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조선 제11대왕 중의 후궁
창빈 안씨의 묘
2026년 8월 23일 (월)
[국립서울현충원 안내도]
오늘 답사 하고자 하는 "창빈 안씨 묘"는 "ㅁ"으로 표기한 곳에 있다.
현충원 정문 안으로 들어 가면 먼저 분수대가 반기고
"국립서울현충원"의 전체 지형을 느낄수 있는데,
<서달산>을 중심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현충원"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다.
또한 <한강>을 굽어 보며...
그래서 이곳은 조선시대부터 "천하명당"이라는 소문이 돌던 곳이다.
분수대를 지나면 넓은 잔디광장이 나타나며 정중앙에 "현충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측 뒤에 보이는 산이 "서달산"으로 "달마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으로 칭해지는
유명한 "달마사"가 있다.
"현충문"
현충일에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이 이 문으로 참배하러 들어 가는 문인데
TV에 중계되기 시작하는 곳이다.
"현충탑"
조국을 위해 목숨바친 영령들을 배향하는 곳이다.
충혼탑에는 '노산 이은상'선생이 지은 글을 '박정희 전대통령'이 쓴 '현충시'가 있다.
현충원에는 전사자들만 안장된 것은 아니고,
국가에 공을 세웠거나 의로운 일을 한 일반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안장되 있는데,
하물며 친일파들까지 안장되 있어 가끔 문제시 된다.
"무명용사의 탑"
<현충문> 동쪽엔 "무명용사의 탑"이 있는데, 지금부터 오늘의 테마인 "창빈 안씨묘"를 찾아간다.
"무명용사의 탑" 좌측으로 가면....
<현충원 순환로>가 있는데 이 길을 따라 몇백미터 올라 가면....
"수충교 앞 오거리"를 만난다.
좌측 <수충교>를 건너 우측으로 들어 가면 되는데
이곳은 다음 지도의 <현위치> 표기 지점이니 참고하고...
<현위치>라고 표기한 곳이 <수충교> 앞이다.
이제 길찾기는 너무 쉽다
"창빈 안씨 묘" 좌우에 <이승만-김대중 전대통령 묘>가 있다는 것을 알수 있죠?
좀 놀랍죠? 어찌 된거야?
대통령들의 묘와 후궁의 묘가 함께 있어?
<이승만전대통령 묘> 방향으로 조금 올라 가서
"이승만 전대통령 묘"를 잠시 둘러 보고 나와 조금 내려 가면...
"창빈 안씨 묘" 입구를 만나는데, 이정표는 어디에도 없고
숲으로 들어 가는 입구에 조그마한 안내판만 있어 모르고 가면 찾기 어렵다.
"창빈 안씨 묘" 입구
<국립서울현충원>은 1956년에 설립됬지만
"창빈 안씨 묘"는 400여년 전인 1551년 <명종 5년> 때부터 있었으니
<현충원>은 "창빈 안씨 묘"로 부터 시작되어 <대한민국공동묘지>가 되었다고 볼수 있다.
이 묘지는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니
"임꺽정"이라는 도둑놈이 의적이 되어 백성들로부터 인기 만점이었을 때이다
얼마나 오래된 묘역인지 알수 있죠?
또한 서양에선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 여왕>시절에 <무적함대>의 <스페인>을 치던 시절이다.
입구에는 "창빈 안씨"에 대한 간략한 안내문이 설치되 있다
안내문의 핵심 내용은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할머니"라는 것이다.
20m쯤 올라 가면....
"창빈 안씨 신도비 昌嬪安氏 神道碑"
정식 왕비가 아닌 "후궁"에게는 신도비를 세우지 않는다.
그런데도 "후궁"인 "창빈 안씨"에게 神道碑를 세워 준 것이 궁금하지 않나요?
<제11대 중종>의 후궁이었던 "창빈 안씨"는 <중중>이 살아 있을 때까지는
후궁 중에서도 낮은 계급 '13세에 상궁→22세에 숙원→36세 숙용→42세 소용"까지 올랐단다.
9살에 궁녀로 궁에 들어 가 13년이 지나 <중종>의 눈에 띄어 성은을 입고 아들 "영양군"을 낳고
22살에 "숙원"이 되며, 32세에 "덕흥군"을 낳고, 36살에 "숙용"에 오르고
42세에 정3품인 "소용"까지 오른 것이다.
다시 말해 왕비에 준하는 정1품 "빈 嬪"에는 오르지 못했단다.
그녀가 "빈 嬪"에 오른 것은, 그녀가 죽고 10여년 후에야 손자인 <13대 선조>에 의해
"창빈 昌嬪"으로 추존 된 것이다.
그녀의 아들 "덕흥군"이 낳은 셋째 아들 "하성군"이 <제13대 선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씨 조선>의 정통 혈통이 아닌 서자의 아들이 왕이 된 첫 사례였다.
그 이후 모든 조선의 왕들, 즉 <13대 선조~27대 순종>까지 360여년 동안
이 여인의 핏줄을 이어 받았기에 이 여인이 그 왕들의 시조가 되는 것이다.
다시말해 이 여인이 없었다면 <12대 명종> 이후 "조선이씨왕조"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여인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여인인지 놀라울 정도...
그리고 이 "신도비"는 그녀가 죽은 후 130여년 후 <제19대 숙종>이 건립한 것이란다.
이 신도비에는 그녀의 성품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데
"고운 덕을 닦아 모든 덕을 갖추었으며 임금을 모시어 사랑 받았고
음전한 몸가짐으로 경사를 열었다.
어진 임금이 이어 나와 복을 내리니 선을 쌓은 끝에 경사가 온다는 이치가 분명하도다"
"창빈 안씨 묘 昌嬪安氏墓"
1499년 당시 연산군이 폐악질을 하던 시대에
지금의 '시흥 금천' 근처의 어느 작은 고을에서 아버지 "안탄대"의 딸로 태어났단다.
"안탄대"는 정7품의 미관말직의 무신이었는데, <중종반정> 때 참여해서 공로가 인정되
원종공신에 책록되지만 여전히 미미한 존재였단다.
그런 와중에 소녀는 8살에 궁녀 선발에 합격해 궁으로 들어 갔는데,
<성종>의 왕비이자 <중종>의 어머니인 "정현왕대비" 밑으로 들어 가게 된 것이 운명의 시작...
소녀가 너무 이쁘고 착하며 영특해 <정현왕대비>의 마음에 쏘~옥 들었단다.
그래서 <정현왕대비>가 '경서'와 '사기'를 내려 주며 공부를 시켰고,
왕실의 예법도를 직접 가르치며 마치 딸을 키우듯 정성을 다했단다.
그렇게 왕대비의 총애를 받으며 성장한 소녀가 20살의 아릿다운 처녀가 되었을 때
왕대비가 47세인 자신의 아들인 <중종>에게 후궁으로 삼으라고 소개팅을 했단다.
<중종>의 정식 왕비 <장경왕후>가 후에 <인종>이 되는 아들을 낳고 일찍 죽었기에...
그러자 1515년에 문제의 <문정왕후>가 새로운 왕비로 들어 왔는데도,
왕의 엄마가 아들 왕에게 이런 불륜 소개팅을?? ㅎㅎ
그리하여 1520년 정5품 상궁이 되고 아들이 태어 납니다.
그 이후 1530년 조선왕조의 운명을 바꿀 아들이 태어 나는데
바로 "덕흥군"이 태어 나는데 <제13대 선조>의 아버지가 되며
우리나라 첫번째 '대원군'인 "덕흥대원군"이다.
그런데 철의 여인 <문정왕후>가 이 여인을 씹지 않고 잘 받아 주며 우호적이었단다.
성품이 워낙 온화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공손하였기 때문이란다.
<제10대 성종>은 <폐비 윤씨>로 부터 <연산군>을 낳고,
이어 <정현왕후>로 부터 <제11대 중종>을 낳았다.
<중종>의 첫번째 부인인 <단경왕후>는 즉위 일주일만에 폐위당하고
두번째 부인인 <장경왕후>가 <중종반정> 공신들의 후광을 안고 왕비가 되어
<인종>을 낳고 일찍 죽어버리고, 세번째 부인인 <문정왕후>가 새왕비가 된다.
이때 <중종>이 가장 사랑스러워 했다는 "경빈 박씨"가 <중종>의 장남 <복성군>을 낳아
정치권력의 향배를 놓고 치열한 권력다툼을 했는데
<장경왕후>가 낳은 후에 <인종>이 되는 적통 아들을 등에 업은 "대윤파 大尹派"와
후에 <명종>이 되는 <문정왕후>의 아들을 등에 업은 "소윤파 小尹派"...
그리고 <중종>의 장남 <복성군>을 등에 업은 <경빈 박씨>..
이들 사이에 구중궁궐에서 벌어지는 여인들의 권력 다툼의 시대를 우리는
"여인천하 시대"라고 한다.
이런 여인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권력다툼을 멀리하며 조용히 살았던 여인이 "창빈 안씨"란다
그리고 "최후의 승자"는 그녀의 것이 되었다.
<인종> <명종>이 후사 없이 죽어 버리자 손자인 <하성군>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제14대 선조"이며 이후 탄생되는 <14대~27대>까지 왕들은
모두 "창빈 안씨"의 후손이 되는 것이니, 그녀는 그들의 시조가 되는 것이고
"최후의 승자"라고 아니 말할수 없다.
1549년 가을 "창빈안씨"는 친정을 방문하기 위해 궁을 나섯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줄이야~
어찌된 일인지 뭔일인지 51세의 나이로 친정에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단다
"창빈 안씨"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리'에 안장되었는데, 이듬해 <덕흥군>은 풍수가들의 조언을
받아 "천하명당"이라는 이곳으로 묘를 이장했단다.
놀라운 일들은 그 후부터 일어 나기 시작했다.
1567년 <제13대 명종>이 승하한다.
<명종>은 <인순왕후>와의 사이에 "순회세자"가 있었는데 13세에 일찍 죽는다.
이렇게 되어 왕조의 대를 이을 적통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왕실은 난리가 났는데 이때 <명종>의 왕비인 <인순왕후>가 각별하게 지내던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을 후계자로 지명하며
조선왕조 최초로 서자 출신 아버지의 셋째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며
16세의 <하성군>이 "제14대 선조"가 되는 것이었다.
<중종의 가계도>를 보면 "창빈 안씨"의 지위와 위상을 알수 있다.
그렇다면 이곳이 수많은 왕들을 배출시키는 그런 "천하명당"이라고 할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선조>가 왕에 등극하자 치욕의 <임진왜란>이 일어 나고
<광해군>은 이복동생 <인조>로부터 반정을 당하여 유배 가고
이어서 <인조>는 더더욱 치욕의 <병자호란>을 당하며 굴욕을 당한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수난의 날들을 생각하면 과연 "천하명당"이라고 할수 있는가
[김대중 대통령 묘소]
[김영삼 대통령 묘소]
"창빈 안씨 묘"는 우리나라 근현대의 대통령 네분의 묘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대통령들 까지 후손으로 거느리고 있는 것일까~ 우연일까~
<국립서울현충원>은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꼽힌단다.
주변 산줄기가 "말발굽 모양"으로 묘소를 포근히 감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한강>이 시원한 청량감을 준단다.
풍수가들은 이곳이 여성 성기와 같은 모양으로 <창빈 안씨>의 묫자리가 "여성의 클리토스"란다
인간 절정의 순간에 찾아 오는 오르가즘이 느껴 진다나 뭐래나...
<덕흥군>이 어머니 묘소를 이곳으로 이장하고 아들이 <제14대 선조>가 되고
이후 계속 왕들을 배출했으니 그런 측면에선 "천하명당"이 틀림 없겠다.
그리하여 이 시기에 "풍수지리"가 우리나라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단다.
도성에서 방귀 깨나 뀐다는 사대부들이 무지 많이 이곳을 찾아 봤단다.
후에 <흥선대원군>도 풍수지리가 <정만인>이 "二代天子之地"라고 추천한 곳으로
자기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경기 연천'에서 '충남 예산'의
<가야산 계곡>으로 이장하며 <제26대 고종><제27대 순종>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이후 실제로 두명의 왕을 탄생시켰으니 풍수지리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겸재 정선의 동작진"
<겸재 정선 선생>이 다행이도 1800년대에 현재의 <현충원>이 있는 "동작진"을
진경산수화로 남겨 놨기에 그 옛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수 있다.
뒤로는 <관악산>이 王冠을 쓰고 불꽃같은 위엄을 뽐내고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줄기는 풍수가들이 주장하는 진짜 명당터란걸 알려 주는 듯 하다.
<한강>에 붙어 있는 좌측 산줄기가 시작되는 곳으로 현재의 <동작대교>가 연결되어 있고
<지하철 4호선>이 저 산 옆구리를 뚫고 지나간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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