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의 王都
조선왕조의 産室
전주 원도심 여행 <2부>
태조로-전동성당-경기전-학인당-청연루-한국무형유산원-한벽당-
이목대-오목대-한옥마을-승광재-최명희문학관-동학혁명기념관-동부시장

[태조로] 12:26
<1부>에 이어 계속해서 <전주여행>을 진행한다.
<풍남문> 동쪽으로 <태조로>가 이어지는데, <전주여행>의 핵심지로 가는 것이다.

[전동성당] 사적 제288호

<전동성당>은 건너편에 <조선왕조>를 탄생시킨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는
"경기전"이 있어, 이 동내의 이름이 "전동 殿洞"이 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성당'은 이름을 지을 때 그 지역 이름을 붙인다.
예를 들면 <명동성당><경동성당><전동성당> 등....
<전동성당>도 다른 성당들처럼 '결혼식장'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여기서 결혼하려면 조건도 까다롭고 엄청 기다려야하니 미리미리 예약해야 한다고 한다.

[프랑스 보두네 신부]
<전동성당>의 초대 주임신부였으며 이 성당의 터를 마련한 신부로서
한국명은 "윤사물"이란다.

[우리나라 최초 순교 장면]
1791년(정조15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순교 하는 장면을 형상화 해 놨다.
종교는 자기 종교를 믿다가 사형 당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가 보다.
종교는 그 목적이 영원히 살기 위해 믿는 것인데도....
자기 목숨까지 바쳐 믿을 만 한게 종교인가
사형 당하는 사람은 "윤지충"이라는 신도와 "권상연"이라는 신도란다.
"윤지충"씨는 우리가 잘 아는 "고산 윤선도"의 후손으로 서양종교에 빠져들어
자기 조상에 대한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단지를 불태우는 등 논란을 일으켜 체포되어 사형 당한것이다.
이 사건을 이렇게 형상화하여 전시 하는게 적절한 것인지...
이 사람들 처럼 되라고?

<전동성당> 건너편에 바로 "경기전"이 있다.

['경기전' 정문] 12:35
<하마비>부터 규모가 남다른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사당"이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국보 제317호이며 어진을 봉안한 정전은 보물제1578호이다.

[홍살문]
정문을 통과해 들어 가면 "경기전"으로 들어 가는 홍살문이 이어지고

"경기전 慶基殿"
"경사스러움(慶)이 터잡은(基) 곳"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곳이라고 이름도 거창한 "경기전慶基殿"이다
현재 개보수공사 중이라 들어 가 볼수 없었다.



<경기전> 우측엔 "예종태실"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예종 태실> 북쪽으로 조금 진행하면...

[실록각]
"조선왕조실록 전주 사고史庫"
<조선왕조실록>은 처음엔 <창덕궁 춘추관> <충주사고> <성주사고> <전주사고> 4곳에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 때에 다른 곳의 사고는 소실되고,
유일하게 남은 <전주 사고>에 보관되었던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이 터지자
<경기전 참봉 오희길>등 100여명이 "내장산"으로 옮기고,
이어서 "묘향산사고"로 옮기고, 다시 "강화도 마니산 사고"로 옮겼다가,
또 다시 "강화도 전등사 사고"로 옮기며 살아 남았다.
일제강점기시절 서울로 옮겨져 현재는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 관리되고 있다.
전세계에서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기록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죠?

<경기전> 뒤엔 "조경묘"와 "어진박물관"이 있다.
<경기전>은 예상외로 넓다.


[조경묘]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 李翰"의 위폐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 李翰"은 713년에 태어나 754년 죽은 <신라시대> 인물이다.
<신라 제46대 문성왕> 때에 '사공 司空'이라는 벼슬에 올라 활동 했단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이 분의 21대 후손이 된다.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이안사 李安社>는 <시조 이한>의 18세손으로
<고려시대>까지 대를 이으며 이 근처 마을에서 살다가 <강원도 삼척>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태조실록>에 따르면 원래 <이안사>는 20대초반까지 본관인 <전주>에서 살았다.
이 지역의 한기생을 좋아했는데 하루는 그 고을 별감이 그 기생을 취했다.
그래서 화가 난 <이안사>는 별감에게 따졌고 싸움까지 일어 났는데,
문제는 이 별감이 고을현감과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현감은 이 문제를 도지사급이었던 안렴사에게 알리는 바람에 <이안사>는 투옥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당시는 몽골과의 혹독한 전란기였고, 호족들은 재산과 인명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가병을 거느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가병들이 버티고 있어 안렴사는 직접 체포하지 못해
조정에 구원병을 요청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이안사>는 조정에서 움직이기 전에
집을 정리하고 가솔과 가병, 재산과 자신을 따르는 백성170여호를이끌고 <강원삼척>으로 떠났다.
백성 170호가 기꺼이 그를 따라 나섰다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리더십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게 삼척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에 싸웠던 그 별감이
삼척의 안렴사로 임명되어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결국 어쩔수 없이 <이안사>는 그를 따른 170여호를 데리고 다시 북쪽으로 더 이동하게 되었다
이번에 정착한 곳은 지금의 '함경남도 원산'에 해당되는 "동북면 의주"였다.
고려조정에서는 원래부터 어느정도 상당한 기반이 있었던 <이안사>를 "의주 병마사"에
임명하고, 몽골군대와 싸울 것을 명했다
이렇게 해서 <이안사>는 <원산>등 함경북도 지방에서 '다루가치'라는 벼슬를 얻고 대를 이어 나갔는데
<이안사>는 <이행리>를 낳고 <이행리>는 <이춘>을, <이춘>은 <이자춘>으로 이어지는데
<이자춘>이 <태조 이성계>를 낳으며 '다루가치'라는 벼슬을 세습했단다.
당시는 몽골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몽골의 벼슬 중에 하나가 '다루가치'였다.
그래서 "종묘 영녕전"에 "이안사→목조대왕", "이행리→익조대왕", "이춘→도조대왕",
"이자춘→환조대왕"으로 모시고 제례를 올리고 있다.



<어진박물관>에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볼수 있었다.

<어진박물관>엔 다른 왕들의 어진도 봉안하고 있었다.
원본은 아니었다.

영상으로 안내해 주는 영상실에서 설명을 보고 듣고...


부속 건물이 본 건물보다 훨신 더 많다.
"조선왕조의 뿌리"가 있는 곳이라고 예상보다 큰 규모의 "경기전"이었다.

<경기전>을 둘러 보고 나가 우측 앞에 보이는 <전주비빔밥집>으로 가서

<전주>에 와서 "전주비빔밥"을 안먹고 갈순 없죠? 12:58~1:20
13,000원 하던데....서울이랑 큰 차이는 없는듯...

<한옥마을>의 남쪽 한옥 거리로 가면...


너무 많은 유명 한옥들이 줄을 서 있어 1:24
그 중 대표 한옥인 "학인당"을 포스팅한다.
해방 후에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국가 요인들이 묵어 간 곳이라는군요.
<학인당>에서 <전주천>으로 나가면....

"남천교"와 "청연루"를 만난다. 1:30


"청연루 晴煙樓"
'갤 청晴' '연기 연煙' '다락 루樓'
<전주천>의 맑고 푸른 물에서 피어 오르는 물안개가 부서지며 사라지는 곳이라고 하면 될까?
우리나라 최초의 다리 위 누각이란다.

"청연루"에서 바라보는 <한옥마을>과 <오목대>

"청연루에서 바라보는 승암산"
<후백제>의 王都인 <전주>에 <후백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여러곳 있지만
그 대표적인 곳인 <승암산>의 <동고산성>과 "견훤왕궁"이란다.
<견훤>은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사방에 산성을 쌓았는데 <동고산성><남고산성>등 이란다.
올라 가 보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ㅠㅠ

"청연루" 옆에는 비석이 하나 있는데
"청연루"와 "남천교"에 대한 중수 기록이 적혀 있는 "기적비 紀蹟碑"였다.
홍수 등으로 수난을 많이 겪었더군요.

<청연루>에서 <오목교>로 가며 뒤돌아 본 <남천교>와 <청연루>다.
<경주>의 <월정교>가 생각난다.

"오목교 梧木橋"를 지나면.... 1:39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무형유산원"이 상당한 규모로 건립되 있다.
판소리등 무형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 전승하는 기관이라고...

<국립무형유산원>을 지나면 <전주천>이 휘돌아 나가는 곳에 "한벽교"가 있고 1:44
"전주8경"중에 하나라는 "한벽당"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벽당 寒碧堂" 전경인데 콘크리트 다리가 운치를 망가뜨린다.
"한벽당" 뒤에는 <옛 잔라선> 철길이 있다.

일명 "한벽굴 寒碧窟"이라고 불린다는 "옛 전라선"이 지나던 터널이란다. 1:47

터널은 '바람통'이었다. 엄청 시원하게 바람이 통과해서 좋았다.
"한벽당"은 터널 바로 앞에서 우회전 하면 된다.

[전주천 생태문화 안내도]
"한벽당"에 대한 안내문이 있다.

<한벽굴>을 나와 "한벽당"으로 가는 길

"한벽당"을 올려다 보고...

"한벽당" 입구에는 '기적비'가 있고... 1:50~2:00

"한벽당 寒碧堂"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최담"이 별장으로 지은 건물이라 한다.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단다.

"한벽당 寒碧堂"은
누각 아래로 사시사철 흐르는 <전주천>의 맑은 물이
바위에 부딪쳐 흰 옥처럼 하얗게 흐트지며
물이 시리도록 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정면에는 <남고산>이 솟아 있는데 <남고산성>이 있단다.
<동고산성>과 함께 "견훤"의 후백제 도성인 <전주>를 지키는 성 중에 하나라고....
<전주천>은 <만경강>으로 흘러가 "새만금"으로 간다.

"기린대로"
<전주 원도심>을 관통하는 도로가 <기린대로>란다.
<기린대로>를 따라 북쪽 도심으로 잠시 진행하면....

"자만벽화마을" 입구를 만나는데 벽화마을로 유명하단다. 2:06
그런데 "자만동"에서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이안사>가 살았던 마을이란다.

이어서 "이목대" 입구를 만나는데, 바로 우측이 "이목대"고 2:09
화살표 방향으로 앞에 보이는 구름다리를 건너 "오목대"로 간다.

"이목대 梨木臺"
"목조대왕구거유지 穆祖大王舊居遺地"
<태조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이안사>가 태어나 살던 곳이란다.
<이목대>는 27명의 조선왕 중에 누구도 세우지 않았는데 <26대 고종>이 세운 것이다.
망해 가는 <이씨왕조>인 <조선>을 다시 부흥시키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는 <이목대>다.
<고종>의 친필이란다.


<기린대로> 위로 구름다리가 놓여 있고 건너편에 "오목대"가 보인다. 2:12
"이목대"는 원래 이 다리가 있는 곳 쯤에 있었는데, 도로확장으로 조금 전 위치로 옮겼다고

<기린대로> 확장공사로 <오목대> 산봉우리를 절개하던 중에 발견한
"후백제 도성"의 성벽을 찾았다고 안내하고 있다.
<승암산>의 <견훤왕궁>에서 연결되는 <동고산성>이라고 추정한다고...

"오목대 梧木臺" 2:15
자세한 설명은 아래 안내문에 나와 있다.

"황산대첩"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에 달해 나라가 온통 시끄럽던 시절에
쪽바리 대장 <아기발도>가 이끄는 왜구들이 500여척의 함정으로 지금의 <군산>으로 처들어 왔는데
이때 활약한 장군이 "화약과 대포"로 유명한 <최무선>이었다. <진포대첩>이다.
<군산>에서 <최무선>에게 된통 당한 왜구들은 내륙으로 흩어져 도망치면서 약탈과 살육을 저질렀다.
<지리산> 자락의 <운봉>까지 숨어 들어 저항을 이어 갔는데
이 때 <이성계 장군>이 이들을 토벌하러 나선 전투가 <황산대첩>이다.
<운봉> 옆 <인월>에 "황산"이라는 조그만 산이 있는데, 거기서 화살로 <아기발도>를 쏘아 죽이며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돌아 오는 길에 <전주이씨의 관향>인 <전주>에 들려, 이곳 <오목대>에서 잔치를 벌였단다.
<계백장군>의 "황산벌전투"로 생각하면 큰 오해, 전혀 다른 전투다.

"太組高皇帝駐畢遺址碑 태조고황제주필유지비"
"높으신 황제 태조가 잠시 머물다 간 곳"
이 비석도 <26대 고종>이 망해가는 <조선>을 부흥 시키겠다는 염원으로 세운것이다.
<고종>의 친필이란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는 <전주한옥마을>이다. 2:20

지금의 <전주>와 비교하니 무지 애처롭다.
조망을 마치고 <오목대>를 내려 가면...

"태조로 쉼터 (한옥마을 쉼터)" 2:23
<오목대> 아래엔 매우 큰 쉼터가 조성되 있다.

쉼터 앞으로 "전주한옥마을"이 열린다.
평일인데도 외국인 관광객들을 비롯한 관광객들이 무척 많았다.

한옥마을의 중심도로가 "은행로"이다.
이 도로를 따라 좌우로 한옥들이 서로 맵씨를 뽐내고 있다.

전주는 두말이 필요없는 고도(古都)다.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며 도읍으로 삼았고,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본향인 전주가 조선왕조의 뿌리가 됐다.
한옥마을은 전주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지만, 이처럼 깊은 전주의 역사에 비하면
그리 오래된 동네는 아니다.
마을이 번성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양곡을 군산항으로 수송하기 위해
전주와 군산을 잇는 '전군가도'가 개설되면서 <전주부성>은 <풍남문>을 제외하고 자취를 잃었단다.
그러면서 성밖에 머물던 일본인이 성안으로 진출해 상권을 형성했단다
이에 반발한 전주사람들이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한옥촌"을 조성했단다.
이것이 지금의 "전주한옥마을"이란다.
서울의 "북촌한옥마을"이나 "익선동한옥마을"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고...

요즘 들어 관광객들은 무지무지 늘었다는 것을 실감할수 있다.


"황손의 집"
"비둘기 집'이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 "이석"씨가 거주하는 집이다.
<이씨조선>의 마지막 혈통이라고 <전주>에서 이 집을 내 주었나 보다.
<고종>의 셋째 아들인 <의친왕>의 열번째 아들이다. 물론 후처에게서 낳은 서자이다.
<의친왕>은 <명성왕후>의 아들이 아니라 <고종>의 후궁인 <귀인 장씨>의 아들이다.
<이석>씨의 아버지는 <의친왕 이강>이고 호적상 어머니는 <의친왕비 김덕수>이지만
생모는 <홍정순>이라는 전화 교환수였단다.
<의친왕 이강>이 전화 걸다 전화 교환 해주는 아가씨 목소리에 반해 불러 들여 후처로 삼았다고..
<이석>씨가 TV에 나와 증언한 이야기다. ㅎㅎ

"대한황실 승광재"는 게스트하우스로도 운영하고 있어, 예약하면 숙박을 할수 있단다.


"최명희 문학관"
그 유명한 "혼불"의 작가 "최명희"씨를 기억하는 문학관이다.
<전주>가 낳은 최고의 문학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전주>에서 다녔으니...
그녀가 쓴 "혼불"은 17년의 산고를 겪고 탄생해 우리나라 문학사에도 큰 획을 그었다.
그녀는 지병인 난소암으로 고통을 격으면서도 집필을 완료하고,
너무도 이른 51세에 생을 마감했으니 더욱 안타까운데
그녀의 장례를 <전주 시민장>으로 치뤘을 만큼 전주를 대표하는 문학가이다.
그래서 <전주한옥마을>에 문학관을 세웠으리라.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문을 닫고 있어 들어 가 볼수 없었다.

다시 <은행로>를 진행하면....

<전주한옥마을>의 중앙로의 이름을 <은행로>라고 만든 '은행나무'가 나그네들을 바닌다.
이 은행나무가 있는 집이 "전주 최씨 종가집"이란다.
"경주 최씨"는 "최치원" 때문에 알지만 "전주 최씨"는 처음 알았다.
<병자호란> 때의 "최명길"이 전주 최씨라네요.

"전주동학혁명기념관"
<천도교>의 제3대 교주인 "손병희선생"과 <동학농민군>의 "전봉준 녹두장군"등....
"소파 방정환선생"도 <천도교>를 믿었고 "손병희선생"의 사위가 되었죠.
"방정환선생"의 어린이 사랑도 <천도교> 교리에서 나왔답니다.
이런 기념관을 깊이 있게 관람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지나친다.

[동부시장 사거리]

<한옥마을 은행로>의 끝에 도착하면 "동부시장사거리"를 만나는데 2:55
"책 탑"이 특이하게 서 있다.
이 거리에 책방이 밀집해 있었다는군요.책방들은 다 어디 갔노~~

[동부시장 버스정류장] 2:56
여기서 <119번 시내버스>를 타고 <전주역>으로 갔다.

[전주역 첫마중길 버스정류장] 3:25
<전주역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와 <전주역>으로 간다.

[전주역]
갈 때는 < ITX >를 타고 간다. 오후3시44분 열차다.
5시간 40분의 <전주여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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