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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옛길』
 『관동대로-평해길』서울구간

  ['구글맵 실트랙']                 
  『관동대로-평해길의 서울구간』에 대한 공식적인 길안내는 아직까지 정립 된바 없습니다.
   '경기도'가 '걷기코스'로 만든 『경기옛길-평해길』은 다녀 온바 있으나 『서울구간』이 궁금하여
   여러 자료를 검토하여 오로지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 추정하여 『관동대로-평해길의 서울구간』을 갑니다.
   그러니 이 길이 정확한 『관동대로-평해길의 서울구간』이라고 할수 없으니 믿거나 말거나 이며
   "걷기코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참고 문헌으로는 「대동여지도」와 「신증동국여지승람」등을 참고 했다는 것을 첨언합니다.


  ['흥인지문']            11:25        
  2021년 6월 16일 (수)  구름                         
  '경기도'가 걷기코스로 만든『경기옛길-평해길』"125km"를 완주하고,『서울구간』이 궁금하여 길을 나섭니다.
  <한양성>의 동쪽 대문인 "흥인지문 興仁之門 (東大門)"에서 출발합니다.
  <東大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6가'에 있으니 <종로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대문구>에는 <東大門>이 없다는거....아시나요? ㅎ


  ['동대문역 7번출입구' 앞]                         
  <동대문역 7번출입구> 앞에는 "경성괘도회사터"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때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요즘 말로 <서울 외곽 전철역>이 있었습니다.
  시내에는 <전차>가 다녔지만 <동대문>에서 <왕십리-뚝섬-광나루>까지는 <괘도전차>가 다녔지요.
  철길 옆에는 무수한 판잣집들이 나열되 있어 주택난을 실감하게 했으며, 많은 어린이들이 위험하게
  철길에서 놀던 광경이 희미하게 스쳐 갑니다. 산아제한까지 했는데도 아이들은 넘쳐 났었습니다.
  <뚝섬>으로 여름 물놀이 피서 가던 옛날이 어제처럼 생생한데...
  이렇게 <동대문>은 동쪽지역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였으니 
  『관동대로-평해길의 서울구간』의 출발지 였음이 분명합니다.


  ['동대문'에서 '선농단'까지 실트랙 지도]                 
  먼저 제가 진행한 <동대문>에서 <보제원><선농단>까지의 상세 지도를 참고하여 출발하면
  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동대문' 밖 '종로']       11:28          
  <동대문>을 벗어나면 <종로 鐘路>가 <신설동 로타리>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수많은 옛 선조들이 풍운의 꿈을 안고 드나들었을 『관동대로-평해길』이 펼쳐집니다.
  지금이야 도로 밑으로는 지하철이 다니고 수많은 차량 행렬이 줄을 잇지만...그래도 옛길이 연상됩니다.



  ['동묘앞역' 사거리]                 11:33             
  <동대문>에서 8분정도 <종로>를 걸으면 <동묘앞역 사거리>에 도착합니다.
  <한성부 동부 12방> 중 일부인 "숭신방(崇信坊)"과 "인창방(仁昌坊)"이 있던 곳이라죠.
  <숭신방>과 <인창방>은 이름에서 한글자씩 서로 따와 합치며 현대의 <숭인동><창신동>으로 
  이름이 변했습니다만, 지명은 옛부터 그 맥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동묘벼룩시장']             11:36          
  "동관왕묘 東關王廟  (동묘東廟) 보물 제142호"
  <삼국지>의 세 영웅 중에 중국인들에게 神으로 추앙된 유일한 영웅이 <관우 關羽>이죠.
  이곳은 <관우 關羽>를 모시는 곳인데...대한민국에 왠 <관우 關羽> 사당?이라고 의아해 하는 분들 계시죠
  '임진왜란' 때 가끔 <관우>의 혼이 나타나 명나라 군사를 도왔으므로 군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관왕묘>를 건립했다고 합니다만, 실제로는 전란 후 민심 이반을 우려한 당시 기득권층이 중화사상에
  입각한 사대주의적 통치 질서를 공고히 하고자 함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정도로 보수공사를 오래 하고 있는데 아직도 공사중이라 들어 갈수 없고...
  이 골목은 "동묘벼룩시장"으로 항상 북적이는 유명한 곳입니다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좀 조용하군요.
  그런데 이 시장은 '조선 초기'엔 "여인시장 女人市場"으로 유명했다는 사실 아시나요.
  <영월>로 유배를 떠나는 <단종>과 영원한 이별을 하는 <청계천 영도교>가 바로 앞에 있습니다.
  이 사연에 관해선 제가 자세히 포스팅한 글이 [부록]에 첨부되 있습니다.
          "비운의 왕비 '정순왕후'를 찾아서" 


  ['동묘' 담장]                    
  <동묘>의 담장을 따라 <신설동로타리>로 향하다가 좌측을 바라보면...


  ['동망봉' 조망]                      
  <정순왕후>가 <단종>을 그리워하며 <영월 방향>을 바라보며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는 "동망봉 東望峰"이
  이젠 고층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슬픔은 여전히 남아 있는듯 동쪽을 바라 보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어 <정순왕후>의 그리움이던 <동망봉>이던 모두 안스러워 보이는 듯 합니다.



  ['신설동로타리']               11:43        
  <동묘>에서 7분여 진행하면 <신설동로타리>를 만납니다.
  이곳이 중요한 <관동대로>의 포인트인데, 현재의 관점에선 여기서 <청량리>로 직진하면 가깝습니다만
  옛날에는 여기서 좌측 <안암오거리> 방향으로 大路가 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동여지도>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한양 동대문>으로 오가는 여행객들의 "역원 驛院"인
  "보제원 普濟院"은 "흥인문 밖 3리(약 1.2km)에 있다."라고 기록되 있으며
  또한 "조선시대에 이곳(보제원)을 가자면  <흥인문>을 벗어나 <동묘>에 이르면 이곳에서 길이 둘로 
  갈라지는데, 동북쪽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보제원>에 닿게 된다."라고 언급되 있어 참고 했습니다.
  <문화진흥원>에서 설치한 표지석도 <안암오거리>에 설치되 있다는 것을 잠시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신설동로타리>에서 동북쪽 방향인 <안암오거리>로 갑니다.


  ['대광고' 방향]                           
  <신설동로타리>에서 동북쪽 방향에는 오래된 검정고시학원인 <수도학원>이 아직도 성업 중에 있고
  <대광고등학교>가 보이는군요. <대광고>로 진행하면...


  ['대광중고 삼거리']                11:49        
  <대광중고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대광중고교 정문']              11:50         
  <대광중고등학교 교문>을 만나는데, <4.19민주혁명 진원지>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으며
  <한경직 목사>가 설립자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대광고>는 '자율형사립고'이죠.


  ['안암2교']               11:51         
  <대광고 교문>을 지나면 <안암2교>를 만나 건너게 되며


  ['북한산' 조망] 

  ['성북천']                        
  <안암2교> 위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북한산>이 조망되고
  남쪽으로는 <성북동 계곡>에서 흘러 내리는 <성북천>이 <청계천>으로 흘러 가고 있었습니다.


  ['안암로']                        

  ['안암오거리']            12:00              
  <대광고>에서 10여분 <안암로>를 진행하면 <안암오거리>를 만납니다.
  

  ['안암오거리' - '보제원터 표지석']                
  <안암오거리>에는 지난번에 이미 답사한 <보제원터 표지석>이 <안암오거리 버스정류장> 옆에 설치되 있는데


  ['보제원 터 표지석']               12:02      
  
  "보제원터 普濟院址" 표지석이 [안암오거리]에 행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쓸쓸히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경기동부지역>과 <함경도><강원도>로 가는 관리나 여행객들이 식사를 하며 쉬고
  관리들은 마패를 보여주고 말을 갈아타는 <동대문> 밖 최대의 "역원 驛院 "이 있던 자리랍니다.
  
                     보제원 普濟院 터  
                             1393년~1895년
                             여행자의 무료 숙박과
                             병자에 약을 주던 곳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전국 각지에는 '공공여관'인 "역원 驛院"이 많이 있었습니다만
  규모가 가장 큰 "驛院"은  "한양성의 4대문" 중에 3대문 밖에 있었던 "역원 驛院"이었는데...
  그 중에서 <동대문> 밖에 있었던 "보제원 普濟院" 이 이곳에 있었었다고 하니
  그래서 저는 <관동대로-평해길>이 이곳으로 이어져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온 것입니다.
   "한양성의 4대문" 중에 3대문 밖에 있었던 '공공여관'인 "역원 驛院 "을 확실히 알기 위해 
   옛 지도 <대동여지도>를 보며 확인하고 가겠습니다.
  

  ['보제원'과 '이태원' '홍제원' 위치]

  [서대문] 밖에는 <의주로>의 "홍제원 洪濟院"이 있었는데 주로 중국을 왕래하는 관리들이 이용했고
  [남대문] 밖에는 <삼남로>의 "이태원 梨泰院"이 있었는데 현재 [용산고등학교] 자리랍니다.
  그리고 [동대문] 밖 3리 쯤에 "보제원 普濟院"이라는 '강원도-함경도 방향' 역원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이었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특히 [동대문] 밖 "보제원 普濟院"은 '공공여관'의 성격 보다 '공공병원'의 역활이 컷답니다.
  역병이 돌거나 가난과 질환에 시달리던 백성들을 구휼해 주던 의미있는 병원역활과 구휼역활을 했다는겁니다.
  이곳 <제기동>에 있는 동양 최대 한약재시장인 <서울약령시(경동한약재시장)>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양>으로 전염병이 옮겨지지 않도록 요즘으로 비교하자면 <코로나 방역 검역소> 역활을 했다는 거죠.


  ['선농단' 가는 길]          12:04       
  <보제원터>에서 남쪽방향 <용두동> 방향으로 50m쯤 내려 가면 첫번째 골목을 만나는데
  <선농단>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곳입니다.
  좌측 골목으로 조금 올라 가면....


  ['서울종암초등학교' 앞 '선농단역사문화관']

  ['서울종암초등학교']              12:06           
  <서울종암초등학교>를 만나며 <선농단>은 건너편에 보입니다.
  이 지역은 <동대문구 제기동>인데 <종암초등학교>라는 이름의 초등학교가 있어 이채롭습니다.
  <종암동>은 여기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데 <성북구 종암동>이죠.


  ['선농단 역사문화관']                 12:07~12:15      
  "선농단 역사문화관"
  역사문화관은 패스하고 바로 우측으로 가면


  ['선농단' 입구]

  ['선농단' 안내문]                          
  "선농단 先農壇"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에 있으니 안내문을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제가 간단하게 요약하면 ....
  조선시대 농사 잘 지어 풍년들라고 왕이 제사를 지내고 농사 시범을 보이던 곳이랍니다.
  농경사회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일이야말로 왕이 꼭 해야 할 의무같은거죠.
  한편 이와 같은 의미로 '성북동'에 가면 "선잠단 先蠶壇"이 있죠.
  <선농단>은 왕이 농사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는 곳이고
  <선잠단>은 왕비가 '누에고치를 잘 길러 비단을 많이 만들게 하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죠.
  먹고 입는 衣食문제 해결이 최고의 善이었던 농경사회에서 빼 놓을수 없는 중요한 일이니...


  ['선농단 향나무']                              
  계단을 올라 가면 우측에 엄청 큰 향나무가 보이는데...
  "천연기념물 제240호 선농단 향나무"
  [선농단]이 만들어 질때 심은 나무라고 하는데 600여년 묵은 고목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향나무라고 합니다.
  <향나무> 우측 땅 바닦에는 <청량대 표지석>이 있습니다.


  ['청량대' 표지석]      

  [안내문]                       
  "청량대 淸凉臺"
  일제강점기시절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선농단]을 없애고 일반 공원을 만들었다는 
  그 흔적인 "청량대 淸凉臺"라는 표석이 있는데,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선농단']                     
  "선농단 先農壇"은 위에서도 언급 한 바와 같이 
  왕이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고 농사 시범을 보이던 국가 중대 행사를 행하던 곳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의 이름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는 의미의 "제기동 祭基洞"이 되었답니다.


  ['제신농씨'와 '후직씨']

  [현재의 '선농단']       
  "선농단 先農壇"의 변천사는 안내문을 참고하고...
  이곳이 <옛 서울대 사범대학교> 자리라고...


  [친경 광경]                       
  <고종>이 "선농단 先農壇"에서 제사를 올리고 농사 시범을 보이는 사진이랍니다.
  왕이 제사를 올리고 농사 시범을 보이고 난 이후에 시범에 이용했던 소를 잡아 국을 끓여
  참석자들에게 식사 대접을 했다는군요.
  이 점심 식사를 <선농단>에서 대접했다고 <선농탕>이라 했는데 후에 음운변화로 "설렁탕"이 되었다고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설농탕>의 유래는 "雪濃湯"으로 '눈처럼 하얀 국물이 찐한 탕'이란 뜻으로 알고
  있는데...아무렴 어떼요.
  


  ['순종'의 친경 광경]                       
  <조선왕조>가 멸망 할때까지 최후의 순간까지 "선농단 先農壇"에서 제사를 올렸다는 사진 기록입니다.
  마지막 황제 <순종>이 <선농단 행사>를 하는 장면이랍니다.
  1904년에 마지막 <선농단 행사>를 마치고 <사직단>으로 옮겨 <선농단>은 일제에 의해 <청량대>라는 
  공원으로 변하며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하네요.


  ['구글맵' 실트랙]                   
  <보제원><선농단>에서 부터 <중랑교>까지의 상세 지도를 참고하고 진행합니다.


  ['성일중학교' 앞 '서울내부순환고가도로']              12:18     
  <선농단>에서 동쪽 <성일중학교> 방향 골목을 나가면
  <서울내부순환고가도로>가 <정릉천> 위를 달리고 있는데


  ['정릉천']                   
  <정릉천> 위에 설치된 <서울내부순환고가도로>를 따라 조금 진행하면...


  ['삼일교']                            12:20

  ['정릉천' 조망]                       
  <안암오거리>에서 <제기사거리>로 연결하는 <삼일교>를 건너며 <정릉천>을 조망하고


  ['서울약령시']              12:26          
  동양 최대의 한약재 시장이라는, 그러니까 세계 최대의 한약재시장이라는 "서울약령시"를 지나고


  ['제기사거리']              12:28       
  이어서 <제기사거리>를 지나 갑니다.


  ['청량종합도매시장']             12:30          
  계속해서 "청량종합도매시장"을 만나며


  ['동대문경찰서 사거리']              12:34        
  이어서 <동대문경찰서 사거리>에 도착합니다.
  여기선 직진합니다.


  ['미주마파트']               12:36     
  <동대문경찰서 사거리>에서 직진하면 <미주아파트> 사잇길을 통과하게 되며


  ['청량리역' 앞]               12:39       
  이어서 <청량리역> 앞 도로를 만납니다.
  여기서 우측을 바라보면...


  ['청량리역' 앞광장]             12:40      
  <청량리역> 앞 광장이 이렇게 변모하고 있었습니다.
  창녀촌과 허름한 술집들이 활개치던 <청량리역> 주변은 이렇게 마천루로 하늘을 찌를듯 변하고 있고...
  그런데 <청량리역>은 <동대문구 전농동>에 있는데 <청량리역>이라고 합니다. ㅎㅎ
  <동대문구>에는 지역과 지명이 다른게 너무 많아요. ㅎ


  ['이문동' 방향]                        
  고층 건물이 호위하는 <중량교> 가는 길이 나날이 번화해 지고 있습니다.
  이 도로의 우측은 <동대문구 전농동>이며 좌측이 <동대문구 청량리동>입니다.
  6분 정도 진행하면...


  ['떡전교사거리']              12:46             
  "떡전사거리"를 만납니다.
  <관동대로-평해길>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떡을 사먹거나 선물용 떡을 사가는 "떡전"이
  있던 곳이어서 많은 떡가게들이 즐비했다는 <관동대로>의 명소였답니다.
  아직까지도 그 이름이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명소입니다만, 현재는 "떡집" 찾기가 어렵군요.
  <삼남길>에는 이와 같은 의미의 "병점 餠店"이 있죠.
  <삼남대로>를 오가며 떡을 사먹던 곳인데 현재의 <화성시 병점>입니다
  <병 餠>이 '떡'이라는 뜻이니 <떡가게>가 많았던 곳이었답니다.


  ['청량고등학교']             12:50          
  <떡전사거리>를 지나면 <청량고등학교>를 지나고


  ['시조사삼거리']             12:51      
  이어서 <시조사 삼거리>를 만납니다.
  <중랑교>는 여기서 우측 철도다리를 넘어 갑니다만 옛길은 직진하여 <이문동>을 경유했다고 추정됩니다.
  그 이유는 잠시후 언급합니다.


  ['시조사']                        
  <제칠일안식일교회>가 운영하는 종교서적을 주로 펴내는 <시조사>가 있고


  ['회기동']               12:53         
  이어서 "회기동 回基洞"으로 진입합니다.
  현재 <경희여고> 자리에는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윤씨>의 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삼릉>으로 이장.
  그 묘의 이름이 "회묘 懷墓"였는데, <회묘>는 <연산군>이 즉위하며 <회릉 懷陵>으로 승격되어
  이 마을을 <회릉동>이라고 불렀다가 <중종반정>으로 <능>이 다시 <묘>로 바뀜에 따라 <회묘동>으로 불렀으며,
  주민들이 이름이 나쁘다고 아우성쳐 <회 懷>자를 음이 같은 <회 回>자로 바꾸고,  
  <묘 墓>자를 모양이 비슷한 <터 基>자로 바꾸어 <회기동 回基洞>이 된 유명한 동명 유래가 있습니다.
  <회기동>은 <경희대학교>와 관련 학교가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습죠.
  그리고 한가지 더 첨언하면 <회기역>은 <휘경동>에 있는데도 <회기역>이라 합니다. ㅎㅎ
  <휘경역>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고 더 이쁜 이름인데...


  ['외대 입구']                1:08     
  <회기동>을 지나면 바로 <이문동>이 시작됩니다.
  <관동대로-평해길>의 서울구간은 분명 <이문동>을 통과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이유는...
  "이문동 里門洞"은 조선시대 이곳에 오늘날의 방범초소 역할을 했던 <이문 里門>이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글자 그대로 <이문 里門>, 마을의 출입검문소가 있었으니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은
  <한양>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검문을 받고 통과 했을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관동대로-평해길>은 이 지역을 통과했을 것으로 추정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1:09          
  <한국외국어대학교> 정문에서 캠퍼스를 들여다 보고 갑니다.
  정말 오랜만에 이곳에 왔는데 예전 대학원을 여기 다닌적이 있습니다.


  ['외대앞역' 가는 길]

  ['외대앞역' 앞 지하차도]               1:12        
  <외대 정문>에서 동쪽으로 잠시 직진하면 <외대앞역 지하차도>를 만나며


  ['외대앞역']                1:13         
  [지하철1호선]이 다니는 <외대앞역>에서 철로를 건너야 하는데....



  ['외대앞역' 건널목]                           
  <외대앞역> 앞에는 철도건널목이 아직도 있고, 실제 이용되고 있더군요.
  서울의 철도건널목은 대부분 지하화하거나 육교를 만들어 안전을 도모하고 있는데
  이곳 철도건널목은 아마도 서울에 있는 유일한 철도건널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때마침 전철이 지나가고...


  ['이경시장']              1:16     
  <지하차도>는 있는데 사람들은 건널목을 바로 건너는게 신기할 정도.
  여하튼 건널목을 건너면 "이경시장"이 좌측에 있습니다.
  이 도로의 좌측은 <이문동>이고 우측은 <휘경동>입니다.
  동네 이름에서 한자씩 따와 <이경시장>이 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도로를 끝까지 직진해 가면...


  ['휘경1빗물펌프장']               1:22        
  <중랑천 제방도로>를 만나며, 우측에 <휘경1빗물펌프장>이 있습니다.
  펌프장 정문 앞으로 돌아 나가면...
 

  ['중랑교'로 가는 샛길]                         
  <휘경1빗물펌프장> 옆으로 샛길이 있으며 <경춘선 중랑철교> 밑을 통과해 나가게 됩니다.


  ['중랑교' 입구]                             
  그러면 <중랑교> 입구를 만나며


  ['동대문구' 입구]              1:25        
  <중랑교> 앞에  "서울의 門 - 東大門區" 라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옛날에는 이 근처에 "중랑포"라는 나룻터가 있어 배를 타고 <중랑천>을 건넜답니다.


  ['중랑교']                         
  <중랑교>는 1971년 10월에 준공되었다는군요.
  걸어서 <중랑교>를 건너는 것은 생애 처음입니다. ㅎㅎ


  ['중랑철교' 조망]               
  <중랑교>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때마침 "KTX"가 지나가고
  그 뒤로 <도봉산> 수락산><불암산>이 쬐끔씩 보이는군요.


  ['배봉산' 조망]                      
  남서쪽으로 뒤돌아 보니 <배봉산>이 가까이 있습니다.
  <사도세자>의 무덤이었던 <영우원>이 있었고, <순조>를 낳은 <정조대왕>의 마지막 부인인 <수빈 박씨>의
  무덤인 <휘경원 徽慶園>이 <배봉산> 자락에 있었었죠. 지금은 모두 이장 했는데
  <사도세자>의 <영우원>은 <수원 융릉>으로 이장되고, <휘경원>은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 근처로 이장
  되었습니다.
       "배봉산과 영우원-휘경원" 답사기를 참고 하세요.


  ['구글맵' 실트랙]                   
  <중랑교>에서 <망우고개>까지 상세 지도를 참고하고


  ['중랑구 중화동']                    1:33

  ['중랑역']               1:36               
  <중랑교>를 건너면 <중랑구>가 시작됩니다.
  잠시 진행하면 <중랑역>을 만나고
 

  ['동일로지하차도 사거리']                         

  ['이중섭']                       
  <화가 이중섭>과 <중랑구>는 무관하지만 <이중섭>이 <망우리공동묘지>에 뭍혔다고 
  <중랑구>와 뭔 관계라도 있는듯 거리에서도 자랑하며


  ['상봉역']                    1:47

  ['상봉역버스정류장']             1:52     
  <상봉역>을 지나면...



  ['상봉프리미어스엠코']              1:56         
  <망우역> 근처에 <상봉프리미어스엠코>라는 주상복합빌딩이 엄청난 규모로 건립되 있는데
  건물보다 히프가 무지 큰 여인의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ㅎ


  ['망우역']                1:57          
  이어서 <망우역>을 통과합니다.
  지난주에 <망우역2번출구>에서 출발했던  <봉화산둘레길과 옹기테마공원> 을 답사했었죠



  ['망우사거리']               2:09         
  이어서 <망우사거리>를 지나면


  ['망우고개' 조망]               2:15          
  <망우리공동묘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10여분 올라 가면...



  ['망우리고개 육교' 조망]                  2:25             
  <망우고개 육교>가 가까이 다가 옵니다.
  예전엔 한식과 추석이 되면 수많은 성묘객들이 이곳 <망우리공동묘지>로 몰려 들었죠.
  청량리 중랑교부터 교통경찰들이 쫙 깔려 교통 정리를 할 정도 였으니 어느 정도 였는지 짐작되죠?
  승용차가 거의 없던 시절이니 서민들은 대부분 시내버스를 이용했는데, 
  차장 아가씨가 "청량리 중량교 망우리 가요~~"라고 외치며 초만원 버스 옆구리를 탕 탕 치며 "오라이"했는데
  너무 힘들었던 승객들은 "차라리 죽어러 망우리 가요~~"라고 우스개 소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망우리고개 육교']        
  <망우리공원>으로 연결되는 육교로 올라가면 <경기옛길-평해길>의 길안내판이 기다리고 있는데
  제가 그 길을 걸은게 벌써 지난 추억이 되버렸다고 다시 한번 더 그 <평해길>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원형 평해길>과 <걷기코스 평해길>은 구별해서 걸어야 합니다.


  ['서울시내' 조망]                   
  육교에서 서울시내를 조망하는데
  예상보다 서울시내는 가깝게 느껴집니다.


  ['망우고개 구리방향']                   2:31

  ['망우고개 서울방향']     
  오늘의 종착지인 "망우고개 忘憂峴"에 도착하여 답사를 종료 합니다.
  이후의 <관동대로-평해길>은 걷기코스인 <경기옛길-평해길>을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구리시 딸기원 버스정류장']               2:34                
  <경기옛길-평해길>의 출발지였던 <딸기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상봉역>으로 가 귀가했습니다.


  ['구글맵' 실트랙]                   
  오늘 걸은 거리는 GPS 측정으로 약13.5km 였으며 3시간 10분 정도 걸렸습니다.
  [부록] <파란문>이 쓴 이 글에 참고가 되는 답사기
   1.  "비운의 왕비 '정순왕후'를 찾아서" 여기 클릭
   2. "인명원터-보제원터-선농단-영휘원-홍릉터-천장산-회묘터-의릉 답사기"
  3. "배봉산과 영우원-휘경원" 답사기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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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평해길』
 『제10길 솔치길, 그리고 그후』  

  ['경기옛길 종합 안내도']

  ['평해길 좀합안내도']

  ['제10길 구글어스' 실트랙]

  ['제10길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관동대로-평해길> 중에 <경기도 구간>의 마지막 구간은
  <양동역>을 출발해서 <석곡천> 제방길을 따라 <삼산역> 근처로 진행해서,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인 <솔치>까지 가는 "8.1km"를 걷고
  계속해서 <강원도 구간>의 <첫 평해길 흔적>을 찾아 보는 "약13km"를 추가로 갑니다.


  ['양동역 앞']              

  ['양동역 출발지']                8:50      
  2021년 6월 1일 (화)  구름                          
  <청량리역>에서 오전 7시35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양동역>에 8시44분에 도착했습니다.
  간단하게 답사 준비를 하고 출발합니다.
  <평해길 제10길 안내판>은 역 좌측에 있는 정자 쉼터 뒤에 있습니다.


  ['제10길 안내도']                         
  안내도에는 <평해길의 마지막 구간>이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만
  <평해길 경기도구간의 마지막 구간>이 정확한 표현이지요.
  <평해길> 중에 <경기도구간>은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니...


  ['양동도서관' 옆길]                                   
  <제10길 안내판>이 있는 쉼터 앞 좌측 <양동도서관>과 <여주식당> 사이 골목으로 안내됩니다.
  이정표엔 "단석천" 까지 "1,6km"라고 알려 줍니다.


  ['양동도서관 앞']                    8:54         
  골목을 벗어나면 "양동도서관" 정문 앞 도로를 만나고 화살표 방향으로 가면


  ['쌍학1리 마을회관' 옆]                 
  <쌍학1리마을회관> 옆 삼거리에서 방향을 바꾸면...


  ['석곡천']                  8:57    
  지난 <9코스>에서 만났던 <석곡천>을 다시 만나 좌회전하면...


  [야외공연장]

  ['동계팔경 안내판']                     
  작은 야외공연장이 있는 곳에 "동계팔경 안내판"이 있습니다.
  "택당 이식"선생이 고향인 이곳 <양동>에 은거 할때 <석곡천>을 거닐며 경치 좋은 곳 여덟곳을 지정하여
  사람들에게 소개 했는데 이를 "동계팔경"이라 한답니다.
  <택당 이식 선생"은 <광해군> 시절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하다가
  <인목대비> 폐모론이 일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고향인 이곳에서 학문에 몰두하며 후학들의 교육에 힘썻고
  <인조반정>으로 관직에 복귀하여 주요 요직에서 일했으며 특히 대제학과 예조참판, 이조참판을 역임했답니다.
  <병자호란> 때에 <청음 김상헌>과 함께 청나라를 배척하다가 인질로 '심양'으로 잡혀 가기도 한 척화파인데
  돌아 와서는 대사헌, 형조, 이조, 예조의 판서 등 조정의 최고 주요직을 두루 역임했답니다.
  하지만 1646년 별시관(別試官)으로 과거 시험의 문제를 출제하였는데 
  그가 출제한 문제에 역모의 뜻이 있다고 하여 관직이 삭탈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우리나라 국문학사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문인으로 조선문학 4대가로 추앙 받고 있는 분이죠.
  <양동 고을>에서 빼놓을수 없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됩니다.


  ['쌍학교']                9:00     
  <쌍학교>를 건너 갑니다.
  <택당 이식 선생>의 묘와 유적은 앞에 보이는 산능선 뒤 우측 <안골>에 있으며
  <명성왕후>의 도피처였던 <쌍학리 마골>은 앞에 보이는 산능선 우측으로 한참 올라가
  지난 <9코스 쌍학리 임도길> 근처까지 올라 간 곳에 있더군요.


  [뒤돌아 본 '쌍학교']                   9:01~9:06         
  <쌍학교> 근처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양동도서관>과 <양동역>을 뒤돌아 보고


  ['석곡천 제방길']                             
  <석곡천 제방>에 설치된 데크길을 따라 12분여 진행하면....


  ['검단다리' 앞]                9:18    
  "검단다리" 앞에 운동시설이 있는 소공원에 도착합니다.
  <양동역>에서 부터 이정표에 표기된 <단석천>이 바로 이곳으로 <단석천>이 <석곡천>에 합수 되는 곳이며
  <단석천>에 <검단다리>가 설치된 곳이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쌍학리 마골>에 대한 스토리텔링 안내판이 설치되 있는데...


  ['마골' 조망]

  ['마골' 스토리텔링]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쌍학리 마골>은 여기서 아주 먼 곳에 있습니다.
  <마골>은 현재도 몇가구 만이 있는 산간오지인데 이렇게 기어코 안내판까지 설치하는 것은
  "양평의 동쪽 마을---양동"엔 그많큼 히스토리가 없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사실 <양둉면>이 강력 내세우는 히스토리는 <택당 이식선생> <명성왕후 도피처> <을미의병> 이었습니다.
  <임오유월일기>라는 일기책은 <명성왕후>의 주치의가 도피기간에 쓴 것으로 그날 그날의 날씨와 처방전 등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인데, <명성왕후>는 51일간의 도피 기간 중에 '인후염', 즉 목감기를 엄청 알았으며 
  다리에 종기가 나서 고생하고, 특히 '말라리아(학질)'에 걸려 사경을 헤메기도 했더군요.
  그리고 7월2일 일기에는 '여주 장호원'에서 <지평 섬실>에 있는 <전 현감 안정옥의 집>으로 옮기기도
  했는데 약 10일간 머물렀다고 기록되 있답니다. 그곳이 현재 지명으로 <양동면 쌍학리 마골>이라고 합니다.


  ['삼산역' 가는 길]                    9:22           
  <단석천>이 <석곡천>에 합류하는 <검단다리>에서 부턴 이정표가 "삼산역" 방향을 가리킵니다.
  <양동지역>에 인삼밭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태양광발천시설이 아니라 인삼밭 차양막입니다.
  10여분 <석곡천> 제방길을 진행하면...


  ['삼산터널' 앞]                   9:32          
  축산농가가 큰 규모로 있어 분뇨냄새가 많이 나는 곳을 지나면
  <중앙선>이 터널로 들어 가는 곳을 만나는데 <삼산터널>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측엔 <광주↔원주 고속도로>가 보이고


  [도로 만남]                   9:36      
  <삼산터널>이 있는 조그만 산을 좌측으로 돌아 나가면 도로를 만나고

  [회전교차로]                     9:38      
  이어서 회전교차로를 만나는데, 좌측에 <삼산교>가 있는 곳이더군요.
  그러니까 <석곡천>이 <단석천>과 합류하여 개천 이름이 "삼산천 三山川"으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직진하면 <갼현유원지>로 바로 갈수 있는데 <평해길 걷기코스>는 우측으로 안내됩니다.
  이 길들은 모두 걷기코스로 <경기문화원>이 작위적으로 개발한 길이지 
  <오리지날 평해길>과는 무관한 길이란 것도 알고 가면 이 길의 의미를 더욱 실감 할수 있습니다.


  ['삼산2리' 가는 길]                      
  <광주-원주 고속도로> 밑을 통과하면


  ['삼산2리']

  ['삼산2리 은행나무 보호수']          9:47       
  '양평군 양동면 삼산2리'의 논밭이 펼쳐지며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이젠 인간의 보호를 받고 있고


  ['삼산2리 마을회관']              9:51    
  이어서 <삼산2리 마을회관>을 지나면...


  ['삼산역' 방향 조망]                
  "막"자가 들어가는 산인 <삼막골산>과 <사기막산>의 계곡의 좌측엔 "옛 중앙선 판대역"이 보이며
  중앙에는 <퍈대역>의 역활을 대신하는 <新중앙선>의 "삼산역 三山驛"이 조망됩니다.
  <사기막산> 뒤에는 유명한 국민관광지인 "간현유원지-소금산 출렁다리"가 있습니다.


  ['배내교']                9:54~9:57       
  <삼산역>으로 가는 입구엔 "배내교"라고 하는 조그만 다리가 있습니다.
  우측에서 흘러 내리는 계곡개천이 <솔치>에서 흘러 내리는 개천입니다.
  옛날엔 <남한강>에서 <섬강>따라 이곳까지 배가 들어 왔다고..그래서 <배내교>라고...
  이곳 이정표엔 <삼산역→> 방향 표시가 잘못되 있고, 또한 <평해길 걷기코스>는 <삼산역>을 경유하지도
  않아서 <삼산역→>이라는 이정표도 필요 없는데도 부착해 놨습니다.
  꼭 부착하고 싶으면 <솔치→>라는 이정표를 부착해야 하겠습니다.


  ['삼산역' 조망]                      
  <배내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삼산역>을 조망만하고


  ['솔치' 가는 길]               9:57      
  <중앙선> 고가교 아래를 지나 <솔치>로 향합니다.


  ['당산' 조망]                      
  <배내교>에서 부턴 이장표에 <경기도 경계>라고 표기하는군요. <솔치>라고 하면 더 좋았을 듯 한데...


  ['스탬프함']                10:07~9:12      
  <배내교>에서 10여분 진행하면 <스탬프함>이 있는 다리를 만납니다.
  이곳엔 이정표가 좌측 전봇대에 부착되 있어 잘 보이지 않더군요.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관심 가지지 않으면 다리 건너 너른 도로로 직진하기 쉽더군요.


  ['당산' 이야기]         
  <스탬프함> 옆에는 <당산>에 대한 스토리텔링 안내판이 있고


  ['산막골산 임도' 입구]                    
  <솔치>로 가는 "삼막골산 임도 입구"입니다.


  [뒤돌아 본 '스탬프함']                       
  임도로 올라 가 <스탬프함>이 있는 임도 입구를 뒤돌아 보고


  [임도]

  ['솔치마을' 조망]                   10:19      
  조용한 임도를 7분여 진행하면 <솔치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오름길] 

  [임도삼거리]                10:31      
  이번 코스에서 유일한 오름길인 임도를 12분여 오르면 <임도삼거리>를 만납니다.


  ['당산' 조망]                                 
  임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잠시 내림길을 진행하면....
  "당산 堂山 545.6m"이 건너편에 가까이 보입니다.
  <경기도 양평군>과 <경기도 여주시>, 그리고 <강원도 원주시>의 경계가 되는 산이더군요.
  이 임도가 있는 <삼막골산>과 <당산> 사이의 계곡이 "오리지날 평해로"로서 현재 <88번국지도>가
  "대송치 大松峙 (솔치)"로 향하고 있는 광경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평해길 걷기코스>와 <원형 평해길>을 비교하며 걷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갈림길]

  ['솔치' 가는 길]                             
  임도가 <88번국지도>로 연결되기 전에 좌측으로 걷기코스는 방향을 바꾸고


  ['소나무 숲']

  ['솔치 주유소' 조망]                       
  <솔치>라는 이름 다웁게 여전히 소나무가 많은 길을 즐기며 거닐면 어느새 <솔치>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먼저 지금은 문을 닫은 주유소가 보이고


  [차량 차단기]                   
  이어서 차량 차단기를 지나면...


  ['경기옛길-평해길' 종점]                      10:50~11:23       

  ['솔치' 스토리텔링]                         
  <솔치>에 도착합니다
  "경기 옛길 평해길 종점"을 안내하는 각종 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걷기코스'와 '원형노선']                     
  <평해길>의 <원형노선>과 <걷기코스>를 표기한 안내도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길을 걸으며 <평해길 원형노선>과 직접 관계없는 길을 걸었다고 투덜대더군요.
  저는 이 <솔치>를 넘어 <강원도 평해길>로 답사를 갑니다.
  <강원도>는 아직 <강원 옛길 평해길>을 조성하지 않아서 <원형 평해길>을 주로 이용하는데
  보행답사길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지 않아 얼마나 위험하고 길찾기가 어려운지 잠시후 언급하겠으며
  <평해길 걷기코스>가 조성된 <경기도>는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됩니다.


  ['솔치']                       
  <솔치>에는 <대송치>와 <소송치>가 있는데 
  이곳은 "대송치 大松峙 해발 218.3m"입니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행정구역 경계가 되며 <양평군>과 <원주시>의 경계가 되는군요.


  ['강원도 옛길-평해길']                 
  많은 답사자들이 이곳 <솔치>가 <평해길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경기도 평해길>의 시종점이기는 하지만 
  길고 긴 '경북 울진 평해'로 이어지는 <평해길>은 실제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솔치>를 넘어 <강원도 원주>로 넘어가 <솔치>를 넘나들기 위해 말을 갈아 타고 묵어 가던 
  驛院이 있었던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의 "옛 안창역원 安昌驛院"과 주변 관련 유적지를 답사하고 
  <서원주역>으로 걸어가 열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쉼터']                           (33분간 휴식)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11:23             
  <솔치>에 있는 쉼터에서 아점을 먹고 쉬어 갑니다.
  버스정류장도 있으나 하루에 몇번 운행해서 시간을 잘알아야 하겠는데 오후 3시반경에 있는듯...


  ['수청동 마을 앞' 버스정류장]                   11:34

  ['수청동마을'과 '솔치' 조망]                          
  <솔치>에서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속으로 완만한 경사의 고갯길을 10여분 내려 가면
  <수청동마을 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뒤돌아 보면 <솔치>가 멀지 않은 곳에 보이고 
  "물 맑은 마을"이라는 의미의 <수청마을>이 <솔치> 아레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동막골' 버스정류장]                          11:45

  [카페]                    11:49      
  <강원도>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매우 완만한 고갯길을 15분여 더 진행하면
  이 고갯길에서 유일하게 영업을 하고 있는 제법 멋진 카페를 만나고...


  ['간현봉' 조망]                       
  이어서 국민관광지라는 "원주 간현유원지"를 만들어준 "간현봉 艮峴峰 384.7m"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슬안동 버스정류장']                 12:06      
  <솔치>에서 43분 정도 쉬지 않고 내려 가니, <슬안동 버스정류장>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하는데


  ['송래부락' 입구]                        
  <판대.오크벨리 방향>으로는 "송래부락" 입구라는 안내석이 있고


  [뒤돌아 본 '솔치' 방향]                            
  지나온 <솔치> 고갯길 방향을 뒤돌아 봅니다.
  동해안에서 잡힌 물고기들과 특산물을 싣고 <한양>으로 향하던 사람들...
  <신사임당>과 <율곡>등 선조들이 오갔을 고갯길...
  그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88번국지도']        
  이곳 <88번국지도>에는 보행자를 위한 보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도보답사를 하기엔 매우 위험하더군요.
  <경기도>가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원형 평해길>에서 안전하고 걷기 좋은 <걷기코스 평해길>을 만든 것이
  이런 길을 걸으면서 이제야 그 편의성과 안전성에 고마움을 느끼게 해 줍니다.
  <강원도>도 어서 빨리 <강원옛길 평해길 걷기코스>를 조성해 주길 바래 봅니다.
  그러면 제가 제일착으로 답사하겠습니다. ^*^


  ['을미의병 기념탑' 앞 삼거리]                   12:32~12:34

  ['을미의병 봉기 기념탑']                         

  ['기념탑 건립 취치문']                          
  <솔치>에서 완만한 내림길을 약1시간 10분 진행하니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있는
  "을미 의병 봉기 기념탑"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명성왕후> 시해사건에 열받은 우리 백성들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봉기 했답니다.
  특히 <양평 백성들>이 대거 봉기 했는데, 이곳 <원주 백성들>도 봉기 했다는군요. 서로 가까운 곳이니,,,


  [ '을미의병 기념탑' 앞 삼거리]                12:34      
   "을미 의병 봉기 기념탑" 앞 삼거리에서 <의민공 김제남 묘와 사당>을 먼저 찾아 보기 위해
   50m 정도 직진해 내려 가면


  ['의민공 김제남 사당']                 12:38~12:40       
  "의민공 김제남 懿愍公 金悌男, 1562∼1613"의 사당과 묘역이 있습니다. 
  <김제남>이 누구냐? 역사적으로 무지무지 유명한 사람인데 이름은 처음 들어 보죠?
  바로 <철의 여인-복수의 화신>으로 불리워지는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의 친아버지 이죠.
  그러니까 <김제남>은 <선조>의 장인 어른이 되는겁니다. 그리하여 '연흥부원군'으로 봉해졌습니다만...
  <선조>의 세컨드인 <인목왕후>가 왕비에 올랐을 때 비록 <공빈 김씨>에게서 태어난 아들이지만
  이미 세자에 책봉 된 아들 <광해군>이 있었는데, 아들이 새엄마 보다 열살이나 더 많은 콩가루 집안...ㅎ
  하지만 <인목왕후>가 적자인 <영창대군>을 낳자 왕위 계승을 둘러싼 당파간 싸움이 피터지게 일어나고
  그 싸움에서 <인목왕후-영창대군 파>가 완전 패함으로서 그 정점에 있던 <영창대군 외할아버지-김계남>은
  역모 혐의로 참수 당하고 그후 부관참시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삼대가 멸족 당했지요.
  이름하여 <계축옥사>...
  <임진왜란><정유재란>으로 나라가 폐허가 되고 백성들의 삶은 피죽을 끓여 먹어야만 하던 시절에
  정치집단들은 정치권력을 쥐기 위해 다시 피 터지는 싸움판을 벌였던거죠.
  간신히 살아 남은 <인목왕후>는 절치부심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에 복수하며 다시 <인목대비>로
  정치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며, 그녀의 아버지 <김계남>을 사면복권 시켜 이곳에 모시게 된 것이니
  이 곳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평해길>을 헛걸음 하는게 되겠지요?  ^*^


  ['의민사']                     
  <의민공 김제남 懿愍公 金悌男>에게 제사를 올리는 社宇랍니다.


  ['김제남'과 후손 묘소]                    
  <김제남>은 역모혐의로 삼대가 몰살 당했습니다.
  <김제남>의 자손 삼대가 몰살 당했지만 큰며느리 <초계 정씨>, 즉 큰 아들 <김래>의 부인과 <손자 천석> 만이
  제주도에 귀양 가 있다가 며느리 <초계 정씨>의 기지로 살아 남았는데
  그후 <인조반정>으로 기사회생하여 <인목대비>의 부탁으로 <인조>가 특명으로 
  그녀의 고향에 이렇게 묘역과 사당을 조성하게 했답니다.
  아버지 <김계남>과 아들 <김래><김규><김선>의 무덤이 함께 마주 보며 안치되 있습니다.


  ['김제남 묘지' 잎구에서 '김제남 신도비' 가는 길]            12:40    
  <김제남 사당과 묘역>에서 <김제남 신도비>로 가는 길은 정면에 뻗어 있습니다.
  7~80m 정도 진행하면...


  ['김제남신도비' 조망]                12:42~ 1:00           
  나이가 500살이나 되는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 <김제남 신도비>가 보입니다.
  좌측 연못도 <연안 김씨>들 소유라고 합니다.



  ['김제남 신도비'와 보호수']                   
  神道碑는 죽은 자의 인생역정을 기록한 요즘 말로 이력서라고 할까요.


  ['신도비']

  ['신도비' 윗부분]

  ['신도비' 아랫부분]

  ['신도비' 뒷면]                
  <김계남 신도비>는 <강원도문화재 자료 제21호>로 지정되 있는 문화재라는데, 
  받침돌의 거북머리가 비신을 바라보듯 뒤를 향하고 있어 재미있는 모습이며, 
  머릿돌에는 구름속을 헤치는 용의 모습이 가득 새겨져 있는 것이 <복수의 화신>이라 불리우는 
  <인목대비>의 위세가 어떠 했는지를 잘 알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런데 비 뒷면에는 총탄의 흔적이 여러발 남아 있어 애처롭게 보입니다.


  ['김제남 묘소' 조망]              
  <김제남 신도비>에서 지나온 <김제남 묘소와 사당>을 뒤돌아 보고


  ['원주시' 조망]                        
  <김제남 신도비>에서 펼쳐지는 <안창리>와 <여주 문막>, 그리고 <백운산>과 <치악산>이 그림 같습니다.
  <김제남 신도비> 근처에는 옛날 <평해로 솔치>를 통과해 공무상 출장을 오가는 관리들과 행인이 많았는데
  이들을 위한 <역원 驛院>이 있었답니다. 중요한 고개 초입에는 어느 곳이나 있었지만...
  이곳에 있던 驛院의 이름이 "안창역원 安昌驛院"이었답니다.
  <울진 평해>에서 <삼척-강릉>을 지나 <대관령>을 넘어 오는 <평해로>가
  <영남지방>에서 <죽령>을 넘어 <단양-제천>을 지나 이곳 <원주>에서 합류하여 <한양>으로 가는 
  "만남의 장소"였으며 숙박과 말을 갈아 타는 곳이었으니 "안창역원 安昌驛院"이
  당연 상당한 규모로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듯 합니다.
  <강원도관찰사>로 임명된 "송강 정철 선생"도 이곳에서 쉬며 말을 갈아 타고 갔을 것입니다.
  그가 쓴 "관동별곡 關東別曲"의 첫구절을 읽어 볼까요?
  
           江강湖호애 病병이 깁퍼 竹듁林님의 누엇더니,
           關관 東동 八팔百백里니에 方방面면을 맛디시니,
           下하直직고 믈너나니 玉옥節졀이 알패 셧다
           延연秋츄門문 드리다라 慶경會회南남門문 바라보며,  
.          平평丘구驛역  말을 가라 黑흑水슈로 도라드니,
           蟾셤江강은 어듸메오, 雉티岳악이 여긔로다.

  <송강 정철 선생>은 <강원도 관찰사>라는 직책을 제수 받아 강원도로 가며 여기까지 <평해로>를 이용했는데
  <팔당> 근처에 있었던 "평구역"에서 말을 갈아 타고 <양평>에서 <용문>까지 걸었던 "흑천을 돌아서
  "솔치"를 넘어 이곳으로 와 <원주><춘천><철원><화천>을 지나 <금강산>으로 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걸었던 <경기옛길-평해로>가 그많큼 <강원도로 가는 길>에서 중요한 길이었다는 것을 
  <관동별곡>에서도 알수 있죠
 저 앞에 펼쳐지는 <섬강 蟾江>과 <치악산 雉嶽山>을 바라보며 <송강 정철 선생>은 노래 했을 것입니다.
 
           蟾셤江강은 어듸메오, 雉티岳악이 여긔로다.


  ['흥법사지' 가는 길 조망]          1:00        
  <김계남 신도비>에서 <흥법사지>로 가는 남쪽 방향 길입니다.
 

  ['솔치' 조망]                            
  <김계남 신도비>에서 나와 뒤돌아 본 <솔치>와 <김계남 신도비>입니다.


  ['안창대교' 앞 사거리]                   1:03        
  <안창대교> 앞 사거리에 도착하는데, 여기서 <흥법사지>를 다녀와 좌측 <안창대교>를 건너 갈 예정입니다.
  <흥법사지>까지 왕복 1,5km라고 알려주는데, 다녀 오는데 28분이 걸렸습니다.


  ['흥법교']                 1:04      
  <흥법교>라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  15분 정도 진행하면...


  ['흥법사지' 조망]                        1:11

  ['흥법사지']                      1:15~1:20                 
  "흥법사 興法寺"가 있었던 터에 도착합니다.
  예상 보다 너무 초라한 절터입니다만, 이 절은 매우 유명한 절이었더군요.
  이 절터에는 우리나라 보물이 두점 남아 있고, 
  국보로 지정된 <국보 제104호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傳 原州 興法寺址 廉居和尙塔)>과
  보물로 지정된 <보물 제365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 (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 및 石棺)>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보관 중에 있답니다.


  ['진공대사 탑비' 후면]

  ['진공대사 탑비' 옆면]

  ['진공대사']  

  ['진공대사 탑비' 정면]                
  "보물 제463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碑)"
  아주 독특한 탑비인데 자세한 사항은 <문화재청 홈피>를 인용합니다.


  ['진공대사 탑비' 안내문]                         
  <문화재청 홈피> 인용
  
  "보물 제463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碑)"
  흥법사터에 남아 있으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인 진공대사(869∼940)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비문이 새겨진 몸돌은 깨어진 채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이며 
  이 곳에는 비의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진공대사는 장순선사(長純禪師)밑에서 승려가 되었으며, 당나라에서 수도하고 공양왕 때 귀국한 후 
 왕의 스승이 되었다. 고려 건국 후에도 태조가 그의 설법에 감화하여 스승으로 머물기를 원하였으나, 
 이를 사양하고 소백산으로 들어가 수도하였다. 태조 23년에 입적하니 태조가 손수 비문을 짓고, 
 최광윤이 당나라 태종의 글씨를 모아 비를 세웠다.
 비를 이고 있었던 돌거북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에 가까운 머리를 하고 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네 발로 바닥을 힘차게 딛고 있다. 
 목은 짧고 등껍질 무늬는 정육각형에 가까운데 그 안에는 만(卍)자 무늬와 연꽃이 새겨져 있다.
 머릿돌은 앞면 중앙에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고, 그 주위에는 구름 속을 요동치는 용을 조각하였다. 
 용 두 마리가 서로 무섭게 노려보고 다른 두 마리는 양 귀퉁이에서 옆을 쳐다보고 있다. 
 뒷면에도 네 마리의 용이 사방을 주시하고 있는데, 웅장한 기운이 넘치면서도 섬세하게 조각되어 
 당시의 높은 예술수준이 엿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비의 몸돌은 여러 개의 조각으로 깨져있어 부분적으로 비문을 알아보기가 
 힘든 상태이나, 대체로 대사의 생애와 업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유물]                         
  탑비 옆에는 이런 유물이 땅 바닥에 방치되 있어 의아스럽고


  ['흥법사지']

  [안내문]                       
  "흥법사터 興法寺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에 나와 있습니다.


  ['흥법사지 삼층석탑']

  [안내문]                   
  "보물 제464호 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 (原州 興法寺址 三層石塔)"
  제가 이곳을 궂이 방문한 이유는 <평해길>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을 거라고 추측해서 입니다.
  <통일신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국을 세운 <고려의 왕건>은 특히 <신라의 반란>이 언제나 위협이었지요.
  그래서 <경순왕>을 <임진강> 이남으로는 갈수 없도록하고, <후백제>의 <견훤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훈요십조>에 호남지방 사람들을 관직에 못 오르게  못박아 배척했지요. 지역감정 유발의 시초이죠.
  앞에서도 언급 했지만 동해안에서 <대관령>을 넘어 오는 <평해길> 이용객들과
  <영남지방>에서 <죽령>을 넘어 오는 관리나 이용객들이 만나는 이곳은  "안창역원 安昌驛院"이 있었고
  <통일신라시대 말>과 <고려시대 초>에 정치, 경제, 문화, 종교등의 중요한 요충지 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태조 왕건>의 왕사였던 <진공대사>가 이곳에서 입적하자 <태조 왕건>이 친히 비문을 쓰고
  이런 어마무시한 탑비와 석탑을 직접 세워 주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삼층석탑> 뒤로 펼쳐지는 <평해로>와 <영남길>이 "으뜸 고을 元州"를 더욱 빛나게 했으리라



  ['안창대교']            1:31  
  <흥법사지>를 둘러 보고 다시 <안창대교>로 돌아 오는데 약30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송강 정철 선생>도 <관동별곡>에서 노래한 "섬강 蟾江"을 
  이젠 편하게 <안창대교>를 이용해 건너 갑니다.
  다리 뒤로 "티악 雉岳"이 조망됩니다.
    
           蟾셤江강은 어듸메오, 雉티岳악이 여긔로다. 


  [뒤돌아 본 '솔치' 방향]                         
  <안창대교>를 건너며 뒤돌아 본 <평해로>의 <솔치 계곡>이고
 

  ['서원주역' 조망]                            
  북쪽으로는  "섬강 蟾江"이 그 실체를 드러내며 멀리 <서원주역>이 조망됩니다.
  오늘 <섬강>의 우측 제방길을 따라 <서원주역>까지 가서 답사를 마칠 예정입니다.
  사전에 조사 한바로는 저 제방길이 <원주구비길>이라는 둘레길이더군요.


  ['안창대교' '문막 방향']                           
  <안창대교>의 끝지점에서 <평해로>는 아마도 직진 했겠지만, 오늘은 여기서 <평해로>를 마치고 
  <서원주역>으로 가기 위해선 <섬강 제방길>로 내려 가야하는데 제방으로 바로 내려 가는 길이 없더군요.
  그래서 <원주 방향>으로 200m 정도 직진해 갔더니


  [삼거리]                    1:43                  
  제방으로 좌회전 할수 있는 삼거리를 만났습니다.
  여기서 부터 길을 잘 못찾아 고생을 좀 했는데...
  다음의 지도를 보며 고생한 이유를 언급 하겠습니다.
  언제나 가 보지 못한 길을 개척하기는 어려운 법....

         
            [현위치 주변 지도]                
  <안창대교>를 건너 바로 <섬강 제방길>로 연결되는 길이 있으면 좋겠지만 
  불행이도 없어 좀 돌아 가야 했습니다. 지도를 보며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노란색 선으로 표기한 길로
  갔는데, 결과적으로 실패였습니다.
  혹시 앞으로 이 글을 읽고 답사길에 오를 후답자들이 있다면 빨간색선으로 표기한 길로 가시기 바람니다.




  [농로]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간 길은 농로로서 끝에는 길이 없었는데 논두렁으로 내려 가니 뱀도 쉭~지나가고
  발도 진흙에 빠지며 고생을 좀 했습니다. 그래도 되돌아 갈순 없어 고생하며 제방으로 나가면...


  ['섬강 제방길']                 1:59        
  <섬강 제방길>을 만나며


  ['원주구비길']

  ['원주구비길']                        
  이 길이 "원주구비길"이라는 둘레길이라고 알려 주는 리본이 펄럭입니다.
  조만간 <원주역사문화둘레길>을 답사해야 겠습니다.
  10여분 <원주구비길>을 진행하면...


  ['서원주역' 조망]                    2:10            
  <서원주역>이 정면에 보이는데 <서곡천>이 <섬강>에 합수하는 합수부여서 건너 갈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우측으로 5분 정도 진행했더니

  [도로 만남]                2:15   
  도로를 만나고, 다시 갓길이 없는 차도를 진행하면


  ['경장교' 조망]                      
  <경장교>라는 다리가 보이고


  ['경장교']                 2:20       
  <경장교>를 건너 앞에 보이는 <중앙선 굴다리>를 통과해 좌회전 합니다.


  ['소금산' 조망]                         
  <경강교> 위에서 서쪽을 바라보니 유명한 <소금산>과 <간현유원지>가 조망됩니다.
  지난해 가을에 와이프와 함께 다녀 온 <소금산 출렁다리>인데 관심 있으신 분들은 다음을 클릭해 보세요.
             『원주』"소금산 출렁다리" 여기 클릭 
 

  ['서원주역' 조망]                            
  <중앙선 굴다리>를 통과해 좌회전 하면 <서원주역>이 저만치 있고



  ['서원주역']                 2:33          
  <서원주역>에 도착하여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고
  오후 2시 55분에 <청량리>로 가는 KTX를 타고 42분이 걸려 <청량리역>에 도착했습니다.
  <서원주역>에는 기차 시간을 걱정 할 필요없이 30여분에 한대꼴로 자주 열차가 있었습니다.


  [실트랙]                   
  <경기옛길-평해길>의 전구간을 답사하고, 계속 이어질 <강원옛길-평해길>을 기대하며
  즐거운 도보여행을 마침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20.6km"로서 5시간 5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걷는 것과 사는 것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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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평해길』
 『제9길 구둔고갯길』  

  ['평해길 좀합안내도']

  ['제9길 구글어스' 실트랙]

  ['제9길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제9길 구둔고갯길>은 공식적으로 14.9k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만,
  접속구간인 <일신역>에서 <구둔역>을 약 1.2km을 진행하여
  <구둔역>에서 출발하여 <지산터널>을 넘어 <일신3리>를 통과하고, 
  <쌍학리임도>를 돌아 <매월교>에 도착하고 <양동면사무소>를 지나 <양동역>까지 가는 15.4km를 갑니다.


  ['일신역']                   8:36           
  2021년 5월 26일 (수)  구름 약간 맑음                          
  <청량리역>에서 7시 35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일신역>에 정확히 59분이 걸려 8시 34분에 도착하여 출발 준비를 하고 8시 40분에 출발합니다.
  <일신역>은 승객이 적어 하루에 4번 열차가 정차하는데, 오전에 두번, 오후에 두번 뿐인데도 이렇게 한산합니다.
  버스정류장에 버스시간표라도 있나해서 확인했습니다만 어떠한 정보도 없었고
  단지 지난 8코스 할때 이곳에서 오후 2시30분에 <용문역>으로 가는 <987-3번 시내버스>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죠.
  역앞에서 <구둔역>으로 가는 길은 역 좌측 녹색 펜스에 리본이 길안내를 하더군요.
  좌측으로 진행해서 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뒤돌아 본 '일신역']                 8:41      
  리본의 안내를 따라 도로로 나가 <일신역>을 뒤돌아 보고


  [갈림길]                   *:44       
  이어서 사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진행해야만 하더군요.
  이곳만 주의하면 <구둔역>까지는 외줄기 길이었습니다.


  ['구둔역' 가는 길]                             
  벌써 추억이 되버린 <고래산>이 지난 구간을 상기시키는데
  길가에 만발한 찔레꽃이 향기를 뿜어내며 싱그러운 내음이 나그네에게 즐거움을 더해 주고 있었습니다.
  <일신역>에서 <구둔역>까지는 약1.2km로 1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구둔역']                8:52~9:03         
  "경기옛길-평해길 제9길 구둔고갯길"의 출발지인 "구둔역 九屯驛"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8코스 고래산길>에서 구경을 못했으므로 조금 깊이 있게 둘러 보고 갑니다.


  ['구둔역' 앞 안내판들]                      
  <구둔역> 앞마당에는 버스정류장과 관광안내도, 안내문 등이 있고 <스탬프함>도 있습니다.


  [영화 촬영지]

  ['구둔역 안내판']                     
  <복선 전철-중앙선>이 개통되면서 폐역이 된 <구둔역>은 자신의 임무를 조금전 <일신역>에 넘겨 주고
  이젠 추억을 먹고 사는 관광지로 남아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답니다.



  ['구둔역']                     
  "구둔역 九屯驛"
  이 지역의 이름이 <구둔 九屯>이어서 자연스럽게 <구둔역>이 되었겠지만
  <둔 屯>이라는 한자가 <군대가 진을 칠 '둔 屯'>이니...
  <임진왜란> 때에 왜군을 막기 위해 이 지역 산골자기 아홉 곳에 진을 치고 방어를 했다고 하고
  1904년 <정미의병> 때에는 <구둔치>에서 치열한 전투를 하기도 했다는 군요.


  ['구둔역 플렛트홈']                            
  驛舍는 잠겨있어 옆 샛길로 플렛트홈에 들어 가니 열차가 아닌 지하철 전동차가 쌩뚱맞게 전시되 있고


  ['서울 방향']

  ['양동역 방향']                               
  추억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오로지 추억을 먹고 사는 <구둔역>은 "환상열차의 종소리"만 들리는듯....


  ['제9길 구둔고갯길' 안내도]             

  ['구둔역' 앞]                 9:03       
  <구둔역 플랫트홈>을 둘러 보고 본격적으로 "경기옛길-평해길 제9길 구둔고갯길" 답사를 시작합니다.
  역 앞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나가면...


  ['고래산' 조망]                  
  <8코스 고래산길>의 <고래산 임도>가 먼저 시야에 들어 오고
  <일신보건진료소>가  천문대 모양을 하고 다가 옵니다.


  [갈림길]                   9:07       
  곧 바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좌측에 보이는 <느티나무>로 가면...




  ['구둔마을 느티나무']               9:09         
  400여년의 세월 속에 마을을 지켜오던 느티나무도 이젠 너무 늙어 인간의 보호를 받고 있답니다.
  <양평군 보호수 제24호>라는데 모양이 우람하고 독특합니다.


  ['일신2리 마을회관']                 9:10          
  <느티나무>를 지나면 <지평초등학교 일신분교 (폐교)> 담장을 만나며
  "일신2리마을회관"앞을 지나고


  ['지평초등학교 일신분교 (폐교)']                    
  "지평초등학교 일신분교 (폐교)"가 분교로는 상당한 규모로 남아 있으니
  옛날에는 이 지역에도 많은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알수 있겠습니다.
  지금은 체험학교 등으로 활용되고 있답니다.


  ['고래산 임도'와 '8코스' 조망]                      
  학교 옆에서 <고래산>과 <고래산 임도 출구>를 조망하고



  [갈림길]                  9:15       
  <옛 중앙선 폐철로>로 가는 골목길인데 길찾기에 조금 유의해야 하고
  집 뒤로 나가 100m 정도 올라 가면....


  [갈림길]                     9:18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우측 도랑을 건너 100m 정도 더 올라 가면...
  ★ 여기서 직진해서 올라 가면 오리지날 "구둔치 九屯峙"라고 국토지리원 지도에 표기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평해길 걷기코스>는 모두 <오리지날 평해길>은 아니고 일반 고갯길과 길 일 뿐이더군요.
  잠시후 <쌍학리입도입구> 고개에서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옛 '중앙선' 폐철길]               9:21      
  갈림길 삼거리에서 우측 도랑을 건너 조금 올라 가면 <옛 중앙선 철길>을 만납니다.
  <군둔역>에서 "1.0km" 왔으며 앞으로 <쌍학리임도입구>까지 "3.3km" 남았다고 알려 줍니다.


  ['중앙선 폐철길']                    
 鐵路는 걷어내 없어진 옛 <중앙선>입니다.
 철로에는 자갈을 깔지요.  
 열차가 통과 할때 철로에 약간의 탄력을 주기 위해서 이기도 하고
 잡풀 잡목이 자라지 못하게 하며, 비가 내리면 흙은 유실되니 유실을 막기 위해 자갈을 깐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 길을 걸을 후답자들은 <트랙킹화> 보다는 <등산화>를 신고 가는게 발이 편하겠습니다.
 1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                 9:32       
  <옛 중앙선>은 앞에 보이는 <지산터널>로 들어 가는데 터널을 막아놔 우측 산으로 우회하게 하더군요.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산길 입구]                 9:33    
  도랑을 건너는 나무다리가 약간 불안감을 주는데, 숲 속으로 들어가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산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10여분 오르면...


  [고개]                  9:43       
  지도에 <고추산>이라고하는 산 좌측 고개를 넘어 가게 되며


  ['중앙선 폐철길']                   9:46          
  이어서 조금 전에 헤어졌던 <옛 중앙선>을 다시 만나는데 콘테이너 하나가 있습니다.
  여기서 좌측을 바라보면...


  ['지산터널' 조망]         
  <옛 중앙선>이 지나 다니던 <지산터널>이 보이는데 출입구는 시멘트블록으로 완전 막아 놨습니다.
  그래서 <고추산 고개>를 넘어 우회 했다는 것을 알수 있고...


  ['중앙선 폐철길']                         
  다시 <옛 중앙선 폐철길>을 5분여 진행하면....


  [사거리]                   9:51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를 만나는데
  <옛 중앙선>은 직진해서 <미봉터널>이라는 터널로 가는데 
  <평해길 걷기코스>는 우측으로 <일신3리>를 빙 돌아 
  <매월터널>앞에 있는 <쌍학리임도입구>에서 다시 만나더군요.
  아마도 <미봉터널>도 앞의 <지산터널>과 같은 이유로 우회 하는듯 합니다.


  ['일신3리' 가는 길]                      
  <옛 중앙선 폐철로>를 버리고 마을로 내려 갑니다.
  10여분 내려 가면...


  ['토종꿀집']                     10:00

  ['일신3리' 마을 통과]                      
  <일신3리> 마을을 통과하고


  [아스콘 포장 도로 만남]                10:04         
  이어서 아스콘 포장도로를 만나 좌회전 하면...


  ['못저리길']

  ['못저리 세하마을' 입구]                       
  <못저리 세하마을>이라는 마을안내석이 있는 도로를 13분 정도 고도를 조금씩 높이며 올라 가면...


  ['도로 끊김]              10:17                
  포장도로가 끊어지며 산길이 시작되는 막다른 도로에 도착합니다.
  좌측 아래엔 <매월터널> 입구가 있었으며, 이정표엔 <쌍학리임도입구>가 "0,2km"남았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쌍학리 임도 입구"가 틀림없을듯 한데...이정표를 믿을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잠시후에는 <쌍학리임도입구>가 더 멀어져 "0.7km" 남았다고하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표시가 있는 <쌍학리임도입구>는 오늘 어느 곳에서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쌍학리 임도' 올라 가는 고갯길]                
  <쌍학리임도>로 올라 가는 고갯길을 13분 정도 올라 가면...


  [고개]                10:30            
  이정표가 있는 고개를 만납니다. 이정표엔 이곳에서 <쌍학리임도입구>까지 또다시" 0.7km"가 남았다고 하며 
  또 좌측으로 가라고 하지만 좌측엔 길도 없는데 도데체 <쌍학리임도입구>는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조금전 <매월터널> 입구 옆 도로에선 "0.2km" 남았다고 하더니 이젠 더 늘어나 0.7km를 좌측으로 가야 한다고?
  우리나라 이정표들이 그렇고 그러려니 생각하고 GPS를 따라 우측 <매월교>방향으로 진행하기는 하지만...
  마음이 좀 답답
  이곳은 행정구역상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와 <양평군 양동면 매월리>의 경계였습니다.
  <쌍학리>와는 너무 먼 위치에 있고 걷기코스 임도가 <쌍학리>를 통과하지도 않고 <매월리>만을 통과하는데 
  어이해서 <매월리임도>라 하지 않고 <쌍학리임도>라고 한건 또 뭔 이유인가?


  ['詩 구둔치']                       
  이 고개에 올라, 올라 온길과 진행방향을 촬영하는데 이정표에 詩 한수가 걸려 있습니다.
  <박우형>이라는 분이 쓴 <구둔치>라는 詩였습니다. 내용은 사진 속에 보는 바와 같습니다.
  이 詩 때문에 이곳이 <오리지날 평해길>이 지나는 <구둔치>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여기는 <구둔치>가 아닙니다.
  <평해길 제9길 구둔고갯길>에는 <구둔고개>나 <구둔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리지날 평해길>도 <구둔고개>를 통과하지 않는다고 <경기문화원> 스스로도 알리고 있는데
  이 걷기코스의 이름을 <구둔고갯길>이라고 붙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경기문화원>은 그 이유를 밝혀주시기 바람니다.
  다음 지도를 보면...


  ['구둔치' 주변 상세 지도]                 
  <국토지리원 1/25,000 지도>입니다.
  <구둔치>는 조금전 <일신초등학교 분교>에서 바로 <양동면 매월리>로 넘어 가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현재 이곳은 <옛 중앙선>의 <매월터널> 위에 있는 고개로서 이름없는 고개입니다.
  지도에서도 알수 있드시 <지평면>에서 <양동면>으로 넘어 가는 길은 지도에 표기된 <구둔치>가 훨신 가깝죠.
  <옛 중앙선>이 지나는 길로 <평해길 걷기코스>를 억지로 붙이려다가 발생한 헤프닝 같습니다.
  <경기문화원>이 펴낸 <평해길 안내도>를 다시 첨부하여 살펴 보면...


  ['평해길 안내도']           
  <경기문화원>이 안내하는 안내도를 다시 확대해서 보면
  오렌지색 선으로 표기한 <구둔고갯길 걷기코스>와 '노란색 점선'으로 표기된 <원형노선>, 
  즉 <오리지날 평해길>과는 완전 멀리 있는 관계없는 길이란걸 알수 있습니다. 오로지 걷기코스 일 뿐...
  요즘으로 말하자면 고속도로였던 <관동대로-평해로>는 우마차도 다니는 길이었으니 
  이런 가파르고 좁은 고개로 다닐수 없었고, 이 산줄기를 빙 돌아 갔다고 안내도에도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길 이름을 <오리지날 평해길>과 관계있는듯 <구둔고갯길>이라고 지은 것은 문제 있습니다.
   <구둔치>나 <평해길>과는 아무 관계 없는 고개인데도
   이곳 이정표에 부착되 있는 <詩 구둔치> 때문에 오가는 답사자들에게 
  이곳이 <오리지날 평해길>이 지나는 <구둔치>로 더욱 오해하게 합니다.


  ['임도 삼거리']                10:36            
  <구둔치>로 오해하기 쉬운 고개에서 우측으로 잠시 진행하면 다시 임도 삼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엔 리본을 좌측에 세개나 메달아 놨으니 좌측으로 진행해야겠죠.



  ['매월리(쌍학리) 임도']                          
  조그전에도 언급 했드시 이 임도는 <양평군 양동면 매월리>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쌍학리임도>를 걷는게 아니라  "매월리임도"를 걷는 것입니다.
  이 임도는 조금전 고개에서 앞으로 만날 <그린팜 영농조합>까지 1시간 15분 정도가 걸리더군요.
  그리고 이 임도는 지난 <고래산임도>와 비슷한 임도가 되겠습니다.


  [이정표-"쌍학리 마골" 갈림길]                   11:05        
  고개에서 35분 정도 지루한 임도를 걸으면 이 임도에선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처음 만나는데
  이정표엔 <쌍학리임도입구>에서 2.7km  왔으며 앞으로 <매월교>까지 4.9km남았다고 알리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우측 산줄기를 넘어 가면 "쌍학리 마골"과 연결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쌍학리 마골>은 <명성왕후>가 <임오군란>때에 피신한 곳 중에 한곳이었으니 어찌 그냥 지나 갈수 있겠는가



  ['명성왕후 은신처'와 '택풍당']                       
  "명성왕후 은신처""택풍당"의 위치를 나름대로 편집해 보았습니다.
  <평해길 현위치>와 <쌍학리 마골>의 위치를 확인하면 현재도 심심산골인데, 
  당시엔 도피처로서 얼마나 좋은 곳이었는지 짐작할수 있습니다.
  <1882년 임오군란과 명성왕후>
  <명성왕후> 민씨 친족정권의 인사행정 문란, 매관매직, 관료층의 부정 부패 및 국고의 낭비, 
  일본의 경제적 침략등 백성들의 불만은 점점 쌓여갔었죠. 군졸들은 무려 13달 동안 봉급을 받지 못하였고 
  그나마 한 달치 급료를 쌀로 받았으나, 그마저 섞인 모래가 반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에 결국 구식군졸들이 격분하여 선혜청의 <당상 민겸호>를 찾아가 자택을 부수고 <민겸호>를 죽이며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름하여 <임오군란>이며 <민겸호>는 <명성왕후>의 친척 오빠....
  군인들이 창덕궁으로 찾아가 <명성왕후>까지 죽이려 하자 평민복으로 갈아 입고 도피길에 나섯지요.
  먼저 <수락산> 기슭에 있는 <용굴암>에 숨어 들어 부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를 하고
  <여주 장호원>으로 잠행하여 지내다가 상황이 않좋다고 느낄 때에 이곳 <양평 마골>로 옮겨 숨어 지냈답니다.
  오십며칠간의 도피 생활을 이곳과 여주에서 했으니 그녀에게는 잊지 못할 곳이겠습니다.



  [임도]                  
  <민겸호>는 <명성왕후>의 친척 오빠로 왕후를 등에 업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탐관오리로 
  <민씨 세도정치>의 수괴라 할수 있지요.
  그런데 역사의 아이로니....<민겸호>의 아들이 <민영환>이니....
  탐관오리인 아버지 <민겸호>와 애국지사인 아들 <충정공 민영환>....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택풍당>에 대해선 잠시 후에 안내판을 보기로 하고
  다시 25분여 임도를 진행하면....


  ['매월리' 조망]                 11:31        
  <양동면 매월리>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10여분 더 진행하면...


  [이정표]                  11:42         
  다시 두번째 이정표를 만나고


  [차량 차단기]                   11:50       
  이어서 자동차 차단기가 있는 곳에 도착하는데 임도는 끝나고...
  좌측엔 <그린팜 영농법인>이 있습니다.


  ['그린팜 영농조합법인']               11:51         
  <그린팜 영농조합법인>을 들여다 보고


  [아스콘 포장도로]                        
  아스콘 포장도로를 10여분 진행하면...


  [옛 '중앙선 굴다리']                    12:01

  [뒤돌아 본 '중앙선']                       
  <중앙선 굴다리>를 만나는데 통과해 뒤돌아 보니 <옛 중앙선>과 <新중앙선>이 함께 있군요.


  ['매월임도 입구']                   12:02          
  <매월리 포장도로>를 만나는데 다리 옆에 안내도가 있어 보니
  이 안내판에는 이곳이 <쌍학리임도 입구>가 아니라 "매월리임도 입구"라고 분명히 표기하고 있습니다.
  <경기문화원>만 <매월리임도>를 <쌍학리임도>라고 곳곳의 이정표를 도배하고 있었습니다.


  ['택풍당' 안내문]                 
  <택풍당>에 대한 안내문이 있는데 조금전 임도에서 본 <명성왕후 도피처 지도>에 표기한 곳에 있는데
  즉, <양동면 쌍학리 안골>에 <택풍당>이 있는데, 멀고 먼 이곳 <매월리>에 안내판을 설치했군요.


  ['구둔치' 조망]                            
  여기서 <구둔치>가 조망됩니다.
  저 고개 너머에 <지평초등학교 일신 분교>가 있습니다.


  ['매월천'과 '매월교']              12:05       
  이정표에 수없이 표기한 <매월교>는 실제 <매월교>를 만났을 때엔 <매월교>에 아무른 표식도 없고


  ['석곡천'과 '중앙선']                12:06        
  <매월교>를 통과하면 <매월천>이 <석곡천>에 합류하여 <매월천>은 이름을 잃어 버리고...


  ['상록다리']                 12:08           
  이어서 <석곡천>을 건너는 <상록다리>를 만나 건너 우회전하면...


  ['중앙선']                        
  <중앙선>이 <양동역>으로 향하고


  ['석곡리 상록마을' 조망]            

  [출렁다리]                 12:12           
  <석곡천>을 따라 난 제방길을 진행하면 <석곡리 상록마을>이 보이며
  선답자들의 답사기에 무조건 등장하는 이 다리는 섶다리인줄 알았는데 
  철판과 와이어로 만든 무지 튼튼한 다리로 현재 주민들이 이용하는 다리더군요.
 

  ['양동면 중심가' 조망]                            
  <양동 중심지>가 점점 다가오니 이젠 <경기도>의 끝머리에 도착하며 <강원도>가 새롭게 다가 옵니다.


  [삼거리]                    12:24          
  <석곡천 제방>에서 시내로 들어 가는 삼거리를 만나 좌회전 하면...


  [삼거리]               12:26             
  <349번국지도>를 만나 <양동 중심지>로 들어 갑니다.
  좌측엔 <중앙선>이 있습니다.


  ['양동면사무소']                   12:28

  ['양동의병 안내문']                     

  [뒤돌아 본 '양동면사무소']                     
  <을미의병> <정미의병>이 봉기한 진원지라고 알리는데
  제 생각에는 조금 전에 알아본 <명성왕후>의 도피처와 관련이 있는게 아닌지..
  <명성왕후>가 시해 당하는 <을미사변>으로 울분을 참지 못하고 봉기한 의병을 <을미의병>이라고 하니까...


  ['양평축협 양동지점']                  12:33

  ['양동파출소']                12:35         
  축협과 파출소를 지나면...


  ['양동역' 앞 사거리]                     12:36        
  <양동>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라는 <양동역앞 사거리>에 도착하여 좌회전하면


  ['양동역' 조망]

  ['양동역']                  12:37            
  "양동역 楊東驛"에 도착하며 답사를 마칩니다.
  "양평의 동쪽 끝"에 있는 고장이라고 "양동 楊東"이라 한답니다.


  ['무궁화호']                  12:50~12:55        
  12시 55분 열차를 타지 않으면 세 시간 후에나 있기에 이 시간에 맞춰 답사를 했습니다.
  마지막 코스인 <제10길 솔치길>은 다음번에 진행 할 예정이며 거리가 짧아서
  <평해로>가 계속 이어지는 <서원주역>까지 진행 할 예정입니다.


  ['9코스 실트랙']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접속거리 포함 15.4km였으며 4시간이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걷는 것과 사는 것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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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평해길』
 『제7길 지평향교길』  

  ['평해길 좀합안내도']

  ['제7길 국토지리원지도' 실트랙]

  ['제7길 지평향교길' 안내도]                            
  <제7길 지평향교길 10km>와 <제8길 고래산길 11.8km>를 합쳐 한번에 진행합니다.
  각 구간별 거리가 짧고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하기에 불편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입니다.


  ['용문역']                  8:20        
  2021년 5월 19일 (수)  맑음                          
  <청량리역>에서 7시 35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용문역>에 정확히 40분이 걸려 8시 15분에 도착하여
  출발 준비를 하고 8시 20분에 출발합니다.
  <용문역 1번출입구> 앞 도로 건너편에서 우측인 동쪽으로 100m 정도 진행하면


  ['용문천년시장']              8:22        
  <용문천년시장 버섯국밥거리>를 만나 통과합니다.
  아침 식사 못하신 분들에게는 식사하기 좋은 곳이라 여겨지는데 이른 시간이라 대부분 아직 미오픈


  ['용문중앙도로']                  8:24       
  <버섯국밥거리>를 통과하면 <용문중앙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7분여 진행합니다.


  ['용문면사무소 앞 회전교차로']                8:31           
  그러면 <회전교차로>를 만나는데 앞에는 "용문면사무소"가 보이고 
  그 뒤엔 <新용문버스터미널>이 있더군요.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341번국지도']                      
  <341번국지도>가 이어지는데 이 도로는 "석불역"까지 이어지는데 <평해길>의 중심축 역활을 하더군요.
  그러니까 이 <341번국지도>를 중심으로 <평해길 걷기코스>가 좌우 명소들을 오가며 <석불역>까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잠시후 넘어야할 <그루고개>가 조망되며 <그루고개>를 만든 "갈지산 葛芝山 344.8m"이 연무 속에
  조망됩니다.   7분 정도 직진하면...


  ['화전교 앞 회전교차로']                  8:38       
  <경의중앙선>이 <갈지산 터널>로 들어 가는 고가철도가 지나는 곳 앞에 회전교차로가 있으며


  ['화전교']                    8:41         
  이어서 "흑천 黑川 (거무내)"를 다시 건너는 "화전교 花田僑"를 만납니다.
  그 옛날 <관동대로-평해길>은 <용문면 다문리>에서 <지평면 송현리>를 오가는 중요 하천과 고개가
  한눈에 조망되는군요.
  다리를 건너 6분 정도 직진하면...


  ['그루고개' 입구]                   8:47          
  <마룡1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에 <그루고개 표지석>이 보입니다.
  우측 <341번국지도>는 새로 만든 도로이고, 옛 <그루고개>는 좌측 마을을 통과하였답니다.


  ['그루고개' 입구]                       8:48

  [안내문]                            
  "그루고개 (그릇고개)"
  <평해길 스토리텔링>을 읽을 때마다 어느 분이 썻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정도 사실관계가 있는 글들을 기본으로 풀어 재미있게 써야 나그네들에게 도움을 줄텐데
  대부분 가설이나 추측으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어 읽으나 마나여서 별 도움이 안되더군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마룡리 쉼터']

  [과수원길]                   

  ['341번국지도' 제합류]                 8:55            
  <용문면 마룡리 마을>을 7분여 통과하면 다시 <341번국지도>를 만나고


  ['그루고개']                 8:56         
  옛길과 새길이 만나는 "그루고개 정상"에 도착하면
  <용문면 마룡리>와 <지평면 송현리>의 행정구역 경계라는걸 알수 있고
  옛길은 바로 좌측 <지평면 송현리>를 통과하라고 안내합니다.
  직진하면 <지평역>으로 바로 10여분이면 가지만, <평해길>은 좌측 마을을 통과하여 <지평역>으로
  둘러 가기에 30여분이 걸리더군요.


  ['송현리']

  ['꽃반들길']

  ['양봉']

  ['송현리 전원주택단지']                    
  지도에 <꽃반들길>이라고 표기된 <송현리 전원주택단지>를 통과합니다.


  ['경의중앙선']                   9:05         
  <송현리 전원주택단지>를 통과하면 옛길은 다시 <경의중앙선>이 <갈지산 터널>을 뚫고 나오는 곳을
  만나는데, 우측엔 <341번국지도>가 나란히 <지평역>으로 향하고 있고...
  오늘 진행해야 할 코스가 어느정도 윤곽이 잡힙니다.
  <배미산>의 좌측 능선을 넘어 <석불역>으로 가고, 다시 그 뒤에 있는 <고래산> 중턱으로 올라 임도를
  걷게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조금전에 넘은 <갈지산 그루고개>와 <배미산 능선 고개>를 넘고
  <고래산> 둘레길이라고도 할수 있는 <고래산 중턱 임도>를 걷는 약22km 길이 되겠습니다.


  [갈림길]                  9:06      
  옛길은 곧바로 다시 마을 속으로 안내됩니다.


  ['송현1리 송곡마을' 통과]

  ['송현리' 통과]

  ['송현리' 통과]                             
  이 마을 이름이 "송현리 松峴里"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루고개>로 가는 이 고갯길엔 소나무가 많았나 봅니다. 그래서 "松峴"이겠죠?

  ['지평역' 입구]                   9:25          
  <송현리 마을>을 돌아 나가면 다시 <341번국지도>를 만나며 <지평역 입구 사거리>에 도착합니다.
  이 사거리에선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지평역']          
  먼저 "지평역"을 흘깃 보고 갑니다.
  <경의중앙선>은 여기 까지이고 이후부터는 <중앙선> 또는 <강릉선>이라고 합니다.
  전철이 다니는 <경의중앙선>의 종점이기 때문이겠죠.


  ['지평향교' 가는 길]                9:27          
  <지평역>에서 <지평면사무소>는 매우 가깝지만 
  옛길은 <지평향교>를 둘러 보고 가라고 멀리 뺑뺑이를 돌리는군요.


  ['지평향교' 조망]                                  
  <지평향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옛날엔 <향교>가 있는 곳에 관아가 있어 마을의 중심지를 이루었죠.
  옛날엔 저곳 주변이 <지평 砥平>의 중심지였겠습니다.


  ['지평향교' 앞]                 9:37~9:45       
  <지평향교> 앞에 도착하면 먼저 <스탬프함>이 우측 쉼터와 함께 있고


  ['지평향교 홍살문']

  ['지평향교']

  [안내문]                     
  "지평향교 砥平鄕校" <경기도문화재자료 20호>
  평소엔 개방하지 않아서 들어 가 볼수는 없었습니다.
  안내문을 참고하고


  ['지평향교' 앞]                    
  향교 앞에 있는 쉼터 정자에 가서 조망을 합니다.


  ['그루고개' 조망]                     
  서북쪽으로는 지나온 <그루고개>와 <갈지산>이 조망되고
  <그루고개> 뒤로 어렴푸시 <용문산 줄기>가 보입니다.


  ['지평역' 조망]                      
  서쪽으로는 조금 전에 지나온 <지평역>과 그 뒤로 산줄기 너머로 <추읍산>이 빼꼼 보입니다.
  "지평 砥平" 지명의 유래가 궁금햇는데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자를 풀이해 봤습니다.
  <지 砥>는 <숫돌>이라는 의미이죠. 그러니까 <지평 砥平>은 <숫돌처럼 평평하다>라는 의미가 아닐까...


  ['봉미산 성황당']                   9:47~9:52

  ['을미의병기념비']                         
  <지평향교>에서 가까운 곳에 "을미의병 기념비""지평리전투 기념관"이 있는데
  "봉미산 성황당"이라는 표지석이 눈길을 끕니다.
  <을미의병>은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 시해>와 <단발령>에 따른 반일 감정의 폭발로 지역의
  학식있는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1895년 을미년에 결성되는 의병인데 그후 독립운동 등으로 발전되었지요.
  그러한 의병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일어난 곳이 <양평지역>이었답니다.


  ['지평의병' '지평전투' 기념관]

  [안내문]                 
  "지평리전투 기념관"
  안내문을 참고하고, 앞에 보이는 계단으로 올라 가면...


  ['지평리전투충혼비']         
  "지평리전투충혼비"가 있습니다.
  미군과 프랑스군이 중공군과 격전을 벌이며 산화해간 영령들을 추모하는 곳이었습니다.



  [한국최초 조립전차]           
  안보전시용으로 탱크를 전시해 놨군요.
  한국최초조립전차라고 합니다.


  [기념관 조망]                        
  기념관은 외관만 보고 횡하니 떠납니다.
  3분 정도 진행하면....


  ['지평교'에서 '지평초교' 조망]               9:55     
  "지평천 砥平川"이 흐르는 <지평교>를 건너 가면 <지평초등학교>가 기다립니다.
  <지평천 砥平川>은 <고래산>에서 발원하여 <흑천>으로 흘러 들어 가더군요.


  ['지평사거리']                  9:58           
  이어서 <지평>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지평사거리>를 만나는데...
  <면사무소>는 좌측에 있는데 옛길은 <면사무소>를 우측으로 돌아 가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측에 있는 <지평막걸리 양조장>을 구경하고, 정면에 보이는 <지평고등학교> 앞을 통과하여
  좌측에 있는 <면사무소>로 가라고 하는듯


  ['온누리교회' 앞]                 10:00        
  <지평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지평우체국>과 <온누리교회>가 있으며
  옛길은 좌측 골목으로 들어 가라고 합니다.


  ['지평막걸리' 조망]

  [옛 '지평막걸리 양조장']              10:02         
  골목으로 들어 가면 "지평막걸리 옛 양조장"이 있는데 
  <등록문화재 제 594호>로 지정되었답니다. 현재 개보수공사를 하고 있군요.
  1925년에 동네 술도가로 출발했다는데, 이곳 지하 30m에서 나오는 우물로 막걸리를 만들었답니다.
  예전엔 술도가가 그 동네에서 제일 부잣집이었죠? ㅎ
  6.25 때에는 UN군 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했다는군요.
  막걸리로 떼돈을 벌어서 여기 본사는 문화재로 남기고 
  공장은 <춘천시 동춘천산업단지>에 새로 엄청난 규모로 지어 이전했는데, 다시 제3공장을 건설한다고....
  우리가 요즘 마시는 <지평막걸리>는 이젠 <지평막걸리>가 아니고 <춘천막걸리>가 되었습니다.
  이름만 <지평막걸리>인거죠.
  막걸리 돗수를 6도에서 5도로 낮추어서 마시기 편해졌다고 유명해져 매출이 백배이상 늘었다고 하는데...
  알콜도수 낮춰서 원가 낮아지고 많이 마시게되니 판매량 늘어 일거양득 떼돈을 벌게 된 사연이 아닐까


  ['지평중고등학교']           
  <지평양조장> 앞에는 <지평중고등학교>가 있고
  골목을 통과하여 잠시 진행하면...


  ['지평면사무소' 조망]

  ['지평면사무소']               10:08         
  "지평면사무소"를 만납니다.
  옛날엔 <지평군>이었는데 <양근군>과 합쳐져 <양평군>으로 통합되었다죠.
  이젠 <양평군>에 속하는 인구 6 ~7,000명의 조그만 마을일 뿐이지만 옛날엔 군 소재지였으니...
  아 ! 옛날이여 ~~


  ['341번국지도']               
  <지평면사무소>에서 다시 <341번국지도>를 만나 동쪽으로 6분 정도 진행하면...


  ['햇골마을' 입구]               10:14            
  <석불역>으로 가는 옛길은 <햇골마을>로 안내됩니다.


  ['햇골마을' 가는 길]               10:16           
  이어서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 <햇골마을>로 진행해야 하더군요.
  <341번국지도>가 새로 생기기 전엔 이 길이 <평해로>로서 <지평천>을 따라 직진했답니다.
  <평해로 걷기코스>도 이 길을 중심으로 하여 걷기 좋은 곳으로 왔다리 갔다리 합니다.


  ['햇골']                
  몇 가구 정도만 보이는 <햇골>을 10여분 진행하면....


  ['동원농장' 입구]                  10:25         
  갑자기 견공들이 요란스럽게 환영하는 곳에 도착하는데
  앞에는 <동원농장 정문>이 있습니다.


  ['동원농장' 정문]                        
  <동원농장> 정문 앞에서 옛길은 좌측으로 안내되고


  [시멘트도로]

  [도로 종점]                10:31          
  시멘트포장도로를 5분 정도 올라 가면...
  도로가 끊기고 <배미산 능선 고개>로 올라 가는 산길을 만납니다.


  [마대길]

  ['배미산 능선길']                    
  오름길에는 마대를 깔아 길찾기는 쉬웠고, 
  이어서 <배미산> 정상으로 가는 능선길을 잠시 올라 가면


  [갈림길]                    10:39          ★ 길조심 ★       
  갈림길 고개를 만나는데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리본 하나가 길안내를 할뿐 관심 가지지 않으면 직진하기 쉽더군요.
  저도 모르고 직진했다가 리본이 안보여 되돌아 와서 좌측으로 내려 갔습니다. 
  이 능선 밑으로 <중앙선 지평터널>이 뚫려 있었습니다.
  여기서 <배미산 정상>을 다녀 오기엔 시간상 어려워 
  예전에 촬영한 사진으로 <배미산 정상>과 <배미산의 유래>를 참고용으로 대신 합니다.
  
                 
     
     ['배미산 등산안내도']         (예전 촬영한 사진)              
     "배미산 396m"
     기원전 2,300년 경..그러니까 약4,300년전에 9년 동안 대홍수가 있었는데
     그때 산 정상까지 물이 차올라 정상에 배를 붙잡아 메는 바위가 있었다고 <배미산>이라 한답니다. 
     또한 6.25때 중공군과 3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고...


  [내림길]                       
  5분여 내림길을 내려 가면...



  [민가]                10:45         
  민가가 한채 있으며 이정표가 설치되 있습니다.
  이 이정표는 조금전 능선 고개에 설치해야 할듯...


  [내림길]

  ['341번국지도' 만남]                 10:50          
  내림길을 5분 정도 내려가면 헤어졌던 <341번국지도>를 다시 만나고


  [사거리]

  ['중앙선' 굴다리]                  10:53              
  이어서 <지평천>에 다리가 있는 사거리를 만나는데 이정표가 설치되 있습니다.
  우측 <중앙선> 굴다리를 통과하여 좌측으로 진행합니다.


  ['석불역' 조망]                   10:55

  ['KTX']      
  드디어 <석불역>이 보이기 시작하며
  때마침 [KTX]가 굉음을 내며 <배미산 지평터널>을 뚫고 나옵니다.


  ['망미산 (서돌산)' 조망]

  ['7코스 종점' '8코스 시점']            10:58~11:21 (23분간 휴식)    
  <석불역> 앞에 있는 "평해길 제7길 지평향교길 종점"이며
  "평해길 제8길 고래산길 시점"에 도착했습니다.
  <제7길 지평향교길>을 마치고 <제8길 고래산길>을 계속 이어 갑니다.
 
  『경기옛길-평해길』
 『제8길 고래산길』  

  ['구글어스' 실트랙]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8코스 고래산길' 안내도]                          
  <고래산 임도>를 걷는 『제8길 고래산길』 출발지입니다.
  <고래산길>은 농로와 임도를 걷는 구경거리 없는 길이어서 단순무식한 길이더군요. ㅎㅎ


  ['석불역' 가는 길]                11:21          
  <평해길 쉼터>에서 <평해길>은 직진하지만
  <제8길 고래산길>의 출발지인 <석불역>을 다녀 오도록 하겠습니다.


  [서울방향 플렛트홈 출입문]        
  <석불역>은 하행선 플레트홈과 상행선 플레트홈 사이을 지하통로로 연결했더군요.
  우측 문이 상행선 서울방향 플레트홈 출입구인데 열차 시간 15분 전에 문을 연다고 합니다.
  하루에 9번 열차가 정차하기에 거의 하루 종일 문을 닫고 있는거죠.


  [지하통로]                    
  지하통로를 이용해 건너 가면....


  ['석불역' 앞 '망미2리']           
  <지평천>과 <망미2리 마을>이 펼쳐지고
  이 마을 이름은 "망미리"인데 한자는 일제시대 변형되어 "망미리 望美里"가 되었지만
  <대동여지도>나 <해동지도>등에는 "망미리 望彌里"로 표기되 있답니다.



  ['석불역']          
  "석불역 石佛驛"
  이 역은 "중앙선 용문-서원주 간 복선전철" 개통으로 2012년 9월에 새로 만든 역이랍니다.
  폐역이 된 <옛 석불역>은 잠시 후 <망미1리> 테니스코트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 역 대합실은 플레트홈과 연결되 있지 않은 단순 대기실이었고, 플레트홈으로 가는 통로는 역 옆에
  있는데 하행선은 바로 옆이고 상행선은 지하통로를 지나 조금전 출입문으로 가야 하더군요.
  이 마을 앞에 있는 산이 지도에는 "서돌산"이라고 표기되 있지만 
  <대동여지도>나 <해동지도>등에는  "망미산 望彌山"으로 표기되 있으니  
  "석불 石佛", 즉 <미륵보살>을 바라보는 산과 마을이라는 "망미산 望彌山"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듯..
  윗 스토리텔링에도 약간 언급이 있으니 안내문과 비교하며 참고하고...
  현재 "망미산 望彌山 (서돌산)" 정상에는 "느보산 342m"이라는 정상석을 세워 놨답니다. 
  <느보산>은 이스라엘 요르단강변에 있는 산으로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산이죠.
  이 산 중턱에 <여의도순복음교회 기도원과 묘지>를 조성하며 그들이 작의적으로 지은 산이름이랍니다.
   실제 이 역 뒷산에서 고려시대 제작 된것으로 보이는 <석불 石佛> 두개가 발견되어  
   <미륵보살>을 바라보며 구원을 바라는 "망미산 望彌山"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망미산 望彌山 (서돌산)" 정상에 있는 <양평군 안내문>을 첨부하니 참고하시고
         


  ['고래산' 가는 길]           11:28           
  <석불역>을 둘러보고 <제8길 고래산길>을 이어 시작합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341번국지도>와 <345번국지도>가 분리되는 고가도로 있는 곳에서 옛길은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망미1리>로 들어 갑니다.
  새로 건설된 <중앙선>은 직진하고 <옛 중앙선>은 우측으로 돌아 가더군요.
  사진 속의 우측 공터가 <옛 중앙선>이더군요.
 

  ['지평천 제방길']                   11:31        
  <지평천>을 따라 <고래산>으로 갑니다.
  잠시 진행하면...


  ['옛 석불역 (폐역)']                11:33          
  뜬금없이 제법 큰 규모의 테니스장이 이 농촌에 나타납니다.
  이 테니스장의 이름이 "지평테니스여행"이라는 테니스장이었는데, 오늘이 평일이고 코로나시대 인데도
  무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테니스를 즐기고 구경하는 사람도 의외로 매우 많았습니다.
  이곳이 바로 폐역이 된  "옛 석불역 舊 石佛驛"  자리이더군요.
  폐역이 된 역과 역 앞 공터에 테니스장을 만들었더군요.
  <舊 石佛驛>은 느리게 달리던 중앙선의 수많은 나그네들의 추억만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 만들어진 빨간색 지붕의 <新 石佛驛>만이 [KTX]가 지나는 <石佛驛>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고래산' '우두산' 조망]                 11:41       
  <옛 석불역>에서 조금 더 농로를 진행하면 <고래산>과 <우두산>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보아야 산의 모양이 고래를 닮았는지, 소를 닮았는지 쬐끔 느낄수 있겠더군요.
  "고래산 高崍山 541.4m"은 "고래를 닮았다"고 하고, 
  "우두산 牛頭山 484.4m"은 "소머리를 닮았다"고 하는데 동의 하시나요? ㅎ
  저 산 너머에는 <여주시>가 붙어 있습니다.
  <고래산>과 <우두산> 우측 사이에는 <양평TPC골프장>이 있는데 홀인원을 한 추억의 골프장입니다. ㅎㅎ


  ['옛 중앙선 철교 교각']             11:47             
  이어서 <옛 중앙선>이 지났던 철교 교각이 <지평천>에 추억을 되새김질 하고 있었고...
  그러니까 <옛 중앙선>은 <석불역>에서 이 교각을 통과하여 좌측에 있는 <서돌산-망미산>의 <망미터널>을
  통과하여 <구둔역>으로 갔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삼거리]                     11:48           
  이어서 삼거리를 만나 <고래산 임도 입구>로 좌회전 합니다.


  ['고래산 임도' 가는 길 조망]            
  <망미1리> 마을이 조망되며 <고래산>과 <우두산>이 다가 옵니다.
  농로를 5분여 진행하면...


  ['341번국지도' 만남]                11:53      
  헤어졌던 <341번국지도>를 다시 만나며
  바로 우측에 <고래산 임도 입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래산 임도' 입구]                11:54            
  <고래산 임도 입구>에는 <백운정사>로 가는 안내판과 함께 이정표가 있습니다.
  "산책하는 달팽이"라는 산책로 안내가 재미 있습니다. ^*^
  오늘 산행을 마치고 돌아 올때 시내버스를 이용했는데, 앞에 보이는 <망미1리>를 다녀 가더군요.


  ['고래산 임도' 입구]                  
  "산책하는 달팽이"라는 산책로와 함께하는 <평해길>입니다.
  본격적으로 <고래산> 속으로 올라 가게 됩니다.


  [오름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10여분 올라 가면...


  ['백운정사']                 12:05           
  <백운정사>라는 조그만 절간을 만나는데 자동차가 있는 길로 100m 정도 더 올라 갑니다.


  [주택]                 12:07          
  그러면 전망 좋은 곳에 주택을 마련한 멋진 곳을 만나는데 여기서 지나온 길이 조망되었습니다.


  ['석불역' 조망]                          
  지나온 <석불역>과 <배미산>, <용문산>까지 거침없이 보이는군요.
  특히 <용문산 능선>은 <한강기맥>으로서 <북한강>과 <남한강>의 水界를 이루고 있습니다.


  ['고래산 능선' 고개]                  12:09            
  주택 바로 옆에는 <고래산 능선>을 넘는 고개가 있었습니다.
  오르는데 체력 소모가 많을줄 알았는데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다행 ㅎ


  [고개 앞 임도]                      
  고개를 넘으면 바로 <고래산 임도>가 좌우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정표가 없더군요.
  당연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고래산 임도']                   
  길고 긴 <고래산 임도>가 이어집니다.
  구경거리도 없고 산림이 우거져 조망도 없는 갑갑한 임도를 홀로 외롭게 걸어야 합니다.


  [이정표]                  12:19              
  10여분 진행하면 이정표 하나가 볼거리라고 서 있는데
  임도 입구에서 0.6km를 진행했으며 앞으로 7.3km를 더 가야 한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평해길 쉼터']                12:36~12:48               
  이정표에서 17분 정도 더 진행하면...
  <고래산 임도 7.9km>에서 유일하게 하나 있는 쉼터 정자를 만납니다.
  장의자는 몇군데 있습니다만 정자 쉼터는 이곳이 유일하더군요.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고래산 정상' 조망]                             12:51

  ['고래산 등산로 입구 사거리']                1:03         
  <고래산 정상>인듯한 봉우리가 보이는 곳 밑을 지나면
  "고래산 등산로"를 안내하는 이정표를 만납니다.
  좌측 아래에 있는 <무왕리>에서 <고래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더군요.


  ['고래산 등산로']                    
  <고래산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을 보기만 하고


  [이정표]                      1:15          
  임도를 12분 정도 진행하면 다시 <고래산 정상 1,8km>라는 이정표가 있는데 등산로는 보이지 않았고
  다시 지루한 임도를 40여분 더 진행하면....



  [이상한 길안내판]                 1:52         
  방향 표시가 좀 이상한 이정표를 만나는데
  <임도 출구>가 바로 앞에 있는 곳으로 오해하기 쉬웠습니다.
  우측 임도를 따라 600m 정도 더 진행하면....


  [조망이 트이기 시작]

  ['구둔역' 조망]              2:02         
  처음으로 임도에서 외부 세계가 조망되는 곳을 만나는데
  바로 아래에 주택이 있고 멀리 <구둔역>이 보이는군요. 이제 종착지가 다가 옵니다.
  임도를 탈출하는 곳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임도 탈출 갈림길]                 2:03        ★ 길조심 ★ 
  조망이 트이는 곳 바로 옆에 <고래산 임도>를 탈출하는 출구가 있었는데 
  이정표도 없고, 리본은 나뭇닢 사이에 파무쳐 보이지 않아서 직진하기 쉬웠습니다. 
  GPS 트랙이 없으면 무조건 직진하겠죠? 그러니 <경기옛길 앱>을 다운 받아 가면 편리하겠습니다.
  후답자들은 이곳을 꼭 기억하고 가야 하겠습니다.


  [민가]                  
  임도 바로 아래엔 민가가 있고 내림길은 포장도로가 <345번국지도>까지 이어져 있어 길찾기는 쉬었습니다.
  8분여 포장도로를 내려 가면...


  ['345번국지도' 만남]                 2:11       
  <345번국지도>를 만나는데 <구둔역>은 좌측 방향에 있지만, 우측으로 가라고 합니다.
  우측으로 200m 정도 진행하면...


  ['구둔 쪽다리 버스정류장']                 2:15         
  "구둔 쪽다리"라는 안내석이 있고 "일신리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저는 이 지역의 대중교통 사정이 나빠 미리 버스시간과 열차시간을 조사했습니다.
  <일신역>에서 <청량리>로 가는 열차는 <13:05 17:09 19:09>에 있어 이 시간엔 적당한 열차가 없습니다.
  그래서 버스를 조사해 봤더니 <여주 ↔ 용문>을 운행하는 <여주시내버스 987-3번>이 이곳을 2시20분에
  통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이 시간에 맞춰 도착해서 바로 버스를 탈수 있었습니다.
  이 버스를 놓치면 <일신역>으로 가서 <17:09 열차>를 타거나 택시를 타고 <용문역>으로 가야 하더군요.


  ['구둔쪽다리' 조망]                              
  <8코스 종점>인 <구둔역>으로 가는 길입니다만, <9코스 구둔고갯길>이 지나는 길이므로 다음번에
  <일신역>에서 <구둔역>을 통과하여 가는 길과 근접하므로 그 때 걷기로 하고 
  여기서 버스를 타기로 한 것입니다. 


  ['구둔역''일신역' 조망]            
  20여분만 조금 빨리 오면 <구둔역>까지 갔다가 나와 다음 정류장인 <일신1리 버스정류장>에서 
  <일신역>을 돌아 나오는 버스를 <2시30분>에 탈수 있으니 후답자들은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여기서 <구둔역>과 <일신역>을 조망하고 바로 <987-3번 버스>가 <2시 20분>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여
  

  ['987번 버스']                 2:21             
  승객이라곤 딸랑 혼자인 텅빈 <987-3번 버스>를 전세 내 <용문역>으로 37분 정도가 걸려 가서
  식사를 하고 <경의중앙선 전철>을 타고 귀가 했습니다.
  다음 <9코스>는 <청량리>에서 열차를 이용해 <일신역>으로 가고 <구둔역>에서 출발할 예정입니다.


  ['7~8코스 전체 실트랙']            
  오늘 걸은 거리는 21.6km 였으며 6시간이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걷는 것과 사는 것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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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평해길』
 『제6길 거무내길』  

  ['평해길 좀합안내도']

  ['제6길 국토지리원지도' 실트랙]

  ['제6길 구글어스' 실트랙]                         
  <평해길6코스>는 <양평역>에서 출발하여 <남한강변>을 따라 <흑천-남한강 합수부>에 설치된 <현덕교>를
  경유하여 <흑천 제방길>을 따라 <원덕역>으로 가고, 다시 <흑천>을 따라 <용문역>까지 총 17.7km를 갑니다.
  이번 코스는 대체로 <흑천>을 따라 걷는 코스여서 <흑천>의 지역 방언인 <거무내 길>로 명명된듯 합니다.
  또한 이번 구간을 "시간이 머무른 계절의 정취가 시작되는 낭만의 길"이라고 소개하고 있더군요.


  ['양평역']                  10:42          
  2021년 5월 12일 (수)  대체로 맑음                          
  <양평역>에서 <평해길 제6길 거무내길>을 출발합니다.


  ['양평역' 앞] 

  ['안내도']                
  <양평역 1번출입구> 앞에 <평해길>과 <양평물소리길> 안내판이 경쟁적으로 설치되 있는데
  이번 구간은 대부분 <물소리길>과 <평해길>이 동행하더군요.


  ['양평시장' 가는 길]                         
  <양평역1번출입구> 앞으로 난 도로를 따라 <양평시장>으로 가면


  ['양평시장 입구']                  10:45              
  "양평물맑은시장"이라고 이름을 예쁘게 바꾼 <양평시장>의 [1번 gate]를 만납니다.
  <평해길>은 시장 안으로 시장을 둘러보며 물건도 좀 사며 가라고 하는군요.



  ['양평시장']                  
  오늘은 장날도 아니고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사람들의 왕래는 뜸하군요.
  저는 커피점에서 시원한 '아메리카노 아이스' 한잔 사서 먹으며 시장 구경값으로 대체했습니다. ㅎㅎ



  ['양평회전사거리']                 10:52           
  <양평시장>을 벗어나면 <양평회전사거리>를 만나 <양평대교>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고


  ['양평대교' 사거리]                    10:55           
  그러면 <양평대교> 앞 회전사거리를 만나는데, 
  <평해길>은 <양평대교 입구> 우측 계단으로 내려 가라고 합니다.
  화살표로 표기한 계단으로 가면...


  ['양평대교' 밑으로 내려 가는 길]               10:57      
  <평해길>은 <양평대교> 아래로 내려 가라고 하는데, 공사중이어서 통행금지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언제 또 다시 올까 싶어 금줄을 넘어 내려 가니 공사하는 곳은 없었는데도 금지를 시켜놨고..
  그런데 결과적으로 다리 밑으로 가지않고 앞에 보이는 <갈산>으로 직접 가도 아무 후회없는 곳이더군요.


  ['양근나루' 조망]                     
  여하튼 금줄을 넘어 다리 밑으로 내려 갔습니다만,
  <양평대교> 밑으로 길을 만든 이유가 <양근나루>를 구경하라고 한듯한데
  이유를 모르고 가면 편한 길 놔두고 뺑뺑이를 돌린다는 소릴 들을수 있는 듯...
  "갈산 葛山 64.5m"은 <양근나루>의 상징같은 조그마한 동산이기도 하지만
  <갈산면>→<양근면>→<양평군>으로 지명이 바뀌는 토대가 되는 의미있는 산이랍니다.


  ['갈산공원' 입구]                10:59       
  <갈산공원> 입구에는 "양근나루 표지석"이 다리가 없던 옛날을 회상하며 서 있는데
  <서울 마포나루>에서 실려온 새우젓 소금 등 생필품들이 하역되어 내륙 곳곳으로 팔려 나가는 곳이었다고


  ['반달과 토끼' 조형물]                11:01       
  <갈산>과 <갈산 주변>에 <양평>을 대표하는 "갈산공원-생활체육시설"을 조성했답니다
  '반달과 토끼'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


  ['키로십자가' 조망]                 11:02     
  무심히 지나면 볼수 없는 "키로십자가"가 접근이 어려운 곳에 설치되 있습니다.
  아마도 <양평>이 카도릭 <권철신 권일신 형제>들의 고향이라 설치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키로"는 영어 스펠링 "PX"를 겹합한 것 처럼 보이지만
  이 아이콘은 "구세주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Χριστοσ (키로스토스)"라는 히브리어의 첫번째와 두번째의
  알파벳인 "Xp"를 결합시켜 놓은 것인데, "X"를 히브리어로 [키], "P"를 [로]로 발음하기에 
  "키로 십자가"라고 부르죠.
  이 아이콘은 기독교를 '로마'의 공인 국교로 삼은 '콘스탄티니우스 황제'가 꿈에서 본 것을
  깃발로 만들어 전쟁터에 나갔다고 해서 널리 알려진 문장입니다.
  성당 다니는 분들에게는 친숙한 문장이지만 무신론자나 타종교 믿는 분들에게는 생소한 문장이죠.
  요즘 로마 교황이나 성당의 주교들이 미사 때에 들고 다니는 지팡이 같은게 "키로십자가"


  [전망대 조망]

  [전망대]                  11:06       
  <키로십자가>를 지나면 <한강>으로 돌출된 전망대가 기다립니다.
  전망대에는 책 한권이 조형물로 있는데 몰상식한 놈들이 낙서를 많이 해 놔서 볼썽 사나웠습니다.
  여기서 조망을 하면...


  [뒤돌아 본 '양평대교' 방향]            
  지나온 서쪽 방향으로는 <양평대교>와 <백병산>이 한가로이 조망되고


  [진행방향 조망]              
  진행방향인 동쪽으로는 <남한강>이 펼쳐집니다.


  ['갈산공원']

  ['호국무공수훈자공적비']                    11:09

  [안내문]                             
  계속해서 <갈산공원>이 이어지며 <호국무공수훈자공적비>도 있고....
  <갈산>에는 일제강점기 시대 <신사 神社>가 세워진 곳이었다네요.
  항일투쟁이 강렬한 지역이어서 최우선적으로 <신사 神社>를 건립했답니다.

  ['갈산공원']

  [야외무대]

  [운동장]                          
  야외공연장과 운동장 등이 이어지고


  ['(구)물소리길']              11:17          
  <갈산공원>을 벗어나면 <옛 물소리길>은 우측 아래 <한강변>으로 안내되었었습니다.
  지금은 <평해길>과 함께 그냥 제방길로 가라고 하는군요.
  부록에 제가 쓴 <물소리길 3코스 답사기>를 올려 놨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고...
  7년전 <물소리길>과 요즘 <물소리길>은 변경된 곳이 제법 많더군요.


  ['양평생활체육공원']                 11:27        
  한강고수부지에는 <양평생활체육공원>이 펼쳐지며 뒤로 <양평역> 앞에 있는 <코와루>라는 빌딩이
  잘 보입니다.


  ['한뼘갤러리']                11:29       
  이어서 쉼터를 만나는데 옆에는 <한뼘갤러리>라는 쬐끄만 갤러리가 설치되 있습니다.
  전시된 작품도 앙증맞게 조막조막 몇점이 나그네를 반깁니다.


  [갈림길]                    11:47        
  <한뼘갤러리>에서 제방길인 <자전거길>을 20여분 진행하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10여분 더 진행하면..


  ['현덕교' 조망]                 11:56        
  "현덕교"를 만납니다.
  <양평역>에서 여기까지 5.2km이니 1/3 정도 걸었습니다.
  건너편에 <개군산>이 조망됩니다.
  이곳은 <흑천>이 <남한강>과 합류하는 합수부입니다.
  그리고 <현덕교>는 자전거용 용도로 세워진 다리랍니다.


  ['현덕교'에서 '흑천-한강 합수부' 조망]                    
  <현덕교> 중간에서 남쪽 방향인 <흑천>이 <남한강>과 합류하는 곳을 조망합니다.
  이곳이 '양평군 양평읍 회현리'인데 옛날 <회현나룻터>가 있었답니다.
  제가 [양평물소리길3코스]를 답사 할때 '양평군 양평읍 회현2리' 마을회관에 있는 "가소정 可巢亭"에서
  뜻하지 않게 [단종 유배]에 대한 색다른 내용을 접할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조선 제6대왕 단종"이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영월'로 귀양 갈때에 남한강을 따라
  배로 압송되었는데, 그런데 운항 중에 홍수를 만나 이곳 "회현나룻터"에 피해있다가 갔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단종>은 1451년 6월 21일 한밤중에 궁에서 쫒겨나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북대문인 [숙정문]으로 
  나가 '성북동'을 거쳐 [낙산] 城밖에 았는 "청룡사 우화루 雨花樓"로 가서 [정순왕후]와 마지막 하룻밤을
  보냈답니다. 그래서 '꽃비가 내렸다'는 "우화루 雨花樓"랍니다.
  그리곤 "청계천 영도교"로 가서 폐서인이 된 [정순왕후]와 영원한 이별을 하고...
  곧바로 '왕십리'를 지나  <한양대 앞>에 있는 [행당중학교]에 있었다는 공용 여관인 [전관원]에 도착하고...
  당시엔 [살곶이다리]가 건설 중이어서 배를 타고 [중량천]을 건너  "화양정"에 도착하였다는데...
  손톱끝 많큼의 죄책감은 남아 있었는지 [수양대군-세조]는 "화양정"으로 내시인 "안노"를 보내 전송했다고
  [세조실록]에 나타나 있습니다. 다음날 [세조]가 보낸 내시 "안노"의 전송을 받으며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남한강]을 따라 '여주'까지 이동하여, '여주'에서 '영월'로는 육로를 이용해 유배를 갔다고 하는데....
  도중에 홍수를 만나 이곳 <회현나루>에 정박해 있다가 갔다고 하니 그 옛날 <단종>의 슬픈 여정이
  가슴 아프게 다가 옵니다.


  ['현덕교'에서 '흑천' 조망]                     
  북쪽으로는 "흑천 黑川"이 펼쳐집니다. 
  개천 바닥의 돌과 모래가 검은 색이라 물빛조차 검게 보인다고 <黑川>이며 이 지방 방언으로 <거무내>라
  해서 이번 코스 <평해길>의 이름을 <거무내길>로 지었답니다.
  지금부터 <흑천 제방길>을 따라 <용문역>까지 "평해길 제6길 거무내길"이 이어 집니다.


  ['현덕교' 동쪽 끝지점]             12:00       
  <현덕교>를 지나면 <양평군 개군면>을 만납니다.
  <물소리길 스탬프함>이 설치되 있군요. 앞으로 <물소리길 스탬프함>은 자주 만나게 되더군요.



  ['흑천' 제방길]                         
  <현덕교>에서 <흑천제방길>을 따라 20여분 진행하면...


  ['용문산' 조망]              12:21       (약간 줌인 한 사진) 
  "용문산 1,157m""백운봉 941.2m"이 양평시내를 굽어보고 있습니다.


  ['추읍산' 조망]                 12:27          
  진행방향으로는 "추읍산 583m"이 점점 다가 옵니다.


  ['흑천교' 조망]                     12:30           
  이어서 <37번국도>가 지나는 <흑천교>를 지나면


  ['양평신내서울해장국' 조망]                        
  <양평해장국거리>에 있는 <양평신내서울해장국집>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양평신내서울해장국']               12:33~12:57          
  전국의 해장국 중에서 저는 제일 싫어하는 해장국이 이 집 해장국인데 본점이라고 해서 뭐가 좀 다를까?
  해서 들어 가 봤습니다만 제 입맛에는 역시 맞지 않았습니다.
  선지 한덩어리와 소 위 썰은게 해장국의 전부인데 값은 10,000원 
  취향이 다르니 먹고 말고는 각자가 판단 할일입니다.


  ['흑천' 방향]                         
  <신내해장국집> 앞에서 <평해길>은 좌측 <흑천>으로 다시 나가야 합니다.


  ['흑천' 제방길-'세르빌온천호텔' 조망]              1:-02      
  다시 <흑천>을 만나 북쪽으로 잠시 진행하면
  <세르빌 온천호텔>을 지나고



  ['소노문리조트']                 1:07          
  이어서 <소노문리조트> 옆을 통과합니다.
  예전에 <대명콘도>였는데 이름을 바꿨나 봅니다.


  ['공세리' 통과]               1:14           
  <해장국거리>에서 부터 이 지역이 <양평군 개군면 공세리>입니다.
  옛날 세금으로 곡물을 거둬드리는 세관이 있었다는거죠.
  <공세리>는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
  <공세리> 마을을 통과하면


  ['원덕초등학교' 조망]               1:18         
  <흑천> 건너편에 <원덕초등학교>가 조망되며. <추읍산>도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여기서 바라보는 <추읍산>이 가장 <추읍산> 답게 보입니다.
  "추읍산 趨揖山 582.6m"
  공식적 지명의 유래는 "예전에는 이 산을 칠읍산이라고도 했는데 이 산에 오르면 양평군내 일곱개 읍이
  내려다 보인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추읍산>을 찾는 산객들은 <용문산>을 향해 "잘 봐 달라고 절을 하며 읍소하는 모양"으로 해석합니다.
  진짜 엎드려 절을 하고 있는 모양 아닌가요?
  그런데 저는 "임신한 여자가 누워있는 모양"이라고 보는데 동의 하나요? ㅎㅎ


  ['원덕초등학교']                1:21       
  <원덕초등학교> 앞을 지나면


  ['원덕리' 통과]                   1:22     
  느티나무가 있는 <원덕리> 마을을 지나고


  ['원덕역' 앞]                      1:26        
  이어서 "원덕역 元德驛"에 도착합니다.
  이번 코스 스탬프함이 있는 곳인데 역 앞에 있으니 유의해야 하더군요.
  <평해길>은 앞에 보이는 굴다리로 갑니다.


  [삼거리]                     1:32            
  굴다리를 통과하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평해길>과 <물소리길>은 모두 우측으로 안내 합니다.
  7년전 <물소리길>은 여기서 직진해 갔는데....
  앞에 보이는 <추읍산>은 "임신한 여자가 누워 있는 모습" 아닙니까? ㅎㅎ
  <개성의 송악산>하고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사거리]                 1:35        
  다시 사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뺑뺑이를 돌리고


  ['흑천' 제방 삼거리]                   1:38           
  <흑천>을 다시 만나면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며


  ['추읍산 등산로' 입구]                     1:45              
  이어서 <추읍산 등산로 입구>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면 <추읍산>으로 갑니다.


  ['경의중앙선' 조망]                   
  15분 정도 제방길을 진행하면 


  ['경의중앙선' 밑]                  2:00        
  <경의중앙선> 밑을 통과하고...
  (예전 물소리길은 원덕역에서 철길을 따라 여기로 바로 왔었음)


  ['삼성2리' 통과]                   2:02     
  말(馬)과 관련된 스토리텔링이 많다는 <양평군 용문면 삼성2리(三星里)>를 지나면....


  ['삼성교' 조망]                         
  <삼성2리>와 건너편 <삼성1리>를 이어주는 <삼성교>가 보이기 시작하고


  ['삼성1리'와 '추읍산' 조망]                   2:06       
  <삼성교>를 건너 가며 <추읍산>을 바라보는데
  저는 아무리 봐도 "임신한 여자가 누워 있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ㅎㅎ


  [진행방향 '흑천']         
  <용문역>으로 가는 <흑천>을 바라보며


  [제방길]

  ['수진원']                  2:19      
  13분 정도 제방길을 진행하면
  "수진원 修眞園"이라는 농원을 만나는데 <평해길>은 좌측으로 진행합니다.


  ['수진원' 내부]                   
  "수진원 修眞園" 내부를 흘깃 보고 갑니다.
  "수진원"은 "허영만화백"이 그린 "식객"이라는 만화에 등장하여 더욱 유명해졌다죠?
  옛날 "말표 구두약" 창업주가 전통 간장, 된장을 연구하기 위해 만든 농장이라는데
  지금은 구두약 대신에 된장 간장을 팔아 돈을 많이 벌었는지 규모가 엄청나며, 
  된장 간장 판매 뿐만 아니라 펜션까지 지어 운영하는군요.


  ['수진원' 옆길]                          
  <수진원> 옆길을 따라 <흑천>으로 나가면...


  ['흑천길']

  ['파라다이스' 조망]                          
  <흑천> 수변길이 이어지며 
  부도가 나 폐허가 된 <파라다이스호텔>이 아직도 흉물로 남아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소리길 쉼터']               2:29~2:40        
  <물소리길 쉼터>에서 좀 쉬었다 갑니다.


  ['백산교']                   2:47         
  쉼터를 지나면 <백산교>라는 <흑천다리>를 건너 부도가 나 폐허가 되어 '유령의 집'이 된
  <옛 파라다이스호텔> 앞으로 건너가 우측으로 다시 <흑천제방길>을 진행합니다.
  풍차로 유명했던 <파라다이스호텔>은 야외 결혼식을 올리는 곳으로 유명했고 영화촬영 장소로도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졌었는데 <新6번국도>가 저 앞으로 개통되며 손님이 완전 줄어 부도가 났답니다.


  [폐업한 온천]                 2:53       
  건너편엔 <옛 양평월드스파>가 보이는데 <파라다이스호텔>과 같은 맥락으로 폐업하여 흉물로 남아 잇습니다.


  ['경의중앙선']                 2:58          
  계속해서 <추읍산>을 뚫고 오가는 <경의중앙선>이 <용문역>으로 이어지는 다리 밑을 지나면


  ['연수천' 합수부]                 3:04         
  <연수천>이 <흑천>에 합류하는 합수부를 만나는데
  <물소리길>은 여기서 <연수천>을 건너 <용문역>으로 가고
  <평해길>은 여기서 좌측으로 <용문시내>를 통과해 <용문역>으로 가더군요.
 

  ['다문교']                3:08          
  <다문교>라는 다리를 건너면 <용문시가지>가 시작됩니다.


  ['용문회전교차로']                  3:09                    
  <다문교>를 건너면 <용문파출소>가 있는 회전교차로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가면 바로 <용문역>으로 갑니다만, <평해길>은 가운데 중앙통로로 안내됩니다.
  6분여 진행하면....


  ['(구)용문버스터미널']                     3:15         
  제가 이 근처 산들을 다니느라 많이 이용했던 <용문버스터미널>이 이젠 다른 곳으로 이전하여
  옛 버스터미널을 그리워하며 졸고 있습니다.


  ['용문사거리']                   3:16         
  <용문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용문역']                   3:18    
  좀 독특한 모양의 "용문역 龍門驛"에 도착하며 답사를 마침니다.


  ['양평역-원덕역' 구간]

  ['원덕역-용문역' 구간]             
  오늘 걸은 거리는 17.7km로서 4시간 3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예전 걸었던 <물소리길>를 추억하며 "시간이 머무른 계절의 정취가 시작되는 낭만의 길"이라는
  <평해6길 거무내길> 답사를 마침니다.
  
  <<부록>>
  1. 양평물소리길 3코스  답사기. 여기 클릭
  2. 양평물소리길 4~5코스  답사기. 여기 클릭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걷는 것과 사는 것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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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평해길』
 『제5길 물끝길 (양근나루길)』  

  ['평해길 좀합안내도']

  ['제5길 국토지리원지도' 실트랙]

  ['제5길 구글맵' 실트랙]

  ['제5길 구글어스' 실트랙]                         
  <신원역>에서 출발하여 <도곡터널>을 지나 <복포천>을 거슬러 올라 <국수역 입구>를 지나고
  <원복터널> <기곡터널>을 통과하여 <아신갤러리>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고
  <아신역>을 지나 <옥천면 입구 사거리>로 가서 <양근성지>와 <물안개공원>을 둘러 보고
  최근에 만들었다는 <양강섬 부교>를 조망하고 <양평역>으로 갑니다. 14.2km


  ['신원역']                  10:45        
  2021년 5월 7일 (금) 비-흐림-연무                            
  오전까지 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11시경부터 갠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길을 나섯습니다.
  예보는 적중해서 전철을 타고 가는 동안 많은 비가 내렸지만 <신원역>에 내리니 비는 그치고
  구름만 많이 낀 날씨가 이어져 나무 그늘 없는 강변길을 걷기에 적합했습니다.
  승객이 별루인 <신원역>을 나가면 [물소리길 안내도]와 <평해길 안내도>가 도보여행객을 반겨 줍니다.


  ['안내도']

  ['신원역' 앞]                 
  <평해길 물끝길 (양근나루길)> 안내도를 촬영하고 역 앞으로 난 길을 따라 나가 
  <6번국도>를 건너 <한강 강변>으로 나갑니다.


  ['월계초부' 이야기]                         
  역 앞에는 "정초부 (월계초부)"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있어 읽어 보고
  어떤 인물인지 검색을 해 보니 "이곳 신원리 월계마을 노비 출신 여류 시인"이었으며 
  {KBS역사스페셜}에서 다룬 인물이더군요. "초부"라는 말은 "나뭇꾼"이라는 뜻이지요?
  이곳 <신원리 월계마을>에 살며 나뭇꾼으로 살며 詩를 썻다고...
  "KBS역사저널 그날" 관련 기사에서 인용합니다.
  
   "KBS역사저널 그날"
    - 김홍도의 그림에 실린 노비의 시
    한 척의 나룻배가 강을 건너는 모습을 묘사한 김홍도의 ‘도강도’의 상단에는 김홍도가 영감을 
    받았다는 시가 쓰여 있다. 서정적이고 회화적인 필치로 쓰인 시는 ‘동호범주’다.
    그런데 최근 이 시와 동일한 작품이 실린 시집인 ‘초부유고’가 발굴됐다. 
    조선 후기 천재 화원의 마음을 움직인 시인은 초부, 그는 다름 아닌 ‘나무꾼’이었다!
  - 노비 시인, 양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
    조선 후기 최고 시인들의 작품을 실은 ‘병세집’에는 정초부의 시가 무려 11수나 실려 있다.
    기록에 따르면 정초부는 동원아집과 같은 양반들의 시회에 초대받아 그들과 함께 시를 지었다.
    그의 시에 감명받은 양반들은 그가 살던 양근(지금의 양평)의 월계협으로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다.
   ‘월계초부’ 정초부의 시가 실린 조선시대의 시선집은 발견된 것만 10여 권에 이른다. 


  [강변길]                10:50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부을듯한 먹구름이 여전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신원역> 앞에서 잠시 강변길을 진행하면....


  [갈림길]                10:54         
  <양평물소리길>과 헤어지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예전 제가 다녀온 <물소리길>은 현재 <평해길>과 같이 직진했었는데 바뀌었나 봅니다.


  ['4대강수변공원']              11:00         
  이어서 <4대강수변공원>이라는 강변 공원이 길게 이어지고


  ['수청리나루']                       11:08

  [안내문]                               
  공원 중간에 "수청리나루"라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현재도 나룻배가 운행되고 있다는 나루라는데 안내문에 자세히 나와 있군요.
  <수청리>는 강 건너편에 있는데 '광주시 남종면 수청리'이며 <앵자지맥 정암산> 아래 있는 마을입니다.


  ['수청리' 조망]                     
  나루터가 있나 해서 <한강>과 건너편 <수청리 水淸里>를 바라 보는데 나룻터가 어디인지는 안보이는군요.


  ['양서초' 앞 육교]                   11:12             
  수변공원이 끝나는 곳 쯤 <6번국도>에 육교가 하나 나타납니다.
  <양서초등학교> 앞에 있는 육교인데 육교를 건너 가야 합니다.


  [육교에서 '부용산' 조망]                       
  육교에 올라 지나온  <신원역> 방향 <6번국도>와  <부용산>을 조망하고


  [육교에서 '양서초' 조망]                   
  육교 위에서 <양서초등학교>를 조망합니다.
  주변에 마을도 없는데 초등학교만 제법 큰 규모로 있군요.


  ['옛 중앙선'-자전거도로]                 11:16           
  육교와 <양서초등학교 정문> 사이에 있는 <옛 중앙선-자전거도로>로  올라 진행합니다.
  7분여 진행하면...


  ['도곡터널' 입구]                      11:23

  ['도곡터널' 안]                         
  "도곡터널"을 통과합니다.
  '양서면 도곡리'와 '양서면 국수리'의 경계가 되는 터널이더군요.


  [갈림길]                   11:26            
  <도곡터널>을 통과하면 길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예전 <물소리길>도 이 길로 진행했는데 <물소리길>은 내륙 마을로 변경되었나 봅니다.
  우측으로 나가면...


  ['복포천']               11:27        
  <옛 중앙선 철길>에서 내려 가면 바로 "복포천 福浦川"이 흐르고 있습니다.
  <한강기맥 청계산> 유역에서 발원하여 <한강>으로 흐르는 5.63km의 하천이라는데
  예전엔 이 하천을 따라 배가 운항해서 <복포 福浦>라는 포구가 있었다는군요.
  사진에 제가 "흥경단과 안소공 묘"라고 표기 한 곳이 <양평군 양서면 대심리>입니다.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의 형제들에 대해 아시는 분 있습니까?
  바로 저 곳이 <태조 이성계의 형>인 <완산대군 이원계>의 사당이 있는 곳이어서 간단하게 알아보며
  지나 가도록 하겠습니다.


  ['카카오 위성지도' 캡쳐]                
  지도에 표기한 <현위치>가 바로 윗 사진 <도곡터널> 앞 갈림길입니다.
  <흥경단>과 <안소공묘>의 위치와 조금 전에 안내판에서 본 <수청리나루 선착장>의 위치를 확인하고...
  <남한강>에 떠 있는 제법 큰 섬인 <거북섬>과 <대하섬>이 눈길을 끄는데 특히 <대하섬>이 좀 알려졌죠.
  <대하섬>은 사유지로 1960~70년대 유명 배우였던 본명이 <이순임>인 <문희>씨의 별장이었다죠?
  위에서 언급한 "태조 이성계의 형제들"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은 세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정실과 소실 두명이었습니다.
  정실 부인인 <최씨>에게서 딸과 <이성계>를 낳았는데 딸은 <이성계>의 유일한 동복 친누나가 되며 
  <이성계>보다 5살 위 인데 나중에 <정화공주>로 추존되었지요.
  <이자춘>의 첫번째 소실은 <이자춘>의 종이었는데 세컨드가 된 <내은장>이라는 여자였습니다.
  여기서 탄생한 아들이 '서장자'인 "이원계"이며, <이성계>보다 5살 많은 이복형이 됩니다.
  <이원계>의 무덤은 현재 <함흥>에 있는데 남북 분단으로 갈수 없는 자손들이 <이원계의 장남>인
  <이양우의 묘>가 있는 이곳 '양서면 대심리'에 "흥경단"이라는 사당을 지어 위폐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며 추모하고 있답니다. 아들 <이양우>가 <안소공>이며 조선왕조 초기 <태종 이방원>이를
  도와 <왕자의 난>등 권력의 기틀을 세우는데 동참 한 사람이지요.
  <이자춘>의 두번째 소실도 종이었는데 써드가 된 <고음가>라는 여자였답니다.
  이들 사이에서 아들을 낳는데 그가 <이 화>이며 <이성계>의 이복동생이 되며 5살 아래입니다.

  [<이원계>의 장남인 <안소공 이양우>의 묘]  (예전 촬영한 사진)

  ["흥경단"  <태조 이성계>의 이복형 <이원계>의 사당] (이양우 묘 옆에 있음)
  "완풍대군 이원계"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의 유일한 이복형인 <완풍대군 이원계>
  위에서도 언급 했드시, 고려 말 <이자춘>의 큰아들로 태어난 <이원계>는 문무를 겸비하여 홍건적과
  왜구를 격퇴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워 덕망이 높았답니다. 그런데 동생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자
  <이원계>는 동생과 뜻을 함께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갈등에 빠지게 되는건 당연지사이었겠죠?
  동생의 뜻에 동조하면 고려의 신하로서 불충이 되고, 동생의 뜻에 반대하면 형제간의 불화로 가문과
  가족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었겠지요. 자신의 한 목숨은 두렵지 않으나 가문의 맏이로서 책임도
  막중하기 때문에 국가와 가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기로에 있었었답니다. 
  깊은 고뇌 끝에 <이원계>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그의 네 아들에게는 작은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데 힘을 다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답니다.
  고려의 영원한 충신으로 남기를 바라면서도, 가문을 지키고자 했던 지식인의 고뇌를 엿볼 수 있지요.
  형제지간의 피와 땀까지도 합쳐져 <역성혁명>이 성공을 거둘수 있었다는 사실도 관과 할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누가 더 훌륭한지 <이성계>와 그의 형 <이원계>를 비교해 볼수 있는 대목입니다.
  <완풍대군 이원계>의 후손들 중에 요즘 많이 회자되는 분이 <이낙연씨>이죠.
  <완풍대군>의 21대손 <이낙연 의원>이 국회의원을 3선한 뒤 전남도지사가 되고, 
  2017년에는 국무총리에 취임했다가 민주당 당대표가 되기도 했죠. 차기 유력 대권 후보중에 한분이지요.
  그리고 22대손 <이원태>는 금호그룹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고, 
  24대손 <이기권>은 2014년 노동부장관에 임명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학계와 재계에 명망 있는 분들이 다수 있는데,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구한말 고종황제의 
  특사로 헤이그 만국박람회에 참석하여 순국한 <이준열사>는 완풍대군 17대 손이랍니다


  ['복포천']               11:27        
  <도곡터널>에서 내려 서면 <복포천> 옆으로 <평해길>은 이어지고


  ['복포천' 제방길]                         
  이어서 <복포천 제방길>을 15분여 진행하면


  ['국수교']                  11:43         
  <6번국도>와 <국수역>을 잇는 <복포천 다리>인 <국수교>를 만나고


  ['국수역' 조망]                    11:45       
  <국수역 菊秀驛>이 보이는 이곳 <국수교> 앞에서 <평해길>은 우측으로 안내되고


  ['농협' '국수보건지소' 앞]               11:46          
  이어서 <농협>과 <국수보건지소>를 만나고


  ['청계산' 조망]          
  <한강기맥 청계산>과 <형제봉>이 멋지게 조망됩니다.
  제가 쓴 산행기가 있으니 참고 하시고


  ['복포리' 통과]                     
  <복포리>를 여유롭게 통과하면...


  ['복포9교' 앞]                11:57          
  <복포천>을 건너는 다리인 <복포9교>가 있는 곳을 만나면 올라 가 다리를 건너 갑니다.


  ['복포9교'에서 조망]                 11:59           
  <복포9교>를 건너 가면 진행방향에 있는 <복포1리마을회관>과 <원복터널>이 조망됩니다.


  ['복포1리 마을회관']                  12:00                
  <복포1리마을회관>을 지나면


  ['옛 중앙선'-'자전거도로']               12:01         
  다시 <옛 중앙선-자전거도로>를 만납니다.
  <아신역>까지 2.6km 남았다는 안내핀을 보며 옛철길을 잠시 진행하면...


  ['원복터널' 입구]                     12:04

  ['원복터널' 출구]                    12:07          
  <원복터널>을 만나 통과합니다.
  오리지날 <복포>라고 <원복>이라 한다네요.


  ['옛 물소리길']                    12:14           
  <원복터널>을 통과하여 7분 정도 진행하면 <물소리길>이 마을을 돌아 와 만나는 지점을 통과하고


  ['6번국도' 밑 통과]                   12:19            
  <6번국도>가 지나는 <복포과선교> 밑을 통과하면...


  ['기곡터널' 입구]                     12:21

  ['기곡터널' 안]                         
  "기곡터널"을 만나 통과하는데 
  <기곡아트터널>이라고 해서 뭐가 있나? 하며 걷는데 특별한 예술적인건 없었고


  ['양평군 옥천면']                       12:29           
  <기곡터널>을 통과하면 이제부터 <양평군 옥천면>이 시작 된다고 하며


  ['아신갤러리']                    12:32            
  이어서 "아신갤러리"가 있는 쉼터를 만납니다.
  자전거 쉼터와 <물소리길> 쉼터가 함께 있는데 이 구간에서 제일 큰 쉼터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양평가는 길']                  


           
              ['푸른물이 흐른다']                     
  이 조각품은 작가 스스로도 고백하드시  "파도 같지 않은 파도를 망친 작품"이라고...ㅎㅎ
  제가 보기엔 동맥경화에 걸린 핏줄 단면도 같네요.
  이걸 보고 누가 <푸른물이 넘실대는 파도>라고 감상하겠습니까...그런데도 작가는 우기겟다는군요. ㅎ



  ['아신갤러리']      
  예술가들을 위한 갤러리가 무료 개방하고 있고


  ['물소리길 스탬프함']      
  <물소리길 2코스 스탬프함>이 이곳에 설치되 있습니다.


  ['쉼터']                 12:37~1:00     휴식       
  여기서 23분간 휴식을 취하고 출발합니다.


  ['아신역' 조망]                 1:01   
  <아신갤러리 쉼터>를 지나면 철길은 끊어지며 <아신역>이 조망되기 시작하며


  ['아신역']                 1:05                   
  "아신역 我新驛" 앞에서 우측으로 나가면


  ['아신역교차로']                  1:07        
  <6번국도>가 지나는 <아신역교차로>를 건너 강변으로 나갑니다.
  여기서 강변으로 나가는 길은 우측 다리 밑으로 연결되 있으니 길조심을 해야 하고


  [강변길]                    1:11         
  강변 자전거도로로 나가면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는 <양평대교>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백운봉' 조망]                   
  이어서 <옥천면>에서 흘러 내리는 <서탄천>을 만나 <고읍교>라는 다리를 건너 가면


  ['옥천교차로']                1:19         
  <6번국도>에서 <옥천면>으로 연결되는 교차로를 만나는데 <옥천냉면 황해식당>이 있는 곳입니다.
  여기서 <평해길>은 좌측 <옥천냉면 황해식당> 뒤로 연결됩니다.


  ['옥천냉면' 스토리텔링]                        
  <옥천냉면> 스토라텔링 안내판을 지나면


  ['큰맘할매순대국']                1:24         
  <큰맘할매순대국집>을 만나고


  ['옛 중앙선'-자전거도로]                 1:30        
  이어서 다시 <옛 중앙선-자전거도로>를 만나 진행합니다.
  5분 정도 진행하면....


  ['덕구실육교']                  1:35         
  <덕구실육교>를 만나는데 <6번국도>를 다시 건너 강변으로 나가라고 합니다.
  <물소리길>과 동행합니다.


  [육교에서 조망]                    
  <덕구실육교> 위에서 <양평시내> 방향을 조망하고
  

  ['강변길 접속']                   
  강변으로 연결되는 육교를 내려 가면...


  ['코아루' 조망]                1:39           
  <양평>의 랜드마크라고 하는 주상복합빌딩인 <코아루>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코아루> 옆에 <양평역>이 있으니 <코아루>만 바라보며 진행하면 되겠습니다.


  ['양평들꽃수목원' 앞길]                  1:50

  [수목원 내부]

  [수목원 내부]                            
  <양평들꽃수목원>이라는 수목원을 통과하면



  ['오빈역' 스토리텔링]                1:54       
  "오빈역 娛賓驛"이 근처에 있었다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안내판을 흘깃 보고 계속 5분여 더 진행하면...


  ['양근성지' 조망]                  1:59       
  <양근성지>가 보입니다.
  <양근성지>로 가면...


  ['양근성지' 정문]                        2:05

  [안내문]                          
  "양근성지 楊根聖地"
  우리나라 천주교의 창립 주역인 "권철신 권일신 형제"들의 고향이군요.
  <양근면>과 <지평면>등을 통합하여 <양평군>이 만들어 질때 한 글자씩 따와 <양평군>이 되었다지죠.



  ['양근성지' 내부 조망]      
  성경에 보면 <예수>는 <신성모독죄>로 사형을 당했고 사형 형틀이 십자(十) 모양이라 십자가라 한것인데
  사형장의 十자 형틀에서 사형 당하는 예수의 모습은 처참한데도 예수 믿는 분들은 자랑스러운지
  어딜가나 이런 모습을 재현하며 세워 놨습니다. 
  '조숙 베드로'와 권 데레사' 동정순교부부는 누구인지 처음...
  '동정부부'라는 말이 '성관계가 없는 부부'라는 뜻인데...말이 되는 부부인감? 그렇다면 부부가 아니지요?
  목숨을 영원히 보전하기 위해 믿는게 종교인데 목숨 바쳐 믿는게 합리적인지...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순교를 미화하는건 아닌지...
  무신론자의 관점에서도 안타까움이 앞섭니다.


  ['양근성지' 정문 앞]                      
  <양근성지> 정문 앞에는 <물안개공원>이 펼쳐집니다.
  좌측엔 <양평생활문화센타>가 있고, 정면엔 <물안개공원>의 <고산정>이 조금 보입니다.
  그리고 우측엔 <양강섬>으로 건너 가는 <양강섬 부교>가 있습니다.


  ['황명걸 시비']                   
  <황명걸 시인>의 詩碑 뒤에 있는 작은 동산에는 <고산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예전에 <물소리길>를 탐방 할때 올라 봤던 사진과 안내문을 보면...
 

  ['고산정']

  [안내문]                
  <물안개공원>의 정상에 있는 <고산정>이며 생활체육시설등이 있고 <양강섬> 조망도 좋더군요.  


  ['양강섬 부교']                  
                 
                   [안내문]                    
  우측 한강변으로 잠깐 나가보면 "양강섬""양강섬 부교"가 조망됩니다.
  최근에 <양강섬>을 공원화 했다는군요.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김종환 노래비>와 <스탬프함>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고...


  ['물안개공원']                 2:16~2:23        
  "물안개공원"으로 들어 가는데 <스탬프함>이 좌측 <6번국도> 길가에 있더군요.
  자칫 놓치기 쉬우니 유의해야겠고...


  ['김종환 노래비']

  [안내문]                          
  "김종환 노래비"가 제법 독특한 모양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IMF 시절' 생활이 어려워서 <김종환>은 와이프가 사는 홍천과 생계를 위한 서울을 오가며 살았는데
  오가다가 피곤하면 이곳에서 쉬다 가곤 했답니다. 어느날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이곳에서 
  그 유명한 <사랑을 위하여>라는 노래의 가사와 곡을 쓰게 됬다고...


  ['스탬프함']                       
 자칫 지나치기 쉬운 <스탬프함>에서 <물안개공원>을 조망하고...


  ['물안개공원' 스토리텔링]               
  위에서도 언급한 내용의 스토리텔링을 보고 물안개공원을 떠나 갑니다.


  ['양평역' 가는 길]                   2:24            
  맑끔하게 단장된 <양평읍내>가 이어 집니다.
  7분여 진행하면...


  ['양근리사거리']                    2:31           
  <양근대교>로 연결된 <양근리사거리>를 만나는데
  <평해길>과 <물소리길>은 우측으로 돌아 <양근교> 다리 밑 <양근천> 개천변으로 가라고 합니다만


  ['양근교'에서 '양근천' 조망]                          
  저는 <양근교> 다리를 건너 <양근천> 개천길이 아닌 둑방길을 이용해 나란히 진행합니다.
  개천길은 예전 <물소리길>을 할때 진행해 보기도 했지만 개천으로 내려 가면 주변 모습을 감상할수 없기에..
  이렇게 조망하며 가는게 훨씬 볼거리가 많지요.


  [느티나무]                   
  <평해길>과 <물소리길>은 좌측 아래 느티나무 있는 곳에서 개천을 벗어나 <코아루> 옆에 있는
  <양평역>으로 올라 갑니다.


  ['양평역']                    2:45            
  "양평역"에 도착하여 <평해길 제5길 물끝길>을 마칩니다.
  "양치질"의 어원을 아시나요?
  <버드나무 양 楊>과 <이빨 치 齒>가 합쳐져 <버드나무 가지>로 이빨을 닦는 행위를 "양치질"이라했죠.
  칫솔이 없던 시절엔 <버드나무 가지>로 이빨을 닦았습니다. 그래서 "양치질"이라는 말이 나왔지요.
  <양평>에 올 때면 항상 생각나는 <양치질>입니다. ㅎㅎ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공식적으로 14.2km이지만 제가 실제 걸은 거리는 GPS  기준으로 14.8km였으며
  4시간이 걸렸습니다.


  [뒤풀이]               
  <양평>에 가면 <양평해장국>을 먹는게 즐거움인데 이번엔 <양평시장> 안에 있는 여기서 순대국 한그릇...
  보통 7,000원, 특 8,000원인데 비교적 괜찮은 편입니다. 이 집 찾기가 좀 어려운데 전화로 알아 보세요. ㅎ
  
  <<부록>>
  1. 양평물소리길 2코스 강변이야기길 답사기. 여기 클릭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걷는 것과 사는 것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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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평해길』
 『제4길 두물머리나루길』  

  ['평해길 좀합안내도']

  ['제4길 국토지리원지도' 실트랙]

  ['제4길 구글어스' 실트랙]                      
  <운길산역>에서 출발하여 <북한강철교>를 건너 <두물머리>를 둘러 보고
  <가정천>을 거슬러 올라 <이덕형선생 신도비>를 거쳐 <샘골고개>를 넘고
  <여운형선생기념관>을 지나 <신원역>까지 15.2km를 갑니다.


  ['운길산역']              10:27                     
  2021년 5월 2일 (일) 맑음
  <태조 이성계>가 "저 산은 구름도 쉬어가는 吉地"라고 언급한데서 "운길산 雲吉山 610m"이라고 했다는
  그 <운길산>이 바로 뒤에서 호위하고 있는 "운길산역"에서 [경기옛길-평해길]의 제4길을 출발합니다.


  ['운길산역 앞']

  ['제4길 두물머리나루길' 안내판]                 
  <운길산역> 앞에는 [예봉산-운길산 산행안내도]  [남양주 다산길 안내도] 등과 함께
  "경기옛길-평해길 제4길 두물머리나루길"의 안내도도 함께 있습니다.
  <남양주 다산길 4코스 종점><남양주 다산길 5코스 출발지>이며 
  <양평물소리길 1-1코스>의 출발지이기도하고 <예봉산-운길산-수종사>를 다니는 산객이나 
  관광나드리객들이 수없이 이용하는 <운길산역>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당연 많이 이용 한바 있습니다. 
  관련 산행기와 답사기는 이 산행기 끝에 링크 하겠으니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역앞 '세미원' 가는 길]                         
  <운길산역>에서 <북한강철교>로 가는 길은 도로가 아닌 샛길로 안내 합니다.
  빨간선으로 표시한 샛길을 따라 6분여 진행하면....


  ['북한강철교']                        10:34              
  "북한강철교 564m"를 만나 건너게 됩니다.
  <중안선 열차>가 다니던 기찻길이 이젠 자전거가 다니는 자전거 도로로 탈바꿈 했습니다.
  저도 앞으로 걷는게 힘들어 질때 자전거를 타고 다닐 예정입니다.
  하지만 걸을수 있을때 까지는 걸어야지요.


  ['철교 입구']                  
  <북한강>을 경계로 <남양주시>와 <양평군>의 행정구역이 나뉘어지고
  이제 <양평군 양서면> 속으로 들어 갑니다.


  [철교 위에서 조망]                 
  <북한강철교>를 건너며 조망을 하는데 오늘 넘어 가야할 <샘골고개>가 <부용산> 뒤에 있는데...


  ['두물머리' 조망]                  
  약간 우측으로는 <양수대교>와 <두물머리>가 조망되고


  ['북한강철교']                     
  <위키백과>에서 인용 합니다. 
  "북한강철교"
  1939년 4월 1일에 중앙선의 청량리역-양평역 구간이 개통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6.25 전쟁 초기에 한 번 파괴된 것을 1950년 12월까지 수리했다가,
  중국 인민해방군의 참전으로 1·4 후퇴를 하는 등 북한강변이 다시 전쟁터가 되면서 파괴된다.
  이렇게 파괴된 다리는 1952년 2월에 완전히 복구되었다.
  중앙선의 복선 전철 공사를 시작하며 양수역이 능내역 대신 운길산역과 이어지게 되면서 새로이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이를 양수철교라고 부르고 있다. 
  과거에 사용되던 북한강철교는 현재까지 남한강 자전거길 자전거 전용도로의 다리로 활용되고 있다


  ['두물머리' 가는 길]                10:43              
  <북한강철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평해길>은 우측 <두물머리>로 가라고 알립니다.
  안내판에는 <세미원>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지만 <두물머리>를 구경하고 가라는 뜻인듯...


  ['양수리환경생태공원']

  ['두물머리 물래길' 안내도]                        
  철교에서 내려 가면 바로 "양수리환경생태공원"이 이어지며 
  "두물머리 물래길" 안내도도 있습니다.
  안내도는 참고용으로 하고 이곳저곳 취향에 맞게 <두물머리>를 돌아 보고 가는게 좋습니다.
  안내도에 그어진 선을 철길 걷듯 걷는 것은 선에 예속되는 것이기에 도보여행의 자유로움을 잃게 됩니다.


  [호변길]                   

  ['예빈산' '예봉산' 조망]                 
  이제부터 <두물머리>의  <팔당호> 호변길을 4km 정도 걷게 되겠습니다.
  강 건너 <예빈산 예봉산>도 멋지게 조망되며


  ['북한강철교' '운길산' 조망]                   
  조금 전에 건너 왔던 <북한강철교>와 그 뒤로 <운길산>과 <수종사>까지 그림 같습니다.


  ['양수대교' 통과]                    10:52          
  <양수대교> 밑을 통과하면...


  [철쭉 영산홍]                
  이 계절에만 만날수 있는 꽃길을 지나고


  ['한강물환경연구소']

  [물환경연구소]

  ['한강물환경생태관' 입구]                  11:05         
  "한강물환경생태연구소"를 지나면




    [생태공원]                             
  노을이 질때 오면 더 좋은 생태공원을 여유롭게 지나갑니다.


  ['신양수대교' 밑]                    11:12       
  그러면 <6번국도>가 지나는 <신양수대교> 밑을 통과하게 되며


  ['두물머리 공원' 입구]                     
  <두물머리 공원>이 본격적으로 시작 됩니다.
  그런데 <평해길 앱>은 여기서 <두물머리>로 가지 않고 바로 좌측 나루터로 길안내를 하는데...
  여기까지 왔으면 실제 <두물머리>를 찾아 보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에서도 언급 했습니다만, 관계기관이 그어 놓은 선을 반드시 따라 갈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 그어 놓은 <평해길>을 벗어나 직진성 우측길로 들어 가서 <두물머리>를 구경하고 갑니다.



  ['두물머리']                   11:20           
  "두물머리 兩水頭"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곳을 <열수>라고 했고 자신이 귀양 생활 후 돌아 와서는 자신의 호도 <열수>
  라고 했습니다, 컴 자판기에는 나오지 않는 한자 이지만 "洌水" 입니다.
  <삼 水변>에 <벌일 열 列>이 붙은 한자인데 <兩>과 비슷한 의미이지만 강물이 합쳐지는 의미로는
  <洌水>가 더 뜻깊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정약용선생>도 자신의 호로 사용했겠죠.
  <정약용선생>이 귀양생활 중에 고향을 그리워 하는 詩가 있어 소개해 드림니다.
   
                              酉山之下 爰有我廬 
                              洌之洋洋 有牣其魚 
                        저 유산 아래는 내가 사는 집이 있고 
                        끝없이 넓은 열수에는 물고기가 가득하네 
  이곳 <두물머리>에는 <두물경>이라는 안내석이 있으며 
  뒤에는 <족자도>가 <북한강>과 <남한강>의 만남을 굽어 보고 있습니다.


  ['검단지맥''검단산', '족자도' 조망]                     
  제가 이곳을 들릴 때 마다 인용하는 詩가 있는데 오늘도 인용 하겠습니다.
   
       두물머리에서  
                       박후자  
          만남의 절창이다
          물속으로 숲과 구름이 만나고
          파란 하늘의 풍금 소리
          고요한 오후와 만난다
          강물 일렁이는 슬픔
          햇볕이 다독이는 강변에
          물방개 발자국 따라 퍼져가는 동심원
          파장이 크다
          저기 떠내려온 붉은 잎
          어느 먼 골짝을 돌아왔는가
          상처 난 단풍잎 하나 동심원에 갇혀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돌다가
          물결 따라 떠내려가는
          이별의 선창가다 

     "어느 먼 골짝을 돌아왔는가. 상처 난 단풍잎 하나"
     꼭 제가 살아온 인생길을 말해주는듯....
     여기 두물머리에서 지나온 세월을 한번쯤 추억하고 떠나는 이별의 선창가 - "두물머리"
     제가 "두물머리"에만 오면 언제나 되뇌이는 이 詩는
     저와도 약간의 인연이 있는 "박후자 詩人"의 "두물머리에서"라는 詩인데
     <문예한국>을 통해 등단한 "박후자 詩人"은 <이대문인회>,<한국시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그림자를 세워 집을 짓는다"등이 있습니다.


  ['두물머리 공원']                 11:25         
  <두물머리>에서 <두물머리나루터>로 가는 길입니다.


  ['두물머리 나루터']

  ['두물머리나루터' 표지석]                11:29         
  "두물머리 나루터"
   이 나루는 건너편 '광주시 남종면 우천리'나 '분원리' '귀여리/로 건너 다니던 나루였는데, 
   '광주시'의 <경안장>이 소시장으로 유명했을 때는 사람을 태우는 작은 나룻배 외에도 열 마리 이상의
   소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커다란 나룻배도 있었답니다. 
   더 옛날에는 세곡선과 장삿배가 정박하는 남한강 물길의 정류장이기도 했답니다.
   또한 지금은 <팔당호>에 수몰되었지만 예전에는 나루 근처에 <쏘갈바위>가 있었답니다. 
   곡물을 싣고 가던 배가 부딪쳐 파손되어 <삼백 가마를 먹은 바위>라고 부르기도 한 악명 높은 바위랍니다.


  ['겸재 정선선생'의 '독백탄']       
  <겸재 정선 선생>이 그린 진경산수화 <독백탄 獨柏灘 보물 제1950호>를 바위에 재현해 놨습니다.
  <독백탄>에 관해선 <평해길 제3길 정약용길>에서 자세히 알아 봤기에 여기선 생략합니다.
  다만 그림을 다시 보여 드리면

  <겸재 정선 선생>이 그린 진경산수화 <독백탄 獨柏灘 보물 제1950호>



  ['포토존']                                  
  포토존에는 사진 촬영을 하려는 나드리객들이 줄을 잇고



  ['두물머리 느티나무']                      11:35

  [안내문]                
  <두물머리의 수호신>이라는 느티나무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이 느티나무에 대해선 안내문에 자세히 안내하고 있고


  ['두물머리 고인돌']

  ['두물머리 고인돌']                    
  여러번 이곳을 방문 한적이 있습니다만, 느티나무 아래에 "고인돌"이 있는건 처음 봤습니다.
  후답자들은 곡 보고 가세요~~ㅎ


  [호반의 풍경]                               
  어린이가 애완견과 함게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어린이나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 한컷.
  팔당호에는 물고기들이 우굴우굴 하더군요.
  그런데 잉어도 아니고 물고기 종류가 뭔지는 모르겠더군요.



  [蓮池]                    11:38         
  <세미원> 방향으로 조금 올라 가면 <연지 蓮池>가 있는데 연꽃 피는 여름철에 절경을 이루겠고


  ['배다리' 조망]

  ['스탬프함']                   11:46       
  이어서 "세미원"으로 건너 갈수 있는 "배다리 입구"에 도착하는데
  이곳에 <스탬프함>이 있습니다.


  ['세미원 배다리' 입구]          
   "세미원 洗美園"으로 건너 갈수 있는 "배다리 입구"입니다.
   입장료가 5,000원이고 노인들도 3,000원을 내야 합니다.
   <평해길>은 <배다리>를 건너지 않고 <양수역>으로 갑니다만, <세미원>을 관람하고 싶은 분들은
   여기서 <배다리>를 건너 <세미원>을 구경하고 정문으로 나가도 <평해길>과 다시 만나니 참고 하시고


  ['배다리' 조망]

  ['세미원' 안내문]                   
  옆에서 <배다리>를 조망하고 <세미원 안내문>을 읽어 봅니다.


  ['양수역' 가는 길]                  
  '양수리' 시내로 가는 길입니다.
  150m 정도 진행하면...


  ['양수리 중앙도로']                   12:00            
  <양수리 중앙도로>를 만나는데 <양수대교>에서 이어지는 <양수리 관통도로>입니다.


  ['체육공원삼거리']                     12:04       
  <양서도서관> 앞에 있는 <체육공원삼거리>를 지나는데...우측에는...


  ['양서문화체육공원' 정문]                    12:05       
  <양서문화체육공원> 정문이 있으며 이어서 <세미원 정문>도 있습니다.


  ['양수역' 가는 길]              12:07       
  <세미원 정문>을 지나면 건너편에 <양수역>으로 가는 길 표지판이 보입니다.
  조금전 <세미원 정문>에서 길을 건너야 했는데 모르고 지나처 여기서 무단횡단 ㅠ


  ['물래길']                    
  <두물머리 물래길>과 함께 가는 <평해길>입니다.



  ['가정천' 합수지]           
  우측은 <가정천>이 <한강>과 합수하는 곳입니다.
  앞으로 이 <가정천>을 따라 <한음 이덕형 선생 신도비>까지 진행해야 합니다.
  10여분 진행하면...


  ['양수역' 조망]                  12:17        
  <양수역>이 보이기 시작하고


  ['중안선 굴다리']              12:18         
  이어서 <양수역> 옆에 있는 <중앙선 굴다리>를 통과하게 됩니다.


  ['한음 이덕형 신도비' 가는 길]               12:21      
  굴다리를 지나면 이정표가 "한음 이덕형 신도비 4.3km"로 바뀌며
  여기서부터는 "양평물소리길 1코스 문화유적숲길"이 <평해길>과 동행합니다.
  그래서 이 구간에 대한 답사기는 부록에 첨부한 <양평물소리길>을 참고 하면 됨으로 
  여기선 간단히 기술하니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양평물소리길>을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가정천']                 12:24     
  <양수역 굴다리>에서 우측으로 조금 나가면
  "가정천"을 만나 다리를 건너 <가정천 제방> 우측을 따라 진행합니다.




  ['가정천' 개천길]                         
  33분여 <가정천>을 따라 진행하면...


  ['한강기맥 청계산' 조망]                 12:57          
  <한강기맥 청계산>이 조망되는 곳 쯤에서 '양서면 부용리'가 펼쳐지며
  <에듀셀파기숙학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부용리 芙蓉里>는 우측 <부용산 芙蓉山 366m>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부용2교' 앞]                12:58          
  <부용2교>를 만나면 <물소리길>과 <평해길>은 다리를 건너 <에듀셀파기숙학원>으로 가라고 합니다.


  ['에듀셀파기숙학원' 앞]                 1:04        
  <에듀셀파기숙학원> 정문 앞에 이정표가 있는데 길조심을 해야 하는 곳이입니다.
  이 학원은 예전에 제가 <물소리길>을 걸을 때엔 <정진기숙학원>이라는 이름이었는데...


  [논두렁 통과]                 1:07     
  기숙학원을 지나면 바로 이런 논두렁을 지나야 하는 좀 낮선 길이 나타나며
  

  ['가정천']                   
  다시 <가정천> 상류를 만나 앞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 가는데 <이덕형 선생 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덕형선생 묘' 조망]               1:13         
  다리를 건너 농로를 따라 가는데 <이덕형 선생 묘>가 다가 옵니다.
  선생의 묘는  <신도비>에서 왕복 600m로 좀 멀고 
  가봐야 어느 곳에서나 만나는 무덤이라 생략하고 진행했습니다.


  [숲길]                  1ㅣ15              
  숲길을 잠시 지나 나가면...


  ['이덕형선생 신도비' 앞]               1:17~1:51           
  <한음 이덕형 선생 신도비>에 도착 합니다.
  이곳에 <스탬프함>이 있는데 <제4길 두물머리나루길>에는 <스탬프함>이 두군데 있다는 것을 알수 있죠.


  ['한음 이덕형 선생 신도비각']

  [안내문]                          
  <오성과 한음>으로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특별히 언급 할 내용이 없습니다.
  안내문을 참고 하시고...
  더 자세한 얘기는 제가 쓴 <물소리길 1코스 답사기>를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이덕형선생에 관한 얘기]        
  선생에 대한 공식적인 이야기도 안내하고 있습니다.


  ['물소리길 스탬프함']                1:51      
  <이덕형선생 신도비> 옆에는 <물소리길 스탬프함>도 있는데 
  여기 벤치에서 빵으로 점심을 먹고 쉬었다 갔습니다. <평해길>은 <물소리길>과 동행합니다.



  ['목왕리' 산허리길]                   
  산허리길을 15분 정도 진행하면...


  [詩碑]               2:06           
  <이덕형 선생>이 썻다는 詩 한편이 길섶에 있는데
  그가 살던 곳의 위치를 간접작으로 알려 주고 있는 詩라고 생각 됩니다.
  <월계 月溪>가 <가정천>의 지류로 옆에 흐르고 있는 이 계곡 시냇물이랍니다.
  그래서 건너편에 있는 산이 <달구덩이산>이라고...


  ['목왕2리']              2:09      
  산허릿길을 벗어나면 <목왕2리 안내석>이 길을 안내하는데 <동막골>이라고도 한다고...
  동쪽의 막장 고을이란 뜻이겠죠.


  ['느티나무']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 가면 별장들이 위용을 자랑하며 부러움을 주는데
  앞에 큰 느티나무가 길 안내를 합니다.
  느티나무로 가면...


  ['느티나무' 앞 갈림길]                 2:14         
  느티나무 앞에서 <평해길>은 우측 산길로 안내됩니다.
  <몽양 여운형 생가>까지 2.7km라고 알려 주는데 <샘골고개>를 넘어야 하는 코스가 되겠습니다.


  ['샘골고개' 가는 길] 

  ['샘골고개' 입구]                 2:20         
  <물소리길>과 동행하는 <평해길>이라서 <물소리길>만 따라 가면 되겠습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샘골고개>를 넘는 고갯길이 시작 됩니다.



  ['샘골고개' 오름길]                                 
  <샘골고개>로 오르는 길이 이어지는데 약간 가파르지만 거리가 짧아 13분 정도만 오르면 됨으로
  매우 쉬운 고갯길이 되겠습니다.
  제가 <물소리길>이 조성되고 초창기에 넘었던 <물소리길>하고는 좀 바뀐듯하군요.
  그때는 <부용산약수터>라는 약수터가 있는 고개를 넘어 <샘골고개>로 갔는데
  <부용산약수터>에 <스탬프함>이 있어 확실히 기억하는데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수 없고...


  ['샘골고개']                       2:33  
  "샘골고개"
  이 고개는 세번째 방문하게 되는군요.
  2010년 1월 16일 <형제봉-청계산-부용산-하계산> 산행을 할때 좌측에서 우측으로 진행 했었으며
  2015년 8월 27일 <양평물소리길 1코스 문화유적숲길>을 할 때엔 넘어 갔었습니다.
    좌측으로 가면 <형제봉-청계산-국수역 등산로>로 갈수 있고
    우측으로 가면 <부용산-하계산-양수역>으로 가는 등산로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한 제가 쓴 산행기를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이정표]                  
      이정표에 영어 표기가 좀 어색해 한마디 첨언합니다.
      <청계산 정상>을 영어 표기로 [Top of  MT Cheonggye]라고 했는데 "정상"은 "Top"이라 하지 않고
      "summit" 라고 하지요.



  [내림길]                          
  <샘골고개>에서 10여분 내려 가면 


  [철문]              2:43                   
  철문을 통과하는데 전에는 없던 문입니다.


  ['물소리길 스탬프함']                2:44          
  이어서 <물소리길 스탬프함>을 지나 가는데 변경된 스탬프함 위치군요.
  앞에서도 언급 했다시피 전에는 <부용산약수터 고개> 근처에 있었습니다.



  ['신원리']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의 <신원1리 新院1里>가 펼쳐 집니다.
  이 고을엔 조선시대까지 <역원 驛院>이 있다가 없다가 했는데 새로 생긴  <역원 驛院>이 있었다고
  <신원리 新院里>가 되었다고 합니다.


  [뒤돌아 본 '샘골고개']               2:52        
  <신원1리 新院1里>를 지나며 <부용산>과 지나온 <샘골고개>를 뒤돌아 봅니다.
  <부용산> 정상에는 고려시대 폐위된 왕비와 아들에 대한 설화가 전해 내여 오더군요.
  그 내용을 참고로 보여 드리면....
                 


  ['되는턱고개']              2:57          
  <되는턱고개>라는 좀 독특한 이름의 고개를 넘어 가면...


  ['여운형 선생 생가'와 '기념관' 조망]              2:59        
  <몽양 여운형 선생 생가와 기념관>이 보이기 시작하고


  ['여운형선생 생가']

  ['여운형 기념관']                  3:00        
  "몽양 여운형 선생 생가와 기념관"
  여기도 지난 <물소리길 답사기>에서 자세히 알아 봤으므로 여기선 생략하고


  [쉼터]

  [내림길]                       
  10여분 내림길을 내려 가면


  ['신원역']                  3:10                
  "신원역 新院驛"에 도착하며 답사를 마침니다.
  이곳 근처에는 조선시대까지 <평해로>의 공공 여관인 "월계원 月溪院"이 있었던 곳이었는데
  없어지고 새로운 院이 생겨서 <新院>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하네요.
  다음 구글어스를 보며 추가로 알아 보면....


  ['구글어스' 실트랙]                    
  <신원리>에서 <남한강> 옆으로 난 <부용산> 옆구리의 절벽길을 통과하기가 무척 힘들었답니다.
  그래서 <평해길>을 오가는 나그네들이 묵었다 가는 공공여관인 "월계원 月溪院"이 있었다는 것인데
  <월계원>이 없어지고 새로운 <역원>이 생겼다고 <新院里>라는 마을이 생겼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공식적으로 15.2km이나 <두물머리>등 추가로 조금 더 걸어 15.8km로 GPS에 찍혔으며
  4시간 5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평해길 제4길 두물머리길>은 <양평물소리길 1-1코스>, 그리고 <1코스>와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물소리길>이 제가 6년 전에 걷던 길과는 약간의 변경이 있더군요.
  
  <<부록>>
  1. 양평물소리길 1-1코스 두물머리 물래길 답사기. 여기 클릭
  2. 양평물소리길 1코스 문화유적숲길 답사기. 여기 클릭
  3. 국수역-형제봉-청계산-부용산-하계산-양수역 산행기. 여기 클릭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걷는 것과 사는 것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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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평해길』
 『제3길 정약용길(마재옛길)』  

  ['평해길 좀합안내도']

  ['평해길 남양주구간' 종합안내도]

  ['두물머리' 부근 지도]

  ['3코스 실트랙']                        
  <남양주시의 예봉산(천마지맥)> <양평군의 청계산(한강기맥)> <광주시의 정암산{앵자지맥)>
  <하남시의 검단산(검단지맥)>이 주축을 이루는 산줄기들이 그 맥을 다하고 한곳에 모여
  고개 숙여 인사하며 서로 지난 얘기 조잘대는 "팔당호 八堂湖"로 <평해로>는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번 <평해로 3코스>는 <남양주시 다산길>과 함께 가는 길이며, 우리 민족의 자랑인 불세출의 지식인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生家마을을 돌아 가는 길이어서 더욱 의미있는 <평해길>이 되겠습니다.


  ['팔당역']                  10:51            
  2021년 4월 14일 (수) 맑음
  <경의중앙선 팔당역>에서 <평해길 제3길 정약용길(마재옛길)>을 시작합니다.
  역 뒤로 "예빈산 禮賓山 589m"이 조망되는데 "견우봉" "직녀봉"으로 이루어진 산입니다.
  잠시후 예전 저 봉우리에 올라 바라보는 <능내마을 다산유적지> 사진을 보여 드립니다.


  ['제3길 정약용길(마재옛길) 안내도']                 
  <팔당역> 앞에 있는 <평해길 제3길 안내도>를 확인하고 바로 출발합니다.


  ['팔당역' 앞]                 10:52      
  <팔당역> 앞 광장에는 <다산길 안내판>도 함께있습니다.
  <검단산>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진행하면


  ['남양주시립박물관 입구']                10:54            
  곧바로 <남양주시립박물관> 정문 앞을 지나고


  ['예봉산' 조망]                  
  "예봉산 禮峰山 683m"을 조망하는데 축구공 모양의 기상레이다가 보이고


  ['예봉산 등산로 입구']               10:56    
  이어서 <팔당2리 입구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예봉산 등산로 입구>입니다.
  <평해길>과 <다산길>은 직진합니다.


  [삼거리]                  11:00         
  진행하는 이 길은 [옛6번국도]이고 우측에 [新6번국도]가 지나고 있는데 서로 옮겨 탈수 있는 곳인데
  <평해길>은 [옛6번국도]로 진행합니다.


  [뒤돌아 본 '팔당대교']                     
  <옛 팔당역>이 있던 곳에서 지나온 <新팔당역>이 있는 곳을 뒤돌아 보면
  <팔당댸교>와 <하남시>가 보이고...
  8분 정도 진행하면




  [삼거리]                    11:08         
  [옛6번국도]에서 좌측에 있는 <옛 중앙선 철길>로 방향을 바꿔야 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에 <남원추어탕집>이 있습니다.


  ['옛 중앙선 철길']                   11:09       
  <남원추어탕집>에서 <도께비박물관> 방향으로 50m 정도 올라 가면
  "옛 중앙선 철길-현 국토종주자전거길"을 만나 <평해길-다산길>은 이어 집니다.


  {옛 철길]                   

  [쉼터]                        11:24                   
  <옛중앙선-자전거길>을 15분 정도 진행하면 <팔당댐>이 조망되기 시작하는 곳에 쉼터가 있습니다.
  "팔당리 八堂里" 지명의 유래를 모르고 가면 감흥이 없습니다.
  '팔땅 구땅 장땡'...이런 걸로 알고 있지는 않나요? ㅎㅎ
  '북한강'과 '남한강'이 '경안천'과 합류하여 <검단산>과 <예봉산> 사이의 협곡인 "두미협 斗尾峽"으로
  흐르는데 강 양쪽의 산세가 험준하고 수려하여, 여덟명의 <선녀 仙女>가 내려와 놀던 명당자리가
  여덟 곳이나 있었답니다. 그 자리에 <仙女>들이 여덟 개의 堂을 지어 놀았다는 전설이 있어 
  <팔당리>라 불려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내용을 알고 보면 이곳 한강변의 경치가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현재는 <팔당댐> 건설로 의미가 빛을 바랬지만....


  ['팔당댐과 팔당호' 안내문]                   
  댐 건설하기엔 최적의 장소로 <팔당호>를 만들어 우리나라 인구의 반 이상이 사용 할수 있는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상수원이며, 홍수 조절, 수력발전등 없어서는 절대 않될 <팔당댐> 입니다.


  ['검단산' 조망] 

  ['팔당댐' 조망]               11:42     
  지금의 <팔당댐>부터 <팔당대교> 사이를 "두미협 斗尾峽"이라고 한다고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
  협곡을 지나는 한강의 거센 물쌀은 큰 물고기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답니다. 
  이곳의 팔당 마을 사람들은 겨울이면 전부 모여 긴 쇠사슬을 가로치고 큰 민물고기를 몰아서 잡았다는군요.
  이 물고기 잡는 광경은 겨울의 큰 구경거리였답니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자기 고향의 사계절을 읊은 <소천사시사> 중에 있는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두미협(斗尾峽)의 고기 구경"
        수정 물결 만 구멍 깊이 뚫린 곳    俯鑿玻瓈萬孔
        일천 길 쇠사슬이 가로로 쳐져      橫施鐵銷千尋
        날씨 추워 두건에 눈이 쌓이고      天寒綠帽盈雲
        햇살 쏘아 고기들 금빛 빛나네      日射紅鱗耀金


  ['팔당댐' '봉안터널']                 11:46      
  <팔당댐> 옆으로 <옛중앙선>이 통과하던 터널이 있습니다.


  ['팔당댐']                      
  "팔당댐"
  1966년에 착공하여 1973년에 완공되었다는데, 댐의 높이는 29m, 제방의 길이는 575m,
  총저수용량은 2억4,400만t이며, 유역면적은 2만3,800㎢라고 합니다
  수력발전으로 년간 2억5,600만kW의 전력을 생산하여 공급한다고...


  ['봉안터널' 입구]

  ['봉안터널']                      11:48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봉안마을'에 있어서 <봉안터널>이라 하는듯,,,,
  길이는 250m 정도 되는 <옛중안선> 철길이었지만 지금은 자전거 도로


  ['봉안마을']                    11:52      
  <봉안터널>을 통과하면 "봉안마을"이라고 안내합니다.
  <정약용 선생 집>에서 서쪽으로 <봉안역> 부근은 '청주 한씨'가 대대로 세거하던 곳이었답니다. 
  한수, 임숙영, 서유구, 여운형 선생등이 전후로 은거하던 곳으로도 알려졌다하며
  <정약용 선생>은 여름날 석양이 물들면 이곳의 매미 노래 소리 듣기를 좋아해서 시를 지었답니다.
               
              "유곡(酉谷)의 매미 소리"
              동으론 맑은 못물 내려다 보고  東壓澄潭止水
              서로는 숲 속 매미 소리를 듣네 西臨碧樹涼蟬
              새벽엔 듬성듬성 노래 박자요   曉日疏歌緩節
              석양엔 시끌시끌 피리 거문고   斜陽促管繁絃


  ['팔당호']                     
  <팔당호>가 펼쳐지며


  ['팔당댐']                 11:58          
  뒤돌아 보는 <팔당댐>과 좌측 <검단산>과 우측 <예빈산>입니다.
  가운데 계곡 "두미협 斗尾峽"이 댐 건설하기에 최적지로 모르는 제가 봐도 그렇게 보입니다.
  우측 <예빈산> 아랫마을이 <봉안마을>이라는군요.



  ['봉쥬르' 음식점]                12:04        
  <봉안터널>에서 12분여 <팔당호>를 진행하면 <봉쥬르>라는 한식당 앞을 지나는데
  음식점 입구에 좀 재미있는 조형물이 서 있고...
  5분 정도 더 진행하면....


  ['정약용유적지' 입구 쉼터]

  ['정약용유적지' 입구 사거리]               12:09    
  <옛6번국도>에서 <정약용유적지>로 들어 가는 길 입구를 만나는데, 자전거길과 교차하는 사거리입니다.
  자전거도로를 직진하면 <능내역>입니다만 <정약용 유적지>를 돌아 보고 <능내역>으로 갈 예정입니다.
  여기서 자전거길을 버리고 우측 도로를 이용합니다.


  ['정약용유적지' 가는 도로]                      
  <정약용 유적지>로 가는 도로를 잠시 진행하면....


  ['스탬프함']                12:11~12:17       
  <평해길>과 <다산길>은 도로를 버리고 우측 둘레길로 안내되며 "스탬프함"이 있습니다.
  여기 <스탬프함>은 좌측 옆에서 열더군요. ㅎ <합수머리세월교>에 있는 스탬프함은 뒤에서 열어
  여기는 위에서 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ㅎ


  ['현위치' 안내도]               

  [현위치'와 '다산유적지' 상세지도]                    
  이곳에 설치된 안내도를 보면 여기서부터 "쇠말산 鐵馬山 79.4m"을 중심으로 <팔당호>에 뻗어 있는
  <능내리>의 "다산유적지" 위치를 잘 알수 있군요.


  ['머루터널']

  ['연꽃마을' 유래]                           
  <연꽃마을의 유래>를 알리는 별 의미없는 안내판은 건너 뛰고
  <머루터널>이라고 하는 꽃길을 통과하면


  [호반둘레길]

  ['아조타농원']                   12:23          
  호수 옆으로 낸 산길을 잠시 통과해 나가면
  <아조타농원>이 보입니다. 이름이 재미있는데 잠시후 우측 동산을 빙 돌아 <아조타농원 정문>앞으로
  <평해길>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뒤돌아 보면...


  ['팔당댐'과 '예빈산' 조망]                               
  <팔당댐>과 <예빈산>이 기가 막히게 좋은 경관을 보여 주는군요.



  [둘레길]                             
  다시 호수 옆을 통과하면 <조류관찰소>가 있고


  [철문]              12:32         
  이어서 철문을 통과합니다.


  ['아조타농원' 정문]                 12:34          
  그러면 조금 전에 보았던 <아조타농원>의 정문 앞을 통과하고


  [내림길]                  12:36    
  이어서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 내림길로 내려 갑니다.
  이곳 좌측 산이 "쇠말산 鐵馬山"인데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자신의 마을 유래에 대해
  이 산에서 부터 유래한다고 기록으로 남겨 놨더군요.


  ['조류생태습지' 앞]                  
  다시 팔당호 호변으로 나가면 <조류생태습지>와 음식점들을 만나며


  ['다산생태공원' 후문 입구]                     12:42   
  "다산생태공원 후문 입구"를 만납니다.
  <남양주시 八景> 중에 으뜸이라는 곳이 이곳 "정약용유적지"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다산생태공원']        
  공원 안에서는 <평해길>이나 <다산길>이거나 트랙을 따라 움직일 필요는 없겠습니다.
  이곳저곳 자유롭게 둘러 보고 정문으로 나가면 되니까요.
  저는 호숫가를 따라 진행합니다.



  [생태공원']                         
  공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공원 남단 끝으로 나가면....



  [공원 남단 끝]             12:52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가 조망되며 "경안천 京(慶)安川"이 <한강>과 합수하는 "팔당호"가 펼쳐지는데
  앞으로 나가 조망하면...


  ['소내섬'과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조망]                    
  <팔당호> 가운데에 "소내섬"이 조망됩니다.
  이곳 <팔당호>에는 세개의 섬이 있는데 앞에 보이는 <소내섬>과 잠시후 보게될 <족자섬>, 
  그리고 <큰섬>이 <양수리 남한강> 방향에 있는데 <소내섬>이 제일 크고 <큰섬>이 제일 작습니다. ^.^
  이렇게 수평으로 보면 잘 알수 없으니 제가 예전 2009년 5월 24일에 <천마지맥> 마지막 구간을 진행하며
  <예빈산>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주변 지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 사진을 보여 드리면....


  ['2009년 5월 24일 '천마지맥' 마지막구간 "예빈산 견우봉"에서 찍은 사진]    
  더 설명이 필요 없죠? ㅎ
  "경안천 京(慶)安川"은 예전에 "우천 牛川"이라고 했고 우리말로 "소내"였답니다.
  <경안천>이 <한강>과 합수하는 지점에 생겨난 섬이 "소내섬"이라는 걸 개천 이름에서 알수 있습니다.
  이곳에 대한 <국토지리원> 상세지도를 참고 하면...  


  [이 곳 상세지도]               
  [현위치]에서 <소내섬>과 <분원리>, 그리고 <족자섬>의 위치를 기억해 두고 다음 사진으로 넘어 가면...


  ['소내섬'과 '분원리' 약간 줌인 해 조망]                          
  윗 지도의 [현위치]에서 약간 줌인하여 <소내섬>과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왜 이 사진을 촬영했냐하면 그 유명한 <겸재 정선 선생>이 이곳 <분원리>의 어느 곳을 <진경산수화>로
  남겼기 때문입니다.
  다음 그림을 보면...


  ['겸재 정선 선생'이 그린 '우천 牛川']               
  우리나라 <보물 1950호>로 지정된 <겸재 정선 선생>이 그린 "우천 牛川"이라는 그림입니다.
  예전엔 <경안천>을 <우천>이라고 했다는 것은 이 그림의 이름을 통해서도 알수 있습니다.
  그림 가운데 보이는 기와집은 "사옹원 분원"이랍니다.
  조선시대엔 국가에서 도자기 생산을 관활하는 "사옹원"이라는 관청이 있었답니다.
  이곳은 그 유명한 <조선 백자>의 핵심 생산 기지인 <광주 관요>가 있어 그 관요를 관리하는 
  "사옹원""분원 分院"까지 있었는데 바로 그림 속의 큰 기와집이랍니다.
  우측이 현재의 <경안천>인 <우천>이고...<팔당댐>이 없던 시절이니 감안해서 그림을 감상해야 합니다.
  <팔당댐>으로 이 그림의 상당부분 지역은 수몰되었답니다.
  현재 <분원리>라는 동네 이름까지 만들어 준 <分院>은 폐교된 <분원초등학교>에 자료관으로 남아 있고
  <조선백자>를 만들던 화려한 동네는 아시다시피 <붕어찜 음식거리>가 되어 있습니다.


  [공원]         
  주차장으로 나가는 공원에는 주차장이 가까워서인지 관광객들이 이쪽에 많이 있더군요. ㅎ


  [정자]                        1:02

  ['김훈'의 '흑산' 소설에서 인용]         
  <정약용 선생>은 형제 자매와 함께 천주교를 공부했죠.
  자신은 천주교를 공부만 했지 믿지는 않았다고 국가의 탄압에 항거 했지만 결국 유배길에 올랐지요.
  그들 형제들은 앞에 보이는 <한강>을 건너 건너편 <퇴촌 천진암>으로 가 <서학>, 즉 <천주교>를 공부했죠.
  <팔당댐>이 없던 옛날엔 겨울철에 이 강을 걸어서 건널수 있었답니다.
  소설가 <김훈>의 <흑산>이라는 소설에 언급된 이곳은 윗글을 참고하고


  ['정약용유적지 주차장']               1:07            
  <다산생태공원>을 둘러 보고 <다산 생가>로 가는 길에 있는 주차장을 지나면...



  ['정약용유적지' 입구]              1:09   
  "정약용 유적지"
  여길 다녀 간 적이 없는 분은 안 계시죠? ㅎ
  그런데 깊이 있게 선생의 인생을 들여다 보신 분은 많지 않겠죠?
  르네상스시대를 이끈 <레오날드 다빈치>보다 더 위대한 인물로 우리나라의 <정약용 선생>을 꼽습니다.
  저는 가장 닮고 싶은 인물로 <정약용 선생>을 생각하고 닮아 보려고 노력했습니다만
  그림자 끝도 따라 가지 못했습니다.



        


  ['다산 유적지' 정문]                         
  선생의 생가 안으로 들어 가면...


  ['여유당' '묘' '문도사' 전경]                  
  우측에 선생의 생가인 "여유당"이 있고, 생가 뒤에 선생의 묘가 있습니다.
  그리고 좌측엔 선생의 영정을 봉안한 "문도사 文度祠"가 있습니다.


  ['여유당']                        
  <정약용 선생>이 태어난 생가를 복원한 "여유당 與猶堂"입니다.
  <남양주시 공식 홈페이지>에서 인용합니다.
  당호(堂號)인 여유(與猶)는 선생이 1800년(정조24년) 봄에 모든 관직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서 지은 것으로 여유당기(與猶堂記)를 통하여 아래와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나의 약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 용기는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 지모(智謀)가 없고
  착한 일을 좋아는 하나 선택하여 할 줄을 모르고, 
  정에 끌려서는 의심도 아니 하고 두려움도 없이 곧장 행동해 버리기도 한다.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도 참으로 마음에 내키기만 하면 그만 두지를 못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마음속에 담겨 있어 개운치 않으면 기필코 그만 두지를 못 한다.(중략)
  이러했기 때문에 무한히 착한 일만 좋아하다가 남의 욕만 혼자서 실컷 얻어먹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또한 운명일까. 성격 탓이겠으니 내 감히 또 운명이라고 말하랴.
  노자(老子)의 말에 
 “여(與) 여! 겨울의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유(猶) 여!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 하거라”라는 말을 내가 보았다.
  안타깝도다. 이 두 마디의 말이 내 성격의 약점을 치유해 줄 치료제가 아니겠는가. 
  무릇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파고 들어와 뼈를 깎는 듯 할 터이니 
  몹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니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다.
  
  "여유당 與猶堂"이라고 지은 이유를 조금 쉽게 해석하자면
  "與猶"의 <與>는 <머뭇거릴 '여'>이며, <猶>는 <망서릴 '유'>로 
  즉, 주변을 두려운 마음으로 살피듯이 조심하면서 살아가겠다는 뜻이라 할수 있죠.
  정적들이 자신을 죽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지은 의미있는 집 이름이라 생각됩니다.


  ['여유당' 안채]                           
  <정약용 선생>의 심정을 조금 더 알기 위해선 당시 정치상황을 알아 봐야 하겠죠.
  선생이 형조참의(刑曹參議)로 있던 1799년(정조23년)에는 선생에 대한 노론(老論)의 공격이 
  극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그 해는 선생을 비롯한 남인의 정치적 스승이었으며 <정조>의 충직한 신하였던
  영의정 <번암 채제공 선생>이 돌아가신 해이기도 했는데, 이 무렵 <정조>는 <다산>을 무한히 신뢰하고
  있었으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흔한 광경으로 <다산>이 판서(判書)가 되고 재상(宰相)이 되어 
  <제2의 채제공>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노론>에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노론 벽파>는 선생을 제거하려고 꼬투리를 잡아 보려 하였으나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꼬투리 하나를 부상시키는데, <노론>은 교활하게도 형 <정약전>을 <서학>을 믿는다는 꼬투리로
  공격해서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였는데, 가족이 물러나면 벼슬자리에 있는 다른 가족도 사직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귀양 가 <자산어보>라는 우리나라 최초 최고의
  해양 생태계 학술지를 집필하고 그곳에서 죽었지요.
  <정약용 선생>은 분노했고 세상이 혐오스러웠습니다.
  벼슬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선생은 자명소(自明疏)를 올려 관직을 그만 두기를 청하였습니다.
  <정조>는 계속 만류하였지만 선생이 벼슬을 거부하자 할 수 없이 그해 7월 26일 이를 허락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1800년(정조24년) 봄에 아버지 정재원이 낙향했던 것처럼 가족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와서 집의 문미(門楣)에 “여유당”이라는 현판을 붙이고 은신하였습니다.
  그 해 6월 12일 달밤에 <정조>의 유시를 전하려 규장각 아전이 한서선(漢書選) 10질을 가지고 찾아왔는데
 “5질은 남겨서 가전(家傳)의 물건을 삼도록 하고, 나머지 5질은 제목의 글씨를 써서 돌려보내도록 하라.
  그리고 그대를 부르리라." 하니 선생은 가슴이 벅차 눈물을 흘렸답니다. 
  <노론> 틈에 <정조>를 홀로 남겨놓고 온 것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 선생은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으나
  2주 후인 6월 28일 <정조>는 <노론>에 둘러싸여 갑작스런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었지요.
  이로써 선생은 지은 죄도 없이 정치보복인 정적으로 몰려 마흔살에 18년간의 귀양길에 오르며 
  나라를 개혁하여 발전시키려던 꿈은 <정조대왕>과 함께 산산조각이 납니다.
  이 시기에 세계는 <르네상스시대>와 <산업혁명>의 새 시대로 가고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시대"로 직행하며, 식민지 시대를 여는 암흑시대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묘지 입구]                  
  선생은 죽기 전에 자신이 죽으면 집 뒤 동산에 뭍어 달라고 유언했기에 <여유당> 바로 뒤에 묘를 썻습니다.
  선생의 아버지는 진주부사라는 관직까지 한 <정재원>이라는 분이며, 본부인은 <정약현>을 낳고  일찍 죽어
  세칸드인 <海南 尹氏>에게서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그리고 누이 까지 네명이 태어 납니다.
  물론 다른 여러 형제가 있으나 모두 일찍 죽었습니다.
  어머니 <海南 尹氏>는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를 지은 "고산 윤선도"의 6세손이고,
  "고산 윤선도"의 증손인 詩·書에 두루 능했던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손녀입니다.
  이러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정약용선생은 어려서 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일곱살 때에 선생의 최초의 漢詩인 "山"이라는 詩를 지었으니 천재임을 입증해 줍니다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으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라네'
     
  그 옛날 어린 나이에 벌써 원근법을 깨우쳐서 천재라 했고 한자 실력이 장난이 아니죠.

 
 

  ['정약용선생' 요약 일대기]                           
  선생의 일대기를 요약하여 알기 쉽게 만든 삽화가 있어 첨부했으니 읽어 보시고


  ['다산 정약용선생 묘']        
  <茶山 정약용선생>은 1762년에 이곳 <능내리 마재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5살이 되던 해에 <풍산 홍씨>와 혼인하여 6남 3녀를 낳았는데 4남 2녀는 일찍 죽고
  2남 1녀만 살아 남았는데 장남이 <농가월령가>을 지은 <정학유>이고 동생이 <정학연>이며
  딸은 <이승훈>에게 시집가서 우리나라 천주교 개척에 큰 역활을 한 신여성이지요.
  정약용선생의 가족 사랑은 끝이 없었습니다
  18년간의 유배생활
  유배지에서 그리워하는 아내에 대한 사랑 표현은 극치를 이룹니다
  <如夢令寄內>라는 사랑 詩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如夢令寄內 - 꿈속에서 본 아내에게 
          하룻밤 사이에 지는 꽃이  헤아릴수 없는데 
          산비둘기와 어미제비가 지붕을 맴도네. 
          외로운 나그네 돌아간다 말 못하니 
          언제나 침실에서 아름다운 인연 맺을까나. 
          그리워 말자 그리워 말자. 
          슬프고 서글픈 표정의 꿈속에서 본 아내 얼굴을

  58세에 유배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75세가 될때까지 다시 아내와 잉꼬부부로 살았답니다.
  75세까지 사는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장수 한것입니다
  그리고 결혼 60주년까지 사시는데 이런 것을 <회혼 回巹>이라고 하지요.
  부부가 함께 결혼60주년까지 살아야 하니 매우 어려운 경우입니다
  결혼 60주년에 "회혼례식"을 올리는게 가문의 영광이죠. 
  요즘은 결혼도 늦게해서 부부가 동시에 결혼 60주년까지 살기도 어려워 "회혼례식"을 하는 부부는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만, 저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회혼례식"을 하였고 동네 잔치를 한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정약용 선생>은 불행이도 <회혼례 回巹禮>를 올리려는 날 아침에 돌아 가십니다.
  드라마도 이렇게 극적인 드라마는 없죠.
  선생은 돌아 가시기 전에 <회혼시 回巹詩>를 남겼습니다.
 
             回巹詩
            六十風輪轉眼翩 穠桃春色似新婚
            生離死別催人老 戚短歡長感主恩
            此夜蘭詞聲更好 舊時霞帔墨猶痕
            剖而復合眞吾象 留取雙瓢付子孫
 
                   회혼시
           육십 년 세월, 눈 깜빡할 사이 날아 갔는데도
           짙은 복사꽃, 봄 정취는 신혼 때 같구려.
           나고 죽는 것과 헤어지는 것이 사람 늙기를 재촉하지만
           슬픔은 짧았고 기쁨은 길었으니 성은에 감사하오.
           이 밤 〈목란사〉 소리 더욱 좋고
           그 옛날 치마에 먹 자국은 아직도 남아 있소.
           나뉘었다 다시 합하는 것이 참으로 우리의 모습이니
           한 쌍의 표주박을 자손에게 남겨 줍시다



  ['자찬묘지명']                         
  선생은 죽기 전에 자신의 묘에 넣을 <묘비명>을 스스로 작성한 것으로도 유명하죠
  자신의 일대기를 스스로 거짓없이 기술했습니다.
  너무 길어 생략하고  일부분만 사진으로 소개 합니다.


  [묘소에서 '여유당' 조망]

  [묘소에서 내려 가는 길]

  [묘소에서 '문도사' 조망]                    
  저는 선생이 쓴 글중에서 <유산 遺産>에 대해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가장 인상 깊게 느껴집니다.
  자식에게 <유산 遺産>을 남겨 주는데 현금이나 부동산등을 남겨 주지 않고
  "글자"를 <遺産>으로 남겨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마도 <정약용선생> 뿐일 것입니다
  그 유명한 선생의 <遺産> 전문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는 논밭을 너희들에게 남겨 줄 만한 벼슬을 못했으니 오직 두 글자의 신비로운 부적을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이것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부지런함>과 <검소함>, 이 두 글자는 좋은 논밭이나 기름진 토지보다 나은 것이니 
     평생을 두고 필요한 곳에 쓴다 할지라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근(勤) 부지런함>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에 할 일을 저녁 때까지 미루지 말라.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끌지 말며, 
     비오는 날에 해야 할 일을 날이 갤 때까지 늦추어서는 안된다. 
     집안 식구들이 한 사람도 놀고 먹는 사람이 없게 하고, 
     한순간도 게으름이 없는 것을 <부지런함>이라 한다. 
     또 <검(儉) 검소함>이란 무엇인가. 
     한 벌의 옷을 만들 때마다 이 옷을 먼 훗날까지 입을 수 있는지 헤아려 보라. 
     가는 베로 만들면 머지않아 해어지고 말테니 질박한 천으로 만들어 입으라. 
     음식도 목숨을 이어가면 그것으로 족한 줄 알거라. 
     맛있고 기름진 음식을 탐하면 결국 변소에 가서 대변보는 일에 정력을 소모할 뿐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당장의 어려운 생활조건을 극복하는 일시적인 방편이 아니라, 
     여유있는 가정일지라도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바르게 하는 항구적인 생활 규범이다. 
     그러니 가슴깊이 새겨 두라고 거듭 당부한다."
 
  <정약용선생>의 아들 <정학유>와 <정학연>은
  아버님의 훌륭한 가르침으로 후에 조선시대 大學者가 되지요?
  위에서도 언급 했드시 선생의 아들 "정학유 丁學游"는 그 유명한 "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를 지었지요


  ['문도사']
          
              [영정]                    
  선생의 영정은 유리 액자 속에 있어 빛반사로 사진이 좋지 않습니다만 제 카메라 성능은 좋지요?ㅎ
  선생은 자신을 "삼미자 三眉子"라고도 하고 10살 이전에 쓴 시를 모아 <三眉子集>를 냈답니다.
  "三眉"라는 말에서 "眉"는 눈섶이라는 뜻이죠. 눈섶이 세개라는 의미이니,
  선생은 자신을 "三眉子"라고도 했던 것입니다. 속칭으로 '눈섶이 세개인 놈"이라는 말이지요
  선생은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눈섶 사이에 흉터가 생겨 눈섶이 떨어져 
  눈섶이 세개로 보여 해학적으로 스스로를 "三眉子" '눈섶이 세개인 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선생은 천연두로 곰보 였던 모양입니다.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천연두로 곰보가 된 사람이 많았지요?
  그후 천연두가 요즘 <코로나19>보다 더 무섭게 번지자 <천연두 예방과 치료법>을 책으로 펴냈는데
  그 책의 이름이 <마과회통 麻科會通>이니 의학까지 섭렵했습니다.


  ['실학박물관']               
  <실학박물관>은 밖에서만 흘깃 보고 유적지를 떠납니다.


  [시내버스]                  1:30        
  <운길산역>에서 <다산유적지>를 운행하는 좀 독특한 모양의 시내버스가 여전히 다니고


  [고개 오름길] 

  ['마재고개']                 1:37           
  유적지 입구에서 7분여 고개를 오르면 <마재고개>에 오르는데
  <평해길>과 <다산길>은 좌측으로 가라고 합니다.


  [지명의 유래]         
  지명의 유래 안내판이 있고



  ['마재성지' 앞 갈림길]                1:42          
  <마재고개>에서 잠시 내려 가면 "마재성지"를 만나는데 좌측으로 내려 가면..


  ['마재성지' 정문]                     1:43


  [성지 안 조형물]         
  "마재성지" 정문을 만나 들어 가 보고
  5분여 골목을 빠져 나가면...


  [자전거도로]                      1:48

  ['능내역' 앞 음식점]                          
  <다산유적지 입구 사거리> 스탬프함이 있던 곳에서 헤어졌던 <옛 중앙선-자전거도로>를 다시 만나며
  <능내역> 앞 음식점에 도착합니다.


  ['능내역']               1:48            
  "능내역 陵內驛"
  마을 뒤에 작은 언덕이 있어 <능내리>라는 마을 이름이 생기고 이 마을에 기차역이 들어 섯는데
  이젠 폐역이 되어 그 옛날의 추억만 서려 있답니다.




  ['능내역' 안]                    
  폐역이 된 역 안엔 빛바랜 사진들이 걸려 있을 뿐....


  ['행복행 추억 열차']                  1:53       
  낡아서 페인트 껍질이 더덕더덕 일어나 흉물스런 기차 카페가 외롭게 "행복"을 추억하고...
  이 기차 옆 자전거 도로를 따라 7분여 진행하면...


  ['다산유적지' 들날머리']               2:00~2:18      (조망및 휴식)   
  <옛6번국도>에서 <다산유적지>로 통하는 동쪽 들날머리를 만나는데


  ['쉼터']

  ['족자섬' 조망]                 
  이곳에 쉼터가 있으며 유명한 "족자섬"이 조망됩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며 여울치는 물쌀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두물머리>에 있는 섬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소내섬> 다음으로 큰 이 지역 섬이죠.
  <정약용 선생>은 이곳 앞에서 물고기를 잡고,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형제들과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던 곳이라고 그 내용을 시로 남겼습니다.
  <남자주 藍子洲>는 <족자섬>의 다른 이름이랍니다.

               남자주에 당도하여 [行次藍子洲]    (다산시문집 제2권)

                맑은 골짝 강물에 배 저어 오니      移舟汎淸壑
                좋은 누대 그 모양 처량도 하다      惆悵好亭臺
                환하게 핀 꽃가지 숨어 있다면       故故花枝隱
                하늘하늘 버들 언덕 감돌았구나      輕輕柳岸廻
                물가의 고을이라 송별이 많고        水鄕多送別
                인간의 세상이라 설움도 많다        人世足悲哀
                지난 옛날 어머님 사시던 문 밖      舊倚門閭外
                지금 이 몸 쓸쓸히 오락가락해       於今自去來


  [약간 줌인한 사진]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만 사진의 한계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 약간 줌인해 봅니다.
  <정약용선생>도 올라 산행기를 남긴 <용문산 백운봉>이 <한국의 마테호른> 답게 솟아 있습니다.
  선생은 등산을 무척 좋아한 메니아였죠. 전국 각지의 산행기가 남아 있습니다.


  ['족자섬' 안내문]

  ['겸재 정선 선생'의 '독백탄']                          
  <족자섬> 주변에 대한 진경산수화를 <겸재 정선 선생>이 남겼습니다.
  제목은 "독백탄 獨柏灘"으로 <보물 제1950호>로 지정된 그림입니다.
  <겸재 선생>이 그린 그림으로는 <한강>  최상류에서 그린 그림입니다. 모두 <양천현감>일 때 그렸죠.
  <독백탄>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족자섬> 옆으로 급하게 흐르는 여울을 일컷는 답니다.
  그리고 우측 제일 높은 산이 <운길산>이며 <수종사>도 그려놨습니다.
  가운데 마을이 '새들도 편안하게 쉬어 간다'는 <조안리>이며
  강 가운데 섬이 <족자섬>이랍니다. 
  이 그림을 그린 위치는 이곳이 아니고 다음 사진을 보면서 추측해 보면....


  ['2005년 5월 24일 천마지맥을 하며 '예빈산(직녀봉)'에서 찍은 사진] 
  <족자섬>의 위치와 모양이 알기 쉽게 보이죠? ㅎ
  윗 그림 <독백탄>은 <족자섬> 뒤에 있는 <앵자지맥의 끝-정암산>이 있는 '광주시 남종면 귀여리'에서
  이쪽을 보고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야 <운길산>과 <수종사>의 각도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운길산' 조망]              2:18                
  쉼터에서 <족자섬>을 조망하고 다시 길을 나서니 <운길산>이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운길산 雲吉山 610m"은 
  <태조 이성계>가 "이 산에는 구름이 많아 구름도 쉬어 가는 吉地"라고 지어진 이름이라 합니다.
  이 지역의 지명은 <태조 이성계>와 관련이 많다고 여러번 언급한바 있습니다.


  [자전거도로]

  ['신양수대교'로 가는 6번국도]                        2:24

  ['조안1리 사거리]                2:32               
  쉼터에서 15분여 진행하면 <조안면 면사무소>가 있는 <조안1리 사거리>를 지나고


  ['양수대교' 조망]                  2:38       
  <양수대교>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조안2리' 입구]                     2:45

  ['예봉산' 조망]                           
  이어서 <조안2리> 입구를 지나며 <조안2리>와 <예빈산> <예봉산>을 조망하고


  ['청계산' 조망]                     2:49     
  <양수대교> 뒤로 <한강기맥>이 지나는 <청계산>과 <평해길4코스>와 <양평물소리길1코스>가 지나는
  <부용산>이 조망되는군요.


  ['운길산' 조망]

  ['다산'의 정원이었던 '수종사' 조망]                    
  <운길산역>에 다가가면 <운길산>과 <수종사>가 아주 가까이 보입니다.
  <수종사>는 <정약용선생>을 비롯해,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 등 많은 문인, 예술가들이 
  즐겨 찾아 그림과 시 등을 남긴 곳이기도 하지요.
  <정약용선생>은 <수종사기>를 지어 <수종사>에는 샘이 있어 돌 틈으로 물이 흘러나와 땅에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낸다."는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운길산역']                  3:07      
  <경의중앙선 운길산역>에 도착하며 <평해길 제3길 정약용길>과 <남양주 다산길>을 함께 마침니다.


  ['다산길']

  ['제3길 정약용길' 안내도]                           
  안내도에는 12.9km라고 하지만 저는 지그재그로 둘러 보며 걸어 13.6km를 걸었고
  4시간 15분 정도가 걸렸군요.
  <다산 정약용선생>의 발자취를 살펴 보며, <겸재 정선 선생>의 진경산수화 속으로 여행하여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걷는 것과 사는 것


걷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한 팔이 앞으로 가면
다른 팔은 뒤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
다른 발은 뒤에 남는다

두 팔의 어긋남과
두 발의 어긋남의 연속이
걷는 모습이다

그래,
어긋남의 반복이 삶이었구나

흔들리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구나

- <걸으면서 눈치 챈 것> 신광철 지음 -에서 인용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여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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