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박문수의 얼이 살아있는"
  
      "은석산과 박문수어사 묘" 답사기
  
           상동2리버스정류장-고령박씨종친재실-은석산팔각정-422.3m봉-은석산-
           박문수어사 묘-은석사-320.4m봉-상봉산-병천초교-아우내장터
  
                         산다는거...

                                        경허선사

                        天地如是廣(천지여시광)    此生可笑乎(차생가소호)   
                        半生已過了(반생이과료)    餘年復幾餘(여년부기여)    
                        憂愁長侵汨(우수장침골)    幾時得安居(기시득안거)     
                        如醉不覺悟(여취불각오)    空然得疇躇(공연득주저)
  
                        천지는  이렇게 넓은데 이리 산다는 것은 가소롭구나
                        반평생 벌써 지나갔으니 남은 해는 얼마나 될까 
                        근심 걱정에 늘 시달리고 편안한 시간은 얼마나 될까
                        취한듯 깨지 못하니 공연히 주저만 하네 
                             


  [구글어스 지형사진]

  [구글어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상동2리'에 있는 "상동2리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하여
  "은석산"에 올라 "박문수어사 묘"를 답사하고 "상봉산"을 경유하여
  "병천 아우내장터"로 가는 GPS 측정으로 "9.2km"를 갑니다.


  ['상동2리' 버스정류장]           10:05

  2017년 3월 3일 (금) 맑음  
  [전철 1호선]을 타고 [천안역]에 내려 [천안역 동부광장버스정류장]에서 [400번 시내버스]를 타고
  약40분이 걸려 '천안시 남동구 북면 상동리'에 있는 [상동2리 버스정류장]에 내렸습니다.
  버스정류장 건너편으로 "박문수 묘"로 가는 길은 안내되고 있었습니다.
  건너편에 제가 "꽃표시" 한곳으로 가면...


  ['역사문화둘레길']           10:06

  이 길은 [천안 역사문화둘레길] 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탐방객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박문수어사 묘"는 이정표가 안내하는 [고령박씨 종중재실] 방향으로 이 길을 따라 갑니다.
  [역사문화둘레길]은 [박문수어사 기념관]을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 나와야 하더군요.


  ['은석산 팔각정' 조망]
  
  "은지리"로 가는 길을 따라 조금 가면 오늘 오르려고 하는 "은석산"의 한 봉우리인 "팔각정"이 있는
  봉우리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상동리' 통과]                 10:09

  이어서 쉼터가 있는 "동곡마을"이라고 하는 마을을 지나면...


  ['은석골' 가는 길]           10:13

  "은석산"이 성큼 다가오며 "박문수어사 기념관"이 있는 [고령박씨 종중재실] 입구를 지나 갑니다.
  5분 정도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버스주차장']          10:18

  [박문수어사 기념관]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버스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앞에 보이는 마을이 "은석골"이라는 마을이고 기념관과 재실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곤 올라야 할 "은석산 산줄기"가 조망되는데 저 능선이 [능선바람소리길]이라는 코스였습니다.
  7분여 마을을 통과하면....


  ['박문수 기념관' 앞 삼거리]         10:25~10:28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좌측에 보이는 고풍스런 집이 [고령박씨 종중재실]겸 [박문수어사 기념관]이더군요.
  등산로는 우측으로 갑니다.


  [은석산 등산안내도]

  이곳엔 "은석산 등산안내도"가 있습니다.
  저는 등산코스인 "능선바람소리길"로 진행 할 예정입니다.


  ['고령박씨 종중재실'-'박문수 기념관']

  [고령박씨 종중재실]겸 [박문수어사 기념관]입니다.
  "고령박씨 高靈朴氏""신라 박혁거세"후손으로 "신라 경명왕"의 둘째 아들인 "박언성"이 시조랍니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고령박씨"여서 "박문수어사 묘"가 있는 이곳 "은석산" 아래에 재실을 만들고
  또한 기념관도 함께 꾸며 놨다는군요.
  "고령박씨"의 대표적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현 대통령"이지요.
  요즘 탄핵정국에 처해있는데....


  [은석산 가는 길]

  [재실]을 지나면 아늑한 조그마한 마을이 다시 펼쳐지면서 "능선바람소리길"이 조망됩니다.
  마을길을 따라 올라 가면...


  [삼거리]          10:34

  이정표와 등산안내도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서 직진하면 "능선바람소리길"이라는 능선등산코스로 가고
  우측 [은석사-박문수묘 1.75km→]로 가면 "계곡물소리길"이라는 계곡등산코스로 갑니다.
  산객들은 제가 가는 "능선바람소리길"로 가는게 좋겠죠?


  [ 은석산 등산안내도]

  이곳에 다시 친절하게 등산안내도를 설치해 놨습니다.
  어느길로 가느냐는 각자 선택의 문제이지만 저는 "능선바람소리길"을 추천합니다.


  [등산로 입구]         10:36

  "은석산 등산로입구"에는 전원주택들이 제법 많았는데 살기 좋은 곳인듯...

 
  [오름길]

  등산로 입구에서 오름길이 시작됩니다.
  길은 서울의 유명 등산로인듯 넓고 선명했으며, 완만한 경사도였습니다.
  12분 정도 오름길을 오르면....


  [능선 쉼터]         10:48~11:52

  능선에 오르는데 쉼터가 조성되 있어 잠시 등산 준비를 하고 갑니다.
  오늘 날씨는 차가운 겨울을 훌훌 털고 일어서는 할미꽃처럼 친근감을 주는 그런 화창한 날입니다.

 
  [오름길]

  능선 쉼터에서 다시 조금 더 가파른 오름길을 8분 정도 오르면...


  [바위가 있는 쉼터 봉우리]          11:00

  조금 독특한 바위가 있는 쉼터 봉우리에 도착합니다.
  주변이 조망되기 시작하는데 특히 "팔각정"이 있는 봉우리가 손짓하며
  "나 ~ 여기 있어~   어서 오셔~"라고 하는듯

 

  [오름길]

  주로 나무 계단을 설치해 놓은 오름길을 14분여 오르면....


  ['은석산 전망대']        11:14~11:25

  "은석산 전망대"라고 하는 팔각정에 도착합니다.
  이 봉우리는 "은석산 정상"은 아니고, "은석산"에선 유일하게 팔각정을 설치한 곳이었습니다.
  조망이 좋아 조망을 하면...


  [지나온 길 조망]

  먼저 남쪽방향인 지나온 길을 조망합니다.
  출발지였던 "상동2리 버스정류장"이 [북면중앙아파트] 옆에 보이고


  ['흑성산' 조망]

  서쪽으로는 지난주에 탐방했던 "독립기념관"과 "흑성산"이 시원하게 조망됩니다.
  이 광경을 약간 줌인하면...


  ['독립기념관'과 '흑성산']

  설명 하지 않아도 모두 알수 있는 지난주의 탐방코스가 한눈에 들어 옵니다.
  실제는 이렇게 약간 줌인한 사진 속의 광경으로 가까이 보입니다.


  ['성거산' 조망]

  "금북정맥"이 지나는 "聖人이 산다"는  "성거산"이 지난 추억을 일깨워주는데...
  현재는 聖人 대신에 군부대가 점령하고 있지요.


  ['422.3m봉' 가는 능선길]

  조망을 마치고 "은석산"을 향해 출발합니다.
  곳곳에는 "암행어사 박문수"에 대한 이야기들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422.3m봉"인데 이 봉우리와 높이 차이가 그다지 나지 않는군요.
  "422.3m봉"으로 가면


  ['422.3m봉'에서 '은석산 정상' 조망]          11:28

  팔각정이 있는 봉우리에서 이어지는 "422.3m봉"의 능선길은 공원이라기 보다 정원으로 가꾸어 놨습니다.
  몇주 후에 가면 화려한 봄꽃들이 산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줄것입니다.
  "은석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은석사' 갈림길]        11:30

  "422.3m봉"에서 잠시 내려 가면 [은석사]로 통하는 첫번째 삼거리가 있고


  [운동시설]       11:33
 
  이어서 운동시설이 있는 쉼터가 조성되 있습니다.
  400m가 넘는 산봉우리에 이런 운동시설이 실제 팔요한것인지...
  시설을 사용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예산은 더 급한 다른 곳에 쓰시지


  ['박문수어사 묘' 앞 삼거리]         11:35
 
  운동시설이 있는 쉼터에서 내려 가면 바로 "암행어사 박문수 묘"가 보이는 삼거리이더군요.
  오늘 "은석산"을 찾은 주 목적이 이 묘소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곳이니 저는 먼저 "은석산 정상"을 오르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 오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은석산 정상"까지는 150m라고 이정표가 알려 줍니다. 직진해 갑니다.

 
  [오름길]

  약간 가파른 오르막이어서 150m가 좀 멀리 느껴지더군요.
  7분여 오름짓을 하면...


  ['은석산' 정상]          11:42~11:45

  "은석산 銀石山 455m"
  기우제를 지내는 제단이 있는 "은석산"의 정상입니다.
  [이인좌의 난]....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
  "숙종"과 "장희빈" 사이에서 탄생한 "경종"은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죽을때
  "장희빈"이 "숙종"에 대한 보복으로 아들인 세자의 부랄을 잡아 당기며 죽어 
  "경종"은 이후 성생활을 못해 후사도 없이 비실비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죠?
  "숙종"은 궁중에서 세숫대야에 발씻는 물을 길어 나르던 "무술이"와 눈이 맞아 애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조선 제21대 왕 영조"이지요. 노론 소론 남인 서인등 사색당파싸움이 절정에 있을 때였죠.
  이 시대에 과다한 세금징수에 가뭄까지 겹쳐 백성들의 생활은 생계를 꾸릴수 없을 정도로 핍박해져
  곳곳에서 농민반란이 일어났었는데 그중에 대표적 반란이 [이인좌의 난]이죠.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오늘 산행에 중요 포인트인 "박문수"와의 관련에 대해서만 언급하면
  "박문수"가 "영조"의 총애를 받게 된 계기가 바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로 덕이었답니다.
  "영조"는 "박문수"에게 그 공로로 이 "은석산"을 하사하였고 지금까지 [고령박씨 종중재실]과
  [박문수기념관]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답니다.
  "박문수"는 아버지 고향이 이곳 '병천'이지만 '평택'에 있는 외가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답니다.


  ['은석산' 주변 산들]

  "은석산" 주변에 있는 산들은 안내도를 참고 하시고...
  조망을 하면


  ['작성산' '만뢰산' 조망]

  북쪽방향으로 "작성산"과 "만뢰산"이 조망됩니다.
  특히 "만뢰산"은 '진천'의 진산이며, [금북정맥]에서 분기하는 [만뢰지맥]의 핵심 산이죠.
  신라 '김유신장군'의 태실이 있는 산으로 유명합니다.


  ['흑성산' '태조산' 조망]

  서쪽방향으로는 "독립기념관"과 "흑성산"이 여전히 조망되고 
  [금북정맥]이 지나는 "태조산"이 처음으로 조망되는군요.
  "태조산"은 '천안'의 진산이기도 합니다.


  ['병천' 조망]

  남쪽방향으로는 조금후에 진행할 산줄기가 펼쳐지는데
  "320.4m봉"과 "상봉산"을 경유하여 "병천"으로 갈 예정입니다.
  조망을 마치고 바로 "암행어사 박문수 묘"로 되돌아 갑니다.


  ['박문수어사 묘']             11:52~11:56

  "은석산" 정상에서 조망을 마치고 "박문수어사 묘"로 돌아 왔습니다.


  ['박문수어사 묘']

  "박문수 1691~1756"는 '숙종' 영조'시대의 관료로서 '소론'에 속한 정파였습니다.
  "박문수"는 요즘으로 말하자면 "세무행정"에 능한 경제 관료였으며
  군 행정 업무에도 유능한 관료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역사에는 특징적인 기록이 없는  "암행어사"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유를 살펴 볼까 합니다.
                         
                              [박문수 어사]
                            보물로 지정된 "박문수 어사" 초상화 입니다.


  ['박문수어사 묘']

   1727년 9월 25일자 [영조실록]의 원문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趙泰億及金東弼, 皆言文秀之周通鍊達。上遂以文秀爲御史
  조태억급김동필, 개언문수지주통연달, 상추이문수위어사
  
  (조태억에 이어 김동필도 박문수가 두루두루 통달하고 연달하다고 아뢰니 주상이 문수를 어사로 삼았다.)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운 "박문수"를 "영조"는 무척 좋아 했답니다.
  '노론'이 정권을 지배하는 상태에서도 '소론'계인 "박문수"를 곁에 두고 정사를 돌보게 하였으니
  "영조"가 "박문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짐작 할수 있지요.
  "박문수"는 이름이 "朴文秀"이듯  문과 출신인데, 암행어사는 6개월 정도 했고,
  '경상도 관찰사' '도승지' '병조판서' '어영대장' '호조판서' '예조판서' '한성판윤(서울시장)'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특히 왕세손의 가정교사(世孫師傅)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는데, 하위직인 '암행어사'로만 알려 진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암행어사'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마도 암행어사 시절의 일화들 때문일 것입니다.
  "암행어사 暗行御史"
  임금의 특별명령을 받고, 지방 곳곳의 관리들의 잘잘못과 백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비밀리에
  들추어 내 지방정치를 바로 잡고 관리들을 징계하던 임시 관리였습니다.
  그러니까 "암행어사"는 많이 있었는데, 우리는 "암행어사"라고 하면 먼저 "박문수"를 떠올림니다.
  왜일까요?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겠지요?
  "박문수"가 암행어사 임무를 워낙 잘 수행해서?  똑똑해서?
  암행어사 6개월 동안에 있었다는 그런 설화들이 정말 사실일까요?  ㅎㅎ
  물리적으로 불가능 하리라 생각되는데 그 이유를 오늘 파헤쳐 드리겠습니다.


  ['박문수어사 묘'에서 조망]

  남향인 "박문수어사 묘"는 풍수지리가들이 명당이라고 합니다만
  불행하게도 "박문수어사"에게는 정통 핏줄인 후손이 없고 양자로 삼은 후손이 대를 이어
  이 묫자리가 명당이라고만 하기엔 좀 그렇다고 '파란문'은 사료 됩니다. ㅎㅎ
  이나저나 앞에 보이는 "320.4m봉"과 "상봉산"을 통과하여 "병천"으로 내려 갈 예정입니다.
  '파란문'에겐 이 광경이 "여인이 누워있는 모양"으로 보이는데...개눈엔 X만 보이나? ㅎㅎ
  사실 "박문수"는 암행어사로 딱 두번 발령 받아서 6개월 정도 활약했습니다.
  (어느 곳에는 삼년여라고 하고 있으나 이곳 안내판에는 6개월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활약상도 엄청 날것이라고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많큼 엄청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도 "박문수"는 암행어사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가!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민초 백성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민초들이 구세주와 같은 초능력을 가진 암행어사가 나타나 주기를 바라는 '바램'이었던 것이죠.
  탐관오리들의 학정을 스스로 고발하고, 벌 주는 역활을 "박문수"라는 특정인을 통해서
  그런 현실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그런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으며 대리만족을 하며 
  고달픈 현실을 달랬던 것입니다.
  실제 "박문수"가 암행어사로 활동한 지역이 짧은 기간에 충청 영남지역등으로 국한되 있는 데도
  "박문수 설화"는 전국에 걸쳐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봐도 실제 "박문수의 활약"이
  아니라 "박문수와 같은 암행어사"들에게 활약을 기대하는 '설화'였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한 설화들을 묶어서 "청구야담"등에 소설로 전해져 오던것을 일제시대 1915년에 정리하여
  [박문수전]이라는 소설이 출판되면서 "암행어사=박문수"라는 등식이 만들어 졌던 것입니다.
  오로지 이 소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은석사' 가는 길]

  "박문수어사 묘"까지 자동차가 다닐수 있었습니다.
  "은석사"에서 "박문수어사 묘"까지는 비포장도로가 있었습니다.


  [내림길]

  ['은석사']

  "암행어사 박문수"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설화나 전설 속 박문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현재 전하는 여러 설화 속에서도 박문수는 신출귀몰하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인물로 자주 등장합니다.
  살인한 중을 붙잡아 억울한 죄수를 풀어주는 <홍판서 누명 벗겨 준 박문수> 이야기
  '셜록홈즈'를 무색케하는 <천리마 사건>
  얼굴이 박색이라 시집 못간 <노처녀 중매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효부나 열녀 등 행실이 훌륭한 사람을 찾아 표창한 이야기,
  간통이나 살인 누명을 쓴 억울한 사람의 결백을 입증하고 죄인을 찾아 처단한 이야기,
  가여운 처지의 사람을 혼인하게 해 준 이야기,
  횡포 부리는 나쁜 사람을 개심시키거나 벌을 준 이야기...등등등
  "암행어사 박문수"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 전해 내려 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박문수는 공부를 못해 요즘 말로 컨닝해서 과거에 합격 했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제가 "안성 칠장사"에서 몇번 언급 한적이 있어 생략합니다)
  자기보다 쎈 사람을 만나면 당황하거나, 죽을 뻔한 위기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살아 났다던가....하는 "실패형 암행어사 박문수"도 설화로 많이 전해 진답니다.
  일 못하는 관료들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가 서려있는 것이지요.


  ['은석사']        12:05~12:08

  "은석사 銀石寺"
  신라문무왕 시대에 "원효"에 의해 창건된 절이라는데 확실치는 않다고 하고
  "박문수어사 묘"를 지키는 일을 함께 해 왔다는 절이랍니다.


  [뒤;돌아 본 '은석사']

  "은석사" 앞으로 난 도로를 따라 내려 가면서 뒤돌아 본 광경입니다.
  "박문수어사 묘"와 "은석사"의 위치를 알수 있죠?


  [고개 갈림길]       12:11         ★ 길조심 ★

  "은석사"에서 도로를 따라 조금 가면 고개를 만나는데
  등산로는 이곳 고개에서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더군요.
  물론 이 도로를 따라 가도 다시 만나기는 합니다만 지도를 보니 무지 멀리 돌아 가야 하더군요.


  ['상봉산' 가는 길]           12:12

  "상봉산"으로 가는 등산로는 예상외로 넓고 분명했습니다.

 
  [임도]

  이 길은 임도로 차량 통행이 가능 할 정도이더군요.
  8분 정도 진행하면....


  [갈림길]            12:20         ★ 길조심 ★

  임도는 직진해 가는데 산으로 오르는 갈림길을 처음으로 만납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320.4m봉' 가는 길]

  "상봉산"으로 가기 전에 있는 이름없는 "320.4m봉"으로 올라 가는 길입니다.
  경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6분 정도 진행하면...


  ['320.4m봉']          12:26

  "320.4m봉"에 도착하는데 '병천'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트이는 곳이었습니다.


  [남쪽 조망]
 
  "한국기술교육대학교"가 보이는군요. '병천읍내'입니다.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10여분 내려 가면.....


  [묘지]         12:36
 
  경사가 완만해지며 묘지를 하나 지나고...

 
  [능선 내림길]
 
  다시 10여분 능선 내림길을 진행하면...


  [비포장 도로]           12:47

  조금전 "은석사"에서 연결되는 비포장도로를 다시 만납니다.
  이 도로 건너편에 있는 "상봉산"으로 갑니다.


  ['상봉산' 가는 길]       12:49

  비포장도로에서 "상봉산"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로 들어 가면...

 
  [오름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 13분 정도 이어 집니다.
  리기다 소나무가 유난히 많은 숲길을 진행하면...


  ['상봉산' 정상부]             1:02~1:18

  운동시설이 있는 "상봉산 上峰山 234.5m" 정상에 도착합니다.
  '천안토요산악회'의 안내판에는 "220m 높이"라고 알리고 있으나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234.5m"라고 표기되 있으니 참고 하시고...


  ['상봉정']       

  "상봉산" 정상에는 "상봉정"이라는 정자가 하나 있어 올라 가 조망하면...


  [남쪽 조망]

  남쪽 '병천'방향으로 "한국해양경찰학교" 교정이 보입니다.
  해양경찰학교는 바닷가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곳 '병천'에 있어 다소 의아했습니다.


  [서쪽 조망]

  서쪽방향으로는 여전히 "독립기념관"과 "흑성산"이 조망됩니다.

 
  [내림길] 

  완만한 내림길을 4분 정도 내려 가면...


  [삼거리]              1:22

  삼거리를 만나는데 "해양경찰학교"로 통하는 삼거리인듯....
  '병천읍내'로 바로 가려면 계속 능선을 따라 진행합니다.


   [삼거리]            1:24

  이어서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 [←학교]라는 팻말이 가리키는 능선으로 진행합니다.
  여기서 가리키는 [←학교]는 [병천초등학교]를 의미하는듯 했습니다.
  갈림길이 자주 나타 나는 것으로 보아 종착지가 가까워 졌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내림길]

  다시 완만한 내림길을 14분 정도 더 진행하면....


  ['병천초등학교']                 1:36

  "병천초등학교"를 만나며 
  [상봉산등산로] 들날머리 임을 알려 주는군요.


  [날머리]                  1:39

  골목을 따라 100여m 나가면 [상봉산 등산안내도]가 설치되 있는 
  '병천읍내'에 도착합니다.


  ['상봉산 등산안내도']

  [상봉산 등산 안내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상봉산"도 '병천 주민들이 애용하는
  좋은 건강산행코스로 보이는군요.


  ['병천사거리']                  1:45

  '병천'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다는 '병천사거리'에서 산행을 마치고


  ['아우내장터']                             1:47~2:25

  "유관순열사 만세운동"의 진원지 중에 한곳이었던 "병천 아우내 장터"로 가서 
  그녀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태극기는 아무나 들거나 입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아우내장터 순대국집'에서 쇠주 한병과 함께 점심을 먹고...
  얼큰하게 한잔 취해서 원래 예정에 있던 [유관순열사 기념관과 생가] 방문을 다음으로 미루고
  [400번 시내버스]를 타고 [천안역]으로 돌아 가 [1호선 전철]을 타고 귀가 했습니다.


  ['고도표']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GPS 측정으로 "9.2km"였으며 3시간 4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모처럼 이른 시간에 산행을 마치고 귀가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를 보여주면 ..
  
            수학자는 플러스 덧셈이라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합니다.
            목사는 십자가라고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 라고.
            간호사는 적십자라고 하고 
            약사는 녹십자라고 대답합니다.
            모두가 다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다른사람이 (틀린)것이 아니고 (다를) 뿐 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늘 ~ 이해의 대상입니다.

           - 요즘 세상을 바라보는 파란문의 시각입니다 -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은석산 박문수묘.gpx
0.06MB

 

박문수묘 은석산.gpx
0.05MB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