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가는
금북정맥 일곱번째구간 산행기
차동고개-고재고개-장학산-성황당고개-천종산-
야광고개-세반봉-사점미고개-국사봉-탑봉-
칠갑지맥분기봉-운곡고개-금자봉-70번지방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사치가 아니다.
왜 꿈만 꾸고 있는가.
한번은 떠나야 한다.
떠나는 건 일상을 버리는 게 아니다.
돌아와 일상 속에서 더 잘 살기 위해서다.
- 박준의《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중에서 -
"錦北正脈"
그 끝에 닿으면 여름이려나~ 가을이려나~ 눈이 내릴려나~
산길따라 바람따라 세월따라 흘러 가는 산행길
[금북정맥 전체구간]
"금북정맥 錦北正脈"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이 세개의 정맥이 분기하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칠장산"에서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안흥리'까지 약280km의 산줄기인 "금북정맥"을 갑니다.
[6구간 산행개념도]
'금북정맥'의 일곱번째 구간은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녹천리'를 잇는 "차동고개"에서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위라리'와 '청양군 운곡면 효제리'를 잇는
"70번지방도"까지 도상거리 약 20km를 갑니다.
[온양온천역 1번출구] 6:40
2012년 7월 12일 (목) 흐림 연무
'병점역'에서 출발하는 전철1호선 새벽 5시30분 전동차를 타고 "온양온천역"으로 갑니다
역에서 내려 급히 버스정류장으로 향합니다. 금북정맥을 하며 두번째로 찾았습니다.
앞으로는 '금북정맥'을 위해 이곳에 다시 오는 일은 없을 테니 '온양온천역'과도 이별.
"온양온천역 버스정류장"은 앞에 보이는 큰 도로 좌측에 있습니다.
[온양온천역앞 버스 정류장] 6:44
전철에서 내려 허겁지겁 서둘러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유구"행 [100번 시내버스] 첫차가 바로 들어 오고 있습니다.
출발지에서 6시 40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4분만에 이곳으로 오는 것이죠
['유구' 가는 "100번 버스" 시간표]"
"유구"행 버스에 대해선 지난 구간에서 언급하여 생략합니다.
[유구 터미날] 7:36
[100번 시내버스] 첫차는 약 1시간이 걸려 "유구 터미날"에 도착했습니다.
주변을 둘러 보아도 택시가 보이질 않아 터미날 편의점에 들어가 알아 보니 건너편에
택시 정류장이 있었습니다. 편의점에서 우유와 센드위치를 사고...
[차동고개] 7:48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유구터미날'에서 6분만에 '차동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택시기사는 택시 요금을 지난번과 달리 7,000원을 요구 했습니다.
지난번엔 메타요금이 6,400원이 나왔는데도 6,000원만 받았는데...그때 그때 달라요.
[차동고개 산행들머리]
"차동고개 車東고개 해발 215m"
지난 산행기에서 이미 알아 보았습니다만, 다시 한번 더 알아 보겠습니다.
대간 정맥꾼들의 지침서인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에는"차유령 車踰嶺"으로 나옵니다
순수 우리말로 해석하면 "수레넘이고개"가 되며, 이런 고개 이름은 전국에 산재해 있습니다
즉, 수레가 넘어 갈수 있는 넓은 고갯길이었다는 것이니, 옛날엔 大路였던 것이죠
[들머리] 7:53
간단하게 산행준비를 하고 들머리로 들어 갑니다.
들머리에 들어 서니 바로 갈림길이 나오며 우측 오르막으로 오르도록 표지기들이
안내를 합니다.
['차동터널 위 마루금] 7:56
오름짓을 잠시하면 수렛길 정도의 넓은 숲길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이 길 아래엔 "차동터널"이 뚫려 있더군요.
[당진-대전 고속도로] 7:59
무덤이 있는 곳에서 아랫쪽으로 나가보니 "대전-당진 고속도로"가 뻗어 있습니다.
['353m봉'으로 가는 길]
"330m봉"을 가볍게 넘어 "353m봉"으로 가는 넓은 숲길이 계속 펼쳐 지다가
해묵은 무덤을 하나 지나갑니다.
['353m봉' 정상] 8:25
별도의 표시도 없는 특징없는 "353m봉"을 지나고...
['고재고개'로 가는 길]
넓은 숲길을 따라 계속 진행합니다.
[임도 갈림길] 8:42
"차동고개"에서 50분 정도 넓은 숲길을 따라 진행하면 처음으로 갈림길이 나옵니다.
넓은 숲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나가고, 정맥길은 직진해 나갑니다.
[고재고개] 8:44
"고재고개"
임도 갈림길에서 직진해 나가면 사람들의 흔적이 없는 고개 같지도 않은 "고재고개"가
나오는데, 앞에는 벌목하여 붉은 속살을 더러낸 "342m봉"이 있습니다.
"고재고개"는 우측에 "예산군 신양면 여래미리"에 "고재동"이라는 마을이 있어 붙여진
이름인듯....
['342m봉' 임도]
"342m봉" 좌측으로 넓은 수렛길이 다시 나타나는데...
수렛길을 따라 100m정도 모퉁이를 돌아 가면....
[갈림길] 8:49
수렛길을 버리고 숲길로 들어 가야 하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곳에선 가운데 봉우리로 올라 갑니다만, 좌측에 길이 나 있으니
봉우리에 오르지 않고 편리하게 좌측 산길을 따라 진행합니다.
봉우리로 오르는 길도 없습니다.
['장학산'으로 가는 길]
갈림길에서 좌측 숲길로 나가면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길안내를 하며
평평한 편안한 길이 한동안 이어집니다.
[숲을 뚫고....]
요즘 내린 장맛비로 숲은 더욱 푸르게 변했습니다.
변한것 까지는 좋은데 산객들에겐 애물단지 입니다.
수목들이 길을 점령하여 길찾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20여분 숲을 헤치고 나가면....
['350m봉' 정상] 9:11
특징없는 "350m봉"을 지나고....
['374m봉'으로 가는 길]
금강송으로 보이는 소나무 숲을 10여분 지나 갑니다.
[갈림길-'374m봉' 정상]] 9:20
오르막을 잠시 오르면 "Y자" 갈림길이 나옵니다.
우측으로 올라 갑니다.
['374m봉'에서 바라보는 '장학산'] 9:24
"374m봉"에 오르면 앞에 벌목지대가 나타나며 시야가 트이고
"장학산"이 앞에 보입니다.
그리고 "장학산" 뒤로 "공주-예산-청양 갈림봉"인 "350m봉"도 보입니다.
이나저나 "장학산"까지 잡목 잡풀들로 덮여진 "길없는 길"을 헤쳐 나갈 일이 걱정입니다.
['장학산'으로 가는 "길없는 길"]
가시덤풀...잡목...
완전히 길을 점령한 잡목과 수풀이 앞을 가로 막습니다.
땅바닥을 스틱으로 이리저리 들춰가며 어렵싸리 잡목지대를 통과합니다.
한여름 정맥 지맥 산행은 이런게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 구간은 전초전에 지나지 않았고 앞으로 무수한 잡목지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학산' 정상 갈림길] 9:37
잡풀 속을 헤메이며 오르니 "장학산 갈림길"이 나옵니다.
"장학산" 정상은 좌측 10여m지점에 있으니 갔다가 다시 돌아 와야 합니다.
[장학산 정상] 9:38
"장학산 長鶴山 381m"
이런 봉우리에 오르면 언제나 허무 뿐...
[아침식사] 9:38~9:56
"장학산" 정상에서 유구터미날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와 바나나우유로
20여분간 아침식사를 하고
['장학산' 정상에서 가야 할길 조망] 9:56
"장학산" 정상에서 가야할 다음 봉우리를 바라봅니다.
조금 전 잡목지대보다는 덜하지만, 다시 길없는 길을 지나야 하는군요.
[잡목지대]
수풀과 잡목을 헤치며 8분 정도 오름짓을 합니다.
[갈림봉] 10:04
이름없는 봉우리에 오르면, 길은 좌측으로 나 있습니다.
[갈림봉에서 뒤돌아 본 '장학산'과 '374m봉']
이름없는 갈림봉에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 봅니다.
"374m봉"에서 "장학산"을 지나 여기까지 오는 잡목지대가 정말 무시무시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길에 있을지도 모르는 뱀이나 야생동물...또는 수렁이 있을수도 있고...
아무튼 무서웠는데 무사히 지났음을 감사히 여기며 다시 길을 떠납니다.
[산불지역]
산불이 났었던 지역을 통과하고...
[성황당고개] 10:14
"성황당고개"
'예산군 신양면 여래미리'와 '공주시 유구읍 노동리'를 이어주는 고개라는데
용도폐기된 고갯길이었습니다.
['350m봉'으로 가는 길]
"성황당고개"를 지나 오름짓을 10여분 합니다.
['350m봉' 정상] 10:23
"350m봉"-"공주-예산-청양 市郡界峰"
아무른 특징없는 봉우리입니다만,
행정구역상으로 이 봉우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주는 봉우리이더군요.
'공주시'와 '예산군', 그리고 '청양군'의 市郡界峰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좌측엔 '공주시"와 우측엔 '예산군'을 두고 경계선을 따라 왔는데
이제부턴 "좌측에 '공주시'를 두고 우측엔 '청양군'을 만나 경계선을 따라 갑니다.
그리고 이 경계선은 "칠갑지맥 분기점봉"인 "416m봉 헬기장"까지 이어 집니다.
그러니까 '예산군'과는 이제 이별입니다.
['350m봉'에서 뒤돌아 본 '장학산']
"350m봉"에서 뒤돌아 보니 "장학산"과 "374m봉"이 조망됩니다.
잡목구간을 뒤돌아 보니 다시는 오고싶은 마음이 없읍니다.
['350m봉'에서 뒤돌아 본 '차동고개']
북동쪽으로 방향을 돌리니, 오늘 산행을 시작했던 "차동고개"가 조망되고,
지난구간에 올랐던 "절대봉"도 보입니다.
['350m봉'에서 '국사봉'과 '칠갑지맥분기봉' 조망]
남쪽으로는 가야할 "국사봉"과 "칠갑지맥 분기점봉"이 빨리 오라고 합니다.
['천종산'으로 가는 길]
20여분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천종산'으로 갑니다.
['천종산' 갈림길] 10:44
가는 길에 갈림길이 있었습니다만, 이 갈림길이 "천종산"으로 가는 갈림길인 줄은
"야광고개"를 지날 때 였습니다.
선답자들의 표시도 없어 그냥 지나쳤는데...아쉽습니다.
그래서 자료사진으로 대체합니다.
[천종산 정상 모습] 자료사진
['야광고개'로 가는 길]
조그만 봉우리 두어개를 넘어 15분 정도 갑니다.
['서반봉' 조망]
가는 길의 좌측에 벌목지대가 나오면 "서반봉"이 조망되며,
"서반봉"정상부근 까지 벌목을 했습니다.
멀리 "국사봉"까지 보입니다.
['야광고개'로 가는 길]
볼거리 없는 이 숲속에선 이런 바위와 나무도 볼거리이니 얼마나 별볼일 없는 산길인지..
'금북정맥'이라는 의미가 없으면 아무도 오지 않을 것입니다.
[야광고개] 10:58
"야광고개"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 구분실마을'과 '청양군 운곡면 추광리 들광이마을'을 잇는 고갯길.
옛날에는 사람들의 통행이 많았던 고개라고 합니다만, 지금은 산객들 외에는 다니지 않는듯
[조망]
'청양군 운곡면 추광리' 방향 조망
['서반봉'으로 오르는 길]
17분 정도 오름짓을 합니다.
['서반봉' 정상] 11:15
"서반봉 392m"
저런 안내 표지판이라도 없으면 그냥 지나칠 봉우리였습니다.
['서반봉'에서 '415m봉'으로 가는 길]
"서반봉"을 지나면 정신 바짝차리고 가야합니다.
그래야 알바를 면할수 있습니다.
[임도] 11:19
"서반봉"에서 4분 정도 평온한 길을 가면 임도를 만납니다.
그리고 조그만 벌목지가 앞에 있는데, 정맥길은 좌측 능선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벌목지대를 대각선으로 지나 내려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좌측 능선길은 길도 나쁘고 길찾기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바위지대]
저는 좌측 능선길로 들어가 정맥길로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선답자들의 표지기도 없고, 길은 바위들로 통행에 불편이 많았습니다.
길의 흔적이 없는 곳에서 우측 아랫길로 내려 갔습니다.
여기서 우왕좌왕...
[바위지대 통과하여 뒤돌아 본 '임도'] 11:27
벌목지역으로 내려와 뒤돌아 보았습니다.
임도에서 직접 이곳으로 올껄....괜히 능선으로 들어가 고생했습니다.
[벌목지 마루금 입구]
벌목지에서 벤 나무들로 길을 막아놨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도 모르겠습니다.
숲속에 선답자의 표지기가 하나 삐쭉 보였을때의 안도감은 즐거움으로....
['415m봉'으로 가는 길]
숲속으로 들어가니 몇개의 리본들이 정상적인 길을 찾았다고 안심시킴니다.
[바위지대]
"415m봉"으로 올라 가는 길은 바위지대였습니다.
['국사봉' 조망]
남쪽에는 "국사봉"이 계속 포스트 역활을 해 줍니다.
['415m봉'으로 가는 길]
삐쭉 빼쭉 날카로운 모양을 한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 암릉구간을 지나 올라 갑니다.
['415m봉' 정상] 11:57
아무른 표시는 없고, 선답자들의 표지기만 여러개 메달려 있는 "415m봉"을 지납니다.
[자연조형물] 11:59
"415m봉"을 지나 100여m가니 고개를 숙이고 예절을 갖추고 지나라는 조형물 같은 나무가
길 가운데에 있습니다. 소나무와 함께 그럴듯하게 보입니다.
['사점미재'로 내려 가는 길]
자연조형물을 지나면 내리막이 시작됩니다.
[갈림길] 12:08
"415m봉"에서 10여분 내리막을 내려 가면 갈림길을 만나는데,
우측으로 내려 가는 길도 선명합니다만, 직진해서 내려 갑니다.
[임도] 12:09
갈림길을 지나면 바로 넓은 임도가 나타납니다.
건너편에 "국사봉"으로 오르는 길이 바로 연결됩니다.
앞으로 "국사봉"을 지나며 알아 볼 "삼광광업소"로 연결이 되는 임도였습니다.
[사점미재] 12:14
임도에서 조그만 둔덕을 하나 넘어 5분 정도 가면 "사점미재"가 나오는데
이 고개는 우측에 "사점미 마을"이 있어 붙여진 이름인듯합니다.
몇십년전까지만 해도 이 주변 金鑛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통행이 있었다는군요.
['국사봉'으로 오르는 길]
"사점미재"에서 30여분 오름짓을 합니다. 헥헥~~
[헬기장] 12:46
차돌로 받침대를 한 헬기장이 나옵니다.
"국사봉" 바로 앞에 있는 헬기장이었습니다.
'차돌'은 석영암의 일종으로 이산화규소로 이루어져있답니다.
무색투명하게 순수한 것을 수정이라고 하지요.
제가 왜 이 차돌을 별도로 촬영하여 올리는지 그 이유를 조금 후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바로 金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암석이기에....
[헬기장 풍향계]
차돌로 받침을 한 헬기장 위엔 몰골만 남은 풍향계가 쓸쓸히 서 있습니다.
바로 앞에 "국사봉" 정상이 있고....
['국사봉' 정상] 12:50~12:57
"국사봉 國師峰 489m"
일반적으로 "국사봉"은 "國思峰"으로 쓰여진 산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 산은 '한남정맥 1구간'에 있었던 "국사봉"과 같은 "國師峰"으로 쓴다고 합니다.
내려 오는 '청양군 신풍면'의 전설에 의하면,
"아주 옛날 왕궁 안에서 왕자를 가르치던 國師가 있었답니다.
그는 세 살 난 어린 왕자를 15세가 되도록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해 여름에 왕자에게 병이 나 해를 넘기지 못하고 숨졌답니다.
왕자가 죽자 국사는 왕궁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왕에게 하직을 고했답니다.
왕이 만류하였으나 뜻을 굽히지 않아 왕은 보답으로 국사에게 금 한 잎을 주었답니다.
국사는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다 지금의 '신풍면 조평리 국사봉' 자리에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는 봉오리 주변에 하사받은 금 한 잎을 묻었다고 합니다.
그리곤 국사는 봉우리 옆에 움막을 치고 은둔하며 살았다는군요.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와서 국사와 마주쳤답니다.
국사는 나무꾼에게,“내가 여기에서 산짐승과 벗을 하며 살아온 지가 30년이 넘었다.
임금에게서 받은 금을 이 산에 묻었는데 지금도 크고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국사는 이내 쓰러져 숨졌답니다.
이후로 사람들은 국사가 쓰러진 곳의 산봉우리를 "國師峰"이라고 불렀다고하며
나무꾼에 의해 國師峰에 금이 자란다는 말이 풍문으로 돌자 사람들이 금을 찾기 위해
국사봉 주위를 마구 파헤쳤지만 어느 누구도 금을 찾지 못하였답니다."
전설은 전설로 끝나지만, "國師峰"의 전설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우리나라 최대의
金鑛 중에 하나인 "삼광광업소"를 만들어 주며 전설은 현실로 나타납니다. 짠~~
['국사봉' 정상]
우리나라 남한의 삼대 金鑛이라면 "구봉광산", "무극광산", "삼광광업소"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모두 폐광이 되었지만.....
우리나라 남한의 3大 金鑛 중에 이곳 "國師峰"에 있었던 金鑛이 "삼광광업소"였고,
다음 구간에 갈 "九峰山"에는 "구봉광산"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金생산의 80%가 이곳에서 생산되었다고 하니, 우리가 핵교 때 교과서에도
나와 "구봉광산"과 "삼광광업소"를 공부 한적이 있는 것 기억하시나요?
그곳이 실제 어디인지도 모르고 기냥 외우기만 했던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놔두고
그 금광이 바로 이 '금북정맥'지역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산행을 하며 알게되었으니...ㅎ
金鑛이 형성되는 암석층은 조금 전 헬기장 받침돌이었던 차돌, 즉 석영암이 있는 곳에 90%
이상 형성되어 金脈을 이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선 차돌을 많이 볼수 있는 것이죠.
전설이 전설로 끝난 곳이 아니라 실제 우리나라 금 생산의 80%가 이 지역에서 생산되었고
두메산골이었던 "청양"은 金鑛 개발로 인구가 10만이 넘는 거대한 도시가 되었으며
막장 인생들에게 돈이 생기니 이 촌 구석에 화려한 유흥업소가 수를 헤아리기 어려웠답니다
캬바레만도 몇개가 있었다나 뭐래나...
['국사봉'정상에서 '십자가철탑'으로 가는 길] 12:57
"國師峰"정상에는 이정표가 하나 서 있습니다. 이번 구간에서 처음 만납니다.
이정표는 두 방향 모두 "수리치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거리 표시만 다를 뿐..
정맥길은 "수리치골 4.6km"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수리치골 4.5km"방향으로 가면 대형 알바입니다.
['십자가철탑봉' 갈림길] 1:05
"국사봉"에서 잠시 가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우측길은 "탑봉" 우횟길이며 길이 넓고 분명합니다만,
좌측 허럼한 길로 올라 가 "탑봉"을 보고 가야 후회가 없습니다.
['십자가철탑봉' 정상] 1:07
[정상표지판] [삼각점]
봉우리에 오르면 "십자가 철탑"과 삼각점, "탑봉 440m"라는 표지판이 있더군요.
[십자가 철탑]
"수리치골 聖地"
"수리치골"은 좌측 아래 "공주시 신풍면 봉갑리"에 있는 골짜기 이름입니다.
"수리취"는 "취나물"의 일종으로 뒷면이 흰 나물이랍니다. 나물로 무쳐 먹기보다는
주로 떡을 해 먹었다는 "수리취"가 이 골짜기에 많이 자생하여 "수리치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며, 특히 "천주교 성지"가 있어 천주교도들에겐 매우 유명한 곳이랍니다.
지난 1984년 5월 6일에 방한했던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명동성당에서 강론을 할때
다음과 같이 이곳 "수리치골 성지"를 언급하였답니다. 인용합니다.
“페레올 주교님이 1846년 무서운 박해 하에 '공주 수리치골'에서 이 나라와 교회를
'요셉' 성인과 공동 주보이신 성모께 조용히 봉헌하였다.”고 이곳을 언급했답니다.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이었던 '페레올 주교'는 김대건신부가 체포되어 사형 당하자 이곳으로
숨어 들어 암중모색하며 프랑스 본국에 이러한 조선의 상황을 보고한 곳이기도 하답니다.
그리하여 "수리치골"은 한국에 있는 모든 성모마리아의 단체들에게 하나의 聖地가 되며,
한국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인정된 "마리아 신심 단체"가 여기서 생겨났으며
성모 마리아 성심에 대한 신심도 이곳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박해받는 천주교도들의 "구원의 은신처" 였던 것이죠.
그래서 현재까지 고단한 중생들의 피난처인 "피정의 집"을 대규모로 운영하고 있답니다.
대부분의 천주교도들의 은신처가 '안성-천안-공주'등 '금북정맥' 산골짜기에 있어
이번에 '금북정맥'을 걸으며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래서 이 봉우리에 '십자가 철탑'이 세워져 있다는 것인데, 오래되어 볼품이 없군요.
[갈림봉] 1:10 ★길조심★
십자가철탑이 있는 봉우리에서 150m정도 가면 삼거리 갈림봉이 나타납니다.
봉우리에는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고사목인지 火死木인지 모를 나무가 한그루 있습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가야합니다. 상습 알바지역이라고 하니 관심을 가지고 가야겠죠.
[옛 '삼광광업소' 조망]
갈림길 봉우리에 올라서니 "청양군 운곡면 신대리"에 있는 "옛 '삼광광업소"의 흔적이
보입니다. 금광은 폐광되었지만 지금은 '활석'채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하네요.
옛 부귀영화를 뒤로하고 산골짜기에 초라하게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金鑛과 文學"에 대해 쬐끔 알아 보고 가겠습니다. 제가 아는거라곤 이런것이니..ㅎ
왜냐하면 우리나라 新文學이 태동하면서 金鑛과 관련되는 작품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봄 봄", "동백꽃"이라는 작품을 쓴 "김유정"작가를 기억하시나요?
우리나라 600여개의 기차역 중에 사람 이름을 딴 유일한 역이 춘천에 있는 "김유정역"이죠?
"김유정"작가는 저의 고교 선배님이기도 해서 그에 대해 쬐끔 알지요.
30여편의 그의 작품 중에 "금광과 관련된 작품"에 대해 아주 쬐끔만 알려 드리겠습니다.
[가야할 '금자봉' 조망]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운곡고개'와 "금자봉"을 넘어야 합니다.
오늘 따라 더욱 힘이 드는 이유를 찾아 보니 더운 장마철에 먼 길을 가야한다고
물을 5리터 정도 짊어지고, 먹거리도 평소보다 2배나 더 넣었으니 힘이 더 ...ㅎ
하지만 이런 산골 마루금에서 물이 떨어지거나 허기지면 ...상상 할수도 없습니다.
[이정표] 1:13
잡목들이 이정표까지 덮어버리며 기세를 떨칩니다.
앞으로의 '길 없는 길'의 험난함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급경사 내리막]
"수리치골"에서 "국사봉"까지의 등산로는 이정표를 비롯해 기반시설을 어느 정도
갖추었습니다. 급경사 내리막엔 로프도 설치하고.....
[굴]
지난 구간에서 부터 이러한 굴을 많이 만났지요?
이러한 굴들은 金鑛을 찾기 위한 탐사 작업으로 생겨난 것들이지요.
'김유정 선배' 이야기 계속합니다.
'김유정'선배는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연세대'에 입학한지 두달만에 짤립니다.
그 이유는 '휘문고보'에 다닐때 당시 '휘문'이 있었던 '계동 골목'에 있는 어느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는 어느 여자를 보고 한눈에 뿅~가서 어마어마하게 짝사랑을 합니다.
학교는 물론 전폐하고 완전 무단결석을 계속하니 '연세대'에서 제적 당한것입니다.
그 여자가 바로 연상의 여인인 당시 '명월관' 기생이자 판소리 명창이던 "박녹주"입니다.
이 사랑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ITX청춘열차'를 타고 김유정문학촌과 금병산을 가다]라는 산행기가 곧 올려 집니다)
학교도 짤리고 집안 가세도 기울여져 낙향하여 '금병의숙'이라는 야학을 춘천의 고향
'실레마을'에서 하다가 돈을 벌기 위해 조금 전에 보았던 "삼광광업소" 현장 감독으로
취업하여 청양땅에 내려 간 것이었습니다. 그때 나이 24세.........
명문학교 출신의 엘리트가 광산 광부로 내려 가니 '현장 감독'을 시켜 준것이었겠지요
이 광산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그가 작가로 화려하게 등단하게되는
시발점인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노다지"입니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금 따는 콩밭"과 "금"이라는 작품이 발표되는데...
'김유정선배'의 금과 관련된 작품은 이 세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수리치골 갈림길] 1:30
"수리치골 2.90km"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는 직진하여 갑니다.
['칠갑지맥분기봉'으로 가는 길]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엔 金鑛열풍이 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노다지"라는 단어가 최초로 생겨났다고 해서 제가 조사를 좀 해 봤습니다.
국어사전에는 [노다지]는 '목적하는 광물이 묻혀있는 광맥''필요한 물건이나 이익이
많이 나오는 곳, 또는 그 물건이나 이익'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흔히 일확천금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금이나 금맥이나 금광을 얻거나 찾았을 때
'노다지'라는 말을 써 왔습니다. 그런데 '손대지 마!'하는 '노 터치(No Touch)'의
영어발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은데....
'노다지'란 말이 탄생되는 최초의 현장에는 이 땅의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노다지'를 조사하면서 너무나 슬픈 약소국의 서러움과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노들의
또 다른 매국행위를 알게 되었습니다.
['칠갑지맥분기봉'-헬기장] 1:55
"국사봉"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1시간 가까이 걸으니
헬기장이 다시 나오는데, 이곳이 "칠갑지맥 분기점봉"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좌측엔 "공주시"를 두고, 우측엔 "청양군"과 함께 경계선 위를 왔는데
이제부터 정맥길은 완전히 "청양군" 속으로 관통을 하며 가게 됩답니다.
[칠갑지맥 분기점봉-헬기장]
"칠갑지맥"은 '금북정맥'의 이곳에서 분기하여 "칠갑산"으로 가는 산줄기 입니다.
아래 개념도 참고하세요
['칠갑지맥' 개념도]
['400m봉' 오르는 길]
북한까지 합쳐 조선 최대의 금광은 "평안도 운산광산"이었답니다.
이 "운산금광" 채굴권이 1895년 7월에 미국인 자본가 '모오스'에게 넘어갔는데
당시 외무대신 '이완용'과 '모오스'사이에 거저 팔아먹는 계약조건으로 넘겨졌답니다.
운산금광은 금이 엄청 쏟아져 나와 노다지 금광으로 유명했답니다.
많은 금이 쏟아져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운산 일대 주민들이 철조망 밖으로 몰려들자
미국인 광산 관리인들이 총을 쏘아 조선인 두 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도 발생했었답니다.
그리고 접근하지 말라고 철조망에 "No Touch"라는 팻말을 붙여 놓았다는데
조선 시골사람들이 영어를 모르니까 "노 터치"를 금이나 금맥 금광을 뜻하는 말인 줄 알고
"노다지"라고 쓰기 시작한것이 그때부터였다고 합니다.
이 슬픈 단어는 그 슬픈 어원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까지도 공용 한국어로 널리 쓰이며,
국어사전에 까지 오르는 순수 한국말이 되어버렸습니다.
['400m봉' 정상] 2:06
그 미국인 회사는 "운산금광"에서 1902년 한해에, 그때 돈으로 총 경비 60여만원을 들여
1백25만원 어치가 넘는 금을 파내 일본에 팔았답니다. 1897년부터 1915년 사이 운산금광의
금 생산액은 약 4천9백5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그 무렵 한강 다리 하나 놓는데 40만원 쯤
들었다고 하니 '노다지'가 일확천금을 벌 수 있는 금광이라는 말로 쓰였을 법하지요.
이 돈은 조선이 1910년 8월 일본에 강제합병 당할 때 일본에 진 빚 4천5백만원 보다도
많은 액수였다니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이 아닐수 있겠습니까. 흑흑
'이완용'등 매국노들이 눈앞 이익 챙기느라 바빠 노다지를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어처구니 없게 땅껍데기는 물론 땅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헐값에 팔아 먹었으니....
[점심식사] 2:10~2:45
호젓한 점심식사.....불쌍하다구요? ㅎㅎ
이런 재미로 다녀요....다녀 보지 않고는 이 멋과 맛을 모릅니다. ㅎ
그래도 "너나 다니세요~ 우리는 편히 산행기나 볼테니..."라고 한다구요? ㅋㅋ
['424.4m봉'으로 가는 길]
'김유정선배'의 秀作으로 꼽히는 "금 따는 콩밭"을 아직까지 읽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작품을 간단 명료하게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무지 친절하죠? ㅎ
내용은 간단하고 단편소설이니 몇장 되지도 않습니다. 시간 나시면 원문을 읽어 보시길.
등장인물: 3명. 영식이, 영식이 처, 수제
발단: 우직한 농부 영식이는 풍년이 들어서 곧 수확해야 될 자기 콩밭을 뒤엎고
금을 찾아 자기 땅을 파고 있습니다. 옆에선 수제도 도우고 있습니다.
전개: 영식이가 쉴 때 그는 어떻게 해서 이런 일까지 됐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수제는 며칠 동안 계속 영식이 보고 자기 밭엔 금이 있다고 합니다.
영식이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다가 며칠 후 수제가 술을 들고 와 함께 먹을 때
그는 그의 처와 수제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꿔 일확천금을 노리며, 애지중지
농사지은 목숨같은 콩밭을 뒤엎게 됩니다.
위기: 다음 날 영식의 처와 영식이는 함꼐 새벽에 조상께 절을 드리고 콩밭을 팝니다.
절정: 그 날 점심 영식의 처가 밥을 들고 왔을 때 영식이 보고 밭에 금이 나오겠냐고..
파보았자 흙만 나온다고 합니다.
(그 때 영식이는 화가 치밀어 올라 영식의 처와 싸움을 벌입니다.)
결말: 그 때 수제는 땅구덩이로 가 흙 한 줌을 들고 금을 찾았다고 합니다.(거짓으로)
그리고 흙에 있는 노란 것을 보여 주면서 이것이 금이라면서 조금만 더 파면
된다고 합니다. 영식이와 영식의 처는 좋아하고....
수제는 다음날 동네를 떠날 것이라고 결심합니다.
요즘과 비교하자면 "로또복권" 사재기 하는 것과 같은 맥락? ㅎ
여하튼 그 당시 작가들은 대부분 금광에 관한 소설을 최소한 한편 이상씩 썻답니다
'채만식'의 <금광시대>등 등.....
[산불 났었던 지역의 잡목지대 통과]
개념도 상에 '산불 난 지역'이라고 표기된 곳엔 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하게
잡목과 수풀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무서움에 떨며, 비싼 등산복 찢기우며, 얼굴 목은 글키며 통과합니다.
[묘지] 3:01
잡목지대를 통과하니 해묵은 무덤이 나오며.... 한숨 돌리고...
[소나무숲]
잠시 깨끗한 소나무 숲길을 편안하게 걷습니다.
[길없는 길-잡목지대]
편한 소나무 숲길은 잠시일뿐 다시 잡목지대로 들어 갑니다.
오르막까지 함께해 무척 힘들게 올랐습니다.
['424.4m봉' 정상] 3:16
잡목을 헤치고 간신히 오르니 "424.4m봉"이었습니다.
허무한 마음..........ㅎ
이러면서 왜 이 지랄을 하고 있는지....한심하죠?
다시는 가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하고 또 결심합니다. ㅎㅎ
['400m봉'으로 가는 가는길]
다소 편안한 완만한 길을 10여분 진행합니다.
['400m봉' 정상] 3:25
선답자들의 표지기들 외에는 볼거리가 없는 "400m봉"이 또 다시 허무를 안겨주고...
['운곡고개'로 내려 가는길]
15분 정도 내림질을 합니다.
[운곡고개] 3:40
"운곡고개"
우측에 '청양군 운곡면'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여겨집니다.
제법 고개 다운 고개였습니다.
['금자봉'으로 가는 길]
"금자봉"으로 가는데 체력은 떨어져 더욱 헥헥거리는데도
"금자씨"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습니다.
"금자씨"는 어디메뇨~~ 헥헥
['금자봉'으로 가는 길]
오늘도 단 한명의 산객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적막한 산속을 장마철에 걷고 또 걷습니다.
['금자봉' 갈림길] 4:09 ★길조심★
휴~~ 하마터면 큰일 날뻔 했습니다. 여름철엔 더욱 길찾기가 어렵습니다.
전문가라는 '파란문'도 아까 '천종산 갈림길'에서 '천종산'을 놓쳤는데
"금자봉"도 또 놓칠뻔 했습니다. 표지기도 보시는 바와 같이 우횟길에 있고....
장마철에 이 고생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금자봉"을 찍지 못하면 얼마나 아쉽겠습니까
['금자봉'으로 오르는 된비알]
잠시 이지만 아주 가파른 된비알을 치고 올라 갑니다
['금자봉' 정상] 4:12
"금자씨"는 아무른 치장, 화장도 하지 않고 먼길을 찾아온 산객을 맞이 합니다.
"뭐하러 왔니?"라고 쌀쌀맞게 맞이하는듯....ㅎ
'너나 즐기던 맘대로 하세요~" ㅋ
['금자봉' 정상] 4:12~4:26
"금자봉 370m"
이 산봉우리도 금광과 관계가 있는듯합니다.
그리고 "금자봉"의 정상은 이곳이 아니라 앞에 보이는 곳에 있다고 지도에 나와 있는데
지친 정맥꾼들을 위해 "준 희님"이 이곳에 정상 표시를 해 준듯 합니다. 항상 감사
그런데 "준 희"님이 요즘 건강이 안좋다고 하시는데...
얼릉 회복하시어 또 산속으로 돌아 다녀셔야죠~ 건강회복 하시길 기원합니다.
['금자봉' 하산]
휴식을 취하고 이제부턴 내림길을 갑니다.
전체적으로 내리막이라 편안할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묘지] 4:43
"금자봉"에서 15분 정도 완만한 내림길을 내려 가니 묘지를 하나 지나게 되고...
[숲]
숲을 3분 정도 지나 더 내려 갑니다.
['위라리 마을'] 4:46
숲을 빠져 나오니 시야가 확 트이면서
'청양군 대치면 위라리 마을'이 펼쳐집니다.
富村인듯 아주 깔끔한 농촌 마을로 보였습니다.
[밤나무 숲] 4:47
밤나무 숲을 지나고....
가야할 길을 미리 공부해 둡니다.
[잡목지대 통과]
지긋지긋한 잡목지대를 또 헤치며 갑니다.
[묘지] 4:53
잡목지대를 지나면 묘지가 또 나오며....
['위라리 마을' 갈림길] 5:03
임도 삼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우측으로 갑니다.
['위라리 마을']
참고로 좌측에는 '위라리 마을'이 바로 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여름철에 오실 분들은 여기서 마을로 내려가 도로를 따라
"분골도로-70번지방도"까지 가는게 신상에 좋을 것입니다. 추천
이제부터 잡목과 잡풀들로 정맥길은 완전히 개판이기 때문입니다.
[길 없는 길-잡목지대]
잡목 잡풀지대를 잠시 지나면...
[임도] 5:07
임도 사거리를 지나 직진해 나갑니다.
[잡풀지대-임도]
임도 인듯한데 잡풀들로 길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대충 감으로 진행합니다.
[임도]
제법 넓은 임도를 만나 잠시 진행하면....
[임도 사거리] 5:12
다시 임도사거리가 나오는데 직진합니다.
직진길에는 통나무로 길을 막아 놨지만 무시하고 진입합니다.
[송전탑-염소 우리] 5:14
어수선한 길을 따라 조금 나아가면 송전철탑이 앞에 버티고 서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는 염소 우리가 있는데 두마리가 꼬리를 치며 "음~메에에헤"하며 반깁니다.
얼마나 예쁜지~~
오늘 산행길에서 처음으로 살아있는 움직이는 생명체로부터 인사를 받았습니다.
[길 없는 길-잡목지대 통과]
송전탑을 지나면서 다시 길없는 길을 헤치고 갑니다.
이제는 신경질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려니....휴~~
[묘지에서 '분골도로' 조망] 5:19
잡목지대를 빠져 나오니 저~ 앞에 "분골도로" 삼거리가 보입니다.
저기까지 가야하는데 갈등이 생깁니다.
쉽게 도로를 따라 갈까...
['분골도로'로 가는 길]
수풀을 헤치고 10여분 진행하면....
[분골도로] 5:31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오는데 이곳이 "분골도로"라고 한답니다.
[분골도로] 5:31
다음 들머리는 좌측 건너편에 있는 전봇대 옆으로 나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삼거리는 '위라리 마을'에서 조망하며 "도로를 따라 내려 갈까?"라고
생각하며 바라 보던 곳입니다. 여름철엔 도로를 따라 이곳으로 오는 것도 한 방법.
[들머리]
아!~ 이제는 더 이상 들어가기 싫다!~~
무더운 날씨에 잡풀들은 마구 제멋대로 자라서 길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야지....
[첫번째 묘지] 5:35 ★길조심★
잡풀을 헤치고 잠시 들어 가니 다행히 묘지가 나옵니다.
묘지 앞으로 길이 나 있어 의심없이 직진했더니 알바의 시작이었습니다.
첫번째 묘지에서 우측으로 올라 가 묘지 상단의 숲 속으로 들어 가야 했던 것입니다.
[두번째 묘지로 가는 길]
비교적 길이 선명해 직진해 나갔더니...
[두번째 묘지] 5:37
두번째 묘지가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저기 둘러 보아도 길은 끊기고 갈곳이 없습니다.
다행히 잠시 알바...ㅎ
[산줄기는 끊기고...]
산줄기는 끊기고 갈길은 보이지 않아 되돌아 갑니다.
알바라는 걸 감지하고 다시 되돌아 가는 것이죠.
이럴 때엔 항상 리본이 있었던 곳까지 되돌아가 처음부터 찬찬히 살피며
전진하는 것이 최상책
[첫번째 묘지로 회귀-정맥길 입구] 5:42
첫번재 묘지로 되돌아 와 묘지 상단으로 가 봤더니 숲속에 리본 하나가 발견 됩니다.
길은 찾았습니다만, 다시 잡목으로 들어 갈수 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기분....
[악전고투]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정맥꾼들의 운명이 이런걸....
뭐가 튀어 나올까....솔찍히 무서웠습니다.
이제 글키고 찢어지는건 그러려니.....
['운곡면 효제리' 마을 조망] 5:49
잡목을 헤치고 둔덕으로 올라 가니 앞에 마을이 조망됩니다.
아마도 '청양군 운곡리 효제리'인듯....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벌목지대]
벌목지대가 나오는데, 벌목 경계선을 따라 올라 갑니다.
[금북정맥 마루금]
능선에 올라 서니 가야할 마루금이 전체적으로 조망됩니다.
오늘 앞에 보이는 [70번 지방도]를 지나 "문박산"을 넘어 "학당고개"까지
가려고 했습니다만,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청양"에서 "예산"으로 시외버스로 가서
다시 "예산"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야하는데, 열차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져
오늘은 [70번지방도]에서 산행을 종료해야 할듯합니다.
[갈림길] 5:56 ★길조심★
이 봉우리에 올라서면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넓은 임도를 따라 그냥 지나칠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른쪽 잡풀 속에 선답자의 노란 리본이 하나 보입니다. 보이시죠?
저 리본이 없었다면....길찾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항상 고맙게 여기며
[잡목지대]
[잡목지대 통과]
다시 지긋지긋한 잡목지대를 통과합니다.
[감나무-밭] 5:59
잡목지대를 통과하니 휴~ 감나무 밭이 나오고...
직진하니
[고추밭] 6:01
다시 고추밭이 나옵니다.
고추밭 사이를 지나 건너편 숲속으로 들어 갑니다.
고추밭에서 일하시던 노부부가 "혼자서 그러고 다녀유~~?"라고 물어 옵니다.
"예~ 이러구 댕깁니다~"라고 했더니
"이런 장마철에 뭔 재미래유~"라고 불쌍한듯 이야기 합니다.
"그러게유~'라며 웃으며 갈길 바쁜 산객은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후다닥 가버립니다
[잡풀지대]
고추밭을 통과한후 길을 완전히 점령한 풀밭에는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건너편 나무가지에 펄럭이는 표지기 하나를 보고 반갑게 뛰어 갑니다.
[묘지]
잡풀지대를 지나니 다시 묘지가 나오는데
여기선 좌측 묘지로 넘어 갑니다.
['70번 지방도'] 6:04
숲을 빠져 나오니 [70번지방도]가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70번 지방도'-운곡,예산 방향]
[70번지방도] 우측, 즉 북쪽으로는 "예산"으로 가는 길이고...
['70번 지방도'-청양 방향]
좌측, 즉 남쪽으로는 "청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재빨리 청양콜택시를 호출하고 다음구간 마루금을 예습합니다.
택시를 부를 때 [이곳의 위치]를 택시기사에게 설명을 해야하는데 암담했습니다.
그래서 '예산'방향으로 올라가 주유소 이름과 음식점 이름을 확인하고 알려주니
5분여만에 택시는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또 한참 걸어 올라 가 알아 낸 것입니다.
다음 분들을 위해 알려 드리죠. ㅎ 택시 기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면 됩니다.
[위치]는 '청양공설운동장' 지나 '예산' 가는 방향에 있는 위라리 "천지인가든"이고
옆에는 "SK주유소"가 있습니다.
청양 콜택시 전화번호는 "041-943-8100 입니다. 택시요금은 7,000원이었습니다.
[청양] 6:23
택시를 타고 5분여만에 '청양버스터미날'에 도착하여
6시 25분에 "예산"을 거쳐 "인천"으로 가는 직행버스에 간신히 몸을 실었습니다.
[청양→예산 시외버스 시간표] 17:20 18:25 18:55 19:50
[예산역] 7:02
"청양"에서 "예산 버스터미날"까지 약35분이 걸렸으며, 차비는 3,600원
그리고 '예산 버스터미날'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예산역"으로 5분여만에 갔습니다.
걸어 가면 15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택시요금은 기본요금인 2,500원.
"예산역"에서 7시 18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용산행"열차를 타고 꿈 속으로....
[예산→용산 열차시간표] 17:26 18:15 19:18 20:20 21:20 22:23
이제 점점 집에서 산행지는 멀어 집니다.
오늘은 전철-버스-택시를 이용해 10,500원을 들여 "차동고개"로 갔으며
올때는 택시-버스-열차-전철을 이용해 15,400원을 들여 왔습니다.
잡목과 잡풀 속을 헤메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먼길이라 체력 소모도 많았습니다.
10시간 10분이나 걸렸군요
에구~ 가을이 올때까진 長行은 하지 말아야지....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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