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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방지맥 住王山 區間 山行記 2009년 이 세상에 태어나 최고로 산행을 열심히 한 한해였습니다. 다양한 산을 다녔고 또한 열심히 산을 다녔다고 자부합니다 8월 한달 어머니가 나의 곁을 떠나 가시던 喪中이던 때를 제외하면 일주일에 한번은 꼬빡 다녔습니다. 53일의 주말중에 49회를 갔으니 4일을 빠지고 다녔군요 2009년 한해를 마무리하는 산행은 12월 27일(일) 계방지맥의 "住王山 區間"으로 갔습니다 [계방지맥 : 계방산에서 청옥산 맷둔재까지] [산행지도]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가평리, 백일동, 하안미리 일대에 있는 "住王山 區間" [구글어스로 본 산행도] 枝脈 산행코스에는 별로 없는 거의 원점회귀코스가 되겠습니다. 특히 枝脈 마루금에 접근하고 탈출하는 길이, 마루금을 걷는 거리보다 더 길었습니다 [양재역 출발] 2009년 12월 27일(일) 오전 7시 서초구청 앞에서 강원도 평창으로 출발합니다 년말이라 모두 바쁘신지 열혈 산객들만 모였나 봅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는데 단촐한 식구들이 벌써부터 간단하게 해장술을 하며 오랜만에 만난 "서울백두클럽" 횐님들과 회기애애하게 길을 떠납니다. [기념사진] 오전 9시 45분 2시간 40분 정도 걸려 평창군 대화면 가평리, 백일동 "가리왕산-주왕산" 산행 들머리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좌측으로부터 "개살구님", "필자", "릿지님", "산산산님", "고갈산님", "교감셈님", "솔개님" [산행 들머리]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 "가리왕산, 중앙산"방향으로 산행 들머리를 잡습니다. 뒷쪽에 보이는 산이 "주왕산 住王山"이며, 계곡을 따라 정상부근으로 바로 치고 올라갑니다. 이곳에서 보이는 주왕산 오르는 登路는 쉬워 보이는데 실제로는 무척 된비알이었습니다. [구글어스로 본 산행들머리에서 주왕산까지] 이해하기 쉽게 구글어스로 산행 경로를 보여 드림니다. 경사는 가파르지만 거리가 짧아 다소 위안이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해발 1,300m가 넘는 산이니 그냥 쉽게 정상을 내 주겠습니까? [산행 출발] 오늘도 걷는다만은.... 2009년은 정말 열심히 산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해를 마무리하는 산행을 오늘 시작합니다 이정표 삼거리에서 오른쪽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갑니다. [登路]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왼쪽 계곡으로 올라 갑니다. 중요한 것은 "왼쪽 계곡"을 끝까지 타고 올라야 합니다. 잘못하면 오른쪽 능선을 타게 되고, 그러면 1,235m봉으로 올라 갈수 있습니다. [된비알] 계방지맥 마루금까지 단 한번의 평지도 없이 끝까지 된비알을 올라 가야합니다 사진에서는 경사도가 별루인것처럼 보이지만 엄청 가파른 경사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흔적도 없습니다 [登路 중턱] 11시 43분 중턱에서 휴식을 취하며 후미를 기다리고 있는데 교감셈과 고갈산님이 약간 늦게 올라 왔습니다 [고드름] "고갈산님"의 모자를 보면 오늘 날씨를 단적으로 간단하게 쉽게 설명 할수 있습니다. 현재 이곳의 기온은 영하15도 (이때 서울이 영하 10도쯤이라는 뉴스)인데 바람이 없어 된비알을 오르는 산객들에겐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땀이 많이 났습니다. 그러니 특히 머리 부분에서 땀이 많이 난다는 "고갈산님"의 모자 챙에는 체감적 기온과 관계없는 현재의 실제 기온을 알려 주는 고드럼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땀을 엄청 흘림니다 ㅎㅎㅎ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물론 땀은 우리 신체 중에 머리에서 80%가 난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머리에서 땀 많이 나는 분은 처음 봅니다. 머리는 여러 두뇌 활동을 활발히 하기 때문에 땀이 많이 날수 밖에 없는 구조이라 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많이 나는 사람은 뭔가 특별한 사람입니다. 머리가 아주 좋던지, 아니면 아주 나쁘던지 둘 중에 하나는 틀림없습니다. ㅎㅎ 머리가 좋아 다양한 두뇌 활동을 하기 때문에 땀이 많이 나던지.... 아니면 머리가 나빠 돌아 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돌릴려니 머리가 고생스러워 땀이 쏟아지던지..ㅎㅎ 본인은 어느 쪽인지 알겠지요? ㅎㅎ [마루금으로 오르는 된비알] 엄청 된비알을 다시 치고 오릅니다. [계방지맥 마루금으로 오르는 登路]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늘 산행의 하일라이트 입니다. [계방지맥 주왕산구간 마루금] 오후 12시 02분 평지 한번 없이 2시간 15분 이상을 오르막만 올라 드디어 "계방지맥 마루금"에 올랐습니다. 딱 한번 쉬고..... 계곡을 직접 치고 마루금에 오르니 "주왕산" 전위봉이 바로 보입니다. [마루금에서 내려다 본 대화면 백일동, 가평동] 산행 출발지가 내려다 보입니다. 대화면 가평리 [마루금의 동쪽 방향에 있는 "가리왕산"] 동쪽으로는 손에 잡힐듯 "가리왕산 加里王山"이 보이고.... 여기서 볼때는 가리왕산과 주왕산이 능선으로 평평하게 연결되 있는듯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능선으로 연결이야 되있지만, "마항치 馬項峙"라는 뚝 떨어진 고개로 내려 갔다가 올라야 하더군요 "馬項峙"의 '項'은 '목떨미'를 의미하니까, "말 목떨미"처럼 생겨서 붙여 졌거나, 저 고개를 넘을려면 말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쉬어 갈수 있도록 해 주는 장소로 이용되어 붙여 졌거나... [주왕산으로 오르는 마루금] 주왕산 앞에있는 전위봉을 넘으면 바로 정상으로 갑니다 [주왕산 정상 오르는 길] 12시 21분 약간 정상이라는 맛보기를 보여주며... [住王山 頂上] 12시 25분 2시간 40분이 걸려 올라온 주왕산 정상은 이렇게 횡하니 나타납니다. 정상석도 보이지 않았고, 넓직한 헬기장이 주왕산의 정상이었을 뿐입니다. "주왕산"은 肉山으로서 山勢는 별로였습니다. 그리고 "주왕산"은 "중앙산"으로 표기 해 놓은 곳이 많았습니다. 산 높이도 지도마다 다르고, 산행기마다 다릅니다. 저는 주왕산이 대략 1,300m가 넘는 높은 산이고, '계방산'에서 분기되는 산줄기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계방지맥"을 "주왕지맥"이라고도 한다는 정도로 넘어 가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논쟁의 대상이 될 중요한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입니다. [住王山 頂上에서 바라보는 "加里王山"] 하지만 "住王山" 頂上에서 "加里王山"을 바라보니 이런게 생각납니다. "주왕산 住王山"은 한자를 해석해 보면 "왕이 산다"라는 뜻을 가진 산이름이고, "가리왕산 加里王山"은 갈왕(葛王)이 난을 피하여 숨어든 곳이라 하여 갈왕산(葛王山)이라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음운 표기를 "가리왕산 加里王山"으로 해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백과사전에 나와 있으니 서로 가까이 마주 서서 바라 보고 있는 "주왕산 住王山"과 "가리왕산 加里王山"은 "王이 살았다"는 공통점을 유추 해석해 보면 서로 왕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중앙산"보다는 "주왕산 住王山"이 사실에 더 가깝지 않을까...생각해 봤습니다. "마항치 馬項峙"를 경계로 "주왕산 住王山"은 평창군에 있고, "가리왕산 加里王山"은 정선군에 있습니다. "주왕산 住王山"에서 "마항치 馬項峙"를 건너 "가리왕산 加里王山"으로 한번에 종주하는 연계 산행코스도 유명하고, 매년 등산대회도 열리는 모양입니다. [住王山 頂上에서 뒤돌아 보는 계방지맥 "백석산" "잠두산" "백적산"] 계방지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그런지 住王山 頂上에서는 조망이 아주 뛰어 났습니다. 북쪽으로는 "계방지맥 4구간"이 선명히 보이고.... 백석산 잠두산 백적산..... 멀리 "한강기맥" 산줄기가 밀려오는 파도처럼 수평선을 이룹니다. [줌인하여 본 "계방산"] 그래서 "계방지맥"의 분기점인 한강기맥의 "계방산"을 줌인해 봤습니다 정말 그림 같습니다. 이 맛에 땀을 흘리며 이렇게 오르기도 하지요. "계방지맥"은 저는 저 '계방산 구간'만 산행하고 두번째로 '주왕산 구간'에 합류했습니다. 계방산과 주왕산 사이의 산줄기는 생략했습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산줄기들을 생략한것입니다. 그 이유는 특별한 山群들이 없기도 하고, 다른 산에서 부르는 분들이 많아 이 산, 저 산 다니다 보니 계방지맥 완주는 못하게 됫습니다. 가야할 산은 많고, 노는 날은 일주일에 한번이고....에구 첫구간부터 끝까지 완주하는 것도 의미있지만, 저처럼 시간이 없는 경우엔 중요 구간만이라도 다니면 다행 아닙니까? ㅎㅎ [住王山 頂上에서 바라보는 "치악산"] 西쪽으로는 이름 모를 山群들이 태풍이 부는 바다를 연상케 하고 있습니다. 멀리 "치악산"이 보입니다. [줌인하여 본 "加里王山"] "加里王山"을 줌인해 봤습니다. 전형적인 肉山입니다. "加里王山"은 유명한 산입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열번째로 높은 산이기도 하고, 정선 아리랑의 본거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1,561m높이의 산이지만 산세가 부드러운 산이라 산객들에게 큰 인기는 없는듯합니다 [住王山 頂上에서 기념사진] 우리 이외에는 주왕산을 찾은 산객들이 없어서 고갈산님, 교감셈님, 개살구님과 함께 찍지 못하고.... 한해 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내년에도 또 열심히 다니자구요~ [住王山 頂上에서 기념사진] "加里王山"을 배경으로 홀로 찍었습니다. [점심식사] 오후 1시 오늘은 2009년도 송년 산행입니다. "서울백두클럽"과 함께 보낸 한해는 개인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한해 였습니다.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체력도 엄청 쎄졌습니다. 더더욱 좋은 산객들을 만났다는게 가장 큰 기쁨입니다. 이제는 이들을 떠나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생각 할수도 없을 지경입니다. "서울백두클럽"과 함께한 2009년 산행은 너무도 즐거웠습니다. 제딴에는 감사의 표시로 마눌 옆구리 쑤셔 술안주용 등심불고기를 준비했는데.... 감사의 표시로는 미약하지만 마음으로 받아 주시고 新年에는 더욱 알찬 산행하자구요 오늘 함께하지 못한 횐님들....아쉽습니다. ["벽파령"으로 출발] 1시 30분 기온은 영하 15도 정도이지만 바람이 없어 체감온도는 봄날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왕산"에서 "벽파령"까지는 제법 긴 거리여서 잡아 먹을 시간은 모두 잡아 잡수고 하산을 시키더군요. [1235m봉에서 뒤 돌아본 "住王山"과 "加里王山"] 1시 53분 "S"로 돌아 1,235m봉으로 와 뒤돌아 본 "住王山"과 "加里王山"입니다. 좌측 '주왕산', 우측 '가리왕산' [구글어스로 본 1235m봉에서 벽파령까지] 이제 "1,235m봉"에서 "벽파령"까지의 구글어스를 보여 드림니다. 보시다시피 큰봉우리 세개를 넘어야 합니다만, 높낮이가 크지 않습니다. 다만 거리는 생각보다 많이 길었습니다. [1245m봉으로 가는 길] "1,235m봉"에서 "1,245m봉"으로 가는 길 山勢가 부드러워 걷기는 편하지만 구경거리는 별루입니다. [1245m봉으로 가는 길] 구경거리는 조망을 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이런게 볼거리.... [1245m봉에서 뒤돌아 본 "住王山"과 "加里王山"] 오후 2시 04분 "1,245m봉"쯤 가서 뒤돌아 보니 "住王山"과 "加里王山"이 "마항치 馬項峙"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분리된 산이라는 걸 이제서야 학실히 알수 있군요. 좌측이 "주왕산", 우측이 "가리왕산" [1245m봉] 오후 2시 05분 "1,245m봉"은 암봉이었습니다. 정상 아랫쪽은 낭떨어지 [1245m봉에서 내려다 본 평창군 대화면 가평리] "1,245m봉"이 대화면 가평리 일대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길로 올라왔으며, 왼쪽 길로 하산 합니다. 멀리 "대화면 邑內"가 보입니다. "대화면"을 내려다 보니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생각납니다. 봉평과 대화장을 돌아 다니며 포목장사를 하며 살아 가는 곰보딱지 허생원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장똘뱅이 생활을 하며 늙어 가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래서 "메밀꽃 필 무렵"의 한대목, 정말 유명한 봉평과 대화 사이의 경치를 표현하고 있는 한대목을 다시 한번 감상해 보시지요. [1245m봉에서 뒤돌아 본 "계방지맥 마루금"] [메밀꽃 필 무렵의 한 대목] "드팀젼 장돌이를 시작한지 이십년이나 되어도 허 생원은 봉평 장을 빼논적은 드물었다. 충주, 제천 등의 이웃 군에도 가고, 멀리 영남 지방에도 헤메이기는 하였으나, 강릉쯤에 물건 하러 가는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내를 돌아 다녔다. 닷새만큼씩의 장날에는 달보다도 확실하게 면에서 면으로 건너간다. 고향이 청주라고 자랑삼아 말하였으나 고향에 돌보러 간 일도 있는 거 같지는 않았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반날 동안이나 뚜벅뚜벅 걷고 장터 있는 마을에 거의 가까웠을 때, 지친 나귀가 한바탕 우렁차게 울면 ---- 더구나 그것이 저녁녘이어서 등불들이 어둠 속에 깜박거릴 무렵이면, 늘 당하는 것이건만, 허 생원은 변치 않고 언제던지 가슴이 뛰었다." 이 효석은 '봉평'과 '대화'의 풍경을 너무나 사랑하여 그의 불후의 명작 "메밀꽃 필 무렵"에서 대화에서 봉평까지의 아름다운 山河를 위와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실제 이효석은 평창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주말에는 평창에서 봉평까지 걸어서 집에 왔다가 가곤 했답니다. 엄청 먼 거리였는데도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서라고 훗날 그는 스스로 술회했습니다. [1241m봉으로 가는 길] "메밀꽃 필 무렵"의 하일라이트를 소개 해 드림니다.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 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 섰다. 방울 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소설이 한편의 詩와 같아서 더욱 우리 마음을 애잔하게 합니다. [1241m봉으로 가는 길] 이효석은 평창군 봉평면이 낳은 천재였습니다. 평창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얼마나 공부를 잘했냐하면 서울 '경기중고등학교"에 무시험 특차로 진학한 특별한 인재였습니다. 옛날 일제시대 '경성고보'였던 '경기중고등학교'에 무시험이란건 상상하기 어려웠던거죠 잘아시는 고려대 총장, 신민당 당수, 제헌의원, 소설가, 시인인 유진오 선생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이 효석은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영어교사를 거쳐 평양 숭실전문학교와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新女性들과 염문을 뿌리며 연애박사라는 칭호를 들으며 살다가 결핵성 뇌막염으로 36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 였습니다 이효석에 대해서는 제가 나름대로 쓴 글이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다음을 클릭하셔서 가 읽어 보세요. 돈은 받지 않고, 감사의 표현은 받습니다. ㅎㅎㅎ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이효석☆
[야생 상황버섯 채취] "서울백두클럽"의 산행 리더이신 "산산산님"이 야생 상황버섯을 채취하고 있습니다. 저는 야생상황버섯도 처음 보고, 이런 채취하는 광경도 처음 봅니다. 많이 배우며 산을 다녀 너무 즐겁습니다. 앞으로는 더 배워야지~ 산을 산으로만 다니는게 아니고 自然과 벗하며 산을 즐기는 프로 산객들입니다 [立石] 肉山인 주왕산에선 보기 어려운 立石이 절묘하게 서 있습니다. [1241m봉] 오후 2시 23분 주왕산 능선에 있는 세번째 봉우리인 1,241m봉에 왔습니다 [1241m봉에서 내려다 본 "대화면 下安味里와 가평리"] 좌측 계곡마을이 "하안미리"이며 "벽파령"에서 내려 오는 길입니다. 오늘 산행의 날머리이기도 하며, 다음 구간의 들머리도 되겠습니다. 사진의 앞에 흰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높은 산이 "장암산"입니다. 836.3m 높이. 장암산은 솔향기가 물씬 풍기는 산으로 평창강이 장암산을 끼고 돌아 주변 경관이 수려하며 산 아래로 평창읍 전경과 노산,삼방산,백덕산이 눈앞에 펼쳐지는 평창읍의 진산이라고 합니다 특히, 평창의 명물인 국내 최대의 송어 양식장이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청옥산"과 능선으로 연결되 있는 산입니다. [1241m봉에서 바라본 "靑玉山"] "1,241m봉"에 오니 다음 구간에 갈 "청옥산 靑玉山"이 육중한 몸매를 드러냅니다 "청옥산 靑玉山"은 이름에서 푸른색을 띄는 "玉"에서 온듯한 느낌을 받습니다만, 보석으로 구분되는 "靑玉'하고는 전혀 관련없는 식물에서 온 이름이랍니다. "靑玉山"은 '곤드레나물'과 더불어 "청옥"이란 산채가 자생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또한 "靑玉山"은 비교적 평탄한 지형으로 그 면적이 볍씨 6백두락이나 된다는 뜻에서 "육백마지기"라 불려져 왔다고 합니다. 다음 구간인 "靑玉山 구간"이 기대 됩니다. 유명한 영화 "욀컴투 동막골"의 촬영 셋트장이 있답니다. [1241m봉 근처에 있는 기암괴석] 삭막한 肉山에서 보는 奇岩怪石 [길 주의 구간] 오후 2시 51분 직진하다가 오른쪽으로 틀어야 하는 길주의 구간입니다. [길 주의 지점] 오후 2시 52분 이곳에 오면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여럿 걸려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가야 합니다. [靑玉山이 보이기 시작] 길 주의 지점에서 우측으로 꺽어 내려 가면 "靑鈺山"이 가까이 다가 옵니다. 중요한 것은 앞에 보이는 송전철탑 아래로 "벽파령"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이제 "벽파령"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벽파령" 좌측 정선군 마항마을 방향] 계방지맥 마루금 좌측으로는 정선군 마항마을로 내려 가는 임도가 보이는데 저 임도가 우측 평창군 대화로 연결되 있지는 않더군요. [碧波嶺 가는 길] 청옥산 중턱에 있는 송전철탑을 바라 보며 청옥산 방향으로 계속 갑니다. [碧波嶺] 송전철탑 밑까지 오면 "碧波嶺"입니다. [碧波嶺] 오후 3시 36분 "嶺"이 붙어 있어 제법 큰 고개이거니 생각했던게 길찾기를 어렵게 했습니다. 碧波嶺은 이렇게 볼품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 했습니다. 나무가지에 팻트병 하나 꽂혀있는것이 전부입니다. 碧波嶺 글자 그대로라면 '푸른 파도가 밀려 온다는 고개'인데 너무 초라합니다. 그리고 임도가 연결되 있는줄 알았으나 임도는 양쪽에 별도로 나 있을뿐.. [碧波嶺에서 임도로 내려 가는 길] 碧波嶺에서 임도로 내려가는 길은 제법 선명하게 나 있었습니다. [임도] 오후 3시 52분 碧波嶺에서 약15분쯤 내려오면 임도를 만납니다. [임도에 내려와 뒤돌아 본 "벽파령"에서 내려 오는길] 다음 "청옥산 구간"의 들머리가 되기 때문에 "碧波嶺"으로 올라 가는 입구를 뒤돌아 보면서 촬영했습니다. [下安味里로 가는 임도] 이 임도를 따라 계속 내려 가야합니다. 지름길처럼 보이는 길이 있다고 가면 오히려 더 멀수 있습니다. "신전교"라고 하는 다리가 있는 곳까지 내려 갑니다. 다음 구간인 청옥산을 갈때엔 25인승 버스가 얼마던지 여기까지 올라 갈수 있습니다. 버스 기사가 눈을 핑개로 못가겠다고만 하지 않으면..... [下安味里 "신전교"에서 뒤돌아 본 "벽파령"] 오후 4시 13분 처음으로 만나는 다리가 "신전교"입니다. 여기서 "碧波嶺"을 뒤돌아 봤습니다. 송전철탑 옆에 보이시죠? 오늘은 마루금보다 접근로와 탈출로가 더 긴 산행이었습니다. [구글어스로 본 벽파령에서 하안미리까지] "碧波嶺"에서 하안미리까지 구글어스입니다. 이해하기 쉽죠 [下安味里 전원주택] 오후 4시 25분 벽파령에서 이곳까지 약50분 걸렸습니다. 전원주택 마당에 자리펴고 뒷풀이를 했습니다. [下安味里 전원주택에서 송년회 뒷풀이] "서울백두클럽" 회원 여러분 한해 동안 함께 할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내년에도 더 알찬 산행 함께 할것을 기약하며 2009년 산행을 마침니다. [구글어스로 본 남북방향 주왕산] 우측 맨 위에 있는 "가리왕산"도 눈 여겨 보세요. 앞으로 시간나면 "주왕산-가리왕산 종주"도 하고 싶습니다 아듀~~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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桂芳山 山行記  (0) 200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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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방지맥] 계방산 구간 운두령-1496m전망대-계방산 정상-1551m봉- 1462m봉 갈림길[계방지맥 본기점]-가라치 桂芳山 10월 11일(일) 맑은 날씨에 최고의 가을을 알리는 기온의 쾌적한 날에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노동리와 홍천군 내면 사이에 있는 桂芳山으로 향했습니다. [계방지맥] 계방지맥(桂芳枝脈)은 계방산 동쪽 1462.3m봉에서 영월에 이르는 약 80Km의 능선을 말하는데 남한강의 최상류인 동강과 서강을 가르는 산줄기입니다 [계방지맥1구간] 계방지맥(桂芳枝脈)의 실제 들머리는 '桂芳山 정상'에서 한강기맥을 따라 '오대산' 방향으로 가서 1462.3m봉 바로 앞에서 남쪽 영월 방향으로 가는 삼거리 갈림길입니다. 그러므로 계방지맥(桂芳枝脈)을 가려면 우선 '桂芳山 정상'을 올라 1462.3m봉까지 가야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계방지맥1구간]은 "가라치"까지 입니다. 총거리 약 15km [구글어스로 본 '계방지맥1구간'] 구글어스로 본 桂芳山 일반 등산로와 桂芳枝脈 '가라치'까지의 산행로. 오늘도 만만치 않은 산행이 되겠습니다. '운두령'에서 오르는 "桂芳山 일반 등산로"는 많은 산객들이 다니는 코스이니 쉽지만 1462.3m봉에서 시작되는 桂芳枝脈은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는 길이니까요 [이승복 기념관] 서울 서초구청과 외교안보연구원 사이의 골목에서 7시 5분에 출발하여 특이하게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지나 '춘천-원주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에서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바꿔타고 "속사"로 갔습니다. "속사"에서 "운두령"으로 가는 길에 있는 "이승복 기념관"을 잠깐 들렸습니다. '이승복 기념관'은 옛날 이승복이 다니던 초등학교가 폐교가 되어 그곳에다 '이승복 기념관'을 지었더군요. [이승복 기념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 한마디 외침으로 무장 공비들에게 입이 찢겨 살해 당했다는 "이승복" 60년대 말, 그러니까 1968년 12월 9일 삼척 울진에 침투하여 이곳 두메 산골 - 계방산 골자기 '노동리'까지 온 무장 공비들에게 당시 9살이던 이승복 어린이는 과감하게 항거하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답니다 조선일보의 노모 기자는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의 "반공 제일 주의"에 어떻게 호응을 한것인지는 몰라도 조선일보에 대서 특필하면서 두메산골 9살 이승복 어린이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신화"로 또한 "반공의 횃불, 민족적 영웅"으로 부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범정부적으로 이승복 영웅화는 진행되어 이런 기념관까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승복 상] 60년대 말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은 "3선 개헌"을 앞두고 반대 세력을 잠재울 방안들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군사독재 정권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민주화"였으니, 이용할수 있는 것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과장 시켜 용공조작으로 민주화 세력을 억누르는 "반공"이 최고 무기였고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은 "빨갱이"로 내몰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도 좀 그런 면들이 있나요? "이승복 어린이"에 대한 논란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얼마전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났습니다만, 판결 내용이 또 애매하여 더욱 불씨를 지피고있습니다 38년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이승복 사건"은 알만한 사람들에겐 "조작"이라고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다가 "이승복의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조선일보 기사'는 신문기사가 아니라 신문소설을 썼다는 타 매체의 보도가 잇따르고 급기야 언젠가 MBC에서도 방영을 하면서 명예홰손혐의등으로 법정 싸움까지 간 이상한 사건이 됩니다. [이승복 생가(복원)] 60년대말 그러니까 그 당시 이곳 계방산 밑에 있는 '노동리(路洞里)'라는 지금도 몇집 살지 않는 두메산골에는 TV는 커녕 전기도 없어 정치권력과 북한의 동향등 시사적인 뉴스를 알려 주는 방송매체는 접하기 어렸웠던 곳이었습니다 그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란 9살 이승복 어린이가 어떻게하여 그렇게 까지 반공정신이 투철하여 온갖 무기로 중무장한 공비들에게 맨몸으로 항거하며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칠수 있었을까요? 만약 진짜 그랬다면 칭송받아 아까울게 없지만, 고속도로도 없던 낙후된 비포장 도로를 달려 당시에 어떻게 신문기자가 계방산 산골자기까지 신속하게 찾아가 취재를 할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기사를 쓴것이 아니라 소설을 썼다는 얘기들이 識者들 사이에 난무했던 것입니다 [이승복 기념관 내부] 당시에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까지 이승복의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이 실리고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이승복 어린이의 반공정신을 배우라고 교육까지 했습니다 어쩐 일인지 민주화가 된 90년대말에 와서는 교과서에서 슬그머니 삭제됬지만..... 박정희 군사정권과 전두환 군사 정권들 까지는 '이승복'을 무척 많이 울궈 먹었지요 중앙정보부의 용공조작으로 억울하게 간첩이 된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서야 무죄를 선고 받고 지나간 세월을 한스럽게 보낸 백성들은 국가권력의 범죄행위를 어떻게 해야 할지.... 현재도 국가권력의 범죄행위는 과연 없는가 북한과 전쟁을 하며 싸워 나갈 것인가? 아니면 동족으로서 상생의 길을 찾을것인가 정권 연장의 수단으로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지는 않았는가 '이승복'은 어쩌면 '이데올로기'의 영웅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희생자'가 되지는 않았는가 어서 빨리 '이데올로기'문제로 국론이 분열되는 옥신각신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런 씁쓸한 느낌을 가지고 계방산으로 산행을 떠납니다 [雲頭嶺] 오전 10시 45분경 "雲頭嶺"에 도착했습니다.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노동리와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를 잇는 우리나라에 있는 자동차가 다니는 최고 높은 고갯길이랍니다 해발 1,086.7m 桂芳山의 높이가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산인 1,577.4m인데 雲頭嶺의 높이가 1,086.7m이니 약500m의 산을 오른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雲頭嶺 휴게소] 雲頭嶺에는 크지 않은 휴게소가 있어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복잡했습니다. 앞으로 보이는 길이 "한강기맥"의 산줄기가 계방산을 지나, "보래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雲頭嶺 桂芳山 들머리] 桂芳山과 桂芳支脈의 산행 들머리는 雲頭嶺 우측에 계단으로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10시 50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들머리 계단을 올라와 내려다 본 雲頭嶺] 산행 들머리 계단을 올라와 雲頭嶺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고개 중에서 가장 높은 고개랍니다. [들머리 계단을 올라와 내려다 본 雲頭嶺 계곡과 고갯길] 계단을 올라와 雲頭嶺 계곡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높이도 올라 왔군요. 제일 높은 고개 다웁게 계곡도 깊습니다. [桂芳山 첫번째 쉼터 오르는 길] 桂芳山을 오르는 등로는 경사가 완만하여 산행을 즐기는 꾼들은 주로 겨울에 와서 桂芳山의 눈 산행을 즐긴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桂芳支脈이 주목적이기에 겨울에는 곤란하겠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음을 만끽하며 "계수나무가 꽃방울"을 터트리는 桂芳山을 오릅니다 [桂芳山 첫번째 쉼터] 40분쯤 오르니 첫번째 쉼터가 나왔는데 아마도 1,236m봉인듯합니다. 오늘 전국에서 많은 산객들이 몰려 왔습니다 [桂芳山 첫번째 쉼터 이정표] 첫번째 쉼터 뿐만 아니라 곳곳에 이정표와 산행안내판이 있어 편리했으나 桂芳山은 안내판이 없어도 길을 못찾을 염려는 없는 onE WAY였습니다 [1496m 전망대봉] 쉼터를 벗어나 조금 오르니 "1,496m 전망대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처음에 저 봉우리가 정상인줄 알았습니다 어느 산이나 그렇게 쉽게 정상을 내주지는 않지요? ㅎㅎ 그래도 명색이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산인데.... [1496m 전망대봉 오르는 등로] 가을 속으로의 여행 산행이 가을을 만끽할수 있는 최고의 여행이지요 아직은 약간 덜 무러익은 가을 단풍이지만 桂芳山은 울긋불긋한 색동치마를 둘러 입고 도심의 어리뱅뱅이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1496m 전망대봉 오르는 길] 1,496m 전망대 봉우리가 가까이 다가 옵니다 새로운 넓은 세계가 펼쳐집니다. [1496m 전망대봉] 처음에 정상인줄 알았던 1,496m 전망대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이때 시간이 12시 5분이었으니, 운두령에서 이곳까지 1시간 15분 걸렸습니다 [1496m 전망대봉에서 올려다 보는 桂芳山] 전망대봉에 올랐으니 사방을 조망해 보겠습니다. 우선 남쪽으로 "桂芳山 정상"이 가까이 조망됩니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약 20분이 걸렸으며,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완만한 경사이며 거리도 가까웠습니다. [1496m 전망대봉에서 바라 보는 '오대산'] 동쪽으로는 "오대산"이 백두대간의 품속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으며 오대산에서 부터 뻗어 오는 "한강기맥"이 선명하게 산줄기를 보여 줍니다 "계방지맥"은 가운데 능선 끝봉우리에서 남쪽으로 분기합니다. [1496m 전망대봉에서 바라 보는 '설악산'] 북동쪽으로는 안내판을 보고서야 알았지만 여하튼 "설악산"이랍니다. 산줄기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하늘의 구름은 일렁이는 파도에서 포말로 솟아 오른 솜사탕 같습니다. [1496m 전망대봉 안내판과 이정표] 桂芳山 정상까지 700m 약 20분이 걸렸습니다 [桂芳山 정상으로 가는 길] 高原地帶 다웁게 나무들이 더 이상 키높이를 못하는것 같습니다 [桂芳山 정상으로 가는 길] 오늘 서울에서 이곳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산산산"이라는 아이디를 가지신 횐님이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저의 무릎에 蜂針을 놔주었습니다. 효과가 있는지 여부는 앞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효과가 있다고 제가 알려드리면 그때 蜂針을 맞으세요 산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 효과가 있는 걸로느껴집니다만 확실한 임상결과를 듣고 맞으세요 제가 임상실험맨입니다.ㅎㅎ [桂芳山 정상] 이제 더이상 이 산꼭대기 위엔 오를 곳이 없어집니다. '계' 계수나무 桂, '방' 꽃다울 芳 계수나무 꽃다운 山이란 말인가요? "桂樹나무"는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동요 '반달'이라는 노랫가사에만 나오는 전설적인 나무로 그저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반달'은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로서 윤극영선생이 작곡한 동요입니다 일본 군가로 짖밟힌 일제침탈시대에 우리나라 음악을 새로이 정립시킨 분이 '윤극영선생'이지요 저의 교동초등학교 대선배님이기도한 윤극영선생은 소파 방정환선생과 함께 '색동회'를 창립한 우리나라 어린이날을 만든 어린이 사랑이 출중한 분중에 한분이십니다. [桂芳山 정상] 桂芳山 정상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산객들이 진을 치고 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반달≫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이 노래에 대한 해석은 여러 사람들이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해석 두가지를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이 노래가 밤하늘의 '반달'을 노래한 것이지만 정치적인 이미지가 많이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 노래가 만들어 지던 때가 일제침탈의 식민지 시대여서 친일적 색채가 강하다는 것입니다. 즉, "푸른하늘 은하수"는 태평양을 상징하고 "하얀 쪽배"는 태평양의 쪽배같이 닮은 일본열도이며, 쪽배 위에 "토끼 한 마리"는 일본열도 위쪽에 놓인 한반도로 상징화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계수나무 한 나무"라는 것은 토끼 위에 놓인 만주지역에서 산동반도를 잇는 중국 땅 동쪽 대륙을 연상하게 한다고도 합니다. 다소 배타적 비판적 사고를 가지신 분들이 해석하는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당시에 음악을 한 음악가들이 대부분 친일행위를 했기 때문이며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되는 국민동요 "고향의 봄"을 만든 '이원수씨'는 대표적 친일파였으니 다른 분들도 싸잡아 친일파로 매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윤극영선생은 친일파는 아니었습니다. [桂芳山 정상석과 정상탑] 桂芳山은 높이가 1,577m로서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덕유산(1,614m)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산입니다. 桂芳山에는 칡넝쿨이 없다는데 그 이유에 대한 전설이 있더군요. 옛날 용맹스럽고 무서운 '권대감 산신령'이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용마를 타고 달리던 중에 칡덩쿨에 걸려 넘어지자 화가난 '권대감 산신령'이 부적을 써 이산에 던진후부터 모든 칡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호~~오 [桂芳山 정상에서 내려다 본 雲頭嶺 계곡]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동요를 작곡한 윤극영선생을 높이 보는 사람들은 윤극영선생이 '반달'을 작곡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새벽 하늘에 떠있는 반달이 나라 잃은 자신의 모습처럼 보였고, 조선 민족의 처량한 운명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달'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기도 한답니다. 나라 잃은 조선 민족을 망망 대해에 떠도는 한 조각의 조각배로, 갈 곳 없이 하늘을 떠도는 슬픈 새벽달과 같이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돛대도 없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에서 서쪽 나라란 해방의 나라를 의미 했다고 합니다. 저는 친일파 목록에도 없는 '윤극영선생'이기에 '반달'의 의미를 '나라 잃은 슬픔'과 '해방'을 기다리는 묵언의 암시였다고 생각합니다. [桂芳山 정상의 산행 안내] "桂樹나무"는 원산지가 일본입니다. 물론 중국에도 있다고 합니다만 우리나라에 있는 "桂樹나무"는 거의 대부분 일본에서 들여 온것들이랍니다. 그래서 동요 '반달' 속의 '계수나무'는 친일적인 것이라고 흘뜯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桂芳支脈 갈림길 가는 길] 桂芳山 정상을 떠나 "桂芳支脈"으로 갑니다. 지금부터 등산로는 한산해 지기 시작합니다. 대부분 운두령으로 되돌아 가기에.... 앞에 펼쳐지는 오대산이 그림같습니다. [1551m봉에서 뒤 돌아본 "桂芳山 정상"과 "1496m 전망대봉"] 계방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1,551m봉에 와서 뒤돌아 보니 "桂芳山 정상"과 "1496m 전망대봉"을 잇는 능선이 한마리의 龍이 승천하려고 꿈틀대는 듯합니다 [桂芳支脈 갈림길 가는 길] 봉우리를 두어개 더 넘어야 "桂芳支脈 분기점"을 갈수 있습니다. [桂芳山 일반 등산로 하산 갈림길] 12시 45분에 계방산 하산 일반 등산로 갈림길에 왔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강기맥'을 따라 직진할수 없다고 등산로 폐쇠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 오른쪽 '오토캠핑장'으로 하산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직진해야 "桂芳支脈 분기점"을 갈수 있기에 전진을 해야합니다. [桂芳山 일반 등산로 하산 갈림길에 있는 "주목나무"] 갈림길에 있는 "주목나무"는 보호수이더군요. 이쪽으로 내려가면 계방산 주차장이 나옵니다. [1462m봉으로 가며 뒤 돌아 본 "桂芳山 정상"과 "1496m 전망대봉"] "桂芳支脈 분기점"이 있는 1,462m봉으로 가면서 다시 뒤돌아 봤습니다. "桂芳山 정상"과 "1496m 전망대봉"이 더욱 평화롭습니다. 이산이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산 맞어요? ㅠㅠ [1462m봉과 "계방지맥"]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1,462m 桂芳支脈 분기점"이 있는 봉우리입니다. 우측으로 桂芳支脈이 분기하기 시작합니다. [桂芳支脈] 사진의 가운데 이어진 산줄기가 "桂芳支脈" 산줄기입니다. 선명하게 보이시죠? [자작나무 군락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자작나무와 박달나무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지요? 산행대장인 '개살구님' 회원이 여기서 자작나무로 지팡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1462m봉] "桂芳支脈" 분기점을 이루는 "桂芳山"의 "1,462m봉 정상"을 옆구리로 돌아 나아 갑니다. [한강기맥과 桂芳支脈 갈림길] 오후 1시 30분경에 드디어 "桂芳支脈 분기점"에 왔습니다 여기서 직진하면 한강기맥 오대산 방향이고, 우측으로 "桂芳支脈"입니다. [桂芳支脈으로 출발하며 바라 본 "桂芳山 정상"과 "1551m봉"] "桂芳支脈 분기점"에서 약 45분 정도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후 2시 15분경에 출발합니다. 우측으로 桂芳山 정상과 1,551m봉이 보입니다. [桂芳支脈 속으로....] 이제부터 우리팀 이외에는 어느 누구의 그림자도 볼수 없는 桂芳支脈 속으로 들어 갑니다. 복잡한 계방산 일반 등산로에서 벗어나, 산행의 즐거움이 이제서야 소록소록 생겨납니다. [깊어 가는 가을] 이곳 산줄기가 "오대산 국립공원의 경계선"에 있는 桂芳山 줄기입니다. 현재는 "오대산 국립공원" 안을 걷고 있는 것이지요 다양한 색깔의 미니 스캇트를 입고 유혹하고 있는 산 산 산...... [1602m봉] 오후 3시에 1,602m봉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독도를 다시하며 다시 가을 속으로 빠져 듭니다. 계방지맥 단풍길 저산 넘어엔 자작나무 한그루 빨간 잠자리 근심도 걱정도 모두 잊고서 놀기도 잘도 논다 대자연 속에서 ㅎㅎ '반달'을 표절해서 가사 하나 지었는데 어떠세요? 괜찮으니 동요 하나 만들라구요? ㅎㅎ [1,102m봉 삼각점] "계방지맥" 산행길에는 특이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이런 삼각점을 만나고, 정상적인 길을 가고있는지 독도를 다시하고.... 그래서 지맥분기점에서 3시간 40분이 걸린 "가라치"까지의 산행길의 이모저모는 특이한 것이 없어 산행기에 간단하게 씁니다 대자연 속에서 그저 열심히 걷기만 합니다. 어느 산봉우리에서 마지막 한잔을 합니다. 이 맛은 ......않갈켜줍니다 ㅎㅎ 그리고 여기서 야생 벌을 한마리 잡아 무릎에 다시 봉침을 한방 더 맞았습니다. 양봉하는 꿀벌보다 훨씬 더 쌘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산행기를 쓰는 지금 무릎은 퉁퉁 부어 있습니다만, 어떤 통증은 없습니다. 다만 약간 가렵더군요 [이승복 생가로 내려 가는 갈림길] 평창군 봉평면 노동리(路洞里) "이승복 생가"로 내려 가는 삼거리입니다. 빨리 하산 할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직진해야 합니다. 이름 모를 산봉우리의 삼각점을 지나 갑니다 봉우리 이름이나 높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동서남북을 잘 가리며 길을 잃지않고 빨리 가는 것 뿐입니다. 계방지맥 1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1,108m봉을 지나 갑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가 알바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독도에 조심해야 할 곳입니다.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가라치] 계방지맥 1구간의 종착역 "가라치"가 내려다 보입니다. '가라치'는 산줄기를 심하게 절개를 하여 절벽이었습니다. 여기서 조심해서 내려 가야합니다. [가라치 절개지 내려 가는 길] 처음 계획은 "운두령"에서 이곳 "가라치"를 지나 영동고속도로가 있는 "속사리재"까지 가려고 했습니다만, 지맥 분기점에서 여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 '가라치'를 1구간의 날머리로 정했습니다. [가라치] 봉평면 속사리(束沙里)에서 진부면 척천리(尺川里)로 넘어 가는 고갯길입니다. 이 고개 넘어 바로 척천리(尺川里)에는 초정약수와 함께 유명한 "방아다리 약숫터"가 있지요 오후 5시 50분에 도착하였습니다 [뒷풀이] 라면에 돼지고기에 김치에 쇠주에......ㅎㅎ [계방산 산행코스] 빨간 색으로 표시된 선이 오늘 산행 코스입니다 산행거리 약 15km 산행시간 약 7시간 [蜂針 전문가 '산산산님'] 蜂針 전문가 '산산산님'은 산에만 다니는 줄 알았더니, 약초에 대해서도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고 蜂針과 뱀에 대해서도 모르는게 없었습니다. 돌아 오는 차안에서도 蜂針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돌아 오는 차안에서 蜂針을 한방 더 맞아 3방을 오늘 왼쪽 무릎에 맞았습니다 결과는 앞으로 일주일에 한번 쓰는 산행기에서 중계방송을 해 드릴 예정입니다. 그러니 임상실험맨인 제가 효과를 보면 그때 '퇴행성 관절염' '디스크' '탈모'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蜂針을 시도해 보시기 바람니다. [蜂針 맞을 때(좌측 사진 - 봉침 보이십니까?)와 맞은 후(오른쪽 사진의 왼쪽 무릎이 부어 오릅니다)] 사진 색깔이 다른 이유는 오전 자연광에서 찍은 사진과 밤에 돌아 오는 버스 안에서 플레쉬로 찍어서 붉은 색을 나타 내는데 약간 부어 붉어지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저의 경험에 의하면 蜂針은 맞을 때 따끔하게 아픕니다. 벌의 자기 생명과 바꾸는 마지막 저항이니 오죽하겠습니까 그리고 2~3분간 우리하게 매우 아픈 통증을 느낌니다만, 주사 맞는 정도라고 생각 됩니다. 그리곤 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한시간 이상 지나면 부은 자리가 약간 가렵기 시작합니다. 약 3일간 붓기가 빠지지않다가, 3일이 지난후 붓기가 빠지기 시작합니다. 퇴행성 관절염이 치료되는지는 앞으로의 산행기를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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