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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옛길-봉화길』
     『제1길 덕풍천길』
      하남 한강에서 덕풍천을 따라 남한산성으로 
           하남검단산역-산곡천-당정뜰-덕풍천-광주향교-법화골-남한산성


    ['봉화길 전체 안내도']                   
    
  "역대 조선왕조의 실록(實錄)과 왕실족보인 선원보(璿源譜)가 이운(移運)되던 길"
  "봉화길"은 <한양>에서 '경북 봉화'에 있었던 "태백산 史庫"로 
  조선왕조의 <실록>과 족보인 <선원보>를 운반하던 길이었다고 합니다.
  
  <경기도 문화원>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와 "자전곶교지광주략도"를 참고하여 길을 만들고
  2023년 11월11일에 "경기도 구간"만을 개통했답니다.
  
  <봉화길 경기도구간>은 
  <하남시 13km> <광주시 45km> <여주시 25km> <이천시 52km>로 총 "135km"라고 합니다.
  <경기옛길> 7개 길 중에는 제일 긴 길이 되겠습니다.

    



    ['하남검단산역']            11:25        
    2024년 1월 12일 금요일   맑음      
  <경기옛길-봉화길>이 개통 된지 두달만에 새로 뚫렸다는 <봉화길 제1길>을 출발합니다.
  <하남검단산역 2번출입구>로 나가면 앞에 보이는 지하철 환풍기 뒤에 출발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봉화길 출발지']              
  <은방울공원> 앞에 <전구간 안내도>와 <제1길 덕풍천길 안내도>가 산뜻하게 설치되 있으며
  다른 곳과는 차별되는 2층짜리 <스탬프함>이 도보여행객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스탬프함> 속에 "가이드북"도 있습니다.
  
  <스탬프함>은 '경북 봉화'에 있었던 "태백산 史庫"의 모형이랍니다.


    
      ['제1길 덕풍천길 안내도']            
      <봉화길 제1길>은 <한강>에서 "덕풍천"을 따라 <남한산성>까지 가는 13km 코스가 되겠습니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직접 걸으며 만들어진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을 참고 하시고...
  


    ['은방울공원']             11:28          
  안내도와 <스탬프함>이 있는 <은방울공원>을 지나 4분 직진하면...



    ['산곡2교 앞']          11:32       
  <산곡천>에 놓인 "산곡2교"를 만나는데 좌측으로 길 안내를 합니다..
  멀리 <검단지맥>의 대표산인 <검단산>이 보이는군요.



    ['산곡천변길']         

    ['산곡천 수변산책로']           11:36    
  <산곡천 둑방길>을 200m쯤 진행하면 <산곡천변길>로 내려 가고



    ['산곡교']           11:39   
  <팔당대교> 남단 교차로가 있어 여러개의 <산곡교>가 있는 다리 밑을 지나면
    


    ['산곡천-한강 합수부']                      
  <산곡천>이 <한강>에 합수하는 곳을 만납니다.
  <팔당대교>와 <예봉산>이 조망 됩니다.
  


    ['생활체육시설']             11:41           
  합수부엔 <생활체육시설>도 상당한 규모로 있는데...
  이곳은 "하남위례길 제1코스 위례사랑길"의 시종점이기도 한데, 제가 이미 다녀 간바 있습니다.
  
  "하남위례길 제1코스 위례사랑길"  여기 클릭 
    


    ['고니' 조망]        
  <산곡천>이 <한강>과 합수하는 곳엔 터줏대감인 "고니"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주변엔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촬영하는 찍사들이 많았습니다.



    ['조류 관찰대']           11:43      
  <조류관찰대>도 큰 규모로 설치되 있고
  앞에 보이는 강변 고수부지길로 직진 진행합니다.



    ['당정섬' 조망]           11:49     
  "당정섬 堂亭섬"
  <두물머리>에서 <예봉산>과 <검단산> 사이 협곡을 빠르게 통과한 <한강>은 
  <팔당대교(옛 도미나루)>를 지나면 강폭이 넓어지면서 유속은 느려지고 퇴적물인 모래가 주로 쌓이는데, 
  이렇게 쌓여 만들어진 섬이 "당정섬(堂亭섬)"이랍니다.
  이 섬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에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나고 
  한강제방공사와 도시개발을 위한 모래 채취로 사라지기도 했으나 자연은 다시 모래섬을 만들었습니다.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을 느낄수 있습니다.




    ['덕풍천-한강 합수부']            11:58         
  10여분 <당정뜰>이라고 하는 고수부지 강변길을 진행하면
  "덕풍천"이 <한강>과 합수하는 곳을 만나 좌회전 합니다.
  
  이곳 <덕풍천>의 끝에서 <덕풍천 발원지>인 <남한성 북문>까지 "덕풍천 德豊川"을 거슬러 올라 갑니다
    



    ['덕풍교']             12:04           
  "덕풍교 德豊橋"
  <위례사랑길>과 <봉화길>이 교차하는 곳입니다.
  <봉화길> 종점인 <남한산성 로터리>까지 10.6km라고 알려 주고 있고...
  


    ['덕풍천']                
  <덕풍교>에서 <덕풍1.2.3.4.5교>를 차례로 지나며 <덕풍천변 수변길>을 따라 20여분 진행하면...
    


    ['덕풍1교']            12:24   
  <덕풍1교>를 지나게 되고, 계속해서 13분여 더 진행하면...




    ['중부고속도로 덕풍천교']            12:37      
  <중부고속도로 덕풍천교>를 만나는데, <수도권제1순환로>와 <중부고속도로>가 만나는 <"하남JC">가
  가까이 있고...
    



    [덕풍천 건너는 곳]           12:49          
  <중부고속도로 덕풍천교>에서 12분여 더 진행하면
  <덕풍천>을 건너 우측 수변길을 이용해야 하고
  몇백m 더 진행하면...
    


    ['광주향교' 가는 길]            12:55   ★길조심★          
  <광주향교> 가는 길을 만나는데 눈에 띄는 안내판이 없으니 길조심을 해야 합니다.
  우측 제방 위 나무가지에 리본이 하나 있지만, 관심 가지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우니 유의 해야겠습니다.
  <광주향교>를 패싱하고 직진 할수도 있으나, <스탬프함>이 <광주향교>에 있으니 <스탬프> 찍을 분들은
  우측으로 올라 가야 합니다.
        


     ['광주향교' 조망]                       
  <덕풍천>에서 제방 위로 올라 가면 도로가 앞을 막고 있는데, 횡단보도가 없어 좀 멀리 우회해야 하지만
  눈칫껏 무단횡단하면....
    
 

    ['향교광장'-'스탬프함']           12:58      
  <광주향교 광장>에 <스탬프함>이 있는데 관심 가지지 않으면 찾기가 쉽지 않겠죠? ㅎ
  


    ['봉화길 노선 근거 안내문']           
  <봉화길>을 만들 때에 참고한 문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안내문을 읽어 보시고


       
    ['광주향교' 정문]                
  "광주향교 廣州鄕校"를 잠시 둘러 보고 갑니다.
  <광주향교>는 <하남시>에 있는데 그 이유는...
  <광주 廣州>는 <하남시-광주시-성남시-과천시-시흥시-안산시>까지 모두가 "광주현 廣州縣"이었답니다.
  그래서 "넓을 廣"을 사용하는 "너른 고을"이서 붙여진 이름인데
  비록 현재는 다 분리되어 "좁은 고을"이 되었지만....
  
  여튼 <향교>의 규모를 보면 옛 명성을 짐작할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지역이 <한성 백제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매우 중요하고 엄청 큰 고을이었다는 걸
  느낄수 있습니다.
    
 

    ['명륜당']

    ['대성전']                  
  강의를 받는 <명륜당>과 <공자>와 선현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대성전>을 둘러 보고 나가면
  


    ['보호수-은행나무']                  
  <500년 수령 은행나무>가 자력으로 살기엔 힘에 겨워 인간의 보호를 받고 있는데....
  <태조 이성계> 때에 식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덕풍천변길']          1:04         
  <광주향교>를 둘러 보고 다시 <덕풍천변>으로 나와 조금 올라 가면...



    ['덕풍천 수변쉼터']            1:07      
  <덕풍천 수변쉼터>를 지나고
   


    ['하사창동' 입구]            1:10       
  <하사창동 下司倉洞>을 지나는데 조선시대까지 <사창 司倉>이 있었던 곳이랍니다.
  <덕풍천변길>은 <상사창동>까지 이어 집니다.
  
  여러 지방에서 거둬 들인 "세미 稅米"를 <한강> 을 통해 운송해 와 이곳 창고에 보관하고
  다시 <남한산성>으로 옯겼다고 합니다.
 


    ['하남교산신도시']         
  <하남시 상사창동-하사창동-항도-춘궁동>은 제3기 신도시 예정지역이랍니다.
  
  "고읍 古邑 (고골)"
  초기 <한성 백제>의 도읍지라고 추정된다고 하여 불리워지는 고을이랍니다



    ['고골로']                    
  <광주향교>에서 <남한산성> 까지 이 지역은 치욕의 역사인 <병자호란>의 현장이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진지"가 있던 곳
  <청태종>이 이끄는 "10만 대군이 진을 치고 <조선의 항복>을 강요한 곳"입니다.

 

    ['과목교']           1:30       
  <광주향교>부터 26분 정도 진행하면 "과목교"를 건너고...
 


    ['중통마을']            1:31     
  이어서 "중통마을 中統" 안내석을 지나 12분여 더 진행하면...
  


    ['샘골입구']           1:43       
  "샘골입구 버스정류장"과 <남한산성 등산로 주차장>을 만나고



    [갈림길]             1:47           
  이어서 <전승문>까지 "1.8km" 남았다는 광장을 지나면
  


    ['연자방아' 입구 삼거리]            1:51    
  "연자방아 입구 삼거리"를 만나는데 직진성 우측길로 진행합니다.
  좌측 가까운 곳에 <연자방아 모형>이 있는데....



    ['연자방아']           
  예전에 촬영한 <연자방아>를 참고하고
  


    [산불초소]            1:54        
  <연자방아 입구 삼거리>에서 100m쯤 올라 가면 <산불초소>를 지나 갑니다.
  


    ['벌봉' 갈림길]            1:55        
  이어서 다시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길은 <벌봉>으로 가는 길이고
  <봉화길-덕풍천길>은 직진성 우측길로 갑니다.
  뒤로 <남한산성>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토박이']            2:00     
  <고골-법화골>에서 마지막 사람 사는 집인 <토박이>라는 음식점을 지나면...
    

  
    [오름길]           
  <남한산성 북문>으로 오르는 길이 이어 집니다.
  10여분 올라 가면...
    



    [계단 입구]             2:10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는 비탈길에 데크 계단을 설치해 놨습니다.
  이제 500m만 오르면 되는데 이번 코스에서 가장 힘든 곳입니다만, 그렇게 염려 할 정도는 아닙니다.


  
    [계단]      
  계단을 10여분 오르면...
    


    [계단 끝]            2:20~2:27  
  계단이 끝나는 곳에 장의자 하나가 쉬었다 가라고 합니다. 잠시 쉬고


  
    [오름길]      
  <남한산성>의 북사면이어서 아직도 눈이 많이 쌓여 있는 가파른 오름길을 14분여 더 올라 가면...
  
  이 길이 "세미길 稅米路"라고 알리고 있더군요.
  한강을 통해 운송된 곡식이 <남한산성>으로 다시 올려 보내지는 길이었다고
    


    ['북문 (전승문)']              2:41          
  "남한산성 북문 (전승문)"이 <병자호란>의 아픔을 되씹으며 우뚝 서 있습니다.
    
   "全勝門-北門"  
  병자호란 당시 영의정 '김류'의 주장에 의해 군사 300명이 북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 군을 
  기습 공격한 조금 전 지나온 계곡 "고골-법화골"로 나갔던 문입니다.
  10만 대군이 포위하고 있는데 300명이 내려가 기습공격을 해? 
  당시엔 겨울이어서 앙상한 나무가지로 시야가 트여 성문으로 누가 들락거리는지도 철저하게
  감시 당하고 있었고, 당시에도 망원경이 있어 동태파악이 확실히 되었는데도
  성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수는 없으니 뭔 껀수를 만들려고 한게 '바위에 계란 던지기'였습니다.
  조선군의 동태를 훤하게 파악하고 있던 청나라군은 문 밖에 있는 고골계곡에 없는듯 숨어 있다가
  아무도 없는 계곡에 어리둥절하여 철수하는 조선군 300명을 거의 전멸시키고 말았는데, 
  이를 "법화골전투"라 하고,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최대의 전투이자 
  최대로 참패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후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할 때 '북문'을 개축하고 
  그때의 참패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전승문 全勝門"이라 개명 하였답니다.

  그날의 상황은 "인조실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 있습니다.  
  '인조 14년 병자년 (1636년 12월 29일)' 
  ○是日, 出兵北門外, 陣于平地, 賊不與之戰。 日且暮, 體察使金瑬在城上, 傳令收軍上城,
  賊自後掩之, 別將申誠立等八人皆死, 士卒死傷甚多。 瑬以覆軍、(債)〔僨〕 事待罪, 上慰諭之.

  이날 북문 밖으로 출병하여 평지에 진을 쳤는데 적이 상대하여 싸우려 하지 않았다.
  날이 저물 무렵 체찰사 김류가 성위에서 군사를 거두어 성으로 올라 오라고 전령하였다.
  그 때 갑자기 적이 뒤에서 엄습하여 별장 신성립(申誠立) 등 8명이 모두 죽고 사졸도
  사상자가 매우 많았다. 김류가 군사를 전복시키고 일을 그르친 것으로 대죄(待罪)하니,
  왕이 위유(慰諭)하였다.
  


    ['북문 (전승문)']                
        
              [안내문]           
         성 안으로 들어 가 뒤돌아 본 <북문-전승문>입니다.



    ['남한산성 역사 테마길']           2:43      
  <북문> 앞에서는 "남한산성 역사 테마길"이 이어집니다.
  <2코스 국왕의 길>로 내려 가면....
  


    [식당가]                    
  식당들이 줄을 서 있는 거리를 5분여 진행합니다.



    ['산성로타리']           2:48     
  그러면 오늘의 종점인 "산성로터리"에 도착하는데
  <성남 방향>으로 가려면 우측 <9번 버스정류장>을 이용하고
  <광주 방향>으로 가려면 좌측 <15-1번 버스정류장>을 이용 해야 합니다.
    


    ['버스정류장']             2:50       
  "경기옛길 봉화길-제2길 한양삼십리길"의 출발지는 <15-1번 버스정류장> 앞에 있습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약13.5km 였으며, 3시간 25분이 걸렸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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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18코스 고성 명태 고향길』
      공현진해변에서 북천철교를 건너 거진항으로 
                공현진2리해변-가진항-남천1교-북천철교-반암항-거진항

        
           ['18코스 안내도']                   
           <강원평화누리길 18코스>는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리'에 있는 <공현진항>에서 출발하여
           '고성군 거진읍 거진리'에 있는 <거진항>까지 15.5km를 갑니다.
           참고로 <해파랑길 48코스>와 대부분 겹치는 곳입니다.
    


    [실트랙 국토지리원 지도]             
  직접 걸으며 만들어진 GPS 실트랙을 참고하고...



    ['고성군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의 위치와 <고성군>을 이루고 있는 <2읍-4면>의 위치입니다.
  오늘은 <간성읍>과 <거진읍> 해안을 주로 통과하게 되겠습니다.



    ['공현진항']          10:10       
    2024년 1월 7일 일요일   맑음      
  <강원평화누리길 16코스>에 있는 <미시령>은 오늘도 폭설로 통제되 차량은 절대 통과할수 없더군요.
  그래서 <강원평화누리길 18코스>를 먼저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7코스> 할때 지났던 "공현진항"에서 출발합니다.
  100m 정도 진진하면...



    ['옵바위']            10:12           
  "옵바위-수뭇개바위"
  <애국가> 영상에도 나오는 일출 명소인 "옵바위-수뭇개바위"를 지난번에 이어 다시 만나고
  


    ['가진항' 조망]                       
  북쪽으로는 잠시후 지나게 될 "가진항"을 조망합니다.



    ['공현진2리해변']                 
  <애국가> 영상에도 등장 할 정도로 "일출 명소"인  "옵바위-수뭇개바위"가 있어 유명해진 
  "공현진2리해변"을 통과하면....



    ['공현진2리해변 주차장']            10:17      
  지난번 <17코스>를 할때 종점으로 찬바람 속에 식사를 했던 <공현진2리해변주차장>을 지나서
  6분 정도 <옛7번국도>를 진행하면....



    ['덕포굴' 조망]            10:23       
  <덕포굴>이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옛날엔 바닷가에 길이 없어 앞에 보이는 <덕포굴> 위 고개로 넘나들었답니다.
  지금은 굴도 뚫렸지만 해안도로가 시원하게 개설되어 다니기 좋아졌답니다.
  이 이야기는 잠시 후 만나는 <고재바위>의 유래와도 관련이 있으니 눈 여겨 봐 두세요~
    


    ["고재바위"]           10:26       
  "고재바위"
  <공현진>에 있는 <옵바위-스뭇개바위>의 명성에 가려지고, 불과 몇해 전까지만 해도 해안철책에
  막혀 근접하지 못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 지지 않은 바위가 바로 이 <고재바위>입니다.
  이곳도 대표적 "일출 명소" 중에 하나랍니다.
  
  지명의 유래는 똑부러지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금전 <덕포굴 위 고개> 아랫쪽 바닷가에 있다고
  한글 한자가 합쳐지고 방언까지 덧붙여져 생긴 이름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가진항' 조망]           10:32      
  <고재바위>를 지나면 바로 "가진항 加津港"을 만납니다.
  
  우리나라 백성들이 일제강점기 시절 징용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고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못해
  한일 양국 대법원에 까지 소송을 해서, 일본에 대해 승소한 사실 모두 알고 있죠?
  그런데 현 우리 정부는 한일 양국의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일본편을 들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는데
  
  우리나라 백성들이 일본에 끌려가 노역을 한 곳이 <일본 군함도:하시마섬>이죠?
  그 역사를 영화화한 <군함도>라는 영화를 촬영한 곳 중에 한 곳이 바로 이곳 <가진항>이었답니다.
  그래서 <군함도> 관련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
    


 
 
 
    ['가진리' 통과]           10:41        
  "가진리 加津里"를 통과합니다.
  지명의 유래 
  "어촌마을로 옛부터 다른 어항보다 수산물이 많이 나서 주민생활에 덕이 많이 되었다 하여 
  약 100여년전부터 속칭 덕포라 불렀으며. 후에 작은 나루가 하나 더 생겨나자 가포진(加浦津 더포)이라고
  불리웠는데 1914년 리명 개편시 가진리(加津里)로 고쳤다." 
                   -고성군지-



    ['남천1교']            11:00         
  <가진리> 중심 마을을 통과하여 20여분 진행하면
  "남천1교 南川一橋"를 만납니다.
  <고성군>의 군소재지인 "간성 杆城"은 이곳 <남천 南川>과 잠시후 만날 <북천 北川> 사이에
  있습니다.



    ['남천'에서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되며 설명이 있습니다★ 
  "남천1교 南川一橋"에서 바라보는 "간성 杆城" 중심지와 "백두대간 향로봉"입니다.
  실제 <백두대간 마루금>은 <향로봉> 이전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기에 <향로봉 정상>으로는
  대간 마루금이 지나가지 않습니다.
  
  <고성군>의 군청 등이 있는 군소재지는 "간성 杆城"에 있습니다.
  <간성>은 <남천 南川>과 잠시 후 만날 <북천 北川> 사이에 <백두대간>을 뒷울타리 삼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성 高城"은 어디에 있는가?
  <고성>은 <고성군>을 통칭하는데, 실제 <고성>이라는 고을은 휴전선 위 북한에 지금도 있습니다.
  휴전선으로 분단되기 전까지 <고성군>을 대표하며 <고성군청>이 있었던 그 <고성>은 북한 <고성>에 
  있는데....10몇년전 <정주영회장>이 만든 <금강산 관광 시설>이 있는 <장진항> 근처에 있습니다.
  
  현재 남한에는 <고성군>이 휴전선으로 토막 나서 <고성>이 없는 <고성군>이 되 있죠.
  그래서 군소재지를 제일 큰 고을인 <간성>에 두게 된 것입니다.
  가끔 <고성>과 <간성>을 혼돈하는 이유입니다.



    ['토끼']           11:20     
  <남천1교>를 지나 20여분 진행하면 길가에 "토끼집"이 눈길을 끄는데
  이 추운 날씨에 토끼 두마리가 서로 꼭 껴안고 '바다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풍력발전기]            11:27        
  이어서 규모가 좀 작은 풍력발전기를 만나며, <북천양수장>을 만나게 됩니다.
  



    ['북천철교']              11:36                 
  <북천양수장>에서 <북천>을 건너 가려면 "ㄷ자"로 건너야 하는데
  "옛 북천철교"를 <평화누리길>로 개보수하여 설치해 놨습니다.
    


    ['평화누리길']               
  기차가 다녔을 <북천철교>는 걷기코스가 되었습니다.



    ['향로봉'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북천철교>에서 <향로봉>을 조망합니다.
  이 <북천>이 <진부령>에서부터 <진부령계곡>을 만들며 내려오는개천이죠.
    


    ['북천' 하구 조망]                     
  <북천>이 <동해>와 만나는 하구도 바라 봅니다.
  <남천>에서 여기까지가 <간성읍>이고
    


    ['북천철교 쉼터']           11:43          
  <북천철교>를 건너 하구로 나가면 "북천철교 평화누리 쉼터"가 있는데
  정자의 이름은 "송강정철정"이더군요. 화장실도 있습니다.
   "송강정철정"은
  조선 <선조> 시절 <강원도 관찰사>가 된 <송강 정철>이 강원도의 각 고을과 <금강산>과 명승지를
  을 유람하며, 읊은 유명한 "관동별곡"의 이동 통로여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산해안교'에서 조망]                       
  <송강정철정> 좌측엔 <마산해안교>라는 다리가 있는데 
  개천엔 '원앙새'와 '오리', '가마우지'등이 보이고
    
 

    [갈림길]               11:51        
  이어서 갈림길이 나옵니다.
  직진하면 간단하게 갈수 있는데, 우측으로 뺑뺑이를 돌립니다.
  


    ['해송림' 조망]           
  바람도 심한데 바닷가 방풍림인 해송숲으로 빙~~ 돌아 갑니다.


       
    ['해송림']            11:57       
  방풍림인 해송숲으로 25분 가량 돌아 가면....
    
 

    ['반암마을' 입구]             12:16           
  <옛7번국도>를 다시 만나는데 <반암마을 입구>였습니다.
  




    ['반암항']             12:25     
  "반암마을 盤岩里""반암항 盤岩港"을 통과합니다.
  마을과 해변엔 암반이 깔려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거진항' 조망]            12:27       
  <반암항>을 지나면 <거진항>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반암항 낚시공원']                  
  <반암항> 뒤에는 <반암항낚시공원>이 있는데 무료라고
   


    ['송포교차로']           12:32      
          
            ['명태 조형물']
    <반암항>에서 7분여 진행하면 <7번국도>를 다시 만나며 "송포교차로"를 만납니다.
    이 교차로엔 "명태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는데, <명태의 고향> 답습니다.            
 


    ['거진해변']           12:34       
  <송포교차로>를 지나면 드디어 <거진읍내>로 들어 가게 됩니다.



    ['거진읍사무소']          12:42     
  "거진읍사무소""고성국민체육관"을 지나 가는데...
  <고성'국민'체육관>이라고 하는게 좀 특이하군요. 일반적으로 <고성'군민'체육관>이라 하는데

 

    ['거진1교']             12:44       
  이어서 "거진1교"를 건너 갑니다.
  
  <거진1교> 밑을 흐르는 개천이 "자산천 慈山川"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호국영웅이었던 <사명데사>와 일제강점기시대 독립투사였던 <만해 한용운>선생의
  혼이 살아 있는 "건봉사"가 있는 <건봉산>등에서 흘러 내려 오는 개천입니다.
 


    ['명태웰빙타운']            12:47    
  <명태웰빙타운>이라는 음식점거리가 이어지는데 
  "거진 巨津"이 글자 그대로 매우 큰 항구라는 것을 느낄수 있는데 남한 최북단 제일 큰 항구가 되겠습니다.
  


    ['거진해변']              
  해변엔 "명태의 고향" 다웁게 "명태조형물"이 도처에 설치되 있습니다.
  
  <명태의 어원>
  우리는 일반적으로 <명태 明太>를 "눈이 밝은 고기"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와 고사, 전통혼례 등 관혼상제(冠婚喪祭)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생선으로 여겨졌지요.
  
  <명태의 어원>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가장 유력한 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유권"의 《임하필기》에는 "명천(明川)에 사는 어부 중 성이 태씨(太氏)인 사람이 물고기를 낚았는데,
  이름을 몰라 지명의 <명明>자와 잡은 사람의 성 <태太>를 따서 "명태 明太"라고 이름 지었다....



    ['고성명태 홍보관']                        
  "고성 명태 홍보지원센터"에도 "명태 조형물"....
  
  <고성 해안>에서 잡히는 명태는 전국 어획량의 70% 정도였답니다.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리고 <조선시대>에 <명태>는 <고성-원산-함흥-경흥-두만강>에 이르는 해안에서 엄청나게 잡혔답니다.
  <영조> 때에 <여암 신경준 선생>이 쓴 <도로고>라는 책에서 <관북대로>를 "명태길"이라고도 했답니다.
  이 지역에서 잡힌 "명태"를 <한양>으로 운송하는 길이 되어 붙여진 이름이라 하니 당시 얼마나 많은
  "명태"가 잡혔는지 쉽게 짐작할수 있습니다.
  


    ['거진해변']           12:51       
  <거진항>이 전체적으로 조망되기 시작하고



    ['거진해양파출소']           1:00        
  도심으로 들어 가니 "거진해양파출소"를 만나는데, 북한과 가까운 곳이어서인지
  해양경비정이 군함 규모로 정박해 있습니다.
  


    ['거진항' 주차장]            1:05          
  <거진항구 주차장>에 도착하여 주변을 돌아 보면....
  



    ['거진 중심지']                      
  "거진 巨津"이 이름 다웁게 매우 큰 항구라는걸 알수 있습니다.
  남한에선 최북단 가장 큰 항구라고 하죠.



    ['거진 수협']                
  "거진수협" 건물을 돌아 진행하면...
    


    ['거진항수산물판매장']

    ['회센타']              1:12           
  "거진항 회센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의 종착지입니다.
    


    [방파제]           1:13    
  회센타 뒤 방파제 주차장에 산악회 버스가 바람을 피해 서 있습니다.
  볼거리도 없고 날씨도 나빠 빨리 걸었더니, 좀 일찍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산악회 회장이 아직 밥상을 차리지도 못하고 있군요.
  
  오늘 걸은 거리는 15.5km 정도 였으며, 3시간이 걸렸습니다.



    ['방파제'에서 '설악산' 조망]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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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산과 가학산의 아름다운 숲길』 [광명시] 광명누리길 답사기 광명보건소-금당광장-무당골-가리대(웃말)-육군52사단-광명동굴(동문)- 아이샤힐링숲-도고내고개-광명동굴-광해쉼터-장절리삼거리-영회원쉼터- 모자바위-새미약수터-가리대광장-구름산터널-칼바위-금당광장-광명보건소 [국토지리원 지도] 2020년 첫 나드리에 나섭니다.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있는 "광명시 보건소"에서 출발하여 "구름산-가학산" 동쪽 허릿길을 돌아 "도고내고개"를 넘어 "광명동굴"을 관람하고 서쪽 허릿길을 돌아 원점 회귀하는 약12km의 "광명누리길"을 갑니다. ['철산역2번출입구'] 10:55

2020년 1월 12일 (일) 맑음 먼저 [지하철7호선]을 타고 '광명시'에 있는 "철산역"에 내려 [2번출구]로 나가 정면에 보이는 [철산역삼거리]를 건너 좌측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갑니다. ['철산역.광명경찰서 버스정류장'] 이 버스 정류장의 이름은 [철산역.광명경찰서 버스정류장]이었습니다. 여기서 [구름산.광명시보건소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버스는 [2번][17번]등이 있는데 저는 [17번]을 타고 10여분 갔습니다. ['광명시보건소' 정문] 11:07 오늘 산행 들머리인 "광명시보건소" 정문 앞 버스정류장에 내렸습니다. 좌측을 보면... [둘레길 들머리] 11:07 "구름산 등산로" 들머리이며 "광명누리길 들날머리"가 대로변 "광명보건소" 정문 옆에 있습니다. 교통 접근성이 아주 좋은 들머리였습니다. [오름길] 넓고 맑끔하게 조성된 오름길을 10여분 오르면.... [정자 쉼터] 11:17 첫번째 나즈막한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정자 쉼터가 있으며 정면에 높이가 "193m"인 봉우리가 조망되며, 저 봉우리의 이름은 "돌산"이라고 하는듯... 그러기에 저 봉우리에 "돌산전망대"라는 이름의 전망대가 있겠죠? ㅎ 계곡으로 잠시 내려 가면... ['금당광장'] 11:19 "금당광장"이라고 하는 만남의 광장이 있고, 사거리가 있습니다. 직진하는 길은 [돌산전망대]를 경유하여 [구름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이고 좌측길은 "광명누리길" 동쪽길이며, 우측길은 서쪽길이 되겠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나 다시 이곳으로 돌아 나오는 순환 원점 회귀코스가 되는군요. 돌아 나와서는 다시 우측 아래 [구름산산림욕장-광명보건소]로 내려 갑니다. [안내도] "금당광장"에는 현위치와 코스를 알리는 안내도가 있습니다. 저는 시계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둘레길] [구름산]의 허리를 돌아 가는 둘레길이 "광명누리길"인데 정상으로 바로 오르는 등산로보다는 이용객이 적은듯... 사람들이 거의 없어 자유롭고 조용해서 좋았습니다. 15분여 자연 속으로 도보여행을 하면.... [고개] 11:26 산줄기 고개에 오르는데 [구름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고개를 내려 가면... ['무당골삼거리'] 11:27 이정표가 [무당골]이라고 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광명누리길]은 좌측 아래로 내려 가라고 알려 줍니다. 이정표를 유의해 보지 않으면 직진하기 쉽겠더군요. 길안내를 하는 이정표는 거의 완벽하게 설치되 있어 이정표만 잘 보면 길찾기는 쉽더군요. [둘레길] [무당골] 삼거리에서 7분여 누리길을 진행하면... ['가리대' 사거리] 11:34 정자 쉼터가 있는 "가리대 사거리"에 도착하는데... ['소하리' 조망] 사거리에서 동쪽방향을 바라보면 '광명시 소하동'이 보이는데 [구름산 등산로]가 매우 넓고 이용객도 많은듯 하군요. 뒤돌아 보면... ['구름산 둥산로'] [구름산]으로 올라 가는 길이 펼쳐지는데 이곳이 "가리대(웃말)"이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둘레길]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7~8분 오름짓을 하면... ['철탑쉼터'] 11:42 [철탑쉼터]가 있는 고개를 넘고 [둘레길] 계속해서 오르내림이 제법 있는 둘레길을 조금 더 진행하면 ['예비군훈련장갈림길'] 11:46 [예비군훈련장갈림길]이라는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직진으로 지나고 [내림길] 계속해서 내림길을 5분여 진행하면 ['금강정사' 갈림길] 12:01 "금강정사" 갈림길을 만나는데, 여기도 [구름산] 정상으로 통하는 등산로가 있더군요. 여기서 좌측 동쪽을 바라보면... ['기아자동차소하리공장' 조망]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이 보이는데 사진에서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군요. '호암산' '관악산'이 새로운 각도로 보입니다. [오름길] 둘레길로는 오르내림이 제법 심한 [광명누리길]을 20여분 진행하면.... ['소하근린공원갈림길'] 12:20 군부대 울타리를 만나는데 이정표엔 [소하근린공원 갈림길]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우측길은 [구름산 정상 등산로]였습니다. [내림길] 군부대 울타리를 따라 조금 내려 가면... ['삼정연립' 앞 이정표] 12:23 ['소하근린공원'] [소하근린공원]이 있는데, '광명시 소하동'이었습니다. [내림길] 조금 더 내려 가면 ['육군52사단' 정문] 12:27 [육군52사단] 정문을 만납니다. 수도권을 방어하는 보병부대라고 하는군요. 여기서 좌측을 바라보면... ['52사단' 정문 앞 조망] 이 길 앞쪽으로 나가면 [KTX광명역]이 있죠. [군부대 담장] [정자 쉼터] [오름길] [52사단] 울타리를 따라 조성된 [광명누리길]을 8분여 진행하면... ['제2경인고속도로'] 12:35 "제2경인고속도로"가 [구름산]과 [가학산] 사이 산줄기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지름길 갈림길] 12:37 이어서 갈림길을 만나는데 좌측 아래로 내려 갑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측길은 지름길이었습니다. 잠시 내려 가면.... ['광명동굴 동문' 연결로] 12:40 '소하동'에서 [광명동굴]로 이어지는 도로와 데크길을 만나는데 '광명시'가 자랑하는 관광명소 다웁게 진출입로가 멋있게 단장되었군요. 정면에는 [호암산 민주동산]이 조망되는군요. ['도고내고개' 가는 도로] 도로를 따라 잠시 올라 가면.... [지름길] 12:44 ['광명누리길' 방향] 우측 지름길에서 오는 길과 좌측 [광명누리길]이 이어지는 곳을 만나는데 이정표는 여기서 좌측으로 안내하지만, 제가 진행해 본 결과 직진해서 [광명동굴 동문]으로 들어가서 좌측 데크길로 가는게 좋겠더군요. 어디로 가나 다시 만나는데 이왕이면 [광명동굴 동문]으로 들어가 동굴 입구도 구경하며 가는게 좋겠죠? ['광명동굴 동문'] [광명동굴 동문] 입구 에서 [도고내고개]로 가는 좋은 길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어느 길이 좋은지 모르니까 이정표 따라 진행했습니다. ['아이샤힐링숲' 입구] 12:49 [데크길] 이정표 따라 진행하면 데크길을 만나는데 데크길을 이용하며 중간에서 우측 아래를 바라보면... ['광명동굴 동문' 조망] [광명동굴 동문]이 전체적으로 보이는데, [동문]에서 이 데크길로 연결되는 길이 더 좋았습니다. ['도고내고갯길' 합류] 12:54 무장애 데크길을 5분 정도 진행하면 다시 [도고내고갯길]을 만나 합류합니다. 이곳이 "아이샤힐링숲"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도로를 100m 정도 올라 가면... ['도고내고개'] 12:56 [이정표] [뒤돌아 본 '도고내고개'] [광명누리길]의 반환점이 되는 "도고내고개"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2014년 12월 8일에 "광명4산종주"를 하며 지나간 곳입니다. 그 당시 촬영한 사진을 보여 드리면.. [2014년 12월 8일에 촬영한 '도고내고개' 모습] "서독산"의 서편을 "도고산 道高山"이라고 하며, 그 계곡에 흐르는 개천을 "도고내"라고 해서 그 계곡을 넘어 가는 고개를 "도고내고개"라고 한다는 지명의 유래가 있더군요. [전망대] 12:59 ['광명동굴' 가는 길] [도고내고개]에서 '광명동굴' 방향으로 내려 가면... [주차장] 좌측 아래에 '광명동굴' 주차장이 자리 잡고 있는데 방문객이 매우 많군요. ['광명시쓰레기소각장'] [광명동굴] 아래엔 [광명시 자원회수시설]이라고 하는 쓰레기 소각장이 분홍색으로 치장하고 있고 [동굴 가는 길] 1:08 이어서 주차장에서 동굴로 연결되는 길을 만나 동굴 방향으로 올라 가면... ['제2매표소'] 1:09 먼저 [제2매표소]를 만나는데 사람들이 모두 여기서 표를 구매 하느라 복잡했습니다. 저는 [제2매표소]가 있다면 분명히 [제1매표소]도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더 올라 가니 [제1매표소]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었지만 이정표가 분명히 알리고 있어 쉽게 찾아 갈수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1매표소]에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이 한산해서 쉽게 표를 구입할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가실 분들은 [제1매표소]로 가서 표를 구매하세요. ^*^ 그리고 동굴 관계자도 [제1매표소]로 분산 이용 하도록 분산 안내를 해 주면 좋겠습니다. 경노는 1,500원 [대형 화면] 1:12 동굴방향으로 접근하면 마지막 화장실이 있는곳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 있는 광장이 있는데 [광명누리길]은 동굴을 다녀와 이곳 정면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광명동굴 안내도'] 동굴 앞 광장에 있는 동굴안내도를 참고하고... [동굴 가는 길] 1:14 동굴로 올라 갑니다. 관람객이 많아서 동굴 안에서는 혼잡 할 정도였습니다. [동굴 오름길] ['아이샤와 친구들'] 동굴로 올라 가는 길엔 맑은 물이 흐르는 도랑이 있는데 동굴에서 나오는 지하수라고... [동굴 입구] 1:16 "광명동굴" 이 동굴은 금.은.동 등을 채굴하는 광산이었으며 이름은 "시흥광산"이었다죠. 일제 강점기 시대에 채굴을 시작해서 1972년까지 수도권 최대 금광산이었는데 폐광이 되고 난 이후에는 "소래 새우젓 저장창고"로 이용되다가 2012년에 관광지로 개발되었는데 지금까지 2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 갔고 외국 관광객도 많이 찾으며 동굴문화를 배우려는 나라 관리들이 수없이 찾는다고... [동굴 진입로] [사거리] 1:19 입구에서 100m정도 들어 가면 동굴이 세갈레로 갈라지는 곳을 만나는데 우측부터 관람을 시작합니다. [/동굴식물원'] ['빛의 공간'] [동굴 속 버섯'] ['황금동굴 안내'] [조형물] [새] [살아 있는 물고기] 똑딱이 디카로는 동굴 속 빛의 세계를 촬영하는데 한계가 있더군요. 설명하기도 쉽지 않으니 직접 가 보는게 좋겠습니다. 동굴 속에 수족관도 있고... 전체적으로는 조명빨.... ['동굴예술의 전당'] [레이져 쇼 상영관] 30여분 마다 레이져 쇼도 하더군요. ['소망의 벽'] [황금메달] 금광이었다고 [황금이야기길]도 있는데 "황금패"를 판매하고 있는데 한개에 5,000원 하더군요. "황금패"에 소망등을 새겨 걸어두는 관람객들이 많더군요. ['황금폭포'] ['동굴지하세계'] ['동굴지하 호수'] [황금폭포]와 [지하호수]가 눈길을 끌었는데...환상적이더군요. [ '龍'] 龍 조형물도 있고 ['동굴역사관'] [새우젓 저장소] 동굴 역사관도 있었습니다. 소래 새우젓을 저장 숙성 시킬 때엔 연간 3,000드럼 정도 였으며 드럼 당 만원이었다네요. ㅎ ['와인동굴'] ['와인시험대'] ['동굴카페'] 지하 동굴을 돌아 보려면 급경사를 오르내려야 하는데 다리가 좀 아프더군요. 지하 동굴을 둘러 보고 다시 출입구가 있는 레벨로 돌아 오면 [와인동굴]이 있습니다. [와인동굴] 끝에는 [동굴카페]도 있었습니다. ['동굴출입구'] 1:54 ['동굴 앞 광장] 1:55 40여분 횡하니 동굴을 둘러 보고 나와서 [광명누리길]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여기선 [광명누리길]에 대한 안내가 보이지 않더군요. 모두 동굴 안내 뿐...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광명누리길]을 찾았습니다. [대형 스크린] 1:56 다시 대형 스크린이 있는 광장으로 나가 화장실 뒷쪽 표기한 곳으로 올라 가면... ['누리길' 입구] 1:59 [광명누리길]이 이어지는 곳을 만나니다. 잠시 올라 가면... ['노두길' 갈림길] 2:00 "露頭길" 삼거리를 만나는데, 앞에 보이는 바위가 "노두"로서 광맥이 지상 밖 까지 나와 있다고 "노두"라고 하는데, 저 지상 밖으로 나온 바위도 부셔서 채광을 했다고 하더군요. 저기로 올라 가면 채광을 한 흔적으로 발생한 동굴들을 통과해 정상으로 올라 가더군요. 자세한 사항은 제가 2015년에 쓴 첨부된 "광명4산 종주기"를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오늘은 [광명누리길]를 진행함으로 좌측으로 진행합니다. [누리길] ['광해쉼터'] 2:17 [노두갈림길]에서 17분 정도 둘레길을 진행하면 "광해쉼터"라는 곳을 지나고 [누리길] ['장절리삼거리'] 2:24 계속해서 7분여 더 진행하면 "소통쉼터"가 있는 "장절리삼거리"를 만납니다. 여기도 2015년에 지나간 곳이라 느낌이 새롭군요. 10여분 더 진행하면... ['제2경인고속도로'] 2:33 [제2경인고속도로] 인천방향 터널 출입구를 만나 내려 갑니다. [갈림길] 2:35 그러면 비포장도로를 만나고 [구름산 정상] 등산로 삼거리를 만나는데 비포장도로를 이용해서 직진하면... ['논현농장' 앞 삼거리] 2:38 [논현농장]을 알리는 이정표가 우측으로 길안내를 합니다. 비포장도로에서 우측 산길로 들어 가면... ['영회원' 쉼터] 2:40 "영회원" 쉼터라는 정자를 만납니다. 여기에 "영회원"이 있는줄 처음 알았습니다. [병자호란]의 치욕으로 나라를 속국으로 만든 [인조]. 그의 장남 "소현세자"의 와이프, 즉 [인조]의 첫째 며느리 무덤이죠. 8년간의 인질로 청나라에 잡혀 갔다가 돌아 오는 세자와 며느리, 손자, 손녀까지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된다고 처절한 방법으로 모두 죽여버린 비열한 왕 "인조".... 쿠데타로 집권한 자신의 허물이 친자식과 사돈들에게도 트라우마로 작용해 친아들과 며느리 집안까지 몰살시킨 인간의 탈을 쓴 살인마가 [인조]이죠. 여기에 잠들고 있는 '소현세자'의 "세자빈 강씨"는 '강감찬 장군'의 후손으로 요즘 말로 하면 신여성이었죠. 중국에서 '소현세자'와 함께 볼모로 잡혀 있을 때에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외교적 문제를 부더럽게 풀어 해결하는게 [인조]에겐 오히려 자신의 왕위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져 귀국하자 마자 죽여버린거죠. [위키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영회원"을 인용하면 영회원(永懷園)은 조선조 제16대 인조의 원자인 소현세자 빈 강씨(1611~1646, 민회빈)가 잠든 능원이다.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산141-20에 위치하고 있다. 사적 357호로 지정되었다. 민회빈은 병자호란의 패배로 청나라에 소현세자와 볼모로 갔을 때 진취적인 기상과 지혜로운 처신으로 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등 조선 궁궐의 여성상을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귀국후 소현세자가 죽자 인조의 후궁 조씨 등이 민회빈이 왕을 독살하고 왕실을 저주한다는 모함을 하여 1646년 사약을 받고 죽었다. 숙종 44년(1718년)에 죄가 없음이 밝혀져 다시 복원되고 고종 7년(1903년)에는 무덤을 '영회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영회원 약수터'] 2:44 [영회원] 정자 쉼터에서 4분 정도 산속으로 들어 가면 "영회원 약수터"를 만나는데 수질 검사에 불합격해서 음용 불가 였고... 10여분 더 진행하면 ['모자바위' 갈림길] 2:54 ['모자바위' ?] [모자바위] 갈림길을 만나는데, 주변에 바위가 거의 없어서 어떤 바위가 [모자바위]인지 알수 없었는데 조금 더 진행하니 "모자" 비슷한 바위를 만나지만 이 바위가 '모자바위"인지...? ㅎ [누리길] ['새미약수터'] 3:00 ['새미약수터'] "새미약수터"도 두번째 방문하는군요. 음용불가. 둘레길과 등산로가 합류하는 곳인데... ['구름산갈림길'] 3:02 이어서 "구름산갈림길"을 만나는데, [도덕산]에서 [한치고개]를 지나 [구름산]으로 가는 종주코스가 좌측에서 이어지는 중요한 갈림길. 자세한 사항은 첨부된 [광명4산 종주기]를 참고하시고... 둘레길은 직진합니다. ['돌길'] ['너덜길'] [돌길] [너덜길]등 이름이 붙은 길을 13분여 진행하면... ['가리대광장'] 3:15 "가리대광장"이라는 쉼터를 통과하는데 [구름산 능선 등산로]였고 지금부터는 등산로와 둘레길이 잠시 함께 이어지는데 ['구름산터널(상부)' 쉼터] 3:18~3:26 "구름산터널(상부)" 쉼터 정자까지 능선 등산로와 짧은 구간 함께 하더군요. 여기서 휴식을 잠시 취하고 ['돌산전망대' 조망] "구름산터널(상부)" 쉼터 정자에서 [돌산전망대]라고 표기한 곳으로는 등산로이고 둘레길은 좌측으로 내려 갑니다. [누리길] ['칼바위' 쉼터] 3:37 [돌산] 옆구리를 10여분 진행하면 "칼바위 쉼터"를 지나는데 "칼바위"는 어디 있는지 못찾고 통과합니다. ['금당광장'] 3:39 이어서 출발 할 때 통과했던 "금당광장"을 다시 만나 좌측으로 내려 갑니다. ['구름산산림욕장'] [금당광장]에서 좌측 보건소 방향으로 내려 가면 "구름산산림욕장"이 있으며 더불어 다양한 어린이 놀이 시설들이 있더군요. [산림욕장 입구] 3:45 산림욕장 입구로 나가면 '보리밥집' 등 음식점들이 움집해 있고 ['광명시보건소'] 3:47 이어서 "광명시 보건소"를 다시 만나며 [날머리] 3:48 "구름산 등산 들날머리"를 만나며 산행을 마침니다.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약12km였으며, [광명동굴 관람]시간 40분 포함 4시간4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둘레길이라기 보다는 등산코스 같은 느낌을 주는 오르내림이 좀 있는 코스였습니다. 전체적으로 괜찮은 코스라고 느껴지며, 특히 이왕 간 김에 [광명동굴]도 둘러 볼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광명4산 도덕산-구름산-가학산-서독산 종주기"가 궁금하시면 "광명4산 종주기" 여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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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17코스 송지호철새길』
      청간정에서 송지호를 지나 공현진해변으로 
          청간정-아야진-천학정-문암해변-능파대-백도해변-문암선사유적지-삼포해변-
          봉수대해변-오호항-송지호해수욕장-송지호-공현진항-옵바위-공현진1리해변

        
           ['15코스 안내도']                   
           <강원평화누리길 17코스>는 '강원도 고성군 청간리'에 있는 <청간정>에서 출발하여
           <송지호>를 지나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리'에 있는 <공현진해변야영장>까지 15.5km라고 합니다.
           참고로 <해파랑길 46코스~47코스>와 대부분 겹치는 곳입니다.
    


    [실트랙 국토지리원 지도]             
  직접 걸으며 만들어진 GPS 실트랙을 참고하고...



    ['고성 관광안내도']              
  <고성군 관광안내도>에서 이번 코스와 관련된 부분만 캡쳐해 왔습니다.



    ['청간정' 입구]           9:40         
    2023년 12월 17일 일요일   맑음      
  <복정역>에서 막힘없이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해 2시간 20분만에 "청간정 淸澗亭"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원래 <강원평화누리길 16코스>를 하는 날이지만 <미시령>이 폭설로 통제되어 <17코스>를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관동팔경 수일경 청간정 關東八景秀逸景淸澗亭" 
  여러번 찾은 <청간정>입니다만 방문 할때마다 뭔가 조금씩 변화가 있어 새롭습니다.
  지난 4년전 <해파랑길 46코스>를 할때엔 우측에 보이는 다리가 없었는데, 새로 설치했군요.



    ['청간정자료전시관']                       
  먼저 "청간정 자료전시관"부터 둘러 보고 갑니다.
  <겸제 정선>선생이 그린 <청간정>이라는 그림과 <정충엽>선생이 그린 <청간정>을 보고 갑니다.
  


    ['정충엽선생의 '청간정']                      

    ['겸제 정선선생의 '청간정']                       
  두분 선생이 그린 그림엔 <청간정> 앞에 촛대같은 큰 바위가 바다에 멋지게 공통적으로 솟아 있는데 
  현재의 <청간정> 앞에는 그런 큰 바위가 없습니다. 세월 속에서 바위가 부셔져 사라 졌던지, 
  아니면 현재의 <청간정>은 원래 자리와 다른 이곳에 재건 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되는데
  궁금해서 조사해 봤더니....
  <갑신정변> 때에 완전 소실되어 일제시대에 이곳으로 옮겨 재건했다고 <중수기>에 기록되 있더군요.
  오리지날 옛 <청간정>의 주변 경치가 어떠했는지 <겸제 정선 선생>의 진경산수화를 통해 알수 있는데
  현재의 <청간정>의 주변과는 경치가 완전 비교되죠?



    ['청간정' 가는 길]                 
  <청간정자료전시관>을 둘러 보고 <청간정>으로 가는 길입니다.



    ['청간정']                     9:45
  
     ['우암 송시열'이 쓴 현판]                         ['우남 이승만'이 쓴 현판]
   "청간정 淸澗亭"
   "맑을 청淸"에 우리가 잘 사용치 않는 "계곡에 흐르는 물 간澗"을 쓰는 <청간정>입니다.
   그러니까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있는 정자"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설악산>에서 내려 오는 계곡물이 <동해>와 만나는 곳.
   <관동팔경> 중에 하나로서 남쪽에 있는 <관동팔경> 중에선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자에는 두개의 현판이 있는데...."우암 송시열"이 쓴 현판이 입구에 걸려 있고
   안쪽엔 "우남 이승만 雩南李承晩" 제1-2-3대 대통령이 1953년에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승만대통령>의 호인 "우남 雩南"의 "우雩"는 "기우제를 지낸다"라는 의미인데....
   아마도 "남녁에 단비를 내리게 해 달라는" 소원을 담은 뜻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택당 이식'선생 친필 詩]             
  <청간정>을 노래한 최고의 한시라는 "택당 이식"선생의 글도 걸려 있습니다.
  <택당 이식 선생>은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 출신으로 조선 <선조><광해군><인조> 때에 활약한 인물이죠.
  특히 <홍길동>의 저자 <교산 허균>의 제자로 유명하며, 그후 <송강 정철>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수정선조실록>을 집필한 인물로 유명하며,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킨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습죠.
  윗 글은 선생이 이곳 <고성현감>으로 재직 할 당시 쓴 글이라고 합니다.
  
         天敎滄海無潮汐(천교창해무조석) 하늘의 조화로 바다엔 밀물과 썰물이 없는데
         亭似方舟在渚涯(정사방주재저애) 방주같은 정자 하나 물가에 서있네
         紅旭欲昇先射牖(홍욱욕승선사유) 붉은 해 솟기 전에 아침 노을 창을 비추고
         碧波纔動已吹衣(벽파재동이취의) 푸른 물결 일렁임에 옷자락이 나부끼네
         童男樓艓遭風引(동남루접조풍인) 어린아이 탄 배 순풍에 간다 해도
         王母蟠桃着子遲(왕모반도착자지) 왕모의 복숭아 익는 시기 아직이여라
         怊悵仙蹤不可接(초창선종불가접) 선인의 자취 접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倚闌空望白鷗飛(의란공망백구비) 난간에 기대서 백구 나르는 하늘을 보네

    


    ['최규하 대통령 헌시']   
  강원도가 낳은 유일한 대통령인 "최규하 제10대 대통령"도 글을 남겼습니다.
  "淸澗亭"은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 당시 국무총리였던 "최규하대통령"이 얼굴마담 대통령이 되어
  자신의 출신지역인 '강원도'를 순시하며 1980년 8월1일에 <청간정>을 완전 해체하여 복원시켰답니다.
  그리고 "경신년 한여름에 청간정을 찾아서" 헌시를 올렸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제가 이미 여러번 해석하여 기록으로 남긴 글을 한번 더 언급하겠습니다.

               嶽海相調古樓上 악해상조고루상
               果是關東秀逸景 과시관동수일경    

  한자 실력없지만 제가 해석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ㅎㅎ
  "嶽"은 "설악산 雪嶽山"을 일컷는다고 생각되며
  "海"는 "동해 東海"임에 틀림 없을듯 하고
  "相調"는 "서로 조화를 이룬다"라는 뜻일게고
  "古樓上"은 "오래된 루에 오른다"는 의미일텐데, 여기서 "루 樓"는 당연 "청간정"일겁니다.

  "果是"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과연" "정말로~"라는 감탄사라 생각되고
  "關東"은 "관동지방"이며
  "秀逸景"은 "빼어난 일품의 경치"라고 해석되어 집니다.

  종합하며 해석하자면
  "설악산"과 "동해"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오래된 '청간정'에 오르니
  과연 관동지방에선 최고의 빼어난 일품의 경치를 보여주노라~"



    ['설악산'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청간정>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입니다.
           "설악산"   
          "'한가위'에 내리기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서야 사라지기 때문에 雪嶽이라 한다"
               -동국여지승람-
               
  문명의 흔적이 오히려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집을 내는 듯하지만 
  그래도 "雪嶽"과 "東海"가 멋지게 조화를 이루는 감흥을 느낄수 있지 않나요?
  



    ['동해' 조망]                 
  "雪嶽山"을 대입시켜 "동해"를 바라보면 <최규하대통령>이 읊은 윗 漢詩가 감흥으로 다가 옵니다.
    

  
    ['창간정' 둘레길]          
  <청간정>에서 <해파랑길>을 따라 <청간정>을 돌아 나갑니다.
  새롭게 둘레길을 확장하고 있군요.



    [뒤돌아 본 '청간정']           9:52     
  바닷가로 내려와 뒤돌아 본 <청간정>인데, 자료실에서 보았던 <겸제선생>의 그림과는 비교됩니다.
  어쩐지 문명의 발전이 오히려 안스럽게 여겨지는 광경입니다.



    ['청간해변']           9:53   
  이어서 갈메기들이 차가운 바닷바람을 피하고 있는 "청간해변"을 통과하면...



    ['아야진 회센타']            10:00      
  "아야진 娥也津"으로 들어 가게 되는데
  먼저 횟집들이 반기고
    


    ['아야진항']                

    ['아야진등대' 조망]            10:05  
  계속해서 <아야진 항>을 지나는데, <아야진 등대>가 눈길을 끕니다.
  
  잠시후에 알게 되지만 <아야진 등대>가 있는 동산의 바위가 "거북모양"이라고 이 마을의 이름이
  "구암 龜岩마을"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아야진 해변']            10:08  
  <아야진 항>을 지나면 <아야진 해변>이 펼쳐지는데
    


    [만남의 광장]            10:09    
  제법 유명한 해수욕장이라고 <만남의 광장>도 있고...



    ['아야진해변']           10:16  
  <아야진 등대>를 보며 앞에서도 언급했던 <거북모양 바위>에서 지명이 유래하는 <구암마을>이라고
  해변에 "거북이" 조형물을 설치해 놨습니다.
    


    ['아야진' 지명의 유래]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아야진해변' 출입구]            10:22     
  <아야진 해수욕장>을 나서면 <옛7번국도>를 만납니다.
        


     ['백두대간'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이 사진은 꼭 클릭하여 큰 화면으로 감상 하시기 바람니다.
  이제 <설악산>의 북쪽 끝봉우리인 <신선봉>과 <새이령(대간령)>이 조망되며,
  남쪽에서 갈수 있는 백두대간 최북단 <향로봉>까지 조망됩니다.
  <설악산국립공원>은 <새이령>까지입니다.
    
 

    ['천학정' '능파대' 조망]             10:27           
  다시 해변으로 나가면 큰 규모의 펜션들이 줄을 서 있는데
  또 다른 볼거리인 <천학정>과 <능파대>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해변은 4년 전만 해도 해안철책으로 막혀 있었는데 이젠 철책을 없애고 시원해 졌군요.
  다음 사진을 보면...
  


    ['4년전 사진]           
  해안철책이 있을 때와 없을 때가 어떻게 다른지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빨리 모든 철책들이 사라지길 고대하며....
  
  이 해변을 벗어나 다시 <옛7번국도>로 나가면...


       
    ['천학정' 가는 길]           10:31     
  탱크방호벽이 있는 <옛7번국도>를 만나면 우측 조그만 동산으로 올라 갑니다.
    
 
  
    [오름길]                        
  잠시 올라 가면...
  

       
    ['천학정' 조망]             10:35      
  아랫쪽에 <천학정>이 보입니다.
  




    ['천학정']             10:37      
  "천학정 天鶴亭"
  학이 하늘을 나는 경치를 보여 준다고 하는데 
  오래된 정자가 아니고 일제시대 이 지역 유지들이 만든 정자라고...
    



    ['천학정'에서 조망]                   
  <천학정> 주변 기암괴석들이 유명하다고 하는데...숨은 그림찾기 좀 하고



    ['천학정' 정문]            10:40    
  <천학정> 정문으로 나가면...
   


    ['교암해변']             10:41    
  "교암해변 橋岩海邊"이 펼쳐지고
  10여분 <교암해변>을 통과하면....
 

 
    ['능파대']              10:50        
  "능파대 凌波臺"에 도착합니다.
  <능파대>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능가할 능(凌)", "파도파(波)", "높고 평평할 대(臺)"라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이랍니다.
  과거에는 섬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지금은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의 일부가 되었다고...





    ['능파대' 기암괴석]       
  바람 구멍이 숭숭 난 듯한 기괴한 모양의 바위를 "타포니 (곰보바위)"라고 한답니다.
  
  <능파대>의 기암괴석들이 전체적으로 보이는군요.
  "능파"는 "아름다운 여인의 걸음걸이"를 의미 한다고도 하죠?

  이곳 마을 이름이 "문암리 文岩里"인데, 저는 한자로 "무늬 문紋"을 쓰는 "紋岩里"로 쓰는게 어떨지...
  왜냐하면 바위에 기괴한 모양의 무늬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紋岩"은 이곳 '문암2리'에서 제법 떨어진 '문암1리'에도 곳곳에 산재해 있으니까요.

 

    ['문암해변']              10:52          
  <문암해변>을 바라보며 앞에 보이는 다리로 가면...
 


    ['문암대교']             10:56      
  <문암대교>를 건너게 되는데
  


    ['백두대간'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문암대교> 다리 위에서 펼쳐지는 <백두대간>을 조망합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되며 설명이 있습니다.
  <마산봉> 뒤에 <진부령이 있죠.



    ['백도해변' 조망]            10:58      
  <문암대교>를 건너면 <백도해변>이 시작되고
  



    ['백도해변 조형물']            11:03    
  "백도 白島 해수욕장" 앞에는 멋진 조형물이 시선을 끌고




    ['미륵불']            11:05       
  <백도해수욕장>에서 <문암1리항>으로 가는 길목엔,  이 마을의 수호신이라 여긴다는
  "미륵불"이 다소곳이 서 있습니다.
  두개의 석불이 백도해수욕장 바다쪽을 바라보며 나란히 서 있는데
  77년에 바닷가 모래 속에서 주민들이 한 개의 석불을 발견한 이후, 
  90년대에 또 하나의 석불을 찾아서 보존하고 있답니다.
  이 석불에는 삼국시대 신라장군과 부인의 충절과 사랑이 깃든 전설이 전해지고 있답니다.
  그렇고 그런 사연이라 생략하고
  


    [문암1리항']          11:07    
  "문암1리항"을 통과하면...
  


     ['문암1리 경로당']            11:12    
  "문암1리경로당"을 만나고



          
             ['문암리 선사유적지']            11:13       
             이어서 "고성 문암리 선사유적지"를 만납니다.
             우리나라 남한 최북단에 있는 선사유적지라고...
    



    ['고성 청소년 수련원']            11:25    
  <선사유적지>에서 10여분 진행하면 "고성 청소년 수련원"을 만납니다.
  이 해변을 <자작도해변>이라고 하는군요.
  
  <해파랑길>과 <평화누리길>은 좌측 큰길로 안내되지만, 
  우측 끝에 있는 "백도전망대"로 돌아 나가는게 좋습니다.
  전망대로 가면..
    



    ['백도' 조망]               
  "백도 白島 (하얀섬)" 주변 경치를 가까이서 감상할수 있습니다.



    ['봉수단''송지호' 조망]            11:28      
  <백도전망대>는 <고성청소년수련원>에 붙어 있습니다.
  수련원에서 <봉수대>가 있었던 "봉수단"을 조망하는데 잠시후 저 앞 <봉수대해변>을 통과 할것입니다.
  그리고 어느새 <송지호 해수욕장>이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모네블루호텔>이 보이니까....
    


    ['자작교']               11:37      
  <백도>에서 <자작교>라는 다리를 건너면....
    


    ['오션투유리조트']             11:44       
  몇년 전에 한번 이용했던 "오션투유리조트"를 만납니다.
        


     ['해파랑길 46코스-47코스 시종점']             11:45          
  <오션투유리조트> 앞은 "삼포해수욕장"이며, "해파랑길 46-47코스 시종점"이기도 하죠.
  


    ['삼포해수욕장']                       
  10여분 <삼포해수욕장>을 지나면

 


    ['봉수대해수욕장']           11:53      
  "봉수대해수욕장"을 지나게 되는데
  조금전 <백도전망대>에서 조망했던 "봉수단" 앞 해변이라고 붙여진 이름
  

       
    ['오호 해양모험관' 입구']             11:59      
  이어서 <봉수대해수욕장>과 붙어 있는 "오호 해양모험관" 입구를 지나는데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 五湖里'라는 걸 알수 있습니다.
    


    ['죽왕보건지소']            12:00    
  "죽왕보건지소""죽왕파출소"를 지나면



    ['송지호해수욕장' 입구]             12:01     
  <송지호해수욕장 입구>를 통과하고
   


    ['송지호해수욕장']            12:04     
  이어서 "송지호 해수욕장 松池湖海水浴場"이 펼쳐집니다.
  울창한 소나무가 호숫가에 있는 해수욕장이지만 차가운 겨울바람만 쌩쌩 불고
 


    ['송지호 모네블루호텔']              12:09               
  <송지호해수욕장>의 랜드마크라는 <송지호 모네블루호텔>을 지나면...



    ['대교강원심층수']            12:16      
  "대교 강원심층수"라는 회사 건물을 만나고

  

    ['송지호' 입구]             12:19           
  <대교강원심층수>를 지나면 <송지호>에서 바다로 흘러 나가는 샛강을 만나는데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옛 송지호철교']                 
  건너 가야할 샛강에 다리가 하나 있는데, 저 다리가 "옛 동해북부선 송지호 철교" 였답니다.
  현재는 둘레길로 조성되 있습니다.
  



    ['송지호']     
  <옛 동해북부선 송지호 철교> 위에서 "송지호 松池湖"를 조망합니다.
  
  "송지호 전설"
  약 1,500년 전에는 이 호수가 "정거재(鄭巨載)"라는 구두쇠 영감의 문전옥답(門前沃畓)이었다고 한다. 
  하루는 노승이 찾아와 시주를 청했으나 거절하자, 쇠절구[鐵臼]를 논 한가운데에 던지고 사라졌다. 
  그 뒤로 쇠절구에서 물이 솟아나 송지호가 되었다고 한다
  
  서로 도우며 살아야지 혼자만 잘 살려고 욕심 내면 패가망신 한다는 교훈적인 전설인듯...



    ['송지호철교']           12:21       
  "송지호철교"를 일부 복원 해 놨습니다.

    ['안내문']                              
  자세한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동해북부선']                  
  의미있는 글이라 몇번 읽어 봅니다.
  



    ['철새관망센터']             12:26     
  <송지호철교>를 지나면 "송지호 철새 관망센타"가 있습니다.
  
  <평화누리길 17코스>의 명칭이 "송지호철새길"이니 그 의미를 살리기 위해선 저 관망대에
  올라 가 봐야 하는데, 산악회와 함께하면 언제나 시간에 얽매이니 아쉬움만 남기고...
  



    ['왕곡마을' 갈림길]            12:37   
  <송지호 철새 관망센타>에서 10여분 <송지호둘레길>을 진행하면
  "왕곡마을 갈림길"을 만납니다.
  <왕곡마을>은 조그마한 전통 한옥마을인데 <해파랑길> 할때 다녀 왔기에 생략하고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탱크 방호벽]            12:41    
  <7번국도>가 우측에 4차선으로 새로 뚫려 북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 길은 <옛7번국도>로 자전거길과 걷기코스가 되었습니다.
     


    ['왕곡마을' 갈림길]             12:44          
  이어서 <왕곡마을>을 돌아 나오는 길을 만나고

 

   ['공현진마을' 조망]                        
  계속해서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리'로 들어 가게 됩니다.
  조금 진행하면...
  

       
    ['공현진 한옥마을']         12:49   
  <공현진 한옥마을>을 지나는데, 현대식 한옥으로 16가구가 나란히 있습니다.
    



    ['공현진1리 경로당']           12:54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리 公峴津里"  지명의 유래  
  약 400년전에 고성 현감 <택당 이식>이 선유담에서 작시한 글에
  "공수왕처세방회(公須往處勢方回)"란 글을 인용하여 속칭 "공수진"이라 하였는데 
  1970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공수진리의 '공(公)'과 인근부락 장현리의 '현(峴)'을 합하여 
  공현진리(公峴津里)가 되었다  
  
  고성 현감 <택당 이식>선생은 <청간정>에서 언급했었죠?



    ['공현진항']             12:56     
  <공현진항>을 지나면...
   


    ['옵바위' 입구]           1:00    
  찍사들에게 특히 유명한 "옵바위 (수뭇개바위)"를 만나는데
  사진에 보이는 방파제 샛문으로 들어 가면...
 



    ['옵바위']               
  "옵바위 (수뭇개바위)"
  <수뭇개바위>라고 안내되고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옵바위"라고 더 알려져 있습니다.
  
  옛날 이곳 '공현진'에 오빠와 여동생이 살고 있었는데, 고기잡이 나간 오빠가 풍랑으로 사고가 나
  돌아 오지 않자, 여동생이 이곳에 나와 오빠가 돌아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공현진2리해변' 조망]              
  <공현진2리 해변>을 조망하며 조금 올라 가서
     


    ['옵바위' 조망]                  
  뒤돌아 본  "옵바위"입니다.
  해돋이를 촬영하려는 찍사들이 모여드는 곳인데, 특히 1월1일엔 이곳에 인산인해를 이루죠.
  오빠바위와 여동생바위 사이로 해가 뜨는 광경이 일품이라고


    ['옵바위' 일출]         자료사진       
 


    ['공현진2리해변주차장']           1:02   
  <공현진2리해변주차장>에서 바람 불어 더 추운 오늘의 답사를 마침니다.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15.5km로서 3시간반이 걸렸습니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중에서]
關東別曲 송강 정철 금란굴을 돌아들어 총석정에 올라가니 백옥루가 있었다가 헐리고 남은 돌기둥이 다만 넷이 서 있구나. 공수의 작품인가, 귀신 도끼로 다듬었는가? 일부러 애써 여섯 면의 기둥인 것은 무엇을 본떴는가 고성을 저만큼 두고 삼일포를 찾아가니 단서는 뚜렷이 남아 있는데, 이 글을 쓴 사선은 어디 갔느냐? 여기서 사흘 동안 머문 뒤에 어디 가서 또 머물렀던고 선유담,영랑호 거기나 가 있는가? 청간정 만경대 등 몇 군데서 앉아 놀았던가?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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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15-2코스 인제 북면길』
      미시령에서 만해마을 가는 길 
          미시령-용대삼거리-매바위폭포-백담사입구-여초서예관-만해마을-십이선녀탕주차장

        
           ['15코스 안내도']                   
           <강원평화누리길 15코스>는 <원통교>에서 <미시령 정상>까지로 28km가 넘어
           편의상 두번으로 나누어 진행합니다.
    


    [실트랙 국토지리원 지도]             
  <강원평화누리길 15코스>는 두번으로 나누어 지난번 <15-1코스>에 이어
  이번엔 <미시령>에서 <십이선녀탕> 입구인 <남교리 주차장>까지 17km를 갑니다.
  
  지도엔 <백두대간> 마루금이 선명하게 표기되 있으니 참고 하세요.



    ['미시령']          9:40              
    2023년 12월 3일 일요일   맑음     
  <복정역>에서 막힘없이 2시간10분만에 <미시령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전형적인 가을같은 겨울 날씨를 보여주는 복받은 날에 
  오랜만에 <미시령>을 찾으니 도로의 색깔까지도 바뀌어 더욱 신선감을 주는 <미시령>입니다.



    [옛 미시령 휴게소]                    
  <옛 미시령 휴게소>는 축소되어 현재는 <미시령탐방지원센타>가 되어 있습니다.
  
  뒤로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상봉>과 <화암재>, 그리고 <신선봉>으로 이어 지는데
  여기선 <상봉>과 <신선봉> 정상은 보이지 않고, <화암사>에서 올라 오는 산줄기의 암봉들만 보이는군요.



    ['속초' 조망]                       
  <미시령 정상>에서 바라보는 <속초시>와 <동해>입니다.
  사진 중앙에서 약간 좌측에 있는 호수가 <영랑호>이며, 약간 우측에 있는 호수가 <청초호>인데
  실제 육안으로는 잘 보였으나 사진에는 사진의 한계로 흐릿하군요.
    


    ['미시령 표지석']             
  "미시령 彌矢嶺 해발 826m"에 대한 지명의 유래는 찾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제가 <미시령>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언급하겠습니다.
  제 개인적 의견이니 믿거나 말거나 라는거 아시죠? ㅎㅎ 그러니 그냥 재미로 읽기 바람니다.
  사진에 보이는 표지석의 "미시령 彌矢嶺"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제호 했다는군요.
 
  <백두대간 9정맥>을 종주 할때 지침서로 삼아 다니신 분들은 모두 아는 책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조선시대 "여암 신경준"선생이 우리나라 지형을 "표"로 표기한 "산경표 山經表"를 먼저 보겠습니다.
   
              
                {'산경표 17페이지 백두대간 편 일부] 
    <금강산>→<진부령>→<미시파령>→<설악산>으로 이어지는 지명이 선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흘리령 屹里嶺>과 <설악 雪嶽> 사이에 <미시파령 彌時坡嶺>이 보이죠?
    그러니까 옛날엔 <미시령>을 <미시파령>이라고 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彌時坡嶺 麟蹄北五十里 杆城南八十里 俗稱麗水坡嶺" 
  "미시파령 인제북오십리 간성남팔십리 속칭여수파령"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내용을 해석하면
  "'미시파령'은 인제 북쪽50리, 간성 남쪽80리 지점에 있는데, 속칭 '여수파령'이라고도 한다" 
 
  "미시파령 彌時坡嶺"의 한자부터 알아 보면, 
  <미彌>는 불교에서 "미륵"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인 의미로는 "활을 쏘아 도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시時>는 아시다시피 "시간"을 의미하고, <파坡>는 "고개"를 의미하며 <령嶺>과 같은 의미입니다.
  합쳐서 풀이해 보면, "활을 쏘아도 고개를 넘기지 못할 정도로 고개가 높고 길어 넘어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고개"라는 의미로 저는 풀이했습니다.
  
  현재의 "미시령 彌矢嶺"은 <미시파령 彌時坡嶺>에서 <시 時>라는 한자는 <화살 시矢>로 바뀌고
  <파 坡>는 <령 嶺>과 중복이라고 빠졌습니다.
  해석해 보면 "미시령 彌矢嶺"은 "활을 쏘아도 화살이 고개를 넘지 못한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결국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에 나오는 "미시파령 彌時坡嶺"과 현재의 "미시령 彌矢嶺"은 비슷한 
  의미라고 생각 됩니다. "화살을 쏘아도 넘지 못하는 높은 고개"...믿거나 말거나라는거 아시죠? ㅎㅎ



    ['백두대간 상봉' 조망]                 
  <미시령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금강산>을 향해 가는 <백두대간>의 "상봉 上峰"을 조망합니다.
  <파란문>이 두발로 쓴 <백두대간 산행기>는 재법 유명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저의 카페 <홍어와 무인도>에서 찾아 한번쯤 읽어 보세요. 종주 하신 분들은 추억이 새로울겁니다.



    ['미시령계곡 내림길']           9:45      
  <미시령> 정상에서 <강원평화누리길 15코스>를 역방향으로 진행합니다.
  100m쯤 내려 가면....



    [대간 샛길]            9:47   
  <미시령 옛길>이 휘어지는 곳에 
  <대간꾼>들이 "국공파"를 피해 몰래 <상봉>으로 오르는 곳을 만나는데 추억이 새롭군요. ㅎㅎ



    ['미시령계곡' 조망]                     
  "미시령 계곡"을 조망하며 내려 가면...
  계곡 가운데 그늘진 곳에 <도적폭포>가 있습니다.
  


    ['도솔지맥 대암산'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양구>와 <돌산령><펀치볼>...그리고 <인제 서화>를 지나며 조망했던 "도솔지맥"과 "대암산"이
  조망 되는데, 사진을 클릭하면 더 분명하게 볼수 있으니 클릭해 보세요.
  


    ['미시령 옛길']                 
  <미시령 정상>에서 25분 정도 내려 가면....
    


    ['도적폭포' 입구]          10:10~10:17     
  <도적폭포 입구>를 만납니다.
  <도적폭포>는 좌측으로 들어 갔다가 와야 합니다.



    ['도적폭포' 입구]                
  <설악산국립공원>인데도 <미시령계곡>에는 의외로 볼거리가 거의 없습니다.
  <도적폭포>와 <선바위> 정도가 볼거리라고 생각되니 <설악산>의 다른 곳과 비교하면 빈약하죠.
  오랜만에 여기까지 왔으니 다녀 오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은 "국공파"를 피해 <백두대간 황철봉>으로 오르는 최단거리 등산로이기도 합니다.
  200m쯤 들어 가면....



    ['Floating Whale 펜션.카페']              
  <도적폭포> 들어 가는 입구에 <"Floating Whale">이라는 펜션과 카페가 제법 큰 규모로 있더군요.
  그런데 종업원이 나와 <도적폭포>로는 출입금지라고 더 이상 들어 갈수 없다고 제지하더군요.



    ['도적폭포' 출입금지]                  
  잠깐만 들어가 보겠다고 우겨 들어 갔는데 철조망으로 봉쇄하여 더 이상 갈수 없어 돌아 나왔습니다.
  <미시령계곡>에서 <도적폭포>까지 막아 놓으면 뭘 보러 오나....
    
['도척폭포'] ★ 옛날 촬영 사진 ★
<미시령계곡>에선 볼거리로는 유일하다시피 한 <도적폭포>여서 아주 옛날에 촬영한 사진을 첨부합니다. 제가 종업원이 제지해도 우겨 들어 갈려고 했던 <도적폭포>인데 그럴만 하죠? "도적폭포"는 산적들이 <미시령>을 넘는 과객들에게서 금품을 갈취하곤 증거인멸을 하기 위해 과객들을 죽여 폭포 아래 "도적소"에 빠뜨렸다는데서 유래한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강도 살인의 현장이었다고 생각하니.....ㅠ ['미시령 옛길'] <도적폭포 입구>에서 10여분 <미시령 옛길>을 내려 가면... ['도적소 교차로'] 10:26 "도적소 교차로"를 만나는데, <미시령터널 입구>이기도 합니다. 우측에는... ['설악산 산림수련관'] 10:27 "설악산 산림수련원"이라는 시설이 있고... ['옛길'과 '새길'] <미시령터널>로 가는 새로운 길과 옛길이 나란히 가는 길을 잠시 내려 가면... ['미시령터널' 앞 굴다리] 10:29 <미시령계곡 옛길>에선 흔치 않은 음식점이 있는데 <봉평막국수집>이더군요. 5분여 더 진행하면.... ['선바위' 조망] 10:34 <미시령계곡>에선 두번째 볼거리이자 마지막 볼거리인 "선바위"가 보이기 시작하고 ['선바위'] "선바위"는 "서 있는 바위"라고 <선바위 立石>입니다. 서울 <인왕산>에 있는 <선바위>는 <禪바위>이고.... ['선바위' 앞 카페] 10:39 <선바위> 바로 아래 건너편에는 <설악향기>라는 카페가 있더군요. [상점과 휴게소] <미시령터널>에서 내려 가는 길 중간에 상점과 휴게소도 보이고... ['용대삼거리' 조망] 10:57 <선바위> 앞에서 20여분 더 진행하면 <용대삼거리>에 있는 <매바위폭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10여분 더 진행하면... ['옥수1교' 앞 삼거리] 11:06 <용대삼거리> 앞에 있는 "옥수1교 앞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매바위폭포>를 구경하고 가려면 우측으로 200m쯤 갔다가 다시 돌아 와야 합니다. 차 타고 다닐 때 많이 봤지만 걸어서 여기까지 왔으니 당연 다녀 와야겠죠? ['매바위폭포'] "용대삼거리"는 <진부령>과 <미시령>으로 가는 길이 분기하는 곳이죠. 그래서 이곳엔 손님을 끌기 위한 특별한 "매바위 폭포"라는 인공폭포가 설치되 있습니다. ['백골병단전적비'] "백골병단 전적비"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백골병단 단장>은 <채명신 장군>이었더군요. ['매바위폭포''] <백골병단전적비> 앞에서 <매바위폭포>를 한번 더 조망합니다. 겨울엔 빙벽타기로도 유명하죠. ['옥수1교' 앞 삼거리] [이정표] 11:15 다시 "옥수1교 앞 삼거리"로 회귀했습니다. 이곳은 <평화의 길>과 <평화누리길>이 나뉘는 곳이기도 하더군요. <평화의 길>은 여기서 좌측 <진부령>으로 가고, <평화누리길>은 우측 <미시령 옛길>로 가더군요. ['너와집'] 11:18 <소풍>이라는 카페인데 너와집이어서 눈길을 끌고... ['황태길'] <황태길>이라는 옛길을 진행하게 됩니다. 조금 진행해서 뒤돌아 보면... [뒤돌아 본 '매바위'] 11:24 지나온 <용대삼거리>의 진짜 <매바위>와 <매바위폭포>를 뒤돌아보고 ['백공미술관'] 11:28 이어서 "백공미술관 伯貢美術館"을 지나 갑니다. "백공 정상림"씨가 설립한 미술전시관이라는데..... <정상림씨>는 서울 법대 출신으로 검사 출신 법조인이었죠. 2019년에 타계.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미술품 수집가>로서 그가 수집한 미술품들을 모아 전시하는 미술관. ['내설악 응봉' 조망] 11:34 ' <백공미술관>을 지나면 <내설악 응봉>이 조망되기 시작하고... ['다릿골교'와 다릿골' 조망] 11:41 <다릿골교>를 지나면.... ['황태마을'] 11:47 <황태마을> 입구를 알리는 아치를 지나는데 ['용대풍력발전단지'] <용대풍력발전단지>를 흘깃 들여다 보는데, 풍력 팔랑개비는 바람이 제법 있는데도 돌지 않고 ['백담사' 입구 사거리] ['46번국도' 방향 조망] ['백담사' 방향] 11:56 이어서 "백담사 입구 사거리"를 만납니다. <용대2리>이기도 합니다. 제가 몇번 들린 음식점은 <사계절집>인데 <황태구이>와 <더덕구이>가 일품이었습니다. 황태와 더덕에 바르는 양념 맛이라고 생각되는데 양념만 별도로 팔더군요. 하도 맛 있어 양념을 사와 집에서 발라 구워 먹어 본 결과 저 집에서 먹던 맛은 않나더군요. ㅎㅎ 항상 그렇죠? ['기린] <용대2리 마을회관> 앞 뜰에 <기린> 한마리가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모형이지만... <내설악>에 왠 <기린>?이라고 궁금증을 갖는 분은 학구열이 있는 분일겁니다. <기린>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파란문>의 생각으로 알려 드리면..... "인제 麟蹄"라는 지명을 알면 금방 <기린>이 서성거리는 이유를 알것입니다. <인麟>은 "기린"이라는 뜻이죠, 그리고 <제蹄>는 "발굽"이라는 뜻이니 <인제 麟蹄>는 "기린의 발굽"처럼 생긴 고을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궁금증이 풀렸나요? 기린이 있는 이유를... 한편 <인제대학교 백병원>의 <인제>는 이곳 <인제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요. 그건 <백인제>라는 의사가 설립한 학교와 병원이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내가평교'] 12:02 "영시천 永矢川" <내설악>의 계곡 계곡에서 흘러 내리는 계곡물이 모여 "영시암 永矢庵" 앞에서 부터 <영시천>이 되어 <백담사> 앞을 지나 이곳으로 나와 "북천 北川"과 만나는 곳입니다. <미시령 彌矢嶺>에서도 언급 했드시 "화살 시矢"가 또 사용되는 곳이 <영시암 永矢庵>과 <영시천 永矢川> 인데, 이 지역엔 "화살 시矢"가 사용되는 곳이 제법 있습니다. <영시암 永矢庵>은 조선 숙종 때의 대단한 인물 <김창흡>이 <인현왕후>파와 <장희빈>파의 권력투쟁 속에서 환멸을 느끼고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며 <백담사 계곡>으로 들어가 암자를 짓고 살았답니다. 그 암자의 이름을 <영시암 永矢庵>이라 했는데, "한번 쏜 화살은 되돌아 오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겠다"라는 맹서로 <영시암 永矢庵>이라 했는데, 6년간 살면서 호랑이 한테 물려 죽을 뻔 하기도 하다가 결국 다시 세상으로 나왔답니다. 제가 <미시령 彌矢嶺>의 유래를 알아보게 된 힌트가 바로 <영시암 永矢庵>이었다는 것도 첨언합니다. ['만해로'] <용대2리>부터 <십이선녀탕 입구-남교리>까지 도로는 <만해로>라고 하는군요. 30여분 진행하면... ['여초서예관'] 12:29~12:40 "여초서예관 如初書藝館" "여초 김응현 如初金膺顯 1927~2007"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한 기념관이랍니다. 선생은 우리나라 근현대에서 최고로 꼽는 "4대 서예가 중 한분"이시죠. ['서예관 입구'] <여초서예관>은 약3,000여평의 공원에 800여평의 기념관으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여초서예관' 전경]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2012년 올해의 건축 BEST 7'] <여초서예관>은 선생의 작품과 유품을 전시하며 기념하고 있어 유명하지만 또한 기념관의 건축미가 돋보인다고도 무지 유명하답니다.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으니..... ['서예관' 입구] 예술적으로 건축된 서예관 입구로 들어 가면 먼저 좌측 벽에 쓰여져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 오는데 저 글이 뭔지만 알아도 <여초 김응현>선생의 족보에 대해 많이 알수가 있어 <파란문>이 짧은 한자 실력으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청음 김상헌 詩' '여초 글씨'] 石室先生一角巾 暮年猿鶴與爲群 석실선생일각건 모년원학여위군 秋風落葉無行跡 獨上中臺臥白雲 추풍낙엽무행적 독상중대와백운 -淸陰先祖西磵詩 如初- -청음선조서간시 여초- 석실 선생 머리 위에 일각건을 쓰고, 나이 늙어 원숭이 학과 더불어 어울렸네 가을바람 지는 낙엽 행적조차 없거니와, 홀로 중대바위에 올라 구름 속에 누웠네 먼저 이 한시를 쓰신 분부터 알아 보겠습니다. <淸陰>선생은 <병자호란> 때 척화파로 유명한 <김상헌 선생>으로 당시 <예조판서>였습니다. 당시 대표적 주화파였던 <이조판서 최명길>과 "실리와 명분"을 놓고 "싸움과 항복"을 서로 주장했는데 그때 그분이 바로 <여초 김응현>선생의 14대 선조이신 <청음 김상헌>선생이란걸 알수 있습니다. 선생이 청나라로 잡혀가며 쓴 시는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가슴을 울림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 동 말 동 하여라 ['여초 생애관' 입구] <서예관>으로 들어 가면 우측에 사무실이 있고, 좌측에 "여초생애관"이 있습니다. <생애관> 입구가 좀 허름한듯 보이지만 독특한 건축설계라고 하네요. <여초서예관>을 가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곳이니 들어 가 보아야 합니다. ['여초 생애관'] <여초생애관>은 그렇게 너른 공간은 아니었고, 유품 몇점과 글을 쓰던 책상이 전시되 있습니다. ['여초 김응현'] "여초 김응현 如初金應顯 1927~2007" 선생은 필자인 <파란문>의 학교 대선배님이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선생생의 호인 <여초 如初>는 "처음과 같다"라는 뜻. <휘문고>와 <고대 영문과>를 나오신 분이 <한학자>이자 "우리나라 근현대 4대 서예가"라는 것이 언바란스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책상과 유품'] 선생이 글을 쓰던 책상과 유품들이 전시되 있습니다. 선생은 우리나라 "국회"의 <국회도서관>의 "정직원 제1호"로도 유명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국회의 도서관을 최초로 도서관 다운 도서관으로 만드신 분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로 한문의 본고장인 <중국혁명박물관>에서 서예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왼손으로 글을 쓰도 제가 오른손으로 쓰는 것과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였다니 놀랍죠? ['로비] <생애관>을 둘러 보고 나오면 정면에 안내소 뒤로 엘리베이트가 보입니다. 엘리베이트를 타고 2층으로 올라 가면... ['여초 작품 전시실''] <여초 작품전시실>이 있습니다. 선생은 1996년부터 '인제군 북면 한계리'에 <구룡동천 九龍洞天>이라는 집을 짓고 자연과 벗삼아 만년의 자유로운 작품세계를 펼쳤다고 합니다. 그런 연고로 <인제군>이 이 기념관을 지었다고 합니다. 작고하기 10여년 전부터 당뇨병을 시작으로 중풍과 파킨슨병 등 합병증이 겹쳐 투병해야 했지만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결코 붓을 내려놓지 않았다고 하는데.... 1999년에는 교통사고로 오른 손목에 골절상을 입게 되자 3개월 동안 왼손으로 붓을 들고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 다음해에 "좌수전 左手展"을 개최하기도 했답니다. ['율곡 이이'의 '금강산기'] "율곡선생풍악기소견 栗谷先生楓岳記所見" 선생이 쓴 작품 중에 <율곡 이이>가 <금강산>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을 자신의 필치로 썻다고... <풍악 楓岳>은 "가을 금강산"을 일컷죠. <광개토대왕비>의 비문을 작품화 하신걸로도 유명합니다 ['한글은 세계의 빛'] ['훈민정음'] 선생은 한자 뿐만 아니라 "한글 서예"에도 남다른 애정을 보이셨죠. [계단] 2층에서 내려 가는 계단도 예술적인 건축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나가는 길] 서예관을 둘러 보며 한편의 영화같은 선생의 생애를 되새겨 보며 서예관을 떠납니다. ['한국시집박물관'] 12:42 <여초서예관> 옆에는 "한국시집박물관"이 있는데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치고 ['만해마을'] 12:45~12:53 ' 이어서 "만해마을"로 들어 갑니다. <동국대학교>의 "연수원" 시설입니다.
['만해 한용운 상']
"만해 한용운 萬海韓龍雲 1879~1944" 선생의 속세명은 <한정옥 韓貞玉>이시고, 法名이 "용운龍雲"이며, 法號 즉 별명이 "만해 卍海"입니다. 승려, 독립운동가, 시인, 수필가, 소설가.......... 독립선언문을 기초하셨으며 33인 중 한분....... ['만해 문학박물관 로비'] "만해문학박물관"안으로 들어 가면 로비가 있으며 박물관 안으로 들어 갑니다. ['조선청년에게'] 일제강점기 하에서 신음하는 우리 청년들에게 쓴 글이 전시되 있습니다. 제가 간략하게 요약하면, 암울한 시대지만 조선 청년들은 불행아가 아니고 행운아라고 생각하며 희망을 잃지 말고 오히려 기회로 삼아 전진하라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문학박물관 전경] 모두 잘 아는 내용들이라 휭하니 둘러 보고 나갑니다. ['심우장'] 선생이 서울에 거주 할때 살던 집이 '성북동'에 있는 "심우장 尋牛莊"이죠. 이곳 방문기는 부록으로 첨부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세요. ['만해 평화의 종'] <만해문학박물관> 앞에는 "만해 평화의 종"이 있으며 ['만해학교'와 '카페'] <만해학교>와 <카페>가 함께 있습니다. ['만해마을 정문'] 12:53 <만해마을> 정문으로 나오는데 이 門이 좀 특별한 門이더군요. "경절문 經截門"이라고...설명은 사진 속에 있습니다. ['만해교'] 12:54 <만해마을>을 벗어 나면 <만해교>를 건너게 되는데 ['만해마을' 조망] <만해교> 다리 위에서 지나온 <만해마을>과 <북천 北川>을 조망하고 ['십이선녀교' 가는 길] <만해교>에서 10여분 진행하면... ['남교리 주차장'] 1:04 <십이선녀탕 입구>에 있는 <남교리 주차장>에서 답사를 마칩니다. [고도표] 오늘 걸은 거리는 <도적폭포>등 몇곳을 다녀 오느라 "17km"를 걸었으며 3시간 25분이 걸렸습니다. 모기 만해 한용운 모기 너는 영웅호걸의 피를 빨고 어린아이의 피도 빨고 지조가 없는 얄미운 놈이다. 하지만 너에게 두 손 합장하고 크게 배울 것 하나는 동족의 피는 빨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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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15-1코스 북면길』
      한계령-미시령-백담사 가는 길 
          인제 원통교-어두원교-한계삼거리-고원통교-십이선녀교

        
           ['15-1코스 안내도']                   
        <강원평화누리 15코스>는 <원통교>에서 <미시령 정상>까지로 28km가 넘어
        편의상 두번으로 나누어 진행합니다.
    


    [실트랙 국토지리원 지도]             
  <강원평화누리 15코스>는 두번으로 나누어 
  먼저 <원통교>에서 <십이선녀탕> 입구인 <남교리 십이선녀교>까지 13.3km를 갑니다.



    ['원통교']              9:09             
    2023년 11월 19일 일요일   구름     
  구름이 많이 낀 "원통교 元通橋"에서 <원통 중심지>를 조망하며
  지난 <13코스 서화길>을 걸으며 친구 삼았던 "용늪이 있는 대암산"도 덤으로 조망하고



    ['갈말' 방향]                    
  "원산으로 통하는 길목--元通"에서 북쪽 "원산 元山" 방향으로
  "북천 北川" 둑방길을 따라 진행합니다.
  
  중앙에 보이는 <새골고개>는 지난 <13코스 서화길>을 갈때 버스가 <서화면>으로 이동하던 고개이고



    [소수력발전댐' 조망]                       
  <원통교>를 지나면 바로 <소수력발전용 댐>이 조망되기 시작하고
    


    ['소수력발전댐']             9:11             
  "원통소수력발전댐"을 바로 앞에서 구경합니다.



    ['한계리' 조망]             9:18      
  '인제군 북면 원통리'의 "갈말"을 지나며 북쪽을 바라보면
  구름에 휩싸인 "설악산 서북능선"의 끝봉우리인 "안산 鞍山 1,430m"이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갈말'-'북천변길']                 
  <갈말 북천 둑방길>을 30여분 진행하면....



    ['어두원교']            9:39       
  "어두원교"를 만나는데 <평화누리길>은 여기서 다리를 건너 가야 하더군요.
  <어두원 마을>은 건너편 계곡 마을이라는데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어두운 마을'이라고...
  한자로 쓰면 <음지마을>이라 할수있겠군요.



    ['원통' 조망]                     
  <어두원교> 위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지나온 <원통>을 뒤돌아 봅니다.
  앞으로 걸어서 <원통>을 지나갈 일은 없을테니 한번 더 추억 책갈피에 담고....
  
  "북천 北川"은 <인북천>의 '제1지류'인데 강폭으로만 보면 오히려 지류가 아니라 본류인듯 보입니다.
  <북천>은 <진부령-미시령-내설악-한계령>에서 내려오며 합쳐진 제법 큰 개천이죠.
  


    ['44번국도''46번국도']            9:41             
  <어두원교>를 지나면 <44번국도>와 <46번국도>가 함께 지나는 도로를 만나고
  <평화누리길>은 안전하게 도로와 강변길 사이에 조성되 있습니다.
  100m정도 진행하면...
  


    ['원통리-한계리' 경계]          9:43       
  정자가 있는 전망쉼터를 만나는데
  이 곳이 <인제군 북면 원통리>와 <한계리>의 경계가 되는 곳이더군요.
    


    ['한계리' 조망]               
  정자를 지나면 <한계리>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안산>과 <대승령>, 그리고 <귀떼기청봉>등 <설악산 서북능선>은 구름 속에서 신비함만 더하는데
  <한계삼거리> 뒤에 뾰쪽하게 솟아 있는 산은 <558m봉>으로 정확한 이름은 지도에 표기가 없어
  알수 없지만, 동네 분들은 <매봉>으로 부른답니다.



    ['숲속힐링이야기펜션']            9:48      
  이어서 <설하관광농원>과 <숲속힐링이야기펜션> 입구를 지나고



    ['관벌교차로']           9:51    
  계속해서 <설악휴게소>가 있는 <관벌교차로>를 통과 합니다.



    ['한계삼거리' 조망]                  
  동네분들이 <매봉>으로 부른다는 <558m봉>이 유별나게 다가오는 "한계삼거리"가
  <한계령>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한계1리경로당']            9:58          
  <한계1리 경로당>은 우측에 있다고 알리는 입구를 지나면...
  


    ['옛44번국도']              
  <옛44번국도>를 통과하며 <한계삼거리> 방향으로 갑니다.
  <新44번국도>가 좌측에 건설되고, 또한 <서울-양양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이곳의 교통량은 현격하게
  감소하여 휴일 임에도 불구하고 차량의 왕래는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다니는 차량들은 <한계삼거리 휴계소>에 들리지 않고
  시원하게 연결되 있는 도로를 따라 <한계령>과 <미시령>방향으로 횡하니 사라집니다.
    


    ['한계교차로']            10:03              
  "한계삼거리"
  지난날 설악산이나 속초를 다닐 때를 모두 기억하실겁니다. 손님으로 바글빠글하던 이곳을....
  성업 중이던 휴게소와 음식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고, 매물로 나와 있더군요.
  어느 횐님이 알려 주기를 여기 휴게소의 매매 가격이 평당 40만원 정도면 살수 있다고....
  장사가 않되니 거저 줘도 않가져 간답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죠?


  
    ['한계교차로' 우회로]                 
  <평화누리길>은 <한계삼거리>를 우회해서 돌아 갑니다.
  4분여 돌아 가면...
    


    ['옛46번국도']            10:07          
  <한계삼거리>에서 <44번국도>와 <46번국도>는 분리되어, 
  <44번국도>는 <한계령>을 넘어 <양양>으로 가고, <46번국도>는 <진부령>을 넘어 <고성>으로 갑니다.
    


    ['고원통교']             10:08        
  "고원통교 古元通橋"
  다리 건너에 보이는 마을이 "고원통마을"입니다.
  옛날 "원산으로 통하는 길목--元通"은 원래 <46번국도>가 지나는 이 마을이었답니다.
  마을의 중심지가 현재의 <원통>으로 옮겨져서, 이 마을은 "古元通"이 되었답니다.
        


     ['고원통교차로']             10:13          
  <고원통교>를 지나면 "고원통교차로"를 만나며
  <한계리 예술인촌>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이곳 예술인촌은 도시를 떠나 작품활동을 하는 예술인들을
  위한 마을로 작품 전시를 할수 있는 <공립 인제 내설악 미술관>도 있답니다.
    
 

    ['백담여행']           10:17             
  이어서 펜션형 모텔인 <백담여행>이라는 모텔을 지나면...
  


    ['한계터널' 앞]                       
  새로 건설된 <46번국도>는 <한계터널>로 직진하여 <용대리>로 가는데
  <평화누리길>은 <옛46번국도>를 따라 좌측 다리 밑으로 갑니다.

 
         
    ['한계터널' 앞 다리 밑]           10:25             
  <한계터널>로 들어 가는 <新46번국도> 다리 밑을 지나 <옛46번국도>로 진행하면...
  

       
    [북천 경치]            10:37        
  <북천>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게 되는데, 예상 외로 구경거리는 없습니다.
  


    ['고원통로']                  
  <옛46번국도>는 현재 <고원통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더군요.
  <내설악>등에서 흘러 내리는 맑고 맑은 <북천>을 따라 20여분 진행하면...
    


    ['삼거리교']

    ['설악산수']           10:43          
  <삼거리교>를 만나는데 좌측에 폐업한 <설악산수 공장>이 있습니다.
  수십년 전부터 이런 모습을 하고 있군요.



    ['쌍다리 쉼터']            10:50        
  이어서 <쌍다리 쉼터>를 만나는데
  "십이선녀"가 놀다 간 곳이라나 뭐래나...^.^
   


    ['원통시내버스']           11:01      
  <원통>에서 <진부령>을 오가는 <5번 원통군내버스>도 만나고...
 

 
    ['용대리' 입구]          11:03~11:09       
  이어서 <용대리 입구>를 만나는데 쉼터와 화장실이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쉬며...



    ['남교리' 조망]                   
  쉼터에서 오늘의 종착지인 <남교리>를 조망합니다.
 


    ['북천 천변길']                 
  <46번국도> 옆 <북천변길>로 10여분 진행하면...
  



    ['장수정']           11:18        
  <장수정 長壽亭>이라는 정자를 지나고





    ['십이선녀교' 조망]                     '  
  20여분 <북천변길>을 진행하면 <십이선녀교>가 다가 오고
  


    [꽃터널]                              
  봄이나 여름철에 꽃터널을 이루었을 <남교리 꽃길>을 지나면...



    ['십이선녀교']           11:36        
  <남교리>에서 <십이선녀탕 계곡>을 잇는 "십이선녀교 十二仙女橋"를 만납니다.
  오랜만에 찾아 보는군요.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선녀탕은 열두개가 있다고 하지만, 저는 8개 이상은 못찾겠더군요.
  <십이선녀탕>의 하일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복숭아탕>이죠?
  
['복숭아탕'] 옛날 촬영한 사진
['남교리'] ['십이선녀만남의 광장'] <남고리>의 <윗남교마을>을 잠시 통과하면... ['남교리 주차장'] 11:42 특히 가을 단풍씨즌에 엄청난 각광을 받는 <십이선녀탕 주차장>에서 답사를 마침니다.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13.3km로 약 2시간 35분이 걸렸습니다. 한계령 정덕수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메일지. 삼만 육천오백 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 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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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제산촌민속박물관']              1:26       
  "인제산촌민속박물관"이 있는데 시간 관계상 관람은 다음으로 미루고


    ['박인환문학관']            1:27~1:37       
  박물관 우측에 "박인환문학관"이 붙어 있습니다.
  문학관은 좀 세세하게 관람하고 갑니다.


    ['시인의 품']                         
  <박인환문학관> 입구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시인의 품"이라는 "박인환 상"이 있는데 방문 기념 사진을 찍는 곳이더군요.


    ['박인환-만남']                      
  문학관 정문으로 다가 가면 "박인환-만남"이라는 조형물이 있는데
  <목마와 숙녀> 詩와 테이블 위 찌그러진 "막걸리 주전자"가 눈길을 끕니다.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난 인생"이라고 감히 말해도 될 <애주가 박인환>이 소박한 술상을 펴고 반깁니다.


    [문학관 입구]                
  문학관 정문을 열고 들어 가면 이렇게 <박인환>은 다가 옵니다.


    ['박인환''목마와 숙녀']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었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명동백작" "명동 빽구두" "조니워커와 카멜담배" 등 명동 최고의 멋쟁이였던 <박인환>
  당시 <이화여대생>들에게 최고 인기 스타라고 할 정도로 여성들에게 인기 만점의 시인인데
  그가 쓴 詩들은 어찌 슬픈 이별의 노래가 많은가.....


    ['해방 후 서울 거리']                         
  <박인환 문학관>의 특징은 당시 서울 문학인들이 거닐며 
  술과 함께 문학을 논하던 거리를 재현 해 놨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그가 29세라는 짧은 생을 마치고 사라졌기에 그에 대해 남아 있는 유품들이 거의 없기도 해서겠죠.


    ['마리서사']                    
  "마리서사 茉莉書肆"
  <시인 박인환>은 1926년 이곳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에서 태어나 인제국민학교 4학년까지 다니고
  <서울 덕수국민학교>로 전학가서 <경기중학교>로 진학하고, 청소년관람금지 영화 보러 다니다
  중퇴하게 되고, 황해도 <명신중학교>를 졸업합니다. 이후 현재의 <평양의대>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려
  했으나 <8.15 해방>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로 내려와 1945년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운영합니다.
  20세~23세까지 3년여 운영하다가 문을 닫았는데, 이후 <경향신문 기자>로 활약하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종군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처음 만난 부인 <이정숙 여사>
  <박인환>의 키는 당시로는 상당한 장신인 180cm 정도여서 여자도 키 큰 여자를 선호했는데
  <이정숙>씨의 키가 170cm로 <진명여고> 농구선수 출신으로 당시 여성잡지 기자였으니,
  그들이 단짝이 되어 명동에 나타나면 <한 쌍의 학(鶴)과 같다>는 문우들의 찬탄을 받았다고 합니다.
  커플로는 이상적이었으니 바로 결혼하고  2남1녀를 두었는데, 
  큰 아들 <박세형>씨는 연세대 국문과를 나왔으며 아버지 뒤를 이어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바람이 이처럼 다정하면>이라는 시집을 출간한 서정시인이랍니다.


    ['포엠']                      
  "포엠"은 명동의 위스키 등 양주를 파는 술집이었답니다.


    ['유명옥']           
  "김수영 시인"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빈대떡 대포집이었답니다.
  <박인환>은 선배인 <김수영>과 처음엔 매우 가까이 지냈지만, 문학적 입장이 달라 사이가 멀어졌다죠.
  <6.25전쟁> 이후 지식인들이 모여 술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곳이 이런 곳이었답니다.


    ['봉선화 다방']                          
  이런 다방은 저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1~2층 계단']                           
  <박인환문학관>을 가면 반드시 2층에 올라 가 봐야 합니다.


    ['은성']                    
  "은성집"은 현재 명동입구 <유네스코빌딩> 앞 골목에 있었습니다.
  현재 표지석이 세워져 있더군요.
  텔런트 <최불암>씨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대포집이었답니다.
  
  <박인환>이 죽기 열흘쯤 전 이 <은성집>에서 마지막 詩가 쓰여 지고 작곡이 되었는데....
  "세월이 가면..."이라는 불후의 명시 명곡이죠.


    ['은성집'과 '세월이 가면']                   
  "세월이 가면..."
  <세월이 가면>은 "박인환 시인"의 마지막 시로 알려져 있는데 작품 일화가 있습니다. 
  당시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명동의 대포집 <은성>에서 극작가이자 작곡가인 <이진섭>, 
  <백치 아다다>를 불러 유명한 <가수 나애심>이 같이 술을 마시던 가운데, 
  <박인환>이 자신의 마지막을 예상이라도 한듯 종이를 들고 詩를 썻는데,
  그 詩를 본 <이진섭>이 詩가 너무 좋아 즉석에서 곡을 붙이고 <나애심>이 바로 불렀답니다. 
  <나애심>이 먼저 술자리에서 떠나자, 나중에 온 테너 <임만섭>이 그 악보를 받아들고서 
  다시 노래를 불렀고, 주위에 있던 모든 손님들이 그 가게로 몰려와 노래를 감상했다고 합니다.
  
  그후 <뚜아 에 모아>의 <박인희>가 리바이벌해 공전의 힛트를 쳤지요.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난 인생--박인환"은 며칠후 <시인 이상 추도식>에서 3일간 술을 퍼 마시고
  이 노래와 함께 '알콜성 심정지'로 생을 마감하며, "술병에서 별이 떨어 지는 곳으로" 갔습니다.
  
  당시 9세였던 <박인환> 시인의 장남 <박세형>씨는 67세가 되어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그날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들어와 토를 하시니 제가 등을 쳐 드렸습니다. 
   입에서 활명수 냄새가 났던 것으로 기억해요. 
   안 되겠다 싶어 어머니는 의사 선생님을 모시러 뛰어가셨어요. 그때 밤 9시가 넘고 있었어요.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빈손으로 오셨습니다. 이미 아버진 눈을 감으셨어요.”


    ['박인환 유품 전시']                            
  <박인환>을 시인으로만 생각하시면 않됩니다.
  영어를 잘해서 번역가이기도 했으며, 여성잡지 기자였던 부인 <이정숙>씨와 함께 "영화평론가"였습니다.
  
  천재는 단명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29년의 짧은 인생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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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평화누리길』
     『제14코스 인제길』
      인제의 명소: 리빙스턴교-합강정-박인환문학관 
            달빛소리마을-냇강마을-월학리-원통체육관-원통교-리빙스턴교-
            합강정-인제읍내-박인환문학관-마릴린먼로상-참전유공자기념비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13코스 서화길>의 길이가 무려 "37km"여서 서울에서 와 한번에 답사하고 가기엔 무리여서
  조금씩 분리해서 진행하고 있는데, 오늘은 지난 <13코스>의 일부와 <14코스>를 합쳐 진행합니다.


        
           ['13코스 안내도']                   
     지난 <13코스>의 날머리였던 "월학리 달빛소리마을"에 있는 "을지신병훈련소"에서 출발하여
     <14코스 들머리>인 "원통교"까지 <13코스 나머지 구간>을 먼저 진행합니다.
    


    ['을지신병훈련소']          9:17     
    2023년 11월 5일 일요일   비.흐림     
  일기예보에는 오늘 매우 심각한 비바람이 몰아 친다고 방송마다 요란스런 안내가 이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많은 횐님들이 악천후 소식에 답사를 포기 한것 같습니다.
  "비바람 맞으면서까지 걸을 필요있어? 걷는 것도 즐거워야 하지, 괴로우면 왜하냐구~"
  이럴 때 <파란문>이 농담으로 평소 하는 말 : "비 온다고 밥 안먹나?"   ^.^
  
  <12사단 을지신병훈련소> 정문 앞 주차장은 비만 내릴 뿐 조용합니다.



    ['평화누리길 입구']                       
  주차장 뒤 <인북천변 산책로>로 나가며 답사는 시작됩니다.
  100m 정도 진행하면...



    ['달빛소리교']           9:20         
  "달빛소리교"를 건너게 되고



    [뒤돌아 본 '달빛소리마을']                       
  다리를 건너 뒤돌아 본 "월학리 月鶴里""달빛소리마을"입니다.
  달빛 대신에 구름안개와 가을비가 마을을 덮고 있군요.
  
  지난번 <인북천>은 맑고 맑더니, 오늘은 비가 와서인지 완전 흙탕물이군요.
    


    ['대터마을' 통과]

    ['대터교']            9:32          
  <달빛소리교>에서  12분여 <인북천 둑방길>을 진행하면 "대터마을 대터교"를 지나 갑니다.
  
  "대터마을"은 한자로 "竹垈"로 "대나무가 많은 마을"이란 뜻이라고 ...
  하지만 대나무는 보이지 않더군요.
   

  
    ['인북천변길']                 
  <대터교>에서 다시 10여분 진행하면...



    ['도리촌' 입구]            9:42    
  "도리촌 입구"를 지나 갑니다.
    

  
    ['인북천변길']                          
  <도리촌교>에서 18분 정도 더 진행하면...



    ['소재교' 조망]               10:00    
  "냇강마을"에 있는 "소재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냇강마을' 안내도]                         
  "소재교" 앞 사거리엔 <냇강마을 안내도>가 있습니다.
  


    ['소재교']                10:03            
   "소재교"를 건너 갑니다.
   <소재교>는 <월학1리 냇강마을>과 <소재골 마을>을 연결 시켜 주는 다리이고
    


    ['냇강마을' 버스정류장]             10:04          
  <소재교>를 건너면 "월학1리 냇강마을 버스정류장"을 만나며



    ['말거리버스종점']             10:05          
  이어서 "말거리 버스종점"을 만납니다.
  이곳엔 "월학1리마을회관"과 <게이트볼장>이 있더군요.
  
  <말거리>라는 지명은 "마을 뒷산이 말의 형상"이어서 생긴 지명이라고 합니다.
    

  
    [고개 오름길]             
  <말거리버스종점>에서 20여분 완만한 고개 오름길을 오르면....



    [고개]            10:26              
  <월학리>와 <원통리>의 경계가 되는 고갯마루에 오르고



    ['원통2리' 조망]             10:31      
  고개를 넘어 가면  <원통2리>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원통체육관']               10:32       
  이어서 바로 "원통체육관"을 만나는데...
  <평화누리자전거길>은 앞에 보이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안내합니다.
  
  저는 <인제>에 가면 꼭 방문하고 싶었던 <합강정>과 <박인환문학관>을 가기 위해 
  여기서 지름길을 이용해 시간을 절약하기로 미리 조사하여 좌측 <원통>으로 바로 갑니다.
  구경거리 없는 개천변길을 걷는 시간을 절약하여 "인제의 명소"를 답사하려는 것입니다.
  


    ['원통생활체육공원']               10:34              
  "원통생활체육공원" 정문을 지나면....
    


    [갈림길]             10:34             
  바로 갈림길을 만납니다.
  직진하는 도로는 보행로가 없어 위험하고 거리도 멀어 우측 샛길 지름길로 내려 갑니다.



    ['원통' 조망]          10:34      
  그러면 바로 <13코스 종점>인 <원통교>가 조망됩니다.
  5분여 내려 가면...
    


    ['원통2리 마을회관']              10:39       
  "원통2리마을회관"을 지나고
        


     ['원통1리' 가는 길]                       
  다시 5분여 더 진행하면...
    
 


    ['원통버스터미널']            10:44           
  "원통버스터미널"을 만납니다.
  군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터미널이라 군용물품 가게가 많은게 특징이라면 특징
  


    ['원통전통시장']               10:45        
  이어서 '오감만족'이라는 "원통전통시장"을 만나면 좌측으로 방향을 틀고

 


    ['원통회전교차로']             10:46          
  <원통 중심지>를 지나면 <원통>에선 하나 뿐이라는 <원통회전오거리>를 만납니다.
  조금 전 한시간반 전에 버스를 타고 <서화 방향>으로 <달빛소리마을> 출발지로 통과해 간 오거리입니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원통교 앞 사거리']            10:50~10:55        
  <44번국도>가 지나는 "원통교 앞 사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옆에 있는 마트에서 간식거리를 좀 사고
  

       
    [육교에서 '원통' 조망]                    
  <44번국도>를 건너는 육교에 올라 지나온 <원통리>와 구름에 가리워진 <월학리-원통리 고개>를 
  바라보며, '인제군 북면 원통리'가 '北面'으로 불리지 않고 '원통'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것 같습니다.
  
  "원통 元通"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원산 元山>으로 통通하는 길목"이어서 생긴 지명입니다.
  <원산> 뿐만이 아니라 <고성> <속초> <양양>으로 통하는 곳이어서 교통의 요지라 할수 있겠습니다.
  


    [육교에서 '원통교' 조망]                  
  육교 위에서 <13코스 종점>이자 <14코스 출발지>인 "원통교 元通橋"를 조망하고
    


    ['원통교']                 11:00
        
           ['14코스 안내도']            
  "원통교 元通橋"에서 "강원평화누리길 14코스:인제길"을 시작합니다.
  
  <원통교> 아래 흐르는 개천은 "북천 北川"으로 <진부령><미시령><한계령>등에서 내려오는
  개천이며, <내설악 봉정암>과 <백담사>에서 내려오는 <영시천>도 포함됩니다.



    ['원통 갈골마을']             11:02           
  <원통교>를 건너면 <원통9리 갈곳마을>인데, 마을로 들어 가지 않고 우측 <북천 둑방길>로 진행합니다.
  14분 정도 <북천 둑방길>을 진행하면....
   


    ['인북천-북천' 합수부]          11:16      
  "인북천과 북천"이 합수하여 "인북천"이 되는 곳을 조망합니다.
 

  
    ['인북천변길']            
  좀 지루한 개천변길을 40여분 진행하면...



    ['인제군농업기술센터']            11:57        
  "인제군 농업기술센터"입구를 지나고...
 


    ['합강1교']                 12:04

    ['리빙스턴교' 조망]          12:11      
  이어서 유명한 "리빙스턴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리빙스턴교']           12:12~12:18             
  "리빙스턴교 Livingston Bridge"
  <6.25>의 참상이 상징적으로 남아 있는 다리로 유명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안내문을 참조하고...


 

    ['리빙스턴교]                     '  
  안내문을 먼저 읽어보면....
  이 다리의 주인공은 <리빙스턴 소위>라고 안내하고 있는데, '소위'이면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바로
  졸업해 아직 젊어 결혼한 부인이 있을리 없다고 생각되며, 또한 결혼 했다하더라도 
  그 나이에 여기에 다리를 놓을 만한 재산을 모으긴 어려웠을텐데...
  
  <인제군 공식 홈페이지>에는 <리빙스턴>이 당시 포병부대 대대장으로 중령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저는 <대대장 중령>이었다는게 전후사정을 감안하면 훨씬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다리는 처음엔 미군이 공사를 시작했으나 중단하고 한국군이 최종 완성하였답니다.
  (관계자는 좀 더 확실한 사실을 안내판에 적시 해야 할것입니다)
  
  여하튼 저는 <리빙스턴> 보다 그의 부인이 "남편과 Korea를 향한 사랑"이 더 크다고 생각되는군요.
  


    ['리빙스턴교']                              
  "리빙스턴교 Livingston Bridge"는 기념다리 옆에 차량이 통행하는 다리가 별도로 건설되 있으니
  현재 두개가 되는군요.


  
    ['덕산리' 통과]                   
  <리빙스턴교>에서 <덕산리>를 통과하며 20여분 더 진행하면....



    ['합강교' 조망] 

    ['합강교' 앞 삼거리]            12:40              
  "인제 麟蹄"라는 지명을 만들어 주는 "합강 合江"이 있는 "합강교"에 도착했습니다.
  



    ['합강정' 올라 가는 길]            12:43~1:00    
  <합강교>를 건너가면 건너편에 유명한 "합강정 合江亭"이 있으니 구경하고 가야겠죠?
  건너편에 돌계단이 보이는데 사람들의 통행 흔적은 거의 없지만 올라 갑니다.



    ['합강정' 주변 안내도]                      
  <합강정> 주변 안내도를 먼저 숙지해야 이곳이 옛부터 왜 유명한 명소인지 알수 있습니다.
  
  "합강 合江"
  "내린천 內麟川""인북천 麟北川"이 만나 "소양강 昭陽江"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이런 곳을 <두물머리>라고도 하지요.
  
  "소양강 昭陽江"은 "밝은 빛을 비추는 태양같은 강"이라는 의미라는거 아시나요.
  


    ['중앙단']                      
  <합강교>에서 돌계단을 올라 가면 "중앙단 中央壇"이라는 제단을 만납니다.
  
  이곳은 강원도의 중심지로 조선시대에는 가뭄이 들거나 질병이 만연할 때면 
  도내 26관의 관원, 즉 현재의 시장·군수들이 이곳에 모여 제례를 올렸다고 합니다.
  


    ['합강정']                 
             
                  ['합강정' 漢詩]
  "합강정 合江亭"
  <인제 8경>에 속해있는 정자인데, 정자 앞으로 <내린천>과 <인북천>이 합류하는 합강이 흐른다고 
  하여 합강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답니다. <인제> 지역 최초의 누정으로 1676년(숙종 2년)에 건립했다고

    

    ['합강정휴게소']                   
  <합강정>에 올라 <44번국도>에 있는 <합강정휴게소>를 조망합니다.
  이번주가 "설악산 단풍"의 적기인데도 날씨 때문인지 휴게소가 썰렁하군요.



    ['군민의 종각' 조망]                         
  남쪽에는 <군민의 종각>이 보이고...
    


    ['합강미륵불']                    
  동쪽으로는 "합강미륵불 合江彌勒佛"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합강정> 터에 있는 돌부처로 <합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안녕을 빌던 불상이라 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못 낳는 여인이 정성으로 빌어 아들을 얻은 뒤로 널리 알려졌다고 하는군요.
  
  

    ['합강교' 조망]                      
  "합강 合江"
  "내린천 內麟川""인북천 麟北川"이 만나 "소양강 昭陽江"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군민의 종각']           
  "인제군민의 종각"은 <서울 보신각>처럼 매년 년말년시에 타종을 한다고



    [포토존']                          
  <인제 번지점프대> 앞엔 <포토존>이 있고...
  


    ['인제번지점프장']             12:56              
  "인제번지점프장"은 점프 높이 63m로 국네 유일의 "리닝 타워식 점프장"이랍니다.
  
  "Bungee Jump"의 "Bungee"가 뭔 뜻인지 아세요?
  "Bungee"는 "고무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뜻을 이해하기 쉽죠?
  

 
    [내려 가는 길]                    
  <번지점프대>로 내려가 <소양강둘레길>로 갑니다.
  계단이 급경사더군요.



    ['인제산책로']            12:58       
  <소양강둘레길>이기도 한 <인제산책로>랍니다.
  <강원도 평화누리길>이기도 하고...
    


    ['김창흡의 漢詩']                            
  "김창흡"
  <조선 숙종> 때의 인물로 본인보다 집안이 엄청나죠.
  증조할아버지 <병자호란의 김상헌>, 아버지 <영의정 김수항>, 형 <영의정 김창집>, 형 <예조판서 김창협>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권력다툼 속에서 발생한 <경신환국><기사환국><갑술환국>을 겪은 집안이죠
  <김창흡>은 정치에 환멸을 느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금수강산을 유람하기도 했는데
  여기에도 왔다 갔군요.



    [조망데크]              1:16         
  <합강정>에서 20여분 "인제산책로"를 거닐면 전망데크를 만납니다.
  여기가 중요한 곳인데, <인제의 명소>라고 하는 <박인환문학관>등을 찾아 보려면 우측 <44번국도>를
  건너 가야 합니다.
    

     
        [탐방 코스 지도]                            
      윗 사진의 <조망데크>가 있는 곳이 지도의 <현위치>입니다.
      제가 진행한 루트를 참고 하고...



    ['44번국도' 횡단]           1:19    
  <44번국도>를 건너야 하는데 보행로가 없습니다.
  이곳은 모든 시외버스들이 <인제버스터미널>로 갔다 나오는 삼거리여서 신호등이 있는데
  터미널에서 나오는 차량들이 좌회전 할때 건너면 안전하더군요.
    


  
    ['인제 중심가']                         
  <인제 중심가>를 남쪽으로 통과하여 5분여 진행하면...
  


    ['인제남 초등학교' 앞]            1:25        
  <인제남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인제산촌민속박물관']              1:26       
  "인제산촌민속박물관"이 있는데 시간 관계상 관람은 다음으로 미루고
    


    ['박인환문학관']            1:27~1:37       
  박물관 우측에 "박인환문학관"이 붙어 있습니다.
  문학관은 좀 세세하게 관람하고 갑니다.
  
  

    ['시인의 품']                         
  <박인환문학관> 입구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시인의 품"이라는 "박인환 상"이 있는데 방문 기념 사진을 찍는 곳이더군요.



    ['박인환-만남']                      
  문학관 정문으로 다가 가면 "박인환-만남"이라는 조형물이 있는데
  <목마와 숙녀> 詩와 테이블 위 찌그러진 "막걸리 주전자"가 눈길을 끕니다.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난 인생"이라고 감히 말해도 될 <애주가 박인환>이 소박한 술상을 펴고 반깁니다.
    


    [문학관 입구]                
  문학관 정문을 열고 들어 가면 이렇게 <박인환>은 다가 옵니다.
    
    

    ['박인환'과 '목마와 숙녀']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었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명동백작" "명동 빽구두" "조니워커와 카멜담배" 등 명동 최고의 멋쟁이였던 <박인환>
  당시 <이화여대생>들에게 최고 인기 스타라고 할 정도로 여성들에게 인기 만점의 시인인데
  그가 쓴 詩들은 어찌 슬픈 이별의 노래가 많은가.....



    ['해방 후 서울 거리']                         
  <박인환 문학관>의 특징은 당시 서울 문학인들이 거닐며 
  술과 함께 문학을 논하던 거리를 재현 해 놨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그가 29세라는 짧은 생을 마치고 사라졌기에 그에 대해 남아 있는 유품들이 거의 없기도 해서겠죠.
    



    ['마리서사']                    
  "마리서사 茉莉書肆"
  <시인 박인환>은 1926년 이곳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에서 태어나 인제국민학교 4학년까지 다니고
  <서울 덕수국민학교>로 전학가서 <경기중학교>로 진학하고, 청소년관람금지 영화 보러 다니다
  중퇴하게 되고, 황해도 <명신중학교>를 졸업합니다. 이후 현재의 <평양의대>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려
  했으나 <8.15 해방>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로 내려와 1945년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운영합니다.
  20세~23세까지 3년여 운영하다가 문을 닫았는데, 이후 <경향신문 기자>로 활약하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종군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처음 만난 부인 <이정숙 여사>
  <박인환>의 키는 당시로는 상당한 장신인 180cm 정도여서 여자도 키 큰 여자를 선호했는데
  <이정숙>씨의 키가 170cm로 <진명여고> 농구선수 출신으로 당시 여성잡지 기자였으니,
  그들이 단짝이 되어 명동에 나타나면 <한 쌍의 학(鶴)과 같다>는 문우들의 찬탄을 받았다고 합니다.
  커플로는 이상적이었으니 바로 결혼하고  2남1녀를 두었는데, 
  큰 아들 <박세형>씨는 연세대 국문과를 나왔으며 아버지 뒤를 이어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바람이 이처럼 다정하면>이라는 시집을 출간한 서정시인이랍니다.
  
  


    ['포엠']                      
  "포엠"은 명동의 위스키 등 양주를 파는 술집이었답니다.
    



    ['유명옥']           
  "김수영 시인"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빈대떡 대포집이었답니다.
  <박인환>은 선배인 <김수영>과 처음엔 매우 가까이 지냈지만, 문학적 입장이 달라 사이가 멀어졌다죠.
  <6.25전쟁> 이후 지식인들이 모여 술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곳이 이런 곳이었답니다.




    ['봉선화 다방']                          
  이런 다방은 저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1~2층 계단']                           
  <박인환문학관>을 가면 반드시 2층에 올라 가 봐야 합니다.
  



    ['은성']                    
  "은성집"은 현재 명동입구 <유네스코빌딩> 앞 골목에 있었습니다.
  현재 표지석이 세워져 있더군요.
  텔런트 <최불암>씨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대포집이었답니다.
  
  <박인환>이 죽기 열흘쯤 전 이 <은성집>에서 마지막 詩가 쓰여 지고 작곡이 되었는데....
  "세월이 가면..."이라는 불후의 명시 명곡이죠.



    ['은성집'과 '세월이 가면']                   
  "세월이 가면..."
  <세월이 가면>은 "박인환 시인"의 마지막 시로 알려져 있는데 작품 일화가 있습니다. 
  당시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명동의 대포집 <은성>에서 극작가이자 작곡가인 <이진섭>, 
  <백치 아다다>를 불러 유명한 <가수 나애심>이 같이 술을 마시던 가운데, 
  <박인환>이 자신의 마지막을 예상이라도 한듯 종이를 들고 詩를 썻는데,
  그 詩를 본 <이진섭>이 詩가 너무 좋아 즉석에서 곡을 붙이고 <나애심>이 바로 불렀답니다. 
  <나애심>이 먼저 술자리에서 떠나자, 나중에 온 테너 <임만섭>이 그 악보를 받아들고서 
  다시 노래를 불렀고, 주위에 있던 모든 손님들이 그 가게로 몰려와 노래를 감상했다고 합니다.
  
  그후 <뚜아 에 모아>의 <박인희>가 리바이벌해 공전의 힛트를 쳤지요.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난 인생--박인환"은 며칠후 <시인 이상 추도식>에서 3일간 술을 퍼 마시고
  이 노래와 함께 '알콜성 심정지'로 생을 마감하며, "술병에서 별이 떨어 지는 곳으로" 갔습니다.
  
  당시 9세였던 <박인환> 시인의 장남 <박세형>씨는 67세가 되어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그날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들어와 토를 하시니 제가 등을 쳐 드렸습니다. 
   입에서 활명수 냄새가 났던 것으로 기억해요. 
   안 되겠다 싶어 어머니는 의사 선생님을 모시러 뛰어가셨어요. 그때 밤 9시가 넘고 있었어요.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빈손으로 오셨습니다. 이미 아버진 눈을 감으셨어요.”
    


    ['박인환 유품 전시']                            
  <박인환>을 시인으로만 생각하시면 않됩니다.
  영어를 잘해서 번역가이기도 했으며, 여성잡지 기자였던 부인 <이정숙>씨와 함께 "영화평론가"였습니다.
  
  천재는 단명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29년의 짧은 인생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산촌민속박물관 연결통로]                       
  <박인환문학관 2층>에선 <인제산촌민속박물관>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고
    


    [조각공원]                            
  박물관과 문학관 앞마당에는 조각공원이 조성되 있습니다.



    ['인제 기적의 도서관']          1:38     
  <박인환문학관> 옆에는 "인제 기적의 도서관"이 있는데
  어서 빨리 <인제>에 기적이 일어나 번성하는 도시가 되길 기원해 봅니다.
  
  <강원 평화누리길 14코스>의 시종점을 가려면 앞에 표기한 빨간색 화살표가 있는 곳으로 가서
  개천으로 내려 가면 되겠습니다.
    

 
    ['사구미교' 가는 '인제천년길']                         
  개천으로 내려가 징검다리를 건너 강변으로 나가면...
  


    ['인제 파크골프장']               1:46     
  <인제파크골프장>이 이어지고



    ['마릴린 먼로 공원']                    
  <사구미교> 앞에 <마릴린먼로 공원>과 우측 둑방 위에 <참전유공자기념탑>이 보입니다.
    



    ['마릴린 먼로 동상']              1:50     
  "마릴린 먼로 동상"
  1954년 당시 <뉴욕>에는 이미 지하철이 있었죠.
  뉴욕 지하철 환기구 위를 가다 바람에 치마가 들춰지는 이 광경이 <마릴린 먼로>의 상징이 되고
  "색스의 심볼"로 최고 인기를 누리게 되었지요.
  
  이곳에 그녀의 동상을 5,500만원을 들여 만들 때 비판도 많았답니다.
  이 시골 고수부지에 뜬금없이 왠 <마릴린 먼로 동상>을 많은 세금을 들여 세우느냐며...
  <인제군>은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조성했다고 합니다.
  
  

        
            [당시 공연 사진]        자료사진                 
  1954년 2월 추운 겨울에 주한 파병 미군을 위문하기 위해 와서 이 강변에서 공연을 했답니다.
  <인제> 골짜기의 추운 겨울에 어깨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공연을 했으니 얼마나 추웠을까....
  그러나 <먼로>는 군바리들의 열렬한 환호에 추운줄도 몰랐다고...



    ['참전유공자기념탑']                      
  "참전유공자기념탑"앞에서 "인제에 가면 꼭 들려 보아야 할곳"을 둘러 보고 답사를 마칩니다.
    


    [구글어스 실트랙]                
  오늘 걸은 거리는 18.5km였으며 4시간반이 걸렸습니다.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후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될까봐 언제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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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랑길 39코스 국토지리원 지도 실트랙']     
  <서해랑길 39코스>의 권장코스는 윗 지도의 <파란색선>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코스는 <구수산 산줄기>를 오르는 등산코스여서 여기까지 와서 등산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특히 전라남도에서 뺄수없는 해안경관을 자랑한다는 "백수해안공원길"을 가기 위해서
  <서해랑길>의 취지에도 맞는 "백수해안공원길"로 진행 했다는 것을 미리 알려 둡니다.
  
  길의 선택은 자유이며, 관계공무원이 정해 놓은 길을 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며, 
  때론 해답도 정답보다 더 좋은 여행이 될수 있으니 후답자들은 비교하여 좋은 길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진행한 루트는 <빨간색선>으로 표기되 있으며, 제가 걸은 gpx실트랙도 첨부했으니 참고하세요
    


    ['답동마을 입구']           11:40       
  2023년 10월 21일 (토)  맑음 해무 약간  
  교통체증으로 좀 늦은 시간에 <서해랑길 39코스> 출발지인 "답동마을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우측길은 <구수산>으로 향하는 <백수해안도로>이며, 좌측길은 해안공원길입니다.
    
  "백수해안도로"
  2006년 건설교통부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2011년 국토해양부의 "제1회 대한민국 자연경관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랍니다.
  또한 "영광9경 중 제1경"으로 <영광군>이 최고로 자랑하는 해안풍광도로라고...

  저는 좌측 <답동마을>로 내려 갑니다.
  


    ['답동마을']            11:45        
  "답동마을 畓洞"
  약 100년전 이화삼이라는 분이 이 마을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는데, 당시 이곳엔 논이 없어서 앞으로 
  서해바다가 간척사업으로 논이 생기길 바라는 뜻에서 "답동 畓洞"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논이 생겨 농사를 지으며 살고자 했겠지만, 현재는 펜션과 카페등으로 관광사업이 주를 이루고 있고



    ['백수해안공원길']                          
  새로 도로포장을 한 길을 따라 잠시 내려 가면, 우측 비포장도로로 진행하게 되는데...
  
  그 유명한 "조기와 굴비"의 산실인 "칠산바다 七山海"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해안길']              
  <서해랑길 39코스>가 이곳 해안을 따라 가지 못하고 <구수산 능선>으로 돌린 이유 중에 하나가
  아직 이곳 해안도로가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홀로 해보며 10여분 진행하면...



    ['백암해안전망대' 조망]          11:56       
  <백암해안전망대>가 조망되는 언덕에 오르게 되는데, 
  이제부터 <백수해안공원길>이 제모습을 드러냅니다
   


    ['세이리펜션']           11:58~12:00       
  먼저 만나게 되는 요란한 시설은 "쉐이리펜션"인데, 펜션치고는 외관이 요란합니다.
  


 
 
    ['세이리펜션']                          
  <디즈니랜드>의 축소판을 연상시키는 듯한 펜션인데, 이곳에서 잠을 자면 어떤 기분일까? ㅎ
  여러 동화의 나라 속으로 들어 가는 꿈을 꿀까? 아니면 정신 사나워 잠을 못잘수도 있지 않을까? ㅎㅎ



    ['케페노을' 조망]                      
  <쉐이리펜션>을 지나면 더 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도로공사가 한창인 오르막을 오릅니다.
  그리고 <구수산>에서 내려 오는 산줄기 언덕배기에 <카페 노을>과 <노을연가펜션>이 보입니다.
  
  <카페 노을> 정문 앞으로 가면....
   


    ['백암해안전망대' 입구]         12:05~12:11       
  모르고 가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백암해안전망대"가 바닷가에 있으니 꼭 들려야 합니다.
  


    ['영광풍력발전단지' 조망]                 
  "백암해안전망대"에서 남쪽을 조망하면 <서해랑길 38코스>의 <영광풍력발전단지>가 '솟대'처럼
  또는 '허수아비'처럼 하늘 향해 춤을 추고 있는듯 보입니다.
  


    ['칠산도' 조망]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됨★        
  "칠산바다 七山海"
  서쪽 西海엔 "칠산도 七山島"와 그 뒤로 "송이도 松耳島"가 펼쳐집니다.
  먼저 이 사진을 클릭하여 확대 된 사진을 보시기 바람니다. 실제 보이는 광경과 비슷합니다.
  
  일곱개의 작은 섬 "칠산도 七山島"의 전설.....
  <칠산도>까지의 바다는 원래 육지였으며 일곱개의 골짜기가 있어 <칠산 고을>이라 불렸던 곳이랍니다.
  "돌부처 귀에 피가 나오면 바다로 변한다"는 어느 과객의 예언을 믿은 마을 사람들은 <구수산>으로 
  대피하여 목숨을 구하고, 믿지 않은 사람들은 대홍수로 인하여 바다에 수장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답니다. 금기를 어기면 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담긴 교훈적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구수산 능선' 조망]                        
  <백암해안전망대>에서서 바라보는 "구수산 九岫山 339m"의 한 능선입니다.
  아홉갈래로 산줄기와 계곡을 이루며 <영광군>과 <칠산바다>를 아우러고 있답니다.
  <서해랑길 39코스>의 권장코스로 대부분의 답사객들은 저 산으로 올라 갑니다.
 


    ['가재골' 가는 길]            12:11             
  <백암해안전망대>가 있는 <카페 노을> 앞에서 <백수해안도로>로 나가면
   


    ['가재골' 버스정류장]             12:15     
  '영광군 백수읍 백암리'의 "가재골 마을"을 지나게 되는데, 
  온통 펜션등 숙박시설과 모텔이 마을을 점령하고 있고....
 


    ['대리골' 버스정류장]             12:22                
  이어서 "대리골 마을"을 통과합니다.
  
 

    ['황해펜션']           12:24           
  <황해펜션> 앞을 지나는데, 간판에 <영화 황해>의 촬영지라고 안내하고 있더군요.
  중국 연변의 택시운전사 출신의 주인공 <하정우>가 "황해"를 건너 밀항하여 한국에 와서
  격게 되는 범죄스릴러라는 영화라고 하네요.
  


    ['백수해안공원' 주차장]           12:28    
  이어서 "백수해안공원"의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노을길 안내도>가 있습니다.
  이곳이 "칠산 갯길 300리 노을길 3코스"라고 하는군요.
  
 

    ['노을길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칠산 갯길 300리 노을길 3코스"는 <서해랑길 39코스>와 상당부분 함께하기에 안내도를 참고하고....

 

    ['거시기 횟집']           12:31    
  음식점 이름이 하도 "거시기"해서 한컷하고...ㅎ
    


    ['뭉클책방']          12:38   
  "뭉클 책방"
  <해안도로>에 책방이 있어 이채로웠는데, 알고 보니 책도 읽을수 있는 카페더군요.



    ['스카이워크' 조망]               
  <뭉클 책방>을 지나면 
  해안도로의 하일라이트라고 할수 있는 <노을전망대 스카이워크>가 조망되기 시작합니다.
  
  "백수 白岫"  독특한 지명이라 별도로 공부했습니다.
  먼저 한자로는 "흰 백白" "산줄기와 계곡 수岫"를 사용하더군요.
  '일 하지 않고 빈둥빈둥 노는 놈을 "백수"라고 하니 그런 뜻일까?라고 생각이 먼저 들지요? ㅎ
  이곳의 <백수>는 당연 그런 뜻이 아니고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소개해 드림니다.
  
  "백수 白岫"라는 지명은 "백百"에서 일을 떼어버린 아흔아홉의 '묏부리'를 뜻한다고 합니다.
  지명이 말해주듯 "백수"는 <구수산>의 많은 산봉우리와 계곡들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해안 산간 지역을
  의미 한답니다..
  


    [삼거리]          12:42       
  이어서 <해안도로>와 <법성포>로 바로 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구수산 등산로 출입구']                           
  이 삼거리에 <구수산등산로 출입구>가 있으며 
  <서해랑길 39코스>의 <구수산 능선길>의 들날머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권장코스와 합류하여 종점까지 함께 진행하게 되겠습니다.
  


    [이정표와 '노을길' 안내도]           12:43    
  이 삼거리엔 또 다시 <노을길 안내도>가 있으며 
  여기서부터 "데크길"이 <대신항>위 "코둘쉼터"까지 설치되 있어 걷기도 편하고
  <칠산바다>를 만끽하게 해 줍니다.
  


    ['열부순절지' 조망]                     
  삼거리에서 내려다 본 "열부순절지"입니다.
  내려가면...
 


    ['모열사']          
  "모열사 慕烈祠"
  <정유재란> 때에 순절한 열부들을 추모하며 제사를 올리는 <모열사 慕烈祠>라는 사당이 있고

 


    ['열부순절지']         12:46      
  "영광 정유재란 열부순절지"
  자세한 사항은 안내문을 참고 하고....
  
  <열부><열녀>에 대한 <파란문>의 생각...을 언급하는데 동의하던 않던 자유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는 부인을 <열부 烈婦>, 약혼한 처녀가 예비신랑이 죽을때
  따라 죽으면 <열녀 烈女>라고 하며, 이 모두를 통칭해서 주로 <열녀 烈女>라고 하지요.
  
  자고로 <공자>가 죽어야 세상이 공평해 진다고 외친 분들이 어디 한두분이겠습니까만...
  <공자>의 <유교>는 인권 측면에서 특히 여성들을 남성의 소유물로 보아 여성의 사회성을 말살했죠.
  조선왕조 500년 동안 행해진 무조건적인 여성들의 남성에 대한 복종은 가히 노예였다고도 할수 있죠.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는게 최고의 善이라고 국가가 나서서 충동질하고 따라 죽는 여성에게 "烈女"라는 
  칭호를 주며, 남편이 무슨 이유로던 먼저 죽으면 자식들 두고 엄마인 아내도 따라 죽으라고 부축이는 
  이런걸 善이요 禮라고 국가까지 나서 장려 했으니...
  남자는 온갖 바람 다 피워도 당연하고 아내가 바람피다 걸리면 생매장 당하는 유교 윤리는
  무조건적인 불합리 성착취이며 남녀 불평등의 표본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남녀노소가 평등하다는 요즘 민주사회에서도 아직도 유교 윤리를 따지며 당연한듯 사는 사람들 많지요?
  이런 烈婦나 烈女는 자랑스런게 아니라 남녀노소 평등을 위해 타파 해야 할 문화유산이라 봅니다.



    ['오방제']                 
  <열부순절지>에서 데크를 따라 <노을전망대 스카이워크>로 가는데 굿하는 사람이 눈길을 끄는데
  이런데서 굿하며 소원을 빌것이 아니라 어디라도 가서 일을 하는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노점]           12:50       
  데크길에서 올라 서니 <노을전망대 주차장>이 있는데 노점상들이 나그네를 유혹하고...
  


    ['스카이워크' 조망]              
  이어서 "노을전망대 스카이워크"가 신선하게 다가 옵니다.



    ['괭이갈매기' 조형물]             12:53        
  "작품명 : 끝없는 사랑-Endless Love" 
  
  "칠산도 七山島"는 현재 무인도로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출입이 금지되 있다는데
  <천연기념물 제389호>로 지정된 <노랑부리 백로>와 <괭이갈매기>, <저어새>의 번식지이기도 하다고
  
  "괭이갈매기"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낸다고 붙여진 이름이죠. 그래서 <해묘海猫>라고도 한답니다.
  그리고 <괭이갈매기>는 암수가 한번 짝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변치 않고 함께 산다죠?
  그래서 이곳에 <괭이갈매기 조형물>을 설치하여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Endless Love" 백년해로를
  기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칠산도' 조망]            

                     어이! 우리 돈 실러 가세, 돈 실러 가.
                     칠산바다에 돈 실러 가세
                     그러세, 그려. 칠산바다에 돈 실러 가세.
                     돈 실러 얼른 가세.
                     가세, 가세 얼른 가세.
                     배에 가득 돈 실어 오세 
                              - 칠산바다 뱃노래 - 중에서
                              
  "칠산바다와 조기"
  <고려시대> 이전부터 40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최대의 "조기 어장"이 이곳 <칠산바다>였답니다.
  양력 3~4월경 쯤에 산란을 위해 수 많은 "조기 助氣"때들이 남쪽바다에서 <칠산도> 주변에 몰려 들며, 
  해수면에 입을 내밀고 우는 울음소리는 <칠산바다>를 진동케하며 장관을 이루었답니다. 
  그 당시 <영광 법성포>에 가서 "돈 자랑"하다간 큰코 다친다고 할 정도로 어부들에게 황금을 
  안겨다 주는 <황금어장-보물창고>였답니다. 
  
  "조기 助氣"는 글자 그대로 "기운을 북돋아 주는 고기"로 알려져 있지요.
  그리고 산란시기가 되면 남쪽 따뜻한 바다에서 이곳으로 산란을 위해 몰려와
  해수면에 입을 내밀고 울음소리를 내는 물고기로도 유명합니다.

 


    ['대신등대' 조망]           12:54            
  <괭이갈매기 조형물>에서 카페등을 지나 도로를 따라 10여분 진행하면...
    


    ['공중화장실]           1:04        
  <공중화장실>이 있는 주차장겸 전망대에 도착하고
    


    ['대신등대']           
  <칠산바다>를 비추는 "대신등대"를 조망합니다.


 

   ['영광 노을전시관']            1:06           
  이어서 "영광 노을전시관"에 도착합니다.
  "노을"을 전시하는 곳이라 좀 생소한데 세계 각국의 유명 노을 명소들을 영상과 사진으로 전시하며
  이곳 <백수해안 노을>을 돋보이게 하고 있었습니다.
  



    ['조미미 노래비']                        
  "조미미 노래비"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노래가 제일 먼저 생각나게 하는 <조미미씨>입니다.
  <조미미씨>의 고향이 이곳 <영광>이어서 노래비를 세웠나 본데
  <해파랑길 11코스>의 '경주시 감포읍 나정리'에 있는 "나정고운모래해변"에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노래비가 세워져 있었죠. 이 노래는 <동해안 나정해수욕장> 부근에서 향토작가 "정귀문씨"가 작사하고
  "김부해씨"가 작곡한 노래이니, 이곳 <영광>과는 반대편인 <경주 감포 나정>의 노래라 할수 있습니다.
  <조미미>는 본명이 <조미자>여서 당시 최고 인기 가수였던 <이미자씨>와 이름이 같아 <조미미>라고 
  작곡가 <김부해씨>가 바꿔 주었다고 하죠.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출처 [농민일보] 
  만경창파를 원망하는 이 노래의 화자는 사랑하는 애인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우연이었던가? 이때 노래를 부른 조미미(본명 조미자)와 염문설이 났던 가수 남진은 
  바다 건너 베트남에 파월장병으로 가 있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베트남으로 날아가고 싶은 조미미의
  당시 속내를 엮은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노래의 배경지는 경북 경주시 감포읍 나정리.
  용왕으로 변한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이 지키고 있는 해변으로, 노래를 작사한 정귀문의 고향이다.
 
  그런 염문설이 공공연히 나돌았지만, '조미미씨'는 일본인 '야스다 에이키츠'와 결혼했죠.
  가슴아프게도 '조미미씨'는 2012년도에 간암으로 65세의 짧다면 짧은 생을 마치고 돌아 갔습니다.

  

    [해안데크길]                   
  <노을전시관>을 지나면 데크잔도가 이어지며 5분정도 진행하면...
  


    ['노을종각']           1:12         ['
  "노을종각"을 만나는데, 아랫쪽으로 돌아 올라 가는게 좋더군요.
  좌측으로 조금 내려 가면...



    [전망대]           1:13        
  전망을 할수 있는 전망쉼터가 마련되 있고
    


    ['노을종']           1:14       
  "노을종"
  소금장수 아들의 효심이 깃든 종이라고
 


    [해안데크길]               .
  다시 해안데크길을 20여분 진행하면...
  


    ['365계단']           1:36   
  "365계단"을 만납니다.
  


    ['칠산정'과 '365계단']      
  <365계단>은 <해안도로>에 있는 <칠산정>에서 바닷가 전망대까지 이어진 365개의 계단이랍니다.



    ['해안데크길']                 
  <해안대크 잔도>를 잠시 진행하여 뒤돌아 보면...
    


    [뒤돌아 본 '365계단']          1:39      
  <칠산정>에서 <전망대>까지의 전체 계단 규모가 보이고...
  6분 정도 더 진행하면...



    ['모감주나무' 군락지]            1ㅣ45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있습니다.
  <모감주나무 열매>는 "염주"로 사용하죠.
  <포항>이나 <완도>, <안면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군락지가 있습니다.



    ['도음소도' 조망]           1:47      
  이어서 <백수해안도로>가 <법성포>로 휘어 돌아 가는 입구에 도착하면
  "도음소도 道音所島"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도 닦는 소리가 들리는 곳'
  
  썰물 때에는 걸어서도 접근이 가능하다는 <법성포>의 방파제 역활을 하는 섬이라는데
  <백제>에 불교를 전하였다는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백제>에 들어올 때 처음으로
  불상을 내려놓은 곳이라고도 합니다
  


    ['금정산' 조망]         1:49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계마항 桂馬港"도 조망되는데, "말이 해변을 향해 달리는 형국"이랍니다.
  
  "영광 한빛원자력발전소"가 <계마항과 금정산> 뒤에 있습니다.
  서해안에 있는 유일한 원자력발전소로 590만kwh 전기를 생산하는 없어서는 않될 발전소입니다만
  발전소에서 나오는 온수로 이 부근 갯벌이 썩어 가고 있답니다.
  
  다음에 갈 <서해랑길 40코스>는 상식적으로 저 <계마항>을 돌아 해안으로 가야겠지만
  원자력발전소 때문에 접근 할수가 없어서 내륙을 통과하게 되는 것이라고 <파란문>은 추정합니다.
  


    ['법성포' 가는 길]           1:53   
  <도음소도>를 지나면 동쪽으로 방향을 틀고, <법성포>를 향하게 됩니다.
  


    ['포토존']            1:55          
  "코둘쉼터"
  <영광 법성포>의 관문인 "영광대교"가 멋지게 조망됩니다.
  




    ['대신항']                
  <코둘쉼터>에서 <대신항>으로 내려가 바닷가를 진행합니다.
  


    ['대초마을']           2:10        
  <대초마을 삼거리>를 지나 나즈막한 고개를 하나 넘어가면....
 


    ['영광대교' 전경]          2:19  

  "영광 靈光"이라는 지명은 "神靈스런 빛이 드리우는 고을"이라는 뜻이라는데
  자연의 영묘한 빛이 반짝이는 은혜로운 지역이란 뜻을 담고 있다고...
  인구는 50,000여명이랍니다.
  
 

    ['영광대교']           2:29    
  "영광대교 靈光大橋"
  2016년에 준공했다니 그리 오래되지 않은 다리이군요.
  현수교로 주탑과 주탑 간 거리인 주경간장이 320m에 달한다고 합니다.
  


    ['도을소도' 조망]                
  <영광대교> 위에서 지나온 <코둘쉼터>와 <도음소도>를 뒤돌아 보고
  


    ['금정산' 조망]                     
  <영광한빛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계마항-금정산> 방향도 조망하고
  


    ['마라난타사' 조망]                     .
  동쪽을 바라보면 잠시후 들릴 <백제불교최초전래지>가 보입니다.
 


    ['영광대교' 북단]                2:38

   [다리 통과]            2:40           .
  <영광대교> 북단에서 굴다리를 통과하여 5분여 데크길을 진행하면...
  
 

   ['목맥마을']            2:46~2:51          
  "목백마을 버스정류장"을 만나는데, 길찾기에 약간 주의해야 하더군요.




    [제방 통과]                      
  제방을 쌓아 간척지를 만든 제방도로 옆길을 5분여 진행하면...
  


   [삼거리]           3:00      
  제방도로가 끝나는 곳에 삼거리가 있으며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해안데크길]                
  해안데크길을 5분여 더 진행하면
  


   ['영광대교' 조망]           3:06     
  <영광대교>가 다른 각도로 조망되는데 저녁노을이 물들때 보면 장관이라고 하네요.
  

          
    ['백제불교최초도래지' 정문]         3:10       
  이어서 "백제최초불교전래지 정문"에 도착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불교의 절간 <일주문>하고는 완전 다른 느낌을 주는 정문입니다.
  불교의 발상지 "인도 불교"의 느낌이 확 다가 오는군요.



    [안내도]                  
 먼저 이 안내도를 숙지하고 들어 가야 뭐가 뭔지 알수 있더군요. 
    


    [광장]                  
  <삼국유사 제3권>에는 불교의 최초 전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1. 고구려는 <소수림왕> 때에 <순도 順道>가 전래하였고
  2. 신라에는 <21대 비처왕> 때에 <아도화상 我道和尙>이
  3. 백제에는 <15대 침류왕> 때에 <마라난타>가 전래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원문을 읽어 보면
  百濟本記云 第十五[僧傳云十四 誤]沈流王卽位甲申
  [東晋孝武帝太元九年] 胡僧摩羅難陁至自晉 迎置宮中禮敬
  「백제본기(百濟本記)」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다.
  “제15대 [『승전(僧傳)』에서는 14대라고 하였으나 잘못된 것이다.] 
   침류왕(沈流王)이 왕위에 오르던 갑신년(서기 384) [동진(東晋) 효무제(孝武帝) 태원(太元) 9년이다.] 
  서역의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陁)가 진(晉)나라에서 오자, 그를 맞이하여 궁궐에 두고 예로써 공경하였다
    
 

    ['마라난타사' 조망]

    ['사면대불상']               
  <백제>에 불교가 전해진 건 384년 <침류왕> 원년이랍니다.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중국 동진에서 해로를 통해 이곳 법성포에 발을 디디며 전파됐다고 합니다. 
  <마라난타>는 자칭 "석가의 제자"라고....
  "불법(佛法)을 들여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의미의 "法聖浦"는 바로 <마라난타>에서 유래 한다고
   
 

    ['만다라광장'과 해안데크광장]              
  <만다라 광장>과 <해안데크>가 <서해>와 <와탄천>이 만나는곳에 설치되 있고
  

 
    ['간다라유물관']              
  <대승불교>의 본고장인 <파키스탄 간다라>의 2~5세기 유물을 들여와 전시하게 됬다는데
  <파키스탄>이 <이슬람교>를 국교로 채택하는 바람에 팽 당한 뮤물을 들여 올수 있었다고....
  
  우리나라 전통불교에서는 볼수 없는 <나체 여인상>이 눈길을 끄는데....
  <파키스탄> 여인으로 볼륨이 상당합니다. ^*^


 
    ['마라난타의 길']              
  이해하기 쉽죠?
    


    ['탑원']                 
  "탑원 塔苑"
  고대 <파키스탄>의 <탁트히바히 사원>의 주탑원을 본뜬 <탑원>이라 합니다.
  


    ['탑원' 조망]            3:17           
  <서해랑길>은 <탑원> 우측으로 올라 가는데, <탑원> 뒤에서 <백제불교전래지>를 뒤돌아 봅니다.
  <구수산>과 <와탄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란걸 알수 있습니다.
    



    ['숲쟁이꽃동산']          3:22~3:26        
  "숲쟁이꽃동산"으로 올라 가면 쉼터가 있어 좀 쉬어 갑니다.
  


    ['법성진성'과 '법성포' 조망]                 
  <법성진성>과 함께 펼쳐지는 "법성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며 <숲쟁이꽃동산>을 통과합니다.




  ['숲쟁이꽃동산']              
  "영광9경 중 제7경-숲쟁이꽃동산"
  조선 <중종>때 축조된 <법성진성>의 연장으로 심은 느티나무 등이 100여년 이상 성장하여 
  이루어진 숲을 "숲쟁이('숲으로 된 성'을 의미)"라 한답니다.

  매년 <법성포 단오제>가 열리는 주무대로 <국가지정 명승2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바 있답니다. 
  


    ['숲쟁이꽃동산' 입구]          3:30     
  꽃동산 다운 <숲쟁이꽃동산> 정문으로 나가서 <법성진성>으로 갑니다.
  


    ['법성사' 입구]           3:34     
  <법성사> 입구를 지나면
  


    ['법성진성' 입구]            3:35       
  <법성진성> 입구를 만나는데
 


    [조형물]                   
  <법성포>를 상징하는 듯한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
  
 

    [갈림길]               
  이어서 갈림길을 만나는데, <서해랑길>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잡초가 무성한 길로 안내됩니다.
  우측 좋은 길로 갈수도 있으나 이 길이 지름길이어서 <서해랑길>로 지정 했나 봅니다.
  <서해랑길>을 다니는 답사자들이나 이용하는 '길 아닌 길'로 5분여 올라 가면...
  



  ['법성진성']            3:39~3:42            
  "법성진성 法聖鎭城" 최상단에 있는 정자에 도착합니다.
  내용은 안내문을 참고하고
  


    ['법성진 옛 지도']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됨★         
  옛 지도도 참고하고
  


    ['법성포' 조망]                   .
  정자에서 <법성포>를 조망합니다.
  <법성포>의 특징은 <서울 여의도> 같은 섬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대덕산 大德山 240.7m" 우측에 <원불교 성지>가 있고
  "와탄천 臥灘川"이 여울치며 누워 있는듯 아름다운 포구가 "神靈스런 빛고을-靈光"이라고 하는듯
 



    [성곽과 내림길]             .
  성곽을 따라 내려 가면...
  
 

    ['상동문']           3:49       
  <법성진성>의 동쪽 윗문인 <상 동문 上東門>으로 나가게 되고


 
 
    ['진성마을' 통과]                      
  <법성포 진성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통과해 내려 가면...
  



   ['홍대항 선정철비']            3:54     
  <조선 철종> 때에 세워진 "홍대항 선정철비"가 철로 만들어져 있고...
  


    ['선정비군']

    ['축성5백주년기념비']          
  여러 선정비가 있는 <진성마을>을 통과하는데 요놈들이 열열히 환영하더군요.
  


  ['진성마을 안내석']           3:57       
  <진성마을 안내석>에 쓰여진 글씨가 "정조대왕 어필"이라고 되 있습니다.
  <어필 御筆>은 <왕>이 직접 쓴 글이 아니라 "왕의 글씨체를 본떠 쓴 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안내석의 글은 "<정조대왕>의 글씨체를 본떠 쓴 글"이죠.
  

          
  ['법성항']           4:00    
  <법성포>의 섬으로 들어 가는 다리를 건너서
 




    ['법성포']                
  대부분의 건물들은 <조기-굴비>와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만, 너무 한산해서 이상하더군요.
    
 

    ['법성진성' 정상 조망]           4:07      
  포구로 나가서 지나온 <법성진성 정자>를 뒤돌아 보고
   
 

    ['법성항']              
  <대덕산> 앞에 펼쳐지는 <법성항>을 조망합니다.
  


    ['법성포']                  
  "조기와 굴비"
  <조기>를 해풍에 꼬득꼬득하게 말린 것을 "굴비 屈非"라고 하죠.
  
  "이자겸의 난"을 기억하십니까? 
  다른 건 몰라도 <이자겸>이라는 이름은 모두 분명히 기억할겁니다.
  <고려 예종>의 장인어른이었으니 자기 딸이 <예종>의 왕비가 되었고, 그들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인종>인데, <이자겸>은 다시 자신의 둘째, 셋째딸 두명을 <인종>과 결혼시키죠. 
  <인종>은 졸지에 자기 "이모" 두명과 한 방 쓰는 결혼생활을 하게 된거죠. 
  그러니까 <인종>의 '외할아버지'가 <이자겸>인데, 다시 <이자겸>의 딸인 '엄마의 여동생' '이모' 두명과
  결혼 했으니,  '외할아버지'가 또다시 "장인어른"도 되는거죠.
  요즘같으면 상상 할수도 없는 콩가루 집구석이지만, <이자겸>의 위세가 어떠 했는지 알수 있습니다.
  실제 왕은 <이자겸>이었는데도 완전히 왕이 되려고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이 <이자겸의 난>입니다..
  
  <인종>이 구금되어 왕권을 빼았겼지만 <척준경>이라는 <이자겸의 사돈>을 꼬셔 <이자겸>을 제압하고
  <인종>은 <이자겸>을 죽이고 샆었지만 자기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어른'이어서 죽이지는 못하고
  <이자겸>을 이곳 <영광 법성포>로 귀양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귀양 온 <이자겸>이 이곳 <법성포>에서 <굴비>를 맛보고 그 맛에 쉼취해서 <인종>에게 <굴비>를 
  진상했는데 <굴비>와 함께 글을 써 보냈습니다. "屈非"라고....
  이 말의 뜻은 "진상은 해도 절대 굴복하지는 않는다!"라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귀양 온 놈이 감히 <굴비 선물>을 글과 함께 보낼수 있었던 <이자겸>의 위상을 알수 있는 일화입니다.
  
  <굴비>의 어원은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재미있게 다가오는 어원이라고 생각됩니다.
    
    

    ['법겅버스정류장']             4:10     
  "법성버스정류장"에서 <서해랑길 39코스>를 마침니다.
  
  <서해랑길>은 <서해랑길>이라는 이름으로는 답사하지는 못했지만
  <인천둘레길><시흥늠내길><대부해솔길><화성황금해안길><평택섶길><태안해안길>
  <서천철새나그네길><군산구불길><변산마실길>등 대부분 <서해랑길>과 많이 겹치는 길을 
  이미 답사하였기에 <서해랑길 답사>는 더이상 계획이 아직 없음을 알려 드리며 답사기를 마침니다.



    ['섷서해랑 40코스 안내도']  

    [구글어스]                   
  오늘 걸은 거리는 저의 GPS 측정으로 16.2km였으며, 4시간 25분이 걸렸습니다.
  아름다운 해안경치와 여러 역사적 의미가 있는 <영광 법성포 여행>을 마침니다
  
    
                  "그리운 날에는 바람으로 살고 싶다" 
  
                             누군가가 그리운 날에는
                             바람으로 살고 싶다.

                             거칠것 없고
                             머무름 없는 바람으로
                             그저 자유롭게
                             허허로운 내 모습을 감추고
                             떠나는 바람으로 살고 싶다.

                             나를 위해 울어 줄
                             단 한사람에게도
                             마지막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떠날수 있는
                             바람으로 살고 싶다.
  
                                             - 박강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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