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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정맥에서 분기하는" "검단지맥 남한산성구간" 산행기 이배재-망덕산-검단산-남한산성-남한산-은고개 讀書如遊山 讀書人說遊山似 今見遊山似讀書 工力盡時元自下 淺深得處摠由渠 坐看雲起因知妙 行到源頭始覺初 사람들은 글읽기가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더니 이제 보니 산을 유람하는 것이 책 읽는 것과 같구나 공력을 다하면 스스로 내려오는 법 얕고 깊음을 아는 것 모두가 자기에게 달려있네 조용히 앉아 일어나는 구름을 보고 오묘함을 알고 발길이 근원에 이르러 비로소 시초를 깨닫네 -"퇴계 이황 선생님"의 "讀書如遊山"에서- [이배재-은고개 산행지도] "검단지맥 黔丹枝脈이란" "한남정맥"의 "할미성산"에서 조금 내려 가면 나타나는 "향린동산"이라는 전원주택의 뒷산에서 분기하여 북쪽을 향해 법화산(383.2m), 불곡산(335m), 영장산(414.2m), 검단산(542m), 청량산(438m), 남한산(522m), 용마산(596m), 검단산(657m)을 지나 한강과 만나는 "팔당댐 앞" "창모루"까지 약45km의 산줄기를 말하며, 산줄기는 좌측에 "탄천", 우측에는 "경안천"을 끼고 한강으로 갑니다. 오래전에 "검단지맥"을 종주한적이 있습니다만, "은고개"에서 "남한산성"까지를 아직 가보지 못해 눈이 내리는 날 "남한산성"과 "은고개"까지를 걸어 보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이배재"에서 "남한산성"을 지나 "은고개"까지 약16km를 갑니다. ['이배재' 산행 들머리] 11:17 2014년 1월 22일 (수) 맑음 연무 '성남 모란역 6번출구'에서 [31-3번시내버스]를 타고 "이배재 정상 버스정류장"에 내렸습니다. 배차간격이 짧아 기다림없이 탈수 있어 편리했습니다. [500-3번 시내버스]도 있었습니다. "모란역"에서 "이배재"까지 12분 정도 걸렸고... [오름길] 지맥 산행으로는 조금 늦은 시간에 출발을 하여 조금 빠른 속도로 진행합니다. 된비알을 10여분 오르면.... [조망소] "눈이 내리면" 가려고 아껴 두었던 코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하얀 눈세상에 들어가 산행을 하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만, 오늘은 저나 애독자분들이나 눈 구경은 싫컷 하게 되겠습니다. ㅎㅎ 좌측으로 "성남시내"가 조망되는 조망소를 지나고... 멋있죠? ['이배재고개정상' 봉우리 조망] 11:29 올라야할 첫번째 봉우리를 조망하며 올라 갑니다. 저 산봉우리 이름을 "이배재고개정상"이라고 지어 놨습니다. 조금전 "이배재 고개 정상"에서 산행을 시작하였는데.....어케된거여? ['이배재고개정상' 봉우리] 11:43 첫번째로 오른 봉우리는 이름을 "이배재고개정상"이라고 누군가 작위적으로 지어 놓은 봉우리였습니다. 전에는 이런 이름이 없었는데 최근에 비전문 공무원들이 억지로 이름을 만들었나 봅니다. ['이배재고개정상'에서 '망덕산' 조망] "이배재 二拜峴"는 옛날 '한양'을 넘나들던 선비들이 이 고개에 이르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 절을 한번하고, 한양에 계신 임금님께도 또 한번 절을 하며 넘었다고 "이배재 二拜峴"라고 했다는데, 조금전 산행 들머리였던 고개를 말합니다. 또한 '퇴계 이황(李滉)선생님'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다가 이 고개를 넘게 되었는데, 넘어 가면 한양이 보이지 않으므로 임금계신 한양쪽을 향해 두번 절하고 떠났다고 하여 "이배재"라 칭하게 되었다고하는 내력도 있답니다. 그런데 조금전 진짜 "이배재 고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산봉우리를 이정목에 공식적으로 "이배재고개정상"이라고 표기 한것은 해도해도 너무합니다. "재→고개"를 말하는것이고,"고개"는 언제나 산봉우리와 산봉우리 사이에 있으며, "산줄기를 넘는 가장 낮은 정상"에 있다는 뜻인데, 같은 말을 세번씩 되풀이하면서까지 이 산봉우리를 "이배재고개정상"이라고 강조하다니...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을 "성판악고개정상"이라고 표기하는 것과 같죠? ['이배재고개정상'에서 '검단산' 조망] 이나저나 이 봉우리에선 가야할 "검단산"과 "망덕산"이 시원하게 조망됩니다. "검단산 정상"에는 공군 레이다시설과 이동통신중계탑이 있어 어디에서나 알수 있습니다. 5분 정도 진행하면.... ['보통골하산갈림길'] 11:48 "보통골하산갈림길"이라는 봉우리를 지나고.... 이 갈림길은 '보통골'로 "하산"만 할수 있다는 말인가? "망덕산"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고, "이배재"로 가는 산객들에겐 "이배재하산갈림길"도 됩니다. 그냥 "보통골갈림길"로 하면 될것을...ㅎ ['망덕산' 오름길] 10여분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망덕산 정상] 12:00~12:10 "망덕산 望德山 500.3m" 전에는 "왕기봉"이라고 했는데 독립된 산으로 등업되었나 봅니다. ['망덕산 정상'에서 '두리봉' 조망] "망덕산 정상"에서 "두리봉"이 조망되는군요. 산객들에게 제법 유명한 "남한산성 산줄기 종주코스"의 일부분인데 "두리봉→군두레봉→산성입구"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분기되는 곳이 "망덕산"입니다. 조만간 "남한산성 산줄기 종주코스"를 종주를 해 보아야겠습니다. [눈길] 환상적인 눈길을 6분 정도 진행하면.... [사기막골 갈림길] 12:16 "사기막골 沙器膜골" 갈림길을 지나고.... 옛날 사기그릇 만드는 가마가 있었나 봅니다. 8분 정도 더 진행하면.... ['만수천' 앞] "만수천" 앞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동서남북으로 등산로가 나 있는 곳이어서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검단지맥'은 무조건 "검단산 방향"으로만 가면 되겠습니다. [萬壽泉] 12:24 "검단산"에는 약수터가 많이 있다는데 그 중에서 이곳 "만수천 萬壽泉" 약수터가 유명하답니다. 산 정상부근에 있는 약수터여서 인듯.... ['검단산' 조망] "검단산 정상"의 레이다시설을 보며 북쪽방향으로 10여분 진행하면.... ['검단산 정상 헬기장' 갈림길] 12:33 삼거리를 만나는데 "검단산 정상석"이 있는 헬기장으로 가려면 좌측 "검단산"방향으로 올라 가야합니다. 직진하는 길은 "남한산성"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검단산 헬기장 오름길] 잠시 헬기장으로 오르면.... [검단산 헬기장] 12:37 "검단산 黔丹山 534.7m" 높이는 각 지도마다 틀려 정확치 않습니다. 정상은 앞에 보이는 군부대 안에 있어 산객들을 위해 이곳에 정상석을 설치했나 봅니다. "검단지맥"에는 "검단산"이 두개가 있죠. 한자까지 같습니다. [부대앞 사거리] 12:40 헬기장에서 우측으로 나가면 군부대 진입로가 있는 사거리를 만납니다. "남한산성"으로 가는 길은 우측으로 "지화문(남문)방향"으로 포장도로를 따라 갑니다. ['남한산성' 가는 길] 군사도로인 포장도로를 따라 약20여분 지루한 길이 이어 집니다. ['남한산성' 가는 길] 지맥은 좌측 산능선이지만 지뢰지대였다고 출입을 금지하고 있고 마루금으로서의 의미가 없어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는 것입니다. ['남한산성' 조망] 중국놈들에게 '항복'이라는 처절한 오점을 남긴 '병자호란'이라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남한산성"이 언제 그랬냐는듯 덤덤하게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남한산성" 방어의 최대 취약지가 앞에 보이는 남쪽방향과 동쪽 "벌봉지역"이었답니다. 모두 "검단지맥"이 이어지고 있어 접근이 용이해서 였겠죠.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는 이곳과 "벌봉지역"을 선점하여 화포로 남한산성을 포격하여 행궁을 초토화 시켜 항복을 받아 낼수 있었답니다. ['남한산성 남문' 갈림길] 1:00 "검단산"에서 20여분 군사도로를 걸으면 첫번째 삼거리를 만납니다. 지맥은 직진하여 남한산성 성곽으로 올라 갑니다만, 대부분 성곽 아래 좌측 우횟길로 진행하는데 사진 속에 "남문 방향"이라고 표기했습니다. 저는 지맥에 조금더 충실하기 위해 우측 포장도로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 가려 합니다. 사진 속에 "암문 방향"이라고 표기 했습니다. ['제7암문' 가는 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가면 좌측에 복원 중인 "남한산성 제1남옹성"이 나란히 갑니다. "검단지맥"은 좌측 "제1남옹성"으로 이어져 앞에 보이는 남한산성 성곽으로 연결됩니다만 성곽으로 갈수 없어 우측 "남한산성 제7암문"을 통해 앞에 보이는 성곽 위로 올라 갑니다. ['제7암문'] 군사용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 가면 "남한산성 제7암문"이 독특한 모양을 하고 나타나며..... 조금 더 올라 가면... ['제7암문'] 1:07 城안으로 들어 가는 "남한산성 제7암문"을 만나 통과합니다. ['현위치1' 지점] ['현위치1' 지점] [현위치1 ]을 이해하기 쉽게 표기했으니 참고 하시고.... ['제7암문' 앞 갈림길] "제7암문"을 통과하자 마자 좌측 성곽으로 올라 붙습니다. 직진하면 바로 산성 안 번화가 입니다. ['남한산성' 성곽길] 1:11 이 부근 성곽에선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면... ['제7암문' 조망] 동쪽으로는 조금전에 통과한 "제7암문"과 "東門"으로 이어지는 남한산성 성곽이 쫘~아악 보이고, 성곽을 호위하는 "제2남옹성"도 보이는군요. [''제1남옹성'과 지맥] 남쪽으로는 복원 중에 있는 "제1남옹성"이 이곳이 "검단지맥"이라고 알려 줍니다. "제1남옹성" 우측이 "남문"으로 가는 우횟길. "검단산"에서 이어져 오는 '검단지맥'이 선명합니다. ['청량산' '연주봉' 조망] 북쪽으로는 가야할 "남한산성"이 한폭의 동양화처럼 펼쳐집니다. 이렇게 하얀 눈이 쌓인 남한산성을 만나기는 쉽지 않지요. 눈이 내린 날을 기다리고 기다려 찾아 온 남한산성에 서니 즐거움이 배가 됩니다. "남한산성 南漢山城"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24km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는 '경기도남한산성도립공원'은 행정구역으로는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걸쳐 있으며, 성 내부는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속해 있다고 합니다. 특히, 조선 왕조 16대 임금인 '인조'는 남한산성의 축성과 몽진, 항전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를 이곳 '남한산성'에서 맞으며 치욕의 역사를 쓴 곳이기도 하죠 ['지화문'-南門] 1:19 쌓인 눈에 푹푹 빠지며 잠시 내려 가니 "지화문 至和門-南門"이 나오며... '남한산성'에서 규모가 가장 큰 문이라고 하며, '성남시'와 '광주시'를 넘나드는 곳. 현재까지 보존이 가장 잘되있다는 "지화문 至和門"입니다. [南門 밖] "지화문 至和門-南門"에서 바라보는 '성남방향' 모습입니다. 싸움 보다는 화합을 더 내세우는 의미 인듯한데,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일반적으로 부르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일반명사 "남문 南門"으로 더 불리워지는 城門입니다. 그 城門에 올라 城밖을 내려다 봅니다. 예전엔 이곳으로 자동차가 다녔었는데, 지금은 옆에 터널을 뚫어 우회 시키고 이곳은 잘 가꾸어 공원화 하였는데 오래 전에 했다니 저도 오래 된 사람인가 봅니다. 우리가 초딩시절엔 서울에서 소풍가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城門이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나무를 심어 가렸다는데 360년이 넘은 나무들이 그 생명력을 부지하는데 인간들의 도움을 받고 있어 지난 하세월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영춘정' 오름길] 지맥은 성곽을 따라 "청량산"으로 이어 집니다. [뒤돌아 본 '南門'] "돌탑봉"으로 오르며 뒤돌아 본 지맥과 성곽입니다. [계단 된비알] 제법 가파른 계단길을 10여분 올라 갑니다. [雪景] 정말 좋은 날에 남한산성을 찾았지요? ㅎ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돌탑봉'] 1:31 '南門'에서 10여분 오름짓을 하면 첫번째 봉우리에 오르게 되는데 돌탑이 하나 있어 "돌탑봉"이라고 그냥 부른답니다. ['돌탑봉'에서 '영춘정' 조망] "돌탑봉"에서 다음 올라야할 봉우리인 "영춘정 봉우리"를 조망합니다. 8분 정도 진행하면.... [迎春亭] 1:39 "영춘정 迎春亭"은 병이 깊어 수술 치료 중에 있군요. '迎春亭'은 원래 성밖에 있었는데 옮겨왔답니다. 차갑고 어두운 겨울 같은 전쟁에서 어서 빨리 봄이 오기를 기대하는 곳이었을까 '병자호란' 당시 아마도 그들은 어서 빨리 봄이 오기를 학수고대 했을 것입니다 ['迎春亭'에서 '청량산' 조망] '迎春亭'에서 '남한산성'의 하일라이트가 있는 "청량산"을 조망하고.... '남한산성'의 규모는 본성이 9.05km, 옹성이 2.71km로서 총 11.76km라고 합니다. 경기도의 3大 山城 중에 하나로 "북한산성" "문수산성"과 함께 한양을 수호하는 山城이었습니다. 지금은 관광지? ㅎ [된비알 계단길] 다시 가파른 계단길을 7분 정도 오르면.... ['제6암문' 앞-'수어장대' 입구] 1:46 "제6암문"이 있는 곳에 도착합니다. "수어장대"는 여기서 우측으로 조금 더 올라 가야 합니다. [제6암문] "제6암문-西暗門" '南門'과 '西門' 사이에 있는 비밀통로랍니다. '남한산성'에는 12개의 암문과 4개의 대문이 있다고 합니다 ['수어장대' 입구] "수어장대"로 올라 갑니다. ['청량당'] "수어장대" 정문을 통과하면 좌측에 "청량당 淸凉堂"이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청량당 淸凉堂"에 얽혀있는 사연은 다음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청량당' 안내문] 우리나라 역사에는 간신배들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처형 당한 인물이 많은데 그 중에 대표적 인물이 "이회"이지요. [수어장대-守禦將臺] 1:50~1:58 "수어장대 守禦將臺 - 西將臺" '수어장대'가 있는 산봉우리의 이름은 '남한산성'의 주봉인 "청량산 497.9m"입니다. 저는 처음에 '수어장대'는 '어御'를 사용하여 임금을 수호하는 '守御將臺'인줄 알았는데, '어 禦'를 쓰는군요. '어 禦'는 '수 守'와 같은 의미로 '수비하다''방어하다'라는 뜻이죠? 겹겹이 수비한다는 뜻으로 '守禦'라고 한듯합니다. 에구~수많은 세월 동안 뭘 수비했는지 한탄만 나옵니다만, 그날의 비굴하고 처참한 역사를 기억하는지 않는지 하얀 눈이 모양새를 다듬고 있습니다. 4개의 장대 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장대라는데 '경기도유형문화재1호'랍니다. ['無忘樓'] '守禦將臺' 옆에는 전각이 하나 있는데 "무망루 無忘樓"라는 편액을 일반인들도 볼수 있게 전시 해 놓은 곳이었습니다. 내용은 윗 사진을 참고하시고... 그 옆에는 "리대통령행차기념식수-단기4286년9월6일"이라는 식수비가 세워져 있는데, 저에겐 아이로니컬한 느낌이 듭니다....... 왜냐구요? '인조'와 '리승만대통령'...공통점이 있는 분들이라서...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도망친 고려의 '고종'. 임진년에 쪽바리들의 침공에 한양과 백성을 버리고 저만 살겠다고 임진강을 건너 북으로 북으로 도망친 조선의 '선조' 병자년에 얼마나 도망 갈 곳이 없었으면 여기 초라한 남한산성으로 도망친 조선의 쿠데타 정권 겁쟁이 '인조' 북의 김일성이 쳐 내려온다고, 한강 철교를 폭파하고 또 백성과 서울을 버리고 남으로 남으로 도망친 '이승만' 독재정권. '리승만'은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는 '인조'가 하나의 위안이 되었을까... 그래서 이곳을 방문하여 쪼다리 임금 '인조'를 추모하며 식수를 했을까... 식수한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그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는데 독재정권의 말로는 하와이 망명? ['西門' 가는 성곽길] '수어장대'를 나와 '서문'으로 향합니다. 백설이 검은 그림자들을 덮고 온 세상을 하얗게 해 주는데... 저는 '남한산성'만 오면 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 갑니다. ['西門' 옆 쉼터] '西門' 위에는 아름다운 쉼터가 있고.... ['右翼門'-西門] 2:09 "우익문 右翼門 -西門" '남한산성'의 "오른쪽 날개"에 해당하는 門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겠지요. "東門"의 본명은 당연 "좌익문 左翼門"이었습니다 右翼 左翼이라는 단어를 보니 요즘 우리 사회를 생각하게 하며 묘한 느낌을 주는데.... [西門안] 西門에서 城안을 들여 다 봅니다. 저 아랫쪽에 '인조'가 묵었던 "행궁"이 다시 복원되어 있다는군요. [西門밖] '西門' 밖으로 나 있는 "삼전도"로 통하는 길입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송파구 거여동-마천동-오금동' 방향입니다. 조선왕조 왕들중 최고로 의심이 많았던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한양과 백성을 버리고 개피를 보며 저만 살겠다고 임진강을 건너 북으로 북으로 도망을 가고...... 전란이 끝나고는 오로지 明나라에만 충성을 다해 왕권만 유지 하려한 '선조'였습니다 당시 중국의 상황은 '후금'이 세력을 키워 '明'을 위협하고 있었는데도 .... 그래서 '광해군'은 양다리 외교를 펼쳐 '후금'과 '명나라'를 함께 아우러는 외교정책을 시행하며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수구꼴통들은 이러한 광해군의 외교정책을(물론 다른 꼬투리들도 있지만) '외교정책'을 꼬투리로 잡아 '쿠데타-인조반정'을 일으켜 불법으로 정권을 잡고는 이들은 오로지 '明나라'만 섬겼습니다. 그 결과가 '병자호란'인데... 후금의 '누루하찌'가 '明'을 초토화 시키며 '靑나라'를 세우는 시대가 도래하니 '明나라'에게만 외교를 고집했던 '인조'와 수구꼴통세력들은 하루 아침에 청태종으로부터 보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병자호란'이지요. [뒤돌아 본 '西門] 2:15 1636년12월 겨울 이 남한산성에는 '인조'라는 쪼다리 임금이 있었고, 체찰사로서 난국의 해결을 시간에 맡기는 양다리의 명수 영의정 '김류'가 있었고, 의로움과 충성심으로 절대 굴복은 없다고~ 오로지 싸워야 한다는 주전파 예판 '김상헌'이 있었고, 매국의 오명을 뒤집어 쓰더라도 임금이 살길은 화친이라고 말이 화친이지 실제는 항복이라는 말을 비틀어 화친이라고 말 하는 이판 '최명길'이 있었습니다. "죽어서 살것인가, 살아서 죽을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옥신각신 말싸움만 하다가 바로 저 西門을 통해 '삼전도'로 내려가 항복을 하며 그들은 결국 대한민국 역사에 도리킬수 없는 오점을 남기며 얼마나 더 오래 살지도 모를 목숨을 부지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仁祖實錄"에는 그날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인조 15년, 1637년 1월 30일'의 "仁祖實錄"입니다. 「'용골대'와 '마부대'가 성 밖에 와서 왕의 출성(出城)을 재촉하였다. 왕이 남염의(藍染衣) 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의장(儀仗)은 모두 제거한 채 시종 50여명을 거느리고 서문(西門)을 통해 성을 나갔는데, 왕세자가 따랐다. 백관으로 뒤쳐진 자는 서문 안에 서서 가슴을 치고 뛰면서 통곡하였다」 *남염의(藍染衣) : 일반 백성들이 입는 허름한 남루한 옷 ['삼전도' 조망] 2:15 "삼전도 三田渡" '인조'가 치욕의 "삼배구고두례 三拜九叩頭禮"를 한 "삼전도"가 보입니다. 첫번째 절 : 이마를 땅에 세번 대고, 두번째 절 : 이마를 땅에 세번 찧으며, 세번째 절 : 이마를 땅에 세번 박는 '三拜九叩頭禮'를 한 '인조' 피투성이가 된 마빡이지만, 청태종은 머리 박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소리가 날때까지 '꼰아박아 실시'를 하였던 것입니다. 몽고식 항복 인사방법이랍니다. 이러한 역사를 알아야 하겠습니까? 쉬~쉬 해야겠습니까. 지금 이 사진 속에 서울의 발전 된 모습이 보이십니까? 아니면 그날의 삼전도 굴욕이 보이십니까. 감상은 자유입니다...... ['연주봉 옹성' 가는 길] '서울 송파구'에 "오금동 梧琴洞"이라고 있죠? 지명은 '오동나무로 가야금을 만드는 장인이 살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만, '병자호란' 당시엔 웃지 못할 지명의 유래가 있었다는군요.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도망칠때 호위병들도 대부분 도망쳐서 몇명이 '인조'를 교대로 업고, 추운 겨울에 남한산성 '西門'으로 허겁지겁 가던 중에 '오금동'을 지날때였답니다. 업고 가던 신하가 힘들어 '인조'를 스스로 걸어서 가도록했다는데, 잡히면 죽는 판에 왕인 "인조"도 어쩔수 없이 걸으며 뛰며 할수 밖에 없었답니다. 걸어 본적이 거의 없는 '인조'는 허겁지급 쬐끔 걸었으나 "오금이 져려와서" 더 이상 걸을수 없었으나 아무도 도와 주지 않으니 그 자리에 그냥 주저 앉았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오금이 져려서 오금동"이 되었다는 민초들의 비아냥이 있었답니다. 엄동설한에 가파른 남한산성을 "인조" 스스로는 도저히 오를수 없었는데 그때 다행이 "서 흔남"이라는 천민신분의 나뭇꾼이 나타나 "인조"를 업고 올라 갔답니다. 그래서 "인조"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고, 자기가 입는 곤룡포(袞龍袍)를 '서흔남'에게 하사하고, 천민에겐 파격적인 "正三品 嘉義大夫"라는 품계를 내리고 공적비까지 세워 줬습니다. 그 공적비는 현재 남한산성 관리소 주차장 앞에 있습니다 ['제5암문'-'연주봉 옹성문'] 2:19 "西門"과 "北門" 사이에는 "연주봉 옹성"이 있습니다. "옹성"으로 출입하는 문이 "제5암문"입니다. ['연주봉 옹성'] "제5암문"으로 나가서 "연주봉 옹성"을 바라봅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연주봉"이랍니다. 앞으로 시간 나면 이곳으로 오르는 산행코스를 걸어 보아야겠습니다. [北門 가는 길] 2:22 저의 학교 선배 '김훈'의 역사소설 '남한산성'에서 인용합니다. (이조판서)최명길이 말했다. "제발 예판(예조판서)은 길, 길 하지 마시오. 길이란 땅바닥에 있는 것이오. 가면 길이고 가지 않으면 땅바닥인 것이오." (예조판서)김상헌이 목청을 높였다. "내 말이 그 말이오. 갈 수 없는 길은 길이 아니란 말이오" 항복을 하자는 '이조판서 최명길'과 끝까지 싸우자는 '예조판서 김상헌'이 옥신각신하는 장면입니다. '김상헌'이 포로로 잡혀 가며 지은 유명한 詩가 있지요? 가노라 三角山아 다시 보쟈 漢江水야 古國山川을 떠나고쟈 하랴마는 時節이 하 殊常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후에 '최명길'이 지은 시도 제법 유명합니다. 후회의 시이죠 상황 끝난후 하는 후회의 글이야 저도 쓸수 있습죠. ㅎㅎ 鼓角喧空海接天(고각훤공해접천) 五千兵甲載樓船(오천병갑재루선) 山城不死皆臣罪(산성불사개신죄) 泣向春風拜杜鵑(읍향춘풍배두견) 고각소리는 공중을 흔들고 바다물결은 하늘에 닿았는데 오천여 甲兵을 樓船에 싣는구나. 남한산성에서 죽지 못한 것이 모두 신하의 허물이니 울면서 봄바람을 향하여 두견새에 절하노라 ['남한산' 조망] "北門"으로 내려 가면서 "검단지맥"을 조망합니다. 남한산성의 규모를 짐작할수 있는 사진입니다. 저 앞에 보이는 "동장대터"로 남한산성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검단지맥"은 "동장대터"에서 "봉암성"을 통과하여 "남한산"으로 갑니다. "검단지맥"이 "남한산성"을 벗어 나는 곳이 되겠습니다. ['全勝門'-北門] 2:37 "전승문 全勝門-北門" '병자호란' 당시 항전하지 않고 성안에 숨어만 있었던건 아니였답니다.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열고 나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유일한 門이랍니다. 당시 영의정 김류의 주장에 의해 군사 300여명이 북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 군을 공격하였으나 '바위에 계란 던지기', 더더욱 적의 계락에 빠져 300명이 전멸하고 말았는데, 북문 아래 마을이 "법화골"이라고 이를 "법화골전투"라 하고,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최대의 전투이자 최고로 참패한 전투였다고 기록되고 있는데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할 때 성문을 개축하고 그때의 참패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전승문 全勝門"이라 하였답니다...... "인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 있습니다. '인조 14년 병자년 (1636년 12월 29일)' 이날 북문 밖으로 출병하여 평지에 진을 쳤는데 적이 상대하여 싸우려 하지 않았다. 날이 저물 무렵 체찰사 김류가 성위에서 군사를 거두어 성으로 올라 오라고 전령하였다. 그 때 갑자기 적이 뒤에서 엄습하여 별장 신성립(申誠立) 등 8명이 모두 죽고 사졸도 사상자가 매우 많았다. 김류가 군사를 전복시키고 일을 그르친 것으로 대죄(待罪)하니, 왕이 위유(慰諭)하였다. [北門안] '남한산성' 행궁에서 가장 가까운 문이 북문이랍니다. 잠시만 내려 가면 종각이 있는 산성로타리가 나옵니다. [北門에서 '수어장대' 조망] "北門"에서 '청량산'에 있는 "수어장대"를 뒤돌아 보며 조망하고..... ['제4암문'-'제2군포터' 가는 길] 성곽을 따라 30여분 진행해야 "제4암문-제2군포터지"가 나옵니다. [뒤돌아 본 '남한산성 북문'방향] "제4암문-제2군포터지"로 가며 뒤돌아 본 '남한산성'의 북서쪽입니다. [뒤돌아 본 '남한산성 南門'방향] "북장대터"에 올라 남서쪽을 바라보면 "南門"이 조망되고.... ['제4암문'-'제2군포터'] 3:05 "제4암문-제2군포터지" "군포 軍鋪"는 요즘 말로 "초소"라고 하는군요. ['제3암문'-'봉암성 암문' 가는 길] 12분 정도 된비알을 오르면.... ['제3암문'-'봉암성 암문'] 3:17 ★길조심★ "봉암성 암문 蜂巖城 暗門-제3암문" "검단지맥"을 가는 산객들에겐 중요한 갈림길이 되는 "봉암성 암문"을 만납니다. 이 암문을 통해 "남한산성 본성"을 나가 밖에 보이는 "봉암성 성문"으로 가야 합니다. 당연히 길조심을 해야겠죠? ['제3암문'-'봉암성 암문'] "봉암성 암문 蜂岩城 暗門-제3암문"을 통해 성밖으로 나갑니다. 이정표의 "벌봉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현위치2' 지점] ['현위치2' 지점] ['현위치2' 지점] [현위치2]를 꼭 기억하고 가야합니다. ['봉암성문'] "남한산성 본성"을 나가면 "봉암성 성문"이 바로 나타납니다. "봉암성"은 본성인 '남한산성'을 호위하는 성이라 성밖에 성문이 붙어 있습니다. ['봉암성' 안] 3:23 "봉암성" 안으로 들어 갑니다. ['봉암성' 안내문] "봉암성"을 쌓은 이유는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남한산' 가는 봉암성곽 길] 아직 복원을 못한 "봉암성"을 통과해 갑니다. 앞에 보이는 "남한산"으로 '검단지맥"은 이어집니다. [뒤돌아 본 '남한산성 본성'과 '봉암성문'] "남한산"으로 가며 뒤돌아 본 "남한산성 본성"과 "봉암성 성문"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이쪽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어서 후에 "봉암성"을 쌓았다고... ['남한산' 가는 성곽길] 7분 정도 "봉암성 성곽"을 따라 가면.... ['한봉' 갈림목] 3:31 "한봉갈림목-위례둘레길코스"라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좌측으로 가는 길은 "벌봉"으로 가는 지름길이었고, 지맥은 "한봉-노적산"방향으로 직진입니다. ['벌봉' 갈림길] 3:36 조금 더 진행하면 "봉암성"에서 가장 넓은 곳이 나오는데 "벌봉"은 좌측으로 가며, 지맥은 우측 "남한산"방향입니다. ['남한산 정상'] 3:38 "남한산 522m" 정상이 나옵니다만, 삼각점은 눈에 파뭍혀있어 찾을수 없었고 "남한산성"이라는 이름을 갖게 만든 산인데도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봉암성곽'] "남한산 정상"을 지나면 좌측 성곽을 따라 가야 합니다. ['검단산'-'고추봉'-'용마산' 조망] 연무로 조망이 나쁩니다만, "검단지맥의 최고봉"인 "검단산 657m"이 조망되며 이어지는 "고추봉"과 "용마산"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고추봉"과 "용마산" 사이에 있는 봉우리가 "두리봉"인가 봅니다. ['은고개' 갈림길] 3:43 ★길조심★ "은고개-한봉 갈림길" '검단지맥'은 이곳에서 "남한산성-봉암성"을 벗어나 "은고개"로 내려 갑니다. "봉암성"은 우측으로 "한봉 汗峰 418m"로 이어 집니다만, 지맥은 좌측 "엄미리(은고개)"방향으로 성곽을 벗어나 내려 갑니다. [현위치에서 '은고개'까지 지도] ['현위치3' 지점] ['현위치3' 지점] [현위치3]도 중요한 곳이므로 꼭 알고 가야 합니다. "남한산성"을 벗어나 "은고개"로 가는 갈림길입니다. ['봉암성' 탈출] 허물어진 성곽을 넘어 가서.... [뒤돌아 본 '봉암성곽'] 뒤돌아 본 "남한산성의 봉암성" 탈출구입니다. 성곽을 뒤로 하고.... ['은고개' 가는 길] 길이 나쁘면 어쪄나~~하고 다소 걱정했었는데 지맥길은 매우 좋았습니다. 13분 정도 완만한 내림길을 진행하면.... ['엄미리 계곡' 갈림길] 3:57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지맥은 좌측 "엄미리(은고개)"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은고개"방향으로만 가면 되겠습니다. ['410m봉' 오름길] 내리막만 있는게 아니더군요. 전체적으로는 "은고개"까지 내리막이지만 오르내림이 몇번 있었습니다. 다시 "410m봉"을 6분 정도 오르면.... ['410m봉' 정상 쉼터] 4:03 벤치가 두개 있는 "410m봉 정상"에 오릅니다. [삼거리] 4:04 ★길조심★ "410m봉"을 지나자마자 바로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느낌으로는 직진해야 할듯하지만, 지맥은 우측으로 가더군요. 다행히 "은고개"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어 알바를 면할수 있었습니다. ['348m봉'-'84번송전탑' 조망] "410m봉"을 내려 가는 길에 조망되는 가야할 "346m봉"-송전탑봉"입니다. '검단지맥'의 흐름을 알수 있죠? ['엄미리계곡' 갈림길] 4:10 '검단지맥' 산줄기의 우측이 "엄미리계곡"입니다. 여름철에 보신탕 먹으러 가는 곳으로 유명한 계곡이죠. 지맥은 "은고개"로 직진합니다. [쉼터] 4:12 다시 쉼터가 있는 이름 모를 봉우리를 지나면.... [갈림길] 4:13 ★길조심★ 또 다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은고개"방향으로 내려 갑니다. ['348m봉' 조망] 송전탑이 있는 "346m봉"이 점점 더 가까워 지고... ['348m봉' 오름길] 20여분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오름짓을 하면.... ['348m봉' 정상] 4:33 [85번송전탑]이 있는 "346m봉" 정상을 옆으로 지나게 되고.... [지나온 길 조망] "346m봉"에서 뒤돌아 본 "남한산"입니다. 이어져 오고 있는 지맥이 선명합니다. ['330m봉'-'84번송전탑' 가는 길] "346m봉"에서 7분 정도 평평한 능선을 진행하면.... ['330m봉'-'84번송전탑'] 4:40 [84번송전탑]이 있는 "330m봉"을 지나 갑니다. ['검단산-고추봉-용마산' 조망] "330m봉"을 지나면 비로서 건너편에 있는 "검단산-고추봉-용마산"이 성큼 다가오고 '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이 조망되며, "중부고속도로"까지 가까이 보입니다. ['303m봉' 조망] "대림학원 학교림" 안내판이 있는 "303m봉"을 바라보며 24분 정도 진행하면.... ['303m봉' 정상-학교림] 5:04 "303m봉 정상" 정상에는 "대림학원 학교림 안내판"이 있습니다. 이 봉우리가 이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가 되겠습니다. [지나온 지맥 조망] "303m봉 정상"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지맥입니다. 해가 서산에 기울기 시작하는군요. ['303m봉' 내림길] "303m봉"에서 "은고개"로 하산하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이었습니다. [급경사 내리막] 로프가 설치되 있어 길찾기는 문제없습니다만, 급경사 내리막이었습니다. 15분 정도 내림질을 하면.... [묘지] 묘지가 나오는데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길안내를 해 줌으로 길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은고개' 조망] 묘지에서 이어지는 "검단지맥"을 바라봅니다. 지맥은 앞에 보이는 "193m봉"을 지나 "용마산"으로 갑니다만 [중부고속도로]가 가로막고 있어 우측 "엄미리"로 우회하여야 합니다. ['은고개' 날머리] 5:21 [43번국도]가 지나는 "은고개"가 있는 날머리에 도착했습니다. [뒤돌아 본 날머리] 내려 가서 뒤돌아 본 날머리입니다. 날머리는 [43번국도] 조금 위에 있는 "마실 가마솥 밥상"이라는 음식점 입구이더군요. [은고개] 5:23 '경기도 광주시'와 '경기도 하남시'의 市界가 되는 곳이 "은고개"였으며 "은고개 버스 정류장"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여기서 '성남시 모란역'으로 가려면 [13번시내버스]를 타고 "광주공설운동장-보건소앞"에서 [31-3번]이나 [500-3번]으로 환승하여 "모란역"으로 가면 되고, "천호동"으로 가려면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13번]이나 [13-1번]을 타고 가면 됩니다. 산행거리 : 16km 산행시간 : 6시간 6분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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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지맥 마지막구간 태재-불곡산-대지산-대지고개-명동성당공원묘지-법화산- 88 C.C.-한남정맥 분기점-할미성산-동백중학교 2009년 11월21일(토) 맑음 지난 밤에 금년들어 실질적인 첫눈이 내렸는데 우리 동네에는 그다지 많이 오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검단지맥 마지막구간을 종주하기 위해 길을 나섯습니다. [태재 泰재] 분당 서현역까지 가서 1500-2번 광역버스를 타고 성남시 분당과 광주시 오포읍의 경계를 이루는 '태재'에 내렸습니다. 우측 산줄기는 분당 율동공원 뒤를 돌아 오는 검단지맥으로 지난해에 불곡산까지 이미 종주한바 있으나 태재에서 마지막구간을 종주하려고 합니다 [태재 泰재] 9시 40분 '태재' 산행 들머리는 앞에 보이는 '마포갈비집' 우측 능선으로 올라 갑니다. '태재 4거리'는 남북으로 신설된 도로와 동서로 나있는 옛도로가 교차하면서 사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두 도로는 결국 다시 만납니다. 9시 40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태재 泰재] '태재'옆 조그만 둔덕으로 올라 "태재4거리"를 내려다 봤습니다. 지나 다니기는 많이 했지만 이 위에 올라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泰재"는 큰고개라는 뜻으로 이런 이름을 가진 고개는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지요 좌측 산줄기와 연결되 '검단지맥'을 잇고 있었는데 도로를 새로 내면서 짤리운게 조금 아쉽습니다 [태재 泰재] '태재'옆 둔덕에는 묘지가 여럿 있었고 절묘한 곳에 묘를 썼습니다. [웃태재 웃泰재] '태재'에서 조그만 둔덕을 넘어 오면 '옛 진짜 태재"가 나옵니다. 이름하여 "웃태재"라고 합니다. 일반 대중교통수단인 버스들은 모두 이곳 "웃태재"를 통과하며 다닙니다. "불곡산 입구"를 잘 보아 두시기 바람니다. ['웃태재' 불곡산 산행 들머리] '불곡산 들머리'는 검단지맥 산줄기로는 바로 앞으로 올라 좌측 능선으로 가면 됩니다. 그런데 "불곡산 산행 들머리"는...좌측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정식으로 산행들머리가 있으니 편리한 곳을 이용하면 되겠습니다. [성남시계 종주 안내도] 정식 불곡산 산행 들머리에는 "성남시계 능선 일주 코스"를 안내하는 안내도가 있습니다. 저는 거의 대부분 종주했습니다만, 청계산에서 인릉산을 지나 남한산성으로 가는 코스를 아직 못갔습니다. [태재에서 불곡산까지 구글어스] '태재'에서 '불곡산'까지 구글어스로 본 산행로입니다. ['웃태재' 불곡산 산행 들머리 이정표] 9시 50분 산행들머리를 들어 서면 이정표가 길을 안내하는데 '불곡산 정상'을 향해 가면 됩니다. 분당의 뒷산이기에 이정표는 잘 설치되있습니다. 9시 50분에 불곡산 입구를 통과합니다 [불곡산 형제봉 오르는 길] 우리집이 있는 동네에는 눈이 아주 쬐끔 왔는데 이곳에는 눈이 제법 쌓여있어 놀랐습니다. 오늘은 금년 겨울 들어 첫 눈산행을 하게 되는군요 [불곡산 형제봉, 佛谷山 兄弟峰] 10시 5분 처음로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며 우측에는 정자가 있는 형제봉입니다. 10시 5분에 형제봉을 통과 [불곡산 정상으로 가는 길] 완만한 경사의 불곡산 정상으로 가는 길 등산코스라기보다는 MTB코스라고 해야 할 정도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분당 시가지] 우측으로는 분당 수내동이 보입니다. 나뭇닢이 울창한 여름철에는 외부 조망이 전혀 되지않는데 역시 이런 산은 겨울에 와야 외부 조망을 할수가 있네요. [불곡산 정상] 불곡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산인지 공원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자전거와 산객들이 엉켜있습니다 눈 내린 불곡산 [불곡산 정상] 10시 20분 10시 20분에 불곡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에는 정자와 운동시설들이 있어 분당지역 사람들의 여가 선용의 자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불곡산 정상석] 높이가 312.9m이면 그렇게 낮은 산도 아닌데 태재에서부터 오르면 아주 낮은 산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정자동, 수내동등에서 오르면 제법 높은 산으로 느껴지더군요. 이 정상석은 정자 뒤에 있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불곡산 佛谷山은 이 산의 계곡에 절간이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성남문화원 공식 홈피에 나와 있더군요. [불곡산 정상] 정자 안에서 보이는 불곡산 정상 풍경 佛谷山은 전국에 여럿 있지요? 대표적 佛谷山은 경기도 양주에 있는 佛谷山인데 임꺽정 생가가 있는 곳이지요. 양주의 佛谷山 산행기는 저의 블로그에 상세하게 나와 있으니 찾아 읽어 보세요 [불곡산에서 대지고개까지 구글어스] 佛谷山에서 "大地고개"까지 가는 코스에는 독도에 주의를 요하는 곳이 몇곳있습니다. [부천당고개 가는길] '불곡산 정상'에서 "부천당 고개" 가는 길을 유의해야 합니다. 정자 왼쪽편으로 난 주등산로를 따라 조금 내려 갑니다. 조금입니다. [부천당고개와 분당 토지공사 갈림길] 10시 25분 불곡산 정상 정자에서 조금 내려 오면 곧 바로 Y자 갈림길이 나옵니다. 사진 가운데 보이는 붉은색 기둥이 이정표인데, 이 Y자 갈림길에서 좌측 길로 가야합니다. 우측 직진은 토지공사, 미금역으로 가는 길입니다. [산불감시초소와 정자] 10시 30분 토지공사로 가는 Y자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조금 오면 정자와 '산불감시초소'가 나옵니다. [갈림길 - 독도주의] 10시 36분 '산불감시초소'에서 조금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조심해야 합니다. 이곳에서는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길을 찾아 가는 일 이외에는 특별한 것들이 없어 예전에 '천마지맥3구간"에서 들려 드렸던 인생역정 유머 "강남 부자와 강북 서민"이란 얘기 들려 드림이다. 강남 부자 오늘 마누라와 외식을 먹으러 나왔다. 마누라는 애드워드 아일랜드산 바닷가재를 먹자 했으나 나는 그냥 늘 먹던대로 상어 지느러미를 먹자고 했다. 실랑이 끝에 토라진 마누라는 운전기사의 키를 뺏어 벤츠를 몰고 집에 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마누라의 생일이다. 사과의 기념으로 우리부부는 내일 호놀룰루에 여행을 간다. [부천당 고개] 10시 40분 독도주의 갈림길에서 다시 조금 가면 이렇게 조그마한 "부천당 고개"가 나옵니다. 직진합니다. 강북 서민 오늘 마누라와 시장을 보고있었다. 마누라는 탕수육이 먹고싶다고 했다. 나는 집에 가서 밥이나 먹으라고 호통을 쳤다. 토라진 마누라는 그길로 바로 버스를 타고 혼자 집에 갔다. 나는 열이 받아서 집에가서 마누라를 무지하게 팼다. 헛소리 안 한다는 각서 까지 받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마누라 생일이다. 나는 참 무심한 남편이다. 집에 가는 길에 약국에서 파스를 사서 가야겠다 [부천당 고개 이정표] "불곡산 약수터 입구"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20년이 흐른후~~ 강남 서민 호놀룰루에 갔을땐 봄날였다. 중국 주식 열풍에 휩싸여 펀드에 재산 절반을 투자 했는데 건진것도 별로 없다. 잘 나가던 사업체 부도난건 오래전~ 그나마 강남이 슬럼화 한지라 집 한채 값도 이젠 강북 집에 세들어 살기도 모자란다. 이런저런 시름의 생각에 묻혀 있을때 마누라가 탕수육이 먹고 싶다고 한다. 화가 난 나는 오늘 무지하게 두들겨 팼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마누라 생일이다. 나는 참 무심한 남편이다. 약국에 가서 파스나 사서 붇여줘야겠다 [골안사 갈림길] 10시 45분 '부천당고개'에서 5분정도 가면 "골안사"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합니다 강북 부자 강남이 슬럼화 되자 강북이 예전의 집 값보다 배나 올랐다. 허리끈 동여맨 마누라 덕에 사업도 성공했다. 모처럼 마눌과 외식을 하러 나왔다. 질린 바닷가제,상어지느러미도 그렇고 해서 제비집 스프나 곰발바닥 스프로 간단히 먹자고 했다. 실랑이 끝에 삐친 마누라는 곧바로 자가용 비행기 타고 호놀룰루로 가버렸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마누라 생일이다. 사과의 기념으로 자가용 비행기를 보잉747기로 바꿔 줘야겠다 과장이 너무 심했나요? ㅎㅎ 단순한 유머이니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가진자와 못 가진자 여러분....하지만 곧 이렇게 될지도 모릅니다. ㅎㅎ 희망과 용기를 가지세요~~~~ [골안사 갈림길 이정표] "성남,용인 갈림능선"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299m봉 - 불곡산능선4구간] "불곡산능선4구간"이 있는 조그만 봉우리 높이 299m봉이 나옵니다. [299m봉 이정표- 불곡산능선4구간] 10시 48분 이곳에서 우측 "구미동" 방향으로 갑니다 [성남,용인 경계선 - 318m 표고] 10시 57분 "성남,용인 경계 능선, 표고 318m"라는 이정표가 나오면 직진하여 "휘남애고개"방향으로 갑니다. [대지산 , 휘남애고개 갈림길 - 독도주의] 10시 59분 검단지맥 마지막 구간에서 가장 유의해야할곳입니다. 검단지맥 길은 좌측 송전철탑이 있는곳으로 갑니다. 우측으로는 "휘남애 고개" 가는 길로서 대부분의 산객들이 이곳으로 감으로 휩쓸려 가면 절대 않되겠습니다. 만약 우측으로 가면 바로 삼거리가 나오며 다음 사진..... [휘남애 고개로 가는 길 이정표 - 이길로 가면 절대 않됨] 우측으로 가면 이정표가 있는데, 정자가 보이는 "휘남애 고개" 방향으로 가면 않되며 반대 방향인 송전철탑이 있는 곳으로 뒤돌아 가야합니다. [대지산 가는 송전철탑 방향] 11시 정각 송전철탑 방향으로 검단 지맥은 이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부터는 산객을 만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대부분 '휘남애고개'방향이나 불곡산 방향으로 산행을 하기 때문입니다. [태재고개 아랫 마을 - 우측 "숫돌봉"] 11시 5분 송전철탑을 지나 조금 가면 좌측으로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가 보이는데 태재에서 오포삼거리로 내려 가는 도중에 있는 마을입니다. 우측 봉우리가 "대지산"에서 내려 가는 능선에 있는 "숫돌봉"입니다. [대지산] 남쪽으로는 가야할 "대지산"이 바로 보입니다. [대지산 정상, 大地山] 11시 11분 대지산 정상입니다. 대지산 정상에는 MTB를 즐기는 동호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大地山 정상석] [大地山 이정표] 정상석이 새로이 세워졌는데 정상석이 세워지기 전에는 그냥 "326m봉"이라고 불리워졌다고 하는데 죽전동에 가면 '대지고등학교'도 있으니, 원래 "大地山"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이곳에서 "대지고개"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대지고개 가는 길] "대지산" 정상에서부터 이런 초록색 철조망이 쳐져 있는데 뭘 위한 철조망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우측으로 이 철조망을 끝까지 따라 내려 가면 되껬습니다. [대지고개 가는 길] 철조망을 따라 가면 좌측으로 휘어지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좌측으로 철조망을 따라 내려 갑니다. [가족묘] 11시 21분 철조망을 따라 내려 오면 사진과 같은 가족묘가 나오며, 건너편 "명동성당공원묘지"가 있는 봉우리가 보입니다. [죽전동, 수원 광교산] 한남정맥 수원 광교산이 선명하게 조망되며, 죽전동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광교산의 형제봉, 비로봉, 시루봉이 선명하게 구별되어 보이고, 우측으로 '바라산', '우담산' '하오고개'까지 보이는군요..관악지맥이지요 [大地고개 - 산마루촌 음식점] 11시 27분 '산마루촌'이라는 음식점이 나오며 옛"大地고개"가 나옵니다. [大地고개] "옛大地고개"와 새로 뚫은 "新43번국도 大地고개"를 볼수 있습니다 [新舊 大地고개] 11시 30분 "新43번국도 大地고개"는 엄청나게 절개하였군요. 그리고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많이 다니고 중앙분리대가 높아 직접 무단횡단하기는 어렵다고 판단이되고, 그보다 법규를 잘 지키는 선량한 시민이 무단횡단을 할수는 없어 빙~돌아 건너 갑니다. [大地고개 건너는 법] 좌측으로 "옛43번국도"를 따라 내려 갑니다. 그러면 "新43번국도" 밑으로 지하도가 있습니다. [大地고개 건너는 법] 지하도를 지나 우측으로 다시 "대지고개"로 올라 갑니다. 산객들은 이런 형태의 걷기를 제일 싫어하지요. 하지만 지맥이나 정맥을 다니시는 분들은 이런 짓거리를 자주 해야합니다. [新 大地고개] 11시 45분 다시 "大地고개"로 왔는데 "大地고개"를 건너는데만 15분이 소요됫습니다. [대지고개에서 법화산까지 구글어스] 대지고개에서 법화산까지의 구글어스 산행도 입니다. 우리나라가 땅이 비좁은 나라라구요? 하늘에서 바라보는 골프장을 보세요. '레이크사이드 C.C.와 88 C.C.가 엄청난 면적을 차지하고 72홀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좌측 끝에 쬐끔보이는 골프장인 "신원 C.C."이고 아랫쪽에 조그만 골프장이 "경찰대 골프장"입니다. '파란문'이 골프장에 대해 너무 잘 안다구요? ㅎㅎ 왕년에는 이곳들을 자주 이용했지요 요즘은 골프장 대신에 이런 산으로 다닙니다. [新 大地고개] 오늘 산행 중에서 가장 급경사 오르막 구간을 오릅니다. 다행이 계단이 세개가 있는데 첫번째와 두번째 계단은 쉽게 오를수 있었습니다 [新 大地고개] 오른쪽 사진의 세번째 계단은 칡덩쿨등 잡풀줄기들로 휘감겨있어 도져히 오를수 없어 옆으로 올랐습니다. ['大地고개' 절개지를 오르며 뒤돌아본 "대지고개"] 뒤돌아 보니 "산마루촌" 음식점과 '대지산'에서 내려 오는 검단지맥 산줄기가 송전철탑과 함께 보입니다. 이곳은 송전철탑을 따라오고, 또 송전철탑을 바라 보며 갑니다. ['大地고개'에서 바라 본 '죽전동'과 '광교산'] 죽전에서 광주로 넘어 가는 "新43번국도"에 차량들이 질주를 하는데, 죽전동과 그 뒤로 수원 광교산이 그림처럼 한남정맥을 이루고 있습니다. [명동성당공원묘지 오르는 된비알] 눈이 내려 매우 미끄러운 급경사 오르막을 아이젠도 없이 올라 갑니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어려운 구간이었습니다. ㅎㅎ 다른 곳은 얼마나 평평했는지 유추해석 할수 있겠지요? [유진 레미콘 수지공장] 가파른 능선을 오르니 낭떨어지 절벽이 나오고 그 밑으로 "유진레미콘 수지공장"이 이 산을 파 먹으며 배를 불리고 있습니다. 채석장으로 완전 절벽이니 매우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사진의 맨끝에 멀리 보이는 산이 "영장산"인듯한데.... 영장산은 분당 율동공원 뒤에 있는 산으로 검단지맥 중에 한 봉우리입니다. [명동성당공원묘지] 절개지를 거의 다 올라 오니 앞에 조그만 집이 보이는데 알고 봤더니 명동성당공원묘지에 있는 화장실이었습니다. '대지고개' 절개지를 오를 때엔 저 화장실 건물을 보고 오르면 되겠습니다. [명동성당공원묘지 오르는 길과 '묘지 화장실'] 12시 17분 눈이 내려 더욱 미끄러운 된비알을 오르니 '명동성당공원묘지 화장실'이 나왔습니다. [명동성당 공원묘지] 화장실 앞으로 나오니 공원묘지 순환로가 나오는데 편하게 가려면 이 시멘트 도로를 따라 가면 됩니다만, 지맥을 가는 우리는 우측 능선을 타고, 다시 이 시멘트 도로를 만나고를 반복하면서 갑니다. [명동성당 공원묘지 조망] 12시 18분 명동성당공원묘지 화장실 앞에서 南쪽을 조망합니다. 제일 먼저 보이는게 사진의 가운데 "(주)위아가 세운 시설물"입니다. 성당공원묘지를 통과하는 방법은 "(주)위아 시설물"로 가면 되는데, 우리는 지맥을 감으로 우측 산능선을 따라 갑니다. 여하튼 길을 잃어 버릴 염려는 없습니다. 그리고 "법화산"이 가운데 보이고, 맨끝이 "석성산"입니다. [점심식사] 김수환 추기경이 뭍혀있다는 이곳 "명동성당공원묘지"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약 1시간 정도 [(주)위아 국가시설물] 법화산으로 가기 위해 (주)위아 시설물로 갑니다. [수원 광교산 조망] 명동성당공원묘지에서 바라 보는 한남정맥 "광교산"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수원의 진산인 "光敎山"의 '형제봉'비로봉'시루봉'이 선명합니다. [(주)위아 국가시설물] 오후 2시 정각 (주)위아 시설물 앞으로 왔습니다. [(주)위아 국가시설물] 위성 안테나 같은 것도 있고 ...뭘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국가시설물이라고 접근금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법화산 가는 길] 법화산까지 1.3km라고 친절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법화산까지는 작은 봉우리를 3~4개 넘어야 합니다. [법화산 가는 길] 특징없는 길을 산책하듯이 가는데 비록 1.3km라고 하지만 봉우리를 몇개 넘기때문에 상당히 먼 느낌을 받았습니다. [법화산 가는 길] "법화산"의 우측은 "단국대학교" "마북동" "구성지구"로 이어집니다. [법화산 가는 길] 호젓하게 조그만 봉우리를 몇개 넘어 갑니다. 산객들은 만나기 어렵습니다. [88 C.C.와 향수산] "법화산" 정상이 가까워 오면 좌측으로 "88 C.C"와 그 뒤로 "향수산 香水山"이 나타납니다. [법화산 가는 길] 조망이 좋은 조그만 봉우리에 도착하니 "88 C.C."가 더욱 가까이 다가 옵니다. [88 C.C.와 향수산] "88 C.C."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88 C.C."는 동코스와 서코스로 2개의 코스를 가지고 있는 36홀 규모이지요 앞에 보이는 코스는 東코스입니다. 東코스는 산악지형이라고 골퍼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주로 西코스를 좋아하고, 각종 대회도 西코스에서 주로 열리지요. 그리고 가운데 '향수산' 아래에 보이는 골프장은 "레이크사이드 C.C."입니다 "검단지맥"은 "88 C.C." 동코스와 서코스 사이의 능선인데, 지금은 골프장 공사로 거의 까뭉게져 검단지맥을 정확히 찾기가 어렵더군요. [법화산 정상] "법화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자가 보이는 곳으로 올라야 법화산 정상으로 갈수 있습니다. [법화산 정자] 오후 2시 34분 "법화산 정상"으로 오르면 먼저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은 정자가 나타나는데 이 정자를 잘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비록 바로 앞이지만 "법화산 정상"을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 좌측 길로 가야 "검단지맥 분기봉"으로 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화산 정상] 오후 2시 36분 정자에서 약50m쯤 앞에 "법화산 法華山" 정상이 있습니다. [법화산 정상석] "법화산 法華山"의 정상석도 세운지 얼마되지 않았더군요. 높지도 않은 산이지만 정상석 많큼은 큼지막하게 세워놨습니다. 정상석 운반은 헬기로 했겠군요. [법화산 정상에서 기념사진] "유령교 광신도"들이 법화산 정상에서 증명서를 만들었습니다. [법화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석성산"] "법화산 法華山" 남쪽으로는 "석성산 石城山"이 가까이 조망되고, 그 아래로 "동백지구"가 보입니다. [법화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할미城山"과 "석성산"] "법화산 法華山" 동남쪽으로는 "할미城山"과 "석성산 石城山"이 보입니다. "할미城山"까지 갔다가 다시 석성산 아래 동백지구로 하산할 예정입니다. [법화산 정자] "법화산 法華山" 정상에서 구경을 끝내고 다시 "정자"로 되돌아 왔습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법화산 法華山" 정상에서 직진하면 '구성지구'가 나오니 직진하지 말고 이곳으로 되돌아 와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법화산에서 88 C.C. - 할미성산 - 동백중학교 가는 길] 이제부터 오늘 산행에서 가장 길찾아 가기 어려운 "88 C.C."를 관통해 가야합니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88 C.C."를 통과 할때 "88 C.C."관계자들의 제지를 많이 받았더군요 그래서 어쩔수 없이 "88 C.C."통과를 포기하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통과 할것입니다. 제가 "88 C.C."는 자치기하러 많이 다녔었기에.... [송전철탑 27번/84번] 2시 45분 "법화산 法華山" 정상에 있는 정자에서 우측으로 내려오면 엄청난 크기의 송전철탑이 보입니다. 이 송전철탑의 번호가 "27번/84번"이더군요. [송전철탑 27번/84번에서 뒤 돌아 본 "명동성당공원묘지"] 송전철탑에서 지나온 '명동성당공원묘지"를 뒤돌아 보고.... [88 C.C. 가는 길] 이제부터 "88 C.C."를 통과해야하는 길찾기 어려운 지맥길을 가야합니다. [88 C.C. 가는 갈림길] 독도주의 2시 55분 중요한 갈림길이 나옵니다. 27번/84번 송전철탑에서 약10분쯤 진행하면 이런 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가야합니다. 우측으로 가면 구성지구 아파트 단지로 떨어집니다. [물푸레고개 가는 길] 좌측길로 들어서면 바로 좌측에 "88 C.C." 東코스와 카트 패스가 나옵니다. 나란히 조금 전진하면.... [물푸레고개] 오후 2시 56분 "물푸레고개"가 나오는데 고개라기 보다는 "88 C.C." 후문같은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옛날에 "88 C.C."가 생기기전에는 이곳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측으로는 구성지구 물푸레마을로 내려 갑니다. 여기서 부터 "88 C.C."코스 안으로 들어 가야하기 때문에 조심해야합니다. 이곳에서 부터 철문을 열고 들어 가면 않됩니다. 먼저 들어 간 山友를 다시 나오라고 합니다. 울타리를 따라 산봉우리로 올라 가야 우리가 지향하는 지맥길에 조금더 충실한것입니다. 검단지맥 분기점을 포기하려면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간단합니다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한다는건 좀 아깝지요? "물푸레"라는 말의 뜻은 "물이 매우 푸르고 맑다"는 것인데 검단지맥을 사이에 두고 우측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 "분당 탄천"으로 흘러 갑니다. [88 C.C. 가는 길] "88 C.C." 철조망을 따라 조그만 동산을 오릅니다. 철조망이 끝나는 곳까지.... [88 C.C.] 좌측에는 계속 골프코스가 이어져 골프코스와 나란히 갑니다. 이왕 "88 C.C." 골프장까지 왓으니 저의 골프 얘기를 조금 들려 드리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천마지맥3구간"에서 "해비치 C.C."를 지나 가며 한번 한적이 있습니다. 못 보신 분들을 위해서 다시 한번 들려 드리겠습니다. 단순히 웃자고 하는 얘기이니 골프 좋아 하는 분들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도 80년대 말에서 90년대 "IMF 환란"까지는 엄청 필드를 많이 다녔었습니다. 일주일에 9번을 나간적도 많았으니 가히 짐작하시겠죠? 그러나 "IMF"이후 두가지를 끊었는데, 하나는 "담배 피우는 일"이고, 또 하나가 "골프"입니다. 정말 완전히 끊었습니다. 골프는 약 12년 정도 되었고, 금연은 약9년 되었습니다. [88 C.C. 카터 패스] 지맥이 끊어져 더 갈수 없는 골프장 카트길이 앞을 가로 막습니다. 그러면 이 골프장 카트길로 내려 갑니다. "88 C.C." 골프장 안으로 들어 가는 것입니다. 골프를 그만 둔 이유가 많이 있지만 대략 우스게 소리로 정리를 하면.... 1. 가만히 생각 할수록 정말 기도 안차는 것이 '골프'입니다. 운동같지도 않은 것이 하고 나면 즐겁기나 하나, 친구간에 우정이 돈독해 지기를 하나, 열은 열대로 받고, 시간은 시간대로 날아가고, 돈은 돈대로 들고 하니 말입니다. [88 C.C. 카터 패스로 내려 오는 길] 먼저 내려 가서 뒤 따라 내려오는 山友들을 촬영했습니다. '파란문'만 믿고 열심히 따라 내려 옵니다. 사실 겁도 좀 나지요.... 용감한 사나이들...ㅎㅎ 2.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골프 공 한개 값이면 자장면 곱배기가 한 그릇인데 물에 빠트려도 의연한 채 허허 웃어야지... 인상쓰면 인간성 의심받기 마련이고........ 자장면 한 그릇을 물에 쏟아 넣고 웃어보세요..아마 미친놈이라고 할 것입니다 [88 C.C. 쉼터 정자] 오후 3시 7분 카트길에 내려와 우측을 보면 골퍼들이 타석이 밀릴때 기다리는 정자가 보입니다. 저도 왕년에 여러번 이용했던 정자입니다. 검단지맥은 저 정자 뒤로 올라 가야합니다. 3. 그리고 원수 같은 골프채는 무슨 금딱지가 붙었는지 우라지게 비싸지요...? 드라이버 랍시고 작대기 하나가 드럼 세탁기 한대 값과 맞먹고... 비밀 병기랍시고 몇 십만원짜리를 오늘 좋다고 사 놓으면 내일은 구형이라고 새로 사야지... 풀밭좀 걸었다고 드는 돈이 우리집 1년치 80kg짜리 쌀 두가마에다가, 골프채 심부름 좀 한다고 캐디팁을 도대체 얼마를 줍니까? 그늘집 음식은 금태 둘렀습니까?음식도 아닌 삶은 계란 하나에 몇천원씩하니.... 그나마 한번 치려면 실력자를 동원해야 부킹되고.....더러워서 [88 C.C. 쉼터 정자] 오늘 눈이 제법 내려서 골프장 내장객들이 별로 없어 다행이었습니다. 뭐 먹을 일 있다고 눈내리는 날에도 자치기 하러 돌아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여기서 휴식을 조금 취하고.... 그러나 여기서 우리를 발견한 캐디가 아마 본부에 연락을 한듯합니다. "침입자 !!~~있어요~!!" 4. 어쩌다 운이 좋아서 돈몇푼 따면 곱배기로 밥 사야 하고, 돈 잃으면 밥 안사주나 눈치봐야 하고, 안 맞아서 채라도 한번 집어던지면 상종못할 인간으로 낙인 찍히고, 신중하게 치면 늑장 플레이라고 욕먹고, 빨리치면 촐싹댄다고 욕먹고..... [88 C.C. 쉼터 정자에서 바라 보는 "석성산"] 몇번 홀인지는 잘모르겠는데... 石城山이 기가 막히게 조망됩니다. 멋져부려~ 옛날에 자치기 하러 다닐때엔 저런 산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직 골프공만 찾아 다녔지요.ㅎㅎ 이제는 골프코스와 공보다 저런 산이 먼저 보이며 더 관심이 있습니다. 완전히 산꾼이 되었지요 5. 공이 잘맞으면 일 안하고 공만 쳤다고 욕먹고, 안맞으면 운동신경 없다고 욕먹고, 퍼팅이 쏙 들어가면 돈 독 올랐다고 욕먹고, 못넣으면 소신없다고 욕먹고, 길면 쓸데없이 힘쓴다고 욕먹고, 짧으면 공무원이냐? 소신없이 쫄았다고 욕먹고. [88 C.C. 카터 패스로 내려 오는 길] 정자 뒤로 조그만 동산을 오르고 내려 오면 다시 카트길을 만납니다. 카트길로 내려 갑니다. 6. 옷을 화려하게 입고 골프하면 날라리라고 욕먹고, 점잖게 입으면 초상집 왔냐고 욕먹고, 인물 좋으면서 잘치면 제비같은 놈이라고 욕먹고 인물 나쁘면서 공도 못치면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욕먹고, 농담하면 까분다고 욕먹고, 진지하면 열 받았냐며 욕먹고, 도우미하고 농담하면 시시덕댄다고 욕먹고, 농담하지 않으면 분위기 망친다고 욕먹고.....닝기리~ [88 C.C. 카터 패스] 이제부터는 완전히 "88 C.C." 골프코스를 따라 클럽하우스로 가야합니다. 어떻게 연락이 되었는지 "88 C.C."관계자가 나와 우리의 앞길을 막았습니다. 7. 노는산 깎아 골프장 만들어도 좁은 땅에 만든다고 욕 먹고, 나무 심고 잔디 심어 키워놔도 농약 친다고 욕 먹고, 여름이라 햇볕 피할수 있나, 겨울이라고 누가 따스하게 손을 잡아 주나, 땡볕 눈보라는 고사하고, 제대한지가 언제인데 툭 하면 산등성이에서 각개전투, 미친개도 아닌데 물만 보면 피해 다녀야 하고..... 8. 공이 갈만한 자리는 무슨 심술로 모래 웅덩이와 연못을 파놓고, Hole은 꼭 처녀 엉덩이 꼭 그거 같은 곳에다 코구멍만 하게 뚫어 놓았으니... 아무리 "구멍 넣기" 게임이라 하더라도...18홀 십팔구멍을 찾아 헤메고 다니니.... [88 C.C.] 오후 3시 25분 "88 C.C."는 갑자기 소란스러워졌습니다. 관계자가 뛰어 온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곳으로 들어온 사연을 간단하게 알려 드렸습니다. ["88 C.C."는 우리나라 국토의 중요 산줄기인 "검단지맥 마루금"을 깔아 뭉게 만들어서 지맥길을 사랑하는 우리같은 산꾼들이 "검단지맥"을 완주하려면 부득이 "88 C.C."를 침입하여 골프코스를 가로질러 가지 않으면 않되게 되있다.... 그래서 부득이 들어 왔는데... 특별히 도둑놈이나 나쁜 놈도 아니고, 단순히 지맥길을 가려는 것 뿐이니 양해해 달라~ 그리고 이왕 들어 왔고 조금만 가면 되니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말자~ 서로 인상 쓸 필요도 없고...나도 이 골프장을 전에 많이 이용하던 사람이고..... 다음에는 손님과 종업원으로 다시 만나자우~] 다행이 관계자는 다음부터는 들어 오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통과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서로 좋게 잘 해결 되었지요? 큰 일도 아닌 오로지 자기네 영역에 침입했다는 단순한 그런 이유로 산객들에게 너무 욱박 지를 필요도 없고, 침입한 산객들도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하면 싸우지 않고 서로 서로 좋습니다. [88 C.C.] 우측 능선, 즉 골프코스와 코스 사이의 경계선이 지맥길입니다 9. 골프채 새채 사서 잘 치면 돈이 썩어난다고 욕하고, 새채 안사면 죽을 때 돈 싸가지고 갈거냐고 욕먹고, Buyer가 공치자고 해서 외국에 채가지고 나가면 남의 눈총받고, 그나마 몇번하고 나면 세무조사 한다고 겁주고... 선물로 받은 채 들고 들어오면 무슨 밀수꾼처럼 째려보고, 새벽 골프나가면 그렇게 공부 좀 하~지 하고 욕먹고, 남녀 어울리면 바람 났다고 욕먹고, 남자들 끼리만 치면 호모놈들이라고 욕먹고...... [88 C.C. 클럽하우스] 오후 3시 34분 "88 C.C." 안에서는 무조건 클럽하우스를 찾아 클럽하우스 뒤 주차장으로 가야합니다. 특히 다른 골프 내방객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않되겠지요? 상식적으로... 오늘은 다행이 눈이 와서 내방객들이 적어 덜 미안했습니다. [한남정맥의 검단지맥 분기봉] 클럽하우스 앞에 오면 우측으로 "한남정맥"에서 분기하는 "검단지맥 분기봉"이 보입니다. 저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88 C.C."정문앞 능선으로 지맥이 이어지는데 골프장 공사로 지맥길은 끊어져 구분지어 알기는 어려웠습니다. 여하튼 "검단지맥"은 "88 C.C."골프코스를 따라 법화산으로 간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검단지맥 분기봉으로 가는 길] 클럽하우스 뒤 주차장으로 갑니다. 그러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콘테이너가 있습니다. 10. 이글, 홀인원 한번하면 축하는 못할 망정 눈들이 퍼래 가지고 뜯어 먹고, 잘 쳐도, 못 쳐도, 자주 쳐도, 안쳐도, 새 채로 쳐도, 헌 채로 쳐도, 새벽에 쳐도, 낮에 쳐도, 비올때 쳐도, 눈 올때 쳐도, 시끄럽게 쳐도, 조용히 쳐도, 천천히 쳐도, 빨리 쳐도, 멀리 쳐도, 짧게 쳐도, 돈내고 쳐도, 접대 받아 쳐도, 우째든지 욕을 먹게 되어 있는 이런 빌어먹을 골프를 왜 하느냐 이 말이여!~~ㅎㅎ [검단지맥 분기봉으로 오르는 길] 콘테이너 좌측으로 길없는 길을 만들어 가며 치고 오릅니다. 정말 골프하는 사람들이 전부 제 정신이란 말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욕먹기도 지쳤고, 돈 쓰기도 아깝고, 이제 골프를 확 끊어 버리고, 골프채도 만지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프로 테스트에도 나가 볼 정도로 골프에 미쳤었지만 그래서 저는 골프를 진짜로 끊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욕먹을 일 전혀 없고, 건강에 최고이고, 경제적이고, 칭찬 받는 "등산과 수영"으로 바꿨습니다. 아시다시피 등산은 일주일에 한번은 꼭 하고, 수영은 매일 새벽 한시간씩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골퍼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주변에서 "골프 가자~~"하면 또 작대기 짊어지고 마눌 눈치 보며 필드로 나갑니다. ㅎㅎ [검단지맥 분기봉으로 오르는 길] 눈이 제법 쌓여있어 조금 힘들게 올랐습니다. 아이젠을 당연히 준비했으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검단지맥 분기봉]★ 오후 3시 50분 드디어 "한남정맥 漢南正脈"과 "검단지맥 黔丹枝脈"의 분기봉에 오릅니다. 이름도 없는 봉우리이지만 우리같은 산객들에겐 의미있는 봉우리입니다. 검단산 앞 팔당댐이 있는 창모루에서 여기까지 "검단지맥 黔丹枝脈"을 마무리 합니다. "검단지맥 黔丹枝脈"을 따라 이 글을 읽으신 분들도 고생 많았습니다. [할미성산 가는 길] "검단지맥 黔丹枝脈"을 끝내고는 탈출하기가 마땅치 않습니다. 우선 "88 C.C. 울타리"를 넘어 좌측, 즉 동쪽으로 갑니다. 우측 서쪽으로 가면 '향린촌'으로 가는데... "할미城山"을 아직 못가본 山友들이 있어 "할미城山"을 갔다가 "용인 동백지구"로 하산합니다. 여기서 '동백지구'로 가는 길도 잘 알아두시면 도움되겠지요? ["향수산"-"할미성산" 갈림길] "88 C.C.울타리"를 따라 좌측, 즉 동쪽으로 오면 삼거리를 만납니다. 이 사진은 "88 C.C"울타리를 따라 내려와 "향수산" 방향으로 내려와 뒤돌아 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즉 우측에서 울타리를 따라 내려 왔습니다. 이해가 되시는지요? 앞쪽으로 가면 "할미城山"으로 가는 길이고, 또한 "한남정맥길"이기도 합니다. 사진을 찍는 방향으로 가면 "향수산 香水山"으로 가는 길입니다. [향수산 가는 길] 동북쪽으로 가면 "향수산 香水山"으로 가는 길입니다 원래 계획은 "향수산 香水山"을 거쳐 "문수산"과 "정몽주선생 묘"로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겨울철이라 '할미성산'-동백지구로 내려 가려합니다. [할미城山 가는 길] 88 C.C.울타리 갈림길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한남정맥" 마루금을 밟으며 갑니다. 우측에는 계속해서 "향린촌"의 썩어 문들어진 철조망이 산객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합니다. "할미성산"에는 온통 향린촌의 철조망이 감싸고 있으며, 사유지임으로 출입시 법적조치를 하겠다는 강경 경고판도 여러 곳에 매 달아 놨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원주택이라는데 지금은 군사정권시절에 한가닥 했던 분들이 주로 사신다고... 그리고 수준이 가장 낮은 분들이 변호사라고....향린촌 경비가 알려 주더군요 자기들만의 城이라고 엄청난 돈을 들여 설치한 철조망.... 스스로를 옭아 맨 고독한 감옥같은 철조망인줄 모르고.... [할미城山 가는 삼거리 갈림길] 오후 4시 20분 흉물스런 향린촌 철조망을 넘으면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가 나옵니다. 이 삼거리는 "한남정맥"을 종주하는 분들이나 "향수산"을 가는 분들 모두 잘 알아 두어야 하는 곳이죠 [갈림길 이정표] 좌측으로 가면 "할미城山 정상"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동백지구 "동백중학교"로 갑니다. 여기서 "할미城山"까지는 약10분 정도 걸리는데, 지지난 주에 다녀 온 산행기에 "할미城山"에 대한 산행기가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山友들은 갔다가 왔습니다. [갈림길 삼거리에서 뒤돌아본 "검단지맥 분기봉"] 이곳 삼거리에서 "검단지맥 분기봉"을 뒤돌아 봤습니다. 좌측 계곡이 '향린촌'이고, 철조망 따라 '한남정맥 마루금'입니다. [영동고속도로-동백지구-향린촌 갈림길] [영동고속도로 굴다리] 오후 4시 56분 동백지구로 통하는 영동고속도로 굴다리에 왔습니다. 반대방향 북쪽으로는 '향린촌' 정문이기도 합니다. [동백지구 "동백중학교" 앞] 오후 5시 정각 용인시 동백지구 "동백중학교" 앞에서 오늘 산행을 마침니다. 동백지구 치킨집에서 쏘맥에 통닭 두어마리 잡아 먹고... [구글어스로 본 전구간 산행 괘적도] 태재에서 오전 9시 40분에 출발하여, 불곡산과 대지산을 오르고, 대지고개를 건너 명동성당공원묘지와 법화산을 지나 88 C.C.를 통과하고, 할미성산을 거쳐 동백지구까지 왔습니다. 오후 5시에 도착했으니 총 7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거리는 20km가 넘는 먼 거리이지만 평이한 트랙킹 정도의 길이어서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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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단산-고추봉-용마산 종주 산행기  
          산을 좋아 한다면서 
          산에 대해 말해 보라면 사실 할말이 별루입니다
          산을 말하고 ...노래하고...음미하려 하지 말자
          그저 열심히 다니다
          또 그러다 보면
          언제인가
          나도 산을 말하고...노래하고...음미하는 때도 있겠지
     8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검단지맥(黔丹枝脈)의 마지막 구간인
     은고개 - 용마산 - 고추봉 - 검단산을 종주하기위해 이른 아침 전철을 탓습니다
     黔丹山은 하남의 진산으로 접근성이 좋아 서울 주변에선 이름있는 건강산행코스이죠
     이런 유명한 코스를 저는 이제야 처음으로 찾아 가니 산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黔丹山을 가는 방법은 모르는 이들이 별로 없겠지만
     처음 가는 저같은 경우엔 교통편을 꼭 알아야 되겠더라구요
     알고보니 교통이 매우 편리하더군요
     저는 [지하철5호선 강동역 4번 출구]로 나와 버스 정류장에서 112번을 탓습니다
     검단산 입구 가는 버스는 잠실, 강변역, 천호역등에 다양한 노선들이 있더군요
     30-1 30-3 30-5 112 이외에도 많이 있더군요
     지하철 5호선 강동역에서 검단산 입구까지는 약 30분정도 걸렸습니다
     버스비는 카드로 900원이었습니다
     
     [검단산 입구,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
     검단산 입구에서 내리면 바로 한국 애니메이션 고등학교가 건너 편에 보입니다
     9시 10분에 길을 건너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정문 앞으로 갑니다
     저는 정문앞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예정되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주로 혼자 산행을 하는데 
     오늘은 특별히 검단산 많큼은 안내도 하며 함께 할수 있다는 친구가 있어 
     이게 왠 떡인가 고맙게 생각하며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대부분의 제 친구들은 저와 함께 등산 가는것을 꺼립니다..ㅎㅎ 이유는 다 아시죠?
     이 친구는 기꺼이 함께 하겠다고 했으니 산행 실력이 보통이 아니란걸 알수 있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정문]
     고등학교에도 애니메이션만을 전문으로하는 고등학교가 있군요
     저의 둘째 아들이 홍대 조형학부 애니메이션과 졸업반이라 '애니메이션' 글자만 봐도
     반갑지만,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는 처음보니 더욱 애니메이션에 대한 묘한 생각이 들더군요
     육군 병장으로 군대도 갓다왔으니 바로 금년말에 프랑스로 유학을 간다고하는데
     알아서 잘 하겠지만 괜시리 이런 저런 걱정이 드는군요
     
     검단산은 한국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로만 가면 되니 길 찾기가 매우 쉽더군요
     정문 앞에 친구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불필요한 살은 전혀 붙이고 다니지 않는 다이어트가 필요없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살이 좀 찌는게 어떠냐하는 조언을 들을 정도이니 한편 부럽기도합니다
     이 친구 어떻게나 잘 걷는지 저는 따라 가느라 혼났습니다. ㅎㅎ
     앞에 보이는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검단산 중앙부를 바로 치고 올라 가는 코스이고
     좌측으로 2~300m정도 가서 오르는 코스는 한강과 예봉산을 조망하며 오르는
     검단산의 주등산로이더군요. 우리는 주등산로를 선택했습니다
     
     좌측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끼고 2~300m를 갑니다
     
     [검단산 주등산로 입구]
     2~300m를 진행하면 우측으로 검단산 주등산로 입구가 나옵니다
     검단산을 찾는 대부분의 산꾼들은 이 주등산로를 주로 이용하더군요
     
     [주등산로]
     주등산로는 넓직하게 잘 정비되있습니다
     
     [주등산로]
     조금 오르니 본격적인 등산로가 펼쳐집니다
     
     [유길준 묘역]
     애니메이션고에서 약30분 정도 오르니 '유길준 묘'가 쉬었다 가라고
     앞에 나타났습니다
     
     [유길준 묘소 안내판]
     유길준 선생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안내판을 참고 하시고...
     
     유길준 묘소에서 가파른 고갯길을 잠시 오르니....
     
     안부가 나오며 한숨 돌리는 쉼터가 나오더군요
     여기서 오른쪽으로 올라갑니다
     여기는 팔당댐, 팔당대교쪽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만나는 안부였습니다
     
     黔丹山도 육산이기에 숲으로 뒤덮여 산행중에 외부를 조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쯤에서 처음으로 건너편 예봉산이 조금 보이더군요
     
     오르막을 본격적으로 오릅니다
     
     사진에는 경사가 별루인것으로 나오지만 꽤 가파른 경사였습니다
     
     [조망대]
     산행시작 한시간 정도 지나니 외부로 시야가 트이는 곳이 나왔습니다
     북쪽으로 건너편 예봉산이 검단산과 키를 맞추며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굽이쳐 흐르는 한강과 전철 팔당역이 보입니다
     저의 산행기 "예봉산-적갑산-운길산-수종사 연계 산행기"를 참고하세요
     못 보신 분들은 꼭 찾아가 읽어 보세요 재미있습니다
     특히 다산 정약용선생의 문학과 업적에 대해 나름대로 기술해 놨습니다
     
     서쪽으로 하남시와 '미사리 조정 경기장'이 확연히 보이는군요
     팔당대교와 한강도 그 모습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입니다
     오늘은 날씨는 쾌청하고 시원한데 안개가 좀 끼어 시야는 좋지 않았습니다
     
     오르고...또 오르고...
     
     숲 사이로 간혹 외부가 조망되기도합니다
     올림픽대로에서 중부고속도로로 진입하는 도로인듯...
     
     나무를 짜르고 덮어놨는데 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산행 중에서 제일 경사가 가파른 깔딱고개를 넘으니....
     
     검단산의 정상인줄 알았는데....
     검단산 아래 봉우리더군요. 이름은 모르겠고...다른 분들에게 물어 보아도 아는분들이 없고
     
     다시 북쪽으로 예봉산과 키높이를 맞추고...
     
     [참고 자료 사진 - 예봉산에서 바라 본 검단산(08년3월22일)]
     제가 지난 3월22일에 예봉산을 오르며 건너편 검단산을 찍은 사진인데
     검단산에서 바라 보는 예봉산과  비슷하게 생겼죠?
     검단과 예봉은 쌍둥이? ㅎㅎ
     
     서쪽으로 미사리 조정경기장이 더욱 아래로 보이며....
     
     [두물머리]
     더디어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산과 계곡을 휘돌아 오는 북한강과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검용소에서 발원하여 흘러 흘러 오는 남한강이
     다시 바다로 손잡고 나가기 위해 모이는 곳 -  두물머리
     두물머리 광경은 운길산 수종사와 검단산, 용마산에서 바라 보는게 최고라고 하더군요
     팔당호 가운데 길게 뻗어있는 능내리 마재 마을에 다산 정약용선생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습니다
     
     가야할 검단산 정상이 보입니다
     검단산 정상은 아직도 더 가야 되더군요
          
          정상으로 가는 오르막 길
     
     [뒤로 기어 오르는 사람]
     검단산 정상을 오르는 막바지 계단에서 특이한 사람을 만났는데....
     이 사람 그냥 걸어 오르기도 힘든 곳에서
     뒤로 기어 오르더군요..나원참~
     처음엔 장애인 인줄 알았어요. 멀쩡한 사람이 뒤로 기어 오르고 있어 할말을 잊었습니다
     등산이 힘들다고 집에 계시는 분들...이 분 보세요!!~ ㅎㅎ
     
     계단이 끝나니 막걸리 파는 행상이 나타나며
     
     정상이 다가 오니 산객들의 수가 점점 더 많아 집니다
     다시 계단을 오르니....
     
     헬기장이 나왔습니다
     
     [검단산 정상]
     헬기장에서 조금 가니 검단산 정상이 나왔으며
     많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검단산 정상]
     아이스케키, 막걸리 장사등이 지친 산꾼들을 부르고....
     제법 넓직한 정상부입니다
     11시 정각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애니高에서 1시간 50분 걸렸습니다
          
          [黔丹山 정상석]
          黔丹山의 黔자는 연기가 문틈으로 살짝 스며 들어 가면서 검게 되버렸다는 의미의
          검을 黔이기에, 
          한편으로 문틈으로 스며 들어 가는 연기의 모양새가 귀신이 들어 가는 것 같다고
          귀신 黔으로도 사용합니다
          왜 이 산의 이름을 黔丹山이라 했는지에 대해선 관련 자료들을 아무리 뒤져봐도  
          알수가 없었으나, 옛날에 검단선사가 여기서 수도해 黔丹山이라 했다는 설뿐이었습니다
          검을 黔과 붉을 丹 - 무언가 의미가 있긴 있을텐데....아시는 분 좀 알켜줘요
     
     [검단산 정상에서 바라 본 두물머리]
     검단산 정상에서 두물머리를 바라 보니 거의 완벽한 경치를 감상 할수 있었습니다
     예봉산, 운길산, 수종사에서바라 보는것보다 더 멋있었습니다
     안개만 없었다면 좋은 경관을 카메라에 담았을텐데 아쉽군요
     두물머리는 한문으로 兩水里라고하지요?
     그러나 다산 정약용선생은 이곳을 '열수洌水'라고 했습니다
     원래 이곳의 地名이 '열수洌水'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약용선생은 분명 '열수洌水'라고했습니다
     그 어원을 알려드리자면, 정약용선생의 호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茶山으로 알고있지만
     사실은 이 '다산'이라는 호는 정약용선생이 강진에서 귀양살이 할때,
     귀양살이집의 뒷산이 조그만 '茶山'이라는 산 이어서, 
     정약용선생이 "茶山에 사는 정약용"을 나타낼때 쓰던 호입니다
     정약용선생이 귀양살이를 마치고 이곳 마재마을로 돌아 와서는 '열수洌水'라는 호를 쓰셨는데
     옥편에도 잘 나오지 않는 한자인 "洌水"입니다.
     삼水변에 줄설列이니 "물이 줄서는 곳" 분명히 두물머리임에 틀림없을듯합니다
     兩水里보다 洌水里가 훨신 더 두물머리를 잘 표현하는듯합니다
     참고로 정약용선생이 가장 좋아한 호는 사암(俟菴)이었습니다
     파란만장한 청춘시절과 정조대왕의 암행어사를 비롯한 최고의 관직을 거치고
     천주교를 빌미로 보수 수구 세력들로부터 처절한 정치보복을 당하고 강진으로 귀양갔다가
     18년이란 귀양살이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곳 '두물머리'에서 자서전을 쓰셨는데
     그 자서전을 "'洌水' 정약용이 쓰다"라고 했으니, 
     이곳으로 와서는 호를 '洌水'로 쓴것을 알수 있습니다
     (저의 '예봉산-적갑산-운길산-수종사 연계 종주기'를 보시면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가야할 '고추봉'과 '용마산'이 아득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黔丹枝脈 마지막 구간의 전체 모습을 봅니다
     黔丹山 정상에서 바라 보는 '고추봉'과 아득히 '龍馬山'이 서로 붙어 떨어 지지 말자는
     連理枝같아 보이는 군요
     어서 저 봉우리들에게도 올라가 이 검단산이 전하는 말도 전해야지...사랑한다고
     
     검단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하산합니다
     
     검단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 오면 
     오른쪽으로 '한국 애니메이션고등학교'로 하산하는 직코스가 나옵니다
     대부분의 검단산 등산객들은 이곳에서 하산 하더군요
     
     앞 사진에서 본 검단산에서 하산하는 안부를 지나 직진하면
     송전철탑이 나오며 이곳 부터는 산객들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길을 잃어버리면 물어 볼 사람 찾기가 어렵습니다만,
     다행이 길은 외줄기로 똑 바로 뻗어있어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을듯합니다
     
     봉우리를 오르다 점심 식사및 휴식을 취했는데
     여기가 '고추봉' 바로 아랫 봉우리였습니다
     40분정도 식사와 휴식
     
     [고추봉 정상]
     정상같지 않은 정상인 '고추봉' 정상입니다
     몇몇 지도에는 두리봉이라고 나와 있으나 모두 고추봉이라 하더군요
     
     고추봉에서 바라 본 중부고속도로 궁내동 '동서울 톨게이트'
     토요일이라선지 나가는 자동차들로 엄청난 정체를 보이더군요.
     기름값이 배로 올랐느니 어쩌니 해도 있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심한 정체현상을 바라 보니 멀리 차끌고 비용들이며 놀러 가지 않고 이렇게 산으로 온것이
     비교되며 괜시리 "쎔통이다~~!!""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이기주의적 생각이 들더군요..ㅎㅎ
          
     고추봉을 하산하여
          
     용마산을 오릅니다
     
     [용마산 정상]
     조용한 용마산 정상에 다가 왔습니다
     이때가 오후 1시 15분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왔습니다
     동행한 친구가 어찌나 빨리 걷는지...
     사실 저보다 늦게 걷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ㅎㅎ
          
          [龍馬山 정상석과 삼각점]
          이곳 용마산은 광주시 관할이더군요.
          만나기 힘든 산꾼들을 어쩌다 만나면 물어 보았는데
          검단산은 서울에 있는 산이라 해도 될 정도의 산이라 여러 시설이 잘되있고
          용마산은 광주 관할이라 이정표에서부터 여러 시설이 시원치않다고 이구동성으로
          불평들을 하시더군요. 부자 동네와의 차이이죠..뭐
          하남시만 하더라도 자기 면적의 96%가 그린벨트로 묶여져 있다는군요
          그래서 화장장 유치하고 반대급부로 지하철 들어오게하고 발전기금 받아
          살기 좋은 고장을 만들어 보겠다고 시장이 노력했더니, 
          일부 반대세력들이 시장을 국민소환제로 짜를려고 하며
          죽기 살기로 반대를 해 현재 유야무야되고 있지요?
          다른 지역에서는 핵폐기물시설 유치도 서로 할려고하는데 
          하남은 자기 면적의 98.4%나 되는 산 한구석에 멋진 조그만 승화원 하나 짓는게
          뭐 그리 생활에 직결된다고 난리법석을 떠는지....NIMBY의 대표도시이죠
          하남의 반대세력들에게 혼날지도 모르는 말을 했는데...무셔버..
          그냥 제3자가 먼발치에서 뭣도 모르고 하는 말이니 용서해 주삼
     
     [용마산 정상]
     용마산 정상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더군요
     태극기는 새것으로 바꿔 달아야겠더군요
     제가 언제 다시 용마산을 찾을 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오게 되면 꼭 태극기를 준비 하겠습니다
     
     [용마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한강 팔당호]
     여기까지 땀 흘리며 오르지 않고는 이 감상을 맛볼수 없습니다
     
     [용마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두물머리 洌水 兩水]
     오늘 날씨는 좋으나 안개가 약간 끼어 사진빨이 별루입니다
     
     [용마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천진암]
     용마산 정상에선 퇴촌의 천주교 성지 천진암 계곡이 보이는군요 
     '앵자봉' '양자산'등도 희미하게 보입니다
     조만간 앵자봉 양자산도 가 봐야할텐데....
     
     용마산을 내려 옵니다
     
     [삼거리 갈림길]
     용마산 정상에서 약30분 정도 봉우리 하나를 넘어 오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삼거리 다운 삼거리가 처음으로 나옵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야 '엄미리'나 '은고개'로 갈수 있습니다
     오후 1시 55분에 이곳을 통과했습니다
          
          오른쪽으로 한적한 길을 따라 나갑니다
          
     조금 나아 가면 송전철탑과                   무덤군을 지납니다
     이쪽으로 산행을 시작하는 산객 두분을 만났습니다. 아마 검단지맥 종주하시는 분들인듯...
     
     [사거리 林道]
     자동차도 다닐수 있는 林道가 나오면 오른쪽으로 林道를 따라 내려 갑니다
     여기까지 오면 거의 하산 완료입니다
     
     林道를 따라 계속 내려 갑니다
     
     또 林道를 따라 계속 내려 갑니다
     
     [엄미리 굴다리 유료 낚시터]
     임도를 따라 30여분 내려 오면 갑자기 낚시터가 나옵니다.
     반갑지요
     
     [엄미리 굴다리 낚시터}
     저는 유료낚시를 다녀 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데, 저에게는 특이하게 느껴지는게 있더군요
     이 낚시터는 "민바늘"과 "뜰채"만을 사용하는 유료낚시터입니다
     "민바늘"이란 낚시바늘 끝에 째진 부분이 없는 민밋한 바늘을 말하더군요
     다시 말해 이곳은 낚시를 하고 잡은 고기가 상처입지 않도록 "민바늘"을 사용하고
     또한 뜰채로 고기를 올렸다가 다시 살려주는 그런 낚시터이더군요
     그래서 낚시꾼들에겐 고기 담는 망이 없어 잡은 고기 구경하려던 저를 무안케 했습니다
     요즘은 낚시터가 다 이런가? 무식은 궁금증만 남긴다우~
     입장료는 15,000원이더군요
     
     낚시터에서 올려다 본 용마산 능선들
     저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은고개"를 넘어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으로
     "검단지맥"이 이어져 있습니다
     
     [중부고속도로 굴다리]
     낚시터에서 내려 오면 바로 '중부고속도로' 굴다리가 나옵니다
     '중부고속도로'와 '제2중부고속도로' 두개의 굴다리를 지나갑니다
     
     '중부고속도로 굴다리를 나와 조금 멀리 갑니다
     
     [국도 굴다리]
     일반 국도 굴다리가 나오는데, 저 굴다리 위의 버스 정류장으로 올라 갑니다
     
     [엄미리 버스 정류장]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엄미리 버스 정류장입니다
     여기서 가는 버스는 거의 다 천호동 방향으로 가니까 천호동으로 가서
     지하철로 갈아 타면 됩니다 (버스 요금 900원)
     '은고개'는 이 다음 정거장이었고 바로 청량산 남한 산성의 벌봉으로 오르더군요
     오후 2시 40분에 산행을 마쳤습니다
     이렇게 빨리 산에서 내려 오기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5시간30분 걸렸는데 지난주와 비교되니 너무 짧은 듯 했습니다 ㅎㅎ
                
               녹색 점선이 오늘 산행한 코스입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홍어와 무인도☆ 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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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에서 불곡산까지.... 
     난장판의 광란 같았던 그 뜨거운 여름
     영원히 그 속에 뭍혀 숨쉴수 없을것 같던 그 여름도
     수십억년의 법칙 앞에선 꼼짝 못하는 듯
     그도 상큼하게 날씬한 미니 스커트를 입고 맑고 시원하게 다가 오는 가을 앞에선
     또 나의 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폭우와 폭염으로 지랄발광하던 그 모습 축 늘어떠리고....
     8월 24일 일요일 새벽 일찍 집을 나서 분당 신도시 "미금역"으로 승용차를 몰고 가
     역 근처에 주차 시키고 7시 25분경 전철 분당선을 타고 모란역에 가서,
     다시 지하철 8호선으로 갈아 타고 "남한산성입구역"으로 갔습니다
     
     [남한산성입구역 1번 출구 앞]
     남한산성입구역 1번 출구를 나서니 오전 7시 50분이었으며
     이렇게 쾌청한 날씨는 금년들어 처음인듯 오늘 산행을 후원하는듯했습니다
     이런 날씨이면 얼마던지 걸을수 있겠다고 느끼며
     
     [남한산성입구역에서 남한산성입구 유원지로 가는 길]
     멀리 보이는 산이 "청량산"이며 "남한산성"이 있는 곳입니다
     지하철 '남한산성입구역'이라고 해서 지하철에서 내리면 바로 '남한산성입구'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산성입구역에서 산성입구까지는 무지무지하게 멀었습니다
     제가 걸어서 삼십여분이 걸려으니....버스로 두세정거장을 더 가야하는 거리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버스로 환승을 하더군요
     
     [을지대학]
     을지대학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규모가 상당하더군요
     원래 을지로에 을지병원이라고 우리나라 癌연구치료의 선구자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즘은 국립 암 센타를 비롯한 많은 암퇘치 병원들이 앞다투며, 암은 이제 종기 치료 정도로
     쉽다고 말들을 하더군요. 많은 발전을 해 수명 연장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죠?
     
     [남한산성 입구 유원지]
     남한산성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고하는데 그 중에서 이곳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라하며 다양한 시설을 갖춰놓고 있었습니다
     
     [산성입구 공원과 복합 주차장]
     유원지에 이런 주차장을 마련했다는게 이제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섰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듯하군요
     
     [노천 극장과 민속공예 전시관}
     앞의 광장이 노천 극장이며 뒷쪽 건물이 민속공예 전시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과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공원 안내도]
     
     시설을 잘 해놨죠?
     옆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름 한철 보내기에 안성맞춤
     
     [갈림길]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바로 올라 가면 남한산성 남문으로 바로 올라 가며,
     우측 '약사사' 방향으로 가면 등산로로 남문을 가더군요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쉽고 간단하게 20여분에 남문에 도달할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등산이 큰 목적이므로 우측 '약사사' 등산로를 택했습니다.
     
     [등산로]
     조금 올라 가니 좌측으로 오로지 산길로만 가는 등산로가 
     등산 못하는 분들은 오지 말라는듯 좁은 길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터는 산성까지 계속 오르막이더군요
     
     [약사사 오르는 산로]
     이 등산로를 올라 보니 왜? 여기에 山城을 쌓았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가파르기 때문에 적군들이 함부러 접근 할수 없겠더군요
     경사가 가파르기에 제법 힘이 들었습니다
     
     [약사사]
     조그만 절이었으며 특별한 구경꺼리는 없어 보였습니다
     
     [약사사]
     약사전이 있으면 석가모니나 아미타불을 모시는 절이 아니고 
     병을 치료해 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는 절이라는거 이제는 모두 아시죠?
     남한산성입구역에서 여기까지 1시간5분이 걸렸습니다
     
     약사사에서 산성까지는 더 가파른 경사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사를 20분 정도 오르면 정상이니
     앞으로 여기 오셔서 오르실 분들은 큰 걱정 않하셔도 되겠습니다..20분 정도야..ㅎㅎ
     저는 당시 이런 경사라면 괴로울거라 걱정하며 올랐습니다. 
     초행길은 언제나 예측을 할수 없어 더욱 힘이 듭니다
     
     [정상이라고 할수 있는 삼거리 정자]
     '약사사'에서 20분 정도 오르면 이런 쉼터 정자가 처음으로 나오는데
     여기가 중요한 지점이 되겠습니다. 여기서 휴식을 취하며 물도 마시고...
     남한산성에서 불곡산 종주를 하시는 분들은 여기서 오른쪽으로 바로 가더군요
     그러면  시간이 무지무지하게 단축 할수있어 종주 그 자체를 하는데는 좋겠더군요
     그러나 저는 종주도 종주이지만 "남한산성"을 어느 정도는 돌아 보고 가야 산행의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수 있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냥 오른쪽으로 가면 한시간반을 단축 할수 있더군요
     
     남한산성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 좌측 길로 향했습니다
     오늘 산행기의 대부분은 여기 남한산성에 대한 이야기가 될것입니다
     왜냐하면 남한산성에서 불곡산까지는 온통 숲으로 뒤덮인 숲터널이라
     외부를 조망하기가 어려워 산행기에 올릴만한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왼쪽 남문을 향해 가던 중에 
     이 산도 육산이라 숲으로 뒤덮여져 산행시에 외부를 조망할수 없었는데
     처음으로 여기서 외부 세상을 아주 잠깐 볼수 있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남한산성의 "守御將臺"가 있는 봉우리이며
     남한산성의 主峰인 "청량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南漢山城이 있는 산 이름을 잘 모릅니다
     북한산성도 한강 북쪽에 있는 산이기에 그냥 북한산이라고 하는 그 산에 있는 산성이라 
     북한산성이라 하드시, 남한산성도 한강 남쪽에 있는 산에 있는 산성이라
     남한산성이라 합니다. 남한산성이 있는 산은 '청량산'입니다
     청와대 뒷산을 일반적으로 북악산이라 하지만 정식 명칭은 白岳山입니다
     청량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우리나라 전역에 여러 곳 있습니다만
     안동과 봉화 사이의 퇴계선생의 자취가 흠뻑 젖어 있는 청량산이 제일 유명하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남한산성이 있는 이 청량산이 더 유명해야 하는거 아닙니까?
     청량산 이전에 남한산성이 더 앞서서 청량산은 빼고 그냥 남한산성이라해서 그러나?...
     
     조금 나아 가니 남한산성의 웅장한 성벽이 역사의 깊은 수렁으로 집어 넣는듯...
     
     [남한산성의 南쪽 門인 至和門]
     남한산성의 4개 대문중에서 옛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으며, 규모가 가장 크고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남한산성의 主門이라 할수 있는 至和門이 나타 났습니다
     이 至和門을 至和門이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일반명사인 南門이라고 부릅니다
     
     [至和門 - (南門)]
     저는 실로 오랜만에 이 문 앞에 섰습니다
     언젠가 한번 와본적이 있다는 것 외에는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 된듯합니다.
     걸어서 오른 것도 아니고 아마 승용차를 몰고 관광차 왔었던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이 문으로 자동차가 통과하여 성안으로 들어 간것 같은데 지금은
     공원화하여 아름답게 주변을 잘 단장해 놨더군요
     
     [至和門 - (南門)]
     남한산성에는 4개의 대문과 16개의 暗門이 있다고 하는데, 
     이 문이 가장 크고 웅장하며 門의 현판이 남아있는 유일한 대문이 이 至和門이라고 합니다.
     멀리서 현판을 보면 玉和門처럼 보이는데 ..나만 그런가?
     山城門의 현판은 城門의 밖에 달지 않고 城안쪽에 다는군요..호~
          
     至和門 에 대한 설명을 보고 옥화문이 아니라 지화문이란걸 확실히 알았습니다
     
     至和門의 오른 쪽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至和門의 오른 쪽으로는 '수어장대' 서문, 북분, 동문으로 南漢山城을 한바퀴 뺑도는 
     종주코스가 펼쳐져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무지 오랜만에 남한산성에 왔다는 얘기는 남한산성 안으로 들어 와보지 않았다는 이야기이지, 
     이 주변 계곡에는 여러번 왔다 갔다는 얘기입니다. 왜 왔다 갔냐구요? ㅎ
     여기 남한산성 주변 계곡에 유명한 보신탕집, 닭도리탕집이 수없이 많커던요..ㅎㅎ
     
     至和門에서 내려다 본 城밖
     좌측 앞에 보이는 나무가 보호수로서 350여년된 느티나무로서 성문이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여러곳에 심었다고 하는군요
     
     至和門에서 바라 본 산성 안
     1636년12월 14일부터 1937년 1월 30일까지 갇친 이 城 안에서 ...............
     "죽어서 살것인가, 살아서 죽을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오랑캐의 황제에게 머리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절을 올리게 만든 역사적 치욕의 현장은
     오가는 사람들이 아는지 모르는지..그저 평온하기만했습니다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도망친 고려의 고종도...
     임진년에 쪽바리들의 침공에 한양과 백성을 버리고 저만 살겠다고 북으로 북으로 도망친 조선의 선조도...
     북의 김일성이 쳐 내려온다고, 한강 철교를 폭파하고 또 백성과 서울을 버리고 남으로 남으로 도망친
     이승만 독재정권도...
     병자년에 하필이면 얼마나 토길 곳이 없으면 
     여기 남한산성으로 도망친 조선의 쿠데타 정권 인조만 하겠으랴~~
     
     공적비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 되었을까...
     1636년12월 겨울
     이 남한산성에는 인조라는 쪼다리 임금이 있었고,
     체찰사로서 난국의 해결을 시간에 맡기는 양다리 걸치기의 명수 영의정 김류가 있었고,
     의로움과 충성심으로 절대 굴복은 없다고~오로지 싸워여 한다는 주전파  예판 김상헌이 있었고,
     매국의 오명을 뒤집어 쓰더라도 임금이 살길은 
     말이 화친이지 실제는 항복이라는 말을 비틀어 화친이라고 말 하는 이판 최명길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점에서도 어느 누구도 이들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내리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굴욕적 역사를 떠올리기조차 싫은지 모두 입을 닫고 쉬~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역사적 평가를 내려 주시겠습니까?
     (에구~ 저도 뭐라 소신을 밣히기가 그렇고 그렇군요~~닝기리~)
     
     [산성터널]
     남문(지화문)에서 조금 산성 안으로 내려 오니 삼거리 좌측으로 터널이 뚤려 있더군요
     성남과 광주를 남한산성 내부를 관통하는 도로가 터널과 함께 뻥 뚤려 있는줄 이제서야
     알았고, 남문으로 차량통행을 금지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저도 촌놈, 옛놈이군요
     세월이 많은 것들을 바꿔 놓은 줄도 모르고 있으니
     
     산성 안은 문화 유적지라기 보다는 하나의 유흥도시를 이루고 있더군요
     
     산성 안은 분지를 이루고 있어 포근한 느낌마져 들었으며
     이곳에 萬海 한용운선생의 기념관이 있더군요. 백담사에나 있을 줄 알았는데
     
      남한산성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것이라 여겨...
      "남한산성 전체 안내도"를 남한산성 홈피에서 쎄비 해 왔습니다
      이제 전체적인 윤곽이 잡히시죠? 저도 이걸 보고 역사탐방을 간것입니다
     
     [산성 로타리 - 鐘樓]
     이곳에 옛날에는 鐘樓가 있었던 자리이며 城의 중심부이기에 종소리가 城 구석구석까지
     들려 여러가지 명령을 내리는 역활을 했다고 하는군요
     이 남한산성 한가운데 서니 지금으로부터 370여년전 굴욕의 역사가 뇌리를 두둘겨 패는군요
     임진왜란이 어떻고 일제침략이 어떻고 독도가 어떻고 하면서
     최고로 비참했던 이 南漢山城과 얽혀있는 병자호란에 대해선 말하는 사람들이 별로입니다
     남한산성 앞 삼전도에서 머리에 피가 나도록 땅바닥에 쳐 박으며
     청태종에게 아홉번이나  절을 하며 굴욕의 항복 맹서를 한 인조 -
     인조가 누굽니까?
     조선왕조 왕들중 최고로 의심이 많았던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한양과 백성을 버리고 
     개망신 당해 가며 개피를 보며 북으로 북으로 도망을 가고......
     전란이 끝나고는 오로지 明나라에만 충성을 다해 왕권만 유지 하려한 못난이 선조
     당시 중국의 상황은 후금이 세력을 키워 明을 위협하고 있었는데도 ....
     그래도 광해군은 양다리 외교를 펼쳐 후금과 명나라를 함께 아우러는 외교를 했지요
     이러한 광해군의 외교정책을(물론 여러 가지 다른 꼬투리가 많지만) 꼬투리로 잡아 
     쿠데타를 일으켜 불법 왕위에 올라 앉은 인조 조정- 明나라만 섬겼죠
     후금의 누루하찌가 明을 멸망 시키고 靑나라를 세우니, 明나라에게만 외교를 고집했던
     인조는 하루 아침에 청태종으로부터 보복을 당하고 그것이 바로 병자호란이지요
     요즘도 편향 외교라는 비판이 많이 있는데 병자호란을 교훈으로 삼아야겠습니다
     
     [천주교 순교비]
     정조대왕이 의문의 급서를 하고 어린 순조를 왕위에 올려 놓고 세도정치가 시작되었죠
     그때부터 천주교는 엄청난 박해를 받기 시작했었죠?
     그런데 그런 천주교 신자들을 이곳 남한산성에도 가두고 처형장으로 사용했다고 하는군요
     천주교 순교지로서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이곳에서 가까운   천진암이죠?
     
     [산성 관리 사무소와 역사기념관]
     동문쪽으로 내려가니 산성관리 사무소와 역사기념관이 있었습니다
     주차장도 넓구요
     제가 오늘 이 산성 안으로 들어 온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이 곳에 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곳에 있다는 비석을 하나 찾으려고 귓뜸만 듣고 찾아 온것입니다
     
     이 곳 주변 주차관리원과 음식점 주인등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이 비석에 대해 아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찾아 온 제가 훨신 더 잘 알고 있어서 꺼꾸러 설명을 해 줬습니다
     듣는 분들이 놀라더군요.. "어~? 그런 사실이 있는거에요? ~~?"라며...
     위치를 찾아 냈습니다. 관리사무소 앞 주차장 끝에 바로 있더군요
     
          [서 흔남의 묘비]
          묘비의 위쪽은 깨어져 없어졌고, 남은 묘비마저도 마모되어서 확실한 형체를 알 수 없지만, 
          남아 있는 묘비명에는 서흔남(徐欣男)이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많은 시간을 들여 여기 까지 오게된 서흔남(徐欣男)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 1636년12월 14일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황급히 피난을 왔다는 것은 모두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사태가 다급해지자 인조를 모시던 신하들은 하나 둘 흩어져 도망가 버리고, 
     인조는 얼마 남지 않은 신하들과 함께 송파강을 겨우 건널 수 있었다고합니다. 
     강은 건넜으나 날은 어두워지고 설상가상으로 눈까지 흩날려 인조 일행은 
     남한산성까지 올라 갈 일이 아득했답니다. 인조는 신하의 등에 번갈아 업혔으나 
     지친 신하들은 얼마 못 가서 주저 앉기를 거듭했다고합니다. 에구~~왕이나 신하나 모두 븅신들
     더구나 남한산성으로 가는 산길은 험했고, 
     때마침 눈이 깊이 쌓여 걸어서 올라가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때 한 총각이 굽 높은 나막신을 신고 나무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고 하네요. 
     인조는 그 총각에게 "나를 좀 업어서 성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이에 그 총각은 나막신을 거꾸로 돌려 신더니, 인조를 업어서 성까지 한숨에 모시고 갔답니다. 
     남한산성에 무사히 도착한 인조는 산성으로 들어올 때, 
     그 총각이 불편하게 나막신을 거꾸로 돌려 신은 것이 못내 궁금했다고합니다. 
     그래서 "왜 나막신을 거꾸로 신었느냐."고 물었고. 
     이에 총각은 "당신은 피난민 같은데, 만약 신을 바로 신고 오르게 되면 눈 위에 발자국이 나서 
     적군에게 들키게 되는 위험에 처하게 될까봐, 나막신을 거꾸로 신었다."고 말했답니다. 
     인조는 그 총각이 너무나 신통하고 고마워서, "너의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였답니다. 
     이에 총각은 인조가 입고 있던 곤룡포(袞龍袍)가 너무 좋아 보여서,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을 벗어 달라."고 하였답니다. 
     인조는 흔쾌히 자신이 입고 있던 곤룡포를 그 총각에게 벗어주었다고합니다. 
     이렇게 인조를 업고 무사히 산성 안으로 피신시킨 총각이 바로 서흔남이라는 총각이랍니다
     이 이야기는 正史가 아니고 野史임을 밝혀둡니다
     
          [인조가 내린 서흔남 공적비 - 정3품 가의대부(嘉義大夫)]
     산성안에 들어와서도 서흔남은 여러 활약을 펼쳤다고합니다. 
     청나라의 군사가 철통같이 포위하여 산성 안과 밖의 교통이 끊어지자, 
     그는 거지 행세를 하거나 적군으로 변장하기도 하고, 
     심지어 미친 사람처럼 행세를 하면서 적진을 통과하여 
     삼남지방과 강원도 등지로 가서 위급한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였답니다. 
     이렇게 서흔남은 전국 각지의 근왕병 진영에 뜻을 전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수삼 차 왕래하여 적의 동태를 보고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고합니다. 
     뿐만 아니라 청과의 전투에도 참여하여 청군 3∼4명을 죽이는 공을 세웠다고도 하네요.
     소설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는 '서날쇠'로 나오지요?
     하찮은 천민임에도 불구하고 인조는 서흔남에게 
     정3품의 가의대부(嘉義大夫)라는 파격적인 품계를 내렸으며 그 공적비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은 正史입니다
     이런 유적이 이렇게 방치되다시피 있는게 안스러웠습니다
     
     이곳 안내판에는 正史에 대한 기록만 있더군요
     
     [개원사 가는 길 입구]
     이제부터 남한산성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불곡산을 가야합니다
     관리사무소가 있는 주차장 안쪽으로 '개원사' 가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열두광주리'간판이 있는 길로 똑 바로 가면 됩니다
     
     [개원사 일주문]
     조금 올라 가니 개원사 일주문이 있었으며....
               
               [등산로 입구]
               일주문에서 2~30m정도 올라 가니 좌측으로 등산로 입구가 있었습니다
               개원사를 구경하려면 올라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서 등산로로 진입해야합니다
     
     [개원사]
     저는 올라 가서 개원사를 구경했습니다
     
     [개원사]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의 승군 본영을 두었던 절로서 
     벽암 각성선사가 조선 8도의 도총섭이 되어 승려들을 지휘하여 남한산성을 축성하였으며, 
     그후 수도를 방어하는 호국승군의 도장이 되었던 곳이라합니다
     오늘은 절간이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개원사를 구경하고 다시 일주문 쪽으로 내려와 등산로로 접어 들었습니다
     
     [남한산성 암문]
     한참을 오르니 암문이 暗門같지 않게 매우 큰 暗門이 나왔는데...
     남한산성에는 북한산성과 달리 암문의 이름이 없고 번호로 메겨져 있더군요
     워낙 많은 16개나 된다고 하니 번호로 표시한듯합니다
     
     암문 위로 오르니 잘 만들어진 남한산성 일주 코스가
     저에게 한바퀴 돌고 가라고 하는듯합니다
     
     산성 일주 코스는 등산로라기 보다는 트렉킹 코스라고 하는게 더 알맞을듯하군요
     지금 이곳은 집에 와서 자료를 보고 알았는데 앞에 보이는 돌출 성곽이
     제3옹성이었습니다. 옹성은 세개가 있더군요.
     
     앞에 가운데 검푸르게 진하게 보이는 산이 청계산이며, 멀리 보이는 산이 관악산입니다
     
     남쪽으로 검단산이 보입니다
     이제 저 검단산 정상을 향하여 가야합니다
     검단산은 하남에도 유명한 검단산이 있는데 검단산 하면 그 하남의 검단산을 주로 말합니다
     남한산성 바로 옆에도 한자까지 똑 같은 검단산이 있습니다
     저 검단산은 여기에서 우측으로 빙 돌아서 가야하더군요
     
     첫번 만났던 暗門에서 우측으로 북쪽-즉 至和門(南門)이 있는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다시 위와 같은 제법 큰 暗門이 나옵니다
     이 暗門으로는 자동차가 다니고 있었으며,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검단산 정상까지
     연결된 유일한 군용도로이더군요
     이 콘크리트 포장 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검단산 정상에 다다릅니다
     
     성문을 나가 우측으로 콘크리트 포장 도로를 따라 갑니다
     
     검단산으로 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는 잘 되 있었으며
     옆 산으로 등산로도 있었으나......
     
     이러한 안내판을 읽고는 포장도로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런 표지가 있는데도 산속으로 다니는 분들이 있더군요....저는 간 떨려서..ㅎㅎ
     
     [검단산 정상 갈림길]
     오른쪽으로는 실제 검단산 정상이 있는데 그곳엔 공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어 갈수 없고
     직진도 공군부대 가는 길이라 갈수 없으며
     사진에는 잘 나와 있지 않지만 좌측으로 가야합니다. 중요합니다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나가면..........헬기장이 나오는데 이곳이 검단산 정상입니다
     
     [헬기장에서 바라 보는 공군 레이더 기지]
     원래 저곳이 검단산 정상입니다만 갈수 없고, 
     등산객들을 위해 이곳에 정상 표시를 해 놨더군요
     
          검단산(黔丹山·538.1m)
          이곳은 실제 520m정도이고 저 앞의 공군기지가 538.1m이랍니다
          10시 50분에 이곳에 왔습니다
          
     검단산 헬기장 건너편에 있는 출구를 통해 내려갑니다
     
     금단산 헬기장에서 조금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우측으로 갑니다
     이 삼거리에 막걸리 파는 행상이 있었구요
     
     검단산에서 부터 불곡산까지는 길 찾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길을 잃어버려 알바할 가능성이 많으니 가능한 산객들이 많이 몰리는 휴일에 가야
     길을 물어 보면서 찾아 갈수 있습니다. 
     오늘도 일요일인데도 이곳에는 산객들이 많지 않아서 고생을 좀 했습니다
     여기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가야합니다
     
     [萬壽泉 약수터]
     여기에 오니 이미 11시 정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산성입구역에서 3시간10분이 걸렸습니다
     산성 안을 둘러 보지 않고 바로 오면 시간은 아주 많이 단축될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오로지 숲속을 걷기에 사진은 특별한 것을 제외하고는 불곡산 까지 갑니다
     
     [왕기봉]
     정상같지도 않은 산정상이 불쑥 나왔는데 '왕기봉'이었습니다
          
          [왕기봉]
           11시 40분에 이곳을 통과했습니다. 그러니까 만수천 약수터에서 40분 걸렸군요
          
     왕기봉을 내려가서....
          
     조막조막한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리니....
     
     [뉴서울 골프장]
     밖이 보이는 곳이 우연히 나타나 반가웁게 바깥 세상을 구경했습니다
     제가 한참 골프를 즐길때 많이 이용하던 뉴서울 골프장이 보이더군요
     골프를 그만둔지 10년정도 됩니다. 한창때는 일주일에 아홉번을 필드에 나갔으며
     또한 한번 프로 테스트에도 나가봤는데....골프는 프로의 경지에 까지 가봤다는 얘기이죠..ㅎㅎ 
     그러나 골프는 저에게 즐거움을 주기 보다는 점점 더 시간과 돈을 앗아가고 스트레스를 주더군요. 
     엄청난 비용 들이는데도 운동효과는 적고, 오히려 스트레스 받는 그런 운동이란걸 깨닳고, 
     물론 IMF 외환 위기로 사업도 시원찮고해서....ㅎㅎ골프를 완전히 멀리했지요. 
     10여년 동안 연습 한번 없이 지내다 얼마전 주변분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제주도에 가서 두번 라운딩을 했는데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좀 쳐서 돈은 다 따먹었죠. 
     오래동안 쉬었다고 동반자들이 우습게봤던것 같습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골프 그만두고 시작한것이 수영과 등산입니다.
     운동적인 면 특히 정신건강에는 골프와 비교 할수 없고, 경제적이고,
     혼자서 얼마던지 할수있고....저는 이 매력에 흠뻑 빠져 산과 물을 누비고 있습니다
     
     우측으로 서울시내와 북한산이 보이고....
     날씨가 그만입니다. 진정 또 가을은 오고 있습니다
     이번 가을엔 단풍이 물든 여러 산을 다니며 좋은 산행기를 쓰고 싶군요
     
     바로 아래 성남시가지가 눈앞에 와 있었습니다
     엄청 발전했습니다. 70년대초 서울 청계천 판자촌을 강제 철거하고 고가도로를 건설 할때
     갈곳없는 어려운 주로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백성들이 사는 판잣집 주민들을 
     지금 이곳 성남으로 강제 이주 시켰죠
     그렇게 탄생된 성남은 그 때가 언제인데..하며 이렇게 엄청난 도시로 탈바꿈을 했군요
     
     길을 따라 나아가니 하늘도 보이는 곳이 또 있더군요
          
     숲을 뚫고 나아가니
     
     [이배재 고개]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배재 고개'가 나왔습니다
     
     [이배재 고개]
     반갑습니다. 휴~
     성남에서 광주로 넘어 가는 고개 중에 하나입니다
     이곳에 도착하니 12시 15분
          
          [이배재 고개]
          원래 '이배고개'라고 하던지 '이배재'라고만 해야하는데.....
          '재'가 고개라는 말이죠? '역전앞'이라는 표현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사용하니 저도 더 이상 꼬장대지 않겠습니다
     이배재의 유래에 관하여는 두 가지의 얘기가 있다고합니다. 
     옛날 경상도나 충청도 지방의 선비가 과거를 보고자 한양으로 갈 때 
     마침내 이 고개의 정상에 이르면 한양이 보이니 임금님께 한 번, 
     고향의 부모님께 또 한 번 절을 하여 이배재 고개라 한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제가 가장 존경하는 퇴계 이황선생님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다가 
     마지막으로 한양이 보이는 곳이라 임금님께 두 번 절을 하고 떠난 데에서 
     이배재라 한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한문으로는 '二拜재'라고 해야겠네요
     갈마터널이 뚤리기 전까지는 이 길이 3번 국도였다고하며, 
     3번 국도는 광주 이천 장호원 충주 문경새재로 뻗어 가지요
     
     이배재고개에서 갈마치 고개로 가는 등산로 들머리
     
     성남시계 종주 산행로 안내판
     건너편 광교산-바라산-우담산-하오고개-청계산 종주는 지난 7월초에 했습니다
     그 종주 산행기는 지금도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배재고개를 지나 산을 하나 넘었습니다
     
     [連理枝]
     울타리를 쳐 보호하고 있는 소나무 두그루 - 連理枝
     이 산의 명물이더군요
     자료 사진에서나 볼수있고 실물로 連理枝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데 운 좋게 여기서 보는군요
     저는 사진으로는 많이 봤으나 실물은 여기 連理枝가 처음입니다
     
     [연리지 소나무]
     진짜로 완전히 붙어 있습니다
     아래 연리지 설명은 재미없군요. 제가 아는 연리지에 대해 간단하게 알려드리죠
     중국 당나라의 왕 현종 모두 아시죠? 모른다면 공부 않한 사람입니다
     아들의 와이프 - 즉 며느리를  시아버지가 빼앗아 자기 마누라로 만든 당나라 왕 현종을 몰라요?
     그 며느리가 그렇게도 유명한 "양귀비" 아닙니까~~시아바지랑 새 살림차린 뇨자 ㅋㅋㅋ
     그 유명한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로맨스는 당나라의 운명이 다할 정도로
     楊貴妃에 완죤히 푹 빠진 玄宗이 정치는 나몰라라하고 everyday - everynight 둘이 붙어 놀았습니다
     국가는 망해가고....이런 양귀비을 주변 신하들이 가만 놔두겠습니까?
     쿠데타(안녹산의 난)가 일어나 현종도 어쩔수 없이 눈에 집어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양귀비를 
     비참하게 목메달아 죽게합니다. 에구 아까버라~~
     그리고는 왕실의 詩人인 백락천(白樂天)에게 詩를 지어  양귀비와의 사랑얘기를 노래하라고했는데 
     그것이 무지무지 유명한『장한가(長恨歌)』입니다.엄청 슬프다는 뜻이죠? 長恨이니....
     왕실의 詩人인 백락천(白樂天)의 詩를 감상해 보실까요?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7월 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和語時(야반무인화어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 있는데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이 한 끝없이 계속되네.
     玄宗은 안녹산의 난으로 꽃다운 나이에,
     그것도 非命(비명)에 간 楊貴妃를 잊지 못해
     늘 이 詩를 되뇌었다고 합니다
     모르는 단어 설명해 드리죠
     비익조 모르겠지요?
     비익조比翼鳥는 날개가 각기 한쪽인 전설 속의 새가 서로 붙어야 날수있다는 중국의 전설속의 새이며
     두 나무 가지가 완전히 붙어 서로 영양 공급을 하며 사는 나무 - 연리지와 같은 의미로
     하늘에서는 比翼鳥, 땅에서는 連理枝가 되자고 현종과 양귀비는 약속 했다는것 아닙니까
     사랑의 표현도 이 정도는 해야 하는것 아닌가요? 연애편지 쓸 분들 참고하세요
     그런데 양귀비가 죽었으니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 -그래서 長恨歌입니다
     
     [연리지에 대한 설명]
         
     연리지 소나무에서 조금 가니 '갈마터널위"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었으나
     "갈마터널 밑에 난 도로는 숲으로 볼수가 없었습니다
     
     갈마터널 위에는 어느 종가 묘들이 있었습니다
     
     갈마터널위를 지나오니 옛길(구도로) 갈마치 고개가 나왔습니다
     갈마치 고개 옛길은 야생동물 이동통로를 만드느라 터널화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사중인 터널 오른쪽 옆으로 내려가 갈마치 고개로 갔습니다
     
     [갈마치 고개]
     갈마치 고개도 "갈마 고개"로 하던지 "갈마치"라고만 해야 국문법에 맞죠?
     왜냐하면 '치'가 큰고개라는 뜻이니까요. 또 '족발' 야그하고싶군요
     '치'는 한문으로 峙이고 순 우리말로는 '티'라고 합니다
     제일 유명한 지명이 서울 강남에 있는 대치동입니다.
     대치(大峙)는 큰 고개라는 뜻이며 순우리말로는 "한티"라고 사용하죠
     왜 제가 이것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세요?
     저의 모교 휘문고등학교가 강남 대치동 한티(大峙)에 있어 알게 됬다구요 ㅎㅎㅎ
     '한'은 한아름 할때 한이구요~~ 호암산 한우물에서도 설명했지요? 큰우물이라고...
     '한티'는 강남 삼성동 코엑스에서 대치동 개포동쪽으로 넘어 가는 큰 고개입니다
     그 고갯마루에 휘문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티 위의 휘문'이라한답니다
     
     [갈마치 고개 터널화 공사]
     다른 분들 모두 갈마치 고개라 쓰니 저도 더 이상 우기지 않을렵니다만 알고는 있어야죠?ㅎㅎ
     갈마치고개의 지명 유래에는 두 가지의 설이 있다고 성남시 문화유적 싸이버실에 설명이 되있더군요. 
     옛날부터 칡이 많아서 갈현(葛峴)이라 하였다는 설과 
     옛날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말에게 물을 먹여 갈증을 풀어주고 떠났다고 해서 
     갈마치(葛馬治) 또는 갈현(渴峴)이라고 하였다는 설입니다. 
     평택임씨의 족보에는 갈현(渴峴)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성남시 문화유적 싸이버실에 나있더군요.
     여기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1시 15분
          
     갈마치 고개를 지나 영장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갈마치 고개에서부터는 무조건 '영장산' 이정표를 따라 가야합니다
     
     갈마치 고개를 지나 영장산 쪽으로 와 뒤돌아 보니 이제서야 지나온 산봉우리들이 보이는군요
     제일 멀리 레이다가 보이는 산봉우리가 검단산이고,
     그 앞 가운데 나무 오른쪽 볼록 솟은 산봉우리가 왕기봉,
     왕기봉 다음 조그마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연리지'가 있던 산봉우리입니다
     많이 걸었습니다. 다리가 좀 불편해 지기 사작합니다. 현재 약5시간반을 걸었습니다
         
     영생관리사업소 안내 팻말을 지나 모리야산 기도원 방향으로 갑니다
     
     어떤 안부가 나오는데 어디인지는 확인 못했습니다
     계속 직진합니다
     
     계속 직진해 가니 야탑동 도촌동 경계능선 안내 표지판이 나오고...
     계속 영장산 방향으로만 직진합니다
          
     숲속을 따라 직진하니...........영장산 정상 아래 막걸리 파는 행상이 나오고
     
     영장산 정상이 나왔습니다
          
          [靈長山 정상 표지석]
          413.5m이면 제법 높은 산인데 능선을 다라 와서인지 그다지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혼이 오래 잘 잠들라고 靈長山이라 했다하며, 주변에 묘가 많았습니다
          2시 50분에 도착하여 20분 정도 휴식을 취했습니다. 다리가 많이 아파 옵니다
          여기서 불곡산은 같은 분당이니 금방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아이구 죽었습니다
          여기서부터 태재 넘어 불곡산 올랐다가 미금역까지 4시간20분을 더 걸었습니다. 에구~
          여기까지 7시간이 걸렸는데..닝기리~ 
     
     [영장산 정상부]
     여기서부터는 오로지 "태재"라는 안내판을 보고 가야 합니다
     좌측 광주와 특히 분당 신도시가 우측에 있어 갈림길이 무지하게 많으니 길을 잃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하며 조금만 이상해도 물어 물어 가야하더군요
     그리고 이정표의 안내가 일관성이 없어 혼란만 가중시켰으니 앞으로 가실 분들은 참고하세요
     
     [영장산을 지나  일곱삼거리쯤에서 뒤돌아 본 영장산]
     이제서야 영장산이 제법 높은 산이란걸 실감합니다
     
     광주와 분당 사이의 경계인 산 능선까지 집을 지어 살고 있더군요
     건축허가를 어떻게 받았는지...이렇게까지하며 집짖고 살아야하는지....
     요기 사는 분들은 자연 속에서 산다고 생각하겠죠? 전원주택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겐 혐오 대상인 곳에 산다는 험담을 속으로 하고 지나가는지도 모르면서..닝기리
     
     걷기 편한 율동공원 뒷 능선을...인생의 길을 느끼며....걸었습니다
     찔룩 찔룩하며..아이구 다리야~~쉬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새마을 고개]
     율동공원에서 광주 신원리로 넘어 가는 고개
     
     [새마을 고개]
     여기서 또 다리를 주무르며 쉬고 있는데 MTB 동아리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 가더군요
     지금 시각 4시 30분
     
     처음으로 율동공원의 분당저수지가 숲사이로 살짝 보이더군요. 반갑다 친구야~!!
     
     갈림길을 지나
     
     숲 사이로 무덤군이 나왔는데....
     이곳이 '태재'바로 위의 한산 이씨 종묘더군요
     이 무덤군 아래 끝으로 가면....
     
     [태재]가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이때 시각이 오후 5시 20분
     
     이곳 [태재]에서 불곡산 등산 들머리를 찾아 가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기가 [태재] 사거리입니다
     [태재]사거리는 태재를 넘는 新道路와 舊道路가 교차하는 사거리입니다
     분당이야 어느 길을 택해도 되지만 '불곡산'은 반드시 舊道路를 따라 가야합니다
     
     [태재 사거리]
     바로 앞의 舊道路를 건너 다시 新道路를 건넙니다. 
     신발보다 싸다는 타이어 가게쪽으로 가면 않됩니다
     우측으로 舊道路를 따라 500m쯤 갑니다. 
     
     웃태재가 나오는데...
     
     '애마'라고하는 음식점  옆길로 올라 갑니다
     
     '애마'에서 30m쯤 올라가면 좌측에 이런 '채선당'이라는 음식점이 있고..
     건너편에
     
     '채선당'음식점 건너편에 '불곡산' 들머리가 이런 모양을 하고 기다립니다
     여기만 찾으면 이제부터는 일사천리입니다.
     계속 똑 바로 가기만 하면 됩니다
     속리산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한남금북정맥이 漢南은 한남대로 錦北은 금북대로 서로 제갈길을 가는 
     안성의 칠장산(492m)에서 북서쪽으로 가지를 쳐 김포 북서쪽 끝머리 문수산(376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한남정맥. 
     이 한남정맥이 안성의 칠장산에서 용인시 북서쪽 석성산(471m) 할미성 북쪽 330m봉에 이르면 - 여기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영동고속도로 마성터널 위 봉우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여기서 北으로 黔丹지맥을 분가시킵니다. 
     이 黔丹지맥은 불곡산(335m)에 이르러 성남시와 광주시 경계를 이루며 계속 북진합니다.
     지금 지나온 태재를 지나 영장산(414.2m)~갈마치 고개~이배재 고개~왕기봉(499m)~검단산(黔丹山·538.1m)~
     청량산(482.6m·남한산성 수어장대)을 지나 연주봉(465m)에 이르러 동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이어지는 능선은 
     '은고개'를 지나 하남시민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용마산(595.7m)~검단산(黔丹山·657m)을 하늘에 올려 놓고는 
     그 긴 黔丹지맥의 다리를 한강의 팔당호 아래로 푹 담금니다
     오늘 성남시계종주코스인 黔丹지맥의 상당 구간을 주파했습니다
     
     불곡산을 오르면서 첫번재로 맞는 쉼터
     여기에 오니 오후 6시00 정각이었습니다
     여기서 또 조금 쉬고....
     
     [불곡산 정상]
     오후 6시 20분 석양이 완전히 물들어 가기 시작합니다
     
     [불곡산 정상석]
     해발 312.9m 제법 높은 산입니다. 분당에 사시는 분들은 아침 저녁으로 이용하면
     건강에 매우 도움이 되겠더군요
     佛谷山은 양쪽 계곡에 절이 있다고해서 불곡산이라 했다는데..절간은 어디있는지...
     
     [한국토지공사]
     불곡산에서 내려 오니 한국토지공사 안이더군요
     이때 시각이 오후 7시 10분
     한국토지공사 정문을 통과하며... 경비에게 수고한다고 한마디 인사 해주고...
     고맙다고 안녕히 가시라고 또 답례까지 받고...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다시 미금역까지 걷는데...이제는 다리가 잘 떨어지지가 않더군요
     다리를 질질 이끌고
     
     [미금역 로타리 부근]
     오전 7시 50분에 남한산성입구역 1번 출구를 나와
     남한산성 유원지-약사사-남한산성 남문-남한산성 안- 관리사무소앞 서흔남 비석- 개원사-암문-
     검단산- 만수천 약수터-왕기봉-이배재 고개-연리지-갈마치 고개-영장산- 일곱삼거리-
     율동공원뒤 능선-새마을 고개-태재고개 능선- 태재- 불곡산 들머리-불곡산-토지공사-미금역
     저녁 7시 30분이었습니다. 장장 11시간 40분간의 긴 여정이었습니다
     어둠은 모든 물체를 가렸지만
     새로운 불빛이 그 위를 덮고....
     뭐하러 이짖을 하는지 한숨 지으며
     오전에 세워 놨던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홍어와 무인도☆ 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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