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로 가는  
  [백두대간 4회차]  
  복성이재-치재-봉화산-광대치-월경산-중재

     6월 12일(토) 대간4구간은 흐림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 "남아공"은 뭐의 약자지?"
     "남아공화국의 약자"
     "그런 나라도 있니?"
     "없으란 법은 어디있어?"
     우리나라와 그리스가 예선 첫경기를 하는 날 입니다.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내린다는 일기 예보도 있으며
     실제 새벽부터 서울에는 많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백두대간이라는 더 높은 산줄기 속으로 떠나 갑니다 
   
  
     [산행 개념도]
   
     오늘 산행도 그렇게 힘들지 않는 편안한 산행이 되겠습니다
     "복성이재"에서 "중재"까지 도상거리 12.1km의 대간길을 걸으며
     "봉화산 919.8m"를 오르고, "월경산 980.4m"를 지나 갑니다.
     특기사항은 이제까지 "전라북도" 속에서만 놀다가 
     "경상남도"와 접도구역으로 들어 가는 것입니다.
   
  
     [함양 휴게소] 오전 10시 20분
   
     비 내리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들어 서니 빗방울이 사라집니다.
     이제까지 세번의 대간길을 갈때 꼭 들렸던 "함양 휴게소"
     자꾸 북쪽으로 전진을 하니 앞으로는 이 휴게소에 들릴 일이 없겠군요.
     하지만 한번은 더 와야 할듯....
     아직 종주하지 못한 "지리산 종주-실제 백두대간1구간-지리산 천왕봉에서 성삼재까지"를
     가려면 한번더 와야겠지요? 아마 8월 넷째주 주말이 될듯한데...
     물론 중산리에서 시작하면 모르지만, 성삼재에서 시작하면 틀림없이 다시 올겁니다.
     우리 14기는 "성삼재"에서 "천왕봉"으로 올라야겠지요? ㅎ
     "중산리"에서 오르자구요? ㅎㅎ "중산리"에서 오르는건 "성삼재"보다 두배 이상 힘들어요
   
  
     [복성이재] 11시 2분
   
     "별을 보고 점을 치던 곳"
     "복성이재 卜星里峙"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卜星里峙"는 좋은 점괘의 내력으로 이곳에 상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 마을은 福星마을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는군요.
   
  
     [단체 기념사진]
   
     언제 다시 이곳 "복성이재 卜星峙-福星里峙"에 오겠는가~
     단체사진 찍는 것도 횟수를 거듭할수록 세련되 갑니다.
   
  
     ['복성이재'에서 '봉화산'까지 구글어스]
   
     오늘 산행에서 제일 힘든 구간입니다.
     1. 복성이재(11시8분)-(22분)-치재(11시30분)-(42분)-"봉화산 熢火山 919.8m"(12시12분)
      산행시간 : 1시간 8분  
   
     오늘은 산행기를 특별히 쓸 얘깃꺼리가 없습니다.
     제가 가방끈이 좀 짧아서 이기도 하고, story-history가 없는 산들이기도 해서 입니다.
     그래서 산길을 걸으며 씰데없는 얘기들만 쭝얼거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을 위해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 산행기는 별 도움이 않되실겁니다.
     시간 낭비 하지 마시고 이 산행기 보시는 걸 접기 바람니다.
     잼없다고 나중에 항의해도 책임 지지 않습니다. 
   

     [산행들머리] 11시 8분
   
     기상청의 예보와는 달리 이곳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산행이 끝날때까지 빗방울 구경은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시원해서 산행하기엔 아주 좋은 날씨였습니다.
     비 핑개로 오늘 참가하지 못하신 분들은 아마도 후회막급이실겁니다.
     "나중에 땜빵하지~뭐~" 이렇게 위안 하실지 모르지만 '땜빵'하기가 그리 쉬운게 아닙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약 오르실까? 
   
  
     ['치재'로 오르는 길]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기상청은 국민들로 부터 떼거지로 욕을 먹고 있읍니다
     '기상청'이 아니라 '구라청'이라고 씹어댑니다
     그런데....씹지만 말고 저 같은 유능한 사람을 기상청장으로 보내 주세요!~ 
     제가 기상청장을 하면 그렇게 까지는 욕을 안먹을거라 생각합니다. 
     왜냐구요? ㅎㅎ
     우리나라 기상청의 예보 적중률이 75%라고...그게 세계적 수준 이상이라고 자랑합니다만, 
     우리나라는 지난 100년간 1년에 비오는 날이 365일 중에 50여일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약 15%가 비 오는 날이고 나머지 85% 날에는 비가 오지 않는 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일기 예보를 일년 내내 비가 오지 않는 다고 해도 예보 적중율은 85%를 넘습니다
     엄청난 세금을 쏟아 부으며 괜히 예보 했다가 욕 먹지 말고, 돈 한푼도 들일 필요 없이
     무조건 비가 오지 않는 다고 예보 하는 편이 10%의 적중율을 더 높일수 있지 않습니까? 
     십원 한장 안들이고 75% → 85%로 간단하게 10% 더 적중율을 올릴수 있습니다. 에헴~으쓱
     단, 어떠한 상황이라도, 즉 현재 비가 오고 있는데도 오지 않는다고 하는게 더 적중률이 높습니다.
     괜히 잘 돌아 가지도 않는 짱구를 돌려 예보하면 적중율은 급격히 떨어 질수 있으니 조심해야죠
    "여러분!~ 파란문을 기상청장으로 보냅시다~!!" 
   
  
     ['치재'앞 무명봉] 11시 27분
   
     '복성이재'에서 약25분 정도 약간의 된비알을 치고 오르면 처음으로 만나는 봉우리입니다.
     "치재" 가지전에 있는 봉우리라 "치재 앞 무명봉"이라고 했습니다.
   
  
     ['치재'앞 무명봉에서 뒤 돌아 본 지나온 대간길]
   
     뒤돌아 보니 지나온 지난 구간의 "아막성 阿幕城"과 "시리봉"이 살아서 꿈틀대는
     龍 같습니다.
   
  
     ['치재'앞 무명봉에서 바라 본 '흥부마을']
   
     첩첩산중 전라도 속을 흐르는 "洛東江"
     버스 타고 오다보니 이 마을, 
     즉, 남원시 아영면 - 속칭 '흥부마을'이 예상외로 부자 동네더군요
     집앞에는 대부분 자가용차가 있고....
     모두 '흥부'처럼 되었나?
   
  
     ['치재'앞 무명봉에서 바라 본 가야할 '봉화산']
   
     이곳에서 봉화산까지는 '철죽군락지대'입니다만 꽃은 이미 지고 신록만 더해 갑니다
     봉화산이 다소 멀리 느껴 집니다.
     바로 앞이 "치재" 입니다.
   
  
     [철죽 터널]
   
     지난 5월말에는 이 터널이 꽃터널이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꽃은 지고 푸르름만 더해 가고....
     저희 학교 대선배이신 "김영랑 詩人"의 詩가 떠 오릅니다.
     순수 우리 언어를 음악으로 승화 시킨 "김영랑선배"의 詩 한수 들려 드림니다.
     모두 다 잘 아시는 아마 핵교때 국어시간에 배웠던 詩이지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치재] 11시 30분
   
     '치재'는 사람들만 넘나 들수 있는 조그만 고개입니다.
     그런데 큰 고개 같은 이미지를 주는 "치재"는 아마도 "고개 峙"를 쓰는듯 합니다.
     그렇다면 "고개"라는 말을 두번 붙인 것과 같으니 큰고개를 은연중 암시하는듯....
     "족발 足발" "역전앞 驛前앞"과 같은 맥락....
   

     [찔레꽃]
   
     철죽의 꽃닢은 뚝뚝 떨어져 버리고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철죽 대신에 하얀 찔래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이라는데 ......영어로는 Rosa multiflora라고...
     오늘 산행기의 배경 음악으로 "이연실씨"가 부른 "찔래꽃"을 깔았는데 
     왜 이 노래를 선택했는지 조금 상상이 가시는지요
     찔래꽃의 꽃말은 "고독"이랍니다. 
   

     [찔래꽃]
   
     어릴 때엔 이렇게 부러짖었죠. "나이야~~ 좀 빨리 먹으라!!~~" 
     "이 지긋지긋한 학교라는 압박과 설움의 암흑 세계를 박차고 나가
     저 어른들처럼 하고 싶은거 마음대로 하며 살아보게....!!"
     자유를 갈망하며, 쌓아 논 세월이 없으니 어서 빨리 세월을 쌓고 싶었던게지요
     그래서 어릴 땐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려 갈 뿐이었답니다
     뒤 돌아 볼 과거도 없으니.....
     에구~~ 이제 세월을 제법 쌓아 놓고 보니 뒤돌아 볼게 많아졌습니다
     아니 앞으로 나아 갈 길이 제법 남아 있는지 없는지 그런게 더 마음 쓰이는군요
     나아 갈 길이 별로 없으니 자꾸 뒤 돌아 본다고 하네요....세월갈수록...휴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 갈 궁리를 하지 않고 뒤만 돌아 볼려고 한다면 미래가 없는 놈들이죠?
     늙은 노장이야 미래가 자꾸 가물가물하니 한잔 걸치기만하면 
     "왕년에~~~난~!!"하며 왕년을 먹고 살지만.....
     제일 불쌍한 인간은 이런 인간들이라군요
     젊은 넘들이 앞날을 설계하지 않고 추억 속에서 헤메고 있는....놈들
     그보다 늙은이가 뒤돌아 볼 추억도 없다는게 더 불쌍하다는데...
     난 뒤돌아 볼게...내 세울만한게 있는지...에구~갑갑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찔레꽃"이란 노래를 청승맞게 들으며 산행기를 쓰고 있습니다.
   

     [770m봉 가는 길]
   
     그래서 이왕 듣는 "찔레꽃"이라는 노래이니 이 노래에 대해 줏어 들은 얘기들을 씁니다
     사실 이 노래는 오래 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 오는 곡이라 여러 가수가 불렀습니다
     또한 "찔레꽃"이란 제목의 노래는 장사익씨가 부른 곡도 유명하고...몇곡이 더 있는듯 합니다만
     저는 지금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이연실의 찔레꽃"을 가장 좋아합니다.
     저와 한시대를 같이 살아 가고 있는 가수 - 이연실씨 
     그 사람 근황은 인터넷 어느 구석을 뒤져봐도 알수가 없어 더욱 궁금합니다
     이연실씨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한 독특한 가수 - -
     서강대 사학과를 다닌 양희은 보다는 1년 선배쯤 될겁니다
     이때에 박대통령 딸이며 현 한나라당 박근혜씨는 당시 여성으로는 독특하게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다녔는데 학교에 나오면 경호원들이 교실에 쫙~깔려 
     학생보다 경호원이 더 많았다고 함께 다닌 제 친구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770m봉]
   
     이 당시 가요계는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는데 이 때의 가수들이 정말 멋진 가수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혼성 듀엣 '뚜아 에 모아'를 만든 이필원과 박인희.
     박인희는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했지요. 불문과 출신 다웁게 '뚜아 에 모아'.
     뉴욕 주립대를 졸업한 '은희'와 '한민'이 만든 '라나 에 로스포'는 '꽃반지 끼고'를 부르고..
   
  
     ['770m봉'에서 바라 본 가야할 '봉화산']
   
     이외에도 당시에 활동한 많은 가수들이 있습니다만 
     이런 가수들 중에서도 저는 단연 '이 연실'을 좋아합니다
     인간 '이연실'은 활동하던 그때 이후 지금까지도 안개 속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부른 노래들은 한결 같이, 우리들의 마음을 
     "울쩍 할때에는 더 울쩍하게"
     "가슴이 갑갑하고 답답 할때엔 후련하게"  터져 뱉어버리게 해 주는 그 무었이 있습니다
     그리고 音色은 미대 출신 다웁게 정말 독특한 색깔로 한폭의 추상화를 만들어 줍니다
   
  
     [봉화산 정상 오르는 길]
   
     찔레꽃엔 구전되어 내려 오는 유명한 사연이 있죠?
     전세계 역사에서 땅따먹기의 최고 대빵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우리나라 복부인들이라구요? 고위직 싸모님들이 8~90년대엔 좀 쎄기는 쎈편이었지요
     그러나 땅따먹기의 대가는 아시아에선 '징기스칸'이고 서양에선 '알렉산더' 였지요
     우리나라엔 '테무진 징기스칸'이 세운 원나라 야만민족이 고려때 쳐들어와 점령을 하고 
     많은 젊은이들과 아름다운 아가씨들을 몽고로 거의 대부분 잡아 갔습니다. 
     그때 잡아간 이쁜 아가씨들이 몇십만이 넘는다고 하죠? 
     아무도 뒤돌아 보고 싶지 않은 치욕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몽고의 침입 정도로 얘기하고 더 이상은 말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슬픈 역사 속에는 이런 믿어도 그만 안믿어도 그만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몽고에 잡혀간 소녀들 중에 "찔레"라는 소녀가 있었답니다요.
     이렇게 "찔레꽃"에 얽힌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봉화산 정상] 12시 12분
   
     '복성이재'에서 1시간 8분이 걸려 "봉화산 熢火山"정상에 올랐습니다.
     전국에 "봉화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렇게 많은 "봉화산"중에 높이로 최고 대빵이 이 "봉화산"입니다.
   

     [봉화산 정상석]
   
     919.8m 높이의 봉화산 정상을 알려주는 정상석이 우람합니다.
    "봉수대 烽燧臺"가 있었다는 자랑보다는 "백두대간"임을 더 강조하는듯....
   
  
     ['봉화산 정상'에서 뒤 돌아 본 '백두대간']
   
     뒤돌아 보니 멀리도 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가야할 길은 지금까지 온 길의 20배 정도는 가야하겠지요
   
  
     ['봉화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가야할 '백운산' 방향]
   
     "봉화산 熢火山"이라면 "봉수대 烽燧臺"가 있어야 하는데, 
     "봉수대 烽燧臺"는 없고, 산불감시 카메라만이 우뚝 서 있습니다.
   
  
     ['봉화산'에서 '광대치'까지 구글어스]
   
     2.봉화산(12시30분)-(10분)-점심장소(12시40분)-식사(40분)-꼬부랑재(1시24분)-(9분)-
        道界峰(1시33분)-(1시간12분)-광대치(2시45분)
   
  
     [870m봉-경남 전북 道界] 
   
     "봉화산" 정상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식사장소로는 마땅치가 않아 '꼬부랑재'로
     내려 갑니다. 전라도 속에서만 걷다가 경상도와 만나는 道界峰으로 갑니다
   
  
     [점심식사] 40분간
   
     언제나 즐거운 시간
     네번째 만남이라고 이젠 제법 서로 친숙해 졌습니다.
   
  
     [임도 정상-꼬부랑재] 1시 24분
   
     자동차가 '봉화산' 정상부근까지 직접 올라 올수 있다는 증거가 보이지요?.
   
  
     [안내도]
   
     "중재"까지 7.9km가 남았다는군요.
     "백운산"까지는 4.4km를 더 가야하구요
   
  
     ["임도 정상-꼬부랑재"에서 내려다 본 '흥부마을']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전체가 조망되는듯 합니다.
     "찔레꽃"에 얽힌 믿어도 그만 안믿어도 그만인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몽고족의 침입으로 아수라장이 된 우리나라였습니다.
     일본 쪽바리들이 침범했을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참하게 당했습니다.
     몽고 놈들이 고려왕의 시호 앞에 "忠"자를 붙이게 하여, 25대 왕부터는 "충렬왕","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30대 "충정왕"까지 몽고에 충성을 다하는 속국으로 전락시켰고,
     그리고 임금을 부를 때 "전하 殿下"라고 부르게 했습니다. 
     "궁궐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여하튼 비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젊은 아가씨들을 종으로 부리기 위해 수없이 잡아 갔습니다.
     그 아가씨들 중에 "찔레"라는 아가씨도 있었답니다.
   
          엄마 일 가는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870m봉-경남 전북 道界]
   
     전라북도 남원시와 장수군, 그리고 경상남도 함양군이 만나는 봉우리에 도달합니다.
     저 봉우리부터는 좌측으로는 전라북도, 우측으로는 경상남도가 되는 경계선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870m봉-경남 전북 道界"에서 뒤 돌아 본 '봉화산']
   
     몽고로 끌려간 찔레는 다행이 부잣집 종이 되긴 했지만 가난해도 자기 집만 하겠습니까?
     그러니 찔레는 고려에 있는 가족이 그리워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답니다. 
     그 모습을 본 주인은 저도 인간이라 고민 끝에 찔레를 다시 고려로 보내 주었답니다. 
     조건이 있었죠. 반드시 한달 이내에 다시 돌아 와야한다고.....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꽃  산등성이 너머로 일렁이는 꿈
   
  
     ["870m봉-경남 전북 道界"의 동쪽방향]
   
     지금같으면 KTX라도 타고 불이 나게 빨리 고향찾아 가겠지만
     걷고 또 걸어서 울며 불며 고향을 찾아 갔답니다.
     우리는 자기 만족을 위해 걸어서 백두대간을 가지만 걷는다는게 장난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한달이상이 걸려 찾아 온 고향
     그러나 돌아온 고향 마을에는 아무도 없었고 허물어진 옛집이 공허하게 누워 있을 뿐이었습니다
     애타게 가족을 찾아다니다 지쳐 쓰러진 찔레는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다시 몽고로 돌아 가느니 차라리 세상과 이별하여 영원히 부모님 곁에 있기로..... 
   
  
     [944m봉] 2시 26분
   
     찔레가 부모님 곁으로 영원히 가기 위해 꽃잎으로 날라가 사라진 이듬해 ---
     찔레가 쓰러졌던 그 자리에는 꽃이 피었다는데 
     그것이 바로 가엾은 찔레의 넋이 서려 있는 '찔레꽃'이었답니다요
   
          엄마 엄마 나 죽거던 앞산에 뭍지말고 뒷산에도 뭍지말고 양지 쪽에 뭍어주 
          비 오면 덮어 주고 눈 오면 쓸어주오  내친구가 찾아 오면 엄마 엄마 울지마
   
  
     ['944m봉'에서 '936m봉'으로 가며 보이는 "백운산"]
   
     찔레꽃이 들판 여기저기 안 핀 곳이 없는 이유는 
     그렇게 찔레가 동생과 부모를 안찾아다닌 곳이 없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찔레의 가시는 무엇이든 잡으면 놓지 않으려고 하는데 
     "우리 엄마, 우리 동생을 본 적이 있나요?"하고 
     애타게 물어보는 찔레의 마음이 가시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울 밑에 뀌뚜라미 우는 달밤에 기럭기럭 기러기 날라 갑니다
          가도 가도 끝도 없는 넓은 하늘을 엄마 엄마 찾으며 날라 갑니다
   
  
     [936m봉] 2시 26분
   
     몽고 야만족들의 침입으로 쑥대밭이 되었던 그 시절을 뒤돌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금은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 슬픈 역사도 있었다고...앞으로는 그러지 말자고..
     서울에 "홍제동"이라고 있지요?
     북한산 구기동 평창동 방향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개천이 홍제동의 "홍제천"입니다.
     "홍제천"은 한자로 "弘濟川"으로 씁니다. "넓게 구제한다"라는 뜻을 가진 개천입니다.
     '찔레'같이 수없이 잡혀가 정조를 잃고 돌아 오는 여인들을 돌려 보낼수도 없었던 조정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 "홍제천"에서 아랫부분 거시기를 씻고 들어 오면 비극적 전력을 깨끗이 지우고 
     구제하여 준다고 하였고, 그래서 '홍제천'에서 씻기만 하면 더렵혀진 몸을 없던 일로 간주해 주었답니다.
     우리나라에 여자가 거의 없었으니 어쩔수도 없었겠지요
     그래서 개천의 이름을 "홍제천 弘濟川"이라고 지었던 것입니다.
     비극적 역사는 이렇게 하나의 개천에도 남아 있는 것이니......
     이런 꼴 당하지 않을려면 국력을 더욱 신장 시켜 강국이 되어야 겠습니다.
     강국이 되더라도 제발 전쟁은 하지 맙시다!~ 사이 좋게 서로 도와주며 삽시다
   
          가을밤 외로운밤 벌레 우는밤 초가집 뒷 산길 어두워질때
          엄마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끝에 나와앉아 별만 헵니다
   
  
     [광대치] 2시 45분
   
     그렇게 넓지도 않은 "광대치"에 도착했습니다.
   
     
     [광재치 이정표]                                       [길안내]
   
     이정표도 세월의 풍상을 이기지 못하고 제 역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거인산악회 선두대장이 길안내를 별도로 하고 있습니다.
   
  
     ['광대치'에서 '중재'까지 구글어스]
   
     3. 광대치(2시45분)-(33분)-월경산(3시18분)-(42분)-중재(4시)-
        (10분,술한잔25분)-지지터널앞(4시35분)
   
  
     [약초 시범단지] 3시 정각
   
     '광대치'에서 급경사 오르막을 15분 정도 치고 오려면 
     "약초재배시범단지" 철조망이 나옵니다.
   

     [약초 시범단지]
   
     '약초재배시범단지'를 옆에끼고 10분 정도 가면 "월경산 갈림길"이 나옵니다
   
  
     ["월경산" 갈림길] 3시 11분
   
     "월경산 갈림길"
     이곳에서 "월경산 정상"까지는 7분 정도 걸렸습니다
     그러니 갔다가 와도 진행에 아무른 지장이 없습니다.
   

     ["월경산" 가는 길]
   
     단 한사람의 흔적도 없는 "월경산 정상"까지의 길은 좀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들이 한분도 가지 않았기에 '파란문'이 홀로 대표로 갔다 와야 했습니다.
     용감하고 친절한 '파란문'입니다. ㅎㅎ
     이 산행기를 보시는 분들은 갔다 온거나 마찬가지이지요? ㅎㅎ
   
  
     [월경산 정상] 3시 18분
   
     "월경산"은 한자로 "月鏡山"으로 쓰더군요.
     거울처럼 맑고 밝은 달을 볼수 있는 그런 곳이란 의미이겠죠?
   

     [월경산 정상 표지판]
   
     사방이 꽉 막혀있어 조망도 할수 없는 "월경산" 정상에는 '삼각점'이 하나 있고,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높이 표기도 서로 다른 비공식 표지판이 초라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940.8m"가 정확한 높이입니다.
   

     ['중재'로 내려 가는 길]
   
     약40분 정도 걸려 "중재"로 내려 갑니다.
     외부 조망도 없는 숲터널을 뚫고 ....
   
  
     [중재] 4시 정각
   
     오늘 대간 마루금의 종점인 "중재"에 도착합니다.
     "복성이재"에서 4시간 50분 정도 걸렸습니다.
   
  
     [중재]
   
     예전에는 이곳에서 함양군 백전면 중기마을로 내려 갔었는데
     근간에 장수 지지계곡에 도로가 개설되어 가까운 "지지터널"방향으로 하산합니다.
     10분 정도 거리이니 매우 가깝습니다.
   
  
     ['중재'에서 한잔]
   
     "중재"에서 남은 음식을 모두 처분합니다....술과 함께......ㅎㅎ
   
  
     ['지지리'로 하산]
   
     우리나라 최고의 산간오지 중에 하나 다웁게 계곡이 깊어집니다.
   

     ['지지계곡']
   
     간단하게 "지지터널"까지 내려 옵니다.
   
  
     [알탕]
   
     그 유명한 "지지계곡"에 몸을 담구고....
     아~워~ 시원
   
  
     [지지터널 앞] 4시30분
   
     1. 대간 마루금 도상거리 : 12.1km
     2. 접속거리 : 약700m
     3. 총산행시간 : 5시간 20분
     처음에 이 산행기는 잼없으니 시간 낭비 하지 마시고 그냥 나가시라고 했는데....
     끝까지 읽어셨나요? 에구~ 후회막급이지요?
     다 읽었으니 어쩔수 없구요. 이왕 다 읽었으니 잼없다고 욕하진 마세요~
   
     찔레꽃에 얽힌 사연도 사연이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정말 왠지 슬퍼집니다
     소주 한잔 하며 또 "왕년"이나 생각해야지~~
     즐거운 시간 되세요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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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 3회차]  
  매요리-유치재-사치재-시리봉-아막성-복성이재

     1. 일시 : 2010년 5월 29일(토)
     2. 날씨 : 맑음
     3. 참가자 : 거인산악회 백두대간 14기


     [산행개념도]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매요리에서 아영면 "복성이재"까지
     전라북도 장수군 번안면 유정리에서 논곡리 "복성이재"까지 
     접경지역 마루금을 걸어 갑니다
     도상거리 : 약 10.5km
     실산행거리 : 약13km
     
     [인삼랜드 휴게소] 10시 25분
      
     구름이 많이 낄거라는 구라청의 예보와는 달리, 맑은 하늘은 마치 가을 하늘 같았습니다.
     그러나 기온은 많이 올라 가 초여름의 날씨를 보이는 날이었으니 봄날은 가고 있나 봅니다.
     대전-통영 고속도로에 있는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남원으로 향했습니다.

     
     [매요리 마을회관 앞] 11시 10분
      
     고속도로는 순조로운 교통흐름을 보여 정체 없이 남원시 운봉읍 매요리 '마을회관' 앞에
     예정보다 다소 빠르게 도착했습니다.
     지난 2구간의 날머리였던 매요리에 다시 오니 그것도 구면이라고 벌써 친근감이 듭니다
     "매요리"는 원래 "마요리 馬腰里"였다는군요. 말의 허리를 닮아 지어진 이름이라는데...
     사명대사가 이곳에 왔을 때,이 마을에서 매화의 꿋꿋한 정기가 감도는 것을 보고, 
     이 마을 사람들은 매화같이 선량할 것이니 지형과 인심에 맞게 "매요리 梅要里"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그 후부터 "매요리"로 부르게 되었다는군요.


     [기념사진]
      
     5월의 마지막 주말은 모두에게 바쁜 날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구간엔 참여한 산객들의 숫자가 조금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세상사 제쳐두고 이곳에 오신 분들은 분명 "산"을 즐기고, 사랑하고픈
     조금씩 산에 중독이 되가는 사람들....ㅎㅎ
     좋은 길 놔 두고 산삐알을 찾는 사람들...........


     ['매요리'에서 '사치재'까지 구글어스]
      
      1. 매요리(11시15분 출발)→(55분)→사치재(12시10분 도착)
          매요리에서 사치재까지는 비록 618m 높이의 "가산 佳山"을 오르기는 하지만
          운봉지역의 해발이 500m정도 됨으로 조그만 둔덕을 하나 넘는 정도로 편안한 길입니다

     
     [유치재] 11시 15분
      
     '매요리 마을회관' 앞에서 마을길을 따라 대간길을 갑니다만,
     실제 '대간 마루금'은 마을 뒤로 나 있습니다.
     하지만 통행이 어려워 편리하게 마을 포장도로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유치재 柳峙"
     "여암 신경준"선생의 "山經表"에 분명히 "柳峙"라고 표기되 있습니다.
     "버들 柳"이니 이곳에 梅花보다는 "버드나무"가 많았었나 봅니다.

     
     [19번국도와 舊24번국도 교차로]
      
     "19번 국도"는 전라북도 장수군과 통하는 도로이고,
     "舊24번 국도"는 남원시와 경상남도 함양군과 통하는 국도인데 이곳에서 교차하는 군요.
     사진 속에 보이는 목재가 있는 건물이 제재소이더군요. 
     제재소 옆으로 대간 마루금은 이어집니다.

     
     ['사치재'로 가는 대간 들머리] 11시 23분
      
     19번+舊24번 국도가 교차하는 곳에 있는 제재소 옆길로 올라 갑니다.
     이제부터 다시 산행을 시작하는데, 여기서 '사치재'까지 가는 이 산의 이름이 "가산 佳山"입니다.
     그리고 이 산의 앞 마을 이름은 "가산리 佳山里"이구요.
     이성계가 왜구를 무찌른 "황산대첩"의 황산 荒山"은 이 산과 붙어 동남쪽에 있더군요
     그런데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와 이방원이는 사람들이 왜 존칭을 사용하지 않는지...
     아무리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형제들을 죽이며 왕위에 올랐다 하더라도 "조선을 개국"한 이들인데..

     
     [가산리, 비전마을]
      
     '佳山'을 조금 올라 가면 남쪽으로 운봉의 마을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산리 앞 마을은 "비전 마을"이라고 하는데 얼핏 들으면 영어의 vision을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영어 vision과는 전혀 관계없는 "비전마을"은 무척 유명한 곳입니다.
     왜냐하면 그 옛날 이성계장군이 왜적 "아지발도"를 섬멸하여 그 공적을 기리는 "碑石"을
     세웠는데 그 碑石의 이름이 "황산대첩비"입니다.
     그 "'황산대첩비' 비석을 앞에 둔 마을"이라고 "비전 碑前"마을이라고 쓴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비전 碑前"마을을 소상하게 소개 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 드림니다.

     
     [國樂의 聖地] 자료 사진
      
     우리가 가는 대간길 앞에 보이는 '운봉 비전마을'에는 우리나라의 전통 소리인 "판소리"를 꽃피워
     "가왕 歌王 "이라는 칭호를 받은 "송 흥록"일가의 생가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國樂의 聖地"를 이곳에 세웠답니다.
     얼마전 뉴스에서 "國樂의 聖地"를 찾은 사람이 금년에만 1만명을 넘어 섯다고 하더군요

 
     [國樂의 聖地 판소리 마당 - 야외 공연장]
      
     이 산행기를 읽으시는 분들은 우리나라의 "가왕 歌王"을 누구로 인정 하시겠습니까?
     이 미자?  나훈아?  조용필?  패티킴?  소녀시대? ㅎㅎ
     국가로 부터 문화훈장을 받기는 했어도 벼슬은 못한 대중가수들입니다.
     그러나 가왕 歌王 "송흥록"은 '철종'시대에 '正三品 通政大夫'의 벼슬까지 받은
     그야말로 국가가 인정한 "가왕 歌王"이었으며 '판소리 동편제'의 창시자입니다.
     섬진강을 경계로 하여 그 동쪽, 즉 운봉을 모태로 하여 구례, 남원, 순창등지에서 성행한 
     판소리가 동편제인데, 가왕 歌王 "송흥록"이 발전시켜, "송만갑"이 완성시켰답니다
     판소리는 무궁무진 많이 있는게 아니고, 12 마당 뿐입니다.
     그 마저도 지금까지 전해져 불리워지는 판소리는 고작 다섯개 정도....
     '춘향가','심청가','수궁가','적벽가','흥보가'입니다.
    '배비장타령','옹고집타령','강릉매화타령','무숙이타령','장끼타령','가짜신선타령','변강쇠타령'이
     더 있습니다만, 잘 불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변강쇠타령"만이 몇해 전에 돌아 가신 "명창 박동진"선생에 의해 완창된바 있습니다.

     
     [동편제 계보도]  
      
     그리고 "송만갑"의 수제자인 "명창 박초월"선생이 순창에 살다가 
     판소리를 배우기 위해 이곳으로 와 살았다고 '박초월'선생이 살았던 집도 복원해 놨더군요
     "명창 박초월"선생은 17살에 명창이 되고, 우리나라 초대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역임 하시고, 
     국악의 세계화에도 앞장 서신 우리에게도 친숙하신 분이시죠. 83년도에 돌아 가셨습니다.
     박초월선생의 본명이 '박삼순'이라고 들었는데....예명을 "초월 初月"로 바꾸니 괜찬죠? ㅎㅎ

     
     ["618m봉-佳山"]
      
     판소리 "동편제"와 상대되는 개념으로의 소리로 '서편제'를 꼽습니다.
     "서편제"는 판소리의 또 다른 장르인데 주로 섬진강의 서쪽인 광주, 나주, 해남, 
     장흥등지에서 성행하여 '서편제'라는 이름이 생겨 났다고 합니다. 
     "서편제"는 고함을 지르며 통성, 철성으로 하는 "동편제"와 달리 애절하고 
     소리의 끝이 길게 늘어져 구성진 특징이 있지요.
     한마디로 비교 하자면 '동편제'는 음절을 딱 딱 끊으며 육자배기로 내지르는 소리 위주로
     '흥보가', '변강쇠가', '적벽가'등이 대표적 판소리이며, 
     "서편제"는 '춘향가','심청가'등 슬프고 애절한 대목의 판소리가 해당된다고 할수 있겠지요

     
     ["618m봉-佳山"에서 보이는 '88고속도로'와 '시리봉']
      
     佳山里의 뒷산인 "佳山"에 오르니 '88올림픽고속도로'가 보이며, 
     앞으로 가야할 대간길의 '시리봉'이 보입니다.

     
     [佳山의 숲길]
      
     판소리는 사실 "동편제"가 원류이랍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동편제"보다는 "서편제"가 더욱 더욱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판소리도 대중들에게 다가 가는 선율이 
     대중들의 기호에 맞게 변화 하는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요즈음은 단연 "서편제"가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저는 "동편제"보다 "서편제"가 더욱 알려지게 된 동기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장흥이 낳은 한분의 소설가 - "이 청준선생" 
     광주일고와 서울대 독문과를 나온 수재이시며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큰 인물이십니다
     이분 아깝게 지지난 7월에 운명하셨습니다. 
     운명 소식은 뉴스에 무지 많이 나왔으며 특히 연예뉴스에 많이 나왔습니다
     그때 '소설가'가 죽었는데 영화배우등 '연예인'들의 문상이 끊임없었죠?
     그 이유는 제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서편제"와 무척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청준선생'이 쓴 소설이 어디 한두권이겠습니까만 제가 아는 소설은 "서편제"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임권택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더욱 유명해진 "서편제"입니다.
     판소리가 동편제, 서편제의 구분이 거의 없다가 "소설 서편제"와 "영화 서편제"가 힛트를 치면서
     판소리와 직접 관련없이 "서편제"라는 단어가 엄청나게 알려진게 아닌지....

               
               [사치재 이정표] 12시 7분
      
               "사치재" 이정표가 산중턱에 있어서 의아해 했는데
               아마도 "사치재"는 "88올림픽고속도로"때문에 명맥이 끊긴 상태이라
               고속도로 무단 횡단을 하지 못하도록 미리 우회로를 알려 주기 위해 있는듯

 
     [사치재로 내려 가는 급경사길]                     [88올림픽고속도로]
      
     소설 '서편제'와 영화 '서편제'를 생각하면 생각만 해도 저는 눈물이 납니다
     임권택 감독은 이청준선생의 "서편제"라는 소설을 영화로 오정혜라는 신출내기 국악인을 
     배우로도 성공시켰으며, 김명곤이라는 배우가 '우리나라 제8대 문화관광부 장관'이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준 작품이기도하죠
      
     "영화 서편제" 줄거리 잠깐 얘기 해 드릴까요? 다 보셨죠? 근데 잊어 버리셨죠? ㅎㅎ
     1960년대 초 천관산이 있는 전라남도 장흥과 보성 사이의 "보성 소릿재"에서
     누나와 아버지를 찾아 다니던 동호(김규철)는 주막 여주인(오정혜)의 판소리를 들으며 
     회상에 잠기면서 영화는 시작되었지요........... 
     마을 대갓집에서 소리품을 팔던 유봉(김명곤)은 동호(김규철)의 어미 금산댁을 만나 
     자신의 양딸 "송화"(오정해)와 함께 새 삶을 꾸리고 살아 가던 중에 
     금산댁이 아이를 낳다 둘 다 죽자 유봉(김명곤)은 아이들(동호와 송화)을 데리고 
     소리품을 팔며 이곳 저곳 이 마을 저마을을 떠돌아 다닙니다. 
     아버지 유봉(김명곤)이 아들 동호에게는 '북'을, 딸 송화에게는 '소리'를 가르치던 중 
     동호는 어려운 생활고와 아버지 유봉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가출합니다
     유봉은 아들이 자신을 버리고 떠나니, 딸인 송화도 자신을 버리고 떠날까 두려워
     송화가 영원히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아릿따운 송화의 눈을 멀게 하지요.
     이상한 한약을 먹여 이쁜 송화를 봉사로 만듭니다. 아무리 양아버지라도 어찌 이런 짓을....
     또한 눈이 멀면 이 아릿따운 소녀에게 얼마나 한이 서리겠습니까?
     봉사가 된 송화의 소리에서 한서린 통곡의 소리가 나오도록 하기 위해 서도
     그녀를 봉사로 만드는 아버지 유봉........... 
     저는 이 장면을 생각만해도 눈물이 납니다. 에휴~
     눈을 멀게 해서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고, 
     한서린 통곡의 소리가 나오도록 하기 위한것이었기에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딸'송화'를 정성스레 간호하는 아버지 유봉, 
     그러나 그도 인간이기에 죄책감으로 죽어가며 송화에게 그 일을 사죄합니다. 
     세월이 흐른 후, 
     아버지 유봉과 누나 송화를 찾아 헤매던 동호는 이름 없는 주막에서 '송화'를 만나지요. 
     누나 송화 임을 단번에 알아 보고, 송화에게 판소리를 청하는 동호, 
     송화는 아버지 유봉이 치던 똑같은 북장단을 치는 그가 동호임을 금새 알아 차리지만... 
     (흑흑..아이구 슬퍼라....)
     눈먼 송화는 벌써 희끗 희끗한 머리카락으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늙어 가는데.....
     아 너무 슬퍼 더 이상 산행기를 쓸수가 없네요. 
     책 사서 읽던지 검색해서 영화를 보시던지 하세요
     이 대사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유봉이 눈먼 송화에게 소리를 가르치며... 
     "이년아! 가슴을 칼로 저미는 恨이 사무쳐야 소리가 나오는 뱁이여...! "
     
     '아제아제 바라아제'와 "서편제"는 자꾸 생각납니다
     모두 너무나 슬픈 사연을 안고 살아 가는 한많은 여인들의 이야기라 더욱 가슴 저밉니다

     
     ['88올림픽고속도로'와 '지하통로']12시 10분
      
     매요리에서 55분 정도 걸려 옛"사치재"를 고속도로가 가로 막고 있는 "88올림픽고속도로"에
     내려와 우회로인 '지하 통로'로 향합니다.

 
     [지하통로]
      
     고속도로 지하 水路를 통해 고속도로를 통과 합니다.
     대간꾼들은 "물"을 건너지 않는데....살려면  어쩔수 없이 ...ㅎㅎ

     
     [점심식사] 약30분간
      
     "사치재"에서 점식사를 합니다.
     "사치재"는 한자로 "모래 沙", 고개 峙"를 쓰더군요. 우리 말로 "모래재"이지요
     그러므로 이 고개에는 모래가 많았던 곳인가 봅니다만 지금은 고속도로 포장도로입니다.


     ['사치재'에서 '시리봉'까지 구글어스]
      
     2, 사치재(12시40분 출발)→(1시간 45분)→시리봉 헬기장(2시 25분)
        오늘 산행에서는 가장 힘든 구간입니다.
        그러니 오늘 산행구간이 얼마나 짧고 쉬운지 이해가 가나요?

     
     ['사치재'에서 "620m봉-헬기장" 들머리] 12시 42분
      
     약30분간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620m봉", "693m봉"을 치고 오릅니다.

     
     ["620m봉-헬기장" 오르는 길]
      
     "620m봉- 헬기장"으로 오르는 登路에는 죽은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지리산이나 한라산등 高山地帶에 가면 "고사목 古死木"이 많지요?
     살아서 백년, 죽어서도 백년 동안 아름답다는 古死木입니다.
     그런데 이곳의 죽은 나무는 古死木이 아니고, 산불로 인해 불에 타 죽은 "火死木"이더군요

     
     [88고속도로 '지리산휴게소'와 "지리산 천왕봉"]
      
     "인월 引月"
     고려 말, 금강 어귀로 침범했던 왜구들이 퇴로가 막혀 이곳으로 숨어 들었답니다.
     아스팔트와 발음이 비슷한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는 이곳에 주둔하면서 장차 바다로 
     달아나려 하였습니다. 고려 군은 이성계를 최고지휘관으로 삼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답니다. 
     이성계가 먼저 활을 쏘아 '아지발도'의 투구를 떨어트리고,
     뒤이어 아랫 장수 이두란(李豆蘭)이 쏜 화살이 그의 머리를 맞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전투를 하면서 시간이 오래 걸려 해가 지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이성계가 지리산 산신령에게 기도를 하여 아직 뜨지도 않은 달을 끌어 올려
     훤한 달밤을 만들어 왜구들을 끝까지 몰살시켰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ㅎㅎ
     "달을 끌어 올렸다""인월 引月"이라는 地名이 생겼다고...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지고....勝者는 美化되고....敗者는 두번 죽고...

     
     ["620m봉-헬기장"정상] 12시 56분
      
     제법 가파른 620m봉을 15분 정도 오르니 바로 정상 헬기장이었습니다.
     단순한 헬기장이었지만 날씨가 좋아 조망 장소로는 아주 좋았습니다.
     지금부터 "620m봉"에서 주변을 조망해 보겠습니다.

      
     ["620m봉-헬기장"정상에서 바라보는 "바래봉"]
      
     우선 동남쪽으로는 철죽으로 유명하고, '지리산 태극종주' 출발점으로도 유명한 
     "바래봉"이 조망됩니다.
      우측 바로 앞봉우리가 지나온 "佳山"이고, 좌측 중간에 있는 나즈막한 산이 "황산"입니다.

     
     ["620m봉-헬기장"정상에서 바라보는 "노치마을"]
      
     그리고 남쪽으로는 '운봉 읍내'와 2구간의 "노치마을" "수정봉"이 보입니다.

     
     ["620m봉-헬기장"정상에서 바라보는 "수정봉-여원재-고남산"]
      
     서남쪽으로는 지난 2구간 대간길이 더욱 멋지게 조망됩니다.

     
     ['시리봉'으로 가는 대간길]
      
     얼마전 입적하신 무소유로 더욱 유명하신 "법정스님"이 산에 대해 쓴 글이 있습니다
     '무소유'의 법정스님'은 산을 어떻게 표현했을까?라고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산을 건성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 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내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 때에는
          저만치서 산이 나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에는
          내가 산을 바라본다,                 

     
     [693m봉] 1시 18분
      
     "620m봉-헬기장"에서 조금 가면 "693m봉"이 나옵니다.
     이번 코스에서 이 봉우리 오르는 길이 유일하게 암릉길이었습니다.

     
     [새목이재] 1시 38분
      
     남원시 인월면과 아영면에서 장수군으로 넘어 가는 옛고갯길입니다.
     이곳의 지형은 구글어스를 보면 확연합니다.

     
     ['시리봉'으로 가는 길]
      
     오늘 구라청의 예보와 달리 날씨가 무척 더웠습니다.
     '시리봉' 오르는 된비알에 땀좀 흘렸지요 ㅎㅎ

     
     ['시리봉' 옆 헬기장] 2시 25분
      
     "시리봉 776.8m봉"은 대간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이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를 '시리봉'으로 간주하고 지나 갑니다.
     '매요리'에서 이곳까지 3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복성이재"까지는 앞으로 1시간 25분 정도 걸리니 오늘 산행은 아주 짧습니다.


     ['시리봉'에서 '복성이재'까지 구글어스]
      
     3. 시리봉 헬기장(2시 25분)→(1시간25분)→복성이재(3시 50분)
         아막성을 지나 복성이재로 가는 길은 전체적으로 내리막 길로서 편합니다.
         '남근석', '아막성'들을 구경하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습니다

     
     [남원시 아영면 정경]
      
     판소리 "흥보가"에서 흥보가 제비를 살려주고 얻은 박씨로 대박을 터트리는....
     요즘 말로 LOTTO에 당첨되는 "발복지 發福地"라는 전설을 사실인듯 현실화 하고 있는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의 정경입니다.
     척박한 첩첩산중인 이곳이 發福地라고 하고....
     재산도 없어 자식 키울 능력도 없는 흥보가 애들은 무지 많이 낳아 거지 소리를 듣는데도...
     열심히 일하지는 않고  형한테 가서 구걸이나 하며 사는데도.....
     결국은 인생역전 때부자가 되는 해피엔딩을 만드는 판소리 "흥보가"는
     판소리가 서민 백성들을 상대로 하기에, 가난한 서민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즐겁게 해주기 위해 
     만들어 낸 서민들의 노래라 할수 있겠습니다.

     
     [父子 사랑이 넘치는 리본]
      
     1구간 최연소 대간 참가자인 이주형군의 아빠는 아들과 함께하는 대간길을 기념하며
     추억의 길로 만들고 있습니다. 
     남다른 父子愛.....
     끝까지 함께해서 완주의 기쁨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배경 음악으로 "아빠, 바람의 색깔은 어떤 색이에요?"라는 노래를 깔았습니다.
     앞 못보는 아들과 대자연 속에서 함께 가는 아빠가 서로를 위하는 내용의 노래 랍니다
     바람은 '푸른 색', 사랑은 '황금색'이라고 아빠는 일러 주지요...

     
     [결의를 다지는 사람들]
      
     저의 산행기는 많은 사람들이 보며 산행참고로 하는 것이기도해서 개인사진은 잘 올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특별하신 분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산행도 결국은 사람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멋있는 분들이죠?

     
     ['시리봉'에서 '아막성' 가는 길]
      
     아!~ 아깝다
     철죽은 지고.....
     지난주에만 왔어도 철죽 터널을 지나 가는건데....
     아주 게으른 철죽들만 이제서야 꽃을 피우며 가끔 보이는군요.

     
     [남원시 아영면 "흥부마을"]
      
     얼마전 작고하신 명창 '박 동진'선생 기억 하십니까?
     "우리 것이 좋은 것이어~!"라고 TV 광고에도 자주 나오셨죠?
     몇해전 작고 하셨지만, "흥보가"를 비롯해 "변강쇠가"등 동편제를 많이 완창하셨지요.
     최초로 "변강쇠가"를 완창하신 걸로도 유명하십니다
     그런데 이 "흥부마을" 바로 옆, 함양 마천에는 "변강쇠"와 "옹녀"가 정착해 살았던 마을이 있죠
     모두 "판소리 동편제"가 만들어진 고장인데, 실제 운봉과 함양은 옛날엔 같은 신라 였답니다.
     사람들의 어투, 사투리에서도 운봉, 아영, 인월 사람들은 "추워, 더워"라고 하지 않고,
     경상도 사투리인 "추버, 더버"라고 합니다. 실제 경상도인 셈이지요
     그래서 "동편제"는 경상도식 판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욱박지르며 딱딱 끊으며 부르는 소리가 경상도 스타일이고,
     애절하고 간드러지는 창법이 전라도 스타일이라는거죠

     
     [男根石]
      
     '시리봉'에서 '아막성'으로 가는 길섶에 소위 "男根石"이라는 바위가 하나 덩그러니...
     요즘은 불임을 위해 콘돔을 끼고 있는듯하네요 ㅎㅎ 아주 야한 콘돔....
     요즘 애기 낳으면 국가에서 돈도 주는데...시대를 역행하시나?
     "변강쇠" "옹녀"를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주로 에로영화를 떠올리며, 
     특히 '이대근'과 '원미경'이 주연한 영화 "변강쇠"가 먼저 생각나시죠?
     그리고 막연하게 정력이 무지하게 쎄고, 쌕스를 무지 좋아하는 남녀로 생각 할것입니다.
     그러나 "변강쇠"는 우리나라 전래음담설화로 오랜 옛날부터 전해 오는 "판소리"입니다
     천하의 음남(淫男)과 음녀(淫女)의 육욕(肉慾) 탐닉(眈溺)의 대명사인
     '변강쇠'와 '옹녀'가 개성에서 만나 한바탕 천지가 진동하게 떡을 치고 肉慾眈溺하다가.....
     그 이후 깨달은바 있어 인간답게 살자고 조용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찾아 간곳이 
     바로 이곳 바로 옆, "함양 咸陽 마천"이기 때문입니다
     변강쇠와 옹녀가 개성 청석골에서 처음 만나 '청석대'라는 바위 위에서
     정사를 하는 장면을 판소리의 원문으로 알려 드릴까요? ㅎㅎ
           
     둘이 손길 마주 잡고 바위 위에 올라가서 대사(大事)를 지내는데, 
     신랑 신부 두 년놈이 이력(履歷)이 찬 것이라 이런 야단(惹端) 없겠구나. 
     멀끔한 대낮에 년놈이 홀딱 벗고 매사니 뽄 장난할 때, 
     천생음골(天生陰骨) 강쇠놈이 여인의 양각(陽刻) 번쩍 들고 옥문관(玉門關)을 굽어보며,
     "이상히도 생겼구나. 맹랑히도 생겼구나. 늙은 중의 입일는지 털은 돋고 이는 없다. 
     소나기를 맞았던지 언덕 깊게 패였다. 콩밭 팥밭 지났는지 돔부꽃이 비치였다. 
     도끼날을 맞았든지 금바르게 터져 있다. 
     생수처(生水處) 옥답(沃畓)인지 물이 항상 고여 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옴질옴질 하고 있노. 
     천리행룡(千里行龍) 내려오다 주먹바위 신통(神通)하다.
     만경창파(萬頃蒼波) 조개인지 혀를 삐쭘 빼였으며 
     임실(任實) 곶감 먹었는지 곶감씨가 장물(臟物)이요, 
     만첩산중(萬疊山中) 으름인지 제가 절로 벌어졌다. 
     연계탕(軟鷄湯)을 먹었는지 닭의 벼슬 비치였다. 
     파명당(破明堂)을 하였는지 더운 김이 그저 난다. 
     제 무엇이 즐거워서 반쯤 웃어 두었구나. 
     곶감 있고, 으름 있고, 조개 있고, 연계 있고, 제사상은 걱정 없다." 
           
     ㅎㅎ 옹녀의 거시기 玉門關이 어떻게 생겼는지 변강쇠가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있죠? ㅎㅎ

     
     [阿幕城]
      
     "男根石"을 지나면 城터가 나오는데 "阿幕城"이라고 한답니다.
     옹녀는 변강쇠가 자신의 거시시 玉門關을 보고 묘하게 표현하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옹녀는 미소를 지으며 앙갚음을 하려고, 변강쇠의 거시기를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이도 생겼네. 
     전배사령(前陪使令) 서려는지 쌍걸낭을 느직하게 달고, 
     오군문(五軍門) 군뇌(軍牢)던가 복덕이를 붉게 쓰고 
     냇물가에 물방안지 떨구덩 떨구덩 끄덕인다. 
     송아지 말뚝인지 털고삐를 둘렀구나. 
     감기를 얻었던지 맑은 코는 무슨 일인고. 
     성정(性情)도 혹독(酷毒)하다 화 곧 나면 눈물난다. 
     어린아이 병일는지 젖은 어찌 게웠으며, 
     제사에 쓴 숭어인지 꼬챙이 구멍이 그저 있다. 
     뒷절 큰방 노승인지 민대가리 둥글린다. 
     소년인사 다 배웠다, 꼬박꼬박 절을 하네. 
     고추 찧던 절굿대인지 검붉기는 무슨 일인고. 
     칠팔월 알밤인지 두 쪽이 한데 붙어 있다. 
     물방아, 절굿대며 쇠고삐, 걸낭 등물 세간살이 걱정 없네." 
           
     옹녀와 강쇠가 서로의 성기를 보며 절묘한 표현을 하고는
     하루 종일 서로 업어 가며 정사를 벌입니다. ㅎㅎ

     
     [阿幕城의 흔적들] 3시 7분
      
     누군가가 이게 阿幕城이라고 말해 주지 않으면 그냥 돌탑인줄 알고 지나 칩니다.
     천오백여년전의 城인데도 흔적이 뚜렸합니다.
     한자 풀이를 해 보면 "언덕 阿"에 "가리울 幕"이니 山城으로 부르지 않고 阿幕城이라 한듯

     
     [阿幕城에서 뒤 돌아 본 "시리봉"]
      
     이곳에 와 뒤돌아 보니 이제서야 "시리봉"의 모양을 알수 있습니다.

               
               [阿幕城 안내]
      
               내용은 사진 속의 글을 참고 하세요 (아무도 읽지 않지요? ㅎㅎ)
               그냥 그런 내용...

     
     [阿幕城에서 바라보는 "봉화산"]
      
     다음 구간에 갈 "봉화산"이 멀리 조망됩니다.
     봉화산에 가면 경상도와 전라도의 道界를 만나 가는 백두대간이 이어집니다.

     
     [阿幕城에서 바라보는 "복성이재"]
      
     "복성이재"
     고개 이름으로는 다소 특이합니다.
     한자로 풀이를 하면 간단하게 의문이 해결됩니다
     "점卜, 별 星" "별을 보고 점을 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전쟁이 잦았던 옛날에는 점을 치며 전쟁의 전술을 계획하고 싸웠다고하지요?
     '복성이재'를 지나 가는 대간 마루금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阿幕城 城壁을 지나 '복성이재' 가는 길] ★길 주의★
      
     阿幕城에서 '복성이재 卜星峙"로 가는 길은 무너진 阿幕城 城壁을 지나 내려 가야합니다.
     무너진 城壁의 바위들로 길이 잘 보이지 않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임도 - 흥부마을 가는 길] 3시 32분
      
     "복성이뒷재"라고 생각되는데 지도상에 나와 있는 "복성이 뒷재"와는 많이 다릅니다.
     지도에 표기된 "복성이뒷재"는 "남근석"과 "아막성" 사이에 있습니다.

     
     [임도 이정표]
      
     "흥부마을"로 가는 길.......

     
     [남원시 아영면 성리]
      
     "흥부마을"-판소리 흥보가의 발상지라고 스스로 자랑하고있는 성리 마을.
     이곳에는 "흥보가"에 나오는 地名이 실제로 있다고 합니다.
     판소리의 창시자인 송흥록의 고향이 가까운 이웃인 비전마을이니 충분히 믿을 수 있을듯 합니다.
     '흥보전'에 나오는 유명한 地名중에 실제 이곳에 있는 몇개 지명을 간추려 소개 하면.....
     "허기재"는 허기에 지쳐 쓰러진 흥부를 마을 사람들이 도운 고개라고 전해진답니다.
     "고둔터"는 고승이 가난에 시달 리고 있는 흥부에게 잡아 준 명당으로, 
     흥부는 이곳에서 제비를 고쳐주고 보답으로 박씨를 받아 대박 터지는 인생역전의 터전이 되는
     발복(發福) 집터라는 뜻이랍니다. 
     실제 "고둔"이라는 지명은 곳집(창고)이 모이는 터, 즉 부자가 되는 터라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사금모퉁이"라고 있는데 사금꾼들이 금을 채취하던 곳으로, 
     흥부가 이곳에서 사금 沙金을 주워 부자가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답니다.
     박씨를 택할래요? 沙金을 택하시겠습니까?
     봉화산과 멀리 백운산이 조망됩니다.
     6월에 갈 대간입니다

     
     [임도]3시 42분
      
     다시 임도를 하나 만나고...

     
     [복성이재]3시50분
      
     "卜星峙"에 도착했습니다.
     "짖제고개"라고도 하는가 봅니다.

 
     ['복성이재' 이정표]
      
     "751번 지방도"가 지나며, 
     남원시 아영면에서 장수군 번암면으로 넘어 가는 고개입니다.

     
     [흥부마을 안내판]
      
     거인산악회 14기 여러분
     흥부처럼 대박 터지는 일들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대간길을 열심히 가면 무척 건강해 지실거고, 건강이야 말로 최고의 대박 아니겠습니까?

     
     ["복성이재" 뒷풀이]
      
     아이디 "클레오파트라"라는 여성분이 뒷풀이를 책임지셨답니다.
     감사드림니다. 다음 번 부터는 서로 뒷풀이를 책임 지겠다는 분들이 많아서 기분 좋습니다.
     "클레오"님은 경황이 없어 사진 촬영을 못해 이번엔 소개해 드리지 못하지만 다음에 상세히....

     
     ["양재지맥" 뒷풀이]
      
     오늘은 짧은 산행으로 서울에 매우 일찍 도착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기회가 자주 올것같지 않아 "양재지맥"으로 가 한잔 더 했습니다.

                 천국은 연인끼리 가는거구
                 지옥은 친구랑 가는거래요
                 친구는 모든 어려움도 함께 할 수 있기에....
                 백두대간은?
                 거인산악회 嶽友 14기와 함께 가는거구요~ 
                                -파란문-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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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 2회차]  
  고기리 삼거리-노치마을-수정봉-입망치-여원재-고남산-매요리

     1. 일시 : 2010년 5월 22일(토)
     2. 날씨 : 흐리고 비 바람 몰아 침
     3. 참가자 : 거인산악회 백두대간 14기



     [백두대간 2구간 개념도]

     백두대간 2회차 구간은 "고기리 삼거리 선유산장"앞에서 "노치마을"을 지나
     "수정봉", "입망치", "주지봉 옆 암봉", "여원재", "고남산", "매요리"까지
     도상거리 14.5km, 실제산행거리 약18km입니다.

     알아 두면 좋은것....
     # "도상圖上 거리"는 평면상태 지도상의 직선거리를 말하며,
       "실제산행거리"는 산의 높낮이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거리와 접속거리를 합쳐 일컸습니다.
       옛날 학창시절에 외우고 다녔던 "피타고라스 정리" 기억 나세요?
       "삼각형의 두 변의 합은 한변 보다 길다"라는거요 ㅎㅎ
       '실산행거리'는 삼각형의 윗 두변의 합이니 일반적으로 '도상거리(아랫변)'에 25%를 더합니다.

     
     [고기리 삼거리] 오전 11시 10분

     오늘은 특별한 교통체증 없이 순조롭게 고속도로를 통과하여 지난 1구간의 날머리였던
     "고기리 삼거리"  선유산장 앞에 오전 11시 10분쯤에 도착했습니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는 전라북도 남원시 주촌면 고기리입니다.

     
     [거인 14기 단체 기념사진]

     바둑 애호가들은 흔히 '바둑' 한판 두는 것이 人生길 같다고도 표현합니다.
     골프를 좋아 하는 사람들은 골프가 하나의 인생 드라마 같다고도 합니다.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은 마라톤이야 말로 험난한 인생길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살며 느껴지는 것들 중에 '우여곡절'이 많은 사례들을 사람들은 "인생"과 비교하는듯 합니다
     저같은 산객은 당연히 "산행"을 "인생"과 동일시 합니다.

     아!~
     길은 가기 위해 존재하는가!~
     돌아 오기 위해 존재하는가!~
     비 바람 몰아치는 장마철 같은 봄날에 "백두대간"에 선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이 暴風雨 속에서 백두대간의 무엇을 느끼려고 하는 걸까
     이게 인생이라고........그런 것일까? ㅎㅎ

     
     [雨中山行] 11시 18분

     고기리 삼거리 "선유산장" 앞을 출발하여 백두대간 속으로 들어 갑니다
     못 먹을걸 씹은 듯 잔뜩 찌푸린 하늘에는 가랑비가 조금씩 내릴 뿐...
     다행이 아직까지 폭풍우는 휘몰아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기리 삼거리에서 노치마을까지 구글어스]

     1. 고기리 삼거리(11시 20분 출발)→20분→노치마을입구(11시 40분 도착) 
     "고기리 삼거리"에서 "노치마을"까지 우선 구글어스를 보여 드림니다.
     매우 중요한 "길"입니다.
     "백두대간 길"에서 유일하게 평지가 "白頭大幹"을 이루고 있는 곳이기에
     이해를 돕기 위해 구글어스를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水晶峰을 바라보며 "백두대간"을 가다]

     지리산의 "큰고리봉"에서 "수정봉"으로 가는 "백두대간"은 이렇게 평지 도로입니다.
     산줄기가 아닌 평지 도로가 "백두대간 길" 인 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쪽, 즉 좌측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운명적으로 "섬진강"으로 흘러 가고,
     동쪽, 즉 우측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전라도를 등지며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으로 흘러
     결국은 "낙동강"을 만나 '을숙도'를 지나며 다대포 앞 남해바다로 흘러흘러 가는 
     운명적 이별의 분기점인 것입니다.
     - 유일한 평지 백두대간 - 
     저 앞으로는 늠름한 대간길인 "수정봉"이 이름처럼 맑게 빛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치마을"로 가는 길-이정표]

     "고산자 김정호"선생은 대동여지도에서 이곳의 대간길을 분명하게 표시해 놨습니다.
     또한 "노치마을"은 대간길 마루금에 있는 유일한 마을이기도 해서 유명하기도 하지요.

     
     ['덕치 보건소'앞 백두대간]

     "산자분수령 山自分水嶺의 원리"
     우리가 가고 있는 백두대간 길은 철저히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를 지키며 갑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노치마을" 가는 논두락 같은 길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를
     지키며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갈수 있는 이곳에선 유일한 길인것입니다.

     
     [노치마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국토 國土'를 달리 표현할 때에는 
     "산천 山川, 산수 山水, 산하 山河, 강산 江山"등과 같이 
     "산""물"을 함께 일컬어 "나라 땅"을 나타내었습니다.
     이렇게 산과 물이 어우러지는 원리를 "산수경(山水經)의 원리", "산수분합(山水分合)의 원리"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산자분수령 山自分水嶺의 원리"라고 표현합니다. 
     "산은 스스로 물과 고개를 가른다"
     그리하여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전통적 지리 인식체계에서는 
     산의 흐름을 살아있는 나무에 비유하여, 기둥줄기와 큰 줄기, 그리고 작은 줄기와 곁가지로 
     나뉘는 것으로 보았고, 줄기와 줄기 사이, 가지와 가지 사이에 강이 생성되어 흐르는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大幹" "正幹" "正脈" "枝脈" "分脈"등으로 선조들은 구분하였습니다

     
     ["백두대간"과 "노치마을"] 11시 42분

     대간 마루금에 있는 유일한 마을인 "노치마을"
     "蘆峙마을""갈대 '蘆', 고개 '峙'를 사용함으로 先祖들은 이미 이곳이
     평지가 아니라 "고개"임을 그 옛날부터 알아서, 마을 이름도 "蘆峙마을"이라고 
     불러 온 것이니 놀랍지 않으십니까? 
     수많은 대간꾼들이 이 마을을 지나며 촬영했던 "노치마을" 입구의 그림을 보니
     아!~ 노치마을의 그 그림이 이 그림이구나!~~라고 상기됩니다.
     하지만 '백두대간'을 그린 줄 알았더니 자세히 보니 뭘 그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백두대간"과 "노치마을"]  

     고기리 삼거리에서 약25분 정도 평지 대간길을 걸어서 "노치마을"에 도착합니다.
     "蘆峙"는 글자 그대로 "갈대"가 많아서 붙여진 고개 이름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대간길 "蘆峙" 좌우에 있었던 갈대숲은 농지로 개간되여 갈대를 구경할수 없답니다.

     
     [노치샘] 11시 44분

     "노치마을"의 자랑인 "노치샘"입니다.
     아시다시피 마루금에는 샘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만....
     마루금을 가는 우리가 대간 마루금에서 만날수 있는 유일한 샘물이기에 더욱 신기 할 뿐입니다.
     저도 물맛을 봤는데 역시 백두대간 마루금에 있는 유일한 샘물 다웁게
     깨끗하고 시원한 맛이었습니다.

     
     [堂山祭典 숲]

     "노치마을" 뒤  '수정봉'으로 올라가는 들머리에 수백년된 소나무 숲이 있습니다.
     이곳은 이 마을 사람들이 堂山祭를 지내는 祭典이 있는 곳입니다.

     
     [堂山祭典] 11시 47분

     옛날 첩첩산중인 이곳에 짚신을 만들어 팔았던 가난한 거지가 있었답니다. 
     추운 겨울에 거지가 죽자, 동네 사람들이 그를 묻어 주려고 하였으나 
     고산지대인 이곳에는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묻을 만한 곳을 찾을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관이 하나 들어갈 정도로 눈이 녹아 있는 땅을 발견하고 
     그곳에 그 거지를 묻어 주었는데, 그곳이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이었다는 거지요. 
     그곳이 이곳입니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이 산에 보답하기 위해서 음력 1월 1일 밤 12시에 주산제(主山祭), 
     곧 "당산제 堂山祭"를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산행들머리 안내도]

     "堂山祭典" 바로 위에는 "수정봉 水晶峰"으로 올라 가는 산행 들머리가 있고
     이곳에서 "여원재", "고남산", "매요리"까지 안내도가 있습니다.
     여기서 부터 "여남재"까지는 외줄기 길이니 길을 잃어 버릴 염려는 없습니다


     ['노치마을'에서 '수정봉'까지 구글어스]

     2. 노치마을 당산제전(11시 50분 출발)→40분→수정봉(12시 30분 도착)
     급경사 오르막을 치고 올라야 하는 수정봉까지의 구글어스입니다

     
     [된비알]

     본격적으로 '수정봉'을 향해 급경사 오르막을 치고 오릅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 준비운동도 없이 갑자기 된비알을 치고 오르면 무척 힘듭니다
     이번 백두대간 종주에 참가하신 분들은 그래도 딴에는 좀 걷는다는 분들이 참가했을 것입니다. 
     이산 저산 다녀봐야 재미도 없고 조금 더 수준있는 백두대간에 도전장을
     내민 분들일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인지 모두들 잘 걷습니다. 파이팅!~

     
     [첫 봉우리에 올라...] 12시 8분

     "수정봉"은 옆으로 길게 누워있습니다.
     구글어스에서 보는바와 같이 첫봉우리에 올랐습니다.
     대간이나 정맥, 지맥에 경험이 없으신 분들은, 첫봉우리 오르면 오늘 산행이 끝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간길은 이런 봉우리는 수없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해야 목적지에 도착
     한다는 것을 이번에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가야할 봉우리가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水晶峰 가는 길]

     첫 봉우리에서 몇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 갑니다.
     푸르름을 더해 가는 水晶峰 능선길입니다. 아름답습니다.

     
     [水晶峰]

     '노치마을 당산제전'에서 약40분 정도 가면 水晶峰 정상에 다다릅니다.
     정상으로 올라 가는 마지막 된비알을 오릅니다.

     
     [水晶峰 정상] 12시 30분

     드디어 "水晶峰 정상"입니다.
     고기리 삼거리에서 1시간 10분 정도 걸려서 오른 것입니다.
     정상에는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없고 여느 조그만 산봉우리와 같았습니다.

     
     [水晶峰 정상 안내판과 이정표]

     804.7m 높이의 수정봉은 "산 중턱에서 水晶을 채굴하던 암벽이 있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섬진강과 낙동강이 갈라지는 "곡중분수계 谷中分水界"로서
     백두대간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水晶峰 정상에서 뒤돌아 본 "큰고리봉-정령치-만복대"]

     산봉우리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조망을 해야 합니다.
     내가 지나 온 길도 뒤돌아 보고, 앞으로 갈길도 내다 보아야합니다.
     구름이 껴 비도 내려서 조망이 시원하지는 못하지만 ....
     그래도 보이는 지난 1구간의 지리산 "큰고리봉-정령치-만복대"가 '고기리' 뒤로 보입니다.
     고기리에서 노치마을까지 백두대간 같지 않은 희미한 대간 마루금이 조금 보입니다

     
     [水晶峰 정상에서 바라보는 "남원시"]

     水晶峰 정상의 서쪽으로는 남원시 이백면 양가리가 조망되는군요


     ['수정봉'에서 '여원재'까지 구글어스]

     1. 수정봉(12시35분출발)→1시간50분(식사시간30분포함)→여원재(2시25분도착)
     '水晶峰'에서 '여원재'까지 구글어스입니다.

 
     [水晶峰 稜線-大幹 마루금]

     산 정상에는 철죽이 이제서야 피기도 합니다.
     '입망치'로 가는 길입니다.

     
     [입망치] 12시 50분

     해발 545m에 있는 "입망치"라는 고개입니다.
     이 고개를 가운데 두고 水晶峰은 크게 두봉우리로 구분됩니다.

 
     [입망치 이정표]

     이곳은 4거리로서 수정봉-여원재로 가는 길과 이백면-운봉읍으로 가는 길이 만나는 곳입니다

     
     [여원재 가는 길]

     '입망치'를 지나 '여원재'로 향합니다.
     좌측 절벽들에서 水晶이 채굴되었다는군요
     여하튼 이쪽 봉우리에는 암봉이 많고 그 중의 한 암봉의 이름이 "주지봉"인데
     우리는 "주지봉" 바로 옆 '암봉'에서 식사를 합니다.

     
     ['여원재'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水晶峰 정상"]

     가운데 '입망치'라는 고갯길을 사이에 두고 지나온 "수정봉"이 보입니다.

     
     ['암봉' 오르는길]

     "주지봉" 바로 옆 '암봉' 오르는 길

     
     ['암봉' 정상 - 점심식사] 1시 15분

     점심식사를 하는 이 봉우리 바로 옆의 암봉이 "주지봉"이라고 하는 유명한 봉우리인데
     이곳에는 "산신단"이 있어 소원을 비는 곳으로 유명하다는군요.
     주로 아들이 없는 여자들이 즐겨 찾아 아들 낳아 달라고 비는 곳이랍니다.
     다행이 비도 멈추고 점심시간도 약간 지나 늦은 점심식사를 여기서 합니다.
     30분 정도의 식사시간이었는데 이번엔 약간의 변화가 일어 났습니다
     지난 1구간에선 대부분 초면들이라 서먹서먹했는데...... 
     벌써 두번째라고 자주 만나던 사람들처럼 서로의 도시락을 여러 사람들 앞에 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밥상 공개하는 일은 거의 있을수 없는 일이지만....
     산객들이 산에 오르면 서로의 밥상을 공개하고 차려 줍니다. 특별한 인연인 것이죠.
     산행보다 더 즐거운 일이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다음 구간부터는 아마도 더욱 친숙해 질거라고 확신합니다

     
     [옛山城 흔적들]

     약30분간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여원재"를 향해 출발합니다
     이곳에서 부터는 그 옛날의 城터를 희미하게 볼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곳이 얼마나 군사적으로 요충지였는지 가름할수 있지요?
     사진에 보이는 희미한 城은 "양지산성"이라고 하며  건너편에는 "음지산성"이
     있다고 합니다.

     
     ['여원재' 근처 마을] 2시 20분

     점심식사를 마치고 약35분쯤 전진하니 "여원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원재 女院峙] 2시 25분

     고기리 삼거리에서 3시간 7분이 걸려 "여원재"에 도착합니다.
     "여원재"는 "20번 국도"가 지나는 중요도로이며 경상남도 함양지방에서, 남원으로 가는
     핵심 도로입니다만, "88올림픽고속도로'가 생기면서 통행량은 많이 분산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옛 삼국시대부터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아주 중요한 고갯길이었답니다.

 
     [여원재 이정표와 "장동마을" 표지석]

     "여원재 女院峙"는 남원 쪽에서 올라 올때엔 99구비 고개를 돌고 돌아 올라야하는 
     높은 고개 입니다만, 운봉 쪽에선 운봉의 해발이 500m정도나 됨으로 그다지 높게
     느껴지지 않는 답니다. 그렇다면 운봉의 지형을 간접적으로 이해할수 있지요?
     이곳에서 남원쪽으로는 경급사 내리막 아흔아홉구비인데, 운봉쪽으로는 거의 평지 수준.
     옛날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 이곳  "여원재 女院峙"였답니다.

          
           [여원재 부근 관광 지도]

           3일 정도 다녀야 어느 정도 이 지역을 관광 할수 있겠더군요.

     
     [여원재 女院峙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안내"]

     "동학혁명" 때에 농민혁명군들이 이곳 여원재에서 수없이 희생되었다는군요.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간략히 기술하고 지나 가겠습니다.
     정조대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조선은 "勢道政治"시대로 들어 가지요?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 할수 있다'는 외척세력인 "안동김씨·풍양조씨"등의 
     "勢道政治"는 조선의 농촌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운명을 갈라놓지요. 실제 조선을 망친 놈들은 이 세력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탐관오리들이 날뛰고 정의가 불의에 짖밟히는 세상에서 참다 참다 못 참고 들고 일어 난 
     농민들의 봉기. 바로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입니다. 불과 116년 전의 일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의 발단은 당시 정읍군수였던 "조병갑"이 탐관오리로서 백성들로부터
     무자비한 수탈을 해 "전봉준"등 농민대표들이 바른정치를 호소했으나 거부당하며 일어났습니다
     또한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여 우리나라를 침략하려는 저의를 들어내면서 
     우리 백성들의 자발적 민중 저항이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동기가 됩니다
     이에 앞장선 "전봉준장군"은 12만명의 군사를 지휘, 손병희의 10만 군사와 함께 
     조선의 관군과 일본군에 대항하여 싸웠지요. 
     동학 농민군은 중·남부 전지역과 함경남도, 평안남도까지 세력을 폈으나 
     유명한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관군과 최신식 무기 "캐틀링"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패한 후 
     전봉준은 순창으로 잠적하여 재기를 꾀하다가 붙잡혀 1895년 3월 처형되었습니다
     우리민족의 울분은 그렇게 처참하게 짖밟히고 "일제강점기시대"로 갑니다.
     오호~ 통재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여원재 女院峙의 석장승과 이정표]

     전봉준은 감옥에서 간수들에게 무수히 구타 당하자 그는 분연히 꾸짖기를,
     "선비는 가히 죽일 수는 있어도 치욕을 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국법을 어겼으면 마땅히 국법으로 다스려 죽여라! "
     그리고 그에게 참형(1894년 3월 9일)이 내려지자
     "나를 종로 네거리에서 죽여라. 백성들을 보고 싶다." 하면서 
     스스로의 죽음조차 선택하였으니 이때가 그의 나이 41세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녹두장군 전봉준". 
     이런 전봉준장군이었기에 그를 애도하는 한 소절의 슬프고도 암울한 노래가 
     아직까지도 전해져 내려와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있는 것입니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눈물을 흘리며 암울한 일제강점기시대로 들어갑니다
     "백두대간"을 다니면 이런 우리 민족의 애환과 환희등 여러 역사까지도 자연스레 알수 있습니다


     ['여원재'에서 '고남산'까지 구글어스]

     4. 여원재(2시30분출발)→2시간5분→고남산(4시35분)
     아주 먼 거리입니다.
     많은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고, 846.4m높이의 "고남산"을 올라야 하기에
     힘드는 구간이고, 매요리까지도 다시 많이 걸어야 합니다.

     
     [여원재의 "고남산" 들머리]

     "여원재 女院峙의 전설"
     옛날 왜구들이 경상도로 들어와 먹을것이 풍부한 전라도지방으로 쳐들어 가려면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답니다.
     어느날 왜구 대장인 놈이 이 고개에 있는 주막의 아낙네를 겁탈하려고 하다가 반항하는 
     그 아낙네의 가슴을 만졌답니다.
     쪽바리가 가슴을 만졌다고 성질 난 아낙네는 자기의 가슴이 더렵혀 졌다고 칼로 짤라냈답니다.
     훗날 이곳으로 왜구를 무찌르기 위해 출정한 "이성계 장군"이 아스팔트와 발음이 비슷한
     "아지발도"라는 왜구 대장을 활로 쏘아 죽이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이 성계는 전쟁 전날 그 여인의 꿈속 점지로 고남산에 가서 기도하고 전쟁을 승리 할수 있었다고 믿어
     그 여인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그 여인을 모시는 "女院"을 지어주었답니다.
     그리하여 "女院"이 있는 고개라고 "여원재 女院峙"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왜장이 한번 달라고 깝죽대는 게 싫어서 가슴을 짤라 냈다는 그 주막 아낙네-- 
     '파란문'의 눈에는 그 여인이 그렇게 숭고한 정절을 지키는 고매한 인물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데..
     어쩌면 성질 더럽게 독한 여자라고 느껴지는데---
     전설의 배경을 곱씹어 보면, 한국남자들 참 독하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여자들은 모두 정절을 지키고 그러라는 건지, 앞으로는 그러지 말어라는 건지--- 
     앞으로는 정절을 지키라고 하고, 뒤로는 말어라는것인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잘했다는건지 잘못했다는건지----후세에 귀감이 되는 이야기인지....
     애국심을 말하는건지...정절을 말하는건지....뭘 말하는건지......
     머리 나쁜 '파란문'은 아리송송하기만 합니다.

     
     ["장동마을"에서 바라보는 "고남산"]

     돌고 돌아 올라야하는 "고남산"이 아스라이 보입니다.
     에휴~ 언제 넘어가냐~
     오날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ㅎㅎ

     
     [백두대간 안내 이정표]

     장동마을에 설치되 있는 이 이정표는 "백두대간 마루금"으로 가지 말고 우회해 가라는
     안내입니다. 즉 대간 마루금은 좌측 산 능선인데 밭이 있으니 들어 가지 말고
     빙~돌아 가라고 설치한 것입니다.
     할수없이 우리는 대간 마루금을 살짝 비켜 갈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남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여원재'와 "수정봉"]

     고남산까지 크고 작은 몇개의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그러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여원재"와 "수정봉"이 구름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고남산 등로]

           古南山 정상이 가까와 오니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비 바람은 몸을 가눌수 없을 정도로 몰아 치고.....
           雲霧로 눈에 뵈는 것도 없고....

          
          [고남산 登路]

          옛날엔 없던 계단도 친절히 설치되 있어 오르기는 많이 쉬워졌군요....

     
     [오리무중 五里霧中]

     고남산 정상 부근으로 높이 오르니 구름 속에 들어와 "오리무중 五里霧中"이 됩니다.
     고남산 정상에서는 광주의 무등산도 보이고, 지리산, 바래봉등 운봉을 감싸고 있는
     산줄기와 雲峰邑內가 훤히 조망되는 전망 좋은 곳인데 아무것도 보이지않습니다. 휴~

     
     [고남산 마지막 登路]

     고남산의 정상을 향해 마지막 안간 힘을 씁니다.

          
          [暴風雨 속의 "고남산 古南山 정상"]

          '산불감시초소'가 설치되 있는 "고남산의 정상"입니다.
          사진 속에는 예쁘고 예쁜 철죽이 초소를 감싸고 있는데
          실제는 휘몰아 치는 폭풍우에 몸을 가눌수 없어 바로 하산 합니다.

 
     [고남산 古南山 정상석 앞뒤면]

     '고남산 정상" 바로 아래에 "정상석"이 설치되 있더군요

     
     [고남산 古南山 정상] 4시 40분

     "古南山 정상에서..."
     지난 1구간에선 초등학교 6학년 "이 주형"어린이가 최연소 참가자 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이게 뭔 일이래요? ㅎㅎ
     아직 애기인 유치원생인 일곱살 "길 희원"양이 폭풍우 휘몰아치는 백두대간 "古南山"에
     아빠 엄마와 함께 이렇게 우뚝 서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자식 교육시키는 방법이 달라졌다고 해도 좀 그렇지요? ㅎㅎ
     날씨라도 좀 좋았으면 조금은 위안이 되겠지만 이것은 "고행의 길"입니다.
     자칭 산꾼이라는 저도 괴로운 산행 길이었는데 이 애기는 어떠하겠습니까?
     "길 희원"양의 아빠 엄마는 '아동학대죄'로 감옥으로 보내야 되지 않나요? ㅎㅎ
     저와 함께 시종일관 함께 걸었습니다. 실제로 스스로 걷는지...아빠가 도와 주는지....봤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아무런 도움없이 비 바람 몰아치는 백두대간길 18km를 걷더군요.
     여러분!~ 박수 한번 쳐 주세요~ 짝짝짝
     앞으로 제2의 '오 은선'이 탄생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빠 엄마는 '아동학대죄'로 감옥으로 보내고, '희원'이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로 보낼까요? ㅎㅎ
     그 보다는 앞으로 공부등 무슨 일을 해도 모두 잘 해 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용기, 의지, 인내심, 체력......
     '희원'이의 앞날에 '성공의 길'이 환히 비추입니다.

               
               [고남산 정상의 헬기장과 통신탑]

               고남산 정상에는 이동통신중계탑들이 점령하고....


     ['고남산'에서 '매요리'까지 구글어스]

     6. 고남산(4시50분출발)→1시간50분→매요리(6시40분)
     폭풍우까지 겹쳐 지긋지긋하게 지루하고 먼 거리였습니다.

     
     [통안재]

     고남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 오면 포장도로를 만나는데 지도상의 '통안재'인듯...
     이 도로는 고남산 정상까지 연결되 있습니다. 

     
     [매요리로 가는 대간길]

     이러한 길을 약1시간40분 정도 걸어 내려 갑니다.

     
     [매요리 마을 갈림길] 6시 35분

     "매요리"로 내려 가는 사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백두대간 마루금은 여기서 직진해야 하지만, 오늘 산행은 이곳에서 접고....

               
               [매요리 마을 갈림길 이정표]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배경 음악으로 깔았는데 어찌 듣기 좋은가요?

                "바람과 나" 한대수 작사 작곡 노래

                끝 끝없는 - 바람
                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 가는
                아~ 자유의 바람
                저 언덕 위로 물결 같이 춤추던 님
                無名 無實 無感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 볼래 지녀 볼래
                물결 건너 편에
                황혼에 젖은 산 끝 보다도 아름다운
                아~ 나의 님 - 바람
                뭇 느낌 없이 진행하는 시간 따라
                無名 無實 無感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 볼래 지녀 볼래
                하늘 위로 구름 따라
                無目 여행하는 그대 
                인생은 나 인생은 나 
 
     [매요리 마을 골목길]

     마을 골목길을 따라 조금 내려 오면...

     
     [매요리 마을회관 앞] 6시 40분

     매요리 마을회관이 나오고....
     여기서 14.5km 백두대간 2회차 구간을 마감합니다

     
     [매요리 마을회관에서 뒷풀이]

     수고들 하셨습니다.
     다음 구간에서 또 걷자구여~


     ['고기리'에서 '매요리'까지 종합 구글어스]

           1. 총 거리 : 
                    도상거리 : 14.5km
                    실산행거리 : 약18km
           2. 총 산행시간 : 7시간 20분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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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나 - 한대수

             
백두대간 첫구간 성삼재-고리봉-만복대-정령치-큰고리봉-고기리 1. 일시 : 2010년 5월 8일 (토) 2. 날씨 : 맑고 약간의 바람이 있는 좋은 날씨 3. 주최 : 거인산악회 4. 참여인원 : 70여명 [1구간 개념도] "백두대간 첫구간"은 크게 두 구간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1. 성삼재-(30분)-고리봉-(1시간50분)-만복대-(1시간10분)-정령치 12시40분 1시 10분 3시 4시10분 2. 정령치-(30분)-큰고리봉-(1시간30분)-고기리 4시10분 4시40분 6시10분 3. 총산행 거리 : 11.1km 4,총산행시간 : 5시간 30분 [양재역 1번출구 수협앞] 오전 7시 '어버이 날'인 5월8일(토) 이른 아침 7시 양재역 1번 출구 '수협앞' '어버이 날'이면 어버이 다웁게 가족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가꾸는데 정성을 쏟아야 하는데 가족들 내 팽개치고 오로지 자신의 '산 욕심'을 채우기 위한 이기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제법 많이 모여 들었습니다. ㅎ 참가 인원이 많아 버스 두대로 출발합니다. 저는 2호차에 탓습니다.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성삼재"] 오후 12시 30분 오늘은 주말이며 '어버이 날'인 관계로 경부고속도로는 혼잡할수 밖에 없었는데, 설상가상 오산 부근에서 교통사고까지 있어, 5시간 15분이 걸려 지리산 "성삼재"에 도착했습니다.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전라남도 구례군으로 넘어 가는 큰 고개인 "성삼재"는 '백두대간 종주'의 시발점이기도 해서 엄습하는 감회는 자못 전쟁터로 가는 듯 상기되기도 했습니다. ["성삼재" 휴게소] '성삼재'는 智異山 主稜線 등산코스의 주요관문이기도 합니다. 성삼재는 해발 1,090m에 있기 때문에 지리산을 오를때 가장 가깝고 쉬운 '산행 들머리'가 됩니다 아무리 초보 산객도 오를수 있는 곳이기에 많은 관광객들과 함께 북적대는 곳이라 휴게소도 큽니다 ["성삼재" 휴게소 주차장] 성삼재 휴게소에서 南쪽으로 보이는 "노고단 老姑壇(1,507m)"이 지척인것처럼 어서 오라고 손짓합니다만, 우리는 이제부터 北으로 北으로 전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조만간 1박2일로 천왕봉에서 저기 보이는 '노고단'을 거쳐 이곳 '성삼재'까지 종주를 해야 합니다. [단체기념사진] '거인산악회'가 주관하는 "백두대간 종주"에 많은 산객들이 참가했습니다. 이번 '14기 종주팀'은 "당일 산행"을 원칙으로 하고 약간의 무박을 곁들이는 산행으로, 그렇게 힘들지 않아 초보 산객들도 참여 할수 있는 기회이기에 많은 산객들이 모인듯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무박으로 가는 백두대간은 저도 경험 한바 있습니다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깜깜한 밤중에 상당 시간 걷고 또 걸어 하루에 20~30km를 가는 것이기에 그 또한 의미는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오로지 "종주"의 의미와 "체력적 과시"의 의미가 뒤따를 뿐, 결국 밤중에 걷는 것은 눈에 보이는게 없으니 백두대간이 뒷동산과 다름없고, 또한 관절염등 부상의 위험이 엄청나게 따르더군요 ....... "자연 속으로의 여행-즐거운 산행"의 의미는 당연히 없을 것이고, 또한 이왕 가는 우리 국토의 뼈대인 白頭大幹을 깊이 있게 느끼며 공부하며 갈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당일로 가는 백두대간"은 나름대로 여러 의미를 부여 할수 있다고 느끼며 특히 백두대간을 한번 종주는 하고 싶었으나 체력적 두려움으로 미적거렸던 산객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수 없었을 것입니다. [구례군 산동면 당동마을] '성삼재'에서 서쪽을 내려다 보니 "지리산콘도"등 유락시설들이 있는 "전남 구례 당동마을"이 보입니다 해발 1,090m인 백두대간의 '성삼재'가 어느 위치인지 가늠하게 합니다. ['성삼재'에서 '만복대'까지 구글어스] 이해를 돕기 위해 구글어스를 활용합니다. 앞으로 우리들의 산행 괘적은 인공위성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알기 쉽게 제공 됩니다. 경남 함양에서 전남 구례로 넘어 가는 "861번 지방도"가 선명한 '성삼재'에서 뻗어 가는 백두대간이 인상적입니다. [백두대간 산행 들머리] 12시 40분 '성삼재 휴게소'에서 "861번 지방도" 함양방향으로 조금 내려 가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백두대간 들머리"가 좌측으로 나 있습니다. [산행 들머리 이정표] "만복대 5.3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앞으로 2년 이상 격주로 걸어야 할 백두대간의 출발을 알리며 환영한다는 현수막처럼 보입니다. 철죽까지 피었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하지만 첫발을 힘있게 내디딤니다. [뒤돌아 본 산행 들머리와 '성삼재'] 성삼재에서 고리봉으로 가는 둔덕을 올라 뒤 돌아 보니 백두대간 산줄기와 "성삼재"의 모습이 한눈에 잘 들어 옵니다. '지리산 智異山"의 옛 이름은 "두류산 頭流山"이었습니다. 물론 그외에도 여러 이름이 있었습니다만 거의 최근인 조선 말까지도 "두류산 頭流山"으로 불리워져 왔습니다. "頭流山"이라는 글자에서 보는바와 같이 白"頭"山이 흘러"流"와 자리 잡은 것이 "頭流山"이니, 백두대간의 처음과 끝인 것입니다. [헬기장] 12시 46분 마루금을 올라 타 둔덕 하나를 넘으니 '헬기장'이 나왔으며, 가야 할 "고리峰"이 보입니다 첫구간은 한봉우리를 오르면 다음에 가야할 봉우리가 훤히 보여 예측 가능하기에 매우 편안합니다 가도 가도 어디가 어디인지 보이지 않는 곳은 심리적으로 무척 부담이 가지요? 백두대간은 대체로 예측 가능하기에 다른 '정맥 正脈'이나 '지맥 枝脈'보다 심리적 부담이 적습니다 그런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두대간"에 더 심리적 부담을 갖는듯 합니다. "백두대간이라고 다른 유명산과 특별히 다른것은 없다"고 산행대장인 김대장이 얘기한바와 같이 당일 산행일 경우 부담을 더 가질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北進하자구요~! ['고리봉' 오르는 길] "지리산 智異山"은 삼국시대 이전의 삼국시대인 "진한, 마한, 변한"시대부터 각축장이었답니다 서로 남이 일궈놓은 땅을 무력으로 빼앗아 자기 땅을 만들려고 했던 치졸한 우리 선조들이 경멸스럽습니다. 전쟁 할 힘으로 있는 자기 땅이나 잘 개간해서 농경지를 늘려 열심히 노력 해 잘 먹고 잘 살려고 하지 않고 깡패 집단처럼 힘으로 뺏어 살려고 했던 선조들. 물론 너무 척박한 땅에서 살던 선조들이 주로 침략을 했겠지만 화해와 협력으로 살지 않고 끊임없이 싸워 점령만 하려고 한것이 경멸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런것들은 수천년이 흐른 지금도 진행형이지요..... ['고리봉' 오르는 길] "진한, 마한, 변한"시대에서 부터,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이 지역 地名이 생겼다고 하는데...... 옛날 아주 옛날, 진한의 왕은 성삼재 아래 계곡에 있는 "달궁 宮"을 방어하기 위해 서쪽 10리 밖의 嶺에 鄭氏 姓을 가진 장군을 배치 한곳이 "정령치, 鄭嶺峙"이고, 동쪽 20리 밖의 嶺마루에 黃씨 姓을 가진 장군을 파견 한곳이 "황령치, 黃嶺峙"이며, 남쪽 20리 밖의 山嶺에는 姓이 각기 다른 3명의 장군을 보낸 곳이 "성삼재, 姓三재"였다고 합니다. 또한, 북쪽 30리 밖의 높은 산령에는 8명의 젊은 장군"팔랑치, 八郞峙"에 배치해 외적의 침공을 막아냈다고 하여 각각 "정령치, 황령치, 성삼재 , 팔랑치"등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서산대사"가 쓴 글에 나와 있습니다 [고리봉 정상] 1시 10분 '성삼재'에서 약40분 만에 "고리峰"에 오릅니다. 이곳 "고리봉"은 "정령치" 뒤에 있는 "고리봉"과 구별하기 위해 "작은 고리봉"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고리峰"은 한자로 "環峰"이라고 하는데 "고리 環"이니 같은 뜻이지요 아주 옛날에는 남해 바다 하동에서부터 섬진강을 따라 거슬러 '전라북도 남원'의 '오수정'까지 배들이 오르내렸다고 합니다. 오르 내리던 배들을 묶어 놓았던 "고리"가 이 산의 어딘가에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인가 봅니다. 전설적인 이야기이니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고리봉 정상석] 해발 1,248m - 배를 묶어 두는 '고리'가 있었다고 붙여진 이름의 "고리봉" 전설을 얼마나 믿느냐 하는건 순전히 자신의 몫입니다만...제가 예를 하나 들까요 남극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붙어 있던 땅덩어리가 떨어져 아시아 대륙으로 흘러와 헤딩하며 부닥친 땅덩어리가 '인도'이고, 아시아 대륙과 충돌할때 솟아 오른 산맥이 '히말라야 산맥'이며, 8,000m가 넘는 산들로 이루어진 히말라야가 옛날엔 진짜로 바다 바닥이였다는 것은 현대 과학으로 모두 입증된 것이니 "고리봉", "큰고리봉"등의 전설이 결코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리라......ㅎ 전설을 너무 허무맹랑한 것으로만 생각하면 않된다는 주장입니다. ㅎㅎ 믿거나 말거나...그래도 믿어 주세요 ['고리봉 정상'에서 뒤 돌아 본 "성삼재"] 우선 사진의 좌측 맨끝 위에 있는 "노고단 老姑壇"이 눈에 훤히 들어 옵니다. "노고단 老姑壇"은 天神의 딸인 마고할미가 살고 있었는데 지리산 어느 구석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 盤若"를 만나서 결혼한 뒤 천왕봉에 살았답니다. '마고할미'는 슬하에 여덟 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 뒤 '반야'가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바람이 난 것은 아니겠지요?ㅎㅎ)처와 딸들을 뒤로 하고 "반야봉盤若峰"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마고할미'는 백발이 되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남편 '반야'를 기다리며 나무껍질을 벗겨서 道닦으러 갔는지 바람 나 줄행랑 쳤는지 모르는 남편 '반야'를 위해 '반야'의 옷을 지었답니다. 그리고 딸들을 한명 씩 전국 팔도로 내려 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리다 나중에 지쳐 버렸답니다. 성질 무지무지 난 마고할멈. "개쌔이!~ 딸 여덟명씩이나 낳을 정도로 좋을 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붙어 있더니 단물 쓴물 다 빨아 먹고 이제는 맛없다고 줄행랑 쳐서 나몰라라 하고 오지도 않아? 개쌔이~" 그럴만도 하겠지요? 아마 여러분들도 같은 처지였다면 성질 날겁니다. ㅎㅎ 그 후 그래서 마고할멈은 남편을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에 숨을 거두고 만답니다. 이때 갈기갈기 찢겨진 옷은 바람에 날려서 '반야봉'으로 날아가 풍란이 되었다고 하네요 제가 쬐끔 각색을 해서 들려드리는데 잼있나요? ㅎㅎ ['고리봉 정상'에서 뒤 돌아 본 "백두대간"] 이곳은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사진을 확대해서 "백두대간"을 설명드림니다. 사실 '백두대간'의 북진 출발점은 "지리산 천왕봉 天王峰"입니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을 지나 "코재", "종석대"를 거쳐 "성삼재"로 와 이곳 "고리봉'을 거쳐 '백두산'으로 갑니다. 그런데 왜? 첫구간이 "천왕봉"이 아닌 "성삼재"인지 의아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智異山 主稜線의 거리가 일백리, 약45km"나 됩니다. "천왕봉"에서 "성삼재"까지 구간은 하룻밤을 대피소에서 자거나, 2박3일 또는 1박 2일 비박을 하며 진군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코스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다음에 여가 날때 별도로 대피소를 예약하여 제각각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홍어와 무인도팀"은 여름에 날 잡아 함께 종주 할 예정입니다. ['고리봉 정상'에서 바라 본 가야할 "만복대"] '고리봉 정상'에서 앞으로 가야할 "만복대 萬福臺"가 아름답게 조망됩니다. '고리봉'에서 '만복대'까지 대간 마루금에는 철죽과 억새, 산죽들과 희귀 식물들이 자생하고 많은 동물들도 그들의 왕국을 만들며 살아 가고 있답니다. ['고리봉' 헬기장 - 점심식사] 1시 20분 '고리봉' 바로 아래에는 헬기장이 있어 여기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고속도로 교통 정체로 너무 늦게 도착하여 여러모로 불편했습니다 서울에서 보통 아무리 천천히 온다고 해도 4시간반이면 오는데 오늘은 무려 6시간반이 걸렸으니.. ['만복대' 가는 길] 지리산에는 아직도 겨울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진달래, 철죽, 버들강아지 등등은 아직도 눈을 감고 봄을 기다리고 있으며 아주 가끔 성질 급한 들꽃들이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금년엔 봄이 천천히도 오고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앙상한 철죽나무가 활~짜악 만발할때 그 장관은 상상만 해야 합니다. [만복대] 2시 15분 쬐끔만 더 따뜻해지면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려고 하는 철죽들이 굳게 입을 다물고 놈들의 동태만 살피고 있는 "만복대" 가는 마루금--- 한적한듯 육중한듯 따뜻한듯 냉정한듯 산객들을 껴안고 있습니다 ['만복대'로 가는 길에서 뒤돌아본 '고리봉'] '만복대'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지나온 고리봉과 저 멀리 "노고단"이 이별을 아쉬워 하는듯 눈물만 흘리며 눈을 껌벅거리며 한숨 지어며 누워 있는듯합니다. [萬福臺 登路] 聖地를 巡禮하는 巡禮客들이 祭壇을 향해 오르는 듯 萬福臺로 가는 登路가 골고다의 길처럼 하늘로 치솟고 있습니다. 장관입니다. 萬福臺에 오르면 그야말로 萬福이 덩쿨채로 굴러 들어 올것 같습니다. 그래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올라 갑니다. [만복대까지 300m] 2시 54분 휴~ 이제 萬福臺 정상까지 300m 남았군요. '성삼재'에서 약 2시간 10분 정도 걸려 여기까지 5km를 왔으니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못 걸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면 어떡하나~라고 걱정하던 모든 회원님들이 씩씩하게 잘도 걷는 모습을 보니 이때까지 얼마나 엄살을 떨었나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만복대' 오르는 길] 고려 명종 때에 좌간의대부까지 오른 "이인로 李仁老"선생이, 고려 말 무신정권 '정중부의 란'때에 모든 관직을 버리고 두류산으로 들어와 은거하며 살다가 환속하기도 했는데, 그 때 두류산(지리산)에 대해 읊은 詩 한수 들려 드리겠습니다. 두류산이 깊어 저녁구름 나직한데 / 頭流山逈暮雲低 수 많은 계곡과 암봉들이 회계(중국 절강성 일대)와 비슷해라 / 萬壑千巖似會稽 막대를 짚고 청학동(지리산에 있는 신천지)을 찾으려는데 / 策杖欲尋靑鶴洞 건너편 수풀에 흰 원숭이의 울음이 들리네 / 隔林空聽白猿啼 누대는 아득한데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은 멀고 / 樓臺縹渺三山遠 이끼낀 넉자 글씨 아직도 희미하네 / 苔蘚依俙四字題 도원이 어디냐 물어 보렸더니 / 始問仙源何處是 낙화만 흘러 내리어 어딘지 모르겠네 / 落花流水使人迷 [만복대 바윗길] 7,500만년의 풍상을 모두 격고 이젠 완전히 늙어, 암봉들은 흙으로 변해 철저히 肉山인 지리산에도 가끔은 안간 힘을 쏟으며 살아 있는 바위들이 주름살을 잔뜩 찌푸리며 있습니다 만복대 바로 밑에도 정상을 오르는 關門처럼 큰바위들이 움집해 있습니다. [萬福臺 정상] 3시 '성삼재 들머리'에서 점심식사시간을 합쳐 2시간 20분이 걸려 드디어 "萬福臺"정상에 오릅니다. 5.3km를 제법 빠른 속도로 오른것입니다. 초보산객이라고 엄살을 떨며 몸을 사리던 "백두 14기 회원님들"이 모두 한시간에 약2.5km 속도로 "萬福臺"에 올랐으니 비교적 빠른 편입니다. 모두 쎈 사람들인데 너무 겸손을 떨었던것 같습니다. ㅎㅎ [만복대 정상석과 이정표] 높이 1,438.4m 그 명성에 비해서는 정상석이 조금 초라해 보입니다. 이정표 뒤로 펼쳐지는 "정령치"로 가는 대간 마루금이 선명합니다. [萬福臺 정상] 智異山 - 그 똑똑함이 남다르다고 智異山이라고도 한다는데 萬福臺는 智異山이 갖고 있는 모든 福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고 萬福臺라 이름 지어 졌다는 것이니 이곳에 서서 智異山을 바라 보지 않고는 智異山의 아름다움을 볼수 없어 불행할수 있으니 萬福臺는 꼭 올라 "智異山 主稜線"을 감상해야 하는 지리산의 대표 봉우리입니다. ['萬福臺 정상'에서 바라 본 "반야봉"] "반야봉 盤若峰" 앞에서 "노고단 老姑壇"을 설명 할때 언급 한바와 같이 "노고할미"와 결혼해서 딸을 여덟명이나 낳고, 핑개인지 사실인지 몰라도 더 道를 닦아야 겠다고 天王峰에서 도망가 살며 道를 닦았다는 산봉우리가 저 "반야봉 盤若峰"입니다. 그 옛날 저 봉우리에 바람피러 오는 다른 여자들은 없었을 테니 道를 닦으러 갔다고 인정해 주어야 겠지만, 사랑엔 국경도 인정 사정도 없다니 어떤 사랑에 목마른 여자가 올라 갔는지도 모릅니다. 또는 "盤若"는 아직도 그곳에서 道를 닦는다는 핑개로 요즘 수없이 오르고 있는 여성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ㅎㅎ 제가 지어낸 이 이야기를 읽고 '盤若"에게 성폭행 당할것을 우려해 이제부터는 여성들이 저 盤若峰에 올라 가지 않을까요? 아니면 일부러 올라 가는 여인들이 더 많아질까요? ㅎㅎ 후세 사람들은 '盤若"가 佛道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으로 불렀으며, "노고할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딸들은 八道로 내려가 "八道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고.. 그 후 사람들은 반야봉 주변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 것은 하늘이 저승에서나마 '반야'와 '마고할미'가 서로 상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한다는 그런 믿거나 말거나 하는 전설이 전해 지고 있습니다. ㅎㅎ ['만복대'에서 '정령치'까지 구글어스] 다시 "만복대"에서 "정령치"까지 구글어스를 보여 드림니다. 매우 평이한 길이란 것을 알수 있습니다. ['정령치'로 가는 길] 高度가 낮아지니 할짝 핀 진달래인지 철죽인지 붉은 꽃들이 볼것없는 산길을 밝히고 버들강아지도 가끔 보이기 시작합니다. [전라남북도 갈림봉] 3시 40분 ★길 주의 ★ '만복대' 정상에서 30분 정도 휴식을 취하며 사진도 찍어 주고.... 그리고 "전라남북도 갈림봉"에 오니 3시 40분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길을 조심해야하는데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전라남북도 갈림봉 정상] 특별한 것은 없는 전라남북도 갈림봉입니다. '성삼재'에서 여기까지는 전라남도 였습니다만 이제부터 전라북도로 들어 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전라도에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백두대간'의 남쪽 구간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는 線이 '백두대간"이라고 생각 할것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낙동강"은 경상도에 흐르고, 금강이나 섬진강은 전라도에만 흐른다고 고정 관념에 사로 잡혀 있을 것이고, 더더욱 고정관념이 아니라 상식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일것입니다 . 그러나 경상도와 전라도의 행정구역 경계선과 "백두대간"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낙동강이 전라도에 흐르고 있으며, 섬진강은 경상도의 하동으로 흘러갑니다 전라도에 낙동강이 실제 흐르고 있고, "백두대간"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선-道界를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전라남도 구례군을 관통하고 다시 전라북도 남원시를 관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현대인들이...특히 등산을 하는 열성 산객들이 오로지 "여암 신경준선생"이 쓴 "山經表" 제작의 기본 원칙인 "山自分水嶺"에 입각해 마루금을 그어 산행하면서 부터 자연적으로 발생된 일이라 생각됩니다.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과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인월면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백두대간"은 이 물길을 피해 전라도 내륙을 관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지도는 백두대간과 관계없이 사람들의 왕래와 생활 관습, 풍습, 언어 생활권을 토대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道界를 만들었으니 "山經表 원칙"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듯합니다. [전라남북도 갈림봉 정상'에서 내려다 본 "전북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가 보입니다. "백두대간"은 대간 다웁지 않게 저 "고기리"를 아슬아슬하게 절묘한 방법으로 관통해서 건너편에 보이는 "수정봉", "여원치", "매요리"로 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첫구간을 저 "고기리 삼거리"에서 끊고, 제2구간을 다시 저곳에서 건너편에 보이는 "남원시 운봉읍" 속으로 물길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山自分水嶺"의 원칙을 지키며 北으로 올라 가야 합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백두대간"에서 마루금이 가장 희미한 곳입니다. 그 이유는 낙동강이 전라도 깊숙이 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전라남북도 갈림봉 정상'에서 바라 본 "큰고리봉"] 오늘 산행에서 마지막으로 올라야 하는 "큰고리봉"이 다가 옵니다. 하지만 가운데 "정령치"를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야 하니 마지막 힘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중요한것은 "백두대간"이 저 "큰고리봉"에서 좌측 능선으로 내려 간다는 것입니다. 느낌으로는 "세걸산", "바래봉", "팔랑치"로 직진 해야 할듯 싶지만, 그곳에는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이 앞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여기서 봐야 "백두대간"길을 정확히 알수 있어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정령치' 가는 길] 정령치 가는 길 파란문 "정령치" 가는 길에도 설악의 느낌이 오는 암릉길이 있구나 이제 피려고 하는 풋풋한 꽃내음이 흐드러지려 하는데 지리산 어느 구석 구석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모두 벗어 내고 사랑으로만 가득한 마음으로 도란도란 사랑 이야기 나누며 세상과 소통하며 대자연 속으로 여행을 하며 그리운 님들과 함께 살고 싶어라 [산불감시탑] 4시 "정령치"를 앞두고 산불감시탑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정령치"까지는 5~6분 정도 걸림니다 [산불 감시탑에서 정령치로 내려 가는 계단] 옛날엔 가파랐던 정령치 내려 가는 길이 이제는 계단으로 단장되 있습니다. '정령치' 내려 가는 비탈길도 "참~쉽지요 이-잉" [정령치 휴게소] '진한"의 왕이 "달궁"을 지키도록 "鄭氏" 姓을 가진 장군을 파견해 城을 쌓고 방어를 했다는 "정령치 鄭嶺峙"가 나타납니다. "姓三재"와 함께 지리산을 조망하기 좋은 위치에 있는 鄭嶺峙는 "달궁계곡"을 지키는 요새 였을 것입니다. "큰고리봉"으로 올라 가는 능선에 아직도 그 옛날 山城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휴게소 뒤로 "큰고리봉"이 인상적입니다. [정령치] 4시 10분 "鄭嶺峙"는 요즘 환경보호단체들로부터 집중 공격 대상이 되고 있더군요. 이곳에 이렇게 자동차 도로를 내서 동물들의 이동 통로가 막혀 생태계에 많은 악영향을 준다고..... 하지만 관광객들에겐 환영 받을 것이고..... "반야봉"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 옵니다 ['정령치 휴게소'에서 바라 보는 "智異山"] "鄭嶺峙 휴게소"에서 바라 보는 지리산 주능선----- 한눈에 볼수 있습니다 다음 사진에서 지리산 주능선에 대해 자세히 설명 드림니다. ['정령치 휴게소'에서 바라 보는 "智異山"] 智異山 主稜線을 한눈에 볼수 있는 곳은 이곳이 최고가 아니겠는가 생각 됩니다. 智異山 主稜線의 거리가 일백리, 즉 약45km정도되니 한눈에 보기가 어렵습니다만 이곳에서 대부분이 보인다는 것은 이곳의 地勢가 좋다는 것입니다. ['정령치 휴게소'에서 내려다 본 "고기리"] "정령치"에서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를 내려 다 보면, 우측에 "큰고리봉"에서 "고기리"로 내리 뻗은 조그만 산줄기가 "백두대간"입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가운데 저수지를 포함한 물줄기는 섬진강으로 흘러가고 바로 옆 조그만 산줄기인 "백두대간" 우측의 물줄기는 "낙동강"으로 흘러 갑니다. 이렇게 낙동강은 전라도 깊숙히 들어 와 있으며 이 낙동강 줄기 때문에 "백두대간"은 아슬아슬하게 희미한 마루금을 만들며 전라북도 남원시를 관통하며 빙~둘러 가는 것입니다. ['정령치 휴게소'에서 올려다 본 "큰고리봉"] "백두대간"이 "고기리"로 급낙하 하는 기점이 되는 "큰고리봉"이 800m앞에 솟아 있습니다 ['정령치 휴게소' 의 "큰고리봉 입구"에 있는 이정표] 4시 20분 지리산 바래봉의 철죽은 매우 유명합니다. 하지만 다음주 쯤에 만개 할듯하고 이곳은 5월 하순은 되어야 될듯.... ['정령치'에서 '고기리'까지 구글어스] "정령치"에서 "큰고리봉"을 지나 "고기리"까지 구글어스입니다. "백두대간"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 드리지만 "큰고리봉"에선 길 조심을 해야 합니다. ['큰고리봉' 중턱에서 뒤돌아 본 "정령치"] 햐~ 아름답습니다. 저의 글 솜씨로는 표현할수가 없군요. 그래서 조선 중기의 유명한 문신이었던 "기대승 奇大升"선생이 지은 "두류산을 떠나며"라는 漢詩를 번안하여 들려 드리겟씁니다. 別頭流山 기대승 奇大升 아름답고 맑은 산 여기에 궁진하니 / 扶輿淸淑此焉窮 광대한 두류산 기세가 웅장코나 / 磅礴頭流氣勢雄 만고토록 하늘에 비껴 볼수록 망망하고 / 萬古橫天瞻莽莽 삼재가 북극에 조공하니 우러를수록 높도다 / 三才拱極仰崇崇 원기가 굳게 보호하니 퍼지다 도로 뭉치고 / 元精固護張猶翕 잠긴 혜택 유행하여 느끼면 통하누나 / 潛澤流行感卽通 많은 사람 왕래하여 끊임없으니 / 多少往來人不盡 충융을 비장한 영경이 되려 부끄럽네 / 却慙靈境秘冲融 ['큰고리봉'으로 오르는 길] "白頭大幹"을 한마디로 표현 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이 땅의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 그것이 백두대간입니다. 다른 말로 비유하자면 "뿌리를 백두산 ‘하늘연못’에 두고 지리산을 꽃피운 한 그루 커다란 나무"가 바로 백두대간입니다 ['큰고리봉' 바위들] "만복대"와 같이 산 정상 부근에는 바위군들이 안간 힘을 쏟으며 살아 남아 있습니다. 7,500만년의 풍상을 이겨내고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늙은 바위들입니다. [큰고리봉 정상] 4시 40분 해발 1,305m높이의 "고리봉"은 성삼재 앞에 있는 1,248m의 고리봉과 구별하기 위해 "큰고리봉"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산도 아주 옛날 어느 곳엔가 하동에서부터 남원으로 올라 오는 배를 묶어두던 고리가 있엇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큰고리봉 정상 이정표] ★길 주의 ★ 이곳에서 "바래봉" 방향으로 가면 절대 않됩니다. 느낌 같아서는 "바래봉"방향이 백두대간 같지만, 백두대간은 "고기리"로 내려 갑니다. ['큰고리봉' 정상에서 뒤 돌아본 "만복대"] '큰고리봉' 정상에서 다시 한번 '정령치"와 '만복대"를 뒤돌아 보고 이제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약없는 이별을 합니다. "지리산아 잘있거라." ['큰고리봉'에서 '고기리'로 하산하는 길] '큰고리봉' 정상에서 "고기리"까지는 급경사 내리막입니다. 그리고 거리도 제법 멀어 약1시간 정도 걸림니다. ['고기리 삼거리'로 내려 가는 데크] '고기리' 근처에는 급경사를 계단으로 보완해 놨습니다. [고기리 삼거리] 6시 10분 "성삼재"에서 약5시간 30분이 걸려 "고기리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도상거리 11.1km [고기리 삼거리 이정표] "고기리 삼거리"는 "정령치"로 올라 가는 길과 "남원시내"로 들어 가는 삼거리였습니다. [祭堂] '고기리 삼거리에서 계곡쪽으로 '祭堂'이 있고, 그 윗쪽 공터에서 "山神祭"를 지낼 준비를 하고 있어 올라 갔습니다. [14기 山神祭] 이번에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제14기 회원님들의 무사 완주를 기원하는 "山神祭"를 지냅니다. 거인산악회에서 정성드려 준비한 음식들을 앞에 놓고 祭禮를 드림니다 [14기 山神祭] 여러분들의 동반자 '파란문'도 기원합니다. "14기 여러분들이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을 하며, 백두대간을 완주 하시기를..." [최연소 참가자] 이번 백두대간 종주에 참가한 최연소 참가자 "이 주형"군과 아빠입니다. '이 주형'군은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체력적으로 염려되어 참여 못하고 계시는 분들은 용기를 가져도 좋겠지요?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도 참가하여 당당히 첫구간을 완주했는데..... [최고령 참가자] 이번 백두대간 종주에는 또한 최고령 참가자도 있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 나이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볼때는 자랑스런 어르신이라 소개해 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금년에 7학년 4반 이시라는 "김원기 선생님"입니다. 4~5십대 젊으신 분들은 이제 핑개꺼리가 없어졌죠? 힘들어도 표정 지으면 않되겠죠? ㅎㅎ 함께하신 14기 여러분들 만나서 함께 대자연 속으로 여행을 함께 할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5월 22일(토) 두번째 구간에서 다시 만날때엔 더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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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嶽山 恐龍稜線 遊山記 소공원주차장-비선대-금강문-마등령- 恐龍稜線(나한봉-큰새봉-1,275m봉-노인봉-1,184m봉-신선봉)- 무너미고개-희운각-천불동계곡-비선대-소공원주차장 "설악산" "'한가위'에 내리기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서야 사라지기 때문에 雪嶽이라 한다" -동국여지승람- 그저 학창시절 수학여행으로 비선대 울산바위를 다녀 왔으면서 설악산을 가 보았다고 말할수 있을까~ 많은 경비를 들여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설악산을 올라보고 가는가~ 우리의 山河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깊어 가는 가을에 雪嶽山 恐龍稜線으로 '파란문'과 함께 가 볼까요? [산행 개념도] 개념도 맨 아래 '주차장'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이 주차장으로 돌아 옵니다. '소공원'을 지나 '신흥사' 그리고 "비선대"에 도착합니다 "비선대"에서 오른쪽 "금강굴"쪽으로 올라 "마등령"으로 갑니다. 그리고 恐龍稜線을 탑니다. 恐龍稜線을 타고난 후에는 "무너미고개"에서 "천불동 계곡"을 거닐며 하산하여 다시 "비선대"로 와 소공원 주차장으로 돌아 옵니다 [경기도 광주의 어느 한정식집] 10월23일(금) 오전 11시 50분에 양재동 서초구청과 외교안보연구원 사이의 골목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경기도 광주 한강변 어느 한정식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속초로 출발하였습니다. 雪嶽山 恐龍稜線을 산행하는것이 주목적이지만, 이런 여행도 즐거운 일이라 부러움을 느끼시라고 7,000원짜리 한정식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ㅎㅎ [속초 한화콘도] 광주의 한정식집에서 두어시간 걸려 오후 4시경에 속초 한화콘도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내일 아침 일찍 雪嶽山 恐龍稜線으로 가려고 합니다. [속초 한화콘도] 한화콘도에 책크인을 하고 잡은 객실에서 바라보이는 동해 바다와 한화프라쟈 골프장. 옛날에 자치기하러 이곳에 자주 왔었는데, 이제는 산행을 하기 위해 왔습니다. [속초 동명항 앞바다] 시간이 많이 남아 속초 동명항으로 나갔습니다. 이곳까지 왔으니 동해 바닷바람 냄새는 맡아보고 가야지요 [속초 동명항 회센타] 얼마전까지만해도 동명항의 방파제 앞에는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난전이 있었는데 이제는 깨끗하게 정리 정돈이 되고, 대신에 현대식 회센타 건물이 보시는 바와 같이 거창하게 세워졌습니다. 저는 저곳에 가서 들어 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상점 주인들의 "호객행위"가 도를 넘어 회를 사 먹어 주고 싶은 마음이 싸~ㄱ 없어지고, 짜증만 나 그냥 나왔습니다. 옛날 창녀촌에서 창녀들이 호객행위를 하는것 보다 더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나와 주차장 입구쪽 방파제 위에서 해녀 할머니가 파는 멍개만 조금 사들고 콘도로 돌아 왔습니다 콘도에서 준비해온 고기를 구워 저녁식사와 함께 한잔하고 일찍 잠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누구나 그렇듯 이런 힘든 큰 행사가 있는 전날밤에는 깊은 잠을 못자지요? 23km나 되는 공룡능선을 가서 힘든것보다 잠을 설쳐서 피곤한게 더 문제이지요. ㅎㅎ [산행 출발] 새벽 4시에 일어나 산행 채비를 차리고 콘도를 4시 30분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24시간 영업을 하는 "옥돌 순두부"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설악동 주차장에 5시 15분에 도착했습니다. 화장실등 용무를 마치고 5시 25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아직도 깜깜한 밤중입니다. *옥돌 순두부집 : 한화콘도에서 설악동 가는 길로 약500m쯤 가면 오른쪽에 있음 [신흥사 정문] 신흥사 정문을 통과하며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되돌아 올것을 다짐합니다. '비선대' 지나 금강굴 입구까지 깜깜한 밤이라 사진이 없습니다. [금강굴 입구 - 장군봉] '비선대 갈림길"을 6시 5분에 통과하여, 6시 30분쯤 "금강굴 입구"에 올라 가니 그때서야 날이 밝아오기 시작합니다 "금강굴"이 장군봉 중턱에 뚤려있습니다. 오른쪽은 "금강굴"로 올라 가는 길이고, "마등령"은 왼쪽으로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 옆구리를 오르며...]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 옆구리로 치고 오르며 뒤 돌아 보니 "권금성"이 보입니다.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 옆구리를 오르며...] 왼쪽 능선으로는 벌써부터 설악산이 "악산 岳山"이라는 걸 보여 줍니다. 절묘한 조각품같은 奇岩怪石들이 눈을 즐겁게 합니다.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 옆구리를 오르며...] 날이 많이 밝아 오기 시작합니다만 雲霧로 日出을 보지 못했습니다. 비선대 계곡으로 내려다 보는데 단풍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해발 700m 정도 까지만 단풍이 조금 남아 있고 그 이상에는 이미 겨울로 가고 있었습니다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 옆구리 고개] '비선대'에서 앞에 보이는 고개까지가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된비알이었습니다. '비선대'에서 저곳까지가 700m이었는데, 50분이 걸렸습니다. 알고 봤더니 이곳까지 오르는 코스 이외에는 앞으로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등령"까지는 줄기차게 오르막이었으니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 옆구리 쉼터-이정표] 6시 55분에 장군봉 옆 고개 쉼터에 올랐습니다. '비선대' 700m, '마등령' 2.8km를 알려 줍니다. '비선대'에서 50분, 주차장에서는 1시간 30분 걸렸습니다.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 고갯마루 쉼터에서는 '장군봉' 정상이 매우 가깝습니다 '장군봉'은 암벽타기를 하는 곳입니다만, 이곳에서는 쉽게 장군봉을 오를수 있겠습니다 이 岩峰의 중간에 "금강굴"이 있습니다. [장군봉 쉼터에서 내려다 본 '천불동 계곡'] 고갯마루 쉼터에서 내려다 보는 "千佛洞 계곡". 날이 더욱 밝아졌습니다 계곡 건너편의 능선이 그 유명한 "화채능선 華彩稜線"입니다. 지금은 자연휴식년제로 들어 갈수 없는 곳입니다. 오른쪽 능선이 "恐龍稜線"의 "노인봉"에서 뻗어 내려오는 능선인데 이 능선에 유명한 "天花臺"가 있습니다. [장군봉 쉼터에서 보이는 우측 수직절리 - 책바위] 垂直節理 柱狀節理는 무등산의 입석대, 서석대, 광석대로 대표되는 기둥 모양으로 생긴 돌기둥에 금이 가 짤려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곳의 垂直節理는 기둥모양은 아니지만 柱狀節理와 비슷한 개념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柱狀節理는 화산활동으로 용암이 분출되어 나오다 갑작스런 냉각으로 균열이 일어나 만들어지지만 垂直節理는 수없는 세월동안 비바람과 작렬하는 태양볕과 寒波로 풍화된 것입니다. [장군봉 쉼터에서 '마등령'으로 오르는 길] 너덜 길을 치고 오릅니다. 나무들은 옷을 벗고 단풍닢은 점점 사라져 갑니다. ['세존봉'으로 가는 쉼터에서 내려다 본 설악동 소공원과 우측 '권금성'] 해발 800m쯤 오르니 나뭇닢은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들만 보이기 시작합니다. 좌측 계곡이 신흥사가 있는 설악동 소공원이 있는 곳이고, 우측 가운데에 보이는 암봉이 케이블-카가 다니는 "권금성"입니다. 대한민국 성인이면 대부분 "권금성 權金城"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가 보았을 것입니다. "설악산 화채능선"의 끝 봉우리입니다. "권금성 權金城"은 權氏와 金씨가 城을 쌓았다고 붙여진 이름이죠? ['세존봉'으로 가는 쉼터에서 바라본 '화채능선'] "화채능선 華彩稜線"이 "권금성 權金城" 위로 길게 뻗어 있습니다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 자연휴식연제로 출입이 제한되고 있는데도 "화채능선 華彩稜線"을 몰래 '토왕성 폭포' 옆으로 산행을 하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저도 언젠가 "화채능선 華彩稜線"을 종주 할것입니다. 가운데 암봉 위에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 소나무 ! 아~! 어떻게 저런 불모지에서 생명을 유지할수 있을까 존경스럽습니다 ['세존봉' 오르는 길] '비선대'에서 '마등령'으로 오르는 登路는 비교적 잘 정비되 있습니다. 그리고 외줄기 임으로 갈림길이 없어 오직 한길만 따라 가면 "마등령"입니다.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습니다. [외국인 연수생들] 상당히 많은 외국인들이 벌써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 저것 물어 보았지요. "어디서 온 사람들이냐?" "세계 각국에서 모인 젊은이들이다. 미국, 카나다,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 "그런데 언제 어디로 올랐기에 왜 벌써 내려 오느냐?" "새벽 3시 30분에 설악동에서 어디가 어디인줄 모르고 올라 갔다가 내려 오는 중이다" "ㅎㅎ 그건 산행이 아니고 고생 아니냐? 깜깜한 밤중에 올랐다가 이제 해가 뜨는데, 이제 볼게 많아지는데 내려 오면 뭣하러 올랐느냐?" "스케줄이 타이트해서 집행부에서 그렇게 계획을 짰나보다. 아쉽다. 그래도 아름답다" "다음에 다시 한국을 찾을 때에는 등산준비를 갖춰 와서 진정한 설악산 등산을 해라" "그런 기회를 꼭 만들고 싶다. 감사하다. 즐거운 시간 되길 바란다" "알차고 행복한 한국에서의 시간을 갖기 바란다" [새바위 고개 오르는 길] "새바위"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볼때는 "새바위 모양"으로 보여 그냥 이름 붙였습니다. 저 고갯마루에 있는 바위를 가리킵니다. 이런 작은 고개가 몇개 있습니다. [새바위] 새처럼 보이십니까? 아니라구요? 그럼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저도 나름대로 붙인것이니까요 왜 이름을 붙일려고 하느냐하면 저 고개부터 대망의 "恐龍稜線"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공룡능선이 보이기 시작] '새바위 고개'를 넘어 서니 이제서야 "공룡능선 恐龍稜線"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오늘 최고로 아쉬운 점이 雲霧로 시야가 트이지 않아서 깨끗한 사진을 찍을수 없었고, 특히 원거리 정경은 거의 찍지 못해 아쉬움을 더했습니다. 그러나 나름 최선을 다해 촬영했으나.....언제 다시 올것인가~! [세존봉] '새바위 고개'를 넘어 전진하니 "세존봉"이 우측에 보입니다. 어느 지도상에는 "진대봉"이라고 표기해 놨더군요 높이는 1,025m입니다. [공룡능선] '마등령'으로 오르는 登路에는 크고 작은 고개가 몇개 있습니다. 고개 고개 마다 전망을 할수 있는 전망대가 있으며 쉼터로 이용하기에도 적합해서 크게 힘든줄 모르며 오를수 있어 좋았습니다. 恐龍이 수억~수천만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벌덕 일어나 장엄하게 다가 올듯합니다. [세존봉 아래 안부] "세존봉' 아래 이정표에 오면 이젠 한숨 돌려도 됩니다. 그리고 펼쳐지는 恐龍稜線을 감상하다 보면 힘든 줄 모르며 '마등령'까지 올라 갈수 있습니다 [恐龍稜線] 아!~ 恐龍稜線 ! 雪嶽속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恐龍 수억년의 영겁을 벗고 이제 나에게로 다가 오는구나 오늘 나와 함께 달콤한 입맞춤으로 즐거운 하루를 보내자꾸나~! 오른쪽 큰 봉우리가 "큰새봉", 그리고 "1,275m봉" 좌측으로 뾰쪽뾰쪽한 "天花臺"가 "하늘꽃" 모양을 하고 반깁니다 [恐龍稜線] 恐龍稜線의 우측 '마등령'방향을 올려다 보며 사진 찰영을 했습니다 [금강문 오르는 길] "金剛門"으로 오르는 登路도 조금 가파랐습니다 하지만 恐龍을 배알할 욕심에 힘든줄 모르고 올랐습니다. [금강문] "金剛門"은 저 바위 사잇길입니다. '비선대'에서 '마등령'을 오르는 등로에서는 유명한 地名입니다. [金剛門] "金剛門"에 왔습니다. 제법 門같은 느낌을 줍니다 양쪽에 四天王이 守門을 하고 있는듯합니다. [金剛門에서 바라 보는 '마등령'] "金剛門"에서 '마등령'을 올려다 보는데 안개와 구름이 더 몰려왔습니다 날씨가 맑았으면 저도 좋고 애독자들도 좋았을텐데..... "金剛門"에서 "마등령"은 지척이었습니다. [뒤 돌아 본 金剛門] "金剛門"을 나와 '마등령'으로 오르며 뒤 돌아 봤습니다. 사진에는 평지로 나오는데 "金剛門"에서 밑으로 쑥 내려갔다가 올라옵니다 등산로는 아주 잘 정비되 있습니다. [金剛門 위 전망대 오르는 계단]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이듯 정상부근이 다가오면 더욱 가파라지기 시작합니다 "金剛門"에서 '마등령' 사이에는 "전망대"가 설치되 있습니다 [金剛門 위 전망대] 전망대에 왔는데.... [金剛門 위 전망대] 지도가 동서남북을 잘못 계산해 설치를 해서 한참 들여다 봐야 위치를 파악할수 있더군요 [金剛門 위 전망대] 雲霧가 엄습해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까 "金剛門" 아랫고개에서 "恐龍稜線"을 촬여하지 못했다면 천추의 한을 남길뻔 했습니다. 이렇듯 설악산의 날씨는 변심한 여인네처럼...... ['마등령' 오르는 길] 철계단을 따라 '마등령'을 오릅니다 ['마등령'을 오르며 뒤돌아 본 '전망대'와 '금강문'] '마등령' 오르는 철계단에서 뒤돌아 보니, 조금전 전망대 안내판이 보이고, 그 뒤로 "金剛門"이 안개 속에 신비하게 보입니다. ['마등령' 오르는 마지막 계단] '마등령' 오르는 마지막 계단. 이 계단의 끝이 "마등령 정상"입니다. ['마등령' 정상] "마등령" 정상에 올랐습니다. 9시 25분에 올랐으니, 비선대에서 3시간 20분이 걸렸고, 주차장에서 4시간정도 걸렸습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국토의 정기가 흐르는 "백두대간 白頭大幹"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미시령방향 백두대간 마루금은 자연보호를 위해 길을 막아놨습니다 무단침입하면 벌금이 50만원입니다. ['마등령' 정상에 있는 이정표와 안내도] '마등령'은 1,320m높이에 있으며 "말등"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마등령' 정상] '말등"처럼 생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앞의 말등바위에 올라가 '마등령' 안부를 촬영했습니다 멀게만 느껴지고 미지의 세계같던 '마등령'은 이렇게 우리 곁에 다가 왔습니다 힘들게 오른것에 비하면 초라하지요. 이곳에서 약25분정도 쉬고 9시 50분에 출발했습니다. [공룡능선과 '오세암' 갈림길] '마등령 정상"에서 공룡능선을 가려면 직진하여 넓은 길을 따라 200m쯤 가야합니다. 그러면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은 "공룡능선-오세암" 갈림길 안부가 나옵니다 오른쪽이 "오세암" 가는 길이고, 왼쪽이 "공룡능선" 가는 길입니다. ['공룡능선' '오세암' 이정표] [공룡능선 입구] "공룡능선"은 오른쪽 "희운각 대피소" 방향으로 가며, 여기서 부터 "恐龍稜線"이 시작됩니다. [공룡능선 입구에서 내려다 본 "금강문"] 雲霧때문에 먼곳은 조망이 되지 않습니다. 다행이 "金剛門"은 잘 보입니다. '비선대'에서 '마등령'까지 오르는 산줄기와 "천화대" 산줄기 사이 계곡이 "설악골 계곡"입니다. [恐龍稜線 속으로 출발] 恐龍稜線으로 출발하는데 ......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어린이처럼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의 접근은 어렵다고 하던 恐龍稜線은 어떤 모습을 하고 기다리고 있을까 오늘 구름과 안개가 쉽게 恐龍稜線을 보여 주지 않을듯해 걱정도 하며 恐龍稜線 속으로 들어 갑니다 [나한봉] 恐龍稜線으로 들어 서면 첫번째 큰 봉우리가 "나한봉"입니다. "나한봉"은 1,246m높이이지만 '오세암' 갈림길의 해발이 1,240m쯤되니 "나한봉" 오르는것은 간단합니다. "나한"은 인도의 옛글자 산스크리트語로 부처의 16 제자를 일컷는 말이지요 [시루떡 바위] "나한봉"의 옆구리를 돌아 바위를 넘어 가서 뒤돌아 보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바위가 나타는데 꼭 시루떡을 올려 놓은듯해서 제가 '시루떡 바위'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이 그냥 지나치는데 꼭 뒤돌아 보아야 볼수 있습니다. [나한봉 옆구리 통과] 만약 "나한봉" 정상을 넘어 간다면 갈수 가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봉우리는 옆구리를 통해 갈수 있도록 고속도로를 만들어놔서 누구나 쉽게 갈수 있었습니다. 잘한 일인지....못한 일인지..... 산을 좀 탄다는 사람들은 접근 할수 있는 자격있는 산꾼들을 위해 "공룡능선" 만큼은 자연상태를 유지 해 놔야 한다고 하고, 산꾼이 아닌 일반인들은 누구나 쉽게 접근해 감상할수 있도록 이렇게 길을 잘 만들어 놔야 한다고 할것입니다. [이름을 알수 없는 봉우리] '나한봉' 옆구리를 지나가면 끝임없이 다가오는 岩峰과 奇岩怪石 이렇게 공룡의 등지느르미처럼 울퉁불퉁, 삐쭉 빼쭉 암릉은 계속됩니다 [뒤돌아 본 '나한봉'] '나한봉'을 지나와 이름을 알수 없는 다음봉우리에서 뒤돌아 본 "나한봉". 대머리 밑에 나무를 만나는 옆구리를 돌아 왔습니다. "공룡능선"은 많은 봉우리를 올랐다가 내려가고 내려갔다간 다시 오르고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큰 봉우리는 6개입니다. "나한봉", "큰새봉", "1,275m봉", "노인봉", "1,184m봉", "신선봉" 사이 사이에 작은 봉우리는 많이 있습니다. [무명봉 옆구리를 통과하며 뒤 돌아 본 '나한봉'] 오르락 내리락 하며 전진합니다. 그리곤 뒤돌아 보고... 공룡능선에선 수억년의 풍화작용을 거친 기괴한 암석 구경에 관심을 가지며 산행을 해야 후회가 없습니다. [무명봉 앞으로 보이는 恐龍稜線] 작은 공룡의 지느르미는 수없이 많습니다 [급경사 내리막] 봉우리를 오르면 반드시 급경사 내리막이 있습니다. 산객들이 많을때엔 이런 곳에서 병목현상이 나타납니다. [恐龍 지느러미] 거대한 공룡은 두발로 보행이 가능했다고 하죠? 육중한 몸을 두발로 성큼성큼 걸어 다녔다고하는데 공룡은 영어로 'dinosaur'라고하는데 "무서운 도마뱀"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지요 지금의 도마뱀은 두발로 걷지 못하지만, 거대한 몸집의 옛날 공룡은 두발로 걸었다니.... [恐龍稜線 길] 성능이 미약한 디카로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모두 표현 한다는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좋은 카메라를 사고 싶긴한데 무거워서 산행하기에 거북하고...비싸고 [큰새봉] 구름을 뚤고 神秘하게 "큰새봉"이 다가 옵니다. 1,278m높이의 이 봉우리는 큰 새를 닮았다고 "큰새봉"이라 한답니다 恐龍稜線은 '백두대간' 마루금입니다. 그리고 속초시와 인제군을 가르는 경계선 역활을 하며, 설악산을 '내설악'과 '외설악'으로 구분짓는 역활도 합니다. [奇岩] 설악산은 6천5백만년 이전, 중생대 말경 지층변화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이후 눈과 비, 바람과 햇빛에 시달리면서 독특한 모양을 만들어 왔다고합니다 설악산도 늙은 산이죠 [큰새봉] '큰새봉'이 다가 옵니다. 雲霧 속으로 보이는 모습이 더욱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큰새봉 옆 통과] '큰새봉' 옆구리로 지나갑니다. 이곳을 지나 갈때는 이곳이 어디인지도 몰랐습니다. 온통 쏱아질듯한 바위들 밑으로 오르고 내려가고를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큰새봉'] '큰새봉' 정상부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세월의 부침이 느껴지시나요? ['큰새봉' 아래 이정표] 恐龍稜線 5.1km중에 이제 1.1km와서, 앞으로 희운각까지 4.km가 남았습니다 '마등령'에서 여기까지 30분이 걸렸습니다 [恐龍稜線 길] 恐龍은 지구 역사에서 중간쯤에 해당하는 중생대의 '주라기'와 '백악기'에 주로 서식했다지요 "중생대" 그러니까 약2억 2,500만년전~6,500만년전 사이 동안 번성한 육상동물로 중생대 끝무렵에 지구와 행성의 대충돌로 멸종한 대형파충류(大型爬蟲類)의 무리라고 하지요 [恐龍稜線] '중생대 말'에 지구에 생존하던 식물과 동물이 멸종상태에 이른 원인은 아직도 연구중이지만, 지구에 행성이 떨어져 대충돌이 일어나, 먼지와 높은 온도로 지구의 기후가 완전히 바뀌어 멸종되었다는것이 일반적인 학설입니다. [恐龍稜線에서 유일하게 흙을 볼수있는 쉼터] 恐龍稜線은 거의 대부분 암석으로 이루어져있어 흙을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神秘한 岩峰] 그런데 어느 학자들은 지구 생물의 멸종이 매2,600만년마다 한번씩 일어 났다고 주장합니다. 우주의 대이변은 찰라를 살다가는 우리로서는 크게 관심 가질 필요는 없겠지요 갈때 가더라도 오늘은 아름다운 공룡능선을 즐기자!~ [奇怪한 바위] "큰새봉"에서 "1,275m봉"까지 능선이 "공룡"의 진면목을 보여 줍니다 ["1,275m봉" 가는 恐龍稜線 길]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恐龍 ["1,275m봉" 가는 恐龍稜線 길] 雲霧까지 끼어 恐龍은 더욱 신비롭게 다가 옵니다. ["1,275m봉" 가는 恐龍稜線 길] 산행길은 정말 고속도로였습니다. 산행코스의 길이가 약23km로 길어서 다소 문제이지만, '비선대'에서 '마등령'만 오르면, 恐龍稜線은 무시무시한 길이 아니라 高速道路여서 누구나 걸을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조금만 큰마음 먹으면 "恐龍稜線"을 정복할수 있겠습니다. 여러분 ~! 도전하십시요. ["1,275m봉" 가는 恐龍稜線 길] 이런 구경은 직접해야 묘미를 느낄수 있습니다 북한산 의상봉 코스를 오를수 있는 능력의 산객이라면, 충분히 恐龍稜線을 오를수 있습니다. 아~! 이런 구경 직접하고 싶지 않으세요? ["1,275m봉" 가는 길에 있는 神秘한 岩峰] 恐龍稜線길은 산봉우리를 오르내리지는 않습니다. 일반인들은 올라 갈수도 없습니다. 친절하게 거의 모든 봉우리는 옆구리를 우회하도록 만들어져 있어 쉽다는 것입니다. 물론 몇개 구간은 급경사를 오르 내려야 합니다만..... 전체적으론 "북한산 주능선" 정도 이라 생각됩니다. 길이 정비되기 전에는 일반인들의 접근이 매우 어려웠던 곳이랍니다 [시루떡 岩峰] 평생을 먹어도 못먹을 시루떡 ["1,275m봉" 가는 恐龍稜線 길] 이렇게 고속도로를 달려가니 금세 "1,275m봉 고갯마루"가 다가 옵니다. 사진의 좌측 암봉이 "1,275m봉"의 일부 입니다. 거대하지요. "1,275m봉"은 恐龍稜線의 핵심 봉우리입니다. 그런데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이 없는 이유를 제가 여러곳을 조사해 보았는데, 확정적인것은 없었지만 이런 說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1,275m봉"은 恐龍稜線의 핵심이어서 그 중요함과 아름다움을 그 어느 이름으로도 표현 할수가 없어 이름을 짖지 않고 그냥 "1,275m봉"이라고 남겨 두었다』 恐龍稜線의 중앙부에 위치한 "1,275m봉"은 恐龍稜線을 대표합니다. ["1,275m봉"의 옆구리 神秘한 岩峰] 거대한 "1,275m봉" 옆구리에 있는 神秘한 조각품 ["1,275m봉 고갯마루" 오르는 길] 고속도로 恐龍稜線을 가다보면 어느새 恐龍稜線의 중앙부인 "1,275M봉 고갯길"에 다달읍니다 [1,275m봉 고갯마루] 이 고갯마루가 우리들에겐 "1,275m봉"의 정상입니다. 물론 이 고개에서 "1,275m봉 정상"까지 올라 갈수 있습니다만, 생명은 책임져 주지 않는다고 하니 올라 가고 싶으신 분들만 올라 가세요. 제가 이곳 고개 정상에 약15분정도 있었는데 올라 가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고개에는 물개같은 바위가 오가는 사람들을 뚤어져라 쳐다보고 있습니다 [1,275m봉 고개 이정표] 11시 30분에 "1,275m봉 고갯마루"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마등령'에서 1시간 40분 걸렸습니다. '희운각 대피소'까지가 조금 더 멀지만, 시간은 앞으로 많이 더 걸립니다. 이제까지는 쉬지않고 왔기 때문이지만, 곧 식사도 해야하므로 2시간 30분이 걸립니다. 하지만 앞으로 갈길이 내리막이 많아 더 쉽다는 의미입니다. [1,275m봉] 고갯마루에서 "1,275m봉" 정상을 올려다 봤습니다. 雲霧까지 껴 올라갈 엄두를 못내겠더군요 하지만 올라 갈수는 있다고 합니다 [1,275m봉 고개 주변] "1,275m봉" 고갯마루에서 조금 쉬면서 주변을 보는데 국립공원안에서 불을 피우며 라면을 끓이는 사람들이 잘난척을 하고 있더군요. 편서풍이 쎄게 부는 설악의 공룡능선에선 언제 세찬 바람이 돌풍처럼 불지 모르는데 불을 피우다니.... [1,275m봉 하산] "1,275m봉"을 하산합니다. [독대바위] "1,275m봉"을 내려 가면 곧바로 "독대바위"가 나타납니다. '촛대바위'라고도 한다는데.... 왜 독대바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노인봉'과 "天花臺"] '독대바위"를 지나면 '노인봉'과 그 유명한 "天花臺"가 황홀하게 나타납니다. "하늘에서 꽃이 내려와 피었다" "천가지 꽃이 피어 나는 곳", "하늘에 피어나는 꽃", "땅에서는 볼수 없는 하늘꽃" 등등등 찬사가 터지는 "天花臺" ['노인봉'과 "天花臺"] 恐龍稜線의 "노인봉,1,120m"에서 분기하여 "飛仙臺"로 내리 뻗은 능선이 "天花臺"입니다 맑은 날씨가 아닌 雲霧에 쌓인 "天花臺"가 더욱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天花臺"의 "범봉"] [天花臺 개념도] "노인봉"에서 "飛仙臺"로 내리 뻗은 "天花臺"에 최고 걸작은 "범봉"이라 합니다. 오른쪽 제일 높은 암봉이 "범봉"입니다. 혹자들은 "범봉"이 恐龍稜線의 하일라이트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이곳 "天花臺"는 20여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는 岩稜이랍니다. 좌측 "설악골"과 우측 "잦은 바위골" 사이에 솟아있으며, 유명한 "석주길", "염라길", "흑범길"등의 岩稜길이 있다고합니다 개념도를 자세히 보시면 "석주길", "염라길", "흑범길"을 알수 있습니다. "석주길"을 "서주길"이라고 잘못 표기했군요. 멀리 좌측에 "울산바위"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노인봉' 가는 길에서 바라 본 '울산바위'] 그래서 "울산바위"를 가운데로 다시 잡아 보았습니다. 줌인한 사진이 아니고 실제 거리 사진입니다. "울산바위"에 대한 전설은 대부분 아시지요? 금강산이 전국에 있는 뽐내는 바위들을 뽑겠다고 방을 내었더니, 울산에 있던 이 바위도 참가하러 갔는데 몸집이 너무 커 무거워 느려 너무 늦게 도착했습니다 도착하니 이미 12,000봉을 뽑고 난 후에나 도착하여 지각으로 불합격하고 울산 고향으로 되돌아 가려고 했으나 돌아 가면 고향 사람들에게 챙피할까봐 고향으로 돌아 가는 도중 이곳에 주저 앉아버렸다는 전설....... 그러나 "울산바위"의 한자는 "鬱山바위"로 경남의 "울산 蔚山"하고는 한자가 틀림니다. "鬱山바위"의 "鬱"은 "울타리 "울 鬱"로서, "설악산의 울타리" 역활을 하는 바위산이라는 정설도 알고 전설도 믿읍시다. 전설은 재미로...정설은 꼭 기억하시길... 제가 '도봉산 산행기'에서 "서울"의 語原에 대해서 이야기 한적이 있는데, "서울"은 "설울 雪鬱", 즉 "눈울타리"에서 음운변화를 거쳐 생성된 것이란 것 기억하시나요? ['노인봉'과 "天花臺"] 도솔천의 하늘을 걷는듯한 恐龍稜線 雲霧가 오히려 더 도움이 되는듯합니다 공룡능선에서는 단풍 구경은 할수 없고 벌써 겨울이 찾아 왔습니다 대한민국의 능선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설악산 恐龍稜線 그 공룡능선에서 갈라져 나간 "天花臺 천화대" 그리고 그곳에는 어느 연인들의 꿈과 아픔이 서려있는 "석주길"이라는 루트가 있습니다 설악산을 다녀본 분들이면 대부분 아시는 "석주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노인봉'으로 가며 뒤돌아 본 "1,275m봉"] '노인봉'으로 가며 뒤돌아 보니 恐龍稜線의 핵심 "1,275m봉"이 부끄러운듯 얼굴은 보여 주지 않습니다만 웅장하게 공룡능선을 굽어 봅니다. "석주길"에 얽힌 이야기 1969년 당시 요델산악회의 송준호, 엄홍석, 신현주 세 사람은 서로 자일 파트너였고 동시에, 절친한 친구이자 연인 사이 (아마도 3각관계) 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송준호는 사랑보다는 우정을 지키기 위해, 다시 말해 세 사람의 순수하고 소중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 엄홍석과 신현주의 곁을 홀연히 떠납니다. 송준호가 떠난 얼마 후 엄홍석과 신현주는 연인 사이가 되었고, 두 사람은 설악산 천화대 "천당폭"으로 빙벽등반을 하러 갑니다. 그러나 빙벽을 오르던 중 신현주가 그만 실족을 하자 당시 빌레이(확보)를 보던 엄홍석은 연인인 그녀의 추락거리를 줄이기 위해서 빙벽 아래로 자신의 몸을 날립니다. 그러나 빙벽에 설치한 확보물이 하중을 견디지 못했고 두 연인은 한 자일에 묶인 채 추락하여 목숨을 잃고 맙니다.... [노인봉으로 가는 길] 천화대의 분기봉인 노인봉으로 갑니다 그 후 두 친구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은 송준호는 69년 설악골에서 천화대로 이어지는 암릉길을 처음으로 개척했고, 그 루트의 이름을 ‘석주길’이라 붙였습니다. 의형제 엄홍석과 그의 여인 신현주의 이름 끝자인 ‘석’과 ‘주’를 따온 것입니다.. 그리고 ‘석주길’이라고 새긴 동판을 만들어 천화대와 만나는 바위봉우리의 이마 부분에 붙여 두 사람의 영전에 바쳤습니다. [석주길 동판] [석주길 동판이 있는곳] 하지만 송준호 역시 1973년 초 토왕폭을 단독으로 오르다가 실족하여 먼저 간 두 친구의 영혼을 뒤따르게 되고, (그가 부치지 못한 그리움이 담긴 편지를 유서처럼 남기고, 단독 등정 한 이유가 자살이 아닐까?하는..) 그의 시신은 그토록 사랑하던 친구인 엄홍석과 신현주의 곁에 뭍히게 됩니다. 그렇게 "석주길"의 신화가 설악산에 태어났던 것입니다..... ['노인봉' 오르는 길] '노인봉'에서 "천화대"가 좌측으로 분기하는 모양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天花臺"는 저렇게 아름답지만 "석주길"같은 슬픈 내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 산사나이들은 왜 그토록 산에 목숨을 거는가~! 밧줄 하나에 매달리는게 그렇게 즐거울까....?? 무식한 놈은 의심만 많은걸까... 나처럼 적당히 다니시지.....구경하며...산행기 쓰며... ★['노인봉' 오르는 길에서 뒤 돌아 본 恐龍稜線]★ 오늘 恐龍稜線을 산행하며 찍은 사진중에 최고의 사진이라고 생각됩니다 雲霧로 시야가 막혀 전체적인 사진을 촬영하지 못했는데, 운좋게 한컷 살렸습니다 가운데 우뚝솟은 봉우리가 "1,275m봉"이고. 여기서 보니 꼭대기 가운데 고갯마루도 높은 곳이지요? 그 뒤로 "큰새봉 1,278m", 가운데 고갯마루를 통과했지요 맨끝이 "나한봉 1,246m" 지나온 봉우리들이 "恐龍稜線은 어떤 稜線"인지를 확실하게 보여 줍니다 평탄한듯하지만 높낮이가 있고, 모든 봉우리가 붙어 있는듯하지만 떨어져 있고, 큰봉우리만 있는듯하지만, 작은 봉우리와 혼재해 있고..... 지나 올때는 잘 몰랐는데 와서 뒤돌아 보니 골자기도 매우 깊습니다. ["노인봉"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암봉들] 天花臺의 岩峰들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노인봉] '노인봉'도 정상까지 올라 가지 않고, 가운데 고갯마루를 넘어 갑니다. [노인봉]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비춰지는 恐龍稜線의 봉우리들 노인봉도 또 멀리서와는 다르게 보입니다. ["天花臺"] "天花臺"를 이제부터는 남쪽에서 북쪽방향으로 보게 되겠습니다. 天花臺 암릉이 뻗어있습니다. ['노인봉'에서 바라 보는 "1,184m봉"] '노인봉'에서 멀지 않은 곳에 "1,184m봉"이 있습니다. 사진으로는 높낮이 거리감이 없습니다만, 이 봉우리를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야 합니다. ['노인봉'에서 바라 보는 "1,184m봉"] 방향을 틀어서 보면 완전히 다른 모양이 되는 봉우리들... 예술입니다. ["1,184m봉"] 또 방향이 바뀌면 "1,184m봉"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릴 반깁니다. 저 봉우리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1,184m봉"에서 바라 보는 "龍牙長城"] 恐龍稜線 "1,184m봉"에서 바라보는 "龍牙長城" 雲霧 속에서 현실에는 없는 "용의 이빨"을 보여줍니다. "龍牙長城" 뒤로는 "서북능선"이 보입니다. 언젠가 가능한 빨리 저 능선들을 종주해야 할텐데..... 龍이 승천하려고 꿈틀대는듯합니다 ["1,184m봉"에서 뒤돌아 본 "天花臺"] "1,184m봉"에서 뒤돌아 보니 "天花臺"가 더욱 멋있습니다 그리고 이쪽에서 바라보니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글재주없는 저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天花臺" 뒤로 "1,275m봉"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1,184m봉"에서 바라본 "神仙峰"] 이제 恐龍稜線의 마지막 봉우리인 "神仙峰"을 "1,184m봉"에서 바라봅니다. 저 봉우리 가운데 고갯마루를 넘으면 "무너미고개"와 "희운각 대피소"가 나옵니다. 그리고 恐龍稜線은 끝납니다. ★["神仙峰"으로 가며 뒤돌아 본 "天花臺"]★ 아!~ 天花臺 오늘 제가 찍은 사진 중에 두번째로 마음에 드는 사진입니다. "神仙峰"으로 가며 뒤돌아 보면서 "天花臺"를 찍었습니다. "天花臺" 뒤로 공룡능선의 핵심 봉우리 "1,275m봉"이 天堂 옥황상제의 궁궐처럼 하늘을 찌르고 솟아 있습니다. 이때까지 보았던것은 부분 부분만 보았는데, 입체적으로 볼수 있어 이 사진이 자랑스럽습니다. 박수 쳐 주세요. 어느 산행기를 가도 이 사진같은 것은 못볼것입니다. ㅎㅎ ["神仙峰" 밑에 있는 화려한 岩稜] 와우~ '神仙峰'으로 가는 도중에 "잦은 바위골"에 화려하게 꽃피어 있는 거대한 암봉. 이름이 있을텐데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神仙峰"에서 천불동으로 내리 뻗은 "칠형제봉능선"] "神仙峰"에서 천불동으로 내리 뻗은 능선이 "칠형제봉능선"인데 저 능선과 "화채능선" 사이에 설악산계곡의 하일라이트 "千佛洞 계곡"이 있습니다 건너편에 "화채능선이 희미하게나마 보입니다 ["神仙峰" 고갯마루] "神仙峰" 고갯마루까지 오르는 登路는 제법 가파랏습니다 "神仙峰"도 꼭대기까지 올라 가지않고 고갯마루까지만 올라 갑니다. ["神仙峰"] 神仙峰 정상을 올려다 보기만하고.... ["神仙峰" 북쪽 전망대] 恐龍稜線에서 조망이 가장 좋다는 곳이 "神仙峰"이라고 합니다 ["神仙峰" 북쪽 전망대] 재수 없게 제가 올라 갔을때에는 운무가 앞을 가리웠습니다. 에구~ 운도 지지리도 없지.... 언제 또 다시 온다구 앞을 가로막냐~ ["神仙峰" 남쪽 전망대] 남쪽 "희운각 대피소" 방향은 그래도 조금 시야를 확보해 주었습니다. "희운각 대피소"가 "대청봉"으로 올라 가는 중턱에 보입니다. 그리고 가운데 계곡 안부가 "무너미고개"이며, "무너미고개"의 좌측이 "천불동계곡"이고, 우측이 "가야동계곡"입니다. "가야동계곡"은 "백담사"로 내려 가는 계곡입니다 ["神仙峰"에서 '무너미고개'로 하산] 恐龍稜線을 뒤로하고 "무너미고개"로 내려 갑니다 한편으로 시원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神仙峰"에서 '무너미고개'로 하산] "神仙峰"을 내려 가는 길도 급경사가 있었습니다. [칠형제봉 능선] 이제 '천불동 계곡"쪽이니 "神仙峰'에서 분기하여 "飛仙臺"로 달려가는 "칠형제봉 능선"이 보입니다. [샘터] '무너미고개" 가는 길에 수량이 제법 풍부한 샘터가 있습니다 "공룡능선"이 끝나니까 너무나 한가로운듯한 하산길이 그림 같습니다 ['무너미고개'로 가며 뒤 돌아 본 "神仙峰"] 지나와 뒤돌아 보면 어떻게 저곳에서 내려왔는지 의아스럽습니다. '공룡능선"의 마지막 봉우리를 보며 "공룡능선 산행"을 마침니다. [무너미 고개] 오후 2시 정각에 "무너미고개"에 도착했습니다. '마등령'에서 '무너미고개'까지 5.1km거리의 恐龍稜線을 4시간 10분에 주파했습니다 산행기 때문에 사진찍고 감상문 쓰고 하는 시간을 빼고 오로지 걷기만 한다면 3시간에도 주파할수 있겠더군요, "恐龍稜線'는 그렇게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무너미 고개 이정표] 이곳이 "千佛洞 계곡"으로 하산하는 길과, 恐龍稜線, "대청봉" 갈림길입니다. [무너미 고개 안내판] "무너미"라는 말은 모내기 철에 논에 물을 댈때에, 아랫 논두랑 끝에 물이 넘치면 흘러 넘어 가라고 높이를 약간 낮추어 놓은 곳이 있죠? 그곳이 바로 "무너미"인데, 원래 "물넘이"에서 음운 변화를 거친 순수 우리말입니다 "무너미고개"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로 이해하시기 바람니다. 전국 곳곳, 백두대간이나 정맥, 지맥등 여러곳에 "무너미고개"가 많이 있습니다. [喜雲閣] '무너미고개"에서 "喜雲閣 대피소" 까지는 매우 가까이 있어 5분 정도면 갈수 있습니다 [喜雲閣] 1969년2월14일.. 이곳 우측 계곡인 대청봉에서 내려오는 설악산 "죽음의 계곡"이라는 곳에서 한국산악회 소속 제1기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고자 훈련을 하던 원정대의 젊은 산악인 10명이 눈사태로 전원 목숨을 잃는 큰사고가 있었답니다. 이 사고를 접한 서예가이자 사업가이던 최태욱씨(1920~1991, 경북 청도)가 산악인들을 위한 대피소를 이곳에 세웠는데, 최태욱씨의 호가 "喜雲"이어서 "喜雲閣"이 되었답니다 [喜雲閣 현판과 유래] [喜雲閣 상품가격표] [喜雲閣 앞 "대청봉" 가는 길] 설악산의 최고봉인 "대청봉" 가는 길 [喜雲閣 앞] 화장실과 취사장이 있습니다 [칠형제봉 능선] 1969년 2월 14일 '죽음의 계곡'에서 발생한 사고로 오늘날의 등산학교를 설립하는 계기가 되기도하고 산행문화에 일대 변화가 왔다고 합니다. ["千佛洞 계곡과 오른쪽 "화채능선"] 1969년 2월 14일 '죽음의 계곡'에서 발생한 사고를 애도하며 산을 좋아하는 이정훈이라는 분이 지금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설악가"를 작사 작곡하여 설악산을 사랑하는 산악인들에게 불후의 명곡으로 남게 했답니다 이정훈씨는 지금 경기도 하남시에서 치과개업중 이라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華彩稜線"] 喜雲閣 앞 '무너미고개에서 바라보는 "華彩稜線" ['무너미 고개'] 다시 "무너미고개"로 돌아 와서 "千佛洞 계곡"으로 내려 갑니다. '무너미고개"의 해발이 1,020m이니 설악동까지 해발은 약1,000m를 내려 가야하고, 거리는 8.3km이니 무척 먼 거리입니다. 2시 15분에 하산을 시작합니다. ["千佛洞 계곡"으로 하산] 해발 1,000m를 내려 가는데도 큰 경사가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주변에 펼쳐지는 경치가 숨돌릴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千佛洞 계곡"에서 처음 만나는 구름다리] "千佛洞 계곡"에 걸어 다닐수 있는 시설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장관을 구경 할수 없을겁니다. 워낙 계곡이 깊고 험해서 다니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설치한 다리가 나오는 곳부터 숨쉴틈 없이 펼쳐지는 경치는 8.3km를 잊어 버리게 합니다. ["千佛洞 계곡"] 계곡 우측으로 "화채능선"이 千佛洞을 호위하고.... [이름 없는 폭포] 왠만한 폭포는 폭포로 취급도 않해 주지만, 처음으로 나타나는 폭포라 소개합니다 높은 곳이라 단풍은 이미 끝났습니다 ["千佛洞" 峽谷속으로] '천당폭포"로 가는 길입니다. 우측 계곡이 천당폭포 상단입니다. ["천당폭포" 위] "천당폭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봅니다 [天堂瀑布] 우측으로 "天堂瀑布"가 보입니다. 다리를 설치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어렵게 이곳까지 올라야 했겠지요. 그래서 이곳까지 오면 꼭 天堂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하며, 뽀나스로 폭포까지 우렁차게 반겨 "天堂瀑布"라고 했다는군요. [天堂瀑布 앞 구름다리] "天堂瀑布"를 정면에서 볼수 있도록 계곡을 가로질러 다리를 설치해 놨습니다. [天堂瀑布] [天堂瀑布 앞에서 함께한 山友들과 기념사진] 오늘 생사고락을 함께한 山友들..........수고했어요 [天堂瀑布 앞 峽谷] 설악동 소공원에서 관광객들도 여기까지는 쉽게 올수 있습니다 속초 바닷가에만 나갈것이 아니라 이곳을 올라 보세여~ [陽瀑布] "陽瀑布" 위에서 내려다 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陽瀑布"는 앞으로 튀어 나와있고, 위쪽엔 속에서 떨어지는 "陰瀑布"가 있어 "陰陽"을 나타낸다고 붙여진 이름이라합니다. [陽瀑布 앞 계곡] 우리나라에 이런곳이 있을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陽瀑 대피소] 陽瀑布 앞에는 "陽瀑 대피소"가 있는데 대피소라기 보다는 음식점이지요 [陽瀑 대피소 앞 이정표] 오후3시에 도착했습니다 "무너미고개"에서 약2km정도 내려 왔으며, 45분 정도 걸렸습니다. 앞으로도 6km 이상을 내려 가야합니다만, 내려 가는 길은 편합니다 [칠선골 입구로 가는 길] 千佛洞 溪谷은 우리나라 계곡중에 최고로 꼽는 곳이지요. 저는 바보같이 이번에 처음으로 왔습니다. 아직도 찾지 못하신분들은 이곳 千佛洞 溪谷만이라도 가을엔 들려 보세요. [千佛洞 溪谷] "千佛洞 溪谷"은 계곡 양쪽이 奇岩絶壁에 天態萬象의 바위와 나무들이 한결같지 아니하고 제각각 다른 모습과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天態萬象의 광경을 불교적으로 "천개의 불상들이 늘어서 있는 모양"이라고 "千佛洞"이라고 했답니다 [千佛洞 溪谷 - 오련폭포] 奇岩絶壁에 天態萬象의 形象 그리고 계곡에 흐르는 玉水에 지대가 낮아지니 아직도 단풍이 어우러집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다섯개의 폭포가 연이어 있다고 "오련폭포" [칠선골 입구 앞 이정표] 천불동계곡의 지류인 "七仙골"을 알리는 이정표 [七仙골] 七仙골은 천불동계곡에서 남서쪽으로 대청봉을 향해 있습니다. [七仙골입구에서 "귀면암" 가는 千佛洞 溪谷] ["鬼面岩"이 있는 천불동 게곡] "千佛洞 溪谷"의 입구를 지킨다는 "鬼面岩"이 우측 암벽입니다. 암벽의 모양이 귀신을 닮았다고 "鬼面岩"이라고 한다는데.... 그랜드캐넌보다 훨씬 아름다운 "千佛洞 溪谷" 왜 이제서야 이곳에 왔을까?~ ㅠㅠ ["鬼面岩" 고개] 이 "鬼面岩" 고개를 넘어 가면 "飛仙臺"입니다. 이 고개와 鬼面岩이 "千佛洞 溪谷"의 守門將이랍니다. [飛仙臺 앞 "장군봉"] 드디어 새벽에 어둠을 뚫고 오른 飛仙臺 앞 "장군봉"이 보입니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장군봉 암벽에는 "금강굴"이 있고, 락클라이머들이 암벽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飛仙臺] 飛仙臺 출입관리소에 내려 왔습니다. 해발이 낮아 아직 단풍닢이 남아있습니다. 화려한 색을 띄고 밝게 맞이합니다. 보름 정도만 일찍 왔어도 오색찬연한 설악의 단풍을 만끽할수 있었을 텐데.... 내년엔 10월초에 다시 와야겠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어떻습니까? [飛仙臺 갈림길] 좌측 철조망문을 통해 내려 왔습니다. 그러니까 "千佛洞 溪谷"의 입구이기도 합니다. 새벽 6시 5분에 이곳을 통과하여 우측으로 "마등령"을 향해 올라 갔었습니다. "공룡능선"과 "千佛洞 溪谷"을 지나 이곳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4시25분. 그러니까 飛仙臺-飛仙臺는 10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飛仙臺 갈림길 이정표] [飛仙臺 출입관리소] 옛날 입장료를 받던 곳이니 이제는 쓸모없는 곳입니다. [飛仙臺] "麻姑仙女"가 저 아래 臥仙臺에 누워서 주변 경관을 감상하다가 하늘로 올라 갔다고 "飛仙臺"라고 부른답니다. [飛仙臺 앞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과 형제봉, 선녀봉] 장군봉(일명:미륵봉), 형제봉, 선녀봉이 나란히 있으며, 장군봉에는 원효대사가 수련을 했다는 "금강굴"이 있습니다. 아직도 장군봉에는 암벽타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러다 '석주길'로 가실려나? [飛仙臺] 대부분의 수학여행단이 여기까지 올라 왔다가 가는 곳이지요 [飛仙臺 휴게소] [하산] 부지런히 하산합니다. 무서운 속도로....서울을 빨리 가려면 [權金城과 케이블-카] "화채능선"의 끝봉우리인 "權金城"에 케이블-카가 다니고 있습니다. "權金城" 정상은 구름에 덮여 보이지않는군요. "權金城"은 權氏와 金氏 두 장사가 난을 당하자 가족들을 피신시키고, 적들과 싸우기 위해 하룻밤만에 城을 쌓았다고 하지요. 좀 과장이 심하지만...믿읍시다!~ 1254년 고려 고종41년에 몽고의 침입이 있었을때 백성들의 피신처로 사용하기도 했다는군요. 해발 850m의 정상에는 봉화대가 있고, 봉화대를 중심으로 길이 2.1km의 山城이 있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동해바다와 공룡능선 대청봉 울산바위 등을 조망할수 있습니다 모두 최소 한번씩은 올라 가 봤지요? [신흥사 석가여래상] [신흥사 정문] [설악동 소공원] 사유지이기 때문에 돈을 받는다고 신흥사 사유지 영역을 크게 지도로 표기해 놨더군요. 2,500원을 문화재 관람료로 받았는데 절간 구경한 산객은 단 한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흥사 중들은 밖으로 나올때 자기네 땅이 아닌 땅으로 나오니까 상응하는 입장료를 내야 하는것 아닙니까? 중들아!~ 밖으로 나올 때 돈 내고 나오라!~~ 한발자국 땔때마다 돈 내라~!! 싫으면 나오지 마라~! 그 속에서 잘먹고 잘 살아라~! [설악동 주차장] 오후 5시 5분에 설악소공원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 왔습니다. 11시간 40분이 걸려 꿈에도 그리던 "恐龍稜線"을 다녀왔습니다 총거리 : 약23km 출 발 : 새벽 5시 25분 도 착 : 오후 5시 5분 총산행시간 : 11시간 40분 본 산행기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허가 없이 사용 할수 없습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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