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의 테마둘레길』
[춘천봄내길] 3코스 석파령너미길 답사기
당림초등학교-춘천예현병원-석파령-덕두원리-명월마을회관-
수레너미고개--한백봉장군정문-방동리마을회관-신숭겸장군묘역
['제3코스 지도']
['제3코스 구글어스']
'강원도 춘천시 서면 당림리'에 있는 "당림초등학교"를 들머리로 하여 "석파령"을 넘어 "덕두원리"로 가서,
다시 "수레너미고개"를 넘어 "신숭겸장군묘역"까지 "18.7km를 갑니다.
['강촌역'에서 '등선봉' 조망]
['강촌역' 앞 택시정류장] 9:35
2020년 4월 3일 (금) 맑음
[상봉역]에서 8시34분에 출발하는 [경춘선 급행]을 타고 9시30분에 [강촌역]에 내렸습니다.
역 앞에 있는 택시정류장에서 택시를 타고 [3코스출발지]인 [당림초등학교]로 갔습니다.
택시비는 10,000원이었습니다.
['당림초등학교' 앞] 9:45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휴교 중인 "당림초등학교" 앞에 내려
[춘천봄내길3코스 석파령너미길]의 출발지를 잠시 사진 촬영을 하고
계속 택시를 타고 5분 정도 더 진행하면...
['춘천예현병원' 앞] 9:50~9:54
[안내판]
"춘천예현병원" 앞에 도착합니다.
"석파령"을 넘는 [춘천봄내길3코스]의 고갯길 초입이 되겠습니다.
[춘천예현병원]은 '알콜중독자'들을 격리 치료하는 전문병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어 조용하더군요.
[갈림길] 9:55
[춘천예현병원]을 지나면 바로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정표의 안내 때문에 혼돈을 줍니다.
[석파령]으로 가는 길은 [석파령옛길]이 있고, [석파령너미길]인 임도가 있었습니다.
[옛길]은 좌측 산능선으로 이어져 경사는 좀 심하겠지만 거리가 짧아 선조들이 주로 이용했겠는데
[봄내길]은 차량이 다닐수 있도록 근대에 만든 임도여서 경사는 완만하지만
산허리를 돌고 돌아 조금 꼬불랑길이어서 거리가 좀 멀었습니다.
[임도]
[봄내길3코스]는 이 임도를 따라 계속 이어짐니다.
단순하고 구경거리 없는 지루한 임도를 가는 길이어서 솔찍이 좀 지루했습니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30여분 진행하면...
[삼거리] 10:28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석파령옛길]은 좌측 산마루금으로 연결되 있더군요.
[봄내길]은 갈림길이 있으면 대부분 이정표를 설치하여 길안내는 비교적 잘하고 있었습니다.
['삭파령' 정상부] 10:34
[석파령] 정상부로 오르면 우측으로 조망이 트이더군요.
[남쪽 조망]
남쪽으로 [강선봉]과 [검봉산]이 조망되고
['등선봉' 조망]
동남쪽으로는 [615m봉-등선봉-삼악좌봉]이 가까이 조망되는군요.
['석파령'] 10:48~10:51
"석파령 席破嶺 해발350m"
옛날엔 [춘천]과 [한양]을 잇는 최대 고개여서, 고을 수령들이 인수인계를 이 고개에서 했다는군요.
인수인계를 할때 돗자리를 둘로 짤라 마주 앉았다고 "석파 席破"라는 이름이 붙었답니다.
옛날 [춘천]과 [한양]을 왕래하는 방법은 [한강]을 이용해 배로 다니거니
[석파령]을 넘는 육로가 대표적이었다는군요.
이 고개에서 우측으로 가면 "삼악산"으로 가고, 좌측으로 가면 "계관산"으로 가는 산줄기입니다.
그레서 혹자들은 [화악지맥]은 [계관산]에서 [보납산]으로 가는게 아니라, 이 고개를 지나 [삼악산]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석파령' 안내도]
['석파령너미길'과 현위치]
옛 고갯길에는 '말을 갈아 타는 驛院'과 '묵어 갈수 있는 관영 여관'이 거의 대부분 있었죠.
이곳 "석파령 席破嶺 해발350m"을 넘는 좌우 마을에도 있었는데,
[춘천]방향에는 "덕두원 德斗院"이라는 관영 여관이 있었고
고개를 넘어 가서 [가평-한양]방향으로는 "안보역 安保驛"이라는 '말 타는 역'인
요즘말로 '고속버스터미널'이 있었는데, 현재의 '서면 안보리'가 그곳이라고...
[내림길]
[석파령]에서 30여분 구경거리 없는 완만한 내림길을 진행하면...
[공사장] 11:20
주택인지 펜션인지 뭔가를 짓고 있는 공사장이 보이고...이런게 볼거리라고 촬영하고 ㅎㅎ
다시 15분여 임도를 더 진행하면...
[쉼터] 11:34~11:58 (점심식사)
장의자 하나가 설치되 있는 쉼터를 만나는데, 이 길을 걷고 있는 다른팀 세분을 만났습니다.
여기서 아이디 [대간님]이 준비해 온 오곡밥과 오미자주로 점심을 즐겼는데, 맛이 독특했습니다.
[대간님]께 감사 드림니다.
['삼악산 용화봉' 조망]]
점심을 먹고 [덕두원리]로 내려 가는데 [삼악산]에서 가장 높은 [용화봉]이 정면에 보입니다.
[삼악산]은 [용화봉-청운봉-등선봉] 세개 봉우리를 합쳐 [삼악산]이라고 하죠.
그러니 [삼악산]을 정복하려면 세개 봉우리를 모두 올라야 갔다 왔다라고 말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ㅎ
완만한 내림길을 7~8분 내려 가면...
[차단기] 12:06
차량통행을 차단하는 차단기를 지나고
[이정표] 12:09
이어서 이정표를 만나는데 '덕두원리' 마을로 내려 가는 길이었습니다.
[사거리] 12:12
갈림길이 있으면 틀림없이 이정표가 길안내를 해줍니다.
[봄내길]은 길안내를 비교적 잘하고 있었습니다.
['덕두원리' 계곡] 12:23
'덕두원리 계곡'을 15분여 여유롭게 통과하면...
['덕원교'] 12:28
[덕두원천]을 건너는 [덕원교]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 좌측 도로로 갑니다.
"덕두원1리마을회관"이 있고, [석파령]으로 들어 가는 입구이기에
옛날 이 근처에 "덕두원 德斗院"이라는 관영 여관이 있었을 걸로 추측됩니다.
['명월길'] 12:29
[덕원교]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버스가 다니는 포장도로를 진행하는데 [명월길]이라고 안내합니다.
이곳이 [석파령길]과 [명월길]이 나뉘는 곳이라는걸 알수 있습니다.
['덕두원천']
[덕두원천 德斗院川]을 따라 올라 가는데,
이 개천은 [화악지맥]의 [계관산-북배산]에서 부터 내려 오는 개천이더군요
'덕두원리'의 경계가 [계관산-북배산]까지 이어지니 매우 넓은 동네더군요.
['명월1교'] 12:52
[덕원교]에서 23분 정도 도로를 진행하면 [영월1교]를 만나고
이어서 [명월마을회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조금 더 올라 가면....
['수레너미 입구'] 1:03
버스정류장 이름이 [수레너미입구]라고 알리는 다리를 만나는데 이정표가 길안내를 합니다.
우측 다리를 건너 가면...
['수레너미고개'로 가는 다리]
[오름길]
[수레너미고개]로 가는 길이 이어 집니다.
20여분 완만한 오름길을 진행하면....
[삼거리] 1:22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올라 가고
[오름길]
['수레너미' 고개 조망]
다시 20여분 꼬불꼬불 임도를 올라 가면...
['수레너미고개'] 1:42
"수레너미고개 車踰嶺"에 도착합니다.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와 '방동리'의 경계가 되는 고개더군요.
의자가 하나 있어 물 한모금 마시고 고개를 넘어 가면...
[내림길]
제법 긴 완만한 수레너미 고개 내림길을 내려 가는데...
옛날엔 이보다도 길이 더 좁고 나빠 수레가 넘나들기는 좀 어려웠을듯...괜한 걱정? ㅎㅎ
[쉼터] 2:05
20여분 내림길을 진행하면 쉼터 사각정자를 하나 지나고...
[이정표]
이어서 목적지까지 3.11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나며
[내림길]
계속해서 평지성 계곡을 20여분 더 진행하면...
['춘천시내' 조망]
['방동1리' 통과] 2:25
차양막이 쳐진 삼밭을 지나 마을을 지나갑니다.
우측 멀리 '춘천시내'의 아파트들이 보이고
['한백록장군의 정문'] 2:27
[안내문]
이어서 "한백록장군 정문 旌門"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원균장군'과 '이순신장군'을 도와 '옥포해전'을 승리로 이끈
"한백록장군"의 위폐를 모시는 사당과 旌門이라고 합니다.
장군은 이곳 '방동리' 출신으로 "충장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답니다.
['방동리 게이트볼장'] 2:30
['방동1리 마을회관']
[마을회관 가마솥]
이어서 "방동1리마을회관"을 만나는데 '게이트볼장'도 있고,
동네 잔치를 벌일때 사용하는 듯한 가마솥도 있군요.
['금산천'] 2:32
마을회관을 지나면 [방동교]라는 다리를 건너는데, [금산천]이라는 개천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방동교회' 앞] 2:35
[방동교회]를 지나 도로를 따라 13분여 진행하면...
['신숭겸묘역' 입구-버스종점] 2:46
"춘천봄내길3코스종점"이고 [방동리버스종점]이기도한 "신숭겸장군묘역" 입구에 도착합니다.
['신숭겸장군상']
"신숭겸장군상 申崇謙將軍像"
"배현경, 홍유, 신숭겸, 복지겸"은 "궁예"의 부하였으나 "궁예"를 배반하고 "궁예"를 죽이고,
"왕건"을 추대한 '高麗 開國 一等 功臣' 중에 한분이 "신숭겸장군"이죠.
"왕건"에겐 절대적 충신이고, "궁예"에겐 '씨이져'의 '부루터스' 같은 배반자라 할수 있습니다.
"平山 申氏 始祖"
"신숭겸"은 원래 성이 없는 천민 출신으로서 "능산 能山"이라는 이름만 있었는데
"왕건"이 '高麗'를 개국하고 '高麗 開國 一等 功臣'에 봉하며, 姓을 새로이 하사하고, 이름도 지어줘
"신숭겸 申崇謙"이라는 새로운 姓과 이름의 사람으로 변모되었지요.
그리하여 그는 "平山 申氏 始祖"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신숭겸장군기념관']
['평산 신씨 종친회']
"平山 申氏 始祖"가 된 사연도 유명하죠.
[황해도 평산]으로 사냥을 나간 [왕건]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가리키며
"신숭겸"에게 "저 기러기 떼 중 앞에서 세 번째로 가는 기러기를 맞춰 보라." 라고 명하자,
"신숭겸"은 바로 화살을 쏴서 그 기러기를 떨어뜨렸다는 일화가 있죠.
이 일화가 '황해도 평산'에서 있어서 姓이 없어 하사 받은 姓의 본관이 [평산 平山]이 되는 유래랍니다.
TV드라마에도 나왔었죠.
[홍살문]
[사당]
"장절공 壯節公"이라는 시호를 받은 '高麗 開國 一等 功臣' 다웁게 묘역은 상당한 규모였습니다.
['신숭겸묘' 전경]
['신숭겸 묘']
"신숭겸묘의 봉분이 세개인 이유"
[왕건]이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전했던 [대구 팔공산전투]에서 후백제의 [견훤]에게 참패하고,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신숭겸]은 자신이 [왕건]의 투구와 갑옷을 빌려 입고 미끼가 되어
후백제군을 유인했는데 그틈에 [왕건]은 후백제 군졸의 옷을 입고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답니다.
[후백제군]은 [신숭겸]이 [왕건]인 줄 알고 쫓았으며 결국 [신숭겸]은 잡혀 목이 짤려 죽었답니다.
함께 유인작전에 나선 모두 '8명의 장수'가 전사하였다 하여 [대구 공산]의 이름을 바꾸어
"팔공산 八公山 "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대구 팔공산]이라는 산이름의 유래가 잼있죠? ㅎ
[신숭겸]의 희생 덕분에 [왕건]은 겨우 도망칠 수 있었고
훗날 그의 시신은 왼쪽 발 밑에 북두칠성 모양의 사마귀가 있다는 것을 근거로 찾았지만,
머리가 없었기에 [왕건]은 황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같이 매장했는데...
[신숭겸]의 무덤은 원래 [왕건] 자신이 죽으면 뭍힐려고 정해논 [왕건] 자신의 신후지지(身後之地)인데,
[왕건]이 [신숭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자신의 신후지지(身後之地)에 [신숭겸]을 뭍어 주었답니다.
우리나라 풍수지리로는 이 묘역이 천하의 명당자리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신숭겸]의 무덤은 봉분이 세 개인데, 머리를 대신한 황금 두상의 도굴을 막기 위해 세개로 만들었다고...
[안내문]
['신숭겸장군상' 뒷모습] 3:00
[임진왜란] 때의 패장인 "신립장군"이 "신숭겸장군"의 후손인데
두 사람 다 패장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공통점이....
"신립장군"의 묘는 '곤지암'에 있으며 제가 답사하고 쓴 답사기가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찾아 읽어 보세요.
[버스시간표]
이곳 [방동리버스종점]에는 약1시간반~2시간만에 한대 꼴로 버스가 다니는데
시간이 알맞게 맞아 [3시 35분]에 [춘천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귀가했습니다.
[고도표]
[구글어스]
걸은 거리는 18km이고, 5시간 1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