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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일치기 영월 도보여행』
     『방랑시인 김삿갓 유적지 유랑기』 


    ['위성지도']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에 있는 
  <영월8경> 중에 <제4경>이라는 "김삿갓유적지"를 찾아 간다.

  

    ['영월역']           10:07       
  2025년 5월 27일 (화) 대체로 맑음      
  지난 4월 30일에 <단종 유적지>와 <영월읍내>를 답사하고 한달여 만에 다시 <영월역>을 찾았다   
  <청량리역>에서 7시34분 열차를 타고 10시5분경에 <영월역>에 내렸는데
  지난번과 같이 <김삿갓>이 나그네를 반긴다.



    ['영월 이야기']                    
  <영월역> 앞에는 "영월지역 이야기"라는 안내판이 영월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는데...
  <영월역>에 붙어있는 <덕포시장>이 유명한 소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라고 안내하는데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는 <봉평 장터>에서 <평창의 대화장터> 가는 길이고 <영월>과는 거리가 멀다.
  <메밀꽃 필 무렵>에는 <영월><덕포시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슬기 해장국 식당']                    
  <영월역> 건너편엔 <영월의 대표음식>이라는 "다슬기해장국집"이 나란히 성업중인데
  지난번엔 <성호식당>이 재료소진으로 2시반경에 영업을 종료해 못먹고, 옆집 <다슬기한마당>에서
  먹어서 이번엔 꼭 <성호식당 다슬기해장국>을 먹기 위해 다짐하고 왔다.
  특히 <김삿갓유적지> 가는 버스가 11시 40분경에 있어 시간도 남아 돌아 여유있게 천천히 시식했는데
  유명하다고해서 뭔가 다르겠지 했는데 옆집과 별반 차이점은 찾기 어려웠다.
  <동강다슬기><다슬기한마당><성호식당> 중에 한곳을 선택하면 무난 할듯...



    ['덕포리']              
  <덕포시장입구 덕포사거리> 버스정류장으로 바로 가려면 여기서 150m정도 직진하면 된다.
  <김삿갓문학관>으로 가는 버스시간이 남아 돌아 
  지난번에 구경했던 <동강>으로 나가 <금강정>등을 둘러 보고 <덕포시장입구>로 간다.
  
  다슬기 식당에서 서쪽으로 조금 올라 가면 첫번째 골목을 만나는데 우측으로 들어 가면
  


    ['덕포4리']                                  
  <덕포4리>를 알리는 아치를 통과하여 건너편 제방 위 도로로 올라 가면...
  


    ['금강정' 조망]                 
  지난번 <단종유적지 답사>에서도 만났던 <동강 東江>과 
  <영월>에서 최고의 절경을 자랑한다는 <금강정 錦江亭>과 <단종>이 처형 당하자 시중을 들던
  시종과 하녀들이 스스로 자결한 <낙화암>이 아직도 그 슬픔을 알리는 듯 하고...
  
  <봉래산 별마로천문대>도 조망된다.



    ['라디오스타 박물관' 조망]                    
  <옛 KBS 영월 라디오 방송국>이었던 <라디오스타 박물관>도 보이고
  


    ['영월성당' 조망]                  
  서쪽으로는 <영월성당>도 조망된다.



    ['영월대교']                  
  <동강> 제방을 따라 150m 정도 진행하면 <영월대교>와 <영월읍내>가 한눈에 들어 온다.
  건너편 <영월읍내>와 남쪽 <덕포리> 사이에 다리가 없던 시절엔 큰 나룻터가 있어서
  그 나룻터 이름이 <덕포德浦(큰나룻터)>여서 이곳 지명이 <덕포리>가 되었다고....



    ['덕포사거리']           11:45          
  <영월대교>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덕포사거리>를 만나는데, <덕포시장 입구>이기도하다.
  <김삿갓문학관> 가는 버스는 <영월터미널>에선 다음과 같이 있는데
                        
  <덕포시장입구정류장>에서는 <10번시내버스>가 "6:22, 8:42, 11:42, 14:22, 18:17"에 있다.
  나는 <11시42분 버스>를 타고 갔다가 <3시10분 버스>로 나올 예정이다.
  
  정시에 도착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약40분이 걸려 <김삿갓문학관>으로 간다.



    ['김삿갓 문학관 주차장']           12:22     
  <10번버스>의 종점인 <김삿갓문학관 주차장>에 40분여 걸려 도착하여



    ['김삿갓 쉼터']                 
  <김삿갓유적지>를 다녀와 <김삿갓문학관>을 관람하기로 하고 바로 유적지로 출발한다.
    


    ['노루목교']            12:26               
  <문학관>에서 <유적지>로 건너는 다리는 <노루목교>인데
  다리 난간을 "붓"모양으로 만든게 눈길을 끈다.



     ['김삿갓묘 입구' 조망]                         
  <노루목교>에서 <김삿갓유적지 입구>까지는 매우 가깝다.
  이곳은 <강원도 영월군>과 <충북 단양군>의 경계가 되는 곳이기도 했다.
  南으로는 <소백산>을 사이에 두고 <경북 영주>와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개천은 <마포천>으로 <백두대간 소백산>의 <고치령>과 <마구령> 등에서 내려 오는 개천이다.
  그래서 <계유정란> 이후 <영주>로 유배 간 <세종대왕>의 막내 아들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며 <영월>에 유배 중인 <단종>에게 밀사를 보냈던 길이다.
  밀사들은 밀서를 품에 안고 <백두대간 고치령>을 넘어 <영주>에서 <영월>을 오갔던 것이다.
  이렇듯 이지역은 한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란걸 알수 있다.



    ['김삿갓 유적지' 입구]            12:29       
  돌탑이 있는 <김삿갓유적지 입구>로 들어 가면..
 


    [詩碑]               
  먼저 만나는 詩는 유명한 <김삿갓>의 "開城人逐客詩  개성인축객시"라는 詩이다.
  풀이를 하면 "개성 사람이 나그네를 내쫓다"인데.....
                         
                  邑號開城何閉門   山名松嶽豈無薪       
                  읍호개성하폐문   산명송악개무신
                  黃昏逐客非人事   禮義東方子獨秦       
                  황혼축객비인사   예의동방자독진
                         
  이런 詩는 설명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죠? 간단히 설명하면...
  <김삿갓>이 <개성>의 <송악산>을 등정하고 내려 오며 어느 부잣집에서 신세를 좀 지려고 부탁하자
  <뗄나무>가 없어 밥도 못짓는다고 문도 열어 주지 않으며 싸늘하게 문전박대를 하는 것이 아닌가 !
  성질 난 <김삿갓>이 詩 한수를 남기고 떠나는데...
  그 뜻풀이를 하면 
                  고을 이름이 개성(開城)인데 왜 문을 닫나
                  산 이름이 송악(松嶽)인데 어찌 땔나무가 없으랴.   
                  황혼에 나그네 쫓는 일이 사람 도리 아니니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네 혼자 중국 떼놈일세.
  
    


    ['김삿갓 유적 공원']                           
  <김삿갓 묘> 앞 입구엔  "詩仙 金삿갓 蘭皐先生 遺積碑" 가 세워져 있는 소공원이 있다. 
  


    ['환갑']                   
  공원에는 누가 알려 주지 않으면 알수 없는 조형물이 있는데 제목이  "환갑 還甲" 이다.
   
                       披坐老人非人間  피좌노인비인간
                       疑是天上降神仙  의시찬상강신선 
                       膝下七子皆盜賊  슬하칠자개도적 
                       偸得天桃獻壽宴  투득천도헌수연 
 
                       저기 앉은 늙은이 사람 같지 않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 온 신선 같구나. 

                       슬하 일곱 아들들 모두 도둑놈들일세, 
                       천도 복숭아를 훔쳐다 잔치에 올렸네.
 
  황해도 산골 어느 노인의 회갑연에서 푸대접을 받으며 말석에서 술 한 잔 얻어먹은 김삿갓은 
  시(詩) 한 수로 좌중을 웃기고 울렸다는 詩다. 

  첫 연에서  "저기 앉은 늙은이 사람 같지 않다" 고 하자, 일곱 아들과 하객들이 어리둥절하며
  축하는 못해 줄 망정 뭔 개소리를 지꺼리냐고 항의를 할 즈음에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구나"  하자, 완전 전세 역전되어 엄청난 칭송인걸 깨달으며
  환갑노인은 입이 떡 벌어지며 감사의 인사를 한다. 

  분위기 좋아진 상황에서 다시 <김삿갓>은 시 한수를 더 읊는다.
  둘째 연에서  "슬하 일곱 아들들 모두 도둑놈들일세" 라고 좋은 분위기에 물을 뿌리는 시를 읊자
  좌중이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하며 얼굴들이 울그락 불그락 할때쯤 
  <김삿갓>은  다시 이어지는 詩를 덧붙인다. 
  "늙은 부모에게 효도하려고 천도 복숭아를 훔쳐다 잔치에 올렸네"  라고....
  이 대목에서는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글솜씨가 모두를 놀라게 해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어떤가? 
  非人間과 神仙, 盜賊과 天桃(천도복숭아)를 일치시켜 좌중을 휘어잡은 솜씨가... 
  이 칠언절구 한 수로 김삿갓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윗 사진의 조형물은 그 상황을 형상화한 조각작품이니 설명이 없으면 뭔 의미인지 모르겠지요? ㅎ
  (천도 복숭아를 들고 있는 김삿갓이다)
    

 
    [삼거리]            12:32~12:37           
  소공원을 지나면 바로 삼거리가 나오며 
  좌측길은 <김삿갓 주거지>를 가는 길이고, 가운데에는 <성황당>이 있으며
  우측 다리를 건너면 바로 <김삿갓 묘>이다.
  
  <김삿갓 묘>는 <김삿갓 주거지>를 다녀와 가기로 하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김삿갓과 약수터']            12:37        
  <김삿갓>이 나그네들에게 술을 따라주는 조각품이 있는 약수터가 있다.
   
  1."난고 김병연 蘭皐金炳淵 (1807년4월22~1863년3월29일)"은 누구인가 
  <순조 7년> 그러니까 1807년 4월 22일에 태어나 <철종 14년 1863년 3월 29일>에 55년간의 파란만장한
  유랑생활을 한 독특한 인물인데, 유랑생활을 하며 남긴 그의 詩文學으로 더욱 유명하다.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불리는 <蘭皐 金炳淵>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勢道大家 安東金氏 문중"에서 태어났다.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주역인 金炳冀, 金炳學, 金炳國 등과 같은 '炳'자 항렬이요,
  그의 아버지 <김안근 金安根>은 荷屋大監으로 불리는 金佐根을 비롯하여 金汶根. 金洙根과 같은 항렬이며
  할아버지 <김익순 金益淳>은 <23대 純祖>의 장인으로서 안동김씨 세도를 창시했던 "김조순 金祖淳"과 
  같은 항렬로 탄탄한 세도가 집안에서  "경기도 양주군 회암리"에서 태어 났다.
  
  그토록 60년 세도가문의 한 허리에 태어나서 탄탄대로가 보장되었을 그가 세상을 등지고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조국산천을 누비면서 숫한 逸話와 名詩를 남기고 55세를 일기로 비운의 일생을 마친 연유는
  그의 할아버지  "金益淳 사건" 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경래의 난']                   
  2.당시 조선의 정치상황을 알아 보면 
  개혁군주 <정조대왕>이 의문의 죽음으로 열살짜리 <순조>가 등극하면셔 개혁은 물 건너 가고
  어린 <순조>를 업고 "안동김씨 세도정치"가 시작되며 매관매직, 가렴주구, 부정부폐, 강압정치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 지고 급기야 백성들의 반란이 빈번하게 일어 나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반란이
  '평안도 북서부 지역'에서 일어 난  "홍경래의 난 洪景來 亂" 이다.
  <청천강> 이북의 <평안북도>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은 <조선 조정>의 지역차별에 대한 감정의 
  폭발로 일어난 엄청난 민란이었다.
  
  위 지도에서 <선천>과 <가산>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김삿갓>의 할아버지인 <김익순>이 <선천>에서 <선천부사>및 <방어사>라는 최고위급 관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산>에는 "정시 鄭蓍"라는 인물이 부사府使였다.
 



    [오름길]                   
  <김삿갓 주거지>로 올라 가는 길은 자동차도 다니는 제법 너른 길이었다.
  길가에는 <김삿갓>을 칭송하거나 추모하는 詩들이 나열되 있다.
   
  3.할아버지 <김익순 사건>의 전말 
  <김병연>의 할아버지 <김익순>은 <안동 세도가>의 일원으로  당시 좋은 자리였던 
  윗 지도에 나오는 <선천 지역>의 <선천부사및 방어사>로 부임해 가렴주구, 매관매직, 부정부폐를
  일삼고 있을 때 <홍경래의 난>이 터졌는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홍경래>에게 항복을 한다.
  
  한편 윗 지도의 <가산 지역>의 부사를 맡은 <정시 鄭蓍>는 끝까지 저항하다 반란군에 의해 처형된다.
  
  반란 진압을 위해 파병된 관군에 의해 점령지를 수복하기 시작하며 전세가 역전되자
  <김익순>은 반란군 농민이 벤 <홍경래>의 참모 <金昌始>의 목을 돈 천 량을 주기로 하고 사서
  자기의 전공으로 위장하여 조정에 바치는데......이 거짓 전공은 곧 탄로난다
  농민에게 약속한 돈을 주었으면 아무 탈 없이 무공훈장을 탈수 있었을 텐데, 돈이 아까워
  농민에게 약속한 목 값을 주지 않음으로서 파렴치한 그의 죄상이 낱낱이 밝혀지며 "능지처참"을 당한다.
  "능지처참"은 사지를 찢어 발겨 죽이는 극형이다.
  이와 함께 <김조순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연좌제로 <김삿갓 가문>까지 역적 집안으로 몰려 삼족을 멸하는 형벌을 받는다.
  다행이 <안동김씨 가문>이라 <김삿갓 가문>은 목숨만은 부지 할수 있었다.

  

    [삼거리]             12:45          
  입구에서 8분여 오르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 다리를 건너간다    
  우측으로는 <처녀봉>으로 가는 등산로라고 한다.
  


    [오름길]                    
  "어둔골"
  맑은 물이 흐르는 깊고 깊은 <어둔골> 계곡을 올라 간다.
  1,000m가 넘는 준령들이 포위하고 있어 언제나 어둡고 냉랭한 계곡까지 피신한 <김병연 가족>을
  생각하면 그들의 암울한 좌절된 삶이 어느 정도인지 훤히 느껴진다.



    ['마대산 등산로']                    
  "마대산 馬垈山 1,051m" 등산로이기도한 오름길을 오르는데...
  <마대산>에 풍력발전 7기를 설치하는가 보다. 결사반대한다는 주민들의 플랭카드가 어쩐지
  "우리에게도 뭘 좀 주라"라고 하는듯 하다.
  왜냐하면 이 지역엔 인적없는 산골이기 때문에 풍력발전소를 세운다해도 주민 피해는 미미할것이기에



    [삼거리]            1:06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다시 만나며 <김삿갓 주거지>는 우측으로 안내 된다.
  


    ['김삿갓 주거지' 조망]              1:08~1:13             
  <김삿갓 주거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4.역적 가문의 피난생활 
  역적은 삼족을 멸하는 연좌제여서 <김병연 가족>도 처형 위기에 몰렸지만, 
  다행이 <안동김씨> 가문이라 목숨만은 살려주어 피신 생활이 시작되었다.

  빠까번쩍한 대궐같은 "양주 회암리"의 자택을 떠나 피난을 가는데, 이때 아버지 <김안근 金安根>은
  홧병으로 죽어 버리고, 어머니 <함평 이씨>가 <황해도 谷山>을 비롯한 여러 곳을 유랑하다가
  <경기도 광주-이천-여주>등을 전전긍긍하다가 첩첩산중 <영월 寧越>에 까지 찾아 들어 정착했단다.
  그러니까 이곳은 그들의 피난처이자 미래를 꿈꾸는 곳이었다 할수있겠다
  


    [주거지 전경]                 
  "김삿갓 주거지"에는 본채와 "난고당"이라는 사당이 있는데 요즘도 사람이 가끔 거주하는가 보다
  지금이야 별장같은 멋진 심심산골 낭만적인 외딴집으로 보이지만
  길도 없던 조선시대에 이곳에서 뭘하며 먹고 살수 있었을까



    [본채]                    
  5.어머니 <함평 이씨>에 대하여 
  어머니 <함평 이씨>는 사대부 집안 출신으로 여자지만 어려서부터 글을 익힌 新女性이었단다.
  그렇기에 <안동 김씨 가문>으로 시집을 갈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나는 <신사임당>보다도 <김삿갓 어머니-함평 이씨>가 더 훌륭하다고 강력 주장한다.
  
  역적 집안으로 몰려 풍지박살난 가정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산 넘고 물건너 이곳 <영월 어둔골>로
  아들 셋 <장남 병하炳夏, 병연炳淵, 막내 병호炳湖>를 업고 걸리며 들어와 살기 위한 몸부림을 쳤단다.
  멀리 떨어진 마을에 가 품삯을 벌고, 밭을 일구며 어린 자식 셋을 키웠단다.
  사대부 집안의 마님이 이런 개고생을 해도 자식을 키우려는 그 집념은  하늘을 찌를둣 했겠지....
  그러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을 가르쳤단다. 형과 아우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병연>에게는 특별히 더 강력하게 글을 가르쳤고....
  당시엔 가문을 일으키려면 과거에 합격하는 방법 이외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난고당']                  
  "난고당 蘭皐堂"에는 <김삿갓>으로 보이는 사진이 걸려 있고, 향로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동안 공부한 <병연>의 실력을 테스트 해 보기 위해
  스무살이 되는 해에 <영월관아>에서 시행한 <향시-백일장>에 응시 하도록 한다.
  <향시-백일장>은 과거시험과는 다르다. 지방 무명 유생들에게 학업을 권장하기 위하여 
  각 고을 단위로 글 짖기 대회를 여는 일종의 地方科擧와 같은 것이었단다. 
  합격하더라도 관직을 바로 얻는 것은 아니고 한양과거시험의 예비고사 정도였단다.
  
  6.운명을 바꾼 영월 향시
  어머니의 간곡한 권유에 떠밀리어 영월 백일장에 나온 <병연>은 동헌에 높이 걸린 
  오늘의 詩題를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단다.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詩題를를 해석하면
  10여 년 전 이 나라에 벌어졌던 대역사건, 그 중의 대조적인 두 인물,  
  "<가산부사 정시鄭嘉>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金益淳>의 하늘을 찌르는 죄를 통탄하라" 는 것이다.

  두 사람의 사적을 너무도 잘 아는 김병연은 붓을 들어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曰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卿大夫
               將軍桃李壟西落
               烈士功名圖末高
               
               대대로 신하라고 일컬어 오던 너 김익순아
               정공은 문관이면서도 충성을 다하지 않았더냐.
               너는 오랑캐에게 항복한 한나라의 李陵 같은 놈이요
               열사 정시의 공은 죽은 뒤에 드높았다.
                
                    <매우 길어 중략>
  마지막엔 다음과 같은 글로 마무리한다.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너는 임금도 배반하고 조상도 배반한 놈
              한 번 죽어서는 오히려 가볍고 만 번 죽어 마땅하다.
              춘추의 필법을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부끄러운 이 사실은 우리 역사에 길이 전하리라.
                   
  장원급제하여 돌아 온 아들을 보고 어머니 <함평 이씨>는  매우 기쁘하며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를 볼 준비를 하라고 하며, 이 실력이면 충분히 급제 할수 있다고 용기까지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나...
  시험문제와 답을 들은 어머니는 눈 앞이 캄캄해지며 기구한 운명에 통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장성한 아들에게 진작 집안내력의 귀띔이라도 해 주었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엇하랴. 아니 그 치욕스런 과거를 어떻게 입에 올릴 수 있었으랴
  그리고 어머니는 치욕적으로 욕한 <김익순>이 너의 "친할아버지"라고 알려 준다.
          


    ['어둔골' 계곡]            1:29~1:59     
  1,000m가 넘는 준령들로 둘러싸인 <어둔골>은 여름 피서지로 알맞겠지만
  친할아버지를 욕한 <김병연>의 가슴엔 지울수 없는 상처로 남아 방랑의 길을 떠난다.
  역적이든 충신이든 그 어른이 나의 조부님이신 것만은 틀림없거늘 그토록 처절하게 매도하다니 
  장차 어찌 얼굴을 들고 세상을 본단 말인가



    ['김삿갓유적공원' 앞 삼거리]            2:08          
  다시 <김삿갓유적지공원> 앞 삼거리로 돌아 왔다
  좌측 다리를 건너 <김삿갓 묘>로 들어 가면...




    ['난고 김병연 묘']                
  "詩仙 蘭皐金炳淵之墓"   
  <김삿갓>은 전국을 유랑하며 자연과 인간들을 두루 접하며 그 자유로움을 버리고 하늘로 날아갔다.
  그는 "전남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 538-4" <구암마을> "정채업"의 사랑채에 머물다 終命했다.
  3년 후 그의 둘째 아들 <김익균>이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詩를 소개한다.
  
       從南曉鐘一納履  風土異邦心細量
       새벽종소리 들으며 방랑길에 오르니, 생소한 객지라서 마음 애달팠노라
       心猶異域首丘  勢亦窮途觸藩羊
       마음은 고향 그리는 떠돌이 여우같고, 신세는 궁지에 몰린 양 같은 나로다.
       搖頭行勢豈本習  糊口圖生惟所長
       머리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이리요, 먹고 살아가기 위해 버릇이 되었도다.
       光陰漸向且巾失  三角靑山何渺茫
       그런 중에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 삼각산 푸른 모습 생각할수록 아득하네.
       江山乞號慣千門  風月行裝空一囊
       떠돌며 구걸한 집 수 없이 많았으나,  풍월 읊는 바랑은 언제나 비었도다.
       千金之家萬石君  厚薄家風均試嘗
       큰 부자 작은 부자 고루 찾아다니며, 후하고 박한 가풍 모두 맛보았네..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鬢髮蒼   
       신세가 기구해 남의 눈총 받다보니, 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歸兮亦難停亦難  幾日彷徨中路傍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자니 어려워, 노상에서 방황하기 몇 날 몇 해이던고.
       
  <김삿갓>은 여기까지 쓰다가 마침내 기력이 다하여 붓을 던지고 말았다.
  그리고  집주인인 "안초시"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안 초시, 춥구려. 어머니가 보고 싶소. 저… 등잔…불을 좀… 꺼 주시오…"
  
  <김삿갓>은 어머니가 그렇게나 보고 싶고, 너무도 미안했나 보다.



    [조망]                 
  <김삿갓>의 어머니 <함평 이씨>의 친정은 <충남 홍성>이었다
  <김삿갓>이 <영월 어둔골>을 떠나 방랑길에 오르고 난 후 어머니는 늙고 병들어 
  친정인 <홍성>으로 가 살았다고 한다. 정처없이 떠돌던 <김삿갓>은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홍성 외가>로 찾아가 물어물어 묘지를 찾아서 어머니의 무덤 앞에 꿇어앉아
  술 한 잔 부어놓고, 어머니를 불러보지만 이미 유명을 달리한 어머니에게서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울다 울다 날이 저물어 할 수 없이 내려오다가 다시 돌아서서 물끄러미 어머니의 무덤을 돌아다보고
  자기도 모르게 시 한수를 읊었다.
  
       北邙山下新墳塋  千呼萬喚無反響
       西山落日心寂寞  山上唯聞松栢聲
       
       북망산 기슭에 새로운 무덤 하나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네.
       해는 저물어 마음은 적막한데
       들려오는 것은 솔바람소리 뿐이로다.
      


    ['유적지공원']                           
  <김삿갓>은 방랑생활을 하면서도 그리운 고향생각은 엄청 많이 한것 같다.
      西行已過十三州  此地猶然惜去留
      雨雪家鄕人五夜  山河逆旅世千秋
      
      서쪽 땅 13 주를 헤매었건만
      아직도 떠날까 머물까 망설이네.
      눈비 내리는 한밤에 고향 그리워 잠 못 이루니
      산천 따라 나그네 길 몇 해 이런가.      



     ['외씨버선길 영월객주']             2:19            
  <김삿갓 묘>에서 <김삿갓 문학관>으로 다시 와 <문학관으로 들어 가는데 
  "외씨버선길 영월객주"가 있다. <외씨버선길 11코스 종점>이자 <12코스 출발지>이다.



    ['김삿갓 문학관']           2:27~2:40        
  "김삿갓문학관"은 관람료 2,000원이 필요하다. (경로무료)
  안으로 들어 가면....
 


    [문학관 로비]               
  <난고 김병연>이 유명해진 이유 중에는 <정비석 선생>이 쓴 소설 <김삿갓>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문열 선생>도 <시인>이라는 소설로 <김삿갓>을 노래했는데, <이문열 최고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문학관 내부']                           
  문학관에는 <김삿갓>의 유물 등 전시품은 거의 없고 <방랑시인 김삿갓>이라는 노래만 울려 퍼졌다.
  <김문응>이 작사하고 <전오승>이 작곡했다고 알려진 이 노래는 전국민의 애창곡이기도 한데
  <명국환>이라는 가수가 불렀다.
  특히 <전두한>이가 쿠데타 이후 불러서 지금도 그 영상이 인터넷에 떠돈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너머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던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 없는 이 거리 저 마을로
             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시간의 흔적']                      
  <시간의 흔적>이라는 작품이 전시되 있고...
    



    ['방랑시인']                    
           [詠笠] 
             浮浮我笠等虛舟 一着平生四十秋
             牧竪輕裝隨野犢 魚翁本色伴白鷗

             醉來脫掛看花樹 興到携登翫月樓
             俗子衣冠皆外飾 滿天風雨獨無愁

             [나의 삿갓을 읊다]
             머리 위에 둥둥 뜬 내 삿갓은 빈 배와 같고
             한번 쓰고 사십 평생 같이 살아왔도다.
             목동이 들에서 소를 몰 때 가볍게 걸치고
             늙은 어부 강가에서 쓰고 갈매기와 벗했네

             한잔 술에 취하면 꽃나무에 걸고 꽃구경하고
             흥겨우면 손에 들고 다락에 올라 달구경하며 달과 속삭이고
             속물들은 의관을 모두 겉치레로 꾸미지만
             비바람 가득찬 하늘일지라도 홀로 근심없으라



    ['군내버스 10번']            3:03        
  3시 10분에 출발하는 시내버스는 3시경에 도착하여 10여분 있다가 정시에 떠난다.
  승객은 나 혼자 뿐.
  
  운전기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영월역>으로 돌아 가는데....
  <영월> 토백이라고 하는 기사와 나눈 이야기의 일부를 언급한다.
  
  파란문 : <김삿갓>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
  기  사 : 우리 고향사람이니 좀 알지요.
  파란문 : <김삿갓>의 고향이 <영월>로 알고 있군요.
  기  사 : 당연하죠~
  파란문 : <김삿갓>의 고향은 '경기도 양주 회암리'이고, 할아버지의 반역죄로 가문이 풍지박살 나
           이곳으로 피신 온거에요. 그러니까 여기는 고향 아니고 피신처이며 미래를 도모한 곳이에요.
  기  사 : 그래요? 허~참
  파란문 : <김삿갓>이 죽은 곳은 '전남 화순 동복리'이고 둘째 아들이 3년후 이곳으로 이장했구요.
  기  사 : 여기서 죽은게 아니군요. 난 지금까지 <영월>이 고향이고 여기서 죽은 줄로 알았네요.
  파란문 : '경기도 양주시'에 가면 <회암사>를 중심으로 <김삿갓 풍류길>이라는 걷기코스를
          조성해 놓고 <김삿갓의 고향> 임을 광고하고 있죠.
          또한 '전남 화순'에 가면 도로명도 <김삿갓로>라 하고, 그가 숨을 거둔 <안초시 집>을 
          복원하여 관광지화 하고 있어요. 지방자치단체들이 서로 <김삿갓>을 울궈 먹고 있죠.
  기  사 : <영월>은 <김삿갓>의 일생 중에 아주 짧은 기간만 거주한 이방인이었군요.
 


    ['양주의 김삿갓']                   
  방랑시인으로 세상을 풍자하며..또한 비판하며 자유롭게 살았다고 
  그의 인생을 좋게, 또는 부럽게 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필자인 "파란문"은 조금 달리 생각합니다.
  한 가정의 家長이 강원도 두메산골에 피신해 사는 궁핍한 가족들을 보살피지 않고 저 혼자 떠돌아 
  다니며 제멋대로 산것은 家長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나쁜 아빠"와 "나쁜 남편"의 대명사로
  요즘같으면 이혼을 당해도 여러번 당하고 위자료도 물어 줘야하는 그런 무책임한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지방 향시-백일장에서 모르고 할아버지를 욕하는 글로 장원이 되었다는 것이 
  어머니와 처자식을 버리고 가출을 하는 이유가 되었을까?하는 의구심을 무지 불러 일으킵니다.
  "모르고 할아버지를 욕했다"는 것은 가출을 위한 명분이 아니었을까....
  
  현실과 낭만은 별개지만 김삿갓의 인생을 너무 미화하는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사리사욕에 눈 먼 관료나 양반들에겐 조롱과 해학이 곁들인 풍자를 속시원히 퍼붓고
  가난한 백성들에겐 즐거운 해학과 웃음으로 많은 민중들을 포용하며 산 그의 낭만에 대해선 
  찬사를 보낸다.    



   **부록**
    [양주] 김삿갓풍류길 1코스 답사기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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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일치기 영월 도보여행』
       『영월 역사유적 도보여행』 
       영월역-영월대교-영월성당-라디오스타박물관-금강정-민충사-고경춘순절지-낙화암-
       금강공원-영월향교-영월중앙로터리-관풍원-청록다방-창절서원-장릉노루조각공원-
       장릉-장릉깨비굴-영월강변저류지공원-영월관광센타-왕방연시조비-청령포전망대-
       청령포 단종유적지-청령포역-세경대-남한강시작지-동강둔치공원-동강대교-영월역
 

    ['실트랙']                     
  2025년 4월 30일 (수) 대체로 맑음      
  『Ⅰ부』에 이어 "창절사"에서 『Ⅱ부』를 계속 진행한다.

       『영월 장릉-청령포 도보여행 Ⅱ』 
        창절사-장릉노루조각공원-장릉-장릉깨비굴-영월관광센터-왕방연시비-청령포-
        청령포역-세경대-영월체육센터-남한강합수지-동강둔치-동강대교-영월역
  

    ['창절서원']              11:55      
  2025년 4월 30일 (수) 대체로 맑음      
  『Ⅱ부』는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육신"과 충절의 "생육신",
  그리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안장한 "엄흥도"의 충의와 정절을 기리는 "창절사"에서 계속한다.
  



    ['단종로']                   
  <장릉>방향으로 연결되는 도로는 <단종로>로서 맑끔하게 단장된 '영월읍 영흥리' 마을이 이어진다.
  15분 정도 진행하면...




    ['장릉노루조각공원']           12:10     
  '영월읍 영흥리' <장릉> 앞에 있는 "능말못"이라는 저수지에 조성 된 "장릉노루조각공원"을 만난다.
  이 공원에는 "노루" 조각품이 곳곳에 설치되 있는데.....
  
  "엄흥도"와 "노루"의 전설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자 그대로 <동강>에 버려졌단다.
  <세조>의 어명으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3족을 멸한다고 경고했기에 아무도 접근을 못했는데
  '영월 호장'이라는 낮은 직급의 관리인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지게에 지고 
  매장 할 장소를 찾아 눈 덮인 산을 오르는 중에 "노루" 한 마리가 앉아 있다가 후다닥 달아난 자리에
  눈이 녹아 있어, 잠시 그 자리에서 쉬었는데, 다시 일어나 가려고 했는데 지게가 떨어지지 않았단다. 
  <엄흥도>는 "여기가 <단종>을 장례 지낼 명당이다"라고 생각하고 결국 그 자리에 시신을 매장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현재의 "장릉 莊陵"이라는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참고)
  


    ['장릉노루조각공원']                             
  <영월 호장 엄흥도>와 <노루>에 얽힌 전설을 바탕으로 그 의미를 살려 <장릉> 앞에
  "노루"가 뛰어 노는 듯한 조각공원을 만들어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휴식공간으로도 제공하고 있단다.
  


    ['장릉 정문']             12:15~12:45      
  "장릉 莊陵"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우리나라에 <장릉>이라는 릉호는 세곳이 있다.
  1) '경기도 김포'에 있는 <장릉(章陵)>: 조선의 추존왕 <원종(인조의 생부)>과 추존왕비 
      <인헌왕후(인조의 생모)>를 모신 쌍릉. 이 왕릉은 "글 장(章)"자를 사용한다.
  2)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장릉(長陵)>: 조선 제16대 왕 <인조>와 그의 첫 번째 왕비인 <인열왕후>를 
       모신 합장릉. 이 왕릉은 "길 장(長)"자를 사용한다.
  3) '강원특별자치도 영월'에 있는 <장릉(莊陵)>: 조선의 6대 임금 <단종>을 모신 단릉인데
      이 왕릉은 "장중할 장(莊)"자를 사용한다.
      
  한편 "장릉 莊陵"은 <한양.경기도> 밖에 있는 유일한 조선왕릉이다.



    ['단종역사관']                        
  <장릉 정문>을 통과하면 바로 "단종역사관"을 만난다.
  역사관으로 들어 가면...
  

          
                ['단종 어진']                    
  "조선 제6대왕 단종" 
  <단종>은 1441년8월18일 <세종대왕>이 즉위 23년 때에 <경복궁>에서 <5대 문종>과 <현덕왕후> 사이에서
  태어나 1448년 5월 14일에 <세종대왕>에 의해 "왕세손"으로 봉해졌다.
  적장자 출신의 왕세자로부터 탄생한 적장자 왕세자는 조선왕조 27명의 왕들 중에 <단종>이 유일하다.
  조선 역대 왕들 중 절대 최강의 순도 100% 정통성을 자랑한다
  <단종>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 <세종대왕>이 기쁨에 겨워 2급 이하의 죄수를 모두 사면하는 
  대사면 교지를 발표했을 정도로 기쁘했으며, 매우 총명하다고 극찬하곤 했다.
  그라고 7세 때에 바로 "왕세자"로 정한 것은 적장자의 왕위계승을 꼭 실현 하고 싶은 열망이었으리~
  
  <단종>은 1452년 6월 14일 열살때에 왕으로 등극해서 3년여 재위했지만 <수양대군> 치하에서
  힘못쓰는 왕으로 밀려 지내다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어 4개월여 후에 1457년 11월 16일에 
  <관풍헌>에서 죽었다.




    ['역사관' 내부]                
  역사관 내부엔 유물등 볼거리들은 거의 없고 기록들이 전시되 있어 횡하니 돌아 보고....





    ['엄흥도 정려각']                  
  <역사관>을 나가 <재실>을 지나면 "엄흥도 정려각 嚴興道旌閭閣"이 있다
  왕릉 내에 일반인의 정려각을 두는 곳은 이곳 <장릉>이 유일하단다.
  그많큼 <엄흥도>의 충절을 높이 평가 한다는 것이곘지...
  <엄흥도>는 <영월 엄씨>로 당시 <영월 관아 호장>이었다는데, <숙종>때에 '공조참의'에 봉직되고
  <영조> 때에 정려각을 설치했단다.
  
  우리나라 대표 산악인 <엄홍길>씨가 그의 후손이라한다.



    ['장릉 입구']                      
  <장릉 정자각 입구>를 만나면 "왕릉"은 우측 계단으로 올라 가야 하는데, 먼저 직진하면...



    ['정자각']                 
  일반적인 <조선왕릉>은 "홍살문→정자각→능침"이 일직선으로 배열 되 있는데,
  이렇게 "ㄴ"자로 꺽여있고 능침이 능선 위에 별도로 분리 되 있는 왕릉은 이곳이 또 유일하단다.
  
  또한 <조선왕릉> 중에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직접 관리 하지 않고 있는 왕릉이 두곳있는데
  이곳 <장릉>은 <영월군>이 직접 관리한다고 한다. 그래서 연중무휴로 관람 할수 있다.
  다른 한 곳은 <2대 정종의 후릉>으로 <개성> 근처 이북에 있기 때문이다.



    ['왕릉 입구']                     
  <정자각> 가기 전, <왕릉>으로 올라 가는 계단인데,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잠시 올라 가야 한다.
 


    ['장릉' 능선]                 
  계단을 오르면 능선이 나타나며, 왕릉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 바로 앞 우측엔...
    

          
              ['정령송']                           
  "정령송 精靈松"이라는 소나무 한그루가 안내석과 함께 있는데
  <단종>의 아내 <정순왕후>가 뭍혀있는 '경기도 남양주'의 "사릉 思陵"에서 한그루 뽑아
  이곳으로 이식해서 <단종>의 외로움을 달래 준다고...
  한편, 이곳의 소나무 한그루를 <사릉>으로 이식하여 <정순왕후>의 외로움도 달래 주고 있단다.
  



    ['장릉 능침']                         
  <조선왕릉>으로는 소박한 "장릉 壯陵"이다.
  당시 서슬퍼런 <세조>의 눈을 피해 암장했던 만큼 <단종>의 무덤은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었단다. 
  그 후 1541년 <중종> 때, <노산군>의 무덤을 찾으라는 명을 받고 수소문했으나 찾을 수 없어 
  난감해 하던 차에 <영월군수 박충원>이 발견하여 묘소를 정비하게 되었고, 1580년 주변에 비석들이 
  세워지기는 했으나 이 당시까지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던 상태여서 묘(墓)라는 칭호를 유지해왔단다. 
  그러다 1698년 <숙종>이 <단종>을 복위시킴에 따라 무덤도 능으로 격상되고 <장릉(莊陵>)이라는 
  능호도 받게 되었단다. 이때, <단종>의 시신을 모셨던 <엄흥도>에게는 <공조판서>가 추증되었다고. 
  왕릉 공사를 담당하는 부서가 <공조>였던 것을 감안한 셈이니 <숙종>은 <엄흥도>를 무척이나
  높이 평가 한것으로 보인다.
  
  <장릉>에는 "무인석 武人石"이 없는게 특징이란다.
  이는 <단종>이 <세조>에게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 당했기 때문이니 무사를 곁에 두기 싫어해서겠지



    ['정자각' 조망]                 
  왕릉에서 아랫쪽 <정자각>이 있는 곳을 내려다 보고....
 
  



    ['낙촌비각']                    
  들어 갈 때 못본 "낙촌비각 駱村碑閣"을 정문 앞에서 만난다.
  <노산군묘>를 찾아 제사를 올린 <영월군수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비각(駱村碑閣)>이 있다
  <낙촌駱村>은 <박충원>의 '호'란다.
  <중중>의 "노산군묘"를 찾으라는 어명으로 찾기 어려운 묘를 찾아내 정비하고 제사를 올린 인물이어서
  그의 공덕을 차하하는 비각을 세웠다고...

 

    ['장릉' 정문 앞]            12:46     
  <장릉> 정문 앞으로 나와 우측으로 잠시 가면 로터리를 만나는데 로터리에서 죄회전 하면...


    ['장릉 능말 깨비굴']             12:51       
  "장릉 능말 깨비굴"을 만난다.
  "깨비"는 "도깨비"의 이곳 방언이란다.
  
  <엄흥도>에 의해 암매장 된 <단종>의 묘는 240여년 동안이나 방치 되었지만 "도깨비"들이 지켜
  주었다고 이곳 "능말(릉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믿었다는데, 여기 있는 굴을 "도깨비굴"로 조성하여
  관광객들을 끈다고...



    [삼거리]               12:53           
  <능말깨비굴>을 지나면 바로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영월강변저류지수변공원']            12:58       
  우측엔 "영월강변저류지수변공원"이 상당한 규모로 펼쳐진다.
  당초 저 공원 안으로 진행 하려고 했는데 내려 가는 길을 찾지 못해 도로를 이용 한것이다.
  
  이 <저류지수변공원>은 원래 <서강(평창강)>의 본류가 흐르던 강이었다고 최초로 밣힌다.
  다음 지형도를 보며 알아 보면...



    ['지형도']                  
  <현위치>로 표기 된 곳이 윗 사진을 촬영한 곳인데
  <청령포>는 아주 옛날엔 삼면이 강이 아니었는데, 강이 긴 반도를 빙 둘러 나갔다는 것을 알수 있다.
  누적되는 홍수로 반도의 허리 부분이 짤려 물의 흐름이 <청령포> 앞으로 바뀌고
  반도를 휘돌아 나가던 곳은 인공적인 둑으로 저류지 공원이 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영월소방서']            1:07      
  10여분 도로를 진행하면 "영월소방서"를 만나고
  다시 10여분 진행하면



    ['영월 홍살문']             1:16       
  <영월 홍살문>를 지나게 되며
  


    [삼거리]             1:21           
  이어서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 아래에 <영월관광안내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직진하다가 중간에서 우측 <저류지수변공원>으로 내려 가면

 

    ['수변공원']            1:26     
  옛날엔 "서강 西江"이 휘돌아 나가던 곳이 저류지가 된 공원을 건너 <영월관광센타>로 간다.

 

    ['영월관광센터']           1:32~ 1:53     
  "영월관광센터"는 <외씨버선길>의 종점이기도 하고, <운탄고도1330길>의 출발지점이기도 하다

 


    ['관광센터 내부']                  
  관광센터 안으로 들어 가면 크고 화려한 <특급호텔 로비> 같은 느낌을 준다
  식당도 있고 휴식을 취할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 있어 좋다.
  
 


    ['청령포' 조망]               
  옆으로 나가 조망을 해야 <청령포>와 <왕방연 시조비> 위치를 확인 할수 있다.
  
  <왕방연 시조비>→<청령포 전망대>→<청령포>로 가는게 좋다.
  


    ['왕방연 시조비' 앞 삼거리]           1:55   
  <왕방연 시조비> 앞 삼거리에서 <왕방연 시조비>를 찾아 보고 좌측 <청령포 전망대>로 간다.
  


    ['왕방연'이 시조를 읊었던 곳]                              
  "왕방연 王邦衍"
  <단종>이 <영월>로 유배갈 때와 사약을 들고 사형집행하러 갈때의 <금부도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사 <세조실록>에는 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숙종실록>과 <연려실기술>등 
  야사에만 등장한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유배를 다룬 <세조 3년 6월 21일자>의 <세조실록> 기록에는 
  "<첨지중추원사 어득해>에게 명하여 군사 50명을 주어 <노산군>을 <영월>로 호송하게 하였고,
  <군자감 정 김자행>과 <판내시부사 홍득경>이 이를 따랐다"고만 되어 있다.
   
  <중추원 첨지사>는 "정3품 당상관"이고, <군자감 정>은 "정3품 당하관", <판내시부사>는 "정2품"이니
  "종5품"인 <의금부 도사>는 이들과 같이 실록에 언급될 짬이 아니니 50명 중에 한사람이 <왕방연>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하지만 <금부도사>는 직급은 낮지만 범법자의 형벌을 총지휘하는 요즘의
  '검사'와 같으니 끝빨은 더 있었다.
   
  하지만 <숙종실록 25년 1월 2일>자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 있다. 
  "군신(君臣)의 대의(大義)는 천지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단종대왕(端宗大王)이 영월(寧越)에 피하여 계실 적에 금부도사(禁府都事) 왕방연(王邦衍)이 고을에 
  도착하여 머뭇거리면서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정중(庭中)에 입시(入侍)하였을 때에 단종 대왕께서 
  관복(冠服)을 갖추고 마루로 나오시어 온 이유를 하문하셨으나, 왕방연이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가 봉명신(奉命臣)으로서도 오히려 그러했는데, 그때 앞에서 늘 모시던 공생(貢生) 하나가 차마하지 
  못할 일을 스스로 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가, 즉시 아홉 구멍으로 피를 쏟고 죽었다. 
  천도(天道)는 논해야겠으니, 그 공생의 성명이 전해와서 알 수 있는 단서가 있으면 본도(本道)로 
  하여금 계문(啓聞)하게 하라."
    
   그러니까 <세조실록>에는 <왕방연>이 등장하지 않고, <숙종실록>에는 <왕방연>은 유배길을 호송한
   것은 아니고, 4개월 후 사약을 들고 <영월>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연려실기술>에는 유배 호송길과 사약을 내릴때 모두 진두 지휘 한것으로 나온다.
  이렇듯 역사는 당사자들의 호불호에 따라 쓰여지기에 오히려 야사를 더 믿기도 한다.
  



    ['왕방연 시조비']                   
  <청령포>가 가슴 아프게 조망되는 이곳에서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고 돌아 가면서 
  <왕방연>은 여기서 솔직한 자신의 마음의 글을 지었단다.
  인간으로서 차마 할짓이 못되는 짓을 하고 돌아 가는 마음을 나타낸 너무나 유명한 시조이죠?
    
                천만리千萬里 머나먼 길에 고운님 잃어버리고
                내 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아 있으려니
                저 물도 내 마음 같아서 울며 밤길을 가는구나 
                       
   조선초기엔 고려의 "왕씨 말살정책"으로 "王"이라는 姓을 거의 사용 못했는데도
   <왕방연>은 "왕王"씨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왕조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 초기엔 고려의 "王씨"는 살아 남기 위해 "전全씨"나 "옥玉씨"등으로 성을 바꿨다)
                       


    ['청령포 전망대']            2:02            
  <왕방연 시조비>에서 "청령포 전망대"로 가면 <청령포 입장권 판매소>가 있다.
  관람료 안내판엔 "청령'표' 관람료"라고 오기하고 있는데, 이런 오기를 고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청령포' 뱃길 조망]                     
 관람티켓을 끊어 배를 타기 위해 포구로 내려 가며 <청령포>를 조망하고...



    ['청령포 나루터']            2:10          
  배를 타는 시간은 3분도 안걸린다. 관람객만 오면 한명만 타도 배는 출발한다.
  나룻터도 없는 "청령포"에 내려 자갈밭을 지나 숲으로 들어 가면...




    ['청령포']              2:13          
  "청령포 淸泠浦"
  <단종>이 <한양>에서 유배되어 도착한 "유배지", 즉 자연감옥이다.
  
  <한양>에서 이곳까지의 유배길에 대해선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나름대로 자료를 종합하면...
  <창경궁>에서 유배길에 오르는데, <창경궁>을 나가 먼저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청룡사(정업사)"로
  가는데, 폐서인이 된 <정순왕후>가 앞으로 거처할 곳이었다. 
  그날밤 그들은 <청룡사 우화루 雨花樓>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왕과 왕비가 폐서인이 되어 영원한 이별의 밤을 <雨花樓>에서 ...."꽃비가 내리는 집"에서....
  그리곤 다음날 <청계천 영도교 永渡橋>를 건너며 "영원한 이별"을 하고, 다시 <중량천 살곶이다리>를
  건너 지금의 <화양동 동사무소>가 있는 곳인 "화양정"에서 잠시 쉬어 가는데....
  이때 <세조>가 환관을 <화양정>에 보내 <노산군>을 전송케 했다고 실록에 나온다.
  그리곤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여주>로 이동하여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에서 육로를 이용해
  <귀래>와 <신림리>를 지나 '영월군 주천면 酒泉'에 도착하고, 이어서 <청령포>에 도착했단다.



    [부속건물]              2:15    
  <단종>이 머물렀던 '어소御所' 옆에는 시종들이 기거하며 식사등을 준비하는 초가집이 먼저 나타나고



    ['단종 어소'와 '어소 표지석']                       
  <단종>이 머물렀던 <어소 御所>는 현재 기와집으로 복원되 있는데, 옛날엔 초라한 초가집이었다고...
  그리고 마당엔 "이곳이 단종의 유배지"라는 확인 표지석이 <영조>에 의해 세워져 있다.
 


    ['어소']                 
  관람객들을 위한 조형물이 방안에 있는데, <단종>은 이곳에 겨우 두어달 있었을 뿐이다.
  음력6월에 유배와서 8월경에 <영월관아 관풍루>로 옮기고 10월에 사약을 받았다.
  
  <세조실록>엔 당시 기상변화에 대해 상세히 기술되 있는데...
  음력6월(양력7월)까지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아 가뭄으로 <세조>가 기우제를 수시로 지냈는데,
  <단종>이 유배 가는 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엄청 많은 비가 내렸단다.
  <한강>의 물이 불어 배가 갈수 없어 <양평>과 <여주 이포>에서 비를 피해 머물다 갔다고 하고...
  <청령포>에 도착하여서는 <서강>이 범람 할 정도로 비가 내려 안전한 <영월관아 관풍루>로 
  옮겨야만 했단다.  비와 유배....아이러니하다.
    



    ['단묘재본부시유지비']                   
  <영조>는 <단종>과 <정순왕후>의 사연을 매우 가슴 아파했는데, 그래서 <정순왕후>가 기거했던
  '서울 숭인동'의 <청룡사(정업사)>와 이곳에 그들의 흔적을 알리는 표지석을 설치했다.
  <영조>는 두곳에 표지석을 세우며 "눈물을 머금고 표지석을 세운다"라고 기술한것이 눈길을 끈다.
  


          

    ['관음송']              2:19       
  <어소 御所> 옆에에는 "관음송 觀音松"이라는 소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데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며(觀), 외로움에 떠는 '말소리(音)'를 들어 주었다고 
  "볼 관觀" "소리 들을 음音" "소나무 송松" "관음송 觀音松"이라 한다고
    


    ['망향탑' 입구]            2:22     
  <관음송> 뒤에 조그만 동산이 있는데, <망향탑>이 있는 곳이란다.
  제법 가파른 계단을 잠시 올라 가야 한다
 
  

    ['망향탑']           2:25    
  <단종>은 이곳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돌을 하나 하나 쌓아 탑을 만들었다고

 


    [전망대에서 조망]           2:26   
  <망향탑> 위엔 전망대가 있고


 

    ['노산대']             2:30     
  <망향탑>이 있는 봉우리에서 내려와 다시 우측 봉우리로 올라 가면
  <망향탑>의 내력과 비슷한 스토리텔링이 있는 "노산대"가 있다.



    ['서강']                         
  <노산대> 아래는 절벽으로 <서강(평창강)>이 흐르고 있다.

 
 

    ['금표비']             2:34           
  <노산대>에서 내려 가면 "금표비"가 있는데 <영조>가 이곳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 시키는
  "통행금지 표지석"을 설치해서 지금까지도 주변 경관이 홰손되지 않았단다.

 

    ['청령포전망대' 조망]            2:37     
  25분 정도 <청령포 유배지>를 돌아 보고 다시 배를 타고 나가, 앞에 보이는 <청령포 전망대> 뒤로 가면
  


    ['정순왕후'와 '단종']            2:44     
  <정순왕후>와 <단종>이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난다는 조형물 "天上再會"가 있다.
  <단종>은 17살에 죽었지만 <정순왕후>는 '82세'까지 장수 했다. 당시로는 엄청난 장수.
  <정순왕후>는 약1년4개월 정도만 왕비의 지위에 있었지만,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연산군-중종>까지 8명의 왕들이 바뀔 때까지 살았다.
  
  <정순왕후>가 폐서인으로 강등 당하자 <신숙주> 이 개새끼가 <정순왕후>를 자신의 노비로 달라고
  <세조>에게 졸랐다가 개망신 당하는 일도 있었다.
  
  <영월역>으로 가는 도보길은 <운탄고도1330 1코스>를 이용하는게 좋을것 같아
  조형물 뒤 다리 있는 곳으로 가면....
  


    ['운탄고도1330 1코스']            2:46          
  <운탄고도1330 1코스>는 우측으로 올라 가라는 안내판이 설치되 있다.
  우측으로 올라 가면...


 
    [오름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 10여분 이어지고
    


    [정상]             2:54    
  정상부터는 평지가 이어진다.
 
  

    [숲길]             
  숲길을 지나면...

 

    ['하송리 마을']           3:02   
  '영월읍 하송리' 마을이 나타나고




    ['청령포역']            3:11      
  이어서 지금은 폐역이 된 <태백선>의 "청령포역"을 만난다.
  이 길은 <운탄고도1330길>이란걸 알려 준다.




    ['세경대']             3:16            
  '하송리 마을'을 벗어 나면 "세경대학교"를 만나며 "영월읍내"가 시작된다.
  간호학과, 경찰경호과, 소방과등의 인재를 양성하는 전문학교로 <영월>에도 대학이 있다.

 


    ['영월체육센터']                        
  <세경대> 부터는 영월읍내로 들어 가지 않고 강변길을 따라 걷는다
  강변에는 <영월체육단지>가 상당한 규모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길은 <외씨버선길>이기도 하다는 표지목이 눈길을 끌고...

 

    ['동강 제방길']                 
  제방 산책로 데크로 들어서면....
  


    ['동강-서강 합수부']            3:34     
  "동강-서강 합수부"가 <태백선> 아래에 나타나며 "남한강"이라는 이름이 시작되는 곳이다.
  "남한강"이지만 "한강"이라는 이름이 처음 시작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서강>과 <동강>이 합류하여 <남한강>을 이루고, 이 <남한강>은 <단양-여주-양평>을
  지나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며 비로소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어
  <서울>을 통과하여, <임진강>과 합류하는 <교하>까지가 "한강"이며, 이후부터는 "조강 祖江"이라는
  이름으로 <강화도> 앞 <서해>까지 간다.
  


    ['동강둔치공원']                      
  <영월>의 각종 문화행사가 열린다는 <동강둔치공원>을 지나면....
    
 

    ['동강대교']           3:54      
  <동강대교>를 건너고
  


    ['덕포리']                 
  다리가 없던 시절 큰 나룻터가 있었다고 <덕포>라고 한다는 '덕포리'를 통과하여
  


    ['영월역']            4:10          
  <영월역>에 도착하며, "단종"과 관련된 유적과 <영월읍내> 도보답사를 마친다.
  의미있는 하루였으며, <단종>이 일주일이 걸려 유배 갔던 길을 
  서울에서 당일로 열차를 이용해 다녀 올수 있는 시대가 열려 꿈만 같다.
  
  서울로 가는 열차는 5시44분에 있어 시간이 남아 <영월 특식>이라는 <다슬기해장국>을 먹었다.
  유명 맛집은 <영월역> 건너편에 있는 <성호식당>인데 오전에 출발 할때 벌써 줄을 서 있었는데,
  오후에 갔더니 이미 재료가 소진되어 영업을 끝냈더군요. 에쿠~
  그래서 할수 없이 옆집에서 <다슬기해장국> 12,000원 한그릇 하고 서울로 돌아 왔다.
  


  **부록**
  <정순왕후>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서울 종로] 비운의 왕비 '정순왕후'의 흔적을 찾아서"  여기 클릭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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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일치기 영월 도보여행』
        『영월시내 역사유적 도보여행』 
       영월역-영월대교-영월성당-라디오스타박물관-금강정-민충사-고경춘순절지-낙화암-
       금강공원-영월향교-영월중앙로터리-관풍원-청록다방-창절서원-장릉노루조각공원-
       장릉-장릉깨비굴-영월강변저류지공원-영월관광센타-왕방연시조비-청령포전망대-
       청령포 단종유적지-청령포역-세경대-남한강시작지-동강둔치공원-동강대교-영월역
 

    ['실트랙']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의 역사 유적과 삶의 현장을 걸어서 답사한다.
  거리는 약18km 였으며 여유있게 6시간 정도 걸렸다.


        『영월읍내 역사유적 도보여행Ⅰ부』
        영월역-라디오스타박물관-금강정-낙화암-관풍헌-창절사
  

    ['영월역']             10:13       
  2025년 4월 30일 (수) 대체로 맑음      
  "영월역"
  <청량리역>에서 7시 34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10시 10분경에 <영월역>에 도착했다.
  
  <영월역>에는 <방랑시인 김삿갓>이 먼저 반기는데, 
  <김삿갓 난고 김병연>의 고향은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이며, <영월>에선 잠시 살았고, 
  죽은 후에 그를 안장한 곳이다.
  역안내문에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라고 알리고 있는데,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는 <강원도 봉평>에서 <평창 대화리> 사이이며 <영월>과는 관련이 없다.
  


    ['영월역 앞']          10:15            
  <영월역> 앞 도로를 건너 서쪽 방향으로 100m 쯤 가서 우회전 하면....



    ['덕포4리']              10:17    
  <덕포4리> 아치가 있는 안으로 데크 계단이 보이는데, 계단을 올라 가면...
  


    ['강변로']              10:18               
  <동강 강변로>가 나타나는데 강변으로 건너 가고...
  


    ['전망대']                   
  조금 특징있는 <동강 전망대>가 나그네를 반기는데 여기서 조망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금강정-낙화암-봉래산' 조망]                        
  먼저 북동쪽을 바라보면 건너편에 <금강정>이 보이는데 <황희 정승>과 <퇴계 이황선생>이
  절경을 노래한 <영월의 명승지>라고 하고...
  <낙화암>은 <단종>이 살해되자 그를 보좌하던 시중들과 하녀들이 몸을 던져 투신자살한 곳이란다.
  <영월의 역사>는 대부분 <단종>과 연관되 있었다.
  
  우측에 보이는 산은 <봉래산 鳳來山 802.5m >로 "별마루천문대"가 있다.
  


    ['라디오스타박물관' 조망]                    
  북쪽 정면에는 <라디오스타 박물관>이 조망되고



    ['영월대교' 조망]                
  북서쪽으로는 잠시후 건널 <영월대교>와 그 뒤로 <영월읍 중심가>가 조망되는데,
  잠시후 <영월성당> 앞으로 <라디오스타박물관>을 찾아 갈 예정이다.



    ['영월대교']              10:24          
  <영월>엔 <영월대교>와 <동강대교>가 <동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을 이어 주고 있다.
  
  <영월군의 인구>는 약36,500명 정도라고 하며, 9개의 읍면으로 이루어져 있단다.
  <영월 寧越>이라는 고을의 지명은 그 유래가 어떤지 찾아 볼수 없었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편안 할 녕寧"과 "넘을 월越"이니 "편안하게 넘을수 있는 고을"이라 할수 있지 않을까
  <백두대간>인 <소백산-태백산>으로 둘러쳐진 험준한 준령을 '편히' 넘을수 있는곳? 글쎄 모르겠다.



    ['동강' 조망]                   
  <영월대교>에서 "동강 東江"을 조망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맑고 푸른 강이라고 한다.
  여기서 잡는 "다슬기"로 만든 "다슬기해장국"은 영월의 대표 음식이라고 해서 한그릇 할 예정이다.



    ['중앙로로터리']               10:29             
  <영월대교>를 건너 가면 첫번째 이정표를 만나는데 여기서 우측 <라디오스타박물관> 방향으로 틀면



    [갈림길]             10:30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영월문화학교> 앞이다.
  우측 <라디오스타박물관> 방향으로 올라 가고 <금강정>을 돌아 좌측길로 내려 올 예정이다.
  대략 한시간 정도 걸렸다.



    ['영월성당']                10:32     
  "영월성당"이 상당한 규모로 있고
 


    ['영월대교' 조망]                 
  지나온 <영월대교>방향을 바라볼수 있는데, 
  저 뒤에 보이는 산이 아마도 <영월지맥>의 끝인 <태화산>일 것이며, 그 뒤로는 <백두대간 소백산>이
  <강원도>와 <경상도>를 분리 시키고 있을 것이다.
    



    [삼거리]              10:35~10:51             
  <영월성당> 옆길을 잠시 진행하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 <라디오스타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와
  우측 길로 <금강정-낙화암>으로 진행 할 예정이다.
  


    ['충혼탑']                         
  왼쪽엔 "영월군 충혼탑"이 건립되 있는데 이 주변이 모두 "금강공원"이었다.



    ['박물관' 입구]                 
  "라디오스타 박물관" 입구
 
  

    [박물관과 카페]                    
  박물관으로 들어 가면 우측엔 "온에어 카페"가 있고,
  좌측에 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은 원래 "KBS영월방송국"이었다는데
  2000년대 초 영화 <라디오스타>를 촬영한 곳으로 명성을 얻게 되어 "라디오 박물관"으로 변모시컸단다.

 

    ['라디오스타' 영화 포스터]                 
  박물관 입구엔 대형 영화 포스터 "라디오스타"가 걸려 있는데
  가수왕 출신의 <최곤>이라는 가수가 대마초 사건, 폭행사건에 연루되 감옥까지 가게 되는데
  피해자와 합의금 마련 조건으로 <영월방송국>에서 DJ를 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오후의 희망곡>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는데, 인기없이 진행되던 어느날 <영월 청록다방 김양>이 스튜디오로 
  커피 배달 왔다가 그녀의 사연을 우연히 방송한게 슬프고 재미 있고 리얼하다고 '대박'이 나고, 
  산골 촌의 지역 방송이 지역민들로부터 관심을 끌어 인기 프로그램이 되기 시작하고..
  그 인기를 타고 다시 중앙 무대로 컴백하게 되고....한다는 얘기 ㅎ
  (나는 웃고 울게하는 그 영화를 재미 있게 보았다... 2006년도이던가?)
  
  잠시후 <다방 레지 김양>이 근무했다는 그 <청록다방>도 답사 할 예정...ㅎㅎ


    ['박물관' 정문]               
  볼거리가 거의 없던데 입장료가 좀 비싼 느낌..(경노 무료)



 
    [라디오]                          
  구닥다리 라디오들과 변천해 온 라디오들을 전시 해 놨고
  <라디오스타> 영화도 상영하고 있다.

 

  ['스튜디오']                   
  <청록다방 김양>이 커피 배달 왔다가 그녀의 사연을 방송 했던 스튜디오가 그대로 보존되 있다.
  
  그리고 눈길을 끄는건 박물관 앞에 <영화배우 유오성씨> 조형물이 설치되 있었다
  <유오성>의 고향이 <영월>이고 <영월초등학교>를 나와 서울로 가서 <한대 영연과>를 나왔다고



    ['송덕비군']             10:52     
  <라디오스타박물관>을 나와 <금강정>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면 <영월 송덕비군>이 있고
  계속해서 200m 정도 더 진행하면...
  


    ['민충사'와 '금강정']              10:57    
  "민충사""금강정"이 모습을 나타낸다.




    ['금강정']                    
  "금강정 錦江亭"
  <영월> 사람들은 <동강 東江>을 '비단같이 흐르는 아름다운 강'이라고 <금강 錦江>이라고 했단다.
  그러한 <금강>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황희정승'과 '퇴계 이황선생' 詩]                         
  <금강정>에는 <황희 정승>의 시와 <퇴계 이황선생>의 시가 걸려 있다.
  <퇴계 이황선생>은 "산이 터져라 울어 대는 두견이는 어느 세월에나 멈추려나~"
  아마도 <단종>을 생각하며 읊었을 걸로 생각된다.

 



    ['민충사']             11:02     
  <금강정> 뒤에는 "민충사 愍忠祠"라는 사당이 있다.
  <단종>이 죽자 그를 모시던 시중들과 시녀들이 강물에 몸을 던져 절개를 지키자 그들의 위폐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란다.

 

    ['금강공원']             11:06    
  <금강정>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휴식 공간으로도 좋은 곳이었다.

 

    ['기생 고경춘 순절지']            11:07      
  "기생 고경춘 순절지"가 이어진다.
  
 


    ['고경춘 순절비']               
  절벽 위엔  "기생 고경춘 순절비"가 세워져 있는데
  비석엔 "越妓 瓊春 殉節之處"라고 쓰여 있는데 "영월의 기생 경춘이 순절 한 곳"이라는 듯
  


    [사또와 기생 조형물]              
  <기생 고경춘>이 좌측 <이시랑 사또>와는 좋은 관계를 맺고, 우측 신임 사또에겐 수청을 거부하는
  상황을 조형물로 만들어 놨다.  영월판 <춘향전>?
  기생이 한 남자에게만 정절을 지킨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어서 "여성 전체의 정절"을 홍보하는 듯하다.
  기생도 정절을 지키는데 일반 여성들은 더더욱 지켜라~라고
  봉건왕조시대에 유교사상으로 만들어진, 여성을 남성의 종속관계로 부추기는 것을 홍보 하던 시대는
  가고, 현재는 아닌듯한데, 그래서 이런건 다시 시대에 맞춰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 보고...
  


    ['낙화암']             11:11                 
  이곳이 조금 전 <민충사>에서 언급한 <단종>을 모시던 시종들과 시녀들이 투신자살한 곳이란다.
  


    [순절지]                   
  <낙화암>에서 내려다 보는 절벽



    ['영월수도사업소']           11:15            
  <낙화암>을 돌아 나가면 "영월수도사업소"가 나타난다.
  영월군민들에게 자연의 물맛을 제공한다고 자랑한다.
  



    ['금강공원']             11:17        
  <금강공원>의 조형물과 놀이터등을 지나면...



    ['6.25' '월남전' 참전비]              11:21        
  "6.25와 월남전 참전비"가 있고





    ['영월향교']               11:23         
  이어서 "영월향교"를 만난다.
  제법 큰 향교로서 <김삿갓 김병연>이 영월에서 지방향시인 과거 시험을 보았다는데 여기가 아닐까
  
  김병연의 나이 스무해쯤, 영월현에서 시행하는 지방향시에 응모한 김삿갓 앞에 시험문제가 출제 되는데
  "嘆金益淳罪通于天 論鄭嘉山忠節死" 
  "김익순의 죄가 하늘까지 미쳤음을 꾸짖고 가산 군수 정시의 충절어린 죽음을 논하라"였단다.
  
  시험지를 받아든 '김병연'은 일필휘지로 "한번 죽어서는 그 죄가 가벼우니 만번 죽어 마땅하다"라는 
  내용의 답안지를 작성하고 장원을 차지 했다는 것은 대부분 아는 사실이죠? ㅎ

  그런데 만번 죽어도 마당하다고 한 <김익순>은 <김삿갓>의 친할아버지여던 것이다.
  아들의 답안지 내용을 들은 어머니는 "출세도 중요하지만 어찌 조상을 능멸할수 있는가!"라고 꾸짖으며
  자신의 시아버지이자 '김병연'의 할아버지인 "김익순"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었다.
  출세를 보장해줄 수단으로 믿었던 과거시험이 조상을 욕하는 어이없는 만행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로부터 "후손으로서 하늘을 볼수 없는 죄인이로다"라며 삿갓을 쓰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방랑시인으로 세상을 풍자하며..또한 비판하며 살았다고 그의 인생을 좋게 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파란문>은 절대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자격 없는 놈이라 여긴다.
  
  <난고 김병연>에 대해선 다음에 한번더 <영월>을 방문하여 자세히 알아 보겠지만
  더 자세한 내용을 미리 알고 싶은 분들은 
  <파란문>이 직접 쓴 이 글 하단에 첨부한 "[양주] 김삿갓풍류길"을 참고 하시길...



    ['중앙로 로터리']             11:29     
  <영월대교>에서 이어지는 <영월 중앙로 로터리>로 다시 돌아 와 직진하여 <중앙로>로 들어 간다.



    ['중앙로']                       
  <중앙로> 초입에는 <영월중앙시장>이 있고 조금 더 전진하면....
 


    ['영월부 관아']             11:32~11:41    
  "옛 영월부 관아 寧越府 官衙"를 만난다.
  조선시대 <영월의 관청>이었던 곳인데, 현재 <관풍헌>과 <자규루>만 복원되 있고, 관아 시설은 없다.
    



    ['영월부 관아']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관풍헌']                     
  "관풍헌 觀風軒"은 <영월부 관아>의 "객사"였단다.
  그런데 우리들에겐 매우 의미있고 애달픈 장소로 알려진 곳인데 그 이유는
  <세조> 3년(1457)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어 두어달 지내다가 
  홍수가 나게 되자 당시 영월부 객사의 <동익헌>이었던 이곳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겨 침전으로
  사용하였고, 또 사약을 받은 곳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다.
  즉, <단종>이 최후를 맞이한 곳은 <청령포>가 아니라 이곳 <관풍헌>이라는 것이다.
    



    ['자규루']                  
  "자규루 子規樓" <옛 이름:매죽루 梅竹樓>
  <동강>과 <서강>이 합류하여 <남한강>을 이루는 합수부가 조망되는 이 樓에 올라서 
  <단종>이 슬픔을 토로하던 곳이어서 "단종애사"의 하일라이트를 이루는 곳이었단다
  
  나는 <춘원 이광수>가 쓴 장편역사소설 『단종애사 端宗哀史』를 잊지 못한다
  적통 왕위 계승의 <단종>을 지지하는 <사육신> 계열과 <수양대군>을 왕으로 옹위하고자 하는 
  <한명회>, <정인지> 일파의 대결이 그려진 그 소설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었다
  비록 소설이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쓰기는 했지만 <단종> 편에서 쓰여진 것으로
  슬픈 운명의 <단종>을 새롭게 조명 한것으로 기억된다.
  
  *"자규 子規"는 '피를 토하며 운다는 새-소쩍새, 즉 두견새'를 일컷는 한자 단어란다.
  원래 이 樓는 "매죽루 梅竹樓"였는데 <단종>이 피를 토하고 죽자 "자규루 子規樓"로 바꿧다고
 
  


    ['자규시']              
  <자규루> 안에는 <단종>이 지은 "자규사 子規詞"가 걸려 있다.
  
                     "단종 어제 자규사(端宗御製 子規詞)"

                      月白夜蜀魂啾 (월백야촉혼추) 
                      含愁情依樓頭 (함수정의루두)
                      爾啼悲我聞苦 (이제비아문고) 
                      無爾聲無我愁 (무이성무아수)
                      寄語世上苦榮人 (기어세상고영인)
                      愼莫登春三月子規樓 (신막등춘삼월자규루)
                
                      달 밝은 밤 두견杜鵑새 울 제
                      시름 못 잊어 樓 머리에 기대었노라
                      네 울음 슬프니 내 듣기 괴롭도다
                      네 소리 없었던들 내 시름 없을것을
                      世上에 근심 많은 분들에게 이르노니
                      부디 春三月 子規樓에는 오르지 마오
                      
  <단종>은 6월에 유배 가서 4개월 정도 유배생활 하다가 10월에 죽었으니 
  두견새 우는 춘삼월이었면 더욱 가슴 아프겠으니 봄에는 오지 말라 한듯하다.

 

    [조망]              
  <동강>과 <서강>이 합수하여 <남한강>이 시작되는 곳은 지금은 건물들로 보이지 않는다.
  <단종>은  이곳에서 또 다른 애절함을 토로하는 글을 남겼다
  
                      "단종" 어재 자규시(端宗御製子規詩)

                       一自寃禽出帝宮  일자원금출제궁
                       孤身隻影碧山中  고신척영벽산중
                       假眠夜夜眠無假  가면야야면무가
                       窮恨年年恨不窮  궁한년년한불궁

                       聲斷曉岺殘月白  성단효잠잔월백 
                       血淚春谷落花紅  혈루춘곡낙화홍
                       天聾尙未聞哀訴  천롱상미문애소 
                       何奈愁人耳獨聰  하나수인이독총

                       한마리 원한 맺힌 작은 새 궁중에서 나온 뒤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가 깊은 산속 헤맨다.
                       밤이 가고 또 밤이 와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해가 가고 또 해가 와도 한은 끝도 없구나.

                       두견새 소리 끊어진 새벽 멧부리 걸친 달빛만 희고
                       피눈물 뿌린듯 봄 골짜기에 떨어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애달픈 이 하소연 어이듣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수심 많은 이 사람 귀만 밝아 모두 들리는가



 
    ['관풍헌' 앞마당]                   
  "단종이 승하 한 곳" 
  <단종>은 <세조 3년> 1457년 6월 28일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어 두어달 지내는데
  홍수가 나 거처를 이곳 <관풍헌>으로 옮기고, 두어달 생활하다가 바로 이곳 <관풍헌> 앞마당에서
  1457년 10월 24일 사약을 받고 승하 했단다. 그의 나이 고작 17세였다.

  그의 최후에 대해선 <세조실록> <선조실록> <숙종실록>등에 각기 다르게 기술되 있으며
  <세조실록>에는 운명을 알고 스스로 자살했다고 기록되 있지만,
  (역사의 기록은 승자 독식의 기록이니 그렇게 기록할수 밖에....)
  <숙종실록>에는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들고 와 이 마당에 엎드려 아무말 못하고 있을때
  "그때 앞에서 늘 모시던 공생(貢生) 하나가 차마하지 못할 일을 스스로 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가,
  즉시 아홉 구멍으로 피를 쏟고 죽었다."고 기록되 있다.

  특히 <연려실기술>등 야사에는 정사와는 매우 다르게 전해 오고 있어 정확한 상황은 파악하기 어렵지만
  그가 17세의 어린 나이에 삼촌인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은 확실하다.



    ['청록다방']              11:42           
  <관풍헌> 정문 건너편엔 "청록다방"이 아직도 "다방"이라는 직종 명칭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데
  조금전 <라디오스타 박물관>에서 언급 한바있는 <영화 라디오스타>에 등장하는 <청록다방 김양>이
  근무하던 다방이다. 지금도 그 <김양>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영화 촬영지라고 광고하며 20년 넘게
  영업하고 있다. 다방 입구엔 영화의 한 장면인 <청록다방 김양>과 주인공 <박중훈>이 <청록다방>에서
  썸타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ㅎㅎ

 
 
    ['농협사거리']             11:45      
  <중앙로>를 조금 더 진행하면 <농협사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장릉> 방향으로 우회전 하면....

 

    ['영월경찰서']

    ['영월문화예술회관']          11:48   
  <영월 경찰서> <문화예술회관> <영월사회복지관>등이 이어지고
  



    ['영월읍사무소']           11:52      
  <영월읍사무소> 앞 로터리를 지나면...
  



    ['창절사']              11:54         
  "창절사 彰節祠""창절서원 彰節書院"이 나타난다.
  "창절사 彰節祠"는 <단종 복위>를 위해 목숨 바친 <사육신>과 
  <단종 시신>을 수습해 안장한 "영월 호장 엄흥도"의 위폐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이란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창절서원']           11:55        
  "창절서원 彰節書院"은 <흥선 대원군>이 내린 "서원 철패령"에도 살아 남은 47개의 서원 중에
  한곳으로 그 위상이 높은 서원이라고 한다.
  
  
  **부록**
  <방랑시인 난고 김병연>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양주] 김삿갓 풍류길"  여기 클릭
  

    『영월읍내 역사유적 도보여행』은  2부로 이어 집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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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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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안 나드리

                                         울진 죽변항-삼척 쏠비치리조트-추암 촛대바위-정동진

                                                 일시 : 2025년 3월18일~19일

  3월 하순 눈이 내리는 날에 분당에서 출발하여 <울진 죽변항>으로 모처럼의 여행을 떠났다

 예전부터 단골집인 <죽변23호 송이네집>으로 직행 했다.

    대게 먹으러 멀리 갔으니 당연이 대게를 포식했는데 

   한마리에 20,000원짜리 열마리를 다섯이서 푸짐하게 벅었다.

   써비스로 자연산 멍게를 맛보는데 진짜 달콤한 끝맛이 일품이어서 대게보다 멍게가 더 기억에 남는다.

 

 

   <울진 죽변항>에서 <삼척 쏠비치리조트>로 이동하여

   <삼척 쏠비치>에서 가장 전망 좋다는 < A동1016호>에 투숙하여 하룻밤을 보내고

 

    동해안 日出을 감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눈바람이 몰아 쳤는데 언제였느냐는듯 바다는 조용하고

   태양은 변함없이 솟아 올랐다

 

 

 

 

    <쏠비치>에서 나와 윗쪽에 있는 <추암공원>으로 갔는데

    때마침 <동해선 ITX열차>가 지나 간다

  <추암 촛대바위 공원>에서 필수 관광코스는 <해암정-능파대-촛대바위-출렁다리-조각공원>이다.

   다리를 건너 들어 가면

   먼저 <해암정>을 만난다.

   <해암정>은 '삼척심씨'의 시조인 <심동로>가 고려 시대말에 지은 정자란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능파대>가 있는 조그만 동산으로 올라 가면....

     "능파대"

    <능파대>라는 말은 바닷가의 섬이 육지에서 내려 오는 모래등으로 육지와 붙어 육지화 된 섬을 말한다.

    이곳 <능파대>는 <남한산성>의 정동방正東方이라 한다.

 

     "능파대" <단원 김홍도 작>

    <정조대왕>은 우리 국토를 무척이나 사랑했다죠

   그래서 자신이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려 화원인 <단원 김홍도>로 하여금

   전국의 명소를 그려 오도록 지시하여 만들어진 그림을 첩으로 묶은 화첩 중에 하나가 <금강사군첩>이다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위주로 그린 60개의 작품 중에 하나인 <능파대>를 감상한다

   <능파대>에서 우측에는 <형제바위>가 옹기종기 모여 있고

   정면으로는 <촛대바위>라고 불리우는 유명한 바위가 있는데

  애국가 영상의 첫머리에 日出과 함께 어우러져 나오는 장면이 여기서 촬영한 것이란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보일수 있는데

 이곳을 선인들은 <추암 湫巖>이라고 불렀다는데 그 의미는 "용트림을 하며 하늘로 오르는 모양"이라고

 

 

   <능파대> 북쪽 동산에는 출렁다리와 조각공원이 있다.

    <출렁다리>를 건너기 전에 뒤돌아 보면...

    <해암정-능파대-촛대바위>가 한눈에 들어 오며

    그뒤로 <삼척 쏠비치리조트>와 <추암해수욕장>이 조망된다.

 

    <출렁다리>를 건너 돌아 가면 <조각공원>이 있고

   주차장으로 내려 가면 <추암역>이 있다

   승용차로 30여분 북진하면...

 

 

   <정동진역>을 잠깐 들려 보고 간다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정덩진역> 플렛트홈은 <동해선 전철화>로 새롭게 단장되 있는데

    <고현정 소나무>는 그대로 살려 놨군여

    <정동진해변>에서 <썬크루즈호텔>를 조망하고 귀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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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아리바우길』
 『제7코스 어명을 받든 소나무길에서 만난 명주군왕릉』 
      명주군왕릉-산불감시초소-술잔바위-어명정-보현사입구


     ['7코스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평창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는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의 "보현사 입구"에서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명주군왕릉"까지 가는 약"12km" 거리라고 합니다.



    ['국토지리원지도 실트랙']              
  오늘 직접 걸은 실트랙입니다.
  일반적으로 <보광사 입구>에서 <어명정><술잔바위>로 올라 <명주군왕릉>으로 진행 합니다만
  오늘은 몇몇 이유로 <명주군왕릉>에서 역방향으로 진행했는데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명주군왕릉 입구']             10:12     
    2024년 7월 21일 일요일   흐린 후 맑음    
  <복정역>에서 7시 20분에 출발하여 약2시긴 50분이 걸려 "명주군왕릉"에 도착했습니다.
  
  "명주군왕릉 暝州郡王陵"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왕릉마을'
  <신라 제37대 왕 "선덕왕 宣德王">에 이어 제38대 왕위에 등극 할뻔 했던 인물 "김주원의 묘역"입니다.
  입구에서는 "김주원의 神道碑"가 봉안 된 "명왕비각 暝王碑閣"이 답사자를 맞이합니다.
  신도비에는 "신라 명주군왕 신도비 新羅溟州郡王神道碑"라고 쓰여 있는데
  이 신도비의 비문은 1960년 <이승만대통령>이 짓고, 비각은 당시 국회의원 <김진만씨>가 세웠답니다.
  묘역으로 들어 가는 입구 정문은 홍살문으로 단장되 있군요.
  


    [사당]                  
  묘역으로 들어 가면 먼저 세개의 사당이 연이어 서 있는데
  <청간사> <숭열전> <숭의재>가 연이어 서 있습니다.




    ['청간사']                 
  먼저 "청간사 淸簡祠"라는 사당을 만나는데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된 이 묘역의 주인인 신라시대 <명주군왕 김주원>의  23세손인 "매월당 김시습"을
  모시는 사당이라고 합니다.
  
  <조선> 초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으로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자
  그 불의를 도저히 용납할수 없다고 항거하며 모든 관직을 버리고 승려가 되어 유랑생활을 하며 
  지금의 <경주 금오산(남산)>에 들어가 <금오신화>등 집필활동을 하기도 한 유명한 <생육신> 중에 한분이죠.




    ['숭렬전']                   
  "숭열전 崇烈殿"
  <신라>는 크게 3개 시대로 나누는데 <중대-통일신라시대>를 연 인물이 바로 "태종 무열왕 김춘추"죠.
  <성골>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선덕여왕-진덕여왕>이 처녀들이었으니 아들을 못 낳아 대를 잇지 못하쟈
  <진골>이 지배하는 나라로 바꾼 이가 바로 <김춘추>로 <통일신라시대>를 활짝 연 인물이기에
  그를 추모하는 사당은 신라지역 가는 곳마다 종종  있습니다.
  
  이 묘역의 주인인 <명주군왕 김주원>이 바로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직계로 6세손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명주군왕 김주원>은 <강릉김씨 시조>이기 전에 <경주김씨 진골집안>이었던거죠.




    ['숭의재']                        
  "숭의재 崇義齎"
  이곳이 바로 "강릉김씨 시조-명주군왕 김주원 暝州郡王金周元"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신라화백회의>에서 <제38대 신라왕>으로 만장일치 추대된 인물인 현재의 국무총리급인 <김주원>인데
  왕위대관식 날에 비가 많이 와 <알천-현재의 경주북천>이라는 조그만 개천을 건너지 못해 
  왕위에 오르지 못한,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수 없는 "기괴한 비운의 인물"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잠시 후 알아 보기로 하고



    ['명주군왕비']                  
  "명주군왕비"
  <강릉김씨> 중에 <강릉>을 연고로 출세한 인물들이 자신의 뿌리를 과시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더군요.
  국회의원을 다섯명 배출했는데 잘 아시는 <김진구><김진만><김인기><김택기><김흥기>...
  장관급 이상의 정치인은 <김진선 강원도지사>를 비롯해 다수가 있더군요.
  그밖에 코미디언 <김학래>씨와 축구선수 <김남일>씨도 <강릉김씨>더군요.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날개>를 쓴 <이상>이 있는데 그의 본명은 <김해경>으로 <강릉김씨>



    ['홍살문']             10:16        
  <명주군왕릉>으로 들어 가는 입구엔 다시 홍살문이 세워져 있는데 100m쯤 올라 가면



    ['명주군왕릉 주차장']            10:18         
  주차장을 만나며 제사를 올리는 <능향전>과 무덤이 보입니다.
  
  여기서 꼭 알고 올라 가야 하는 것은
  "명주군왕"의 의미입니다.
  먼저 띄워쓰기는 "명주군 왕"일까요? 아니면 "명주 군왕"일까요?
  "명주溟州"는 현재의 <강릉 지역>을 의미하는 지명이고, "군왕郡王"은 '고을郡'에 "왕王"입니다.
  그러니까 "명주지역 제후"를 의미하기에 띄워쓰기는 "명주 군왕"이라 해야 할것입니다.
  하지만 <삼국사기>나 <삼군유사>에선 <군왕>이라는 직위는 단 한줄도 없고, 그런 직위를 내렸다는
  기록도  전혀 없는데, 조선시대에 쓰여진 <동국여지승람>에서나 등장한답니다.
  <동국여지승람>은 각 자역의 지형, 관습, 전설등을 엮은 인문지리서여서 역사책으로 보진 않으니
  <명주군왕>이라는 직위가 실제 있었다는 역사 기록은 없고, <강릉김씨 족보>에나 나온답니다.
  잠시후 관련 <삼국사기><삼국유사> 원문을 보여드림니다.
  
  당시 <신라>는 <9개의 州>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명주溟州>이며, 그곳의 댓빵으로
  <김주원>이 간것이기에 우리가 아는 "王"하곤 거리가 있습니다.
    


    ['능향전']              
  어려운 한자 "제사 지낼 향享"을 사용하는 "능향전 陵享殿"과 그 뒤로 묘가 보입니다.




    ['명주군왕릉']                       
  "명주군왕릉 溟州郡王陵"
  <태종무열왕-김춘추>의 6세손 "김주원 金周元의 묘"입니다. 陵은 왕과 왕비묘에만 씁니다.
  필자인 <파란문>의 아버님 존함과 한자까지 같아 언젠가 한번은 오고 싶었던 곳입니다.
  
  당시 <신라>의 정치 상황을 쬐끔 알아 보겠습니다.
  <성골>들에 의해 통치되던 시대는 <선덕여왕-진덕여왕>시대를 마지막으로 끊기고
  <진골세력>들에 의해 정권이 바뀌는데 <29대 태종무열왕-김춘추>시대가 열리며 <김유신>등과 함께
  통일신라시대로 접어 들어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죠.
  잘먹고 잘살며 평화로워지면 부정부패와 쿠데타가 발생하는 것은 세계 다른 역사와도 같습니다.
  
  혼돈 속의 신라 왕위 쟁탈전
  <36대 혜공왕> 때에 <김지정의 난>이 일어 나 <혜공왕>이 죽임을 당하고, 
  그 난을 <상대등 김양상(金良相)>과 그의 동생 <이찬 김경신(金敬信)>등이 힘을 합쳐 난을 진압합니다.
  그리고 <상대등 김양상>이 <37대 선덕왕>으로 즉위합니다. <상대등>은 요즘의 국무총리격이라고...
  그런데 <37대 선덕왕>은 오래 살지 못하고 왕위에 오른지 5년여만에 후사도 없이 죽어 버리고 맙니다.
   **<선덕왕>은 <삼국사기>에 두명이 나오는데 편이상 <27대 선덕왕 善德王>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덕여왕>으로 표기하고, <37대 선덕왕 宣德王>은 남자이니 그냥 <선덕왕>으로 호칭합니다,**
  
  그래서 요즘의 국회와 비슷한 <화백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상대등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합니다.
  하지만 왕위대관식하는 날에 비가 넘 많이 와 <알천-현재의 경주북천>이라는 조그만 개천을 건너지
  못해 왕위대관식에 참석을 못하고 있을 때, <선덕왕>의 동생인 <김경신>이 무력으로 궁궐을 장악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니 그가 "38대 원성왕 元聖王"입니다
  
  이렇게 오른 <원성왕>은 <김주원>에게 무척 미안했겠죠?
  그래서 <명주溟州 (강릉지역)>를 식읍으로 주어 그 지역을 통치하라고 한것입니다.
  
  <삼국유사 三國遺事 卷第二 紀異 第二>의 원문을 보면
  "未幾 宣德王崩 國人欲奉周元爲王 將迎入宮 家在川北 忽川漲不得渡 王先入宮卽位 上宰之徒衆 
  皆來附之 拜賀新登之主 是爲元聖大王 諱敬信 金氏 蓋厚夢之應也 周元退居溟州"
  "선덕왕(宣德王)이 돌아가시자, 나라 사람들은 주원을 왕으로 삼으려고 그를 궁궐로 맞이하려고 하였다.
  집이 개천 북쪽에 있었는데 갑자기 물이 불어서 건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왕이 먼저 궁으로 들어가 왕위에 올랐다. 
  주원을 따르던 사람들도 모두 와서 따르며 새 왕에게 절을 하고 축하하였다. 
  이가 원성대왕으로 이름이 경신(敬信)이고 성은 김씨이다. 좋은 꿈이 들어맞은 것이다. 
  주원은 명주(溟州)로 물러나 살았다."

  "왕위 대관식"에 지각해서 왕이 못되고 지방 토후가 된 불우한 사람이 <명주군왕-김주원>인 것이죠.
  


    [조망]                    
  <김주원의 묘>는 부부묘로서 두개의 봉분으로 되 있는데 어느쪽이 <김주원 묘>인지는 모른다고...
  
  "김헌창의 난"     
  《삼국사기》 신라본기 헌덕왕 14년 3월의 원문을 보면...
  "三月 熊川州都督憲昌 以父周元不得爲王 反叛 國號長安 建元慶雲元年"
  "3월, 웅천주(熊川州) 도독 헌창(憲昌)이 그의 아버지 주원(周元)이 임금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역을 일으켰다. 국호를 장안이라하고 연호를 경운 원년이라 했다"
  
  <명주군왕-김주원>의 둘째 아들이 <김헌창>입니다.
  신라 역사에서 <김헌창의 난>은 신라의 존망을 뒤흔든 어마무시한 반란이었습니다.
  <김헌창>이 도독으로 있던 지역은 <명주(강릉)> 지역이 아니라 <옛 백제지역>인 <웅천주(현재의 공주)>
  지역이었으며 그가 점령한 지역이 전라도 충청도 였으니....바로 <옛 백제 지역>이죠?
  태평성대를 이루던 통일신라시대는 저물고 <후삼국시대>로 분열되는 효시였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니 역사의 터닝포인트가 바로 <명주군왕>의 아들 <김헌창의 난>이었으니
  지금 여기서 바라보는 <명주군왕-김주원묘>는 역사적으로도 의미심장한 것이리라~
    


    [둘레길 들날머리]              10:24        
  <명주군왕릉>을 둘러 보고 본격적으로 <아리바우길7코스> 트랙킹을 역방향으로 시작합니다.
  이 임도길은 <강릉바우길3.4.10구간>과 <아리바우길7코스>가 함께 하는 출입구군요.
  
  5분정도 완만한 오름길을 진행하면...



    [삼거리]             10:29          
  <강릉바우길10코스>가 우측으로 분기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강릉바우길10코스>는 다음에 진행 할 <아리바우길8코스>와 함께 하더군요.
  <아리바우길7코스>는 <강릉바우길4구간> 방향인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4분 정도 올라 가면...




    [삼거리]             10:33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은 <강릉바우길4코스>가 우측으로 분기하는 곳이고
  <아리바우길7코스>와 <강릉바우길3코스>는 좌측으로 연결 됩니다.
    



    [삼거리]              10:41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지며 곳곳에 임도가 분기하는 삼거리가 있으나
  앞으로는 <술잔바위><어명정>방향으로만 진행하면 되겠습니다.
  

  
    [임도]                 
  26분정도 완만한 임도 오름길을 진행하면...



    ['송병골']               11:07        
  "송병골 삼거리"를 만나는데 <명주군왕 주차장>이 있는 마을 이름이 <왕릉마을>이던데
  그곳과 바로 연결되는 길이 있는 삼거리였습니다.
  우측 <어명정>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오름길]                     
  조금씩 경사도가 있어지는 임도를 10여분 진행하면....



    ['산불감시초소']             11:18     
  "산불감시초소""기상관측소"가 있는 곳에 도착하는데 
  <산림청>이 수목관리를 하는 지역이라고 차량통행을 제한하고 있고
  


    ['등산로 입구']               11:20     
  <기상관측소> 옆으로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술잔바위>가 있는 산봉우리를 오르고 "어명정"으로
  가는 산길인데, 지도를 보니 여기서 좌측 임도를 따라 가면 바로 "어명정"으로 쉽게 갈수 있더군요.
  등산이 힘드신 후답자들은 여기서 좌측 임도를 이용해도 무방하겠으니 참고하시고...
    


  
    [산길]                 
  40여분 등산코스를 진행하면....
    
 

    [바위]              11:57    
  구경거리 없는 산길에서 처음으로 볼거리(?)라고 할수 있는 구멍 뚫린 바위를 만나는데, 
  이 바위가 <술잔바위>는 아니고 조금만 더 올라 가면...
  


    ['술잔바위']            12:04~12:12    
  억지 춘향이처럼 이름을 붙인 "술잔바위"라고 표기한 바위를 만나는데
  바위 위로 올라 가면....


       
    ['술잔']                   
  바위에 구멍이 난 곳이 있는데 이걸 <술잔바위>라고 하는듯 합니다. ㅎㅎ
  바위에 패인 구멍에 물이 고이면 바위 온도 때문에 증발을 하지 않으니 항상 물이 고여 있죠
    
 

    ['술잔바위']                    
  볼거리 없는 이 코스에선 그나마 유일한 자연 조각품이라고 기념 사진도 찍고
    


    ['적송']              
  능선길을 잠시 160m 정도 진행하는데 "적송赤松" 군락지가 이어집니다.
  산림청이 직접 관리하는 곳이라고



    ['송이거리']             12:15           
  <술잔바위>에서 160m 정도 진행하면 "송이거리"라고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소나무가 많은 곳이니 송이버섯도 많이 자생하는가 봅니다.
  
  지도를 보니 여기서 직진하면 <백두대간 곤신봉>으로 올라 가는 코스더군요.
  <아리바우길7코스>와 <강릉바우길3코스>는 좌측 <어명정>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내림길]                 
  내림길을 17분정도 내려 가면....

 

    ['어명정']              12:32~12:37       
  "어명정 御命亭"을 만납니다.
  <올림픽아리바우길7코스>의 이름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을 만들어준 정자입니다.



    ['그루터기']               
  지난 2007년에 <광화문> 복원에 사용하기 위해 위령제를 지내고 "어명이요~!"를 세번 외치고 베어낸
  금강소나무의 그루터기랍니다.
    


    ['위령제' 사진]                    
  2007년 11월 29일 당시 금강소나무를 베어내기 위한 위령제를 지내는 사진이 정자에 걸려 있더군요.
  이 소나무는 현재 <광화문>의 한 기둥으로 서 있을겁니다.
  


    ['어명정']                     
  <술잔바위>에서 내려온 좌측 계단인데, <산불감시초소>와 <기상관측소>가 있었던 곳에서
  임도가 이곳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힘드신 분들은 이 임도를 이용하면 편하겠습니다. 단, <술잔바위>를 못 보는데...그거 볼거리도 아녀요~
    


    ['강릉' 시내 조망]                   
  이제 <강릉시내>와 <동해>가 보이고...
    



    ['거북등']             12:45          
  <어명정>에서 임도를 8분여 진행하면 "거북등"이라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임도를 진행해도 되겠습니다만, 좌측 산길이 지름길이며 정코스더군요.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17분여 내려가면...
    
 


    ['바위와 소나무']              1:02       
  소나무가 바위를 뿌시고 자랐는지...바위 틈으로 자랐는지...
  자연의 신비함을 잠시 느끼고...10여분 내려 가면...
  



    [임도]             1:11            
  다시 임도를 만나 직진하는데


       
    ['대관령' 조망]                   
  <백두대간>이 펼쳐지며 <능경봉-대관령-선자령>으로 이어지는듯...
    
 
  
    [내림길]                    
  다시 급경사 내림길을 13분여 내려 가면...
    


    [등산로 들날머리]             1:24        
  등산로 날머리를 만나며 <보광사 입구>가 보입니다.



    ['어명정' 들날머리]               1:25         
  등산로 날머리를 바라보며 정방향으로 올랐으면 체력소모가 클 것으로 생각되어 미소를 머금고...^.^
   


    ['보현사' 입구]               1:25     
  <보현사 입구>를 바라보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답사를 마쳤습니다.

 

    ['뒷풀이']             1:28  
  오늘은 <빠담님>이 <삼계탕>을 특별히 제공해 주셔서 피로와 삼복더위를 맑끔히 잊게 해 주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만 해서 미안해요~~ 조만간 원수를 갚아야지~~ㅎ



    ['보광천']               
  <삼계탕> 한그릇을 뚝딱 해치운 다음 <보광천>으로 내려 가니, 피서 온 사람들이 제법 있더군요.
  시원한 계곡물에 더위를 씻고 돌아 왔습니다.
    



    ['고도표']                      
  오늘 진행한 코스가 어디쯤인지 구글어스로 확인하고
  <고도표>를 보면서 역방향 진행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다시금 확인 할수 있었습니다.
  거리는 약11km였으며 3시간10분정도 걸렸습니다.
  


    ['월화정'과 '神漁']                     
  마지막으로 <강릉 중앙시장> 앞 <남대천> 옆에 있는 <해파랑길 38코스>의
  "월화정 月花亭'과 '신어 神漁'"에 얽힌 전설을 간략하게 언급합니다.
  
  "명주군왕-김주원"의 아버지인 "무월랑 김유정 無月郞金惟靖"과 강릉아가씨 "박연화 朴蓮花"의 
  사랑이야기를 <홍길동전>을 지은 강릉 출신 "허균의 '별연사고적기 鼈淵寺古迹記'"를 요약 인용합니다.
 
 신라 화랑이었던 <명주군왕-김주원>의 아버지 <무월랑 김유정>이 <강릉>에서 근무할때
 강릉아가씨 <박연화>를 알게 되어 백년가약을 맺었는데, 임기가 끝나 서라벌로 돌아 간 <김유정>은
 그후 반년이 지나도 소식도 없었답니다. 
 '남자는 다 그래~'라며 낙담하던 <박연화>는 혼기가 차 다른 사람과 강제결혼을 하게 되자 
 자살까지 하려하며 낭군만을 그리워하는데....
 어느날 <남대천> 어느 곳에서 자신의 일편단심 마음을 비단에 적었는데 황금잉어가 갑자기 뛰어 올라
 그 비단편지를 물고 사라졌답니다. 
 그 상황을 재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윗 사진 "월화정 月花亭'과 '신어 神漁'"입니다.
 
 "허균의 '별연사고적기 鼈淵寺古迹記'"에 기록되 있는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妾不敢背約 而父母之命 將不得違 郞若不棄盟好 趁某日至 則猶可及已 不然則妾當自盡以從郞也"
 "저는 감히 혼약을 위배하지 않을 것이나, 부모님의 명령을 장차 어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낭께서 만약 맹약을 버리지 않으시고 달려서 아무날까지 도착하시면 그래도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저는 마땅히 자살하여 낭을 따르겠습니다."
 
 그 다음날 <신라 서라벌>에서 <무월랑 김유정>이 물고기 회가 먹고 싶어 <알천閼川-현재의 경주북천)>에서
 잉어를 잡아 왔는데, 잉어는 펄쩍 뛰면서 재빨리 움직여 마치 호소하는 것이 있는 듯했으며 
 잠시 후 거품을 한 되쯤 토했는데 그 속에 흰 편지가 들어 있어, 이상히 여기고 읽어 보니 <蓮花낭자>가 
 손수 쓴 것이었답니다. <김유정>은 즉시 그 편지와 잉어를 가지고 왕에게 아뢰었는데....
 왕은 크게 놀라며 <무월랑 김유정>에게 어서 빨리 <명주>로 가 결혼하라고 합니다.
 그 날로 달려간 <김유정>은 <박연화>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날에 도착하여 극적으로 재회하여
 <서라벌>로 돌아 와 결혼하여 아들 <명주군왕-김주원>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신라판 춘향전" 같은 이야기는 강릉을 대표하는 전설로 자리 잡고 있더군요.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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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아리바우길』
      『제4코스 안반데기-바람부리-배나드리마을』 
            안반데기마을회관-피덕령-도암호-바람부리마을-배나드리마을
                       

     ['4코스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평창올림픽 아리바우길 4코스"는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있는 "배나드리마을"에서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의 "안반데기 마을"까지 가는 약"15km" 거리라고 알려줍니다.



    ['국토지리원지도 실트랙']              
  제가 역방향으로 직접 걸은 실트랙을 <국토지리원지도>에 표기했는데.....
  지도에 <파란색선>이 보이는 것은 오리지날 루트이며 지름길인데, 길이 나빠 도로를 이용했습니다.
  



    ['안반데기 마을회관']         10:15     
    2024년 6월 16일 일요일   맑음    
  <복정역>에서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들어가 
  <고려 우왕>의 유배지 "왕산골 王山골"을 부르르렁 거리며 오르면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닭목령 鷄項嶺"을 넘게 되는데...이곳부터  '너른 큰터'라는 의미의
  "대기리 大基里" 품속으로 들어 가게 됩니다. 즉, '왕산면 대기1리 王山面 大基一里'에 도착하는데, 
  <강원도 감자>의 <감자원종장>이 있는 마을입니다.
  
  그리곤 다시 "대기리 大基里"의 마지막 "큰터"인 '대기4리'의 "안반데기"로 꾸불꾸불 오르면
  나타나는 "대기4리 안반데기 마을회관"에 도착합니다.
  평균해발 1,100m에 있는 산간오지에 있는 마을로는 제법 부티가 나는듯한 마을이 펼쳐집니다.
  관광지화 되었으니...
  
  좌측 오름길을 100m 정도 올라 가면....




    ['와우! 안반데기']           10:18         
  "카페: 와우! 안반데기"
  "고냉지농촌문화관"이라고 합니다만 그냥 단순한 카페더군요.
  <용평리조트>를 찾는 사람들이 주로 다녀 가는 관광코스로 <용평스키장>에선 약20분이면 도착 할수
  있는데 오늘도 몇몇 손님이 있었습니다. 아메리카노는 4,500원하더군요. 싸지도 않고



    ['안반데기' 조망]                 
  카페에서 바라보는 "안반데기" 아랫쪽 방향입니다. 출발지였던 마을회관도 보이는군요.
  평균해발 1,100m에 있는 축구장 280배 크기의 우리나라 최대 "고냉지 배추밭"이라서 유명하죠.
  <안반데기>에 대해선 다음 <5코스>에서 더 자세히 알아 보기로 하고...



    ['피덕령']                     
  <카페: 와우! 안반데기>가 있는 이 고개의 이름은 제법 유명한 "피덕령"이랍니다.
  <평창>에서 <강릉>으로 넘나드는 고개 중에 하나로 <대관령>이나 <선자령>이 <강릉>에서 오르기엔
  너무 가파라서 <강릉>에서 <평창>으로 갈때는 주로 이 고개를 이용했답니다.
  
  이 근처에 "피"가 넓은 지역에 퍼져 많이 자생한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강릉시'와 '평창군' 경계]          10:20        
  "피덕령"은 '평창군 대관령면 수하리'와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법정 경계이기도 하답니다.



    [내림길]                  
  해발 1,100m를 오를려면 체력소모를 많이 해야겠죠.
  그래서 오늘도 편하게 역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조금 내려 가면....



    ['발왕산' 조망]            10:24     
  <황병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발왕산 發王山 1,459m"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발왕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용평스키장이 있는 산이고, <2018년 평창올림픽 스키대회>가 열린 곳이죠.
  
  정상엔 스키장 리프트 승강장과 꼭대기 레스토랑이 있는데, 최고 난이도 코스입니다.
  흰눈이 내리는 겨울에 올라 오뎅에 정종대포 한잔 마시고, 스키를 타고 내려 갈때의 기분은 야호~



    [내림길]      

    ['도암호']           11:08      
  <피덕령> 고갯길을 50여분 내려 가면 고갯길은 안정을 찾으며
  <백두대간>과 <황병지맥>이 만들어 내는 "송천 松川"이 다시 만들어 내는 "도암호 道岩湖"를 만나는데 
  <대관령>은 우측으로 가고
    


    ['도암댐' 가는 길]              
  <도암댐>은 좌측으로 내려 갑니다.
  20여분 진행하면...




    ['옥류정']           11:27             
  "도암호 道岩湖"의 절경을 감상하라는 "옥류정 玉流亭"에 도착합니다.
  


    ['옥류정'에서 조망]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는 <옥류정>에 올라 조망을 합니다.
    



    ['도암호' 조망]                  
   "도암호 道岩湖"는 "길 도道"에 "바위 암岩"을 쓰는데
   옛 선비들이 <한양>을 오갈때 쉬어가던 바위가 있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고....



    ['도수터널 취수탑' 조망]                    
  "도수터널 취수탑"
  <도암호>에서 관심있게 보아야 할 <취수탑>입니다.
  <도수터널>은 "道水터널"로 이곳의 물을 <강릉>으로 이동시키는 "물 이동 水路"를 의미하는데
  <백두대간>을 수로터널로 "15.6km"를 뚫었답니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사진을 참고하세요~~~



    ['강릉수력발전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사진을 클릭하면 읽기 쉽게 확대 됩니다.
  이곳의 위치와 <강릉 남대천>의 위치차를 이용해 수력발전을 한다고...
  학창시정 <플레밍의 오른손 법칙-왼손법칙>등이 새삼 기억나는군요. ㅎ
    


    [전기 생산량]                    
  <강릉수력발전소>가 생산하는 전기의 량이 상당했답니다.
  어서 빨리 친환경 전력생산을 해서 "RE100" 시대에 대비해야 겠습니다.
  


    ['댐 관리사무소']           11:36        
  <도암호>는 <용평리조트>등 <횡계>에서 내려 오는 생활하수와 <안반데기>등 주변 산지 개발로
  흙탕물과 농업오염수가 너무 많이 흘러 들어 수질이 매우 나쁘기로 악명 높답니다.
  그래서 수력발전도 중단된 상태라죠?
  현재 수질 개선작업을 하고 있다는데 상당히 좋아 지고 있다고....



    ['댐 상부'] 

    ['댐 옆면']           11:38            
  "도암댐"의 상부와 측면을 조망하고
    


    [내림길]                     
  댐 아랫쪽으로 내려 가면...



    ['도암댐' 전경]             11:45     
  "도암댐" 전경이 멋지게 펼쳐집니다. <발왕산 용평스키장 정상>이 여기서도 보이는군요.
  댐의 길이는 300m이며, 높이는 72m라고 하는군요.
  1990년에 완공된 댐인데, <강릉수력발전소>용으로 건설되었지만, 2001년에 발전 중지 되었답니다.
  


    ['바람부리 마을']            11:50         
  댐을 바라보고 5분여 내려 가면 "바람부리 마을" 안내판이 반겨 주는데
  "신배나무와 백로마을"이라고 소개 하고 있습니다.
  <백두대간>과 <황병지맥> 사이 계곡으로 흐르는 "송천 松川"가에 자리 잡고 있어
  특히 "바람"이 많은 곳이라고 하는데.....
  
   "바람불이 마을"은 "3無마을"로 유명하다는군요.
   첫째: 여름에도 "모기"가 없고, 둘째: "모기"가 없을 정도로 시원하니 "선풍기"가 필요 없고, 
   셋째: 산간오지 계곡이라 "논"이 없다고 합니다.
    



    [사과 과수원]             12:00    
  <바람부리 애플700 펜션>이라는 사과 과수원과 펜션을 겸업하는 아담한 집도 보이고
    
 


    [잠수교]                   
  "송천 松川"을 건너 다니는 다리는 모두 잠수교더군요.
  <한양 경복궁>을 건축 할때 이 지역의 "금강소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어 운송하던 개천이라고
  "송천 松川"이라고 한답니다.
  여름철 수위가 좀 높을 때 주로 이용 했을거고, 갈수기나 홍수 때는 이용 할수가 없었겠죠.
  


    ['발왕사' 조망]            12:24     
  "발왕사 發王寺"라는 조그만 절도 보입니다.


       
    ['새터']                   
  간간이 사람사는 집도 보이는데 지도에 <새터>라고 표기되 있더군요.
    
 

    [잠수교]                    
  마지막 잠수교를 건너면...
  

             
                 [고개 오름길]                         
               고개 오름길이 이어 집니다.
               이번 코스 유일한 오름길...ㅎ
    


    ['배나드리 고개']          1:00     
  이정표가 있는 <배나드리고개>에 도착합니다.
  <배나드리>로 가는 오리지날 코스는 우측 산길로 "1.08km"라고 알려 줍니다.
  그런데 여름철 사람의 통행이 거의 없는 산길은 걷기 싫지요?  뱀도 나올거 같고...ㅎ
  그래서 조금 돌아 가는 길이지만 도로를 따라 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안반데기>로 가는 길이 좌측이라고 하며 "5.54km"라는데 아마 <옥류봉>으로 질러 가는 길인듯




    [삼거리]             1:04           
 고개를 내려 가면 <415번지방도>가 지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 <415번>도로는  오전에 버스를 타고 통과했던 <닭목령>으로 가는 길이더군요.
   


    ['대기천']                 
  "대기천 大基川"은 <왕산면 대기리 닭목령> 등에서 흘러 내려 오는 개천이고
  <배나드리>까지 10여분 진행하면...

 

    ['노추산' 조망]               
  중간에 "노추산 魯鄒山 1,322m"이 이젠 추억 속에서 노닐고




    ['배나그리 마을' 입구]             1:15                 
  "배나드리 마을"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예전엔 이곳까지 <한강>을 운행하는 배가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배나드리마을' 조망]                    
  "송천 松川"이 흐르는는 "배나드리교"에서 "배나드리마을"을 조망하고...
  


    ['대기천'-'송천' 합수부]                 
   "배나드리교" 아랫쪽엔  "대기천 大基川""송천 松川"에 합수하는 곳이 보입니다.
   <대기천>은 여기서 그 이름을 <송천>에 넘기고...
    


    ['정선' 가는 길]                   
  <정선 구절리>로 향하는 <415번지방도>를 조금 더 진행하면
    


    ['노추산 모정의 탑' 주차장]           1:25  
  <청마산악회>가 정성을 다해 제공하는 뒷풀이 장소인 "노추산 모정의 탑 주차장"에 도착하여
 『올림픽 아리바우길 제4코스』를 종료합니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15.8km 였으며 3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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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10코스 두타연길』 
              금강산가는길 안내소-두타연-두타연갤러리-협동교
                       
        
            ['10코스 안내도']                   
          "강원도 평화누리길 10코스"는 <두타연갤러리>에서 <두타연>을 지나 
          <팔랑리>까지 가는 "21.6km"라고 합니다.
          
          하지만 <두타연>에서부터 <팔랑리>까지 "12.3km"는 아직 군사상 문제가 있다고
          개방하지 않아 <두타연갤러리>에서 <두타연>까지만 진행합니다.
          오늘은 한마디로 "두타연 관광"입니다.



    ['두타연'의 위치]              
  <두타연 안내 매표소>에는 "금강산 가는 길"이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과연 <금강산>과 <두타연>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 <구글어스>를 편집했습니다.
  <휴전선>이 코 앞에 있다는 것을 알수 있죠.
  
  이 길은 <금강산>의 <내금강산>으로 가는 길이고, 영남지방 옛 선인들이 많이 이용한 길인데
  <한양>에서 제일 많이 이용한 길은 <철원>에서 <금강산철도>가 있었던 길로 다녀 왔답니다.
  



    ['두타연출입신고소']          9:45      
    2024년 6월 2일 일요일   맑음    
  "두타연출입신고소"는 <두타연매표소>이기도 한데, "금강산 가는 길"이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금강산 가는 길>은 전국 곳곳에 있지만 <양구군에서 가는 길>이겠죠? ㅎ




    ['두타연 매표소']                    
  <민통선> 출입문이 있는 "두타연 매표소"에 도착하여 입장료와 출입신고서를 제출하고
  출입팻말을 받아 목에 걸고, 다시 버스를 타고 <두타연>으로 들어 갑니다.
  
  입장 시간이 오전, 오후 각3번씩이니 시간을 맞춰야 하겠습니다.



    ['두타연 입구']          10:12       
  버스를 타고 잠시 진행하면 <두타연>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으며
  <두타연안내도>가 있는 <두타연 트랙킹코스>로 들어 가면



    ['두타연' 안내]                     
  입구에서 해설사가 <두타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는데 특별한 얘기는 없고



    ['두타연' 안내도]                  
  "두타연 트랙킹코스 안내도"를 참고 합니다.
  현재 진행 할수 있는 코스는 안내도의 <푸른색선> 뿐입니다.
  거리는 약1.5km 정도로 여유있게 진행해도 45분 정도 걸렸습니다.



    ['두타연' 실트랙 구글어스]                  
  <금강산 가는 길>과 <두타연 코스>를 좀 더 확실히 알아 보기 위해 구글어스를 편집했습니다.
  
  먼저 <수입천>과 <사태천>이 합수 하는 지점에 있는 "이목교 梨木橋"를 알아야 하는데
  <금강산 가는 길>은 <수입천>이 흐르는 좌측 <수입천>으로 올라 가고
  <두타연>이 있는 우측 개천은 <사태천>으로 <성골지맥>이 지나는 <비득고개>로 가서 
  <팔랑리>로 가는 <강원평화누리길10코스>이며, 이어서 <11코스>인 <돌산령>을 넘어 <펀치볼>로
  가는데 <11코스>는 이미 답사 한바 있습니다.
  
  이런 분석을 한 사람은 <파란문> 밖에 없지요? ㅎㅎ



    ['통일기원바위' 조망]                 
  <두타연 안내도>에서 뒤돌아 보면 조금 모양있는 바위가 보이는데 이름 붙이기 나름이지만
  "통일 기원 바위"라고 부른다고...
    


    ['두타연 트랙킹 입구']          10:20      
  <두타연 트렉킹 코스 입구>로 들어 가서
    



    [사거리]            10:24               
  200여m 숲길을 진행하면 사거리를 만나는데
  좌측길은 <양구전투위령비>로 가는 길인데, 갔다가 돌아 와야 하고
  직진길은 군인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데 <강원평화누리길10코스>로 가는 길이더군요.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조각공원']                      
  "조각공원"이 펼쳐지는데 조각품과 탱크, 미사일등 군사무기가 전시되 있습니다.
  여러 조각품 중에 유명한 조각품만 촬영했는데...
  


    ['잃어버린 신발']                  
  "잃어버린 신발-홍영표 작"
  "신발 한짝은 어디로 갔나?"
  분단된 현실의 아픔을 표현하는 듯 하고......




    ['슬픔 기다림']                    
  "할미꽃-슬픔.기다림"
  제일 인기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할미꽃"이라는 꽃 자체가 슬픈 노년의 슬픔을 표현하는 꽃이니 ....



    ['두타연 입구']            10:28       
  <조각공원>을 지나면 <두타연 입구>를 만나는데 아주 가까운 곳에 <두타정><두타폭포>가 있고
    


    [안내문]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사진을 클릭하면 안내문이 읽기 쉽게 확대 되는데, 
  이 안내문만 읽어 보면 <두타사>와 <회정선사>에 얽힌 역사를 모두 알수 있습니다.
  


    ['두타사 옛터' 입구]            10:33       
  "두타사 頭陀寺"가 있었던 옛터라고 합니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그 흔적 조차 찾기 어렵고....
  
  "두타 頭陀"라는 단어를 알아야 이곳의 의미를 알수 있겠지요..
  한자의 의미로 <두타 頭陀>의 뜻에 접근하려면 불가능 합니다. 
  왜냐하면 옛 인도 북부지방, 네팔등에서 사용하던 "산스크리트語"이기 때문입니다.

  漢字는 '뜻글자'라고들 알고 계시죠? 반드시 그런건 아닙니다.
  뜻글자로 접근하면 우스게 소리로 "골 때린다"로 접근되지만 그런 뜻일리야 있겠습니까?
  
  "頭陀"는 인도 북부-내팔 등의 옛글자인 '산스크리트語' "dhuta"를 한자로 音譯한것입니다.
  그리고 "dhuta"를 한자로 音譯한것을 다시 우리말로 바로 音譯을 하였기에 "두타"가 되었는데
  '산스크리트語'의 "dhuta"를 알아야 뭔 뜻인지 알수 있는 것입니다
  
  "dhuta"는 "번뇌의 티끌을 떨어 없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으며 
  맑은 마음으로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일"이라고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불교용어입니다.



    ['두타사 옛터']                     
  "두타 dhuta 頭陀"는 "번뇌의 티끌을 떨어 없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으며 
  맑은 마음으로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일"이라고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데...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알아 보면
  
  "불교 佛敎"는 <대승불교 大乘佛敎>와 <소승불교 小乘佛敎>로 대별되죠.
  <석가모니>의 불교는 처음엔 <소승불교 小乘佛敎>였습니다.
  <소승불교 小乘佛敎>는 "끊임없는 자기수행"으로 해탈의 경지로 가는데 역점을 두고
  <대승불교 大乘佛敎>는 <소승불교>로는 우선 당장 먹고 살수 없으니 "포교활동"을 해 
  중생을 구제하여 함께 해탈의 경지로 가자는데 역점을 둔것이죠.
  
  그래서  <소승불교 小乘佛敎>는 "자기수행"을 위해서 심산유곡 속으로 들어 갔고
  <대승불교 大乘佛敎>는 "포교활동"을 위해 도시로 나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두타 dhuta 頭陀"는 <소승불교 小乘佛敎>가 추구하는 목표라 할수 있습니다.
  요즘은 스스로 수행하는 <소승불교>는 거의 몰락하고, <대승불교>가 대세를 이루고 있죠.
    


    ['강원평화누리길10코스']          10:36           
  <옛 두타사터>를 지나면 <강원평화누리길10코스>로 연결되는 출입구가 있는데
  통행 할수 없고




    ['징검다리']             10:37         
  이어서 <사태천>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만나는데,  비가 조금만 내려도 건너기 어렵겠습니다.
  


    ['비득고개' 방향 조망]                     
  상류를 조망하는데 느낌은 북쪽인듯 하지만, 북동쪽이더군요.
  <어은지맥>과 <성골지맥> 사이 <비무장지대>에서 흘러 내리는 계곡물은 정말 깨끗합니다.
  하지만 <비무장지대>가 가까이 있으니 요즘 세상이 더욱 하수상 하게 느껴집니다.
    


    ['두타연' 방향 조망]              
  하류 방향엔 <두타연>의 하일라이트인 <두타정>과 <두타폭포 전망대>가 보이며
  그 뒤로 주차장에서 보았던 <통일기원바위>도 조망되는군요.
    
 


    [전망대]            10:41        
  <징검다리>에서 200여m 숲길을 진행하면 <두타연전망대>가 있는데
  숲이 우거져 폭포는 잘 보이지 않고
  


    ['두타정' 조망]                 
  건너편 <두타연전망대>와 <두타정>은 보이는데 잠시후 저곳으로 건너가 조망하겠고...


       

    ['샛길']             10:43          
  전망대에서 100m 정도 더 진행하면 이런 "주의" 안내판을 만납니다.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아닌데 비가 오거나 하면 위험 할수 있으니 출렁다리를 이용하라고 하니
  "금지"는 아니니 아주 가까이서 보기 위해선 여기로 들어 가 봐야 겠다고 생각해 들어 가 봤습니다.
    
 


    ['두타폭포']                     
  속세와 떨어져 "자기수행" 하기엔 좋은 장소라 생각되는군요.
  



    ['두타교']              10:47         
  다시 트랙킹코스를 따라 조금 더 내려 가면 "출렁다리"인 "두타교"를 만납니다.
    


    [조망]               
  다리 중간에서 <두타연> 방향을 조망하는데 <두타폭포>는 보이지 않고



    [조망]                   
  <수입천>으로 흘러 가는 하류도 바라보고 건너 가면...
   


    [전망대]            10:50      
  또 다른 전망대가 있는데

 

    ['박수근 그림 항아리']               
  "박수근 그림 항아리"에 대한 안내판이 있습니다.
  아무리 항아리에 넣어 숨겨 놨다지만 종이에 그린 그림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을까?




    ['지뢰체험장']            10:51           
  "지뢰 체험장"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체험 할게 없다고 해도 "지뢰까지 체험해?" "그렇게 죽고 싶어?" ㅋㅋ
  "지뢰 체험하고픈 분 계세요?"  ㅎㅎ
  
  관계자들은 이런 단어 하나 쓰는데도 신중해야 합니다.
  꼭 쓰고 싶다면 "지뢰 위험성 알림장"으로라도 바꾸세요~~
    


    ['전망대]              10:52      
  "소지섭의 길"
  또 다시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엔 <소지섭의 길> 안내판이 있군요.
  <소지섭>이 영화촬영차 왔다가 경관에 심취해서 수필 화보집을 냈다죠?
  <양구군>이 그걸 보고 <소지섭의 길>이라고 관광홍보를 한다고...ㅎ
  



    ['두타폭포' 조망]                  
  <두타폭포>와 <두타연>을 가운데 두고 한바퀴 도는 코스라는 걸 알수 있습니다.
    




    ['두타폭포' 조망]                   
  가까이 다가 가서 다른 각도에서 다시 <두타폭포>와 <두타연>을 조망하고
  <두타정>으로 올라 갑니다.
    


    ['두타정']            11:03         
  <두타연> 위에 정자가 하나 있는데 이름하여 "두타정 頭陀亭"입니다.
  조금 전에 지났던 <두타사 옛터> 바로 옆에 있습니다.




    ['두타폭포' 상부]                      
  <두타폭포> 상부를 바라보고
  


    ['두타폭포' 중앙부]                     
  낙차 큰 절벽폭포가 있던 자리는 오랜 침식작용으로 골이 패여 폭포다운 면모를 많이 잃고
    


    ['보덕굴']              
  <희정선사>가 수행했던 "보덕굴"이 바로 옆에 있으며...
    
 

    ['두타연']                   
  진짜 "두타연 頭陀淵"이 펼쳐지는군요.
  폭포가 폭포로서 위용이 사라지니 폭포수가 떨어지며 만들어 낸 웅덩이를 지명화 했다고 보이는군요.
  "연못 연淵"이니 
  


    [출구]             11:05    
  45분 정도 <두타연 트랙킹코스>를 돌아 보고 주차장으로 나가면 <열목어>가 <두타연>의 상징으로 있고
  버스를 타고 <금강산 가는 길 매표소>로 돌아 갑니다.


       
    ['금강산 가는 길']             11:45     
  <두타연 출입신고소-매표소>로 돌아 가서
    
 


    [안내소 정문]                     
  <두타연 출입신고소-매표소> 부턴 "강원도 평화누리길 10코스"인 <두타연→두타연갤러리>를
  도보 답사 합니다.
  



    ['고방산리']                       
  '양구군 방산면 고방산리'를 34분여 진행하면
    



    ['두타연갤러리']           12:19         
  "두타연갤러리"에 도착하고



    ['고방산 사거리']                   
  <고방산사거리>에서 뒷풀이 장소가 있는 <협동교>까지 더 진행합니다.
   


    ['두타연터널']           12:21   
  <두타연터널>을 통과하면

 

    ['송현2리 버스정류장']           12:30    
  <송현2리 버스정류장>을 만나고



    [협동교']            12:32           
  이어서 <수입천>이 휘돌아 나가는 곳에 있는 <협동교>에 도착하여
    


    [뒷풀이]                    
  <삼겹살 항정살>과 각종 술을 무제한 제공하는 산악회는 <서울청마산악회> 뿐일겁니다. 감사 드리고...
  <강원도 평화누리길>을 모두 완주하고 많은 횐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뒷풀이를 했습니다



        "秋風辭"   
      "歡樂極兮哀情多  
       환락극혜애정다"
      
      "환락이 극에 달하고 나면 슬픈 정만 많이 남는다."
   .    
        제가 요즘 씹어 보고 또 곱씹어 보는 구절입니다.
        한(漢)나라의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한무제(漢武帝)가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강물에 배를 띄워놓고 
        신하들과 함께 흥겨운 잔치를 하다가 읊은 '추풍사 秋風辭'의 한 대목입니다. 
        
        황제가 누려본 환락의 극치는 무엇이었을까? 
        절대 권력의 쾌감이었을까? 
        궁궐 미인들과 누려본 성적(性的) 오르가즘이었을까? 
   
        슬픈 정(哀情)이 남지 않는 쾌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었인가?
        필자 '파란문'은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산으로 들로 바다로 함께 여행하는 것"이라고... 
        횐님들 건승하시고 담에 또 만나요~~
        
                 - 파란문-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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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16코스 울산바위 비경길』 
              미시령-미시령옛길입구-강원세계잼버리장-신평리-천진교차로-청간정
                       

        
            ['16코스 안내도']                   
       "강원도 평화누리길 16코스"는 <미시령>에서 <청간정>까지 가는 "16.8km"라고 합니다.



    ['16코스' 실트랙 지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오늘이 4월 하순인데도 "미시령 옛길"은 지난 겨울 폭설로 낙석위험이 있다고 4월말까지
  폐쇠한다고 해서 지도에 파란색으로 표기된 <미시령 옛길>은 생략하고 
  <미시령 옛길 입구>에서 <청간정>까지만 답사했습니다.

['미시령 가는 길'] "미시령"으로 갈때마다 홍천을 지날쯤 도로에 있는 길안내판이 눈길을 끌었는데.... (요건 제가 예전에 촬영한 것입니다) 얼핏보면 단순한 길안내 처럼 보이지만 지명을 연결해서 읽어 보세요. 이제 아셨나요? ㅎㅎ "지금까지 '속초'는 쓸쓸 우울했었나 봅니다." 그러나 "'속초'는 이제부터 신나게 되었답니다" ^*^
['미시령옛길 입구'] 10:04 2024년 4월 21일 일요일 비 후 흐림 겨울을 지나 봄까지 벼르고 벼르던 남은 숙제 두 구간 중에 하나인 <강원평화누리길 16코스>를 위해 <미시령> 진입을 시도했지만 4월말까지 <미시령 옛길>은 전면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왠만하면 "역순으로 올라 갈까?"라고 생각했으나 날씨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에 구름과 안개가 뒤섞여 한치 앞도 볼수 없으니 "이용복 산행(눈에 뵈는게 없는 산행)"을 할 어떤 이유도 찾을수 없어 <미시령옛길 입구>에서 <청간정>으로 바로 진행합니다. ['미시령'] 아쉬운 마음에 기억이라도 되살리기 위해 지난 12월 3일에 <15코스>를 하며 올랐던 <미시령> 사진을 리뷰하고 ['택당 이식선생의 미시파령'] "미시파령-택당 이식" <미시령>을 노래한 최고의 한시라는 "택당 이식"선생의 글을 소개합니다. <택당 이식선생>에 대해서는 지난 <17코스 답사기>에서 이미 소개한바 있습니다. 한번 더 언급하면 <택당 이식 선생>은 조선 <선조><광해군><인조> 때에 활약한 인물이죠. 특히 <홍길동>의 저자 <교산 허균>의 제자로 유명하며, 그후 <송강 정철>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수정선조실록>을 집필한 인물로 유명하며,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킨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습죠. 윗 글은 선생이 이곳 <고성현감>으로 재직 할 당시 <미시령>을 넘으며 쓴 글이라고 합니다. ['미시령'에서 조망] 지난 겨울 <15코스> 할때 <미시령 정상>에서 바라본 <속초> 방향입니다. ['신선암' 조망] 이 사진은 지난해 9월 승용차를 타고 <미시령 옛길>을 내려 가며 촬영한 사진입니다. 좌측 <신선암>이 보이는데 저 바위 뒤에 <수암>과 <화암사>가 있죠. <울산바위 조망처>로는 최고 명당이라고 하는 <신선암>입니다. <영랑호>까지 선명히 조망되며 <미시령옛길>과 터널로 연결되는 신도로도 선명합니다. ['울산바위'와 '달마봉' 조망] (지난해 9월 촬영한 사진) 이 경관 때문에 붙여진 이름 "울산바위 비경길"인데 지난 사진으로 추억하고 ['울산바위' 조망] (지난해 9월 촬영한 사진) <강원평화누리길 17코스>의 하일라이트인 "울산바위전망대"에서 이 사진을 촬영한 것입니다. "울산바위"에 대한 전설은 대부분 아시지요? <금강산>이 전국에 있는 멋지다고 뽐내는 바위들을 뽑겠다고 방을 내었더니, <울산>에 있던 저 바위도 참가하러 <금강산>으로 갔는데, 몸집이 너무 커 늦게 도착했다지요. 헥헥거리며 도착했는데도 이미 일만이천봉을 모두 뽑고 난 후여서 지각으로 불합격하고 '울산' 고향으로 되돌아 가려고 했으나 돌아 가면 고향 사람들에게 챙피 당할까봐 고향으로 돌아 가는 도중 이곳에 주저 앉아버려 "울산바위"가 되었다는 전설.....ㅎㅎ (지금도 설악산 해설사들이 관광객들에게 써 먹고 있는 얘기입니다. ㅎ) 그러나 "울산바위"는 영남의 "울산 蔚山"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한자도 틀림니다. "鬱山바위"의 "鬱"은 <울타리 "울鬱">로서, "설악산의 울타리" 역활을 하는 바위라는 뜻이니, 정설부터 먼저 알고 전설은 재미로 믿읍시다. ['백두대간' '상봉전망대'에서 '울산바위' 조망] 참고로 2017년 9월9일에 촬영한 사진인데 <백두대간 상봉>으로가는 전망봉에서 <미시령옛길>과 <울산바위>...그리고 <화채능선>까지 조망 [미시령옛길 입구'] 10:06 <미시령옛길 입구>에서 <청간정>을 향해 바로 출발합니다. <청간정>이 있는 <천진>까지는 "10km"라고 알려 줍니다. 100m쯤 진행하면... ['데델피노' 삼거리] 10:08 <소노문 델피노 리조트> 후문 입구 삼거리를 만나고 ['잼버리로']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로 우중충해진 거리를 환하게 밝혀주는 영산홍이 새로운 감흥으로 다가오며 20여분 <잼버리로>를 진행하면.... ['화암사' 입구] 10:29 "화암사 禾巖寺" 제법 유명한 절이죠? <쌀 화禾>자와 <바위 암巖>을 사용하는 절인데 절간 앞에 있는 <수암 秀巖>의 본명이 <화암 禾巖>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쌀이 쏟아져 나오는 바위"라는 의미입니다. 중들이 바위에서 쌀이 나오자 더 많이 나오게 구멍을 더 크게 뚫었더니 쌀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답니다. 과유불급의 상징적인 바위와 절간... ['17회 세계잼버리대회 본부'] 10:38 <화암사 입구>에서 다시 10여분 더 진행하면 <17회 세계 잼버리 본부> 앞을 지나는데 ['반달곰'] 강원도의 상징인 반달곰이 나그네를 반겨주고 [캠핑장] 옛 잼버리대회장은 현재 캠핑장으로 이용되고 있군요. 10여분 더 진행하면... ['통일교차로'] 10:49 <통일교차로>를 지나 갑니다. 길찾기는 매우 쉽습니다. 길바닥에 그려진 파란색선만 따라 가면 되니까 ['고성대로'] 10:51 이어서 <서울-양양고속도로>에서 <고성>방향으로 연결된 <고성대로>를 만나고 ['신평교차로'] 10:58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의 교차로를 지나 ['잼버리 동로'] <잼버리 동로>를 따라 10여분 진행하면.... ['포유리조트'] 11:09 <포유리조트>를 만나고 ['대순진리회 토성수련원'] 11:23 이어서 <대순진리회 토성수련원> 앞을 지나 갑니다. [삼거리] 11:24 <대순진리회>를 지나자마자 바로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회전해서 20여분 진행하면... ['신평1 교차로'] 11:44 <신평1리>와 <인흥리> 교차로를 지나고 [조각품] 조각 전시장을 지나면 ['천진교차로'] 12:10 <7번국도>가 지나는 <천진교차로>를 만나는데, 직진하면... ['옛 토성청소년 문화의집'] 새로 건설중에 있는 <토성청소년 문화의 집> 안으로 들어 갑니다. [공사중] <해파랑길> 할때엔 길이 분명했는데 공사중인 <토성청소년 문화의집>을 통과하여 데크로 올라 갑니다. ['해변'] 해안철책이 없어진 청간정 해변 데크를 진행하는데 해안철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비교하면... ['옛 해안철책']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해안철책과 해안초소가 있었는데 비교됩니다. ['청간정' 조망] <청간정>을 조망하며 <청간정>으로 들어 가면... ['청간정'] 12:25 "청간정 淸澗亭"에 대해선 지난 <17코스 답사기>에서 자세히 알아 보았기에 생략하고 ['청간정해변'] 12:28 <청간정해변>에서 답사를 마칩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약12km였으며, 2시간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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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8코스 화천 평화의 길』
             화천 비수구미와 평화의 댐 
                      해산령-비수구미 계곡-비수구미-평화의 댐
                       

        
            ['8코스 안내도']                   
       "강원도 평화누리길 8코스"는 <한묵령>에서 <북한강>을 건너는 <안동철교>를 건너
       "평화의 댐"까지 가는 "12.5km" 구간이라고 합니다.
       
       <강원평화누리길> 총20개 코스 중에 아직까지 개통되지 못한 곳이 2개 구간이 있는데
       <8코스 화쳔평화의 길>과 <10코스 두타연길>입니다.
       하지만 이 두 구간은 <민통선> 안을 통과하는 곳이어서 아직까지 개통을 못하고 있답니다.
  


    ['화천 풍산리 삼거리']            9:20    
    2024년 2월 18일 일요일   맑은 후 흐림    
  오늘은 <8코스 화천 평화의 길>의 대체코스를 답사하려고 이곳 <화천읍 풍산리> 삼거리에 도착했는데
  이 삼거리는 지난 <7코스 한묵령>으로 가는 직진길인 <한묵령로>와  우측 <평화의 댐>으로 가는
  <460번지방도-평화로>가 분기하는 삼거리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위성지도를 편집해 보여 드리면....



    ['8코스'와 대체코스 지도]                  
  오리지날 <8코스>는 지도에 빨간색 선으로 표기한 <한묵령>에서 <평화의 댐>까지 입니다.
  <현위치>가 윗 사진에서 보는 삼거리이며 대체코스 출발점으로 <해산터널>을 지나 <평화의 댐>으로 
  가는 "22km" 거리랍니다.



    ['해산가든' 앞]                    
  <현위치 삼거리>에는 <해산가든>이라는 매점과 휴게소가 있는데, <평화의 댐>까지 "22k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간은 <해발 700m급>의 <해산령>을 올라야 하는 체력소모가 많은 구간이고
  또한 오늘 안개와 쌓인 눈으로 힘들거 같아 버스로 <해산령>까지 약20여분이 걸려 이동하였습니다.
  


    ['해산터널 앞']              9:40         
  "해산터널"은 <'제안산 在安山 1060m'>과 <'해산 日山 1194m'> 사이에 있는 터널로 
  1990년 개통 될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징 긴 터널로 "1.98km"라고 합니다.
  "해산령 日山嶺"은 이 터널 윗 고개입니다만 이곳에 정상석을 세워 놨군요.
  이곳의 해발은 약700m 정도로 쌓인 눈의 높이가 해발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해산령 휴게소']                 
  <해산터널>을 통과하면 좌측엔 <해오름휴게소>라는 음식점 겸 숙박업소가 있으며 주차도 할수 있어
  <비수구미>를 다녀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비수구미 입구']                     
  휴게소 건너편엔 "비수구미"로 가는 입구가 있는데 "6km"라고 알리고 있으며
  좌측 <460번지방도-평화로>는 <평화의 댐>으로 가는 자동차 도로로 "아흔아홉구빗길"이라고 하는데 ..

     
         『비수구미 트렉킹 코스』


    ['비수구미 트렉킹 코스']              
  윗 지도의 <초록색 도로>가 <아흔아홉구빗길>로서 좀 위험한 꼬불꼬불 도로를 통과해야 합니다.
  빨간색 선으로 표기된 코스가 오늘 제가 진행한 "화천 비수구미 트렉킹 코스"로 
  "KBS인간극장"에 방영되어 유명해진『비수구미 마을』을 통과하여 <평화의 댐>으로 가는 "11.6km"입니다.



    ['비수구미 출입문']            9:42       
  저는 두번째 방문인데 예전엔 큰 문은 잠겨 있었고 좌측 샛문을 통과해 내려 갔었습니다.



    [뒤돌아 본 '해산령']                
  <비수구미 출입문>을 통과하여 뒤돌아 본 <해산령>이고    
    

  
    [내림길]         
  <비수구미 마을>은 1,200m급 <해산>이 만들어 내는 첩첩산중 계곡이 <화천댐>으로 인해
  완전 고립되면서 <화천>에서 배를 타고 <파로호>로 가야 갈수 있는 육지 속의 섬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자동차가 다닐수 있는 도로가 있어 "산간오지"라는 명칭은 이젠 어울리지 않습니다.
  
  해빌 700m급의 계곡이어서 비포장도로는 하얀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데
  30여분 미끄러지며 내려 가면....



    [다리]            10:13          
  첫번째 다리를 건너고
  


    [흔적]            10:18       
  주변엔 화전민들이 살았던 흔적이 보이기도 하는데....


  
    [내림길]                    
  다시 10여분 더 내려 가면...




               
                     ['과부터골']            10:24        
    "과부터골"
    <6.25한국전쟁>으로 남편 잃고 자식 잃은 과부들이 어디 한두명이었겠습니까...
    기델데 없는 그 여인들 중에 오로지 목숨 부지를 위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 화전을 일구며 
    모진 목숨을 연명하던 아홉명의 여인들이 살았던 곳이랍니다.
    남편이 없으니 자손을 잇지 못하고 사라져 간 그 여인들이 이 계곡에서 서성거리는듯 하군요.
    정치권력들이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저지른 전쟁이 만들어 낸 죄없는 비극의 여인들....
    그 여인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메이는군요.
    

  
    [내림길]                      
   <과부터골>에서 15분여 내림길을 더 내려 가면....
  



    [다리]             10:39              
  계곡은 점점 계곡 다워지며 폭포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비수구미>까지 "2km"만 더 가면 된다고 예쁜 강아지가 빼꼼 내다보며 알려 줍니다. 
  그러니까 <해산령>에서 "4km"를 내려 왔군요.
    



    ['차량 차단기]             10:52          
  길은 점점 평탄해 지고 계곡은 제법 개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는데
  비포장길을 다시 13분여 더 내려 가면




    [마을 입구]             11:00           
  <비수구미 계곡>이 계곡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눈은 녹아 잘 보이지 않으니 낮아진 해발을 느낄수 있습니다.
  드디어 <미수구미 마을> 입구를 통과하면....
  


    [집]             11:08    
  단 세가구가 산다는 <미수구미 마을>의 첫번째 주택을 지나면
    


    ['비수구미 이장집']             11:13     
  "KBS인간극장"의 주인공들이 사는 "비수구미 이장집"을 만나게 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들 며느리가 눈코 뜰새 없이 일을 한다는데....
   
   할아버지가 또한 엄청 유명해진 분인데, 이곳에 자생하는 이름 모를 예쁜 꽃을 취미로 키웠는데
   <국립광릉수목원>에만 있는 멸종위기의 세계적 희귀종인 "광릉요강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광릉수목원> 직원들이 나와 확인하고 국가 예산으로 엄청 큰 수목원을 만들어 주었답니다.
   그래서 요즘은 <광릉요강꽃>이 많이 번식되어 일반인들도 쉽게 만날수 있게 되었답니다.
 
              
                 ['광릉요강꽃'] 
         <식물학백과>에서 인용합니다.
      "광릉요강꽃, 영문명 Korean lady's slipper"
     우리나라 자생식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꽃을 가진 식물로 일컬어질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여러해살이 난초이다. 곰팡이가 뿌리에 공생하여 난균근을 형성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이식과 재배가 매우 어렵다. 경기도, 강원도, 충청북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등지에 매우 드물게 
     자라며, 세계적으로는 일본과 중국에 분포한다. 무분별한 채취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멸종위기에 놓여 있고,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세계 적색목록에도 
     위기(EN, endangered) 범주에 등재되어 있다.
     
  <광릉요강꽃>의 영문명이 재미있는데, " Korean lady's slipper" 한국여인의 슬리퍼라고 해석되는군요.ㅎ
  원래 "요강"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영문명으로는 "슬리퍼" 같다고 하는군요.
  특히 "한국여인의 슬리퍼" 같다고 한 이유가 뭔지 각자 상상해 보세요. ㅎㅎ
    
 


    ['이장집']                  
  봄부터 가을까지 <화천군>이 운영하는 <파로호 유람선>이 <화천댐>에서 <평화의 댐>까지 운행하며
  이곳을 들려 가는데, <산채비빔밥>을 제공하는 음식점으로도 유명해져 엄청 돈을 벌고 있다는 집입니다.
  요즘은 <파로호>가 얼어 유람선이 다니지 못하고 육로엔 눈으로 통행이 불편하여 손님이 없기도 하고
  특히 요즘은 <고로쇠> 채취로 매우 바빠 음식점은 쉬고 있다고 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아주머니가 며느리라는데 4월부터 다시 영업한다고 합니다.
  


    [다리]         
  이장집에서 <도토리묵>에 막걸리라도 한잔 하고 싶었는데 못하고 다시 다리로 나가면서


       
    [현수교 조망]                      
  <비수구미 계곡물>이 <파로호>에 합수하는 곳을 바라보면 <현수교>가 보입니다.
    
 

    [갈림길]             11:18        
  갈림길에서 <현수교> 방향으로 진행하면...
  



    [현수교' 통과]           11:20           
  <비수구미 트렉킹코스>의 하일라이트인 <현수교>를 건너 갑니다.
    


    [이장집 조망]               
  다리에서 점점 더 부자가 되어 간다는 이장집을 조망하고




    [다리]                   
  산 옆구리에 <평화의 댐>으로 가는 "비수구미 트렉킹코스"로 조성한 길을 잠시 진행하면....
   


    ['비수구미']              
  "비수구미"의 眞景이 펼쳐집니다.
  <비수구미>라는 지명의 유래는 몇가지 설이 있더군요.
  
  한자로 "飛水口尾"로 쓴다는 설도 있고, "秘水口尾", "非水口尾"라는 설도 있더군요.
  첩첩산중 계곡이  <화천댐>으로 <북한강>이 <파로호>를 이루어 "육지 속의 섬"이 되어 버린 곳이어서
  "파로호 물길의 들머리이자 날머리"로서 아름다운 물의 나라를 의미한다고 여겨집니다.

 





    [트렉킹 코스]                       
  산 옆구리에 조성된 트렉킹코스를 따라 15분여 진행하면....

 


    [전망대에서 '파로호' 조망]              11:34               
  전망대를 만나는데 "파로호 破虜湖"가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러시아 정벌을 목적으로 에너지 확보를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수력발전용 댐인 <화천댐>을 건설하면서 만들어진 호수이므로 <화천호>라고 해야 하는데
  6·25전쟁의 화천전투 때 북한군과 중공군 수만 명을 수장(水葬)한 곳이라 하여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破虜湖"라고 명명하였답니다.
 



    [산허릿길 끝]            11:41         
  20여분 걸리는 산허릿길이 끝나면....
  


    [비포장도로]           11:42       
  비포장도로 수준의 <파로호 수변길>을 만나고




    ['파로호' 수변길]                  
  20여분 수변길을 진행하면....
  



    ['평화의 댐 공원' 조망]            12:00          
  <평화의 댐> 하부 공원인 <국제평화아트파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종점입니다.
  가깝게 보입니다만, 좌측으로 깊은 계곡을 돌아 가야 해서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차량 차단기]             12:07            
  좌측 계곡으로 들어 가면 차량 차단기가 있고
  



    [도로 삼거리]             12:20         
  도로로 올라 가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비수구미 들날머리"이기도 합니다.
  <비수구미>를 가려면 여기서 가는게 훨씬 가깝고 쉽겠습니다.
  <비수구미 2.7km >이고 <평화의 댐 2.1km >라고 알려 줍니다.
  


    [도로]                       
  삼거리에서 도로를 따라 15분여 진행하면....



    ['평화의 댐 오토캠핑장']            12:36     
  <평화의 댐 오토캠핑장>을 만나고
    


    [캠핑장 입구]                 
  이어서 <평화의 댐> 아래 캠핑장 입구를 만나며
    


    ['평화나래교']           12:40         
  <평화나래교>를 건너 갑니다.



    ['평화의 댐']                      
  다리를 건너며 <평화의 댐>을 조망합니다.
  사진엔 댐 가운데가 뚫린듯 하지만 입체적 그림일 뿐입니다.
  
  댐의 목적은 홍수조절이라던가, 물을 가두어 발전에 사용하거나, 농업-생활용수로 이용하기 위함이죠.
  그런데 <평화의 댐>은 수문이 없는 독특한 댐인데, 대신에 배수구가 다섯개로 터널이 뚫려있습니다.
  그러니까 물을 가두는 기능이 전혀 없는 이상한 댐인데, 북한 <금강산댐>이 붕괴되거나 폭파되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 오는 물의 흐름을 완충시키는 역활을 하는 것 뿐이죠.
    


    ['평화나래교' 통과]                   
  <평화나래교>를 건너 가면....



    ['국제평화아트파크']             12:49                     
  "국제평화아트파크" 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F-5전투기']                    
  <'F-5전투기'>는 현재도 우리 공군이 개량하여 사용하는 전투기라고 하는군요.
  하지만 요즘도 간혹 고장으로 추락하는 뉴스를 접하죠.
  
  "이카루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죄를 지어 감옥에 갖혔는데 밀납으로 만든 날개를 붙이고
  탈출했으나 너무 높이 날아 태양열에 의해 밀납 날개가 녹아 떨어져 죽었답니다.
  전투기에 "이카누스"를 상징적으로 사용하기엔 좀 그렇죠?
  


    [평화 조형물]                      
  "평화"를 강조하는 조형물들이 있는데.....
  탱크의 포신은 "평화의 나팔"로 묘사하고, 탱크 위엔 "평화의 비둘기"가 날고....
  손에 손 잡고 함께 사는 세상을....



    [주차장]            12:52~1:12    
  주차장으로 올라 가 식사를 하는데 점심을 제공하는 유일한 산악회라고 생각되는 <청마산악회>는
  특히 전라도 토종 밑반찬이 진미입니다. 소주 맥주 막걸리는 무제한 제공하니 애주가들은 환호하죠?




    ['국제평화아트파크' 조망]             
  평화 조형물을 주차장 전망대에서 다시 감상합니다.
  하늘로 솟은 금속 막대는 "포신"이군요.



    ['염원의 종']             1:15      
  <평화의 댐> 하류에 세워진 "염원의 종"은 소리가 나지 않는 "나무"로 만든 종이군요.
  남북 분단의 아픔을 담아 울리지 않게 만든 슬픈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는데....
  침묵을 깨고 우렁차게 울려 퍼지길 학수고대합니다.
    


    ['파로호' 조망]                            
  <염원의 종> 전망대에서 <파로호>를 조망하고....



    ['평화의 댐' 조망]              
  <평화의 댐>도 다른 각도에서 조망합니다.
  
       "물을 저수하지 않는 이상한 댐"
       "북한 금강산댐이 붕괴 될때 완충 역활만 하기를 기다리는 괴상한 댐"




    ['세계평화의 종공원']             
  <평화의 댐> 근처엔 수많은 종이 설치되 있습니다.



    ['평화의 댐']              
  <평화의 댐> 상부 도로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출발합니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11.6km"였으며 약3시간이 걸렸습니다.

 
               가까운 길이 있는데도 
               멀리 돌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인생이란 먼 길을 도는 것.....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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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20코스 화진포석호둘레길』
      고성통일전망대와 화진포둘레길을 가다 
     고성통일전망대-화진포둘레길입구-원당리-죽정리-이승만별장-이기붕별장-화진포금강소나무
     
    
                『고성 통일전망대』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2024년 2월 4일 일요일   흐림      
  <강원평화누리길>의 마지막 코스인 <제20코스 화진포석호둘레길>을 가기 전에 <통일전망대>를
  먼저 관광하고 가기로 합니다. 몇번 다녀 온바 있습니다만....
  
  전망대로 가기 위해선 이곳 "마차진"에 있는 <출입신고소>에서 입장료와 주차비를 내고 
  간략한 안내 영상 관람을 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전망대가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전망대 주차장']          10:56~12:15       
  <마차진>에 있는 <출입신고소>에서 <고성통일전망대 주차장>까지 약15분이 걸려 도착했습니다.



    [전망대 입구]                  
  전망대로 올라 가는 도보코스는 막아 놨군요. 전에는 가운데 길로 올라 갔는데....
  
  이곳엔 장승이 세워져 있는데 남장승은 "고성 금강산 대장군"이라 하고, 
  여장승은 "청양 칠갑산 여장군"이라고 하는데,  서로 결혼했답니다. ㅎ
  <청양>에 살던 여장승이 어찌하여 최북단 이곳 <고성>까지 시집 왔는지에 대해선 설명이 없더군요.
  재미있는 사연이 있을 듯 한데...



    [오름길]                    
  주변 볼거리에 대해선 이미 제가 쓴 답사기가 있으니 생략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부록>을 참고하시고
  전망대로 바로 올라 갑니다.
  


    ['F86F Sabre']                       
  기존 답사기에 쓰지 못한 전쟁 유물이 하나 있어 언급합니다.
  이 전투기는 <6.25전쟁>때에 미군이 실전 투입한 제트 전투기라고 안내합니다.
  
  "빨간마후라"라는 영화 기억하십니까? 무지 유명해서 저는 학창시절에 단체관람 한걸로 기억되는데....
  <신상옥씨>가 감독하고 <신영균씨>, <최무룡씨>, <최은희씨>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주연한 영화.....
  그 영화 "빨간마후라"의 실제 주인공은 배우들 보다 바로 이 제트 전투기였죠?
  그 당시 우리나라에 ['F86F Sabre']라는 사진에 보이는 전투기가 도입되어 공군의 자랑이 되고
  우리나라 정부는 이를 국민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바로 "빨간마후라"였죠.
  
  그 전투기를 조종하는 탑건들이 "빨간마후라"를 하고 작전을 한다고 그 공군부대 이름이 "빨간마후라"였고
  그 때의 무시무시했던 제트전투기를 요즘 전투기와 비교해 보면 장난감 같은데... 
  그래도 1960년대 이후 한동안 우리나라 하늘을 지키던 그 유명했던 "빨간마후라"의 전투기를 만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구 통일전망대']                 
  "구 통일전망대"는 폐쇄했는지 잠겨있고....
  그렇게 멀지 않은 예전엔 여기서 북녁을 조망해서 더 친숙하게 느껴지지만



    ['신 통일전망타워']                     
  이젠 새롭게 멋지게 웅장하게 "DMZ"의 "D자" 모양의 전망대가 우뚝 세워졌습니다.
  7~8년 전에 제 친구가 여기 소장을 해서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와 본적도 있는데 ...^.^
  


    ['구선봉-해금강'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전망대에서 최고의 볼거리는 바로 이 경치입니다.
  <송도>와 <구선봉> <해금강>이 펼쳐지는데....
  여기선 <선녀와 나뭇꾼>의 전설이 깃든 <감호>가 보이지 않아 2019년에 <금강산전망대>에서 촬영한
  다음 사진을 보여 드림니다.



    ['금강산전망대'에서 바라 본 '구선봉-감호-해금강']            
  이 사진은 제가 2019년에 <금강산전망대>에 올라 촬영한 사진입니다. 많은 도음이 될것입니다.
  
  먼저 "구선봉 九仙峰"이 눈에 확 들어 옵니다.
  <구선봉>은 <금강산>의 동쪽 끝 봉우리라고 하며 "해금강 海金剛"을 감싸고 있습니다.
  아홉명의 신선이 바둑을 두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했다는 岳山인데
  분단의 아픔과 함께 북한군 포진지가 바위 사이 사이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설치되 있었답니다.
  얼마전 남북 화해무드가 생기면서 포 진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감호 鑑湖"
  <구선봉>을 호숫물에 담고 있는 그 유명한 "감호"를 직집 알현합니다.
  "선녀와 나뭇꾼"이라는 전설이 탄생된 곳이라며, "거울 鑑"자를 사용하는 "감호 鑑湖"인데 
  선녀가 하늘로 올라 가면서 자기 거울을 떨어뜨려 호수의 모양이 선녀의 거울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선녀의 옷을 훔친 나뭇꾼은 어디로 갔나~~ 그 선녀가 다시 내려 올듯 완벽하게 보존된 "감호"가
  남북통일의 그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는듯...

  조선 3대 문인 중에 한분인 "봉래 양사언"선생이 절경에 취해 집을 짓고 머물렀다고 하는 "감호"입니다.
  "봉래 양사언" 선생은 금강산을 너무 좋아해서 "철원 현감"으로 자원해 철원에서 근무하며
  수시로 금강산 유람을 한것으로 유명하죠. 
  그래서 "여름 금강산"의 별칭인 "봉래산 蓬萊山"에서 따와 자신의 호를 "봉래 蓬萊"로 지었다죠.
  봄에는 "금강산 金剛山",여름엔 "봉래산 蓬萊山",가을엔 "풍악산 楓嶽山",겨울엔 "개골산 皆骨山"이라죠.
     봄에는 온 산이 새싹과 꽃에 뒤덮이므로  "금강산 金剛산"이라 하고, 
     여름에는 봉우리와 계곡에 녹음이 깔리므로  "봉래산 蓬萊山"이라 하고, 
     가을에는 일만이천봉이 단풍으로 곱게 물드므로  "풍악산 楓嶽山"이라 하고,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지고 나면 암석만이 앙상한 뼈처럼 드러나므로 "개골산 皆骨山"이라고 한답니다.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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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이 열린다, 평화를 걷는다』 
   [DMZ 평화의 길] "금강산전망대-통일전망대 방문기" 여기 클릭 

 
     
         『강원평화누리길 20코스-화진포둘레길』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제가 실제 진행했던 실트랙입니다. 원래 두개의 호수를 모두 돌아야 하는데 하나만 돌았습니다.
['응봉 등산로 입구'] ['화진포둘레길 출발지'] 12:30 <고성통일전망대>에서 이곳으로 이동하여 <강원평화누리길>을 시작합니다. 아곳은 <160년 수령 화진포 금강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금강습지> 주변이기도 합니다. ['화진포둘레길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강원평화누리길 20코스>는 "화진포둘레길"입니다. ['화진포 석호'] "화진포 花津浦""석호 潟湖"랍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모래톱이 생겨 둑을 만들어 생긴 호수를 어려운 단어 "석호 潟湖"라 하는데 동해안에 있는 호수는 대부분 "석호"라 하고... ['금강습지'] 12:35 <화진포> 좌측에 "금강습지"가 있는데 겨울이라 얼어있고 [둘레길] <화진포 둘레길>은 차량도 다닐수 있도록 너른 길이 조성되 있습니다 ['화진포 유래'] 12:41 "화진포의 유래"에 대한 안내판이 있는데 <이화진>이라는 고약한 사람과 그의 며느리에서 유래 한답니다. 그런데 이 유래는 너무 현실감이 없어 조사를 해 봤더니... <고성군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지명의 유래를 알리고 있는데 더 공감이 가서 안내합니다. 옛날 한 선비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마을이 나비형국이 되어 있으니 참 잘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지성있는 한노인이 '나비'가 있으면 '꽃'이 있어야 하는데 무엇이 좋다고 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선비가 '화진포'에는 '갈꽃'도 많이 피었더라 하여 그말을 듣고 농부들이 그 후 이 마을의 이름을 "화포(花浦)"라 불러 지금까지 불리어 오고 있답니다. ['산수통문'] 12:48 <산수통문 山水通門>이라는 펜션이 눈길을 끌고 ['화포습지' 입구] 12:54 <화포습지> 입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화포습지'] 12:58 "화포습지"가 있는데 뭔가 특징은 찾기 어렵고 ['원당리'] 1:00 이어서 '고성군 거진읍 원당리 源塘里'로 들어 갑니다. 지금까지는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를 지나 왔습니다. ['원당리' 통과] 1:05 <원당리 源塘里> 조그마한 마을을 통과하면.... [평야] "죽정리 竹亭里". '고성군 현내면 죽정리 竹亭里'의 평야가 펼쳐집니다. <태백산맥>과 <동해> 사이 척박한 좁은 호숫가에 이렇게 너른 평야가 있다는 것에 놀랐는데 <고성군청 홈페이지>에 이 평야에 대한 설명이 있더군요. 이 마을은 동북쪽으로 열산현(烈山縣)때의 고성산(古城山), 서북쪽으로 노인산(老人山) 정상을 경계로 마을 중산평야지대로 중평천이 화진포로 흘러 내려 마을 앞에는 문전옥답의 1,000석 두루가 있어 옛부터 재해가 없는 부촌으로 이름나 있다 [갈림길] 1:10 "중평천"인지 뭔지 개천을 건너는 다리를 하나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 <죽정리쉼터> 방향으로 가면 ['죽정리] <죽정습지>로 방향을 틀고... ['죽정습지'] 1:15 "죽정습지 竹亭濕地"를 만나는데 ['죽정습지' 통과] 관광객들을 끌기 위한 시설을 해 놨는데 볼거리가 있어야지 데크길만 만들어 놨군요. ['습지 출구'] 1:20 <죽정습지>를 벗어나서 ['죽정리' 통과] <죽정리>를 10여분 통과하면.... [삼거리] 1:32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풀코스>를 가려면 여기서 좌측 <죽정리쉼터>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하프코스>는 우측 <이승만별장> 방향으로 가는데 저는 하프코스로 갑니다. [고개] 금강소나무가 울창한 고갯길을 잠시 넘어 가면 <이승만별장>을 바로 만나게 됩니다. ['이승만 전대통령 별장' 입구] 1:38~1:50 "이승만 전대통령 별장" 입장료를 받고 있는데, 성인은 3,000원, 경로는 무료.... ['별장과 기념관'] 매표소에서 올라 가면 첫번째 건물이 <이승만 전대통령 별장>입니다. ['이승만 전대통령 별장'] 안내문을 참고하고 안으로 들어 가면... [응접실] 바로 응접실에서 <대한민국 제1대-2대-3대 대통령>인 <이승만대통령>과 <프란체스카여사>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하지만 그들은 이곳에 평생 단 한번 왔다 갔다죠? <배재학당>이 자랑하는 자기 학교 출신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배재학당> 시절 영어를 무척 잘했다죠 그래서 추천으로 지금도 가기 어려운 미국 <하바드대학>을 나와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박사"여서 그에게 따라 붙는 닉네임은 언제나 대통령보다 <이승만박사>였죠. 30살 연하의 <프란체스카 여사>와 스위스에서 만나 결혼하고, 그녀는 평생 그의 비서로 활동하여 낮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붙어 지내는 사이가 되었답니다. 요즘 갑자기 많이 회자되는 "마리 앙투아네뜨"가 태어난 <오스트리아>가 그녀의 조국이죠. <이대통령>의 본처 <박승선씨>는 아들도 낳았지만 호적에서 파내지며 이혼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프란체스카>와 결혼을 위한 것이었고, 서류 상으로 총각과 처녀의 결혼으로 만든 것이죠. <박승선씨>는 <6.25때> 한강을 건너지 못하고 북한군에 피살 당했답니다. [집무실] [침실] 제1대-2대-3대 대통령으로 권력의 정점에서 군림했지만 그도 이런 조그만 침대에서 잠을 자며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군요. ['응봉' 조망] 별장 앞에서 바라보는 <응봉>과 출발지인데 경치는 수려하군요. ['화진포생태박물관' 조망] 별장 정면으로는 <화진포생태박물관>이 조망되고 [기념관] 별장에서 나와 기념관으로 올라 가면... [시록물] 여러 기록물들이 전시되 있습니다. [기념관에서 조망] 기념관 아래에 있는 별장을 바라보며 내려 가면... ['화진포교'] 1:52 <화진포교>를 건너게 되고 ['화진포콘도' 정문] 1:54 지난번에도 들어 갔던 <화진포콘도>로 또 들어 갑니다. 그 이유는 <이기붕별장>을 최단거리로 가기 위한 것입니다. ['명태 조형물'] 2:00 <화진포콘도> 앞에 있는 <명태조형물>을 보고, 우측으로 <이기붕별장>으로 갑니다. ['이기붕 전부통령 별장' 입구] 2:03~2:07 <이기붕별장> 입구를 지나서 ['이기붕 전부통령 별장'] "이기붕 전부통령 별장"에 도착했습니다. 자세한 살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들어 가면... [집무실] 집무실을 먼저 만나는데 별장에 왠 집무실? 쉬러 와서 집무를 한다니 좀 그렇군요. 아마 관광용으로 설치 한것이겠죠? ['박마리아' 여사] 침실에는 "박마리아" 여사 사진이 걸려 있어 이채로운데.... 이 별장은 <박마리아>가 주로 이용한 별장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박마리아>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와 미국 <테네시주 네슈빌>의 <밴더빌트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당시 최고의 "신여성" 중에 한명이었죠. <이기붕>도 미국 유학을 가서 <아이오아주>의 <데이버대학교>를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생하며 다니고 있을 때 <박마리아>를 만나 약혼을 하고 귀국하여 결혼을 하게 되죠. 그리고 <박마리아>는 <이화여대 교수>가 되고 <이기붕>은 <국일관 지배인>으로 일하기도 했죠. 그후 <박마리아>는 <이기붕>을 최고의 권력자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국 부통령까지 만들었지만 마지막 대통령이 되는 결승선 앞에서 좌절하고, 아들 <이강석>의 총탄에 맞아 죽는 집단 가족 자살로 생을 마감했죠. 일제 청산을 위한 <친일반민족행위자처벌 특별위원회>를 까부수며 무력화 시킨 우리나라 최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중에 으뜸으로 "암닭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속담의 여인 중에 한명이 되었죠. 어찌 요즘하고도 비슷? ㅎ [침실과 사진] 침대 위에는 사진이 걸려 있는데 누구와 찍은 사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가족으로는 <장남 이강석> <차남 이강욱>이 있는데 원래 <장녀 이강희>가 있었는데 일찍 죽었다죠. <4.19혁명>이 일어 나자 <장남 이강석>이 가족을 권총으로 몰살 시키고 자신도 자살했죠. 무모한 권력욕은 비참한 최후를... [출입구] 2:08 <이기붕 별장>에서 샛길로 나와 [둘레길] 지난 <19코스>에서도 걸었던 <화진포둘레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종점] 2:17 출발지였던 <금강소나무> 앞 쉼터를 지나서 조금 더 가면... [주차장] 2:23 산악회 버스가 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며 횐님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약8.3km 정도이며 1시간 5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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