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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둘레길』
     『안성43코스』
      안성 청룡천-안성천을 따라 평택으로
           서운면사무소-신촌교-양촌천-서운초-동촌리-양변1교-양변천-강덕리-강신교-
           청룡천-고지리-진촌리-청룡천 안성천합수부-경부고속도로 안성천교-용정교-
           중복리-1번국도 안성천교-(구)안성천교-경부선 안성철교-군문교-평택역
      
        
           ['안성43코스 안내도']                  

    [실트랙 지도]           
  "경기둘레길 안성43코스""서운면사무소"에서 <청룡천>과 <안성천> 둑방길을 이용하여
  <평택역> 근천의 "군문교"까지 가는 "20.7km" 거리라고 합니다.
    
        

    ['서운면사무소 앞']           8:20         
    2024년 5월 12일 일요일   맑음      
  <판교역>에서 <8201번광역버스>를 타고 <안성 시민회관>에서 내려 건너편 <서광아파트 버스정류장>에서
  <청룡사> 가는 <20번시내버스>로 환승하여 약15분이 걸려 <서운면사무소>에 도착하여 출발합니다.
  


    ['43코스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43코스 안내도>를 참고하고 100m 정도 직진하면...
 


    [삼거리]            8:23      
  삼거리를 만나는데 조금 더 직진합니다.



    ['신촌교']            8:25        
  이어서 바로 "신촌교"를 만나는데 <양촌천>이 흐르는 다리였습니다.
  다리를 건너 좌회전 하면
  


    ['양촌천']                      
  <신촌교>를 건너 바로 좌회전하면 "양촌천 陽村川"을 따라 가게 되는데 
  150m 정도 가면



    ['서운초등학교']             8:28      
  "서운초등학교" 정문 앞 삼서리를 만나는데 좌회전합니다.



    ['양촌천'과 '양촌리' 통과]                   
  <서운초등학교>를 지나 <양촌천>을 따라 진행하며 뒤돌아 보면...
  


    [뒤돌아 본 '서운산']             
  지난 코스에서 올랐던 <서운산>과 <탕흉대>가 조망됩니다.



    ['동촌마을회관']            8:32       
  <서운초등학교>에서 5분여 진행하면 <동촌마을회관>을 만나고



    [갈림길]              8:40       
  <동촌마을>을 8분여 통과하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 <23번국도 굴다리>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23번국도' 굴다리]             8:42        
  <23번국도>는 <천안>과 <안성>을 잇는 가장 빠른 길이더군요.
  
  굴다리엔 <경기둘레길 캐릭터>인 <누리> <누비> <연두> <아라>가 나그네들을 반깁니다.
  <경기평화누리길>을 담당하는 <누리>는 사람들이 삶에서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를 바란다고 하고
  <누비>는 <경기숲길>을 '누비'며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즐기는 걸 좋아한다고 합니다.
  <경기물길의> 마스코트 <연두>는 들판에서 노니는 싱그러움 그 자체라 하고, 
  <경기갯길>의 마스코트 <아라>는 바다 보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송산리']            8:46      
  굴다리를 지나면 <서운면 송산리>가 이어지는데, <옛23번국도>를 만나면 우회전합니다.
  


    ['안성맞춤대로']                    
  <옛23번국도>는 현재 <안성맞춤대로>로 이름이 바뀌고
    


    ['양변1교']           8:47        
  이어서 <양변천>을 건너는 <양변1교>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 좌회전 해야 합니다.



    ['강덕리' 입구]              8:48      
  <양변1교>에서 좌회전하면 <강덕리 마을 안내석>이 지금부터 <안성시 미양면 강덕리>로 들어 간다고
  알려 주는데....


  
    ['양변천']                  
  12분 정도 <양변천> 둑방길을 진행하면....
 


    ['강덕리마을회관']             9:00        
  "강덕리 마을회관"을 만납니다. 버스정류장도 있군요.
     
 

    ['강덕3교']                        
  <강덕리 마을회관> 앞에는 <강덕3교>라는 다리가 있는데 이정표가 있습니다.
  <서운면사무소>에서 "3.3km" 진행했으며, 
  앞으로 종점인 <군문교>까지는 "17.4km"가 남았다고 알리고 있군요.
  


    ['강덕1교']             9:05    
  <강덕리 마을회관>에서 5분여 진행하면 <강덕1교>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 건너편 둑방길로 진행합니다.

 


    ['강신교']              9:08         
  이어서 <강신교>를 건너게 되는데, 이곳이 <양변천>이 <청룡천>에 합수하는 곳이더군요.
  다리를 건너 <청룡천>의 좌측 둑방길을 진행합니다.

 

    ['청룡천']                         
  "청룡천"은 지난 <42코스> 종점에 있었던 <청룡사>부터 흘러 내려 오는 개천입니다.
  지금부터 <청룡천>이 <안성천>에 합수하는 곳까지 계속 <청룡천> 둑방길을 진행합니다.
  



    ['상고지마을 쉼터']            9:40~9:50              
  <강신교>에서 32분 정도 <청룡천> 둑방길을 진행하면 <안성시 미양면 고지리>로 들어 가는데
  먼저 "상고지마을 쉼터"를 만나는데 <43코스>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쉼터여서 좀 쉬어 갑니다.
  

       
    ['상고지마을회관 앞']            9:51   
  쉼터를 지나면 바로 <상고지 마을회관> 앞 버스정류장을 만나고
  계속 <청룡천> 둑방길을 14분여 더 진행하면...
  



    ['진촌리마을회관']           10:05           
  <안성시 미양면 진촌리>의 "진촌리 마을회관 쉼터"를 지나고
  15분 정도 더 진행하면...
    


    ['덕산실업']             10:19          
  건너편에 <덕산실업>이라는 공장이 눈길을 끄는데
  폐유를 정제하여 반도체용 윤활유 등을 만드는 정제공장이라 합니다.
  


    ['청룡천'-'안양천' 합수부]         10:23     
  "청룡천-안성천 합수부"
  이어서 <청룡천>이 <안성천>에 합수하며 그 수명을 다하는 합수부를 만나는데 건너편엔 
  <안성시 공도읍>이 보입니다.
  


    ['안성천1교']            10:24     
  합수부에서 <안성천>으로 방향을 바꾸면 먼저 <안성천1교>를 지나게 되고
 



    ['경부고속도로 안성천교']                     
  <안성천1교>에서 20여분 진행하면 <경부고속도로 안성천교>가 보이고



    ['경부고속도로 안성천교' 통과]            10:44      
  "경부고속도로 안성천교"를 통과하면....
 


    ['연육교']            10:45        
  <경부고속도로 안성천교> 바로 옆에 "연육교"가 있는데 
  이 연육교를 이용해 <안성천>을 건너야 하더군요.
  


    ['안성천']          10:47~11:03         
  연육교를 진행하니 개천물이 넘쳐 그냥은 건널수 없어 신발을 벗고 건너 가야 했습니다.
  어젯밤 비가 내려 개천물이 불어 발목 높이 이상 넘쳤는데 여름철엔 더욱 위험하겠더군요. 
  주변 우회로도 없어 대책이 필요하겠습니다.




    ['유천배수장']                      
  연육교를 건너 <안성천>의 우측 둑방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언성천-유천 합수부']           11:12   
  <유천>이 <안성천>에 합수하는 곳을 만나는데 건너는 다리가 없습니다.



    ['유천']                
  그래서 우측 <유천>을 따라 올라 가서 <용정교>를 돌아 다시 <안성천>으로 나와야 하더군요.
  
  <안성시 공도읍>이 가까이 조망되는데, <평택시>와 접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죠.
  


    ['용정교']           11:19         
  <유천>을 건너는 "용정교"를 건너 다시 <안성천>으로 회귀합니다.



    ['안성천']            11:26       
  <안성천>으로 되돌아 와 둑방길을 진행하는데
  

  
    ['안성천변길']                
  그늘 하나 없는 둑방길을 30여분 진행하면...
  


    ['원중복마을']           11:56~12:16      
  "안성시 공도읍 원중복 마을" 쉼터를 만나는데 쉽터가 있어 20여분 쉬어 갑니다.
  은행나무 정자가 원래 있던 마을이라 <원중복 마을>이라 한답니다.




    ['안성시-평택시 경계']            12:22      
  이어서 <43코스 안내도>가 있는 곳을 만나는데, 
  이곳이 <안성시>와 <평택시>의 경계가 되는 곳이더군요.



    ['1번국도 안성천교' 조망]                       
  <1번국도 안성천교>가 조망되기 시작하고
  
  


    ['경기옛길 삼남길 종점']            12:27          
  "경기옛길 삼남길 종점"을 만납니다.
  이 길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제가 2016년에 완주하고 쓴 답사기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경기옛길-삼남길] '진위면사무소'에서 '안성천교'까지 답사기
    
 

    ['1번국도 안성천교' 통과]            12:29        
  "1번국도 안성천교"를 통과하면

 

    ['(구)1번국도 조망]                
  "(구)1번국도 안성천교"가 보이기 시작하며
  


    ['(구)안성천교 통과']           12:36     
  "(구)1번국도 안성천교""평택섶길1코스"가 지나는 곳입니다.
  <평택섶길>에 대해 관심 있으신 분들은 제가 2018년도에 답사하고 쓴 답사기를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특히 <평택섶길>은 <경기둘레길 평택구간>과 겹치는 구간이 많습니다.
  [평택섶길] 제1코스 대추리길 답사기
  


    ['경부선 안성철교']             12:46        
  <(구)1번국도 안성천교>를 지나면 이어서 "경부선 안성철교"를 통과하고
  

       

    ['군문교' 가는 길]                    
  40여분 둑방길을 더 진행하면....
  


    ['군문동' 조망]             
  <평택시 군문동>이 조망되기 시작하고
    


    ['군문교 고수부지공원']           1:26       
  <군문교 고수부지공원>과 <군문교>가 보이면
  


    ['군문교']                  
  "군문교 軍門橋" 앞에 도착하는데, 이젠 다리로 올라 가야합니다.
  <軍門洞>은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군대>가 西海를 통해 상륙한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그 후 <일제강점기> 시절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쪽바리 군대가 주둔한 군사요새가 되고, 
  <2차대전> 후엔 미국이 승리하여 미군이 점령하여 군사 요새화 되다가, 얼마전엔 <주한미군사령부>를
  이전하며 미국이 해외에 건설한 기지로는 최대의 미군기지가 들어 섰죠.
  
  <임진왜란-정유재란> 때에 <이순신장군>이 <한양 의금부>에서 사형 당할뻔 하다가 풀려나
  "백의종군"한 길이기도 한데, <한양>에서 <수원>을 거쳐 <평택>을 지나 <음봉>을 통과하여
  자기 집이 있는 현<아산 현충사>로 갔다는 기록이 <난중일기>에도 나옵니다.
  당시엔 이곳 <안성천>에 다리가 없었고 나룻배가 다니던 <군물진 軍勿津>이었답니다.
  <이순신백의종군길>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제가 두 발로 쓴 답사기를 참고하세요
  『고난과 죽음을 넘어』  [이순신백의종군길] 평택구간 답사기
  


    ['43~44코스 시종점']                 
  <군문교 軍門橋> 앞에 있는 <43~44코스> 시종점 안내판에서 답사를 마침니다.
 


    ['44코스 안내도']         1:27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44코스 안내판>을 참고하는데, <44코스> 이후부턴 <평택섶길 1~5코스>와 거의 비슷한 길로 가고
  그 이후 <화성시구간>은 <화성황금해안길>과 같고, <안산시구간><시흥시구간>도 기존 둘레길과
  같아서 생략합니다.



    ['평택역']          1:38    
  <군문교>에서  10여분 아파트 단지들을 통과해 <평택역>에서 걷기를 마치고 저철을 타고 귀가했습니다.
 


    [구글어스]                     
  <43코스>의 공식적인 거리는 "20.7km라고 합니다만, 
  오늘 제가 걸은 거리는 <평택역>까지를 포함해 "22km"였으며, 5시간 15분 정도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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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둘레길』
    『안성42코스』
     서운산성의 탕흉대를 오르다
        이해룡고가-청룡사-좌성사-서운정-서운산성-탕흉대-비둘기재-방아동-서원면사무소
      
        
           ['안성42코스 안내도']                  

    [실트랙 지도]           
  "경기둘레길 안성42코스""청룡사"에서 "좌성사"를 지나 "서운산성"를 찾아보고
  "탕흉대"을 오르고 "서원면사무소"로 내려 가는 "6.4km" 거리라고 알려 줍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걸은 거리는 "7.5km"정도 되더군요.
  
        

    ['안성 종합버스터미널']            8:40         
    2024년 5월 4일 토요일   맑음      
  <분당 판교역 버스정류장>에서 <8201번 광역버스> 첫차를 6시58분경에 타고 <안성종합버스터미널>에
  8시 25분경에 내렸습니다. <20번시내버스> 타는 정류장은 터미널 옆에 별도로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청룡사 버스종점']           9:33         
  <안성종합버스터미널>에서 9:00 출발하는 <20번시내버스>를 타고 약33분이 걸려
  "청룡사 버스종점"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코스는 비교적 짧아 여유 있어 이 근처에선 볼거리라는 <이해룡고가>를 구경하고 갑니다.
  <청룡사 버스종점>에서 진행방향 뒤로 50m쯤 내려 가면...
 


    ['이해룡고가 입구']         9:34         
  <느티나무집>이라는 간판이 있는 곳에서 첫번째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해룡고가' 입구]            9:35        
  골목 위에 <이해룡 古家>가 보입니다.
  




     ['이해룡고가']                 
  "이해룡 古家"
  <정조 2년> 그러니까 1797년에 지은 집이라고 하는데 이 골짜기에선 부잣집이었겠군요.
  사람이 현재 살고 있어 안으로 들어 갈수는 없어 밖에서 내부를 일부 촬영하고
  다시 <청룡사 버스종점>으로 돌아가 <청룡사>로 올라 갑니다.



    ['청룡사 사적비']           9:41        
  <청룡사 입구 삼거리>에 있는 "청룡사 사적비"를 지난 <41코스>에 이어 다시 만납니다.
  "바우덕이 사당"은 우측에 있는데 지난번에 답사 했기에 생략하고
  직진성 좌측길로 조금 올라 가면...



    ['청룡사 정문']             9:43      
  "청룡사" 정문앞 좌측 주차장에 있는 "42코스 안내판과 스탬프함"을 확인합니다.
  관심 가지지 않으면 찾기 어려운 곳에 설치되 있으니 유의해야 겠습니다.
  


    ['42코스 안내도']             
  안내도에 주변 관심지를 알려 주고 있는데, <이해룡 고가>가 있어 미리 찾아 본 것입니다.



    ['청룡사 옆길']            
  <청룡사>를 옆에 끼고 <42코스>를 출발합니다.



    ['바우덕이']                     
  "바우덕이 金岩德"
 지난 <41코스>에서 언급 한바 있습니다만, 이곳 <청룡사>에서 꽃다운 나이에 마지막 생을 마감했기에
 그녀의 위대함에 대해서 조금 더 언급하고 싶습니다.
 
 "남사당 男寺黨"의 의미를 알아야 그녀의 위대함을 더욱 느낄수 있죠.
 <남사당>이란 "남자들로 구성된 예인집단"으로 이곳 저곳 주로 장터를 떠돌아 다니며 춤이나 소리를
 팔며, 외줄타기등 기예를 펼치며 벌어 먹고 살던 유랑극단을 의미하는데, 전국에 당시 많은 <남사당패>가
 있었지만 <안성 남사당>이 최고로 꼽히게 된 동기가 바로 <바우덕이> 때문이었답니다.
 
 남자들로만 구성된 <남사당패>에 이쁘고,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 특히 외줄타기의 달인으로
 "군계일학"의 <金岩德>이 가세하자 <안성 남사당패>는 독보적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답니다.
 요즘과 비교하자면 <블랙핑크>나 <뉴진스>보다 더 인기있는 스타였답니다. 그리하여...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남사당패>의 우두머리 "꼭두쇠"에 어린 소녀 <바우덕이>가 등극하게 되었죠.
 
 마침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는 대규모 공사를 하면서, 동원된 일꾼들을 위문하기 위해
 <경복궁>에서 대규모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고종>과 <명성왕후>등도 참관하며 극찬을 했답니다.
 그래서 정3품 당상관 이상에게 하사하는 "옥관자"를 <고종>이 <바우덕이>가 이끄는 <안성 남사당패>에
 하사하게 되고, 전국 <남사당패>들이 <안성남사당패>를 만나면 엎드려 절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두 <바우덕이> 덕이었던게죠.
 
 15살에 <안성남사당패>에 들어가 "꼭두쇠"가 되어 전국을 누비며 활약한 <바우덕이>는
 가슴 아프게도 21살에 폐결핵에 걸려 이곳 <청룡사>에서 간병을 하게 되는데,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까봐 외딴 방에 스스로 격리되어 2년여를 지내다가 꽃다운 나이 23살에
 외줄을 타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며 하늘나라로 갔답니다.
    


    [오름길]                     
  <청룡사>를 지나면 비포장 도로가 이어지며 10여분 올라 가면...
    


    ['은적암' 갈림길]            9:52      
  지난 <41코스>에서 내려 왔던 <은적암 갈림길>을 만나는데
  <42코스>는 직진성 좌측길로 올라 갑니다.
  

  
    [오름길]                    
  비포장과 시멘트포장도로가 이어지는 완만한 오름길을 8분여 올라 가면...
    


    [민가]           10:00   
  이 길에선 유일한 민가를 지나고



    ['쉼터']             10:04~10:20       
  이어서 <정자 쉼터>를 만나는데
  금년 들어 제일 더운 날씨여서 좀 쉬어 가고



    [오름길]                  
  5분 정도 더 올라 가면...
 


    ['은적암' 갈림길]             10:25       
  "은적암 갈림길"을 만나는데 <은적암>까지 500m라고 합니다.
  <은적암>은 <고려 태조 왕건>이 3일간 은거 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죠.
  <42코스>는 <좌성사>방향으로 가는데 "1,1km"라고 알려 주는군요.
    
 

    [오름길]                        
  조금만 더 올라 가면....
  


    ['서운산 정상 갈림길']            10:28     
  <서운산 정상 갈림길>을 만나는데 <서운산 등산>을 할땐 이 코스를 이용하는게 좋겠군요.

 
  
    [오름길]                       
  다시 10여분 더 올라 가면....

 


    [고개]            10:38          
  고개를 하나 넘게 되는데 <좌성사부근(300m고지)>라고 하는군요.
  200m쯤 진행하면...
  



    ['좌성사']            10:42            
  "좌성사"에 도착했습니다.
  이 절은 전통사찰은 아닌듯 합니다.
  길찾기에 혼란을 주는데 우측 계단을 이용하여 <대웅전>으로 올라 가서
  

       
    ['삼성각']           10:43    
  <대웅전> 뒤에 있는 <삼성각> 좌측으로 가면 되더군요.
  


    [안성시 조망]                   
  "안성맞춤"의 고장 <안성 安城>을 조망하고
    


    [오름길]                       
  숲길을 5분여 올라 가면....
  




    ['서운정'-'서운산성']            10:48~11:00   
  "서운정瑞雲亭과 서운산성瑞雲山城"을 만납니다.
  <인진왜란> 때에 <홍계남-이덕남 의병장>이 산성을 구축하여 적을 물리 친 곳이라 합니다.
  


    [돌부처]                 
  "서운 북산리 석조여래입상"이 <서운정> 앞에 있습니다.
 


    [오름길]               
  <서운정>에서 5분여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갈림길]            11:05            
  이정표가 있는 능선 삼거리를 만나는데, <경기둘레길>은 좌측 <탕흉대>방향으로 안내합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우측에 있는 <좌성산 정상>을 다녀 오기로 합니다.
 


    ['현위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진행했던 트랙을 지도로 표기했습니다.
  <서운산성>과 <544.5m봉=좌성산>의 위치를 참고하고
  

  
    [오름길]         
  5분여 오름길을 진행하면...



    [고개]           11:11           
  고개를 만나는데 <좌성산 정상>은 우측에 가까이 있는데
  


    ['서운산 등산로']              
  고개 앞에는 <좌성사>에서 <서운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더군요.



    ['좌성산 정상']            11:12    
  "좌성산 左城山 544.5m"
  <서운산 547.7m 정상> 부근에 있는 城은 <右山城>이고 <서운산 정상> 좌측에 있는 城은 <左山城>이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봉우리 이름은 <좌성산>이라 하는듯....
  


    [삼거리 회귀]            11:18        
  다시 삼거리로 돌아 와서 <탕흉대> 방향으로 직진하면....



    [오름길]                   
  소나무들이 울창한 오름길을 100m 정도 올라 가면...
  



    ['탕흉대']           11:21~11:25      
  "탕흉대 蕩胸臺"
  의미는 안내판을 참고하면 됩니다.
  "탕흉 蕩胸"이라는 말은 '쓸어 없앨 탕蕩'과 '가슴 흉胸'을 사용하니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는 확 트인 곳"을 의미한다고 생각됩니다.
  


    ['탕흉대']                 
  <蕩胸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관심 가지지 않으면 찾지 못하고 그냥 밟고 지나 갑니다. 


        
    ['안성시내'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안성시내>가 펼쳐지는데 연무로 조망이 시원치 않군요.
  여하튼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확 트인 곳" 蕩胸臺 임은 틀림없겠군요.
  <경기둘레길 42코스>의 하일라이트입니다.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18분여 내려 가면....
  
  

    [갈림길']              11:43        
  등산로 갈림길을 만나는데 이정표가 쓰러져 있군요.
    
 
  
    [내림길]                   
  다시 4분여 더 내려 가면...

 

    ['비둘기재']            11:47~11:57    
  "비둘기재"라고 하는 쉼터를 만납니다.
  "비둘기재"라고 하면서 안내판에는 "오리 솟대"를 붙여 놨군요.
  

  
    [내림길]                 
  다시 20여분 내림길을 더 내려 가면...
  


    [들날머리]            12:16      
 등산로 들날머리에 도착하고
  

       
    ['옛 안성포도박물관' 앞]           12:19         
  도로를 만나 뒤돌아 본 <탕흉대>입니다.
  
  이곳은 현재 폐쇠된 <안성포도박물관> 앞입니다.
  

  

    ['방아동길' 통과]               
  10여분 <방아동 마을>을 통과하면
    


    ['방아동 버스정류장']           12:30       
  <방아동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직진합니다.
  


    ['57번지방도-서운로']                  
  때마침 <20번시내버스>가 <청룡사>로 가고 있군요.
  저 버스는 <청룡사>로 가서 12:50에 출발하여 다시 <서운면사무소>로 돌아 오는데 
  서둘러서 <서운면사무소>로 가 돌아 오는 저 버스를 타야겠습니다.
  


    ['민지네포도밭']                 
  <안성>은 프랑스인 선교사 "앙투안 공베르" 신부가 포도씨를 가져와 최초로 포도를 시배한 
  곳이라는군요.  포도하면 <안양>이 먼저 떠 오르는데....
 


    ['신촌3교']             12:35         
  <신촌3교>를 건너 우회전 하면....



    ['서운면 신촌리']              
  <서운면 신촌리>가 펼쳐지며 <서운면사무소>의 태극기가 보입니다.
 


    ['탕흉대' 조망]                     
  <탕흉대>를 조망하고
  


    ['서운면사무소' 앞]            12:40           
  현재 신축 중에 있는 <서운면사무소> 앞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스탬프함>과 안내판을 확인하고
  1시10분경 <20번시내버스>를 타고 <안성종합버스터미널>로 가 <8201번광역버스>로 환승하여
  귀가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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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16코스 울산바위 비경길』 
              미시령-미시령옛길입구-강원세계잼버리장-신평리-천진교차로-청간정
                       

        
            ['16코스 안내도']                   
       "강원도 평화누리길 16코스"는 <미시령>에서 <청간정>까지 가는 "16.8km"라고 합니다.



    ['16코스' 실트랙 지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오늘이 4월 하순인데도 "미시령 옛길"은 지난 겨울 폭설로 낙석위험이 있다고 4월말까지
  폐쇠한다고 해서 지도에 파란색으로 표기된 <미시령 옛길>은 생략하고 
  <미시령 옛길 입구>에서 <청간정>까지만 답사했습니다.

['미시령 가는 길'] "미시령"으로 갈때마다 홍천을 지날쯤 도로에 있는 길안내판이 눈길을 끌었는데.... (요건 제가 예전에 촬영한 것입니다) 얼핏보면 단순한 길안내 처럼 보이지만 지명을 연결해서 읽어 보세요. 이제 아셨나요? ㅎㅎ "지금까지 '속초'는 쓸쓸 우울했었나 봅니다." 그러나 "'속초'는 이제부터 신나게 되었답니다" ^*^
['미시령옛길 입구'] 10:04 2024년 4월 21일 일요일 비 후 흐림 겨울을 지나 봄까지 벼르고 벼르던 남은 숙제 두 구간 중에 하나인 <강원평화누리길 16코스>를 위해 <미시령> 진입을 시도했지만 4월말까지 <미시령 옛길>은 전면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왠만하면 "역순으로 올라 갈까?"라고 생각했으나 날씨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에 구름과 안개가 뒤섞여 한치 앞도 볼수 없으니 "이용복 산행(눈에 뵈는게 없는 산행)"을 할 어떤 이유도 찾을수 없어 <미시령옛길 입구>에서 <청간정>으로 바로 진행합니다. ['미시령'] 아쉬운 마음에 기억이라도 되살리기 위해 지난 12월 3일에 <15코스>를 하며 올랐던 <미시령> 사진을 리뷰하고 ['택당 이식선생의 미시파령'] "미시파령-택당 이식" <미시령>을 노래한 최고의 한시라는 "택당 이식"선생의 글을 소개합니다. <택당 이식선생>에 대해서는 지난 <17코스 답사기>에서 이미 소개한바 있습니다. 한번 더 언급하면 <택당 이식 선생>은 조선 <선조><광해군><인조> 때에 활약한 인물이죠. 특히 <홍길동>의 저자 <교산 허균>의 제자로 유명하며, 그후 <송강 정철>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수정선조실록>을 집필한 인물로 유명하며,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킨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습죠. 윗 글은 선생이 이곳 <고성현감>으로 재직 할 당시 <미시령>을 넘으며 쓴 글이라고 합니다. ['미시령'에서 조망] 지난 겨울 <15코스> 할때 <미시령 정상>에서 바라본 <속초> 방향입니다. ['신선암' 조망] 이 사진은 지난해 9월 승용차를 타고 <미시령 옛길>을 내려 가며 촬영한 사진입니다. 좌측 <신선암>이 보이는데 저 바위 뒤에 <수암>과 <화암사>가 있죠. <울산바위 조망처>로는 최고 명당이라고 하는 <신선암>입니다. <영랑호>까지 선명히 조망되며 <미시령옛길>과 터널로 연결되는 신도로도 선명합니다. ['울산바위'와 '달마봉' 조망] (지난해 9월 촬영한 사진) 이 경관 때문에 붙여진 이름 "울산바위 비경길"인데 지난 사진으로 추억하고 ['울산바위' 조망] (지난해 9월 촬영한 사진) <강원평화누리길 17코스>의 하일라이트인 "울산바위전망대"에서 이 사진을 촬영한 것입니다. "울산바위"에 대한 전설은 대부분 아시지요? <금강산>이 전국에 있는 멋지다고 뽐내는 바위들을 뽑겠다고 방을 내었더니, <울산>에 있던 저 바위도 참가하러 <금강산>으로 갔는데, 몸집이 너무 커 늦게 도착했다지요. 헥헥거리며 도착했는데도 이미 일만이천봉을 모두 뽑고 난 후여서 지각으로 불합격하고 '울산' 고향으로 되돌아 가려고 했으나 돌아 가면 고향 사람들에게 챙피 당할까봐 고향으로 돌아 가는 도중 이곳에 주저 앉아버려 "울산바위"가 되었다는 전설.....ㅎㅎ (지금도 설악산 해설사들이 관광객들에게 써 먹고 있는 얘기입니다. ㅎ) 그러나 "울산바위"는 영남의 "울산 蔚山"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한자도 틀림니다. "鬱山바위"의 "鬱"은 <울타리 "울鬱">로서, "설악산의 울타리" 역활을 하는 바위라는 뜻이니, 정설부터 먼저 알고 전설은 재미로 믿읍시다. ['백두대간' '상봉전망대'에서 '울산바위' 조망] 참고로 2017년 9월9일에 촬영한 사진인데 <백두대간 상봉>으로가는 전망봉에서 <미시령옛길>과 <울산바위>...그리고 <화채능선>까지 조망 [미시령옛길 입구'] 10:06 <미시령옛길 입구>에서 <청간정>을 향해 바로 출발합니다. <청간정>이 있는 <천진>까지는 "10km"라고 알려 줍니다. 100m쯤 진행하면... ['데델피노' 삼거리] 10:08 <소노문 델피노 리조트> 후문 입구 삼거리를 만나고 ['잼버리로']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로 우중충해진 거리를 환하게 밝혀주는 영산홍이 새로운 감흥으로 다가오며 20여분 <잼버리로>를 진행하면.... ['화암사' 입구] 10:29 "화암사 禾巖寺" 제법 유명한 절이죠? <쌀 화禾>자와 <바위 암巖>을 사용하는 절인데 절간 앞에 있는 <수암 秀巖>의 본명이 <화암 禾巖>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쌀이 쏟아져 나오는 바위"라는 의미입니다. 중들이 바위에서 쌀이 나오자 더 많이 나오게 구멍을 더 크게 뚫었더니 쌀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답니다. 과유불급의 상징적인 바위와 절간... ['17회 세계잼버리대회 본부'] 10:38 <화암사 입구>에서 다시 10여분 더 진행하면 <17회 세계 잼버리 본부> 앞을 지나는데 ['반달곰'] 강원도의 상징인 반달곰이 나그네를 반겨주고 [캠핑장] 옛 잼버리대회장은 현재 캠핑장으로 이용되고 있군요. 10여분 더 진행하면... ['통일교차로'] 10:49 <통일교차로>를 지나 갑니다. 길찾기는 매우 쉽습니다. 길바닥에 그려진 파란색선만 따라 가면 되니까 ['고성대로'] 10:51 이어서 <서울-양양고속도로>에서 <고성>방향으로 연결된 <고성대로>를 만나고 ['신평교차로'] 10:58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의 교차로를 지나 ['잼버리 동로'] <잼버리 동로>를 따라 10여분 진행하면.... ['포유리조트'] 11:09 <포유리조트>를 만나고 ['대순진리회 토성수련원'] 11:23 이어서 <대순진리회 토성수련원> 앞을 지나 갑니다. [삼거리] 11:24 <대순진리회>를 지나자마자 바로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회전해서 20여분 진행하면... ['신평1 교차로'] 11:44 <신평1리>와 <인흥리> 교차로를 지나고 [조각품] 조각 전시장을 지나면 ['천진교차로'] 12:10 <7번국도>가 지나는 <천진교차로>를 만나는데, 직진하면... ['옛 토성청소년 문화의집'] 새로 건설중에 있는 <토성청소년 문화의 집> 안으로 들어 갑니다. [공사중] <해파랑길> 할때엔 길이 분명했는데 공사중인 <토성청소년 문화의집>을 통과하여 데크로 올라 갑니다. ['해변'] 해안철책이 없어진 청간정 해변 데크를 진행하는데 해안철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비교하면... ['옛 해안철책']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해안철책과 해안초소가 있었는데 비교됩니다. ['청간정' 조망] <청간정>을 조망하며 <청간정>으로 들어 가면... ['청간정'] 12:25 "청간정 淸澗亭"에 대해선 지난 <17코스 답사기>에서 자세히 알아 보았기에 생략하고 ['청간정해변'] 12:28 <청간정해변>에서 답사를 마칩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약12km였으며, 2시간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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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둘레길』
    『안성41코스』
     마둔호수와 서운산, 청룡사와 그리운 바우덕이
      하록동-쑥고개-마둔호수-중촌마을-상촌마을-석남사-서운산-은적암-청룡사-바우덕이사당
      


    ['안성41코스 안내도']                  

    [실트랙 지도]           
  "경기둘레길 안성41코스""하록동"에서 "마둔호수"를 지나 "석남사"를 찾아보고
  "서운산"을 오르고 "은적암-청룡사"로 내려 가는 "14.6km" 거리라고 알려 줍니다.
  
        

    ['안성 봉산로터리']             8:00         
    2024년 4월 13일 토요일   맑음      
  <안성시청> 앞 "봉산로터리"의 모습입니다.
  <경기둘레길 41코스>에 앞서 이곳을 먼저 오게 된 이유는....


  
    ['성남-안성 8201번 버스시간표']                    [안성-하록동 버스시간표]
  <성남 분당 야탑역>과 <안성버스터미널> 사이를 운행하는 광역버스 [8201번]이 있어 이용했습니다.
  <성남 분당 야탑역>에서 첫차인 6시50분발 버스를 타고 약1시간5분이 걸려 <안성 시민회관>앞에 내려
  도보로 5분 가량 걸어 <봉산로터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안성 인삼농협> 앞에서 8시20분에 출발하는 [2-6번] 시내버스를 이곳에서 8시25분경에
  환승하여 약30분이 걸려 <화록동>으로 갔습니다.

  광역버스에서 시내버스로 환승하는데 시간 여유가 조금 있어
  <안성 봉산로터리>에 있는 <극적루>를 구경하고 갑니다.
  



    ['극적루']                    
  "극적루 克敵樓"
  <조령천>이 <안성천>에 합류하는 곳에 <안성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는 <극적루>입니다.
  '이길 극克'에 '원수 적敵'을 사용하는 樓는 고려시대 말 "홍건적의 침입"을 막아 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했답니다.
 


    ['하록동']            8:50       
  <안성 봉산로터리>에서 약30분이 걸려 "하록동"에 도착하여 <경기둘레길 안성41코스>를 시작합니다
  
  "하록동 下鹿洞"은 "아래 사슴마을"이라는 의미더군요.



    ['수석정' 조망]                    
  <경기둘레길 40코스 종점>이며 <41코스> 출발점이었던 "수석정"을 조망하고
  


     ['41코스 안내도']                 
  <수석정> 옆에 있었던 <41코스 안내판>을 다시 참고하고 출발합니다.


  
    ['진안로']            
  갓길이 없어 좀 위험한 <302번지방도>인 <진안로>를 25분 정도 진행하면...



    ['한운교']           9:05   
  "한운교"라는 다리를 건너고
  


    ['중대 버스정류장']           9:06   
  이어서 <중대 버스정류장>을 통과하여, 앞에 있는 로터리에서 좌회전합니다.



    ['제천-평택 고속도로']         9:08   
  그러면 <제천-평택 고속도로> 앞 삼거리를 만나는데, 둘레길은 좌측 마을길로 안내됩니다.
  
  그런데 제가 진행해 보니 좌측 마을길은 의미없는 헛걸음이며 거리만 늘리는 것이었으니
  후답자들은 그냥 차도를 따라 직진하면 곧 다시 <중터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만나 우회전하니
  그냥 직진하는게 더 좋다고 생각되니 참고하시고...



    ['중대마을 클린하우스']             9:14          
  마을길을 6분 가량 진행하면 <중대마을 클린하우스>라는 쓰레기장을 만나며
  우측 다리를 건너 가면...
    


    ['중터 버스정류장']           9:15         
  조금전 삼거리에서 직진해 오는 차도를 만나는데 <중터버스정류장>이 있더군요.
  
  여기서 앞에 보이는 <쑥고개>를 넘어 가야 하는데, 먼저 <평택-제천 고속도로 금광2터널>로 가면...
  


    ['쑥고개']              9:23        
  <평택-제천고속도로 금광2터널> 옆을 지나 <쑥고개>를 넘어 갑니다.
    


    ['세종-포천 고속도로 공사장']           9:31   
  제법 고개 다운 <쑥고개>를 넘어 가면 <세종-포천고속도로> 공사현장이 펼쳐지는데
  인터체인지를 만드는 곳이라 주변이 온통 공사판입니다.



    ['313번지방도 삼거리']             9:38       
  <쑥고개>에서 내려가면 <313번지방도>인 <배티로>를 만나는데 둘레길 이정표가 있습니다.
  
  여기서 <313번지방도>를 따라 좌측으로 진행하면 <석남사 입구>로 조금 빨리 갈수 있습니다만
  둘레길은 우측 <마둔호수>를 한바퀴 돌아 가라고 안내합니다.



    ['마둔호수 수변길']                   
  호수 수변길을 따라 가면...
 


    ['마둔호수' 입구] 

    ['마둔호수']             9:45           
  "마둔저수지 馬屯貯水池" 댐에 도착합니다.
  2015년 말에 완공한 농업용수 확보를 위한 저수지라고 합니다.
    
 

    ['마둔호수' 조망]                        
  <마둔호수>에서 잠시후 올라야 할 <금북정맥>이 지나는 <서운산>을 조망하고
  


    [수로]           9:48~10:02     (14분간 휴식)      
  댐 우측 수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나가서

 


    [수변길]                       
  수변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수렁]            10:12    
 호숫물에 잠겨있는 수변길을 만나는데 우측 산길을 이용하여 나가면...
  


    ['장죽리']           10:14     
  '안성시 금광면 장죽리'를 만나고
  

       
    ['홍매화']               
  홍매화가 허드러지게 핀 호솟가를 13분여 진행하면....
  


    ['석하리 대동마을']           10:27     
  <마둔호수>의 최상류에 도착하는데
    


    ['대동마을 입구 삼거리']           10:32         
  <포천-세종간 고속도로> 공사로 <313번지방도>도 새로 정비하느라 길이 이상해져 
  안내 리본도 없어진 <대동마을 입구> 삼거리에서선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물론 <313번지방도> 따라 진행해도 무방하지만 원래 길을 찾아 가면...
  


    [고속도로 공사장]             
  <313번지방도>에 갓길이 없어 위험해 돌린듯한 길을 찾아 가도 <세종고속도로> 공사장이어서
  불편함이 계속됩니다
  


    [공사판]             10:37     
  공사중인 고속도로 다리 밑을 지나면
  앞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야 하고
 


    ['양지버스정류장']             10:39  
  다리를 건너면 <양지버스정류장>이 있으며 둘레길은 우측 마을길로 안내 됩니다.
  물론 <313번지방도로>를 따라 직진하면 거리가 많이 단축됩니다만 위험합니다.




    ['중촌마을' 통과]              
  10여분 마을길을 진행하면 <중촌마을>이 나타나며
 


    ['중촌마을회관']           10:48~10:58         
  "중촌마을회관" 앞에 있는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열녀정문']         
  <중촌마을회관> 앞에는 "김해김씨 열녀정문"이 있고


  
    ['중촌마을' 통과]                      
  <중촌마을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상촌마을 삼거리']          11:08    
  조금전 헤어졌던 <313번지방도>를 다시 만나는 <상촌마을>에 도착합니다.



    ['상촌마을' 버스종점]           11:09     
  이어서 <100번 시내버스> 종점인 "상중리 상촌"을 지나는데
  12년전 <금북정맥>을 종주 할때 이곳을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의 사진을 보여드리면...
  


    ['상촌마을']           ★2012년 5월 11일 촬영 사진★          
  <금북정맥 두번째구간>의 출발점인 <배티고개>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와
  <배티고개>까지 걸어 올라 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년이 흘렀군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상촌마을>은 시골인데도 오히려 많이 발전했군요.



    ['석남사 입구']             11:12      
  <상촌마을 버스종점>에서 100m쯤 올라 가면 <석남사>로 가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법천사>라는 안내석이 있지만 <석남사>로도 가는 길 입구입니다.
  


    ['법천사' 입구]                 
  <법천사>는 우측으로 가고 <석남사>는 직진하여 1km를 가야 한다고 하는데, 
  5분여 올라 가면...
  


    ['서운산 자연휴양림']            11:17     
  그러면 "서운산자연휴양림" 갈림길을 만나고, 계속해서 12분 정도 도로를 따라 더 올라 가면...


         
    ['석남사' 앞]             11:29       
  <석남사> 앞에 도착합니다.
  둘레길은 좌측으로 바로 가지만 <석남사>를 둘러 보고 가야겠죠?




    ['석림사']                        
  "석남사 石南寺"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절이라 하며 보물이 하나 있다고 하니 보물 구경은 하고 가야겠죠?
  
  

    ['석남사 돌계단']                      
  <석남사>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하는것은 바로 이 돌계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 도깨비>의 촬영지 중에 한곳이 바로 이 돌계단이었답니다.
    
 


    ['영산전']                   
  "영산전 靈山殿 보물 제823호"
  <석남사>에 있는 보물은 바로 이 <영산전>이라고 하는군요.

 

    [조망]                
  <영산전>에서 돌계단을 조망하며 내려 가서 우측으로 나가면...
  


    [영화촬영지]           11:42      
  <서운산 등산로> 입구에 <영화 도깨비 촬영지>였다는 안내판이 서있고
  


    [등산로 입구]            11:43      
  먼지털이기가 있는 등산로 입구를 통과해 조금 올라 가면
  

       
    [갈림길]             11:45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길로 안내됩니다.
  


    [등산안내도]               
  <서운산 등산로>는 계곡길과 능선길이 있는데, <경기둘레길>은 우측 능선길을 이용하는군요.
    


    ['서운산 야생화 꽃길']                  
  <경기둘레길>은 <서운산 능선>에 있는 "서운산 야생화 꽃길"로 이어지는데
  아직 야생화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름길]                  
  완만한 임도를 2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          12:05       
  삼거리 갈림길을 만나는데 우측으로 안내되며, 정상까지 "1.7km" 남았다고 알려 줍니다.
 



    [오름길]                     
  임도는 점점 좁아지는데 13분 정도 올라 가면...



    [등산로]           12:18    
  이런 갈림길을 만나는데, 우측 신설된 등산로는 무시하고, 좌측 좀 편한길로 가는게 좋더군요.
  4분여 조금 더 올라 가면....
 


    [능선 삼거리]            12:22~12:35          
  쉼터가 있는 능선 삼거리를 만납니다.
  정상까지 800m 남았다고 알려 줍니다.
  



    [오름길]                       
  능선삼거리 쉼터부터는 길은 좁아지며 경사가 조금 있습니다. 15분 정도 올라 갑니다.
  그리고 고도가 높아지니 이곳은 이제서야 진달래가 활짝피기 시작하는군요.




    ['서운산 정상부']                        
  해발 547m인 <서운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가 보이고




    ['서운산 전망대']           12:51      
  <서운산 전망대>에 12년만에 다시 올랐습니다.
  그때는 <금북정맥>을 종주하며 <배티고개>에서 올랐습니다만 
  이번엔 <경기둘레길>을 하며 <석남사>에서 올랐습니다.



    ['안성시내'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안성시내>가 조망됩니다만 연무로 시원하지가 못하군요.
  
  "안성 安城"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
  "안성맞춤"은 안다구요? ㅎ

  "안성"은 "이상세계를 기다리는 소박한 백성들의 숨결이 있는 곳"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서 '허생'이 장보기를 나선 곳이 안성이죠,
  '홍명희'의 역사소설 '임꺽정'의 사연이 깃든 곳이기도 합니다.
  "바우덕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중인기예술가가 "남사당패"를 일군 곳이고
  또한 서민들의 인기스타 도둑놈 "장길산"의 무대가 안성이니 이야기 꺼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제일 알려진 것은 <방짜 유기 놋그릇>으로 주문제작하는 "안성맞춤"입니다.
  


    [정상석]                 
  "서운산 瑞雲山"은 "안성의 진산'입니다.
  상서러운 구름을 뚫고 청룡이 솟아 오른다는 지명의 유래가 있습니다.
  
  <서운산>의 최고봉은 좌측 앞에 보이는 봉우리로서 <금북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곳입니다.
  최고봉이 아닌 이곳에 정상석을 세운 이유는 아마도 <안성시내> 조망이 좋고 쉽터를 조성하기
  쉬워서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경우는 전국에 비일비재합니다.
  


    ['서운산 정상 쉼터']            12:56      
  정상 쉼터에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뚜엣도 있는데 가수 지망생인듯....
  <안성의 진산>이고 유명한 산이여서 봄날을 맞아 산객들이 많군요.



    ['금북정맥 마루금']              
  아주 짧은 구간이지만 <금북정맥 마루금>을 따라 100m쯤 진행하면....
    


    ['금북정맥' 갈림길]         12:58        
  <금북정맥>과 헤어지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대방.안성8광님>이 설치한 <금북정맥안내판>은 지금도 있는데, 12년 전에는 노란색이었고
  지금은 주황색으로 바뀌었군요. 걸려 있는 위치도 바뀌었는데 새로 설치한듯한데 
  <대방.안성8광님>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건강하신지....
  
  <경기둘레길>은 우측으로 내려 갑니다.
  


    ['헬기장']              12:59        
  그러면 헬기장을 만나는데 힐기장에서 조망을 하면...



    ['청룡저수지'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41코스 종점>인 <청룡저수지>가 조망되며 <금북정맥> 산줄기가 파도를 치며 <태안반도>로 향합니다
  이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되며 설명이 첨부되 있으니 꼭 클릭 해 보세요~~
  


    ['탕흉대' 갈림길]             1:02            
  <헬기장>에서 조금 내려 가면 <탕흉대 갈림길>을 만나는데 <은적암> 방향으로 직진해야 하고




    ['은적암' 갈림길]             1:11    
  <탕흉대 갈림길>에서 매우 가파른 내림길을 10여분 내려 가면 사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선 좌측 <은적암> 방향으로 내려 갑니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여기서 알바를 많이 했더군요.
  


    [급경사 내리막]                  
  급경사 내리막을 10여분 내려 가면....
  


    ['은적암 관음전']             1:22    
  "은적암 隱寂庵"을 만나는데 절간치고는 독특한 형태의 <관음전>이 눈길을 끕니다.
  <청룡사>의 부속 암자라고 합니다.


         
    ['은적암' 앞마당]              
  <은적암> 앞마당엔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차량이 이곳까지 운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내림길]                        
  비포장도로도 제법 급경사였습니다.
  13분 정도 내려 가면....
  
  

    [쉼터]            1:35          
  길은 안정되며 돌탑이 있는 쉼터를 지나고
    
 

    [삼거리]             1:41    
  이어서 삼거리를 만나는데, 다음 <42코스>에서 <좌성사>로 올라 가는 길과 만나는 곳이더군요.

 
  
    [내림길]                 
  비포장도로를 7분여 내려 가면...
  


    [등산로 들날머리]            1:48   
  먼지털이기가 있는 등산로 들날머리를 만나고
  이어서 <청룡사 후문>을 만나 <청룡사>로 들어 갑니다.
  



    ['청룡사']                    
  특별한 볼거리는 없는 <청룡사> 내부를 휭하니 돌아 보고 정문으로 나가면...
  


    ['청룡사 정문']

    ['안내문']                    
  <청룡사>에 대한 안내문이 있고
  


    ['청룡사' 앞길]               
  <청룡사> 정문을 통과하여 조금 내려 가면...
    



    ['청룡사 사적비']            1:55      
  "청룡사 사적비"가 있는 <불당골 로터리>에 도착하여 <41코스>를 마침니다.
  이곳엔 제법 많은 음식점들과 노점상들이 있어 유명 관광지라는 걸 알수 있습니다.
  


    ['불당골']                   
  버스 시간도 여유가 있어 <불당골>에 있는 <바우덕이 사당>을 다녀 오도록 합니다.
  <청룡사 사적비>가 있는 로타리에서 동쪽으로 조금 올라 가면...
  


    ['청룡사 부도']           1:58      
  <청룡사> 스님들의 무덤인 부도를 만나고...
 


    ['바우덕이 마을 다목적회관']               
  이어서 "바우덕이 마을 다목적회관"을 만나는데 뒤에 <바우덕이 사당>이 보입니다.



    ['바우덕이 사당 입구']           2:02         
  <바우덕이 사당>으로 올라 가는 입구입니다.
    



    ['바우덕이 사당']                     
  "바우덕이-金岩德 1848~1870"
  남존여비의 조선시대에서 여성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남사당패 총대장인 "꼭두쇠"였는데
  미모는 말할것도 없고, 노래 춤 기예가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뛰어 난 당대의 최고 예술가여서,
  <경복궁>을 중수하던 노동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대원군>의 부름을 받고 <경복궁>에서 공연을 해
  <바우덕이>가 이끄는 "안성 남사당패"는 <대원군>으로부터 정3품 이상의 벼슬아치들에게만
  하사하는 "옥관자"를 하사 받았으니 천민으로선 엄청난 사회적 이슈였답니다.
  요즘말로 하자면 "국가가 실제로 인정한 최고의 국민 아이돌 가수및 예술단"이였답니다. 
  <바우덕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 였다고 하며, 다른 지역에 공연을 나가면
  타 지역 남사당패들이 나와 무릎을 꿇고 <정3품 당상관>을 대하는 존경의 절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대중 인기연예인이 탄생한것이니, <바우덕이>가 요즘에 태어 났다면
  아마도 <소녀시대> 정도는 발 아래 깔고 <블랙핑크> 이상의 인기를 누렸을거라 생각 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는 꽃다운 나이 스무세살에 폐병으로 요절하고 맙니다. 오호 통재라~
  


    ['바우덕이']        
    "바우덕이-金岩德"
  "바우덕이" 이야기 중에 이곳 "청룡사"와 관련되는 마음을 적시는 이야기 하나 더 언급하면,
  "바우덕이"는 폐병에 걸려 병마와 싸울 때에 자신의 병이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질까봐
  이곳 "청룡사" 절간에 스물한살에 들어와 홀로 지내다 스물세살 꽃다운 나이에 떠났답니다.
  남을 배려 할줄도 아는 참여성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요즘 같으면 폐병은 병도 아닌데 시대를 잘못 만나서....
  
  그 미모, 그 화려한 기예, 노래, 춤...<대원군>과 <고종>이 탄복하며 "정3품"이라는 벼슬에 해당하는
  지위를 하사했으니 그야말로 "국민 아이돌 가수, 국민예술인"의 始祖였습니다.
  6살에 <안성 남사당패>에 들어와,
  15살에 <안성 남사당패> 단원들의 만장일치로 여성 최초의 "꼭두쇠"가 되고
  우리나라 최초의 최고 국민 스타로 6년여를 활동하다 너무 일찍 떠난 비운의 소녀
  
  <안성시>는 <바우덕이>를 기리는 기념관과 공연장을 엄청 크게 건설하여 주말마다 공연하고
  있는데,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분들을 위해 특별히 <안성남사당패 공연장> 앞에 있는
  "바우덕이 동상" 사진도 보여 드림니다.
  
['바우덕이'] (2012년에 촬영한 사진) <안성맞춤랜드>에 있는 대규모 공연장인 <안성 남사당 공연장> 앞에 있는 <바우덕이 동상>입니다.
['바우덕이 묘'] (2012년에 촬영한 사진) 그리고 여기서 가까운 <청룡저수지 댐> 우측 양지 바른 곳에서 못다한 삶을 아쉬워 하고 있습니다. <바우덕이>가 이끄는 <안성 남사당패>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전국 공연투어를 하고 겨울엔 이곳 <불당골>에서 쉬며 기예를 더욱 닦고 익히며 보냈다고 합니다.
['청룡사 버스종점'] 2:10~2:30 <청룡사 버스종점>에서 2시30분에 출발하는 <20번 시내버스>를 타고 <안성 시민회관> 앞에서 내려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8201번 광역버스>를 3시7분경에 환승하여 분당으로 귀가했습니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16.5km였으며, 5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부록> "금북정맥 두번째구간 산행기"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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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둘레길』
     『안성40코스』
      칠장사에서 칠현산을 넘어 금광호수로
          칠장사-3정맥분기점-부부탑-칠현산-공림정상-곰내미고개-덕성산-
          사흥리갈림길-사간마을-석암마을-박두진문학길-수석정-하록동


    ['안성40코스 안내도']                  

    [실트랙 지도]           
  "경기둘레길 안성40코스""칠장사"에서 "칠현산-덕성산"을 오르고
  "금광호수 박두진문학길"을 따라 "수석정"까지 가는 "14km" 거리라고 알려 줍니다.
  
        

    ['이천역']             7:45          
    2024년 3월 31일 일요일   맑음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이천역>에 내렸습니다.
  <죽산터미널>을 가는 시내버스는 <26-1번>이며 <이천터미널>에서 7시40분에 출발하여 
  이곳 <이천역>에 약15분이 걸려 7시55분경에 도착하더군요. 이제까지 여러번 이용해서 익숙합니다.



    ['죽산버스터미널']               
  <이천역>에서 약45분이 걸려 <죽산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습니다.
  <칠장사> 가는 <3-2번시내버스>는 9시30분에 있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기에 버스환승요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게 좀 그렇군요.
  근처에 있는 떡집에서 점심겸 간식용으로 떡 한팩 사고...
  


    ['칠장사']            9:45       
  <죽산터미널>에서 약15분이 걸려 <칠장사> 앞에 도착합니다.
  지금까지 이곳에 7~8번은 온듯 하군요.
  <스탬프함>과 안내도는 일주문 우측에 있습니다.
 


    ['40코스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안내도를 참고하고 올라 가면...




    ['칠장사']                   
  "칠장사 七長寺"를 만납니다.
  이 절은 여러 역사적 사연을 품고 있는 유명한 절이라 제가 여러번 이미 산행기에서 언급 한바 있습니다만
  핵심 포인트만 정리를 하면...
  
   1. <선조>의 유일한 적자인 <인목대비>의 아들 "영창대군"과 그녀의 아버지 "김계남"의
      원찰이 되는 유서 깊은 사찰이며
   2. <신라>의 왕자였던 "궁예"가 한쪽 눈이 찔려 실명하며 죽음 일보 직전에 도피하여 열살까지 살며
      활쏘기 등 무예를 단련하며 풍운의 꿈을 꾸던 곳이고
   3. "임꺽정"이 스승 "병해대사 (갖바치)"를 찾아 결의를 다진 곳이며
   4. "암행어사 박문수"가 과거 보러 가던 중 이곳에서 현몽을 꾸고 장원급제 했다는 곳입니다.
   5. 특히 고려시대 <혜소국사>와 <일곱 도적들> 이야기가 유명하고
   6. 한개의 국보와 세개의 보물이 있는 절입니다.
   7. 지난해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스님>이 분신 자살한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 하나 자료를 보며 알아 보겠습니다.
  

  
    ['국보 오불회괘불탱화']                            ['보물 인목왕후어필칠언시']
  "국보 제296호 오불회괘불탱화"
  국내에서 세번째로 오래된 것으로써 조선 인조 6년(1628, 승정원년) "범형비구니"에 의해 그려진 
  군집도 형식의 불화랍니다. 

  조선 최악의 군주 중에 한명인 <선조>는 친아들이 없어 왕위 계승을 무척 어렵게 했죠.
  <인목대비>는 <선조>가 51세 때 19살로 왕비가 되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왕자를 생산 했는데
  <선조>는 이미 세자로 책봉되었던 <광해군>을 <영창대군>으로 교체하고 싶었지만 못하고 죽었습니다.
  <인목왕후>의 등장으로 졸지에 아들이 된 <광해군>은 새엄마가 된 <인목왕후>보다 나이가 9살이나 
  더 많았으니 이 집구석의 상황은 콩가루 집안이 되었고, 권력암투가 극으로 치달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광해군>이 <영창대군>과 <인목왕후>의 아버지 실세 <김계남>을 처형하며
  <광해군>과 <인목왕후>의 권력싸움은 <광해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어지는 <인조반정>으로 <인목대비>가 된 <인목왕후>는 <광해군>을 몰아 내며 복수를 했죠.
  
  그리하여 <영창대군 무덤>에서 가까운 이곳 <칠장사>를 원찰로 삼고 대대적으로 개보수하고 
  처형 당한 자기 아들 <영창대군>과 자기 아버지 <김계남>을 기리기 위해 탱화를 하사하였는데
  <광해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자기 아들 "영창대군"의 극락환생을 비는 의미의  탱화라고 합니다.
  
  "보물 제1627호 인목왕후 친필 칠언시 족자"
  <인목대비>는 글도 무지 잘 썻다고 하는데 친히 써서 하사한 족자의 내용을 번역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늙은 소 힘쓴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목덜미 쭈그러들고 가죽은 헤져서 졸립기만 하고,
      쟁기질 다 끝나고 봄비 또한 넉넉한데, 주인은 어찌하여 또 채찍을 든단 말인가?"
         
  이 한시(漢詩)는 늙은 소의 고달픔과 그것을 바라보는 주인의 애처로운 마음을 자신의 처지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칠장사 경내']            
  "칠장사" 경내를 둘러 보고 올라 갑니다.
  '칠장사'가 위치한 '칠현산'은 원래 '아미산'이었답니다.
  고려시대 <혜소국사(972~1054)>가 이 산 아래 아라야를 짓고 수도처로 삼고 있었는데, 
  어느 하루는 도적떼 7명이 찾아와 <혜소국사>와 마주 앉아 협박을 했답니다.
  그러나 이들이 <혜소국사>의 신묘한 도력에 이끌리어 설법을 듣게 되었고 
  설법을 들은 나쁜 놈들은 교화되어 일곱명의 현인이 되어
  산 이름을 '아미산'에서 '칠현산(七賢山)'으로 고쳐부르고, 
  '칠장사(漆長寺)'도 현인들이 오래토록 이곳에 머물렀다고 '七長寺'로 개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궁예'의 활쏘기] <칠장사 명부전>에는 그림이 한폭 걸려 있는데 <신라>에서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어린 <궁예>가 이곳으로 숨어 들어 10살까지 성장하며 활쏘기등 무예를 익힌 곳이란걸 그려 놨습니다. <궁예 弓裔>의 뜻이 "활의 후예"라는 뜻이죠. ['임꺽정'과 '갖바치'] 또한 <칠장사 명부전>에는 <임꺽정>에 대한 그림도 걸려 있습니다. <임꺽정>이 자신의 스승인 "병해대사(갖바치스님)"를 만나 <이봉학>등과 의형제를 맺은 곳이라죠. <갖바치>는 이곳에 머물면서 주민들에게 '가죽신 깁는 법'을 가르쳐 '가죽신'이 '안성유기'와 더불어 '안성 특산물'이 되기도 하였답니다. 또한 "복조리"를 만들어 파는 곳이기도 하죠. ['임꺽정'이 봉안한 '병해대사 불상'] <칠장사 명부전>에는 <임꺽정>이 자신의 스승인 <병해대사(갖바치스님)"을 기리는 불상을 만들어 봉안 했다고 하는 불상입니다. <임꺽정>이 난을 일으켰을 때 관군을 피해 숨어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고...
['박문수 합격다리'와 '나한전'] 9:53 <칠장사> 경내에서 조금 올라 가면 "박문수 합격다리""나한전"을 만납니다. <나한전>은 새로 멋지게 지었군요. 전에는 초라했는데 시주가 많이 들어 온듯...ㅎ <박문수>는 <유관순>의 고향인 <병천>이어서 <한양>으로 과거보러 갈때 이곳을 들려 갔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잠시후에.... ['혜소국사비각'과 '자승 분신지'] <나한전> 우측에는 "혜소국사비각"이 있는데 뒤에는 전<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자승스님"이 분신 자살했다는 요사체가 있던 곳입니다. 화재 흔적은 없어지고 맑끔하게 정리되 있군요. 지난 2023년 11월 29일에 "자승스님"이 요사체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분신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스님도 자살하나? 왜??.. 스님 분신 자살 수사를 이상하게도 <국정원>이 한다고 떠들석 했죠?..왜? 의문이 많았지만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혜소국사비'] "보물 제488호 혜소국사비" <혜소국사( 慧昭國師, 972-1054)>를 추모하기 위해 <고려 문종> 때에 세운 비라고 합니다. <혜소국사>는 <고려 문종> 때에 왕의 멘토였던 인물로서 <안성> 출신이라고... ['산신각' 방향] 예전엔 <칠현산>이나 <칠장산> 등산로는 이 길로 올라 갔는데 <박문수둘레길>이 만들어 지면서 좌측으로 빙 둘러 가게 했더군요. 앞에 <둘레길>이라고 표기 한곳에서 등산로와 <둘레길>이 만나기에 바로 올라 가도 무방하겠습니다. ['박문수합격다리'] 9:57 ['박문수둘레길'] <혜소국사비>를 둘러 보고 다시 <박문수 합격다리>로 돌아 와 둘레길을 10여분 돌아 갑니다. ['박문수 합격다리' 안내문] "박문수"는 이곳 아랫 동네인 '병천'이 고향입니다. 유관순 누나랑 같은 고향이죠. 그리고 '박문수'라고 하면 암행어사로만 거의 알려져 있죠? 사실 박문수는 암행어사를 6개월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경상도 관찰사' '도승지' '병조판서' '어영대장' '호조판서' '예조판서' '한성판윤(서울시장)'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특히 왕세손의 가정교사(世孫師傅)까지 했습니다. 박문수는 과거시험의 문과에 장원급제를 하고, 지금으로 말하자면 '공인회계사'같은 회계 경리 업무에 밝은 그런 관리였습니다. 세간에 들어 나지 않은 경제 치세에 더욱 공이 큰 경제통 관리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암행어사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신 분은 부록에 첨부된 제가 쓴 "[은석산] 암행어사 박문수 묘 산행기"를 참고 하세요. [갈림길] 10:05 <박문수 합격다리>에서 둘레길을 10여분 돌아 가면 <칠장사 등산로> 갈림길을 만나는데 ['칠장사' 조망] <둘레길 갈림길>에서 <산신각>과 <혜소국사비각>을 바라보고 [오름길] <경기둘레길 안성40코스>에선 제일 가파른 오름길을 20여분 올라 갑니다. ['칠장사 갈림길'] 10:25 그러면 이정표가 있는 "칠장사 갈림길"을 만나는데 "금북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곳입니다. <경기둘레길>은 좌측으로 안내 됩니다만... ['3정맥분기점' 조망] 우측에 있는 <3정맥 분기점봉>을 다녀 오도록 합니다. 오랜만에 왔으니..... [오름길] 5분 정도 올라 가면... [갈림길] 10:31 갈림길을 만나는데 우측으로 40m 올라 갑니다. ['3정맥분기점'] 10:32 "3정맥 분기점" <백두대간 속리산 천왕봉>에서 분기하여 오는 <한남금북정맥>이 이곳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나뉘는 곳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제가 두 발로 쓴 산행기를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칠장사 갈림길'] 10:38 <3정맥분기점>에서 <금북정맥 마루금>을 따라 다시 <칠장사갈림길>로 돌아와 [오름길] <경기둘레길>과 <금북정맥 마루금>이 함께 가는 능선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쉼터'] 10:49 쉼터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예전엔 없던 <몽중등과시>가 세워져 있군요. ['몽중등과시'] "몽중등과시 夢中登科詩" "칠장사 나한전"과 '박문수'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내용은 간단합니다. '박문수'가 고향인 '병천'에서 한양으로 과거시험 보러 갈때 여기 '칠장사 나한전'에 들려 합격기원 기도를 하고 가서 장원급제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입시철만 되면 학부형들이 개나 소나 몰려와 기도를 드린다는거 아닙니까. '박문수'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조청유과를 부처님께 올리고 그날 밤을 '칠장사'에 머물렀는데 꿈에 과거시험문제를 현몽하였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장원급제 할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과거시험 답안지가 바로 "夢中登科詩"랍니다. 그렇다면 만민에게 평등해야할 부처님이 '조청유과'라는 뇌물울 받고 시험문제를 사전에 알려 줬다는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박문수>는 일종의 컨닝을 한거 아닌가요? 그러니 부처님은 시험문제 사전유출죄와 뇌물 수수죄를 지은건 아닌가요? 종교!!~ 이거 어디까지가 이율배반인가? 합격하는 사람이 있으면 불합격하는 사람이 있는 법인데 자기 아들만 합격되게 해 달라는 이기주의를 교묘하게 돈벌이용으로 <박문수>를 팔아 먹고 있는 <칠장사>라고 생각되지는 않나요? ㅎㅎ 다른 종교가 다 그렇지만.... ['금북정맥 마루금'] <몽중등과시>가 있는 봉우리에서 10여분 진행하면.... ['440.3m봉'] 10:59 폐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440.3m봉>이라는 안내판이 있고 ['칠현산' 조망] <칠현산>을 바라보며 잠시 내려 가면... ['부부탑'] 11:04 "부부탑"이라는 비석이 세워진 돌무덤을 만납니다. 비석 앞면엔 "칠순비 부부탑"이라고 쓰여 있으며 뒷면은 촬영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간신히 촬영 했습니다. 뒷면엔 "김성기 임경순, 광해원 중고개 2002년"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칠순 때가 2002년이니, 현재 92세 정도 되겠고, 요즘 장수하니까 아직 살아 있을듯 하군요. ['인성베네스트CC'] 우측에는 골프장이 보이는데 예전엔 <세븐힐스>였는데 <안성베네스트>로 이름이 바뀌었군요. [오름길] <부부탑>이 있는 <중고개>에서 30여분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진행하면... ['칠현산 정상'] 11:33 "칠현산 七賢山 516.2m" 정상에 도착합니다. 산객들을 여럿 만날수 있었습니다. 예전의 모습과는 달라서 ['칠현산 정상'] (2012년 5월 3일 촬영 사진) 참고로 12년 전에 촬영한 사진을 보여드림니다. 예전엔 돌탑이 세개였는데... ['덕성산' 조망] <칠현산 정상>에서 <덕성산>을 조망하면서 10여분 진행하면... ['곰림정상'] 11:45 "공림정상"이라고 하는 "514.1m봉에 도착하는데 <곰림정상>을 잘 못 표기한게 틀림없습니다. ['덕성산' 조망] <곰림정상>에서 <덕성산>을 바라보며 15분 정도 진행하면... ['곰내미고개'] 12:01 "곰내미고개"를 지나고 ['덕성산 정자' 조망] 12:12 <덕성산>의 정자가 보이기 시작하며 ['덕성산' 갈림길] 12:19 "덕성산 갈림길"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충북 진천군>과 <경기 안성시>의 경계가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천군>에서 세운 이정표와 <안성시>가 세운 이정표 두개가 서로 마주보며 있습니다. <덕성산 정상>은 여기서 좌측으로 100m 떨어져 있는데 갔다가 돌아 오도록 합니다. ['덕성산 정상' 가는 길] 갈림길에서 <덕성산 정상>은 매우 가깝습니다.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를 <덕성산 정상>으로 표기 하고 있는데.... ['덕성산'] 12:23~12:55 휴식 "덕성산 德城山 510m"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의 경계가 되는 산입니다. 옛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기도 했다는 "덕성산"이라 山城의 흔적도 발견된다는 군요. ['덕성산 등산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덕성산 등산안내도>에 "병무관"이라는 지명이 보이는데, "병무관"은 이 산 아래 '광혜원면'에는 옛 신라시대 화랑들이 훈련하던 연무대와 무기를 보관하는 병기고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김유신장군>의 아버지가 <진천 현감>이어서 <김유신>은 <진천>에서 태어나 무술을 익혔답니다. ['칠현산' 조망] <덕성산 정상>에서 지나온 <칠현산>을 뒤돌아 보고 ['광해원' 조망] 동쪽으로 <진천군 광혜원면>이 펼쳐집니다. 바로 아래에 <국가대표 진천 선수촌>이 있습니다. ['덕성산 갈림길' 회귀] 12:58 <덕성산 갈림길>로 다시 돌아 와 100m쯤 진행하면.... ['사흥리' 갈림길] 1:01 ★길조심★ <경기둘레길>이 <금북정맥 마루금>과 헤어지는 "사흥리 갈림길"을 만나 우회전 해야 하더군요. [능능선 내림길] 갈림길에서 좁은 능선길을 20여분 내려 가면.... [벌목지] 1:21 벌목지를 만나는데 직진해서 아랫쪽에 보이는 임도로 내려 가야 합니다 [내림길] 1:36 15분여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가면 임도를 만나서 우회전 합니다. ['칠현산' 조망] 지나온 <칠현산>과 <곰내미고개>가 조망되고 [내림길] 10여분 임도를 진행하면 [별장] 1:46 누군가 주말에 고기 구워 먹으로 오는 듯한 조그만 별장을 만나고 ['사흥리'] 1:50 이어서 <안성시 금광면 사흥리>를 만납니다. [사간마을' 통과] 2:09 <사흥리 사간마을>로 내려 가면 "금냉이교"를 건너는데 [마을 詩] <사간마을>을 추억하는 詩 한수가 눈길을 끌더군요. ['석암마을' 가는 길] <사간마을>에서 15분 정도 진행하면... ['석암마을회관'] 2:24 "석암마을회관"에 도착하는데 이곳 버스정류장에서 물 한잔 마시며 좀 쉬어 갑니다. ['금광초 조령분교'] 2:33 이어서 "금광초등학교 조령분교"를 만나고 ['사흥교'] ['사흥길'] <사흥길>을 따라 7분여 나가면.... ['사흥리' 입구] 2:41 <사흥리 입구 삼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선 <금광호수>방향으로 좌회전 하라고 안내합니다. ['금광저수지'] 지금부터 <금광저수지>가 보이기 시작하며 ['오흥로'] <금광면 오흥리>로 들어 갑니다. <사흥리 四興里> 다음은 <오흥리 五興里>더군요, 30여분 지루한 발길을 옮기면.... ['박두진 문학길'] 3:10 "박두진 문학길"이 있는 "청록뜰 금광호수"를 만나는데 <박두진 시인 동상>이 우측 돌담 안에 보입니다. 그런데 공사 중이어서 들어 갈수는 없더군요. ['박두진 동상'] "박두진 시인" <청록파 시인> 세분 <박목월><조지훈><박두진> 중에 한분인 <박두진 시인>. <조지훈 선생>은 "민족"에 촛점을 맞추고, <박목월선생>은 "일상"에 비중을 두었다는데 <박두진 선생>은 "기독교"에서 궁극적인 삶의 가치를 찾은 분이죠. 일제강점기 시대 문인들은 대부분 단명했는데 <박두진 선생>은 82세까지 사셔서 장수하신걸로도 유명한데 <이화여대-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셨죠. <청록파>의 시가 유명세를 탄 이유는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는 시점에 좌우 이념논쟁으로 나라가 완전 혼탁해 졌을 때에도 이들은 순수 서정시만을 발표 함으로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답니다. ['빅두진문학길'] <박두진 시인>의 생가는 여기서 먼 <안성맞춤랜드> 근처이지만 <금광저수지>를 관광지로 만들면서 이곳에 "박두진 문학길"이라는 테마 산책로를 만들고 있더군요 [고개 입구] 3:15 <박두진 문학길>과 <경기둘레길>은 현재 공사 중으로 지름길인 고개로 안내됩니다. [고개] 10여분 고개를 하나 넘어 가면.... ['금광호수'] 3:27 <금광저수지> 남쪽으로 가게 되는데 건너편에 다음 코스에서 진행할 <중대마을>이 보이며 <제천-평택 고속도로>도 조망됩니다. ['강 건너 빼리'] 3:28 봄맞이 상춘객들이 제법 많은 <강건너 빼리>라는 매운탕 음식점이 있습니다. <허영만의 식객>에 나온 음식점이라는군요. ['수변데크'] 15분 가량 수변데크길이 이어지는데 <박두진시인>의 詩가 곳곳에 걸려 있습니다. <박두진 시인>의 詩는 주로 "해"만 기억 되지만, 대표시 중에는 "설악부"도 유명합니다. "해"는 '1980년MBC대학가요제'에서 "해야"라는 노래로 은상을 받아 지금까지도 불려지고 있습니다. ['수석정' 조망] <경기둘레길 40코스 종점>인 <수석정>이 보이고 버스정류장이 있는 <하록동>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수석정'] 3:43 <경기둘레길 40코스>와 <41코스>의 시종점입니다. <스탬프함>과 안내도가 있는데... ['41코스 안내도'] ★산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다음에 진행할 <41코스 안내도>를 참고하고 ['하록동' 가는 길] <하록동>으로 나가면... ['대문교'] 3:48 <옥정천>이 흐르는 <대문교>에 도착해서 ['수석정' 조망] 지나온 <수석정> 방향을 뒤돌아 보고 ['하록동' 버스정류장] 3:50 {버스시간표] <안성>으로 가는 <2번 시내버스>는 종점인 <연내동>에서 4시30분에 출발하여 이곳까지 약5분이 걸려 4시35분경에 도착하더군요. 45분을 기다려 <2번버스>를 타고 <안성>으로 가서 다시 <안성종합터미널>로 환승하여 5시50분에 출발하는 <8203번 광역버스>를 이용해 <이천역>으로 가서 <경강선>을 타고 귀가했습니다. 버스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평택 이용 추천) ['구글어스'] [고도표] 오늘은 <하록동>에서 버스시간이 넉넉하여 <3정맥분기점>을 왕복하며 천천히 진행했습니다. 걸은 거리는 16km였으며 약6시간이 걸렸습니다. <부록> 1. "[은석산] 암행어사 박문수 묘 산행기" 2. [금북정맥] 첫구간 산행기"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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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봉화길』
       『제9길 설성산길』
        "옛 陰竹縣의 도읍지를 가다" 
      
           설성면사무소-성호저수지-설성산-설성산성-선읍리-설성천-청미천-장호원교
['9코스 설성산길' 안내도] "경기옛길-봉화길 제9길 설성산길"의 공식 안내도입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경기옛길-봉화길 제9코스""설성면사무소"에서 "성호저수지"를 돌아 보고 "설성산"을 오르고 "장호원교"까지 "16km"를 가는 코스입니다. ['이천역'] 10:25 2024년 3월 16일 토요일 맑음 연무 <분당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이천역 1번출구"로 나가 다시 버스를 타고 "설성면 금당리"로 가기 위해서, 시내버스 시간표를 참고하는데.... <이천역>에 있는 <25번 시내버스>의 시간표는 <이천버스터미널> 출발 시간표더군요. <이천버스터미널>에서 이곳 <이천역>까지는 약15분 정도 걸린다는 것을 참고해야 하더군요. 저는 터미널에서 10:10에 출발하는 버스를 이곳 <이천역>에서 10:27분에 타고 갑니다. ['설성면행정복지센터' 앞] 11:10 <이천역>에서 약43분이 걸려 "금당리-설성면행정복지센터"에 도착하여 답사를 시작합니다. ['금당리' 통과] 면사무소 우측 골목으로 <금당리> 마을을 7분여 진행하면.... ['장능1리'] 11:17 "장능1리"입구를 만나 좌측 임도로 진행하고 ['성호저수지' 조망] 11:20 이어서 바로 지난 <8코스>에서도 만났던 "성호저수지"와 잠시후 올라야 할 "설성산"이 연무 속에 나타나며.... ['장능리' 임도] <금당리>와 <장능리>를 분리하는 임도를 따라 8분정도 진행하면.... ['성호저수지' 앞] 11:28 <성호저수지>에 도착합니다. ['성호저수지'] 주말을 맞아 낚시꾼들이 저수지를 빙 돌아 가며 저마다의 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열혈 낚시꾼>을 <강태공>이라 부르지요.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냥 하는 말인데 실제 중국 <강태공>은 소를 도살하는 백정도 했으며, 중국 역사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친 병법가이며 제상이었는데, 후에 <제나라>의 시조가 되어 춘추전국시대의 큰 역사인물이 되었죠. 그가 쓴 병법서 <육도>의 끝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이 지금까지도 명언으로 남아 있는데 "天下非一人之天下, 乃天下人之天下也. 同天下之利者則得天下"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천하니 천하와 이익을 함께 하는 자만이 천하를 얻을 수 있다." ['성호교'] 11:34 <성호저수지> 댐으로 내려 가면 <성호교>라는 다리가 있는데 다리를 건너 바로 우측으로 가야하며 <설성산>과 <우주위성전파감시센터>의 "우주위성안테나"가 있는 곳으로 진행합니다. ['신필리' 통과] '이천시 설성면 신필리' 들판길을 25분여 진행하면..... ['신필2리 마을회관'] 11:50 "신필2리 마을회관"을 만나고 ['설성산'과 '위성전파감시센터'] 다시 8분 정도 더 진행하면... [등산로 입구] 11:58 자동차 도로를 만나는데, <설성산 등산로> 입구가 있는 곳입니다. 우측엔 "위성전파감시센터"가 있습니다. ['설성산' 등산로 들날머리] 앞으로도 12km를 더 가야 한다는 안내판이 있는 등산로 입구로 들어 가서 [오름길] 비교적 완만한 오름길을 30분 정도 올라 가면 ['설성산 정상부'] 12:24 <설성산 정상부>가 보이기 시작하고 ['설성산 정상'] 12:28~12:39 "설성산 雪城山 290.6m" 정상에 도착합니다. 정상석엔 "280m 높이"라고 합니다만 국토지리원 지도와 각종 지도에는 모두 "290.6m"라고 표기되 있고 정상엔 정자가 있는데 <설성산정>이라는 현판과 <봉화정 烽火亭>이라는 현판이 두개가 있더군요. 옛날엔 봉화대도 있었나 봅니다. ['국립전파시험인증센터' 조망] 북서쪽이 조망되는데, "국립전파시험인증센터"가 보이는데, 뒤엔 <독조지맥> 산줄기가 보입니다. ['장호원' 방향 조망] 연무가 심해 <장호원> 방향으로는 오리무중.....아쉽군요. [내림길] 정상에서 10여분 쉬고,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잠시 내려 가면... ['신흥사' 조망] <신흥사>가 보이기 시작하고 ['신흥사'] 12:47 "신흥사"에 도착하는데 수많은 절간 중에 하나라고 여겨져 그냥 패스... ['관세음보살'] <신흥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제법 날씬한 <관세음보살>을 입니다. [내림길] <신흥사>부터는 포장도로가 이어지는데 조금 내려 가면.... ['설성산성'] 12:50 "설성산성 雪城山城"을 만나는데 이곳은 <동문 東門>이 있었던 곳이라고.... [내림길] <동문>에서 내림길을 7분여 더 내려 가면... ['스탬프함'과 '석불입상'] 12:57 <스탬프함>과 <석불입상>이 있는 곳을 만나는데 ['음죽군 읍치 이야기'] 이 지역이 옛날 <음죽현 陰竹縣(音竹縣)>의 도읍지 였다는 안내판이 있는데 새로운 내용이 있어 요약하면 1. <장호원 長湖院>은 원래 <장해원 長海院>이라는 "역원 驛院"이 있었던 곳이고 2. <청미천 淸渼川>은 원래 <천민천 天民川>이었는데 <천미천 天尾川>으로 변하고 다시 <淸渼川>이 되었다고... ['선읍리 석불입상'] . 안내문을 참고하고 ['선읍리' 조망] "선읍리 善邑里"를 조망하며 내려 가는데, 옛날엔 <음죽현 陰竹縣>의 도읍지였답니다. <선읍리>는 옛날 <음죽현>의 중심지여서 <선읍리 先邑里>였는데 <착할 善>으로 바꾼듯... ['음죽현 쌈지공원'] 1:11 "음죽현 쌈지공원"을 만나는데 "붓" 조형물이 눈길을 끕니다. ['이인상'] <이인상>이라는 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안내도 있습니다. ['선읍리' 통과] <설성천 雪城川>이 제법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는 <장호원읍 선읍리> 들판을 2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 1:33 <장호원의 진산>이라는 <백족산>이 보이기 시작하며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百足山>은 다리가 백개인 "지내"가 살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지난 <경기둘레길 38코스>에서 알아 보았습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기 전에 먼저 뒤돌아 보면.... ['설성산' 조망] 지나온 <설성산>과 <여주 남한강 세물머리>로 향하는 <독조지맥>이 조망되는군요. ['선읍1리' 조망] 갈림길에서 좌회전하면 <선읍1리>와 <원하리>가 조망되는데 옛날 <음죽현>의 <원院> 아랫 마을이라 <院下里>라 하는듯.... ['원하리(선읍1리) 버스정류장] 1:36 시내버스가 다니는 <원하리(선읍1리) 버스정류장>을 만나 도로를 따라 13분쯤 진행하면... ['원하삼거리'] 1:49 <3번국도>가 지나는 "원하삼거리"를 만나 우회전하고 ['3번국도'] <3번국도>를 100m 정도 가면... ['풍계리 입구'] 1:51 "풍계리 입구 삼거리"를 만나 길을 건너 가야 하더군요. 그런데 이곳 도로를 건너기 위해선 신호 변경을 해야 하는데 수동으로 보행자가 직접 "보행자 신호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 두기 바람니다. 모르면 계속 서 있어야 하니 먼저 <보행자 신호 버튼>을 찾아 누르기 바람니다. ㅎㅎ ['풍계새마을교'] 1:55 <풍계리 입구삼거리>에서 <풍계리>로 들어 가면 <풍계새마을교>를 바로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 건너편 둑방길을 이용해 <설성천>을 따라 진행합니다. ['설성천변길'] <설성천변길>을 25분 정도 진행하면 ['풍계교' 앞 삼거리] 2:19 <풍계교>를 만나는데 다리 앞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야합니다. ['노탑리' 조망] <노탑리>가 보이는데 농로를 진행해 마을로 들어 가면 ['노탑1리 마을회관'] 2:31 '산수유'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노탑1리 老塔1里 마을회관"을 지나는데 오래된 탑이 있는 마을인가 봅니다. ['37번국도] 2:34 마을회관을 지나면 <여주-장호원>을 잇는 <37번국도>가 지나는 곳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길을 건너 직진합니다. ['청미천'] 2:37 그러면 바로 "청마천 淸渼川"을 만나며, 건너편엔 <강동대학교>와 <오갑산>이 보입니다. <오갑지맥>과 <독조지맥> 사이에 흐르는 개천이 <청미천> 입니다. ['청미천변길'] 2:38 이어서 둑방길을 버리고 <청미천변길>로 내려 가라고 하는데 좌측 청미천 징검다리가 <경기둘레길 37코스>가 지나는 곳입니다. 즉, <충청북도>와 <경기도>의 道界가 되는 곳이란걸 알수 있습니다 ['감곡장호원역'] "KTX중부내륙선"이 지나는 <청미천철도교>를 지나 "감곡장호원역"을 조망합니다. "매산"이 보이죠? <임오군란> 때 <여주 장호원>으로 도망친 <명성왕후>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건너편 <매산> 아래 <매괴고등학교> 자리로 피신했죠.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제가 쓴 <경기둘레길 37코스 답사기>를 찾아 읽어 보세요~~ ['감곡장호원역' 줌인] "감곡장호원역" <감곡>은 <충북 음성군 감곡>이고 <장호원>은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인데 역명을 합쳤습니다. 뒤로 <극동대학교>가 보입니다. 프로야구 원년 홈런왕이었던 <김봉연 선수>를 기억 하십니까? 그 선수가 이 대학 교수를 지냈지요. 이 시골에 <강동대학교>와 <극동대학교> 두개가 있습니다. ['경기둘레길37코스' 갈림길] 3:05 "경기둘레길37코스 갈림길" 이어서 <경기둘레길 37코스>는 여기서 우측 <장호원버스터미널>로 가고 <봉화길>은 직진합니다. ['장호원교'] <청미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충청북도>와 <경기도>가 나뉘는 "장호원교"를 만납니다. 좌측이 <충북 음성군 감곡>이고 우측이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입니다. ['경기옛길-봉화길' 종점] 3:12 <장호원교>로 올라 가면 "경기옛길-봉화길 종점"이 있으며 <스탬프함>과 안내판이 있습니다. 이곳은 <청미천 자전거길 쉼터>이기도 하더군요. ['청미교 사거리'] 3:13 이곳의 다리는 <장호원교>인데 다리 앞 사거리의 이름은 <청미교 사거리>라고 해서 혼돈을 줍니다. ['고도표'] <설성산>의 높이가 매우 뾰쪽하게 나왔습니다만 290m 정도라는 것을 참고하기 바람니다. 16km 거리를 압축하다 보니 높이가 상대적으로 올라 갔습니다. ['봉화길 전체 안내도'] "경기옛길 봉화길" <경기 하남시>에서 <남한산성>을 오르고 <경안천><곤지암천>을 따라 <앵자지맥>이 지나는 <넋고개(넓고개)>를 넘고, <이천 설봉산>을 또 오르고, <봉화길>이 아닌 <참배길>인 <세종대왕릉>을 다녀와 <여주-이천쌀>의 본향인 <자채방아마을>을 지나, <설성산>을 오르고 <충청도>와 <경기도>의 경계인 <장호원>까지 총 135km를 걸었습니다. <경기문화원>이 <영조시대> 인물 <여암 신경준>선생이 집필한 "도로고 道路考"를 참고하여 만든 "경기옛길"을 모두 걸어 보았습니다. 원형의 옛길과는 큰 차이가 있는 "걷기코스"였지만 그런대로 한번쯤 걸어 볼만한 코스였다고 생각 됩니다 마지막으로 <칼의 노래><남한산성>등 역사 소설로 유명한 <김훈 작가>가 쓴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 속에 <여암 신경준> 선생에 대해 언급 한 글을 인용하면서 답사를 마침니다. 신경준에게 길은 삶의 도덕적 가치와 상징 들 사이로 뻗어나간 공적 개방성의 통로이다. 이 공적 개방성의 통로 위에서, 길을 가는 일은 달리기가 아니라 '행함'이고, 길의 의로움은 집의 어짊에서 출발해서 집의 어짊으로 돌아온다. 신경준의 지리책을 읽을 때, 집에서 길로 나가는 아침과 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은 본래 이처럼 신선하고 새로워야 마땅하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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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가는 금북정맥 여섯번째구간 산행기 각흘고개-구만봉-봉수산-천방산-부엉산- 극정봉-명우산-절대봉-서재-차동고개 길을 가다.... 깊은 산골에서 만나는 것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호랑이도 폭풍우도 아닌 人間이라고 합니다. 人間 ! 많은 불행은 人과 人사이에서 발생합니다 속이고 위협하고 뺏고 죽이고..... 만나지 말아야 할 인간들이 우굴대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또 길을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길 위에서 만나는 인간들이 모두 惡緣이 되는 것은 아니죠 더불어 더 많은 즐거움도 人과 人사이에서 만들어 집니다 "錦北正脈" 그 끝에 닿으면 여름이려나~ 가을이려나~눈이 내릴려나~ 산길따라 바람따라 세월따라 흘러 가는 산행길 [금북정맥 전체구간] "금북정맥 錦北正脈"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이 세개의 정맥이 분기하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칠장산"에서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안흥리'까지 약280km의 산줄기인 "금북정맥"을 갑니다. [6구간 산행개념도] 2012년 6월 27일 (수) 맑음 '금북정맥'의 여섯번째 구간은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문금리'를 잇는 "각흘고개"에서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녹천리'를 잇는 "차동고개"까지 도상거리 약 18.3km를 갑니다. ['전철1호선'을 타고 '온양온천역'으로 ] [전철 1호선]의 첫차에 대해 알면 '금북정맥'을 다니는데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온양온천역'으로 가는 첫차는 오전 5시에 "구로역"과 "병점역"에서 동시에 출발합니다. '병점역'에서 출발하는 5시 첫차를 타면 여유있게 '온양온천역'에서 '각흘고개'로 가는 [100번 시내버스]첫차를 탈수 있고, 두번째 5시 30분 전동차를 타면 '온양온천역'에 6시 36분에 도착하여 무척 바쁘게 뛰어야 [100번 시내버스] 첫차를 탈수 있습니다. ('구로역'등에서 출발하는 첫차등은 각자 검색하여 시간에 맞추어 가면 됩니다) 저는 '병점역'에서 두번째 5시 30분 전동차를 타고 가는데 손님은 거의 없었으며, '온양온천역'에 내리자마자 뛸 준비를 하고 갑니다. [온양온천역 1번출구] 6:40 전철에서 내리자 마자 뛰는데도 규모가 큰 '온양온천역' 때문에 시간은 급합니다. [1번출구]로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내려가, 앞에 보이는 큰 도로 좌측으로 30여m 가면... [온양온천역 버스정류장] 6:41 '온양온천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6시 41분이었고, 시간표를 촬영하고 있으니 [100번 시내버스] 첫차는 6시 42분에 바로 도착하고 급히 출발했습니다. 종점인 '용화동생활관'에서 6시 40분 출발인데 2분여만에 '온양온천역'에 도착했습니다. 한시간에 한번씩 매시간 40분에 계속 출발하고 있으니 편리한 시간의 버스를 타면 됩니다. [버스 시간표] [100번] [101번] [102번]이 합쳐서 매시 40분에 출발하니 어느 버스를 타도 됩니다. 이 버스시간표를 참고해서 전철시간을 역으로 맞추면 됩니다. 종점에서 '온양온천역'은 매우 가까워서 2분이면 도착하니 참고해야겠죠? [각흘고개 버스정거장] 7:27 '온양온천역'을 6시 42분에 출발한 [100번 시내버스]는 45분이 걸려 '각흘고개'에 도착합니다. 이 버스 정거장의 이름은 "거산2리-금계령"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각흘고개'라는 안내는 어느 곳에도 없으니 "거산2리-금계령"정류장에서 내려야 합니다. [각흘고개] '금북정맥'의 여섯번째 구간인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거산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문금리'를 잇는 "각흘고개"에 다시 돌아 왔습니다. "빨래판구간"이라는 지난구간의 날머리가 미풍에 날라간 하룻밤의 꿈처럼 옛일로 멀어집니다 여섯번째구간의 들머리는 해태상 옆으로 나 있습니다. [각흘고개 산행 들머리] 7:30 오늘도 단 한명의 산객도 만날수 없었던 산길로 홀로 떠납니다. 먼저 이 지역에선 그나마 이름있는 "봉수산"까지 4km라는 안내가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山路의 우측은 "아산시"이고, 좌측은 "공주시"라는 것입니다. [묘지에서 포스트 송전탑 조망] 7:36 '각흘고개' 들머리에서 다소 가파른 등로를 오르면 먼저 묘지가 나타나고, 묘지에 서면 '금북정맥' 능선에 있는 송전탑이 보입니다. 송전탑을 포스트로 삼으며 자연 속으로 여행을 시작합니다. ['각흘고개'에서 '부엉산'까지 구글어스] 출발을 하며 이 주변의 山勢를 구글어스를 통해 전체적 상황을 파악하고 갑니다. 눈여겨 볼 점은 '봉수산 갈림봉'에서부터는 "예산군"과 접경을 이루며 간다는 것입니다. '경기도 안성'에서 출발했는데 벌써 '충남 예산'으로 진입합니다. ['119 구조목 01-01번'] 묘지를 지나 된비알 숲속으로 들어서면 "119 구조목 01-01번"을 만납니다. 이 "119구조목"은 "봉수산 정상"까지 11개가 세워져 있으니 거리 측정에 도움이 됩니다. [된비알] 초장부터 급경사 오르막을 13분 정도 오르면..... ['351m봉' 능선 삼거리] 7:49 "351m봉-능선 삼거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면 먼저 이정표가 반기며 오른쪽 방향으로 길안내를 합니다. ['봉수산'으로 가는 길] 정맥길은 다시 평온을 되찾으며 완만한 오름길을 갑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햇살이 오늘의 기온을 가늠케 해 줍니다. 104년만의 가뭄이라는 뜨거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안개가 없어 가시거리는 매우 좋아 사진 촬영에는 도움이 됩니다. ['385m봉'에서 조망] 8:03 "351m봉-능선삼거리"에서 14분 진행하면 "385m봉"에 오르며 시야가 처음으로 트입니다. 먼저 서남쪽으로 건너편 "천방산"이 방긋 웃고, 서쪽 멀리 "예산군"이 조망됩니다. ['385m봉'에서 '봉수산' 조망] 북쪽으로는 가야할 "봉수산"이 조망되는데, 그 앞에 있는 "정맥 갈림봉"에서 "봉수산"을 갔다가 되돌아와 "460m봉"으로 가야합니다. ['385m봉' 이정표] "385m봉"을 지나면 [119 구조목 01-04번]을 만나며 계속 완만한 흐름을 보이는 길을 갑니다. ['구만봉' 갈림길] "385m봉"에서 1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며, 직진 오르막으로 올라 갑니다. 이곳이 "구만봉"으로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구만봉' 정상] 8:21 "구만봉 392m" '진혁진씨 개념도'에는 "390m"로 표기된 곳인듯합니다. 이정표의 거리표시는 이정표 마다 애매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금북정맥'은 어디를 말하는 곳인고? [숲길] "구만봉"에서 부터는 길섶에 바위들도 제법 보였습니다. '아산시 온양'에 오면 생각나는 인물은 뭐니 누구니 해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입니다 이순신장군은 전국민이 존경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물 중 한분이란거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위대한 영웅이십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있어 왔으며, 특히 영화나 드라마로 여러번 방영되어 그의 생과 업적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장군의 죽음"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어서 오늘은 "이순신장군의 죽음"에 대해 한번 생각 해 볼까 합니다. 이 글은 제가 2009년 1월 24일(토) 설명절 첫날에 "광덕산-망경산-설화산"을 종주하면서 산행기에 한번 쓴 글입니다만, 못 보신 분들을 위해 한번 더 올려 드림니다. ['380m봉' 정상] 8:30 "봉수산"까지 1.4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는 "380m봉"을 지나 갑니다. 봉우리라는 느낌은 거의 없는 봉우리입니다. "이순신장군의 죽음" 이순신장군은 임진왜란-정유재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적군의 흉탄에 맞아 戰死했다고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날이 1598년 11월 19일이며 이순신장군의 나이가 54세였던 해입니다. 그러나 세간에는 이런 저런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으며, 이순신장군에 대한 평가도 임진왜란이 끝난후 200여년이 지난 1792년에 정조대왕이 공식적으로 "이충무공전서" 편찬을 지시하고, 장군을 영의정에 추증하며 '어제신도비'를 세우고 나서 1795년에 '이충무공전서'가 발간되고 나서야 장군은 정조대왕에 의해 새로운 빛으로 우리 역사 속에 우뚝 서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는 위대한 영웅이 찬밥 신세였습니다. 그리고 근현대에 와서는 '5.16 군사정권'에 의해 "軍人 이순신장군"으로 더욱 영웅화 됩니다. 광화문 앞 "세종로"에 있던 "세종대왕 동상"이 어느 날에 갑자기 없어지고, "충무로"에 있어야 할 "충무공 동상"이 "세종로"에 우뚝 서는 일이 생겨난것도 군사정권 때의 일입니다 그래서 세종로에는 세종대왕이 없고, 충무로에는 충무공이 없다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것이지요 그러한 과정에서 "이순신장군의 죽음"은 영웅적 죽음인 戰死로 굳어 졌습니다. 그러나......의문은 1598년 11월19일부터 계속되 오고 있습니다 저는 영웅 이순신장군의 위대함에 대해 조금이라도 누가 되게하려는 취지가 아니고 오로지 수많은 세월 속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들의 내용을 간추려서 알려 드리려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떠한 의도도 없음을 미리 알려 드림니다. [오르막] "380m봉"을 지나면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25분 정도 된비알을 오르면..... "이순신장군의 죽음"에 대해서는 戰死했다는 공식적 죽음 이외에 크게 두가지의 說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자살설"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은둔설"입니다 이순신장군이 戰死했던 자살했던, 또 은둔했던 그것이 뭔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 괜히 까발려 문제없이 존경 받는 이순신장군의 명예를 실추시킬수도 있는 일이 아니냐고 항변하시는 분들도 있을것입니다만, 한번쯤 그러한 설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도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길상사' 갈림길] 8:55 ['길상사' 갈림길 이정표] "길상사 갈림길" '길상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간은 전국에 무지 많지요? 저는 서울 성북동에 있는 "법정스님"의 "길상사"를 제일로 인정하는데.... ['봉수산'으로 오르는 된비알] "길상사 갈림길"에서 잠시 된비알을 오르면.... "이순신 장군 자살설" 1598년 11월19일 노량해전 이순신장군은 1598년 11월19일 노량해전 당시 우연히 戰死한 것이 아니라, 戰死의 형식을 빌어서 갑옷마저 벗어 두고 함대의 선두에 서서 일부러 장열하게 자살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살설"은 실제로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200여년에 걸쳐 많은 이들에 의해 끈임없이 설왕설래 된바 있으며 아직까지도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봉수산' 갈림봉] 8:59 "봉수산-정맥 갈림봉" 이 봉우리는 큰 의미를 주는 중요한 봉우리입니다. 먼저 '금북정맥'에서 "봉수산"으로 가는 갈림봉이기도 하지만, "공주시-아산시-예산군"의 행정구역이 갈리는 市郡界 갈림봉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주시'의 최북단이랍니다. 정맥길은 이곳에서 부터 "예산군"을 만나, "공주시-예산군"의 경계를 따라 갑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으니 "봉수산 정상"을 다녀 와야겠지요? (사진 속의 "봉화산"은 "봉수산"입니다. 죄송~ ^.^) ['봉수산' 갈림봉 이정표] 갈림봉에서 '봉수산 정상'까지는 100m라는데 4~5분 걸렸습니다. ['봉수산' 정상 갈림길] '봉수산 정상'으로 가는 길 앞에는 갈림길이 있습니다만, 직진해서 올라 갑니다. [봉수산 정상] 9:05 [봉수산 정상석] [이정표] "봉수산 鳳首山 536m" 따가운 아침 햇살이 범상치 않은 더위를 예고하는 "봉수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봉수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들은 전국에 수없이 많습니다. 대부분 한자로는 "烽燧山"으로 쓰며 "봉화 烽 봉"과 "부싯돌 燧 수"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곳의 "봉수산"은 "봉황의 머리 - 鳳首"라고 하는 것이 다소 이채롭습니다. ['광덕산' 조망] "봉수산"에서 동쪽으로 "광덕산 廣德山"이 조망됩니다. "광덕산"은 천안시의 산으로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아산시의 진산"입니다. 높이가 699.3m로 이 주변에선 가장 높은 산입니다. [아침식사] 9:05~9:30 새벽 4시에 일어나 멀리 '봉수산 정상'에서 이제서야 아침을 먹습니다. 아침식사라 해 봐야 빵쪼가리와 삶은 계란과 물이지만 먹어야 걸을수 있으니... 이때에 SBS 오국장의 격려 문자가 왔습니다. 더운 날씨에 무탈하게 다녀 오시라고... 오늘 단 한명의 산객도 산길에서 만나지 못했지만, 수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있어 외롭지 않다고 생각되는 건 이런 격려 문자나 전화 한통입니다. 감사~ ['봉수산 갈림봉' 우횟길] 9:33 "봉수산 정상"에서 약25분간 식사와 휴식, 조망을 한후에 다시 "정맥갈림봉"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다시 "정맥갈림봉"으로 올라 갈 필요없이 우측으로 지름길이 있군요. 아주 짧은 우횟길이지만 오늘 갈길이 멀어 체력 비축을 위해 우측길로 갑니다. [금북정맥길] "정맥갈림봉"에서 5분 정도 숲길을 내려 갑니다. "이순신 장군 자살설"이 계속됩니다. 자살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논거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은 사천해전 당시 어깨 관통으로 고생한 이래 새로이 개발된 방탄 조끼 '환삼'도 있었는데, 노량해전에는 방탄쪼끼 '환삼'은 커녕 아예 처음부터 갑옷도 입지 않고 삼도수군통제사의 붉은 융복만을 입은 채 이른 아침 빛나는 태양 앞에서 왜군의 조총 정조준사거리 4∼5m 앞에 우뚝 선 것이라니 스스로 죽기를 결심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금산군 이성윤[1570∼1620]"이 "노량 충렬사"에 써 붙인 詩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心知功大 終難賞志 決身殲 意露肝" "공로 커도 상 못탈것 미리 알고서 제 몸 던져 충성 뵈러 결심했던가" 전쟁에서 이겨도 자신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政派들과 백성들의 우상이 된 이순신으로 인해 왕권의 위협을 느끼는 선조(宣祖)로 부터 분명 '토사구팽(狡兎死良狗)' 당할 것을 미리 예견하고 자살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지금까지의 "이순신장군 자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논거입니다 [송전탑에서 지나온 길 조망] 9:38 송전탑이 지나는 곳에서 조망이 트입니다. 동남쪽으로 오늘 지나온 정맥능선이 나열된 송전탑과 함께 보이며, 그 뒤로 지난 구간에 올랐던 "무성지맥분기점봉"이 조망됩니다. (사진속의 "탑골리"는 "탑곡리"입니다. 죄송~ ^.^) [송전탑에서 가야할 길 조망] 가운데 "공주시 유구읍 탑곡리"를 두고, 우측 능선을 따라 정맥길은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내려 가는 정맥길에 가야할 "천방산"과 "부엉산"이 보이며, 그 뒤로 계속 정맥은 이어지고... [내림길] 송전탑에서 13분 정도 내림길을 내려 갑니다. "이순신장군의 은둔설" 이순신장군은 戰死한것도 아니고, 더더욱 자살한 것도 아니며, 노량해전에서 적군의 흉탄에 우연히 맞아 죽은 것도 아니며 그 이후 70세가 될때까지 약16년간 은둔하며 살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은둔설"을 믿는 편입니다. 오로지 개인적 생각임을 강조합니다 [내림길에서 뒤돌아 본 '봉수산'] 9:51 내림길에서 뒤돌아 보니 조금전 조망을 했던 송전탑이 보이고, 그 뒤로 "봉수산"과 "정맥갈림봉"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또한 "광덕산"도 조화를 이루며 멋을 풍깁니다.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이야기 하기 전에 당시 상황과 조선의 제14대 왕인 宣祖에 대해 먼저 알아봐야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제가 산행기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나쁘게 평가하는 조선의 왕인 "宣祖". '宣祖'는 '중종'의 일곱째 아들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셋째아들입니다. 도저히 왕위에 오를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중종'은 누구입니까? 연산군을 무력으로 내몰고 권력을 장악한 쿠데타 정권 아닙니까? 그러한 대물림으로 오를수 없는 왕위에 오른 宣祖는 언제나 왕권에 대해 불안해 하였습니다 원래 宣祖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이러한 정치적 배경으로 항상 불안에 떨었고 정통성 없는 왕이었기에 항상 정적에 대해 의심을 많이 가지며, 조금만 의심이 가도 의심이 가는 놈은 죽여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이 당시 백성들의 민심은 흉작과 무리한 세금 징수등으로 무척 흉흉해서 "이괄의 난"등 반란이나, 농민 봉기등 民亂이 왕권을 무수히 위협했고, 극기야 '임진왜란'까지 터지는 시대였다는 것을 알아야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백성들의 영웅으로 떠오르는 '이순신장군'을 '宣祖'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460m봉'으로 오르는 길] 내려 가면 다시 오르는게 정맥길...이번 구간도 엄청 많은 오르내림이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이 끊임없이 제기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조선왕조실록"에서 "宣祖實錄"만이 유일하게 "수정宣祖實錄"이 다시 쓰여지고 두개의 판이하게 다른 내용의 實錄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순신장군에 대한 기록도 다르게 기록되 있습니다. 희안하죠? 지금부터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에 대해 하나 하나 근거가 되는 것들을 함께 생각해 보자구여 ['460m봉' 정상] 9:55 "460m봉" 잠시 오름짓을 하니 금새 "460m봉" 정상입니다. 여기서부터 봉우리의 정상엔 이런 벤치가 있으니, 벤치가 있는 곳은 봉우리 정상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460m봉" 정상에서 정맥길은 우측으로 90도 꺽여 서쪽방향으로 내림질을 합니다. ['460m봉'에서 '천방산' 조망] 이번 구간에는 지난 구간과 달리 산이름이 있는 산들이 많아 地名을 표기하기 쉽습니다. 오늘 가야할 산들이 "천방산" "부엉산" 뒤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데, "천방산-부엉산" 이외에는 여기선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습니다 ['460m봉' 내림길에서 보이는 '예산'] "460m봉"에서 내려 가는 길에선 서쪽으로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의 "방산저수지"가 보입니다. ['460m봉' 내림길] "460m봉" 내림길은 잡목과 잡풀들이 길을 덮고 있어 길이 잘 보이지 않으며, 급경사 내림길인데, 요즘 가뭄으로 흙이 메말라 매우 미끄러웠습니다. 특히 가시나무 때문에 애를 먹었습니다. "이순신장군의 은둔설"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을 잘 뜯어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이 일어 나는 날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이미 죽어 조선 침략 전쟁을 포기하고 철군의 명령이 떨어진 상태였으며 조선과 明나라에 의해 이미 패배한 일본군은 대부분 도망갔는데 '고니시 유키나카(小西行長)'도 전라도 순천에서 그 근처의 해안 지역인 왜교(倭橋)로 이동하여 해상 경로를 통해 철수하려 하였는데, 퇴각하는 적을 노량 앞바다에서 섬멸작전을 벌이던 이순신장군은 불행이도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합니다.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 1598년 11월 19일 퇴각하는 적과 노량 앞바다에서 대전을 치르는 선상에서 장군은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며 죽음의 순간에도 아군의 동요를 염려하며, 곁에 있던 맏아들 '회'와 조카 '완'에게 위와 같은 아주짧은 말을 유언으로 남깁니다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마지막 말은 "이충무공행록"에 기록되 있읍니다. 그러나 이 유언은 단순한 유언이 아니고, 유언 속에 "은둔설"의 실체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천방산'으로 가는 길] "천방산"으로 가는 능선으로 내려 가니 지난 구간에 올랐던 "무성지맥 분기점봉"과 가야 할 "천방산"이 보입니다. 각도에 따라 산의 모양과 위치가 아주 다르게 보입니다. 퇴각하는 적군들이 도망 가기도 바쁜데, 사정거리가 10m도 않되는 조총에 맞아 죽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순신장군이 조총에 맞았다면 정말로 자살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도져히 있을수 없는 상황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이 전사하는 광경을 본 사람은 맏아들 '회'와 조카 '완', 몸종 '김이(金伊)' 이 세명 이외에는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순신장군은 그 동안의 전투에서 데리고 다니지 않던 맏아들 '회'와 조카 '완'을 데리고 그리고 몸종 '김이(金伊)'까지 데리고 이미 끝난 전쟁터로 나가 싸웠을까요? 그리고 왜 친족인 맏아들과 조카, 몸종 김이(金伊)만이 장군의 죽음을 보았을까요? [뒤돌아 본 '460m봉'] 10:12 "460m봉"을 내려가 "천방산"으로 가는 능선에서 지나온 "460m봉"을 뒤돌아 봅니다. '금북정맥 마루금'을 경계로 '공주시' 땅에는 벌목을 해서 경계가 분명해 보입니다. 로마 군인들의 투구처럼... 노량해전에 나갈 때 이순신장군은 이미 마지막 전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답니다 조선이 왜놈들에게서 승리 했다는 사실을 알고 도망가는 마지막 놈들을 소탕하러 갔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거취를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고 판단하고 있었답니다 왜일까? 그 동안 宣祖는 이순신장군을 두번이나 죽일려고 했습니다. 첫번째는 이순신장군이 육군일때 모함으로 그렇게 된것이고 두번째 이유는 부산항에 진을 치고 있는 일본군들을 쳐 부수라는 宣祖의 어명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장군은 부산항에 쳐들어 가는 것은 휘발유통을 메고 불속에 뛰어 드는 것과 같다고 어명을 어겼습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조선 해군이 몽땅 자멸한다고 어명을 거두어 달라고 하소연을 했지만 그러한 하소연이 항명이라 여기는 宣祖는 더더욱 뿔따구를 내며 이순신장군을 잡아 들여 국문을 하며, 쫄병으로 강등시키고 고문으로 반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 대신에 '원균'에게 부산항을 공격하라는 어명을 내리지요. '원균'은 어명을 받들어 부산항을 공격하다가 조선 해군 모두와 함께 장렬하게 산화합니다. 이순신장군 대신에 어명을 받든 '원균'이 부산항을 공격하다가 조선 해군 모두와 함께 작살이 나 버리니, 조선 해군을 복원시키는데 없어서는 않될 인물은 오로지 '이순신장군' 밖에 없다는 것을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수 없이 인정하며, 사형을 시키려던 이순신장군을 감옥에서 석방하지요 모두 알다시피 그래서 '白衣從軍'을 두번이나 하게 된것입니다. 이때에 '이순신장군'은 宣祖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저 '파란문'같으면 적군은 '쪽바리들'이 아니라 '宣祖'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355m봉'으로 가는 길] 산길은 다시 평온을 되찾으며 완만한 길을 갑니다. 노량해전이 끝나면 전쟁이 완전히 끝나므로 이순신장군은 살아서 육지에 올라 가나, 죽어서 올라 가나 결국 宣祖와 붕당세력들에 의해 다시 죽임을 당할것이란 사실을 똑똑한 이순신장군은 스스로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어명을 따른 '원균'에 의해 초토화되버린 조선해군에 남아있는 배 겨우 13척으로 승리를 하면 이순신을 반대했던 인간들로부터 다가 올 위험은 불을 보듯 더욱 뻔한것이었답니다. 이순신에게 적군은 왜놈들이 아니라 우리나라 왕과 붕당세력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순신장군은 "戰死"라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노량해전 선상에서 만들어 세상에는 죽은 것으로 만들고, 자신은 몰래 조용히 아무도 모르는 어느 곳에서 여생을 보내려고 알리바이를 조작했다는 것입니다.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한 깊은 뜻을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이 마지막 말은 이순신장군이 직접 말한것이 아니고, 장군의 아들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이 말을 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린 것 뿐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옆에는 많은 참모들이 항상 명령을 기다리며 함께 있어야하는데도 그 장면을 본 사람이 오로지 맏아들 '회'와 조카 '완', 몸종 '김이(金伊)' 이외에는 없었다는 이 묘한 사실을 미루어 이해하시겠습니까? ['355m봉' 정상] 10:15 "355m봉" 벤치가 있으면 봉우리 정상이라고 앞에서 언급했죠? 위에서 제가 언급한 이야기들은 "이충무공 전서"에 부록으로 수록된, 이순신장군의 조카인 '이분(李芬)'이 기록한 행록(行錄)에 나오는데 장군의 최후의 상황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그 기록에는 이순신장군이 적의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을 당시 장군의 사망을 알았던 인물은 아들 '회'와 조카 '완', 그리고 몸종 '김이(金伊)'밖에 없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이 사망한 뒤 임시로 함대의 지휘를 맡은 이 역시 아들 '회'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참모들과 부하장수들로 가득한 기함 지휘소에서 함대 사령관이 저격을 당해 사망하였는데도 그것을 단지 가족 3명밖에 알지 못했다는 점을 어떻게 해석 해야하겠습니까? 더더욱 삼도수군통제사의 지휘권이 고참 부하장수가 아닌 신출내기인 아들과 조카에게 돌아갔다는 점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극히 의심스러운 점입니다. "은둔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도 들춰냅니다 "조선 수군은 원거리 포격전을 주로 구사하였기에, 야간보다는 주간에 해전에 임하였다. 하지만 노량 해전만큼은 야간에 이루어져 새벽에 끝나는데, 이것은 야음을 틈타 이순신을 도피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충무공 전서"의 "행록(行錄)"을 미루어 보며 결국 이순신장군은 은둔을 위해 "戰死"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조작한 것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이러한 설은 믿던 말든 생각과 판단은 여러분들의 몫이라는 것을 밝혀 둡니다. ['340m봉'으로 가는 길] 다시 거의 평지 수준의 길을 10여분 갑니다. 이순신장군의 죽음에서부터 그 이후의 상황을 날짜별로 정리를 하면.... 이순신장군은 1598년 11월 19일에 노량해전 선상에서 "공식적으로 사망"하여 그 시신은 20일 뒤인 12월 10일에 어머니의 고향인 아산으로 옮겨집니다. 하지만 국가가 삼도수군통제사의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룰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장례는 그로부터 80일이 경과한 다음 해 2월 11일에 치러지며 "가묘"에 장군을 모십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5년 뒤인 1614년에 정식으로 묘를 만들어 장군을 안치합니다. 이것은 이순신장군이 1598년 11월 19일 노량 해전 선상에서 알리바이를 위해 "戰死"한 이후 宣祖와 붕당세력들을 피해 은둔하며 살다가, 16년 후 장군의 나이 70세인 1614년에 실제로 사망하여 장례를 치렀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라고 "은둔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장합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순신장군은 그렇게 쉽사리 죽을 하수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340m봉' 정상] 10:25 이번엔 벤치도 없는 봉우리 같지도 않은 "340m봉"을 지나게 되고.... 이순신장군이 쓴 詩 한수 속에서 장군의 마음을 읽을수 있습니다 아득하다 북쪽 소식 들을 길 없네, 외로운 신하가 때를 잘못 만나 한이구나. 소매 속엔 적을 꺾을 병법 있건만, 가슴 속엔 백성 구할 방책이 없네. 천지는 캄캄하여 서리 엉키고, 산과 바다엔 피비린내 진동하네. 말을 풀어 화양으로 돌려보낸 뒤, 복건 쓴 처사되어 살아가리라. 이순신장군은 노량해전 이전에 이런 詩를 지었습니다. 이미 장군은 자신의 처지와 앞으로의 계획을 예견하고 있는 듯 하지 않습니까?. "복건 쓴 처사되어 살아가리라" ['천방산' 조망] "천방산" 정상이 가까워져 옵니다. '이순신장군' 이야기는 여기쯤에서 끝내고 "천방산"으로 올라 갑니다.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임도] "340m봉"을 내려 가니 우측에 임도가 나타나 함께 동행합니다. 안내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산군'에서 오르는 "천방산 등산로 입구"인듯... 10여m 전진하니.... [임도-탑곡리 여섯갈랫길] 10:34 "임도-탑곡리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섯갈래로 길이 난 갈림길이었습니다. 정맥길은 직진입니다. 이곳이 우측 "예산 임도"에서 올라오는 "천방산 등산로 입구"인듯 [임도-탑곡리 여섯갈래길 이정표] 이정표엔 "천방산 방향" 표시는 없습니다. 아무 표시가 없는 직진방향으로 갑니다. ['천방산'으로 가는 길] "임도-탑곡리 갈림길"에서 봉우리 하나를 넘어 가면.... ['ㅏ' 갈림길] 10:41 이정표가 있는 "ㅏ"자 갈림길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도 우측 "예산 임도"에서 오르는 '천방산 등산로 입구"인듯 합니다. ['천방산'으로 오르는 된비알] "천방산 정상"으로 약23분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물론 중간에 전위봉들이 있습니다. [갈림길] 11:02 된비알을 20여분 치고 오르면 갈림길을 만납니다. 좌측길은 "천방산 정상"으로 가는 지름길 인듯한데, 확신할수가 없어 직진해서 오릅니다. 쬐끔 편할려고 하다가 왕창 알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ㅎ [천방산 갈림길] 11:04 정맥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천방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을 곧 바로 만납니다. 여기서 "천방산 정상"을 갔다가 되돌아 와 우측길로 가야합니다. ['천방산' 정상으로 가는 길] 갈림길에서 '천방산 정상'까지는 100m로 3분 정도 걸렸습니다. [천방산 정상] 11:07 "천방산 千方山 479m" 글자대로 하자면 조망이 좋아야 하는데 숲으로 갑갑했습니다. 멀리서 볼때는 제법 멋진 조망이 있을걸로 예상했는데.... [천방산 정상 이정표와 표지판] 11:07~11:20 "대구 비실이 부부" 표지기가 눈에 확 들어 왔습니다. 정맥길을 걸으며 이제까지도 많이 보며 왔습니다만, 오늘 특별히 눈에 들어 오는 것은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 이신 "聖本님"이 "대구 비실이부부산악회"와 함께 산행을 하고 있다고 알려 주었기 때문일것입니다. ㅎ [천방산 갈림길 회귀] 11:23 "천방산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정맥길을 갑니다. 베낭을 이곳에 두고 "천방산 정상"을 다녀 왔는데 그대로 잘 있군요. ㅎ ['385m봉'으로 가는 길] ['385m봉' 정상] 11:38 '천방산 갈림길'에서 15분 정도 진행하면 벤치가 있는 "385m봉"을 지나고... ['탑곡리-이치리' 갈림길] 11:42 ['탑곡리-이치리' 갈림길 이정표] "385m봉"에서 5분여 내림질을 하면 갈림길을 만납니다. 이름하여 "탑곡리-이치리 갈림길" 좌측은 '공주시 유구읍 탑곡리'이고, 우측은 '예산군 대술면 이치리'랍니다. 정맥길은 "극정봉"을 향해 직진합니다. ['부엉산' 정상] 11:49 ['부엉산' 정상 표지판] "탑곡리-이치리 갈림길"에서 7분 정도 오름짓을 하니 바로 "부엉산"이었습니다. "부엉산 403m" 지명의 유래는 알수 없었습니다. 부엉이가 많이 서식해서일까? ㅎ '진혁진씨'의 개념도에는 이곳이 "403m봉"으로만 표기되 있고, 다음 봉우리인 "400m봉"을 "부엉산"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별다른 의미는 없는 私的인 표기인듯하여 그냥 지나칩니다. ['400m봉'으로 가는 길] "403m봉 부엉산"에서 10여분 진행하면 바로 "400m봉"이 나옵니다. ['400m봉' 정상] 11:59 벤치가 두개 있는 400m봉"을 지나갑니다. '진혁진씨의 개념도'에는 "부엉산"이라고 표기한 곳입니다. [이정표] 12:08 개념도 상으로 볼때엔 이곳 근처가 "억새밭"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방향이 우측으로 급하게 꺽인다는 것을 알려 주는 이정표 외에는 특징없는 곳입니다. ['350m봉'으로 가는 길] 무성하게 자란 수풀로 길이 보이지 않는 곳을 헤치고 나갑니다. 그러면 길은 다시 안정을 찾고.... ['유구읍 덕곡리' 조망] 12:21 좌측으로 오늘 산행을 시작했던 "각흘고개"방향으로 지난 구간에 올랐던 '무성지맥분기점봉'과 계곡 사이로 '공주시 유구읍 덕곡리'가 보입니다. ['350m봉'] 12:23 "350m봉" 이번엔 벤치는 없고 이정표만 있는 "350m봉"을 지나 갑니다. "극정봉" 까지 1.3km가 남았다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오지재'로 내려 가는 길] 울창한 리기다 소나무 숲을 10여분 지나며 "오지재"로 내려 갑니다. [오지재] 12:34 [오지재] "오지재" 좌측 계곡에 "공주시 유구읍 덕곡리"에 "머그네미"라고 하는 마을이 있고, 우측 계곡에는 "예산군 대술면 이치리"에 "소거리"라고 하는 마을이 있군요. 누군가 "오지재"라고 써붙여 놨으니 우리는 그냥 그렇게 알고 지납니다. [벌목지대로 오르는 길] "오지재"에서 오름길을 10여분 올라 갑니다. [벌목지대] 12:44 갑자기 시야가 트이는데 그 이유는 우측 '예산'지역에 벌목을 해 놨기 때문입니다. "봉수산" 아래에는 '공주시'지역에 벌목을 해 놨더니, 이번엔 '예산'지역입니다. ['가야산' 조망] 이나저나 벌목 때문에 조망이 확 트입니다. 무었보다도 서쪽으로 "가야산"이 조망되는군요. '금북정맥'은 다시 저 "가야산"으로 이어집니다. 몇구간 후에 올라야하는 "가야산"이며, 충청남도 도립공원이기도 합니다. [오서산 조망] 남서쪽으로는 '금북정맥'에서 가장 높은 산인 "오서산"이 조망됩니다. 정맥길은 남쪽으로 충남 보령시 "백월산"까지 내려 갔다가 다시 북진해야 합니다. [극정봉 조망] 12:52 벌목지대를 지나 내려 가니 "극정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극정봉'으로 오르는 길] 20여분 오름짓을 하면.... ['극정봉' 정상] 13:09 ['극정봉' 삼각점] [극정봉 표지기] 13:09~13:25 "극정봉 極頂峰 424m" "극정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높이가 "424m"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공식적으로 세운 삼각점에는 "421m"로 표기해 놨군요. 그 동안에 산의 키가 줄어 들었나 봅니다. 이곳에서 또 휴식을 취하며,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입맛도 없어서 꾸역꾸역... 물만 마십니다. 아무리 마셔도 소변은 안나옵니다. 땀으로 다 나가니.... 물 3L를 준비했는데 아직 갈길이 먼데 벌써 1L도 남지 않아서 물을 아껴 마시기 시작합니다. ['400m봉'으로 가는 길] 낙엽이 푹신푹신하게 해주는 편안한 산길을 15분 정도 진행하니... ['400m봉'으로 가는 갈림길] 13:41 ★길조심★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6시간이 지났기에 피로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길을 만나면 직진하는 길이 "우횟길"인 경우가 99%입니다. 그리고 올라 가 봐야 별거도 없는 단순한 봉우리가 또한 99%입니다. 그래서 "휴~ 힘도 든데 우회 할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들을 생각해서라도 올라 가봐야지?"라고 생각하며 우측으로 무거운 발길을 옮깁니다. ['400m봉' 오르는 된비알] 오르는 길은 짧은 거리이지만 무척 가파랐습니다. ['400m봉' 정상] 13:44 봉우리에 오르니 "400m봉"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맥길이 이 봉우리에서 방향을 우측으로 완전히 바꿔 가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전 갈림길에서 직진길이 우횟길인줄 알고 우회 했더라면....생각만 해도 끔직합니다. 아마 엄청난 알바를 할뻔 한것이었습니다. ㅎㅎ "君子大路" "君子正路"로 가야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곳이었습니다. 이렇듯 홀로 가는 적막한 산길에서 "휴~큰일 날뻔 했군!~"이라는 독백을 자주 하며 갑니다 ['명우산'으로 가는 길] "400m봉"을 내려가고...다시 오르고.... [공터봉] 13:53 10여분 오르면 공터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는데 ['명우산' 조망] 앞에 "명우산 鳴牛山 368m"이 조망됩니다. 그런데 "명우산" 정상을 얼떨결에 옆으로 우회하여 정상 촬영은 못했습니다. ['절대봉'으로 가는 길] 무심결에 "명우산"을 통과하여 오르락 내리락하며 "절대봉"으로 갑니다. [벌목지대] 14:03 "오지재"에서 "극정봉"을 오를 때 있었던 벌목지대와 아주 비슷한 벌목지대가 나오고 다시 시야가 트입니다. [길없는 길] "절대봉"으로 가는 길은 무성한 수풀로 길을 알수 없을 정도입니다. 수풀 속으로 나있는 길의 윤곽을 찾으며 헤메며 올라 갑니다. 수풀 속에 있는 뭔 괴물이라도 밟으면 어쩌지?라고 독백하며 조심조심 오릅니다. 어휴~~무서워.... 가시나무를 비롯해 잡목가지들이 뒤에서 잡아 당깁니다. ['절대봉' 조망] 14:11 수풀 속에서 헤집고 나오니 "절대봉"이 보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지만 '불문리고개'와 중요한 '340m봉'도 보였습니다. ['절대봉' 오르는 길] 肉山에서 구경하기 어려운 바위들도 제법 있는 구간을 지나 "절대봉"으로 갑니다. [절대봉 정상] 14:24 [절대봉 표지판] 14:24~14:40 "절대봉 353m" 휴식시간은 점점 더 잦아지며 시간은 길어 집니다. 제가 걸음도 느리기도 하지만 사진촬영과 감상문을 쓰느라 시간이 다른 분들보다 훨씬 더 걸립니다. 이번 구간도 다른 분들은 평규 7시간 정도에 완주를 하지만 저는 8시간 40분 정도 걸렸으니 알만 하죠? ㅎㅎ 하지만 저는 빨리 걷는데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는 것...다 아시죠? ㅎ 이 산길과 이에 얽힌 사연들을 얼마나 더 깊이있게 느끼며 공부하며 가느냐가 중요하다는거.. 아무 관찰없이 빨리 가기만 한다면 저도 빨리 갈수 있어요~~ ㅎ 에휴~ 그건 변명이고 세월 가며 점점 더 느려지기 시작합니다. ['절대봉' 정상에 있는 굴] "절대봉" 정상에는 엄청나게 큰 굴이 하나 있습니다. 거의 직각으로 뚫어 파 내려간 굴이었습니다. 많은 선답자들이 이 굴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다는 후기를 보았습니다. 다음 구간에서 아주 자세하게 알려 드릴 예정입니다. 미리 먼저 조금 알려 드리자면, 이 지역 금북정맥 산줄기에 우리나라 최대의 金鑛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일제침략시대에 다 파먹고 폐광이 되었지만, 당시 금광을 찾기위해 이 지역 산줄기를 뚫고 파헤치며 곳곳에 흉터를 남겼는데, 이 굴도 그 중에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불문리고개'로 내려 가는 길] "절대봉"에서 휴식을 취하고 "불문리고개"를 찾아 내려 갑니다. ['불문리고개'로 추정] 14:55 "절대봉"에서 15분 정도 내려 가니 "불문리고개"로 추정되는 안부가 나옵니다. 이곳 이외에는 고개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340m봉'으로 오르는 길] 다시 10여분 오름짓을 합니다. 오늘도 지긋지긋하게 오르고... 내려 가고...또 오르고...또 내려 가고...를 반복합니다. ['340m봉' 정상] 15:05 ['340m봉' 표지기] 봉우리 같지 않은 봉우리에 올랐는데 어느 선답자가 표지기에 매직으로 표기한 "340m봉"이 없었다면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벌목지대] 15:13 "340m봉"을 벗어나니 다시 벌목지대가 나타나며 시야가 트입니다. ['명곡저수지' 조망] 15:14 동쪽으로 '공주시 유구읍 명곡리'에 있는 "명곡저수지"가 가까이 보이며, 뒤로 멀리 "무성산"이 조망됩니다. ['서재'로 가는 길] 완전 벌거숭이가 된 벌목지대를 지나고, 다시 리기다소나무 숲을 지나 "서재"로 갑니다. [서재] 15:26 "서재"에는 실제 차량이 다니는 비포장도로급 임도가 지나고 있으며, 간이화장실이 하나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차동고개"로 가는 정맥길은 우측으로 올라 갑니다. [서재] "서재"로 내려와 "차동고개"로 가는 길을 반대 방향에서 본 것입니다. [불모골고개(?)] 15:29 "서재"에서 조그만 둔덕을 하나 잠깐 넘어 가니 "불모골고개"로 추정되는 고개를 지나고... [임도] 잠시 편안한 임도를 만나 따라 올라 갑니다. [임도 갈림길] 15:36 편안한 임도도 잠깐...다시 산길로 올라 가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 근처가 "275m봉"인듯 합니다. ['260m봉'으로 가는 길] 임도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어 어디인지도 모를 "서낭당고개"를 지납니다. "서낭당고개"는 무성하게 자란 수풀로 흔적을 찾을수 없었습니다. ['260m봉'] 15:38 "260m봉"은 우회하여 진행하고.... [묘지] 15:40 묘지를 지나 갑니다. [길 없는 길] 묘지를 지나니 무성하게 자란 수풀로 또다시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수풀을 헤치며 땅바닥에 난 길을 찾으며 헤집고 올라 갑니다. 숲 속에서 모르고 뱀이라도 밟으면.... 와락 덤벼 들것같아 심히 무시무시한 공포를 느낌니다 그래서 뱀이 제일 싫어 한다는 꽃냄새가 나는 "봉숭아"라는 곡을 배경음악으로 올렸습니다. 봉숭아를 "禁蛇花"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런 연유라고 합니다. 봉숭아꽃으로 손톱을 붉게 물들이던 풍습도 붉은 빛을 귀신이 싫어하기 때문에 못된 귀신이나 질병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것이 이 민속의 본디 뜻이었다는 것이랍니다. 노래가 너무 좋아 올렸다는 것은 말 안해도 다 아시져? ㅎㅎ 야하튼 "뭐 해먹고 살일 있다고 이런 위험한 고생을 하고 있는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집에 돌아 가면 다시 다음 구간으로 갈 생각 뿐입니다. ㅎㅎ [산불 난 지역] 15:46 수풀을 헤치고 산꼭대기로 올라 가니 어느 정도 길은 열리는데.... 산불이 났었던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뒤돌아 본 '절대봉' '극정봉' '봉수산'] 산불이 났었던 봉우리를 지나며 뒤돌아 보았습니다. 이제서야 지나온 정맥길이 조망됩니다. 먼저 오전 9시경에 올랐던 "봉수산"이 삐쭉 쬐끔 보이는데 무척 반갑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오후 1시경에 올랐던 "극정봉"과 오후 2시경에 올랐던 "절대봉"이 조망됩니다 ['294.2m봉'으로 가는 길] 조망을 끝내고 다시 막바지 오름짓을 합니다. [정맥 마루금 같지 않은 길] 15:56 "294.2m봉"으로 가는 길엔 마루금 같지 않은 길도 있고... [뒤돌아 본 '절대봉' '극정봉' '봉수산'] 15:58 다시 한번 지나온 산봉우리들을 뒤돌아 보며 홀로 감개무량 해 합니다. [294.2m봉'으로 가는 길] 다시 수풀로 뒤덮힌 길없는 길을 헤치고 올라 갑니다. 이제까지의 금북정맥길 중에 이번 구간이 제일 더럽습니다. 무셔버~~ㅎ ['294.2m봉' 정상] 16:09 ['294.2m봉] "294.2m봉" 이번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별다른 특징은 없으며 수풀로 조망도 없었습니다. ['차동고개'로 가는 길] 숲 속으로 난 길을 따라 하산 합니다. 차량들이 질주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묘지에서 '당진-대전 고속도로' 조망] 16:16 잠시 내려 가니 묘지가 나오며 "당진-대전 고속도로"가 조망됩니다. "차동고개"에 거의 다 온 것입니다. [갈림길] 16:17 묘지 상단을 따라 내려 가는데 갈림길이 있습니다. 선답자들의 표지기도 없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직진합니다. 다행이 바른 길이었습니다. [차동고개 들날머리] 숲속을 빠져 나오니 "차동고개"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음 구간 들머리] 16:23 [32번 국도]로 나오니 건너편에 다음 구간 들머리가 보이고.... [차동고개] "차동고개 車東고개 해발 215m" 대간 정맥꾼들의 지침서인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에는 "차유령 車踰嶺"으로 나옵니다 순수 우리말로 해석하면 "수레넘이 고개"가 되며, 이런 고개 이름은 전국에 산재해 있습니다 즉, 수레가 넘어 갈수 있는 넓은 고갯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산"과 "공주"를 넘나드는 대표 고개가 이 "차유령 車踰嶺"이었고 현재도 대표 고개입니다. 다만, 이 "차유령 車踰嶺" 밑으로 고속도로 터널이 뚫려 "차유령 車踰嶺"의 역활이 없어졌습니다. 아주 옛날에 '차서방'이 산삼을 동쪽 산에서 찾아 노모에게 먹여 병환을 낳게했다는 설화에서 "차동고개"라고 했다는 설화는 단순히 효도 설화일뿐.... ['차동고개' 예산 방향] 터널화로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쓸쓸한 "차동고개"에는 수레를 끌고 힘겹게 오르내리던 옛 선조들의 거치른 숨소리만 적막 속에 감도는듯.... ['차동고개' 공주 방향] "공주 公州" 백제의 수도로 64년간 다섯명의 왕이 즉위했던 천혜의 요새였답니다. 북으로는 '금북정맥'이 방어벽이 되고, 남으로는 '금강'이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곳이라서... 옛날에는 "웅주 熊州"였다죠? "웅 熊"을 우리말로 하면 "곰"입니다. 이 "곰"이 세월따라 음운변화를 이르으켜 "공"이 되어 "공주"가 되었다는 설이 공식적인 '공주시 홈피'에 나와 있어 재미있어 첨언합니다. [차동휴게소] [새로산 아쿠아 샌달] 폐업한 "차동휴게소" 옆 평상에서 옷을 갈아 입고, 무겁고 갑갑한 등산화도 새로 산 '아쿠아샌달'로 갈아 신었습니다. 워~ 시원해~ ^*^ '아쿠아샌달'은 39,800원에 삿는데 잘 삿다고 생각됩니다. (이것 보고 사시는 분들 무지 많겠내요~ㅎㅎ) [유구 택시] 16:44 유구터미날로 가려고 히치를 시도했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 이 휴게소에 들려 잠시 쉬고 가는 사람에게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태워 주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금북정맥을 하며 충청남도 지역을 몇달째 다니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충청도 사람들...특히 운전기사분들은 무척 불친절하고 배타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됫습니다. 길을 묻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일언지하에 퉁명스런 부정어가 한마디 튀어 나올 뿐.... 제가 그들에게 부정적으로 보여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며 나에게만 일어 난 나 만의 문제였기를 기대하며, '유구택시'를 불렀습니다. '유구택시'는 호출 6분만에 도착하여, 6분이 걸려 "유구버스터미날"에 내려 주었습니다. 메타요금이 6,400원이 나왔는데 6,000원만 받겠다고 합니다. 웬일? ^.^ 충청도 사람에 대한 인식이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ㅎㅎ 제가 사전에 이 개인택시 기사분의 전화번호를 미리 알아서 호출한게 적중한것이었습니다. 다음에 가실 분들은 꼭 적어 가세요 ☏ 041-841-5959 [유구 터미날] 16:50 "차동고개"에서 6분만에 "유구터미날"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온양온천역"으로 가는 [100번 시내버스]의 종점입니다. 앞으로 다음 구간을 위해 한번 더 이곳에 와야 하겠습니다. [100번 버스 시간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7:00 7:40 8:20 9:20 10:10 11:10 12:10 13:10 14:10 15:10 16:10 17:10 18:10 19:10 20:10 참고로 '온양온천역'까지 버스요금은 3,000원이었으며, 카드로 2,950원이었습니다. '공주시'와 '아산시'의 경계인 '각흘고개'를 기준으로 추가요금을 무려 1,800원을 더 받습니다.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요금체계인데, 전철 환승 요금도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유구읍내] "유구읍 維鳩邑" 한자를 풀이 해 보면 "밧줄로 동여 맬 維 유"에 "비둘기 鳩 구"입니다. 비둘기가 날아 가지 못하게 밧줄을 든든하게 매어 둔다는 뜻이겠습니다. 임진왜란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관련있는 전설이 있는데 알 필요 없는 전설이라 생략합니다. '유구읍내'를 휘 둘러 보고 5시10분 차를 타고 1시간5분이 걸려 '온양온천역'에 내려 급히 뛰어 6시 26분 전철을 타고 귀가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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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발역-SK하이닉스-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무우정-성호연꽃단지-설성면사무소
['8코스 자채방아길' 안내도] "경기옛길-봉화길 제8길 자채방아길"의 공식 안내도입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경기옛길-봉화길 제8코스""부발역"에서 "SK하이닉스" 지역을 돌아 보고 "자채방아마을"을 지나 "설성면행정복지센타"까지 "20km"를 가는 코스입니다. ['부발역 1번출구'] 11:55 2024년 3월 11일 월요일 흐림 <분당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부발역 1번출구"로 나가 직진성 우측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8코스 출발지>는 좌측 <죽당천 다리> 옆에 있는 <7코스 출발지>와 같습니다만, <6-7코스>때에 두번이나 갔었기에 생략하고 바로 진행합니다. ['아미초'] 11:56 <부발역 1번출입구>에서 50m쯤 진행하면 "아미초등학교"를 만나고 200m 정도 더 진행하면.... ['영동고속도 이천 나들목'] 12:00 "영동고속도로 이천 나들목"이 지나는 굴다리를 통과합니다. [사거리] 12:02 굴다리를 나서면 바로 <부발 아파트단지>를 만나는데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가 좌측으로 진행하면.... ['이천 IC 톨게이트'] <영동고속도로 이천톨게이트> 옆 도로를 5분여 통과합니다. [사거리] 12:07 그러면 <부발>에서 가장 번화한 사거리를 만나서 좌회전 합니다. 정면에 보이는 공장이 "SK하이닉스"인데 "SK하이닉스"의 주변은 신도시를 방불케 하는군요. <부발>은 "SK하이닉스의 도시"라는걸 실감할수 있군요. [중심상가지역] 완전한 신도시 형태를 갖추고 있는 <부발>의 중심가를 통과하면서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를 조망하며 7분여 진행하면.... ['아미사거리'] 12:15 <옛3번국도>였던 <경충대로>를 만나며, <아미사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길을 건너 건너편 보행로를 이용해야 하더군요. "아미리 牙美里" '어금니 아牙'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마을 지형이 <어금니>를 닮은듯.... ['사동교'] 12:20 <아미사거리>를 지나면 "영동고속도로 사동교" 밑을 지나고... ['사동삼거리'] 12:23 이어서 <사동삼거리>를 만나는데 "사동리 巳洞里"는 '뱀을 닮은 지형'이라고 합니다. ['사동3리'] <옛3번국도-경충대로>와 헤어져 <사동3리 중심가>를 통과하여 1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 12:32 횡단보도가 없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이천물류사거리'] 12:33 <337번지방도>가 지나는 "이천물류사거리"를 만나는데 길을 건너 건너편 보행로를 이용하여 8분여 <337번지방도>를 진행합니다. ['등안사거리'] 12:41 그러면 "등안사거리"를 만나고... 계속해서 8분을 더 직진하면.... ['대월교차로'] 12:49 "대월교차로"를 만나는데 여기에 "대월면 大月面 행정복지센터"가 있더군요. <8코스>의 이름을 "자채방아길"이라고 만든 핵심 지역이 <대월면 大月面>이니 관심 가져야 되겠습니다. ['초지사거리'] 12:58 <대월교차로>에서 10여분 진행하면 "초지사거리 草芝"를 만나는데 여기서 좌측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방향으로 가야하고 ['효양산' 조망] 방향을 틀어 북쪽을 바라보면 지나온 "SK하이닉스" 굴뚝과 고려시대 외교의 달인이라 불리우는 "서희 장군"이 탄생한 "효양산"이 조망됩니다. ['기독교박물관' 입구] 1:02 <초지사거리>에서 좌측으로 200m 쯤 진행하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 골목으로 들어 갑니다. ['기독교 박물관'] 1:04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월요일이라 휴관 중이어서 들어 가 보지 못하고 ['기독교 박물관' 조망] 박물관 뒤에 있는 한옥집이 "평양 장대현교회"를 이곳에 재현 한것이라 합니다. ['한나요양원'] 박물관을 지나면 상당한 규모의 "한나요양원"을 만나는데 요양원을 빙 돌아 가면.... ['초지리' 조망] 1:09 <대월면 초지리>의 들판이 펼쳐지는데 <목장>이라고 표기한 곳으로 10여분 걸려 가면... [목장 앞 다리] 1:19 <도리천>이라는 조그만 개천을 건너는 이름모를 다리를 건너 우회전하여 ['구시리' 가는 길] <구시리>를 20여분 진행하면.... ['구시리 마을회관'] 1:38~1:48 "구시리 九時里 마을회관"을 만납니다. ['구시리 쉼터'] 마을회관 앞에 있는 정자에서 10여분 쉬어 갑니다. ['구시리' 들판] 1:48 계속해서 <구시리 九時里> 들판을 진행하는데, 젖소들이 봄맞이를 하고 있어 봄이 다가 오고 있음을 젖소들로 부터 느낄수 있었습니다. 저 앞에 보이는 <양화천>으로 가면.... ['양화천' 만나는 곳] 1:54 . 지난 <7코스>에서도 만났던 <양화천>을 다시 <양화천>의 상류에서 만납니다. ['양화천 둑방길'] "양화천 楊花川" 버드나무가 개천가에 많아 붙여진 이름이지만 버드나무는 이제 거의 찾아 볼수 없군요. 이 <양화천> 주변에서 우리나라 토종쌀인 "자채미 紫彩米"가 아직도 소량 생산되는 곳이랍니다. 다시 말해 이번 코스의 이름을 "자채방아길"이라고 만들어 준 지역이 되겠습니다. 15분 정도 진행하면.... ['군량교' 앞] 2:08~2:22 ★길조심★ "군량교 郡梁橋"를 만나는데 길찾기에 유의해야 하는 곳이더군요. 왜냐하면 "무우정""자채방아마을"을 우측으로 들어 가 둘러 보고 다시 이곳으로 나와 직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채방아마을'] <군량교>에서 우측으로 조금 들어 가면 "자채방아마을"을 만납니다. 내용을 모르는 분들은 <자채방아>가 뭔 뜻이지?라고 대부분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토종"이라는 말과 "재래종"이라는 말의 뜻부터 깊이 있게 알아야 겠는데.... "토종"은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처음부터 자생하며 재배되어 온 작물이나 동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재래종"은 외국에서 수입되었지만 우리나라에 토착화 된 식물이나 동물을 의미하죠. 우리나라 토종이거나 재래종인 쌀의 대표 중에 "자채미 紫彩米""자광미 紫光米" 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8코스>의 이름인 <자채방아길>은 <자채미>를 생산하고 도정을 하는 방아가 있던 마을을 가는 길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되며 여기가 그곳이라고 확신합니다. 조선시대 왕실에 진상되던 쌀은 "이천의 '자채미'""김포의 '자광미'"인데, "여주-이천의 자채미 紫彩米"는 쌀의 색깔이 자줏빛이 나서 붙여진 이름인데 한반도에서 매년 가장 일찍 수확되어 7월말이나 8월초면 거둘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밥맛도 좋지만, 한반도에서 매년 처음으로 수확한 쌀이니 왕실에 바쳤을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품질도 품질이지만, 최초로 생산되는 햇쌀이라는데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죠. "김포의 자광미 紫光米"도 자줏빛 광채가 난다고 붙여진 쌀인데 수확기는 <자채미>보다 다소 늦은 9월초인데 그래도 추석 이전에 추수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김포시 농업기술센터>의 자료에는 진상미로서의 '자광미'를 “자광벼는 약 300년 전 중국 길림성에 갔던 사신들이 밥 맛이 좋다는 볍씨를 가져와 당시의 통진현-현재 김포시 월곶면 '밀다리'밑에서 심은 것으로부터 유래되어 "밀달쌀"이라고 불렀다." 라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천의 '자채미'""김포의 '자광미'"는 현재 이런 품종은 전국 어느 곳에서도 재배하지 않죠. 경제성과 맛에서 현대 개량 품종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고, 더 좋은 품종으로 모두 바꾸었답니다. 이곳 <이천시 대월면 군량리 자채방아마을>에서 소량 생산 될뿐.... 그러니까 "임금님표 이천쌀"이니 "대왕님표 여주쌀"이라던가 "김포 금쌀"이니 하며 "임금님 진상미"라고 광고하는 것들은 옛날 생산하던 <자채미>와 <자광미>에 물타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진상미와는 전혀 관계없는 현대 품종들이고, 값만 비싸다는게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오로지 광고 선전을 위한 "상표"일 뿐이니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무우정' 입구] "무우정 舞雩亭" 입구에는 사적비와 <스탬프함>이 설치되 있습니다. 사적비는 사라진 <무우정>을 자비로 새로 세운 <김병일>이라는 분의 "고향사랑"을 칭송하는 비더군요. ['무우정'] "무우정 舞雩亭" '춤출 무舞'에 '기우제 지낼 우雩'를 사용하는 <무우정>입니다. <이승만 전대통령>의 호가 <우남 雩南>이어서 기억하는 '기우제 지낼 우雩'입니다. <무우정>에 대해선 안내문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안내문을 참고 하고... ['무우정' 앞] 옛날 <자채미>를 생산하던 <이천평야>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서 가뭄이 오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었겠는데, 사방이 조망되는 곳이었습니다. <무우정>에서 다시 <군량교>로 나가면.... ['군량교' 앞] 2:22 <무우정>에서 다시 <군량교> 앞으로 나와 <양화천 둑방길>을 16분 정도 진행하면.... ['군량2교'] 2:38 <군량2교>를 지나는데 ['노성산''마국산' 조망] 오늘 코스의 종점인 <설성면사무소>가 있는 <금당리>에 있는 "독조지맥 노성산".과 "독조지맥 큰바래기산"에서 분기하는 "해룡지맥""마국산"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독조지맥>과 <해룡지맥> 사이에 흐르는 개천이 <양화천>인데, "여주-이천쌀" 생산에 젖줄이 됩니다. "독조지맥-해룡지맥"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제가 두발로 쓴 산행기를 참고 하시고... ['군량1교'] 3:00 <군량2교>에서 22분 정도 직진하면 <군량1교>를 지나고 ['양화천' 합수부] 3:15 <군량1교>에서 다시 15분 정도 황량한 둑방길을 진행하면 두갈래 <양화천>이 합수하는 곳을 만나는데 우측 <복평교>로 우회하여야 합니다. ['복평교'] 3:22 <복평교>에서 지나온 <양화천 합수부>를 조망하고 ['복평교' 앞 '보뜰마을'] <복평교>를 건너 직진하면... ['미꾸라지 체험장'] 3:26 이 지역이 "이천시 모가면 서경리"인데 <농촌체험마을>로 <미꾸라지 체험장>이 있더군요. ['양화천' 가는 길] <미꾸라지 체험장>을 돌아 다시 <양화천>으로 나가서 ['양화천변길'] <양화천변>을 20여분 진행하면.... ['영산교'] 3:48 <영산교>라는 다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다리를 건너야 하고 ['영산교'에서 '공간미술' 조망] 3:49 <봉화길>은 <영산교>를 건너 바로 우측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건너편에 "공간미술"이라는 조각품 전시장이 있어 다녀 오도록 합니다. [조각품] 여러 조각품이 널려 있는데 "Greeting Man"은 유명해서 아는데 여기서 제작되는가 봅니다. ['설성면 수산리'] <부발읍>에서 <대월면>을 지나 <모가면>을 지나면 드디어 <설성면>으로 들어 가는데 "설성면 수산리"를 20여분 통과하면.... ['장천2리' 입구] 4:12 "설성면 장천2리" 입구를 만납니다. 이곳은 "독조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곳으로 두번째 방문이 되겠습니다. ['장천2리 마을회관'] 4:18 "장천2리 미을회관"을 지나고 ['장천리' 통과] <장천리>를 17분여 통과하면... ['성호호수 연꽃단지'] 4:35 "성호호수연꽃단지"를 만납니다. <성호저수지> 상류지역으로 연꽃단지를 만들어 놨군요. ['스탬프함'] ['연화십덕'] "성호호수연꽃단지"에 <스탬프함>이 있고 [정문] 4:37 연꽃단지 정문으로 나가면... ['성호교'] <성호저수지>를 건너는 <성호교>를 만나고 ['성호저수지'] 4:40 <성호교>에서 "성호저수지 星湖貯水池"와 다음 코스에서 오를 "설성산 雪城山 290,6m"을 조망하고... ['성호 가로공원'] 4:43 <성호교>를 건너면 가로공원에 <이천의 보금자리>라는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 ['노성산' 조망] <노성산>을 바라보며 10여분 진행하면.... ['금당리 버스정류장'] 4:53 "설성면행정복지센터" 입구가 있는 "금당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며 오늘 답사를 마침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20.5km였으며 약5시간이 걸렸습니다. 개량품종에 완전히 밀려 거의 사라진 <자채미 紫彩米>라고 하는 임금님 진상품이었던 <여주-이천쌀>의 本鄕을 찾아 본 <봉화길>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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