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치기 제천 여행』 『의림지』['실트랙 지도'] '충북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 義林池"를 찾아가 우리나라 고대 저수지의 역사와 국민관광지로 변모한 주변을 알아 본다. 다녀온 코스는 <안무산 버스정류장>에서 <의림지역사박물관>을 먼저 관람하고, <용추폭포>와 <동굴폭포>를 지나 <솔밭공원>과 <비룡담저수지>를 둘러보고, 다시 <용추폭포>로 돌아와 <의림지 제방>을 지나 <의림지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제천역>으로 진행했다. <의림지>는 <제천역>에서 약5.8km 정도 가까운 곳에 있어 접근성이 좋아 서울에서 당일 탐방이 가능하다
['제천역'] 9:32~9:40 2025년 6월 12일 (목) 대체로 맑음 <청량리역>에서 7시34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1시간 55분이 걸려 <제천역>에 9시 29분에 도착하였다. <제천역>은 "KTX"가 정차하는 제법 크고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제천역 1번출입구'] <1번출구>로 나가면 바로 시내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여기서 <31번 시내버스>를 타면된다. <31번 버스>는 10~15분 간격으로 배차하고 있어 교통은 무척 편리했으며, <의림지>까지 25분 정도 걸렸다.
['의림지'] 10:05 <의림지>에 있는 버스정류장은 <의림지 정류장>과 <안모산 정류장>이 있는데, <의림지 정류장>은 <의림지 제방>에 있고 <의림지 역사박물관>이 있는 정류장은 <안모산정류장>이니 하차하는 정류장은 <안무산 정류장>에서 내리는게 좋다고 생각된다. 나는 <안모산 정류장>에서 내려 답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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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 <안모산 버스정류장>에서 <의림지>로 접근하면 먼저 <의림지>에 대한 안내판이 있는데, 조선 후기 산수화가인 <이방운>이 그린 <의림지 義林池>라는 그림이 눈길을 끈다. <이방운>은 『사군강산참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이라는 화첩을 남겼는데 <사군 四郡>은 <단양-영춘-청풍-제천>을 일컷는데, 이 고을 중에서 <제천>을 대표하는 명승지로는 <의림지>라고 강조하며 그렸다고 한다.
['의림지 역사박물관'] 10:08~10:28 "의림지 역사박물관" 제천시 대표 공립박물관으로, 제천의 역사 문화 및 고대에 축조된 저수지인 제천 의림지의 역사와 구조, 관개방법, 생태 등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서 2019년에 개관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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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로비] 박물관 로비로 들어 가면 안내원이 지하1층부터 관람하고 올라 오라 한다.
['명의 이공기'] 지하1층으로 내려 가면 먼저 <제천의 인물>인 "이공기 李公沂" 名醫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제천>이 자랑하는 역사적 인물로서 <조선 선조> 때 <허준>과 함께 활동한 의사로 <임진왜란> 때에 몽진하는 <선조>를 보필하고 <광해군>의 건강을 책임진 어의여서 <임진왜란> 후 '호성공신'에 봉해 졌단다.
['의림지 한약방'] <제천>은 옛부터 약재가 특산물이어서 '약령시장'이 크게 번성하였는데, 황기와 당귀는 전국 유통량의 80%를 차지하며, 전국 약재의 50% 이상이 <제천>에서 유통된다고 한다.
['의림지'와 '청전뜰'] <의림지>에 가두어 둔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지은 "청전뜰 靑田"과 "수로 水路"를 이해하기 쉽게 모형으로 만들어 놨는데, <청전뜰> 아랫쪽으로 <제천시내>가 이어진다. 그래서 "제천 堤川"이라는 지명이 <의림지>에서 유래했단다. 왜냐하면 <제堤>라는 말의 뜻이 <둑, 제방>이라는 것이니, <제천 堤川>은 우리말로 "냇둑"이니 개천을 둑으로 막아 물을 이용하는 <의림지 둑>으로 부터 온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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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저수지 유형'] 우리나라 고대 3대 저수지는 "전북 김제의 벽골제", "경남 밀양의 수산제", 그리고 "충북 제천의 의림지"라고 학창시절 외우고 외웠던 기억이 나죠? ㅎ <벽골제>는 바닷물의 범람을 막으며 민물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고 <수산제>는 <낙동강>의 범람을 막아 안정적 농사를 짓기 위한 것이었고 <의림지>는 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때 사용하기 위한 순수 저수지 역활을 했단다. 우리나라 각 지역을 나누어 부를 때, <영남지방><관동지방><호남지방>과 <호서지방>등으로 나누는데 "호서지방 湖西地方"은 "의림지의 서쪽 지방", 즉 <충청남북도>를 의미하게 됬단다.
['청전뜰 농기구'] <의림지>의 물로 농사를 짓던 농기구들을 전시해 놨는데, <무자위>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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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 제방 축조기술'] <의림지 축조 시기>는 고문헌을 근거로 "삼국시대설", "고려시대설"도 제기되었으나 2009년 제방과 호수 바닥의 퇴적물을 시료로 연대를 측정한 결과 서기 100년 전후라는 결과가 나와 2,000년 전, 즉 "삼한시대"에 이미 <의림지>가 '못'이었음이 확인되었단다. <의림지>의 조성에 관해서는 전설에서 그 유래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의림지>는 최초로 <신라 진흥왕> 때 악성 <우륵>이 개울물을 막아 둑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700여 년이 흐른 다음 이곳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의림 朴義林"이 제방을 좀 더 견고하게 만든 것이라고 하여 그의 이름에서 부터 "의림지 義林池"라 하였단다.
['잔시실'] 전시실을 통과해 나가면...
['무자위'] 공원을 만나는데, 여러 조형물이 설치되 있는데 그 중에서 물 퍼 올리는 농기구인 "무자위"가 설치되 있는데, "수차 水車"이죠.
['제제'와 '천천'] 10:30 박물관을 나와 <의림지> 앞으로 가 뒤돌아 본 광경이다. <제천시>의 마스코트인 <'제제'와 '천천'>이가 앙증스럽다. <제천시>에는 또 하나의 마스코트가 더 있는데 <박달이와 금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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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주섬'] <의림지> 가운데에는 "순주섬"이라는 조그만 섬이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둘레길] <의림지 둘레길>을 따라 우측으로 진행하면...
['놀이시설'] <제천>을 대표하는 관광지 다웁게 대규모 놀이시설이 유혹하고...
[공연장] 야외 공연장을 지나면....
[다리'] 10:43 절간의 일주문같은 문을 만나는데, <의림지>는 이 다리를 기준으로 좌우에 두개의 호수가 있다.
['동굴폭포' 조망] 다리에서 우측을 바라보면 분수와 "동굴폭포"가 조망된다. <동굴폭포>는 인공폭포로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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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 10:45 다리를 통과해 나가면 노거수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직진성 좌측길로 가면 <의림지 둑>으로 가는데 앞에 <경호루>가 보인다. 우측길 바로 앞에는 <용추폭포-유리전망대>가 있고 <의림지 무장애길>로 <솔밭공원>으로 가는 데크길이 이어지는데, 나는 우측으로 진행해 <비룡담저수지>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 올 예정이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용추폭포' 위 다리] 10:46 <용추폭포> 위 <유리전망대>가 있는 다리가 있다. 좌측 다리가 <유리전망대>이다.
['용추폭포' 위 '유리전망대'] <용추폭포>는 <의림지> 수위를 조절하는 배수지인데 비가 많이 내릴땐 폭포를 이룬단다. 앞에 보이는 <홍류정>으로 올라 가면...
['홍류정'에서 조망] <의림지>의 서쪽 호반이 아름답게 조망되는데, 저 멀리 <용두산>에서 흘러 내려 오는 물이 이곳에 가두어 진단다.
['동굴폭포'] 10:51 인공폭포인 "동굴폭포" 아래 동굴을 통과하고
['동굴'에서 폭포수 조망] 동굴에서 폭포를 조망하고
[데크길] 데크길을 따라 잠시 진행하면...
['무장애 나눔길'] 10:56 사거리를 만나는데 <무장애 나눔길>이 시작되는 곳인데, 직진한다.
[안내도] 안내도를 참고하여 <비룡담저수지>까지 다녀 온다.
['솔밭공원길'] 데크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제천 족구장'] 11:06 <제천 족구장>을 만나고
['솔밭공원' 입구] 11:07 족구장 앞 도로를 건너면 "솔밭공원"이 시작되는데 이 도로 좌측으로 가면 <세명대>와 <대원대>로 가는 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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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밭공원'] "솔밭공원" <제천>에 있는 모든 각급학교들은 여기로 소풍을 온단다. 그래서 학생들은 여기를 싫어 한다는데...ㅎ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12년동안 봄 가을 소풍을 모두 이곳으로 와서 지긋지긋하다 할 정도로 <제천>에서는 <제천의 최고 명소>랍니다.
['현충탑' 앞] 11:15 소나무가 울창해 솔밭공원이라 한다는 공원을 7분여 진행하면 <현충탑> 앞에 도착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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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탑'과 '충령각'] 좌측엔 참전용사들과 순직 경찰등을 추모하는 현충탑과 <충령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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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담저수지' 제방] <현충탑> 앞에서 직진하면 <비룡담저수지 댐>을 만나는데 무장애길을 설치해 놨다.
[저수지 댐] 11:22~11:37 "비룡담 저수지 댐"에 올라 조망을 하면...
['비룡담 저수지'] "비룡담 저수지"는 <농어촌공사>가 1970년대에 만든 저수지란다. 좌측에 보이는집은 <마법의 성城>이라는 조형물이란다.
[의림지 조망'] <비룡담저수지 둑방>에서 <의림지> 방향을 조망한다 <의림지>가 관광지가 되고 <세명대>와 <대원대>가 들어 오면서 음식점 원룸등이 많아졌다고...
['솔밭공원'] <비룡담저수지>에서 다시 내려 가며 <솔밭공원>을 통과하고
['족구장' 앞] 11:52 <제천 족구장> 앞에서 개천의 좌측 도로를 이용하여 <의림지>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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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 12:07~12:40 <의림지>로 다시 돌아 와 <안모산 버스정류장> 주변에 있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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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루'] 12:52 <용추폭포>가 있는 삼거리로 돌아 가면 "용호루"라는 정각을 만나는데, <용추폭포>와 <의림지>를 조망하기 좋은 곳이라 한다.
['신털이봉'] 12:54 <경호루>를 지나면 "신털이봉"이라는 곳을 만나는데 <의림지> 공사를 할때, 인부들이 짚신에 뭍은 진흙을 털던 곳인데, 얼마나 많은 진흙을 털었는지 털은 흙이 쌓여 작은 산이 만들어 졌다고 <신 털이 봉>이라 한단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의 피땀어린 노력을 항상 고마워 하며 살아야 하겠다. <한강 작가>의 말처럼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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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와 제림] <의림지 둑방>엔 소나무가 아름드리 수많은 세월을 기억하게 하는데 "저수지와 숲" 그리고 <의림지의 전설>에 대해선 안내판을 참고하면 된다.
['의림지' 조망] <의림지>는 현재 기준으로는 예상보다 규모가 작았지만, 2,000여년 전 <삼한시대>에 이런 저수지를 축조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의림지>의 둘레는 1.8km 정도로 <분당 율동공원>의 <분당저수지> 정도 규모이다.
['의림지 제방'] 저수지 제방에 이런 老松들이 울창한 곳은 없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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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정'] 1:00 제방엔 "영호정 映湖亭"이란 정자가 자리하고 있는데 '호수에 비치는 경관'을 즐기는 곳이리라 <영호정> 앞에 <의림지 버스정류장>이 있어 버스를 타고 가다 <열차 시간>이 여유있어 <제천 시민회관>에 내려 <제천 중앙통>을 걸어 시내를 구경하며 <제천역>으로 갔다.
['제천역'] 1:58 <제천역>에서 2시59분에 출발하는 <무궁화 열차>를 타고 <청량리역>에 내려 귀가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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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의림지
『영월』 방랑시인 김삿갓 유적지 유랑기
『당일치기 영월 도보여행』 『방랑시인 김삿갓 유적지 유랑기』['위성지도']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에 있는 <영월8경> 중에 <제4경>이라는 "김삿갓유적지"를 찾아 간다.
['영월역'] 10:07 2025년 5월 27일 (화) 대체로 맑음 지난 4월 30일에 <단종 유적지>와 <영월읍내>를 답사하고 한달여 만에 다시 <영월역>을 찾았다 <청량리역>에서 7시34분 열차를 타고 10시5분경에 <영월역>에 내렸는데 지난번과 같이 <김삿갓>이 나그네를 반긴다.
['영월 이야기'] <영월역> 앞에는 "영월지역 이야기"라는 안내판이 영월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는데... <영월역>에 붙어있는 <덕포시장>이 유명한 소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라고 안내하는데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는 <봉평 장터>에서 <평창의 대화장터> 가는 길이고 <영월>과는 거리가 멀다. <메밀꽃 필 무렵>에는 <영월><덕포시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슬기 해장국 식당'] <영월역> 건너편엔 <영월의 대표음식>이라는 "다슬기해장국집"이 나란히 성업중인데 지난번엔 <성호식당>이 재료소진으로 2시반경에 영업을 종료해 못먹고, 옆집 <다슬기한마당>에서 먹어서 이번엔 꼭 <성호식당 다슬기해장국>을 먹기 위해 다짐하고 왔다. 특히 <김삿갓유적지> 가는 버스가 11시 40분경에 있어 시간도 남아 돌아 여유있게 천천히 시식했는데 유명하다고해서 뭔가 다르겠지 했는데 옆집과 별반 차이점은 찾기 어려웠다. <동강다슬기><다슬기한마당><성호식당> 중에 한곳을 선택하면 무난 할듯...
['덕포리'] <덕포시장입구 덕포사거리> 버스정류장으로 바로 가려면 여기서 150m정도 직진하면 된다. <김삿갓문학관>으로 가는 버스시간이 남아 돌아 지난번에 구경했던 <동강>으로 나가 <금강정>등을 둘러 보고 <덕포시장입구>로 간다. 다슬기 식당에서 서쪽으로 조금 올라 가면 첫번째 골목을 만나는데 우측으로 들어 가면
['덕포4리'] <덕포4리>를 알리는 아치를 통과하여 건너편 제방 위 도로로 올라 가면...
['금강정' 조망] 지난번 <단종유적지 답사>에서도 만났던 <동강 東江>과 <영월>에서 최고의 절경을 자랑한다는 <금강정 錦江亭>과 <단종>이 처형 당하자 시중을 들던 시종과 하녀들이 스스로 자결한 <낙화암>이 아직도 그 슬픔을 알리는 듯 하고... <봉래산 별마로천문대>도 조망된다.
['라디오스타 박물관' 조망] <옛 KBS 영월 라디오 방송국>이었던 <라디오스타 박물관>도 보이고
['영월성당' 조망] 서쪽으로는 <영월성당>도 조망된다.
['영월대교'] <동강> 제방을 따라 150m 정도 진행하면 <영월대교>와 <영월읍내>가 한눈에 들어 온다. 건너편 <영월읍내>와 남쪽 <덕포리> 사이에 다리가 없던 시절엔 큰 나룻터가 있어서 그 나룻터 이름이 <덕포德浦(큰나룻터)>여서 이곳 지명이 <덕포리>가 되었다고....
['덕포사거리'] 11:45 <영월대교>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덕포사거리>를 만나는데, <덕포시장 입구>이기도하다. <김삿갓문학관> 가는 버스는 <영월터미널>에선 다음과 같이 있는데
<덕포시장입구정류장>에서는 <10번시내버스>가 "6:22, 8:42, 11:42, 14:22, 18:17"에 있다. 나는 <11시42분 버스>를 타고 갔다가 <3시10분 버스>로 나올 예정이다. 정시에 도착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약40분이 걸려 <김삿갓문학관>으로 간다.
['김삿갓 문학관 주차장'] 12:22 <10번버스>의 종점인 <김삿갓문학관 주차장>에 40분여 걸려 도착하여
['김삿갓 쉼터'] <김삿갓유적지>를 다녀와 <김삿갓문학관>을 관람하기로 하고 바로 유적지로 출발한다.
['노루목교'] 12:26 <문학관>에서 <유적지>로 건너는 다리는 <노루목교>인데 다리 난간을 "붓"모양으로 만든게 눈길을 끈다.
['김삿갓묘 입구' 조망] <노루목교>에서 <김삿갓유적지 입구>까지는 매우 가깝다. 이곳은 <강원도 영월군>과 <충북 단양군>의 경계가 되는 곳이기도 했다. 南으로는 <소백산>을 사이에 두고 <경북 영주>와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개천은 <마포천>으로 <백두대간 소백산>의 <고치령>과 <마구령> 등에서 내려 오는 개천이다. 그래서 <계유정란> 이후 <영주>로 유배 간 <세종대왕>의 막내 아들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며 <영월>에 유배 중인 <단종>에게 밀사를 보냈던 길이다. 밀사들은 밀서를 품에 안고 <백두대간 고치령>을 넘어 <영주>에서 <영월>을 오갔던 것이다. 이렇듯 이지역은 한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란걸 알수 있다.
['김삿갓 유적지' 입구] 12:29 돌탑이 있는 <김삿갓유적지 입구>로 들어 가면..
[詩碑] 먼저 만나는 詩는 유명한 <김삿갓>의 "開城人逐客詩 개성인축객시"라는 詩이다. 풀이를 하면 "개성 사람이 나그네를 내쫓다"인데..... 邑號開城何閉門 山名松嶽豈無薪 읍호개성하폐문 산명송악개무신 黃昏逐客非人事 禮義東方子獨秦 황혼축객비인사 예의동방자독진 이런 詩는 설명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죠? 간단히 설명하면... <김삿갓>이 <개성>의 <송악산>을 등정하고 내려 오며 어느 부잣집에서 신세를 좀 지려고 부탁하자 <뗄나무>가 없어 밥도 못짓는다고 문도 열어 주지 않으며 싸늘하게 문전박대를 하는 것이 아닌가 ! 성질 난 <김삿갓>이 詩 한수를 남기고 떠나는데... 그 뜻풀이를 하면 고을 이름이 개성(開城)인데 왜 문을 닫나 산 이름이 송악(松嶽)인데 어찌 땔나무가 없으랴. 황혼에 나그네 쫓는 일이 사람 도리 아니니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네 혼자 중국 떼놈일세.
['김삿갓 유적 공원'] <김삿갓 묘> 앞 입구엔 "詩仙 金삿갓 蘭皐先生 遺積碑" 가 세워져 있는 소공원이 있다.
['환갑'] 공원에는 누가 알려 주지 않으면 알수 없는 조형물이 있는데 제목이 "환갑 還甲" 이다. 披坐老人非人間 피좌노인비인간 疑是天上降神仙 의시찬상강신선 膝下七子皆盜賊 슬하칠자개도적 偸得天桃獻壽宴 투득천도헌수연 저기 앉은 늙은이 사람 같지 않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 온 신선 같구나. 슬하 일곱 아들들 모두 도둑놈들일세, 천도 복숭아를 훔쳐다 잔치에 올렸네. 황해도 산골 어느 노인의 회갑연에서 푸대접을 받으며 말석에서 술 한 잔 얻어먹은 김삿갓은 시(詩) 한 수로 좌중을 웃기고 울렸다는 詩다. 첫 연에서 "저기 앉은 늙은이 사람 같지 않다" 고 하자, 일곱 아들과 하객들이 어리둥절하며 축하는 못해 줄 망정 뭔 개소리를 지꺼리냐고 항의를 할 즈음에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구나" 하자, 완전 전세 역전되어 엄청난 칭송인걸 깨달으며 환갑노인은 입이 떡 벌어지며 감사의 인사를 한다. 분위기 좋아진 상황에서 다시 <김삿갓>은 시 한수를 더 읊는다. 둘째 연에서 "슬하 일곱 아들들 모두 도둑놈들일세" 라고 좋은 분위기에 물을 뿌리는 시를 읊자 좌중이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하며 얼굴들이 울그락 불그락 할때쯤 <김삿갓>은 다시 이어지는 詩를 덧붙인다. "늙은 부모에게 효도하려고 천도 복숭아를 훔쳐다 잔치에 올렸네" 라고.... 이 대목에서는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글솜씨가 모두를 놀라게 해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어떤가? 非人間과 神仙, 盜賊과 天桃(천도복숭아)를 일치시켜 좌중을 휘어잡은 솜씨가... 이 칠언절구 한 수로 김삿갓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윗 사진의 조형물은 그 상황을 형상화한 조각작품이니 설명이 없으면 뭔 의미인지 모르겠지요? ㅎ (천도 복숭아를 들고 있는 김삿갓이다)
[삼거리] 12:32~12:37 소공원을 지나면 바로 삼거리가 나오며 좌측길은 <김삿갓 주거지>를 가는 길이고, 가운데에는 <성황당>이 있으며 우측 다리를 건너면 바로 <김삿갓 묘>이다. <김삿갓 묘>는 <김삿갓 주거지>를 다녀와 가기로 하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김삿갓과 약수터'] 12:37 <김삿갓>이 나그네들에게 술을 따라주는 조각품이 있는 약수터가 있다. 1."난고 김병연 蘭皐金炳淵 (1807년4월22~1863년3월29일)"은 누구인가 <순조 7년> 그러니까 1807년 4월 22일에 태어나 <철종 14년 1863년 3월 29일>에 55년간의 파란만장한 유랑생활을 한 독특한 인물인데, 유랑생활을 하며 남긴 그의 詩文學으로 더욱 유명하다.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불리는 <蘭皐 金炳淵>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勢道大家 安東金氏 문중"에서 태어났다.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주역인 金炳冀, 金炳學, 金炳國 등과 같은 '炳'자 항렬이요, 그의 아버지 <김안근 金安根>은 荷屋大監으로 불리는 金佐根을 비롯하여 金汶根. 金洙根과 같은 항렬이며 할아버지 <김익순 金益淳>은 <23대 純祖>의 장인으로서 안동김씨 세도를 창시했던 "김조순 金祖淳"과 같은 항렬로 탄탄한 세도가 집안에서 "경기도 양주군 회암리"에서 태어 났다. 그토록 60년 세도가문의 한 허리에 태어나서 탄탄대로가 보장되었을 그가 세상을 등지고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조국산천을 누비면서 숫한 逸話와 名詩를 남기고 55세를 일기로 비운의 일생을 마친 연유는 그의 할아버지 "金益淳 사건" 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경래의 난'] 2.당시 조선의 정치상황을 알아 보면 개혁군주 <정조대왕>이 의문의 죽음으로 열살짜리 <순조>가 등극하면셔 개혁은 물 건너 가고 어린 <순조>를 업고 "안동김씨 세도정치"가 시작되며 매관매직, 가렴주구, 부정부폐, 강압정치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 지고 급기야 백성들의 반란이 빈번하게 일어 나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반란이 '평안도 북서부 지역'에서 일어 난 "홍경래의 난 洪景來 亂" 이다. <청천강> 이북의 <평안북도>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은 <조선 조정>의 지역차별에 대한 감정의 폭발로 일어난 엄청난 민란이었다. 위 지도에서 <선천>과 <가산>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김삿갓>의 할아버지인 <김익순>이 <선천>에서 <선천부사>및 <방어사>라는 최고위급 관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산>에는 "정시 鄭蓍"라는 인물이 부사府使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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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길] <김삿갓 주거지>로 올라 가는 길은 자동차도 다니는 제법 너른 길이었다. 길가에는 <김삿갓>을 칭송하거나 추모하는 詩들이 나열되 있다. 3.할아버지 <김익순 사건>의 전말 <김병연>의 할아버지 <김익순>은 <안동 세도가>의 일원으로 당시 좋은 자리였던 윗 지도에 나오는 <선천 지역>의 <선천부사및 방어사>로 부임해 가렴주구, 매관매직, 부정부폐를 일삼고 있을 때 <홍경래의 난>이 터졌는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홍경래>에게 항복을 한다. 한편 윗 지도의 <가산 지역>의 부사를 맡은 <정시 鄭蓍>는 끝까지 저항하다 반란군에 의해 처형된다. 반란 진압을 위해 파병된 관군에 의해 점령지를 수복하기 시작하며 전세가 역전되자 <김익순>은 반란군 농민이 벤 <홍경래>의 참모 <金昌始>의 목을 돈 천 량을 주기로 하고 사서 자기의 전공으로 위장하여 조정에 바치는데......이 거짓 전공은 곧 탄로난다 농민에게 약속한 돈을 주었으면 아무 탈 없이 무공훈장을 탈수 있었을 텐데, 돈이 아까워 농민에게 약속한 목 값을 주지 않음으로서 파렴치한 그의 죄상이 낱낱이 밝혀지며 "능지처참"을 당한다. "능지처참"은 사지를 찢어 발겨 죽이는 극형이다. 이와 함께 <김조순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연좌제로 <김삿갓 가문>까지 역적 집안으로 몰려 삼족을 멸하는 형벌을 받는다. 다행이 <안동김씨 가문>이라 <김삿갓 가문>은 목숨만은 부지 할수 있었다.
[삼거리] 12:45 입구에서 8분여 오르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 다리를 건너간다 우측으로는 <처녀봉>으로 가는 등산로라고 한다.
[오름길] "어둔골" 맑은 물이 흐르는 깊고 깊은 <어둔골> 계곡을 올라 간다. 1,000m가 넘는 준령들이 포위하고 있어 언제나 어둡고 냉랭한 계곡까지 피신한 <김병연 가족>을 생각하면 그들의 암울한 좌절된 삶이 어느 정도인지 훤히 느껴진다.
['마대산 등산로'] "마대산 馬垈山 1,051m" 등산로이기도한 오름길을 오르는데... <마대산>에 풍력발전 7기를 설치하는가 보다. 결사반대한다는 주민들의 플랭카드가 어쩐지 "우리에게도 뭘 좀 주라"라고 하는듯 하다. 왜냐하면 이 지역엔 인적없는 산골이기 때문에 풍력발전소를 세운다해도 주민 피해는 미미할것이기에
[삼거리] 1:06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다시 만나며 <김삿갓 주거지>는 우측으로 안내 된다.
['김삿갓 주거지' 조망] 1:08~1:13 <김삿갓 주거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4.역적 가문의 피난생활 역적은 삼족을 멸하는 연좌제여서 <김병연 가족>도 처형 위기에 몰렸지만, 다행이 <안동김씨> 가문이라 목숨만은 살려주어 피신 생활이 시작되었다. 빠까번쩍한 대궐같은 "양주 회암리"의 자택을 떠나 피난을 가는데, 이때 아버지 <김안근 金安根>은 홧병으로 죽어 버리고, 어머니 <함평 이씨>가 <황해도 谷山>을 비롯한 여러 곳을 유랑하다가 <경기도 광주-이천-여주>등을 전전긍긍하다가 첩첩산중 <영월 寧越>에 까지 찾아 들어 정착했단다. 그러니까 이곳은 그들의 피난처이자 미래를 꿈꾸는 곳이었다 할수있겠다
[주거지 전경] "김삿갓 주거지"에는 본채와 "난고당"이라는 사당이 있는데 요즘도 사람이 가끔 거주하는가 보다 지금이야 별장같은 멋진 심심산골 낭만적인 외딴집으로 보이지만 길도 없던 조선시대에 이곳에서 뭘하며 먹고 살수 있었을까
[본채] 5.어머니 <함평 이씨>에 대하여 어머니 <함평 이씨>는 사대부 집안 출신으로 여자지만 어려서부터 글을 익힌 新女性이었단다. 그렇기에 <안동 김씨 가문>으로 시집을 갈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나는 <신사임당>보다도 <김삿갓 어머니-함평 이씨>가 더 훌륭하다고 강력 주장한다. 역적 집안으로 몰려 풍지박살난 가정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산 넘고 물건너 이곳 <영월 어둔골>로 아들 셋 <장남 병하炳夏, 병연炳淵, 막내 병호炳湖>를 업고 걸리며 들어와 살기 위한 몸부림을 쳤단다. 멀리 떨어진 마을에 가 품삯을 벌고, 밭을 일구며 어린 자식 셋을 키웠단다. 사대부 집안의 마님이 이런 개고생을 해도 자식을 키우려는 그 집념은 하늘을 찌를둣 했겠지.... 그러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을 가르쳤단다. 형과 아우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병연>에게는 특별히 더 강력하게 글을 가르쳤고.... 당시엔 가문을 일으키려면 과거에 합격하는 방법 이외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난고당'] "난고당 蘭皐堂"에는 <김삿갓>으로 보이는 사진이 걸려 있고, 향로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동안 공부한 <병연>의 실력을 테스트 해 보기 위해 스무살이 되는 해에 <영월관아>에서 시행한 <향시-백일장>에 응시 하도록 한다. <향시-백일장>은 과거시험과는 다르다. 지방 무명 유생들에게 학업을 권장하기 위하여 각 고을 단위로 글 짖기 대회를 여는 일종의 地方科擧와 같은 것이었단다. 합격하더라도 관직을 바로 얻는 것은 아니고 한양과거시험의 예비고사 정도였단다. 6.운명을 바꾼 영월 향시 어머니의 간곡한 권유에 떠밀리어 영월 백일장에 나온 <병연>은 동헌에 높이 걸린 오늘의 詩題를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단다.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詩題를를 해석하면 10여 년 전 이 나라에 벌어졌던 대역사건, 그 중의 대조적인 두 인물, "<가산부사 정시鄭嘉>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金益淳>의 하늘을 찌르는 죄를 통탄하라" 는 것이다. 두 사람의 사적을 너무도 잘 아는 김병연은 붓을 들어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曰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卿大夫 將軍桃李壟西落 烈士功名圖末高 대대로 신하라고 일컬어 오던 너 김익순아 정공은 문관이면서도 충성을 다하지 않았더냐. 너는 오랑캐에게 항복한 한나라의 李陵 같은 놈이요 열사 정시의 공은 죽은 뒤에 드높았다. <매우 길어 중략> 마지막엔 다음과 같은 글로 마무리한다.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너는 임금도 배반하고 조상도 배반한 놈 한 번 죽어서는 오히려 가볍고 만 번 죽어 마땅하다. 춘추의 필법을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부끄러운 이 사실은 우리 역사에 길이 전하리라. 장원급제하여 돌아 온 아들을 보고 어머니 <함평 이씨>는 매우 기쁘하며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를 볼 준비를 하라고 하며, 이 실력이면 충분히 급제 할수 있다고 용기까지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나... 시험문제와 답을 들은 어머니는 눈 앞이 캄캄해지며 기구한 운명에 통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장성한 아들에게 진작 집안내력의 귀띔이라도 해 주었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엇하랴. 아니 그 치욕스런 과거를 어떻게 입에 올릴 수 있었으랴 그리고 어머니는 치욕적으로 욕한 <김익순>이 너의 "친할아버지"라고 알려 준다.
['어둔골' 계곡] 1:29~1:59 1,000m가 넘는 준령들로 둘러싸인 <어둔골>은 여름 피서지로 알맞겠지만 친할아버지를 욕한 <김병연>의 가슴엔 지울수 없는 상처로 남아 방랑의 길을 떠난다. 역적이든 충신이든 그 어른이 나의 조부님이신 것만은 틀림없거늘 그토록 처절하게 매도하다니 장차 어찌 얼굴을 들고 세상을 본단 말인가
['김삿갓유적공원' 앞 삼거리] 2:08 다시 <김삿갓유적지공원> 앞 삼거리로 돌아 왔다 좌측 다리를 건너 <김삿갓 묘>로 들어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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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 김병연 묘'] "詩仙 蘭皐金炳淵之墓" <김삿갓>은 전국을 유랑하며 자연과 인간들을 두루 접하며 그 자유로움을 버리고 하늘로 날아갔다. 그는 "전남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 538-4" <구암마을> "정채업"의 사랑채에 머물다 終命했다. 3년 후 그의 둘째 아들 <김익균>이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詩를 소개한다. 從南曉鐘一納履 風土異邦心細量 새벽종소리 들으며 방랑길에 오르니, 생소한 객지라서 마음 애달팠노라 心猶異域首丘 勢亦窮途觸藩羊 마음은 고향 그리는 떠돌이 여우같고, 신세는 궁지에 몰린 양 같은 나로다. 搖頭行勢豈本習 糊口圖生惟所長 머리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이리요, 먹고 살아가기 위해 버릇이 되었도다. 光陰漸向且巾失 三角靑山何渺茫 그런 중에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 삼각산 푸른 모습 생각할수록 아득하네. 江山乞號慣千門 風月行裝空一囊 떠돌며 구걸한 집 수 없이 많았으나, 풍월 읊는 바랑은 언제나 비었도다. 千金之家萬石君 厚薄家風均試嘗 큰 부자 작은 부자 고루 찾아다니며, 후하고 박한 가풍 모두 맛보았네..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鬢髮蒼 신세가 기구해 남의 눈총 받다보니, 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歸兮亦難停亦難 幾日彷徨中路傍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자니 어려워, 노상에서 방황하기 몇 날 몇 해이던고. <김삿갓>은 여기까지 쓰다가 마침내 기력이 다하여 붓을 던지고 말았다. 그리고 집주인인 "안초시"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안 초시, 춥구려. 어머니가 보고 싶소. 저… 등잔…불을 좀… 꺼 주시오…" <김삿갓>은 어머니가 그렇게나 보고 싶고, 너무도 미안했나 보다.
[조망] <김삿갓>의 어머니 <함평 이씨>의 친정은 <충남 홍성>이었다 <김삿갓>이 <영월 어둔골>을 떠나 방랑길에 오르고 난 후 어머니는 늙고 병들어 친정인 <홍성>으로 가 살았다고 한다. 정처없이 떠돌던 <김삿갓>은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홍성 외가>로 찾아가 물어물어 묘지를 찾아서 어머니의 무덤 앞에 꿇어앉아 술 한 잔 부어놓고, 어머니를 불러보지만 이미 유명을 달리한 어머니에게서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울다 울다 날이 저물어 할 수 없이 내려오다가 다시 돌아서서 물끄러미 어머니의 무덤을 돌아다보고 자기도 모르게 시 한수를 읊었다. 北邙山下新墳塋 千呼萬喚無反響 西山落日心寂寞 山上唯聞松栢聲 북망산 기슭에 새로운 무덤 하나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네. 해는 저물어 마음은 적막한데 들려오는 것은 솔바람소리 뿐이로다.
['유적지공원'] <김삿갓>은 방랑생활을 하면서도 그리운 고향생각은 엄청 많이 한것 같다. 西行已過十三州 此地猶然惜去留 雨雪家鄕人五夜 山河逆旅世千秋 서쪽 땅 13 주를 헤매었건만 아직도 떠날까 머물까 망설이네. 눈비 내리는 한밤에 고향 그리워 잠 못 이루니 산천 따라 나그네 길 몇 해 이런가.
['외씨버선길 영월객주'] 2:19 <김삿갓 묘>에서 <김삿갓 문학관>으로 다시 와 <문학관으로 들어 가는데 "외씨버선길 영월객주"가 있다. <외씨버선길 11코스 종점>이자 <12코스 출발지>이다.
['김삿갓 문학관'] 2:27~2:40 "김삿갓문학관"은 관람료 2,000원이 필요하다. (경로무료) 안으로 들어 가면....
[문학관 로비] <난고 김병연>이 유명해진 이유 중에는 <정비석 선생>이 쓴 소설 <김삿갓>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문열 선생>도 <시인>이라는 소설로 <김삿갓>을 노래했는데, <이문열 최고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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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내부'] 문학관에는 <김삿갓>의 유물 등 전시품은 거의 없고 <방랑시인 김삿갓>이라는 노래만 울려 퍼졌다. <김문응>이 작사하고 <전오승>이 작곡했다고 알려진 이 노래는 전국민의 애창곡이기도 한데 <명국환>이라는 가수가 불렀다. 특히 <전두한>이가 쿠데타 이후 불러서 지금도 그 영상이 인터넷에 떠돈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너머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던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 없는 이 거리 저 마을로 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시간의 흔적'] <시간의 흔적>이라는 작품이 전시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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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詠笠] 浮浮我笠等虛舟 一着平生四十秋 牧竪輕裝隨野犢 魚翁本色伴白鷗 醉來脫掛看花樹 興到携登翫月樓 俗子衣冠皆外飾 滿天風雨獨無愁 [나의 삿갓을 읊다] 머리 위에 둥둥 뜬 내 삿갓은 빈 배와 같고 한번 쓰고 사십 평생 같이 살아왔도다. 목동이 들에서 소를 몰 때 가볍게 걸치고 늙은 어부 강가에서 쓰고 갈매기와 벗했네 한잔 술에 취하면 꽃나무에 걸고 꽃구경하고 흥겨우면 손에 들고 다락에 올라 달구경하며 달과 속삭이고 속물들은 의관을 모두 겉치레로 꾸미지만 비바람 가득찬 하늘일지라도 홀로 근심없으라
['군내버스 10번'] 3:03 3시 10분에 출발하는 시내버스는 3시경에 도착하여 10여분 있다가 정시에 떠난다. 승객은 나 혼자 뿐. 운전기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영월역>으로 돌아 가는데.... <영월> 토백이라고 하는 기사와 나눈 이야기의 일부를 언급한다. 파란문 : <김삿갓>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 기 사 : 우리 고향사람이니 좀 알지요. 파란문 : <김삿갓>의 고향이 <영월>로 알고 있군요. 기 사 : 당연하죠~ 파란문 : <김삿갓>의 고향은 '경기도 양주 회암리'이고, 할아버지의 반역죄로 가문이 풍지박살 나 이곳으로 피신 온거에요. 그러니까 여기는 고향 아니고 피신처이며 미래를 도모한 곳이에요. 기 사 : 그래요? 허~참 파란문 : <김삿갓>이 죽은 곳은 '전남 화순 동복리'이고 둘째 아들이 3년후 이곳으로 이장했구요. 기 사 : 여기서 죽은게 아니군요. 난 지금까지 <영월>이 고향이고 여기서 죽은 줄로 알았네요. 파란문 : '경기도 양주시'에 가면 <회암사>를 중심으로 <김삿갓 풍류길>이라는 걷기코스를 조성해 놓고 <김삿갓의 고향> 임을 광고하고 있죠. 또한 '전남 화순'에 가면 도로명도 <김삿갓로>라 하고, 그가 숨을 거둔 <안초시 집>을 복원하여 관광지화 하고 있어요. 지방자치단체들이 서로 <김삿갓>을 울궈 먹고 있죠. 기 사 : <영월>은 <김삿갓>의 일생 중에 아주 짧은 기간만 거주한 이방인이었군요.
['양주의 김삿갓'] 방랑시인으로 세상을 풍자하며..또한 비판하며 자유롭게 살았다고 그의 인생을 좋게, 또는 부럽게 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필자인 "파란문"은 조금 달리 생각합니다. 한 가정의 家長이 강원도 두메산골에 피신해 사는 궁핍한 가족들을 보살피지 않고 저 혼자 떠돌아 다니며 제멋대로 산것은 家長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나쁜 아빠"와 "나쁜 남편"의 대명사로 요즘같으면 이혼을 당해도 여러번 당하고 위자료도 물어 줘야하는 그런 무책임한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지방 향시-백일장에서 모르고 할아버지를 욕하는 글로 장원이 되었다는 것이 어머니와 처자식을 버리고 가출을 하는 이유가 되었을까?하는 의구심을 무지 불러 일으킵니다. "모르고 할아버지를 욕했다"는 것은 가출을 위한 명분이 아니었을까.... 현실과 낭만은 별개지만 김삿갓의 인생을 너무 미화하는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사리사욕에 눈 먼 관료나 양반들에겐 조롱과 해학이 곁들인 풍자를 속시원히 퍼붓고 가난한 백성들에겐 즐거운 해학과 웃음으로 많은 민중들을 포용하며 산 그의 낭만에 대해선 찬사를 보낸다. **부록** [양주] 김삿갓풍류길 1코스 답사기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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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국립공원』 『충주호 악어봉』 당일치기 산행
『월악산국립공원』 『충주호 악어봉』 당일치기 산행['지형 지도'] "충주호 악어"는 실제 존재하지 않지만, <악어봉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악어(산줄기)들이 충주호 속으로 기어 들어 가는 모양"이어서 그 광경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월악산국립공원 악어봉>을 찾아 간다. <악어봉>은 '충북 충주시 실미면 신당리'에 있다.
['충주역'] 9:35 2025년 5월 13일 (화) 대체로 맑음 <판교역>에서 오전 8시 22분발 <중부내륙선> "KTX이음"을 타고, <충주역>에 9시 27분에 내렸다. 정확히 1시간5분 걸렸는데, 무척 편리해진 시대이다. <판교역> 출발 "KTX"는 8:22, 12:31, 16:45, 20:56에 있다. <충주역>은 예상보다 초라했는데, 현재 증개축 중에 있었다.
<충주역>에서 <악어봉 입구>까지 시내버스 시간표인데 이 시간표는 <충주시외버스터미널> 기준이어서 <충주역>의 시간과 2~3분 차이가 난다. 그러니까 <충주역>에는 10시 52분에 도착한다. <충주역> 다음이 <버스터미널>이다. "KTX" 도착 시간과 시내버스 출발시간이 1시간반 정도 차이가 나 시간 보내기가 어중간하여 한 정거장 걸어 <버스터미널>로 가서 <롯데마트>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정확히 <10시 55분>에 <222번 시내버스>를 타고 약40분이 걸려 <악어봉 입구>로 간다. <악어봉 입구> 정류장 이름이 <월악휴게소>로 나오는데 현재는 <게으른 악어>로 바뀌어서 혼돈이 되니 운전기사에게 꼭 <악어봉 입구>에서 내려 달라고 당부해 두는게 좋다. ['버스시간표']
['악어봉 입구'] 11:36 <악어봉 입구>에 내리면 <악어봉>으로 가는 육교가 설치되 있는데 시내버스가 올때는 정류장 이름이 <월악휴게소>로 표기되고 갈때는 <신당리>라고 표기 되니 유의 해야 한다. 갈때는 육교 밑에 정류장이 있으니 참고해야 하고.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육교로 올라 가면....
['카페 게으른 악어'] 육교에 올라 뒤돌아 보면 옛날엔 <월악휴게소>였는데 지금은 "게으른 악어"라는 카페가 보인다.
['육교'] 육교를 건너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잠시 오르면....
['묘'] 11:47 <서병길씨 묘>를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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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길] 가파른 오름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계단] 12:02 다시 데크 계단을 만나 5분정도 올라 간다.
[쉼터] 12:07~12:13 그러면 중간 쉼터를 만나는데 잠시 쉬어 간다
[조망] 중간 쉼터에선 조망이 없고 울창한 소나무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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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길] 다시 6분정도 오름짓을 하면....
['월악산 영봉' 조망] 12:19 좌측으로 조망이 트이며, <월악산국립공원>의 최고봉인 "월악산 영봉"이 조망된다.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의 누나인 <덕주공주>가 머리 깍고 중이 되어 살다 성불한 곳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글 끝에 부록으로 첨부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 보시기 바란다.
[전망대 입구] 12:23 5분여 더 오르면 오늘의 하일라이트이자 종점인 <악어봉 전망대> 입구에 도착한다.
['악어봉 전망대'] 12:24~12:34 "악어봉 441.9m" <악어봉>은 산 모양이 "악어" 모양이어서 붙여진게 아니고 , 여기서 바라보는 광경 속에 "악어"가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평일인데도 제법 많은 산객들을 만날수 있었는데, 요즘 유명해진 곳이라 <파란문>도 찾아 왔다. 조망을 하면...
[조망 1] 전망대 정면인 북쪽을 먼저 조망하면.... 산행 출발지인 <카페 게으른 악어>가 발 아래 보이는데, 등산길이 좀 가파르긴 해도 거리가 짧아 내가 오르는데 40여분 걸렸으니 등산이라기 보다는 관광이라 하는게 더 낫겠다. "충주호"가 펼쳐지며 <충주호>로 기어 들어 가는 듯한 산줄기가 독특한 장관을 이룬다. 이 산줄기가 거대한 "악어" 같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단다. 악어들이 기어 들어 가는 듯 한가요? 나오는 듯 한가요 ㅎ 이 광경을 보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조망 2] 서북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충주시내>를 감싸고 있는 <남산>과 <계명산>도 조망된다. "충주호"는 우리나라 최대 저수량을 자랑하는 인공호수란다. 최대 저수량이 약30억톤이라는데, 세계 최대인 <중국 산샤댐>은 약300억톤이라니 비교된다. 마을은 <충주댐>으로 수몰되고, 마을 뒷산 산줄기들이 "악어" 모양을 하고 '옛 마을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는듯 하다.
[조망 3] 고개를 돌려 뒷쪽인 남쪽을 바라보면 <악어봉>의 母山인 "대미산 大眉山 680.4m"이 보이는데 <계명지맥>이 지나는 산이다. 조금 우측 뒤로는 <수안보> 너머 <괴산>의 <군자산> <보배산> <칠보산>등이 희미하게 조망된다.
[안내도] <악어봉>은 <월악산> 정상과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하는 산이다. 거리는 짧지만 좀 가파른 길이니 등산장비를 갖추는게 좋겠다.
[원점회귀] 1:00 하산길에 걸린 시간은 25분 정도였으며, 총 1시간 25분 정도 걸렸다. 육교를 건너 <카페 게으른 악어>로 가면....
['게으른 악어 포토죤'] <충주호반>에 자리 잡은 <게으른 악어> 포토존에서 커피 한잔 하며 "악어들의 이야기"를 추억하고
육교 밑 <신당리 버스정류장(게으른악어)>에서 버스를 타고 40여분이 걸려 <충주역>으로 간다. 갈때는 <223번 시내버스>인데 버스시간표 시간 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으니 후답자들은 참고 하시고... <충주역>에 2시경 도착하여 3시2분에 출발하는 "KTX"를 타고 <판교역>에 도착하여 귀가 했다. <충주역>→<판교역> 6:30 10:52 15:02 19:21 충주호에 사는 악어 만나러 가보세요~~ **부록** 월악산 영봉 산행기 ['신당리 버스시간표]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
파란문印
『영월』 한맺힌 장릉-청령포 도보여행 Ⅱ부
『당일치기 영월 도보여행』 『영월 역사유적 도보여행』 영월역-영월대교-영월성당-라디오스타박물관-금강정-민충사-고경춘순절지-낙화암- 금강공원-영월향교-영월중앙로터리-관풍원-청록다방-창절서원-장릉노루조각공원- 장릉-장릉깨비굴-영월강변저류지공원-영월관광센타-왕방연시조비-청령포전망대- 청령포 단종유적지-청령포역-세경대-남한강시작지-동강둔치공원-동강대교-영월역['실트랙'] 2025년 4월 30일 (수) 대체로 맑음 『Ⅰ부』에 이어 "창절사"에서 『Ⅱ부』를 계속 진행한다. 『영월 장릉-청령포 도보여행 Ⅱ』 창절사-장릉노루조각공원-장릉-장릉깨비굴-영월관광센터-왕방연시비-청령포- 청령포역-세경대-영월체육센터-남한강합수지-동강둔치-동강대교-영월역
['창절서원'] 11:55 2025년 4월 30일 (수) 대체로 맑음 『Ⅱ부』는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육신"과 충절의 "생육신", 그리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안장한 "엄흥도"의 충의와 정절을 기리는 "창절사"에서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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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로'] <장릉>방향으로 연결되는 도로는 <단종로>로서 맑끔하게 단장된 '영월읍 영흥리' 마을이 이어진다. 15분 정도 진행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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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노루조각공원'] 12:10 '영월읍 영흥리' <장릉> 앞에 있는 "능말못"이라는 저수지에 조성 된 "장릉노루조각공원"을 만난다. 이 공원에는 "노루" 조각품이 곳곳에 설치되 있는데..... "엄흥도"와 "노루"의 전설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자 그대로 <동강>에 버려졌단다. <세조>의 어명으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3족을 멸한다고 경고했기에 아무도 접근을 못했는데 '영월 호장'이라는 낮은 직급의 관리인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지게에 지고 매장 할 장소를 찾아 눈 덮인 산을 오르는 중에 "노루" 한 마리가 앉아 있다가 후다닥 달아난 자리에 눈이 녹아 있어, 잠시 그 자리에서 쉬었는데, 다시 일어나 가려고 했는데 지게가 떨어지지 않았단다. <엄흥도>는 "여기가 <단종>을 장례 지낼 명당이다"라고 생각하고 결국 그 자리에 시신을 매장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현재의 "장릉 莊陵"이라는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참고)
['장릉노루조각공원'] <영월 호장 엄흥도>와 <노루>에 얽힌 전설을 바탕으로 그 의미를 살려 <장릉> 앞에 "노루"가 뛰어 노는 듯한 조각공원을 만들어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휴식공간으로도 제공하고 있단다.
['장릉 정문'] 12:15~12:45 "장릉 莊陵"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우리나라에 <장릉>이라는 릉호는 세곳이 있다. 1) '경기도 김포'에 있는 <장릉(章陵)>: 조선의 추존왕 <원종(인조의 생부)>과 추존왕비 <인헌왕후(인조의 생모)>를 모신 쌍릉. 이 왕릉은 "글 장(章)"자를 사용한다. 2)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장릉(長陵)>: 조선 제16대 왕 <인조>와 그의 첫 번째 왕비인 <인열왕후>를 모신 합장릉. 이 왕릉은 "길 장(長)"자를 사용한다. 3) '강원특별자치도 영월'에 있는 <장릉(莊陵)>: 조선의 6대 임금 <단종>을 모신 단릉인데 이 왕릉은 "장중할 장(莊)"자를 사용한다. 한편 "장릉 莊陵"은 <한양.경기도> 밖에 있는 유일한 조선왕릉이다.
['단종역사관'] <장릉 정문>을 통과하면 바로 "단종역사관"을 만난다. 역사관으로 들어 가면...
['단종 어진'] "조선 제6대왕 단종" <단종>은 1441년8월18일 <세종대왕>이 즉위 23년 때에 <경복궁>에서 <5대 문종>과 <현덕왕후> 사이에서 태어나 1448년 5월 14일에 <세종대왕>에 의해 "왕세손"으로 봉해졌다. 적장자 출신의 왕세자로부터 탄생한 적장자 왕세자는 조선왕조 27명의 왕들 중에 <단종>이 유일하다. 조선 역대 왕들 중 절대 최강의 순도 100% 정통성을 자랑한다 <단종>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 <세종대왕>이 기쁨에 겨워 2급 이하의 죄수를 모두 사면하는 대사면 교지를 발표했을 정도로 기쁘했으며, 매우 총명하다고 극찬하곤 했다. 그라고 7세 때에 바로 "왕세자"로 정한 것은 적장자의 왕위계승을 꼭 실현 하고 싶은 열망이었으리~ <단종>은 1452년 6월 14일 열살때에 왕으로 등극해서 3년여 재위했지만 <수양대군> 치하에서 힘못쓰는 왕으로 밀려 지내다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어 4개월여 후에 1457년 11월 16일에 <관풍헌>에서 죽었다.
['역사관' 내부] 역사관 내부엔 유물등 볼거리들은 거의 없고 기록들이 전시되 있어 횡하니 돌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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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흥도 정려각'] <역사관>을 나가 <재실>을 지나면 "엄흥도 정려각 嚴興道旌閭閣"이 있다 왕릉 내에 일반인의 정려각을 두는 곳은 이곳 <장릉>이 유일하단다. 그많큼 <엄흥도>의 충절을 높이 평가 한다는 것이곘지... <엄흥도>는 <영월 엄씨>로 당시 <영월 관아 호장>이었다는데, <숙종>때에 '공조참의'에 봉직되고 <영조> 때에 정려각을 설치했단다. 우리나라 대표 산악인 <엄홍길>씨가 그의 후손이라한다.
['장릉 입구'] <장릉 정자각 입구>를 만나면 "왕릉"은 우측 계단으로 올라 가야 하는데, 먼저 직진하면...
['정자각'] 일반적인 <조선왕릉>은 "홍살문→정자각→능침"이 일직선으로 배열 되 있는데, 이렇게 "ㄴ"자로 꺽여있고 능침이 능선 위에 별도로 분리 되 있는 왕릉은 이곳이 또 유일하단다. 또한 <조선왕릉> 중에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직접 관리 하지 않고 있는 왕릉이 두곳있는데 이곳 <장릉>은 <영월군>이 직접 관리한다고 한다. 그래서 연중무휴로 관람 할수 있다. 다른 한 곳은 <2대 정종의 후릉>으로 <개성> 근처 이북에 있기 때문이다.
['왕릉 입구'] <정자각> 가기 전, <왕릉>으로 올라 가는 계단인데,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잠시 올라 가야 한다.
['장릉' 능선] 계단을 오르면 능선이 나타나며, 왕릉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 바로 앞 우측엔...
['정령송'] "정령송 精靈松"이라는 소나무 한그루가 안내석과 함께 있는데 <단종>의 아내 <정순왕후>가 뭍혀있는 '경기도 남양주'의 "사릉 思陵"에서 한그루 뽑아 이곳으로 이식해서 <단종>의 외로움을 달래 준다고... 한편, 이곳의 소나무 한그루를 <사릉>으로 이식하여 <정순왕후>의 외로움도 달래 주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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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능침'] <조선왕릉>으로는 소박한 "장릉 壯陵"이다. 당시 서슬퍼런 <세조>의 눈을 피해 암장했던 만큼 <단종>의 무덤은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었단다. 그 후 1541년 <중종> 때, <노산군>의 무덤을 찾으라는 명을 받고 수소문했으나 찾을 수 없어 난감해 하던 차에 <영월군수 박충원>이 발견하여 묘소를 정비하게 되었고, 1580년 주변에 비석들이 세워지기는 했으나 이 당시까지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던 상태여서 묘(墓)라는 칭호를 유지해왔단다. 그러다 1698년 <숙종>이 <단종>을 복위시킴에 따라 무덤도 능으로 격상되고 <장릉(莊陵>)이라는 능호도 받게 되었단다. 이때, <단종>의 시신을 모셨던 <엄흥도>에게는 <공조판서>가 추증되었다고. 왕릉 공사를 담당하는 부서가 <공조>였던 것을 감안한 셈이니 <숙종>은 <엄흥도>를 무척이나 높이 평가 한것으로 보인다. <장릉>에는 "무인석 武人石"이 없는게 특징이란다. 이는 <단종>이 <세조>에게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 당했기 때문이니 무사를 곁에 두기 싫어해서겠지
['정자각' 조망] 왕릉에서 아랫쪽 <정자각>이 있는 곳을 내려다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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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촌비각'] 들어 갈 때 못본 "낙촌비각 駱村碑閣"을 정문 앞에서 만난다. <노산군묘>를 찾아 제사를 올린 <영월군수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비각(駱村碑閣)>이 있다 <낙촌駱村>은 <박충원>의 '호'란다. <중중>의 "노산군묘"를 찾으라는 어명으로 찾기 어려운 묘를 찾아내 정비하고 제사를 올린 인물이어서 그의 공덕을 차하하는 비각을 세웠다고...
['장릉' 정문 앞] 12:46 <장릉> 정문 앞으로 나와 우측으로 잠시 가면 로터리를 만나는데 로터리에서 죄회전 하면...
['장릉 능말 깨비굴'] 12:51 "장릉 능말 깨비굴"을 만난다. "깨비"는 "도깨비"의 이곳 방언이란다. <엄흥도>에 의해 암매장 된 <단종>의 묘는 240여년 동안이나 방치 되었지만 "도깨비"들이 지켜 주었다고 이곳 "능말(릉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믿었다는데, 여기 있는 굴을 "도깨비굴"로 조성하여 관광객들을 끈다고...
[삼거리] 12:53 <능말깨비굴>을 지나면 바로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영월강변저류지수변공원'] 12:58 우측엔 "영월강변저류지수변공원"이 상당한 규모로 펼쳐진다. 당초 저 공원 안으로 진행 하려고 했는데 내려 가는 길을 찾지 못해 도로를 이용 한것이다. 이 <저류지수변공원>은 원래 <서강(평창강)>의 본류가 흐르던 강이었다고 최초로 밣힌다. 다음 지형도를 보며 알아 보면...
['지형도'] <현위치>로 표기 된 곳이 윗 사진을 촬영한 곳인데 <청령포>는 아주 옛날엔 삼면이 강이 아니었는데, 강이 긴 반도를 빙 둘러 나갔다는 것을 알수 있다. 누적되는 홍수로 반도의 허리 부분이 짤려 물의 흐름이 <청령포> 앞으로 바뀌고 반도를 휘돌아 나가던 곳은 인공적인 둑으로 저류지 공원이 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영월소방서'] 1:07 10여분 도로를 진행하면 "영월소방서"를 만나고 다시 10여분 진행하면
['영월 홍살문'] 1:16 <영월 홍살문>를 지나게 되며
[삼거리] 1:21 이어서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 아래에 <영월관광안내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직진하다가 중간에서 우측 <저류지수변공원>으로 내려 가면
['수변공원'] 1:26 옛날엔 "서강 西江"이 휘돌아 나가던 곳이 저류지가 된 공원을 건너 <영월관광센타>로 간다.
['영월관광센터'] 1:32~ 1:53 "영월관광센터"는 <외씨버선길>의 종점이기도 하고, <운탄고도1330길>의 출발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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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센터 내부'] 관광센터 안으로 들어 가면 크고 화려한 <특급호텔 로비> 같은 느낌을 준다 식당도 있고 휴식을 취할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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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조망] 옆으로 나가 조망을 해야 <청령포>와 <왕방연 시조비> 위치를 확인 할수 있다. <왕방연 시조비>→<청령포 전망대>→<청령포>로 가는게 좋다.
['왕방연 시조비' 앞 삼거리] 1:55 <왕방연 시조비> 앞 삼거리에서 <왕방연 시조비>를 찾아 보고 좌측 <청령포 전망대>로 간다.
['왕방연'이 시조를 읊었던 곳] "왕방연 王邦衍" <단종>이 <영월>로 유배갈 때와 사약을 들고 사형집행하러 갈때의 <금부도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사 <세조실록>에는 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숙종실록>과 <연려실기술>등 야사에만 등장한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유배를 다룬 <세조 3년 6월 21일자>의 <세조실록> 기록에는 "<첨지중추원사 어득해>에게 명하여 군사 50명을 주어 <노산군>을 <영월>로 호송하게 하였고, <군자감 정 김자행>과 <판내시부사 홍득경>이 이를 따랐다"고만 되어 있다. <중추원 첨지사>는 "정3품 당상관"이고, <군자감 정>은 "정3품 당하관", <판내시부사>는 "정2품"이니 "종5품"인 <의금부 도사>는 이들과 같이 실록에 언급될 짬이 아니니 50명 중에 한사람이 <왕방연>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하지만 <금부도사>는 직급은 낮지만 범법자의 형벌을 총지휘하는 요즘의 '검사'와 같으니 끝빨은 더 있었다. 하지만 <숙종실록 25년 1월 2일>자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 있다. "군신(君臣)의 대의(大義)는 천지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단종대왕(端宗大王)이 영월(寧越)에 피하여 계실 적에 금부도사(禁府都事) 왕방연(王邦衍)이 고을에 도착하여 머뭇거리면서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정중(庭中)에 입시(入侍)하였을 때에 단종 대왕께서 관복(冠服)을 갖추고 마루로 나오시어 온 이유를 하문하셨으나, 왕방연이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가 봉명신(奉命臣)으로서도 오히려 그러했는데, 그때 앞에서 늘 모시던 공생(貢生) 하나가 차마하지 못할 일을 스스로 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가, 즉시 아홉 구멍으로 피를 쏟고 죽었다. 천도(天道)는 논해야겠으니, 그 공생의 성명이 전해와서 알 수 있는 단서가 있으면 본도(本道)로 하여금 계문(啓聞)하게 하라." 그러니까 <세조실록>에는 <왕방연>이 등장하지 않고, <숙종실록>에는 <왕방연>은 유배길을 호송한 것은 아니고, 4개월 후 사약을 들고 <영월>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연려실기술>에는 유배 호송길과 사약을 내릴때 모두 진두 지휘 한것으로 나온다. 이렇듯 역사는 당사자들의 호불호에 따라 쓰여지기에 오히려 야사를 더 믿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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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방연 시조비'] <청령포>가 가슴 아프게 조망되는 이곳에서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고 돌아 가면서 <왕방연>은 여기서 솔직한 자신의 마음의 글을 지었단다. 인간으로서 차마 할짓이 못되는 짓을 하고 돌아 가는 마음을 나타낸 너무나 유명한 시조이죠? 천만리千萬里 머나먼 길에 고운님 잃어버리고 내 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아 있으려니 저 물도 내 마음 같아서 울며 밤길을 가는구나 조선초기엔 고려의 "왕씨 말살정책"으로 "王"이라는 姓을 거의 사용 못했는데도 <왕방연>은 "왕王"씨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왕조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 초기엔 고려의 "王씨"는 살아 남기 위해 "전全씨"나 "옥玉씨"등으로 성을 바꿨다)
['청령포 전망대'] 2:02 <왕방연 시조비>에서 "청령포 전망대"로 가면 <청령포 입장권 판매소>가 있다. 관람료 안내판엔 "청령'표' 관람료"라고 오기하고 있는데, 이런 오기를 고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청령포' 뱃길 조망] 관람티켓을 끊어 배를 타기 위해 포구로 내려 가며 <청령포>를 조망하고...
['청령포 나루터'] 2:10 배를 타는 시간은 3분도 안걸린다. 관람객만 오면 한명만 타도 배는 출발한다. 나룻터도 없는 "청령포"에 내려 자갈밭을 지나 숲으로 들어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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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2:13 "청령포 淸泠浦" <단종>이 <한양>에서 유배되어 도착한 "유배지", 즉 자연감옥이다. <한양>에서 이곳까지의 유배길에 대해선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나름대로 자료를 종합하면... <창경궁>에서 유배길에 오르는데, <창경궁>을 나가 먼저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청룡사(정업사)"로 가는데, 폐서인이 된 <정순왕후>가 앞으로 거처할 곳이었다. 그날밤 그들은 <청룡사 우화루 雨花樓>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왕과 왕비가 폐서인이 되어 영원한 이별의 밤을 <雨花樓>에서 ...."꽃비가 내리는 집"에서.... 그리곤 다음날 <청계천 영도교 永渡橋>를 건너며 "영원한 이별"을 하고, 다시 <중량천 살곶이다리>를 건너 지금의 <화양동 동사무소>가 있는 곳인 "화양정"에서 잠시 쉬어 가는데.... 이때 <세조>가 환관을 <화양정>에 보내 <노산군>을 전송케 했다고 실록에 나온다. 그리곤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여주>로 이동하여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에서 육로를 이용해 <귀래>와 <신림리>를 지나 '영월군 주천면 酒泉'에 도착하고, 이어서 <청령포>에 도착했단다.
[부속건물] 2:15 <단종>이 머물렀던 '어소御所' 옆에는 시종들이 기거하며 식사등을 준비하는 초가집이 먼저 나타나고
['단종 어소'와 '어소 표지석'] <단종>이 머물렀던 <어소 御所>는 현재 기와집으로 복원되 있는데, 옛날엔 초라한 초가집이었다고... 그리고 마당엔 "이곳이 단종의 유배지"라는 확인 표지석이 <영조>에 의해 세워져 있다.
['어소'] 관람객들을 위한 조형물이 방안에 있는데, <단종>은 이곳에 겨우 두어달 있었을 뿐이다. 음력6월에 유배와서 8월경에 <영월관아 관풍루>로 옮기고 10월에 사약을 받았다. <세조실록>엔 당시 기상변화에 대해 상세히 기술되 있는데... 음력6월(양력7월)까지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아 가뭄으로 <세조>가 기우제를 수시로 지냈는데, <단종>이 유배 가는 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엄청 많은 비가 내렸단다. <한강>의 물이 불어 배가 갈수 없어 <양평>과 <여주 이포>에서 비를 피해 머물다 갔다고 하고... <청령포>에 도착하여서는 <서강>이 범람 할 정도로 비가 내려 안전한 <영월관아 관풍루>로 옮겨야만 했단다. 비와 유배....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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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묘재본부시유지비'] <영조>는 <단종>과 <정순왕후>의 사연을 매우 가슴 아파했는데, 그래서 <정순왕후>가 기거했던 '서울 숭인동'의 <청룡사(정업사)>와 이곳에 그들의 흔적을 알리는 표지석을 설치했다. <영조>는 두곳에 표지석을 세우며 "눈물을 머금고 표지석을 세운다"라고 기술한것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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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송'] 2:19 <어소 御所> 옆에에는 "관음송 觀音松"이라는 소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데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며(觀), 외로움에 떠는 '말소리(音)'를 들어 주었다고 "볼 관觀" "소리 들을 음音" "소나무 송松" "관음송 觀音松"이라 한다고
['망향탑' 입구] 2:22 <관음송> 뒤에 조그만 동산이 있는데, <망향탑>이 있는 곳이란다. 제법 가파른 계단을 잠시 올라 가야 한다
['망향탑'] 2:25 <단종>은 이곳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돌을 하나 하나 쌓아 탑을 만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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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조망] 2:26 <망향탑> 위엔 전망대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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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산대'] 2:30 <망향탑>이 있는 봉우리에서 내려와 다시 우측 봉우리로 올라 가면 <망향탑>의 내력과 비슷한 스토리텔링이 있는 "노산대"가 있다.
['서강'] <노산대> 아래는 절벽으로 <서강(평창강)>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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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표비'] 2:34 <노산대>에서 내려 가면 "금표비"가 있는데 <영조>가 이곳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 시키는 "통행금지 표지석"을 설치해서 지금까지도 주변 경관이 홰손되지 않았단다.
['청령포전망대' 조망] 2:37 25분 정도 <청령포 유배지>를 돌아 보고 다시 배를 타고 나가, 앞에 보이는 <청령포 전망대> 뒤로 가면
['정순왕후'와 '단종'] 2:44 <정순왕후>와 <단종>이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난다는 조형물 "天上再會"가 있다. <단종>은 17살에 죽었지만 <정순왕후>는 '82세'까지 장수 했다. 당시로는 엄청난 장수. <정순왕후>는 약1년4개월 정도만 왕비의 지위에 있었지만,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연산군-중종>까지 8명의 왕들이 바뀔 때까지 살았다. <정순왕후>가 폐서인으로 강등 당하자 <신숙주> 이 개새끼가 <정순왕후>를 자신의 노비로 달라고 <세조>에게 졸랐다가 개망신 당하는 일도 있었다. <영월역>으로 가는 도보길은 <운탄고도1330 1코스>를 이용하는게 좋을것 같아 조형물 뒤 다리 있는 곳으로 가면....
['운탄고도1330 1코스'] 2:46 <운탄고도1330 1코스>는 우측으로 올라 가라는 안내판이 설치되 있다. 우측으로 올라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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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 10여분 이어지고
[정상] 2:54 정상부터는 평지가 이어진다.
[숲길] 숲길을 지나면...
['하송리 마을'] 3:02 '영월읍 하송리' 마을이 나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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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역'] 3:11 이어서 지금은 폐역이 된 <태백선>의 "청령포역"을 만난다. 이 길은 <운탄고도1330길>이란걸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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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경대'] 3:16 '하송리 마을'을 벗어 나면 "세경대학교"를 만나며 "영월읍내"가 시작된다. 간호학과, 경찰경호과, 소방과등의 인재를 양성하는 전문학교로 <영월>에도 대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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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체육센터'] <세경대> 부터는 영월읍내로 들어 가지 않고 강변길을 따라 걷는다 강변에는 <영월체육단지>가 상당한 규모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길은 <외씨버선길>이기도 하다는 표지목이 눈길을 끌고...
['동강 제방길'] 제방 산책로 데크로 들어서면....
['동강-서강 합수부'] 3:34 "동강-서강 합수부"가 <태백선> 아래에 나타나며 "남한강"이라는 이름이 시작되는 곳이다. "남한강"이지만 "한강"이라는 이름이 처음 시작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서강>과 <동강>이 합류하여 <남한강>을 이루고, 이 <남한강>은 <단양-여주-양평>을 지나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며 비로소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어 <서울>을 통과하여, <임진강>과 합류하는 <교하>까지가 "한강"이며, 이후부터는 "조강 祖江"이라는 이름으로 <강화도> 앞 <서해>까지 간다.
['동강둔치공원'] <영월>의 각종 문화행사가 열린다는 <동강둔치공원>을 지나면....
['동강대교'] 3:54 <동강대교>를 건너고
['덕포리'] 다리가 없던 시절 큰 나룻터가 있었다고 <덕포>라고 한다는 '덕포리'를 통과하여
['영월역'] 4:10 <영월역>에 도착하며, "단종"과 관련된 유적과 <영월읍내> 도보답사를 마친다. 의미있는 하루였으며, <단종>이 일주일이 걸려 유배 갔던 길을 서울에서 당일로 열차를 이용해 다녀 올수 있는 시대가 열려 꿈만 같다. 서울로 가는 열차는 5시44분에 있어 시간이 남아 <영월 특식>이라는 <다슬기해장국>을 먹었다. 유명 맛집은 <영월역> 건너편에 있는 <성호식당>인데 오전에 출발 할때 벌써 줄을 서 있었는데, 오후에 갔더니 이미 재료가 소진되어 영업을 끝냈더군요. 에쿠~ 그래서 할수 없이 옆집에서 <다슬기해장국> 12,000원 한그릇 하고 서울로 돌아 왔다. **부록** <정순왕후>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서울 종로] 비운의 왕비 '정순왕후'의 흔적을 찾아서" 여기 클릭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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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단종애사와 영월 도보여행 Ⅰ부
『당일치기 영월 도보여행』 『영월시내 역사유적 도보여행』 영월역-영월대교-영월성당-라디오스타박물관-금강정-민충사-고경춘순절지-낙화암- 금강공원-영월향교-영월중앙로터리-관풍원-청록다방-창절서원-장릉노루조각공원- 장릉-장릉깨비굴-영월강변저류지공원-영월관광센타-왕방연시조비-청령포전망대- 청령포 단종유적지-청령포역-세경대-남한강시작지-동강둔치공원-동강대교-영월역['실트랙']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의 역사 유적과 삶의 현장을 걸어서 답사한다. 거리는 약18km 였으며 여유있게 6시간 정도 걸렸다. 『영월읍내 역사유적 도보여행Ⅰ부』 영월역-라디오스타박물관-금강정-낙화암-관풍헌-창절사
['영월역'] 10:13 2025년 4월 30일 (수) 대체로 맑음 "영월역" <청량리역>에서 7시 34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10시 10분경에 <영월역>에 도착했다. <영월역>에는 <방랑시인 김삿갓>이 먼저 반기는데, <김삿갓 난고 김병연>의 고향은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이며, <영월>에선 잠시 살았고, 죽은 후에 그를 안장한 곳이다. 역안내문에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라고 알리고 있는데,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는 <강원도 봉평>에서 <평창 대화리> 사이이며 <영월>과는 관련이 없다.
['영월역 앞'] 10:15 <영월역> 앞 도로를 건너 서쪽 방향으로 100m 쯤 가서 우회전 하면....
['덕포4리'] 10:17 <덕포4리> 아치가 있는 안으로 데크 계단이 보이는데, 계단을 올라 가면...
['강변로'] 10:18 <동강 강변로>가 나타나는데 강변으로 건너 가고...
['전망대'] 조금 특징있는 <동강 전망대>가 나그네를 반기는데 여기서 조망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금강정-낙화암-봉래산' 조망] 먼저 북동쪽을 바라보면 건너편에 <금강정>이 보이는데 <황희 정승>과 <퇴계 이황선생>이 절경을 노래한 <영월의 명승지>라고 하고... <낙화암>은 <단종>이 살해되자 그를 보좌하던 시중들과 하녀들이 몸을 던져 투신자살한 곳이란다. <영월의 역사>는 대부분 <단종>과 연관되 있었다. 우측에 보이는 산은 <봉래산 鳳來山 802.5m >로 "별마루천문대"가 있다.
['라디오스타박물관' 조망] 북쪽 정면에는 <라디오스타 박물관>이 조망되고
['영월대교' 조망] 북서쪽으로는 잠시후 건널 <영월대교>와 그 뒤로 <영월읍 중심가>가 조망되는데, 잠시후 <영월성당> 앞으로 <라디오스타박물관>을 찾아 갈 예정이다.
['영월대교'] 10:24 <영월>엔 <영월대교>와 <동강대교>가 <동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을 이어 주고 있다. <영월군의 인구>는 약36,500명 정도라고 하며, 9개의 읍면으로 이루어져 있단다. <영월 寧越>이라는 고을의 지명은 그 유래가 어떤지 찾아 볼수 없었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편안 할 녕寧"과 "넘을 월越"이니 "편안하게 넘을수 있는 고을"이라 할수 있지 않을까 <백두대간>인 <소백산-태백산>으로 둘러쳐진 험준한 준령을 '편히' 넘을수 있는곳? 글쎄 모르겠다.
['동강' 조망] <영월대교>에서 "동강 東江"을 조망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맑고 푸른 강이라고 한다. 여기서 잡는 "다슬기"로 만든 "다슬기해장국"은 영월의 대표 음식이라고 해서 한그릇 할 예정이다.
['중앙로로터리'] 10:29 <영월대교>를 건너 가면 첫번째 이정표를 만나는데 여기서 우측 <라디오스타박물관> 방향으로 틀면
[갈림길] 10:30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영월문화학교> 앞이다. 우측 <라디오스타박물관> 방향으로 올라 가고 <금강정>을 돌아 좌측길로 내려 올 예정이다. 대략 한시간 정도 걸렸다.
['영월성당'] 10:32 "영월성당"이 상당한 규모로 있고
['영월대교' 조망] 지나온 <영월대교>방향을 바라볼수 있는데, 저 뒤에 보이는 산이 아마도 <영월지맥>의 끝인 <태화산>일 것이며, 그 뒤로는 <백두대간 소백산>이 <강원도>와 <경상도>를 분리 시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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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 10:35~10:51 <영월성당> 옆길을 잠시 진행하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 <라디오스타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와 우측 길로 <금강정-낙화암>으로 진행 할 예정이다.
['충혼탑'] 왼쪽엔 "영월군 충혼탑"이 건립되 있는데 이 주변이 모두 "금강공원"이었다.
['박물관' 입구] "라디오스타 박물관" 입구
[박물관과 카페] 박물관으로 들어 가면 우측엔 "온에어 카페"가 있고, 좌측에 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은 원래 "KBS영월방송국"이었다는데 2000년대 초 영화 <라디오스타>를 촬영한 곳으로 명성을 얻게 되어 "라디오 박물관"으로 변모시컸단다.
['라디오스타' 영화 포스터] 박물관 입구엔 대형 영화 포스터 "라디오스타"가 걸려 있는데 가수왕 출신의 <최곤>이라는 가수가 대마초 사건, 폭행사건에 연루되 감옥까지 가게 되는데 피해자와 합의금 마련 조건으로 <영월방송국>에서 DJ를 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오후의 희망곡>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는데, 인기없이 진행되던 어느날 <영월 청록다방 김양>이 스튜디오로 커피 배달 왔다가 그녀의 사연을 우연히 방송한게 슬프고 재미 있고 리얼하다고 '대박'이 나고, 산골 촌의 지역 방송이 지역민들로부터 관심을 끌어 인기 프로그램이 되기 시작하고.. 그 인기를 타고 다시 중앙 무대로 컴백하게 되고....한다는 얘기 ㅎ (나는 웃고 울게하는 그 영화를 재미 있게 보았다... 2006년도이던가?) 잠시후 <다방 레지 김양>이 근무했다는 그 <청록다방>도 답사 할 예정...ㅎㅎ
['박물관' 정문] 볼거리가 거의 없던데 입장료가 좀 비싼 느낌..(경노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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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구닥다리 라디오들과 변천해 온 라디오들을 전시 해 놨고 <라디오스타> 영화도 상영하고 있다.
['스튜디오'] <청록다방 김양>이 커피 배달 왔다가 그녀의 사연을 방송 했던 스튜디오가 그대로 보존되 있다. 그리고 눈길을 끄는건 박물관 앞에 <영화배우 유오성씨> 조형물이 설치되 있었다 <유오성>의 고향이 <영월>이고 <영월초등학교>를 나와 서울로 가서 <한대 영연과>를 나왔다고
['송덕비군'] 10:52 <라디오스타박물관>을 나와 <금강정>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면 <영월 송덕비군>이 있고 계속해서 200m 정도 더 진행하면...
['민충사'와 '금강정'] 10:57 "민충사"와 "금강정"이 모습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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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정'] "금강정 錦江亭" <영월> 사람들은 <동강 東江>을 '비단같이 흐르는 아름다운 강'이라고 <금강 錦江>이라고 했단다. 그러한 <금강>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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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정승'과 '퇴계 이황선생' 詩] <금강정>에는 <황희 정승>의 시와 <퇴계 이황선생>의 시가 걸려 있다. <퇴계 이황선생>은 "산이 터져라 울어 대는 두견이는 어느 세월에나 멈추려나~" 아마도 <단종>을 생각하며 읊었을 걸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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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충사'] 11:02 <금강정> 뒤에는 "민충사 愍忠祠"라는 사당이 있다. <단종>이 죽자 그를 모시던 시중들과 시녀들이 강물에 몸을 던져 절개를 지키자 그들의 위폐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란다.
['금강공원'] 11:06 <금강정>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휴식 공간으로도 좋은 곳이었다.
['기생 고경춘 순절지'] 11:07 "기생 고경춘 순절지"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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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춘 순절비'] 절벽 위엔 "기생 고경춘 순절비"가 세워져 있는데 비석엔 "越妓 瓊春 殉節之處"라고 쓰여 있는데 "영월의 기생 경춘이 순절 한 곳"이라는 듯
[사또와 기생 조형물] <기생 고경춘>이 좌측 <이시랑 사또>와는 좋은 관계를 맺고, 우측 신임 사또에겐 수청을 거부하는 상황을 조형물로 만들어 놨다. 영월판 <춘향전>? 기생이 한 남자에게만 정절을 지킨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어서 "여성 전체의 정절"을 홍보하는 듯하다. 기생도 정절을 지키는데 일반 여성들은 더더욱 지켜라~라고 봉건왕조시대에 유교사상으로 만들어진, 여성을 남성의 종속관계로 부추기는 것을 홍보 하던 시대는 가고, 현재는 아닌듯한데, 그래서 이런건 다시 시대에 맞춰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 보고...
['낙화암'] 11:11 이곳이 조금 전 <민충사>에서 언급한 <단종>을 모시던 시종들과 시녀들이 투신자살한 곳이란다.
[순절지] <낙화암>에서 내려다 보는 절벽
['영월수도사업소'] 11:15 <낙화암>을 돌아 나가면 "영월수도사업소"가 나타난다. 영월군민들에게 자연의 물맛을 제공한다고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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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공원'] 11:17 <금강공원>의 조형물과 놀이터등을 지나면...
['6.25' '월남전' 참전비] 11:21 "6.25와 월남전 참전비"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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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향교'] 11:23 이어서 "영월향교"를 만난다. 제법 큰 향교로서 <김삿갓 김병연>이 영월에서 지방향시인 과거 시험을 보았다는데 여기가 아닐까 김병연의 나이 스무해쯤, 영월현에서 시행하는 지방향시에 응모한 김삿갓 앞에 시험문제가 출제 되는데 "嘆金益淳罪通于天 論鄭嘉山忠節死" "김익순의 죄가 하늘까지 미쳤음을 꾸짖고 가산 군수 정시의 충절어린 죽음을 논하라"였단다. 시험지를 받아든 '김병연'은 일필휘지로 "한번 죽어서는 그 죄가 가벼우니 만번 죽어 마땅하다"라는 내용의 답안지를 작성하고 장원을 차지 했다는 것은 대부분 아는 사실이죠? ㅎ 그런데 만번 죽어도 마당하다고 한 <김익순>은 <김삿갓>의 친할아버지여던 것이다. 아들의 답안지 내용을 들은 어머니는 "출세도 중요하지만 어찌 조상을 능멸할수 있는가!"라고 꾸짖으며 자신의 시아버지이자 '김병연'의 할아버지인 "김익순"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었다. 출세를 보장해줄 수단으로 믿었던 과거시험이 조상을 욕하는 어이없는 만행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로부터 "후손으로서 하늘을 볼수 없는 죄인이로다"라며 삿갓을 쓰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방랑시인으로 세상을 풍자하며..또한 비판하며 살았다고 그의 인생을 좋게 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파란문>은 절대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자격 없는 놈이라 여긴다. <난고 김병연>에 대해선 다음에 한번더 <영월>을 방문하여 자세히 알아 보겠지만 더 자세한 내용을 미리 알고 싶은 분들은 <파란문>이 직접 쓴 이 글 하단에 첨부한 "[양주] 김삿갓풍류길"을 참고 하시길...
['중앙로 로터리'] 11:29 <영월대교>에서 이어지는 <영월 중앙로 로터리>로 다시 돌아 와 직진하여 <중앙로>로 들어 간다.
['중앙로'] <중앙로> 초입에는 <영월중앙시장>이 있고 조금 더 전진하면....
['영월부 관아'] 11:32~11:41 "옛 영월부 관아 寧越府 官衙"를 만난다. 조선시대 <영월의 관청>이었던 곳인데, 현재 <관풍헌>과 <자규루>만 복원되 있고, 관아 시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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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부 관아']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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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풍헌'] "관풍헌 觀風軒"은 <영월부 관아>의 "객사"였단다. 그런데 우리들에겐 매우 의미있고 애달픈 장소로 알려진 곳인데 그 이유는 <세조> 3년(1457)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어 두어달 지내다가 홍수가 나게 되자 당시 영월부 객사의 <동익헌>이었던 이곳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겨 침전으로 사용하였고, 또 사약을 받은 곳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다. 즉, <단종>이 최후를 맞이한 곳은 <청령포>가 아니라 이곳 <관풍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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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규루'] "자규루 子規樓" <옛 이름:매죽루 梅竹樓> <동강>과 <서강>이 합류하여 <남한강>을 이루는 합수부가 조망되는 이 樓에 올라서 <단종>이 슬픔을 토로하던 곳이어서 "단종애사"의 하일라이트를 이루는 곳이었단다 나는 <춘원 이광수>가 쓴 장편역사소설 『단종애사 端宗哀史』를 잊지 못한다 적통 왕위 계승의 <단종>을 지지하는 <사육신> 계열과 <수양대군>을 왕으로 옹위하고자 하는 <한명회>, <정인지> 일파의 대결이 그려진 그 소설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었다 비록 소설이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쓰기는 했지만 <단종> 편에서 쓰여진 것으로 슬픈 운명의 <단종>을 새롭게 조명 한것으로 기억된다. *"자규 子規"는 '피를 토하며 운다는 새-소쩍새, 즉 두견새'를 일컷는 한자 단어란다. 원래 이 樓는 "매죽루 梅竹樓"였는데 <단종>이 피를 토하고 죽자 "자규루 子規樓"로 바꿧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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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규시'] <자규루> 안에는 <단종>이 지은 "자규사 子規詞"가 걸려 있다. "단종 어제 자규사(端宗御製 子規詞)" 月白夜蜀魂啾 (월백야촉혼추) 含愁情依樓頭 (함수정의루두) 爾啼悲我聞苦 (이제비아문고) 無爾聲無我愁 (무이성무아수) 寄語世上苦榮人 (기어세상고영인) 愼莫登春三月子規樓 (신막등춘삼월자규루) 달 밝은 밤 두견杜鵑새 울 제 시름 못 잊어 樓 머리에 기대었노라 네 울음 슬프니 내 듣기 괴롭도다 네 소리 없었던들 내 시름 없을것을 世上에 근심 많은 분들에게 이르노니 부디 春三月 子規樓에는 오르지 마오 <단종>은 6월에 유배 가서 4개월 정도 유배생활 하다가 10월에 죽었으니 두견새 우는 춘삼월이었면 더욱 가슴 아프겠으니 봄에는 오지 말라 한듯하다.
[조망] <동강>과 <서강>이 합수하여 <남한강>이 시작되는 곳은 지금은 건물들로 보이지 않는다. <단종>은 이곳에서 또 다른 애절함을 토로하는 글을 남겼다 "단종" 어재 자규시(端宗御製子規詩) 一自寃禽出帝宮 일자원금출제궁 孤身隻影碧山中 고신척영벽산중 假眠夜夜眠無假 가면야야면무가 窮恨年年恨不窮 궁한년년한불궁 聲斷曉岺殘月白 성단효잠잔월백 血淚春谷落花紅 혈루춘곡낙화홍 天聾尙未聞哀訴 천롱상미문애소 何奈愁人耳獨聰 하나수인이독총 한마리 원한 맺힌 작은 새 궁중에서 나온 뒤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가 깊은 산속 헤맨다. 밤이 가고 또 밤이 와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해가 가고 또 해가 와도 한은 끝도 없구나. 두견새 소리 끊어진 새벽 멧부리 걸친 달빛만 희고 피눈물 뿌린듯 봄 골짜기에 떨어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애달픈 이 하소연 어이듣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수심 많은 이 사람 귀만 밝아 모두 들리는가
['관풍헌' 앞마당] "단종이 승하 한 곳" <단종>은 <세조 3년> 1457년 6월 28일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어 두어달 지내는데 홍수가 나 거처를 이곳 <관풍헌>으로 옮기고, 두어달 생활하다가 바로 이곳 <관풍헌> 앞마당에서 1457년 10월 24일 사약을 받고 승하 했단다. 그의 나이 고작 17세였다. 그의 최후에 대해선 <세조실록> <선조실록> <숙종실록>등에 각기 다르게 기술되 있으며 <세조실록>에는 운명을 알고 스스로 자살했다고 기록되 있지만, (역사의 기록은 승자 독식의 기록이니 그렇게 기록할수 밖에....) <숙종실록>에는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들고 와 이 마당에 엎드려 아무말 못하고 있을때 "그때 앞에서 늘 모시던 공생(貢生) 하나가 차마하지 못할 일을 스스로 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가, 즉시 아홉 구멍으로 피를 쏟고 죽었다."고 기록되 있다. 특히 <연려실기술>등 야사에는 정사와는 매우 다르게 전해 오고 있어 정확한 상황은 파악하기 어렵지만 그가 17세의 어린 나이에 삼촌인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은 확실하다.
['청록다방'] 11:42 <관풍헌> 정문 건너편엔 "청록다방"이 아직도 "다방"이라는 직종 명칭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데 조금전 <라디오스타 박물관>에서 언급 한바있는 <영화 라디오스타>에 등장하는 <청록다방 김양>이 근무하던 다방이다. 지금도 그 <김양>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영화 촬영지라고 광고하며 20년 넘게 영업하고 있다. 다방 입구엔 영화의 한 장면인 <청록다방 김양>과 주인공 <박중훈>이 <청록다방>에서 썸타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ㅎㅎ
['농협사거리'] 11:45 <중앙로>를 조금 더 진행하면 <농협사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장릉> 방향으로 우회전 하면....
['영월경찰서']
['영월문화예술회관'] 11:48 <영월 경찰서> <문화예술회관> <영월사회복지관>등이 이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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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읍사무소'] 11:52 <영월읍사무소> 앞 로터리를 지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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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절사'] 11:54 "창절사 彰節祠"와 "창절서원 彰節書院"이 나타난다. "창절사 彰節祠"는 <단종 복위>를 위해 목숨 바친 <사육신>과 <단종 시신>을 수습해 안장한 "영월 호장 엄흥도"의 위폐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이란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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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절서원'] 11:55 "창절서원 彰節書院"은 <흥선 대원군>이 내린 "서원 철패령"에도 살아 남은 47개의 서원 중에 한곳으로 그 위상이 높은 서원이라고 한다. **부록** <방랑시인 난고 김병연>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양주] 김삿갓 풍류길" 여기 클릭 『영월읍내 역사유적 도보여행』은 2부로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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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둘레길] 제14코스 부둣길 : 북성포구-화도진-만석부두-화수부두-수문통
『인천둘레길』 『제14코스 부둣길』 인천역-제8부두-인천상륙지-대한제분-북성포구-옛동일방직-만석동사무소-화도진공원- 만석부두-괭이부리마을-현대인프라코어-화수부두-화도진중학교-수문통-동인천역![]()
[실트랙] 현재의 <인천항>이 국제항구로 신설되기 전부터, 어선들이 빽빽이 들어차 성사를 이루었던 "인천의 옛 부두"를 찾아 보는 코스로 도시와 어촌의 풍광과 그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 간다.
['인천역' 앞] 12:33 2025년 4월 16일 수요일 맑음 지난 <13코스 월미도길>과 같이 "인천역"에서 <14코스>를 시작한다.
['월미바다역'] <13코스>와 같이 <월미바다역> 옆으로 나가면
['상상플렛트홈 앞 사거리'] <상상플렛홈 앞 사거리>를 건너, <바다열차>를 따라 <8부두>까지 <13코스>와 함께 간다.
['벗꽃'] <인천 지역>의 벗꽃이 중부지방에선 제일 늦게 피는듯 하다. 이제서야 만발하기 시작하는데, 부둣길이 한결 맑아졌다.
['인천항 8부두 정문' 앞] 12:37 <인천항 제8부두> 출입구까지 <13코스>와 함께하고
['대한제분 입구 삼거리'] 12:39 <대한제분> 앞 삼거리같은 사거리에서 <14코스>는 <대한제분> 방향으로 직진한다. <6.25 인천상륙작전 상륙지점>의 기념비는 지난 코스에서 답사 했으므로 그냥 지나친다.
['대한제분 정문'] <대한제분> 정문은 조금전 사거리가 아니라 여기로 들어 와 있다. 직진하면...
['해변데크'] 12:42 <월미도>와 육지 사이 바다가 남아 있는 갯골에 해변데크길을 설치해 놨는데 데크를 150m 정도 진행하면....
['북성포구' 입구] 12:45 여기서부터 "북성포구 北城浦口"라고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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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포구'] <북성포구>는 1883년 개항과 함께 조성된 인천의 유일한 갯벌 포구란다. 1970년대 후반 <연안부두>가 개발돼 <인천어시장>이 그곳에 들어서기 전까지 수산물 거래가 활발했던 인천의 명소였단다. 그 당시에는 어선 위에서 생선을 살 수 있는 <선상 파시>가 열렸다고 한다. 현재는 이곳이 번성했던 <북성포구>였는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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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북성포구>를 지나 사람들의 통행흔적이 거의 없는 골목을 통과하면...
['만석3차아파트' 앞] 12:52 <만석3차아파트> 앞을 지나고
['인중로'] 12:53 이어서 <인중로>를 만나는데 길을 건너 직진하여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 가면...
['나의 아저씨' 촬영지] 12:55 <나의 아저씨> 영화 촬영지였다고 알리는 표지판 뒤로 <만석어린이공원>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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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어린이공원'] 12:57 "만석어린이공원"을 관통하여 나가면...
['동일방직 기숙사'] 12:59 <옛 동일방직 기숙사>가 텅비어 유령의 건물처럼 서 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자전거 챔피언"이었던 <엄복동 선수>가 <만석동>에서 열렸던 <전국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며 세계적 선수로 나아 갔던 곳이라 한다.
['만석고가교' 앞] 1:02 <동일방직> 정문 근처엔 <만석고가교>가 있는데 <경인선 철로>를 넘는 고가교란다.
['옛 동일방직 정문'] 1:03 일제강점기 시절 1934년에 <도요방적 인천공장>으로 출발해 해방후 <동일방직>으로 가동을 이어 갔는데 여성노동자가 80%를 넘었는데, 실내 온도가 39도를 넘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열악한 환경에서 24시간 3교대로 일하며, 여공들이 고장 난 기계 취급만도 못 받으며, 월급을 생명과 바꿔야 했던 그 시절 가난한 여공들......졸면 감독이 바늘로 찔러 퇴근 때면 파란 작업복이 붉게 물들었지만 먹고 살기 위해 노동 착취를 당해야만 했던 그녀들이 그 후 힘을 합쳐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노동운동"을 시작한 곳이란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고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을수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현재 <동일방직> 공장들은 전국 각지에 분포하며, 해외에도 있단다. 섬유, 어패럴, 비철금속, 엔지니어링, 가구, 화장품등을 생산 판매하는 상장기업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열심히 일한 여성 노동자들의 노고를 딛고 일어선 기업이란걸 잊어선 안될것이다. 먼지가 풀 풀 날리는 방적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가 패병으로 죽는 노동자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한 리얼리즘의 걸작으로 꼽히는 <강경애>의 작품 <인간시대>의 현장을 들여다 보며 아파오는 가슴을 쓰다덤는다.
['동일방직' 앞길] 1:04 <동일방직> 정문 건너편 <만석성결교회>로 건너가 <동일방직>을 옆에 끼고 200여m 진행하면
['만석동 행정복지센터'] 1:09 그러면 "만석동 행정복지센터"를 만나는데, 여기서 우회전하고
['동구보건소'] 1:10 <만석동행정복지센터>옆에 붙어 있는 <인천동구보건소> 골목으로 6분여 진행하면....
['화평운교 사거리'] 1:16 <화평운교 사거리>를 만나는데, 공식 루트는 직진해 동네를 좀 돌아 내려 오게 되 있어 난 시간 절약을 위해 여기서 좌측으로 바로 <화도진 공원>으로 간다. 여기서 직진하면 바로 <동인천역>으로 간단히 갈수 있다.
['옛 인천극장'] 1:17 <화평운교> 좌측에 할인마트가 있는데, 이곳이 예전엔 <인천극장> 자리였다는 것이다. 예전엔 극장만 있으며 인생이 땅 짚고 헤엄치기라 했는데....이젠 할인마트에도 밀리는 시대가 됬군.
['화도진로'] 1:19 <옛 인천극장>에서 큰 도로 <화도진로>로 나가 좌회전하면, <화도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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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진'] 1:20~1:35 "화도진 花島鎭" 조선 후기 자주 나타나는 서구의 함선을 감시하기 위해 군대가 주둔하던 진지란다. 1990년 11월 9일 <인천광역시의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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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진 공원'] <화도진>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많은 학생들의 역사 학습장이어서 학생들이 많이 찾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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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진지' 앞마당]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안으로 들어 가면...
['동헌'과 '전시관'] <동헌>과 <전시관>이 있는데, <전시관>으로 들어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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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 수호 통상 조약'] 이곳이 "조.미 수호통상조약"을 맺은 곳이란다. 우리나라 전권대신이 <신헌>이었고, 미국 전권대신은 <슈펠트 제독>이었단다. <슈펠트 제독>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온적이 있는 인간인데.... 미국의 무장 상선 <제너럴 셔먼(SS General Sherman)호>가 1866년 7월 25일 '평안도 용강현 주영포' 앞바다에 도착한 뒤 대동강을 거슬러 평안도의 중심지인 평양부까지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며 대포를 쏘고 민간인을 살해하자, 9월 5일 당시 평안 감사 박규수 휘하의 조선군 부대가 배를 급습하여 불태우고 선원들을 살해한 사건이다. 그 사건을 빌미로 마국이 <강화도>를 침공하는 <신미양요>가 일어나고 우리나라에 압력을 넣어 통상조약을 체결하게 한것이 <조.미 통상수호조약>이죠.
[후문] <화도진> 후문으로 나가 내려 가면...
['야외전시장'] 1:36 . 야외전시장이 있고
['만석초교' 골목'] <만석초등학교> 골목길을 따라 조금 내려 가면...
['두산산업차량'] 1:40 <두산산업차량공장> 정문을 만나는데 좌회전 하고
['제물량로'] 1:42 이어서 우회전하여 <두산 공장> 담장을 따라 조금 올라 가면...
['만석교회'] 1:47 <만석교회>를 만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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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부두 사거리'] 1:55 이어서 <만석부두사거리>를 만나는데, 길을 건너 직진하고, 계속해서 우틀 좌틀하면...
['한국기초소재'] 2:00 <한국기초소재 공장> 정문을 만나는데, 좌측은 <만석부두 입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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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부둣길'] <한국기초소재> 정문에서 좌측길로 200여m 진행하면 부두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만석부두 입구>에 도착한다.
['만석부두 정문'] <만석부두> 입구는 어느 공장 정문같아서 들어 가도 되는지 염려스러웠는데, 그래도 들어 가면
['만석부두'] 2:04~2:07 "만석부두"가 바다와 함께 초라하게 나타난다.
['만석부두'] <만석부두>는 옛날 <한양>으로 가는 쌀 만석을 쌓아 둘수 있는 큰 부두여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현재 "부전식 부두"로 바닷물이 들어 오면 부두가 위로 떠오르고 물이 빠지면 내려 가 수위에 맞춘다고
['영종도' 조망] <영종도>와 <물치도>가 조망된다. <인천항 연안여객선터미널>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곳이 <영종도>등으로 가는 여객선 터미널이었단다.
['인천북항' 조망] 북동쪽으로는 <인천북항>이 펼쳐지며, 그 뒤로 <한남정맥 계양산>이 조망된다. 송전철탑 뒤로는 <청라국제신도시>가 있다.
['굉이부리마을'] 2:10 <만석부두>에서 다시 뒤돌아 나가면 <굉이부리마을>을 만나는데, 좌회전 하면...
['만석부두입구역'] <옛 경인선>에서 <만석부두>까지 연결되 있었던 철로를 그림으로 형상화 해서 볼거리를 만들어 놨다. <만석부두임구역>이라는 간이역을 모형으로 설치해 그 시절을 연상케한다.
['소설 속 괭이부리마을'] <조세희>씨가 쓴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의 무대가 <만석동>이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영희>도 조금전 만났던 <동일방직> 공장을 다녔단다 먼지가 풀풀 나는 방직공장에 실내 온도가 39도가 넘는 공장 안에서 고장난 기계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살다 폐병으로 죽어 가는 <영희>라는 꿈많은 소녀의 삶을 그린 소설이죠. 그래도 그들은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고 우리나라 민주화에 "작은 공"을 쏘아 올렸다. 또한 이 지역이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소설의 무대란다. 발전하는 도시는 재개발로 쪽방촌이 헐리면서 그 자리는 돈 많은 부자들 차지가 되고, 세상에서 발믈 붙이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 수단인 "집", 비록 판잣집이지만 그마져 뺏기고 철길 옆 빈민촌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하는 동네이다.
['원괭이마을역'] 2:18 "묘猫→고양이→괭이" 이 지역은 원래 "묘도 猫島"라는 섬이었는데, 간척사업으로 육지화 되었단다. 섬의 모양이 '고양이'를 닮았다고 "묘도"라고 했는데, 우리말로 "고양이섬→괭이마을"로 불리워졌단다. 조금 전에 탐방했던 "화도진"도 원래 "화도 花島"라는 섬으로 "묘도"와 가까이 있었단다. 그래서 "화도花島→꽃섬"으로 불리워 졌다고... 이들 섬들은 모두 간척사업으로 매립되어 공장과 주택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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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프라코어'] 2:25 <괭이부리마을 철길>을 벗어나면 <현대인프라코어>가 이어진다. <현대인프라코어>는 일제시대 쪽바리들이 전쟁용 무기 잠수함등을 생산하던 <조선기계제작소>에서 시작되었는데, 해방후 <한국기계공업>→<신진자동차공업>→<대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 <현대인프라코어>로 주인이 바뀌었다고...
['화수부두' 입구] 2:27 <현대인프라코어> 담장 끝에 좌측으로 <화수부두 입구>가 열린다. 우측에 보이는 공장은 일제시대 일본 <도시바>가 세운 <도쿄시바우라제작소>로 설립되어 전기모터등 전기제품을 만들던 회사로 태평양전쟁 때엔 군수품을 만들었단다. 해방 후 <이천전기>→<일진전기>로 상호가 바뀌며 <일진전기>가 공장을 홍성으로 이전해서 현재는 비어 있는데, 재개발을 하려해도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고...
['화수부두' 입구 삼거리] 2:30 <화수부두>도 부두라고 느껴지지 않는데 그래도 안내판과 등대가 나그네를 반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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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부두' 앞] 2:32 "화수부두"도 길에선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앞에 보이는 <화수부두 수산물 직매장> 뒤로 나가면...
['화수부두'] "화수부두 花水埠頭" <화수부두>는 1970년대까지 인천의 대표 어항이었단다. <연평도>와 <백령도> 근해에서 잡은 생선의 집화 부두였으며, 새우젓 전용선이 입항할 정도로 새우젓 시장으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화수부두' 앞 상가] 2:34 부두 앞에는 횟집등 상가가 제법 있고
['인중로'] 2:38 다시 <일진전기> 앞 <화수부두입구>로 나가서 <인중로>를 건너 앞에 보이는 건물 뒷길로 가면
['화수동길'] 2:44 <화수동길>이 이어지고
['화도진중학교'] 2:45 <화도진중학교>를 지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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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통사거리'] 2:51 "수문통사거리 水門桶"에 도착하여 우회전 한다.
['수문통로'] 이 도로는 옛날 갯골이어서 바닷물이 들락거리는 곳이어서 "수문 水門"을 건설하여 바닷물 수위를 조절해서 "수문통"으로 불리게 되었단다. 지금은 갯벌을 모두 복개해서 갯골은 찾아 볼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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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통 상점가'] 3:00 <수문통로>를 통과해 나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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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역 4번출입구'] 3:03 <14코스>의 종점인 <동인천역 4번출입구>를 만나며 답사를 마친다. <동인천역>의 본명은 <죽현역>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동인천역 1번출입구' 앞 교차로] 벌써 오래전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 인천에서 통학하던 친구를 따라 가끔 방문했던 <동인천역 1번출입구> 앞으로 나가 본다, 건너편에서 <삼화고속버스>가 <서울 종로2가>까지 운행하던 시절 얘기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수 없어 아쉽다.
[옛 사진] 옛 동인천역 앞 시계탑과 현재의 시계탑을 사진으로 비교해 보며 1960년대를 회상하며 <인천둘레길>을 마친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
파란문印
'경기도보여행 > [인천] 인천둘레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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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둘레길] 제13코스 월미도 : 인천해양박물관-한국이민사박물관-월미전망대
『인천둘레길』 『제13코스 월미도』 인천역-제8부두-인천상륙지-월미공원입구-월미문화원-월미문화거리-인천해양박물관- 등대-한국이민사박물관-돈대삼거리-월미산정상-예포대-전밍대-전통공원-인천역['13코스 월미도길 안내도']
[실트랙] 내가 실제 걸은 코스는 공식 루트 '오렌지색'을 벗어나 '빨간선'으로 <월미도>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공식 안내도에는 거리가 "5km"라고 하지만, <인천역>까지 원점 회귀하면 10km 정도 된다. 걸리는 시간도 그냥 횡하니 둘러 보고 오면 2시간 정도 걸리겠지만 박물관등 볼거리들을 둘러 보면, 볼거리와 공부 할게 너무 많아 시간은 훨씬 더 걸리겠다. 나는 3시간 40분 정도 걸렸다.
['인천역' 앞] 11:15 2025년 4월 8일 화요일 맑음 화창한 봄날에 전철을 타고 "우리나라 철도 탄생지"인 <인천역>에 도착하여 답사를 시작한다.
['월미바다역'] <인천역> 우측엔 <월미바다역>이 붙어 있는데, <월미도>를 편안하게 관광할수 있는 관광용 괘도열차란다. <인천둘레길>은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상상플렛트홈 앞 사거리'] 11:16 <월미바다역> 밑을 지나면 사거리를 만나는데, 둘레길은 <월미바다관광열차>의 고가철도를 따라 가면 되니 길찾기는 쉽다.
['8부두 출입구 앞'] 11:21 <인천역>에서 6분 정도 진행하면 <인천항 제8부두 출입구> 앞에 도착하며 <바다관광열차 궤도>는 좌측으로 꺽이는 곳이다.
['인천항 8부두 정문'] <인천항>에는 여덟개의 부두가 있다고 하는데 이곳이 마지막 부두인 <제8부두 출입구>란다. 부두 순서는 시계방향으로 지정되 있는데 좌측이 <제1번 부두>고, 우측이 <7번 부두>가 된다.
['월미도 입구 삼거리'] 11:23 <제8번 부두> 앞에는 삼거리 같은 사거리가 있는데, 대각선 방향(노란색 원)에 "인천상륙작전" 때의 실제 "상륙지점"이 있으니 보고 가는게 좋다. 그러니까 예전엔 이곳까지 바다였는데 매립지란걸 알수 있고... 우측에 보이는 공장은 <대한제분>인데, 다음 <14코스>는 <상륙지점> 우측 골목으로 이어진다.
['인천상륙지점'] 11:24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때엔 3개 지점(적색해안,청색해안,녹색해안)으로 상륙했는데, 이곳은 "적색해안"이란다...
['전승비'] <상륙지점> 바로 옆에는 1951년 2월10일에 우리나라 <해군.해병대> 단독으로 제2차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승전했다고 "전승비"를 세웠놨다.
['월미도 환영아치'] 11:28 좌측은 <인천항 7번부두>고 우측은 <대한제분>인 <월미도> 가는 길...환영 아치가 반기고
['사일로 벽화'] 11:31 이어서 어마어마한 "싸일로"가 새로운 <인천의 명물>로 등장한다. 이 싸일로들은 <대한제분><대한제당>등에서 원료로 사용하는 "곡물 저장소"란다. 이 싸일로가 유명한 것은 <기네스 북>에 올랐기 때문이라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벽화"라고 전문가 22명이 약100일 동안 그린 작품으로 페인트 86만5400리터가 사용 되었단다. 칙칙한 항구에 관광열차와 함께 산뜻한 싸일로가 신선감을 준다.
['월미공원역'] 11:36 <벽화 싸일로>를 지나면 <월미공원역>을 만나는데, <관광열차>는 여기서 직진하여 <월미도>를 돌아 좌측으로 나온단다.
['월미공원' 입구] 11:38 <월미공원역>을 지나면 바로 "월미공원 月尾公園" 정문으로 들어 가고
[''새신랑신부'] 11:40 새신랑신부가 환영 인사를 올리는데, 뒤에 보이는 문은 <전통정원>인데 나올 때 관람 한다.
['물범셔틀카 승강장'] 11:41 <전통정원> 정문 앞에는 "물범 셔틀카 탑승장"이 있는데 걷기가 힘든 분들을 위해 <월미산 정상>까지 편히 왕복 할수 있게 해주는데, 타는 시간은 고작 5분 정도며, 20분 마다 출발. <둘레길>은 우측에 보이는 城같은 <월미문화원> 부터 답사 한다.
['월미문화원'] 11:44 "월미문화원 月尾文化院"은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궁중문화, 궁중음식문화등을 보고 체험 할수 있다는데, <월미도 관광지>에 좀 쌩뚱맞다고 생각된다. 입장은 무료인데도 관심 갖는 분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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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군2함대사령부 주둔 기념비'] <월미문하원> 옆에는 "해군2함대사령부 주둔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해군2함대사령부>는 현재 <평택>으로 옮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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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함'] 11:48 퇴역함을 전시 해 놨으며...
['월미여관'] 11:57 <월미도> 안으로 10여분 들어 가면 먼저 <월미여관>이라는 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 오고
['길조심'] 12:00 이어서 "길조심" 해야 하는 곳을 만나게 되는데 안내판이 있지만 지나치기 쉬우니 관심 가져야 한다. 여기서 우측 바닷가 까지 계속 나가야 한다.
['월미문화의 거리'] 12:03 그러면 "월미문화의 거리"가 펼쳐지는데, <문화거리>라기 보다는 <월미도 식당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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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문화거리 중앙광장'] <문화거리> 가운데엔 "시계탑"이 있는 <중앙광장>이 있는데 2016년 3월28일 중국 관광객 6,000명이 한꺼번에 "치맥 파티"를 열었다는 곳이다.
['조형물'] 이어지는 "상륙작전"을 연상케 하는 조형물들을 구경하며 진행하면...
['월미짱랜드'] <월미짱랜드>라는 놀이시설를 지나고
['박물관역'] 12:11 <박물관역> 앞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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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인천해양박물관'] 12:12~12:32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이 새롭게 기다리고 있는데 무료로 관람한다. 지난 12월에 개관하였다니 몇달 지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시설이다. 우리나라 수도권 최초의 국립해양문화시설이라고 하며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해양문화를 관람 할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단다. 지하 1층, 지상 4층이라 하는데, 규모가 엄청나다.
['고대 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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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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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시대'] 해양문화에 대해서 아는게 없으니 보이는 것도 신기한 것도 없다. 하지만 시설은 정말 어마무시했는데, 뭐든 알아야 관심을 갖는 법인데 무식이 탄로 날 정도로 나에게 큰 즐거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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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염' 생산방법]
[등대] 12:32 <해양박물관>을 나가면 <등대>가 있는 곳까지 해상데크를 설치 해 놨는데 보이는 등대는 <팔미도>에 있는 등대와 같은 모형으로 설치했단다. <인천상륙작전> 때에 우리나라 "켈로부대"가 <팔미도>를 먼저 점령하여 <팔미도 등대>에 불을 켜면 상륙작전 개시를 한다는 것이었는데, 임무를 잘 수행해서 <켈로부대>의 무공담이 알려져 있단다.
[등대에서 해양박물관 조망] 등대에서 바라보는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인데 규모가 엄청나고 생김새도 아름답다. 디자인 컨셉은 "우리의 바다, 우리의 미래"라고 한다.
[등대에서 '월미산' 조망] 등대에서 잠시 후 오를 <월미산>를 조망하고
['월미공원'] 12:42 <월미산>으로 오르기 위해 <박물관역> 뒤로 가면 산으로 올라 가는 길들이 있는데, <한국이민사박물관>을 먼저 관람하고 가기 위해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월미운동장'] <월미도 다목적 운동장>이 있고..
['수생식물원'] 12:46 인공폭포가 있는 수생식물원이 이어지는데 직진하면...
['한국이민사박물관] 12:49~1:10 "한국 이민사박물관"을 만난다. 선조들의 해외 이민 역사와 그 과정에서의 개척자적인 삶을 기리고 그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설립한 역사박물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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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사'] 구한말....<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러일전쟁(1904)>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치적 사건들이 사회적 혼란과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해 혹독한 굶주림이 계속되었다는 것은 모두 안다. 이런 와중에 일본은 한국에서 쌀과 곡물들을 대량으로 반출해 감으로써 양곡사정은 더욱 악화되었고 빈곤이라는 경제적 요인과 불안정한 정세를 벗어나려던 정치적, 사회적 요인으로 <하와이>로 이민을 결행하게 되었단다. 당시 <하와이>에서는 설탕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인 노동자를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란다. 1902년 12월 22일 월요일, 하와이 첫 이민단 121명이 인천 제물포에서 <나가사끼>로 출항하고 최종 102명만이 갤릭호(S.S Gaelic)를 타고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면서 이민의 시대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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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황해나 할머니'] <하와이 이민사>에 큰 역활을 했다는 "황해나 할머니"에 대한 자료와 음성이 흘러 나오고
['사탕수수 농장'] 저임금의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이었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한 한국인들은...또 머리까지 좋은 한국인들은 농장의 일꾼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와이>의 주요 시민으로 거듭 나고 부유해 지며,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여 <하와이 경제>의 튼튼한 지주가 되었답니다. 역시 한국인 ~~!! 이들은 돈을 모아 조국 독립자금으로 보내며 독립운동에도 큰 힘을 보탯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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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건립'] <인하대학교>가 <하와이 이민자>들의 성금으로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인천>의 "인"과 <하와이>의 "하"를 합쳐 만든 이름이 "인하대학교"라는 사실.... <인하대>를 다닌 내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로 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으니....
['104계단'] 1:12 우리 민족의 근면성과 우수성을 깊이 있게 느낄수 있었던 <한국이민사박물관>을 나서서 뒤로 나가면 <월미산>으로 올라 가는 계단이 이어진다. <104계단>이라 하는데 5분 정도 쉬엄쉬엄 올라 가면...
['월미산 둘레길'] 1:17 <월미산 둘레길>를 만나는데, 좌측, 즉 북쪽으로 가는게 좋다 150m 정도 진행하면....
['돈대 삼거리'] 1:20 "돈대 삼거리"를 만나는데, 정문에서 올라 오는 길과 합류하는 곳이다.
['월미산 돈대'] "월미산 돈대"는 <조선 숙종> 때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고...
['물범셔틀카'] <돈대 삼거리>에서 완만한 경사의 오름길을 8분여 오르는데 <물범셔틀카>가 올라 간다. "물범"을 닮은 셔틀전기차라고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평일인데도 만원이다. 타는 시간이 고작 5분정도이고 가파르지도 않은데 대부분 타고 올라 간다.
['월미산 중앙광장'] 1:28 <물범셔틀카>의 종점인 <월미산 정상부 중앙광장>에 도착하는데 세방향으로 길이 나있다. 먼저 좌측 <월미산 정상>을 다녀와, 앞에 보이는 <예포대>를 갔다오고, 그리고 우측 <전망대>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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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산' 정상 가는 길] <중앙광장>에서 <월미산 정상>까지는 160m 정도로 4분 정도 걸리는 완만한 오름길이다.
['월미산 정상'] 1:32~1:42 "월미산 月尾山 108.1m" <인천상륙작전> 때에 유엔군의 어마무시한 함포사격으로 산의 높이가 1~2m 낮아졌다는 얘기가 있다. 전략 요충지여서 북한군이 필사적으로 방어 하려 했지만 탈환되고 <서울>로 진격하게 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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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동쪽 조망] <월미산 정상>에선 북쪽을 조망할수 있는데 <계양산>과 <청라신도시>가 조망되고
[북쪽 조망] 해무가 껴 시야가 흐리지만 북쪽으로 <영종도>와 <영종대교>가 가까이 보인다. 뒤로 <강화도 마니산>도 보인다.
[내림길] 정상에서 <중앙광장>으로 내려 가서
['예포대'] 1:48 "예포대"를 다녀 간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에 나와 있다.
[전망대] "월미도 전망대" 이 전망대는 원래 "인천항 관제탑"이었는데 관광시설로 탈바꿈했다고.... 엘리베이트가 있으며 무료이다. 올라 가서 조망을 한면...
['전망대'] 1:52~2:02 이 전망대는 오감을 만족 시키는 전망대라고 할수 있는 가슴이 뻥 뚤리는 전망대였다.
[북쪽 조망] 먼저 북쪽부터 조망하면 지나온 <월미산 정상>과 <예포대>가 보이고... <대한제분 벽화 싸일로>도 보인다
[북서쪽 조망] 오늘 해무가 껴 아쉽지만 그런대로 조망 보일건 보인다. 북서쪽으로는 지나온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이 보이고, 그 뒤로 <영종도>와 <무의도>도 조망된다.
[남쪽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오늘 이 사진 촬영을 위해서 왔다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사진이니, 클릭하여 큰 사진으로 감상하시라 <인천항 갑문>과 <소월미도>, 그 뒤로 <연안여객선터미널>까지 가깝게 보인다. <네이버지도>에는 검게 가린 <인천항 갑문>을 처음 보며, 우측 아래엔 <인천해사고등학교>가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최고 10m에 달해 항만으로선 결정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던 <인천항(제물포항)>에 우리 백성들의 강제노역으로 만들어진 <인천항 갑문>....<백범 김구선생>이 감옥생활을 할때 선생도 동원되어 강제 노역을 했던 <인천항>이란걸 생각하면....
[남동쪽 조망] 남동쪽으로 <인천항 제5부두>가 보이고 그 뒤로 <송도국제신도시>도 보인다.
[동쪽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가운데 튀어 나온 부두가 <인천항 제2부두>이고, <자유공원> 앞쪽 부두가 <인천항 제1부두>란다. <맥아더장군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이 주변 마천루들로 인해 초라해 보인다.
[북동쪽 조망] 북동쪽으로는 <제8부두>와 그 뒤로 <계양산>이 보인다.
['월미산 둘레길'] 2:13
['탄약고' 앞] 2:22 <전망대>에서 내려 가 남쪽으로 난 계단으로 다시 내려 가면 <월미산 둘레길>을 다시 만난다. 둘레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처음으로 이정표가 있는 계단 내림길을 만나는데, <전통정원>으로 바로 가는 곳인데, 앞에 보이는 <탄약고>를 다녀 온다.
['탄약고''] <월미도>는 오랜 기간 <미군부대>가 주둔해 있었기에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이었단다. 당시 <탄약고> 였던 곳을 <갤러리>로 개조해 사진전을 열고 있다.
[계단] 2:25 계단으로 내려 가면...
['양진당'] "월미전통정원"이 이어 지는데
[정자] 지난 50여년간 군부대였던 곳에 우리나라 전통정원을 재현해 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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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전통정원'] 우리나라 여러곳에 있는 유명한 조선시대 정원을 재현해 놔서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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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지'] 우리가 소위 <비원 秘園>이라고 하는 <창덕궁>에 있는 "애련지 愛蓮池"를 이곳에 재현 해 놨는데 <숙종>이 <장희빈>이랑 속닥쏙딱하던 그 유명한 곳이죠? ㅎ 돈 들여서 여기다 재현해야하나 <창덕궁>에 가면 오리지날을 볼수 있는데...
['전통정원' 입구] 2:34 <전통정원>을 나서서 다시 <인천역>으로 원점 회귀한다.
['월미바다역'] 2:53 <월미바다역>으로 돌아 가서
['인천역'] 2:56 <인천역>에서 답사를 마치고 짜장면 먹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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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 3:23 <인천역> 건너편 <차이나타운 패루>를 통과해 조금 올라 가면 지난번 <12코스>에서 들렸던 <공화춘>과 가운데 <청관>, 좌측 <연경>이라는 중국집이 있다. 지난번에 <공화춘>에서 <공화춘짜장면>을 먹었으니, 이번엔 가운데 <청관 간짜장>을 먹는다. 다음번엔 <연경>을 갈 예정.... 지난 <12코스 답사기>에서도 언급 했지만 동네 중국집이랑 특별히 다른 건 찾을수 없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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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둘레길] 12코스 인천 개항장 역사여행
『인천둘레길』 『제12코스 성창포길』 동인천역-중앙시장-배다리-애관극장-답동성당-신포국제시장-백범 김구 역사거리- 인천홍예문-맥아더장군동상-자유공원-송월동동화마을-차이나타운-삼국지벽화거리- 청일조계지-일본은행거리-중구청-제물포구락부-각국조계지-짜장면박물관-인천역['12코스 성창포길 안내도']
[실트랙] 우리나라 개항기 근대문화를 만날수 있는 "인천의 원도심"을 진행한다. 거리는 5km로 비교적 짧지만 볼거리, 공부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시간은 많이 걸리고 특히 우리나라 유일의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고 갈수는 없으니 여유를 갖고 가야한다
['동인천역 4번출입구' 앞] 2:07 2025년 3월 26일 수요일 맑음 <11코스>에 이어 계속 <12코스>를 진행하는데, 정면에 보이는 "중앙시장 전통혼수거리"로 들어 간다.
['중앙시장 전통혼수거리'] 인천을 대표하는 시장이라지만 불경기 탓인지 뭔지 썰렁하다.
['중앙시장 전통혼수거리'] <중앙시장>은 인천 최초의 야시장인 <자유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가 다시 <중앙시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단다. 그 보다는 오랫동안 미군부대에서 몰래 빠져나온 군용 물건이나 원조 물품, 암달러 등이 많이 거래됐기 때문에 인천 사람들 사이에선 <양키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통했단다 달러, 미제 담배, 양주등이 암거래되며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혼수품 시장으로 변모 됬는데도 거리는 한산하다.
['배다리 사거리'] 2:12 <중앙시장 혼수품 거리>를 벗어나면 <11코스>에서 지났던 <배다리사거리>를 다시 만나는데 이 일대는 서해 바닷물이 밀물 때에 밀려 들어 오는 갯골이 있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모두 복개되어 그런 흔적은 어디애서도 찾아 볼수 없고, <분당수인선>이 지나고 있다.
[''싸리재고개' 입구'] 2:14 <배다리사거리>에서 <신포동>으로 넘어 가는 고개는 "싸리재"라고 한단다. 옛날 이 고개엔 <싸리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답동성당' 오름길] 출처: 인천시정 <싸리재고개> 부근에 인천 최초의 성당인 <답동성당>이 있는데 옛 사진을 통해 당시 거리 모습을 음미해 보며 오르면...
['싸리재고개'] 2:20 "싸리재고개"에 도착하는데, <경동감리교회>가 있고 그 뒤로 <답동성당>이 보인다.
['애관극장' 앞 삼거리] 2:22 이어서 내림길이 시작되며 첫번째 삼거리를 만나는데, 앞에 <애관극장>이 보이는데 <답동성당>은 여기서 좌측으로 올라 가는데, 먼저 <애관극장>을 잠시 들리면...
['애관극장'] "애관극장 愛觀劇場" 대한민국에서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역사 깊은 극장이란다. 1895년 조선인 부호 <정치국>이라는 분이 <협률사>라는 공연장을 설립해 큰 인기를 얻었다는데 <협률사>는 1925년 "보는 것을 사랑한다"는 뜻의 "애관 愛觀"으로 이름을 바꿨단다 대부분의 영화관이 망했지만, 이 극장은 아직도 살아 남아 이젠 <복합상영관>으로 재탄생 해 최신 영화와 지역의 다양한 문화행사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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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동성당'] 2:25 "답동성당 沓洞聖堂" 구한말 1897년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코스트 신부>의 설계로 처음 건립되었고 1937년에 <시잘레 신부>의 설계로 증축된 991.74m²(300평) 규모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벽돌조 건물이며 한국의 성당 중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란다.
['답동성당'] "답동성당" <사적 제287호> 일반적 종교적 얘기는 모두 아는 얘기니 접어 두고 짤스런 언급을 하면... 건물도 아름답고 역사적 건축미도 뛰어나 신도들의 결혼식장으로 무지무지 인기있다죠? 여기서 결혼식 올리려면 예약도 예약이지만, 조건이 무척 까다롭다고 이 곳엔 인천지역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기념하는 기념비 등이 세워져 있는데.... <김병상 신부>는 한국 천주교 617번째 신부이자 인천지역 민주화 운동과 가톨릭계 노동 운동의 대부로 전국적인 반(反)유신·반독재 투쟁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답동성당 주임을 맡아 인혁당사건등 민주화운동에 매진 하며 한국민주화에 크게 공헌한 한 성당으로 유명하다고... 2020년 4월 25일 선종했으며 민주화 운동에 대한 생전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사망 이후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됐다고 한다
['답동성당'에서 조망] 2:28 <답동성당>에서 <월미도>가 조망된다. 성당의 위치가 어디인지, 얼마나 좋은 곳에 자리 잡았는지 알수 있다. 아랫쪽 <신포국제시장>으로 내려 가면...
[''신포국제시장'] 2:32 "신포국제시장' <일제 시대>까지만 해도 우리 농민들은 무, 배추, 파, 마늘 같은 재래종 채소만을 주로 생산했기 때문에 당시 <청나라 상인>들이 가져와 새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양파나 토마토, 피망, 연뿌리 같은 채소를 공급하면서 <청나라 상인>들이 꽤나 으시대며 상권을 잡아 나갔다고 하는 시장이란다.
['닭강정집] <신포시장>의 대표 상품은 바로 <닭강정>이란건 나도 안다. 그래서인지 <닭강정집> 앞에만 줄을 서서 구매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1940년대 후반까지도 닭과 계란을 팔던 닭전이 번성했다고 하니 그 연유가 아닌가 싶다.
[시장 중앙부] 닭강정집 외에는 썰렁....
['중국식만두집'] 2:35 그런데 시장 끝에 있는 이 집엔 또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바로 <중국식 만두집>이다. 난 오늘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을 먹을 결심을 하고 왔기에 다른건 그냥 패스한다. 줄서기도 그렇고...ㅎ
['신포패션문화 거리'] <신포동>은 패션문화의 거리가 있는 인천의 중심지란다.
['백범 김구 역사거리'] 2:38 "백범 김구"선생의 동상이 <신포동 패션거리>에 세워져 있다. <백범선생>과 <신포동>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잠시 후 알게 된다.
['백범 김구 역사거리'] 길찾기가 좀 어려운 곳이었는데, <김구선생 동상> 왼쪽 뒤 고갯길로 올라 간다. 고개 중간쯤 <신포스카이타워아파트> 앞으로 가면...
['노역의 현장'] 2:42 "노역의 현장"이라는 조형물이 설치되 곳을 만나는데... 이 근처에 <인천 감리서 (형무소)>가 있었었기에 조형물을 설치한듯... <백범 김구선생>은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쪽바리들에 의해 시해 당하자 그 원수를 갚고자 황해도 안악 해안지역인 <치하포>에서 일본 순사 <스치다 조스케>를 죽여버렸죠. 그리하여 <인천 감리서>로 잡혀와 21살에 사형선고를 받고 23살에 탈옥하였지만 다시 잡혀 17년 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39실에 이곳으로 다시 이감되었단다.
['인천축항공사'] <김구선생>이 수감생활을 할때 큰 선박이 정박 할수 없었던 <인천항>을 갑문식 항구로 축항공사를 했는데, 그때 축항공사에 강제 동원되어 강제노역을 당했단다. 축항공사는 7년이 걸려 1918년에 완공되었단다.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동원된 강제 노역자들을 일본 순사들이 빙 둘러 감시하며 독려하고 있다. 우리의 노동력을 강제로 탈취하여 건설한 <인천항>. 누가 만든 건가? 요즘 특히나 극우 친일 매국노들이 일본이 만들어 주었다고 주장하는 개소리를 하고 다니는데 우리나라의 자원, 경제를 빨아 먹기 위해 설치한 항만이나 철도 아닌가 도둑놈이 도둑질을 위해 담을 넘기 위해 사다리를 설치하면 집주인이 사다리 설치를 고마워 해야 하나. 사다리 놔 주었다고.... <백범 김구선생>은 이곳 <인천축항공사>에 강제 동원되어 받은 고통이 엄청 났다고 회고했다. "아침저녁 쇠사슬로 허리를 마주 매고 축항 공사장에 나갔다.(중략) 불과 반일에 어깨가 붓고, 등창이 나고 발이 부어서 운신을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면할 도리가 없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사다리로 올라 갈때 여러번 떨어져 죽을 결심을 했다" -백범일지 중에서-
['그리운 어머니'] 2:45 <백범선생>이 감옥 생활을 할때 아버지 <김순영선생>과 어머니 <곽낙원씨>는 이곳으로 이주하여 고생 고생하며 아들 옥바라지를 했는데, <백범>은 기어코 탈옥하여 중구 상해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며 <상행임시정부>를 만들어 국권회복에 매진했죠. 어머니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래서인지 <인천시>에서도 그를 추모하는 동상을 <인천항>이 보이는 고갯마루에 설립했나보다.
['가족사진'] 아버지 <김순영선생>은 <백범>이 탈옥하여 사라지자 대신 잡혀 들어가 감옥생활을 하고 얼마후 사망했고 어머니 <곽낙원씨>는 가족과 함께 중국 상해로 가 재회를 하며 애틋한 기념 사진을 남겼단다.
['자유공원' 조망] <그리운 어머니>라는 <백범 김구선생 동상>이 있는 고갯마루에 올라 서면 좌측으로 "자유공원"이 있는 "응봉산"이 보이며, <맥아더장군 동상>도 보인다.
['인천 홍예문' 입구] 2:48 이어서 <인천 홍예문> 입구에 도착하는데 자동차도 넘나드는 고갯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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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홍예문'] <홍예 虹霓>라는 말은 원래 중국사람들이 "환상종"으로 여기는 전설 속의 "龍"을 의미하는데 암놈을 "홍虹"이라하고 숫놈을 "예霓"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무지개"모양을 하고 있어 우리들에겐 "무지개"를 의미하는데, 건축학적으로는 "아치형 문"을 의미한다. 쪽바리들은 <인천역>과 <인천항>에서 <동인천역> 방향으로 빨리 넘나들기 위해 <응봉산>의 이곳을 뚫었단다. '문'인지 '터널'인지 아리송한데 차음엔 "혈문 穴門"이라 하고 후에 "홍예문"이라 했다니 터널은 아니란다.
['홍예문'] 위로 올라 가며 내려다 보니 제법 깊이가 있다. 이 산줄기가 모두 단단한 화강암이어서 뚫는데 어려움이 많아, 다이나마이트로 발파했다는데 우리나라 백성과 중국노동자들의 노동력으로 공사하며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고...
['홍예문' 위] 2:53 <홍예문> 위에는 <자유공원 진출입로>가 연결되고 있는데 조망을 하면...
['신포동' 조망] 먼저 지나온 서쪽 <신포동>을 조망하고...
['동인천역' 방향 조망] 동쪽으로는 <동인천역> 방향이 조망된다.
['자유공원' 입구] 2:57 <자유공원 입구>에는 "인천 학도의용대 6.25 참전기념비"가 있고
['맥아더장군' 동상] 2:59 이어서 "맥아더 장군 동상"이 서 있다. 정말 오랜만에 왔다.
['시계탑'] <자유공원>의 상징인 <시계탑>과 <인천둘레길 스탬프함>이 있고
['자유공원 광장'] 3:01 <자유공원 광장>이 펼쳐지며 건너편엔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있다. 1888년 국내 최초로 조성된 서구식 공원으로, <자유공원>은 처음엔 <각국 공원>으로, 그리고 해방 전 일제시대엔 <서공원>으로 그 후 <만국공원>으로 부르던 것을 인천시가 1957년에 <자유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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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수교100주년 기념탑'] 3:04~3:15 아시아 국가 중에는 <태국>이 제일 먼저 개항되고, 이어서 <중국>이 개항되었다, 그리곤 <일본>이 <미국>에 의해 개항되었는데, <미국>이 <일본>을 개항하여 즉시 잡아 먹지 못한 이유는 공교롭게도 당시 미국엔 <남북전쟁>이 터졌기 때문에 대외적 활동을 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미국의 침탈은 계속되고, 일본은 먼저 개항해 미국의 행태를 배워 우리나라를 침략한것이다. 그런 연유로 일본은 미국이라면 껌뻑 껌벅 죽고, 우리나라를 하찮은 취급 하는 것이다.
['인천항' 조망] 약간 줌인하여 <인천항>을 조망하는데 매우 가깝다. 여기서 옛 사진을 검토해 보겠다.
[인천항에서 조망하는 "응봉산 자유공원"] 개항 초기 <인천항>에서 바라보는 현재의 <자유공원>이 있는 <응봉산>이다. 그런데 봉우리마다 서양식 집들이 보이는데 하나씩 알아 보겠다
['세창양행 사택'] 현재의 <맥아더장군 동상>이 있는 자리엔 "독일 세창양행 사택"이 있었단다. <세창양행>은 <독일 마이어社>가 조선에 설치한 <인천지사>로 우리나라에 최초로 설치된 무역상사란다. 이 회사가 우리나라에 판매한 제품은 염료, 화약, 강철, 인쇄기등을 팔았는데 특히 바늘, 학질(말라리아) 치료제 "금계랍"이 폭발적 인기가 있었단다. 그래서 때돈을 벌어 이런 사택도 짓고 위세를 날렸지만 <인천상륙작전> 때에 폭격으로 불타 없어 지고 지금은 <맥아더장군 동상>이 서 있다.
['존스턴 별장'] 위의 <인천항>에서 바라본 옛사진의 가운데 봉우리에 있는 건물은 1905년 완공된 것으로 영국인 사업가 "존스턴의 별장"이란다. 벌써부터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에서 큰 돈을 벌어 들이며 호화 별장을 짓고 호사스런 생활을 했단다. 특히 이 별장 건물은 <인천항>을 드나드는 선박들의 등대 같은 역활을 하며 무척 인기 있었다는데 <인천상륙작전> 때에 함포사격으로 파괴되고, 그 자리엔 현재 "한비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서있다.
['인천 측후소'] 위의 옛 사진 좌측 봉우리에 보이는 건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기상관측소인 인천 측후소""란다. 해방후 <국립중앙관상대>로 승격되어 서울로 이전하고, 현재는 <인천 기상대>로 활용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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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고' 정문 앞] 3:17 <한미100주년기념탑>에서 우측으로 조금 내려 가면 사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엔 <제물포고등학교 정문>이 있고, 그 옆 골목엔 <인천기상대 입구>가 있으며 좌측으로 "송월동벽화마을"이 시작되는데 둘레길은 <송월동>으로 이어진다.
['제물포고'] <제물포고등학교>는 일제시대 <인천부립 인천중학교>로 설립되어 일본인 자제들만 다니던 학교란다. 지금은 우리나라 일반 고등학교로 "무감독 시험"을 치르는 양심학교를 지향하는 학교라고 자랑한다.
['인천기상대'] 우리나라 기상관측소의 시조인 <인천기상대>는 지역기상대로 남아 있다. 국립중앙기상대의 친정인 샘이다.
['송월동 동화마을'] 3:18 "송월동 동화마을"로 들어 가면....
['송월동 동화마을 후문'] <응봉산>에서 <인천역>으로 연결되는 <송월동 松月洞> 중앙로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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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월동 동화마을'] "송월동 동화마을" 1883년 개항 이래로 송월동은 외국인들이 거주하던 부촌이었으나 마을이 노후화되며 젊은 사람들은 떠나 빈집이 늘고 고령층만 남게 되었단다. 그래서 2013년 4월에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고전동화를 테마로 하여 낡은 담에는 벽화를 그리고, 곳곳에 조형물을 세워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며 활기를 띄게 되었단다.
['차이나타운'] 3:25 <동화마을 정문>에서 좌회전 하면 우리나라에 하나 뿐인 "차이나타운"이 나타나며 작은 중국 속으로 들어 가게 된다. "청나라 조계지 組界地"로 들어 가는 것이다. 중국에는 이런 문을 마을 입구에 설치하는데 "패루牌樓 "라고 한다. 잠시 진행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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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선당'] 3:27 "의선당 義善堂"을 만난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중국집' 거리] 3:30~3:58 <차이나타운>의 짜장면집은 수없이 많지만 대부분의 내방객들이 이용하는 짜장면집은 이 집들이다. 어느 집을 선택 할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인데 미리 메뉴를 검색해 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 나는 <공화춘>을 이용했는데, 메뉴 중에 <공화춘 짜장면>이 12,000원이라 하고 있고 그리고 우리나라 짜장면의 원조가 <공화춘>이라는 것을 얼핏 들은 기억이 있어 좀 특별 할려나 하고 <공화춘>으로 들어가 <공화춘 짜장면>을 먹었다. 1. 이곳 <공화춘>이라는 중국집은 오리지날 <공화춘>과는 관련없는 이름만 같은 중국집이란걸 알았고 2. <공화춘 짜장면>이라는 메뉴는 이 집이 만든 것으로 일반 중국집의 <삼선짜장면>과 비슷한데 값만 비싸다고 난 개인적으로 느꼈다. 앞으로 방문할 분 들에게 참고가 되길 바란다. 다음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연경>이나 <청관>도 들려 보련다.
['황제의 계단'] <차이나타운>에서 <자유공원>으로 올라 가는 계단을 <황제의 계단>이라고 한단다. 역사적 의미를 가진 계단은 아니고 그냥 관광용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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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거리'] 3:59 <황제의 계단>에서 좌측으로 직진해 가면 첫번째 사거리를 만나는데 <중국성>이라는 중국집이 있다. 앞 골목 끝에 화살표 표기한 곳이 "짜장면 박물관-공화춘"인데 개항장을 돌고 마지막으로 방문예정. 먼저 이 사거리 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삼국지 벽화거리'] "삼국지 벽화거리"가 이어 지는데, 벽화거리의 끝이어서 역으로 관람하게 되는것인데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를 80개의 벽화로 소개하는 거리이다. 벽화도 벽화지만 더 유의해서 볼것은 담장 안의 건물인데, 현재 "인천 중산화교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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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청나라 영사관''] 4:01 벽화 담장에 있는 문 안으로 들어 가면 "인천 중상화교학교"로 사용되고 있는 "옛 청나라 영사관"건물이 아직도 그대로 보존되 있다.
[''삼국지 포토죤'] <삼국지벽화거리>엔 포토존이 설치되 있는데 "관우 상"이 눈길을 끈다. <삼국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유비'? 아닙니다. <관우>입니다. <관우>는 중국사람들에겐 <삼국지4인방> 중에 유일하게 神으로 추앙된 "무신 武神"이죠
['도원결의' 벽화] <삼국지 벽화거리>의 벽화 시작점에 도착하면 <삼국지>의 첫 장면인 <도원결의> 벽화가 있는데 이 벽화 맞은 편으로 가면....
['공자 상'] 4:04 "공자 상"이 <청일 조계지 靑日組界地>를 바라보며 서 있다. <공자>는 중국인들에게 神으로 추앙 받는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제상>이었죠 중국인들은 <관우>를 "武神", <공자>를 "文神"으로 받들고 있지요. 우리나라도 <공자><주자>등의 사상을 기반으로 왕조가 유지 되었는데, 현재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고 <유교사상>을 남녀차별과 봉건왕조의 표본이라고 배척하죠.
['청일 조계지'] <공자 상> 앞으로 "청일조계지 靑日組界地" 경계선이 펼쳐 진다.
['청일 조계지 계단'] 4:06 "청일조계지 靑日組界地" 내려 와서 뒤돌아 본 "청일조계지 계단과 석등"이다. 좌측이 <청나라 주거지>이고 우측이 <일본 주거지>라고 그 경계를 명확히 하고 있다. <조계지 組界地>는 치외법권이 인정되는 외국인들의 거주지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들은 거주지 내에 자국 영사관, 경찰서등 자치 행정관청을 운영하며 <조선>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대불호텔' 조망]
[옛 '대불호텔' 사진] <조계지 계단>에서 바라보는 <대불호텔>인데 옛 모습과 비슷하다.
['대불호텔'] 4:08 "대불호텔 大佛호텔-다이부쓰호테루 大仏ホテル"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서 일보인 해운업자 <호리 히사타로(堀久太郞)>가 이를 운영했단다. <인천항>이 개항되자 세계 각국의 상인들이 몰려 들어고 <한양>까지 가려면 하룻밤 묵어 가야만 해서 숙박업이 전성기를 이루었다는데, 당시 70여개의 여관이 성업했다가 <경인선> 기차가 개통되면서 인천에서 숙박 할 필요가 없어지자 이곳의 숙박업은 쇠락하게 되었단다. 이 호텔엔 너무도 유명한 <감리교> 선교사인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도 하룻밤 묵고 후기를 남겼다고 알리고 있는데... "1885년 4월 5일 다이부츠(대불호텔의 일본식 발음) 호텔로 향했다. 놀랍게도 호텔에서는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손님을 편하게 모시고 있었다." 또한 또 무지 유명한 <장로교> 선교사였던 <연세대.세브란스의대>의 설립자 "언더우드"도 <인천항>을 통해 입국하여 이곳 <대불호텔>에서 묵었고 친필 후기를 남겼단다. "우리는 ‘소위’ 고급이라는 다이부츠(大佛)나 해리스(Harris)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다이부츠의 침대는 평평한 침상에 모포 한 장을 펴 놓은 것에 불과했으며, 천정의 누수를 받기 위한 물동이가 매달려 있었다" 당시 <언더우드>가 묵었을 때 <대불호텔>의 시설은 엉망이었나 봅니다. 천장에 비도 새고... <대불호텔> 초창기 목조건물이었을 때에 투숙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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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과거] 당시 대표적 호텔로는 <대불호텔>과 <스튜어드호텔> <코리아호텔(헝가리인 운영)이 있다고 <프랑스> 신문인 <르몽드 일루스터지>가 보도 하기도 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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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1은행'] 4:09 "일본 조계지"로 들어 가면 <대불호텔> 옆에 먼저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이 나타나는데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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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18은행'] 4:10 이어서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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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58은행'] 그 옆에는 "일본 제58은행 인천지점"이 우리나라 돈을 빨아 먹기 위해 폼을 잡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모두 안내문을 참고 하면 된다. <군산>의 역사현장과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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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중구청'] 4:15 은행 거리 가운데 중앙로로 조금 올라 가면 현재 "인천 중구청"으로 사용되고 있는 "옛 일본영사관" 건물을 만난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에 있다.
['인천 남부교육지청'] 4:19 <인천중구청> 옆 골목으로 잠시 올라 가면 "인천남부교육지청"을 만나고
['제물포구락부'] 4:21~4:26 이어서 "제물포구락부"를 만난다. 현재 1층은 전시실 등으로 이용되고 있어 진면목을 보기 위해선 2층으로 올라 가야하는데
['제물포구락포' 입구] <제물포구락부 2층>은 좌측 <자유공원 계단>으로 올라 가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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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구락부'] "제물포구락부"의 정문에서 안내문을 읽어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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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락부 내부'] 내부로 들어 가면 예상보다 훨씬 고급스런 사교장이 여전히 품위를 지키고 있었다. 세계 열강들이 이곳에 모여 서로 정보를 주고 받으며 <조선 약탈>을 음모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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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과거'] <제물포구락부>에서 <인천항>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각국조계표지석'] 4:27 <제물포구락부> 옆에는 "각국 조계지석 各國組界地石"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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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조계표지석'] "각국 조계석" <청일조계지>와 <각국조계지>는 구별해야 합니다. <각국조계지> 일본, 청나라를 제외한 미국 영국 독일등 서양국가들의 거주지이다. 비석의 앞면은 "각국지계 各國地界"라고 표기 되 있고, 뒷면엔 "조선지계 朝鮮地界"라고 표기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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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민애 집'] 4:29 "인천시민愛집" 조선에서 때돈을 번 쪽바리들이 호화 저택을 짓고 즐겼던 집들이 즐겁게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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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조계지 경계'] 4:33 <일본조계지>와 분리되는 <각국조계지 경계를 따라 내려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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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제면소'] 4:38 <한국사법교육원> 건물을 만나는데 옆에 <광신제면소>가 있다. <광신제면소>라는 음식점은 우리나라에서 "쫄면"을 최초로 개발 판매한 업소로 유명하단다. "쫄면"은 "냉면"을 뽑다가 실패한 "면"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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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쓰이 물산 인천지점'] 4:41 "일본 미쓰이물산 인천지점"이 현재는 <한국근대문학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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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트플렛폼'] 4:43 이 거리는 <인천항>의 부대 시설이 밀집되 있었는데 비교적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리모델링하여 젊은이들의 창작활동 공간으로 제공하며 영업시설로도 이용하고 있단다.
['청일 조계지'] 4:46 <청일 조계지>를 다시 만나는데, <조계지 경계를 두고 일본과 중국이 서로 세력 다툼을 하는듯
['제물포개항장' 입구] 4:47 "제물포 개항장"입구 안내소를 보고
['청일 조계지'] "청일 조계지"에 다시 섯다. 저 끝에 <공자 상>이 보이고 그 뒤로 <응봉산 자유공원>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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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우선주식회사'] "일본우선주식회사 日本郵船株式會社" 현재 일본의 "미쓰비씨 그룹"이 대 재벌로 크는 첫번째 회사가 바로 이 회사란다. 처음엔 우편물 운송하는 선박회사로 출발하여 <조선>의 수출입 화물을 운송하는 선박회사로 커서 현재 세계적인 "NYK"라는 선박회사가 되었단다. "일본우선 Nippon Yusen Kaisha"의 준말이다. 오늘의 "미쓰비씨"는 이렇게 개항기 우리나라로 부터 돈을 벌어 들여 때 부자가 되었다.
['차이나타운'] 4:52 다시 <차이나타운>으로 들어 가면...
['짜장면박물관' 입구'] 4:55 <공화춘 짜장면> 먹고 <삼국지 벽화거리>로 갔던 <중국성>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 와서 좌회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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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춘'] 4:55~5:00 현재 "짜장면 박물관"으로 문을 열고 있는 "옛 공화춘 共和春"에 도착한다. 우리나라에서 짜장면을 처음으로 판매한 곳이란다. 그러니까 조금전 짜장면으로 점심을 먹은 <공화춘 중국집>은 오리지날 <공화춘>이 아닌 것이다. <공화춘 共和春>이라는 중국집 이름은 중국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던 당시 우리나라의 <서울의 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 졌지요. <손문>의 <문화혁명>이 실패로 끝났지만 중국인들도 왕조국가에서 "중국 공화국의 봄"을 기대해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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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 내부에는 추억의 중국집 풍경이 재현되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입장료는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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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 회거리'] <짜장면박물관-공화춘>을 나서면 "밴댕이 회거리"가 이어지고
['올림포스호텔' 조망] 5:03 <밴댕이 회거리> 입구에서 바라보는 "옛 올림포스 호텔"이다. 개항기 "영국영사관"이 있었던 자리란다. 현재 <올림포스호텔>도 문을 닫고 유령의 집 처럼 서 있다. 우측 현재 <인천역 코마루 오피스텔>이 있는 곳엔 "옛 러시아 영사관"이 있던 곳이란다.
['패루'] .<인천역> 맞은편에 "차이나타운 정문"인 "패루 牌樓"가 상당한 규모로 세워져 있는데 <패루>는 중국에서 우리나라의 <장승>이나 성황당> 처럼 마을 입구에 설치하는 대문이란다. 이곳 <차이나타운>에선 북쪽, 남쪽, 그리고 이곳 서쪽에서 세개의 <패루>를 만날수 있었다.
['인천역'] 5:05 <인천역>에서 답사를 마치고 귀가 한다 짜장면도 먹고 이곳 저곳 구경하며 3시간이 걸렸다.
['인천역 개통식'] 1899년 <인천역 개통식> 사진을 보며 옛 <인천역>과 <인천항>, 그리고 <월미도>를 느껴 본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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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둘레길] 11코스 연탄길: 도원역-창영초-배다리-송현배수지-동인천역
『인천둘레길』 『제11코스 연탄길』 도원역-철도최초기공지-선교사합숙소-금창동사무소-창영초-영화초-꿀꿀이죽골목- 배다리헌책방거리-인천성냥박물관-배다리-송현배수지제수변실-송현시장-동인천역['11코스 연탄길 안내도']
[실트랙] <인천둘레길>은 <한남정맥>과 <경기둘레길>, 그리고 <서해랑길>과 많이 겹친다. 그래서 <인천둘레길>은 "인천 원도심"을 관통하는 <11~14코스>만 역사여행을 곁들여 진행 할 예정이다. <인천>의 원도심을 걷는 첫번째 코스가 <11코스-연탄길>이다 거리는 <4.9km >로 약2시간 정도 걸린다고 알려 주는데... 이 코스의 이름을 왜? "연탄길"이라고 했을까...그 의미를 찾아 나선다.
['도원역 1번출입구'] 12:00 2025년 3월 26일 수요일 맑음 오랜만에 역사여행에 나섯는데 제법 더울 정도로 봄냄새가 물씬 물씬 풍긴다. "도원역"은 "쇠뿔"을 의미하는 "우각역 牛角驛"으로 불리워 졌단다. <도원역 1번출구>에서 먼저 <한국최초 철도 기공지>를 보기 위해 좌측으로 잠시 다녀 온다.
['도원역' 버스정류장'] <도원역 1번출구>로 나가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도원역-인천축구전용경기장 버스정류장>이 가까이 있으며, 뒤에 <기념비>가 서 있는데...
['한국 철도 최초 기공지'] 12:01
[안내문] 영국의 "산업혁명"을 선도한 <제임스 와트>가 1770년경 증기기관을 상업용으로 발명하고 그 증기기관을 이용해 1800년대 초 "증기기관차"를 만든 <조지 스티븐슨>.... 그로부터 72년 후 비록 일제에 의해 침탈 목적으로 우리나라에도 기차가 들어 오게 되었단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경인선> 철도를 건설하게 되는데 <경인선 기공식>을 한 곳이라고 한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인천 축구 전용경기장'] <도원역 1번출구> 건너편에는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데
['도원역2번출입구'] 12:05 둘레길은 <1번출구>에서 <2번출구> 방향으로 우회전 하여 <경인선 철도> 위 다리를 건너고
['쇠뿔고개'] 12:08 <도원역>에서 100m 정도 올라 가면 "쇠뿔고개-牛各峴"을 만나는데 좌회전 하면
['인천세무서'] <인천세무서>가 바로 보이는데 세무서 바로 아랫쪽에 <여선교사 합숙소>가 보인다.
['여선교사 합숙소'] 12:10
[안내문] "여선교사 합숙소"가 있는데, 현재는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인천산업정보학교'] 12:14 <여선교사 합숙소> 뒤로 조금 올라 가면 <인천산업정보학교>를 만나고 앞에 보이는 사거리에서 죄회전하면...
['금창동행정복지센타'] 12:16~12:20 "금창동 행정복지센터"를 만나는데 화장실을 잠깐 이용하고
['인천창영초등학교'] 12:22 "인천창영초등학교" 인천 최초의 <인천공립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순수민족자본으로 1907년 12월 9일 설립되었단다. "3.1운동" 당시 인천 만세운동의 진원지가 되어 시위를 벌이다 투옥되는 등 격동의 역사를 거치면서 교육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한다. 그러니까 "인천3.1운동 발상지"이다.
['강재구 소령' 출신학교] "인천창영초등학교"는 연세가 좀 드신 분들에겐 잊을 수 없는 참군인 "강재구 소령"이 공부하고 자란 학교라는군요. <강재구소령>은 부하들 수류탄 훈련중 잘못 던저진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덮쳐 부하들을 살린 위대한 희생정신과 사랑의 표본이 되는 분이라고 추앙된다.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안내'] 12:24 <인천창영초등학교> 귀퉁이에는 "배다리 역사문화마을"을 안내하는 곳이 있는데 옛날엔 서해바닷물이 이 근처까지 들락거려 다리가 있었고, 그 다리 주변으로 인천의 상권이 형성 되었다고 하니 인천의 핵심지였다는 것을 강조하며 알리고 있다.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된★ 안내도를 클릭하여 확대 된 안내도를 참고하면 앞으로의 여행에 도움이 된다.
['영화초등학교 본관'] 12:30 <인천창영초등학교>와 붙어 있는 "영화초등학교 본관"을 주목해야한다. 1892년 미국 <존스 목사> 내외에 의해 설립됐고 이후 8월 사립학교로 <영화학교>가 탄생했단다. <영화학원>은 1902년 미국인 <카루렌>씨가 1천달러를 학교건축기금으로 희사하면서부터 26평의 벽돌교사를 신축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른다고... 현재는 <영화국제관광고등학교>가 추가 되어 <호텔경영학과> <관광외국어학과> <외식조리과>를 운영하고 있다고...
['꿀꿀이죽 골목'] <영화국제관광고> 골목은 옛날 "꿀꿀이죽 골목"이라 불리웠던 가난한 곳이었다는데 지금의 거리와 비교 된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 12:39 <꿀꿀이죽 골목>의 서쪽 끝에는 "배다리 헌책방거리"가 있다 헌책방 골목은 6.25로 폐허가 된 자리에 리어커와 노점상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단다. 한 때는 40여 곳의 헌 책방들이 밀집해 전성기를 이루기도 했다는데 현재는 <한미서점><삼성서림> <아벨서점>등 몇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둘레길은 좌측 <배다리사거리>로 가지만, 우측에 있는 "배다리 성냥마을 박물관"을 들렸다 간다.
['배다리 성냥마을 박물관'] 12:40~12:44 "배다리 성냥마을 박물관" 앞에 보이는 박물관은 <동인천우체국>이었는데 인천시가 사 들여 박물관으로 만들었단다 박물관 뒤에 보이는 <두손빌딩>이 있는 자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성냥공장인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있었었다고 하는데.....
['옛 성냥'] 40대이상 군복무를 한 대한민국 남자 치고 아마 "인천의 성냥공장"이란 노래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겠죠? 노랫말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가사내용이 몹시 저속해 대놓고 부르기에 민망스러운 노래이다. 하지만 비속어가 통용(?)되는 군대라는 특수집단 내에선 6·25 이후 군바리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불린 「애창곡」이었다. 군인들은 「우스개 말」이 담긴 이 노래를 부르며 피곤한 심신을 잠시 달래기도 했다. X털이 다 타버려 white가 됬다는 얘기는 혈기 왕성한 젊은 군바리들에겐 카타르시스적인 큰 위안이었겠지 '성냥'은 마치 우리 고유어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자어이다 즉 '석뉴황<石硫黃>'이 음운변화를 거쳐 '성냥'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성냥이 들어온 것은 1880년 개화승 이동인(李東仁)이 일본에서 가져온 것이 처음이었으나, 일반인에게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한일합방 직후 일제가 인천에 "조선인촌(朝鮮燐寸)"이라는 성냥공장을 세우고 대량 생산을 하면서부터였다. "인천에 성냥공장"이라는 노랫말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일제는 이후 수원, 군산, 부산 등 전국 각지에 성냥공장을 잇달아 설립했는데, 우리에게는 제조기술을 숨기고 일본인들끼리만 시장을 독점, 성냥 한 통에 쌀 한 되라는 비싼 값을 받아 착취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니 매일 성냥을 만들면서도 성냥 하나 살 수 없었던 가난한 조선의 여직공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를 빼내고자 했던 것도 당연했을 성싶다. "무슨 수"에 대해선 모두 잘 알죠? 치마 밑에 감춰 가지고 공장 문을 나서다...X털이 다 탓다고...ㅎㅎ 지금은 웃으며 이런 얘기를 하지만 당시 가난한 일제치하의 우리 여직공들에겐 생존전략이었다는거... 그래서 그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노동자들의 총파업도 바로 이 <인천의 성냥공장>에서 일어 나고 그로인해 수많은 여성근로자들이 체포 구금되고...어찌 우리 잊으랴~~ 일제의 만행을...
['한미서점'] 12:45 <성냥박물관>을 나와 다시 <배다리 헌책방> 거리로 가면 인적없는 헌책방 몇군데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한미서점>은 영화 <도깨비> 촬영장이기도 했다는군요. <토지> <김약국의 딸>등을 집필한 <박경리 선생>이 이곳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서 해방후 헌책방을 경영하며, 믾은 책을 읽었다고...그래서 우리나라의 대 문호가 되는 기틀이 되지 않았겠냐고..
['배다리 사거리'] 12:48 <꿀꿀이죽 골목>의 <헌책방거리>를 지나면 "배다리 사거리"를 만난다. 지금이야 서해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락거리던 갯골이었다는 것을 상상도 할수 없지만 갯골을 건너 다니는 널판지 다리가 있어 주변에 시장이 형성되었던 곳이란다. 건너편은 현재 <인천중앙시장>이며 잠시후 <12코스>가 <동인천역>에서 좌측 <답동>방향으로 진행한다. 옛날 갯골에 배다리가 있던 곳에는 <수인선 철도>가 다녔는데 지금은 <수인분당선>이 전철화 되어 운행되고 있다.
['옛 배다리시장'] 출처: 인천시청 "옛 배다리시장" 1900년대 초의 모습인데 엄청나다. 그리고 사진 속에 <평화의원>과 <원산 산부인과>가 눈에 띈다.
['배다리지하도상가'] 번성했던 <배다리시장>에는 <배다리 지하도상가>가 새로 설치되 있는데 내려 가 봤더니 사람 구경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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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전통거리'] 12:49 변모된 <배다리시장>을 지나며
[뒤돌아 본 '두손빌딩'] 12:53 지하 도로공사중인 곳에서 뒤돌아 보면 조금전에 들렸던 <배다리 성냥 박물관>이 보이고 성냥공장이던 <옛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있었던 <두손빌딩>이 새로이 솟아 있다.
['송현터널'] 12:57 <송현근린공원>이 있는 "수도국산 57.6m" 밑으로 터널공사 중인 곳으로 올라 가면...
[변경된 '11코스'] <11코스>는 터널 옆 데크 계단으로 바로 올라 가라고 알리고 있는데... 여기서 우측을 바라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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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연탄길'] 12:58 <송현동 수도국산 달동네>가 펼쳐지는데, <11코스>는 원래 앞에 보이는 "달동네 골목"으로 연결 시켜 놨지만, 현재 달동네가 철거 중이라 위험하다고 터널 옆 데크 계단으로 옮겨 놓은듯 하다. 연탄을 지고 오르던 좁은 골목도 예전엔 괜찮은 주거지 였는데.... 그런데 <11코스>의 이름이 "연탄길"인데, 바로 이곳 달동네를 추억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보이는데도, 편한 <데크 계단길>로 변경하여 <연탄길>이라는 이름을 바꿔야 할듯.....
['송현공원' 입구] 1:01 데크 계단을 잠시 오르면 "송현공원 정문"에 도착하는데, 현재 대대적인 공사로 이용 할수 없고
['신정희 동상']
[안내문] <송현공원> 정문 앞에는 "신정희 장군 동상"이 있는데 <14코스>에 있는 <화도진>을 설치한 분이라고.... 이 동네 출신인지는 표기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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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근린공원'] 1:05 공사중이라 들어 갈수 없는 <송현공원 정문> 우측으로 내려가 공원으로 들어 가면... 운동시설등이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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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여가시설] 10여분 공원 둘레길을 진행하면....
['향적사'] 1:17 공원 안에 <향적사>라는 절간도 있고
[공원 옆문] 1:19 <유아숲 체험원> 방향으로 들어 가면...
['유아숲 체험원'] 1:21 <유아숲 체험원>이 있으며...
['황토맨발걷기코스'] 1:23 데크길과 <황토맨발걷기길>이 나란이 있는 곳을 진행하면
['데크 사거리'] 1:25 데크 사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오름길] 계단을 올라 가면...
['배수장 둘레길'] 1:28 "수도국산 57.6m" 정상에 도착하는데, 앞에 <제수변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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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지 제수변실'] 1:30 "송현 배수지 제수변실" <노량진 정수장>에서 수돗물을 끌어 와 수돗물을 저장하여, 인천지역에 수돗물을 배급한 배수지의 "제수변실 制水弁室"이라고 하는데, 수돗물을 공급, 단수, 분배하는 시설이라고 한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스탬프함>이 이곳에 있다.
['배수지' 정상] 1:31 "수도국산 57.6m" 현재도 배수지로 사용하고 있는 정상부는 인라인스케이트장으로 덮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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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지 정문'] 1:35 정상에서 <송현마을주공아파트> 방향으로 내려 가면, <배수지 정문>을 만나는데 이곳에 남아 있는 오리지날 유물로서 조금 전에 보았던 <제수변실>과 이곳 <정문>만이 옛날을 추억하고 있다.
[공사중] 1:37 <배수지 정문> 좌측으로 둘레길이 이어지는데, 공사중으로 현재는 진행 할수 없다.
['송현주공1차아파트'] 1:37 그래서 <송현주공1차아파트단지>를 통과해 내려 가야하는데, <127동>을 알아서 찾아 가면 된다.
['127동' 앞 정문] 1:44 <127동> 앞 정문으로 나가 내려 가면...
['박경리 선생'] 길가에 <인천 동구>를 빛낸 인물들을 소개 하고 있는데 눈에 띄는 인물은 당연 <박경리 선생>이다. <박경리 선생>은 <경남 통영> 출신이며 <진주여고>출신인데, <인천동구>가 자랑하는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 했지만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서 헌책방을 운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배우 <황정순씨>도 이곳 출신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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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시장'] 1:48 <송현마을 주공아파트>에서 내려 가면 "송현시장"을 지나고
['동인천역 북광장'] 1:50 이어서 "동인천역 북광장"에 도착하며
['동인천역 4번출입구' 앞'] 1:52 "동인천역 4번출입구" 앞에 있는 <옛 증기기관차> 앞에서 "인천둘레길 11코스 연탄길"을 마친다. 걸린 시간은 1시간52분이었다. <동인천역 대합실>에서 잠시 쉬고 계속 <12코스 성창포길>을 이어 간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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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항 대게-삼척 쏠비치리조트-추암촛대바위-정동진
동해안 나드리
울진 죽변항-삼척 쏠비치리조트-추암 촛대바위-정동진
일시 : 2025년 3월18일~19일
3월 하순 눈이 내리는 날에 분당에서 출발하여 <울진 죽변항>으로 모처럼의 여행을 떠났다
예전부터 단골집인 <죽변23호 송이네집>으로 직행 했다.
대게 먹으러 멀리 갔으니 당연이 대게를 포식했는데
한마리에 20,000원짜리 열마리를 다섯이서 푸짐하게 벅었다.
써비스로 자연산 멍게를 맛보는데 진짜 달콤한 끝맛이 일품이어서 대게보다 멍게가 더 기억에 남는다.
<울진 죽변항>에서 <삼척 쏠비치리조트>로 이동하여
<삼척 쏠비치>에서 가장 전망 좋다는 < A동1016호>에 투숙하여 하룻밤을 보내고
동해안 日出을 감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눈바람이 몰아 쳤는데 언제였느냐는듯 바다는 조용하고
태양은 변함없이 솟아 올랐다
<쏠비치>에서 나와 윗쪽에 있는 <추암공원>으로 갔는데
때마침 <동해선 ITX열차>가 지나 간다
<추암 촛대바위 공원>에서 필수 관광코스는 <해암정-능파대-촛대바위-출렁다리-조각공원>이다.
다리를 건너 들어 가면
먼저 <해암정>을 만난다.
<해암정>은 '삼척심씨'의 시조인 <심동로>가 고려 시대말에 지은 정자란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능파대>가 있는 조그만 동산으로 올라 가면....
"능파대"
<능파대>라는 말은 바닷가의 섬이 육지에서 내려 오는 모래등으로 육지와 붙어 육지화 된 섬을 말한다.
이곳 <능파대>는 <남한산성>의 정동방正東方이라 한다.
"능파대" <단원 김홍도 작>
<정조대왕>은 우리 국토를 무척이나 사랑했다죠
그래서 자신이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려 화원인 <단원 김홍도>로 하여금
전국의 명소를 그려 오도록 지시하여 만들어진 그림을 첩으로 묶은 화첩 중에 하나가 <금강사군첩>이다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위주로 그린 60개의 작품 중에 하나인 <능파대>를 감상한다
<능파대>에서 우측에는 <형제바위>가 옹기종기 모여 있고
정면으로는 <촛대바위>라고 불리우는 유명한 바위가 있는데
애국가 영상의 첫머리에 日出과 함께 어우러져 나오는 장면이 여기서 촬영한 것이란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보일수 있는데
이곳을 선인들은 <추암 湫巖>이라고 불렀다는데 그 의미는 "용트림을 하며 하늘로 오르는 모양"이라고
<능파대> 북쪽 동산에는 출렁다리와 조각공원이 있다.
<출렁다리>를 건너기 전에 뒤돌아 보면...
<해암정-능파대-촛대바위>가 한눈에 들어 오며
그뒤로 <삼척 쏠비치리조트>와 <추암해수욕장>이 조망된다.
<출렁다리>를 건너 돌아 가면 <조각공원>이 있고
주차장으로 내려 가면 <추암역>이 있다
승용차로 30여분 북진하면...
<정동진역>을 잠깐 들려 보고 간다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정덩진역> 플렛트홈은 <동해선 전철화>로 새롭게 단장되 있는데
<고현정 소나무>는 그대로 살려 놨군여
<정동진해변>에서 <썬크루즈호텔>를 조망하고 귀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