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3회차]
이화령-조령산-신선암봉-928m봉 능선-깃대봉-조령3관문-고사리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다른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두려워 조심스럽다"
2011년 4월 9일(토)
전형적인 봄 날씨
하지만 봄꽃들이 금년엔 조금 늦게 피는듯
아직도 꽃망울이 터지지 않은 봄날에
백두대간의 품으로 들어가 봄을 기다립니다.
[산행도]
1. 위치 : 문경새재도립공원
경북 문경시 '문경새재'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사이
2. 도상거리 : 대간 8.5km, 접속구간 3.5km, 총12km
3. 총 산행시간 : 6시간 30분
[이화령 터널 휴게소에서 올려다 본 '이화령'] 9시 48분
오늘 산행 들머리인 "이화령 伊火嶺"으로 가는 길에
"이화령" 아래 '이화령 터널 휴게소'에서 "이화령"을 올려 다 봅니다.
10여년 전까지도 숨 가쁜 엔진 소리를 토하며 저 고개를 넘어야 '경북 문경'으로 갈수
있었는데 1998년도에 "3번 국도"에 새로이 "이화령 터널"이 개통이 되어 이제는 저곳에
올라 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우리 같은 산객들이나 산행을 위해 올라 갈 뿐입니다.
['이화령'] 10시 10분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을 넘나드는 고갯길이며
'문경새재 도립공원"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전 10시 10분에 "이화령"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하고 "이화령"을 둘러 봅니다.
터널이 개통되기 전 까지만해도 영남지방을 넘나드는 사람과 차량들로 무척 붐비는
곳이었는데 오늘은 우리 산행팀들 외에는 사람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이화령 정상석]
"이화령 伊火嶺, 해발 529m"
대간꾼들의 지침서인 "여암 신경준선생"의 "山經表"에는
"伊火峴 延豊治在西七里"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伊火嶺"으로 표기하지 않고, 고개 등급이 낮은 "伊火峴"으로 표기 한것이
이채로운데, 아마도 이것은 "嶺南의 關門"이라고 하는 "鳥嶺"이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화령' 산행 들머리] 10시 12분
"이화령 산행 들머리"에는 산불예방을 위해 감시초소가 있었으나,
특별히 출입제한을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출입신고를 하고, 우횟길로 "조령산"을 오르게 하고 있었습니다.
숲사랑 지도원인 '파란문'이 감시원에게 얘기하여 우횟길이 아닌 정식 대간 마루금으로
갈수 있도록 부탁하여 우리는 초소 바로 뒤로 올라 가는 정식 마루금으로 올랐습니다.
[이화령에서 조령산까지 구글어스]
이해를 돕기 위해 구글어스를 보여 드림니다.
정식 마루금을 따라 가는것과 우회길로 가는 길은 선택사항입니다.
우횟길로 갔다고 대간종주 여부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白頭大幹은 산줄기를 말하는 것이므로 '마루금'을 따르지 않는다고 왈가알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화령' 위 헬기장] 10시 15분
정식 마루금을 따라 3분 정도 오르니 바로 "이화령 헬기장"이 나오고,
뒤로 두번째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가 보입니다.
[헬기장에서 내려다 본 '이화령 휴게소']
첫번째 헬기장에서 "이화령"을 내려다 봅니다.
휴게소에는 개인 출발하는 산객들이 타고온 자가용들 만이 썰렁한 "이화령"을
지키고 있습니다.
[묘지] 10시 22분 [두번째 헬기장] 10시 27분
첫번째 봉우리인 "758m봉" 정상까지는 묘지1기와 세개의 헬기장이 있습니다.
['758m봉' 정상] 10시 34분
"이화령"에서 약20분 된비알을 치고 오르면 첫번째 봉우리인 "758m봉"에 오릅니다
['758m봉 -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조령산'] 10시 36분
"758m봉" 정상도 헬기장으로 사방으로 조망이 트입니다.
제일 먼저 가야할 "조령산 鳥嶺山"이 눈 앞에 성큼 다가 옵니다.
이곳에서 "조령산 정상"까지는 약1시간이 걸렸습니다.
[안부] 10시 49분 [조령산 구조 제1지점] 10시 58분
"758m봉 헬기장"에서 내리막으로 약15분 내려 오면 갈림길을 만나는데
이곳이 "이화령 우횟길"과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우회길을 이용하면 매우 쉽게 이곳까지 올수 있겠더군요.
['조령샘'으로 가는 길]
"조령샘"으로 가는 길은 정식 대간 마루금은 아니고, 산 옆구리를 가로 질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조령샘 안부] 11시 10분
20분 정도 산옆구리를 질러 오르면 우측에서 뻗어 오는 능선을 만납니다.
[조령샘 안부] 11시 11분
능선에 오르면 "이화령↔조령산" 이정표가 길안내를 하는데
바로 앞에 "조령샘"이 목 마른 산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령샘] 11시 12분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물맛의 평가가 다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좋다고는 못하겠습니다. 약간 씁쌀한 맛이 났습니다.
물 한 바가지 마시고...
[조령산으로 오르는 된비알]
"조령샘"에서 부터는 무척 가파른 된비알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땀을 흘리기 시작 합니다.
['조령산' 전위봉-헬기장] 11시 28분
"조령샘"에서 25분 정도 된비알을 치고 오르면 "조령산 전위봉"이 나옵니다.
"조령산 전위봉"도 헬기장으로 조성되 있는데, "조령산 정상"이 지척에 조망됩니다
정상까지는 10분 정도 걸렸습니다.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주흘산"]
동쪽으로는 "주흘산 主屹山"이 조망됩니다.
"주흘산"에는 네개의 봉우리 이름이 있는데, "주봉 主峰 1,075m", "영봉 靈峰 1,106m"
"관봉 冠峰 1,030m-일명 꼬깔봉", "부봉6봉 釜峰6峰"이 있습니다.
"山經表"에는 "主屹山 聞慶治在南一里"라고 나와 있습니다.
저는 2008년 6월14일에 '주흘산 전구간"을 종주 하고 산행기로 남겨 놨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 읽어 보세요
[헬기장에서 뒤돌아 본 '백화산']
백두대간 前구간인 "백화산 구간"이 그림처럼 펼쳐 집니다.
살아서 꿈틀대고 있는 우리 국토의 등줄기가 가슴에 와 닫습니까?
[조령산 정상] 11시 39분
전위봉 헬기장에서 10분 정도 걸어 "조령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조령산 정상석] [조령산 정상 이정표]
"조령산 鳥嶺山 1,025m"
"山經表"에는 "鳥嶺"만 표기되 있고, "鳥嶺山"은 없습니다.
그런데 "주흘산"은 표기되 있는데, "鳥嶺"에서 分岐한 山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主屹山 聞慶治在南一里"라고 나와 있습니다
백두대간 마루금은 아니지만 현재는 '문경새재도립공원"의 대표산이 되겠습니다.
['지현옥' 산악인 추모목]
"지현옥 산악인"이 뭔 사연으로 "조령산" 정상에 이렇게 추모목으로 서 있는지는
알수 없습니다만 그녀가 우리나라 최초로 '알래스카 맥킨리산'과 히말라야 최고봉인
'안나푸르나'를 정복한 한국 최초의 여성 산악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나푸르나'를 정복하고 하산길에 영원히 우리 곁에서 사라진....
"주인 主, 산 우뚝할 屹"이란 "主屹山"을 바라보며 못다한 한을 풀라고
그녀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主屹山"이 가장 잘 보이는 이곳 "鳥嶺山"에
이렇게나마 추모목을 세웠으리라!~
[조령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문경새재"]
"엄홍길"이 쓴 책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에 "지현옥"과의 산행과 이별을
회고하는 글이 있어 이런 책 못 읽은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들에게 소개해 드림니다.
자칭 대간꾼이라면 이런 책 한권은 사서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ㅎ
"안나푸르나를 향한 긴 여정 - 환희... 아, 지현옥"
'안나푸르나여, 달빛에 잠긴 길들을 열어주소서.
정상으로 향하는 문들을 열어주소서.'
마음 속에서 간절한 바람이 일었다.
하지만 날이 밝아지면서 그러한 바람은 희미해졌다.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차츰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생각은 희미한 공기 속에서 자주 끊겼다.
걸음은 느려지고, 희게 빛나는 길 위에서 모두들 말이 없었다.
말을 할 수 없었고, 신들의 영역이라는 8000미터 지대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말을 한다는 것이 사치스러웠다. 거친 호흡만이 고요한 길 위에 뿌려졌다.
안부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뒤따르던 대원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속속 도착했다. 하지만 일행 가운데 2명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캠프를 출발할 때부터 후미로 처졌던 지현옥 대원과 셰르파 까미 도루지였다.
지현옥 대원은 베이스캠프를 출발할 때부터 몸 상태가 불안해 보였고,
나는 그런 그녀를 위해 지난해 봄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른 적이 있는 셰르파 까미와
행동을 같이 하도록 당부를 해 두었다.
누구보다도 든든한 셰르파 까미가 그녀를 잘 도와줄 것이라 판단했다.
일행들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보이지 않는 두 사람을 오래 기다릴 수 없었다.
행동을 멈췄을 때 정상은 그만큼 멀게 느껴졌다.
하염없이 주저앉아 쉬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 세우며 얼마를 걸어갔을까.
태양 빛이 정수리를 넘어가고 있었다. 시야가 거침없이 트여왔다.
팔목에 찬 시계는 오후 1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발걸음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었던 것이다.
구름 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거대한 히말라야 산군이 발아래 낮게 엎드려 있었다.
이런 환희의 순간을 얼마나 그려보고 고대했던가.
부상당했던 오른쪽 다리는 떨어져나갈 듯이 욱신거렸다.
마음속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흐르는 눈물 속으로 맨 먼저 죽은 나티의 모습과 1983년 이곳을 등반하다가
눈사태로 숨진 정양근 선배의 모습이 들어왔다.
원정을 떠나기 하루 전날 둘째 아들 현식이를 순산했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르고,
재기를 도왔던 벗들과 지인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들의 모습을 껴안고 정상에 엎드렸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비록 그들은 없지만, 나는 그들과 함께 정상에 오른 것이다.
복받쳐오르는 감정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계속-
[조령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釜峰능선'과 '포암산', '만수능선'] 11시 42분
"월악산 영봉"에서 뻗어 나오는 "만수능선"이 여기도 다녀 가라고 유혹합니다.
'이제 돌아가서 그들을 만난다면 무슨 말을 먼저 할 것인가.'
상체를 일으키고 피켈을 손에 쥐면서 나는 근사한 표현들을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만 앞설 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베이스캠프에 무사히 도착한다면 불현듯 살아날지도 몰랐다.
발걸음은 어느새 정상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뒤처진 2명의 동료는 산을 내려가는 길에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친 몸으로 정상에서 무작정 그들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체력은 이미 한계점에 도달해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지 20여 분쯤 지났을까.
추측했던 대로 지현옥과 셰르파 까미가 올라오고 있었다.
"홍길이 형, 어디가 정상이야?"
지현옥이 반갑다는 듯이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그녀의 몸 컨디션은 생각만큼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손을 들어 정상을 가리켰다.
그런 다음 휴대하고 있던 무전기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고, 나와 함께 하산하던
셰르파 다와에게 두 사람을 도와 다시 한번 정상에 다녀오라고 부탁했다.
두 사람의 무사 등정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만에 하나 생길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예방하고 싶었다.
"정상에 도착하면 베이스캠프로 무전을 날려라."
그녀와 헤어지기 직전 시계를 보며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녀는 걱정 말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계속-
[전망바위봉] 11시 44분 ★길주의★
"조령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조금 가면 북쪽 조망이 확 트이는 "전망암봉"이 나오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가야 합니다.
다만, 조망이 좋은 곳이기에 앞으로 나가 조망을 하고 돌아와 내려 갑니다.
['전망바위봉'에서 조망] 11시 45분
"조령산" 전망바위봉에서 앞으로 가야할 산봉우리들이 단순명료하게 보입니다.
"신선암봉"→"928m봉 능선"→"깃대봉"
오늘 종착지인 "조령제3관문"은 보이지 않지만, 다음 구간인 "마패봉"까지 한눈에
보이며, 그 뒤로 "월악산국립공원"의 "영봉"과 "만수능선"이 화려한 자태를 뽑냅니다.
['신풍리' 갈림길] 11시 53분 [신풍리 갈림길 이정표] 11시 53분
"조령산 전망바위봉"에서 급경사 내리막을 8분 정도 내려오면 "신풍리 갈림길"을
만나는데, 조령산 일반 등산로로는 접근gk는데 가장 가까운 코스라 합니다.
베이스캠프에는 평소에도 자주 연락을 하며 친분관계가 두터운 <중앙일보>의
김세준 기자와 문화방송의 임채유 PD가 우리들의 등정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문화방송에서는 우리의 안나푸르나 등반을 8·15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로
내보낼 예정이었고, <중앙일보>에서는 자사 후원사업으로 선정해 우리의 등정 장면을
생동감 넘치는 사진과 함께 독자들에게 내보낼 예정이었다.
특히 김세준 기자는 생생한 보도를 위해 디지털 카메라와 노트북, 위성전화 등
첨단장비를 갖춘 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현옥과 까미가 올라가고, 나는 다시 경사가 급한 얼음 사면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부상당한 오른쪽 다리는 걸음을 옮길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그래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걷는다는 것은 내 운명인 것이다.
설사면이 끝나는 안부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걷지 않는다면 통증은 약간이나마 수그러들 것이다.
주저앉은 상태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설사면에서 누군가가 빠른 걸음으로 내려왔다.
셰르파 다와는 몹시 지쳤는지 아무 말 없이 내 옆을 지나갔다.
다와가 내려왔다면 지현옥과 까미도 곧 내려올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와를 따라서 조금만 더 내려간다면 마지막 캠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픈 다리를 끌고 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조그만 너덜 봉우리를 넘어]
"신풍리 갈림길"에서 조그만 너덜 봉우리를 하나 넘습니다.
지현옥과 헤어지고 3시간쯤 흐른 뒤 마지막 캠프에 겨우 도착했다.
배낭이 어깨에서 떨어져나가자 몸은 저절로 바닥에 누워버렸다.
눈이 감겼고, 비몽사몽의 순간들이 지나갔다.
밖은 어느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오후 7시가 넘었지만 지현옥과 까미는 보이지 않았다.
베이스캠프에서 무전이 울렸다.
무전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지현옥 대원과 셰르파 까미가 정상에 올랐다는 무전 교신 이후 소식이 끊겼다는
것이다. 나는 황급히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내가 내려온 길 위에서 움직이는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길위에는 어둠이 점점 더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사고가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두 사람에게 일어났을 최악의 상황들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려 애썼다.
지친 몸을 가누지 못해 비부아크에 들어갔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랜턴을 꺼내들고 한동안 먼 능선을 향해 흔들어봤지만 다른 불빛과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검게 웅크린 능선은 잠잠했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나는 이미 체력이 소진한 상태였다.
얼마 못 가 눈구덩이에 쓰러져서 꼼짝도 못할 것이었다.
'제발, 무사히 돌아오기를...'
텐트 문을 열어놓고 랜턴을 정상을 향해 켜놓은 채 나는 마음속으로 '풍요의 여신'을
향해 빌고 거듭 빌었다.
['조령산' 내려 가는 급경사 내리막] 12시
엄청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갑니다.
겨울철에는 매우 어렵고 위험한 코스여서 대부분 산객들이 겨울을 피해 봄이나 여름에
종주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뜬눈으로 맞이한 밤은 지나갔다.
하지만 새벽이 올 때까지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수색이 시작됐고, 그들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 어디에도 그들은 없었다.
그들과 함께 움직였던 셰르파 다와는, 두 사람과 함께 정상에 오른 뒤 얼마동안 같이
움직이면서 내려오다가 "천천히 내려갈 테니 먼저 가라"는 말에 그들을 뒤로 하고
곧장 내려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로프로 연결해서 하산을 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들이 하산 도중 사고를 당할 만한 구간을 그려보았다.
7900미터 지점의 경사가 급한 설사면이 틀림없었다.
사고를 당했다면 그곳밖에 없다.
설사면이 끝나는 지점에는 낭떠러지가 버티고 있었다.
거기로 떨어졌다면 그들의 생사확인은 불가능했다.
시신을 찾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상황은 명료했다.
그들은 죽었을 것이고 나는 살아남은 것이다.
1년 전 나티가 죽고, 내가 그토록 아꼈던 '한국여성 산악계의 대들보' 지현옥이
지금 셰르파 까미와 함께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것이다.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꿈이었으면 하고 바라며
차가운 얼음 바닥에 엎드려서 한없이 울었다.
['조령산' 내려가는 암릉구간] 12시 5분
"이화령"에서 "조령산"까지는 肉山입니다만, "조령산"을 내려오고 나서부터는
암릉구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저앉아 있을 수도, 그렇다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놓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튿날 나는 그들의 생전 모습을 껴안고 하산을 시작했다.
고소증세로 누워버린 스페인 대원 한 명을 끌어 내리면서 우리는 3일 만에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그날, 안나푸르나는 울부짖는 듯했다.
밝은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면서 진눈깨비가 내리고 눈발이 거칠게 휘날렸다.
등반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눈물만 흘렸다.
14좌 완등에 성공한 후아니토와 스페인 팀의 캠프도 기쁨보다는 내내 비통한
분위기에서 젖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텐트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죄책감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안나푸르나에 그녀를 데려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밤새 환각과 환청에 사로잡혀 온몸을 떨었다.
어느 순간 그녀가 텐트 문을 열고 '홍길이 형'이라고 외치며 들어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온종일 진눈깨비가 내렸고, 진눈깨비는 이틀 동안 그치지 않았다.
침묵의 산이 자신을 부른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산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지현옥.
이제 그녀는 우리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그녀가 간 곳에서 편안할 것이다.
생사를 거듭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녀의 유품을 정리할 때, 그녀가 남기고 간, 그녀의 빈자리는 쓸쓸해 보였다. -끝-
[지현옥 생전 모습]
산은 그녀에게 어떤 존재 였을까
목숨 바쳐 올라야만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것일까
무엇이 그녀를 안나푸르나의 만년설 속으로 끌어 들였을까
자칭 산을 그래도 쬐끔 사랑한다는 '파란문'은
꽃다운 나이에 산화해간 그녀의 의지를 그렇게 칭찬하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안나푸르나와 함께 영원히 행복한 꿈을 나누며 살길 기원합니다
['절골' 갈림길] 12시 12분 [조령산 구조 9지점] 12시 12분
"조령산 너덜바위봉"을 내려오면 "절골 갈림길"이 나오는데
'괴산군 연풍면 신풍리'에 '절골'이 있으니 이곳도 "신풍리"로 내려가는 코스랍니다
['887m봉'으로 올라 가는 길] 12시 15분
"조령산"과 "신선암봉" 사이에는 조금 작은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887m봉"입니다.
10분 정도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갑니다
['887m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조령산'] 12시 21분
"887m봉"을 오르며 뒤돌아 보니 "조령산"과 "전망바위봉"이 어떤 모양인지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매우 뾰쪽한 삼각형 봉우리여서 급경사 임을 알수 있습니다
엄청난 급경사를 내려 왔는데, "조령산" 구간은 오르는 것 보다 내려 오는게 더
어려웠습니다
['887m봉' 정상] 12시 25분
'쏠라 표시등' 이외에는 특별한게 없는 "887m봉" 정상에 올라
가야할 "신선암봉"과 "928m봉 능선"을 조망합니다.
['887m봉'에서 뒤돌아 본 '조령산'] 12시 26분
"887m봉"을 떠나며 "조령산"을 뒤돌아 보고....
['887m봉'에서 바라보는 '신선암봉'과 '928m봉 능선'] 12시 30분
나타나는 거대한 암봉 "신선암봉"과 "928m봉"을 바라봅니다.
'백두대간 3대 岳코스' 중에 하나라고 하는 코스입니다.
분류하는 사람들에 따라 약간 다르겠지만, '속리산 구간', '대야산 구간', 그리고
이곳 '조령산 구간'이라고 합니다.
['신선암봉'으로 오르는 암릉코스]
이 구간을 함께한 산객들은 아마도 대부분 집에 돌아 가서
다리 보다, 팔 어깨가 더 힘들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리 힘 보다 팔 힘이 더 필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신선암봉'으로 오르는 슬랩구간] 12시 40분
급경사 슬랩은 아니지만 그래도 위협적인 슬랩구간이 몇군데 있습니다
눈이 내린 겨울철에는 오지 마세요~
[위험 구간]
이 암벽 옆구리를 지나 가야 하는데, 중심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무 다리를 설치해 놨는데, 오래 되어 밟으면 뿌러 질듯한 느낌을 줍니다
오싹~오싹~하며 건너 갑니다. 다른 우횟길도 없습니다.
고소공포증이나 겁이 많으신 분들은 오지 마세요
['신선암봉'으로 오르는 대슬랩 구간] 12시 53분
"신선암봉"은 글자 그대로 "巖峰"입니다. 그래서 슬랩구간이 많습니다.
마지막 슬랩구간을 올라 갑니다. 저 위가 정상입니다.
[神仙巖峰 정상] 12시 48분
"神仙巖峰 정상"에 올랐습니다.
생각보다는 제법 넓은 巖峰이어서 대부분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더군요.
[神仙巖峰 頂上石 앞면] [神仙巖峰 頂上石 뒷면]
"신선암봉 神仙巖峰 937m"
神仙들은 이런 위험한 암봉에만 올라와 놀다 가는가
놀곳이 그렇게 없어서 이렇게 오르기 힘든 곳에서 홀로 놀다 가는가
누가 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자신의 존재를 과시 할텐데...
[神仙巖峰 정상에서 뒤돌아본 '조령산']
"백화산"에서 부터 뻗오는 백두대간이 선명합니다.
"조령산"에서 "신선암봉"까지 백두대간길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神仙巖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문경새재"]
'神仙巖峰' 정상에서 "문경새재"를 내려다 봅니다.
'KBS 사극 촬영장'과 주차장등이 보입니다.
[神仙巖峰 정상에 있는 이정표와 구조6지점 표시판] 12시 50분
神仙巖峰 정상 부근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30분정도 휴식을 취하고...
[神仙巖峰 정상에서 바라보는 가야할 '928m봉 능선'과 '깃대봉']
이제부터 "神仙巖峰"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928m봉 능선"으로 갑니다.
"월악산 영봉"과 "만수능선"이 계속 그림자처럼 따라 다닙니다.
['신선암봉'에서 '3관문'까지 구글어스]
붉은 선이 대간 마루금입니다.
"조령제3관문"에서 "고사리"까지 접속구간도 꽤 멀리 느껴집니다.
[神仙巖峰 정상에서 내려가는 급경사 내리막] 1시 20분
"神仙巖峰" 정상에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갑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드시 이곳은 올라 가는 것보다 내려 가는게 더 어렵습니다.
['신선암봉'-'928m봉' 안부] 1시 32분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오면 안부를 만나고 "새터"까지 아직도 5.45km 남았다는
반갑지 않은 이정표를 한숨 쉬며 바라봅니다.
[안부에서 뒤돌아 본 '신선암봉']
뒤돌아 보아야 얼마나 급경사 내리막이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겨울철에는 이 구간을 삼가하시길....
['928m봉 능선' 통과]
"928m봉"은 여러개의 봉우리로 구성되 있습니다.
두개의 봉우리를 넘어 갑니다.
[사고 다발 지역] 2시
'사고 다발 지역'이라고 팻말까지 붙여 놓은 암벽 옆구리를 지나 가야 합니다.
특히 겨울철에는 더욱 위험하겠더군요.
[위험 구간] 2시 5분
그림은 아름답지만 간 떨리는 곳입니다. ㅎ
[조령산 구조 제13지점] 2시 7분
"신선암봉 구조 제13지점" 안내판을 지나고....
['928m봉 능선' 암릉 구간] 2시 31분
다리 힘보다 팔 힘을 요구하는 암릉구간을 또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나무와 바위] 2시 38분
"928m봉"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봉우리에 섯습니다.
['928m봉'에서 바라보는 '釜峰능선'과 '포암산']
"부봉 釜峰"은 6개의 봉우리로 연결되 있는 능선입니다.
"주흘산'을 종주하면 꼭 지나야 하는 멋진 봉우리들입니다.
저는 2008년 6월 14일에 "주흘산 종주"를 한바 있고 산행기도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홍어와 무인도"에 가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釜峰"의 제1봉이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곳이고, 나머지는 벗어나 있습니다.
['928m봉' 능선]
"928m봉 능선"의 마지막 봉우리 쯤에 왔습니다.
"새터"가 아직도 4.63km 남았다고 알려 줍니다.
[巖門] 2시 46분
암릉구간이 끝나가는 곳에 사진과 같은 암문이 하나 있습니다.
문으로 빠져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문으로 나가면 않됩니다.
옆의 암벽을 로프로 올라야 합니다.
[조령산 구조 11지점] 2시 48분 [길주의]
"928m봉 능선"이 사실상 끝나는 곳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하지 않고 좌측 급경사길로 내려 가야합니다. 길주의
['928m봉' 능선에서 바라보는 가야할 '깃대봉'과 '757m봉'] 3시
"928m봉 능선"을 내려 오면서 가야할 "757m봉"과 "깃대봉"을 조망합니다
이제부터는 어렵고 힘든 구간을 벗어나 조금 편안한 길을 가게 되겠습니다.
['757m봉 정상-'신선암봉' 구조 10지점] 3시 11분
"757m봉" 정상에는 '신선암봉 구조 제10지점'이라는 팻말이 있고
'솔라 표시등 08'이 헬기에게 위치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757m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釜峰'] 3시 15분
제가 좋아하고 자주 인용하는 詩 한수 읊지 않을 수가 없군요
산에게
나무에게
김남조
산은 내게 올수없어
내가 산을 찾아 가네
나무도 내게 올수 없어
내가 나무 곁에 서 있네
산과 나무들과 내가
친해진 이야기
산을 거기에 두고
내가 산을 내려 왔네
내가 나무를 떠나 왔네
그들은 주인 자리에
나는 바람 같은 몸
산과 나무들과 내가
이별한 이야기
['757m봉'에서 바라보는 '깃대봉'과 '삼각점봉'] 3시 22분
"757m봉"에서 깃대봉을 바라보면, 대간 마루금을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삼각점봉"이 대간 마루금인데, 저 봉우리 우측으로는 "낙동강 水界"가 되고,
좌측으로는 "한강 水界"가 됨으로 "깃대봉"은 한강 水界이니 대간 마루금은 아닙니다.
떨어지는 빗물이 운명을 달리하는 저곳도 절묘한 곳입니다.
[삼각점봉 정상] 3시 36분
"757m봉"에서 25분 정도 걸려 "삼각점봉"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앞에 "조령3관문"으로 내려 가는 갈림길이 있고, 건너편에 "깃대봉"이 보입니다
['깃대봉' 갈림길] 3시 38분
"삼각점봉"에서 2분 내려 오니 "깃대봉"과 "조령3관문"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깃대봉 갈림길' 이정표]
대간 마루금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으나 여기까지 왔으니
"깃대봉"을 갔다 옵니다. 10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왕복을 의미합니다.
['깃대봉' 오르는 된비알]
5분 정도 된비알을 올라 "깃대봉" 정상으로 갑니다.
[깃대봉 정상] 3시 44분
"깃대봉 835m"
"조령산성"의 '제3관문"이 바로 아래에 있어서 이 봉우리가 城 안팍의 동태를
살피는 조망대 역활을 했다고 하며, 이곳에 깃발을 꽂는 깃대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만, 언제나 그렇듯 정상은 허무감을 줍니다.
['깃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神仙峰']
"깃대봉"에서 바라보는 "神仙峰 967m"
神仙峰은 충주시와 괴산군의 경계가 되는 산입니다.
다시 말해 神仙峰 넘어는 충주시 입니다.
['깃대봉' 정상에서 뒤돌아 본 '928m봉 능선'과 '신선암봉']
오늘 걸어서 지나온 산봉우리들이 하나 하나 조망됩니다.
특히 "928m봉 능선"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깃대봉' 정상에서 내려다 본 ''조령3관문']
"깃대봉" 정상에서 "새재"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조령3관문"이 보입니다.
['조령3관문'으로 내려 가는 길]
'깃대봉 갈림길'에서 20분 정도 내려 갑니다.
[조령3관문-'조령관'] 4시 10분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한강水界"와 "낙동강水界"로 서로 운명을 달리하는
"조령"이 장엄한 모습으로 다가 옵니다.
[조령3관문-'조령관'] 4시 12분
'문경새재"의 하일라이트 "조령 제3관문"인 "조령관 鳥嶺關"이
고풍당당하게 위엄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서거정'의 漢詩]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식인 겸 정치인인 徐居正, 호가 四佳亭,亭亭亭입니다
徐居正은 45년간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의 여섯 임금을 모시며
6조판서를 모두 지낸 엄청난 인물입니다. 대구 출신이지요?
그가 쓴 "소백산"이라는 글이 비로봉 정상석 뒷면에 새겨져 있었는데
이곳에도 그가 쓴 "將向大丘覲親 踰鳥嶺"이라는 글이 있군요.
아마도 그는 대구가 고향이라 "문경새재"와 "죽령"을 번갈아 가며 오르 내렸나 봅니다
將向大丘覲親 踰鳥嶺
崎嶇鳥嶺似羊腸
瘦馬凌兢步步
爲報行人莫相怨
欲登高處望吾鄕
꾸불꾸불 새재 길 양장 같은 길
지친 말 부들부들 쓰러질 듯 오르네.
길 가는 이 우리를 나무라지 마시게
고갯마루 올라서서 고향 보려함일세
['조령3관문'에서 바라보는 '釜峰능선']
"조령3관문" 앞에는 넓은 공터와 주변에 막걸리 파는 곳도 있었습니다.
['조령3관문' 통과]
"조령3관문'을 통과하여 '고사리' 주차장으로 내려 갑니다.
"영남대로 嶺南大路"의 關門을 옛 선비같은 느낌으로 통과합니다.
['조령3관문' - '조령관'] 4시 14분
"鳥嶺山城"은 임진왜란을 떠올리며 얼핏 남쪽에서 쳐 들어 오는 적군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산성은 북쪽에서 내려 오는
적군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어서 城門이 북쪽을 향해 나 있습니다
['조령3관문' 앞 선비상] 4시 15분
역사에 얽힌 갖가지 전설을 비롯하여 임진왜란과 "신립 申砬 장군",
'동학 東學'과 '의병 義兵'이 남긴 史談이 골골이 서리어 있는 역사의 현장
그리고 얼마나 많은 선비들이 풍운의 꿈을 안고 이 고개를 넘나 들었을까
[鳥嶺 정상석] 4시 16분
"조령 鳥嶺" 해발 650m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伊火嶺' 사이의 새(사이)재"
"새(新)로 만들어진 고개의 새(新)재"
여러 설이 있는 고갯길이지만,
우리는 "山經表"에 "鳥嶺 延豊東二十五里 聞慶西二十七里"라고 나와 있으니
"鳥嶺", 즉 새와 관련있는 "새재"로 기억해 두어야 겠습니다.
[수안보 방향 새재길]
'고사리"방향 새재길은 승용차가 "3관문" 근처까지 누구나 올라 올수 있었습니다.
'고사리 주차장' 주차관리원에게서 확인한 사항입니다.
승용차는 누구나 올라 갈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음식점들 영업을 위해서라고..
[음식점街] [神仙峰 入口]
음식점街를 지나면 "神仙峰 入口"가 있고...
[이화여대 수련원]
'이화여대 수련원'이 있는데, 김활란 총장이 말년을 보낸 곳으로 유명하죠
"김활란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친일파 중에 한명입니다만...
그런 그녀가 "이화여대 초대 총장"으로 우리나라 여성 교육의 상징적 존재가 됬으나
그녀는 한번도 자신의 친일행위에 대해 후회하거나 반성하는 말이나 글을 쓴적이
없기도 해서 더욱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었습니다.
일본식 이름이 "天城活蘭"인 김활란씨는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되 있습니다
그녀는 이곳에서 1970년 2월 10일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고사리] 4시 43분
충북 괴산군 연풍면 고사리에 내려 왔습니다.
이곳에는 '산그린'이라고 하는 제법 큰 호텔도 있고
저수지에서 수상레져를 즐길수 있는 시설들이 있는 휴양 레져 타운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고사리'에서 뒤돌아 보는 전체 구간 구글어스]
전체적인 코스를 그려 보고...오늘 산행을 마칩니다.
[고사리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神仙峰"]
"神仙峰"의 산행 들머리이기도한 '고사리'
[고사리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鳥嶺"] 4시 45분
"경기하나산악회"와 함께한 산행이었는데
회비 25,000원에 아침 식사와 하산주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시간이 맞을 때엔 수원을 통과하여 편리한 "경기하나산악회"를 이용 할 예정입니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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