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평화누리길』
『제9코스 양구 평화의 길』
평화의 댐-비목공원-평화터널-오천터널-종점상회-오미리둘레길-각시교-물소리의 터-
금악교-현리-양구백자박물관-직연폭포-협동교-두타연터널-고방산교차로-두타연갤러리
['평화누리길 양구구간 안내도']
<강원도 평화누리길>은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을 잇는 총20개 코스로 구성되 있으며
총거리는 361.2km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양구 구간>은 4개 코스로 총75km라고 합니다.
['9코스 양구평화의 길' 안내도]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9코스 화천평화의 길>이 아직 미개통이어서 개통 될때 진행하기로 하고
오늘은 <양구군 4개코스 총75km> 중에 첫번째인 "제10코스 양구 평화의길 23.5km"를 갑니다.
제가 실제 진행한 트랙은 <국토지리원 지도>를 클릭하면 상세한 트랙을 알수 있는데,
파란색 선이 추천코스이며, 제가 실제 진행한 코스는 빨간색 선입니다. 약간 지름길을 이용한곳도 ㅎ
또한 <평화터널>에서 <오천터널>까지는 산악회 버스를 이용 했다는 것도 첨언합니다.
['평화의 댐'] 10:20~10:50
2023년 9월 3일 일요일 흐림
"평화의 댐"
오늘 이곳까지 오는데 조금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화천>에서 앞에 보이는 <대붕터널>로 오면 잠깐이면 되는데, <양구>로 빙 돌아 오는 바람에 4~50분이
더 걸렸습니다. 그 이유는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화천>에서 이 댐으로 통하는 길을 통행금지 시키고
있었기 때문인데, <해산령> 부근에 산사태가 나서 도로가 유실되었다고.....
이런 상황을 미리 파악하고 미리 우회로를 이용한 산악회의 준비성에 감탄했습니다.
<양구>로 돌아 오느라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평화의 댐>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가야겠죠?
<평화의댐>은 몇번 와 봤기에 오늘은 주로 "비목공원"을 스토리텔링으로 답사기를 포스팅하려 합니다.
['평화의 댐'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평화의 댐>은 거대하기에 미리 안내도를 숙지하고 다녀야 효과적으로 볼수 있겠죠.
사진을 클릭하여 상세한 안내도를 참고 하시고...
저는 안내도의 "3번 비목공원"과 "B번 DMZ아카데미"를 중점적으로 다녀 오도록하겠습니다.
['상징 조형물'] .
<평화의 댐-다리> 앞에는 댐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으며, 주차장도 있습니다.
여기서 좌측인 서쪽으로 3~40m 가면...
[관광안내소]
<화천 관광안내소>가 있는데
안내원이 "원하면 해설사가 직접 해설도 해 드릴수 있는데 왜 이용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관광안내소를 이용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력하는듯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친절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 각자 도생하는거 아니겠소?~ㅎ
댐 앞에 이런 친절이 있다고 안내판이라도 세우면 많이 이용 할텐데...
여하튼 고맙습니다. 오늘은 단체행동이라 어렵고 다음에 오면 꼭 해설을 듣도록 하겠수"
사실 <평화의 댐>에 대해선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좀 아는척 한마디씩 하지요?
<전두환>이 어쩌고 저쩌고....<북한 금강산댐>이 또 어쩌구 저쩌구....
국민 호도용으로 사기 친 거라는 둥....ㅎ
<관광안내소> 옆에는 정자가 하나 있는데, 가 보면...
['노벨 평화의 종'] .
"노밸 평화의 종"
이 종은 <노르웨이 시청>이 기증한 종이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노벨 평화의 종> 좌측 건너편으로 가면....
['세계평화의 종']
"세계평화의 종"이 거대한 몸통을 자랑하며
<평화의 댐>과 <북녁땅>까지 우렁찬 '평화의 종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고 있는듯 하고...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에 있습니다.
['평화의 댐 물문화관']
<세계평화의 종> 건너편엔 "평화의댐 물문화관"과 "물빛누리카페테리아"가 있는데...시간없어 생략하고
['비목공원' 가는 길]
<물문화원> 앞 도로에 "비목공원"으로 내려 가는 지름길이 있습니다.
도로를 따라 내려 가도 됩니다만 공원의 <비목탑>을 가까이서 보려면 이 샛길을 이용하는게 좋습니다.
['비목공원' 가는 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 계단을 잠시 1~20m 내려 가면... 우측에...
['비목탑']
"비목탑 碑木塔"이 무언가 의미있는 메시지를 주며 우뚝 솟아 있습니다.
제가 앞으로 쓰는 글을 읽기 전에 먼저 위 안내문을 꼭 읽어 보시길 권장합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우리나라 대표 가곡 중에 하나인 "비목"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 한것이라 합니다.
아는 사람은 잘 알고 모르는 사람은 당연히 누군지 관심 조차 없을
"한명희 韓明熙"라는 분에 대해 제 나름대로 좀 깊이 있게 알아 보겠습니다.
제가 어렵사리 선생의 군대 소위 시절 사진을 구해와 편집하여 <비목탑>에 첨부했습니다.
선생은 1939년 3월1일 '삼일절'에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고등학교>를 다니시고
<서울대 음대>로 진학했는데, 좀 독특하다면 독특한 <국악과>를 다니셨답니다.
대학 때에 <학군단(ROTC)2기>를 병행하여 졸업후 육군 소위로 임관하게 되고,
<평화의 댐>에서 북서쪽으로 12km 정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비무장지대 "백암산 1,179m"의 "OP"에서
최전방 소대장으로 군생활을 하였답니다,
그때 산기슭마다 쌓여있는 전쟁의 상흔을 생생하게 목격하게 되었고
군 제대 후 ....
<"TBS동양방송">에 음악PD로 입사하여,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이 유행가로 도배되는 시대에 대항하여
"가곡의 언덕"이라는 <가곡 프로그램>을 윗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처음 도입하였는데,
(사실은 '이병철회장'의 도움이 있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방송국 국장 등 윗분들이 금방 실패 할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쎈세이션을 일으키며 대성공을 거두었답니다.
제가 고교 시절이었습니다. 1960년대 말 그 때 <비목>이라는 가곡이 등장하게 된것으로 기억되며
음악 교과서에도 실리기 시작 했습니다.
이때부터 <비목>과 함께 폭발적 인기를 끌기 시작한 노래가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로
시작되는 "얼굴"과 '일출봉에 해 뜨거던 날 불러 주오'로 시작되는 "기다리는 마음"등이
<한명희 PD >의 기획으로 만들어 졌다죠
선생은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성균관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까지 받은 학구파죠.
방송국 PD 이후 <국립국악원 원장>과 <대한민국 예술원 부회장>을 역임하시고,
<서울시립대 교수>로도 제직했습니다.
선생이 받은 상을 몇개만 알려 드리면 <"KBS출판부문국악대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자랑스런 ROTC인 상">등이 있으며, 특히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받으셨습니다.
요즘도 <6.25>가 되면 방송에도 거의 매번 나오시죠. 금년에 만84세이신데 정정하시더군요.
['비목詩碑'와 '백암산']
<비목탑> 앞에서 내려다 보는 광경입니다.
바로 아랫쪽에 그 유명한 "비목 詩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명희 소위>가 근무했던 <흰바위산>이라고 불리는 "백암산 1,179m"이 정확치는 않지만 보이는듯
비목
-한명희 作詩. 장일남 作曲-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이 가사의 내용을 깊이 있게 느끼며 부르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오는 단어 몇개는 한자 실력이 상당한 사람도 잘 모르는 단어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제가 짧은 가방끈이지만 선생의 회고록을 참고하고 제 나름대로의 감상을 합쳐 몇자 적겠습니다.
['비목']
<비목>은 '슬픈 나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뜻이 아니라 "나무 묘비墓碑"입니다.
돌로 만든 묘비를 <비석碑石>이라고 하드시, 나무로 만든 묘비를 <비목碑木>이라 부른 것입니다
윗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습니다.
철로 만든 묘비는 <철비鐵碑>라고 하며 가끔 몇군데서 <철비鐵碑>도 볼수 있습니다.
<비목碑木>이란 단어는 사실 당시엔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이니 잘 모르는 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비목 가사>의 탄생 배경을 선생의 회고와 인터뷰를 토대로 간단하게 재구성해 보겠습니다.
1963년 어느 날,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OP'에서 수색중대 소대장이었던 <한명희>는 사병들과 함께
순찰을 돌고 있었는데, 우연히 이끼 낀 돌무덤을 발견하고 무덤 쪽으로 발길을 옮겼답니다.
녹슨 철모, 카빈 소총 한 자루, 묘비처럼 꽂혀 있던 썩은 나무등걸, 고즈넉이 피어있는 산목련등으로 보아
전투 중에 숨진 한 군인의 초라한 무덤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답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가사에서 "초연"은 '첫사랑 감정'이라던가 '초연하다'라는 뜻이 아니라
한자로 쓰면 "초연硝煙"인데. '화약 초硝'에 '연기 연煙'으로 "화약연기"를 의미하죠.
총구와 대포에서 싯푸르게 나오는 화약연기가 뒤덮고 간 백암산 계곡의 어느 양지 바른 곳에서
산화해 간 젊은 군인의 간이 무덤에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그가 썻던 철모를 씌워 만든 윗 사진과 같은
이름 모를 돌무덤을 표시하는 "비목 碑木"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보지 않아도 절절히 느낄수 있습니다.
"초동 친구"라는 단어도 어려운데 '초등학교 친구'라는 뜻이 아니고
"땔감 나무 할 초樵"와 "아이 동童"으로 '어릴적 함께 나무하러 다니던 고향친구'를 의미한답니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은 대부분 이런 경험이 있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죠?
['백암산OP"의 '비목'] <자료사진>
이 사진은 <한명희 선생>이 실제 근무했던 <"백암산 OP">에 설치한 <비목> 사진을 빌려 왔습니다.
저는 1절 가사보다 2절 가사가 심금을 더욱 더 울립니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궁노루"가 어떤 노루인지 아세요?
향기로운 향기를 내 뿜는다는 "사향노루"를 다른 말로 "궁노루"라 한답니다.
이 가사가 나오게 된 배경을 <한명희>선생 자신이 쓴 수필에 설명해 놔서 저도 알게 되었는데
마음을 찡하게 울리는 내용이어서 그 슬픈 내용을 혼자 알기엔 아까워 알려 드라는 것입니다.
<"백암산 OP"> 비무장지대엔 자연의 보고였는데,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동물들이 번성했답니다.
어느날 순찰을 돌다가 부대원들이 "궁노루" 한마리를 생포해 왔답니다.
식량이 언제나 부족했던 당시 병사들이 모처럼 고기를 먹을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날밤 푸른 둥근달이 훤히 비추는데 잡혀온 "궁노루"가 자기 운명을 아는듯 자기 새끼와 짝에게
자신의 운명을 알리며 구명을 요청하는듯 애타게 밤새도록 목청것 애처롭게도 울었답니다.
애타게 울부짖는 소리가 산울림되어 백암산 계곡의 적막을 깨뜨리며
푸르른 달빛 속에 비무장지대로 울려 퍼지는 "궁노루"의 울부짖음을 상상해 보시라
동물들도 강제로 헤어져 죽을 상황에 직면하니, 두고온 짝과 새끼들를 그리워하며 이렇게 울부짖는데
하물며 화약연기 속에서 싸우다 산화해 간 이름 모를 병사는 얼마나 부모 형제 고향을 그리워 했을까....
궁노루 울음소리는 이름 없는 병사들의 넋이 외치는 절규 같았으리라....
20대의 감수성 예민한 <한명희>의 <비목>은 이런 상황 속에서 탄생 되었답니다.
그런데 실제 이 가사를 쓴 것은 그후 <"TBS방송국"> PD시절에 당시 작곡가이자 교수였던 <장일남>선생의
요청을 받고 <"TBS방송국"> 숙직실에서 술 마시고 하룻밤에 쓴것이라 합니다.
이 가사에 곡이 붙여지자 그야말로 "목숨바쳐 조국을 수호한 애국군인의 노래"로 폭발적 인기를 모았고
지금도 애창곡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죠..
['DMZ아카데미'에서 뒤돌아 본 '비목탑']
"DMZ아카데미"가 있는 주차장으로 내려와 뒤돌아 본 <비목탑>과 <비목>입니다.
인간에게 생포 당해 끌려온 "궁노루"가 헤어진 자기 짝과 새끼들에게로 돌아 가고 싶어 울부짖는 외침이
푸른 달밤 깊고 깊은 백암산 계곡에 울려 퍼질 때를 상상해 보시라....
그 "궁노루"는 소대장 <한명희>에 의해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 갔으리..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으리
[' DMZ아카데미']
<북한강>이 흐르다 잠시 멈추는 <평화의 댐> 위에 있는
"DMZ아카데미"라는 건물이 있는데, 문은 닫쳐있고
['평화의 댐' 상류]
['배수터널' 조망]
[안내문]
"평화의 댐"상류의 모습이 어쩐지 서글프게 다가 옵니다.
이 댐의 저수용량은 "26.3억톤"이라고 합니다.
엄청난 저수 용량을 가지고 있는데도 '수력발전'이라던가 '농업-공업-삭수'용으로는 이용 할수 없는
"다목적 댐이 아닌 허수아비 댐"이라는데, 엄청난 예산을 들여 건설한 유일한 이유는
<북한 금강산 댐>이 붕괴되거나 水攻을 펼칠 때를 대비하기 위한 댐이라는거죠.
<전두환 군사쿠데타 정권>이 국민의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사기를 쳤다는 설이 유력하죠
왜냐하면 <금강산댐>의 저수용량을 뻥튀기 해서 약200억톤이라고 광고하며, 댐이 붕괴하거나
水攻을 하면 <서울 63빌딩>이 반 정도는 잠긴다고 구라를 치며 국민 성금을 거둬들이기도 했죠.
세계 최대 댐이라는 중국의 <샨샤댐>의 저수 용량이 290억톤 정도라고 하는데
<금강산댐>이 200억톤의 물을 저장하려면 <양자강>같은 5,000km가 넘는 강이 있어야 하고
그것도 10여년은 수문을 닫고 저장해야 만수위가 된다는데, 콧구멍만한 우리나라에선 가당찮은 일이죠
현재 <금강산댐>의 저수 용량은 우리나라 <충주댐>의 저수용량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조망]
<"DMZ아카데미"> 앞 주차장에서 <비목공원>과 <세계평화의 종>을 바라보며
다시는 동족상쟁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염원하면서.....
다시 <평화터널>로 올라 갑니다.
['평화터널' 앞]
"제9코스 양구평화의 길"의 출발점인 <평화터널> 앞으로 다시 돌아와
<평화의 댐> 하류 쪽을 잠시 조망하고 갑니다.
['피스카이워크'에서 조망]
<평화의 댐> 하류 쪽을 조망하고
['평화터널'] 11:00
"제9코스 양구평화의 길"의 출발점인 <평화터널>에서 <오천터널> 까지 오르막은 약8km 정도 되는데
편의상 산악회 버스를 타고 쉽게 이동했습니다.
그래서 <평화터널>에서 <오천터널>까지의 답사기는 없습니다.
['오천터널'] 11:14
"오천터널"
지명의 유래가 궁금하여 조사 해 봤지만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추리한 지명의 유래는 다음과 같은데 아마도 모두 동의 하시리라 생각되는데...믿거나 말거나지만...
<오천터널>이 있는 이 산줄기는 <백두대간>의 <금강산> 부근의 <매자봉>이라는 곳에서 분기하는
<도솔지맥>에서 새롭게 분기하는 <어은지맥>의 마루금이 지나는 곳입니다.
또한 행정 구역상으로는 <양구군 방산면 오미리>와 <천미리>의 법정경계가 되는 산이더군요.
그러니까 <오천터널>의 동쪽은 <오미리 五味里>이고 서쪽은 <천미리 天尾里>였습니다
터널 이름을 지을 때 <오미리>와 <천미리>를 관통하는 터널이라고
<오미리>의 <오>와 <천미리>의 <천>을 합쳐 <오천터널>로 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저는 추리 했는데 그럴듯 하죠? ㅎㅎ
<방산면 천미리 天尾里>는 "하늘 끝 마을"이라는 의미로 첩첩산중 오지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DMZ로 분단된 지금은 '남한의 북쪽 끝마을'이라고 한답니다.
"어은산 漁隱山 1,280m"은 북한에 있어 가지 못하는 산이지만 "물고기가 숨어 사는 산"이라고
['오천터널' 앞]
<오천터널> 앞에는 작업차량들의 대기소가 있고 간이 화장실도 있습니다.
['평화로(460번지방도)' 내림길]
<오천터널>부터 <오미리 종점상회>까지는 완만한 내림길로 진행이 수월하지만
구경거리 없는 단순 도로여서 지루했습니다.
50분 정도 진행하면....
['오미리 종점상회' 앞] 12:02
<오미리 종점상회> 앞 삼거리에 도착하는데
['종점상회' 앞 갈림길] 12:04
이곳이 <양구군내버스>의 <방산면 오미리 종점>이라고 <종점상회>라 한듯...
<종점상회> 앞에 있는 삼거리는 <평화누리길>과 <평화의 길>이 잠시 나뉘는 곳이었습니다.
<평화누리길>은 우측으로 가고, <평화의 길>은 좌측으로 가는데, 어디로 가나 오십보 백보지만
앞에 가는 분들이 좌측으로 가서 그냥 따라 가기로 합니다.
좌측으로 조금 가면...
['평화의 길']
<종점상회> 옆 <버스종점> 안의 '화살표 방향'으로 <평화의 길>이 이어지더군요.
*후답자들을 위한 팁*
여기서 좌측 <460번 지방도>를 이용하면 <각시교>까지 약3km이상 단축됩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수입천 수중보>를 건널수 없으니 그냥 좌측 <460번지방도>를 이용하는게 좋겠습니다.
['오미리둘레길' 조망] 12:05
<종점상회>에서 <오미리둘레길>로 내려 가며 가야 할 길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수입천>으로 나가면...
['수입천변길'] 12:09
<수입천변길>을 걷게 됩니다.
앞으로 계속 이 <수입천>을 기준으로 길은 이어집니다.
이 "수입천 水入川"은 앞에서도 언급한 <도솔지맥>에서 분기하는 <어은지맥>과 <성골지맥> 사이에
흐르는 개천이며 <북한강 화천댐>으로 갑니다. 유명한 <두타연>을 만드는 개천이기도 하죠.
[화장실] 12:12
<오미리둘레길>의 중간 쯤에 간이화장실이 있고, <직연폭포>까지 5.9km 남았다고 알려 줍니다.
['꽃봉' 조망]
<수입천변>을 더 진행하면 '방산면 금악리'의 <꽃봉 566.8m >이 조망되기 시작하고
계속 진행하면
['수중보']
<수입천>을 건너 건너편으로 가야 하는 "수중보"를 만나는데 여름철엔 건너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종점상회>에서 부터 <각시교>까지는 <460번지방도>로 진행하는게 좋다고 한것입니다.
좌측으로 <오미막국수집>으로 돌아 나가면....
['오미막구수'] 12:32
다시 <460번지방도-평화로>를 만나며 <오미막국수집>을 만납니다
막구수 한그릇 하고 가려고 들어 갔더니 손님이 너무 많아 들어 갈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우측을 보면...
['오미리산촌생태체험관']
"오미리 산촌 생태 체험관"이 있고
['각시교' 방향]
<각시교> 방향으로 잠시 진행하면
['각시교'] 12:36
<수입천>을 건너는 <각시교>를 만납니다.
"각시와 꽃봉"에 얽힌 전설이 서려있다는데 두메산골로 시집간 각시의 슬픈 얘기가 있더군요.
고부간의 갈등으로 각시가 이 개천을 건너다 물에 빠져 얼어 죽었다나 뭐래나....
옛날 이런 두메산골엔 시집 온 각시들의 애환이 서려있죠.
['수중보' 방향 조망]
<각시교>에서 <수중보>를 건너지 못하고 돌아온 이유를 여기서 알수 있습니다.
여름철엔 <종점상회>에서 이곳 <각시교>까지는 <460번지방도>를 이용하시길 추천합니다.
['방산면 금악리']
<각시교>를 건너서는 좌측 <수입천변길>을 이용하고
황금들판으로 변해 가는 들판을 보며 가을을 느끼기 시작하며 '방산면 금악리' 속으로 들어 갑니다.
8분여 진행하면...
['물소리의 터']
['독수리 상'] 12:44
"물소리의 터"라는 조류관찰소가 있는 쉼터에 도착합니다.
독수리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
['금악교'] 12:53
<꽃봉>을 바라보며 10여분 개천변길을 더 진행하면...
<금악교>를 건너게 되며 '방산면 금악리'가 펼쳐 집니다.
['금악리둘레길' 입구] 12:54
<금악교>를 건너면 <평화누리길>은 우측 <수입천변>으로 안내 되는데
['방산면 평화누리길'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방산면 평화누리길 안내도>가 설치되 있어 읽어 보고
['금악리' 통과]
'방산면 금악리'를 통과 해 15분 정도 진행하면....
[전망 쉼터] 1:09
자전거 주차대도 있는 전망 쉼터를 만나서
['수입천']
<수입천>을 조망하고...5분 정도 더 진행하면...
['460번지방도(평화로)"] 1:14
다시 <460번지방도-평화로>를 만나고
['방산면사무소 소재지' 조망]
<방산면사무소>가 있는 <방산면 중심지>로 진행하게 되며
<방산중학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방산초' 조망] 1:19
<방산초등학교> 앞을 지나는데....지난 졸업식 때에 졸업한 학생수가 딸랑 "5명"이라네요
이 학교 교가는 멋진데....
"백석산 푸른정기 가득 지니고
직연폭포 맑은 물에 마음 닦으며
기름진 강산에 자라는 우리~ ♬♪"
['연자방아'] 1:21
<연자방아> 모형이 있는 곳을 지나는데 <디딜방아>도 함께 있군요.
['현리'] 1:22
이어서 이곳이 "현리 縣里"라는 안내석을 만나는데
옛날엔 이곳에 <현감>이 주재하는 <방산현 方山縣>이 있던 중요한 큰 고을이었답니다.
['삼거리] 1:24
이어서 이곳 <현리>가 "조선백자의 시원지"라고 알리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평화누리길>은 우측 <수입천변>을 따라 가지만
이 지역 사람들이 사는 거리를 보며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해 좌측 상가지역으로 진행합니다.
['방산면 중심지']
이곳에도 없는게 없는 다양한 가게들이 줄을 서 있는데 장날이 아니어서인지 사람들의 왕래는 없었고
<서울자전차 상점>이 눈길을 끕니다.
이런 산간 오지 마을이 최고로 여기며 동경하는 곳이 "서울"이었죠. 지금은 아니겠지만...
"서울"의 물건들은 모두 좋은 품질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고... 그래서 시골에 가면 가게 이름들이
대도시 이름인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방산수변공원'] 1:26
상가지역을 통과하면 <방산수변공원>을 만나는데 "수달"로 보이는 조형물이 있고
공원 맞은편에는
['방산면사무소']
"방산면사무소"가 있습니다.
['방산면 의용119소방대'] 1:29
<방산면사무소>에서 100m 정도 올라 가면 "방산면 의용119소방대"가 있으며
좌측엔 <보건소>가 있더군요.
여기서 우측으로 30m 정도만 나가면.....
['양구백자박물관'] 1:30
"양구백자박물관"을 만나며, <평화누리길>에도 다시 합류합니다.
<작연폭포>는 직진해 들어 가지만 박물관을 횡하니 둘러보고 가겠습니다.
['박물관 앞마당']
박물관 앞에는 <방산감리교회>와 <방산파출소>가 있고
['백자 제작 상']
['전통 가마']
<양구>가 <조선백자의 시원지>라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조선백자>는 '경기도 광주'와 '이천' '여주'가 주 생산지인데
처음 만들기 시작한것은 <양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밥그릇을 여기에서 만들었다나 뭐래나...
['박물관 운동장']
박물관 앞에는 운동장도 있는데 백자로 만든 맷돼지가 눈길을 끌고
['박물관' 후문] 1:38
박물관 후문을 통해 나가면 바로 <직연폭포>를 만나더군요.
['직연폭포'] 1:39
"직연폭포 直淵瀑布"
<방산초등학교 교가>에도 등장하는 이 지역 유명 폭포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그런데 전망대는 폐쇄했더군요.
['직연폭포']
나무 사이로 폭포를 간신히 찍었는데 그렇게 큰 폭포는 아니군요.
송아지가 폭포에 빠지자 메기가 송아지를 잡아 먹었다는 전설이 있다네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웃지 못할 전설...^*^ 여튼 전설이니까 재미로..
[다리에서 본 '직연폭포']
<직연폭포> 윗쪽 다리에서 바라 본 <직연폭포>입니다.
[다리 상부 조망]
다리 윗쪽에 있는 수중보
['협동교']
<두타연터널>로 가는 길목에 있는 <협동교 協同橋> 조금 못미쳐서
[뒷풀이] 2:40~3:07
<청마산악회>가 제공하는 뒷풀이
장소를 <협동교> 옆에 잡고 식사와 주류, 삼겹살도 구워 제공하더군요.
다른 산악회에선 보기 어려운 광경인데, 횐님들을 위해 서비스한다고....
이 음식은 산악회 회장 부인이 집에서 준비한다는데, 음식솜씨가 상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협동교']
뒷풀이 장소 옆 <수입천>으로 나가보니 <협동교>가 이곳에 있었다는 표지석이 숲 속에 서있더군요.
그러니까 <구 협동교>가 있던 자리란 걸 알려주는데
['협동교'에서 조망]
<두타연터널>로 가는 <신 협동교>가 생기면서 <구 협동교>는 숲 속에 표지석만 남기고 사라지고...
['新협동교' 통과] 3:08
식사를 마치고 <두타연갤러리>까지 진행합니다.
<신 협동교>를 지나는데 <수입천> 맑은 물에 땀을 씻는 횐님들도 보입니다..
['송현2리' 버스정류장] 3:10
<송현2리 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평화의길>은 좌측으로 안내됩니다.
<평화누리길>은 앞에 보이는 <두타연터널>이 있는 산줄기 우측으로 돌아 가야 하는데
그래서 우측으로 가야 할듯하지만, 좌측으로 안내하는 이유는
['평화의 길']
<구 송현2교>가 좌측에 아래에 있어 저 다리를 이용하여 우측 산줄기를 돌아 가라고
<新 송현2교> 앞에서 좌측으로 가라 한 이유를 이제 알겠습니다.
저 다리는 조금전 <구 협동교>에서 바로 연결되었던 걸로 보입니다.
['두타연터널'] 3:15
정식 <평화누리길>을 버리고 거리 단축을 위해 "두타연터널"을 통과합니다.
제법 긴 터널이더군요.
['고방산교차로'] 3:22
제법 긴 <두타연터널>을 통과하면 바로 <고방산교차로>를 만납니다.
<방산현>의 옛 중심지였다고 <고방산리 古方山里>라고 한답니다.
['두타연 갤러리']
<고방산교차로>에는 "두타연갤러리"가 있는데 이곳이 <평화누리길9-10코스>의 시종점입니다.
<두타연>으로 가는 길 좌측에 안내판이 있습니다.
['안내도']
<양구10년장생길>이 <평화누리길 10코스>인데 아직 미개통지역이라 갈수 없지만,
<두타연>까지는 갈수 있습니다.
['소지섭의 길'] 3:30
"두타연갤러리"
문은 닫혀있고 이용객의 흔적은 사라진 <두타연갤러리>를 둘러 보다가
"소지섭의 길" 출발지를 우연히 찾았습니다.
<소지섭>이 악수를 청하는 조그마한 조형물이 있더군요.
<양구10년장생길>이라고 명명된 이 길은 영화배우 <소지섭>이 촬영 왔다가
이곳의 자연풍광에 흠씬 빠져들어 포토에세이집을 발간했는데
이게 인연이 되아 <양구군>에서 <소지섭>의 이름을 빌려 "소지섭의 길"을 조성 했답니다.
[고도표]
오늘 거리는 총29.8km이지만, <평화터널>에서 <오천터널>까지 약10km는 버스로 이동했기에
실제 걸은 거리는 약19km정도 되며 4시간반 정도 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명희>선생이 자전적 에세이집에서 밝힌 다음 글을 생각하며 답사기를 마칩니다.
"비목"
목숨 걸고 싸우다 산화해 간 이름모를 무명용사들
그들이 지켜준 산하에서 온갖 욕망과 쾌락을 누리면서
전혀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제발 이 노래를 부르지 말아다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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