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평화누리길』
『제13코스 서화길』
瑞和, 天桃, 月鶴, 그 접경마을 속으로...
후평교-반월촌교-평촌교-심적교-서화체육공원-양지교-후동교-용늪마을-섶다리-
무쇠점교-무쇠점1교-사천교-월학리-풍전교-구미마을-구미교-을지신병교육대
['13코스 안내도']
['구글어스 실트랙']
<강원평화누리길 13코스>는 공식적으로 "37km"라고 합니다만, <12~13~14코스>를 적절히 분활하여
오늘은 지난 <12코스> 종점으로 삼았던 "후평교"에서 출발하여, "달빛소리마을"에 있는
"육군12사단 을지신병훈련소"까지 "약20km"를 걷게 되겠습니다.
['후평교' 앞] 9:50
2023년 10월 22일 일요일 맑음
<후평교> 앞에서 "강원평화누리길 13코스"를 출발합니다.
깊어 가는 가을날씨를 보이고 있는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입니다.
['후평교'와 '승공통일비']
"후평교"와 "승공통일비"는 지난 답사기에서 언금 했습니다만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제3군단장> 시절에 건설한 다리이며
다리를 준공하고 기념으로 <승공통일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데크길]
<후평교>에서 남쪽으로 <인북천>을 따라 데크길이 이어집니다.
['인북천']
오늘은 "인북천 麟北川"을 따라 걷는 어쩌면 단조로운 코스가 되겠습니다만
<금강산 매자봉>에서 발원하여 <비무장지대>를 통과하여 흐르는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과 함께
접경지역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둘러 보며 걷는 길은 가을정취를 한층 더 즐겁게 했습니다.
['인북천변길']
데크길을 지나면 새 단장한 평화누리길이 이어지며
['반월촌교' 조망]
['반월촌교' 앞] 10:06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의 "반월촌"이 펼쳐지며, 공사중인 <반월촌교>를 지나 갑니다.
공사중이라 우회하라고 안내합니다만 무시하고 직진합니다.
[군부대]
"DMZ접경지역"이다 보니 곳곳에 군부대가 이어 집니다.
부대 배치를 받아 군용트럭을 타고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가며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고 하던 곳.....은 이렇게 변했습니다.
병영은 "콘도" 수준으로 변하고 내무반은 '페치카' 대신 냉난방시설이 완비되었다니 우리나라 좋은나라
['반월촌'과 '대암산'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반월촌교>를 지나 <평촌교>로 가는 중간에서 바라보는 "대암산과 반월촌"입니다.
['평촌교'] 10:15
<후평교>에서 25분 정도 <인북천변길>을 진행하면 "평촌교 坪村橋"를 만납니다.
<백두대간 향로봉> 부근에서 부터 흐르는 개천인 "서화천 瑞和川"이 <인북천>에 합류하는 곳인데
이 개천을 따라 올라 가면 바로 <향로봉 능선>을 넘어 <진부령>으로 갈수 있다는데...
['평촌교' 앞 이정표]
<평촌교> 남쪽에는 크다란 이정표가 길안내를 하고 있는데
"DMZ평화의 길"은 이곳 <평촌교>에서 <서화천>을 따라 올라 가다가 <향로봉 능선>을 넘어
<진부령>에 있는 <진부령 미술관>으로 바로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길은 아직 미개통 구간이어서
현재는 갈수 없고, <평화누리길>과 함께 <원통>으로 돌아 간다고 합니다.
['평촌' 통과]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 평촌마을"을 개천변길을 따라 통과합니다.
['심적교'] 10:22
<평촌교>에서 6~7분 진행하면 "심적교 深積橋"를 만납니다.
'서화면 심적리'는 <인북천> 건너편 <대암산> 아랫편에 있고...
['평촌' 통과] ]
20여분 <서화리 평촌>을 통과하면....
[폐 비행장] 10:43
폐 비행장을 만나는데 프로펠라 전투기들이 활약하던 시절의 비행장이었다고
[즐거운 트랙킹]
<프란치스코의 세상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답사기록을 잘 정리하여 기록하고 있는
아이디 <프란치스코님> 부부가 즐거운 가을 트랙킹을 하고 있습니다. 부럽 부럽~
[뒤돌아 본 '평촌']
<평촌>의 폐 비행장을 지나 뒤돌아 본 "서화리 평촌"입니다.
"서화면 瑞和面"의 옛 중심지는 "서화리 평촌 瑞和里坪村"이라 합니다.
옛날엔 이곳이 "서화현 瑞和縣"으로 현감이 주재하던 곳인데,
현재는 "천도리 天桃里"가 <서화면>의 중심지가 되고, 이 마을은 인구가 줄어만 간다고....
['서화리' 가는 길]
<인북천>이 휘돌아 나가는 커브길은 강물의 침식으로 절벽이 만들어 지며 색다른 자연경관을 만들고
['서화면 천도리' 조망]
이어서 <서화면>의 중심지인 "서화면 천도리 瑞和面 天桃里"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앞에 보이는 아파트는 <천도아파트>
['서화리'와 '백두대간']
"서화면 천도리 瑞和面 天桃里" <서화면사무소>가 있는 중심지 전경입니다.
<백두대간 향로봉 능선>을 두고 <진부령>과 <서화면>이 분리된다는 것이 보입니다.
사진에 표기한 <백두대간 칠절봉> 너머에 <진부령>이 있습니다.
이 지역이 "천도리 天桃里"라는 이름을 갖게 된 전설이 이채롭더군요.
"옛날 세상에 처음 보는 커다란 복숭아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져 이것을 본 한 사람이 좋은 일이 생길
징조라 여겨 복숭아가 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불과 몇 해 되지 않아 큰 부자가 되었으며,
이 사실이 인근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집을 짓고 살게 되어 한 마을이 형성되었답니다..
그리하여 이웃 마을에서는 이 마을을 "하늘에서 복숭아가 떨어진 곳"이라 하여 "天桃里"라 불렀다고..."
['서화생활체육공원'] 11:17
"서화생활체육공원"
<서화면>의 총 인구가 3,300여명이라는데 인구 대비 상당한 규모의 생활체육시설이더군요.
나이트시설까지 완비되 있습니다.
['서화초등학교' 앞]
운동장을 지나면 <펀치볼>에서 오는 <453번지방도>가 지나는 도로가 있고
건너편엔 "서화초등학교"가 있습니다.
학생수는 제법 많은 76명 (남 42명,여 34명)이랍니다.
['버스정류장] 11:19
<서화초등학교앞 버스정류장>을 지나면
['서화 회전교차로']
화려한 색깔의 국화로 단장된 <서화회전교차로>가 눈길을 끌고....
[전망쉼터] 11:20
쉼터와 전망대도 있습니다.
['인북천']
['코스모스 길']
산책로로는 최고 일듯한 <인북천변길>을 지나는데 코스모스가 아직도 하늘거리며 자태를 뽐냄니다.
['서화중학교' 앞] 11:27
이어서 "서화중학교"
학생수는 25명 (남 12명,여 13명)이랍니다.
['서화문화북지타운'] 11:29
"서화문화복지타운"을 만나고...5분여 더 진행하면...
['양지교' 앞] 11:34
"양지교 陽地橋"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 가더군요.
['양지마을' 조망]
['양지마을']
<양지교> 건너편은 "서화면 천도리 양지마을"이랍니다.
['평화공원 정자' 조망] 11:39
<양지교>에서 조금 내려 가면 건너편에 정자가 하나 보이는데
<비득고개>에 조성 중인 <평화공원>에 있는 전망 정자라고...
10여분 진행해서 뒤돌아 보면...
['비득고개' 조망] 11:49
<비득고개>와 <평화공원 정자>가 조망되며, <비득고개>를 기준으로 <천도리>와 <서흥리>가 분리되고
<인북천 방호벽>이 규모를 자랑합니다.
[펜션단지]
<비득고개> 우측엔 펜션단지가 유혹하고
['인북천변길'] 12:08
아름다운 <인북천변길>을 18분여 진행하면 이름 모를 다리를 지나게 되는데
['인북천변길']
이름 모를 다리를 지나 8분여 더 진행하면....
['후동교'] 12:16
<용늪마을>로 들어 가는 입구인 "후동교"를 지나고..... 마을을 통과하면...
['용늪마을회관'] 12:26
'서화면 서흥1리' "용늪마을회관"을 지나게 됩니다.
"용늪"은 여기서 제법 먼 <대암산> 정상부근에 있습니다.
<용늪>으로 올라 가는 입구에 있는 마을이지만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용늪마을>이라 한듯...
정확하게 하자면 <용늪입구마을>이라 해야 할듯...
['대암산-용늪길' 입구] 12:27
<용늪마을회관>을 지나면 다시 <453번지방도>를 만나는데 <대암산 용늪>으로 가는 입구라고 알리고
['용늪마을' 안내도]
"논장교 論章橋" 앞에는 여러가지 안내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서화현의 쌀 창고"가 있었었다고
['용늪리조트' (용늪자연생태학교)] 12:34
<용늪리조트>로도 사용한다는 <용늪자연생태학교>도 잠시 들여다 보고...
['대암산'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용늪마을>에서 "대암산 용늪"을 조망합니다.
참고로 <용늪> 사진을 첨부합니다.
[2009년 6월 13일에 촬영한 "대암산 큰용늪"]
이 "늪"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있으며, 1,280m 高地帶에 있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고냉습지 高冷濕地"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 자연생태계보존지구 "람세스"에 가입되있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섶다리'] 12:41
<용늪자연생태학교>를 지나면 <섶다리>라는 다리를 지나는데...
"섶다리"는 나무 풀로 엮어 만든 간이 다리를 "섶다리"라고 하는데....
['무쇠점교'] 12:44
이어서 "무쇠점교"를 만납니다.
여기선 다리를 건너 <무쇠점골>을 지나 멀리 보이는 <무쇠점1교>를 다시 건너 가더군요.
['무쇠점골' 통과]
옛날 200여년 전에 이곳에 "무쇠"로 솥 등을 만들어 팔던 가게가 있어서 "무쇠점골"이라 한답니다.
10여분 <무쇠점골>을 통과하면...
['무쇠점1교'] 12:55
"무쇠점1교"를 건너고
[쉼터] 12:58
<무쇠점1교> 아래엔 쉼터가 있으며....
[포토존] 12:59
<포토존>도 있으며, 이곳이 <용늪 대바위마을>이라고 알려 줍니다.
['용늪대바위마을' 통과]
<용늪대바위마을>을 10여분 통과하면....
['사천교' 조망']
['사천교' 앞]
['사천교'] 1:09
"사천교 沙川橋"에 도착합니다.
<양구 경계>에서 20.5km 지점이며 <원통>까지는 16.1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사천沙川"은 <인북천> 이 부근에 모래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하고...
<사천교>를 건너 다시 우측 <인북천변길>로 진행합니다.
<사천교>를 기준으로 "서화면 서흥리"에서 "북면 월학리"로 건너 가게 됩니다.
['인북천']
<인북천변길>을 잠시 진행하면...
[군부대]
군부대를 옆에 끼고 15분여 진행하면....
['백마정'] 1:25
이 주변이 <백마촌>이라고 "백마정"이라는 정자를 하나 만들어 놨는데,
이 정자엔 유명한 漢詩가 걸려 있어 눈길을 끕니다.
이 漢詩는 유명한 <춘향전>에 나오는 "어사출두시"이죠.
"변학도"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 놓은 음식과 술로 잔치를 벌이며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할때 나타난 허럼한 차림의 <이몽룡>이 <변학도>에게 써준 글이죠.
이 글을 본 <변학도>가 혼비백산 도망치려 할때 "암행어사 출두요~~"가 울려 퍼지며
전세역전의 통쾌한 팡파레 속에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는 <춘향>과 <이몽룡>의 포옹~~~ㅎㅎ
"金樽美酒 千人血 (금준미주천인혈: 금잔의 맛좋은 술은 만백성의 피요)
玉盤佳肴 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 옥쟁반의 맛난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니)
燭淚落時 民淚落 (촉루낙시민루낙: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이 눈물 쏟고)
歌聲高處 怨聲高 (가성고처원성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도 높더라)"
['아미평화순례길']
<백마정>을 지나면 "아미평화순례길"이라는 표지기가 걸려 있는 아름다운 <백마촌길>이 이어지며
10여분 진행하면...
['월학리 송학마을' 조망] 1:37
"인제군 북면 월학리 송학마을"을 만나며 <군인아파트>가 상당한 규모로 있습니다.
뒤에 보이는 산은 <명당산 763.7m >로 보이며, <평화누리길>은 우측 <풍전교>를 건너게 됩니다.
['풍전교'] 1:37
[뒤 돌아 본 '풍전교'] 1:41
"월악리 송학마을"에서 <풍전마을>로 건너 가는 다리가 "풍전교 豊田橋"였습니다.
<풍전교>를 건너 <풍전교>와 <송악마을>을 뒤돌아 보고
['인북천변길']
"북면 월학리 구미마을"을 돌아 15분 정도 진행하면....
['구미마을' 입구] 1:57
"구미마을" 입구
이 마을엔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여러개의 '고인돌'이 발견되어 오래된 마을 임을 알 수 있다는데
한편 슬픔에 잠긴듯한 '장승'이 서 있어 좀 이상한 느낌이고, <신사임당>의 詩碑는 어찌 이곳에 있는지..
저는 우리나라 최고액 50,000원짜리 지폐의 모델로 지정된 <신사임당>이 그렇게 위대한 분인가에
대해선 의문을 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일뿐 역사적 민족적
업적을 남긴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인데, 자식 교육을 잘시킨게 업적이라면 업적이겠지만
그런 모성애는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거 아닌가요?
그리고 입구 안내석에 있는 그녀의 유명한 시는 <율곡 이이>를 친정인 '강릉 오죽헌'에서 낳고
<선자령>을 넘어 시집이 있는 <한양>으로 가면서 친정 어머니를 생각하며 읊은 시인데,
<선자령>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이곳에 왜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구미교'] 1:58
"구미교"를 건너 우측 <인북천변길>로 잠시 진행하면...
['12사단'] 2:03
<12사단 신병훈련소> 본부 건물을 만나고, 10여분 더 진행하면...
['12사단 을지신병훈련소' 조망] 2:09
<12사단 을지신병훈련소> 전경이 조망됩니다.
['인북천변길']
10여분 <인북천천변길>을 더 진행하면...
['을지신병훈련소 주차장'] 2:20
"12사단 을지신병훈련소" 주차장을 만납니다. 일요일이어서인지 주차장이 한산합니다.
이 지역은 "인제군 북면 월학리"의 "달빛소리마을"이더군요.
이곳에서 오늘의 트랙킹을 마칩니다.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약20km였으며, 4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오~매 단풍 들것네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리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 → 장독대
*파란문의 감상"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 가며 가을을 노래 합니다
단풍과 누이의 마음....누이가 시집 갈 때가 되었는지 더욱 발그스레 이쁘지는
누이의 얼굴을 단풍에 비유하며 아름다움을 노래한다고 느껴집니다.
『강원 평화누리길』
『제12코스 펀치볼길』
天地를 품은 天池를 닮은 "펀치볼"을 가다
돌산령터널-해안입구-만대벌판길-도솔정-만대3교-해안면사무소-성황지-양구통일관-
전쟁기념관-물골교-숲밥쉼터(양구-인제군계)-13코스 서화길출발지-후평교
['11코스 실트랙']
['구글어스 실트랙']
天地를 품은 天池를 닮은 "펀치볼"
"시래기의 고장"
"민통선 안의 해방구" "화채그릇" 등등
우리나라 유일이라는 타이틀을 여럿 가진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펀치볼"을 갑니다.
['돌산령터널 앞'] 10:03
2023년 10월 8일 일요일 비 약간 내린 후 흐림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돌산령터널"의 동쪽 '해안면'방향에 있는 <돌산령 구길>과 만나는
삼거리에서 <강원 평화누리길 12코스 펀치볼길>을 시작합니다.
[내림길]
<453번지방도-펀지볼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10여분 내려 가면...
['해안입구'] 10:14
"해안입구 亥安入口" 삼거리를 만납니다.
좌측길은 <해안 중심가>로 바로 가는 <453번지방도>이고, 우측길은 "DMZ자생식물원" 가는 길입니다.
['12코스 안내도']
<12코스>의 출발지는 바로 이곳 "해안입구"입니다만,
지난번에 <돌산령터널 앞>까지만 걸었기에 못 걸은 거리를 걸어와 <12코스>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유밭길-만대벌판길' 입구] 10:15
<해안입구 삼거리>에서 우측 <자생식물원> 방향으로 몇십m만 가면 다시 이곳 갈림길을 만나는데
"DMZ자생식물원"의 <방문자센타>는 지난번에 버스로 다녀 왔기에 생략하고
<오유밭길-만대벌판길>을 관통하여 <해안면 중심가>로 들어 가 이곳 사람들의 생활상을 느껴 보고
특히 <해안 펀치볼>의 대표 관광지라는 "양구통일관-전쟁기념관"을 탐방하려 합니다.
그래서 <평화누리길 12코스> 정규 코스에서 약간 벗어나 진행하는 것입니다.
[인삼밭과 사과 과수원]
<강화도>나 <개성>의 특산물이던 "인삼"이 요즘엔 "양구 펀치볼 인삼"으로 바꼈다고 자랑하는
인삼밭이 새로운 모양의 차양막을 두르고 태양광 발전소처럼 마냥 펼쳐집니다.
그리고 기후 온난화로 이젠 <양구 펀치볼 사과>가 매우 인기 있다죠?
사과 재배지가 계속 북상해서... 대구→문경→충주→평택 안성→춘천→양구 펀치볼....
좀 더 있으면 <백두산 사과>도 맛 볼수 있을려나 ~~ㅎㅎ
낮과 밤의 일교차가 가장 큰 곳이라 과일의 당도가 최고수준이랍니다.
그래서인지 값도 무지 비싸고
['만대벌판길']
<해안면>은 분지여서 여름엔 무지 덥고 겨울엔 무지무지 춥답니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는 최대 80도C 정도 까지 가는 때도 자주 있답니다.
"해안면 만대리"는 <해안면> 6개 里 중에 하나인데....
萬가구가 풍족히 살수 있는 곳이라고 "만대리 萬垈里"라고 한답니다.
옛날엔 가구당 6~7명 이상의 가족이 있었을테니 萬가구는 엄청난 규모인거죠.
현재 <양구군>의 총인구가 21,000여명이란걸 감안하면 <만대리 萬垈里>가 꿈꾸는 풍요를 상상 할수 있고,
참고로 6개의 里로 이루어진 <해안면>의 인구는 고작 1,200명이라고 하니 <만대리>의 인구는 200명 정도.
빨리 발전하여 萬가구가 사는 풍요한 마을이 되길 기원합니다.
['민대로'] 10:33
<만대벌판길>을 18분여 통과하면 <만대로>라고 하는 자동차도로를 만나며
<만대리 萬垈里> 주거지역으로 들어 가게 되더군요.
2~300m 정도 도로를 따라 가면...
['도솔정'] 10:37
"도솔정"이라는 정자 쉼터를 만납니다.
<도솔산>이 보일려나 뒤돌아 보았으나 구름 속에 숨어 있어 볼수 없었습니다.
미륵보살의 하늘나라 궁전이라는 <도솔천> 얘기는 지난 답사기에서 언급했으니 생략하고
['만대3교'] 10:54
<만대리 萬垈里>를 17분 정도 통과하면 <만대3교>라는 다리를 하나 건너 갑니다.
이 분지엔 개천도 많더군요. 곳곳에 다리가 있으니...
<펀치볼>이라는 분지에 떨어지는 빗물은 모두 잠시후 만나게 될 <물골교>를 통과해서
<인북천>에 합류하여 <소양강>으로 흘러 가고, 다시 <북한강>에 흡수되어 <서해>로 갑니다.
그러니까 이곳 <해안면>도 <한강 발원지 중 한곳>이 되겠습니다.
['오유리' 통과] 11:03
<만대3교>를 지나면 <오유리 五柳里>로 들어가게 되는데
<양구-해안>간을 운행하는 <5번군내버스>가 지나 가는군요.
거리는 한산합니다.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고....
['정안사' 입구] 11:04
이어서 <정안사> 입구를 만나는데....<오유2리>에는 <정안사>라는 절이 있나 봅니다.
5분 정도 더 진행하여 앞에 보이는 나즈막한 고개를 넘어 가면....
['해안중학교'] 11:09
['해안도서관'과 '청소년문화의 집']
"해안중학교 亥安中學校"
총 학생수가 8명(남녀 각4명)이고 선생님들이 9명이라니..한학년에 2~3명꼴..배보다 배꼽이 더 큽니다.
하기사 <해안면>의 총인구가 1,200명이고 그나마 대부분 노인들이라니 학생수가 적은건 당연.
또한 얼마 않되는 젊은 이곳 부모들은 아이들 교육을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애들을 도시로 보냈겠죠?
8명이라는 학생수가 충분히 이해 갑니다.
저렇게 큰 학교와 <도서관>, 그리고 <청소년회관>은 누가 이용 할끼...괜히 맘이 심란합니다.
['해안면사무소'] 11:11
옛날부터 이 고을의 중심지여서 이 고을의 이름은 "현리 縣里"라고 한답니다.
그래서 관공서는 이곳에 집중되 있더군요.
파출소, 119구급대, 보건소, 또한 성당, 교회들 까지도...
['농협 해안지점'] 11:15
<해안면사무소>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농협 해안지점"이 있고
<농협 하나로마트>도 규모가 제법 크더군요. 있을건 다 있어요. ^*^
['해안보건지소' 앞] 11:19
<해안보건지소>의 건물도 엄청나더군요.
그래서인지 <장수마을>이라고 자랑합니다.
['해안재건비'] 11:20
이어서 삼거리를 만나는데
"해안재건비 亥安再建之碑"가 있고
['현리교' 앞] 11:21
<현리교>를 만나는데 안내판이 우측으로 가라고 합니다.
예전에 승용차를 타고 갈땐 직진하면 바로 <양구통일관>이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우측에 있는 <성황지>를 구경하고 가라는듯 해서 우측으로 200m쯤 진행하면
['성황교'] 11:25
<성황교>라는 다리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서 좌측에 있는 <성황지>로 들어 갑니다.
['성황지'] 11:26
입구에는 <우제권>이라는 분이 만든 "해안 亥安"이라는 조각작품이 나그네를 맞이합니다.
<돼지> 위에 우뚝 서 있는 <소녀>가 "해안 亥安"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제가 풀어서 설명하는 것보다 <양구군>이 공식적으로 설명하는 "해안 亥安" 지명의 유래"를 안내합니다.
<양구군 공식 동영상>인 다음 동영상을 꼭 보고 가세요. 잼있어요 ㅎ
['성황지'에서 조망]
"성황지 城隍池"
이 연못은 "비점오염저감시설 <침사지>"랍니다. 즉 친환경 수질 개선을 위한 침사지라는거겠죠.
오늘 불행하게도 구름이 산 정상을 뒤덮고 있어 그 유명한 "가칠봉 加七峰 1,242.2m"을 전체적으로
조망 할수 없군요. 좌측 <가칠봉>이라고 표기한 곳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작은 가칠봉>이고,
뒤에 구름 속에 있는 놈이 <큰 가칠봉>입니다. <가칠봉>이라는 이름의 산은 전국에 여럿 있죠.
<금강산>의 봉우리에 우리 일곱 봉우리도 낑겨 달라고 <加七峰>이라 한다는데 <해안면>의 진산이고
"서희령 西希嶺"은 <도솔지맥>이 지나는 고개로서 <금강산>으로 가는 고개 중에 하나랍니다.
<서희령> 약간 우측에 "제4 땅굴"이 있고...
요즘 공사로 휴관 중에 있다는 "을지전망대"가 구름 속에 잠겨 있습니다.
<을지전망대>가 있는 저 산줄기 바로 뒤가 <휴전선>이어서 <남방한계선>이 거의 없는 유일한 곳이지요.
[회전교차로] 11:30
<성황지>를 나가면 <해안면> 유일의 회전교차로를 만나며
['해안면복지회관'] 11:32
상당한 규모의 <해안면복지회관>을 지나고
['펀치볼둘레길 안내소'] 11:33
이어서 "DMZ펀치볼둘레길 안내소"를 만납니다.
<펀치볼둘레길>은 신청해야만 갈수 있고, 적정 인원이 되면 해설사가 해설과 함께 안내한다고 합니다.
['양구통일관' 전경] 11:34~11:58
"양구통일관"의 전경이 펼쳐집니다.
<펀치볼>에 가서 이곳을 들리지 않고 가면 <펀치볼>을 가나마나라고 하죠? ㅎ
['펀치볼-도솔산 전투 전적비']
"양구 펀치볼-도솔산 전투 전적비"가 눈길을 끕니다.
"무적해병"이라는 칭호를 <이승만대통령>으로 부터 받은 전투가 "도솔산 전투"입니다.
지난 답사기에서 언급했으니 생략하고
['양구통일관' 앞]
"그리팅맨 greeting man".... 해석하자면 "인사하는 사람"이 되겠군요.
양구가 고향이라는 <유영호 조각가>의 작품으로 전세계 사람들과 겸손, 화해, 평화를 공유하고자하는
작가의 마음을 담았다고 하는 작품이라는데....옷은 왜 벗겼나?...그래야 겸손, 화해, 평화가 오는가?ㅎ
여하튼 전세계 10개국에 전시하고 있는 제법 유명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통일전시관> 옆에는 편의점과 쉼터가 있는데 함께 하신 분이 컵라면을 사주시어 잘 먹었습니다. 감사
['DMZ평화의 길'']
<양구통일관> 앞 광장에 "DMZ평화의 길 안내도"가 있는데....
<'DMZ평화의 길'>에 대한 안내는 비교적 잘 되있는데, <'강원평화누리길'>에 대한 안내는 빈약합니다.
제 생각에는 <'DMZ평화의 길'>은 정부에서 만든 길이고, <'강원평화누리길'>은 '강원도'가 만든 것이라
비교 됩니다.
['펀치볼' 안내도]
이해하기 쉽게 그린 <"DMZ평화의 길"> 안내도도 있습니다.
<펀치볼>과 <'DMZ'>, 그리고 <금강산>의 위치가 이해하기 쉽게 그려져 있는데
<금강산>이 당장 뛰어 가고 싶을 정도로 가깝군요.
<금강산 가는 길>의 고개가 조금 전에 언급한 "서희령 西希嶺"입니다.
<제4땅굴> <을지전망대>의 위치도 알수 있습니다.
['전쟁기념관']
옆에 있는 "전쟁기념관"으로 가는데 기념관 밖에 있는 것들만 볼수 있는데
['전쟁기념관'과 'DMZ조이나믹 체험관' 정문] 12:00
<전쟁기념관>으로 들어 가는 정문입니다만, 공사 관계로 오늘은 들어 갈수 없어 아쉬움만 남기고
우측에 있는 "DMZ조이나믹 체험관"은 유료관람이라 패스....
['453번지방도']
<전쟁기념관>에서 <453번지방도>를 따라 15분 정도 진행하면....
[삼거리] 12:15
삼거리를 만나는데, <평화누리길>이 변경 되기 전에는 좌측 <453번지방도>를 따라 갔습니다만
이젠 <먼맷재길> 고개로 길을 뚫어 우측길로 안내합니다.
왼쪽 <453번지방도>로 가면 쉽지만 거리(8.2km)가 멀고,
우측길은 고갯길로 힘은 좀 들지만 거리(3.78km}가 짧으니 각자 알아서 선택하면 되겠습니다.
['백두대간트레일' 시종점] 12:19
<453번지방도 삼거리>에서 우측 좁은 길로 들어 서면 "백두대간트레일"이라는 안내판이 있고
이곳이 <백두대간트레일 인제구간>의 시종점이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백두대간>과는 아무른 관계가 없는 <백두대간트레일>이군요.
['물골교'] 12:20
"물골교"
<화체그릇> 같다는 <편치볼 분지>에 떨어지는 빗물은 모두 이곳으로 모여
이곳을 통해 분지 밖으로 나간답니다. 그래서 이곳을 "물골"이라 한답니다.
['펀치볼' 조망]
<물골교>에서 <해안면 분지>를 조망합니다.
약4,500만년 전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만들어진 분지라고 하는 설과
"지반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분지라는 설이 있는데, 어떻던 거대한 분지가 만들어 지고
분지엔 물이 고이기 시작하여 "바다같은 호수"가 만들어졌는데,
호수도 계속 물이 차고 넘치니 물이 넘쳐나 분지 둑이 무너져 물골이 만들어 져
이곳 <물골교> 밑으로 물이 빠져 나가게 되어 호수 바닦이 들어나 평지가 되었는데,
지금도 민물조개 껍질이 발견되는 걸로 보아 "바다같은 호수 海岸"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해안면>은 <여의도> 면적의 여섯배 정도 되는 보기보다 너른 분지입니다.
1,000m급의 산줄기로 둘러싸인 분지로 평군 해발은 약450m 정도 된답니다.
['물골'과 고갯길 조망]
<해안>에 내리는 빗물이 모여 흘러 나가는 <물골>을 바라보고
잠시후 넘어야 할 <먼맷재길>을 조망합니다.
[고갯길 입구] 12:23
<물골교>에서 150m 정도 직진하면 <먼맷재길 고개 입구>를 만납니다.
[안내도]
<돌산령>에서 "8.5km" 거리이고, 앞으로 진행할 <양구-인제군계>가 있는 고개까지는 "2.5km"라고
알려 줍니다.
[고개 오름길]
고갯길 입구에서 완만한 고갯길을 8분 정도 오르면...
['차량 차단기'] 12:31
차량차단기가 있는 곳을 지나고
6분 정도 더 올라 가면...
['정자 쉼터'] 12:37
정자 쉼터를 만나고
[오름길]
계속해서 20여분 더 완만한 고갯길을 오르는데, 이 고갯길은 임도이겠지만,
교통표지판의 형태로 보아 <군사목적도로>라는게 분명해 보입니다.
[두번째 정자 쉼터] 12:57
두번째 정자 쉼터를 만나며
['드럼통 방호벽'?] 12:59
드럼통을 이용한 방호벽인지 뭔지 드럼통들이 장승처럼 서있는 곳을 지나면
['숲밥쉼터'-'양구-인제군계'] 1:00
"숲밥쉼터"라고 하는 쉼터를 만나는데
이곳이 "양구군-인제군 郡界"가 되는 곳으로
<펀치볼둘레길-먼맷재길>이 <먼맷재>로 가며 나뉘는 곳이며, <대암산>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더군요.
<평화누리길 양구구간 12코스 펀치볼길>이 실제 끝나는 곳이고
<평화누리길 인제구간 13코스 서화길>이 시작되는 곳입니다만
공식적인 시종점은 잠시 후에 만나게 되더군요.
[오름길]
약간 경사가 있는 오름길을 13분 정도 더 진행하면....
['13코스 출발지'] 1:13
"평화누리길 인제구간"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대암산군부대 입구']
우측으로는 <대암산 군부대>로 가는 길인데 자바라 출입문과 초소가 있습니다.
['평화누리길 인제구간' 13코스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평화누리길 인제구간 제13코스 서화길 안내도"가 있습니다.
더 자세한 안내도를 보고 싶으면 사진을 클릭해 보세요.
[안내도]
"평화누리길 인제구간"이 공식적으로 시작됩니다.
3개 코스로 이루어진 <인제구간>은 총74.9km라고 합니다.
['DMZ평화의 길' 안내도]
['평화누리길 13코스 안내도']
<평화누리길>과 <평화의길>은 이 고개를 내려 가 <평촌교>부터는 완전히 헤어지는군요.
<평화누리길>은 <미시령>으로 가고, <평화의길>은 <진부령>으로 바로 가는군요.
['시멘트 포장도로'] 1:15
<인제구간> 고갯길은 시멘트 포장이 맑끔하게 되 있었습니다..
이 도로는 <대암산 군부대>로 통하는 군사도로로서 공사가 얼마 전에 끝났나 봅니다.
['설악산'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먼맷재> 고개를 넘어 가니 "백두대간 설악산구간"이 조망됩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줌인 된 사진을 감상 할수 있습니다.
[고개 내림길]
22분 정도 내림길을 내려 가면....
['자바라 출입문'] 1:37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자바라 출입문>이 있는 곳에 도착하는데
<진부령>에서 북쪽 <향로봉>으로 향하는 <백두대간>이 조망됩니다.
사진을 클릭해 보세요. 대간 종주 하신 분들은 감회가 남다를 것입니다.
['자바라 출입문'과 현위치] 1:43
첫번째 <자바라 출입문>에서 6분여 더 내려 가면 두번째 <자바라 출입문>을 만납니다.
이곳엔 현위치를 알리는 안내도가 설치되 있더군요.
17분 정도 더 내려 가면....
['후평교'] 2:00
"인북천"을 건너는 "후평교"를 만납니다.
['인북천'과 '승공통일비']
"인북천 麟北川"
<백두대간 금강산군>에 속하는 "매자봉"이라는 곳에서 <도솔지맥>이 분기되어
<백두대간>과 <도솔지맥> 사이 계곡에 흐르는 개천이 바로 이 <인북천>이며 <소양강>으로 흘러 갑니다.
그러니까 이 개천은 <금강산>에서 온다고 할수 있습니다.
<인북천>은 <인제의 북쪽>에 있는 개천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며 <소양강>의 '제1지류'가 되겠습니다.
우측에 보이는 비석 같은 것은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아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당시 <제3군단장>이었을 때 이 다리 "후평교"를 준공하고 기념으로 "승공통일비"를 세웠다고 하네요.
<전두환>의 <12.12 군사쿠데타> 때 <육군참모총장>인 <정승화 대장>이 <전두환 소장>에게 체포되었지요.
그가 제3군단장 중장 시절에 이 <후평교>가 만들어 졌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갈림길] 2:04
<후평교>를 건너면 <평화누리길>은 우측으로 안내 됩니다만
앞에 보이는 삼거리를 다녀 오도록 합니다.
['453번지방도' 삼거리] 2:05
<해안면 펀치볼>에서 오는 <453번지방도>를 만나는 삼거리입니다.
새로 개통된 좌측 고갯길이 어려운 길이고 <453번지방도>가 쉬운 길이라고 안내하는데
거리는 좌측 고갯길이 도로보다 4.5km이상 짧군요.
['뒷풀이']
오늘은 원래 <평촌교>까지 가려고 했는데 뒷풀이 장소가 마땅치 않아 이곳에 자리를 폈다고...
오늘은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야유회처럼 뒷풀이를 하며 오랜만에 소주도 한잔한 즐거운 가을이었습니다.
[고도표]
오늘 저의 GPS에서 측정된 거리는 15.9km였으며 4시간이 걸렸습니다.
가을이 오는걸 받아드리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뜨거운 여름 햇살만 생각하면서 이 가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하늘이 높아지고 들판이 노랗게 변하는걸 보면서도
내곁에 가을을 두고싶지 않았습니다
가을 속에 파뭍혀 외롭지 않으려고....
그리고 겨울로 가고 싶지 않아서....
『강원 평화누리길』
『제11코스 돌산령길』
팔랑리에서 돌산령을 넘어 펀치볼 가는 길
피의능선전적비-팔랑2리 춘천상회-산양증식복원센타-돌산령터널앞삼거리-용늪출입구-
성골지맥고개-도솔산전적비-돌산령-펀치볼전망대-대암샘-돌산령터널-식물원방문자센타
['11코스 실트랙']
<파란문>이 직접 발품을 팔고 만든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입니다.
<강원평화누리길 11코스>의 출발지가 <팔랑2리 춘천상회>라는게 좀 이상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있을듯 합니다만, 잠시후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피의 능선 전투전적비'] 9:47
산악회 버스가 처음 도착한 곳은 "피의 능선 전투전적비" 앞 이었습니다.
<10코스>가 아직까지 미개통 지역이어서 <10코스>의 도착지를 잘 모르니
<11코스>의 출발지도 아직까지 명확하지 못해 횐님들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출발지를 찾아
답사를 시작하더군요. 주로 <올댓스탬프 앱>이 제공하는 <평화누리자전거길>을 참고해서....
어디로 가던 자유입니다.
['11코스 공식 안내도']
"강원평화누리길"의 공식 안내도를 보면 "11코스 돌산령길"은
"팔랑리"에서 출발하여 "해안입구"까지라고 글자도 선명히 표시하고 있습니다.
믾은 횐님들은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답사를 시작했습니다만
저는 그래도 공식 안내도를 존중하여 홀로 <11코스 돌산령길>을 진행합니다.
['팔랑2리 버스정류장']
['춘천상회'] 10:05
2023년 9월 17일 일요일 흐린 후 맑음
어디서 출발하건 또한 어디로 가던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몇가지 사안으로 선답자들도 저와 같이 고민을 많이하고 출발지를 잡은 곳이
공식 안내도에도 나와 있는 "팔랑리"의 "팔랑2리 춘천상회" 앞 이었습니다.
이곳은 <양구군내버스 1번>의 종점이기도 하더군요.
<춘천상회>에선 의약품도 파는 제법 큰 전형적인 시골 상점이었고...
홀로 출발합니다.
['원당리' 입구 삼거리] 10:07
<춘천상회>에서 100m쯤 올라 가면, 이곳은 <팔랑리>입니다만 <원당리 입구 삼거리>를 지나게 됩니다.
우측으로 가면 "양구 팔랑리 생태식물원"이 있다고 하며...
['453지방도-펀치볼로']
<춘천상회>에서 "453번지방도-펀치볼로"를 따라 <돌산령터널 앞 삼거리>까지 약40분간 진행합니다.
<펀치볼>이라는 닉네임과 "시래기"로 더 유명한 <해안면>까지는 11km 라고 알려 줍니다.
<원당리입구 삼거리>에서 10여분 더 올라 가면....
['산양 증식복원센타' 입구] 10:18
"산양, 사향노루 증식복원센타" 입구를 만나는데
동물연구센타 입구에 왠 장승이 있어 눈길을 끌고...
<산양 증식복원센타>를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다음 홈페이지로 들어 가 보세여
"한국산양보호협회"
['양구군내버스']
<산양증식복원센타> 입구를 지나는데 <양구군내버스 5번>이 <해안>으로 가고 있습니다.
"팔랑리 전설"
조선 중엽 어느 때 함경도에 살던 전주 이씨인 이학장이라고 하는 도사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남으로 내려오면서 방방곡곡을 두루 돌아다녔답니다. 그가 태백산맥의 골짜기를 더듬어
오다가 양구 동북방 도솔산 남쪽에 있는 동면 팔랑리에 이르렀답니다.
이곳 산수가 가히 자기의 뼈를 뭍을 만 한 곳이라고 생각한 그는 몇몇 친족들과 함께 여기에
터를 닦고 살게 되었던 것이라 합니다. 이 도사가 맞아들인 부인의 가슴에는 괴상하게도 유방이
네게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몹시 괴이하게 생각하기는 했으나 그는 아무런 말없이 그 부인과
백년을 해로하기로 마음먹고 여기에서 살았답니다.
그 뒤 아기를 가진 부인은 달이 차자 해산을 했더니 놀랍게도 네 쌍둥이씩 여덟을 계속 낳았답니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 부인의 유방이 네 개가 달려 있는 수수께끼를 풀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그와 그 부인은 온갖 정성을 다해 그 팔형제를 잘 길렀고, 기골이 장대한 그들은 장성해서 모두
나란히 낭관 벼슬을 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이 마을을 팔랑리라고 불리우게 되어 지금까지 그 이름이 내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八郞里"
['평화누리자전거길'] 10:26
<산양복원센타> 입구에서 완만한 오름길을 8분여 더 올라 가면.....
<평화누리자전거길>이 <피의능선전투전적비>가 있는 <월운저수지>를 돌아 와
<평화누리길>과 합류하는 곳을 만납니다.
['펀치볼 가는 길']
오늘 구름은 산이나 산줄기 정상 부분만 가리고 있어 산의 모양을 조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보행자 보도가 설치되 있는 <편치볼로>를 따라 완만한 오름길을 20여분 더 진행하면....
['돌산령 옛길-터널' 갈림길] 10:47
새로 뚫은 <돌산령터널>과 옛길이 되버린 <돌산령길>이 나뉘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여러 이정표가 안내를 하고 있으며, 또한 요란스런 현수막이 도보여행객들에게 겁을 주고 있습니다.
['꼬부랑길'] 11:00
<돌산령길>은 해발 1,000m급의 고갯길이지만 최전방이기에 군사전용도로가 되버려
길 양옆은 철조망이나 낭떨어지로 분리되어 도로 이외의 지역으로는 갈수도 없고
또한 도보여행객들은 안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도로 외 지역으로 들어 갈 필요도 이유도 없는데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군인들이 순찰을 돌며 잔소리를 늘어 놓으며 겁을 줍니다.
그들은 그들의 임무를 하는거겠지만....
['성골지맥 고개'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돌산령길>은 해발 1,000m급의 고갯길이지만 차량통행을 위해 산옆구리로 지그재그로 돌려
체감적으론 그렇게 힘들다는 느낌은 없지만 거리가 엄청 길었습니다..
지그재그 오름길을 오르며 북쪽을 바라보니 잠시 후 넘어야 할 "성골지맥 고개"가 조망됩니다.
그리고 <도솔령길>이 산옆구리를 완만한 각도로 돌아 가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도솔산>에서 분기되어 내려 가는 <성골지맥> 때문에 <도솔령길>은 가파르지는 않지만 엄청 길어 지고.
['대암산 용늪' 출입구] 11:07
이어서 "대암산 용늪 출입구"를 만납니다. <대암산 군부대 군사도로>이기도 하더군요.
<대암산 용늪>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해발 1,280m에 있는 "고냉습지高冷濕地"여서
<세계 자연생태계보존지구> "람세스"에 가입되 있는 곳이기도 하죠.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246호>로도 지정되있습니다.
<대암산 용늪>을 가려면 미리 <양구군청>에 신청을 하면 됩니다.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신청을 하면 거의 대부분 허가를 해 주며 안내원이 수행해 줍니다.
저는 오래 전에 <도솔지맥>을 할때 다녀 왔으며, 제가 직접 쓴 답사기가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이 답사기의 끝에 <부록>을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오름길]
<대암산 용늪> 입구에서 30여분 진행하며 고도를 높이면....
['대암산 용늪' 가는 길 조망'] 11:38
조금전 만났던 <대암산 용늪> 입구에서 <대암산 용늪> 가는 길이 조망되고.....
<도솔지맥>이 <도솔천>의 하늘을 나르듯 꿈틀대며 <춘천>을 향해 뻗어 갑니다.
<대암산>과 <용늪>은 <도솔지맥> 너머에 있습니다.
['양구'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되며 설명이 있음★
<양구>가 전체적으로 조망되는데, <양구>는 <도솔지맥>과 <성골지맥> <어은지맥>으로 둘러 싸인
우리나라 <국토정중앙>에 위치하는 분지 지역입니다.
"양구 楊口"라는 지명은
"<선조25년(1592)> 새로 부임한 감사가 금강산에 이르는 길목의 첫 고을인
이곳을 지나다가 "함춘(含春)땅"의 아름드리 "수양수림(垂楊樹林)"을 보고
이 고을을 양구(楊口)라고 한 것" 이 계기가 되어 오늘까지 불려오고 있답니다.
좀 아리까리한 한자를 알아보면....
* "함춘(含春)땅"이라는 말은 "봄을 머금은 곳"이라는 뜻인데
겨울이 긴 춥고 깊은 이런 산골에선 "봄기운"이 도는게 가장 기다려 지는 일이니 반어법으로 쓴듯.
* "수양수림(垂楊樹林)"은 한마디로 "수양버들이 늘어진 숲"이라는 뜻인데
현재 양구에서 "수양버들" 보기는 쉽지 않지요? ㅎ
[공사중]
지난 여름 폭우로 산사태가 나서 보수공사 중에 있는 곳이 두어곳 있고...
요즘 "양치질" 하지 않는 사람은 없죠?
그리고 "양치질"이 "이빨 닦는 행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더더욱 없죠?
그런데 "양치질"이란 단어가 실제 어떤 연유로 탄생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있을까요? ㅎ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치약 칫솔이 귀한 시절이어서 이빨 닦기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알려준 방법으로 이빨을 닦은적이 제법 많았는데....
봄이 되면 물이 오른 작은 버드나무 가지를 꺽어 그걸로 이빨을 쑤시며 닦았습니다.
그때는 "양치질"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그냥 그렇게 했을 뿐인데 그게 바로 오리지날 "양치질"이었습니다.
<버드나무 양楊>과 <이빨 치齒> <행위 질>......
"버드나무 가지로 이빨을 닦는다"가 바로 오늘날 "양치질"의 어원이 된것인데... 알고 있었나요? ^*^
<양구楊口>나 <양평楊坪>을 가면 생각나는게 바로 <양치질>이어서 언급했습니다. ㅎㅎ
['성골지맥 고개']
[뒤돌아 본 '성골지맥 고개'] 11:44
지그재그 오름길을 오르며 바라 보았던 <성골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고개에 도착했습니다.
군인들이 <성골지맥>으로 들어 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서있습니다.
지맥 산꾼들은 출입금지된 저런 곳으로 더 들어 가고 싶어 하죠. 저도 청춘 때 그랬습니다.
요즘은 가라고 해도 안가거나 못가지만....ㅎㅎ
저 철조망 철문을 넘어 마루금을 따라 내려 가면
아직 미개통된 <평화누리길 10코스>의 <비득재>로 갑니다. 얼마 후엔 갈수 있을듯....
['자전거 쉼터'] 11:50
이어서 자전거 쉼터를 지나고
['돌산령' 오름길]
<성골지맥 고개>에서부터 <도솔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돌산령>까지는 약간 가파라지기 시작합니다.
30여분 더 오르면....
['돌산령' 조망] 12:18
이번 코스에서 오르막의 끝인 <돌산령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해병 도솔산지구 전투 위령비' 입구] 12:23~12:34
"해병대 도솔산지구 위령비 입구"입니다.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들이 일일이 동행하여 순서대로 통행을 시키더군요. 전에는 안그랬는데....
['도솔산지구전투위령비']
"해병대 도솔산지구 전투 위령비"
海兵隊가 자랑하는 3大 戰鬪가 "도솔산전투", "인천상륙작전", "월남 '짜빈퉁' 상륙작전"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자기들이 직접 싸운 것도 아닌데, 쫄병들 앞에서 자랑하던 그 선임수병들..ㅎ
저는 해병대 쫄병 시절에 얼핏 '도솔산전투'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듯하기도 한데
고달픈 쫄병의 귀에는 가물가물한 관심없는 전설같은 이야기였을 뿐이어서 기억하지 못했는데
이곳에 와서 충혼탑을 바라 보니, 어렴푸시 괜히 폼잡고 자기가 한 일인것처럼 자랑하던
선임수병들의 이야기가 기억 나기도합니다. ㅎ
저 앞에 있는 "수륙양용LVT함"은 상륙작전 할때 사용하는 거라서 이런 1,000m 고지에 전시해
놓을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는데 왜 이런 산간오지에 전시하는지 해병대 출신인 저도 궁금합니다.
아마 해병대의 씨그니쳐 같은거라 전시하는건 아닌지...
요즘엔 더 첨단 무기가 개발되어 저런건 유물이 되어 버릴바엔 전시하는 건 아닌지...
['도솔산 등산로' 입구]
"도솔산전투"는 "미국 해병대 제5연대"가 북한군을 공격 했다가 실패하고 난 다음
"한국 해병대 1연대"가 美海兵隊作戰地域을 인계 받아 바로 공격하여 16일만에 勝戰한 곳입니다
그래서 더욱 명성을 얻은 전투인데, 해발 1,300m가 넘는 동해안 준령에는 안개가 많이 끼어
심한 안개 속에서 그것도 밤중에 돌격하여 적군을 완전 섬멸하여 "귀신잡는 海兵"-"無敵海兵"이라는
칭호를 <이승만 대통령>으로 부터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사진의 좌측 길이 <도솔산 등산로 입구>이며 군사도로이기도 합니다.
허가 없인 들어 갈수 없습니다만 저는 2009년 6월 14일에 허가 받고 <도솔산-대암산>으로 올라 갔었습니다.
입구 양옆에는 나무로 만든 "해병 장승"이 도열해 있습니다.
<도솔산 정상>은 여기서 매우 가까워 25분이면 올라 가더군요.
자세한 내용은 이 답사기의 끝에 있는 제가 쓴 산행기를 <부록>으로 첨부했은니 참고하세요.
['현위치'와 '양구10년장생길']
<도솔산지구전투위령비> 입구에는 현위치와 <양구10년장생길-소지섭길> 안내도가 있습니다.
['돌산령 정상'에서 조망] 12:40
"돌산령 石山嶺" 정상에는 군부대가 있어 사진촬영이 엄격하게 통제되었습니다.
군부대를 등지고 15년여만에 "도솔산 1,148.3m"과 "대암산 군부대봉 1,303.2m"을 조망합니다.
<대암산 정상>은 <대암산 군부대봉 1,303.2m> 뒤에 <용늪>을 지나 있는데....
자세한 위치는 아래 지도에 표기 했습니다.
[주변 지도]
<돌산령>과 <용늪>, 그리고 <대암산 정상>의 위치까지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휴전선>과 제법 유명한 <가칠봉>, 그리고 <금강산>이 지척에 있습니다.
<휴전선>에는 남북 각기 약2km 정도씩 떨어져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을 설치하고
그 사이에 <"DMZ비무장지대">를 설치해 놨는데, 이곳 <가칠봉 주변>은 <비무장지대>라는 완충지역이
없는 유일한 내륙 휴전선이어서 아주 특별한 곳이죠.
그래서 탈북을 하거나 월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서 경계가 특별한 것입니다.
최근에도 월북한 사람이 있어서 오늘 검문이 심했다고 근무 중인 군인이 알려 주더군요.
['돌산령 지게놀이']
"양구 돌산령 지게놀이"
산으로 둘러 싸인 "양구 돌산령 부근" 같은 산촌에는 "지게"없인 논일, 밭일, 산일을 할수 없었다지요
그래서 일을 하다 쉴때 심심풀이 놀이로 "지게놀이"를 했답니다.
그런 놀이가 민속놀이로 발전하여 1996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우수상>을 받았다고...
그래서 참고 하시라고 <양구 팔랑리 민속관>에서 가져왔습니다.
['천봉-가칠봉' 갈림길] 12:42
<돌산령 정상> 바로 아래 군부대 옆으로 <천봉>과 <가칠봉>으로 가는 군사도로 입구가 있습니다.
"가칠봉 加七峰 1,242m"은 <해안면-펀치볼>의 진산이랍니다.
[전망대] 12:44~12:50
<돌산령 정상>에서 조금 더 내려 가면 <해안면>을 전체적으로 조망할수 있는 전망대를 만납니다.
['도솔산' 조망]
전망대에서 먼저 <돌산령>과 "도솔산 兜率山 1148.3m" 정상을 조망합니다.
<돌산령>에서 올라 가면 20분이면 정상에 도달할수 있습니다.
<도솔>은 불교용어로 인도 북부 네팔등에서 사용하는 <산스크리트語>이기에 그 뜻을 알려면
<산스크리트語>를 알아야겠지요.
불교에서는 <도솔兜率>이라고는 사용하는 경우가 없고, <도솔천兜率天>이라고 주로 쓰는데
"미륵보살이 사는 하늘나라 궁전"을 의미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첨부된 <부록:도솔지맥 산행기>를 참고하세요~
['대암산통신부대-1303m봉'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도솔지맥>이 이어가는 저 산은 <대암산>인데 정상은 아니고 <군통신부대>가 있는 <1,303.2m봉>입니다.
예전에 저 부대에 들어가 짬밥도 먹었는데....ㅎ
휴전선 근처 북한군 부대의 모든 통신을 감청 도청한다고....
['해안면'-'설악산'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이 사진이 중요합니다.
눈 앞에 펼쳐지는 분지는 <펀치볼>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해안면 亥安面"입니다.
<해안면-펀치볼>에 대해선 다음 <12코스>에서 알아 보고
여기선 저 멀리 보이는 검은 능선을 꼭 보고 알고 가야 <돌산령>을 힘들여 오른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바로 "백두대간 설악산 구간"이기 때문입니다.
저 <백두대간>과 이곳 <도솔지맥> 사이에 <인제군>이 있고, <소양강>의 상류 지천인 <인북천>이 흐릅니다.
이 사진 꼭 클릭 해 보세요
<백두대간> 종주 하신 분들에겐 감회가 남다를 것입니다.
[내림길]
<전망대>에서 10여분 내림질을 하면....
['대암샘'] 1:00
"대암샘 大岩泉"을 만납니다.
아주 시원한 샘물 한바가지 마시고...
[내림길]
다시 25분여 더 내려 가면....
['자전거 쉼터'] 1:25
자전거 쉼터를 또 만나는데
<돌산령>에서 <'3,1km'>내려 왔고, <해안>가지는 <'6.9km'> 더 가야 한다네요.
[내림길]
폭우로 도로가 유실되어 공사중인 도로도 만나며 13분여 더 내려 가니
['뒷풀이 장소'] 1:48~2:09
<11코스 종점>이 아닌 그 이전에 자리를 펴고 산악회가 식사 대접을 하더군요.
맛있게 식사를 하고
['돌산령 터널-옛길' 갈림길] 2:10
"453지방도-펀치볼로"가 <돌산령터널>에서 나와 <돌산령 옛길>과 만나는 삼거리로 나가서
['돌산령터널']
<돌산령터널>의 동쪽 출입구를 조망하는데
터널에 "펀치볼 시래기 마을"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해안' 가는 길]
다음 코스에서 진행 할길을 가늠해 보고 버스로 돌아 가서, 버스를 타고
['식물원 방문자센타'] 2:26~2:30
"국립DMZ자생식물원 방문자센타"에 들려 잠시 둘러보고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펀치볼'과 실트랙 구글어스]
다음 <12코스>에서 답사 할 <펀치볼-화채그릇>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해안면>의 구글어스를 보면
다음이 더욱 기다려지지요? ㅎㅎ 그것도 깊어 가는 가을에.....
[고도표]
오늘 제가 걸은 거리는 GPS 측정으로 14.8km였으며, 3시간 4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돌산령>을 소재로 하여 향토색 짙은 서정성을 살린 민요가 있어 소개합니다.
깊고 깊은 양구골에 사는 아낙들의 한 맺힌 독백.....
해발 1,050m나 되는 돌산령 고개를 넘어 머나먼 타향으로 떠나는 야속한 님에 대한 원(怨)과
덧없이 흘려 보낸 청춘의 한(恨)을 잘 융화시켜 시적감흥을 나타내고 있는 타령이라 생각되어
우리 횐님들과 함께 음미해 보려고 올려 드림니다. 원문은 너무 길어 일부분만 인용합니다.
저는 떠나는 님보다 함께 사라지는 청춘의 세월이 더 한스럽게 느껴집니다.
"돌산령 타령"
왜 갈려나 왜 갈려나, 왜 가려오
꽃같은 나를 두고 왜 가리오
대미러니 노리대 돋거든
너하구 나하구 단둘이 가세
돌산령 명당구비엔 술 한잔 없어도
오고 가는 길손은 쉬어만 가네
문바위 용늪 참나물 우거진 곳에
우리 나 삼동세 나물가세
청춘에 할 일 없어 주색청루(酒色淸樓)에 몸 바쳐 사나
님이라고 하는 것은 다 남이건만
밥먹다 졸려도 꿈에 뵈네
세월이 갈려면 너 혼자 가지
알뜰한 청춘은 왜 데려가나
<부록>
[도솔지맥1구간] 돌산령-도솔산-대암산-광치령 산행기"
『강원 평화누리길』
『제1코스 금강산길』
신탄리역-역고드름-차탄천교-백마고지역-철원역사문화공원-노동당사-한다리-대위리교차로
['강원도 평화누리길' 종합안내표]
<강원도 평화누리길>은 20개 구간에 총361km라고 합니다.
현재 <화천7코스>를 지나 <양구9코스>를 진행했지만, 아직 답사하지 못한 <철원-화천 코스>를
시간 날때 마다 하나씩 답사하려 합니다.
['평화누리길 철원구간 안내도']
"평화누리길 철원구간"은 4개코스로 총60.4km라고 합니다.
['1코스 금강산길' 개념도]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오늘은 <강원도 평화누리길> 중에 첫번째 코스인 "철원 제1코스 금강산길"을 갑니다.
그런데 교통편의상 <신탄리역>에서 출발하여 약4km를 더 걸어 실제 진행한 거리는 17.8km였습니다.
['동두천역'] 8:10
2023년 9월 8일 금요일 맑음
<분당 이매역>에서 6시 지하철을 타고 <왕심리역>에 내려 <경의중앙선>으로 환승하고,
다시 <회기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여 <동두천역>에 8시에 내려
8시 14분에 출발하는 <경원선 대체직행버스>를 타고 <신탄리역>으로 갑니다.
버스요금은 1,000원이며 경노는 500원입니다.
['신탄리역'] 9:06
"신탄리역 新炭里驛"
<동두천역>에서 약50분이 걸려 <신탄리역>에 도착했습니다.
집에서 이곳까지 교통요금이 총500원이었으니 우리나라 좋은 나라~~♬
예전 <고대산 등산> 할때 두어번 왔던 <신탄리역>입니다만 역 안을 잠시 구경하고 나오겠습니다.
[역 플랫트홈]
예전엔 <고대산 등산> 후 여기서 열차를 타고 <동두천역>으로 갔었는데
현재는 <경원선 전철화 공사>로 열차는 다니지 않고 대체운송버스가 다닙니다.
조만간 공사가 완료되어 다시 전철이 다닐 예정이라고 합니다.
['2009년 신탄리역']
참고로 2009년 6월 6일에 촬영한 "신탄리역 플랫홈"과 "통근열차"입니다.
['신탄리역 앞 광장']
<산탄리역> 앞 광장입니다.
옛부터 나무가 울창하여 대표적 "숯" 생산지였는데, 일제강점기시대엔 쪽바리들이 이곳의 숯생산권을
빼앗아 독점적으로 운영하며 숯 운반을 위한 기차역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숯 생산으로 번창하던 때엔 돈이 넘쳐나 주점 등 유흥업소 거리가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답니다.
그때문에 <고대산>을 비롯한 산들은 황폐화 되고...
['안내판'] 9:16
역 앞에는 쉼터 소공원이 있으며 <경기둘레길 스탬프함>과 안내도가 있습니다.
<평화의길>과 <평화누리길>은 역 앞에서 우측 골목으로 계속 진행하면 되겠습니다.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고 또 하면 더 확대 됨★
이곳은 <연천군>이기에 <경기도>가 설치한 대형 안내도가 있습니다.
<경기둘레길 연천구간> <경기 평화누리길 연천구간> <평화의길 연천구간>등 안내도가 있습니다.
[갈림길] 9:17
<신천리역>에서 <고대산 등산로>를 따라 조금 진행하면 "고대산 산촌마을"이라는 안내석이 있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갈림길에는 길안내표시가 반드시 있으니 길찾기에는 아무른 문제가 없더군요.
['고대산' 조망] 9:19
이어서 <고대산>으로 가는 철길 건널목을 만나는데, 추억의 <고대산>을 조망하고....
"고래"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유력하다는데, 바다에 사는 "고래"가 아니라
방을 따뜻하게 불을 때고 열과 연기가 통과하는 "방고래"를 의미합니다.
<평화누리길>은 이 건널목을 건너지 않고 좌측 골목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마을 통과]
마을 골목을 4분여 통과하면...
['철도중단점'] 9:23
<경원선 철도 중단점>을 지나는데 곧 공사가 끝나 재개 될 예정이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차탄천']
<철도중단점>을 지나면 바로 "차탄천 車灘川" 둑방길을 걷게 됩니다.
<차탄천 車灘川>은 <조선 3대왕 태종 이방원>이가
<연천>으로 낙향하여 조용히 살고 있던 자기 절친 "이양소 李陽昭"에게 자기를 위해 관직을 맡아
달라고 회유하러 왔다가, 쿠데타 정권과는 함께 일 할수 없다는 퇴짜를 맞고 돌아 가다가
현재 <연천읍내>에 있는 <장지천>에서 가마 수레를 타고 건너다가 수레가 개천에 빠졌답니다.
그래서 <장지천>이 "가마수레가 여울에 빠졌다"고 <차탄천>으로 바뀌게 되었다는데
현재 <연천군>이 이곳을 테마둘레길로 만들어 도보여행객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난해 봄에 다녀 왔으며 나름대로 쓴 답사기가 있으니 관심있으면 참고하세요~~
『차탄천 주상절리 에움길』 답사기 여기 클릭
[갈림길] 9:40
<철도중단점>에서 17분 정도 진행하면 갈림길을 만나는데
<차탄천변길>을 버리고 우측 <경원선 굴다리>를 지나 <경원선>의 우측 길을 걷게 됩니다.
['경원선 전철화 공사중']
<경원선 전철화 공사>는 현재 진행 중에 있고
[자전거길]
<경원선 굴다리>에서 20여분 더 진행하면...
['역고드름 쉼터-봉국네매점'] 10:00
"역고드름쉼터-봉구네매점"을 지나게 되는데, 영업은 않는듯...
['경원선 전철화 공사중']
이어서 바로 <경원선>은 <옛 경원선>을 버리고 터널을 뚫으며 직선화 하며 신설되고 있는게 보입니다.
['역고드름' 입구] 10:03~10:09
이어서 "역고드름 입구"를 만나 다녀 오도록 합니다.
['역고드름' 가는 길]
50m 정도 가까이 있는 <역고드름 터널>로 올라 가면....
['역고드름 평화누리길 쉼터']
"평화누리길 역고드름 쉼터"가 조성되 있고
우측 터널로 가면...
['역고드름 폐터널']
"역고드름 폐터널"은 <옛 경원선>의 터널로 뚫다가 큰 여려움이 있어서인지 중단하고
잠시 후 만날 <차탄천 철교>를 건설하여 터널없이 연결시켰답니다..
['역고드름']
그후 공사 중단된 터널을 <6.25전쟁> 때엔 북한군의 탄약고로 사용했는데,
미군의 폭격으로 균열이 생겨 물이 새기 시작하며 완전 폐터널이 되었고,
겨울이면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천정에서는 고드름이 되고
바닥에선 '종유석'처럼 "역고드름"이 생기게 되었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역고드름 폐터널' 앞]
터널 앞으로 연결 시키려 했던 철로 흔적에 쉼터가 조성되 있으며
<소이산>이 보이기 시작 하는 걸로 보아 <철원 노동당사>가 다가 오기 시작합니다.
['경원선 전철화 공사중']
<역고드름 터널> 앞에선 좌측으로 직선화되는 <경원선 터널>이 보이는데
<폐터널>과 <신터널>이 새롭게 보입니다.
<역고드름터널>에서 200m 정도 진행하면
"옛 경원선 차탄천 철교"를 만납니다.
['평화를 꿈꾸다']
<차탄천 철교> 앞에는 "꿈 (평화를 꿈꾸다)"라는 조형물이 설치되 있습니다.
남북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의미라고....
['구철교'와 '신터널' 조망]
<경원선> "구 철교"와 "신 철도교-터널"이 동시에 조망되는군요.
['구 철교 교각']
<구 철교>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또 하나의 "옛 경원선 철교 교각"이 보입니다.
저 철교는 조금전 <역고드름 터널>에서 연결되는 <경원선>인데 공사가 중단된 철교 교각이랍니다.
['경기도-강원도' 경계]
<차탄천 철교>가 있는 개천은 "경기도-강원도 경계"이며 지금부터 <강원도 철원군>으로 들어 갑니다.
이로서 <평화의길-평화누리길 경기도구간>은 끝나고...
['강원도 평화누리길 출발지'] 10:15
"강원도 평화의길-평화누리길"이 시작되는 곳을 만납니다.
['평화누리길 철원구간'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평화누리길>과 <평화누리 자전거길>은 거의 같습니다.
<평화누리길>에 대한 이정표가 보이지 않을 때는 <평화누리 자전거길> 이정표를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오름길]
좌측 <옛 경원선> 철길을 옆에 끼고 5분여 진행하여
[뒤돌아 본 '역고드름'] 10:21
<옛 경원선 철길>이 보도화 된 곳으로 올라 가서 뒤돌아 보면...
<역고드름 터널>에서 나오는 '옛 철로 교각'의 위치와 '옛 경원선 차탄천 철교'의 위치가 구별됩니다.
모두 무심코 지나치는 이런걸 상세히 언급하는 최초의 답사기이죠? ㅎㅎ
['소이산' 조망] 10:23
진행방향으로는 이제 "소이산"과 "백마고지역"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8분여 진행하면...
['율이리' 사거리] 10:31
<율이리 栗梨里> 사거리를 만나면 화살표 방향인 좌측으로 진행하고
[쉼터] 10:38
이어서 쉼터 정자를 만나는데 <역고드름 2.1km> 지나왔으며,
종점인 <대위리검문소>까지는 "11.7km" 남았다고 알려 줍니다.
['화산암']
철원과 연천지역은 화산암으로 뒤덮혔던 곳이죠. 길가에 화산암이 널려있고
[삼거리] 10:48
이어서 삼거리를 만나는데 <백마고지역>과 <백마고지>가 조망됩니다.
7분 정도 진행하면...
['백마고지역'] 10:55~11:05
"백마고지역 白馬高地驛"
이곳은 제가 여러번 포스팅 했습니다. 그 중 하나만 소개해 드리니 시간 나면 읽어 보세요
못 가보신 분들에겐 신선한 여행이 될것입니다.
『길이 열린다, 평화를 걷는다』
[철원DMZ평화의 길] "벡마고지-공작새능선-화살머리고지GP" 방문기 -여기 클릭
['평화누리길'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백마고지역> 광장에는 처음으로 "평화누리길 안내도"가 있습니다.
<철원구간>을 지나며 계속 참고해야할 안내도인데 <자전거길>과 거의 같습니다.
['백마고지'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백마고지역>에서 <백마고지>는 갈수 없는 먼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볼수는 있습니다.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확대된 사진을 참고하세요.
<후고구려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궁예도성>이 있는 곳의 위치는 <고암산> 앞 비무장지대라는데
사진을 클릭하면 <김일성고지>라고 불리워지는 <고암산>을 확실이 볼수 있습니다.
['소이산' 조망] 11:05
<백마고지역>에서 진행방향으로 보이는 <소이산>을 향하여 <율이리-사요리 들판>을 통과합니다.
<왕재지맥>에서 <보개지맥>이 분기하는 <소이산>이 다가 옵니다.
그러므로 <왕재지맥-보개지맥> 남서쪽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모두 <차탄천>으로 흘러 가서
<전곡>에서 <한탄강>과 합류합니다.
<보개지맥> 뒷쪽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모두 <대교천>으로 흘러 다시 <한탄강>과 합류합니다.
['고대산''금학산' 조망] 11:08
우측 동남쪽으로는 <소이산>에서 연결되는 <보개지맥>과 <금학산> <고대산>이 조망되고...
['사요리'] 11:24
들판을 20여분 걸려 통과하면 <사요리 四要里> 사거리를 만나 직진하고
15분 정도 진행하면....
['보개지맥 마루금'] 11:39
<소이산>에서 분기하는 <보개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탱크방호벽을 지나면...
['소이산' 군사도로] 11:42
<소이산> 정상으로 올라 가는 옛 군사도로 입구를 만나는데 군부대가 없어지는 바람에
이제 이 도로는 정상으로 올라 가는 등산로 입구가 되겠습니다.
몇번 올라 가 봤기에 오늘은 생략합니다.
<소이산과 철원역사문화공원>에 대한 답사기도 몇개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세요.
[철원] 한여울길 제3~5코스 노동당사-소이산-동주산성-도피안사 -여기 클릭
['노동당사' 조망]
개보수 중인 <노동당사>가 보이기 시작하고....
['철원근대역사문화공원'] 12:00~12:25
"철원근대역사문화거리 테마공원"으로 들어 갑니다.
좌측에 보이는 <역전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는데 "떡갈비 정식 15,000원"이 좋더군요.
이곳에 대해서도 이미 몇번 답사기를 쓴적이 있으니 오늘은 생략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다음을 클릭하여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철원역사문화거리 테마공원-소이산 전망대』 여기 클릭
[뒤돌아 본 '소이산']
<옛 철원극장>과 <싸이렌>을 복원해 놨습니다.
['철원역사']
그늘막 파라솔에서 쉬며 바라본 "철원역"입니다.
오리지날 <철원역>은 이곳이 아닌 <민통선> 안에 있는데 이곳에 복원을 하고
현재는 <소이산 모노레일> 승하차장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철원역사문화공원' 정문]
"철원근대역사문화거리 테마공원"의 정문에서 뒤돌아 본 광경입니다.
일제시대 쪽바리들이 많이 모여 살며 <경원선>과 <금강산전기철도>에서 얻어지는 부가가치를
엄청 벌어 들이는 핵심 중에 핵심 금싸라기 땅이었답니다.
그러니까 이곳은 실제 철원의 핵심 쪽바리 동네.
그래서 우리나라 강원도 최초의 수도시설이 건설되어 배수되는 현대적 도시가 된 곳이랍니다.
그런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에 엄청난 예산을 들여 테마공원을 만드는 것에 주민들의 거센 반대도
있었답니다.
<6.25전쟁> 때에 이 지역은 폭격으로 완전 폐허가 되었는데, 최근 찰원군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206억원의 예산을 들여 테마공원을 만들고 관광지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답니다.
['노동당사'] 12:26
"노동당 철원당사"는 개보수 중에 있고...
여기서 <평화누리길> 길찾기가 좀 애매한데 안내판으로 가서 좌측을 보면....
['민통선검문소']
"노동당사삼거리 민통선 검문소"가 보입니다.
<옛 철원역>은 저 '민통선 검문소'에서 뒤로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옛 금강산전기철도>는 저 검문소를 통과하여 이 도로 앞으로 놓여 있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평화누리길-1코스 금강산길>은 <옛 금강산전기철도>가 있던 철로와 가까운 길인
"464번지방도-금강산로"를 주로 따라 가도록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을 잘 기억해 두면 잠시후 <대위리검문소> 부근에서 언급할 <금강산전기철도>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화살표로 표시한 저 앞으로가면....
['철원읍 중리' 입구] 12:28:
이정표를 만나며 <평화의길>과 <평화누리길>은 위험한 일반 도로를 피해 안전한 농로로 안내되는데
파란색 자전거길 표시로 길은 이어집니다.
['관중리 들판' 통과]
'철원읍 관중리'를 30여분 지루하게 통과하게 됩니다.
이제 <금학산>이 정면으로 보이고
['한다리'] 1:00
"대교천"이 흐르는 "한다리"를 만나 좌회전합니다.
<평화누리길>은 <한다리>를 건너 <금강산로>를 따라 직진합니다.
이 길 "464번지방도-금강산길" 또는 이 길 주변으로 "옛 금강산전기철도"가
조금전 <노동당사> 앞 검문소에서 뻗어와 가던 곳이었던 것입니다.
['대교천' 조망]
<한다리> 위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평화의길>은 이곳에서 <평화누리길>과 헤어져 <도피안사>로
가는게 보이는데, <도피안사>는 속세에서 도피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피안의 세계에 도달 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며 <국보 제63호 철조 비로자나불>이 있어 유명하죠. 쇠로 만든 불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흙으로 만든 불상이 국보로 지정된 곳은 '무량수전'으로 유명한 <영주 부석사>죠.
또한 나무로 만든 불상이 국보가 된 곳은 <오대산 상원사>이고....
[삼거리] 1:08
<한다리>에서 나즈막한 고개를 하나 넘어 가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한다리>에서 헤어졌던 <평화의길>을 다시 만나는 곳인듯 하고...
['금강산로']
<금강산로>라고 하는 <464번지방도>를 뙤양볕을 받으며 지루한 발길을 30여분 옮깁니다
['두루미']
근처에 "DMZ두루미평화타운"이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두루미"들이 제법 많이 보였습니다.
[삼거리] 1:30
<한다리>에서 30여분 진행하면 <고석정>으로 갈수 있는 삼거리를 지나 갑니다.
<금강산전기철도>는 우측 바로 옆 비닐하우스가 있는 쪽으로 연결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8분여 더 진행하면....
['대위교'] 1:38
이어서 "대위교 大位橋"를 만납니다.
앞 좌측에 제가 표기한 "철길가든"이 있는 곳이 "대위리검문소"가 있던 곳인데 아무른 표시가 없어서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금강산전기철도' 조망]
<대위교>에서 우측 즉, 남쪽을 바라보면 "철교"가 보이는데,
"금강산가던 철길!"이라고 확인 시켜 줍니다.
저것이 <노동당사> 앞에서 부터 언급한 "금강산전기열차"가 <금강산>으로 다니던 철교 입니다.
그러니까 "옛 금강산전기철도 대위리역"도 이 근처에 있었었다고 생각됩니다.
<평화누리길 1코스>의 이름이 왜? <금강산길>인지 알려주는 곳이기에 좀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옛 금강산 전기철도 노선도']
일본놈 사업가 <쿠메 다미노스케>가 건설하고 펴낸 [금강산전기철도 20년사]라는 책에서 퍼온 것입니다.
<금강산전기철도>는 총28개역에 116.6km 길이로 평균시속이 약30km 정도였다는군요.
이용요금은 당시 쌀 한가마 가격인 7원50전이었답니다.
전기를 공급하는 수력발전소가 4개소 건설되어 발전량이 총13,570KW라고 하는데 엄청난 투자죠?
<경원선 철원역>에서 분기하여 <금강산>으로 향하는 <금강산전기철도> 노선을 분명하게 볼수 있습니다.
그런게 있었다지?라고 막연하게만 생각되던 확실한 자료를 찾았습니다.
<평화의댐> 윗쪽에 북한이 새로 건설한 <금강산댐>으로 <창도>에서 <도파>까지는 현재 수몰되었답니다.
또한 <겸재 정선선생>이 그린 <금강산도>에 나오는 <단발령>이 지도 속에 나타납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세자인 <마의태자>가 저 고개를 넘어가며 머리를 깍고 속세를 떠났다고 하여
<단발령 斷髮嶺>이라고 한다는거 모두 아시죠? ㅎ
<단발령>은 산이 높아 철도로는 바로 넘을수가 없어서 "스위치빽" 형태로 일정 높이 까지 올라가서
다시 터널을 뚫어 다시 "스위치빽"방식으로 <내금강역>으로 갔답니다.
남한 <태백산>에도 있었던 "스위치빽"방식을 이용한것은 터널의 길이를 반으로 줄일수 있어서
공사비가 적게 들기 때문이었답니다.
이 지도로 <금강산 관광길>을 확실히 알수 있죠?
조선시대 <정철>이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하여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행차하며 노래한 유명한
"관동별곡"에 나오는 행차 루트와 <금강산관광전기철도>의 루트가 거의 비슷합니다.
이제 <금강산관광>을 어디로 갔는지 확실히 알것 같지요? ㅎ
['옛 금강산전기열차']
"옛 철원역"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옛 금강산전기관광열차"입니다.
사업가 쪽바리 <쿠메 다미노스케>가 <금강산>을 가 보고 일본과는 비교할수 없는 그 아름다움에 놀라서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하며, 첫번째로 어마어마한 자금을 끌어 들여 <금강산전기철도>를 놓고
일본에 광고하니 "금강산 관광을 않한 일본인은 일본인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답니다.
년간 수십만명의 일본 관광객들이 <부산>까지 배를 타고와 <경부선>과 <경원선>을 타고 "철원역"에
도착하여, 역 근처 (현 철원근대역사문화테마공원)에서 숙박과 쇼핑을 하고 <금강산>을 전기철도를 이용해
다녀 오게 되었으니 당시 <철원역>은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으로 우리가 해방이 되며 "쪽바리의 그리운 금강산"은 멀어져 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북한과 일본이 수교 얘기만 나오면 <금강산 관광>이 먼저 중요 이슈로 떠오른다고 합니다.
우리도 빨리 남북교류가 활성화 되어 전철을 새로 건설하고 <금강산관광>을 손쉽게 다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옛 철원역~대위리역간 지도']
일제강점기시대 일본놈들이 만든 상세지도입니다. <소이산> 표기가 분명히 보이죠?
<경원선 철원역>에서 <금강산전기철도>가 분기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사요역>이라고 표기한 곳이 현<노동당사>쯤 되고,
"대위리역"이 분명하게 표기되 있는데.....
<대위리검문소>가 있었던 <대위교> 근처라고 확신합니다.
['철길가든'] 1:39
<대위리검문소>가 있었던 이곳, 현재 <철길가든>이란 음식점과 군부대 정문이 있습니다
['옛 대위리 검문소'] 1:39
<철길가든> 바로 옆에는 실제 "대위리검문소 초소"가 아직도 유물로 남아 있습니다.
"강원도평화누리길 제1코스 금강산길"의 종점은 이곳입니다.
그러나 <동송 이평리> 가는 버스를 타려면 15분여 더 걸어서 <대위리 회전교차로>까지 가야 합니다.
산악회를 이용하지 않고 홀로 다니면 이런게 제일 어려운 문제이죠.
['명성산'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옛 대위리검문소>를 지나며 남쪽을 바라보면
<궁예>의 울음소리가 산을 뒤덮는듯한 "명성지맥 명성산"이 조망됩니다.
이 들녁에 떨어지는 빗물은 모두 <한탄강>으로 흘러 갑니다.
['대위리회전교차로'] 1:53
많은 답사객들은 이곳이 <1코스 끝>이라고 여기지만 조금전 <대위리검문소>가 끝입니다만
['현위치 안내판]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이곳에 안내판이 설치되 있기 때문에 이곳을 시종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2코스 안내도'']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2코스 두루미 머무는 길"은
<대위리검문소>에서 <도창리검문소>까지 입니다만,
아직 미개통 구간이 있어서 다음에 개통되면 가기로하고
['금학산'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대위리회전교차로>에서 <금학산-고대산>과 <소이산>을 조망하며
30분 정도 버스를 기다립니다.
['10번 버스'] 2:23
<동송 이평리>에서 <정연리>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는
<동송 이평리>에서 13:35, 15:35에 있는데, <정연리 종점>까지 30분이 걸리기에
<정연리 종점>에서 다시 14:05 , 16:05에 출발하여 이곳 <대위리회전교차로>까지 18분이 걸려
오후2시23분에 도착하더군요.
승객이라곤 나 혼자 뿐이었는데.....여기서 <동송 이평리>까지는 12분 정도 걸렸습니다.
['동송 이평리' 버스정류장] 2:38~3:28
<옛 철원>의 중심지였던 <동송 이평리>에 도착하여 시간 여유가 있어 늦은 점심을 먹고
3시30분에 출발하는 <13번 백마고지역>행 버스를 타고, 22분이 걸려
['백마고지역'] 3:52
<백마고지역>에 도착하여
['동두천행 대체버스시간표']
3시59분발 <동두천행 경원선 대체급행버스>를 타고 <동두천역>에서 전철로 귀가하였습니다.
교통비는 총2,500원 정도였으니 우리나라 좋은 나라~~♬ ^*^
『강원 평화누리길』
『제9코스 양구 평화의 길』
평화의 댐-비목공원-평화터널-오천터널-종점상회-오미리둘레길-각시교-물소리의 터-
금악교-현리-양구백자박물관-직연폭포-협동교-두타연터널-고방산교차로-두타연갤러리
['평화누리길 양구구간 안내도']
<강원도 평화누리길>은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을 잇는 총20개 코스로 구성되 있으며
총거리는 361.2km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양구 구간>은 4개 코스로 총75km라고 합니다.
['9코스 양구평화의 길' 안내도]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9코스 화천평화의 길>이 아직 미개통이어서 개통 될때 진행하기로 하고
오늘은 <양구군 4개코스 총75km> 중에 첫번째인 "제10코스 양구 평화의길 23.5km"를 갑니다.
제가 실제 진행한 트랙은 <국토지리원 지도>를 클릭하면 상세한 트랙을 알수 있는데,
파란색 선이 추천코스이며, 제가 실제 진행한 코스는 빨간색 선입니다. 약간 지름길을 이용한곳도 ㅎ
또한 <평화터널>에서 <오천터널>까지는 산악회 버스를 이용 했다는 것도 첨언합니다.
['평화의 댐'] 10:20~10:50
2023년 9월 3일 일요일 흐림
"평화의 댐"
오늘 이곳까지 오는데 조금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화천>에서 앞에 보이는 <대붕터널>로 오면 잠깐이면 되는데, <양구>로 빙 돌아 오는 바람에 4~50분이
더 걸렸습니다. 그 이유는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화천>에서 이 댐으로 통하는 길을 통행금지 시키고
있었기 때문인데, <해산령> 부근에 산사태가 나서 도로가 유실되었다고.....
이런 상황을 미리 파악하고 미리 우회로를 이용한 산악회의 준비성에 감탄했습니다.
<양구>로 돌아 오느라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평화의 댐>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가야겠죠?
<평화의댐>은 몇번 와 봤기에 오늘은 주로 "비목공원"을 스토리텔링으로 답사기를 포스팅하려 합니다.
['평화의 댐'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평화의 댐>은 거대하기에 미리 안내도를 숙지하고 다녀야 효과적으로 볼수 있겠죠.
사진을 클릭하여 상세한 안내도를 참고 하시고...
저는 안내도의 "3번 비목공원"과 "B번 DMZ아카데미"를 중점적으로 다녀 오도록하겠습니다.
['상징 조형물'] .
<평화의 댐-다리> 앞에는 댐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으며, 주차장도 있습니다.
여기서 좌측인 서쪽으로 3~40m 가면...
[관광안내소]
<화천 관광안내소>가 있는데
안내원이 "원하면 해설사가 직접 해설도 해 드릴수 있는데 왜 이용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관광안내소를 이용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력하는듯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친절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 각자 도생하는거 아니겠소?~ㅎ
댐 앞에 이런 친절이 있다고 안내판이라도 세우면 많이 이용 할텐데...
여하튼 고맙습니다. 오늘은 단체행동이라 어렵고 다음에 오면 꼭 해설을 듣도록 하겠수"
사실 <평화의 댐>에 대해선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좀 아는척 한마디씩 하지요?
<전두환>이 어쩌고 저쩌고....<북한 금강산댐>이 또 어쩌구 저쩌구....
국민 호도용으로 사기 친 거라는 둥....ㅎ
<관광안내소> 옆에는 정자가 하나 있는데, 가 보면...
['노벨 평화의 종'] .
"노밸 평화의 종"
이 종은 <노르웨이 시청>이 기증한 종이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노벨 평화의 종> 좌측 건너편으로 가면....
['세계평화의 종']
"세계평화의 종"이 거대한 몸통을 자랑하며
<평화의 댐>과 <북녁땅>까지 우렁찬 '평화의 종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고 있는듯 하고...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에 있습니다.
['평화의 댐 물문화관']
<세계평화의 종> 건너편엔 "평화의댐 물문화관"과 "물빛누리카페테리아"가 있는데...시간없어 생략하고
['비목공원' 가는 길]
<물문화원> 앞 도로에 "비목공원"으로 내려 가는 지름길이 있습니다.
도로를 따라 내려 가도 됩니다만 공원의 <비목탑>을 가까이서 보려면 이 샛길을 이용하는게 좋습니다.
['비목공원' 가는 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 계단을 잠시 1~20m 내려 가면... 우측에...
['비목탑']
"비목탑 碑木塔"이 무언가 의미있는 메시지를 주며 우뚝 솟아 있습니다.
제가 앞으로 쓰는 글을 읽기 전에 먼저 위 안내문을 꼭 읽어 보시길 권장합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우리나라 대표 가곡 중에 하나인 "비목"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 한것이라 합니다.
아는 사람은 잘 알고 모르는 사람은 당연히 누군지 관심 조차 없을
"한명희 韓明熙"라는 분에 대해 제 나름대로 좀 깊이 있게 알아 보겠습니다.
제가 어렵사리 선생의 군대 소위 시절 사진을 구해와 편집하여 <비목탑>에 첨부했습니다.
선생은 1939년 3월1일 '삼일절'에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고등학교>를 다니시고
<서울대 음대>로 진학했는데, 좀 독특하다면 독특한 <국악과>를 다니셨답니다.
대학 때에 <학군단(ROTC)2기>를 병행하여 졸업후 육군 소위로 임관하게 되고,
<평화의 댐>에서 북서쪽으로 12km 정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비무장지대 "백암산 1,179m"의 "OP"에서
최전방 소대장으로 군생활을 하였답니다,
그때 산기슭마다 쌓여있는 전쟁의 상흔을 생생하게 목격하게 되었고
군 제대 후 ....
<"TBS동양방송">에 음악PD로 입사하여,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이 유행가로 도배되는 시대에 대항하여
"가곡의 언덕"이라는 <가곡 프로그램>을 윗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처음 도입하였는데,
(사실은 '이병철회장'의 도움이 있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방송국 국장 등 윗분들이 금방 실패 할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쎈세이션을 일으키며 대성공을 거두었답니다.
제가 고교 시절이었습니다. 1960년대 말 그 때 <비목>이라는 가곡이 등장하게 된것으로 기억되며
음악 교과서에도 실리기 시작 했습니다.
이때부터 <비목>과 함께 폭발적 인기를 끌기 시작한 노래가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로
시작되는 "얼굴"과 '일출봉에 해 뜨거던 날 불러 주오'로 시작되는 "기다리는 마음"등이
<한명희 PD >의 기획으로 만들어 졌다죠
선생은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성균관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까지 받은 학구파죠.
방송국 PD 이후 <국립국악원 원장>과 <대한민국 예술원 부회장>을 역임하시고,
<서울시립대 교수>로도 제직했습니다.
선생이 받은 상을 몇개만 알려 드리면 <"KBS출판부문국악대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자랑스런 ROTC인 상">등이 있으며, 특히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받으셨습니다.
요즘도 <6.25>가 되면 방송에도 거의 매번 나오시죠. 금년에 만84세이신데 정정하시더군요.
['비목詩碑'와 '백암산']
<비목탑> 앞에서 내려다 보는 광경입니다.
바로 아랫쪽에 그 유명한 "비목 詩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명희 소위>가 근무했던 <흰바위산>이라고 불리는 "백암산 1,179m"이 정확치는 않지만 보이는듯
비목
-한명희 作詩. 장일남 作曲-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이 가사의 내용을 깊이 있게 느끼며 부르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오는 단어 몇개는 한자 실력이 상당한 사람도 잘 모르는 단어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제가 짧은 가방끈이지만 선생의 회고록을 참고하고 제 나름대로의 감상을 합쳐 몇자 적겠습니다.
['비목']
<비목>은 '슬픈 나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뜻이 아니라 "나무 묘비墓碑"입니다.
돌로 만든 묘비를 <비석碑石>이라고 하드시, 나무로 만든 묘비를 <비목碑木>이라 부른 것입니다
윗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습니다.
철로 만든 묘비는 <철비鐵碑>라고 하며 가끔 몇군데서 <철비鐵碑>도 볼수 있습니다.
<비목碑木>이란 단어는 사실 당시엔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이니 잘 모르는 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비목 가사>의 탄생 배경을 선생의 회고와 인터뷰를 토대로 간단하게 재구성해 보겠습니다.
1963년 어느 날,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OP'에서 수색중대 소대장이었던 <한명희>는 사병들과 함께
순찰을 돌고 있었는데, 우연히 이끼 낀 돌무덤을 발견하고 무덤 쪽으로 발길을 옮겼답니다.
녹슨 철모, 카빈 소총 한 자루, 묘비처럼 꽂혀 있던 썩은 나무등걸, 고즈넉이 피어있는 산목련등으로 보아
전투 중에 숨진 한 군인의 초라한 무덤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답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가사에서 "초연"은 '첫사랑 감정'이라던가 '초연하다'라는 뜻이 아니라
한자로 쓰면 "초연硝煙"인데. '화약 초硝'에 '연기 연煙'으로 "화약연기"를 의미하죠.
총구와 대포에서 싯푸르게 나오는 화약연기가 뒤덮고 간 백암산 계곡의 어느 양지 바른 곳에서
산화해 간 젊은 군인의 간이 무덤에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그가 썻던 철모를 씌워 만든 윗 사진과 같은
이름 모를 돌무덤을 표시하는 "비목 碑木"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보지 않아도 절절히 느낄수 있습니다.
"초동 친구"라는 단어도 어려운데 '초등학교 친구'라는 뜻이 아니고
"땔감 나무 할 초樵"와 "아이 동童"으로 '어릴적 함께 나무하러 다니던 고향친구'를 의미한답니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은 대부분 이런 경험이 있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죠?
['백암산OP"의 '비목'] <자료사진>
이 사진은 <한명희 선생>이 실제 근무했던 <"백암산 OP">에 설치한 <비목> 사진을 빌려 왔습니다.
저는 1절 가사보다 2절 가사가 심금을 더욱 더 울립니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궁노루"가 어떤 노루인지 아세요?
향기로운 향기를 내 뿜는다는 "사향노루"를 다른 말로 "궁노루"라 한답니다.
이 가사가 나오게 된 배경을 <한명희>선생 자신이 쓴 수필에 설명해 놔서 저도 알게 되었는데
마음을 찡하게 울리는 내용이어서 그 슬픈 내용을 혼자 알기엔 아까워 알려 드라는 것입니다.
<"백암산 OP"> 비무장지대엔 자연의 보고였는데,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동물들이 번성했답니다.
어느날 순찰을 돌다가 부대원들이 "궁노루" 한마리를 생포해 왔답니다.
식량이 언제나 부족했던 당시 병사들이 모처럼 고기를 먹을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날밤 푸른 둥근달이 훤히 비추는데 잡혀온 "궁노루"가 자기 운명을 아는듯 자기 새끼와 짝에게
자신의 운명을 알리며 구명을 요청하는듯 애타게 밤새도록 목청것 애처롭게도 울었답니다.
애타게 울부짖는 소리가 산울림되어 백암산 계곡의 적막을 깨뜨리며
푸르른 달빛 속에 비무장지대로 울려 퍼지는 "궁노루"의 울부짖음을 상상해 보시라
동물들도 강제로 헤어져 죽을 상황에 직면하니, 두고온 짝과 새끼들를 그리워하며 이렇게 울부짖는데
하물며 화약연기 속에서 싸우다 산화해 간 이름 모를 병사는 얼마나 부모 형제 고향을 그리워 했을까....
궁노루 울음소리는 이름 없는 병사들의 넋이 외치는 절규 같았으리라....
20대의 감수성 예민한 <한명희>의 <비목>은 이런 상황 속에서 탄생 되었답니다.
그런데 실제 이 가사를 쓴 것은 그후 <"TBS방송국"> PD시절에 당시 작곡가이자 교수였던 <장일남>선생의
요청을 받고 <"TBS방송국"> 숙직실에서 술 마시고 하룻밤에 쓴것이라 합니다.
이 가사에 곡이 붙여지자 그야말로 "목숨바쳐 조국을 수호한 애국군인의 노래"로 폭발적 인기를 모았고
지금도 애창곡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죠..
['DMZ아카데미'에서 뒤돌아 본 '비목탑']
"DMZ아카데미"가 있는 주차장으로 내려와 뒤돌아 본 <비목탑>과 <비목>입니다.
인간에게 생포 당해 끌려온 "궁노루"가 헤어진 자기 짝과 새끼들에게로 돌아 가고 싶어 울부짖는 외침이
푸른 달밤 깊고 깊은 백암산 계곡에 울려 퍼질 때를 상상해 보시라....
그 "궁노루"는 소대장 <한명희>에 의해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 갔으리..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으리
[' DMZ아카데미']
<북한강>이 흐르다 잠시 멈추는 <평화의 댐> 위에 있는
"DMZ아카데미"라는 건물이 있는데, 문은 닫쳐있고
['평화의 댐' 상류]
['배수터널' 조망]
[안내문]
"평화의 댐"상류의 모습이 어쩐지 서글프게 다가 옵니다.
이 댐의 저수용량은 "26.3억톤"이라고 합니다.
엄청난 저수 용량을 가지고 있는데도 '수력발전'이라던가 '농업-공업-삭수'용으로는 이용 할수 없는
"다목적 댐이 아닌 허수아비 댐"이라는데, 엄청난 예산을 들여 건설한 유일한 이유는
<북한 금강산 댐>이 붕괴되거나 水攻을 펼칠 때를 대비하기 위한 댐이라는거죠.
<전두환 군사쿠데타 정권>이 국민의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사기를 쳤다는 설이 유력하죠
왜냐하면 <금강산댐>의 저수용량을 뻥튀기 해서 약200억톤이라고 광고하며, 댐이 붕괴하거나
水攻을 하면 <서울 63빌딩>이 반 정도는 잠긴다고 구라를 치며 국민 성금을 거둬들이기도 했죠.
세계 최대 댐이라는 중국의 <샨샤댐>의 저수 용량이 290억톤 정도라고 하는데
<금강산댐>이 200억톤의 물을 저장하려면 <양자강>같은 5,000km가 넘는 강이 있어야 하고
그것도 10여년은 수문을 닫고 저장해야 만수위가 된다는데, 콧구멍만한 우리나라에선 가당찮은 일이죠
현재 <금강산댐>의 저수 용량은 우리나라 <충주댐>의 저수용량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조망]
<"DMZ아카데미"> 앞 주차장에서 <비목공원>과 <세계평화의 종>을 바라보며
다시는 동족상쟁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염원하면서.....
다시 <평화터널>로 올라 갑니다.
['평화터널' 앞]
"제9코스 양구평화의 길"의 출발점인 <평화터널> 앞으로 다시 돌아와
<평화의 댐> 하류 쪽을 잠시 조망하고 갑니다.
['피스카이워크'에서 조망]
<평화의 댐> 하류 쪽을 조망하고
['평화터널'] 11:00
"제9코스 양구평화의 길"의 출발점인 <평화터널>에서 <오천터널> 까지 오르막은 약8km 정도 되는데
편의상 산악회 버스를 타고 쉽게 이동했습니다.
그래서 <평화터널>에서 <오천터널>까지의 답사기는 없습니다.
['오천터널'] 11:14
"오천터널"
지명의 유래가 궁금하여 조사 해 봤지만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추리한 지명의 유래는 다음과 같은데 아마도 모두 동의 하시리라 생각되는데...믿거나 말거나지만...
<오천터널>이 있는 이 산줄기는 <백두대간>의 <금강산> 부근의 <매자봉>이라는 곳에서 분기하는
<도솔지맥>에서 새롭게 분기하는 <어은지맥>의 마루금이 지나는 곳입니다.
또한 행정 구역상으로는 <양구군 방산면 오미리>와 <천미리>의 법정경계가 되는 산이더군요.
그러니까 <오천터널>의 동쪽은 <오미리 五味里>이고 서쪽은 <천미리 天尾里>였습니다
터널 이름을 지을 때 <오미리>와 <천미리>를 관통하는 터널이라고
<오미리>의 <오>와 <천미리>의 <천>을 합쳐 <오천터널>로 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저는 추리 했는데 그럴듯 하죠? ㅎㅎ
<방산면 천미리 天尾里>는 "하늘 끝 마을"이라는 의미로 첩첩산중 오지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DMZ로 분단된 지금은 '남한의 북쪽 끝마을'이라고 한답니다.
"어은산 漁隱山 1,280m"은 북한에 있어 가지 못하는 산이지만 "물고기가 숨어 사는 산"이라고
['오천터널' 앞]
<오천터널> 앞에는 작업차량들의 대기소가 있고 간이 화장실도 있습니다.
['평화로(460번지방도)' 내림길]
<오천터널>부터 <오미리 종점상회>까지는 완만한 내림길로 진행이 수월하지만
구경거리 없는 단순 도로여서 지루했습니다.
50분 정도 진행하면....
['오미리 종점상회' 앞] 12:02
<오미리 종점상회> 앞 삼거리에 도착하는데
['종점상회' 앞 갈림길] 12:04
이곳이 <양구군내버스>의 <방산면 오미리 종점>이라고 <종점상회>라 한듯...
<종점상회> 앞에 있는 삼거리는 <평화누리길>과 <평화의 길>이 잠시 나뉘는 곳이었습니다.
<평화누리길>은 우측으로 가고, <평화의 길>은 좌측으로 가는데, 어디로 가나 오십보 백보지만
앞에 가는 분들이 좌측으로 가서 그냥 따라 가기로 합니다.
좌측으로 조금 가면...
['평화의 길']
<종점상회> 옆 <버스종점> 안의 '화살표 방향'으로 <평화의 길>이 이어지더군요.
*후답자들을 위한 팁*
여기서 좌측 <460번 지방도>를 이용하면 <각시교>까지 약3km이상 단축됩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수입천 수중보>를 건널수 없으니 그냥 좌측 <460번지방도>를 이용하는게 좋겠습니다.
['오미리둘레길' 조망] 12:05
<종점상회>에서 <오미리둘레길>로 내려 가며 가야 할 길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수입천>으로 나가면...
['수입천변길'] 12:09
<수입천변길>을 걷게 됩니다.
앞으로 계속 이 <수입천>을 기준으로 길은 이어집니다.
이 "수입천 水入川"은 앞에서도 언급한 <도솔지맥>에서 분기하는 <어은지맥>과 <성골지맥> 사이에
흐르는 개천이며 <북한강 화천댐>으로 갑니다. 유명한 <두타연>을 만드는 개천이기도 하죠.
[화장실] 12:12
<오미리둘레길>의 중간 쯤에 간이화장실이 있고, <직연폭포>까지 5.9km 남았다고 알려 줍니다.
['꽃봉' 조망]
<수입천변>을 더 진행하면 '방산면 금악리'의 <꽃봉 566.8m >이 조망되기 시작하고
계속 진행하면
['수중보']
<수입천>을 건너 건너편으로 가야 하는 "수중보"를 만나는데 여름철엔 건너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종점상회>에서 부터 <각시교>까지는 <460번지방도>로 진행하는게 좋다고 한것입니다.
좌측으로 <오미막국수집>으로 돌아 나가면....
['오미막구수'] 12:32
다시 <460번지방도-평화로>를 만나며 <오미막국수집>을 만납니다
막구수 한그릇 하고 가려고 들어 갔더니 손님이 너무 많아 들어 갈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우측을 보면...
['오미리산촌생태체험관']
"오미리 산촌 생태 체험관"이 있고
['각시교' 방향]
<각시교> 방향으로 잠시 진행하면
['각시교'] 12:36
<수입천>을 건너는 <각시교>를 만납니다.
"각시와 꽃봉"에 얽힌 전설이 서려있다는데 두메산골로 시집간 각시의 슬픈 얘기가 있더군요.
고부간의 갈등으로 각시가 이 개천을 건너다 물에 빠져 얼어 죽었다나 뭐래나....
옛날 이런 두메산골엔 시집 온 각시들의 애환이 서려있죠.
['수중보' 방향 조망]
<각시교>에서 <수중보>를 건너지 못하고 돌아온 이유를 여기서 알수 있습니다.
여름철엔 <종점상회>에서 이곳 <각시교>까지는 <460번지방도>를 이용하시길 추천합니다.
['방산면 금악리']
<각시교>를 건너서는 좌측 <수입천변길>을 이용하고
황금들판으로 변해 가는 들판을 보며 가을을 느끼기 시작하며 '방산면 금악리' 속으로 들어 갑니다.
8분여 진행하면...
['물소리의 터']
['독수리 상'] 12:44
"물소리의 터"라는 조류관찰소가 있는 쉼터에 도착합니다.
독수리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
['금악교'] 12:53
<꽃봉>을 바라보며 10여분 개천변길을 더 진행하면...
<금악교>를 건너게 되며 '방산면 금악리'가 펼쳐 집니다.
['금악리둘레길' 입구] 12:54
<금악교>를 건너면 <평화누리길>은 우측 <수입천변>으로 안내 되는데
['방산면 평화누리길'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방산면 평화누리길 안내도>가 설치되 있어 읽어 보고
['금악리' 통과]
'방산면 금악리'를 통과 해 15분 정도 진행하면....
[전망 쉼터] 1:09
자전거 주차대도 있는 전망 쉼터를 만나서
['수입천']
<수입천>을 조망하고...5분 정도 더 진행하면...
['460번지방도(평화로)"] 1:14
다시 <460번지방도-평화로>를 만나고
['방산면사무소 소재지' 조망]
<방산면사무소>가 있는 <방산면 중심지>로 진행하게 되며
<방산중학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방산초' 조망] 1:19
<방산초등학교> 앞을 지나는데....지난 졸업식 때에 졸업한 학생수가 딸랑 "5명"이라네요
이 학교 교가는 멋진데....
"백석산 푸른정기 가득 지니고
직연폭포 맑은 물에 마음 닦으며
기름진 강산에 자라는 우리~ ♬♪"
['연자방아'] 1:21
<연자방아> 모형이 있는 곳을 지나는데 <디딜방아>도 함께 있군요.
['현리'] 1:22
이어서 이곳이 "현리 縣里"라는 안내석을 만나는데
옛날엔 이곳에 <현감>이 주재하는 <방산현 方山縣>이 있던 중요한 큰 고을이었답니다.
['삼거리] 1:24
이어서 이곳 <현리>가 "조선백자의 시원지"라고 알리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평화누리길>은 우측 <수입천변>을 따라 가지만
이 지역 사람들이 사는 거리를 보며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해 좌측 상가지역으로 진행합니다.
['방산면 중심지']
이곳에도 없는게 없는 다양한 가게들이 줄을 서 있는데 장날이 아니어서인지 사람들의 왕래는 없었고
<서울자전차 상점>이 눈길을 끕니다.
이런 산간 오지 마을이 최고로 여기며 동경하는 곳이 "서울"이었죠. 지금은 아니겠지만...
"서울"의 물건들은 모두 좋은 품질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고... 그래서 시골에 가면 가게 이름들이
대도시 이름인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방산수변공원'] 1:26
상가지역을 통과하면 <방산수변공원>을 만나는데 "수달"로 보이는 조형물이 있고
공원 맞은편에는
['방산면사무소']
"방산면사무소"가 있습니다.
['방산면 의용119소방대'] 1:29
<방산면사무소>에서 100m 정도 올라 가면 "방산면 의용119소방대"가 있으며
좌측엔 <보건소>가 있더군요.
여기서 우측으로 30m 정도만 나가면.....
['양구백자박물관'] 1:30
"양구백자박물관"을 만나며, <평화누리길>에도 다시 합류합니다.
<작연폭포>는 직진해 들어 가지만 박물관을 횡하니 둘러보고 가겠습니다.
['박물관 앞마당']
박물관 앞에는 <방산감리교회>와 <방산파출소>가 있고
['백자 제작 상']
['전통 가마']
<양구>가 <조선백자의 시원지>라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조선백자>는 '경기도 광주'와 '이천' '여주'가 주 생산지인데
처음 만들기 시작한것은 <양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밥그릇을 여기에서 만들었다나 뭐래나...
['박물관 운동장']
박물관 앞에는 운동장도 있는데 백자로 만든 맷돼지가 눈길을 끌고
['박물관' 후문] 1:38
박물관 후문을 통해 나가면 바로 <직연폭포>를 만나더군요.
['직연폭포'] 1:39
"직연폭포 直淵瀑布"
<방산초등학교 교가>에도 등장하는 이 지역 유명 폭포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그런데 전망대는 폐쇄했더군요.
['직연폭포']
나무 사이로 폭포를 간신히 찍었는데 그렇게 큰 폭포는 아니군요.
송아지가 폭포에 빠지자 메기가 송아지를 잡아 먹었다는 전설이 있다네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웃지 못할 전설...^*^ 여튼 전설이니까 재미로..
[다리에서 본 '직연폭포']
<직연폭포> 윗쪽 다리에서 바라 본 <직연폭포>입니다.
[다리 상부 조망]
다리 윗쪽에 있는 수중보
['협동교']
<두타연터널>로 가는 길목에 있는 <협동교 協同橋> 조금 못미쳐서
[뒷풀이] 2:40~3:07
<청마산악회>가 제공하는 뒷풀이
장소를 <협동교> 옆에 잡고 식사와 주류, 삼겹살도 구워 제공하더군요.
다른 산악회에선 보기 어려운 광경인데, 횐님들을 위해 서비스한다고....
이 음식은 산악회 회장 부인이 집에서 준비한다는데, 음식솜씨가 상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협동교']
뒷풀이 장소 옆 <수입천>으로 나가보니 <협동교>가 이곳에 있었다는 표지석이 숲 속에 서있더군요.
그러니까 <구 협동교>가 있던 자리란 걸 알려주는데
['협동교'에서 조망]
<두타연터널>로 가는 <신 협동교>가 생기면서 <구 협동교>는 숲 속에 표지석만 남기고 사라지고...
['新협동교' 통과] 3:08
식사를 마치고 <두타연갤러리>까지 진행합니다.
<신 협동교>를 지나는데 <수입천> 맑은 물에 땀을 씻는 횐님들도 보입니다..
['송현2리' 버스정류장] 3:10
<송현2리 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평화의길>은 좌측으로 안내됩니다.
<평화누리길>은 앞에 보이는 <두타연터널>이 있는 산줄기 우측으로 돌아 가야 하는데
그래서 우측으로 가야 할듯하지만, 좌측으로 안내하는 이유는
['평화의 길']
<구 송현2교>가 좌측에 아래에 있어 저 다리를 이용하여 우측 산줄기를 돌아 가라고
<新 송현2교> 앞에서 좌측으로 가라 한 이유를 이제 알겠습니다.
저 다리는 조금전 <구 협동교>에서 바로 연결되었던 걸로 보입니다.
['두타연터널'] 3:15
정식 <평화누리길>을 버리고 거리 단축을 위해 "두타연터널"을 통과합니다.
제법 긴 터널이더군요.
['고방산교차로'] 3:22
제법 긴 <두타연터널>을 통과하면 바로 <고방산교차로>를 만납니다.
<방산현>의 옛 중심지였다고 <고방산리 古方山里>라고 한답니다.
['두타연 갤러리']
<고방산교차로>에는 "두타연갤러리"가 있는데 이곳이 <평화누리길9-10코스>의 시종점입니다.
<두타연>으로 가는 길 좌측에 안내판이 있습니다.
['안내도']
<양구10년장생길>이 <평화누리길 10코스>인데 아직 미개통지역이라 갈수 없지만,
<두타연>까지는 갈수 있습니다.
['소지섭의 길'] 3:30
"두타연갤러리"
문은 닫혀있고 이용객의 흔적은 사라진 <두타연갤러리>를 둘러 보다가
"소지섭의 길" 출발지를 우연히 찾았습니다.
<소지섭>이 악수를 청하는 조그마한 조형물이 있더군요.
<양구10년장생길>이라고 명명된 이 길은 영화배우 <소지섭>이 촬영 왔다가
이곳의 자연풍광에 흠씬 빠져들어 포토에세이집을 발간했는데
이게 인연이 되아 <양구군>에서 <소지섭>의 이름을 빌려 "소지섭의 길"을 조성 했답니다.
[고도표]
오늘 거리는 총29.8km이지만, <평화터널>에서 <오천터널>까지 약10km는 버스로 이동했기에
실제 걸은 거리는 약19km정도 되며 4시간반 정도 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명희>선생이 자전적 에세이집에서 밝힌 다음 글을 생각하며 답사기를 마칩니다.
"비목"
목숨 걸고 싸우다 산화해 간 이름모를 무명용사들
그들이 지켜준 산하에서 온갖 욕망과 쾌락을 누리면서
전혀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제발 이 노래를 부르지 말아다오~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7코스 한묵령길』
한묵령-풍산리-처녀고개-딴산유원지-꺼먹다리-구만교-대붕교-살랑교-미륵바위
['화천관광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7코스 한묵령길 안내도']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강원도 평화누리길>이 완전하게 개통되지는 않았다지만 길 찾아 떠나길 고대하는 산객들은 이미
배낭을 메고 가 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파란문>도 <청마산악회>가 주관하는 <강원도 평화누리길>에 합류하였습니다.
<7코스 한묵령길>은 '화천군 대이리'에 있는 "미륵바위"에서 '화천군 풍산리'에 있는 "한묵령"까지.
가는 거리도 18.2km로 다소 길고, 완만하지만 끝없는 오르막이어서 "한묵령"에서 역방향으로
진행하도록 주관하여 더운 여름에 비교적 편안한 답사를 할수 있었습니다.
['한묵령'] 9:40
2023년 8월 20일 일요일 약간 흐림
"한묵령 翰墨嶺"
정확한 지명의 유래는 어느 곳에서도 찾을수 없었습니다만, 무척 의미가 있을 듯한 지명이어서
나름대로 글자 그대로의 한자를 알아보며 "한묵령 翰墨嶺"의 의미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한 翰"은 선비들이 글을 쓰는 "붓"으로 "편지" 쓰는걸 의미하는데 주로 <서한 書翰>이라하고...
"묵 墨"은 붓글씨를 쓸때 사용하는 "먹"을 주로 의미하니...
그래서 "한묵 翰墨"은 "문한과 필묵이란 뜻으로, 글씨를 쓰거나 글을 짓는다"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첩첩산중의 고개 이름을 어찌하여 <한묵령 翰墨嶺>이라 했을까?
잠시후 "한묵령로 翰墨嶺路"와 "평화로"를 걸으며 "처녀바위 전설"과 함께 음미해 보겠습니다.
[지난해까지 '한묵령'] <자료사진>
"한묵령 翰墨嶺" 정상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이런 모습이었는데
<강원도 평화의 길> 조성 공사와 <백암산케이블카><평화의 댐>으으로 가는 길을 확장하기 위해
윗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탱크 방호벽>를 해채하고 고갯길을 확장하고 있답니다.
['백암산 케이블카'와 '한묵령'] .
<화천군>이 야심차게 관광코스로 만들고 있는 개념도입니다.
다음번에 진행 예정이었던 <강원도 평화누리길 8코스>는
<한묵령>에서 <민통선 안동포초소>를 지나 <평화의 댐>까지 이어지지만
아직까지 군부대와의 협력문제와 도로 공사문제로 현재는 이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8코스>는 완공 될때에 진행하고 다음번엔 바로 <9코스 양구구간>을 진행한답니다.
<백암산케이블카>는 완공되어 현재 운영 중에 있는데,
일반 승용차로는 출입 할수 없고 <화천읍내>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고 하는데
깊어 가는 이번 가을에 꼭 방문 하고 싶습니다.
[내림길]
바람도 거의 없는 무더운 여름날이지만 구름이 적당히 햇살을 가려주고,
특히 전체적으로 완만한 내림길이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답사를 시작합니다.
이번 코스를 역방향으로 진행 하도록 한것은 아주 잘한 선택이라 생각됩니다.
<한묵령 翰墨嶺>에서 10여분 내려 가면....
['풍산교'] 9:50 .
"풍산교 豊山橋"라는 다리를 건너 가게 됩니다.
이 다리는 <작은 풍산교>로 진짜 <풍산교>는 잠시 후, 정확히 1시간 후에 만나게 됩니다.
우측 산줄기가 <한북정맥 적근산>에서 분기하여 <화천대교> 방향으로 가는 ."적근지맥".입니다.
좌측 산줄기는 <적근지맥 수리봉> 근처에서 새로 분기하는 분맥으로 조금전 <한묵령>을 지나
잠시후 만날 <딴산유원지>로 뻗어 가는데, 이 두 산줄기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이 "풍산천 豊山川"이며
오늘은 이 <풍산천>을 따라 <딴산유원지>가 있는 <북한강>으로 가는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길....
[캠핑장]
인적없는 최전방 이런 곳이 야영객들에겐 더 인기가 있는가 봅니다.
['사격장] 9:55
이 계곡은 전부 <화천군 화천읍 풍산리>더군요.
지역 주민들 보단 군인의 수가 더 많다고 할 정도이니 군부대 관련 시설들이 많았습니다.
['평화의 길''] 10:05
이번 코스에서 처음으로 <평화의 길> 이정표를 만나는데
<평화의 길> <평화누리길> <평화누리자전거길>등 여러 길들이 대체로 함께 가는데
이곳에선 모두 <평화의 길>로 표기 되 있었습니다.
['포병부대] 10:08
<한묵령>에서 30여분 진행하면
"상승 칠성 화랑 포병대대" 앞을 지나 갑니다.
부대 아름에 좋은 글자는 앞에 다 붙였군요. ㅎ
[자전거길] 10:08
<상승 칠성 화랑 포병대대> 정문 앞에서 부터 <평화의 길 자전거길>이 개통되 있었습니다.
지금부턴 이 자전거 도로만 따라 가면 되기에 길찾기는 문제 없었습니다.
100m쯤 내려 가면...
['풍산리버스종점'] 10:09
"풍산리 버스종점"이 있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개별 답사를 하는 분들이 이용하는 정류장이고
[다리와 방호벽] 10:11
이어서 <적근지맥> 산비탈에서 흘러 내려 오는 작은 계곡을 건너는 다리와 방호벽을 지나면
['7사단 신병교육대'] 10:20
"제7보병사단 신병교육대"를 만납니다.
<7사단>을 <칠성부대>라고 한다는군요. 저는 육군 출신이 아니어서 잘 모릅니다만...
70년대 군생활을 <화천-양구-인제>에서 한 제 친구들의 무용담은 언제 들어도 재미 있습니다.
"군대 가서 눈만 치우다 왔다. 그 많큼 눈이 많이 왔었어~"
"부대에서 하늘을 보면 하늘이 몇평 않되 보였어. 그 많큼 깊은 산속 계곡이었다고~"
"춥기는 또 얼매나 추웠는지...페치카 불 꺼트리면 고참들한테 반 죽었어~"
"요즘 군대는 호텔생활하는거지" 등등 ㅎ
['해안동마을' 상가] 10:29
신병교육대가 있는 곳이니 오로지 면회객들을 위한 상가가 몇 있고
10여분 더 진행하면....
['절골' 입구] 10:40
<풍산리 절골> 입구 삼거리를 만나 도로를 버리고 좌회전하면
['우장교'] 10:41
"우장교"라는 다리를 건너, <풍산천>의 건너편 둑방길을 이용합니다.
['풍산천변길']
제법 수채화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풍산천변길>을 10여분 진행하면....
['풍산교'] 10:50
<풍산천>에서 제일 큰 "풍산교"를 만나 그 밑을 통과하게 되는데
저 다리가 <화천읍내>에서 <평화의 댐>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며 주도로가 되겠습니다.
다음번 9코스를 갈때 저 다리를 통과하여 <평화의 댐>으로 갈것입니다.
다리 우측에 있는 삼거리가 <평화로>와 <한묵령로>가 분기하는 곳이 되겠습니다.
['운동교'] 10:58
<풍산교>를 지나 8분여 진행하면 "운동교"라는 다리를 만나 건너고, 우측 개천변길로 옮겨 걷게 됩니다.
['명승동마을 풍산천변길']
<명승동마을>이라는 마을을 지나는데...
오랜만에 보는 새빨간 "인삼 꽃"이 눈길을 끌고....
[밤나무] 11:03
곧 다가올 가을에 입을 크게 벌리려고 익어 가는 밤들이 탐스럽습니다.
"밤"은 가시가 둘러 싸고 있어 시기와 질투의 푯말같지만
<밤나무의 푯말>은 "포근한 사랑"이라 하죠. '가시'와 '포근한 사랑'이 대조됩니다.
['평화로(460번지방도)'] 11:06
<460번지방도-평화로>로 잠깐 나가면....
['성동마트'앞 삼거리-'풍산2리'] 11:07
<성동마트>와 <풍산2리 마을회관>이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다시 좌측 <풍산천변>으로 나가 개천변길을 걸어야 합니다.
['삼응교'에서 조망] 11:09
<성동마트> 옆에 있는 <삼응교>라는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다리 위에서 <풍산천>을 바라보니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무척 부러움을 주고....
['물소리펜션' 앞] 11:10
이어서 바로 <물소리펜션> 입구를 만나는데 길찾기에 유의해야 하는 곳이더군요.
조금 지나 앞에 화살표로 표기한 곳으로 가면....
['명승동마을' 자전거길]
자전거길이 시원하게 열리며 5분 정도 진행하면
['명승교'] 11:15
<명승교>를 만나 건너고
['풍산1리'] 11:16
이어서 다시 <460번지방도-평화로>로 나가면
이 계곡마을인 <풍산리>에서 가장 번화한 "풍산1리"를 만나는데
좌측으로 돌아 나가야 하더군요.
['풍산교회']
<화천풍산교회>가 제법 큰 규모로 있습니다.
['풍산초교'] 11:20
"풍산초등학교"
<화천군>의 2023년7월 현재 인구는 23,000여명이랍니다. 그 중에 65세 이상이 6,000명이 넘는다는군요.
그나마 계속 줄고 있는데 젊은이 보다 늙은이가 많으니 어린이의 숫자는 더욱 자꾸만 줄어 간다는데...
이곳 <풍산초등학교>의 학생수는 '총46명' (남 25명, 여 21명}이며 선생님의 수는 11명이랍니다.
한 학급당 6~7명이 공부한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학교 풍경이 어찌 안스럽게 느껴지는군요.
[소나기]
<풍산초등학교>를 지나니 소나기가 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만
여름철에 내리니 소나기라고 하지만 가을비 처럼 아주 쬐끔 내렸습니다.
['다슬기 잡이'] 12:04
깊은 계곡은 하류로 내려 갈수록 수량은 풍부해집니다.
또 부러운 사람들의 "다슬기 잡이"가 더위를 날려 주는군요.
좀 잡았냐고 물었더니 잘 안잡힌다고...^*^
['방호벽'] 12:11
다시 방호벽을 지나 마지막 고개를 오르면....
['처녀고개'] 12:18
"처녀고개"에 도착합니다.
<화천읍내>에서 <풍산리>로 넘어 가는 <딴산유원지> 옆에 있는 그렇게 높지 않은 고개입니다.
지금이야 교통이 편리해져 승용차를 몰고 이 고개를 쉽게 넘지만,
예전엔 <화천> 산골짜기를 찾아 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이 고개를 넘어 갈 필요도 없는 두메산골이어서 넘는 사람도 없었겠죠. 뭘 먹을게 있어야 찾아가지....
그렇게 고립된 깡촌으로 들어 가는 고갯마루에는 가난한 민초들의 삶과 사랑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느 고갯마루에서나 흔히 나타나는 두 청춘 남녀의 애닮은 사랑이야기~~
[처녀상']
<화천군지>에 기록으로 조금 남아 있는 전설을 제가 이해하기 쉽게 조금 각색하여 알려 드리겠습니다.
옛날~ 옛날......이 고개 넘어 조그만 계곡 마을 <풍산리>에 가난한 처녀 총각이 살았답니다.
이런 깡촌에서 흙수저를 벗어 나려면 "과거"에 급제하는 것 뿐이란걸 절실히 깨달은 총각은
열심히 공부하여 <한양>으로 과거시험 보러 떠나게 됩니다. 금수저로의 변신을 위하여.....
총각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나던 날
이 고갯마루에서 처녀와 총각은 만감이 교차하는 이별을 하며 대화를 나눕니다.
총각: "과거에 급제하고 꼭 돌아오겠소.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돌아 올 때까지 기다려주오.”
처녀: "분명 합격하여 금의환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부디 합격하여 돌아 오소서."
"어디에 있더라도 이 소녀를 잊지 말아 주시고요~"
그렇게 낭군을 떠나 보낸 처녀는 그 후부터 날이면 날마다 날이 저물면 이 고갯마루에 올라서
산줄기들이 하늘 아래에서 파도를 치는듯한 그 산계곡을 돌아 흐르는 북한강을 바라보며
낭군이 돌아 올 날 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기다렸답니다.
낭군이 돌아 오면 선물 할 "꽃버선"을 자기 키 보다 크게 만들어 이 고개 소나무에 메달아 놓고...
처녀:"(독백)우리 낭군이 과거에 급제해서 돌아 오기만 하면 나도 하루 아침에 금수저가 되는거야~"
그러나 장원급제를 하고 돌아오겠다던 도령은 소식이 없고 어느덧 봄이 가고 겨울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또한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어느날 처녀는 메달아 놓은 "꽃버선"이 낡아 새로 만들어 소나무에 걸려고 나무에 올랐다가
그만 실족하여 절벽 아래로 떨어져 아릿따운 생을 꽃피우지 못하고 저승으로 갔닸답니다.
이런 구비전승되는 전설이 대부분 그렇듯 그제서야 도령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금의환향합니다.
그러나 반갑게 맞아줄 처녀에 대한 비극적 소식은 청천벽력과 같았겠지요.
그녀가 낙사한 <풍산천>이 <북한강>에 합수하는 곳으로 내려 가 보니
어여쁜 초록색 물새 한마리가 그녀의 넋인양 피를 토하듯 슬피슬피 울고 있었답니다.
고개로 다시 올라 온 총각은 소나무에 걸려 있는 "꽃버선"을 부둥켜 안고 하염없이 울며
이 고개의 이름을 "처녀고개"라 했답니다. 그녀를 영원히 기억하겠노라며...
그리고 총각은 벼슬도 금수저도 사랑없인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과거 합격증을 반납하고
<풍산리 계곡>에서 열심히 논밭을 일구며 살았다는데, 똑똑한 사람이었으니 이 마을을 엄청 발전시켜
"풍요로운 마을"이 되었다고 "풍산리 豊山里"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답니다.
제가 서두에 첩첩산중 고개의 이름을 왜? "한묵령 翰墨嶺"이라고 했을까라고 궁금해 했죠?
"한묵 翰墨"은 "문한과 필묵이란 뜻으로, 글씨를 쓰거나 글을 짓는다"라는 뜻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처녀고개와 사랑" 이야기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한 총각과
"한묵령 翰墨嶺"을 연관 짓고 싶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애독자들의 상상에 맡깁니다.
(제가 나름대로 간단히 소설화 했습니다만, 줄거리는 원문과 비슷합니다. 읽을만 했나요?ㅎㅎ)
['딴산유원지' 출입구] 12:21
<처녀고개>에서 조금 내려 가면 좌측 <딴산유원지>로 연결되는데 <딴산인공폭포>가 조금 보입니다.
<한묵령>에서부터 흘러 내려 오는 <풍산천>이 <북한강>과 합수하며 그 이름이 사라지는 곳입니다.
즉, <풍산리계곡>도 여기서 끝나거나 시작되는 곳이지요.
그리고 "파로호"를 만드는 "화천댐"은 우측 "어룡동마을 魚龍洞" 뒤 우측에 있습니다.
물고기가 "龍"이 되어 승천하는 곳이라고 "어룡동마을 魚龍洞"이라 한답니다.
['딴산유원지'] 12:24
"딴산"은 "홀로 떨어져 있는 산"이라는 의미랍니다.
<화천>에선 비교적 아름다운 명승지라고 인공폭포까지 설치하여 유원지로 개발했답니다.
<딴산>도 <설악산 울산바위> 설화와 같은 믿지 못할 이야기가 전해 온다는데.....
<울산>에 있던 바위가 <금강산>으로 가다가 <금강산>이 이미 완성되어 들어 갈 자리가 없어
더 이상 못 가게 되자 이곳에 주저 앉았다고....
한편 이 <딴산>은 <금강산>에서 떠내려온 것이라는 설도 있더군요.
여튼 유원지로 큰 발전 있기를 바랍니다.
['딴산유원지' 출입구] 12:26
<화천> 쪽에서 <딴산유원지>로 들어 가는 입구로 나와 뒤돌아 보며 촬영한 사진입니다.
좌측 뒤에 <처녀상>이 있으며 이곳부터 <처녀고개>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평화로']
<딴산유원지> 부터는 <북한강>을 옆에 끼고 <460번지방도-평화로>를 따라 <미륵바위>까지 갑니다.
25분정도 진행하면.....
['꺼먹다리'] 12:50
"꺼먹다리" 등록문화재 제110호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안내문에 없는 내용을 언급하자면....
<꺼먹다리>는 해방 전 일제가 기초를 놓고, 한국전이 일어나자 소련군과 북한이 들어와 교각을 놓은 뒤,
휴전 후 화천군이 상판을 놓은 의미가 남다른 다리라고 합니다.
['평화로']
<꺼먹다리>에서 다시 15분 정도 <평화로>를 진행하면.....
['화천수력발전소' 조망] 1:05
"화천수력발전소 華川 水力發電所" <국가등록문화재>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남한에선 최초의 수력발전소로 일제시대에 건설되었다죠.
[소공원] 1:11
이어서 <화천읍 웃대이리>의 수변공원을 만나는데 <화천수력발전소>를 조망하기 좋은 곳이더군요.
['구만고개' 조망] 1:13
<화천수력발전소> 뒤에 있는 "구만고개 九萬峴"가 선명히 조망됩니다.
<파로호>는 저 고개 바로 뒤에 있죠.
"구만리 九萬里"라는 단어는 "아주 먼 곳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죠.
그래서 심심산골에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니 조금전 <처녀고개>와 관련한
전설도 있지만 너무 길어 생략하고....
또한 전쟁 영화 <산골소년의 사랑 이야기>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
['해병대 화천지구 전투전적비'] 1:15
이어서 "해병대 화천지구 전투전적비"를 만나는데 "김대식 장군"흉상도 있습니다.
<해병대 전적비>가 바닷가에 있지 않고 이런 강원도 산골에 있는 이유 아시나요? ㅎ
<6.25전쟁> 당시 <해병대>는 상륙작전보다 <화천-양구>에서 주로 전투를 많이 했으며 연전연승하여
<무적해병>이라는 칭호를 받은 곳도 바다가 아닌 <양구 도솔산전투>였습니다. 조금 생소하죠? ㅎ
제가 해병대 출신이라 잘 압니다.
['대이리']
'화천읍 대이리'를 잠시 통과하는데, "대이리"한자로 "大利里"로 쓰고 있더군요.
'큰 이득이 있는 마을' ?
['구만교'] 1:20
<화천수력발전소>와 <파로호>로 가서 <양구>로 가는 다리인 "구만교 九萬橋"를 지나면
['대붕교'] 1:27
이어서 "대붕교"도 지나고
['대이리공원'] 1:35
<대이리공원>도 지나는데
['살랑교'] 1:38
이어서 "살랑교"를 지나 갑니다.
<구만리>와 <대이리>를 잇는 인도교로 차량은 다닐수 없는데 길이가 290m라고 합니다.
2년 전에 건설했는데 부실공사로 벌써 자주 통금을 한다고...
['눈개승마' 재배지]
"대이리수변공원"에는 <눈개승마>를 많이 재배하고 있더군요.
관절염에 좋데나 뭐래나
['미륵바위공원'] 1:49
<미륵바위공원>에 도착하며 답사를 마침니다.
['미륵바위'] 1:50
"미륵바위"는 화천 사람들이 소원을 빌던 바위라고 하는군요.
요즘은 입시철이 되면 학부형들이 찾아와 소원을 빈다고....
오늘 걸은 거리는 18.2km였으며 약4시간이 걸렸습니다.
"여름 일기"
여름엔
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
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영혼의 속까지 태울 듯한 태양 아래
나를 빨아 널고 싶다.
여름엔
햇볕에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향기로운 매일을 가꾸며
향기로운 땀을 흘리고 싶다
땀방울마저도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뜨겁게 살고 싶다
여름엔
꼭 한 번 바다에 가고 싶다
바다에 가서
오랜 세월 파도에 시달려 온
섬 이야기를 듣고 싶다
침묵으로 엎디어 기도하는 그에게서
살아 가는 법을 배워 오고 싶다
- 이해인 -
['고석정' 입구]
2022년 9월 30일 금요일 대체로 맑음 .
오전에 "DMZ평화의 길-철원구간"을 답사하고,
이어서 "철원역사문화거리 테마공원-소이산"을 관광하고
"고석정"으로 왔습니다.
['DMZ PEACE TRAIN MUSIC FASTIVAL 2022'] .
<고석정 국민관광단지>에선 "DMZ PEACE TRAIN MUSIC FASTIVAL 2022"가 열린다고
한창 준비 중에 있더군요.
['임꺽정']
광장에는 "임꺽정 상"이 세워져 있는데, 여러번 왔어도 처음 봅니다. ㅎ
['세종 강무정'] .
"세종강무정"
<세종대왕>께서 여기까지 19번이나 왕림하셨다니 놀랍습니다.
이 정자에서 바라보는 <고석정>이 최고라고 생각됩니다.
['고석정'과 '한탄강']
<세종강무정>에서 내려다 보는 "고석 孤石"이 멋집니다.
<순담계곡> 방향에 있었던 <물윗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군요.
지난 폭우 때 몽땅 떠 내려 갔나 봅니다.
<고석정> 구경을 하고 <고석정 꽃밭 축제장>으로 갑니다.
['고석정꽃밭' 출구]
['고석정꽃밭 입구']
['고석정꽃밭'] .
"고석정 꽃밭 축제"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뉘어 열린다는데
입장료가 성인 6,000원인데 3,000원은 지역상품권으로 주더군요.
꽃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입장료까지 내며 들어 가 볼만하지는 않아서 외곽만 휙~ 둘러 보고
귀가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한탄강지오트레일』
『철원한여울길 제3~5코스』
"백마고지역-노동당사-소이산-동주산성-도피안사"
['동두천역' 앞]
2022년 4월 1일 (금) 맑음
'잔인한 4월'이라는 봄도 기여코 오고야 말았습니다.
<만우절>이지만 봄내음 즐기러 길을 나섯습니다.
<동두천>에서 <백마고지역>까지는 <경원선 전철화 공사>로 대체운송버스가 써비스하고 있어
단돈 500원으로 집에서 <백마고지역>까지 갈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음을 뿌듯하게 느끼며
<동두천역> 앞에서 <9시26분발 직행버스>를 타고 약1시간이 걸려
['백마고지역'] 10:25
<백마고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여러번 방문했지만 언제나 새롭군요.
['백마고지전적비' 조망] 10:28
<백마고지역>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백마고지전적비>가 보입니다.
"철원DMZ평화의 길"의 출발지이기도 한데 요즘 코로나사태로 방문이 중단되었지요.
제가 일찍이 다녀와 기록으로 남긴 답사기가 있으니 <화살머리고지-공작새능선>에 관심 있으시면
여기 클릭하여 "[철원DMZ평화의길] 백마고지-화살머리고지 방문기"를 참고하세요.
[진행한 실트랙 지도]
오늘은 "철원한여울길 3코스~5코스"를 나름대로 하나로 묶어 진행한 실트랙 지도입니다.
<백마고지역>에서 출발하여 <새우젓고개>에 있는 <철원수도국터>를 둘러보고
<노동당사> 앞에 조성되고 있는 <철원근대문화거리 테마공원>을 통과하여 <소이산>을 오르고
<동주산성>과 <철원향교><도피안사>까지 갑니다.
['백마고지역' 앞] 10:30
<백마고지역 광장>에는 "백마 白馬" 한마리가 여유로운 포즈를 취하고 있고
잠시후 오를 <소이산>이 가까이 조망됩니다.
['철원한여울길 종합지도'] ★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확대 됨 ★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철원한여울길 종합안내도"를 보고 진행하면 편리 합니다.
★지도를 클릭★하여 <철원한여울길>을 참고하며 저의 답사기를 읽으면 이해에 도움이 더 될듯합니다.
오늘은 좌측 상단의 <한여울3코스~5코스>를 하나로 묶어 진행합니다.
우측 하단의 <한여울2코스 잔도-물윗길>은 지난번에 답사했습니다.
['고대산' '금학산' 조망]
<백마고지역> 정면으로 뻗어있는 농로를 따라 <소이산> 방향으로 진행하면
우측으로 <고대산>과 <동송>의 진산인 <금학산>이 조망되며
['소이산' 조망]
정면으로는 잠시후 오를 <소이산>과 <동주산성>이 조망되는데
이 길을 40여분 직진합니다.
['율이리 사거리'] 11:10
<백마고지역>에서 40여분 농로를 진행하면 <율이리 栗梨里 사거리>를 만납니다.
좌회전하면 정면에 <새우젓고개>가 보이며 우측엔 <동주산성>도 조망됩니다.
['새우젓고개'] 11:18
[안내문]
"새우젓고개"에 도착했습니다.
<보개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고개이기도 하죠.
고개 좌측엔 <철원수도국터>가 있으며 우측엔 <한여울길4코스> 입구가 있는데
<소이산>을 오르고 다시 이곳으로 와 우측 <동주산성>으로 갈 예정입니다.
['철원 수도국 터'] 11:21~11:30
['수조']
['철원 수도국 터']
[안내문]
"철원 수도국 터"
<강원도> 최초의 수돗물 공급 시설이 일제강점기 시절 쪽바리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니
<철원>에서도 일본놈들이 제일 많이 살며 돈벌이를 하던 곳이 <소이산> 근처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철원평야>에서 수획하는 농산물을 거둬들여 일본으로 보내는
<경원선> <금강산전기철도>가 만나는 곳이어서 수탈하는 물자들의 집산지였기 때문이었답니다.
먹을게 많은 곳에 똥파리들이 몰리는 법이니까요.
['노동당사' 조망] 11:43
<새우젓고개>에서 내려가면 <노동당사>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당사 앞에는 온통 공사판입니다.
['노동당사 주차장']
['도로원표'] 11:48
<조동당사 주차장>을 지나면 <철원군>이 설치한 "도로원표"가 있습니다.
<평강 16.8km→> <김화 28.5km→> <원산 181.6km→> <평양 215.1km→>라고 표시되 있고
['두근두근' 조형물]
<노동당사> 앞에는 조형물이 하나 있는데 "두근두근"이라는 작품이더군요.
['두근두근' 조형물 그림자]
"두근두근"이라는 작품의 그림자 부분에는 <6시와 12시 사이>라는 詩가 있고
['노동당사']
[안내문]
"노동당 철원당사"에 대해선 안내문을 참고합니다.
근간엔 남북화해 무드가 무르익던 때에 열린 <'KBS열린음악회'>가 기억 납니다.
2018년도 였던가?
['노동당사']
여러번 다녀 갔지만 왔으니 또 한번 더 당사를 돌아 봅니다.
남한에 남아 있는 북한이 지은 러시아식 건물
['근대문화거리' 조성공사 중]
<노동당사> 앞에는 <소이산>이 정면에 조망되고
['민통선 검문소'] 12:00
<노동당사> 옆에는 <민통선 검문소>가 있는데, <옛 철원역-월정리역>으로 통하는 길이죠.
['근대역사문화거리']
<노동당사> 앞에는 상당히 큰 "근대역사문화거리 테마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공사비가 206억원 짜리라고 하는군요.
앞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올려는지 궁금...
['근대역사문화거리']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건축전문학교 출신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철원역>이 빨간 벽돌 모습
그대로 재현돼고 있는데, 또한 이곳엔 <일본인>들이 살며 이용하던 건물들을 재현한다고
현지 주민들의 반발도 많다고 하는군요.
일제강점기시절엔 <철원>이 엄청 번성해서 서울의 유명 백화점의 분점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쪽바리들의 돈벌이 핵심 장소 중에 하나였다는 것을 알수 있죠.
자세한 내용은 여기 클릭하여"철원에 일제강점기 거리?"라는 신문 기사를 참고 하세요.
['모노레일']
또한 <소이산> 정상으로 오르내리는 <모노레일>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돈벌이는 <모노레일>이 할듯....
<한여울길>은 직진하여 <소이산> 우측으로 갑니다.
['지뢰꽃 산방'] 12:10
['한여울5코스' 안내도]
<소이산 둘레길> 입구 우측에 <지뢰꽃산방>이라는 정자를 만나는데
이곳이 "철원 한여울길 5코스" 입구더군요.
<한여울길 5코스>는 <소이산>을 한바퀴 돌아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더군요.
['지뢰꽃길' 입구]
<지뢰꽃산방> 앞으로 <한여울길5코스>가 열리는데 <지뢰꽃길>이라는 이름이 붙어있고
['지뢰꽃길']
['백마고지의 꿈']
<지뢰꽃길>은 철조망을 따라 이어지는데, 예전 <미군부대>와 <한국군대>가 주둔 했을때
울타리였던 철조망 근처에 지뢰를 많이 설치 했었나 보니다.
[쉼터] 12:27
입구에서 17분여 <지뢰꽃길>을 진행하면 쉼터를 만나고
['소이산 생태숲길']
[전망쉼터] 12:33
쉼터 정자를 지나면 <지뢰꽃길>이 끝나고 <소이산 생태숲길>이 이어 집니다.
5분 정도 진행하면 전망 쉼터가 설치되 있으며
['소이산 생태숲길']
[계단] 12:52
계속해서 <소이산 옆구리>를 20여분 진행하면 계단을 만납니다.
계단을 올라 가면...
['봉수대 오름길'] 12:53
<소이산 정상>으로 올라 가는 도로를 만나는데 이 길의 이름은 <봉수대 오름길>이더군요.
['봉수대 오름길']
['모노레일 승강장'] 1:04
제법 가파른 <봉수대 오름길>을 10여분 오르면...
<모노레일> 정상부 승강장이 있고....
['소이산 정상' 출입문] 1:08~1:48
이어서 군부대가 있었던 <소이산> 정상 출입문으로 들어갑니다.
['미군막사']
출입문을 통과하면 바로 "미군막사"가 있는데 들어 가 볼수는 없었고
['소이산 정상' 앞]
이어서 <소이산 정상> 앞에서 좌측 계단으로 올라 가는게 좋더군요.
['정상 지하 방카']
계단을 올라가 <소이산 정상 지하방카>로 들어 가서 볼거리 없는 방카를 구경하고
직진하는 문을 열고 올라 가면....
['쉼터']
<소이산 정상 쉼터>에 도착하고
정상 전망대로 올라 가기 전에 좌측 <교통호>로 먼저 가면...
['지하 교통호']
"지하 교통호" 입구가 있는데 들어 가 볼수는 없더군요.
그러니까 <소이산> 내부엔 평지에서 부터 정상까지 지하 통로가 뚫려있고 탄약고, 생활시설 등이
있다고 합니다. <소이산> 전체가 군기지라는 의미
['소이산 정상 전망대']
"소이산 所伊山 362.3m"
제가 다녀본 휴전선 근처 전망대 중에선 최고의 전망대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지금이야 관광 목적 전망대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군의 동태를 살피며 전쟁을 대비하는
매우 중요한 군기지였으니 조망은 당연 최고여서 지금부터 자세히 조망을 합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먼저 <국토지리원 지도>를 보고 현위치와 주변을 전체적으로 인지하고 조망을 하겠습니다.
북한에 있는 <평강>과 <고암산> <봉래호> <전승봉>의 위치를 확인하고
['백마고지역' 조망]
먼저 서쪽을 조망하면, 오전에 출발했던 <백마고지역><백마고지전적비>가 보이며
그 뒤로 <공작새능선> <화살머리고지> 등도 보입니다.
['백마고지' 방향 조망]
서북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리면 <백마고지>와 <김일성고지>등이 조망되는데
실제는 매우 가까이 보이는데 사진의 한계 때문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줌인 한 사진과 이곳에 설치되 있는 안내도를 함께 보며 감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산명호 저수지 山明湖貯水池>는 일제가 만든 저수지로 <철원평야>에서 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며, 우리나라 백성 1,500세대를 이곳으로 이주시켜 농사를 짓게 했다고 합니다.
['김일성고지(고암산)' 줌인 조망]
우리에게 <김일성고지>라고 알려진 유명한 "고암산 高巖山 780m"을 줌인 해 봤습니다.
<김일성>이 <고암산>을 뺏기면 <평양>까지 함락 당한다고 끝까지 사수 해야 한다고 해서
<김일성고지>라는 닉네임이 붙었다고 하는데....
무었보다 <궁예>가 <태봉국>을 세우고 도성을 쌓은 곳이 <고암산> 앞 비무장지대라고 하니
앞으로 통일이 되면 <궁예도성> 학술조사를 위해 많은 전문가들이 가겠죠.
저는 등산을 가겠고...ㅎ
['철원평야']
['철원용암대지' 안내문]
"철원평야와 평강고원"
약3억평 넓이라 하는 이 평야는 12만여년 전까지 화산 용암이 뒤덮여 있던 곳이랍니다.
용암이 이 <소이산> 중턱까지 쌓였었다고 하는 <철원용암대지 鐵原熔巖台地>였다고...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고 비옥한 땅에서 나는 이곳의 <철원 오대쌀>은 밥맛 좋기로 유명하죠
['월정리역' 방향 조망]
<철원역>에서 <경원선>과 <금강산 전철>이 분기하며 운행 되었다는데
<경원선>은 <월정리역>을 지나 <원산>으로 가고, <금강산 전철>은 <철원역>에서 우측으로 연결되어
<김화>와 <창도>를 지나 <금강산 내금강>까지 116.6km 길이라는데, 주로 "금강산관광" 열차였답니다.
이용객의 상당수가 일본 본토놈들이었다고 하네요.
일제시대 <금강산관광>은 엄청난 붐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당시 <금강산 관광>을 갔다 오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 받을 정도로 붐을 이루었다고...
['철원역''월정리역' 방향 줌인 조망]
조금 줌인한 사진을 보면
우리나라 <휴전선> 중에서 "평지"에 있는 비무장지대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죠.
대부분 산줄기를 따라 휴전선이 걸쳐 있지만 이곳엔 <평야지대>에 휴전선이 지나고 있는데
<휴전선>을 기준으로 북쪽이 <평강고원>이고 남쪽이 <철원평야>이죠. 무척 가까이 있죠?
<월정리역> 뒤로 북한의 <전승봉>과 그 뒤로 <백암산 1,104m >으로 추정되는 산군들이 보입니다.
['아이스크림고지' 좀인 조망]
제법 유명한 "아이스크림고지"를 줌인해 봤습니다.
본명이 "삽슬봉 219m"인데, <6.25전쟁> 때에 처절한 쟁탈전과 포격이 극심해서
산이 마치 아이스크림 녹듯 흘러내렸다하여 <아이스크림 고지>라는 닉네임이 붙었다고 합니다.
['노동당사' 줌인 조망]
<소이산> 정상에서 조망하는 <노동당사>인데, 옛날엔 주변에 경찰서, 도립병원, 농산물검사소,
우체국, 제사공장, 철원공립보통학교 등 관련시설들이 있었답니다.
['명성산' 조망]
동남쪽으로는 <명성산>이 <궁예>의 한서린 울음소리를 아직도 내고 있는듯 하고
그 뒤로 <한북정맥>의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등이 보이고...
['고대산' '금학산' 좡]
남쪽으로는 <고대산>과 <금학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봉수대' 입구] 1:41
<소이산> 정상에서 내려가 정문으로 나가면, 정문 조금 못미쳐서 좌측에 <봉수대> 가는 길이
있는데 다녀 옵니다.
['봉수대 전망대'] 1:43~1:48
"소이산 봉수대 所伊山烽燧臺"
<함경도 경흥·회령·길주·함흥·영흥·안변·철원>을 거쳐 서울[남산]과 연결되는 <경흥선 봉수>가
있던 곳이랍니다.
[내림길]
['소이산 출입구'] 2:03
<소이산>에서 내려 가면 <소이산 입구>를 만나고
[논두렁]
<소이산 입구>에서 지름길인 논두렁을 따라 <새우젓고개>로 갑니다.
[새우젓고개']
<철원수도국터>가 있는 <새우젓고개>로 회귀하여
['한여울길4코스' 입구] 2:09
['한여울길4코스' 안내도]
<새우젓고개>에 있는 "한여울길 4코스 입구"에 도착하여 <동주산성>으로 올라 갑니다.
['쉼터'] 2:19~2:24
입구에서 10여분 오름길을 오르면 정자 쉼터를 만나 잠시 쉬어가고
['동주산성']
[안내문] 2:25
이어서 城의 흔적이 쬐끔 남아 있는 성곽을 만나는데 그나마 덤불에 덮혀 있어 초라한데
이곳에 "동주산성 東州山城" 안내판이 있습니다.
<철원>의 옛 이름이 <동주 東州>였다고 하며, 삼국시대부터 산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궁예>가 이 지역에 도착하여 처음 진을 친 곳이 바로 이곳 <동주산성>이라고 합니다.
['궁예도성 모형도']
안내도에 이런 사진이 부착되 있는데, 이건 <동주산성> 모형도가 아니고
현재 비무장지대에 있는<궁예도성> 모형도로 생각 되는데 왜 <동주산성> 안내판에다 부쳐놨을까요?
횃갈리게...
['동주산성' 중심부]
['전망대'] 2:29
정상부에는 운동시설 전망대등이 설치되 있는데 城의 흔적은 찾기 어렵더군요.
전망대에서 지나온 <소이산>을 조망하고
[능선길]
[군 진지] 2:46
너른 임도가 계속되었으며 헬기장도 있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군진지도 곳곳에 보였습니다.
[임도]
['철원향교' 조망] 3:03
<동주산성>이 있었다는 산능선을 한시간 정도 진행하면 <철원향교>가 나타납니다.
['철원향교']
[안내문]
"철원향교 鐵原鄕校"
안내도와 안내문을 참고 하고
['철원향교' 홍살문] 3:10
['도피안사 삼거리'] 3:11
<철원향교 홍살문>을 나서면 <도피안사 삼거리>가 있는데
<도피안사>를 다녀와 이곳에서 <백마고지역>으로 가는 <13번 버스>를 탈 예정입니다.
<동송 이평리>에서 출발하여 <백마고지로 가는 버스는 14:05, 15:30, 16:45에 있으니
시간을 맞춰서 도착 해야 겠죠. 저는 알맞게 도착했습니다.
['도피안사교'] 3:13
['대교천'과 '금학산']
"대교천 大橋川"은 <동송> 지역을 지나 <한탄강 순담계곡>에서 <한탄강>과 합류하는 개천.
이 개천에도 용암이 흘러 형성된 주상절리가 아름답기로 유명 하답니다.
['도피안사' 주차장]
['도피안사 일주문']
"도피안사 到彼岸寺"
연꽃이 만발하는 산이라고 <개화산 花開山>이라 한다는데 조그마한 이 산에 <도선국사>가
이 절을 창건하였답니다. 신라 <경문왕 5년>인 865년에 개산 했다고...
이승이 아닌 저승, 즉 열반의 세계를 산스크리트어로 <파라(pāra)>라고 하는데
<파라(pāra)>를 중국놈들이 한문으로 음역 한게 <彼岸>이며, 이를 다시 우리말로 음역한게 <피안>.
그러니 <到彼岸寺>는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절이라고 할수 있겠군요.
그 세계를 일반적으로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으면 가는 <저승>이라고 하니......ㅎ
['보물 223호 도피안사 삼층석탑']
['국보 제63호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63호"
<도피안사>가 유명한건 이 <국보> 때문이 아닐까....
버스 시간 때문에 휭하니 둘러 보고
['버스정류장'] 3:35
삼거리로 돌아 가 <13번 시내버스>를 타고 <백마고지역>으로 갔는데
<동송 이평리>에서 15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는 이곳에 5분 정도가 걸려 15시 35분쯤에 도착하더군요.
그리고 <백마고지역>까지는 10분 정도가 더 걸렸고, <백마고지역>에서 <동두천역>으로 가는
대체운송버스 직행은 15시 59분에 있어서 기다림 없이 연계되었습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철원 한여울길 3~5코스>를 하나로 묶어서 다녀 왔습니다.
걸은 거리는 약14km였으며 5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소이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철원평야>와 <평강고원>, <김일성고지>는 일품이었습니다.
『관북대로-경흥길』
『철원김화구간 (와수리~생창리)』
"끝나지 않은 '경흥로' 김화 휴전선까지 가다"
[국토지리원 지도]
<경기도>가 조성한 "경기옛길-경흥길"의 <걷기코스>를 마치고
나름대로 <강원도 경흥길>을 조사하여 옛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아 가 봅니다.
지난 <경기-강원 도계>에서 <철원군 갈말읍>을 통과하는 걸로 추정되는 <경흥옛길>은
<한탄강주상절리길 잔도-물윗길>로 대체했고, <신철원>이라고 불리워지는 <갈말읍>에서
<김화읍 와수리>까지는 <43번국도>에 갓길이 거의 없고, 구경거리도 없어 생략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와수리터미널>에서 출발하여 <한탄강>의 상류 지류인 "화강花江을 따라
<43번국도>가 끝나는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에 있는 "민통선 검문소까지 갑니다.
['와수리 버스터미널'] 9:25
2022년 3월 22일 (화) 맑음 연무
<동서울터미널>에서 오전 7시25분발 <와수리행 시외버스>를 타고 약2시간이 걸려
'철원군 김화읍 와수리'의 "와수리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바로 답사를 시작합니다.
[와수리삼거리]
도보여행이 주목적이니 <와수리 중심가>를 한바퀴 돌아 나갑니다.
"와수리 瓦水里"는 <철원군 서면 와수리>이지만
주변 <김화읍><근남면><서면>보다 더 큰 상거래지역이며 교통의 중심지라고 하는군요.
<와수리>는 원래 산간 촌락이었으나 고려 시대에 청기와 도요지가 생기면서 초가집이 아닌
기와집이 많았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김화군>에 부임한 원님이 산마루에 올라 이곳 지역을 살피니
바다는 없는데 석양에 비치는 <기와 지붕들>이 마치 바다에서 물결치는 듯이 보인다 하여
"와수 瓦水"라 명명하였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기와집>이 많은 고을이라는 의미...
군부대가 엄청 많이 있는 휴전선 부근이라서인지 군인들을 상대로 하는 업소들이 많았습니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거리는 한산하더군요.
[사거리] 9:38
중심가를 벗어나니 <화천-춘천 방향> 옛 국도가 진행하는 방향의 사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아리랑로']
[로타리] 9:47
<아리랑로>라는 외곽도로가 10여분 이어지고
<와수리버스터미널>에서 바로 오는 도로인 <47번국도>와 다시 만나서 우측으로 진행하고
['47번국도'] 10:05
<47번국도>를 따라 <김화읍사무소>가 있는 <학사리>로 18분 정도 진행하면
<88올림픽> 관련 공적을 남긴 사람의 공적비도 보이고...
['학포교'] 10:07
이어서 "학포교 鶴浦橋"를 만납니다.
<철원군 서면 와수리>와 <철원군 김화읍 학사리>를 연결하는 다리라는데....
이곳은 <한탄강>의 상류인 "화강 花江"이 흐르는 곳인데, 옛날엔 다리가 없어 배를 타고
건너 다녔답니다. 그래서 나룻배가 다니는 포구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학포 鶴浦>여서
자연스럽게 다리가 놓이고 다리 이름이 <학포교 鶴浦橋>가 되었다고...
"화강 花江"
<경흥길>에서 이 강은 매우 중요한 강인데 앞으로 이 강을 중심축으로 <경흥길>이 이어집니다.
글자 그대로 "꽃내"라고 하는 <한탄강>의 상류 지류인데
지도에는 <남대천>이라고 나오더군요.
['김화읍 학사리']
[소나무 가로수']
이어서 <김화읍사무소>가 있는 <철원군 김화읍 학사리> 중심가가 펼쳐지는데
"소나무 가로수"가 이색적입니다. 도로를 따라 모두 소나무 가로수를 심었더군요.
그리고 소나무에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조명시설을 해서 밤엔 더욱 새로운 풍경을 연출 할듯 하고
['김화읍사무소' 앞] 10:17
"김화읍사무소 金化邑"
<김화읍>은 원래 <김화군>이었는데 휴전선으로 두동강이 나 <철원군> 소속의 한 고을로 전락했다죠.
그러니까 이곳의 <김화>는 북한에도 연결되는데 <북한>에선 지금도 <김화군>이라는군요.
예전엔 엄청 큰 고을이어서 "철의 삼각지"의 한 축을 이루며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중요한 군사적 지정학적 요충지였답니다.
지금은 인구 3~4,000명 정도가 사는 조그만 邑마을이 되었지만 통일이 되면 서울의 땅투기꾼들이
엄청 몰려 들 <금강산 가는 길>이 되겠습니다.
['김화교차로']
이어서 <47번국도>의 종점이며 <43번국도>가 좌우로 지나는 "김화교차로"를 만납니다.
<경흥길>은 우측으로 방향을 틀고
['춘천 화천 방향] 10:22
<김화교차로>의 동쪽방향입니다.
이곳은 <56번국도>의 출발지이기도 하더군요.
그러니까 이 길은 <화천>과 <춘천>으로 가는 우리나라 최북단 국도가 되겠습니다.
<신철원-갈말>에서 오는 <43번국도>가 200m 정도 이어지다가....
['학사교차로'] 10:25
바로 "학사교차로"를 만나 <경흥로>는 <43번국도>와 함께 좌측 북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이곳이 오늘 답사의 종점인 "DMZ생태평화공원"으로 가는 입구가 되겠습니다. 5.4km→
좌회전하면...
[방호벽] 10:45
<43번국도>가 이젠 초라해져 이용하는 차량들도 거의 없는 <김화읍 학사리>를 통과합니다.
<휴전선>이 가까워지니 탱크방호벽이 나타나고...
['대성산' '적근산' 조망]
최전방이라고만 듣던 <한북정맥>의 마루금이 지나는 <대성산>과 <적근산>이 <김화>를
감싸고 있으며, 첩첩산중이 아니라 <철원평야>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한북정맥>을 종주 할때 <수피령>과 <복계산>에서 바라보던 <대성산>과 <적근산>을
여기서 바라 보니 평지에 솟아 있는 산으로 보이는군요. 바라 보는 방향에 다라 이렇게 다를수가
['43번국도'] 11:19
['계웅산' '오성산' 조망]
<학사교차로>에서 한적한 <43번국도>를 한시간 정도 진행하면
<휴전선>의 <남방한계선>이 지나는 비무장지대인 "계웅산 鷄雄山 603.9m"이 조망되며
좌측 저 멀리엔 <북방한계선>이 지나는 유명한 북한의 "오성산 1,040m"이 조망됩니다.
그러니까 <오성산>에서 산줄기가 <계웅산>까지 연이어 있는데 모두 비무장지대입니다.
"계웅산 鷄雄山 603.9m"은 닭과 관련이 있는듯
['생창리 표지석'] 11:29
<계웅산>과 <오성산>, 그리고 좌측에 있는 <성제산> 사이에 펼쳐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가 시작되는 마을표지석을 만납니다.
['생창리 쌈지공원'] 11:31
[詩]
<생창리 마을 표지석>을 지나면 <생창리 쌈지공원>을 만나는데
공원을 이용하는 마을 주민들은 없고, 주변에서 군인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고
['생창리 마을']
['생창교회' '방문자센타' '마을회관'] 11:35
이어서 "생창리 生昌里" 중심 마을과 "DMZ생태공원 방문자센타"가 기다립니다.
['DMZ생태평화공원 방문자센타']
"DMZ생태공원 방문자센타"는 화요일이 휴무더군요. 가던 날이 장날...ㅎ
['생창리 입주 기념비']
"생창리 生昌里"라는 지명은 옛날부터 있던게 아니고,
1970년 10월 30일에 재향군인 100세대가 입주하며 "재건촌"을 이루며 생긴 이름이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DMZ생태평화공원 안내도']
방문자센타 앞에는 "DMZ평화생태공원 안내도"도 있는데 찾는 사람들이 많을까?
안내도의 <검문소> 위치에서 <경흥길>은 우측으로 <계웅산>을 돌아 가는걸로 보이며
북한 <회양군>을 지나 <백두대간 철령>을 넘어 <안변><원산>으로 가는 걸로 추정됩니다.
한편, 직진성 좌측길은 <평양>으로 이어지는 길이여서 이곳이 東西가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옛 <김화군 군청>이 있었던 <김화>의 중심지였다는군요.
우측에 흐르는 <화강>으로 나가면....
['화강'과 '경흥길'] 11:43
"화강 花江 꽃강"이 제법 크게 흐르는데, <한탄강>의 상류이니 이 강은 <한탄강>의 지천입니다.
<경흥로>는 이 <화강>을 따라 북동진한다고 추정되는데 북한 <회령군>과 <백두대간 철령>을 넘어
<원산-함흥-경흥>으로 이어지겠죠. 그러니까 여기선 멀지 않은 곳에 <철령>이 있고
<금강산>은 더욱 지척에 있는데 <휴전선>으로 멀게만 느껴지니...
['43번국도']
['생창리 버스 종점'] 11:53
<43번국도>를 조금 더 진행하면 <생창리 버스 종점>이 있으며 민간인이 사는 집은 여기가 끝~~
['읍내삼거리'] 12:00
이어서 <민간인통제구역>이라는 <민통선 검문소>가 있는 "읍내삼거리"를 만납니다.
중무장한 군인들이 검문을 하며 민간인 출입통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검문소 우측에 <계웅산>이 있고 가운데 멀리 <북한 오성산>이 보이며, 좌측엔 <성제산>이 있는
"옛 김화군청"이 있던 <김화의 중심지>였답니다. 그래서 "邑內삼거리"라고...
직진성 좌측길이 <평양>으로 통하는 길이어서 <병자호란> 때에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우회하여 쳐내려온 길이라고 하며, 이곳에서 <평안도관찰사 홍명구>와
<평안도병마절도사 유림장군>이 적과 맞짱 뜬 곳이며,
우측길이 <경흥길>로서 <태조 이성계>를 만나러 <함흥차사>가 다녔고
<백사 이항복>등 많은 관료들이 <철령> 넘어 유배를 간 길이기도 하답니다.
우리나라 남쪽에서 갈수 있는 <관북대로-경흥길>은 여기 "읍네삼거리"까지입니다.
더 이상은 비무장지대 <휴전선>으로 갈수 없습니다.
['충열사' 입구]
<검문소> 바로 앞에서 좌측으로 <충열사>로 가는 입구 안내석이 있는데
안내석을 길도 없는 북쪽을 향하게 세워서 입구에선 무슨 안내석인지 알지 못하게 세워 놧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우리가 대부분 모르고 있었던 유명한 곳이라니 답사를 하고 갑니다.
<충열사>는 누구나 출입 할수 있는 곳이니 검문소 위병에게 <충열사>로 간다고 하면 보내 줍니다.
['오성산' 조망]
['오성산' 줌인]
<충열사>로 가며 북쪽을 조망하는데 <옛 김화군청>이 있던 자리이며
멀리 <북한지역>에 있는 "오성산 五星山 1040m"이 조망됩니다.
['충열사' 조망]
<충열사>가 <성제산 산줄기>에 자리 잡고 있고.....
[홍살문] 12:08~12:16
<충열사> 입구엔 홍살문이 있는데 철제 홍살문이더군요.
철제 홍살문은 처음 봅니다. ㅎ
[안내도]
<충열사> 입구에는 안내도가 있어서, <옛 김화군청>이 있던 <읍내리>의 지형을 알수 있습니다.
['충열사' 전경]
"충열사 忠烈祠"
치욕의 <병자호란> 때에 "평안도 관찰사 홍명구 洪命耈선생"과
"평안도 병마절도사 유림 柳琳장군"의 위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랍니다.
<병자호란>이라고 하면 우리는 <남한산성>과 <삼전도> 정도만 알고 많이 아는척하지만
<청나라> 군사와 치열한 전투를 했던 곳이 또 있다는 것은 저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너무 모르고 살지는 않는지....
"역사를 잊은 국민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하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충열사']
[안내문]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사적비]
[안내문]
<유림장군대첩비>와 <홍명구선생 충열비>가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합니다.
['DMZ' 조망]
<병자호란> 때에는 <청나라> 군대가 침범하던 곳이고
<임진왜란> 때에는 <가등청정>이 <평양>으로 진격하던 전략상 요충지 였답니다.
근대에는 남과 북이 <6.25전쟁> 시에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철의 삼각지>였으며
현재는 보는 바와 같이 <휴전선>이 지나는 <비무장지대>가 앞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병자호란' 때 '백전 전투']
<충열사> 앞 옛 전투지역.....(제가 자료를 종합하여 재구성 했으니 사실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문인 출신 관료였던 <평안도관찰사 홍명구선생>과 군인인 <평안도병마절도사 유림장군>은 당시
전투 진지에 대해 서로 의견을 달리해서 따로따로 진지를 구축했답니다.
무인인 <유림장군>은 <청나라군대>의 강점은 말을 타고 싸우는 기동력이어서 숲이 우거진 야산에
진을 쳐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문인인 <홍명구 관찰사>는 방어는 쉽지만 공격이 어렵다고
평지에 진을 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는데 서로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고집대로 따로 놀았답니다.
제가 사진에 표기한 곳으로 추정됩니다.
결과적으로 평지에 진을 치고 맞짱 뜬 <홍명구 관찰사>와 그의 군대는 몰살 당하고
<홍명구 관찰사>도 바로 이곳 <충열사>가 있는 곳 쯤에서 사살되었답니다.
한편 <유림장군>은 잣나무 소나무로 가로막아 상대편 기마병의 출입을 막고
조총과 바위로 적의 침입을 격퇴했답니다. 많은 피해를 입은 <청나라> 군대는 후퇴 우회하여
<한양>으로 직접 진군하게 되었답니다. <유림장군>은 실탄과 무기가 소진되었지만
잔여 병사들을 이끌고 <청군>의 뒤를 쫒아 <인조>가 피난하고 있던 <남한산성>으로 내려 갔지만
<가평>쯤 갔었을 때에 <인조>가 항복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항전을 끝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두 사람의 운명은 달랐습니다.
평지에 진을 치고 싸우다 죽은 <홍명구 관찰사>에겐 <충열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지며 충신으로
그가 죽은 자리에 <충열사>라는 사당까지 지어 칭송했습니다만.....
적과 싸울줄 아는 군인이었던 <유림장군>은 탄핵을 받아 유배를 갔답니다. 후에 복권되었다지만...
모든 부하들을 몽땅 죽게하며 자신도 함께 죽은 <홍명구 관찰사>가 유능한 인물인지
기동력의 군대인 막강한 <청나라> 군대와 싸울줄 알았던..그래서 이기고 살아 남은 <유림장군>...
누가 더 유능한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갑자기 <이순신장군>이 생각나네요.....
['대성산' 조망]
['대성산' 줌인]
<충열사>를 돌아 보고 <민통선 검문소>에서 다시 <생창리 방문자센타>로 돌아 가며
<대성산>을 줌인해 보았습니다. 무시무시한 군방어시설이 있는 <대성산>이 조망되는군요.
<대성산>에는 눈이 아직도 하얗게 쌓여 있는데, <대성산>에서 근무했던 친구들 얘기를 들어 보면
"난 군 생활하면서 눈 치운 기억 밖에 없어~~"라고 할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 산이라고...ㅎㅎ
[거리]
<의정부>까지 80km라고하니 <서울>까지도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김화 비무장지대>가 있군요.
['DMZ방문자센타'] 12:47
[음식점]
다시 <방문자센타>로 돌아와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는데
<생창리>에 단 하나 있는 음식점이라고 하네요. 백반이 8,000원이었는데 먹을만 했습니다.
군내버스는 오후 2시에 <와수리>에서 출발하여 이곳에 2시13분에 도착하고 그 버스를 타고
<와수리>에 2시 25분에 도착하여, 2시40분에 <동수원>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40분만에 <동서울>에 도착하여 귀가했습니다. <와수리>가 멀지만은 않더군요.
['북한지역 경흥길']
끝나지 않은 <경흥길>의 끝은 저 <두만강 하구>라고 아직도 우릴 오라고 기다리고 있건만
새들도 마음대로 오가는 비무장지대인데도 사람 만큼은 못다니게 해서 여전히 멀게만 느껴집니다.
<함경북도 경흥군 서포리>까지 언제나 걸어 볼수 있을까......
이것으로 <경흥길>을 모두 마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