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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행어사 박문수의 얼이 살아있는"
  
      "은석산과 박문수어사 묘" 답사기
  
           상동2리버스정류장-고령박씨종친재실-은석산팔각정-422.3m봉-은석산-
           박문수어사 묘-은석사-320.4m봉-상봉산-병천초교-아우내장터
  
                         산다는거...

                                        경허선사

                        天地如是廣(천지여시광)    此生可笑乎(차생가소호)   
                        半生已過了(반생이과료)    餘年復幾餘(여년부기여)    
                        憂愁長侵汨(우수장침골)    幾時得安居(기시득안거)     
                        如醉不覺悟(여취불각오)    空然得疇躇(공연득주저)
  
                        천지는  이렇게 넓은데 이리 산다는 것은 가소롭구나
                        반평생 벌써 지나갔으니 남은 해는 얼마나 될까 
                        근심 걱정에 늘 시달리고 편안한 시간은 얼마나 될까
                        취한듯 깨지 못하니 공연히 주저만 하네 
                             


  [구글어스 지형사진]

  [구글어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상동2리'에 있는 "상동2리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하여
  "은석산"에 올라 "박문수어사 묘"를 답사하고 "상봉산"을 경유하여
  "병천 아우내장터"로 가는 GPS 측정으로 "9.2km"를 갑니다.


  ['상동2리' 버스정류장]           10:05

  2017년 3월 3일 (금) 맑음  
  [전철 1호선]을 타고 [천안역]에 내려 [천안역 동부광장버스정류장]에서 [400번 시내버스]를 타고
  약40분이 걸려 '천안시 남동구 북면 상동리'에 있는 [상동2리 버스정류장]에 내렸습니다.
  버스정류장 건너편으로 "박문수 묘"로 가는 길은 안내되고 있었습니다.
  건너편에 제가 "꽃표시" 한곳으로 가면...


  ['역사문화둘레길']           10:06

  이 길은 [천안 역사문화둘레길] 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탐방객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박문수어사 묘"는 이정표가 안내하는 [고령박씨 종중재실] 방향으로 이 길을 따라 갑니다.
  [역사문화둘레길]은 [박문수어사 기념관]을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 나와야 하더군요.


  ['은석산 팔각정' 조망]
  
  "은지리"로 가는 길을 따라 조금 가면 오늘 오르려고 하는 "은석산"의 한 봉우리인 "팔각정"이 있는
  봉우리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상동리' 통과]                 10:09

  이어서 쉼터가 있는 "동곡마을"이라고 하는 마을을 지나면...


  ['은석골' 가는 길]           10:13

  "은석산"이 성큼 다가오며 "박문수어사 기념관"이 있는 [고령박씨 종중재실] 입구를 지나 갑니다.
  5분 정도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버스주차장']          10:18

  [박문수어사 기념관]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버스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앞에 보이는 마을이 "은석골"이라는 마을이고 기념관과 재실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곤 올라야 할 "은석산 산줄기"가 조망되는데 저 능선이 [능선바람소리길]이라는 코스였습니다.
  7분여 마을을 통과하면....


  ['박문수 기념관' 앞 삼거리]         10:25~10:28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좌측에 보이는 고풍스런 집이 [고령박씨 종중재실]겸 [박문수어사 기념관]이더군요.
  등산로는 우측으로 갑니다.


  [은석산 등산안내도]

  이곳엔 "은석산 등산안내도"가 있습니다.
  저는 등산코스인 "능선바람소리길"로 진행 할 예정입니다.


  ['고령박씨 종중재실'-'박문수 기념관']

  [고령박씨 종중재실]겸 [박문수어사 기념관]입니다.
  "고령박씨 高靈朴氏""신라 박혁거세"후손으로 "신라 경명왕"의 둘째 아들인 "박언성"이 시조랍니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고령박씨"여서 "박문수어사 묘"가 있는 이곳 "은석산" 아래에 재실을 만들고
  또한 기념관도 함께 꾸며 놨다는군요.
  "고령박씨"의 대표적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현 대통령"이지요.
  요즘 탄핵정국에 처해있는데....


  [은석산 가는 길]

  [재실]을 지나면 아늑한 조그마한 마을이 다시 펼쳐지면서 "능선바람소리길"이 조망됩니다.
  마을길을 따라 올라 가면...


  [삼거리]          10:34

  이정표와 등산안내도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서 직진하면 "능선바람소리길"이라는 능선등산코스로 가고
  우측 [은석사-박문수묘 1.75km→]로 가면 "계곡물소리길"이라는 계곡등산코스로 갑니다.
  산객들은 제가 가는 "능선바람소리길"로 가는게 좋겠죠?


  [ 은석산 등산안내도]

  이곳에 다시 친절하게 등산안내도를 설치해 놨습니다.
  어느길로 가느냐는 각자 선택의 문제이지만 저는 "능선바람소리길"을 추천합니다.


  [등산로 입구]         10:36

  "은석산 등산로입구"에는 전원주택들이 제법 많았는데 살기 좋은 곳인듯...

 
  [오름길]

  등산로 입구에서 오름길이 시작됩니다.
  길은 서울의 유명 등산로인듯 넓고 선명했으며, 완만한 경사도였습니다.
  12분 정도 오름길을 오르면....


  [능선 쉼터]         10:48~11:52

  능선에 오르는데 쉼터가 조성되 있어 잠시 등산 준비를 하고 갑니다.
  오늘 날씨는 차가운 겨울을 훌훌 털고 일어서는 할미꽃처럼 친근감을 주는 그런 화창한 날입니다.

 
  [오름길]

  능선 쉼터에서 다시 조금 더 가파른 오름길을 8분 정도 오르면...


  [바위가 있는 쉼터 봉우리]          11:00

  조금 독특한 바위가 있는 쉼터 봉우리에 도착합니다.
  주변이 조망되기 시작하는데 특히 "팔각정"이 있는 봉우리가 손짓하며
  "나 ~ 여기 있어~   어서 오셔~"라고 하는듯

 

  [오름길]

  주로 나무 계단을 설치해 놓은 오름길을 14분여 오르면....


  ['은석산 전망대']        11:14~11:25

  "은석산 전망대"라고 하는 팔각정에 도착합니다.
  이 봉우리는 "은석산 정상"은 아니고, "은석산"에선 유일하게 팔각정을 설치한 곳이었습니다.
  조망이 좋아 조망을 하면...


  [지나온 길 조망]

  먼저 남쪽방향인 지나온 길을 조망합니다.
  출발지였던 "상동2리 버스정류장"이 [북면중앙아파트] 옆에 보이고


  ['흑성산' 조망]

  서쪽으로는 지난주에 탐방했던 "독립기념관"과 "흑성산"이 시원하게 조망됩니다.
  이 광경을 약간 줌인하면...


  ['독립기념관'과 '흑성산']

  설명 하지 않아도 모두 알수 있는 지난주의 탐방코스가 한눈에 들어 옵니다.
  실제는 이렇게 약간 줌인한 사진 속의 광경으로 가까이 보입니다.


  ['성거산' 조망]

  "금북정맥"이 지나는 "聖人이 산다"는  "성거산"이 지난 추억을 일깨워주는데...
  현재는 聖人 대신에 군부대가 점령하고 있지요.


  ['422.3m봉' 가는 능선길]

  조망을 마치고 "은석산"을 향해 출발합니다.
  곳곳에는 "암행어사 박문수"에 대한 이야기들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422.3m봉"인데 이 봉우리와 높이 차이가 그다지 나지 않는군요.
  "422.3m봉"으로 가면


  ['422.3m봉'에서 '은석산 정상' 조망]          11:28

  팔각정이 있는 봉우리에서 이어지는 "422.3m봉"의 능선길은 공원이라기 보다 정원으로 가꾸어 놨습니다.
  몇주 후에 가면 화려한 봄꽃들이 산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줄것입니다.
  "은석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은석사' 갈림길]        11:30

  "422.3m봉"에서 잠시 내려 가면 [은석사]로 통하는 첫번째 삼거리가 있고


  [운동시설]       11:33
 
  이어서 운동시설이 있는 쉼터가 조성되 있습니다.
  400m가 넘는 산봉우리에 이런 운동시설이 실제 팔요한것인지...
  시설을 사용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예산은 더 급한 다른 곳에 쓰시지


  ['박문수어사 묘' 앞 삼거리]         11:35
 
  운동시설이 있는 쉼터에서 내려 가면 바로 "암행어사 박문수 묘"가 보이는 삼거리이더군요.
  오늘 "은석산"을 찾은 주 목적이 이 묘소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곳이니 저는 먼저 "은석산 정상"을 오르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 오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은석산 정상"까지는 150m라고 이정표가 알려 줍니다. 직진해 갑니다.

 
  [오름길]

  약간 가파른 오르막이어서 150m가 좀 멀리 느껴지더군요.
  7분여 오름짓을 하면...


  ['은석산' 정상]          11:42~11:45

  "은석산 銀石山 455m"
  기우제를 지내는 제단이 있는 "은석산"의 정상입니다.
  [이인좌의 난]....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
  "숙종"과 "장희빈" 사이에서 탄생한 "경종"은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죽을때
  "장희빈"이 "숙종"에 대한 보복으로 아들인 세자의 부랄을 잡아 당기며 죽어 
  "경종"은 이후 성생활을 못해 후사도 없이 비실비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죠?
  "숙종"은 궁중에서 세숫대야에 발씻는 물을 길어 나르던 "무술이"와 눈이 맞아 애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조선 제21대 왕 영조"이지요. 노론 소론 남인 서인등 사색당파싸움이 절정에 있을 때였죠.
  이 시대에 과다한 세금징수에 가뭄까지 겹쳐 백성들의 생활은 생계를 꾸릴수 없을 정도로 핍박해져
  곳곳에서 농민반란이 일어났었는데 그중에 대표적 반란이 [이인좌의 난]이죠.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오늘 산행에 중요 포인트인 "박문수"와의 관련에 대해서만 언급하면
  "박문수"가 "영조"의 총애를 받게 된 계기가 바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로 덕이었답니다.
  "영조"는 "박문수"에게 그 공로로 이 "은석산"을 하사하였고 지금까지 [고령박씨 종중재실]과
  [박문수기념관]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답니다.
  "박문수"는 아버지 고향이 이곳 '병천'이지만 '평택'에 있는 외가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답니다.


  ['은석산' 주변 산들]

  "은석산" 주변에 있는 산들은 안내도를 참고 하시고...
  조망을 하면


  ['작성산' '만뢰산' 조망]

  북쪽방향으로 "작성산"과 "만뢰산"이 조망됩니다.
  특히 "만뢰산"은 '진천'의 진산이며, [금북정맥]에서 분기하는 [만뢰지맥]의 핵심 산이죠.
  신라 '김유신장군'의 태실이 있는 산으로 유명합니다.


  ['흑성산' '태조산' 조망]

  서쪽방향으로는 "독립기념관"과 "흑성산"이 여전히 조망되고 
  [금북정맥]이 지나는 "태조산"이 처음으로 조망되는군요.
  "태조산"은 '천안'의 진산이기도 합니다.


  ['병천' 조망]

  남쪽방향으로는 조금후에 진행할 산줄기가 펼쳐지는데
  "320.4m봉"과 "상봉산"을 경유하여 "병천"으로 갈 예정입니다.
  조망을 마치고 바로 "암행어사 박문수 묘"로 되돌아 갑니다.


  ['박문수어사 묘']             11:52~11:56

  "은석산" 정상에서 조망을 마치고 "박문수어사 묘"로 돌아 왔습니다.


  ['박문수어사 묘']

  "박문수 1691~1756"는 '숙종' 영조'시대의 관료로서 '소론'에 속한 정파였습니다.
  "박문수"는 요즘으로 말하자면 "세무행정"에 능한 경제 관료였으며
  군 행정 업무에도 유능한 관료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역사에는 특징적인 기록이 없는  "암행어사"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유를 살펴 볼까 합니다.
                         
                              [박문수 어사]
                            보물로 지정된 "박문수 어사" 초상화 입니다.


  ['박문수어사 묘']

   1727년 9월 25일자 [영조실록]의 원문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趙泰億及金東弼, 皆言文秀之周通鍊達。上遂以文秀爲御史
  조태억급김동필, 개언문수지주통연달, 상추이문수위어사
  
  (조태억에 이어 김동필도 박문수가 두루두루 통달하고 연달하다고 아뢰니 주상이 문수를 어사로 삼았다.)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운 "박문수"를 "영조"는 무척 좋아 했답니다.
  '노론'이 정권을 지배하는 상태에서도 '소론'계인 "박문수"를 곁에 두고 정사를 돌보게 하였으니
  "영조"가 "박문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짐작 할수 있지요.
  "박문수"는 이름이 "朴文秀"이듯  문과 출신인데, 암행어사는 6개월 정도 했고,
  '경상도 관찰사' '도승지' '병조판서' '어영대장' '호조판서' '예조판서' '한성판윤(서울시장)'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특히 왕세손의 가정교사(世孫師傅)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는데, 하위직인 '암행어사'로만 알려 진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암행어사'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마도 암행어사 시절의 일화들 때문일 것입니다.
  "암행어사 暗行御史"
  임금의 특별명령을 받고, 지방 곳곳의 관리들의 잘잘못과 백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비밀리에
  들추어 내 지방정치를 바로 잡고 관리들을 징계하던 임시 관리였습니다.
  그러니까 "암행어사"는 많이 있었는데, 우리는 "암행어사"라고 하면 먼저 "박문수"를 떠올림니다.
  왜일까요?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겠지요?
  "박문수"가 암행어사 임무를 워낙 잘 수행해서?  똑똑해서?
  암행어사 6개월 동안에 있었다는 그런 설화들이 정말 사실일까요?  ㅎㅎ
  물리적으로 불가능 하리라 생각되는데 그 이유를 오늘 파헤쳐 드리겠습니다.


  ['박문수어사 묘'에서 조망]

  남향인 "박문수어사 묘"는 풍수지리가들이 명당이라고 합니다만
  불행하게도 "박문수어사"에게는 정통 핏줄인 후손이 없고 양자로 삼은 후손이 대를 이어
  이 묫자리가 명당이라고만 하기엔 좀 그렇다고 '파란문'은 사료 됩니다. ㅎㅎ
  이나저나 앞에 보이는 "320.4m봉"과 "상봉산"을 통과하여 "병천"으로 내려 갈 예정입니다.
  '파란문'에겐 이 광경이 "여인이 누워있는 모양"으로 보이는데...개눈엔 X만 보이나? ㅎㅎ
  사실 "박문수"는 암행어사로 딱 두번 발령 받아서 6개월 정도 활약했습니다.
  (어느 곳에는 삼년여라고 하고 있으나 이곳 안내판에는 6개월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활약상도 엄청 날것이라고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많큼 엄청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도 "박문수"는 암행어사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가!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민초 백성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민초들이 구세주와 같은 초능력을 가진 암행어사가 나타나 주기를 바라는 '바램'이었던 것이죠.
  탐관오리들의 학정을 스스로 고발하고, 벌 주는 역활을 "박문수"라는 특정인을 통해서
  그런 현실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그런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으며 대리만족을 하며 
  고달픈 현실을 달랬던 것입니다.
  실제 "박문수"가 암행어사로 활동한 지역이 짧은 기간에 충청 영남지역등으로 국한되 있는 데도
  "박문수 설화"는 전국에 걸쳐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봐도 실제 "박문수의 활약"이
  아니라 "박문수와 같은 암행어사"들에게 활약을 기대하는 '설화'였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한 설화들을 묶어서 "청구야담"등에 소설로 전해져 오던것을 일제시대 1915년에 정리하여
  [박문수전]이라는 소설이 출판되면서 "암행어사=박문수"라는 등식이 만들어 졌던 것입니다.
  오로지 이 소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은석사' 가는 길]

  "박문수어사 묘"까지 자동차가 다닐수 있었습니다.
  "은석사"에서 "박문수어사 묘"까지는 비포장도로가 있었습니다.


  [내림길]

  ['은석사']

  "암행어사 박문수"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설화나 전설 속 박문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현재 전하는 여러 설화 속에서도 박문수는 신출귀몰하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인물로 자주 등장합니다.
  살인한 중을 붙잡아 억울한 죄수를 풀어주는 <홍판서 누명 벗겨 준 박문수> 이야기
  '셜록홈즈'를 무색케하는 <천리마 사건>
  얼굴이 박색이라 시집 못간 <노처녀 중매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효부나 열녀 등 행실이 훌륭한 사람을 찾아 표창한 이야기,
  간통이나 살인 누명을 쓴 억울한 사람의 결백을 입증하고 죄인을 찾아 처단한 이야기,
  가여운 처지의 사람을 혼인하게 해 준 이야기,
  횡포 부리는 나쁜 사람을 개심시키거나 벌을 준 이야기...등등등
  "암행어사 박문수"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 전해 내려 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박문수는 공부를 못해 요즘 말로 컨닝해서 과거에 합격 했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제가 "안성 칠장사"에서 몇번 언급 한적이 있어 생략합니다)
  자기보다 쎈 사람을 만나면 당황하거나, 죽을 뻔한 위기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살아 났다던가....하는 "실패형 암행어사 박문수"도 설화로 많이 전해 진답니다.
  일 못하는 관료들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가 서려있는 것이지요.


  ['은석사']        12:05~12:08

  "은석사 銀石寺"
  신라문무왕 시대에 "원효"에 의해 창건된 절이라는데 확실치는 않다고 하고
  "박문수어사 묘"를 지키는 일을 함께 해 왔다는 절이랍니다.


  [뒤;돌아 본 '은석사']

  "은석사" 앞으로 난 도로를 따라 내려 가면서 뒤돌아 본 광경입니다.
  "박문수어사 묘"와 "은석사"의 위치를 알수 있죠?


  [고개 갈림길]       12:11         ★ 길조심 ★

  "은석사"에서 도로를 따라 조금 가면 고개를 만나는데
  등산로는 이곳 고개에서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더군요.
  물론 이 도로를 따라 가도 다시 만나기는 합니다만 지도를 보니 무지 멀리 돌아 가야 하더군요.


  ['상봉산' 가는 길]           12:12

  "상봉산"으로 가는 등산로는 예상외로 넓고 분명했습니다.

 
  [임도]

  이 길은 임도로 차량 통행이 가능 할 정도이더군요.
  8분 정도 진행하면....


  [갈림길]            12:20         ★ 길조심 ★

  임도는 직진해 가는데 산으로 오르는 갈림길을 처음으로 만납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320.4m봉' 가는 길]

  "상봉산"으로 가기 전에 있는 이름없는 "320.4m봉"으로 올라 가는 길입니다.
  경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6분 정도 진행하면...


  ['320.4m봉']          12:26

  "320.4m봉"에 도착하는데 '병천'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트이는 곳이었습니다.


  [남쪽 조망]
 
  "한국기술교육대학교"가 보이는군요. '병천읍내'입니다.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10여분 내려 가면.....


  [묘지]         12:36
 
  경사가 완만해지며 묘지를 하나 지나고...

 
  [능선 내림길]
 
  다시 10여분 능선 내림길을 진행하면...


  [비포장 도로]           12:47

  조금전 "은석사"에서 연결되는 비포장도로를 다시 만납니다.
  이 도로 건너편에 있는 "상봉산"으로 갑니다.


  ['상봉산' 가는 길]       12:49

  비포장도로에서 "상봉산"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로 들어 가면...

 
  [오름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 13분 정도 이어 집니다.
  리기다 소나무가 유난히 많은 숲길을 진행하면...


  ['상봉산' 정상부]             1:02~1:18

  운동시설이 있는 "상봉산 上峰山 234.5m" 정상에 도착합니다.
  '천안토요산악회'의 안내판에는 "220m 높이"라고 알리고 있으나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234.5m"라고 표기되 있으니 참고 하시고...


  ['상봉정']       

  "상봉산" 정상에는 "상봉정"이라는 정자가 하나 있어 올라 가 조망하면...


  [남쪽 조망]

  남쪽 '병천'방향으로 "한국해양경찰학교" 교정이 보입니다.
  해양경찰학교는 바닷가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곳 '병천'에 있어 다소 의아했습니다.


  [서쪽 조망]

  서쪽방향으로는 여전히 "독립기념관"과 "흑성산"이 조망됩니다.

 
  [내림길] 

  완만한 내림길을 4분 정도 내려 가면...


  [삼거리]              1:22

  삼거리를 만나는데 "해양경찰학교"로 통하는 삼거리인듯....
  '병천읍내'로 바로 가려면 계속 능선을 따라 진행합니다.


   [삼거리]            1:24

  이어서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 [←학교]라는 팻말이 가리키는 능선으로 진행합니다.
  여기서 가리키는 [←학교]는 [병천초등학교]를 의미하는듯 했습니다.
  갈림길이 자주 나타 나는 것으로 보아 종착지가 가까워 졌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내림길]

  다시 완만한 내림길을 14분 정도 더 진행하면....


  ['병천초등학교']                 1:36

  "병천초등학교"를 만나며 
  [상봉산등산로] 들날머리 임을 알려 주는군요.


  [날머리]                  1:39

  골목을 따라 100여m 나가면 [상봉산 등산안내도]가 설치되 있는 
  '병천읍내'에 도착합니다.


  ['상봉산 등산안내도']

  [상봉산 등산 안내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상봉산"도 '병천 주민들이 애용하는
  좋은 건강산행코스로 보이는군요.


  ['병천사거리']                  1:45

  '병천'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다는 '병천사거리'에서 산행을 마치고


  ['아우내장터']                             1:47~2:25

  "유관순열사 만세운동"의 진원지 중에 한곳이었던 "병천 아우내 장터"로 가서 
  그녀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태극기는 아무나 들거나 입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아우내장터 순대국집'에서 쇠주 한병과 함께 점심을 먹고...
  얼큰하게 한잔 취해서 원래 예정에 있던 [유관순열사 기념관과 생가] 방문을 다음으로 미루고
  [400번 시내버스]를 타고 [천안역]으로 돌아 가 [1호선 전철]을 타고 귀가 했습니다.


  ['고도표']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GPS 측정으로 "9.2km"였으며 3시간 4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모처럼 이른 시간에 산행을 마치고 귀가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를 보여주면 ..
  
            수학자는 플러스 덧셈이라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합니다.
            목사는 십자가라고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 라고.
            간호사는 적십자라고 하고 
            약사는 녹십자라고 대답합니다.
            모두가 다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다른사람이 (틀린)것이 아니고 (다를) 뿐 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늘 ~ 이해의 대상입니다.

           - 요즘 세상을 바라보는 파란문의 시각입니다 -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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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과 북한강의 분수령』 "소구니산-유명산-대부산-편전산" 산행기 선어치-소구니산-유명산-대부산-옥천봉-편전산-수릉재봉-백현사거리 "길가는 자의 노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면 이름 없는 풀들은 바람에 지고 사랑을 원하는 자와 사랑을 잃을까 염려하는 자를 나는 보았네 잠들면서까지 살아갈 것을 걱정하는 자와 죽으면서도 어떤 것을 붙잡고 있는 자를 나는 보았네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고 집을 떠나 그 길 위에 서면 바람이 또 내게 가르쳐 주었네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다시는 태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자와 이제 막 태어나는 자 삶의 의미를 묻는 자와 모든 의미를 놓아 버린 자를 나는 보았네 - 류 시화 - ['양평군 옥천면'] 오늘 산행지는 "양평군 옥천면 玉泉面"의 중심부를 통과하기에 먼저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의 안내도를 참고하고 출발합니다. ['구글어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의 경계를 이루는 "선어치"에서 출발하여 "소구니산-유명산-대부산-옥천봉-편전산-수릉재봉"을 통과하여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에 있는 "백현사거리"까지 "옥천면"의 중심부 "9.7km"를 관통합니다. ['양평역 2번 출입구'] 8:35 2018년 6월 23일 (토) 약간 흐림 오늘도 지난주 "중미산-삼태봉-통방산" 산행 할때와 똑같이 "선어치"로 가기 위해 [양평역2번출구]로 나가 [32-9번버스]를 타기 위해 '양평버스터미널'로 가는게 아니라 [양평역]에서 가까운 [그린아파트 앞 버스정류장]으로 갑니다. 버스시간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 편의점에 들려 먹거리를 준비하고 ['그린아파트 앞' 버스정류장] [양평역]에서 [그린아파트앞 버스정류장]까지는 5분 정도 걸리더군요. [양평버스터미널]에서 9시10분에 출발하는 [32-9번 버스]는 4~5분만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승객이라곤 딱 두사람 뿐이었고 지난주와 같은 운전기사였습니다. 다음은 운전기사와 나눈 대화입니다. 파란문 : '선어치'에 좀 내려 주세요~ 기 사 : 우리는 그런 정류장은 모릅니다. 파란문 : 지난주와 똑같은 대답을 하시는군요. 지난주에 모르신다고해서 다른 승객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선어치'에 내려 주었쟌아요. 기억 안나세요? 기 사 : 안납니다. 파란문 : 지난주에도 오늘과 똑같은 대화를 했는데...기억 안나신다니... 그렇다치고... '양평'에서 '설악'으로 넘어 가는 제일 높은 고개이고, 지난주에 위치를 알았으니 알려 드릴께요. 기 사 : 거기는 '유명산등산로입구'라고 우리는 말합니다. 파란문 : 우리나라 공식 지도에도 '선어치'라고 표기하고 있고, 등산로입구라고 하면 '중미산'이나 '소구니산' 등산로입구라고 해야하며, '유명산'은 여기서 아주 먼곳에 있으니 '유명산등산로입구'라고 하는건 그렇게 얘기 할수도 있지만 그러면 '부산' 갈때 '목포'로 둘러 가라는 것과 비슷한 겁니다. 기 사 : 여튼 그런건 우리는 모르고 '선어치'는 모릅니다. 파란문 : 지난주에도 모른다고해서 '선어치'에 대해 오늘과 똑같이 옥신각신하며 제가 알려 드렸는데.. 그만합시다. 이분은 자신의 관점에서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같았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명이 일반승객이 알고 있는 지명과 다르다고하면 직업상 승객의 입장에서 관심을 보여야 하는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승객의 무지로 돌리는건 ... 솔찍이 그분 불쌍해 보였습니다. '양평'에서 '청평'을 오가는 [32-9번] 기사였으며 2018년 6월23일 9시10분 양평 출발 버스였습니다. ['선어치'] 9:35 "선어치 仙於峙 해발 531.8m"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신북리'와 '가평군 설악면 가일리'를 넘나드는 고개로서 지난주에 이어 두번째 방문입니다. 지명의 유래에 대해선 지난 [중미산-삼태봉-통방산] 산행기에서 언급했으므로 생략하고... ['소구니산 들머리'] "소구니산" 등산로 입구는 '양평' 방향 [양평환영안내판]이 있는 곳에 있더군요. ['소구니산' 들머리] 9:42 그런데 들머리에는 출입금지 안내판을 설치해 놨습니다. 출입금지를 하는 이유는 "산나물무단채취-산불-쓰레기무단투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런 사유로 출입금지를 시킨다면 우리나라 전역이 출입금지 되어야하고 국민이 갈곳은 없겠군요. 이런 사항은 계도를 할 사항이지 출입금지를 할 사항은 아닌듯... 대표적 편의행정이라 여겨집니다. [지형도] 출발에 앞서 [선어치]에서 [소구니산]까지 지형도를 알아 보고... 지난주 [중미산]오르는 등산로보다는 완만한 경사의 오름길로 보입니다. [선어치]에서 [소구니산]까지의 거리는 [1.7km] [오름길] [출입통제안내판] 뒤로 들어 가면 먼저 절개지 급경사가 잠시 이어지고 계속해서 넓고 선명한 등산로가 [출입금지] 지역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게 활짝 열립니다. 18분 정도 오르면... [무명봉] 10:00 고도계에 대략 700m로 찍히는 이름을 알수 없는 봉우리를 통과하고 [오름길] 다시 14분여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이정표] 10:14 이정표가 있는 쉼터에 도착합니다. [←유명산 2.2km, ←소구니산 1.0km] [선어치 700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오름길] 계속해서 17분 가량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 가면... ['한강기맥' 갈림길봉] 10:31 '소구니산'과 '농다치'를 연결하는 "한강기맥 갈림길봉"에 도착합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대부산 갈림길"까지는 [한강기맥]과 함께 합니다. ['소구니산' 조망] "한강기맥 갈림길봉"에선 "소구니산" 정상이 나뭇닢 사이로 조망되는군요. [농다치]에서 연결되는 [한강기맥] 등산로는 조금 아래 옆구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오름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8분여 오르면... ['소구니산' 정상] 10:40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에 오르는데 이곳이 실제 "소구니산 801.3m" 정상입니다. 그런데 정상에는 정상석도 없고 안내판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소구니산 정상석' 조망] "소구니산 801.3m" 정상에서 실제 정상은 아니지만 정상석이 있는 정상을 조망합니다. 이곳 정상은 조망이 없고, 공간이 좁아 정상석이나 휴식시설을 설치 할수가 없어서 공간이 넓고 조망이 있는 저곳에 정상석을 설치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소구니산 정상석'] 10:42~10:53 ★ 길조심 ★ "소구니산 801.3m" 정상석이 있는 삼거리입니다. 단체 산객들이 다니는 곳이니 산객들에게 제법 알려진 산으로 주로 '유명산'과 연계해 산행을 하죠 지명의 유래는 알수 없었고, [한강기맥] 마루금이 지나는 곳으로 길조심을 해야하는 곳입니다. 직진하기 쉽습니다만, 좌측 급경사 내리막으로 가야 [한강기맥-유명산]으로 갈수 있습니다. "소구니산"의 지명의 유래는 알수 없는데... "소구니"라는 말은 "작은 산과 작은 언덕배기"를 의미한다는 설이 있더군요. ['유명산' 조망] [소구니산]에서 [유명산]이 조망되는데 느낌으로는 [소구니산]과 [유명산]이 완전 분리되어 있는듯 보여 가려면 힘이 많이 들게 보이지만 그렇게 걱정 할 정도는 아니고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비교적 쉽게 [유명산]으로 갈수 있었습니다. [지형도] 그래서 먼저 지형도를 보면 [소구니산]에서 [유명산] 사이에는 [한강기맥 머루금]이 지나는 능선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걸리는 시간은 40여분 [급경사 내리막] [소구니산] 정상에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갈때엔 [유명산]을 빡쎄게 올라야 겠구나~라고 생각되지만 그렇게 오래지 않아 능선이 이어지고 [오름길] 예상보다 가파르지 않은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집니다. [임도 삼거리] 11:27 [소구니산] 정상에서 약35분 정도 진행하면 이정표가 있는 임도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유명산 정상]은 좌측 340m 지점에 있음으로 갔다가 다시 되돌아 와서 우측 [대부산]으로 가야 하는데 [한강기맥]도 같은 루트입니다. ['유명산 정상' 조망] 삼거리에선 [유명산 정상]이 조망되는데 이정표에 340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산객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상 가는 길] 자동차도 다니는 임도를 5분 정도 진행하면... ['유명산 정상'] 11:32~11:37 "유명산 有明山 862m" 이 산의 본명은 "마유산 馬遊山"이라죠. 우리나라 고지도에는 대부분 "마유산 馬遊山"이라고 표기되 있는데, 옛날엔 이 산에서 국가에서 이용할 말을 길렀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이 산 정상부 주능선에는 고냉지채소밭과 활공장이 엄청 넓게 있는데 옛날엔 말목장이었다는 것을 짐작할수 있습죠. 그래서인지 현재 '양평군'의 주요 도로 이름도 "마유로 馬遊路"이더군요. [유명산]은 1973년 국토자오선 종주를 하던 여자 산객의 이름 "진유명씨"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데 우리나라 국토의 지명을 어느 여자 산객의 이름을 따서 공식화 했다는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우째 이런일이~~ ['유명산자연휴양림' 등산로] 정상석 정면으로는 [유명산자연휴양림]과 [유명산계곡]으로 연결되는 등산로 들날머리가 있는데 초보산객들이 다녀가기 좋은 코스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인지 등산객이 아닌 일반 나들이객들까지 많이 보였습니다. [조망 1] 조망이 좋은 곳이니 조망을 합니다. 먼저 동쪽으로는 바로 앞에 "어비산 漁飛山 827m"이 '유명산'과 함께 '유명산계곡'을 만들고 있고 그 뒤로 "용문산 가섭봉 龍門山 迦葉峰 1157m"이 가까이 보이며 군부대가 점령하고 있어 주변 어디에서나 '용문산 정상'임을 알수 있고, 茶로 유명한 "초의선사"가 1831년(순조31년)에 올랐답니다. 몇주전에 올랐던 "봉미산 鳳尾山 856m"이 [한강기맥] 마루금이 지나는 "문래봉 (폭산) 1002.5m"에서 분기하여 [장락단맥]을 이루며 '봉황의 꼬리'처럼 솟아 있습니다. "봉미산" 정상에서 바라본 "유명산" 사진을 보여 드리면... ['봉미산' 정상에서 조망하는 '유명산' 방향 - 3주전 촬영 사진입니다.] [조망 2] 동남쪽으로는 [유명산]에서 [용문산]으로 이어지는 [한강기맥] 마루금이 선명하고 그 뒤로 "용문산 주능선"이 전체적으로 조망됩니다. "함왕봉"은 "함씨"의 시조가 저 봉우리 아래에 있는 "사나사계곡"에서 탄생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조망 3] 남쪽으로는 오늘 올라야 할 "대부산 743.8m"이 조망되며 그 뒤로는 '남한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남한강' 좌측에는 '양평읍내'가 보이고 [조망 4] 11:37 남서쪽으로는 "유명산 패러글라이더 활공장"이 보이는데, [한강기맥] 마루금이 지나며 잠시후 통과하여 [대부산]으로 가야할 곳입니다. 조망을 마치고 3분여 내려 가면... ['소구니산' 갈림길] 11:40 조금전 [소구니산]에서 올라 왔던 삼거리를 만나 이번엔 직진합니다. 여기서 지형도를 보면... [지형도] [유명산]에서 [대부산]까지 지형도 입니다. [한강기맥]은 [대부산갈림길]에서 우측 [765.3m봉] 방향으로 갑니다. [삼거리] [소구니산 갈림길]에서 잠시 직진하면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계속 직진하고 [활공장 1] 11:43 이어서 "패러글라이더 활공장 1"을 만납니다. [유명산]에는 세개의 활공장이 있습니다. [지나온 길 조망] 이곳에서 처음으로 오늘 산행 출발지였던 "선어치"와 지나온 "소구니산"이 북쪽으로 조망되며 지난주에 올랐던 "중미산"까지 조망됩니다. [패러글라이더] 서쪽으로는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활공맨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습니다. 오른쪽 끝 패러글라이더가 있는 뾰쪽한 봉우리가 [한강기맥] 마루금이 지나는 "청계산"입니다. "청계산"이라는 이름의 산은 전국에 산재해 있지만 앞에 보이는 산은 "양평의 청계산"이지요. 그러니까 이곳 [한강기맥]은 "청계산'을 지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로 갑니다. ['활공장 2'로 가는 길] [활공장 1]에서 비포장도로 수준의 임도를 잠시 진행하면... [활공장 2] 11:47 [활공장 2]에 도착합니다. 조망이 좋아 조망을 하면... ['유명산 정상' 조망] 먼저 지나온 "유명산 정상"을 뒤돌아 보고... '유명산계곡' 뒤로는 [봉미산]이 새로운 각도로 조망되는군요. ['어비산' '배너미고개' 조망] "어비산 漁飛山""배너미고개" 아주 먼 옛날...그러니까 천지개벽 당시엔 '남한강'과 '북한강'이 앞에 보이는 "배너미고개"로 한강물이 넘나들었답니다. 그래서 배도 다니고 물고기들도 당연 넘나 들었겠지요. 특히 '남한강'이나 '북한강'에서 홍수가 나면 물고기들이 홍수를 피해 "배너미고개"를 넘어 앞에 보이는 산을 날아 넘었다고 "어비산 漁飛山"이라는 산이름이 탄생되고 ... 현재의 지형으로도 어느정도 漁飛가 가능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나요? ㅎ 수십억년의 세월을 여기서 어떻게 모두 증명하랴~~ '파란문'의 믿거나 말거나 였습니다. ㅎㅎ ['대부산'-'한강기맥' 갈림길 조망] [활공장 2] 아래엔 [활공장 3]이 있는데 활공맨들은 대부분 저기서 이륙을 하는군요. "백운봉 白雲峰 941.2m""한국의 마테호른"이라고 혹자들은 얘기하죠. '알프스산맥'의 대표산 중에 하나인 "마테호른 4,478m"과 닮았다고...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자면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영화 첫머리에 영화사 상징 뒷산이 '마테호른'. 오리지날 '마테호른'과 비교하기엔 규모가 좀 그렇지요? 비교 할걸 비교해야지...ㅎㅎ 특히 "백운봉"은 "다산 정약용선생"이 오르고 쓴 산행기가 있습니다. "정약용선생"의 산행기가 궁금하신 분은 제가 쓴 "백운봉산행기"를 참고하세요. ['대부산' 조망] "유명산'의 본명은 "마유산 馬遊山"이라고 조금전 [유명산 정상]에서 언급했는데 활공장을 보면 이곳과 고냉지채소밭, 그리고 '배너미고개' 부근 평지 고냉지채소밭이 옛날엔 '말목장'이었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말이 이리저리 뛰며 돌아 다니며 놀았다고 "馬遊山" ~~ [패러글라이딩] 패러글라이더가 이륙하여 활공하는 장면을 구경하며 잠시 쉬었다 갑니다. 제가 활공장이 있는 산을 갈때마다 언급했던 이야기 다시 한번더 하자면... 예전에 어느 페러글라이더 메니아가 저에게도 페러글라이딩을 추천하며 "파란문님"이 하면 모든 비용을 무료로 해 주겠다고 한적이 몇번 있었는데... 저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에구~ 땅바닥도 제대로 못 걷는 놈이 뭔 하늘을 날겠쑤!~" "우리나라 산천을 걸어서 다 돌아 보고 고향 앞으로 갔으면 좋겠는데~~" "땅 바닥 다 걷고 나면 자동으로 하늘로 올라 갈테니...난 급하지 않소~!" 서로 웃고 말았답니다. ㅎㅎ ['대부산' 갈림길 조망] 11:55 이제 "유명산"을 벗어나 "대부산"으로 가야합니다. [대부산갈림길]이라고 표기한 곳에서 [한강기맥]과 이별하고 "대부산"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수 있는 좋은 조망처입니다. 갈림길까지는 가까운듯 보이지만 10여분 걸리는 내림길을 내려 가면... [삼거리] 12:05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한강기맥]과 [대부산 갈림길]은 직진합니다. 비포장도로에는 수시로 패러글라이더를 실은 트럭이 먼지를 풀석이며 오르 내리고 있었습니다. 활공맨들은 하늘을 날기 위해 이 도로의 먼지를 뒤집어 쓰며 트럭을 타고 오르고 있었는데...ㅠ [숲길]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숲길이 잠시 이어지다가 [임도] 12:09 다시 비포장도로를 만나는데, 이 도로는 [배너미고개]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이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직진하면.... ['한강기맥'-'대부산' 갈림길] 12:13 "대부산-한강기맥 갈림길"을 만나는데 이정표나 안내판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기 쉽더군요. 특히 우측 "대부산 입구"엔 사람들의 통행흔적까지 거의 없어 매우 조심해야겠더군요. 먼저 좌측 추억의 [한강기맥] 들머리를 확인하면... ['한강기맥' 마루금길] [한강기맥] 마루금은 좌측 산으로 올라 갑니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가도 다시 만나 [배너미고개]로 갈수 있고... 조금 더 가면, 제법 유명했던 영화 "관상"이라는 영화 촬영지가 있지요. 그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귓전을 울립니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를 보지 못했소. 파도만 봤을 뿐 파도를 만드는 바람을 못 본거요. 파도를 만드는건 바람이었건만....." 영화 "관상"의 마지막 피날래 자막이 올라 갈때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분)"의 혼잣말이죠. 예전에 촬영한 '관상 촬영지' 사진을 보여 드리면 [영화 '관상' 촬영지 - 주인공 (송광호분)이 살던 집] ['대부산' 들머리] "대부산 들머리"인데 사람들의 통행흔적은 거의 없고, [양평군산악연맹]의 표지기 하나가 매달려있을 뿐이더군요. 미지의 세계를 향해 안으로 30m쯤 들어 가면... [쉼터] 12:15~12:35 점심 갈림길에서 들머리를 들어 서면 이렇게 공터가 있고 걸터 앉을수 있는 조그만 바위 두개가 있습니다. 여기서 휴식을 취하며 빵으로 점심을 떼우고... [오름길] 제법 가파르지만 거리가 짧은 오름길을 5분 정도 오르면... ['722.3m봉'에서 조망] 12:40 "722.3m봉"에 오르는데 약간의 조망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지나온 [유명산 정상]과 [활공장]이 조금 보였고... [조망 2] 동쪽 건너편으로는 [한강기맥]이 지나가는 "765.2m봉"이 보이며 (영화 '관상' 촬영지가 있는...) 그 뒤로 "용문산 가섭봉"까지 조망되었습니다. [오름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10여분 오르면... ['대부산' 정상] 12:51 "대부산 743.8m"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지명의 유래라던가 한자 이름도 알수 없었습니다. [용문산]과 [유명산]의 위세에 가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산이죠. 그래서 이렇게 일부러 찾아 왔습니다. "대부산 정상"은 삼거리로서 우측 능선으로는 '옥천면 신복리'로 이어지고 좌측 능선은 "촛대봉" "옥천봉-편전산-수릉재봉-건지산"으로 이어지더군요. ['편전산' 가는 길] "편전산"으로 가는 길에는 안내 팻말이 있더군요. [능선길] [대부산 정상]에서 [편전산]으로 가는 하산길입니다. 사람들의 통행흔적은 거의 없었고 길에는 거미줄이 널부러져 있더군요. [대부산]에서 평지성 내림길을 거미줄을 걷어내며 10여분 진행하면...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 1:02 [편전산] 방향 안내 팻말이 있는 봉우리를 만나는데 이 봉우리를 지나면...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이 8분 정도 이어지다가... ['촛대봉' 갈림길] 1:10 ★ 길조심 ★ 알바하기 쉬운 삼거리를 만나는데 길조심을 해야 하는 곳이더군요. 대략 이곳이 "촛대봉 갈림길"로 추정됩니다. 이곳에 대한 정보나 GPS트랙은 없기에 오로지 [국토지리원 1/25,000 지도]에 의지해 진행하고 있는데 이제 앞으로 가실 분들은 제가 만든 [GPS트랙]을 다운 받아 가시면 큰 걱정 없이 갈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촛대봉 갈림길' 우측 이정표] [편전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알리는 팻말이 길안내를 하며 확신을 줍니다. [내림길] 길의 윤곽은 있지만 통행흔적은 거의 없는 내림길을 내려 가는데 안내팻말이 몇개 보이더군요. [촛대봉 갈림길]에서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17분 정도 내려 가면... [바위 쉼터] 1:27~1:39 이곳은 완전한 육산이어서 바위 조차 구경하기 어려운데 어라~ 능선 가운데에 큰 바위가 있는 곳을 만나는데 바위가 이렇게 반가울줄이야~~ ㅎ 그래서 10여분 쉬었다 갑니다. [지형도] 바위쉼터에서 날머리인 [백현사거리]까지 지형도를 확인하고 출발합니다. ['옥천봉' 조망] 바위쉼터에서 15분 정도 내려 가면 "옥천봉"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옥천봉' 오름길] "옥천봉" 오르는 오름길은 바윗길이었는데 아주 잠시만 오르면... ['옥천봉' 정상] 2:01 "옥천봉 玉泉峰"에 도착하는데 높이는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아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지고 다니는 GPS 고도표에는 440m 정도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향토지명에 관심있는 분이 이름을 붙인듯하며 지명의 유래는 알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이 '옥천면'이니 '옥천 玉泉'과 관련이 있을듯 합니다. ['편전산' 가는 길] 다양한 모양의 소나무들로 제법 구경거리가 있는 내림길을 10여분 내려가 조그만 봉우리를 잠시 오르면... ['편전산' 정상] 2:20 산봉우리인지 아닌지 알수 없을 정도로 평평한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여기가 "편전산 片前山 377.7m"이라고 알리는 팻말과 그리고 삼각점과 삼각점안내판이 정상임을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지도에도 나오는 산으로는 너무 초라한 산봉우리였는데... ['편전산' 정상 앞 묘지] 정상 앞에는 "오추환씨"의 묘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내림길] [편전산]에서부턴 묘지길이 개통되 있어 양호한 길이 이어지는데 20여분 내려 가면... ['수릉재봉' 조망] 조그만 야산 수준의 "수릉재봉"이 슬며시 다가오고 ['수릉재봉' 정상] 2:43 "수릉재봉"에 도착합니다. 이 봉우리의 높이도 지도에 나오지 않아 잘 모르겠는데, GPS 고도표에는 220m로 나타났습니다. [내림길] [수릉재봉]에서 15분 정도 완만한 능선길을 내려 가면... ['양평숲속마을'로 가는 길] [양평숲속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접속되는데 토지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바로 [주택] 3:00 주택이 길을 가로 막는데... 등산로는 주택개발로 막힌듯 길이 보이지 않아 담장 좌측으로 가서 [주택 우횟길] 길도 없는 담장 옆으로 내려 가서 도로로 나갔습니다. [뒤돌아 본 날머리] 3:02 도로로 나가 뒤돌아 본 광경입니다. 뻘간선으로 내려 왔는데... 위의 주택에서 초록색으로 표기한 우측으로 내려 오는게 더 좋았을듯... ['양평숲속마을'] 주택개발 중인 "양평숲속마을"이라는 전원마을이더군요. ['옥천면 용천리'] [백현사거리]로 마을을 잠시 빠져 나갑니다. ['양평숲속마을' 입구] 3:06 오전에 [양평역]에서 [선어치]로 [32-9번 버스] 타고 갈때 이용했던 [37번도로]로 나와 뒤돌아본 "양평숲속마을" 입구이며 ['수릉재봉' 조망] "수릉재봉"에서 내려온 능선과 "양평숲속마을"을 뒤돌아 보고 ['백현사거리'] 3:07 바로 앞에는 "백현사거리"가 나타납니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양평역]이나 [아신역]으로 갈수 있는데,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겠죠?ㅎ 저는 이 근처 '사나사계곡'에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친구에게 연락해서 픽업을 부탁하고 근처 해장국집에서 '양평해장국'에 소주 한잔하고 [아신역]까지 태워 주어 편하게 귀가할수 있었습니다. [구글어스] [고도표] '선어치'에서 '소구니산' '유명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까지는 유명 산행코스여서 걷기 좋았습니다만 '대부산'에서 '옥천봉' '편전산' '수릉재봉'으로 하산하는 코스는 사람들의 통행 흔적이 거의 없는 처녀지였는데, 사실 조망도 없고 특이한 볼거리도 없는 육산이어서 산행코스로는 인기가 없나 봅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9.7km"였으나 시간은 5시간2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거리는 예상외로 짧았습니다만 좀 빡센길이었고 개척산행이어서 체감적으로는 힘든 산행이었습니다. 가 보지 않은 길을 찾아 가는 '파란문'이나 관심 가질뿐 산행코스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ㅎㅎ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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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의 산을 찾아서"   
  
   삼봉산-시궁산-갈미봉-묘봉 산행기  
  
     시미리버스정류장-쌍괴저수지-독막재-삼봉산-384.2m봉-시궁산-
     미리내고개갈림길-새미지고개-갈미봉-묘봉-조병화문학관-난실리버스정류장

              영원으로 가는 길 
                                   조병화

                      길은 항상 내 앞을 달리고
                      내 몸은 무겁구나
                      가도 가도 인간의 세계
                      자욱한 아지랑이
                      아, 길은 까마득히 앞을 달리고
                      내 걸음은 지지하구나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달이 지고 해가 뜨고

                             


  [구글지형도]

  [구글어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시미리'에 있는 "시미1리(남진말) 버스정거장"에서 출발하여
  "삼봉산-시궁산-갈미봉-묘봉"을 오르고 "조병화문학관"이 있는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난실리'의
  "난실리 버스정거장"까지 "13.1km"를 갑니다.


  ['시미1리 (남진말) 버스정류장']                        10:53

  2017년 6월 3일 (토) 맑음
  "시미1리(남진말) 버스정거장"에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으로 가는 대중교통은 전국 어느 곳에서나 먼저 "용인공용버스터미널"로 가기만 하면 간단합니다.
  [용인공용버스터미널]에서 [22-1번] [24번]을 타면 20여분만에 도착하며, 버스는 자주 있습니다.
  [6번] [91번] [92번]도 다니지만 하루에 몇번 없으니 [22-1번]이나 [24번]을 타는게 좋겠습니다.
  길을 건너가면...


  ['시미1리' 주 진출입로]                          
  
  '시미1리'의 주 진출입로가 도랑을 끼고 뻗어 있으며
  "삼봉산"이 조망되기 시작하는데 "삼봉산"을 바라보며 진행하면 되겠습니다.


  [첫번째 삼거리]                          10:55

  버스정거장에서 100m 정도 진행하면 첫번째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길로 진행하고


  ['삼봉산' '시궁산' 조망]

  오늘 오를 "삼봉산"과 "시궁산"이 전체적으로 조망됩니다.
  저 산들과 조우하며 하루를 보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래는군요.


  [두번째 삼거리 - '시미1리 마을회관']                              10:57

  두번째 삼거리에는 "시미1리(남진말) 마을회관"이 있습니다.
  여기선 좌측으로 진행하고


  [세번째 삼거리]                                11:00

  마을회관에서 마을길을 잠시 진행하면 세번째 삼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도 좌측길로 갑니다.
  5분정도 진행하면....


  ['쌍괴저수지 둑' 조망]

  "삼봉산"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며 "쌍괴저수지 둑"이 보이기 시작하고


  ['쌍괴저수지']                    11:07

  요즘 가뭄이 얼마나 심한지 단적으로 알려주는 "쌍괴저수지"입니다.
  '쌍괴저수지'에서 150m 정도 더 진행하면...


  [네번째 삼거리]                        11:10

  네번째 삼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는 우측으로 올라 갑니다
  다시 150m정도 진행하면....


  [다섯번째 삼거리-삼봉산 들머리]                           11:13

  다서번째 삼거리를 만납니다. 
  이곳이 "삼봉산 등산로 들날머리"가 되겠습니다.

 
  [오름길]

  등산로는 비교적 선명하고 통행흔적이 많습니다.
  오름길이 시작되며 13분여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독막재']                           11:26~11:34

  "독막재 獨幕峴 해발 200m"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시미리]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화산리]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만나는 곳이기도 하군요.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름길]              

  오늘 산행에서 가장 가파른 오름길인 [삼봉산] 오르는 된비알입니다.
  가파르지만 거리가 짧아 23분 정도만 헥헥거리면....   


  ['삼봉산 정상' 삼거리]                              11:57

  [삼봉산 정상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오늘 산행에서 세명의 산객을 만났는데 사진에 있는 분입니다.
  오산에 거주하며 가끔 이곳으로 산행을 한다는군요.
  막걸리에 김밥까지 베풀어 주어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잘 다녀 가셨는지....


  ['삼봉산 정상' 헬기장]                    11:58~12:43

  "삼봉산 三峰山  414.1m"
  세개의 봉우리가 연이어 있다고 삼봉산이라 한다는데 이곳이 "제1봉"이랍니다.
  오늘 산행코스에서 유일하게 조망이 트이는 곳이라 조망을 하고 갑니다.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조망]

  먼저 서쪽방향을 내려다 보면
  출발지였던 [시미1리(남진말) 버스정거장]이 조망되고


  ['난실리' '이동저수지' 조망]

  남서쪽으로는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조병화문학관"이 있는 "난실리"가 조망되며
  "이동저수지"가 가뭄에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이동저수지"는 "어비저수지" "송전저수지"등으로도 불리워 지고 있지요.
  그 뒤로 추억의 "쌍령지맥 천덕산"이 '평택'을 향해 산줄기를 잇고 있습니다.


  ['한남정맥 문수봉' 조망]

  북동쪽으로는 조망이 시원치 않은데 "한남정맥 문수봉"이 조금 보이고
  "한남정맥"에서 분기하는 "쌍령지맥"도 보입니다.


  ['시궁산' '갈미봉' 조망]

  남쪽으로는 오늘 진행할 "시궁산"과 "갈미봉"이 시원하게 조망되는군요.


  ['화산 칸트리클럽']

  "삼봉산"과 "시궁산"의 품안에 자리 잡고 있는 "화산 칸트리클럽"이 골퍼들을 유혹하고

 
  [내림길]

  예전엔 없던 계단이 세로 설치되 있어 내려가기 쉬웠습니다.
  '삼봉산 헬기장'에서 9분여 내려 가면....


  [골프장 안부]                         12:52

  이정표가 있는 안부를 만나는데
  골프장으로 연결되는 안부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오름길]
 
  골프장 안부에서 다시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10여분 오르면....


  ['383.2m봉']                           1:03
 
  "383.2m봉"에 오르는데 예전엔 이곳이 "남봉"이라고 표시되 있었습니다.
  "묵리 장촌"으로 통하는 등산로 갈림길이기도 하고

 
  [오름길]

  "383.2m봉"에서 다시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30여분 오르면...


  ['시궁산 정상' 헬기장]                         1:33

  "시궁산 정상" 아래에 있는 헬기장에 도착 합니다.
  이곳에서 저녁나절에  바라보는 [이동저수지(어비저수지.송전저수지)]가 "용인8경" 중에 제1경이라고 하는데
  "어비낙조 漁肥落照"라고 한답니다.
  제가 2008년 12월 21일에 이곳에 와 촬영한 사진과 그 때 쓴 글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2008년 12월 21일에 이곳에서 이동저수지를 촬영한 사진]

     漁肥落照
     저 앞의 저수지가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송전리, 어비리에 있는 저수지이라
     부르는 이름이 "송전저수지", "이동저수지", "어비저수지"로 제각각이랍니다
     지도에도 같은 저수지를 제각각 틀리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용인시 공식 홈페이지에 용인팔경으로 漁肥落照를 자랑하고 있더군요
     특히 時宮山정상에 올라 바라 보는 어비저수지의 落照를 최고로 꼽더군요
     용인시 공식 홈페이지가 자랑하는 漁肥落照를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송전저수지는 원래 어비리란 지형으로 고기의 날개 지느러미와 같이 생겼다하여 
     어비촌이라 불렸다. 어비촌 가운데로 묵리, 서리, 천리에서 흐르는 물이 풍부하여 
     72년 수역에 제방을 쌓아 저수지가 생겼고 어비리가 물에 잠겨 
     글자 그대로 고기가 살찌는 마을(漁肥里)저수지가 생겼다. 
     옛부터 말이 씨가 된다는 이야기가 실감난다. 
     45번국도를 따라 안성쪽으로 가다보면 송전리를 지나면서 넓디 넓은 저수지를 만난다. 
     송전에서 묘봉리로 들어서는 언덕길에서 광활한 수면위에 태양이 
     저수지를 물들이고 사라지는 모습이 어비낙조라하여 용인팔경중 하나다. 

            산에 지친 살찐고기 
            바람에 나부끼는 은비늘 
            태양이 희롱하니 금비늘이네 
            산마루 바위 모두에 금비뿌려 
            황금물결 황금산하 
            용인의 자연을 쉬지않고 색칠한다 

     송전에서 보는 낙조도 아름답지만 시궁산을 등반하여 
     산 정상에서 보는 어비낙조는 그야말로 용인팔경 어비낙조의 진면목이다. 
     오후에 땀을 쪽빼고 정상에 올라 멀리 내려다 보이는 황금 호수위로 
     하루를 마감하려는 붉은 태양의 마지막 발광색의 조화는 
     우리 마음의 감동을 주고도 남을 만하다. 
     특히 정상 갈대 숲사이로 밀려드는 낙조의 빛은 용인팔경의 진수 바로 그것이다


  ['시궁산 정상']                          1:35~1:55

     "시궁산 時宮山 514m"
     시궁산(時宮山)은 513m 높이로서 용인시 남쪽에서 가장 높은 산이랍니다.
     정상석도 바뀌었군요.
     참고로 2008년에는 다음 사진에 보는 정상석이 있었습니다.
                      
     "時宮"에 대해 조금 알아 보고 가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가 업무를 보는 곳을 '백옥루'라고 한다는것은
     '송강 정철선생'이 읊은 "관동별곡"에 나옵니다. 총석정을 노래할때 읊지요
     옥황상제가 사는 宮에는 여러 형태의 宮이 많이 있다는데
     仙女들이 목욕을 하는 宮을 "時宮"이라고 한답니다
     이 산 정상에는 옛날에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 연못에 仙女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였답니다.
     "仙女들이 목욕을 하는 宮"의 역활을 하였다고
     그래서 이 산의 이름이 時宮山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또한 神仙들도 자주 내려 와서 놀았다고 "時宮山"을 "神仙峰"이라고도 한답니다.
     神仙들도 仙女들이 여기로 목욕하러 가면  살금살금 따라 내려가 몰래 구경했나보죠? ㅎㅎ
     그렇다면 神仙이나 人間이나 벗은거 보는 건 모두 좋아 하는 모양입니다. ㅎㅎ

 
  [능선길]

  "시궁산" 정상을 내려가 능선길을 20여분 진행하면....


  ['묘봉리' 갈림길]                            2:15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갈 예정인 "묘봉"이 머리 속에 박혀 있는데
  이정표에 "묘봉리"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묘봉"으로 가는 등산로와 "묘봉리"로 가는 길은 완전히 다름으로 구별해야 합니다.
  여기선 "애덕고개" 방향으로 가야만 합니다.
  좌측길로 100m 정도 가면....


  [헬기장]                               2:17

  헬기장을 만나는데 "갈미봉"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갈미봉" 방향으로 가면...


  [계단 내림길]

  제법 가파른 계단 내림길이 5분 정도 이어지고


  ['미리내고개(애덕고개)' 갈림길]                              2:22

  계단을 내려 서면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를 만납니다.
  [애덕고개]와 [미리내고개]는 같은 고개인데 처음 가시는 분들은 다른 고개로 생각 할수 있으니 유의.
  이정표가 가리키는 [애덕고개] 방향은 계곡으로 내려 가다가 임도를 만나 [애덕고개-미리내고개]로 가고
  이정표의 직진방향인 [미리내고개] 방향은 앞에 보이는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능선을 따라
  [애덕고개-미리내고개]로 가는 길이니 어느 길로 가나 [애덕고개-미리내고개]로 갈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우측 [묘봉리] 방향을 알리고 있는데 [묘봉리]로 가면 [묘봉]을 갈수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앞에서도 언급한바 있지요?
  이곳이 "용인시"와 "안성시"의 행정구역이 만나는 곳인데 좌측이 "안성시"이고 우측은 "용인시"입니다.
  [갈미봉]-[묘봉]은 이정표가 가리키는 [미리내고개] 방향으로 직진해야 합니다.


  [奇岩]

  지금부터 산길은 숲으로 포위되어 외부를 조망할수 없습니다.
  이 주변은 모두 肉山이어서 바위 구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법 독특한 바위가 있어 눈길을 주고

 
  [내림길]

  22분 정도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 갑니다.
  두번이나 미끄러져 넘어 졌으니....


  ['새미지고개']                                2:45

  내림길을 내려 가면 "새미지고개"라고 하는 안부를 지나고



  ['갈미봉' 오름길]

  다시 10여분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갈미봉' 정상]                          2:56~3:06

  "갈미봉 葛味峰 332.2m" 정상에 도착합니다.
  이 근처에 칡이 많이 서식하는듯....
  [묘봉, 기존마을]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쌍령산'과 '미리내성지' 조망]

  좌측 바로 아래가 유명한 "미리내 성지"인데 숲으로 조망이 트이지 않는군요.
  건너편 "쌍령지맥"의 대표산인 "쌍령산"이 쬐끔 보일 뿐...
  여기서 반대 방향에서 구글어스를 편집하여 보여 드리면

  이해하기 쉽죠?
  특히 "갈미봉"에서 "묘봉"으로 가는 길에 있는 [삼거리]를 기억하고 가면 알바를 면할수 있겠습니다.


  ['다누리골' 갈림길]                      3:10

  "갈미봉"에서  내림길을 4분여 내려 가면
  이정표가 있는 "다누리골 갈림길"을 지나고...


  ['248.8m봉' 조망]

  "248.8m봉"을 바라보며 13분 정도 능선길을 진행하면...


  ['248.8m봉' 정상]                       3:23

  "248.8m봉"에 오르게 되는데
  넓고 통행흔적이 많은 선명한 우측길로 진행합니다.


  [능선길]

  능선길을 다시 14분 정도 진행하면....


  [삼거리]                  3:37             ★ 길조심 ★

  중요한 삼거리를 만납니다.
  직진하는 길이 너무도 선명해서 직진하기 쉽습니다만, "묘봉"을 가려면 우측길로 가야 합니다.
  직진하면 '안성시 노곡리'로 내려 가더군요.
  그러니가 이곳에서 '용인시'와 '안성시'의 市界가 우측으로 꺽어진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묘봉능선길']

  "묘봉"으로 가는 길도 제법 넓고 선명합니다.
  4분 정도 진행하면...


  [묘지]                            3:41
 
  해묵은 묘지를 하나 만나고...


  [고개]                              3:43
 
  이어서 고개를 하나 지나 갑니다.
  이 고개는 좌측에는 '안성시 노곡리'가 있고 우측에는 '용인시 묘봉리'가 있더군요.

 
  ['묘봉' 오름길]
 
  고개에서 8분 정도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묘봉']                          3:55
 
  삼각점이 있는 "묘봉 卯峰 228m"에 도착합니다.
  '토끼'를 닮은 산인가 봅니다.
  그런데 '네이버지도'에는 이곳이 "묘봉 정상"이라고 표기하고 있으나
  '국토지리원 1/25,000 지도'에는 이곳이 아니고 다음 봉우리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8분 정도 진행하면..


  ['묘봉']                         4:03

  '국토지리원 1/25,000지도'에 "묘봉" 정상이라고 표기한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안테나 하나가 부러져 누워 있을 뿐 어떠한 표기도 없어 이곳이 "묘봉"인지 아닌지...


  [삼거리]                           4:10

  잠시 진행하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선 좌측으로 가야 합니다.

 
  [능선길]

  능선길을 8분 정도 더 진행하면


  [삼거리]                        4:18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도 좌측길로 가고

 
  [능선길]

  다시 17분 정도 능선길을 진행하면....


  [삼거리]                     4:35

  중요한 삼거리를 만나는데, "장자봉"을 경유하여 "난실리"로 가려면 우측길로 가야 했더군요.
  저는 "장자봉"을 경유하여 "난실리"로 가려고 했으나, 우측길은 통행 흔적도 별로 없어서
  통행 흔적이 많고 선명한 좌측길로 진행했습니다.
  큰 차이는 없으나 후답자들은 우측길로 가시길....

 
  [능선 내림길]

  16분 정도 완만한 내림길을 진행하면....


  [무명봉]                      4:51

  이름 모를 조그마한 봉우리를 넘고

 
  [내림길]

  5분 정도 더 내려 가면...


  ['난실리' 도로]                                4:56~5:04

  '안성시 난실리' 도로를 만납니다.
  여기서 우측길로 가는게 결과적으로 더 가까웠는데, 모르고 좌측길로 가서 조금 돌고...


  ['난실리 보호수']                          5:11

  '난실리 보호수'가 보이는데
  "조병화문학관"으로 가는 길은 보호수 가기 전 삼거리에서 우측길로 진행합니다.


  ['조병화문학관' 조망]

  "조병화문학관"이 보이기 시작하고


  ['조병화문학관' 입구]                    5:19

  "조병화문학관"입구 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조병화선생"의 詩 한편은....

                 공존의 이유
                                 조병화

                         깊이 사랑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헤어짐이 잦은 우리들의 세대
                         가벼운 눈웃음을 나눌 정도로 지내기로 합시다
                         우리의 웃음마저 짐이 된다면
                         그때 헤어집시다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도록 합시다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얘기할 수 없음으로 인해
                         내가 어디쯤 간다는 것을 얘기할 수 없으며
                         언젠가 우리가 헤어져야 할 날이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랑합시다
                         우리 앞에
                         서글픈 그 날이 오면 가벼운 눈 웃음과
                         잊어도 좋을 악수를 합시다


  ['조병화문학관']

  "조병화문학관"은 선생의 고향집이며 어머니와 자신의 묘지가 함께 있는 곳이더군요.
  입장료가 2,000원이고, 개방 시간이 오후 5시까지여서 들어가 볼수는 없었습니다.

        꿈의 귀향  
                    조병화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 왔습니다.


  ['난실리' 유래]



  ['난실리 버스정류장']                       5:24
 
  '안성시 난실리' 버스 정거장에서 산행을 마치고 10여분 기다려 [22-1번] 시내버스를 타고
  [용인공용버스터미널]로 가서 환승하여 귀가했습니다.


  [구글어스]

  구글어스의 방향을 바꿔 오늘 진행한 코스를 회고하며....


  [고도표]

  걸은 거리는 13.1km 였으며 6시간반 정도가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삼봉산-시궁산-갈미봉-묘봉.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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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바른길-道高를 기다리며』 "도고산-덕봉산" 산행기 도고역-도고중-333.4m봉-칼바위-국사정-도고산-380m봉-고개-덕봉산-수철2교-신례원역 "말 업슨 청산이요~" 말 업슨 청산(靑山)이요 태(態) 업슨 유수(流水)로다. 갑 업슨 청풍(淸風)이요 님자 업슨 명월(明月)이라 이 중(中)에 병(病) 업슨 이 몸이 분별(分別)업시 늙으리라 - 성 혼(成 渾)선생 - ['구글 지형도'] ['구글어스']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에 있는 "도고온천역"에서 출발하여 "도고중학교" 정문을 들머리로 하여 "도고산"을 오르고 "덕봉산"을 경유하여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신례원리'에 있는 "신례원역"까지 "12.8km"를 갑니다. ['도고온천역'] 8:10 2018년 5월 9일 (수) 맑음 [용산역]에서 6시 21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수원역]에서 6시56분에 타고 약 한시간이 걸려 [도고온천역]에 내려 [1번출입구]로 나가 驛舍를 촬영하고... ['도고역2번출구'] 8:13 다시 [도고온천역 2번출입구]로 나가 [645번지방도]를 따라 [도고중학교]로 가며 뒤돌아 본 [2번출입구]의 [도고온천역]입니다. 버스, 택시, 일반주차장등 주요시설들은 모두 [1번출입구]에 있고, [2번출입구]에는 아무것도 없더군요. 우리나라 온천 중에 대표 온천 중에 하나에 속하는 온천이어서인지 驛舍부터 예쁩니다. ['645번지방도'] [도고산 들머리]가 있는 [도고중학교]까지는 [645번지방도]를 따라 가는데 약17분 정도 걸어야 하더군요. 걷기 위해 왔으며 걷는게 일이니 오늘도 걷습니다. ㅎ ['도고산' 조망] [도고중학교]로 가는 길 중간 쯤에 오늘 오를 예정인 [도고산]이 조망됩니다. 비교적 평이한 산행코스로 보이죠? 그래서 "도고산"을 오르고 다시 "덕봉산"을 추가하여 "신례원역"으로 갈 예정입니다. ['도고중' 조망] [645번지방도]를 15분 정도 진행하면 [도고중학교]가 보이기 시작하고... 좌측에는 ['도고초'] [도고초등학교]가 있습니다. ['도고중 교문'-들머리] 8:30~8:35 이어서 [도고산 산행 들머리]인 "도고중학교 정문"에 도착했습니다. 때마침 등교시간이라 선생님들이 나와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에게 학생수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더니 총36명이라고 합니다. 1학년 11명, 2학년 12명, 3학년 13명이라고 하더군요. 저출산, 도시 이주 등으로 시골 학교는 점점더 쪼그라들고 있다네요. [도고산 정상]까지 [2.8km]라고 알리는 이정표에는 [봉수산-광덕산]까지의 거리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아산지맥-아산시 둘레산길]이 시작되는 길이어서 표기된듯... [등산안내도] [도고산]을 등산하고 다시 [도고온천역]으로 돌아 오는 코스는 약3시간 정도 걸리겠더군요. 저는 [도고산]을 오르고 그 뒤에 있는 [덕봉산]으로 돌아 [신례원역]으로 가고자 합니다. [등로] [도고중] 정문 옆 좌측 산행들머리로 들어 가면 등로는 넓고 편리하게 단장되 있어 산행하기엔 매우 편하고, 이정표도 잘되 있어 "도고산"까지는 길 잃을 염려는 없더군요. 7분 정도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운동시설] 8:42~8:44 간단한 운동시설이 있는 첫번째 쉼터를 만나고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오름길] 다시 6분 정도 더 오르면... [쉼터] 8:50 장의자 하나가 있는 쉼터를 지나고... 5분 정도 더 진행하면... [쉼터] 8:55 [위치표지목]이 있는 쉼터를 지나 갑니다. 오름길이 계단식 봉우리로 한봉우리 한봉우리 올라 가기에 오르기 편했습니다. [오름길] 오를수록 조금씩 경사가 가파라집니다. 약간 가파른 오름길을 8분 정도 오르면... ['228m봉'] 9:03 [현위]가 "228m(갈림길)"이라고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합니다. [도고중학교]에서 "1.1km" 올랐고, 정상까지 "1.7km" 남았다고 알려 줍니다. [오름길] 바위들이 나타나며 점점 가파라지기 시작하는 오름길을 10분 정도, 거리로는 300m 정도 더 오르면.. [삼거리] 9:13 이정표와 장의자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전원주택마을]과 연결되는 삼거리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기암괴석] ['333.6m봉' 오르는 길] 리기다 소나무와 기암괴석들이 오름길에 등장하기 시작하며 매우 가파른 된비알을 14분 오르면.... ['333.6m봉' 정상] 9:27 "333.6m봉 정상"에 오릅니다. 이정표에는 [현위치]가 "331(갈림길)"이라고 알리고 있는데,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이 봉우리의 높이가 "333.6m"라고 표기하고 있다는 것을 참고하시고, 정상까지 "1.3km" 남았다고 알려 주고 있으니 조금전 [전원주택마을 삼거리]에서 여기까지 100m라는 것을 알수 있는데, 100m를 14분이 걸렸으니 매우 가파른 된비알이라는 것을 느낄수 있는데... 제 느낌에는 이정표의 거리표시가 좀 잘못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계단 내림길] [333.6m봉]에서 내려 가는 길엔 엄청 긴 데크계단이 설치되 있군요. 5분 정도 진행하면... ['동막골' 갈림길'] 9:32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이정표엔 [현위치]가 [동막골갈림길]라고 알려 줍니다. [오름길] 다시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12분 정도 오르면... ['일출골' 갈림길] 9:44 이정표가 있는 [일출골 갈림길]을 만납니다. 이곳은 "칼바위능선"이 시작되는 곳이었는데, "칼바위능선"은 위험하다고 좌측 옆구리로 우회로를 만들어 놨더군요. ['칼바위' 능선] "칼바위능선"으로 갈수도 있으나 위험하다고 우회로를 만들어 놨기에 우회로를 이용합니다. 전체적으로 육산인 "도고산-덕봉산"에서 암릉구간은 이곳 뿐이었습니다. ['칼바위능선' 우회로] "칼바위능선" 우회로를 4분여 통과하면... [조망대] 9:48 처음으로 조망이 트이는 암봉에 오르게 됩니다. ['국사정' 조망] 올라야 할 "국사정 國師亭"이라는 정자가 쬐끔 보이는군요. [오름길] 완만한 오름길을 10여분 오르면... ['국사정'] 9:59~10:08 "도고산 국사정 道高山國師亭"이라고 하는 정자에 도착합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 가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만, 더러워 신을 벗을수 없었고...ㅎ "태조 이성계"의 "조선왕조"가 개국하자 '고려'의 충신이었던 "김질"이라는 선비가 조선의 모든 관직을 거절하고 이 산에 은거하다 순절하여 "국사봉"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네요. [북쪽 '도고역' 조망] "국사정"에서 북쪽을 조망하면 먼저 출발지였던 "도고온천역"이 조망되며, 그 뒤로 "도고온천관광지구"가 산행후 온천 목욕하고 가라고 손짓하는듯 하군요. ^.^ [동쪽 조망] 동쪽으로는 "광덕산-망경산-설화산"으로 이어지는 [아산지맥]이 펼쳐지고 "배방산"도 보이는군요.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광덕산-망경산-설화산"입니다. [서쪽 조망] 서쪽으로는 "예산"이 펼쳐지며, 그 뒤로 [금북정맥]이 지나는 "가야산"등이 보입니다. "추사 김정희선생"의 고향이고, "흥선대원군"이 야망을 불태우며 청춘시절을 보내곤 했던 '예산'이죠. [남쪽 '도고산 정상' 조망] 남쪽으로는 오늘 산행의 하일라이트인 "도고산 정상"이 드디어 조망됩니다. '道高를 기다리며 ~~' 아니 "고도를 기다리며 ~~" [오름길] "국사정"에서 크게 힘들일 없는 도고산 막바지 오름길을 10여분 오르면... ['도고산' 정상] 10:18~10:26 "도고산 道高山 484.7m" 정상에 올랐습니다. "道""바른 길, 근본"을 의미한다죠. 조금전 [국사정]에서 언급했던 "김질"이라는 선비가 멸망한 고려를 생각하며 "나라가 바른 길로 나아가길" 염원 했답니다. 요즘도 우리 국민들 모두가 바라는 염원이겠죠? "이순신장군" "과학자 장영실" "토정비결의 이지함"등 역사인물들의 정취가 남아 있는 "아산의 도고산". [북쪽 조망] 저는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道高"를 생각하면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이 먼저 떠오릅니다. 이 희곡은 제가 학창시절에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이후 수많은 연극공연으로 잘 알려진 희곡이죠. 이곳 地名 "도고"와 희곡의 "고도"는 아무른 연관도 없겠지만, 저는 무척 깊은 연관이 있는듯 느껴집니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의 "고도"는 특정 의미를 작가는 부여치 않고 관객에게 해석을 맡기죠. "고도"는 神, 즉 영어로 'God'이라고...'God'의 늘어진 발음이 "고도"라고... 작가인 '사뮤엘 베케트 Samuel beckett'는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연극문화를 개척한 선구자이니, 'God'이 불어 발음화로 "고도"가 되었다는 통설이 있습니다만 수많은 학자들은 "고도"가 'God'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가난, 부패, 부조리....에서의 탈출...삶의 부조리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라고... 어떤 사람에게는 '고도'는 神이었고, 미래였고, 천국이었겠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겐 그것은 자유였고, 해방이었으며, 고통의 끝이었겠습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자아 실현이며, 권력이나 富 또는 명예였을 것입니다. 이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고도'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니, 그 부조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고도를 기다리는 것' 뿐이었겠죠. 그러나 고도는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 기다림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 기다림을 마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기 때문이 아닐까....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 "道高山"에서 뭔 관련도 없는 "고도를 기다리며" 괜한 상념에 젖어 중얼거려 봤습니다. ㅎ [북동쪽 조망] [도고중학교]에서 올라온 산행코스가 한눈에 들어 옵니다. 숲을 벗어나 정상에 올라야 보이는 지나온 길.... 땀을 흘리며 헐떡거리며 올랐던 무척 높아 보이던 봉우리가 한낱 발아래 깔리는 작은 봉우리였단거... 人生길과 비슷하죠 고려의 충신 "김질"이 나라를 걱정하던 정자-"國師亭"이 여기서 볼때엔... '이성계' 신군부 세력에 반대하여 관직을 멀리하고 은거한 장소였다기 보다는 아름다운 절경을 만끽하며 여생을 보내기 위해 찾은 명당자리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 또한 정상에 오르지 않고는 느낄수 없는 것들이죠. [동쪽 조망] 동쪽으로는 '아산시'를 감싸고 있는 산줄기들이 펼쳐집니다. 저 산들에 대해선 저의 산행기가 여러개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 읽어 보세요. 특히, [광덕산-망경산-설화산 종주]는 폭설이 내리던 날이어서 볼거리가 무척 많습니다. ㅎ "이순신장군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름 음미하며 걸은 산줄기여서 더욱 의미 있을듯 합니다. 2009년에 쓴 글이지만 여기 클릭 해보세요 "광덕산-망경산-설화산 산행기" [남쪽 조망] "도고산 정상"에서 남쪽을 조망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진입니다. 왜냐하면 [도고산]에서 [덕봉산]으로 가는 중요한 고개를 미리 확인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380m봉]에서 고개로 내려 가는 희미한 급경사길을 찾아야 하기에... ['남서쪽 조망] 남서쪽으로는 잠시후 올라야할 "덕봉산"이 조망됩니다. 그리고 그 뒤로 "예산 중심지"의 뒷 병풍역활을 하는 "안락산-토성산-용굴산" 산줄기도 조망되는군요. 아직 못 가본 산들이라 조만간 답사 할 예정입니다. [서쪽 조망] 서쪽에는 조그만 봉우리 하나가 앞을 가로 막아 조망이 없습니다. "도고산"의 "서봉"일지도 몰라 잠시 다녀 오기로 합니다. ['서봉' 정상] 이 봉우리를 "도고산 서봉"이라고 하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서쪽에 있는 봉우리이니 "서봉"이라고 해도 괜찮겠죠? ㅎ "도고산" 하나만 산행 할때엔 이 봉우리에서 하산해야 한다고 안내도에 나와 있습니다. ['도고산 정상' 갈림길] ★ 길조심 ★ 다시 "도고산 정상"으로 돌아와 "덕봉산"으로 가는데 길조심을 해야 하더군요. "국사정"에서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가 우측으로 가야 하더군요. [급경사 내림길] "도고산 정상"에서 내려 가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이었습니다. 사진은 급경사를 표현하지 못합니다만 매우 가파른 길이니 조심해서 내려 가야 했고... [안부] 10:42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가면 안부를 만나는데 이정표가 있습니다. [현위치]가 [402봉쉼터]라고 알리고 있는데 쉴만한 시설은 없었습니다. 오르막을 잠시 올라 가면... [봉우리] 10:46 이곳이 [402m봉]이 아닌가하는 이름 모를 봉우리를 지나고 5분정도 더 진행하면... ['3-4 현위치]] 10:51 [현위치 3-4]라고 알리는 안내목이 설치된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여기서부터 정신 바짝차리고 진행해야 합니다. "덕봉산"으로 가는 샛길을 찾아야 하기에.... [능선길] 10여분 능선길을 진행하면.... ['380m봉'-'덕봉산갈림길'] 11:00 ★ 길조심 ★ [현위치 380봉 갈림길]이라는 표기가 있는 이정표를 만납니다. 넓고 선명한 능선길은 직진합니다만, "덕봉산"으로 가기 위해선 여기서 우측 아래로 내려 가야 하더군요. 그런데 내려 가는 길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이정표에서 조금 떨어진 아랫쪽에 우측으로 내려 가는 길이 있더군요. [급경사 내림길] [380m봉 갈림길]에서 내려 가는 길은 매우 가파른 절개지 같은 내리막이었습니다. 길의 흔적은 어느 정도 있으나 사람들의 통행 흔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행인것은 거리가 짧다는거.... 거리는 짧지만 급경사여서 조심조심 내려가는 통에 시간은 10여분 걸리더군요. [송전탑] 조금 내려 가면 엄청나게 큰 송전철탑이 나뭇닢 사이로 보이기 시작하고 ['덕봉산' 조망] 잠시후 올라야할 "덕봉산"이 얼굴을 보여 줍니다. 새로운 의욕이 살아 나는군요. [임도] 11:10 급경사 내림길을 '갈 之'자로 내려 가면 임도를 만납니다. 아마도 송전철탑을 세우기 위해 낸 "한전길"일 것입니다. 몇십m 앞으로 나아가면... [임도 삼거리] 자동차도 다닐수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덕봉산 들머리]였습니다. 저 삼거리에서 우측을 보면... [ '덕봉산' 가는 길] 11:11 "덕봉산"으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덕봉산 1.65km]라고 알려 줍니다. 제가 여기서 "덕봉산 정상"까지 1시간10분이 걸렸는데....거리 표시가 좀 그렇죠? ㅎ 그런데 이런곳의 거리 표시는 모두 [도상거리]로 표기하기 때문에 실제 체감거리와는 많은 차이가 납니다. [오름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10여분 오르면.... [전망명소] 11:23 조망이 트이는 암봉에 도착합니다. 서쪽이 조망되는데... ['수철리' 조망] '예산'을 병풍으로 감싸는 산줄기인 "안락산-토성산-관모산"등이 있는 산줄기가 보이며 계곡엔 "예산군 예산읍 수철리"가 조망됩니다. [능선 숲길] 조망은 없지만 소나무숲이 뒤덮고 있는 능선을 40여분 진행합니다. 요즘 송홧가루가 날리는 때여서 송홧가루가 엄청 내려 나뭇닢에 쌓여 있었고 등산복과 배낭에 송홧가루가 색칠을 할 정도... ['덕봉산' 조망] 12:02 송홧가루 날리는 松林을 40여분 진행하면 드디어 "덕봉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급경사 오르막을 다시 올라야 하는군요. [오름길] 15분 정도 오름짓을 하면... ['덕봉산' 전위봉] 12:17 "덕봉산" 가기 100m 전에 있는 전위봉에 도착합니다. 잠시 내려 가면... ['간양리' 갈림길] 12:18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 안부를 지나는데 이 삼거리는 "간양리 間良里"로 갈수 있는 삼거리라고 알려 줍니다. [도고산 산줄기]와 [덕봉산 산줄기] 사이의 계곡이 "간양리 間良里"이더군요. ['덕봉산' 정상] 12:21 "덕봉산 德鳳山 473.9m" 정상석은 없고, 삼각점과 이정표만이 쓸쓸히 서 있습니다. [지명의 유래]는 "덕봉산은 옛날 난리를 당했을 때 이 산에 피난 한 사람이 모두 무사했기 때문에 덕을 많이 봤다는 뜻으로 '덕본산'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고 .... ['탈해사' 조망] "탈해사"라는 절간과 "용굴봉"이 건너편에 보이고 멀리 [금북정맥]이 지나는 "덕숭산" "가야산"등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헬기장] 정상 바로 아래엔 헬기장이 하나 있고... ['신례원리' 조망] 하산해서 가야할 "신례원리"가 조망됩니다. '예산 내포들'을 뒤덮고 있는 비닐하우스가 끝없이 펼쳐집니다. 1시35분 열차를 타려면 좀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내림길] 내림길은 양호하며 완만한 경사였습니다. 열차 시간에 맞추기 위해 좀 빠른 걸음으로 30여분 내려 가면... ['신례원리' 갈림길] 12:50 이정표를 만나는데... [←신례원리 0.65km] [간양리 0.85km→]를 알리고 있습니다. '신례원리' 거리표시와 [신례원역]까지 거리는 매우 다르더군요. [신례원리]까지는 "0.65km"라고 알리고 있으나, 역까지는 "4km" 정도 되는듯 했습니다. 직진해도 [신례원역]으로 갈수 있을듯 한데 열차시간이 없어 좌측 [신례원리]로 하산합니다.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10여분 내려 가면... ['수철리' 진출입로] 1:00 "신례원리"에서 "수철리"로 연결되는 도로를 만나고... ['수철2교'] 이어서 [수철2교]라는 다리를 지나면 "수철리계곡 음식점" "캠핑장"등 유락시설이 줄서 있고 [갈림길] 1:07 계곡을 벗어 나면 처음으로 이런 삼거리를 만나는데 집에와 지도를 확인해 보니 여기서 우측 농로길을 이용하는게 [신례원역]으로 가는 지름길이더군요. 저는 혹시 길이 없을까봐 좌측 자동차도로를 이용하고... [삼거리] 1:15 이어서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선 우측길을 이용합니다. ['덕봉산' 조망] 조금 전에 올랐던 "덕봉산"을 뒤돌아 보며 이별을 고하고 ['신례원2리 마을회관'] 1:20 이어서 "신례원2리마을회관"을 지나 빠른 걸음으로 18분 정도 더 진행하면... ['신례원역'] 1:38 반은 뛰어서 "신례원역"에 도착합니다. 서울가는 열차가 1시35분에 있다는데 도착하니 1시38분으로 시간 오버 ~~ 다음 열차는 3시33분에 있는데 하지만 오늘 열차가 14분 연착되고 있다고... 휴~~ 열차 연착이 이렇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ㅎ 재수 좋은 날 [구글어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12.8km였으며, [도고온천역]에서부터 [신례원역]까지 5시간 2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말 업슨 청산이요~" 말 업슨 청산(靑山)이요 태(態) 업슨 유수(流水)ㅣ로다. 갑 업슨 청풍(淸風)이요 님자 업슨 명월(明月)이라 이 중(中)에 병(病) 업슨 이 몸이 분별(分別)업시 늙으리라 - 성 혼 (成 渾) 선생 - 자연과 내가 하나를 이루었고, 더 이상의 아무런 근심과 슬픔이 없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선생에겐 늙어가는 인생조차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자연과 인생의 조화를 노래하는 넉넉한 마음이 오늘 우리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듯 합니다 산객들이 아마 가장 많이 인용하는 글귀인 "지자요수(智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의 경지라... "지자요수(智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은 論語에 나오는 말이지요 여러분들은 智者에 속하십니까? 아니면 仁者에 속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산객은 仁者이고 싶어 하던데...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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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산행코스를 찾아서』 "분당 태봉산" 산행기 정자역3번출구-궁내동경로당-태봉산-둔지봉-대지산-진재산-보바스병원-정자역 "산에서" 젊어 한창 때 그냥 좋아서 어쩔줄 모르던 기쁨이거던 여름날 헐떡이는 녹음에 묻혀 들고... 中年들어 肝腸이 저려오는 아픔이거던 가을날 울음빛 단풍에 젖어 들거라...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 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평생 - '詩人 박재삼'의 "산에서"중에서- ['구글 지형도'] ['구글어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있는 [분당선-신분당선 3번출구]에서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를 통과하는 굴다리를 이용하여 '궁내동'에 있는 "궁내동 경로당"으로 이동하여 "태봉산"을 오르고 "둔지봉-대지산-진배산"을 경유하여 "보바스병원"으로 하산하고 다시 [정자역]으로 원점 회귀하는 GPS 측정으로 "10.2km"를 갑니다. ['정자역 3번출입구'] 12:10 2018년 4월 9일 (월) 맑음 연무 벚꽃과 진달래로 대표되는 봄꽃 구경겸 간단 산행을 하기위해 오늘은 집에서 가까운 "태봉산"으로 갑니다. [정자역 3번출구]에서 부터 산행을 시작합니다. 언제 꽃비로 변할지 모르는 벚꽃이 [정자역]에도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만 며칠후엔 화려함이 푸르름으로 바뀌리라 ~~ [네이버 지도] 먼저 [정자역]에서 "태봉산"의 들머리인 "궁내동 경로당"으로 가는 길을 제가 캡처해 편집한 '네이버 지도'를 통해 알아 보겠습니다. 이 길의 핵심은 [경부고속도로]를 어떻게 건너 통과하는가가 포인트라 생각됩니다. [분당경찰서]를 경유하여 고속도로 지하통로를 찾아 가기만하면 간단히 "태봉산 등산로"로 갈수 있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지도를 참고하면 되겠고 ['분당경찰서' 방향] 12:12 [정자역 3번출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한 블록 앞에 있는 [분당경찰서]가 보입니다. [분당경찰서]로 잠시 가면... ['분당경찰서' 앞 사거리] 12:13 사거리를 만나며 대각선 방향에 [분당경찰서]가 있습니다. 여기서 좌회전하면... ['정자1동주민센타' 방향] [분당경찰서] 정문 앞으로 [정자1동 주민센타]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4분여 이 길을 직진해 가면... ['정자1동주민센타' 앞 사거리] 12:17 [정자1동 주민센타]가 있는 사거리를 만나며 여기선 우측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태봉산' 조망] 그러면 "태봉산 산줄기"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앞에 보이는 삼거리를 가면... [삼거리] 12:19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 건너 갑니다. 이 도로 지하에는 [분당-수서간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가면...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지하통로 입구] 12:22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가 보이며 지하엔 지하통로가 있습니다. 오늘 "태봉산 등산로 찾기"의 핵심은 이 지하통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합니다. [지하통로] 제법 긴 지하통로를 통과합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밑이므로 도로 폭이 엄청 넓기 때문이겠죠. [고속도로 교통센타] 12:25 지하통로를 통과해 나가면 [판교대왕로] 도로를 만납니다. 그리고 우측에 "고속도로 교통센타" 입간판이 있는데...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한국도로공사 서울영업소'] 우측엔 [한국도로공사 서울영업소]와 [고속도로 교통센타]가 있습니다. 도로를 따라 300m쯤 직진하면... ['대왕판교로'] 12:28 신호등이 있는 첫번째 횡단보도를 만납니다. 여기서 길을 건너 건너편 보도를 이용해 5분여 직진하면... ['궁안마을입구' 버스정류장] 12:34 [궁안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을 만납니다. 여기까지 버스를 타고 오면 더욱 편하겠습니다. ['궁내동 안내석'] 12:35 버스정류장에 이어 바로 [궁안동 안내석]이 있는 마을입구를 만나는데 좌측 골목으로 들어 갑니다. ['궁내동' 마을길] [궁내동] 골목길을 200여m 직진 진행하면... ['궁내동 경로당'] 12:39 "궁내동 경로당"을 만납니다. 게시판에는 [금곡동게시판]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경로당 뒤로 가면... ['궁내동경로당' 뒤 등산로 입구] 12:40 [궁내동 경로당] 뒤에 "태봉산 등산로"가 열립니다. [태봉산 등산로 입구]는 여러곳 있겠습니다만, [태봉산 능선]을 종주하는 코스로는 이곳이 적합하다고 생각되는군요. [포장도로 오름길] 개나리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10여분 올라 가면... [비포장도로 오름길] 12:49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나고 비포장도로가 시작되는 곳에 삼거리가 있지만 직진합니다. 3분여 더 올라 가면... ['K-워터' 시설] 12:51 고갯마루에 도착하는데 '광역상수도 관련시설'이 있습니다. 등산로는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뒤돌아 보면 [뒤돌아 본 '궁내동'] 지나온 [궁내동] 계곡이 한눈에 들어 오고 멀리 분당의 '네이버 본사'도 조망됩니다. [등산로 입구] 12:53 [K-워터시설]을 돌아 가면 본격적으로 올라야 할 산길이 열립니다. 약간 가파른 오름길을 조금 올라 가면... [능선 삼거리] 12:54 이정표가 있는 능선 삼거리를 만나 좌회전 합니다. [능선길] 그러면 경사가 거의 없는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지며 ['태봉산 전위봉' 조망] [태봉산]과 [태봉산 전위봉]이 조망되는 능선길을 눌루날라 진행합니다. [리기다소나무숲] 솔향기 풍기는 리기다소나무숲도 통과하면... [오름길] 1:22 산 정상 부근엔 어느 산이나 다 있는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 집니다. 거리가 짧아 6분 정도만 핵핵거리면... ['태봉산' 전위봉] 1:28~1:38 [태봉산]과 높이가 비슷한 전위봉에 오릅니다. 여기서 10여분 쉬었다 갑니다. ['태봉산 정상' 조망] 전위봉에서 [태봉산 정상]을 조망합니다. 고도를 제법 낮추었다가 다시 올라야 하는데 8분 정도 걸리더군요. ['태봉산 정상부'] 1:46 [태봉산] 정상부에 오르면 이정표를 먼저 만나는데 [동원동] [궁내동 백현동]에 대한 안내가 있습니다. 여기서 뒤돌아 보면... [뒤돌아 본 전위봉] 지나온 전위봉이 제법 높은 봉우리라는 걸 알수 있고 ['태봉산 정상'] 1:47~1:49 "태봉산 318m"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높이가 "311.2m"라고 표기되 있으니 참고하고 저는 [태봉산]을 지난 [성남누비길]을 종주하면서 다녀 간적이 있어 이번이 두번째 입니다. [태봉산]은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의 '태'가 뭍혀 있는 산이라고 하는데... ['영장산' 조망] 동북쪽을 바라보면 [분당신도시]와 [검단지맥]이 지나는 "영장산"이 조망되고 좌측으로 "망덕산'과 "남한산성"방향도 희미하게 보입니다. ['불곡산' 조망] 동남쪽으로는 "불곡산"이 조망되는데 연무로 희미하군요. ['청계산 국사봉'등 조망] 서쪽으로는 "광교산-바라산-우담산-국사봉-청계산'이 지나는 [관악지맥]이 조망되고 [쉼터] [태봉산] 정상부에는 쉼터도 있고 [진달래] 진달래가 활짝 핀 능선길을 조금 내려 가면... ['성남누비길' 삼거리] 1:54 [성남누비길]이 "응달산"으로 가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지난해 제가 [성남누비길]을 종주 할때엔 이곳이 알바 많이 하는 곳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알아 보기 쉽게 여러개의 안내판을 새로 설치했군요. 이곳에 대한 [성남누비길 제5구간 태봉산길]의 산행기가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 하세요. [성남누비길] 제5구간 태봉산길 http://cafe.daum.net/paraanmoon/NSQ6/3 여기클릭 ['성남누비길 안내도'] 안내도가 알기 쉽게 새로 만들어져 설치되었습니다. ['둔지봉' 조망] 가야할 다음 봉우리인 "둔지봉"을 조망하고 [숲길] 길 잃을 염려없는 분명한 능선길을 7분여 진행하면... ['둔지봉' 정상] 2:01 "둔지봉"에 도착하는데 이정표에는 "쇳골마을-대장동" 갈림길이라고 표기되 있습니다. "쇳골마을"은 아랫 동네가 [금곡동 金谷洞]이어서 순우리말로 "쇳골마을"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근처에 금광이 있었다고... ['광교산' 조망] 2:05 [대장삼거리]로 가는 능선길 중간에 송전탑이 있고 그 뒤로 [한남정맥]이 지나는 "광교산"과 "형제봉"이 보이고 ['대장삼거리'] 2:07 이어서 "대장삼거리"에 도착합니다. [대장동 大庄洞]은 [용서고속도로 서분당 IC] 근처에 있는 동네이죠.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다음과 같이 지명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장동의 명칭은 태릉(胎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태릉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이 지역 남쪽에 있는 무덤 모양의 산봉우리에 조선조 인조의 태(胎)를 묻었으므로 그 산을 태봉(胎峯) 또는 태장산(胎藏山)이라 하였다. 그 연유로 이곳을 태장리(胎藏里)라 하였다가 태장(太庄)으로 변하고, 다시 대장리로 표기하였다는 설이고, 또 하나는 마을 안에 큰 무덤이 있어서 태릉(太陵)이라 했다는 설이 그것이다 ['고기삼거리' 조망] [대장삼거리]에서 가야할 [고기삼거리]가 있는 봉우리를 조망하고 4분여 진행하면.... ['고기삼거리봉'] 약간 가파른 오르막을 잠시 오르는데 ['고기삼거리'] 2:11 봉우리에는 "고기삼거리"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우측 계곡에 "고기리"가 있습니다. ['대지산' 조망] [고기삼거리]에서 가야할 [대지산]을 조망하고 4분여 진행하면.... ['대지산' 정상] 2:15 "대지산 229.3m" 정상에 오릅니다. [태봉산 등산안내도] 등산 안내도가 설치되 있는데 이 안내도에 의하면 [보바스병원]으로 가는 삼거리가 있는 산 이름이 [진재산]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능선길]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능선길을 17분여 진행하면.... ['헤리티지삼거리'] 2:32 "헤리티지삼거리"를 지나게 됩니다. 느닷없이 뭔 "헤리티지"인가 싶어 조사해 봤더니 이 능선 아래에 있는 아파트 이름이 [헤리티지 아파트]여서 [헤리티지아파트]로 가는 삼거리이더군요. 이런 삼거리 이름도 조금 더 신중하게 이해하기 쉽게 표기해야 할듯.... ['진재봉' 정상부] "진재봉"으로 잠시 올라 가면... ['진재봉' 정상 삼거리] 2:38 "진재봉 228.6m" 조금전 "대지산" 정상에 설치되 있는 등산안내도에서 이 봉우리가 "진재산"이라는걸 알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직진하면 [성남누비길]로서 "동원동"으로 갑니다. 저는 [정자역]으로 원점 회귀하기 위해 좌측 [보바스병원] 방향으로 하산합니다.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14분여 내려가면... ['보바스병원' 조망] 2:52 [보바스병원]이 발 아래에 다가오고 [경부고속도로] 건너편에 "네이버 본사"가 조망됩니다. ['보바스병원' 들날머리] [보바스병원]으로 내려 가는데 등산로는 [보바스병원]으로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보바스병원' 통과] 2:55 [보바스병원] 중앙통로를 이용해 정문으로 나갑니다. [보바스병원]은 영국의 유명한 뇌졸증 치료의사인 "보바스씨 부부"의 이름을 빌려와 "뇌졸중 및 외상성 뇌손상, 뇌성마비 등과 같은 뇌신경계의 이상을 가진 환자에 대한 재활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라네요. [병원 진출입로] 병원 중앙통로를 이용해 정문으로 내려 가다가 [뒤돌아 본 '보바스병원'] [보바스병원]을 뒤돌아 보고 [병원 정문] 3:03 병원 정문으로 나가 길을 건너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대왕판교로'] [대왕판교로]를 따라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12분 정도 직진해 가면... [고속도로 교통센타 앞] 3:15 [고속도로 교통센타] 입간판 앞에서 우회전합니다. [지하통로] 3:16 그러면 출발할때에 이용했던 [고속도로 지하통로]를 다시 통과하여 [정자역]으로 갑니다. 10여분 '정자동'을 통과하면 ['정자역 3번출입구'] 3:26 [정자역 3번출입구]에 원점 회귀합니다. 출발 할때보다 벚꽃이 더 활짝 핀듯합니다. [구글어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GPS 측정으로 "10.2km"로서 3시간 15분이 걸렸습니다. 건강 산행코스로 알맞는 [태봉산]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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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의 얼이 살아있는 [천안역사문화둘레길]"
      "유관순열사 초혼묘와 한명회묘" 답사기
           병천 아우내장터-유관순열사 추모관-초혼묘-봉수지-매봉산-유관순열사 생가 -
           조병옥박사생가-홍대용과학관-홍대용생가터-한명회묘-상록리조트 후문
                   유관순.....

                                        이화여고 김희정

                         그대...
                         꺽어짐으로 해서 
                         우리는 이곳에 우뚝 섯다
                         아 !
                         미치도록 그리운 조국의 독립으로
                         이땅의 해맑은 웃음 이루려
                         씨 되어 흩날리나니
                         마침내 그대는
                         통일의 배꽃으로 피어 나소서


  [구글어스 지형사진]

  [구글어스]

  오늘은 [천안역사문화둘레길]의 하일라이트 구간을 갑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에 있는 "아우내장터"에서 출발하여
  "유관순열사 사적지"와 "생가"를 둘러 보고 "조병옥박사 생가"와 "홍대용과학관"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조선왕조 최고의 모사꾼이라 하는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묘"를 찾아 갑니다.


  ['병천' 버스정류장]           9:54

  2017년 3월 10일 (금) 맑음  
  지난주 "은석산"과 "암행어사 박문수묘"를 탐방하고, 이어서 [천안역사문화둘레길]의 하일라이트 구간인
  "유관순열사 유적지""조병옥박사 생가", 그리고 "홍대용과학관과 생가"를 방문하기 위해
  [1호선전철]을 타고 [천안역]에 내려 [천안역 동부광장 버스정류장]에서 [400번 시내버스]를 타고
  약45분이 걸려 "병천"에 내롔습니다.
  버스 안내방송에는 [병천]이라고 알리는 정류장인데 정류장에는 [병천3리]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날씨는 맑고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듯 산행하기엔 매우 좋았습니다.



  ['병천 아우내장터 거리']

  먼저 "아우내장터"로 가서 "유관순열사"의 만세운동 진원지 기념공원을 찾아 보려 합니다.
  "아우내장"은 지금도 매1일과 6일...에 열린다고 합니다.
  옛날엔 이 지역 주변에서 제일 큰 시장으로 특히 "우시장"이 유명했답니다.
  영호남 지방의 소장수들까지 거래를 위해 오는 시장이었다고 하니 그 위상을 느낄수 있습니다.
  지금은 이 거리에 대부분 "병천순대국집"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병천순대국"이 옛부터 유명해서 인데 그 근원은 "아우내 牛市場"이랍니다.
  이렇게 큰 牛市場이 있던 곳엔 순대국집이 많았는데 순대국의 원료가 풍부해서이겠죠?
  그래서 큰 牛市場이 있었던 "병천" "용인 백암" "진천"등의 순대국이 번성할수 있었답니다.
  옛 정취는 현대식으로 변모하여 사라졌지만 순대국집들은 여전히 줄을 서서 성업중에 있습니다.
  더더욱 [3.1만세운동]의 함성이 울려 퍼지던 곳인데 요즘 시국과 맞물려서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스산한 느낌이 듭니다.
  [아우내장터] 중심거리를 통과하여 남쪽으로 장터 끝까지 가면


  ['아우내장터 3.1만세운동 기념공원']       9:59~10:06
  
  "아우내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을 만납니다.
  1919년 그날의 만세운동 현장 모양과는 매우 다르게 공원이 조성되었으며
  주변엔 초가집 대신에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군요.




  [기념 조형물]

  공원은 그다지 크지 않은 규모인데 만세운동과 관련된 조형물이 몇개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에서 순국한 사람들의 명단이 있었는데 쪽바리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사망한 사림이 19명이라고 하며 "유관순"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어 수난을 당했답니다.


  ['병천사거리']           10:11

  "아우내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을 둘러 보고 다시 [병천사거리]로 돌아 와서
  "유관순 사적지"로 갑니다.


  ['병천교']          10:14

  [병천사거리]에서 동쪽 "유관순 사적지"로 200m 정도 진행하면 [병천교]를 만납니다.


  ['竝川' - '아우내']

  [병천교]에서 남쪽방향을 바라 봅니다.
  "병천""아우를 병 竝""내 川"으로 이루어진 지명이니 순우리말로 "아우내"가 되지요.
  저 앞에 보이는 다리 있는 곳에서 "산방천"과 이 개천이 만나 아우러진다고 "竝川 아우내"가
  되었다고 하며, 그 우측에 조금 전에 다녀온 "아우내장터"가 만들어 졌답니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을 표현하는 지명들은 다양하게 있지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兩水頭"가 대표적인 지명이고...


  ['탑원교차로']         10:16

  [병천교]를 지나면 [탑원교차로]를 만나는데 이곳이 "유관순열사 사적지 입구"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를 "매봉산"이 전체적으로 조망되는데 "유관순열사 사적지"를 품고 있는 산이며
  오늘 트랙킹에서 가장 높은 산이 되겠습니다. ㅎ


  ['새천년의 꿈']

  [탑원교차로]에서 [유관순열사 사적지]까지는 "열사의 거리"라고 하는 공원같은 진입로가
  200m 가량 펼쳐지는데 첫 조형물이 "새천년의 꿈"이라고 하는 조형물이었습니다.



  ['열산의 길']

  '가로공원'으로 조성되 있는 [천안역사문화둘레길]의 "열사의 거리"를 8분 정도 진행하면....


  ['유관순열사 사적지']          10:24

  [유관순열사 사적지] 정문에 도착합니다.
  정문 좌측에는


  ['역사문화둘레길' 안내도]

  [천안역사문화둘레길] 안내도가 있습니다.
  [병천 아우내장터]에서 여기까지가 [제1길 대한독립만세길]이었군요.
  그런데 여기서 "유관순 생가"로 가는 길을 [제2길 유관순길]이라고 표기하며
  "매봉산" 좌측 둘레길로 이어진다고 알리고 있는데, 저는 "매봉산"을 바로 넘어 가는 길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믿고 주변을 잘 살피며 [유관순열사 사적지] 안으로 들어 갑니다.


  ['유관순열사 사적지' 안내도]

  또한 [유관순열사 사적지 안내도]도 있는데 [초혼묘] [봉화지]를 경유하여 [유관순 생가]로
  직접 넘어 가는 길을 찾아 넘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에도 없어 궁금했는데 오늘 확실히 직접 체험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후답자들이 안심하고 갈수 있도록 상세히 기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ㅎ


  [사적지 입구]

  정문을 들어 서면 우측에 "순국소녀 유관순열사 초혼묘 봉안기념비"가 반겨 주며
  뒷쪽에 "유관순열사 동상"이 보입니다.


  ['유관순열사상']

  "유관순 柳寬順 1902~1920"
  일제강점기 시절 "3.1 독립만세운동"의 상징적 인물이지요.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 중에...제가 알기로는 '3.1독립운동'으로 순국한 인물의 수가 약7,000여명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중에서 왜 하필 당시 16살의 여고 1학년이었던 "유관순"이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을까...
  그렇게 된 이유를 알고 난 다음 존경하던지 추모해야 하지 않나요?
  우리나라 국민의 대부분은 그 이유를 잘 모르고 그냥 그렇게 배웠기에 그렇게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는 "유관순열사"의 숭고한 정신을 의심하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며, 그 사연들을 분명하게 알고
  "유관순열사"를 만나 보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람니다.
  역사 속의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민족반역죄를 손바닥으로 어떻게 하늘을 가릴려고 했는지
  잠시후 그 과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유관순열사 기념관'과 '타임캡슐']

  좌측에는 "유관순열사 기념관"과 입구에는 "타임캡슐"이 있더군요.
  세월이 흐른 후에도 후세들에게 이어 질수 있도록 타임캡슐을 만들었겠지요?


  ['유관순추모각' 입구]

  "유관순열사 추모각"으로 올라 가는 입구 입니다.
  태극기가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진정한 의미를 부여해 주는 곳이라 생각됩니다.
  요즘 태극기를 들거나 두를 자격이 없는 자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태극기를 함부러 하던데
  그 사람들이 이곳에 와 태극기를 만나면 뭐라 말 할까....
  저는 요즘 태극기를 보면 왠지 두려움 같은 느낌도...ㅎ


  ['초혼묘' 갈림길]        10:30

  계단 중간에 [봉화탑 초혼묘]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추모각]을 다녀와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야 [매봉산 정상]을 넘어 [유관순 생가]로 갈수 있더군요.
  이제서야 궁금했던 [매봉산 정상 → 유관순 생가]로 가는 길을 알았습니다.


  ['추모각']

  "매봉산 梅峰山"의 품에 안겨 있는 "유관순열사 추모각"입니다.


  ['유관순열사' 영정]

  "유관순열사"의 인생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너무 짧은 인생이라 요약 할거도 없습니다만...
  그녀는 1902년 12월 16일 이 '매봉산'을 넘어 잠시후 방문하게 될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씨와 어머니 '이소제'씨의 다섯 자녀 가운데 둘째 딸로 태어 났답니다.
  공부를 무척 잘했던 시골뜨기 '유관순'은 중학교 3학년 때에 서울 "이화학당 보통과"로 전학을 갑니다.
  요즘말로 하자면 "이화여중" 3학년으로 편입했는데 그냥 편입 한것이 아니라 "교비생"으로 편입학 한거죠.
  "교비생"이란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면제받는 대신 졸업 후에 본교의 교사가 되기로 약정한 학생을
  말하는데 이듬해 "이화학당 고등과", 즉 "이화여고"로 올라 갔는데 바로 "3.1만세운동"이 터진 것이었으니 
  "이화학당"에서의 학교생활은 1년여 정도 였습니다. 그냥 학교를 다녔으면 졸업후 선생님이 되었을텐데...
  애처럽게도 ~~ 이 소녀의 운명이란...

  1919년 3월 1일의 함성
  "3.1독립운동"은 현재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첫줄을 장식하게 만들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종로2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을 마친 독립투사들과 백성들이 시위에 돌입했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인데
  시위대들이 '이화여고' 앞을 지나 갈때 "유관순'은 동료 1학년 여학생 6명과 함께 학교 담장을 뛰어 넘어
  시위대에 합류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를 누볏답니다. 이후 열흘 동안 서울 대부분의 학교 학생들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자 쪽바리들의 진압이 무차별적으로 거세어 졌지요.
  이렇게 수많은 학생 시위대 속의 한 여고 1년생이었던 "유관순"은 3월 13일 기차를 타고 고향 '병천'으로
  순사를 피해 내려 가서 '병천'에서 서울독립만세운동을 고향 사람들에게 알리고 시위를 계획하기 시작하죠.
  이 때 각 고향으로 내려가 독립운동을 벌인 사람들은 '유관순'외에도 수없이 많았습니다만....
  우리는 "유관순" 만을 주로 기억 합니다. 왜일까요?
  세월이 흘러 해방후 1946년경 "유관순" 만을 콕 찝어 영웅화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선 수많은 시위대 중에 한 어린 "유관순"이라는 여고1년생이 영웅이 될순 없었겠지요?
  그에 대해선 "유관순열사 생가"에 가서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추모각'에서 조망]

  "유관순 추모각"에서 조망합니다.
  지난주에 올랐던 "은석산"과 "암행어사 박문수 묘"가 벌써 추억 속에서 출렁이는군요.
  조만간 꽃피는 날에 좋은 사람들과 다시 한번 더 가고 싶은 산입니다.


  ['초혼묘' 가는 길]        10:36

  "추모각"에서 다시 내려와 [초혼묘]로 갑니다.
  "약수터"가 있는데 수질이 좋은지  몇분이 물을 받고 있더군요.


  ['초혼묘' '봉화지' 가는 길]        10:37

  "약수터" 옆으로 [봉화탑 초혼묘]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이 길에 대한 정보가 없어 염려를 했는데 예상보다 길안내가 잘 되 있었습니다.


  [오름길]

  제법 가파른 계단 오름길을 6분여 오르면....



  ['초혼묘']           10:43

  "유관순열사 초혼묘"
  1919년 3월 13일 쪽바리 헌병 순사들을 피해 간신히 고향으로 돌아 간 "유관순"은
  서울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을 각 지방에도 알리고 함께 동참해야 한다고 호소하며
  태극기를 손수 만들어 배포하고 [4월1일 아우내 장날]에 만세운동을 벌였답니다.
  장터에 모인 3,000여명의 백성들이 만세운동을 펼치자 일본헌병들이 시위 진압을 위해 발포하고
  시위의 최전방에 섯던 "유관순"의 아버지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총탄에 순국하고
  "유관순"은 체포되어 '공주지방법원'에서 5년형의 판결을 받았으나 항소심을 위해 경성으로 옮겨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지요. 항소심에서는 3년형으로 감형되었으나 저항을 멈추지 않았답니다.
  재판정에서 부러짖었던 “나는 한국인이다. 너희들 일본인은 우리 땅에 몰려와 숱한 동포를
  죽이더니 마침내 나의 부모님까지 죽였다. 대체 누가 누굴 죄인으로 몰아 심판한단 말인가?”라는
  외침은 어린 여고생이었지만 얼마나 당차고 똑똑했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도 "이화여고생"들의 자존심이 되고 있다죠? 우리 모두의 자존심이지만...


  ['초혼묘']

  '서대문형무소' 안에서도 옥중 투쟁을 계속해 나갔답니다.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에는 많은 여성 시위 죄수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 옥중 저항을 계속하다가
  지하 독방에 감금되고, 1920년 4월 28일 '영친왕'과 '이방자'의 결혼 기념으로 유관순의 형기가
  1년 6개월로 감형되었지만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는데.....
  그 결과 심한 고문으로 1920년 9월 28일, 유관순은 형기를 3개월 남겨둔 채 
  18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답니다.
  시체는 '이화학당'에 인계되어 '정동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서울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했는데 그후 묘지가 일본 군기지화 되는 과정에서 "유관순의 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1989년 10월 12일 이곳에 "초혼묘"를 만들어 "유관순의 혼"이 들어와 편안히 쉴수 있도록
  했답니다. 한편 서울 [이태원역사공원]에도 추모비가 세워져 있더군요.


  ['초혼묘'에서 조망]            10:46
 
  "유관순열사 초혼묘"에서 바라보는 광경입니다.
  지난주에 올랐던 "은석산"과 "암행어사 박문수 묘"가 조금 다른 각도로 조망됩니다.


  [오름길]
 
  "초혼묘" 뒤로 [봉화탑]과 [유관순 생가]로 가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3분 정도 짧은 오름길을 올라 가면....


  [능선 쉼터]         10:49~11:01

  [봉화탑]과 [유관순열사 생가]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는 능선 쉼터를 만납니다.
  여기서 10여분 빵으로 아점을 먹고....
  바로 앞에 있는 "봉화탑"으로 올라 갑니다.


  ['봉화지']         11:02~11:04


  "유관순열사 봉화지"
  "유관순열사"가 1919년 3월 31일 밤에 
  주변 "목천.천안.안성.진천.연기.청주'등으로 "4월1일 만세운동"의 신호를 보낸 봉화터랍니다.
  이 신호를 시작으로 각지역에서 만세운동이 동시에 일어났다는데...
  우리들은 다른 지방들에서 일어난 운동들은 잘 모르고 "아우내장터 만세운동"만을 주로 기억합니다.


  ['봉화지'에서 북서쪽 조망]

  "봉화탑"이 있는 이곳은 "매봉산 梅峰山"이라고 하는 170m 높이의 나즈막한 산입니다만
  '천안.청주'등 여러곳으로 봉화신호를 보냈다고하니 봉화터라고 믿기는 조금 그렇군요. ㅎ
  "매봉산"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매 鷹"을 사용하는데 이곳은 "매화 梅"를 쓰는게 이채롭습니다.
  서북쪽으로는 지난주에 올랐던 "은석산"과 "암행어사 박문수 묘"의 조망이 좋습니다.


  ['봉화지'에서 서쪽 조망]

  서쪽으로는 "독립기념관"과 "흑성산"이 훤히 조망됩니다.
  [천안역사문화둘레길]의 중심에 올라 있다는 실감이 납니다.


  ['봉화지'에서 남쪽 조망]

  남쪽으로는 잠시후 탐방하게 될 "조병옥박사 생가"가 조망되는군요.


  ['매봉산' 정상]          11:05

  "봉화탑" 바로 옆에 "매봉산 梅峰山 170.5m" 정상을 알리는 삼각점이 이 능선 길섶에 있고

 
  [눙선길]

  [내림길]

  13분 정도 제법 긴 "매봉산 능선"을 진행하면 ...


  ['유관순열사' 생가]          11:18

  "유관순열사 생가"를 바로 만나게 됩니다.


  ['매봉산' 들날머리]

  생가 앞 주차장으로 내려가 들날머리를 뒤돌아 보고
  좌측에 있는 [유관순열사 생가 비문]도 읽어 보는데...


  ['유관순열사 생가 비문]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세요~  ㅎ


  ['유관순열사 생가']


  "유관순열사 생가"
  생가 좌측에 있는 "매봉교회"는 "유관순"이 다닌던 교회라는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답니다.
  "유관순열사"의 가족은 모두 '감리교' 신자 였고, 
  감리교 선교사들의 추천으로 같은 미션스쿨인 '이화학당'으로 편입학하게 되었다는군요.


  ['유관순열사 생가']
 
  [태극기 만드는 유관순 모형]                                [독립만세운동 계획]

  "유관순열사 생가"
  당시 통신이 발달하지 못해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방까지 알려지는데는
  보름이나 한달 이상이 걸리던 시절이어서 "유관순"의 "서울 3.1절 독립운동" 소식은 빠른 것이었답니다.
  소식을 접하고 가장 빨리 적극적으로 주도한 사람은 다름아닌 "유관순"의 아버지 어머니 였답니다.
  아버지 '유중권'씨는 선각자로서 '흥호학교'라는 학교를 세워 국권회복과 민족계몽활동에 앞장서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숨어 온 딸 '유관순'으로 부터 "3.1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실천에 옮기게되는 실제 주동자가 "유관순"의 아버지 어머니였던 것이랍니다.
  하지만 "4월1일 아우내 장날 만세운동" 현장에서 일본 헌병들이 쏜 총탄에 순국하고 말았답니다.
  어머니 "이소재"씨도 역시 선교사들을 통해 독실한 신앙심과 근대적인 여성의식을 갖추었던 신여성이었답니다.
  '유관순'의 어머니도 "4월1일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에 앞장 서다 일본군의 총탄에 그 자리에서 순국했습니다.
  이와 같이 만세운동의 주역은 "유관순"이라기 보다는 "유관순의 아버지와 어머니"등 다른 사람들이었는데
  어떻게 어린 16세 여고생 "유관순"이 민족의 영웅으로 재탄생되었을까 ~


  [싸릿문 밖]          11:24

  [3.1만세운동]에서 희생된 우리 백성들의 수는 무려 7,000여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인 "여고생 유관순"만이 유독 민족의 영웅으로 자리 메김했을까...
  "유관순"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46년경 "이화여고 교장 신봉조""이화학당 출신의 박인덕"이
  "유관순기념사업회"를 설립하면서부터였답니다. 그렇다면 "신봉조 박인덕" 그들은 누구인가...
  "신봉조"는 일제 말기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참사로서 임전대책협의회와 
  조선임전보국단에 참여했고, 황도사상을 보급하던 황도학회 회장으로 활동한 친일파였는데
  이런 경력 때문에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된 핵심 친일파 인사였습니다.
  한편 "박인덕"은 "유관순의 지도교사"였는데 3.1독립만세운동 당시 주동자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고, 옥중에서'유관순'에 대한 할동과 일제의 고문을 목격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출소한 후 독립운동에 헌신했지만....그후 일제 말기 변절하여 조선임전보국단에 참가했고, 
  임전대책협력회 상무위원으로서 친일 논설과 강연에 나섰으며, 아울러 전비 조달을 위한 
  '채권가두유격대'로 활동하면서 징병을 독려하기도 한 적극적인 친일파가 되었답니다.
  이런 "신봉조"와 "박인덕"이라는 인간들이 해방 이후 "유관순"을 정치적 종교적 방패막이로 적극
  활용함으로써 자신들의 부끄러운 친일 흔적을 감추려 했던 것이 "유관순 영웅화"였던 것입니다.
  듣고 보니 좀 씁쓸하지요? 믿고 싶지 않지요?
  앞에서도 언급했드시 저는 "유관순열사"를 폄홰하거나 그의 애국정신을 의심하려는게 아니라
  "유관순열사"의 애국심까지도 친일수구세력들에 의해 이용 당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입니다.
  "다까끼 마사오"의 딸....탄핵 파면 소리가 스마트폰을 통해 들려 오고 있었습니다.
                  친일파로 변신한 "박인덕"과 함께 찍은 사진 보여 드림니다.
                 
                  ['이화학당' 시절 지도교사였던 "박인덕"과 함께 찍은 "유관순" 사진]
                      ('유예도'는 '유관순'의 사촌언니)
  "박인덕"은 '이화여대' 출신으로 "김활란"의 선배이기도 합니다만, "인덕공고"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박인덕"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최초로 "남편에게 위자료를 주고 이혼한 최초의 신여성"이기도 하죠.
  남편이 아내를 쫏아 내는 일은 있어도 아내가 남편을 돈 주고 쫏아 내는 일은 최초여서 신드롬을 일으켰죠.
  "死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과 "수덕사의 여승"으로 유명한 "일엽스님(김원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며 소설가인 신여성 "나혜석"과 친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박인덕"은 이 친구들 중 유일하게 친일파로 변절했습니다.
  "김활란"도  친일파의 선구자였는데도 해방후 교묘히 '이화여대 총장'까지 올라가고
  죽을 때까지 자신의 친일행적에 대해 반성 한번 하지 않아 더욱 비판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죠.


  ['용두1리 경로당']        11:26

  "유관순열사"의 생가 싸릿문을 나서서 "조병옥박사 생가"로 갑니다.
  "유관순열사 생가" 바로 옆에 "용두1리 경로당"이 있더군요.
  이 "용두1리" 포장 도로를 따라 가기만 하면 되더군요.
  마을을 통과하면...


  ['21번국도' '용두4교' 조망]

  [21번국도]가 보이기 시작하고...
  제가 "꽃표시"를 한 [21번국도]의 다리가 있는 곳으로 진행합니다.
  길안내가 없으니 참고 하시고


  ['용두4교']           11:33

  [21번국도] 다리가 있는 곳엔 [용두4교]가 있는데 
  다리를 건너 도로를 따라 4분 정도 진행합니다.


  [뒤돌아 본 '유관순생가']

  [용두4교]에서 지나온 [용두1리] 마을과 "유관순 생가"를 뒤돌아 보고...


  ['역사문화둘레길']

  "조병옥박사 생가"로 가는 길에 [천안역사문화둘레길] 안내판이 보입니다.
  200m 정도 진행하면....


  ['조병옥박사 생가']        11:37~11:49

  "조병옥박사 생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병옥박사 생가']

  "조병옥박사 생가"
  얼마전 "미스터 쓴소리"라는 닉네임으로 불리우던 정치인 기억 나시나요?
  그렇습니다. 국회의원이었던 "조순형씨"입니다.
  "조병옥박사"는 "조순형씨"의 아버지이죠.
  이곳에서 태어난 "조병옥박사"는 '공주소학교' '연세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당시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박사학위를 받는게 희귀한 때였는데 그것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그의 이름 뒤에는 언제나 박사라는 단어가 따라 다니고 있죠. 박사라기보다는 정치인이었죠?
  '이승만대통령'과 경합하는 야당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였습니다.


  ['조병옥박사 생가'

  [안내문]
 
  일제시대에 능력과 학력이 있는 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변절하여 친일파가 되었죠.
  하지만 "조병옥박사" 많큼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하였죠.
  충청도분들의 대쪽같은 곧은 정신은 수많은 충신들과 독립투사를 배출했죠.
  "조병옥박사"가 1894년생이고 "유관순열사"는 1902년생이니 어쩌면 같은 동네에서 교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승만박사"와 대통령선거에서 붙게된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는데 선거를 앞두고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정권교체를 못하고, "3.15 부정선거"로 이어져 .......
  우리나라의 불행은 "4.19" "5.16"으로... 그리고 오늘날로...


  ['만화교차로' 조망]
 
  "조병옥박사 생가" 앞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
  "홍대용과학관"으로 가야하는데 길안내가 없어 두리번 거렸습니다.
  알고 보니 이 포장도로를 따라 제가 "꽃표시" 한 "만화교차로"로 가야 하더군요.


  ['용두3리 경로당' 통과]
 
  이 지역은 [용두3리]라는 마을인데 경로당을 지나가면 
  "홍대용과학관"으로 가는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길안내를 시작합니다.


  ['용두2교']         12:00
 
  [용두2교]를 지나면


  ['만화교차로']

  [만화교차로]를 만나는데 건너편에 안내판이 보입니다.
  "조병옥박사 생가"에서 "홍대용과학관"으로 가는 길이 궁금했는데
  이곳에는 길안내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만화마을' 입구]          12:01

  [만화마을] 입구에 안내도가 있고 독특한 모양의 고목이 눈길을 끕니다.
  마을로 조금 올라 가면...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올라 가며...    뒤돌아 보면...


  [뒤돌아 본 '조병옥박사 생가']

  "조병옥박사 생가"에서 뒤돌아 보니 지나온 길들과 마을 풍경이 한가롭습니다.
  애국지사 두분을 탄생시키 곳이라 더욱 관심이 갑니다.


  ['삼수처사 유봉석' 기념비]       

  조금 더 올라 가면 "삼수처사 류봉석 기념비"가 있고...


  [고갯길]

  마포를 깔아 놓은 고갯길을 올라 가면....


  [고개 쉼터]          12:09

  쉼터가 있습니다.

 
  [내림길] 

  쉼터를 지나 5분 정도 고개를 넘어 내려 가면...


  [삼거리]          12:14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다시 "병천읍내"와 "은석산" "상봉산" "작성산"이 조망되는군요.


   ['홍대용과학관' 조망]

  남쪽방향으로 가야할 "홍대용과학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기부터는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가 펼쳐지더군요.


  ['장산5리' 버스정류장]           12:20

  골목을 빠져 나가면 [장산5리 버스정류장]과 이정표가 길안내를 하고


  ['홍대용과학관' 조망]

  천문관측대가 있는 돔 모양의 "홍대용과학관"으로 갑니다.
  도로를 따라 10여분 진행하면...


  ['홍대용과학관' 입구]            12:31

  "홍대용과학관"으로 가는 다리를 만나고


  ['홍대용과학관' 입구 다리]

  다리에서 "홍대용과학관"을 바라보며 다리를 건너 가면...


  ['천안 장산리 석불입상']           12:34

  [천안 장산리 석불입상]이 있는데 석불은 너무 홰손되어 볼품이 없었습니다.


  ['홍대용과학관' 입구]           12:35~12:59

  이어서 "홍대용과학관 입구"에 바로 도착합니다.
  여기서 길을 알고 가야 하는데
  "홍대용 생가터"를 가려면 과학관을 관람하고 나와 여기서 직진해야 합니다.
  먼저 과학관으로 들어 갑니다.


  ['홍대용과학관']       

  "천안 홍대용 과학관"
  "담헌 홍대용선생"은 조선시대 최초로 지전설과 지구구형설을 주장한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실학자랍니다.  저는 챙피하게도 처음 들어보는 인물이어서....
  "홍대용선생"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자 생가지 연접지역에 “천안 홍대용과학관”을 개관하고
  800mm 반사망원경과 지름15m 천체투영관, 상설전시관과 과학체험관 등 다양한 시설물을 갖추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높여주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초등 1,000원

 
  ['혼상']                                                    ['소간의']

  앞마당에는 천체관측기 "혼상"과 "소간의"가 있는데....
  '세종대왕' 시절에 만든 국보로 알고 있는데, 영정조 시절의 "홍대용선생"이 만든 것처럼
  이곳에 설치 되 있어 의아합니다.


 
  ['홍대용과학관' 내부]

  "홍대용과학관"은 "홍대용선생"의 기념관이 아니고
  미래의 꿈나무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담헌 홍대용선생'의 위대한 과학사상을  보여주고
  천문과학을 직접 체험하며 무한상상력과 창의력의 나래를 활짝 펼칠 수도록 하는
  "체험관"이더군요. 


  ['홍대용생가터' 조망] 

  과학관을 나와 계단을 내려 가면서 "홍대용선생 생가터"를 볼수 있습니다.
  좌측으로 돌아 "홍대용 생가터"로 가야 합니다.


  ['홍대용생가터']            1:02

  "홍대용선생 생가터"에는 빈 공간만 있었습니다.
  여기서 [천안역사문화둘레길]을 이탈하여 "상당부원군 한명회 묘"로 갑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좋던 나쁘던 우리 역사를 만든 인물이어서 꼭 한번은 찾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조사를 열심히 하여 길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장산1리' 통과]

  "한명회 묘"로 가는 길은 "홍대용 생가터"에서 남쪽방향으로 난 마을길을 따라 가면 되더군요.
  10여분 마을길을 진행하면....


  ['경부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를 만납니다.
  도로를 따라 [경부고속도로] 굴다리 있는 곳으로 가면...


  ['한명회 신도비' 조망]         1:13

  굴다리 앞으로 가면 우측에 "한명회 신도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동안 어디에 있는지 관심도 없었던 "한명회묘"가 "홍대용과학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조사를 하여 찾아 가게 된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인물로만 짐작했는데....


  ['한명회 사당']           1:16

  "淸主韓氏 忠成公 韓明澮 墓"
  "청주 한씨"는 조선왕조에서 왕비를 6명 배출한 가문이죠.
  '태조 이성계'의 첫번째 부인이 "청주 한씨"이죠.
  조선 개국 한해 전에 죽어 왕비가 되진 못했지만 "2대 정종"과 "3대 태종 이방원"이의 어머니여서
  나중에 "신의왕후"로 추존된 여인이 "청주 한씨"로 "태조 이성계"의 첫번째 부인이고...
  "청주 한씨"의 대표주자는 뭐니뭐니해도 천하의 모사꾼 "한명회"죠? ㅎ
  '한명회"의 두 딸들이 "8대 예종"과 "9대 성종"의 왕비가 되었다는 건 
  여러번 언급한바 있어 부연 설명이 필요없어 생략하고...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며 승려이셨던 "한용운" 선생도 '청주 한씨'이고
  근간엔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 "한덕수" "한승수"씨 등이 있고...


  ['한명회 신도비']

  "한명회"
  조선왕조에서 [제6대왕 세조]에서부터 [제7대왕 예종] [제8대왕 성종]까지 3대에 걸쳐
  실제 조선왕조를 쥐락펴락 했던 인물로서 조선왕조실록에 2,300여번이나 등장하죠.
  '세종대왕'의 손자인 [제5대왕 단종]을 폐위하고 정권을 잡는 "계유정란"의 주동자.
  대쪽같은 곧은 정신을 가진 사육신들이 대부분 이곳 충청도 분들인데 그들까지 "살생부"를
  만들어 죽이며 천하를 평정한 [세조]의 인물 [한명회].


  ['한명회 묘']

  "한명회의 부귀영화"는 영원히 이어지지 못하고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까지 당하는 수모를 격었죠.
  그래서 그의 무덤이 없을 줄 알고 관심 밖이었는데
  이곳에 그의 묘가 이렇게 화려하게 남아 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요즘 인물들과 비교 하자면 "최순실"이나 "김기춘"같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그 비열한 모사꾼 "한명회"와는 비교 할순 없고 "한명회"가 몇수 위라고 해야겠죠? ㅎ


  ['한명회 묘'에서 조망]           1:22

  "한명회"의 신도비와 묘비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어 놀랐습니다.
  그리고 "한명회 봉분" 뒤에 "한명회의 부인"인 "여흥 민씨"의 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인의 묘를 좌측 옆에 두는데 이 부부 묘는 특이 합니다.
  그리고 묘 둘레에는 바위로 울타리를 만들어 놨는데 다른 묘에선 보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왕비의 아버지를 "부원군"이라하고 어머니를 "부부인"이라고 하지요.
  얼마전 인터넷을 써핑하다가 '고제희의 역사나들이'라는 글에서 "한명회의 처"가
  현재에 살아 있다면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까..하는 글이 재미있어 소개 해 드림니다.

 
   ['상록리조트'로 가는 산길]

  "상록리조트"로 가는 길은 "한명회 묘" 뒤로 나 있었습니다.

  "한명회의 처, 여흥 민씨가 쓰는 편지" 
  박절하고 불쌍한 여자 여흥 민씨(驪興閔氏)입니다. 
  세상은 저보고 복받은 여자라고 하지만 모르고 하는 말이여요. 저처럼 기구한 팔자도 없을 거여요. 
  저는 압구정(狎鷗亭) 한명회(韓明澮,1415~1487)의 처며, 예종과 성종의 장모입니다. 
  두 딸을 2대에 걸쳐 왕비로 시집 보냈으니 세상의 부귀영화를 모두 누렸다고 생각하겠지요. 
  사실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제 속이 시커멓게 타고 썩는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여요. 
  제 남편은 칠삭둥이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장가를 갔으나 생활능력이 전혀 없는 한량이라 처가 댁에 기대어 살았어요. 
  옛 말에 보리 서말이면 처가살이 안한다고 하는데 이 양반은 하라는 공부는 않하고 
  늘 친구인 권남(權擥)과 돌아만 다녔어요. 한번 집을 나가면 몇 달이나 소식도 끊었어요.
  속이 터졌어요. 그런데 친정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사위는 큰 뜻을 품은 사람이니 나중에 크게 될 것이다.” 
  제기랄! 하지만 남편의 머리는 무지무지 좋았나 봐요. 과거시험 쪽이 아닌 엉뚱한 쪽으로 말이어요. 
  허구한 날 낙방만 하더니 급기야 38살이 되어서 뒷문으로 벼슬에 올라 하급관리가 되었어요. 
  다른 사람은 그 나이에 천하를 호령할 나이가 아니여요. 겨우 개성의 말단관리라니,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겠어요. 그런데요,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어요. 
  어느 날, 수양대군을 만나고 돌아온 남편은 어깨를 으시대며 자랑을 늘어났어요. 
  “여보, 조금만 참아. 내가 호강시켜 줄께.”  저는 위인이 돌았구나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 였어요. 계유정난(1453)인가 뭔가하는 것이 있고, 
  원로대신 김종서가 죽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남편이 1등공신에 봉해진 거여요.
  벼락 출세를 한 거지요. 세상 참 요지경이라 생각했어요. 벼슬도 일 년에 몇 품계씩 
  올라가니 옛날에는 갓끈도 보이지 않던 높은 분들이 뻔질나게 집으로 찾아왔어요. 
  1459년에는 왕의 권한을 대행하는 체찰사까지 지내더니, 급기야 벼슬 길에 들어선 지 
  14년만에 영의정까지 올랐어요. 영의정이 누굽니까? 임금을 빼놓고 가장 높은 분이 아닙니까.
  저 역시 아줌마에서 정경부인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부귀영화를 누렸지요. 
  지금의 압구정동에 ‘압구정’이란 정자를 지어놓고는 중국 사신을 초대해 질펀하게
  놀았어요(압구정동의 지명유래). 저 역시 매일 둥기둥기 춤을 출 정도로 신이 났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마(魔)가 끼기 시작했어요. 
  첫 딸이 예종의 원비로 들어 가, 이제 임금의 장모까지 되는가 싶어 좋아했는데 
  그것이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왕비도 못되고 17살로 죽어버렸어요. 
  사위도 금방 죽었고요. 얼마나 슬프고 원통하던지 마음이 아파 가슴이 다 무너져 내렸어요. 
  그런데 남편의 수완은 보통이 아니 였어요. 둘째 딸을 성종의 원비로 또 들여보낸 거여요. 
  조금은 창피했어요. 두 딸이 왕비가 된 것은 기쁘지만 언니가 시어머니 격이잖아요. 
  오호, 통제라. 그런데 둘째 딸년도 시집가서 얼마 되지 않아 18살로 또 죽었어요. 
  이제 애~헴하고 다리를 뻗고 폼좀 잡아보려했는데, 이게 뭡니까? 두 딸을 잃고 
  저는 완전히 사는 재미를 잃었어요. 
  내가 남편의 욕심을 꺽고서 두 딸을 어느 대감 집 도령에게 시집을 보냈다고 합시다. 
  아마 그렇게 요절하지는 않았을거여요. 자식 낳고 잘 살았을 지도 모르죠. 
  다 부모 잘못 만난 덕에 제 명대로 못살고 죽은 거여요. 흐흐흑. 
  그런데 남편이란 작자는 기고만장했어요.
  '남이장군'의 옥사를 다시린 공으로 큰 상을 받더니, 완전히 벼슬 밭에서 호의호식을 했어요. 
  그러고는 가문의 영광인 ‘기로소’에 들어갔어요. 이는 나라에 공이 있는 관리가 70살이 되면 
  임금이 궤장을 하사하고 한 평생 수고했다는 뜻에서 기로소에 들어갈 자격을 주지요. 
  하지만 평생동안 영화를 누렸던 남편도 세월은 어쩌지 못하고 73세의 나이로 흙으로 돌아갔어요. 
  아이고, 아이고. 
  남편이 죽자, 생전에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남편을 모함하기 시작했어요. 
  꼭 정권을 잃자 과거를 추궁당해 감옥으로 들어간 두 전직 대통령과 마찬가지지 뭐여요. 
  살아 생전에는 남편에게 빌붙어 권력과 부를 누리다가 “끈”이 떨어지자 오히려 남편에게 
  화살을 겨누며 남편의 목을 베라고 목청을 높였어요. 
  권력무상과 인생무상이 느껴지더군요. 
  남편도 처음에는 배신감을 참지 못하고 안압(眼壓)이 높아져 무진 고생을 했어요. 
  일은 계속 잘못 되어갔어요. 아뿔사, 남편이 페비 윤씨가 사약을 받고 죽은 일에 관련이 있다고 하더니, 
  갑자사화 때(1504) 남편은 부관참시를 당했어요. 특히 남편에게 인사청탁을 했던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 
  법조계 인사들이 남편의 목을 베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세상 인심을 원망했어요. 
  소 도둑놈 같은 금부도사가 포졸들을 데리고 오더니 다짜고짜 남편의 무덤을 쪼갰어요. 
  저는 남편의 바로 위쪽에 묻혀있기 때문에 창피는 면했어요. 까무러쳤어요. 
  그들은 썩은 관을 열더니, 반듯이 누워있는 남편의 해골과 가슴 뼈 사이를 시퍼런 칼로 힘껏 그었어요. 
  죽은 자의 목을 자르는 형벌이지요. 
  아! 박절한 내 신세. 
  저와 남편은 지금 충남 천안에 있어요. 593번 국도와 경부고속도로가 만나는 바로 그 지점이어요. 
  목천인터체인지를 지나 청주 방면으로 약 2~3km를 달리면 왼쪽으로 근사한 사당과 큼직한 묘가
  보일 거여요. 그곳이 우리가 사는 집이여요. 그런데 몇 년전까지도 후손들이 우리를 돌보지 않았어요. 
  그래서 못된 놈들이 와 남편의 신도비를 그라인더로 힘껏 갈아 망가트렸어요. 
  버젓이 두 눈을 뜨고 당하자니 열 불이 나더군요. 그런데 TV라는 놈이 대단히 신통해요. 
  '한명회’라는 연속극이 방영되더니 대접이 확 달라졌어요. 
  청주 한씨들이 힘을 모아 사당을 짓고 묘 앞을 가렸던 나무와 풀숲도 없애 버렸어요.
  이제야 영의정에 걸맛는 대우를 받은 셈이지요. 
  여러분, 남편을 너무 욕하지 마세요. 모두들 단종을 감싸며 세조와 더불어 남편을 싸잡아 욕하지만, 
  세조가 펼친 국력신장과 치적을 생각하면 어린 단종으론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당시에 의정부에 모인 집현전 학자들은 마치 왕처럼 무지하게 설쳐댔어요. 
  어린 단종을 깔보고는 자기들이 국정을 총괄한다고 주장해 나라 꼴이 우스웠지요. 
  세조는 나약한 왕권을 다시 일으키고자 와신상담을 하였고,   
  남편이 총대를 메고 나라도 붙잡고 왕권도 다시 세워준 것이지요. 
  ‘성공한 구테타는 처벌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가, 국민 여론이 들끓자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을 내세워 자기를 정치적으로 키워준 대통령을 백담사와 감옥으로 보낸 의리없는 
  대통령을 둔 후손들은 정령 이해 못할 일이지요. 
  아, 이제 잠을 좀 자야겠어요. 경부고속도로를 다니시는 분들께 삼가 부탁 말씀을 드리겠어요. 
  제발 저희 집 앞에서는 서행, 서행하세요. 잠 좀 잡시다. 
  파주에 있는 딸년들은 어떻게 5백년이 넘도록 편지 한 장이 없는거야.


  ['113.9m봉']          1:28

  "한명회 묘"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어디로 가는게 좋을지 길을 조사해 봤습니다.
  이 산은 "상록리조트" 뒷산이니 등산로가 있을거라고 예상하고 갔는데 예상대로 "한명회 묘" 뒤로 등산로가
  나 있었습니다. "한명회 묘"에서 6분 정도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지도상에 "113.9m봉"을 만나는데
  등산로는 직진해 갑니다만, 좌측으로 가 보니...


  ['상록리조트 전망대']         1:29

  팔각정이 보이는데 알고 보니 "상록리조트"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전망대였습니다.
  길이 없어져 울타리를 자세히 보니 구명이 뻥 뚫려 있었습니다.
  뻥 뚫린 구멍을 통과해 들어가면


  ['상록리조트' 조망]

  "상록리조트" 전경이 펼쳐지며, "은석산""작성산"과 "병천읍내"가 조망됩니다.


  ['상록리조트']          1:40

  "상록리조트"를 통과하며 좌측 후문 쪽으로 잠시 내려 가면....


  ['상록리조트' 후문]          1:42

  "상록리조트 후문"을 통과하고


  [버스정류장]

  이어서 "상록리조트 후문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답사를 마치고 [500번 시내버스]를 타고
  "병천"으로 가 다시 [400번 시내버스]로 환승하여 [천안역]으로 가서 [1호선전철]로 귀가했습니다.
  스마트폰에선 "박근혜대통령 파면"이라는 소식이 계속해서 전해 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안에서 "잔치국수" 한그릇 사먹고..ㅎㅎ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노란색으로 표기된 트랙이며 GPS로 측정하여 10.4km였으며 
  3시간 5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빨간색으로 표기된 트랙은 지난주 "은석산 박문수어사 묘" 답사 트랙입니다. 
  

           사람들에게 ' + '를 보여 주면...
  
            수학자는 플러스 덧셈이라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합니다.
            목사는 십자가라고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 라고.
            간호사는 적십자라고 하고 
            약사는 녹십자라고 대답합니다.
  
            모두가 다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다른사람이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를) 뿐 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늘 ~ 이해의 대상입니다.

           - 요즘 세상을 바라보는 파란문의 시각입니다 -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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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암산』
     『불암폭포-일자바위를 찾아서』 


  ['산행 지도']                        
  
  <당고개역>에서 출발하여 <상계철쭉동산><넓은광장>을 지나 <경수사>와 <불암폭포>를 보고
  <천보사> 입구를 지나 <폭포약수쉼터>에서 쉬고 다시 올라 <360.8m봉> 아래에 있는
  <일자바위>를 찾아 보고 <상계역>으로 하산 합니다.
  


  ['당고개역']           11:22      
  2022년 10월 20일 목요일 맑음       
  <불암산>에 <불암폭포>가 어디에 있는지, 실제 있는지, 그리고 <일자바위>를 찾아 나섭니다.
  <4호선 당고개역 1번출입구>에서 출발하여



  ['사거리' 방향]                       
  역앞사거리 방향으로 나가면 <불암산>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철쭉동산' 방향]            11:23      . 
  역앞사거리에서 건너편 우측에 있는 <경희한의원> 골목으로 들어가서
  5분 정도 골목의 너른 골목 만을 따라 직진하면
 


  ['상계 나드리 철쭉동산']            

  [입구]              11:28            
  "상계 나드리 철쭉동산"을 만납니다.
  이곳은 <서울둘레길 1코스>가 지나는 곳이기도 하죠.
  


  ['불암산 등산코스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고 한번 더 클릭하면 엄청 확대됩니다 ★   .
  <현위치>와 <불암산등산로>를 참고하고 <철쭉동산> 안으로 들어 가면...
  


  ['산머루산다래 암장' 조망]             11:30               
  정면에 봉우리 하나가 보이는데, 저 봉우리가 암벽등반가들에게 인기 있다는
  "산머루산다래 암장"이 있는 봉우리입니다.
  <일자바위>는 저 봉우리 뒷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정상 봉우리에 있었습니다.
  


  ['서울둘레길 스탬프함']               11:31       
  이어서 <서울둘레길1코스> 안내도가 있으며, <스탬프함>이 우체통처럼 서 있습니다.



  [ 다리]        
 <서울둘레길>을 따라 가면 다리를 하나 건너게 되는데
 이 계곡물이 <불암폭포>에서 흘러 내리는 계곡천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계곡을 따라 산행을 하게 됩니다.




  ['넓은광장']              11:37       
  이어서 <넓은광장>이라는 주민들의 체력증진 시설을 만나며
  앞에 보이는 화장실 우측 옆으로 가면....



  ['경수사' 입구]             11:37      
  <천보사>와 <경수사>로 올라 가는 입구를 만나는데
  이 도로를 따라 올라 갑니다.




  [등산로 입구]                11:41      
  입구에서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4분 정도 올라 가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일자바위>와 <불암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였습니다.
  먼저 "불암폭포"가 있는 "경수사"를 다녀 와서 우측으로 산행을 시작하도록합니다.
  


  ['경수사']

  ['불암폭포']                     
  "경수사 鏡水寺"는 글자 그대로 '맑은 거울같은 물이 흐르는 곳에 있는 절'이라는 뜻일테고
  <경수사>로 쏱아져 내리는 "불암폭포"는 <불암산>의 대표 폭포라 하는데,
  이 폭포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더군요. <경수폭포>라고도 한다는군요.
  여름철 우기에만 폭포다운 위용을 발휘하는 폭포이기에 요즘같은 가을엔 폭포는 보이지 않습니다.
  


  [등산로 입구]            11:45       
  <경수사>와 <불암폭포>를 둘러 보고 다시 정문으로 나와 <등산로>로 계단을 올라 가면...
    


  [등산로 합류]            11:46        
  바로 주 등산로와 합류하고
    

 

  [오름길]                         
 꽤 가파른 오름길을 10여분 올라 갑니다.
 주 등산로는 불편함 없도록 계단과 가드레일로 단장되 있어 좋은 등산로라 할수 있겠습니다.
 요즘같은 가을이면 산객들로 붐비는 <불암산>인데도 이곳은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사람 만나기가
 어려웠는데, 조용한 힐링산행을 원하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10여분 오름짓을 하면....
 


  ['천보사' 입구]               11:56                  
  <돌탑>과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직진길은 <천보사>로 올라 가는 길이고, 
  <불암산 정상>과 <일자바위>로 가려면 <←등산로> 안내판이 있으니 좌측길로 가야하더군요.
    
 


  [오름길]              
  <불암폭포>의 상부 개천이 이어지며 깊어가는 가을 풍광을 물씬 풍기기 시작하는 계곡을 따라
  10여분 더 올라 갑니다.
  


  ['폭포약수터']               12:06          
  그러면 "폭포약수 쉼터"를 만납니다.

 

  [이정표]                          
  <폭포약수 쉼터> 입구에 이정표가 있는데
  우측 <불암산 정상 1.2km→> 방향에 <폭포쉼터>와 <폭포약수터>가 있는데, 하산 할때는 이 길로
  내려 올 예정인데, <등산로 데크설치공사>로 이 달 말까지 폐쇄한다고 막아 놨습니다.
  
  <일자바위>로 가려면 좌측 <←0.3km 통일약수> 방향으로 올라 갑니다.



  ['폭포약수 쉼터']          12:07~12:27    
  <폭포약수 쉼터>에서 20여분 쉬었다 갑니다.
  
  그런데 내려 올때 보니까 이 구간에도 공사는 없었으며, 공사구간은 <불암산 정상 부근>이었는데
  여기서부터 길을 막아 놨더군요. 미리미리 알려 주려고? ㅎ
  

 
 
  [오름길]            
  <폭포약수 쉼터>에서 부턴 계단은 없고 흙길 능선이 이어지는데,
  다시 15여분 더 올라 가면....


                
  [바위]             12:38~12:42      
  능선길에서 처음으로 엄청 큰 바위를 만납니다.
  여기에 <일자바위>가 있는지 주변을 둘러 보았는데 없었고
  
  다시 30m쯤 더 올라 가면...
  


  ['일자바위' 앞]           12:43   
  <360.8m봉> 정상으로 오르는 곳 좌측에 <일자바위>가 있는데 
  관심 가지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겠더군요.
  좌측으로 나가면....
  


  ['일자바위']                
  자연이 만들어 놓은 조각품 "일자바위 一字岩"이 땀 흘리며 오른 산객에게 즐거움을 선사 합니다.
  바위 뒤에 동굴이 보여 가 보면...
 


  ['원장실']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내리면 좋은 도피처가 될듯....
  누군가 <원장실>이라고 낙서를 해 놨고..



  [뒤에서 본 '일자바위']        
  굴 밖으로 나가 뒤돌아 본 <일자바위>는 너무 볼품없어서 실망하고
  다시 <일자바위> 앞으로 나가서
  


  ['360.8m봉' 오름길]             12:52         
  <360.8m봉> 정상으로 오르는 암벽을 5분여 올라 가면...
 


  ['360.8m봉' 정상]            12:57~1:10       
  "360.8m봉 정상"에 오릅니다.
  여기서 조망을 하면...
  


  ['북한산' 조망]       
  올라 온 방향인 서쪽을 먼저 바라 보면 <북한산>이 눈에 들어 오고
  <도봉구>와 <노원구>가 펼쳐 집니다.



  ['도봉산' 조망]      
  서북쪽으로는 <도봉산>이 보이고
  


  ['수락산' 조망]                      
  북쪽으로는 <수락산>이 조망됩니다.
  특히, 지난번에 탐사했던 <도솔봉> 아래 "용굴암 龍窟庵""학림사 鶴林寺"가 잘 보입니다.
  <명성황후>가 <임오군란> 때에 생사를 걸고 올라 도피했던 <용굴암>의 위치가 절묘하게 보이는군요. 
  사진의 한계로 멀리 보이는 <용굴암>을 줌인 해 보면....



  ['용굴암' 줌인]       
  지금은 절간의 모양을 갖춘 제법 큰 <용굴암>이지만, 
  <임오군란> 당시엔 <수락산 도솔봉> 정상 부근 어느 암벽에 뚫린 자연동굴 뿐이었으니
  <명성황후>의 도피처로는 안성맞춤이었겠습니다. 
  그러나 저곳도 불안 해서 <여주><장호원><양평>등으로 51일간의 피난살이가 이어졌죠.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신 분들은 제가 얼마전에 쓴 
  " [수락산] 덕흥대원군묘-도솔봉-용굴암-학림사" 여기 클릭 참고하세요



  ['불암산 정상' 조망]

  ['불암산성' 조망]                        
  동쪽으로는 잠시후 오를 <불암산 정상>이 가까이 조망되고
  동남쪽으로는 <불암산성>이 있는 봉우리도 조망됩니다.
    

 
  [정상 방향]                   
  <360.8m봉>에서 <불암산 정상> 방향으로 5분 정도 진행하면....
  


  [삼거리]            1:16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그런데 조금전 <폭포약수 쉼터>에서 봤던 <등산로 폐쇄>는 실제 이곳부터였습니다.
  조금만 오르면 <불암산 정상>인데 <등산로 데크 설치공사>로 완벽하게 막아 놨으며
  앞에서는 공사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2022년 10월말까지 공사를 한답니다.
  
  오늘 예정으로는 <불암산 정상>을 오르고 <학도암장 약수터>와 <학도암>을 거쳐 하산하려고 했으나
  더 이상 진행이 어려워 우측 계곡을 따라 <폭포약수터>방향으로 하산 하기로 합니다.
  

 
  [내림길]                
  계곡을 따라 10여분 내려 가면...
    


  [삼거리]              1:26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석장봉>을 경유해 <불암산 정상>으로 바로 올라 가는 길과
  조금전 <일자바위>가 있는 능선으로 올라 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더군요.
   

 
  [내림길]                  
  <경수사 불암폭포>로 가는 계곡을 8분 정도 더 내려 가면...
    


  ['폭포약수']              1:34                    
  "폭포약수터"를 만납니다.
  바위 틈에서 제법 풍부한 물이 계속 나오는데 <음용 불가>더군요.
 


  ['폭포약수 쉼터']                 
  <폭포약수터> 바로 아래엔 올라 갈때 쉬어 갔던 쉼터와 배드민튼장이 있고....
    
 
 
  [내림길]          
  올라 갈때 걸었던 길을 다시 만나 17분여 내려 가면...



  ['경수사' 갈림길]               1:51              
  <경수사 갈림길>을 다시 만나는데, 
  이번엔 <경수사>로 들어 가지 않고 정규 등산로를 따라 직진해 내려 갑니다.
  잠시 내려 가면...
  
 
 

  ['상계약수터']          1:54~2:06       
  "상계약수터"를 만나는데 약수터와 운동시설등이 있었습니다.
  이곳 약수는 <음용가능>이더군요. 여기서 좀 쉬고....
  
  약수터 좌측으로 4분여 내려 가면
  


  ['넓은광장']              2:10       
  <경수사 입구>에 있는 <넓은광장>을 다시 만나는데 <서울둘레길>이 지나는 곳입니다.
 

 
  ['서울둘레길']                    
  <서울둘레길>을 12분 진행하면...
  


  ['상계역' 갈림길]               2:22         
  <상계역 갈림길>을 만나는데, 여기서 우회전하여 <상계역>으로 하산합니다.
  


  [내림길]           
  6분여 내림길을 내려 가면....
  



  ['불암산공원']            2:28  
  "불암산공원"을 만나더군요.



  ['상계아파트단지']

  ['상계역']                2:40            
  아파트단지를 통과하여 "상계역"에서 산행을 마치고 귀가 했습니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약6km 였으며, 3시간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불암폭포>와 <일자바위>를 찾아 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했으며
  깊어 가는 가을 속에서 시원하게 보낸 간단 산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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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저산 산행기』  
 『장흥 천관산』"天子의 冕旒冠을 쓴 天冠山을 가다"
     

     天子의 冕旒冠을 쓴 天冠山을 가다
          王도 王 나름이고 王冠도 王冠 나름입니다
          王冠의 챙에 다는 진귀한 보석류의 구슬을 旒(류)라 하는데
          한줄의 旒(류)에는 12개의 旒(류)를  꿰어 달아 한줄을 만들고
          다시 그러한 旒(류) 12줄을 王冠에 메달아 놓은 관이 冕旒冠이라죠.
          王 中에 王이 쓰는 冠이라 皇帝가 주로 冕旒冠을 썼습니다만,
          우리들은 주로 玉皇上帝, 즉 하느님이 쓰는 王冠을 冕旒冠이라 말한답니다
          제가 산행기의 서두부터 거창하게 冕旒冠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를 어림 짐작하시겠죠?
          무슨 표현으로 이 산에 대한 山行記를 장식 해야 할지 몰라서
          이 산의 이름에서부터라도 풀어 나가려는 실마리를 찾아 보기 위해서 이람니다
          "天冠山"
          冠岳山이 王冠을 썼다면, 天冠山은 분명 冕旒冠을 쓴 神山이 분명하다고 느꼈습니다
     
     [천관산이 있는 곳]
     천관산은 전라남도 장흥군에 위치하고 있으며
     늘푸른 南海의 多島海를 바라 보며 우뚝 서 
     그 위용을 태평양 건너 멀리 멀리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난~支提靈山-天冠山이다~~!!"
     
     [호텔]
     산행기에 처음부터 왠 호텔 사진이냐구요? ㅎㅎ
     이번 산행은 고교 교우회의 "徽山會"와 세번째 함께하는 山行입니다만
     전남 장흥에 있는 "천관산"이라 서울에선 너무 먼 거리에 있어서
     1박 2일 코스로 산행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어떤 형태로던 길 떠나는 나그네에겐 하룻밤을 묵은 旅館은 추억에 남습니다
     이름 모를 객지에서 하룻밤을 그것도 고교 선후배 교우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크나큰 색다른 즐거움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후배 교우들이 떼를 지어 하룻밤을 묵은 호텔을 첫면에 올리는 것입니다
     다른 학교 나오신 분들도 충분히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도착했습니다
     
     하룻밤을 묵고 일어나니 눈앞에 펼쳐지는 남해 바다가 우릴 더욱 반기는 듯합니다
     호텔은 지방의 호텔치고는 제법 그럴듯한 규모를 자랑하며
     밤새 마시고 마신 선후배들 간의 친목酒로 떠지지 않는 눈 
     상큼한 바닷바람과 햇살이 사정없이 기상 나팔을 불어 어쩔수 없이 일어났습니다
     
     요즈음 일교차가 너무 커 안개가 많이 낌니다만
     희뿌연 안개를 뚤고 태양은 솟아 오르는데
     여기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남쪽 나라가 맞는지.....
     매일 어느 곳에서나 뜨는 태양이지만, 남쪽 나라 바닷가에서 맞는 日出은 새로웠습니다
     
     13층짜리 호텔의 9층에서 내려다 보는 광경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곳이 전남 보성의 어느 해변이라는 것 이외에는
     저는 아직까지도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어느 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는 것이 더 큰 추억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호텔 뒷쪽에는 터널도 있고, 관광객을 유혹하는 펜션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시설은 잘 해 놨는데....비수기엔 손님이 너무 없어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지난 밤에 생긴 일]
     지난 밤에는.......??   ㅎㅎ
     밤 늦게 도착하여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는 와중에도
     교우들간의 "친목행위"는 주님을 모시고 밤새는 즐 모르며 성대히 거행 됬습니다
     어떻던 많은 교우들과 호텔앞 해변 벤치에서 라면을 끓이고 꽁치를 구으며
     이런 저런 얘기와 "천관산"과 장흥이 배출한 인물들 얘기로 
     다음날 뜻깊은 천관산 산행 준비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밤에 생긴 일
     非酒流派는 가고 
     酒流派는  다시 호텔 방안으로 옮겨 酒流와의 투쟁은 끈질기게 계속되었습니다
     이 바람에 저는 천관산 산행을 고생스럽게 했습니다. ㅎㅎ
     
     [아침식사후 호텔 라운지
     호텔에서 준비한 아침 식사를 마친후 호텔 라운지에서 천관산 산행을 준비하며
     안개 속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南海를 바라 보며 커피 한잔씩....캬~~
     커피인데도 캬~~!! 소리가 나더군요 ㅎ
     
     점심 도시락을 지급 받은 산객들은 전남 장흥에 있는 "천관산"으로 출발합니다
     호텔에서 천관산까지 제법 긴 시간을 달리더군요
     
     [장흥군 관산면 소재 '천관산' 주차장]
     준비운동을 하며 산행 준비를 합니다
     주차장은 넓은 편이었으며 여러 편의 시설이 잘 되있었습니다
     
     기념 촬영을 하고 .....
     
     천관산을 감상하기 위해 산행 들머리로 들어 갑니다
     아주 멀리 가운데 맨 마지막 희미하게 뾰쪽 나온 봉우리가 大勢峰입니다
     
     [천관산 산행 약
     
     [천관산 산행 개념도]
     위 개념도의 아래 우측에 있는 [정안사]를 시간 관계상 다녀 오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번 천관산 산행시에 최우선으로 들리려고 했던 곳입니다만
     불행이도 직접 다녀 오지 못해 지금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산행을 하며 설명 드림니다
     
     [호남제일지제영산]
     湖南第一支提靈山 
     들머리 부터 뭔가 대단한 느낌을 주며 우릴 반기니 오를 생각으로 가슴 설래였습니다
     지리산과 내장산, 월출산, 변산과 더불어
     湖南地方에선 5대 명산에 속한다는 천관산은 支提靈山이라고도 불리워진답니다
     
     支提山은 佛書 화엄경에서 '天冠보살이 머무른 곳'이라하는데서 연유하였다고 합니다
     과연 天冠山에 天冠보살이 머무르는 곳인지 오늘 확실히 알아 보기 위해
     지난밤 마신 酒님으로 움직이지 않는 발걸음이지만 支提靈山-天冠山으로 발길을 재촉합니다
     
     [위석규선생 유허비]
     장흥 魏氏 家門의 독립투사 덕암 위석규 선생(德庵 魏錫珪, 1878∼1913)의 遺墟碑가 나옵니다
     遺墟地에는 '德庵魏錫珪先生遺墟碑(덕암위석규선생유허비)'와 義烈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독립투사 德庵 魏錫珪선생에 대해선 저쪽 비석에 쓰여있는 글의 내용으로 간단하게 갈음합니다만
     평생을 독립운동으로 살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사라져 간 선생의 뜻을 기리고 또 기려야겠습니다
     '짐승(倭)이 사람의 영토를 침탈하니 장차 모두 죽겠도다. 슬프다, 
     吾國(오국)이 盜獸(도수)들의 擄掠(노략)으로 國家(국가)가 存亡之秋(존망지추)에 다달아 
     백성이 盡滅(진멸)케 되었으니 우리들은 팔을 걷어 주먹을 쥐고 
     踊躍奮鬪(용약분투) 萬死一生(만사일생)의 각오로 이 領土(영토)를 지키자. 
     사람이 비록 사소한 일이라도 大義(대의)를 따르면 사람이요, 
     私慾(사욕)을 취하면 禽獸(금수)라. 항차 이런 일임에랴! 
     古今(고금)을 莫論(막론)하고 국난을 당하여 國家社稷(국가사직)을 붙잡을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義憤慷慨(의분강개)하여 일어서면 모두가 이룰 수 있는 것이다.
     -1906 독립전선에 투신하면서
     친일파들과 그 자손들이 아직까지도 당시 친일 행위를 정당화 하려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상황으로는 어쩔수 없었다". 
     "지금의 당신이라도 그때였다면 친일행위를 하지 않을수 없었을 것이다"
     "왜 나만 갖고 그래~!!?. 그때 부정축재한 재산 내 놓을 수도 없고 뺏어 간거 도로 내줘~~!!"
     이런 괘변을 백범 김구선생이 들으면 뭐라고 할까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며 산화해간 안중근의사가 들으면...
     유관순 누나의 만세운동은 한낱 부질없는 촛불시위 정도이었겠습니까?
     만해 한용운선생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소리입니다
     부유한 가정을 송두리째 갖다 바치며 목숨을 걸고 싸우다 사라져간 김좌진장군이 들으면 
     통곡을 하며, 그런 친일파 후손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시지 않을까요
     " 너희들은, 자존심도 자긍심도 없냐? 쪽바리가 그렇게 좋으면 외놈으로 국적을 바꾸라"
     "왜? 이 땅에서 아직도 살고 있냐? !!"
     
     [영월정]
     최근에 새로 지은 듯한 영월정이 산행의 들머리이자 날머리입니다
     오른쪽으로 올라 왼쪽으로 내려 옵니다
     
     [금강굴 코스]
     우리는 금강굴 코스로 가며 대부분의 천관산 내방객들은 이 코스를 이용합니
     湖南地方의 기준은 어디를 말하는가?
     분명히 "湖"의 南쪽인것은 틀림없는데 그 "湖"는 어디인가?
     아시는 분을 아직까지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택리지, 신동국여지승람, 산경표, 대동여지도등 여러 문헌을 찾아 봤지만
     확실한 해답은 얻지 못했으나 몇가지 說은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첫번째 說이 김제의 "벽골제"를 가리킨다고 하며, 이  '벽골제'를  기준으로
     남쪽으로는 湖南地方, 서쪽으로는 湖西地方으로 한다는 군요.
     두번째 說은 錦江을 하나의 로 보고 錦江의 南쪽湖南地方이라 한다는군요
     이렇다면 충청도의 일부도 湖南地方이 되는 것입니다
     
     [長川齋와 太古松]
     長川齋는 이 고장이 배출한 인물 중에 조선후기 실학자인 
     존재 위백규(存齋 魏伯珪, 1727~1798)선생이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다는 곳입니다. 書堂인 셈이죠
     長川齋는 현재 대대적인 보수공사 중이어서 들어 가 볼수 없었으며, 들어 가도 볼것은 없을듯합니다
     
     [長川齋와 太古松]
     600여년의 풍상을 거치며 흐르는 세월을 몸소 느끼며 살아 왔을 소나무는
     아직도 젊음을 짱짱하게 유지하고 있는듯하며 한순간을 위해 이 산을 오르는 우리들에게
     좀더 멀리, 좀더 크게, 좀더 자세히 천관산을 보고 가거라 !!~~라고 하는 듯합니다
     
     長川齋를 지나 체육공원으로 오르는 길은 잘 꾸며진 공원이었습니다
     長川齋는 이곳 옆의 개천이 '長川'이라 존재 위덕규선생이 붙인 이름이라 하며
     長川齋 앞 계곡에 가로놓인 장천교를 건너 아름드리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 長川 약 백미터에 이르는 계곡은 위백규선생이 長川八景이라 명명한 장천동이랍니다. 
     장천팔경에는 청풍담(淸風潭), 백설뢰(白雪瀨), 도화량(桃花梁), 세이담(洗耳潭), 명봉대(鳴鳳臺), 
     추월담(秋月潭), 청령뢰(淸靈瀨), 와룡홍(臥龍弘) 등이 있다고 하는데 
     단체 산행의 바쁜 일정으로 하나 하나 확인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체육공원]
     누구를 위한 체육시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체육시설을 해 놓은 공원이 있습니다
     이곳엔 "冬柏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자생하고 있더군요
     겨울에 피는 꽃이라 冬柏이라면, 지금은 秋栢이겠군요
     
     '체육공원'을 지나 다리를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 산행이 시작됩니다
     빠른 산행을 하는 교우들을 따라 가기 위해선 서둘러야 합니다
     이런 저런 것들을 자세히 관찰해도 집에 돌아 와 산행기를 쓸때엔 아쉬운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단체 산행으로 시간에 쫒기며 하는 산행은 피하고 
     홀가분하게 여유있게 산을 배우며 느끼며 하는 홀로 산행을 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관산' 같이 너무 멀리 있어 '나 홀로 산행'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과 경비가 들어
     이런 경우엔 이런 저런 산악회를 따라 다닙니다
     
     [쉼터]
     땀이 나고 숨이 조금 차기 시작하니 쉼터가 나왔습니다
     이럴때 쯤에는 언제나 묘하게도 이런 쉼터가 나오지요
     
     [쉼터]
     교우회의 7자 기수들을 따라 잡았습니다
     7자 기수들이 제일 아래 기수인데 언제나 맨뒤에서 꼬리부분을 만들고 있으며
     선배님들이 오히려 선두에서 산행을 더욱 힘차게 합니다.
     이들은 선배들을 보호 하며 산행을 해서인지, 힘들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7자 기수들은 요즘 8자 기수들이 新兵으로 참여한다고 즐거워 하는지, 세월을 탓하는지...??ㅎㅎ
     
     오르막은 계속됩니다
     
     [선인봉]
     조금 오르니 이 능선의 첫번째 봉우리인 "선인봉"이 
     '나 여기 있노라~!!'하며 날카로운 자태를 드러 냅니다
     
     [선인봉]의 옆구리로 선인봉을 오릅니다
     선인봉은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선인봉]의 옆구리로 선인봉을 오릅니다
          
          [선인봉]
          선인봉을 올라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선인봉을 이루고 있는 바위 중에 하나]
     
     [선인봉]
     왜 선인봉이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모양이 그럴듯합니다.
     仙人을 말하는거겠죠?
     
     '선인봉'을 지나니, 앙상한 나무가지 사이로 이상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풍광이
     금강산의 산수화를 보는듯 瑞氣가 느껴지기 까지 합니다
     안개 속에 나타나는 奇岩怪石
     저 奇岩怪石으로 아홉개의 봉우리를 만들어 天冠山의 秘景을 만들어 낸답니다
     
     奇岩怪石으로 이루어진 천관산의 봉우리들이
     정말로 天冠을 쓴듯,  冕旒冠을 쓴듯 장업하게 다가 옵니다
     이곳에서 바라 보는 天冠山이 가장 冕旒冠에 가깝게 보입니다
     이 사진을 잘 기억하시기 바람니다
     
     이름 모를 봉우리가 나타났습니다
     이런 정도의 岩峰은 천관산에선 이름조차 없습니다
   
     와~우!!~~
     저도 우리나라의 이런 저런 산들을 많이 다녀 보았다고 자부하는 자칭 산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멋진 산이 이런 곳에 있을 줄은 정말 까맣게 몰랐습니다
     어떠십니까?
     바로 앞에 있는 암봉은 이름도 없는 봉우리이고
     바로 그 뒤의 암봉이 금강굴이 있는 鐘峰입니다
     이 코스가 금강굴 코스라고 이름 붙여졌으니 鐘峰은 기억해 둬야겠죠?
     종봉의 바로 뒤가 노승봉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보이는 날카로운 봉우리가 大勢峰입니다
     이곳에서 '금강굴 코스'의 모든 암봉이 보이는군요. 아름답습니다
     
     大勢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있는 능선에도 멋진 봉우리들이 우리를 부름니다
     시간 관계상 모든 곳을 가지 못해 아쉽습니다
      저 능선에 선재봉, 관음봉, 신상봉, 홀봉, 삼신봉 등 다섯개의 봉우리가 있답니다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봤습니다
     선인봉이 이제는 오히려 초라한 모습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지나온 선인봉을 뒤 돌아보니 장흥군 관산읍과 관산평야가 눈아래로 펼쳐지고, 
     그 너머로는 제암산에서 사자산을 지나 일림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이 유장하게 뻗어나가는데
     오늘은 안개로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이는군요. 
     오늘 산행에 최대 아쉬움이 안개로 주변 경관을 촬영하지 못한것입니다
          
          [금강굴]
          鐘峰 아래에 있는 '금강굴'에는 약수가 나왔습니다.
          바위로만 이루어진 岩峰에 샘물이 있다는 것은 기이한 일입니다
          그래서 지나는 산객들은 한모금이라도 마셔 보려고 길게 줄을 섰습니다
          
          [金剛窟]
          금강굴(金剛窟)의 천정에서는 물이 병아리 눈물 많큼씩 떨어져 '샘'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이 깊이 들어가 조금씩 퍼 올려야 한모금 마실수 있어서인지 행렬은 줄지 않았습니다
          이 샘물은 인간 보다도 날짐승과 들짐승들에게 더 유용할텐데...그들이 마셔야 할텐데...
          베낭에 물을 가득 가지고 다니는 인간들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물론 저도 욕심 많은 놈 중에 하나였습니다
      
     초라한 표지판이 [鐘峰]임을 알리고 있으며
     계단을 이용해 鐘峰을 오릅니다
     
     [鐘峰]
     鐘峰에 올라 鐘을 찾아 보았는데 이것이 鐘을 의미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바위들은 제각각 자신의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鐘峰]뒤에서 내려다 본 [선인봉]
     봉우리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 멀리 보이기도 하고 가까이 보이기도 합니다
     
     [老僧峰]
     鐘峰 다음 봉우리가 老僧峰입니다.
     저는 老僧과 젊은 僧이 함께 '관세음보살나무아미타불'을 외고 있는듯합니다
     마주보고 목탁을 치고 있는것 같죠?
     
     [鐘峰]에서 줌인하여 올려다 본 [大勢峰]
     우측 바로 앞이 [老僧峰]이고 가운데 하늘을 찌를듯 솟아 있는 봉우리가 大勢峰입니다
     그리고 좌측의 봉우리가 [문수보살봉]이랍니다
     주차장에서 멀리 보였던 봉우리가 이 大勢峰이었던 것입니다
     천관산 冕旒冠의 하일라이트라 생각되는 봉우리입니다
          
          老僧峰 옆구리를 돌아 大勢峰으로 올라 갑니다
          이곳은 암벽이라 계단을 설치해 놨더군요
          무릉도원을 가는 듯....
          玉皇上帝가 사는 天上으로 가는 듯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천관산에서 느낀 '가장 천관산 다운 광경'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大勢峰은 분명히  冕旒冠 같았고, 가는 길은 天上路였습니다
     
     [大勢峰
     관악산의 왕관바위와는 비교됩니다
     물론 천관산의 모든 봉우리를 합쳐 冕旒冠이라 했겠지만, 
     어느 봉우리를 冕旒冠으로 칭할려는지 꼭 하나를 꼽으라면 大勢峰이라고 하고싶습니다
     大勢峰 아래 갈림길에 왔습니다
     이곳에서 바로 좌측으로 가면 天柱峰에 빨리 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직진하여 사진에 멀리 보이는 두사람이 서있는 곳 大勢峰과 [善才峰] 사이로 
     넘어가 빙 둘러 가면 엄청나게 아름다운 천관산의 山勢를 볼수 있으니, 힘 들드라도 넘어야 합니다
     
     大勢峰과 [善才峰]을 다른 각도에서 촬영했습니다
     大勢峰과 [善才峰] 가운데 두사람 서 있는 곳 보이시죠?
     꼭 저 고개를 올라가 善才峰 능선 아래에 있는 "天冠寺"도 내려다 보고
     大勢峰을 좌측에 끼고 빙 돌아 나가세요
     
     大勢峰과 [善才峰] 사이의 고개에 올랐습니다
     암벽들이 잡아 먹을 듯 보이지만 위험하지 않으니 안심 하세요~ ㅎㅎ
     
     [大勢峰
     멀리서 그렇게 神秘한 冕旒冠처럼 보였던 大勢峰도 가까이서 보니
     하나의 암벽일 뿐이군요...에구~ 허무해라~~
     에구~ 사는게 그렇고 그런기니끼~~그래도 '大勢峰'에 올랐습니다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1시간 40분정도 걸렸으니 제법 먼 거리입니다
     
     [선재봉(善才峰)]
     이 봉우리 이름 선재봉은 정확한 이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선재봉이라 부르더군요. 맞을겁니다
     이 능선에는 선재봉(善才峰)과 관음봉(觀音峰), 신상봉(神象峰), 홀봉(笏峰), 
     삼신봉(三神峰) 등 다섯 개의 암봉이 차례로 솟아 있다고 하며 끝에 "천관사"가 있다고 합니다
     지척 거리인데도 오늘은 안개 때문에 사진 촬영을 못했습니다
     
     善才峰에서 내려다 본 지나온 봉우리들
     노승봉, 종봉, 선인봉이 줄을 서서 능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른쪽 능선이 {金水窟]이 있는 금수능선입니다
     
     善才峰에서 대세봉 사이의 고개
     저의 일행들- 특히 후배들이 올라와 이제부터 함께 하산 할때까지 같이 산행을 하게 됩니다
     
     대세봉을 왼쪽에 끼고 고개를 넘어 돌아 나아가니
     건너편 능선에서 새로운 天冠山이 우리 앞을 가로 막고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김유신 장군의 첫사랑 "천관녀"를 들어 보신 분들이 많으실겁니다
     "삼국사기" 위인열전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김유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에
     "천관녀"가 등장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 "천관녀"
     그녀는 정말 천관산으로 가 "천관보살"이 되었을까?
     대세봉 뒤로 또다시 펼쳐지는 동양화 같은 풍경이라면 그녀는 틀림없이
     날개 달린 백마를 타고 "천관산" 여기로 날라와 "천관보살"이 되었을것 같기도 합니다
     아름답습니다
     
     [문수보현봉]을 돌아 가니 돌탑이 하나 있으며, 문수보현봉은 가까이서 볼수 없었습니다
     우회도로를 돌면 중요한 봉우리를 놓치기 일수입니다
     신라에 의해 멸망한 '금관가야국'의 왕족인 김유신
     신라에 빌붙어 잘 살아 가려면 신라 진골세력들에게 잘 보여야했겠습니다
     철저한 품골 계급사회였던 신라에서, 패망한 나라의 왕족은 더욱 경계시 되었습니다
     그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김유신의 어머니는 아들 김유신을 공부 잘하고 튼튼한 사나이로 키워 
     진골세력에 들어 가 신라의 핵심 권력 속으로 들여 보내고 싶어했습니다
     어느 어머니나 모두 같은 마음이겠지만 특히 김유신의 어머니는 자식 교육을 철저히 했죠 
     현대 교육학에서도 김유신 어머니의 가정교육은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문수보현봉 에서 바라보는 "眞竹峰"
     환희대에서 구룡봉 가는 길에서 알게 된 이름입니다만 "眞竹峰" 정말 아름답습니다
     김유신이 화랑 훈련병 시절 - 그러니까 사춘기 때 쯤이겠지요
     이 놈의 씨끼가 엄마가 하라는 공부는 않하고 어떤 여자를 무쟈게 좋아해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그 년한테 가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김유신의 어머니는 화가 머리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뿔따구가 났습니다
     어느 날, 참다 못한 엄마는 김유신을 불러 꿇어 앉혀 놓고 작살을 냅니다
     "너 이놈!!~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새파란 놈이 기생 치마 폭 속에서 노닥거려서 되겠냐?"
     " 다시 한번 더 그 뇬한테 가서 연애질 하면 다시는 너를 안볼것이야!!~~"
     김유신은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않겠다고 어머니에게 맹세를 합니다
     그 뇬이 "天官女"라고 하는 기생이었답니다
     삼국사기에 娼家의 女이라 "天官女"를 역사학자들이 기생이라고 추측했습니다만
     요즘 새로운 학설에는 "天官女"가 왕실에서 제사를 지내는 관직을 가진 여자였다고 합니다
     일종의 무당 같은 것이란거죠. 아직 확실한 결론이 난 것은 아닙니다
     
     [天柱峰]
     문수보살봉을 돌아 나아가니 天柱峰이 나왔습니다
     천몇백년전 어느 날 --
     김유신이 화랑 무예 수련을 마치고 자신의 말을 타고 집에 돌아 오는 도중
     너무 피곤해서 말위에서 잠이 들었답니다
     "히이~이히힝" 하며 우는 말 울음 소리에 잠이 깬 김유신앞에는
     언제나 처럼 "天官女"가 화려한 옷을 입고 요염한 모습으로 김유신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잠자고 있는 사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말은 천관녀의 집으로 간것입니다
     김유신은 어머니와 한 약속이 뇌리를 때리고 지나갔겠죠
     성질 무쟈게 난 김유신은 그 자리에서 말의 목을 베어 버렸습니다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이 놈의 말이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갔다는 보복이죠
     말의 목에서 터져 나오는 피를 흠벅 맞은 "천관녀"
     여자의 온갖 자존심 다 망가지는 치욕의 순간이었죠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지 개쎄이가 왜 죄없는 말의 목까지짜르고 
     내몸에 개피도 아닌 말피를 퍼 붓고 스타일 꾸기고 개지랄이야?
     내가 세상에 남자가 한둘이냐? 이 씨~세이야~!!
     김유신과 천관녀는 이렇게 볼썽사나운 이별을 했습니다
     말(馬)이 죽어 영혼이 하늘 나라로 가며 김유신에게 이렇게 씨부렸겠지요
     "이 쎄파라~ 니가 매일 가던 곳으로 간것 뿐인데~~ 왜 나한테 화풀이를 하냐? XX씨끼"
     내가 잘못한게 뭐가 있냐? 어제는 딴대로 간다고 지랄하더니...
     아이구~ 내 목아지 어디갔어? 내 목아지 내놔~~개쎄이"
     
     [天柱峰]
     천주봉 아랫도리를 돌아 천주봉으로 올라 갑니다
     말의 목을 베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했다는 대장부 기질을 묘사하기위해
     김부식이는 다소 과장해서 삼국사기를 썼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천관녀"와 헤어진 이유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다른 이유를 대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천관녀"는 기생이 아니라 왕실에 제사를 관장하는 궁중무당같은 여자이라 왕궁에 자주 드나 들어
     김유신과 뗄래야 뗄수없는 관계에 있던 "김춘추"와 서로 "짝사랑"을 했던 삼각관계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김춘추는 후에 무열왕이 되며 삼국통일을 이루는
     신라 최고의 왕이 되는 진골계급이어서, 패망한 금관가야의 김유신이 김춘추에게
     잘 보이기 위해 "천관녀"를 양보 할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김유신과 천관녀와의 관계를 잘 아는 김유신의 어머니가 김춘추를 의식해서
     천관녀를 만나지 못하게했다는 설도 유력하다고 생각 됩니다
     男子란 묘한 동물이라 무당 같은 기괴하게 신들린 듯한 여자들로부터 
     더욱 쎅씨함을 느낀다네요. 
     그런데 저는 아님니다~~ 울 마눌만 좋아합니다 ㅎㅎ
     
     뒤따라 오는 후배들 - 무어가 그리 즐거운지 마냥 웃고 다닙니다
     세월이 흘러 삼국퉁일을 이룩한 후 김유신의 나이가 환갑을 넘을 쯤
     서라벌의 어느 길모퉁이에서 김유신이 "그 때 그 여인"을 만납니다
     "천관녀"임을 알아 본 김유신이 달려가 아는 척 합니다
     다음은 제가 그냥 날라리로 꾸며 본 그들의 대화입니다
     김유신 : 천관녀!!~~ 천관녀 맞지요?
     천관녀 : (눈을 아래로 깔며 약간 튕기며) ......
     김유신 : 이게 얼마만입니까? 정말 오랜만이군요
     천관녀 : .......
     김유신 : 그 때는 정말 내가 잘못했소... 엄마가 하도 야단을 쳐서....
     천관녀 : .......
     김유신 : 용서해 주구려~ 그리고 이젠 같이 살자구요~
     천관녀 : 이제 모두 지나간 추억일뿐입니다.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옥황상제께서 저를 내려 보내며
              삼국을 통일 시킬 인물을 찾아내라는 명을 내렸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군을 선택하여
              삼국을 통일 시키게 하였으니 저의 임무는 이제 끝난것입니다
     김유신 : 무신 말씀을.... 이제 삼국통일도 했으니 나랑 같이 백년해로하자꾸여~
              나 이젠 돈도 무지하게 많어~ 사 달라는거 모두 사 줄께~ 집도 새로 짖고
     <김유신은 진짜로 천관녀를 기리는 "천관사"라는 절을 지었습니다. 현재 경주에 복원하고 있습니다>
     천관녀 : (쭝얼쭝얼 ~주문을 외우니 하늘에서 날개 달린 백마가 내려 옵니다. 백마를 타고 날라 가며)
              안뇽~~ 빠이 빠이 잘 먹고 잘살아라~
     김유신 : (자신의 말을 몰고 백마를 빠지게 따라 갑니다)
               같이 가!!~~ 왜? 내가 이젠 늙었다고 싫은거야? 이 할망구야!!~~
               너도 이젠 할망구야!!~~ 아직도 니가 2x8청춘인줄 아냐? 가지마!!~~
     김유신이 한없이 따라 갔는데 어느 산에서 갑자기 천관녀가 탄 백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산이 바로 여기 "天冠山"이라는 것입니다
     
     [天柱峰]
     천주봉을 오르고 있습니다
     위에 이야기는 제가 각색을 해서 약간 재미있게 꾸민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내용과 비슷할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확실한 것은 천관산과 천관녀의 한자 표기가 서로 다른
     天山과 天女이라 같은 천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天冠은 면류관이라는 뜻이고, 天官은 어떤 관직을 뜻하는데 궁중무당이 아니었는지 한답니다
     재미있었나요? ㅎㅎ
     
     [天柱峰]
     천주봉에선 眞竹峰이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천관녀를 천관산에 끌어 들인 사람은 아마도 이 지역 공무원이나
     지역발전협의회 관련자들이 아닐까요? 
     느닷없이 천관산과 천관녀가 관련이 있다고 사람 횃갈리게 만들어서 
     그 바람에 저는 삼국사기 공부를 많이 했답니다. ㅎㅎ
     그 덕택에 김유신과 천관녀 이야기는 제법 깊이 있게 알게 됬습니다
     
     [天柱峰]
     올라 와서 [天柱峰]을 바라 보니 또 허무합니다
     하늘에 기둥을 박아 '천관녀'가 옥황상제께로 올라 갔을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 아래에서 볼때는 신비스럽게 보였는데....
     천관녀가 저 돌기둥에 앉아 염불을 외지는 않았겠죠? 궁둥이 아퍼~ㅋㅋㅋ
     
     天柱峰에서 바라 보는 우측의 眞竹峰과
     좌측에 보이는 봉우리가 우리가 가야할 大藏峰과 歡喜臺
     
     [大藏峰]
     만권의 책이 쌓아 진것같다고 대장봉이라 한답니다
     歡喜臺가 저 大藏峰위에 있기 때문에 歡喜臺에선 大藏峰이 보이지 않더군요
     
     [歡喜臺]
     기쁘할 歡, 기쁠 喜얼마나 기쁘겠습니까 !!~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계곡에서 움터 올라온 기운들이 폭발하여 하늘로 올라 가는 듯합니다
     동행한 후배들은 알겠지만 여기서 정수라의 "歡喜"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대 기쁨을 나에게 보내 주오~~♬ 그런데 끝까지 몰라 ■☆←♣♧⊙♨ 중단했습니다 ㅎㅎ
     
     [歡喜臺]
     정상은 언제나 기쁨과 허무를 줍니다
     그러나 [歡喜臺]는 사방이 뻥 뚤려있어 가슴을 후련하게 해 주는군요
      
     [歡喜臺]와 이정표
     사진 속의 설명을 읽으세요.
     
     [歡喜臺]에서 바라 본 지나온 봉우리들
     환희대에서 부터 북쪽으로 솟아 있는 대장봉과 천주봉, 문수보현봉, 대세봉, 선재봉, 
     관음봉, 신상봉, 홀봉, 삼신봉 등 아홉 개의 암봉을 일러 "九程峰"이라고 한답니다. 
     이 아홉개의 봉우리가 만들어 내는 "天子의 冕旒冠을 쓴 天冠山"을 이제까지 지나 왔습니다
     
     [歡喜臺]에서 바라 보는 앞으로 가야할 연대봉과 억새능선
     가운데 보이는 봉우리가 722m봉이며 그 다음이 710m봉, 멀리 뾰쪽한 젖꼭지같은 봉우리가
     천관산의 최고봉인 烟臺峰입니다
     九龍峰을 다녀와 다시 이 길을 갈것입니다
     
     [남서쪽 九龍峰 방향] 
     九龍峰이 좌측에 조금 보입니다
     환희대에 오르면 九龍峰은 반드시 다녀 와야하는 코스이랍니다
     
     억새 숲을 지나 九龍峰으로 나아 가는데 龍頭가 보입니다
     벌써부터 九龍峰의 모양새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 사진 전체가 龍이 昇天을 하려는 듯 트림을 하고 있는 듯 하지 않습니까?
     
     九龍峰으로 가는 억새밭 사이 사이로 가을 정취는 뭍어나고....
     
     [眞竹峰]
     大勢峰, 天柱峰에서 바라 보던 [眞竹峰]을 바로 앞에서 바라 봅니
     歡喜臺에서 북서쪽으로 眞竹峰과 비로봉, 중수봉으로 뻗어가는 능선은 
     능선 전체가 하나의 연재 소설처럼 재미있는 설화가 있더군요.
     산행 들머리에 있는 장천제를 지은 존재 위덕규선생이 
     천관산을 너무 사랑하여 천관산에 대해 한권의 책을 쓰셨는데
     이 책의 이름이 "支提誌"인데 재미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수록하고 있더군요
     存齋선생의  "支提誌"에서 이 眞竹峰능선을 가리켜 
     '관세음보살이 석가모니의 말씀을 따르고자 진불(眞佛)을 돌배(石船)에 싣고 
     바다를 건너 천관산으로 가서 불경을 내려놓은 곳이 大藏峰이고, 
     돛대가 眞竹峰이며, 돌배가 石船峰이라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니 
     眞竹峰의 우뚝 솟은 돌기둥이 "돛대"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九龍峰으로 나아 갑니다
     금방 龍이 튀어 나올것만 같습니다
     
     [九龍峰 입구]
          
     [九龍峰 설명과 九龍峰 입구]
     九龍峰은 보시는 바와 같이 아홉마리의 용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노닐던 곳이라 九龍峰이라합니다
     
     [九龍峰 정상]
     
     [九龍峰 정상]
     九龍峰 아래로는 천길 낭떨어지입니다. 안내판에서도 보았지만 명주실 한타래를 풀어도
     닫지 않을 정도이니 얼마나 깊은 낭떨어지인지 짐작이 가시지요?
     
     [九龍峰 정상에서 바라 보는 眞竹峰과 비로봉]
     九龍峰 정상에는 아홉마리의 용이 노닐때 파여졌다는 발자국 웅덩이가 여기 저기 있습니다
     이 웅덩이는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물 보이시죠?
     
     [九龍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좌로부터 환희대, 722m봉, 연대봉]
     멀리 보이는 연대봉도 좋지만 바로 앞에 보이는 九龍峰의 바위들이 살아 꿈틀대는 듯 합니다
     龍의 다리가 움직이는듯하군요
     
     九龍峰 정상에서 정상酒를 한잔 했습니다
     사진 속의 인물들은 저와 동행한 저의 "띠동갑"들입니다만 
     저를 친구처럼 대해줘서 항시 함께 산행을 했습니다 ㅎㅎ 저는 후배들이 많이 돌보아 줍니다
     저 친구들도 쬐끔만있으면 금새 세월 흘러 나와 같은 선배 되리라~ 에구 세월아 네월아--
     九龍峰 정상에서 쇠주 한잔은 龍이 昇天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를 챙겨주는 후배들을 위해 詩 한수 읊어 드려야 겠습니다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박우현


                  이십대는
                  서른이 두려웠다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있었다
                  마흔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삼십 대에는 마흔이 무서웠다
                  마흔이 되면 세상 끝난 줄 알았다
                  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멀쩡했다
                  쉰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예순이 되면 쉰이 그러리라
                  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九龍峰 에서 환희대로 되돌아 가고 있습니다 진죽봉과 환희대가 그림 같습니다 앞에 올라 오는 어린이들 보이시죠? 어른들의 가이드도 없이 이렇게 높고 험난한 산을 자기들끼리 올라 오더군요 초등학교 6학년 3명과 4학년 한명이, 일요일을 이용해 천관산엘 올랐답니다 요즘 컴퓨터 앞에서 세월 가는지 모르고 게임이나 하는 어린이들이 많은데 땀을 흘리며 자기와의 싸움을 하며 천관산을 오르는 이 어린이들이 하도 가상해서 기념 사진을 찍어 주기로 했습니다 이 어린이들입니다 山을 오른다는 것은 人生을 오르는 것입니다 이 친구들 넷이서 오늘은 천관산을 점령해 보자고 했답니다 그래서 천관산 '구룡봉'에서 이들이 추억을 남기고 간직할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첨단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어 이 사진은 곧바로 이 어린이들에게 전달 될것입니다 저의 블로그 '홍어와 무인도'를 알려 주었기 때문에 쉽게 찾아 들어 왔을겁니다 "얘들아! 이 사진 보았으면 댓글 하나 달고 가렴~~ 그래야 너희들이 보았는지 알수 있쟌아~" 요즘 인터넷 모르는 어린이는 없으니까요....그리고 사진 퍼 가고 싶으면 얘기해~ 내가 이메일로 보내 줄테니까 이 어린이들 대단하고 예쁘고 씩씩하고 공부 잘 하게들 생겼죠?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탑산사 계곡에도 기암괴석들은 난무하고 있습니다 천관산이 천관보살이 살던 신령스런 산이라 옛날엔 이 천관산에 엄청나게 많은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대부분 사라지고 천관사와 탑산사, 장안사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九龍峰에서 歡喜臺로 되 돌아 오는 풍경도 만만치 않습니다 장흥이 낳은 文人중에 "한승원"씨가 있지요. 그냥 한승원씨라 하면 잘 몰라도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쓴 소설가 한승원씨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 그 사람!!합니다. (사실 소설 이름은 알아도 작가 이름은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요 ㅎㅎ)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임권택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더욱 유명해졌으며 강수연이라는 배우를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으로 수상하게하여 스타덤에 올려 놓아 세계적 배우로 발돋움 시키기도 했습니다 강수연이라는 배우가 그도 여자인데 그 여자가 아무리 배우라 해도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머리를 빡빡 밀기는 쉽지 않은데 과감히 밀고 열연을 했습니다 율부린너, 헤글러 보다도 더 빡빡 민 강수연. 그래서 더욱 유명해진 영화와 소설입니다. 그러니 저도 알지요 그 "아제아제 바라아제" 소설의 배경이 이곳 천관산 천관사에서 부터 시작되었다는군요 아!~ '파란문'의 산행기는 왠지 자꾸 읽고 싶지 않은가요? ...ㅎㅎ--- 환희대로 돌아 오고 있습니다 한승원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소설 공부를 하기 위해서 천관산의 천관사에 갔다가 억새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깊은 심오한 느낌을 받아 오랫 동안 잊을 수 없었답니다 그 양반이 쓴 어느 글에서 그는
'..... 자드락길 굽이굽이마다 들솟아 있는 억새풀, 띠풀, 싸리풀들이 내 키를 재면서 겨울 찬바람에 몸부림치며 울어댔다. 내 몸속에 그 억새숲의 울음이 절절이 스며들고 있었다. ...... 그 바람소리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가슴 속에 머무르고 있다. .......' 그 당시의 기억을 소설로 풀어낸 것이 바로 '아제아제 바라아제'라고 그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환희대에서 연대봉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부성의 아픔 만을 남기고 떠난 아버지 운봉스님, 돈과 섹스에 눈이 먼 어머니 제주댁, 어머니와 내연의 관계이면서 자신을 겁탈한 중년의 사내, 현종 선생 현종 선생과의 오해로 인한 이별 등으로 속세의 아픔을 느낀 순보(강수연)는 이 세상 등지고 여승이 되고자 덕암사에 찾아오고..... 머리 빡빡 깍고..... 더 자세한건 직접 읽어 보세요....더 이상 쓰려니 눈물 나요 [722m봉에서 뒤 돌아 본 환희대] 멀리서 보는 광경과 가까이서 보는 광경이 너무나 다름니다 장흥이 낳은 또 한분의 소설가 - 이 청준 이분 아깝게 지난 7월에 운명하셨죠. 광주일고와 서울대 독문과를 나온 수재이십니다 운명 소식은 뉴스에 무지 많이 나왔으며 특히 연예뉴스에 많이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인기 연예인들이 문상을 많이 해서이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이청준선생이 쓴 소설이 어디 한두권이겠습니까만 제가 아는 소설은 묘하게도 또 임권택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더욱 유명해진 "서편제"입니다 '서편제'를 생각하면 생각만 해도 저는 눈물이 납니다 임권택 감독은 이청준선생의 "서편제"라는 영화로 오정혜라는 신출내기 국악인을 배우로도 성공시켰으며, 김명곤이라는 배우가 '우리나라 제8대 문화관광부 장관'이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준 작품이기도하죠 천관산의 정상 烟臺峰은 점점 더 가까워 오는데 "서편제" 1960년대 초 이 천관산이 있는 장흥과 보성 사이의 보성 소릿재에서 누나와 아버지를 찾아 다니던 동호(김규철)는 주막 여주인의 판소리를 들으며 회상에 잠기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요. 이 천관산 봉우리의 억새밭이 그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마을 대갓집에서 소리품을 팔던 유봉(김명곤)은 동호(김규철)의 어미 금산댁을 만나 자신의 양딸 송화(오정해)와 함께 새 삶을 꾸리고 살아 가던 중에 금산댁이 아이를 낳다 둘 다 죽자 유봉(김명곤)은 아이들(동호와 송화)을 데리고 소리품을 팔며 이곳 저곳 이 마을 저마을을 떠돕니다. 동호에게는 북을 송화에게는 소리를 가르치던 중 동호가 생활고와 유봉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떠나버림니다 유봉은 송화도 자신을 떠날까 봐 떠나지 못하게 아릿따운 송화의 눈을 멀게 하지요. 봉사를 만듭니다. 아무리 양아버지라도 어찌 이런 짓을.... 또한 눈이 멀면 이 아릿따운 소녀에게 얼마나 한이 서리겠습니까? 봉사가 된 송화의 소리에서 한서린 통곡의 소리가 나오도록 하기 위해 그녀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이 장면을 생각만해도 눈물이 납니다 시력을 잃어가는 송화를 정성스레 간호하는 유봉, 그러나 그는 죄책감으로 죽어가며 송화에게 그 일을 사죄합니다. 세월이 흐른 후, 유봉과 송화를 찾아 헤매던 동호는 이름 없는 주막에서 송화를 만납니다. 송화에게 판소리를 청하는 동호, 송화는 아버지 유봉이 치던 똑같은 북장단을 치는 그가 동호임을 알지만... (흑흑..아이구 슬퍼라) 눈먼 송화는 벌써 희끗 희끗한 머리카락으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데..... 아 너무 슬퍼 더 이상 산행기를 쓸수가 없네요. 책 사서 읽던지 검색해서 영화를 보시던지 하세요 이 대사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년아! 가슴을 칼로 저미는 恨이 사무쳐야 소리가 나오는 뱁이여...! " '아제아제 바라아제'와 "서편제"는 자꾸 생각납니다 모두 너무나 슬픈 사연을 안고 살아 가는 한많은 여인의 이야기라 더욱 가슴 저밉니다 長興은 정말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下山하면서 長興이라는 고을 이름을 탄생시키는 女人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연대봉 못미쳐서 오른쪽으로 甘露泉이 있습니다 이런 곳은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1~20m정도 밖에 안되는 거리를 갔다 오는 분들이 별로 없더군요 [甘露泉] 남쪽 나라이기에 아직도 억새는 푸른빛을 띄고 있습니다 억새꽃에 맺힌 아침 이슬이 녹아 들어 만들어진 샘물 - 甘露泉 이 엄청난 억새가 만들어 낸 달콤한 샘물 甘露水를 마시지 않고 그냥 가시는 분들은 뭣하러 천관산에 왔는지 이해 할수 없습니다 띠 동갑들이 친절하게 떠 주는 甘露水를 마시니 甘露水여서라기 보다는 띠동갑들의 정성에 더욱 달콤함이 느껴지며 힘이 솟는 듯 했습니다 연대봉 가는 길 烟臺峰은 어느 여인의 풍만한 가슴 같아 보였습니다 산은 늙어 모난데는 없고 그저 평온하고 포근한듯 합니다 풍랑의 청춘을 지나, 중년의 풍요를 맛보고, 늙어 가는 듯 합니다 大勢峰, 天柱峰, 眞竹峰, 九龍峰등의 지나 온 산등성이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烟臺峰] 천관산의 최고봉 烟臺峰에 왔습니다 천관산은 환희대를 기점으로 모습이 너무나 달랐습니다 북서쪽으로는 아홉개의 봉우리가 아직도 젊음을 보이며 날카로운 산세를 보여 주었지만 연대봉 방향, 즉 동남쪽 방향으로는 산은 늙어 무등산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烟臺峰은 중요한 봉수대가 있던 봉우리여서 烟臺峰이라 한답니다 [烟臺峰] 천관산의 정상입니다 많은 산객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天冠山이 天子의 冕琉冠이라 생각하면 天冠山의 실제 정상인 [烟臺峰]은 天冠山을 대표하는 봉우리로 생각되지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온 大勢峰, 天柱峰, 眞竹峰, 九龍峰등이 天冠山을 대표하는 듯합니다 [烟臺峰 정상석과 연대봉에 대한 설명 烟臺峰의 자도 연기 "연"자이지요, 煙자와 같은 뜻입니다만 烟臺 는 하나의 단어 입니다 .烟臺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제가 부연 설명합니다 烟臺(연대)는 고려시대부터 만들어 사용했으나 조선초에 본격적인 역활을 합니다 조선(朝鮮) 시대(時代) 4대 세종(世宗)대왕 때 외적의 침입(侵入)을 막기 위해 최변경(最邊境)에 설치(設置)한 봉수대(烽燧臺)를 말한다는군요 대(臺)는 사각형으로 쌓아 올렸는 데, 높이가 30척(尺), 밑면 1변의 길이가 20척이며, 그 둘레 바깥에 깊이 3척의 끝이 뾰족한 목익(木弋)(나무 말뚝)을 여러겹 둘러 박았답니다 대(臺) 위에는 가옥(假屋)을 짓고, 무기(武器)와 생활(生活) 용구를 준비하고, 봉화간(烽火干) 5인, 화포군(火砲軍) 2인, 망군(望軍) 2인, 감고(監考) 1인이 10일씩 근무하였답니다. 적이 나타나면 연기(煙氣)와 횃불로 다른 烟臺에 알리고, 신포(信砲)(신호(信號)로 쓰던 화포)를 쏘아 인근 주민(住民)에게 재빨리 알렸으며, 적이 침입(侵入)하면 요새로서 화포와 궁노(弓弩)를 쏘아 적을 방어하였답니다 그러므로 烟臺와 烽燧臺는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조금 다름니다 [烽燧臺] 烟臺峰 봉수대는 1149년(고려 의종 3년)에 처음 설치한 이래 계속적인 개축을 해왔는데, 지금의 봉수대는 1986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봉수대는 외적의 침입을 장흥의 억불산과 병영면의 수인산으로 알리는 동시에 제주도 한라산에서 보내오는 신호를 내륙으로 전하는 곳이었다고합니다. 연대봉은 장흥에서 가장 높고 전망이 뛰어난 곳이어서 봉수대의 입지로는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군요 [烽燧臺 위에서 여기서는 호남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제암산과 사자산이 보이고 또한 완도의 상황봉, 해남의 두륜산, 영암의 월출산, 광주의 무등산까지 다 보인답니다 날씨가 아주 맑은 날은 한라산도 보인다고 하는데.... 닝기리~ 오늘은 안개 때문에 모두가 오리무중입니다..ㅉㅉ. [烽燧臺에서 지나온 환희대 방향과 아홉개의 구정봉] 歡喜臺에서 부터 북쪽으로 솟아 있는 大藏峰과 天柱峰, 문수보현봉, 大勢峰, 善才峰, 觀音峰, 神上峰, 홀봉, 삼신봉 등 아홉 개의 암봉을 일러 "九程峰"이라 한다는 능선이 잘 보입니다 이 아홉개의 봉우리가 만들어 내는 "天子의 冕旒冠을 쓴 天冠山"이 아름답습니다 앞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페라글라이딩을 준비하는 광경이 보였습니다 [烽燧臺에서 九龍峰을 바라 봅니다] 九龍峰을 배경으로 준비하던 페라글라이딩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솟아 오릅니다 페라글라이딩하는 실제 상황은 처음 봅니다. 바람이 불어 오는 방향으로 날라 오르더군요 九龍峰이 더욱 신비롭게 보입니다 [烽燧臺에서 바라 보는 불영봉 능선] 이 능선이 남동쪽으로 뻗은 불영봉 능선이라고 한답니다 봉황봉 능선으로 하산 이제 언제 또 다시 올것인가!~~ 그 동안 제법 많은 산을 돌아 다녔지만 오늘 天冠山은 영원히 잊지 못할 산으로 각인 되었습니다 '홍어와 무인도'를 아껴 주시는 횐 여러분! 시간 나실때 天冠山은 꼭 한번 다녀 오시라고 추천 드림니다 산행 시간도 슬렁슬렁 볼것 다 보고, 조사 할것 다하며 걸어도 5시간 정도 걸렸으니 거리가 멀다는 단점 이외에는 부담도 없으니 추천하고싶군요 하산하는 길목에 쌓여져 있는 돌무덤을 애뜻한 연정만을 남기고 홀로 떠나니 어쩐지 쓸쓸해 보여 미안한 느끼마져 듭니다 하산 하며 뒤돌아 본 연대봉 산객들도 무척 많이 찾아 왔더군요. 저만 이제까지 몰랐지, 다른 분들은 이미 아시고 천관산 품에 안기셨더군요 평범한 듯 보이는 능선을 내려 오니 곳곳에 전망대가 있었습니다 이 능선이 멀리서 볼때엔 평평한 능선으로 보였으나 의외로 아기자기한 암릉이더군요 제가 오늘 산행 들머리에서 [산행 개념도]를 보여 드리면서 "정안사"를 꼭 들리려고 했는데 시간 관계상 들리지 못해 매우 아쉽다고 했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좋은 공부거리도 되오니 읽어 보시기 바람니다 長興이라는 이 고을 이름을 한문으로 보면 금방 그 뜻을 알수 있겠죠? "길이~길이 흥하라"라는 의미이지요 그런데 이 長興이라는 이름이 지어지는 이유가 高麗史에도 나오니 얼마나 중요한 시대적 산물인지 가늠할수 있어 집중 탑구를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900년전 어느 날 밤... "황색의 큰 깃발이 집의 중문에 세워지면서 깃발의 꼬리가 왕의 침소인 선경전 지붕의 용마루 끝을 감싸고 돌며 휘날리는 꿈을 꾸었다" - 高麗史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 앞으로 쓰는 글들도 高麗史를 토대로 나름대로 풀어 씁니다 이 꿈을 꾼 사람은 당시 문하시랑-요즘으로 따지자면 대통령 비서실장 정도 되는 "이 위"라는 사람이었고 이 사람은 앞으로 태어날 "女人"의 외할아버지가 됩니다 외할아버지 "이 위"가 꾼 꿈은 후에 궁궐의 왕의 침소인 선경전에서 놀게 될것이라는 예언이기도 했습니다 이 "여인"의 아버지는 당시 중서령이라는 관직에 있었던 이곳 長興 출신 "임 원후"라는 분입니다 1126년 여름으로 가는 6월에 이 "여인"이 高麗 인종의 왕비가 되고 아들 다섯을 낳는데 그 중에 아들 셋이 줄줄이 왕이 되니 그들이 "의종","명종","신종"입니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에서 이런 엄마는 눈씻고 찾아 볼려고해도 찾아 볼수 없습니다 가히~ 우리나라 최고의 "여인'이자 "엄마"입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어디 가서 "나는 이 얘들의 엄마야~"라고 폼좀 잡을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엄마가 가끔 친정을 찾아 개경에서 머나먼 이곳 장흥까지 행차 할때는 가히 상상이 가시나요? 이 엄마는 딸도 넷이나 낳아 왕자와 공주를 데리고 행렬을 이루며 금의환향하곤 했답니다 오래도 살았는데 75세까지 살았습니다. 당시로는 무지무지 장수한것입니다 하여간 여자는 애를 잘 낳아야 건강하기도 하고 대우 받는 다니까요~ ㅎㅎ 이 "女人"이 그 유명한 공예왕후입니다 인종이 공예왕후에게 너무 고마워 공예왕후의 고향 이름을 지어 주었는 데 그것이 "長興"입니다 지금도 장흥에서는 매년 공예왕후의 친정 나들이를 재현하는 행사를 한답니다 공예태후의 생가가 "정안사(定安詞)"이며 천관산 입구에 있는데 꼭 가볼려고 했는데 시간 관계상 못가서 이렇게 안타까워 한답니다 [陽根岩 해설 할 필요 없지요? ㅎㅎㅎ [陽根岩 아래에 있는 여성암 같은 바위 요거이 여성봉 처럼 생겼더군요. 양근암이 바라 보고 있는 진짜 여성굴이 있다는데 그 굴이 金水窟이랍니다. 이 앞의 금수능선 어느 곳에 있다는데 .... 金水가 흐른다네요 공예왕후공예태후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왜내하면 왕비로 보다 아들이 왕이 되어 태후로 더 많은 세월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예태후는 그렇게 행복한 75년의 세월을 보내지는 못하고 오히려 복장 터지는 서글픈 세월을 더 많이 보냈다고도 할수 있겠습니다 이자겸의 척신정치와 무신정권의 출현으로 무신정권 밑에서 태후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연이 개경에 소문이 납니다 그리고 당대의 실제 권력자인 "이자겸"의 귀에 들어 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핵교 때 공부를 열심히 했다해도 "이자겸의 난"만 기억 하시죠? 뭔지도 모르고....ㅎㅎ 인종의 첫번째 왕후가 이자겸의 셋째딸이고, 두번째 왕후가 이자겸의 넷째딸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왕비에 관한 소문은 이자겸에게 치명타가 될수 있는 사안이라 펄쩍 뛰며 임원후를 한직으로 좌천 시켜버림니다 이자겸은 인종의 아버지인 예종의 장인 어른입니다 간단하게 말해 인종과 공예왕후의 외할아버지인것이죠 당시 이자겸은 조선시대 대원군 같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면 가장 쉽습니다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이자겸은 인종의 첫번째 왕비로 자신의 셋째딸을 시집 보냈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넷째딸도 인종에게 시집 보냅니다 그런데 이것 꽁까루 집구석도 아니고 괴상 망측한 집구석 아닙니까? 인종의 아버지가 예종이고, 예종의 왕비가 이자겸의 둘째딸(순덕왕후)인데 예종과 이자겸의 둘째딸(순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인종은 이자겸의 셋째딸과 넷째딸하고 결혼을 하니......황당하지만 진짜입니다 요즘같은 세상에는 상상도 할수 없는 근친혼례아닙니까? 그러니까 쉽게 이야기하자면 인종은 자기 엄마의 여동생 - 즉 '이모' 둘 하고 한방 쓰며 결혼 생활했다는거 아닙니까 그리고 이모들 하고 헤어진 후 인종의 셋째 부인으로 공예왕후가 다시 들어 오는 것입니다 그통에 "長興"이라는 고을 이름이 유명세를 타며 생겨나게 됩니다 딸을 왕에게 시집 보내기의 명수라면 전세계에서도 최고라고 자랑 할 이자겸 그리고 이자겸의 딸들...아무리 아버지가 시집 가라고 정해 줘도 외조카한테 어찌 시집을 가나요 世界史에서 야리꾸리한 비슷한 이야기를 하라면 이 뇨자 빼 놓을 수 없죠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이 뇨자는 자기 친 남동생 두명하고 결혼을 하지요? 그리고 권력 휘두르는데 걸림돌이라고 결혼한 자기 남편이자 친남동생인 두놈을 모두 죽이고 로마의 씨이져와 결혼해서 아들까지 낳고는 다시 안토니우스와 결혼한 '클레오파트라' 정말 끝내줍니다. 옥타비아누스가 쳐들어와 자기를 죽일려고 하자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다고 서른아홉살에 독사 풀어 놓고 독사에 물려 죽는 자살을 했으니..毒하긴 毒한 여자의 대명사이죠? 우리나라 현대에서 가장 毒한 여자 꼽으라면 최근에 자살한 최진실씨를 꼽을 수 있을려는지... 자기에게 안티 네티즌들이 최'진실'이 아니라 최'가식'이라고 악플 단다고... 사채놀이 않했는데 했다고 수근거린다고..그런 저런 이유로 그렇게 돈 많이 버는 스타 집어치우고 죽어버리면 그런 소리 안들을테니 에이 씨파- 자살이나 하자고 자살을 했으니 얼마나 독해요? 에구~자살도... 쉽지 나같은 평범한 맹물같은 인간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인데... 고려의 이자겸은 조선시대의 한명회의 스승 쯤 되는 인간이죠. 딸 셋을 왕비로 만들고 특히 외손자에게 친딸 두명을 시집 보냈으니 엄청난 역사적 인물이죠 한명회는 딸 두명을 왕비로 만들었죠? 그래도 조선의 聖君에 속하는 성종과 예종의 왕비가 한명회의 딸들입니다 [오전에 출발 했던 영월정에 되돌아 왔습니다 한가지 꼭 덫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자겸이 그의 넷째딸을 인종에게 시집 보낸 중요한 목적이 인종을 감시 하도록 한것이었습니다 어린 인종이 점점 커 권력을 잡으려하며, 말을 잘 듣지 않자 이자겸은 외손자인 인종을 왕비인 딸을 시켜 독살을 하려했는데 毒藥을 들고 가던 넷째딸이 자기 남편인 인종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를 배반 하고, 일부러 넘어져 毒藥을 쏟아버림니다. 또 毒이 든 떡을 인종에게 보냈는데 이 뇨자가 일러받쳐 인종이 먹지 못하도록하고 인종이 까마귀에게 던져 주었더니 까마귀가 먹고 죽었답니다 이런식으로 몇번이나 인종의 목숨을 구해줍니다 高麗史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 여자는 친정 떠나 출가 하면 아버지보다 남편이 더 우선이라는 것은 인간의 天倫인가 !!~~ [주차장] 자동차로 만원입니다 '테마캠프'라는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天冠山 정말 아름답고 멋진 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얘기꺼리가 너무 많은 산이기도 했습니다 글 읽느라고 힘드셨죠? ㅎㅎ 파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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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느끼며..홍어와 무인도☆ 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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