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14회차] 우두령-870m봉-삼성산-여정봉-바람재-형제봉- 신선봉갈림길-황악산-운수봉-여시골산-괘방령 2010년 12월 11(토) 대체로 맑음*바람*무척 추웠음 지난 봄 - 5월 8일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에 지리산 성삼재에서 출발한 백두대간길.... 벌써.... 봄 - 여름 - 가을은 가고 하얀 눈이 산을 뒤덮는 겨울로 접어 들었습니다. 계절이 몇번 바뀌었으니 우리가 가는 대간길도 "추풍령"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계절은 바뀌고....우리는 가고....추풍령은 다가 오고..... 찬바람이 쌩~쌩 불어 오는 '우두령'에서 '괘방령'까지 오늘도 걷습니다. [산행 지도] 오늘은 "우두령"에서 "괘방령"으로 北進을 합니다.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가지고 있는 '삼성산'과 '여정봉'을 넘어 "바람재"로 가고, 다시 "황악산" 주능선을 따라 '운수봉'과 '여시골산'을 지나 "괘방령으로 갑니다. [산행 개념도] 도상거리 12.4km 실거리 약15.5km를 6시간 25분이 걸려 갑니다. (식사시간 1시간 포함) [우두령] 10시 30분 지난 11월 27일(토)에 왔었던 "우두령 牛頭嶺"에 다시 왔습니다. '경북 김천시 구성면'과 '충북 영동군 상촌면'을 잇는 [901번 지방도]의 고개. 일제시대에는 주변 금광개발로 통행량이 많았던 이 고갯길에 다시 왔습니다만 동물들을 위한 에코브릿지 만이 차가운 겨울 바람을 가르며 쓸쓸히 서 있습니다. [기념사진] 겨울 산행에 대비해 중무장을 한 횐님들이 남는건 사진 뿐이라고 인증샷을 합니다. 세월이 기억을 지우며 멀어져 가도 "파란문의 산행기"가 언제나 오늘의 산행을 생생하게 더덤어 줄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기니 ..... 훗날 백두대간 길이 생각 날때엔 "홍어와 무인도"에 들려 추억에 푹 잠기며 쇠주 한잔 하세요~ [우두령 황소] 지난 11월 27일에는 늦가을 바람이 심하게 불었는데..짖눈개비도 내리고... 오늘은 날씨는 맑지만 체감온도 영하 15도쯤 되는 칼바람이 몰아 치고 있습니다. 우두령 황소도 빨리 외양간에 들어가 추위를 피해야 할텐데... [우두령 이정표] 황악산 까지 7km 아무리 추워도 이정표를 보니 우선 쉽게 느껴집니다. [산행들머리] 10시 45분 '해발 720m 牛頭嶺" 오늘 구간에서 제일 높은 '황악산 비로봉'의 높이가 1,111m이니 高低差는 400m를 넘지 않습니다. 쉬운 산행길이 예고됩니다. 다만 갑자기 불어닥친 찬바람이 산행길을 괴롭혔을 뿐 [산행 출발] 10시 46분 [870m봉으로 오르는 등로] 10시 45분에 '우두령'을 출발하여 다소 급한 경사를 따라 "870m봉"으로 오릅니다 ['우두령'에서 '870m봉'까지 구글어스] '우두령'에서 '870m봉'과 '첫번째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까지 구글어스를 보여 드림니다. 구글어스에서 보시는바와 같이 '870m봉'까지는 다소 급경사입니다. ['870m봉'에서 뒤돌아 본 '석교산(화주봉)'] '우두령'에서 약20분 정도 급경사를 오르면 길이 왼쪽으로 꺽이는 봉우리가 나오는데, 이 봉우리가 "870m봉"인지 모르고 지나 칩니다. 아무른 표시도 없으니... 하지만 뒤돌아 보면 지난 구간에 올랐던 "석교산(화주봉)"이 보입니다. ['870m봉' 지나 첫번째 이정표] 11시 12분 "870m봉"에서 좌측으로 꺽어 7분 정도 가면 첫번째로 이정표가 나오는 곳이 있습니다 [우두령→1200m. 바람재→3600m]를 알리고 있으며, 이곳엔 앉을수 있는 의자도 있습니다 [첫번째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에서 바라본 '삼성산 전위봉'] 이곳에서 북쪽으로는 가야 할 "삼성산"의 앞에 있는 전위봉이 보이는데 '삼성산'으로 오인되더군요. ['870m봉'에서 '여정봉'까지 구글어스] '870m봉'에서 '여정봉'까지는 보시는 바와 같이 완만한 몇개의 봉우리를 넘어 가는 평이한 능선길입니다. ['삼성산'으로 가는 길] 아무리 평이한 능선길이라 해도 크고 작은 봉우리를 여러개 넘어야 합니다. ['삼성산 전위봉'에서 바라보는 '삼성산'] 11시 26분 '삼성산 전위봉'에 오면 비로소 "삼성산"이 보입니다. 어제 내린 눈으로 금년 겨울 들어 첫번째 눈길 산행입니다. ['삼성산' 정상] 11시 34분 "985.6m 높이 삼성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특징없는 봉우리이기에 모르면 그냥 지나칠 "삼성산"인데, '우두령'에서 약50분 정도 걸렸군요 [삼성산 정상 이정표] "삼성산 三聖山" 정상에는 정상석은 없고, 이정표와 의자가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 이정표에 매직으로 "삼성산"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여암 신경준 선생"의 "山經表"에는 현재 우리가 아는 백두대간의 地名이 몇개 없습니다 그러므로 "山經表"에 地名으로 나와 있는 地名은 관심을 갖어야 합니다. 이렇게 별볼일 없는 "삼성산 三聖山"이 "山經表"에 나와 있으니 더욱 관심을 갖습니다 "三聖山-黃澗南六十里"라고 분명하게 표기하고 있습니다. [삼성산에서 뒤돌아 본 '석교산(화주봉)'] "삼성산"은 이 산 아래 마을 이름들에서 그 유래를 어느 정도 알수 있다는군요. 이 산 아래 "김천시 대항면 주례리(周禮里)"에 '주공 周孔'이란 마을이 있답니다 1790년 '곡부 공씨'가 이 마을을 개척했는데 '공자'가 살던 주나라 '주(周)'와 자신의 성 '공(孔)자를 따서 "주공 마을 周孔"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공자 孔子'는 三聖 중에 한분으로 모셔지는 분이지요? ['삼성산'에서 바라보는 가야할 '여정봉'과 '항악산'] "三聖山"에 올라 서니 가야할 "황악산"이 보이고 "여정봉"은 지척에 있습니다. ['여정봉'으로 가는 길] "여정봉"까지도 크고 작은 몇개의 봉우리를 넘어 갑니다. 약40분 정도 걸립니다. [가야할 '여정봉'과 '바람재 정상'] "바람재"와 "바람재 정상"은 다른 곳이더군요 "바람재"는 "여정봉"과 "황악산" 사이에 있는 계곡 고갯길이고 "바람재 정상"은 "여정봉" 옆에 있습니다 [김천시 대항면] "삼성산"과 "여정봉" 사이에 있는 동쪽 방향 계곡입니다. "김천시 대항면 주례리(周禮里)" 계곡 중간에 "삼성암 三聖庵"이 보이시나요? "삼성암 三聖庵"은 '직지사' 말사로서 이 암자 현판에 "천덕산 삼성암 千德山三聖庵"이라 적혀있답니다. "삼성산 三聖山"이란 山名이 여기서 나왔다는 설도 있더군요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 12시 8분 "여정봉" 가기 바로 전에 있는 봉우리에도 이정표가 있습니다 쉼터 의자도 있고.... 이 봉우리를 넘어 약6분 정도 다음 봉우리를 올라 가면.... ['여정봉' 정상] 12시 15분 ★길주의★ "여정봉 旅程峰 1,030m" 정상석은 없고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여행하는 노정"에 있는 산봉우리라는 뜻인데.... "우두령"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여정봉'에서 '신선봉 갈림길'까지 구글어스]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여정봉"과 "바람재" 부근의 구글어스 지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바람재" 우측 계곡을 모두 까뭉게서 초지를 조성했는데....염소 목장이었다나 뭐래나.. 현재는 자연만 홰손하곤 목장으로 사용도 하지 않고 있더군요 ['여정봉' 아래 쉼터] 12시 25분 "여정봉"에서 우측으로 꺽어 10분 정도 내려 가면 "바람재 정상 쉼터"가 있습니다. 여름철이면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면 시원하고 좋겠더군요 오늘은 찬바람이 쌩~쌩 불어 '바람재' 계곡으로 내려 가서 식사를 합니다. [바람재 정상 앞] 12시 26분 [백두대간 복원지] 쉼터 바로 앞에는 "바람재 정상부"가 있는데.... 군초소 등으로 백두대간길이 홰손되어 복원을 하였다고 출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복원지 옆으로 내려가는 길을 만들어 놨더군요 [백두대간 복원지 안내] 12시 29분 백두대간을 복원했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개발"과 "보존"....제발 먼저 홰손하지 말아라~! ['바람재'로 가는 임도] 대간 복원지 앞으로 난 임도를 따라 조금 내려 갑니다. "황악산 黃岳山' 주능선이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비로봉'은 "황악산 정상 봉우리"를 말합니다. [임도에서 '바람재'로 내려 가는 통로] 12시 34분 ★길주의★ 대간 복원지에서 임도를 따라 조금 내려 가면 임도가 우측으로 꺽이는 지점에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의자가 두개있는 곳 옆에 "바람재"로 내려 가는 통로가 있습니다. 화살표 방향으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가야 합니다. 건너편 "황악산'의 "신선봉 갈림길"과 "형제봉", "신선봉'이 모두 보입니다. [임도에서 '바람재'로 내려 가는 길] 임도를 내려 서면 급경사 내리막입니다. 10분 정도 내려 갑니다. 그리고 "바람재"가 파노라마 처럼 한눈에 들어 오게끔 펼쳐 집니다. [바람재] 12시 44분 임도에서 급경사를 10분 정도 내려 오면 "바람재"가 나오는데 헬기장을 만들어 놨습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신선봉 갈림길"이 있는 "황악산"의 한 봉우리입니다. [바람재 정상석] "해발 810m 바람재" 당연히 바람이 많이 불어 붙여진 이름이겠죠? '바람재 정상석'의 글씨가 재미있습니다. 바람이 부는 듯 하죠? ㅎㅎ [백두대간 등산로] 동쪽에서 서쪽을 바라보며 안내도를 만들어 놨습니다. '바람재"와 "바람재 정상"이 다른 곳인줄 이 안내판을 보고 알았습니다. ['바람재'에서 점심식사] 오늘은 금년 들어 제일 추운 날씨였는데, 특히 바람이 세차게 불어 체감 온도는 영하15도 정도. 1시간 정도 점심 식사를 합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앞에 보이는 "신선봉 갈림길" 봉우리를 오르는데 아무래도 식사 후이기에 힘겹게 올랐습니다. ['바람재'에서 '황악산 정상-비로봉'까지 구글어스] "바람재"에서 "신선봉 갈림길"까지만 오르면 오늘 산행에서 힘든 구간은 거의 없습니다 ['신선봉 갈림길' 봉우리로 오르는 길] 1시 37분 "바람재"에서 "신선봉 갈림길"로 약20분 정도 오름짓을 합니다 이 구간만 오르면 큰 오르막은 없습니다. [신선봉 갈림길] 1시 58분 "바람재"에서 약20분 정도 된비알을 오르니 "신선봉 갈림길"이 앞에 나타 납니다. 휴~ "직지사"를 안고 있는 유명산이라 일반 등산객들도 제법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서야 사람 사는 동네에 온듯하군요 [신선봉 갈림길 이정표] 2년전에 왔을 때엔 이정표 글씨가 제법 선명했었는데.... "직지사"로 가는 하산길은 "신선봉"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신선봉 갈림길'에서 보이는 '형제봉'과 '비로봉'] "형제봉"과 "황악산 정상-비로봉"이 보입니다. 지금부터 약3시간 동안 앞에 보이는 "황악산 능선"을 타고 "괘방령"으로 갑니다. ['신선봉 갈림길'에서 보이는 '직지사'] "황악산 주능선"에 오르니 "직지사"와 "김천시"가 펼쳐집니다. "추풍령"에서 부산으로 가는 "경부고속도로" "KTX 철로"까지 모두 조망되는군요 오늘은 "황악산"에 얽힌 "蘭皐 金炳淵"의 유명한 七言絶句 詩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재치 넘치는 "拔齒直指僧 발치직지승" 이라는 詩입니다. ['형제봉'과 '비로봉'] 黃岳이면 岳소리가 날 정도로 기암괴석이 솟아있어야 할텐데... 민둥 민둥 흙산입니다. [형제봉 정상] 2시 14분 黃岳山이라는 이름과는 사뭇 다른 모양의 "형제봉" 정상입니다. 아주 단순 무식한 산봉우리입니다. ['형제봉 정상 이정표'] "형제봉 兄第峰 1,040m" "형제봉"은 "비로봉"과 함께 나란히 솟아 있는 형제같은 봉우리라고 붙여진 이름 ['형제봉'에서 바라보는 '비로봉'] "拔齒直指僧 발치직지승" 이라는 七言絶句 詩를 이해 하려면 먼저 "황악산 黃岳山"과 "직지사 直旨寺"라는 절 이름, 그리고 '직지사'가 있는 계곡의 모양을 알아야 '방랑시인 김삿갓' "난고 蘭皐 金炳淵"의 이 시를 이해 할수 있습니다. "황악산 黃岳山"이라 하면 "岳"자가 들어가 있으니 일반적으로 "바위 산"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보시는 바와 같이 바위는 구경하기 어려운 순수 흙산인 肉山입니다. "직지 直旨"라는 말도 "똑 바로 펴진 손가락"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직지사"로 들어 가는 길은 현재는 도로를 개설하여 2차선 포장도로가 나 있습니다만 옛날에는 꼬불 꼬불 산길을 돌아야 올라 갈수 있었겠지요 ['황악산' 정상 '비로봉' 오르는 된비알] 아무리 흙산이라 해도 명색이 1,111m나 되는 높은 산인데 왜 된비알이 없겠습니까 15분 정도 오름짓을 합니다. [황악산 정상 '비로봉'] 2시 38분 "황악산 黃岳山" 정상에 올랐습니다 "우두령"에서 대략 4시간이 걸렸습니다. "황악산 정상"인 "비로봉"에는 돌탑인지 돌무덤인지 하나 있고... [황악산 정상석] 외우기도 쉬운 "1,111m높이"의 "黃岳山"입니다. 요즘은 "黃岳山" 대신에 "黃鶴山"으로 더 많이 불리워 지고 있답니다. '김천시' 공식 홈페이지에도 "黃鶴山"으로 나와 있더라구요. '바위'보다는 "鶴"이 더 많고 모양이 부더럽고 아름다운 "鶴"에 더 가까워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난고 김병연"은 이미 이런 것들을 옛날에 간파하고 詩를 지었답니다. 곧 소개해 드림니다. ['황악산' 정상 '비로봉'에서 뒤돌아본 지나온 대간 산봉우리들] "白頭大幹 旅程" 뒤돌아 보니 긴 旅程이 "삼도봉 三道峰"에서 부터 파노라마로 펼쳐집니다. 저 봉우리 하나 하나를 넘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황악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직지사'와 김천시] 지금부터 '방랑시인 김삿갓'-"蘭皐 金炳淵"의 "拔齒直指僧 발치직지승"이라는 七言絶句 詩를 소개해 드리며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도 나름대로 첨부합니다. 拔齒直指僧 蘭皐 金炳淵 金烏橒積烏頭白 금오운적오두백 黃岳花開鶴頭紅 황악화개학두홍 秋風嶺上春花怪 추풍령상춘화괴 直指由中路曲何 직지유중로곡하 이 詩는 김삿갓이 삼천리를 유랑하다 어느 날, '직지사'에 들리게 되었을때 지었습니다. 김삿갓의 유명세는 이미 직지사 스님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던터라, 직지사를 찾은 김삿갓에게 직지사 스님들이 김삿갓의 능력을 실제로 평가하고 싶어서 스님들 중에 詩를 가장 잘 짓는 스님을 뽑아, 그가 가장 자신있는 "직지사"와 "황악산"에 대한 詩를 짓기로 시합을 하자고 합니다. 그래서 시합이 성사되는데.."지는 사람이 쌩이빨을 뽑기"로 하고 하는 "詩짓기 시합"입니다. 무시무시..무지비한 시짓기 시합이었던거죠.ㅎㅎ 그래서 이 詩의 제목이 "拔齒直指僧 발치직지승" 으로 "직지사 스님의 쌩이빨을 뽑다"가 됩니다. 누가 이겼을 까요? 위의 김병연의 시를 읽은 스님들은 그 자리에서 항복하고 패배를 인정했답니다. 그리고 스님은 쌩이빨을 뽑았다는 것 아닙니까. ㅎㅎ ['황악산 정상부'에서 바라보는 '추풍령 방향'] "괘방령"까지의 대간길이 한눈에 보이고, 다음 구간에 우리가 가야할 山群들-가성산, 장군봉, 눌의산, 추풍령까지 보입니다. ['황악산 정상'에서 하산] 拔齒直指僧 蘭皐 金炳淵 金烏橒積烏頭白 금오운적오두백 黃岳花開鶴頭紅 황악화개학두홍 秋風嶺上春花怪 추풍령상춘화괴 直指由中路曲何 직지유중로곡하 도대체 무슨 뜻이길래 스님이 그 자리에서 쌩이빨을 스스로 뽑았을까요? 하나 하나 더덤어 보자구요 그런데 '난고 김병연'의 詩를 이해 하려면 먼저 그의 詩諷을 알아야 합니다. '난고 김병연'은 "순수 한글 발음"과 "한자의 단순 우리말 발음"을 빗대어서 많은 詩를 지었습니다. 예를 들면..... `自知는 慢知고`, `輔知는 早知라` "자지는 만지고, 보지는 조지라" 함부러 사용하기에는 민망한 말 입니다만, 그 한문의 뜻을 풀이 하면... "자신이 혼자 알려며는 늦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면 빨리 알게 된다" 라는 아주 뜻 깊은 말을 이렇게 해학이 넘치는 표현으로 "순수 우리말 발음"과 "한자 발음"을 혼용하여 웃음 자아 내게 하였습니다. ['직지사' ↔ '괘방령' 갈림길] 3시 42분 "황악산 정상-비로봉"에서 약 1시간을 오르막 없이 계단식으로 내리막으로만 내려 오면 "직지사"와 "괘방령"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직지사' - '괘방령' 갈림길 이정표] 그러면 이제부터 김삿갓의 이 詩를 한줄 한줄 음미 해 볼까요? "金烏橒積烏頭白 금오운적오두백" '金烏'는 우리말 발음을 다시 다른 발음 뜻으로 하면 "검은 오-黑烏 - 검은 까마귀"라는 뜻. "황악산"의 건너편 구미 "금오산 金烏山"과 비교하기 위해 불러와 말 하는 것으로 "金烏山이라 하더니, 그렇다면 검은 까마귀 머리 색갈 같은 검은 금오산이어야 하는데, 눈이 쌓여 검은 까마귀 머리가 흰머리가 되었구나" 라고 해석을 합니다. 해석은 필자인 '피란문'이 짧은 가방끈으로 하는 것이니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 '파란문'의 능력을 믿는 분들만 믿으세요~ 詩는 읽는 사람 맘대로 해석해도 되죠? ㅎㅎ "유령교" 광신도들은 모두 '파란문 교주'의 실력을 믿습니다. ㅎㅎ 그런데 믿음이 부족한 날날이 신도들은 잘 믿지 않더군요~ ㅋㅋ [운수봉 정상] 4시 6분 "黃岳花開鶴頭紅 황악화개학두홍" '파란문'은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합니다. "黃岳이라 하더니, '黃岳'이라면 '누른 바위'가 있어야 하는데, 바위는 어디가고 꽃이 만발하여 붉게 물들었으니 '누른 바위'라기 보다는 "붉은 학의 머리" 같구나." 라고 ... 이 산의 이름이 "黃岳山", 그리고 "黃鶴山"으로 불리워 지는 이유를 "김삿갓"은 날카롭게 七言絶句 詩로 표현했다고 생각 됩니다. [운수봉 정상석과 이정표] "秋風嶺上春花怪 추풍령상춘화괴" 단순하게 윗 구절을 해석하면 "추풍령 위에 봄꽃이 괴이하구나"라고 해석하기 쉽습니다만, '유령교 교주'인 '파란문'은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황악산" 주변에 있는 "구미 금오산"과 "추풍령"을 비교해 가며 "黃岳山"과 "直旨寺"의 이름을 비꼬며 쓰는 詩라는 것을 알아야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秋風嶺이라 하더니, 그렇다면 가을 바람 불어 단풍이 물드는 고개 위라 해야 하는데 봄꽃이 피어 만발하였으니 참으로 기괴하도다" 즉, 겨울이나 봄 여름에는 "추풍령"이라고 하면 않된다는 뜻이라는거 이해되죠? '파란문'의 해석이 어떠세요? 이해하기 쉽고 그럴듯 하죠? ㅎㅎ "直指由中路曲何 직지유중로곡하" "直旨라 하더니, 다시 말해 직지사로 올라 가는 길은 똑 바로 뻗은 손가락 같다더니 직지사 올라 가는 가운데 길이 꼬불 꼬불하니 이게 왠 말인가" '순수 한글 발음'과 한문의 뜻을 혼합하여 "황악산"과 "직지사" 주변을 七言絶句 詩로 해학적으로 절묘하게 표현 했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특히 七言絶句 詩로 표현하기는 엄청 어려운 것입니다. "똥개도 자기 집 앞에서는 30점 따고 들어 간다"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 했던 직지사 스님은 "김삿갓 난고 김병연" 앞에서는 무모한 짓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즉시 패배를 인정하고 쌩이빨을 뽑았다는 것 아닙니까 [여시굴] 4시 26분 "운수봉"과 "여시골산" 사이에 "여시굴"이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굴이 "여시굴"이라는 것은 관계자들이 최근에 지어낸 이야기 이고, 이 굴은 일제시대 금광 개발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백두대간 김천 거창 함양 부근에는 금광이 많았다고 이미 여러번 언급한바 있습니다. 2년전 제가 왔을 때까지도 광산지역이었기에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 굴을 보세요. 여우 뿐만 아니라 야생동물들이 이 굴에 빠지면 다시 나올수 없을 정도로 직각으로 아주 깊이 파여 있습니다. 특히 여우는 암벽을 뚫고 직각으로 굴을 팔수 없습니다. ['여시골산'으로 가는 봉우리들] "여시골산"까지는 몇개의 조그만 봉우리를 넘어 갑니다. [여시골산 정상] 4시 40분 주변에 여우들이 많이 살았다고 붙여졌다는 "여우골산"인데, 깅상도 사투리로 여우를 '여시'라고 하니..그대로 여시골산 [여시골산 정상석과 이정표] 아직도 "괘방령"까지 1.5km가 남았습니다. 30분은 더 가야 합니다. 찬바람은 쌩쌩 불어 옵니다. ['여시골산'에서 보이는 '가성산'] 김삿갓 "난고 김병연" 이야기 하나 더 뽀나스로 들려 드림니다. 처녀 뱃사공이 끄는 배를 타고 가며 처녀 뱃사공과 김삿갓의 대화를 제가 다시 꾸몄습니다 장소 : 어느 강 나룻배 위 등장인물 : 김삿갓, 처녀 뱃사공 (처녀 뱃사공이 이끌고 있는 나룻배에 김삿갓이 올라 타 함께 가며...) 김삿갓 : (갑자기 소리치며, 처녀 뱃사공을 보고) "여보 마누라~" 처녀 뱃사공 : (무심히 노 젓던 처녀 뱃사공 깜짝 놀라며....) "어째서 내가 댁네 마누라란 말이요? 처녀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김삿갓 : "당신 배에 올라 탔으니 내 마누라지~(낄낄대며 웃는다)" 처녀 뱃사공 : (얼굴을 붉히며) ....... (강을 다 건너 배에서 내려 저만큼 가는 김삿갓에게 처녀 뱃사공이 큰 소리로 부른다) 처녀 뱃사공 : "아들아~!" (깜짝 놀란 김삿갓이 뒤돌아 보며....) 김삿갓 : "내가 어찌 처녀의 아들인가? 처녀가 어른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처녀 뱃사공 히죽히죽 쪼개면서...) 처녀 뱃사공 : "내 뱃속에서 나갔으니 내 아들 아닌감요?~" (천하의 말 욕쟁이 김삿갓도 처녀 뱃사공에게 뒷통수 한방 얻어 맞고 패배를 인정하며...) 김삿갓 : "맞는 말일세 그려..ㅎㅎ" 이렇듯 받고 치는 몇마디 농으로 머쓱한 분위기를 달궈놓고 떠나가니 김삿갓 풍류에 강가 버들이 발그스레 얼굴을 붉히더라. 처녀 뱃사공이 더 똑똑하고 쌕씨하게 느껴진다구여? ㅎㅎ -끝- 파란문 씀 ['여시골산'에서 '괘방령'으로 내려 가는 급경사 내리막]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갑니다. 이와 함께 오늘 산행이 끝나 갑니다 [임도에서 '괘방령'으로 가는 길] ★길주의★ '여시골산'에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오면 임도를 만나고, 임도를 따라 조금 내려 가면 다시 대간길 오솔길이 나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화살표 방향 오솔길로 들어가 내려 갑니다. 서산에 지는 햇살을 받으며 솟아있는 "가성산 柯城山 716m"이 멋져부려~ 다음 산행 때인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가야할 산입니다. [괘방령] 5시 10분 "괘방령 掛榜嶺" '掛榜嶺'은 조선시대 때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及第(합격)를 알리는 榜에 붙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하지만 다음 사진에 설명한 '파란문'의 설명을 보시면 한문을 모르는 무식한 공무원들이 오리지날 이름을 놔 두고 멋대로 붙인 이름이란걸 압니다. '掛榜嶺' 바로 위에 있는 "추풍령 秋風領"이 국가업무 수행에 중요한 역활을 담당하던 '관로官路'였다면 '掛榜嶺'은 과거시험 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즐겨 넘었던 과거(科擧)길 이었답니다 그리고 추풍령은 공식 관로(官路)이기에 관리들이 항상 지키고 있어 장사를 하러 다니는 장삿꾼들에겐 기피하는 길이었답니다 왜냐하면 돈을 뜯긴다거나 이런 저런 행정규제를 하며 여러모로 간섭해서 '추풍령'을 피해 이곳 '괘방령'으로 넘나 들어 이 고개가 '商路'가 되었답니다 다시말해 조선시대의 '괘방령'은 '추풍령' 못지않은 큰 고갯길 이었답니다 세월을 어떻게 표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추풍령"에는 고속도로"가 뚫려 엄청난 속도로 차량들이 질주하고 이 "괘방령" 밑으로는 "KTX 고속철도"가 더욱 빠른 속도로 지나고 있으니 이럴 때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유식한 척하는 것인가요? ㅎㅎ [괘방령] 5시 10분 "괘방령 掛榜嶺"이라고 현재는 표기하고 있습니다만 '여암 신경준선생"의 "山經表"를 따라 다니는 우리는 "山經表"를 따라야 하는데, "山經表"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계방산 桂榜山-金山西十里" 라고 표기되 있습니다. "괘 掛"도 아니고 "계수나무 계 桂"를 쓰며 "嶺"도 아니고 "山"으로 나와 있습니다. 한자를 조사해 봤더니 "계적 桂籍"은 "과거 급제자의 명부"를 말하고, "계방 桂榜"은 "과거 급제자들을 알리는 방"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자를 모르는 공무원들이 "桂榜"을 "掛榜"으로 오기 한것이 틀림없습니다. "山經表"에도 "桂榜"으로 나와 있으니 틀림없습니다. 그래야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을 알리는 방"이라는 뜻이 됩니다. "掛"는 "물건을 걸다"라는 뜻이니 한자 모르는 공무원들이 또는 일제시대에 잘못 표기된 것이므로 빨리 고쳐야 할것입니다. 단지 "嶺"을 "山"으로 표기 한것은 오기 인듯합니다. ['괘방령'에서 '황악산 정상-비로봉'까지 구글어스] "괘방령X → 계방령O" "계방령"에서 꺼꾸러 "황악산 정상"까지 구글어스를 보여 드리며 도상거리 12.4km, 실거리 15.5km 산행시간 6시간 25분의 오늘 산행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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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13회차] 우두령-석교산-삼마골재-해인리 2010년 11월 27(토) 맑은 후 눈*비*바람 변하고 또 변하는게 삼라만상이라는가 대간길을 걷다보니 계절도 바뀌고 날씨도 바뀝니다. 꽃도 피었다가는 지고 푸르던 녹음도 앙상한 가지로 초라해 졌습니다. 이런 속에 나도 조금씩 더 늙어 갑니다. [산행 개념도] 오늘은 "우두령"에서 "삼마골재"로 南進을 합니다. "우두령"에 세워져 있는 산행안내판에 개념도가 알기 쉽게 정리되 있습니다. ['우두령'에서 '삼마골재'까지 구글어스] '우두령'에서 '삼마골재'까지 도상거리는 9.9km '삼마골재'에서 '해인리'까지 접속거리는 2.3km 총 도상거리 12.2km 식사시간등을 합쳐 총 6시간 15분이 걸린 비교적 쉬운 대간길이었습니다. 대신 비 눈 바람이 모처럼 편한 대간길을 그냥 보내 주지는 않더군요 [우두령(질매재)] 오전 10시 40분 중부지방엔 새벽에 약간의 눈비가 내렸습니다. 하지만 "우두령"에는 바람만 조금 쎄게 불 뿐 비나 눈은 오지 않습니다. "牛頭嶺"은 소의 등에 수레를 끌기 위해 올려 묶는 기구인 "질매"같아 원래 "질매재"라 했답니다. 지금은 이 "질매재"가 도로 개설로 절개가 되어 절개되 끊긴 부분에는 동물들의 이동을 위한 "에코브릿지"를 별도로 만들어 놨습니다. 대간을 절개해서 길을 내고 그 길 위에 다시 동물들을 위한 다리를 놓고.... 사람은 다닐수 없는 저 동물 전용 다리를 이용하는 동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들은 저 다리가 자신들을 위한 다리라고 생각하고 당당하게 이용하고 있을까 [우두령] "우두령 牛頭嶺" '경북 김천시 구성면'과 '충북 영동군 상촌면'을 잇는 [901번 지방도]의 고개입니다. 또한 낙동강과 금강을 가르는 분수령이기도 합니다. [우두령 백두대간 표지석] "우두령 牛頭嶺"이라고 힘이 쎈듯한 황소가 "우두령 牛頭嶺"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두령 牛頭嶺"은 해발 720m 높이에 있는 고갯길이라, 우리같은 대간꾼들에겐 오르막을 덜 걷게 해 주는 고마운 고갯길이기도 하지요 [기념사진] 언제 또 다시 오리요 남는 건 추억의 사진 뿐....... [우두령 산행 들머리] 10시50분 약 10분간 "우두령 牛頭嶺"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大幹 속으로 출발합니다. 지금은 바람만 좀 불뿐 날씨가 괜찮습니다. 하지만.... [우두령에서 '석교산'까지 구글어스] 이해를 돕기 위해 구글어스를 확대해서 보여 드리니 참고 하세요 보시다시피 "우두령"에서 "814.6m봉"까지만 된비알 일뿐 완만한 대간길입니다. [우두령에서 '814.6m봉' 오르는 길] "우두령 牛頭嶺"에서 약13분 정도 된비알을 올라 갑니다. 이 구간이 이번 구간에선 제일 힘든 구간(?)인듯....ㅎㅎ ['814.6m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우두령'] 11시 10분 정도 오르다 뒤돌아 보았습니다. "우두령 牛頭嶺"이 멀어져 가며, 다음 구간에 갈 "삼성산"과 "여정봉"이 보입니다. 다음 구간에서는 "여정봉" 지나 "바람재", "황악산", "괘방령'으로 갈 것입니다. ['814.6m봉'] 11시 3분 ['814.6m봉' 삼각점] 11시 3분 '우두령'에서 약 13분 정도 급경사를 오르면 "814.6m봉"이 나타나는데, 삼각점 이외에는 이 봉우리를 알려 주는 것이 없습니다. ['1,158m봉 헬기장'] 11시 48분 "814.6m봉"에서 다시 15분 정도 가면 "1,170m봉 헬기장"이있고, 또 다시 30분 정도 전진하면 윗 사진에서 보는 "1,158m봉 헬기장"이 나옵니다. [1,158m봉'헬기장에서 뒤돌아 본 '삼성산'] "1,158m봉"에서 뒤돌아 보니 벌서 '삼성산'과 '여정봉'이 멀어져 가고.... ['석교산'으로 가는 대간길] "1,158m봉 헬기장"에서 약 30분 정도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갑니다. 맑은 날씨가 점점 구름으로 덮히며 어두어 지기 시작합니다. 앙상한 나무가지가 겨울을 알려 주고.... ['석교산' 정상] 12시 20분 "우두령 牛頭嶺"에서 1시간 30분이 걸려 이번 구간에서 제일 높은 산인 "석교산"에 오름니다 "석교산 石橋山 1,207m" [석교산 정상석] "석교산 石橋山 1,207m" 이 봉우리는 원래 무명봉이었는데, 戰亂時에 이곳으로 피난 온 주민들이 화전을 일구며 생활고를 해결하던 시절에 "화주봉"이라 불려졌답니다.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대간꾼들은 "석교산" 대신에 "화주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석교산 石橋山"이라는 地名은 '대동여지도'에 나오는데, "황악산" 좌측-지금의 "곤천산" 위치에 표기돼 있어 현재의 이 봉우리 위치와는 다소 거리 차이가 있습니다. ['석교산' 정상에서 북쪽방향 조망] "石橋山 화주봉"에 올랐으니 조망을 해야 합니다만, 맑던 날씨가 구름으로 덮히기 시작해 조망이 시원치 않습니다. 북쪽으로는 지나온 산줄기와 "삼성산"이 조망됩니다. ['석교산' 정상에서 남쪽방향 조망] 남쪽으로는 앞으로 가야 할 대간길이 펼쳐집니다.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산, 덕유산이 손에 잡힐듯 조망되어야 하는데 雲霧가 야속하기까지 합니다. 지난 구간에서는 완벽한 조망을 할수 있었는데 오늘은 무척 아쉽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꼴뚜기는 아니니.....이런 날도 있고, 그런 날도 있고.... ['석교산'정상에서 동남쪽 조망] 동남쪽으로는 지난 구간에 걸었던 "백수리산", "박석산"능선이 구름 속에서 맛이나 보라고 잠시 보여 줍니다. 바로 앞 계곡은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입니다. "대야리"를 잘 기억해 두시면 "폐광터"에서의 설명을 실감 할수 있습니다. [뒤돌아 본 '석교산'] 12시 41분 "석교산"을 15분 정도 내려와 뒤돌아 봅니다. ['석교산'에서 '삼마골재'까지 구글어스] 이해를 돕기 위해 "석교산"에서 "삼도봉"까지 구글어스를 보여 드림니다. [올라야 할 '암봉 1,172m봉'] 우회 할수 없이 반드시 올라야 전진 할수 있는 '암봉 1,172m봉'이 다가 옵니다. ['1,172m암봉' 오르는 릿지 구간] 유일한 로프 릿지구간 급경사 ['1,172m암봉' 오르는 릿지 구간] 경사도가 거의 90도 [암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석교산'] "석교산"이라기 보다는 "화주봉"이 더 어울립니다. [암봉을 오르는 횐님들] 오르고 내려 가고...또 오르고, 또 내려 가고.... 이것이 우리들의 本業 [다시 뒤 돌아 본 '석교산'] 나무가지와 리본 그리고 "石橋山" 산을 만나고 싶어 권일 아련한 그대 찾아 '왜 왔냐'고 묻는다면 '보고싶어 그냥 나섰소' 라고 하겠네 곁에 오지 않는 님이여 하늘구름에 얼굴 숨기고 손자락 내려 반기나니 지친 인생길아 바위자락에 앉아 기다리며 물소리 새소리에 정담아 외롭지 않나보구려 ['1,172m암봉 정상] 오후 1시 "석교산"에서 약 40분이 걸려 "1,172m 암봉"에 올랐습니다. ['1,172m암봉' 정상에서 뒤돌아 본 '석교산'] "화주봉"에서 이곳 암봉까지 돌다리를 놓아 "石橋山"이라 했는가!~ "石橋山"이라는 명칭은 오히려 이 암봉에 붙여야 더 어울릴듯.... ['1,172m암봉'에서 바라보는 '삼도봉'] 먹구름이 몰려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대간길이 구름 속에 조금 보입니다. 이 봉우리에서 조망이 최고라고 하는데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라도 건진게 다행입니다. 조금 있으면 눈비가 쏟아져 앞을 분간도 못합니다 ['밀목재'로 가는 길]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고, 우회하며 20여분 전진 합니다. [옥토퍼스] 1시 21분 "1,172m 암봉"에서 20여분 전진하면 문어 같은 소나무를 만나고... [점심식사] 1시 22분 (식사시간 1시간) '문어 소나무'에서 조금 더 가면 "1,089.3m봉"이라고 생각되는 봉우리에서 점심을 먹고, 내친김에 훈제오리고기도 조금 구워 한잔하며 1시간 정도를 여기서 보냄니다. 진눈개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눈비 내리는 백두대간] 2시 22분 눈, 비, 진눈개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좋은 날만 있는게 아니지요 이런 날도 있어야 맑은 날이 더욱 빛납니다. [雲霧 속에 잠기는 백두대간] 이제부터 조망을 할수는 없습니다. 눈에 뵈는게 없으니 오로지 앞만 보고 전진 할 뿐..... [폐광터] 2시 39분 제가 이제까지 쓴 "백두대간 산행기"에는 "금 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운봉, 인월지방"을 지날 때는 "판소리 -흥부가"를 알려 드리며, "흥부"는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 때문에 대박이 터진게 아니고 "운봉, 인월" 자기 고향에서 '沙金鑛"을 발견하여 때부자가 된것이라고 알려 드린바 있습니다. 그리고 "나제통문"을 통과 할때도 "金鑛"때문에 "나제통문"이 일제시대에 뚤린 것이라고 알려 드린 바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문헌에 따르면 신라시대 때부터 이곳엔 금광이 많았답니다. 이곳 대간길에도 규모가 큰 "金鑛"이 있어 "우두령"이 한때 엄청 혼잡한 고개이기도 했답니다. 특히 이 아랫 마을인 '부항면 대야리'에는 일제시대에 금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크게 번성하였다는데, 어느 정도인가 하면, 요즘 말로 하자면 캬바레, 나이트까지 있었다네요 '폐광터' 아래 '폐금광"은 여기서 '삼도봉'까지 굴이 뚤려 있을 정도라고 하니 이곳 "백두대간" 속에는 오로지 금을 찾아서...동굴이 많이 뻥 뚤려 있을테지요 [밀목재] 3시 4분 "밀목재 密木嶺" '나무가 빽빽히 들어 서 있는 고개"라고 "밀목재"라고 했답니다. 그것을 한문으로 표기 할때 "密木嶺"이라고 단순 音譯한것이고.... ['밀목재'를 조금 지나 있는 이정표] 3시 7분 "밀목재"를 조금 지나 가면 '삼도봉' 까지 2.86km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 이정표에 매직으로 '밀목재'라고 누군가 표기해 놔서 여기가 "밀목재"로 오인하는 곳 ['삼마골재'로 가는 길] 추적 추적 내리는 진눈개비를 맞으며 '삼마골재'로 갑니다. 이런 날씨를 대비해서 산행준비는 항상 철저히 미리미리 해 두어야 합니다. [이정표] 3시 33분 '삼도봉 2.1km'라는 이정표를 다시 지나고.... [이정표와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 3시 39분 '삼도봉 1.95km'라는 이정표를 지나면 바로 '삼마골재'로 떨어 집니다. 이 삼각점이 "1,123.9m봉"을 알려 주는 삼각점 이었습니다. '삼마골재' 헬기장 윗 봉우리였던 것입니다. ['삼마골재'로 하산] 삼각점과 이정표가 함께 있었던 "1,123.9m봉"을 내려 갑니다. [삼마골재] 3시 57분 "1,123.9m봉"에서 18분 정도 내려 가면 "헬기장"과 "삼마골재"가 보이며. "삼도봉"이 구름 속에 뭍혀 있는 걸 볼수 있습니다. [삼마골재] 4시 2분 지난 11월 13일에 이곳에서 "물한리"로 내려 갔던 "삼마골재" 입니다. "우두령"에서 4시간 20분여만에 "삼마골재"에 도착했습니다. [삼마골재] 이곳까지 오를려면 일반인들은 땀을 많이 흘리며 고생스럽게 올라야 할텐데 다시 이곳에서 운동을 하라고 운동시설을 친절(?)하게 해 놨습니다. 지난 11월13일에 이곳에서 찍은 사진에는 '해인리' 마을의 전깃불이 켜지던 때였는데 오늘은 구름으로 보이질 않습니다. [이정표] 4시 5분 '부항면 해인리'까지 2.3km라고 알려 줍니다. 그리곤 "삼도봉"으로 올라 가는 나무 계단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해인리'로 내려 가는 급경삿길] '삼마골재'에서 '해인리'로 내려 가는 급경사 내리막은 약15분 정도 입니다. 그리곤 완만한 넓은 좋은 길이 열리는데.... ['해인리'로 내려 가는 완만한 넓은 길] 급경사 내리막은 약15분 정도 뿐이고 30분 정도는 완만한 잘 정비된 길입니다. "물한리"방향으로 하산하는 것보다 "해인리"로 내려 가는 게 시간도 덜 걸리고, 훨씬 더 편했습니다. 다음에 가실 분들에겐 이 길을 추천합니다. ['해인리' 산행 들날머리] 5시 6분 20분 정도 "삼마골"에서 또 한잔 더 하고 내려 오느라 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만, "삼마골재"에서 1시간이 걸려 하산을 합니다. 앞에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는 "삼도봉" 바로 아래 고개까지 올라 가는 길이더군요 '해인산장'에서 투숙하면 승용차로 "삼도봉" 아래 고개까지 데려다 준답니다. 아래 구글어스 참고 하세요 [해인산장] 대간꾼들에겐 유명한 "해인산장"이 바로 나옵니다. [해인산장 주인 - 김용원 산꾼] "해인산장" 주인이 반갑게 맞아 줍니다. 요즘은 시간이 없어 산행을 자주 못하는데 산을 좋아해서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고.. [해인산장 명함] 앞으로 가실 분들은 미리 연락하면 승용차로 픽업도 해주고, '삼도봉' 바로 아래까지 승용차로 올려 준답니다. [해인산장에서 뒷풀이] "해인산장"에서 뒷풀이를 했는데 경상도 서부지방의 유명 음식인 "돼지고기국"이 제공되었는데, 음식 불모지인 깅상도 음식 치고는 무척 맛있었습니다. [오가는 情] 오늘 뒷풀이 비용은 "박성환"선배가 책임져 주었습니다. 감사 드리며... '해인산장지기'로 부터 술잔을 받는 분이 "박성환"선배 ['해인리'로 내려 가며 뒤돌아본 백두대간] 눈, 비, 바람 속에서 대간13회차를 마치고 '해인산장'에서 약10분 정도 내려 갑니다 [해인리 마을회관 앞] 5시 35분 "해인리" 마을회관 앞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귀경합니다 오늘 구간은 이야기꺼리도 없고 구경꺼리도 없는 지루한 산행이었습니다. 雲霧로 조망까지 없어 더욱 갑갑했습니다만..... 이런 궂은 날도 있고, 그러다간 또 맑은 날도 있고.... 이렇게 대간길을 갑니다. ['삼마골재'에서 '해인리'까지 구글어스] "해인산장"에서 승용차로 오를 수있는 곳을 잘 보여 주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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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12회차] 덕산재-부항령-백수리산-삼도봉-삼마골재-물한계곡 2010년 11월 13(토) 구름 약간 맑음 "백두대간"을 시작한지 벌써 6개월이 지났습니다. 이제 "추풍령"에서 2010년 송년회를 할때가 다가 오고 있습니다. 산길을 걸으며 세월도 따라 그렇게 흐르고 있습니다. [산행도] 덕산재→5.2km→부항령→2.2km→백수리산→5.2km→삼도봉→0.9km→삼마골재→4.6km→물한리 [덕산재→12.6km→삼도봉→5km→물한리] 도상거리 : 대간 12.6km + 접속거리 5km = 17.6km 실산행거리 : 약22km [나제통문 羅濟通門앞 로타리] 오전 10시 25분 오늘의 산행 들머리인 '덕산재'로 올라 가다 "나제통문 羅濟通門"앞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무주 33景" 중에 으뜸으로 꼽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름으로만 보자면 이곳은 옛날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의 국경으로 지금의 "판문점" 같은 곳이었답니다. [나제통문 羅濟通門 휴게소] "무주 설천면 구천동"과 "무주 무풍면", 그리고 "경북 김천시"로 가는 갈림길인 이곳에 휴게소도 있고, 이 고을의 자랑거리들도 설치해 놨더군요 [나제통문 羅濟通門] "羅濟通門"은 정말로 옛 삼국시대에서 부터 있었던 것일까? "羅濟通門" 앞에는 개천이 흐르고 있어 "운수교 雲水橋"라는 다리를 건설해놨습니다. 터널을 뚫으면 바로 개천이 있는 이곳에 "터널"과 "다리"를 함께 놓을수 있는 기술이 그 옛날에 있었을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에서 국사 시간에 "나제통문"에 대해 공식적으로 배웠습니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다고......하지만 [나제통문 羅濟通門 김상수守門將] 羅濟通門 김상수守門將과 기념사진 한컷.... "羅濟通門", 즉 이 터널은 옛날 삼국시대에 뚫고, 다리를 놓은 것이 아닙니다. 이 터널과 다리를 비롯해 무주에서 김천으로 가는 도로를 개설한 기록은 무주군청지인 "적성지"를 보면 일제강점기 시대인 1910년경에 개설되었다고 기록으로 나와 있습니다. 백두대간 거창 김천 무주구간에는 金鑛이 많았습니다. 물론 현재는 폐광되었지만... 이런 鑛物과 임산물, 농산물을 쉽게 운송하기 위해 일제시대에 굴을 뚫고 다리를 놓은 것입니다. [羅濟通門과 雲水橋] 그렇다면 이 터널과 다리는 어떻게 "羅濟通門"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여 교과서에 까지 실리게 되었을까? 역사를 모르는 역사가들이 우리 역사를 엄청 엉터리로 기술한것이지요 또한 왠만한 잘못됬거나 불리한 기록은 일본놈들의 말살정책으로 핑개됩니다만.... 이것도 기록으로 나와 있습니다. 1963년에 "무주 구천동 33景"을 만들면서 무주군의 공무원들이 관광 목적으로 일방적으로 지은 이름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어느 학교 국사 선생님이 국사편찬위원회에 강력히 항의하여 지금은 교과서에서 "나제통문"이라는 것이 삭제되었습니다만 그런데도 역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금까지 그럴듯하게 사용되고 있으니 웃기지요? 하지만 저 산줄기와 개천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음은 틀림없습니다. 터널이 있는 산이 "석모산"이라는 산인데 저 산줄기 안쪽, 즉 "무풍면"으로 들어 가면 1,600년~1,7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주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전라도 속의 경상도"인 곳입니다. 이와 비슷한 곳은 우리가 이미 지나온 "남원 운봉, 인월지방"이라고 알려 드린바 있습니다. 또한 충청북도 영동군의 백두대간 근방도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곳이 많습니다. [김환태 문학 기념비] "訥人 金煥泰"-눌인 김환태 문학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무지 유명한 분입니다. 특히 "비평문학"의 선구자로 우리 문학역사에 큰 획을 그은 분이시죠 보성고 출신으로 "날개"를 쓴 "이상"이 보성고 한해 선배이고... 휘문고 출신의 "향수"를 쓴 "정지용"선생 등과 함께 일본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서울 '무학여고' 영어교사를 하며 문학 비평을 했는데, 아깝게도 36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김환태선생의 '호'입니다. 문학평론, 비평하는 사람이 말빨이 없으면 그 직업을 할수 있겠습니까? "訥"은 "말 더듬거릴 '눌'"인데, 문학평론가, 비평가가 스스로를 "말 더듬거리는 사람", 즉 "訥人"이라 한것이 재미있고 이채롭습니다 [의병장 강무경] "항일 독립 의병장 - 강 무경" (1879년~1910년) 일제침탈시대에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일제에 의해 사형 당하신 분으로 1962년에 '건국공로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어, 현재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 되 있다고 합니다. 독특한것은 "강무경 의병장"의 와이프가 당시 여자로서는 유일한 紅一點 의병으로 "양방매 梁芳梅"씨랍니다. 이 분은 오래 전도 아닌 1986년에 94세를 일기로 돌아 가시고 국립묘지에 남편인 '강무경 의병장'과 함께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덕산재' 碑石] 10시 55분 약간 늦은 시간에 오늘의 산행 들머리인 "덕산재 德山재"에 도착했습니다.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과 '경상북도 김천시 덕산면' 사이에 있는 "덕산재" "백두대간"임을 알리는 標石이 대간꾼들에게 새로운 감회로 다가 옵니다. 뒤로 대간 산줄기가 보입니다. [덕산재] "해발 644m"인 "덕산재"는 경북과 전북의 경계임을 알려 주는 표지판이 있습니다만,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은 옛날 삼국시대 "신라"지역이어서, 지금까지도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전라도 속의 경상도"라고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 [덕산재 이정표] 오전 11시 5분 덕산재→12.6km→삼도봉→5km→물한리 당일 산행으로는 다소 늦은 오전 11시 5분에 산행을 시작하므로 도상거리 17.6km는 녹녹한 거리가 아닙니다. 어두워져야 물한리에 도착할것을 예상하며 산행을 시작 합니다. ['덕산재'에서 '부항령'까지 구글어스] 이해를 돕기 위해 "덕산재"에서 "부항령"까지 구글어스를 먼저 보여 드림니다. ["833.7m봉" 오르는 길] "덕산재"의 高度가 644m이니 "833.7m봉"까지 약200m 고도를 높이며 오릅니다. ["833.7m봉] 11시 26분 "덕산재"에서 1km 된비알을 약20분 정도 오르면 "844.7m봉"에 오릅니다. ["833m봉" 갈림길] 11시 28분 ★길 주의★ "833.7m봉"에서 2분 정도 조금 더 전진하면 삼거리가 나옵니다. 느낌으로는 직진해야 할듯한 이곳에서 좌측으로 90도 꺽어 내려 갑니다. 길 주의해야하는 곳입니다. [폐광터 전망대] 11시 34분 "833.7m봉"에서 약5분 정도 가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이곳이 옛날에는 金을 캐내던 광산이 있던 곳이랍니다. 그래서 "폐광터 전망대"... 앞에서 언급한 "나제통문 羅濟通門"의 비밀이 이런 곳에서 풀립니다. ['폐광터 전망대'에서 조망] 전망대 데크에서 내려다 보니 '김천시 덕산면'이 한가로이 펼쳐집니다. 치열하게 싸우던 옛 신라와 백제는 사라져 잊혀져 가고... ['폐광터'에서 다음 봉우리로 가는 데크] '폐광터 전망대'에서 다음 봉우리까지 데크를 설치해 놨습니다. 산객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겠지만 별 의미없는...예산 낭비인듯... ['폐광터' 다음 봉우리에서 뒤돌아 본 "대덕산" "삼도봉"] 11시 38분 "폐광터 전망대" 윗 봉우리에 올라 뒤돌아 보니 지난 구간에 올랐던 "대덕산(투구봉)"과 "삼도봉(초점산)"이 가까이 보입니다. ['부항령'으로 가는 길] "폐광터 전망대"에서 "부항령"까지는 제법 멀었습니다. 1시간 20분 이상을 가야 합니다. ['부항령'으로 가며 뒤돌아 본 "덕유산 향적봉"과 스키장] 겨울 속으로 치닫고 있는 산속에서 보이는 것은 낙엽 뿐... 간간히 뒤돌아 보면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알수 있었습니다. 금년에는 추위가 빨리 왔다고,"무주 리조트"는 벌써 인공설을 뿌려 스키장을 개장했군요. 얼마전 저 스키루프를 트럭을 타고 내려 왔던 기억이 새록새록한데.... ['부항령' 800m 전 이정표] 덕산재에서 4.4km 부항령까지 800m 삼도봉까지 8.2km "덕산재"에서 "부항령"까지는 이정표가 잘 설치되 있습니다. 그러나 "부항령"에서 "삼도봉"까지는 이정표가 거의 없었습니다. [부항령 헬기장] 12시 51분 "부항령" 앞에는 헬기장이 있고, 아래에는 "삼도봉 터널"이 뚫려 있습니다. [부항령] 12시 52분 "덕산재"에서 1시간 46분이 걸려 도상거리 5.2km를 걸어 왔습니다. 이 고개는 "전북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 쑥병이마을"과 "경북 김천시 부항면 어전리 가목마을"을 잇는 고개랍니다. 현재는 "삼도봉 터널"이 뚫려 있어 이 고갯길은 그저 추억 속에만 있고 지나가는 대간꾼들이나 의미 부여를 하는 .....보잘것 없는 고개 [부항령 이정표] "부항령 釜項嶺" "가마솥 부 釜", "목덜미 항 項" 이 고개 아랫쪽 마을이 위치한 곳의 형상이 "가마솥" 같다 하여 "가매실"로 불리다가 한자인 "부항 釜項"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돼지고기 먹을 때 어떤 부위가 맛이 있던가요? "항정살" 가끔 먹지요? "항정살"이라는 부위는 "윗 목덜미 살"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로 "목살"이라고 하죠 "부항령"을 지나다가 생각이 나서 한자 공부 한번 하고 지나 갑니다. ㅎㅎ [삼도봉 터널] 당연히 "부항령 터널"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있으니 양쪽 마을이 서로 합의하여 "삼도봉 터널"이라고 했다는군요. 사실 여기서 "삼도봉"까지는 7.4km를 더 가야 하는데도.... 이렇게 서로 상대방을 이해해 주면 모든 문제는 쉽게 풀리는데.... ['부항령'에서 '삼도봉'까지 구글어스] "부항령"에서 "삼도봉"까지 구글어스입니다. 바로 앞 "960m봉"의 우회길을 알아 두면 먼길을 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부항령'에서 '960m봉' 가는 길] 1시 5분 '부항령'에서 800m 10분 정도 전진하면 있는 이정표를 지나 오르막을 조금 오르면... ['960m봉'과 우회 갈림길] 1시 12분 ★길 선택★ "부항령"에서 약20분 정도 오르막을 오르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 좌측 나무계단으로 올라 가면 "960m봉"을 올랐다가 "백수리산"으로 가고, 우측으로 가면 "960m봉" 산옆구리를 따라 쉽게 "백수리산"으로 갈수 있습니다. "960m봉"에는 정상석은 없고 이정표만 하나 있으며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백수리산'으로 오르는 길] "백수리산"으로 올라 갑니다. ['백수리산' 정상 헬기장] 1시 52분 "부항령"에서 약1시간만에 "백수리산"에 올랐습니다. "덕산재"에서는 약2시간 45분이 걸렸습니다. "백수리산 정상"은 헬기장으로 매우 넓은 공간이 있어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합니다. 약 1시간 점심식사 ['백수리산' 정상석] "1,034m 높이" 눈 덮힌 이 산의 모양새가 멀리서 볼때 "흰 수리"로 보여 지어진 이름이라는데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독수리-禿수리"의 "독-禿"은 "대머리 독禿"이지요 "수리"라는 새 종류 중에 "대머리 수리'"독수리"이니까 "백수리산"은 조금 애매한 느낌을 주는 산 이름입니다. 고유명사이니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독수리"를 의미하지 않을까..... ['백수리산' 정상에서 뒤돌아 조망]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山群들 ['백수리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가야할 대간길] 햐~! 펼쳐지는 백두대간! 앞으로 가야 할 대간길이 스카이 라인을 이룹니다. "삼도봉"을 지나 "삼마골재"에서 "물한리"로 넘어 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박석산"을 잘 보아 두기 바람니다. "박석산"에는 삼각점만 있을 뿐 정상석이 없기에 모르고 그냥 지나칠수 있습니다. 2시 50분에 "백수리산"을 출발하여 1시간 15분간 높고 낮은 산봉우리를 넘고 넘어 "박석산"으로 갑니다. ['박석산' 1,170.4m] 4시 5분 "1,170.4m 높이" 정상석도 없고 삼각점만 있는 산봉우리인 "박석산"입니다. "백수리산"에서 1시간 15분이 걸려 "박석산"에 올랐습니다. ['박석산'에서 뒤돌아 본 '대간길'] 햐~~~ 오늘 지나온 백두대간 산줄기가 "덕산재"에서 부터 한눈에 들어 옵니다. 그리고 지난 구간이었던 "대덕산"과 "삼도봉"도 뚜렸하며, "가야산"까지 보입니다. ['박석산'을 내려 가며 바라본 '석기봉'과 '민주지산'] 진행 방향으로는 '민주지산"과 "석기봉"이 보이고, 바로 앞에는 "초원지대"가 보입니다. ['초원지대' 데크] 4시 11분 "박석산"에서 6분을 내려 가면 "초원지대" 데크가 나타나는데.... 일반 등산객도 없는 이곳에 편의 시설을 해 놨습니다. ['초원지대' 데크를 지나와 뒤돌아 본 '박석산'] "초원지대" 데크를 지나와 뒤돌아 보았습니다. "박석산"을 확실히 조망할수 잇습니다. [다가 오는 '삼도봉'] "삼도봉"이 점점 가까워 집니다. [해인리 조망] 우측 동쪽으로는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가 조망되고.... 대간꾼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해인산장"이 있는 곳입니다. ['삼도봉'] 5시 "삼도봉"과 다음 구간에 가야하는 "1,123.9m봉"이 보입니다. [해인리 갈림길] 5시 9분 "삼도봉"을 500m 남겨 두고 삼거리가 있습니다. 우측으로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를 오가는 안부 입니다. [해인리 갈림길 안내판들] "박석산"에서 약1시간이 걸려서 이곳에 왔습니다. 삼도봉까지는 약500m로서 약10분이 걸립니다. [노을에 물드는 '삼도봉'] "해인리" 갈림길에서 "삼도봉"으로 올라 갑니다 벌써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며, "삼도봉"이 황금색으로 변합니다. ['삼도봉'으로 오르며 뒤돌아 조망한 "덕유산"] 뒤돌아 보며 "덕유산"을 조망합니다. 철 이른 스키장의 눈 때문에 "덕유산"을 어느 곳에서나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夕陽에 물드는 山群들 ['삼도봉'으로 오르며 뒤돌아 조망한 지나온 길] 정말 아름답습니다. 백두대간의 이런 광경을 보기 위해 고생스런 발길을 옮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화자찬입니다만, 사진 촬영도 잘했지요? ㅎㅎ [삼도봉 정상] 5시 20분 "1,176m높이"의 삼도봉. "덕산재"에서 오전11시5분에 출발했으니 6시간15분이 걸려 "삼도봉"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보시는바와 같이 평평한 정상에 "삼도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삼도탑 三道塔] 노을에 물드는 "삼도탑 三道塔"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남한의 "北道"가 모두 만나는 유일한 곳입니다. 경상북도, 전라북도, 충청북도. 그래서인지 대간길에 "삼도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많이 있지만 이곳 "삼도봉"을 가장 의미 깊은 봉우리로 선정하여 "삼도탑 三道塔"를 세웠나 봅니다. [삼도봉 정상에서 내려다 본 '해인리'] 동쪽으로는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가 보이고.... [삼도봉 정상에서 뒤돌아본 '지나온 길'] 아!~ 언제 다시 올것인가..... 피카소도 모네도 고흐도 그 누구도 이 광경을 그릴수 있겠는가 [노을 속의 '석기봉'과 '민주지산'] "삼도봉"에서 "석기봉"까지는 1.4km "민주지산"까지는 4.3km "석기봉"은 주변 어느 곳에서나 알아 볼수 있는 삼각형 모양의 뾰쪽한 봉우리여서 유명하고 '민주지산"은 일반 등산로로도 유명한 곳이지요. [삼도봉 이정표와 '석기봉' '민주지산'] 카메라 노출을 달리해서 "석기봉"과 "민주지산"을 촬영합니다. "민주지산 岷周之山, 1,242m" 한자로만 풀이 하자면 "岷"은 "우뚝 우뚝 솟은 산 봉우리"라는 의미이고, "周"는 "두루다"라는 의미이니, 한마디로 "첩첩산중"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동국여지승람'등 고서에는 "白雲山"이라고 기록되 있습니다만..... 그 이후 삼도봉에서 각호봉까지의 산세가 민두름(밋밋)하다고 해서 '민두름산'이라고 부르던 것을 일제시대 때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岷周之山으로 단순 표기하여 원래의 의미와는 다른 이름으로 표기되었답니다. 그래서 이 지방 지명위원회에서 개명을 검토하고 있다는군요 [노을에 물들은 三道塔] 노을에 젖은 삼도탑에 걸터앉아 잠시 감회에 젖어 봅니다. 우리 선조들은 서로 도우며 살지 않고 서로 흘뜯으며 싸우며 빼앗을려고만 했을까... 극단적으론 쭝국놈들과 연합까지 해서 동족을 쳐 부술려고 했을까 전쟁 할 힘으로 농지를 개간하여 식량을 증산하고 서로의 장점을 본받으며 도우며 살았으면 더욱 잘 살수 있지 않았을까...... 피 흘리며 싸워 먹고 살려는 심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니...닝기리~ "三道和合塔" 앞에 걸터 앉으니 씨잘데 없는 생각이 먼저 드는군요 ['삼도봉'에서 '물한리'까지 구글어스] "삼도봉"에서 "삼마골재"를 지나 "물한리"까지의 구글어스입니다. ['삼마골재'로 내려 가는 길] 5시 26분에 "삼도봉" 정상을 떠나 "삼마골재"로 내려 갑니다. 경사가 가파릅니다. [삼마골재] 5시 42분 "삼도봉"에서 "삼마골재"까지는 약900m라고 표시되 있습니다. 15분 정도 걸려 "삼마골재"로 내려 갑니다. [삼마골재] 5시 44분 이렇게 높은 곳에 체육시설까지 설치해 놨습니다. 저물어 가는 "삼마골재"에서 전기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삼마골"의 "해인리"가 보입니다. 다음 구간에는 "우두령"에서 이곳으로 와 저 아래 "해인리"로 하산 할 예정입니다. ['미나미골'로 내려 가는 길] "충청북도 영동군 물한리로 내려 갑니다. [물한계곡] 6시 24분 어둠 속에서도 "물한계곡"에 발을 담구고..... ['민주지산' 등산로] 6시 40분 민주지산 일반 등산로 입구도 지나며 어둠을 뚫고 하산합니다. ['물한계곡' 입구] 6시 56분 "물한계곡 표지석"을 지나 주차장 근처 음식점에 내려 오니 7시 5분. "덕산재"에서 8시간이 걸려 완주 했습니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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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 속리산 구간]  
    늘재-692.2m봉-밤재-문장대-문수봉-신선대-
    비로봉-천왕봉-725m봉-피앗재-상주 화북면 상오2리  
 
     2010년 10월 29일~30일(토) 맑음

     [대간 '속리산 구간' 산행도]

    늘재-692.2m봉-밤재-문장대-문수봉-신선대-
    비로봉-천왕봉-725m봉-피앗재-상주 화북면 상오2리
     1. 마루금 도상거리 : 19.42km
     2. 접속거리 : 약5km (피앗재 →상오2리)
     3. 실산행거리 : 약30km
     4. 산행시간 : 12시간 20분 (휴식, 식사시간 포함)

     [대간 '속리산 구간' 구글어스]
     이해를 돕기 위해 전체적인 산행구간을 구글어스로 보여 드립니다
     구글어스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늘재"에서 "피앗재"까지 엄청 긴 거리 입니다만,
     거기에 "피앗재"에서 "상오2리"까지 하산하는 코스가 무척 길어 막판엔 고생이 많았습니다.

     [늘재] 새벽 4시 10분
     서울에서는 비교적 가까운 "늘재"에 도착했습니다.
     "늘재"는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와 '입석리' 사이에 있습니다.
     백두대간이 충청북도와 경상북도를 나누고 있을거라는 예상을 깨고 양쪽이
     "경상북도 상주시"였으며, "충북 괴산군"은 조금 더 북진하여 있더군요.

     [늘재] 새벽 4시 10분
     "분수령 分水嶺"
     우리가 걷는 백두대간은 모두 "분수령"입니다만, 이런 고개에 서면 더욱 가슴 뭉클합니다.
     이 고개에 떨어지는 빗물은 자칫 잘못하면 정말 운명을 달리 합니다.
     북쪽으로 떨어 지는 빗물은 남한강을 구비구비 흘러 '서울'을 관통하고, 
     남북 휴전선이 있는 강화도 앞바다로 흘러 갑니다.
     하지만 1mm도 않되는 차이로 남쪽에 떨어지는 빗물은 낙동강을 타고,
     "낙동정맥"의 끝이기도한 '부산'의 앞 바다 '다대포'로 갑니다

     [산행]
     [백두대간 속리산 구간]은 거리도 거리이고, 山勢도 험해 당일로 산행하기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두번으로 나누어 진행하는것은 "속리산을 두번" 올라야 하기에 시간과 경비가
     더욱 많이 듭니다. 사람을 두번 죽이는 일이 됩니다. ㅎ
     또한 겨울철에 이 구간을 간다는 것은 위험구간이 많아 만수무강에 지장을 줄수 있습니다.
     그래서 늦은 가을이지만 무박으로 [백두대간 속리산 구간]을 해 치우기로 했습니다.
     무박 산행에 많은 경험이 있는듯한 횐님들인듯 씩씩하게 잘도 걷습니다.

     [692.2m봉] 5시 26분
     "늘재"를 출발한지 1시간 15분 정도만에 "692.2m봉"에 올랐습니다.
     어둠 속이라 정상부 암벽 통과 사진등은 촬영을 못했습니다.
     우려와는 달리 날씨는 좋았습니다.
     쌀쌀하리라 예상했는데 제법 훈풍이 부는듯, 오히려 웃옷들을 벗어야 할 정도로 
     "속리산 俗離山"으로 가는 大幹길은 즐겁기만 했습니다.

     ['밤재'로 하산] 5시 44분
     벌써부터 바위들이 가는 길을 어렵게 만들었는데....

     [밤재] 6시 10분
     정확히 2시간이 걸려 "늘재"에서 "밤재"에 도착했습니다.
     밤나무가 많아 "밤재"라고도 한다지만, 실제는 오후가 되면 '속리산'의 높이에 막혀
     태양이 금새 넘어가 깜깜해 진다고 "밤재"라고 한다는 얘기가 더 설덕력이 있습니다.

     ['늘재'→'692.2m봉'→'밤재'→'문장대' 방향 구글어스]
     오늘 산행의 핵심 구간이 이곳 "밤재"에서 "문장대 文藏臺"까지입니다.
     그래서 구글어스를 확대해서 깜깜한 어둠 속 대간길을 먼저 보여 드립니다.
     지금까지 걸어 온 "늘재"에서 여기까지도 제법 긴 거리이지요?

     [黎明] 6시 50분
     "밤재"에서 약40분 정도 완만한 경사의 대간길을 걸어 오르니 여명이 밝아 옵니다.
     "여명 黎明"이라는 단어를 저는 좋아 합니다.
     "어두울 黎" "밝을 明"을 쓰는 얼핏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단어인듯 느껴집니다만
     죽음같은 어둠을 밝혀 주는 "희망希望의 빛"이기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 빛같습니다. 

     [日出] 7시 3분
     죽음같은 어둠을 밝혀 주는 "희망希望의 빛" - 태양이 솟아 오릅니다.
     매일 뜨는 태양입니다만, 속리산에서 맞는 日出은 더욱 감명스럽습니다.
     이제 언제 다시 속리산에서 日出을 볼까~ 아!~
     그리고 태양이 솟아 오르는 산이 "도장산"
     안개 밑에 깔려있는 마을은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입니다.
     오늘 산행을 마치고 저 근처에서 뒷풀이를 합니다.

     [칠형제봉 능선] 7시 8분
     30억년의 영겁을 벗고 단 하루도 변함없이 솟아 오른 태양 덕분에
     아름다운 "俗離山 七兄弟峰 稜線"이 갑자기 다가오며 화려한 장관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문장대'로 오르는 암릉코스]
           아름다운 俗離山 七兄弟峰 稜線을 모두 감상하기도 전에 앞을 가로 막는 岩稜
           백두대간 길에서 만날수 있는 흔치않은 암릉구간입니다.

     [동굴] 7시 36분
     당신은 스스로 지위가 높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에선 아무 소용 없습니다.
     모두 머리를 숙이고 기어 올라야 합니다.
     産苦의 아픔을 느끼며 빠져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태어 날때 처럼.....
     이곳에는 이런 다양한 "구멍"이 여럿 있더군요. ㅎ

     [릿지]
     "구멍"을 빠져 나오면 다시 세상을 기어 올라야 합니다.
     우리네 인생살이하고 비슷한게 산을 오르는 일이지요?
     오르고 난 다음에는 다시 내려 가는것도..... 아!~ 人生.....

     [문장대] 7시 28분
     첫번째 바위群을 기어 오르고 빠져 나오니, 그 고통을 보상이라도 해 주는듯
     "속리산 문장대 俗離山 文藏臺"가 춤을 추며 화려한 몸체를 펼쳐 보여 줍니다.
             
             [무시무시한 암릉 구간]
             바위 덩어리들이 보기에도 무시무시하죠?
             바위에 붙어 있는 식물들-이끼들인가요? 질긴 생명력을 자랑합니다.
             저 바위 틈 사이로, 옆으로, 위로 기어 다녀야 합니다.
             산꾼들은 이런 바위群을 무서워 하기는 커녕 오히려 잼있다고 하네요...

     [뒤돌아 본 백두대간]
     두번째 암릉구간을 기어 올라 뒤돌아 봤습니다.
     이제서야 오늘 우리가 어둠을 뚫고 걸어 온 旅路가 선명히 보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가야할 "청화산"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상주시 화북면 속리산 탐방소-성불사]
     오늘 산행사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입니다. 
     색감과 구도까지 꽤 괜찮죠? ㅎㅎ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서 속리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는 계곡입니다.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성불사"가 열반의 세계에 있는듯하고....
     조금전 日出이 있었던 "도장산"은 안개에 동양화처럼 변하고....

     [릿지]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며 잠시 감상에 잠겼다가 다시 오름짓을 합니다.
     사람들의 통행이 많지 않아서 처녀지 같은 속리산 문장대 오르는 登路입니다.

     [ㅎㅎ]
     이 구간은 장난이 아닙니다.
     겨울철에는 이 구간을 도져히 통과 할수 없을 것입니다.
     거리는 별루이나 이런 구간이 대부분이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밤재"에서 "문장대"까지 3시간이 걸렸으니까요

     [문장대] 8시
     또 하나의 암릉구간을 밑으로 위로 기어 오르니 "문장대"가 성큼 다가 옵니다.
     우측으로는 "관음봉"이 들러리를 서며....

     [문장대 오르는 길]
     "S자"로 지그재그로 능선을 기며 걸으며 매달리며 올라 갑니다.
     "문장대"가 오른쪽에 보였다가 왼쪽에 보였다가 하면서....

     [백두대간...]
     아~! 백두대간은 이렇게 우리를 잡아 당기는 힘이 있는가 봅니다.
     "속리산"
     진정 속세를 벗어 나는 天上의 나라인가!~
             
             [앙마팀들의 결속력]
              '앙마팀'들의 산행에 대한 愛情은 남다르고, 특히 결속력은 언제나 돋보입니다.
              서로 서로 도우며 위험한 암릉구간을 헤쳐 나갑니다.
             
             [나무 오르기]
              암릉구간이라고 바위만 오르는게 아닙니다.
              이 구간에서 저 나무가 없었다면 '백두대간'은 이어지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ㅎㅎ
              정말 절묘한 곳에 자라고 있는 나무, 저 나무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릿지] 9시 50분
         기면서 오르면서 낑낑대고 오르고 또 오르지만 그 끝은 어디인가....
         신비의 동굴을 뚫고 오르는 듯합니다.

     [노익장]
     우리 팀의 큰형님 7학년4반
     우리는 힘들다는 말을 그 앞에선 할수 없습니다.
     장장 30여km의 무박 산행에서 한치의 흩트러짐 없이 젊은이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암릉]
     밑으로 위로 옆으로...기며 돌며 오르며 .....

     [奇岩怪石]
     동굴같은 암릉구간을 벗어 나니 산봉우리의 奇岩怪石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속리산의 상층부는 벌써 겨울이 왔나 봅니다.
     나무들은 모두 옷을 벗고 겨울잠을 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속리산 주능선]
     암벽을 릿지를 하며 오르니 드디어 "속리산 주능선"이 나옵니다
     먼저 암봉이 우리에게 인사를 합니다.
     "올라 오느라고 수고 했어요~"
     "이제부터 편히 속세를 떠나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가세요~"

     ['문장대 헬기장'에서 올려다 본 '문장대'] 9시 17분
     "늘재"에서 다섯시간, "밤재"에서 세시간이 걸려 "문장대"에 올랐습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일반 등산객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문장대 文藏臺] 9시 20분
     "俗離山"을 대표하는 봉우리는 "天王峰"이 아니라 "文藏臺"입니다.
     높이가 4m 차이가 나 최고봉이라는 타이틀을 "天王峰"에게 주었지만, 
     아름다움이라던가 조망은 "文藏臺"가 최고 입니다.

     [文藏臺 정상]
     文藏臺 정상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앞 사진에서 "文藏臺"에 대한 설명을 공식적으로 해 놨습니다.
     "세조"가 '삼강오륜'이라는 책 한권을 하루 종일 이곳에서 읽었다"고 "文藏臺"라 한다고...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천인공로할 폐륜아가 여기서 '삼강오륜'이라는 책을
     하루 종일 읽어?  쬐끔이라도 죄책감을 느꼈단 말인가...
     사육신 생육신등 모든 충신들을 몰아 내고, 형제들까지 모두 역적을 만들며 왕위에 오른 "세조".
     "장 藏"이라는 한자는 "숨기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입니다.
     위 사진 속의 설명에서도 나와 있다시피 "구름에 숨겨진 암봉" - "雲藏臺"라는 이름이 오리지날.
     "文藏臺""삼강오륜 三綱五倫"이라는 책이 숨겨져 있는 곳이라고 해석해야 마땅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지켜야 할 세가지 "道德"과, 다섯가지 "道理"가 깃들여 있는 산봉우리.
     이렇게 설명을 해야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라고 '파란문'은 강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종대왕'이 그렇게 신신당부 했던 '단종' 왕위 계승을 삼촌인 '수양대군'이 역모로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며 우리 역사책을 더렵혔으니..
     폐륜아 "수양대군-세조"는 마땅히 이곳에 올라 "三綱五倫"을 읽고 반성해야 했을 것입니다.

     
     [文藏臺 정상에서 바라보는 남쪽 방향 "속리산 주능선"]
     별도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역광이라 사진이 어둡습니다만....
     사진과 안내판을 참고 하시며 감상해 보세요.
     웅장함이나 규모는 비교 할수 없지만, 그래도 설악산의 "공룡능선"과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文藏臺 정상에서 바라보는 북쪽방향 "관음봉, 묘봉, 상학봉"]
     "속리산 종주 코스"로 일명 "충북알프스"라고도 불리는 코스의 북쪽 들날머리인 
     신정리 "상학봉"과 '묘봉", "관음봉"이 알프스처럼 펼쳐지며 한눈에 들어 옵니다.
     참고로 "충북알프스"는 "상학봉에서 속리산 주능선을 지나 "형제봉", "구병산" 서원리까지
     약44km 코스 라고 합니다.

     [文藏臺 정상에서 바라보는 동쪽 방향 "늘재, 청화산"]
     "아 백두대간!~"
     지금까지 새벽 4시부터 "늘재"에서부터 어둠을 둟고 올라 온 백두대간이 지도처럼 펼쳐집니다.

     [文藏臺 정상에서 바라보는  동남쪽 방향 "칠형제봉능선"]
     동남쪽으로는 "칠형제봉"이 있는 능선이 금강산 만물상처럼 솟아 있고...

     [文藏臺 정상 웅덩이]
     文藏臺 정상에는 큰 웅덩이가 있으며 마르지 않는 물이 고여 있습니다.
     "박찬선씨"가 쓴 글에는 문장대 정상의 이 웅덩이가 "알이 부화한 태초 생명 탄생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웅덩이라 하고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의미부여를 하자구요

     [文藏臺 정상에서 내려다 본 쉼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규모가 큰 매점이 있었는데 모두 철거되고
     이동통신중계탑과 관련 부속 건물만이 남아 있습니다. 
     저 건물까지 철거 해버리고 중계탑도 저쪽 능선으로 옮기시지...한결 쌈빡해 질텐데..
     뒤로 공룡 등지느르미 같은 속리산 주능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벽 4시부터 5시간을 암릉길로 힘들게 올라 왔는데, 아직도 7시간을 더 가야 합니다.

     [속리산 문장대]
     여기에는 "문장대"에 대한 설명이 또 다릅니다.
     "세조"가 여길 올라 詩를 지었다고 "文藏臺"라고 한다네요.
     제가 위에서 설명 한게 제일 그럴듯 하지요? 잊었다구요? 다시 가서 읽어 보세요

     [문장대-법주사 안부]
     "법주사"에서 "문장대"로 바로 오르는 登路 안부가 있는 곳
      이 근처에서 약35분간 아침 식사를 하고 출발합니다.

     ['문장대'에서 '천왕봉'까지 구글어스]
     '문장대'에서 '천왕봉'까지 구글어스입니다.
     "천왕봉"에서 우측으로 뻗어 가는 "한남금북정맥"을 의미있게 보세요

     [법주사 안부 위 암봉] 10시 9분
     약35분간 아침식사를 하고 "속리산 주능선"으로 출발합니다.
     옛 매점이 있던 곳은 말끔히 정리되고 

     ['문수봉'에서 뒤돌아 본 '문장대] 10시 18분
     "문수봉"은 옆으로 우회해서 돌아 가기에 "문수봉 정상"에는 올라 가지 못했습니다.
     "문수봉" 옆구리에서 뒤돌아 본 "문장대"의 모습입니다.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세조"는 "삼강오륜"을 저 봉우리에 올라
     하루 종일 읽어도 모자르고 모자랐을 것입니다.
     "三綱" - "君爲臣綱, 夫爲婦綱, 父爲子綱"
      임금과 신하, 부부지간, 부모와 자식간에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道理)
     "五倫' - 君臣有義, 父子有親,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도덕(道德)에 있어서 기본(基本)이 되는 다섯가지의 인륜(人倫)

     ['문수봉'에서 바라본 '신선대,비로봉,천왕봉']
     이제 멀게만 보이는 저 능선 속으로 들어 갑니다.

     ['신선대'로 오르며 뒤돌아 본 '문수봉', '문장대'] 10시 28분
     '문수봉"을 지나 "신선대 神仙臺"로 오르며 뒤돌아 보았습니다.
     "문수봉 文殊峰"과 '문장대'가 또 다른 모양으로 느껴 집니다.

     ['신선대' 쉼터 매점] 10시 36분                   [막걸리와 안주]
     문장대 아래 매점은 철거 되어 자연미를 살리고 있는데,
     '신선대' 매점은 '법주사' 소유라고 철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매점은 '법주사'에게 세 들어 영업을 하고 있다는군요.
     이나 저나 무지 무지 비싸게 받더군요. 전→만원, 막걸리→칠천원

     ['신선대'쉼터에서 뒤돌아 본 '문장대']
     '신선대 매점'에서 뒤돌아 본 '문장대'와 '문수봉'
     멋있나요?
     "속리산"에는 여덟개의 "대 臺"가 있는데,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신선대, 봉황대, 산호대

     ['신선대'쉼터에서 바라본 "신선대"와 "천왕봉"]
     실제 "신선대 神仙臺"는 매점에서 조금 더 위에 있습니다.
     저 꼭대기에는 올라 가지 않고 옆으로 지나 갑니다
     "천왕봉"이 점점 가까워 지고 있습니다.

     [신선대 이정표]
     '신선대 매점' 봉우리에 있는 이정표 입니다.

     ['경업대' 갈림길] 10시 54분
     신선대 매점 봉우리에서 조금 내려 오면 바로 "경업대" 갈림길이 나옵니다.
     '법주사'에서 '경업대'를 거쳐 올라 오는 登路입니다.
     '임경업 장군'에 대해서는 모두 잘 알지요? 몰라도 아는 척 하시고...그래서 생략하고....
     그런데 "임경업 장군'의 와이프 이야기는 아시나요?  거의 모르지요? ㅎㅎ
     요런걸 주로 꺼내서 알려 주는게 '파란문'의 특기이지요? ㅎㅎ
     '임경업 장군'의 와이프가 "조강지처 糟糠之妻"로 아주 유명합니다.
     '임경업 장군'이 청나라 군대에 붙잡혀 압송되는 과정에 금교역이라는 곳에서 탈출을 합니다.
     '임경업 장군'이 탈출하여 도망 가버리니 청나라 군부는 성질이 더럽게 났습니다.
     그래서 '임경업 장군'의 와이프를 붙잡아 심양으로 끌고 가서 '임경업의 거처'를 대라고 
     고문을 했답니다. 그러나, 임경업 장군의 와이프는 
     “우리 주인은 대명(大明)의 충신이요, 나는 그 충신의 아내이다. 
      오랑캐의 옥중에서 욕을 보며 남편의 충절을 욕보일 수가 있는가?”라고 하며 
      품에서 칼을 꺼내어 자결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내 와이프는 이런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할까...??  궁금
      설마 "나는 살고 넌...~"라고 하지는 않을까? ㅎㅎ

     ['경업대' 갈림길 현위치]
     앞으로 속리산을 가실 분들은 이 안내도를 참고하면 아주 좋을 듯 합니다.
     법주사 → 문장대 : 5.8km
     법주사 → 신선대 : 6.2km
     법주사 → 비로봉 : 5.7km

     [법주사 방향에서 바라본 '속리산 주능선' 구글어스]
     법주사 방향에서 바라보는 속리산 구글어스입니다.
     이렇게 보니 '신선대'가 제일 멀군요.
     전체적으로 이해 하기 쉽죠?

     [기암괴석]
     '우럭 바위"
     '우럭'처럼 보이나요?
     제가 본 "우럭바위" 중에는 서산에 있는 "팔봉산"의 "우럭바위"가 최고 인듯..

     ['신선대'를 지나와 뒤돌아본 '神仙臺'] 11시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완전히 다릅니다.

     ['신선대'에서 '비로봉'으로 가는 "속리산 주능선길"]
     "속리산 주능선길"은 암릉길도 있고, 산죽길도 있고, 계단도 있고...
     다양합니다.

     [石門] 11시 24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비로봉"인듯....확실치 않음..누가 좀 알려주삼
        
        [비로봉]
        石門을 나와 뒤돌아 본 石門.
        이 봉우리가 "비로봉"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암괴석들이 즐비 합니다.

     [토끼바위]
     육중한 암봉 위에 토끼 한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비로봉에서 바라보는 '천왕봉'] 11시 29분
     "천왕봉"이 성큼 성큼 다가 옵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암봉에 유명한 "천황석문 天皇石門"이 있습니다.

     [입석]
     가는 방향 좌측으로는 암봉들이 솟아 있고...

      ['천황석문'으로 가며 뒤돌아 본 '비로봉']
     뒤돌아 보니 "비로봉"이 새로운 모양으로 보입니다.

     ['천황석문'으로 가는 길]
     天皇石門이 있는 암봉에 다가 갑니다.

     [천황석문 天皇石門] 11시 35분
     "천황석문 天皇石門"에 도착 했습니다.
     일명 "通天門"이라고도 한답니다.
     이곳 안내 이정표에 "천왕"이 아닌 "천황"이라고 써놨더군요.

     [천황석문 天皇石門]
     "천황석문 天皇石門"을 통과 합니다.
     제법 넓어 통과하는데 불편하지 않습니다.

     ['상고암' 갈림길] 11ㅣ 44분
     "천황석문 天皇石門"을 지나 10분쯤 가니 "상고암 갈림길"이 나옵니다.
     '법주사'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최단코스

     [천왕봉 가는 길]
     '상고암 갈림길"을 지나 "천왕봉"으로 향합니다.
     "비로봉"을 경계로 이쪽은 肉山입니다.

     [천왕봉] 12시 4분
     헬기장을 하나 지나고 "천왕봉 정상"에 다가 갑니다.

     [천왕봉 정상] 12시 6분
     속리산이라는 명성에 비해 비교적 초라한 정상석이 있는 "천왕봉"에 도착했습니다.
     "문장대"에서 약2시간이 걸렸고, "늘재"에서는 아침식사 시간을 합쳐 8시간이 걸렸습니다.
     앞으로도 4시간 이상을 가야 합니다.
                    
                    [천왕봉 정상석]
                    다른 곳에는 "천황봉 天皇峰"이라고 표기되 있습니다만,
                    훌륭하신 민족주의자 들인지, 피해망상증에 걸린 사람들인지, 이들이 앞장 서서
                    쪽바리 식민지 시대의 잔재라고 "천왕봉 天王峰"으로 고쳤답니다.
                    "1,058m 높이
                    "문장대"보다 4m 높아 속리산의 최고봉이 되었습니다만, 
                    "문장대"와 비교 하면 수려함이 훨씬 덜합니다.
                    그래서 폐륜아 '세조'도 "천왕봉"이 아닌, "문장대"에 올라 
                    '삼강오륜 三綱五倫'을 하루 종일 읽었나 봅니다.
                   [한남금북정맥]의 분기봉이란건 기억하고 가야죠?
                   즉, [낙동강] [금강] [한강]이 발원하는 중요한 分水峰이니까요

     [천왕봉 정상에서 기념사진]
     오늘 함께한 산행 횐님들이 흩어져 반도 안되는 횐님들이 모여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천왕봉 정상]
     북동쪽으로는 오늘 새벽 출발했던 "늘재"와 그 뒤의 "청화산"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뒤로 '조항산'. '대야산"이 보입니다.

     ['천왕봉 정상'에서 뒤돌아 본 "속리산 주능선"]
     "문장대"에서 "천왕봉"까지 장엄한 "속세와 이별하는 俗離山 主稜線"이
     "백두대간 속리산 구간"을 뽐내며 繡놓습니다.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별도 액자에 담았습니다.

     ['천왕봉 정상'에서 바라본 서쪽 "법주사"방향]
     '천왕봉' 정상에서 '법주사"방향을 내려다 보지 않고는 "속리산'에 갔다 왔다고 말할수 없지요
     주차장에서 천왕봉까지의 山勢가 거침없이 보여집니다.
     속리산의 모든 궁금증이 해소 되었습니까?
     전체적인 위치를 가늠 할수 있지요?

     ['천왕봉 정상'에서 바라본 남쪽 "형제봉" 방향]
     이제 오늘 가야할 대간길이 다시 펼쳐집니다.
     "충북알프스 구간"의 남쪽 구간이기도 합니다.
     "형제봉"을 지나 "갈령"까지 갈려고 했습니다만, 너무 많이 걸어서 "피앗재"에서
     "상주시 화북면 상오2리"로 탈출하기로 합니다.

     ['천왕봉'에서 '형제봉'까지 구글어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천왕봉"은 三水界峰으로 유명합니다.
     '백두대간'에서 "한남금북정맥"이 分岐하여, 한강, 낙동강, 금강으로 나누어지는
     分水峰이 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地理에 대한 공부는 이렇게 해야 머리에 쏙쏙 들어 오게 할수 있지요? ㅎㅎ

     ['천왕봉 정상'에서 '형제봉'방향으로 하산] 12시 43분
    "속리산 천왕봉"에서 급경사 내리막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 갑니다.

     ['천왕봉'에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와 뒤돌아 본 '천왕봉'] 12시 54분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와 "천왕봉"을 뒤돌아 봅니다,
     무척 가파르지요?
     이쪽에서 올려다 보니 "천왕봉"도 岩峰이군요.
         
         ['천왕봉' 아래 안부 현위치]
         급경사를 내려와 완만한 능선에 도달하면 안부가 있고, 이런 안내판이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속리산 국립공원의 핵심"인가 봅니다.
         제가 별도로 표기해논 "한강,금강,낙동강水界"와 "한남금북정맥"을 관심있게 보삼.
         이제부터는 구경거리 없는 지루한 길을 무지 많이 걸어야 합니다.

     ['703m봉'임을 알려주는 광고판] 1시 16분
     어디가 어디인지 잘 알수 없는 봉우리에
     대간꾼들이 쉬어 간다는 "피앗재 산장" 광고판이 "703m봉"임을 알려 줍니다.

     [725m봉]
     가끔 광고 안내판이 위치를 알려 줄뿐 지루한 길을 걷고 또 걷습니다.

     [667m봉] 2시 13분
     대략 "667m봉"이라고 생각되는 봉우리에서 마지막 잔치를 벌입니다.
     먼길을 많이도 짊어지고 왔습니다. 힘든 많큼 즐거움은 정비례합니다.
     이 사진을 보면, 먼저 간 횐님들이 이런 즐거움을 함께 하지 못해 조금 샘 나겠지요?
     양념갈비, 라면, 쇠주....몬 먹어 본 사람은 말을 하지마러부러...ㅎ

     ['피앗재'로 가는 길] 
     "667m봉"에서 마지막 잔치를 벌이고 또 다시 지긋지긋하게 먼 길을 갑니다.
     체력도 떨어져 구경거리도 없는 길이 더욱 지루합니다.

     ['피앗재'로 가며 뒤돌아본 "천왕봉"] 3시
     햐!~~
     '천왕봉"과 "속리산 주능선"이 오늘 산행 코스를 맑끔하게 요약 정리를 해 주네요
     이쪽에서 바라보는 "속리산 주능선"도 무척 아름답습니다.
     지금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노래는 "이스마엘 루 Ismael Lo"가 부르는 
     "Jammu Africa 아프리카의 평화"라는 노래입니다.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그렇듯이, 음악에 대해서도 우리는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지요
     이를테면, 국악은 지루하다, 클래식은 고상한 척 하는 사람들이 지루함을 참고 듣는 음악이다, 
     댄스 음악은 경박하다 는 등등등...
     아프리카 음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진데, 아프리카 음악을 자주 접하지도 못해 잘 알지도 못하지만,
     왠지 아프리카 음악하면 타악기가 전면에 배치되고 사운드는 날 것 그대로의 원시적인 느낌을 
     줄 것이라는 편견이 언제나 있었지요

     ['피앗재'로 가며 바라보는 "형제봉"]
     이제서야 "피앗재"와 "형제봉"이 선명하게 다가 옵니다.
     "갈령" 좌측에 보이는 산이 '대궐터산(투호봉)"이라는 산인데 대간길은 아닙니다.
    "아프리카 음악"
     이러 저러한 편견 속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이스마엘 루 Ismael Lo" 
     제가 갖고 있던 아프리카 음악에 대한 편견을 깨주었지요. .
     세네갈인 아빠와 나이지리아인 엄마 사이에 태어난 이 세네갈 뮤지션은 
     어릴 적부터 드럼통과 낚시줄로 만든 기타를 척척 연주하고, 박스로 만든 드럼을 연주하는, 
     한마디로 떡잎부터 될성 싶은 유망주였다는군요
     아프리카의 전설적인 밴드 "Super Diamono"의 보컬 겸 기타연주자를 거쳐 
     1984년 솔로로 독립한 "이스마엘"은 음악성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 여성문제 등 
     사회현실에도 적극 참여하는 뮤지션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답니다.
     현재는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하는데, 전통과 현대적 감각을 잘 버무린 음악으로 
     아프리카 출신 중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는군요
     이 기회에 아프리카 음악도 접하게 되었으니 고맙다고도 좀 하세요~ ㅎ
     어떠세요? 듣기 좋지요?

     ['천왕봉'은 멀어져 가고...] 3시 30분
     이제 백두대간 속리산 구간도 멀어져 갑니다.

     ['피앗재'로 이어지는 대간길]
     다시 대간 마루금을 터벅 터벅 걸으니....

     [피앗재] 3시 45분
     "피앗재"가 반갑게 나타 납니다.
     우리는 "상오2리"방향으로 내려 갑니다.

     ['피앗재' 안내판들]
     "피앗재"는 정감록에 나온다고 하는데....확인은 못했슴
      원래는 이곳이 옛날엔 첩첩산중이라 피난지로서 적합한 곳이어서 "피할재"였답니다.
      세월이 많이 흐르며 음운변화를 일으켜 "피앗재"로 부르게 되었다는군요.
      전쟁이 일어 나면 전국 팔도에서 피난민들이 이곳으로 모여 들어 피난생활을 함께해서
      아직까지도 이 고을 주민들은 팔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함께 산다는군요.

     ['피앗재'에서 '화북면 상오2리'로 내려 가는 계곡길]
     사람들의 통행 흔적이 별로 없는 계곡 산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 갑니다.

     ['피앗재'에서 '화북면 상오2리'로 내려 가는 길] 4시 6분
     "피앗재"에서 길없는 길을 따라 20분쯤 내려 오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며
     계곡이 선명히 나타납니다.

     ['상오2리'로 가는 길]
     다 왔는가 싶으면 또 가야하고...
     "피앗재"에서 "상오2리"까지 접속 거리가 장난이 아니게 길었습니다.
     오후 4시 20분이 넘어서야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상오2리"에 도착했습니다.

     ['천왕봉'에서 '피앗재', 그리고 '상오2리'까지 구글어스]
     구글어스를 보면 "피앗재"에서 "상오2리"까지 얼마나 먼지 알수 있습니다.
     약5km를 약1시간에 걸쳐 내려 왔습니다. 
     1. 마루금 도상거리 : 약19km
     2. 접속거리 : 약5km (피앗재 →상오2리)
     3. 실산행거리 : 약30km
     4. 산행시간 : 12시간 20분 (휴식, 식사시간 포함)


     [화북면 중심가 앞]
     버스를 타고 상주시 화북면 면소재지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 뒷풀이를 했습니다.
     이곳이 "성주봉자연휴양림 입구"이더군요

     [뒤풀이]
     자~ㅇ장 12시간이 넘는 산행 후에 하는 한잔....정말 꿀맛입니다.

     [뒷풀이]
     이렇게 우리는 백두대간길을 함께 가고 있습니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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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 10회차]  
   빼재-삼봉산-소사고개-삼도봉-대덕산-덕산재

     2010년 10월 9일(토) 구름약간 맑음
     산행의 계절 시월이 돌아 왔습니다.
     무더위와 비, 바람 속에서 여름을 보내고
     상쾌 유쾌 통쾌한 가을
     푸르고 시원하고 상큼한 가을에 백두대간 속으로 오늘도 갑니다.

     [대간 10회차 산행도]
   
     오늘은 "秀嶺(빼재)"에서 "삼봉산"→"소사고개"→"초점산(삼도봉)"→
     "대덕산(투구봉)"→"덕산재"까지 도상거리 약15km를 갑니다.
     미리 지도에서 확인해야 하는 곳은 "소사고개"입니다.
     "소사고개"는 전북과 경남의 道界로 생각하기 쉬운데, 
     완전히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에 속해 있는 고개입니다.
     道界는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소사동'을 지나 조금 떨어져 있습니다.
   

     [秀嶺(빼재)] 10시 40분
   
     지난 9월 25일에 왔던 "秀嶺(빼재)"에 다시 왔습니다.
     지난 산행은 여기서 남진을 했었습니다만, 오늘은 정상적으로 북진을 합니다.
     이번 구간에는 제가 아는 STORY, HISTORY가 없는 곳이라 산행기도 쓸게 없습니다
     미리 말씀 드리지만 잼없는 산행기가 될것 같습니다.
   

     [秀嶺(빼재) 육각정] 
   
     이곳이 도착지이라면 뒷풀이 장소로 좋을 곳을 우리는 모두 들머리로 잡았습니다.
     "뼈재" →"빼재"→"秀嶺"--"신풍령"
     고갯마루의 이름조차 변형이 심해 어떤 이름을 정식으로 사용해야 할지 고민스런 고갯마루.
     이제 떠나 가면 언제 다시 오려나~
     경상남도 거창군과 전라북도 무주군의 경계 고갯길 [37번 국도]를 추억 속에 새깁니다.
   
             
             [秀嶺(빼재) 백두대간 표지석]
   
     거창군이 세운 '백두대간 표지석'이 대간을 종주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괜히 자부심을 안겨 줍니다.
     "백두대간"........덕분에 우리가 힘이 솟는군요
   

     [秀嶺(빼재) 단체 기념사진]
   
     오랜만에 저의 산행기에 단체 기념사진을 올림니다.
     '거인산악회' 대간14기........
     사람들이 좀 세련되고, 뭔가 좀 있어보이지요? ㅎ
     맑고 높고 시원한 가을에 함께 대간길을 걷는다는게 특별한 因緣
   

     ['빼재'에서 '봉산삼거리'까지 구글어스]
   
     이해를 돕기 위해 구글어스를 보여 드림니다.
     지난 산행 때는 숲속에 갖혀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고 걸었을 것입니다.
     내가 어디를 어떻게 걸었는지 가장 잘 알수 있는 것은 현대문명의 꽃 구글어스입니다.
     이해하기 쉽죠?
     '수정봉'을 올라 "봉산삼거리"까지는 33분 걸렸으니 참고하세요.
     경남 거창과 전북 무주를 잇는 [37번 국도]가 선명합니다
   

     [산행 출발] 10시 50분
   
     산행 들머리에는 계단이 설치되 있으며,
     10시 50분에 다소 경사가 있는 "수정봉"으로 올라 갑니다.
   

     ['봉산' 삼거리] 11시 23분
   
     "秀嶺(빼재)"에서 약33분 을 걸어 오르니 "봉산삼거리"가 나옵니다.
     여기서 직진하면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로 가고,
     '삼봉산'은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봉산삼거리' 이정표]
   
            "빼재"에서 여기까지 1.9km - 33분 걸렸으니 빠른 속도입니다.
            여기서 "삼봉산"까지는 2.6km
            여기서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까지는 1.9km
            모두 아시죠? 이정표의 거리표시는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거....참고만 해야 합니다.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는 제법 유명한 곳입니다.
            고냉지 채소와 오미자, 그리고 거창사과로.....
            鳳凰 모양을 한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고....
   

     ['봉산삼거리' 윗 봉우리]
   
     '봉산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조금 올라 가면 이름없는 봉우리에 오릅니다.
     이 봉우리에 오면 드디어 조망이 트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秋","秋","秋"가 느껴 집니다.
     이제부터 '전북 무주'와 '경남 거창'을 조망하면서 높고 푸른 가을 속으로 잠깁니다.
   

     ['봉산 삼거리' 윗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삼봉산"]
   
     "삼봉산 三峰山"
     백두대간 산줄기가 선명히 도열하며 "삼봉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수령봉"은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옆으로 돌아 "호절골재"로 갑니다.
     '삼봉산 三峰山'은 봉우리가 세개여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삼봉산' 옆구리 암벽 아래에 "금봉암"이 있습니다.
   

     ['봉산삼거리'에서 '삼봉산'까지 구글어스]
   
     방향을 바꿔 남쪽에서 북쪽으로 구글어스를 보여 드림니다.(윗 사진과 비교해 보세요)
     이정표에서만 보았던 "금봉암 金鳳庵"의 위치를 알려드리니 관심 가지세요
     유명한 절간입니다. "金鳳庵"까지 도로가 개설되 있어 자동차로 올라 갈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봉산" 일반 등산로는 "金鳳庵"에서 올라 정상을 밟고 다시 "金鳳庵"으로 
     내려 가는 코스가 가장 유명하답니다.
   

     ['수령봉'으로 가는 길]
   
     '봉산삼거리'에서 600m정도 오면 '삼봉산'까지 2km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있습니다.
     '수령봉' 정상 옆으로 지나 갑니다.
   

     [호절골재] 11시 45분
   
     '호절골재'라는 곳을 지나 갑니다.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에서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삼거리로 넘어 가는 고개
   

     ['호절골재'에서 보이는 삼봉산 옆구리]
   
     '삼봉산'의 옆구리가 보이는데 암벽으로 된 절벽입니다.
     저 암절벽이 매우 유명한 절벽이라 자세히 알려 드림니다.
     제가 좀 오래 전에 다녀왔을 때에 찍은 설명 사진입니다.
     세개의 바위 석불바위, 장군바위, 칼바위가 있고,
     세개의 샘 - "석불바위샘, 칼바위샘, 용바위 용굴샘이 유명하답니다
     
   

     ['삼봉산'을 오르며 뒤돌아 본 '호절골재']
   
     '삼봉산'을 오르며 뒤돌아 보니 "호절골재"와 "수령봉"이 확연하게 보입니다.
     '수령봉' 정상을 오르지 않고 옆 능선으로 왔습니다.
   

     ['금봉암' 갈림길] 12시 2분
   
     "빼재"에서 1시간 12분이 걸려 "금봉암 갈림길"에 도착합니다.
     구글어스에서 보았드시 "금봉암"은 여기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700m
     "금봉암"은 유명하고 큰 절이라 여기서 참고로 "금봉암"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금봉암 金鳳庵 전경]  좀 오래 전에 찍은 자료사진...제 고향쪽이라서 함 가봤죠
   

     [삼봉산 오르는 등로]                           [금봉암 갈림길] 12시 9분
   
     '금봉암' 갈림길에서 약7분 정도 급경사를 오르면 또다시 "금봉암"으로 갈수 있는
     갈림길이 나옵니다만, 여기서 직진하여 '삼봉산'으로 갑니다.
     "삼봉산 일반등산로"는 "금봉암"을 지나 이곳으로 주로 다닌답니다
     
   

     [삼봉산 정상] 12시 12분
   
     "빼재"에서 약4.5km를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려 "삼봉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대체로 경사는 완만했습니다.
   

     [삼봉산 정상석]                            [삼봉산 이정표]
   
     1,254m 높이 德裕三峰山
     어떻게든 德裕山의 일가족이고 싶어 하는듯 정상석도 '德裕三峰山'이라고 했습니다.
     봉우리가 세개여서 삼봉산이라 했겠지만 확실하게 세개의 봉우리는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상석이 있는 이 봉우리보다 다음 봉우리가 더 높아 보였습니다.
   

     [삼봉산 첫봉 하산] 12시 26분
   
     '삼봉산'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삼봉산'의 다음 봉우리로 가기 위해
     조금 내려 갑니다.
   

     [삼봉산 암봉]
   
     다음 봉우리는 암봉이었습니다.
     이 봉우리가 아까 정상석이 있던 봉우리 보다 더 높아 보였습니다.
     바위 구경하기 어려운 육산에서 오랜만에 암봉을 오릅니다.
     삼봉산(1,254m)은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에 정상을 둔 거창의 진산(鎭山)으로 
     산 고스락이 되는 봉우리는 세 개이며 그 중심 봉우리는 흡사 동구앞 돌무지 탑 같고 
     먼 데서 바라보면 흡사 피어나는 연꽃 모습 같다고 합니다.
     조금 있다가 "초점산(삼도봉)"에 가서 보면 진짜 연꽃 모양으로 보입니다.
   

     [삼봉산 암봉]
   
     뒤따라 오르는 횐님들
     "삼봉산" 근처에는 옛부터 금광 金鑛이 있었는데 지금은 폐광 되었습니다
     거창 근처에는 金鑛이 많습니다.
   

     [삼봉산 암봉 하산]
   
     암봉을 올랐다가 다시 다음 봉우리로 가기 위해 조금 내려 갑니다.
     가을이라는 블렉홀 속으로 들어 가는듯....
   

     [삼봉산 세번째 봉우리]
   
     이 봉우리도 암봉이었습니다.
     이 봉우리에 오르니 앞으로 가야 할 "대덕산"이 잘 보입니다.
   

     [삼봉산 세번째 봉우리] 12시 39분
   
     산은 각도에 따라 가까워 보이다가도 멀어 보이고...
     잠깐 사이에 가야할 "대덕산"이 구름 속에 잠기고 있습니다.
     이 산은 불심(佛心), 산심(産心), 무심(無心)의 삼심(三心)이 깃들고,
     "금봉암 金鳳庵"을 둘러리한 바위무리들은 병풍처럼 둘려쳐 봉황의 산세를 이룬답니다.
     무학대사가 이곳도 "계룡산"처럼 "금계포란형"으로 산세가 좋아 몇번 다녀 갔다는군요.
   

     ['소사고개'로 내려가는 삼거리] 12시 44분 ★길 주의 ★
   
     '삼봉산 세번째 봉우리'에서 약5분 정도 내려 가면 삼거리를 만납니다.
     느낌으로는 직진 해야 할듯한 삼거리이니 주의 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측으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가야 합니다.
     '백두대간'은 때로는 이렇게 의외의 산줄기로 뻗어 있습니다.
   
               
               [이정표]
   
               이곳에서 "소사고개"까지는 2.1km입니다만, 1km이상이 급경사 내리막입니다.
               천천히 내려 가는게 제일!
   

     ['삼봉산'에서 '소사고개'까지 구글어스]
   
     삼봉산을 내려오는 급경사길이 약35분 걸리는데, 경사가 심해 무릅이 영향을 받습니다.
     반드시 스틱을 사용하시어 무릅보호와 부상방지에 신경쓰야합니다.
   

     [급경사 내리막]
   
     이길은 정식 '백두대간 마루금'은 아닌듯합니다.
     왜냐하면 계곡이이까요. 마루금은 계곡엔 없습니다.
     등산로가 여기 뿐이라 어쩔수 없이 이길을 이용하는듯....
     여하튼 엄청 가파릅니다.
   

     [농장 출입문] 1시 11분
   
     여기까지가 급경사 내리막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소사고개"까지는 완만한 내리막
   

     [농장 출입문]                                  [솔밭]
   
     농장 출입문 같은 문을 나서 조금 가면 솔밭이 나옵니다.
     이 솔밭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점심식사] 1시 12분
   
     약40분간 점심식사
   

     ['소사고개'로 가는 길] 1시 53분
   
     "소사고개"로 내려 갑니다.
     건너편에 올라야 할 "삼도봉"이 보입니다.
   

     ['소사고개'로 가는 길]
   
     '소사고개'로 조금 더 내려 가니 오늘 산행의 하일라이트인 "삼도봉"과 "대덕산"이
     풍만한 여인의 젖가슴처럼 풍만함을 자랑하며 누워있는듯합니다.
     거창군 고제면이 자랑하는 특산물이 "고냉지 채소, 오미자, 사과"랍니다.
     이곳 백두대간에도 배추를 많이 심어놨지만 작황이 별루인듯....
     요즘 金배추의 이유를 조금은 느낄수 있었습니다.
   

     ['소사고개'로 가는 길]
   
     솔밭을 지나고....
   

     [소사고개] 2시 8분
   
     '소사고개'가 나타납니다.
     '소사고개'가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는 경계처럼 느껴지지만,
     이 일대는 모두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 '소사마을'입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道界는 좌측 마을 아래에 있더군요.
   

     [소사고개] 2시 10분
   
     [1089번 지방도]가 경남 거창군 고제면에서 전북 무주군 무풍면으로 가고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마을은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 '소사마을'입니다.
     가게도 있어 간단한 생필품을 구매 할수도 있고...
     그런데 이 마을이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처럼 보이는데, 
     이 마을까지가 경남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 소사동 마을 이더군요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 소사동]
   
     '소사고개'에서 대간길을 따라 언덕 위로 오르니 "경남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 소사마을"이
     전체적으로 조망됩니다.
     道界는 바로 앞에 보이는 산능선.
     대간 마루금과 道界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전라북도 무주군의 "무풍면"은 전라도이지만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지방으로 유명합니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삼국의 경계가 '무풍'까지 들어 가 있었기 때문이죠.
     이제 이곳이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 대략 짐작이 가시죠?
   

     ['삼봉산'에서 '삼도봉'까지 구글어스]
   
     '삼봉산'에서 '소사고개'를 지나 '삼도봉'으로 가는 구글어스
     "삼도봉"으로 오르는 登路가 매우 가파랏습니다.
   
     
     [거창군 "백두대간" 개념도]
   
     함양군 서상면 "남덕유산 갈림길"에서 여기 "소사고개"를 지나 "삼도봉"까지
     거창군에 위치한 "백두대간 길"입니다.
     이제 거창의 백두대간을 벗어나 경상북도 김천시로 들어 가며, 
     김천시에 있는 "추풍령"이 가까워 옵니다
   

     ['삼도봉' 가는 길]
   
     "소사고개"에서 "삼도봉 들머리"까지 가는 길이 다소 어려웠습니다.
     우리들은 앞에서 산행대장이 가는 길을 따라 가면 간단하지만,
     단독으로 처음 가시는 분들은 길찾기가 쉽지 않을듯 합니다.
     선답자들의 표지기도 별로 없고, 산중턱을 농민들이 개간을 해 길이 많이 바뀌어서....
   

     ['삼도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삼봉산"]
   
     '삼봉산'을 뒤돌아 보니 얼마나 급경사 내리막이었는지 실감납니다.
     그리고 "연꽃 모양"으로 보입니까?
   

     ['삼도봉' 오르는 길] 2시 25분
   
     새로 만들어진 농로를 따라 가기도 하고...
     이래서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없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대간길이 정상적 대간길과 달리 길이 이상하다고 했더니
     산행대장의 이야기로는 오리지날 길은 이길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삼도봉으로 가는 길]
   
     이곳 "삼도봉 三道峰"의 본명은 "초점산"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됩니다.
   

     [삼도봉으로 가는 길]
   
     도랑을 건너는 걸 보면 오리지날 대간 마루금이 아니라는 걸 알수 있습니다만,
     농지 개간과 새로운 농로를 내서 대간길이 없어져
     오리지날 마루금에 다른 접근 방법이 없기 때문에 쉬운 길로 가는 것입니다.
   

     ['삼도봉' 들머리] 2시 52분 ★길주의 ★
   
     '소사고개'에서 약40분간 조그만 동산들과 농지를 지나 오면 "삼도봉 들머리"를 만납니다.
     여기서 농로를 버리고 우측 산길로 올라서야 하니 길 주의해야 합니다.
     여기 들머리에는 표지기가 많이 붙어 있습니다.
   

     ['삼도봉' 登路]
   
     '삼도봉 들머리'에서부터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되고 정상까지 숨쉴 틈을 주지 않습니다.
     제일 힘든 구간입니다. 헥~헥헥
   

     ['삼도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삼봉산"]
   
     '삼도봉'을 오르며 다시 뒤돌아 봅니다.
     대략 오리지날 대간 마루금은 짐작이 가시지요?
     그리고 우리는 오리지날 마루금 옆으로 난 도로나 농로를 따라 왔다는 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삼봉산"이 정말 한송이 예쁜 '연꽃'같습니다.
     힘들고 피곤해도 지나온 길을 돌아 보면 자부심이 솟아 납니다.
   

     ['삼도봉'↔'국사봉' 갈림길] 3시 28분
   
     '삼도봉 들머리'에서 약40분간 엄청 가파른 된비알을 치고 오르면 
     한숨 돌릴수 있는 "삼도봉↔국사봉" 갈림길이 나옵니다.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선은 여기서 부터 입니다. 이 선 넘어는 경북 김천입니다.
     정상에서는 전라북도와도 만나기에 "三道峰"이 되는 것입니다.
   

     [삼도봉↔국사봉 갈림길 이정표]              [이정표에서 보이는 '삼도봉 정상']
   
     "삼도봉(초점산)"까지 400m 남았다는 이정표에서 정상이 보이고,
     경사도 다소 완만합니다.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선을 걸어 정상으로 갑니다.
   

     [삼도봉 정상] 3시 38분
   
     "국사봉"갈림길에서 10분 정도 더 걸어 오르면 드디어 정상이 나옵니다.
     이곳에선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이 서북쪽에 붙어 있습니다.
   

     [삼도봉 정상석]                                [삼도봉 정상 이정표]
   
     이곳 "삼도봉"의 정상은 다른곳의 "삼도봉"보다는 다소 초라해 보입니다.
     세개의 道-경남도,경북도,전북도-가 만나고 있는 경계선이라 "三道峰"이라고 하니까,
     '三道峰'은 고유명사가 아니고 일반명사이지요.
     이 산의 본명인 고유명사는 "초점산" 1,248.7m입니다. 
   

     ['삼도봉' 정상에서 뒤돌아 본 '삼봉산']
   
     이곳에서 뒤돌아 보니 "三峰"으로 구성된 산이라고 하기엔 봉우리가 좀 그렇지요?
     '연꽃'모양이라고 거창군이 자랑하니까 '연꽃 모양'이라고 하는게 더 좋겠습니다.
     여하튼 서산으로 기우는 태양으로 신비감까지 주고 있는 "三峰山"이 그림같습니다.
     에휴~ 저기를 내려와 다시 여기가지 올라 왔으니 무지 힘들었습니다. 헥헥
   

     ['삼도봉' 정상 에서 바라 본 동쪽 방향]
   
     "삼도봉" 정상에서 동쪽 방향을 조망합니다.
     좌측은 이제부터 경상북도 김천시이고, 우측은 경상남도 거창군입니다.
     이제 고향인 경상남도와도 이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야지맥"이 이곳에서 분기하여 경북과 경남을 가르며 동쪽으로 갑니다.
     멀리 "가야산"이 보이는군요
   

     ['삼도봉'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할 "대덕산"]
   
     오늘 올라야 할 마지막 봉우리 "대덕산"이 조망됩니다.
     봉우리가 하나인줄 알았는데.....
   

     ['삼도봉'에서 '대덕산'으로 가며 바라보는 "대덕산"] 4시 8분
   
     "대덕산"으로 가며 바라 보니 봉우리가 세개나 되는군요. 에휴~
     그러나 가을옷으로 갈아 입을려고 하는 유순한 산봉우리들이 정감이 갑니다.
     임신한 새색시가 누워 있는듯.....
   

     ['대덕산'으로 올라 가며 뒤돌아 본 "삼도봉"]
   
     '대덕산'을 오르며 뒤돌아 보니 "초점산(삼도봉)"이 제법 우량스럽습니다.
   

     ['대덕산' 전위봉 두개를 넘어...]
   
     산봉우리를 오르고 내려 가고 하는게 우리들의 本業이지만 
     이렇게 여러개의 산을 오르 내리면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힘좀 듭니다
   

     ['대덕산' 정상 아래 헬기장] 4시 34분
   
     "삼도봉(초점산)"에서 약40분 정도 걸려 '대덕산'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정상까지는 3분 걸립니다.
   

     [대덕산 정상]
   
     "대덕산 大德山" 정상은 뾰쪽하지 않고 둥글어, 일명 "투구봉"이라고도 한답니다.
     정상에는 억새가 은빛을 띄며 하늘거리고 있습니다
     다음 주 쯤에는 완연한 가을을 알려주겠습니다.
   

     [대덕산 정상] 4시 37분
   
     "대덕산 정상"도 헬기장이었으며 아주 넓었습니다.
     우측 마을 이름이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이니 이 산이름이 마을 이름까지 만들어 주고,
     "덕유산"과 함께 큰산임을 넌지시 견주고 있습니다.
   

     [대덕산 정상석]                            [대덕산 유래]
   
     "1,290m 大德山"
     "대덕산"의 유래는 사진을 참고하시고....
     "얼음 약수터"와 "얼음 폭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내려 가다가 꼭 들려 보고 가야겠습니다.
   
               
               [대덕산 정상 이정표]
   
                "덕산재"까지는 급경사 내리막이었습니다.
                 내려 가는데 1시간 이상이 걸렸으니 ....
   

     ['대덕산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할 '덕산재'방향]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하나 더 넘어야 내리막입니다.
     하늘 거리는 억새를 보니 억새에 대한 詩 한수 읊어야 겠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고 자주 인용하는 정일근 시인의 詩입니다.
   
                가을 억새    
                                   정일근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가스등 켜진 추억의 플랫홈에서 
                    마지막 상행선 열차로 그대를 떠나보내며 
                    눈물 젖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어둠이 묻어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터벅터벅 긴 골목길 돌아가는 
                    그대의 뒷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 없는 시대의 이별이란 
                    코끝이 찡해오는 작별의 악수도 없이 
                    작별의 축축한 별사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총총 
                    제 갈 길로 바쁘게 돌아서는 사람들 
                    사랑 없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이제 누가 이별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겠는가 
                    이별 뒤의 뜨거운 재회를 기다리겠는가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덕산재'로 가는 길] 5시
   
     약23분간 '대덕산 정상'에서 머물다가 하산합니다.
     대덕산 정상엔 경사도 없는 곳에 돈을 발라 놓았습니다.
   
     "갈대와 억새" 차이점을 아시나요?
     "억새"는 들판이나 산에서 자라며 머리(꽃수술)가 비단결 같이 부더럽고 하얗습니다
     그리고 키가 1~2m로 갈대에 비해 많이 작습니다. 이곳에 있는 것은 모두 '억새'입니다
     "갈대"는 냇가, 습지, 모래밭에서 주로 자라며 키가 2~3m로 사람 키 높이 보다 높아
     억새보다 훨신 크고, 머리(꽃수술)가 적갈색을 띄고 있습니다.
     영어로 reed라고 하는게 갈대이며, 줄기는 수공예품이나 돗자리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합니다
   

     ['덕산재' 하산길]
   
     20분 정도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갑니다.
     축축한 흙길이라 미끄럼을 주의 하며....
   

     [얼음골 약수터] 5시 20분
   
     "대덕산"이 자랑하는 "얼음약수"입니다.
     물은 매우 차거웠습니다.
   

     ['덕산재' 하산길]
   
     "얼음약수"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급경사 내리막을 "얼음폭포"까지 15분 정도 내려 갑니다
   

     ['덕산재'가 보이기 시작]
   
     숲 사이로 잠깐 외부가 보이는데 '덕산재'방향이었습니다.
   

     ['얼음폭포' 갈림길] 5시 38분
   
     "얼음약수"에서 15분 정도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오면 또한 '대덕산'이 자랑하는
     "얼음폭포"를 만납니다.
   

     [얼음폭포]
   
     "얼음폭포"에서 땀을 씻고...
     물은 정말 차거웠습니다.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덕산리]
   
     '얼음폭포'를 지나니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덕산리"가 조망됩니다.
   

     [덕산재] 6시 14분
   
     "秀嶺(빼재)"에서 7시간 20분 정도가 걸려 "덕산재"에 도착했습니다.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덕산리"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를 넘나드는 고개.
     앞에서도 언급했드시 "전북 무풍면"은 옛날 신라지역으로 지금까지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경상도에 가까운 전라도라 할수 있습니다.
     엄청나게 산간오지였었는데 지금은 [30번 국도]가 지나 가며 교통이 편리해졌습니다.
   

     [덕산재 표지석]
   
     다음 10월 23일에 다시 올것을 기약하며
     1,000m이상 되는 산봉우리, '수정봉''수령봉''삼봉산''초점산(삼도봉)''대덕산'을 점령하고
     "덕산재 德山재"에서 오늘 산행을 마침니다.
   

     ['대덕산'에서 '덕산재'까지 구글어스]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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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로 가는 [백두대간 9회차-덕유산3구간] 빼재-갈미봉-대봉-못봉-횡경재-귀봉- 백암봉-중봉-향적봉-설천봉-무주리조트 9월 25일(토) 맑음 닭의 목아지를 비틀어 울지 못하게 해도 아침은 오드시 폭염과 폭우, 폭풍의 그 여름의 광란이 아무리 질기고 강렬해도 '가을'은 기여코 오고야 말았습니다. 시집살이에 지쳐 집 나간 며느리처럼 다시는 돌아 오지 않을 듯 했던 '가을' 그 '가을'은 시아버지 옷소매를 길게 늘리며 또 다시 찾아 왔습니다. 푸르고 높은 하늘 쾌적한 기온 금년 들어 최적의 날씨가 찾아 온 날 산객들은 다시 백두대간 덕유산의 품에 안깁니다. ....... [9회차 산행 개념도] 지난 8회차 산행은 '덕유산 2구간'으로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의 "황점"에서 '월성치' '삿갓봉' '무룡산' '동엽령'을 거쳐 '칠연계곡'으로 하산 한바 있습니다. 대간길과 접속거리가 비슷해,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산행이었다고 투덜대며 시종일관 내리는 빗속을 운무 속에서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접속 써비스 구간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고자, "南進"으로 루트를 바꿨습니다. "빼재-秀嶺"에서 갈미봉-대봉-못봉-귀봉-백암봉-동업령으로 가서, 거창의 병곡리로 내려 갈 예정입니다. ['빼재'에서 '갈미봉'까지 구글어스] 전북 무주군에서 경남 거창군으로 넘나드는 [37번 국도]에 '백두대간'이 지나는 고개........ "秀嶺" - 빼재" 德裕山의 이름처럼 크고 넉넉한 산행길을 열어 줍니다. [신풍령 휴게소] [신퐁령 휴게소에 올려다본 '빼재'] 대간꾼들에겐 "빼재"로 더 알려져 있는 이 고개에는 "新(神)風嶺 휴게소"라는 이름을 가진 휴게소가 있어 처음 찾는 산객들에게 "왜 신풍령이지?"라고 다소 혼란을 줍니다. 손님이 없어 폐쇠된 "新(神)風嶺 휴게소"는 새로이 영업을 시작하려는지 새 단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풍령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빼봉' '갈미봉'] '신풍령 휴게소'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백두대간 德裕山 구간'이 선명히 보입니다. 휴게소에서 고갯마루 "秀嶺" - 빼재"로 올라가 "빼봉"→"갈미봉"방향으로 갑니다. [출발] 10시 25분 고속도로가 순조로운 교통 흐름으로 오전 10시 5분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와 기념 촬영을 하고 10시 25분에 출발합니다. [37번 국도] ["秀嶺-빼재" 쉼터] 휴게소에서 100m정도 걸어 대간길 마루금 고갯마루로 올라서면 "전북 무주"와 "경남 거창"을 가르는 道界에 육각정을 비롯해 쉼터가 있고, 백두대간 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우리를 반깁니다. ["秀嶺"-빼재] "37번 국도"인 이 고갯마루 정상에는 이 고개가 "수령 秀嶺"이라고 알리는 정상석이 있고, 이곳부터 "덕유산국립공원"이라는 안내판도 서 있습니다. "빼재, 秀嶺, 新(神)風嶺" 사람들의 왕래도 적은 이 조그만 고갯마루에 왠 이름이 이렇게 셋이나 되는가? 웃깁니다. "빼재"가 옛부터 전해져 내려 오는 이름이라지만 이 이름도 오리지날이 아니고, 원래는 "뼈재"였답니다. 그 이유는 이 고갯마루를 사이에 두고 야생동물들이 치열한 영역 다툼으로 싸우다 죽어 그 동물들의 "뼈"가 많이 널려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또한 삼국시대부터 이 고갯마루가 국경이어서 욕심으로 가득찬 인간들도 서로 자기들의 영역을 지키고, 때론 빼앗기 위해 넘나 들며 싸우며 죽어 간 인간들의 "뼈"도 즐비 하였고, 임진왜란 때엔 쪽바리들과 싸우며 죽어 간 인간들의 "뼈"도 많아서 "뼈재"였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뼉따구 냄새가 많이 나는듯 합니다. 그러다 경상도 사투리로 音韻변화를 거치며 "뼈 → 빼"로 불려지다가 "빼재"가 되었다는데 그것도 모자라 "빼"를 한문으로 표기 하면서 "빼어날 秀"로 번역하여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런 "秀嶺"으로 정식 표기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신풍령"은 이 고갯마루 휴게소의 商號인데, 멍청한 사람들이 그 상호가 고개 이름인줄 알고, 아주 단순하게 고개 이름으로 부른 것이라하니 어처구니 없습니다. 필자는 암울스런 이름보다, 어쨋던 공식적으로 불리워지고 싶어하는 "秀嶺"으로 부르겠습니다. ['秀嶺' 산행 들머리] '秀嶺' 산행 들머리에서 대간 마루금을 올라 타는 길이 조금 혼란을 주니 조심해야합니다. 육각정 쉼터에서 직진하여 40m정도 되는 임도에서 우측 숲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길조심★ 이 길 이외에는 외줄기임으로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습니다. ['秀嶺' 산행 들머리'에서 1km 지나 서있는 이정표] 10시 56분 '秀嶺'에서 약30분 정도 완만한 능선을 따라 오르면 처음으로 이정표를 만나는데 이것이 "빼봉 정상"에 있는 이정표입니다. →횡경재 삼거리 6.8km →송계 삼거리 10km를 알려 줍니다. "송계 삼거리=백암봉"이니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빼봉 정상] 10시 56분 이정표를 10m 정도 지나면 "빼봉"정상이 나오는데, 관심 갖지 않으면 그냥 지나칩니다. 삼각점과 삼각점 안내판이 있는 이곳이 "빼봉 정상"인데 대부분 모르고 그냥 지나칩니다. ['빼봉'에서 바라보는 가야할 "갈미봉"] 숲속을 뚫고 "빼봉"에 오르면 처음으로 외부가 조금 조망됩니다. 다음에 올라야 할 "갈미봉"이 보입니다. 대간길이지만 능선이 아니고 '봉우리'를 오르고, 또 내려 가고..또 오르고..또 내려 가고.. 우리의 주요 업무가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고...또 오르고 내려 가고....또....또...또...ㅎㅎ ['갈미봉' 오르는 된비알] 앞 사진에서 보았듯이 "갈미봉"은 1,210.5m높이로 높은 산이라 오르는 등로는 꽤 급경사여서 여기서 부터 땀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갈미봉 정상] 11시 50분 "빼봉"에서 땀을 흘리며 한시간 정도 낑낑대며 오르면 "갈미봉"정상이 나옵니다. "갈미봉 정상"도 관심 갖지 않으면 그냥 지나칩니다. 정상석이 가는 방향 바위 뒤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갈미봉' 정상석과 이정표] "1,210.5m 높이" "칡이 많아 '칡葛'자를 쓰는 "갈미봉"입니다. 이 산봉우리 아래 계곡 이름을 "칡목골"이라 하고 마을 이름을 " 葛項村"이라 하니 틀림없습니다. ['갈미봉'에서 "백암봉"까지 구글어스] "갈미봉"에서 "송계삼거리=백암봉"까지 구글어스입니다. "갈미봉"과 "못봉" 사이에 "갈미봉" 바로 옆에 있는 봉우리가 "대봉 1,263m"인데 표기를 못햇으니 참고 바람니다. ['갈미봉'에서 조망하는 "덕유산" 주능선] "갈미봉 정상"에서 10m정도 앞으로 나오면 우측에 전망대가 있습니다. 대부분 앞만 보고 모두 전진만 합니다만, 이 전망대에 올라 서면 앞으로 가야할 "대봉"과 "못봉"이 보이고, "향적봉, 중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봉"과 "못봉" 사이의 고갯길이 "월음령(달음재)"입니다. ['갈미봉'에서 조망하는 가야할 대간길] 서남쪽으로 약간 방향을 바꾸면 "송계삼거리=백암봉"까지 대간길이 펼쳐집니다. "중봉", "향적봉"은 대간 마루금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습니다만 "백두대간"입니다. ["대봉" 정상] 12시 16분 "갈미봉"에서 "대봉"까지는 생각보다 가까웠습니다. "갈미봉"에서 약25분 정도 걸려 "대봉 1,263m"에 오릅니다. ["대봉" 정상 이정표] 12시 16분 "대봉 大峰" 정상에는 정상석은 없고 이정표에 누군가 비공식적으로 표기 ["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향적봉"] "대봉"에서는 서남쪽으로 "향적봉"이 동양화 처럼 펼쳐지며, 그 우측으로 "무주리조트 스키 슬루프"가 조망됩니다. 저는 여기서 지난번에 갔었던 "동엽령"으로 다시 갈것이 아니라 "백암봉"에서 "중봉 → 향적봉 → 설천봉 → 무주리조트"로 가기로 결심합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별도로 저 코스를 가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함께한 산악회 횐님들에게 피해를 주는 독자행동은 아니기 때문에 팀에서 이탈합니다. ["대봉"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거창군 북상면 소정리] 1,500년 古刹 "송계사"가 있는 거창군 소정리가 '소나무 숲' 사이에 작은 면적을 보여주고.. ["대봉"에서 "못봉"으로 가는 길] '대봉"에서 "못봉"으로 가는 이곳. 우푹 패인 이 고갯길이 "월음령(달음재)"라는 곳인데 그냥 지나치기 일수입니다. 전라북도 무주와 경상남도 거창으로 넘나 들었던 고개인데, 지금은 사람들의 왕래가 없고 우리같은 산객들만 오고 갑니다. "월음령 月陰嶺"은 "대봉"과 "못봉" 사이 골자기에 있어 산그림자로 햇빛이 들지 못해 언제나 음지이지만, 밤이면 달빛이 환하게 비춰준다고 붙여졌다는 전설도 있더군요. 지금은 구름이 햇빛을 가리우고.... [점심식사] 1시 15분 ☆40분간☆ "대봉"에서 "월음령"을 지나 한시간 정도 걸어 "못봉"으로 오릅니다. 그리고 "못봉" 정상 바로 아래에서 약40분간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못봉" 정상] 2시 "못봉 池峰" 1,342.7m" 한자로는 '연못 池"를 사용하는 "못봉 池峰" .....'아침바다'님이 궁금해 한 "못봉" "못봉"의 내력은 그 어느 곳에서도 설명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이 오래전 "백련사"을 찾았을 때 우연히 그곳 빡빡이 스님으로부터 이 "못봉"의 내력을 얼핏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재미로 참고하세요 "백련사 白蓮寺" 속세를 벗어나 구천동 심심계곡으로 들어가는 승려들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하여야 하겠지요. 옛날 아주 옛날 다행이 "백련사" 위 산꼭대기에 기이하게 "연못"이 하나 있어 승려들이 몸과 마음을 씻기 위해 자주 올랐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연못"을 찾을 수 없지만..... 필자가 듣고 나름대로 생각하기엔, 산꼭대기에 있는 그 연못이 현실 속에 있는 연못이 아니라 佛道를 닦는 승려들이 '가상의 연못'을 만들어 몸과 마음을 씻는 곳으로 활용 한것이라고... 이 '연못'에 비치는 "하얀 뜬 구름"과 '연못'에 피어난 "연꽃"을 합쳐 "白蓮寺"라는 절간 이름을 지었다고 하니...... "못봉 池峰"의 내력은 이런 사연 속에서 나왔다고...그럴듯 하죠? ㅎㅎ.... ["못봉"에서 "횡경재"로 가는 길] "못봉"에서 "백암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곳에는 '거창 송계사'로 내려 가는 갈림길인 "횡경재"가 있습니다 [거창 "송계사"로 하산하는 갈림길] 2시 12분 "횡경재" 가기 전에도 "거창 송계사"로 내려 가는 지름길 삼거리가 있고... [횡경재] 2시 30분 "못봉"에서 약30분이 걸려 "횡경재"에 도착했습니다. 해발 1,350m에 있는 고갯길입니다. 이곳에서도 "거창 송계사"로 내려 갈수 있습니다. [횡경재 안내판] → 송계 삼거리 [백암봉] 3.2km → 송계사 탐방안내소 3.2km [횡경재 주변 "덕유산" 개념도] 비교적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횡경재'를 한자로도 표기해 줬으면 좋겠는데... ["귀봉"에서 바라보는 "백암봉"과 "중봉"] 3시 30분 "귀봉"에 올라 가야할 "백암봉=송계삼거리"를 바라 봅니다. 저 "송계삼거리"에서 좌측으로는 백두대간 "동엽령"으로 가는 마루금 길이고, 우측으로는 보시는 바와 같이 백두대간 마루금에선 약간 벗어나 있는 "중봉-향적봉" 가는 길입니다 ["백암봉"="송계삼거리"] 3시 55분 "백암봉 白岩峰" 1,503m (지도, 이정표 마다 높이가 틀림) "백두대간 마루금"과 "덕유산 향적봉" 가는 길이 갈라지는 "백암봉"="송계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秀嶺"에서 여기까지 5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백암봉"에서 바라보는 "남덕유산"방향] 지난 여름에 걸었던 "남덕유산 구간"이 하나 하나 눈에 들어 옵니다. 특히 지난 산행 때에는 운무 속에서 한치 앞을 못보고 걸어서 더욱 새삼스럽니다. "남덕유산"과 "서봉" 사이 능선인 "황새늦은목이 능선"이 선명합니다. ["백암봉"에서 바라보는 "중봉" "향적봉"] 4시 20분 "중봉"이 지척에 있는 듯 합니다. 비록 오르막을 두번 올라야 하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백암봉"에서 향적봉"까지를 갈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미 간 경험이 있는 "동엽령"은 포기하고 팀을 이탈해 "향적봉"으로 갑니다. ["중봉"으로 가는 길] "백암봉=송계삼거리"에서 약20분간 남은 음식들을 헤치우고 "중봉-향적봉"을 향해 떠나 갑니다. 걸어서만 가면 "백암봉"에서 "동엽령"을 지나 "병곡리까지 가는 시간보다 이 길로 가서 '무주리조트'로 하산하는 시간이 훨씬 더 걸립니다만, "향적봉" 지나 "설천봉"에는 '무주리조트'에서 운영하는 관광 '콘도라'가 있어 15분이면 간단하게 덕유산을 하산 할수 있어 실제 많은 시간이 단축됩니다.
이제부터는 위 ↑ 경음악을 여러번 들어 지겨우니 ■를 눌러 끄고, 아래에 있는 "전인권"이 부르는 "봉우리"라는 노래를 ▶를 눌러 켜세요. 볼륨을 ↑올리고... [전인권 - 봉우리]
["중봉"] 벌써 가을 옷으로 새로 갈아 입으려고 하는 나무들이 도열을 하고 반겨 줍니다. 덕유산 최고봉을 오르며 "봉우리"라는 노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노래를 켜지 않으신 분은 위로 가서 켜고 오세요. ["중봉"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본 서쪽 - 무주 안성 방향] 봉우리 김민기 작사 작곡 - 전인권 노래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르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봤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 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진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진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 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가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 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 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 ["중봉"오르는 된비알 계단]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 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 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올 때는 그럴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야!~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난 길 높은 곳에 봉우리는 없는 지도 몰라 친구야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중봉" 정상] 4시 37분

 

이 노래는 모두 잘 아시는 "아침이슬"의 작곡자인 "김민기씨"가 1988년에 만들어 직접 부른 노래입니다. "김민기" 저와 한 시대를 함께했던 "봉우리"라는 이 노래의 작사 작곡자입니다. 군사독재정권에 음악으로 항거하다 어려운 삶을 산 "김민기" 그리고 아직까지도 시위 현장에서 불리워지는 "아침이슬".... 지금 흐르고 있는 "봉우리"라는 노래는 어쩌면 대중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노래 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고통과 좌절 속에 있는 사람들에겐 무척 친근한 노래이지요 ["중봉" 정상 이정표] 이 노래가 김민기씨에 의해 탄생되는 배경을 아주 조금 알려 드리겠습니다. 1988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88 서울 올림픽"이 열렸었지요? 세계 속의 대~한민국!~' 화려한 영광과 축복을 만끽하는 올림픽이었지요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 합계 33개 메달.. 세계4위의 스포츠 강국으로 떠오르고 ...... 온 국민들에게 금메달을 안겨준 선수들에겐 화려한 찬사와 돈방석이 날라갔지요. 하지만 영광과 찬사의 뒷골목엔 메달을 따지 못하고 허탈과 좌절 속에서 눈물로 한탄하는 선수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후, 그래서 TV방송국이 88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을 위한 TV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모래시계'의 작가 '송지나씨'가 '김민기씨'에게 이 프로그램의 테마음악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만든 노래가 바로 이 노래입니다. ["덕유산 중봉"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천왕봉"] "중봉"에서 바라보는 "백두대간"의 정점인 "지리산 천왕봉"은 유토피아 같습니다. 그리고 지칠줄 모르고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백두대간"의 산봉우리들은 하늘을 들쑤셔 놓는듯 합니다. 아!~ 백두대간!~ ["중봉"에서 북진하며 바라보는 "향적봉"] 덕유산 山群중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인 "향적봉 香積峰"이 香내음을 풍기며 겨울로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중봉"에서 "향적봉"까지의 "아고산대" - "덕유평전"이 펼쳐집니다. 1~2주만 지나면 이 산봉우리는 울긋불긋한 새 옷으로 갈아 입으리라~ ["아고산대" 안내판] "아고산대"는 백두산, 지리산, 소백산, 설악산과 이곳에 있다는군요 자세한 사항은 안내판 참고 하시고... ["아고산대"를 통과하며 보이는 "향적봉"] "봉우리" 이 노래는 "김민기씨" 스스로가 불렀고, 뒤이어 1997년엔 양희은씨도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는 대중들에게 그냥 스쳐가는 TV테마음악이었을 뿐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2003년.... 산골짜기에 틀어 밖혀 기인 행세를 하며 살고 있던 "전 인권씨"에 의해 새로이 불리워집니다 거친 샤우트 창법. 락커 '전인권'이 부르는 이 노래는 저의 가슴을 메이게 했습니다. 산자락에서 산에 취해 환각상태의 전인권이 자신의 운명처럼 부르는 이 노래 - "봉우리" 김민기, 양희은을 거쳐 이제서야 제 자리를 찾은 이 노래 - "봉우리" 복고풍의 한국적인 락을 느끼게 해 주며, 숙련되고 조화로운 전인권의 카리스마가 소름을 끼치게 만들어 줍니다. ['고사목' 아래에서] "살아서 100년 - 죽어서 100년 - 아름답다는 고사목" 고사목 아래에서 '고사목' 처럼 살아야 겠다고 소년같은 마음으로 돌아가 세월의 번뇌를 잠시라도 잊었습니다. ["향적봉"으로 가며 뒤돌아 본 "중봉"] 정말 너무 아름다워 우리만 본다는 것이 아까웠습니다. '주목'과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아고산대" - "덕유평전" 가을이 조금 더 깊어지면 더욱 아름답겠습니다. ["향적봉"의 명물 "주목"과 "구상나무"] 전망대까지 만들어 감상 할수 있도록 한 "향적봉의 명물"-"주목"과 "구상나무"입니다 바위 위에서 끈끈한 생명력을 온몸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주목 - 향나무] 이 한장의 사진........환상적입니다. 7학년4반 김원기 선생이 고사목 향나무 옆에서 세월을 경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그냥 지나 칠수 없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산에 관한 詩 한수 읊습니다 산에게 나무에게 김남조 산은 내게 올수없어 내가 산을 찾아 가네 나무도 내게 올수 없어 내가 나무 곁에 서 있네 산과 나무들과 내가 친해진 이야기 산을 거기에 두고 내가 산을 내려 왔네 내가 나무를 떠나 왔네 그들은 주인 자리에 나는 바람 같은 몸 산과 나무들과 내가 이별한 이야기 ["주목" "구상나무" 안내] 관심 있는 분들은 사진 속 설명을 참고하세요 ["향적봉 대피소" 가는 길] "중봉"에서 내려가면 "향적봉 대피소"가 나옵니다. 바람이 센곳이니 산 옆구리에 포근하게 숨어 있습니다. [향적봉 대피소] 4시 58분 많은 산객들이 하늘과 맞닿아 속세를 잊고 쉬어 가는 곳. 라면 끓여 먹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쩝쩝 ['향적봉 대피소'앞 이정표] ["향적봉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 "향적봉 대피소"에서 계단을 타고 급경사를 잠시 올라 갑니다. ['향적봉 정상'으로 오르며 뒤돌아 본 "향적봉 대피소"]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신혼살림을 저곳에 차렸으면 좋겠지요? 한 일주일만....깨가 쏟아 질텐데....ㅎㅎ [향적봉 정상] 5시 3분 "송계삼거리=백암봉"에서 약40분이 걸려 "향적봉"에 올랐습니다. 그 옛날 어설프게 올라보고는 두번째로 "향적봉"에 오르지만 너무 변해 처음 오는 듯합니다. 말끔하게 단장되어 딴 나라에 온듯....너무 기분 좋았습니다. [향적봉 정상] 5시 4분 우리 넷이서 "향적봉"을 완전히 접수 했습니다. 겨울이면 수많은 사람들로 뒤덮여질 "무주리조트"의 정상이라 아무도 없어 한산한 지금이 너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사람들이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에~휴~ 현재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사람 없어서 좋다고 이곳 저곳 구경하며 감탄하며 내려 갈 생각도 없이 마냥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ㅋㅋ [향적봉 정상석] "1,614m - 德裕山의 最高峰 - 香積峰" 어느 누군가가 장가를 새로 가도 되겟다고 하던데...그렇나요? ㅎㅎ [향적봉 바위에 올라 내려다 본 정상부] 最頂上에서 내려다 보는 "香積峰 정상부" 그리고 멀리 "무룡산 舞龍山" '남덕유산 南德裕山" 아!~~ ["향적봉"에서 바라보는 "설천봉"] "설천봉" - "무주리조트 스키장"의 최정상 슬루프 '향적봉'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스키장이 있습니다. 저곳에서 콘도라를 타고 내려 가야 오늘 내려 갈수 있는데.... 콘도라 마감시간이 5시 인데, 6시인줄 알고 여유만만...ㅎㅎ 결국 헤프닝이 발생합니다. "설천봉" 뒤로 '붉은 치마'를 두르고 있는듯 하다고 이름 붙여진 "적상산 赤裳山"이 보입니다. '적상산'도 '덕유산국립공원'에 포함되 있더군요. ["향적봉"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천왕봉"] 구경 할건 다 하고 내려 갑니다. 이 한장의 사진도 영원히 기억 속에 남을 것입니다. "덕유산 향적봉"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천왕봉" 사진에는 약간 희미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오늘 산행은 본전 뽑고, 덤으로 백두대간을 완벽하게 굽어보고.... "智異山" - 여기서 보니 정말 높은 산이란걸 실감합니다. [향적봉 정상 이정표] "백련사 白蓮寺"로 내려 가는 길 - 2.5km ['향적봉' 정상에서 "설천봉"으로 가는 길] 독일의 왕조시대 古城으로 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설천봉" 가는 길입니다. ["설천봉" - "무주리조트 스키장 정상"] 5시 20분 아름답고 멋있지만 텅빈 설천봉 정상-콘도라 타는 곳...... [무주리조트 "콘도라" 이용요금표] [무주리조트 관광 콘도라] 이제서야 왜? 사람들이 없는지 알았습니다. 콘도라가 5시에 멈추니 이미 모두 내려 간것이었습니다. 콘도라 이용요금도 존나 비쌉니다. 하행에만 8,000원/1人. 콘도라 탑승 승강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 엔지니어에게 사정 사정 애원 했습니다. 한마디로 "절대 불가"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고 애걸복걸 했습니다. 걸어 내려 가려면 2시간 가량 걸리는데... 엔지니어가 하는 말...... "조금 있다가 퇴근 할때, 트럭타고 내려 가는데, 짐칸이라도 괜찮으면 타고 내려 가실래요?" "워메~! 뭔말~~이런 왠 감지덕지한 말을 다 해주셔서 감사의 눈물이 나려고 합네다~" "어떻게 보답을 해 드리면 되겠나요?" "무료로 태워 드리겠습니다" "아니..콘도라 요금이 1인당 8,000원인데 어찌 꽁짜로 타고 가겠습니까...너무 고마워요~" [트럭 타고 하산] 이렇게 되어 史上初有의 事件 - 트럭을 타고 덕유산을 하산하는 일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5시30분에 트럭 짐칸에 감지덕지 올라타고 덕유산을 하산 합니다. 스키장 루트를 통해 트럭을 타고 내려오는 시간도 30분이나 걸렸습니다. 그러니 걸었으면....오늘 죽을 뻔 했습니다. ㅎㅎㅎ ㅋㅋ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다!~" ㅎㅎ [무주리조트 스키 하강장] 6시 덜컹거리는 트럭 짐칸에서 궁뎅이가 방뎅이가 되며 내려왔지만, 다행이 사고없이 꽁짜로 안전하게 리조트에 내려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37번 국도] 버스 타는 곳까지는 30분을 또 다시 걸어야 했습니다. 에구~ 그래서 또 다시 아까 그 트럭 운전했던 엔지니어에게 사정해서, 이번에는 그 양반 승용차(스포티지)를 얻어 타고 간단하게 [37번 국도]까지 나왔습니다. 재주 좋지요? ㅎㅎ 이때 병곡리에 있는 "이구 대장"에게 전화 했더니 '동엽령'을 통해 오는 회원들은 "선두도 아직 내려 올려면 멀었어요~" 하는 것이었어요. 아유~ 좋아라~ 우리가 괜히 왜 더 좋지요? ㅎ 앞으로 그 사람들이 여기까지 오려면 약 2시간 이상이 걸릴테니, 여유가 생겨.... ㅎㅎ 음식점에 들어 가서 ...맛있는 '올갱이 해장국' '감자전'등등에 쐬주를 대여섯병을 까고.... 콘도라 비용 1인당 8,000원X4명=32,000원은 뽀나스가 되어 저녁 식사를 꽁짜로 하는 기분... 기분 어둠 속에서 밤 여덟시가 넘어 나타나는 '거인산악회 버스'를 만나 서울로 왔습니다. [스키 하강장에서 올려다 본 "설천봉"] 멋있습니다 겨울이 오면...눈이 내리면....사람들로 발 붙일 곳이 없으리라~ ['무주리조트' 스키장 구글어스] 트럭이 내려온 코스가 녹색선으로 선명하게 보이시죠? 트럭이 30분간 내려왔으니 짐작 할수 있겠지요? ㅎㅎ 여기가 "무주리조트 스키장"이었으니 가능했던 헤프닝이었습니다. ['백암봉'에서 '동엽령'을 지나 "병곡리"로 하산하는 구글어스] 거창군 병곡리로 하산하려고 했던 "동엽령" 주변 구글어스를 참고하시고.... 다음 산행에서 다시 만나자구여..... (저를 따라 다니면 별의 별 헤프닝이 많이 생겨요~~ 잼있어요? ㅎㅎ)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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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 8회차-덕유산2구간]  
  황점-월성치-삿갓봉-삿갓재-무룡산-동엽령-안성

     8월 28일(토)  비
     "장 마다 꼴뚜기"는 아니었습니다.
     지난 5월 '백두대간'을 시작한 이래로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주말이면 비가 내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묘하게도 비를 피해 다녔고, 이를 두고 우리 회원 중에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분이 있어 우리에게만 비를 뿌리지 않는다고 자랑 할 정도 였었죠?
     하지만 "장 마다 꼴뚜기"는 아니었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치렁치렁 비가 내렸습니다.
     더위가 수그러들고 가을로 접어든다는 "처서 處暑"가 지난지도 1주일이나 지났는데
     "늦은 장마"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태풍까지 올라 온답니다.
     구름과 안개로 아무것도 조망할수 없었던 "월성치에서 동엽령"까지의 "덕유능선"이었지만,
     그래서 볼거리 읽을거리 하나없는 五里霧中 산행기이지만 ......
     그 "빗속의 덕유능선"으로 비라도 맞으러 저와 함께 가 보실까요?
     .......
   

   
     [산행 개념도]
   
     "덕유능선"은 1박2일로 가면 그리 힘든 코스가 아닙니다.
     우리처럼 "당일"로 가려고 하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대간길"이 되는 것입니다.
     백두대간 마루금까지 접속거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황점"에서 "월성치"까지 올라 가는 접속거리가 오늘 산행의 키포인트가 될 정도.
      1. 황점 → 월성치       3.6km
      2. 월성치 → 삿갓재     2.9km
      3. 삿갓재 → 무룡산     2.1km
      4. 무룡산 → 동엽령     4.1km 
      5. 동엽령 → 안성       4.5km  
     ----------------------------------
                합계          17.2km
     그런데 "1.황점→월성치 3.6km와 5.동엽령→안성 4.5km 合8.1km"인 접속거리가
     "백두대간 合9.1km"와 비슷했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대간길"이라고 한것입니다.
     하지만 언제 또 가보겠습니까?
     "월성계곡"과 "칠연계곡"을........
     오늘 산행의 위안꺼리는 "비가 내려 시원했다" "월성계곡과 칠연계곡을 구경했다"였습니다
   

     [덕유산국립공원 황점 출입관리소] 오전 10시 50분
   
     지난 7월 24일에 "육십령-할미봉-서봉-남덕유산-월성치-황점"을 주파하고
     잔인한 무더위의 여름이 지나 가기를 한달 동안 참고 기다려 
     다시,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황점마을"에 있는 "덕유산국립공원 황점 출입관리소"
     앞에 다시 왔습니다.
     쫘~아악 쫙 쏟아지는 비도 아니고 치렁치렁 내리는 빗줄기가 그냥 한바탕 쏟아붓고
     금방 끝낼 비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만, 마음 속으론 곧 맑은 하늘을
     기대하는 이중성을 띄고 있었습니다.
   

     [덕유산국립공원 황점 출입관리소] 10시 57분
   
     雨中山行 준비를 하고 11시경 빗속으로....덕유산 속으로 몸을 내 던집니다.
     이제 다시는 이곳 "황점마을"에는 오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하며 떠나 갑니다.
     하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길은 떠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돌아 오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월성1교] 11시 5분
   
     황점출입관리소에서 약8분 정도 넓은 임도를 따라 평지를 걸어 가면 "월성1교"가
     어서 오시라고 반겨 줍니다.
     "거창 居昌"은 옛부터 "크게 일어날 밝은 곳", "매우 넓은 들", "넓은 벌판", 
     즉, "넓고 큰 밝은 들"이란 뜻에서 "거열(居烈), 거타(居陀), 아림(娥林)"으로 
     불리어 오다가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거창 居昌"으로 처음 불리운 후 주변영역과 분할, 
     합병되면서 여러 지명으로 부르다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제 고향 "안의 安義"에 빌붙어 있던 "거창"이, 시대의 변화로 이제는 오히려 "안의"가
     "거창"에 빌 붙어 있게 되었습니다. "안의"는 "함양"보다 "거창"에 더 가깝습니다.
   

     [월성2교] 11시 28분
   
     "월성1교"에서 23분 정도 완만한 오름짓을 하면 "월성2교"가 나옵니다
     제가 거창을 방문하여 덕유산구간에 있는 "월성계곡"을 산행하는데......
     지난 국회 청문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공직후보자들의 이런저런 정치적 됨됨이를 이야기 하려는게 아니고,
     "국무총리 후보자 김태호씨"가 바로 여기 거창이 고향이라는 걸 일깨워 드리려고..ㅎ
     제 고향 동네 후배가 국무총리가 된다고해서 처음엔 반겼습니다....그러나
     젊은 40대 국무총리 발탁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수많은 의혹과 거짓말들이.....
     결국 후보자로 발탁되지 않은것보다 더 못한 결과를 낳았습니다만.......개죽음
     하여간 그 양반은 젊은 나이에 거창군수를 지내고, 경남도지사까지 승승장구한
     어쩌면 입지전적 인물일수도 있겠습니다만 항간엔 이 사람을 두고 "줄을 잘 서면...출세"
   

     [월성2교 위 이정표] 11시 29분
   
     "월성2교"를 지나면 바로 이정표가 나오며, 여기서 부터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1.6km"
     오늘 산행코스 중에 가장 급경사 오르막입니다.
     접속구간, 즉 써비스구간이 더 힘들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히려 "1박2일 산행"을 더
     선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월성치로 오르는 된비알]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月星里"
     달이 마을 앞 "성삼봉 城三峰"에 비친다 하여 "월성 月城"이었던 것을 
     "달 月, 별 星"자 “월성 月星”으로 마을 이름을 바꾸었답니다.
   

     [휴식] 11시 56분
   
     한시간 정도 걷고는, "월성치"로 올라 가는 중턱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휴식이라봐야 비 때문에 앉지도 못하고 서성이다가 가고...를 반복합니다.
   

     [월성치로 오르는 길]
   
     "배 보다 배꼽"
     접속구간에서 힘을 모두 빼는 급경사 오르막이 1.6km 계속됩니다.
     비는 내리고...갈 길은 멀고....오르막은 끝이 없고....에휴~
   

     [월성치] 12시 24분
   
     "해발 1,240m" - "月城峙"
     마을 이름은 "月星"으로 바꿨다지만, 이곳에 城이 있어 원래 이름은 "月城"이었답니다.
     지난 7월 24일에 왔었는데 다시 온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반갑기도 하고요...
   

     [月城峙의 追憶]
   
     먼 먹고 살일 있다고 이렇게들 나오셨수? 비는 내리는데....ㅎㅎ
     그래도 이런 날에도 대간길을 걸었다는 무용담은 자랑스러울수 있습니다.
     "月城峙의 追憶"
     길이 간직하시기 바람니다.

       인연  因緣 
     『인 因』은 결과를 산출하는 내적·직접적 원인이며, 
     『연 緣』은 결과의 산출을 도와주는 외적·간접적 원인이다. 
     모든 존재는 "인연因緣"에 의해 생겼다가 "인연因緣"에 의해 멸滅한다. 
     '용수 龍樹'의 '중론 中論'에 의하면 이와 같은 존재의 생멸生滅은 진실한 모습이 아니므로 
     '불생불멸 不生不滅'이며, 나아가 그 『인연因緣』마저도 실재성이 부정되므로 
     모든 존재는 "공 空"이라고 했다. 
   

     [비 내리는 '月城峙'] 12시 33분
   
     선두팀은 먼저 떠나고....
     月城峙의 追憶을 조금이라도 더 간직하려고 안내판도 유심히 보고....
   


     [月城峙 주변 안내도]

     ['삿갓봉'으로 오르는 길]
   
     "오리무중 五里霧中"
     중국 後漢時代 "後漢書"에 나오는 "장해"라는 사람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현재는 '앞뒤를 분간 할수 없는 갑갑한 상황"을 주로 의미하는 사자성어로 씁니다만
     원래는 "장해"라는 사람이 도술을 부리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이 부리는
     도술 중에 "안개를 일으켜 五里가 보이지 않게 하는 도술"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꼴보기 싫은 놈들이 자신을 찾아 오면 안개를 피워 숨어버리곤 했답니다.
     여기서부터 "오리무중 五里霧中"이라는 사자성어가 탄생되었답니다.
     요즘은 "오리무중"이라는 사자성어가 "오리무중"이 된듯한 느낌도 듭니다
     "덕유능선"은 설악산의 "공룡능선"에 비유되기도 하며
     "남덕유산"에서 "향적봉"까지는 어느 곳에서나 사방을 조망할수 있는 "조망의 명소"라고 할수 있는데.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리무중 五里霧中" 산행을 합니다.
     그래서 "눈에 뵈는게 없는 산행"입니다. ㅎㅎ
   

     [삿갓재 2km] 오후 1시 27분
   
     "월성치"에서 약50분 정도 완만한 경사의 "덕유능선"을 걸으니 이정표가 하나 나옵니다.
     "삿갓재"까지 2km 남았다고...
     이정표가 없으면 내가 서 있는 곳의 위치를 전혀 알수 없는 "오리무중"
   

     ['삿갓봉' 전위봉 오르는 등로] 1시 35분
   
     이정표를 지나니 본격적으로 "삿갓봉"으로 오르는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登路는 비교적 잘 설치된 계단으로 불편이 없습니다만, 휘몰아치는 바람으로 몸을 가누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삿갓봉" 앞에 있는 전위봉으로 올라 갑니다.
   

     ['삿갓봉'정상-우회로 갈림길] 1시 54분
   
     "삿갓봉 전위봉"을 지나가니 "삿갓봉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대부분의 횐님들은 雲霧로 눈에 뵈는게 없는 "삿갓봉 정상"을 오르지 않고,
     좌측 우회로로 그냥 지나 갑니다. 절대 힘들어서 오르지 않는게 아닙니다. ㅎㅎ
     기록으로 남겨야하는 '파란문'은 대표로 또 올랐다가 내려와야 합니다.
   
               
               ['삿갓봉' 우회로 앞 이정표]
   
     여하튼 "삿갓봉" 정상을 오르지 않고 돌아 가는 우회로가 "삿갓봉"에는 있습니다.
     그런데 "삿갓봉 정상"까지는 300m로서 단6분 걸립니다. 된비알이긴 하지만....
   

     [삿갓봉 정상] 2시 정각
   
     우회로 갈림길에서 단6분이 걸려 "삿갓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쳐 서 있을수조차 없는 "삿갓봉 정상"은 쓸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찾아 와 주었다고 망부석처럼 서있는 정상석이 인사를 합니다.
   
               
               [삿갓봉 정상석]
   
     "삿갓봉 笠峯 1,418.6m"
     "삿갓 笠"을 사용하여 "입봉  笠峯"이라고도 씁니다.
     지난 산행때 "西峰"에서 바라보니 이 봉우리가 삼각형으로 보였습니다.
     삿갓과 삼각형은 같은 맥락이니....
     지난 산행 때의 사진 한장 다시 한번 감상합니다
   

     [7월 24일 西峰에서 촬영한 사진 - 참고자료]

     [삿갓봉 정상]
   
     정상은 언제나 외롭고 고달픈 것.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막아 줄 이들 아무도 없고 
     홀로 정상을 지키기 위해 버텨야만하나
     정상을 지킬려고 노력하지 않는 파란문은 잠시 상념에 잠겼다가 재빨리 내려 갑니다
     이럴려고 올랐냐?하며.... ㅎ
     비바람 휘몰아치는 "삿갓봉 정상"과 이렇게 쓸쓸이 헤어졌습니다.
   

     ['삿갓재'로 내려 가는 길]
   
     "삿갓봉"에서 대피소가 있는 "삿갓재"로 내려가는 길은 다소 급경사였습니다.
     맑은 날씨였다면 조망이 끝내주는 곳이란걸 아는데....
     神仙이 사는 전설 속의 나라로 홀로 가는 듯한 雲霧路
   

     ['삿갓재' 대피소] 2시 24분
   
     "삿갓봉"에서 "삿갓재 대피소"까지는 20여분이면 내려 올수있는 가까운 거리.
     "삿갓재 대피소"는 "육십령"에서 "빼재"까지의 중간 쯤에 위치하고 있어 대간 종주자들이 
     하룻밤을 묵어 가는 덕유능선의 별장여관인 곳입니다
     風雨에 우리 외에는 한사람의 손님도 없는 "삿갓재 대피소"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삿갓재 이정표]
   
     "삿갓재"에서는 우리가 오전에 산행을 시작했던 "황점"으로 바로 내려 갈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참샘"이라는 옹달샘이 있어 식수를 보충할수있습니다.
   

     ['삿갓재'에서 '무룡산'으로 가는 길] 3시 4분
   
     "삿갓재 대피소"에서 약40분간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출발합니다
     지금 우리가 구름 속을 거닐고 있는 이 백두대간길의 우측은 "경상남도 거창군"입니다.
     그리고 좌측편은 "전라북도 무주군"입니다.
     경남 거창을 옆에 두고 걸어 가는 "용이 춤을 춘다는 산" "舞龍山"을 구름 속에서 만나니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조강지처 糟糠之妻"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두 여인의 얼굴이 알게 모르게 떠 오릅니다.
   

     ['무룡산'으로 가는 길]
   
     지금 배경 음악으로 나오는 곡이 뭔지 아세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연주곡인 것으로 느껴지시죠? ㅎ
     그 유명한 "안개 낀 밤의 데이트"라는 노래 입니다.
     지금은 "끄로드치아리"의 키타 연주로 듣고 있습니다.
     왜 이곡을 선곡했는지 이제 아시겠죠? ㅎ
     "조선 제10대 왕 - 연산군" 
     폭군 연산군...그는 알아도..... 그의 애첩, 창녀같은 "장녹수"는 알아도.....
     "연산군"의 정부인-왕비, 즉 오리지날 와이프를 아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폭군 "연산군"의 정부인인 "居昌 愼氏"와 그의 외질녀인 "단경왕후"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 보며 雲霧속의 덕유능선을 걸어 가려고 합니다.
     왜냐고요? ....바로 여기 거창에 본관을 두고 있는 여인들이었기에....
   

     ['무룡산' 가는 길]
   
     우선 "居昌 愼氏 家門"에 대해 알아보면 
     "거창 신씨"는 원래 중국 송나라 개봉부 출신인 "신수(愼修)"가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의 수도 개경에 왔다가 고려에 귀화하여 고려인이 됨으로써 '거창 신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며, 그 후손인 "신선경 愼先庚"이 세조 1년(1456) 사헌부 장령을 거쳐 
     성종 때에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내면서 핵심 정치권력 속으로 들어가며 
     중앙 정치 무대에 화려하게 옮겨 가 "영의정"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이번에 국무총리 후보자 거창출신 김태호씨와 비교 됩니다...
     '신선경' 이래로 거창에서 영의정(국무총리)이 또 나올 뻔 했습니다. ㅎㅎ)
     "신선경 愼先庚"의 큰딸이 '성종'의 장남인 "연산군"의 정비-오리지날 와이프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쉽게 말해 "신선경 愼先庚"의 사위가 "연산군"이고, 사돈이 "성종"인 것입니다.
     당시 "신선경 愼先庚"의 위상이 어떠했는지 가늠 할수 있겠지요?
     큰딸은 이름 없이 아버지 姓을 따라 "居昌 愼氏"가 되는 것이고...
     그녀의 남동생, '신선경'의 아들 "신수근"은 연산군 시절 좌의정을 지내기도 하지요
   

     ['무룡산 전위봉' 오르는 계단]
   
     연산군의 부인인 '거창愼氏'는 아무리 어렵고 고달퍼도 지아비를 끝까지 섬기는 
     조강지처[糟糠之妻]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녹수"라는 창녀같은 여자의 치맛폭에서 온갖 쌕스로 노닥거리며 국정을 문란케하였는데도
     그녀는 투기하지 아니하고 왕비로서 체통을 지키고........
     그리고 '중종반정' 쿠데타로 폐왕(廢王)이 된 暴君인 "燕山君"이지만 
     왕일때 옆에서 알랑거리던 수많은 여인들은 다 도망가고, 쓸쓸히 강화도에 유배 되었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창愼氏'는 홀로 따라가 끝까지 남편으로 모시고  살았으며, 
     燕山君이 죽고 난 다음 燕山君이 유배지 강화도 교동(喬桐)에 비참하게 쓸쓸히 뭍혔는데.... 
     폐비가 된 "거창愼氏부인"이 '중종'에게 최소한의 예를 갖추어 달라고 하소연하여, 
     묘를 이장하고 '王子의 묘'에 해당하는 수준까지 '墓'를 만들수 있게 되게 하였답니다.
     이 여인과 연산군의 묘는 우의동 버스 종점에서 방화동으로 넘어 가는 곳에 새로 단장하여
     일반인들에게 최근에 개방되고 있으며, 저의 "도봉산 산행기"에서 자세히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暴君 "燕山君"을 끝까지 배반하지않고, 그가 비참하게 죽고 난 다음까지도 남편으로 禮를 다한 여인.
     세간 사람들은 "장녹수와 연산군", 영화 "왕의 남자"등은 관심을 가지지만, 
     "조강지처 糟糠之妻 = 居昌 愼氏"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관심 좀 갖어주세요~~!!  특히, 세상의 여인들이여~ㅎㅎ
   

     ['무룡산' 전위봉]
   
     "조강지처 糟糠之妻 = 居昌 愼氏"의 남동생 → 신수근 愼守勤"
     아버지 "신선경 愼先庚"의 딸-'거창신씨'가 연산군의 왕비가 되고, 
     아들인 "신수근 愼守勤"은 좌의정까지 오르며, 오누이가 해먹는 족벌정치가 이루어 집니다.
     그리고 "신수근 愼守勤"의 딸은 "중종 中宗"의 정비인 "단경왕후"가 됩니다.
     고모와 외질녀가 모두 왕비가 된것이었습니다.
     이 때가 " 居昌 愼氏"의 전성시대 였지요. 하지만 잠시 뿐....
     그러나 모두 아시다시피 결국 "중종반정"이라는 쿠데타가 일어나 "신수근 愼守勤"은 처형 당하고
     누나인 "연산군 妃인 거창신씨"는 폐서인이 되고, 중종의 정비인 "단경왕후"도 왕비 행세 7일만에
     궁궐에서 쫏겨나 서인이 되어 인왕산 밑에서 쌩과부로 71살까지 살다가 죽었습니다.
   

     ['무룡산' 전위봉 헬기장]
   
     그런데 "치마바위"라는 이야기 생각 나십니까? 유명한 얘기이죠?
     12살의 나이에 "진성대군"에게 시집와 애뜻한 정을 나누었던 소녀.
     그 "진성대군"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왕이 되고...그녀는 졸지에 왕비가 되고...
     조선 제 11대 왕 "중종" 그가 바로 그 소녀의 서방인 "진성대군"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녀는 연산군 아래에서 좌의정을 지내던 "신수근 愼守勤"의 딸이 었으니
     운명은 이렇듯 기묘하게 찰라에 의해 바뀌고....
     박원종을 비롯한 쿠데타 세력들은 연산군의 와이프-거창신씨의 외질녀이며 
     "중종"의 정비인 "단경왕후"를 왕비로 남겨 둘수가 없었지요. 후환이 두려워....
     그래서 꼭두각시 얼굴마담 '중종'을 족쳐서 "단경왕후"를 폐위 시키고 새로운 왕비들을
     급하게 옹립합니다. 
     새로 뽑은 왕비들 중.....그 유명한 "문정왕후"....에서 부터 
     우리나라 역사에 지울수 없는 "임진왜란"의 비극적 전란으로 가는 불씨가 됩니다.
   

     ['무룡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중종"은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 준 쿠데타 세력들에게 꼼짝도 못하고 사랑하는 "단경왕후"를
     눈물로 떠나 보낼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중종"은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그녀가 보고 싶어 경복궁 경회루 앞에 나와
     그녀가 산다는 "인왕산"방향을 바라보며 그리움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요.
     폐서인이 되어 쌩과부로 홀로 사는 '단경왕후'는 그 사실을 소문을 통해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는 궁궐에서 입던 자신의 다홍치마를 인왕산 바위에 걸쳐 놓아 자신의 입지를
     알리곤 하였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이후 단 한번도 다시 만나지 못하고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
     바라만 볼수 밖에 없는 사랑......"치마바위"의 내력입니다.
   
                   
                    [경복궁 경회루에서 바라 본 "인왕산 치마바위"]   
                    궁금하면 못참고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파란문'이 직접 찾아 촬영했는데
                    중종과 단경왕후의 '치마바위 사랑'이 충분히 가능 할 정도로 잘 보였습니다.
   
     그 유명한 얘기는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 오며 영화나 드라마로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연산군과 장녹수"의 사랑이 에로스적 사랑이라면, '연산군과 거창신씨"의 사랑과
     "중종과 단경왕후"의 사랑은 플라토닉 사랑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그렇지요?  에로스...플라토닉...어떤게 더 좋은 건지도 전 모릅니다만...ㅎ
   

     [무룡산 정상] 4시 5분
   
     최무룡씨와 김지미씨가 연애 했다는 "무룡산"에 올랐습니다.
     최무룡씨와 김지미씨가 연애 했다고해서 얼마나 좋은 곳인지 자기들도 힘들게 올랐더니
     좋기는 커녕 X빠지게 힘만 무지 들었다고 사람들이 이 정상에서 이렇게 투덜됬답니다.
     "G-me C~8"...  芝美氏8 ㅎㅎ
     얼마전 미국 전 대통령 "지미카터"씨가 북한을 방문했지요?
     한국의 "지미카터"씨가 누구인줄 아십니까?
     '나훈아"씨랍니다.....왜냐구요?
     "지미 芝美"를 캇트했으니까요...ㅎㅎ
     위의 꽁트는 유머이니 다른 특별한 의미는 없는거 아시져?
     "1,491.9m 높이 - 舞龍山" 엄청 높은 산입니다만...
     이곳에서 사방팔방으로 조망되는 경치는 정말 끝내 준다는데 오늘은 불행하게도
     아무것도 조망할수 없습니다.
     
     [무룡산 정상 이정표]
   
     이정표는 이곳 저곳을 가리키고 있지만 어디가 어디인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五里霧中입니다.
   

     ['무룡산' 정상에서 내려 가는 길]
   
     우리나라 역사에서 "女人天下"라는 시대...아실 분들은 아시지요?
     '월탄 박종하"선생이 쓴 역사 소설의 이름이기도 한 "女人天下"입니다.
     근간에 TV드라마, 영화로도 여러번 울거 먹었던 제목이지요
     조선시대가 "남존여비"의 시대였다구요? 천만에....
     여인들에 의해 조선의 역사는 수많은 질곡의 그림자를 만들어 냅니다.
     바로 위에서 이야기 한 "中宗"때에 "女人天下"가 그 극치를 이루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쬐끔 하면서 "동엽령"까지 가겠습니다.
   

     [돌탑봉 가는 길]
   
     하루 아침에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왕위에 오르게 된 "진성대군" - "中宗"
     덩달아 갑자기 왕비가 된 "거창 신씨 - 단경왕후"
     "연산군"을 폐위 시켜 강화도로 유배시킨 '박원종'을 비롯한 쿠데타 세력들은 
     "연산군"의 와이프인 "거창신씨"의 친인척은 모두 모두 잡아 죽입니다.
     후환이 두려운 쿠데타 세력은 "중종"의 와이프 "단경왕후"도 폐위 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둘이서 꼭 껴안고 헤어지지 않겠다는 부부-"중종과 단경왕후"를 협박을 해서 갈라 놓습니다.
     "7일간의 짧은 왕비"-"단경왕후"  즉위 7일만에 폐서인이 되는 "단경왕후"
     이리하여 서로 보고파 인왕산 바위에 치마를 걸어 서로의 존재를 알렸다는 "치마바위"의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 온다고 앞에서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왜 이 이야기를 다시 하는가 하면......
   

     [돌탑봉] 4시 57분
   
     강제로 생이별을 한 '중종'은 그녀가 보고파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인왕산만 바라보며 애처롭게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월탄 박종하선생"의 소설 "여인천하"에서 인용하면...
     "왕관도 싫고 구중궁궐도 싫소이다. 사저에 나가 살고 싶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진성대군의 이 말은 진심이었답니다. 
     하룻밤 사이에 삶과 죽음이 갈리고 임금이 바뀌는 세상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자신이 용상에 앉아있는 왕이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오늘같은 안개 상황이었으니....
     쿠데타 세력들은 '중종'이 "단경왕후"를 잊게하려고 전국에 방을 내려 이쁜 여자들을 뽑아 올려
     '중종'과 별의 별짓을 다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중종'은 타의적으로 여색에 쩔어 방탕한 생할을 하며 '단경왕후'를 잊습니다.
     아!~ 남자란 이쁜 여자만 새로 많이 생기면 옛사랑을 잊는가!~
     그리고 바로 제1계비인 "장경왕후 파평윤씨"와 강제 결혼을 합니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왕이 "제12대 인종"이구요....
     그런데 "장경왕후 파평윤씨"는 '인종'을 낳고 산후조리하다가 바로 죽어 버립니다. 에구~
     福도 지지리도 없지요. "중종"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가적으로도 福이 없는 결과...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장경왕후가 일찍 죽지 말았어야하는데....
   
     
     [돌탑봉 정상 이정표]
   
     "장경왕후"가 일찍 죽지 말았어야 조선의 역사가 불행으로 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
     왜냐하면 이어서 등장하는 왕비가 다름아닌 유명한 "제2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가 낳은 아들이 "제13대 명종"이 됩니다.
     "중종"이 죽자 이 여자가 실제 "女王"이 되어 수렴청정을 하며 국정을 농단합니다.
     자기 아들을 빨리 왕위에 오르게 하기 위해 죽은 "장경왕후'의 어린 아들 "인종"을 
     두둘겨 패기도하고 식사에 독을 넣어 점차 죽어 가게 했다는 설도 있을 정도로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인종'을 쫄병으로 만들며 미워하며 일찍 죽게했습니다.
     이리하여 '문정왕후"의 뜻대로 "인종"이 일찍 죽고, 자기 아들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명종"입니다.
     '여인들의 정권 싸움" - 이때를 "여인천하시대"라 일컷는 것입니다.
     그리곤 외척세력들의 막가파 정치가 시작되어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도둑놈들인 "임꺽정" "임걸년"등이 의적화, 영웅이 되는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리곤 바로 다음 왕 "선조"때에 호시탐탐 노리던 쪽바리들이 국운이 쇠약해진 조선을 침략하니
     이것이 "임진왜란"이고 세상은 더욱 쑥대밭이 됩니다.
     이 여자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무덤이 왕릉보다 더 호화스런 불암산 자락에 있는 
     "태릉"인데, 무덤만 봐도 이 여자의 위상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태릉"은 王稜이 아니고 "文定王后"의 릉입니다.
   

     [동엽령으로 가는 길]
   
     '문정왕후" 이 여자가 얼마나 지독한 권력욕의 소유자인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사례.
     이 여자는 아들을 낳을려고 무진 애를 썻습니다만, 딸만 넷을 줄줄이 낳았습니다. 죄받아서
     원자를 낳지 못하면 '인종'의 대를 이어 '인종' 인맥쪽으로 왕위가 계승됨으로, 
     자신이 아들을 낳아 왕을 만들려고 줄줄이 낳은 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신히 얻은 아들- 그가 "명종"입니다.
     네명의 딸을 낳으면서도 감추고 참고 인내하며 아들을 낳기위한 몸부림은 대단한 집념.
     이렇게 "파평尹氏"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 왕조에서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가문이 바로 "파평윤씨"가문이 됩니다.
   

     [동엽령으로 가는 길]
   
     "연산군"의 妃 - "거창愼氏" - 폭군인 남편을 끝까지 모신 "조강지처"
     "중종"의 王妃 - "거창愼氏" - '치마바위"의 전설'을 만들어 낸 "단경왕후"
     이렇게 "거창愼氏"들의 시대는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여인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시 두메산골이었던 서부경남에서도
     왕비가 배출되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입니다.
     이번엔 "김태호씨"가 국무총리가 될뻔 하다가 물 무지 많이 먹었지만.....ㅎ
   

     [동엽령] 5시 50분
   
     "해발 1,320m 동엽령 冬葉嶺"
     운무에 휩싸여 있는 이곳은 '동업령'이 아니고 "동엽령 冬葉嶺"입니다.
     "무룡산 정상"에서 1시간 45분이 걸려 "동엽령"에 도착했습니다.
     긴 거리였지만 "눈에 뵈는게 없어" 앞만 보고 열심히 걷다보니 빨리 왔습니다.
     "거창신씨" 역사 이야기 들으며 오리무중 속을 지루함 없이 오셨는지요...
   

     [동엽령 전망대]
   
     '거창"이 훤히 내려다 보여야 하는데....
     전망대도 오늘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역사도 가리웠졌습니다. 운무 속에...
     다음 구간에 다시 오겠기에 그때엔 조망 할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동엽령 이정표]                              [동엽령에서 안성으로 내려 가는 길]
   
     여기서 칠연계곡을 지나 "안성매표소"까지도 4.5km입니다.
     1시간 40분이 걸려 안성매표소로 내려 갔습니다.
   

     [동엽령 계단에서 한잔]
   
     '거인산악회' 회장님이 여기까지 막걸리를 짊어지고 힘들게 올라 왔더군요
     남아 있는 먹거리들을 막걸리와 함께 여기서 먹어 치우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 내리는 "冬葉嶺"에서 한잔 하는 이맛!~
     않먹어 봤으면 말들을 하지 말아뿌려~   함께 하신 분들 즐거웠습니다.
   

     [칠연계곡-안성으로 하산하는 길]
   
     이 계곡이 "덕유산"의 3대 계곡 중에 하나로 꼽힌다는 "칠연계곡 七淵溪谷"이랍니다
     이 계곡에서 최고의 볼거리로 꼽히는 곳이 "칠연폭포"라는데 어두워서 구경을 못했습니다.
     계곡의 끝자락에 위치한 '칠연폭포"는 일곱 개의 못이 위에서 아래로 연이어 있고 
     연못과 연못을 폭포들이 차례로 연결하고 있어서 "七淵폭포", 또는 "七連폭포"라고 한답니다
   

     [덕유산국립공원 안성 출입관리소] 7시 30분
   
     안성 출입관리소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오전 11시에 "황점 출입관리소"를 출발하여 여기까지 8시간 30분이 걸려 도착했습니다.
     비내리는 덕유능선에서 원없이 비를 맞으며 산행을 했습니다.
     대신에 덥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만, 아름다운 "덕유능선"을 조망하지 못해
     매우 아쉽습니다.
     다음 구간에선 맑은 날씨에 시야가 확 터여 덕유산의 모든 봉우리들을 조망 할수 있기를...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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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 7회차]  
  육십령-할미봉-서봉-남덕유-월성재-황점

     7월 24일(토)  흐림-맑음-비
     고향을 떠난지 언제인지 모르게 오래 되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언제나 고향은 어머니의 품처럼 그리운 곳이지요
     멀리 타향에서 파란 많은 인생을 보내고 지긋한 나이에 다시
     고향땅을 감싸고 도는 산줄기를 걸어서 음미하며 돌아 본다는 것은 
     어머니의 품속을 찾아 드는 것과 같은 감회에 젖어 들게 합니다.
     거인산악회 백두대간 14기 종주회원들과
     삼복 더위와 싸우며,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장맛비를 무릅쓰고
     백두대간 '3대 종주 구간' 중 하나로 유명한 "덕유산 구간"으로 
     "德裕山" 그 이름과 같이 넉넉하고 포근한 고향의 품속에 안깁니다
     .......
   
   
     [산행 개념도]
   
     오늘은 백두대간 3대 종주 코스 중에 하나인 "덕유산 구간"을 갑니다.
     "덕유산 구간"은 하루에 종주하기 어려워 많은 산객들이 1박2일로 종주를 합니다.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을 추구하는 거인산악회 백두대간14기들은 세구간으로 나누어
     덕유산 구석구석을 다 훌터보고 전진하려 합니다.
   

     [육십령 도착] 10시 30분
   
     경부고속도로 신갈 정류장에서 3시간만에 '육십령'에 도착했습니다.
     좀 오래된 1961년에 제가 서울로 전학 올때 하루가 걸렸었는데.....
     신설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대전에서 승차하신 '해동고 팀원' 한분이 
     교통이 불편하던 예전에는 어떻게 이런 산엘 다니셨냐고 물었습니다.
     예전에는 교통이 불편에서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이란게 어려웠었고,
     '무박 산행'이나 '비박 산행'을 했는데, 교통의 발달로 요즘은 아주 쉽게 
     "백두대간"을 편안히 "당일로 백두대간"을 다니니 세상 엄청 좋아졌다고....
     물론 요즘도 일부러 '무박산행,비박산행'을 하는 분들이 더 많지만....
   

  
     [육십령루 六十嶺樓]
   
     전라북도 장수군 방향 휴게소에는 "육각정"이 장계리 읍내를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六十嶺이라고 육각형으로 정자를 지었다고 안내하고 있으며 짓게된 내력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력은 현판을 참고 하세요.
     내용은 제가 지난 산행기에서 이미 언급한 것들입니다.
   

     [단체 기념사진]
   
     열성파 백두대간 종주 14기팀은 삼복 더위와 장맛비에도 굴하지 않고....육십령에 섯습니다
     의지의 한국인??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지금쯤 뱅기 타고 다닐텐데.....ㅎ 이렇게 걷지않고....
   

     [육십령 안내]
          
          [육십령-할미봉-서봉-남덕유산-남령 산행 안내도]
   
           이곳에서 안내하는 산행코스는 "영각사"를 한바퀴 도는 코스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육십령 → 할미봉 → 서봉 → 남덕유산 → 남령 → 영각사"
   

     ['육십령'에서 '남덕유산', '월성재'까지 구글어스]
   
     1. 거리 
        도상거리 : 14km   실산행거리 : 약16.4km
        구간별 거리는 이정표 마다 다르게 표기되 있어 단순히 참고만 하세요
        육십령-(2.2km)-할미봉-(4.8km)-서봉-(1.06km)-남덕유-(1.4km)-월성재-(3.6km)-황점
     2. 시간  : 6시간 48분
        육십령-(1시간3분)-할미봉-(3시간)-서봉-(52분)-남덕유산-(35분)-월성재-(65분)-황점
   

     [산행 출발] 10시 43분
   
     "육십령 六十嶺" 해발 734m
     고향이 지척이고, 어렸을 적 추억이 살아 있는 고갯길
     이제 언제 다시 돌아 올수 있을까 -
     터널로야 지나 다니겠지만, 이 고갯길을 넘을 기회는 아마도 없으리라....
     잘 있거라~ 六十嶺아!~
     "六十峙" - 南來 安義西六十里  長水北四十里
   

     [할미봉] 10시 47분
   
     '육십령'에서 산행 들머리를 지나 첫봉우리를 잠시 오르니 금새 나타나는 "할미봉"
     그 많은 단어 중에 왜 하필 "할미봉"일까?
     할머니처럼 등이 굽은 모양이라 그렇게 부를까?
     세월의 풍상을 격으며 이젠 늙어 꼬부라진 산이라고 이름 지었을까?
   

     [할미봉 오르는 길]
   
     오늘도 장마철 치고는 날씨가 산행하기엔 끝내 줍니다. 아직까지는....
     중부지방에는 장맛비가 쏟아지겠다고 예보하고 있지만
     육십령은 남쪽이라고 구름이 끼고 간간히 햇볕이 비치는 날씨 입니다.
     해발 7~800m가 넘는 곳이라 기온도 제법 선선합니다.
   

     [할미봉] 11시 16분
   
     한고비 한구비를 오르고 돌면 점점 다가 오는 "할미봉"
     '육십령'에서 약30분 정도 오르며 한발작 한발작 다가 갈수록 
     "할미봉"이 그 자태를 뽐내기 시작합니다.
   

     [이정표]                                       [첫번째 헬기장] 11시 21분
   
     '육십령'에서 40분 정도 땀을 흘리면 첫번째로 만나는 헬기장이 나옵니다.
     "함양"을 "산삼의 고장"이라고 알리고 있군요.
     그런 상업적인 것들 보다는 함양은 "산수가 수려"한 자연 환경 덕에 사람들이 오래토록
     건강하게 사는 곳으로 더 유명하고, 그런 환경으로 머리까지 깨끗해져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고
     인심 좋고 다정다감한 유토피아 "청학동"..........그런 곳이지요. (너무 심한가? ㅎㅎ)
   

     [할미봉] 11시 22분
   
     한걸음....한걸음 갈수록 ....시시각각 다가오는 '할미봉'
     아름답기로는 "西峰", "南德裕山"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는 "할미봉"입니다.
     하지만 이쁜 것들이 이쁜 값을 하지요? 새침때고 팅기고.....
     아무나 못 오른다고...아무나 허락하지 않는다고... 위에서 못 올라 오게 발길질을 합니다.
   

     [할미봉으로 오르는 암릉코스]
   
      "할미봉"은 이름처럼 이미 한물 간 늙은이라고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야 하는데....
      이 할망구는 늙어서도 이쁜지 가파른 암릉코스, 로프코스등으로 산객들의 접근을 제한하고
      아무나 못 오른다고 큰소리 치며 오르는 이들을 괴롭힙니다.
   
          
          [할미봉으로 오르는 급경사 로프구간]
   
          이 '할머니'는 젊었을 때엔 진짜 Miss Korea였나 봅니다.
          날씬한 다리가 직각을 이루고, 그 위로 미니 스컷트를 입고 있습니다.
          할마씨 무지 날씬~가파릅니다. ㅎㅎ 에구~ 힘들어~
   

     [할미봉 정상] 11시 48분
   
     "육십령"에서 약1시간이 걸려 "할미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쁜 할머니가 아무리 못 오르게 몸부림 쳐도 악착스럽게 끝까지 올랐습니다.
     본능적으로....ㅎㅎ
     그러나 에구~ 정상은 언제나 정복의 기쁨과 함께 허무도 안겨 주지요
     하지만 이 '할미'는 자신은 멀리에서 바라 보는게 더 멋있으니 멀리서 바라보라고 하며,
     기왕 오른 이들에겐 자신 대신에 사방팔방을 시원하게 돌아 볼수 있도록 조망을 터 주었습니다.
     늙은 할미를 그래도 이쁘다고 올라 준 이들에게 하는 감사 표시라나요?
     지금부터 '할미'가 보여주는 사방팔방의 경치를 감상 하겠습니다.
   
            
            [할미봉 정상석]
   
       1,026m 높이 
       "할미봉"의 전설은 찾아 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파란문'이 누구입니까? 악착같이 조사해 봤습니다.
       "할미봉" 이름에는 어떤 내력이 있을까? 이 아랫 마을 "서상"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할미봉" 아래에는 城터가 있답니다. 
       옛날 어느 할머니가 치마폭에 돌을 날라 城을 쌓았기 때문에 "할미城"이라 했고 
       자연스럽게 '할미성'이 있는 산봉우리를 "할미봉"이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미봉 서쪽 산자락에 있는 전북 장계의 "반송 마을" 사람들은 자기 쪽에 유리하게
       "할미봉"이 원래 '쌀미봉'인데 전라도 사투리로 음운변화를 일으켜 "할미봉"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다른 주장을 합니다. 
       이런 사실을 조사한 '파란문'은 "할미城"으로부터 연유한다고 확신합니다
       이곳은 옛날 신라와 백제, 진한과 마한의 중요한 국경이었으니까요 .......
   

     [할미봉 정상 이정표]                            [할미봉 조망대]
   
     이정표 마다 거리 표시가 틀림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에 있는 이정표가 그렇고 그렇지요?)
     '육십령'에서는 '할미봉'까지 1.67km라고 표기해 놨는데 여기는 2.2km라고 합니다
     여하튼 '할미봉'은 사방팔방 조망 할수 있는 산으로 유명하니 지금부터 조망을 하겠습니다
   

     [뒤돌아 본 '지나 온 대간길]
   
     우선 지나온 "백두대간 길"을 뒤 돌아 봤습니다.
     지난 구간에 걸었던 "깃대봉"과 "영취산", "무룡고개"가 실루엣처럼 펼쳐 집니다.
     그리고 오늘 출발지였던 "육십령"이 벌써 멀어졌습니다.
   

     [뒤돌아 본 '논개 생가' 방향]
   
     방향을 약간 남서쪽으로 돌려 '장수군 장계면' 방향을 조망합니다.
     "육십령" 아래에 있는 "장수 목장"과 "경마장"이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고....
     그 뒤로 "대곡저수지"와 "논개 생가"가 있는 마을이 조금 보입니다.
   

     [앞으로 가야할 '서봉'-'남덕유산']
   
     방향을 북쪽으로 돌리면 가야할 "西峰"과 "南德裕山"이 숨이 막히게 우뚝 솟아 있고,
     그 계곡 아래로 "경남 교육청 교육원"이 "영각사"와 함께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 산행의 하일라이트는 이곳 "할미봉"에서 "西峰"까지 오르는 길입니다.
     "백두대간" 산줄기가 꿈틀거리며 뻗어 나가고 있는 장관을 "할미봉"에서 보고 있습니다.
      우와~ 아름답다~
   

     ['할미봉'에서 바라보는 "칼날봉"방향]
   
     방향을 북쪽에서 북동쪽으로 조금 돌리면 "진양기맥 晉陽岐脈"이 펼쳐집니다.
     "진양기맥 晉陽岐脈"은 "南德裕山"에서 진주의 진양호 앞까지 뻗어 있는 산줄기를 말하는데
     '백두대간'과 '진양기맥' 사이에 낙동강의 한 줄기인 "남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함양군과 거창군의 경계를 이루기도 하는 진양기맥이 '남덕유산'에서 '남령','칼날봉','월봉산'을 
     지나 '금원산'-'기백산'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완벽하게는 종주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진양기맥을 지난해에 대부분 종주했습니다.
   

     [할미봉 급경사 철계단] 11시 57분
   
     '할미봉'에서 약10분간 조망을 하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할미봉'을 내려가는 길도 낭떨어지 입니다. 이쁜 것들은 언제나 이모양이라니까~
      다행이 예전에 없던 철계단을 설치해놔 시간 단축이 많이 되었습니다.
   

     [할미 손자봉]
   
     '할미봉' 철계단에서 앞에 보이는 岩峰을 유의하여 기억해 둬야 합니다.
     제가 저 봉우리를 '할미 손자봉"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저 봉우리에서 다시 이 "할미봉"을 뒤돌아 볼수 있고, 또한 서쪽으로는 그 유명한 
     "대포바위"를 조망 할수 있어 중요한 봉우리이기 때문에 기억 해두라고 한것입니다.
     이것저것 아무것도 못보고 그냥 등산화만 보며 지나 가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 봉우리에 가서 다시 설명, 강조해 드림니다.
   

     [급경사 로프구간]
   
     이곳 로프구간을 내려 가는데 병목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내려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하지만 계단이 없던 예전엔 이곳 "할미봉"을 내려 가는데 겨울이면 1시간 이상이 걸렸지요
     '할미봉'이 어떤 '할머니'인지 아시겠지요? 엄청 뺀질거리는 할머니입니다. ㅎ
   

     ["반송마을" "대포바위"로 가는 삼거리] 11시 57분
   
     '할미봉'을 로프에 의지하며 하산하면 삼거리가 나옵니다.
     전북 장수군 "반송마을"과 유명한 "대포바위"로 가는 갈림길입니다.
     이곳 삼거리엔 "대포바위"에 대한 안내판이 있지만 "대포바위"는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더 가서 "할미 손자봉"에 가야 볼수 있으니 유의 해야 한다고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할미 손자봉'에서 뒤돌아 본 "할미봉"] 12시 17분
   
     앞에서 "할미봉" 정상에서 설명했던 "할미 손자봉"으로 와서 "할미봉"을 뒤돌아 봅니다.
     내려 오는 철계단과 로프 구간이 얼마나 가파른지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대포바위] 12시 17분
   
     "할미 손자봉"에서 서쪽 방향을 보면 드디어 "대포바위"가 보입니다.
     "대포바위"는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양이 다르다는데....
     자세한 내용은 사진 속의 설명을 참고 하세요.
     공식적으로는 사용 할수 없는 단어를 써놔서 말하기 싫어요.
     이런 발상을 한 공무원들은 빨리 그걸 짤라야 하는데....ㅎㅎ
   

     [경남교육청 교육원으로 가는 갈림길] 12시 45분   [두번째 갈림길] 1시 2분
   
     "대포바위"가 보이는 '할미 손자봉'에서 45분쯤 평평한 능선을 따라 가면
     "경남 교육청 교육원"으로 내려 가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그리고 다시 15분쯤 더 가면 또 다시 "경남 교육청 교육원"으로 내려 가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된비알]
   
     두번째 "경남 교육청 교육원"으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면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두번째 헬기장] 1시 12분
   
     된비알을 10여분 오르면 두번째 헬기장이 나오고.....
   

     [점심식사] 1시 16분
   
     두번째 헬기장에서 5분 정도 올라 중턱에서 점심식사를 합니다.
     이 시간을 위해 산을 오르는 분들도 있지요? 막걸리 한잔  쭈~우ㄱ...캬~
   

     [점심식사] 약20분간
   
     산을 오를 때에는 정상부근에서 식사를 해야 걷기가 쉽습니다.
     정상에 오르기 전에 식사를 하면 몸이 무거워 정상을 오르는데 무척 힘이 듭니다.
     하지만 "서봉"까지는 너무 멀어 어쩔수 없이 중턱에서 식사를 하고 떠납니다.
     많은 분들이 여기서 식사하고 "서봉" 오르는데 힘드셨죠? ㅎㅎ
     경험 많은 저는 간단하게 샌드위치 몇조각만 먹고 재빨리 올랐습니다.
     나머지는 "남덕유산" 정상에서 다시 먹었습니다. 그때는 더욱 꿀맛~
   

     [西峰 오르는 된비알]
   
     "西峰"까지 봉우리가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오르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西峰"까지는  여러개의 봉우리를 올라야 됩니다.
     "예측 출발 금지"인데 미리 봉우리가 하나라고 예측하신 분들은 심리적으로 더 힘듭니다.
   

     [西峰(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 1시 51분
   
     한 봉우리를 오르면 다시 봉우리가 나타나고....
     또 오르면 또 나타나고....방향에 따라 보이는 "서봉"의 모양도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큰 봉우리를 올라 이제는 "서봉"인가하면 "서봉"은 너무 멀리 있고... 또 그렇고...
     거리도 실제 멀고 가파르지만 이런 계속되는 봉우리 때문에 심리적으로 더 힘들게 합니다.
     이 산행기를 보니 그때 왜 힘들었는지 이제 이해가 되는가요? 
     실제 봉우리를 네개 이상 넘어 "서봉"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급경사 오르막]
   
     이런 급경사는 여러군데에 산재해 있습니다.
   

     [西峰] 2시 13분
   
     또 한 봉우리를 넘었는데 "서봉"은 또 저만치 있습니다.
     그래도 많이 올랐습니다.
   

     [西峰 오르는 된비알] 2시 16분
   
     "西峰" 정상부근에 도달하니 햇볕이 따갑게 내리 쬐이고....
     땀은 온 몸을 적셔 차라리 비라도 내리길 기대합니다.
   

     [西峰 오르는 암릉구간] 2시 23분
   
     또 한봉우리를 넘으니 저 만치 정상이 보입니다.
     이제서야 "서봉"을 왜 "장수덕유산"이라고 부르는지 실감이 납니다.
     "장수"에 사는 사람들은 더 높은 "남덕유산"보다 "서봉"이 더 아름답다고...더 강조하고...
   

     [奇岩怪石을 넘어...] 2시 30분
   
     이 암봉을 넘으면 정상일까?
     천만에.....
   

     [西峰 전위봉] 2시 32분
   
     암봉을 넘으니 다시 새로운 봉우리가 앞을 가로 막습니다.
     아랫쪽에서 볼때엔 정상이 가까워 보였는데....
     그 이유는 각도에 따라 가깝게 보이기도 하고 멀어져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걷는 인생길도 이렇지요
   

     [西峰 전위봉에서 바라보는 "西峰"] 2시 43분
   
     앞 사진의 봉우리를 넘었는데 "西峰" 정상은 우왝 다시 저만치 있습니다. 
     귀신에 홀린것 같습니다.
     걸어 오르는 방향과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이렇게 착각을 불러 일으킬수 있나요?
     저도 우리나라 대간 정맥 기맥 지맥을 상당히 다녀 봤지만 이곳같은 곳은 없는듯...
     하지만 이제는 이 봉우리만 오르면 됩니다.
   

     [西峰 전위봉에서 뒤돌아본 지나온 대간길]
   
     지나온 대간길이 그림같습니다.
     "서봉"을 오르는 길이 "S"자, "ㄷ"자, "ㄹ"자로 지그재그로 올랐기에
     어느 지점에서는 "서봉"이 가까운듯하면서도 멀리 보이고, 먼듯하면서도 가까워 보이고...
     돌고 돌아 봉우리를 넘고 또 넘어야 했던 것입니다. 심리적 영향이 큽니다.
     좌측 "경남 교육청 교육원"이 보이고 그 아래 "영각사"가 보입니다.
     우측으로는 "장수목장"과 경마장이 자꾸 멀어지고...."대곡저수지"도...
   

     [西峰 정상]
   
     휴~ "西峰" 정상 바로 아래까지 왔습니다.
     산 높이도 1,492m이니 높기도 높습니다.
   

     [西峰 정상 가기 바로 전에 있는 "약수터" 갈림길] 2시 46분
   
     이미 몇번 언급했다시피 "백두대간" 마루금에는 샘터가 없습니다.
     있으면 '백두대간 마루금'이 아닙니다.
     이곳에는 약300m 떨어진 마루금 옆구리에 약수터가 있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西峰 정상] 2시 48분
   
     1,492m 높이의 "西峰" 정상에 올랐습니다.
     무척 높은 산입니다만, "육십령"이 해발 734m이어서 그래도 쉽게 오른 것입니다.
     1,492m - 743m = 749m       '파란문'도 수학 잘하지요? ㅎ
     749m를 오르는 것도 무척 오른 것입니다.
     삼복 더위와 싸우며 "덕유산 서봉"을 점령했습니다.
   
     
     [西峰 정상에 있는 현위치도]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오후3시 이전에 "월성재"를 통과 못하는 분들은 바로 "황점"으로 하산 할것]이라고
     산악회 회장이 엄명을 내렸었습니다.
     그런데 산에 좀 다닌다는 제가 오후3시가 다된 이제서야 "서봉"에 도착했으니......
     "월성재"까지 어케 3시까정 간단 말인가!~
   

     [西峰정상에서 바라 본 '西峰헬기장'과 "남덕유산"]
   
     "西峰 頂上石"은 정상 아래 헬기장에 있더군요. 사진에 보이지요?
     그리고 앞에 "남덕유산"이 떡 버티고 솟아 있습니다.
     오늘은 "삿갓재"까지 못 가는 한이 있더라도 저 "남덕유산" 정상을 반드시 올라야 합니다.
   

     [西峰 頂上石] 2시 50분
   
     비라도 쏟아졌으면 좋으련만.....
     태양이 더 가까운 하늘 끝에 올라 전라도와 경상도를 오가는 바람을 맞습니다.
     여름 다웁게 뭉게 구름이 뭉게뭉게......
     "西峰" 정상에 올랐으니 詩 한수 읊지 않을 수가 없군요
     제가 쓰는 詩는 그저 그러니 제가 좋아하는 詩 한수 올립니다.
     "이덕상 시인"은 저의 후배인데 좋은 글을 많이 쓰고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기다림이란 이름"의 이덕상 시집 중에서.....
   
          기다림이란 이름으로
                                    이덕상   
          나뭇가지로  흔들렸다가
          다시
          나무로 서있으외다.
          꽃잎으로  떨리었다가
          다시
          꽃으로 앉았으외다.
          님이 뿌린 꽃으로 피어나
          님이 심은 나무로 자라나
          이제사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말함이오.
   

     [西峰정상에서 바라 본 "남덕유산"]
   
     대부분 사람들이 "남덕유산 정상"은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 나 있다고들 말합니다.
     천만에.....그럴리가 있나요
     "山自分水嶺" 원칙으로 따지지 않더라도 반드시 "남덕유산 정상"을 올랐다가
     북쪽 능선으로 내려 가야 한다는걸 여기서 확실하게 보여 줍니다.
     "우회로" 위에서 흐르는 빗물은 누가 갈라 줍니까?
     "남덕유산 정상"에서 '우회로'로 떨어지는 빗물은 "금강 錦江"으로 흘러 갑니다.
     우측 "서상"쪽으로 떨어지는 빗불은 "낙동강의 지류-남강"으로 흘러 가고....
     남덕유 정상 넘어 "월성재"넘어로 떨어지는 빗물은 거창을 지나 합천댐으로 가는
     "낙동강의 지류-황강"으로 흘러 흘러 운명을 완전히 달리하는 것이니....
     대간 종주자들이 힘이 드니까 "우회로"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남덕유산 정상"을 오르지 않고 '우회로'를 따라 가는 분들은 '대간 종주' ?
   

     [西峰정상에서 바라 본 '월성재'-'삿갓봉'-'무룡산']
   
     "남덕유산"에서 뻗어 가는 백두대간 "삿갓봉"과 "무룡산"이 조망됩니다.
     오늘 저 "삿갓봉"을 넘어 "삿갓재"에서 "황점"으로 하산하려고 했습니다만,
     후미그룹은 워낙 늦었고, 선두,중위그룹까지도 3시 이전에 "월성재"를 통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무전기로 상의를 하여 오늘은 "월성재"까지만 하고 다음 구간을 다시 "월성재"에서
     시작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산은 언제나 거기 있으니....다음에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을 가실 분들은 
     이 산행기를 보고 "육십령-할미봉-서봉-남덕유-월성재-황점"으로 계획하시기 바람니다.
   
               
               [西峰 급경사 철계단] 2시 58분
   
               '서봉'을 내려 가는 길에는 급경사 철계단이 아주 길게 설치되 있습니다.
               700개의 계단이라며 이런 계단이 두개 있습니다.
   

     [西峰과 '남덕유산' 사이 능선길]
   
     '西峰'과 '남덕유산' 사이 능선길은 "황새 늦은목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능선입니다.
     이 능선의 우측, 즉 "함양군 서상면"쪽으로는 '자수정'광산이 많아 산을 많이 까부셔놨고...
     좌측으로는 "전북 장수"의 아름다운 "토옥동(土沃洞)계곡"을 거느리며 
     그 아래로 분출되는 '장수 온천'을 안고 있으며.....
   

     [남덕유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 삼거리] 3시 23분
   
     西峰에서 "황새 늦은목이"능선을 약25분 정도 지나오면, "남덕유산"으로 오르는
     '백두대간 마루금'과 "월성재"로 바로 가는 '우회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대간길은 당연히 직진하여 "남덕유산 정상"으로 올라 가야 합니다.
     경사가 가파릅니다만, 거리가 짧아 약20분 걸려 올랐습니다.
     못 오르신 분들은 우엑 그렇게 짧아? 오르고 올걸.....후회하시죠? ㅎㅎ
     하지만 전체적으로 갔다 오는데 1시간 걸렸습니다
   

     [헬기장]  3시 35분                                     [이정표]
   
     빠른 걸음으로 약12분쯤 오르니 헬기장이 나오고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월성재"는 이곳에서 정상을 올랐다가 다시 와 좌측 능선을 타고 내려 가면 되겠습니다.
   

     [남덕유산 정상으로 오르는 된비알]
   
     사진에는 경사가 얼마나 심한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된비알을 잠깐 올라 갑니다.
   

     [南德裕山 頂上] 3시 40분
   
     "德" 크게 베풀고...."裕" 넉넉하게 해주는....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에는 다른코스에서 올라 온 산객들도 제법있었습니다.
   
          
          [南德裕山 頂上石]
   
     "1,507m"
     "德裕山"에서 "덕유산 정상"이라는 봉우리는 없습니다.
     제일 높은 "향적봉", 그리고 "남덕유산"이 "덕유산"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암 신경준선생"의 "山經表"에는 현재의 "남덕유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鳳凰山" 分二岐 自三峰至此昔德裕라고 적고 있습니다.
     "봉황산"이 본명이며 두개의 지맥을 분기시키고 있으며, 
     자신이 세개의 봉우리[중봉, 하봉, 서봉]을 가지고 있는데 
     "덕유산"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 뜻인듯 합니다
   

     [南德裕山 頂上에서]
   
     고향 뒷산에 오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배경 음악이 선곡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옛동산에 올라 
                                이은상 작시, 홍난파 작곡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란 말 옛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고 없구료 
      지팡이 도루 짚고 산기슭 돌아나니 
      어느 해 풍우엔지 사태져 무너지고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하는 구나 
   

     [南德裕山 頂上에서 내려다 본 "西上 마을"]
   
     함양군에서 西北쪽의 끝마을, 그래서 "서상 西上"입니다.
     신라 헌강왕 2년(876) 심광대사(審光大師)가 창건하였다는 천년 고찰 "영각사"가 있으며
     경남 교육청 교육원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지요
     '자수정 광산'이 많아 여기 저기 산을 까 부수어 놓은 곳을 볼수도 있습니다.
   

     [南德裕山 頂上에서 바라본 "진양기맥 晉陽岐脈"]
   
     "山經表"에서 "鳳凰山" 分二岐 自三峰至此昔德裕라고 기술한 내용중에
     "分二岐"중에 하나가 "진양기맥 晉陽岐脈"입니다.
     사진 속의 "수망령"고개 넘어 "기백산" 안쪽이 유명한 "안의 용추계곡"입니다.
     또한"기금거황 종주코스"로 유명한 "기백산-금원산-거망산-황석산 종주"코스가 보입니다
   

     [南德裕山 頂上에서 바라본 "西峰"]
   
     南德裕山 頂上에서 "西峰"을 뒤돌아 보니 형제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 인간들이 갈구하는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 모두 아시죠?
     네, 바로 無病長壽입니다.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겠죠.
     바로 無病長壽를 자랑하는 곳이 바로 이곳 咸陽 安義입니다.
     맑은 물, 깨끗한 공기, 조용하고 안락한 곳을 자랑하는 咸陽 山靑..
     너무 자랑하나요? ㅎㅎ
   

     [南德裕山 頂上에서 바라본 '삿갓봉'-'무룡산']
   
     다음구간에 갈 "삿갓봉-무룡산"이 공룡의 등뼈처럼 뻗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 백성들의 평균수명이 얼마이었는지 아십니까?
     "25세"였습니다.
     평균수명이 이렇게 낮을수가 있나라고 의아해 하신다구요?
     파란문이 잘못 알고 있다구요?
     아닙니다. 틀림없이 조선시대 평균수명은 25세였습니다.
     물론 태어 날 때와 어렸을 때에 절반은 죽었기에 "평균수명"은 엄청 낮아진것이지요.
     하지만 태어날 때와 어렸을 때 죽지 않으면, 대략 50세까지는 살았다는 뜻이 됩니다. 
     이제 이해가 가시죠?
     "평균수명 25세"
     그런데 지금은? 
     말 안해도 모두 아시져? 요즘은 일찍 죽어야 할 인간들까지 너무 오래 살아여~휴~
   

     [南德裕山 頂上에서 내려다 본 "황점마을"]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황점마을이 보입니다.
     이곳은 행정구역이 바뀌어 "경남 거창군 북상면"이 되겠습니다.
     이 계곡이 "낙동강의 지류-황강"의 발원지가 되며 최상류가 되겠습니다.
     "월성재"에서 저곳 "황점마을"까지 내려 가는데 1시간이 걸렸습니다.
     다음엔 다시 올라야 하는데...휴~  1시간 30분쯤 걸리겠군요.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은 조선시대-일제시대 "25세"에서
     1960년에는 52.4세로 두배로 늘어 납니다. 
     그리고 2000년에는 75.9세로 세계적 장수 국가가 되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某事在人(모사재인), 成事在天(성사재천)
     인간의 수명도 노력하면 얼마던지 늘어 날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습니까?
     咸陽 山靑의 "맑은 물, 께끗한 공기, 조용하고 안락한 환경"이
     無病長壽를 만든다고 자랑하고 있답니다.
     고향 자랑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객관적으로도 실제 좋은 곳입니다. ㅎ
   

     [南德裕山 下山]  4시 5분                         [헬기장 이정표]
   
     고향 뒷산에 아쉬움을 남기고 내려 갑니다.
     올랐던길을 잠시 내려 가면 헬기장을 만나고 북쪽으로 "삿갓재"-"월성재" 가는 길이 열립니다
   

     [南德裕山 下山 북쪽 사면길]
   
     "월성재"로 내려 가는 길은 가파릅니다.
     꺼꿀로 오를려면 무척 힘들겠죠?
     그런데 몇몇분들이 여기로 "남덕유산 정상"을 오르더군요
   

     [우횟길과 만나는 삼거리] 4시 23분
   
     남덕유산 정상에서 약17분 정도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오니 
     "西峰"에서 오는 우회로를 만납니다.
     "황새 늦은목이"에서 "남덕유산 정상"을 올랐다가 이곳까지 정확히 1시간이 걸렸습니다.
     정상에서 이곳 저곳 조망을 하고 남은 음식을 다 먹어 치우다 보니 시간을 좀 소비했습니다.
   
          
          [우횟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남덕유 정상까지 300m라고 알려 줍니다.
          가까운듯 하지만 '남덕유 정상"을 오르고 오는데 1시간이 걸렸습니다.
   

     [올려다 본 '남덕유산 정상']
   
     겨울에 와야 더욱 몸맵시를 자랑한다는데....
     크고 넉넉합니다.
   

     ['월성재'로 가는 길]
   
     원시림을 뚫고 "월성재"로 내려 갑니다.
     숲의 포로가 되어 외부를 전혀 조망 할수 없습니다
   

     [월성재] 4시 49분 ~ 5시 15분
   
     옛날엔 이곳에 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월성재"이라는데....
     이곳부터 시작되는 계곡이 황점까지 "월성계곡"이랍니다.
   
 
     [월성재에서 한잔]
   
     삿갓재에서 1박을 하며 "빼재"까지 연속적으로 진군을 하는 '해동팀'들을 여기서 보내고,
     "주형팀"이 여기까지 힘들게 짊어지고 온 값비싼 남은 '쏘맥' 한잔했습니다.
     골뱅이까지...감사
   

     ['월성치'에서 '황점마을'로 내려 가는 계곡길]
   
     내려 가는데 시원하게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약 1시간에 걸쳐 하산을 합니다.
   

     [월성교] 6시 14분
   
     "월성계곡"에는 두개의 "월성교"가 있더군요.
   

     [뒤돌아 본 '월성재'와 삿갓봉']
   
     '황점마을'근처까지 내려와 뒤돌아 봤습니다.
     다음 구간에 다시 올라야 할 "삿갓봉"이 여기서 보니 더욱 높아 보입니다.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팀"은 이래저래 훤씬 더 긴 써비스 거리를 걷습니다.
     1박 종주를 하면 사실 쉬운데....우리는 아마도 "덕유산"을 네번 올라야 할것 같습니다.
   

     [덕유산국립공원 황점 출입 관리소] 6시 20분
   
     국립공원 출입구에 도착하니 비는 어디로 도망가고....
   

     [황점 마을]
   
     [37번 국도]를 만나며 종착지 "황점마을"에 도착합니다.
     몇가구 되지 않는 조그만 마을 입니다만, 심심 산골이 이제는 덕유산을 찾는
     산객들로 북적대고 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바라 본 '황점마을'] 6시 25분
   
     상당히 큰 주차장에서 황점마을을 바라 보며 오늘 산행을 마칩니다.
   
       
       [알탕]
   
       '운해님'이 찰영한 사진인데....쌕씨한가요?  어휴~ 시원해~~~
   

     ['황점마을' 부근 구글어스]
   
     내려 온건 그렇다치고 다시 올라 갈 일이 까마덕합니다.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은 "백두대간 마루금"만 밟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이곳 저곳, 이런 계곡 저런 계곡, 이런 마을 저런 마을을 다니며 가기 때문에
     또 다른 다양한  산행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 파이팅"입니다
   

     [남덕유산 노을]
   
     '남덕유산' 의 "남령"을 넘어 육십령을 지나는데
     후두둑 후둑 내리는 빗물이 차창에 어른거리는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 한장 찍었는데.....
     다음구간에서 또 만나요~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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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 6회차]  
  무룡고개-영취산-덕운봉-북바위-민령-깃대봉-육십령

     7월 10일(토)  흐림
     장마철에는 아무래도 산에 다니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선진국 기상청에 비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다는 우리나라 기상청도
     장마철에 많큼은 하루에도 몇번씩 말바꾸기가 생활화 된 갈팡질팡한 예보를 합니다.
     기상청도 예측 할수 없는 불순한 날씨를 우리가 맞춘다는 건 더욱 무리입니다
     그런데 참 희안 하지요?
     백두대간 14기가 산행을 떠나는 날이면 빗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횐님들 중에 하느님과 통하는 특별한 분이 있는 듯 합니다.
     구름이 따가운 햇볕을 가려주고, 해발 1,000m 고지엔 시원한 바람이 불어 주고....
     오늘도 약60여명의 횐님들과 즐거운 백두대간 산행길에 오릅니다.
     .......
   
      
      [산행 개념도] 
   
      오늘은 "무룡고개"에서 "영취산"을 올라 "육십령"까지 北進을 합니다.
      거리는 알려 주는 곳 마다 제각각입니다만, 대체로 약14km가 되겠습니다.
   
 
     [무룡고개] 오전 10시 40분
   
     지난 5구간의 들머리이기도 했던 "무룡고개 舞龍峙"에 다시 왔습니다.
     '무룡고개'는 '백두대간'의 '영취산'과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으로 가는 
     산행 들머리여서인지 주차장과 휴게실이 제법 큰 규모로 마련되 있습니다.
   

     [무룡고개]
   
     주차장에서 고도를 약간 높이며 올라 가면 "무룡고개 에코 브릿지"가 나옵니다
     지난번엔 안개 속에서 龍이 튀어 나올듯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오늘은 날씨도 좋습니다.
   

     [무룡고개에서 육십령까지 거리]
   
     무룡고개 '영취산' 들머리에 있는 안내판에는 
     무룡고개 → 영취산 까지가 0.9km
     영취산 → 육십령 까지가 11km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는 영취산 → 육십령 구간이 13km로 안내하고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사안은 아니니 저는 '무룡고개-육십령'을 약14km 정도로 짐작합니다.
   

     [무룡고개-영취산-덕운봉 까지 구글어스]
   
     이해를 돕기 위해 구글어스를 보여 드림니다.
     보시다시피 '무룡고개'에서 '영취산'까지는 급경사 오르막입니다.
     하지만 거리가 짧아 15~20분 정도만 고생하면 되겠습니다.
   
 
     ['영취산' 오르는 길]
   
     10시 45분에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 합니다.
     지난번에 한번 경험한 길이고 날씨도 좋아 가뿐한 걸음으로 영취산을 오릅니다.
   

     [영취산 정상] 11시 4분
   
     '영취산' 정상에 금방 도착했습니다.
     '영취산' 정상은 1,075.6m 높이라고는 실감이 나지 않는 조그만 뒷동산 같은 느낌을 줍니다.
   

     [영취산 정상]
   
     이 산이 '독수리'를 닮았는지 알수도 없고....
     부처가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설법을 하던 인도의 마가다국의 시체 버리는 산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하지만 이 산봉우리는 "백두대간"에서 가지를 치는 "금남호남정맥"이 分岐하는 "分岐峰"이기에
     정맥꾼들에겐 매우 유명한 산입니다.
     대간이 끝나면 여기에 다시와 '금남호남정맥'을 가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영취산 정상석]
   
     1,075.6m높이
     '금남호남정맥'의 分岐峰이기도 하니 당연히 세개의 江도 分岐하는 分岐峰-三江峰입니다.
     동쪽으로는 '낙동강', 서북쪽으로는 '금강', 서남쪽으로는 '섬진강'..........
     여기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조심해서 떨어져야 자기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갈수 있습니다.
     조금만 잘못 떨어져도 운명이 뒤바뀝니다.
   
 
     [덕운봉 가는 길] 11시 7분
   
     '영취산'을 뒤로하고 '北進'을 합니다.
     평평한 능선이 아니고 '영취산'을 하산하여 다시 '덕운봉'으로 올라야 합니다.
   

     [덕운봉 가는 길]
   
     오늘 산행길, 즉 영취산에서 육십령까지에는 스토리, 히스토리가 별루없는 산길입니다.
     물론 옆에 "논개 생가"가 있습니다만 지난 산행기에서 한번 써먹어 쓸만한 얘깃거리가 없습니다
     이번 산행기도 읽을만 하겠지?라고 기대하신 분들은 또 실망이 크실겁니다.
     산행한 기록들이나 한번 음미하시고 나중에 시간 날때 또 한번씩 읽어 보시기 바람니다.
     그 때에 다시 읽으면 다시 내가 걸은 대간길이 생생하게 기억 날것입니다.
   

     [덕운봉]
   
     '영취산'을 내려 가는데,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덕운봉 德雲峰"이 '영취산'보다 오히려 '독수리' 모양입니다.
   
                   
                  [논개 생가 갈림길] 11시 30분
   
                  "영취산"과 "덕운봉" 사이에 있는 고갯길인데
                  이곳에서 왼쪽, 즉 서쪽으로 내려 가면 지난번에 가 보았던 
                  "논개 생가"가 나온답니다.
   

     [덕운봉 갈림봉] 11시 43분
   
     이정표에 "덕운봉"이라고 표기해놓은 "덕운봉 갈림봉"에 올랐습니다.
     "덕운봉 德雲峰"정상은 여기서 동쪽으로 더 가야 하며, 백두대간 마루금을 약간 벗어나 있습니다
   
               
           [덕운봉 갈림봉 이정표]
   
           "덕운봉 정상"은 이정표 뒤로 보이는 산봉우리입니다.
   

     ['덕운봉' 갈림봉에서 뒤 돌아 본 '백운산']
   
     우리가 가고 있는 "백두대간 白頭大幹"은 "여암 신경준선생"이 작성한 "산경표 山經表"를
     기본으로 하고, 현대적 지도를 참고하여 마루금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리지날 "山經表"를 읽어 보는 것은 필수 입니다.
     하지만 100% 한문으로 되 있고 표기 방법도 이상하게 되 있어 읽기도 힘들고....
     이해하기는 더더욱 곤혹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가방끈이 짧지만 오로지 노력으로 산경표를 파악해서 '파란문'이 종종 알려 드리겠습니다
   

     ['덕운봉' 갈림봉에서 동쪽 방향 조망]
   
     여기까지 왔으니 제 고향을 밝히지 않을 수가 없군요.
     제 고향은 저 앞에 보이는 서상면 아랫쪽에 있는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마을은 경남 함양군 서상면인데, 서상면은 안의와 함께하는 생활권이죠.
     "서상"은 경상남도의 서쪽 맨 끝에 있다고 "西上"입니다.
     그러니까 안의면과 서하면, 서상면은 한 동네인 셈이지요. 
     중고등학교가 있는 곳이 '안의'여서 이곳의 학생들은 '안의고등학교'를 다닙니다.
     저도 무지무지 촌에서 태어난 촌놈입니다.
     안의국민학교 4학년을 마치고 서울 종로 "교동국민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만.....
     친구들이 부러워 선망의 대상으로 여겼을 정도였으니 '촌에서 출세한 놈'이 되었습니다. ㅎㅎ
     그때 서울 가는 데 하루가 걸렸으니 얼마나 촌이었는지 짐작이 가시죠?
     100여년 전까지만해도 "安義"는 전라도 북부지방과 서부경남, 즉 東西를 연결해 주는 
     유일한 길인 "육십령 六十嶺"으로 가는 길목이었습니다.
     또한 서부경남에서 한양을 가려고 해도 '육십령'을 넘어야 했으니 "교통의 중심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는 함양군과 거창군이 "안의현 安義縣"에 포함되 있었으니 "안의"는 매우 큰
     도시였던거죠
   

     ['덕운봉' 갈림봉에서 바라 본 가야할 '깃대봉']
   
     安義縣監으로 재임 한 분들중에는 유명 인사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1790년대에 "열하일기"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선생이 安義縣監으로 재임 했었습니다.
     '연암 박지원'선생은 일찍이 조선 주류사회의 허위의식과 부조리에 대해 일갈했던 
     사회학자이자  박애주의자이며 페미니스트였지요. 
     또한 서양의 '괴테'나 러시아의 '톨스토이', 미국의 '헤밍웨이'에 비견되는 조선의 대문호 이십니다.
   

     [산죽 군락지대]
   
     "연암 박지원"현감이 '육십령' 아래에 있는 덕유산 자락의 "영각사"를 들렸다가 
     詩를 한수 남기셨는데......
   
                천천히 수레 움직여
                서글피 소나무 숲을 나오네
                차마 청산은 이별하여도 
                저 녹수는 어찌할 거나
   
     이곳의 山水가 어떠했는지를 한마디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안의'에 국민 관광지로 "용추계곡"과 "화림동 花林洞"의 명성이 드 높습니다.
     초등3학년 때에 저는 소풍을 "화림동 花林洞"으로 줄을 서서 걸으며 갔던 기억이 납니다
     "화림동 花林洞"은 글자 그대로 "꽃숲"을 이루는 낙동강의 서쪽 최상류 계곡입니다.
     그곳엔 또한 "농월정 弄月亭"이라고 있는데,  글자 그대로 "달을 희롱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니
     그 경치를 가늠 할수 있겠지요?
     "용추계곡"에 대해서는 다음 덕유산구간에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개미 집단 서삭처]
   
     엄청난 숫자의 개미들이 서식하고 있더군요
     진밤색은 모두 개미들입니다.
   
          
          [영취산, 육십령 중간지접] 12시 38분
   
          '영취산'과 '육십령'의 중간 지점이랍니다.
          '무룡고개' 안내판에는 11km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13km라고 하지요?
          '영취산'에서 무룡고개'까지 써비스 거리 900m를 합치면 오늘 약14km를 걷는게 되겠습니다.
   

     ['북바위'로 가는 대간길]
   
      고향 이야기 하나만 더 하고 지나 갑니다.
      "춘향전"에도 등장 하는 "安義"입니다. 춘향전에서 인용합니다.  
      이 도령  : "자고로 문장재사 文章才士도 아름다운 강산 구경하는게 풍월 읊는 근본이라
                  詩의 王 이태백이는 채석강에서 놀았고,  적벽강 가을 달밤에 소동파 놀았고,
                  심양강 밝은 달에 백낙천 놀았고, 보은 속리산 문장대에 세종대왕 노셨으니
                  아니 놀지는 못하느니라."
       방자 : (이때 도련님 뜻을 이어 사방 경치를 더 읊는데....)
               "한양을 이를진대 자하문 밖 내달아 칠성암, 청련암, 세검정과
               평양 연광정, 대동루 모란봉, 양양 낙선대, 보은 속리 문장대,
               "안의 수승대".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가 어떠 한지는 몰라도
               전라도에 이를진대 태인 피향정, 무주 한풍루, 전주 한벽루 좋으나 '남원' 경처 들어보오
               동문 밖 나가시면 장림숲 선원사 좋사옵고, 서문 밖 나가시면 관왕묘의 엄한 위풍
               예나 지금이나 같사옵고, 남문으로 나가시면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 좋사옵고....."
   
     전국의 명승지를 춘향전에서 '이 도령'과 '방자'가 서로 판소리로 읊는 장면입니다.
     여기에 등장 할 정도면 전국적으로 유명한 명승지라고 할수 있겠죠?
     '수승대'는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거창군에 속해 있는데 덕유산 밑에 있습니다.
   

     [북바위 앞] 1시 정각
   
     산봉우리를 하나 치고 오르면 "북바위"앞이 나옵니다.
     '깃대봉'은 오른쪽으로 갑니다만, 잠시 "북바위"를 구경하고 갑니다.
   
 
     [북바위 안내]
   
     옛날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가 영토분쟁을 하던 경계선이 이 대간길이니,
     전쟁에서 승리하면 이곳에서 북을 쳤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북바위]
   
     백두대간의 산세는 대부분 동쪽이 급경사이고 서쪽은 완만합니다.
     그런데 이곳 "북바위"는 서쪽이 낭떨어지 입니다.
   

     [북바위]
   
     "북"처럼 생겼습니까?
     아랫쪽으로 "논개 생가"가 보입니다.
   

     ['북바위'에서 바라 보는 '깃대봉']
   
     경상도 고향 근처에 왔으니 경상도 말로 표현되는 유머 몇개 소개해 드림니다.
     다른 얘깃꺼리도 없고 하니.....ㅎㅎ
     "마누라"의 어원에 대해서 아시나요?
     왜 와이프를 "마누라"라고 할까? 들어 본적이 없으시죠? ㅎㅎ 알려 드리지요
     깅상도 신혼부부가 첫날밤에 신랑이 신부에게 한 말에서 유래 한답니다
     깅상도 남자들의 육자배기식으로 내 지르는 말을 이해해야 이 유머가 잼있는데....
     깅상도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아마 웃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웃거나 말거나~
  
     신혼 첫날밤에 깅상도 신랑이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침실로 와서 아무른 애정 표현없이 
     신부에게 하는 한마디 말........
     " 마! 누~라!"
   
     이렇게 해서 "마누라"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ㅋㅋ
     그 신랑은 지금은 아마도 자기가 밑에 누울껄?~ ㅎㅎ
   

     [점심식사] 1시 5분
   
     '북바위' 약간 지난 능선에서 약 40분간의 식사시간을 갖고.....
   

     [깃대봉 가는 길]
   
     깃대봉으로 가는 백두대간
     "민령"으로 떨어졌다가 "깃대봉" 오르는 登路가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드는 구간이 되겠습니다.
     전세계에서 "말 압축 능력" 최고가 경상도 사람들이라는거 아세요?
     거의 모든 말을 풀어서 말하지 않고 "압축"해서 말 합니다. 진짜에요~
     지금부터 쓸 얘깃꺼리도 없으니 例를 들어 드리지요. 맞으면 박수 치세요...ㅎㅎ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은 간단하게.............. "고다꾜 쏵쌤"으로 말 합니다. ㅎㅎ
     "할아버지 오셨습니까?"는 어떻게 압축할까요?      →      "할뱅교?"
     "저기 있는 저 아이가 누군지 궁금하구나?"           →      "쟈 누고?"
     "나 배고파!  밥 차려놨어? ......밥 먹어!"            →      "밥도! ... 자! 무라"
     "어,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 "              →      "우야노"
     "왜 그러시는가요? "                         →      "멍교?"
     "이 물건 네 것이였니? "                      →      "니끼가?"
     "웅, 그건 내 물건이야 "                      →      "인 도!"
     "어디에 숨겨 놓았니?"                        →      "우쨋노?"
   
     정말 엄청난 압축 능력을 가진 종족 아닙니까?  ㅎㅎ 정말 단순 명료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타 지방 사람들은 깅상도 사람들을 무뚝뚝하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사실 자기들 끼리도, 자기가 생각해도, 무뚝뚝하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옥토퍼스 소나무]
   
     제가 생각 할때 아주 단순한 단어 몇개로 최고 압축하는 문장은.....
     "니가 그렇게 말을 하니까 내가 그러는 거지, 니가 안 그러는데 내가 왜 그러겠니? "를
     갱상도 사람들은 어떻게 말 할까요?
 

니 그카이 내 그카지, 니 안 그카믄 내 그카나?

[민령 이정표] 2시 12분 "여암 신경준"선생이 집필하신 "山經表"에는 "백운산"에서 "육십령" 사이에 "장안치 長安峙"와 "本月峙"가 있다고 표기 해 놨습니다. 그 "장안치 長安峙"가 현재의 "민령"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를 설명 드리지요. "六十峙" - 南來 安義西六十里 長水北四十里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정도는 모두 읽고 이해 하시죠? ㅎㅎ '안의 서쪽 60리, 장수 북쪽 40리에 "육십령"이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습니다. "長安峙" - 安義西六十里 長水東十里라고 표기 했습니다. '안의 서쪽 60리, 장수 동쪽 10리에 "장안치 長安峙"가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長水와 安義 사이에 있는 고개여서 "長安峙"라고 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민령"의 본명은 "장안치 長安峙"가 분명합니다. 본명을 찾아 줍시다!~ 그 다음에는 "本月峙"가 있는데 지금의 "무룡고개 舞龍峙"근처를 말하는듯 합니다. 그리곤... "白雲山" - 安義西三十里 咸陽西四十里 光陽北三十里라고 표기 되 있습니다 * 산경표는 현재의 정확한 지도와 비교하면 오차가 많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산경표'를 너무 신봉하지 맙시다~! ['민령' 아래로 지나는 '대전-통영 고속도로'] '安義'에서 60리 떨어져 있고, 고개 고개가 60개가 된다는 험준한 "六十嶺"을 이제는 터널을 뚤어 단 몇분이면 통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보이는 마을은 경남지방에서 가장 서쪽에 있다고 "서상 西上"이라고 하는 '안의'와 붙어있는 마을 입니다. 비포장 '육십령' 고갯길을 시외버스를 타고 먼지와 함께 터덜거리며 넘던 옛생각이 아련합니다. 이 고속도로로 서부 경남이 우물 속에서 나왔다는거 아닙니까 옛날에 제가 서울 갈때 하루가 걸렸는데 지금은 3시간이면 간다니.... 지금은 말이 고향이지 연고라고는 5촌 당숙이 살고 있을 뿐...... 서울에서 오십여년을 살았으니 이제는 잊혀진 고향이고 오히려 타향이 고향이 되었습니다. ['깃대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지나온 길]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면 스스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지리산 구간"을 벗어나 "덕유산 구간"으로 갑니다. 山群들은 일렁이는 파도처럼 하늘을 넘나 들고 있습니다 아!~ 백두대간- - - ['깃대봉' 정상] 2시 45분 "민령"에서 오르막 33분을 걸어 "깃대봉"에 도착합니다. ['깃대봉' 정상] 깃대봉 정상에는 깃대가 3개 서 있고, 정상석이 우람하게 "구시봉"이라고 알림니다. "구시봉" ? ? "구시"가 뭔 말이지? ? 의문부터 들기 시작 합니다. 모든 지도에 "깃대봉"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정상석은 "구시봉"이라고 합니다. 옛날 제가 왔을 때에는 정상석이 없어서 그냥 생각없이 넘어 갔는데..... ['깃대봉' 정상석] 최근 2006년에 이곳에 정상석을 세우며 "구시봉"이라고 새로 지명을 바꾸었다는 군요. 정상석 뒤에 산림청에서 공식적으로 밝혀 놓은 산 이름의 유래가 보이시죠? "이곳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서 그 아래 주둔하고 있던 군사들이 기를 꽂았다고 하여 '깃대봉'이라 불렸었으나, 옛날 한 풍수가 이 산에 올라 산의 형태가 구시형이라 하여 2006년 1월 6일 '구시봉'으로 지명이 변경되었습니다. 산림청" 현대의 지리적 과학적 전문가도 아닌 "옛날 한 풍수가"가 한마디 씨부린 걸로 고유명사를 바꿔? 꼭 바꿔야 할 이유도 없이 그냥 꼴리는데로 바꿔? 산림청이 작명소란 말인가! 고유명사, 즉 地名을 바꿀때는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합니다. "옛날 한 풍수가"는 누구인가? 이름을 밝혀라!~실제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이나 증거가 있는가? 어느 한 사람이 한마디 씨부린게 地名을 바꿔야 할 정도로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인가! 현직 대통령이 한마디 해도 이유와 타당성이 없으면 못 바꾼다!~ 더더욱 "구시"라는 말의 뜻은 무었인가? 내가 사전을 아무리 뒤져도 그런 단어는 없던데... 제 고향 산 이라 이렇게 큰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구시"라는 말은 무었을 의미 할까? 사전에는 없고....생각~생각~생각 해 봤습니다.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단어의 어원이 ...........이것은 오로지 '파란문'의 생각입니다. 소, 돼지, 말에게 먹이를 주는 밥그릇통을 "구유"라고 하지요? 주로 통나무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예수도 마리아가 좋은 집 놔두고 '구유'에다 애를 낳아 태어 났지요? 그 "구유"의 서부경남지방 사투리가 "구시"입니다. 다른 경상도지역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쇠죽 끓여 주는 밥그릇통 "구유"의 서부경남지역 사투리 "구시"를 닮았다고 지어진 이름인가? 그렇다면 '소 돼지 말 밥그릇통'이 '깃대봉'보다 더 좋은 이름이란 말인가? 아니면 다른 뭔 큰 뜻이 있는가.... 위에서 의문을 갖는 것들에 대해 대답하라!~ 그런 것들을 정상석에 써 놔야 하는거 아니냐? 산림청은 대답하라!~ 대답 못하면 다시 "깃대봉"으로 되돌려 놓아라!~ '깃대봉'도 하자가 없는 오리지날 좋은 이름이다!~ 모든 지도에도 '깃대봉'으로 나오고 있다~! [깃대봉에서 '육십령'으로 가는 길] 제가 "깃대봉"을 뜻도 모를 "구시봉"으로 이름을 바꿔놔서 열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의 고향에 있는 산이라 관심을 과도하게 가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국의 산을 돌아 다니다 보니 이런 의문스런 사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성질 내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미안합니다만, 대부분 전시행정으로 밝혀지고 있었습니다. "X도 모르는 놈들이 XX 보고 탱자 탱자 한다"고.... [깃대봉에서 '육십령'으로 가는 길] '깃대봉 정상'에서 쇠주 몇잔하며 3~40분정도 놀다가 '육십령'으로 하산 합니다. '깃대봉'에서 '육십령'으로 가려면 앞에 보이는 저런 봉우리를 몇개 넘어야 하더군요 마냥 내리막만 있다는게 아니라는 걸 강조 하는 겁니다. [육십령 가는 길] 4시 20분 ★ 길주의★ '깃대봉' 정상에서 약35분 정도 부지런히 하산하니 앞에 보이는 삼거리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 삼거리 이정표에 "육십령" 방향을 혼돈하도록 표기해 놨습니다. 그리고 백두대간길을 나무가지로 막아 놨습니다. 더 이상 못 가도록..... 아마 왠만한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내려 갈것입니다. 하지만 대간길은 나무가지 빗장을 풀고 '남덕유산' 방향으로 직진해야 합니다. 이런 행위는 전국의 정맥이나 지맥에서도 많이 있는 사례인데..... 대부분 음식점들이 자기 음식점 앞을 지나 가라고 산객들을 유인하는 술책이니 항상 주의 하시기 바람니다. [육십령 가는 길] 삼거리 갈림길에서 3분 정도 직진하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무덤이 나오고.... 다른 산행기에서 한번 써 먹은 적인 있는 유머 하나 더 소개해 드림니다. 무뚝뚝 하기로 유명한 깅상도 부부에 대한 .... [서울夫婦와 慶尙道夫婦의 差異] 서울부부와 경상도부부가 배를 타고 여행을 가고 있었습니다. 서울부인이 마침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고 애교스런 음성으로 "자기야~ 저기 저 달 너무 예쁘다 그지?” 하고 말하자 ......... 서울 남편은“아냐, 자기가 더 예뻐~” 이걸 옆에서 보고 있던 깅상도부인이 셈이 나서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깅상도부인도 나름대로 모처럼 애교스런 말투로.....깅상도 남편에게 한마디 합니다. "자기야, 달이 참 밝제?” .......하자 깅상도 남편이 하는 말 . . . “와, 달이 니보고 뭐라 카더나” [육십령 휴게소] 삼거리에서 무덤을 지나 3분쯤 오니 바로 "육십령 휴게소" 장수 방향 주차장이 나옵니다. 오늘은 차량들이 한대도 없군요. 이제는 "육십령 터널"이 뚫려 육십구비 육십령을 넘어 다니는 사람들이 없어서 이겠지요 [육십령] 오후 4시 25분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넘어가는 시외버스가 마침 지나 가고 있습니다. 이 고개 하나를 넘으면 "언어, 관습, 풍습등 모든 생활상"이 다른 異國같은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좀 그러리라 생각됩니다만, 제가 어릴 때는 완전히 異國이었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오랜 지역감정까지 더해져서...... 이제는 백두대간에 터널을 뚫고... 그것도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이 뚫고.... 서로가 소통하며 옛날의 지역감정을 용해시키며 더불어 살아 가는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대단한 대~한민국은 결국 서로 한몸뚱아리라는 것을 "육십령"이 증명 할것입니다. [육십령] "六十嶺"은 이제 우리같은 대간 종주 산객들이나 橫으로 넘는 곳이 되었습니다 장정 육십명이 모여 힘을 합쳐 넘어야 산적들로부터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 지금은 산적들이 여기서 영업을 하다가는 산적이 굶어 죽을수 있을 정도로 한적한 '육십령'... 저에게는 많은 감회를 불러 일으킵니다. [덕유산 구간 들머리] [함양방면 육십령 휴게소] '육십령 정상'에는 다음에 갈 "덕유산 구간"의 들머리가 또 오라고 손짓하고... 대간꾼들에게 유명한 "조경자 할머니"가 운영하는 함양방면 휴게소가 오늘의 종착지 임을 알려 줍니다. 여기서 30분 정도만 가면 '안의'인데....... [육십령 마을] "여암 신경준"선생이 집필하신 "山經表""六十峙" - 南來 安義西六十里 長水北四十里라고 쓰여 있습니다. '안의'에서는 60리이지만, '장수'에서는 40리라고 표기 하고 있으니 '안의, 장수'에서 각각 60리라고 이곳 저곳에서 설명하는 것은 믿지 마시고.... '육십령 마을' 뒤로 다음 구간에 가야할 덕유산의 "할미봉" "서봉"이 보입니다. 다음 구간은 날씨도 최고로 더운 때이기도 하지만 山勢도 만만치 않고 거리도 멀어 힘 좀 듭니다. 각오하고 준비해서 나오세요~ [뒷풀이] 오늘 뒷풀이는 오른쪽에 손을 들고 열심히 설명하는 "부루스님"이 쏘셨습니다. 삼겹살에 다양한 '주님'.........제가 말하는 '주님'은 모두 "酒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루스님" 이렇게 좋은 일 많이 하면..... "돈 많이 벌면 부자 될거에요"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육십령에서 깃대봉까지 구글어스] 1. 총산행시간 : 5시간 40분 무룡고개 출발 오전 10시 45분 육십령 도착 오후 4시 25분 식사및 음주 : 1시간 30분 2. 총 산행 도상거리 : 11.9km
흘러가는 뜬 구름은 바람에 가고, 허무한 내청춘은 세월에 가네. 취한 김에 부르는 노래 끝도 없는 인생의 노래 아~아 뜨거운 눈물 사나이 눈물 웃음이야 주고 받을 친구는 많지만, 눈물로 마주앉을 사람은 없드라. 취한 김에 부르는 노래 박자없는 인생에 노래 아~아 뜨거운 눈물 사나이 눈물 돌아보면 그다지도 먼 길도 아닌데, 저만큼 지는 노을 날 보고 웃네. 취한 김에 껄껄 웃지만 웃는 눈에 맺힌 눈물은 아~아 뜨거운 눈물 사나이 눈물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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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 5회차]  
  무룡고개-영취산-백운산-중재-지지터널

     6월 26일(토) 대간5구간은 흐림 雲霧
     기상청 일기예보에 의하면
     오늘은 장마전선의 북상으로 전국에 많은 비가 오겠으며
     특히 남부지방에는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 바람이 몰아 치겠다고 예보했습니다.
     또한 '남아공'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우리나라 태극전사들이 
     당당히 16강에 진출해 '우루과이'와 8강 진출을 위한 중요한 경기를 펼치는 날이기도 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올라간 월드컵 16강 경기도 응원해야하고, 특히 불순한 일기 예보를 참고한다면 
     상식적으로는 '백두대간' 산행에 나설수 없는 여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 우리는 길을 떠났습니다.
     뭔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처럼.......
   
    
     [산행 개념도]
   
     오늘은 지난 4구간의 날머리였던 "지지터널"앞에서 "중재"로 올라
     "백운산""영취산"을 정복하고 "무룡고개"로 내려 와야 합니다만,
     기상청의 단호한 일기예보와 월드컵 응원을 위해 조기 귀경을 목표로 역순으로
     "무룡고개"에서 "영취산, 백운산"을 지나 "중재"로 갑니다.
   
 
    [무룡고개 에코브릿지] 10시 30분
   
     "무룡고개 舞龍峙"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으로 가지를 뻗는 마루금이 지나는 "무룡고개"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과 번암면을 가르고, "금강"과 "섬진강"의 물줄기가 서로 나뉘어
     갈길을 결정 짓는 "水界""무룡고개 舞龍峙"입니다.
     해발 900m정도되는 높이에 있으니 雲霧가 그 모습을 더욱 신비롭게 하며,
     에코 브릿지 속에서 금방이라도 龍이 뛰쳐나와 솟아 오르며, 춤을 출듯한 "舞龍峙"입니다.
   
 
     [단체기념사진]
   
     앞서 말씀 드린대로 오늘 같은 날에는 집에서 푹 쉬면서, 월드컵 응원하며,
     주룩주룩 내리는 장맛비를 창가에서 즐기며,
     집사람이 부쳐주는 빈대떡에 한잔하는 편이 훨씬 좋을텐데.....
     뭐 먹고 살일 있다고 또 이렇게 산삐알에 섯습니까? ㅎ
     "舞龍峙" 에코브릿지에서 뛰쳐 나온건 龍이 아니고 '거인산악회 대간 14기'였군요 ㅎ
   
 
     ['무룡고개'에서 '백운산'까지 구글어스]
   
     1. 무룡고개(10시35분 출발)-(18분)-영취산(10시53분)-(1시간35분)-백운산(12시 28분)
        이해하기 쉽죠?
   
 
     [무룡고개 휴게소] 10시 35분
   
     '무룡고개' 산행 들머리 옆에는 휴게소가 있어 편리합니다.
     산행은 휴게소 윗쪽으로 올라가며 시작 됩니다.
     약간의 안개비 정도가 그것도 잠시 내렸고 기상청의 예보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었습니다.
     어서 빨리 '파란문'을 기상청장으로 보내야 한다니까요~~ㅠㅠ
   

     ['영취산' 오르는 길]
   
     '무룡고개'에서 "영취산"까지는 매우 가깝습니다.
     하지만 제법 된비알입니다.
     '무룡고개'가 이미 해발 900m쯤 됨으로 "영취산"이 비록 1,075.6m 높이라 하더라도
     오르는데 아무른 문제가 없습니다. 18분만에 영취산에 오릅니다.
   
 
     [영취산 정상] 10시 53분
   
     "영취산 靈鷲山" 1,075.6m 높이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정상은 가까웠습니다.
     "영취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전국에 여러곳 있습니다.
     그 대표 "영취산"이 '낙동정맥'에 있는 "통도사"의 뒷산인 "영취산(영축산-취서산)"입니다.
     고대 인도에서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가 불법을 설파하던 산이 "영축산-영취산"이었습니다.
   
     
     [영취산 정상석]                               [영취산 이정표]
   
     "영취산 靈鷲山" 1,075.6m
     "취, 독수리鷲"인데 인도의 그 '영취산(영축산)'에 독수리가 많았다고 합니다.
     왜? 그 산에 독수리가 많았을까? 
     그리고 부처는 왜? 하필이면 독수리가 많은 그 산에서 불법을 설파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산은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갖다 버리는 곳이었습니다.
     시체를 가장 좋아하는 새가 독수리이지요? 때거지로 모여 살며 시체 오기를 기다리는 독수리들..
     종교는 인간의 최대 약점인 "죽음"을 미끼로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부처는 "인간의 허망한 죽음"이 있는 곳에서 불법을 전파하는게 가장 효과가 있기에
     시체를 버리는 산에 올라 불법을 전파 한것이었습니다
     그 산이 바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는 독수리가 많은 영취산, 다른 말로 영축산인데
     자장율사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가지고와 '통도사'에 안치 할때에 통도사의 뒷산의 이름까지 
     "영취산-영축산"으로 명명하니 전국으로 퍼져 절간이 있는 곳엔 "영취산-영축산"이라는 
     이름이 많아지게 된것이라 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파란문의 산행기 "낙동정맥19구간"을 참고 하세요
   
 
     [영취산 정상 기념사진]
   
     '무룡고개'에서 워낙 가까우니 '영취산' 정상에서 모두 만났습니다.
     남는건 증명사진 뿐이니 만나면 우선 찍습니다. ㅎㅎ
   
               
               [선바위고개 이정표] 11시 8분
   
               '영취산' 정상에서 다소 가파른 내리막을 잠깐 400m쯤 내려가면 "선바위고개"를 만납니다
               "선바위"는 일반적으로 바위가 눕지않고 서 있어서 "서 있는 바위"라는 뜻으로
               "선바위", 즉 한자로 "立石"이라고 합니다.
               다만, 서울 '인왕산'에 있는 "선바위"는 "禪바위"입니다.
               '무학대사'와 '삼봉 정도전'이 그 "선바위"를 '한양성'에 포함시킬 것인지를 놓고
               옥신각신 했습죠. 불교의 무학대사와 유교의 정도전이 알력 싸움을 한것으로 유명합니다
   

     [헬기장]                                      [산죽군락지대]
   
     헬기장 하나를 지나고 "산죽군락지대"를 지나 갑니다.
     구름과 안개 때문에 주변 조망은 전혀 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산행기도 아주 간단합니다. 
     눈에 뵈는게 없으니 산행기를 쓸만한 건덕지도 없어서 저도 이번엔 편합니다. ㅎㅎ
     그리고 산행길도 아주 단순해서 길안내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백운산 정상으로 오르는 된비알]
   
     '무룡고개'에서 약2시간 정도 걸려 '백운산'으로 오릅니다.
     정상부근에서 약간의 급경사가 있을 뿐입니다.
   
 
     [백운산 정상] 12시 28분
   
     "백운산 白雲山"이 이름에 걸맞게 구름 속에서 나타납니다.

   
                    안개 속의 풍경을 보았답니다
                    정지 되어버린 어촌의 마지막 숨이 넘어가듯...
                    소울음 소리가 왜 들렸는지 알았답니다
                    우음도의 마지막 장례식을 보는 듯...
                    페넬로페의 바이올린이 숨죽여 울던 날
                    머리 한가득 가녀린 한 사람의 그림자만을 채워 돌아오던 날...
                            안개 속의 풍경 - 피안의 새
   
 
     [백운산 정상]
   
     전국에서 백운산은  이곳  함양과 장수에 걸쳐있는 '백두대간'의 백운산(1,278.6m), 
     '호남정맥'의 광양 백운산(1,218m), 원주 백운산(1,087m), '한북정맥'의 포천 백운산(904m), 
     동강 백운산(883m)정도가 알려 져 있지만 전국적으로 큰산만 약 20여개가 있다고 합니다.
     작은 산까지 합치면 통계 내기가 쉽지 않을 듯....
     이곳 함양의 백두대간 '백운산'이 전국의 백운산 중에서 대빵 "백운산"입니다.
   
            
            [백운산 정상석]
   
            이곳에서 보이는 지리산과 백두대간 산줄기가 장관인데.....
            白雲 속에 들어와 있으니 갑갑하기만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입니다.
            산행 내내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은 전혀 없었습니다.
            白雲과 白霧만이 시야를 가렸을 뿐.....
   
 
     [백운산 정상에서 점심식사]
   
     '백운산' 정상 헬기장에서 점심 식사를 약40분간 하고.....
     백운산 구름 속에서 먹는 식사 메뉴가 뭔지 아세요?
     "오리무중탕 五里霧中湯"
     '오리'가 들어 있냐구요? '오리'가 안개 속으로 '五里'나 달아나 잡으러 다니다 볼일 다 봤죠.
     '오리'는 없었지만, 서로 나눠 먹는 맛있는 이 가득 들어 있었답니다.
      지금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노래는 모두 다 아시는 "사랑의 기쁨"입니다.
      그 유명한 그리이스 출신의 세계적 가수 "나나무스꾸리 Nana Mouskouri"가 
      사랑이 기쁨인지..사랑이 슬픔인지를 애절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 노래를 선곡한 이유는 조금 있다가 방문하는 "논개 생가"에서 자연히 알게 됩니다.
   
 
     ['백운산'에서 중재'까지 구글어스]
     2.백운산-(1시간)-중고개재-(30분)-중재-(15분)-지지터널앞
   
     오늘 원래 계획대로 중재에서 백운산으로 올랐다면 조금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상청의 도움과 월드컵 16강전이라는 핑개로 아주 쉽게 5차 산행을 합니다. ㅎ
     구글어스를 보세요. 중재에서 백운산으로 올라 갔다면 좀 짭짤했겠죠? ㅎㅎ
   

     ['중재'로 하산]
   
     꺼꾸로 올라 왔다면 좀 힘들었겠다고 생각하며 눌루랄라 하산합니다.
     이름 모를 아름다운 여인으로부터 뭔 선물을 하나 받은 것처럼 아주 즐겁고 가뿐한 하산길...ㅎ
   
          
          [중고개재] 2시 2분
   
          장수군 장계에서 번암면으로 이어지는 "지지계곡" 도로가 뚤리면서 "중고개재"는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세월 속으로 뭍혀져 갑니다. 
   
 
     ['중재'로 가는 길]
   
     울창한 숲이라 어두컴컴한 길을 걷기도 하고.....
     곳곳에 멧돼지들이 파헤쳐놓은 이랑을 보며 약간의 무서움도 느끼며....
     이번 산행으로 판소리의 고장 남원시 운봉-아영면을 완전히 벗어 납니다.
     그냥 흥부-놀부의 고장을 떠나기가 아쉬워 가상으로 편지 한장 씁니다.
     "흥부 마눌"이 저승에서 여러분들에게 보내는 편지인데 .......
     심심하신 분들만 읽어 보세요. 바쁘신 분들은 그냥 건너 뛰시고....
     씰데없는 얘기를 해서 읽느라 시간 낭비했다고 후회 마시고....
   

     ['중재'로 가는 길]
   
     저승에서 보내는 흥부 와이프의 편지
     지금도 첩첩산중인 백두대간 지리산 산삐알, 그당시엔 얼마나 산골이었겠습니까?
     그곳에서 자란 제가 그 당시 핵교를 다녔겠습니까? 서당을 다녔겠습니까?
     한마디로 아무것도 모르는 '일자무식'인 제가 이렇게 공부도 많이하고 '흥부전'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여러분께 지나간 제 가정사 얘길할려니 쑥스럽기 짝이 없군요.
     아무리 촌년이었어도 저도 한때는 꿈많은 소녀였답니다. 말똥 굴러 가는 것만 봐도 까르르 웃고..
     아영면 성리에서는 그래도 이쁘다고 동네 총각들이 군침을 많이 흘렸다구요
     에휴~ 어쩌다가 찢어지게 가난한 연씨집에 시집와서 하는 일없이 개기다 보니
     대책없이 올망졸망 애들만 많이 낳아서 식구수만 불려 놓았답니다.
     차라리 요즘 같으면 국가로 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을 텐데 그때는 그런것도 없던 때였죠.
     집도 기차길옆 오막살이가 아닌 들판의 오막살이라 자다가 시끄러워 깰일도 없었는데....
     애들 아부지... 
     그러니까 우리 흥부씨가 가진 재물은 없었지만 그놈의 정력은 무지 쎈편이었습니다
     흥부씨는 그 당시에 빽이 있었겠어요..돈이라도 많았겠어요. 
     빽, 돈은 한푼 없었으니 어디 가서 바람 필곳이 있어야지요.
     그러니 죽으나 사나 일편단심 저하고만 놀수 밖에 없었고.... 놀면 그냥 노나요?
     꼭 내 치마 밑에 들어와 놀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애들만 무지 많이 생겨 난것입니다 
     뭐 제가 낳고 싶어 낳은건 절대 아니란건 모두 아시죠?
     어떤 땐 먹을거리가 없어서 물만 먹어서 사족..아니 오족이 힘이 없었는데도
     긴긴밤 별다르게 소일할 오락거리가 없다보니 하는게 그것밖에...에휴~ㅎㅎ....
     다리 부러진 제비 사연도 이참에 다 털어놓지요
     그날도 흥부씨가 마루에서 먹을건 없고, 놀거리도 없어
     멀거니 제 치마자락만 붙들고 자꾸 방에 들어가자 하는걸
     제가 또 애 생길까봐 참아라하고 있든차, 그 다리 다친 제비가 눈에 뜨인겁니다.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 그 제비를 가만 두겠습니까?
     우리들이 한거라곤 빨간 아까징끼 조금 발라주고 1회용 대일밴드 붙여준거 밖에 없는데 ....
     그 제비가 어디가서 그런 신통방통한 박씨를 물어왔나 모르겠어요.
     근데 사실은 그거 순 지어낸거랍니다.
     박 속에서 그렇게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온다면 뒷집의 땡칠이가 들어도 웃습니다.
     그런 소린 우리 횐님들 국민학교 댕길때나 통한거지 요즘 애들한테는 씨알도 않먹힙니다
     사실은 제가 먹을 거를 구해 오라고 바가지를 박박 긁었더니, 놀부형 한테 가서는 얻어터지고
     울면서 복성이재 쪽으로 올라가다가 성질이 나 돌뿌리를 걷어 찼는데, 그 돌뿌리가 튕겨 나와
     자세히 보았더니 그 돌뿌리가 금덩어리였던 거에요. 그래서 부자가 된거구요
     지금도 복성이재 근처에 "사금모퉁이"라고 있는데, 그 이후 사금꾼들이 우리 흥부씨가 캐고
     남은 금을 채취하던 곳이에요. 이건 진짜에요.
     그런데 흥부 얘기가 금은보화를 터트리는 대박나는 이야기-'해피엔딩'으로 끝나고
     그 이후의 뒷 얘기가 왜 없는줄 아십니까?
     제가 더 이상 뭘 숨기겠어요. 내친김에 다 얘길 해버릴께요.
     사실은 돈 생기니까 흥부씨가 자꾸 옆눈을 파는기라요
     돈 생기면 세상 남자들 하는 꼬라지 다 똑같지요? 똠방각하가 되어...
     룸싸롱 가는건 기본이고 심지어 야타족 되어 원조교제까지....흑흑.
     그래 니죽고 나 살자고 눈만뜨면 머리터지게 쌈하다가 내린 결정은
     "서로의 성격이 안맞아 못살겠다. 깨끗이 정리하자"
     고로 저도 위자료 조로 한 살림 받아서 빠이빠이 한겁니다.
     그러니 Happy-Ending이 아니고 Unhappy-Ending이 됐는데 우째 뒷 얘기가 있겠심니까?
     사건이 그렇고 그리 된거랍니다.
     물론 저도 그 돈받아서 귀부인 스타일로 얼굴 확 뜯어고쳐서 연하남자 데리고 
     우짜고저짜고 하다가 돈날리고 뭐날리고 날릴거 다 날렸지요.
     그래가 챙피스러워서 걍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겁니다.
     돈 있을때 얼굴을 너무 뜯어 고쳤더니 지옥에서 염라대왕도 저를 몬 알아보고 ..
     나중에 염라대왕이 신경질 내더라구요. 좀 적당히 뜯어 고쳤어야 알아보지....라며 ㅎㅎ
     제가 이거 쓰는 이유는 평소에 돈 있다고 칠랑팔랑 쓰지말고 한푼이라도 아껴서
     노후에 등따스고 배부르시라고 간곡히 충고 드리는겁니다.
     '다시는 나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어디서 듣던 소리...인용해서
     다시는 나같은 여자가 이땅에 있어선 안되겠지요?
     횐님들 처럼 열심히 산에 다녀 건강 챙기시고, 씰대없이 바람피며 다니지 마시고...
     모두모두 열심히 노력해서 부~우자 되셔요.
     안녕
     저승에서 흥부 와이프 드림
     P.S. '파란문'이 쓴 글 절대 아니고 '흥부 와이프'가 쓴 글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중재] 2시 30분
   
     간단하게 "중재"에 도착합니다.
     지난 4회차 날머리였기에 이미 와 본적이 있어 친근감이 듭니다.
   

     ['중재'에서 '지지터널'로 가는 길]
   
     '중재'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지지터널'앞으로 바로 내려 갑니다.
   
 
     ['지지계곡'에서 알탕] 2시 55분
   
     지난번에 알탕을 못한 횐님들이 이번엔 알탕 준비를 단단히 해 왔나봅니다.
     유명한 "지지계곡"에서의 알탕은 앞으로는 경험하지 못할지도 모르기에
     대부분의 횐님들이 물속으로 풍덩 풍덩 뛰어 들었습니다.
     와~우 시원해!~
   
 
     ['지지터널' 앞에서 뒷풀이]
   
     오늘은 "주형팀"이 뒷풀이를 준비해 주었는데....
     남원 동동주 두말과 돼지고기등 푸짐한 안주로 참가한 횐님들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주형팀" 福 많이 받을꺼에유~
   
     1. 총산행 도상거리 : 10km
     2. 총산행시간 : 약4시간 30분 
   
 
     ['논개' 생가터] 4시 15분
   
     '지지터널' 앞에서 약 1시간 정도 뒷풀이를 하고
     '무룡고개' 바로 아래에 있는 "논개 생가"를 잠시 들렸습니다.
     언제 또 다시 여길 오겠습니까
     입구에는 "의암주논개생가지"라고 웅장한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논개' 생가터 정문]
   
     "논개"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자세히 아시는 분들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대략 "임진왜란 때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을 끌어 안고 죽은 여자"정도 일겁니다.
     그리고 "애국심이 강한 충절의 여자"로 국민적 추앙까지 받고 있다는 정도?
     이 여자가 어떤 여자였기에 이렇게 어마어마한 생가터를 복원해 놓고 기념관까지 차려 놨을까?
     요즘 지자체들이 관광 돈벌이를 위해서 이런 저런 것들을 관광화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보고 지나가야 겠습니다.
     "논개"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나와 있는 자료가 거의 없습니다.
     네이버 '논개' 정보에는 "성은 주(朱). 전북 장수(長水) 출생.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며, 그 밖의 자세한 성장과정은 알 수가 없다."고 기록되 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일본 적장을 안고 물속에 뛰어들었다`는 역사기록 때문에 유명한 논개. 
     그러나 그의 이전 기록은 베일에 쌓여있습니다. 
     `기생`이라고 하는가 하면 최경회 장군의 `소실`이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안내문]
   
     이곳 공식적 안내문에는 '주 논개 朱論介'는 "남편과 나라의 원수를 갚기위해 기생으로 가장"하여
     왜군 승전연에 참석 왜장 '모곡촌육조毛谷村六助'를 진주 남강변 현재의 의암이라고 불리는
     바위로 유인하여 함께 투신 순국한 겨래의 여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안내문 대로라면 "안중근의사"보다도 더 위대하고 훌륭한 여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기생으로 가장했으니 실제 기생도 아니었다는 것이니 품위 단정한 여인이
     남편과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며 순국했다는 것이 됩니다.
   
 
     [정문 "義娘樓" 안으로 보이는 '논개' 石像]
   
     저는 '장수군'과 '진주시'가 홍보하고 있는 내용의 논개 이야기가 실제 역사 기록 속에
     오로지 기록에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알리고 있는 것인지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실체에 더 가까이 가보려고 짧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쓰는 글은  "주 논개 朱論介"를 폄하하려고 쓰는 글은 절대 아님을 미리 밝혀둡니다
     역사적 인물 '주논개'의 실체적 사실 여부는 아직도 논쟁꺼리로 남아 있음을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논개' 원경]
   
     '논개'가 당시 장수현감이었던 "최경회'의 세칸드였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향토사학자 '추경화'씨는 "최경회가 선조10년(1577)에 장수 현감이었을 때 논개는 4세 어린아이였다"며 
     `최경회 소실설`은 납득 할수 없다고 합니다.
     또한 향토사학자 '조중화'씨 역시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로 진주성이 함락 될때에 "최경회"가 "경상 우병사"로 있었다고 하는데
     진주성 함락 당시 '경상 우병사'는 '조대곤'으로 밝혀졌다며 `전투 당시 논개가 경상 우병사 '최경회`와 
     함께 있었다는 내용이 맞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논개' 앞뒷면]
   
     "논개"에 대해 역사 속에 확실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유몽인 柳夢寅'이 쓴 '어우야담 於于野談'입니다. 물론 그 이외에도 몇 있습니다
     '유몽인'은 조선 선조 때에 학자이며 외교관으로도 이름을 떨쳤던 인물입니다.
     '어우 於于'는 '유몽인'의 호입니다. 그 글을 소개해 드림니다.
   
     논개는 진주의 관기였다. 
     만력 계사년에 김천일이 거느린 의병이 진주성에 들어가 왜적에 맞서 싸웠다. 
     마침내 성이 짓밟히자 군사는 패하고 백성은 모두 죽었다. 
     논개는 얼굴과 매무새를 아리땁게 꾸미고 촉석루 아래 우뚝한 바위 위에 있었으니, 
     바위 밑은 바로 깊은 강물 가운데로 떨어지는 곳이었다.
     여러 왜병들이 바라보고 좋아했지만 모두들 감히 가까이 오지는 못했는데, 
     한 장수가 홀로 나서서 다가왔다.
     논개가 웃으면서 맞이하니 왜장도 그를 꾀면서 끌어당겼다. 
     이때 논개는 드디어 왜장을 끌어안고 물속으로 몸을 던져 함께 죽었다.
     임진왜란 때에 관기로서 왜적을 만나 욕을 보지 않으려고 죽은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논개 한 사람뿐이 아니었지만 그들의 이름을 거의 잃어버렸다. 
     저들 관기는 음탕한 창녀들이라 '곧고 맵다[貞烈]'고 일컬을 수가 없다지만 
     죽는 것을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여겨 왜적에게 몸을 더럽히지 않았으니 
     또한 거룩한 임금의 교화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의 하나가 아닌가? 
     차마 나라를 저버리면서 왜적을 따르지 않았으니 충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참으로 서글픈 일이로다
   
          
          [논개]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서는 "논개"를 어떤 여인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논개'가 끌어 안고 투신 순절했다는 그 남자, 왜장은 누구인가!
     그가 바로 임진왜란 때에 '일본군의 2군 사령관' "가토 기요마사 加藤淸正 가등청정"의 핵심 副將인
     "게야무라 로쿠스케 毛谷村文助"였습니다.
   
                                
                                 ["게야무라 로쿠스케"영정]
   
     현재 일본 사당에 걸려있는 "게야무라 로쿠스케"영정이라는데 이 쌔끼 인상 더럽지요? ㅎㅎ
     에구~ "신의 칼"이라는 별명을 가진 놈이 한 기생의 꼬임에 강물에 떨어져 죽어? ...ㅉㅉ
     70년대 초에 은퇴한 일본인 건축설계사 "우에쓰카 하쿠유"는 '후쿠오카현 다가와시' 근처 
     '히꼬산' 자기 소유의 밭을 갈다가 오래된 묘비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비석에는 임진왜란때 이름을 떨친 "게야무라 로쿠스케"의 이야기가 쓰여있었답니다.
     '신의 칼'이란 별명을 가진 "게야무라 로쿠스케"는 
     임란때 쇼군으로 승승장구한 전설적인 사무라이였답니다. 
   
                          
                           ['우에쓰카'씨가 발견한 '게야무라 로쿠스케'의 비석]
   
     또한 그 지방 지인들은 "논개"가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꾀여 끌어 안고 투신한것이 아니라,
     촉석루에서 자축연회가 벌어 지고 있을 때 둘이서 몰래 나와 의암 위에서 정사를 벌이다
     너무 열열한 나머지 실족했다고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김태훈씨가 쓴 `이순신의 두 얼굴`(2004. 창해)이라는 책에 따르면 
     많은 일본인들은 논개가 일본 장수 "게야무라 로쿠스케의 연인"으로 
     일본까지 따라가서 자식을 낳고 산 줄로 알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저자 김태훈씨는 "1910년 이후 소위 일본의 극우 학자들이 '가토 기요마사'의 영웅성을 부각하다 보니 
     그의 부장이었던 '게야무라 로쿠스케'의 치욕스런 부분을 왜곡한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일본 "게야무라 로쿠스케"의 고향 후쿠오카에서는 "논개"가 '쌕스의 심볼"로
     여겨지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이 '부부금실을 좋게 해 주는 여인'으로 추앙 받으며 
     모셔지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일부 인간들의 행동이겠지요. 쪽바리들의 언행이 대게 이렇지요?
   
 
     [논개 생가]
   
     제가 가장 닮고 싶어하는 역사 속의 인물이 누구 인지 아세요?  다산 정약용선생입니다.
     그가 쓴 "진주 의기사기 晉州義妓祠記"도 인용해 드리니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부녀자들의 성품은 죽음을 가볍게 여긴다. 
     그러나 하품(下品)인 사람은 분독(忿毒)을 이기지 못하여 울적하여 죽고 
     상품(上品)인 사람은 의로워서 그 몸이 더럽혀지고 욕을 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여 죽는다. 
     그가 죽었을 때 모두들 절개가 바르다고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자기 혼자 죽는 데 그친다. 
     창기(娼妓)와 같은 부류는 말할 나위도 없다.
     어려서부터 풍류스럽고 음탕한 일과 정(情)을 옮기고 바꾸는 일에 길들여졌으므로, 
     그들의 성품은 흘러다니고 한군데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 또한 남자들은 모두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부부(夫婦)의 예에서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군신(君臣)의 의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예로부터 전쟁터에서 멋대로 미녀(美女)를 약탈한 경우가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죽어서 절개를 세웠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옛날에 왜구(倭寇)가 진주(晉州)를 함락하였을 때 의로운 기생이 있었으니, 
     그녀는 왜장(倭將)을 꾀어 강 가운데 있는 돌 위에서 마주 춤을 추다가 춤이 한창 무르익어 갈 즈음에 
     그를 껴안고 강에 몸을 던져 죽었는데, 이곳이 그녀의 의절(義節)을 기리는 사(祠)이다. 
     아, 어찌 열렬한 현부인이 아니랴. 
   

     ['논개' 생가]
   
     그 옛날 두메산골 長水 계곡에 있던, 가난해서 팔려 가기도 했던 '논개의 집'으로는
     엄청나게 큰 대궐같은 생가입니다.
   
 
     ['논개' 생가 우물과 장독대]
   
     지금 저보고 와서 살라고 하면 얼릉 와서 살겠습니다.
     물론 관광객들을 위해 전시용으로 만들어 놨겠지만.....
   
 
     [논개 석상 앞에 있는 "논개 기념관"]
   
     '논개' 석상 앞으로 장안산이 구름 속에 살짝 비치며
     좌측으로 기념관이 제법 큰 규모로 건립되 있습니다.
   
          
          [논개 기념관 입구]
   
     '논개 기념관' 門에는 '논개 영정'이 먼저 관람객들을 맞이 합니다. 친절도 하셔...
     '논개 영정'은 얘깃꺼리가 많습니다.
     진주 촉석루 "의기사 義妓祠"에 봉안되 있던 '논개 영정"을 시민 단체들이 강제 철거했지요.
     철거 이유가 "친일파 매국노 '以堂 김은호 화백'이 그린 영정"이라는 것이었죠
     검경찰은 위법행위라고 시민단체를 기소하여 법정으로 가 재판을 받았는데 대법원까지 가는 
     치열한 싸움을 했지만, 법원은 검경찰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대법원 판결 주내용은 
    "주거 침입등의 유죄를 인정한다. 정치적 역사적 사안은 법원이 판결할수 없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지금 보시는 국가가 인정하는 표준 영정을 새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충남대 회화과 윤여환 교수가 다시 그린 "논개 표준영정"이 보입니다.
     사실 검경찰이 법원으로 사건을 송치 할것이 아니라 사회에 공론으로 붙였어야했던 사안이라
     생각됩니다. 공론으로 붙이면 뻔한 결과를 알면서도 법원으로 간 이유를..에구 대단한 우리나라 검경찰
     '以堂 김은호 화백'은 조선 왕실 최후의 "어용화사 御用畵師"였지요.
     한국화 미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엄청난 인물입니다.
     그가 그린 인물화 중에는 '고종','순종'의 초상화가 있고,'신사임당','이율곡','이순신'.
     '논개'등이 있으며 창덕궁 대조전 벽화제작에 참여한 미술계에서는 빼놓을수 없는 인물입니다.
     현재 오만원권 지폐에 그려진 신사임당도....
     하지만 그는 1930년대 후반 일본의 전시파쇼체제가 강화되자 1937년 친일미술가단체인 '단광회'와 
     1942년 '조선남화연맹전','반도총후미술전'등에 참여하며 적극적인 친일활동을 한 반민족행위자였습니다
     대표적 친일 작품이 "금차봉납도 金釵奉納圖"라는 그림인데, 우리나라 고위직 사모님들의
     친일단체인 '애국금차회'가 금비녀를 모아 일본 '미나미 총독'에게 전쟁비용으로 쓰라고 바치는 광경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런 뇨자들 IMF때엔 반돈짜리 애기 돌반지 하나는 물론 십원 한장 안내놓았겠지요
     그 '애국금차회'의 간사를 맡았던 여자가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당시 젊은 '김활란'친일파였습니다.
   
          
          [논개 영정]
   
          충남대 회화과 윤여환 교수가 그린  "논개 표준영정"
         논개
                 수주 번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논개의 순국]
   
     .............당시 19살 기생이었던 논개가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껴안고
     순국하는 장면을 모형으로 만들어 놨습니다요
   
          
          [논개의 일생]
   
           ..........
   

     [귀경길의 고속도로]                            [시내버스로 귀가] 7시 50분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또 엄청난 오보를 남겼습니다
     돌아 오는 길에서도 비 구경은 할수 없었습니다
     '논개'의 순절을 생각해 보며 '나나무스꾸리'가 부른 '사랑의 기쁨'을 듣습니다.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을 사랑해서 '사랑의 기쁨'으로 순절했으리라 믿으며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 5회차 산행을 마칩니다.
   
                사랑의 기쁨은 잠시 한순간 뿐
                사랑의 슬픔은 일생동안 지속됩니다.
                당신은 냉정히 다른 여자를 위해 날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또다른 연인을 찾아 당신을 떠났죠.
                사랑의 기쁨은 잠시 한순간 뿐
                사랑의 슬픔은 일생을 지속합니다.
                이 강물이 초원을 따라 시냇물로 조용히 흘러가는 한
                그처럼 당신을 사랑할거라고..
                그녀는 되풀이하며 말했죠.
                강물은 지금도 흐르고 있건만 그녀는 변해버렸습니다.
                사랑의 기쁨은 잠시 한순간
                사랑의 슬픔은 일생동안 지속됩니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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