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둘레길』
『이천 37코스 '현수1리'에서 '장호원'까지』
['경기둘레길 37코스 실트랙 지도'] .
<경기둘레길 37코스>는 공식적으로 <경기둘레길 이천 37코스>더군요.
'여주시 점동면 현수1리'에서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버스터미널'까지 약12km를 갑니다.
윗 지도의 빨간색 선이 실제 진행 한 트랙이며, 파란색 선이 오리지날 루트입니다.
<청미천>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며칠전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불이 불어 건널수 없었고
또한 <명성왕후>가 <임오군란> 때에 도피했던 <감곡매괴성당>을 다녀 오기 위해
오리지날 길을 좀 벗어 났었습니다. 오히려 이 길이 더 의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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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역'] 8:10
2022년 9월 8일 목요일 맑음 .
<경강선 이매역>에서 <7시7분> 전철을 타고, <여주역>에 7시54분에 도착하여
<여주역>에서 <8시10분>에 출발하는 <929-3번 시내버스>를 타고 <현수1리 버스정류장>으로 갑니다.
지난 <36코스> 때와 같은 시간 같은 버스입니다.
['현수1리' 가는 버스 시간표]
<감곡>행 <929번 버스시간표>를 참고 하고
['현수1리' 버스정류장] 9:00 .
<여주역>에서 약50분이 걸려 <현수1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36~37코스 안내판.스탬프함>은 다리 건너편에 있습니다.
['36~37코스 시종점']
['36~37코스 안내도'] ★ 사진을 클릭 하고 또 한번 더 클릭하면 확대 됨 ★
지난 <여주 36코스>를 할때 이곳에서 역방향으로 진행 했었죠. 버스시간을 고려해서...
"경기둘레길 36코스~37코스 시종점 안내판"과 <스탬프함>을 한번 더 확인하고...
['현수1리 버스정류장'] 9:03 .
다시 <현수1리 버스정류장>으로 나가 <당진교> 방향으로 200m 정도 진행하면...
['당진교' 앞] 9:05 .
이정표가 있는 <당진교> 앞에 도착하여 좌회전 합니다.
<←11.8km 장호원버스터미널>이라고 알려 줍니다.
['청미천 둑방길']
<경기둘레길 37코스>도 대부분 이 <청미천 둑방길>을 걷는 코스더군요.
['신통산' 조망]
북서쪽으로 <독조지맥>에 있는 "신통산 神通山 279.4m"이 조망됩니다.
<신통산>에는 <예수상>이 있어 주변 어디에서나 잘 확인 할수 있죠.
<神通山>이어서인지 여러 종교단체 시설들이 있더군요.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신 분들은 제가 쓴 <독조지맥 마지막 산행기>를 참고 하세요.
['이가공방' 입구] 9:13
<당진교>에서 8분 정도 둑방길을 진행하면 <이가공방>이라는 간판을 만나고
['당진양수장'] 9:14
간판 뜃쪽에 있는 <당진양수장>을 돌아 나가면...
[쉼터] 9:15
['청미천자전거길' 안내도]
<청미천 자전거 쉼터>가 있습니다.
쉼터 앞에 있는 시설은 화장실이 아니고 <수문 조작실>이더군요.
이런 <수문 조작실>은 이 둑방길에 연이어 있더군요.
['청미천 둑방길']
볼거리도 없고 그늘도 없는 <청미천 둑방길>을 하염없이 걸어야 합니다.
다행이 <태풍 흰남노>가 지나가고 난 다음의 전형적인 가을 날씨여서 바람은 시원했으나
햇볕은 따가왔습니다.
"청미천 淸渼川"
<오갑지맥>과 <독조지맥> 사이로 흐르는 개천으로 <용인><이천><여주>를 관통하며
유명한 <여주-이천쌀>을 생산하는 젖줄이기도 하지요.
임금님께 진상하는 쌀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쌀이 좋다기 보다는 옛날엔 전국에서 제일 먼저
햇쌀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임금님께 제일 먼저 진상 했다는 것에서 유래한다는 사실 아시나요?
['뇌곡교' 조망]
['뇌곡교' 굴다리 통과] 9:42
<자전거 쉼터>에서 27분여 둑방길을 걸으면 "뇌곡교"를 통과하게 되고
['청미천 둑방길']
다시 둑방길을 25분여 진행하면
['관한천'] 10:06
"관한천 寬閑川"이 "청미천 淸渼川"에 합수하는 지점에 도착하는데
물이 많지 않으면 <관한천 보>를 바로 건너 가면 되겠지만, 물이 많아 건널수 없어서
['황새들교' 조망]
개천 위에 있는 "황새들교"라는 다리를 건너 돌아 와야 하더군요.
<황새들橋>로 가면...
['오갑산' 조망]
<황새들교> 앞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오갑지맥>의 대표산인 "오갑산 梧甲山 609.1m"이 잘 보입니다.
<경기도 여주시>와 <충북 충주시> 그리고 <충북 음성군>의 경계가 되는 산이죠.
"관한천 寬閑川"은 저 <오갑산>에서 발원하여 흘러 내려 오는 개천입니다.
이 들판이 <황새들>이어서 이 다리의 이름도 <황새들교>라고 지었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금년 <추석>이 너무 빨라 햇쌀이 아직 나지 않았지만, 벌써 들판은 황금색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관한천'-'청미천' 합수부] 10:13
<황새들교>를 건너 다시 합수부로 돌아 와서
['청미천 둑방길']
계속해서 <청미천 둑방길>을 진행하면...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고수부지로 내려 가는 곳] 10:17
<관한천>에서 4분여 진행하면 둑방길에서 고수부지로 내려 가는 길을 만나는데,
둑방길에서 내려 가는 그 이유는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원부교>를 다리 밑으로 통과하기 위한듯...
['중부내륙고속도로 청미천교'] 10:23
<중부내륙고속도로 청미천교> 밑을 통과하면
['원부교'] 10:26
이어서 <원부교 元富橋>를 통과합니다.
'여주시 점동면 원부리'에 있는 다리인데, 이 동네는 "최고 부자 동네"라는듯....
['청미천 둑방길'] 10:30~10:51 (휴식)
종점인 <장호원 버스터미널>까지 5km 남았다는 곳인데
앞에 보이는 조그만 나무 그늘에서 20여분 휴식을 취하고
['단평제' 표지석] 10:56
이어서 "단평제"라는 표지석이 있어 뭔가 뒷면을 보니 이 <청미천 둑방길>의 이름이더군요.
둑방 시공 표지석이었습니다.
이 동네가 '충북 음성군 감곡면 단평리'더군요.
그러니까 이제 <경기도 여주시>를 벗어나 좌측은 <충북 음성군 감곡면>이고,
우측은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이 되더군요.
['농어촌공사 양수장'] 11:00
이어서 <한국농어촌 양수장>을 지나면...
[갈림길] 11:01
둑방길에서 <청미천> 물가로 내려 가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이 둑방길은 <충청북도>이니 내려 가서 <청미천>을 건너 <경기도 이천시>로 가라고 하는 듯 합니다.
내려 가면...
[삼거리] 11:04
바로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이 조금 애매하지만 우측으로 들어가 좌회전 해야 하더군요
['벼락바위'] 11:07
그러면 <37코스>에서 안내판이 있는 유일한 볼거리라고 하는 "벼락바위"를 만납니다.
그런데 요즘같은 여름철에는 잡목 잡풀이 뒤덮고 있어 형체를 알아 볼수 없더군요.
무심결에 지나치다가 잡풀 사이로 안내석이 보여 이곳이 <벼락바위>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벼락을 맞아 부셔진 바위 인줄 알았는데 안내문을 읽어 보니 "무덤 이야기"더군요.
궁금하신 분들은 안내문을 읽어 보세요~~ㅎㅎ
['자전거 쉼터'] 11:12
이어서 좌측 둑방길에 있는 <자전거 쉼터>가 보이고
[잡풀길] 11:15
고수부지에 잡목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 통과하기 쉽지 않은 곳을 통과하면....
[사거리] 11:21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서 우측에 있는 <청미천>을 건너, 건너편 <이천시 장호원>으로 가라고 하는 듯 합니다.
그런데 진행 해 본 결과 <청미천 징검다리>를 건널수 없어서 다시 돌아 나와 직진 했더니
직진길도 물이 너무 많이 고여 있어 갈수 없어 다시 돌아와 좌측 둑방길로 올라 가 진행 했습니다.
먼저 이정표가 시키는 데로 우측 <청미천 징검다리> 방향으로 들어 가면....
[고수부지길]
고수부지 길을 잠시 진행하게 되고
[징검다리] 11ㅣ22
이어서 <징검다리>를 만나는데....며칠전 <태풍 흰남노>의 영향으로 물이 불어 건널수 없었습니다.
또한 이 <징검다리>를 건넌다 해도 더 넓고 긴 <징검다리>를 또 건너야 해서 포기하고
다시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로 돌아 가서
[물길] 11:25
직진해 갔더니 이번엔 고수부지도 잠겨 있어 진행 못하고
[징검다리 갈림길 사거리 회귀] 11:31
다시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로 돌아 가 우측 <둑방길>로 올라 갑니다.
['둑방 오름길']
둑방 오르는 길은 잡목 잡풀로 뒤덮혀 있는데
다행이 바닥엔 돌계단이 있어 오르는데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청미천 동측 둑방길'] 11:32
지금부터 오리지날 <경기둘레길>에서 조금 벗어나 <충청북도 둘레길>을 걷게 됩니다.
16분 정도 진행하면...
['KTX중부내륙선'] 11:48
"KTX중부내륙선"이 지나는 철교를 지나고
['감곡장호원역 진출입교'] 11:51
이어서 <감곡장호원역>과 연결되는 새로 만든 다리를 지나는데
['장호원' 조망] 12:07
건너편 둑방길이 <경기둘레길>인데 건널수가 없으니 <충청도 둑방길>을 가는 것입니다.
'오십보 백보'이니 큰 차이는 없지만 오히려 <장호원>을 제대로 조망 할수 있습니다.
['감곡장호원역' 조망] 12:08
좌측 동쪽으로는 "KTX감곡장호원역"과 그 뒤로 "극동대학교"가 조망되며
"매산"과 "감곡매괴성당"이 보입니다.
원래 계획으로는 <37코스 종점>인 <장호원 버스터미널>에 갔다가 <감곡성당>을 방문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됬으니 <감곡매괴성당> 부터 먼저 방문하고 <장호원>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저곳...<매산> 아래 <감곡매괴성당> 자리가 옛날 <임오군란> 때에 <명성왕후>가 도피한 곳이어서
이번 기회에 꼭 방문 해 보려고 한 것입니다.
['장호원교' 조망] 12:16
마지막 비포장 둑방길을 벗어 나면
['감곡성당' 가는 길] 12:18
포장 도로를 만나는데 바로 앞에 <감곡성당> 가는 길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감곡매괴성당' 조망]
안내판이 안내하는 농로로 들어 가면
<명성왕후>가 <임오군란> 때에 도피한 <감곡매괴성당>이 다가 옵니다.
당시엔 저곳 지명도 <경기 여주 장호원>이었답니다.
['매산마을'] 12:24
['매산마을 벽화거리'] 12:25
<조선왕조실록>엔 <명성왕후>가 <여주 장호원 매산마을>로 도피했다고 기록 되 있습니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입니다.
['감곡매괴성당'] 12:27
['임 가밀로 신부']
"감곡 매괴 순례성지"
자세한 사항은 아래 안내문을 참고 하면 됩니다.
[안내문]
"매괴"라는 단어가 뭔 뜻인지 먼저 궁금하지 않나요?
이탈리아語로 "로사리오"인데 중국으로 천주교가 전래 될 때 "매괴 玫瑰"로 번역하고
"메이구이"라고 발음하는데, 우리말로 번역 할때 한자음을 음역하여 그대로 "매괴"라 한것이라고...
원래 "장미과에 속하는 해당화"를 의미하는데, 천주교에선 "묵주 기도"를 의미 한답니다.
저는 성당에 관한 얘기 보다 <명성왕후>의 도피처로 먼저 다가 옵니다.
<명성왕후 민자영>의 6촌 오빠인 <민응식>의 아흔아홉칸의 대 저택이 있던 곳인데
그 후 불타버린 <민응식>의 집터를 <임 가밀로 신부>가 헐값에 사들여 지은 성당이기에
['감곡매괴성당' 항공사진] ★ 클릭하면 확대 됩니다 ★
<명성왕후 민자영>이 도피 했던 육촌 오빠 <민응식>의 아흔아홉칸 저택은
현재의 <매괴고등학교> 자리에 있었는데, 교세가 확대 되어 그 자리엔 학교를 짓고
현재의 자리를 더 매입하여 더 큰 성당을 지었답니다.
['매괴박물관' (사무실)]
[안내문]
현재 박물관과 사무실로 사용하는 이 건물이 최초의 <매괴성당>이었다고
['매괴쉼터']
안쪽엔 <매괴쉼터>와 <매산 등산로 입구>가 있으며....
['성모광장'] 12:35
<성모광장>도 있습니다.
성당을 둘러 보고 우측 후문으로 내려 가면....
['매괴여중.매괴고']
['매괴여중.매괴고' 후문] 12:38
"매괴고등학교-매괴여자중학교"가 함께 있는 후문이 있습니다.
학교 안으로 들어 가면....
['명성황후 피난처 표지석' 위치]
학교 선생님에게 물어 <명성왕후 피난처 표지석>의 위치를 확인하고...
['명성황후 피난처 표지석']
학교 안에 설치된 역사의 현장 표지석인데 문법도 틀리게 쓰여진 표지석 안내문을 보며 서글펏습니다.
"명성황후 피난 한 곳"
안내석엔 <명성황후>로 표기 되 있지만 당시엔 <명성왕후>였고,
그녀가 <을미사변>으로 죽고 난 다음 <황후>로 추존되었으니 <왕후>로 표기하는게 맞습니다.
<순조><철종> 때의 "안동김씨 세도정치 시대" 보다 더 추악한 부정부패가 성행했던
"민씨 외척 세도 정치 시대"의 정점에 <고종>과 <명성왕후>가 있었습니다.
국내에선 민생고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원성과 민란, 반란이 끊이지 않고
이런 기회를 이용해 세계 열강들이 <조선>을 잡아 먹을려고 어러렁거리는데
힘쎈 외국에 빌붙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엄청난 정치자금이 필요 했던 <명성왕후 민자영>은
자신의 <민씨 외척 세력들>을 이용하여 정치자금 마련을 위한 부정축제에 여념이 없었으니
터질게 터진 게 바로 <임오군란>이었죠.
<창덕궁>으로 총을 쏘며 들이 닥치는 구식군대들은 <민씨세력>의 우두머리인 <민태호>를 죽이고
<명성왕후 민자영>을 죽이기 위해 <창덕궁> 구석구석을 들쑤시고 다녔죠.
"36계의 여왕-민자영"은 먼저 현재의 <정독도서관(옛 경기고)> 자리 근처에 있던 <윤태준>의 집으로
도망쳤다가, 바로 <수락산 용굴암>으로 도피하여 며칠을 숨어 지내며 부처님에게 살려 달라고 기도하고
현재 <화양동사무소>가 있는 <화양정>을 통과하여 <광나루>로 가서 뱃싹이 없어 자신의 금반지를
주고 <한강>을 건너 <여주 민영휘>의 집으로 도피하고, 다시 이곳 <장호원(감곡)>에 있는
자신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아흔아홉칸 대궐같은 집으로 갔지요.
이런 집은 도피하는 <명성왕후>에겐 좋은 도피처가 아니죠.
그래서 <명성왕후>는 한 곳에 오래 머룰지 않았다는게 최근 발굴된
"임오유월일기 壬午六月日記"에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광주 치적리>에 있는 <임천구수 이근영>의 집으로 갔다가 <여주 단감 권삼주>의 집으로
옮기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 왔다가 <충주 노은 이시일>의 집으로 옮겨 일주일 정도 기거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 왔다가 다시 <지평 섬실(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의 한정옥>의 집으로 옮기고
열흘 정도 머룰다가 다시 이곳 근처 <오봉학>의 집으로 옮겼습니다.
현 <감곡 매산마을>의 <민응식>의 집과 주변 집들에 머물 때에 그 유명한 "진령군-박창렬"이라는
이름도 남자 이름같은 여자 무속인과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 지는데 <삼국지>의 <관우의 딸>이라고
자처하는 점쟁이였습니다.이 부분은 별도로 언급 하겠습니다.
또한 <명성왕후-민자영>은 도피 기간 중에 인후염, 부종, 말라리아에 걸려 엄청 고생하며
사경을 헤메기도 했다고 일기에 나와 있습니다만, 역경을 이겨 내고 "불사조"처럼 금의환궁 하게 되죠.
<명성왕후>에게 도피처를 마련해준 인물들은 후에 승승장구하여 높은 지위에 올랐습니다.
<윤태준>은 <명성왕후>의 <청나라 밀사>가 되어 <청나라 군대>를 끌어 들여 <대원군>을 몰아 내는데
공을 세워 <명성왕후>가 환궁 하는데 일등 공신이 되었지만, <갑신정변> 때에 반군들의 칼과 철퇴에
맞아 머리가 깨져 죽었으며, <민응식>도 그 후 <고금도>로 유배당하고...
<명성왕후>의 51일간의 피난생활>은 다음을 참고 하세요.
"임오유월일기 壬午六月日記"여기 클릭
['매괴고 운동장'] 12:43
<명성왕후>와 <무속인 진령군(박창렬)> 이야기는
<박근혜 전대통령>과 <최순실>....요즘 <김건희여사>와 여러 <법사>들 얘기에 어떤 느낌을 줍니다.
정치권력의 정점에선 무속 등등 무엇에라도 의지 하고픈 뭔가가 있는가 봅니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을 참고 하세요.
[사찰에서 만나는 우리 역사] <33> 충주 백운암 여기 클릭
[박종인의 땅의 歷史] 예천 금당실 솔숲에 숨은 근대사의 비밀 여기 클릭
['감곡 중심지']
'충북 음성군 감곡면'의 중심지를 10여분 통과하는데 제법 큰 시가지를 이루고 있더군요.
['장호원교'] 12:52
<감곡> 중심지를 지나면 "장호원교"를 건너는데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과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의 경계가 되는 다리이며 <청미천>을 건너는 다리.
예전엔 한동네였는데 행정구역이 분할되었다고...
[뒤돌아 본 '감곡']
다리를 건너며 뒤돌아 본 <감곡>인데 <매산>이 <감곡의 진산> 역활을 하는군요.
['장호원 청미교 사거리'] 12:54
<장호원교>를 건너면 <장호원읍>의 <청미교사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답사를 마치고 우측 버스정류장으로 가면
['장호원다리 앞' 버스정류장] 12:55
바로 옆에 <장호원다리 버스정류장>과 <자전거 쉼터>가 있습니다.
이곳에선 약20분에 한 대 꼴로 <37번 시내버스>가 <여주>와 <안성>간을 운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37번 버스>를 타고 35분 정도 걸려 <여주 세종초등학교>에서 내렸고
조금 걸어서 <여주역>으로 가 전철을 타고 귀가했습니다.
[실트랙 지도]
파란색 선이 오리지날 <37코스>입니다만
<청미천 징검다리>를 건너지 못해 <감곡매괴성당>과 <명성왕후 피난처>를 다녀 온 루트가
빨간색 선으로 표기되 있습니다.
특별한게 없는 길이지만 <명성왕후 도피처>를 돌아 보며 역사의 흔적을 찾아 본 특별한 길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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