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7회차]
조령-마패봉-부봉-탄항산-하늘재
"더 잘 살기 위해서 "
여행을 한다고
바로 무언가가 남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여행하던 날들을 되돌아보면,
낯선 거리를 헤매고 다니던 시간은 평생 웃음지을 수 있는 기억이 된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사치가 아니다.
왜 꿈만 꾸고 있는가.
한번은 떠나야 한다.
떠나는 건 일상을 버리는 게 아니다.
돌아와 일상 속에서 더 잘 살기 위해서다.
- 박준의《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중에서 -
2011년 5월 14일(토)
맑은 봄 날씨, 바람 약간
[산행도]
'충북 괴산군 연풍면 고사리'에서 약2km의 "새재길"을 올라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조령 3관문"을 만나 대간길을 이어 갑니다.
"조령"에서 "마패봉"까지 900m,
"마패봉"에서 "부봉 삼거리"까지 4km,
"부봉 삼거리"에서 "부봉 제1봉" 왕복 1km,
"부봉 삼거리"에서 "하늘재"까지 4.6km.
대간거리 10.5km(이정표 기준)
접속거리 2km(이정표 기준) 합 12.5km
['고사리' 주차장] 오전 9시 50분
충북 괴산군 연풍면 고사리
"산그린 호텔" 주차장에 오전 9시 50분경 도착하여
산행준비와 준비운동을 하고 10시경 출발합니다
['조령 자연휴양림' 입구] 오전 10시
고사리 '산그린호텔' 주차장에서 조금 올라 가면 "이화여대 수련관"을 지나고,
다시 조금 더 올라 가면 "조령자연휴양림"표지석이 산객들을 반기며,
옛 "문경새재길"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곳엔 좌측으로 "신선봉 神仙峰, 967m" 등산로 입구가 있습니다.
[새재 길] [옛 새재길]
이제는 포장이 되어 자동차도 오르내리고 있는 "문경새재길"을 약25분 정도 오릅니다
관광객들도 많았고, 포장도로 사이에 가끔 지름길인 옛길도 있어 정취가 느껴졌습니다.
[조령 표지석] 10시 20분
"조령 鳥嶺" 해발 650m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伊火嶺' 사이의 새(사이)재"
"새(新)로 만들어진 고개의 새(新)재"
여러 설이 있는 고갯길이지만, 대간꾼들의 지침서인 "여암 신경준선생"의 "山經表"에
"鳥嶺 延豊東二十五里 聞慶西二十七里"라고 나와 있으니
"鳥嶺", 즉 새와 관련있는 "새재"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조령산성' 입구]
지금은 봄철인데도 "새재"에는 울긋불긋한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 느낌을 주는군요.
몇번 와 봤지만 올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길 입니다.
[조령관-영남제3관문] 10시 22분
"영남대로 嶺南大路"의 하일라이트인 "문경새재 聞慶새재"에 있는
"조령산성 鳥嶺山城"에는 세개의 關門이 있습니다.
"영남제1관문"을 "주흘관 主屹關"이라 하고,
"영남제2관문"은 "조곡관 鳥谷關"이라 하며,
앞에 보이는 "영남제3관문"을 "조령관 鳥嶺關"이라고 한답니다.
[조령관 앞 이정표]
저는 이 문경새재에 서면 제가 가장 존경하는 "퇴계 이황선생님"이 먼저 생각납니다.
'퇴계선생'은 우리 역사 속에서 최고의 고위 관료로 알려져 있어 유명하시지만
그 분은 특별한 기네스북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사직서를 가장 많이 내신 분이시죠.
'임진왜란'이 일어 나기 전까지 당시의 정치 상황은 모두 아시는바와 같이 사색당파의
붕당정치로 한마디로 개판이었던 시대였었죠.
그러한 당파 싸움의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오로지 국가와 백성을 위해 일하려고 했던
"퇴계 이황선생"에겐 특정 정파들의 밥그릇 싸움에 자괴감을 느껴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러니 왕에게 사직서를 내고는 훌훌 한양을 떠나 이 문경새재를 넘어 고향인 안동으로
갔다고 합니다. 사직서를 내면 왕이 어찌 할바 몰라 복직해 달라고 하소연을 해오고..또..또
반복되는 사직과 복직으로 이 문경새재를 수없이 넘어 한양을 오르 내렸답니다.
그래서 "퇴계선생"이 문경새재를 넘으며 쓰신 詩 한수 들려 드림니다.
鳥嶺途中
雉鳴角角水潺潺
細雨春風匹馬還
路上逢人猶喜色
語音知是自鄕關
'새재' 넘는 도중에
산 꿩 꾹꾹지져기고, 시냇물은 졸졸 흐르는데
가랑비에 봄바람 맞으며 필마로 돌아오네.
길에서 낯선 사람 만나서도 반가운 것은
그 사투리 들으니 정녕코 내 고향 사람이려니
이 詩를 이해 하려면 "문경"이라는 이 고을 이름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문경"은 "들을 聞"에 "경사스러울 慶"을 씁니다.
즉 "聞慶市"는 "경사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고을"을 의미합니다.
또한 "慶"은 "경상도 慶尙道"의 첫글자로 "慶尙道, 항상 즐거운 고장"이라는 의미이지요
'경상도'가 뭔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사용하다가 이 글로 그 의미를 아신 분들 많지요? ㅎㅎ
'경주'와 '상주'의 첫글자를 따 만들어진 합성어 이긴 합니다만....
이 鳥嶺을 넘으면 충청도 사투리가 사라지고 경상도 사투리가 시작됩니다.
안동이 고향인 "퇴계선생"은 이 새재를 넘으며 "聞慶, 즉 경상도 소리가 들리는 곳"이라고
고향을 다시 찾은 정겨움을 읊고 있는 것입니다.
['마패봉' 들머리 - '군막터'] 10시 25분
대간길 산행 들머리는 "조령관" 북쪽으로 나있으며 이정표가 안내해 줍니다.
"마패봉"까지 900m. 45분 걸린다고 안내합니다만, 걸음이 다소 느린 저도 33분 걸렸습니다.
그리고 "군막터 軍幕터"라는 안내판도 있습니다.
['조령'에서 '마패봉'까지 구글어스]
"조령관 鳥嶺關"에서 "마패봉"까지는 900m라고 합니다.
약35분 정도 걸립니다만 급경사 오르막이어서 힘이 드는 곳입니다.
['마패봉'오르는 길]
"鳥嶺關" 뿍쪽 성곽을 따라 급경사 오르막을 7~8분 오르면....
[묘지에서 보이는 '마패봉'] 10시 33분
한숨 돌릴수 있는 묘지가 나오며, '마패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암릉구간]
묘지를 지나고 나면 암릉구간이 나오며,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마패봉'으로 오르는 된비알]
오늘 구간 중에서 가장 급경사 오르막입니다.
하지만 20분 정도 오르면 됨으로 위안이 됩니다.
['마패봉'으로 오르는 된비알]
산행기를 보는 지금이야 즐겁게 보며 추억하지만,
오를 때엔 정말 힘겨워 '왜 이짓을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마패봉'으로 오르는 된비알]
아주 가파른 바위 구간은 이곳 뿐입니다.
이곳만 통과하면....
['마패봉' 안부] 10시 54분
"마패봉"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는 능선을 만나며, 힘든 구간을 벗어 납니다.
이 안부에서 정상까지는 약200m로 4분 정도 걸렸습니다.
['마패봉' 정상] 10시 58분
오늘 코스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인 "마패봉"에 올랐습니다.
'고사리 주차장'에서 약1시간, '조령관'에서 약30분 걸려 "마패봉"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와 돌탑을 쌓아논 봉우리 두봉우리가 있었습니다.
[마패봉 정상석] [마패봉 정상 표지판]
"마패봉 馬牌峰-마역봉 馬驛峰, 927m"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봉우리에 올라 '마패'를 나무가지에 걸어 놓고 쉬어 갔다고 "마패봉"
이라 한다는데, 원래 옛날 큰 고개에는 말을 갈아 타는 馬驛院이 있었지요.
큰 고개인 "새재"에도 馬驛院과 여인숙이 당연히 있었답니다.
馬驛峰은 그런 연유에서 붙여진 산이름이라고 봅니다.
['마패봉 정상'에서 '조령산' 조망]
'백두대간 3대 岳코스'중에 하나라고 하는 '이화령~조령 구간'의 山群들이 조망됩니다
'928m봉'이 제일 어려웠던 코스로 기억이 됩니다.
['마패봉 정상'에서 가야 할 '부봉' '탄항산' 조망]
앞으로 가야 할 대간길을 미리 조망합니다.
붉은색으로 표기된 곳은 대간길입니다.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 코스' 중에 가장 쉬운 코스 중에 하나인 구간입니다.
[마패봉 정상 이정표]
"부봉 삼거리"까지 4km
"하늘재"까지 8.5km라고 알려 줍니다.
"부봉 삼거리"까지 1시간 25분 걸렸습니다
['마패봉'에서 '북암문'으로 내려 가는 길 - '마패봉 삼거리'] 11시 5분
"마패봉"에서 돌탑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면 바로 '북암문'으로 가는 하산길이 나옵니다.
그리고 산행안내도를 만나는데 "마패봉 삼거리"로서, "사문리 탐방소"로 가는 갈림길입니다
"마패봉"에서 부터 북쪽으로는 "월악산국립공원"이고,
남쪽으로는 "문경새재도립공원"입니다.
['마패봉 삼거리' 이정표]
이곳 "마패봉 삼거리"는 '충주 사문리 탐방소'에서 오르내리는 등산로이군요
'마패봉'을 오르는 최단코스가 되겠습니다.
['마패봉'에서 '하늘재'가지 구글어스]
"부봉 삼거리"까지 4km
"하늘재"까지 8.4km
['마패봉'에서 '북암문'으로 내려 가는 계단]
"마패봉"에서 "북암문"으로 내려 가는 길은 계단을 새로 설치해 놨습니다
옛날 대간 종주를 하던 때와 비교하면 많이 편리해 졌습니다.
[북암문] 11시 19분
"마패봉"정상에서 15분 정도 내려 오면 門인지 하수구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북암문"을 만납니다.
[북암문]
"북암문 北暗門"
"鳥嶺山城"에는 두개의 暗門이 있는데 이곳 "북암문"과 "동암문"입니다.
"암문 暗門"은 요즘 말로 하자면 '비밀통로'입니다.
서울 북한산성 암문과는 비교 할수 없이 조그만 개구멍같은 암문이군요.
['동암문'으로 가는 대간길]
"北暗門"에서 "東暗門"까지는 "756m봉", "764m봉, "760m봉"이 있으며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따라 한시간 정도 갑니다.
['동암문'으로 가는 대간길의 소나무] 11시 24분
"北暗門"에서 "756m봉" 된비알을 5분 정도 치고 오르면 모양이 조금 독특한 소나무를
만나는데, 이곳이 "756m봉"입니다.
[꺼꾸로 세운 소나무]
재미 삼아 사진을 꺼꾸로 뒤집어 보았습니다.
['깃대봉' 조망] 11시 41분
지난 구간에서 올랐던 "깃대봉"이 조망됩니다.
이쪽 방향에서 바라보니 깃대를 꽂으면 잘 보이게끔 제법 뾰쪽합니다.
['부봉 능선' 조망] 11시 53분
"문경새재도립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암릉미를 자랑한다는 "부봉능선"이
성큼 성큼 다가 옵니다.
綠陰芳草勝花時
"푸른 나무와 향기로운 풀이, 꽃피는 시절보다 낫다"
[조령산성 성벽] 12시 9분
"東暗門"이 다가오니 성곽이 다시 모양을 나타내고...
[동암문] 12시 12분
"北暗門"에서 53분이 걸려 "東暗門"에 도착합니다.
[동암문] 12시 12분
현재 등산로를 막아놨습니다만, 이곳 "東暗門"은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좌측으로는 "미륵사지"로 한시간 내에 내려 갈수 있는 길이 있으며,
또한 "평천재"로 20분이면 갈수 있는 지름길이 있습니다.
우측으로는 '문경새재 동화원'으로 30분이면 갈수 있어
탈출을 꿈꾸는 분들은 기억해 두면 급할 때엔 편리하겠습니다.
['동암문'에서 올려다 본 '부봉 제1봉']
'동암문"에서 "부봉 제1봉"을 오르는 登路가 가파른데....
약30분 정도 핵핵거리며 올라야 합니다
['부봉' 삼거리] 12시 30분
"동암문"에서 된비알을 낑낑대며 12~3분 오르면 '부봉 갈림길'이 나오고...
['부봉 삼거리'에서 '부봉'으로 올라 가는 길]
"부봉 제1봉"까지 500m, 왕복 1km임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보며 올라 갑니다.
['부봉 제1봉' 오르는 슬랩]
"부봉 제1봉"으로 올라 가려면 사진에서 보는 슬랩구간을 지나야 합니다.
로프가 설치되 있어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부봉 제1봉' 정상] 12시 40분
"부봉 제1봉" 정상에는 묘1기가 있고, 정상석과 안내판이 있습니다.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부봉 제1봉"은 꼭 올랐다가 가야하는 곳입니다.
예전에 왔을 때에는 무덤이 온전했는데, 지금은 많이 홰손됬습니다.
이런 곳에 묘를 쓰는 사람은 골때리는 사람이죠?
조상을 잘 모실려고하는 의욕은 가상하지만 현실은 성묘를 자주 할수 없으니..
[부봉 정상석] [부봉 이정표]
"부봉 釜峰, 917m"
'가마솥 釜"이니 가마솥처럼 생겼다는 데에서 유래하는 봉우리입니다
"釜峰"은 여섯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능선이며
'주흘산'에선 가장 암릉미가 뛰어나다는 산봉우리들입니다.
제2봉이 934m로 가장 높으나 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봉우리가 "제1봉"이어서
이곳에 정상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저는 물론 "釜峰 六峰"을 포함하여 '주흘산 종주"를 3년전에 했습니다.
['부봉 제1봉'에서 '조령' 조망]
"釜峰1峰"에서 "2峰"쪽으로 나가 "조령관"과 "마패봉"을 조망합니다.
['부봉 제2봉' 아래 자연대피소] 자료사진
사실 '부봉 1봉'에서 '6봉'까지 한시간 정도면 갔다 올수 있습니다만
제가 3년 전에 종주를 하며 촬영한 사진을 참고로 보여드림니다.
"제2봉" 아래쪽에 있는 자연대피소이며 3봉으로 가는 통로입니다.
['부봉 제3봉' 가는 길에 있는 '부처바위'] 자료사진
'3봉'으로 가는 길에 유명한 "부처바위"가 있습니다.
'문경새재도립공원'이 가장 자랑하는 바위입니다.
['부봉 제6봉'] 자료사진
'5봉'에서 바라보는 '6봉'입니다.
'5봉'에는 "사자바위"가 있고, '6봉'에는 정상까지 철계단이 설치되 있습니다.
['부봉 제1봉'에서 '주흘산' 조망]
'부봉1봉'으로 돌아와 "주흘산 主屹山"을 바라봅니다.
"주흘산 主屹山"에는 "主峰", "靈峰", "冠峰", "釜峰"이 있습니다.
"靈峰"이 가장 높은 1,106m로서 "主峰 1,075m"보다 높은데 봉우리 모양이 못생겼다고
"主峰"에게 主峰자리를 뺏겼다네요. 여기서 봐도 모양이 좀 비교되지요? ㅎ
['부봉 제1봉'에서 '월악산' 조망]
"월악산 月岳山"과 "만수능선"이 지척에 조망됩니다.
앞에 보이는 모든 지역이 "월악산국립공원"입니다.
['부봉 제1봉'에서 '탄항산' 조망]
길을 알고 가면 길이 편하지요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을 접할수 있습니다.
"평천재"와 "탄항산", 그리고 "포암산"이 "나도 백두대간이다!~"라고 주장하는듯..
"나도 가수다!~" ㅎ
[부봉 삼거리] 오후 1시 6분
"釜峰1峰"에 올라 점심식사도 하고, 이곳 저곳 조망도 하며 40여분을 보내고
다시 "부봉3거리"로 내려 옵니다.
['908m봉' 오르는 길]
이번 구간에서 가장 험준한 곳이 "부봉"과 "주흘산 갈림봉" 사이의 "908m봉"입니다
예전엔 매우 위험하고 어려운 구간이었는데, 지금은 데크를 만들어 다니기 쉽도록
만들어 놨군요. 다행~
['908m봉' 오르는 길]
계단 시설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엄청 힘들고 어려운 곳이었는데...지금은 눌루날라~
['908m봉'을 오르며 뒤돌아본 '부봉 제1봉']
"908m봉"을 오르며 여유롭게 뒤돌아 보기도 합니다.
"釜峰1봉"이 제법 가파르게 뾰쪽합니다.
['908m봉' 오르는 계단]
"908m봉"은 데크로 도배를 해 놨습니다.
自然美는 좀 사라졌습니다만, 무척 편리해졌습니다.
['908m봉' 오르던 옛길] 자료사진
예전에 데크가 없었을 때엔 이렇게 다녔었습니다.
[뒤돌아 본 '남근바위']
"908m봉"에선 이 바위가 구경거리입니다.
['908m봉' 오르던 옛길] 자료사진
데크가 없었을 대엔 자료사진과 같이 "양근바위" 곁으로 로프를 잡고
돌아 갔었습니다.
['960m봉' - 주흘산 갈림길] 1시 39분
가장 험준했던 "908m봉"이었지만, 지금은 데크가 설치되 있어 가장 편안한 "908m봉"을
지나면 바로 "주흘산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 갈림길은 "960m봉 정상"으로 매우 높은 곳인데 평평한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좌측으로 "하늘재"로 가는 계단을 설치해 매우 편리해졌습니다.
직진하면 "주흘산 영봉,주봉,관봉"으로 갑니다.
['주흘산 갈림길' 이정표]
"하늘재"까지 3.6km
1시간 50분 걸렸습니다.
['주흘산 갈림봉'에서 '평천재'로 내려 가는 계단]
계단이 없었을 때엔 이곳이 습기가 많은 진흙길 급경사여서 무척 미그러워 오르내리기가
무척 힘들었는데, 이젠 아주 편안하게 다닐수 있군요.
[평천재] 1시 57분
"주흘산 갈림길"에서 계단을 내려와 조금 가면 "평천재"가 나옵니다.
"평천재"는 아랫마을 이름이 '문경시 문경읍 평천리'여서 '평천리'로 넘어 가는 고개여서
"평천재"로 지어진듯 합니다.
"동암문 東暗門"에서 '908m봉'의 옆구리를 돌아 바로 이곳으로 간단하게 20분이면 올수도
있다고 '동암문'에서 이미 알려드렸죠?
[평천재 이정표]
"탄항산" 정상까지는 30분 정도 걸림니다
['평천재'에서 '탄항산'으로 가는 길]
약 30분 정도 비교적 완만한 오름짓을 하며 "탄항산" 정상으로 갑니다.
[탄항산 정상] 2시 30분
정상석이 있는 '탄항산 정상"은 특징없이 슬그머니 나타납니다.
[탄항산 정상석] [탄항산 이정표]
"탄항산 炭項山, 856m"
"숯 炭"자에 "목덜미 項"을 사용하여 "炭項山"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산 이름은 잘못 표기되고 있는 대표적 사례중에 하나입니다.
"하늘재"와 "하늘재" 바로 옆에 있는 이 산은 옛부터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으로서
국경수비대가 주둔하며 치열하게 싸우며 수비하는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산의 원래 이름은 "戍項山 수항산"이었습니다.
'수위실' 할때 사용하는 한자가 '戍衛室' 또는 '守衛室'이라고 쓰지요.
"戍는 지킬 '수'"이고, "項은 목덜미 '항'"이니, "수비하는 목-지역"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수항산'의 발음이 "수항→숫항→숯탕"으로 된음으로 발음되고
지도를 새로 작성하던 일제시대에 오로지 발음상의 "숯항산"을 무식한 공무원들이
유식한척 한자로 표기 할때 "숯→炭"으로 표기하여 "炭項山"이 되어 버렸답니다
[월항삼봉] 2시 37분
"戍項山 수항산"은 봉우리가 세개로 되어 있고 두번째 봉우리가 가장 아름다운듯..
"탄항산"을 "월항삼봉 月項三峰"이라고도 부르는 이유이기도 한데
이것은 이 아랫마을 이름이 "월항리"여서 월항리 주민들에게만 통용되는 산이름입니다.
빨리 오리지날 이름 "戍項山 수항산"을 찾아 주어야 겠습니다.
['월항삼봉'에서 '주흘산' 조망]
"주인 主, 산 우뚝할 屹 - 주흘산 主屹山"
"주흘산 主峰"의 높이는 1,075m입니다만
"주흘산 靈峰"은 1,106m로서 主峰보다 31m가 더 높습니다
높이는 낮지만 모양이 좋아 "主峰"자리를 차지한 "主峰"이랍니다.
이나저나 "주흘산"은 이쪽에서 바라봐야 山勢를 더 느낄수 있군요.
[주흘산을 배경으로 ]
내 아무것도 가진것 없건마는
머리 위에 항시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이렇듯 마음 행복 되노라
베낭을 메면 몸이 가벼워 진다
['월항삼봉'에서 '미륵리' 조망]
좌측으로는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가 조망됩니다.
"관음리 觀音里"와 "미륵리 彌勒里"
그 사이에 "하늘재"가 있습니다.
"하늘재"를 경계로 남쪽은 "경북 상주시 관음리"이고, 북쪽은 "충북 충주시 미륵리"인데
마을 이름들에서 부터 뭔가 역사적 얘기꺼리가 있을듯 하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패망한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김일, 마의태자"와 그의 누나인 "덕주공주"가 경주를 떠나
금강산으로 도피해 가다가 문경의 하늘재 아랫 마을인 이곳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묵을 때,
꿈 속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서천에 이르는 큰 터가
있으니 그 곳에 절을 짓고 석불을 세우고 그곳에서 북두칠성이 마주보이는 자리에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이루면 억조창생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으리니 포덕함을잊지말라"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하늘재를 넘어 '미륵리'에 "미륵사"를 짓고 8년을 살았는데,
'덕주공주'는 이곳에서 사는 것에 만족하여 "덕주사"를 새로 짓고 계속 살았으나,
'마의태자'는 만족하지 못하고 신라의 재건을 꿈꾸며 길을 떠났답니다.
그리하여 "관음리'와 '미륵리'가 탄생되었다고.....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입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어주며 열반의 세계로 향하는 고갯길이 하늘재'
[굴바위] 2시 49분
"月項三峰"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이 산에서 볼거리는 아마도 이 "굴바위"뿐인듯 합니다
왜? '굴바위'라고 했는지는 보시는 분들의 몫입니다.
[모래산] 3시 9분
"굴바위"에서 10여분 전진하니 공사를 하기 위해 모래를 쌓아 놓은듯한 곳이 나오는데
이름하여 "모래산"이라 합니다.
전에는 없던 산 이름입니다만.....
[모래산 정상 이정표]
"하늘재"까지 600m가 남았다고 알려 줍니다.
['모래산 정상'에서 '포암산' 조망]
"포암산 布巖山"
"베, 즉 광목"을 펼쳐 널어 놓은듯 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山經表"에는 "鷄立山" 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닭이 서 있는 모양'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나요?
['하늘재'로 내려 가는 길]
"모래산"에서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15분 정도 내려 갑니다.
[하늘재 공원] 3시 25분
백두대간의 수많은 고갯길 중 가장 많은 전설과 이야기가 얽혀있는 길 중에 하나가
바로 이곳 "하늘재"입니다. 이 고갯길은 우리나라 역사책에 기록된 고개로는
최초로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고개로서 "삼국사기"에 기록되 있는 고갯길입니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재위 3년(서기 156년)에 북진을 위해 개통된 고갯길이라 하니
1885년이나 된 最古로 오래된 고갯길입니다.
경북 문경에서 충북 충주로 나아가는 가장 빠른 길이며, '하늘재'가 끝나는 곳에 있는
충주는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해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뻗어나갈 수 있는
국방상 전략적 지리 요충지이기에 매우 중요한 고개였답니다.
그러나 "문경새재"의 개통으로 그 자리를 "새재"에 내주고 역사 속에서 사라져
이제는 잊혀진 고개가 되었습니다.
[하늘재 표지석]
"하늘재 鷄立嶺", 해발 525m"
대간꾼들의 지침서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에는
"계립령 鷄立嶺"으로 표기되 있습니다
['하늘재공원'에서 조망]
'천년고도'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와 그의 누나인 '덕주공주'가 패망의 한을
품고 이 고개를 넘으며 피눈물을 흘린 곳이지요
한이 서린 이별의 고개길.
다시 만날것을 기원하는 기다림의 길이 바로 "하늘재"인 것입니다
소설가 '정비석 선생'은 그날의 그 애끓는 역사의 현장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태자의 몸으로 마의를 걸치고 스스로 험산에 들어온 것은, 천 년 사직을 망쳐 버린
비통을 한 몸에 짊어지려는 고행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공주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가 어떠했을까? 흥망이 재천이라,
천운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가 있으니, 태자가 망국지한을
고행으로 창맹에게 베푸신 두터운 자혜가 천 년 후에 따습다.
천 년 사직이 남가일몽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 년도 수유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움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
['하늘재 공원 지킴터' - '미륵리'로 가는 길]
'마의태자 麻衣太子"
멸망한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김일 金鎰"
새로운 왕조인 고려에 붙잡히면 그것으로 목숨을 부지 할수 없어서
太子가 삼베옷을 입고 거지 행세를 하며 도피행각을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붙여진 닉네임이 "마의태자 麻衣太子"인데 본명으로 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하튼 그 옛날 신라의 재건을 꿈꾸며 이 길을 걸어 갔어리라~
['하늘재정상' - '관음리'로 가는 길] 3시 30분
"하늘재"를 경계로 경북 문경으로 가는 길은 도로포장을 해놔서 접근이 용이합니다
['탄항산'에서 '하늘재'까지 구글어스]
['하늘재 산장'에서 뒷풀이]
'하늘재산장'에서 뒷풀이를 하고....산행을 마침니다
['문경'에서 '주흘산' 조망]
달리는 버스 안에서 주흘산을 촬영했습니다.
문경에서 바라보니 주흘산의 모양이 더욱 특이합니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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