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지맥 마지막구간] 배후령-688m봉-784.6m봉-661m버섯바위- 水利峰-양통고개-546m헬기장-牛頭山 兜率枝脈 6월13일부터 격주로 진행해온 兜率枝脈의 마지막 구간에 왔습니다. 굽이치는 산줄기는 강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며 하늘 아래에선 파도처럼 출렁거렸습니다. 금강산에서 부터 굽이친 兜率枝脈은 이제 춘천의 두물머리에서 긴 허리를 펴고 물속으로 잠김니다 [도솔지맥 개념도] 6월 13일 : [도솔지맥1구간]돌산령-도솔산-대암산-광치령 6월 28일 : [도솔지맥2구간]광치령-개골령-907m봉 군부대-두무동고개 8월 30일 : [도솔지맥3구간]두무동고개-양구터널-봉화산-공리고개 7월 26일 : [도솔지맥4구간]공리고개-越北峴-1031m봉-四明山-1004m봉-817m봉-추곡약수 9월 23일 : [도솔지맥5구간]배후령-오봉산-부용산-종류산-죽엽산-운수령 9월 27일 : [도솔지맥6구간]배후령-水利峰-양통고개-546m헬기장-牛頭山 금강산에서 부터 시작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우리가 갈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아 兜率枝脈을 종주 했다고 자부심을 갖습니다 [背後嶺] 9월 27일(일) 오전 9시20분에 강원도 춘천시와 화천군의 경계인 "배후령"에 다시 왔습니다. 背後嶺이라는 한자를 보면 이곳의 뒤에는 뭔가 뒷끝이 찜찜하게 괴뢰군이 곧 쳐 내려 올듯한 느낌이 스치고 지나 갑니다. 兜率枝脈이 지나는 해발 600m의 고갯마루이므로 산객들은 이곳이 시작과 끝이 됩니다 이어져 있어야 할 산줄기는 도로를 내기 위해 가운데를 절개했으니 兜率枝脈은 인간들에 의해 허리가 잘렸습니다. 앞으로 이 아래에 背後嶺 터널이 뚤리면 저 산줄기를 다시 이어 주기를.... [背後嶺 - 38선] 南과 北이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도우며 살아 간다면 세계 최고의 일류 국가가 될 韓國이라 확신하는데.... 저런 경계석만 보면 괜히 씁쓸해지는건 저 뿐만이 아니겠지요. [背後嶺 휴게소 - 오봉산수] 背後嶺에 있는 휴게소 "오봉산수"입니다. 五峰山이 바로 옆에 있어 '배후령휴게소'가 아닌 '五峰山水'라고 했나 봅니다. 背後嶺은 조금 기분 나쁜 느낌을 주니 '五峰山水'라고 지은건 잘했다고 생각됩니다 이곳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출발합니다. [背後嶺에서 바라보는 양구] 背後嶺에서 지나온 산줄기를 바라 봤습니다. 양구를 감싸고 도는 '도솔지맥'이 파도처럼 일렁입니다. [背後嶺 산행 들머리] '五峰山水' 휴게소 바로 옆으로 산행 들머리를 잡습니다. 9시 35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背後嶺 산행 들머리] '五峰山水' 휴게소에서 50m쯤 오르면 "용화산-수리봉" 산행로를 알리는 이정표가 우리를 반깁니다. [수리봉, 용화산 가는길] 용화산 7.4km 수리봉 7.8km 도솔지맥은 '용화산'으로 가지않고, '수리봉'으로 갑니다 [전망바위] 배후령에서 약 10분 정도 오르면 背後嶺을 내려다 볼수 있는 전망바위가 나옵니다 [688m 전망바위에서 바라 보는 "배후령"과 "경문산"] 전망바위에서 背後嶺을 내려다 봅니다. 背後嶺 뒤에 솟은 산이 "경문산"인데, "오봉산"보다 더 높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五峰山을 "경문산"이라고도 했답니다. 五峰山의 원래 이름은 '산경표'에서 "淸平山"이라고 표기되 있습니다 경문산 좌측으로 五峰山 산줄기가 시작 됩니다. [688m 전망바위에서 바라 보는 "춘천시내"] 오늘 안개가 많이 끼어 조망이 매우 흐립니다. 아쉽습니다. [688m봉에서 보이는 가야할 653m봉] 앞으로 가야할 봉우리들이 나무닢 사이로 조금씩 보입니다. [도솔지맥 마루금] 653m봉 가는 등로입니다. 오늘은 산행기에 특별히 길 안내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구간은 길이 명확하게 잘 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정표도 중간에 필요한 곳에 잘 설치되 있기 때문입니다. [653m봉 중턱에서 뒤 돌아 본 지나온 산줄기] 아까 배후령을 조망했던 688m 전망바위가 있던 봉우리가 가운데 있으며, 그 뒤로 "경문산"이 선명하게 솟아 있습니다. 그리고 좌측으로 '오봉산'능선이 펼쳐집니다. [653m봉 중턱에서 뒤 돌아 본 "오봉산"] 五峰山이 다섯봉우리를 조막조막하게 보여줍니다. 五峰山 좌측 뒤로 "부용산 芙蓉山"이 보입니다. 제가 부용산 산행기에서 김부용의 칠언절구 詩를 알려드렸지요? 다시 한번 감상해 볼까요? 成川芙蓉何事能 성천에 사는 '부용'은 무슨 일을 잘 할까요. 能歌能舞詩詞能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고, 글 또한 잘 짓지요. 能之能中唯一能 잘 하고 잘 하는 가운데 더욱 잘 하는 한 가지는 夜半三更歡夫能 밤 깊은 삼경에 '남정네를 즐겁게 하는 것'이오. [책 바위] 이쪽 구간에는 가끔 바위들이 보였습니다. 책을 쌓아 논듯한 바위이군요 [怪岩] 이름 붙여 주세요 [745m봉] 745m봉에 올랐습니다. 대체적으로 肉山이기 때문에 외부 조망이 어렵습니다. [745m봉에서 바라 보는 춘천방향 - 삼악산] 멀리 "삼악산"이 보이는군요. [784.6m봉 오르는 길의 소나무] 두 소나무가 연리지처럼 서로 껴안고 서 있습니다. [수리봉 - 용화산 갈림길] "수리봉과 용화산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가 784.6m봉입니다. 10시 50분에 이곳에 도착했으니 배후령에서 1시간 15분 걸렸습니다 [수리봉 - 용화산 갈림길 이정표] 수리봉까지 5km가 남았습니다. 그리고 수리봉에서 우두산까지는 또 13km정도 가야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졸업구간이고, 춘천시내구간은 枝脈종주에 큰 의미가 없으므로 생략하고 오랜만에 "졸업파티"를 "춘천 닭갈비집"에서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약11km정도를 걷고 '도로 트랙킹'은 생략하려고 합니다 [수리봉 - 용화산 갈림길 봉우리 - 784.6m봉] 784.6m봉우리를 올라가서 "용화산"으로 갈수도 있습니다. 아까 있었던 갈림길은 784.6m봉을 오르지 않고 우회해서 빨리 가는 길이었습니다 [水利峰 가는 길] 용화산-수리봉 갈림길봉우리를 지나 완전히 남쪽방향으로 꺽어 水利峰으로 갑니다 [661m봉 버섯바위] 도솔지맥 마지막구간에서 만날수 있는 독특한 바위가 있는 661m봉입니다. 11시 5분에 도착했으니 배후령에서 1시간 30분 걸렸습니다. [버섯바위] 버섯바위? 뭐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꼭 기억하시고 이름을 붙이세요~~ㅎㅎ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대화 중에서.....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에게 "개눈엔 똥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중생이 모두 부처로 보인다" [638m봉 가는 길] 크고 작은 봉우리는 계속 이어집니다. 내려가고 올라 가고를 반복합니다. [638m봉] 이렇게 심심산꼭대기에 묘를 써 놨습니다 어떻게 성묘를 다닐려고....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고.... 12시 10분에 출발합니다 [출입금지구역] 특별한 국가시설이 없는데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통과합니다. 사람들의 통행이 뜸한 이런 지맥길을 걸어 보세요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그런 유명 산들보다 산행의 즐거움을 새롭게 해 줍니다 때론 길을 잃고 헤메이고.... 깊은 산속에서 만나는 새로운 산의 형상들을 만나며 가는 산행 이런 묘미에 한번 빠지면 산꾼이 되는 것입니다 [水利峰] 통행통제구역을 통과하면서 보이는 오늘 산행의 핵심 봉우리인 "水利峰"이 보입니다 [水利峰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마루금] 우측 뒤 봉우리가 "경문산"이고, 그 좌측 가운대가 "오봉산"이며, 맨 뒤에 "부용산"이 보입니다. 배후령에서 우리가 "C"자로 산줄기를 따라 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통행통제구역이 제법 범위가 넓습니다. [출입통제구역 탈출] 출입통제구역이 산봉우리 두개 사이인듯.... [水利峰] 水利峰이 가까이 다가 옵니다 [용화산] 水利峰 오르는 길목에서 보이는 花川의 龍華山 조만간 용화산은 꼭 가봐야겠습니다. [水利峰 오르는 등로] 가파른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水利峰] 水利峰 정상에 올랐습니다. 특별히 볼꺼리는 없고, 정상석과 이정표만이 산객들을 반깁니다. [水利峰] 水利峰은 춘천시 신북읍 발산2리의 뒷산이더군요. [水利峰 정상석과 이정표] "수리봉"은 전국에 수없이 많지만, 일반적으로 "독수리"처럼 생겼다고 "수리봉"이라고 하는데, 이곳의 "수리봉"은 독특하게 "水利峰"이라고 하는군요. 호반의 도시이기 때문에 아마도 물과 관계가 있는듯합니다. [水利峰에서 내려다 본 춘천] 발산리가 내려다 보입니다. [水利峰에서 "양통고개"로 하산] [양통고개 이정표] 화천쪽으로 "양통리"가 있더군요. [546m봉 헬기장으로 오르는 길]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546m 헬기장 봉우리로 오릅니다 오늘은 明太祖 朱元璋의 조부 묘가 춘천에 있다 라는 1990년 12월 31일자 스포츠 서울 신문에 대서 특보로 난 기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無子孫千年香華之地(무자손천년향화지지)라. 즉 손이 없어도 천년동안 향내가 끊이지 않는다는 '천하 명당'의 묘가 이땅에 두곳 있는데 그중 하나가 춘천에 있는 "주원장 할아버지의 묘"라는 기사입니다. [546m봉 헬기장으로 오르는 길] "無子孫千年香華之地"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나라의 朱氏에 대해 알아 보아야 이해가 쉽게 갑니다. 우리나라의 신안 朱氏는 중국에서 도망쳐 온 중국인들입니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오게되는 당시 상황은 이렇습니다. 宋나라를 멸망시킨 元나라는 宋나라의 많은 학자와 정치가들을 앞세워 통치 하려 하였으나 不仕二君의 뜻을 굽히지 않고 불응한 한림학자 중 주자 朱子의 증손 주잠 朱潛은 1224년(고려 고종 11)에 1남 1녀와 7 학사(섭공제,조창,진조순,주세현,유응규,두행수,도성차)를 대동하고, 高麗 지금의 전라남도 능주 땅에 몰래 밀항하여 상륙하게 됩니다. 이것을 안 元에서는 군대를 보내어 무등산에 진을 치고 망명한 이들을 수색하여 일부(섭공제,조창)는 잡히여 元으로 압송되고, 대부분은 고려 땅 사방으로 흐터져 숨어 살면서 자손을 낳게 되니 이들이 "동국시조 청계공(주잠 朱潛 - 주원장 할아버지)"의 후손으로 한반도에 朱氏의 뿌리가 된 것이랍니다 [546m봉 헬기장으로 오르는 길] 다시 신문에 난 기사 내용 추적하여 보면 1320 년대 "주오사"라는 한 젊은 이는 춘천 牛頭山(우두산) 기슭 어느 대가에서 머슴살이 할때 그집에 손님으로 와 여러 날을 묵던 한 노인이 나아가며 계란 한줄을 사다 달라고 하며 계란을 사다가 쇠죽 쑤는 부뚜막 위에 놓고 쇠죽을 다 쑨 뒤에야 그 노인이 들어와 계란을 건내 주었다 다음 날 새벽 그 노인은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그 계란과 삽을 들고 나가는 것이 이상해서 뒤따라 가 살펴 본즉 우두산 기슭 양지 바른 곳에에 그 계란을 파묻고 간뒤 여러 날 뒤에 다시 찾아 와서 매일 계란 묻은 땅에 귀를 대고 듣곤 하다가 "이상하다 이자리가 틀림 없는데"하며 허탈하게 돌아 간뒤에 다시 오지 않았다 이때 주오사는 생각 했다 옛부터 명당에는 계란이 부화 할 만치 온기가 있어 훈기가 난다 하였는데 그 계란은 쇠죽 쑤는 부뚜막에서 이미 죽었기에 부화 할리 없었다고 ..... [546m봉 헬기장 정상]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546m봉우리"입니다. 이곳은 매우 중요한 갈림길이며, 지맥길은 좌측으로 직각으로 꺽여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별로없기에 직진하기 쉬운 곳입니다. "도솔지맥"은 좌측 남쪽으로 내려 가야합니다. [546m봉 헬기장 정상에서 바라 본 "용화산"] 龍華山이 가장 아름답게 조망되는 곳입니다. [546m봉 헬기장 정상에서 바라 본 "춘천 시내"와 "우두산"] 사진의 가운데 검게 길게 뻗어 있는 숲줄기가 "도솔지맥"입니다. 그리고 "昭陽江" 건너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이 보입니다. [546m봉 헬기장 정상에서 줌인한 "우두산"] "도솔지맥"의 끝인 "牛頭山"을 줌인하였습니다. "昭陽江"과 "北漢江"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우두평야"가 펼쳐져 있고, 그리고 "牛頭山"이 소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금강산에서부터 내리 뻗은 "도솔지맥"은 이곳까지 흘러와 "牛頭山"에 점을 찍고 "昭陽江"과 "北漢江"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산줄기를 뭍습니다. 明太祖 朱元璋의 조부 묘가 춘천에 있다라는 전설은 바로 저곳 "牛頭山"에 있다는 것입니다. [546m봉 헬기장에서 하산하며 바라본 "도솔지맥"의 마지막 마루금] 다시 신문에 난 기사 내용 그후 '주오사'는 자신의 아버지 묘를 계란을 묻었던 곳에 이장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살다가 1328년에 아들을 낳으니 그 아들이 주중팔(朱重八), 송 나라를 물리친 원 나라를 멸망시키고 40세 되던 해, 1368년에 명나라를 세운 태조 朱元璋이다 주오사가 중국으로 떤난뒤에 춘천에서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우두산 양지 바른 곳에 난데 없이 묘가 생겨나니 아이들의 놀이 터가 되기도 하고 소를 매어 놓아 그 묘를 짓 밟아 무너지면 그 다음 날 번듯 하게 다시 솟아 나기를 반복 하니 사람 마다 이상히 여기고 신통한 묘로 생각하고 묘 이름을 '솟을묘'라 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믿고 돌보기 시작 하였다 신통한 묘에 치성하면 재수가 좋고 병도 떨어지며 아기없는 여인도 애기를 갖게 된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니 너나 할것 없이 벌초땐 서로 벌초 하려고 새벽부터 모여들고 한식과 추석에도 향을 올리고 제향 올리 다가 사방에서 사람이 몰려와 일년 내내 묘를 돌보며 향을 올리게 되니 이 소문이 전국에 퍼져 한양에서도 풍수 대가들이 찾아와 지형을 보고 나름대로 풍수지리적 견해를 論 하였다 현재 충혼탑이 서있는 우두산 정상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소가 머리를 들고 강물을 건너는 형국 인데, 묘자리는 그 소의 콧등에 해당하고 맞은편에 있는 봉이산은 신하가 朝禮(조례)하는 형국이라, 황제가 날 명당 중 명당 자리라하며 無子孫千年香華之地 라 하였다 말대로 이 묘는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돌보는 후손은 없어도 지방 사람들에 의해 잘 가꾸어 져 내려 오고 있다 [줌인한 "우두산"] 다시 신문에 난 기사 내용 춘천에 있는 주원장이 탄생한 1328년과 주원장의 아버지가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고 중국으로 건너 간것을 추적하여 년대를 추정해 보면 대략 朱門의 7세손과 비슷 한것을 발견 할수 있다 한편 중국에서는 역대 태조의 5대조(현조)까지 생가와 묘를 찾아 廟號(묘호)와 始號(시호)를 추증하고 묘를 황능으로 크게 단장하였는데 명나라 태조 朱元璋의 선대의 능은 없고 묘호만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동국시조 청계공 朱潛"과 "명나라 시조 朱元璋"과의 관계는 더욱 흥미를 끌게 된다 ** 참조** 1130년 朱喜(朱子) 新安朱氏 1世祖 탄신 1224 4世 朱潛(주잠) 일남일녀와 7학사 대동 고려로 망명 1242 7세 정숙공(인장) 탄생 1246 7세문간공 (인원)탄생 1248 7세 첨의부사(인환)탄생 1268 주원장(명태조) 조부 탄생(주원장 탄생년-60) 1298 주원장 부친,주오사 탄생,(주원장 탄생년-30) 1328 주원장 중국에서 탄생(할아버지묘가 춘천에 있음) 아무리 신문에 난 기사라 하더라도 설화임을 기억해 두시기 바람니다 [546m헬기장봉에서 하산하는 길] 지맥길을 따라 하산하는 이곳은 길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외길이므로 무작정 똑바로 내려 가기만하면 됩니다. [하산길에서 바라 보는 춘천 소양강] "소양강"은 "밝을 昭"에 "태양 陽"을 쓰는 강이니 매우 환하게 밝은 江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숲을 뚤고...] 숲을 헤치고 나아 갑니다. [묘지] 숲을 헤치고 내려가면 이런 묘지가 나옵니다. [묘지에서 뒤돌아 본 도솔지맥 오르는 숲] 내려와서 뒤돌아 보았습니다. 이쪽에서 역으로 올라 갈때에 길찾기가 쉽지는 않겠더군요 [춘천시 신북읍 중리 - 403번 지방도] 묘지에서 조금 내려 오니 조경원이 나왔고 "403번 지방도"가 나옵니다. "도솔지맥" 마지막 구간은 이곳에서 마감합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野山과 도로를 따라 트랙킹하는 코스이기에 단축하고 대신에 "도솔지맥 졸업 파티"를 "춘천 닭갈비집"에 가서 열기 위해서 입니다. 이곳에 도착하니 오후 3시였습니다. 그러므로 배후령에서 5시간 25분이 걸렸습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산행을 마감합니다. [牛頭山 정상 - 조양루] 버스를 타고 바로 "牛頭山 정상"으로 올랐습니다. "牛頭山 정상"까지 도로가 개설되있어 쉽게 올라 갈수 있었습니다. "牛頭山 정상"에 오르면 "충렬탑"과 사진에서 보이는 "조양루 朝陽樓"가 보입니다. [솟을묘] 朝陽樓 앞에는 그 전설 속의 묘가 쓸쓸히 허전하게 있습니다. 중국 明나라를 세운 "朱元璋"의 할아버지 묘라는 전설은 어딘가 허무맹랑한듯한 느낌이... 그래서 여기저기 자료를 검색해 사실여부를 객관적으로 조사해 봤는데, 다행이 믿을만한 공식적인 설명이 "춘천시 공식 홈 페이지"에 나와 있어서 소개해 드림니다. [솟을묘와 우두산 운동시설] 牛頭山은 이곳 주민들의 건강산책코스인듯합니다. 운동시설도 잘 되 있습니다. 우두산과 솟을묘에 대한 전설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춘천시 공식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전설을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우두산과 솟을묘에 대한 전설 '우두 牛頭'를 우리말로 풀으면 '쇠머리'가 된다. 그런데 이 '쇠머리'와 음차로서 비슷한 '솟을 묘'에 대한 전설이 있다. 우두산에 고총이 있는데 그곳에 소를 매면 소 발자국에 무덤이 푹푹 들어가 엉망이 되었다가 하루밤만 자고 나면 도로 솟아나서 소를 맨 흔적이 전혀 없다고 하여 이 우두산의 무덤을 '솟을 묘', '솟을 뫼'라고 하였다 한다. 그런데 근년에는 이웃 사람들이 이를 시험해 보고자 소를 매니 소가 봉분을 뿔로서 파헤쳐 놓았다. 다음 날 무덤에 가보니 파헤친 흔적이 없어져 신비로운 '솟을 묘'라고 널리 알려졌다 한다. 그리고 이 무덤은 아들이 없는 여인이 이 무덤에 와서 몰래 정성껏 벌초를 하면 틀림없이 득남 한다고 알려져 아들이 없는 부인들이 밤새 벌초한다는 얘기도 있다. [朝陽樓] [朝陽樓와 "慶氏묘"] 朝陽樓 앞에는 "솟을묘"보다 더 눈에 띄는 묘가 있었는데 "경주 慶氏" 묘가 있었습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경주 慶氏"도 흔한 性氏는 아닌데..... [朝陽樓에서 내려다 본 "솟을묘"] "솟을묘"에 대한 전설은 정말로 진짜일까? 당연히 현대 과학으로 증명 할수 없는 단순한 설화일 뿐이 아닐까요? "춘천시 공식 홈페이지"에는 다시 궁금증을 풀어 줍니다 이 무덤의 이러한 유래에 대하여 이 지방민들은 재미있는 주석을 달기도 한다. 이 솟을 뫼의 주인 내외는 애당초 자손이 없을 것 같아서 이 무덤을 오랜 뒷날까지 보존하기 위해 한 꾀를 생각해 냈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무덤이 솟아 난다는 솟을 뫼의 전설을 퍼뜨리고 아울러 아들이 없는 부인이 몰래 와서 정중히 벌초를 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소문을 입심 좋게 퍼뜨렸다고 한다. 이 문제의 솟을 뫼는 동리 야산에 자리하고 있어 이웃 사람들이 자주 와서 소를 매든가 아니면 아이들이 짓밟아 놓든가 하여 훼손이 잦았다고 한다. 이렇게 낮동안 무덤이 훼손될 때 마다 이 무덤의 자손은 밤 사이에 무덤을 원상태로 손질해 놓고 솟을 뫼에 대한 전설을 퍼뜨리면서 신비스러운 무덤이라고 일깨워오고 아울러 아들이 없는 사람이 이 무덤을 몰래 벌초를 하면 감쪽같이 아들을 낳는다는 애기도 곁들였다. 세월이 지나 이 자손이 이사를 갔는데도 아들이 없는 사람들이 밤마다 와서 몰래 무덤을 고쳐놓고 가는 바람에 솟을 뫼의 전설은 점점 빛을 보게 되고 솟을 뫼 무덤은 후사가 없어도 건재 하더라는 것이다. 머리 좋은 자손이 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아이디어 였던 것입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할아버지 묘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이야기 꺼리로는 재미있습니다. [朝陽樓에서 내려다 본 충렬탑 방향] [忠烈塔] 牛頭山은 6.25 전쟁때에 勝戰地로도 유명하더군요 [기념사진] "도솔지맥"을 마감하며 기념사진을 忠烈塔 앞에서 찍었습니다. [춘천 소양1교를 건너며 바라본 "소양강처녀"] 牛頭山에서 춘천시청으로 이동하면서 버스 안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지나는 다리가 "昭陽橋"이며, 호반은 "의암호"입니다. 그리고 "의암호 가운데 분수시설과 좌측에 "소양강 처녀" 동상이 서 있습니다. [춘천시청과 봉의산] "춘천시청" 안으로 들어와 주차를 합니다. 뒤로 "봉의산"이 보입니다. [춘천시청 정문] 춘천시청 정문에는 '신문고'를 크게 세워놨습니다.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을 찾아 가려면......... 우선 춘천시청을 찾아 갑니다. 그리고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문으로 나옵니다. 앞에 보이는 큰 빌딩 좌측 골목으로 나아 갑니다. 그리고 중앙로 큰길을 건너가면 됩니다.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주변 분들에게 물어 보면 간단합니다. 하여간 춘천시청 찾아 가는것은 잊으면 않됩니다.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 입구] 전국적으로 유명한 "춘천 닭갈비 골목"입니다. 오른쪽으로 들어 갑니다.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 많은 "닭갈비집"이 있는데 아무 곳이나 선택해서 들어 가면 됩니다.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 골목 바닥에는 이런 동판을 깔아 놨습니다. [춘천 명동 닭갈비] 춘천 닭갈비를 먹으며 "도솔지맥"을 졸업했습니다. 1인분 9,000원이고 여러명이 갈때에는 조금만 시키세요. (예, 5명이 가면 3~4인분만 시켜도 충분한 양이니, 많이 시켜서 남기지 말도록...ㅎㅎ) [구글어스로 본 산행 괘적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도솔지맥5구간] 배후령-오봉산-부용산-건천령- 종류산-추곡령-죽엽산-운수령 9월 13일(일) 오전 7시 10분에 양재역 서초구청을 출발한 버스는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달려 '도솔지맥5구간' 산행 들머리로 막힘 없이 갔습니다 긴 여름 동안 휴식기로 산행을 함께하지 못한 회원님들을 반갑게 다시 만나 가을 정취를 흠뿍 느끼며 함께 할수 있어 더욱 즐거웠습니다. [구글어스 산행 괘적도] 우선 오늘 산행한 괘적을 구글어스를 통해 알려 드리고 산행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큰 산을 4개를 넘는 긴 코스이기 때문에 산행 괘적을 먼저 알고 산행기를 읽으면 이해가 쉬울수 있다고 생각해서 먼저 올립니다. 강원도 춘천시와 화천군의 경계인 "배후령"에서 "오봉산"을 넘고 "백치고개"로 갑니다. 그리고 두번째 산인 "부용산"을 올라 "건천령"을 지나 갑니다. 다시 "종류산"을 오르고 "추곡령"으로 갑니다. 추곡령에서 "회곡령"을 지나 "죽엽산"을 오르고 "운수령"에서 산행을 마감합니다. 긴 코스이기에 산행기도 길어 질수 밖에 없지만, 최대로 줄여 올리려고 합니다. [배후령-오봉산-백치고개-부용산까지 산행 안내도] 배후령에서 오봉산을 오르는 산행코스는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있는 코스입니다. 우리는 "오봉산 정상"에서 "청평사"로 가지 않고, "백치고개"로 내려가 다시 "부용산"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오봉산 정상을 지나자마자 바로 "부용산 갈림길"을 유의해야합니다 [배후령] 오전 9시10분경 "배후령"에 도착했습니다. 강원도 "춘천시 新北邑"에서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로 넘어 가는 유명한 고개입니다. 특히 휴전선 이전에 남북의 경계선이었던 "38선"이 있는 곳이라 역사적으로도 우리들의 기억에 남는 고개입니다. 背後嶺이라는 한자를 보면 이곳의 뒤에는 뭔가 뒷끝이 찜찜한 느낌을 주는 검은 그림자가 뒤에서 서성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하신 분들은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며 背後嶺을 넘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가히 짐작이 갑니다. ㅎㅎ [배후령] 옛부터 사고가 많이 나는 背後嶺 아래로 터널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완공 예정이나 예산 부족으로 2011년에도 개통이 불확실하다고 합니다. 길이는 5,057m로 2차선 양방향 단선터널로 건설되고 있다는데, 국내 최장대 단선 터널이랍니다 '배후령'에는 휴게소도 있습니다만, 터널이 개통되면 주말에 산객들이나 이용하는 황량한 곳으로 변하게지요 "화천군"은 "물의 나라"라고 광고하고 있습니다. 아마 "파로호"를 안고 있어서 자기들의 상징으로 활용하는듯.... 제 생각에는 "花川"을 순수 우리말로 하자면 "꽃 내"이니 "파로호"로 "물의 나라"보다는 "꽃잎이 흐르는 강"을 더 부각 시켰으면 좋겠는데 화천군 관계자는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배후령 산행 들머리] "도솔지맥의 오봉산 구간"의 산행 들머리는 '배후령 정상'에 있습니다. "오봉산"의 높이가 779m입니다. 한편 "배후령"의 높이는 해발 600m입니다. 그러니 버스 타고 '배후령'까지 올라서 '오봉산'을 오르니 이곳에서 '오봉산' 오르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식은 죽 먹기이죠~ ㅎㅎ [오봉산 오르는 길] 779m의 산을 해발 600m에서 오르니 누구나 "五峰山"을 오를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말이면 많은 산객들이 이곳을 찾아, '배후령'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오봉산'을 오르고 "청평사"로 내려가 소양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소양댐으로 갑니다. 인기있는 코스이죠. 산행들머리에서 약 10분정도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단지 10분입니다. 10분~ ㅎㅎ 그러면 고생 끝입니다. [오봉산-경문산 갈림길] 배후령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이런 삼거리 공터가 나옵니다. 이곳이 경문산과 오봉산 갈림길입니다. '오봉산'은 왼쪽으로 갑니다. [오봉산 가는 길] 다섯개의 봉우리를 넘어 "五峰山"으로 갑니다만, 그다지 높지않은 완만한 경사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봉산의 1봉-2봉-3봉] 오늘 일교차가 커 안개가 많이 꼈습니다 안개 사이로 다섯개의 봉우리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다섯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있어 산 이름을 "五峰山"이라고 지었다고하니, 지금부터 하나 하나 다섯개 봉우리를 감상하며 갑니다. 하지만 평범한 봉우리들이라 특별히 의미를 두고 가는 산객들은 별루인듯... [오봉산의 1봉 나한봉 오르는 길] "五峰山"은 제4봉과 5봉을 제외하곤 나머지는 평범한 그저그런 봉우리입니다 [오봉산의 1봉 나한봉 정상] "五峰山"은 제1봉을 "나한봉"이라 하고, 제2봉은 "관음봉", 제3봉은 "문수봉", 제4봉은 "보현봉", 제5봉은 "비로봉"이라 합니다. 모두 불교적 냄새를 풍기는데, 이 산 아래에 천년 사찰인 "청평사"가 있기 때문일것입니다. [오봉산의 1봉에서 바라보는 3봉-4봉] 안개 때문에 오늘 "五峰山" 사진이 흐릿합니다 [오봉산의 1봉에서 바라보는 4봉-5봉] 짐작했던것보다 "五峰山"은 초라해 보였습니다. 화려한 암봉들은 없었고, 그저 평범한 어느 곳에서나 볼수 있는 산봉우리들이었습니다 [오봉산의 2봉] "五峰山"의 다섯봉우리를 의미를 두며 갈 필요는 없겠습니다. 왜냐하면 평범한 봉우리들이고 실제 산행을 하면 어느 봉우리가 2봉인지 3봉인지 알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4봉과 5봉만 알면 됩니다. [3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4봉과 5봉] 제4봉에는 "五峰山"의 명물인 "청솔바위"가 있습니다 "청솔바위" 이외에는 여느 산과 별 다를게 없습니다 [2봉에서 3봉으로 가는 길] 2봉에서 3봉으로 가는 길에는 다리를 설치해 놨습니다 [3봉 정상] 3봉 문수봉은 우횟길이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을 뿐이며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각 산악회의 표지기가 많이 붙어 있군요 [3봉에서 바라보는 4봉] 3봉에서 4봉 보현봉으로 가는 길에서 올려다 본 4봉 보현봉 오른쪽 뾰쪽한 바위가 "청솔바위"입니다. ['청솔바위' 오르는 길] 암릉구간 [청솔바위] [청솔바위 표지석] 혹평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봉산'에서 볼거리는 이것 뿐인가 합니다. 바위 위로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바위 아래에 보이시나요? '소나무 뿌리' 소나무 뿌리는 꿈틀대는 뱀처럼 땅속으로 뻗어 수액을 빨아 올리고 있습니다. 끈질긴 생명력을 상기시킴니다 [4봉 오르는 길에 있는 추모비] 북한산 靈峰 아시지요? '인수봉' 앞에 있습니다. 그곳에는 인수봉 암벽타기를 하다 꽃다운 청춘을 날려버린 영혼들을 기리는 '진혼비'가 수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약 150여기. 산화해간 영혼을 애도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국립공원에 진혼비들이 난립해 있어 공동묘지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산객들이 '국립공원'에 왠 묘지이냐?라고 항의를 해 금년 봄부터 철거를 시작했는데 그 이후는 가보지 못해 확인은 못했습니다만... 아마 정리가 됬겠죠? 이런 평범한 산에서 등산하다가 죽었다면 조심성이 없는 사람이었던가 봅니다. 하지만 '인수봉'이 아닌 이런 평범한 산에서도 조심 하세요 "안전제일" [4봉에서 뒤돌아 본 1봉-2봉-3봉] 4봉 보현봉에 오르니 지나온 봉우리들이 윤곽을 나타냅니다. [5봉 오르는 길] [5봉에서 뒤돌아 본 1봉-2봉-3봉] 5봉 비로봉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 보니 제1봉 제2봉 제3봉이 확실히 보입니다. 저런 정도의 봉우리를 의미있게 보지는 않는데, 오로지 "五峰山"이라니까 봉우리를 세게 되는군요 [오봉산 정상] "五峰山"의 정상 "제5봉 비로봉"에 올랐습니다 오전 10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배후령'에서 정확히 1시간 걸렸군요 간단하게 "五峰山"의 정상 "제5봉 비로봉"에 올랐습니다 [오봉산 정상] 서울에서 경춘선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와 소양강댐으로 갑니다. 그리고 소양강댐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청평사'로 뱃놀이를 합니다. 천년 사찰 '청평사'와 아홉가지 소리를 낸다는 "九聲瀑布"를 구경하고 "오봉산"을 오릅니다. 그리고 '배후령'으로 가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갑니다. 옛날 학창시절에 한번인가 왔다간 기억이 나는군요 [오봉산 정상석] '여암 신경준'선생이 쓴 "산경표"에는 이 산 이름이 "청평산"으로 표기되 있습니다. 오봉산이라던가 팔봉산이라던가 구봉산등등 숫자를 사용한 산들은 모두 일반명사가 고유명사로 된 경우인데 본명이 있는데도 널리 불리워지기 시작하면 일반명사를 고유명사화 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남대문을 '숭례문'으로 본명을 찾아 주려고 노력하듯이 북한산도 '삼각산', 오봉산도 '청평산'으로 본명을 찾아 주어야하겠습니다. [오봉산 정상] 안타깝게도 오늘 안개가 끼어 조망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봉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없습니다. [등산 안내도] 도솔지맥은 청평사로 내려가지 않고 '백치고개'를 건너 '부용산'으로 갑니다. [부용산-청평사 갈림길] 오봉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 '부용산'과 '청평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도솔지맥 부용산은 이곳에서 왼쪽으로 꺽어 내려 갑니다. 이제부터 진짜 숨찬 산행이 시작됩니다. [백치고개로 하산 하는 길에서 바라 본 '부용산'] 오봉산에서 백치고개로 하산하며 바라본 도솔지맥 '부용산'과 '종류산'이 안개를 뚫고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온 길이 약 5분의 1 정도 되니 앞으로 5분의4를 가야합니다 이제부터 힘든 구간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백치고개로 하산 하는 길에서 바라 본 '화천군 간척리 看尺里'] 도솔지맥의 오봉산, 부용산, 종류산, 추곡령 구간의 좌측으로는 "화천군 간척리 看尺里"가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 도솔지맥이 看尺里를 감싸 돌고 있는 것입니다. [백치고개로 하산 하는 길에서 바라 본 '부용산'] 백치고개로 조금 더 하산하며 바라 본 "부용산" 어떻습니까? 芙蓉꽃이 활짝 피어있는듯 한가요? 芙蓉이라는 단어는 듣기는 많이 들었으나 확실하게는 몰랐습니다. 그저 예쁜 꽃이겠거니하며 이럭저럭 살아 왔습니다. 오늘은 芙蓉山을 오르며 芙蓉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芙蓉을 백과사전에서 찾아 보았더니 "아욱과(―科 Malvaceae)에 속하는 낙엽관목"이라고 나와 있더군요. "모습이 "무궁화"와 비슷하며 관상용으로 흔히 심는다. 키는 1~3m이고, 가지에 별처럼 생긴 털이 있다. 잎은 단풍나무 잎처럼 5~7갈래로 갈라지면서 어긋난다. 꽃잎이 5장인 담홍색의 꽃이 8~10월에 잎겨드랑이에 1송이씩 달려 핀다." 간단하게 말해 "芙蓉"은 무궁화 無窮花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보면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연꽃"을 "부용꽃"이라고 부르기도하지요? 그래서 "연꽃"은 "水芙蓉"이라고 하며, "부용"은 "木芙蓉"이라고도 한답니다 [백치고개로 하산] 오봉산에서 백치고개로 하산하는 코스는 급한 경사면으로 약35분정도 걸립니다. [백치고개와 '부용산 산행 들머리'] 오봉산 정상에서 약35분이 걸려서 내려온 "白峙고개" "山自分水嶺" 산은 스스로 물과 고개를 나눕니다. 이 고개도 떨어지는 빗물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는 곳입니다. 오른쪽으로 떨어지면 '소양호'로 갑니다. 그러나 쪼끔이라도 왼쪽으로 떨어지면 '파로호'로 갑니다. 하얀 자갈이 많아서 "白峙"가 되었다고 춘천시에서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하얀 자갈을 볼수는 없습니다. 이 길 오른쪽으로 내려 가면 "청평사"와 "九聲瀑布", "소양호"가 나옵니다. [부용산 오르는 된비알] 오늘 산행 중에서 가장 힘든 된비알이었습니다. "백치고개"에서 "부용산 정상"까지 1시간5분이 걸렸는데, 숨돌릴 틈없이 된비알을 치고 올라야합니다. [부용산 정상] 12시 정각에 芙蓉山정상에 올랐습니다. '배후령'에서 '오봉산'을 지나 '백치고개'를 건너 이곳까지 2시간 40분이 걸렸습니다 芙蓉山 정상에는 조그만 헬기장 같은 공터가 있을뿐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사방이 숲으로 막혀있어 외부 조망도 할수없는 肉山입니다. 이곳에서 알바하기 쉬운데, 느낌으로는 직진해야 할듯하지만, 왼쪽으로 가야합니다. [부용산 정상 표지] 이쁜 산 이름을 가진 芙蓉山 정상에는 어느 산악회가 붙여놓은 정상표지만 있을 뿐.. [부용산 하산] 芙蓉山 정상에서 부터는 '도솔지맥' 마루금이 희미해 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길로 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길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해가 가나요? ㅎㅎ 지루한 하산길을 걸으며 조선시대에 유명한 "평안도 성천의 기생 '부용 金芙蓉' 이야기"를 하나 들려 드릴려고 합니다. 유명한 얘기이라 아시는 분들도 있을법합니다만.... [부용산 하산, 임도] 부용산 중턱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어디인지도 잘 모르는 "건천령"을 지나면 "임도"가 오른쪽에 나타납니다. 조선 시대, 어느 해 겨울, 신임 평안감사는 부임 전부터 명기가 많다는 평안도 성천에서, 기생중에 기생 "부용(芙蓉)"이 특히나 유명하다는 소문을 이미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답니다요. 세상 남정네 모두 그렇듯 이쁜 것들 보면 꼴리는것은 그도 똑같았습니다. 신임 감사는 그 소문이 정말인지를 알아보려고 잠시 틈을 내어 '부용'을 찾아갔답니다. 은은한 달빛이 술잔을 감싸고 도는 밤 평안감사는 몇잔의 술에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芙蓉'이 글솜씨도 유창하다는 소문을 이 기회에 확인해 보려고, 지필묵을 청하여 '能八'이라고 써서 '부용' 앞에 내밀면서 "여러 방면에 뛰어난 명기라 들었다. 글도 잘 지을 터인 즉, '能' 8자를 넣어 칠언절구를 지어 보라."고 청하였답니다 ....... [임도에서 뒤돌아 본 '부용산'] 아무리 평안감사라 해도 자신을 시험하려는 것에 '芙蓉'은 자존심이 쬐끔 상했지만 공자 앞에서 문자를 논하는 것을 탓하기라도 하듯 '일필휘지'를 날렸습니다. 평안도 성천의 '부용'이라는 기생이 쓴 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能' 8자를 잘 생각하며 읽어 보시기 바람니다. 成川芙蓉何事能 能舞詩詞能 能中唯一 夜半三更歡夫 분명하게 여덟자는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무슨 뜻인지 모두 모르시죠? ㅎㅎ 제가 윗글의 뜻을 알려 드리면 기분이 묘해 질겁니다. 成川芙蓉何事能 성천에 사는 '부용'은 무슨 일을 잘 할까요. 能歌能舞詩詞能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고, 글 또한 잘 짓지요. 能之能中唯一能 잘 하고 잘 하는 가운데 더욱 잘 하는 한 가지는 夜半三更歡夫能 밤 깊은 삼경에 '남정네를 즐겁게 하는 것'이오. [임도 삼거리] 임도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 임도의 이름이 "富貴林道"였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이 도솔지맥 마루금의 오른쪽이 '춘천시 북산면 富貴里'여서 지어진듯.... 이 임도의 왼쪽길을 따라 가면 "추곡령"까지 쉽게 갈수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이길을 임도라고 하지만 "추곡터널"이 뚤리기 전까진 "추곡령"을 넘는 일반 국도였으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가늠해 볼수있기도 합니다 남자에게 다가오는 원자폭탄보다 더 강렬하고 위력적인게 뭔줄 아십니까? 바로 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여자의 잠자리 유혹"입니다. 특히 이쁜 여성의 유혹은 허리케인도 무색할 정도로 남자에겐 위력적인것입니다. 조물주가 절묘하게 그렇게 유혹에 약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그러니 인류는 존재 하고 진화할수 있었던 것인데..... 만약 남성이 여성의 유혹을 강건너 불보듯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후세가 만들어 질수 있겠습니까? 이렇듯 남녀는 절묘한 관계로 서로의 존재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임도 삼거리 '종류산 들머리'] 도솔지맥은 임도 삼거리의 가운데 능선으로 올라 갑니다. 이제부터는 "종류산"으로 가는 길이 되겠습니다. 成川芙蓉何事能 성천에 사는 '부용'은 무슨 일을 잘 할까요. 能歌能舞詩詞能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고, 글 또한 잘 짓지요. 能之能中唯一能 잘 하고 잘 하는 가운데 더욱 잘 하는 한 가지는 夜半三更歡夫能 밤 깊은 삼경에 '남정네를 즐겁게 하는 것'이오. 자신이 청한대로 '能'을 8자 넣어 글을 지었으며, 내용도 삼삼한데다가, 기승전결도 잘 맞는 데 감탄을 하지않을수 있었겠습니까? 특히 마지막 구절에서는 야릇한 감정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였답니다. ㅎㅎ 七言絶句詩의 절정을 맛보는 듯 합니다. 이런 글을 받아 본 평안감사의 기분은 애들이라도 알아 볼수 있겠지요? ㅎㅎ 그래서...계속 이어집니다. 더욱 흥미진진해 집니다. [종류산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죽엽산"과 "추곡령"] 우리 횐님들은 이곳에서 "죽엽산"과 "추곡령"을 바라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칩니다. 저 "竹葉山"을 넘어 "雲水嶺"으로 가야하니 앞으로도 많이 가야합니다. [종류산 오르는 길에서 줌인하여 바라본 "죽엽산"과 "추곡령"] 줌인하였더니 "죽엽산"과 "추곡령"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만나겠지만 SK이동통신송수신탑도 선명하게 보이는군요. [종류산 오르는 길] 평안감사가 '부용'으로부터 한방 크게 얻어 맞은후 얼마 뒤, 눈 쌓인 밖을 내다보던 감사의 눈에, 저만큼 떨어진 산에서 곰이 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감사는 내친 김에 다시 '부용'의 글짓기 능력을 한번 더 확실히 테스트 하려고 방금 본 광경, 즉 '눈 쌓인 남쪽 산에서 곰이 달리는 것'을 '南山雪積能走走' 라고 스스로 써서 '부용'에게 내밀면서 댓구(對句)를 청했답니다. 역시 七言絶句詩를 요구했습니다. *곰은 한자로 "熊"인데, "能"으로 잘못 쓴 것을 주목해 두시기 바람니다 그래야 다음 글들을 이해 할수 있습니다 [종류산 783m갈림길봉] 잠시 감사의 글귀를 훑어보던 '부용'은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띠는가 싶더니 곧 한치의 멈칫거림없이 댓구를 적어 올렸습니다. '北村人歸大吠吠 ' (吠 : 개짖을 폐) '부용'의 댓구를 받아든 감사는 뭔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부용에게 물었습니다. "'北村人歸, 북쪽 마을에 사람들이 돌아오고'는 알겠는데 '大吠吠'라니 무엇이 크게 짖는다는 말이냐, 혹시 잘못 지은 것이 아니냐?" 부용은 감사의 그 물음에는 답을 하지 않고 그 대신에, '大監惠給熊四足 小妾何惜犬一耳' (대감께서는 황공하옵게도 곰 네 다리를 주셨는데, 제 어찌 그까짓 개 귀 하나를 아끼오리까?) 라고 적어 올렸습니다. 대답 대신 받은 '부용'의 글귀를 한동안 주시하던 감사는 그제서야 무릎을 치고 호방하게 웃으며 "역시 자네는 듣던대로 명기임에 틀림없네. 자네를 시험하려 한 내가 부끄럽네."라며 사과를 겸하여 크게 칭찬을 했다고 합니다. 부용은 살포시 웃을 뿐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 달빛이 술잔에 부셔지는 밤에, '부용'이 감사의 수청을 들었는지는 저도 알 길이 없수다~ㅋㅋ 알아도 안 갈켜준다~ [종류산 783m갈림길봉] "종류산 갈림길봉"에서 "종류산"까지 갔다 오는데 30여분 걸린답니다. 그러나 "운수령"까지 가야하는 우리는 "종류산"은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생략했습니다. "종류산"의 모든 봉우리가 모두 "종류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북한산의 '백운대'만이 북한산은 아니고 여러 봉우리들이 모두 북한산이듯이, 이 갈림길봉도 '종류산'이라 자위하며 갑니다. [종류산에서 바라 보는 "사명산"] 그런데 위에서 '부용'이 적어준 글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北村人歸大吠吠'와 이글의 의미를 모르겠다고 하는 감사의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하는 다음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大監惠給熊四足 小妾何惜犬一耳' (대감께서는 황공하옵게도 곰 네 다리를 주셨는데, 제 어찌 그까짓 개 귀 하나를 아끼오리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요? 이 말의 뜻을 알아야 '부용'의 능력을 잘 알고 무릎을 칠수 있습니다 ["추곡령"으로 하산 하면서 바라 본 "죽엽산"] 친절하게 알기 쉽게 해설해 드리겠습니다. 감사가 '부용'에게 댓구를 청하는 글귀 "南山雪積能走"를 주는데 남쪽 눈 쌓인 산에 곰이 다니고 있으므로 "熊(곰 웅)"자를 써야할 것을 감사가 실수로 네 점을 빠뜨리고 "能"이라 쓴 것을 단번에 알아차린 부용은, 감사의 그 실수, 즉 곰 熊자 밑에 점 4개를 빼먹은 것을 "곰 네 다리를 주셨다."고 꼬집으면서, 거기에 맞추어 자기도 일부러 의 점 하나를 뺀 로 써 '개 귀 하나를 드린다.'고 한 것입니다. 자기의 글솜씨를 시험하려는 감사에게 은근히 그리고 재치있게 일침을 준 것이라 아니 할수 없습니다. 金芙蓉의 재치는 가히 칭찬할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ㅎㅎ 재미 있었나요? 이글은 정비석선생의 "명기열전"에 나오는 내용을 필자가 조금 각색해서 알려 드린것입니다. 언젠가 앞으로 "정비석" 선생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北으로 월북하셨기에 그의 문학까지 가버린 현실을 반추해 보려고요..... 많이 기대해 주세요, 엄청난 얘깃거리를 가지고 가신 분입니다. ["추곡령"으로 하산 하면서 바라 본 "사명산"과 "운수령"] "김부용"의 호는 雲楚이며 그녀의 무덤은 천안 광덕산 자락에 있습니다. 저는 다녀 왔습니다만, 천안 광덕산 가는 길 있으면 한번 들려 보세요. "장군바위"에서 "광덕사"로 내려 오는 길에 있습니다. 김부용이 19살때에 77살의 '淵泉 김이양'을 만나 소실이 되었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나요 "김부용"은 호탕한 여인으로 기생에는 뜻이 없어 기생을 그만 두고 금수강산을 유람하며 여생을 보내다, 부용은 淵泉 김이양'이 죽은 후에 기생으로 수절하다가 김이양의 묘 옆에 뭍히고 싶어 천안 광덕산 자락으로 찾아와 뭍혔다는 애뜻한 사연도 제가 광덕산을 찾았을 때에 알수 있었습니다 김부용이 쓴 시집 "芙蓉集"에는 약 150수의 시가 수록되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김부용의 최고의 詩 부용상사곡 芙蓉想思曲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추곡령"으로 하산 하면서 뒤돌아 본 "오봉산"과 "부용산"] 성천기생 김부용의 시와 사 랑 애타게 그리움과 기다림에 지친 부용은 지루함을 달래면서 "탑시" 형식의 시를 짓습니다. 한 글자로부터 시작해서 각 구마다 한 자씩 더하여 마지막에는 16자까지 되어 탑 형태를 이루는 저 유명한 회문체의 "芙蓉相思曲"이라는 시를 써 내려갑니다. ["추곡령"으로 하산 하면서 뒤돌아 본 "종류산"]
芙蓉相思曲 김부용 (塔詩) 別 思 路遠 信遲 念在彼 身留玆 羅巾有淚 紈扇無期 香閣鍾鳴夜 鍊亭月上時 倚孤枕驚殘夢 望歸雲悵遠離 日待佳期愁屈指 晨開情札泣支頤 容貌憔悴對鏡下淚 歌聲烏咽對人含悲 提銀刀斷弱腸非難事 躡珠履送遠眸更多疑 昨不來今不來郎何無信 朝遠望夕遠望妾獨見欺 浿江成平陸後鞭馬騎來否 長林變大海初乘船欲渡之 別時多見時少世情無人可測 惡緣長好緣端天意有誰能知 雲雨巫山行人絶仙女之夢在某 月下鳳臺簫聲斷弄玉之情屬誰 欲忘難忘强登浮碧樓可惜紅顔老 不思自思頻倚牡丹峰每傷緣鬢衰 獨守空房淚縱如雨三生佳約焉有變 孤處深閨頭雖欲雪百年定心自不移 罷晝眠開紗窓迎花柳少年總是無情客 推玉枕挽香衣送歌舞同春莫非可憎兒 千里待人難待人難甚矣君子薄情如是耶 三時出門望出門望哀哉賤妾苦心果如何 惟願寬仁大丈夫決意渡江舊緣燭下欣相對 勿使軟弱兒女子含淚歸泉孤魂月中泣長隨 이글의 해석은 "홍어와 무인도" 카페의 "향그러운 음악과 글"란에 있습니다
[추곡령 楸谷嶺] 오후 3시 25분에 도착했으니 '배후령'에서 6시간 5분 걸렸습니다. "추곡령"은 "楸谷嶺"으로 쓰는데 "楸"가 "개오동나무 楸"라고합니다. 아마도 개오동나무가 많은 곳이라 지어진 이름인듯..... 추곡령의 오른쪽 아랫마을 이름이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추곡리"이기 때문에 "추곡령"이고, 왼쪽이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여서 이곳 사람들은 "간척령"이라고 부른 답니다 아무튼 화천군과 춘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며, 옛날에는 이 고개를 넘어 서로 왕래를 하였으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습니다. 이곳에서 아까 "종류산 입구 임도 삼거리"에서 좌측길로 오면 이곳에서 만납니다. "富貴林道"라는 이름이 오묘합니다 택시도 이곳에 왔다 가더군요. 차량 통행이 아직도 제법 있는듯 합니다. [추곡령에서 "죽엽산 산행 들머리"] 추곡령에서 "죽엽산"을 오르는 들머리는 "富貴林道"를 따라 '상추곡리' 방향으로 30m쯤 내려 가면 좌측으로 길이 열림니다 [추곡령 위 'SK 이동통신 송수신탑'] 추곡령에서 조금 올라 가면 "SK이동통신송수신탑"을 정면으로 만나는데 탑 정문 앞 좌측으로 우회로가 있습니다. [죽엽산으로 오르며 뒤 돌아 본 'SK이동통신송수신탑'과 뒤로 "종류산"] 통신탑 뒤로는 지나온 "종류산"이 우뚝 서 있습니다. 그리고 도솔지맥이 한눈에 보입니다. [회곡령 灰谷嶺 근처] 지도상에 나와 있는 "灰谷嶺" 쯤 묘지에서 올려 다 본 "竹葉山" [회곡령 灰谷嶺 근처에서 올려다 본 "죽엽산"] 여기서 휴식을 취하며, 쇠주 한잔하고 엄청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해발 859.2m 죽엽산을 오르니 더욱 힘듭니다 [죽엽산 중턱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지나온 "종류산"과 "추곡령"] 죽엽산 중턱에 오르니 지나온 모든 산줄기가 한눈에 보이는 기막힌 전망대가 있었습니다 피로가 단번에 날라가는듯 펼쳐지는 경치가 장관입니다. [죽엽산 중턱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지나온 "도솔지맥의 오봉산-부용산"] 지나온 도솔지맥 좌측으로부터 '부용산', '백치고개', 오봉산', '배후령', 앞의 마을은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 [죽엽산 중턱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지나온 "종류산"과 "추곡령"] 부용산에서 종류산을 지나 추곡령..그리고 죽엽산 줄기가 한눈에 보입니다. [죽엽산 오르는 된비알] 마지막 힘을 쏟아 죽엽산 정상으로 향합니다. [죽엽산 정상 바로 앞 삼거리] "죽엽산" 정상을 약 30m쯤 앞두고, 희미한 삼거리가 있습니다. 제가 이 사진을 특별히 올리는 이유는 이곳에서 알바를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죽엽산 정상을 갔다가 반드시 이곳으로 되돌아 와야합니다. 죽엽산 정상에서 직진하기 쉽기 때문에 강조해 드리는 것입니다. [죽엽산 정상 竹葉山] 희미한 삼거리를 지나면 곧바로 "죽엽산 竹葉山"정상입니다. 사방이 숲으로 막혀 시야가 트이지도 않습니다. 뭘 위해서 이곳에 올랐는지 .... 후회되기도 하는 그런 죽엽산 정상입니다. 오후 5시 10분에 도착했습니다. [죽엽산 삼각점과 증명사진] 죽엽산 정상에는 삼각점 하나가 덩그렁 놓여있고, 몇개의 산악회 표지기가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회원들이 포기한 이곳까지 오른 대단한 용사들의 증명사진입니다. [죽엽산 정상에서 살짝 보이는 "파로호"를 줌인] 나무가지 사이로 간신히 줌인하여 촬영한 '파로호' [죽엽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춘천시 북산면 상추곡리"] 죽엽산 정상에서 약30m쯤 되돌아 나와, 도솔지맥 마루금을 타고 "운수령"으로 향합니다. 우측으로는 "상추곡리"가 시골풍경을 멋들어지게 펼쳐집니다. [죽엽산 정상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부용산-종류산-추곡령-죽엽산 줄기"] 더욱 확실하게 보이는 지나온 도솔지맥 그림 같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저 산들을 모두 넘어 왔다고 생각하니.... [운수령으로 하산] 날이 어두워 집니다. 어두워 지기 전에 운수령을 가야함으로 발길을 재촉합니다 길도 희미한 지맥길은 길고 긴 하산길이었습니다. [운수령 雲水嶺] 산그림자가 기울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오후 6시 15분경 "옛 운수령"에 도착했습니다. 새로운 도로들이 뚤리기 전까지는 이런 곳으로 넘나 들었겠지요. 서글프게 보이는 "옛 雲水嶺" [운수령 雲水嶺] 雲水嶺에는 이런 돌담을 쌓은듯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운수령에서 新雲水嶺으로 가는 마지막 651m본] 봉우리는 끝없이 계속되는듯 넘으면 나오고 또 나오고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마지막 봉우리 651m봉으로 오릅니다. [新雲水嶺] 651m봉을 간신히 넘어 내려오니 "新雲水嶺"이 이렇게 버티고 서 있습니다. 어느듯 어두워진 "신운수령"에 오후 6시 50분경에 도착했습니다 춘천시 추곡리에서 화천군 운수골로 넘어 가는 고갯길입니다. [新雲水嶺] 친절하게 버스가 여기까지 올라와 주어 조금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뒷풀이] 소주 한병, 라면 한그릇 순식간에 해치우고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돌아 오는 길에 '고갈산님'과 분당에서 또 한잔하고.....ㅎㅎ [구글어스 산행 괘적도] 총산행 거리 : 약 17km 총산행 시간 : 약 9시간 30분 평균 오르막 속도 : 약 1.4km/h 평균 내리막 속도 : 약 2.21km/h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도솔지맥 3구간 烽火山 區間 山行記 두무동고개-양구터널-봉화산-공리고개 지난 2009년 7월 12일(일)에 도솔지맥3구간 종주를 위해 양구의 공리고개로 갔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정상적인 산행을 할수가 없었고 특히 사진 촬영을 할수 없어 산행을 접고 소양강 근처 횟집에서 아침부터 오후 6시까지 퍼 마시다가 왔습니다. 오늘은 그때 하지 못한 산행을 다시 하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산행기를 씁니다 [도솔지맥 1~4구간 개념도] 지금까지 진행해 온 '도솔지맥 1구간~4구간을 정리했습니다 이미 '추곡약수'까지 진행하였으나 "3구간"만을 폭우로 답사하지 못해 이번에 3구간을 별도로 다시 산행을 하였습니다. [도솔지맥 3구간 산행 개념도] '3구간'만을 별도로 개념도를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가실 분들은 이 지도에 빨간 색으로 표기된 봉우리와 산행기를 함께 보시면 참고가 될것입니다. 등로가 희미하고 갈래길이 많아 길을 놓치기 쉬운 코스이기에 주의가 필요한 구간입니다. [양구 '두무동 고개'] 8월30일(일) 오전 11시에 두무동고개에 도착했습니다. 다소 늦은 산행이나 단촐한 식구이기에 산행 준비를 간단히 하고 11시 15분에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두무동고개' 산행 들머리] '두무리' 표지석 바로 뒤 전봇대가 있는 산행 들머리로 들어 섭니다. 좋은 등산로 놔두고 이런 길도 희미한 숲속으로 기어 들어 가는 것을 우리는 더 좋아 합니다. ㅎ 다른 일반인들이 보면 조금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만 가 보지 못한 길을 가 본다는 단순한 호기심도 자신에겐 보람으로 느껴지기에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그런 유명한 등산로는 피하고 이런 지맥을 가는 것입니다 [542m봉] 두무동고개에서 30분쯤 오르면 첫번째로 조금 높은 봉우리가 나타나는데 이 봉우리가 542m봉이며 ....여기서는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숲속에 들어 서면 방향감각이 무뎌져 자칫 길을 잃는 때가 많은데 특히 '도솔지맥'은 사람들의 흔적이 별로 없는 구간이 많아 매우 조심해야합니다 [578m봉] 독도에 매우 조심해야하는 곳입니다. 느낌으로는 우측으로 가야하는듯하지만 좌측으로 가야합니다. 선답자들이 이곳에서 알바를 많이 하였더군요 [580m봉] 두무동고개에서 양구터널까지 코스에는 선답자들이 길을 헤맨 흔적이 뚜렸이 남아 있었습니다. 표지기도 엉뚱한 곳에 붙여 놓은 것도 많았습니다. 독도에 자신 없으신 분들은 매우 조심하여야 하는 코스이더군요 [580m봉에서 헬기장까지] 새벽6시에 집을 나섯는데, 분당에서 '고갈산님'을 태우고,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구리 도농역으로 가서 다시 '개살구님', '교감샘님'과 합류하여 추억의 46번국도를 드라이브하듯이 여유롭게 달리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가을을 느끼며 북한강을 끼고 춘천으로 가서 순댓국에 쇠주 한잔씩 하고 두무동고개로 가니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헬기장 봉] 평범한 봉우리 몇개를 넘어 가니 제법 높은 봉우리가 나타났습니다 숲으로 앞뒤가 꽉 막힌 육산에서 처음으로 하늘이 열림니다 [헬기장] 헬기장에 도착하니 12시 40분 정도 되었으니 두무동고개에서 약 한시간반정도 걸렸습니다. 새벽에 집을 나설 때에는 가랑비가 내렸고 춘천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양구로 접어 들자 비는 그치고 산행하기 좋은 시원한 날씨로 변했으니 확실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가 봅니다 [565m봉] 헬기장에서 조금 가니 양구터널 위 565m봉이 나왔는데 좌측으로 임도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지난 비오는 산행때 임도를 타고 온 횐님들이 아마도 여기서 길을 잘못들어 오히려 편하게(?) 두무동고개로 직행한듯합니다 양구터널에서 두무동고개로 가실 분들은 임도를 타면 편하게 갈수 있습니다 [양구터널 위로 내려 가는 길] 565m봉에서 양구터널 위로 내려 가는데 산불감시초소가 보입니다. [양구터널 위 산불감시초소] 산불감시초소 아래로 46번국도 '양구터널'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도솔3구간에 있는 유일한 산불감시초소이니 이것이 보이면 양구터널 위입니다 [양구터널 위에서 바라 본 양구 청리] 원래 46번 국도는 조금전 산행 들머리였던 "두무동고갯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양구터널이 뚤리면서 '46번국도'는 이곳이 되었으며 "두무동고갯길"은 이제 지방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옛날에는 얼마나 불편한 교통지역이었는지 상상이 가십니까? 옛날에는 '강원도 운전 면허"가 최고라는 때가 있었습니다. 양구에서 인제로 넘어 가는 꼬불꼬불 비포장 산비탈길을 다녔으니 운전 솜씨는 강원도 운전면허가 최고라고 했던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양구와 인제 속초를 넘어 가는 길들은 거의 고속도로 수준입니다 꼬불꼬불한 길은 터널을 뚤어 시원하게 직선화 하였습니다. [양구터널 위 헬기장] 양구터널 위에는 헬기장이 또 하나 있습니다. [헬기장에서 46번 구도로로 내려 가는 길] 이동통신 안테나가 있는 곳에 양구터널 위와 46번국도를 연결하는 통로가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비포장 도로가 아주 옛날 '46번국도'였답니다 오후 1시에 도착했습니다. [양구터널 위 "46번 국도" 옛길 - 도리지고개] '도리지고개' '옛 46번 국도' '이동통신 안테나 전봇대 옆으로 터널 입구로 내려 가는 길' 아~! 이길로 선조들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겨내며 지나 다녔을까~ 이제는 우리같은 산객들이나 얼씬거릴 뿐 아무도 다니지 않는 이 길이 옛날에는 ..아니 그다지 옛날도 아닌 70년대 까지도 이 고개를 넘나 들었을테니.. [되레지 고개] '도리지 고개'에 대해선 그 의미를 알기 위해 많은 조사를 해 봤습니다 '양구 지명의 유래'에 간단하게 소개되 있어서 보물을 찾은 듯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지도에는 "도리지고개", "작은 도리지 고개"로 표기되 있습니다 양구군 공식 홈페이지에는 "되레지 고개"로 표기되있더군요. 이 고개 아래에 "도촌리"가 있는데 挑村里로 한자표기를 하고 그리고 분명하게 挑村里되레지 또는 도리곶(桃里串)이었는데 복숭아가 많이 나오는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명이 되있습니다 되레지고개(桃村峴)【고개】되레지에서 원리로 넘어가는 큰 고개 작은 되레지 고개(小桃村峴)【고개】되레지고개 아래쪽에 있는 작은 고개 [되레지고개] 이제는 쓸모없는 탱크 방호벽이 쓸쓸히 '되레지고개'를 지키고있습니다. [되레지고개에서...] 양구터널 위 되레지고개에서 소양호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 한장 저와 함께 있는 분이 닉네임 '개살구'이신데 진정 산꾼 중에 산꾼이라고 생각됩니다. '진정한 산꾼'이라는 말이 좋은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 같은 '날라리 산꾼'이 볼 때는 하늘같은 존재감을 주는 强者입니다. '백두대간'을 4번 완주하고.... '9정맥'은 당연 완주했으며 요즘은 산행 가이드로 수시로 또 다니고.... 제가 왜 '진정한 산꾼'이라는 말이 좋은 말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느냐하면 이 양반은 산에 다니느라 주말을 가족들과 함께 할수 있는 시간이 과연 있었겠는지 물어 보지 않을 수 없어서입니다. ㅎㅎ '대간과 9정맥'을 한번 완주하는데도 족히 10여년은 걸립니다. 산을 좋아 하는 우리 '개살구님'은 '진정한 산꾼'으로 가정생활도 잘 챙기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시간상 도저히 다정한 아빠와 사랑스런 남편은 힘들겠다고 여겨집니다...ㅎㅎ 하여간 이 어려운 도솔지맥3구간을 지도 한장 달랑들고 알바없이 완주를 했습니다 저는 지도 아니라 네비게이션을 갖다 줘도 길을 잃고 헤메였을 텐데... 수많은 경험 없이는 우리같은 쫄병을 데리고 홀로 지도 한장으로 길안내를 할수 없습니다. 정말 대단한 독도 능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9월부터 다시 '낙동정맥'을 간다는데.... 소양호가 양구터널 앞까지 쳐 들어 와 있습니다. 등산 그만하고 낚싯대 들고 빨리 여기로 오라고 하는 듯 합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 간다는데 봉화산으로 향하는 우리는 사공인가? 산꾼인가~ [되레지고개의 봉화산 들머리] 양구터널 위에서 봉화산으로 가는 지맥 들머리는 전봇대가 있는 바로 저곳입니다. 많은 경험없이는 산행 들머리를 바로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개살구님'은 척척 찾아 냅니다. 마치 전에 와 본적이 있는듯이.... [봉화산 들머리] 가파른 들머리를 치고 오릅니다. 언젠가 '개살구님'에게 왜 하필이면 그 많은 좋은 닉네임 놔두고 '개살구'라고 지었냐고 물어 보았더니, 웃으며 특별히 의미를 두고 지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산행인생이 '빛좋은 개살구' 같데나 뭐래나~ ㅎㅎ 개살구라는게 먹을 수있는 과일은 아니나 보기에는 얼마나 먹음직스럽고 탐서러워 보입니까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자신의 '山行 人生'과 비슷하다고.... 청춘을 산에서 보냈는데 남은 것도 없고.... 또한 화려한 산행 경력이 삶에서는 '빛 좋은 개살구' 같다구~~ 그러면서도 또 오늘 저와 함께 산행을 하고 있으니.....개살구 맞어~ ㅎㅎ 알콜중독자 등급처럼 산중독 등급을 메긴다면 개살구님은 4기~ ㅎㅎ 저도 2기는 넘었나 봅니다만... [봉화산 들머리로 올라 서서 내려다 본 "46번 국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피천덕 선생'이 번역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생각 납니다. 저는 대학 영문과에 진학 해서 "The Road Not Taken"을 원문으로 접하고 이 시가 어떤 의미를 주는지 더욱 깊이 느끼게 되어서 아직도 기억합니다 옛길을 옆에 두고 새로이 뚤린 '46번 국도' 길은 길에 연이어 끝이 없으므로......... 가지 않은 길 Robert Frost - 피천득 譯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피천득선생은 연세가 100살이 다되 가는데 아직도 살아 계시더군요 [545m봉] 양구터널 위 되레지고개에서 15분 정도 오르니 545m봉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우측으로 가기 쉬운데 반드시 좌측으로 가야합니다. Robert Frost는 두갈래 길에 서서 어느 길을 선택 할것인지 고민을 했습니다 인생의 길은 한번 가면 되돌아 올수 없는 길이기에 .... 그는 실제 "농부의 길"과 "시인의 길"을 놓고 고민을 했답니다 그는 결국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적은 "시인의 길"을 걸어 갔고 자신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우리는 언제나 갈림길을 만나고 어느 길을 갈것인지 결정하며 살아야하죠. 그래서 "인생은 갈림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양구 도촌리 전경] 양구터널을 지나 545m봉에 오르니 양구읍내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아랫 마을이 그 유명한 "국토 정중앙 천문대"가 있는 "양구 도촌리"입니다 저는 오늘 산행에 최고 포인트로 이곳을 촬영하려고 미리 준비했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한번에 "국토 정중앙 천문대"를 찾아 냈습니다 바로 아래 가운데 있는데.... [국토 정중앙 천문대] 줌인하여 촬영했습니다. 분명하게 보이시죠? 봉화산 위에서 "국토 정중앙 천문대"를 촬영한 사진을 아직까지 못봤습니다. 봉화산에서 촬영하기로는 아마 제가 처음 일것입니다. 오늘 산행기의 하일라이트인 "國土 正中央"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것을 烽火山 정상에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갈대숲을 헤지고 삼각점이 있는 607.5m봉] 545m봉에서 키보다 높은 숲을 헤치고 전진하여 오르니 삼각점이 있는 607.5m봉이었습니다. 이 봉우리부터 시야가 확 터이고 봉화산을 오르는 의미를 덤북 안겨 줍니다. [607.5m봉] 607.5m봉에 오르니 "봉화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운데 우뚝 뾰쪽하게 솟은 산이 "烽火山"입니다 여기서 이제 저 두봉우리만 점령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정상은 그렇게 쉽게 내 주지 않더군요. 저 두 봉우리 사이에 여러 봉우리가 또 있었습니다. 가까운듯 보이는데 엄청 먼 거리였습니다. [607.5m봉에서 바라 본 대암산 산줄기] '도솔지맥 1구간' 돌산령과 대암산 능선이 검푸르게 보입니다. [몇개의 봉우리를 넘어 670m봉] 오후 3시 30분경에 몇개의 봉우리를 넘어 670m봉에 오릅니다 [670m봉에서 송전철탑이 있는 곳으로 하산] 670m봉에서 송전철탑이 있는 곳으로 내려 가는데 낙원 A.P.C.산악회 회원님들을 만났습니다. 오늘 봉화산 구간에서 처음 만나는 산객들입니다. 원래 우리와 함께 '도솔3구간'을 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각자 출발했었습니다. 낙원 A.P.C.산악회 회원님들은 공리고개에서 양구터널로 진행하고 우리는 두무동고개에서 양구터널을 지나 공리고개로 역으로 진행하였기에 중간에서 만날수 있었습니다 인적없는 산속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습니다. ["낙원 A.P.C.산악회" 회원님들] 낙원 A.P.C.산악회樂園 Alpine Club이라고 하며 산행을 엄청 좋아하는 산꾼들의 모임으로서 정예 회원님들로 구성되있답니다 백두대간 9정맥은 물론 기맥 정맥을 찾아 다니는 프로 산꾼들이지요. 樂園 Alpine Club은 비 오는 날에는 절대적으로 산행을 자제하고 산행 중에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답니다 언제나 즐겁고 안전한 산행 하시길 기원합니다. [송전철탑] 여느 산행기에나 등장하는 '송전철탑'을 만납니다. 이제 오늘 산행거리의 반 정도 온듯합니다. 이제부터 봉화산을 치고 오르는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652m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송전철탑'과 '670m봉'] 다음 봉우리 652m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송전철탑'과 '670m봉'입니다. 저 산 중턱에서 "낙원 A.P.C.산악회" 횐님들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 산(670m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보이는 능선으로 가기 쉬운데 직진해야 합니다. 알바 많이 하는 곳이랍니다 [봉화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봉화산 정상'이 다가 오니 곳곳에 일반등산객의 편의를 위해 계단을 설치해 놨습니다. 가파른 된비알을 오릅니다. [봉화산 일반 등산로 안부] 오후 3시 40분경 봉화산 일반 등산로 안부에 도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봉화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은 도촌리에서 이곳 안부로 올라 봉화산 정상을 밟고 심포리로 내려 간다고 합니다. 오른쪽에 도촌리에서 올라 오는 등로가 있습니다 [봉화산 정상까지 660m가 남았다는 "국토정중앙답사코스" 안내판] 이곳 안부에서 정상까지는 660m가 남았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산길 오르막 660m는 평지 3km정도에 해당합니다. [봉화산 정상부] 드디어 하늘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정상이 다가 왔다는 신호입니다. [봉화산 정상부] 고사목과 바위들이 제법 그럴듯한 정상임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고사목 뒤에 보이는 암봉이 '봉화산 정상'입니다. [봉화산 정상부에서 바라 본 소양호 신남 부근] 고사목이 있는 정상부에서 소양호가 시원스레 보입니다.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 열여덟 딸기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져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 [소양호 신남 선착장] 줌인하였더니 신남부근이었습니다. 동백꽃 피고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서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가슴에~♪ 떠나고 안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봉화산 정상] 烽火山 정상이 다가 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 섬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동서남북 4극지점을 잡아 이 4극지점을 기준으로 중앙경선과 중앙위선의 교차점이 우리 국토의 정중앙지점이라는데 그 정중앙지점이 바로 이곳 강원도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 48번지 - 봉화산 일대라는 것입니다 그 좌표는 동경 125'02'02.5', 북위 38'02'37.5'이라고 합니다. [봉화산 정상] 우리는 우리나라 국토의 정중앙에 섯습니다. 감개무량이지요. '개살구님'과 '교감샘님'이 우리 국토를 내려 깔고 우쭐대며 서있습니다. 땀 흘리며 오른 보상이 이것입니다. "옴파로스"라는 말 어디서 많이 들은것 같지요? 네, 여성복 남성복 상표, 즉 의류 브랜드로 알고 있겠지요? 그런데 "옴파로스"라는 말의 뜻을 알고 옷을 사입는지 모르겠습니다. "옴파로스"는 무척 중요한 단어입니다. "옴파로스"는 라틴어로 OMPHALOS 세계의 중심, 방패의 중심돌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따지자면 신체의 중심인 "배꼽"을 의미합니다. [그리스 델포이市 박물관에 남아 있는 실제 "대지의 배꼽-옴파로스"] "대지의 배꼽 - 옴파로스 OMPHALOS"는 어디에 있을까? "지구의 배꼽 - 옴파로스 OMPHALOS"는 그리스 역사(신화) 속에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보관되어 전시되고 있습니다. 윗 사진입니다. "대지의 배꼽 - 옴파로스 OMPHALOS"는 기원전 3~4세기에 그리스의 델포이市에 세워진 '아폴로신전' 지하에 아폴로에 의해 만들어져 보관되어 왔는데 현재는 델포이市 박물관에 윗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전시하고 있답니다 델포이市는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170km 떨어진 험준한 산악지역에 있습니다 '파란문'이 친절하게 '옴파로스 실물 사진'을 쎄비해와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델포이市에 역사적 유물인 "대지의 배꼽 - 옴파로스 OMPHALOS"가 보관되 있습니다. !! 어느 나라나 모두 자기 나라가 대지의 중심이라고 주장할수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느 나라나 자기 나라의 중심-배꼽-옴파로스는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대지의 중심-배꼽-옴파로스"가 이곳 봉화산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봉화산 아래 도촌리에 國土正中央天文臺를 세웠다고합니다 [봉화산 정상] 대한민국의 옴파로스인 이곳 烽火山을 와 보지 않고는 산객 자격이 있겠습니까? ㅎㅎ 이제부터 대한민국의 옴파로스-烽火山 정상에서 동서남북을 조망해 보겠습니다. 우선 정상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烽火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전국에 무수히 많습니다. 춘천에만도 세개가 있으며, 경남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뒷산도 봉화산입니다 헤아릴수 없이 많은 烽火山중에서 가장 유명한 산이 바로 이곳 양구의 烽火山입니다. 우리나라 국토의 정중앙에 위치하기 때문이며, 와서 보니 산세도 좋고, 주변 풍광이 너무나 화려하게 조망되어 더욱 유명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봉화산 정상 '봉화대'] 烽火山정상에는 쓸데 없는 돈을 들였더군요. 최근에 烽火臺같은 것을 흉내만 내서 만들어 놨으나 너무 생각이 짧은 듯합니다. 아무리 흉내만 냈다하더라도 이런 우물 형태의 봉화대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차라리 이것 대신에 그럴듯한 정상석을 하나 세우는게 더 나을 듯 합니다. 도솔지맥 마루금이 우물같은 인공봉화대 뒤로 뻗어 있습니다. 뒤로 보이는 산봉우리가 870m봉이며 앞으로 저 봉우리를 넘어 하산 할 예정입니다. [봉화대 안내와 "국토정중앙답사 안내"] [봉화산 정상에서 뒤 돌아 본 지나온 '도솔지맥'] 지나온 '도솔지맥' 산줄기가 그림같습니다. 사진의 맨 끝 가운데 검게 솟은 백두대간 설악산구간이 검은 파도처럼 일렁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끝에 '가리봉'이 솟아있습니다. [봉화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양구 전경] 양구를 정확히 보려면 양구의 진산인 烽火山을 올라야 합니다. 화천댐으로 만들어진 "파로호"가 양구읍내까지 들어 와 있습니다. 좌측 산줄기가 도솔지맥4구간 사명산 구간이고, 우측 멀리 대우산이 보입니다 바로 앞이 '포사격훈련장'입니다. 양구에 비행장이 있는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양구읍내 가운데에는 활주로가 길게 뻗어 있습니다. [양구 비행장 활주로] 그래서 '양구 비행장 활주로'를 줌인하여 촬영했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천혜의 자연을 유지하고있는 이곳 양구의 파로호 주변에 별장을 짓고 자가용 비행기로 저 비행활주로를 이용하면 매우 편리하겠습니다. 빨리 돈 벌어서 자가용 비행기를 사야겠습니다. 에구~ 숫돼지 새끼 낳을 때를 기다리는게 더 낫겠다구요? ㅎㅎ [봉화산 정상 바로 아래 "포사격훈련장"] 봉화산 바로 아래는 '포사격훈련장'입니다. 그래서 봉화산 정상에서 870m까지와 주변 산등성이에는 "防火線"이 쳐져있습니다. 防火線에 대해서는 870m봉에 가서 다시 설명합니다. 봉화산은 양구 남쪽에 솟아 있어서 양구에서는 봉화산의 북쪽 사면이 언제나 보입니다. 북쪽 사면이기에 겨울이 지나도 눈이 잘 녹지 않아 봄까지도 봉화산은 눈으로 덮여 있답니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이 '스키장'으로 개발하자고 여론이 높아 가고 있다고 하네요 이 사진을 보니 어떻게 느껴 집니까? 스키장 만들어도 되겠지요? 특히 '춘천-서울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해져서,북새통 영동지방보다 경쟁력이 더 있을 듯 생각됩니다. 스키장 만들면 함 가봐야지~ 오늘의 추억을 씹으며.... [봉화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사명산"] "四明山"이 위용을 자랑합니다. 지난 7월 26일(일)에 저 산줄기-도솔4구간을 9시간 30분이 걸리며 추곡약수까지 완주 한바 있습니다. 당시 외국인 4명이 함께 했는데 그들은 "다시는 서울백두클럽과 같이 등산 않한다"고...ㅎㅎ 관악산만 다니다가 이런 오지 지맥을 가니 혼줄이 났다고.... [정상주] 왜? 산을 오르느냐? 많은 사람들로부터 제일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그런 질문 하는 사람들에게는 " 너는 무슨 취미있냐?"라고 질문하면 됩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취미가 있습니다. 취미조차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런 사람은 가까이 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고.... 다른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기 취미와 다르다고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아주 잘못된 사고방식입니다. 이렇게 땀흘려 산을 오르고 정상에서 정상주 한잔 하며 펼쳐지는 주변 경관을 감상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가는 것이 즐거움이고 나의 취미입니다 [870m봉] 봉화산 정상에서 내려와 건너편 870m봉으로 올라 갑니다 [870m봉 헬기장에서 뒤 돌아 본 '봉화산 정상'] 870m봉 헬기장에서 봉화산 정상을 뒤 돌아 바라 봅니다 정상과 이곳 사이에는 나무들을 벌목하여 민둥산을 만들어 놨습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명성지맥2구간 - 각흘산'에서 설명드린바 있습니다만 이것이 "防火線"입니다. 봉화산 아래에 있는 포사격장은 사격훈련시에 산불이 일어 날 가능성이 큼니다 그래서 산불이 일어 나더라도 이곳까지만 불타게하기 위해 나무와 풀을 모두 제거한것입니다 여름철이라 풀들은 자라고있는데 겨울철에는 풀까지 제거합니다. [870m봉에서 764m봉 갈림길로 가는 길] 870m봉에서 하산을 시작합니다. 하산이라 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무지 힘들게 많은 시간이 걸려 하산했습니다. 거리도 장난이 아니었고, 경사가 매우 가파랐습니다. 하산이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예삿길이 아니어서 심리적으로 더욱 힘들었습니다 [764m봉 아래 갈림길] '서울백두클럽' 표지기를 만났습니다 지난 7월 12일(일) 비가 억수로 퍼붓던 날 산행을 감행한 '서울백두클럽'의 누구인가가 부착시켜 놓았을 표지기를 만나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급경사 하산길] 봉화산에서 공리고개로 하산하는 코스는 급경사 내리막이었습니다. 봉화산 정상에서 공리고개까지 하산하는데 3시간이 걸렸습니다. 왠만한 산은 거의 한시간이면 하산할수 있는데 ....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어 길 찾기도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임도] 2시간 정도 깊은 숲속을 헤메이다 간신히 빠져 나가니 임도가 나왔습니다. 이제서야 한숨 돌릴수 있었습니다. [임도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코스] 임도에서 뒤돌아 보니 봉화산 어디로 내려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다 왔는줄 알았는데 이제부터 또 1시간 정도를 더 가야 했습니다. 에구~ [임도 삼거리] 임도를 따라 내려 가니 임도 삼거리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도솔지맥3구간 마루금은 가운데 나무가 서있는 숲속으로 들어 가야합니다. 오른쪽 임도로 내려 가면 심포리로 바로 갈수 있으며, 왼쪽으로 가면 공리고개 아래 소양호 근처 석현리로 떨어집니다. [임도 삼거리에서 다시 마루금] 임도 삼거리에서 다시 마루금을 올라 타고 숲속을 헤메이며 갑니다. 이 길은 오로지 지맥을 걷는 사람들만 다니는 곳인듯 합니다. [큰 바위 위에 올라 뒤돌아 본 "봉화산"] 숲속을 거니는데 큰 바위가 하나 나타났습니다. 이 구간에서 볼수있는 유일한 큰 바위였습니다. 이 바위에 올라 가서 지나온 '봉화산'을 어렵게 촬영했습니다. 내려온 마루금 능선이 포사격으로 허옇게 까진 능선의 우측 능선입니다. [시멘트 포장 도로] 이제 공리고개인가 했더니 다시 시맨트 포장도로가 나왔습니다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 가면 웅진터널에서 나오는 新46번국도와 공리고개에서 내려 가는 舊46번국도가 만나는 심포리 삼거리입니다. [공리고개 '항일의병전적비'] 시멘트 포장로에서 직진하여 조그만 동산을 넘으니 공리고개가 나왔으며 '항일의병 전적비'가 나왔습니다. [공리와 심포리 삼거리] 항일의병전적비에서 택시를 타기위해 내려 가는 시간은 어느듯 저녁 7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두무동고개'에서 여기까지 꼬박 8시간이 걸렸습니다. 양구 콜택시를 전화로 불렀으나 전화를 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요일 저녁에는 장병들의 귀대로 택시가 잠시도 멈춰있을 시간이 없어 우리를 데리러 올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양구는 군부대 때문에 먹고 산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어렵사리 지나는 봉고를 얻어 타고 양구 시외버스터미날로 갈수 있었고 그곳 순대집에서 순대와 떡뽑기에 소주, 맥주 한잔씩 걸쳤는데 저는 마시지 않았습니다. 만약 마셨더라면 저는 운전면허 취소 당할뻔 했었기 때문입니다. 음주운전 단속을 곳곳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두무동고개'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승용차를 끌고 돌아 왔습니다. [도솔지맥 1구간~4구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도솔지맥 4구간 四明山 區間 山行記 공리고개-592.3m봉(dndwls3xjsjfdnl)-갈탄리고개-806m봉-越北峴-1031m봉- 四明山-1180m봉-1004m봉-817m봉-추곡약수 장마철 치고는 맑은 날 7월 26일(일) 이번에는 4개국 외국인들까지 합세하여 "서울백두클럽"의 勢가 더욱 막강해 지는 가운데 "도솔지맥 四明山 區間" 을 종주하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산행 개념도] 공리고개-592.3m봉(웅진3터널위)-갈탄리고개-806m봉-越北峴-1031m봉- 四明山 1198.6m-1180m봉-1004m봉-門바위-817m봉-추곡약수 枝脈 圖上거리 - 약17km, 총거리 - 약20km, 총산행 시간 - 약 9시간30분 [경춘고속도로 가평휴게소] 새로 탄생된 "京春高速道路"를 처음으로 타고 시원하게 달리다가 "가평휴게소"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民資로 만들어져 통행료가 비싸다고 논란도 많은데, 요즘 도로 나들목 차량 예측을 잘못해 교통체증을 일으킨다고 이용자들의 불만이 많다고 하는데, 갈때는 몰랐는데 올때 무지 막히더군요 [공리고개] 오전 9시50분경에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공리恭里"에 있는 "공리恭里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장마철인데도 맑은 날씨에 시야가 확트이는 날씨였습니다만 바람이 없어 매우 더운 날씨였습니다 [공리고개 - 항일의병전적비] "공리恭里고개"에는 항일 의병 전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碑는 1978년에 강원도에 의해 건립되었다고하며, 일제침탈의 시대에 이 지역 출신인 유인석, 이강년, 최도환등의 의병장들이 이 지역 주민들과 합세해 쪽바리들을 무찔렀다고 기념하기 위해 戰積碑를 세웠다고 합니다. [공리고개 - 산행 들머리] 이 도로는 "46번 국도"입니다. 요즘은 꼬불 꼬불하던 도로를 터널을 뚤어 길을 쫘악 펴서 양구로 직진하도록 되있어 옛길인 이 46번 국도에는 차량의 통행이 거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46번 국도"는 무지 유명한 國道이지요? 학창시절 한번쯤은 데이트를 하며 달려 보았을 "京春街道"가 "46번국도"이지요 "46번 국도"는 인천의 월미도에서 서울과 春川을 거쳐 이곳을 지나 진부령을 넘어 고성으로 가는 우리나라 허리를 가로 지르는 중요한 국도입니다만, 고속도로가 뚤리고 터널들이 생겨 터널 위 옛도로들은 썰렁합니다. [서울백두클럽 기념사진] 오늘 산행에는 외국인들이 4명 참석했는데, 미국 캐나다 영국 우즈벡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 2월 "명성지맥4구간"에 참가했던 Mr.Warren이 친구들과 함께 참가하여 5개국이 합동 산행을 하게 된것입니다. 세계적 산악동호회로 거듭나고있는 "서울백두클럽"의 위상이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파이팅~!" [산행 출발] 10시 정각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유명한 등산코스를 찾아 다니는 산악동호회가 아니고 길도 험한 "枝脈"을 찾아 다니는 조금은 독특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오늘도 長行을 시작합니다. [웅진터널 위 592.3m봉으로] "도솔지맥" 마루금을 따라 오르는 四明山산행코스에는 우리 일행 이외에는 다른 사람들을 단 한명도 볼수 없었고, 한여름 장마철이여서인지 산행이 끝날때까지 다른 산객은 단 한명도 만날수 없었습니다. [四明山 안내 이정표] 조금 오르니 이정표가 나타나서 길안내를 해줍니다. 등산객 한명 없는 이곳에 이정표를 친절하게도 세워 놨습니다. 사람들이 다닌 흔적도 거의 없습니다 [四明山 안내 이정표] 四明山까지 10.5km라고 친절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곳하고 四明山은 일반산객들에게는 관련이 없는 먼 곳인데도 우리같은 지맥종주자들을 위해서인지 안내를 해 놨습니다 가는데 10km, 내려 오는데 10km였으니 얼마나 긴 거리인지 짐작이 가십니까? [웅진터널 위 592.3m봉으로] 산마루까지 올라 가는 길은 언제나 급경사로 땀이 납니다. 登路를 잘 정비해놔서 오르기는 쉬웠으나, 초보산객들인 외국인들이 완주를 할수 있을려는지 많이 염려 되었습니다. [웅진터널 위 592.3m봉] "46번국도 웅진3터널" 위에 있는 592.3m봉우리에 올랐습니다. '공리고개'에서 여기까지가 급경사 오르막이고, 여기서부터는 마루금을 따라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전진합니다. [학조리방향 이정표] '鶴鳥里' 방향으로 갑니다. [四明山] 마루금에 오르니 왼쪽으로 四明山이 위용을 보여줍니다. 四明山까지 C字 뒤집은 모양으로 빙돌아 10km를 가야하니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583m봉] 크고 작은 봉우리, 높고 낮은 봉우리들을 수없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四明山을 갑니다. [갈탄리 고개 가는 길] 이런 길을 걸으면 내리막이 싫습니다. 왜냐고요? ㅎㅎ 그 많큼 또 기어 올라야하쟌아요~ [무명봉] 제법 높은 봉우리.... [四明山] 肉山은 여름철엔 울창한 숲으로 외부 조망이 어렵습니다. 조금 높은 봉우리에 올라야 운 좋게 외부를 잠깐 조망할수있습니다 왼쪽에 四明山을 보며 4시간 정도 걷습니다 [갈탄리 고개 가는 길] 월남전에 파병되었던 회원님들이 계셨는데, 월남에 파병되기 전에 맹호부대등이 이곳 "四明山"에서 훈련을 받고 갔다고 하더군요. 월남의 정글 속에서 전투를 하기위한 훈련이었다니 그 강도를 짐작하면 얼마나 괴로웠을까....... 오늘은 사서 고생을 하는데 그 때와 비교 된다고....가슴 뭉클하겠지요 [635m봉] 삼각점이 있는 635m봉은 "갈탄리 고개" 바로 앞에 있는 봉우리입니다. 그리고 이 봉우리를 지나 "四明山과 鶴鳥里 갈림길"이 나오니 지금부터 유의해야합니다 [학조리방향 이정표] 이곳에서 약800m앞에 갈림길이 있는데, '학조리' 방향이 아닌 좌측 방향으로 가야 四明山으로 갈수 있습니다. 四明山 방향 길은 희미하기에 강조합니다 [헬기장] 635m봉과 "갈탄리고개" 사이에 헬기장이 하나 있었고.... [양구읍내 전경] 오른쪽으로 "양구읍" 시가지가 잘보입니다 저쪽 비봉산 기슭에는 우리나라의 세계적 화가인 "박수근 화백"의 미술관이 있습니다. 몇년전에 가 본적이 있는데 멋있게 건립해 놨더군요. 박수근 화백의 화법은 "마티에르기법"이라고 하는 점을 이용해 그리는 화법이지요 박수근 화백의 그림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비싼 값으로 경매가 되니 가짜 그림들이 출현해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법정으로까지 가 있죠 돈이 된다면 무슨 짓이던 하는 사람들이 "박수근 화백"을 욕되게 하는데 그 가운데에 박수근화백의 장남이 관련되있다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까발렸지요 그 놈도 자기 아버지의 화법인 "마티에르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더군요 SBS는 그 장남이 그린 그림을 아버지의 그림이라고 속여 팔아 묵고 있다는 의심을 강력히 하고 있었습니다. 믿을 놈 없는 세상이죠? [점심식사] 산에 왜 오르느냐구요? 유식한척하는 사람들 많지요.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등등..... 솔직히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고 말하는게 바른 말 아닐까요? ㅎㅎ 너무 형이하학적이라구요? ㅋㅋ 그래도 묵어야 걸을 수 있지요. 저 외국넘들은 비스켓에 참치를 포개서 먹더라구요. 그게 잴 맛있다나? 그거 묵고 어찌 앞으로도 6시간을 더 걷겠냐고 했더니 그제서야 제가 권하는 김밥과 반찬을 부랴 부랴 먹더라구요 "먹어야 오를 수 있고, 오르기 위해 먹는다~" 했더니 고개를 끄떡끄떡 [학조리-사명산 갈림길] 유일하게 갈림길이 있고, "사명산"방향은 길이 희미해 알바하기 쉬운 곳이니 앞으로 오실 후답자들은 유의 해야하는 곳입니다. [갈탄리고개] 고개 다운 고개가 처음으로 나오는데 이곳이 "갈탄리 고개" 입니다. 오늘 산행 거리의 4분의 1 정도 되는 지점입니다. [갈탄리고개 이정표] 에고 이제 5km걸었군요. 사명산 정상까지 앞으로도 오르막 5km가 더 남았네요 날머리인 "추곡약수"까지는 약15km가 더 남았으니....어휴~ [806m봉 헬기장] 높고 낮은 봉우리를 몇개 지나면 제법 높은 봉우리인 "806m봉 헬기장"을 만납니다. 여기에선 "사명산" 정상이 쪼끔 보입니다. 사명산 정상부도 여러개의 높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越北峴] 오후 2시 정각에 "월북현 越北峴"에 도착했습니다. "공리고개"에서 4시간이 걸렸군요 이제 정상까지 3km 남았다고하니 여유가 생깁니다만, 지금부터 힘든 된비알을 본격적으로 올라야 합니다. [越北峴] 양구군 "웅진리 雄津里"에서 "양구읍"으로 넘어 가는 옛 도로가 잘 나 있습니다. 지금은 터널화로 쉽게 양구읍으로 가지만 옛날에는 어떠했는지..... 오죽하면 "越北 고개"라고 했겠습니까 이곳에서 부터 실제 "四明山 등산로"입니다. [사명산 오르는 길] 1시간 50분을 올라야 사명산 정상에 오를수 있었으니 새로 등산을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4시간을 걷고 다시 된비알을 1시간 50분 오르면...힘좀 들겠지요? ㅎㅎ [독버섯 구별법] [웅진리 등산로 삼거리] 소양호에 접해있는 雄津里에서 오르는 등로와 만나는 곳입니다.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사명산 일반등산코스"입니다. 雄津里는 글자 그대로 소양호에 붙어있는 큰 나룻터라는 동리입니다. 대부분의 일반 등산객들은 雄津里에서 사명산을 오릅니다. 그러면 약5시간 코스라고 하네요. [1031m봉 헬기장] '사명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1031m봉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정상까지 약2km 남았습니다. [정상을 향해...] 사명산 정상이 보입니다. [소양호] 야호~~ 처음으로 "소양호"가 조망됩니다. "四明山"에 오르면 꼭 보아야 할 것이 "소양호"와 "파로호"의 장관입니다. 왜냐하면 "四明山"이 소양호와 파로호 사이에 있기 때문에 동시에 두곳을 볼수있습니다. 동시에 두곳을 함께 조망할수 있는 곳은 "四明山 정상" 뿐이더군요. [도솔산-대암산 방향] 멀리 "도솔지맥"이 검은 능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웅진리 등산로 삼거리] 雄津里에서 올라 오는 일반등산로가 두곳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명산 정상까지는 500m정도이니 대부분 이곳으로 오르리라 [웅진리 등산로 삼거리 이정표] [등산코스 안내도] 우리는 오른쪽 아래 "공수리"라는 곳쯤에서 붉은 선을 따라 올라 온 것입니다. 무지 걸었지요? 앞으로도 이많큼 더 걸어야합니다. 에구~ [四明山 정상] 드디어 하늘이 가슴에 와 닿고, 더 이상 아무것도 높은게 없는 정상에 왔습니다. 이때가 오후 3시 50분. "공리고개"에서 약 5시간 50분 걸렸습니다. [四明山 정상석] 좁은 사명산 정상에는 정상석이 우람하게 서 있고 춘천, 화천, 양구, 인제까지 네곳이 모두 잘 보인다고 지어 졌다는 四明山이 지친 산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四明山 유래]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본 "대암산" "도솔산" 방향] 검은 능선이 "도솔지맥"입니다. "돌산령"에서 "도솔산"을 지나 군부대에서 짬밥을 먹고 "대암산 용늪"을 구경하고 "광치령 터널" 옆으로 하산했던 1구간이 아득히 보입니다.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본 "봉화산" 방향] 지난 7월 12일에 찾았던 "도솔지맥 3구간"에 있는 "봉화산 烽火山"이 잘 조망됩니다. 애석하게도 그날 엄청난 장맛비로 도중에 산행을 포기했었습니다. 비가 무서워 산행을 포기한게 아니라 카메라가 작동을 하지않고, 구름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산행의 의미를 찾을수 없어서였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가는 것은 뒷동산을 가는 것과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산행기를 쓸수 없는 산행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필자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조만간 저 "봉화산 烽火山"구간은 별도로 산행 할 예정입니다. 오른쪽에 높은 산봉우리가 "봉화산 烽火山"입니다. 왼쪽 흰 부분이 양구읍내입니다.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본 "소양호"] 우리나라 최대의 담수호인 "소양호"가 자기 모습을 조금 보여 줍니다. "반야월선생"이 이곳 출신 가수 지망생인 어느 처녀의 집을 찾았다가 作詞했다는 국민 애창곡 "소양강 처녀"가 저절로 흥얼거려집니다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져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동백꽃 피고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서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가슴에 떠나고 안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본 "파로호"]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보는 파로호 破虜湖 우리나라 최초의 북한강 水界의 다목적 댐으로 형성된 破虜湖 "花川댐"에 의해 생겨난 인공호수이니 花川湖라고 해야하는데 유별나게 이곳만은 댐의 이름을 따지 않고 "파로호 破虜湖"라고 합니다. "花川댐"은 일제 강점기 때에 쪽바리들이 대륙침략을 위한 군수산업 목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파로호 破虜湖는 6.25전쟁 때에 중공군과 북한군들을 이곳에서 물리치고 "花川湖"에 수장시켰다고,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 破虜湖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오랑캐 虜입니다. 즉 오랑캐들을 쳐부셔 수장시켰다고 "花川湖" 대신에 "破虜湖"라 한것입니다 이젠 평화 지향시대가 왔으니 전쟁적인 느낌을 주는 "파로호 破虜湖보다 필자는 그 본래의 이름인 "花川湖"로 불리워지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름도 아름답쟌아요? "花川湖"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본 앞으로 가야할 "도솔지맥 마루금"] 앞으로 이곳 四明山 정상에서 추곡약수까지 가야하는데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산이니 이젠 쉽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머나먼 하산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봉우리도 너무 많았습니다. 구경거리도 없고.... [1180m봉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소양호"] 반야월선생이 작사하시고 이호선생이 작곡한 국민 애창곡 "소양강 처녀" 이 노래의 주인공인 "소양강 처녀"는 윤기순(尹基順)이라는 아가씨였습니다. 몇년전에 "KBS 스페샬"에서 방영한 다큐멘타리를 보아서 어렴푸시 기억나 다시 그 동영상을 찾아 "소양강 처녀"가 만들어 지는 배경을 알게됬습니다. 윤기순(尹基順)이라는 아가씨는 가수 지망생으로 반야월선생이 일하고 있던 명보극장 근처 `한국가요반세기 가요작가 동지회`에 찾아가 여사무원으로 근무하며 가수의 길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자신의 집 소양호로 음악가들을 초대해 소양강에서 어부로 생계를 유지하던 아버지가 잡은 고기로 매운탕을 잘 대접했나 봅니다 이때 이 주변 경관과 윤기순(尹基順)이라는 아가씨의 사연을 묶어 작사를 했다는군요 현재 윤기순(尹基順)이라는 아가씨는 할머니가 되었는데도 광주에서 야간업소 가수생활을 하고 있다는군요 [이정표] 이 이정표에 속은 기분입니다. 왜냐하면 "추곡약수"까지 거리표시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다지 멀지 않으니 거리표시를 하지 않았겠지...라고 생각한것이지요. 그래서 이제 거의 다 왔겠구나라고 생각한게 결과적으로 더 큰 심리적 압박감이 되었습니다 "추곡약수"에 가서 생각해 보니, 여기서 너무 멀어서 거리를 미리 측정하지 못해 거리표시를 못한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무지무지 멀었습니다. 가깝겠지하는 심리적인 문제도 한몫하구요.. 저녁 7시20분에 "추곡약수"에 도착했으니...닝기리~ [1180m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도솔지맥 마루금"] 앞에 보이는 산줄기를 조금 따라 내려가 좌측이 "추곡약수"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도를 책크해도 그럴듯하고요... 그런데 실제는 저 산즐기 많큼 한칸 더 가야 했던것입니다. 저 산줄기 뒷산줄기 뒤에 "추곡약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1180m봉 하산] 산봉우리들도 높아 보통 1,000m가 넘으니 내리막도 고달픕니다. 이미 체력은 소진되어 자동으로 걷는 것이었습니다. 초보 외국인들은 무릎에 이상이 오기 시작합니다. 우즈벡에서 온 양반은 이미 119 구조대에 의해 "웅진리"로 하산 시켜진 상태입니다. 어떤 상황인지 대략 짐작이 가시지요? [1004m봉 갈림길] 이곳이 중요한 지점입니다. 웅진리로 바로 내려 갈수 있는 마지막 갈림길이었습니다. 5시 10분에 이곳에 도착했으니 날이 저물기 시작하고 숲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1004m봉 갈림길 이정표] 이 이정표에도 거리 표시가 없습니다. 또 이제 가까우니까 거리표시를 하지 않았겠지....라고 생각 했는데.... 여기서 "추곡약수"까지 2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에구 ["門바위" 위 탑] "1004m봉 갈림길"에서 약 10분정도 가니 "門바위"가 나왔습니다. "門바위"가 어디있나 찾으며 왔는데 이제서야 나타납니다. "門바위"는 사명산 정상 부근에 있는줄 알았기에 못보고 이미 지나 갔는줄 알았는데 이제서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도 색다른 경관을 보여주는 "門바위"는 우리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하산하는 구간에 이 "門바위" 마저 없었다면 너무 삭막한 사막과 같았을 것입니다 소양강 위에 서있는 12층 석탑이 신비한 느낌까지 주었습니다 ["門바위" 위 "구름다리"] "門바위" 위에는 사람이 다닐수 없는 나무로 엮은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단순히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이 다리에 술취한 놈이 올라 가지나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명산에서 만난 대표 볼거리였습니다 ["門바위" 위에서 내려다 보는 "소양호"] 오늘 힘겨운 산행길을 모두 잊게해주는 경치가 펼쳐집니다. "소양호"가 내려다 보이는 "門바위"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만끽합니다. 사랑의 소야곡을 불러주던 님이시여 풋가슴 언저리에 아롱진 눈물 얼룩져 번져나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춘천, 화천, 홍천 이 도시 이름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공통점 같은게 느껴 지지 않습니까? 순전히 파란문의 생각입니다만, 틀림없이 이 세 도시는 연관성이 있을듯합니다. 春川 봄이 흐르는 강 - - - 花川 꽃이 피어 어우러지는 강 - - - 洪川 봄꽃을 맞이하는 넓은 강 - - - 어떻습니까? 무언가 연관이 있지 않을 까요? 어떻던 여기는 봄날에 찾아 꽃구경을 해야 제맛이 아닐까요? [門바위] "門바위"는 큰 바위 두개가 양쪽에 서있어 門처럼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더군요 門바위를 통해 하산합니다. [뒤돌아 본 "門바위"] '門바위'이여~ 안녕~ 이제 언제 다시 널 찾아 문을 열고 들어 가겠냐만은 고달픈 사명산 하산길에서 나에게 보여준 그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급경사 내리막] 門바위에서 급격한 내리막이 시작되었습니다. 약 1시간 정도를 내려가고, 다시 한봉우리를 오릅니다. [817m봉 정상] 지도상에 나오는 "817m봉"에 올랐습니다. 이곳 정상은 삼거리 갈림길인데 도솔지맥은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여기에서 확실한 "추곡약수"의 위치를 알았습니다. 또한 여기서 1시간을 걸어 "추곡약수"를 갔습니다. [추곡약수] 7시 20분에 추곡약수터에 왔습니다. 우선 약숫물부터 한바가지 들이켰습니다. 그런데 물맛이 완전히 틀렸습니다. 탄산수였으며 철분이 많이 함유된 "초정리약수"나 "방아다리약수"와 같은 맛이었습니다 이 물로 밥을 지으면 색깔이 푸른색을 띤다고 합니다. [추곡약수 입구 마을] [뒷풀이] 추곡 계곡에서 알탕을 하고 뒷풀이를 했습니다. 초보 외국인들도 뒷풀이는 즐거운듯...ㅎㅎ 무릎이 아파서 앞으로는 절대 "서울백두클럽"과 함께는 등산 못가겠다고 아우성...ㅎㅎ [뒷풀이] 여하튼 완주를 하고 고생스러웠던 기억도 스스로 자랑스러움으로 느끼며 "Cheers!!~~"를 외쳤습니다. [산행 개념도] 공리고개-592.3m봉(웅진3터널위)-갈탄리고개-806m봉-越北峴-1031m봉- 四明山 1198.6m-1180m봉-1004m봉-門바위-817m봉-추곡약수 枝脈 圖上거리 - 약17km, 총거리 - 약20km, 총산행 시간 - 약 9시간30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도솔지맥2구간』 遊山記 광치령-개골령-907m봉 군부대-두무동고개 [산행 개념도] [광치령 터널] 2009년 6월 28일(일)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도솔지맥2구간"의 산행 들머리인 "광치령 廣峙嶺"에 도착했습니다 [광치령 휴게소] 오늘 늦게 도착하게 된 이유는 양재역 서초구청에서 출발도 늦었지만 뒤풀이용 음식물들을 사느라고 더 많이 늦었습니다. 그리고 관광버스 운전기사가 가는 길을 잘 몰라 빙빙 돌아 가느라 많이 늦었는데 또한 "광치령 廣峙嶺" 터널 위 마루금까지 버스가 올라 가는 길을 찾다가 못찾아 추가로 더 늦었습니다. [진갑 Celemony] '서울백두클럽' 회원님 중에 "산깜님"이 오늘 진갑을 맞아 간단한 "진갑잔치"를 조촐하게나마 마음으로 열었습니다. 스스로를 산에 대해 깜깜하다고 "산깜"이라고 아이디를 지으셨다는 "산깜님'이 진갑을 맞았지만 앞으로도 더욱 즐겁고 안전한 산행을 하시기를 기원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깜깜한 산도 잘 다니신다고 "산깜"이라 지은게 아닌지 산을 잘 타십니다 [축가와 답사] "서울백두클럽"의 회원님들의 나이 분포도는 다양하여 우리들의 과거의 모습과 미래의 모습을 현존하는 회원님들로부터 볼수있습니다. 우리의 과거와 미래가 상존하는 "서울백두클럽'은 이렇게 따뜻한 情으로 뭉쳐 山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삶도 사랑합니다. 조그만 케익이 우리가 차린 소박한 '진갑상'의 모두 이지만 함께하지 못한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까지 흐뭇함이 느껴지실겁니다. [광치터널 위로 오르는 길] 11시 15분 산행을 바로 시작합니다 바로 휴게소 뒷편으로 가파른 길없는 길을 치고 오릅니다. 광치령 터널 위 마루금으로 오르는 길은 '옛길'로 오르면 많이 돌아야하기 때문에 휴게소 뒷쪽으로 뚜렸한 길이 없는 벼랑을 기어 올라야 합니다 [광치터널 위로 오르는 길] 산가태가 난 비탈길로 치고 오르는데 落石을 조심해야합니다. [광치터널 위로 오르는 길] 휴게소에서 광치령 터널 위로 오르는 길이 오늘 산행에서 가장 가파른 된비알입니다 약 25분 정도 숨을 몰아 쉬며 '광치령 옛길'로 오르면 오늘 산행의 고생은 끝입니다 [광치령 옛길] 25분 정도 벼랑을 기어 오르면 "광치령 옛길"이 나옵니다. 사진 가운데 보이는 이동통신탑이 있는 광치령 터널 위로 갑니다 [광치령 위 "도솔지맥 마루금"] 이동통신탑 우측 '광치터널 위'로 "도솔지맥2구간 마루금"이 열립니다. 11시 35분 '광치터널' 위에서 도솔지맥 마루금을 밟기 시작합니다 [광치터널 위 첫번째 헬기장] 이동통신탑에서 조금 가면 광치터널 위에 헬기장이 있으며, 앞으로 가야할 산봉우리들이 나타납니다. [林道 - 마루금] '도솔지맥2구간'은 거의 대부분이 "林道'로 걷기에 매우 편했습니다. 그리고 길찾기도 매우 쉬워 알바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길찾기는 이곳 앞에 보이는 삼거리에서 직진하는 것과 세번째 헬기장이 있는 909m봉과 "두무동고개'로 내려 가는 낭떨어지만 유의하면 됩니다. [두번째 헬기장] 광치령 첫번째 헬기장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두번째 헬기장이 나옵니다 산행 시작 한시간이 넘으니 두번째 헬기장이 있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909m봉 아래 갈림길 - 세번째 헬기장] 지도상에 '개골령'이 있는데 찾을 수가 없었고 두번째 헬기장에서 몇km 정도 전진하니 세번째 헬기장이 나왔습니다. 이곳이 갈림길인데 유의해야 하는 곳입니다. [909m봉 아래 갈림길 - 세번째 헬기장에서 뒤 돌아 본 909m봉] 유의 해야할 곳이라 온 길을 뒤돌아 보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좌측에서 왔는데,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헬기장이 있는 곳으로 와야합니다. 뒤에 보이는 산봉우리가 "909m봉"입니다. 여기까지가 "林道"이고, 앞으로는 희미한 마루금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907m봉 군부대 가는 길] 헬기장에서 직진하여 숲속으로 들어 가야합니다. 이제부터는 산길을 걸어야 합니다. [907m봉 군부대 가는 길] 세번째 헬기장에서 907m봉 군부대까지 이런 산길입니다. 구경거리 하나 없는 '도솔지맥2구간'은 임도와 이런 숲길과 임도의 연속이었습니다. 마루금을 따라 걷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특이한 것이 없었습니다 [907m봉 군부대 가는 길] 숲에 포위되어 외부를 조망할수 있는 그런 곳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간혹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보일 뿐.... [점심식사] 12시 45분쯤 되니 회원님들이 점심 식사를 하려고 자리를 잡습니다 [점심식사] 식사시간은 언제나 즐겁지요 오늘 "도솔지맥2구간"을 종주하는 산객은 우리 이외에는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고목] [907m봉 군부대 가는 길] 909m봉 헬기장에서 군부대가 있는 907m봉까지만 이런 숲속길입니다. 그리고 거리도 짧습니다. [907m봉 군부대] 외부 세계를 조망할수없는 갑갑한 숲속을 헤메이다 갑자기 하늘이 보이니 바로 철조망이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군부대였습니다. [907m봉 군부대] 철조망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한 군부대 안으로 개구멍 같은 비좁은 틈새로 기어 들어 갔습니다. 사실 이곳으로 들어 가면 안되는 곳이었고, 이런 불법행위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철조망이 앞을 가로 막으면 철조망 옆으로 희미한 우회하는 길이 있습니다. 이 우회 길을 따라 나가면 군부대 정문이니 앞으로 가실 분들은 우회로를 이용하시기 바람니다. [군부대 철조망] 겁도 없는 '서울백두클럽'은 군부대 안으로 무단 침입했습니다 무단 침입하여 온 길을 뒤돌아 봤습니다. 앞에 보이는 산봉우리들을 지나 이곳으로 왔는데 앞의 철조망 아랫쪽으로 우회길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아직도 철조망 밑으로 기어 들어 오는 회원이 있습니다. ㅎㅎ [907m봉 군부대] 군부대 안으로 들어 오니 이제는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모두 모여 지도를 펴고 길을 찾았는데 부대 안을 통과하지 않고는 갈수가 없더군요. 명성지맥2구간에서 탱크 사격 훈련장 안으로 들어가 마루금을 따라 가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이런건 따라 하지 마세요~~ㅎㅎ [907m봉 군부대] 각종 군시설들이 있는데 군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907m봉 군부대] 차라리 군인이 나오면 길이라도 물어보고 사정을 이야기하며 양해를 구하겠는데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아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으나, 후미에서 늦게 오는 회원들을 함께 데리고 이곳을 탈출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기다리며 마루금을 찾았습니다 [907m봉 군부대] 지도를 펴고 독도를 하니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통과해야 하더군요. "우리나라 군대는 '우리'를 위해 존재 하는 것이니 무단 침입을 이해해 주리라"ㅎㅎ [907m봉 군부대] 앞 봉우리를 따라 내려 가니 군부대 안이었고 길은 양호하게 열려 있습니다 [907m봉 군부대] 간 큰 회원님들은 누굴 믿고 군부대 안을 유유히 걸어 내려 가시나? ㅋㅋ 하여간 대책은 없고 무작정 내려 갔습니다. [907m봉 군부대에서 바라 본 "양구"] 처음으로 "양구읍내"가 보입니다. 양구와 화천에서 군생활을 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양구와 화천은 "하늘 천평, 땅 천평"이라고 하더군요. 그 이유를 물었더니, "산이 높아 부대가 천평이면 하늘도 그 많큼 천평"밖에 보이지 않는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하더군요. 주변 산들이 얼마나 높은지를 간접적으로 말해 줍니다. [907m봉 군부대] 도솔지맥2구간 마루금은 이 군사도로가 "두무동고개"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산행이 아니라 트렉킹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군부대 철조망을 밑으로 기어 들어오긴 왔는데, 나갈수가 없었습니다. 정문이 잠겨있고 주변으로는 탈출구가 전혀 없었습니다. 에구~ [907m봉 군부대 정문 통과] 다행이 왕년에 군수사기관에서 직업군인생활을 하신 "홍목선생님"이 군부대 상황실로 올라가더니 열쇠를 든 군인을 한명 데리고 왔습니다. 우왝? ㅎㅎ 그리고 군부대 정문은 열렸고 우리는 탈출할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했길래 문을 열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홍목선생이 "내가 누구냐?"하고 웃으시더군요. ㅎㅎ 덕분에 군부대 탈출 아까 군부대 철조망에서 우회하면 이 정문 앞으로 올수 있으니 군부대를 무단 침입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두무동고개로 하산] 군부대에서 '두무동고개'까지는 군사도로였습니다. [두무동고개로 하산하는 중에 휴식] 군사도로도 매우 길어 다리가 아파 도로 위에 주저 앉아 쉬기도 하며 내려왔습니다 [두무동고개로 하산] [林道 갈림길 - 두무동고개 가는 마루금] 군사도로를 따라 1시간 20분 정도 내려 오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우로 굽은 도로를 만나는데 이곳이 중요합니다. 1. 군사도로를 따라 내려 가도 "두무동 고개"로 갈수 있습니다. 단지 상당히 돌아 내려가 다시 두무동 고개로 올라 와야합니다. 2. 여기서 직진하면 바로 "두무동 고개"입니다. 약 100m정도 단지 "두무동 고개" 절개지 급경사 낭떨어지를 내려 가야 함으로 길이 나쁨니다 정식 마루금은 여기서 직진 하는 것입니다. [두무동고개 가는 마루금] 직진하여 군사도로를 벗어 나면 바로 무덤이 있는 '두무동 고개' 가는 길이 나옵니다 [두무동 고개 절개지 급경사] 급경사 절개지를 내려 갑니다. 위험하니 조심해야 합니다. [두무동 고개] 아래로 "두무동 고개"가 보이며 우리 관광버스가 보입니다. 여기서부터 낭떨어지이니 조심해야하며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 가야합니다 [두무동 고개 절개지 급경사] 회장님이 엉덩이로 낭떨어지를 내려 옵니다. ㅎㅎ [두무동 고개] 드디어 "두무동 고개"에 도착 했습니다. 4시 25분에 도착했으니 광치령에서 5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원래 계획은 여기서 다시 "양구터널"이 있는 "작은 도라지 고개"까지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구간이 다소 짧은 구간이라 여기서 2구간을 끊고, 나머지를 다음 3구간에 보태기로 하며.....2구간 산행을 마쳤습니다 [두무동 고개] "두무동 고개"에는 멋진 표지석이 "斗武里"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도솔지맥3구간"은 이 표지석 뒤로 올라 갑니다. [뒷풀이] 斗武고개 위에서 '서울백두클럽'의 자랑, 뒷풀이가 시작됬습니다 삼겹살이 지글거리고, 갓 익은 김치가 두무동고개를 오염시킴니다. 이 맛은 안먹어 본 사람들은 말을 하지 마세요~ ['산깜'님과 '평원'님] 오늘 진갑을 맞으신 "산깜님"과 새로이 서울백두클럽에 합류하신 "평원님'이 한껏 업그레이드 된 기분으로 한잔 했습니다. 다시 한번 '산깜님'의 진갑을 축하 드리며, 알고 봤더니 산을 엄청 사랑하시는 "평원님"도 계속 함께 할수있기를 기대합니다 "건배~~!!" [뒷풀이] 오늘 산행으로 뺀 살을 도로 갖다 붙여야겠다고 삼겹살을 싹쓸이하시는 女山客들 [뒷풀이] 언제나 이 순간만 같아라~~!!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시는 횐님들 새로운 얼굴들도 보입니다. 앞으로도 늘 함께 하시길... [국수역] 돌아 오는 길이 너무 막혀 국수역에서 내려 중앙선 전철로 갈아 타고 집으로 돌아 올수 있었습니다. "도솔지맥2구간"은 경치나 구경거리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행기도 부실합니다 그러나 다음 3구간부터는 아마도 멋진 풍경이 펼쳐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좌측으로는 "소양호", 우측으로는 "파로호"가 펼쳐질테니까요. 그리고 춘천, 홍천, 인제, 양구가 모두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 "사명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3구간에서 환한 얼굴로 다시 만나요~~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도솔지맥1구간] 돌산령-도솔산-대암산-광치령 돌산령-도솔산-1304m봉 군부대-작은 용늪-큰 용늪-대암산-광치령 [도솔지맥] "도솔지맥 兜率枝脈" 요즘 우리나라 산에 흠뻑 젖어 산줄기를 찾아 다니는 열혈산객들이 "여암 신경준선생"이 쓴 "산경표"를 기본으로 하면서 임의로 붙인 산줄기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국토지리원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름도 아니니 지도에는 없습니다 "도솔지맥 兜率枝脈"은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에는 금강산과 진부령 사이의 "회전령檜田嶺"에서 분기하여 "해안산亥安山"을 거쳐 "도솔산兜率山"으로 와 "광치廣峙"를 건너 "사명산四明山" - "청평산淸平山" - 용화산龍華山(春川北百里) - "수청산水淸山" - "우두산牛頭山" - "백로주白鷺州"까지로 표기되 있습니다. "백로주白鷺州"에 대해선 "春川西七里新津韶陽江會干西南永平南十一里"라고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산경표"에 나와 있는 이름과 현재의 이름이 같은 것은 도솔산兜率山, 광치廣峙, 사명산四明山, 용화산龍華山, 우두산牛頭山입니다. "해안산亥安山"은 현재 양구군 "펀치볼"로 유명한 "해안면亥安面"이 있습니다만 山이름으로 "해안산亥安山"은 남아있지 않은데 "해안면亥安面"을 빙 둘러싸고있는 山을 의미하는듯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현대의 정확한 지도를 놓고 "山自分水嶺"원리에 입각하여 산줄기를 이어본 결과 신경준선생의 "山經表산경표"는 약간의 오류가 있다는걸 발견하고 "도솔지맥 兜率枝脈"은 금강산 위의 백두대간 "매자봉"에서 분기하여 "매봉"-"가칠봉加七峰"- "대우산大愚山"-"도솔산兜率山"-"대암산大岩山"-"광치령廣峙嶺"-"사명산四明山"-"우두산牛頭山"으로 재해석하여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 다니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솔지맥 兜率枝脈"은 약120km 구간 중에 북한지방에 약40km가 있고 남쪽지방 약80km에도 대부분 휴전선 근처 '군사지역'이라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워 아직까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며 완주를 한 산객들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이한 것은 "山經表"에는 명확히 나와있는 용화산龍華山(春川北百里)을 현대에선 빼고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요즘 산객들이 산줄기보다 산행하기 편한 "마루금"枝脈으로 편한데로 산행코스로 잡는데 있다고 느껴집니다. 분명한 것은 枝脈산줄기이므로 面積이 있고, 마루금으로 面積이 없습니다. 다시말해 '산줄기' 모두가 枝脈인 것입니다. [돌산령-도솔산-1304m봉 군부대-작은 용늪-큰 용늪-대암산-광치령 지도] 양구에서 해안면 "펀치볼"로 넘어 가는 고개인 "돌산령"에서 "도솔지맥 兜率枝脈"을 시작합니다 "돌산령"위로는 군사분계선이 있는 민통선 안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산객들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도상거리 약20km이며 실제 산행거리는 약25km인 도솔지맥1구간을 시작합니다 ["펀치볼" 주변 위성사진] 우리가 산행을 시작하는 "도솔지맥 兜率枝脈" 1구간 "돌산령" 주변은 매우 유명한 곳입니다 펀치볼 Punch Bawl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해안면 亥安面이 있고, 우리나라 해병대가 "무적해병",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칭호를 받은 "도솔산전투"를 벌여 勝戰한 도솔산兜率山이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고냉습지 高冷濕地대암산 "용늪"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행기의 서두에 위성사진을 편집해 이해를 도울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지역을 어느정도 감 잡을수 있겠습니까? 대답 좀 해봐요~!! 맹그느라 고생했는데...ㅎㅎ 세부사항은 산행을 하며 실제 사진과 함께 설명을 추가로 더 드림니다. [해병대 도솔산지구 전투 위령탑] 2009년 6월 13일(토) 밤 12시 양재역 서초구청 앞에서 모여 준비물 준비하고 2009년 6월 14일(일) 01시에 출발하여 새벽 3시45분에 "돌산령 해병전적비" 앞에 도착했습니다 몇시간 눈을 붙였다 땟다하다가 오전 7시경에 라면 끓여먹고, 산행 준비를 합니다 날씨는 밤새 비가 내렸으며 오전에는 간간이 가랑비가 흩뿌렸습니다 [略史文] "도솔산 兜率山"은 6.25戰爭때 우리나라 海兵隊가 큰 勝戰을 한곳입니다. 海兵隊가 이곳 戰鬪에서 勝戰하여 "無敵海兵", "귀신잡는 海兵"이라는 칭호를 얻은 곳이지요. 海兵隊가 바다가 아닌 내륙지방에서 전투를 하여 "無敵海兵"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좀 이상하지요? 海兵隊는 글자 그대로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싸우는 군대이기에 이곳에도 왔으리라 생각됩니다 필자인 '파란문'은 70년대 중반에 海兵隊에 入隊해 軍生活을 해서 저도 '海兵隊 出身'입니다. ㅎㅎ 당시엔 海兵隊라기 보다 犬兵隊(개병대)라고 불리웠답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기억하지요? 그래서인지 대부분 '파란문'이 해병대 출신이라면 잘 믿지 않으려합니다. 아마 느껴지는 인상이 '잔인무도한 해병대'보다는 '얌전한 민병대' 수준으로 보이는가 봅니다. ㅎㅎ 사실 저는 아주 얌전한 학구파이니까요~ 저는 해병대 훈련병 시절에 얼핏 '도솔산전투'가 있었다는 강의를 받은듯하기도 한데 고달픈 훈련병의 귀에는 가물가물한 관심없는 전설같은 이야기였을 뿐이어서 기억하지 못했는데 이곳에 와서 충혼탑을 바라 보니, 어렴푸시 괜히 폼잡고 자기가 한 일인것처럼 자랑하던 선임수병들의 이야기가 기억 나기도합니다. 海兵隊가 자랑하는 3大 戰鬪가 "도솔산전투", "인천상륙작전", "월남 '짜빈퉁' 상륙작전"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쫄병들 앞에서 자랑하던 그 선임수병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해병대 도솔산지구 전투 위령탑] "도솔산전투"는 "미국 해병대 제5연대"가 공격을 했다가 실패하고 난 다음 "한국 해병대 1연대"가 美海兵隊作戰地域을 인계 받아 바로 공격하여 16일만에 勝戰한 곳입니다 그래서 더욱 명성을 얻은 전투인데, 해발 1,300m가 넘는 동해안 준령에는 안개가 많이 끼어 심한 안개 속에서 그것도 밤중에 돌격하여 적군을 완전 섬멸하여 "귀신잡는 海兵""無敵海兵" 이라는 칭호를 이승만 대통령으로 부터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적군 3,265명을 사살하고 포로로 700여명을 잡고, 해병대는 123명이 전사했으며 부상자가 600여명이었다고 합니다. [해병대 상륙함 LVT] '해병대 수륙양용 LVT함"은 사실 이곳과는 아무른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로지 상륙작전 때에 사용하는 것인데 이곳에 전시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海兵隊"의 상징이 "수륙양용 LVT함"이라 해병대를 상징하기 위해 첩첩산중에도 "LVT함"을 전시해 놨는가 봅니다. 물론 "海兵隊"는 바다와 육지 모두에서 전투를 하는 軍隊입니다. 바다와 육지가 가까이 있고 가장 민감한 지역인 "西部戰線"은 "海兵隊"가 방어하고 있습니다 "西部戰線"은 김포에서 백령도까지를 주로 말합니다 저는 "西部戰線" "청룡부대"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장승] '도솔산으로 오르는 登路는 軍作戰地域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있습니다 이곳 '해병대 충혼탑'이 있는 곳에서 도솔산을 오르는 등로에는 해병대를 충혼하는 장승들이 줄지어 서있습니다 도솔산은 앞에 보이는 철문을 열고 올라 가야 합니다. [산행 출발] 해병대 충혼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도솔지맥 1구간"을 완전 점령하려고 합니다 봄에 내리는 비는 '보슬보슬' 내린다고하죠? 여름에는 '주룩주룩' 내린다고하고... 가을엔 부슬부슬... 6월의 초여름인데도 봄비처럼 청승스럽게 보슬부슬 비가 내립니다. [도솔산 들머리] 오늘 함께하는 '서울백두클럽'은 '도솔지맥1구간'을 정규코스로 완주하기 위해 관할 군부대에 공문을 보내 출입허가를 사전에 받았습니다. 아마도 공식적으로 "도솔산-대암산"을 오리지날 마루금을 밟으며 종주하는 산악회는 "서울백두클럽"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돌산령(양구 팔랑리 방향)] 해병대 충혼탑에서 내려다 본 돌산령 고갯길입니다 양구군 팔랑리 방향을 촬영했습니다 [돌산령 (양구 해안면 "펀치볼" 방향)] 이 사진이 '도솔지맥'을 종주 하는 산객들에게는 의미있는 사진입니다. 앞에 보이는 산줄기가 오리지날 '도솔지맥 마루금'인데, 군부대가 점령하고있어 이곳 '해병대 충혼탑'에서 도솔산을 오르는 것입니다. 저 위가 오리지날 돌산령이며, 돌산령을 넘으면 유명한 펀치볼 - 해안면입니다 [도솔산 등로] 7시 55분 산행을 시작합니다. 도솔산 중턱까지는 군사도로가 잘 나 있으며 철문을 통과하면 바로 "도솔산 兜率山"이 좌측에 보입니다. "도솔산 兜率山"은 1,147.8m 높이의 높은 산인데, "돌산령"이 해발 940m정도 되니 "돌산령"에서 약25분 정도면 오를수 있는 산이 되겠습니다. 너무 쉽지요~이~잉 [돌산령] 도솔산을 오르며 동쪽방향 "돌산령 정상"을 바라 봤습니다 북쪽에서 뻗어 내려오는 "도솔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돌산령" 고개가 선명하게 보이며 마루금 위에는 군부대가 점령하고 있는 것이 애처롭게 보입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하고 보기 어려운 것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돌산령" 너머 멀리 끝에 높은 "검은 능선"이 보이십니까? 바로 "백두대간"의 "설악산"구간입니다. "공룡능선" "설악산"이 선명히 보였는데 사진에는 희미하게 나왔군요. 도솔산과 설악산 사이에 "인제, 원통"이 있지요? 그러니 도솔산에서 설악산은 매우 가깝게 있습니다 [양구군 팔랑리] 서쪽으로는 양구군이 펼쳐져 있는데 구름으로 가리워져 오리무중이군요 아래에 보이는 마을은 "팔랑리"입니다. "팔랑리"는 조사해 봤더니 "八郞里"이더군요. "팔랑리 민속마을"과 전쟁 기념관등이 있는 제법 알려진 마을입니다. "팔랑리 전설" 조선 중엽 어느 때 함경도에 살던 전주 이씨인 이학장이라고 하는 도사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남으로 내려오면서 방방곡곡을 두루 돌아다녔답니다. 그가 태백산맥의 골짜기를 더듬어 오다가 양구 동북방 도솔산 남쪽에 있는 동면 팔랑리에 이르렀답니다. 이곳 산수가 가히 자기의 뼈를 뭍을 만 한 곳이라고 생각한 그는 몇몇 친족들과 함께 여기에 터를 닦고 살게 되었던 것이라 합니다. 이 도사가 맞아들인 부인의 가슴에는 괴상하게도 유방이 네게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몹시 괴이하게 생각하기는 했으나 그는 아무런 말없이 그 부인과 백년을 해로하기로 마음먹고 여기에서 살았답니다. 그 뒤 아기를 가진 부인은 달이 차자 해산을 했더니 놀랍게도 네 쌍둥이씩 여덟을 계속 낳았답니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 부인의 유방이 네 개가 달려 있는 수수께끼를 풀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그와 그 부인은 온갖 정성을 다해 그 팔형제를 잘 길렀고, 기골이 장대한 그들은 장성해서 모두 나란히 낭관 벼슬을 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이 마을을 팔랑리라고 불리우게 되어 지금까지 그 이름이 내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八郞里" [도솔산 오르는 길] 도솔산 오르기는 너무 쉽지요~잉 앞에 가는 회원들이 짐을 짊어지고 오르고 있지요? 젊은 대원들이 짐을 짊어졌습니다. 오늘 대암산 정상에서 국토방위에 힘쓰고 있는 군장병들에게 전달하려는 "위문품"입니다. "도솔지맥 1구간"을 오리지날 루트로 종주하기 위해 출입신청하여 허가를 받았으니 이 기회에 "위문품"도 전달하여, 감사의 표시를 하기로 하여 "위문품"을 준비한 것입니다 "위문품" 준비보다 짊어 지고 대암산까지 오르는 일이 장난이 아닙니다. 저도 헌책을 별도로 준비하여 15권을 짊어 지고 오르는데 무척 힘들었습니다. 자세한 위문품 내역은 대암산 군부대에 올라서 보여드림니다. [도솔산을 오르면서 뒤 돌아 본 '도솔산 등로'] 도솔산을 오르며 뒤돌아 보니 뒤따라 오르는 회원님들의 행렬이 멋있습니다. 그리고 출입허가를 받지 않고 도솔산을 오르는 산객들은 앞의 헬기장 뒤에서 몰래 올라 오더군요. 하지만 금방 군인들에게 발각 되어 쪼껴납니다 [도솔산 오르는 길] 비교적 완만한 登路를 오릅니다 이런 등산만 하면 몇일이라도 하겠습니다. ㅎㅎ [도솔산 정상] 잠깐 오르니 벌써 "도솔산 정상"입니다. '돌산령 해병대 충혼탑'에서 약25분 정도 걸렸으니 쉽게 올랐습니다. 오늘 등산이 시시하게 모두 끝난 기분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광치령까지 걸린 시간이 9시간이었으니.... 상상만 해 보시라~휴~ [도솔산 정상에서 뒤돌아 본 '登路'] 올라와 내려다 보니 지나온 등로가 제법 그럴듯하게 멋있습니다 그리고 건너편에 높은 산이 도솔지맥이 지나는 "대우산 大愚山"입니다 [海兵隊 兜率山 戰積碑] 도솔산 정상에는 "海兵隊 兜率山 戰積碑"가 크게 세워져 있습니다. 아래 돌산령에 있는 것은 전사한 해병대를 충혼하는 "위령비"이며 이것은 戰積碑입니다. [海兵隊 兜率山 地區 戰積碑] 海兵隊 兜率山 地區 戰積碑라고 쓰여있습니다 저도 이곳에 서니 海兵隊 출신임이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빨간 바탕에 노란 글씨의 명찰" "팔각모"..... 선임수병들의 피땀으로 덩달아 우쭐댑니다. 추~ㅇ 서~ㅇ [海兵隊 兜率山歌] 하늘의 우뢰소리 땅 위에 아우성 불바다 피투성이 새우기 몇밤 이 나라 해병대가 명예 걸메고 목숨 내건 싸움터 도솔산일세 오 오 도솔산 높은봉 해병대 쌓아 올린 승리의 산 오늘도 젊은 피 불길을 뿜는다 [돌산령과 "펀치볼"] 도솔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돌산령"과, "돌산령" 너머 "펀치볼"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해안면 亥安面"이 조망됩니다. 그리고 "도솔지맥 마루금"을 따라 군사도로가 선명하게 나있는 북녁이 애처러웁게 잘 보이는데 "도솔지맥 마루금"을 따라 좌측으로 "대우산 1178.5m"과 "가칠봉 1242.2m"이 보입니다. "가칠봉"은 加七峰으로 금강산의 한 봉우리인데 금강산의 최남단에 있는 봉우리입니다. 그 뒤로 희미하게 "김일성 고지"와 "금강산"이 보입니다 "펀치볼"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해안면"에 대해선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도솔산에서 바라 본 "대암산 1304m봉"] 앞으로 가야할 "대암산 大岩山 1304m봉"이 구름을 이고 솟아있습니다 저 봉우리는 대암산 정상이 아니고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대암산 1304m봉입니다 출입허가를 받지 않으면 저 봉우리를 절대 통과할수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군인이 나와 우리를 안내합니다. [도솔산 정상] "도솔산"의 "도솔"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듣기는 많이 들었어도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은 사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겠지요. ㅎㅎ 모르는게 당연 할것입니다. 왜냐하면 "도솔 兜率"은 외국어 이기 때문이며, 그것도 현재는 사용치 않는 인도의 옛글자 "산스크리트語"이기 때문입니다 佛經이 처음으로 쓰여진 글자이니 불교 학자들이나 아는 "산스크리트語"이기에 모르는게 당연 대암산 1304m봉을 오르며 알려 드리겠습니다 [도솔산 정상 이정표] 이곳의 이정표는 혼동을 주기에 충분하게 "대암산"이 북쪽방향으로 표기되있습니다 윗 사진에서 본 "대암산 1304m봉"을 향해 남쪽으로 가야하는데 반대로 되있습니다. 물론 북쪽으로 내려가서, 다시 남쪽으로 틀면 되겠지만.... [뒤돌아 본 '도솔산 정상'] 도솔산 정상을 내려와 뒤돌아 봤습니다. 도솔산 정상은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군요 兜率이라고는 사용하는 경우가 없고, 兜率天이라고 주로 씁니다. 兜率天 은 불교에서 욕계(欲界) 6천(六天) 가운데 제4천(第四天)을 일컷는데 인도의 옛글인 산스크리트語의 tusita를 한문으로 音譯한것이며, 한문으로 音譯된것을 다시 우리말로 音譯한것이 "도솔"이니.... 이게 뭔말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도솔산 능선] 오늘 "도솔지맥1구간"에서는 "도솔산에서 대암산"까지의 山路가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환상적인 산행길이었습니다 [뒤돌아 본 '도솔산 정상'] "兜率天"은 미륵보살이 사는 하늘나라 궁전을 의미합니다 "佛國天國" 이제 이곳 "兜率山'이 어떤 의미로 이름 지어졌는지 짐작할수 있겠지요? '미륵보살'이 사는 山이라는 의미이겠지요 "미륵彌勒" "친구"를 뜻하는 산스크리트語 미트라(mitra)에서 파생한 마이트리야(Maitreya)를 音譯한 것으로 사랑의 동반자로서 모든 중생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보살을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홍어와 무인도"에 와야 알수 있는 것들이지요 ㅎㅎ [구름이 넘나드는 '도솔산 능선'] 東海와 인접해 있는 준령이라 날씨변화가 많았습니다. 구름이 잔뜩 몰려왔다간 다시 햇볕이 나고, 비도 오락가락했습니다. 정말 "兜率天"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도솔산 능선] 서정주선생이 쓴 詩 중에 "춘향유문"이라는 詩가 있지요. 얼핏 생각나는데... 이 싯귀중에 "도솔천'이 등장하는데 그래서 오랜만에 이 詩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춘 향 유 문 - 서정주 -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어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여요 [도솔산 능선 이정표] 이런 모양을 한 이정표는 여기까지이고 앞으로는 사람들의 흔적이 별로 없는 산길을 가야합니다 [도솔지맥 마루금] 대암산으로 오르는 길은 구름과 안개로 도솔천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춘향유문은 춘향전 속에서 발쵀하여 詩로 표현한 유명한 서정주선생의 詩이지요 춘향가에서는 쑥대머리로서 감옥에 갖혀 한양간 이도령을 애절하게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이고, 춘향유문은 한양가서 소식없는 이도령을 그리워하며 遺言을 남기는 서정주 시인의 詩입니다. 모두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한 죄로 감옥에 갖혀, 애절한 그리움을 표현한 노래와 詩입니다 [龍바위] 숲속을 헤메며 걷고있는데 숲사이로 잠깐 보이는 龍바위 못보고 지나친 분들이 대부분일겁니다. 정말 龍이 昇天하는듯하군요 대암산의 "늪" 이름이 "龍늪"인데..... [지나온 길을 뒤돌아 봅니다] 아주 오래전 고교시절 국어 참고서에 나와 외웠던 것을 주섬주섬 간추려 가며 춘향유문 春香遺文을 나름대로 감상해 보겠습니다 춘향이 그처럼 많은 소릿꾼이나 시인들에 의해 美化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주는 "인간의 영원한 주제-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이유이기도하고, 春香이라는 봄내음 풍기는 듯한 여인이 한국 여인의 절개와 미모를 대변하는듯하기도 해서이겠지요 [대암산 오르는 길] 춘향은 시대적 제약 속에 있는 한 인간의 모습으로서보다는 시대를 초월한 사랑의 화신으로서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춘향 유문 春香遺文"도 시대적인 특수성이 희석된 사랑의 노래입니다. 유언(遺言) 형식으로 쓰여진 이 시는, 현실 속에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달은 한 여인의 독백을 통해 '저승'을 비춰 줍니다.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이라는 인사말은 헤어지기 싫은 현실을 파라독스로 깜짝 놀라게 합니다 '저승'이라는 詩語와 만나서, 그것이 예사로운 인사말이 아니고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토하는듯 하지 않습니까? 죽음 앞에서도 오히려 초연할 수 있는 春香은, 저승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사랑보다 먼 '딴 나라'에 가 있다고는 생각치 않는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음을...죽음의 세계조차도 그의 사랑 안에 있음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춘향의 이 도령에 대한 사랑이 생사와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극대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암산 1304m봉] 서정주선생의 春香遺文이라는 詩는 학교때 "輪廻思想"이 근간을 이룬다고 배웠습니다. 춘향이가 죽어서 천길 땅밑에 검은 물로 흐르던 도솔천의 하늘, 즉 저승에 가더라도 결국은 도련님 곁으로 돌아 온다는 믿음. 물이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이 다시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라는 끝없는 춘향의 사랑을 "輪廻思想"을 배경에 깔고 인간이 최후로 하는 遺言을 빌어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는 "사랑 이야기"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도솔산에서 대암산까지는 정말 경치가 아름다운 코스였습니다. 경사도 완만해서 걷기에도 편했으며, 인간의 손때가 뭍지않은 깨끗한 自然이 이렇게도 잘 보존되있다는 것에 놀라며, 보존의 힘이 남북분단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애처롭기 그지없습니다 [뒤돌아 본 "도솔산과 도솔지맥 마루금"] 뒤 돌아 보니 지나온 "도솔산"이 가운데 검은 색깔을 띠고 그 뒤로 대우산, 가칠봉이 이어져 있습니다. [펀치볼 - 해안면] "펀치볼"로 유명한 "해안면 亥安面"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만 구름으로 이 사진이 유일한 사진이 되고 말았으니 안타깝습니다. "해안면 亥安面" 양구군에 속해 있는 국내 유일의 "분지 盆地" 하나가 面이 된곳이랍니다 이곳은 약 4,500만년전에 우주를 날던 운석이 떨어져 커다란 盆地가 만들어 졌으며, 움푹 패인 盆地에는 물이 고여, 바다와 같은 넓은 호수를 이루었다고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海安"이었다고합니다. 지금도 亥安面을 둘러 싸고 있는 산에선 조개류와 해초류가 발견되고있다고합니다 세월이 흘러 물이 빠지고 인간이 마을을 이루고 살기 시작했는데 이 지역에 유독히 뱀이 무지무지 많아, 생활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뱀의 천적인 돼지를 키우니, 돼지가 뱀을 모두 잡아 먹어 뱀도 없어지고, 돼지도 잘 자라서 돼지의 수도 무지 늘어나 부유한 마을이 되었답니다 그후 "돼지(亥)가 마을에 평안(安)을 가져왔다"라고 亥安面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답니다 '亥'는 돼지 '해'입니다.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그리고 亥安面을 펀치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6.25때에 미군이 이곳에 왔을때에 亥安面의 모양이 "화채 그릇" 모양을 하고 있다고 "Punch Bowl"이라고 불렀답니다 그 이후 亥安面의 닉네임은 펀치볼이 되었답니다. "Punch Bowl"에 대해서 영어영문학과를 건성으로 다니다 나온 '파란문'이 조금 더 설명을 하겠습니다. 우선 "Punch"는 모두 아시는 '주먹'이라는 뜻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지요? 그리고 칵테일의 일종인 "술·설탕·우유·레몬·향료를 넣어 만드는 음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주로 여름철에 우리는 이 음료에 수박 참외 딸기 토마토등을 썰어 넣어 "화채"를 만들어 먹지요 그 화채 그릇이 유리나 크리스탈로 만든 평평한 넓직한 그릇이지요 그릇, 주발을 "Bowl"이라고 합니다. 스포츠 볼링 할때도 Bowling을 씁니다. 이때의 Bowl은 나무공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Punch Bowl"은 영어의 합성어로서 "주발 모양의 분지(盆地)"라는 의미를 본래부터 가지고 있습니다. 하와이의 국립현충원의 이름도 하와이 화산 분지 안에 있어 "Punch Bowl"이라고 합니다.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 휴식] "서울백두클럽" 회원님들은 한시간 이상을 걸어야 한번 쉼니다 이곳에 도착하니 9시 20분이었으니 1시간 25분만에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들입니다. 이것도 군인이 안내하러 오니 모두 멈추라는 지시를 받아서 멈춘것이지 경사가 완만하다고 그냥 자꾸 올라 가려고만 합니다 ㅎㅎ [군부대 출입 안내 군인] 드디어 "육군 원사님"이 나타났습니다. 사전에 연락을 받았다고 환영해 주었습니다. [군부대 출입 안내] 그리고 간단하게 주의사항을 듣고 산행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금년 10월부터는 이곳을 정식으로 개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개방을 하면 천연자연이 졸ㅈㅣ에 쑥대밭이 되지 않을까 염려 되기도 합니다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공식적으로 처음으로 우리가 군인의 안내를 받으며 오르는듯합니다 기분이 진짜로 兜率天을 오르는 기분이었습니다 [대암산 1304m봉 '군부대' 오르는 길] 정상이 다가 오면 언제나 깔닥 고개는 있는 법 [뒤돌아 본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아!~ 兜率天을 오르는 기분 글자 그대로 환상적입니다 [군사적전 도로] 군부대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저 아래 군작전도로로 빙빙 돌아 가야합니다 [군사적전 도로] 군부대의 출입허가를 받지않으면 저 군작전도로를 걸어 우회해서 대암산을 가야하니 저 길을 걸을바에는 이곳에 올 필요가 없겠지요. 아무른 의미가 없습니다 동네 뒷산을 오르는게 더 나을것입니다. 출입신청을 하면 왠만하면 허가를 해주고 안내를 해 준다고 하니 앞으로 가실 분들은 참고하세요.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대암산 1,304m봉이 다가 옵니다. 대암산 1304m봉은 민둥산이라 구경거리가 없는데 다행이 여러 형태의 안테나들이 민둥산을 그나마 품위있게 만들어 줍니다 [대암산 1304m봉 정상] 대암산 1,304m봉우리는 넓은 분지를 이루고 있더군요 이 사진을 보니 육군 군대생활을 여기서 한 사람들은 감개무량이겠지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춥고 눈이 제일 많이 온다는 최전방 중에 한곳입니다. 여름에도 서늘해서 모기가 없기로 유명하며,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필요없는 곳이 이곳 대암산이라고 합니다 [대암산 1304m봉 정상 - 군부대 초소] 완전무장을 하고 "철통방위" 보초를 서고 있습니다 [대암산 1304m봉 정상 - 군부대 兵舍] 방문 기념사진 [서울백두클럽이 준비한 위문품] 이번 도솔산-대암산 산행에 출입허가를 해준 군부대에 감사도 드릴겸, 또한 이때까지 남들이 하는 위문을 T.V로 구경만 했는데 직접 위문도 하려고 회원님들이 조금씩 분담하여 조촐한 위문품을 준비했습니다. 조촐하지만 마음이 담긴 위문품이니 의미가 있길 바람니다. [위문품 전달] 서울백두클럽 회장님이 위문품을 전달합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기분이 좋지요? 저도 수동태로 살다가 모처럼 능동태로 전환하여 기쁜 일 하나 했습니다 [위문품 전달] 저의 아들 둘은 몇년전에 육군 병장으로 이미 전역했습니다 [장병들과 기념촬영] 장병 여러분!~ 건강하게 그리고 추억에 남는 군생활 하시기 바람니다 남자들의 군생활은 일평생 얘깃꺼리로 술집의 단골 안주입니다 [안내해 주신 원사님] 오늘 안내를 해주신 주임 원사님과 한컷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 나올때 연락 주시면 대포 쏘겠습니다. 대암산에서 국토방위에 전념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림니다 [점심식사] 대암산 부대에서 점심식사를 손수 준비하여 저희들을 대접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짬밥' 정말 오랜만에 먹어 보았는데, '돈까스'를 준비해 주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제가 군대생활을 할때엔 고기 구경하기가 어려웠는데.... 부럽지요? 등산하고...짬밥도 얻어 먹고...ㅎㅎ [대암산 "용늪" 가는 길] 대암산 "용늪"은 군부대 兵舍 바로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군부대 안에 "용늪"이 있는 것입니다. [작은 용늪] 좌측으로 "작은 용늪"이 넓게 펼쳐집니다. [작은 용늪 안내판] 지구의 온난화와 토사의 난입으로 "용늪"은 자꾸 육지화 되어 가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고하네요. 이곳 "용늪"에 대해서는 "큰용늪"에 가서 상세히 설명하겠습니다 ["큰 용늪" 가는 길] 깨끗하고 아름답게 정비한 "큰용늪" 가는 길이 다정스럽습니다. ["큰 용늪" 전망대] "큰용늪"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있어 조망하기가 매우 좋았습니다. 앞에 산봉우리 끝에 조금 보이는 봉우리가 "대암산 정상"입니다. [큰 龍늪] 전망대에서 바라 보는 "큰용늪" 가운데 나무가 없는 곳이 "늪"입니다 이 "늪"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있으며, 1,280m 高地帶에 있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高冷濕地"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 자연생태계보존지구 "람세스"에 가입되있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군부대 초소 - 큰 용늪과 대암산 정상 입구] 이곳이 군부대 입구이기도 하며, "용늪"과 "대암산 정상" 입구이기도 합니다 "큰용늪"은 좌측 안이며 "대암산 정상"은 이길 똑 바로 갑니다 [큰 龍늪] 안내를 받으며 큰용늪으로 들어 갔습니다. [큰 龍늪] 짐작했던것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자연생태계보존지구"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큰용늪"은 하늘로 올라 가는 龍이 잠시 쉬었다 올라 가는 곳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큰 龍늪] 이 늪은 약4,200년 전에 만들어 진것으로 조사 되었다고 하며 용늪의 바닥에는 채 썩지 않은 식물들이 쌓여 스펀지처럼 물컹한 지층을 이룬 이탄층이 발달해 있고 보통 식물이 죽으면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땅 속에 묻히게 되는데 기온이 낮고 습기가 많은 습지에서는 식물이 죽은 뒤에도 썩거나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쌓여 연못 같은 형태로 짙은 갈색의 층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이 "이탄층"이라고한답니다 [큰 龍늪] 용늪에 만들어진 '이탄층'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1m 깊이이며 깊은 곳은 1m 80㎝나 된다고 합니다. 용늪의 이탄층에서 꽃가루를 추출하여 분석한 결과, 용늪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4천2백년 전 쯤으로 이탄층의 밑바닥에서는 포자가, 그 뒤 1천년 동안 더 쌓인 지층에서는 신갈나무가, 그리고 2천년 정도 더 흐른 지층의 윗부분에서는 소나무 꽃가루가 발견되었다고 하는군요. 이것으로 그 시대의 자연 환경을 알수있다고 하니 이 지역 역사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곳이랍니다 [대암산 정상 입구] 큰용늪을 구경하고 입구로 나와 대암산 정상을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와야합니다 이 때 시간이 11시 50분 저 멀리 뒷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대암산 정상입니다 [대암산 정상 가는 길] 대암산 주변은 모두 "미확인 지뢰지대"입니다 그래서 길이 아닌 곳으로는 가면 책임 질수 없답니다. [대암산 정상 가는 길]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별로 없습니다. [대암산 정상 가는 길] 봉우리를 하나 넘어 다음 봉우리가 대암산 정상이니 쉽게 생각해선 않됩니다 [대암산 정상 오르는 암릉] 대암산은 글자 그대로 큰바위가 있는 大岩山입니다 그러니 정상 부근에는 온통 바위였습니다. [대암산 정상] 대암산 정상은 바위들로만 우뚝 서있는 뾰쪽한 봉우리입니다 [대암산 정상] 안전시설이 없어 매우 위험한 대암산 정상 [大岩山 정상] 大岩山 정상에 오르니 12시 25분이었으니 입구에서 35분 걸렸습니다. 정상석도 없고 안내판도 없습니다 높이는 1,310m [大岩山 정상] 大岩山 정상에서 설악산을 촬영하려고 했는데 구름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큰용늪, 대암산 입구] 다시 큰용늪 입구로 되돌아 오니 12시 55분이었으니 대암산을 갔다 오는데 구경하는 시간을 합쳐 1시간 5분 걸렸습니다. [큰용늪에서 廣峙嶺가는 길 지도] 지도의 맨 위 대암산 갈림길이 윗 사진입니다. 여기서 "광치령"까지는 구경꺼리 하나 없는 지루한 길입니다. 지맥 마루금이 산속에서 군사도로로 들락날락하면서 4시간 이상을 갑니다. 지긋지긋한 지루한 산행길이 시작됩니다. 행복은 여기까지이고 이제부터 고생길입니다. [廣峙嶺 가는 군작전도로 - 林道] 군작전도로는 광치령까지 잘 나있습니다. 마루금을 탈 자신이 없으신 분들은 이 도로를 4시간 정도 내려 가면 "광치령"입니다. 도솔지맥 마루금은 여기서 약300m 앞에 우측으로 산악회 표지기가 달린 곳으로 들어 갑니다 [廣峙嶺 가는 '도솔지맥 마루금'] 숲으로 시야가 꽉막힌 도솔지맥 마루금은 길을 잃고 알바하기 쉽습니다 매우 조심하여야 목적지까지 갈수 있습니다 [廣峙嶺 가는 '도솔지맥 마루금'] 어디가 어디인지 오로지 지도와 나침판으로만 진로를 결정하고 진행합니다. 구경거리도 없고 외부가 보이지도 않습니다. 여름철 肉山 마루금을 타는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길찾기가 어렵습니다. [지나온 '도솔지맥 마루금'] 1218m봉에 올라 지나온 마루금을 잠시 볼수 있었습니다 구름에 비까지 내려 외부를 조망할수 없었습니다 [廣峙嶺 가는 군작전도로 - 林道] 마루금이 다시 군작전로로 나와 모두 모였습니다. 일행을 놓치면 큰일 나기 때문에 바짝 바짝 붙어서 가야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여기까지는 전부가 잘 왔습니다만 이제부터 흩어지기 시작하여 알바하는 분들이 늘어 나기 시작합니다. [廣峙嶺 가는 '도솔지맥 마루금'] 군작전도로를 조금 따라 가면 다시 마루금으로 올라 가는 입구가 나옵니다 길 찾기에 자신 없으신 분들은 여기서 도로를 따라 광치령으로 갑니다. [廣峙嶺 가는 군작전도로 - 林道] 여기서 저는 도로를 따라 광치령으로 갑니다. 군사도로는 걷기에 편합니다만 거리가 마루금보다 훨신 더 깁니다. [廣峙嶺 舊道路 - 대암산 입구] 약 4시간을 걸어 내려 오니 "광치령 옛길"을 만나며, 이곳에서 대암산 용늪까지 12km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광치령 휴게소"를 가려면 우측 "광치령 옛길"로 가야합니다 참고로 여기까지 버스가 올라 올수 있었는데 몰라서 휴게소에 기다리라고해 많은 회원들이 여기서 휴게소 가는데 많은 알바를 하였습니다 [마루금을 약간 벗어나 군작전도로로 온 길] 붉은색 선이 마루금을 벗어나 군사도로로 걸어 온 길입니다 왠만하면 군사도로를 이용하시기 바람니다 [廣峙嶺] 이동통신탑이 있는 "廣峙嶺" 에 왔습니다. 여기까지도 버스가 올라 올수 있으니 다음 2구간에는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올라 와야하겠습니다. <지도 참조> [廣峙嶺] 도솔지맥 2구간은 앞으로 직진하여 "광치터널" 위로 가야 합니다 광치령 휴게소를 가려면 우측 옛길을 따라 조금 가다가 왼쪽으로 비탈을 따라 내려 갑니다. 여기서도 휴게소 가는데 일부 회원들이 광치터널을 건너 하산하느라고 알바를 많이 하고 고생을 했더군요 [廣峙嶺 舊道路에서 휴게소로 하산하는 길] 휴게소로 내려 가는 길은 없고, 대략 알아서 내려 가야하며 경사가 장난이 아닙니다. [廣峙嶺 舊道路에서 휴게소로 하산하는 길] 몇번 미끄럼을 엉덩이로 하며 내려 갔습니다 [廣峙嶺 뒷쪽으로 하산] 휴~ 휴게소가 나오며 우리 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廣峙嶺 터널] 서울에서 춘천을 가는 "춘천가도"가 46번 국도입니다. 그 46번 국도가 춘천을 지나 이곳 광치령으로 와서 "인제, 원통'을 지나 "진부령"을 넘어 동해안 "고성"으로 가서 끝납니다 길이 좋아져 서울에서 여기까지 2시간이면 올수있습니다 [廣峙嶺 휴게소 앞에서 양구 방향] [뒷풀이] 오후 5시 30분에 도착하였으니, 오늘 총산행 시간은 9시간 35분이 걸렸습니다 총산행 거리는 약25km 휴게소 바닥에 주져앉아 라면에 쇠주 한잔 쭉 마시고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다음 "도솔지맥 2구간"에서 다시 만나요~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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