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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과 계백장군 오천 결사대를 찾아서』 [논산] "계백혼이 살아 숨쉬는 솔바람길" 답사기 돈암서원한옥마을-돈암서원-127.2m봉-충곡서원갈림길-수락산- 충장사-계백장군묘-백제군사박물관-신풍리-휴정서원 ['솔바람길' 지도] [구글어스]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돈암서원 한옥마을"에서 출발하여 "돈암서원"을 둘러 보고 "수락산"을 넘어 "계백장군묘"와 "백제군사박물관"을 답사하며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휴정서원" 까지 약 6.2km를 갑니다. ['논산역'] 9:15 2020년 5월 12일 (화) 흐림 모처럼 [호남선] 열차를 타고 '충남 논산'으로 기차여행에 나섯습니다. [용산]에서 6시27분에 출발하는 [호남선 열차]는 [수원역]을 7시9분에 통과하여, 저는 [수원역]에서 타고 [논산역]에 9시10분 정시에 도착하였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손님이 없어서인지 열차는 지체없이 예정된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논산역 버스정류장'] [논산역] 정면에 [논산역버스정류장]이 있는데 [돈암서원]으로 가기 위해선 도로 건너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합니다. ['301번' 시내버스] 9:23 [논산역]에서 [돈암서원]으로 가는 시내버스는 [301번]이 9시20분에 있고, 그 다음은 [304번]이 9시40분에 있는데 출발시간은 한정거장 전에 있는 종점 출발시간입니다. 9시20분 출발 버스 [301번]은 9시23분에 도착하여, 시간 낭비 없이 [돈암서원]으로 갔습니다. [돈암서원]행 버스 시간표 [301번] 9:20 [304번] 9:40 [303번] 10:00 [302번] 10:25 .... 비교적 자주 있으나 가기 전에 [논산시 홈피]에 들어가 시간을 확인하고 가기바람니다. ['돈암서원' 앞 버스정류장] 9:45 [논산역]에서 약22분이 걸려 [1번국도]에 있는 "돈암서원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답사를 시작합니다. 버스 진행방향 반대 방향으로 170m 올라 가면... ['돈암서원' 입구] 9:48 "돈암서원 입구"를 알리는 안내석과 장승 솟대가 답사객들을 반겨 줍니다. [주차장과 '한옥마을'] [돈암서원 입구]에는 우측에 주차장이 있고, 그 뒤로 "돈암서원 한옥마을"이 있습니다. "계백혼이 살아 숨쉬는 솔바람길"은 여기서부터 시작하는데 [돈암서원]으로 직진합니다. ['돈암서원 한옥마을'] 주차장에는 [논산관광안내도]가 설치되 있습니다. 뒤에 "돈암서원 한옥마을"이 보입니다. 2013년도에 완공을 하고도 아직까지 활용을 못하고 있는 애물단지가 되어 있다고 하네요. 100억여원을 들여 만들어 놓고도 수익성 있는 체험숙박시설로 활용 못하고 있답니다. [1번국도]와 붙어 있어 시끄럽고, 주변에 체험시설 유락시설이 없으니 손님이 오겠나요? [안내도] [논산광광안내도]에서 오늘 진행할 코스 주변만 확대해서 참고하고 ['돈암서원 홍살문'] 9:53 "돈암서원"으로 들어 가면 먼저 "홍살문"을 만나는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서원 9개 중에 하나라고 알려 줍니다. 우리나라 세계유산 등재 현황은 다음을 참고 하고 [우라나라 세계유산 등재 현황] ['산앙루'] '홍살문'을 통과하면 먼저 "산앙루 山仰樓"가 맞이해 줍니다. "山" 자를 독특하게 써서 알기 어려운데 "山仰""고산앙지(高山仰止)"의 준말로, 그지없이 존경하며 우러러 사모하는 것을 말한답니다. 곧 선현(先賢)을 숭상하며 앙모(仰慕)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니 서원 현판에서부터 성리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선생"의 학문이 확 다가 옵니다. ['입덕루'] 이어서 [돈암서원]의 정문인 "입덕문 入德門"을 만나는데 문 우측엔... ['돈암서원비 遯巖書院碑'] "돈암서원비 遯巖書院碑"가 있습니다. ['양성당'] [입덕문]을 들어서면 [돈암서원]의 핵심 "양성당 養性堂"이 중앙에 있는데 스승이 강의를 하는 곳이고 좌측엔 "거경재 居敬齋"가 있고, 우측엔 "정의재 精義齋"가 있는데 학생들의 기거공간이었답니다. 마당 가운데 있는 비석은... ['원정비'] "원정비 院庭碑"가 마당 가운데 세워져 있는데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의 학문과 업적을 적은 비로써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이 썻다고 하네요. 더 자세한 내용은 위 안내문을 참고 하고 ['숭례사'] 성리학의 대가 "사계 김장집선생"의 [양성당] 뒤에는 "숭례사 崇禮祠"가 있는데 "공자님"을 모시는 사당이라고 하며, "사계 김장생 선생"과 그의 아들 "신독재 김집", 그들의 제자인 "동춘당 송준길"과 "우암 송시열"의 위패도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응도당'] ['응도당' 보물 제1569호] "돈암서원 응도당 遯巖書院 凝道堂" [보물 제1569호]로 지정되 있는 강학공간으로 [인조 11년]인 1633년에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돈암서원]의 중요한 강학 건물이고 어려운 한자도 많아 [논산시 공식 홈피]에서 인용합니다. 돈암서원은 사계 김장생(1548~1631)의 강학 기반을 배경으로 건립된 서원이다. 황강 김계휘가 건립한 정회당과 김장생이 건립한 양성당에서 수학한 김장생의 제자들이 후에 스승을 추모하며 기리기 위하여 돈암서원을 건립하였다. 원래 서원은 현재의 위치보다 서북쪽으로 약 1.5㎞ 떨어진 하임리 숲말로 연산천에 가까웠는데, 수해를 피하여 1880년(고종 17)에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서원이 처음 자리잡은 숲말 산기슭의 큰 바위를 돈암이라고 불렀는데, 서원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참고로 돈암의 돈은 원래 ‘둔(遯)’자로 주역의 둔괘(遯卦)의 의미와 관련이 깊으며, 주자가 만년에 사용한 둔옹(遯翁)이라는 호를 가탁했으리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12년)에 창건되었으며, 김장생과 그의 아들 신독재 김집의 문하에서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을 비롯하여 이유태, 유계, 윤원거, 윤문거, 윤선거 등 수많은 명유(名儒)들을 배출하였다. 이들의 활동으로 돈암서원은 호서지역의 산림과 예학의 산실이자 본거지로서 17세기 전 기간 동안 충청도 서인계의 수(首)서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서원의 혁파를 위해 전국의 47개소를 제외한 600여개소의 서원을 철폐하였는데, 논산의 서원중 연산의 돈암서원과 광석의 노강서원만이 철폐되지 않고 남았다. ['정회당'] "정회당 精會堂"은 "김장생"의 부친 "김계휘"가 강학하던 공간이었다는군요. 노거수인 향나무가 눈길을 끕니다. [부속건물] 기타 여러 부속건물들이 있습니다. "사계 김장생 선생 沙溪 金長生先生"은 "송익필선생''율곡 이이""우계 성혼"으로부터 사사받았고 [임진왜란]등 격변기 [선조]시대에 활동한 학자이자 관리였지요. 높은 벼슬은 하지 못하고 주로 지역 현감으로 활약했으나 "우암 송시열"등 후대 최고의 정치 세력들을 제자로 두었습니다. "金長生 선생"은 존함이 "長生"이라는 독특한 이름인데 1548년 7월8일~1631년 8월3일까지 사셨습니다. 그러니까 꽉채운 83세까지 사셨으니 당시로는 진짜 "長生"하셨죠? ['계백 혼이 살아 있는 솔바람길'] 10:02 [돈암서원]을 둘러 보고 본격적으로 "계백장군"을 찾아 갑니다. "계백장군의 혼이 살아 숨쉬는 솔바람길" 이라는 이름도 긴 걷기코스가 [돈암서원] 좌측 담장을 끼고 시작됩니다. 직진해서 산속으로 들어 가면... [이정표] 10:04 이정표가 길안내를 하는데 종점인 [휴정서원]까지 3.0km라고 알려 주는데 실제는 이곳 저곳을 둘러 보며 가기에 두배 더 멀었습니다. [오름길] 완만한 오믈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이정표] 10:15 이정표가 길안내를 하는데 조금 전 이정표와 거리를 비교 검증하면 일관성이 없습니다. ㅎ ['127.2m봉'] 10:18 이어서 첫번째 봉우리인 "127.2m봉" 에 오릅니다. 애견과 산책하는 주민들이 많더군요. 여기서 좌측을 바라보면... ['금남정맥' 조망] [금남정맥]이 조망됩니다. [금강]의 남쪽 분수령을 이루는 산줄기라는 의미입니다. 이 지역이 '논산시 연산면'이라고 하는데 '산이 연이어 있다'고 "連山面"이라고 한답니다. '연이어 있는 산줄기'가 바로 [금남정맥]인데 [대둔산]에서 [계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입니다. 또한 그 유명한 "황산벌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고 추정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다음 지도를 참고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황산벌'의 위치]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일대"황산벌"이라고 추정한답니다. 그러니까 [계백장군묘]와 [황산벌]은 좀 멀리 떨어져 있군요. [금남정맥]의 [깃대봉]이 '신라군'이 깃발을 올라고 전투지휘를 하던 곳이라 전해집니다. 믿거나 말거나 ㅎ "황산벌전투"에 대해선 [삼국사기 제47권 열전 제7]의 원문 번역본을 인용합니다. 관창(官昌)[혹은 관장(官狀)이라고도 한다.]은 신라 장군 품일(品日)의 아들이다. 용모가 우아하였으며 젊어서 화랑이 되었는데 사람들과 잘 사귀었다. 16세에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숙하여 어떤 대감이 그를 태종대왕에게 천거하였다. 당 현경(顯慶) 5년 경신(서기 660)에 왕이 군대를 내어 당나라 장군과 함께 백제를 치는데, 관창을 부장으로 삼았다. 황산벌에 이르러 양쪽 병사가 대치하였는데 아버지 품일이 그에게 말했다. “네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뜻과 기개가 있다. 오늘이야말로 공명을 세워 부귀를 얻을 때이니 어찌 용기가 없을쏘냐?” 관창은 “그렇습니다.”라 하고, 즉시 말에 올라 창을 비껴들고 바로 적진으로 달려들어가 여러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적군은 많고 아군은 적었기 때문에 적에게 사로잡혀 산 채로 백제의 원수(元帥) 계백(階伯)의 앞으로 끌려갔다. 계백이 그의 투구를 벗기고 그가 어린 나이인데도 용맹한 것을 애틋하게 여겨, 차마 해치지 못하고 탄식하여 말했다. “신라에는 빼어난 인물이 많구나. 소년조차 이러하거늘 장사들이야 어떻겠는가?” 이에 관창을 살려 보내도록 하였다. 관창이 돌아와서 말했다. “아까 내가 적진에 들어가서 장수를 베지 못하고 깃발을 뽑아오지 못한 것이 매우 한스럽다. 다시 들어가면 반드시 성공하리라.” 관창은 손으로 우물물을 움켜 마시고는 다시 적진에 돌입하여 맹렬하게 싸웠다. 계백이 사로잡아 머리를 베고는 그의 말 안장에 매달아 보냈다. 품일은 아들의 머리를 잡고 소매로 피를 닦아주며 말했다. “내 아들의 얼굴 모습이 살아있는 것 같구나. 나랏일을 위해 죽었으니 후회가 없으리.” 전군이 그 광경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뜻을 다지고는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면서 진격하니, 백제가 크게 패하였다. 대왕이 급찬의 직위를 추증하고 예를 갖추어 장사 지냈으며, 그 가족들에게 당나라 비단 30필과 이십승포 30필, 곡식 1백 섬을 부의로 주었다. [화랑 관창]의 죽음에 복수에 불타오르게 된 오만명의 신라군은 용기 백배하여 쳐들어와 [계백장군]의 5,000 결사대를 무찌르고 13만명의 [당나라군대]와 함께 백제를 접수했다죠. 그동안 실제 [황산벌]이 어디인지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그 추정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정표] 10:23 이정표는 자주 있습니다만 거리 표시는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충곡서원' 갈림길] 10:25 "충곡서원 갈림길"을 만나는데 [솔바람길]은 [충곡서원]을 다녀 오도록 되있습니다. 그러나 서원은 그렇고 그래서 생략하기로 하고 [오름길] 10여분 완만한 오름길을 진행하면... ['수락산' 정상] 10:37~11:00 (23분 휴식) "수락산 首落山 167.2m" [계백장군묘]에 있는 안내문에서 이 산의 이름을 한자로 알수 있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머리가 떨어진 산'이라는 의미로 해석 할수 있겠는데, 제 개인적 느낌으로는 "계백장군"의 패전과 맥을 같이 하는 산이 아닌가 생각되어 졌습니다. [안내도] 정상에 있는 안내도를 보면 [김장생선생묘소]도 안내하지만 오늘은 [계백장군묘역]과 [백제군사박물관]을 답사하고 [휴정서원]까지 갑니다. [정자] 11:01 [수락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 가면 팔각 정자가 있는데 경치가 좋은 곳이었습니다. 조망을 하면... ['탑정호' 조망] "탑정호 塔亭湖"가 조망됩니다. '충남'에서 두번째로 넓은 저수지라는데 이런 저수지가 '논산'에 있는줄 처음 알았습니다. [예산 예당호]가 가장 넓지요. [금남정맥 대둔산]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맑은 물이라 저수지에 사는 물고기들도 많다고 하네요. 그래서 특히 이곳 '붕어조림'은 독특한 맛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붕어조림'으로 하려고 합니다. ㅎ [갈림길] 11:07 정자에서 5분 정도 더 내려 가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어디로 가나 [계백장군묘]로 갈수 있지만 우측으로 가는게 조금 가깝더군요. 우측으로 내려 가면... ['솔바람길'] 이 길을 왜 [솔바람길]이라고 하는지 느낄수 있게 해 주는 소나무들이 울창합니다. 소나무 향기를 즐기며 잠시 내려 가면... ['충장사'와 '백제군사박물관' 조망] 11:11 [충장사]와 [백제군사박물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중장사' 조망] 11:15 [계백장군]을 모시는 "충장사 忠壯祠"를 뒤에서 조망하고 ['충장사 홍살문'] 11:21 "충장사 忠壯祠"의 정문인 "홍살문'을 통과하여 들어 가면... ['충장사'] "계백장군 階白將軍"의 영정을 모시고 배향하는 "충장사 忠壯祠"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도 불구하고 오픈하여 다행이 들어 가 볼수 있었습니다. ['계백장군' 영정] 처음으로 "계백장군"의 영정을 알현합니다. "계백장군 階白將軍"에 대해선 [삼국사기 제47권 열전 제7]의 원문을 인용합니다. 階伯 百濟人 仕爲達率 唐顯慶五年庚申 高宗以蘇定方爲神丘道大摠管 率師濟海 與新羅伐百濟 階伯爲將軍 簡死士五千人 拒之曰 以一國之人 當唐羅之大兵 國之存亡 未可知也 恐吾妻孥 沒爲奴婢 與其生辱 不如死快 遂盡殺之 至黃山之野 設三營 遇新羅兵將戰 誓衆曰 昔句踐以五千人 破吳七十萬衆 今之日 宜各奮勵決勝 以報國恩 遂鏖戰 無不以一當千 羅兵乃却 如是進退 至四合 力屈以死 계백(階伯)은 백제 사람으로 벼슬이 달솔(達率)이었다. 당 현경(顯慶) 5년 경신(서기 660)에 당 고종이 소정방(蘇定方)을 신구도 대총관으로 삼아 군대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신라와 함께 백제를 치게 하였다. 계백은 장군이 되어 결사대 5천을 뽑아 이를 막고자 하며 말하였다. “한 나라의 사람으로 당과 신라의 많은 병사를 당해내자니, 나라의 존망을 알기 어렵다. 내 처자식이 붙잡혀 노비가 될까 두렵구나. 살아서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 흔쾌히 죽는 것이 나으리라.” 그리고 마침내 처자식을 다 죽였다. 황산(黃山)의 들에 이르러 세 개의 진영을 설치하였다. 신라 병사들과 맞닥뜨려 싸우려 할 때 여러 사람에게 맹세하며 말했다. “옛날 월(越)왕 구천(句踐)은 5천의 군사로 오(吳)의 70만 대군을 격파하였다. 오늘 우리는 마땅히 각자 분발해서 승리를 쟁취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리라!” 그리고 드디어 처절하게 싸웠다. 백제군 한 명이 천 명을 당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없으니, 신라군이 끝내 퇴각하였다. 이렇게 진퇴를 네 번이나 거듭하다가, 힘이 다해 전사하였다. 네번을 이기고 단 한번 패전한 "계백장군 階白將軍"입니다. 후세 사람들은 패장인 "계백장군"을 더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패장이 더 영웅으로 칭송받는 사람은 "계백장군" 뿐이리라... ['계백장군 묘' 조망] [충장사]에서 우측을 보면 "계백장군 묘"가 보입니다. 장군의 묘로 올라 가면... ['계백장군 묘'] [안내문] "계백장군묘"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계백장군 階白將軍"은 최후의 결전을 위해 아내와 자식들까지 죽이고 나가 싸웠다는데 임전무퇴의 정신은 높이 살만하지만 가족까지 죽인 것은 인륜을 배반한것은 아닌지.... [송화] [묘역 앞 정원] 송화가루가 날리니 5월을 확연히 느낄수 있었습니다. 松花가 활짝 피어서 송화가루가 날리며 솔향기도 물씬 풍깁니다. ['계백장군 유적지'] 11:34 [계백장군유적지]로 들어 갑니다. ['백제군사박물관' 전경] ['백제군사박물관'] "백제군사박물관"이 상당한 규모로 건립되 있는데 아쉽게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휴관. [박물관 앞 광장] 11:37 박물관에서 광장을 바라보며 정문으로 나가면... ['충혼공원'] ['계백장군 동상'] 11:40 "충혼공원"이 있고, "계백장군 동상"이 보입니다. [주차장] 주차장을 지나면 [습지공원] 습지공원이 있고 ['백제군사박물관' 정문] 11:47 정문으로 나가 좌측 [신풍리] 방향으로 방향을 바꾸면 ['신풍리' 방향] [신풍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 10여분 진행합니다. [정자 쉼터] 11:58 [신풍리 마을 안내석]과 정자 쉼터를 지나는데... 안내석의 모양도 '붕어' 모양이군요. [탑정호]에서 붕어가 무지 많이 잡히는가 봅니다. ['신풍리 마을회관'] 12:00 이어서 "신풍리 마을회관"을 만나는데, 버스종점이기도 합니다. [휴정서원]을 갔다가 다시 돌아 와야 합니다. ['휴정서원'] 12:07 "휴정서원 休亭書院"은 특별한게 없는 서원이었고 문은 잠겨 있었습니다. 조선후기 '유무' 등 5인의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라네요. ['탑정호'] "탑정호 塔亭湖"에 내려가 봤는데 바람이 엄청 쎄게 불더군요. [탑정호]를 일주하는 도로가 완공되어 드라이브 코스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데 현재 '출렁다리'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완공되면 다시 한번 더 와야 겠습니다. 그때는 [관촉사 은진미륵]에서부터 이곳으로 걸어야 겠습니다. ['붕어조림'] 12:25~2:40 [탑정호]에서 잡았다는 붕어로 조림을 한 '붕어조림'을 점심식사로 했는데 가격은 1인분에 15,000원이고 공기밥은 천원 별도. ㅎ ['신풍리 마을회관' 앞 버스종점] 2:50 2시50분에 출발하는 버스는 2시45분에 도착하여 정시에 출발하고 25분이 걸려 [논산역]으로 갔습니다. ['논산화지중앙시장'] 3:15 기차 시간이 남아 [논산역] 근처에 있는 "논산화지중앙시장"을 둘러 보는데 장보는 분들이 제법 늘어 난듯 보여 제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ㅎㅎ ['논산역'] [논산역]에서 오후 4시 57분 기차를 타고 귀가 했습니다. [구글어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6.2km였으며 2시간반 정도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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