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치기 영월 도보여행』 『방랑시인 김삿갓 유적지 유랑기』['위성지도']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에 있는 <영월8경> 중에 <제4경>이라는 "김삿갓유적지"를 찾아 간다.
['영월역'] 10:07 2025년 5월 27일 (화) 대체로 맑음 지난 4월 30일에 <단종 유적지>와 <영월읍내>를 답사하고 한달여 만에 다시 <영월역>을 찾았다 <청량리역>에서 7시34분 열차를 타고 10시5분경에 <영월역>에 내렸는데 지난번과 같이 <김삿갓>이 나그네를 반긴다.
['영월 이야기'] <영월역> 앞에는 "영월지역 이야기"라는 안내판이 영월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는데... <영월역>에 붙어있는 <덕포시장>이 유명한 소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라고 안내하는데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는 <봉평 장터>에서 <평창의 대화장터> 가는 길이고 <영월>과는 거리가 멀다. <메밀꽃 필 무렵>에는 <영월><덕포시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슬기 해장국 식당'] <영월역> 건너편엔 <영월의 대표음식>이라는 "다슬기해장국집"이 나란히 성업중인데 지난번엔 <성호식당>이 재료소진으로 2시반경에 영업을 종료해 못먹고, 옆집 <다슬기한마당>에서 먹어서 이번엔 꼭 <성호식당 다슬기해장국>을 먹기 위해 다짐하고 왔다. 특히 <김삿갓유적지> 가는 버스가 11시 40분경에 있어 시간도 남아 돌아 여유있게 천천히 시식했는데 유명하다고해서 뭔가 다르겠지 했는데 옆집과 별반 차이점은 찾기 어려웠다. <동강다슬기><다슬기한마당><성호식당> 중에 한곳을 선택하면 무난 할듯...
['덕포리'] <덕포시장입구 덕포사거리> 버스정류장으로 바로 가려면 여기서 150m정도 직진하면 된다. <김삿갓문학관>으로 가는 버스시간이 남아 돌아 지난번에 구경했던 <동강>으로 나가 <금강정>등을 둘러 보고 <덕포시장입구>로 간다. 다슬기 식당에서 서쪽으로 조금 올라 가면 첫번째 골목을 만나는데 우측으로 들어 가면
['덕포4리'] <덕포4리>를 알리는 아치를 통과하여 건너편 제방 위 도로로 올라 가면...
['금강정' 조망] 지난번 <단종유적지 답사>에서도 만났던 <동강 東江>과 <영월>에서 최고의 절경을 자랑한다는 <금강정 錦江亭>과 <단종>이 처형 당하자 시중을 들던 시종과 하녀들이 스스로 자결한 <낙화암>이 아직도 그 슬픔을 알리는 듯 하고... <봉래산 별마로천문대>도 조망된다.
['라디오스타 박물관' 조망] <옛 KBS 영월 라디오 방송국>이었던 <라디오스타 박물관>도 보이고
['영월성당' 조망] 서쪽으로는 <영월성당>도 조망된다.
['영월대교'] <동강> 제방을 따라 150m 정도 진행하면 <영월대교>와 <영월읍내>가 한눈에 들어 온다. 건너편 <영월읍내>와 남쪽 <덕포리> 사이에 다리가 없던 시절엔 큰 나룻터가 있어서 그 나룻터 이름이 <덕포德浦(큰나룻터)>여서 이곳 지명이 <덕포리>가 되었다고....
['덕포사거리'] 11:45 <영월대교>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덕포사거리>를 만나는데, <덕포시장 입구>이기도하다. <김삿갓문학관> 가는 버스는 <영월터미널>에선 다음과 같이 있는데
<덕포시장입구정류장>에서는 <10번시내버스>가 "6:22, 8:42, 11:42, 14:22, 18:17"에 있다. 나는 <11시42분 버스>를 타고 갔다가 <3시10분 버스>로 나올 예정이다. 정시에 도착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약40분이 걸려 <김삿갓문학관>으로 간다.
['김삿갓 문학관 주차장'] 12:22 <10번버스>의 종점인 <김삿갓문학관 주차장>에 40분여 걸려 도착하여
['김삿갓 쉼터'] <김삿갓유적지>를 다녀와 <김삿갓문학관>을 관람하기로 하고 바로 유적지로 출발한다.
['노루목교'] 12:26 <문학관>에서 <유적지>로 건너는 다리는 <노루목교>인데 다리 난간을 "붓"모양으로 만든게 눈길을 끈다.
['김삿갓묘 입구' 조망] <노루목교>에서 <김삿갓유적지 입구>까지는 매우 가깝다. 이곳은 <강원도 영월군>과 <충북 단양군>의 경계가 되는 곳이기도 했다. 南으로는 <소백산>을 사이에 두고 <경북 영주>와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개천은 <마포천>으로 <백두대간 소백산>의 <고치령>과 <마구령> 등에서 내려 오는 개천이다. 그래서 <계유정란> 이후 <영주>로 유배 간 <세종대왕>의 막내 아들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며 <영월>에 유배 중인 <단종>에게 밀사를 보냈던 길이다. 밀사들은 밀서를 품에 안고 <백두대간 고치령>을 넘어 <영주>에서 <영월>을 오갔던 것이다. 이렇듯 이지역은 한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란걸 알수 있다.
['김삿갓 유적지' 입구] 12:29 돌탑이 있는 <김삿갓유적지 입구>로 들어 가면..
[詩碑] 먼저 만나는 詩는 유명한 <김삿갓>의 "開城人逐客詩 개성인축객시"라는 詩이다. 풀이를 하면 "개성 사람이 나그네를 내쫓다"인데..... 邑號開城何閉門 山名松嶽豈無薪 읍호개성하폐문 산명송악개무신 黃昏逐客非人事 禮義東方子獨秦 황혼축객비인사 예의동방자독진 이런 詩는 설명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죠? 간단히 설명하면... <김삿갓>이 <개성>의 <송악산>을 등정하고 내려 오며 어느 부잣집에서 신세를 좀 지려고 부탁하자 <뗄나무>가 없어 밥도 못짓는다고 문도 열어 주지 않으며 싸늘하게 문전박대를 하는 것이 아닌가 ! 성질 난 <김삿갓>이 詩 한수를 남기고 떠나는데... 그 뜻풀이를 하면 고을 이름이 개성(開城)인데 왜 문을 닫나 산 이름이 송악(松嶽)인데 어찌 땔나무가 없으랴. 황혼에 나그네 쫓는 일이 사람 도리 아니니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네 혼자 중국 떼놈일세.
['김삿갓 유적 공원'] <김삿갓 묘> 앞 입구엔 "詩仙 金삿갓 蘭皐先生 遺積碑" 가 세워져 있는 소공원이 있다.
['환갑'] 공원에는 누가 알려 주지 않으면 알수 없는 조형물이 있는데 제목이 "환갑 還甲" 이다. 披坐老人非人間 피좌노인비인간 疑是天上降神仙 의시찬상강신선 膝下七子皆盜賊 슬하칠자개도적 偸得天桃獻壽宴 투득천도헌수연 저기 앉은 늙은이 사람 같지 않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 온 신선 같구나. 슬하 일곱 아들들 모두 도둑놈들일세, 천도 복숭아를 훔쳐다 잔치에 올렸네. 황해도 산골 어느 노인의 회갑연에서 푸대접을 받으며 말석에서 술 한 잔 얻어먹은 김삿갓은 시(詩) 한 수로 좌중을 웃기고 울렸다는 詩다. 첫 연에서 "저기 앉은 늙은이 사람 같지 않다" 고 하자, 일곱 아들과 하객들이 어리둥절하며 축하는 못해 줄 망정 뭔 개소리를 지꺼리냐고 항의를 할 즈음에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구나" 하자, 완전 전세 역전되어 엄청난 칭송인걸 깨달으며 환갑노인은 입이 떡 벌어지며 감사의 인사를 한다. 분위기 좋아진 상황에서 다시 <김삿갓>은 시 한수를 더 읊는다. 둘째 연에서 "슬하 일곱 아들들 모두 도둑놈들일세" 라고 좋은 분위기에 물을 뿌리는 시를 읊자 좌중이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하며 얼굴들이 울그락 불그락 할때쯤 <김삿갓>은 다시 이어지는 詩를 덧붙인다. "늙은 부모에게 효도하려고 천도 복숭아를 훔쳐다 잔치에 올렸네" 라고.... 이 대목에서는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글솜씨가 모두를 놀라게 해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어떤가? 非人間과 神仙, 盜賊과 天桃(천도복숭아)를 일치시켜 좌중을 휘어잡은 솜씨가... 이 칠언절구 한 수로 김삿갓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윗 사진의 조형물은 그 상황을 형상화한 조각작품이니 설명이 없으면 뭔 의미인지 모르겠지요? ㅎ (천도 복숭아를 들고 있는 김삿갓이다)
[삼거리] 12:32~12:37 소공원을 지나면 바로 삼거리가 나오며 좌측길은 <김삿갓 주거지>를 가는 길이고, 가운데에는 <성황당>이 있으며 우측 다리를 건너면 바로 <김삿갓 묘>이다. <김삿갓 묘>는 <김삿갓 주거지>를 다녀와 가기로 하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김삿갓과 약수터'] 12:37 <김삿갓>이 나그네들에게 술을 따라주는 조각품이 있는 약수터가 있다. 1."난고 김병연 蘭皐金炳淵 (1807년4월22~1863년3월29일)"은 누구인가 <순조 7년> 그러니까 1807년 4월 22일에 태어나 <철종 14년 1863년 3월 29일>에 55년간의 파란만장한 유랑생활을 한 독특한 인물인데, 유랑생활을 하며 남긴 그의 詩文學으로 더욱 유명하다.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불리는 <蘭皐 金炳淵>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勢道大家 安東金氏 문중"에서 태어났다.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주역인 金炳冀, 金炳學, 金炳國 등과 같은 '炳'자 항렬이요, 그의 아버지 <김안근 金安根>은 荷屋大監으로 불리는 金佐根을 비롯하여 金汶根. 金洙根과 같은 항렬이며 할아버지 <김익순 金益淳>은 <23대 純祖>의 장인으로서 안동김씨 세도를 창시했던 "김조순 金祖淳"과 같은 항렬로 탄탄한 세도가 집안에서 "경기도 양주군 회암리"에서 태어 났다. 그토록 60년 세도가문의 한 허리에 태어나서 탄탄대로가 보장되었을 그가 세상을 등지고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조국산천을 누비면서 숫한 逸話와 名詩를 남기고 55세를 일기로 비운의 일생을 마친 연유는 그의 할아버지 "金益淳 사건" 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경래의 난'] 2.당시 조선의 정치상황을 알아 보면 개혁군주 <정조대왕>이 의문의 죽음으로 열살짜리 <순조>가 등극하면셔 개혁은 물 건너 가고 어린 <순조>를 업고 "안동김씨 세도정치"가 시작되며 매관매직, 가렴주구, 부정부폐, 강압정치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 지고 급기야 백성들의 반란이 빈번하게 일어 나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반란이 '평안도 북서부 지역'에서 일어 난 "홍경래의 난 洪景來 亂" 이다. <청천강> 이북의 <평안북도>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은 <조선 조정>의 지역차별에 대한 감정의 폭발로 일어난 엄청난 민란이었다. 위 지도에서 <선천>과 <가산>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김삿갓>의 할아버지인 <김익순>이 <선천>에서 <선천부사>및 <방어사>라는 최고위급 관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산>에는 "정시 鄭蓍"라는 인물이 부사府使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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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길] <김삿갓 주거지>로 올라 가는 길은 자동차도 다니는 제법 너른 길이었다. 길가에는 <김삿갓>을 칭송하거나 추모하는 詩들이 나열되 있다. 3.할아버지 <김익순 사건>의 전말 <김병연>의 할아버지 <김익순>은 <안동 세도가>의 일원으로 당시 좋은 자리였던 윗 지도에 나오는 <선천 지역>의 <선천부사및 방어사>로 부임해 가렴주구, 매관매직, 부정부폐를 일삼고 있을 때 <홍경래의 난>이 터졌는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홍경래>에게 항복을 한다. 한편 윗 지도의 <가산 지역>의 부사를 맡은 <정시 鄭蓍>는 끝까지 저항하다 반란군에 의해 처형된다. 반란 진압을 위해 파병된 관군에 의해 점령지를 수복하기 시작하며 전세가 역전되자 <김익순>은 반란군 농민이 벤 <홍경래>의 참모 <金昌始>의 목을 돈 천 량을 주기로 하고 사서 자기의 전공으로 위장하여 조정에 바치는데......이 거짓 전공은 곧 탄로난다 농민에게 약속한 돈을 주었으면 아무 탈 없이 무공훈장을 탈수 있었을 텐데, 돈이 아까워 농민에게 약속한 목 값을 주지 않음으로서 파렴치한 그의 죄상이 낱낱이 밝혀지며 "능지처참"을 당한다. "능지처참"은 사지를 찢어 발겨 죽이는 극형이다. 이와 함께 <김조순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연좌제로 <김삿갓 가문>까지 역적 집안으로 몰려 삼족을 멸하는 형벌을 받는다. 다행이 <안동김씨 가문>이라 <김삿갓 가문>은 목숨만은 부지 할수 있었다.
[삼거리] 12:45 입구에서 8분여 오르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 다리를 건너간다 우측으로는 <처녀봉>으로 가는 등산로라고 한다.
[오름길] "어둔골" 맑은 물이 흐르는 깊고 깊은 <어둔골> 계곡을 올라 간다. 1,000m가 넘는 준령들이 포위하고 있어 언제나 어둡고 냉랭한 계곡까지 피신한 <김병연 가족>을 생각하면 그들의 암울한 좌절된 삶이 어느 정도인지 훤히 느껴진다.
['마대산 등산로'] "마대산 馬垈山 1,051m" 등산로이기도한 오름길을 오르는데... <마대산>에 풍력발전 7기를 설치하는가 보다. 결사반대한다는 주민들의 플랭카드가 어쩐지 "우리에게도 뭘 좀 주라"라고 하는듯 하다. 왜냐하면 이 지역엔 인적없는 산골이기 때문에 풍력발전소를 세운다해도 주민 피해는 미미할것이기에
[삼거리] 1:06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다시 만나며 <김삿갓 주거지>는 우측으로 안내 된다.
['김삿갓 주거지' 조망] 1:08~1:13 <김삿갓 주거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4.역적 가문의 피난생활 역적은 삼족을 멸하는 연좌제여서 <김병연 가족>도 처형 위기에 몰렸지만, 다행이 <안동김씨> 가문이라 목숨만은 살려주어 피신 생활이 시작되었다. 빠까번쩍한 대궐같은 "양주 회암리"의 자택을 떠나 피난을 가는데, 이때 아버지 <김안근 金安根>은 홧병으로 죽어 버리고, 어머니 <함평 이씨>가 <황해도 谷山>을 비롯한 여러 곳을 유랑하다가 <경기도 광주-이천-여주>등을 전전긍긍하다가 첩첩산중 <영월 寧越>에 까지 찾아 들어 정착했단다. 그러니까 이곳은 그들의 피난처이자 미래를 꿈꾸는 곳이었다 할수있겠다
[주거지 전경] "김삿갓 주거지"에는 본채와 "난고당"이라는 사당이 있는데 요즘도 사람이 가끔 거주하는가 보다 지금이야 별장같은 멋진 심심산골 낭만적인 외딴집으로 보이지만 길도 없던 조선시대에 이곳에서 뭘하며 먹고 살수 있었을까
[본채] 5.어머니 <함평 이씨>에 대하여 어머니 <함평 이씨>는 사대부 집안 출신으로 여자지만 어려서부터 글을 익힌 新女性이었단다. 그렇기에 <안동 김씨 가문>으로 시집을 갈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나는 <신사임당>보다도 <김삿갓 어머니-함평 이씨>가 더 훌륭하다고 강력 주장한다. 역적 집안으로 몰려 풍지박살난 가정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산 넘고 물건너 이곳 <영월 어둔골>로 아들 셋 <장남 병하炳夏, 병연炳淵, 막내 병호炳湖>를 업고 걸리며 들어와 살기 위한 몸부림을 쳤단다. 멀리 떨어진 마을에 가 품삯을 벌고, 밭을 일구며 어린 자식 셋을 키웠단다. 사대부 집안의 마님이 이런 개고생을 해도 자식을 키우려는 그 집념은 하늘을 찌를둣 했겠지.... 그러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을 가르쳤단다. 형과 아우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병연>에게는 특별히 더 강력하게 글을 가르쳤고.... 당시엔 가문을 일으키려면 과거에 합격하는 방법 이외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난고당'] "난고당 蘭皐堂"에는 <김삿갓>으로 보이는 사진이 걸려 있고, 향로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동안 공부한 <병연>의 실력을 테스트 해 보기 위해 스무살이 되는 해에 <영월관아>에서 시행한 <향시-백일장>에 응시 하도록 한다. <향시-백일장>은 과거시험과는 다르다. 지방 무명 유생들에게 학업을 권장하기 위하여 각 고을 단위로 글 짖기 대회를 여는 일종의 地方科擧와 같은 것이었단다. 합격하더라도 관직을 바로 얻는 것은 아니고 한양과거시험의 예비고사 정도였단다. 6.운명을 바꾼 영월 향시 어머니의 간곡한 권유에 떠밀리어 영월 백일장에 나온 <병연>은 동헌에 높이 걸린 오늘의 詩題를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단다.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詩題를를 해석하면 10여 년 전 이 나라에 벌어졌던 대역사건, 그 중의 대조적인 두 인물, "<가산부사 정시鄭嘉>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金益淳>의 하늘을 찌르는 죄를 통탄하라" 는 것이다. 두 사람의 사적을 너무도 잘 아는 김병연은 붓을 들어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曰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卿大夫 將軍桃李壟西落 烈士功名圖末高 대대로 신하라고 일컬어 오던 너 김익순아 정공은 문관이면서도 충성을 다하지 않았더냐. 너는 오랑캐에게 항복한 한나라의 李陵 같은 놈이요 열사 정시의 공은 죽은 뒤에 드높았다. <매우 길어 중략> 마지막엔 다음과 같은 글로 마무리한다.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너는 임금도 배반하고 조상도 배반한 놈 한 번 죽어서는 오히려 가볍고 만 번 죽어 마땅하다. 춘추의 필법을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부끄러운 이 사실은 우리 역사에 길이 전하리라. 장원급제하여 돌아 온 아들을 보고 어머니 <함평 이씨>는 매우 기쁘하며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를 볼 준비를 하라고 하며, 이 실력이면 충분히 급제 할수 있다고 용기까지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나... 시험문제와 답을 들은 어머니는 눈 앞이 캄캄해지며 기구한 운명에 통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장성한 아들에게 진작 집안내력의 귀띔이라도 해 주었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엇하랴. 아니 그 치욕스런 과거를 어떻게 입에 올릴 수 있었으랴 그리고 어머니는 치욕적으로 욕한 <김익순>이 너의 "친할아버지"라고 알려 준다.
['어둔골' 계곡] 1:29~1:59 1,000m가 넘는 준령들로 둘러싸인 <어둔골>은 여름 피서지로 알맞겠지만 친할아버지를 욕한 <김병연>의 가슴엔 지울수 없는 상처로 남아 방랑의 길을 떠난다. 역적이든 충신이든 그 어른이 나의 조부님이신 것만은 틀림없거늘 그토록 처절하게 매도하다니 장차 어찌 얼굴을 들고 세상을 본단 말인가
['김삿갓유적공원' 앞 삼거리] 2:08 다시 <김삿갓유적지공원> 앞 삼거리로 돌아 왔다 좌측 다리를 건너 <김삿갓 묘>로 들어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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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 김병연 묘'] "詩仙 蘭皐金炳淵之墓" <김삿갓>은 전국을 유랑하며 자연과 인간들을 두루 접하며 그 자유로움을 버리고 하늘로 날아갔다. 그는 "전남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 538-4" <구암마을> "정채업"의 사랑채에 머물다 終命했다. 3년 후 그의 둘째 아들 <김익균>이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詩를 소개한다. 從南曉鐘一納履 風土異邦心細量 새벽종소리 들으며 방랑길에 오르니, 생소한 객지라서 마음 애달팠노라 心猶異域首丘 勢亦窮途觸藩羊 마음은 고향 그리는 떠돌이 여우같고, 신세는 궁지에 몰린 양 같은 나로다. 搖頭行勢豈本習 糊口圖生惟所長 머리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이리요, 먹고 살아가기 위해 버릇이 되었도다. 光陰漸向且巾失 三角靑山何渺茫 그런 중에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 삼각산 푸른 모습 생각할수록 아득하네. 江山乞號慣千門 風月行裝空一囊 떠돌며 구걸한 집 수 없이 많았으나, 풍월 읊는 바랑은 언제나 비었도다. 千金之家萬石君 厚薄家風均試嘗 큰 부자 작은 부자 고루 찾아다니며, 후하고 박한 가풍 모두 맛보았네..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鬢髮蒼 신세가 기구해 남의 눈총 받다보니, 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歸兮亦難停亦難 幾日彷徨中路傍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자니 어려워, 노상에서 방황하기 몇 날 몇 해이던고. <김삿갓>은 여기까지 쓰다가 마침내 기력이 다하여 붓을 던지고 말았다. 그리고 집주인인 "안초시"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안 초시, 춥구려. 어머니가 보고 싶소. 저… 등잔…불을 좀… 꺼 주시오…" <김삿갓>은 어머니가 그렇게나 보고 싶고, 너무도 미안했나 보다.
[조망] <김삿갓>의 어머니 <함평 이씨>의 친정은 <충남 홍성>이었다 <김삿갓>이 <영월 어둔골>을 떠나 방랑길에 오르고 난 후 어머니는 늙고 병들어 친정인 <홍성>으로 가 살았다고 한다. 정처없이 떠돌던 <김삿갓>은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홍성 외가>로 찾아가 물어물어 묘지를 찾아서 어머니의 무덤 앞에 꿇어앉아 술 한 잔 부어놓고, 어머니를 불러보지만 이미 유명을 달리한 어머니에게서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울다 울다 날이 저물어 할 수 없이 내려오다가 다시 돌아서서 물끄러미 어머니의 무덤을 돌아다보고 자기도 모르게 시 한수를 읊었다. 北邙山下新墳塋 千呼萬喚無反響 西山落日心寂寞 山上唯聞松栢聲 북망산 기슭에 새로운 무덤 하나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네. 해는 저물어 마음은 적막한데 들려오는 것은 솔바람소리 뿐이로다.
['유적지공원'] <김삿갓>은 방랑생활을 하면서도 그리운 고향생각은 엄청 많이 한것 같다. 西行已過十三州 此地猶然惜去留 雨雪家鄕人五夜 山河逆旅世千秋 서쪽 땅 13 주를 헤매었건만 아직도 떠날까 머물까 망설이네. 눈비 내리는 한밤에 고향 그리워 잠 못 이루니 산천 따라 나그네 길 몇 해 이런가.
['외씨버선길 영월객주'] 2:19 <김삿갓 묘>에서 <김삿갓 문학관>으로 다시 와 <문학관으로 들어 가는데 "외씨버선길 영월객주"가 있다. <외씨버선길 11코스 종점>이자 <12코스 출발지>이다.
['김삿갓 문학관'] 2:27~2:40 "김삿갓문학관"은 관람료 2,000원이 필요하다. (경로무료) 안으로 들어 가면....
[문학관 로비] <난고 김병연>이 유명해진 이유 중에는 <정비석 선생>이 쓴 소설 <김삿갓>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문열 선생>도 <시인>이라는 소설로 <김삿갓>을 노래했는데, <이문열 최고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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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내부'] 문학관에는 <김삿갓>의 유물 등 전시품은 거의 없고 <방랑시인 김삿갓>이라는 노래만 울려 퍼졌다. <김문응>이 작사하고 <전오승>이 작곡했다고 알려진 이 노래는 전국민의 애창곡이기도 한데 <명국환>이라는 가수가 불렀다. 특히 <전두한>이가 쿠데타 이후 불러서 지금도 그 영상이 인터넷에 떠돈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너머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던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 없는 이 거리 저 마을로 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시간의 흔적'] <시간의 흔적>이라는 작품이 전시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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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詠笠] 浮浮我笠等虛舟 一着平生四十秋 牧竪輕裝隨野犢 魚翁本色伴白鷗 醉來脫掛看花樹 興到携登翫月樓 俗子衣冠皆外飾 滿天風雨獨無愁 [나의 삿갓을 읊다] 머리 위에 둥둥 뜬 내 삿갓은 빈 배와 같고 한번 쓰고 사십 평생 같이 살아왔도다. 목동이 들에서 소를 몰 때 가볍게 걸치고 늙은 어부 강가에서 쓰고 갈매기와 벗했네 한잔 술에 취하면 꽃나무에 걸고 꽃구경하고 흥겨우면 손에 들고 다락에 올라 달구경하며 달과 속삭이고 속물들은 의관을 모두 겉치레로 꾸미지만 비바람 가득찬 하늘일지라도 홀로 근심없으라
['군내버스 10번'] 3:03 3시 10분에 출발하는 시내버스는 3시경에 도착하여 10여분 있다가 정시에 떠난다. 승객은 나 혼자 뿐. 운전기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영월역>으로 돌아 가는데.... <영월> 토백이라고 하는 기사와 나눈 이야기의 일부를 언급한다. 파란문 : <김삿갓>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 기 사 : 우리 고향사람이니 좀 알지요. 파란문 : <김삿갓>의 고향이 <영월>로 알고 있군요. 기 사 : 당연하죠~ 파란문 : <김삿갓>의 고향은 '경기도 양주 회암리'이고, 할아버지의 반역죄로 가문이 풍지박살 나 이곳으로 피신 온거에요. 그러니까 여기는 고향 아니고 피신처이며 미래를 도모한 곳이에요. 기 사 : 그래요? 허~참 파란문 : <김삿갓>이 죽은 곳은 '전남 화순 동복리'이고 둘째 아들이 3년후 이곳으로 이장했구요. 기 사 : 여기서 죽은게 아니군요. 난 지금까지 <영월>이 고향이고 여기서 죽은 줄로 알았네요. 파란문 : '경기도 양주시'에 가면 <회암사>를 중심으로 <김삿갓 풍류길>이라는 걷기코스를 조성해 놓고 <김삿갓의 고향> 임을 광고하고 있죠. 또한 '전남 화순'에 가면 도로명도 <김삿갓로>라 하고, 그가 숨을 거둔 <안초시 집>을 복원하여 관광지화 하고 있어요. 지방자치단체들이 서로 <김삿갓>을 울궈 먹고 있죠. 기 사 : <영월>은 <김삿갓>의 일생 중에 아주 짧은 기간만 거주한 이방인이었군요.
['양주의 김삿갓'] 방랑시인으로 세상을 풍자하며..또한 비판하며 자유롭게 살았다고 그의 인생을 좋게, 또는 부럽게 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필자인 "파란문"은 조금 달리 생각합니다. 한 가정의 家長이 강원도 두메산골에 피신해 사는 궁핍한 가족들을 보살피지 않고 저 혼자 떠돌아 다니며 제멋대로 산것은 家長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나쁜 아빠"와 "나쁜 남편"의 대명사로 요즘같으면 이혼을 당해도 여러번 당하고 위자료도 물어 줘야하는 그런 무책임한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지방 향시-백일장에서 모르고 할아버지를 욕하는 글로 장원이 되었다는 것이 어머니와 처자식을 버리고 가출을 하는 이유가 되었을까?하는 의구심을 무지 불러 일으킵니다. "모르고 할아버지를 욕했다"는 것은 가출을 위한 명분이 아니었을까.... 현실과 낭만은 별개지만 김삿갓의 인생을 너무 미화하는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사리사욕에 눈 먼 관료나 양반들에겐 조롱과 해학이 곁들인 풍자를 속시원히 퍼붓고 가난한 백성들에겐 즐거운 해학과 웃음으로 많은 민중들을 포용하며 산 그의 낭만에 대해선 찬사를 보낸다. **부록** [양주] 김삿갓풍류길 1코스 답사기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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