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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과 수목원이 있는』 광릉 국립수목원길 답사기 마명리입구-왕숙천생태습지공원-휘경원-봉선사-광릉-국립수목원 [지형도] [구글어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팔야리'에 있는 "마명리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하여 "휘경원-봉선사-광릉"을 답사하고, "국립수목원"을 둘러보는 코스를 갑니다. ['마명리입구' 버스정류장] 11:28

2019년 11월 1일 (금) 맑음 [잠실역7번출구] 버스정류장에서 [7007번 광역버스]를 타고 약1시간이 걸려 "마명리입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답사를 시작합니다. 이곳은 '남양주시 진접읍 팔야리'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마명리입구] 버스정류장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마명리]는 여기서 제법 떨어진 '포천시 소흘읍 마명리'로 "포천시"에 포함되는 지역이던데... 여하튼 여기서 뒤돌아 서면... ['광릉교' 방향] 다리가 하나 보이는데 다리 이름은 "광릉교"이며, 답사의 출발지가 되겠습니다. [광릉교] 앞으로 가면... ['광릉교'] 11:29 [광릉교]에는 "광릉숲 생물권보전지역 둘레길-제5코스 왕숙천물내음길" 이정표도 있습니다. 다리 밑으로 흐르고 있는 개천은 "학림천"이라고 하며 건너편은 '진접읍 부평리'라고 하니, '팔야리'와 경계가 [학림천]이 되겠습니다. 여기서 구글어스를 이용해 [휘경원-봉선사]로 가는 진행 할 코스를 예습하면... ['마명리입구'에서 '봉선사'까지 구글어스] "'마명리입구'에서 '봉선사'까지 제가 진행했던 구글어스 궤적입니다. 이해하기 쉽죠? ㅎ ['왕숙천' 방향] [광릉교] 앞에서 [학림천] 우측으로 난 "광릉숲 생물권보전지역 둘레길-제5코스 왕숙천물내음길"을 따라 진행하는데, 앞에 보이는 다리는 [47번국도]이고 그 뒤에 "왕숙천"이 있습니다. ['왕숙천 생태 이야기' 안내판] [학림천]과 [엄현천], 그리고 [봉선사천]이 "왕숙천"에 합류하는 四물길 합수지에 도착하는데 [왕숙천]에 대한 안내판이 있습니다. 천인공노 할 자식 새끼 "태종 이방원"이를 둔 아버지 "태조 이성계"는 고향인 [함흥]으로 가 은거했죠. 형제들을 죽이며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이는 아버지를 한양으로 다시 모셔와야 체통이 섯겠지요. 그래서 여러명의 '차사'를 함흥으로 보냈지만 모두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돌아 오지 못해 [함흥차사]라는 말이 '가면 못 오는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로 이해되기도 했으니 아버지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듯 했답니다. 마지막으로 "태조 이성계"의 왕사이자 요즘말로 멘토였던 [무학대사]가 '함흥'으로 가 '이성계'를 설득 하여 마지못해 '한양'으로 돌아 오지만, 자식새끼 꼴을 보기 싫어 '한양'으로 돌아 오다가 이곳에서 8일간이나 죽치며 갈지 말지 어찌할지 고민했답니다. 그리하여 탄생된 지명이 '이성계가 8일간이나 머물렀다'고 "팔야리 八夜里"가 되고, 앞 개천은 "왕이 '팔야리'에서 숙박하던 곳 앞 개천"이라고 "왕숙천 王宿川"이 되었답니다. [사거리] 11:33 네개의 하천이 합수하는 합수부를 지나면 군부대 앞 사거리를 만납니다. 직진하면 군부대여서 갈수 없고 우측엔 [크낙새축구장]이라는 운동장이 있더군요. 이정표가 안내하는데로 좌회전 하면... ['생태습지공원'] "생태습지공원"이 있으며 안내도도 있습니다. 여기서 [휘경원]으로 직접 연결되는 길이 있는지 두리번 거리다가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이곳에 있는 안내도를 보면... [현위치] 11:35 "광릉숲 생물권보전지역 둘레길"은 총8개코스로 조성되 있는데 오늘 우리는 "제7코스 산림욕길"을 걷게 되더군요. ['생태습지공원'] "생태습지공원"을 통과하면... ['광릉숲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안내도] 11:40 "광릉숲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안내도와 둘레길 안내도가 있습니다. 직진하면... ['광릉수목원로'] 자동차 도로를 만나 진행하는데 이 도로의 이름은 [광릉수목원길]이더군요. 13분여 도로를 진행하면... ['휘경원' 입구] [휘경원]으로 갈수 있는 지름길을 만납니다. ['휘경원' 가는 길] 11:53 [제7코스 산림욕길] 이정표도 [봉선사천]을 건너 간다고 알려 줍니다. 앞에 있는 개천의 이름이 "봉선사천 奉先寺川"이었습니다. 물은 무척 깨끗했습니다. 물고기들이 노닐고... 개천 건너 건너편 "약초가든" 앞으로 가면... ['약초가든' 앞] "약초가든" 앞 마당을 지나 골목 우측으로 진행해야 [휘경원]으로 갈수 있습니다. [제7코스 산림욕길]은 그냥 직진하지만... ['휘경원' 가는 길] 비포장도로를 5분여 진행하면... ['휘경원' 정문] 12:01 "휘경원 徽慶園" 정문에 도착하는데 아직도 출입금지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예산이 없어 관리 하기가 어려워 [휘경원]을 일반인들에게 개방 못하고 있는지가 오래 되었답니다. [정조대왕]은 여성편력이 거의 없는 걸로 알려졌지만 그도 한명의 정비와 네명의 후궁을 두었었죠. 정비인 "효의왕후"와는 세손 때인 9살에 혼례를 올렸는데 14년 동안이나 아이를 낳지 못했답니다. 왕자를 생산해야만 하는 왕비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엄청난 스트레스로 상상 임신까지 했다고 알려져 있죠. 비운의 왕비 "효의왕후"는 [정조]와 가례를 올리려고 할때 홍역을 앓아 곰보가 된 여인이죠. 홍역 때문에 가례를 1년이나 연기하기도 했지만 곰보가 된 아내를 [정조]는 따뜻하게 배려했다는거 아시나요. [정조]보다 훨신 더 오래살고 [정조]의 릉인 화성 [건릉]에 합장되어 남편 곁에서 지금까지 잠들고 있죠. [효의왕후]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정치적 책략으로 후궁을 들이라는 상소들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정조]는 어쩔수 없이 당시 최고 정치세력인 "홍국영"의 딸을 후궁으로 들이는데 그녀가 "원빈 홍씨"입니다만 애석하게도 그녀는 1년도 않되 죽어버리고... 다시 정치적으로 "윤창윤"의 딸 "화빈 윤씨"를 후궁으로 들이는데...[정조]는 정치적 가례를 몹시 싫어했죠. "화빈 윤씨" 거소에 드나 들다가 "화빈 윤씨"를 시중드는 무술이와 눈이 마주쳐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녀가 바로 "창녕 성씨"로서 [정조]가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으로 알려 져 있죠. 진정 사랑해서 얻은 여인으로부터 "문효세자"를 얻는데, 불행이도 5살에 죽어버리고 그녀도 죽어버렸죠. 당파싸움이 치열했던 당시 였으니 세자와 그의 어머니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답니다. [영조] 때부터 완전 금기시되던 무술이와 무술이가 낳은 세자의 배척이 정적들로부터 거세었던 때이니.. [정조]까지 암살 당할뻔 하는 사건이 있었으니 독살설을 충분히 추리 할수 있지요. ['휘경원'] 여자 福도 지지리도 없는 [정조]는 다시 마지막 후궁을 들이는데 그녀가 바로 이곳에서 잠자고 있는 "수빈 박씨"이며, 그녀는 아들을 낳는데 그 아들이 바로 "23대 순조"가 되니 "수빈 박씨"는 대왕대비가 되었습니다. 정식 왕비가 아닌 후궁은 아들이 왕위에 올랐다 하더라도 "릉"이라는 묘호를 쓰지 못하죠. 그래서 "휘경원 徽慶園"으로 명명된 "23대 순조의 어머니 묘"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정조대왕]의 마지막 아내였습니다. ['봉선사 음식문화거리'] [휘경원]을 뒤로 하고 다시 [광릉수목원길]로 나가면 [봉선사] 일주문 앞에 있는 [봉선사 음식문화거리]가 보입니다. [봉선사천]을 건너 가면... ['봉선사' 앞 버스정류장] 12:12 ['봉선사' 입구] "봉선사 奉先寺"입구로 들어 갑니다. '서울 삼성동'의 "봉은사"와 함께 "교종갑찰 敎宗甲刹"로 특별 지정된 사찰이죠. 또한 "세조의 릉"인 "광릉"의 원찰이 되는 유서 깊은 절.. ['봉선사 일주문'] 12:14 "봉선사 일주문"에는 다른 여느 절에선 보기 어려운 한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봉선사] 중창의 대명사라고 할수 있는 "운허스님"이 [팔만대장경]을 누구나 읽을수 있도록 한글로 번역하는 일을 최초로 했기에 [봉산사]의 모든 현판까지도 한글로 표기했답니다. 대중들에게 더 쉽게 불교가 다가 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겠죠. [운허스님]은 '동국대'에 '팔만대장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역경원"을 설립하고 정부로부터 당시 돈으로 1천3백만원을 지원받아, 당시 석학들을 불러 모아 역경사업을 했답니다. '양주동박사' '서정주 교수' '조지훈 교수'..등등 ['운허스님 추모비'] 12:17 [봉선사]로 들어 가는 길 가에는 "운허당대종사추모비"와 부도탑이 있습니다. "운허 耘虛 (속세명 이학수) 1892~1980" 일제강점기시절 대단한 독립운동가였고, 불경의 한글화 사업을 강력 추진한 역경가였으며 민족 교육을 실천한 교육자였습니다. '동국대학교'의 실제 설립자이죠. '동국대'의 전신인 [명진학교]를 설립하셨으니... 평생을 "조국의 독립. 후학을 위한 교육. 불경의 역경. 자신의 수행"을 위해 살다 가셨죠. ['춘원 이광수 기념비'] [운허스님 추모비] 옆에는 "춘원 이광수 추모비"가 있습니다. "춘원 이광수"는 월북인지 납북인지 하여 시체가 없어 여기엔 묘를 쓸수 없으니 추모비만 있는것이죠. 그의 부인이며 산부인과 의사였던 "허영숙씨"가 북으로 가버려 만날수 없는 남편을 추모하며 추모비를 세웠는데, 추모비를 세우는 날 그녀도 세상을 떠났답니다. [운허스님]과 [춘원 이광수]는 6촌 형제지간인데 동갑이랍니다. (8촌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재종'였다니 6촌간이 맞는다고 생각됩니다.) [춘원 이광수]는 일본이 패망 하기 전에 이미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신변의 위험까지 느낄 정도여서 아내 "허영숙"이 '남양주 사릉' 근처에 마련해준 시골에 숨어 살다가 [운허스님]의 배려로 [봉선사]로 옮겨 은거했답니다. 그러다 해방후 월북인지 납북인지 우리 나라에서 사라졌습니다. 모든 인간들에겐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춘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지요. 하지만 그의 친일 반민족행위는 아직도 역사의 아픔으로 남아 있고.... "춘원"은 원래 독립운동가였죠. 만주로 가서 '독립신문' 사장도 하다가 서울로 돌아와 변절했습니다. '조선민족 개조론'이라는 논문도 발표하고, '황국신민찬양'과 '200만명 징용 종용 추진' 등등등 일본 어용문학인들로 구성된 협회의 회장으로 활약했지요. ['승과원'] 12:19 철의 여인 "문정왕후"는 '숭유억불정책'에서 불교장려정책을 펴며 불교를 다시 조선의 국교로 만들려했죠. 그때 國僧들을 승려들 중에서 과거시험으로 뽑았는데, 과거 시험을 보던 장소가 '서울 삼성동'의 "봉은사"와 이곳 "봉선사"였답니다. '서산대사' '사명대사'도 이 과거시험 보러 다녔다는데 여기가 그 과거시험장인 "승과평 僧科坪"이었다고 하니 대단한 절인거죠. [경내 이곳저곳] 12:21~12:37 "조선 7대왕 세조"와 그의 부인 "정희왕후"의 무덤이 이 절 건너편에 있는 "광릉 光陵"이죠 "봉선사 奉先寺"는 그 이름이 뜻하는 것과 같이 '선왕의 영을 받들어 모신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세조"의 영령을 받드는 원찰이 되는 절이 되겠습니다. 이 절에서 꽁짜로 점심을 얻어 먹고...ㅎ 12시에서 12시30분 사이에만 무료급식. 비빔밥인데 그냥 밥이라 할 정도로 부실하니 모처럼 여행가서 먹을 만한 식사는 못되더군요. ['다경향실'] 12:40~1:20 <춘원 이광수>의 자전 에세이집 <돌베게>에서 인용합니다. "내가 봉선사를 숨을 곳으로 정한 까닭은 광동학교의 교장으로 있는 내 재종 "운허당 이 학수"를 의지함이었다. 아이들 작문이나 꼬나주고 영어마디나 가르쳐 주면 밥은 멱여 준다는 것이었다. "운허당"은 나를 위하여서 방 하나를 수리하여 주었다. 벽을 떨고 남향 창을 내어서 볕이 잘 들었고 벽장과 선반을 만들어서 선비의 한 살림을 할 만한 깨끗한 서재가 되었다. 문미에는 "茶經香" 이라는 추사체로 쓴 누구인지의 액을 붙였으니. 이것은 내 방의 내용을 고대로 표현한 것이었다. 나는 향을 피우고 경을 읽고 차를 다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 <춘원 이광수>가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찍혀 숨어 살때 "운허스님"이 마련해준 거처가 이곳 [봉선사]의 "茶經香" 이었으니 그 때의 그 상황이 아련히 떠 오릅니다. 현재 사진에 보이는 "다경향실"이라는 이 카페는 <춘원>이 실제 머물던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느낌으로 이곳에서 함께한 친우들과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며 "문학과 인생" "춘원과 스캔들"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줄 모르고 조잘댓습니다. ㅎ 특히 그 당시 "춘원"과 염문을 뿌렸던 新女性들 얘기..ㅎㅎ ['큰법당'] "봉선사 奉先寺"의 "大雄展"은 한글로 "큰법당"이라고 현판을 달아 놨습니다. ['봉선사' 입구] 1:30 "봉선사 奉先寺"에서 점심도 꽁짜로 얻어 먹고, "다경향실"에서 아메리카노 커피도 마시며 1시간 20여분간 머무르다가 山門을 나섭니다. ['광릉숲길' 입구] "봉선사 奉先寺" 일주문을 나서면 좌측에 "광릉숲길"이 산뜻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광릉수목원"까지는 이 "광릉숲길"을 이용합니다. 숲길로 들어 가기 전에 먼저 좌측에 있는 "경희대 복지대학원"을 잠깐 들려 봅니다. ['경희대 복지대학원'] "경희대 복지대학원"이 "봉선사"에 붙어 있는데, [운허스님]이 이곳에 [광동학교]를 세울려고 했다네요. [광동고등학교]는 현재 여기서 가까운 '진접읍 장현리'에 있더군요. "춘원"이 영어선생을 하고 교가도 작사해 주었답니다. ['광릉숲길'] 1:37~2:10 깊어 가는 가을 속으로 "광릉숲길"을 거닐었습니다. [운허스님]의 유명한 글이 이 숲길 속에 아롱지고.... -얼마나 닦아야 거울 마음 닮을까- 얼마나 울어야 마음이 희어지고, 얼마나 울어야 가슴이 열릴까 얼마나 사무쳐야 하늘이 열리고, 얼마나 미워해야 사랑이 싹트나 얼마나 속아야 행복하다고 하고, 얼마나 버려야 자유스러울까 얼마나 태워야 오만이 없어지고, 얼마나 썩어야 종자로 열릴까 얼마나 닦아야 거울마음 닮을까, 얼마나 닦아야 거울 마음 닮을까 ['광릉' 입구] 2:11~3:00 [봉선사]에서 데크 숲길을 30여분 거닐면 "광릉 입구"를 만납니다. 입구 주차장으로 들어 가면... ['광릉역사문화관'] [광릉역사문화관]이 있어 들어가 [세조]의 흔적을 돌아 보고 ['광릉' 가는 길] ['홍살문'] [광릉]으로 올라 갑니다. [세조]의 무덤 때문에 이 근처 산림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생물권 보전지역"이 되었으니 광릉숲의 아름다움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세조릉'] "조선 제7대왕 세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한 잔인무도한 왕이라고들 알고 있는 [세조]의 무덤입니다. 그런 얘기는 다 아는 것이니 접어 두고... [세조] 이전까지의 왕들이 개인적으로는 "불교"에 의지하더라도 표면적으로는 '불교 억압 정책'을 펼쳤던 것과는 완전 다르게 [세조]는 "불교"를 엄청나게 믿으며 '불교 장려 정책'을 폈죠. 왜냐하면 [세조]는 유교 윤리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왕위에 올라서 자신을 공격하는 명분과 수단이 된 "유교" 대신 "불교"를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자 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조카와 형제 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자신의 악행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 버리고 위안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정희왕후릉'] "정희왕후 貞熹王后 " [계유정란]의 최고 공훈자가 누구인지 아시나요? 의견이 다를수 있으나 저는 "정희왕후"라고 생각합니다. [계유정란]이 실패로 돌아 갈 때에 [수양대군]에게 갑옷을 입혀 란을 밀어부친 여인이니까요. 결국 [계유정란]은 성공하고 이어서 살생부....왕비까지 오르죠. 그리고 조선왕조 최초로 수렴청정을 한 여인이 바로 "정희왕후"이죠. 아들 "예종"과 손자 "성종"의 등 뒤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대왕대비였으니까요. 불교를 엄청 신망한 "파평 윤씨" 왕비의 대표주자이며 이어서 [문정왕후]로 이어졌습니다. ['정자각'에서 조망] [광릉]을 둘러 보고 '정자각'에서 들어 왔던 길로 나갑니다. [市界] 3:00 [광릉]은 '포천시'와 '남양주시'의 市界였습니다. 그러니까 [광릉]까지는 '남양주시'이고, [광릉 국립수목원]은 '포천시'였습니다. 이제까진 '수목원'도 '남양주시'인줄 알았는데...ㅎ ['광릉'에서 '수목원'까지 구글어스] [광릉]에서 [수목원]까지 제가 직접 걸은 구글어스입니다. [포토존] 가을을 만끽하며... ['국립수목원' 정문] 3:05~4:50 저는 [광릉수목원]인줄 알았는데, 정식 명칭이 "국립수목원"이더군요. [수목원 안내도]를 클릭하면 확대 됩니다. [조형물] 정문으로 들어 가면 [어린이 정원]에 조형물이 내방객을 맞이하고 [수목원길] 수목원길을 거닐면... ['열대식물원'] 먼저 [열대식물원]을 만나는데, 식물에 대해 뭘 쬐끔이라도 알아야 구경이 되는데 식물에 대해 워낙 아는게 없어 봐도 뭐가 뭔지 모릅니다. ㅎㅎ 그래서 온상들은 패스하고 [수목원둘레길] 걷는게 일이니 오늘도 수목원의 둘레길을 걷습니다. ㅎ ['백두산호랑이 사육장'] '백두산 호랑이'를 사육하던 곳이라던데 호랑이는 간데 없고... [쉼터1] [쉼터2] [둘레길] 수목원 산림욕길을 30여분 산책하면... [쉼터 '내려놓음'] ['육림호'] [육림호]라는 숩지공원을 만나고 ['은행나무'] 1970년 4월 5일에 '박정희 전대통령'이 최초로 외부 기념조림행사를 한곳이람니다. 그때에 심었던 은행나무가 이렇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온다고 이 곳에 별장도 만들고...박전대통령이 그 때 한번 쉬어 갔다는데... 권위주위 시대의 잔해물인 그 별장은 없애버리고 이렇게 수목원으로... ['수목원' 앞 버스정류장] 4:50 약 1시간 45분간 수목원을 둘러보고 나와 '의정부'로 가는 [21번시내버스]를 타고 [의정부 부대찌개]로 가서 뒷풀이를 하고 귀가했습니다.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약14km였으며, 먹고 마시고 놀며 5시간 2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깊어 가는 가을에 추천 하고 싶은 아름다고 멋진 길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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