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아리바우길』
 『제7코스 어명을 받든 소나무길에서 만난 명주군왕릉』 
      명주군왕릉-산불감시초소-술잔바위-어명정-보현사입구


     ['7코스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평창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는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의 "보현사 입구"에서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명주군왕릉"까지 가는 약"12km" 거리라고 합니다.



    ['국토지리원지도 실트랙']              
  오늘 직접 걸은 실트랙입니다.
  일반적으로 <보광사 입구>에서 <어명정><술잔바위>로 올라 <명주군왕릉>으로 진행 합니다만
  오늘은 몇몇 이유로 <명주군왕릉>에서 역방향으로 진행했는데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명주군왕릉 입구']             10:12     
    2024년 7월 21일 일요일   흐린 후 맑음    
  <복정역>에서 7시 20분에 출발하여 약2시긴 50분이 걸려 "명주군왕릉"에 도착했습니다.
  
  "명주군왕릉 暝州郡王陵"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왕릉마을'
  <신라 제37대 왕 "선덕왕 宣德王">에 이어 제38대 왕위에 등극 할뻔 했던 인물 "김주원의 묘역"입니다.
  입구에서는 "김주원의 神道碑"가 봉안 된 "명왕비각 暝王碑閣"이 답사자를 맞이합니다.
  신도비에는 "신라 명주군왕 신도비 新羅溟州郡王神道碑"라고 쓰여 있는데
  이 신도비의 비문은 1960년 <이승만대통령>이 짓고, 비각은 당시 국회의원 <김진만씨>가 세웠답니다.
  묘역으로 들어 가는 입구 정문은 홍살문으로 단장되 있군요.
  


    [사당]                  
  묘역으로 들어 가면 먼저 세개의 사당이 연이어 서 있는데
  <청간사> <숭열전> <숭의재>가 연이어 서 있습니다.




    ['청간사']                 
  먼저 "청간사 淸簡祠"라는 사당을 만나는데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된 이 묘역의 주인인 신라시대 <명주군왕 김주원>의  23세손인 "매월당 김시습"을
  모시는 사당이라고 합니다.
  
  <조선> 초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으로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자
  그 불의를 도저히 용납할수 없다고 항거하며 모든 관직을 버리고 승려가 되어 유랑생활을 하며 
  지금의 <경주 금오산(남산)>에 들어가 <금오신화>등 집필활동을 하기도 한 유명한 <생육신> 중에 한분이죠.




    ['숭렬전']                   
  "숭열전 崇烈殿"
  <신라>는 크게 3개 시대로 나누는데 <중대-통일신라시대>를 연 인물이 바로 "태종 무열왕 김춘추"죠.
  <성골>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선덕여왕-진덕여왕>이 처녀들이었으니 아들을 못 낳아 대를 잇지 못하쟈
  <진골>이 지배하는 나라로 바꾼 이가 바로 <김춘추>로 <통일신라시대>를 활짝 연 인물이기에
  그를 추모하는 사당은 신라지역 가는 곳마다 종종  있습니다.
  
  이 묘역의 주인인 <명주군왕 김주원>이 바로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직계로 6세손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명주군왕 김주원>은 <강릉김씨 시조>이기 전에 <경주김씨 진골집안>이었던거죠.




    ['숭의재']                        
  "숭의재 崇義齎"
  이곳이 바로 "강릉김씨 시조-명주군왕 김주원 暝州郡王金周元"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신라화백회의>에서 <제38대 신라왕>으로 만장일치 추대된 인물인 현재의 국무총리급인 <김주원>인데
  왕위대관식 날에 비가 많이 와 <알천-현재의 경주북천>이라는 조그만 개천을 건너지 못해 
  왕위에 오르지 못한,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수 없는 "기괴한 비운의 인물"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잠시 후 알아 보기로 하고



    ['명주군왕비']                  
  "명주군왕비"
  <강릉김씨> 중에 <강릉>을 연고로 출세한 인물들이 자신의 뿌리를 과시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더군요.
  국회의원을 다섯명 배출했는데 잘 아시는 <김진구><김진만><김인기><김택기><김흥기>...
  장관급 이상의 정치인은 <김진선 강원도지사>를 비롯해 다수가 있더군요.
  그밖에 코미디언 <김학래>씨와 축구선수 <김남일>씨도 <강릉김씨>더군요.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날개>를 쓴 <이상>이 있는데 그의 본명은 <김해경>으로 <강릉김씨>



    ['홍살문']             10:16        
  <명주군왕릉>으로 들어 가는 입구엔 다시 홍살문이 세워져 있는데 100m쯤 올라 가면



    ['명주군왕릉 주차장']            10:18         
  주차장을 만나며 제사를 올리는 <능향전>과 무덤이 보입니다.
  
  여기서 꼭 알고 올라 가야 하는 것은
  "명주군왕"의 의미입니다.
  먼저 띄워쓰기는 "명주군 왕"일까요? 아니면 "명주 군왕"일까요?
  "명주溟州"는 현재의 <강릉 지역>을 의미하는 지명이고, "군왕郡王"은 '고을郡'에 "왕王"입니다.
  그러니까 "명주지역 제후"를 의미하기에 띄워쓰기는 "명주 군왕"이라 해야 할것입니다.
  하지만 <삼국사기>나 <삼군유사>에선 <군왕>이라는 직위는 단 한줄도 없고, 그런 직위를 내렸다는
  기록도  전혀 없는데, 조선시대에 쓰여진 <동국여지승람>에서나 등장한답니다.
  <동국여지승람>은 각 자역의 지형, 관습, 전설등을 엮은 인문지리서여서 역사책으로 보진 않으니
  <명주군왕>이라는 직위가 실제 있었다는 역사 기록은 없고, <강릉김씨 족보>에나 나온답니다.
  잠시후 관련 <삼국사기><삼국유사> 원문을 보여드림니다.
  
  당시 <신라>는 <9개의 州>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명주溟州>이며, 그곳의 댓빵으로
  <김주원>이 간것이기에 우리가 아는 "王"하곤 거리가 있습니다.
    


    ['능향전']              
  어려운 한자 "제사 지낼 향享"을 사용하는 "능향전 陵享殿"과 그 뒤로 묘가 보입니다.




    ['명주군왕릉']                       
  "명주군왕릉 溟州郡王陵"
  <태종무열왕-김춘추>의 6세손 "김주원 金周元의 묘"입니다. 陵은 왕과 왕비묘에만 씁니다.
  필자인 <파란문>의 아버님 존함과 한자까지 같아 언젠가 한번은 오고 싶었던 곳입니다.
  
  당시 <신라>의 정치 상황을 쬐끔 알아 보겠습니다.
  <성골>들에 의해 통치되던 시대는 <선덕여왕-진덕여왕>시대를 마지막으로 끊기고
  <진골세력>들에 의해 정권이 바뀌는데 <29대 태종무열왕-김춘추>시대가 열리며 <김유신>등과 함께
  통일신라시대로 접어 들어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죠.
  잘먹고 잘살며 평화로워지면 부정부패와 쿠데타가 발생하는 것은 세계 다른 역사와도 같습니다.
  
  혼돈 속의 신라 왕위 쟁탈전
  <36대 혜공왕> 때에 <김지정의 난>이 일어 나 <혜공왕>이 죽임을 당하고, 
  그 난을 <상대등 김양상(金良相)>과 그의 동생 <이찬 김경신(金敬信)>등이 힘을 합쳐 난을 진압합니다.
  그리고 <상대등 김양상>이 <37대 선덕왕>으로 즉위합니다. <상대등>은 요즘의 국무총리격이라고...
  그런데 <37대 선덕왕>은 오래 살지 못하고 왕위에 오른지 5년여만에 후사도 없이 죽어 버리고 맙니다.
   **<선덕왕>은 <삼국사기>에 두명이 나오는데 편이상 <27대 선덕왕 善德王>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덕여왕>으로 표기하고, <37대 선덕왕 宣德王>은 남자이니 그냥 <선덕왕>으로 호칭합니다,**
  
  그래서 요즘의 국회와 비슷한 <화백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상대등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합니다.
  하지만 왕위대관식하는 날에 비가 넘 많이 와 <알천-현재의 경주북천>이라는 조그만 개천을 건너지
  못해 왕위대관식에 참석을 못하고 있을 때, <선덕왕>의 동생인 <김경신>이 무력으로 궁궐을 장악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니 그가 "38대 원성왕 元聖王"입니다
  
  이렇게 오른 <원성왕>은 <김주원>에게 무척 미안했겠죠?
  그래서 <명주溟州 (강릉지역)>를 식읍으로 주어 그 지역을 통치하라고 한것입니다.
  
  <삼국유사 三國遺事 卷第二 紀異 第二>의 원문을 보면
  "未幾 宣德王崩 國人欲奉周元爲王 將迎入宮 家在川北 忽川漲不得渡 王先入宮卽位 上宰之徒衆 
  皆來附之 拜賀新登之主 是爲元聖大王 諱敬信 金氏 蓋厚夢之應也 周元退居溟州"
  "선덕왕(宣德王)이 돌아가시자, 나라 사람들은 주원을 왕으로 삼으려고 그를 궁궐로 맞이하려고 하였다.
  집이 개천 북쪽에 있었는데 갑자기 물이 불어서 건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왕이 먼저 궁으로 들어가 왕위에 올랐다. 
  주원을 따르던 사람들도 모두 와서 따르며 새 왕에게 절을 하고 축하하였다. 
  이가 원성대왕으로 이름이 경신(敬信)이고 성은 김씨이다. 좋은 꿈이 들어맞은 것이다. 
  주원은 명주(溟州)로 물러나 살았다."

  "왕위 대관식"에 지각해서 왕이 못되고 지방 토후가 된 불우한 사람이 <명주군왕-김주원>인 것이죠.
  


    [조망]                    
  <김주원의 묘>는 부부묘로서 두개의 봉분으로 되 있는데 어느쪽이 <김주원 묘>인지는 모른다고...
  
  "김헌창의 난"     
  《삼국사기》 신라본기 헌덕왕 14년 3월의 원문을 보면...
  "三月 熊川州都督憲昌 以父周元不得爲王 反叛 國號長安 建元慶雲元年"
  "3월, 웅천주(熊川州) 도독 헌창(憲昌)이 그의 아버지 주원(周元)이 임금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역을 일으켰다. 국호를 장안이라하고 연호를 경운 원년이라 했다"
  
  <명주군왕-김주원>의 둘째 아들이 <김헌창>입니다.
  신라 역사에서 <김헌창의 난>은 신라의 존망을 뒤흔든 어마무시한 반란이었습니다.
  <김헌창>이 도독으로 있던 지역은 <명주(강릉)> 지역이 아니라 <옛 백제지역>인 <웅천주(현재의 공주)>
  지역이었으며 그가 점령한 지역이 전라도 충청도 였으니....바로 <옛 백제 지역>이죠?
  태평성대를 이루던 통일신라시대는 저물고 <후삼국시대>로 분열되는 효시였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니 역사의 터닝포인트가 바로 <명주군왕>의 아들 <김헌창의 난>이었으니
  지금 여기서 바라보는 <명주군왕-김주원묘>는 역사적으로도 의미심장한 것이리라~
    


    [둘레길 들날머리]              10:24        
  <명주군왕릉>을 둘러 보고 본격적으로 <아리바우길7코스> 트랙킹을 역방향으로 시작합니다.
  이 임도길은 <강릉바우길3.4.10구간>과 <아리바우길7코스>가 함께 하는 출입구군요.
  
  5분정도 완만한 오름길을 진행하면...



    [삼거리]             10:29          
  <강릉바우길10코스>가 우측으로 분기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강릉바우길10코스>는 다음에 진행 할 <아리바우길8코스>와 함께 하더군요.
  <아리바우길7코스>는 <강릉바우길4구간> 방향인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4분 정도 올라 가면...




    [삼거리]             10:33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은 <강릉바우길4코스>가 우측으로 분기하는 곳이고
  <아리바우길7코스>와 <강릉바우길3코스>는 좌측으로 연결 됩니다.
    



    [삼거리]              10:41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지며 곳곳에 임도가 분기하는 삼거리가 있으나
  앞으로는 <술잔바위><어명정>방향으로만 진행하면 되겠습니다.
  

  
    [임도]                 
  26분정도 완만한 임도 오름길을 진행하면...



    ['송병골']               11:07        
  "송병골 삼거리"를 만나는데 <명주군왕 주차장>이 있는 마을 이름이 <왕릉마을>이던데
  그곳과 바로 연결되는 길이 있는 삼거리였습니다.
  우측 <어명정>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오름길]                     
  조금씩 경사도가 있어지는 임도를 10여분 진행하면....



    ['산불감시초소']             11:18     
  "산불감시초소""기상관측소"가 있는 곳에 도착하는데 
  <산림청>이 수목관리를 하는 지역이라고 차량통행을 제한하고 있고
  


    ['등산로 입구']               11:20     
  <기상관측소> 옆으로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술잔바위>가 있는 산봉우리를 오르고 "어명정"으로
  가는 산길인데, 지도를 보니 여기서 좌측 임도를 따라 가면 바로 "어명정"으로 쉽게 갈수 있더군요.
  등산이 힘드신 후답자들은 여기서 좌측 임도를 이용해도 무방하겠으니 참고하시고...
    


  
    [산길]                 
  40여분 등산코스를 진행하면....
    
 

    [바위]              11:57    
  구경거리 없는 산길에서 처음으로 볼거리(?)라고 할수 있는 구멍 뚫린 바위를 만나는데, 
  이 바위가 <술잔바위>는 아니고 조금만 더 올라 가면...
  


    ['술잔바위']            12:04~12:12    
  억지 춘향이처럼 이름을 붙인 "술잔바위"라고 표기한 바위를 만나는데
  바위 위로 올라 가면....


       
    ['술잔']                   
  바위에 구멍이 난 곳이 있는데 이걸 <술잔바위>라고 하는듯 합니다. ㅎㅎ
  바위에 패인 구멍에 물이 고이면 바위 온도 때문에 증발을 하지 않으니 항상 물이 고여 있죠
    
 

    ['술잔바위']                    
  볼거리 없는 이 코스에선 그나마 유일한 자연 조각품이라고 기념 사진도 찍고
    


    ['적송']              
  능선길을 잠시 160m 정도 진행하는데 "적송赤松" 군락지가 이어집니다.
  산림청이 직접 관리하는 곳이라고



    ['송이거리']             12:15           
  <술잔바위>에서 160m 정도 진행하면 "송이거리"라고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소나무가 많은 곳이니 송이버섯도 많이 자생하는가 봅니다.
  
  지도를 보니 여기서 직진하면 <백두대간 곤신봉>으로 올라 가는 코스더군요.
  <아리바우길7코스>와 <강릉바우길3코스>는 좌측 <어명정>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내림길]                 
  내림길을 17분정도 내려 가면....

 

    ['어명정']              12:32~12:37       
  "어명정 御命亭"을 만납니다.
  <올림픽아리바우길7코스>의 이름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을 만들어준 정자입니다.



    ['그루터기']               
  지난 2007년에 <광화문> 복원에 사용하기 위해 위령제를 지내고 "어명이요~!"를 세번 외치고 베어낸
  금강소나무의 그루터기랍니다.
    


    ['위령제' 사진]                    
  2007년 11월 29일 당시 금강소나무를 베어내기 위한 위령제를 지내는 사진이 정자에 걸려 있더군요.
  이 소나무는 현재 <광화문>의 한 기둥으로 서 있을겁니다.
  


    ['어명정']                     
  <술잔바위>에서 내려온 좌측 계단인데, <산불감시초소>와 <기상관측소>가 있었던 곳에서
  임도가 이곳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힘드신 분들은 이 임도를 이용하면 편하겠습니다. 단, <술잔바위>를 못 보는데...그거 볼거리도 아녀요~
    


    ['강릉' 시내 조망]                   
  이제 <강릉시내>와 <동해>가 보이고...
    



    ['거북등']             12:45          
  <어명정>에서 임도를 8분여 진행하면 "거북등"이라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임도를 진행해도 되겠습니다만, 좌측 산길이 지름길이며 정코스더군요.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17분여 내려가면...
    
 


    ['바위와 소나무']              1:02       
  소나무가 바위를 뿌시고 자랐는지...바위 틈으로 자랐는지...
  자연의 신비함을 잠시 느끼고...10여분 내려 가면...
  



    [임도]             1:11            
  다시 임도를 만나 직진하는데


       
    ['대관령' 조망]                   
  <백두대간>이 펼쳐지며 <능경봉-대관령-선자령>으로 이어지는듯...
    
 
  
    [내림길]                    
  다시 급경사 내림길을 13분여 내려 가면...
    


    [등산로 들날머리]             1:24        
  등산로 날머리를 만나며 <보광사 입구>가 보입니다.



    ['어명정' 들날머리]               1:25         
  등산로 날머리를 바라보며 정방향으로 올랐으면 체력소모가 클 것으로 생각되어 미소를 머금고...^.^
   


    ['보현사' 입구]               1:25     
  <보현사 입구>를 바라보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답사를 마쳤습니다.

 

    ['뒷풀이']             1:28  
  오늘은 <빠담님>이 <삼계탕>을 특별히 제공해 주셔서 피로와 삼복더위를 맑끔히 잊게 해 주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만 해서 미안해요~~ 조만간 원수를 갚아야지~~ㅎ



    ['보광천']               
  <삼계탕> 한그릇을 뚝딱 해치운 다음 <보광천>으로 내려 가니, 피서 온 사람들이 제법 있더군요.
  시원한 계곡물에 더위를 씻고 돌아 왔습니다.
    



    ['고도표']                      
  오늘 진행한 코스가 어디쯤인지 구글어스로 확인하고
  <고도표>를 보면서 역방향 진행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다시금 확인 할수 있었습니다.
  거리는 약11km였으며 3시간10분정도 걸렸습니다.
  


    ['월화정'과 '神漁']                     
  마지막으로 <강릉 중앙시장> 앞 <남대천> 옆에 있는 <해파랑길 38코스>의
  "월화정 月花亭'과 '신어 神漁'"에 얽힌 전설을 간략하게 언급합니다.
  
  "명주군왕-김주원"의 아버지인 "무월랑 김유정 無月郞金惟靖"과 강릉아가씨 "박연화 朴蓮花"의 
  사랑이야기를 <홍길동전>을 지은 강릉 출신 "허균의 '별연사고적기 鼈淵寺古迹記'"를 요약 인용합니다.
 
 신라 화랑이었던 <명주군왕-김주원>의 아버지 <무월랑 김유정>이 <강릉>에서 근무할때
 강릉아가씨 <박연화>를 알게 되어 백년가약을 맺었는데, 임기가 끝나 서라벌로 돌아 간 <김유정>은
 그후 반년이 지나도 소식도 없었답니다. 
 '남자는 다 그래~'라며 낙담하던 <박연화>는 혼기가 차 다른 사람과 강제결혼을 하게 되자 
 자살까지 하려하며 낭군만을 그리워하는데....
 어느날 <남대천> 어느 곳에서 자신의 일편단심 마음을 비단에 적었는데 황금잉어가 갑자기 뛰어 올라
 그 비단편지를 물고 사라졌답니다. 
 그 상황을 재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윗 사진 "월화정 月花亭'과 '신어 神漁'"입니다.
 
 "허균의 '별연사고적기 鼈淵寺古迹記'"에 기록되 있는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妾不敢背約 而父母之命 將不得違 郞若不棄盟好 趁某日至 則猶可及已 不然則妾當自盡以從郞也"
 "저는 감히 혼약을 위배하지 않을 것이나, 부모님의 명령을 장차 어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낭께서 만약 맹약을 버리지 않으시고 달려서 아무날까지 도착하시면 그래도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저는 마땅히 자살하여 낭을 따르겠습니다."
 
 그 다음날 <신라 서라벌>에서 <무월랑 김유정>이 물고기 회가 먹고 싶어 <알천閼川-현재의 경주북천)>에서
 잉어를 잡아 왔는데, 잉어는 펄쩍 뛰면서 재빨리 움직여 마치 호소하는 것이 있는 듯했으며 
 잠시 후 거품을 한 되쯤 토했는데 그 속에 흰 편지가 들어 있어, 이상히 여기고 읽어 보니 <蓮花낭자>가 
 손수 쓴 것이었답니다. <김유정>은 즉시 그 편지와 잉어를 가지고 왕에게 아뢰었는데....
 왕은 크게 놀라며 <무월랑 김유정>에게 어서 빨리 <명주>로 가 결혼하라고 합니다.
 그 날로 달려간 <김유정>은 <박연화>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날에 도착하여 극적으로 재회하여
 <서라벌>로 돌아 와 결혼하여 아들 <명주군왕-김주원>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신라판 춘향전" 같은 이야기는 강릉을 대표하는 전설로 자리 잡고 있더군요.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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