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둘레길』 『제12코스 성창포길』 동인천역-중앙시장-배다리-애관극장-답동성당-신포국제시장-백범 김구 역사거리- 인천홍예문-맥아더장군동상-자유공원-송월동동화마을-차이나타운-삼국지벽화거리- 청일조계지-일본은행거리-중구청-제물포구락부-각국조계지-짜장면박물관-인천역['12코스 성창포길 안내도']
[실트랙] 우리나라 개항기 근대문화를 만날수 있는 "인천의 원도심"을 진행한다. 거리는 5km로 비교적 짧지만 볼거리, 공부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시간은 많이 걸리고 특히 우리나라 유일의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고 갈수는 없으니 여유를 갖고 가야한다
['동인천역 4번출입구' 앞] 2:07 2025년 3월 26일 수요일 맑음 <11코스>에 이어 계속 <12코스>를 진행하는데, 정면에 보이는 "중앙시장 전통혼수거리"로 들어 간다.
['중앙시장 전통혼수거리'] 인천을 대표하는 시장이라지만 불경기 탓인지 뭔지 썰렁하다.
['중앙시장 전통혼수거리'] <중앙시장>은 인천 최초의 야시장인 <자유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가 다시 <중앙시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단다. 그 보다는 오랫동안 미군부대에서 몰래 빠져나온 군용 물건이나 원조 물품, 암달러 등이 많이 거래됐기 때문에 인천 사람들 사이에선 <양키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통했단다 달러, 미제 담배, 양주등이 암거래되며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혼수품 시장으로 변모 됬는데도 거리는 한산하다.
['배다리 사거리'] 2:12 <중앙시장 혼수품 거리>를 벗어나면 <11코스>에서 지났던 <배다리사거리>를 다시 만나는데 이 일대는 서해 바닷물이 밀물 때에 밀려 들어 오는 갯골이 있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모두 복개되어 그런 흔적은 어디애서도 찾아 볼수 없고, <분당수인선>이 지나고 있다.
[''싸리재고개' 입구'] 2:14 <배다리사거리>에서 <신포동>으로 넘어 가는 고개는 "싸리재"라고 한단다. 옛날 이 고개엔 <싸리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답동성당' 오름길] 출처: 인천시정 <싸리재고개> 부근에 인천 최초의 성당인 <답동성당>이 있는데 옛 사진을 통해 당시 거리 모습을 음미해 보며 오르면...
['싸리재고개'] 2:20 "싸리재고개"에 도착하는데, <경동감리교회>가 있고 그 뒤로 <답동성당>이 보인다.
['애관극장' 앞 삼거리] 2:22 이어서 내림길이 시작되며 첫번째 삼거리를 만나는데, 앞에 <애관극장>이 보이는데 <답동성당>은 여기서 좌측으로 올라 가는데, 먼저 <애관극장>을 잠시 들리면...
['애관극장'] "애관극장 愛觀劇場" 대한민국에서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역사 깊은 극장이란다. 1895년 조선인 부호 <정치국>이라는 분이 <협률사>라는 공연장을 설립해 큰 인기를 얻었다는데 <협률사>는 1925년 "보는 것을 사랑한다"는 뜻의 "애관 愛觀"으로 이름을 바꿨단다 대부분의 영화관이 망했지만, 이 극장은 아직도 살아 남아 이젠 <복합상영관>으로 재탄생 해 최신 영화와 지역의 다양한 문화행사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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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동성당'] 2:25 "답동성당 沓洞聖堂" 구한말 1897년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코스트 신부>의 설계로 처음 건립되었고 1937년에 <시잘레 신부>의 설계로 증축된 991.74m²(300평) 규모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벽돌조 건물이며 한국의 성당 중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란다.
['답동성당'] "답동성당" <사적 제287호> 일반적 종교적 얘기는 모두 아는 얘기니 접어 두고 짤스런 언급을 하면... 건물도 아름답고 역사적 건축미도 뛰어나 신도들의 결혼식장으로 무지무지 인기있다죠? 여기서 결혼식 올리려면 예약도 예약이지만, 조건이 무척 까다롭다고 이 곳엔 인천지역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기념하는 기념비 등이 세워져 있는데.... <김병상 신부>는 한국 천주교 617번째 신부이자 인천지역 민주화 운동과 가톨릭계 노동 운동의 대부로 전국적인 반(反)유신·반독재 투쟁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답동성당 주임을 맡아 인혁당사건등 민주화운동에 매진 하며 한국민주화에 크게 공헌한 한 성당으로 유명하다고... 2020년 4월 25일 선종했으며 민주화 운동에 대한 생전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사망 이후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됐다고 한다
['답동성당'에서 조망] 2:28 <답동성당>에서 <월미도>가 조망된다. 성당의 위치가 어디인지, 얼마나 좋은 곳에 자리 잡았는지 알수 있다. 아랫쪽 <신포국제시장>으로 내려 가면...
[''신포국제시장'] 2:32 "신포국제시장' <일제 시대>까지만 해도 우리 농민들은 무, 배추, 파, 마늘 같은 재래종 채소만을 주로 생산했기 때문에 당시 <청나라 상인>들이 가져와 새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양파나 토마토, 피망, 연뿌리 같은 채소를 공급하면서 <청나라 상인>들이 꽤나 으시대며 상권을 잡아 나갔다고 하는 시장이란다.
['닭강정집] <신포시장>의 대표 상품은 바로 <닭강정>이란건 나도 안다. 그래서인지 <닭강정집> 앞에만 줄을 서서 구매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1940년대 후반까지도 닭과 계란을 팔던 닭전이 번성했다고 하니 그 연유가 아닌가 싶다.
[시장 중앙부] 닭강정집 외에는 썰렁....
['중국식만두집'] 2:35 그런데 시장 끝에 있는 이 집엔 또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바로 <중국식 만두집>이다. 난 오늘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을 먹을 결심을 하고 왔기에 다른건 그냥 패스한다. 줄서기도 그렇고...ㅎ
['신포패션문화 거리'] <신포동>은 패션문화의 거리가 있는 인천의 중심지란다.
['백범 김구 역사거리'] 2:38 "백범 김구"선생의 동상이 <신포동 패션거리>에 세워져 있다. <백범선생>과 <신포동>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잠시 후 알게 된다.
['백범 김구 역사거리'] 길찾기가 좀 어려운 곳이었는데, <김구선생 동상> 왼쪽 뒤 고갯길로 올라 간다. 고개 중간쯤 <신포스카이타워아파트> 앞으로 가면...
['노역의 현장'] 2:42 "노역의 현장"이라는 조형물이 설치되 곳을 만나는데... 이 근처에 <인천 감리서 (형무소)>가 있었었기에 조형물을 설치한듯... <백범 김구선생>은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쪽바리들에 의해 시해 당하자 그 원수를 갚고자 황해도 안악 해안지역인 <치하포>에서 일본 순사 <스치다 조스케>를 죽여버렸죠. 그리하여 <인천 감리서>로 잡혀와 21살에 사형선고를 받고 23살에 탈옥하였지만 다시 잡혀 17년 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39실에 이곳으로 다시 이감되었단다.
['인천축항공사'] <김구선생>이 수감생활을 할때 큰 선박이 정박 할수 없었던 <인천항>을 갑문식 항구로 축항공사를 했는데, 그때 축항공사에 강제 동원되어 강제노역을 당했단다. 축항공사는 7년이 걸려 1918년에 완공되었단다.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동원된 강제 노역자들을 일본 순사들이 빙 둘러 감시하며 독려하고 있다. 우리의 노동력을 강제로 탈취하여 건설한 <인천항>. 누가 만든 건가? 요즘 특히나 극우 친일 매국노들이 일본이 만들어 주었다고 주장하는 개소리를 하고 다니는데 우리나라의 자원, 경제를 빨아 먹기 위해 설치한 항만이나 철도 아닌가 도둑놈이 도둑질을 위해 담을 넘기 위해 사다리를 설치하면 집주인이 사다리 설치를 고마워 해야 하나. 사다리 놔 주었다고.... <백범 김구선생>은 이곳 <인천축항공사>에 강제 동원되어 받은 고통이 엄청 났다고 회고했다. "아침저녁 쇠사슬로 허리를 마주 매고 축항 공사장에 나갔다.(중략) 불과 반일에 어깨가 붓고, 등창이 나고 발이 부어서 운신을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면할 도리가 없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사다리로 올라 갈때 여러번 떨어져 죽을 결심을 했다" -백범일지 중에서-
['그리운 어머니'] 2:45 <백범선생>이 감옥 생활을 할때 아버지 <김순영선생>과 어머니 <곽낙원씨>는 이곳으로 이주하여 고생 고생하며 아들 옥바라지를 했는데, <백범>은 기어코 탈옥하여 중구 상해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며 <상행임시정부>를 만들어 국권회복에 매진했죠. 어머니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래서인지 <인천시>에서도 그를 추모하는 동상을 <인천항>이 보이는 고갯마루에 설립했나보다.
['가족사진'] 아버지 <김순영선생>은 <백범>이 탈옥하여 사라지자 대신 잡혀 들어가 감옥생활을 하고 얼마후 사망했고 어머니 <곽낙원씨>는 가족과 함께 중국 상해로 가 재회를 하며 애틋한 기념 사진을 남겼단다.
['자유공원' 조망] <그리운 어머니>라는 <백범 김구선생 동상>이 있는 고갯마루에 올라 서면 좌측으로 "자유공원"이 있는 "응봉산"이 보이며, <맥아더장군 동상>도 보인다.
['인천 홍예문' 입구] 2:48 이어서 <인천 홍예문> 입구에 도착하는데 자동차도 넘나드는 고갯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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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홍예문'] <홍예 虹霓>라는 말은 원래 중국사람들이 "환상종"으로 여기는 전설 속의 "龍"을 의미하는데 암놈을 "홍虹"이라하고 숫놈을 "예霓"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무지개"모양을 하고 있어 우리들에겐 "무지개"를 의미하는데, 건축학적으로는 "아치형 문"을 의미한다. 쪽바리들은 <인천역>과 <인천항>에서 <동인천역> 방향으로 빨리 넘나들기 위해 <응봉산>의 이곳을 뚫었단다. '문'인지 '터널'인지 아리송한데 차음엔 "혈문 穴門"이라 하고 후에 "홍예문"이라 했다니 터널은 아니란다.
['홍예문'] 위로 올라 가며 내려다 보니 제법 깊이가 있다. 이 산줄기가 모두 단단한 화강암이어서 뚫는데 어려움이 많아, 다이나마이트로 발파했다는데 우리나라 백성과 중국노동자들의 노동력으로 공사하며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고...
['홍예문' 위] 2:53 <홍예문> 위에는 <자유공원 진출입로>가 연결되고 있는데 조망을 하면...
['신포동' 조망] 먼저 지나온 서쪽 <신포동>을 조망하고...
['동인천역' 방향 조망] 동쪽으로는 <동인천역> 방향이 조망된다.
['자유공원' 입구] 2:57 <자유공원 입구>에는 "인천 학도의용대 6.25 참전기념비"가 있고
['맥아더장군' 동상] 2:59 이어서 "맥아더 장군 동상"이 서 있다. 정말 오랜만에 왔다.
['시계탑'] <자유공원>의 상징인 <시계탑>과 <인천둘레길 스탬프함>이 있고
['자유공원 광장'] 3:01 <자유공원 광장>이 펼쳐지며 건너편엔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있다. 1888년 국내 최초로 조성된 서구식 공원으로, <자유공원>은 처음엔 <각국 공원>으로, 그리고 해방 전 일제시대엔 <서공원>으로 그 후 <만국공원>으로 부르던 것을 인천시가 1957년에 <자유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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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수교100주년 기념탑'] 3:04~3:15 아시아 국가 중에는 <태국>이 제일 먼저 개항되고, 이어서 <중국>이 개항되었다, 그리곤 <일본>이 <미국>에 의해 개항되었는데, <미국>이 <일본>을 개항하여 즉시 잡아 먹지 못한 이유는 공교롭게도 당시 미국엔 <남북전쟁>이 터졌기 때문에 대외적 활동을 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미국의 침탈은 계속되고, 일본은 먼저 개항해 미국의 행태를 배워 우리나라를 침략한것이다. 그런 연유로 일본은 미국이라면 껌뻑 껌벅 죽고, 우리나라를 하찮은 취급 하는 것이다.
['인천항' 조망] 약간 줌인하여 <인천항>을 조망하는데 매우 가깝다. 여기서 옛 사진을 검토해 보겠다.
[인천항에서 조망하는 "응봉산 자유공원"] 개항 초기 <인천항>에서 바라보는 현재의 <자유공원>이 있는 <응봉산>이다. 그런데 봉우리마다 서양식 집들이 보이는데 하나씩 알아 보겠다
['세창양행 사택'] 현재의 <맥아더장군 동상>이 있는 자리엔 "독일 세창양행 사택"이 있었단다. <세창양행>은 <독일 마이어社>가 조선에 설치한 <인천지사>로 우리나라에 최초로 설치된 무역상사란다. 이 회사가 우리나라에 판매한 제품은 염료, 화약, 강철, 인쇄기등을 팔았는데 특히 바늘, 학질(말라리아) 치료제 "금계랍"이 폭발적 인기가 있었단다. 그래서 때돈을 벌어 이런 사택도 짓고 위세를 날렸지만 <인천상륙작전> 때에 폭격으로 불타 없어 지고 지금은 <맥아더장군 동상>이 서 있다.
['존스턴 별장'] 위의 <인천항>에서 바라본 옛사진의 가운데 봉우리에 있는 건물은 1905년 완공된 것으로 영국인 사업가 "존스턴의 별장"이란다. 벌써부터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에서 큰 돈을 벌어 들이며 호화 별장을 짓고 호사스런 생활을 했단다. 특히 이 별장 건물은 <인천항>을 드나드는 선박들의 등대 같은 역활을 하며 무척 인기 있었다는데 <인천상륙작전> 때에 함포사격으로 파괴되고, 그 자리엔 현재 "한비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서있다.
['인천 측후소'] 위의 옛 사진 좌측 봉우리에 보이는 건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기상관측소인 인천 측후소""란다. 해방후 <국립중앙관상대>로 승격되어 서울로 이전하고, 현재는 <인천 기상대>로 활용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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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고' 정문 앞] 3:17 <한미100주년기념탑>에서 우측으로 조금 내려 가면 사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엔 <제물포고등학교 정문>이 있고, 그 옆 골목엔 <인천기상대 입구>가 있으며 좌측으로 "송월동벽화마을"이 시작되는데 둘레길은 <송월동>으로 이어진다.
['제물포고'] <제물포고등학교>는 일제시대 <인천부립 인천중학교>로 설립되어 일본인 자제들만 다니던 학교란다. 지금은 우리나라 일반 고등학교로 "무감독 시험"을 치르는 양심학교를 지향하는 학교라고 자랑한다.
['인천기상대'] 우리나라 기상관측소의 시조인 <인천기상대>는 지역기상대로 남아 있다. 국립중앙기상대의 친정인 샘이다.
['송월동 동화마을'] 3:18 "송월동 동화마을"로 들어 가면....
['송월동 동화마을 후문'] <응봉산>에서 <인천역>으로 연결되는 <송월동 松月洞> 중앙로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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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월동 동화마을'] "송월동 동화마을" 1883년 개항 이래로 송월동은 외국인들이 거주하던 부촌이었으나 마을이 노후화되며 젊은 사람들은 떠나 빈집이 늘고 고령층만 남게 되었단다. 그래서 2013년 4월에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고전동화를 테마로 하여 낡은 담에는 벽화를 그리고, 곳곳에 조형물을 세워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며 활기를 띄게 되었단다.
['차이나타운'] 3:25 <동화마을 정문>에서 좌회전 하면 우리나라에 하나 뿐인 "차이나타운"이 나타나며 작은 중국 속으로 들어 가게 된다. "청나라 조계지 組界地"로 들어 가는 것이다. 중국에는 이런 문을 마을 입구에 설치하는데 "패루牌樓 "라고 한다. 잠시 진행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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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선당'] 3:27 "의선당 義善堂"을 만난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중국집' 거리] 3:30~3:58 <차이나타운>의 짜장면집은 수없이 많지만 대부분의 내방객들이 이용하는 짜장면집은 이 집들이다. 어느 집을 선택 할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인데 미리 메뉴를 검색해 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 나는 <공화춘>을 이용했는데, 메뉴 중에 <공화춘 짜장면>이 12,000원이라 하고 있고 그리고 우리나라 짜장면의 원조가 <공화춘>이라는 것을 얼핏 들은 기억이 있어 좀 특별 할려나 하고 <공화춘>으로 들어가 <공화춘 짜장면>을 먹었다. 1. 이곳 <공화춘>이라는 중국집은 오리지날 <공화춘>과는 관련없는 이름만 같은 중국집이란걸 알았고 2. <공화춘 짜장면>이라는 메뉴는 이 집이 만든 것으로 일반 중국집의 <삼선짜장면>과 비슷한데 값만 비싸다고 난 개인적으로 느꼈다. 앞으로 방문할 분 들에게 참고가 되길 바란다. 다음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연경>이나 <청관>도 들려 보련다.
['황제의 계단'] <차이나타운>에서 <자유공원>으로 올라 가는 계단을 <황제의 계단>이라고 한단다. 역사적 의미를 가진 계단은 아니고 그냥 관광용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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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거리'] 3:59 <황제의 계단>에서 좌측으로 직진해 가면 첫번째 사거리를 만나는데 <중국성>이라는 중국집이 있다. 앞 골목 끝에 화살표 표기한 곳이 "짜장면 박물관-공화춘"인데 개항장을 돌고 마지막으로 방문예정. 먼저 이 사거리 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삼국지 벽화거리'] "삼국지 벽화거리"가 이어 지는데, 벽화거리의 끝이어서 역으로 관람하게 되는것인데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를 80개의 벽화로 소개하는 거리이다. 벽화도 벽화지만 더 유의해서 볼것은 담장 안의 건물인데, 현재 "인천 중산화교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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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청나라 영사관''] 4:01 벽화 담장에 있는 문 안으로 들어 가면 "인천 중상화교학교"로 사용되고 있는 "옛 청나라 영사관"건물이 아직도 그대로 보존되 있다.
[''삼국지 포토죤'] <삼국지벽화거리>엔 포토존이 설치되 있는데 "관우 상"이 눈길을 끈다. <삼국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유비'? 아닙니다. <관우>입니다. <관우>는 중국사람들에겐 <삼국지4인방> 중에 유일하게 神으로 추앙된 "무신 武神"이죠
['도원결의' 벽화] <삼국지 벽화거리>의 벽화 시작점에 도착하면 <삼국지>의 첫 장면인 <도원결의> 벽화가 있는데 이 벽화 맞은 편으로 가면....
['공자 상'] 4:04 "공자 상"이 <청일 조계지 靑日組界地>를 바라보며 서 있다. <공자>는 중국인들에게 神으로 추앙 받는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제상>이었죠 중국인들은 <관우>를 "武神", <공자>를 "文神"으로 받들고 있지요. 우리나라도 <공자><주자>등의 사상을 기반으로 왕조가 유지 되었는데, 현재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고 <유교사상>을 남녀차별과 봉건왕조의 표본이라고 배척하죠.
['청일 조계지'] <공자 상> 앞으로 "청일조계지 靑日組界地" 경계선이 펼쳐 진다.
['청일 조계지 계단'] 4:06 "청일조계지 靑日組界地" 내려 와서 뒤돌아 본 "청일조계지 계단과 석등"이다. 좌측이 <청나라 주거지>이고 우측이 <일본 주거지>라고 그 경계를 명확히 하고 있다. <조계지 組界地>는 치외법권이 인정되는 외국인들의 거주지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들은 거주지 내에 자국 영사관, 경찰서등 자치 행정관청을 운영하며 <조선>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대불호텔' 조망]
[옛 '대불호텔' 사진] <조계지 계단>에서 바라보는 <대불호텔>인데 옛 모습과 비슷하다.
['대불호텔'] 4:08 "대불호텔 大佛호텔-다이부쓰호테루 大仏ホテル"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서 일보인 해운업자 <호리 히사타로(堀久太郞)>가 이를 운영했단다. <인천항>이 개항되자 세계 각국의 상인들이 몰려 들어고 <한양>까지 가려면 하룻밤 묵어 가야만 해서 숙박업이 전성기를 이루었다는데, 당시 70여개의 여관이 성업했다가 <경인선> 기차가 개통되면서 인천에서 숙박 할 필요가 없어지자 이곳의 숙박업은 쇠락하게 되었단다. 이 호텔엔 너무도 유명한 <감리교> 선교사인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도 하룻밤 묵고 후기를 남겼다고 알리고 있는데... "1885년 4월 5일 다이부츠(대불호텔의 일본식 발음) 호텔로 향했다. 놀랍게도 호텔에서는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손님을 편하게 모시고 있었다." 또한 또 무지 유명한 <장로교> 선교사였던 <연세대.세브란스의대>의 설립자 "언더우드"도 <인천항>을 통해 입국하여 이곳 <대불호텔>에서 묵었고 친필 후기를 남겼단다. "우리는 ‘소위’ 고급이라는 다이부츠(大佛)나 해리스(Harris)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다이부츠의 침대는 평평한 침상에 모포 한 장을 펴 놓은 것에 불과했으며, 천정의 누수를 받기 위한 물동이가 매달려 있었다" 당시 <언더우드>가 묵었을 때 <대불호텔>의 시설은 엉망이었나 봅니다. 천장에 비도 새고... <대불호텔> 초창기 목조건물이었을 때에 투숙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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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과거] 당시 대표적 호텔로는 <대불호텔>과 <스튜어드호텔> <코리아호텔(헝가리인 운영)이 있다고 <프랑스> 신문인 <르몽드 일루스터지>가 보도 하기도 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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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1은행'] 4:09 "일본 조계지"로 들어 가면 <대불호텔> 옆에 먼저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이 나타나는데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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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18은행'] 4:10 이어서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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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58은행'] 그 옆에는 "일본 제58은행 인천지점"이 우리나라 돈을 빨아 먹기 위해 폼을 잡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모두 안내문을 참고 하면 된다. <군산>의 역사현장과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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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중구청'] 4:15 은행 거리 가운데 중앙로로 조금 올라 가면 현재 "인천 중구청"으로 사용되고 있는 "옛 일본영사관" 건물을 만난다.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에 있다.
['인천 남부교육지청'] 4:19 <인천중구청> 옆 골목으로 잠시 올라 가면 "인천남부교육지청"을 만나고
['제물포구락부'] 4:21~4:26 이어서 "제물포구락부"를 만난다. 현재 1층은 전시실 등으로 이용되고 있어 진면목을 보기 위해선 2층으로 올라 가야하는데
['제물포구락포' 입구] <제물포구락부 2층>은 좌측 <자유공원 계단>으로 올라 가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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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구락부'] "제물포구락부"의 정문에서 안내문을 읽어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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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락부 내부'] 내부로 들어 가면 예상보다 훨씬 고급스런 사교장이 여전히 품위를 지키고 있었다. 세계 열강들이 이곳에 모여 서로 정보를 주고 받으며 <조선 약탈>을 음모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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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과거'] <제물포구락부>에서 <인천항>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각국조계표지석'] 4:27 <제물포구락부> 옆에는 "각국 조계지석 各國組界地石"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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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조계표지석'] "각국 조계석" <청일조계지>와 <각국조계지>는 구별해야 합니다. <각국조계지> 일본, 청나라를 제외한 미국 영국 독일등 서양국가들의 거주지이다. 비석의 앞면은 "각국지계 各國地界"라고 표기 되 있고, 뒷면엔 "조선지계 朝鮮地界"라고 표기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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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민애 집'] 4:29 "인천시민愛집" 조선에서 때돈을 번 쪽바리들이 호화 저택을 짓고 즐겼던 집들이 즐겁게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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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조계지 경계'] 4:33 <일본조계지>와 분리되는 <각국조계지 경계를 따라 내려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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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제면소'] 4:38 <한국사법교육원> 건물을 만나는데 옆에 <광신제면소>가 있다. <광신제면소>라는 음식점은 우리나라에서 "쫄면"을 최초로 개발 판매한 업소로 유명하단다. "쫄면"은 "냉면"을 뽑다가 실패한 "면"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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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쓰이 물산 인천지점'] 4:41 "일본 미쓰이물산 인천지점"이 현재는 <한국근대문학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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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트플렛폼'] 4:43 이 거리는 <인천항>의 부대 시설이 밀집되 있었는데 비교적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리모델링하여 젊은이들의 창작활동 공간으로 제공하며 영업시설로도 이용하고 있단다.
['청일 조계지'] 4:46 <청일 조계지>를 다시 만나는데, <조계지 경계를 두고 일본과 중국이 서로 세력 다툼을 하는듯
['제물포개항장' 입구] 4:47 "제물포 개항장"입구 안내소를 보고
['청일 조계지'] "청일 조계지"에 다시 섯다. 저 끝에 <공자 상>이 보이고 그 뒤로 <응봉산 자유공원>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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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우선주식회사'] "일본우선주식회사 日本郵船株式會社" 현재 일본의 "미쓰비씨 그룹"이 대 재벌로 크는 첫번째 회사가 바로 이 회사란다. 처음엔 우편물 운송하는 선박회사로 출발하여 <조선>의 수출입 화물을 운송하는 선박회사로 커서 현재 세계적인 "NYK"라는 선박회사가 되었단다. "일본우선 Nippon Yusen Kaisha"의 준말이다. 오늘의 "미쓰비씨"는 이렇게 개항기 우리나라로 부터 돈을 벌어 들여 때 부자가 되었다.
['차이나타운'] 4:52 다시 <차이나타운>으로 들어 가면...
['짜장면박물관' 입구'] 4:55 <공화춘 짜장면> 먹고 <삼국지 벽화거리>로 갔던 <중국성>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 와서 좌회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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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춘'] 4:55~5:00 현재 "짜장면 박물관"으로 문을 열고 있는 "옛 공화춘 共和春"에 도착한다. 우리나라에서 짜장면을 처음으로 판매한 곳이란다. 그러니까 조금전 짜장면으로 점심을 먹은 <공화춘 중국집>은 오리지날 <공화춘>이 아닌 것이다. <공화춘 共和春>이라는 중국집 이름은 중국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던 당시 우리나라의 <서울의 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 졌지요. <손문>의 <문화혁명>이 실패로 끝났지만 중국인들도 왕조국가에서 "중국 공화국의 봄"을 기대해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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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 내부에는 추억의 중국집 풍경이 재현되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입장료는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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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 회거리'] <짜장면박물관-공화춘>을 나서면 "밴댕이 회거리"가 이어지고
['올림포스호텔' 조망] 5:03 <밴댕이 회거리> 입구에서 바라보는 "옛 올림포스 호텔"이다. 개항기 "영국영사관"이 있었던 자리란다. 현재 <올림포스호텔>도 문을 닫고 유령의 집 처럼 서 있다. 우측 현재 <인천역 코마루 오피스텔>이 있는 곳엔 "옛 러시아 영사관"이 있던 곳이란다.
['패루'] .<인천역> 맞은편에 "차이나타운 정문"인 "패루 牌樓"가 상당한 규모로 세워져 있는데 <패루>는 중국에서 우리나라의 <장승>이나 성황당> 처럼 마을 입구에 설치하는 대문이란다. 이곳 <차이나타운>에선 북쪽, 남쪽, 그리고 이곳 서쪽에서 세개의 <패루>를 만날수 있었다.
['인천역'] 5:05 <인천역>에서 답사를 마치고 귀가 한다 짜장면도 먹고 이곳 저곳 구경하며 3시간이 걸렸다.
['인천역 개통식'] 1899년 <인천역 개통식> 사진을 보며 옛 <인천역>과 <인천항>, 그리고 <월미도>를 느껴 본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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