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독재정권의 국가폭력의 상징
남영동 대공분실
그 아픔의 기억
민주화운동기념관

<남영동 대공분실 위치도>
<경부선>이 지나는 <지하철1호선 남영역>에 붙어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행정구역상 실제는 <용산구 갈원동>이다.
그런데도 <남영동 대공분실>이라고 하는 것은 <남영역>에 붙어 있기 때문에
편의상 그렇게 칭한 것으로 보인다.

2026년 10월 6일 (화)
<남영동 대공분실>로 가려면 <지하철1호선 남영역 1번 출입구>로 나가는게 가장 가깝고
또는 <지하철4호선 숙대입구역 7번 출입구>에서 약450m 정도 걸으면 된다.
나는 <숙대입구역 7번 출구>에서 <남영삼거리>를 경유해 접근한다.

앞에 보이는 철교에 있는 역은 <지하철1호선 남영역1번출입구>가 있는 곳이다.
<남영역>에서 엄청 가깝다는 것을 알수 있다.
좌측 골목으로 방향을 바꾸면...

<롯데캐슬헤리티지아파트>가 가까이 보이는데 저 아파트 바로 뒤에 <대공분실>이 있다.
이 골목에 있는
<롯데캐슬헤리티지아파트>는 <롯데그룹>의 최초 탄생지로 <신격호회장>이 <롯데제과>를
설립한 곳이란다.

추억의 껌 "롯데 후레시민트껌" "롯데 스피아민트껌"...을 기억하시나요?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 주고 싶어요~ ♬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가수 윤형주>가 작곡해서 더욱 유명한 그 CM송이 기억 납니다.
껌, 과자 장사로 떼돈을 벌어 재벌이 된 "롯데그룹"인데 요즘 좀 시원찮다죠? ㅎ
<롯데제과 구 사옥 터>를 지나면....

"남영동 대공분실"의 정문
지금은 리모델링을 하여 산뜻한 정문이지만 옛날엔 무시무시한 철문인 '죽음의 문'이었단다.
이곳을 관람하기 위해선 좌측으로 조금 더 올라가 "민주화운동기념관" 정문으로 가야한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을 먼저 관람하고 잠시후 <대공분실>을 해설사와 함께 관람 할 예정이다.
좌측으로 50m 정도 가면...

"민주화운동기념관" 정문
<남영동 대공분실>은 두곳으로 분리되 있는데 민주화운동 기념관을 "M1"이라 하고,
대공분실 건물을 "M2"라고 한다.
"M1"은 언제나 관람 할수 있고, "M2"는 예약하여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관람 할수 있다.
모두 무료다.
예약 방법은 다음 클릭하여 들어 가 예약하면 된다.
https://www.kdemo.or.kr/exhibit/visitReservation.do

[안내데스크]
예약한 시간 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하여 안내데스크에 <2시 예약>이라고 하니
목에 거는 패용증을 준다.
그리고 먼저 <민주화운동기념관>을 자유롭게 관람하고 <2시>까지 돌아 오라고 한다.

[1층 민주화의 어제와 오늘]
1층에는 우리나라 민주화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자료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연대순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데,
4·19 혁명, 유신 반대 시위, 부마항쟁, 1987년 6월 항쟁 등 주요 사건들을 다룬다.
시국선언문, 체포영장, 시위현장 사진, 당시 참여자 육성 기록, 인터뷰 영상도 소개한다.

[지하1층으로 내려 가는 통로]
"기억의 통로"라고 한다.

[지하1층 입구]

"한국민주화"를 위해 시간순으로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민주화운동 전시실"
지하1층과 지하2층은 가운데가 터여 있어 어두운 그림자가 싹 걷히는 듯하다.

이곳에선 특별공연도 정기적으로 한단다.

정치 경제 노동 등등 ...민주화운동의 역사기록이 다양하게 전시되고 있다.


여러 자료를 읽으며 쉴수 있는 공간도 있다.


'민주화운동기념관" 지하층에서 지상으로 올라 가면...

"테니스코트와 민주화운동기념관"이 펼쳐지는데
이 테니스코트가 역사적 아이로니를 말해 주는 곳이라고...
왜냐하면 옛 남영동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피곤해진 경찰들이 체력회복을 위해서라는데
잠시후 <대공분실>에 올라 가 다시 언급한다.
테니스코트 우측으로 올라 가면....

"치유의 길"이라는 통로가 있는데

<남영역>이 바로 붙어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치유의 길"에서 내려자 본 테니스코트와 정문, 안내데스크 방향이다.
여기서 "M1 민주화운동기념관"을 자유 관람하고 안내데스크로 돌아 간다.
지금부터 해설사와 함께 "M2 남영동대공분실"을 관람한다.

[남영동 대공분실]
<박정희정권>의 <유신시대> 내무부 장관이던 <김치열>이가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인 <김수근>에 의뢰해 설계하고 건축한 건물이란다.
이런 <대공분실>은 전국에 44개소가 있었다는데 대표적인 곳이 이곳이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대공분실>은 이곳 외에
<홍제동 대공분실 (현 경찰청 세검정로 별관)>, <옥인동 대공분실 (현 서울경찰청 자하문로 별관)>
<장안동 대공분실 (현 서울경찰청 풍속범죄수사팀)>이 있단다.
이뿐만이 아니다.
더 악날한 곳은 <국정원 대공분실>, <방첩사 대공수사대>도 있다.
<국정원>이 만들어 낸 간첩조작사건 중에 대표적인 게 박통시절 <동백림간첩사건>이죠.

[옛 남영동대공분실]
<남영동대공분실>은 <부속동><AMD동><분실동>등 세개의 시설로 이루어져 있단다.
좌측 <부속동>은 보일러시설, 전기시설, 직원식당으로 사용되었고
가운데 2층 건물은 <AMD동>으로 '통신암호 분석'을 주 업무로 하며 사진실등이 있었단다.
우측 7층짜리 건물이 <분실동>으로 간첩 시국사범등을 심문하는 조사실이 있었던 곳이란다.
**<분실동> 뒤에 있는 4층짜리 건물이 <롯데제과 최초 사옥>이었단다.

{남영동 대공분실]
특히 5층의 창문을 주의 깊게 봐야한다.
왜냐하면 저곳이 조사실로 각종 고문이 이루어지던 곳으로 피의자들의 탈출이나
투신을 막기 위해 창문의 폭이 30cm로 만들어 졌단다.
보기만 해도 기이하고 무시무시하죠?
<김근태> <박종철>등 시국사범들을 비롯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반국가세력으로 조작된 곳이란다.

해설사와 함께 "M2 대공분실"을 관람한다.
관람의 시작은 옛 정문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지금은 맑끔하게 단장된 어느 회사의 정문 같지만
옛날엔 어마무시한 육중한 철문으로 닫혀있었는데....
실제 이곳은 "부국해양연구소"라는 위장 간판을 달고 운영했단다.
정문으로 들어 가 우측을 보면...

[옛 정문 철문]
이 철문이 정문을 막고 있었는데, 피의자들이 잡혀오면 이 철문이 열릴때
탱크 지나 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고 한다.
눈이 가려지고 묶여져 잡혀온 피해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언하는 것은
"어딘지는 알수 없었지만 탱크 지나 가는 소리가 났다"라고 증언한다.
바로 이 철문이 열리는 소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안내판의 버튼을 누르면 그 때의 그 탱크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나도록
"철문소리" 써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잡혀온 피해자들은 건물 현관으로 들어 가지 않고 건물 뒤로 끌려 가는데...

건물 뒤에는 피해자들이 조사실로 올라 가는 별도의 출입구가 있다.
묘하게 설계되었다.

건물 뒤 출입구 위 건물의 뒷모습인데 30cm 넓이의 창문이 어쩐지 무시무시하다.

뒷문 출입구로 들어 가면 5층 조사실로 올라 가는 엘리베이트와 철계단이 있는데
피의자들은 모두 이 철계단으로 걸어 올라 갔었단다.
뱅글뱅글 돌아 올라 가기에 방향성을 잃게하고, 몇층으로 가는 지를 모르게 하기 위해서란다.
오늘 해설사와 함께하기 위해 온 관람객은 2명 뿐이었지만
해설사는 친절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2층부터 관람 하였지만, 2층은 모니터링실,통신실, 휴게실등과 직원 사무실로
사용되어 별다른 특징이 없는 곳이어서 포스팅을 생략하고
3층으로 올라 간다.


<자료전시실>
3층은 <남영동대공분실>에서 위계가 가장 높은 대공분실 책임자의 업무공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자료 전시실로 탈바꿈 했단다.
수많은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자료가 디지털화 해 있는데
특히 '어부'들이 간첩으로 많이 조작되었단다.
어로활동을 하다가 일시적으로 북쪽 지역을 침범 할수도 있었던 것을
그걸 꼬투리로 고문하여 간첩으로 조작하여 반공 이데올로기로 할용하며 정치적으로 국민을
겁주며 정권연장 수단으로 사용 했던 것이란다.
또한 "독재타도"와 "민주화"를 외치는 애국시민들을 용공분자로 조작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3층 특수조사실"
"칠성판"이 있는 조사실로 사회적으로 직위가 높은 중요인사들을 조사하던 조사실이란다.
<칠성판>은 '시체를 안치하는 관의 바닦판'인데
이 <칠성판>에 묶어 고문을 가하며 진술을 조작했단다.
그리고 벽엔 특수유리와 카메라가 부착되 있어 외부에서 조사 현장을 고위 간부가 직관했단다
영화에서 많이 봤죠? 영화 장면이 진짜 현실이었던 것을 확인한다.

<칠성판>에 묶어 놓고 이런 몽둥이와 야구배트로 두둘겨 패며 물을 뿌리고 전기고문을 했단다.
천인공노할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이만 기억한다.
이런 고문을 하도록 지시하고 부축인 고위급...중정부장, 내무장관, 대통령까지 간다고 봐야죠?

<특수조사실> 옆에는 제법 너른 욕실과 화장실이 별도로 붙어 있어
고문으로 기진맥진한 피해자들을 정신차리게 하고 다시 고문을 했다고...

3층에는 <대공분실 반장실>이 있는데 고문하다 지친 반장과 요원들이 들어와 쉬며
창밖에 펼쳐지는 테니스코트장을 바라보며 체력을 회복하는 곳이라니 치가 떨린다
또한 <분실동>과 옆 건물인 <AMD동>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가 있는 곳이기도 하단다.

<반장실>에서 바라 보는 테니스코트.
지금은 사방에 마천루들이 솟아 있지만 옛날엔 낮은 건물과 우측 <경부선 철도>가 펼쳐지고
<지하철1호선 남영역>이 이 아지트를 단순한 건물로 숨겨주고 있었단다.

4층에는 현재 민주인사들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데
벽에 귀를 대면 당시 고문 받는 소리가 들린디.

4층엔 별도로 "박종철 기념관"이 설치되 있다.
당시 같이 데모를 하던 주동자 선배의 행방을 대라고 고문을 했지만
"나는 모른다"고 했다는이유로 욕조에 머리를 집어 넣어며 물고문을 하던 중
욕조 턱에 목이 눌려 죽은 <서울대생 박종철>군....

[박종철군 사망 진단서]
당시 <중앙대 법의학 교수>였던 "오연상 의사"가 쓴 <사망진단서>인데
<사망진단서>를 지우고 <시체검안서>라고 표기하였다.
왜일까?
<대공분실>에서 고문 하던 중 <박종철>은 이미 죽었는데,
요원들이 <대공분실>이 아니라 병원에서 죽은 것으로 꾸미기 위해 당시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의
응급실로 화급히 이송했는데 <오연상 의사>가 이미 죽은 시체를 응급실에서 받을수 없다고 하며
<시체검안서>로 고쳐 발급했고, 또한 이런 사실을 민주화단체들에게 알렸다.
죽게 된 원인은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
세상은 뒤집어 지며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을 타도하자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죠.
이 나쁜놈들은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했죠?
*참고로 <오연상의사>는 '동작구 흑석동'에서 "오연상내과"를 현재도 운영하고 있다. 69세

"이부영의 옥중서신"
<박종철 사건>이 터지자 당시 시국사범으로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부영>씨가
<박종철 사건>으로 잡혀 들어 온 경찰관들로 부터 자신들은 진범이 아니라는 호소를 듣고
사건이 은폐조작 되었다는 사실을 편지로 내보냈고
이를 기초로 <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신부>에 의해 이 사건이 은폐조작되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폭로하게 되었다.
독재정권이 총칼이나 고문으로 국민을 아무리 억눌러도 민주화의 열망은 총칼을 뛰어 넘는다.

"5층 조사실"
지금은 형광등이 켜져 밝지만
예전엔 저 끝에 있는 창문에서만 햇빛이 들어 오는 어두침침한 곳이었단다.
먼저 저 끝에 있는 창문으로 가 보면...

<남영역>이 바로 아래에 붙어 있다.
그래서 이곳에 잡혀왔던 피해자들은 조사실에서 "기차소리"를 들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한다.
어딘지 모르지만 "기차소리"는 들렸다고 하는 말에서 무한한 공포와 아픔을 느낀다.



[조사실]
조사실은 방마다 색깔이 달랐단다.
안내문을 참고하고...

[마이크 방]
조사실 천장에는 "ITV카메라"와 "마이크"가 설치되 있다.
또한 방문에는 안에서 밖을 볼수는 없지만, 밖에서는 안을 볼수 있는 구멍이 있다.

"김근태 선생 조사실"
<515호실>은 다른 조사실보다 넓이가 두배 이상되는 너른 방이다.
이방에서 전기고문등 악날한 고문이 진행되었기에 방이 너른 것이라고...
<김근태선생>은 이 방에서 당한 끔찍한 고문을 세상에 폭로했고,
나중에 국회의원도 되죠. .하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박종철 조사실"



당시 <서울대 인문대학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군"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시위에 참여 했다는 이유로
피의자도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끌려와 "주동자가 어디 있는지 말해라"라고 다그치며
고문을 했지만 "나는 모른다"라고 말 한게 전부인 "박종철군"인데....
진짜로 몰라서 모른다고 했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이런 고문에 "알면 불지 않을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도 같은 생각이죠?

<남영동 대공분실>을 나서며 착잡한 마음을 가눌길 없었다.
설립 목적이야 남파공작원과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취조하여 가려내는 것이지만
국가보안법을 전가의 보도로 휘두른 군사독재 시절에는 헌법상 보장된 먹고 살기 위한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을 하거나, 정권 입장에서 마음에 안드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고문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던 악명 높은 장소로,
검거된 사람들은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차단된 밀실에서 엄청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지금은 그 시절보다는 좋아졌지만 아직도 그런 잔재가 남아 있지는 않은지.....

[남영동 대공분실 4-5층 설계도면]

[건축가 김수근]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건축가는 유명한 "김수근씨"다.
우리나라 제1세대 건축가다.
경기고를 거쳐 1950년 서울대 건축과에 입학했는데 그해 바로 <6,25전쟁>이 터지며
통역병으로 징집되어 군복무를 하게 되는데, 휴가를 얻어 부산에 갔다가 누나의 도움으로
탈영하고, 밀항하여 일본으로 도피했다.
일본에서 <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학원을 다니며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건축설계" 공모에 당선되며 귀국했다.
탈영병이 어찌하여 무사 귀국하게 됬는지 오리무중이지만
당시 우리나라엔 '건축학개론서' 한권도 없던 시절이라 <김수근>은 건축계의 샛별이어서
귀국 후 바로 젊은 나이에 <홍익대><건국대><국민대>등의 교수로 재직하며
<5.16군사정권>의 개발계획의 설계에 앞장선다.
<여의도개발계획 설계> 그래서 <여의도>에 <5.16광장>이 설계되고 실제 만들어 졌었다.
특히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깊은 관계를 맺어 4대의혹사건 중에 하나인 <워커힐>을 설계하고
<경부고속도로 기본계획><김포공항 종합개발계획><종로3가 개발계획-세운상가>
<장충동>에 있는 <타워호텔과 자유총연맹>을 설계하고,
<잠실 88올림픽스타디움>까지 수많은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현대 건축의 선구자라고 아니 말할수 없다.
그러나
그는 나라가 <6.25 전쟁>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탈영하여 일본으로 밀항하여 도피하고
귀국 후에는 군사독재정권과 밀착하여 군사독재정권의 이념과 사상을 구현하는데 앞장섰다.
더더욱 위에서 본 <남영동 대공분실>을 철저한 고문 취조실로 세밀하게 설계하여 의도적이던
비의도적이던 그는 인권유린의 앞잡이가 되었으며,
<치안본부 본관><중앙정보부 본관>등을 설계하기도 했다.
그래서
"천재가 악마를 만들었다"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평한다.
우리나라 제1세대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를 간직한 <남영동대공분실>을 설계한 <김수근>인데
천재는 단명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아쉽게도 그는 55세에 저 세상으로 갔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조심스럽다
- 파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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