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산촌민속박물관']              1:26       
  "인제산촌민속박물관"이 있는데 시간 관계상 관람은 다음으로 미루고


    ['박인환문학관']            1:27~1:37       
  박물관 우측에 "박인환문학관"이 붙어 있습니다.
  문학관은 좀 세세하게 관람하고 갑니다.


    ['시인의 품']                         
  <박인환문학관> 입구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시인의 품"이라는 "박인환 상"이 있는데 방문 기념 사진을 찍는 곳이더군요.


    ['박인환-만남']                      
  문학관 정문으로 다가 가면 "박인환-만남"이라는 조형물이 있는데
  <목마와 숙녀> 詩와 테이블 위 찌그러진 "막걸리 주전자"가 눈길을 끕니다.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난 인생"이라고 감히 말해도 될 <애주가 박인환>이 소박한 술상을 펴고 반깁니다.


    [문학관 입구]                
  문학관 정문을 열고 들어 가면 이렇게 <박인환>은 다가 옵니다.


    ['박인환'과 '목마와 숙녀']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었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명동백작" "명동 빽구두" "조니워커와 카멜담배" 등 명동 최고의 멋쟁이였던 <박인환>
  당시 <이화여대생>들에게 최고 인기 스타라고 할 정도로 여성들에게 인기 만점의 시인인데
  그가 쓴 詩들은 어찌 슬픈 이별의 노래가 많은가.....


    ['해방 후 서울 거리']                         
  <박인환 문학관>의 특징은 당시 서울 문학인들이 거닐며 
  술과 함께 문학을 논하던 거리를 재현 해 놨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그가 29세라는 짧은 생을 마치고 사라졌기에 그에 대해 남아 있는 유품들이 거의 없기도 해서겠죠.


    ['마리서사']                    
  "마리서사 茉莉書肆"
  <시인 박인환>은 1926년 이곳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에서 태어나 인제국민학교 4학년까지 다니고
  <서울 덕수국민학교>로 전학가서 <경기중학교>로 진학하고, 청소년관람금지 영화 보러 다니다
  중퇴하게 되고, 황해도 <명신중학교>를 졸업합니다. 이후 현재의 <평양의대>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려
  했으나 <8.15 해방>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로 내려와 1945년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운영합니다.
  20세~23세까지 3년여 운영하다가 문을 닫았는데, 이후 <경향신문 기자>로 활약하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종군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처음 만난 부인 <이정숙 여사>
  <박인환>의 키는 당시로는 상당한 장신인 180cm 정도여서 여자도 키 큰 여자를 선호했는데
  <이정숙>씨의 키가 170cm로 <진명여고> 농구선수 출신으로 당시 여성잡지 기자였으니,
  그들이 단짝이 되어 명동에 나타나면 <한 쌍의 학(鶴)과 같다>는 문우들의 찬탄을 받았다고 합니다.
  커플로는 이상적이었으니 바로 결혼하고  2남1녀를 두었는데, 
  큰 아들 <박세형>씨는 연세대 국문과를 나왔으며 아버지 뒤를 이어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바람이 이처럼 다정하면>이라는 시집을 출간한 서정시인이랍니다.


    ['포엠']                      
  "포엠"은 명동의 위스키 등 양주를 파는 술집이었답니다.


    ['유명옥']           
  "김수영 시인"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빈대떡 대포집이었답니다.
  <박인환>은 선배인 <김수영>과 처음엔 매우 가까이 지냈지만, 문학적 입장이 달라 사이가 멀어졌다죠.
  <6.25전쟁> 이후 지식인들이 모여 술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곳이 이런 곳이었답니다.


    ['봉선화 다방']                          
  이런 다방은 저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1~2층 계단']                           
  <박인환문학관>을 가면 반드시 2층에 올라 가 봐야 합니다.


    ['은성']                    
  "은성집"은 현재 명동입구 <유네스코빌딩> 앞 골목에 있었습니다.
  현재 표지석이 세워져 있더군요.
  텔런트 <최불암>씨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대포집이었답니다.
  
  <박인환>이 죽기 열흘쯤 전 이 <은성집>에서 마지막 詩가 쓰여 지고 작곡이 되었는데....
  "세월이 가면..."이라는 불후의 명시 명곡이죠.


    ['은성집'과 '세월이 가면']                   
  "세월이 가면..."
  <세월이 가면>은 "박인환 시인"의 마지막 시로 알려져 있는데 작품 일화가 있습니다. 
  당시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명동의 대포집 <은성>에서 극작가이자 작곡가인 <이진섭>, 
  <백치 아다다>를 불러 유명한 <가수 나애심>이 같이 술을 마시던 가운데, 
  <박인환>이 자신의 마지막을 예상이라도 한듯 종이를 들고 詩를 썻는데,
  그 詩를 본 <이진섭>이 詩가 너무 좋아 즉석에서 곡을 붙이고 <나애심>이 바로 불렀답니다. 
  <나애심>이 먼저 술자리에서 떠나자, 나중에 온 테너 <임만섭>이 그 악보를 받아들고서 
  다시 노래를 불렀고, 주위에 있던 모든 손님들이 그 가게로 몰려와 노래를 감상했다고 합니다.
  
  그후 <뚜아 에 모아>의 <박인희>가 리바이벌해 공전의 힛트를 쳤지요.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난 인생--박인환"은 며칠후 <시인 이상 추도식>에서 3일간 술을 퍼 마시고
  이 노래와 함께 '알콜성 심정지'로 생을 마감하며, "술병에서 별이 떨어 지는 곳으로" 갔습니다.
  
  당시 9세였던 <박인환> 시인의 장남 <박세형>씨는 67세가 되어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그날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들어와 토를 하시니 제가 등을 쳐 드렸습니다. 
   입에서 활명수 냄새가 났던 것으로 기억해요. 
   안 되겠다 싶어 어머니는 의사 선생님을 모시러 뛰어가셨어요. 그때 밤 9시가 넘고 있었어요.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빈손으로 오셨습니다. 이미 아버진 눈을 감으셨어요.”


    ['박인환 유품 전시']                            
  <박인환>을 시인으로만 생각하시면 않됩니다.
  영어를 잘해서 번역가이기도 했으며, 여성잡지 기자였던 부인 <이정숙>씨와 함께 "영화평론가"였습니다.
  
  천재는 단명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29년의 짧은 인생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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