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마포구』 
     『'경의선 숲길'과 '효창공원' '와우산'』

                               

  ['네이버지도']

  ['구글맵']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에 있는 "삼각지로터리"에서 출발하여
  "경의선 숲길" "효창공원" "와우산"을 답사하며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불광천-모래내고가차도"까지 "12.5km"를 갑니다.


  ['경의선숲길 개념도']  
  "경의선 숲길"에 대한 안내도는 <마포구청>에서 만든 것 밖에 없더군요.
  <용산구구간>에 대한 안내도가 없어서 좀 아쉽지만, [경의선숲길]의 대부분이 <마포구>에 있기에
  <마포구구간 5km> 안내도를 참고 합니다.
  제가 직접 걸은 전체적인 구간은 위의 실트랙 지도를 참고 하면 되겠습니다.


  ['삼각지역7번출입구']                 11:10  
  2021년 1월 2일 (토) 맑음 
  2021년의 첫 나드리는 "경의선 숲길"로 정하고 길을 나섯습니다.
  <삼각지역 7번출입구>에서 답사를 시작하는데...


  ['삼각지로타리']  
  <삼각지로타리>는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라는 노래 속의 "삼각지"는 이젠 추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삼각지로타리>의 랜드마크였던 <입체회전교차로>도 철거되어,  '삼각지'가 아니라 '사각지'가 되었으며
  훨씬 넓어진 로타리여서인지 [남산]과 [옛 용산미군기지]가 새로운 각도로 조망되는군요.
  "용산 龍山"이라는 이름은 '龍이 한강물을 마시기 위해 머리를 내 뻗은 지형'이라는데서 유래한다죠.
  그래서 이 지역은 700여년이 넘는 동안 외국군대가 주둔해온 침략의 전초기지였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죠.
  <고려시대>에 '징기스칸'의 '몽고군'이 쳐들어와 진을 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엔 쪽바리들이
  점령하고, '청일전쟁'시에는 '청나라'의 '위안스카이'가 군기지로 사용하고, 이어서 '일제강점기'시대엔
  일본놈들의 우리나라 식민지화의 핵심군사 거점이 되었었죠.
  '6.25전쟁' 이후에는 '미국놈'들이 대한민국 점령의 사령부로 이용하다가 
  이제서야 우리나라의 품으로 돌아 오고 있는 중이죠.
  [남산]에서 이곳 [삼각지]까지 이렇게 가까운줄 몰랐는데, 
  새롭게 시원하게 조망되는 경관이 왠지 씁쓸한 느낌을 주며 마음 속을 스쳐 지나 갑니다.
  서울의 면적이 천만명 이상을 수용하기는 엄청 좁아 어려움을 격어 왔는데
  100만평이 넘는 알토란 같은 서울의 땅이 그 동안 외국놈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는거...
  외세침략의 본거지였던 '용산미군기지'를 국립공원도 아닌 더 높은 차원의 "국가공원"으로 만든다는데
  어떤 모습으로 변모 될지 ....여튼 기대해 봅니다.


  ['삼각지고가도로' 입구-원효로 방향]

    [엘리베이트]                   11:13  
  [삼각지로타리]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경부선 철로>를 건너는 [삼각지고가도로]를 만나고
  고가도로를 쉽게 힘들이지 않고 건너라고 엘리베이트가 설치되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틀 타고 올라 가면


  ['삼각지고가도로']  
  [서울역]과 [용산역] 사이의 엄청 넓은 <경부선>을 건너는 [삼각지고가도로]를 통과하게 되는데
  때마침 "KTX열차"가 지나 가고 있었습니다.


  ['용산역' 조망]  
  고가도로 위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용산역]이 조망되는데
  <경의선>의 출발역이기도 합니다만 <경의선>은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철로도 있죠.
  오늘 답사하려고 하는 "경의선 숲길"은 앞에 보이는 <오리온제과 본사> 뒤에서 출발합니다.


  [엘리베이트]

  [ '당고개성지' 방향]                 11:17  
  고가도로를 건너 다시 엘리베이트를 타고 내려가 첫번째 삼거리에서 좌회전 합니다.
  삼거리에는 <당고개순교성지> 방향이라고 알리고 있더군요.
  [4호선 종점]인 [당고개]와는 다른 당고개더군요.
  150m 정도 직진하면...


  ['경의중앙선']                     11:19~11:23  
  <경의중앙선> 전철이 지나는 철도 굴다리를 만납니다.
  [용산역]에서 [신의주]로 연결되는 철도입니다.
  여기서 우회전 하면...


  ['용산문화체육센터' 조망]  
  앞에 "용산문화체육센타"가 보이고
  좌측은 <경의중앙선>이 지상에서 지하로 들어 가고 있습니다.


  ['용산문화체육센터' 옆길]                   11:25  
  [용산문화체육센타] 좌측으로 <경의선 숲길>로 진입하는 통로가 있더군요.
  올라 가면....


  ['경의선 숲길' 출발지]                       11:26  
  "경의선 숲길 출발지"가 열립니다.
  <경의선>은 이 철길 밑으로 지하화 되어 옛 철길은 공원으로 변모 된것이지요.
  출발지인 이곳에는 "경의선 숲길 사랑방"이라는 열차 카페가 있는데 코로나사태로 휴업중이었습니다.
  이 철길을 따라 150m쯤 진행하면....


  ['원효로']                        11:29  
  [원효로]를 만납니다.
  여기가 "원효대사"를 인용하여 "원효로"가 되었다는데, '신라'의 '서라벌'이 본거지인 "원효대사"가
  어이하여 이곳 '용산'과 연관되어 "원효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조금 가면 [현대차써비스센타]가 있죠. 그 근처에 [용산문화원]이 있는데
  거기엔 "왜명강화지처 倭明講和之處"라고 쓰여진 기념 비석이 있죠.
  임진왜란 때에 1593년 정초부터 패퇴하던 '일본군'과 '명나라군'사이에 휴전교섭이 이루어졌는데,
  한강의 정경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던 현재의 [용산문화원] 자리에 있었던 <심원정 心遠亭>에서 
  명나라의 '심유경'과 일본의 '가토 기요마사'등이 화의를 맺고 강화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곳 [용산]에는 이런 외세 침략의 흔적들이 곳곳에 있어 마음 아프게 합니다.


  [철로공원]                      11:31  
  [원효로]를 지나 다시 <경의선 숲길>로 들어 갑니다.
  [용산구]에 있는 <경의선 숲길>엔 이용객이 거의 없더군요.
  잠시 진행하면...


  ['효창공원역' 앞]

  ['효창공원앞역 5번출입구']                      11:34  
  "효창공원앞역"을 만납니다.
  여기서 학창시절 이후 언제 찾아봤는지 기억조차 없는 "효창공원"을 다녀 오기로 합니다.
  언제 또 다시 여길 오겠나 싶어....
 

  ['금양초등학교']                        11:38  
  [효창공원앞역 사거리]에서 북쪽인 우측으로 발길을 옮기면
  먼저 [금양초등학교]를 만납니다.
  "이봉창의사"가 살던 집이 저 [금양초등학교] 뒷쪽에 있죠.
   

  ['효창동주민센터']                    11:42  
  [효창공원앞 사거리]에서 [금양초등학교]를 지나 5분 정도 올라 가면
  <효창동주민센터>를 만나고...


  ['효창공원''효창운동장' 정문]                       11:43~12:10  
  이어서 서로 마주하고 있는 "효창운동장 정문""효창공원 정문"이 나타 납니다.


  ['효창공원' 정문 통과]  
  서울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어도 학창시절 이후 이렇게 변모된 [효창공원]은 처음 방문하게 됩니다.
  <효창공원> 정문을 들어 서면 좌측엔 [삼의사묘]가 있고 우측으로 가면 [임정요인묘역]이 있더군요.
  앞에 보이는 조형물은 "효창공원 상징조형물"이라고 하는데 "점지(點指)"라고 하는군요.
  '우리의 정기 뿌리와 같은 의미를 지니며 생명의 근원을 이루는 땅의 내부(땅과 연결되는 수면의 홀)로
  귀결되어 소통한다'는 의미라고...


  ['삼의사' 묘소]  
  "삼의사 묘소 三義士墓"
  "이봉창의사" "윤봉길의사" "백정기의사"를 모신 묘역
  "안중근의사"의 시체를 찾으면 모실려고 한 자리를 비워 놨다는군요.


  ['백정기 무궁화']  
  [삼의사 묘소] 앞에는 "백정기 무궁화"라는 무궁화가 자리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안내판이 있었습니다.
            모자 하나의 영토
            모자 하나의 대지
            모자 하나의 아들
       “중절모 하나에 의지해 망명 혁명가로 살다간 백정기의 이름으로
        나무 한 그루의 영토에 꽃 한 송이를 심고 대지에 모자를 씌운다” 


  ['삼의사' 묘소]   
  [삼의사 묘소]는 코로나사태로 들어 갈수 없어 옆에서 바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효창공원"은 독립투사들의 묘역이기 전에 역사를 간직한 묘소이기도 합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정조대왕의 장남-문효세자"입니다.
  지난번 [동대문구역사탐방]에서 "배봉산"을 탐방하며 언급한적 있는 
  "의빈 성씨"와 그녀의 아들 "문효세자"를 기억하시나요.
  여자 복도 없고 자식 복도 없었던 [정조대왕]의 로맨스를 알아야 이 묘소의 주인공들을 확실히 알수있죠.
  정비인 "효의왕후"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후궁을 들이라는 상소가 이어졌는데
  정치적 가례를 싫어한 [정조]는 어쩔수 없이 후궁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녀가 당시 최대 정치세력이었던
  "홍국영의 딸-원빈 홍씨"였지요. 그런데 1년도 못되 이 여자는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후궁을 들이라는 상소가 이어지자 이번에도 당대 정치세력인 "윤창윤의 딸-화빈 윤씨"를
  두번째 후궁으로 들이는데, 정치적 가례를 싫어한 [정조]가 [화빈 윤씨] 거소에 억지로 드나들다가 
  [화빈 윤씨]를 시중드는 무술이와 눈이 마주치고, 정식 후궁 "화빈 윤씨"는 뒷전에 놔두고 
  그녀를 보필하는 무술이와 짝짜쿵 사랑을 꽃 피우며 로맨스를 즐겼지요.
  <드라마 이산> 기억하시나요? '한지민'이 연기한 "성송연"이 바로 그 무술이입니다.
  그녀는 [정조]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까지 낳으니 그 아들이 바로 "문효세자"이죠.
  하지만 뭔 운명의 장난인가,,간신히 얻은 장남 "문효세자"는 불행이도 5살에 죽어버리고 그녀도 죽어버렸죠.
  [정조]는 유일한 아들 장남과 사랑했던 여인까지 죽자 엄청 슬퍼하며 "문효세자"의 묘를 썻는데 
  그 묘의 이름이 "효창원 孝昌園"이었고, 그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당파싸움이 치열했던 당시 였으니 세자와 그의 어머니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답니다.
  [영조] 때부터 완전 금기시되던 무술이와 무술이가 낳은 세자의 배척이 정적들로부터 표적이었던 때이니..
  [정조]까지 암살 당할뻔 하는 사건까지 있었으니 독살설을 충분히 추리 할수 있지요.
  "효창원 孝昌園"은 해방을 전후해 현재의 [서삼릉]으로 이장하고 이곳은 공원으로 조성되었는데
  현재의 "효창공원"은 원래 "문효세자"의 왕실 묘역인 "효창원 孝昌園"에서 유래한다는거 아셨나요.


  ['숙명여대' 조망]  
  [효창공원] 우측에는 [숙명여대]가 있는데, [숙명여대]도 옛날엔 [효창원]의 일부 였답니다.
  [효창운동장]도...


  [공원]

  [후문]  
 공원 중심부를 통과해 올라 가면 공원 후문을 만납니다.
 '공덕동' '만리동' '청파동' '남영동'등 동네들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재개발이 이루어지며 아파트들이 공사중에 있군요.




  ['공원']  
  이 공원은 주민들의 생활건강체육공간이기도 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혹시 현재의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있었던 [서울CC]라고 생각하고는 있지 않나요?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은 바로 이곳 [효창원] 자리였답니다.
  그러니까 [효창운동장][숙명여대]를 포함하는 "효창원" 묘역을 일제가 골프장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1921년에 만들어 3~4년 운영하다가 1924년에 없애버렸지만 왕실 묘역을 골프장으로 만든 쪽바리들.
  그리고 해방후 임정요원들의 묘역으로 꾸며진 이후에는 '군사쿠데타 세력'이 독립투사들을 부정하기
  위해 묘역 앞에다 거대한 운동장을 만들어 성스러운 독립투사 묘역을 놀이터로 만들어버렸죠.


  ['의열사']

  [안내문]  
  "의열사"에 대해선 안내문에 자세히 안내하고 있고...


  ['백범 김구선생' 묘소]  
  "백범 김구선생 묘"
  일제에 의해 공원화 된 "효창원"을 해방 후 독립투사들의 묘역으로 조성하신 분이 "김구선생"이시죠.
  그리고 자신도 이곳에 뭍히고...


  ['이봉창의사' 동상]  
  "이봉창의사 동상"도 있습니다.
  일본 '히로히또 왕'에게 수류탄을 던져 죽일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져 결혼도 못하고 32살의 젊은 나이에 순국했지요.
  이 근처 [금양초등학교] 근처에서 살며 '청파동' [문창보통학교]를 다녔고
  용산역 철도공무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답니다.


  ['백범 김구 기념관']  
  "백범 김구 기념관"은 코로나사태로 휴관 중이었습니다.


  ['경의선숲길-마포구구간' 출발지]                      12:16  
  "효창공원"을 둘러 보는데 40여분이 걸려고, 다시 <경의선 숲길>로 돌아왔습니다.
  [효창공원앞역] 사거리부터는 <경의선숲길-마포구구간>이 시작되었고
  [공덕역]까지 "새창고개 구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옛 능선을 복원하고 우리 민족의 상징나무인 대형 소나무를 심어 특색 있는 공원으로 조성했다는군요.
  여기서 부턴 이용객들이 많아지더군요.


  ['백범교']

  ['공덕동']

  [공덕동 종점 공원]

  ['경의선숲길 관리 사무소']                       12:27  
  10여분 <새창고개구간>을 통과하면 [공덕역] 근처에 있는 [경의선숲길관리사무소]에 도착하고


  ['공덕역']                         12:28  
  이어서 "공덕역"을 만납니다.
  [지하철5호선][6호선][경의중앙선][공항철도]가 통과하는 역이며 곧 [신안산선]까지 통과 할 역이어서
  우리나라 지하철 역 중에서 [왕십리역]과 함께 가장 많은 노선이 교차하는 역이 될 것입니다.


  ['공덕오거리' 만리동 방향]

  ['공덕오거리' 아현동 방향]

  ['공덕오거리' '마포대교' 방향]  
  "공덕오거리"에서 엄청 번화해진 거리를 조망하고


  ['공덕오거리' '서강대' 방향]

  ['경의선숲길' '대흥동-염리동' 구간]                  12:39  
  [서강대] 빙향으로 진행해서 끊어졌던 <경의선숲길>을 다시 만나 진행합니다.
  [공덕역]에서 [대흥역]까지를 "대흥-염리동 구간"이라고 하며
  특히 4월에 벚꽃이 만발하여 꽃구경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답니다


  ['겨울나무' 옷입히기]                      12:41  
  나무에 겨울옷을 입힌 곳도 있고...


  ['대흥역']                       12:49  
  "대흥역" 앞 도로를 건너면...
  [대흥역]에서 [서강대역]까지를 "신수동 구간"이라고 하는데
  일제강점기 마포의 범람을 막기 위해 만들었던 인공하천인 '산통물천'과 
  무쇠솥이나 농기구를 만들어 팔던 공장이 많았던 마을의 옛 기억을 재현하고 있답니다.


  [기차소리]                       12:43
 
  [추억]  
  설명이 필요없는 추억의 기찻길을 재현하고 있고


  ['신수동구간']


  ['서강대' 정문]                     1:00  
  [서강대학교] 앞을 지나면...


  ['서강대역']                       1:02  
  "서강대역"을 만나고


  ['서강하늘다리' 입구]

  ['서강하늘다리']                      1:06  
  이어서 "서강하늘다리"라는 육교를 건너게 됩니다.
  이 육교가 있는 곳은 옛날 [경의선 철교]가 있던 자리이죠.


  ['신천로터리' 방향 조망]  
  육교에서 북쪽으로 [신촌로타리]가 보입니다.
  옛날에 [강화] 가는 시외버스 타는 곳이었죠.
  지저분한 길이었는데 맑끔하게 단장되었군요. 정말 오랜만에 와 봅니다.


  ['와우산' 방향 조망]  
  남쪽 "와우산" 방향을 조망하는데 산은 보이지 않고 아파트들만 보입니다.
  1960년대 말 서울로 서울로 몰려드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서민들의 무허가 판잣집은
  서울을 뒤덮을 지경이었죠. 주택 정책의 일환으로 처음 지은 아파트가 바로 앞에 보이는 "와우산"
  비탈에 지은 시민아파트였고 이름하여 "와우아파트"였는데...
  <네이버지식백과>를 인용하면..
  1970년 4월 8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 와우지구 시민아파트 15동 건물 전체가 붕괴,
  33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 69년 12월 26일에 준공한 후 불과 4개월 만에
  일어난 이 붕괴사고는 조사 결과 아파트의 받침기둥에 철근을 제대로 쓰지 않아 기둥이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때문으로 밝혀져, 아파트 부실 공사에 대한 인책문제가 국회에까지 비화되어
  서울시장 김현옥(金玄玉)이 물러나는 사태까지 빚었다. 사고가 발생하자 경찰·군·예비군·미8군 등
  1천여 명이 동원되어 구조작업을 벌였다. 이 사고를 계기로 경찰은 전국 697개 아파트에 대한
  안전도검사에 나섰는데, 85동이 날림공사였음이 밝혀져 한때 아파트 기피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도시빈민의 주거문제가 새롭게 대두하기 시작했다.

  노래 가사를 바꿔 ♬ "아우아파트가 우루루 무너지는 소리 ~~"♬라고 부르고 다니다 박통에게 걸려
  한동안 가수 활동을 못하게 되었된 "조영남"도 두고 두고 회자되었죠.
  그런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현재는 브랜드가 있는 현대식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게 
  "와우산" 보다 높게 건설되어 "와우산"을 보이지 않게 감싸고 있군요.
  말로만 듣던 "와우산"을 이번 기회에 다녀 오기로 합니다.
  "와우산"을 올랐다가 내려 올때의 루트는 붉은선으로 표기했습니다.


  ['서강하늘다리' 밑 통과]                      1:08  
  [서강하늘다리]를 내려가 [와우산]으로 갑니다.
  자칭 산꾼이라면서 서울에 있는 "와우산"도 올라보지 못해서 이번 기회에 꼭 올라 보고 싶었고
  특히 "공민왕 사당""광흥창터"도 찾아 보기 위해서입니다.


  ['서강대교' 가는 길]  
  [서강하늘다리]에서 [서강대교] 방향으로 12분 정도 진행하면...


  ['광흥창역]                          1:20  
  [서강대교] 입구에 있는 "6호선 광흥창역"을 만납니다.
  여기서 우회전 하면...


  ['합정역' 방향]  
  [합정역] 방향으로 가는 [독마로]라는 도로로 진행하는데 우측엔 [쌍용예가아파트]가 줄서 있습니다.
  [쌍용예가아파트]가 끝나는 지점까지 가면...


  ['공민왕 사당' 입구]                        1:24  
  이정표가 [공민왕 사당] 가는 길안내를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은 [마포걷고싶은길]이기도 했습니다.
  우측 골목으로 잠시 들어 가면...



  ['공민왕 사당'과 '광흥창터']                        1:27  
  "공민왕 사당과 광흥창터"
  고려 제31대 왕인 "공민왕"의 사당이 어찌하여 이곳에 있을까..궁금해서 찾아 왔습니다.
  몽골의 식민지가 되어 고려 왕들의 마빡에 "충 忠"자를 써붙이게하고 '몽골'에 충성을 강요 당하며
  왕자들을 인질로 보내야만 했던 치욕의 군주들..."충렬왕-충선왕-충숙왕-충혜왕-충목왕-충정왕"
  [공민왕]은 [충숙왕]의 아들인데 '원나라'로 볼모로 잡혀가 그곳 "노국공주"와 정략 결혼하고
  우리나라로 돌아 와 "忠"자를 떼고 왕위에 오르는 고려릐 희망이었죠.
  무신정권들을 타파하고 나라 다운 나라를 만들어 '원나라'에 복수를 하려했던 개혁 군주였지요.
  하지만 개혁은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 수구세력들의 반발로 어려움에 쳐했고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죠.


  ['광흥창 터']

  "광흥창 터"
  고려 '충선왕' 때 정해진 '광흥창'이란 이름은 조선 건국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는데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관제 개편 때 '광흥창'은 모든 관리의 녹봉을
  수입·지출하는 일을 맡는 관청으로 정해졌다고 하며 그 터가 있던 곳이랍니다.
  [서강나루] [마포나루]를 통해 들어 오는 세곡을 관리하는 곳이었다는거죠.
  이곳 앞이 "창전동 倉前洞"인데 이제서야 그 의미를 알겠군요.
  [광흥창]  창고 앞 동네라고 "창전동"이 되었답니다.


  [사당 내부]  
  "노국공주"를 무지무지 사랑한 "공민왕"
  그들의 사랑 이야기와 당시 '원나라'의 "기황후" 이야기는 너무 유명해 생략하고...
  결국 그 지고지순한 사랑 때문에 비극적으로 암살 당했다고도 할수 있죠.
  이곳에 그를 기리는 사당이 있는 이유는 불분명하답니다.


  ['와우산' 오름길]                    1:32  
  [공민왕 사당] 옆에는 "와우산'으로 올라 가는 계단이 길게 뻗어 있습니다.
  이 길은 [마포걷고싶은길]이기도 했습니다.
  계단을 끝까지 올라 가면....


  ['중앙하이츠아파트']  
  [중앙하이츠아파트]라고 하는 아파트가 있고


  ['중앙하이트아파트' 정문]                    1:42~1:47  
  아파트 정문 앞에는 마을버스 13번 종점이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정자에 올라가 잠시 쉬는데


  ['와우근린공원' 안내도]  
  정자 옆에는 "와우근린공원안내도"가 있어 참고하고


  [이정표]                     1:47  
  버스 종점 앞 사거리에 있는 이정표를 참고하여 "와우산"을 통과합니다.
  [마포걷고싶은길] 방향으로 가면 되더군요.


  [군부대]  
  "와우산 臥牛山 101.9m"이 왜 우리에게 가깝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는 "와우산" 정상은 군부대가 아직도 점령하고 있어서라고 생각되는데
  그래도 정상 옆구리로 길을 만들어 걸을수 있도록해서 다행입니다.


  ['관악산' 조망]  
  "와우산"에서 바라보는 "관악산"과 "63빙딩"입니다.
  "♬ 와우아파트"가 우루루 무너지는 소리 ♬'는 간데 없고 더 높은 아파트와 건물들이 펼쳐집니다.


  ['와우산체육공원']                     1:52

  ['마포팔경']  
  군부대가 끝나는 곳에 "와우산체육공원"이 상당히 큰 규모로 자리 잡고 있는데
  안내도에 [마포팔경] 중에 하나를 소개 하고 있습니다.


  [안내도]                     
  현위치를 확인하고 [신촌금호어울림아파트]를 통과하여 [창전삼거리] 방향으로 내려 갑니다.


  ['노고산''남산' 조망]  
  "와우산"에 바라보는 "노고산"과 "남산"입니다.
  "노고산"은 [서강대] 뒷산이죠.


  ['금호아파트 103동']                       2:00  
  [금호아파트 103동] 앞으로 하산하면...


  ['서강하늘다리' 조망]                      2:01  
  [서강하늘다리]가 바로 아래에 보입니다.
 

  ['와우교 구간']                     2:08  
  약 1시간이 걸려 [와우산]을 둘러 보고 다시 <경의선 숲길>로 돌아 왔습니다.
  여기서부터 <와우교구간>이 이어지고




  ['홍대땡땡거리']                      2:10  
  예전에 건널목이 있었던 곳을 재현해 놨습니다.
  이름하여 "홍대땡땡거리"라고 합니다. 잼있죠? ㅎ


  ['말'조형물]

  ['경의선책거리']

  ['경의선 책거리']                      2:20  
  이어서 "경의선책거리"가 이어지며 다양한 조형물이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홍대입구역']                     2:25  
  [2호선][경의중앙선][공항철도]를 탈수 있는 "홍대입구역"을 지나는데
  이 역은 [애경그룹] 빌딩이 있는 복합건물이더군요.


  ['동교동 삼거리']  
  [김대중대통령] 시절부터 더욱 알려진 [동교동 삼거리]가 새로워졌고


  ['서교동' 방향]  
  [양화대교] 방향으로 뻗은 [서교동] 방향 길이 빌딩으로 좁아진듯 느껴질 정도입니다.




  ['연남동 구간']                    2:32~2:44   
  <연남동구간>을 7분여 진행하는데 변화를 몸소 느낄수 있었습니다.
  여기는 저의 죽마고우가 아직도 살고 있는데 40여년 전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로
  화려하게 변모했습니다.


  ['불광천 사천교 교차로']                     2:47  
  [불광천]이 흐르는 개천 위로 [서울내부순환도로]가 지나고, [경의선] 철도가 지상으로 나오는 곳에서
  <경의선 숲길> 답사를 마침니다.


  [네이버지도']  
  오늘 걸은 거리는 12.5km 였으며 3시간 4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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