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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가는 금북정맥 여섯번째구간 산행기 각흘고개-구만봉-봉수산-천방산-부엉산- 극정봉-명우산-절대봉-서재-차동고개 길을 가다.... 깊은 산골에서 만나는 것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호랑이도 폭풍우도 아닌 人間이라고 합니다. 人間 ! 많은 불행은 人과 人사이에서 발생합니다 속이고 위협하고 뺏고 죽이고..... 만나지 말아야 할 인간들이 우굴대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또 길을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길 위에서 만나는 인간들이 모두 惡緣이 되는 것은 아니죠 더불어 더 많은 즐거움도 人과 人사이에서 만들어 집니다 "錦北正脈" 그 끝에 닿으면 여름이려나~ 가을이려나~눈이 내릴려나~ 산길따라 바람따라 세월따라 흘러 가는 산행길 [금북정맥 전체구간] "금북정맥 錦北正脈"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이 세개의 정맥이 분기하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칠장산"에서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안흥리'까지 약280km의 산줄기인 "금북정맥"을 갑니다. [6구간 산행개념도] 2012년 6월 27일 (수) 맑음 '금북정맥'의 여섯번째 구간은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문금리'를 잇는 "각흘고개"에서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녹천리'를 잇는 "차동고개"까지 도상거리 약 18.3km를 갑니다. ['전철1호선'을 타고 '온양온천역'으로 ] [전철 1호선]의 첫차에 대해 알면 '금북정맥'을 다니는데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온양온천역'으로 가는 첫차는 오전 5시에 "구로역"과 "병점역"에서 동시에 출발합니다. '병점역'에서 출발하는 5시 첫차를 타면 여유있게 '온양온천역'에서 '각흘고개'로 가는 [100번 시내버스]첫차를 탈수 있고, 두번째 5시 30분 전동차를 타면 '온양온천역'에 6시 36분에 도착하여 무척 바쁘게 뛰어야 [100번 시내버스] 첫차를 탈수 있습니다. ('구로역'등에서 출발하는 첫차등은 각자 검색하여 시간에 맞추어 가면 됩니다) 저는 '병점역'에서 두번째 5시 30분 전동차를 타고 가는데 손님은 거의 없었으며, '온양온천역'에 내리자마자 뛸 준비를 하고 갑니다. [온양온천역 1번출구] 6:40 전철에서 내리자 마자 뛰는데도 규모가 큰 '온양온천역' 때문에 시간은 급합니다. [1번출구]로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내려가, 앞에 보이는 큰 도로 좌측으로 30여m 가면... [온양온천역 버스정류장] 6:41 '온양온천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6시 41분이었고, 시간표를 촬영하고 있으니 [100번 시내버스] 첫차는 6시 42분에 바로 도착하고 급히 출발했습니다. 종점인 '용화동생활관'에서 6시 40분 출발인데 2분여만에 '온양온천역'에 도착했습니다. 한시간에 한번씩 매시간 40분에 계속 출발하고 있으니 편리한 시간의 버스를 타면 됩니다. [버스 시간표] [100번] [101번] [102번]이 합쳐서 매시 40분에 출발하니 어느 버스를 타도 됩니다. 이 버스시간표를 참고해서 전철시간을 역으로 맞추면 됩니다. 종점에서 '온양온천역'은 매우 가까워서 2분이면 도착하니 참고해야겠죠? [각흘고개 버스정거장] 7:27 '온양온천역'을 6시 42분에 출발한 [100번 시내버스]는 45분이 걸려 '각흘고개'에 도착합니다. 이 버스 정거장의 이름은 "거산2리-금계령"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각흘고개'라는 안내는 어느 곳에도 없으니 "거산2리-금계령"정류장에서 내려야 합니다. [각흘고개] '금북정맥'의 여섯번째 구간인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문금리'를 잇는 "각흘고개"에 다시 돌아 왔습니다. "빨래판구간"이라는 지난구간의 날머리가 미풍에 날라간 하룻밤의 꿈처럼 옛일로 멀어집니다 여섯번째구간의 들머리는 해태상 옆으로 나 있습니다. [각흘고개 산행 들머리] 7:30 오늘도 단 한명의 산객도 만날수 없었던 산길로 홀로 떠납니다. 먼저 이 지역에선 그나마 이름있는 "봉수산"까지 4km라는 안내가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山路의 우측은 "아산시"이고, 좌측은 "공주시"라는 것입니다. [묘지에서 포스트 송전탑 조망] 7:36 '각흘고개' 들머리에서 다소 가파른 등로를 오르면 먼저 묘지가 나타나고, 묘지에 서면 '금북정맥' 능선에 있는 송전탑이 보입니다. 송전탑을 포스트로 삼으며 자연 속으로 여행을 시작합니다. ['각흘고개'에서 '부엉산'까지 구글어스] 출발을 하며 이 주변의 山勢를 구글어스를 통해 전체적 상황을 파악하고 갑니다. 눈여겨 볼 점은 '봉수산 갈림봉'에서부터는 "예산군"과 접경을 이루며 간다는 것입니다. '경기도 안성'에서 출발했는데 벌써 '충남 예산'으로 진입합니다. ['119 구조목 01-01번'] 묘지를 지나 된비알 숲속으로 들어서면 "119 구조목 01-01번"을 만납니다. 이 "119구조목"은 "봉수산 정상"까지 11개가 세워져 있으니 거리 측정에 도움이 됩니다. [된비알] 초장부터 급경사 오르막을 13분 정도 오르면..... ['351m봉' 능선 삼거리] 7:49 "351m봉-능선 삼거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면 먼저 이정표가 반기며 오른쪽 방향으로 길안내를 합니다. ['봉수산'으로 가는 길] 정맥길은 다시 평온을 되찾으며 완만한 오름길을 갑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햇살이 오늘의 기온을 가늠케 해 줍니다. 104년만의 가뭄이라는 뜨거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안개가 없어 가시거리는 매우 좋아 사진 촬영에는 도움이 됩니다. ['385m봉'에서 조망] 8:03 "351m봉-능선삼거리"에서 14분 진행하면 "385m봉"에 오르며 시야가 처음으로 트입니다. 먼저 서남쪽으로 건너편 "천방산"이 방긋 웃고, 서쪽 멀리 "예산군"이 조망됩니다. ['385m봉'에서 '봉수산' 조망] 북쪽으로는 가야할 "봉수산"이 조망되는데, 그 앞에 있는 "정맥 갈림봉"에서 "봉수산"을 갔다가 되돌아와 "460m봉"으로 가야합니다. ['385m봉' 이정표] "385m봉"을 지나면 [119 구조목 01-04번]을 만나며 계속 완만한 흐름을 보이는 길을 갑니다. ['구만봉' 갈림길] "385m봉"에서 1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며, 직진 오르막으로 올라 갑니다. 이곳이 "구만봉"으로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구만봉' 정상] 8:21 "구만봉 392m" '진혁진씨 개념도'에는 "390m"로 표기된 곳인듯합니다. 이정표의 거리표시는 이정표 마다 애매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금북정맥'은 어디를 말하는 곳인고? [숲길] "구만봉"에서 부터는 길섶에 바위들도 제법 보였습니다. '아산시 온양'에 오면 생각나는 인물은 뭐니 누구니 해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입니다 이순신장군은 전국민이 존경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물 중 한분이란거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위대한 영웅이십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있어 왔으며, 특히 영화나 드라마로 여러번 방영되어 그의 생과 업적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장군의 죽음"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어서 오늘은 "이순신장군의 죽음"에 대해 한번 생각 해 볼까 합니다. 이 글은 제가 2009년 1월 24일(토) 설명절 첫날에 "광덕산-망경산-설화산"을 종주하면서 산행기에 한번 쓴 글입니다만, 못 보신 분들을 위해 한번 더 올려 드림니다. ['380m봉' 정상] 8:30 "봉수산"까지 1.4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는 "380m봉"을 지나 갑니다. 봉우리라는 느낌은 거의 없는 봉우리입니다. "이순신장군의 죽음" 이순신장군은 임진왜란-정유재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적군의 흉탄에 맞아 戰死했다고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날이 1598년 11월 19일이며 이순신장군의 나이가 54세였던 해입니다. 그러나 세간에는 이런 저런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으며, 이순신장군에 대한 평가도 임진왜란이 끝난후 200여년이 지난 1792년에 정조대왕이 공식적으로 "이충무공전서" 편찬을 지시하고, 장군을 영의정에 추증하며 '어제신도비'를 세우고 나서 1795년에 '이충무공전서'가 발간되고 나서야 장군은 정조대왕에 의해 새로운 빛으로 우리 역사 속에 우뚝 서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는 위대한 영웅이 찬밥 신세였습니다. 그리고 근현대에 와서는 '5.16 군사정권'에 의해 "軍人 이순신장군"으로 더욱 영웅화 됩니다. 광화문 앞 "세종로"에 있던 "세종대왕 동상"이 어느 날에 갑자기 없어지고, "충무로"에 있어야 할 "충무공 동상"이 "세종로"에 우뚝 서는 일이 생겨난것도 군사정권 때의 일입니다 그래서 세종로에는 세종대왕이 없고, 충무로에는 충무공이 없다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것이지요 그러한 과정에서 "이순신장군의 죽음"은 영웅적 죽음인 戰死로 굳어 졌습니다. 그러나......의문은 1598년 11월19일부터 계속되 오고 있습니다 저는 영웅 이순신장군의 위대함에 대해 조금이라도 누가 되게하려는 취지가 아니고 오로지 수많은 세월 속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들의 내용을 간추려서 알려 드리려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떠한 의도도 없음을 미리 알려 드림니다. [오르막] "380m봉"을 지나면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25분 정도 된비알을 오르면..... "이순신장군의 죽음"에 대해서는 戰死했다는 공식적 죽음 이외에 크게 두가지의 說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자살설"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은둔설"입니다 이순신장군이 戰死했던 자살했던, 또 은둔했던 그것이 뭔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 괜히 까발려 문제없이 존경 받는 이순신장군의 명예를 실추시킬수도 있는 일이 아니냐고 항변하시는 분들도 있을것입니다만, 한번쯤 그러한 설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도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길상사' 갈림길] 8:55 ['길상사' 갈림길 이정표] "길상사 갈림길" '길상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간은 전국에 무지 많지요? 저는 서울 성북동에 있는 "법정스님"의 "길상사"를 제일로 인정하는데.... ['봉수산'으로 오르는 된비알] "길상사 갈림길"에서 잠시 된비알을 오르면.... "이순신 장군 자살설" 1598년 11월19일 노량해전 이순신장군은 1598년 11월19일 노량해전 당시 우연히 戰死한 것이 아니라, 戰死의 형식을 빌어서 갑옷마저 벗어 두고 함대의 선두에 서서 일부러 장열하게 자살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살설"은 실제로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200여년에 걸쳐 많은 이들에 의해 끈임없이 설왕설래 된바 있으며 아직까지도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봉수산' 갈림봉] 8:59 "봉수산-정맥 갈림봉" 이 봉우리는 큰 의미를 주는 중요한 봉우리입니다. 먼저 '금북정맥'에서 "봉수산"으로 가는 갈림봉이기도 하지만, "공주시-아산시-예산군"의 행정구역이 갈리는 市郡界 갈림봉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주시'의 최북단이랍니다. 정맥길은 이곳에서 부터 "예산군"을 만나, "공주시-예산군"의 경계를 따라 갑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으니 "봉수산 정상"을 다녀 와야겠지요? (사진 속의 "봉화산"은 "봉수산"입니다. 죄송~ ^.^) ['봉수산' 갈림봉 이정표] 갈림봉에서 '봉수산 정상'까지는 100m라는데 4~5분 걸렸습니다. ['봉수산' 정상 갈림길] '봉수산 정상'으로 가는 길 앞에는 갈림길이 있습니다만, 직진해서 올라 갑니다. [봉수산 정상] 9:05 [봉수산 정상석] [이정표] "봉수산 鳳首山 536m" 따가운 아침 햇살이 범상치 않은 더위를 예고하는 "봉수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봉수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들은 전국에 수없이 많습니다. 대부분 한자로는 "烽燧山"으로 쓰며 "봉화 烽 봉"과 "부싯돌 燧 수"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곳의 "봉수산"은 "봉황의 머리 - 鳳首"라고 하는 것이 다소 이채롭습니다. ['광덕산' 조망] "봉수산"에서 동쪽으로 "광덕산 廣德山"이 조망됩니다. "광덕산"은 천안시의 산으로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아산시의 진산"입니다. 높이가 699.3m로 이 주변에선 가장 높은 산입니다. [아침식사] 9:05~9:30 새벽 4시에 일어나 멀리 '봉수산 정상'에서 이제서야 아침을 먹습니다. 아침식사라 해 봐야 빵쪼가리와 삶은 계란과 물이지만 먹어야 걸을수 있으니... 이때에 SBS 오국장의 격려 문자가 왔습니다. 더운 날씨에 무탈하게 다녀 오시라고... 오늘 단 한명의 산객도 산길에서 만나지 못했지만, 수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있어 외롭지 않다고 생각되는 건 이런 격려 문자나 전화 한통입니다. 감사~ ['봉수산 갈림봉' 우횟길] 9:33 "봉수산 정상"에서 약25분간 식사와 휴식, 조망을 한후에 다시 "정맥갈림봉"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다시 "정맥갈림봉"으로 올라 갈 필요없이 우측으로 지름길이 있군요. 아주 짧은 우횟길이지만 오늘 갈길이 멀어 체력 비축을 위해 우측길로 갑니다. [금북정맥길] "정맥갈림봉"에서 5분 정도 숲길을 내려 갑니다. "이순신 장군 자살설"이 계속됩니다. 자살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논거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은 사천해전 당시 어깨 관통으로 고생한 이래 새로이 개발된 방탄 조끼 '환삼'도 있었는데, 노량해전에는 방탄쪼끼 '환삼'은 커녕 아예 처음부터 갑옷도 입지 않고 삼도수군통제사의 붉은 융복만을 입은 채 이른 아침 빛나는 태양 앞에서 왜군의 조총 정조준사거리 4∼5m 앞에 우뚝 선 것이라니 스스로 죽기를 결심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금산군 이성윤[1570∼1620]"이 "노량 충렬사"에 써 붙인 詩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心知功大 終難賞志 決身殲 意露肝" "공로 커도 상 못탈것 미리 알고서 제 몸 던져 충성 뵈러 결심했던가" 전쟁에서 이겨도 자신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政派들과 백성들의 우상이 된 이순신으로 인해 왕권의 위협을 느끼는 선조(宣祖)로 부터 분명 '토사구팽(狡兎死良狗)' 당할 것을 미리 예견하고 자살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지금까지의 "이순신장군 자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논거입니다 [송전탑에서 지나온 길 조망] 9:38 송전탑이 지나는 곳에서 조망이 트입니다. 동남쪽으로 오늘 지나온 정맥능선이 나열된 송전탑과 함께 보이며, 그 뒤로 지난 구간에 올랐던 "무성지맥분기점봉"이 조망됩니다. (사진속의 "탑골리"는 "탑곡리"입니다. 죄송~ ^.^) [송전탑에서 가야할 길 조망] 가운데 "공주시 유구읍 탑곡리"를 두고, 우측 능선을 따라 정맥길은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내려 가는 정맥길에 가야할 "천방산"과 "부엉산"이 보이며, 그 뒤로 계속 정맥은 이어지고... [내림길] 송전탑에서 13분 정도 내림길을 내려 갑니다. "이순신장군의 은둔설" 이순신장군은 戰死한것도 아니고, 더더욱 자살한 것도 아니며, 노량해전에서 적군의 흉탄에 우연히 맞아 죽은 것도 아니며 그 이후 70세가 될때까지 약16년간 은둔하며 살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은둔설"을 믿는 편입니다. 오로지 개인적 생각임을 강조합니다 [내림길에서 뒤돌아 본 '봉수산'] 9:51 내림길에서 뒤돌아 보니 조금전 조망을 했던 송전탑이 보이고, 그 뒤로 "봉수산"과 "정맥갈림봉"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또한 "광덕산"도 조화를 이루며 멋을 풍깁니다.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이야기 하기 전에 당시 상황과 조선의 제14대 왕인 宣祖에 대해 먼저 알아봐야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제가 산행기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나쁘게 평가하는 조선의 왕인 "宣祖". '宣祖'는 '중종'의 일곱째 아들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셋째아들입니다. 도저히 왕위에 오를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중종'은 누구입니까? 연산군을 무력으로 내몰고 권력을 장악한 쿠데타 정권 아닙니까? 그러한 대물림으로 오를수 없는 왕위에 오른 宣祖는 언제나 왕권에 대해 불안해 하였습니다 원래 宣祖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이러한 정치적 배경으로 항상 불안에 떨었고 정통성 없는 왕이었기에 항상 정적에 대해 의심을 많이 가지며, 조금만 의심이 가도 의심이 가는 놈은 죽여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이 당시 백성들의 민심은 흉작과 무리한 세금 징수등으로 무척 흉흉해서 "이괄의 난"등 반란이나, 농민 봉기등 民亂이 왕권을 무수히 위협했고, 극기야 '임진왜란'까지 터지는 시대였다는 것을 알아야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백성들의 영웅으로 떠오르는 '이순신장군'을 '宣祖'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460m봉'으로 오르는 길] 내려 가면 다시 오르는게 정맥길...이번 구간도 엄청 많은 오르내림이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이 끊임없이 제기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조선왕조실록"에서 "宣祖實錄"만이 유일하게 "수정宣祖實錄"이 다시 쓰여지고 두개의 판이하게 다른 내용의 實錄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순신장군에 대한 기록도 다르게 기록되 있습니다. 희안하죠? 지금부터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에 대해 하나 하나 근거가 되는 것들을 함께 생각해 보자구여 ['460m봉' 정상] 9:55 "460m봉" 잠시 오름짓을 하니 금새 "460m봉" 정상입니다. 여기서부터 봉우리의 정상엔 이런 벤치가 있으니, 벤치가 있는 곳은 봉우리 정상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460m봉" 정상에서 정맥길은 우측으로 90도 꺽여 서쪽방향으로 내림질을 합니다. ['460m봉'에서 '천방산' 조망] 이번 구간에는 지난 구간과 달리 산이름이 있는 산들이 많아 地名을 표기하기 쉽습니다. 오늘 가야할 산들이 "천방산" "부엉산" 뒤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데, "천방산-부엉산" 이외에는 여기선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습니다 ['460m봉' 내림길에서 보이는 '예산'] "460m봉"에서 내려 가는 길에선 서쪽으로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의 "방산저수지"가 보입니다. ['460m봉' 내림길] "460m봉" 내림길은 잡목과 잡풀들이 길을 덮고 있어 길이 잘 보이지 않으며, 급경사 내림길인데, 요즘 가뭄으로 흙이 메말라 매우 미끄러웠습니다. 특히 가시나무 때문에 애를 먹었습니다.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을 잘 뜯어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이 일어 나는 날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이미 죽어 조선 침략 전쟁을 포기하고 철군의 명령이 떨어진 상태였으며 조선과 明나라에 의해 이미 패배한 일본군은 대부분 도망갔는데 '고니시 유키나카(小西行長)'도 전라도 순천에서 그 근처의 해안 지역인 왜교(倭橋)로 이동하여 해상 경로를 통해 철수하려 하였는데, 퇴각하는 적을 노량 앞바다에서 섬멸작전을 벌이던 이순신장군은 불행이도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합니다.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 1598년 11월 19일 퇴각하는 적과 노량 앞바다에서 대전을 치르는 선상에서 장군은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며 죽음의 순간에도 아군의 동요를 염려하며, 곁에 있던 맏아들 '회'와 조카 '완'에게 위와 같은 아주짧은 말을 유언으로 남깁니다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마지막 말은 "이충무공행록"에 기록되 있읍니다. 그러나 이 유언은 단순한 유언이 아니고, 유언 속에 "은둔설"의 실체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천방산'으로 가는 길] "천방산"으로 가는 능선으로 내려 가니 지난 구간에 올랐던 "무성지맥 분기점봉"과 가야 할 "천방산"이 보입니다. 각도에 따라 산의 모양과 위치가 아주 다르게 보입니다. 퇴각하는 적군들이 도망 가기도 바쁜데, 사정거리가 10m도 않되는 조총에 맞아 죽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순신장군이 조총에 맞았다면 정말로 자살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도져히 있을수 없는 상황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이 전사하는 광경을 본 사람은 맏아들 '회'와 조카 '완', 몸종 '김이(金伊)' 이 세명 이외에는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순신장군은 그 동안의 전투에서 데리고 다니지 않던 맏아들 '회'와 조카 '완'을 데리고 그리고 몸종 '김이(金伊)'까지 데리고 이미 끝난 전쟁터로 나가 싸웠을까요? 그리고 왜 친족인 맏아들과 조카, 몸종 김이(金伊)만이 장군의 죽음을 보았을까요? [뒤돌아 본 '460m봉'] 10:12 "460m봉"을 내려가 "천방산"으로 가는 능선에서 지나온 "460m봉"을 뒤돌아 봅니다. '금북정맥 마루금'을 경계로 '공주시' 땅에는 벌목을 해서 경계가 분명해 보입니다. 로마 군인들의 투구처럼... 노량해전에 나갈 때 이순신장군은 이미 마지막 전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답니다 조선이 왜놈들에게서 승리 했다는 사실을 알고 도망가는 마지막 놈들을 소탕하러 갔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거취를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고 판단하고 있었답니다 왜일까? 그 동안 宣祖는 이순신장군을 두번이나 죽일려고 했습니다. 첫번째는 이순신장군이 육군일때 모함으로 그렇게 된것이고 두번째 이유는 부산항에 진을 치고 있는 일본군들을 쳐 부수라는 宣祖의 어명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장군은 부산항에 쳐들어 가는 것은 휘발유통을 메고 불속에 뛰어 드는 것과 같다고 어명을 어겼습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조선 해군이 몽땅 자멸한다고 어명을 거두어 달라고 하소연을 했지만 그러한 하소연이 항명이라 여기는 宣祖는 더더욱 뿔따구를 내며 이순신장군을 잡아 들여 국문을 하며, 쫄병으로 강등시키고 고문으로 반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 대신에 '원균'에게 부산항을 공격하라는 어명을 내리지요. '원균'은 어명을 받들어 부산항을 공격하다가 조선 해군 모두와 함께 장렬하게 산화합니다. 이순신장군 대신에 어명을 받든 '원균'이 부산항을 공격하다가 조선 해군 모두와 함께 작살이 나 버리니, 조선 해군을 복원시키는데 없어서는 않될 인물은 오로지 '이순신장군' 밖에 없다는 것을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수 없이 인정하며, 사형을 시키려던 이순신장군을 감옥에서 석방하지요 모두 알다시피 그래서 '白衣從軍'을 두번이나 하게 된것입니다. 이때에 '이순신장군'은 宣祖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저 '파란문'같으면 적군은 '쪽바리들'이 아니라 '宣祖'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355m봉'으로 가는 길] 산길은 다시 평온을 되찾으며 완만한 길을 갑니다. 노량해전이 끝나면 전쟁이 완전히 끝나므로 이순신장군은 살아서 육지에 올라 가나, 죽어서 올라 가나 결국 宣祖와 붕당세력들에 의해 다시 죽임을 당할것이란 사실을 똑똑한 이순신장군은 스스로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어명을 따른 '원균'에 의해 초토화되버린 조선해군에 남아있는 배 겨우 13척으로 승리를 하면 이순신을 반대했던 인간들로부터 다가 올 위험은 불을 보듯 더욱 뻔한것이었답니다. 이순신에게 적군은 왜놈들이 아니라 우리나라 왕과 붕당세력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순신장군은 "戰死"라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노량해전 선상에서 만들어 세상에는 죽은 것으로 만들고, 자신은 몰래 조용히 아무도 모르는 어느 곳에서 여생을 보내려고 알리바이를 조작했다는 것입니다.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한 깊은 뜻을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이 마지막 말은 이순신장군이 직접 말한것이 아니고, 장군의 아들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이 말을 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린 것 뿐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옆에는 많은 참모들이 항상 명령을 기다리며 함께 있어야하는데도 그 장면을 본 사람이 오로지 맏아들 '회'와 조카 '완', 몸종 '김이(金伊)' 이외에는 없었다는 이 묘한 사실을 미루어 이해하시겠습니까? ['355m봉' 정상] 10:15 "355m봉" 벤치가 있으면 봉우리 정상이라고 앞에서 언급했죠? 위에서 제가 언급한 이야기들은 "이충무공 전서"에 부록으로 수록된, 이순신장군의 조카인 '이분(李芬)'이 기록한 행록(行錄)에 나오는데 장군의 최후의 상황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그 기록에는 이순신장군이 적의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을 당시 장군의 사망을 알았던 인물은 아들 '회'와 조카 '완', 그리고 몸종 '김이(金伊)'밖에 없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이 사망한 뒤 임시로 함대의 지휘를 맡은 이 역시 아들 '회'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참모들과 부하장수들로 가득한 기함 지휘소에서 함대 사령관이 저격을 당해 사망하였는데도 그것을 단지 가족 3명밖에 알지 못했다는 점을 어떻게 해석 해야하겠습니까? 더더욱 삼도수군통제사의 지휘권이 고참 부하장수가 아닌 신출내기인 아들과 조카에게 돌아갔다는 점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극히 의심스러운 점입니다. "은둔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도 들춰냅니다 "조선 수군은 원거리 포격전을 주로 구사하였기에, 야간보다는 주간에 해전에 임하였다. 하지만 노량 해전만큼은 야간에 이루어져 새벽에 끝나는데, 이것은 야음을 틈타 이순신을 도피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충무공 전서"의 "행록(行錄)"을 미루어 보며 결국 이순신장군은 은둔을 위해 "戰死"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조작한 것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이러한 설은 믿던 말든 생각과 판단은 여러분들의 몫이라는 것을 밝혀 둡니다. ['340m봉'으로 가는 길] 다시 거의 평지 수준의 길을 10여분 갑니다. 이순신장군의 죽음에서부터 그 이후의 상황을 날짜별로 정리를 하면.... 이순신장군은 1598년 11월 19일에 노량해전 선상에서 "공식적으로 사망"하여 그 시신은 20일 뒤인 12월 10일에 어머니의 고향인 아산으로 옮겨집니다. 하지만 국가가 삼도수군통제사의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룰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장례는 그로부터 80일이 경과한 다음 해 2월 11일에 치러지며 "가묘"에 장군을 모십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5년 뒤인 1614년에 정식으로 묘를 만들어 장군을 안치합니다. 이것은 이순신장군이 1598년 11월 19일 노량 해전 선상에서 알리바이를 위해 "戰死"한 이후 宣祖와 붕당세력들을 피해 은둔하며 살다가, 16년 후 장군의 나이 70세인 1614년에 실제로 사망하여 장례를 치렀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라고 "은둔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장합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순신장군은 그렇게 쉽사리 죽을 하수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340m봉' 정상] 10:25 이번엔 벤치도 없는 봉우리 같지도 않은 "340m봉"을 지나게 되고.... 이순신장군이 쓴 詩 한수 속에서 장군의 마음을 읽을수 있습니다 아득하다 북쪽 소식 들을 길 없네, 외로운 신하가 때를 잘못 만나 한이구나. 소매 속엔 적을 꺾을 병법 있건만, 가슴 속엔 백성 구할 방책이 없네. 천지는 캄캄하여 서리 엉키고, 산과 바다엔 피비린내 진동하네. 말을 풀어 화양으로 돌려보낸 뒤, 복건 쓴 처사되어 살아가리라. 이순신장군은 노량해전 이전에 이런 詩를 지었습니다. 이미 장군은 자신의 처지와 앞으로의 계획을 예견하고 있는 듯 하지 않습니까?. "복건 쓴 처사되어 살아가리라" ['천방산' 조망] "천방산" 정상이 가까워져 옵니다. '이순신장군' 이야기는 여기쯤에서 끝내고 "천방산"으로 올라 갑니다.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임도] "340m봉"을 내려 가니 우측에 임도가 나타나 함께 동행합니다. 안내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산군'에서 오르는 "천방산 등산로 입구"인듯... 10여m 전진하니.... [임도-탑곡리 여섯갈랫길] 10:34 "임도-탑곡리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섯갈래로 길이 난 갈림길이었습니다. 정맥길은 직진입니다. 이곳이 우측 "예산 임도"에서 올라오는 "천방산 등산로 입구"인듯 [임도-탑곡리 여섯갈래길 이정표] 이정표엔 "천방산 방향" 표시는 없습니다. 아무 표시가 없는 직진방향으로 갑니다. ['천방산'으로 가는 길] "임도-탑곡리 갈림길"에서 봉우리 하나를 넘어 가면.... ['ㅏ' 갈림길] 10:41 이정표가 있는 "ㅏ"자 갈림길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도 우측 "예산 임도"에서 오르는 '천방산 등산로 입구"인듯 합니다. ['천방산'으로 오르는 된비알] "천방산 정상"으로 약23분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물론 중간에 전위봉들이 있습니다. [갈림길] 11:02 된비알을 20여분 치고 오르면 갈림길을 만납니다. 좌측길은 "천방산 정상"으로 가는 지름길 인듯한데, 확신할수가 없어 직진해서 오릅니다. 쬐끔 편할려고 하다가 왕창 알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ㅎ [천방산 갈림길] 11:04 정맥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천방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을 곧 바로 만납니다. 여기서 "천방산 정상"을 갔다가 되돌아 와 우측길로 가야합니다. ['천방산' 정상으로 가는 길] 갈림길에서 '천방산 정상'까지는 100m로 3분 정도 걸렸습니다. [천방산 정상] 11:07 "천방산 千方山 479m" 글자대로 하자면 조망이 좋아야 하는데 숲으로 갑갑했습니다. 멀리서 볼때는 제법 멋진 조망이 있을걸로 예상했는데.... [천방산 정상 이정표와 표지판] 11:07~11:20 "대구 비실이 부부" 표지기가 눈에 확 들어 왔습니다. 정맥길을 걸으며 이제까지도 많이 보며 왔습니다만, 오늘 특별히 눈에 들어 오는 것은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 이신 "聖本님"이 "대구 비실이부부산악회"와 함께 산행을 하고 있다고 알려 주었기 때문일것입니다. ㅎ [천방산 갈림길 회귀] 11:23 "천방산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정맥길을 갑니다. 베낭을 이곳에 두고 "천방산 정상"을 다녀 왔는데 그대로 잘 있군요. ㅎ ['385m봉'으로 가는 길] ['385m봉' 정상] 11:38 '천방산 갈림길'에서 15분 정도 진행하면 벤치가 있는 "385m봉"을 지나고... ['탑곡리-이치리' 갈림길] 11:42 ['탑곡리-이치리' 갈림길 이정표] "385m봉"에서 5분여 내림질을 하면 갈림길을 만납니다. 이름하여 "탑곡리-이치리 갈림길" 좌측은 '공주시 유구읍 탑곡리'이고, 우측은 '예산군 대술면 이치리'랍니다. 정맥길은 "극정봉"을 향해 직진합니다. ['부엉산' 정상] 11:49 ['부엉산' 정상 표지판] "탑곡리-이치리 갈림길"에서 7분 정도 오름짓을 하니 바로 "부엉산"이었습니다. "부엉산 403m" 지명의 유래는 알수 없었습니다. 부엉이가 많이 서식해서일까? ㅎ '진혁진씨'의 개념도에는 이곳이 "403m봉"으로만 표기되 있고, 다음 봉우리인 "400m봉"을 "부엉산"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별다른 의미는 없는 私的인 표기인듯하여 그냥 지나칩니다. ['400m봉'으로 가는 길] "403m봉 부엉산"에서 10여분 진행하면 바로 "400m봉"이 나옵니다. ['400m봉' 정상] 11:59 벤치가 두개 있는 400m봉"을 지나갑니다. '진혁진씨의 개념도'에는 "부엉산"이라고 표기한 곳입니다. [이정표] 12:08 개념도 상으로 볼때엔 이곳 근처가 "억새밭"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방향이 우측으로 급하게 꺽인다는 것을 알려 주는 이정표 외에는 특징없는 곳입니다. ['350m봉'으로 가는 길] 무성하게 자란 수풀로 길이 보이지 않는 곳을 헤치고 나갑니다. 그러면 길은 다시 안정을 찾고.... ['유구읍 덕곡리' 조망] 12:21 좌측으로 오늘 산행을 시작했던 "각흘고개"방향으로 지난 구간에 올랐던 '무성지맥분기점봉'과 계곡 사이로 '공주시 유구읍 덕곡리'가 보입니다. ['350m봉'] 12:23 "350m봉" 이번엔 벤치는 없고 이정표만 있는 "350m봉"을 지나 갑니다. "극정봉" 까지 1.3km가 남았다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오지재'로 내려 가는 길] 울창한 리기다 소나무 숲을 10여분 지나며 "오지재"로 내려 갑니다. [오지재] 12:34 [오지재] "오지재" 좌측 계곡에 "공주시 유구읍 덕곡리"에 "머그네미"라고 하는 마을이 있고, 우측 계곡에는 "예산군 대술면 이치리"에 "소거리"라고 하는 마을이 있군요. 누군가 "오지재"라고 써붙여 놨으니 우리는 그냥 그렇게 알고 지납니다. [벌목지대로 오르는 길] "오지재"에서 오름길을 10여분 올라 갑니다. [벌목지대] 12:44 갑자기 시야가 트이는데 그 이유는 우측 '예산'지역에 벌목을 해 놨기 때문입니다. "봉수산" 아래에는 '공주시'지역에 벌목을 해 놨더니, 이번엔 '예산'지역입니다. ['가야산' 조망] 이나저나 벌목 때문에 조망이 확 트입니다. 무었보다도 서쪽으로 "가야산"이 조망되는군요. '금북정맥'은 다시 저 "가야산"으로 이어집니다. 몇구간 후에 올라야하는 "가야산"이며, 충청남도 도립공원이기도 합니다. [오서산 조망] 남서쪽으로는 '금북정맥'에서 가장 높은 산인 "오서산"이 조망됩니다. 정맥길은 남쪽으로 충남 보령시 "백월산"까지 내려 갔다가 다시 북진해야 합니다. [극정봉 조망] 12:52 벌목지대를 지나 내려 가니 "극정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극정봉'으로 오르는 길] 20여분 오름짓을 하면.... ['극정봉' 정상] 13:09 ['극정봉' 삼각점] [극정봉 표지기] 13:09~13:25 "극정봉 極頂峰 424m" "극정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높이가 "424m"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공식적으로 세운 삼각점에는 "421m"로 표기해 놨군요. 그 동안에 산의 키가 줄어 들었나 봅니다. 이곳에서 또 휴식을 취하며,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입맛도 없어서 꾸역꾸역... 물만 마십니다. 아무리 마셔도 소변은 안나옵니다. 땀으로 다 나가니.... 물 3L를 준비했는데 아직 갈길이 먼데 벌써 1L도 남지 않아서 물을 아껴 마시기 시작합니다. ['400m봉'으로 가는 길] 낙엽이 푹신푹신하게 해주는 편안한 산길을 15분 정도 진행하니... ['400m봉'으로 가는 갈림길] 13:41 ★길조심★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6시간이 지났기에 피로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길을 만나면 직진하는 길이 "우횟길"인 경우가 99%입니다. 그리고 올라 가 봐야 별거도 없는 단순한 봉우리가 또한 99%입니다. 그래서 "휴~ 힘도 든데 우회 할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들을 생각해서라도 올라 가봐야지?"라고 생각하며 우측으로 무거운 발길을 옮깁니다. ['400m봉' 오르는 된비알] 오르는 길은 짧은 거리이지만 무척 가파랐습니다. ['400m봉' 정상] 13:44 봉우리에 오르니 "400m봉"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맥길이 이 봉우리에서 방향을 우측으로 완전히 바꿔 가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전 갈림길에서 직진길이 우횟길인줄 알고 우회 했더라면....생각만 해도 끔직합니다. 아마 엄청난 알바를 할뻔 한것이었습니다. ㅎㅎ "君子大路" "君子正路"로 가야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곳이었습니다. 이렇듯 홀로 가는 적막한 산길에서 "휴~큰일 날뻔 했군!~"이라는 독백을 자주 하며 갑니다 ['명우산'으로 가는 길] "400m봉"을 내려가고...다시 오르고.... [공터봉] 13:53 10여분 오르면 공터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는데 ['명우산' 조망] 앞에 "명우산 鳴牛山 368m"이 조망됩니다. 그런데 "명우산" 정상을 얼떨결에 옆으로 우회하여 정상 촬영은 못했습니다. ['절대봉'으로 가는 길] 무심결에 "명우산"을 통과하여 오르락 내리락하며 "절대봉"으로 갑니다. [벌목지대] 14:03 "오지재"에서 "극정봉"을 오를 때 있었던 벌목지대와 아주 비슷한 벌목지대가 나오고 다시 시야가 트입니다. [길없는 길] "절대봉"으로 가는 길은 무성한 수풀로 길을 알수 없을 정도입니다. 수풀 속으로 나있는 길의 윤곽을 찾으며 헤메며 올라 갑니다. 수풀 속에 있는 뭔 괴물이라도 밟으면 어쩌지?라고 독백하며 조심조심 오릅니다. 어휴~~무서워.... 가시나무를 비롯해 잡목가지들이 뒤에서 잡아 당깁니다. ['절대봉' 조망] 14:11 수풀 속에서 헤집고 나오니 "절대봉"이 보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지만 '불문리고개'와 중요한 '340m봉'도 보였습니다. ['절대봉' 오르는 길] 肉山에서 구경하기 어려운 바위들도 제법 있는 구간을 지나 "절대봉"으로 갑니다. [절대봉 정상] 14:24 [절대봉 표지판] 14:24~14:40 "절대봉 353m" 휴식시간은 점점 더 잦아지며 시간은 길어 집니다. 제가 걸음도 느리기도 하지만 사진촬영과 감상문을 쓰느라 시간이 다른 분들보다 훨씬 더 걸립니다. 이번 구간도 다른 분들은 평규 7시간 정도에 완주를 하지만 저는 8시간 40분 정도 걸렸으니 알만 하죠? ㅎㅎ 하지만 저는 빨리 걷는데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는 것...다 아시죠? ㅎ 이 산길과 이에 얽힌 사연들을 얼마나 더 깊이있게 느끼며 공부하며 가느냐가 중요하다는거.. 아무 관찰없이 빨리 가기만 한다면 저도 빨리 갈수 있어요~~ ㅎ 에휴~ 그건 변명이고 세월 가며 점점 더 느려지기 시작합니다. ['절대봉' 정상에 있는 굴] "절대봉" 정상에는 엄청나게 큰 굴이 하나 있습니다. 거의 직각으로 뚫어 파 내려간 굴이었습니다. 많은 선답자들이 이 굴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다는 후기를 보았습니다. 다음 구간에서 아주 자세하게 알려 드릴 예정입니다. 미리 먼저 조금 알려 드리자면, 이 지역 금북정맥 산줄기에 우리나라 최대의 金鑛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일제침략시대에 다 파먹고 폐광이 되었지만, 당시 금광을 찾기위해 이 지역 산줄기를 뚫고 파헤치며 곳곳에 흉터를 남겼는데, 이 굴도 그 중에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불문리고개'로 내려 가는 길] "절대봉"에서 휴식을 취하고 "불문리고개"를 찾아 내려 갑니다. ['불문리고개'로 추정] 14:55 "절대봉"에서 15분 정도 내려 가니 "불문리고개"로 추정되는 안부가 나옵니다. 이곳 이외에는 고개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340m봉'으로 오르는 길] 다시 10여분 오름짓을 합니다. 오늘도 지긋지긋하게 오르고... 내려 가고...또 오르고...또 내려 가고...를 반복합니다. ['340m봉' 정상] 15:05 ['340m봉' 표지기] 봉우리 같지 않은 봉우리에 올랐는데 어느 선답자가 표지기에 매직으로 표기한 "340m봉"이 없었다면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벌목지대] 15:13 "340m봉"을 벗어나니 다시 벌목지대가 나타나며 시야가 트입니다. ['명곡저수지' 조망] 15:14 동쪽으로 '공주시 유구읍 명곡리'에 있는 "명곡저수지"가 가까이 보이며, 뒤로 멀리 "무성산"이 조망됩니다. ['서재'로 가는 길] 완전 벌거숭이가 된 벌목지대를 지나고, 다시 리기다소나무 숲을 지나 "서재"로 갑니다. [서재] 15:26 "서재"에는 실제 차량이 다니는 비포장도로급 임도가 지나고 있으며, 간이화장실이 하나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차동고개"로 가는 정맥길은 우측으로 올라 갑니다. [서재] "서재"로 내려와 "차동고개"로 가는 길을 반대 방향에서 본 것입니다. [불모골고개(?)] 15:29 "서재"에서 조그만 둔덕을 하나 잠깐 넘어 가니 "불모골고개"로 추정되는 고개를 지나고... [임도] 잠시 편안한 임도를 만나 따라 올라 갑니다. [임도 갈림길] 15:36 편안한 임도도 잠깐...다시 산길로 올라 가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 근처가 "275m봉"인듯 합니다. ['260m봉'으로 가는 길] 임도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어 어디인지도 모를 "서낭당고개"를 지납니다. "서낭당고개"는 무성하게 자란 수풀로 흔적을 찾을수 없었습니다. ['260m봉'] 15:38 "260m봉"은 우회하여 진행하고.... [묘지] 15:40 묘지를 지나 갑니다. [길 없는 길] 묘지를 지나니 무성하게 자란 수풀로 또다시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수풀을 헤치며 땅바닥에 난 길을 찾으며 헤집고 올라 갑니다. 숲 속에서 모르고 뱀이라도 밟으면.... 와락 덤벼 들것같아 심히 무시무시한 공포를 느낌니다 그래서 뱀이 제일 싫어 한다는 꽃냄새가 나는 "봉숭아"라는 곡을 배경음악으로 올렸습니다. 봉숭아를 "禁蛇花"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런 연유라고 합니다. 봉숭아꽃으로 손톱을 붉게 물들이던 풍습도 붉은 빛을 귀신이 싫어하기 때문에 못된 귀신이나 질병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것이 이 민속의 본디 뜻이었다는 것이랍니다. 노래가 너무 좋아 올렸다는 것은 말 안해도 다 아시져? ㅎㅎ 야하튼 "뭐 해먹고 살일 있다고 이런 위험한 고생을 하고 있는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집에 돌아 가면 다시 다음 구간으로 갈 생각 뿐입니다. ㅎㅎ [산불 난 지역] 15:46 수풀을 헤치고 산꼭대기로 올라 가니 어느 정도 길은 열리는데.... 산불이 났었던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뒤돌아 본 '절대봉' '극정봉' '봉수산'] 산불이 났었던 봉우리를 지나며 뒤돌아 보았습니다. 이제서야 지나온 정맥길이 조망됩니다. 먼저 오전 9시경에 올랐던 "봉수산"이 삐쭉 쬐끔 보이는데 무척 반갑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오후 1시경에 올랐던 "극정봉"과 오후 2시경에 올랐던 "절대봉"이 조망됩니다 ['294.2m봉'으로 가는 길] 조망을 끝내고 다시 막바지 오름짓을 합니다. [정맥 마루금 같지 않은 길] 15:56 "294.2m봉"으로 가는 길엔 마루금 같지 않은 길도 있고... [뒤돌아 본 '절대봉' '극정봉' '봉수산'] 15:58 다시 한번 지나온 산봉우리들을 뒤돌아 보며 홀로 감개무량 해 합니다. [294.2m봉'으로 가는 길] 다시 수풀로 뒤덮힌 길없는 길을 헤치고 올라 갑니다. 이제까지의 금북정맥길 중에 이번 구간이 제일 더럽습니다. 무셔버~~ㅎ ['294.2m봉' 정상] 16:09 ['294.2m봉] "294.2m봉" 이번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별다른 특징은 없으며 수풀로 조망도 없었습니다. ['차동고개'로 가는 길] 숲 속으로 난 길을 따라 하산 합니다. 차량들이 질주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묘지에서 '당진-대전 고속도로' 조망] 16:16 잠시 내려 가니 묘지가 나오며 "당진-대전 고속도로"가 조망됩니다. "차동고개"에 거의 다 온 것입니다. [갈림길] 16:17 묘지 상단을 따라 내려 가는데 갈림길이 있습니다. 선답자들의 표지기도 없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직진합니다. 다행이 바른 길이었습니다. [차동고개 들날머리] 숲속을 빠져 나오니 "차동고개"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음 구간 들머리] 16:23 [32번 국도]로 나오니 건너편에 다음 구간 들머리가 보이고.... [차동고개] "차동고개 車東고개 해발 215m" 대간 정맥꾼들의 지침서인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에는 "차유령 車踰嶺"으로 나옵니다 순수 우리말로 해석하면 "수레넘이 고개"가 되며, 이런 고개 이름은 전국에 산재해 있습니다 즉, 수레가 넘어 갈수 있는 넓은 고갯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산"과 "공주"를 넘나드는 대표 고개가 이 "차유령 車踰嶺"이었고 현재도 대표 고개입니다. 다만, 이 "차유령 車踰嶺" 밑으로 고속도로 터널이 뚫려 "차유령 車踰嶺"의 역활이 없어졌습니다. 아주 옛날에 '차서방'이 산삼을 동쪽 산에서 찾아 노모에게 먹여 병환을 낳게했다는 설화에서 "차동고개"라고 했다는 설화는 단순히 효도 설화일뿐.... ['차동고개' 예산 방향] 터널화로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쓸쓸한 "차동고개"에는 수레를 끌고 힘겹게 오르내리던 옛 선조들의 거치른 숨소리만 적막 속에 감도는듯.... ['차동고개' 공주 방향] "공주 公州" 백제의 수도로 64년간 다섯명의 왕이 즉위했던 천혜의 요새였답니다. 북으로는 '금북정맥'이 방어벽이 되고, 남으로는 '금강'이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곳이라서... 옛날에는 "웅주 熊州"였다죠? "웅 熊"을 우리말로 하면 "곰"입니다. 이 "곰"이 세월따라 음운변화를 이르으켜 "공"이 되어 "공주"가 되었다는 설이 공식적인 '공주시 홈피'에 나와 있어 재미있어 첨언합니다. [차동휴게소] [새로산 아쿠아 샌달] 폐업한 "차동휴게소" 옆 평상에서 옷을 갈아 입고, 무겁고 갑갑한 등산화도 새로 산 '아쿠아샌달'로 갈아 신었습니다. 워~ 시원해~ ^*^ '아쿠아샌달'은 39,800원에 삿는데 잘 삿다고 생각됩니다. (이것 보고 사시는 분들 무지 많겠내요~ㅎㅎ) [유구 택시] 16:44 유구터미날로 가려고 히치를 시도했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 이 휴게소에 들려 잠시 쉬고 가는 사람에게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태워 주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금북정맥을 하며 충청남도 지역을 몇달째 다니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충청도 사람들...특히 운전기사분들은 무척 불친절하고 배타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됫습니다. 길을 묻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일언지하에 퉁명스런 부정어가 한마디 튀어 나올 뿐.... 제가 그들에게 부정적으로 보여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며 나에게만 일어 난 나 만의 문제였기를 기대하며, '유구택시'를 불렀습니다. '유구택시'는 호출 6분만에 도착하여, 6분이 걸려 "유구버스터미날"에 내려 주었습니다. 메타요금이 6,400원이 나왔는데 6,000원만 받겠다고 합니다. 웬일? ^.^ 충청도 사람에 대한 인식이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ㅎㅎ 제가 사전에 이 개인택시 기사분의 전화번호를 미리 알아서 호출한게 적중한것이었습니다. 다음에 가실 분들은 꼭 적어 가세요 ☏ 041-841-5959 [유구 터미날] 16:50 "차동고개"에서 6분만에 "유구터미날"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온양온천역"으로 가는 [100번 시내버스]의 종점입니다. 앞으로 다음 구간을 위해 한번 더 이곳에 와야 하겠습니다. [100번 버스 시간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7:00 7:40 8:20 9:20 10:10 11:10 12:10 13:10 14:10 15:10 16:10 17:10 18:10 19:10 20:10 참고로 '온양온천역'까지 버스요금은 3,000원이었으며, 카드로 2,950원이었습니다. '공주시'와 '아산시'의 경계인 '각흘고개'를 기준으로 추가요금을 무려 1,800원을 더 받습니다.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요금체계인데, 전철 환승 요금도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유구읍내] "유구읍 維鳩邑" 한자를 풀이 해 보면 "밧줄로 동여 맬 維 유"에 "비둘기 鳩 구"입니다. 비둘기가 날아 가지 못하게 밧줄을 든든하게 매어 둔다는 뜻이겠습니다. 임진왜란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관련있는 전설이 있는데 알 필요 없는 전설이라 생략합니다. '유구읍내'를 휘 둘러 보고 5시10분 차를 타고 1시간5분이 걸려 '온양온천역'에 내려 급히 뛰어 6시 26분 전철을 타고 귀가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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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가는 금북정맥 두번째구간 산행기 배티고개-서운산-엽돈재-부소산-부수문이고개-위례산- 우물목고개-사리목고개-성거산-유왕골고개-각원사-안서동 아!~ 길은 가기 위해 존재 하는가 돌아 오기 위해 존재 하는가 봄 냄새가 진동하는 오월에 다시 길을 떠납니다. "錦北正脈" 그 끝에 닿으면 여름이려나~ 가을이려나~ 눈이 내릴려나~ 산길따라 바람따라 세월따라 흘러 가는 산행길 [금북정맥 전체구간] "금북정맥 錦北正脈"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이 세개의 정맥이 분기하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칠장산"에서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안흥리'까지 약280km의 산줄기인 "금북정맥"을 갑니다. [첫구간 산행도] '금북정맥'의 두번째 구간은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에 있는 "배티고개"에서 '충청남도 천안시 안서동'에 있는 "유왕골고개"까지 22.4km를 갑니다. 정맥(배티고개→유왕골고개) : 19.2km 안성 상중리 버스종점→배티고개 : 1.7km 천안 유왕골고개→안서동 버스 종점 : 1.5km [평택역] 6:53 2012년 5월 11일 (금) 구름 "평택역" 에스컬레이타를 내려 가며 '평택역'앞 광장을 바라 봅니다. 오늘로서 '금북정맥'을 위해 다시 이곳에 오는 일은 없을듯 합니다. 출근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습니다. [평택역] '애경백화점'과 함께 있는 '평택역'을 뒤로 하고 버스터미널로 갑니다. [평택버스터미널] 6:57 '안성 알파문구'앞에서 7시 50분에 출발하는 "석남사"행 버스를 타기 위해 '평택버스터미널'에 7시 이전에 도착하여 "안성"가는 버스를 탑니다. [370번] [70번]등 안성 가는 버스는 자주 있습니다. 저는 [70번] 버스를 7시 5분에 타고 갑니다. ["舊안성버스터미널" 버스 정류장] 7:29 "안성 알파문구"를 가기 위해선 '안성'에 가서 "舊안성터미널"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 뒷쪽 첫번째 골목에서 남쪽방향으로 계속 가면 됩니다. [알파문구-지선버스 종점] 7:32 "옛 안성버스터미널" 버스정류장에서 약3분이면 "알파문구"에 도착합니다. 매우 가깝습니다. [알파문구-지선버스 종점] 안성 시내 지선버스 출발점인 "알파문구"앞 입니다. "석남사 입구"인 "상중리 금광휴게소"로 가는 버스는 [100번]버스로서 오전 6:10, 7:00, 7:50, 8:40, 10:00, 12:00.....입니다. 이곳에서 "상중리 금광휴게소"까지는 17분 정도 걸렸으니, 시간 조절을 못하신 분들은 택시를 이용해도 될듯..... [금광휴게소-상중리 버스 종점] 8:07 "알파문구"앞에서 약17분이 걸려 "상중리 금광휴게소" 버스 종점에 도착했습니다. 지금까지 소요된 차비를 계산해 보면, 전철 1,450원 + 평택-안성 버스 환승 300원 + 안성-상중리 100원 = 1,850원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환승요금이 적용되어 거의 공짜로 왔습니다. ['금광휴게소'에서 바라보는 '배티고개'] 8:10 '금광휴게소"에서 "배티고개"까지 걸어 갈 생각을 하니 막막합니다. 지나가는 차량을 히치하려고 했으나, 다니는 차량도 거의 없고...세워 주지도 않고... 그래서 할수 없이 걸어 올라갑니다. [석남사 입구] 8:13 "금광휴게소"에서 잠시 걸어 올라가니 바로 "석남사 입구"가 나옵니다. "법천사"라는 절도 있군요. 개울 뒤로 솟아난 산이 "서운산"인듯 합니다. "서운산 일반등산로"는 "석남사"에서 시작하는게 제2코스라고 하니 여기서 석남사를 경유해 올라 간다고 하며, "청룡사"방향에서 올라 가는 1코스가 유명 하답니다. ['배티고개'로 올라 가는 길] "금광휴게소"에서 "배티고개"까지 거리는 잘 알수 없으나 대략 1.5km 남짓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초장부터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걷는건 즐거운 일이 아니죠. ['배티고개'로 올라 가는 길] "배티고개"까지 된비알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꼭대기까지 계속되는 오르막이라 정맥 산행을 하기도 전에 힘 다 빼며 올라 갑니다. 휴~ 벌써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배티고개'] 8:42 오르막을 28분 정도 걸어 "배티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에머슨(중앙)CC" 입구와 삼거리를 이루고 있는 "배티고개" 입니다. "배티고개"에 대해선 지난 1구간에서 자세히 알아 보았기 때문에 생략합니다. 산행 들머리를 잘 기억해 두고.... [배티고개] 8:48 간단하게 산행 준비를 하고 출발합니다. "서운산 들머리"는 이 표지석 앞으로 나 있습니다. ['배티고개' 들머리 이정표] "배티고개" 이정표가 들머리에서 길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상 3.2km]라고 알려 줍니다. 앞으로 나타나는 이정표와 거리 차이가 많이 나는데....앞으로 비교해 드립니다. [배티고개 절개지] 8:51 "배티고개"에 도로 개설을 위해 절개한 사면을 따라 올라가면.... [배티고개] 8:51 "배티고개"가 내려다 보이고.... '금북정맥'이 싹둑 짤려진 절개지. 잘 있거라 "梨峙"!~ "이티재"라고 해서 외계인들이 넘나들던 "E*T고개"인줄 알았다우~ ㅎ [등로] 잘 정비된 登路를 따라 10여분 올라 갑니다. [갈림길] 9:01 처음으로 갈림길을 만납니다만, 직진하여 올라 갑니다. ['배티고개' 절개지 상단 봉우리] 9:04 오름짓을 조금 더하면 봉우리에 올라 섭니다. 이 봉우리가 '금북정맥'의 마루금이 지나는 곳인데, 절개된 "배티고개" 때문에 우회하여 여기로 오른 것입니다. 이제부터 정식 마루금을 갑니다. 봉우리를 넘어.... ['무명순교자6인 묘'로 가는 길] 3분 정도 조금 내려 갑니다. ['무영순교자 6인 묘' 갈림길] 9:07 이정표가 서 있는 "무명순교자 6인 묘" 갈림길이 나옵니다. ['무명순교자6인 묘' 갈림길 이정표] 거리 표시를 보면 [정상 1.5km] [배티고개 0.6km]라고 알려 줍니다. 합하면 2.1km이죠? 조금 전 "배티고개" 들머리의 이정표에는 [정상 3.2km]라고 표시되 있었죠? 벌써부터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무명순교자 6인 묘] "무명순교자 묘"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여 내려 가 봤습니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조금 내려가 보니 바로 "무명순교자 6인묘"가 있더군요. 십자가만 묘지 앞에 서 있을 뿐, 봉분도 희미해 지고 잡초가 자라고 있는 초라한 묘들이었습니다 ['배티성지 갈림길'로 가는 길] 무명순교자 묘에서 잠시 올라 가면... [배티성지 갈림길] 9:11 "배티성지 갈림길"이 나오며 쉼터가 마련되 있습니다. "배티성지"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는 "김대건 신부"이지요? 그렇다면 두번째 사제는 누구인지 아시나요? 대부분 모릅니다. 천주교 신자들도 모르실겁니다. 오로지 "첫째" "1등"만 기억하는 세태에서 "두번째" "2등"은 늘 그늘에 가립니다. '국보1호'는 초딩도 알지만, '국보2호'를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국보3호'로 가면 전문가라는 사람들까지도 잘 모릅니다. 각설하고, 우리나라 두번째 사제는 "최양업 신부"입니다. 이 "배티고개" 주변은 "최양업 신부"가 사목활동을 하던 중심지 였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아주 가까운 "안성 미리내"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를 모시는 성지로 "미리내 성지"가 있고, 이곳에는 두번째 신부인 "최양업 신부"를 모시는 "배티성지"가 있는 것입니다. ['석남사' 갈림길로 가는 길] "배티성지" 갈림길을 뒤로 하고 "서운산"으로 올라 갑니다. 계절은 푸르름이 완연해지며 울창한 수림이 시야를 가립니다 ['석남사' 갈림길로 가는 길의 풍경] 숲의 터널을 거닐다 가끔 숨통을 열어 주는 곳이 몇군데 나타납니다. 하지만 잠깐일뿐....숲길은 계속됩니다. [석남사 갈림길 1] 9:32 "배티성지 갈림길"에서 20여분 숲길을 오르면 [첫번째 석남사 갈림길]이 나옵니다. "서운산 정상"까지 "석남사 갈림길"은 세번 만납니다. "서운산 일반 등산로"는 "석남사"에서 시작 된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 할수 있습니다. [석남사 1.5km]로 표기하고 있으니 접근이 가장 빠르겠군요. 그런데 이곳의 이정표에는 [배티고개 1.3km] [정상 0.6km]로 합치면 [1.9km]이군요. 곳곳에 설치된 이정표의 거리 표시는 제각각이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석남사 갈림길 2'로 가는 길] 다시 3분 정도 숲길을 헤치고 올라 가면.... [석남사 갈림길 2] 9:35 두번째 석남사 갈림길을 만납니다. ['석남사 갈림길 3'으로 가는 길] 또 다시 3분 정도 올라 가면.... [석남사 갈림길 3] 9:38 세번째 석남사 갈림길을 만나는데.... 이정표의 거리 표시를 보면 [정상 0.4km] [배티고개 1.5km]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배티고개"에서 "서운산"까지는 [1.9km]라고 표기한 이정표가 가장 많군요. ㅎㅎ ['서운산'으로 가는 길] 다시 5분 정도 숲속을 올라 가면.... [서운산 갈림길] 9:42 중요한 "서운산 갈림길"이 나옵니다. 직진하면 "서운산 정상"을 우회하여 가는 우횟길이만, 여기까지 와서 "서운산 정상"을 밟지 않고 그냥 우회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서운산 정상]방향으로 올라 갑니다. ['서운산 정상'으로 가는 길] 갈림길에서 2분 정도 아주 짧은 거리를 올라 가면... ["545m봉"] 9:43 '545m봉"이 먼저 산객들을 반깁니다. 산불감시 자동 안내기가 설치된 이곳이 "서운산"에서 가장 높은 실제 "서운산 정상"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삼각점이 설치되 있으며, 해발 "545m"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안성의 진산"이라는 "서운산 정상"이라는 정상석이 이곳에 없는가? 그 해답은 조금 있으면 알수 있습니다. ['서운산 정상' 갈림길] 9:45 삼각점이 있는 실제 "서운산 정상"에서 2분 정도 직진하면 쉼터가 있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정상 전망대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며, 전망대를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좌측으로 정맥길을 이어 가야 합니다. [서운산 정상 쉼터] 정상 쉼터가 조성되 있으며.... 정상 전망대는 바로 앞에 있습니다. [서운산 정상 쉼터 거울] 시계와 거울이 있는데, 시간은 대체로 맞는듯 합니다. 평일이라 등산객들이 거의 없어 거울로 인증샷을 하고... [전망대] 9:47 전망대로 나갑니다. "서운산 瑞雲山 545m" 원래 정상은 조금전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이지만, 조망이 좋은 이곳에 정상 전망대를 설치하고 높이를 "547.4m"라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조금전 봉우리의 삼각점에는 공식적으로 "545m"라고 표기하고 있었죠? 그렇습니다. 이곳이 '안성시내'가 가장 잘 조망되는 곳이라 정상 전망대를 설치하고 있어 대부분의 산객들이 이곳이 정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꿩 잡는게 매. 다만 알고 "서운산"을 오르시라는 '파란문'의 안내일뿐 입니다. [안성시내 조망] "서운산 瑞雲山"은 "안성의 진산'입니다. "安城市內"가 조망되는 최적의 장소라고 합니다만, 오늘은 구름이 있어 시야가 나빠 설치되 있는 안내판을 촬영하여 보여 드림니다. "안성"은 "이상세계를 기다리는 소박한 백성들의 숨결이 있는 곳"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서 '허생'이 장보기를 나선 곳이 안성이요, '홍명희'의 역사소설 '임꺽정'의 사연이 깃든 곳이 안성이요, "바우덕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중인기스타가 "남사당패"를 일군 곳이요 또한 서민들의 인기스타 도둑놈 "장길산"의 무대가 안성이니 이야기 꺼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제일 알려진 것은 "안성맞춤"입니다. [전망대 주변] "서운산성 瑞雲山城"이 이 주변에 있다는군요. 조경이 잘되있는 "서운산 정상 전망대"입니다. [전망대 주변] 바위와 소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전망대입니다. '바우덕이-金岩德" 여성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남사당패 총대장인 '꼭두쇠'였는데 미모는 말할것도 없고, 노래 춤 기예가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뛰어 난 당대의 최고 여서, 경복궁을 중수하던 일꾼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대원군의 부름을 받고 경복궁에서 공연을 해 '바우덕이"가 이끄는 안성 남사당패는 대원군으로부터 정3품 이상의 벼슬아치들이나 사용하는 옥관자를 하사 받았으니 천민으로선 대단한 사회적 이슈였답니다. 요즘말로 하자면 "국가가 실제로 인정한 최고의 국민 아이돌 가수및 예술단"이였답니다. "바우덕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 였다고 하며, 다른 지역에 공연을 나가면 타 지역 남사당패들이 나와 무릎을 꿇고 존경의 절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대중 인기연예인이 탄생한것이니, "바우덕이"가 요즘에 태어 났다면 아마도 '소녀시대'정도는 발 아래 깔고 놀았을거라 생각 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는 꽃다운 나이 스무세살에 폐병으로 요절하고 맙니다. 오호 통재라~ 조금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지날 "청룡사" 근처에 그녀의 묘가 있으며, 안성에는 "바우덕이"를 기리는 기념관과 공연장이 대단한 규모로 있더군요. [전망대 주변] 9:50 전망대에서 조망을 마치고 다시 정맥길을 나섭니다. 이곳 전망대가 있는 곳에 정상석 같은 표지석이 있는데 높이만 표시되 있고 "서운산"이라는 표시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실제 정상은 이곳이 아니고 조금전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이기 때문에 이곳에는 높이만 표시하고 "서운산 정상"이라는 표시는 하지 않은 듯 합니다. 삼각점 봉우리의 높이는 공식적으로 "545m"이고 이곳은 "547.4m"이군요. [서운산 정상 갈림길] 10:10 (아침식사 20분) 새벽 5시에 일어나 이곳 '서운산 정상'에 올라 이제서야 아침식사를 하고 떠납니다. 길은 화살표 방향으로 가면 됩니다. [우회로 갈림길] 10:12 전망대 쉼터에서 잠시 내려 가면 "서운산 정상 우회로"를 만나고... 정맥길은 직진입니다. [헬기장 앞 갈림길] 10:13 ★길조심★ 다시 조금 더 내려 가면 갈림길을 만나는데 중요한 갈림길이라 이정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직진하면 헬기장과 정자가 있더군요. 정맥길은 이정표에서 노란색으로 강조하고 있드시 좌측으로 갑니다. "금북정맥 엽돈재" 방향으로.... ['청룡사 갈림길'로 가는 길] 헬기장 갈림길에서 잠시 평지가 이어지다가.... [급경사 내리막] 급경사 내리막이 7~8분 한동안 계속됩니다. [벤치 두개가 있는 쉼터] 10:20 벤치가 두개있는 쉼터가 나오면 급경사 내리막은 진정되고.... 잠시 평지를 진행하면.... ['청룡사' 갈림길] 10:21 ★길조심★ "청룡사 갈림길"이 나오는데 중요한 곳입니다. 이정표에 "청룡사 방향"은 안내하고 있으나, "금북정맥길"은 아무른 표시가 없습니다. 정맥길은 사람들의 흔적이 상대적으로 적은 왼쪽으로 갑니다. "서운산 일반등산코스"는 우측 "청룡사 코스" ['청룡사 갈림길' 이정표] "금북정맥 길"에 대해선 아무른 안내가 없는 이정표이지만 매우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금북정맥 길] "청룡사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들어 서면 이제까지 뜸하던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무더기로 발견되며, 매우 중요한 곳임을 강력하게 알리고 있습니다. ["420m봉"으로 가는 길] "서운산 일반등산로"를 벗어나 정맥길로 들어 서면 길은 좁아지며 호젓한 산행길이 열립니다. ["420m봉" 정상] 10:27 "청룡사 갈림길"에서 내려 갔다가 다시 봉우리를 하나 오르게 됩니다. 그러면 긴 통나무 의자가 있는 "420m봉"에 오르게 됩니다. ["420m봉"에서 "440m봉"으로 가는 길] "420m봉"을 넘어 다시 내림짓을 하면 앞에 다시 올라야 할 "440m봉"이 보입니다. 10여분 내려 갔다 올라 가면.... ["440m봉" 정상] ["440m봉" 안내판] 10:36 "440m봉"을 오르게 되는데 누군가 개인적으로 안내판을 설치해 놨습니다. "엽돈재"를 "엽돈제"라고 표기해 놨다고 또 누군가 정정을 해 놨군요. ㅎㅎ 조사를 해 보니가 사실 "엽돈재"도 아니고 "엽돈제"도 아닌 "엽둔재"이더군요. 진천군 공식 홈페이지에 한자로는 "葉屯峙"로 쓰고 있고... [무명봉으로 가는 길] 어느 누구의 소음도 들리지 않고 새들의 합창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조용한 산길을 음미하며, 울창한 숲 속으로 시원한 산책을 합니다. ['400m급' 무명봉] 10:46 이름을 알수 없는 "400m급" 무명봉을 지나.... ["415m봉"으로 가는 길] 다시 10여분 숲속을 걸으면.... ["415m봉" 갈림길] 10:55 갈림길이 나옵니다. 우측으로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많이 달려 있습니다만, 오리지날 정맥 마루금은 직진하여 "415m봉"을 오르고 우측으로 가야 합니다. ["415m봉" 정상] [우회로와 만남] "415m봉"에 올랐더니 긴 통나무 의자만 있을 뿐 볼거리도 없었습니다. 조망도 없고... 아마도 그래서 선답자들이 우회로에 리본을 많이 달아 놓은듯 합니다. [히든벨리 CC] "415m봉"에서 부터 "엽돈재"까지 좌측 계곡엔 "히든벨리 CC"가 있어 간간히 공 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만, 울창한 숲으로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395.4m봉-청룡사 갈림길"] 갈림길 안부가 하나 나오는데 우측으로 내려 가면 "청룡사"로 바로 갈수 있는 곳인듯... "바우덕이" 이야기 중에 이곳 "청룡사"와 관련되는 마음을 적시는 이야기 하나 더 해 드리면, "바우덕이"는 폐병에 걸려 병마와 싸울 때에 자신의 병이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질까봐 이곳 "청룡사" 절간에 스물한살에 들어와 홀로 지내다 스물세살 꽃다운 나이에 떠났답니다. 남을 배려 할줄도 아는 참여성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요즘 같으면 폐병은 병도 아닌데.... 그 미모, 그 화려한 기예, 노래, 춤...대원군과 고종이 탄복하며 "정3품"이라는 벼슬에 해당하는 지위를 하사했으니 그야말로 "국민 아이돌 가수, 국민예술인"의 始祖였습니다. 6살에 안성 남사당패에 들어와, 15살에 안성 남사당패 단원들의 만장일치로 여성 최초의 '꼭두쇠'가 되고 우리나라 최초의 최고 아이돌 스타로 6년여를 활동하다 너무 일찍 떠난 비운의 여인.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분들을 위해 특별히 "바우덕이" 사진을 보여 드림니다. ['안성 남사당 공연장' 앞에 있는 "바우덕이" 동상] ["395.4m봉] 11:20 "서운산 정상" 이래 처음으로 하늘이 열리는 봉우리가 나옵니다. 이봉우리가 "395.4m봉"으로서 전망이 트이는 곳입니다. ['청룡저수지' 조망] 천년 고찰 "청룡사" 앞에 있는 "청룡저수지"가 조망되며 그 뒤로 오늘 올라야 할 "부소산"과 "위례산"이 보입니다. 아!~ "바우덕이"는 그녀의 그 화려한 재능을 더 펼치지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이 '청룡저수지' 주변을 산책하다가 하늘 나라로 ...오호 통재라!~ "청룡저수지" 앞을 지나는 도로가 [34번 지방도]로서 "엽돈재"로 가는 도로이며, 특히 "경기도"와 "충청남도"의 道界가 되는 의미있는 도로이기도 합니다. 다시말해 "엽돈재"를 넘어가면 "충청남도 천안"입니다. 대간-정맥꾼들의 지침서인 "신경준 선생"의 "산경표 山經表"에는 "서운산 瑞雲山"이라는 地名은 나오지 않으며, 대신 "청룡산 靑龍山"이 나옵니다. "七賢山" 다음에 "靑龍山 西南來 安城南 分二岐"라고 표기되 있습니다. "서운산"이 예전엔 "청룡산"이었슴이 확실합니다. [벌목지] 11:30 "395.4m봉"에서 잠시 진행하면 벌목지가 나옵니다. 경사가 가파른 '충북 진천'쪽의 사면을 완전히 홀라당 벗겨 나체를 만들어 놨습니다. 무슨 용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씁씁한 느낌을 받으며 갑니다. 건너편에 "부소산"이 보이니 "엽돈재"에 근접했나 봅니다. ["34번 지방도"와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서수원마을' 조망] 11:35 벌목을 해서 조망은 시원합니다. 이곳이 "충북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이며, '금북정맥'에서 마지막으로 '충청북도'와 이별하며 '충청남도'로 들어 갑니다. "엽돈재"는 옛 삼국시대부터 국경이어서 군대가 항시 주둔했던 곳이라 하며 임진왜란등 많은 전란시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고 합니다. 또한 천주교 박해 때에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순교해 간 곳이라고도 하는군요. ['엽돈재'로 가는 길] 벌목지를 지나면 다시 숲길 10여분 숲길을 내려 가면..... [벤치가 두개 있는 쉼터] 11:46 벤치가 두개있는 쉼터가 나옵니다. 이제 "엽돈재"에 근접했습니다. [엽돈재] "엽돈재"가 보이기 시작 하는군요. [엽돈재 葉屯峙] 11:50 이곳은 "경기도 안성시"와 "충청북도 진천군", 그리고 "충청남도 천안시"가 만나 분리 되는 곳. 진천군 공식 홈페이지에는 "엽둔치 葉屯峙"로 표기하고 있더군요. 그러면서 "엽둔치를 엽돈고개라고도 한다"라고 표기하고 있으니 앞으로 "엽둔치"로 해야 할듯.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과 '충남 천안시 입장면'에서 '충북 진천군'으로 넘나드는 고개입니다. [엽둔치 이정표] [엽둔치 葉屯峙] "부소산"으로 가는 들머리는 '진천 방향' 대각선으로 건너 갑니다. [수준점-"323m"] "엽돈재"에는 수준점이 있으며 "해발 323m"임을 알리고 있고... [葉屯峙 진천방향] "엽돈재" 진천방향 아랫쪽으로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서수원마을'이 있다는데 조금전 벌목지를 통과하면서 시원하게 조망했지요? 못 보신분 앞으로 돌아 가 다시 보세요~ ㅎ 진천군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이곳 지명의 유래를 인용하겠습니다. "서수(西水)마을" 서수마을을 서수원이라 한다. 서수원은 엽둔재 밑에 있는 동네를 말한다. 엽둔재를 엽돈고개라고도 한다. 백곡면 갈월리에 있는 고개로 매우 험준하고 깊숙하며 조선시대에는 도적떼들의 소굴이 있었다. 그런고로 이 곳을 왕래하는 상인이나 나그네들은 큰 골치거리 였었다. 또한 임꺽정이 한때 이 곳에서 관원(官員)을 괴롭히는 곳이기도 하다. 신라시대에는 백제와 국경을 이루고 있었던 곳이기에 병정들이 진을치고 주둔하였던 곳이 바로 서수마을이다. 당시는 이 곳을 서술원(西戌院) 이라 하였다. 지금은 서수원(西水院) 이라 한다. 지금도 당시의 터가 남아 있다. 또한 옛날 역마가 있어 교통의 편의와 통신의 주역(主役)을 맡았던 곳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의 일이다. 안성사람으로 홍 계남(洪季男)이 의병 수천명을 모군(募軍)하여 여기에 주둔하면서 왜군과 한바탕 싸워서 이긴 곳이다. ['부소산' 들머리] 11:56 "엽돈재"에서 "부소산"으로 가는 들머리는 "生居鎭川 표지석" 앞으로 나 있습니다. ['엽돈재' 절개지에서 보이는 '부소산'] '엽돈재' 절개지를 오르면 "부소산"이 보입니다. 비교적 완만한 오름길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만뢰지맥" 분기점] 12:06 "엽돈재"에서 10여분 오르면 "만뢰지맥 분기점"을 만납니다. '진천의 진산'인 "만뢰산 萬賴山"을 지나는 산줄기 이지요. "만뢰산"에는 金鑛이 있었다죠? 일제침략시대엔 금광으로 번창했던 곳이라 합니다. "만뢰산'은 병자호란 때에 전투에서 이겨 많은 피난민을 구했다고, "일만 萬"에 "힘입을 뢰 賴"로 산 이름을 '만노산'에서 "만뢰산"으로 변경했다고 합니다. [금북정맥 '부소산'으로 가는 길] ['부소산'으로 오르는 길] "만뢰지맥 분기점"에서 13분 정도 숲길을 오르면 ["깊은골" 갈림길] 12:19 "깊은골 深谷 금강발원지 샘 400m"라는 갈림길을 지납니다. '금북-금남 정맥 마루금'은 모두 금강 발원지이기에 이곳 발원지는 큰 의미는 없습니다. "부소산 정상"까지 300m라고 알려 줍니다. [부소산으로 가는 길]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나부끼기 시작하면 무언가를 알리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부소산"과 관련된 중요한 길이 나타 날 것이란걸 암시하고 있습니다. [부소산 정상 갈림길] 12:27 아니나 다를까 조금 진행하니 "부소산 정상 갈림길"이 나옵니다. 좌측으로 10m지점에 정상이 있으며, 갔다가 되돌아 와야 합니다. [부소산 정상] 12:28 "부소산 扶蘇山 459m" '백제의 첫 도읍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산으로는 초라합니다. '부소산 扶蘇山'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우리나라 국민들은 '부여'의 '부소산'을 연상 할것입니다. '부소산성'과 '낙화암'으로 유명하지만, 산꾼들에겐 "금남정맥"의 끝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여기가 '백제의 첫 도읍지'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귀신 씨나락 까 먹는 소리.... 이 산꼭대기에 뭐 먹을게 있다고 도읍지를 세웠을까요? 논밭도 있고 강이 흐르고..하는 곳에 도읍을 정해야 먹고 살며 부락을 이루며 번성하는 것이지...이런 산꼭대기에 뭔 도읍지? [부소산 정상석]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이 國庫를 타내기 위해 별의 별 건수 만들기에 혈안이 되있지요? 정상석에 "하남위례성"의 진산이 이 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현 "하남시 위례성" "풍납토성"등은 지금 사기 치고 있는 것일까 에구~ 이런 문제들은 역사학자들이 알아서 연구 할 문제이라...시간도 없고 그냥 지나칩니다. ['부소산' 정상에서 조망] 조망은 좋습니다. 구름만 아니었으면 '천안시 입장면'을 완전 통달하는건데... 앞에 보이는 저수지는 "입장저수지"인듯.... 경부고속도로 지날 때 "입장휴게소"를 지나지요? 왜 '입장휴게소'인지...'입장'이 천안시 소속이라는것...등등..오늘에야 알았습니다. ['부소산' 정상에서 '서운산' 조망] 북쪽으로 지나온 "서운산"이 조망됩니다. 해발이 높다고 철죽이 이제야 만발하고 있는 '부소산 정상'입니다. [선답자들의 표지기] 12:33 "나 왔다 갔노라!~"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철죽과 어우러져 제법 모양을 뽑냅니다. 푸른색만 보다가 분홍색을 보니 마음이 부더러워지는군요. 힘도 솟고.... ['부소문이 고개'로 내려 가는 길] "부소산"에서 특징없는 내림길을 약35분 정도 내려 갑니다. ['부소령'] 12:58 "부소령 扶蘇嶺 268m"-"부수문이고개" "부소산"에서 내려 가면 [57번지방도]가 지나는 "부소령-부수문이고개"를 만납니다. [扶蘇嶺 정상석]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기록이 이곳을 지칭하는듯 하도록 하기 위해 설치한 표석. 아직까지 역사학자들의 일부 설로 남아 있는 "직산 위례성"설을 위 문장이 말하고 있는듯 하게 표지석을 만들어 놨습니다. 위 내용을 자세히 보면 사실 현재의 "하남 위례성"을 더 지칭하는듯 하지 않습니까? [扶蘇嶺 水準点] "부소령"의 높이가 268m라고 알려 줍니다. ['부소령'의 유래] '천안시'의 주장이며 아직까지 검증 된바는 없으니 참고만 하시길... 단지, '삼국사기'에 "직산 위례성"은 명기 되 있어 여러 설이 난무하는 것입니다. 강과 논밭이 없는 산꼭대기에 도읍을 세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좀 그렇지요? [詩] 각자 감상 하세요 ['위례산' 산행 들머리] 13:02 "위례산 들머리"는 '부소령 표지석'이 있는 넓은 수렛길로 올라 갑니다. [수렛길] 왠만한 차량들도 운행 할수 있는 넓은 수렛길을 끝까지 따라 올라 갑니다. 무척 쉽지요? ['위례산' 조망] 13:11 숲 터널인 수렛길을 10여분 올라 가면 숨통을 열어 주는 곳이 나오고... "위례산 정상"이 보이는듯 하고.... [쉼터] 13:15 쉼터를 지나며.... ['위례산'으로 가는 길] 쉼터를 지나면 길은 점점 좁아 지기 시작합니다. [쉼터] 13:27 철죽이 만발했다가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멋진 쉼터도 지나고.... [쉼터] 쉼터를 두세개 더 지나면.... ['위례산' 갈림길] 13:45 ☆길조심☆ 이정표가 서 있는 사거리를 만납니다. "위례산"은 여기서 급 좌회전하여 올라 갑니다. 길조심을 해야 하는 곳입니다. ['위례산' 갈림길 이정표] 카메라 밧테리를 하나 더 가지고 다니는데 밧테리가 소진되어 교환하려고 하니 보조 밧테리를 어디에선가 잃어버렸다는 것을 이곳에서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제부터 카메라 밧테리를 최대한 아끼며, 중요한 것만 촬영하고 보조적인 것들은 휴대폰으로 촬영을 합니다. 그래서 사진 크기와 색감이 나쁩니다. ['위례산' 갈림길 입구] 갈림길에서 "위례산 정상" 방향으로 들어 가면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산객들을 안내 합니다. ['위례산' 정상으로 가는 길] 갈림길에서 약300m쯤 오름짓을 하면..... ['위례산' 전위봉] 13:56 먼저 "위례산 전위봉"이 나타 납니다. 어쩌면 이 봉우리가 가장 높은 "위례산 정상"일지도 모릅니다. 올라 가면.... ['위례산' 전위봉 돌탑] 돌탑 두개와 삼각점이 있는 전위봉 삼각점이 있는 걸로 보아 이곳이 최정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위례산 전위봉'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 정상은 여기서 100여m 더 전진합니다. [위례산 정상] 13:59 "위례산 慰禮山 523m" '백제의 첫 도읍지' 운운하는 곳이라 기대 했는데 초라했습니다. "위례산성 안내판"과 표지석, 정상석, 이정표가 쓸쓸히 정상임을 알리고 있을 뿐... [위례산 정상석] '천안'에 있는 산들의 정상석은 이런 모양으로 통일시켰더군요. [위례산성 안내판] "위례산성"을 안내하고 있는 안내판입니다. 스스로 백제의 도읍지 '위례산성'이라기 보다는 방어를 목적으로 한 산성으로 보인다고 기술하고 있군요. 그러면 그렇지 이런 산꼭대기에 뭔 도읍을 정하겠습니까. 도읍은 강이 흐르는 넓은 평야지대에 설치해야 먹고 살수 있지요 [갈림길 쉼터] 14:03 (23분간 점심식사) "위례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 가면 쉼터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길로 내려 갑니다. ['우물목 고개' 방향] 14:27 갈림길에서 조금 내려 가면 안부에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우물목고개 2.2km]방향으로 갑니다. ['463m봉-삼거리'로 가는 길] 13분 정도 오름짓을 하면.... ['463m봉-삼거리'] 14:40 "463m봉" 뾰쪽한 봉우리에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삼거리 봉우리인데 우측으로 90도 꺽어 내려 갑니다. ['463m봉-삼거리' 이정표] "사리목고개 1.6km"로 갑니다. ['성거산' 조망] "463m봉 삼거리"에서 "성거산"이 조망됩니다. "성거산" 정상에는 군부대 레이다 기지가 있어 쉽게 "성거산"임을 알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많이 걸었는데 다시 저 산을 넘어 가야 합니다. 휴~ ['우물목 고개'로 가는 길] 고도를 낮추며 "우물목 고개"로 내려 갑니다. 통행 흔적이 거의 없는 낙엽길을 푹신 푹신 밟으며 ... [우물목 고개] 14:53 푹신 푹신한 낙엽길을 10여분 내려 가면 임도를 만나고 오리지날 "우물목 고개"가 나타납니다. "우물목 고개"는 사거리 갈림길입니다만, 정맥길은 직진해서 갑니다. ['우물목 고개' 돌탑] "우물목 고개"에는 성황당 고개같은 느낌을 주는 돌탑과 오색천이 걸려 있습니다. ['사리목 고개'로 가며 '성거산' 조망] 15:07 '우물목 고개"에서 조그만 봉우리를 하나 넘어 가면 송전탑을 지나게 되며 오늘 올라야 할 "성거산" 정상의 군부대가 다가 오는군요. [사리목 고개] 15:09 "사리목고개" '전혁진씨'가 그린 산행지도에는 "우물목 고개"로 잘못 기재되 있는 "사리목 고개"를 지나 갑니다. 여기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성거산 군부대 정문"까지 걸어 올라 가야 합니다. ['성거산'으로 가는 길] 지루하고 지긋지긋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40분 이상 걸어 올라 갑니다. 중간에 '천주교 성거산 성지'가 있을 뿐 인적없는 아스팔트 도로를 갑니다. [체육시설] 15:20 이런 곳에 왠 체육시설? 돈 쓸 곳이 없나 봅니다. 이렇게 걸으면 운동인데 또 운동기구를 이용해 운동을 하라구? 에휴~~ 지금도 피로해 죽겠는데... [천주교 성거산 성지] 15:21 조선시대 말, 천주교를 믿던 신도들이 조정의 종교 말살정책으로 피난와 숨어 살며 끝까지 천주교를 믿으며 살다가 순교 한 곳이 주로 "경기도와 충청도의 금북정맥 산줄기"였다는 것을 이번 '금북정맥'을 종주하며 확실하게 느낄수 있었습니다. ['성거읍'과 '천흥저수지' 조망] 15:24 날씨만 좋았으면 "하늘이 편안하다는 天安"을 만끽 할수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가 조망됩니다. [군부대 정문] 15:49 드디어 군부대 정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공군부대 - 레이더 시설이 있는 공군기지 인듯합니다. "성거산"으로 가는 길은 정문 좌측에 있습니다. 인적 없는 곳에 사람이 하나 늦은 시간에 나타나니 경비병들이 나와 봅니다. 수고 한다고 말해 주며 좌측 군부대 철조망 울타리로 갑니다. [군부대 우횟길] 15:51 정문 좌측 울타리로 가면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펄럭이는 군부대 우횟길이 나옵니다. 이 철조망 울타리가 우측으로 90도 꺽이는 곳까지 끝까지 가서 우측으로 갑니다. [군부대 우횟길] 15:53 철조망 울타리가 우측으로 90도 꺽이는 곳에서 바라보면 길이 보입니다. 오리지날 정맥길은 우측 군부대 안을 통과하며, "성거산 정상"도 군부대 안에 있겠지만 군부대로 인해 어쩔수 없이 등산객들을 위한 별도의 "성거산 정상석"을 세워둔 봉우리가 여기서 보입니다. 화살표가 표시된 봉우리까지 가서 좌측 "성거산"으로 갑니다. ['성거산'으로 가는 길-우횟길] 16:02 군부대 철조망 울타리를 10여분 따라 가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좌측길은 우횟길로 지름길입니다. 정맥길에 조금 더 충실하려면 조금 더 올라 가서 좌측으로 가면 됩니다. [성거산 정상] 16:09 "성거산 聖居山 579.1m" 대간-정맥꾼들의 지침서인 "여암 신경준선생"의 "山經表"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 있습니다. "聖居山 稷山 東二十一里 上有慰禮城" '성거산은 '직산' 동쪽 21리에 있고 윗쪽에 '위례성'이 있다. 神聖이 산다는 "聖居山"인데, 실제 정상에는 군부대가 주둔해있고, 등산객들을 위한 봉우리는 초라한 모습으로, 힘들여 오른 산객들에게 실망을 안겨 줍니다. 이곳에서 10여분 휴식을 취하고 우측 급경사 내리막으로 내려 갑니다. [성거산 정상석] (10분 휴식) '성거산의 유래' 인용 이 산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삼국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분주 할 때 직산면 수헐원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동쪽 산을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영롱함을 보고 신령(神靈)이 사는 산이라 하여 거룩할 성(聖)자와 거할 거(居)를 써서 성거산이라는 명칭을 지어 주었고 친히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도 이 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급경사 내리막길] '성거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입니다. [갈림길] 16:24 급경사 내리막을 5분 정도 내려 가면 갈림길을 만나는데, 우측에 뭐가 있나 하고 올라 가 봤더니 힘만 뺄뿐 아무것도 없고 조망도 없어 바로 내려 왔습니다. [급경사 내리막길] 다시 급경사 내리막을 13분 정도 내려 갑니다. ["415m봉" 조망] 내리막을 한없이 내려 가며 앞을 보니 다시 올라야 할 "415m봉"이 앞에 보입니다. 에구~~ 내려 가면 또 그 많큼 올라야 하는데....휴~ [만일고개] 16:37 '성거산' 정상에서 가파른 내림길을 20여분 내려 가니 "만일고개"가 나옵니다. '만일사"라는 절간이 바로 옆에 있어 붙여진 고개인듯.... ["415M봉"으로 오르는 길] "성거산"에서 내려 올때 다시 오를려면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쉽게 '만일고개'에서 10여분 오름짓을 합니다. [국민은행 연수원 갈림길] 16:48 "만일고개"에서 10여분 오르면 "415m봉" 정상이 나오는데 이곳이 "국민은행 연수원"으로 가는 길과 갈라지는 갈림길 입니다. [걸마고개] 16:57 "415m봉"에서 10여분 내려 가면 "걸마고개"가 나오며... ['유왕골고개'로 가는 길] 완만한 오름길을 10여분 다시 오르면... ['상명대학교' 갈림길] 17:14 "상명대학교 천안 캠퍼스"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태조산" 방향으로 갑니다. [유왕골고개] 17:17 오늘 '2구간' 정맥 산행의 날머리인 "유왕골고개"에 도착했습니다. "태조산" 주요 등산로 인듯 사각 정자를 비롯해 시설이 많습니다. ['유왕골고개' 이정표] "태조산 2.36km" "성거산 3.43km" "유왕골(약수터) 160m" "각원사 1045m"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유왕골고개 유래] ['각원사'로 내려 가는 길] "유왕골고개"에서 "각원사"로 내려 가는 길도 경사가 심하고 자갈길입니다. 다음 구간에 오를려면 처음부터 땀 좀 흘릴듯..... 카메라 밧테리가 없어 볼거리들을 생략하며 내려 갑니다. [각원사=안서동 갈림길] 17:33 "유왈골고개"에서 15분 정도 내림짓을 하니 "각원사 갈림길"이 나오는데, "각원사"는 다음 3구간에 오를 때 들리기로 하고 바로 우측 길을 따라 "안서동 버스 종점"으로 내려 갑니다. [각원사 연못] 17:42 지름길로 내려 가니 바로 "각원사 연못"이 나오며 연못 뒤로 "각원사"가 보입니다. 초파일이 다가 오니 모양새 있게 꾸미고 있습니다. 수행하는 절간이 점점 더 화려 해 집니다. ['각원사'앞 식당가] "각원사" 연못을 지나 내려 가니 식당가를 비롯한 유락시설이 줄을 서 있으며 [안서동 버스 종점] 17:45 "안서동 버스 종점"에 도착하며 오늘 산행을 종료 합니다. 우측 앞에 보이는 곳이 버스 종점 겸 '각원사' 주차장인데, 화장실이 있어 들어가 씻고 옷을 갈아 입고 나와 [24번 버스]를 타고 "천안역"으로 나갔습니다. 평상시엔 이곳에서 "천안역"까지 15분 정도면 가는 거리인데, 출퇴근 시간 천안의 교통체증도 엄청 나더군요. 무려 45분이 걸려 천안역으로 갔습니다. 정맥(배티고개→유왕골고개) : 19.2km 8시간 35분 안성 상중리 버스종점→배티고개 : 1.5km 30분 천안 유왕골고개→안서동 버스 종점 : 1.8km 30분 총산행거리 : 22.7km 총산행시간 : 9시간 35분 사용 경비: 왕복 차비 총4,000원 뿐이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홀로 가는 금북정맥..정말 싸게 다닙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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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가는 금북정맥 첫구간 산행기 칠장사-3정맥분기점-칠현산-덕성산-사장골정상- 무이산-고라니봉-옥정치-배티고개 아!~ 길은 가기 위해 존재 하는가 돌아 오기 위해 존재 하는가 봄 냄새가 진동하는 오월에 다시 길을 떠납니다. "錦北正脈" 그 끝에 닿으면 여름이려나~ 가을이려나~ 눈이 내릴려나~ 세월 따라 흘러 가는 산행길 [금북정맥 전체구간] "금북정맥 錦北正脈"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이 세개의 정맥이 분기하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칠장산"에서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안흥리'까지 약280km의 산줄기인 "금북정맥"을 갑니다. [첫구간 산행도] '금북정맥'의 첫구간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칠장사"에서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에 있는 "배티고개"까지 22.9km를 갑니다. 정맥 : 19.5km 칠장사-3정맥분기점 : 1.4km 배티고개-금광휴게소 : 2km [평택역] 8:00 2012년 5월 3일 (목) "평택역" 안성의 "칠장사"를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평택'까지 '전철1호선'을 타고, "죽산버스터미널"로 [370번 좌석버스]를 타고 갑니다. "죽산"에서 "칠장사"로 가는 버스는 오전 "9시 30분" 정각에 있으므로 '평택역'에는 8시 이전에 도착해야 합니다. 저는 정확히 오전 8시에 평택역에 도착하여.... [평택역 광장] '평택버스공용터미널'로 가기 위해서는 '평택역'앞 광장으로 나와, 앞에 있는 도로의 우측으로 100m정도 갑니다. [평택공용버스터미널] 8:02 '평택버스공용터미널'에서 8시 10분경에 출발하는 [370번 좌석버스]를 타고 "죽산"으로 갑니다. [370번 좌석버스]는 10~15분에 한대 꼴로 출발하니 자주 있어 편리합니다. '죽산'까지 1시간 5분 정도 걸리므로 "8시 15분 버스"까지는 타야 합니다. [죽산버스터미널] 9:20 '평택역'에서 1시간 5분이 걸려 "죽산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인데 지명에 대해선 지난 한남정맥 종주기에서 이미 언급한바 있습니다. 이 지역의 面 이름들이 "죽일면" "죽이면" "죽삼면"이었는데, 발음상 좋지 않아 고쳤다고.. "죽일면"은 "일죽면"으로...."죽이면"은 "죽산면"으로...."죽삼면"은 "삼죽면"으로....ㅎㅎ [죽산버스터미날 버스시간표] '서울남부터미널' '동서울터미널'에서 직행시외버스가 30분 정도에 한대 꼴로 운행하고 있으며, '수원' '안양' '인천' '성남'등 여러곳에서 이곳으로 운행하는 시외버스가 많이 있으니 인터넷 검색하여 편리한대로 교통편을 선택 할수 있습니다. 단, "칠장사"행 버스는 하루에 네번만 운행하니 이 시간에 맞추어야 하며,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엔 12,000원 정도 "죽산버스터미널 운행 시간표" 상세버스시간표 http://cafe.daum.net/janghobus 여기 클릭 ["3-2번" 칠장사행 시내버스] 9시 30분 정각에 출발하는 [3-2번] 안성시내버스를 타고 "칠장사"로 향합니다. 약25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입니다. 이 버스 운전기사는 친절하기로 유명해서 TV에도 출연 했다죠? 오늘로서 세번째 만남인데 여전히 친절했습니다. [칠현산 칠장사] 9:48 "죽산버스터미널"에서 약25분이 걸려 "칠장사"에 도착했습니다. 조용한 "칠장사 일주문" 앞에서 걷고 또 걸을 생각을 하면서 "금북정맥" 으로 올라 갑니다 [칠장사] "칠현산 칠장사"에 대해선 지난 "한남정맥 첫구간 산행기"에서 언급했으므로 오늘은 그냥 지나 칩니다. [산행 들머리로 가는 길] "칠장사"에서 "3정맥분기점"으로 올라 가는 길은 "나한전"-"혜소국사비"가 있는 곳으로 먼저 올라 갑니다. ['나한전' '혜소국사비'] 100m쯤 올라 가면 "나한전"과 "혜소국사비"가 있는 전각이 보입니다. 입시철이 다가 오니 학부형들을 꼬시는 현수막이 눈길을 끕니다. '암행어사 박문수'와 관련된 이야기는 지난 "한남정맥 산행기"에서 이미 알려 드린바 있지요? 잊어 버렸다구요? ㅎㅎ 산행을 하면서 다시 한번 알려 드리죠 [칠장사] "혜소국사비"가 있는 전각에 올라 "칠장사"를 내려다 봅니다. "칠장사"와 더불어 올라 온 길도 잘 알수 있습니다. [산행 들머리] 초라한 "나한전" 입시철이 되면 저곳에 수많은 학부형들이 자기 자식들의 성적 향상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러 찾아 오는 곳인데, 너무 볼품없어 보이지요? 이나저나 산행 들머리는 "나한전"과 "혜소국사비" 사이로 나 있습니다. [출발] 9:58 "나한전"을 지나면 산길이 열리는 곳에 선답자들의 수많은 표지기들이 반깁니다. 이곳은 "한남금북" "한남" "금북" 3정맥으로 가는 들머리여서 더욱 많은듯합니다. [登路]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13분 정도 올라 갑니다. 오름길에는 산죽이 많다는게 특징이라면 특징..... [갈림길] 10:11 산죽들의 호위를 받으며 13분 정도 오름짓을 하면 처음으로 갈림길을 만납니다. 좌측으로 "금북정맥"이 뻗어 가지만, 먼저 우측으로 "3정맥분기점"으로 올라 분기점에서 출발하여 이곳으로 다시 와 지나 가야 합니다. [갈림길에서 '3정맥분기점' 조망] 벌써 나뭇닢들이 날개를 활짝 펴기 시작하여 조망이 어려워 지기 시작합니다만, 갈림길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3정맥분기점봉"을 볼수 있습니다. 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갈림길] 10:16 갈림길에서 5분 정도 오르면 다시 갈림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오는데, 우측으로 30m쯤 올라 가면 "3정맥분기점봉"입니다. [3정맥 분기점] 10:17 "한남정맥" 종주를 시작하기 위해 지난 1월 18일에 올랐었던 "3정맥분기점봉"에 4개월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계절이 바뀌었군요. 아주 오래 전이었던 것 같은데 날짜로 따져 보니 불과 4개월 전이었군요. 이제 푸르른 5월에 "錦北正脈"을 시작하게 되는데.................... [3정맥분기점 이정목] "한강"을 기준으로 "한남정맥"을 다녔는데, 이제 "금강 錦江"을 기준으로 "금북정맥"을 갑니다. [환담] 목요일에 빛양산을 쓰고 산에 놀러온 아가씨들이 "여기가 정상인가?"라며 올라 왔으니 등산이 아닌 관광을 온것이겠지요? ㅎ 그래서 이곳 "3정맥분기점"의 의미와 "칠장사"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 주었습니다. 산에 갈때, 알고 가면 아는 많큼 더 많은 것이 보이는 것이니까요. 또 등산에 취미도 갖게 할겸.. 만나 반가웠어요~. 앞으로 등산을 많이 하세요~ 생활의 활력소가 됩니다. 이나 저나 이야기 들려 주다가 30분이 훌러덩 지나 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늦은 시간에 출발하는데 앞으로 8시간을 가려면..... 조금 염려됩니다. [한남정맥으로 가는 길] 확실히 "한남정맥"은 인기가 더 있는 모양입니다. "한남정맥"으로 가는 길에는 무수히 많은 표지기들이 성황당을 방불케 합니다. [금북정맥으로 가는 길] 10:50 "금북정맥"으로 가는 길에는 표지기가 몇개 없는걸 보니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듯..... 더 멀고 험난해서 일까? ['3정맥분기점'에서 '금북정맥' 구글어스] 먼저 "3정맥분기점봉" 주변을 구글어스로 전체적 지형을 알아 보겠습니다. 별도로 설명 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글어스가 모두 보여 주니까요. 百聞이 不如一見. 여기서 "금북정맥"을 오전 10시 50분에 출발합니다. "금북정맥"은 이제 "3정맥분기점봉"을 완전히 뒤로 하며 '태안반도'의 끝까지 약280km를 갑니다. [갈림길] 10:53 "3정맥분기점봉"에서 3분 정도 내려 가면 조금전에 지났던 "칠장사 갈림길"을 다시 만납니다. 우측길로 그냥 지나칩니다. [헬기장으로 가는 길] 한두개의 조그만 봉우리를 10여분 진행하면.... 산행을 시작하며 "칠장사 나한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 드린다고 했죠? "암행어사 박문수" 아시지요? 대한민국에서 초딩만 되도 아는 인물 - "암행어사 박문수" '박문수'는 이곳 아랫 동네인 '병천'이 고향입니다. 유관순 누나랑 같은 고향이죠. 그리고 '박문수'라고 하면 암행어사로만 거의 알려져 있죠? 사실 박문수는 암행어사를 3년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박문수는 과거시험의 문과에 장원급제를 하고, 지금으로 말하자면 '공인회계사'같은 회계 경리 업무에 밝은 그런 관리였습니다. 그런데 3년간의 암행어사 시절 숱한 일화들 때문에 암행어사로 훨씬 더 알려졌을 뿐이고, 세간에 들어 나지 않은 경제 치세에 더욱 공이 큰 경제통 관리였습니다. 그런데 "칠장사 나한전"과 '박문수'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내용은 간단합니다. 이 '박문수'가 고향인 '병천'에서 한양으로 과거시험 보러 갈때 여기 '칠장사 나한전'에 들려 합격기원 기도를 하고 가서 장원급제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도 입시철만 되면 학부형들이 개나 소나 몰려와 기도를 드린다는거 아닙니까. '박문수'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조청유과를 부처님께 올리고 그날 밤을 '칠장사'에 머물렀는데 꿈에 과거시험문제를 현몽하였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장원급제 할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컨닝? ㅎ 부처님의 시험문제 사전유출? ㅎ 뇌물 수수죄? 이렇다면 부처님은 만인에 평등한 사랑을 베푸는게 아니지요?....ㅎ 종교!!~ 이거 어디까지가 이율배반인가? [헬기장] 11:03 첫번째로 헬기장을 만나는데, 가는 방향으로 "칠현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부부돌탑] 11:07 헬기장에서 잠시 내려 가면 돌탑이 있는 안부를 만나는데 제법 유명세를 타는 "부부돌탑"입니다. "부부탑 칠순비"를 보며 사진 촬영을 하는데 이 비석의 뒷면을 촬영한 사람은 별루이더군요 제가 2008년 5월 24일에 왔을 때에는 돌탑의 규모가 작아 비석 뒷면 촬영하기가 쉬웠는데 그 동안 돌탑이 커져 비석 뒷면 촬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만, 간신히 촬영했습니다. 비석의 뒷면을 봤더니 "김성기 임경순" "광혜원 중고개"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아마도 여기가 "광혜원의 중고개"인데 이곳에 "김성기, 임경순"이라는 칠순 노부부가 또는 그 자손들이 기념비와 돌탑을 쌓았으리~~ 저는 사람 이름 지을때 '성기'라고 짓는건 좀 민망스럽다고 생각되는데...ㅎ 姓이 呂氏인 사람한테도 '성기'라는 이름을 붙여 놨더군요. 참~나 ㅎ 유명한 영화감독 '홍성기'씨, 영화배우 '안성기'....안성기는 성기가 아니라는 말인가요? '성기'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무척 많더군요. 농담좀 했습니다..^*^ ['칠현산'으로 가는 길] "칠장산"에서 "칠현산"까지 가는 길의 우측에는 "안성베네스트GC"가 있습니다. 이 골프장의 옛 이름은 "세븐힐스 CC"였죠? 저도 몇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부부돌탑"에서 20여분간 선명하고 갈림길 없는 외줄기 특징없는 산길을 갑니다. [칠현산 정상] 11:28 큰 오르내림 없이 금북정맥을 따라 걷다 보니 느닺없이 불쑥 "칠현산 정상"이 나타 납니다. "칠현산 정상"에는 전에는 없던 돌탑 두개와 정상석, 이정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삼거리인데 "명적암"으로 하산하는 길과 "금북정맥"을 따라 "덕성산"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칠현산 정상] "칠현산 七賢山 516.2m "혜소국사"가 일곱명의 도적떼들을 賢人으로 開化시켰다고 원래 "七賢寺"라고 불려지다가 그 일곱명의 賢人들이 오래토록 머물렀다고 "七長寺"로 개명되었다는 현재의 "칠장사". 그래서 이곳의 산 이름이 "칠현산"과 "칠장산"으로 불리워 지게 되었답니다. ['칠현산'에서 바라보는 '덕성산'] "칠현산 정상"에서 가야 할 "덕성산"을 바라 봅니다. "덕성산"은 정맥 마루금에서는 약간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한강"과 "금강"의 水界는 "덕성산" 옆 "덕성산 갈림봉"이 되는 것이죠. [헬기장] 11:30 "칠현산 정상" 바로 아래에는 헬기장이 있고.... ['곰림정상'으로 가는 길] 헬기장을 지나 6~7분 거의 평지를 가면.... [곰림 정상] 11:37 정상석에 페인트로 쓰여진 "곰림 정상"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이정표에는 "공림정상"이라고 표기 해 놨습니다. 아랫 마을 이름이 '곰내미골'이니 "곰림 정상"이 맞는 지명이라고 볼수 있는듯한데...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 그냥 넘어 갑니다. ['곰림정상'에서 바라보는 '덕성산'] "곰림정상"에서는 "덕성산"이 더욱 가까이 보입니다. ['곰림정상'에서 바라보는 '안성시내'] "곰림정상"에서 "안성시내"를 조망합니다. 먼저 눈에 들어 오는 호수가 하나 보이는데, 이 호수가 "안성 팔경" 중에 으뜸으로 꼽는다는 "금광호수"였습니다. 특히 낚싯꾼들에게 인기있는 곳이랍니다. ['덕성산'으로 가는 길] "곰림정상"에서 "덕성산"까지 23분 정도 오르내림길을 반복하며 갑니다. 길은 선명하며 갈림길이 없어 길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광혜원 조망] "덕성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동쪽으로 "진천군 광혜원면"이 조망 됩니다. 특히 "광혜원 저수지"가 바로 아래에 있으며, 건너편엔 "한남금북정맥"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지역이 "금강 錦江"의 최상류가 되겠으며, "광혜원 저수지"의 물도 "금강"으로 흘러 가는 "錦江水界"가 되겠습니다. [덕성산 조망] "덕성산'은 더욱 가까워 집니다. 1~2주 사이에 산은 완전히 푸르러졌습니다. 잠깐이면 푸르러 지고...잠깐이면 낙엽이 됩니다. [덕성산 登路]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덕성산 갈림길] 12:00 "덕성산 정상"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정표가 서 있을 뿐, 이곳이 "덕성산 갈림길"이라는 표시는 어느 곳에도 없으니 각자 알아서 갔다 와야 합니다. [덕성산 갈림길 이정표] 이정표에는 "생거진천"이라는 地名이 아닌 일반적인 말이 적혀있어 혼란스럽지만 "병무관 3.5km"라고 가리키는 곳이 "덕성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갈림길에서 바라보는 '덕성산 정상'] 갈림길에서 "덕성산 정상"은 그야말로 지척에 있습니다. 2008년도에 왔을 때엔 여기까지 와서 정상이 어딘지 몰라 밟지 못했었습니다. 여기서 바라보는 "덕성산 정상"을 지나 뻗어 내리는 산줄기가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道界를 이루는 경계선이 됩니다. 즉 좌측은 '경기도'이며, 우측은 '충청북도'가 되는 것입니다. [덕성산 정상] 12:03 맑끔하게 단장된 "덕성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드디어 "충북 진천 鎭川"땅에 온 것이군요. "생거진천 生居鎭川"이라는 말이 더욱 친근감을 주는 이유는 그 뜻이 "살아서는 진천에서 살고"라는 뜻이여서 그런 느낌이 오는 듯 합니다. "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는 말의 정확한 語原에 대해선 아는 분들이 거의 없고 단순히 "진천"은 살기 좋은 곳이고, "용인"은 죽어서 뭍히기 좋은 곳 정도로 알고 있지요? "진천읍" 공식 홈페이지에서 정확한 語原을 찾을수 있었습니다. 인용합니다. [옛날에 진천 어느 생원의 딸이 용인으로 시집가서 아들을 낳고 살다가 남편이 죽어서 청상과부가 되었다. 그래서 어린 아들을 시집에 두고 진천으로 개가를 하여 아들 낳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데 용인에 두고 온 아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 한편 용인의 아들이 장성하여 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진천에 찾아왔다. 진천 아들은 안된다고 하였다. 서로 싸우다가 용인의 아들이 진천의 원님에게 소장을 내어 해결해 달라고 하였다. 고을 원님은 고심끝에 생전에는 진천에서 살다가 죽어서는 용인에서 제사 지내라는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死居龍仁)"의 판결을 내렸다. 여기에서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말이 나왔다.] '진천읍' 스스로가 밝히는 것처럼, "生居鎭川死居龍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죠? 단순히 "진천"은 살기 좋은 곳이고, "용인"은 죽어서 뭍히기 좋은 곳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개가한 여자가 아버지가 다른 아들들의 효심에서 비롯된 판결문에서 온 것이었군요. ㅎㅎ [덕성산 정상] "덕성산 德聖山 510m"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의 경계가 되는 산입니다. 옛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기도 했다는 "덕성산"이라 山城의 흔적도 발견된다는 군요. 조금전 갈림길 이정표에서 "병무관 3.5km"라는 것을 보았는데, "병무관"은 이 산 아래 '광혜원면'에는 옛 신라시대 화랑들이 훈련하던 연무대와 무기를 보관하는 병기고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덕성산 등산 안내도] "덕성산" 아랫마을들의 이름이 안내도에 나오는데..."무술마을" '병무관" "비들목"등... "병무관"은 위에서 알아봤고, 무술마을은 '김유신장군'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라 붙여졌다고 하며 "비들목"은 비둘기를 통신전령으로 훈련 시키던 곳이라고 전해 진답니다. 이와 같이 이 지역은 신라시대 군사 요충지 였음을 알려 주는 지명이 많이 있군요. [진천군 광혜원면 조망] "광혜원 廣惠院" "광혜원"이라고 하면 고종시대에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국립 병원"의 이름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찌하여 이곳의 地名이 "광혜원"인지 전부터 궁금했었습니다. 미국인 '알렌'이 고종의 허락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한 현대식 국립병원의 이름이 "廣惠院"이고...많은 사람들에게 의료혜택을 주겠다는 의미이지요? 현재 이 병원의 이름은 '연세대 의대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이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의 "광혜원"은 무슨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광혜원면"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인용합니다 [광혜원이라는 원이 있던 자리이다. 지금의 광혜원중학교 남동쪽이 된다. 원은 고려,조선시대에 역과 역 사이에 두어 공무를 보는 벼슬아치가 묵던 공공 여관이다. 원터 옆에 정자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새로 부임하는 관찰사와 퇴임하는 관찰사가 서로 관인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국립병원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옛날에 공공 여관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군요. ㅎ [가야할 '옥정치'방향] 앞으로 가야 할 "금북정맥" 산줄기가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꾸불 꾸불 ~ 그리고 이 "금북정맥 산줄기"는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道界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장골정상' '무이산' '고라니봉'을 지나 "옥정치"에서 그 뒤로 보이는 산줄기를 오늘 넘어 가야 합니다. 휴~ [덕성산 갈림길] 12:20 "덕성산 정상"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떼우고 다시 "덕성산 갈림길"로 돌아 와 정맥길을 갑니다 ['454.6m봉'으로 가는 길] "덕성산 갈림길"에서 크고 작은 봉우리 몇개를 넘으며 20여분 진행합니다. [454.6m봉 정상] 13:00 삼각점 외엔 별다른 특징이 없는 "454.6m봉"을 지나게 되고.... ['사장골 정상'으로 가는 길] "454.6m봉"에서 다음에 올라야 할 "사장골 정상"을 바라봅니다. ['평택-제천 고속도로' 조망] 13:05 오른쪽 "경기도 안성"방향으로는 "평택-제천간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달리고 있으며 [뒤돌아 본 '덕성산'] "무티고개"로 가며 뒤돌아 본 지나온 산줄기들입니다. "덕성산"에서 봉우리 몇개를 넘어 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무티고개'로 가는 길] 록음이 우거지는 길에 피어난 철죽을 즐기며 20여분 다시 갑니다. [무티고개] 13:24 사거리 갈림길인 "무티고개"가 나옵니다. '칠현산' 근처에서 서둘러 앞질러 가던 저 여자는 '덕성산'과 여기서 다시 만나는군요. 뛰어야 벼룩. 한남금북, 한남을 하고 금북을 시작한다는 여자인데 고개 고개에서 신랑이 대기하고 있어 물만 가지고 가기 때문에 빨리 갈수 있다고 자랑을 하더군요. 빨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경관과 역사를 알며 느끼며 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죠 훌라당 지나 갈 바엔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숲속으로 뛰다시피 갑니까? 그럴바엔 차라리 시간과 경비를 아끼며 뒷동산을 다니는 것이 더 낳지 않을까요? 남들 앞에서 오로지 "종주 했다!~"라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무티고개] "무티고개"에는 고개 옆에 돌탑을 하나 쌓아놨군요. 아랫마을 이름이 "무수마을"인데 옛 신라시대 김유신장군이 武術을 연마하던 곳이라는 설과 조선 연산군시대에 사화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 근심을 잊었다는 "無愁"에서 왔다는 설이 있는데, "무티고개"는 '武峙" 또는 無峙"에 근거한다고.... ['사장골 정상'으로 가는 길] "무티고개"에서 20여분 오르내림을 반복하면.... [사장골 정상] 13:43 "사장골 정상"이라는 곳이 나옵니다. 이 산 아래 마을 이름이 "사장골"이라 붙여진 이름이겠죠? "사장"은 '兵武館'과 관련이 있는듯 한데 한자로 쓰면 '射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왜냐하면 옛 신라시대에 화랑들이 이곳에서 활쏘기 훈련을 하던 곳이라서... ['무이산' 정상 조망] "사장골 정상"을 지나며 다음에 오를 "무이산"을 조망합니다. "무이산"도 "덕성산"과 같이 정맥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무이산'에는 우회로가 있어 갈길이 먼 산꾼들에겐 시간을 단축 시켜 줍니다. ['무이산' 우횟길] "무이산 정상"은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기도 하지만, 늦은 출발로 시간이 없어 우횟길을 이용합니다. 10여분 단축 되는듯.... [만디고개] 14:16 돌탑이 있는 "만디고개"를 지나고... ['고라니봉'으로 가는 길] "고라니봉"으로 올라 갑니다. ['고라니봉' 정상] 14:41 "고라니봉" 왜 "고라니봉"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고라니가 많이 서식하는가 보죠 뭐 ['옥정치'로 가는 길] "고라니봉"에서 "옥정치"까지는 20여분 걸리더군요. 오름길이 거의 없는 완만한 내림길을 갑니다. [갈림길] 15:02 "고라니봉"에서 10여분 가면 등산로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이곳에서 직진하는것이 마루금에 충실한 것인데, 사유지를 보유한 주인이 옆길을 이용해 달라고 우측으로 가라는 표시를 해 놓은듯 합니다. 어느 쪽으로 가나 상관 없습니다만, 우측길을 이용해 "옥정치"로 갑니다. ['옥정치'로 가는 길] 갈림길에서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 가면 임도를 만나고, 임도를 따라 계속 나아 가면.... [옥정치] 조금전 갈림길에서 직진해 내려 오는 곳을 만나며, 바로 앞에 "옥정치"가 보입니다. [옥정치] 15:15 "3정맥분기점봉"에서 4시간 25분이 걸려 "옥정치"에 도착했습니다. "칠장사"에서 부터 계산하면 5시간 25분이 걸렸고... [옥정치] "옥정치(옥정재) 玉井峙 해발390m" '경기도 안성시'와 '충청북도 진천군'을 잇는 고갯마루. 안내판에는 "옥정재"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옥정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시죠? 한글표기와 한자 표기를 혼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玉井재"라고 한글 한자를 혼용 할바엔 "玉井峙"라고 모두 한자를 사용하는게 바른 표기. 그래야 한자로 그 뜻을 금방 알수 있습죠. "옥구슬 같은 맑은 물이 솟아 나는 우물이 있는 고개"라는 뜻을... ['옥정치'에서 뒤돌아 보는 구글어스] 여기서 지나온 산줄기를 구글어스로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우측 '광혜원저수지'와 '덕성산'과 '무이산' 사이의 계곡에는 대부분 신라시대에 김유신장군과 화랑들의 무술훈련장과 병기고가 있었다는 곳인데..... 산줄기, 즉 '한남금북정맥'과 '금북정맥'이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옥정치] 충청북도의 마스코트인 "고드미"와 "바르미" "배티고개"로 가는 산행들머리는 이곳에서 길 건너편에 있는데.... ['옥정치'에서 '배티'로 가는 들머리] 15:18 "배티고개"로 가는 산행들머리는 충북의 마스코트인 "고드미"와 "바르미" 건너편에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화살표 방향으로 올라 갑니다. 조금전 "덕성산"과 "무티고개"에서 만났던 여자는 남편이 차려 놓은 밥상을 받아 들고 열심히 먹고 있습니다. 남편이 미리 텐트를 치고 식사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죠. 부럽지요? ㅎㅎ 이제까지 산에 오래 다녔어도 이런 광경은 처음 봅니다. 남자가 산길을 걷고 여자가 기다리며 식사준비하는 것은 몇번 봤어도.... ['옥정치'에서 '배티고개'로 가는 구글어스] "옥정치"에서 "배티고개"로 가는 산줄기를 먼저 구글어스로 확인하고 떠납니다. 이렇다할 산이름을 가진 봉우리도 없는 그렇고 그런 정맥길입니다. 정맥길을 가는 산꾼들이나 다니는 인기 없는 코스가 되겠습니다. [들머리] 충북의 마스코트 "고드미'와 "바르미" 건너편 시멘트 포장도로에 있는 들머리로 올라 가 산길로 접어 듭니다. 아무도 없는 외로운 길을 날이 저물기 시작하는 시간에 발길을 올립니다. [임도 이별] 특징적인 볼거리가 없는 인기 없는 코스여서 산길도 흐릿 할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정맥길은 분명하게 뻗어 있고 갈림길도 거의 없어 알바할 염려는 없습니다. 또한 갈림길에는 선답자들의 리본들이 길안내를 잘해주고 있어 아무른 염려 없습니다. [헬기장으로 오르는 길] "옥정치"에서 13분 정도 오름짓을 하면..... [헬기장] 15:31 이름없는 헬기장이 나오며... ['409.9m봉'으로 오르는 길] 헬기장에서 다시 15분 정도 오르면.... [409.9m봉 정상] 15:47 삼각점이 있는 "409.0m봉"에 오르게 됩니다. "409.9m봉"은 "옥정봉"이라고 누군가 메직으로 써놨군요. 그리고 공식적인 표지판에는 이곳의 높이가 해발 410m라고 표기해 놨습니다. "409.9m"를 반올림하였나? ㅎ 아니면 그동안 산이 키가 컷나 [천룡CC] 좌측에는 "천룡CC"가 나뭇닢 사이로 보입니다. 저도 10여회 "천룡 CC"를 가 라운딩을 해 본적이 있는데, 코스거리는 다소 짧아 쉬운듯한데 퍼팅그린이 어려워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송전탑 봉우리'로 가는 길] "409.9m봉"에서 25분 정도 오르내림을 하며 진행하면.... [송전탑 봉우리] 16:11 처음으로 송전탑이 나타나는 봉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산길은 우측으로 꺽이며 진행 합니다. ['송전탑 봉우리'에서 가는 숲길] 송전탑을 지나 완만한 정맥길을 따라 1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 16:28 조경사업을 한듯한 곳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 갑니다. ["470.8m봉-철판 헬기장"으로 가는 길]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임도가 나오며 임도를 따라 잠시 진행합니다. 앞에는 "470.8m봉"인 철판이 깔린 헬기장 봉우리가 보입니다. [임도 갈림길] 16:32 임도를 따라 가는 것도 잠시, 바로 갈림길이 나타나며 산객들을 숲속으로 인도 합니다. ['철판 헬기장으로 가는 길] 숲속으로 들어 서면 길은 다시 분명해 집니다. 20여분 숲속 오름길을 갑니다. ['철판 헬기장'으로 오르는 길] 마루금 같지 않은 길을 올라 가면.... [철판 헬기장-470.8m봉]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 [470.8m봉-철판 헬기장] 16:52 ☆길조심☆ 철판이 깔려 있는 헬기장에 오릅니다. 백두대간에서 부터 이곳 저곳 산행을 많이 했지만 철판을 깔아 놓은 헬기장은 처음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개새기 한마리가 인적없는 이 헬기장에 나타나 다가 옵니다. 그리고는 어느 여자의 목소리가 개새끼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이리와!~" 계속 덤볐으면 저놈은 오늘 보신탕이 될뻔... ㅎㅎ 여자분은 이 아랫마을에 사는데 이곳에 저 개와 함께 자주 오른다고.... 이곳에서 "배티고개"로 가는 길을 조심해야합니다. 진행 방향에서 4시방향으로 급격히 꺽여 있으며, 이정표도 없어 유의해야 합니다. ['470.8m봉'에서 뒤돌아 본 '칠장산'] 지나온 "금북정맥" 산줄기가 파도처럼 일렁입니다. 저 산줄기를 두발로 걸어 왔다는 것에 자부심이 뿌듯..... [뒤돌아 본 '평택-제천 고속도로'] '덕성산'을 지나 '무티고개'를 지날때 조망했던 "평택-제천간 고속도로"가 이곳에서도 조금 보입니다. ['470.8m봉' 내림길] ['장고개'로 가는 길] 철판이 깔려 있는 "470.8m봉" 헬기장에서 서쪽방향으로 진행합니다. [갈림길] 17:17 이곳에는 갈림길이 두군데 있는데 모두 우측으로 가면 되며,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길을 잘 안내 해 주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습니다. ['장고개'로 가는 길] 산길은 여전히 분명하여 걷기에 좋습니다. 다만 출발을 조금 늦게 해서 저녁 시간이 다가 오는군요. 끝없이 이어지는 숲속을 45분 정도 걷습니다. [장고개] 17:36 철판이 깔려 있는 "470.8m봉" 헬기장에서 45분 정도 숲길을 걸으면 "장고개"라는 곳이 나오는데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한운리'에서 '충북 진천군 백곡면 성대리'로 넘어 가는 고개 랍니다. ['에머슨 GC'로 가는 길] "장고개"를 지나 15분 정도 조막조막한 봉우리를 몇개 넘어 갑니다. [갈림길] 17:52 다시 두번째 갈림길이 나오면 우측으로 가며 [35번 송전탑] 17:55 "장고개"에서 15분 정도 진행하면 [35번 송전탑]이 나옵니다. ['35번 송전탑'에서 '29번 송전탑'으로 가는 길] 선답자들의 표지기들의 인도를 받아 3분 정도 잠시 가면 ['29번 송전탑'] 17:58 [29번 송전탑]을 지나고 ['에머슨 GC'로 가는 길] [29번 송전탑]에서 7분 정도 진행하면 시야가 트이기 시작합니다. "에머슨 GC" 옛 이름 "중앙CC"가 나옵니다. [묘지-연안 이씨 숭묘원] 18:05 길고 긴 숲 속을 빠져 나오면 시야가 트이면서 묘지가 나오는데, 이 묘지는 "연안 이씨 숭모원"이라는 가족 묘지 이더군요. "에머슨(중앙)GC" 안에 있는 묘지인데, "연안 이씨"라면 정몽주선생 묘소와 함께 있는 "연안 이씨 저헌공파"의 시조인 "이석형선생"이 먼저 생각 나는 군요. ['에머슨 GC' 통과] "연안 이씨 묘"에서 옆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에머슨(중앙)GC" 안으로 연결되 있는데 이 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 갑니다. '금북정맥' 마루금도 절묘하게 나 있는 곳인데, 모두 골프장 공사로 절개되어 이런 현상이 발생되어 아쉽습니다. ['에머슨 GC' 통과] 조금 내려 가면 앞에 계단이 보이는데 저 계단으로 올라 가 산속으로 들어 갑니다. ['에머슨 GC' 통과] 18:07 이곳은 "에머슨(중앙)GC" 부대시설이 있는 곳이며, 이 건물 앞에 주차장이 있습니다. "중앙 GC"에도 몇번 가 본적이 있습니다. ['배티고개'로 가는 길] "에머슨(중앙)GC"에서 계단을 올라 다시 마루금으로 올라 갑니다. ['400m봉'-'에머슨 GC' 뒷산] "중앙CC"까지 가면 거의 다 간것으로 생각했는데..... 체력도 소진 되어 가는데 여기서 "배티고개"까지 다시 45분 정도 더 갔으니..에휴~ [헬기장으로 가는 길] 또 다시 봉우리를 두어개 넘어 가면.... [헬기장] 18:27 헬기장이 나오고 ['에머슨 GC' 진출입도로] 헬기장을 내려 가면 좌측에 도로가 나타 납니다. 이 도로가 "에머슨(중앙)GC" 진출입로. 갈등이 생깁니다. 이 도로로 내려 서서 가면 조금 편하게 "배티고개"로 갈수 있다는데.. 유혹을 뿌리치고 다시 산길을 따라 갑니다. [삼각점] 18:31 잠시 진행하니 느닺없이 삼각점이 발견되는데, "400m"쯤 되는 봉우리 ['배티고개'로 가는 길] 봉우리를 넘으니 다시 좌측에 골프장진출입로가 보이고.. ['에머슨 GC' 진출입로] 이번에는 진짜 도로로 내려 서서 가고 싶더라고요. 휴~ 그래도 '파란문'이 누구입니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유혹에 빠질순 없지요. ['배티고개'로 가는 길] 조막조막한 봉우리들을 여러개 또 다시 넘어 갑니다. 이렇게 걷는 것이 내 인생........ 그래서 제가 좋아 하는 노래를 "금북정맥 첫구간"의 배경음악으로 깔았습니다. "바람과 나" 한대수 작사 작곡 노래 끝 끝없는 - 바람 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 가는 아~ 자유의 바람 저 언덕 위로 물결 같이 춤추던 님 無名 無實 無感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 볼래 지녀 볼래 물결 건너 편에 황혼에 젖은 산 끝 보다도 아름다운 아~ 나의 님 - 바람 뭇 느낌 없이 진행하는 시간 따라 無名 無實 無感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 볼래 지녀 볼래 하늘 위로 구름 따라 無目 여행하는 그대 인생은 나 인생은 나 ['서운산' 조망]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하는 "서운산"이라 여겨지는 산을 조망되며, 숲 사이로 "배티고개"로 올라 가는 [313번 지방도]가 보입니다. ['배티고개'로 가는 갈림길] 18:51 진행하는 방향에서 갑자기 좌측으로 꺽이는 곳이 나타나는데... 느낌으로는 직진해야 하는듯한데, 수많은 표지기들이 좌측으로 가라고 야단입니다. [표지기] 이렇게 무더기로 표지기가 나타나면 "배티고개"에 다 왔다는 것을 알리는 것 [배티고개] 18:54 도로 개설로 절개한 급경사 내리막을 조심스럽게 내려 갑니다. [배티고개-안성 방향] 18:57 "배티고개"에 도착하니 날은 어두워 지기 시작합니다. "배티고개"도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와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를 잇는 고개 [배티고개-진천방향] "에머슨(중앙)GC" 진출입로가 바로 "배티고개"로 나오는 군요. 이럴줄 알았으면 도로를 따라 나오는건데...ㅎㅎ [배티고개-다음 구간 들머리] "배티" 해발 370m "이티재"라고 표기한 공식적인 도로 안내 표지판.......해도 해도 너무 합니다. 이 고개는 한자로는 "梨峙"로 "배 고개"라는 의미입니다. "梨峙"를 한글로 쓰려면 "배티"로 하거나 "배재""배고개"로 표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곳 안내판에는 이도 저도 아닌 "이티재"라고 짬뽕을 만들어 놨습니다. 하다못해 "梨티"로 하거나, "梨재", 또는 "梨고개"로 하는 것까지는 용서 해 주겠는데 "이티재"는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잘 사용하지 않는 "역전앞""족발"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梨"가 먹는 과일 "배"라는 뜻이니 이 고개의 이름은 다음과 같이 고쳐야 하지 않나요? "梨峙" "梨峴" "배티" "배고개" "배재" "이티재"는 뭔 외계인 "E.T"가 이곳에 와 넘어 간 고개라는 걸로 느껴집니다. ['배티고개'에서 뒤돌아 보는 구글어스] 정맥 산행 시간 : 8시간 총 산행 시간 : 9시간 [금광휴게소-"100번"버스 시간표] "배티 고개"에서 [100번 버스]를 타려면 25분 정도 걸어 '금광휴게소'로 내려가야 하는데 이곳이 "석남사 입구"이기도 합니다. 저는 고마운 분이 승용차를 태워 주어 안성터미널까지 편안하게 갔습니다. 그리고 '평택역'에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금북정맥" 첫구간을 순조롭게 마칩니다. 2구간에서 다시 봐요~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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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가는 금북정맥 마지막 산행기 장재-매봉산-밤고개-성황당고개-부흥산-남산-후동고개-73.7m봉-근흥중- 건지미산-옥녀봉-장승고개-죽림고개-지령산-노적봉-영주봉-안흥진 "금북정맥"의 끝.....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 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하여 친구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난 길 높은 곳에 봉우리는 없는 지도 몰라 친구야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금북정맥 전체 지도] 2012년 5월 3일에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칠장산 3정맥분기점봉"에서 출발하여 2012년 11월 14일에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에 있는 "127m봉-영주봉"까지 약280km를 홀로 걸어서 도착하고 산행기를 씁니다. [산행 개념도] 오늘은 '금북정맥'의 마지막구간'으로 '충청남도 서산시 소원면 영전1리'에 있는 "장재"에서 출발하여 '충남 태안군 근흥면'에 있는 "안흥진"까지 GPS 거리로 23.4km를 갑니다. [태안 버스터미날] 8:56 2012년 11월 14일 (목) 비 흐림 '서산-태안'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첫차를 타고 8시50분쯤 "태안버스터미날"에 내렸습니다. 진눈개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습니다. [장재] 9:25 "태안버스터미날"에서 오전 9시5분 "소원리"행 시내버스를 타고 20여분이 걸려 "장재"가 있는 "소원면 영전1리"에 내렸습니다. [장재] "장재"에서 "안흥진"으로 가는 들머리는 "합동슈퍼"를 지나 "만수가든" 가기 바로전에 좌측으로 열려 있습니다. [장재 들머리] 9:30 이곳이 '금북정맥' 마지막 구간의 출발점인 "장재 들머리"입니다. 선답자들의 많은 표지기가 홀로 가는 산객을 반기며 열열히 환영합니다. [SK 소원2 이동통신중계탑] 수렛길을 따라 100여m 들어 가니 이동통신중계탑을 지납니다. 오늘 날씨는 예상을 깨고 좋지 못했습니다. 구라청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죠. 비가 내리고 간간히 싸리눈도 내립니다. [갈림길] 9:35 조금 더 진행하니 갈림길이 나옵니다. 좌측길은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없었던 길로 생각되는데 아마 새로 길을 내는가 봅니다. 정맥길은 가운데 수렛길을 따라 직진 진행합니다. [수렛길] 7분 정도 평지 수렛길을 진행해 나가면.... [조망이 트이는 곳] 9:42 조망이 트이는 곳이 나오는데... 여기서 우측을 바라보면 다음 사진과 같습니다. [갈림길] 9:42 ★길조심★ 단풍나무 등 조경수를 조림하고 있는 곳 옆으로 수렛길이 이어지는데 조경지가 끝나는 곳에서 우측으로 가는 숲길이 있습니다. [숲길] 숲길로 7분 정도 진행하면... [공터] 9:49 ★길조심★ 공터가 나오는데 어디로 가야하는지 막막합니다만 다행히 가운데에 선답자의 표지기가 하나 보입니다. 화살표 방향으로 들어 갑니다. 그러면 바로 수렛길을 다시 만나는데... [수렛길] 9:50 ★길조심★ 제법 넓은 수렛길을 만납니다. 좌측방향에는 사진 속의 좌측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밭이 있고 시야가 트입니다. 우측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사진 속의 우측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10여m앞에서 바로 좌측으로 90도 방향을 바꿔 가야하더군요. [숲길] 90도 방향을 바꾸면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반기며 길안내를 합니다. 3분 정도 진행하면.... [사거리] 9:53 수랫길 사거리를 만나는데 좌측으로 갑니다. [수렛길]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앞에 흰색 농가가 보입니다. 넓은 수렛길을 따라 갑니다. [사거리] 9:55 ★길조심★ 흰색 농가를 지나면 바로 사거리가 나옵니다. 좌우로는 시멘트포장도로가 지나는데 가로질러 화살표 방향을 따라 묘지로 갑니다 [묘지] 9:57 묘지에 오르면 가운데에 숲속으로 가는 길이 열리고... [숲길] 7분 정도 숲길을 호젓하게 거닐면.... [갈림길] 10:04 ★길조심★ 느낌으로는 직진해야 할듯한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 가야 합니다. 저는 초장부터 무심코 직진해서 잠시 알바를 했습니다. [소나무 조림지 통과] 어수선한 길을 내려 가면 소나무 조림지를 지나는데 소나무가 많이 자라 키높이 이상이어서 내린 비에 옷을 험뻑 적시고.... [묘지] 10:07 소나무 조림지를 빠져 나가니 묘지가 나옵니다. 저는 여기서 직진하여 민가 앞마당을 지나 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좌측으로 가면 바로 [5번지방도]로 내려 갈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오리지날 정맥길은 우측 밭을 통과하여 "매봉산"으로 갑니다. 다시말해 이제부터 [5번지방도]를 따라 "매봉산 입구"까지는 우횟길을 가는 것이니 마루금과는 관계없어 어디로 가나 우횟길입니다. 특히 직진했더니 민가에서 키우는 개씨끼가 얼매나 짖어대는지 주인에게 더 미안하더군요. 후답자들은 좌측길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농가] 10:10 내려 가니 민가가 나오는데, 오리지날 정맥길은 우측 밭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길이 없어 대부분 좌측 [5번지방도]를 이용해 "매봉산"으로 갑니다. [농가 진출입로] 10:12 민가 앞마당을 지나 [5번지방도]로 내려 갑니다. 조금전 묘지에서 설명했던 [묘지에서 도로로 바로 가는 길]을 좌측 황색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으니 참고 하세요. ['5번 지방도'] [5번지방도]에 내려서 바라보면 앞에 낮으막한 산이 보이는데 "매봉산"입니다. 오리지날 정맥길은 우측 밭두렁이지만 길이 나빠 대부분 이 도로를 따라 이동합니다. 약 12분간 도로를 따라 갑니다. ['마금1리' 다목적회관] 10:15 "마금1리 다목적회관"앞을 지나는데 마을이름이 "공수골"이라고 합니다. [라윤목장] 10:21 "라윤목장"이 나오면 "매봉산"이 바로 뒤에 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갈림길] 10:24 ★길조심★ "라윤목장"을 100여m 지나면 우측 산속으로 가야하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전봇대 번호 [6680A-482]를 찾으면 됩니다. 숲길은 4~50m정도로 짧아 금방 시멘트 도로를 만납니다. [시멘트포장도로] 10:26 [5번지방도]에서 4~50m 숲길을 잠시 지나면 시멘트포장도로가 나옵니다. 우측으로 150m정도 올라 갑니다. ['매봉산' 들머리] 10:29 "매봉산 들머리"는 전봇대 번호 [6680A-351]에서 시작되고.... 우측을 바라보면.... ['라윤목장'] 지나온 "라윤목장"과 草地가 보입니다. ['매봉산' 진입로] [매봉산 등로] 10여분 오름짓을 하면..... [갈림길 봉우리] 10:38 ★길조심★ 봉우리에 오르게 되는데, 이 봉우리가 "갈림봉"입니다. 무심코 지나가면 알바. "매봉산"으로 가는 길은 우측 90도 방향입니다. ['갈림길 봉우리'에서 '매봉산' 조망] "갈림봉"에서 바라보면 "매봉산"은 바로 앞에 보입니다. [매봉산 정상] 10:42 "매봉산 鷹峰山 101.6m" 이곳에서는 좌측으로 90도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매봉산 정상'에서 '밤고개'방향 조망] "매봉산"에서 "밤고개"로 가는 길을 바라봅니다. 여기서부터 정신 바짝차리고 가야 알바를 면할수 있습니다. ['밤고개'로 가는 길] "매봉산"에서 5분정도 선명한 완만한 내림길을 내려 가면.... [갈림길] 10:47 ★★길조심★★ 선명한 길은 직진해 가는데..... 좌측에 묘지가 있는 곳에서 좋은 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90도 방향을 획 꺽습니다. ['밤고개'로 가는 길] 묘지의 좌측 끝머리로 내려 갑니다. 5분 정도 잡목 잡풀지역을 통과해 내려 가면.... ['밤고개' 주변 조망] 10:52 온통 붉은색의 황토밭이 펼쳐지는 곳이 나오는데 전봇대가 있는 곳이 "밤고개"입니다. [밤고개] 10:55 밭두렁과 밭을 통과해 가면 "밤고개"가 나오며 직진해 밭두렁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 가야합니다. ['밤고개' 좌측 마을] "밤고개" 좌측 마을을 기억에 남기고.... ['밤고개' 우측 마을] "밤고개" 우측 마을도 추억으로... 농촌도 살기 좋아졌습니다. ['밤고개'에서 '성황당고개'로 가는 밭두렁] 밭두렁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 갑니다. '금북정맥'이 점점 힘을 잃고 엎드려 형세가 기울어 갑니다. 묘지에 올라가 뒤돌아 보면.... [뒤돌아본 '밤고개'] 묘지에 올라 뒤돌아 보면, 지나온 길을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정맥 正脈"이라는 단어가 단어로서 의미를 상실하며 평지화 되고 있습니다. 脈을 다하고 있는 "錦北正脈"............ [숲길] 조그마한 야산을 하나 넘어 갑니다. 이때에 "류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첫차를 놓쳐 두번째 차라도 기꺼이 타고와 정맥길 중간 옆구리에서라도 합류하여 "파란문의 금북정맥 졸업"을 축하해야겠다고, 물어 물어 "밤고개"라고 추정되는 곳에 와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다시 "밤고개"로 되돌아 갔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밤고개"가 아닌 "성황당고개"로 확인이 되어 다시 "성화당고개'로 갑니다. "류산님"이 동행한다니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 집니다. [성황당고개-오거리] 11:11~11:16 (5분간 휴식) "성황당고개-오거리" "류산님"이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금북정맥길에서 사람 만나기는 쉽지 않았기에 더욱 반가웠습니다. 일산에서 태안반도의 끝 어느 農路까지 홀로 찾아와 함께 해 주겠다는 그 뜻을 생각하면... 이제부터 "류산님"과 금북정맥 마지막길을 함께 걷습니다. "류산님"에 대해선 마지막에 얘기하기로 하고.... ['성황당고개' 좌측 마을] ['성황당고개' 우측 마을] '네이버 지도'를 보니 좌측이 "밤골마을"이고 우측이 "생여골 마을"로 표기되 있더군요. [수렛길] '전혁진씨 개념도'에는 "오거리"라고 표기된 곳이 "성황당고개"입니다. 시멘트포장도로 사거리에 비포장 수렛길을 합쳐 "오거리"입니다. 비포장 수렛길을 따라 2분 정도 진행하면.... [공터] 11:18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미리 공부하고 간 10시 방향으로 갑니다. [마을 통과] 11:20 넓은 공터에서 10시 방향으로 숲을 2분 정도 통과해 내려 가면 넓은 밭이 나오는데 밭을 가로질러 통과 합니다. [마을 통과] 현재는 마늘을 재배하고 있는 밭을 조심스레 통과하여 마을길로 갑니다. 마을길 나무에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보입니다. [사거리] 11:23 '전혁진씨 개념도에는 "사거리"라고 표기되 있는 곳이 이곳입니다. 사거리는 아닌데... 앞에 보이는 민가의 전력계에도 길을 잘 찾으라고 선답자들이 표지기를 달아 놨습니다. ['부흥산'으로 가는 길] 민가를 지나 앞에 보이는 묘지로 올라 "부흥산"으로 갑니다. ['백화산' 조망] 묘지에 올라 북동쪽을 바라보니 지난번에 올랐던 "백화산 白華山"이 조망됩니다. 태안반도에서는 "백화산"과 "팔봉산"이 으뜸이었습니다. ['부흥산' 정상] 11:32 "부흥산 富興山 73m" '사거리'에서 9분만에 "부흥산"에 올랐습니다. '네이버 지도'에도 "부흥산"이라고 표기하고 있으니 이 산은 "부흥산"이 틀림없습니다 이 지역의 地名을 보면 "근흥 近興" "안흥 安興" "부흥 富興""興"자가 많습니다 비록 외진곳이지만 "평안하고, 부유하게 興하라"고 지어진 이름인듯 합니다. ['남산'으로 가는 길] "부흥산"에서 "남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건강산행코스로 아주 좋을 듯합니다. [조망] "태안 해안국립공원"을 조망하며 즐거운 산책길을 갑니다. ['남산'으로 가는 길] "부흥산"에서 14분 정도 눌루날라 산책길을 걸으면.... ['남산' 갈림길 봉우리] 11:46 어느 봉우리에 오르게 되는데.... 이 봉우리를 "남산"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이 봉우리는 "남산 갈림길 봉우리"입니다. "남산"은 여기서 우측으로 50여m 떨어져 있어 갔다가 다시 돌아 와야 합니다. ['남산' 조망] 갈림길에서 "남산"은 50여m 떨어진 가까운 곳에 보입니다. 2분 정도 가면.... ['남산' 정상] 11:47 "남산 南山 89m" 특별한 것은 없고, "안흥염전"이 조망됩니다. ['남산' 정상에서 '73.7m봉' 조망] "남산" 정상에서 가야할 "73.7m봉"이 보입니다. [안흥염전] 서쪽으로는 유명한 "안흥염전"이 조망되고.... "안흥염전"은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예정이라고 할 정도로 천일염전으로선 자타가 알아주는 염전입니다. 또한 요즈음 더욱 각광받고 있는 "태안 자염"이 일반 소금의 두배값이지만 없어서 못팔 지경이라고 할 정도로 인기가 있답니다. "자염 煮鹽""햇볕에 말린 갯벌 흙을 바닷물로 걸러 염도를 높인 다음 가마에 끓여 만든 전통 소금"이라죠. 그래서 "천일염에 비해 수용성칼슘이 14배, 유리아미노산이 5배"나 많으며 맛도 구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후동고개'로 가며 '73.7m봉' 조망] "남산"에서 "후동고개"로 가며 바라보는 "73.7m봉"입니다. [후동고개] 11:56 "후동고개" '안흥염전'으로 넘나드는 중요한 고개랍니다. 왼쪽 아랫마을 이름이 "후동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후동고개'에서 '안흥염전' 조망] "후동고개" 우측에는 "안흥염전"이 보이고.... ['73.7m봉' 들머리] "73.7m봉"으로 오르는 들머리입니다. ['73.7m봉'으로 오르는 길] "73.7m봉"은 나즈막한 산이지만 "근흥면의 중요 산"이라고 합니다. [안흥염전] 우측 해안에는 "안흥염전"이 계속 따라 붙습니다. 그 크기를 짐작 할수있죠. [쌍돌탑봉] 12:04 "후동고개"에서 8분 정도 진행하니 돌탑이 두개 서있는 곳이 나옵니다. 그냥 이름하여 "쌍돌탑봉"....... ['근흥면 중심지' 조망] 근흥면사무소가 있는 근흥면의 중심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선답자들이 점심식사를 했던 "용현 굴짬뽕집"이 다가 오는 것입니다. 점심시간이 되니 '굴짬뽕' 어서 빨리 먹고 싶은 생각이 앞서는군요. 쩝쩝 ['73.7m봉'으로 가는 길] '근흥면의 중요 산' 다웁게 산로는 깨끗하고 날씬합니다. [조망소] 묘지가 있어 조망이 트이는 곳이 나타나면.... 멀리 "지령산"인듯한 산들이 줄을 서 있고 ['근흥면 중심지' 조망] 동남쪽으로 "근흥면사무소"가 있는 중심지가 가까이 조망됩니다. 그러니까 저곳에 "근흥초*중학교"가 있고 "근흥면사무소*보건소*소방서"등이 있습니다 ['73.7m봉' 정상] 12:13 "73.7m봉" 삼각점이 있고 '준희선생'의 표지판이 걸려있습니다. [갈림길] 12:17 "73.7m봉"에서 4분 정도 진행하면 운동시설이 있는 곳이 처음으로 나오는데 이곳에서 이정표의 "면사무소"방향으로 내려 갑니다. ['근흥중학교'로 내려 가는 길] 내림길로 접어들면 바로 "근흥중학교"가 보이기 시작하고.. [팔각정 쉼터에서 '근흥중' 조망] '팔각정 쉼터'가 나오면 들어가 '근흥중학교'와 "태안해안국립공원"을 조망하고... [마을길 통과] 마을 포장도로를 따라 [603번지방도]로 내려 갑니다. ['603번지방도'-신대삼거리] 12:23 마을길을 내려가면 [603번지방도]를 만나며, 정맥길은 부동산중개소 옆 골목으로 들어 갑니다. [성원식당 앞] 12:26 [603번지방도]에서 골목으로 들어 가면 앞에 "성원식당"이 보이는데, 저 식당은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은듯하고, 좌측을 보면.... [용현식당] 12:26~12:56 (30여분 점심식사) "용현식당"이 보이는데 손님이 많습니다. 이곳이 금북정맥을 하는 산객들이 주로 점심식사를 하는 곳이랍니다. 그래서 마지막구간에는 집에서 점심을 미리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곳에 도착 할때쯤되면 점심시간이라 배가 고플때도 되고, 땀 흘리며 왔으니 얼큰한 "굴짬뽕"이 입맛을 돋굴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더욱 맛있다고 하는듯 합니다. 우리도 굴짬뽕 두그릇에 공기밥 하나를 시켜 소주 한병을 반주로 거뜬하게 식사를 하고 아직도 많이 남은 정맥길을 나섭니다. [성원식당 앞] 12:57 [근흥장로교회] "용현식당"을 나와 골목으로 직진합니다. 그러면 "근흥장로교회" 앞을 지나고.... ['용신2리다목적회관앞'] 1:01 [603번지방도]에서 분기하여 "채석포" "연포"로 가는 자동차도로를 만나는 곳에 "용신2리다목적회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약20여분간 자동차도로를 따라 "용신2리-방앗간"이라는 버스정류장까지 갑니다. [근흥의용소방대 앞] '근흥의용소방대' 앞을 지나고... [용신리] ['용신어촌체험마을' 입구] "용신어촌체험마을" 입구도 지나 갑니다. ['채석포교회'와 '건지미산' 조망] 1:19 자동차도로를 버리고 "건지미산"으로 올라야 하는 "채석포교회"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용신2리'-방앗간 앞] 1:20 ★길조심★ "용신2리-방앗간"앞이라는 버스정류장 표지판에서 우측 골목으로 들어 갑니다. 저 앞에 보이는 삼거리에는 좌측이 "채석포"로 가는 길이고, 우측이 "연포"로 가는 길이라고 도로 안내판이 알려 주고 있습니다. ['채석포교회' 입구] 골목으로 들어서면 앞에 "채석포교회"가 보이며, 교회로 올라 갑니다. [갈림길] 1:23 ★길조심★ "채석포교회"앞 마당으로 들어 가면 사진 속의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교회 좌측에 있는 널판지 다리를 건너 가면 농가가 나오는데 농가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묘지] 1:26 농가를 지나면 넓은 묘지가 나오며 묘지 우측 상단 숲속으로 들어 갑니다. ['건지미산'으로 오르는 길] 잡목들이 길을 희미하게 하는 오름길을 약10분 정도 올라 갑니다. ['건지미산' 정상] 1:36 "건지미산 乾芝味山 115m" "태안 지리지"에도 나와 있는 "건지미산"에 올랐습니다만, 산으로서의 위용은 찾아 볼수 없고, 안내판이 없으면 그냥 지나칠 작은 봉우리였습니다. ['건지미산'에서 '옥녀봉' 조망] "건지미산"에서 "옥녀봉"은 가까이 조망됩니다만 실제 전위봉을 또 넘어 가야하기에 보는 것보다 제법 멀었습니다. ['옥녀봉'으로 가는 길] "건지미산"에서 20여분 진행하면... ['옥녀봉' 앞 바위] 1:59 "옥녀봉"으로 오르는 초입에 바위들이 보이는데 지루한 육산만 지나 오다가 바위가 보이니 새롭게 보이는군요. 그리고 어느 "옥녀봉"이나 "玉女"자 들어가는 산들은 대부분 가파르고 험준합니다. "玉女"에 올라 가기가 어려워....ㅎ ['옥녀봉' 정상] 2:01 "국봉산 菊峰山-옥녀봉 玉女峰 130m" "근흥면 홈페이지"에 이 지역의 지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근흥면의 지형을 살펴보면 "백화산(白華山)"의 한 줄기가 근흥으로 뻗어내려 구수산(145m), 대왕산 (140m), 전막산(121m), 장치산, "건지미산(乾芝味山)", "응봉 인생산(鷹峰人生山)", 형제봉, "지령산(智靈山)"등을 이루어 놓았다. 지령산(智靈山)은 근흥면의 주산인데 주변으로 뻗어내려 청룡록(靑龍麓), 금고도(金鼓島), 구절봉(九節峰), "노적봉(露積峰)", "영주봉(瀛洲峰)" 석정티산(石井峙山)을 이루어 놓고, 다시 한 줄기는 안흥으로 뻗어내려 당봉, 문필봉, 남산봉, 객사봉을 이룩해 놓았다. 이와같이 근흥면은 전면적의 70% 이상이 산지로 되어 있어, 넓은 농경지는 많지 않으나 곳곳에 간척지가 발달되어 있어 소규모의 평야가 펼쳐있으므로 영농에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근흥면은 3면이 바다에 접해 있는 반도이므로 수산업이 매우 발달되어 있으며, 따라서 안흥항(安興港)은 지난 1975년에 일종항으로 승격되어 명실상부한 어항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으나, 실은 일찍 고려시대부터 여송무역선이 드나드는 국제항으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110m봉'-'응봉인생산'에서 '백화산' 조망] 2:04 "응봉인생산 鷹峰人生山 110m" '전혁진씨 개념도'에는 "124m봉"에서 "110m봉-응봉인생봉"까지는 제법 먼 거리로 표시되 있는데, 실제 "130m봉-옥녀봉"에서 "110m-응봉인생산"까지는 지척이었습니다. "응봉인생산 鷹峰人生山"에서 "白華山"이 조망되는데 진짜 빛납니다. ['연포해수욕장' 조망] 그리고 "응봉인생산 鷹峰人生山"에서부터 유명한 "연포해수욕장"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장승고개'로 내려 가는 길] "응봉인생산"에서 18분 정도 완만한 내림길을 내려 갑니다. [밭] 2:22 정맥길이 산에서 땅바닥에 달라 붙을 쯤에 밭이 나오고... [수렛길] 2:24 바로 수렛길을 만나 우측으로 잠시 진행하면... ['옥녀봉' 탐방로 들날머리] 2:25 [603번지방도]에서 "연포"로 연결되는 자동차도로가 지나는 "장승고개"에 도착합니다. 앞에는 "연포교회"가 보이며, 날머리에는 "옥녀봉 탐방 안내도"가 있습니다. [장승고개] "옥녀봉 날머리"에서 좌측 "연포"방향으로 "장승고개"가 장승과 함께 있습니다. ['장승고개' 좌측방향] 우측으로는 "연포교회" 입구와 바다가 보입니다. ['장승'과 '연포해수욕장'] 2:27 "장승 長丞" '장승'을 세우는 의미는 많이 있습니다만, 마을로 침입하는 惡氣를 막기위해서 마을 입구에 주로 세워 두었던 것이죠. 주로 남녀를 함께 세우고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지역간의 경계표', '이정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고도하죠. '장승'에 대한 이야기로는 "옹녀와 변강쇠전"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지요. "옹녀"가 나무 해 오라고 잔소리를 하니 개으름뱅이며 떡치는 것만 밝히는 "변강쇠"가 나무하러 산에 가는 대신 쉽게 마을 입구에 있는 '장승'을 뽑아 도끼질을 해서 나무를 하죠. 그리하여 전국의 "장승"들이 힘을 합쳐 '변강쇠"에게 보복을 가하지요? ㅎㅎ 정말 무자비하게 보복을 가합니다. "옹녀와 변강쇠전" 그 이야기 다시 한번 들려 드릴까요? ㅎㅎ [잡목구간] "장승고개"에서 숲으로 들어 가면 길은 더러워지고 잡목구간이 어지럽게 합니다. 10여분 잡목과 싸움을 하며 전진하면.... [임도 갈림길] 2:37 함석판이 멀뚱 걸려있는 임도 삼거리를 만나는데 직진해 갑니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등장했던 평상시 폐가옥-여름철에만 사용하던 민박집은 철거되어 사라졌더군요. (다음 사진) [숲길] [철거된 폐가옥(여름철 민박집)] "변강쇠" "옹녀"를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주로 에로영화를 떠올리며.....ㅎ 특히 '이대근'과 '원미경'이 주연한 영화 "변강쇠"가 먼저 생각나시죠? 그리고 막연하게 정력이 무지하게 쎄고, 쌕스를 무지 좋아하는 남녀로만 생각 할것입니다. 그러나 "변강쇠"는 우리나라 전래음담설화로 오랜 옛날부터 전해 오는 "판소리"입니다 "옹녀와 변강쇠전"은 너무 길어 모두 다 알려 드리지 못하고 변강쇠와 옹녀가 개성 청석골에서 처음 만나 '청석대'라는 바위 위에서 정사를 하는 장면만을 판소리의 원문으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ㅎㅎ 둘이 손길 마주 잡고 바위 위에 올라가서 대사(大事)를 지내는데, 신랑 신부 두 년놈이 이력(履歷)이 찬 것이라 이런 야단(惹端) 없겠구나. 멀끔한 대낮에 년놈이 홀딱 벗고 매사니 뽄 장난할 때, 천생음골(天生陰骨) 강쇠놈이 여인의 양각(陽刻) 번쩍 들고 옥문관(玉門關)을 굽어보며, "이상히도 생겼구나. 맹랑히도 생겼구나. 늙은 중의 입일는지 털은 돋고 이는 없다. 소나기를 맞았던지 언덕 깊게 패였다. 콩밭 팥밭 지났는지 돔부꽃이 비치였다. 도끼날을 맞았든지 금바르게 터져 있다. 생수처(生水處) 옥답(沃畓)인지 물이 항상 고여 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옴질옴질 하고 있노. 천리행룡(千里行龍) 내려오다 주먹바위 신통(神通)하다. 만경창파(萬頃蒼波) 조개인지 혀를 삐쭘 빼였으며 임실(任實) 곶감 먹었는지 곶감씨가 장물(臟物)이요, 만첩산중(萬疊山中) 으름인지 제가 절로 벌어졌다. 연계탕(軟鷄湯)을 먹었는지 닭의 벼슬 비치였다. 파명당(破明堂)을 하였는지 더운 김이 그저 난다. 제 무엇이 즐거워서 반쯤 웃어 두었구나. 곶감 있고, 으름 있고, 조개 있고, 연계 있고, 제사상은 걱정 없다." ㅎㅎ 옹녀의 거시기 玉門關이 어떻게 생겼는지 변강쇠가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있죠? ㅎ [수렛길 삼거리] 2:41 수렛길 삼거리를 만나면 우측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옹녀는 변강쇠가 자신의 거시시 玉門關을 보고 묘하게 표현하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옹녀는 미소를 지으며 앙갚음을 하려고, 변강쇠의 거시기를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이도 생겼네. 전배사령(前陪使令) 서려는지 쌍걸낭을 느직하게 달고, 오군문(五軍門) 군뇌(軍牢)던가 복덕이를 붉게 쓰고 냇물가에 물방안지 떨구덩 떨구덩 끄덕인다. 송아지 말뚝인지 털고삐를 둘렀구나. 감기를 얻었던지 맑은 코는 무슨 일인고. 성정(性情)도 혹독(酷毒)하다 화 곧 나면 눈물난다. 어린아이 병일는지 젖은 어찌 게웠으며, 제사에 쓴 숭어인지 꼬챙이 구멍이 그저 있다. 뒷절 큰방 노승인지 민대가리 둥글린다. 소년인사 다 배웠다, 꼬박꼬박 절을 하네. 고추 찧던 절굿대인지 검붉기는 무슨 일인고. 칠팔월 알밤인지 두 쪽이 한데 붙어 있다. 물방아, 절굿대며 쇠고삐, 걸낭 등물 세간살이 걱정 없네." 옹녀와 강쇠가 서로의 성기를 보며 절묘한 표현을 하고는 하루 종일 서로 업어 가며 정사를 벌입니다. ㅎㅎ 원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척 야하지요? 아니 절묘하게 더 리얼하게 표현했다구요? 여튼 이렇게 살던 "변강쇠"는 장승을 뽑아 불쏘시게를 하는 바람에 장승들로부터 엄청난 보복을 당하며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지요. 그러니 장승 홰손하면 큰일납니다!~~ ㅎㅎ 더 자세한 "옹녀와 변강쇠전"이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ㅎㅎ 그러면 제가 쓴 "진양기맥 10구간 산행기"를 가서 보세요. 여기클릭 http://blog.daum.net/paraanmoon/7801152 ['연포해수욕장' 조망] 동쪽으로는 유명한 "연포해수욕장"의 방갈로등이 유혹합니다. "연포해수욕장 戀浦海水浴場"은 이 지역 대표 해수욕장이지요. 백사장 길이가 2㎞ 정도로 아담하고, 모래가 곱고, 경사가 완만하며, 수심이 얕아 해수욕장으로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자랑하며,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속한 해수욕장으로,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울창한 해송림과 기암괴석이 평화로운 전원풍경과 어울려 독특한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다고 청춘남녀들을 부르고 있답니다. 이름부터 "戀浦"이니......... [ '외야골' 고개-도황2리] 연포해수욕장 반대 방향으로 올라 가면 "외야골"로 넘어 가는 고개가 보이는데 전봇대 번호 [6478Z-321]이며, "88m봉"으로 가는 중요한 곳이니 유의해야 합니다. ['88m봉'으로 오르는 길] 2:43 전봇대 번호 [6478Z-321]이 있는 고개에서 제법 넓은 수렛길을 따라 올라 갑니다. [뒤돌아 본 정맥길] "88m봉"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장승고개"에 있던 "연포교회"가 보이며 제가 지나온 붉은색 길이 정확한 마루금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저는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어김없이 등장했던 "폐가옥-여름철 민박집"이 없어 다른 길을 걸었는지 궁금했는데 철거되어 없어진것이 확인되었습니다. ['88m봉' 앞 갈림길] 2:50 ★길조심★ 수렛길을 따라 5분여 오르면 "88m봉"이 보이는데, 올라 갈 필요없이 중간에서 수레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야하는데, 무심코 아무 볼거리도 없는 "88m봉"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 왔습니다. 사진 속의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우측으로 길이 잘 나 있습니다. ['황골고개-사거리' 조망] "88m봉"에서 10여분 편안한 숲길을 진행하면 시멘트포장도로가 아래에 보입니다. 이곳이 "도황2리"에 있는 "황골고개"라고 합니다. [황골고개-사거리] 3:02 "황골고개-도황2리" "황골고개"는 사거리인데, 비포장 수렛길인 직진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그리고 30여m앞에 있는 쓰레기더미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올라 가야 합니다. ['여우섬 마을'] "여우섬마을"을 조망하고... 우리가 걷고 있는 산길이 첩첩산중 같은 느낌을 받지만, 실제 조금만 나가면 바다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죽림고개'로 가는 길] 쓰레기더미 있는 곳에서 산으로 올라 갑니다. 이나저나 여기서부터 "죽림고개"까지는 길조심을 해야하는 구간이더군요. 각자 집중력을 가지고 가야하는 곳이었으니 조심 조심 [갈림길] 3:11 ★길조심★ 숲속 갈림길이라는게 모두 이런식입니다.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길은 희미하고 그나마 잡목 잡풀들이 온통 점령하고 있어 길찾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여튼 첫번째 갈림길에서는 좌측으로 갑니다. [잡목지대] ★★길조심★★ 제가 설명을 해도 이해 할수 없을것 같아 별도로 길안내는 생략합니다. 오로지 가끔 나타나는 선답자들의 표지기에 의존 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이 구간에선 선답자들의 표지기도 매우 인색하여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리 저리 헤매며 길을 찾아 올라 갑니다. 어떤곳에는 상식을 벗어나 방향을 바꾸고 잡목 잡풀...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어휴~~ 골치 아프 ['86.5m봉'-갈림길] 3:37 ★길조심★ 진행 방향에 나무로 진행방향이 아니라는 표시와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비로소 제법 많이 발견되는 갈림길을 만나 우측으로 방향을 획 꺽어 가야하는 곳이 나옵니다. 이 갈림길 좌측을 보니 삼각점과 안내판이 서 있더군요. 지도에는 "86.5m봉"으로 나와 있으나 삼각점안내판에는 "87m봉"이라고 되있습니다. ['죽림고개'로 가는 길] "86.5m봉"에서 10여분 잡목지대를 어렵게 전진하면... [절개지] 3:48 드디어 절개지가 나타나며 시야가 트이고 해방감을 맛보게 됩니다. "황골고개"에서 "죽림고개"까지는 갑갑한 감옥 같았습니다. ['지령산' 조망] 절개지에서 바라보니 안테나가 있는 "205.8m봉" 뒤로 레이다시설이 있는 "지령산"이 조금 보입니다. [죽림고개] "죽림고개 竹林峴" [603번지방도]를 다시 만나며, "죽림고개"로 내려 섭니다. "죽림고개"는 좌측 아랫마을 이름이 "죽림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며 대나무가 많아 "竹林마을"이라 한답니다. [죽림고개] 3:53~4:03 (10분간 간식) "죽림고개"에서 오리지날 정맥길은 사진 속에서 가리키는 화살표 방향으로 올라 가야 합니다. 그러나 잠시 지날 뿐이고 위에는 배수장이 있어 철담장으로 돌아야 한다고하고, 요즘 해가 짧아 시간 절약을 위해 좌측 도로를 따라 약간 우회합니다. 여기서 길바닥에 주저 앉아 간식과 휴식을 10여분 취하고.... [죽림마을 조망] 4:04 "죽림마을"이 있는 "근흥면 정죽리"가 보입니다. 이곳에 "안흥초등학교"가 있으니 "안흥항"의 주거지역이라고 생각됩니다. 저곳으로 가면 간단하게 "안흥진"으로 갈수 있습니다만, 우리는 산길을 삥 돌아 2시간을 더 걸어야 합니다. ['지령산'으로 가는 길] 포장도로를 따라 "지령산"으로 올라 갑니다. [603번지방도]에서 우회전하여 "국방과학연구소"가 있는 "지령산"까지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연결되 있어 다소 편하게 "지령산"으로 갈수 있더군요. [능선으로 가는 길 입구] 4:08 "지령산"으로 오르는 도로를 잠시 오르면 "죽림고개"에서 오는 정맥길이 있는 배수장 정문을 지나 바로 좌측으로 산길로 인도하는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한무더기 발견됩니다. 시간 단축을 위해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도로따라 직진합니다. 그런데 이곳의 지형을 보면 오리지날 정맥길이라고 하기엔 큰 의미가 없는듯합니다. 도랑도 있고... 산세도 그저 그렇고...그래서 지나칩니다. [능선에서 내려오는 합류지점] 4:14 6분 정도 도로따라 오르면 좌측 능선에서 내려와 합류하는 지점을 지나게 되고... ['골든베이CC' 관리동 입구 삼거리] 4:18 "골든베이CC" 관리동이 있다는 곳으로 나가서.... ['골든베이CC' 관리동] 조망을 하는데.... 앗!~ 멀리 "백화산"과 "팔봉산"이 조망됩니다. 방향이 어케된거여? ㅎㅎ 나침판을 보니 북동쪽이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 정문] 4:29 "지령산" 정상은 "국방과학연구소"가 점령하고 있어 오를수 없고 좌측 철조망 펜스를 따라 "갈음이고개"로 가야 합니다. ['국방과학연구소' 철책] 철책 울타리를 따라 지나 갑니다. 경비견 개씨끼 한마리가 짖어댑니다. [군부대 철책-삼거리] 4:33 ★길조심★ 철책 중간에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한무더기 발견되는 곳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내려 가라는 뜻으로 받아 들이기 쉬운 곳입니다. 무시하고 철책따라 계속 가야합니다. ['143m봉'-노적봉 조망] "지령산" 정상쯤 철책을 따라 가면 드디어 '금북정맥'의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143m봉-노적봉"이 西海의 등대처럼 나타나고.... ['127m봉'-금북정맥 끝봉우리 조망] "금북정맥"이 西海로 잠수하는 마지막 봉우리인 "127m봉-영주봉"이 조망됩니다. 그리고 "안흥진"에서 "신진도"로 연결되는 "신진대교"가 그림같고... "태안비치CC"도 정원 역활을 해주며 더욱 아름다운 풍경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걸었던 수 많은 봉우리들은 모두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 바다로 갑니다. 이쯤에서 저의 글도 바다 속으로 잠겨 볼품없어져, 진짜 글 같은 글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황동규교수님"의 詩한수 들려 드림니다. '금북정맥' 서산지역과 태안지역을 지나오며 꼭 들려 주고 싶었던 詩입니다. "황동규교수님"도 이 지역을 지나며 쓴 詩이기에.... "소유언시(小遺言詩)" 열반에 머문다는 것은 열반에 속박되는 것이다 - 원효 1 살기 점점 더 덤덤해지면, 부음(訃音)이 겹으로 몰려올 때 잠들 때쯤 죽은 자들의 삶이 떠오르고 그들이 좀 무례하게 앞서갔구나 싶어지면, 관광객도 나대지 않는 서산 가로림만(灣)쯤에 가서 썰물 때 곰섬(熊島)에 건너가 살가운 비린내 평상 위에 생선들이 누워 쉬고 있는 집들을 지나 섬 끝에 신발 벗어놓고 갯벌에 들어 무릎까지 뻘이 차와도 아무도 눈 주지 않는 섬 한구석에 잊힌 듯 꽂혀 있다가 물때 놓치고 세상에 나오지 못하듯이. 2 그냥 가기 뭣하면 중간에 안국사지(安國寺址)쯤에 들러 크고 못생긴 보물 고려 불상과 탑을 건성 보고 화사하게 핀 나무 백일홍들 그 뒤에 편안히 누워 있는 거대한 자연석(自然石) 남근을 만나 생전 알고 싶던 얘기나 하나 묻고 대답은 못 듣고. [지령산] "지령산 知靈山 220m" '여암 신경준선생'의 '山經表'에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기술되 있습니다. "知靈山 泰安西二十五里" 이나저나 "지령산"은 철조망 속에 죄수처럼 영어의 몸이 되어 있습니다. 3 길 잃고 휘 둘러가는 길 즐기기. 때로 새 길 들어가 길 잃고 헤매기. 어쩌다 500년 넘은 느티도 만나고 개심사의 키 너무 커 일부러 허리 구부린 기둥들도 만나리. 처음 만나 서로 어색한 새들도 있으리. 혹시 못 만나면 어떤가.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 나무, 집과 새들을 만났다. 이제 그들 없이 헤맬 곳을 찾아서. 4 아 언덕이 하나 없어졌다. 십 년 전 이곳을 헤매고 다닐 때 길 양편에 서서 다정히 얘기 주고받던 언덕 서로 반쯤 깨진 바위 얼굴을 돌리기도 했지. 없어진 쪽이 상대에게 고개를 약간 더 기울였던가. 그 자리엔 크레인 한 대가 고개를 휘젓고 있다. 문명은 어딘가 뻔뻔스러운 데가 있다. 남은 언덕이 자기끼리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을까. 지난날의 갖은 얘기 이젠 단색(單色) 모놀로그? ['갈음이고개'로 내려 가는 길] 4:37 '국방과학연구소'의 철책이 우측으로 휘어지느 부근에서 좌측으로 내려 갑니다. 제법 가파른 너덜길입니다. 5 한 뼘 채 못 되는 시간이 남아 있다면 대호 방조제까지만이라도 갔다 오자. 언젠가 직선으로 변한 바다에 배들이 어리둥절하여 공연히 옆을 보며 몸짓 사리는 것을 보고 오자. 나이 늘며 삶이 점점 직선으로 바뀐다. 지난 일들이 빤히 건너다보이고. 6 곰섬 건너기 직전 물이 차차 무거워지며 다른 칸들로 쫓겨다니다 드디어 소금이 되는 염전이 있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든 억지로든 칸 옮겨 다님, 누군가 되돌아가지 못하게 제때마다 물꼬를 막는다. 자세히 보면 시간에도 칸들이 쳐 있다. 마지막 칸이 허옇다. ['갈음이고개'로 내려 가는 길] 너덜길을 내려 가면 다시 군부대 철책을 만나며.... 7 물떼샌가 도요샌가 긴 발로 뻘에 무릎까지 빠진 사람은 생물로 치지 않는다는 듯이 팔 길이 갓 벗어난 곳에서 갯벌을 뒤지고 있다. 바지락 하나가 잡혀 나온다. 다 저녁때 바지락조개들만 살다 들키는 곳. 8 어둠이 온다. 달이 떠오르지 않아도 물소리가 바다가 된다. 밤새가 울 만큼 울다 만다. 왜 인간은 살 만큼 살다 말려 않는가? 생선들 누웠던 평상 위 흥건한 소리마당 같은 비릿함, 그 냄새가 바로 우리가 처음 삶에, 삶에 저도 모르게 빠져든 자리! 그 속에 온몸 삭히듯 젖어 육십 년 익힌 삶의 뽄새들을 모두 잊어버린다. 이 멈출 길 없는 떠남! 내 안에서 좀체 말 이루려 않는 한 노엽고, 슬거운 인간을 만난다. 곰처럼 주먹으로 가슴 두들기고 밤새처럼, 울고 싶다 [군부대 철책] 군부대 철책을 따라 철책이 좌측으로 90도 휘어지는 곳까지 갑니다 ['갈음이고개'로 가는 철책길] 그러면 "노적봉"과 "영주봉" 사이에 있는 "갈음이해수욕장"이 보이며 좌측 군부대 안으로 흐를듯한 정맥길이 "갈음이고개"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가서 다시 우측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갈림길] 4:48 ★길조심★ 군사시설지역이라는 말뚝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정맥길이 이어집니다. ['갈음이고개'로 가는 길] 잡목지역을 잠시 통과하면.... [생강저장소] 5:00 '생강저장소'라는 곳이 나오며.... 유해가스로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안내판을 힐끔보고... [숭모당] '생강저장소' 를 지나면 바로 가옥이 나오는데 '숭모당'이라고 하는군요. [갈음이고개] 5:01 "갈음이고개" "안갈음이 마을"과 "바깥갈음이 마을"을 잇는 고개랍니다. ['143m봉' 오르는 등로] 15분 정도 오름짓을 합니다. "143m봉"을 오르는데도 이젠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비포장 도로] 5:15 비포장 도로가 갑자기 나오며... [수조] 수조같은 시설물이 있는 곳을 지나면.... ['143m봉-노적봉] 5:17 "노적봉 露積峰 143m" 용도 폐기된 군통신시설이 있는 곳이 "노적봉 정상"이라는데 어디로 날라 갔는지 표지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143m봉'에서 '127m봉' 조망] "노적봉"에서 '금북정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영주봉 127m봉"과 "갈음이해수욕장"을 조망하고 가파른 내림길을 10여분 이상 내려 갑니다. [갈음이 해수욕장] 5:29 제법 유명한 해수욕장인 "갈음이해수욕장"은 쓸쓸히 파도소리만 토해 냅니다. 먼길 찾아온 산객에게 환영의 소리인지...비웃음 소리인지.... "뭐하러 왔어?"라고 하는듯 하기도 하고....ㅎ [갈음이 해수욕장]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름 휴가를 즐기기 위해 찾는 곳인데 "파란문"은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차가운 바닷바람이 파도를 모는 어스름 저녁에 찾았습니다 멀고 먼 산길을 걷고 또 걸어서..... [폐가] 5:36 ['127m봉' 들머리]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해가 무척 짧아졌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갈음이해수욕장"에서 조그만 둔덕을 하나 넘어가니 옛 군초소 였을 듯한 폐가옥이 나오고 폐가옥 뒤로 마지막 봉우리로 오르는 길이 선답자들의 표지기들과 함께 나타납니다. ['127m봉' 정상] 5:47 "영주봉 瀛洲峰 127m" 아직 여섯시도 안됫는데도 사방은 깜깜해지는데 '錦北正脈'의 끝봉우리 "영주봉 瀛洲峰"에 올랐습니다. "넓은 바다 영瀛, 섬 주洲"를 사용하는 "瀛洲峰"입니다. [팔각정] 6:04 기념촬영하는 팔각정으로 급히 내려 갔지만 어둠과 쓸쓸한 파도소리 뿐.... ['태안비치CC' 방파제를 지나며] 버스시간 때문에 조금 서둘러 "안흥진"으로 갑니다. "태안비치CC" 방파제를 걸으며 "신진대교"의 불빛을 담고.... ['태안비치CC' 샛문] 이곳으로 나가야 하는데 문 위에 철조망까지 쳐놔 넘어 갈수가 없었습니다. 선답자들은 모두 이 문을 넘어 나갔던데.... 어쩔수 없어 우측 다리 밑 방파제로 나가서.... [신진대교 밑] [철조망] 방파제 '신진대교' 다리 밑으로 지나가 암벽을 올라가니 철조망 울타리 개구멍이 나옵니다. [개구멍 통과] "류산님" 촬영 에휴~~! '금북정맥'의 끝 "안흥진"으로 가는 길은 '개구멍'이었습니다. ㅎ 뭐... 이런길 한두군데 통과한것은 아니지만, '금북정맥'은 끝까지 겸손을 배우라 하네요. [안흥진] 6:15 "안흥진 安興鎭" '여암 신경준선생'의 "山經表"에 "安興鎭 泰安西三十四里"라는 지역 이름 하나 때문에 "錦北正脈"은 "금강 錦江"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지역인 "청양 백월산"에서부터 이곳 "安興鎭"까지 이어졌습니다. "금북정맥" 산줄기에 대해서 "파란문"은 개인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지난번 "청양 백월산"에서 한번 언급한바 있습니다만 다시 한번 제 생각을 알려 드림니다. ㅎㅎ 저는 현재의 "금북정맥" 산줄기가 "山自分水嶺"의 원칙으로 작성됫다는 "山經表" 스스로가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려시대 풍수지리가이시며 "백두대간 이론"을 최초로 밝히신 "도선국사"에서 부터 전해져 내려 오는 우리나라 지리체계는 반드시 "지형"만으로만 만들어 졌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지리"뿐만 아니라 "지역"도 함께 고려 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각 지역의 풍습 언어 관습등 생활문화가 충분히 고려되어 생활권으로도 정맥을 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세계 最古 最高의 인문과학지리서인 "청화산인 이중환선생"의 "택리지"도 "지역"을 최우선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현재 우리가 가고 있는 "1대간 9정맥"은 우리나라 공식적 최고 권위의 "국토지리원"이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산줄기 체계입니다. "국토지리원"은 '고또 분지로'가 일제시대에 작성한 "산맥"체계의 산줄기만을 인정하고 "정맥"체계는 아예 언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학교 다닐 때에 지리시간에도 "산맥"개념으로만 배웠지요? 그렇다면 "국토지리원"을 욕해야 하겠습니까? 박사학위까지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우리나라 지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체계를 세우고 있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기관인데, 단순하게 산꾼들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씹어댈수 있겠습니까? 대간-정맥을 다니는 산객 여러분! 우리나라 땅덩어리의 地表面인 地形만을 생각해야 되겠습니까? 땅 속의 地形과 地質도 함께 고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일제강점기 시대에 '고또 분지로'가 지도를 만들었으니 "산맥 이론"은 깨부수어야 한다구요? 그가 과학적으로 먼저 했을 뿐....... 사실 우리가 먼저 해야하는거 아니었나요? ..선수를 뺏긴것이었죠. 이런걸 너무 몰라서... '국수주의적 발상'은 그만하시고, 땅껍대기와 땅속을 함께 알수 있는 "산맥 체계"가 정답이며, 현재 각급 학교에서 그렇게 교육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니고 있는 "1대간 9정맥"의 역사는 불과 10여년 전부터 각광받기 시작한 '등산코스 중에 하나' 입니다. 경제가 발전되어 살기 좋아지니 건강 운동을 위한 등산인구가 급속하게 늘어 났고, 그러한 폭발적인 등산인구의 증가로 새로운 등산코스 개발이 산객들에게 필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단순하게 등산만 하는게 아니라 우리나라 산줄기를 몽땅 다니며 느끼며 섭렵하고 싶어 지는 열혈 산객들이 늘어 나면서, "산경표"에 기초한 "1대간 9정맥 종주"라는 등산코스가 신선하게 개발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경표"가 '산자분수령의 원칙'을 지키는지 아닌지.... '금북정맥'이 '백월산'에서 "안흥진"으로 가던 "장항"으로 가던 이런건 크게 따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선조들이 구축한 산줄기 체계'... 그것이 정확하던 틀렸던가를 떠나 그 산줄기 체계를 따라 등산코스로서 열심히 종주하면 된다고 "파란문"은 단순하게 생각 할 뿐입니다..... 단순한게 아닌가? ㅎ [안흥진 버스 종점] 6:15 조금 서둘렀더니 버스시간 6시 25분보다 10분이나 먼저 도착했습니다. ['안흥진' 버스시간표] 요즘 지방 버스들은 KTX보다 더 정확한 시간에 운행하고 있습니다 [태안버스터미날 앞] "안흥진"에서 약35분이 걸려 "태안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뒷풀이] "태안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부지깽이"라는 삼겹살집에서 뒷풀이를 했습니다. "遊山님"이 홀로가는 산객의 금북정맥 마지막구간을 축하해 주기 위해 나와 점심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ㅎㅎ "遊山님"은 현재 SBS 제작국국장으로 제직하고 있는데 저와는 오랜 山友입니다 아파트도 아래윗층에 살았고, 여러 취미생활도 한때 함께 했었습니다. 저보다 약간 후배인데도 엄청 젊어 보이지요? ㅎ 이번 12월 15일에 사위를 본답니다. *2012년 12월 15일(토) 오후 5시 '고대교우회관' 오재웅("遊山님")의 장녀 "현지"양 *많은 축하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구간 구글어스] "장재"에서 "안흥진"까지 GPS거리로 23.4km를 8시간 45분이 걸려 완주했습니다. 그 동안 "파란문"과 함께 "금북정맥"을 완주하신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또 다른 산줄기에서 만날것을 약속 드림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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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가는 금북정맥 열다섯번째 산행기 팔봉중학교-굴포-붉은재-오석산-옥녀봉-강실고개-241.7m봉-오룡골고개- 백화산-태을암-낙조봉-모래기재-159.7m봉-개봉산-차도고개-유득재-장재 "젊어 한창 때 그냥 좋아서 어쩔줄 모르던 기쁨이거던 여름날 헐떡이는 녹음에 묻혀 들고.... "中年들어 肝腸이 저려오는 아픔이거던 가을날 울음빛 단풍에 젖어 들거라...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 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평생" - '詩人 박재삼'의 "산에서"중에서- [ 산행 개념도]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있는 "팔봉중학교"에서 출발하여 '충남 태안군 소원면 영전1리'에 있는 "장재"까지 GPS 거리로 21.9km를 갑니다. [서산시 공용버스터미날] 8:30 2012년 11월 8일 (목) 흐리고 연무 '서산-태안'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첫차를 타고 "서산공용버스터미날"에 내렸습니다. 잠시 주변을 둘러 보고 8시 35분발 '태안여객' 시내버스를 타고 "팔봉중학교"로 향했습니다. [팔봉중학교] 8:56 "작아서 아름다운 학교"라는 "팔봉중학교"에 20여분이 걸려 8시 55분 쯤에 내렸습니다. 간단하게 산행 준비를 하고 출발합니다. [팔봉중학교] 9:02 "팔봉중학교 정문"으로 들어가 정면에 보이는 교실건물 옆으로 지나 갑니다. "팔봉중학교"는 장애인 기독교인이 설립한 미션계 학교라고 합니다. 스스로 "작아서 아름다운 팔봉중학교"라는 말이 더욱 친근감을 줍니다. [팔봉중학교 뒷길] 9:03 "팔봉중학교" 교실 건물 뒤엔 학교담장도 없이 바로 마을과 연결되는 길이 나 있습니다. 여기서 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 화살표가 가리키는 언덕까지 갑니다. 그러면.... ['팔봉' 이동통신중계탑] 9:08 "팔봉 SK 이동통신 중계탑"이 길안내를 합니다. 이동통신중계탑을 지나 가면 50여m 앞에 바로... [삼거리] 9:10 ★길조심★ 삼거리가 나옵니다.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 [삼거리에서 가야할 길 조망]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시멘트포장도로가 쭈~욱 펼쳐지며, 화살표 표시를 한 조그만 동산이 보입니다. 그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올라야할 "오석산"도 멀리 안개 속으로 조망됩니다. 오늘 날씨를 체크하고 왔는데도 재수없게 안개가 모든 사진을 방해합니다. [정맥 갈림길] 9:15 시멘트포장도로를 버리고 밭과 숲의 경계선으로 들어 갑니다. 아직까지 정상적인 마루금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밭 통과] 죽순인듯한 작물을 재배하는 밭이랑을 따라 밭을 지나면 농가가 한채 나오는데 집앞으로 지나 내려 갑니다. ['굴포' 왕복] 농가를 지나면 시멘트포장도로를 만나며, 우측 비닐하우스 방향으로 "굴포"까지 갔다가 되돌아 와야합니다. 왜냐하면 정맥 마루금은 "굴포"를 지나 가는데 '운하'를 만들어 놔서 건널수가 없습니다. ['굴포' 왕복] 비닐하우스 앞에 서면 앞에 "굴포"가 보입니다. 갔다가 되돌아 와야 합니다. [굴포] 9:21 "굴포 掘浦" '금북정맥 마루금'은 여기서 인간들에 의해 끊겨서 더 이상 갈수 없습니다. "굴포 掘浦"라는 단어의 뜻은 요즘 우리가 말하는 "운하 運河"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굴포"라는 정식적인 단어를 두고, 서양식 중국식으로 "운하 運河"를 씁니다. "운하 運河"라는 말의 뜻은 "큰 강을 운행한다"라는 뜻이지요? "운행 할 運"과 "큰 강 河"를 사용하니 "큰 강을 운행한다"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서양의 유럽 대륙을 관통하는 큰 강이나, 양자강등 중국을 관통하는 크고 긴 강을 따라 배들이 다니는 뱃길 江을 "운하 運河"라고 하는 것이고, 육지를 굴착하여 인위적 물길을 만들어 배가 다니게 하는 것은 "굴포"입니다. 그러니까 'MB'가 '한반도 대운하' '경인운하'라고 표현한것은 잘못된 표현이고, '한반도 굴포' '경인 굴포'라고 표현해야 바른 말인것입니다. 국어학자들은 뭐하고 있는겨? "굴포 掘浦"는 "땅을 팔 굴掘"과 "물가 浦"를 합친 단어이니 "육지를 굴착하여 물길을 만듬" 이라는 뜻이니 우리는 정확한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곳의 "굴포"는 地名을 나타내는 고유명사 "굴포"가 아닌 일반명사 "굴포"인데.... 어떻게 된건지 세월 속에서 地名을 나타내는 고유명사화 되어 버렸습니다. "금북정맥"을 다니는 산객들은 이러한 語原을 알고 지나 가시면 그러면 우리 국토의 山河가 더욱 새롭게 보일것입니다. [우횟길] 9:23 "굴포"를 건널수 없으니 위회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우횟길로 되돌아 나오는 것입니다. [우횟길] ★길조심★ 우횟길로 되돌아 나오면 "굴포"를 빙~ 돌아 가는 마을길이 보입니다. 멀리 앞에 보이는 삼거리에서 우측 방향으로 간다는 것만 아시면 되겠습니다. ['굴포' 안내문]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돌리면 시멘트포장도로가 쭈~욱 이어지며 중간에 큰 안내판이 보이는데, "굴포 안내판"입니다. ['굴포' 입구] 9:28 "굴포 안내판" 뒤에 보이는 나무다리가 있는 곳이 "굴포"입니다. 그리고 이 "굴포"를 경계로 "서산시"와 "태안군"이 나뉩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서산시"를 뒤로 하고 "태안군"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굴포운하' 주변 마을 안내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와 "태안군 인평리" 사이에 "굴포"가 있다는 안내도입니다. 안내도에 "상창" "중창" "하창"이 있는데, "북창"도 있더군요. 한자로 쓰면 "上倉" "中倉" "下倉" "北倉"이라니 "창고"가 있는 위치를 의미합니다. "굴포"를 완전히 개통 할수가 없어 연결되지 못한 "굴포"와 "굴포" 사이는 육로를 이용하여 곡물을 운송하였다는데, 육로 운송시에 곡물을 저장하는 창고를 곳곳에 두어 생겨난 이름이라고 하는군요. [굴포] 9:31 언제 다시 오겠습니까 그래서 "掘浦"로 들어 가 보았습니다. 조금전 '금북정맥' "굴포"와는 다르게 더욱 생생한 그림으로 다가 옵니다. 이 "굴포"가 완전 개통되었었다면 이 지역의 경제 문화가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라고... 상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태안군] 더욱 이해하기 쉽게 제가 "태안군" 안내도를 가져왔습니다.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려했던 "掘浦"가 "서산시"와 "태안군"의 경계선 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수 있죠? [진장교회] 9:33 "굴포"에서 100여m 진행하면 '구세군 진장교회'를 지나게 되고... [인평3리 다목적회관] 9:35 다시 100여m 진행하면 "태안군 인평3리 다목적회관"을 지나게 됩니다. 장수마을이라고 하는군요. [도내1리 '도루째'] 9:39 ★길조심★ "도루째"-'도내1리 오거리' "째"는 "재"의 이 지역 사투리라고 합니다. 왼쪽에서 두번째 가운데 길로 갑니다. 이곳은 모두 우횟길이고 오리지날 정맥길은 우측에 멀리 떨어진 능선입니다만, 적당한 길이 없어 이 길로 가는 것이랍니다. ['도내1리' 통과] 젖소!~ 새마을운동 할때 올린 슬레트 지붕의 농가도 오랜만에 보며.... ['오석산' 조망] 잠시 후에 오를 "오석산"이 박무 속에 보입니다. ['도내1리' '소한말' 입구] 9:45 "소한말"-도내1리 "말"은 "마을"의 방언. 직진해 갑니다. [갈림길] 9:52 다리가 있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 오리지날 정맥길에 가급적 가깝게 간다고 우측길로 가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런데 어느 길로 가나 큰 차이-의미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우횟길이고, 우측길로 가도 다시 이 도랑을 건너야하며, 괜히 조금 더 멀리 삥~ 돌 뿐입니다. 내용을 알고 가면 왼쪽길로 모두 가실겁니다. 저도 왼쪽길로 갑니다. ['도내2리' '북창'] 9:56 갈림길에서 200여m가면 삥~ 돌아 오는 길과 만나는 곳에 "도내2리-북창"이라는 버스정류장을 만납니다. 삥~돌아와도 다리를 건너지요? 괜히 발품만 더 팔지요? ['붉은재'로 가는 길] "북창"을 지나면 "오석산"과 "붉은재"가 가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붉은재'] 10:02~10:12 (10분간 아침식사) "붉은재" "팔봉중학교"에서 "붉은재"까지는 트랙킹이었습니다. 한시간 걸렸군요. "붉은재"는 황토가 많아 붉게 보인다는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합니다. ['오석산'으로 가는 길] "붉은재"에서 제법 넓은 길을 잠시 가면 잡목이 울창한 능선으로 올라 갑니다. 길조심을 해야 하는 곳이니 정신 바짝 차리고 진행합니다. [넘어진 소나무] 10:16 ★길조심★ "붉은재"에서 4분 정도 진행하여 잡목이 길을 어렵게하는 둔덕으로 올라 서면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쓰러진 소나무 밑으로 낮은 포복을 하고 지나게 됩니다. 이 쓰러진 소나무를 지나자마자 바로.... [갈림길] 10:16~10:26 (10분간 알바) ★★★길조심★★★ 삼거리 같지 않은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이 좌측길을 찾지 못해 여기서 선명한 산길이 있는 직진길로 가서 왔다리 갔다리 10여분 알바를 했습니다. 선답자들의 표지기도 없었습니다. [난장판 숲길] 조금 들어 가니 선답자의 표지기 하나가 보이며 안도.... 길은 난장판이었습니다. 지난 태풍으로 숯하게 많은 나무들이 길을 덮치고 있었습니다. [갈림길] 10:39 난장판 숲길을 13분 정도 헤집고 올라 가니 갈림길이 나오며 많은 표지기가 좌측으로 길을 안내합니다. [숲길] 또다시 난장판 숲길을 헤집고 8분여 올라 갑니다. [무명봉] 10:47 "오석산 정상"인줄 알았더니 전위봉이었습니다. [무명봉에서 '오석산' 조망] "오석산"은 건너편에 보입니다. [묘지 통과] 전위봉인 무명봉을 잠시 내려가면 묘지를 통과하게 되고... ['오석산'으로 오르는 길] 잡목 잡초가 뒤덮힌 희미한 산길을 잠시 오르면.... [갈림길] ★길조심★ 갑자기 우측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길조심! 10여m올라 가면... [오석산 정상] 10:53~10:58 (5분 휴식) "오석산 烏石山 169m" "까마귀 烏"를 사용하고 있으니 까마귀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려니 짐작하고... 숲으로 둘러 싸여 조망은 없고, 그래도 형식적 산불감시초소는 돈 들여 설치했고, 정맥꾼들이나 정복감에 젖어 잠시 숨을 돌리고 가는 밋밋한 봉우리..... ['오석산'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잠시 내려가서 다시 오르면.... [단풍] 단풍나무가 즐비한 무명봉을 지나고... ['옥녀봉'으로 가는 길] 처음으로 좋은 산길을 잠시 걷게 되고.... [묘지 통과] 묘지를 통과해 수렛길을 만나 30여m가면.... [갈림길] 11:10 ★길조심★ 수렛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나가는데 사진 속의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수렛길에 나무가 쓰러져 바리게이트를 치고 있습니다. 정맥길은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옥녀봉'으로 오르는 길] 또 더러운 길을 7분여 오르면.... [옥녀봉 정상] 11:17 "옥녀봉 玉女峰 130m봉" '전혁진씨 개념도'에는 "130m봉"이라고만 표기한 봉우리에 "옥녀봉"이라는 이름이 '한현우씨'에 의해 붙여졌습니다. "마포산악회의 박건석씨"나 "3000산의 한현우씨"가 붙이는 산이름은 임의적 자의적으로 붙이는 것이 아니고 모두 근거있는 것이었습니다. 각 지역 地理誌에서 찾아와 정성껏 부착하고 있으니 고마워해야 합니다. ['강실고개'로 내려 가는 길] "玉女峰"에서 15분 정도 내려 가면.... [강실고개] 11:32 ['강실고개' 좌측방향] ['강실고개' 우측방향] "강실고개" '충남 태안읍 산후리 원산후 부락'과 '상옥리 고일마을' 이어주는 고개랍니다. ['백화산'으로 가는 길] 부러진 나무들을 피해 요리조리 산길을 헤치고 잠시 오르면, 옛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인삼밭으로 나왔던 밭은 황무지가 되어 있고.... [잡목지대] 30여분간 잡목들과 전쟁을 한판 치루며 오르면.... [무명봉] 12:05 바위들이 있는 이름없는 봉우리를 오르게 되고.... ['241.7m봉'으로 가는 길] 다시 15분여 잡풀 잡목지대를 진행하면... [241.7m봉' 조망] "241.7m봉"이 나타납니다. ['241.7m봉'-'흥주산'] 12:29 ★길조심★ "흥주산 興注山 241.7m" 이곳에도 '한현우씨'가 "興注山"이라는 명찰을 달아 놨습니다. 이 산 좌측 아래에 유명한 "興注寺"라는 절간이 있지요? 특히 '흥주사 은행나무'가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900년 수령 이나저나 이곳에서 정맥길은 우측으로 갑니다. [뒤돌아 본 '오석산'과 '옥녀봉'] "興注山"에서 지나온 "오석산"과 "옥녀봉"을 뒤돌아 보고.... 안개 때문에 멋진 풍경을 촬영 못해 너무 아쉽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팔봉산"과 "금강산" "장군산"이 일품이라는데..... 그래서 다른 분이 촬영한 사진을 자료 사진으로 올립니다. [가야할 '백화산' 조망] 정면에는 잠시 후 올라야 할 "백화산"이 조망됩니다. 오늘 금북정맥의 하일라이트입니다. ['241.7m봉' 내림길] "241.7m봉"을 잠시 내려 가면.... [바위 전망대] 길 가운데에 바위가 있습니다. 저 바위에 올라 가면.... ['백화산' 조망] "백화산"이 왜 白華山인지 알수 있는 정경이 펼쳐집니다. 박무만 없었으면 더욱 실감이 났을텐데..... 암봉이어서 멀리서 보면 산이 하얗게 빛난다고 "白華山"이랍니다. 그런데 '금북정맥 마루금'은 '군부대'가 있는 봉우리로 지나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군부대를 피해 "백화산 정상"으로 우회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약수터 갈림길] 12:41 '약수터' 갈림길을 지나면.... ['백화산 등산로 입구'] 12:42~1:02 (20분간 식사) [좌측방향] [우측방향] "백화산 등산로 입구"-'태안읍 오룡동'과 '냉정골'을 잇는 고개 맷돌처럼 생긴 바위 위에 앉아 점심식사를 20여분하고.... ['백화산'으로 오르는 된비알] 가파른 된비알을 10여분 올라 갑니다. [산후리 갈림길] 1:10 된비알이 온순헤 지는 곳에 "산후리 갈림길"이 나옵니다. 사진 속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측으로 "산후리"에서 오르는 일반등산로가 나 있는데, 그곳에 안내판과 함께 표지기가 많이 달려 있으나 정맥 표지기가 아닌 일반등산로 표지기이니 무시하고 정상을 향하여 올라 가야 합니다. ['백화산'으로 가는 길] "산후리 갈림길"에서 좌측을 보면 "백화산 정상"이 보입니다. [급경사 오르막] 로프가 설치된 급경사를 20여m오르면.... [군부대와 '원정맥 봉우리'] '군부대'가 있는 오리지날 정맥길이 지나는 산봉우리가 제법 멋있게 보이는데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갈수 없습니다. ['백화산'으로 가는 길] 반대방향 "백화산 정상"으로 가는 길로 올라 갑니다. [원정맥 봉우리] "백화산 정상"으로 오르며 뒤돌아본 '오리지날 정맥 봉우리'입니다. 군부대가 점령하고 있죠? [백화산 정상부] 기묘한 바위들을 지나면.... [백화산 정상] "백화산 정상"이 나타납니다. [백화산 정상] 1:22~1:35 (7분간 조망) "백화산 白華山 284m" "태안의 진산"으로 "태안8경"중에 제1경이 "白華山"이라고 합니다. 하얀 화강암으로 덮혀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봄에는 芙蓉花처럼 보인다네요. 정맥길은 "태을암"방향으로 내려 가야 합니다. [봉화대지] "白華山" 정상에는 "봉화대지 烽火臺址"가 있고.... [봉화대지] "봉화대지 烽火臺址"에서 정상석이 있는 정상을 바라보고... 내려 가면 [백화산성] "백화산성 白華山城"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판을 참고 하시고... [쌍괴대] "쌍괴대 雙槐臺" '태을암"으로 내려 가는 하산길에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자연홰손을 한 흔적이 보입니다. 언제 때 군수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기석 군수"라는 놈이 자연홰손을 해놨습니다. [태안시내 조망] "태안"도 엄청 발전했습니다. 계획성있는 개발은 "서산시"보다 더 치밀한듯하게 느껴졌습니다. [태안 팔경] '태안버스터미날'에 있는 "태안팔경 안내판"을 촬영하여 참고로 올립니다. "안흥성"이 제2경이군요. 다음 마지막구간 "안흥진"에 있으니 꼭 들려 봐야겠습니다. [하산길] 정상에서 3분 정도 내려 가면.... [갈림길] 1:38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대부분의 정맥꾼들은 우측으로 내려가서 포장도로를 이용합니다. 우측에는 사진 속의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바로 군부대 진출입로가 있습니다. 우측길이나 직진길이나 모두 정맥 마루금을 벗어난 우횟길입니다. 마루금은 군부대가 있는 봉우리를 통과한다고 했죠? 여기서 직진하여 "대림아파트-태안초등학교"방향으로 가는 것이 여러모로 좋습니다. 저는 직진하여 산길로 내려 갑니다. ['태을암'으로 내려 가는 길] 산길을 잠시 내려 가면 우측에 "태을암"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태을암' 국보 마애삼존불 보존각] 1:43~1:50 (7분간 구경) "태을초등학교-대림아파트"방향으로 내려 가면 "태을암"을 통과해 내려 갑니다. 바로 우리나라 "國寶 307호 태안 마애삼존불"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보호각이 나타나는데, 이 보호각 안으로 들어갑니다. [국보 307호 '태안 마애삼존불'] "國寶 307호 태안 마애삼존불" 금북정맥을 하며 처음으로 國寶를 마주하게 됩니다. 도로를 따라 내려 가면 이곳을 구경 못하고 갈수 있으니 정상 갈림길에서 "태안초등학교"방향으로 직진해 내려 와야겠죠? ㅎ 국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안내판을 참고 하시고... ['국보 마애삼존불' 뒷면] [태을동천] "國寶 307호 태안 마애삼존불" 보호각 뒤로 가 보니 "삼존불"이 조각되 있는 바위의 뒷면은 이렇게 초라하게 생겼습니다. 전에도 산행기에 기술한바있지만 마애삼존불"에 대해 잠깐 알아 보고 가겠습니다. "마애"라는 어려운 한자는 이제 그만 사용했으면 합니다. 한문에 관심 없는 분들은 "마애불상"이 불상의 이름 인줄로 압니다. 하지만 '마애'는 한자로 '磨崖'라고 쓰며 그 뜻은 "바위 단면에 조각 한다"는 뜻이죠? 그러니 "마애삼존불"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 명사로 "바위 단면에 불상 셋을 조각"했다는 뜻인데, 어려운 한자를 사용해 골치 아프게 합니다... 그냥 "바위 단면 조각 불상 셋"이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 할텐데... 바위에는 절간과 어울리지 않는 글귀들을 조각해서 자연보호에 역행하고 있는데 주로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을 펼칠때 유교를 믿는 유생들이 저지른 것들이라고 합니다. [태을암] "태을암 太乙庵" "太乙"이라는 단어의 뜻은 동양사상에서 우주의 본체, 즉 천지만물의 출현및 성립의 근원을 뜻한다고 합니다. 또한 '풍수지리'에서는 큰독수리가 날개를 펼치고 날아 내리는 모습을 매우 귀한 地像으로 여겨서 한자 "太乙"이라는 글자 모양과도 연관이 있답니다. "태을암 太乙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라고 하는군요. [태을암 대웅전] 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與地勝覽에 따르면 조선 성종9년-, 즉 서기1478년 경북 의성에 있던 단군을 모신 '태일전 太一殿'을 백화산으로 옮긴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절집] 저의 학교 선배이시자 저와 절친한 "김청수 시인"의 詩한수 들려 드림니다. 절집 오후 김 청수 절집엔 모두들 다 解脫한 後다, 풍경소린 맑고, 독경소린 낮고, 山神堂 나들고. 石間水 돌항아린 채우기 위해 비워냄을 안다. 화안한 낯빛으로 햇살을 담고, 구름도 默言中. 윗 詩는 새로운 詩文學의 한 장르인 "民調詩"입니다. "民調詩"는 詩의 새로운 형태로 민요, 시조등의 전통적인 운률에 현대적 詩語로 꾸미는 가장 최근의 詩流입니다 [태을암 입구] 1:50 "太乙庵" 구경을 마치고 입구로 나오면 "백화산"에서 내려 오는 포장도로를 만남니다. [백조암] 1:50 "太乙庵" 입구에서 아랫쪽을 바라보면 큰 바위가 하나 보이는데 이름하여 "백조암"이라고 한답니다. 백조를 닮았는지 참새를 닮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여튼 볼거리입니다. [백조암] 백조를 닮았는지 어쩐지 몰라 지나와서도 뒤돌아 보며 "백암"을 한컷했는데.... 새끼를 품은 백조? ㅎㅎ 보는이들이 알아서 감상하세요~~ [정맥길] '백화산' 우회길에서 다시 정맥 마루금에 합류합니다. "백조암"부터 정맥 마루금은 도로를 따라 앞에 보이는 둔덕으로 이어집니다. 화살표 보이시죠? [정맥 갈림길] 1:54 포장도로를 벗어나 정맥길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있는 곳입니다. 전봇대 번호를 메모해 가면 길찾기에 도움이 되더군요. [조망소] 1:54 ★길조심★ 희미한 산길로 들어 서면 암반 위를 통과하게 되는데 길이 잘 보이지 않더군요 무조건 직진하면 됩니다. 그리고 바위 위에 올라 뒤돌아 보면 ...... ['백화산' '태을암' 조망] 1:55 "백화산"과 "태을암", 그리고 오리지날 정맥 봉우리가 조화를 이루며 경관을 펼칩니다. ['낙조봉' 조망] 남쪽으로는 가야할 "낙조봉"이 조망됩니다. 연무만 없었으면 멋진 풍경을 촬영할수 있었는데...못내 아쉽습니다. ['낙조봉'으로 가는 길] "태을암" 포장도로에서 전망바위를 지나면 "태을암"에서 내려오는 일반등산로를 만나는데 50여m 내려 가면..... ['낙조봉' 갈림길] 1:59 ★★★ 기억해 둬야 하는 갈림길 ★★★ "낙조봉"으로 오르는 등로와 '우회로 길림길'을 만나는데, 우회로는 "태을초등학교"와 "대림아파트"로 가는 일반등산로였습니다. 이곳을 ★기억해 둬야 하는 갈림길★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정맥꾼들이 "낙조봉"에서 알바를 하기 때문입니다. 알바를 근본적으로 방지하려면 "낙조봉"에 올라 갔다가 이곳으로 되돌아 와 우회로로 가면 알바를 할 가능성이 확~ 줄어 듭니다. 그 이유는 "낙조봉"에서 다시 알려 드림니다. [낙조봉] 2:02~2:05 우회로 갈림길에서 30여m오르면 바로 "낙조봉"입니다. "낙조봉 落照峰" 화창한 날에 이곳에 올라 西海를 감싸안고 도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면 절경이라고 합니다. 東海에 가면 주로 "日出", 즉 "양양 揚陽-해오름"을 자랑하는데, 西海에선 주로 "노을", 즉 "落照"의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燦然落熙粃西山 太乙眞光映水濟 衰老人生寃莫說 養精收氣在斯間 [낙조봉] "동경대 同庚臺" 뭔가 해서 혹시 내가 모르는게 있나 궁금해서 자세히 훌터 봤습니다. 원래 "동경 同庚"이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갑 同甲-같은 나이"라는 뜻인데.... 무슨 뜻으로 새겨놨는지 알아 보려고 옆에 새겨진 글자들을 보니 "사람 이름들"이었습니다. 이 개쌔이들... 그러니까 동갑인 놈들이 이곳에 함께 올라 동갑 친구지간임을 알리는 자연홰손이었습니다. 허~~참....이런 낙서가 뭔 자랑꺼리인가!~ ['낙조봉'에서 '태을암' 조망] 저는 바위에 낙서하는 대신 "落照峰"에서 "白華山 太乙庵"을 조망하며 '박재삼 시인'의 "산에서"라는 詩 한수를 읊으며 자연을 감상합니다. 산에서 박재삼 그 곡절 많은 사랑은 기쁘던가 아프던가 젊어 한창때 그냥 좋아서 어쩔줄 모르던 기쁨이거던 여름날 헐떡이는 녹음에 묻혀들고 中年들어 肝腸(간장)이 저려오는 아픔이거던 가을날 울음빛 단풍에 젖어 들거라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 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평생 그가 다스리는 시냇물도 여름엔 시원하고 가을엔 시려오느니 사랑을 기쁘다고만 할 것이냐 아니면 아프다고만 할 것이냐 ['낙조봉'에서 '태안여고' 조망] "낙조봉"에서 가야할 '금북정맥'이 "태안여고"와 "92.5m봉"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정맥 마루금은 남쪽 능선이 아니라, 우측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산객들이 여기서 알바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태안여고'로 내려 가는 길] 2:05 "同庚臺" 바위 남쪽 암반을 타고 내려 가는 길이 흐릿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낙조봉"으로 오르는 우회갈림길로 되돌아 가는 것이 확실하다고 한것입니다. 되돌아 가기 싫으신 분들은 이 남쪽 암반길로 내려 갑니다. ['낙조봉 우회로'] 2:07 ★★★길조심★★★ "낙조봉"에서 2분 정도 잠시 내려 가면 "일반등산로-낙조봉 우회로"를 다시 만납니다. 이 일반등산로에서 좌측으로 내려 가면 "태안초등학교"로 내려 가는 알바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측 방향으로 다시 올라 가야 합니다. 느낌으로는 좌측으로 하산해야 할듯하지만 우측으로 올라 가야 하기 때문에 알바를 하는 이유가 되겠고, 선답자들의 표지기도 없기에 더욱 혼동을 주는듯 합니다. ['태안여고'로 가는 갈림길] 2:10 ★★★길조심★★★ "일반등산로-낙조봉 우회로"를 만나 다시 3분 정도 오름짓을 하면 좌측에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비로소 보입니다. 여기도 리본이 몇개 없습니다. 그래서 "낙조봉 입구 갈림길"로 돌아가 일반등산로를 따라 내려 오는것이 더 좋을수 있다고 "낙조봉"을 오르며 알려 드렸던 것입니다. 이젠 돌아 갈 필요 없어졌다구요? ㅎㅎ ['모래기재'로 내려 가는 길] 시원하게 빵 뚫린 일반등산로 놔두고 이런 거지같은 길로 다녀야하는게 정맥꾼들의 운명. 잠시 내려 가면.... [암봉] 2:13 조그만 암봉이 앞을 가로 막으면 좌측으로 내려 갑니다. [암봉에서 '태안여고' 조망] 암봉에 서면 "태안여고"와 "92.5m봉"이 가까이 보이며 정상적 정맥 마루금을 타고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모래기재'로 내려 가는 길] 아무도 다니지 않는 오솔길을 내려 가면... [숲길]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을 요리조리 피해 10여분 내려 갑니다. ['태안여고' 조망] 2:22 시야가 트이며 "태안여고 ROSE HALL"이 성큼 다가오며 "모래기재"에 다가 섭니다 [태안시내 방향 조망] 남쪽으로 '태안시내'가 아주 가까이 조망되며.... [태안읍 삭선리 양산리 방향 조망] 북서쪽으로는 '삭선리-양산리'가 조망됩니다. ['모래기재'로 가는 길] 도로로 내려 서서 우측으로 내려 갑니다. 오리지날 마루금은 직진해야 할듯한데 절개지로 길이 없었습니다. [음식점 '다-오리' 앞마당 통과] 도로를 30여m 내려가면 "다-오리"라고하는 황토오리구이 음식점이 나오고 "다-오리 음식점" 앞마당으로 내려 갑니다. ['모래기재'로 올라 가는 길] [603번 지방도]를 만나 "모래기재"로 올라 갑니다. ['모래기재'-태안교육청] 2:27 "모래기재" "모래기재" 좌측에는 "태안교육청" 관련시설들이 있고.... ['모래기재'-태안여고] 2:27 우측에는 "태안여고"가 있습니다. "92.5m봉"으로 가려면, '태안여고'로 들어가 'ROSE HALL' 뒤로 난 등산로를 이용하는게 여러모로 좋겠습니다만, 등산복을 입고 여학교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이 좀 그래서 우측 도로를 따라 진행합니다. ['모래기재'에서 뒤돌아 본 '낙조봉'] "태안여고" 앞 "모래기재"에서 지나온 "낙조봉"을 뒤돌아 보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92.5m봉' 입구] 2:29 "태안여고 정문"에서 100여m도로를 따라 들어 가면 반사경이 있는 곳이 나오면 건너편에 "92.5m봉"으로 오르는 희미한 등로가 있습니다. 피곤하신 분들은 이 포장도로를 따라 가도 다시 정맥길과 만나게 된답니다. [난장판길] 등로로 올라 가니 완전 개판 지저분한 길을 지나야 하더군요. 도로 따라 갈걸....약간 후회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난장판길은 잠시....바로 산죽길이 10여m 이어지고... ['태안여고 ROSE HALL"] 2:33 바로 넓은 일반등산로를 만나는데 좌측을 보니 "태안여고 ROSE HALL"이었습니다. 다음에 오실 분들은 "태안여고" 안을 통과하는 것이 어떨지.... [태안여고 등산로] "태안여고 학생회"가 단장해 놓은 등로를 여유있게 산책합니다. [임도 삼거리] 2:36 잠시 가면 수렛길을 만나는 삼거리가 나오고... ['92.5m봉' 정상] 2:38 조금 올라 가면 "92.5m봉"정상에 싱겁게 오르고... ['92.5m봉' 하산길] 5분 정도 숲길을 내려가면.... [밭] 밭을 만나고 좌측으로 내려 갑니다. ['예비군훈련장' 방향 조망] 2:43 시멘트 포장도로가 길게 펼쳐지며 가야할 "159.7m봉"이 보이는데 그 아래에 있는 송전탑을 포스트로 삼아 진행하는것이 좋습니다. "퇴비산"은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고, 갈림봉인 "개봉산"을 지나 갑니다. 아직도 갈길은 멀기만 합니다. [마늘밭 통과] 길 주변엔 모두 밭이었는데, 마늘을 많이 심었더라구요. 쬐끄만 개씨끼가 따라오며 짖어대는데....초코파이 하나 줄려고하니까 도망가더라구요 [뒤돌아 본 '백화산'과 '92.5m봉'] 마을을 지나며 뒤돌아 본 "백화산"과 '태안여고' 뒷산인 "92.5m봉" [마을 통과] '태안읍 삭선리'인지 '장산리'인지 여튼 마을을 통과합니다. 계속 앞에 보이는 송전탑을 포스트로 진행합니다. [도로 공사중] 도로공사하는 곳을 지나면.... [태안 예비군훈련장 정문] 3:03 "태안예비군훈련장" 정문 앞에서 가야할 정맥길을 가늠해 보고 우측 비포장도로로 조금 올라 갑니다. [정맥길 진입로] 3:06 좌측에 예비군훈련장 철조망 울타리를 두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철조망 울타리가 끝나 꺽여 들어 가는 곳에 정맥길로 붙는 입구가 있습니다. [철조망 울타리] [원형 철조망]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조금 들어 가면 이번에는 원형 철조망이 앞을 가로 막는데 우측으로 조금 가면 선답자들이 뭉게 놓은 원형 철조망을 넘어 훈련장 안으로 들어 갑니다 [예비군 훈련장 통과] 각개전투훈련장을 통과하며 6분 정도 올라 갑니다. ['포스트 송전탑' 앞 통과] 3:12 '태안여고'에서부터 포스트로 삼으며 왔던 송전탑이 우측에 나타납니다. 정맥길은 송전탑으로 가지 않고 직진하여 오릅니다. [훈련장 작은 봉우리 통과] 그러면 훈련장 안 작은 봉우리를 넘어 가게 되고.... [철조망통과 훈련장] 3:16~3:26 (10분간 알바) ★길조심★ 철조망 통과 훈련장이 나오면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측 산길로 올라 가야했는데 직진하여 알바를 10여분 했습니다. 훈련장 안이어서 선답자들의 표지기도 없고 길도 여기저기로 나 있어 길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갈림길] 3:26 ★길조심★ 훈련장을 한바퀴 돌고 찾아온 갈림길... 이 나이에 오랜만에 예비군 훈련 했습죠. ㅎ ['159.7m봉'으로 오르는 길] 잡목을 헤치고 잠시 오르면.... ['159.7m봉'] 3:28 "159.7m봉"을 알리는 팻말이 있는 곳을 지나면 ['159.7m봉' 정상] 3:28~2:36 (8분간 휴식) 삼각점이 있는 "159.7m봉" 정상에 도착합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출발합니다. ['159.7m봉' 내림길] "159.7m봉"을 내려가 다시 조그만 봉우리를 오르면... [무명봉] "퇴비산 갈림봉"인줄 알았으나 이름없는 봉우리에 오르게 되는데, "퇴비산"과 "퇴비산 갈림봉"은 건너편에 보입니다. ['개봉산'-155m봉-'퇴비산 갈림봉'] 3:47 "개봉산 開峰山 155m"-"퇴비산 갈림봉" '한현우씨'가 지리서를 찾아 이름표를 달아 준 "개봉산"에 올랐습니다. 우측으로 내려 갑니다. ['개봉산' 내림길] ['차도고개'로 가는 길] "개봉산"에서부터 "차도고개"까지는 완만한 내림길입니다. 10여분 내려 가면 ['서해산업' 옆 통과] 좌측에 "서해산업" 골재채취장과 레미콘 시설이 큰 규모로 보입니다. 참고로 "서해산업"은 전국에 이러한 골재채취장을 많이 가지고 있더라구요 알짜배기 회사란 느낌을 받지만 산을 까뭉게며 돈벌이를 하는 회사이니 산을 까뭉게는 허가 받기가 쉽지 않을텐데 뭔가 재주가 좋은 회사인듯 합니다. ['차도고개'로 내려 가는 길] 숲을 빠져 나가면 좌측에 "서해산업 정문"이 보이고, 묘지를 지나 내려 가면 "서해산업 진출입로"를 만납니다. [차도고개] 4:00~4:08 (8분간 휴식및 배터리 교환) "차도고개" '태안군 근흥면'과 '소원면'의 경계선이며, [32번국도]가 지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길 건너 산줄기로 올라 가야하는데 입구에 돌계단이 있습니다. 버스 시간 관계로 앞산 줄기는 생략하고 [32번국도]를 따라 간단하게 "유득재"로 갑니다. ['유득재'로 가는 길] 4:14 "유득재" 앞으로 내려 가는 곳에 "S오일주유소"와 쓰레기차들이 있습니다. [유득재] 4:17 "유득재" 금북정맥을 가는 산객들에겐 매우 유명한 "등나무슈퍼"가 있는 평지같은 고개입니다. 버스정류장 이름은 [시목1리(유득재)] ['시목초등학교' 입구] "등나무슈퍼" 바로 옆 "시목초등학교" 가는 길로 정맥길은 이어 집니다. ['개봉산'과 '퇴비산' 조망] 멋진 주택 뒤로 조금 전에 올랐던 "개봉산"이 조망되는군요. [시목초등학교] 4:26 "시목초등학교" 앞을 지나고... ['시목리' 마을 통과] "삼은교회"가 있는 "시목리 마을"을 지나 갑니다. 이제 정맥은 땅바닥에 기어 갑니다. 바다가 가까워져 간다는 뜻이기도 하고.... [흑염소] 흑염소가 끝까지 저를 응시하더군요.... [삼거리] 갈림길 삼거리도 만나지만 계속 직진입니다. [장대1리] 4:35 "장대1리" 버스정류장도 지나고.... [운무 속 태양] 오늘 운무로 사진이 흐릿해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장대1리-삼곳말] 4:42 "장대1리-삼곳말" 포장도로는 여기까지이고, 이제부터 비포장도로를 갑니다. [사당] 좌측에는 사당이 보이고... [정맥길과 우회로] 비포장도로로 들어 가니 오리지날 정맥길은 우측으로 갑니다. 길도 없는 정맥 마루금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는 곳입니다. 시간도 없고, 발바닥도 이젠 화끈거리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쉰재"까지 갑니다. [정맥길과 우회로] 4:48 "삼곳말"에서 6분 정도 비포장도로를 진행하면 우측으로 임도가 흐릿하게 있는 곳이 나오는데, 마루금을 고집하시는 분들은 여기서라도 우측으로 올라 마루금에 복귀할수 있으니 참고 하시고....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여기서 올라 갔다가 괜히 알바를 하며 고생했다는 기록이 대부분 저는 발바닥도 화끈거리고...버스시간도 없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합니다. [비포장도로] 10여분 비포장도로를 눌루랄라 걸어가면... [전원 풍경] 막바지 추수철에 접어든 전원풍경을 감상하고.... [원정맥길과 합류지점] 4:58 오리지날 정맥길과 다시 합류하는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마루금과 합류하는 지점입니다. 간단하죠? 이 산행기를 보시는 분들은 "파란문도 우횟길로 갔는데 우리도 우횟길이다!~"라고 핑개를 저에게 대며 우회하지는 않을련지...ㅎㅎ ['우렁각시탑' 입구] 5:02 4분 정도 더 진행하면 "우렁각시탑 입구"라는 안내판을 만나 들어 가 봅니다 알타리 무우를 수확하여 출하하는 트럭이 서울로 가려고 합니다. 먹음직스럽습니다. 서산 태안쪽 흙은 대부분 황토여서 채소 맛이 좋다는군요. [우렁각시탑] 무덤들이 있는 곳에 "우렁각시탑"이 보입니다. "우렁각시"라는 말은 어린이 동화책에서 나온것이랍니다. '우렁이'는 '논고동'이지요. 우연히 우렁이를 주인공으로 해서 우렁각시로 변한 우렁이가 가사일을 돕는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 동화가 나온후로 "우렁각시"라는말이 생겨 났다는군요. 그런데 제가 국어사전을 찾아 보니까 "우렁각시"는 "아무도 모르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 [우렁각시비] '우렁각시' 전설 하나 들려 드림니다. 일년 내내 농사 지어 소작료에 뺏기고 가난에 찌들며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어떤 농부가 논에 물을 보러 갔답니다. 논도 작아 수확할 벼도 적어 한숨을 쉬며 "이 농사를 져다 누구하고 먹나?" 하며 삽으로 논 물구멍을 콱 찍었답니다. 그랬더니 어디에선가 "나하고 먹지 누구하고 먹어." 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흐~흠 이상해서 또 한 번 더 삽을 콱 찍으며 "이 농사를 져서 누구하고 먹나?" 라고 하니까 "나하고 먹지 누구하고 먹어." 라고 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논 물구멍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고 주먹만한 우렁이 하나가 있어 그걸 주워다가 집 물두멍에다 놓았는데, 이 농부가 어디 갔다 오면 누군가가 밥을 해 놓고..밥을 해 놓고 그래서 어느날은 농부가 몰래 숨어서 보니까 우렁이에서 예쁜 색시가 나오더니 하늘의 해를 한번 보고는 밥을 짓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고달팟던 농촌의 현실을 풍자한 밑바닥 인생들의 한탄이 베어있는 얘기입니다. 현재도 이런 사회가 아닌지 되새겨봐야 합니다. "우렁각시"는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며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컷는 말이지요. 우리 사회에 "우렁각시"가 많아야 따뜻한 사회가 될텐데.... "파란문"은 빨리 돈벌어 "우렁각시"가 되기는 틀렸고, 산행기를 더욱 잘 써서 산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우렁각시"가 되어야지...ㅎ ['쉰재'로 가는 길] "우렁각시탑"에서 다시 10여분 비포장도로를 진행하면.... [쉰재] 5:14 [32번국도]가 지나는 "쉰재"가 나오며 우측으로 갑니다. [장재] 5:16 "쉰재"에서 "장재"까지는 아주 가깝습니다. 2분 정도 거리... ['영전1리' 마을표지석] "장재" 이제 마지막 구간만 남겨두고 오늘 산행길을 마칩니다. 직진하면 "만리포"로 가는 길입니다. [태안-소원리 버스 시간표] "소원면" 출발지에서 5시 5분에 출발하는 시내버스가 5시 23분쯤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마지막 구간을 가기 위해 올때엔 "태안터미날"에서 [9시 5분 버스]를 타야겠습니다. [시내버스] 5:23~5:38 (15분) [테안공용버스터미날] 5:38 이 시내버스엔 "버스차장"이 있더군요. 써비스 만점...ㅎ 15분 정도가 걸려 "태안버스터미날"에 도착하니 고속버스는 한시간 이상 여유가 있어 저녁 식사를 근처에서 합니다. [태안 출발 고속버스 시외버스 시간표] ['팔봉중학교'에서 '장재'까지 구글어스] "팔봉중학교"에서 "장재"까지 21.9km를 8시간이 걸려 통과했습니다. [태안군 관광 안내도] 우리나라 국립공원이 몇개 인지 아세요? 20개 입니다. 그리고 바닷가가 국립공원인 곳은? 대부분의 국립공원은 산이지만 "바닷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곳은 바로 이곳 "태안 해안 국립공원" 하나 뿐입니다. [태안 번화가] 5:44 그대가 내게 보내는 것 박재삼 못물은 찰랑찰랑 넘칠 듯하면서 넘치지 않고 햇빛에 무늬를 주다가 별빛 보석도 만들어 낸다. 사랑하는 사람아, 어쩌면 좋아! 네 눈에 눈물 괴어 흐를 듯하면서 흐르지 않고 혼백만 남은 미루나무 잎사귀를, 어지러운 바람을, 못 견디게 내게 보내고 있는데!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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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가는 금북정맥 열네번째 산행기 성연고개-성왕산-성황당고개-내동고개-186m봉-윗갈치- 비룡산-쥐뿌리재-금강산-장군산-수량재-물래산-팔봉중학교 누군가 말을 해다오 내가 왜 여기 서있는지 그 화려한 사랑의 빛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멀리 돌아 보아도 내가 살아온 길은 없고 비틀거리는 걸음 앞에 길고 긴 내 그림자 [ 산행 개념도]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과 '성연면 갈현리' 경계에 있는 "성연고개(갈현고개)"에서 출발하여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있는 "팔봉중학교"까지 GPS 거리로 19.6km를 갑니다. [서산시 공용버스터미날] 8:23 2012년 10월 30일 (화) 맑음 '서산-태안'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첫차를 타고 "서산공용버스터미날"에 내렸습니다. 잠시 주변을 둘러 보고 8시 35분발 [352번] 시내버스를 타고 "서산구치소"로 향했습니다. '금북정맥'을 가는 사람이 구치소로 가는 버스를 타니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만.... ['352번' 서산구치소행 시내버스 시간표] '서산터미날'에서 '구치소'까지 20분도 체 걸리지 않습니다. [서산구치소] 8:52 5일만에 다시 "서산구치소"앞에 왔습니다. 잠시 산행준비를 하고 "성연고개"로 올라 갑니다. 100여m거리. ['성연고개' 들머리] 9:00 "성연 聖淵고개"(갈현葛峴고개)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와 '성연면 갈현리'를 잇는 고개. "금강 錦江"과는 아무 관계없는 고개이지만, 선조들이 '금북정맥'이라는 이름으로 산줄기를 이어 놨으니 한번 가보는 것 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이곳에 올 이유가 없었을텐데.... 운명이 기구하여 '구치소'옆 고개에 다시 산넘고 물건너 찾아 왔습니다. '진혁진씨'가 그린 산행개념도에는 "성연고개"라고 표기되 있습니다만, 이곳 버스 정류장 안내판에는 "갈현고개"라고 표기되 있습니다. '성연면 갈현리'이니 "성연고개"던 "갈현고개"던 상관없겠습니다만.... [갈현농원] "성연고개(갈현고개)"에서 들머리 골목으로 들어 서니 바로 "갈현농장"앞을 지나고... 앞에 보이는 민가 우측으로 포장도로는 이어지더군요. ['180m봉'으로 가는 들머리] 다시 포장도로가 "180m봉"방향으로 연결되는데, 좌측 능선이 정맥 마루금인듯합니다. 조금 더 들어 가면... [산길 입구] 9:02 주황색 기와지붕을 가진 민가로 가기 바로 전에 좌측으로 산길이 나있습니다. "성연고개"로 끊긴 마루금을 우회하여, 길은 여기서 다시 마루금에 합류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 가는 것입니다. [묘지] [숲길] 올라가면 바로 묘지가 나오고 우측으로 숲길을 잠시 오르면 정상적으로 금북정맥 마루금에 올랐다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뒤돌아 본 '은봉산'과 '간대산'] 9:07 마루금에 올라 뒤돌아 보니 지난구간에 올랐던 산봉우리들이 반갑게 인사합니다. 잡목잡풀에 글키며 올랐던 "銀峰山", 한자도 어려운 "艮垈山", 잡풀에 포위당해 있는 [124번송전탑]만이 썰렁하게 서있던 "142m봉"....... 그 뒤로 "김종필의 삼화목장"..."가야산"..... [난장판 숲길] 태풍 '곤파스'의 흔적이 홀로가는 산객을 괴롭히는 난장판 숲길이 15분 정도 이어지며 초장부터 고행길이 이어 집니다. [삼거리] 9:23 잡목을 헤치고 능선으로 오르니 갑자기 선명하고 걷기 좋은 산길이 가로지르며 지납니다. 이렇게 좋은 길 놔두고 길도 거의 없는 더러운 길로 오른것은 정맥꾼들의 운명....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 산뜻한 길로 50여m진행하면... ['180m봉' 정상] 9:25 "180m봉' 벤치가 두개 있는 쉼터가 "180m봉" 정상이었습니다. 에휴~~ 이런 봉우리도 산봉우리라고.... 그래도 '금북정맥'이라니 오르지 않을 수도 없고... [음암면 '삼흥저수지' 조망] '서산시 음암면 삼흥리'에 있는 "삼흥저수지"가 조망되기에 위안을 삼고.... '서산시 음암면'이 낳은 王妃가 한명있죠. 너무나 유명한 여자 - "정순왕후 김씨 貞純王后 金氏" 오늘은 이 고장 출신으로 '조선왕조 3대 여걸'중에 한명이라는 "정순왕후"에 대해 생각하며 산행을 할까 합니다. [숲길] 비교적 걷기 편한 숲길을 10여분 진행하면.... "英祖와 貞純王后" "정순왕후"를 알아 보려면 먼저 "조선 제21대 왕-영조 英祖"를 먼저 알아봐야 하죠. 조선왕조 500년 동안에 가장 많은 진기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英祖. 1. 가장 장수한 왕 - 83세 2. 가장 오래동안 왕위에 재임 - 52년 3. 자식을 죽인 아버지 -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임 4. 최 고령 재혼 - 66세에 재혼 5. 최대 나이차 영계와 결혼 - 51년차 (66세에 15살 소녀와 결혼) 6. 가장 비천한 여자의 아들 - 궁녀들 발씻는 물 떠다주던 무수리가 엄마 그외 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는 英祖에 대해 조금 더 상세히 알아 보고 가겠습니다. [사거리] 9:37 벤치가 하나있는 사거리가 나타납니다. 직진방향으로 갑니다. 이번 구간엔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인색했습니다. "英祖" "장희빈"과의 관계로 유명한 "숙종"의 아들입니다. "숙종"은 "장희빈"이라는 무수리로부터 장남 "경종"을 낳았습니다. 또한 "숙종"은 무수리 "최씨"로부터 차남 "영조"도 낳았구요. 궁중에서 일하는 하인인 궁녀들에게 잔심부름을 하는 하인이 무수리이라는건 다 아시죠? 궁중에서 최하급 식순이가 무수리였던 것이죠. 여튼 "숙종"은 정상적으로 결혼한 왕비들에겐 꼴리지 않아 애를 낳지 못하고 무수리 무지 좋아하다 간 "무수리의 남자"입니다. 무수리 왕비시대였었죠. 무수리 좋아하다 결국 무수리 때문에 비극을 낳은 왕이 되었습니다. 사필귀정. 잘 아시다시피 자기 장남을 낳은 "장희빈"에게 결국 사약을 내려 죽이고, "나 죽이면 니 장남도 같이 죽을꺼야!~"라며 자기 아들 생식기를 잡아 당겨 불구를 만든 독한 여자 "장희빈"....결국 "경종"은 후사가 없고 후유증으로 일찍 죽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무수리 "최씨"로부터 낳은 차남인 "영조"가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던거죠. 그래서.... "영조"는 평생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컴플랙스에 시달리며, 정통성 없는 왕이라는 허물에 노론 소론 정치집단들로부터도 시달리며, 급기야 '이인좌의 난'등 반란사건도 일어나니 그로부터 벗어 나려고 무지무지 애를 쓰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66세에 15살의 신부와 정식 결혼을 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숙종"의 전례-정통성없는 무수리들과의 난잡한 관계를 따르지 않기 위해서죠. 후궁을 궁궐내에서 궁녀들 중에서 적당히 뽑았던 전례를 깨뜨리고 늙은 나이에도 정식으로 결혼식을 성대히 올린 이유였던 것이었습니다. 그 소녀가 바로 이 고장 '서산 음암 출신'의 "貞純王后"였던 것입니다. [갈림길] 9:39 ★길조심★ 100여m 전진하니 넓은 길에서 우측으로 가야하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보시는바와 같이 직진하기 쉬운 상습알바 지점이라고하는데 무사히 통과합니다. 휴~ 하여간 정신 바짝차리고 가야합니다. 사전에 치밀한 조사와 공부도 하고... 산속에 이렇게 생긴 곳이 어디 한두군데입니까.... [갈림길] 9:39 알바 위험구간을 지나자마자 바로 삼거리가 나옵니다. 상식적으로 정맥길은 능선에서 내려 가면 않됩니다만... 여기서는 편의상 우측으로 내려가야 하더군요. 우측을 보면 사진 속의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20여m앞에 넓은 비포장도로가 보이며 도로로 내려가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올라 갑니다. [비포장도로] 느낌으로는 조금 전 갈림길의 직진길인 좌측 능선이 마루금같습니다만, 편의상 비포장도로를 따라 아주 잠시 올라 갑니다 [오거리] 9:41 넓직한 오거리를 만나는데 2005년에 "성왕산 산길조성공사"를 하면서 세운 산불조심 표지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건강걷기운동을 하는 주민들이 몇분 보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음암면"을 뒤로하고 "서산시내"로 들어 간답니다. ['성왕산'으로 오르는 길] 비교적 나쁘지는 않은 산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성왕산 정상] 9:56 "성왕산 聖王山 252.3m" 산불감시카메라타워와 철봉, 벤치가 두어개 있을뿐... 聖王과 관련된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山經表"에는 "가야산" 다음에 "성국산 聖國山"이라고 나옵니다. "聖國山 瑞山治在南八里"라고 간단하게 기술되 있습니다. [폐헬기장] 9:58 "聖王山" 정상에서 20여m직진하면 잡초들로 형체를 알수없는 폐헬기장이 나오고... [갈림길] 9:59 ★길조심★ 헬기장을 지나자마자 바로 삼거리 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도 좌측으로 통행 흔적이 많았습니다만, 선답자들의 표지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 더 넓은 우측길으로 조금 더 갑니다. [갈림길] 10:00 ★길조심★ ★길조심★ 길조심을 해야하는 상습알바지역이랍니다. 사진 속의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상식적으로는 정맥길로 보이는 능선길이 직진하고 있습니다. 관심없이 지나면 무조건 알바하는 곳이겠습니다. 정맥길은 상식을 벗어나 좌측 급경사 내리막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가야할 '성황당고개'와 '165m봉' 조망] 갈림길에서 좌측 아래를 바라보면 푸른색 지붕의 건물이 보이고, "성황당고개"를 지나 "165m봉"으로 나 있는 정맥 산줄기가 보입니다. 그리고 멀리 산줄기 아래에 "서산시내"가 보입니다. "英祖와 貞純王后" '영조'도 조강지처 원비인 "정성왕후 定聖王后"와 계비인 "貞純王后"에게서는 아들 딸을 낳지 못했습니다. 자기 아버지 "숙종"과 같습니다. '영조'는 후궁인 "정빈이씨 靖嬪李氏"로부터 "효장세자와 화순옹주"를 낳았고, 또 다른 후궁인 "영빈이씨 映嬪李氏"로 부터 그 유명한 "사도세자 思悼世子"를 낳았습니다. "사도세자"의 부인이 유명한 "혜경궁 홍씨"-'한중록'의 저자이고, 이들 사이의 아들이 "정조대왕"입니다. 그러니까 "정조대왕"도 서자의 아들 출신인 것이죠. 정통성이라곤 찾을수 없는 서자들의 난립은 모두 왕의 문란한 성생활에서 시작된것이죠. 결국 조선왕조의 몰락으로 가는 키포인트가 왕의 문란한 성생활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라고하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급경사 내리막] 급경사 내리막을 8분정도 내려 갑니다. 매우 가파릅니다. "정순왕후 김씨 貞純王后 金氏" 66세의 늙은이 "영조"는 전국에 간택령을 내리고 왕비를 뽑습니다. 간택령을 내리면 전국의 모든 처녀들은 결혼을 못했지요? 지금의 상식으로는 상상도 못하죠. 현재엔.... 66세의 늙은이가 15세의 소녀를 범한다면 형법 287조 미성년자 약취에 해당되 징역 10년. [쉼터] 10:08 경사가 완만해지면 운동시설과 쉼터를 지나게 되고... "정순왕후 김씨 貞純王后 金氏" '영조'가 '정순왕후'를 뽑는 "왕비 면접 시험"은 너무나 유명하여 드라마와 영화에도 여러번 나왔습니다. 기억하시나요? ㅎㅎ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는 유명한 이야기 다시 알려 드림니다. 여러명의 색시-지금같으면 어린애들을 불러 왕비 면접시험을 '영조'가 직접 봅니다. 1. 첫번째 유명한 면접 대화 : (임금 앞에 방석을 마련하여 처자들이 앉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른 처자들은 모두 방석 위에 다소곳이 앉았는데, 유일하게 '김한구의 딸'만이 방석에 앉지 않고 방바닥에 앉았습니다.) 영조 : (이상히 여기며) 흐~흠 너는 왜 방석에 앉지 않고 바닥에 앉느냐? 김한구 딸 : 방석에 아버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딸이 어떻게 아버지 이름 위에 앉을수 있겠습니까. (임금 앞에 처자들을 방석에 앉히는데, 누구집 처자인지를 알기 위해 방석에 자기 아버지 이름을 미리 적어 놨었기 때문입니다). ['성황당고개'로 내려 가는 길] 위 갈림길에서 보았던 푸른색 지붕 건물도 지나게 됩니다. 예전엔 개축사였던것 같은데 지금은 뭘하려는지 깨끗하게 정리되 있었습니다. 2. 두번째 유명한 면접 대화 영조 : (모든 처자들에게 질문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은 무었인고? 처자들 : (다양한 대답을 했습니다.) 바다요~ 하늘이요~ 물이요~ 등등 김한구 딸 : 사람의 마음입니다. 영조 : 호~ 왜 그런고? 김한구 딸 : 다른 물건의 속내는 예측할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성황당고개] 10:12 "성황당고개" '성황당'의 흔적은 찾아 볼수 없는 고개같지 않은 고개를 건너 수렛길을 따라 올라 갑니다. 들머리에 누군가 "금북정맥"이라고 써놨더라구요. 3. 세번째 유명한 면접 대화 영조 : (모두에게) 어떤 꽃이 가장 예쁘고 좋은가? 처자들 : (다양한 대답을 했습니다) 복사꽃 모란 매화...등등등 김한구 딸 : 목화입니다. 영조 : 왜 너는 하필 목화인가? 김한구 딸 : 다른 꽃은 일시적으로 좋지만, 오직 목화는 옷으로 천하사람들을 입혀 따뜻하게 하는 공이 있습니다 ['성황당고개'에서 뒤돌아 본 '성왕산'] '성황당고개'에서 지나온 "성왕산"을 뒤돌아 보고... 위에서 내려다 보는것과는 느낌이 사뭇 다름니다. 그리고 개축사였다는 푸른색 지붕 건물은 깨끗하게 정리되 있습니다. 4. 네번째 유명한 면접 대화 영조 : (모두에게) 어느 고개가 가장 넘기 힘든 고개인가? 처자들 : 대관령 추풍령....등등 다양한 고개 이름을 댓습니다. 김한구 딸 : 상감마마~ '보릿고개'입니다. 영조 : (깜짝 놀라며) 그건 또 왜 그런가? 김한구 딸 : 가난과 배고픔을 넘는 고개가 가장 넘기 어려운 고개였습니다. ['165m봉'으로 오르는 길] 수렛길을 따라 8분 정도 올라 가면.... 5. 다섯번째 유명한 면접 대화 면접을 보고 있는 중에 때마침 큰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영조 : (모두에게) 이 궁궐의 기왓골을 세어 보고 알려라 처자들 : (모두 나가 처마를 보며 기와골을 세고 있었습니다)... 김한구 딸 : (마당 땅바닥을 보며 간단하게 답을 맞추었습니다.) 영조 : 너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맞출수 있었느냐? 김한구 딸 : 네. 떨어지는 낙숫물은 기왓골 수를 알려 주기 때문에 땅바닥에 생기는 패인 곳의 수를 세었습니다. [165m봉] 10:20 "165m봉" 운동시설이 있는 "165m봉" 정상입니다. 좌측으로 나가보니 '음암면'이 조망되었습니다. "정순왕후 김씨 貞純王后 金氏" 15살에 우리나라의 國母-王妃가 된 어린이.. 15살에 66세의 노인네 와이프가 된 어린이.. 15살에 25살의 아들 "사도세자"와 며느리 "혜경궁 홍씨"를 두는 엄마 어린이.. 15살에 "정조"라는 손자의 할머니가 되는 어린이.. 총명하기가 하늘을 찌를듯...저같은 경우엔 소름이 끼치는 간특하게 느껴지는 어린이.. 이 어린이가 후에 우리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여왕이 되었지요. '영조' '정조' 다 죽고 나니 11살짜리 '순조'를 등에 업고 수렴청정을 하는 그야말로 절대군주인 女王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시대로 가며 국운은 기울어 집니다.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속담을 다시 일깨워 주며.... ['내동고개'로 가는 길] 완만한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잠시 진행하면... "정순왕후 김씨 貞純王后 金氏" "영조"의 정식 와이프가 된 "정순왕후"는 궁녀들로부터 낳은 아들인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보다 열살이나 아래였습니다. 그러니까 손자인 "정조대왕"과는 일곱살 차이 밖에 안나는 할머니였던 것입니다. 열다섯살의 할머니.... ['140m봉'] 다시 운동시설이 있는 "140m봉" 오르는 곳이 나오며... [서산시 음암면 '삼흥저수지' 조망] 남쪽방향으로는 '서산시 음암면'에 있는 '삼흥저수지'가 계속 조망됩니다. ['140m봉'에서 '내동고개' 조망] "140m봉" 정상에 오르면 송전탑이 보이는 곳 아래로 "내동고개"가 바로 보입니다. 그리고 정상에는 "德水張氏令公派 溫石宗會" 묘지가 있습니다. "德水張氏"의 시조는 사우디아라비아 위구르계 사람인 "장순룡"입니다. 잘 생겼다고 하는 영화배우 '장동건'이가 "덕수 장씨"인데, 분명히 중동 사람을 닮지 않았습니까? ㅎ DNA는 변하지 않는거죠 ['내동고개'로 내려가며 '186m봉' 조망] 10:31 "내동고개"로 내려 가는데 "186m봉"이 보입니다. "186m봉"은 높지 않은 산이지만, 오늘 산행구간에서 가장 의미있는 봉우리입니다. 왜냐하면 '서산시내' 바로 뒤에 있어 '서산시내'가 훤하게 조망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내동고개] 10:35 "내동고개" '서산시 동문동 내동마을'과 '성연면 일람리 토골마을'을 이어주는 고개 [내동고개] 이 길로 내려 가면 바로 '서산시내'랍니다. 자동차들의 통행도 제법 많았습니다. ['186m봉'으로 오르는 길] 계단을 올라 10여분 오르면.... ['온석로' 갈림길] 10:45 "186m봉 정상" 오르기 전에 [온석로 갈림길]을 지나고 바로 앞에 또다시 갈림길이 보입니다. ['186m봉' 정상 앞 우회길] '서산시내' 바로 뒷산이어서 등산로는 잘 정비되 있습니다. 우측길은 우회로인데, 정맥꾼이 "186m봉 정상"을 밟지 않고 간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 ['186m봉' 정상] 10:48~11:03 (15분간 아침식사) "186m봉" '瑞山市內'가 조망되는 '서울의 남산'같은 산이었습니다. 여기서 아침식사를 하고... ['186m봉'에서 서산시내 조망] "서산 瑞山" 2012년 현재 인구가 165,000여명이라는 도시라고 합니다. 충청도이지만 타 충청도와 달리 독특한 "내포지방 문화"의 중심지라고 하는군요. 최근 전국에서 가장 빨리 발전하는 지역 중에 하나라고하며, '대산산업단지'가 그 중추적 역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瑞山" "禮山" "德山"등 山으로부터 정기를 받아 지명이 생겼다고 하는 독특한 곳입니다. ['186m봉' 정상 갈림길] 11:03 ★길조심★ ★길조심★ "186m봉"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을 조심해야합니다. 일반등산로가 발달해 있어 '서산시내'로 내려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먼저 정상에서 직진하는 곳에 있는 바위 내림길에 서면, 윗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서산시내로 내려가는 넓은 길이 숲속으로 시원하게 나 있습니다. 정맥길은 바로 앞에서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186m봉' 정상 길주의 구간] ★길조심★ 우측으로 가는 길 앞에 서면 다시 5m쯤 앞에 넓은 길이 보이는데 우측으로 또다시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186m봉' 정상 길주의 구간] ★길조심★ "186m봉" 우회로인 이 넓은 길에 나와 우측을 보면, 좌측에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보이며 정맥길이 숲속으로 이어집니다. 요약하면 정상에서 "ㄷ"자로 정맥길을 이어 가는 것입니다. ['198.5m봉'으로 가는 길] 넓고 잘 정비되 있는 일반등산로를 벗어나 숲길로 들어서면 길은 희미해지고 잡목들만이 귀찮게 반깁니다. [삼거리] 11:07 잡목들로 희미한 길을 2~3분 헤치고 나가면 제법 넓고 선명한 길이 지나는 삼거리를 만나 우측으로 갑니다. ['198.5m봉'으로 가는 길] 제법 넓고 편한 숲길을 따라 조금 올라 가면... ['김해김씨안경공파' 납골묘] 11:10 "김해김씨 안경공파" 납골묘를 지나게 됩니다. ['김해김씨납골묘'에서 뒤돌아 본 '186m봉'] "김해김씨 안경공파 납골묘"에서 뒤돌아 보면 '서산시내 조망명소'였던 "186m봉"이 보입니다. ['198.5m봉' 정상] 11:15 "김해김씨 납골묘"에서 5분 정도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198.5m봉"이 나오는데 형체를 알기 어려운 삼각점과 "199m높이"를 알리고 있는 안내판이 잡풀 속에서 "198.5m봉"임을 쓸쓸히 알리고 있습니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코팅안내지가 보였는데 어디로 날라 갔는지 그마져 없었습니다. ['190m봉'으로 가는 난장판 길] "198.5m봉"에서 "190m봉"까지는 길이 매우 나빳습니다. 부러진 나무들이 길을 덮치고, 잡목잡풀들이 곤혹스럽게 했습니다. ['190m봉'] 11:24 선답자들의 표지기 몇개가 "190m봉"임을 알리고 있는 곳을 지나 방향을 약간 좌측으로 바꾸어 내려 가면.... ['190m봉'에서 '6번송전탑' 조망] 잡풀들로 형체를 알아 볼수 없는 능선길에 '송전탑'이 등대처럼 길안내를 합니다. 저 송전탑이 [6번송전탑]이었는데, 잡풀을 헤치고 [6번송전탑]으로 무조건 다가 갑니다. ['6번송전탑' 주변 정맥길] [6번송전탑] 근처에 가면 멀리 "서산종합운동장"이 보이고 정맥길은 우측으로 방향을 바꾼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6번송전탑'에서 가야할 정맥길 조망] 11:34 [6번송전탑]에 다가 가면 가야할 정맥길이 '송전탑'을 기준으로 골프연습장으로 이정표가 되어 줍니다. [6번송전탑]에서 [7번]~[8번송전탑]으로 넓은 임도가 이어 주며, "서산VIP골프연습장"까지 진행합니다. 이제까지 먼길을 왔는데 아직도 가야할 길은 무지 많이 남아 있군요. 멀리 가야할 "비룡산"~"금강산"구간이 부지런히 걸으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8번송전탑' 방향] [7번송전탑]을 지나 [8번송전탑] 좌측으로 갑니다. ['서산 VIP 골프연습장' 둘레길] [8번송전탑] 좌측으로 가면 "서산VIP골프연습장"을 만나는데, 골프연습장 좌측으로 돌아 연습장을 빙~둘러 "윗갈치"로 가야합니다. (연습장 우측으로 그냥 내려 가면 간단하게 '윗갈치'로 갈수 있으니 피곤하신 분들은 그냥 우측으로 가도 그렇게 정맥길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니 참고하세요) ['서산 VIP 골프연습장'앞 '29번국도'] 골프연습장을 한바퀴 빙 돌아 내려 가면 바로 [29번국도]가 지나는 "윗갈치"에 도착하게 됩니다. [윗갈치] 11:52 "윗갈치 上葛峙" '서산시 서산읍 갈산동'과 '성연면 일람리'를 잇는 고개로 칡과 관련이 있는 고개. '서산읍'과 '성연면'의 경계이며, '서산시 사격장'과 '궁도장'의 입구가 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瑞寧亭"이라는 입석 앞으로 갑니다. [서산종합운동장] 바로 앞에 "서산종합운동장"이 보이고.... ['서령정'앞 들머리] 11:53 정맥길은 "瑞寧亭"이라고 하는 立石 뒤로 올라 갑니다. '서산시 사격장-궁도장'의 이름이 "서령정"이라는데, 앞으로 가실 분들은 산속으로 올라 가지 마시고, 진입도로를 따라 "사격장" 앞까지 그냥 가는 것이 여러모로 좋겠습니다. 그 이유는....짧은 이 숲속길이 너무 나빳고, 아무런 볼거리도 없으며, 마루금의 의미도 별루여서 도로 따라 진입하기를 권합니다. [묘지] "瑞寧亭 표지석" 뒤로 오르니 묘지가 나오고 길은 숲속으로 연결됩니다. [잡목지대] 그런데 짧은 이 구간은 잡목으로 얼굴을 들고 걷기가 어려울 정도로 나빳습니다. 갈림길도 이리저리 나있어 혼동을 주며....괜히 이리로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마루금의 의미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서령정] 우왕좌왕 헤메며 잡목을 헤치고 어떻게 어떻게 진행하니 건물이 보입니다. 내려 서니 주차장이었고... [서령정 사격장] 12:05 우측에는 규모가 큰 궁도장이 있었고 정맥길은 사격장 앞으로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도로따라 왔으면 간단 할것을 마루금에 더 충실하겠다고 괜히 고생했으니 두마리 토끼를 다 놓친 기분이었습니다. [사격장옆 들머리] [임도 삼거리] 정맥길은 사격장과 쓰레기통 사이로 나 있으며 산길로 들어 서면 잠시후 제법 넓은 수렛길을 만나는데... [임도따라 가는 길] 12:10 잡초로 덮혀진 수렛길을 따라 나가니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더군요. 넓은 수렛길을 따라 계속 진행해 봅니다. 중간에 태풍으로 넘어진 큰 나무가 길을 막고 있는 곳을 넘어가면.... ['123m봉'으로 오르는 길] 산길로 오르는 곳에서 선답자들의 표지기를 반갑게 만나 오르고.... ['123m봉'에서 '169.9m봉' 조망] 12:20 7~8분 오르니 "123m봉"이라고 추정되는 봉우리에 올라 가야할 "169.9m봉"을 바라보며 진행합니다. 정상임을 알리는 코팅지 안내판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비룡산' 조망] 12:33 "169.9m봉"이라고 생각되는 봉우리에 오르니 "비룡산"과 그 아래 임도가 보입니다. [잡목지대] 잡목잡풀을 헤집고 계속 나아 갑니다. 이곳도 길은 매우 나쁩니다. ['서산종합운동장' 조망] 뒤돌아 보니 "서산종합운동장"과 "서산VIP골프연습장"이 보이고.... ['솔개재' (?)] 12:59 개념도에는 "솔개재"라고 표기되 있는데...아마 여기쯤이 아닐까.... ['솔개재'근처에서 뒤돌아본 정맥길] 1:00 뒤돌아 보니 지나온 "123m봉" "169.9m봉" "183m봉"이 순서대로 보입니다. 사진 속 맨 뒤로 오전에 올랐던 "성왕산"이 아련히 보입니다. [부러진 나무들] 지난 여름에도 세개의 태풍이 지나 갔습니다만, '서산지역'을 강타하여 큰 피해를 낸 태풍은 2010년에 지나간 "곤파스"라고 합니다. 쓰러진 나무들의 방향이 모두 똑 같이 남동쪽에서 북서쪽입니다. 태풍의 오른쪽 회전 방향이죠. ['망일지맥분기점' 조망] 조금 더 진행하니 산허리에 선명한 비포장도로가 지나며 "망일지맥분기점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무명봉] 1:19 무명봉에 오르고... [林道로 내려 가는 길] 비포장도로로 내려 갑니다. [林道] 1:21 경사가 있는 곳엔 포장을 한 비포장도로를 건너 수렛길을 따라 잠시 올라 갑니다. [갈림길] 수렛길을 잠시 오르면 정맥길은 우측 능선으로 산객을 안내합니다. 이번 구간에는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매우 인색하여 정신차리고 올라야 합니다. ['망일지맥분기점'으로 오르는 길] 잡목잡풀을 헤치고 7~8분 오름짓을 하면.... ['망일지맥분기점'] 1:31 "망일지맥분기점" 능선에 오르게 되는데 능선에는 제법 선명한 길이 나 있으며 우측 나무에 "준희선생님"이 "망일지맥분기점"이라는 팻말을 달아 놨습니다. "망일지맥"은 여기서 분기해 '대산읍 대호방조제' 남단까지 약40km이어 진답니다. ['비룡산'으로 가는 길] 등로도 비교적 선명하고 경치도 좋은 길이 열림니다. ['비룡산 전위봉'] 너무 쉽게 "비룡산 정상"을 내 주지는 않지요. 전위봉을 하나 지나고.... ['비룡산'으로 오르는 길]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 갑니다. ['비룡산 정상부'] 멀게만 느껴졌던 "비룡산 정상"이 제법 정상의 품격을 갖추고 성큼 다가 옵니다. 龍이 날라 가는 모양으로 보이십니까? ㅎ [비룡산 정상] 1:46~2:01 (15분간 간식및 휴식) "비룡산 飛龍山 292m" 어렵게 올랐는데 높이가 "292m"라니...ㅎㅎ 그리고 정상엔 묘지가 자리를 차지하고 묘지 벌초를 하며 모든 표지기들도 함께 정리를 했는지 아무런 안내판도 보이지 않고... 그래서 여기가 "비룡산 정상"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주변 벌초한 건초 더미 속에서 "이현우씨의 표지판"을 하나 발견하여 사진 촬영을 하고... 여기가 "비룡산 정상"이라는 걸 비로소 확실히 확인하고.... 15분간 간식과 휴식을 취하고 떠납니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맹세하며....ㅎ ['비룡산' 정상에서 지나온 정맥길 조망] 한가지 위안은 조망이었습니다. 오늘 지나온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멀리도 왔군요. 아직도 많이 가야하지만 ['비룡산'에서 내려 가는 길] 2:01 "비룡산 정상"에서 잠시 급경사를 내려 가면... ['쥐뿌리재'와 '금강산' 조망] 2:02 훤하게 벌목지가 나타나고 올라야할 "금강산"이 조망됩니다. ['팔봉산' 조망] 우측으로는 "팔봉산 八峰山 361m"이 조망됩니다. "산경표"에는 '금북정맥'에 "八峰山"이 포함되 있다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마루금을 이었다기 보다 큰 산들을 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북정맥'을 완주하려면 "팔봉산"을 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쓴 "팔봉산 유산기"를 보시려면 여기클릭 http://blog.daum.net/paraanmoon/7801072 입니다 [현위치] [팔봉면 조망] '팔봉면 금학리' 너머로 "가로림만"도 어렴푸시 보이고..... ['쥐뿌리재'로 내려가는 길] "쥐뿌리재"로 내려 갑니다. [쥐뿌리재] 2:12 "쥐뿌리재 (집뿌리재)"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 마전마을'에서 '인지면 성리 용암마을'을 잇는 고개. "집뿌리재"라고 표기하는 분들이 많지만 이 윗봉우리인 "295m봉" 이정표에 공식적으로 "쥐뿌리재"라고 표기해 놨으니 "쥐뿌리재"라고 하겠습니다. ['장군산' 등산로 입구] "쥐뿌리재"엔 "장군산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팻말이 서있고 수렛길로 올라 가는 곳엔 "사랑나무"라는 나무가 한그루 서 있습니다. [사랑나무] [사랑나무 앞면] [사랑나무 뒷면] 모양이 女體를 닮아 이 지역 사람들이 "사랑나무"라고 부른답니다. 구경거리 없는 이번 구간에서 구경거리라면 구경거리.... ['금강산'으로 오르는 길] 가을이 무러익어 가는 길을 잠시 오르면.... [갈림길] 2:18 ★길조심★ 수렛길을 버리고 산길로 올라 가라고 합니다. [편안한 등산로] 완만한 오름길에는 볼거리가 제법 많습니다. 바위들이 나무와 어우러져 이름만 "금강산"이 아니라 모양새도 "금강산"을 쬐끔 닮아갑니다 [奇岩怪石] 제법 웅장한 바위들도 이곳저곳에서 폼을 잡고 있습니다. ['295m봉'으로 오르는 길] 등로는 비교적 분명하고.... [바위들] 바위들로 심심치 않습니다. [거북바위] 2:31 앗! 거북이 한마리가 바위 위에 올라가 있군요. ['295m봉' 조망] "거북바위"를 지나니 봉우리가 나타나는데... ['295m봉' 정상 - 삼거리] 2:36 "295m봉" "장군바위"와 "금강산"으로 갈라지는 갈림길 봉우리였습니다. 이곳 이정표에 아래 고개 이름이 "쥐뿌리재"라고 표기해 놨습니다. 이정표의 "팔봉산"방향인 우측으로 갑니다. ['금강산' 조망] "295m봉"에서는 "금강산 정상"이 건너편에 조망됩니다. 아주 가깝습니다. ['금강산 정상부'] "295m봉"에서 8분 정도 진행해서... ['금강산' 정상] 2:44 "금강산 金剛山 316.1m"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금강산"을 여기서도 이름으로 만나고...ㅎ 조망도 없고 갑갑한 산정상이었습니다. "장군산 200m"보다 훨씬 더 높은 산인데도 "쥐뿌리재"의 이정표에는 "장군산 등산로"라고 표기한 이유를 조금 알겠는데...."장군산"에 갔더니 거긴 더 볼품없더라구요. ['금강산' 정상에서 내려 가는 길] "금강산" 정상에서 3분여 숲길을 내려 가면.... [갈림길] 2:48 ★길조심★ 암봉이 나오는 곳 앞에 좌측으로 길이 꺽이는 곳이 있습니다. 내림길입니다. ['팔봉지맥' 갈림길로 가는 길] 다시 4분 정도 완만한 내림길을 가면.... ['팔봉지맥 갈림길'] 2:52 ★길조심★ "팔봉지맥 갈림길" 통나무가 길에 가로누워 있는 곳 앞에 삼거리가 나옵니다. 직진하면 "팔봉지맥길"이라고 알리는 팻말과 "금북정맥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는데 세월에 지쳐 흐릿해진 글씨가 안스럽게 느껴 집니다. 당연히 '금북정맥길'로 가야지요. ['장군산' 조망] "팔봉지맥갈림길"을 지나면 방향이 남쪽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가야할 "장군산"방향이 조망되는데 "장군산"은 끝에서 두번째입니다. ['장군산'으로 가는 길] 이곳도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곳이라 길은 흐릿하고 잡목잡풀들이 어수선합니다 [무명봉 갈림길] 3:04 ★길조심★ 첫번째 봉우리는 이름없는 봉우리인데,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길이 꺽이니 주의 해야하고.. ['장군산'으로 가는 길] 태풍의 흔적이 어지러운 길을 가면 나머지 세개의 봉우리가 조망됩니다. [무명봉에서 '장군산' 조망] 첫번째 무명봉에서 내려 가며 "장군산"을 조망하고.... [전위봉에서 '장군산' 조망] 3:22 두번째 이름없는 전위봉 봉우리에 오르면 드디어 앞에 "장군산"이 조망됩니다. ['팔봉산' 조망] "장군산"을 오르며 우측을 보면 "팔봉산"이 보이는데 조금전 "팔봉지맥갈림길"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도 보이는군요. 언제 저 지맥길로도 한번 가봐야 할텐데.... ['장군산 정상' 갈림길] 3:29 "장군산 將軍山 200m" 길은 좌측으로 비스듬히 지나는데 실제 정상은 안으로 조금 더 들어 간곳에 있더군요. 정상에 들어 갔다가 나옵니다. ['장군산' 정상] 3:30 정상에는 장군 모양 바위가 있고 다른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왜 "장군산"이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도져히 모르겠습니다. ['장군산'에서 '200m봉' 조망] "장군산" 다음에는 "200m봉"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곳에서의 마지막 봉우리가 되겠습니다. ['200m봉 정상' - 갈림길] 3:34 ★길조심★ "200m봉" 조금전 "장군산" 보다는 이 봉우리가 더 "장군산"다웠습니다. 봉우리 모양도 훨씬 더 봉우리 다웠고, 높이도 같은 200m이며 무었보다 조망이 뛰어 났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길조심을 해야합니다. 좌측 "예비군훈련장"방향으로 내려 가야 합니다. ['200m봉 정상'에서 '수량재' 조망] "200m봉"에서 직진을 하니 천길 낭떨어지여서 더 이상 갈수 없고 내려 가야할 "수량재"가 있는 [32번국도]가 보입니다. ['200m봉 정상'에서 '서산예비군훈련장' 조망] 좌측으로는 "서산예비군훈련장"이 내려다 보이며 급경사 내림길이 열립니다. [급경사 내리막] 급경사 내리막이고 길도 희미한 내림길을 10여분 이상 내려 갑니다. 매우 위험하더군요. ['수량재'로 가는 길]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가면 잠시 완만한 길이 이어지며... ['서산예비군훈련장' 진입로] "서산예비군훈련장 진입로"로 나가게 됩니다. ['서산예비군훈련장 진입로 입구'] 3:50 옛국도로 내려 갑니다. 그리고 국도 우측에 "수량재"가 있지만 생략하고 [32번新국도]를 건너기 위해 좌측 굴다리로 내려 갑니다. ['32번국도' 우회길] 제법 먼 길을 우회하여 [32번국도] 굴다리를 통과합니다. ['수량재' 버스정류장] 3:56 일반적으로 구간을 끊을 때 이곳 "수량재"의 "차리 정류장"까지로 끊습니다. 각자 능력이나 상황에 맞춰 구간을 조정하면 됩니다. 홀로 가는 산객들은 대중교통이 편리한 곳을 구간 들날머리로 해야 하니 국도를 만나는 이런 곳 "수량재"나 다음 "팔봉중학교"를 택하는 것입니다. 단체로 다니는 분들은 관광버스가 원하는 지점으로 와주니 대중교통 고려할 필요가 없어 무지 좋은 점이고, 마지막 구간을 짧게하여 성대한 뒷풀이를 하기 위해 편리한 곳으로 앞구간의 구간 조정을 하면되기에 좋습니다. 홀로 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교통문제가 제일 문제지요. ['물래산' 조망] 좌측으로 올라야 할 "물래산"이 보입니다. 꼭 알아 두어야 할것은 좌측 "역마산"으로는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금강산'과 '장군바위' 조망] 지나온 "금강산"과 "금강산" 옆 "295m봉"의 이정표에 [장군바위] 가는 길이 있었죠? 그 "장군바위"가 저곳에 있습니다. 예비군훈련장 뒷산이군요. ['수량재'와 '금강산'-'장군산' 조망] "수량재"뒤로는 조금전 지나온 "금강산"에서 "장군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전체적으로 조망됩니다. ['물래산' 들머리] 3:59 "물래산"으로 가는 들머리는 민가로 들어 가는 포장도로입니다. 30여m올라 가면.... [가정집] 4:00 가정집이 나오며 길은 끊깁니다. 여기서 우측 밭으로 올라 갑니다. [밭] 밭으로 올라 가서 건너편 숲으로 들어 갑니다. [수렛길] 4:02 밭을 지나면 바로 넓은 수렛길이 나오며 수렛길을 따라 나아 갑니다. [비포장도로 갈림길] 4:03 ★길조심★ 그러면 비포장도로를 만나는데 직진하여 수렛길을 잠시 더 가면.... [비포장도로 갈림길] 4:04 ★길조심★ 또 다시 비포장도로를 만나는데 여기서는 우측 건너편 나무에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보이고 가 보면 제법 넓은 수렛길이 잡풀로 뒤덮혀 있는데 이 길을 따라 50m쯤 올라 가면... ['물래산'으로 가는 길] 수렛길을 버리고 우측 숲길로 올라 갑니다. [잡풀잡목지대] 숲길은 잡목이 엉켜 있어 머리를 숙이고 5~6분 올라 가면... [대형 물탱크] 4:11 대형 물탱크가 설치되 있는 곳이 나오며 앞에 보이는 "물래산"을 향하여 올라 갑니다. 이제부터 해가 지는 서쪽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역광으로 사진 찍기가 어렵습니다. ['물래산'으로 가는 길] 물탱크를 지나 암봉을 직접 치고 오르고.... ['물래산' 조망] 4:14 암봉에 오르면 수렛길이 "물래산"으로 편하게 안내합니다. ['금강산'-'장군산'-'수량재' 전체 조망] "물래산"으로 오르며 뒤돌아 본 지나온 정맥길입니다. "금강산"과 '장군바위'...그리고 '장군산'의 위치를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예비군훈련장은 "장군바위"와 "장군산"이 "금강산"을 호위하고 있는 가운데 품에 있군요. ['물래산'으로 오르는 길] 산봉우리 같지도 않은 봉우리로 느껴져 이곳에서 직진하여 알바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고 하는데 그럴만 하죠? ㅎㅎ ['물래산' 정상] 4:20 "물래산 145m" 너무 초라한 산봉우리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정맥길은 서쪽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길조심을 해야 하는 봉우리이니 꼭 기억해 두어야하는 중요한 봉우리가 되겠습니다. ㅎ ['100m봉'으로 가는 길] "100m봉"으로 가는 길은 어수선하지만 그런데로 길은 선명했습니다. 이 고장 출신의 "정순왕후"는 정권을 잡게되자 그 동안 그에 대항했던 정적들을 싹쓸이 없애는 "신유박해"를 일으키는데, 주로 진보세력들이었던 남인들이 천주교를 믿었기에 이를 빌미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였습니다. 지난 구간에 갔었던 "해미읍성"도 자기 고향 사람들을 무참히 죽이는 처형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적 말살은 "안동 김씨 김조순"의 세도정치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던 것입니다. 반대파가 없으니 일방통행 무소불위 세도정치가 탄생 한것이었습니다. 야당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입니다. ['100m봉' 정상] 4:29 9분 정도 진행하니 바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100m봉"을 지나고 훌륭한 지도자는 정치적 동맹이나 친소(親疏)관계를 배격하고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는 사람입니다. 우둔(愚鈍)한 지도자는 사사로운 인정과 감정에 치우쳐 자기 사람만 골라 쓰는 사람입니다. 보십시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 브라함 링컨'을... '에이 브라함 링컨'이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노예를 해방시킨 것은 평소 경쟁관계에서 자신을 제일 멸시하고 무시한 "스텐톤"을 국방장관에 임명하고 그에게 절대적인 신임과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를 잘아는 사람이 나를 죽인다. 예수는 다름아닌 자신의 핵심 제자인 가롯유다가 팔아 십자가에 못을 박고 박정희는 자신이 제일 믿고 신임한 김재규가 확인사살까지 했습니다. 노론 소론 서인 남인들의 패거리 정치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였을까요? '영조' '정순왕후' '사도세자' '정조' '김조순' '노론 소론'...모두 敗者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영화를 목표로 삼았던 자들은 모두 역사 속에서 敗者가 되었고 국민의 행복을 목표로 삼았던 자들은 아직도 우리들의 가슴 속에 살아 남아 있습니다. '세종대왕'.....'이순신장군'.....몇분 않되는군요...... ['100m봉'에서 가야할 '155m봉' 조망] 앞에 높은 봉우리가 하나 보이는데 개념도에는 "140m봉"이라고 나와 있습니다만 실제는 "鎭山 155m봉"이었습니다. ['155m봉' 오르는 길] 15분간 오름짓을 합니다. 산행 막바지에 드니 이런 봉우리도 힘겹게 느껴집니다. ['155m봉'-鎭山 정상] 4:45 "진산 鎭山 155m" 저의 고도계로는 "165m"였는데 '이현우씨'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전혁진씨의 개념도'에는 "140m봉"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155m봉'에서 '물래산' 조망] 지나온 "물래산"을 뒤돌아 보고... [奇岩] 4:51 5분 정도 전진하니 奇岩을 지나게되고.... ['팔봉중학교'로 내려 가는 길] 빠른 걸음으로 7분 정도 산길을 내려 가니... [사거리 갈림길] 4:58 사거리가 나옵니다. 오리지날 정맥길은 여기서 직진해야 합니다. 그런데 직진길에는 다시 [32번국도]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서 저는 편의상 여기서 좌측 마을로 내려 갑니다. 알아본 결과 직진해서 [32번국도]앞에서 좌측으로 가도 되더군요. ['팔봉중학교'로 가는 길] 수렛길을 따라 잠시 내려 가면 푸른색 지붕집과 비닐하우스를 지나고... [마을 통과] 마을길을 따라 가면.... ['팔봉산' 조망] 북쪽으로 "팔봉산"이 조망됩니다. ['32번국도' 굴다리] 5:05 그리고 [32번국도] 굴다리를 지나게 되는데.... 조금전 사거리에서 직진하여 가는 길과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팔봉중학교] 5:08 [32번국도] 굴다리를 지나면 바로 "팔봉중학교"앞입니다. 정맥길은 "팔봉중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뒤로 이어 집니다. "태안"에서 "서산"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다니는 정류장의 이름은 [진장1리]였습니다 [시내버스 시간표] "태안"에서 4시 55분에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여기서 5시 20분쯤에 타고 "서산공용터미날"에 5시 40분에 내려 5시 50분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귀가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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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가는 금북정맥 열세번째 산행기 보현선원-개심사살림길-상왕봉-가루고개-모래고개-동암산-무르티고개- 안산-매봉재-은봉산-나분들고개-양대산-간대산-모과울고개-성연고개 '환락극혜애정다(歡樂極兮哀情多)' '환락이 극에 달하고 나면 슬픈 정만 많이 남는다.' 한(漢)제국의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한무제(漢武帝)가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강물에 배를 띄워놓고 신하들과 함께 흥겨운 잔치를 하다가 읊은 '추풍사(秋風辭)'의 한 대목입니다. 황제가 누려본 환락의 극치는 무엇이었을까? 절대 권력의 쾌감이었을까? 아니면 궁궐 미인들과 누려본 성적(性的) 오르가즘이었을까? 슬픈 정(哀情)이 남지 않는 쾌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 - 저는 '마운틴 오르가즘'이 아닌가 싶습니다. "등산의 즐거움" 말입니다. [ 산행 개념도]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에 있는 "개심사"옆 "보현선원"위 "개심사갈림길"에서 출발하여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있는 "성연고개"까지 GPS 거리로 22.4km를 갑니다. [서산시 해미면 버스터미날] 8:08 2012년 10월 25일 (목) 맑은 후 흐림 이제부터는 고속버스를 타고 나머지 '금북정맥'을 갑니다. '서산'-'태안'을 가는 고속버스 첫차를 타니 "해미"를 경유하여 가더군요. '해미'엔 터미날이라고 특별히 있는 것이 아니라 '면사무소' 건너편 "농협하나로마트"앞이 터미날이고, 택시타는 곳은 뒷편에 있었습니다. 이곳까지 왔으니 먼저 유명한 "해미읍성 海美邑城"을 구경하고 산행지로 가겠습니다. 앞에 보이는 건너편에 거창한 건물이 있어 "해미읍성"인줄 알고 가 보니..... [해미면 면사무소] '면사무소' 건물로는 전국 최대라고하는 "해미면 면사무소"가 城처럼 우뚝 솟아있습니다 타지인이 뭐라고 할 말은 없습니다만, 저 건물을 보는 순간 찬사보다는 눈쌀이 찌푸려져.. "보현선원"으로 택시를 타고 갈때 택시기사가 하는 말....자신은 해미 토박이라고 하면서 "해미"에는 '한서대'와 '공군비행장'이 없으면 먹고 살기 어려운 동네인데 면사무소 만 저렇게 크게 지어 지방재정을 더 어렵게 한다고 힐난하더군요. 토박이들도 그런 생각을 하는데 타지인은 어떻겠습니까...전국이 이 모양이니... 대한민국의 기운이 여러분야에서 기울어 가는듯 합니다. [해미읍성] 8:20 "海美"에 왔으니 "해미읍성 海美邑城"을 둘러 보지 않을수 없습니다. "해미읍성"은 '해미면사무소'에서 동쪽으로 5~600m정도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7분. 그리고 城의 규모가 상당했는데, 전쟁 방어적인 城이 아니라 관청,즉 충청도의 全軍을 지휘하는 "병마절도사영 兵馬節都使營"으로 조선 태종~세종때에 축성되었다고 합니다. [해미읍성 안내] 성곽의 둘레는 1.8km라고 하며 높이는 5m인데 성곽 주변에 탱자나무를 심어 접근을 어렵게 해서 '탱자'의 한자인 '枳'를 써서 "지성 枳城"이라고도 한답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이 군관일때 10개월간 이곳에 근무한적이 있다는군요. "해미읍성"은 관청으로보다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장"으로 더 유명하죠? 이 고장 출신 유일한 왕비인 "정순왕후"가 천주교 탄압의 선봉장이었으니... 이곳에서 가까운 '음암면 유계리'에 정순왕후' 생가가 있습니다. [鎭南門] "해미읍성"의 정문은 "진남문 鎭南門"이라고 하는데 南쪽에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이 문을 "남문"이라고 부르더군요. '鎭'이 '진압할 鎭'이니 "남쪽을 진압하는 門"이라는 의미인가? ㅎ [해미읍성 관리사무소] '진남문'을 들어 서니 관리사무실이 있고, 매우 넓은 잔듸밭이 펼쳐집니다. 먼저 규모에 놀라고.... ['진남문' 서쪽방향] '진남문' 서쪽방향에는 초가집 몇채가 있는데 '전통찻집' '기념품판매소' '주막'들이 있었고.... '酒幕'에 들려 한잔하고 싶었는데 이른 오전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았더군요. [무기] 조선시대 무기들이 몇점 전시되고 있는 중앙통로를 따라 들어 갑니다. ['호야나무'와 '옥사'] 유명한 "호야나무"와 "옥사 獄舍"가 눈 앞에 나타납니다. "호야나무"는 충청도 사투리이고, 표준말은 "槐木 회화나무"입니다. "회화나무"에 대해선 지난구간 '육괴정'에서 이미 언급한바 있죠? ['호야나무'와 '옥사'] 저의 글보다 더 무게감이 있는 '유홍준교수'의 글을 인용해 드림니다. 1866년,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 때 해미읍성은 감옥소가 되었다. 그때의 모습은 우리가 영화 "미씽"에서 칠레의 시민들을 국립경기장으로 몰아넣은 장면으로 번안하여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려 1천여 명이 처형된 형장으로 이용되었다. 당시 내포땅에는 김대건 신부 이래로 천주학이 크게 퍼져 있었다. 그래서 끌려온 수도 그렇게 많았는데 읍성 안의 한 고목나무가 그 처형장이었고, 처형되기를 기다리는 천주교도들은 자신이 죽는 것보다도 남 죽는 것 보기가 더욱 괴로워 먼저 처형되기를 원했다는 처절한 사연이 거기에 있다. -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中에서 - [호야나무] 정권연장을 위해 봉건수구꼴통들이 선량한 백성들을 1,000여명 이상 처형된 회화나무- 그들에게 주어진 죄명이 '천주교'를 믿는다는 것이었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을수 있나요 지금도 정권을 잡고 유지하기 위해 선량한 서민들을 교묘히 이용해 먹지는 않는지..... [獄舍] 獄舍안에 있는 곤장 형틀과 감옥이 그날의 아픔을 되새기게 합니다. 아!~~ 가슴 아파요~ [동헌] 東軒의 규모가 엄청납니다. "내포지방" 軍權을 총괄하던 곳이었으니 그럴만도 합니다. "동헌 東軒"은 '관리가 더 먼저 일어나 일을 하여야 한다'고 일찍 일어나라고 동쪽을 향해 처마를 내고 집을 지었다고해서 "東軒"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는거 아세요? 그리하여 '관청'이라는 의미로 "東軒"이라는 단어가 사용됫다는 것인데.... 이 "東軒"은 천주교 탄압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으니 조금 아이로니합니다. [鎭南門] 8:34 "해미읍성"을 둘러 보고 나오는데 벌써부터 순례객들이 '진남문' 위에 올라 '해미읍성'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해미 버스터미날-택시타는 곳] 8:41 이제 '금북정맥'을 이어가기 위해 다시 '해미터미널' 옆 택시 정류장으로 와서 택시를 타고 "개심사"가 아니라 "보현선원"으로 갑니다. ['개심갈림길'에서 '모래고개'까지 구글어스] 오늘은 "보현선원"으로 가서 정맥길로 올라 서려고 합니다. '개심사'에서는 거리가 멀고 힘들어 가장 가까운 "보현선원"으로 가는 것입니다. ['보현선원' 앞 주차장] 8:59 지금은 "보현선원" 정문 앞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잘 나 있다는 걸 알고 갔는데 택시기사가 "보현선원"은 길이 나쁠때에 갔다왔나 봅니다. 다시 말해 이곳 택시기사도 "보현선원"으로는 잘 다니지 않았다는 걸 알수 있습니다. 택시요금을 18,000원을 달라고 해서, '개심사'보다 쬐끔 더 먼데 너무 비싸다고 했더니 15,000원만 내라고 하더군요. 앞으로 이 길 이용 하실 분들 많겠지요? ㅎㅎ 승용차는 물론 25인승 미니버스까지는 얼마던지 올라 갈수 있었습니다. [보현선원] 9:00 "보현선원 普賢禪院" 정문 좌측으로 등산로가 나 있었습니다. "보현선원"에 대해선 아는바 없어요~ [보현선원] 등산로에 오르며 "보현선원"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뒤에 보이는 능선이 '금북정맥' 마루금입니다. 무척 가깝죠? ['개심사 갈림길'로 올라 가는 길] "보현선원"에서 "개심사 갈림길"까지는 240m 정도이며 5분 정도 걸렸습니다. 경사도 완만해서 아주 쉽게 올랐습니다. 앞으로 후답자들이 많이 이용할듯 합니다. ㅎ 볼것도 별루인 "개심사'길로 힘들게 오를 필요가 없습니다. [개심사 갈림길] 9:05~9:15 "개심사 갈림길" 금북정맥 마루금에 간단하게 다시 올랐습니다. 지난번 "개심사"로 하산 할 때 왔던 곳이므로 낯설지 않습니다. "보현선원"에서 올라오는 길은 좌측에 있었는데 통행 흔적이 희미했습니다. 이곳에서 10여분 산행 준비를 하고 9시 15분에 길을 떠납니다. [보원사지]방향으로 갑니다. ['350m봉'] 9:17 "개심사 갈림길"에서 2분 정도 가니 좌측에 "350m봉"이 있었으나 그냥 지나칩니다. 자동차도 다닐수 있는 넓은 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가야산 옥양봉' 조망] 정맥길 우측에는 "가야산 옥양봉"이 보이고, 가운데 계곡에는 "국립용현자연휴양림"이 있답니다. ['358.8m봉-보현사지 갈림길'로 가는 길] 10여분 즐거운 산책길을 걸어 가면..... ['358.8m봉'] 9:25 좌측에 "358.8m봉"이 있습니다. 관심없이 가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었습니다. 올라 가 보니 삼각점과 "359m"를 알리는 삼각점 안내판이 있었는데 오늘 산행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가 되겠습니다만 고도차이가 없어 느낌은 별루... [갈림길] 9:27 ★길조심★ "358.8m봉"을 지나자마자 바로 갈림길이 있는 쉼터가 나옵니다. '정맥길'과 "보원사지"로 가는 갈림길이더군요. '정맥길'은 좌측으로 임도를 따라 갑니다. [이정표] 이정표 뒤로 넓은 임도가 "삼화목장"으로 가는 정맥길이었습니다. ['삼화목장'으로 가는 길] '삼화목장'으로 가는 길은 넓은 수렛길이지만 중간에 넘어진 나무들이 있어 우회하는 나쁜 길도 있었습니다 '보원사지 갈림길'에서 6분 정도 진행하면... [삼화목장 입구] 9:33 '삼화목장'으로 들어 가는 길에 출입을 통제하는 철사줄이 쳐져 있습니다. 낮은포복으로 철사줄을 통과하여 목장 안으로 들어 갑니다. [삼화목장] 9:35 숲을 헤치고 '삼화목장'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그렇게 말도 많고 유명한 "삼화목장"입니다. 그런데 이 목장은 현재 명칭이 바뀌어 "농협중앙회 가축개량사업소"랍니다. 하지만 이목장은 "김종필씨의 삼화목장"으로 지금까지 불리워 지고 있어 저도 편의상 "삼화목장"이라고 표기하는 것이니 오해없으시기 바람니다. 가야할 "상왕산"과 "269m봉"이 보입니다. ['269m봉'으로 가는 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잠시 따르다 "269m봉"으로 비포장 목장길을 따라 갑니다. [한우] 韓牛들이 보입니다. ['269m봉'에서 뒤돌아 본 '보원사지' 갈림길] "269m봉"을 돌아 가며 뒤돌아 본 "358.8m봉-보원사지 갈림길 쉼터"입니다. [목장길 차단철책] 9:41 "269m봉"을 돌아 목장길을 따라 가면 다시 철사줄로 통행을 막아 놓은 곳이 나옵니다. 낮은포복으로 철사줄을 통과하여 목장길을 따라 잠시 갑니다. [목장 통과] 9:45 차단철책을 통과해 사진 속의 사진에서 보는 목장길을 잠시 따라 나가면 다시 "삼화목장"이 나오며 "삼화목장 울타리"는 우측으로 갑니다만 정맥길은 목장 가운데 능선을 타고 계속 직진합니다. '삼화목장'을 벗어나 가야할 "247m봉" 두개와 "상왕봉"이 점점 다가 옵니다. 여기서 전체적인 지리를 알고 가면 그많큼 편합니다. ['274m봉'으로 가는 길] 9:46 '삼화목장 울타리'를 다시 만나며 목장길은 울타리 밖으로 연결됩니다. 울타리 밖으로 우회하여 나갑니다. [수렛길] 6분여 숲길을 진행하면.... [갈림길 1] 9:52 첫번째 갈림길이 나오는데, 원정맥길은 좌측 봉우리를 오르지만 금새 다시 만나므로 우측 우회길로 그냥 갑니다. [갈림길 2] 9:54 두번째 갈림길도 첫번째와 같으므로 우측 우회길로 그냥 갑니다. [갈림길 3] 9:56 세번째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은 좌측으로 갑니다. [갈림길 4 - 상왕산 갈림길] 9:58 ★길조심★ 길조심을 해야하는 "상왕산 갈림길"이 바로 나옵니다. 안내판이 붙어 있습니다만 언제 없어질지 모르겠더군요. 이제부터 넓은 수렛길을 버리고 산길로 접어 듭니다. ['상왕산'으로 가는 길] 완만한 오름길을 잠시 진행하면... ['274m봉'] 10:01 "274m봉"의 좌측으로 지나게 되고... ['274m봉'에서 '상왕산' 조망] 10:06 바로 "상왕산"이 조망됩니다. ['상왕산'으로 가는 길] 바위 구경하기 어려운 肉山에서 제법 큰 규모의 바위들을 지나면... ['상왕산' 정상] 10:14 "상왕산 象王山 309m" 이번구간에서 산이름을 가진 산으로는 제일 높은 산입니다. "개심사"에 "象王山開心寺"라고 쓰여있었는데.... ['280m봉'으로 가는 길] 6분 정도 "상왕산"을 내려 가 다시 오르면 ['280m봉'] 10:20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선 봉우리로 잠시 올라 갑니다. "280m봉"인데 "옥양봉"이 조망되더군요. ['206m봉'으로 가는 길] "280m봉"에서 10여분 진행하면... [송전탑 통과] 10:31 송전탑을 통과하고... [수렛길] "삼화목장 울타리"를 다시 만나 좋은 넓은 길을 따라 5분 정도 진행하면 ['206m봉' 조망] 10:37 "206m봉"이 조망됩니다. "206m봉"에서 정맥길은 좌측 능선으로 90도 꺽입니다. "운산면"을 건너 멀리 가야할 "은봉산"이 보입니다. ['206m봉'으로 가는 길] 다시 10여분 진행하면.... ['206m봉' 정상] 10:47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성황당을 방불케하는 "206m봉"에 다달읍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90도 꺽어 내려 갑니다. ['206m봉' 하산] "206m봉"을 잠시 내려 가면... [삼화목장] 10:51 다시 "삼화목장" 울타리가 나오며 [숲길]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이 즐비한 숲길을 다시 10여분 내려가면 [갈림길] 11:00 갈림길을 만나는데 좌측엔 "삼화목장 목장길"이고 직진방향엔 송전탑이 있습니다. 오리지날 정맥길은 송전탑 방향 직진길이라고 생각되어 가봤으나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좌측 목장길로 나갔습니다. [목장길] 자동차도 다니는듯한 목장길을 따라 계속 진행합니다. [목장길] 편하게 목장길을 눌루날라 진행합니다. 목장길을 이렇게 오래동안 걸어 보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백두대간 대관령-진고개'구간을 걸을 때 "삼양목장" 이후로... [목장길] 정맥길은 좌측으로 올라 가야 할듯한 곳이 나오는데 계속 직진입니다. [목장길] 축사들이 보입니다. [목장길 출입문] 11:09 목장길 출입문을 우측으로 살짝 돌아 내려 가면.... [목장내 시멘트포장도로] 목장 안으로 연결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는데, 여기서 가야할 정맥길을 그려보며 앞에 보이는 송전탑으로 올라 가야합니다. [좌측방향] [우측방향] 목장길 사거리의 좌우측을 조망하고... [시멘트포장도로 통과 방법] 11:12 반사경 옆으로 난 길로 들어가면 사진 속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같이 예상외로 넓은 길을 따라 올라 가게 됩니다. [갈림길] 11:13 ★길조심★ 50m쯤 오르면 처음으로 좌측으로 오를수 있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선답자들의 표지기도 보이지않으니 길조심을 해야하는 곳입니다. [송전탑 통과] 11:16 잡풀들로 길이 거의 보이지 않는 길을 3분 정도 오르면 송전탑이 나오고 사진 속의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송전탑 밑을 통과하여 나갑니다. [철조망 통과] 11:19 송전탑을 통과하여 다시 3분 정도 숲길을 가면 철조망이 나오는데 철조망을 통과하여 사진 속의 사진에서 보는 우측 숲길을 잠시 진행하면... [목장 포장도로] 11:21 "삼화목장 포장도로 목장길"이 나오며, 목장길로 나갑니다. [삼화목장] 이제부터 이 포장목장길을 따라 "가루고개"까지 갑니다. [뒤돌아본 정맥길] '가루고개'로 목장길을 가며 뒤돌아 본 풍경입니다. 좌측 송전탑 숲속에서 목장길로 나온곳 앞에 축사가 있다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뒤돌아 본 '가야산'] "가야산"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정맥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 옵니다. 어마어마한 "삼화목장"이 펼쳐집니다. "5.16군사쿠데타"세력 중 박정희 소장 다음으로 핵심역활을 했던 "김종필씨". 군사정권이 이 나라를 위해 구국의 일념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쿠데타로 사리사욕 富를 축적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이곳 "삼화목장"입니다. '여의도' 면적의 다섯배에 달하는 638만평을 마구잡이로 사들여 나무들로 울창하던 숲을 없애고 우리나라 최대의 목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아이로니칼하게 또 다른 쿠데타 세력들인 '전두환'에게 '부정축재자'로 낙인 찍히며 불법재산축적이라는 판결을 받고 국가에 강제 환수 당했습니다. "三日修心千載寶 百年貪物一朝塵" "삼일 마음 수양은 천 수레의 보물과 같지만 백년을 탐해서 모은 재산은 하루아침의 티끌과 같으니라" [삼화목장] "김종필씨" 우리나라 최장기 국무총리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인물입니다. 저는 "김종필씨"를 생각하면 치졸한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만들었던 5.16군사정권시절의 "4대 의혹 사건"이 생각납니다. "증권파동", "워커힐사건", "새나라자동차사건", "빠찡고사건"을 가리키는 4대의혹사건은 당시 김종필의 중앙정보부가 주동이 된 비리 횡령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던 60억환을 들여 건설하는 '워커힐'을 군인들을 동원하여 건설하여 거의 꽁짜로 짓고, 공사대금과 불법 대출금을 중앙정보부가 횡령한 사건이었죠. "증권파동" "새나라자동차사건" "빠징고사건"도 치졸한 방법으로 국민으로부터 검은 돈을 만든 것이었는데, 그 핵심 인물인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씨는 아직도 살아서 숨쉬며 가끔 TV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 떡고물로 이런 어마어마한 목장을 건설했다고 여겨지니 씁쓸합니다. 과거청산!~ 과거청산!~하는데 과거를 잊는게 '과거청산'인가요? 더 곱씹고 다시는 발생하지 안도록 해야하는것 아닌가요? 대법원 사형선고, 무기징역까지 받은 놈들이 떵떵거리며 아직도 활보하고 있는 우리나라. [삼화목장] 신뢰성이 저보다는 더 있는 '유홍준교수'의 글을 또 인용해드림니다. 해미를 떠나 조금만 가면 처음 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놀라고 말 전경이 펼쳐진다. 이국 풍경도 이런 이국이 있을까 싶다. 산이란 산은 모두 마치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듯이 완벽하게 삭발되고 거기에 잘 자란 초목에서는 젖소떼가 또는 한우떼가 무리를 지어 풀을 뜯고 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김종필의 삼화목장이다. 지금은 한서장학재단 소유로 되어 있는 이 삼화목장은 총 638만 평이다. 1969년, 그러니까 삼선개헌이 있던 해부터 서산군 운산면, 해미면 일대의 산과 마을을 사들여 애리조나 목장 만들 듯이 했다. 할 수 없이 삼화목장에 땅과 집과 산을 판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일부는 인천으로 몸 팔러 갔고 일부는 삼화목장의 직원이 되고 인부가 되었다. 삼화목장은 자연의 생태계만 바꾼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태계도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中에서 - ['가루고개'와 '동암산' 조망] "삼화목장"을 벗어 날쯔음 "가루고개"가 나오며 가야할 "동암산"도 조망됩니다. ['가루고개'로 나가는 문] 이제 "삼화목장"을 벗어나는 문을 옆으로 돌아 나갑니다. "삼화목장" 울타리를 두어시간 지나온 것이니 그 규모를 짐작할수 있습니다. [가루고개] 11:33 "가루고개" '서산시 운산면'과 "해미"를 넘나드는 고개로서 [647번지방도]가 지나갑니다. [가루고개] 11:35 "가루고개"가 있는 곳은 "소중1리"라고 .... [갈림길 1] 11:38 "가루고개"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3분정도 올라 가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남댕동길"방향인 우측길을 따라 올라 갑니다. [갈림길 2] 11:40 다시 잠시 올라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 비포장도로로 올라 진행합니다. 위에 보이는 묘지에 올라.... [마지막으로 뒤돌아 보는 '삼화목장'] 묘지에 올라 마지막으로 "삼화목장"을 뒤돌아 봅니다. "삼화목장"을 통과하는데 두시간이나 걸렸군요. [묘지] 11:43 넓은 수렛길을 따라 계속 진행합니다. [운산면 조망] 우측, 즉 동쪽으로 '서산시 운산면'이 조망되고.... ['모래고개'로 가는 길] 수렛길을 따라 끝까지 갑니다. [묘지에서 '모래고개'로 가는 길] 11:50 수렛길이 없어지는 곳에 묘지가 나오며 좌측엔 "서해안고속도로"가 굉음을 토해 냅니다. 고속도로로 내려 가는 길 중간에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있습니다만 무시하고 고속도로까지 수로를 따라 내려 갑니다. 사진 속의 사진 참고하시고... [모래고개]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는 굴다리가 나오는데 우측에 "모래고개"표지판이 있습니다 굴다리를 지나면 ['동암산'으로 가는 길] 11:53 굴다리를 지나면 좌측에 "가좌1리 마을표지석"이 있고, "동암산" 들머리는 우측으로 갑니다. ['동암산' 들머리] 고속도로 옆으로 "동암산" 들머리가 예쁘게 나옵니다. [쉼터] 12:02 9분 정도 오름짓을 하면...벤치가 하나있는 쉼터가 나오며 ['모래고개'에서 '간대산'까지 구글어스] "모래고개"에서 "동암산-무르티고개"를 지나 "은봉산"과 "간대산"을 지나는 구글어스 ['173m봉'으로 가는 길] 다시 5분 정도 오름짓을 하면 [173m봉] 12:07 "173m봉"이 나옵니다. 이곳이 "동암산" 정상인줄 알았습니다만.... ['동암산'으로 가는 길] 다시 5분 정도 거의 평지를 걸어 가면.... [동암산 정상] 12:12~12:38 "동암산 銅岩山 176.3m" 銅岩이니 구리와 관련이 있는듯.... [아점식사] 이곳에서 아침을 먹는데 점심시간이죠? ㅎ 가능한 굶을려고 노력하는데....마눌이 엄청 싸줬습니다. 25분 정도 식사와 휴식을 취하고 ['132m봉'으로 가는 길] 10여분 능선길을 유유자적 걸어가니 ['132m봉'-갈림길] 12:47★길조심★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132m봉"인듯 합니다. 우측에 조망이 트이는 묘지로 나가니... [운산면 조망] 운산면이 조망됩니다. 그리고 바로 아래에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가 있었습니다. ['무르티고개'로 가는 길] 5분 정도 평지같은 내림길을 가면.... [묘지] '서산시내' 방향으로 '음암면'이 풍경화를 이룹니다. ['무르티고개'] 12:52 묘지에서 내려서면 바로 "무르티고개"입니다. 우측엔 폐허가 된 "서해컨벤션웨딩홀"이 있습니다. 정맥길은 원래 앞에 보이는 정자가 있는 봉우리로 넘어 가는듯 합니다. 좌측으로 나갑니다. ['무르티고개'-'구32번국도'] '무르티고개"는 "武陵峙"가 음운변화로 불리게 됫다는군요. [32번국도]가 지나는 "무르티고개"에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가좌리"라고 알려 줍니다. 정맥 마루금은 직진해야겠지만, 앞엔 新[32번국도]가 가로막고 있어 우회로를 이용해야 합니다. 우측으로 갑니다. [서해컨벤션웨딩홀] 폐허가 된 "서해컨벤션웨딩홀" 정문을 지나 ['新32번국도' 통과] 新[32번국도]를 건너기 위해 앞에 보이는 굴다리로 내려 가서 좌측으로 통과합니다. ['안산' 들머리] 1:00 굴다리를 지나 올라 가면 과일노점상이 보이는 곳 우측으로 "안산"들머리가 있습니다. ['안산'으로 오르는 길] 넓은 수렛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 갑니다. 중간에 갈림길이 있지만 직진합니다. [묘지] 1:05 묘지가 나오는데 묘지 뒤 중앙부분에 올라 가는 길이 있습니다만 길찾기가 어렵더군요. [뒤돌아 본 '무르티고개'] 묘지에서 뒤돌아 보니 "무르티고개"와 "서해컨벤션웨딩홀"이 보입니다. ['운산면' 조망] 조금 좌측으로는 "운산면"이 조망되고... ['안산'으로 오르는 길] 잡목 잡풀로 어수선한 길을 5분 정도 오르면... [철조망] 1:10 느닺없는 철조망이 나오는데 철조망 앞에 선명한 산길이 나옵니다. 우측으로 갑니다. ['안산'으로 가는 길] 선명한 길을 따라 3분 정도 진행하면... ['안산' 정상] 1:13 나무들이 부러져 엉망진창이 된 곳에 "안산"표지판이 나타나면 좌측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案山' 정상] 1:14 20여m 진행하면 다시 "案山(堂山)"이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산꼭대기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않는 곳입니다. 그냥 지나칩니다. ['매봉재'로 가는 길] 잡목지대를 7분여 진행하면.... [매봉재] 1:21 갈림길이 나오는데 선답자들의 표지기는 좌측으로 올라 가라고 지시합니다만 힘들게 올라 갈 필요없이 직진합니다. 앞에 보이는 곳이 "매봉재"였습니다. ['269m봉'으로 오르는 길] "매봉재"에서부터 "은봉산"까지는 최악의 잡목잡풀지역이었습니다. [무명봉] 1:34 아주 지저분한 잡목잡풀지대를 10여분 오르니 선답자들의 표지기만 나풀거리는 이름을 알수 없는 봉우리를 지나고... ['269m봉'으로 오르는 길] 나무들이 부러져 쓰러진 잡목잡풀지대를 헥헥거리며 15분 정도 올라 갑니다. ['269m봉' 정상] 1:48 정상인가 싶었는데 "269m봉"이었습니다. "은봉산"은 가시덩쿨등 지저분한 잡풀지대를 지나 저만치 있습니다. [잡목 잡풀지대] 바지가랭이 다 헤어지며 잡목잡풀지역을 어렵싸리 통과합니다. ['은봉산' 정상] 1:59~2:15 "은봉산 銀峰山 283.5m" "舊銀峰山"이라고 알리고 있으며, 이정표엔 "은봉산 1.3km"라고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맥꾼들에겐 여기가 "은봉산"입니다. "은봉산 1.3km"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잡목 잡풀지역을 통과하는데 애를 먹어 15분 정도 휴식을 취합니다. ['은봉산' 정상에서 지나온 정맥길 조망] 잡풀들로 힘들게 "은봉산"에 올랐습니다만, 지나온 정맥길을 조망하면서 보상받습니다. 오늘 지나온 정맥 산줄기 입니다. ['은봉산' 하산길] "은봉산"을 내려 가는 길은 오르던 길과는 완전히 다르게 예상외로 좋았습니다. ['고산지맥분기점'으로 가는 길] 防火線같은 넓은 길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고산지맥 분기점'] 2:22 ★길조심★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가 "고산지맥분기점"이랍니다. 우측에 "준희선생님"이 "고산지맥분기점"이라고 팻말을 달아놨습니다. 금북정맥길은 좌측으로 갑니다. ['나분들고개'로 가는 길 조망] 2:28 "고산지맥분기점"을 지나면 가야할 정맥 산줄기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간대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분들고개'로 가는 길] 두어개의 봉우리를 20여분 넘어 가면... [갈림길] 2:48 ★길조심★ 갈림길 삼거리가 나오는데 앞에 묘지가 있는 곳입니다. 좌측으로 갑니다. ['나분들고개'로 내려가는 길] 묘지가 있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잠시 가면 "201m봉"이고 "201m봉"에선 "양대산"과 "간대산"이 바로 건너편에 가깝게 보입니다. [나분들고개] 2:54 "나분들고개 羅盆野峴" '충남 서산시의 음암면 도당리'와 '당진군 정미면 덕삼리' 사이에 있는 고개랍니다. 조금전 "은봉산"에서부터 우측엔 "당진시"가 있고, 좌측엔 "서산시"가 있어 경계선을 따라 여기까지 왔으며 "간대산"까지 경계선을 따라 가다가 "서산시" 속으로 다시 들어 간답니다. ['나분들고개' 좌측방향] ['나분들고개' 우측방향] 좌측은 '서산시'이고, 우측은 당진시'입니다. ['양대산'으로 오르는 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15분 정도 올라 갑니다. ['양대산' 정상] 3:10~3:27 "양대산 良垈山 175m" 삼각점과 안내판이 있는데 안내판에는 이 산의 높이가 "175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이 산의 다음 봉우리가 "간대산 艮垈山 188m입니다. 한자 "양 良"과 "간 艮"이 비슷하게 생겼죠? "좋을 良"자는 대부분 잘 아는 한자이지만, "어긋날 간艮"자는 잘 모르는 한자이지요? 일제시대 전국의 지명을 정리하여 지도로 만들때 한자를 잘모르는 무식한 공무원들이 만들어낸 우스광스런 地名입니다. 이런 사례는 전국에 산재해 있었지요? 지금은 봉우리를 따로 따로 "양대산" "간대산"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그냥 그렇게 갑니다. ['양대산' 팔각정] 팔각정에서 음암면 일대를 조망하며 15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양대산'에서 동남쪽 조망] 동남쪽으로 "일락산"과 그 뒤로 "가야산"이 조망됩니다. 그리고 "C"자를 그리며 '금북정맥'이 이어지고 있고..... ['양대산'에서 서남쪽 조망] 서남쪽으로는 '음암면'과 '성양저수지가 조망되며.... ['양대산'에서 '간대산' 조망] "간대산" 정상이 조망됩니다. ['간대산 정상' 갈림길] 3:36 "양대산"에서 10여분 걸려 "간대산 갈림길"에 도착합니다. "간대산" 정상까지는 200m라고 알리고 있으며 3~4분 걸렸습니다. 반드시 되돌아 와야합니다. ['간대산 정상'으로 가는 길] "간대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가로등도 있군요. 바위가 나오면 정상입니다. [간대산 정상] 3:40 "간대산 艮垈산 188m" 우리나라 태극기에 "四維(乾, 艮, 巽, 坤)"을 나타내는 삼 사 오 육으로 있지요? "艮"은 8卦의 하나로서 5 ☶, 산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풍수지리에 나오는 거죠 ['간대산 정상'에서 가야할 길 조망] "간대산" 정상에서 가야할 '음암면'의 땅바닥에 붙은 마루금을 조망하고 떠납니다. ['간대산' 하산길의 정자] 3:45 갈림길로 돌아와 내려 가면 다시 팔각정이 있고, 여러곳에 운동시설이 있었습니다. [간대산 하산길] '음암면'에서 정성을 들여 가꾼 "간대산 공원길"이 이어집니다. [도로 공사중] 3:51 맨발 지압길을 따라 진행하니 공원길이 끊깁니다. 정맥을 절개하며 도로공사를 하고 있더군요. 좌측으로 돌아 건너 갑니다. [도로 공사중] 3:54 공사중인 길을 건너와 뒤돌아 봅니다. 정맥길에 건설중인 도로에는 다리를 놓을려는듯.... [음암면 간대산공원] 다시 맨발 지압 공원길을 조금 진행하면.... [음암면 간대산공원 입구 편의시설] "간대산 공원 입구"에 편의시설을 설치한곳이 나옵니다. 우측에는 과수원이 있는데 멋진 집이 눈길을 끕니다. [공원편의시설] 3:56 화장실과 정자가 있고, 식수대가 있습니다. 식수대에는 지하수로 여겨지는 차가운 물이 시원하게 나왔습니다. 식수도 보충하고 세수도 하고.... [음암면 간대산공원에서 '율목사거리'로 가는 길] 3:59 포장도로로 나가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율목리사거리] 4:03 "간대산 입구"에서 4분 정도 진행하면 "율목리 사거리"가 나오는데 직진합니다. ['부흥정미소'로 가는 길] 4분 정도 아스팔트 2차선 도로를 따라 갑니다. ['율목리' 농촌 풍경] '율목리' 풍경입니다. ['율목2리'입구 삼거리] 4:07 삼거리가 나오는데 [율목리 버스정류장]이 있고 "율목2리 마을표지석"이 있습니다. [부흥정미소 방향] 삼거리에서 우측 "부흥정미소"방향으로 갑니다. [부흥정미소] 4:11 "부흥정미소"를 지나 뒤돌아 보았습니다. 추수철이어서인지 정미소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장자울 오거리'로 가는 길] "장자울 오거리"까지 직진합니다. [장자울 오거리] 4:15 "장자울 오거리"에서 좌측 두번째 넓은 길로 갑니다. ['문양2길' 갈림길] "문양2길" 삼거리가 나오면 직진하고, 앞에 산으로 올라 가는 수렛길이 보입니다. ['142m봉' 들머리] 4:19 포장도로를 버리고 산으로 올라 가는 수렛길로 올라 갑니다. [묘지 통과] 4:21 수렛길을 2분 정도 오르면 수렛길은 좌측으로 가고, 정맥길은 묘지를 지나 올라 갑니다. 좌측 수렛길은 묘지를 통과하면 다시 만나더군요. [묘지 통과] 4:23 수렛길을 다시 만나 잠시 오르면 다시 묘지가 나오며 계속 수렛길을 따라 올라 갑니다. [갈림길] 4:26 ★길조심★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해서 올라 갑니다. ['142m봉'으로 가는 길] 장뇌삼 재배지에 쳐놓은 철조망을 따라 3분 정도 진행하면 .... [묘지] 4:29 다시 묘지가 나오고 묘지 우측 끝지점으로 올라 갑니다. [잡풀지대] 묘지를 지나 잡풀지역을 5분 정도 지나 올라 갑니다. ['142m봉' 정상] 4:34 [124번송전탑]이 있는 "142m봉"이 잡풀속에 서 있습니다. ['142m봉' 하산길] 송전탑을 지나면 수렛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 잠시 내려 갑니다. [물탱크 앞 갈림길] 4:38 ★길조심★ "142m봉"에서 3분 정도 수렛길을 따라 내려 가면 갈림길을 만나는데 우측에 사각 물탱크가 있습니다. 우측으로 틀어 가면 바로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아랫쪽으로 길안내를 합니다. ['모과울고개'로 내려 가는 길] 숲길을 잠시 내려 가면... [조경수 재배지] 독특한 단풍나무 같은 조경수를 키우는 곳을 지나고... ['모과울고개'로 가는 길] 밭 사이 농로를 따라 가면, 앞에 "모과울고개"가 보입니다. 그리고 "모과울고개"를 지나 진행해야할 건너편 길을 그려 보고 갑니다. [추수가 끝난 논] 들판이 황금색으로 변하는가 했더니 여기는 벌써 추수를 끝냈군요. [모과울고개] 4:45 "모과울고개" '충남 서산시 음암면'과 '당진시 정미면'을 잇는 [649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랍니다. ['모과울고개' 좌측방향] ['모과울고개' 우측측방향] '서산시 음암면' 방향 '당진시 정미면' 방향 ['113.5m봉'으로 가는 길] 4:48 ★길조심★ "모과울고개"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3분 정도 올라 가면 산으로 올라 가는 길이 우측으로 나 있습니다. [갈림길] 4:49 제법 넓은 수렛길을 따라 직진해 잠시 오르면.... [잡목지대] 태풍으로 초토화된 산인데 나무를 정리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직 시작 단계여서 길은 엉망이었습니다. 10여분 고생하며 오르면.... ['113.5m봉' 갈림길] 5:00 희미한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113.5m봉"을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이 지점 좌측에는... ['청주한씨' 가족묘지] 갈림길 좌측에는 '청주한씨 가족묘지'가 있으니 이 묘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113.5m봉' 정상] 5:01 갈림길에서 30여m진행하면 삼각점이 있는 "113.5m봉"이 나옵니다. 조망도 없고 특징도 없어 바로 되돌아 갑니다. [가족묘지] 5:03 갈림길로 돌아 와 '청주한씨 가족묘지'로 내려가 좌측으로 갑니다. [배추밭 통과] 5:04 좌측에 농가들이 있는 배추밭을 지나 갑니다. 배추밭은 계절따라 품종이 바뀌겠죠? [잡목 잡풀지대] 배추밭을 지나면 길의 흔적이 거의 없는 잡풀지역을 6분 정도 통과합니다. ['서산구치소' 갈림길] 5:10 ★길조심★ 그러면 앞에 붉은 색의 "큰집 작은방"---"서산구치소"가 보이는 곳에 갈림길이 나옵니다. 갈림길이라기 보다는 우측으로 가는 일방로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좌측으로는 길이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좌측으로 가야합니다. ['서산구치소' 돌아 가는 길] 잡목으로 길이 보이지 않는 곳을 지나 좌측 숲속으로 들어 갑니다. ['서산수치소' 철조망 울타리] 숲을 지나면 "서산구치소" 철조망 울타리가 나오며 철조망 울타리에 붙어 끝까지 잡목 잡풀을 헤치며 진행합니다. 여기도 길은 더럽습니다. [임도] 5:19 구치소 철조망 울타리가 우측으로 꺽이는 곳에 임도가 지나고 있습니다. 임도를 건너 건너편 숲속으로 올라 갑니다. ['나비아이'가 보이는 갈림길] 5:21 쓰러진 나무들을 요리조리 피해 잠시 진행하면 좌측 아래에 돔형 "나비아이" 건물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 가야 했는데, 길이 보이질 않아 좋은 길로 직진해서 알바를 하게 됩니다. [알바] 다 와서 알바를 하며 좋은 길을 따라 내려 가니... [서산구치소] 5:24 "서산구치소" 건물이 나오며 길이 보이질 않습니다. 다 와서 알바를 한것입니다. 다행히 짧은 알바였습니다. 다시 되돌아 갑니다. ['나비아이'가 있는 '성연고개'로 내려 가는 길] 5:29 다시 "나비아이 생태체험학교"가 보이는 곳으로 되돌아 와 잡목을 헤치고 내려 갑니다. [성연고개] 5:33 "성연고개"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와 '성연면 갈현리'를 잇는 고개인데 버스정류장 안내판에는 "갈현고개"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다음 구간 들머리는 좌측 골목으로 들어 가고, 앞에는 "서산구치소" 정문이 보입니다. [서산구치소 정문] 5:35 "서산구치소" 정문 앞에 버스종점이 있더군요. "큰집의 작은 방" ['간대산'에서 '성연고개'까지 구글어스] "성연고개'에 거의 다 도착해서 알바한 흔적이 GPS에 그대로 찍혀 있습니다. GPS 기준 22.4km를 8시간 20분이 걸려 완주했습니다. [서산구치소 시내버스 시간표] '서산구치소 버스 종점'에서 30여분 휴식을 취하며 버스를 기다렸고, 막차는 6시 2분에 도착하여 정확히 6시 5분에 출발하여 '서산버스터미날'에 6시 25분경에 도착했습니다. '서산중앙시장' 안에 있는 "전주백반집"에서 식사를 하고 7시 20분 출발 고속버스를 타고 귀가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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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가는 금북정맥 열두번째 산행기 수덕고개-덕숭산-나본들고개-뒷산-가야산-석문봉-일락산-개심사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 자유에 뿌리를 둔 본래적이고 소박한 상태로 돌아 가라 "자연으로 돌아 가라" - 장 쟈크 루소 - [ 산행 개념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둔리'에서 "수덕사"로 넘어 가는 고개인 "수덕고개"에서 출발하여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개심사"까지 GPS 거리로 17.6km를 갑니다. ['장항선' 열차에서 '천안-아산 KTX역 조망] 6:57 2012년 10월 16일 (화) 맑음 이번에도 "장항선 첫차"를 타고 갑니다. 천안을 지나니 "KTX 천안아산역"이 차창 밖으로 존재감을 나타내고 발전해 가는 '아산시'를 상징하는듯 합니다. ['장항선' 열차에서 '덕산'과 '가야산' 조망] 7:39 오늘로서 "장항선"을 타고 '금북정맥'을 가는 것은 마지막일듯 합니다. '삽교역'을 지나면 서쪽으로 "가야산"이 조망됩니다. 오늘 올라야 할 "충청남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덕숭산-가야산"을 바라보며 '금북정맥'의 실질적 하일라이트가 되는 저 산들을 섭렵하려니 벌써부터 마음 설레입니다. [홍성역] 7:48 정확한 시간에 "홍성역 洪城驛"에 내렸습니다. 저는 2010년 1월 9일에 "덕숭산"을 가기 위해 이곳에 한번 와 본적이 있습니다. '홍성역'은 원래 이곳이 아닌 시내쪽에 있었는데 '장항선' 복선화 공사로 다소 외곽인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하며, 새로 驛舍를 지으며 "수덕사 대웅전" 모양으로 건립했답니다. 이 역을 보니 '춘천'에 있는 "김유정역"이 연상됩니다. ['홍성역'에서 '롯데마트' 조망] '홍성역'을 나오면 앞에 "롯데마트"가 보입니다. 500m쯤 되더군요. '롯대마트' 1층에 "홍성버스공용터미널"이 있습니다. 2010년 1월에 왔었을 때엔 없던 '롯데마트'인데 그 사이 이곳까지 침략했군요. 하기사 이곳에 사시는 분들도 대형 마트의 혜택을 받을 권리는 있지요. [홍성공용버스터미널 수덕사 버스시간표] '홍성역'에서 5분 정도 걸어서 '롯데마트' 1층에 있는 "홍성버스공용터미널"에서 "수덕사-수덕고개"로 가는 시내버스를 탓습니다. 요즘 지방버스, 농어촌버스들은 KTX보다 더 철저하게 정시 출발 정시 도착을 합니다. "8시 5분 출발" 버스를 타고 55분이 걸려 "수덕고개"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버스요금은 아직도 시골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홍성시내'는 카드로 "1,050원"입니다만, 두어 정거장 '홍성'을 너머 "예산"으로 간다고 추가요금 "1,400원"을 더 받아 "2,450원"을 내야 "수덕고개"까지 갈수 있답니다. '수덕사' 정류장에 5분 정도 멈춰있는 시간에 운전기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앞으로 "홍성-예산"이 통합되면 서울처럼 교통요금도 조정되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김좌진 장군 동상] 8:09 '버스터미널'에서 두어 정거장을 지나니 홍성 번화가를 지나게 되는데 "장군상 오거리"에 "김좌진 장군 동상"이 있더군요. 재빨리 한컷했습니다. 홍성 사람들이야 매일 보는 장군상이겠지만, 나그네에겐 새로운 발견이죠.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 여러분들~ 새롭죠?. ㅎㅎ 여하튼 "홍성의 인물"로 대표되는 "김좌진장군동상"이 서울로 치자면 세종로 "이순신장군" 자리에 위풍당당 자랑스럽게 서 있는것입니다. [수덕고개] 9:00 "수덕고개"엔 "육괴정 六槐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는데 현재는 없어졌답니다. 다만 여섯그루의 "槐木 회화나무"가 있었는데 그 마져도 세그루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제가 가본 "육괴정 六槐亭"은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에 있는데 아래 사진 참고하세요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는 분명히 구별되는 종자가 틀리는 나무입니다. 생김새가 비슷하여 일반적으로 많은 곳에서 만날수 있는 "느티나무"로 혼동해 사용하지만.. "괴 槐""회화나무"를 말하는 것으로 "느티나무"와는 다른 나무 입니다. '충청북도 괴산' 아시죠? "괴산""괴"가 한자로 "槐"입니다. "槐"는 "나무 木"변에 "혼 鬼"가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이지요? 그러니까 "혼이 붙어있는 상서러운 나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회화나무"는 吉詳木이어서 옛부터 귀한 나무였답니다. 그래서 양반집, 특히 정승 이상이 되는 집에나 심고, 일반인들 집에는 '느티나무'나 심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백두대간'을 할때, "괴산군 槐山郡"을 지날 때 한번 언급한적이 있습니다. [육괴정] 자료사진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산수유마을'에 있는 "육괴정 六槐亭"입니다. '육괴정'은 조선 중중 14년(1519)에 기묘사화로 조광조를 중심으로 지치주의와 이상정치를 추구하던 신진사류들이 크게 몰락, 이때 난을 피해 낙향한 "남당 엄용순"이 '이천시 백사면'에 건립했다는 정자입니다. 그리고 당대의 선비였던 '김안국, 강은, 오경, 임내신, 성담령, 엄용순'등 여섯 사람이 연못 주변에 각자 한그루씩 여섯그루의 "회화나무"를 심어 "육괴정 六槐亭"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는데, 요즘 봄철에 "산수유마을 축제"로 유명해진 곳이죠. 이곳 '수덕고개'의 "육괴정 六槐亭"은 '이천 백사면 산수유마을'의 '육괴정'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수덕고개'에서 '가야산'까지 구글어스] 먼저 구글어스로 전체적 지형을 알고 출발합니다. 어제부터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늘 산행을 망서렸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가을 날씨에 산행하는 기회가 많지않아 무리해서 나섯더니 아니나 다를까 집중력이 떨어져 하지 않는 "알바"를 다 합니다. "알바" 한곳은 표기되 있죠? GPS는 거짓말을 안합니다. 제가 최근에 "아센850 GPS"를 구입했습니다. 기능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지만 실제 걸은 루트와 거리, 시간 등은 정확해서 산행기를 쓰기 위해서 입니다. "수덕고개"에서 "덕숭산"까지는 "오리지날 정맥길"로 가지 않고 일부러 좌측 능선으로 올라 갔습니다. 원정맥길은 예전에 한번 올라 본적이 있어서 이번 기회에 "전월사"를 들려 보기 위해 원정맥길 바로 옆 능선을 오르는 것입니다. [덕숭산 등산로 입구] 9:05 간단하게 산행준비를 하고 음식점 앞 버스 정류장 옆으로 난 등산로로 올라 갑니다. ["Y" 갈림길] 9:05 올라 가자마자 바로 "Y"갈림길이 나옵니다. 오리지날 정맥길은 우측으로 갑니다. 그러나 저는 예전에 올라 본 적이 있어 오늘은 일반등산로인 좌측길로 올라 가려 합니다. 앞의 구글어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좌측길이 시간이 더 걸리지만 경치는 더 좋다고하며 특히 "만공스님"이 입적 전날까지 머물렀다고 하는 "전월사"를 들리려고... [계곡] 경치가 수려한 계곡을 잠시 따라 올라 갑니다. ['전월사'로 오르는 길] 일반산객들을 위한 덕숭산 일반등산로여서인지 길은 아주 좋았습니다. 완만한 오름길을 여유있게 올라 갑니다. ['수덕사' 옆 능선] 좌측에 "수덕사 修德寺"를 두고 '수덕사'를 둘러 싸고 있는 능선을 올라 갑니다. [바위] 奇岩怪石들이 즐비한 아름다운 곳이 나타납니다. 이 근처에 "전월사"가 있더군요. [전월사] 9:41 "전월사"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는 산객들에게 물을 제공하는 샘터를 만들어 놓았는데 감명을 줍니다. "修道 중이니 들어 오지 말고 밖에서 물을 마시라"라고 마련해 놓은듯.... "만공스님"의 배려가 아닌지..... [전월사] "전월사 轉月舍" "전월사"는 "절 寺"자를 쓰지 않고 "집 舍"자를 쓰는 유명한 곳입니다. 제가 오리지날 정맥길을 버리고 이길로 오른 이유가 이곳 때문입니다. "轉月舍"는 "달을 굴리며 노는 집"이라는 뜻으로 해석 할수 있겠지요? "만공 스님 滿空"이 입적하시기 전날까지 수도정진하던 곳입니다. 종교활동을 하는 절간이 아니고 "만공스님"이 수도하며 기거하던 집이어서 "집 舍"를 쓰신 "만공스님"의 진솔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滿空스님"은 입적하기 전날 이곳에서 세수를 하고, 껄껄 웃으며 거울 속에 보이는 자신에게 "이제 자네와 이별할 시간이 되었네"라고 이별을 고했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정혜사"로 내려가 입적하였답니다. "전월사 轉月舍"는 "만공 滿空스님"이 지은 것으로 "허공(虛空)의 둥근 달을 굴리는(轉月) 집"이라는 뜻이랍니다 ['금북정맥'에서 본 '전월사'] ('산장'이라는 산객이 오리지날 정맥길에서 촬영한 사진을 참고 자료로 올렸습니다) 동쪽을 향해 절묘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轉月舍"입니다. "만공 스님 滿空"...."가득 찰 滿" - "빌 空" "만공滿空스님 부도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있었습니다. '千思不如一行 천사불여일행' "천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번 행하는 것이 낫다."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송춘희씨의 노래로 유명한 "一葉스님" 그녀가 스승으로 모시고 불법을 배운 수덕사 중창의 대명사 - 滿空스님 "空"은 텅 빈것이 아니라 가득차 있는것 滿이라고 한 - 滿空스님 수덕사를 생각하면 여승인 "一葉스님"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은 속세의 인간들이고, "滿空스님"을 먼저 떠 올리면 진정한 佛子라고 합니다. 그 많큼 수덕사는 "滿空스님"에 의해 크게 발전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쓴 "[德崇山 遊山記] 新女性과 女僧"을 한번 읽어 보세요~ [된비알] 제가 오늘 '금북정맥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전월사"능선으로 오른 또 하나의 이유는 "만공스님"의 유명한 법문을 함께 음미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크낙새'는 어쩐지 우리나라 새가 아닌듯한 어감을 주는 새입니다. 하지만 이 새의 이름은 울음소리가 "크아악~ 크아악~"한다고 지어진 우리나라 새이랍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귀한 새가 되버렸습니다. 우리들은 '크낙새'를 울음소리 보다, 부리로 나무를 "딱다다닥~ 딱다다닥~"쪼으며 구멍을 뚫는 소리가 더 특별하게 들렸는지 "딱다구리"라고 하는게 더 친근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딱다구리"를 얘기하면 사람들은 다소 음흉스런 상상을 하기도 하는 새입니다. ㅎ "滿空스님의 '딱다구리' 法文" 때는 1930년대 말 수덕사에서 실제 있었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만공스님'의 시봉(큰스님을 보필하는 어린 동자승)이었던 얼마전 입적하신 "수덕사 방장 원담스님"이 시봉이었을때 있었던 일화입니다. (이 이야기는 원문의 범주 내에서 조금 더 재미있도록 제가 각색을 약간 합니다) 시봉이었던 어린'원담'이 수덕사 아랫마을에 내려 갔다가 나뭇꾼들로 부터 노래를 하나 배우게 되는데, 나뭇꾼들이 중을 놀리려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봉에게 노래를 가리친것이겠죠. 그 노래가 음담패설 중에 하나인 "딱다구리 노래"였답니다. "저산의 딱다구리느은~♪ 생나무 구멍도 자알 뚫는데~♬ 우리집 멍텅구리느은~♪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아~♬" 시봉은 이 노래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단순히 흥얼거리기가 쉽고 추임새가 있어 수덕사 내에서 일을 하며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녔답니다. 우리 국악이란게 그런거죠? 어느날 '만공스님'이 지나다가 어린 시봉이 이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불러 세웠습니다. 중이 이런 야한 노래를 부른다고 혼내 주었겠습니까? ㅎ 궁금해요?........궁금하면 500원!~ '만공스님'은 예상을 깨고 다음과 같이 말씀했답니다. "그 노래 참 좋은 노래로구나. 잊어버리지 말아라." 어린 시봉은 "예 큰 스님!" 하며 자기가 노래를 잘불러서 그런줄 알고 신이 나서 여기저기 다니며 더 크게 불러제꼈답니다. ㅎ 그후 어느날 서울 왕궁의 상궁과 나인들이 수덕사를 찾아 '만공스님'의 법문을 듣고싶어했습니다 만공스님은 그 청을 쾌히 승락하시고, 마침 좋은 법문이 있다하며 어린 시봉을 불렀습니다. "큰 스님 부르셨습니까?" 여러 손님들 앞에 불려온 어린 시봉은 수줍은듯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래 내가 불렀느니라. 너 전에 부르던 노래 한 번 불러보거라." "아. 네 큰스님!" 지난번 큰 스님께서 칭찬하신 적도있고 해서 그동안 많이 부르고 다녀 노래만큼은 자신이 있어 어린 시봉은 목청껏 멋떨어지게 '딱다구리 노래'를 불러제꼈습니다 "저산의 딱다구리느은~♪ 생나무 구멍도 자알 뚫는데~♬ 우리집 멍텅구리느은~♪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아~♬" 淸信女로 살아 가는 상궁과 나인들에게 이 노래는 어떻게 들렸겠습니까 얼굴을 붉히며 어찌 할줄을 몰랐었답니다. 이 때에 '만공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답니다. 그 전문을 보여드림니다. “바로 이 노래속에 인간을 가르치는 만고불력의 직설 핵심 법문이 있소. 마음이 깨끗하고 밝은 사람은 딱따구리 법문에서 많은 것을 얻을 것이나, 마음이 더러운 사람은 이 노래에서 한낱 추악한 잡념을 일으킬 것이오. 원래 참법문은 맑고 아름답고 더럽고 추한 경지를 넘어선 것이오. 범부중생은 부처와 똑같은 불성을 갖추어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누구나 뚫린 부처씨앗이라는 것을 모르는 멍텅구리오. 뚫린 이치을 찾는 것이 바로 불법(佛法)이오. 삼독과 환상의 노예가 된 어리석은 중생들이라 참으로 불쌍한 멍텅구리인 것이오. 진리는 지극히 가까운데 있소. 큰길은 막힘과 걸림이 없어 원래 훤히 뚫린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가깝고, 결국 이 노래는 뚫린 이치도 제대로 못찾는, 딱따구리만도 못한 세상 사람들을 풍자한 훌륭한 법문인 것이오." 만공스님의 법문이 끝나자 그제서야 청신녀들은 합장배례하며 감사히 여겼답니다. 서울 왕궁으로 돌아간 궁녀들이 이 '딱따구리 법문'을 윤비(尹妃)에게 소상히 전해 올리자 '尹妃'도 딱따구리 노래를 부른 어린 시봉을 왕궁으로 초청해서 '딱따구리 노래'가 또 한 번 왕궁에서 불려진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 파란문 잡생각 ♡ ㅎ '尹妃'는 '영친왕(英親王)'의 妃였죠? '만공스님'의 시봉인 어린 중을 왕궁까지 데려다 '딱다구리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 것은 자기 남편인 '영친왕(英親王)'에 대한 일종의 시위 아니었을까요? "뚫린 구멍도 못 뚫는 영친왕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ㅎㅎ [금북정맥 마루금 합류지점] 9:52 "전월사"에서 10여분 오르면 "오리지날 정맥길"을 다시 만납니다. 이제부터 마루금에 다시 복귀하여 진행합니다. ['덕숭산'으로 오르는 길] 정맥 마루금 합류지점에서 잠시 오르면.... [조망터] 9:56 몇명이서 자리 잡고 식사하기 좋은 조망터가 나옵니다. 이곳을 "2010년 1월 9일"에 올라 점심식사를 했는데 다음 사진입니다. [2010년 1월 9일] 환상적인 눈꽃으로 뒤덮힌 덕숭산에서 불고기에 한잔 걸치며 점심식사를 하는 그 맛!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날따라 눈도 엄청 펑펑 쏟아지더군요.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수덕사의 여승'인 "일엽스님-김원주씨"의 처녀시대에 新女性으로서 "청춘을 불태우고" 여승이 된 그 파란만장한 사연들을 안주 삼아 한잔하는 그맛! 궁금해요? 궁금하면 "[덕숭산 유산기] 新女性과 女僧"-여기 클릭이라는 제 산행기 읽어 보세요. [덕숭산 정상 조망] '덕숭산' 정상이 조망됩니다. 이곳에서 3~4분 거리이니 매우 가깝습니다. [덕숭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완만한 오름길을 3~4분 오르면.... [덕숭산 정상] 10:00~10:15 (15분간 아침식사) "덕숭산 德崇山 495.2m" "가야산"과 함께 "충청남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으로서 "山經表"에는 "수덕산 修德山"으로 나옵니다. "덕숭총림 수덕사"를 품고있는 산이어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입니다. [덕숭산 정상에서 '가야산' 조망] '금북정맥'은 "가야산 가야봉"을 지나 "가야산 석문봉"으로 이어 집니다. 예전에 한번 종주한적이 있지만, 오늘 다시 넘어야할 "금북정맥의 하일라이트"입니다. "가야산 원효봉"은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어 가지 않습니다. [갈림길] 10:16 '덕숭산 정상'에서 좌측으로 50m쯤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사람들의 통행 흔적이 많은 직진길로 가야합니다. ['오서산-백월산-홍동산' 조망] 지난 구간에 걸었던 정맥길이 한눈에 시원하게 조망됩니다. 햐!~~ '오서산' '백월산' '홍동산'........ 특히 '오서산'은 금북정맥이 끝날때까지 보일듯 합니다. ['수덕사' 조망] '修德寺'는 女僧들만이 수행하는 사찰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더군요. 아마도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禪房'이 만들어진 절간이라 그렇게 인식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비구'와 '비구니'가 함께 수행하는 곳이죠. [덕숭산 정상 능선] 덕숭산 정상 능선을 따라 잠시 더 내려 가면..... [수덕사-정맥 갈림길] 10:20 ★길조심★ "수덕사 갈림길"이 나옵니다. "수덕사-덕숭산"을 찾는 분들은 100% 이곳으로 오르내립니다. 예전엔 안내판이 있었던것 같은데, '위치표지목'만이 오른쪽에 멀쑥히 서 있습니다. 정맥길은 우측으로 직진입니다. 바로 앞에 녹쓴 철조망이 조금 막고 있지만 쉽게 통과할수 있습니다. [암봉] 10:21 철조망 옆을 통과하면 바로 암봉이 나오고... [갈림길] 10:23 ☆길조심☆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 갈림길 우측으로 가야하는데 뭔 잡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냥 지나쳤습니다. 잠시만 집중력이 떨어져도 엉뚱한 길로 가게 되는 것이 이런 길입니다. ★알바 시작★ ㅎㅎㅎ [☆알바 시작☆] 내리막 경사가 이어져야 하는데....약간 의심을 합니다. 그래도 갈림길을 못봤으니 이 길에 자신감을 가지고 내려 갑니다. [☆알바 중☆] 그럴듯한 모양새가 정맥길 같아서 빠른 걸음으로 진행합니다. ㅎ [☆알바 중☆] 나중에 집에 와서 조사해 봤더니, 이 길은 "수덕사-정혜사"의 뒷산 능선으로 일반 등산로였습니다. 중간 중간에 "정혜사"로 오르내리는 통로들이 있었는데 수도 중이라고 막아놨더라구요. [☆알바 중☆] 오늘 산행 컨디션도 좋지 않아 쉴려고 하다가 날씨가 좋아 왔더니 알바를 합니다. 건너편 산줄기를 뒤돌아 보고, "나본들고개"를 확인하는 순간 "알바!"임을 알고 낑낑거리며 "415m봉"으로 회귀합니다. [정맥길로 回歸] "415m봉" 갈림길로 되돌아 왔습니다. 30분을 소모했습니다. 오늘 컨디션도 나쁜데 갈길이 걱정입니다. [갈림길] 10:50 ★길조심★ 왜? 어떻해서? 이 알기 쉬운 갈림길을 그냥 지나 쳤을까...... '알바는 산행의 꽃 - 영원한 추억'이라지만 김 샘니다~ ['나본들고개'로 가는 길] 정상적인 길을 따라 "나본들고개"로 내려 가는 길은 사람의 흔적이 적습니다. 길은 조금전 알바했던 '정혜사 뒷 능선'이 경치도 좋고 여러모로 좋았습니다만, 정맥길을 가는 산객들은 이런 거지같은 길을 가야합니다. [갈림길]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고 간단한 갈림길도 겁이 납니다. 집중력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통과합니다. [바위전망대] 10:58 약간의 내림길을 가다가 다시 약간의 오름길을 오르면 암봉이 나옵니다. 암봉을 올라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뒤돌아 본 '415m봉'] 조금전 알바를 했던 갈림길이 있던 지점으로 추정되는 "415m봉"을 뒤돌아 보고... [알바했던 건너편 능선] 알바를 했던 건너편 능선도 씁쓸한 마음으로 눈길을 줍니다. ['나본들고개'와 '뒷산' 조망] "나본들고개"와 "뒷산"이 산뜻하게 조망됩니다. 정맥길은 뒷산의 옆구리를 올라 우측으로 꺽여 "가야산"으로 가는군요.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10여분 내려 갑니다. [잡목지대] 길은 나쁩니다. 잡목지대를 통과해 내려 가면.... [길조심 구간 1] 11:10 2010년 9월 3일에 불었던 태풍 "곤파스"의 위력적인 흔적이 남아 있는 어수선하고 너저분한 곳을 통과하게 되는데...... "Y 삼거리"가 나올때까지 100m정도 직진해 갑니다. [길조심 구간 2] 11:10 잡목 잡풀들로 어수선하지만 사람들의 통행 흔적이 선명한 길을 따라 직진.... [갈림길] 11:11 ★길조심★ 금방 "Y갈림길"에 도착합니다. 잡풀들이 자라서 "Y 갈림길"이 다소 혼란스럽지만 좌측으로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한두개 보였습니다. [숲길] 완만한 숲길을 4분 정도 진행하면... [묘지] 11:15 묘지가 나오며 시야가 트입니다. [45번 국도]가 "해미터널"을 지나는 것을 조망하고 우측 숲길로 들어 갑니다. ['나본들고개'로 내려 가는 길] 다시 숲길을 5분여 내려 가면... ['나본들고개'와 '뒷산'] "나본들고개"와 "뒷산"이 정면으로 보입니다. 뒷산으로 오르는 길은 붉은색 선이 오리지날 정맥길입니다만, 주민들이 밭농사를 짓는다고 완전히 막아놔 부득이 우측 노란색 선을 따라 길을 개척하며 뒷산으로 올라 갔습니다. 또 고생.... [나본들고개] "나본들고개"를 지나기 위해선 [45번 국도]를 또 무단횡단해야 하는군요. 앞에 '나본들 전각'이 보이지요? 저 전각이 "대원위대감 흥선 이하응"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상여가 보관되 있던 전각이라는데 상여는 어디로 가고 텅 비어 있답니다. ['45번도로'에서 '가야산' 조망] 11:22 [45번국도]를 횡단하며 "가야산 가야봉"과 "가야산 원효봉"을 바라봅니다. '제가 2008년 9월에 가야산 산행을 하며 올랐던, '가야봉'과 '원효봉' 사이에 "내포문화발원탑"이 있었습니다. ['고려한식부페-산장모텔'] "구45번국도"변에 얼마전까지도 "고려한식부페"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모두 폐업한듯 ['뒷산' 들머리] "뒷산"으로 오르는 들머리입니다. [들머리] 구간 들날머리이기도 해서인지 선답자들의 표지기는 매우 많았습니다. 절개지 옆으로 올라 가면 바위를 하나 지나고... [진입로] 잡초들이 길을 막고있는 능선을 올라 갑니다. [뒤돌아 본 '덕숭산 알바구간'] 올라 가며 뒤돌아 보니 "덕숭산 415m봉"에서 알바를 했던 능선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고추밭] 왼쪽에 푸른색 지붕이 있는 집 근처에 가면 고추밭이 나옵니다. 고추밭을 돌아 올라 갑니다. 계절따라 심는 품종은 달라지겠죠? [감] 11:31 주러주렁 열린 감나무 옆을 통과해 갑니다. 한개 따 먹을 까?..하다가 그냥 지나칩니다. [대나무 숲길] 양쪽 옆으로 대마무들이 서있는 임도를 지나는데 무성한 잡초들로 길을 알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정맥꾼들도 안다니는지 사람들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밭으로 더 이상 갈수 없음] 11:33 앞으로 나갔더니 농민들이 밭을 일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출입구를 완전히 막아놨구요. 할수 없이 우횟길을 궁리하여 돌아 가기로 결심합니다. ['나본들고개'에서 '뒷산'까지 구글어스] 이곳의 오리지날 정맥길과 제가 연구하여 올라간 길을 구글어스를 통해 보여드림니다. 붉은색으로 그어진 곳엔 밭을 일구고 있어 미안해서 도져히 들어 갈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측으로 길을 만들어 가며 올라 갔던것입니다. [우회로] 11:40~11:50 (10분간 휴식) 수렛길을 따라 우측으로 조금 가면 산비탈에 규모가 큰 묘지군이 있더군요. 묘지의 상단부로 올라가 길없는 길을 무작정 올라 가는 것입니다. [길 없는 길] 20여분 길없는 길을 헤메며 올라 갑니다. 길은 전혀 없고 감각적으로 올라 갑니다. 조금 고생했습니다만 그런데로 올라 갈만했습니다. [등산로와 다시 만남] 12:10 묘지에서 오로지 윗쪽으로만 20여분 올라 갔더니 오리지날 정맥길을 만납니다. 이러한 산길도 길이 없다고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방향을 나침판으로 잡고 가면 됩니다. 나침판은 필수적으로 소지해야하죠. ['뒷산'으로 오르는 길] 선명한 정맥길을 따라 다시 20여분 된비알을 오릅니다. [갈림길] 12:30 ★길조심★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한무더기 발견되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이 갈림길입니다. "뒷산" 정상을 밟고 다시 이곳으로 회귀해 우측으로 내려 가야합니다. ['뒷산 정상'으로 가는 길] 갈림길에서 정상까지는 거의 평지 수준이며 아주 가까웠습니다. 1분 30초 정도 진행하면.... [뒷산 정상] 12:32~1:00 (28분간 점심식사) "뒷산 449m" '예산군 덕산읍 광천리'의 뒤에 있는 산이라고 일반명사로 "뒷산"이라 하던게 고유명사화 된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뒷산 정상'에서 西海 조망] "뒷산' 정상에서 조망은 시원치 않았습니다. 서쪽으로 西海 '천수만'이 '안면도'와 함께 박무 속에 어렴푸시 보이고.... [가야할 '가야산'] 북쪽으로는 가야할 "가야산 가야봉"과 "원효봉"이 가깝게 조망되었습니다. 그리고 좌측에는 채석장이 대단한 규모로 시끄러운 소음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갈림길 회귀] 1:02 갈림길로 되돌아 와서 좌측으로 내려 갑니다. ['뒷산' 내려 가는 길] 급경사를 잠시 내려가면 길은 다시 온순해 지고... ['402m봉'] "402m봉"이라고 생각되는 봉우리를 지나면.... ['385m봉'에서 건너편 '411.2m봉' 조망] 건너편에 채석장이 금북정맥의 한면을 완전히 절개하며 파먹어 들어 가고 있습니다. 제가 백두대간이나 정맥, 지맥을 다니며 느끼는 것 중에 아쉬운점은 채석장입니다. 물론 골재채취도 해서 도로도 건설하고 아파트도 짓고 다리도 놔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땅덩어리의 중추역활을 하는 대간이나 정맥을 꼭 파먹어야하는지..ㅉㅉ 저 산꼭대기가 "411.2m봉"이어서 저 산꼭대기로 다시 올라 가야합니다. [한티고개] "뒷산"과 "411.2m봉" 사이에는 "한티고개"가 있습니다. [한티고개] 1:17 "한티고개" '충남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을 잇는 고개랍니다. 새로운 도로들이 뚫리기 전에는 '서산'과 '예산'을 잇는 큰고개였다는군요. 요즈음 "서산 아라메길"이라는 둘레길이 만들어져 지나는 길이기도 하답니다. "아라메길"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 '메'를 합쳐 지은 이름이라네요. [순례지] '안성'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금북정맥' 산줄기의 계곡과 고개에서 초창기 우리나라 천주교도들의 시련과 순교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것을 보며 이곳까지 왔습니다. 이곳도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홍성 예산'지역에서 '해미읍성'으로 잡혀가는 순교의 고갯길이었답니다. [해미순교성지 도보순례길] '해미순교성지 도보순례길'이라는 안내판이 눈길을 끕니다. ['411.2m봉'으로 오르는 길] '한티고개'에서 10여분 된비알을 치고 올라 가면... [전망바위에서 뒤돌아 본 '한티고개'] 1:29 전망바위가 있는 곳에서 지나온 "한티고개"와 "411.2m봉"을 감상하고... ['411.2m봉'으로 오르는 길] 다시 10여분 오름짓을 하면... ['411.2m봉' 정상] 1:41 "411.2m봉"이 나옵니다. 조망도 없고 별다른 특징도 없습니다. ['한서대학' 갈림길] 1:43 "411.2m봉"에서 2분 정도 거의 평지를 진행하면 바로 "한서대학 갈림길"이 나오는데.... 안내팻말에는 "한서대학"까지 1시간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의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427m봉'으로 가는 길]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진행합니다. ['한서대' '산수저수지' 조망] 좌측-서쪽으로는 "한서대학""산수저수지"가 조망되며, "해미"가 보입니다. 정맥길 좌우로 조망이 되기 시작하며 산행의 즐거움이 배가되기 시작합니다. ['덕산온천' '수암산' 조망] 우측-동쪽으로는 '예산군 덕산면 대치리'가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고, '덕숭산'과 '수암산' '덕산온천지구'가 보입니다. [가야할 '485m봉'과 '가야산' 조망] 2:09 북쪽으로는 가야할 "가야산 가야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야산'과 '원효봉' 조망] "가야산 가야봉" 우측에는 "가야산 원효봉"이 위용을 드러내고... [잡목지대] 잡목 잡풀지역이 한동안 계속되는데 길이 매우 나쁩니다. ['427m봉'] "427m봉"인지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몇개의 봉우리를 지납니다. [산불난 지역] 산불의 흔적이 있는 곳엔 언제나 잡목과 잡풀이 무성하죠 ['470m봉'과 '485m봉' 조망] 점점 고도를 높이는 봉우리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한서대학] "한서대"도 이젠 뒤로 물러나고....계속 쉬지않고 전진합니다. ['470m봉' 정상] 2:31 잡목 잡풀들을 헤치고 "470m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냥 지나칩니다. ['485m봉'으로 가는 길] 잡목 터널을 뚫고 "485m봉"으로 올라 갑니다. ['485m봉'] "485m봉" 정상에선 조망이 매우 좋습니다. 조망을 하고 갑니다. ['485m봉'에서 지나온 길 조망] 2:42 '오서산'에서부터 뻗어 오는 금북정맥 산줄기가 그림같습니다. '오서산'과 '백월산' 사이에서 연기가 나는데.....궁금 ㅎ ['485m봉'에서 가야할 '석문봉'과 '일락산' 조망] 북쪽으로는 가야할 "가야산 석문봉"과 "일락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저 산줄기를 끝으로 '금북정맥'은 서해 바다를 향해 몸을 낮추기 시작합니다 [올라야할 '가야산'] 올라야할 "가야산" 정상까지는 몇개의 전위 봉우리를 넘어야 하고... ['643m봉'으로 오르는 잡목지대] 다시 잡목지대를 헤치며 올라 갑니다. ['643m봉'에서 지나온 길 조망] "643m봉"에 올라 뒤돌아 보니 "뒷산"에서부터 이어지는 정맥마루금이 꿈틀거리는 龍같습니다. ['643m봉'에서 '오서산' 조망] 아무리 봐도 실증나지 않는 '정맥길' '오서산'이 이곳 서해안에선 가장 높은 산이란걸 새삼 확인시켜 줍니다. [암릉구간] 암릉구간을 잠시 오르니... ['649m봉' 정상] 3:09 "649m봉"이 나타나는데 '금지' '고발'등의 문구들이 있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가야산 가야봉'으로 오르는 암릉구간] 정상이 가까울수록 암릉구간은 점점 더 위세를 떨칩니다. [奇岩怪石] 奇岩怪石들이 즐비하고... ['가야봉' 정상으로 오르며 뒤돌아 본 '뒷산'] 다시 한번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고... ['가야봉' 정상으로 오르며 뒤돌아 본 풍경] 남서쪽으로 "한서대"가 더 큰 규모로 보이며 '안면도'와 '천수만'이 더욱 뚜렸하게 보이며 특히 '서산 도비산'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해미 海美"는 조선초 '정해현'과 '여미현'등 두개의 현을 합하여 한개의 현을 만들면서 '정해'에서 “해”자를 따고 '여미'에서 “미”자를 따서 "해미현"이라 칭하였다는데... 여하튼 이름이 독특하고 이쁩니다. '바다가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이 되었으니까요. ['가야봉' 정상 조망] 3:29 "가야산 가야봉"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야봉" 정상은 웅장한 쇠말뚝들이 꽂혀있습니다. "가야 迦耶"라는 말을 한자로 해석하려면 절대 할수 없습니다. "迦耶"는 산스크리트語 "gayā"를 한자로 音譯한것이기 때문입니다. 불교 용어들은 거의 대부분 산스크리트語(티벳트語)를 한자로 音譯한것이고, 그것을 우리말로 다시 音譯한것들이어서 그 뜻을 알려면 '산스크리트語'를 알아야하기에 골치가 아픈것입니다. 산스크리트語 "gayā"는 "모아 쌓음"의 뜻으로 "몸"이라고 한답니다. 수도정진을 통해 쌓은 생명체의 실체 ['가야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가야산입니다. 아름답습니다. [가야봉 정상] 3:40 보시는 바와 같이 "가야산 가야봉" 정상은 군관민의 통신관련시설들이 점령하고 있어 올라 갈수 없어 좌측으로 우회하여 가야합니다. ['가야봉' 정상에서 '오서산' 조망] 지나온 '오서산-백월산-덕숭산-뒷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마지막으로 조망합니다. 아무리 봐도 즐겁습니다. ['가야봉' 정상 우회로에서 '석문봉' 조망] "가야봉" 정상 옆구리로 우회하며 "석문봉"으로 갑니다. ['가야봉' 정상 우회로] 그런데 "가야봉" 정상 옆구리로 우회하는 길이 피곤하게 합니다. 정상 철조망을 따라 가는 줄 알았더니, 비탈진 곳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가더군요. [우회로] 3:49 비탈진 곳으로 내려 갔다가 다시 너덜지대를 올라 철조망 근처로 올라 갑니다. [뒤돌아 본 '가야봉' 우회로] 옆구리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고.... [위험구간] 이 바위구간을 지나와 뒤돌아 보며 촬영한 사진인데 내려 오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발 디딜곳이 마땅치 않더라구요. 그 이유는 철조망 울타리가 무너져 길을 막아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갈림길] ★길조심★ 위험 바위를 통과하면 바로 갈림길이 나옵니다. 직진하는 길이 선명해 지나치기 쉬운 곳이었습니다. 우측으로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여럿 보입니다. 우측으로 올라 갑니다. [암릉 오름길] 철조망 울타리가 있는 곳까지 바위들을 올라 가면.... [가야봉 정상] 일반 등산객들이 "가야산 가야봉 정상"이라고 여기는 암봉이 철조망 옆에 솟아 있습니다. 올라 가면... [가야봉 정상] 3:58 일반등산로가 나오는데, 이곳을 오르내리는 계단을 설치해 놨습니다. [가야봉 능선] 이제부터 길이 좋은 일반등산로를 걷게 되겠습니다. "가야산"은 "원효봉-가야봉-석문봉-옥양봉"으로 이어져 있으며, '금북정맥 마루금'은 "가야봉"에서 "석문봉"까지이며 "석문봉"에서 "일락산"으로 향합니다 ['남연군 묘'가 있는 상가리 조망] 우측 아래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가 보이는데 저곳에 유명한 "남연군 묘"가 있습니다 "남연군 묘"에 얽힌 역사는 저의 산행기 "예산 가야산 산행기" - 여기 클릭를 보세요. ['가야산' 정상에서 '천수만' 조망] '천수만'과 '안면도', '한서대'와 '해미'를 조망하는데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남연군 묘 주차장' 갈림길] 4:08 '가야봉' 계단을 내려가 1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남연군 묘"에서 오르내리는 일반 등산로 갈림길입니다. [암봉 우회길] 암봉이 나오면 반드시 우횟길이 있어 편리합니다. ['609m봉'] 4:12 "609m봉"도 암봉입니다. 중턱에서 우회로가 있어 안전하게 지날수 있구요... ['609m봉'에서 뒤돌아 본 '가야봉'] "609m봉" 중턱에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고... ['609m봉' 우회로] 우회로로 돌아 진행합니다. [현위치 안내판] 현위치 안내판을 지나면... ['금강산' '백화산' 조망] 다음 구간에 가야할 '서산'의 "금강산"'태안'의 "백화산"이 보입니다. 이제 '금북정맥'도 종착지가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느낄수 있군요. 유명한 "서산 팔봉산"은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어 가지 않습니다. ['석문봉'으로 가는 길] 기괴한 바위들이 늘어서 있고, 단풍이 물들어 가는 능선길을 진행합니다. [암봉] 자연적인 돌계단이 있는 암봉을 넘어 가면... ['석문봉' 조망] "석문봉"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갈림길] 4:33 "남연군 묘"에서 오르는 일반등산로 갈림길을 지나면 ['612m봉'] 4:37 유격훈련을 하며 올라야하는 암봉이 나오는데 위험하지는 않았습니다. [기암괴석] 奇岩怪石들을 지나면 ['석문봉'으로 가는 길] 암봉을 다시 오르고, "석문봉"이 다가 옵니다. [뒤돌아 본 '가야봉'] "가야산 원효봉"과 "가야봉", 그리고 우측 끝에 "뒷산"까지 한눈에 들어 옵니다. [정상 연결 데크] 전에는 없던 통로도 만들어져 쉽게 "석문봉"으로 갑니다. ['석문봉' 정상] 4:48~4:54 (6분간 휴식) "가야산 석문봉 迦耶山 石門峰 653m" "가야산"에서 실질적으로 "가야산의 정상" 역활을 하는 "石門峰"정상입니다. ['옥양봉' '서운산' 조망] "石門峰" 정상에서 먼저 북쪽방향에 있는 "옥양봉 玉洋峰:593m"과 "서운산"을 바라보고... 그 뒤로 "당진"이 보이는군요. ['한서대' '산수저수지' 조망] '한서대'가 있는 계곡과 '산수저수지'를 마지막으로 뒤돌아 봅니다. [가야할 "일락산"방향 조망] 그리고 가야할 정맥길을 바라봅니다. "일락산"과 "개심사"가 가까워 보이는데 실제 가 보니 멀더군요. "해미"와 '도비산'도 그림같습니다. [정맥-옥양봉 갈림길] '석문봉 정상 갈림길'에선 "일락사 방향"으로 내려 갑니다. 이제 "예산군"과도 이별을 하고 "서산시" 속으로 들어 갑니다. ['일락산'으로 내려 가는 길] "일락산"으로 가는 길은 등산로 정비가 잘되있습니다. "상서러운 도시'라는 "瑞山"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첫번째 봉우리 우측으로 우회] 무명 봉우리들은 대체로 우회로가 있더군요. 우측으로 우회하여 진행합니다. 길은 정말 좋습니다. [이정표] 5:03 "보원사지"방향으로만 계속 갑니다. ['사잇고개'로 가는 길] 완벽한 등산로를 따라 완만한 내림길을 갑니다. [깊어 가는 가을] 봄에 시작한 '금북정맥'인데 벌써 정맥길에는 가을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쉼터] 5:12 산꼭대기에 있는 쉼터로는 특이한 쉼터를 지나면.... [사잇고개] 5:13 "사잇고개" 좌측으로 내려 가면 "해미 일락사" 방향이고, 우측으로 가면 "용현계곡"으로 가는 길이랍니다. [솟대] 솟대는 일반적으로 '오리'모양인데 여기는 특이하게 '학' 한마리가 함께 있군요 ['일락산'으로 가는 길] "사잇고개"에서 "일락산"가지는 500m라고 안내합니다. 산길 500m는 가까운게 아니죠? ['일락산' 전위봉] 봉우리를 오르면 아직 전위봉이고.... "사잇고개"에서 "일락산"까지는 22분 정도 걸렸습니다. [전위봉'에서 '일락산' 조망] 전위봉에서 "일락산"을 바라보며.....오르락 내리락... [일락산 정상] 5:35 "일락산 日樂山 521m" "일락산 정상"에는 흔한 정상석 하나도 없었고 사각 정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이정표에 매직으로 '일락산'이라고 적어 놨습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그냥 지나 칩니다. ['일락산'에서 가야할 길 조망] "일락산" 정상에서 이어지는 정맥길을 조망하고.... ['개심사 갈림길'로 가는 길] 비교적 선명한 길을 25분여 진행하면.... [수렛길] 5:59 넓은 비포장도로가 정맥 마루금을 넘고 있는 것을 볼수있습니다. 우측길, 즉 "보원사지터 방향"으로 갑니다. [수레길 삼거리] 6:01 넓은 비포장도로는 이내 우측 "용현계곡"방향으로 도망가고 정맥길은 직진하여 임도를 따라 눌루날라 편안한 길을 5분 정도 갑니다. 가을이 되니 날이 짧아져서 이내 어두워집니다. ['개심사' 갈림길] 6:07 "개심사 입구 갈림길"에 도착하니 깜깜해 지기 시작합니다. 오늘 알바도 하고, "전월사"도 들리고, "뒷산"오르는 길없는 길도 개척하는라 예정 시간보다 많이 지체 되었습니다. "개심사 갈림길"에서 "개심사"까지는 17분 정도가 걸렸는데 어두워서 사진 촬영을 못했습니다. ['개심사'에서 '덕숭산'까지 역으로 본 구글어스] "덕숭산"에서부터 "개심사"까지 구글어스를 보며 전체적 지형을 알아보며 오늘 산행을 마칩니다. [상왕산 개심사] 6:25 저녁 6시 25분인데도 벌써 밤이 되었습니다. 유명한 "개심사"는 다음에 다시 오를 때 자세히 구경하기로 하고.... 택시를 불러 '서산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귀가했습니다. 택시비는 좀 쎄더군요. 서산까지는 20,000원이고, 해미까지는 12,000원을 요구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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