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경흥길』
『제4길 파발막길 : 소흘행정복지센타-포천시청』
"전계대원군을 찾아 보다"
[제4길 천보산길 실트랙']
<경기옛길-경흥길 제4길>은 <소흘읍행정복지센타>에서 출발하여 <포천천 수변길>을 거닐어
<포천시청>까지 가는 다소 단조로운 길이었습니다.
['제4길 출발지]
[안내문]
2022년 2월 13일 (일) 흐림
"경기옛길-경흥길 제4길 파발막길"의 출발지는 <소흘읍사무소>인 "소흘행정복지센타"입니다.
['소흘행정복지센타']
<제4길 파발막길>의 출발지와 <스탬프함>은 <소흘읍자치센타> 뒤에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출발지>에서 스탬프를 찍고, 다시 <소흘읍사무소> 정문으로 돌아 나와
<43번국도>로 잠시 나가면...
['43번국도']
[소흘 홈플러스' 앞]
<전두환 전대통령>이 도로 확포장 공사를 하고 자기 맘대로 <호국로>라고 이름 붙인 <43번국도>를
만나는데 좌회전하여 <송우리 중심가> 방향으로 들어 가면 <홈플러스> 앞을 지나고...
['송우리 중심상가 거리']
['송우시장 사거리']
<송우리 중심상가지역>으로 들어 가면 <송우시장 사거리>를 만나는데
['사거리 쉼터']
['송우시장' 안내문]
<송우사거리>에는 조그마한 공원이 조성 되 있고, 몇몇 조형물이 있으며
<송우시장>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되 있습니다.
['주공2단지 석향마을' 정문] 10:00
계속해서 직진하면 <송우리시내버스터미널>을 지나고
이어서 <주공2단지 석향마을 아파트> 정문에 도착합니다.
지난 <3코스 축석고갯길>을 여기까지 진행 했었기에 오늘은 실제 이곳부터 답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우교'] 10:04
<주공2단지> 정문에서 200m 정도 직진하면 "송우교 松隅橋"를 만납니다.
이 다리를 건너 "q 턴"을 하여 개천길로 내려 가야 하는데
['송우교' 밑 수변길 입구]
이런 방법으로 "q턴"하여 개천으로 내려 가면
['송우천']
<송우천 松隅川>을 만나 수변길을 잠시 진행하고
['포천천-송우천' 합수부] 10:08
이어서 "포천천 捕川川"을 만나는데,
<4코스 파발막길>은 <포천천 수변길>을 따라 가는 단순한 코스가 되겠습니다.
['포천천']
이어서 하천을 건너 건너편 수변길을 진행하게 되며
['가산교'] 10:12
바로 <가산교 加山橋>를 만나 통과 하는데....
여기서 우측 <가산면 금현리>로 가면 "백사 이항복선생 묘"가 있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장군>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용하게 하는데 결정적 역활을 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신 중에 한분이어서 47세에 영의정에 오른 분이죠.
<오성과 한음>이라는 스토리 메이크로도 유명하신 분 입니다만....
성품이 곧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서인에 반대하다가
결국 <철령> 너머 <북청>으로 유배가서 외롭고 고단했던 생을 마감했습니다.
<철령>을 넘어 가며 유배길에서 쓴 그의 詩는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심금을 울림니다.
《철령 높은 봉에》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를 비삼아 띄었다가
님계신 구중심처에 뿌려 본들 어떠리
<고신원루 孤臣寃淚>는 임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신하의 원통한 눈물을 의미하죠.
선생이 <북청>으로 유배를 간 길이 바로 <경흥길>이였습니다.
<한양>에서 고향인 <포천>을 지나 <백두대간> 고갯마루인 <철령>을 너머 <북청>으로 갔으니
['포천천']
['왕방지맥' 조망]
<가산교>를 지나면 <왕방지맥>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준 <왕방지맥>의 대표산인 <왕방산>이
조망되기 시작하며, 추억의 <오지재>가 분명하게 보입니다.
<오지재>는 <포천>과 <동두천>을 이어주는 고개인데, 지금은 터널이 뚫려 있어 고개를 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지맥꾼들이 주로 이용하더군요.
['선단 요금소'] 10:29
20여분 수변길을 거닐며는 <포천-구리 고속도로>의 <선단 톨게이트>가 보이고
['전계대원군 묘' 조망] 10:30
다시 <왕방산> 방향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데....
<경흥길4코스>는 <포천천 수변길> 만을 걷는 단조로운 길이어서
그동안 한번은 찾아 보고 싶었던 "전계대원군 묘"를 다녀 오도록 합니다.
<전계대원군 묘>는 <오지재>로 올라 가는 입구 마을 <왕방산> 끝자락에 있습니다.
['선단IC교']
[계단] 10:35
<선단 톨게이트>로 연결하는 <선단IC교>라는 다리 밑에 계단이 있더군요.
이 계단을 올라 가서 <전계대원군묘>로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 올 예정입니다.
['장승거리 사거리'] 10:37
<선단IC교>에서 <43번국도>로 약100m 정도 나가면
<43번국도>에 있는 "장승거리 사거리"를 만나는데 <동두천> 방향으로 직진하여
사진 속에 표시한 화살표 지점으로 가면....
['선단4통.장승거리' 버스정류장] 10:40
<선단4통.장승거리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전계대원군묘>까지는 약2km로 왕복 4km 정도 되지만 시간을 아끼기 위해 버스를 탑니다.
시내버스는 비교적 자주 있더군요. 저는 운 좋게 바로 버스를 탈수 있었고....
버스정류장은 4개 정도를 지나는데.....4분 정도 버스를 타면
['선단5통마을회관' 앞 회전교차로] 10:46
<선단5통마을회관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리고
이곳에는 <회전교차로>가 있는데 이 교차로에서 우측을 바라보면....
[고가도로]
<오지재터널>로 가는 새로 생긴 고가도로가 보입니다.
고가 도로 밑으로 가면...
['전계대원군묘' 입구] 10:48
그 동안 한번은 꼭 가 보고 싶었던 <전계대원군묘> 입구가 고가도로 밑에 있습니다.
이 묘는 <포천시 향토유적 제1호>라고 알리고 있군요.
['祀宇']
<조선왕조>엔 네명의 <대원군 大元君>이 있었죠.
<대원군 大元君>이라는 호칭에 대해 먼저 알아 보면....
왕조국가에선 왕위를 세습하기에 아버지가 먼저 왕이 되고 다음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데
왕이 아들을 못 낳은 경우가 여러번 있어, 다른 형제나 왕족 중에서 정치적으로 선택한 사람을
王으로 앉히는 경우가 있었던 것입니다.
간단하게 얘기 하자면
"王의 아버지" 중에 "아버지는 왕위에 오를 자격이 없어 왕이 되지 못했는데.
아들이 어찌어찌 정치적으로 王이 된 경우의 아버지를 <대원군>이라 호칭 하죠.
<대원위대감>이라고도 했고...."왕이 되지 못한 왕의 아버지"
조선왕조 5백년 역사상 <대원군>은 모두 4명입니다.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과,
조선 역사상 두번째의 반정인 쿠데타를 통해 왕이 된 <인조>의 아버지 <정원대원군>,
그리고 이곳에 모셔진 <철종>의 아버지 <전계대원군>,
마지막으로 <고종황제>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중 <정원대원군>은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욕심을 부려 자신의 아버지를 <원종>으로 추존하여
왕의 대열로 억지로 끌여들여 왕릉을 조성하니 이 왕릉이 바로 요즘 <문화재청>과 <아파트 건설사>,
그리고 <인천시>가 서로 잘잘못을 따지며 옥신각신하고 있는 <김포>의 <장릉>입니다.
그래서 실제 <대원군>은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과
<강화도령-철종>의 아버지인 <전계대원군>, 그리고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세명입니다.
이들 중에 <흥선대원군>만이 살아서 <대원군> 대우를 받았고, 나머지는 모두 죽은 후에 <대원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흥선대원군-이하응>을 주로 <대원군>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죠.
[안내문]
['신도비']
"전계대원군 全溪大院君" (1785년 4월 29일~1841년 12월 14일)은
한마디로 <조선 제26대 철종>의 생부입니다.
더 알기 쉽게 말하면 <강화도령-원범이>의 어비지입니다.
<전계대원군>이나 <흥선대원군>은 모두 <사도세자>로 부터 시작됩니다.
<사도세자>의 아들 중엔 정실부인 <혜경궁 홍씨>에게서 태어난 <정조>가 왕위에 올랐지만
이 경우도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했는데 아들이 왕이 된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엔 <사도세자>가 <영조>의 정식 아들이었기에 <정조>가 아버지를 <장조>로
추존하여 왕위에 올려 놨기에 <사도세자>를 <대원군>이라 하지 않는 것입니다.
['祀宇']
이곳 祀宇는 <대원군> 권위에 맞게 규모가 상당합니다.
현재 이 묘소를 관리하며 이 집에 사는 사람이 있더군요.
['祀堂']
제사를 지내는 사당에는 특이하게 문인석이 배향하고 있고, 장명등도 있습니다.
일빈적으로 문인석과 장명등은 묘 앞에 있는데....
['전계대원군 묘']
"전계대원군 全溪大院君"
묘비에는 "유명조선국 전계대원군 묘"
"완양부대부인 전주최씨"라고 쓰여 있는데 <철종의 어필>이라고 합니다.
먼저 제가 정리한 <전계대원군>의 족보를 보면
<철종>은 도저히 왕위를 계승 할 위치에 있지 못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족보를 보면 <24대 헌종>까지는 왕의 아들들이 왕위를 계승 했는데
<24대 헌종>이 후사 없이 죽는 바람에 그 이후 부터 문제가 발생 했습니다.
<24대 헌종>의 아들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안동김씨 세도정치세력>이 쬐끔만 똑똑한 왕족이
있으면 모두 죽이며, 왕족 혈통의 씨를 말렸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언군>의 아들이 <전계대원군>이고 그의 서자가 <원범이>였습니다.
또한 <은언군>의 동생인 <은신군>의 아들이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이고
<흥선대원군>의 아들이 <고종>이니 모두 <사도세자>의 혈통을 잇지만 명색만 왕족이었던게죠.
왕위를 계승 시킬 왕족이 씨가 말랐지만 그래도 허수아비 왕은 내세워야 했던 <안동김씨 세도세력>은
왕족은 왕족이지만 부모형제 모두 죽임을 당하고 홀로 농부로 나뭇꾼으로 강화도에 살고 있던
그 유명한 <강화도령-원범이>를 하루 아침에 왕으로 등극시키니 그가 바로 <25대 철종>이고
이미 역모의 누명 속에서 천주교를 믿는다고 처형 당한 아버지가 졸지에 <대원군>이 되니
그가 바로 이 묘의 주인인 <전계대원군>인 것입니다.
[조망]
<사도세자>의 서자→<은언군>의 서자→<전계대원군>의 서자→<철종>으로 이어지는 집안은 콩가루 집안.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서 죽임을 당했고,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언군>은 역모에 휘말려 강화도에 유배 당했다가 죽고
<은언군>의 서자인 <전계대원군>은 천주교 신자여서 처형을 당한 비극의 집안입니다.
사실 왕족이라 할수도 없을 정도의 명색만 왕족이었으며 <안동김씨 세도가>의 희생양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안동김씨 세도세력>은 허수아비 왕을 앉혀야만 했으니 글도 모르는 까막눈 <원범이>를
그 자신도 모르게 하루 아침에 왕위에 등극시켰습니다. 그 때 나이가 18세였고....
글을 알면 <안동김씨세력>들에게 역모의 누명을 쓸수 있다고 아버지 <전계대원군>이 글을 가르치지
않아 진짜 까막눈이었던 <원범이>이었답니다.
졸지에 왕이 된 <원범이>는 술과 여색에만 포위 당해 살며 <안동김씨세력>의 바지사장 역활만 하며
후궁까지 대여섯명을 거닐고 아들도 여럿 낳았지만 모두 일찍 죽었는데
<안동김씨세력>들이 씨족을 말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답니다. 그리고 그도 33세에 폐결핵으로 죽고....
그리하여 다시 왕이 필요 했는데 <은언군>의 동생인 <은신군>의 아들인 <남연군>에게서 태어난
<흥선대원군>이 나타나며 그의 둘째 아들 <명복이>가 왕위에 오르니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인
<고종>이었던 것입니다.
['철종' 어머니 묘 조망]
위의 <전계대원군묘>에는 그의 정실부인인 <완양부대부인 전주최씨>와 합장되 있는데
<전계대원군>의 첩이었던 <염씨>의 묘는 우측 아랫쪽에 별도로 조성되 있습니다.
['용성부대부인 염씨 묘']
<전계대원군>의 첩이었지만 후에 <철종>이 되는 왕을 낳았으니, 평민 출신이지만 예우를 갖춰
"용성부대부인 염씨 龍城府大夫人 廉氏"로 격상되어 별도로 묘를 만들었답니다.
<원범이>의 어머니 묘가 되겠습니다.
<원범이 엄마 염씨>는 공사판의 식당 (요즘말로 함빠)에서 일하던 작부였답니다.
['祀宇' 조망] 11:04
권력은 무었인가
그 당시 서양에서는 <산업혁명>으로 부국강국으로 변모하여 대항해시대로 가고 있었는데,
씨족을 말리면서 까지 권력을 쥐고 호위호식하려한 <안동김씨 세도세력>들은
나라를 망국의 길로 몰아가고 있었으니.....조선은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선단5통마을회관' 앞 회전교차로] 11:06
<전계대원군묘>를 둘러 보고 다시 <선단5통마을회관>앞 회전교차로에 나오니 곧 바로 버스가 옵니다.
['장승거리 사거리'] 11:10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장승거리 사거리>로 돌아와 <포천천>으로 나가면...
['선단IC교'] 11:14
<선단IC교>에 다시 돌아와 <포천천 수변길>을 진행합니다.
['후평교'] 11:23
<포천천 수변길>을 10여분 진행하면 <후평교>를 통과하고
['포천천교'] 11:29
['파발막길'의 유래]
이어서 <포천천교>를 만나는데 <파발막길> 안내판이 있고
남은 길이 6.1km라고 알려 줍니다.
['포천천 둑'] 11:33
<포천천교>에서 둑방길로 올라 가는데
[둑방길]
여기서 부턴 <수변길>로 가도 되고 둑방길로 가도 됩니다.
수변길은 좌우 조망이 없어 저는 둑방길을 이용합니다.
[군부대]
['청성산' 조망]
지루한 길을 40여분 진행하면.....
['유일교' 앞] 12:11
<유1교>라는 다리를 만나는데 여기선 <수변길>로 내려 가고
['포천천교'] 12:16
<포천천교>를 지나 10여분 진행하면
['포천종합운동장' 조망] 12:25
<포천종합운동장>이 건너편에 보이며
['포천대교']
['포천대교' 통과] 12:33
이어서 <포천대교>를 통과하면
['청성산 반월산성' 조망] 12:34
다음 구간인 <제5길 반월산성길>의 핵심인 <반월산성>이 있는 <청성산>이 조망되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올라 가야 하더군요.
['포천산림조합']
<포천시 산림조합>을 만나 우회전하면...
['포천시청' 앞 거리]
['포천시청'] 12:37
<포천시청>앞 거리를 만나고
['포천시청 앞 버스정류장'] 12:38
['53번버스시간표']
<포천시청앞> 버스정류장에서 답사를 마침니다.
앞으로 답사 해야할 <7~8코스>를 가려면 이곳에서 <53번시내버스>를 이용하는게 편리한데
시간표를 미리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오전 9시 20분 버스를 타면 편리 하겠습니다.
2020년 5월5일에 <포천 한탄강주상절리길>을 답사 할때 이용한 버스인데 시간표는 변동 없군요.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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