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미군기지의 변모
국립중앙박물관-용산가족공원-미군장교숙소
2026년 9월 15일 (화)
1. 용산 미군장교 숙소

[경의중앙선 서빙고역에서 바라보는 묭산미군장교숙소5단지]
오늘 탐방은 <경의중앙선 서빙고역>에서 출발하여 <미군장교숙소5단지>를 둘러 보고
이어서 <용산가족공원>을 통과하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간다.

[용산미군장교숙소5단지 정문]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접근이 불가능했던 치외법권지역인 미군기지였는데
평택에 어마무시한 세계최대 미군기지를 지어주고 반환받은 곳이다.
그래도 막상 들어 가려니 무서워 정문 경비한테 들어 가도 되느냐고 물어 보니
다행이 친절하게 들어 가서 마음껏 관람하라고 한다.
입장료 없고 누구나 들어 갈수 있다.

정문을 통과하면 먼저 <안내라운지>로 들어 간다.
<안내라운지>에는 <장교숙소5단지>에 대한 안내도와 간단한 안내가 있다.

[용산미군기지 전체 안내도 속 "장교숙소" 위치]
용산미군기지 내에서 <장교숙소5단지>의 위치를 알려 준다.
전체 미군기지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경의중안선 서빙고역 1번출입구> 앞이다.


[장교숙소 안내도]
<미군장교숙소5단지>를 관람 하려면 먼저 이 안내도를 숙지하고 들어 가야
어디가 어딘지 알수 있으니 유념해야 한다.
왜냐하면 안내를 해주는 안내원이나 안내표지판이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 주차장]
<안내라운지>를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 가면 제일먼저 주차장을 만난다.
그런데 이 주차장은 오로지 장애인 만을 위한 주차장이어서 일반인 차량은 주차 할수 없다.
관람을 위해선 오로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한다.

[야외갤러리]
장애인 주차장을 지나면 옛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 야외갤러리가 있다.
옛 사진들을 잠시 감상하며 옛날을 회고하고 간다.

[옛 용산역]
<용산역>과 <미군기지>는 서로 붙어 있었단다.
<미군기지> 이전엔 <일본군기지>였기에 <용산역>은 쪽바리 냄새가 물씬물씬 풍긴다.





<당인리발전소> 아시나요? 지금은 <서울LNG화력발전소>라고 하지만...
<당나라> 시대부터 중국놈들이 많이 거주하던 곳이라 <당인리 唐人里>가 되었다는데
이 일대 지역은 옛부터 외국놈들의 거주지였단다.
구한말 쪽바리들의 대륙 침공 전초기지화 되었던 <용산>
그래서 <청일전쟁><러일전쟁>까지 승리로 이끈 전초기지가 <용산기지>였던 것이다.
세계2차대전에서 일본이 미국에 패하자 <일본용산기지>는 <미군기지>로 탈바꿈하고...




숙박시설과 부속시설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타운을 이루고 있다.
사람은 단 한명도 살지 않고...

자료실과 영상 안내실이 있어 들어 가 봤다.

폐허가 된 시설이 뭔 <기념물>인지 별도로 남겨져 있고...
뒤에는 <파크골프장>이 있다.

카페도 운영하는데 손님은 거의 없었다.

어린이들의 단체 관람이 많았는데 놀이터가 있어서인듯....
<장교숙소>를 나와 서쪽으로 몇백m 진행하면....
2. 용산가족공원

"용산가족공원" 입구를 만난다.
안내도를 클릭하여 크게 확대해서 보고 들어 간다.

"용산가족공원" 입구로 들어 가면 먼저 주차장이 있고 뒤로 공원이 시작된다.

연못이 먼저 반기고...

[장미정원]
철 지난 "장미정원"으로 들어 가면....

조각품이 하나 반기고...

아직도 장미는 끈질긴 생명력을 뽐내고...

<용산가족공원>은 미군 골프장이었다.
군기지 안에 골프장이 있을 정도이니 <미군사령부>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수 있다.

"어린이 놀이터"도 있고...

어린이들의 소풍지

어린이 놀이터에서 서쪽으로 <국립중앙박물관> 가는 길이 안내된다.
조금 올라 가면...

[미르폭포]
"용산 龍山"이 "용"으로부터 지명이 유래된다고 "龍"의 순우리말인 "미르"를 사용하여
"미르폭포"라는 조그만 폭포를 만들어 놨다.

<미르폭포>를 지나면 탑들이 즐비한 곳을 만나는데
"국립한글박물관" 앞마당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언젠가 불이 났나 보다.
그래서 2028년 하반기까지 시설복구와 증축을 위해 공사한다고 휴관하고 있었다.
3.국립중앙박물관

[거울못]
<국립한글박물관>을 지나면 "국립중앙박물관" 앞에 있는 호수같은 연못을 만나는데
거울같다고 이름하여 "거울 못"이란다.

[국립중앙박물관 중앙 전시실]
몇번 관람한적있기에 오늘은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는 "추사 김정희 특별전"과
요즘 핫하게 뜨고 있는 "사유의 방"을 중점적으로 관람하고 가련다.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듯한 "국중박" 전시실 앞


"국중박" 입장료는 무료이다.
주말엔 관람객이 너무 많아 입장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단다.
왜냐하면 소지품 검사를 하기 때문인데
"가방"을 가져 가면 검사를 해야 하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오래 줄을 서야 한단다
앞으로 가실 분들은 "가방"은 집에 두고 가시면 간단하게 입장 할수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휴대폰, 카메라는 소지해도 관계없이 무사 통과 할수 있다.

1층엔 고대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역사유물들이 전시되 있다.
나는 몇번 관람 하고 포스팅 한바 있어 오늘은 포스팅을 생략하고 ...

해섷사들이 해설도 해 주니 시간 맞춰 해설을 듣는 것도 유익하다.

내용과 의미를 모르고 박물관을 관람하는 일은 노동이라 할 정도로 사실 피곤하다.
그런 와중에 박물관 정중앙에 쉬어 갈수 있는 기념품 판매점이 있다.
소위 "뮷즈"라고 하는 "박물관 기념품"을 판매하는데 입장료 없는 "국중박"의 경비로 쓴단다.

"경천사 십층석탑" 국보
박물관 1층에서 압도적 위상을 차지하는 석탑이 바로 대리석으로 만든 이 탑이다.
1348년(고려 충목왕 4년) 건립된 대리석탑으로 '경기도 개풍군 경천사터'에 있었단다.
1907년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미쓰아키[田中光顯]'가 해체하여 불법반출했으나
1918년 반환되어 경복궁에 보관되었단다. 1960년 복원 후 경복궁에 세워졌다가
1995년 해체되어 정밀 보존 처리 작업을 진행했으며,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실내 전시 되었단다.
이 탑은 고려가 <원나라> 지배하에 있었을 때 <원 황제>와 <고려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만든 것이란게 좀 그렇다...

2층에 올라가 내려다 본 <경천사십층탑>이다.
대리석에 조각한 섬세한 문양은 과히 천하명품임을 확인 시켜준다.
4, 추사 김정희 특별전

오늘 국중박 방문 주목적은 바로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반자"라는 특별전이다.

<추사 김정희>와 주고 받은 글들이 전시되 있다.
내용을 모르면 이런 특별전은 오리무중을 걷는 것과 같다.


[추사가 제자 유치전에게 쓴 글]
큰 글씨
(우) 無雙彩筆珊瑚架. 무쌍채필산호가. (둘도 없는 붓이 걸린 산호 필가)
(좌) 第一名花翡翠甁. 제일명화비취병. (제일가는 꽃이 피는 비취 화병)
말년의 김정희는 불교에 깊게 귀의해 봉은사(奉恩寺)에 머물렀고, 이곳에서 걸작을 많이 남겼다.
이 행서 대련은 북청 유배 시절의 제자 요선(堯仙) 유치전(兪致佺)을 위해 어느 절에서 쓴 것이다.
붓과 산호 붓걸이, 꽃과 비취색 꽃병과 같은 귀한 기물 관련 문구를 행서로 썼다.
말년 아픈 상황이었음에도 글씨가 힘차고 자유롭다.
필획의 굵기 차이가 크고 조화로운 말년 추사체의 특징이 잘 살아 있다.
생애 마지막을 자유롭고 화려하게 수놓은 걸작이다.
작은 글씨
외진 절에서 바라보는 산 풍경이 매우 기이하여 마치
미우인(米友仁)의 <청효도,淸曉圖>를 보는 듯하다.
정신은 왕성해지고 기운이 상쾌하게 트여 마치 신령한 도움을 받고 있는 기분이다.
이러한 기운이 붓을 쥔 손목의 놀림에 발현되니 요선(堯仙)을 위해 글씨를 쓴다.

<추사가 청나라 화가 주학련에게 써준 글씨>
"古木曾嶸雅去後(고목증영아거후)
가파르게 우뚝 솟은 고목위 까마귀 날자
夕陽迢遞客來初(석양초체객래초)
아득한 석양빛 안고 비로소 손님이 찾아오네"
두 점의 글만 감상해도 본전 뽑을 <추사 김정희 특별전>이라 생각된다.
5. 사유의 방

<사유의 방> 입구로 들어 서면 먼저 어두침침한 조명과 함께 장엄한 분위기를 느낀다.
먼저 "사유 思惟"의 의미부터 알아 보자
"생각 할 사思, 생각 할 유惟"로 '생각 하고, 또 생각한다'라는 의미인데
여기선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짐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유의 방"
무지 큰 "국중박"의 전시실의 2층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중박"의 대표 전시실이란다.
어쩐지 세상만사와 자신을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듯 엄숙해진다.

더널븐 전시실에 두기의 "반가사유상 半跏思惟像"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는 사용치 않는 말이라 불교의 불상 이름 중 하나라고 생가하기 쉬운데
불교는 맞지만 그런 불상 이름에서 나온 명칭은 전혀 아니다.
"사유 思惟"의 의미는 위에서 언급했고,
그 보다 먼저 "반가 半跏"의 의미를 알아야 이 유물의 명칭을 쉽게 이해 할수 있겠다.
"반 半"에 "책상다리 가跏"인데 "가跏"를 파자해 보면 "跏 = 다리 足 + 더할 가加"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려 놓은 像"을 의미하는데
더 쉽게 말하자면 "다리를 반쯤 꼬고 책상다리로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像"이라는 의미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비슷한 의미인데 "반가사유상"은 "다리를 반쯤 꼬고 앉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정확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반가사유상 半跏思惟像 국보 제78호"
요즘은 <국보 제 몇호>라고 국보의 호수를 적시 않는다. 국보는 모두 국보이기 때문이란다.
필자가 특별히 <국보 제78호>라고 표기 한것은 '구 표기 제78호 국보'이기도 하지만
비숫하게 생긴 <반가사유상> 두점이 함께 있어 구별하기 위해 표기 했다.
아래에 있는 <구 표기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과 구분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엔 믾은 <반가사유상>들이 남아 있지만
<78호>와 <83호>가 '금동 金銅'으로 만들고 아름다운 예술성이 특별해서란다.
아래 사진의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이 <국보 제78호>보다 더 명품이라고
전문가들이 더욱 극찬한다.

"반가사유상 半跏思惟像 국보 제83호"
"석가여래의 미소인가~ 모나리자의 미소인가~"
세상만사를 초월한 천상의 미소인가~
삼국시대 쯤에 제작된 사유상이라는 정도로 알려져 있을 뿐 '신라'인지 '백제'인지
또 어디에 있던 것인지도 아직 확실히 모른단다.
학자들의 설에 따르면 <78호>는 신라, <83호>는 백제에서 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단다.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일본>의 <국보제1호>가 뭔지 아시나요?
놀랍게도 다음 사진의 <반가사유상>이다.

"일본 국보 제1호 목제미륵반가사유상"
윗 사진의 우리나라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과 비교해 보시라 ~
<일본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절인 <광륭사>에 있는 <일본 국보 제1호 반가사유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재질이 "金銅"인데, 일본은 "나무"로 만들었다.
"나무"에 조각하는 것보다 "金銅"으로 주조하는 것이 몇백배 더 어렵다. 그 옛날엔 더욱 더...
일본 사유상도 우리나라 <백제시대>에 만들어 진 것으로 보고 있다는데,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 백제와 관계가 아주 밀접해서 유명한 "칠지도"등이
우리나라에서 전래 된 것으로 보아, 이 <반가사유상>도 우리나라 백제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무지 많단다. 일본 학자들까지도...
그런게 "일본 국보 제1호"라니...놀랍죠?

1912년 일제강점기시절 일본인 골동품상이 구입해서
당시 우리나라 총독이던 <데라우치>에게 상납했는데, 일말의 양심이 있었는지 <데라우치>는
<조선총독부박물관(현 국중박)>에 기증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단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간다면 <국중박>의 시그니쳐인 "반가사유상"은 꼭 관람해야 하겠다.

2층에 있는 <반가사유상>을 관람하고 나가 내려 가면....

"국중박 상품관"
엄청난 매출을 올린다는 "국중박 굿츠샾"이다.
에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헌터스" 영향도 크게 받아 굿츠샾은 인산인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어린이박물관> 앞에 있는 후드코트에서 돈까스 하나 먹고...
가격은 12,500원...얼마 전까지만 해도 10,000원 하더니 그새 올랐다.

전시실을 나와 윗층 테라스로 꼭 올라 가 보아야 한다.
통로에 있는 전광판 앞에 서면 자기의 모습이 자동 인식되어 합성된 화면에 나타난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올라 가면...

테라스에 올라 가면 <옛 미군기지>와 <남산>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용산미군기지와 남산" 사진을 클릭하면 큰 롸면으로 볼수 있다.
좌측에 <윤석렬 정권의 대통령실(현 국방부)>가 조망되며 미군기지와 <남산>
그리고 <북한산>까지 훤히 보인다.
요즘 이곳에 공공임대주택을 짓느니 마느니 말이 많죠?
여기 몇만가구 짓는다 해도 또 '롯또' 당첨같은 일부에게만 혜택이 돌아 가는건 아닌지...
그래도 청년들의 주거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니 짓긴 지어야 할텐데....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선셍이 그린
"옥후북조도 屋後北眺圖" <강세황>의 집에서 뒤 북쪽을 바라보며 그린 그림이라는데
이곳 "국중박"터가 <강세황의 집터>라는 것을 알수 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화면으로 볼수 있음)

"반가사유상"과 "추사 김정희 특별전"을 관람하기 위해 오랜만에 다시 찾은 "국중박"을 나서서

"국중박" 정문에 붙어있는 <경의중앙선 이촌역 4번출입구>에서 전철을 타고 귀가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조심스럽다
- 파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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