 역방향>을 갈때와 마찬가지로 9시20분발 <53번시내버스>를 타고 갑니다.


  ['대회산리 비둘기낭 버스정류장']             10:14           
  <53번시내버스>는 54분만에 <대회산리 비둘기낭폭포> 앞 정류장에 도착하였습니다.


  ['한탄강지질공원' 입구 사거리]                : 
  버스정류장 50여m 앞에 있는 사거리에서 <8코스 입구>로 들어 가며 <8코스>는 시작됩니다.


  ['한탄강지질공원' 입구]               10:16        
  <비둘기낭폭포> 방향으로 내려 가면
  

  ['한탄강지질공원 캠핑장']   

  ['관광 안내소']             10:34   
  <지질공원 캠핑장>이 큰 규모로 펼쳐지는데 이용객은 없고
  캠핑장을 지나 관광안내소 앞에는 <8코스안내판>과 <스탬프함>이 있습니다.



  ['비둘기낭폭포' 입구]              10:25    
  <관광안내소> 앞에 <비둘기낭폭포 입구>가 있습니다.
  내려 가면...


  ['비둘기낭 폭포']               
  <비둘기집>이라는 의미의 <비둘기낭> 폭포가 모습을 들어내는데 3월이라 폭포수는 거의 없고
  여기서 우측을 바라보면 


  ['한탄강 합수부']                      
  <명성지맥 불무산>에서 부터 흘러 내리는 <대회산천>이 <한탄강>과 합수하는 곳이 앞에 있습니다.
  <비둘기낭폭포>는 원래 저 <한탄강>에 직접 폭포물을 쏟아 내며 <한탄강>에 붙어 있었는데
  수십만년 세월이 흐르며 폭포는 침식되어 조금씩 안으로 밀려나 현재와 같은 모양을 만들었답니다.
  <한탄강> 전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축소해서 보는 협곡이랍니다.
  언젠가는 <비둘기낭폭포>는 침식작용으로 사라질거라....


  ['비둘기낭 폭포']                      
  "비둘기낭폭포"
  [명성지맥]의 "불무산 佛舞山 662.7m"에서 발원한 '대회산천 大回山川'의 말단부에 위치한 폭포로서
  현무암 침식으로 형성된 협곡에 '대회산리'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이곳에서 폭포수를 이루며
  '한탄강'으로 흘러가 합류하는 아름다운 폭포랍니다.
  이곳에는 예로부터 겨울이면 수백 마리의 산비둘기가 서식해 "비둘기낭"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낭"은 둥지를 의미하죠. 지금은 비둘기들을 볼수 없고...
  이 폭포의 면적은 3만 1669㎡, 높이는 약 15m이고, 폭포 아래 소의 폭은 약 30m랍니다.
  2012년 9월 25일 [천연 기념물 제537호]로 지정되었다는군요
 

  ['2020년 6월5일에 촬영한 비둘기낭 폭포']                      
  저는 두번째로 이곳에 왔는데 <한탄강주상절리길>을 답사 할때 이후 두번째 방문입니다.
  여름에 오는게 폭포 구경을 더욱 의미있게 할수 있겠습니다.


  [계단과 주상절리]        
  폭포로 연결된 계단 주변은 화산 용암이 만들어 낸 예술품인 주상절리가 널려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이유를 볼수 있군요.


  ['한탄강주상절리길' 안내도]           10:34        
  2020년 6월5일에 찾아와 <한탄강주상절리길 3~4코스>를 답사 했는데
  오늘 진행하는 <경흥길8코스>는 <한탄강주상절리길3코스-벼룻길>과 함께 하더군요.



  ['한탄강 지층 체험장']               10:35    
  <한탄강 지층 체험장>을 둘러 보고


  ['한탄강전망대'에서 조망 1]         
  <한탄강전망대>로 나가 조망을 합니다.
  먼저 남쪽을 바라보면, 지난 <7코스영평팔경길>에서 올라 가 본 <가람누리문화공원 전망대>가 보이고


  ['한탄강전망대'에서 조망 2]      
  서쪽으로는 <종자산>과 <포천시 관인면 중리>가 조망되고


  ['한탄강전망대'에서 조망 3]         
  북쪽에는 <하늘다리>와 <한탄강>이 멋진 경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탄강세계지질공원']                    10:40

  ['하늘다리' 조망]               10:44~10:             
  공원을 통과해서 <하늘다리>로 가면...


  ['하늘다리' 밑]

  ['하늘다리' 입구]                 10:49~10:52    
  "한탄강 하늘다리"
  이 다리를 놓을 때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출렁다리였다는데 현재는 다른 다리에 밀린다고
  길이 200m, 폭2m, 높이 50m랍니다.
  다리 중간으로 가서 조망하면....


  ['하늘다리'에서 조망 1]      
  먼저 남쪽으로 조금전에 들렸던 <비둘기낭폭포> 방향과 <가람누리문화공원 전망대>가 보이고


  ['하늘다리'에서 조망 2]         
  다리 아래엔 <한탄강>이 유유히 흐르며


  ['하늘다리'에서 조망 3]     
  북족으로는 잠시후 지나갈 <대회산교>가 있고, 그 뒤로 <수리봉>도 독수리 모양을 하며


  ['하늘다리'에서 조망 4]                        
  동쪽으로는 <은장산>이 <한탄강세계지질공원>을 감싸고 있습니다.


  ['한탄강지질공원']                   10:57

  ['포천 밀리터리 서바이벌 게임장']             11:00    
  <경흥길>은 <한탄강주상절리길>과 함께 북쪽으로 이어지는데
  <밀리터리 서바이벌 게임장>도 있고
  

  ['대회산교']                11:02         
  이어서 <대회산교> 밑을 통과 합니다.
 

  ['한탄강주상절리길']                   
  <한탄강주상절리길>은 넓고 분명합니다.
  




  ['은장산' 옆구리 절벽길 통과]           11:11~11:25           
  <은장산> 옆구리인 <한탄강변 절벽>을 통과하는 곳엔 경사가 심한 데크 계단을 설치 해 놨는데
  15분 정도 좀 헥헥거리며 걸어야 하는 곳입니다.


  ['멍우리협곡']      
  "멍우리 협곡"
  길을 가며 "멍우리 계곡"의 징검다리를 내려다 봅니다. 
  '멍우리 지역'은 이렇게 한탄강변 절벽을 끼고 나있어 예부터 “술 먹고 가지 말아라” 할 정도로
  낭떠러지로 된 험로여서 조심하지 않고 넘어지면 몸에 '멍우리'가 생긴다는 뜻에서 
  "멍우리"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하네요. ㅎㅎ
 

  ['징검다리']            11:32          
  보이는 <징검다리>가 <한탄강주상절리길 3~4코스>의 반환점입니다.
  그러니까 저 <징검다리>를 건너 가면 <한탄강주상절리길4코스-멍우리길>이 되며
  <하늘다리>로 돌아 가는 길이 되겠습니다.
 

  ['갈림길]                11:36        
 이어서 갈림길을 만나는데 <경흥길>은 우측으로 가라고 안내합니다
 직진길은 조금 전에 바라본 <징검다리>로 통하는 <한탄강주상절리길>이 되겠습니다.


  ['소회산리 소공원']               11:37         
  갈림길을 지나면 바로 <멍우리협곡 광장>이라는 <소회산리 소공원>을 만나는데
  길찾기에 유의 해야 하는데 직진하면 됩니다.


  [쉼터]              11:42~12:06     
  장의자 두개가 있는 쉼터에서 <포천시정앞>에서 사온 만두로 아점을 먹고


  [내림길]

  ['멍우리교' 조망]             12:13        
  조금 진행하면 건너편 <멍우리교>가 조망됩니다.
  <한탄강주상절리길4코스>를 <화적연>까지 연장 개통했더군요.


  ['벼룻교' 앞 전망대]               12:19

  ['벼룻교' 조망]                  
  이어서 "벼룻교"를 만납니다.
  "벼루"와 관련이 있는 듯한데 안내가 없어 <벼룻길>의 의미를 알수 없어 아쉬웠지만
  주변 경치는 좋았습니다.


  ['벼룻교']


  ['벼룻교' 위에서 조망]                       
  <벼룻교> 위에서 <한탄강>으로 흘러 드는 지천을 조망하고


  ['벼룻교' 북쪽 방향]              
  <벼룻교>를 통과하여 


  ['소회산리']

  [부소천교']              12:30      
  <벼룻교>를 통과하여 10여분 진행하면....
  "부소천교 釜沼川橋"를 만납니다.


  ['부소천' 조망]                      
  <부소천 釜沼川>은 <명성산 산정호수>에서 흘러 내리는 하천으로 <한탄강>에서 제일 큰 지류랍니다.
  하천의 이름은 
  <부소천(釜沼川)>의 유역 중 현재 영북면 '제1 기갑 여단' 영내에 <가마소 폭포>가 있는데, 
  <부소천 釜沼川>은 한자로 <釜沼 가마소>가 있는 하천이라는 의미의 <가마소천>이라는 의미라고


  ['부소천-한탄강 합수부']                     
  <부소천 釜沼川>이 <한탄강>과 합수하는 곳을 조망하고
 

  ['한탄강 부소천' 주차장]                 12:32

  [안내판]                
  <부소천교>를 건너 가면 <부소천 광장>을 만납니다.
  그러니까 이곳은 <운천리>에서 <한탄강주상절리길>로 가는 들머리가 되는 곳이군요.
 


  ['운천 들판']              
  <부소천교>를 나서면 갑자기 허허 벌판이 나타나는데 <운천들>이라 한답니다.
  <명성산>이 조망되며 <경흥길8코스>의 종점인 <금강산김화표지석>이 있는 <경기-강원 도계>가
  어렴푸시 조망됩니다.
 


  ['운천 제4 교차로' 조망]                    
  <경흥길8코스>는 거리의 상당부분이 이 들판을 걷는 것이더군요.
  <부소천교>에서 들판을 30분 정도 진행하여 사진에 표기한 <운천제4교차로>로 가면...


  ['운천 제4 교차로']           1:03           
  <운천제4교차로>는 <영묵면사무소>가 있는 <운천리>로 통하는 중요 교차로인데
  <1386번직행버스>가 이곳에서 <43번국도>를 타더군요.


  ['한탄강둘레길' 안내도]               
  <한탄강둘레길> 안내판이 이곳에 설치되 있는데, <운천리>에서 <비둘기낭폭포>까지 9km라고


  [ 갈림길]                1:06            
  <경흥길>은 <운천제4교차로>에서 다시 들판으로 돌아 가라고 합니다. 휴~
  직진하면 간단한데....ㅎ


  [사거리]                1:10    
  들판 가운데를 통과하여


  ['농기계 임대 사업장']                1:15   
  농기계 임대사업장 북부분소를 지나 바로 좌회전 하면


  ['사거리']                1:19         
  다시 사거리를 만나는데 공사중이라 좀 돌아서 우측길로 가고



  ['자일교']          1:29           
  <영북영농회사>를 지나면 <387번지방도>가 지나는 <자일교>를 만나는데
  다리를 통과하여 나가면....


  ['자일천']           
  "자일천 自逸川"
  <명성산> 자락에 있는 <자일저수지(강포저수지)>에서 <한탄강>으로 흐르는 개천인데 
  이 지역 들판에 풍부한 농업용수를 공급하여 "농민들이 스스로 잘 살수 있게 되었다"고 自逸里라는 
  마을 이름이 되고, <자일리>를 통과한다고 <자일천>이 되었답니다.
 

  ['한탄강순환 영농법인']

  ['다리']                   1:48:     
  <자일천>을 건너면


  ['자일리' 통과]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 마을을 통과하고


  ['43번국도' 만남]

  ['43번국도']               1:56      
  이어서 다시 <43번국도>를 만납니다.
  <경기옛길-경흥길>의 종점인 <금강산김화표지석>이 가까이 보입니다.


  ['금강산김화 표지석']            1:58      
  "道界公園"
  <금강산>까지 76km이며 <김화>까지는 16km라고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곳이
  <경기옛길-경흥길>의 종점이 되겠으며 <스탬프함>도 있습니다.


  ['수복기념탑']


  [안내문]                     
  "수복기념탑 收復記念塔"
  <이승만 대통령> 친필 휘호가 새겨진 탑이 있는데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합니다.


  ['벽화']       
  평화와 소망을 기원하는 벽화도 있는 소공원이군요.


  ['명성산' 조망]        
  <궁예>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한 <명성산>을 조망하며
 

  ['경기옛길-경흥길 종합안내도']                       
  <6-2길>은 조만간 답사하기로 하고 <경기옛길-경흥길>을 마침니다.
 

  ['경기-강원도계']              2:02        
  <도계공원>에서 조금 올라 가면 <자일천>을 건너는 <경교>라는 다리가 <경기-강원 도계>더군요.
 

  ['강원도 철원군 강포리 마을회관 앞']           2:04             
  <강원도 철원군 강포리>로 들어 가면 길 건너편에 <강포리마을회관>이 있으며
  <시외버스 3000번>이 정차하는 정류장이 있습니다. 
  30여분 기다려서 2시35분에 도착하는 <3000번 시외버스>를 타고 <영북면사무소>까지 1,500원을
  내고 타고 가서, 다시 <1386번직행버스>를 갈아 타고 <도봉산역환승센타>로 가고
  전철로 귀가 했습니다.
  걸은 거리는 12.5km 였으며 3시간 50분이 걸렸습니다.


  ['관북대로-경흥길]                    
  "끝나지 않은 경흥길"
  <경흥길>은 <서울>에서 <함흥>까지 가는 옛길이라고 알고 계시지는 않나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알았습니다만 자세히 조사해 보니
  <경흥길>은 <서울>에서 "함경북도 경흥군 서포리"까지 가는 길을 말하더군요.
  <여암 신경준선생>이 집필한 <도로고 道路考>에 <경흥군 서포리>라고 분명히 기술되 있습니다.
  <함경북도 경흥군>은 <두만강 하구>에 있는 우리나라 최북단 고을이며 <서포리>는 魚港이었습니다.
  옛날엔 이 지역에서 <명태>가 엄청 잡혀, 잡힌 <명태>를 <한양>까지 운송했다고 하며 그 길이
  <관북대로-경흥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수많은 선조들이 풍운의 꿈을 안고 <한양>을 오고 갔을 것입니다.
  물론 이 길을 따라 <태조 이성계>를 비롯해 <함흥차사> 몇명도 다녔을 것이고
  <백사 이항복> 등등 <철령> 너머 유배를 간 관리들도 이용 했을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걸은 <경흥길>은 전체 <경흥길>의 아주 일부만 걸은 것인데, 
  휴전선이 가로 막혀 더 이상 진행 할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며 발길을 돌립니다.
  
      "끝나지 않은 관북대로-경흥로를 그리워 하다"
 * 별첨 *
 "한탄강 주상절리길" 여기 클릭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경기옛길-경흥길』
 『제7길 영평팔경길 : 영중농협~한탄강지질공원』
  "봉래 양사언선생의 흔적-금수정을 가다"


  ['제7길 영평팔경길' 안내도]

  ['제7길 영평팔경길 실트랙']              
  지도의 <빨간색선>이 이번에 다녀온 실트랙이며, 이번에 변경된 <경흥길 7코스>입니다.
  <파란색선>이 일부 보이는 곳은 기존 변경전 코스입니다.
  다시 말해 <빨간색선>이 <3월1일>부터 변경된 코스이니 후답자들은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제가 다녀온 변경된 GPS 트랙은 별도 첨부 했습니다.


  ['포천시청앞 버스정류장']                    9:20

  ['53번 시간표']                      
  2022년 3월 2일 (수)  맑음       
  <경흥길 제7길>은 대중교통을 고려 해야 하더군요.
  <영중농협>에서 출발하면 도착지인 <대회산리>에 <오후2시40분>까지 도착해야 시내버스를 탈수 
  있어서 여유로운 도보여행을 하기가 쉽지 않겠더군요.
  그래서 <포천시청앞>에서 <53번 시내버스>를 <9시20분>에 타고 <한탄강지질공원>으로 먼저 가서
  역방향으로 진행하기로 하면 도착시간과 시내버스 시간에 구애 받지 않겠다고 생각되더군요.
  <영중농협>이 있는 <양문리 터미널 버스정류장>에는 대중교통이 수시로 많기 때문입니다.


  ['대회산리 한탄강지질공원 앞' 버스정류장]            10:15    
  <포천시정앞>에서 <53번 미니시내버스>를 타고 55분이 걸려 <한탄강지질공원>이 있는
  <대회산리 비둘기낭>에 도착했습니다.
  버스 가는 방향으로 50m쯤 가면....


  ['한탄강지질공원' 입구]               10:18        : 
  <비둘기낭 폭포-한탄강지질공원 입구>를 만나는데,   
  저는 이번에 두번째로 이곳을 찾았습니다. 
  2020년 6월 5일에 <한탄강주상절리길>을 종주 할때 방문 했기에 
  이곳에 대해선 포스팅을 이미 해서 길을 좀 알고 있습니다.
  <경흥길7코스>를 역방향으로 가려면 여기서 좌측 포장도로로 진행하는게 편리합니다.
  <비둘기낭폭포>는 다음 <8코스>에서 답사 하기로 하고...


  ['비둘기낭교'에서 조망]          10:24       
  도로를 5분 정도 진행하면 <비둘기낭교>를 만나는데 우측에 <한탄강지질공원>이 조망됩니다.
  <불무산>에서 내려오는 이 계곡물이 흘러 <비둘기낭폭포>로 가서 아름다운 경관을 만듭니다.
  7분여 더 올라 가면....
  

  ['비둘기낭폭포' 연결통로]            10:31       
  <경흥길7코스> 순방향길을 만나며 우측 <비둘기낭폭포>로 내려 가는 계단이 있더군요.
  여기서부터 역방향 <경흥길7코스 영평팔경길>이 시작됩니다.
  앞에 보이는 <전망대>로 올라 가면....


  ['포천가람누리문화공원']                10:33~10:42      
  "포천가람누리문화공원"
  <한탄강지질공원> 주변을 조망할수 있는 전망대를 상당한 규모로 만들어 놨더군요.
  엘리베이트까지 설치해 놨는데 아직 가동은 하지 않고...


  ['전망대' 오름길]               
  전망대 오르는 나선형 보도 오름길을 오르면....


  [주변 안내도]                      
  주변 안내도가 있는데 안내도를 참고하는게 좋겠죠?
  이런 곳엔 안내도가 없으면 어디가 어딘지 알수가 없기에....


  ['한탄강지질공원''하늘다리' 조망]                      
  먼저 북쪽으로 <한탄강지질공원>과 이곳의 명물인 <한탄강 하늘다리>가 조망됩니다.
  그 뒤로 <'고남산 643.1m'>이 보이며, 우측엔 <'은장산 454m'>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좌측으로 눈을 조금 돌리면....


  ['생태경관지역' 조망]        
  <한탄강생태경관단지>가 바로 앞에 펼쳐지며, 뒤로 <포천시 관인면 중리>가 옹기종기 보이고
  <보개산> 산군들이 이어집니다. <향로봉> <북대> <지장봉>....그리고 멀리 <금학산>....


  ['종자산' 조망]           
  서쪽으로는 <한탄강>이 협곡을 이루며 흘러 가고 있으며, 
  그 뒤로 "종자산 種子山 643.8m"이 가까이 있습니다.


  ['보장산' 방향 조망]                     
  남쪽으로 <한탄강>이 계속 흘러 가며, 잠시후 만날 <영로교>가 조망되는데
  그 뒤로 <명성지맥>이 지나는 <'보장산 554.2m'>이 보이는군요.
  오늘 <보장산> 좌측에 있는 <운산리고개>를 넘어 갈 예정입니다. 
  <운산리고개>까지 약6.8km 정도


  ['한탄강변길']               10:55      
  전망대에서 내려 가 <한탄강> 강변길로 진입하여 20여분 진행하면....


  ['포토존']                11:03        
  <포토존>이 있는데 사진 찍을만한 배경은 <종자산> 뿐이라 지나치고


  [급경사 내림길]                   11:09

  ['한탄강' 수변길]                   11:12         
  이어서 <한탄강> 강변으로 내려가는 급경사 계단이 이어지며
  <한탄강> 강물과 이웃하며 잠시 진행하면....


  ['영로교']                    11:17

  [안내판]                      11:21      
  <포천-동송-백마고지>로 연결되는 <87번국도>가 지나는 <영로교> 밑을 통과하면
  안내판이 세개가 있는 곳을 만납니다.
  이 길은 "한탄강주상절리길 제1코스 구라이길"이 지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함흥차사 이야기']                
  <함흥차사 이야기>를 안내판에서 안내하고 있는데, 누가 이 안내판 글을 썻는지 모르겠지만
  역사에 근거한게 아닌 일반 야사를 正史인양 기술하고 있어 유감스럽습니다.
  <함흥차사>에 관한 역사적 사실관계는 
  제가 <경흥길 제6길 만세교길> 답사기에서 자세히 언급 했습니다.
  <태조 이성계>에 의해 살해당해 돌아 오지 못한 <함흥차사>는 단 한명도 없었다는거....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제가 쓴 <경흥길 제6길 만세교길> 답사기를 읽어 보세요.


  ['영북면-창수면' 경계]           11:22      
  <영로교>를 지나면 <포천시 창수면>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길조심을 해야 하는데, 바로 앞에서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 가야 하더군요.


  ['구름다리(공사중)' 조망]              11:29           
  이어서 <옛 군훈련장>이었던 곳으로 보이는 공터로 들어 가면 좌측 멀리 공사중인 <구름다리>가
  보이는데, 잠시 후 저 다리 밑을 통과하겠습니다.
  <구름다리> 뒤에 보이는 산이 <명성지맥>이 지나는 <보장산>입니다.
  그리고 우측 계곡 너머에 유명한 <제인폭포>가 있고....


  [쉼터]                11:34~11:51       
  이어서 쉼터를 만나는데 여기서 <포천시청>앞 만두집에서 사온 만두를 먹으며 좀 쉬고


  ['종자산' 조망]                        
  "종자산 種子山 643.8m"
  전설에 따르면 아기를 못 낳는 3대 독자 부부가 산중턱의 굴 속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후 
  아기를 낳았다 하여 '종자'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씨앗산>이라고도 한답니다.
  교통이 불편하여 제가 올라 보지 못한 산인데 앞으로 기회가 있을려는지....
  <종자산>→<삼형제봉>→<환인봉>→<지장봉>으로 이어지는 <보개산 산줄기>를 종주 해 보려고
  했었는데, 이젠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그 계획을 잊어 버립니다.


  [전망대]              12:00          
  이어서 <구름다리>를 통과하면 <한탄강변 전망대>를 만나는데...
  


  ['구름다리(공사중)' 조망]                            
  현재 공사중인 <구름다리>가 <한탄강> 위에 걸려 있는데 조만간 완공 될듯 합니다.
  이 지역은 <운산리 구라이생태공원>으로 <포천시>가 조성중에 있답니다.
 

  ['한탄강']                   
  <구름다리> 아래엔 <한탄강>이 여울져 흐르며 경관을 뽐내고 있는데
  조만간 이 곳은 수몰 될 예정이랍니다.
  왜냐하면  이곳 바로 아래쪽 <제인폭포> 근처에 홍수 조절용 "한탄강댐"이 건설중에 있으며
  곧 완공 단계여서 앞으론 이러한 경관을 볼수 없게 되겠습니다.
  



  ['운산리 자연생태공원']           12:08~12:17       
  이어서 "운산리 자연생태공원"이 펼쳐집니다.
  이 지역이 1990년대 말에 엄청난 홍수 피해를 입은 지역인데, 홍수를 막기 위한 "한탄강댐"을
  건설하며 입게 될 이 지역민들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이렇게 공원을 조성하여 관광사업을 한다고



  ['운산리 자연생태공원' 정문]               12:25       
  엄청 너른 공원을 35분 가량 걸려 통과하면
  <운산리 자연생태공원> 정문으로 나가고
 

  ['운산리마을회관']                     12:28             
  이어서 <운산리 마을회관>을 지납니다.
  주민을 위한 <게이트볼장>도 상당한 규모로 있는데 이용객이 얼마나 될지....
  10여분 완만한 고갯길을 오르면....
 

  ['운산리고개']                12:37      
  추억의 "운산리고개"에 도착합니다.
  2009년 1월 11일에 <명성지맥>을 종주하며 지났던 고개입니다. 벌써 13년이 지났군요.
  당시 알바 엄청 했는데...ㅎㅎ
  자세한 내용은 별첨 산행기를 참고 하세요.


  ['오가리' 방향 내림길]                        
  <운산리고개>에서 이제 완만한 내림길을 진행합니다.
  멀리 앞에는 <왕방지맥>이 <왕방산-국사봉-개미산>으로 이어지고 있고....


  ['운천-비둘기낭폭포' 방향 도로 삼거리]         12:50     
  보행로도 없는 갓길을 23분여 진행하면 도로안내판이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창수면 오가리>에서 <비둘기낭폭포>와 <운천><철원>으로 가는 길이군요.


  [보행로]                   1:00

  ['보장 초등학교(폐교)]              1:07

  ['오가3리 마을회관']                  1:07       
  삼거리를 지나면 보행로가 반기며, 폐교된 <보장초등학교>가 <보장산> 아래에 있습니다.
  <오가3리 마을회관>을 지나  12분 정도 진행하면....


  ['오가교차로']                    1:19

  ['오가2리-보건진료소' 버스정류장]                1:21                    
  <포천>에서 <전곡>으로 이어지는  <37번국도>가 지나는 곳에 "오가교차로"를 만나는데
  <오가보건진료소>가 교차로 우측에 있더군요.
  그래서 버스정류장 이름도 <오가2리-보건진료소>였으며 <경흥길>은 계속 직진합니다.
  <오가리 五街里>는 다섯 갈래 길이 있어서라던가, 다섯가지 아름다움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금수정><창옥병>등 아름다운 강산과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산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답니다.


  ['금수정' 방향 조망]             1:25       
  <오가교차로>를 지나면 <금수정>과 <안동김씨 고택>이 있는 조그마한 야산이 보입니다.


  [갈림길]                 1:32    
  <금수정>으로 가는 <경흥길>은 지금부터 "임진강 38선 역사체험길"과 함께 합니다.
  여기서 좌회전 하여 5분 정도 진행하면....



  ['안동김씨 고택']                       1:37

  ['안동김씨 고택' 항공사진]

  [안내문]                    
  "안동김씨 고택"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에 잘 나와 있어 안내문을 참고 하고...


  ['금수정' 조망]               1:39     
  <안동김씨 고택> 앞에 <금수정>이 매우 가까이 있어 <고택>과 <금수정>은  한몸이었다는 걸 
  알수 있고....


  ['금수정']                 1:41~1:51

  ['금수정' 항공사진]

  ['금수정' 안내문]                      
  <포천> 출신 "봉래 양사언 선생"이 <포천현감> 시절에 많이 이용했다는 정자 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금수정'에서 조망] 

  ['봉래 양사언 선생'의 글]                    
  <금수정> 안에는 아주 많은 유명 인사들의 글이 걸려 있었는데
  그 중에서 神의 필체라는 <봉래 양사언 선생>의 글을 보면...
         <贈琴翁 증금옹>
         綠綺琴伯牙心     거문고 타는 백아의 마음은
         鍾子始知音       종자기만 알아 듣는다오.
         一鼓復一吟       한번 타매 또 한번 읊조리니
         冷冷虛?起遙岑    맑디 맑은 바람소리 먼 봉우리에 일고
         江月娟娟江水深   강과 달은 아름답고 강물은 깊기도 해라.
         蓬海書
  이 시의 제목 다음에 달은 세주(細註)에 
  "琴翁 錦水亭 主人也 刻此詩於尊巖"이라고 쓰여 있는데,
  "금옹(琴翁)은 금수정(錦水亭) 주인(主人)이다. 이 시를 준암에 새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琴翁>은 <金胤福>의 호라고 하며 조선 중기의 문인이며 포천에 살면서 거문고를 즐겨 탔다고...
 

 ['태산가 詩碑'와 '스탬프함']              
  <경흥길 제7길 스탬프함>이 <태산가> 詩碑 옆에 있으며
  <양사언 선생>의 한글 필치로 <태산가>가 새겨져 있습니다.
 

  ['안동김씨 세천비']               
  "안동김씨 세천비 安東金氏世阡碑"
  <세천비 世阡碑>는 선산입구 등 선산 근처에 세워 그 문중의 선산 임을 나타내며 
  문중이나 문중 선조들의 치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기록을 남기는 비석을 말한답니다.
  <세천 世阡>이란 세대(30년)를 천개나 지난다는 뜻이 숨겨져 있으며 여러대를 내려오며
  선산에 조상의 산소를 모신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이런 시골에도 이 비석과 앞에 보이는 고택을 짓고 살았던 <안동김씨 세도세력>의 위력을 
  미루어 짐작 할수 있죠.


  ['김구용 묘']        
  "문온공 김구용"
  고려말 <포은 정몽주><삼봉 정도전>등과 함께 관직생활을 한 사람이더군요.
  <안동김씨 문온공파>의 시조인데 <고려 공민왕> 때 16세로 진사에 합격하고, 
  왕명으로 모란시(牡丹詩)를 지어 일등을 하여 왕으로부터 산원직(散員職)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여러 높은 관직을 지냈다고....
  <문온공 김구용>의 8세손은 의금부도사를 지낸 <김대섭>인데, 그의 외아들 <김확>은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철원부사>를 지내셨으며, <지봉유설>을 지은 큰사위 <지봉 이수광>과 
  <홍길동전>을 지은 작은사위 <교산 허균>은 이곳 <금수정>에서 처남매부사이를 떠나 
  당시 사회 개혁을 논의하던 곳으로 유명하답니다. 특히 오늘날 <홍길동전>이 전해질수 
  있었던 것은 <교산 허균>의 첫부인(김대섭의 딸)의 외동딸이 몰래 감추어서 전해진 것으로, 
  국문학사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고.....


  [진행방향 조망]              1:53     
  <김구용 묘> 앞에서 진행방향이 조망됩니다.
  지금부터 2022년 3월 1일부터 변경된 <경흥길 제7길 영평팔경길>이 이어지니 후답자들은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창옥교']              2:00         
  <금수정>에서 <포천야구장>으로 건너는 다리 이름이 <창옥교>이더군요.
  2022년 2월 28일까지 <경흥길 7코스>는 이 도로를 따라 <영평교>까지 직진했지만
  2022년 3월 1일부터는 다리를 건너 우측 <포천야구장>을 돌아 <영평천 둑방길>로 변경되었답니다.
  제가 아마도 최초로 공식적으로 변경된 길을 가는듯....


  ['포천야구장'] 

  [쉼터]                 2:03~2:15        
  <포천야구장>을 둘러보고 <영평천>으로 나가면 야구장 쉼터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금수정>이 일품이었는데


  ['금수정'과 '안동김씨 고택' 조망]  

  ['금수정' 조망]                    
  "금수정 金水亭"을 조망하는 최고의 자리인듯 합니다.
  그래서 길을 새로 단장하여 변경했나 봅니다.


  ['임진강 38선 역사체험길']                    
  쉼터에는 "임진강 평화문화권 역사체험길"의 체험장이 있는데



  ['국토분단과 포천']       
  제가 몰랐던 <38선 분활>에 대한 역사 자료가 전시되 있더군요.
  <미국>과 <쏘련>이 나눠 먹은 지역을 표기하고 있는데 처음 봅니다. 햐~





  ['영평천 둑방길']             
  <영평천>을 30여분간 좀 지루하게 진행하면....
 

  ['영평교']                2:47       
  <영평교>를 만납니다.
  변경 전에는 <영평교>를 건너 <거사리>를 통과 했으나 변경되었습니다.
  변경된 길은 <영평교> 다리 밑으로 계속 직진합니다.


  ['영평천 둑방길']             

  ['포천 영송리 선사유적']             3:00        
  <영평교>에서 <영평천 둑방길>을 계속 직진하면
  중간에 "포천 영송리 선사유적지"가 있다는 안내판이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그냥 지나치고



  ['영평천교']              3:07      
  이어서 <영평천교>를 만나는데, 직진할수 없어 좌측으로 올라가면...


  ['영평천교' 통과]              3:08       
  <영송리 버스정류장>이 있고 <영평천교>를 통과하여, 다시 둑방길로 내려 가야 하더군요.


  ['영평천 둑방길']                  
  <영평천교>에서 다시 10여분 둑방길을 진행하면.....


  ['영평천-포천천 합수부' 조망]             3:19       
  <포천천>이 <영평천>에 합류하는 합수부를 만나는데
  <포천천>의 끝에는 <농본교>라는 다리가 있고, 좌측 <영평천>에는 <사은교>라는 다리가 있습니다.
  좌측 <사은교>로 가서....


  ['사은교' 통과]                  3:22        
  <사은교>를 건너 바로 우측 <농본교> 방향으로 가면....
 

  ['농본교' 앞 삼거리]             3:25     
  <농본교> 앞에서는 좌측 <포천천 둑방길>을 이용해야 하고....
 

  ['포천천 둑방길']            
  지난 <6코스>에서 계속 바라보며 진행했던 <금주산>이 정면에 보이는데
  10여분 둑방길을 거닐면...
 

  ['은현교']    

  ['은현교' 앞]                 3:35    
  <은현교> 앞에 도착합니다.
  변경되기 전엔 <은현교>를 건너 <거사리>를 통과하여 <영평교>로 갔지만 
  이젠 <은현교>를 건너지 않습니다.


  ['낙귀정' 안내판]                 3:36

  [안내문]                    
  <은현교> 옆에는 "낙귀정 터 안내판"이 있는데
  <낙귀정 터>는 둑방으로 올라 가야 보이는데, <포천천> 건너편에 있더군요.
  둑방으로 올라 가면...


  ['낙귀정터' 조망]                   
  <포천천> 건너편에 있었었다는데 현재 주춧돌 등 흔적만 남아 있다고


  ['양문1리(터미널) 버스정류장']                   3:43

  ['7코스 영평팔경길' 안내문]               
  <경흥7길>의 출발지이자 도착지인 <양문리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안내판은 버스정류장 뒤에 바짝 붙어 있으니 모르고 가면 찾기 어렵더군요.
  오늘 걸은 거리는 변경된 코스여서 거리가 약간 짧아졌더군요.
  걸은 거리는 17.2km였으며 5시간 25분이 걸렸습니다.
  여기서 <도봉산역행-1386번 직행버스>를 타고 <포천시청> 앞에서 <3006번 직행버스>로 환승하여
  <잠실광역환승센타>에 내려 지하철로 귀가 했습니다.
 * 별첨 *
 "명성지맥4구간 도내지고개~운산리고개" 여기 클릭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경흥길7코스(변경된트랙).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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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경흥길』
 『제6-1길 만세교길 : 신북면사무소~영북농협』
  "함흥차사의 진실과 백로주 암각문을 찾아서"


  ['제6-1길 만세교길 실트랙']              
  <경흥길 6코스>에는 두개의 길이 조성되 있더군요.
  하나는 오늘 걷게 되는 <6-1코스>로서 <포천천>을 따라 <영중면 양문리>까지 가는 <만세교길>이고
  또 하나는 <포천아트밸리>를 경유하여 <천주산 등산>을 하며 <영중면 양문리>까지 가는
  <독곡아트밸리길>이었습니다. <6-2코스 독곡아트밸리길>은 입장료 5,000원을 내고 가야 한다는데
  다음에 날씨 좋은 봄날에 <포천아트밸리>도 구경하며 가기로 하고 
  오늘은 빨간색 선으로 표기한 <6-1코스 만세교길>을 먼저 진행합니다.


  ['신북면행정복지센차 앞']                 10:15

  ['제6-1길 만세교길' 안내판]                      
  2022년 2월 24일 (목)  맑음       
  <잠실 광역버스 환승센타 '25번 gate'>에서 <3006번 직행버스>를 타고 1시간 15분이 걸려
  <신북체육문화센타>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답사를 시작합니다.
  먼저 <신북면행정복센타> 앞에 있는  출발지점에서


  ['신북읍행정복지센타' 앞]                
  <신북행정복지센타 앞 사거리>에서 <경복대학교> 방향으로 돌아 나가면...


  ['신북교' 방향]          
  <3006번 직행버스>가 정차하는 <신북체육문화센타>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신북교' 앞]             10:18          
  조금 직진하면 <신북교> 입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가면...
  

  ['신북교' 밑]              10:19        
  <신북교> 밑에 <포천천 둑방 데크길> 입구를 만나 데크길을 이용 합니다.


  ['포천천' 데크길]                       
  <포천천> 둑방길을 따라 조성된 데크를 따라 <신포천아파트>까지 진행하는데
  좌측에 수증기를 내뿜으며 <반월산성>에서 부터 보이던 석탄발전소인 <'GS포천그린에너지'>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신포천아파트' 앞 갈림길]               10:27      
  <신포천아파트> 앞에 <경흥길>은 좌측 <포천천>으로 내려 가라고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는데
  관심 가지지 않으면 지나칠수 있으니 유의 해야 하겠더군요.


  ['포천천 징검다리']                      
  <신포천아파트> 앞에서 <포천천>을 건너는데 '징검다리'가 있습니다.
  '징검다리'로 가서


  ['포천천']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가는 <포천천>을 조망하는데
  이 <포천천>이 <영평천>과 합류하는 "영중면 양문리"까지 오늘 갈 예정입니다.
  <포천천>을 건너 서측 둑방길로 올라 가면....


  [둑방길]            10:36       
  우측 <43번국도>에 유명한 "포천방어방커"가 있는데 모르고 가면 알수 없습니다.
  우측 <43번국도>엔 보행자를 위한 보도가 없어 <경흥길>은 부득이 이 둑방길로 안내하는가 봅니다.
  그러니까 저 <포천방어방커>를 직접 찾아 보려면 승용차를 이용해야 안전 하더군요.


  ['포천방어방커' 조망]                   10:38

  ['포천방어방커' 줌인]       
  "포천방어방커"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560호
  <6.25 남침> 때에 <포천지역>엔 4개의 방어 방커가 있었다는데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방커랍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쏘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을 시작하여 
  잠시후 만나게 될 <만세교> 방면으로 진출하여, 파죽지세로 <만세교>를 지나 포천방향으로 
  진출하자 <대전차방어방커>를 주축으로 방어 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이 방어벙커가 남침하는 북한군 탱크를 4시간 정도 지연시켰다는게 공적이라면 공적이랍니다.
  그 시간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 시민들에겐 안심하라고 방송했는데
  그러면서 그가 <한강철교>를 폭파하고 부산으로 몽진하는 시간을 벌게 했으니 공적이라면 공적이죠.


  ['둑방길']                 
  <'GS포천그린에너지'>가 더욱 가까워지며, <장자교>가 다가 옵니다.
  여기서 우측을 바라보면...


  ['금주산' 조망]               10:47       
  "금주산 金珠山 568.3m"이 조망 됩니다.
  "금 아홉 덩이가 묻혀 있는데 아들 아홉을 둔 사람이라야 그 금을 캘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데
  실제로 이 산에는 금광이 있어 얼마 전까지도 금을 캤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금주산>의 남쪽엔 제가 좋아하는 "봉래 양사언선생 묘"가 있습니다.
  <포천>이 고향인 <양사언선생>은 고향의 품에서 잠들고 있습니다.
  <포천>은 의외로 많은 유명 인물들의 고향 이더군요.
  <백사 이항복선생> <한음 이덕형선생>등을 비롯해 잠시후 <만세교>에서 알아 볼 <성석린선생> 등등
  조선의 최고 명필을 꼽으라면 누굴 꼽겠습니까. <추사 김정희>? <만호 한석봉>? <안평대군>?....
  저는 神의 필치라는 <봉래 양사언선생>을 꼽습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로 시작되는 유명한 <태산가 太山歌>를 쓰셨죠.
  
<무지무지 유명한 양사언선생의 글씨 "비 飛">
<금강산>을 무지무지 사랑한 <양사언선생>은 관직생활도 <금강산> 주변 고을을 자원해서 하며 자신의 '호'까지도 <여름 금강산>을 의미하는 <봉래 蓬萊>로 지을 정도였답니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보이는 <선녀와 나뭇꾼>으로 유명한 <감호 鑑湖> 가에 <비래정 飛來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그곳에 글자를 남겼다는데 그 글자가 바로 이 글자랍니다.
['장자교'] 10:53 이어서 <장자교>를 만나는데 <포천장자산업단지>와 <43번국도>를 연결하는 다리로서 "GS포천그린에너지"라는 열병합발전소로 직접 통하는 다리이더군요. ['한바위교'] 10:59 이어서 바로 <한바위교>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 건너편 둑방길을 이용해야 하더군요. [뒤돌아 본 'GS포천그린에너지'] 11:01 <한바위교>를 건너 뒤돌아 본 광경입니다. "GS포천그린에너지"라는 열병합발전소는 석탄화력발전소랍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반대가 엄청 심했다는데 유연탄 사용량을 50% 줄이기로 하며 타협해서 가동 중이라고.. 이 화력발전소는 석탄발전소이지만 친환경 공법으로 가동 되도록 건설되었다네요. 그리고 타지역 발전소와는 달리 주변 공단에 전기와 온수를 공급하는 열병합발전소라고 합니다. ['북만세교'] 11:14 이어서 <북만세교 北萬歲橋>를 만납니다. <포천 쓰레기소각장>과 <스포츠센타>로 연결하는 다리더군요. ['만세교리' 조망] <북만세교>에서 우측으로 <포천시 영중면 만세교리>가 펼쳐지며 그 뒤로 <금주산>이 다른 각도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 <금주산> 우측 아래에 <양사언선생 묘>가 있습니다. 선생의 묘는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에 있으며 <포천시 향토유적 제32호>로 지정되 있답니다. ['만세교검문소' 앞] 11:18 다시 <43번국도>로 나가면 "옛 만세교검문소"가 있었던 곳을 만나며 <만세교리>라는 마을이 제법 번화가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앞에 보이는 빨간색 모텔 앞에서 길을 건너 건너편 길을 이용 해야 하더군요. ['만세교1리'] <만세교1리>를 통과하는데 여기서 <경흥길6-2길 독곡아트길>과 다시 합류하여 함께 가기 시작 하는 곳이더군요. ['만세교'] 11:28 [안내문] "만세교 萬歲橋" <북관대로 北關大路>, 즉 <경흥로>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에 있는 다리랍니다. <포천시 신북면>과 <포천시 영중면>의 경계를 이루는 "영덕천"에 있는 다리 입니다. 안내판에는 <3.1운동> 당시 포천시민들이 만세를 부른 다리라고 하며, <6.25전쟁>때에는 북한군의 남침에 격열히 저항한 방어선이었다고 안내하고 있는데... 가장 의미가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태조 이성계>와 <함흥차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여암 신경준의 도로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등 고지도에도 등장하는 <만세교>에 대해 잠시후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명덕천'과 '금주산' 조망] <만세교> 위에서 <명덕천>과 그 뒤로 <금주산>을 조망합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대동지지』에 "육송정천(六松亭川)은 포천현(抱川縣)의 동쪽 25리에 있는데, 현등산(운악산)에서 흘러나와 북쪽으로 흘러 만세교(萬歲橋)에 이르러 한천과 합쳐져 <백로주>로 흘러 들어간다.”고 되어 있으며, <육송정천六松亭川>은 이 고을에서 판서 한명이 탄생 할때 마다 소나무 한그루씩 심었는데 여섯명의 판서가 배출되어 六松이 되고, 그곳에 <六松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는데, 지금은 도로 개설로 사라지고 주변에 있던 <명덕사> 라는 절 이름을 차용해 와 <명덕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만세삼거리'] <만세삼거리>는 <37번국도>와 <43번국도>가 교차하는 곳이었습니다. "함흥차사 咸興差使"라는 사자성어에 대해 어떻게 알고 계시나요? "심부름 보낸 사람이 소식없이 영영 돌아 오지 않는 경우"를 <함흥차사>라고 일반적으로 알고 계시죠? 특히 <태종 이방원>이 아버지 <태조 이성계>의 고향인 <함흥>에 특사를 파견하여 아버지가 환궁 할것을 요청했지만, 아버지 <태조 이성계>가 환궁을 거절하며 찾아온 특사 모두를 죽여버려서 돌아 오지 않는 특사를 <함흥차사>라고 한다고 알고 계시지는 않나요? 대부분 이렇게 알고 있을 겁니다. 오늘은 <함흥차사>의 허구와 역사적 진실에 대해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만세삼거리 조형물'] 11:30 <만세삼거리>에는 <포천시 상징 조형물>이 설치되 있습니다. <경흥길>은 앞에 보이는 굴다리를 통과하더군요. "함흥차사 咸興差使"는 도대체 몇명이었을까? 실제 인물은 누구 누구였을까? 실제로 <함흥>에 특사로 파견 되엇다가 죽어 돌아 오지 못한 <함흥차사>는 과연 있었을까? 역사 기록에 근거하여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런 <함흥차사>는 단 한명도 없었는데.... 어찌하여 우리들에게 "죽어 돌아 오지 않는 특사"로 대부분 알게 되었을까.... 그 진실을 잠시 후 알아 보겠습니다. ['금주3리'] 11:35 <만세삼거리 굴다리>를 통과하면 <금주3리>가 이어지며 우측에 <미륵박물관>이 보입니다. <미륵박물관>은 <경흥길6-2코스>가 통과하는 곳이지만 <경흥길6-1길>에서도 구경하고 갑니다. 길을 건너 <미륵박물관>으로 들어 가면.... ['미륵박물관'] 11:40~11:45 "미륵박물관" <금주산> 자락에 있는 <금룡사>는 1865년 조선 <고종 2년>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지담스님>이 작은 암자를 짓고 나라를 위한 기도를 드린 것이 <금주사(금룡사의 이전 이름)>의 출발점이 되었다는데 어찌된 일인지 <사단법인 구천미륵회>라는 단체가 인수하고, 이곳에 이런 <미륵박물관>을 지었으며 <영농법인 하늘마당>이라는 10만평 규모의 과수원도 운영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더군요. 종교단체 맞어? 궁금하더군요. <미륵 彌勒>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나라 말이 아니죠. 산스크리트어로 <마이트레야(Maitreya)>이며, <마이트레아>를 한자로 음역한게 <彌勒>이고 다시 우리말로 음역한게 <미륵>이니.....<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지타(Ajita, 阿逸多)>랍니다 <대승불교>의 대표적 보살 가운데 하나로, <석가모니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불'이랍니다 그 <미륵>은 아직까지도 자기 고향인 <인도><네팔>등의 중생을 잘 살게 구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고향 사람들도 못 구제하는 <미륵>에게 우리를 맡길수 있을까... [지나온 길 조망] <미륵박물관>에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볼수 있었고... ['43번국도'] ['백로주' 입구] 11:55 <미륵박물관>은 코로나 사태로 후문을 폐쇠하여 다시 정문으로 나와 <43번국도>를 10여분 진행하면 "백로주입구-금주1리 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여기서 건너편 <백로주교> 방향으로 길을 건너야 했습니다. ['백로주' 입구] ['백로주' 입구 조형물] ['거사리 마을' 안내판] <포천시 영중면 거사리>는 한자로 <居士里>로 쓰는데, <조선 선조> 때에 활약한 "지천거사(芝川居士) 황정욱(黃廷彧)"이 살았다고 하여 <居士里>가 되었다는데, "백로주 白鷺洲"로 더 유명한 곳이죠. ['배로주교' 앞 스탬프함] 12:00 [안내문] <영평8경 중에 제7경>이라는 "백로주 白鷺洲"가 있는 곳이라고 알리는 표지석이 있으며 <경흥길 6코스 스탬프함>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표지석에 새겨진 오리지날 "白鷺洲" 刻字를 바위에서 오늘 직접 찾아 보려고 합니다. ['백로주' 조망] ['백로주'] <백로주교> 위에서 "백로주 白鷺洲"를 조망합니다. <백로주>의 뜻을 알아 보면 <백로>는 글자 그대로 '황새' '외가리'등으로 불리는 새이고 <주 洲>의 뜻을 확실이 알아야 전체 의미를 알수 있겠죠. <洲>는 <섬>이라는 뜻이니 <백로주>는 <백로 모양의 바위 섬>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사진 속 가운데 바위 섬이 <백로주>이고, 우측 바위가 <동암 東巖>인데 좌측에 있는 <서암 西巖>에 "白鷺洲"라는 刻字가 있다고 해서 오늘 찾아 보려고 합니다. ['백로주교' 서쪽 끝] 12:03 <백로주교> 서쪽 끝에서 <경흥길>은 좌측길로 가지만 저는 우측 제방길을 따라 <서암>의 <白鷺洲> 각자를 찾아 보고 다시 나와 좌측 <경흥길>로 진행하겠습니다. ['동암' 조망] <동암 東巖>이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저 바위에도 많은 암각문이 있다고 합니다. ['백로주' 조망] 가까이 측면에서 바라 보는 "백로주 白鷺洲"입니다. <백로>가 물 위에 떠있는 모양이라고 하는데....각자 감상 하시고... 여기에도 무수한 암각문이 있다고 합니다. ['서암' 가는 길] 12:07 "백로주 白鷺洲"라는 암각문을 찾아 가기 위해 <서암 西巖>으로 가야 하는데 먼저 수문 아래로 내려가면.... ['서암' 가는 길] 부교가 놓여 있는데 예전에 암각문으로 가도록 만들었으나 홍수로 거의 파손되어 이용 할수 없고 걸어서는 앞에 보이는 <서암 西巖>으로는 접근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나와 우측 모래톱으로 나가서 [모래톱에서 '서암' 조망] 모래톱에서 바라보니 "백로주 白鷺洲"라는 刻字가 실제로는 잘 보였습니다. 그러나 작은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아서 줌인해 보니 ['백로주' 각자와 암각문] "白鷺洲" '己卯秋鐵原府使東岡書' 기묘추철원부사동강서 "기묘년 가을에 철원부사 동강이 씀" <기묘년>은 <선조 12년(1579)>이라고 계산되며 <철원부사 동강>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답니다. <백로주> 암각문 좌측에는 또 하나의 암각문이 있는데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자료>를 참고 하면... “山有白雲洲白鷺 산유백운주백로 산에는흰구름 물가에는 백로가 노니는데 雲隨鷺去隨鷺雲 운수로거수로운 구름은 백로따라 백로는 구름따라 가네 山雲洲鷺相隨處 산운주로상수처 산엔 구름 물가엔 백로가 서로 따르는 곳에 我方閒情一群 아방한정공일군 나 또한 한가롭게 한무리가 되었다네 素洲 소주” 라고 새겨져 있으며, 시를 지은 <소주>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답니다 ['백로주교'로 회귀] 12:17 <백로주>에서 지름길이 있나 헤메다가 시간만 허비하고 다시 <백로주교>로 나가서 ['거사리' 통과] "지천거사(芝川居士) 황정욱(黃廷彧)"이 살았다고 하여 <居士里>가 되었다는 <포천시 영중면 거사리>를 통과합니다. <명성지맥>이 지나는 추억의 <불무산 佛舞山>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명성지맥>을 종주하며 <불무산>을 올랐던 때가 벌써 13년이 흘렀군요. 그땐 청춘이었는데..ㅠㅠ "함흥차사 咸興差使" 이야기 계속 하겠습니다.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라는 나라를 무너뜨리며 왕이 되었으나 가장 가까운 자기 다섯째 아들 <이방원>에게는 무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이방원>이는 자기 아버지의 아들이자 자신의 형제들을 거의 다 죽이고, 친인척까지 많이 죽였습니다. <태조 이성계>에게 적군은 <고려의 잔재>가 아니라 바로 아들 <이방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선 태조 이성계>는 왕위에 겨우 7년정도 있었을 뿐 <이방원>이를 죽이지 못하고 둘째 아들에게 왕위를 내주고,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를 적으로 보며 유랑시위를 하게 되었지요. [''백로주 유원지' 조망] 12:40 <거사리>를 23분 가량 통과하면 우측에 <포천천>이 보이며 건너편에 <백로주유원지>도 보입니다. 이 근처에도 대규모 펜션이 여럿 있더군요. "함흥차사 咸興差使" 이야기 계속 1. 태조의 첫번째 유랑 시위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대를 이어 영구집권 할듯 했던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의 형제살생에 환멸을 느끼고, <조선>을 개국하고 고작 7년여만에 왕위를 둘째 아들 <정종>에게 물려주고 <오대산>으로 들어가 세상사를 잊고 조용히 살고자 했습니다. 어쩌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도 볼수 있으며, 무척 낭만적인 철학자 같은 느낌도 줍니다. 왕위를 물려 받은 <정종>은 수도를 <한양>에서 다시 <개경>으로 옮기며 권토중래 했지만 <이방원>의 위협에 즉위 3년여만에 자기 셋째 동생 <이방원>에게 다시 왕위를 물려주고 아버지와 같이 상왕으로 물러나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히 살았습니다. 그래서 <세종>때 까지 오래 살수 있었습니다. <정종>이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 주자 이틀만에 <태조 이성계>는 <이방원>에게 다시 <한양>으로 천도 할것을 요구하며, 요구를 받아 들이자 어찌된 일인지 유랑 시위를 풀고 <개경>으로 돌아 갑니다. <이방원>이를 인정 했다는둥 여러 설이 있습니다. ['영북면' 방향 조망] 오늘의 종점인 <영북면 양문리>가 조망되기 시작하고 15분 정도 진행하면... "함흥차사 咸興差使" 이야기 계속 2. 두번째 유랑 시위 <개경>으로 돌아 온 <태조 이성계>는 다시 울분이 치솟아 올랐는지 20여일만에 또 다시 <유랑 시위>를 떠났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방원>이 이 놈을 인간으로 볼수 가 없었던게죠. 이번엔 <금강산>으로 들어 가서 <유랑 시위>를 했습니다. <이방원>이는 즉시 <도승지 박석명>으로 하여금 <태조>의 안부를 묻기 위해 그를 급파합니다. 첫번째 <차사 差使>가 되겠습니다. 첫번째 특사인 <도승지 박석명>이 <금강산>에 도착했을 때엔 <태조>는 <금강산>을 거쳐 <함경도 안변>에 있었으므로 <안변>까지 가서 <태조>를 문안합니다. ('안변 安邊'은 '원산'과 '통천' 사이에 있는 고을인데 '원산'과 가까운 곳) 그는 <태종>의 걱정을 <태조>에게 전하였으나 <태조>는 완강하게 여기서 살겠노라 고집합니다. 첫번째 차사는 <함흥차사>가 아니라 <안변차사>인 셈이죠. 돌아 온 <박석명>으로 부터 보고를 받은 <태종>은 더 강한 특사를 보냄니다. <태조>가 아끼던 신하이자 <태조 이성계>의 절친이었던 영의정 <성석린>을 <안변>으로 파견합니다. <성석린>은 <포천> 출신으로 <이성계>와 함께 쿠데타를 함께한 절친이었습니다. <성석린선생 묘>는 여기서 가까운 <포천시 신북면 고일리>에 있는데 <포천 향토문화유적 20호>로 지정되 있는 <포천>의 자랑이라고도 합니다. 두번째 특사도 <함흥차사>가 아닌 <안변차사>인 셈입니다. <성석린>은 당시 민심이 흉흉함을 들어 환도를 요청하였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즐거웠던 <태조>는 둘이서 바닷가 정자에 올라 바둑도 두며 회포를 풀며 다정하게 놀다가 요청을 수락하며 <성석린>과 함께 <한양>으로 돌아 왔습니다. (<성석린>이 <태조>를 설득하는 방법등에 대한 이야기는 '연려실기술'에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에 너무 기뻤던 <태종>은 <태조>를 위해 잔치를 열며, 큰 공을 세웠던 <성석린>에게 말 한필 을 내려주며, 공을 치하하였습니다. <함흥차사>가 죽어 못 돌아 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화려한 환영을 받으며 돌아 온 것입니다. ['양문IC교' 조망] [다리밑] 12:55 <37번국도>가 지나는 <양문IC교> 밑에 도착하면 <경흥길 안내판>이 있습니다. 또한 추억의 <명성지맥>이 더욱 윤곽을 보여주고.... 종점인 <영중농협>까지 1.4km만 가면 되겠군요. "함흥차사 咸興差使" 이야기 계속 3. 세번째 유랑 시위 <안변>에서 돌아 온 <태조>는 <이방원>이를 직접 보니 다시 울분이 치솟아 올랐는가 봅니다. 그래서 다시 세번째 <유랑시위>에 들어 갑니다. 기록에는 간곳이 <소요산>으로 나옵니다만, 현재의 <양주 회암사>로 간 것으로 보입니다. <태종>은 <성석린> 등과 함께 추운겨울, <회암사>로 직접 행차하여 아버지 <태조>를 뵈옵고, 오랜 기간 환도를 주청하였지만, <태조>는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태조>의 최측근이었던 '동북면 도순무사' <박만>이 특사로 파견되어 <태조>에게 돌아오실 것을 눈물로 간청하니 그때서야 환궁을 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죽어 돌아 오지 않는 <함릉차사>가 아니라 살아 돌아 온 <양주차사>였던거죠. <양주>에서 장장 130여일이라는 '가출'은 이로서 중단하게 된 것입니다. 130여일간 <태종>은 아버지 <태조>가 상왕으로서 정무에 소외된 것을 위로하기 위해 일부 정승을 <양주>로 보내어 상왕의 결재를 맡도록 조치하고, 자신이 장기간 그곳에 머물며 상왕을 설득할 때에 신하들이 결재를 받으러 장기간 그곳에 파견되어 마치 정부가 그곳으로 옮긴 것과 같다하여, 그곳의 지명이 오늘날 "의정부(議政府)"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예전엔 <의정부><동두천>도 <양주>에 속한 고을이었으니... ['거사교' 조망] 이어서 <거사교>가 나타나며, 다음 구간에 진행할 <운산리고개>가 <불무산>과 <보장산> 사이에서 어서 오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함흥차사 咸興差使" 이야기 계속 4. 네번째 유랑 시위 환궁 두달만에 다시 분노는 치솟아 오른 <태조>는 다시 <양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명분에 밀려 두달만에 다시 환궁했고... ['거사교' 통과] 1:00 <거사교>를 통과 하여 건너편 둑방길로 가면... "함흥차사 咸興差使" 이야기 계속 5. 다섯번째 유랑 시위......"조사위의 난" <태조>는 또다시 다섯번째 가출을 감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 가출은 지난 여러차례의 가출에 비해 다른 성격을 띄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두번째 부인이자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이며 세자로 책봉 됬던 <방석>의 어머니인 <신덕왕후 강씨>의 외족이 되는 "안변부사 조사의 趙思義"가 <태조>의 고향이자 근거지인 <함경도>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신덕왕후>와 <세자 방석>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이었습니다. <趙思義>이라는 이름도 당시 상황에 절묘하게 맞아 떨어 집니다. ㅎ <안변부사 조사의 趙思義>는 주변 수령과 주변 여진족들을 회유하여 1만여명의 군사로 반란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바로 <조사의 무리>가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을때 즈음에 <태조>는 다섯번째 가출을 하여 <함흥지역>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함경도 동북면>의 급박한 정세와 아버지 태상왕의 <함흥행>을 보고받은 <태종>은 <상호군 박순>을 <함경도 동북면>으로 급히 파견하여 <조사의>의 군대에 회유된 그 지역 수령들을 설득하게 하였으나, 도리어 반란군에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바로 이 <박순>의 죽음이 <함흥차사>의 잘못된 고사성어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입니다. 즉 <박순>은 <태조 이성계>에게 보내어진 <차사>가 아니라 반란군을 회유하라는 어명을 받은 <회유사>였고, 그를 죽인 것은 <이성계>가 아니라 반란군 <조사의의 군사>였습니다. 한편, 당시 <태조>가 있었던 <함흥>은 <조사의>의 반란군에 접수당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태종실록>을 비롯한 조선의 正史에는 조선왕조 최초의 반란인 <조사의의 난>이 당시 상황에 비해서는 아주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고, <태조 이성계>와 <조사의>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습니다. 이는 분명히 <태조>가 <조사의의 난>과 연관이 되어있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사의>가 난을 일으킬 시점에 <함흥>으로 행차한 <태조 이성계>의 행동은 분명, 의혹이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조사의의 반군> 진영에는 <태조 이성계>가 있었을 것이고, <조사의의 반군>은 반란의 명분을 얻기 위해서라도 <이성계>를 모실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태종 이방원>이는 다시 특사를 보내는데 이번엔 <내관 노희봉>을 <함흥>으로 보냈습니다. <노희봉>은 <태조>의 안부를 묻기 위해 떠난 후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이도 희생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분명히 <태조 이성계>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조사의의 반군>에 희생되었을 것입니다. <조사의의 반군>은 <이천우 군대>를 격파하고 승승장구 <평양>으로 진군하였으나, <평양>에서 정부군에게 궤멸당하며 <조사의의 난>은 평정되고 맙니다. 결국 <태조 이성계>는 영원한 동지 <무학대사>의 설득에 의해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기록되 있지만 <조사의의 난>이 실패하면서 갈곳을 잃어 돌아 오지 않을수 없었을 것입니다. <무학대사>의 설득도 있었겠지만 상황이 어쩔수 없었다는게 대부분 학자들의 분석입니다. ['뻐꾹천교'] 1:08 바로 앞에는 <뻐꾹천교>라는 이름의 다리가 있고, 좌측 <포천천>에는 <은현교>가 보입니다. 다음 구간에서 저 <은현교>를 건너게 되겠습니다. "함흥차사 咸興差使" 이야기 결론 <태조 이성계>는 <함흥>으로 오는 <차사>들을 단 한명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희생당한 두명은 <태조 이성계>의 명령으로 희생당한 것이 아니라 반란군 <조사의의 군사>에 의해 희생당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함흥차사 咸興差使"에 대한 옛이야기는 아마도 <태종>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뭇사람들이 살을 붙여 만든 창작품에 지나지 않은 것이란게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확실합니다. 더더욱 <김진명 작가>는 그의 책에서 <함흥차사>는 <태종 이방원>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조사의의 난>의 우두머리가 아버지 <태조 이성계>이므로 그 반란군 속으로 가면 반드시 죽으니 우리편은 어느 누구도 <함흥>으로 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이방원의 경고""함흥으로 가면 죽어 돌아 오지 못한다"라는 "함흥차사 咸興差使"이며 글자와는 관계없는 "경고"를 부여 한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 <태조 이성계>에게 살해 당한 <함흥차사>는 단 한명도 없었으니.... ['낙귀정지' 조망] <네이버 지도>에는 <낙귀정>이 있었던 자리가 건너편이라고 표기 하는데 정확치 않은듯 하고 실제 <낙귀정터>는 다음 구간에서 확인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43번국도' 영북면 양문리 중심가] 1:13 <뻐꾹천>을 따라 <43번국도>로 다시 나가면 <뻐꾹1교>를 만나 건너고 <영북면 양문리> 중심거리를 잠시 진행하면.... ['영북논협' 앞 '양문1리(터미널) 버스정류장'] 1:17 <영북농협> 앞에 <경흥길 6-1코스 종점>인 <양문1리(터미널)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경흥길 7코스> 출발 안내판은 버스정류장 뒤에 붙어 있어 여기선 보이지 않더군요. 오늘 걸은 거리는 11.77km였으며 3시간이 걸렸습니다. 이곳 버스정류장에서 <1386번 직행버스>를 타고 <도봉산역>으로 가서 전철로 환승하여 귀가 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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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경흥길』
 『제5길 반월산성길 : 포천시청-청성산-신북면사무소』
  "청성산 반월산성을 답사하다"


  ['제5길 반월산성길 실트랙']              
  <경기옛길-경흥길 제5길>은 <포천시청>에서 출발하여 <청성산 반월산성>을 오르고
  <신북면행정복지센타>까지 가는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입니다.


  ['사청앞 버스정류장']              10:07        
  2022년 2월 17일 (수)  맑음       
  "경기옛길-경흥길 제5길 반월산성길"의 정식 출발지는 <포천시외버스터미널>입니다만
  교통편의를 위해 <3006번 광역버스 정류장>인 "포천시청앞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합니다.
  *<잠실광역환승센타> 25번gate에서 <3006번 광역버스>를 타고 55분이 걸려 이곳에 내렸습니다.
  <잠실>에서 <포천 송우리>까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무정차로 운행하기에 빠르고 편리했습니다.


  ['신읍삼거리']             10:08~10:15     
  <시청버스정류장>에서 직진하면 바로 <신읍사거리>를 만나는데 
  이름에서부터 이 거리는 새로 만들어진 중심지라고 <신읍리 新邑里>라고 하더군요.
  <구읍리 舊邑里>는 잠시후 만나는 <청성산> 남쪽 아래에 있더군요.
  그리고 이 사거리엔 <만두집>이 있습니다.
  제가 포천을 찾을 때 마다 거의 매번 이용하는 만두집인데 가격 맛 모두 괜찮다고 생각됩니다.
  만두 열개에 5,000원.  아점용으로 하나 사고...직진하면....


  ['포천시외버스터미널']               10:17~10:23          
  "포천시외버스터미널"을 만나는데 <제5코스 반월산성길>의 정식 출발지가 되겠습니다.
  터미널 승객대기소 앞에 안내판이 있고...


  ['제5코스 반월산성길' 출발지 안내판]                 
  "경흥길 제5길 반월산성길" 안내판을 참고 하고
  

  ['구한내사거리']            10:24      
  <포천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면 바로 <구한내사거리>를 만나는데 우회전 하면...


  ['한내교']                10:25         
  <포천천>을 건너는 "한내교"를 만나는데
  잠시후 올라야 할 <청성산 반월산성>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청성역사공원' 가는 길]

  ['청성역사공원' 정문]             10:38      
  <한내교>에서 13분 정도 걸려 직진하면
  "청성역사공원" 정문을 만납니다. 안으로 들어 가면...


  ['스탬프함']                      
  광장 앞 우측에 <스탬프함>이 있고, 좌측엔 <평화의 소녀>가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        
  "역사를 잊은 자에게 내일은 없다" 라고 호소하는 듯한 "평화의 소녀像"이 있고



  ['충혼탑']   
  제법 긴 계단을 올라 가면 "포천충혼탑"이 건립되 있습니다.
  <의정부시 충혼탑>과 비슷하군요.


  ['충혼탑'에서 조망]       
  <충혼탑>에서 <포천시내> 방향을 조망하고....
  "왕방산 736.7m 王方山"은 <포천>의 진산이라 할수 있죠.
  지명의 유래는 각 기관마다 다르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포천시 문화관광 홈피에는
  "신라 헌강왕 3년(872)경 도선국사가 이 곳에 머무르고 있을 때 국왕이 친히 행차, 격려하였다 해서
  왕방산이라 불리어졌고, 도선국사가 기거했던 절을 왕방사라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라고 하고
  2) 국토지리원 국토포털 지명의 유래에는
  "고려왕족 왕상인(王相人)이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정권 획득으로 말미암아 피신중에 이 산봉에서
  옛 궁성인 송도를 바라보다 투신 자살한 곳이라 하여 왕망산(王望山)으로 불리던 것이
  후에 왕방산(王方山)으로 불리우고 있음."이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3) <왕방산> 정상 안내판에는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한양으로 돌아 오는 중에 '왕방사'에 머물러 '왕이 방문한 산'이라는 의미로
  王訪山이라고 불리웠졌다는 설이 있다"라고....


  ['행운의 종']                 
  <충혼탑> 우측 옆에는 "幸運의 鐘"이 있으며


  ['반월각' 가는 길]            10:44      
  <행운의 종> 앞에 이정표와 함께 <최익현선생> 안내판이 있습니다.
  또한 <청성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되겠습니다.


  ['최익현선생' 안내문]           
  <최익현선생>에 대해선 안내문을 참고 하고


  [돌탑 정원]                    
  좌측에는 <돌탑>들이 있는데 쉼터인지 정원인지 뭔지....
  4분여 오름길을 올라 가면....


  ['반월각']                10:49        
  "반월각 半月閣"을 만납니다.
  이곳은 "포천시민대종"이라는 鐘이 있는 종루였습니다.
  이 鐘은 무게가 15톤으로 12억5천여만원을 들였답니다.


  [서쪽 조망]                 
  서쪽을 바라보니 지나온 <축석령>과 <천보산맥>이 한눈에 조망되고
  <한북정맥> 산줄기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군요.


  ['반월각' 앞 광장]                         
  <반월각> 앞 광장으로 나가 건너편으로 가면....


  ['반월산성' 가는 길 입구]

  ['포천 600년 기념탑']                      
  "포천 600년 기념탑"이 있는데
  100년 후인 2113년 5월 13일에 개봉 할 <타임캡슐>을 매장해 놨다는군요.
  이 기념탑은 2013년 <서장원 포천시장>이 건립했다는데, 2016년 7월에 '여성 성추행'으로
  징역10개월 집행유예2년을 대법원으로 부터 확정 선고를 받고 불명예 퇴진했다고...


  [기념탑에서 바라보는 '반월각']             10:54       
  기념탑에서 <반월각>을 뒤돌아 보고

 
  [오름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8분여 올라 가면....
  

  ['반월산성' 조망]            11:02      
  <청성산> 정상부에 있는 "반월산성 半月山城"이 나타 납니다.
 

  ['남문' 앞]               10:03    
  먼저 <반월산성 남문> 앞에 도착하는데, 우측 바로 앞이 <남문>인데 <남문>으로 올라 가지 않고,
  여기서 좌측 <북문>으로 돌아 올라 가라고 하네요.
  좌측으로  돌아 가면....


  ['북문' 방향 성곽]                  
  <퇴뫼식 성곽>을 따라 <북문>으로 갑니다.
  *<퇴뫼식 성곽>이란?
  산봉우리 정상을 중심으로 머리띠를 두른 것처럼 축성한 성곽
 

  ['북문']               11:06      
  <북문>을 통해 城안으로 들어 가면...
 

  ['북문'에서 '남문' 방향 조망]             11:08~11:20          
 성곽 아래로 돌아온 방향 위에 전망대가 있어 갔다가 돌아옵니다.


  ['포천시내' 조망]                        
  <반월산성>에서 바라보는 <왕방지맥>의 <왕방산>과 그뒤 <국사봉>입니다.
  "국사봉 754.9m 國射峰"
  우리나라에는 "국사봉"이라는 이름의 산봉우리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國士峰, 國師峰, 國寺峰, 國思峰등 한자로 쓰면 몇 종류가 되는 "국사봉"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전국의 산들을 좀 다녀 본 결과 "사격 할 射"를 사용하는 "국사봉"은 이곳이 처음입니다.
  그 사연을 알아 보니....
  조선 제7대 왕인 폐륜아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형제들까지 죽이며 왕위를 찬탈한 것에 
  대해, 그 죄를 뉘우치며 전국의 금수강산을 벗하며 名山大刹을 찾아 다녔다는데....
  자신의 고조 할아버지인 '태조 이성계'가 머무르기도 했다는 이곳 양주-포천 지역도 방문을 했답니다.
  '세조'는 사냥도 좋아해, 지난번 "천보산"에서 본 "칠봉산(어등산)"에도 올라 사냥을 하게 되었답니다.
  '사냥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어느 방향을 향하여 활을 쏘는데 이것을 "시사 示射"라고 하고,
  왕이 示射하는 것을 "국사 國射"라고 한답니다.
  "칠봉산(어등산)"에서 "세조"가 지금의 이 산을 향하여 "示射"를 하여 사냥 시작을 알렸다고
  이 산봉우리가 "국사봉 國射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하죠? ㅎㅎ
  사실 이 "국사봉"은 "왕방산"에 속하는 한 봉우리이지만, 
  높이는 "왕방산 736.4m"보다 더 높은 "754.9m"입니다.
  '6.25전쟁' 이후 미군2사단이 저 산 근처 '동두천'에 주둔하는 바람에 "국사봉"은 미군 통신부대가 
  점령하여 일반인들의 출입이 오랜동안 금지 되어 있다가 미군2사단이 '평택'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제가 <왕방지맥>을 종주하며 "국사봉"을 오를수 있게 되었던 것이죠.
  자세한 사항은 별첨한 <왕방지맥 두번째 산행기>를 참고 하면 <왕방산>과 <국사봉>의 정상부를
  자세히 볼수 있겠습니다.


  ['청성산 정상' 조망]                               
  전망대에서 <청성산 정상> 방향을 바라보고
  먼저 우측에 있는 <남문>부터 둘러 보고 <토광지>를 경유하여 정상으로 갑니다.


  ['남문']                11:21     
  "반월산성 남문"
  城門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군요.


  [반월산성 안내문]          
  <반월산성>은 <사적 제403호>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에 잘 나와 있고...


  [토광지']             11:23       
  "토광지 土壙址"
  <토광 土壙>은 "음식물 등을 저장하는 창고"랍니다.
  냉장고가 없던 옛날엔 땅 쏙에 음식물등을 저장했죠.
  이 산성엔 이런 <토광>이 총27곳이 있었다고 합니다.



  ['청성산 정상부']             11:26        
  <청성산 정상부>로 올라 가면 이 산성의 역사를 알리는 안내판들이 있고


  ['장대지']            11:28       
  이어서 "장대지 將臺址"를 만나는데 "청성산 285.1m 靑城山" 정상입니다.
  山城에는 대부분 장군의 지휘소인 <장대>가 있는데 여기도 정상부에 있었군요.
  제일 높은 곳이라 조망이 좋아 조망을 하고 갑니다.


  [북쪽 조망]              
  먼저 북쪽을 바라보면 오늘 답사의 종점인 <신북면행정복지센타>가 있는 곳이 조망됩니다.
  사진의 정중앙에 김이 나오는 큰 굴둑이 있는 곳이 <포천GS그린에너지>라는 열병합발전소인데
  저 근처가 <신북면>이 되겠고 <신북면행정복지센타>가 있었습니다.


  [북동쪽 조망]                    
  북동쪽으로 <천주산 天株山 423.4m>이 조망되는데 
  현재 채석을 하고 있는 <채석장>이 흉뮬스럽게 보입니다.
  <포천아트밸리>는 <천주산 정상> 앞 산줄기 너머에 있어 여기선 보이지 않고...
  아랫마을은 <하성북리 下城北里>라고 하는데 <반월산성>의 북쪽 아랫마을이라고...


  [동쪽 조망]                     
  동쪽으로는 <한북정맥>의 "운악산 雲岳山 934.7m"이 조망되고 <수원산>으로 이어 집니다.
 

               
             ['애기당지']                 11:32     
             <장대지> 옆에는 "애기당지"가 있는데
             <반월산성>에 가면 꼭 봐야하는 시설이랍니다.
 

 [동남쪽 조망]              
  <애기당지>에서 동쪽 성곽을 따라 내려 가면
  <한북정맥>의 "수원산 水源山 697m"이 추억 속에 아물거리고...
 

  [동문]             11:35      
  이어서 <동문>을 지나면...


  [건물지]         
  여러 건물이 있었다는 <건물지>가 <애기당> 남쪽 아래에 있습니다.


  [남쪽 성곽]

  [느티나무]                 11:39       
  남쪽 성곽을 따라 내려 가면 보호수인 30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반월산성>을 벗어 나게 됩니다.



  [내림길]        
  시내에서 <반월산성> 정상으로 연결되는 남쪽 도로를 따라 10여분 내려 가면....


  [갈림길]                  11:48       
  <구읍리 생활체육시설>이 있는 곳에서 <경흥길>은 좌측 계단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앞에 보이는 마을이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라는데
  <포천>의 옛 이름이 <청성>이었으며 관아와 향교등 주요 관청이 이곳에 있었었답니다.
  그래서 현재는 이 지역을 "군내면 구읍리 郡內面 舊邑里"라고 한다는군요.
  그러니까 조선시대에는 <현감 縣監>이 있었고, 근대엔 <포천군청>이 이곳에 있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성산 반월산성>이 이 고을의 핵심 중심 城이었다고


  ['청성산 둘레길']                 
  <경흥길>과 함께하는 <청성산둘레길>은 마을로 내려 가지 않고 산허리를 돌아 갑니다.
  10여분 진행하면....


  ['포천향교' 조망]                    
  우측 아래에 <포천향교>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포천향교 갈림길']                11:57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 <향교 방향>을 바라보면...


  ['포천향교']                               
  "포천향교"는 개보수공사로 온통 가림막을 치고 있는데 매우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향교>는 대체로 <관아> 옆에 있었기에 이 근처가 옛날엔 <포천의 중심지>였슴이 확실하고
 

  ['구읍리 석불' 조망]                       
  삼거리에서 진향방향을 바라보면 <구읍리 석불입상>이 보입니다.


  ['구읍리 석불 입상']                    12:00

  [안내문]                      
  "구읍리 석북입상 舊邑里 石佛立像"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에 잘 나와 있습니다.




  ['청성산 둘레길']                               
  <향교>에서부터 <백구> 한마리가 나타나 길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저는 어찌 된 일인지 가는 곳마다 개들의 한영을 받곤 하죠. ㅎㅎ 개팔자인가봐요~ ㅎ
  23분 정도 <청선산둘레길>을 진행하면....


  ['약수터' 앞 갈림길]                12:23     
  <약수터> 앞 삼거리를 만납니다.


  ['약수터']               
  <약수터>에는 맑은 물이 제법 나오고 있었는데
  백구가 자주 찾아와 마시는지 먼저 약숫물을 많이 먹더군요.
  백구와는 여기서 헤어지고...


  [내림길]

  ['하성북리']            
  <하성북리> 마을로 내려 가니 이번엔 요런 강아지들이 다시 반겨 줍니다. ㅎ
  반겨 주는 것들은 개들 뿐....ㅎ ^*^


  ['벧엘기도원' 앞]              12:38      
  마을을 통과해 나가면 <벧엘기도원>을 만나는데,  여기서 뒤돌아 보면....


  [뒤돌아 본 '청성산']              
  지나온 <청성산 반원산성>이 전체적으로 조망됩니다.
  <옛 경흥길>이 <한양>과 <함경북도 끝 경흥>을 이어주는 길의 중요 포인트였다는 것을 알수 있고


  ['골말교']               12:40     
  이어서 <골말교>라는 다리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회전 해야 하고


  ['개천']                     
  <포천천>으로 가는 개천을 따라 10여분 진행하면...
 

  ['43번국도']                     12:51
  
  ['고속도로 굴다리' 통과]          12:52         
  <43번국도>를 다시 만나며
  이어서 우측에 있는 <포천-구리 고속도로>의 굴다리를 통과하여 좌회전하면...
 

 [고속도로 옆길]                      
  <포천-구리 고속도로> 옆을 15분 정도 진행 합니다.
 

  ['구신북대로앞교차로']            1:06       
  그러면 <고속도로 종점>인 <구신북대교앞교차로>를 만나는데 <'K-Mart'>가 있는 곳입니다.
  여기선 길을 건너 가서....


  ['포천천'으로 나가는 길]         1:08      
  보행로가 없는 도로를 50m 정도 가면 길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냥 직진하는게 좋겠더군요. 
  <경흥길>은 오리지날이 <43번국도>인데 걷기코스로 뺑뺑이를 돌리는 것이므로


  ['신북면 기지리']

  ['포천천']                        
  여기서부턴 <신북면 기지리>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포천천>을 만나 <포천천> 뚝방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신북대교' 동쪽끝]            1:18        
  <신북대교>의 동쪽 끝머리에서 도로로 올라 가야 하고


  ['신북대교삼거리']                       
  도로로 올라 가면 <신북대교삼거리>가 있는데 좌측으로 길을 건너


  ['43번국도']                 
  <43번국도>에서 좌측 <포천현대자동차공업사>로 들어 가야 하더구요.
  여기서 길 찾는데 좀 헤메고...
  여기서도 그냥 직진해 가는게 더 즐거운 <경흥길>이 될듯하니 후답자들은 참고하시고...
  <경기문화원>이 정해 놓은 루트만을 따라 가는게 <경흥길 정답>이 아닙니다.
  <옛 경흥길>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있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 느끼며 가는게
  진정한 <경흥길>을 걷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포천현대자동차공업사']              1:25        
  <포천현대자동차공업사> 안으로 들어 가서


  ['포천천 둑방길']

  ['평안산업' 앞]                   1:36

  ['신북면행정복지센타' 조망]            1:39                
  다시 <포천천 뚝방길>을 진행하여 길이 끊기는 곳에서 우회전 하면 <신북면행정복지센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신북면행정복지센타' 버스정류장]                1:44               
  다시 <43번국도>로 나가면 <신북면행정복지센타> 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지나가서 뒤돌아 보면...
  **<도봉산역>으로 가는 <1386번 광역버스>는 이곳에서 타야 합니다.


  ['6코스 출발지 안내판' 위치]             

  ['6코스출발지 안내판']                 
  버스정류장 뒤에 <제6길 만세교길 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관심 가지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우니 유의 해야 겠습니다.


  ['신북면사무소']                1:45       
  <신북면사무소>는 공사중이고...


  ['신북면사무소앞 삼거리']                 
  <잠실광역환승센타>로 가는 <3006번 광역버스>를 타려면 앞의 <신북면사무소앞 교차로>에서
  좌측으로 가야하는데, 때마침 <3006번>이 나오고 있군요.


  ['한내가족처럼요양병원']  

  ['신북체육문화센타' 버스정류장]            1:46~2:09        
   <3006번>은 이곳 <신북체육문화센타 정류장>에서 타야 합니다.
   15분~20분 배차간격이었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GPS 측정으로 11.15km였으며, 3시간 40분이 걸렸습니다.
 * 별첨 : 
  "<왕방지맥 두번째 산행기>" 여기 클릭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경기옛길-경흥길』
    『제4길 파발막길 : 소흘행정복지센타-포천시청』
     "전계대원군을 찾아 보다"


  [제4길 천보산길 실트랙']              
  <경기옛길-경흥길 제4길>은 <소흘읍행정복지센타>에서 출발하여 <포천천 수변길>을 거닐어
  <포천시청>까지 가는 다소 단조로운 길이었습니다.


  ['제4길 출발지]                            

  [안내문]                        
  2022년 2월 13일 (일)  흐림      
  "경기옛길-경흥길 제4길 파발막길"의 출발지는 <소흘읍사무소>인 "소흘행정복지센타"입니다.



  ['소흘행정복지센타']                   
  <제4길 파발막길>의 출발지와 <스탬프함>은 <소흘읍자치센타> 뒤에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출발지>에서 스탬프를 찍고, 다시 <소흘읍사무소> 정문으로 돌아 나와 
  <43번국도>로 잠시 나가면...


  ['43번국도']

  [소흘 홈플러스' 앞]                           
  <전두환 전대통령>이 도로 확포장 공사를 하고 자기 맘대로 <호국로>라고 이름 붙인 <43번국도>를
  만나는데 좌회전하여  <송우리 중심가> 방향으로 들어 가면 <홈플러스> 앞을 지나고...


  ['송우리 중심상가 거리']

  ['송우시장 사거리']                  
  <송우리 중심상가지역>으로 들어 가면 <송우시장 사거리>를 만나는데
  

  ['사거리 쉼터'] 

  ['송우시장' 안내문]                   
  <송우사거리>에는 조그마한 공원이 조성 되 있고, 몇몇 조형물이 있으며
  <송우시장>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주공2단지 석향마을' 정문]                10:00   
  계속해서 직진하면 <송우리시내버스터미널>을 지나고 
  이어서 <주공2단지 석향마을 아파트> 정문에 도착합니다.
  지난 <3코스 축석고갯길>을 여기까지 진행 했었기에 오늘은 실제 이곳부터 답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우교']                  10:04         
  <주공2단지> 정문에서 200m 정도 직진하면 "송우교 松隅橋"를 만납니다.
  이 다리를 건너 "q 턴"을 하여 개천길로 내려 가야 하는데


  ['송우교' 밑 수변길 입구]                      
  이런 방법으로 "q턴"하여 개천으로 내려 가면


  ['송우천']        
  <송우천 松隅川>을 만나 수변길을 잠시 진행하고


  ['포천천-송우천' 합수부]                 10:08    
  이어서 "포천천 捕川川"을 만나는데, 
  <4코스 파발막길>은 <포천천 수변길>을 따라 가는 단순한 코스가 되겠습니다.


  ['포천천']       
  이어서 하천을 건너 건너편 수변길을 진행하게 되며


  ['가산교']               10:12             
  바로 <가산교 加山橋>를 만나 통과 하는데....
  여기서 우측 <가산면 금현리>로 가면 "백사 이항복선생 묘"가 있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장군>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용하게 하는데 결정적 역활을 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신 중에 한분이어서 47세에 영의정에 오른 분이죠.
  <오성과 한음>이라는 스토리 메이크로도 유명하신 분 입니다만....
  성품이 곧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서인에 반대하다가 
  결국 <철령> 너머 <북청>으로 유배가서 외롭고 고단했던 생을 마감했습니다.
  <철령>을 넘어 가며 유배길에서 쓴 그의 詩는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심금을 울림니다.
                  《철령 높은 봉에》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를 비삼아 띄었다가
                  님계신 구중심처에 뿌려 본들 어떠리
  <고신원루 孤臣寃淚>는 임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신하의 원통한 눈물을 의미하죠. 
  선생이 <북청>으로 유배를 간 길이 바로 <경흥길>이였습니다.
  <한양>에서 고향인 <포천>을 지나 <백두대간> 고갯마루인 <철령>을 너머 <북청>으로 갔으니


  ['포천천']

  ['왕방지맥' 조망]                  
  <가산교>를 지나면 <왕방지맥>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준 <왕방지맥>의 대표산인 <왕방산>이 
  조망되기 시작하며, 추억의 <오지재>가 분명하게 보입니다.
  <오지재>는 <포천>과 <동두천>을 이어주는 고개인데, 지금은 터널이 뚫려 있어 고개를 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지맥꾼들이 주로 이용하더군요.


  ['선단 요금소']                 10:29           
  20여분 수변길을 거닐며는 <포천-구리 고속도로>의 <선단 톨게이트>가 보이고


  ['전계대원군 묘' 조망]             10:30         
  다시 <왕방산> 방향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데....
  <경흥길4코스>는 <포천천 수변길> 만을 걷는 단조로운 길이어서
  그동안 한번은 찾아 보고 싶었던 "전계대원군 묘"를 다녀 오도록 합니다.
  <전계대원군 묘>는 <오지재>로 올라 가는 입구 마을 <왕방산> 끝자락에 있습니다.


  ['선단IC교']  

  [계단]                  10:35          
  <선단 톨게이트>로 연결하는 <선단IC교>라는 다리 밑에 계단이 있더군요.
  이 계단을 올라 가서 <전계대원군묘>로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 올 예정입니다.



  ['장승거리 사거리']              10:37      
  <선단IC교>에서 <43번국도>로 약100m 정도 나가면
  <43번국도>에 있는 "장승거리 사거리"를 만나는데 <동두천> 방향으로 직진하여
  사진 속에 표시한 화살표 지점으로 가면....


  ['선단4통.장승거리' 버스정류장]            10:40    
  <선단4통.장승거리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전계대원군묘>까지는 약2km로 왕복 4km 정도 되지만 시간을 아끼기 위해 버스를 탑니다.
  시내버스는 비교적 자주 있더군요. 저는 운 좋게 바로 버스를 탈수 있었고....
  버스정류장은 4개 정도를 지나는데.....4분 정도 버스를 타면


  ['선단5통마을회관' 앞 회전교차로]            10:46      
  <선단5통마을회관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리고
  이곳에는 <회전교차로>가 있는데 이 교차로에서 우측을 바라보면....


  [고가도로]               
  <오지재터널>로 가는 새로 생긴 고가도로가 보입니다.
  고가 도로 밑으로 가면...


  ['전계대원군묘' 입구]              10:48        
  그 동안 한번은 꼭 가 보고 싶었던 <전계대원군묘> 입구가 고가도로 밑에 있습니다.
  이 묘는 <포천시 향토유적 제1호>라고 알리고 있군요.
  

  ['祀宇']      
  <조선왕조>엔 네명의 <대원군 大元君>이 있었죠.
  <대원군 大元君>이라는 호칭에 대해 먼저 알아 보면.... 
  왕조국가에선 왕위를 세습하기에 아버지가 먼저 왕이 되고 다음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데
  왕이 아들을 못 낳은 경우가 여러번 있어, 다른 형제나 왕족 중에서 정치적으로 선택한 사람을
  王으로 앉히는 경우가 있었던 것입니다.
  간단하게 얘기 하자면
  "王의 아버지" 중에 "아버지는 왕위에 오를 자격이 없어 왕이 되지 못했는데. 
  아들이 어찌어찌 정치적으로 王이 된 경우의 아버지를 <대원군>이라 호칭 하죠.
  <대원위대감>이라고도 했고...."왕이 되지 못한 왕의 아버지"
  조선왕조 5백년 역사상 <대원군>은 모두 4명입니다.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과, 
  조선 역사상 두번째의 반정인 쿠데타를 통해 왕이 된 <인조>의 아버지 <정원대원군>, 
  그리고 이곳에 모셔진 <철종>의 아버지 <전계대원군>, 
  마지막으로 <고종황제>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중 <정원대원군>은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욕심을 부려 자신의 아버지를 <원종>으로 추존하여
  왕의 대열로 억지로 끌여들여 왕릉을 조성하니 이 왕릉이 바로 요즘 <문화재청>과 <아파트 건설사>,
  그리고 <인천시>가 서로 잘잘못을 따지며 옥신각신하고 있는 <김포>의 <장릉>입니다.
  그래서 실제 <대원군>은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과 
  <강화도령-철종>의 아버지인 <전계대원군>, 그리고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세명입니다.
  이들 중에 <흥선대원군>만이 살아서 <대원군> 대우를 받았고, 나머지는 모두 죽은 후에 <대원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흥선대원군-이하응>을 주로 <대원군>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죠.
 

  [안내문]

  ['신도비']                   
  "전계대원군 全溪大院君" (1785년 4월 29일~1841년 12월 14일)은
  한마디로 <조선 제26대 철종>의 생부입니다.
  더 알기 쉽게 말하면 <강화도령-원범이>의 어비지입니다.
  <전계대원군>이나 <흥선대원군>은 모두 <사도세자>로 부터 시작됩니다.
  <사도세자>의 아들 중엔 정실부인 <혜경궁 홍씨>에게서 태어난  <정조>가 왕위에 올랐지만
  이 경우도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했는데 아들이 왕이 된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엔 <사도세자>가 <영조>의 정식 아들이었기에 <정조>가 아버지를 <장조>로 
  추존하여 왕위에 올려 놨기에 <사도세자>를 <대원군>이라 하지 않는 것입니다.


  ['祀宇']                  
  이곳 祀宇는 <대원군> 권위에 맞게 규모가 상당합니다.
  현재 이 묘소를 관리하며 이 집에 사는 사람이 있더군요.
 

  ['祀堂']                     
  제사를 지내는 사당에는 특이하게 문인석이 배향하고 있고, 장명등도 있습니다.
  일빈적으로 문인석과 장명등은 묘 앞에 있는데....
 


  ['전계대원군 묘']                         
  "전계대원군 全溪大院君"
  묘비에는 "유명조선국 전계대원군 묘"
              "완양부대부인 전주최씨"라고 쓰여 있는데 <철종의 어필>이라고 합니다.
  먼저 제가 정리한 <전계대원군>의 족보를 보면
  <철종>은 도저히 왕위를 계승 할 위치에 있지 못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족보를 보면 <24대 헌종>까지는 왕의 아들들이 왕위를 계승 했는데
  <24대 헌종>이 후사 없이 죽는 바람에 그 이후 부터 문제가 발생 했습니다.
  <24대 헌종>의 아들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안동김씨 세도정치세력>이 쬐끔만 똑똑한 왕족이
  있으면 모두 죽이며, 왕족 혈통의 씨를 말렸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언군>의 아들이 <전계대원군>이고 그의 서자가 <원범이>였습니다.
  또한 <은언군>의 동생인 <은신군>의 아들이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이고
  <흥선대원군>의 아들이 <고종>이니 모두 <사도세자>의 혈통을 잇지만 명색만 왕족이었던게죠.
  왕위를 계승 시킬 왕족이 씨가 말랐지만 그래도 허수아비 왕은 내세워야 했던 <안동김씨 세도세력>은
  왕족은 왕족이지만 부모형제 모두 죽임을 당하고 홀로 농부로 나뭇꾼으로 강화도에 살고 있던 
  그 유명한 <강화도령-원범이>를 하루 아침에 왕으로 등극시키니 그가 바로 <25대 철종>이고
  이미 역모의 누명 속에서 천주교를 믿는다고 처형 당한 아버지가 졸지에 <대원군>이 되니
  그가 바로 이 묘의 주인인 <전계대원군>인 것입니다.


  [조망]                        
  <사도세자>의 서자→<은언군>의 서자→<전계대원군>의 서자→<철종>으로 이어지는 집안은 콩가루 집안.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서 죽임을 당했고,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언군>은 역모에 휘말려 강화도에 유배 당했다가 죽고
  <은언군>의 서자인 <전계대원군>은 천주교 신자여서 처형을 당한  비극의 집안입니다.
  사실 왕족이라 할수도 없을 정도의 명색만 왕족이었으며 <안동김씨 세도가>의 희생양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안동김씨 세도세력>은 허수아비 왕을 앉혀야만 했으니 글도 모르는 까막눈 <원범이>를
  그 자신도 모르게 하루 아침에 왕위에 등극시켰습니다. 그 때 나이가 18세였고....
  글을 알면 <안동김씨세력>들에게 역모의 누명을 쓸수 있다고 아버지 <전계대원군>이 글을 가르치지
  않아 진짜 까막눈이었던 <원범이>이었답니다.
  졸지에 왕이 된 <원범이>는 술과 여색에만 포위 당해 살며 <안동김씨세력>의 바지사장 역활만 하며 
  후궁까지 대여섯명을 거닐고 아들도 여럿 낳았지만 모두 일찍 죽었는데 
  <안동김씨세력>들이 씨족을 말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답니다. 그리고 그도 33세에 폐결핵으로 죽고....
  그리하여 다시 왕이 필요 했는데 <은언군>의 동생인 <은신군>의 아들인 <남연군>에게서 태어난
  <흥선대원군>이 나타나며 그의 둘째 아들 <명복이>가 왕위에 오르니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인
  <고종>이었던 것입니다.


  ['철종' 어머니 묘 조망]                               
  위의 <전계대원군묘>에는 그의 정실부인인 <완양부대부인 전주최씨>와 합장되 있는데
  <전계대원군>의 첩이었던 <염씨>의 묘는 우측 아랫쪽에 별도로 조성되 있습니다.



  ['용성부대부인 염씨 묘']                      
  <전계대원군>의 첩이었지만 후에 <철종>이 되는 왕을 낳았으니, 평민 출신이지만 예우를 갖춰
  "용성부대부인 염씨 龍城府大夫人 廉氏"로 격상되어 별도로 묘를 만들었답니다.
  <원범이>의 어머니 묘가 되겠습니다.
  <원범이 엄마 염씨>는 공사판의 식당 (요즘말로 함빠)에서 일하던 작부였답니다.


  ['祀宇' 조망]               11:04     
  권력은 무었인가
  그 당시 서양에서는 <산업혁명>으로 부국강국으로 변모하여 대항해시대로 가고 있었는데, 
  씨족을 말리면서 까지 권력을 쥐고 호위호식하려한 <안동김씨 세도세력>들은 
  나라를 망국의 길로 몰아가고 있었으니.....조선은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선단5통마을회관' 앞 회전교차로]            11:06     
  <전계대원군묘>를 둘러 보고 다시 <선단5통마을회관>앞 회전교차로에 나오니 곧 바로 버스가 옵니다.


  ['장승거리 사거리']                 11:10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장승거리 사거리>로 돌아와 <포천천>으로 나가면...


  ['선단IC교']             11:14              
  <선단IC교>에 다시 돌아와 <포천천 수변길>을 진행합니다.



  ['후평교']             11:23    
  <포천천 수변길>을 10여분 진행하면 <후평교>를 통과하고


  ['포천천교']                11:29

  ['파발막길'의 유래]                     
  이어서 <포천천교>를 만나는데 <파발막길> 안내판이 있고
  남은 길이 6.1km라고 알려 줍니다.
 

  ['포천천 둑']               11:33   
  <포천천교>에서 둑방길로 올라 가는데  
 

 [둑방길]       
 여기서 부턴 <수변길>로 가도 되고 둑방길로 가도 됩니다.
 수변길은 좌우 조망이 없어 저는 둑방길을 이용합니다.
 

  [군부대]

  ['청성산' 조망]              
  지루한 길을 40여분 진행하면.....


  ['유일교' 앞]                12:11         
  <유1교>라는 다리를 만나는데 여기선 <수변길>로 내려 가고


  ['포천천교']                    12:16      
  <포천천교>를 지나 10여분 진행하면


  ['포천종합운동장' 조망]               12:25         
  <포천종합운동장>이 건너편에 보이며


  ['포천대교']

  ['포천대교' 통과]                12:33     
  이어서 <포천대교>를 통과하면


  ['청성산 반월산성' 조망]               12:34     
  다음 구간인 <제5길 반월산성길>의 핵심인 <반월산성>이 있는 <청성산>이 조망되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올라 가야 하더군요.


  ['포천산림조합']                      
  <포천시 산림조합>을 만나 우회전하면...


  ['포천시청' 앞 거리]

  ['포천시청']                  12:37    
  <포천시청>앞 거리를 만나고


  ['포천시청 앞 버스정류장']                  12:38
        
          ['53번버스시간표']           
  <포천시청앞> 버스정류장에서 답사를 마침니다.
  앞으로 답사 해야할 <7~8코스>를 가려면 이곳에서 <53번시내버스>를 이용하는게 편리한데
  시간표를 미리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오전 9시 20분 버스를 타면 편리 하겠습니다.
  2020년 5월5일에 <포천 한탄강주상절리길>을 답사 할때 이용한 버스인데 시간표는 변동 없군요.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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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경흥길』
    『제3길 축석고갯길 : 축석령-소흘행정복지센타』


  [제2길 천보산길 실트랙']              
  <경기옛길-경흥길> 세번째 답사코스인 <제3길 축석고갯길>의 실트랙 <국토지리원지도>입니다.
 

  ['축석령삼거리']                 9:12      
  2022년 2월 8일 (화)  맑음      
  <의정부시>와 <포천시>의 경계인 "축석삼거리"에서 답사를 시작합니다.


  ['자연 그리고 휴식']         
  <축석삼거리>는 <포천시>의 관문이라고 할수 있어 작은 공원과 조형물이 건립되 있습니다.
  "자연 그리고 휴식"이라는 조형물인데 <이종섭>이라는 작가의 작품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경흥길3코스> 안내판과 <스탬프함>은 조형물 우측 뒤에 있는데 
  <3코스> 진행방향과는 완전 다른 엉뚱한 곳에 있으니 미리 알고 가야 하겠습니다.


  ['제3길 축석고갯길' 출발지]

  [안내문]                  
  보물찾기 하는 것도 아닌데 <3코스 출발지>와 <스탬프함>을 묘한 곳에 설치해 놨습니다. ㅎ
  <경흥길>을 등지고 있으니...
  

  ['祝石']              
  이 삼거리 공원에는 보기엔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바위가 있는데
  <축석령>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준 바위가 바로 이 바위 "축석 祝石"입니다.
  <기원 할 축祝>과 <바위 석石>字를 사용하는 ...
  <효종> 때에 과거 무과에 합격하여 <주군절제도위(州郡節制都尉)>를 거쳐 <귀성부사(龜城府使)>를
  지내던 "오백주 吳伯周 1643(인조21)~1719(숙종45)"라는 사람의 효심이 깃든 바위랍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아버지 병 치료에 좋다는 <석청>을 엄동설한에 이 바위에서 구했다는 것인데...
  이 바위는 북쪽 500m나 떨어진 <천보산 중턱>에 있던 것을 여기로 옮겨 놓은 것이라 하고
  상식적으로 엄동설한에 바위에서 <석청>이 흘러 나올수도 없으나 "孝心"을 강조하기 위한
  설화라고 생각됩니다.


  ['호국로']                   
  이곳 <축성령삼거리>에 돋보이게 설치한 큰 바위가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전두환 전대통령>이 <43번국도>를 확포장 했다고 기념석을 세웠답니다.
  권위주위 시대에 쫄들이 앞다투어 아부한 흔적이라 생각되지만, 도로 확포장하는 것까지 치적이라고
  이렇게 거창한 표지석을 세운다는 발상이 과연 군부쿠데타 세력 다웁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두환 친필>이라고 하는군요.
  그리고 자기 이름이 세겨진 이런 자연홰손 바위를 보고 즐거워 했을 <전두환>......
  쿠데타로 국민을 사살한 놈이 뭔 <護國>이라고?  "호국'의 뜻이나 알고 썻을까..'호구' 같은 놈...


  ['천보산맥' 들머리 조망]      
  <경흥길3코스>의 들머리는 <43번국도> 건너편 <옛 검문소> 앞에 있습니다.


  ['옛 축석령검문소']            9:20         
  <옛 축석령 검문소>는 군시설이지만 현재 빈 건물로 남아 있는데 
  예전 <포천-철원>지역에서 군생활을 하던 분들에겐 잊을수 없는 통과의례 검문소로 기억 된다죠? ㅎ
  여기서 우측 골목으로 100m 정도 들어 가면....


  [삼거리]               9:23         
  <보광사>라는 조그만 절간 입구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 길로 올라 갑니다.
  좌측 능선이 <한북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산줄기인데 앞에 보이는 <천보산맥 능선>을 만나 좌측으로 
  이어지며, <한북정맥>에서 분기하는 <왕방지맥>은 <천보산맥>을 따라 우측으로 이어지며
  <경흥길>과 함께 하더군요.
  10여분 좌측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가면....


  [등산로 입구]             9:32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곳에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정목이 길 안쪽에 있어 지나치기 쉬우니 유의 해야 겠습니다.


  [산행 들머리]                 9:33        
  이정목 앞에는 폐 군참호가 있으며 좌측 등로로 올라 갑니다.

 
  ['오름길']             
  다시 능선길을 따라 완만한 오름길을 10여분 올라 가면....


  [천보산맥' 마루금]                9:43            
  <천보산맥 능선길>을 만나는데 <왕방지맥 마루금>이기도 합니다.
  <한북정맥>이나 <왕방지맥>은 오래전에 제가 두발로 쓴 산행기가 있습니다.
  산행기 끝에 첨부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 하시고...

 
  [오름길]                           
  완만한 오름길을 10여분 오르면....



  ['양주자이아파트1단지' 갈림길 쉼터]             9:52        
  <양주자이1단지아파트>와 연결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쉼터가 있고


  ['양주 고읍신도시' 조망]                  
  쉼터에서는 <양주시 고읍신도시>가 조망됩니다.
  앞으로도 <천보산맥> 좌측엔 <양주시 고읍신도시>가 계속 펼쳐지며 
  우측엔 <포천시 소흘읍>이 이어 집니다.

 
  ['능선길]            
  다시 능선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쉼터]             10:02           
  조금전 쉼터삼거리와 비슷한 쉼터삼거리를 다시 만나고


  [진행방향 조망]             
  진행방향으로 조망이 조금 트이는데 잠시후 오를 <활공장>이 있는 <376.2m봉>이 조망됩니다.
  저 봉우리가 오늘 코스에서 제일 높은 곳이더군요.

 
  [능선길]               
  다시 13분 정도 능선을 오르내리며 진행하면....




  ['360.3m 암봉']                10:15             
  <360.3m봉>에 도착하는데 오늘 코스에서 가장 멋진 봉우리입니다.
  

  ['376.2m봉 (할공장)' 조망]            10:18      
  <360.3m 암봉>을 지나면 최고봉인 <376.2m봉 활공장>이 가까이 다가 오며...
  20여분 더 진행하면.....
 


  ['활공장']                  10:38       
  <376.2m봉 활공장>에 도착 합니다.
  조망이 가장 좋은 곳이어서 조망을 하고 갑니다.


  [조망 1]                  
  먼저 남서쪽으로 <천보산맥>이자 <왕방지맥>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 오며
  뒤로 <수락산> <도봉산>..그리고 <북한산>까지 잘 보입니다. 사진엔 흐릿하지만...
  <천보산맥>에는 <천보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두군데 있는데, 여기선 <의정부 천보산>이 보입니다.
 

  [조망 2]                     
  서쪽으로는 <양주시 고읍신도시>가 계속 번성해 가고 있고
  <한북정맥>이 지나는 <불곡산>과 <호명산><한강봉><사패산>이 조망됩니다.
 

  [조망 3]                         
  북쪽으로는 <태조 이성계>가 <회암사>를 시찰하면서 올랐던 <어등산 御登山( 칠봉산)>이
  보이는데,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우측에는 <양주 천보산>이 있으며 <회암사>는 <천보산> 아래에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시찰한 루트는 <어등산(칠봉산)>→<천보산>을 거쳐 잠시후 만날 <어하고개>로
  하산하고 <회암사>로 갔다고 합니다.


  ['376.2m봉']                  10:39      
  <활공장> 뒤에는 "376.2m봉" 정상이 있습니다.
  <맨발님>이 부착한 <왕방지맥 표지판>이 있군요. 제가 갔었을 땐 없었는데....
  <맨발님>은 <준.희님>과 함께 우리나라 산줄기에 표지판을 부착하고 있는데 요즘 건강이 어떠 하신지


  [갈림길]                               
  <376.2m봉>에서 조금 진행하면 <어하마을>과 <어하고개> 갈림길이 있으며



  ['해룡산''왕방산' 줌인 조망]                10:45         
  이어서 <왕방지맥>이 조망되는데 <양주 천보산>과 <해룡산><왕방산>까지 보이는군요.

 
  ['어하고개'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8분여 내려 가면....


  ['어하고개 생태통로' 조망]                 10:03             
  전에는 없던 <어하고개 생태통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하고개 생태통로']                               
  <태조 이성계>가 <회암사>를 시찰하면서 <어등산(칠봉산)>과 <천보산>을 오르고 이곳에서 하산한
  고개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어하고개 御下峴"라 한답니다.
  <어하고개 생태통로>에서 <포천시> 방향을 바라보면...


  ['고모리산성' 조망]                 10:04          
  <포천시 소흘읍>과 <고모리산성>, 그리고 그 뒤로 <죽엽산>이 조망됩니다.

 
  [오름길]                 
  <어하고개>에서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10여분 올라 가면...


  ['326.4m봉']                  11:16   
  <326.4m봉>에 올라 뒤돌아 보면...
 

  [뒤돌아 본 '어하고개'와 '활공장']                  
  지나온 <어하고개>와 <활공장>이 있던 <376.2m봉>이 조망됩니다.
  둘레길이라기 보다는 등산코스라고 할수 있죠?
 

 [다음 봉우리 조망]       
  진행방향으로 다시 올라 야 할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포천 소흘읍' 조망]                   11:23                 
  <포천시 소흘읍>이 점점 윤곽을 그려내고...

 
  [능선길]                 
  15분 가량 능선길을 진행하면....


  ['죽엽산' 조망]                 11:37       
  유명한 "고모리산성"이 있는 산봉우리가 이젠 선명하게 보이는데
  <고모리산성>은 <옛 경흥길>에서 없어서는 않될 중요한 군사방어진지 였답니다.
  제 생각에는 <경기옛길-경흥길>을 저 <고모리산성>으로 연결하는게 더 좋았을 듯....
  그래야 <옛 경흥길>의 의미를 더욱 느낄수 있을테니...
  그 뒤엔 <죽엽산>이 보이는데 <한북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산줄기가 되겠습니다.
  <포천시>는 <한북정맥>과 <왕방지맥>이 둘러 싼 분지여서, 이 분지에 외부에서 흘러 들어 오는
  물은 없고, 내리는 빗물은 모두 <포천시> 정중앙을 통과하는 <포천천>으로 모여 흘러 나가며
  <영평천>과 합류하여 <임진강>으로 흘러 나갑니다.
  그리하여 <포천>이라는 지명은 "물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이 없고 외부로 흘러 나가기만 한다고
  하여 <안을 포(抱)>, <내 천(川)>字를 사용하는 이름이 되었답니다.



  ['군훈련장']                11:53     
  조망을 마치고 봉우리를 조금 내려 가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듯한 군훈련장을 지나고


  ['석문이고개']               11:54          
  이어서 "석문이고개 石門嶺"를 만나는데 
  <왕방지맥>은 직진합니다만, <경흥길>은 여기서 우측으로 하산해야 하더군요.
  이후의 <왕방지맥>이 궁금하신 분들은 첨부한 <왕방지맥 산행기>를 참고 하시고...


  ['소흘읍' 방향 내림길]                    
  이정목이 가리키는 <체육공원 방향>으로 하산합니다.

 
  [내림길]                   
  10여분 내림길을 진행하면....


  ['소흘생활체육공원']               12:03         
  "소흘읍 행활체육공원"을 만나 통과 합니다.
  좌측으로 내려 가서...


  [길조심]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하면...


  [공사중]                       
  공사중인 길을 만나고...


  [실내테니스장]

  ['인공암벽장']               12:07   
  <소흘읍>이 자랑하는 "인공암벽장"과 실내 테니스장 등 여러 시설들이 있고
 


  ['소흘체육공원' 안내문]                 
  다목적운동장 앞에는 체육공원 안내문이 있으며
  정문을 통해 나가면...


  ['체육공원' 진출입로]               12:10       
  <체육공원 진출입로>를 만나 이 길을 따라 끝까지 진행합니다.
  다만 중간에 <둘레길 출발점> 방향을 알리는 이정목이 하나 있어 좌측 산으로 가기 쉬운데
  저 길은 <천보산둘레길>을 안내하는 것이고, <경흥길>은 직진해 내려 가야 하더군요.


  ['포천-양주 고속도로']                 12:17      
  이어서 <경흥길 안내판>을 지나면 <포천-양주 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게 되며


  ['올리어린이집']                12:23      
  <올리어린이집>을 지나면...


  ['소흘행정복지센타' 뒤]              12:25     
  삼거리를 만나는데 건너편에 <3코스종점>인 <소흘읍행정복지센타>가 있습니다.
  그런데 황단보도가 없어 도로를 건너지 못하고 우측으로 우회해 가야 했습니다.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횡단보도']                   12:28     
  이런 방법으로 우회하여...


  [삼거리]               12:30       
 다리 앞에서 좌측으로 들어 가면...


  ['소흘읍보건소'와 '행정복지센타']

  ['주민자치센타'와 '스탬프함' 위치]               12:32            
  <소흘읍사무소>인 "소흘읍행정복지센타"가 <보건소>와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3코스종점-4코스출발지>와 <스탬프함>을 찾으려면 
  우측 <소흘읍주민자치센타> 건물 뒤로 가야 하더군요. 
  그리고 다시 나와 우측길로 <4코스>를 진행 해야 하니 유의 해야겠습니다.


  [3코스 종점'과  '4코스 출발지']              12:34     
  <소흘읍주민자치센타> 뒤에 <3~4코스 시종점>이 있으며 <스탬프함>이 있습니다.
  <4코스>를 이어 가려면 다시 <소흘읍사무소> 정문 앞으로 돌아 가야 한다는 것 잊으면 않되겠더군요.
  저는 계속 <4코스>로 진행합니다만, <3코스 답사기>는 여기서 종료합니다.
 

  ['고도표']                      
  오늘 걸은 코스의 고도표입니다.
  평평한 능선길은 아니죠? ㅎㅎ
  걸은 거리는 9.3km였으며 3시간 2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부록』
  1.  "왕방지맥 첫코스 산행기" 여기 클릭
  2. "한북정맥 일곱번째 산행기:죽엽산-고모리산성" 여기클릭
  3. "한북정맥 여덟번째 산행기:축석령-고읍신도시-샘내고개" 여기클릭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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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경흥길』
      『제2길 천보산길 : 의정부역-축석령』


  [제2길 천보산길 실트랙']            ★ 사진 클릭하면 크데 확대 됨 ★  
  <경기옛길-경흥길> 두번째 답사코스인 <제2길 천보산길>의 실트랙 지도입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무지무지 크게 확대 됩니다.
 

  ['의정부역 5번출입구']                10:00        
  2022년 1월 26일 (수)  맑음      
  <제2길 천보산길>의 출발지는 <의정부역 5번출구>입니다.
  좌측 차도를 건너 가면...


  ['안중근의사 상']         
  <의정부역전근린공원>이 크게 아름답게 조성되 있는데, 그 중에 "안중근의사 상"이 다른 곳의 것과는
  아주 다른 포즈를 취하는 동상이 있는데.....권총을 빼내며 <이또 히로부미>를 향해 돌진 하는듯...



  ['제2길 출발지점']                  
  <안중근의사상> 앞에는 "경흥2길-천보산길"의 출발지를 알리는 안내판과 <스탬프함>이 있고
  정면엔 <의정부관광안내소>가 우체국 모양을 하고 있는데, 
  

  ['5-1번 출입구']              
  <제2길-천보산길>은 <지하상가 5-1번출입구>를 이용해 건너편 <태조 이성계 상>으로 건너 갑니다.
  길안내표지는 <지하상가 6-4번출구>로 안내하지만 <지하상가 5-2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이성계상>이
  있으니 <5-2번 출구>를 이용하는게 가장 가깝고


  ['이성계 상']                10:09    
  저는 모르고 시키는대로 <6-4번 출구>로 나가 다시 <5-2번출구> 앞으로 돌아 오니
  조용할 날 하루도 없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朝鮮>을 開國한 "태조 이성계 상"이 
  <의정부의 명동>인 <의정부행복로> 입구에 용맹스런 활쏘기 포즈를 취하며 호령을 하고 있습니다.
  <의정부 議政府>라는 지명을 만들어 준 왕이기에 특별히 세운듯...
  조선왕조 27명의 왕 중에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태조>와 <태종>을 호칭 할때엔 이름을 뒤에 붙이죠.
  <태조 이성계>라던가 <태종 이방원>이라고.....다른 왕들은 이름조차도 모르죠? ㅎㅎ
  왜그러는지 아세요? ^*^


  ['행복로' <신혼부부상>]      
  <행복로>를 통과하는데 먼저 <신혼부부상>이 눈길을 끌고...


  ['행복로' <중년부부상>]        
  이어서 <중년부부상>도 세워져 있는데....
  사진 속 앞에 보이는 한자를 알수 있나요?  제가 보기엔 <암반수 巖盤水>라고 생각되는데...
  이 조형물에 수로를 만들고 물이 흐르게 조경을 했는데, 지하 103m에서 지하수를 끌어 올려 흐르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셔도 되는 물이라고 자랑하고 있더군요.



  ['밀레니움 오밸리스크']      
  계속해서 로타리 마다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데
  <밀레니엄 오벨리스크>라는 조형물도 눈길을 끌고
  

  ['말타기']              
  추억의 <말타기 놀이> 조형물도 있습니다.


  ['파발로터리']                       10:18

  [지명의 유래]                         
  <의정부 행복로>를 통과하면 <행복로>의 끝에서
  "파발로터리"를 만나는데 지명의 유래는 안내문을 참고하고


  ['의정부경전철']             
  이어서 <의정부경전철> 밑으로 조금 진행하면....


  ['양주교' 앞 '양지공원']                10:23      
  <의정부경전철>이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는 곳에 <양주교>라는 <중량천> 다리를 만납니다.
  교각 뒤에는 "양지공원"이라는 표지석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중랑천']         
  <의정부시>를 관통하고 있는 <중랑천>을 만나는데
  <중랑천>으로 내려 가서 남쪽으로 조금 진행하면...


  ['중랑천-부용천' 합수지점]              10:26          
  <중랑천>을 건너는 첫번째 다리를 만나는데, 이곳이 좌측<부용천>이 <중랑천>에 합수하는 곳이더군요.
  다리를 건너 좌측 <부용천>으로 들어 가면...


  ['부용교']               10ㅣ28       
  <부용천>이 그 이름을 다하고 <중랑천>에 합수하며 소멸되는 곳에 <부용교>라는 다리가 있고...
  이제부터 <부용천>을 따라 <새말인도교>까지 660m를 진행합니다.


  ['금신교']                 10:34    
  "부용천 芙蓉川"은 <의정부시 금오동(金梧洞)~신곡동(新谷洞)> 일대를 흐르는 길이 9.2km의
  작은 규모의 하천이지만 <의정부시>의 대표 생태하천이라고 합니다. 봄에 벗꽃이 유명하다고...
  <금신교>를 지나면....


  ['새말인도교']             10:38        ★ 길조심 ★          
  <부용천>의 세번째 다리인 "새말인도교"를 만나는데
  <경흥길>은 여기서 좌측 계단으로 올라 가야 합니다.
  <경흥길> 안내표지판은 보이지 않았고, 안내리본이 좌측 계단 위 나무에 하나 걸려 있었습니다.
  둑으로 올라 가면....


  ['그린힐아파트 107동']              
  우측에 <그린힐아파트 107동>이 바로 보이는데, 좌측 골목으로 나가면...


  ['43번국도'-'꽃동네 버스정류장']               10:41        
  오리지날 <경흥길>이라고 추정되는 <43번국도>를 만나는데
  <꽃동네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꽃동네 입구']            
  이제부터 <43번국도>를 건너 <꽃동네>로 들어가 <천보산>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마을회관']                  
  '의정부시 금오동'에 있는 <꽃동네>를 대체로 직진 통과하면...
 

  ['소림사' 입구]                 10:51        
  <소림사> 입구를 만나는데 <제2길 천보산길 안내판>과 <의순공주묘 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의순공주묘>는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데 안내판은 이곳에 설치해 놔서 혼돈을 줍니다만....
  여기서 <의순공주묘>를 다녀 오도록 하겠습니다.
  좌측을 바라보면...


  ['의순공주묘' 가는 길]                  
  좌측에 있는 빌라의 이름은 <정은리치빌>이며 이 뒷길의 약50m쯤에 <의순공주묘>가 있습니다.
  조금 들어 가면...
 

  ['의순공주묘' 입구]                     
  좌측에 있는 빌라의 이름이 <힐링타운>이라는 빌라였는데 
  이 빌라 뒤에 나무 몇그루가 있으며 문인석이 두개 서있지만 초라한 묘가 있는데
  누구의 묘인지 분명하게 알려주는 안내판도 없이 <의순공주묘>라고 추정된다는 묘가 있더군요.
 

  ['의순공주묘']                    10:55

  [안내문]                          
  "의순공주묘 義順公主墓"
  이곳 묘 앞에는 없고, 조금전 <소림사> 앞에 있던 안내문을 여기서 소개 하면
  안내문에 <족두리묘>라고도 한다고 하는데, <병자호란> 후 <청나라>가 공녀로 공주를 보내라는 
  지시를 받고, <의순공주>가 <청나라>로 가는 도중 <평안도 정주> 쯤 갔을 때 
  정조를 지키기 위해 투신자살 했는데 족두리만 건저 올렸다는 내용이 있는데 터무니 없는 낭설이랍니다.
  이것은 역사 기록에는 전혀 없는 지어낸 전설 일뿐인데 공식 안내문에 스스로 터무니 없는 전설이라
  하면서도 기록하여 공공연하게 알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의순공주>에 대해선 <조선왕조실록>에 상당히 자세하게 기록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천보산>을 걸으며 <효종실록>을 중심으로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뒤에서 본 '의순공주묘']                        
  뒤에서 바라본 <의순공주묘>는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관리를 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의정부시>에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를 해 달라고 요청을 수없이 했다지만
  <의정부시>는 이 묘가 실제 <의순공주묘>인지 뭔지 확실한 근거가 없어 문화재로 지정 할수 없다고
  그냥 방치하고 있답니다. 이곳을 지나 다니는 산객들이나 관심있는 분들이 이 묘를 보며
  대부분 한마디씩 하며, 이런 <의정부시>의 처분을 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욕하기 전에 <왜 그럴까?>라고 생각해 보고 그 근거를 제시하며 욕해야 하지 않나요?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가 잘난척 습관성 비난이 난무하고 있으니....
  필자인 <파란문>은 이 묘가 <의순공주묘>라고 심정은 가지만 <의순공주묘>라고 확신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제가 "심정은 간다" 라고 하는 그 이유는....


  ['금림군 이개윤 묘']                         
  <의순공주묘>에서 30~40m 떨어진 곳에 
  <의순공주>의 아버지인 "금림군 이개윤 묘"가 있기 때문입니다.
  묘소 관리를 잘하고 있어서 <의순공주>의 묘와는 관리 상태가 완전 비교됩니다.
  여기 관리 하는 김에 옆의 <의순공주묘>라고 추정되는 묘도 관리 좀 해주지....
  묘비에는 "顯祿大夫 錦林君 墓"라고 쓰여 있으며 <부인 문화류씨>와 합장 되 있다고 합니다.
  <금림군 이개윤>은 <성종>의 서자인 <익양군 이회>의 3세손으로 왕족이었습니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가 공녀로 공주를 보내라는 명령을 받은 <효종>을 비롯한 왕족 사대부들은 
  모두 자기 딸을 공녀로 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에 자기 딸을 공녀로 보내겠다고 나선 사람이 바로 이 묘의 주인인 왕족 <금림군 이개윤>이었으며
  그 딸의 이름이 "이애숙 李愛淑"이었는데, 얼시구 좋구나 <효종>은 그녀를 자신의 양녀로 삼아
  "큰 뜻에 순응한 여인"이라고 "의순공주 義順公主"라는 칭호를 주고 <청나라>에 보냈습니다.
  '비운의 여인' <이애숙-의순공주>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소림사' 입구]                11:08     
  <금림군묘>와 <의순공주묘>라 추정하는 묘를 둘러 보고 
  다시 <소림사 입구>로 돌아와 <천보산 옆구리>를 돌며 <경흥길>을 이어 갑니다.
  여기서부터 <의정부시 소풍길>과 함께 하기에 지금부터는 <의정부 소풍길>을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현충탑>까지 "6.2km'라고 알려 줍니다.

  
  ['천보산 둘레길']                         
  <천보산> 옆구리 <의정부소풍길>을 걸으며 <의순공주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때는 바야흐로 조선시대 <병자호란(1636년)>이 있었던 후 <효종> 때 였습니다.
  <조선>은 <청나라>에 치욕의 패배를 한 댓가로 왕과 대신의 아들들을 인질로 보내고, 
  <조선>의 수많은 딸들을 '공녀'로 바쳤는데, 이때 공녀로 간 소녀들이 수만명이랍니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서 치욕을 당한 <인조>가 얼마후 인질로 잡혀 갔던 아들 둘이 돌아 오자
  둘 중에 <소현세자>는 자신이 죽이고, 둘째 <봉림대군>을 왕에 오르게 하니 그가 바로 <효종>이었죠.
  그 때 <청나라>도 <태종(홍타이지)>가 죽고 어린 아들이 황제로 즉위하였는데, 
  너무 어린지라 황제의 삼촌인 "도르곤"이라는 놈이 섭정을 하며 황제 대역을 하는 최고 권력자였죠..
  하필이면 그때쯤에 아내를 잃은 <도르곤>은 사신을 보내 <조선> 왕의 딸, 즉 공주 중에서 
  자신의 배필을 구해줄 것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 놈 <도르곤>은 자신들보다 문화적으로 우월한 조선의 공주를 아내로 삼고 싶었던가 봅니다.
  <효종>에게는 공주가 다섯명이나 있었지만 어찌 그런 못된 놈의 오랑캐에게 
  그 귀하디 귀한 공주를 시집보낼 수 있겠는가... 더러워 미칠 지경이었겠죠.
  <병자호란>때 잡혀갔다가 되돌아온 많은 여인들이 "환향녀→화냥년"으로 불리면서 
  치욕스런 대접을 받았던 것도 그 때였으니....
  그렇지만 전쟁에서 처절한 패배를 당한 <조선>은 나라의 힘이 부족하니 청나라를 무시할 수 없었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무슨 더 큰 행패를 부릴 지 모르기 때문에
  <효종>의 고민은 깊어만 갔답니다. 대신들도 당연히 덩달아 걱정이 많았습니다만...
  다행히도 얼마후 <청나라>는 꼭 공주가 아니어도 왕족이나 대신의 딸이어도 좋다는 언질을 줍니다.
  얼씨구나 <효종>은 종친과 대신들을 불러 대책을 의논하며 왕족이나 대신들의 도움을 은근히 기대
  했습니다만, 대부분의 왕족과 대신들은 저마다 자신의 딸을 숨기기에 바빴답니다.
  이는 사랑스런 자신의 딸을 지키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적 위기를 외면하는 것이기도 했겠죠.
  누군가는 희생양이 되어야 그들의 요구와 행패를 막을 수 있을 텐데....
  짜쟌~~ 이때 왕족의 한 사람인 <금림군 이개윤>이 용맹스럽게 <효종> 앞에 나섭니다.
  그는 <성종>의 4대손으로 당당한 왕족 종실의 한 사람이어서 자격도 갖추고 있었는데
  <금림군 이개윤>은 스스로 자신의 딸을 <청나라>에 시집 보내겠다고 자원합니다.


  [전망명소]                   11:20

  ['의정부시' 조망]                               
  <소림사> 입구에서 12분 정도 오름길을 오르면 <전망명소>를 만납니다.
  오늘 날씨는 맑으나 연무가 껴 조망은 별루이군요.
    <의순공주의 결혼>에 대한 <효종 실록>을 살펴 보면 
  <금림군 이개윤>이 스스로 자신의 딸 "이애숙 李愛淑"을 <청나라>에 시집 보내겠다고 자원하여 
  <효종>은 숨통이 트이게 되었는데....
  <금림군 이개윤>이 스스로 자신의 딸을 <청나라>에 시집 보내겠다는 이같은 보고를 받은 <효종>은 
  너무나도 기쁘고 감동하여 그녀를 궁으로 불러 들여 만나 그녀의 모습을 보니 공주로서의 아름다움과
  위엄까지도 갖추고도 남음이 있어 너무 좋아 했다고 기록되 있습니다.
  그리하여 <효종>은 그녀를 자신의 양녀로 삼고, "의순공주 義順公主"로 호칭토록 하였답니다.
  <이애숙>은 이제 조선의 공주 <의순공주>로 신분 세탁이 된 것이었습니다.
  <의순義順>이라고 한 것은 '대의에 순종'했다는 뜻이니 결국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운명에 
  순종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니 <효종>의 교묘한 방법으로 희생양이 된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딸을 공녀로 바치겠다고 한 <금림군 이개윤>과 기꺼이 가겠다고 한 
  <이애숙>이지만, 하지만 당시 <이개윤>과 그 딸의 장한 결심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답니다.
  어느 누가 머리 빡빡깍고 싸움 밖에 모르는 미개한 몽고놈들에게 시집 가고 싶어 했겠습니까?
  <유교문화>가 <조선>을 지배하는 사회관념 속에서 사람들은 <이개윤>을 두고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 딸을 팔아먹은 자라고 비방하기도 했답니다.
  <유교문화> 속에선 당연한 비방이겠죠?
  사실 <의순공주>는 조선의 여인 중에서, 특히 왕족과 대신의 딸들 중에서,
  누군가는 <청나라> 황제역활을 하던 <도르곤>의 배필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수용하였던 것인데
  그것은 돈을 위한 것도 아니고 권력을 갖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 됩니다.
  그들은 왕족으로서 이미 적당한 돈과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자신의 희생을 통해  타인의 괴로움을 경감시켜 주려는 
  "살신성인의 정신", 바로 그것이었다고 필자인 <파란문>은 생각해 주고 싶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살펴 보면
  <효종 1년> 1650년 4월 22일, 
  <의순공주>가 청나라로 출발하자 <효종>은 서대문 밖 <모화관>까지 나아가 송별했으며, 
  백관들은 반으로 나누어 <홍제원>까지 수행토록 했다. 그녀의 오빠 두 명이 수행원으로서 
  그녀를 청나라까지 배종하였고, 우수한 역관 5명, 공노비 중에서 선발된 시녀 16명과 
  유모, 몸종, 수모(首母: 머리단장과 화장을 책임지는 여성), 의녀 등이 그녀를 따랐다. 
  5월 21일, <도르곤>이 6만 명의 수행인을 이끌고 <산해관> 부근의 연산(連山)으로 마중나와
  혼인의식과 초야를 치렀다.
  
  이와 같이 <의순공주>의 혼례는 국가적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진행 되었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수 있으니 떠도는 설화에 현혹되지 말아야 겠습니다.


  [오름길]

  [내림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다시 내려 가면 계단이 나타나는데....
  <조선 국왕>의 대대적인 환송을 받으며 시집간 <의순공주>의 <청나라>에서 생활을 알아보면...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효종>의 극진한 애정과 후원을 받으며 
  마침내 청나라로 간 <의순공주>는 <도르곤>과 정식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몽고족 <도르곤>이 <조선>의 <의순공주>를 보자마자 조선공주의 기품있는 모습과 아름다움에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나 뭐래나....여튼 무지 흡족해 했다고 한것은 틀림 없었답니다.
  (일부 설화에는 못 생겨서 소박 맞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이는 <유교문화>의 <조선백성>이
  <의순공주>를 '화냥년'으로 비하 시키기 위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기록에는 <도르곤>이 <의순공주>를 가리켜 "백송골"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는데
  그것은 "흰색의 매"라는 뜻이니 그녀가 매처럼 날렵하고 고운 자태를 지녔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쁘지 않고 기품없는 여자였으면 <조선 조정>이 <청나라>에 공녀로 바쳤겠습니까? 후환 두렵게...
  결혼한 <도르곤>과 <의순공주>는 금슬이 좋았다고 합니다.
  <의순공주>도 <도르곤>을 사랑하는 마음이 싹텃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불행하게도 <도르곤>은 <의순공주>와 결혼한지 불과 7개월만에 사냥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만약 <도르곤>이 오래 살았다면 둘 사이의 사랑도 깊어지고,
  그 만큼 <조선>과 <청나라>와의 관계도 좋아졌을 것인데.......
  <도르곤>이 죽자 <의순공주>는 <청나라>의 다른 황족인 <박락>이라는 놈에게 넘겨 졌으나...
  두번째 남편인 <박락>도 1년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니 그녀의 삶도 무지무지 불행한 것이죠?
  그녀는 이후 <북경>에서 3년여간을 혼자서 쓸쓸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갈림길]                      11:28             

  [갈림길]                      11:32

  [갈림길]                       11:43    
  <의정부시 금오동>의 주택가와 아파트단지에 밀접한 산이어서 곳곳에 접속로가 많아 갈림길이
  많았으니 길찾기에 유의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의순공주>가 다시 <조선>으로 돌아 오는 과정과 그 후를 알아 보면...
  <효종 6년> 1655년, <의순공주>의 아버지인 <이개윤>이 조선의 사신으로 '북경'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수소문한 끝에 자기의 딸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청나라 황제>에게 글을 올려 자기 딸인 <의순공주>를 조선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였고
  <청나라> 황제도 이를 허락하였답니다.
  <청나라>의 황제인 <순치제>가 보낸 칙서의 내용을 인용하면... 
  "<의순공주>가 미망인(孀)이 되어 종친의 사저(邸)에 지내며 부모 형제와 멀리 떨어졌으니
  측은하게 여긴지 오래 되었는데, 아비인 <이개윤>이 딸을 보고자 주청하니 더욱 안쓰러워 
  의정대신(議政大臣)과 함께 귀국시켜 친지와 살 수 있도록 하니 조선에선 따르라."
  
  <효종 7년> 1656년 4월 26일에 <의순공주>가 조선으로 귀국하였다고 기록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16세에 고국을 떠난지 7년만에 아버지를 따라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죠.
  <효종>은 <호조>에 명을 내려 그녀에게 매달 쌀을 내려 평생을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친척과 이웃들의 못된 비아냥과 손가락질이었답니다.
  <청나라 오랑캐>에게 몸과 마음을 더럽힌 여자라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화냥년"~
  <조선 조정>까지도 더이상 정치적 가치도 사라진 그녀에 대해 태도도 돌변했습니다.
  <사헌부>에서 <의순공주>를 조선으로 데려온 <금림군 이개윤>을 탄핵하여 파직시켰으며
  <사간원>에서는 파직으로는 벌이 부족하다 하여 <이개윤>은 삭탈관작되어 성 밖으로 쫓겨났고
  또한, 귀국한 <의순공주>의 칭호는 "이개윤의 딸(女 혹은 女子)"로 격하되었답니다.
  나쁜놈들 X씨끼들~
  <효종>의 지극한 보살핌도 주위 사람들의 멸시와 냉대를 극복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녀는 그렇게 쓸쓸하게 세월을 보내다가 조선에 돌아온지 6년만에 병으로 죽었답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28세의 꽃다운 젊은 나이였습니다.
  <효종>은 그녀의 죽음을 가련하게 여겨 후하게 장례를 치르도록 배려해 주었지만
  국가 권력에 의해 정략적 재물로만 쓰여지고 버려진....
  슬픈 아픔을 간직한 여인의 초라한 묘에는 몇닢의 낙엽만 묘를 덮고 있을 뿐 이었습니다.

  결국 그녀도 <환향녀→화냥년>이 되고 말았으며 그녀의 묘도 그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듯 합니다.
  <경흥길>을 걸으며 만난 <공주>들의 묘....
  <숯장수 한경록>에게 시집 보내진 <의혜공주> 이야기와 함께 <의순공주>의 기구한 운명은
  <경흥길>을 걷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군요.


  [내림길]  

  [다리]                     11:44    
  <천보산 둘레길>인 <의정부 소풍길>을 내려 가면 처음으로 다리를 하나 만납니다.
  이 다리 앞에는...
 

  ['금오동 파스텔아파트']               11:45       
  '의정부시 금오동'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파스텔아파트>가 지척에 있는데
  <경흥길>은 좌측 산능선으로 올라 갑니다.
  2분 정도 올라 가면....
 

  ['화춘군묘' 조망]                       

  ['화춘군묘']                    11:47~11:50       
  "화춘군묘 花春君墓"를 만납니다.
  잠시후 만나게 될 "인성군 仁城君"의 손자이더군요.
  그러니까 <선조>의 일곱번째 아들이 <인성군>이니 <선조>의 증손자가 되겠습니다.
  조선시대엔 왕족은 과거에 응시 할수 없어 일반관직에 나갈수 없었는데, <화춘군>은 품행과
  학식이 중후해서 왕족 종실 신분으로 관직에 입직 출사하여 관직에 진출한 희귀한 사례라고 합니다.
  문관 겸 무관으로 관직생활을 하며 <명의대부明義大夫>와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總府 都總管>의 
  지위에 올랐던 특출한 왕족이었답니다.
 

  ['천보산' 조망]            

  ['인성군묘' 조망]                          
  <화춘군묘>에서 능선으로 올라 가면 <천보산 정상>이 조망되고
  <인성군묘>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성군묘' 조망]                   


  ['인성군 묘']                12:12~12:46              
  "인성군 묘 仁城君墓"
  <인성군>에 대해선 안내문에 설명이 되 있습니다.


  ['인성군묘'에서 조망]                        
  <선조>의 일곱번째 아들인 <인성군>은 비운의 혁명가 였답니다.
  엄청 똑똑한 인물이었지만 결국 쿠데타에 연루되어 조카인 <인조>에 의해 사사되었답니다.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조망]                       
  <인성군묘> 뒤로 올라 펼쳐지는 <의정부시 금오동>과 <가토릭대 성모병원>을 조망하고
  계단을 따라 내려 가면...


  ['천보산 탑고개' 등산로 출입구]                 12:48     
  <천보산 탑고개>와 연결되는 등산로 입구를 만나 통과합니다.
  여기서 <천보산 탑고개> 방향으로 올라 가면 <인성군>의 어머니인 <정빈 민씨 묘>가 있습니다.
  <정빈 민씨>는 <선조>의 후궁이죠.


  ['바위고개']                12:57       
  <탑고개 등산로 입구>에서 10여분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가면
  바위를 쌓아 놓은듯한 독특한 城같은 고개를 만나고

 
  [내림길]                   
  계속해서 내림길을 6분여 내려 가면...


  [계곡]                  1:03      
  계곡을 만나고...

 
  [오름길]                 
  다시 오름길을 10여분 오르면....

             

  [송전철탑]               1:12      
  송전철탑이 지나는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여기선 좌측 아래에 있는 <양주터널>로 통하는 도로에서 나는 자동차들의 굉음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쉼터]                  1:13

  ['축석령' 조망]                  
  송전철탑 앞에는 간이 의자 하나가 있는 쉼터가 있는데
  오늘 코스의 종점인 <한북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축석령>이 조망됩니다.
 

  [내림길]

  ['자금사거리 굴다리']                 1:22          
  다시 10여분 내림길을 내려 가면 <자금사거리 굴다리>를 만나 통과하면...


  ['자금사거리']               1:24       
  <자금사거리>를 만납니다.
  <의정부>에서 <양주 고읍>으로 통하는 <양주터널 입구>이고...


  ['금곡교버스정류장']              1:25        
  이어서 <금곡교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오리지날길은 여기서 좌측으로 갑니다만
  그냥 이 <43번국도>를 따라 가도 큰 차이 없더군요.
  15분 정도 진행하면....


  ['본자일' 입구]                    1:40        '
  <본자일입구>를 만나는데 여기서 길을 건너 가라고 안내합니다.
  길을 건너 건너편 길을 따라 4분여 올라 가면....


  ['축석령 옛길' 입구]                  1:44          
  <축석령 옛길 입구>를 만나며 <경흥길>과 <소풍길>은 우측 옛길로 안내됩니다.


  ['축석령' 조망]                1:50       
  <한북정맥>이 지나는 <축석령>이 조금 더 가까이 조망되는데, 여기서 보니 좀 큰 고개 같군요.


  ['현충탑' 입구]                 1:58       
  이어서 <현충탑 입구>를 만나는데 안으로 올라 가면....


  ['현충탑']

  ['현충탑' 의미]                           
  조금 독특한 모양의 <현충탑>이 건립되 있고...


  ['천보산' 조망]                
  뒤돌아 보니 지나온 <천보산>이 조망됩니다.
 

  [''현충탑' 동문]                    2:03      
  <현충탑 동문>은 잠겨 있지만 편의상 그냥 문을 넘어 가서 
  10여분 옛길을 진행하면...


  ['43번국도' 합류]                 2:12        
  헤어졌던 <43번국도>를 다시 만나고


  ['축석령']                  2:17    
  이어서 <의정부시>와 <포천시>의 경계를 넘어 <포천시>로 들어 가고...


  ['축석령 삼거리']                2:19            '
  이어서 바로 <축석고개 삼거리>를 만나는데


  ['제2길 천보산길' 종점-'제3길 축석고갯길' 시점]          2:20    
  삼거리에는 <호국로>라는 표지석과 조형물이 있으며
  <경흥길 제2길 천보산길>의 종점이 되겠습니다.
  <경흥길 제3길 축석고갯길>의 출발 안내판과 <스탬프함>은 우측 뒤에 있으니 유의해야 하겠더군요.
  오늘 걸은 거리는 11,5km였으며 4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이번 코스도 <천보산>의 옆구리를 오르내리는 등산로로서 제법 체력소모를 요하는 코스였습니다.
  <의순공주>의 기막힌 삶과 국가에 의해 희생된 한 여인의 운명을 기록을 통해 알아 보며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관심있게 눈여겨 보아야 할 의미있는 답사길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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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경흥길』
      『제1길 사패산길 : 망월사역~의정부역』


  ['경기옛길']

  ['경흥길' 개통]

  ['경흥길' 종함안내도]                  
  <경기옛길> 6개 구간 중에 다섯번째로 <경흥길>이 2021년 11월 20일에 개통되었다고 해서
  선조들이 왕래했던 그 길의 흔적과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 <걷기코스>로 만들어진 <경흥길>을 갑니다.
 

  ['도봉산역 1번출입구']             10:32           
  2022년 1월 19일 (수)  눈      
  오늘 눈이 제법 많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모처럼 눈길을 걷기 위해 부랴부랴 길을 나섯습니다.
  <경기옛길-경흥길>의 제1코스인 <사패산길>은 <망월사역>에서 출발한다고 안내되고 있습니다만
  제가 <도봉산역>에서 출발하는 이유는 오리지날 <경흥길>을 조금이라도 더 걸어보기 위해서입니다.


  ['서울시-의정부시' 市界]            10:40         
  <도봉산역>에서 북쪽으로 <3번국도>를 따라 조금 올라 가면 "서울시-의정부시 市界"를 만납니다.
  <한양옛길>을 벗어나 실제 <경기옛길>이 시작 되는 곳이라 할수 있죠.
  <경기문화원>이 조성한 <경기옛길-경흥길> 걷기코스의 오리지날 옛길을 조금 알아 보겠습니다.
  <1대간 9정맥>을 종주 하는 산객들의 지침서인 <산경표 山經表>를 산꾼들은 대부분 알지요.
  <산경표>는 우리나라의 지형을 <백두대간>을 주축으로 <1대간 9정맥>으로 도표로 만든 것이죠.
  <산경표 山經表>의 저자 "여암 신경준" 선생은 우리나라 道路에 대해서도 업적을 남겼습니다.
  선생은 "도로고 道路考"라는 지리서도 남겼는데, <경기옛길>은 대부분 이 책을 근거로
  걷기코스를 만들었더군요.
  <도로고 道路考>에서는 우리나라 간선도로를 <6대로>로 분류하였는데, <경흥로>는 두번째 도로더군요.
  정식 명칭은 "경성동북저경흥로제이 京城東北抵經興路第二"였습니다.
  주요 경유지를 알아 보면....
  <동대문> 또는 <혜화문>에서 출발하여 <수유리>를 지나  <누원(다락원)>을 통과 한다고 되어있으며
  계속해서 <축석령><송우리><만세교><김화><금성><창도역><회양><철령><고산역><안면><함흥>
  <북청><길주><영천><회령><온성><경원><경흥><서수리>까지 연결되 있다고 표기 합니다.


  [길건넘]                  
  <여암 신경준> 선생의 <도로고 道路考>에는
  <漢城>을 출발한 <경흥로>는 <수유리>를 지나 "누원 樓院 (다락원)"을 통과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리지날 <경흥로>를 조금 더 음미해 보기 위해 <서울-경기도 경계>에 있었던  
  "누원 樓院 (다락원)"의 흔적을 찾아 보기 위해 <도봉산역>에서 출발 한 것입니다.
  <북한산둘레길>이 지나는 건너편 쯤에 "누원 樓院 (다락원)"이 있었었다고 합니다.
  

  ['다락원 마을회관']                 10:47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에 있는 "다락원마을회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도로고>에는 <한성>을 나가서 <수유리>를 지나 "누원 樓院 (다락원)"을 통과 한다고 해서
   "누원 樓院 (다락원)"을 찾아 보기 위해 왔습니다만, 옛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 볼수 없고, 
   <다락원마을>이라는 지명은 아직도 남아 마을회관이 있습니다만 이곳이 옛 역원자리라는증거는
   없습니다
   이곳 근처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누원 樓院 (다락원)" 에 대해 알아 보면
   이 공영여관의 형태가 조금 특이하게 <루 樓>가 있어서 우리말로 <다락원>이라 불리우게 되었답니다.
   <경흥길>은 <함경도>의 <원산> <함흥> 등에서 잡히는 해산물의 운송로였는데 주로 <명태>가 
   많았다고 합니다. 옛날엔 <원산> 앞 바다에서 <명태>가 무지 많이 잡혔다니 이해가 갑니다.
   이 근처에서 현재 영업중에 있는 유락시설이나 도서출판사 <다락원多樂院>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의혜공주.한경록 묘' 입구]              10:49     
  <다락원마을회관>을 지나면 <의혜공주>와 <한경록>의 쌍봉묘 입구 라고 알리는 표지판을 만나는데
  
  <의혜공주>와 <한경록>에 대한 스토리는 무지무지 유명하죠?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그들의 설화를 짤막하게 언급하면....
  <중종>과 <문정왕후>의 딸로 태어난 <의혜공주>는 숯장수 <한경록>과 혼인 한걸로 유명합니다.
  어느 날 <중종>이 공주들에게 “너희들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는 것은 누구의 덕이냐?”라고 묻자 
  <의혜공주>를 제외한 나머지 공주들은 아버지 <중종>의 덕이라고 하였으나 
  <의혜공주>는 아버지 <중종>의 우쭐대는 꼴에 "한 때의 영화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라고 답했다죠.
  이에 격노한 <중종>이 <의혜공주>를 다음 날 새벽 <동대문>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자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하였는데, 그가 바로 '숯장수'였던 <한경록>이었다는 것입니다.
  엄격한 가부장적 <유교> 사회에서 여성은 희생을 강요 당하며 남녀평등은 상상 할수없는 사회였지만
  <의혜공주>는 당당히 독립자영(獨立自營)의 사상을 굽히지 않고, 나아가 자기변혁(自己變革)과 
  자기계발(自己啓發)이라는 명제를 강력히 주창함과 동시에, 공주라는 신분을 타파한 여성으로서 
  부족함이 없이 살았기에, 후손들 중에는 이분을 "왕신(王神)할머니"로 모시는 토속신앙도
  생겨 났다고 할 정도로 조선시대의 <新女性>이었답니다.
  <의혜공주>는 44세에 저 세상으로 갔고, <한경록>은 <오위도총부>의 부총관까지 관직에 오르며
  74세까지 장수하며 <임진왜란> 때에 <송파 샛강>에서 왜적들과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합니다.
  세상을 앞서간 <新女性>과 부군의 묘를 쌍분으로 맑끔하게 조성해 놨더군요.


  [교차로]                 10:54      
  이어서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가 지나는 갈림길을 통과하여 
  저 앞에 보이는 <1호선 전철> 옆길을 따라 진행하면


  ['호암초등학교']               11:01      
  <호암초등학교>를 지나게 되고


  ['망월사역']                 11:07      
  이어서 <망월사역>과 <신한대학교>를 만납니다.
  <경기옛길-경흥길>의 제1길인 <사패산길>의 출발지가 바로 <망월사역>이기에
  <망월사역3번출입구> 앞에 있는 <스탬프함>과 안내판을 확인하고
  다시 돌아와 좌측 <망월사> 방향으로 올라 갑니다.
  

  ['망월사역 3번출입구']              11:08~11:13    
  <망월사역3번출입구> 앞에는 <스탬프함>과 <경흥길>의 출발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제1길 사패산길' 출발지점]                        
  오리지날 <경흥길>은 <3번국도>를 따라 <의정부역>까지 가고
  이어서 <43번국도>를 따라 <포천-철원>으로 가지만....
  걷기코스로 조성한 <경기옛길-경흥길>은 <사패산>의 옆구리 <북한산둘레길>을 돌아가라고 합니다..


  ['신한대' 정문 앞]             
  <망월사>로 올라 가는 길에 들어 서면 <신한대학교> 정문 앞을 지나고


  ['옛 장수원터']              11:18       
  이어서 도로안내판에 <원도봉산입구>라고 알리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이곳은 <경흥길>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는데....
  이곳엔 "장수원 長水院"이라는 공영여관이 있었던 곳이랍니다.
  <다락원>을 거쳐서 <경흥길>을 이용하는 상인들이 이곳에서 쉬어가면서 주막거리가 형성되었다는데
  원래 <장수원>은 공용이었으나 조선 후대에 오면서 개인 주막으로 변하여 술도 팔고 잠도 재워주는 
  역할을 하여 나그네들에게는 일석이조여서 주로 상인들이 이용하게 되었답니다.
  <장수원>은 <다락원>과 가까운 곳에 있어 관리들은 <다락원>을 이용했고...


  ['망월사 입구']                11:19          
  <망월사> 가는 길로 잠시 올라 가면....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11:22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밑 우측을 통과합니다.
  

  ['북한산둘레길 다락원길' 종점]                 11:31~11:44

  ['보루길' 출발지]                  
  <북한산둘레길-다락원길>의 종점이자  <북한산둘레길-보루길> 출발지를 만나는데 
  <경기옛길-경흥길>은 지금부터 <북한산둘레길>을 따라 <의정부시청>까지 진행하면 되겠습니다.


  ['경흥길' 안내표지판]                     
  <경흥길>에 대한 길안내는 거의 없으니 <북한산둘레길> 안내표지판을 이용해야 합니다.



  ['망월사능선']                    
  18분 정도 걸려 <망월사능선> 산줄기를 하나 넘어 가면....


  ['안말교']                 12:02      
  <안말교>라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고




  ['안말통제소']                12:05    
  이어서 화장실이 있는 <안말통제소>를 통과하게 되며


  ['보루길']

  [능선]            
  다시 13분 정도 걸려 산줄기를 하나 더 넘어 가면....
  

  ['원심교']                 12:18   
  <원심교>라는 다리를 건너 갑니다.
 

  ['계단 오름길']  

  [내림길]                          
  <원심교>에서 다시 산줄기를 하나 더 10여분 넘어 가면...


  ['원심사' 주차장]                

  ['원심사' 정문 옆길]                 12:29      
  <원심사 주차장>과 정문 앞을 지나게 되고
 

  [계단 오름길]                     
  <제1길 사패산길>에서 가장 가파른 계단 오름길을 10여분 오르면...
 

  ['사패산 제3 보루' 고갯마루]                     
  "사패산 제3보루"가 있다는 고갯마루에 도착하는데 <포토존> 안내판이 있으며
  현위치 안내도 하고 있습니다.


  ['사패산 제3보루']                    12:40

  [안내문]                        
  "사패산 제3보루"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에 잘 나와 있습니다.


  ['사패산' 능선길] 

  [전망대]                12:51   
  <사패산 제3보루>가 있는 고개에서 능선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전망대>를 만나는데...



  ['의정부시' 조망]                   
  <의정부시>가 전체적으로 조망 되는 곳이라는데, 오늘은 눈이 내려 조망은 꽝...
  안내도를 참고하고...


  [계단 내림길]                         
  엄청 길고 가파른 계단 내림길을 10여분 내려 가면,,,


  ['보루길' 종점]                       1:04                
  <북한산둘레길-보루길>이 끝나고


  ['사패공방']              
  <사패공방>이 있는 이 길은 유명한 "회룡사 回龍寺""석굴암 石窟庵"으로 가는 길입니다.


  ['안골길 입구' 조망]                                   
  <사패공방>에서 우측 <회룡천> 건너편을 바라보면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교각 밑에 <북한산둘레길-안골길> 입구가 보입니다.


  ['회룡사' 스토리텔링]                                             
  <회룡사>와 <석굴암>에 대해선 제가 쓴 답사기를 참고 하세요
  <북한산국립공원>에는 <석굴암>이 세곳 있는데 그 중에 한곳이 바로 이곳에 있지요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의 비화가 숨어 있는 곳입니다.
  [역사탐방] 회룡사-석굴암 답사기 여기 클릭
 

  ['안골길' 입구]                  1:10     
  이제부터 <북한산둘레길-안골길>이 시작됩니다.
  조금 올라 가면....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1:13     
  우측에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가 굉음을 울리며....
  산으로 잠시 올라 가면...
 

  [쉼터와 나무가지]               1:16       
  <사패산길>은 <사패산>의 옆구리를 계속 오르내리는 등산코스여서 제법 체력소모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봉우리가 마지막 봉우리가 되겠습니다.
 

  [내림길]                   

  [굴다리]

  [데크길]                     
  마지막 봉우리를 내려가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옆길 데크를 따라 10여분 진행하면...



  ['귀가도']                    1:27        
  <귀가도>라는 굴다리 앞을 지나고


  ['범골']                       
  이어서 <범골> 입구를 지나 고개로 올라 가면...


  [고개 쉼터]                  1:31   
  고개 쉼터가 있는데 반가운 <경흥길 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제1길 사패산길>의 종점인 <의정부역>까지 "3.1km" 남았다고 알려 줍니다.
  이 길을 따라 12분 정도 진행하면...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1:43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를 건너는 굴다리를 만나 통과하면...


  ['의정부청소년수련관'']                   
  <의정부청소년수련관> 뒤가 나타나는데, 여기서부터 <의정부시청구역>이며...





  ['직동테마공원' 통과]                          
  <의정부시청> 뒤에는 "직동테마공원"이 상당한 규모로 조성되 있었습니다.
  15분 정도 눈으로 뒤덮힌 공원을 구경하며 통과하면....


  [갈림길]                2:02           ★ 길조심 ★     
  길조심 해야하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경흥길>에 대한 안내표지판이 없더군요.
  <북한산둘레길-안골길>은 직진해 가는데
  <경흥길-사파산길>은 우측길로 가야하며 <북한산둘레길>과 여기서 헤어지게 됩니다.


  ['의정부세무서' 조망]                      
  <의정부세무서>가 조망되고


  <의정부세무서> 뒷쪽 공원길에서 <시청역> 방향으로 우회전 하면...
 

  [사잇길]                  2:08~2:18       
  <의정부세무서>와 <의정부시청> 사잇길이 이어지며 중간에 정자 쉼터가 있더군요.
  쉼터에서 아이젠도 벗으며 산행을 마무리 하고 내려 가면....


  ['시청역']

  ['의정부시청' 본관 조망]                       
  <의정부 경전철>이 다니는 <시청역>과 <의정부시청 본관> 앞을 통과하여


  ['의정부역' 가는 길]                      
  일직선으로 뻗은 <의정부역>으로 가는 길을 직진하면...


  ['백석천']               2:21        '
  중간에 <백석천>이라고 하는 개천을 만나는데 백로들이 노닐고


  ['의정부역']

  ['의정부역3번출입구']             2:30        
  <의정부역3번출입구>에서 답사를 마치고 귀가했습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경흥길 제1길>은 공식적으로 <망월사역>에서 출발하여 <의정부역>까지 가는 8km 거리이지만,
 저는 <도봉산역>에서 출발하여 <다락원터>를 둘러 보고 <망월사역>으로 갔기에
 오늘 걸은 거리는 11.5km였으며 4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번 코스는 <사패산> 옆구리를 오르내리는 등산코스였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눈길을 원없이 걸었습니다. 추억에 남을 나드리였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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