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둘레길』
『안성40코스』
칠장사에서 칠현산을 넘어 금광호수로
칠장사-3정맥분기점-부부탑-칠현산-공림정상-곰내미고개-덕성산-
사흥리갈림길-사간마을-석암마을-박두진문학길-수석정-하록동
['안성40코스 안내도']
[실트랙 지도]
"경기둘레길 안성40코스"는 "칠장사"에서 "칠현산-덕성산"을 오르고
"금광호수 박두진문학길"을 따라 "수석정"까지 가는 "14km" 거리라고 알려 줍니다.
['이천역'] 7:45
2024년 3월 31일 일요일 맑음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이천역>에 내렸습니다.
<죽산터미널>을 가는 시내버스는 <26-1번>이며 <이천터미널>에서 7시40분에 출발하여
이곳 <이천역>에 약15분이 걸려 7시55분경에 도착하더군요. 이제까지 여러번 이용해서 익숙합니다.
['죽산버스터미널']
<이천역>에서 약45분이 걸려 <죽산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습니다.
<칠장사> 가는 <3-2번시내버스>는 9시30분에 있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기에 버스환승요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게 좀 그렇군요.
근처에 있는 떡집에서 점심겸 간식용으로 떡 한팩 사고...
['칠장사'] 9:45
<죽산터미널>에서 약15분이 걸려 <칠장사> 앞에 도착합니다.
지금까지 이곳에 7~8번은 온듯 하군요.
<스탬프함>과 안내도는 일주문 우측에 있습니다.
['40코스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안내도를 참고하고 올라 가면...
['칠장사']
"칠장사 七長寺"를 만납니다.
이 절은 여러 역사적 사연을 품고 있는 유명한 절이라 제가 여러번 이미 산행기에서 언급 한바 있습니다만
핵심 포인트만 정리를 하면...
1. <선조>의 유일한 적자인 <인목대비>의 아들 "영창대군"과 그녀의 아버지 "김계남"의
원찰이 되는 유서 깊은 사찰이며
2. <신라>의 왕자였던 "궁예"가 한쪽 눈이 찔려 실명하며 죽음 일보 직전에 도피하여 열살까지 살며
활쏘기 등 무예를 단련하며 풍운의 꿈을 꾸던 곳이고
3. "임꺽정"이 스승 "병해대사 (갖바치)"를 찾아 결의를 다진 곳이며
4. "암행어사 박문수"가 과거 보러 가던 중 이곳에서 현몽을 꾸고 장원급제 했다는 곳입니다.
5. 특히 고려시대 <혜소국사>와 <일곱 도적들> 이야기가 유명하고
6. 한개의 국보와 세개의 보물이 있는 절입니다.
7. 지난해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스님>이 분신 자살한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 하나 자료를 보며 알아 보겠습니다.
['국보 오불회괘불탱화'] ['보물 인목왕후어필칠언시']
"국보 제296호 오불회괘불탱화"
국내에서 세번째로 오래된 것으로써 조선 인조 6년(1628, 승정원년) "범형비구니"에 의해 그려진
군집도 형식의 불화랍니다.
조선 최악의 군주 중에 한명인 <선조>는 친아들이 없어 왕위 계승을 무척 어렵게 했죠.
<인목대비>는 <선조>가 51세 때 19살로 왕비가 되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왕자를 생산 했는데
<선조>는 이미 세자로 책봉되었던 <광해군>을 <영창대군>으로 교체하고 싶었지만 못하고 죽었습니다.
<인목왕후>의 등장으로 졸지에 아들이 된 <광해군>은 새엄마가 된 <인목왕후>보다 나이가 9살이나
더 많았으니 이 집구석의 상황은 콩가루 집안이 되었고, 권력암투가 극으로 치달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광해군>이 <영창대군>과 <인목왕후>의 아버지 실세 <김계남>을 처형하며
<광해군>과 <인목왕후>의 권력싸움은 <광해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어지는 <인조반정>으로 <인목대비>가 된 <인목왕후>는 <광해군>을 몰아 내며 복수를 했죠.
그리하여 <영창대군 무덤>에서 가까운 이곳 <칠장사>를 원찰로 삼고 대대적으로 개보수하고
처형 당한 자기 아들 <영창대군>과 자기 아버지 <김계남>을 기리기 위해 탱화를 하사하였는데
<광해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자기 아들 "영창대군"의 극락환생을 비는 의미의 탱화라고 합니다.
"보물 제1627호 인목왕후 친필 칠언시 족자"
<인목대비>는 글도 무지 잘 썻다고 하는데 친히 써서 하사한 족자의 내용을 번역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늙은 소 힘쓴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목덜미 쭈그러들고 가죽은 헤져서 졸립기만 하고,
쟁기질 다 끝나고 봄비 또한 넉넉한데, 주인은 어찌하여 또 채찍을 든단 말인가?"
이 한시(漢詩)는 늙은 소의 고달픔과 그것을 바라보는 주인의 애처로운 마음을 자신의 처지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칠장사 경내']
"칠장사" 경내를 둘러 보고 올라 갑니다.
'칠장사'가 위치한 '칠현산'은 원래 '아미산'이었답니다.
고려시대 <혜소국사(972~1054)>가 이 산 아래 아라야를 짓고 수도처로 삼고 있었는데,
어느 하루는 도적떼 7명이 찾아와 <혜소국사>와 마주 앉아 협박을 했답니다.
그러나 이들이 <혜소국사>의 신묘한 도력에 이끌리어 설법을 듣게 되었고
설법을 들은 나쁜 놈들은 교화되어 일곱명의 현인이 되어
산 이름을 '아미산'에서 '칠현산(七賢山)'으로 고쳐부르고,
'칠장사(漆長寺)'도 현인들이 오래토록 이곳에 머물렀다고 '七長寺'로 개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궁예'의 활쏘기]
<칠장사 명부전>에는 그림이 한폭 걸려 있는데
<신라>에서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어린 <궁예>가 이곳으로 숨어 들어 10살까지 성장하며
활쏘기등 무예를 익힌 곳이란걸 그려 놨습니다.
<궁예 弓裔>의 뜻이 "활의 후예"라는 뜻이죠.
['임꺽정'과 '갖바치']
또한 <칠장사 명부전>에는 <임꺽정>에 대한 그림도 걸려 있습니다.
<임꺽정>이 자신의 스승인 "병해대사(갖바치스님)"를 만나 <이봉학>등과 의형제를 맺은 곳이라죠.
<갖바치>는 이곳에 머물면서 주민들에게 '가죽신 깁는 법'을 가르쳐 '가죽신'이 '안성유기'와
더불어 '안성 특산물'이 되기도 하였답니다. 또한 "복조리"를 만들어 파는 곳이기도 하죠.
['임꺽정'이 봉안한 '병해대사 불상']
<칠장사 명부전>에는 <임꺽정>이 자신의 스승인 <병해대사(갖바치스님)"을 기리는 불상을 만들어
봉안 했다고 하는 불상입니다.
<임꺽정>이 난을 일으켰을 때 관군을 피해 숨어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고...
['박문수 합격다리'와 '나한전'] 9:53
<칠장사> 경내에서 조금 올라 가면 "박문수 합격다리"와 "나한전"을 만납니다.
<나한전>은 새로 멋지게 지었군요. 전에는 초라했는데 시주가 많이 들어 온듯...ㅎ
<박문수>는 <유관순>의 고향인 <병천>이어서 <한양>으로 과거보러 갈때 이곳을 들려 갔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잠시후에....
['혜소국사비각'과 '자승 분신지']
<나한전> 우측에는 "혜소국사비각"이 있는데
뒤에는 전<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자승스님"이 분신 자살했다는 요사체가 있던 곳입니다.
화재 흔적은 없어지고 맑끔하게 정리되 있군요.
지난 2023년 11월 29일에 "자승스님"이 요사체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분신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스님도 자살하나? 왜??..
스님 분신 자살 수사를 이상하게도 <국정원>이 한다고 떠들석 했죠?..왜?
의문이 많았지만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혜소국사비']
"보물 제488호 혜소국사비"
<혜소국사( 慧昭國師, 972-1054)>를 추모하기 위해 <고려 문종> 때에 세운 비라고 합니다.
<혜소국사>는 <고려 문종> 때에 왕의 멘토였던 인물로서 <안성> 출신이라고...
['산신각' 방향]
예전엔 <칠현산>이나 <칠장산> 등산로는 이 길로 올라 갔는데
<박문수둘레길>이 만들어 지면서 좌측으로 빙 둘러 가게 했더군요.
앞에 <둘레길>이라고 표기 한곳에서 등산로와 <둘레길>이 만나기에 바로 올라 가도 무방하겠습니다.
['박문수합격다리'] 9:57 ['박문수둘레길']
<혜소국사비>를 둘러 보고 다시 <박문수 합격다리>로 돌아 와 둘레길을 10여분 돌아 갑니다.
['박문수 합격다리' 안내문]
"박문수"는 이곳 아랫 동네인 '병천'이 고향입니다. 유관순 누나랑 같은 고향이죠.
그리고 '박문수'라고 하면 암행어사로만 거의 알려져 있죠?
사실 박문수는 암행어사를 6개월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경상도 관찰사' '도승지' '병조판서' '어영대장' '호조판서' '예조판서' '한성판윤(서울시장)'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특히 왕세손의 가정교사(世孫師傅)까지 했습니다.
박문수는 과거시험의 문과에 장원급제를 하고, 지금으로 말하자면 '공인회계사'같은
회계 경리 업무에 밝은 그런 관리였습니다.
세간에 들어 나지 않은 경제 치세에 더욱 공이 큰 경제통 관리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암행어사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신 분은 부록에 첨부된 제가 쓴 "[은석산] 암행어사 박문수 묘 산행기"를 참고 하세요.
[갈림길] 10:05
<박문수 합격다리>에서 둘레길을 10여분 돌아 가면 <칠장사 등산로> 갈림길을 만나는데
['칠장사' 조망]
<둘레길 갈림길>에서 <산신각>과 <혜소국사비각>을 바라보고
[오름길]
<경기둘레길 안성40코스>에선 제일 가파른 오름길을 20여분 올라 갑니다.
['칠장사 갈림길'] 10:25
그러면 이정표가 있는 "칠장사 갈림길"을 만나는데 "금북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곳입니다.
<경기둘레길>은 좌측으로 안내 됩니다만...
['3정맥분기점' 조망]
우측에 있는 <3정맥 분기점봉>을 다녀 오도록 합니다.
오랜만에 왔으니.....
[오름길]
5분 정도 올라 가면...
[갈림길] 10:31
갈림길을 만나는데 우측으로 40m 올라 갑니다.
['3정맥분기점'] 10:32
"3정맥 분기점"
<백두대간 속리산 천왕봉>에서 분기하여 오는 <한남금북정맥>이
이곳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나뉘는 곳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제가 두 발로 쓴 산행기를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칠장사 갈림길'] 10:38
<3정맥분기점>에서 <금북정맥 마루금>을 따라 다시 <칠장사갈림길>로 돌아와
[오름길]
<경기둘레길>과 <금북정맥 마루금>이 함께 가는 능선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쉼터'] 10:49
쉼터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예전엔 없던 <몽중등과시>가 세워져 있군요.
['몽중등과시']
"몽중등과시 夢中登科詩"
"칠장사 나한전"과 '박문수'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내용은 간단합니다.
'박문수'가 고향인 '병천'에서 한양으로 과거시험 보러 갈때
여기 '칠장사 나한전'에 들려 합격기원 기도를 하고 가서 장원급제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입시철만 되면 학부형들이 개나 소나 몰려와 기도를 드린다는거 아닙니까.
'박문수'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조청유과를 부처님께 올리고
그날 밤을 '칠장사'에 머물렀는데 꿈에 과거시험문제를 현몽하였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장원급제 할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과거시험 답안지가 바로 "夢中登科詩"랍니다.
그렇다면 만민에게 평등해야할 부처님이 '조청유과'라는 뇌물울 받고
시험문제를 사전에 알려 줬다는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박문수>는 일종의 컨닝을 한거 아닌가요?
그러니 부처님은 시험문제 사전유출죄와 뇌물 수수죄를 지은건 아닌가요?
종교!!~ 이거 어디까지가 이율배반인가?
합격하는 사람이 있으면 불합격하는 사람이 있는 법인데 자기 아들만 합격되게 해 달라는 이기주의를
교묘하게 돈벌이용으로 <박문수>를 팔아 먹고 있는 <칠장사>라고 생각되지는 않나요? ㅎㅎ
다른 종교가 다 그렇지만....
['금북정맥 마루금']
<몽중등과시>가 있는 봉우리에서 10여분 진행하면....
['440.3m봉'] 10:59
폐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440.3m봉>이라는 안내판이 있고
['칠현산' 조망]
<칠현산>을 바라보며 잠시 내려 가면...
['부부탑'] 11:04
"부부탑"이라는 비석이 세워진 돌무덤을 만납니다.
비석 앞면엔 "칠순비 부부탑"이라고 쓰여 있으며
뒷면은 촬영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간신히 촬영 했습니다.
뒷면엔 "김성기 임경순, 광해원 중고개 2002년"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칠순 때가 2002년이니, 현재 92세 정도 되겠고, 요즘 장수하니까 아직 살아 있을듯 하군요.
['인성베네스트CC']
우측에는 골프장이 보이는데 예전엔 <세븐힐스>였는데 <안성베네스트>로 이름이 바뀌었군요.
[오름길]
<부부탑>이 있는 <중고개>에서 30여분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진행하면...
['칠현산 정상'] 11:33
"칠현산 七賢山 516.2m" 정상에 도착합니다.
산객들을 여럿 만날수 있었습니다.
예전의 모습과는 달라서
['칠현산 정상'] (2012년 5월 3일 촬영 사진)
참고로 12년 전에 촬영한 사진을 보여드림니다.
예전엔 돌탑이 세개였는데...
['덕성산' 조망]
<칠현산 정상>에서 <덕성산>을 조망하면서 10여분 진행하면...
['곰림정상'] 11:45
"공림정상"이라고 하는 "514.1m봉에 도착하는데
<곰림정상>을 잘 못 표기한게 틀림없습니다.
['덕성산' 조망]
<곰림정상>에서 <덕성산>을 바라보며 15분 정도 진행하면...
['곰내미고개'] 12:01
"곰내미고개"를 지나고
['덕성산 정자' 조망] 12:12
<덕성산>의 정자가 보이기 시작하며
['덕성산' 갈림길] 12:19
"덕성산 갈림길"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충북 진천군>과 <경기 안성시>의 경계가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천군>에서 세운 이정표와 <안성시>가 세운 이정표 두개가 서로 마주보며 있습니다.
<덕성산 정상>은 여기서 좌측으로 100m 떨어져 있는데 갔다가 돌아 오도록 합니다.
['덕성산 정상' 가는 길]
갈림길에서 <덕성산 정상>은 매우 가깝습니다.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를 <덕성산 정상>으로 표기 하고 있는데....
['덕성산'] 12:23~12:55 휴식
"덕성산 德城山 510m"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의 경계가 되는 산입니다.
옛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기도 했다는 "덕성산"이라 山城의 흔적도 발견된다는 군요.
['덕성산 등산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덕성산 등산안내도>에 "병무관"이라는 지명이 보이는데,
"병무관"은 이 산 아래 '광혜원면'에는 옛 신라시대 화랑들이 훈련하던 연무대와
무기를 보관하는 병기고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김유신장군>의 아버지가 <진천 현감>이어서 <김유신>은 <진천>에서 태어나 무술을 익혔답니다.
['칠현산' 조망]
<덕성산 정상>에서 지나온 <칠현산>을 뒤돌아 보고
['광해원' 조망]
동쪽으로 <진천군 광혜원면>이 펼쳐집니다.
바로 아래에 <국가대표 진천 선수촌>이 있습니다.
['덕성산 갈림길' 회귀] 12:58
<덕성산 갈림길>로 다시 돌아 와 100m쯤 진행하면....
['사흥리' 갈림길] 1:01 ★길조심★
<경기둘레길>이 <금북정맥 마루금>과 헤어지는 "사흥리 갈림길"을 만나 우회전 해야 하더군요.
[능능선 내림길]
갈림길에서 좁은 능선길을 20여분 내려 가면....
[벌목지] 1:21
벌목지를 만나는데 직진해서 아랫쪽에 보이는 임도로 내려 가야 합니다
[내림길] 1:36
15분여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가면 임도를 만나서 우회전 합니다.
['칠현산' 조망]
지나온 <칠현산>과 <곰내미고개>가 조망되고
[내림길]
10여분 임도를 진행하면
[별장] 1:46
누군가 주말에 고기 구워 먹으로 오는 듯한 조그만 별장을 만나고
['사흥리'] 1:50
이어서 <안성시 금광면 사흥리>를 만납니다.
[사간마을' 통과] 2:09
<사흥리 사간마을>로 내려 가면 "금냉이교"를 건너는데
[마을 詩]
<사간마을>을 추억하는 詩 한수가 눈길을 끌더군요.
['석암마을' 가는 길]
<사간마을>에서 15분 정도 진행하면...
['석암마을회관'] 2:24
"석암마을회관"에 도착하는데 이곳 버스정류장에서 물 한잔 마시며 좀 쉬어 갑니다.
['금광초 조령분교'] 2:33
이어서 "금광초등학교 조령분교"를 만나고
['사흥교']
['사흥길']
<사흥길>을 따라 7분여 나가면....
['사흥리' 입구] 2:41
<사흥리 입구 삼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선 <금광호수>방향으로 좌회전 하라고 안내합니다.
['금광저수지']
지금부터 <금광저수지>가 보이기 시작하며
['오흥로']
<금광면 오흥리>로 들어 갑니다.
<사흥리 四興里> 다음은 <오흥리 五興里>더군요,
30여분 지루한 발길을 옮기면....
['박두진 문학길'] 3:10
"박두진 문학길"이 있는 "청록뜰 금광호수"를 만나는데
<박두진 시인 동상>이 우측 돌담 안에 보입니다.
그런데 공사 중이어서 들어 갈수는 없더군요.
['박두진 동상']
"박두진 시인"
<청록파 시인> 세분 <박목월><조지훈><박두진> 중에 한분인 <박두진 시인>.
<조지훈 선생>은 "민족"에 촛점을 맞추고, <박목월선생>은 "일상"에 비중을 두었다는데
<박두진 선생>은 "기독교"에서 궁극적인 삶의 가치를 찾은 분이죠.
일제강점기 시대 문인들은 대부분 단명했는데 <박두진 선생>은 82세까지 사셔서 장수하신걸로도
유명한데 <이화여대-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셨죠.
<청록파>의 시가 유명세를 탄 이유는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는 시점에 좌우 이념논쟁으로 나라가 완전 혼탁해 졌을 때에도
이들은 순수 서정시만을 발표 함으로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답니다.
['빅두진문학길']
<박두진 시인>의 생가는 여기서 먼 <안성맞춤랜드> 근처이지만 <금광저수지>를 관광지로 만들면서
이곳에 "박두진 문학길"이라는 테마 산책로를 만들고 있더군요
[고개 입구] 3:15
<박두진 문학길>과 <경기둘레길>은 현재 공사 중으로 지름길인 고개로 안내됩니다.
[고개]
10여분 고개를 하나 넘어 가면....
['금광호수'] 3:27
<금광저수지> 남쪽으로 가게 되는데 건너편에 다음 코스에서 진행할 <중대마을>이 보이며
<제천-평택 고속도로>도 조망됩니다.
['강 건너 빼리'] 3:28
봄맞이 상춘객들이 제법 많은 <강건너 빼리>라는 매운탕 음식점이 있습니다.
<허영만의 식객>에 나온 음식점이라는군요.
['수변데크']
15분 가량 수변데크길이 이어지는데 <박두진시인>의 詩가 곳곳에 걸려 있습니다.
<박두진 시인>의 詩는 주로 "해"만 기억 되지만, 대표시 중에는 "설악부"도 유명합니다.
"해"는 '1980년MBC대학가요제'에서 "해야"라는 노래로 은상을 받아 지금까지도 불려지고 있습니다.
['수석정' 조망]
<경기둘레길 40코스 종점>인 <수석정>이 보이고 버스정류장이 있는 <하록동>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수석정'] 3:43
<경기둘레길 40코스>와 <41코스>의 시종점입니다.
<스탬프함>과 안내도가 있는데...
['41코스 안내도'] ★산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다음에 진행할 <41코스 안내도>를 참고하고
['하록동' 가는 길]
<하록동>으로 나가면...
['대문교'] 3:48
<옥정천>이 흐르는 <대문교>에 도착해서
['수석정' 조망]
지나온 <수석정> 방향을 뒤돌아 보고
['하록동' 버스정류장] 3:50
{버스시간표]
<안성>으로 가는 <2번 시내버스>는 종점인 <연내동>에서 4시30분에 출발하여
이곳까지 약5분이 걸려 4시35분경에 도착하더군요.
45분을 기다려 <2번버스>를 타고 <안성>으로 가서 다시 <안성종합터미널>로 환승하여
5시50분에 출발하는 <8203번 광역버스>를 이용해 <이천역>으로 가서 <경강선>을 타고 귀가했습니다.
버스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평택 이용 추천)
['구글어스']
[고도표]
오늘은 <하록동>에서 버스시간이 넉넉하여 <3정맥분기점>을 왕복하며 천천히 진행했습니다.
걸은 거리는 16km였으며 약6시간이 걸렸습니다.
<부록>
1. "[은석산] 암행어사 박문수 묘 산행기"
2. [금북정맥] 첫구간 산행기"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