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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 2회차]  
  고기리 삼거리-노치마을-수정봉-입망치-여원재-고남산-매요리

     1. 일시 : 2010년 5월 22일(토)
     2. 날씨 : 흐리고 비 바람 몰아 침
     3. 참가자 : 거인산악회 백두대간 14기



     [백두대간 2구간 개념도]

     백두대간 2회차 구간은 "고기리 삼거리 선유산장"앞에서 "노치마을"을 지나
     "수정봉", "입망치", "주지봉 옆 암봉", "여원재", "고남산", "매요리"까지
     도상거리 14.5km, 실제산행거리 약18km입니다.

     알아 두면 좋은것....
     # "도상圖上 거리"는 평면상태 지도상의 직선거리를 말하며,
       "실제산행거리"는 산의 높낮이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거리와 접속거리를 합쳐 일컸습니다.
       옛날 학창시절에 외우고 다녔던 "피타고라스 정리" 기억 나세요?
       "삼각형의 두 변의 합은 한변 보다 길다"라는거요 ㅎㅎ
       '실산행거리'는 삼각형의 윗 두변의 합이니 일반적으로 '도상거리(아랫변)'에 25%를 더합니다.

     
     [고기리 삼거리] 오전 11시 10분

     오늘은 특별한 교통체증 없이 순조롭게 고속도로를 통과하여 지난 1구간의 날머리였던
     "고기리 삼거리"  선유산장 앞에 오전 11시 10분쯤에 도착했습니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는 전라북도 남원시 주촌면 고기리입니다.

     
     [거인 14기 단체 기념사진]

     바둑 애호가들은 흔히 '바둑' 한판 두는 것이 人生길 같다고도 표현합니다.
     골프를 좋아 하는 사람들은 골프가 하나의 인생 드라마 같다고도 합니다.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은 마라톤이야 말로 험난한 인생길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살며 느껴지는 것들 중에 '우여곡절'이 많은 사례들을 사람들은 "인생"과 비교하는듯 합니다
     저같은 산객은 당연히 "산행"을 "인생"과 동일시 합니다.

     아!~
     길은 가기 위해 존재하는가!~
     돌아 오기 위해 존재하는가!~
     비 바람 몰아치는 장마철 같은 봄날에 "백두대간"에 선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이 暴風雨 속에서 백두대간의 무엇을 느끼려고 하는 걸까
     이게 인생이라고........그런 것일까? ㅎㅎ

     
     [雨中山行] 11시 18분

     고기리 삼거리 "선유산장" 앞을 출발하여 백두대간 속으로 들어 갑니다
     못 먹을걸 씹은 듯 잔뜩 찌푸린 하늘에는 가랑비가 조금씩 내릴 뿐...
     다행이 아직까지 폭풍우는 휘몰아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기리 삼거리에서 노치마을까지 구글어스]

     1. 고기리 삼거리(11시 20분 출발)→20분→노치마을입구(11시 40분 도착) 
     "고기리 삼거리"에서 "노치마을"까지 우선 구글어스를 보여 드림니다.
     매우 중요한 "길"입니다.
     "백두대간 길"에서 유일하게 평지가 "白頭大幹"을 이루고 있는 곳이기에
     이해를 돕기 위해 구글어스를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水晶峰을 바라보며 "백두대간"을 가다]

     지리산의 "큰고리봉"에서 "수정봉"으로 가는 "백두대간"은 이렇게 평지 도로입니다.
     산줄기가 아닌 평지 도로가 "백두대간 길" 인 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쪽, 즉 좌측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운명적으로 "섬진강"으로 흘러 가고,
     동쪽, 즉 우측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전라도를 등지며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으로 흘러
     결국은 "낙동강"을 만나 '을숙도'를 지나며 다대포 앞 남해바다로 흘러흘러 가는 
     운명적 이별의 분기점인 것입니다.
     - 유일한 평지 백두대간 - 
     저 앞으로는 늠름한 대간길인 "수정봉"이 이름처럼 맑게 빛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치마을"로 가는 길-이정표]

     "고산자 김정호"선생은 대동여지도에서 이곳의 대간길을 분명하게 표시해 놨습니다.
     또한 "노치마을"은 대간길 마루금에 있는 유일한 마을이기도 해서 유명하기도 하지요.

     
     ['덕치 보건소'앞 백두대간]

     "산자분수령 山自分水嶺의 원리"
     우리가 가고 있는 백두대간 길은 철저히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를 지키며 갑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노치마을" 가는 논두락 같은 길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를
     지키며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갈수 있는 이곳에선 유일한 길인것입니다.

     
     [노치마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국토 國土'를 달리 표현할 때에는 
     "산천 山川, 산수 山水, 산하 山河, 강산 江山"등과 같이 
     "산""물"을 함께 일컬어 "나라 땅"을 나타내었습니다.
     이렇게 산과 물이 어우러지는 원리를 "산수경(山水經)의 원리", "산수분합(山水分合)의 원리"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산자분수령 山自分水嶺의 원리"라고 표현합니다. 
     "산은 스스로 물과 고개를 가른다"
     그리하여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전통적 지리 인식체계에서는 
     산의 흐름을 살아있는 나무에 비유하여, 기둥줄기와 큰 줄기, 그리고 작은 줄기와 곁가지로 
     나뉘는 것으로 보았고, 줄기와 줄기 사이, 가지와 가지 사이에 강이 생성되어 흐르는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大幹" "正幹" "正脈" "枝脈" "分脈"등으로 선조들은 구분하였습니다

     
     ["백두대간"과 "노치마을"] 11시 42분

     대간 마루금에 있는 유일한 마을인 "노치마을"
     "蘆峙마을""갈대 '蘆', 고개 '峙'를 사용함으로 先祖들은 이미 이곳이
     평지가 아니라 "고개"임을 그 옛날부터 알아서, 마을 이름도 "蘆峙마을"이라고 
     불러 온 것이니 놀랍지 않으십니까? 
     수많은 대간꾼들이 이 마을을 지나며 촬영했던 "노치마을" 입구의 그림을 보니
     아!~ 노치마을의 그 그림이 이 그림이구나!~~라고 상기됩니다.
     하지만 '백두대간'을 그린 줄 알았더니 자세히 보니 뭘 그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백두대간"과 "노치마을"]  

     고기리 삼거리에서 약25분 정도 평지 대간길을 걸어서 "노치마을"에 도착합니다.
     "蘆峙"는 글자 그대로 "갈대"가 많아서 붙여진 고개 이름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대간길 "蘆峙" 좌우에 있었던 갈대숲은 농지로 개간되여 갈대를 구경할수 없답니다.

     
     [노치샘] 11시 44분

     "노치마을"의 자랑인 "노치샘"입니다.
     아시다시피 마루금에는 샘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만....
     마루금을 가는 우리가 대간 마루금에서 만날수 있는 유일한 샘물이기에 더욱 신기 할 뿐입니다.
     저도 물맛을 봤는데 역시 백두대간 마루금에 있는 유일한 샘물 다웁게
     깨끗하고 시원한 맛이었습니다.

     
     [堂山祭典 숲]

     "노치마을" 뒤  '수정봉'으로 올라가는 들머리에 수백년된 소나무 숲이 있습니다.
     이곳은 이 마을 사람들이 堂山祭를 지내는 祭典이 있는 곳입니다.

     
     [堂山祭典] 11시 47분

     옛날 첩첩산중인 이곳에 짚신을 만들어 팔았던 가난한 거지가 있었답니다. 
     추운 겨울에 거지가 죽자, 동네 사람들이 그를 묻어 주려고 하였으나 
     고산지대인 이곳에는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묻을 만한 곳을 찾을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관이 하나 들어갈 정도로 눈이 녹아 있는 땅을 발견하고 
     그곳에 그 거지를 묻어 주었는데, 그곳이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이었다는 거지요. 
     그곳이 이곳입니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이 산에 보답하기 위해서 음력 1월 1일 밤 12시에 주산제(主山祭), 
     곧 "당산제 堂山祭"를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산행들머리 안내도]

     "堂山祭典" 바로 위에는 "수정봉 水晶峰"으로 올라 가는 산행 들머리가 있고
     이곳에서 "여원재", "고남산", "매요리"까지 안내도가 있습니다.
     여기서 부터 "여남재"까지는 외줄기 길이니 길을 잃어 버릴 염려는 없습니다


     ['노치마을'에서 '수정봉'까지 구글어스]

     2. 노치마을 당산제전(11시 50분 출발)→40분→수정봉(12시 30분 도착)
     급경사 오르막을 치고 올라야 하는 수정봉까지의 구글어스입니다

     
     [된비알]

     본격적으로 '수정봉'을 향해 급경사 오르막을 치고 오릅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 준비운동도 없이 갑자기 된비알을 치고 오르면 무척 힘듭니다
     이번 백두대간 종주에 참가하신 분들은 그래도 딴에는 좀 걷는다는 분들이 참가했을 것입니다. 
     이산 저산 다녀봐야 재미도 없고 조금 더 수준있는 백두대간에 도전장을
     내민 분들일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인지 모두들 잘 걷습니다. 파이팅!~

     
     [첫 봉우리에 올라...] 12시 8분

     "수정봉"은 옆으로 길게 누워있습니다.
     구글어스에서 보는바와 같이 첫봉우리에 올랐습니다.
     대간이나 정맥, 지맥에 경험이 없으신 분들은, 첫봉우리 오르면 오늘 산행이 끝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간길은 이런 봉우리는 수없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해야 목적지에 도착
     한다는 것을 이번에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가야할 봉우리가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水晶峰 가는 길]

     첫 봉우리에서 몇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 갑니다.
     푸르름을 더해 가는 水晶峰 능선길입니다. 아름답습니다.

     
     [水晶峰]

     '노치마을 당산제전'에서 약40분 정도 가면 水晶峰 정상에 다다릅니다.
     정상으로 올라 가는 마지막 된비알을 오릅니다.

     
     [水晶峰 정상] 12시 30분

     드디어 "水晶峰 정상"입니다.
     고기리 삼거리에서 1시간 10분 정도 걸려서 오른 것입니다.
     정상에는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없고 여느 조그만 산봉우리와 같았습니다.

     
     [水晶峰 정상 안내판과 이정표]

     804.7m 높이의 수정봉은 "산 중턱에서 水晶을 채굴하던 암벽이 있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섬진강과 낙동강이 갈라지는 "곡중분수계 谷中分水界"로서
     백두대간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水晶峰 정상에서 뒤돌아 본 "큰고리봉-정령치-만복대"]

     산봉우리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조망을 해야 합니다.
     내가 지나 온 길도 뒤돌아 보고, 앞으로 갈길도 내다 보아야합니다.
     구름이 껴 비도 내려서 조망이 시원하지는 못하지만 ....
     그래도 보이는 지난 1구간의 지리산 "큰고리봉-정령치-만복대"가 '고기리' 뒤로 보입니다.
     고기리에서 노치마을까지 백두대간 같지 않은 희미한 대간 마루금이 조금 보입니다

     
     [水晶峰 정상에서 바라보는 "남원시"]

     水晶峰 정상의 서쪽으로는 남원시 이백면 양가리가 조망되는군요


     ['수정봉'에서 '여원재'까지 구글어스]

     1. 수정봉(12시35분출발)→1시간50분(식사시간30분포함)→여원재(2시25분도착)
     '水晶峰'에서 '여원재'까지 구글어스입니다.

 
     [水晶峰 稜線-大幹 마루금]

     산 정상에는 철죽이 이제서야 피기도 합니다.
     '입망치'로 가는 길입니다.

     
     [입망치] 12시 50분

     해발 545m에 있는 "입망치"라는 고개입니다.
     이 고개를 가운데 두고 水晶峰은 크게 두봉우리로 구분됩니다.

 
     [입망치 이정표]

     이곳은 4거리로서 수정봉-여원재로 가는 길과 이백면-운봉읍으로 가는 길이 만나는 곳입니다

     
     [여원재 가는 길]

     '입망치'를 지나 '여원재'로 향합니다.
     좌측 절벽들에서 水晶이 채굴되었다는군요
     여하튼 이쪽 봉우리에는 암봉이 많고 그 중의 한 암봉의 이름이 "주지봉"인데
     우리는 "주지봉" 바로 옆 '암봉'에서 식사를 합니다.

     
     ['여원재'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水晶峰 정상"]

     가운데 '입망치'라는 고갯길을 사이에 두고 지나온 "수정봉"이 보입니다.

     
     ['암봉' 오르는길]

     "주지봉" 바로 옆 '암봉' 오르는 길

     
     ['암봉' 정상 - 점심식사] 1시 15분

     점심식사를 하는 이 봉우리 바로 옆의 암봉이 "주지봉"이라고 하는 유명한 봉우리인데
     이곳에는 "산신단"이 있어 소원을 비는 곳으로 유명하다는군요.
     주로 아들이 없는 여자들이 즐겨 찾아 아들 낳아 달라고 비는 곳이랍니다.
     다행이 비도 멈추고 점심시간도 약간 지나 늦은 점심식사를 여기서 합니다.
     30분 정도의 식사시간이었는데 이번엔 약간의 변화가 일어 났습니다
     지난 1구간에선 대부분 초면들이라 서먹서먹했는데...... 
     벌써 두번째라고 자주 만나던 사람들처럼 서로의 도시락을 여러 사람들 앞에 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밥상 공개하는 일은 거의 있을수 없는 일이지만....
     산객들이 산에 오르면 서로의 밥상을 공개하고 차려 줍니다. 특별한 인연인 것이죠.
     산행보다 더 즐거운 일이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다음 구간부터는 아마도 더욱 친숙해 질거라고 확신합니다

     
     [옛山城 흔적들]

     약30분간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여원재"를 향해 출발합니다
     이곳에서 부터는 그 옛날의 城터를 희미하게 볼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곳이 얼마나 군사적으로 요충지였는지 가름할수 있지요?
     사진에 보이는 희미한 城은 "양지산성"이라고 하며  건너편에는 "음지산성"이
     있다고 합니다.

     
     ['여원재' 근처 마을] 2시 20분

     점심식사를 마치고 약35분쯤 전진하니 "여원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원재 女院峙] 2시 25분

     고기리 삼거리에서 3시간 7분이 걸려 "여원재"에 도착합니다.
     "여원재"는 "20번 국도"가 지나는 중요도로이며 경상남도 함양지방에서, 남원으로 가는
     핵심 도로입니다만, "88올림픽고속도로'가 생기면서 통행량은 많이 분산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옛 삼국시대부터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아주 중요한 고갯길이었답니다.

 
     [여원재 이정표와 "장동마을" 표지석]

     "여원재 女院峙"는 남원 쪽에서 올라 올때엔 99구비 고개를 돌고 돌아 올라야하는 
     높은 고개 입니다만, 운봉 쪽에선 운봉의 해발이 500m정도나 됨으로 그다지 높게
     느껴지지 않는 답니다. 그렇다면 운봉의 지형을 간접적으로 이해할수 있지요?
     이곳에서 남원쪽으로는 경급사 내리막 아흔아홉구비인데, 운봉쪽으로는 거의 평지 수준.
     옛날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 이곳  "여원재 女院峙"였답니다.

          
           [여원재 부근 관광 지도]

           3일 정도 다녀야 어느 정도 이 지역을 관광 할수 있겠더군요.

     
     [여원재 女院峙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안내"]

     "동학혁명" 때에 농민혁명군들이 이곳 여원재에서 수없이 희생되었다는군요.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간략히 기술하고 지나 가겠습니다.
     정조대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조선은 "勢道政治"시대로 들어 가지요?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 할수 있다'는 외척세력인 "안동김씨·풍양조씨"등의 
     "勢道政治"는 조선의 농촌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운명을 갈라놓지요. 실제 조선을 망친 놈들은 이 세력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탐관오리들이 날뛰고 정의가 불의에 짖밟히는 세상에서 참다 참다 못 참고 들고 일어 난 
     농민들의 봉기. 바로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입니다. 불과 116년 전의 일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의 발단은 당시 정읍군수였던 "조병갑"이 탐관오리로서 백성들로부터
     무자비한 수탈을 해 "전봉준"등 농민대표들이 바른정치를 호소했으나 거부당하며 일어났습니다
     또한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여 우리나라를 침략하려는 저의를 들어내면서 
     우리 백성들의 자발적 민중 저항이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동기가 됩니다
     이에 앞장선 "전봉준장군"은 12만명의 군사를 지휘, 손병희의 10만 군사와 함께 
     조선의 관군과 일본군에 대항하여 싸웠지요. 
     동학 농민군은 중·남부 전지역과 함경남도, 평안남도까지 세력을 폈으나 
     유명한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관군과 최신식 무기 "캐틀링"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패한 후 
     전봉준은 순창으로 잠적하여 재기를 꾀하다가 붙잡혀 1895년 3월 처형되었습니다
     우리민족의 울분은 그렇게 처참하게 짖밟히고 "일제강점기시대"로 갑니다.
     오호~ 통재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여원재 女院峙의 석장승과 이정표]

     전봉준은 감옥에서 간수들에게 무수히 구타 당하자 그는 분연히 꾸짖기를,
     "선비는 가히 죽일 수는 있어도 치욕을 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국법을 어겼으면 마땅히 국법으로 다스려 죽여라! "
     그리고 그에게 참형(1894년 3월 9일)이 내려지자
     "나를 종로 네거리에서 죽여라. 백성들을 보고 싶다." 하면서 
     스스로의 죽음조차 선택하였으니 이때가 그의 나이 41세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녹두장군 전봉준". 
     이런 전봉준장군이었기에 그를 애도하는 한 소절의 슬프고도 암울한 노래가 
     아직까지도 전해져 내려와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있는 것입니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눈물을 흘리며 암울한 일제강점기시대로 들어갑니다
     "백두대간"을 다니면 이런 우리 민족의 애환과 환희등 여러 역사까지도 자연스레 알수 있습니다


     ['여원재'에서 '고남산'까지 구글어스]

     4. 여원재(2시30분출발)→2시간5분→고남산(4시35분)
     아주 먼 거리입니다.
     많은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고, 846.4m높이의 "고남산"을 올라야 하기에
     힘드는 구간이고, 매요리까지도 다시 많이 걸어야 합니다.

     
     [여원재의 "고남산" 들머리]

     "여원재 女院峙의 전설"
     옛날 왜구들이 경상도로 들어와 먹을것이 풍부한 전라도지방으로 쳐들어 가려면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답니다.
     어느날 왜구 대장인 놈이 이 고개에 있는 주막의 아낙네를 겁탈하려고 하다가 반항하는 
     그 아낙네의 가슴을 만졌답니다.
     쪽바리가 가슴을 만졌다고 성질 난 아낙네는 자기의 가슴이 더렵혀 졌다고 칼로 짤라냈답니다.
     훗날 이곳으로 왜구를 무찌르기 위해 출정한 "이성계 장군"이 아스팔트와 발음이 비슷한
     "아지발도"라는 왜구 대장을 활로 쏘아 죽이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이 성계는 전쟁 전날 그 여인의 꿈속 점지로 고남산에 가서 기도하고 전쟁을 승리 할수 있었다고 믿어
     그 여인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그 여인을 모시는 "女院"을 지어주었답니다.
     그리하여 "女院"이 있는 고개라고 "여원재 女院峙"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왜장이 한번 달라고 깝죽대는 게 싫어서 가슴을 짤라 냈다는 그 주막 아낙네-- 
     '파란문'의 눈에는 그 여인이 그렇게 숭고한 정절을 지키는 고매한 인물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데..
     어쩌면 성질 더럽게 독한 여자라고 느껴지는데---
     전설의 배경을 곱씹어 보면, 한국남자들 참 독하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여자들은 모두 정절을 지키고 그러라는 건지, 앞으로는 그러지 말어라는 건지--- 
     앞으로는 정절을 지키라고 하고, 뒤로는 말어라는것인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잘했다는건지 잘못했다는건지----후세에 귀감이 되는 이야기인지....
     애국심을 말하는건지...정절을 말하는건지....뭘 말하는건지......
     머리 나쁜 '파란문'은 아리송송하기만 합니다.

     
     ["장동마을"에서 바라보는 "고남산"]

     돌고 돌아 올라야하는 "고남산"이 아스라이 보입니다.
     에휴~ 언제 넘어가냐~
     오날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ㅎㅎ

     
     [백두대간 안내 이정표]

     장동마을에 설치되 있는 이 이정표는 "백두대간 마루금"으로 가지 말고 우회해 가라는
     안내입니다. 즉 대간 마루금은 좌측 산 능선인데 밭이 있으니 들어 가지 말고
     빙~돌아 가라고 설치한 것입니다.
     할수없이 우리는 대간 마루금을 살짝 비켜 갈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남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여원재'와 "수정봉"]

     고남산까지 크고 작은 몇개의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그러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여원재"와 "수정봉"이 구름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고남산 등로]

           古南山 정상이 가까와 오니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비 바람은 몸을 가눌수 없을 정도로 몰아 치고.....
           雲霧로 눈에 뵈는 것도 없고....

          
          [고남산 登路]

          옛날엔 없던 계단도 친절히 설치되 있어 오르기는 많이 쉬워졌군요....

     
     [오리무중 五里霧中]

     고남산 정상 부근으로 높이 오르니 구름 속에 들어와 "오리무중 五里霧中"이 됩니다.
     고남산 정상에서는 광주의 무등산도 보이고, 지리산, 바래봉등 운봉을 감싸고 있는
     산줄기와 雲峰邑內가 훤히 조망되는 전망 좋은 곳인데 아무것도 보이지않습니다. 휴~

     
     [고남산 마지막 登路]

     고남산의 정상을 향해 마지막 안간 힘을 씁니다.

          
          [暴風雨 속의 "고남산 古南山 정상"]

          '산불감시초소'가 설치되 있는 "고남산의 정상"입니다.
          사진 속에는 예쁘고 예쁜 철죽이 초소를 감싸고 있는데
          실제는 휘몰아 치는 폭풍우에 몸을 가눌수 없어 바로 하산 합니다.

 
     [고남산 古南山 정상석 앞뒤면]

     '고남산 정상" 바로 아래에 "정상석"이 설치되 있더군요

     
     [고남산 古南山 정상] 4시 40분

     "古南山 정상에서..."
     지난 1구간에선 초등학교 6학년 "이 주형"어린이가 최연소 참가자 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이게 뭔 일이래요? ㅎㅎ
     아직 애기인 유치원생인 일곱살 "길 희원"양이 폭풍우 휘몰아치는 백두대간 "古南山"에
     아빠 엄마와 함께 이렇게 우뚝 서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자식 교육시키는 방법이 달라졌다고 해도 좀 그렇지요? ㅎㅎ
     날씨라도 좀 좋았으면 조금은 위안이 되겠지만 이것은 "고행의 길"입니다.
     자칭 산꾼이라는 저도 괴로운 산행 길이었는데 이 애기는 어떠하겠습니까?
     "길 희원"양의 아빠 엄마는 '아동학대죄'로 감옥으로 보내야 되지 않나요? ㅎㅎ
     저와 함께 시종일관 함께 걸었습니다. 실제로 스스로 걷는지...아빠가 도와 주는지....봤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아무런 도움없이 비 바람 몰아치는 백두대간길 18km를 걷더군요.
     여러분!~ 박수 한번 쳐 주세요~ 짝짝짝
     앞으로 제2의 '오 은선'이 탄생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빠 엄마는 '아동학대죄'로 감옥으로 보내고, '희원'이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로 보낼까요? ㅎㅎ
     그 보다는 앞으로 공부등 무슨 일을 해도 모두 잘 해 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용기, 의지, 인내심, 체력......
     '희원'이의 앞날에 '성공의 길'이 환히 비추입니다.

               
               [고남산 정상의 헬기장과 통신탑]

               고남산 정상에는 이동통신중계탑들이 점령하고....


     ['고남산'에서 '매요리'까지 구글어스]

     6. 고남산(4시50분출발)→1시간50분→매요리(6시40분)
     폭풍우까지 겹쳐 지긋지긋하게 지루하고 먼 거리였습니다.

     
     [통안재]

     고남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 오면 포장도로를 만나는데 지도상의 '통안재'인듯...
     이 도로는 고남산 정상까지 연결되 있습니다. 

     
     [매요리로 가는 대간길]

     이러한 길을 약1시간40분 정도 걸어 내려 갑니다.

     
     [매요리 마을 갈림길] 6시 35분

     "매요리"로 내려 가는 사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백두대간 마루금은 여기서 직진해야 하지만, 오늘 산행은 이곳에서 접고....

               
               [매요리 마을 갈림길 이정표]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배경 음악으로 깔았는데 어찌 듣기 좋은가요?

                "바람과 나" 한대수 작사 작곡 노래

                끝 끝없는 - 바람
                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 가는
                아~ 자유의 바람
                저 언덕 위로 물결 같이 춤추던 님
                無名 無實 無感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 볼래 지녀 볼래
                물결 건너 편에
                황혼에 젖은 산 끝 보다도 아름다운
                아~ 나의 님 - 바람
                뭇 느낌 없이 진행하는 시간 따라
                無名 無實 無感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 볼래 지녀 볼래
                하늘 위로 구름 따라
                無目 여행하는 그대 
                인생은 나 인생은 나 
 
     [매요리 마을 골목길]

     마을 골목길을 따라 조금 내려 오면...

     
     [매요리 마을회관 앞] 6시 40분

     매요리 마을회관이 나오고....
     여기서 14.5km 백두대간 2회차 구간을 마감합니다

     
     [매요리 마을회관에서 뒷풀이]

     수고들 하셨습니다.
     다음 구간에서 또 걷자구여~


     ['고기리'에서 '매요리'까지 종합 구글어스]

           1. 총 거리 : 
                    도상거리 : 14.5km
                    실산행거리 : 약18km
           2. 총 산행시간 : 7시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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