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방지맥] 계방산 구간 운두령-1496m전망대-계방산 정상-1551m봉- 1462m봉 갈림길[계방지맥 본기점]-가라치 桂芳山 10월 11일(일) 맑은 날씨에 최고의 가을을 알리는 기온의 쾌적한 날에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노동리와 홍천군 내면 사이에 있는 桂芳山으로 향했습니다. [계방지맥] 계방지맥(桂芳枝脈)은 계방산 동쪽 1462.3m봉에서 영월에 이르는 약 80Km의 능선을 말하는데 남한강의 최상류인 동강과 서강을 가르는 산줄기입니다 [계방지맥1구간] 계방지맥(桂芳枝脈)의 실제 들머리는 '桂芳山 정상'에서 한강기맥을 따라 '오대산' 방향으로 가서 1462.3m봉 바로 앞에서 남쪽 영월 방향으로 가는 삼거리 갈림길입니다. 그러므로 계방지맥(桂芳枝脈)을 가려면 우선 '桂芳山 정상'을 올라 1462.3m봉까지 가야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계방지맥1구간]은 "가라치"까지 입니다. 총거리 약 15km [구글어스로 본 '계방지맥1구간'] 구글어스로 본 桂芳山 일반 등산로와 桂芳枝脈 '가라치'까지의 산행로. 오늘도 만만치 않은 산행이 되겠습니다. '운두령'에서 오르는 "桂芳山 일반 등산로"는 많은 산객들이 다니는 코스이니 쉽지만 1462.3m봉에서 시작되는 桂芳枝脈은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는 길이니까요 [이승복 기념관] 서울 서초구청과 외교안보연구원 사이의 골목에서 7시 5분에 출발하여 특이하게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지나 '춘천-원주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에서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바꿔타고 "속사"로 갔습니다. "속사"에서 "운두령"으로 가는 길에 있는 "이승복 기념관"을 잠깐 들렸습니다. '이승복 기념관'은 옛날 이승복이 다니던 초등학교가 폐교가 되어 그곳에다 '이승복 기념관'을 지었더군요. [이승복 기념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 한마디 외침으로 무장 공비들에게 입이 찢겨 살해 당했다는 "이승복" 60년대 말, 그러니까 1968년 12월 9일 삼척 울진에 침투하여 이곳 두메 산골 - 계방산 골자기 '노동리'까지 온 무장 공비들에게 당시 9살이던 이승복 어린이는 과감하게 항거하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답니다 조선일보의 노모 기자는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의 "반공 제일 주의"에 어떻게 호응을 한것인지는 몰라도 조선일보에 대서 특필하면서 두메산골 9살 이승복 어린이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신화"로 또한 "반공의 횃불, 민족적 영웅"으로 부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범정부적으로 이승복 영웅화는 진행되어 이런 기념관까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승복 상] 60년대 말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은 "3선 개헌"을 앞두고 반대 세력을 잠재울 방안들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군사독재 정권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민주화"였으니, 이용할수 있는 것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과장 시켜 용공조작으로 민주화 세력을 억누르는 "반공"이 최고 무기였고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은 "빨갱이"로 내몰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도 좀 그런 면들이 있나요? "이승복 어린이"에 대한 논란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얼마전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났습니다만, 판결 내용이 또 애매하여 더욱 불씨를 지피고있습니다 38년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이승복 사건"은 알만한 사람들에겐 "조작"이라고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다가 "이승복의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조선일보 기사'는 신문기사가 아니라 신문소설을 썼다는 타 매체의 보도가 잇따르고 급기야 언젠가 MBC에서도 방영을 하면서 명예홰손혐의등으로 법정 싸움까지 간 이상한 사건이 됩니다. [이승복 생가(복원)] 60년대말 그러니까 그 당시 이곳 계방산 밑에 있는 '노동리(路洞里)'라는 지금도 몇집 살지 않는 두메산골에는 TV는 커녕 전기도 없어 정치권력과 북한의 동향등 시사적인 뉴스를 알려 주는 방송매체는 접하기 어렸웠던 곳이었습니다 그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란 9살 이승복 어린이가 어떻게하여 그렇게 까지 반공정신이 투철하여 온갖 무기로 중무장한 공비들에게 맨몸으로 항거하며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칠수 있었을까요? 만약 진짜 그랬다면 칭송받아 아까울게 없지만, 고속도로도 없던 낙후된 비포장 도로를 달려 당시에 어떻게 신문기자가 계방산 산골자기까지 신속하게 찾아가 취재를 할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기사를 쓴것이 아니라 소설을 썼다는 얘기들이 識者들 사이에 난무했던 것입니다 [이승복 기념관 내부] 당시에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까지 이승복의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이 실리고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이승복 어린이의 반공정신을 배우라고 교육까지 했습니다 어쩐 일인지 민주화가 된 90년대말에 와서는 교과서에서 슬그머니 삭제됬지만..... 박정희 군사정권과 전두환 군사 정권들 까지는 '이승복'을 무척 많이 울궈 먹었지요 중앙정보부의 용공조작으로 억울하게 간첩이 된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서야 무죄를 선고 받고 지나간 세월을 한스럽게 보낸 백성들은 국가권력의 범죄행위를 어떻게 해야 할지.... 현재도 국가권력의 범죄행위는 과연 없는가 북한과 전쟁을 하며 싸워 나갈 것인가? 아니면 동족으로서 상생의 길을 찾을것인가 정권 연장의 수단으로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지는 않았는가 '이승복'은 어쩌면 '이데올로기'의 영웅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희생자'가 되지는 않았는가 어서 빨리 '이데올로기'문제로 국론이 분열되는 옥신각신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런 씁쓸한 느낌을 가지고 계방산으로 산행을 떠납니다 [雲頭嶺] 오전 10시 45분경 "雲頭嶺"에 도착했습니다.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노동리와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를 잇는 우리나라에 있는 자동차가 다니는 최고 높은 고갯길이랍니다 해발 1,086.7m 桂芳山의 높이가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산인 1,577.4m인데 雲頭嶺의 높이가 1,086.7m이니 약500m의 산을 오른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雲頭嶺 휴게소] 雲頭嶺에는 크지 않은 휴게소가 있어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복잡했습니다. 앞으로 보이는 길이 "한강기맥"의 산줄기가 계방산을 지나, "보래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雲頭嶺 桂芳山 들머리] 桂芳山과 桂芳支脈의 산행 들머리는 雲頭嶺 우측에 계단으로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10시 50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들머리 계단을 올라와 내려다 본 雲頭嶺] 산행 들머리 계단을 올라와 雲頭嶺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고개 중에서 가장 높은 고개랍니다. [들머리 계단을 올라와 내려다 본 雲頭嶺 계곡과 고갯길] 계단을 올라와 雲頭嶺 계곡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높이도 올라 왔군요. 제일 높은 고개 다웁게 계곡도 깊습니다. [桂芳山 첫번째 쉼터 오르는 길] 桂芳山을 오르는 등로는 경사가 완만하여 산행을 즐기는 꾼들은 주로 겨울에 와서 桂芳山의 눈 산행을 즐긴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桂芳支脈이 주목적이기에 겨울에는 곤란하겠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음을 만끽하며 "계수나무가 꽃방울"을 터트리는 桂芳山을 오릅니다 [桂芳山 첫번째 쉼터] 40분쯤 오르니 첫번째 쉼터가 나왔는데 아마도 1,236m봉인듯합니다. 오늘 전국에서 많은 산객들이 몰려 왔습니다 [桂芳山 첫번째 쉼터 이정표] 첫번째 쉼터 뿐만 아니라 곳곳에 이정표와 산행안내판이 있어 편리했으나 桂芳山은 안내판이 없어도 길을 못찾을 염려는 없는 onE WAY였습니다 [1496m 전망대봉] 쉼터를 벗어나 조금 오르니 "1,496m 전망대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처음에 저 봉우리가 정상인줄 알았습니다 어느 산이나 그렇게 쉽게 정상을 내주지는 않지요? ㅎㅎ 그래도 명색이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산인데.... [1496m 전망대봉 오르는 등로] 가을 속으로의 여행 산행이 가을을 만끽할수 있는 최고의 여행이지요 아직은 약간 덜 무러익은 가을 단풍이지만 桂芳山은 울긋불긋한 색동치마를 둘러 입고 도심의 어리뱅뱅이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1496m 전망대봉 오르는 길] 1,496m 전망대 봉우리가 가까이 다가 옵니다 새로운 넓은 세계가 펼쳐집니다. [1496m 전망대봉] 처음에 정상인줄 알았던 1,496m 전망대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이때 시간이 12시 5분이었으니, 운두령에서 이곳까지 1시간 15분 걸렸습니다 [1496m 전망대봉에서 올려다 보는 桂芳山] 전망대봉에 올랐으니 사방을 조망해 보겠습니다. 우선 남쪽으로 "桂芳山 정상"이 가까이 조망됩니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약 20분이 걸렸으며,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완만한 경사이며 거리도 가까웠습니다. [1496m 전망대봉에서 바라 보는 '오대산'] 동쪽으로는 "오대산"이 백두대간의 품속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으며 오대산에서 부터 뻗어 오는 "한강기맥"이 선명하게 산줄기를 보여 줍니다 "계방지맥"은 가운데 능선 끝봉우리에서 남쪽으로 분기합니다. [1496m 전망대봉에서 바라 보는 '설악산'] 북동쪽으로는 안내판을 보고서야 알았지만 여하튼 "설악산"이랍니다. 산줄기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하늘의 구름은 일렁이는 파도에서 포말로 솟아 오른 솜사탕 같습니다. [1496m 전망대봉 안내판과 이정표] 桂芳山 정상까지 700m 약 20분이 걸렸습니다 [桂芳山 정상으로 가는 길] 高原地帶 다웁게 나무들이 더 이상 키높이를 못하는것 같습니다 [桂芳山 정상으로 가는 길] 오늘 서울에서 이곳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산산산"이라는 아이디를 가지신 횐님이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저의 무릎에 蜂針을 놔주었습니다. 효과가 있는지 여부는 앞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효과가 있다고 제가 알려드리면 그때 蜂針을 맞으세요 산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 효과가 있는 걸로느껴집니다만 확실한 임상결과를 듣고 맞으세요 제가 임상실험맨입니다.ㅎㅎ [桂芳山 정상] 이제 더이상 이 산꼭대기 위엔 오를 곳이 없어집니다. '계' 계수나무 桂, '방' 꽃다울 芳 계수나무 꽃다운 山이란 말인가요? "桂樹나무"는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동요 '반달'이라는 노랫가사에만 나오는 전설적인 나무로 그저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반달'은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로서 윤극영선생이 작곡한 동요입니다 일본 군가로 짖밟힌 일제침탈시대에 우리나라 음악을 새로이 정립시킨 분이 '윤극영선생'이지요 저의 교동초등학교 대선배님이기도한 윤극영선생은 소파 방정환선생과 함께 '색동회'를 창립한 우리나라 어린이날을 만든 어린이 사랑이 출중한 분중에 한분이십니다. [桂芳山 정상] 桂芳山 정상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산객들이 진을 치고 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반달≫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이 노래에 대한 해석은 여러 사람들이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해석 두가지를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이 노래가 밤하늘의 '반달'을 노래한 것이지만 정치적인 이미지가 많이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 노래가 만들어 지던 때가 일제침탈의 식민지 시대여서 친일적 색채가 강하다는 것입니다. 즉, "푸른하늘 은하수"는 태평양을 상징하고 "하얀 쪽배"는 태평양의 쪽배같이 닮은 일본열도이며, 쪽배 위에 "토끼 한 마리"는 일본열도 위쪽에 놓인 한반도로 상징화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계수나무 한 나무"라는 것은 토끼 위에 놓인 만주지역에서 산동반도를 잇는 중국 땅 동쪽 대륙을 연상하게 한다고도 합니다. 다소 배타적 비판적 사고를 가지신 분들이 해석하는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당시에 음악을 한 음악가들이 대부분 친일행위를 했기 때문이며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되는 국민동요 "고향의 봄"을 만든 '이원수씨'는 대표적 친일파였으니 다른 분들도 싸잡아 친일파로 매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윤극영선생은 친일파는 아니었습니다. [桂芳山 정상석과 정상탑] 桂芳山은 높이가 1,577m로서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덕유산(1,614m)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산입니다. 桂芳山에는 칡넝쿨이 없다는데 그 이유에 대한 전설이 있더군요. 옛날 용맹스럽고 무서운 '권대감 산신령'이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용마를 타고 달리던 중에 칡덩쿨에 걸려 넘어지자 화가난 '권대감 산신령'이 부적을 써 이산에 던진후부터 모든 칡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호~~오 [桂芳山 정상에서 내려다 본 雲頭嶺 계곡]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동요를 작곡한 윤극영선생을 높이 보는 사람들은 윤극영선생이 '반달'을 작곡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새벽 하늘에 떠있는 반달이 나라 잃은 자신의 모습처럼 보였고, 조선 민족의 처량한 운명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달'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기도 한답니다. 나라 잃은 조선 민족을 망망 대해에 떠도는 한 조각의 조각배로, 갈 곳 없이 하늘을 떠도는 슬픈 새벽달과 같이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돛대도 없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에서 서쪽 나라란 해방의 나라를 의미 했다고 합니다. 저는 친일파 목록에도 없는 '윤극영선생'이기에 '반달'의 의미를 '나라 잃은 슬픔'과 '해방'을 기다리는 묵언의 암시였다고 생각합니다. [桂芳山 정상의 산행 안내] "桂樹나무"는 원산지가 일본입니다. 물론 중국에도 있다고 합니다만 우리나라에 있는 "桂樹나무"는 거의 대부분 일본에서 들여 온것들이랍니다. 그래서 동요 '반달' 속의 '계수나무'는 친일적인 것이라고 흘뜯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桂芳支脈 갈림길 가는 길] 桂芳山 정상을 떠나 "桂芳支脈"으로 갑니다. 지금부터 등산로는 한산해 지기 시작합니다. 대부분 운두령으로 되돌아 가기에.... 앞에 펼쳐지는 오대산이 그림같습니다. [1551m봉에서 뒤 돌아본 "桂芳山 정상"과 "1496m 전망대봉"] 계방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1,551m봉에 와서 뒤돌아 보니 "桂芳山 정상"과 "1496m 전망대봉"을 잇는 능선이 한마리의 龍이 승천하려고 꿈틀대는 듯합니다 [桂芳支脈 갈림길 가는 길] 봉우리를 두어개 더 넘어야 "桂芳支脈 분기점"을 갈수 있습니다. [桂芳山 일반 등산로 하산 갈림길] 12시 45분에 계방산 하산 일반 등산로 갈림길에 왔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강기맥'을 따라 직진할수 없다고 등산로 폐쇠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 오른쪽 '오토캠핑장'으로 하산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직진해야 "桂芳支脈 분기점"을 갈수 있기에 전진을 해야합니다. [桂芳山 일반 등산로 하산 갈림길에 있는 "주목나무"] 갈림길에 있는 "주목나무"는 보호수이더군요. 이쪽으로 내려가면 계방산 주차장이 나옵니다. [1462m봉으로 가며 뒤 돌아 본 "桂芳山 정상"과 "1496m 전망대봉"] "桂芳支脈 분기점"이 있는 1,462m봉으로 가면서 다시 뒤돌아 봤습니다. "桂芳山 정상"과 "1496m 전망대봉"이 더욱 평화롭습니다. 이산이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산 맞어요? ㅠㅠ [1462m봉과 "계방지맥"]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1,462m 桂芳支脈 분기점"이 있는 봉우리입니다. 우측으로 桂芳支脈이 분기하기 시작합니다. [桂芳支脈] 사진의 가운데 이어진 산줄기가 "桂芳支脈" 산줄기입니다. 선명하게 보이시죠? [자작나무 군락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자작나무와 박달나무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지요? 산행대장인 '개살구님' 회원이 여기서 자작나무로 지팡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1462m봉] "桂芳支脈" 분기점을 이루는 "桂芳山"의 "1,462m봉 정상"을 옆구리로 돌아 나아 갑니다. [한강기맥과 桂芳支脈 갈림길] 오후 1시 30분경에 드디어 "桂芳支脈 분기점"에 왔습니다 여기서 직진하면 한강기맥 오대산 방향이고, 우측으로 "桂芳支脈"입니다. [桂芳支脈으로 출발하며 바라 본 "桂芳山 정상"과 "1551m봉"] "桂芳支脈 분기점"에서 약 45분 정도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후 2시 15분경에 출발합니다. 우측으로 桂芳山 정상과 1,551m봉이 보입니다. [桂芳支脈 속으로....] 이제부터 우리팀 이외에는 어느 누구의 그림자도 볼수 없는 桂芳支脈 속으로 들어 갑니다. 복잡한 계방산 일반 등산로에서 벗어나, 산행의 즐거움이 이제서야 소록소록 생겨납니다. [깊어 가는 가을] 이곳 산줄기가 "오대산 국립공원의 경계선"에 있는 桂芳山 줄기입니다. 현재는 "오대산 국립공원" 안을 걷고 있는 것이지요 다양한 색깔의 미니 스캇트를 입고 유혹하고 있는 산 산 산...... [1602m봉] 오후 3시에 1,602m봉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독도를 다시하며 다시 가을 속으로 빠져 듭니다. 계방지맥 단풍길 저산 넘어엔 자작나무 한그루 빨간 잠자리 근심도 걱정도 모두 잊고서 놀기도 잘도 논다 대자연 속에서 ㅎㅎ '반달'을 표절해서 가사 하나 지었는데 어떠세요? 괜찮으니 동요 하나 만들라구요? ㅎㅎ [1,102m봉 삼각점] "계방지맥" 산행길에는 특이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이런 삼각점을 만나고, 정상적인 길을 가고있는지 독도를 다시하고.... 그래서 지맥분기점에서 3시간 40분이 걸린 "가라치"까지의 산행길의 이모저모는 특이한 것이 없어 산행기에 간단하게 씁니다 대자연 속에서 그저 열심히 걷기만 합니다. 어느 산봉우리에서 마지막 한잔을 합니다. 이 맛은 ......않갈켜줍니다 ㅎㅎ 그리고 여기서 야생 벌을 한마리 잡아 무릎에 다시 봉침을 한방 더 맞았습니다. 양봉하는 꿀벌보다 훨씬 더 쌘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산행기를 쓰는 지금 무릎은 퉁퉁 부어 있습니다만, 어떤 통증은 없습니다. 다만 약간 가렵더군요 [이승복 생가로 내려 가는 갈림길] 평창군 봉평면 노동리(路洞里) "이승복 생가"로 내려 가는 삼거리입니다. 빨리 하산 할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직진해야 합니다. 이름 모를 산봉우리의 삼각점을 지나 갑니다 봉우리 이름이나 높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동서남북을 잘 가리며 길을 잃지않고 빨리 가는 것 뿐입니다. 계방지맥 1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1,108m봉을 지나 갑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가 알바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독도에 조심해야 할 곳입니다.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가라치] 계방지맥 1구간의 종착역 "가라치"가 내려다 보입니다. '가라치'는 산줄기를 심하게 절개를 하여 절벽이었습니다. 여기서 조심해서 내려 가야합니다. [가라치 절개지 내려 가는 길] 처음 계획은 "운두령"에서 이곳 "가라치"를 지나 영동고속도로가 있는 "속사리재"까지 가려고 했습니다만, 지맥 분기점에서 여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 '가라치'를 1구간의 날머리로 정했습니다. [가라치] 봉평면 속사리(束沙里)에서 진부면 척천리(尺川里)로 넘어 가는 고갯길입니다. 이 고개 넘어 바로 척천리(尺川里)에는 초정약수와 함께 유명한 "방아다리 약숫터"가 있지요 오후 5시 50분에 도착하였습니다 [뒷풀이] 라면에 돼지고기에 김치에 쇠주에......ㅎㅎ [계방산 산행코스] 빨간 색으로 표시된 선이 오늘 산행 코스입니다 산행거리 약 15km 산행시간 약 7시간 [蜂針 전문가 '산산산님'] 蜂針 전문가 '산산산님'은 산에만 다니는 줄 알았더니, 약초에 대해서도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고 蜂針과 뱀에 대해서도 모르는게 없었습니다. 돌아 오는 차안에서도 蜂針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돌아 오는 차안에서 蜂針을 한방 더 맞아 3방을 오늘 왼쪽 무릎에 맞았습니다 결과는 앞으로 일주일에 한번 쓰는 산행기에서 중계방송을 해 드릴 예정입니다. 그러니 임상실험맨인 제가 효과를 보면 그때 '퇴행성 관절염' '디스크' '탈모'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蜂針을 시도해 보시기 바람니다. [蜂針 맞을 때(좌측 사진 - 봉침 보이십니까?)와 맞은 후(오른쪽 사진의 왼쪽 무릎이 부어 오릅니다)] 사진 색깔이 다른 이유는 오전 자연광에서 찍은 사진과 밤에 돌아 오는 버스 안에서 플레쉬로 찍어서 붉은 색을 나타 내는데 약간 부어 붉어지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저의 경험에 의하면 蜂針은 맞을 때 따끔하게 아픕니다. 벌의 자기 생명과 바꾸는 마지막 저항이니 오죽하겠습니까 그리고 2~3분간 우리하게 매우 아픈 통증을 느낌니다만, 주사 맞는 정도라고 생각 됩니다. 그리곤 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한시간 이상 지나면 부은 자리가 약간 가렵기 시작합니다. 약 3일간 붓기가 빠지지않다가, 3일이 지난후 붓기가 빠지기 시작합니다. 퇴행성 관절염이 치료되는지는 앞으로의 산행기를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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