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아리바우길』
『제7코스 어명을 받든 소나무길에서 만난 명주군왕릉』
명주군왕릉-산불감시초소-술잔바위-어명정-보현사입구
['7코스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평창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는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의 "보현사 입구"에서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명주군왕릉"까지 가는 약"12km" 거리라고 합니다.
['국토지리원지도 실트랙']
오늘 직접 걸은 실트랙입니다.
일반적으로 <보광사 입구>에서 <어명정><술잔바위>로 올라 <명주군왕릉>으로 진행 합니다만
오늘은 몇몇 이유로 <명주군왕릉>에서 역방향으로 진행했는데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명주군왕릉 입구'] 10:12
2024년 7월 21일 일요일 흐린 후 맑음
<복정역>에서 7시 20분에 출발하여 약2시긴 50분이 걸려 "명주군왕릉"에 도착했습니다.
"명주군왕릉 暝州郡王陵"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왕릉마을'
<신라 제37대 왕 "선덕왕 宣德王">에 이어 제38대 왕위에 등극 할뻔 했던 인물 "김주원의 묘역"입니다.
입구에서는 "김주원의 神道碑"가 봉안 된 "명왕비각 暝王碑閣"이 답사자를 맞이합니다.
신도비에는 "신라 명주군왕 신도비 新羅溟州郡王神道碑"라고 쓰여 있는데
이 신도비의 비문은 1960년 <이승만대통령>이 짓고, 비각은 당시 국회의원 <김진만씨>가 세웠답니다.
묘역으로 들어 가는 입구 정문은 홍살문으로 단장되 있군요.
[사당]
묘역으로 들어 가면 먼저 세개의 사당이 연이어 서 있는데
<청간사> <숭열전> <숭의재>가 연이어 서 있습니다.
['청간사']
먼저 "청간사 淸簡祠"라는 사당을 만나는데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된 이 묘역의 주인인 신라시대 <명주군왕 김주원>의 23세손인 "매월당 김시습"을
모시는 사당이라고 합니다.
<조선> 초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으로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자
그 불의를 도저히 용납할수 없다고 항거하며 모든 관직을 버리고 승려가 되어 유랑생활을 하며
지금의 <경주 금오산(남산)>에 들어가 <금오신화>등 집필활동을 하기도 한 유명한 <생육신> 중에 한분이죠.
['숭렬전']
"숭열전 崇烈殿"
<신라>는 크게 3개 시대로 나누는데 <중대-통일신라시대>를 연 인물이 바로 "태종 무열왕 김춘추"죠.
<성골>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선덕여왕-진덕여왕>이 처녀들이었으니 아들을 못 낳아 대를 잇지 못하쟈
<진골>이 지배하는 나라로 바꾼 이가 바로 <김춘추>로 <통일신라시대>를 활짝 연 인물이기에
그를 추모하는 사당은 신라지역 가는 곳마다 종종 있습니다.
이 묘역의 주인인 <명주군왕 김주원>이 바로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직계로 6세손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명주군왕 김주원>은 <강릉김씨 시조>이기 전에 <경주김씨 진골집안>이었던거죠.
['숭의재']
"숭의재 崇義齎"
이곳이 바로 "강릉김씨 시조-명주군왕 김주원 暝州郡王金周元"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신라화백회의>에서 <제38대 신라왕>으로 만장일치 추대된 인물인 현재의 국무총리급인 <김주원>인데
왕위대관식 날에 비가 많이 와 <알천-현재의 경주북천>이라는 조그만 개천을 건너지 못해
왕위에 오르지 못한,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수 없는 "기괴한 비운의 인물"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잠시 후 알아 보기로 하고
['명주군왕비']
"명주군왕비"
<강릉김씨> 중에 <강릉>을 연고로 출세한 인물들이 자신의 뿌리를 과시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더군요.
국회의원을 다섯명 배출했는데 잘 아시는 <김진구><김진만><김인기><김택기><김흥기>...
장관급 이상의 정치인은 <김진선 강원도지사>를 비롯해 다수가 있더군요.
그밖에 코미디언 <김학래>씨와 축구선수 <김남일>씨도 <강릉김씨>더군요.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날개>를 쓴 <이상>이 있는데 그의 본명은 <김해경>으로 <강릉김씨>
['홍살문'] 10:16
<명주군왕릉>으로 들어 가는 입구엔 다시 홍살문이 세워져 있는데 100m쯤 올라 가면
['명주군왕릉 주차장'] 10:18
주차장을 만나며 제사를 올리는 <능향전>과 무덤이 보입니다.
여기서 꼭 알고 올라 가야 하는 것은
"명주군왕"의 의미입니다.
먼저 띄워쓰기는 "명주군 왕"일까요? 아니면 "명주 군왕"일까요?
"명주溟州"는 현재의 <강릉 지역>을 의미하는 지명이고, "군왕郡王"은 '고을郡'에 "왕王"입니다.
그러니까 "명주지역 제후"를 의미하기에 띄워쓰기는 "명주 군왕"이라 해야 할것입니다.
하지만 <삼국사기>나 <삼군유사>에선 <군왕>이라는 직위는 단 한줄도 없고, 그런 직위를 내렸다는
기록도 전혀 없는데, 조선시대에 쓰여진 <동국여지승람>에서나 등장한답니다.
<동국여지승람>은 각 자역의 지형, 관습, 전설등을 엮은 인문지리서여서 역사책으로 보진 않으니
<명주군왕>이라는 직위가 실제 있었다는 역사 기록은 없고, <강릉김씨 족보>에나 나온답니다.
잠시후 관련 <삼국사기><삼국유사> 원문을 보여드림니다.
당시 <신라>는 <9개의 州>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명주溟州>이며, 그곳의 댓빵으로
<김주원>이 간것이기에 우리가 아는 "王"하곤 거리가 있습니다.
['능향전']
어려운 한자 "제사 지낼 향享"을 사용하는 "능향전 陵享殿"과 그 뒤로 묘가 보입니다.
['명주군왕릉']
"명주군왕릉 溟州郡王陵"
<태종무열왕-김춘추>의 6세손 "김주원 金周元의 묘"입니다. 陵은 왕과 왕비묘에만 씁니다.
필자인 <파란문>의 아버님 존함과 한자까지 같아 언젠가 한번은 오고 싶었던 곳입니다.
당시 <신라>의 정치 상황을 쬐끔 알아 보겠습니다.
<성골>들에 의해 통치되던 시대는 <선덕여왕-진덕여왕>시대를 마지막으로 끊기고
<진골세력>들에 의해 정권이 바뀌는데 <29대 태종무열왕-김춘추>시대가 열리며 <김유신>등과 함께
통일신라시대로 접어 들어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죠.
잘먹고 잘살며 평화로워지면 부정부패와 쿠데타가 발생하는 것은 세계 다른 역사와도 같습니다.
혼돈 속의 신라 왕위 쟁탈전
<36대 혜공왕> 때에 <김지정의 난>이 일어 나 <혜공왕>이 죽임을 당하고,
그 난을 <상대등 김양상(金良相)>과 그의 동생 <이찬 김경신(金敬信)>등이 힘을 합쳐 난을 진압합니다.
그리고 <상대등 김양상>이 <37대 선덕왕>으로 즉위합니다. <상대등>은 요즘의 국무총리격이라고...
그런데 <37대 선덕왕>은 오래 살지 못하고 왕위에 오른지 5년여만에 후사도 없이 죽어 버리고 맙니다.
**<선덕왕>은 <삼국사기>에 두명이 나오는데 편이상 <27대 선덕왕 善德王>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덕여왕>으로 표기하고, <37대 선덕왕 宣德王>은 남자이니 그냥 <선덕왕>으로 호칭합니다,**
그래서 요즘의 국회와 비슷한 <화백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상대등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합니다.
하지만 왕위대관식하는 날에 비가 넘 많이 와 <알천-현재의 경주북천>이라는 조그만 개천을 건너지
못해 왕위대관식에 참석을 못하고 있을 때, <선덕왕>의 동생인 <김경신>이 무력으로 궁궐을 장악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니 그가 "38대 원성왕 元聖王"입니다
이렇게 오른 <원성왕>은 <김주원>에게 무척 미안했겠죠?
그래서 <명주溟州 (강릉지역)>를 식읍으로 주어 그 지역을 통치하라고 한것입니다.
<삼국유사 三國遺事 卷第二 紀異 第二>의 원문을 보면
"未幾 宣德王崩 國人欲奉周元爲王 將迎入宮 家在川北 忽川漲不得渡 王先入宮卽位 上宰之徒衆
皆來附之 拜賀新登之主 是爲元聖大王 諱敬信 金氏 蓋厚夢之應也 周元退居溟州"
"선덕왕(宣德王)이 돌아가시자, 나라 사람들은 주원을 왕으로 삼으려고 그를 궁궐로 맞이하려고 하였다.
집이 개천 북쪽에 있었는데 갑자기 물이 불어서 건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왕이 먼저 궁으로 들어가 왕위에 올랐다.
주원을 따르던 사람들도 모두 와서 따르며 새 왕에게 절을 하고 축하하였다.
이가 원성대왕으로 이름이 경신(敬信)이고 성은 김씨이다. 좋은 꿈이 들어맞은 것이다.
주원은 명주(溟州)로 물러나 살았다."
"왕위 대관식"에 지각해서 왕이 못되고 지방 토후가 된 불우한 사람이 <명주군왕-김주원>인 것이죠.
[조망]
<김주원의 묘>는 부부묘로서 두개의 봉분으로 되 있는데 어느쪽이 <김주원 묘>인지는 모른다고...
"김헌창의 난"
《삼국사기》 신라본기 헌덕왕 14년 3월의 원문을 보면...
"三月 熊川州都督憲昌 以父周元不得爲王 反叛 國號長安 建元慶雲元年"
"3월, 웅천주(熊川州) 도독 헌창(憲昌)이 그의 아버지 주원(周元)이 임금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역을 일으켰다. 국호를 장안이라하고 연호를 경운 원년이라 했다"
<명주군왕-김주원>의 둘째 아들이 <김헌창>입니다.
신라 역사에서 <김헌창의 난>은 신라의 존망을 뒤흔든 어마무시한 반란이었습니다.
<김헌창>이 도독으로 있던 지역은 <명주(강릉)> 지역이 아니라 <옛 백제지역>인 <웅천주(현재의 공주)>
지역이었으며 그가 점령한 지역이 전라도 충청도 였으니....바로 <옛 백제 지역>이죠?
태평성대를 이루던 통일신라시대는 저물고 <후삼국시대>로 분열되는 효시였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니 역사의 터닝포인트가 바로 <명주군왕>의 아들 <김헌창의 난>이었으니
지금 여기서 바라보는 <명주군왕-김주원묘>는 역사적으로도 의미심장한 것이리라~
[둘레길 들날머리] 10:24
<명주군왕릉>을 둘러 보고 본격적으로 <아리바우길7코스> 트랙킹을 역방향으로 시작합니다.
이 임도길은 <강릉바우길3.4.10구간>과 <아리바우길7코스>가 함께 하는 출입구군요.
5분정도 완만한 오름길을 진행하면...
[삼거리] 10:29
<강릉바우길10코스>가 우측으로 분기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강릉바우길10코스>는 다음에 진행 할 <아리바우길8코스>와 함께 하더군요.
<아리바우길7코스>는 <강릉바우길4구간> 방향인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4분 정도 올라 가면...
[삼거리] 10:33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은 <강릉바우길4코스>가 우측으로 분기하는 곳이고
<아리바우길7코스>와 <강릉바우길3코스>는 좌측으로 연결 됩니다.
[삼거리] 10:41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지며 곳곳에 임도가 분기하는 삼거리가 있으나
앞으로는 <술잔바위><어명정>방향으로만 진행하면 되겠습니다.
[임도]
26분정도 완만한 임도 오름길을 진행하면...
['송병골'] 11:07
"송병골 삼거리"를 만나는데 <명주군왕 주차장>이 있는 마을 이름이 <왕릉마을>이던데
그곳과 바로 연결되는 길이 있는 삼거리였습니다.
우측 <어명정>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오름길]
조금씩 경사도가 있어지는 임도를 10여분 진행하면....
['산불감시초소'] 11:18
"산불감시초소"와 "기상관측소"가 있는 곳에 도착하는데
<산림청>이 수목관리를 하는 지역이라고 차량통행을 제한하고 있고
['등산로 입구'] 11:20
<기상관측소> 옆으로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술잔바위>가 있는 산봉우리를 오르고 "어명정"으로
가는 산길인데, 지도를 보니 여기서 좌측 임도를 따라 가면 바로 "어명정"으로 쉽게 갈수 있더군요.
등산이 힘드신 후답자들은 여기서 좌측 임도를 이용해도 무방하겠으니 참고하시고...
[산길]
40여분 등산코스를 진행하면....
[바위] 11:57
구경거리 없는 산길에서 처음으로 볼거리(?)라고 할수 있는 구멍 뚫린 바위를 만나는데,
이 바위가 <술잔바위>는 아니고 조금만 더 올라 가면...
['술잔바위'] 12:04~12:12
억지 춘향이처럼 이름을 붙인 "술잔바위"라고 표기한 바위를 만나는데
바위 위로 올라 가면....
['술잔']
바위에 구멍이 난 곳이 있는데 이걸 <술잔바위>라고 하는듯 합니다. ㅎㅎ
바위에 패인 구멍에 물이 고이면 바위 온도 때문에 증발을 하지 않으니 항상 물이 고여 있죠
['술잔바위']
볼거리 없는 이 코스에선 그나마 유일한 자연 조각품이라고 기념 사진도 찍고
['적송']
능선길을 잠시 160m 정도 진행하는데 "적송赤松" 군락지가 이어집니다.
산림청이 직접 관리하는 곳이라고
['송이거리'] 12:15
<술잔바위>에서 160m 정도 진행하면 "송이거리"라고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소나무가 많은 곳이니 송이버섯도 많이 자생하는가 봅니다.
지도를 보니 여기서 직진하면 <백두대간 곤신봉>으로 올라 가는 코스더군요.
<아리바우길7코스>와 <강릉바우길3코스>는 좌측 <어명정>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내림길]
내림길을 17분정도 내려 가면....
['어명정'] 12:32~12:37
"어명정 御命亭"을 만납니다.
<올림픽아리바우길7코스>의 이름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을 만들어준 정자입니다.
['그루터기']
지난 2007년에 <광화문> 복원에 사용하기 위해 위령제를 지내고 "어명이요~!"를 세번 외치고 베어낸
금강소나무의 그루터기랍니다.
['위령제' 사진]
2007년 11월 29일 당시 금강소나무를 베어내기 위한 위령제를 지내는 사진이 정자에 걸려 있더군요.
이 소나무는 현재 <광화문>의 한 기둥으로 서 있을겁니다.
['어명정']
<술잔바위>에서 내려온 좌측 계단인데, <산불감시초소>와 <기상관측소>가 있었던 곳에서
임도가 이곳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힘드신 분들은 이 임도를 이용하면 편하겠습니다. 단, <술잔바위>를 못 보는데...그거 볼거리도 아녀요~
['강릉' 시내 조망]
이제 <강릉시내>와 <동해>가 보이고...
['거북등'] 12:45
<어명정>에서 임도를 8분여 진행하면 "거북등"이라는 갈림길을 만납니다.
임도를 진행해도 되겠습니다만, 좌측 산길이 지름길이며 정코스더군요.
[내림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17분여 내려가면...
['바위와 소나무'] 1:02
소나무가 바위를 뿌시고 자랐는지...바위 틈으로 자랐는지...
자연의 신비함을 잠시 느끼고...10여분 내려 가면...
[임도] 1:11
다시 임도를 만나 직진하는데
['대관령' 조망]
<백두대간>이 펼쳐지며 <능경봉-대관령-선자령>으로 이어지는듯...
[내림길]
다시 급경사 내림길을 13분여 내려 가면...
[등산로 들날머리] 1:24
등산로 날머리를 만나며 <보광사 입구>가 보입니다.
['어명정' 들날머리] 1:25
등산로 날머리를 바라보며 정방향으로 올랐으면 체력소모가 클 것으로 생각되어 미소를 머금고...^.^
['보현사' 입구] 1:25
<보현사 입구>를 바라보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답사를 마쳤습니다.
['뒷풀이'] 1:28
오늘은 <빠담님>이 <삼계탕>을 특별히 제공해 주셔서 피로와 삼복더위를 맑끔히 잊게 해 주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만 해서 미안해요~~ 조만간 원수를 갚아야지~~ㅎ
['보광천']
<삼계탕> 한그릇을 뚝딱 해치운 다음 <보광천>으로 내려 가니, 피서 온 사람들이 제법 있더군요.
시원한 계곡물에 더위를 씻고 돌아 왔습니다.
['고도표']
오늘 진행한 코스가 어디쯤인지 구글어스로 확인하고
<고도표>를 보면서 역방향 진행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다시금 확인 할수 있었습니다.
거리는 약11km였으며 3시간10분정도 걸렸습니다.
['월화정'과 '神漁']
마지막으로 <강릉 중앙시장> 앞 <남대천> 옆에 있는 <해파랑길 38코스>의
"월화정 月花亭'과 '신어 神漁'"에 얽힌 전설을 간략하게 언급합니다.
"명주군왕-김주원"의 아버지인 "무월랑 김유정 無月郞金惟靖"과 강릉아가씨 "박연화 朴蓮花"의
사랑이야기를 <홍길동전>을 지은 강릉 출신 "허균의 '별연사고적기 鼈淵寺古迹記'"를 요약 인용합니다.
신라 화랑이었던 <명주군왕-김주원>의 아버지 <무월랑 김유정>이 <강릉>에서 근무할때
강릉아가씨 <박연화>를 알게 되어 백년가약을 맺었는데, 임기가 끝나 서라벌로 돌아 간 <김유정>은
그후 반년이 지나도 소식도 없었답니다.
'남자는 다 그래~'라며 낙담하던 <박연화>는 혼기가 차 다른 사람과 강제결혼을 하게 되자
자살까지 하려하며 낭군만을 그리워하는데....
어느날 <남대천> 어느 곳에서 자신의 일편단심 마음을 비단에 적었는데 황금잉어가 갑자기 뛰어 올라
그 비단편지를 물고 사라졌답니다.
그 상황을 재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윗 사진 "월화정 月花亭'과 '신어 神漁'"입니다.
"허균의 '별연사고적기 鼈淵寺古迹記'"에 기록되 있는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妾不敢背約 而父母之命 將不得違 郞若不棄盟好 趁某日至 則猶可及已 不然則妾當自盡以從郞也"
"저는 감히 혼약을 위배하지 않을 것이나, 부모님의 명령을 장차 어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낭께서 만약 맹약을 버리지 않으시고 달려서 아무날까지 도착하시면 그래도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저는 마땅히 자살하여 낭을 따르겠습니다."
그 다음날 <신라 서라벌>에서 <무월랑 김유정>이 물고기 회가 먹고 싶어 <알천閼川-현재의 경주북천)>에서
잉어를 잡아 왔는데, 잉어는 펄쩍 뛰면서 재빨리 움직여 마치 호소하는 것이 있는 듯했으며
잠시 후 거품을 한 되쯤 토했는데 그 속에 흰 편지가 들어 있어, 이상히 여기고 읽어 보니 <蓮花낭자>가
손수 쓴 것이었답니다. <김유정>은 즉시 그 편지와 잉어를 가지고 왕에게 아뢰었는데....
왕은 크게 놀라며 <무월랑 김유정>에게 어서 빨리 <명주>로 가 결혼하라고 합니다.
그 날로 달려간 <김유정>은 <박연화>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날에 도착하여 극적으로 재회하여
<서라벌>로 돌아 와 결혼하여 아들 <명주군왕-김주원>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신라판 춘향전" 같은 이야기는 강릉을 대표하는 전설로 자리 잡고 있더군요.
『올림픽 아리바우길』
『제4코스 안반데기-바람부리-배나드리마을』
안반데기마을회관-피덕령-도암호-바람부리마을-배나드리마을
['4코스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평창올림픽 아리바우길 4코스"는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있는 "배나드리마을"에서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의 "안반데기 마을"까지 가는 약"15km" 거리라고 알려줍니다.
['국토지리원지도 실트랙']
제가 역방향으로 직접 걸은 실트랙을 <국토지리원지도>에 표기했는데.....
지도에 <파란색선>이 보이는 것은 오리지날 루트이며 지름길인데, 길이 나빠 도로를 이용했습니다.
['안반데기 마을회관'] 10:15
2024년 6월 16일 일요일 맑음
<복정역>에서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들어가
<고려 우왕>의 유배지 "왕산골 王山골"을 부르르렁 거리며 오르면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닭목령 鷄項嶺"을 넘게 되는데...이곳부터 '너른 큰터'라는 의미의
"대기리 大基里" 품속으로 들어 가게 됩니다. 즉, '왕산면 대기1리 王山面 大基一里'에 도착하는데,
<강원도 감자>의 <감자원종장>이 있는 마을입니다.
그리곤 다시 "대기리 大基里"의 마지막 "큰터"인 '대기4리'의 "안반데기"로 꾸불꾸불 오르면
나타나는 "대기4리 안반데기 마을회관"에 도착합니다.
평균해발 1,100m에 있는 산간오지에 있는 마을로는 제법 부티가 나는듯한 마을이 펼쳐집니다.
관광지화 되었으니...
좌측 오름길을 100m 정도 올라 가면....
['와우! 안반데기'] 10:18
"카페: 와우! 안반데기"
"고냉지농촌문화관"이라고 합니다만 그냥 단순한 카페더군요.
<용평리조트>를 찾는 사람들이 주로 다녀 가는 관광코스로 <용평스키장>에선 약20분이면 도착 할수
있는데 오늘도 몇몇 손님이 있었습니다. 아메리카노는 4,500원하더군요. 싸지도 않고
['안반데기' 조망]
카페에서 바라보는 "안반데기" 아랫쪽 방향입니다. 출발지였던 마을회관도 보이는군요.
평균해발 1,100m에 있는 축구장 280배 크기의 우리나라 최대 "고냉지 배추밭"이라서 유명하죠.
<안반데기>에 대해선 다음 <5코스>에서 더 자세히 알아 보기로 하고...
['피덕령']
<카페: 와우! 안반데기>가 있는 이 고개의 이름은 제법 유명한 "피덕령"이랍니다.
<평창>에서 <강릉>으로 넘나드는 고개 중에 하나로 <대관령>이나 <선자령>이 <강릉>에서 오르기엔
너무 가파라서 <강릉>에서 <평창>으로 갈때는 주로 이 고개를 이용했답니다.
이 근처에 "피"가 넓은 지역에 퍼져 많이 자생한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강릉시'와 '평창군' 경계] 10:20
"피덕령"은 '평창군 대관령면 수하리'와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법정 경계이기도 하답니다.
[내림길]
해발 1,100m를 오를려면 체력소모를 많이 해야겠죠.
그래서 오늘도 편하게 역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조금 내려 가면....
['발왕산' 조망] 10:24
<황병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발왕산 發王山 1,459m"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발왕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용평스키장이 있는 산이고, <2018년 평창올림픽 스키대회>가 열린 곳이죠.
정상엔 스키장 리프트 승강장과 꼭대기 레스토랑이 있는데, 최고 난이도 코스입니다.
흰눈이 내리는 겨울에 올라 오뎅에 정종대포 한잔 마시고, 스키를 타고 내려 갈때의 기분은 야호~
[내림길]
['도암호'] 11:08
<피덕령> 고갯길을 50여분 내려 가면 고갯길은 안정을 찾으며
<백두대간>과 <황병지맥>이 만들어 내는 "송천 松川"이 다시 만들어 내는 "도암호 道岩湖"를 만나는데
<대관령>은 우측으로 가고
['도암댐' 가는 길]
<도암댐>은 좌측으로 내려 갑니다.
20여분 진행하면...
['옥류정'] 11:27
"도암호 道岩湖"의 절경을 감상하라는 "옥류정 玉流亭"에 도착합니다.
['옥류정'에서 조망]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는 <옥류정>에 올라 조망을 합니다.
['도암호' 조망]
"도암호 道岩湖"는 "길 도道"에 "바위 암岩"을 쓰는데
옛 선비들이 <한양>을 오갈때 쉬어가던 바위가 있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고....
['도수터널 취수탑' 조망]
"도수터널 취수탑"
<도암호>에서 관심있게 보아야 할 <취수탑>입니다.
<도수터널>은 "道水터널"로 이곳의 물을 <강릉>으로 이동시키는 "물 이동 水路"를 의미하는데
<백두대간>을 수로터널로 "15.6km"를 뚫었답니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사진을 참고하세요~~~
['강릉수력발전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사진을 클릭하면 읽기 쉽게 확대 됩니다.
이곳의 위치와 <강릉 남대천>의 위치차를 이용해 수력발전을 한다고...
학창시정 <플레밍의 오른손 법칙-왼손법칙>등이 새삼 기억나는군요. ㅎ
[전기 생산량]
<강릉수력발전소>가 생산하는 전기의 량이 상당했답니다.
어서 빨리 친환경 전력생산을 해서 "RE100" 시대에 대비해야 겠습니다.
['댐 관리사무소'] 11:36
<도암호>는 <용평리조트>등 <횡계>에서 내려 오는 생활하수와 <안반데기>등 주변 산지 개발로
흙탕물과 농업오염수가 너무 많이 흘러 들어 수질이 매우 나쁘기로 악명 높답니다.
그래서 수력발전도 중단된 상태라죠?
현재 수질 개선작업을 하고 있다는데 상당히 좋아 지고 있다고....
['댐 상부']
['댐 옆면'] 11:38
"도암댐"의 상부와 측면을 조망하고
[내림길]
댐 아랫쪽으로 내려 가면...
['도암댐' 전경] 11:45
"도암댐" 전경이 멋지게 펼쳐집니다. <발왕산 용평스키장 정상>이 여기서도 보이는군요.
댐의 길이는 300m이며, 높이는 72m라고 하는군요.
1990년에 완공된 댐인데, <강릉수력발전소>용으로 건설되었지만, 2001년에 발전 중지 되었답니다.
['바람부리 마을'] 11:50
댐을 바라보고 5분여 내려 가면 "바람부리 마을" 안내판이 반겨 주는데
"신배나무와 백로마을"이라고 소개 하고 있습니다.
<백두대간>과 <황병지맥> 사이 계곡으로 흐르는 "송천 松川"가에 자리 잡고 있어
특히 "바람"이 많은 곳이라고 하는데.....
"바람불이 마을"은 "3無마을"로 유명하다는군요.
첫째: 여름에도 "모기"가 없고, 둘째: "모기"가 없을 정도로 시원하니 "선풍기"가 필요 없고,
셋째: 산간오지 계곡이라 "논"이 없다고 합니다.
[사과 과수원] 12:00
<바람부리 애플700 펜션>이라는 사과 과수원과 펜션을 겸업하는 아담한 집도 보이고
[잠수교]
"송천 松川"을 건너 다니는 다리는 모두 잠수교더군요.
<한양 경복궁>을 건축 할때 이 지역의 "금강소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어 운송하던 개천이라고
"송천 松川"이라고 한답니다.
여름철 수위가 좀 높을 때 주로 이용 했을거고, 갈수기나 홍수 때는 이용 할수가 없었겠죠.
['발왕사' 조망] 12:24
"발왕사 發王寺"라는 조그만 절도 보입니다.
['새터']
간간이 사람사는 집도 보이는데 지도에 <새터>라고 표기되 있더군요.
[잠수교]
마지막 잠수교를 건너면...
[고개 오름길]
고개 오름길이 이어 집니다.
이번 코스 유일한 오름길...ㅎ
['배나드리 고개'] 1:00
이정표가 있는 <배나드리고개>에 도착합니다.
<배나드리>로 가는 오리지날 코스는 우측 산길로 "1.08km"라고 알려 줍니다.
그런데 여름철 사람의 통행이 거의 없는 산길은 걷기 싫지요? 뱀도 나올거 같고...ㅎ
그래서 조금 돌아 가는 길이지만 도로를 따라 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안반데기>로 가는 길이 좌측이라고 하며 "5.54km"라는데 아마 <옥류봉>으로 질러 가는 길인듯
[삼거리] 1:04
고개를 내려 가면 <415번지방도>가 지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 <415번>도로는 오전에 버스를 타고 통과했던 <닭목령>으로 가는 길이더군요.
['대기천']
"대기천 大基川"은 <왕산면 대기리 닭목령> 등에서 흘러 내려 오는 개천이고
<배나드리>까지 10여분 진행하면...
['노추산' 조망]
중간에 "노추산 魯鄒山 1,322m"이 이젠 추억 속에서 노닐고
['배나그리 마을' 입구] 1:15
"배나드리 마을"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예전엔 이곳까지 <한강>을 운행하는 배가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배나드리마을' 조망]
"송천 松川"이 흐르는는 "배나드리교"에서 "배나드리마을"을 조망하고...
['대기천'-'송천' 합수부]
"배나드리교" 아랫쪽엔 "대기천 大基川"이 "송천 松川"에 합수하는 곳이 보입니다.
<대기천>은 여기서 그 이름을 <송천>에 넘기고...
['정선' 가는 길]
<정선 구절리>로 향하는 <415번지방도>를 조금 더 진행하면
['노추산 모정의 탑' 주차장] 1:25
<청마산악회>가 정성을 다해 제공하는 뒷풀이 장소인 "노추산 모정의 탑 주차장"에 도착하여
『올림픽 아리바우길 제4코스』를 종료합니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15.8km 였으며 3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10코스 두타연길』
금강산가는길 안내소-두타연-두타연갤러리-협동교
['10코스 안내도']
"강원도 평화누리길 10코스"는 <두타연갤러리>에서 <두타연>을 지나
<팔랑리>까지 가는 "21.6km"라고 합니다.
하지만 <두타연>에서부터 <팔랑리>까지 "12.3km"는 아직 군사상 문제가 있다고
개방하지 않아 <두타연갤러리>에서 <두타연>까지만 진행합니다.
오늘은 한마디로 "두타연 관광"입니다.
['두타연'의 위치]
<두타연 안내 매표소>에는 "금강산 가는 길"이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과연 <금강산>과 <두타연>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 <구글어스>를 편집했습니다.
<휴전선>이 코 앞에 있다는 것을 알수 있죠.
이 길은 <금강산>의 <내금강산>으로 가는 길이고, 영남지방 옛 선인들이 많이 이용한 길인데
<한양>에서 제일 많이 이용한 길은 <철원>에서 <금강산철도>가 있었던 길로 다녀 왔답니다.
['두타연출입신고소'] 9:45
2024년 6월 2일 일요일 맑음
"두타연출입신고소"는 <두타연매표소>이기도 한데, "금강산 가는 길"이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금강산 가는 길>은 전국 곳곳에 있지만 <양구군에서 가는 길>이겠죠? ㅎ
['두타연 매표소']
<민통선> 출입문이 있는 "두타연 매표소"에 도착하여 입장료와 출입신고서를 제출하고
출입팻말을 받아 목에 걸고, 다시 버스를 타고 <두타연>으로 들어 갑니다.
입장 시간이 오전, 오후 각3번씩이니 시간을 맞춰야 하겠습니다.
['두타연 입구'] 10:12
버스를 타고 잠시 진행하면 <두타연>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으며
<두타연안내도>가 있는 <두타연 트랙킹코스>로 들어 가면
['두타연' 안내]
입구에서 해설사가 <두타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는데 특별한 얘기는 없고
['두타연' 안내도]
"두타연 트랙킹코스 안내도"를 참고 합니다.
현재 진행 할수 있는 코스는 안내도의 <푸른색선> 뿐입니다.
거리는 약1.5km 정도로 여유있게 진행해도 45분 정도 걸렸습니다.
['두타연' 실트랙 구글어스]
<금강산 가는 길>과 <두타연 코스>를 좀 더 확실히 알아 보기 위해 구글어스를 편집했습니다.
먼저 <수입천>과 <사태천>이 합수 하는 지점에 있는 "이목교 梨木橋"를 알아야 하는데
<금강산 가는 길>은 <수입천>이 흐르는 좌측 <수입천>으로 올라 가고
<두타연>이 있는 우측 개천은 <사태천>으로 <성골지맥>이 지나는 <비득고개>로 가서
<팔랑리>로 가는 <강원평화누리길10코스>이며, 이어서 <11코스>인 <돌산령>을 넘어 <펀치볼>로
가는데 <11코스>는 이미 답사 한바 있습니다.
이런 분석을 한 사람은 <파란문> 밖에 없지요? ㅎㅎ
['통일기원바위' 조망]
<두타연 안내도>에서 뒤돌아 보면 조금 모양있는 바위가 보이는데 이름 붙이기 나름이지만
"통일 기원 바위"라고 부른다고...
['두타연 트랙킹 입구'] 10:20
<두타연 트렉킹 코스 입구>로 들어 가서
[사거리] 10:24
200여m 숲길을 진행하면 사거리를 만나는데
좌측길은 <양구전투위령비>로 가는 길인데, 갔다가 돌아 와야 하고
직진길은 군인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데 <강원평화누리길10코스>로 가는 길이더군요.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조각공원']
"조각공원"이 펼쳐지는데 조각품과 탱크, 미사일등 군사무기가 전시되 있습니다.
여러 조각품 중에 유명한 조각품만 촬영했는데...
['잃어버린 신발']
"잃어버린 신발-홍영표 작"
"신발 한짝은 어디로 갔나?"
분단된 현실의 아픔을 표현하는 듯 하고......
['슬픔 기다림']
"할미꽃-슬픔.기다림"
제일 인기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할미꽃"이라는 꽃 자체가 슬픈 노년의 슬픔을 표현하는 꽃이니 ....
['두타연 입구'] 10:28
<조각공원>을 지나면 <두타연 입구>를 만나는데 아주 가까운 곳에 <두타정><두타폭포>가 있고
[안내문]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사진을 클릭하면 안내문이 읽기 쉽게 확대 되는데,
이 안내문만 읽어 보면 <두타사>와 <회정선사>에 얽힌 역사를 모두 알수 있습니다.
['두타사 옛터' 입구] 10:33
"두타사 頭陀寺"가 있었던 옛터라고 합니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그 흔적 조차 찾기 어렵고....
"두타 頭陀"라는 단어를 알아야 이곳의 의미를 알수 있겠지요..
한자의 의미로 <두타 頭陀>의 뜻에 접근하려면 불가능 합니다.
왜냐하면 옛 인도 북부지방, 네팔등에서 사용하던 "산스크리트語"이기 때문입니다.
漢字는 '뜻글자'라고들 알고 계시죠? 반드시 그런건 아닙니다.
뜻글자로 접근하면 우스게 소리로 "골 때린다"로 접근되지만 그런 뜻일리야 있겠습니까?
"頭陀"는 인도 북부-내팔 등의 옛글자인 '산스크리트語' "dhuta"를 한자로 音譯한것입니다.
그리고 "dhuta"를 한자로 音譯한것을 다시 우리말로 바로 音譯을 하였기에 "두타"가 되었는데
'산스크리트語'의 "dhuta"를 알아야 뭔 뜻인지 알수 있는 것입니다
"dhuta"는 "번뇌의 티끌을 떨어 없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으며
맑은 마음으로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일"이라고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불교용어입니다.
['두타사 옛터']
"두타 dhuta 頭陀"는 "번뇌의 티끌을 떨어 없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으며
맑은 마음으로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일"이라고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데...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알아 보면
"불교 佛敎"는 <대승불교 大乘佛敎>와 <소승불교 小乘佛敎>로 대별되죠.
<석가모니>의 불교는 처음엔 <소승불교 小乘佛敎>였습니다.
<소승불교 小乘佛敎>는 "끊임없는 자기수행"으로 해탈의 경지로 가는데 역점을 두고
<대승불교 大乘佛敎>는 <소승불교>로는 우선 당장 먹고 살수 없으니 "포교활동"을 해
중생을 구제하여 함께 해탈의 경지로 가자는데 역점을 둔것이죠.
그래서 <소승불교 小乘佛敎>는 "자기수행"을 위해서 심산유곡 속으로 들어 갔고
<대승불교 大乘佛敎>는 "포교활동"을 위해 도시로 나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두타 dhuta 頭陀"는 <소승불교 小乘佛敎>가 추구하는 목표라 할수 있습니다.
요즘은 스스로 수행하는 <소승불교>는 거의 몰락하고, <대승불교>가 대세를 이루고 있죠.
['강원평화누리길10코스'] 10:36
<옛 두타사터>를 지나면 <강원평화누리길10코스>로 연결되는 출입구가 있는데
통행 할수 없고
['징검다리'] 10:37
이어서 <사태천>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만나는데, 비가 조금만 내려도 건너기 어렵겠습니다.
['비득고개' 방향 조망]
상류를 조망하는데 느낌은 북쪽인듯 하지만, 북동쪽이더군요.
<어은지맥>과 <성골지맥> 사이 <비무장지대>에서 흘러 내리는 계곡물은 정말 깨끗합니다.
하지만 <비무장지대>가 가까이 있으니 요즘 세상이 더욱 하수상 하게 느껴집니다.
['두타연' 방향 조망]
하류 방향엔 <두타연>의 하일라이트인 <두타정>과 <두타폭포 전망대>가 보이며
그 뒤로 주차장에서 보았던 <통일기원바위>도 조망되는군요.
[전망대] 10:41
<징검다리>에서 200여m 숲길을 진행하면 <두타연전망대>가 있는데
숲이 우거져 폭포는 잘 보이지 않고
['두타정' 조망]
건너편 <두타연전망대>와 <두타정>은 보이는데 잠시후 저곳으로 건너가 조망하겠고...
['샛길'] 10:43
전망대에서 100m 정도 더 진행하면 이런 "주의" 안내판을 만납니다.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아닌데 비가 오거나 하면 위험 할수 있으니 출렁다리를 이용하라고 하니
"금지"는 아니니 아주 가까이서 보기 위해선 여기로 들어 가 봐야 겠다고 생각해 들어 가 봤습니다.
['두타폭포']
속세와 떨어져 "자기수행" 하기엔 좋은 장소라 생각되는군요.
['두타교'] 10:47
다시 트랙킹코스를 따라 조금 더 내려 가면 "출렁다리"인 "두타교"를 만납니다.
[조망]
다리 중간에서 <두타연> 방향을 조망하는데 <두타폭포>는 보이지 않고
[조망]
<수입천>으로 흘러 가는 하류도 바라보고 건너 가면...
[전망대] 10:50
또 다른 전망대가 있는데
['박수근 그림 항아리']
"박수근 그림 항아리"에 대한 안내판이 있습니다.
아무리 항아리에 넣어 숨겨 놨다지만 종이에 그린 그림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을까?
['지뢰체험장'] 10:51
"지뢰 체험장"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체험 할게 없다고 해도 "지뢰까지 체험해?" "그렇게 죽고 싶어?" ㅋㅋ
"지뢰 체험하고픈 분 계세요?" ㅎㅎ
관계자들은 이런 단어 하나 쓰는데도 신중해야 합니다.
꼭 쓰고 싶다면 "지뢰 위험성 알림장"으로라도 바꾸세요~~
['전망대] 10:52
"소지섭의 길"
또 다시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엔 <소지섭의 길> 안내판이 있군요.
<소지섭>이 영화촬영차 왔다가 경관에 심취해서 수필 화보집을 냈다죠?
<양구군>이 그걸 보고 <소지섭의 길>이라고 관광홍보를 한다고...ㅎ
['두타폭포' 조망]
<두타폭포>와 <두타연>을 가운데 두고 한바퀴 도는 코스라는 걸 알수 있습니다.
['두타폭포' 조망]
가까이 다가 가서 다른 각도에서 다시 <두타폭포>와 <두타연>을 조망하고
<두타정>으로 올라 갑니다.
['두타정'] 11:03
<두타연> 위에 정자가 하나 있는데 이름하여 "두타정 頭陀亭"입니다.
조금 전에 지났던 <두타사 옛터> 바로 옆에 있습니다.
['두타폭포' 상부]
<두타폭포> 상부를 바라보고
['두타폭포' 중앙부]
낙차 큰 절벽폭포가 있던 자리는 오랜 침식작용으로 골이 패여 폭포다운 면모를 많이 잃고
['보덕굴']
<희정선사>가 수행했던 "보덕굴"이 바로 옆에 있으며...
['두타연']
진짜 "두타연 頭陀淵"이 펼쳐지는군요.
폭포가 폭포로서 위용이 사라지니 폭포수가 떨어지며 만들어 낸 웅덩이를 지명화 했다고 보이는군요.
"연못 연淵"이니
[출구] 11:05
45분 정도 <두타연 트랙킹코스>를 돌아 보고 주차장으로 나가면 <열목어>가 <두타연>의 상징으로 있고
버스를 타고 <금강산 가는 길 매표소>로 돌아 갑니다.
['금강산 가는 길'] 11:45
<두타연 출입신고소-매표소>로 돌아 가서
[안내소 정문]
<두타연 출입신고소-매표소> 부턴 "강원도 평화누리길 10코스"인 <두타연→두타연갤러리>를
도보 답사 합니다.
['고방산리']
'양구군 방산면 고방산리'를 34분여 진행하면
['두타연갤러리'] 12:19
"두타연갤러리"에 도착하고
['고방산 사거리']
<고방산사거리>에서 뒷풀이 장소가 있는 <협동교>까지 더 진행합니다.
['두타연터널'] 12:21
<두타연터널>을 통과하면
['송현2리 버스정류장'] 12:30
<송현2리 버스정류장>을 만나고
[협동교'] 12:32
이어서 <수입천>이 휘돌아 나가는 곳에 있는 <협동교>에 도착하여
[뒷풀이]
<삼겹살 항정살>과 각종 술을 무제한 제공하는 산악회는 <서울청마산악회> 뿐일겁니다. 감사 드리고...
<강원도 평화누리길>을 모두 완주하고 많은 횐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뒷풀이를 했습니다
"秋風辭"
"歡樂極兮哀情多
환락극혜애정다"
"환락이 극에 달하고 나면 슬픈 정만 많이 남는다."
.
제가 요즘 씹어 보고 또 곱씹어 보는 구절입니다.
한(漢)나라의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한무제(漢武帝)가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강물에 배를 띄워놓고
신하들과 함께 흥겨운 잔치를 하다가 읊은 '추풍사 秋風辭'의 한 대목입니다.
황제가 누려본 환락의 극치는 무엇이었을까?
절대 권력의 쾌감이었을까?
궁궐 미인들과 누려본 성적(性的) 오르가즘이었을까?
슬픈 정(哀情)이 남지 않는 쾌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었인가?
필자 '파란문'은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산으로 들로 바다로 함께 여행하는 것"이라고...
횐님들 건승하시고 담에 또 만나요~~
- 파란문-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16코스 울산바위 비경길』
미시령-미시령옛길입구-강원세계잼버리장-신평리-천진교차로-청간정
['16코스 안내도']
"강원도 평화누리길 16코스"는 <미시령>에서 <청간정>까지 가는 "16.8km"라고 합니다.
['16코스' 실트랙 지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오늘이 4월 하순인데도 "미시령 옛길"은 지난 겨울 폭설로 낙석위험이 있다고 4월말까지
폐쇠한다고 해서 지도에 파란색으로 표기된 <미시령 옛길>은 생략하고
<미시령 옛길 입구>에서 <청간정>까지만 답사했습니다.
['미시령 가는 길']
"미시령"으로 갈때마다 홍천을 지날쯤 도로에 있는 길안내판이 눈길을 끌었는데....
(요건 제가 예전에 촬영한 것입니다)
얼핏보면 단순한 길안내 처럼 보이지만 지명을 연결해서 읽어 보세요.
이제 아셨나요? ㅎㅎ
"지금까지 '속초'는 쓸쓸 우울했었나 봅니다."
그러나
"'속초'는 이제부터 신나게 되었답니다" ^*^
['미시령옛길 입구'] 10:04
2024년 4월 21일 일요일 비 후 흐림
겨울을 지나 봄까지 벼르고 벼르던 남은 숙제 두 구간 중에 하나인 <강원평화누리길 16코스>를 위해
<미시령> 진입을 시도했지만 4월말까지 <미시령 옛길>은 전면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왠만하면 "역순으로 올라 갈까?"라고 생각했으나 날씨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에 구름과 안개가
뒤섞여 한치 앞도 볼수 없으니 "이용복 산행(눈에 뵈는게 없는 산행)"을 할 어떤 이유도 찾을수 없어
<미시령옛길 입구>에서 <청간정>으로 바로 진행합니다.
['미시령']
아쉬운 마음에 기억이라도 되살리기 위해
지난 12월 3일에 <15코스>를 하며 올랐던 <미시령> 사진을 리뷰하고
['택당 이식선생의 미시파령']
"미시파령-택당 이식"
<미시령>을 노래한 최고의 한시라는 "택당 이식"선생의 글을 소개합니다.
<택당 이식선생>에 대해서는 지난 <17코스 답사기>에서 이미 소개한바 있습니다.
한번 더 언급하면 <택당 이식 선생>은 조선 <선조><광해군><인조> 때에 활약한 인물이죠.
특히 <홍길동>의 저자 <교산 허균>의 제자로 유명하며, 그후 <송강 정철>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수정선조실록>을 집필한 인물로 유명하며,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킨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습죠.
윗 글은 선생이 이곳 <고성현감>으로 재직 할 당시 <미시령>을 넘으며 쓴 글이라고 합니다.
['미시령'에서 조망]
지난 겨울 <15코스> 할때 <미시령 정상>에서 바라본 <속초> 방향입니다.
['신선암' 조망]
이 사진은 지난해 9월 승용차를 타고 <미시령 옛길>을 내려 가며 촬영한 사진입니다.
좌측 <신선암>이 보이는데 저 바위 뒤에 <수암>과 <화암사>가 있죠.
<울산바위 조망처>로는 최고 명당이라고 하는 <신선암>입니다.
<영랑호>까지 선명히 조망되며 <미시령옛길>과 터널로 연결되는 신도로도 선명합니다.
['울산바위'와 '달마봉' 조망] (지난해 9월 촬영한 사진)
이 경관 때문에 붙여진 이름 "울산바위 비경길"인데 지난 사진으로 추억하고
['울산바위' 조망] (지난해 9월 촬영한 사진)
<강원평화누리길 17코스>의 하일라이트인 "울산바위전망대"에서 이 사진을 촬영한 것입니다.
"울산바위"에 대한 전설은 대부분 아시지요?
<금강산>이 전국에 있는 멋지다고 뽐내는 바위들을 뽑겠다고 방을 내었더니,
<울산>에 있던 저 바위도 참가하러 <금강산>으로 갔는데, 몸집이 너무 커 늦게 도착했다지요.
헥헥거리며 도착했는데도 이미 일만이천봉을 모두 뽑고 난 후여서 지각으로 불합격하고
'울산' 고향으로 되돌아 가려고 했으나 돌아 가면 고향 사람들에게 챙피 당할까봐
고향으로 돌아 가는 도중 이곳에 주저 앉아버려 "울산바위"가 되었다는 전설.....ㅎㅎ
(지금도 설악산 해설사들이 관광객들에게 써 먹고 있는 얘기입니다. ㅎ)
그러나 "울산바위"는 영남의 "울산 蔚山"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한자도 틀림니다.
"鬱山바위"의 "鬱"은 <울타리 "울鬱">로서, "설악산의 울타리" 역활을 하는 바위라는 뜻이니,
정설부터 먼저 알고 전설은 재미로 믿읍시다.
['백두대간' '상봉전망대'에서 '울산바위' 조망]
참고로 2017년 9월9일에 촬영한 사진인데
<백두대간 상봉>으로가는 전망봉에서 <미시령옛길>과 <울산바위>...그리고 <화채능선>까지 조망
[미시령옛길 입구'] 10:06
<미시령옛길 입구>에서 <청간정>을 향해 바로 출발합니다.
<청간정>이 있는 <천진>까지는 "10km"라고 알려 줍니다.
100m쯤 진행하면...
['데델피노' 삼거리] 10:08
<소노문 델피노 리조트> 후문 입구 삼거리를 만나고
['잼버리로']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로 우중충해진 거리를 환하게 밝혀주는 영산홍이 새로운 감흥으로 다가오며
20여분 <잼버리로>를 진행하면....
['화암사' 입구] 10:29
"화암사 禾巖寺"
제법 유명한 절이죠?
<쌀 화禾>자와 <바위 암巖>을 사용하는 절인데 절간 앞에 있는 <수암 秀巖>의 본명이
<화암 禾巖>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쌀이 쏟아져 나오는 바위"라는 의미입니다.
중들이 바위에서 쌀이 나오자 더 많이 나오게 구멍을 더 크게 뚫었더니 쌀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답니다.
과유불급의 상징적인 바위와 절간...
['17회 세계잼버리대회 본부'] 10:38
<화암사 입구>에서 다시 10여분 더 진행하면
<17회 세계 잼버리 본부> 앞을 지나는데
['반달곰']
강원도의 상징인 반달곰이 나그네를 반겨주고
[캠핑장]
옛 잼버리대회장은 현재 캠핑장으로 이용되고 있군요.
10여분 더 진행하면...
['통일교차로'] 10:49
<통일교차로>를 지나 갑니다.
길찾기는 매우 쉽습니다. 길바닥에 그려진 파란색선만 따라 가면 되니까
['고성대로'] 10:51
이어서 <서울-양양고속도로>에서 <고성>방향으로 연결된 <고성대로>를 만나고
['신평교차로'] 10:58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의 교차로를 지나
['잼버리 동로']
<잼버리 동로>를 따라 10여분 진행하면....
['포유리조트'] 11:09
<포유리조트>를 만나고
['대순진리회 토성수련원'] 11:23
이어서 <대순진리회 토성수련원> 앞을 지나 갑니다.
[삼거리] 11:24
<대순진리회>를 지나자마자 바로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회전해서 20여분 진행하면...
['신평1 교차로'] 11:44
<신평1리>와 <인흥리> 교차로를 지나고
[조각품]
조각 전시장을 지나면
['천진교차로'] 12:10
<7번국도>가 지나는 <천진교차로>를 만나는데, 직진하면...
['옛 토성청소년 문화의집']
새로 건설중에 있는 <토성청소년 문화의 집> 안으로 들어 갑니다.
[공사중]
<해파랑길> 할때엔 길이 분명했는데 공사중인 <토성청소년 문화의집>을 통과하여
데크로 올라 갑니다.
['해변']
해안철책이 없어진 청간정 해변 데크를 진행하는데
해안철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비교하면...
['옛 해안철책']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해안철책과 해안초소가 있었는데 비교됩니다.
['청간정' 조망]
<청간정>을 조망하며 <청간정>으로 들어 가면...
['청간정'] 12:25
"청간정 淸澗亭"에 대해선 지난 <17코스 답사기>에서 자세히 알아 보았기에 생략하고
['청간정해변'] 12:28
<청간정해변>에서 답사를 마칩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약12km였으며, 2시간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8코스 화천 평화의 길』
화천 비수구미와 평화의 댐
해산령-비수구미 계곡-비수구미-평화의 댐
['8코스 안내도']
"강원도 평화누리길 8코스"는 <한묵령>에서 <북한강>을 건너는 <안동철교>를 건너
"평화의 댐"까지 가는 "12.5km" 구간이라고 합니다.
<강원평화누리길> 총20개 코스 중에 아직까지 개통되지 못한 곳이 2개 구간이 있는데
<8코스 화쳔평화의 길>과 <10코스 두타연길>입니다.
하지만 이 두 구간은 <민통선> 안을 통과하는 곳이어서 아직까지 개통을 못하고 있답니다.
['화천 풍산리 삼거리'] 9:20
2024년 2월 18일 일요일 맑은 후 흐림
오늘은 <8코스 화천 평화의 길>의 대체코스를 답사하려고 이곳 <화천읍 풍산리> 삼거리에 도착했는데
이 삼거리는 지난 <7코스 한묵령>으로 가는 직진길인 <한묵령로>와 우측 <평화의 댐>으로 가는
<460번지방도-평화로>가 분기하는 삼거리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위성지도를 편집해 보여 드리면....
['8코스'와 대체코스 지도]
오리지날 <8코스>는 지도에 빨간색 선으로 표기한 <한묵령>에서 <평화의 댐>까지 입니다.
<현위치>가 윗 사진에서 보는 삼거리이며 대체코스 출발점으로 <해산터널>을 지나 <평화의 댐>으로
가는 "22km" 거리랍니다.
['해산가든' 앞]
<현위치 삼거리>에는 <해산가든>이라는 매점과 휴게소가 있는데, <평화의 댐>까지 "22k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간은 <해발 700m급>의 <해산령>을 올라야 하는 체력소모가 많은 구간이고
또한 오늘 안개와 쌓인 눈으로 힘들거 같아 버스로 <해산령>까지 약20여분이 걸려 이동하였습니다.
['해산터널 앞'] 9:40
"해산터널"은 <'제안산 在安山 1060m'>과 <'해산 日山 1194m'> 사이에 있는 터널로
1990년 개통 될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징 긴 터널로 "1.98km"라고 합니다.
"해산령 日山嶺"은 이 터널 윗 고개입니다만 이곳에 정상석을 세워 놨군요.
이곳의 해발은 약700m 정도로 쌓인 눈의 높이가 해발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해산령 휴게소']
<해산터널>을 통과하면 좌측엔 <해오름휴게소>라는 음식점 겸 숙박업소가 있으며 주차도 할수 있어
<비수구미>를 다녀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비수구미 입구']
휴게소 건너편엔 "비수구미"로 가는 입구가 있는데 "6km"라고 알리고 있으며
좌측 <460번지방도-평화로>는 <평화의 댐>으로 가는 자동차 도로로 "아흔아홉구빗길"이라고 하는데 ..
『비수구미 트렉킹 코스』
['비수구미 트렉킹 코스']
윗 지도의 <초록색 도로>가 <아흔아홉구빗길>로서 좀 위험한 꼬불꼬불 도로를 통과해야 합니다.
빨간색 선으로 표기된 코스가 오늘 제가 진행한 "화천 비수구미 트렉킹 코스"로
"KBS인간극장"에 방영되어 유명해진『비수구미 마을』을 통과하여 <평화의 댐>으로 가는 "11.6km"입니다.
['비수구미 출입문'] 9:42
저는 두번째 방문인데 예전엔 큰 문은 잠겨 있었고 좌측 샛문을 통과해 내려 갔었습니다.
[뒤돌아 본 '해산령']
<비수구미 출입문>을 통과하여 뒤돌아 본 <해산령>이고
[내림길]
<비수구미 마을>은 1,200m급 <해산>이 만들어 내는 첩첩산중 계곡이 <화천댐>으로 인해
완전 고립되면서 <화천>에서 배를 타고 <파로호>로 가야 갈수 있는 육지 속의 섬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자동차가 다닐수 있는 도로가 있어 "산간오지"라는 명칭은 이젠 어울리지 않습니다.
해빌 700m급의 계곡이어서 비포장도로는 하얀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데
30여분 미끄러지며 내려 가면....
[다리] 10:13
첫번째 다리를 건너고
[흔적] 10:18
주변엔 화전민들이 살았던 흔적이 보이기도 하는데....
[내림길]
다시 10여분 더 내려 가면...
['과부터골'] 10:24
"과부터골"
<6.25한국전쟁>으로 남편 잃고 자식 잃은 과부들이 어디 한두명이었겠습니까...
기델데 없는 그 여인들 중에 오로지 목숨 부지를 위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 화전을 일구며
모진 목숨을 연명하던 아홉명의 여인들이 살았던 곳이랍니다.
남편이 없으니 자손을 잇지 못하고 사라져 간 그 여인들이 이 계곡에서 서성거리는듯 하군요.
정치권력들이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저지른 전쟁이 만들어 낸 죄없는 비극의 여인들....
그 여인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메이는군요.
[내림길]
<과부터골>에서 15분여 내림길을 더 내려 가면....
[다리] 10:39
계곡은 점점 계곡 다워지며 폭포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비수구미>까지 "2km"만 더 가면 된다고 예쁜 강아지가 빼꼼 내다보며 알려 줍니다.
그러니까 <해산령>에서 "4km"를 내려 왔군요.
['차량 차단기] 10:52
길은 점점 평탄해 지고 계곡은 제법 개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는데
비포장길을 다시 13분여 더 내려 가면
[마을 입구] 11:00
<비수구미 계곡>이 계곡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눈은 녹아 잘 보이지 않으니 낮아진 해발을 느낄수 있습니다.
드디어 <미수구미 마을> 입구를 통과하면....
[집] 11:08
단 세가구가 산다는 <미수구미 마을>의 첫번째 주택을 지나면
['비수구미 이장집'] 11:13
"KBS인간극장"의 주인공들이 사는 "비수구미 이장집"을 만나게 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들 며느리가 눈코 뜰새 없이 일을 한다는데....
할아버지가 또한 엄청 유명해진 분인데, 이곳에 자생하는 이름 모를 예쁜 꽃을 취미로 키웠는데
<국립광릉수목원>에만 있는 멸종위기의 세계적 희귀종인 "광릉요강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광릉수목원> 직원들이 나와 확인하고 국가 예산으로 엄청 큰 수목원을 만들어 주었답니다.
그래서 요즘은 <광릉요강꽃>이 많이 번식되어 일반인들도 쉽게 만날수 있게 되었답니다.
['광릉요강꽃']
<식물학백과>에서 인용합니다.
"광릉요강꽃, 영문명 Korean lady's slipper"
우리나라 자생식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꽃을 가진 식물로 일컬어질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여러해살이 난초이다. 곰팡이가 뿌리에 공생하여 난균근을 형성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이식과 재배가 매우 어렵다. 경기도, 강원도, 충청북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등지에 매우 드물게
자라며, 세계적으로는 일본과 중국에 분포한다. 무분별한 채취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멸종위기에 놓여 있고,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세계 적색목록에도
위기(EN, endangered) 범주에 등재되어 있다.
<광릉요강꽃>의 영문명이 재미있는데, " Korean lady's slipper" 한국여인의 슬리퍼라고 해석되는군요.ㅎ
원래 "요강"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영문명으로는 "슬리퍼" 같다고 하는군요.
특히 "한국여인의 슬리퍼" 같다고 한 이유가 뭔지 각자 상상해 보세요. ㅎㅎ
['이장집']
봄부터 가을까지 <화천군>이 운영하는 <파로호 유람선>이 <화천댐>에서 <평화의 댐>까지 운행하며
이곳을 들려 가는데, <산채비빔밥>을 제공하는 음식점으로도 유명해져 엄청 돈을 벌고 있다는 집입니다.
요즘은 <파로호>가 얼어 유람선이 다니지 못하고 육로엔 눈으로 통행이 불편하여 손님이 없기도 하고
특히 요즘은 <고로쇠> 채취로 매우 바빠 음식점은 쉬고 있다고 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아주머니가 며느리라는데 4월부터 다시 영업한다고 합니다.
[다리]
이장집에서 <도토리묵>에 막걸리라도 한잔 하고 싶었는데 못하고 다시 다리로 나가면서
[현수교 조망]
<비수구미 계곡물>이 <파로호>에 합수하는 곳을 바라보면 <현수교>가 보입니다.
[갈림길] 11:18
갈림길에서 <현수교> 방향으로 진행하면...
[현수교' 통과] 11:20
<비수구미 트렉킹코스>의 하일라이트인 <현수교>를 건너 갑니다.
[이장집 조망]
다리에서 점점 더 부자가 되어 간다는 이장집을 조망하고
[다리]
산 옆구리에 <평화의 댐>으로 가는 "비수구미 트렉킹코스"로 조성한 길을 잠시 진행하면....
['비수구미']
"비수구미"의 眞景이 펼쳐집니다.
<비수구미>라는 지명의 유래는 몇가지 설이 있더군요.
한자로 "飛水口尾"로 쓴다는 설도 있고, "秘水口尾", "非水口尾"라는 설도 있더군요.
첩첩산중 계곡이 <화천댐>으로 <북한강>이 <파로호>를 이루어 "육지 속의 섬"이 되어 버린 곳이어서
"파로호 물길의 들머리이자 날머리"로서 아름다운 물의 나라를 의미한다고 여겨집니다.
[트렉킹 코스]
산 옆구리에 조성된 트렉킹코스를 따라 15분여 진행하면....
[전망대에서 '파로호' 조망] 11:34
전망대를 만나는데 "파로호 破虜湖"가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러시아 정벌을 목적으로 에너지 확보를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수력발전용 댐인 <화천댐>을 건설하면서 만들어진 호수이므로 <화천호>라고 해야 하는데
6·25전쟁의 화천전투 때 북한군과 중공군 수만 명을 수장(水葬)한 곳이라 하여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破虜湖"라고 명명하였답니다.
[산허릿길 끝] 11:41
20여분 걸리는 산허릿길이 끝나면....
[비포장도로] 11:42
비포장도로 수준의 <파로호 수변길>을 만나고
['파로호' 수변길]
20여분 수변길을 진행하면....
['평화의 댐 공원' 조망] 12:00
<평화의 댐> 하부 공원인 <국제평화아트파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종점입니다.
가깝게 보입니다만, 좌측으로 깊은 계곡을 돌아 가야 해서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차량 차단기] 12:07
좌측 계곡으로 들어 가면 차량 차단기가 있고
[도로 삼거리] 12:20
도로로 올라 가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비수구미 들날머리"이기도 합니다.
<비수구미>를 가려면 여기서 가는게 훨씬 가깝고 쉽겠습니다.
<비수구미 2.7km >이고 <평화의 댐 2.1km >라고 알려 줍니다.
[도로]
삼거리에서 도로를 따라 15분여 진행하면....
['평화의 댐 오토캠핑장'] 12:36
<평화의 댐 오토캠핑장>을 만나고
[캠핑장 입구]
이어서 <평화의 댐> 아래 캠핑장 입구를 만나며
['평화나래교'] 12:40
<평화나래교>를 건너 갑니다.
['평화의 댐']
다리를 건너며 <평화의 댐>을 조망합니다.
사진엔 댐 가운데가 뚫린듯 하지만 입체적 그림일 뿐입니다.
댐의 목적은 홍수조절이라던가, 물을 가두어 발전에 사용하거나, 농업-생활용수로 이용하기 위함이죠.
그런데 <평화의 댐>은 수문이 없는 독특한 댐인데, 대신에 배수구가 다섯개로 터널이 뚫려있습니다.
그러니까 물을 가두는 기능이 전혀 없는 이상한 댐인데, 북한 <금강산댐>이 붕괴되거나 폭파되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 오는 물의 흐름을 완충시키는 역활을 하는 것 뿐이죠.
['평화나래교' 통과]
<평화나래교>를 건너 가면....
['국제평화아트파크'] 12:49
"국제평화아트파크" 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F-5전투기']
<'F-5전투기'>는 현재도 우리 공군이 개량하여 사용하는 전투기라고 하는군요.
하지만 요즘도 간혹 고장으로 추락하는 뉴스를 접하죠.
"이카루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죄를 지어 감옥에 갖혔는데 밀납으로 만든 날개를 붙이고
탈출했으나 너무 높이 날아 태양열에 의해 밀납 날개가 녹아 떨어져 죽었답니다.
전투기에 "이카누스"를 상징적으로 사용하기엔 좀 그렇죠?
[평화 조형물]
"평화"를 강조하는 조형물들이 있는데.....
탱크의 포신은 "평화의 나팔"로 묘사하고, 탱크 위엔 "평화의 비둘기"가 날고....
손에 손 잡고 함께 사는 세상을....
[주차장] 12:52~1:12
주차장으로 올라 가 식사를 하는데 점심을 제공하는 유일한 산악회라고 생각되는 <청마산악회>는
특히 전라도 토종 밑반찬이 진미입니다. 소주 맥주 막걸리는 무제한 제공하니 애주가들은 환호하죠?
['국제평화아트파크' 조망]
평화 조형물을 주차장 전망대에서 다시 감상합니다.
하늘로 솟은 금속 막대는 "포신"이군요.
['염원의 종'] 1:15
<평화의 댐> 하류에 세워진 "염원의 종"은 소리가 나지 않는 "나무"로 만든 종이군요.
남북 분단의 아픔을 담아 울리지 않게 만든 슬픈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는데....
침묵을 깨고 우렁차게 울려 퍼지길 학수고대합니다.
['파로호' 조망]
<염원의 종> 전망대에서 <파로호>를 조망하고....
['평화의 댐' 조망]
<평화의 댐>도 다른 각도에서 조망합니다.
"물을 저수하지 않는 이상한 댐"
"북한 금강산댐이 붕괴 될때 완충 역활만 하기를 기다리는 괴상한 댐"
['세계평화의 종공원']
<평화의 댐> 근처엔 수많은 종이 설치되 있습니다.
['평화의 댐']
<평화의 댐> 상부 도로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출발합니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11.6km"였으며 약3시간이 걸렸습니다.
가까운 길이 있는데도
멀리 돌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인생이란 먼 길을 도는 것.....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20코스 화진포석호둘레길』
고성통일전망대와 화진포둘레길을 가다
고성통일전망대-화진포둘레길입구-원당리-죽정리-이승만별장-이기붕별장-화진포금강소나무
『고성 통일전망대』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2024년 2월 4일 일요일 흐림
<강원평화누리길>의 마지막 코스인 <제20코스 화진포석호둘레길>을 가기 전에 <통일전망대>를
먼저 관광하고 가기로 합니다. 몇번 다녀 온바 있습니다만....
전망대로 가기 위해선 이곳 "마차진"에 있는 <출입신고소>에서 입장료와 주차비를 내고
간략한 안내 영상 관람을 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전망대가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전망대 주차장'] 10:56~12:15
<마차진>에 있는 <출입신고소>에서 <고성통일전망대 주차장>까지 약15분이 걸려 도착했습니다.
[전망대 입구]
전망대로 올라 가는 도보코스는 막아 놨군요. 전에는 가운데 길로 올라 갔는데....
이곳엔 장승이 세워져 있는데 남장승은 "고성 금강산 대장군"이라 하고,
여장승은 "청양 칠갑산 여장군"이라고 하는데, 서로 결혼했답니다. ㅎ
<청양>에 살던 여장승이 어찌하여 최북단 이곳 <고성>까지 시집 왔는지에 대해선 설명이 없더군요.
재미있는 사연이 있을 듯 한데...
[오름길]
주변 볼거리에 대해선 이미 제가 쓴 답사기가 있으니 생략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부록>을 참고하시고
전망대로 바로 올라 갑니다.
['F86F Sabre']
기존 답사기에 쓰지 못한 전쟁 유물이 하나 있어 언급합니다.
이 전투기는 <6.25전쟁>때에 미군이 실전 투입한 제트 전투기라고 안내합니다.
"빨간마후라"라는 영화 기억하십니까? 무지 유명해서 저는 학창시절에 단체관람 한걸로 기억되는데....
<신상옥씨>가 감독하고 <신영균씨>, <최무룡씨>, <최은희씨>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주연한 영화.....
그 영화 "빨간마후라"의 실제 주인공은 배우들 보다 바로 이 제트 전투기였죠?
그 당시 우리나라에 ['F86F Sabre']라는 사진에 보이는 전투기가 도입되어 공군의 자랑이 되고
우리나라 정부는 이를 국민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바로 "빨간마후라"였죠.
그 전투기를 조종하는 탑건들이 "빨간마후라"를 하고 작전을 한다고 그 공군부대 이름이 "빨간마후라"였고
그 때의 무시무시했던 제트전투기를 요즘 전투기와 비교해 보면 장난감 같은데...
그래도 1960년대 이후 한동안 우리나라 하늘을 지키던 그 유명했던 "빨간마후라"의 전투기를 만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구 통일전망대']
"구 통일전망대"는 폐쇄했는지 잠겨있고....
그렇게 멀지 않은 예전엔 여기서 북녁을 조망해서 더 친숙하게 느껴지지만
['신 통일전망타워']
이젠 새롭게 멋지게 웅장하게 "DMZ"의 "D자" 모양의 전망대가 우뚝 세워졌습니다.
7~8년 전에 제 친구가 여기 소장을 해서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와 본적도 있는데 ...^.^
['구선봉-해금강'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전망대에서 최고의 볼거리는 바로 이 경치입니다.
<송도>와 <구선봉> <해금강>이 펼쳐지는데....
여기선 <선녀와 나뭇꾼>의 전설이 깃든 <감호>가 보이지 않아 2019년에 <금강산전망대>에서 촬영한
다음 사진을 보여 드림니다.
['금강산전망대'에서 바라 본 '구선봉-감호-해금강']
이 사진은 제가 2019년에 <금강산전망대>에 올라 촬영한 사진입니다. 많은 도음이 될것입니다.
먼저 "구선봉 九仙峰"이 눈에 확 들어 옵니다.
<구선봉>은 <금강산>의 동쪽 끝 봉우리라고 하며 "해금강 海金剛"을 감싸고 있습니다.
아홉명의 신선이 바둑을 두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했다는 岳山인데
분단의 아픔과 함께 북한군 포진지가 바위 사이 사이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설치되 있었답니다.
얼마전 남북 화해무드가 생기면서 포 진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감호 鑑湖"
<구선봉>을 호숫물에 담고 있는 그 유명한 "감호"를 직집 알현합니다.
"선녀와 나뭇꾼"이라는 전설이 탄생된 곳이라며, "거울 鑑"자를 사용하는 "감호 鑑湖"인데
선녀가 하늘로 올라 가면서 자기 거울을 떨어뜨려 호수의 모양이 선녀의 거울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선녀의 옷을 훔친 나뭇꾼은 어디로 갔나~~ 그 선녀가 다시 내려 올듯 완벽하게 보존된 "감호"가
남북통일의 그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는듯...
조선 3대 문인 중에 한분인 "봉래 양사언"선생이 절경에 취해 집을 짓고 머물렀다고 하는 "감호"입니다.
"봉래 양사언" 선생은 금강산을 너무 좋아해서 "철원 현감"으로 자원해 철원에서 근무하며
수시로 금강산 유람을 한것으로 유명하죠.
그래서 "여름 금강산"의 별칭인 "봉래산 蓬萊山"에서 따와 자신의 호를 "봉래 蓬萊"로 지었다죠.
봄에는 "금강산 金剛山",여름엔 "봉래산 蓬萊山",가을엔 "풍악산 楓嶽山",겨울엔 "개골산 皆骨山"이라죠.
봄에는 온 산이 새싹과 꽃에 뒤덮이므로 "금강산 金剛산"이라 하고,
여름에는 봉우리와 계곡에 녹음이 깔리므로 "봉래산 蓬萊山"이라 하고,
가을에는 일만이천봉이 단풍으로 곱게 물드므로 "풍악산 楓嶽山"이라 하고,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지고 나면 암석만이 앙상한 뼈처럼 드러나므로 "개골산 皆骨山"이라고 한답니다.
**부록**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다음을 클릭해 보세요~~
『길이 열린다, 평화를 걷는다』
[DMZ 평화의 길] "금강산전망대-통일전망대 방문기" 여기 클릭
『강원평화누리길 20코스-화진포둘레길』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제가 실제 진행했던 실트랙입니다.
원래 두개의 호수를 모두 돌아야 하는데 하나만 돌았습니다.
['응봉 등산로 입구']
['화진포둘레길 출발지'] 12:30
<고성통일전망대>에서 이곳으로 이동하여 <강원평화누리길>을 시작합니다.
아곳은 <160년 수령 화진포 금강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금강습지> 주변이기도 합니다.
['화진포둘레길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강원평화누리길 20코스>는 "화진포둘레길"입니다.
['화진포 석호']
"화진포 花津浦"는 "석호 潟湖"랍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모래톱이 생겨 둑을 만들어 생긴 호수를 어려운 단어 "석호 潟湖"라 하는데
동해안에 있는 호수는 대부분 "석호"라 하고...
['금강습지'] 12:35
<화진포> 좌측에 "금강습지"가 있는데 겨울이라 얼어있고
[둘레길]
<화진포 둘레길>은 차량도 다닐수 있도록 너른 길이 조성되 있습니다
['화진포 유래'] 12:41
"화진포의 유래"에 대한 안내판이 있는데 <이화진>이라는 고약한 사람과 그의 며느리에서 유래 한답니다.
그런데 이 유래는 너무 현실감이 없어 조사를 해 봤더니...
<고성군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지명의 유래를 알리고 있는데 더 공감이 가서 안내합니다.
옛날 한 선비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마을이 나비형국이 되어 있으니 참 잘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지성있는 한노인이 '나비'가 있으면 '꽃'이 있어야 하는데 무엇이 좋다고 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선비가 '화진포'에는 '갈꽃'도 많이 피었더라 하여
그말을 듣고 농부들이 그 후 이 마을의 이름을 "화포(花浦)"라 불러 지금까지 불리어 오고 있답니다.
['산수통문'] 12:48
<산수통문 山水通門>이라는 펜션이 눈길을 끌고
['화포습지' 입구] 12:54
<화포습지> 입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화포습지'] 12:58
"화포습지"가 있는데 뭔가 특징은 찾기 어렵고
['원당리'] 1:00
이어서 '고성군 거진읍 원당리 源塘里'로 들어 갑니다.
지금까지는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를 지나 왔습니다.
['원당리' 통과] 1:05
<원당리 源塘里> 조그마한 마을을 통과하면....
[평야]
"죽정리 竹亭里".
'고성군 현내면 죽정리 竹亭里'의 평야가 펼쳐집니다.
<태백산맥>과 <동해> 사이 척박한 좁은 호숫가에 이렇게 너른 평야가 있다는 것에 놀랐는데
<고성군청 홈페이지>에 이 평야에 대한 설명이 있더군요.
이 마을은 동북쪽으로 열산현(烈山縣)때의 고성산(古城山), 서북쪽으로 노인산(老人山) 정상을 경계로
마을 중산평야지대로 중평천이 화진포로 흘러 내려 마을 앞에는 문전옥답의 1,000석 두루가 있어
옛부터 재해가 없는 부촌으로 이름나 있다
[갈림길] 1:10
"중평천"인지 뭔지 개천을 건너는 다리를 하나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 <죽정리쉼터> 방향으로 가면
['죽정리]
<죽정습지>로 방향을 틀고...
['죽정습지'] 1:15
"죽정습지 竹亭濕地"를 만나는데
['죽정습지' 통과]
관광객들을 끌기 위한 시설을 해 놨는데 볼거리가 있어야지 데크길만 만들어 놨군요.
['습지 출구'] 1:20
<죽정습지>를 벗어나서
['죽정리' 통과]
<죽정리>를 10여분 통과하면....
[삼거리] 1:32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풀코스>를 가려면 여기서 좌측 <죽정리쉼터>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하프코스>는 우측 <이승만별장> 방향으로 가는데 저는 하프코스로 갑니다.
[고개]
금강소나무가 울창한 고갯길을 잠시 넘어 가면 <이승만별장>을 바로 만나게 됩니다.
['이승만 전대통령 별장' 입구] 1:38~1:50
"이승만 전대통령 별장"
입장료를 받고 있는데, 성인은 3,000원, 경로는 무료....
['별장과 기념관']
매표소에서 올라 가면 첫번째 건물이 <이승만 전대통령 별장>입니다.
['이승만 전대통령 별장']
안내문을 참고하고 안으로 들어 가면...
[응접실]
바로 응접실에서 <대한민국 제1대-2대-3대 대통령>인 <이승만대통령>과 <프란체스카여사>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하지만 그들은 이곳에 평생 단 한번 왔다 갔다죠?
<배재학당>이 자랑하는 자기 학교 출신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배재학당> 시절 영어를 무척 잘했다죠
그래서 추천으로 지금도 가기 어려운 미국 <하바드대학>을 나와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박사"여서 그에게 따라 붙는 닉네임은 언제나 대통령보다 <이승만박사>였죠.
30살 연하의 <프란체스카 여사>와 스위스에서 만나 결혼하고, 그녀는 평생 그의 비서로 활동하여
낮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붙어 지내는 사이가 되었답니다.
요즘 갑자기 많이 회자되는 "마리 앙투아네뜨"가 태어난 <오스트리아>가 그녀의 조국이죠.
<이대통령>의 본처 <박승선씨>는 아들도 낳았지만 호적에서 파내지며 이혼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프란체스카>와 결혼을 위한 것이었고, 서류 상으로 총각과 처녀의 결혼으로 만든 것이죠.
<박승선씨>는 <6.25때> 한강을 건너지 못하고 북한군에 피살 당했답니다.
[집무실]
[침실]
제1대-2대-3대 대통령으로 권력의 정점에서 군림했지만 그도 이런 조그만 침대에서 잠을 자며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군요.
['응봉' 조망]
별장 앞에서 바라보는 <응봉>과 출발지인데 경치는 수려하군요.
['화진포생태박물관' 조망]
별장 정면으로는 <화진포생태박물관>이 조망되고
[기념관]
별장에서 나와 기념관으로 올라 가면...
[시록물]
여러 기록물들이 전시되 있습니다.
[기념관에서 조망]
기념관 아래에 있는 별장을 바라보며 내려 가면...
['화진포교'] 1:52
<화진포교>를 건너게 되고
['화진포콘도' 정문] 1:54
지난번에도 들어 갔던 <화진포콘도>로 또 들어 갑니다.
그 이유는 <이기붕별장>을 최단거리로 가기 위한 것입니다.
['명태 조형물'] 2:00
<화진포콘도> 앞에 있는 <명태조형물>을 보고, 우측으로 <이기붕별장>으로 갑니다.
['이기붕 전부통령 별장' 입구] 2:03~2:07
<이기붕별장> 입구를 지나서
['이기붕 전부통령 별장']
"이기붕 전부통령 별장"에 도착했습니다.
자세한 살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들어 가면...
[집무실]
집무실을 먼저 만나는데 별장에 왠 집무실? 쉬러 와서 집무를 한다니 좀 그렇군요.
아마 관광용으로 설치 한것이겠죠?
['박마리아' 여사]
침실에는 "박마리아" 여사 사진이 걸려 있어 이채로운데....
이 별장은 <박마리아>가 주로 이용한 별장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박마리아>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와 미국 <테네시주 네슈빌>의 <밴더빌트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당시 최고의 "신여성" 중에 한명이었죠.
<이기붕>도 미국 유학을 가서 <아이오아주>의 <데이버대학교>를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생하며
다니고 있을 때 <박마리아>를 만나 약혼을 하고 귀국하여 결혼을 하게 되죠.
그리고 <박마리아>는 <이화여대 교수>가 되고 <이기붕>은 <국일관 지배인>으로 일하기도 했죠.
그후 <박마리아>는 <이기붕>을 최고의 권력자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국 부통령까지 만들었지만 마지막 대통령이 되는 결승선 앞에서 좌절하고, 아들 <이강석>의
총탄에 맞아 죽는 집단 가족 자살로 생을 마감했죠.
일제 청산을 위한 <친일반민족행위자처벌 특별위원회>를 까부수며 무력화 시킨 우리나라 최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중에 으뜸으로 "암닭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속담의 여인 중에 한명이 되었죠.
어찌 요즘하고도 비슷? ㅎ
[침실과 사진]
침대 위에는 사진이 걸려 있는데 누구와 찍은 사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가족으로는 <장남 이강석> <차남 이강욱>이 있는데 원래 <장녀 이강희>가 있었는데 일찍 죽었다죠.
<4.19혁명>이 일어 나자 <장남 이강석>이 가족을 권총으로 몰살 시키고 자신도 자살했죠.
무모한 권력욕은 비참한 최후를...
[출입구] 2:08
<이기붕 별장>에서 샛길로 나와
[둘레길]
지난 <19코스>에서도 걸었던 <화진포둘레길>을 10여분 진행하면....
[종점] 2:17
출발지였던 <금강소나무> 앞 쉼터를 지나서 조금 더 가면...
[주차장] 2:23
산악회 버스가 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며 횐님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약8.3km 정도이며 1시간 5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춘천시의 테마둘레길』
[춘천봄내길] 제1코스 실레이야길 답사기
김유정역-실레마을입구-마을회관-산신각-고개1-404.7m봉-고개2-금병산-
삼거리-고개2-책과 인쇄 박물관-김유정문학촌-낭만누리-김유정역
['제1코스 구글어스']
['제1코스 구글맵']
[춘천봄내길1코스]는 오리지날 코스가 5.2km로서 너무 짧아 [금병산] 정상까지 다녀 오기로 합니다.
오리지날 1코스는 연두색 라인으로 표기했는데, 연두색만 보이는 구간은 휴식년제로 폐쇄 됫더군요.
제가 실제 걸은 거리는 파란색으로 표기되었으니 참고 하기바람니다.
['김유정역'] 11:10
2020년 3월 24일 (화) 맑음 연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어 외출하기도 눈치 보이는 시절입니다.
화려한 봄날이 산하를 뒤덮는데도 세상은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어 봄은 왔건만 봄이 아닌 시절에
전철을 타고 "김유정역"에 내렸습니다.
"봄에는 봄내길"을 가려고 오래 전부터 계획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뤄지다가 이제야 시작합니다.
[봄내길]의 대부분은 '춘천의 명소'들이어서 그런 명소들은 이미 답사한바 있으나
[봄내길]이라는 이름으로는 처음이기에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600여개의 驛 중에 사람 이름을 사용하는 驛은 "김유정역" 뿐이랍니다.
이름을 바꾸기 전엔 "신남역"이었죠.
['실레마을' 조망]
[김유정역]에서 정면으로 연결되는 대로를 따라 가면 "실레마을"이 펼쳐지는데
[금병산] 산줄기가 "떡시루"를 닮았다고 "시루"의 강원도 방언인 "실레"로
마을 이름을 사용하는 "실레마을"입니다.
우리나라 대표 문학인 중에 한분인 "김유정"의 고향이어서 이 마을은 온통 "김유정"으로 도배를 했습니다.
앞에 보이는 사거리를 건너 가면...
['실레마을 입구'] 11:14
이곳이 "실레마을"이라고 알리는 안내석이 반겨 줍니다.
"시루"는 한자로 "증 甑"으로 쓰기에 이 마을의 공식 행정구역 명칭은 "증리 甑里"랍니다.
"증리 甑里" 인데도 온통 "실레마을"이라고 표기하는 이유는 "김유정"의 작품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ㅎㅎ
'김유정 선생'은 그의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자기의 고향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 닫는 조고만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 섯고 그 속에 묻친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친 모양이 마치 옴푹한 떡시루 같다하여 동명(洞名)을 '실레'라 부른다."
- "오월의 산골짜기" 중에서 -
['네이버 지도]
그런데 이 주변을 통과하는 [봄내길]이 어렵게 되 있어 상세 지도를 숙지하고 가야
정확한 [데릴사위길]을 통과할수 있더군요. 지도를 보여 드리면...
윗 사진의 [세븐일레븐편의점]을 지나면 [현위치1]이라고 표기 한 곳에서 [봄내길]은
엉뚱하게 마을 골목을 돌아 나오더군요. 알기 쉬운 이정표도 없습니다.
골목으로 뺑뺑이를 돌리는 이유는 이 골목 주변이 [김유정 선생]이 쓴 단편소설 [봄봄]에 나오는
실제 배경이 되는 곳이어서 돌아 보라고 하는 듯 합니다. 구경꺼리도 없는데...
['데릴사위길' 입구] 11:17
이곳이 윗 지도의 [현위치1] 지점입니다.
골목을 조금 돌아 다시 대로로 나오는 짧은 구간이더군요.
제가 답사해본 결과, 구경꺼리도 없는 단순한 시골마을길이니 [현위치1]에서 [현위치2]까지
직진해도 아무런 후회는 없겠으니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데릴사위길']
위와 같은 정보가 없는 저는 시키는데로 마을 골목으로 들어 갔습니다.
골목으로 들어 가면 안내판이 하나 있으며 이 길에 대한 간단한 안내가 있었습니다.
[김유정선생]의 소설 [봄봄]에 등장하는 "점순이" "봉필영감" 데릴사위로 들어 온 "최씨"등은
실제 인물로 이 주변에서 살았나 봅니다. 안내인지 설명인지 뭔지 솔찍이 잘 모르겠는 안내판입니다.
*김유정의 작품을 읽어 보고 가야 실감 나는 길이니 미리 읽어 보고 가지 않으면 그 의미를
알수 없으니 미리 [김유정]의 작품을 읽어 보고 가시길 권합니다.
['금병의숙 터'] 11:21
"데릴사위 길"을 돌아 나가 다시 대로로 나가면 "증1리 甑一里 마을회관"을 만나며
마을회관 앞에 느티나무와 [김유정 기적비]가 있습니다.
이 주변 길은 [금병의숙 느티나무길]이라고 이름 붙였더군요.
"금병의숙"은 [김유정]이 만들어 농촌아이들 뿐만 아니라 부녀자들까지 가르친 농촌계몽학교입니다.
[휘문고보]를 나와 [연세대 문과]를 다니다 고향에 돌아와 세운 학교인데
그가 쓴 총31편의 단편 중에 13편을 쓴 곳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유정기적비']
['표징문']
"김유정 金裕貞" 선생은 '파란문'의 학교 대선배이기도 하여 이곳을 몇번 다녀 간바 있습니다.
'記積碑'를 세운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황명 黃命" 선생님은 제가 고3 때의 담임선생님이자
국어 선생님이었습니다. 본명이 "황복동 黃福東"이신 선생님은 1998년에 작고 하셨습니다.
[김유정선생]이 [휘문고] 출신이어서 휘문고 교사였던 [황명선생님]이 기념비를 세운듯 하군요.
[김유정선생]의 [휘문고] 시절 '연애 이야기'는 이 산행기의 마지막에 기술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시라 ~ ^*^
['금병산 등산로 들날머리'] 11:24
'기적비'가 있는 마을회관을 지나면 등산로 안내판이 있는 "금병산 등산 들날머리"를 만납니다.
['김유정 실레이야기길 안내도']
이 동네는 "김유정"이라는 문학인이 없었다면 먹고 살기 어려울듯...ㅎㅎ
온통 "김유정"입니다.
[봄내길1코스]는 [휴식년제]가 시행되어 폐쇄된 곳이 있군요.
저는 폐쇄구간을 피하고 전망이 좋은 [금병산 정상]까지 다녀와 [김유정생가]로 하산 하겠습니다.
['산신각' 조망] 11:28
등산 들날머리에서 조금 올라 가면 다리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 우측 도로로 진행 해야 하더군요.
[폐쇄구간 안내]
다리에도 휴식년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한숨길']
산 중턱에 [산신각]이라고 표기한 곳으로 [봄내길]은 이어 집니다.
이 길은 [김유정]의 소설 "솟"에 나오는 길이랍니다.
"솟"의 내용 일부는 위의 안내판을 읽어 보세요.
['산신각' 입구] 11:35
계곡 도로를 따라 올라 가다보면 [실레이야기길]은 숲속 산길로 들어 가라고 하는 입구를 만납니다.
[춘천봄내길]에 대한 안내는 거의 없고 [실레이야기길]에 대한 안내만 있으니 유의 해야 합니다.
올라 가면...
['산골나그네길' 입구 갈림길] 11:38
[금병산]에는 [금병산 정상]에서 [증1리]로 이어진 산줄기와 [증2리]로 뻗어 내리는 산줄기가 있는데
우측길은 [증2리]로 뻗어 내리는 길로서 [산골나그네길]이라는 테마길이더군요.
[실레이야기길]은 임도를 따라 직진합니다.
['산신각' 가는 길]
5분여 임도를 진행하면....
['진병산 산신각'] 11:47
[안내문]
산신각을 만나는데 "진병산 산신각 陳兵山 山神閣"이라고...
그러니까 산신각의 뒷 산줄기인 [산골나그네길]이 지나는 산이 [진병산]이겠군요.
'임진왜란' 때에 '강원도 조방사 원호'가 군사들의 진을 쳤던 곳이라고 "진병산 陳兵山"이라 한답니다.
또한 항일 의병들이 진을 치고 저항하던 곳이어서 주민들은 주민들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며
이곳에서 산신제를 지낸다고 하네요.
[쉼터] 11:49
산신각을 지나면 주민들을 위한 운동시설이 있는 쉼터를 지나고
['만무방길'로 내려 가는 길]
10여분 산길을 따라 고도를 낮추며 계곡으로 내려 가면...
[계곡 임도] 11:58
계곡 임도를 다시 만나는데 직진하여 계곡으로 더 내려 갑니다.
자칫 우측 임도를 따라 올라 가기 쉽겠으니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계곡] 11:59
그러면 이정표가 있는 [금병산 계곡]을 만나는데 여기서 좌측 내림길로 조금 내려 가야 하더군요.
또한 길조심을 해야 하는 곳이더군요. 이정표도 어딜 가리키는지 방향이 이상합니다.
['금병산계곡']
[금병산 계곡]을 올려다 보는데 이 길은 [만무방길]이라는 테마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 올라 가도 [금병산] 정상으로 갈수 있겠더군요.
['실레이야기길'] 12:02
[금병산 계곡길]을 꺼꾸로 몇십m 잠시 내려 가면 삼거리 갈림길을 만납니다.
여기선 우측길로 가야 하더군요. 길조심을 해야하는 구간입니다.
[오름길]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잠시 진행하면 잘 정비된 오름길이 이어 집니다.
이 길은 [김유정]의 단편소설 [산골]의 배경이 되는 길 중에 하나랍니다.
"남녀의 만남이 이루어 지는 곳은 약간은 외진 곳이다.
동네에서 떨어진 조용한 곳에서 일어 나는 그런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재미난 일이 아닐수 없다. 은근한 만남이 이루어 지는 보물같은 장소가 이곳이다.
- "산골" 중에서 -
['비탈길]
또한 이 비탈길은 단편소설 [소낙비]의 배경이 되기도 한답니다.
[소낙비]는 [김유정]이 문단에 등단하는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춘호 처는 돈을 구해 오라는 남편의 호령에 일단 집을 나섯지만
구할 방도가 뾰쪽이 없었다.
도라지 더덕을 찾아 가파른 산등 칡등쿨에 매달리기도 하며
남편이 원하던 돈 2원 구할 궁리를 했다.
- "소낙비" 중에서 -
[고개1] 12:11~12:20
계곡에서 12분 정도 비탈길을 오르면 "고개1"에 도착합니다.
이 고개는 [금병산 주등산로]이기도 하며,
[금병산등산로]와 [실레이야기길]이 나뉘어 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봄내길-실레이야기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휴식년제로 폐쇄되었다고 하고
또한 저는 [금병산 정상]을 다녀 오고 싶어 우측 [금병산 정상]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지도를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고개-'금병산 정상 방향']
[고개1]의 방향을 바꿔 바라보는 [금병산 정상] 방향입니다.
이 고갯길이 '김유정 선생'의 단편소설 "가을"에 나오는 실제 고개랍니다.
'복만이가 소장수 황거풍한테 매매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 먹은 고갯길'이랍니다.
아내까지 팔아 먹는 남편과 돈을 쫏아야만 했던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
아내를 팔아 먹은 복만이가 돈 50원을 황거풍이 한테 받아 챙기고는 다시 아내와 함께 도망친 고개...
저도 이 단편소설을 읽고 가난한 농촌생활과 봉건사회의 불합리한 관습이 가슴 아팟습니다.
['404,7m봉' 오름길]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만, '김유정 문학'의 특징은 당시 일제강점기 시대의 피폐한 농촌의 농민들이나
막장인생 광부들의 삶 속에서 "생활 이전의 절망 상태"를 벗어 나려는 밑바닥 인생들의 몸부림을
있는 그대로 토속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표현한 것이라고 나름대로 감상하며 느낌니다.
또한 얘뜻한 사랑 이야기를 투박한 토속어로 표현하는 그 글솜씨는
정말 한국 신문학의 풍운아였다고 아니 말할수 없습니다.
[송전탑] 12:29
고개에서 5분 정도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송전철탑을 만납니다.
['삼악산' 조망] 12:25
송전탑에서 뒤돌아 보니 먼저 조금전 "복만이가 아내 팔아 먹은 고개"가 보이고,
그 뒤로 [김유정역]과 마을, 그리고 [삼악산]이 그림같습니다.
['404.7m봉' 정상] 12:38
송전탑에서 가파른 오름길을 13분 여 오르면 "404.7m봉" 정상에 도착합니다.
[금병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고개2] 12:42
[현위치]
"404.7m봉"을 내려 가면, 이어서 두번째 고개에 도착하는데 이 고개가 매우 중요한 고개입니다.
안내도의 [현위치]가 이 고개인데 안내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저는 [동백꽃길]로 [금병산] 정상을 오르고 [금 따는 콩밭길]로 하산하여 이 고개로 되돌아 와
[김뮤정문학촌]으로 하산 할 예정입니다.
[오름길]
완만한 오름길을 6분여 진행하면...
['금병산 정상' 조망] 12:48
[금병산] 정상이 성큼 다가오며 잘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 길을 "동백꽃길"이라고 이름 붙였더군요.
[김유정]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동백꽃]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 없겠죠? ㅎ
사춘기 때의 소년 소녀의 사랑의 감정을 "애증"으로 나타내는 "점순이"....소설 기억 나나요? ㅎㅎ
[암봉]
[오름길]
[김유정역]에서 바라 볼때와는 너무 다른 만만한 산이 아니라는 걸 느끼며 낑낑대며
30여분 몇개의 봉우리와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진행하면...
['금병산 정상부'] 1:28
['금병산 정상 전망대']
"금병산 金屛山 651.7m" 정상에 도착합니다.
서울 [관악산] 보다도 높은 산인데 덩치가 작아서 쉽게 보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저녁놀이 물들 때...춘천시내에서 바라보면 금빛 병풍을 쳐 놓은듯 하다하여 [金屛山]이라 한다고
['금병산 정상 전망대'] 1:29~2:02
['의암호' 조망]
전망대에 올라 조망을 합니다.
먼저 서쪽방향으로는 [의암호]와 [화악산] 방향이 조망되고
['춘천시내' 조망]
서북쪽으로는 [춘천시내]가 조망됩니다.
[우두산]은 [도솔지맥]의 마지막 산으로 '소머리'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
[도솔지맥] 걷던 그 때가 아련히 떠오릅니다.
[우두산]과 [봉의산] 사이가 [소양강]이고...
[봉의산] 부근은 '강원도청'과 '춘천시청', 그리고 춘천의 자랑이라는 '닭갈비거리'가 있죠.
[봄내길 4구간]이기에 곧 답사도 하고 닭갈비도 먹으로 갈 예정입니다. ^*^
['오봉산' '사명산' 조망]
북쪽으로는 [도솔지맥]이 지나는 [오봉산]과 [양구]의 [사명산]까지 잘 보이는군요.
['대룔산' 조망]
북동쪽으로는 [대룡산]이 매우 가까이 조망됩니다.
['금병산 정상부']
[안내도]
하산 할때는 안내도의 [금 따는 콩밭길]로 내려 갈 예정입니다.
[내림길]
정상에서 내려 가는 길은 매우 가파랏습니다. 사진에는 경사도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만...
이 길은 안내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산골 나그네길"입니다.
[춘천]의 음식 중에 대표 음식으로는 '막국수'와 '닭갈비'가 있죠?
"춘천 막국수'에 관한 이야기는 "김유정 선생"의 작품 "산골 나그네"에도 나옵니다.
"금시로 날을 받아서 대례를 치렀다. 한편에서는 국수를 누른다.
잔치 보러 온 아낙네들은 국수 그릇을 얼른 받어서 후룩후룩 들여 마시며 색시 잘났다고 추었다.
주인은 즐거움에 너무 겨워서 축배를 흘건히 들었다. 여간 경사가 아니었다.
뭇 사람을 삐집고 안팎으로 드나들며 분부 하기에 손이 돌지 않는다.
"얘 메누라! 국수 한그릇 더 가져 온-"
어째 말이 좀 어색하구먼-- 다시 한번,
"메누라, 얘야 얼른 가져와-"
「산골 나그네」중에서
[삼거리] 2:18
정상에서 15분여 내림짓을 하면 처음으로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산골 나그네길]은 직진합니다만, 저는 우측 [금 따는 콩밭길]로 진행합니다.
[계곡 내림길]
[금병산] 허릿길을 10여분 진행하면...
[계곡물] 2:29
[금병산] 정상에서부터 흘러 내리는 계곡물을 만나고
[갈림길] 2:32
이어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좌측 계곡길은 [만무방길]로서 계곡을 따라 [산신각]이 있는 곳으로 내려 가고
저는 우측 [금 따는 콩밭길]을 이용해 [고개2]로 갑니다.
['금 따는 콩밭길']
[김유정]은 충남 구봉산 근처 금광에 가서 광부 생활도 잠깐 했습니다.
금광에서 광부생활을 하며 직접 체험한 이야기를 소설로 썻는데 제목이 "금 따는 콩밭"입니다.
내용은 간단하더구요.
일확천금을 꿈꾸는 가난한 젊은 부부가 꿈 속에서 '자기네 콩밭에 금광'이 있다는 꿈을 꾸고
콩밭을 파헤치는 ... 금은 고사하고 그통에 콩밭까지 망치는 ...결국 허무함만 남는 얘기...
['고개2'] 2:41
다시 "고개2"로 되돌아 왔습니다.
[김유정문학촌] 방향으로 하산합니다.
[주 등산로]
[내림길]
이 길은 [금병산 주등산로]이기도 하죠.
20여분 내림짓을 하면...
[잣나무숲] 3:00
잣나무숲을 만나고
['김유정 문학의 현장'] 3:03
이어서 잣나무숲 끝에 있는 쉼터 정자를 만나는데, "김유정 문학의 현장"이라는 안내석이 있더군요.
여기를 내려가 뒤돌아 보면...
['봄내길' 만나는 곳]
우측길이 [오리지날 봄내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휴식년제로 폐쇄되기 전에는 우측길로 [봄내길]이 이어 졌었는데...
현재 새로 길을 낸다고 안내는 하고는 새길이라고 안내하는 새길은 아직 없었습니다.
['눈웃음길']
[김유정문학촌]으로 내려 가는 길입니다.
[삼악산]과 [삼악산 등선봉], 그리고 [강선봉]과 [검봉산]이 조망되는군요.
"들병이들 넘어 오던 눈웃음길"이라고 안내하는데...
병에 술을 담아 들고 다니며 파는 놈들을 "들병이"라고 이 지역 사람들은 지칭했었다는군요.
"산골 나그네"라는 단편소설은 꼭 읽어 보시라고 권해 드림니다.
['책과 인쇄 박물관 앞'] 3:17
[책과 인쇄 박물관] 앞에 있는 삼거리입니다.
오리지날 봄내길은 우측으로 가야하지만, 앞에 데크길을 새로 만들어 놨더군요.
그래서 새로 만든 데크길을 이용합니다. 어디로 가나 다시 만납니다.
[개천 데크길]
['김유정 생가' 가는 길]
개천 데크길을 이용하여 [김유정문학촌]으로 갑니다.
['김유정 문학촌-생가'] 3:25
"김유정 문학촌"
[김유정 선생]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는 곳인데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폐쇄되었군요.
['김유정 기념관']
['김유정 생가']
그래서 담장 너머로 내부를 간단하게 촬영을 하고,
자세한 내용은 제가 2012년 7월 15일에 답사하고 쓴 글과 사진을 보여 드림니다.
[김유정 문학촌 정문]
"김유정 선생"은 춘천에서 6천석을 하는 부잣집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서울로 올라와
현재의 '재동초등학교'와 '휘문고교'를 다니고, 대학은 '연세대 문과'로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치질로 고생하며 폐병이 악화되어 스물아홉살에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폐렴'이 유행하지만, 당시에는 '폐결핵'이 대유행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명 작가들이 '폐결핵'으로 많이 일찍 죽었는데,
대표적 인물이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 "날개"의 "이상", "봄 봄"의 "김유정"등 많았습니다.
이 세사람은 친하기도 했는데, '이상'과는 함께 죽을 병-폐결핵을 앓아 같이 자살 하자고도 했죠.
이 세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기생을 사랑하기도 했고요... ㅎ
'이효석'은 '왕수복'을.... (저의 '봉평효석문화제' 참관기 찾아 읽어 보세요)
'이상'은 '금홍이'를....
'김유정'은 '박녹주'를....
이 시절에 '남존여비'의 봉건사회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여성들도 남녀평등을 외치며
사회참여를 함으로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新女性""연애"라는 단어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新小說 내용의 대부분이 "사랑. 연애"와 관련되는 것들이었지요.
[소설 "동백꽃"에서 '점순이'가 닭싸움 시키는 장면을 바라보는 '김유정']
'김유정 문학촌' 안을 들어 서면 먼저 마당에 설치한 이런 동상이 눈길을 끕니다.
이게 뭔지 모르는 사람은 천년을 생각해도 모릅니다만....ㅎ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을 읽은 사람은 "아!~ 그 장면!~"하고 감회부터 울컥 나올
그런 명 장면이지요? 그러면 제가 잠깐 "동백꽃" 소설 속의 그 장면을 그때의 상황과
함께 내용을 간략하게 먼저 알려 드릴까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ㅎ
소설 "동백꽃"은 '김유정'이 '나'라는 어수룩한 소년의 입을 빌어서, 점순이라는 말괄량이 소녀와의
사이에서 싹튼 사춘기 때의 미묘한 순정과 그 갈등을 소박한 말투로 재미있게 다룬
실제 이야기를 소설화 한것이고, 제목이 "동백꽃"이라고 한다는거 기억하시나요?
그리고 여기서의 '동백꽃'은 '생강나무꽃'의 이 지역 방언이라는것 알고 읽읍시다.
소설의 내용을 제나름대로 요약하면
열일곱 살 동갑내기인 마름, 즉 지주의 딸 점순이는,
소작인의 아들인 '나'에게 치마폭에 숨겨온 감자를 넌지시 내밀면서
"늬 집엔 이거 없지?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고 하자, 심사가 뒤틀린 '나'는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라고, 모처럼의 호의를 뿌리치지요.
그때부터 점순이는 '내'가 눈에 띄기만 하면 온갖 방법으로 못 살게 굴지요. ㅎ
걸핏하면, 자그마한 '우리' 집 수탉을 잡아다가 험상궂고 억센 자기네 수탉과 닭쌈을
붙이기가 일쑤이고, 별의별 악담도 서슴지 않고 퍼부어댑니다. 애증이죠.
어느날 산에서 내려오던 '나'는 점순이가 또 우리 집 수탉을 반죽음이 되도록 괴롭히는
것을 본순간 홧김에 작대기로 점순네 수탉을 때려 죽여버립니다.
그리고는 이 일로 해서 우리 집이 내쫓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울음을 터뜨리죠.
그러나 점순이는 말만 잘 들으면 이르지 않겠다고 하면서 '나'를 껴안고 쓰러집니다.
그 이후는 <동백꽃> 원문을 인용합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파묻혀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동백꽃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김유정 기념 전시관]
"김유정 기념관" 안에는 기념 될만한 물건들은 없고, 그가 쓴 책들이 전부 였습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남길만한 것이라곤 31편의 소설.....
그에 대한 이야기 꺼리라고는 그의 짝사랑 이야기가 입방아꾼들에게 관심을 끌 뿐...
['산골 이야기]
'김유정 선배'의 "산골 나그네"에서 혼인식 하는 광경을 묘사한 상황이 재미 있습니다
[미친 사랑의 노래]
'김유정의 짝사랑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지요? ㅎ
'휘문고보' 4학년 때에 '계동 골목' 어딘가에 있는 목욕탕에서 목욕하고 나오는 여자를 보고
한눈에 완전히 뿅~가서 짝사랑을 하기 시작하지요.
'휘문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문과'에 진학을 했으나 학교는 가지 않고 완전 스토커가 되어
그 여자를 따라 다니며 求愛를 했지요. 편지는 글쟁이 답게 수없이 씁니다.
'연세대' 입학 두달만에 무단결석으로 대학을 짤렸으니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시나요?
그 여자가 바로 '명월관' 기생이자, 판소리 명창이던 연상의 여인 "박녹주"였습니다.
'박녹주'는 이미 결혼도 한적이 있는 여자이지만, 판소리에 소질이 있어 기생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레코드 취입등 유명인사가 되며, 나중엔 '중요무형문화제 5호'로 지정되며
"여성국악동호회 초대 이사장"까지 지내는 여자이지요. 그는 특히 "동편제"를 잘 했답니다
[김유정 생가]
당시 '김유정'이 '박녹주'에게 쓴 편지 중에 하나를 보여 드림니다.
'김유정'의 짝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 할수 있습니다.
“나는 술로 밤을 새운다.
술을 먹으며 너를 생각한다.
지금쯤 너는 어느 요정에 가서 소리를 하고 있겠지.
이 추운 밤에 홀로 술을 드는 나를 생각해 보라.
사랑이란 억지로 식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도 너를… 생각한다.”
求愛에 대한 반응이 없자 '김유정'은 혈서로 편지를 써 보내기도 하며
자신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합니다.
당시 명창이자 '명월관' 기생이었던 '박녹주'는 사회 저명 인사들과 놀고 있는데
새파란 연하의 학삐리가 스토크 수준 이상으로 대시해 오니 기가 찻던 것이죠.
'김유정'에게 돌아 온 '박녹주'의 유일한 한마디.- - -
"무슨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편지질이오?
학생이 기생과 무슨 연애를 하자는 말이오?
학생이 이러면 나도 가슴이 아프오.
공부를 끝내면 다시 나를 찾아 주시오."
- '박녹주'가 쓴 <여보, 도련님 날 데려가오>에서"
[김유정 동상]
'김유정'은 '박녹주'와의 관계를 자전적 단편소설 "뚜꺼비"에 상세히 남겼습니다.
"어디 사람이 동이 났다구 거리에서 한 번 흘낏 스쳐본,
그나마 잘났으면 이어니와 쭈그렁 밤송이 같은 기생에게 정신이 팔린 나도 나렸다.
그것두 서로 눈이 맞아서 달떳다면야 누가 뭐래랴마는 저쪽에선 나의 존재를
그리 대단히 여겨주지 않는데 나만 몸이 달아서 답장 못 받는 엽서를 매일같이
석 달 동안 썼다."
- 김유정의 단편소설 <뚜꺼비>에서 -
이런 선배들의 전력때문에 '휘문'출신들이 바람둥이가 많다는둥...이런 소릴 듣기 시작 했다는 설이
나돌기 시작했다나 뭐래나...ㅎㅎ 믿거나 말거나....
그래도 '김유정'은 순정파였었죠?
저런 기생을 돈이 아닌, 순수한 사랑으로 안을려고 했으니.....ㅉㅉ
[야외공연장] 3:29
[김유정문학촌]에서 나가면 [야외공연장]이 있는데 전에는 없던 시설입니다.
[소설 '솟'의 마지막 장면 조형물]
['소설 '솟'의 마지막 부분]
[김유정문학촌] 앞에는 ""낭만누리"라는 관광명소를 새로 만들어 놨더군요.
눈에 띄는 조형물이 있어 가 보았는데 단편소설 "솟"의 마지막 장면을 형상화했더군요.
내용은 안내판을 참고 하고...
['금병산' 조망]
['낭만누리 춘천 관광안내소']
"낭만누리" 관광명소를 둘러 보고
['실레마을' 입구 회귀] 3:38
출발지였던 [김유정역] 앞에 있는 [실레마을 입구]의 [세븐일레븐편의점]으로 돌아와
근처에서 '막국수' 한그릇 하고 귀가 합니다.
['김유정역']
['김유정역'에서 '금병산' 조망]
[김유정]은 일곱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곧이어 아버지까지 여의게 되면서
어머니에 대한 집요한 그리움 때문에 숙명적 우울이 시작되었다고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김유정은 두 여인(기생 박녹주, 박봉자)를 향해 일방적으로 사랑을 갈구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무한정 조르듯이...
하지만 그의 우울과 그리움은 여인과의 사랑에서도 보상 받지 못하고 너무나 짧은 29년의 생을 살다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나는 숙명적으로 사람을 싫어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좀더 적절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늘 주위의 인물을 경계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 버릇이 결국에는 말없는 우울을 낳습니다."
- '김유정'의 <어떤 부인을 맞이할까>에서 -
[고도표]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GPS 측정으로 "9.7km"였으며 4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북한강 봄내가 흐르는』
[춘천봄내길2코스] 물깨말구구리길 답사기
구곡폭포주차장-구곡폭포-고개-문배마을-구곡폭포주차장
[지형도]
[개념도]
'강원도 남산면 강촌리'에 있는 "구곡폭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구곡폭포-문배마을"을 돌아 나오는 약8km를 갑니다.
['구곡폭포' 입구]
2019년 11월 9일 (토) 맑음
모처럼 승용차를 몰고 와이프와 함께 가을 나드리를 합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이용해 [강촌I.C]에서 나가 "구곡폭포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주차비는 하루 2,000원이었습니다.
[봄내길2코스]는 이곳 주차장에서 좌측 입구로 올라 [문배마을]을 오르고 우측 출구로 내려 올수 있으며
우측 입구로 올라 [구곡폭포-문배마을]을 경유하여 좌측 출구로 내려 올수도 있습니다.
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위 지도를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저는 우측 [구곡폭포 입구]로 올라 갑니다.
['구곡폭포' 정문]
[구곡폭포 입구]에서 [구곡폭포]까지는 약900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전에 한번 왔다 갔는데...
그 때는 [강선봉-검봉산-감마봉-봉화산]을 종주 할때였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입구는 같은 모습을 하고 있군요.
[입장료]
입장료를 내면 2,000원짜리 [춘천사랑상품권]을 줍니다.
입장료는 결국 무료인 셈인데, 이 지역에서 돈 좀 쓰고 가라는 의미이죠.
['구곡혼']
"구곡혼 九谷魂"을 담아 가라고 안내를 하는데
「ㄲ」으로 시작되는 단어 『꿈, 끼, 꾀, 깡, 꾼, 끈, 꼴, 깔, 끝』이『九谷魂』이라네요. ㅎ
['구구리' 계곡]
'골이 깊고 아홉구비를 돌아드는 마을'이라고 "구구리"라고 한답니다.
[인공폭포]
계곡 초입에 폭포같지도 않은 조그만 폭포가 물을 쬐끔 떨어뜨리고 있는데
"구곡폭포"인줄 알았는데 천연폭포인 "구곡폭포"는 아니고 인공폭포더군요.
['구구리 계곡']
구불구불 계곡을 조금 더 진행하면...
>
[돌탑길]
[돌탑]
돌탑들이 보이고
['구곡혼' '깡']
['구곡혼' '꾼']
「ㄲ」으로 시작되는 단어 『꿈, 끼, 꾀, 깡, 꾼, 끈, 꼴, 깔, 끝』을 표기하는『九谷魂』
[가을 계곡]
캠핑장 카페등이 있는 계곡의 중심지가 가을과 함께 더욱 아름다운 모양으로 다가오고
[갈림길]
이어서 갈림길을 만납니다.
"구곡폭포"는 좌측으로 올라 가야하는데, "구곡폭포"를 구경하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우측길로 올라 가야만 "문배마을"로 갈수있으니 유의해야겠죠.
[종합안내도]
['물깨말구구리길'의 유래]
[현위치]와 주변 종합안내도가 있습니다.
"물깨말구구리"는 "물개말"과 "구구리"를 붙여 놓은 합성단어이더군요.
"물개말"은 "강촌리 江村里"의 순우리말로 강원도 사투리랍니다.
그러니까 "물가마을 → 물깨말"이 되었답니다.
['구곡폭포' 오름길]
"구곡폭포"로 올라 가는 길은 계단으로 잘 조성되 있는데
경사도가 제법 있어 발품을 좀 팔아야 하더군요.
['구곡폭포']
['구곡폭포 유래']
"구곡폭포 九谷瀑布"
안내문을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와이프 인증샷]
가는 세월을 붙잡아 두려고 모처럼 와이프 사진 한장 올립니다. ㅎㅎ
['구곡폭포' 아래쪽 조망]
"구곡폭포"에서 내려다 본 계곡입니다.
다시 삼거리로 내려가 "문배마을"로 ...
['문배마을' 가는 길]
삼거리에서 "문배마을"로 올라 가는 고갯길입니다.
"문배마을"로 넘어 가는 고개를 "깔딱고개"라고 하는데 25분 정도 걸리더군요.
[오름길]
"문배마을"로 가는 길은 급경사인데 지그재그로 길을 만들어서 그런대로 올라 갈만합니다.
몇구비 올라 가서
[뒤돌아 본 '구곡폭포' 방향]
뒤돌아 본 "구곡폭포"가 있는 계곡입니다.
계곡은 수직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오름길]
고갯길은 지그재그여서 경사도가 좀 완만하지만 산비탈은 수직 절벽인데
[깔딱고개]
고개 입구에서 약25분이 걸려 "깔딱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어느 산을 가도 이런 깔딱이는 있기 마련이죠.
[깔딱고개 쉼터]
[현위치]
"깔딱고개"에는 쉼터와 안내도가 있어 이곳이 어디쯤인지 알려 줍니다.
[현위치와 '문배마을' 안내도]
"깔딱고개"를 넘어가면 "문배마을"이니 마을 안내도가 있습니다.
이 마을은 산채나물비빔밥과 닭도리탕이 유명하죠.
음식점이 열군데 정도 되니 어느 집으로 갈것인지 여기서 알아 보고 가는게 좋은데...
어느 음식점이나 비슷비슷하겠습니다만...미리 정보를 알아보고 가면 도움이 되겠죠. ㅎ
['봉화산' 조망]
"깔딱고개"에선 "봉화산"이 조망되더군요.
제가 10년 전에 올랐던 산봉우리인데, '춘천'에는 세개의 "봉화산"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입니다.
바로 앞에는 분수와 함께 "문배마을" 생태습지공원이 조성되 있더군요.
보이는 분수 뒤로 "구곡폭포"가 있답니다.
['문배마을' 조망]
"깔딱고개"를 지나면 "문배마을"이 전체적으로 조망됩니다.
[검봉산] [감마봉] [봉화산] 세 산봉우리의 가운데 쯤에 분지 향태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마을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어느 퇴역 군인이 이곳에 정착해 '산채나물비빔밥'을 등산객들을 상대로 팔았는데
입소문이 나 번성하기 시작하고, 이어서 깡촌에 음식거리가 생겨났다고...
[생태공원]
[점심식사]
음식점이 열군데 정도 있으니 어느 음식점을 이용 할것인지 좀 망서려지겠죠? ㅎ
퇴역 군인이 처음 비빔밥을 팔았다고 하는 음식점의 이름은 여기서 거명 않겠습니다.
음식맛은 비슷비슷 할텐데 사람들은 꼭 "그 집"만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번성하는 집만 번성하기에 골고루 번성하길 바라면서 "그 집'은 언급 않는 것이니 골고루 이용하시길 ㅎ
"그 집"을 꼭 알고 싶으신 분들은 마지막에 첨부되 있는 "검봉산-봉화산 산행기"를 자세히 읽으면
"그 집"의 이름을 알수 있습니다.
[산채비빔밥]은 8,000원이었고, 닭.오리 도리탕-백쑥은 50,000원이었습니다.
저는 [산채비빔밥]과 [손두부 7,000원] 맥주 한병으로 모처럼 마눌과 함께 깊은 산골 음식을 즐겼습니다.
['문배마을']
음식점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문배마을"이며 넘어온 "깔딱고개"의 위치가 보입니다.
내려 갈때엔 우측 "봉화산 임도길"이 [봄내길2코스]입니다만
[문배마을]로 오르내리는 차량이 제법 많아 먼지도 많이 나고, 거리도 좀 멀어
올라 왔던 길로 다시 내려 갑니다.
['구곡폭포 갈림길]
['구곡폭포' 정문]]
[문배마을]에서 약45분 정도가 걸려 하산하면 [구곡폭포 정문]에 도착하고
['구곡폭포' 주차장]
주차장에서 가을여행을 마침니다.
돌아 오는 고속도로와 주변 도로들은 주말을 맞아 혼잡하였습니다만
그런대로 즐거운 가을 나드리였습니다.
"구곡폭포"와 "문배마을 음식점" 주변의 산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강선봉-검봉산-감마봉-봉화산 산행기" 여기 클릭
『춘천시의 테마둘레길』
[춘천봄내길] 2-1코스 의암순례길 답사기
의암류인석유적지-가정3리-미나리폭포-문배고개-문배마을-구곡폭포-강촌역
['제2-1코스 지도']
['제2-1코스 구글어스']
[지형도]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3리'에 있는 "가정3리 마을회관"에서 출발하여,
"가정천"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문배고개"를 오르고 "문배마을"에서 산채비빔밥 한그릇하고
[봄내길2코스]인 "구곡폭포"를 경유하여 "구곡폭포주차장"으로 하산합니다.
['강촌역'] 8:31
2020년 3월 31일 (화) 맑음
[상봉역]에서 7시18분에 출발하는 [경춘선] 전철을 타고, 8시30분에 [강촌역]에 내렸습니다.
지난 가을에 승용차를 이용해 [봄내길2코스]를 할때 와 보곤
유난히 길고 암울했던 지난 코로나의 겨울을 지나 꽃피는 봄에 다시 왔습니다.
여기서 역 정면인 북쪽을 바라보면...
['삼악좌봉' 조망]
어느 블로거가 앞에 보이는 "삼악좌봉-등선봉-615m봉"을 오르지 않고는 "삼악산"을 가 보았다고
얘기하지 말라고 하는 글을 읽고 자존심에 올랐던 봉우리들입니다.
저 봉우리들에 대해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 글 끝에 있는 부록을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강촌역입구' 버스정류장] 8:35
[봄내길2-1코스]는 [강촌역]에서 [구곡폭포]로 가서 진행하라고 안내하지만
교통이 불편한 산골을 날머리로 잡는 것은 하루에 몇번 없는 시골 버스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에 날머리로 먼저 가는 것은 어느정도 예측 가능해서 먼저 날머리인 [가정리]로 갑니다.
[가정리]로 가는 시내버스는 [강촌역 앞]에 있는 정류장에는 서지 않고,
[강촌역] 우측 동쪽 삼거리에 있는 이곳 "강촌역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타야 한다는 걸 모르면 고생합니다.
['남면1' 춘천시내버스]
[춘천시내버스]를 조사해 보니 "남면1-가정리행 버스"가 약2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더군요.
[춘천중앙시장 시종점]에서 [6시, 8시20분, 10시, 12시...]에 출발하는데,
[8시20분]에 [중앙시장]을 출발하는 버스는 이곳 [강촌역입구]에 "8시42분"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봉역]에서 7시18분 전철을 타고 8시30분에 [강촌역]에 내린 것입니다.
[경춘고속도로]와 연결되는 도로를 23분여 달리면...
['의암 류인석' 유적지] 9:05
"의암 류인석 유적지" 앞을 통과합니다.
구한말 항일의병대 13도 도총재를 역임한 "의암 류인석선생"의 묘소가 있는 유적지랍니다.
고향이 이곳 "춘천시 남면 가정리"라고 하는 군요.
[봄내길2-1코스 의암순례길]은 여기가 시종점입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의암 류인석 유적지"는 폐쇄되어 들어 갈수 없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버스 안에서 사진 촬영만 하고 그냥 통과합니다.
이번 [봄내길2-1코스]는 "의암순례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길이어서 이곳 유적지를 둘러 보고
선생의 넋을 기리며 걸어야 의미가 더 있겠지만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문을 닫아 아쉽습니다.
[의암댐] [의암호]가 춘천에 있는데 [춘천]이라는 이름 대신 [의암]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알겠습니다.
이곳 유적지와 선생에 대해선 [의암류인석기념관 홈피]를 인용합니다.
['가정3리 마을회관'] 9:10
[의암 류인석 유적지]에서 버스는 5분여 더 달려서 "가정3리 마을회관" 앞 종점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문을 닫고 '방콕'을 하는 우리나라...아니 전세계가 이렇지요? 빨리 종식되야겠는데...
여기서부터 "춘천봄내길2-1코스 의암순례길"을 시작합니다.
['의암순례길-가정3리 구간]
[구곡폭포주차장]까지 9.9km, [의암 류인석 유적지]까지 3km라고 알리는 안내판이 위안을 줍니다.
3km를 버스로 이동했으니 오늘은 여유로운 답사가 되겠습니다. ^*^
중앙에 보이는 봉우리는 [춘천지맥]의 [소주봉]인듯 합니다.
['가정3리']
'춘천시 남면 가정3리'를 통과합니다.
[봄내길2-1코스]는 이 길만 계속 따라가면 됩니다. 쉽지요?
20여분 한적한 마을길을 진행하면....
[개천도로] 9:31
계곡 개천이 도로를 가로지르는 곳을 만나는데, 좌측 갓길을 이용하면 되더군요.
이 개천의 이름은 "가정천 柯亭川"이라고 하며, [홍천강]의 지류가 되겠습니다.
[개나리]
내일이면 활짝 꽃피울듯한 개나리가 도열을 하고 있는 마을길을 10여분 더 진행하면....
['한국순교성인선교회'] 9:43
[한국순교성인선교회]라는 곳을 만나고
[전원주택] 9:47
이어서 제법 멋들어진 주택을 지나는데 이 주택이 이 계곡의 마지막 주택이더군요.
10여분 더 올라 가면...
[사방댐] 9:58
사방댐이 건설되 있고
['장군바위' 조망]
이어서 이 계곡에서 자연풍광이 가장 뛰어나다는 "미나리폭포"가 있는 "장군바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미나리폭포' 앞] 10:02
[현위치]
[미나리폭포] 앞에 안내판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진행하는 코스를 이 안내도를 이용해 설명하면....
[봄내길2-1코스]는 숫자로 표기된 '누런색' 선으로 표기되 있습니다.
한편 [봄내길2코스]는 '흰색' 길에 '빨간색'으로 표기한 루트입니다.
그런데 [2코스 구곡폭포]의 우측 길은 차량통행이 많은 비포장도로여서 먼지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2-1코스]도 차량콩행이 없는 [2코스]의 좌측 [구곡폭포 길]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길제는 [문배마을]에서 한잔 하려고...ㅎㅎ
어느 길을 선택 할것이냐는 각자의 선택이나 후답자들은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미나리폭포']
[안내문]
['미나리폭포-武瀑']
[2-1코스]에서 볼거리로는 최고로 여겨지는 "미나리폭포" 이거 뿐이더군요. ㅎ
[춘천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문배고개]를 정점으로
[북한강]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만드는 "구곡폭포"는 "문폭 文瀑"이고
[홍천강]으로 흐르며 만드는 "미나리폭포"는 "무폭 武瀑"이 본명이었다군요.
이런 곳에 이런 폭포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오름길]
[미나리폭포]에서 15분 정도 끝없이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올라 가서 뒤돌아 보면...
[뒤돌아 본 '장군바위'] 10:17
[미나리폭포]가 있는 [장군바위]가 조망되는군요.
좌측 뒤에 검게 보이는 산줄기는 [춘천지맥]인듯하고 [소주봉] 근처인듯...
다시 엄청 꼬불꼬불한 오름길이 40여분 이어집니다.
직선거리는 얼마되지 않는데 차량이 넘을수 있도록 경사도를 낮추기 위해 뺑뺑이를 돌리더군요.
또한 중간에서 쑥을 뜯느라 시간을 좀 보냈습니다.
이런 강원도 계곡, 또한 고도가 높은 계곡에서 뜯은 쑥은 집에 가서 된장국으로 잘해 먹었습니다. ^*^
['문배고개'] 11:05
[이정표]
[춘천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문배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세번째입니다.
이 고개를 기준으로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북한강]으로 가고, 남쪽으로 흐는 물은 [홍천강]으로 갑니다.
그리고 [홍천강] 물줄기는 [청평댐] 앞에서 [북한강]에 흡수 되지요.
좌측으로 가면 [춘천지맥] 산줄기가 [세덕산-명태산]방향으로 가서 [자라섬] 앞 [북한강]으로 가고
또한 [구곡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가 [강선봉-검봉산-감마산-문배고개-봉화산-안산-강촌역]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 산줄기에 대해선 제가 두발로 쓴 산행기가 부록에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읽어 보세요.
['검봉산' 조망]
[문배고개]에 올라 서면 [검봉산]이 조망되는데, 가운데 계곡에 [문배마을]과 [구곡폭포]가 있습니다.
[내림길]
너른 임도를 따라 10여분 내려 가면....
[삼거리] 11:15
중요한 삼거리를 만납니다.
이 삼거리에서 좌측 길로 가면 [문배마을]로 가는 길이고 우측길은 [구곡폭포입구 주차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좌우 임도는 "춘천봄내길 2코스"입니다.
또한 "춘천봄내길 2-1코스"는 여기서 우측 임도로 조금 내려 가다가 지도에서 보는바와 같이
가운데 산길을 이용해 주차장으로 내려 갑니다.
좌우측 임도는 [문배마을]로 통하는 도로여서 차량의 운행이 제법 많더군요. 먼지가 장난이 아닙니다.
저는 [문배마을]을 들려 '산채비빔밥'에 한잔하고
비포장도로 먼지를 피해 좌측 [2코스]를 이용해 내려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2-1코스]는 여기서 이별하고... [문배마을]에 가서 한잔...ㅎ
[이정표]
['문배마을' 안내도]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와 [문배마을 안내도]를 참고하고
['문배마을' 가는 길]
[문배마을]로 갑니다.
저 앞에 보이는 고개를 넘어 가야 [문배마을]입니다.
13분여 진행하면....
['문배마을' 입구 고개] 11:38
[문배마을]로 들어 가는 고개를 만나고
['문배마을'] 11:40
이어서 "문배마을"이 펼쳐집니다.
위의 안내도에서 본바와 같이 [문배마을]은 약20,000평 규모의 작은 분지로
10가구 정도가 음식점 등을 하며 생활하고 있답니다.
시간이 약간 이르기도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문배마을]은 조용하군요.
[음식점] 11:45~12:55
[문배마을]에는 10개 정도의 음식점이 '산채비빔밥' '닭도리탕'등을 팔고 있는데 전국적으로 좀 유명하죠?
저는 어느 집이 원조인지...어느 집이 더 좋은지에 대해선 언급 않겠습니다. 각자 다를수 있으니까요.
저는 세 군데 가서 먹어 봤는데 대략 비슷비슷 하더군요.
산채비빔밥에 동동주로 한시간여 놀다가 출발합니다.
['깔딱고개' 조망]
[문배마을]에서 [2코스]를 따라 앞에 보이는 [깔딱고개]를 넘어 [구곡폭포]로 하산합니다.
[문배마을]의 크기를 느낄수 있는 광경입니다.
['깔딱고개' 가는 길]
[깔딱고개]로 올라 가면....
['깔딱고개'] 1:04
"깔딱고개"는 '구구리'와 '문배마을'의 경계라고도 할수 있더군요.
[내림길]
[깔딱고개]에서 20여분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 가면....
['구곡폭포' 갈림길] 1:24
'구구리'의 [구곡폭포] 갈림길을 만납니다.
여러번 다녀 갔습니다만 [구곡폭포]를 또 구경하고 갑니다.
['구곡폭포' 오름길]
데크 계단으로 연결된 [구곡폭포]로 올라 가는 길을 5분 정도 진행하면...
[구곡폭포'] 1:29
[안내문]
"구곡폭포 九曲瀑布"는 여러번 언급했으니 안내문을 참고 하고...
['구곡폭포-문배마을' 갈림길]
[다리]
[구곡폭포-문배마을 갈림길]로 되돌아와 내려 갑니다.
['구구리']
[돌탑]
[계곡길]
[춘천봄내길2코스]의 이름을 "물깨말구구리길"이라고 하는데
쉽게 풀이하면 "강촌 江村"을 의하는 "물 가 마을"의 강원도 춘천 사투리가 "물깨말"이고
"구구리"는 이곳을 말한다는데 계곡이 구불구불 아홉구비를 돌아 간다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구곡폭포 매표소']
['구곡폭포' 주차장] 1:51
[구곡폭포 입구] 주차장으로 나가 버스를 타고 [강촌역]으로 가 귀가했습니다.
[고도표]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약10km이고 4시간 40분 정도가 걸렸는데,
[문배마을]에서 식사와 한잔 하는 시간이 포함되었습니다. ㅎ
-- 부록 --
"춘천 삼악산 "삼악좌봉-등선봉-615m봉-등선폭포" 산행기""강선봉-검봉산-감마봉-봉화산 산행기"
『춘천시의 테마둘레길』
[춘천봄내길] 5코스 소양호 나룻터길 답사기
소양댐선착장-(뱃길)-품걸리선착장-품걸리-품걸교-요골-6코스갈림길-
고개정상-갈골-물로교-물로리선착장-(뱃길)-소양강댐선착장-소양댐
['5코스 지도']
['제5코스 구글어스']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에 있는 "소양호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소양호"를 통과하여
'강원도 춘천시 동면 품걸리'에 도착하여 "품걸리→물로리"까지 이어지는 임도를 걷고
돌아 오는 "춘천봄내길 5코스 소양호 나룻터길"를 갑니다.
['소양강 선착장' 입구] 8:18
2020년 4월 21일 (화) 약간 흐림 바람
[서울 상봉역]에서 새벽 6시36분에 출발하는 [경춘선]을 타고 [춘천역]에 7시57분에 내렸습니다.
[춘천역]에서 헐레벌떡 택시를 타고 20여분 걸려 바로 이곳 [소양호 선착장]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택시비는 18,000원이었습니다.
새벽 4시반부터 집에서 숨막히는 질주를 할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배 시간 때문이었습니다.
[선착장 가는 길]
[선착장]
"소양호 선착장"
[청평사]까지 관광 목적으로 운행하는 유람선이 주를 이루는 선착장입니다만
[소양호]의 이곳저곳 오지마을과 낚시터등을 운항하는 연락선이 운항하는 선착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연락선은 하루에 [오전8시30분] [오후3시] 두번만 운행하기에 새벽부터 헐레벌떡
움직였던 것입니다.
['수영15호'] [선실 안]
[오전8시30분]에 출항하는 선박의 이름은 [수영15호]였습니다.
배에 오르니 먼저 승선자 신원 파악을 하더군요. 이름과 생년월일 전화번호를 적어 내고...
요금은 [품걸리]까지와 [물로리]에서 다시 돌아 오는 왕복 요금으로 11,000원/인 이었습니다.
['소양호 선착장']
[8시30분]이 출발시간인데 실제 8시27분에 조금 일찍 출항하더군요. 선장 시계가 좀 틀리나? ㅎ
출항 하며 뒤돌아 본 [소양호선착장]의 전경입니다.
['소양강댐']
"소양강댐"이 조망됩니다.
1967년 착공되어 1973년 10월에 완공된 홍수조절과 수력발전등 다목적댐이죠.
높이 123m, 길이 530m인 한국 최초의 중앙차수벽식 사력 댐으로,
중앙에 진흙으로 심지를 박고 그 양쪽을 모래와 자갈만으로 쌓아올렸다고 해서 더욱 유명하지요.
[소양강수력발전소]는 연간 3억 5,300만kWh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어 완공 당시의 발전용량은
한국 총수력발전용량의 1/3에 해당되어, 국내 전력난 해소에 엄청 도움을 주었다지요.
['마적산''오봉산' 조망]
[소양호]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며 다시 뒤돌아 본 선착장 방향입니다.
"마적산"과 "도솔지맥 오봉산"이 조망되는군요.
['수영15호' 운전실]
[수영15호] 운전실입니다. 엔진 소리가 엄청 커 매우 시끄러웠는데...
선실에서 운전실 앞으로 나와 진행방향을 바라보면...
['소양호']
우리나라 남한에서 가장 큰 담수호인 [소양호]가 펼쳐집니다.
[소양호]는 만수위 때의 수면면적이 70㎢, 총저수량이 29억t, 유역면적이 2,703㎢에 이른답니다.
과연 우리나라 남한에서 가장 큰 호수가 되겠습니다.
['소양호']
['품걸리' 방향]
의외로 구경거리 없는 [소양호]를 40여분 달려 [품걸리] 방향으로 들어 가면....
['품걸리 선착장'] 9:06
그 어떤 승선 하선 시설도 없는...말뚝 하나 조차도 없는 "품걸리 선착장"에 도착합니다.
[떠나 가는 배]
다시 돌아 가기 위해선 선장과 반드시 약속을 해야 합니다.
선장은 우리에게 오후 4시30분에 "물로리 선착장"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며 떠나 갑니다.
이런 선착장은 제 인생에서 처음 봅니다. ㅎㅎ
또한 이 선착장은 水位에 따라 위치가 자꾸 바뀐다고 하니...
하지만 오늘은 [소양강댐] 건설로 만들어진 오지 여행이니 오히려 이런게 더욱 새롭게 다가 옵니다.
['품걸리' 마을 가는 길]
['춘천지맥' 조망]
선착장에서 올라 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이어지는데 이 포장도로는 단 한번의 끊김도 없이
[물로리]까지 약13km 이어졌습니다.
세계2위 도로 포장율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란걸 실감하는군요.
세계1위는 벨기에라는 콧구멍만한 나라라던가? 뭐라던가...ㅎ
이나저나 인적없는 오지 마을길은 새로운 감흥으로 다가오며
추억의 [춘천지맥]이 [소양강]과 [홍천강]을 분리하고 있는 광경이 펼쳐집니다.
20여분 진행하면....
['마을 입구] 9:28
['5코스 종합안내도']
['5코스 안내문']
"춘천봄내길5코스 소양호나룻터길" 안내판이 있는 "품걸리 品傑里" 마을 입구를 만납니다.
안내도엔 오류도 보입니다. [봄내길5코스]는 "품걸리"에서 시작된다고 하면서
안내문에는 [물로리]라고 표기하고, 안내도에 [현위치]는 "품걸리"가 아니라 "물로리"로 표기하고 있네요.
['품걸1리' 마을 통과]
몇가구가 살고 있는듯 한데 사람 사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 한적한 [품걸1리]를 13분여 통과하면...
['품걸교' 앞 삼거리] 9:41
"품걸교 앞 삼거리"를 만납니다.
나루터에서 "1.48km 지점"이라고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데, [봄내길5코스]는 직진합니다.
여기서 우측을 보면...
['품걸2리'-'사오랑계곡' 조망]
[품걸2리]로 가는 길이 보이며 앞엔 [품걸천]을 건너는 조그마한 [품걸교]가 있습니다.
[봄내길6코스]의 날머리가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품안마을' 방향]
삼거리에서 직진방향은 [품안마을]로 가는 길이라고 안내하는데...
앞에 보이는 주택은 [별마당 펜션]이라고 하는데 조금전 탓던 배에도 광고하고 있었죠.
['요골']
['요골교'] 9:48
[품안마을]이라고 안내하는 이 마을은 지도에선 "요골"이라는 마을이라고 표기하더군요.
다리 이름도 [요골교]입니다.
앞에 보이는 집을 지나면...
['6코스 출발지'] 9:49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중요한 지점으로
"봄내길6코스 품걸리오지마을길"의 출발지점이 되는 삼거리이기 때문입니다.
['6코스 안내도']
안내도를 보면, 그러니까 [6코스]는 여기서 출발하여 조금전 [품걸교]로 나오는 코스이군요.
너무 길다고 생각되는 분들에게 중간 중간에 단축하는 길 [6-1코스][6-2코스]를 별도로 만들었군요.
[6코스]를 하긴 해야하는데 교통이 너무 불편해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됩니다.
['2.2km 지점 통과'] 9:55
['2.71km 지점 통과'] 10:02
[오름길]
[6코스 출발지]가 있는 삼거리에서 [5코스]는 직진합니다.
구경거리도 없고 사람들 사는 흔적도 없는 길인데 [품걸리]에서 [물로리]로 넘어 가는 고갯길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멘트 포장도로를 약40여분 진행하면....
[첫번째 고개] 10:32
['고개 정상'] 10:42
첫번째 고갯마루에 오르고, 이어서 10여분 더 올라 가면 두번째 고갯마루에 도착하는데
고갯마루 모양이 비슷합니다.
이 고갯마루가 [봄내길5코스]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품걸리선착장]에서 1시간 33분이 걸렸습니다.
['소양호' 조망]
고갯마루에선 [소양호]가 조망되는데 [물로리] 방향이 되겠습니다.
[내림길]
완만한 내림길을 23분 정도 진행하면...
['물로리'와 '사명산' 조망] 11:05
[5코스]의 종점인 [물로리]가 조망되며, 멀리 [도솔지맥]의 "사명산 1,199m"이 보이는군요.
[사명산]은 [북한강]의 [파로호]와 [소양강]의 [소양호]등 사방이 깨끗이 조망되고
[춘천][양구][화천][인제]까지 잘 보인다고 "四明山"이라 하죠.
제가 두발로 쓴 산행기가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도솔지맥 4구간 사명산구간 산행기]를 참고하세요.
[도솔지맥 4구간 사명산구간 산행기]http://blog.daum.net/paraanmoon/7801141
[내림길]
걷기에는 편하지만 좀 지루한 내림길을 한시간 정도 내려 가면....
['갈골'] 11:40
"갈골"이라는 마을을 만나고
['갈골' 통과]
계속해서 "갈골"을 20여분 더 진행하면...
['갈골' 삼거리] 12:00
[갈골 삼거리]를 만나 좌회전 합니다.
[뒤돌아 본 '고개 정상']
그리고 뒤돌아 보면 지나온 [고갯마루]와 임도가 조망됩니다.
['물로리' 가는 길]
토종꿀벌통이 길가에 설치되 있으니 이곳의 자연환경이 얼마나 깨끗한지 짐작할수 있습니다.
['물로리' 가는 길]
사진에서는 이 길이 고갯길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제법 높은 고개를 하나 넘는 막판 힘든 구간이더군요. ㅎ
['물로고개' 조망] 12:39
아랫쪽에 흐르는 개천은 "물로천 勿老川"이라고 하는데 [소양호]와 합류하는 지점입니다.
그래서 [5코스]는 [물로교]를 건너 저 아랫길을 이용하여 [소양호]로 나가야 하더군요.
앞에 보이는 "물로고개"는 '춘;천시 북산면 물로리'에서 '춘천시 북산면 조교리'로 넘어가는 고개더군요.
그리고 [조교리]에서 다시 [홍천]으로 연결되고...
['물로교' 조망]
'춘천시 북산면 물로리'에 있는 "물로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로교'] 12:47
"물로교"를 건너 좌회전 하여 선착장으로 나가야 하더군요.
여기서 우측을 바라보면...
['가리산' 조망]
[약간 줌인한 '가리산']
[춘천지맥]의 대표산 중에 하나인 "가리산 加里山 1,050.7m"가 아주 가깝게 보입니다.
[가리산]은 '토끼머리' 모양이어서 주변 어디서나 알아보기 쉽죠.
[소양강댐]이 건설되기 전엔 [춘천]에서 [홍천]을 넘나드는 계곡길이 펼쳐집니다.
[삼거리] 12:51
[물로교]에서 좌회전하여 조금 가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도로 따라 가면 [물로고개]를 넘어 가고
선착장은 직진성 좌측길로 내려 갑니다.
['물로리 안내석'] 12:52
"물로리 勿老里"
공해없는 마을이라 '늙지 않고 불로장생'하는 계곡 마을이라고...
코로나바이러스 걱정 없고, 세상 인간들 싸움 소리 없는 청정지역이니 그럴듯 합니다.
[선착장 입구] 12:55
['5코스 안내도']
"물로리 선착장"으로 가는 길인데 [소양호]의 水位에 따라 선착장이 바뀌기에
水位가 낮은 요즘은 차단기를 지나 제법 긴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식사및 휴식] 1:00~4:30
[수영15호] 선장과 약속한 시간이 오후 4시30분인데 너무 일찍 도착해서 3시간반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런 걸 예상하고 약간의 고기와 식사를 준비했는데도 시간이 남아 돌아 시간 보내는데 지루했습니다.
특히 이 시간에 바람이 쎄게 불어 추워 혼났습니다.
['물로리 선착장']
[승선] 4:35
업친데 덮친격으로 선박은 5분 늦게 도착하였는데 오다가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운항]
오전 [품걸리]로 갈 때엔 [수영15호]를 탓는데, 이번엔 쾌속정이 왔습니다.
속도가 두배 빨랏지만 [소양호] 내에 있는 이곳저곳을 돌고 돌아 가느라 시간은 많이 걸렸고
특히 바람이 엄청 쎄게 불어 파도가 일었는데 호수에 파도치는건 처음 보았습니다.
선장이 하는 말 "10여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거센 바람"이라고 하더군요.
['소양호 선착장'] 5:25
[물로리선착장]에서 50여분이 걸려 [소양호선착장]으로 돌아 왔습니다.
['가리산' 조망]
[소양강댐]으로 가면서 지나온 [봄내길5코스]를 뒤돌아 보는데 "가리산"이 보이는군요.
['소양강댐' 앞]
버스정류장이 있는 [소양강댐 준공기념비]로 가며 좌측을 보면...
['소양강댐']
철근콩크리트로 건설한 댐이 아니라 중앙에 진흙으로 심지를 박고 그 양쪽을 모래와 자갈만으로
쌓아올렸다는 [소양강댐]이 조망됩니다.
그래서인지 좀 허술하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소양강댐 준공 기념탑']
"소양강댐 준공 기념탑"
1972년경 [유신헌법]으로 개헌하며 긴급조치 계엄령등으로 대학은 폐쇠되었고 군인들이 점령했었죠.
그 당시 대학을 다닌 '파란문'은 장기집권 야욕에 항거하는 데모로 공부는 못했습니다. ㅎㅎ
당시 박정희대통령은 [소양강댐]을 비롯한 각종 건설사업으로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추진하며
이러한 경제건설을 위해선 자신이 계속 집권해야 한다고 [3선개헌]후 영구집권인 [유신정권]으로 치달렸죠.
유식한 말로 "개발독재"로 가고 있었는데, 그때의 상징 중 하나로 [소양강댐]이 건설되었다죠...
박대통령과 '육영수여사'가 비단잉어 초어 등 10만 마리를 방생했다는 안내석도 있습니다.
이때 유명한 일화가 있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그의 자서전에서 [소양강댐 건설]을 할때 현재의 [서울 강남지역 땅]을
무지 많이 매입하였다죠. 당시 모래밭, 뽕밭등 황무지였던 [서울 강남 땅]을 대량 매입한 그 이유는
[소양강댐]이 건설되면 그 땅들이 홍수에서 벗어나 노란자위 땅이 될것이라고 미리 예측했던 것이죠.
몇수 앞을 내다 보는 안목이 과히 고수라 아니 할수 없습니다.
[버스정류장] 5:35
때마침 [11번 시내버스]가 기다리고 있어 버스를 이용해 [춘천역]으로 가서 귀가했습니다.
[고도표]
[지형도]
오늘 걸은 거리는 약14km였습니다.
걸린 시간은 3시간 45분이었으나 배 기다리느라 3시간반을 소요했고
배 타는 시간까지 합치면 8시간 25분이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