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북대로-경흥길』
『철원김화구간 (와수리~생창리)』
"끝나지 않은 '경흥로' 김화 휴전선까지 가다"
[국토지리원 지도]
<경기도>가 조성한 "경기옛길-경흥길"의 <걷기코스>를 마치고
나름대로 <강원도 경흥길>을 조사하여 옛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아 가 봅니다.
지난 <경기-강원 도계>에서 <철원군 갈말읍>을 통과하는 걸로 추정되는 <경흥옛길>은
<한탄강주상절리길 잔도-물윗길>로 대체했고, <신철원>이라고 불리워지는 <갈말읍>에서
<김화읍 와수리>까지는 <43번국도>에 갓길이 거의 없고, 구경거리도 없어 생략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와수리터미널>에서 출발하여 <한탄강>의 상류 지류인 "화강花江을 따라
<43번국도>가 끝나는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에 있는 "민통선 검문소까지 갑니다.
['와수리 버스터미널'] 9:25
2022년 3월 22일 (화) 맑음 연무
<동서울터미널>에서 오전 7시25분발 <와수리행 시외버스>를 타고 약2시간이 걸려
'철원군 김화읍 와수리'의 "와수리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바로 답사를 시작합니다.
[와수리삼거리]
도보여행이 주목적이니 <와수리 중심가>를 한바퀴 돌아 나갑니다.
"와수리 瓦水里"는 <철원군 서면 와수리>이지만
주변 <김화읍><근남면><서면>보다 더 큰 상거래지역이며 교통의 중심지라고 하는군요.
<와수리>는 원래 산간 촌락이었으나 고려 시대에 청기와 도요지가 생기면서 초가집이 아닌
기와집이 많았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김화군>에 부임한 원님이 산마루에 올라 이곳 지역을 살피니
바다는 없는데 석양에 비치는 <기와 지붕들>이 마치 바다에서 물결치는 듯이 보인다 하여
"와수 瓦水"라 명명하였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기와집>이 많은 고을이라는 의미...
군부대가 엄청 많이 있는 휴전선 부근이라서인지 군인들을 상대로 하는 업소들이 많았습니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거리는 한산하더군요.
[사거리] 9:38
중심가를 벗어나니 <화천-춘천 방향> 옛 국도가 진행하는 방향의 사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아리랑로']
[로타리] 9:47
<아리랑로>라는 외곽도로가 10여분 이어지고
<와수리버스터미널>에서 바로 오는 도로인 <47번국도>와 다시 만나서 우측으로 진행하고
['47번국도'] 10:05
<47번국도>를 따라 <김화읍사무소>가 있는 <학사리>로 18분 정도 진행하면
<88올림픽> 관련 공적을 남긴 사람의 공적비도 보이고...
['학포교'] 10:07
이어서 "학포교 鶴浦橋"를 만납니다.
<철원군 서면 와수리>와 <철원군 김화읍 학사리>를 연결하는 다리라는데....
이곳은 <한탄강>의 상류인 "화강 花江"이 흐르는 곳인데, 옛날엔 다리가 없어 배를 타고
건너 다녔답니다. 그래서 나룻배가 다니는 포구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학포 鶴浦>여서
자연스럽게 다리가 놓이고 다리 이름이 <학포교 鶴浦橋>가 되었다고...
"화강 花江"
<경흥길>에서 이 강은 매우 중요한 강인데 앞으로 이 강을 중심축으로 <경흥길>이 이어집니다.
글자 그대로 "꽃내"라고 하는 <한탄강>의 상류 지류인데
지도에는 <남대천>이라고 나오더군요.
['김화읍 학사리']
[소나무 가로수']
이어서 <김화읍사무소>가 있는 <철원군 김화읍 학사리> 중심가가 펼쳐지는데
"소나무 가로수"가 이색적입니다. 도로를 따라 모두 소나무 가로수를 심었더군요.
그리고 소나무에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조명시설을 해서 밤엔 더욱 새로운 풍경을 연출 할듯 하고
['김화읍사무소' 앞] 10:17
"김화읍사무소 金化邑"
<김화읍>은 원래 <김화군>이었는데 휴전선으로 두동강이 나 <철원군> 소속의 한 고을로 전락했다죠.
그러니까 이곳의 <김화>는 북한에도 연결되는데 <북한>에선 지금도 <김화군>이라는군요.
예전엔 엄청 큰 고을이어서 "철의 삼각지"의 한 축을 이루며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중요한 군사적 지정학적 요충지였답니다.
지금은 인구 3~4,000명 정도가 사는 조그만 邑마을이 되었지만 통일이 되면 서울의 땅투기꾼들이
엄청 몰려 들 <금강산 가는 길>이 되겠습니다.
['김화교차로']
이어서 <47번국도>의 종점이며 <43번국도>가 좌우로 지나는 "김화교차로"를 만납니다.
<경흥길>은 우측으로 방향을 틀고
['춘천 화천 방향] 10:22
<김화교차로>의 동쪽방향입니다.
이곳은 <56번국도>의 출발지이기도 하더군요.
그러니까 이 길은 <화천>과 <춘천>으로 가는 우리나라 최북단 국도가 되겠습니다.
<신철원-갈말>에서 오는 <43번국도>가 200m 정도 이어지다가....
['학사교차로'] 10:25
바로 "학사교차로"를 만나 <경흥로>는 <43번국도>와 함께 좌측 북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이곳이 오늘 답사의 종점인 "DMZ생태평화공원"으로 가는 입구가 되겠습니다. 5.4km→
좌회전하면...
[방호벽] 10:45
<43번국도>가 이젠 초라해져 이용하는 차량들도 거의 없는 <김화읍 학사리>를 통과합니다.
<휴전선>이 가까워지니 탱크방호벽이 나타나고...
['대성산' '적근산' 조망]
최전방이라고만 듣던 <한북정맥>의 마루금이 지나는 <대성산>과 <적근산>이 <김화>를
감싸고 있으며, 첩첩산중이 아니라 <철원평야>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한북정맥>을 종주 할때 <수피령>과 <복계산>에서 바라보던 <대성산>과 <적근산>을
여기서 바라 보니 평지에 솟아 있는 산으로 보이는군요. 바라 보는 방향에 다라 이렇게 다를수가
['43번국도'] 11:19
['계웅산' '오성산' 조망]
<학사교차로>에서 한적한 <43번국도>를 한시간 정도 진행하면
<휴전선>의 <남방한계선>이 지나는 비무장지대인 "계웅산 鷄雄山 603.9m"이 조망되며
좌측 저 멀리엔 <북방한계선>이 지나는 유명한 북한의 "오성산 1,040m"이 조망됩니다.
그러니까 <오성산>에서 산줄기가 <계웅산>까지 연이어 있는데 모두 비무장지대입니다.
"계웅산 鷄雄山 603.9m"은 닭과 관련이 있는듯
['생창리 표지석'] 11:29
<계웅산>과 <오성산>, 그리고 좌측에 있는 <성제산> 사이에 펼쳐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가 시작되는 마을표지석을 만납니다.
['생창리 쌈지공원'] 11:31
[詩]
<생창리 마을 표지석>을 지나면 <생창리 쌈지공원>을 만나는데
공원을 이용하는 마을 주민들은 없고, 주변에서 군인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고
['생창리 마을']
['생창교회' '방문자센타' '마을회관'] 11:35
이어서 "생창리 生昌里" 중심 마을과 "DMZ생태공원 방문자센타"가 기다립니다.
['DMZ생태평화공원 방문자센타']
"DMZ생태공원 방문자센타"는 화요일이 휴무더군요. 가던 날이 장날...ㅎ
['생창리 입주 기념비']
"생창리 生昌里"라는 지명은 옛날부터 있던게 아니고,
1970년 10월 30일에 재향군인 100세대가 입주하며 "재건촌"을 이루며 생긴 이름이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DMZ생태평화공원 안내도']
방문자센타 앞에는 "DMZ평화생태공원 안내도"도 있는데 찾는 사람들이 많을까?
안내도의 <검문소> 위치에서 <경흥길>은 우측으로 <계웅산>을 돌아 가는걸로 보이며
북한 <회양군>을 지나 <백두대간 철령>을 넘어 <안변><원산>으로 가는 걸로 추정됩니다.
한편, 직진성 좌측길은 <평양>으로 이어지는 길이여서 이곳이 東西가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옛 <김화군 군청>이 있었던 <김화>의 중심지였다는군요.
우측에 흐르는 <화강>으로 나가면....
['화강'과 '경흥길'] 11:43
"화강 花江 꽃강"이 제법 크게 흐르는데, <한탄강>의 상류이니 이 강은 <한탄강>의 지천입니다.
<경흥로>는 이 <화강>을 따라 북동진한다고 추정되는데 북한 <회령군>과 <백두대간 철령>을 넘어
<원산-함흥-경흥>으로 이어지겠죠. 그러니까 여기선 멀지 않은 곳에 <철령>이 있고
<금강산>은 더욱 지척에 있는데 <휴전선>으로 멀게만 느껴지니...
['43번국도']
['생창리 버스 종점'] 11:53
<43번국도>를 조금 더 진행하면 <생창리 버스 종점>이 있으며 민간인이 사는 집은 여기가 끝~~
['읍내삼거리'] 12:00
이어서 <민간인통제구역>이라는 <민통선 검문소>가 있는 "읍내삼거리"를 만납니다.
중무장한 군인들이 검문을 하며 민간인 출입통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검문소 우측에 <계웅산>이 있고 가운데 멀리 <북한 오성산>이 보이며, 좌측엔 <성제산>이 있는
"옛 김화군청"이 있던 <김화의 중심지>였답니다. 그래서 "邑內삼거리"라고...
직진성 좌측길이 <평양>으로 통하는 길이어서 <병자호란> 때에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우회하여 쳐내려온 길이라고 하며, 이곳에서 <평안도관찰사 홍명구>와
<평안도병마절도사 유림장군>이 적과 맞짱 뜬 곳이며,
우측길이 <경흥길>로서 <태조 이성계>를 만나러 <함흥차사>가 다녔고
<백사 이항복>등 많은 관료들이 <철령> 넘어 유배를 간 길이기도 하답니다.
우리나라 남쪽에서 갈수 있는 <관북대로-경흥길>은 여기 "읍네삼거리"까지입니다.
더 이상은 비무장지대 <휴전선>으로 갈수 없습니다.
['충열사' 입구]
<검문소> 바로 앞에서 좌측으로 <충열사>로 가는 입구 안내석이 있는데
안내석을 길도 없는 북쪽을 향하게 세워서 입구에선 무슨 안내석인지 알지 못하게 세워 놧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우리가 대부분 모르고 있었던 유명한 곳이라니 답사를 하고 갑니다.
<충열사>는 누구나 출입 할수 있는 곳이니 검문소 위병에게 <충열사>로 간다고 하면 보내 줍니다.
['오성산' 조망]
['오성산' 줌인]
<충열사>로 가며 북쪽을 조망하는데 <옛 김화군청>이 있던 자리이며
멀리 <북한지역>에 있는 "오성산 五星山 1040m"이 조망됩니다.
['충열사' 조망]
<충열사>가 <성제산 산줄기>에 자리 잡고 있고.....
[홍살문] 12:08~12:16
<충열사> 입구엔 홍살문이 있는데 철제 홍살문이더군요.
철제 홍살문은 처음 봅니다. ㅎ
[안내도]
<충열사> 입구에는 안내도가 있어서, <옛 김화군청>이 있던 <읍내리>의 지형을 알수 있습니다.
['충열사' 전경]
"충열사 忠烈祠"
치욕의 <병자호란> 때에 "평안도 관찰사 홍명구 洪命耈선생"과
"평안도 병마절도사 유림 柳琳장군"의 위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랍니다.
<병자호란>이라고 하면 우리는 <남한산성>과 <삼전도> 정도만 알고 많이 아는척하지만
<청나라> 군사와 치열한 전투를 했던 곳이 또 있다는 것은 저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너무 모르고 살지는 않는지....
"역사를 잊은 국민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하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충열사']
[안내문]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사적비]
[안내문]
<유림장군대첩비>와 <홍명구선생 충열비>가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합니다.
['DMZ' 조망]
<병자호란> 때에는 <청나라> 군대가 침범하던 곳이고
<임진왜란> 때에는 <가등청정>이 <평양>으로 진격하던 전략상 요충지 였답니다.
근대에는 남과 북이 <6.25전쟁> 시에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철의 삼각지>였으며
현재는 보는 바와 같이 <휴전선>이 지나는 <비무장지대>가 앞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병자호란' 때 '백전 전투']
<충열사> 앞 옛 전투지역.....(제가 자료를 종합하여 재구성 했으니 사실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문인 출신 관료였던 <평안도관찰사 홍명구선생>과 군인인 <평안도병마절도사 유림장군>은 당시
전투 진지에 대해 서로 의견을 달리해서 따로따로 진지를 구축했답니다.
무인인 <유림장군>은 <청나라군대>의 강점은 말을 타고 싸우는 기동력이어서 숲이 우거진 야산에
진을 쳐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문인인 <홍명구 관찰사>는 방어는 쉽지만 공격이 어렵다고
평지에 진을 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는데 서로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고집대로 따로 놀았답니다.
제가 사진에 표기한 곳으로 추정됩니다.
결과적으로 평지에 진을 치고 맞짱 뜬 <홍명구 관찰사>와 그의 군대는 몰살 당하고
<홍명구 관찰사>도 바로 이곳 <충열사>가 있는 곳 쯤에서 사살되었답니다.
한편 <유림장군>은 잣나무 소나무로 가로막아 상대편 기마병의 출입을 막고
조총과 바위로 적의 침입을 격퇴했답니다. 많은 피해를 입은 <청나라> 군대는 후퇴 우회하여
<한양>으로 직접 진군하게 되었답니다. <유림장군>은 실탄과 무기가 소진되었지만
잔여 병사들을 이끌고 <청군>의 뒤를 쫒아 <인조>가 피난하고 있던 <남한산성>으로 내려 갔지만
<가평>쯤 갔었을 때에 <인조>가 항복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항전을 끝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두 사람의 운명은 달랐습니다.
평지에 진을 치고 싸우다 죽은 <홍명구 관찰사>에겐 <충열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지며 충신으로
그가 죽은 자리에 <충열사>라는 사당까지 지어 칭송했습니다만.....
적과 싸울줄 아는 군인이었던 <유림장군>은 탄핵을 받아 유배를 갔답니다. 후에 복권되었다지만...
모든 부하들을 몽땅 죽게하며 자신도 함께 죽은 <홍명구 관찰사>가 유능한 인물인지
기동력의 군대인 막강한 <청나라> 군대와 싸울줄 알았던..그래서 이기고 살아 남은 <유림장군>...
누가 더 유능한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갑자기 <이순신장군>이 생각나네요.....
['대성산' 조망]
['대성산' 줌인]
<충열사>를 돌아 보고 <민통선 검문소>에서 다시 <생창리 방문자센타>로 돌아 가며
<대성산>을 줌인해 보았습니다. 무시무시한 군방어시설이 있는 <대성산>이 조망되는군요.
<대성산>에는 눈이 아직도 하얗게 쌓여 있는데, <대성산>에서 근무했던 친구들 얘기를 들어 보면
"난 군 생활하면서 눈 치운 기억 밖에 없어~~"라고 할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 산이라고...ㅎㅎ
[거리]
<의정부>까지 80km라고하니 <서울>까지도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김화 비무장지대>가 있군요.
['DMZ방문자센타'] 12:47
[음식점]
다시 <방문자센타>로 돌아와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는데
<생창리>에 단 하나 있는 음식점이라고 하네요. 백반이 8,000원이었는데 먹을만 했습니다.
군내버스는 오후 2시에 <와수리>에서 출발하여 이곳에 2시13분에 도착하고 그 버스를 타고
<와수리>에 2시 25분에 도착하여, 2시40분에 <동수원>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40분만에 <동서울>에 도착하여 귀가했습니다. <와수리>가 멀지만은 않더군요.
['북한지역 경흥길']
끝나지 않은 <경흥길>의 끝은 저 <두만강 하구>라고 아직도 우릴 오라고 기다리고 있건만
새들도 마음대로 오가는 비무장지대인데도 사람 만큼은 못다니게 해서 여전히 멀게만 느껴집니다.
<함경북도 경흥군 서포리>까지 언제나 걸어 볼수 있을까......
이것으로 <경흥길>을 모두 마침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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