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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와 무인도 지킴이 '하루'에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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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魚飛山』 遊山記
         
               물고기를 타고 산을 넘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어비계곡]

     칠월 첫주 일요일에는 "휘산회 정기산행"에 따라 붙었습니다.
     주말이면 산에 다니기 바쁜 필자는 원래 다른 산행계획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산행은 산행이라기 보다는 먹고, 마시고, 노는 여름 피서 여행 같은 것이어서 
     이 기회에 보고싶었던 선후배님들을 만나 보고 싶어서 였습니다.
     특히 모처럼 "띠동갑 50회" 선배님들이 대거 참석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또한 몇몇 후배님들과 한잔 하고 싶어서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띠동갑 74회" 후배님들도 요즘 참여하는 인원이 많이 늘었고
     "86회 띠동갑"들까지 참여하고 있으니 이곳에 가면 정말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그런 "나의 과거와 미래"가 상존하는 그런 곳이니 어찌 지상낙원이라
     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어비계곡]

     오전 8시에 잠실 롯데월드 시계탑을 출발한 약250여명의 교우님들이 관광버스 6대에 분승해
     도착한 곳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어비계곡 魚飛溪谷"이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물고기가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산을 넘나든다는 魚飛山을 간단하게 오르고
     수많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1급수 맑은 물의 魚飛溪谷에서 휘문교우 선후배님들이
     친목 야유회를 연다고 하니 이곳으로 가지 않고 어디로 떠돌아 다니겠습니까?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어비계곡]

     산행에 앞서 준비운동과 산행대장의 산행안내를 간단히 들었습니다.
     한가지 하고픈 말은 250여명의 제법 많은 인원이고, 70대 나이의 선배님들부터
     30대 나이의 후배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운집해 있는 속에서 산행안내를 하는
     산행대장이 그다지 목청을 높이지 않고 이야기 하는데도 모두가 조용히  경청하는
     선후배님들의 학습태도와 질서의식은 역시 좋은 학교이구나 하는 느낌을 새삼 받았습니다
     다른 핵교들은 거의 대부분 스피커를 들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질러도 듣는둥 마는둥 하는데
     무지 비교되지 않습니까? 
     이 산행기는 다른 핵교 나오신 분들도 많이 보시기 때문에 그런 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쬐끔 자랑하는거 이해해 주실수 있죠?.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기념사진]

     저의 산행기를 계속 보신 분들은 "徽山會"가 어느 정도 위상을 가지고 있는
     산악회인지 아시지만....추가 설명 필요없이 이 사진을 보시면 대략 아시겠죠? ㅎㅎ
     전국의 수많은 고등학교가 부러워하는 "徽文高 졸업생들의 山岳會"입니다
     지금까지 177회 산행에 약16,000여명이 참여했다고하니 그 열기를 짐작 할수 있습니다
     매월 첫째주에 한번 하는 산행이니 開山한지가 어느듯 15년정도가 되는군요
     얼마나 단합이 잘되는지 아시겠죠? 이런 동문 산악회는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산행 개념도]

     오늘 산행은 결과부터 말씀들여 魚飛山 정상까지 1시간 15분 걸려 올랐습니다
     하산하는데 45분 걸렸으니 2시간짜리 산행이었고, 이미 언급했다시피 魚飛계곡에서
     '야유회'가 주목적인 그런 산행이었기에 무척 간단한 산행이었습니다.
     魚飛山을 산행 하려면,어비산(822m)-유명산(864m)-소구니산(800m)-중미산(834m)을 
     연계해서 돌아야 산행다운 산행이 됨으로 앞으로 오실 분들은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산행 들머리]

     10시 20분에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산행대장의 안내에서 먹고 마시는데 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올라 가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 주었습니다만, 모두  魚飛山을 오릅니다.
     또다시 魚飛山을 별도로 찾아 오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보시는 바와 같이 산행 들머리에서 부터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魚飛山 오르는 된비알]

     魚飛山의 이 등산코스는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가파른 코스였습니다.
     워밍업 할 겨를도 없이 들머리부터 된비알이니 체감적으로는 무척 힘드는 어려운
     등산코스로 느껴집니다. 

     
     [魚飛山 오르는 된비알]

     날씨는 안개가 많이 낀 맑은 날에, 기온은 높고 바람 한점없는 전형적인 무더운 
     여름 날씨였습니다. 계곡도 아닌 능선을 타고 오르는데도 바람 한점 없었으니 
     초보 산객들에게는 무척 힘든 산행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정상까지 오르지않은 교우들이 제법 많이 있는듯했습니다.
     즐겁기 위해 하는 등산인데 괴로우면 빨리 중단하는게 최상책이며 현명한 판단입니다

     
     [魚飛山 오르는 된비알]

     산행들머리에서 제1봉화대가 있는 725m봉우리까지가 가파른 된비알입니다
     바람 한점없어 더욱 땀을 많이 흘리게 한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약40분 정도 오릅니다

     
     [725m봉-제1봉화대]

     약 40분 정도 쉬지 않고 오르면 처음으로 봉우리가 하나 나타납니다.
     이 봉우리가 725m봉으로 제1봉화대가 있었다는 봉우리입니다.
     이 봉우리까지만 오르면 약간의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가니 한결 편해 집니다

     
     [725m봉-제1봉수대]

     "725m봉"에는 옛날 봉화대가 있었다는 설이 있는데 올라가 보니 흔적은 있는듯하고
     구체적인 시설은 확인할수 없었습니다.
     이 봉화대는 서울 경복궁과 같은 위도에 놓여져 있어 강원도 '정동진' 방향 지역과
     연락을 하던 봉화대였다라고 합니다.
     그런 내력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산객들은 휴식을 취하는 쉼터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725m봉-제1봉수대에서 바라 보는 "유명산"]

     "725m봉"에 올라 서니 건너편에 그 유명한 "유명산"이 안개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유명산"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유명산"이라는 지명에 있습니다. 
     원래 지형도상에는 "유명산"이라는 산이름이 없었다고 합니다.
     "유명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는 동기가 조금 의아스럽습니다.
     1973년 당시 '엠포르 산악회'라고 하는 산악회가 '국토자오선종주'를 하면서 
     그 산악회의 일행 중에 유일한 여자였던 '진유명'씨라고 있었던가 본데 그 여자의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 "유명산"이라는 이름의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유명산"이 유명하게 된것은 오로지 산 이름이 '유명산'이라서 유명해 진것이니
     사람이던 동물이던 사물이던 이름을 잘 지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에는 이곳 일대에서 "말을 길렀다"하여 '마유산'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니, 근간에 어떤 여자가 올랐다고 산이름을 그 여자 이름을 따 마음대로 
     지을 게 아니라, 역사적인 기록을 토대로 본명을 찾아 주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제1봉화대에서 제2봉화대 사잇길]

     725m봉에서 정상까지는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내리막과 오르막을 걷는
     매우 편한 능선길입니다. 이곳까지 오르지 못하신 분들은 이 사진을 보고
     "에구~ 올라 갈껄~, 조금만 더 갔으면 되는건데..."라고 아쉬워 하실겁니다. 

     
     [785m봉-제2봉화대]

     725m봉-제1봉화대에서 약 10분쯤 더 가면 두번째 봉우리인 "785m봉-제2봉화대"가 나옵니다
     이곳에서도 봉화대의 흔적을 발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단지 봉우리임으로 산객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다음 봉우리가 정상 봉우리이니, 어비산 등산코스에는 세개의 봉우리가 있는 셈입니다
     "725m봉-785m봉-829m정상"

     
     [魚飛山 정상으로 가는 길]

     魚飛山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아름드리 赤松이 눈길을 끌었으며, 이제서야 산행을 즐깁니다.
     청개구리는 시키는 일에 반대로만 한다는 이야기를 초딩때부터 들으며 살아 오셨죠?
     그 이야기가 최초로 나온 곳이 바로 이곳 "가평군 옥천면"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의 원본을 들려 드리며 산행을 하겠습니다.

     
     [魚飛山 정상으로 가는 길]

     고등학교 때에 "이괄의 난"이라고 배웠지요? 가방 끈이 짧다구요?
     듣긴 들은 듯한데 자세한 내용은 모르시겠다구요? 정답입니다.
     대부분 "이괄의 난"은 아는데 "이괄의 난"의 내용은 모르실겁니다. 
     벌어 먹고 살아 가는데 별로 도움도 주지 않으니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이겠지요? ㅎㅎ
     "이괄"이 이 동네 출신인듯합니다. 그러니 전래동화가 있겠지요.
     먼저 "이괄"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드리지요.
     "이괄"은 무지 똑똑해서 과거시험의 무과에 급제를 하고 정치계에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바로 조선 선조때입니다. 그리고 광해군 시절에는 높은 관직에 오르고
     잘 아시는 "인조반정"의 핵심 인물로서 성공한 쿠데타 세력의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쿠데타 세력 끼리의 자리 싸움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나니 기분이 더럽게 나빳겠죠? 몇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만
     "이괄"은 자신이 쿠데타로 만든 왕에게 다시 쿠데타를 일으키니 이것이 바로 "이괄의 난"입니다
     이 쿠데타는 성공을 합니다만, 성공한 다음날 바로 반격을 당해 실패로 끝나고 말지요.
     간단하게 말해 "이괄의 난"은 조선 인조시절에 실패한 쿠데타입니다.

     
     [魚飛山 정상으로 가는 길]

     쿠데타 역사는 勝者의 전유물로 남고 패자는 혹독하게 비하 당합니다.
     실패한 쿠데타 "이괄의 난"으로 "이괄'은 철저히 나쁜 놈으로 묘사 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 진 것이 "청개구리 이야기"이고 역사의 勝者가 패자를 역사적으로
     매장 시키게 됩니다. 역사의 勝者가 만들어 낸 "청개구리 이야기"를 들려 드림니다

     
     [魚飛山 정상으로 가는 길 - 돌무덤]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청개구리 이야기"는 당연히 여러분들도 아는 얘기인데
     이것이 "이괄"을 비하시키기 위해 역사의 勝者가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이괄은 어려서부터 말썽꾸러기여서 아버지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다 반대로 하였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죽게되자 이괄의 아버지는 또 이괄이 반대로 할 줄 알고,
     "내가 죽거든 바로 묻어다오."하고 죽었다.
     이괄의 아버지는 반은 용이고 반은 사람이라 거꾸로 묻으면 죽어서 용이 되어 승천할 것이라, 
     바로 묻어 달라고 하면 이괄이 거꾸로 묻어 줄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괄은
     "내가 여태까지는 무조건 반대로 하였지만, 아버지 마지막 길인데 내가 반대로 나갈수가 있느냐?"
     하고, 아버지를 부탁대로 바로 묻어 드렸다.
     이렇게 해서 이괄의 아버지는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뒷날 "이괄의 난"이 실패하였다

      이 이야기는 앞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경기도 가평군 옥천면 옥천리'의 전래동화입니다.

     
     [魚飛山 정상]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합니다
     1시간 15분이 걸려 "魚飛山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특별히 정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 평평한 정상이었습니다.

               
               [魚飛山 정상 이정표]

                "魚飛山 정상'에는 이정표가 서 있었으며, 
                '유명산"으로 가는 갈림길이기도 했습니다

     
     [魚飛山 정상]

     魚飛山 정상에는 물고기는 보이지 않고 우리 교우님들이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은빛 물고기는 우리 교우님들이 날아 오른 후 환생한듯 보입니다.
     魚飛山 정상에서 약50분 정도 머무르며 주로 후배님들이 따라 주는 차가운 막걸리로
     魚飛山 등정을 만끽했습니다

     
     [魚飛山 정상석]

     魚飛山은 한자만 봐도 알수 있드시 '물고기가 날라 다닌 산"이라는 뜻입니다
     魚飛山은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강과 남한강 사이에 있는 산인데 남한강에 홍수가 나면 남한강의 물고기들이
     이곳의 "魚飛계곡"을 따라 올라 "魚飛山'을 넘어 북한강으로 건너 가고, 북한강에 홍수가 나면
     반대로 이곳을 날아 남한강으로 건너 간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디서 확인한 설이냐구요? 제가 쬐끔 상상의 날개를 펴 봤습니다. 따지지 맙시다~

               
               [魚飛山 정상석]

               829m높이의 산이면 제법 높은 산입니다
               그런데 1시간 15분만에 올라 왔다면, 이 산은 뾰쪽한 산이라  산행거리는 짧고,
               경사는 매우 가파르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
               산객들이 싫어하는 등산코스가 이런 코스입니다.
               魚飛山은 山보다 계곡이 좋더군요.

     
     [魚飛山 정상에서 총동창회장님과...]

     100년이 넘는 역사의 휘문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님과 단둘이 사진촬영을 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수 있는 그런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휘문고 총동창회장 하기가 보통 인물로는 어림도 없는 자리이기에 그 위엄을 생각하면
     왠만한 후배는 함께 사진 박기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함께 사진을 박았으니 저도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걸 강조 하고싶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교우회를 위해서 아주 말뚝 박고 계속 회장직을 수행해 주시면 어떨지요
     농담입니다. 언제나 친근하게 대해 주시는 회장님께 감사 드림니다

     
     [魚飛山 정상 근처 전망대에서 바라 본 "유명산"]

     하산하는 길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 보는 "유명산"이 안개 속에서 신비한 모습을
     살짝 보여 줍니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은 안개로 "용문산"을 촬영하지
     못한 것이었고, 소구니산(800m),중미산(834m)을 또한 촬영하지 못한 것입니다.
     산행에 일가견을 가지신 분들은 魚飛山에 올때에 "魚飛山(826m)-유명산(864m)-
     소구니산(800m)-중미산(834m)을 연계해서 종주 하시면 산행의 기쁨이 배가된다고
     선답자들이 알려 주더군요. 약 6시간 정도 소요 된다고 하니 그렇게 긴 코스가 아니랍니다

     
     [갈림길]

     어비산장 들머리에서 올라 오던 길로 내려 가다 삼거리를 만나는데
     친절한 후배 산행 리더들이 길 안내를 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곳은 안내해 주지 않으면 바로 알바를 합니다.
     좌측으로 내려 갔습니다.

  
     [늘푸른쉼터로 하산하는 길]

     '늘푸른쉼터"로 하산하는 코스는 올라 올 때의 경사도를 유지 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가파랏습니다.

     
     [늘푸른 쉼터]

     정상에서 약45분쯤 걸려 하산하니 "늘푸른쉼터"가 바로 나왔습니다.

     
     [뒷풀이 - 늘푸른 쉼터]

     "늘푸른쉼터"가 있는 "魚飛계곡"에는 야영을 할수 있는 시설들이 많이 있었고,
     벌써부터 여름 휴가를 온 가족들이 방갈로를 모두 차지하여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뒷풀이 - 늘푸른 쉼터]

     260여명의 교우들을 위한 야유회 장소입니다.
     집행부에서 미리미리 준비를 잘 해서 아무른 불편함없이 바로 먹고 마시고 놀수 있었습니다

     
     [뒷풀이 - 늘푸른 쉼터]

     전문 출장 부페업을 하는 교우가 준비한 점심식사가 부페식으로 차려져 있고
     특히 무제한으로 공급되는 L.A갈비가 지글지글 연기를 내며 굽혀지고 있습니다.
     "魚飛계곡"을 오염시키는 갈비 냄새....L.A.갈비 무지 많이 먹었습니다.

     
     [뒷풀이 - 늘푸른 쉼터]

     각 기수별로 때론 선후배가 합석하여 따뜻한 정을 나누었습니다.
     저를 알아봐 주시는 선배님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인사 올림니다. 내내 건강하소서~~

 
     [아직도 건재 하다구...]

     아직도 청춘이시라구 힘겨루기를 하시는 선배님들도 있었습니다
     승패를 떠나 아직도 질수 없다는 선배님들이나, 이제는 않된다는 후배님들의 힘겨루기는
     보는 이들에게 훈훈한 즐거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사진으로 보셔도 왠지 즐겁지 않습니까?

     
     [魚飛계곡에서 휴식]

     魚飛계곡에서 260여명이 부페식으로 점심식사와 반주를 하고 魚飛계곡의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추억의 학창시절 애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늘푸른 쉼터]

     늘푸른쉼터에서의 야유회는 즐거웠습니다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집행부에 거듭 감사를 드림니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띠동갑 50회 선배님"들이었습니다.
     오늘 소풍 가는 기분으로 참석하셨다고 하시며 "50회 동창회"를 자랑하셨습니다.
     6.25전쟁중에 미아리고개에서 건물도 아닌 천막 학교에서 공부한 기수 중에 한 기수이랍니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SKY대학에 제일 많이 들어 간 기수이고, 250여명이 졸업했는데
     현재 150여명이 연락이 되어 활발한 동창회 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국회의원이 2명, 육군 대장이 한명, 경찰청장 한명, 재벌 경영인 6명을 배출했다고
     저에게 자랑하셨습니다. 정말 자랑해도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50회 동창회"의 자랑은 뭐니뭐니해도 "70세 생신 축하연"을 공동으로 개최하였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물고기가 하늘을 날라 다닌다는 魚飛山을 遊山하면서
     저의 과거와 미래를 볼수 있었습니다.
     후배님들은 저의 과거의 모습이고
     선배님들은 저의 미래의 모습입니다.
     국적은 바꿀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수 없는 것이지요
     끈질긴 인연, 도저히 땔수 없는 이 인연은 영원 할것입니다.
     훈훈한 정이 魚飛山과 魚飛계곡을 가득 채워 넘쳐 하늘로 날라 가는데
     나의 과거와 미래를 마음 속에 안고 아쉬움을 남기며 7월 첫주 산행을 마감했습니다
     '띠동갑' 4代가 함께한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Ich liebe d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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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으로 사랑을 심다
         
            간성의 김영수를 찾아서
     
     [영동고속도로 주문진 구간]
          산 넘고
          물 건너
          저 세월을 넘어
          동해 바다와 태백준령을  안고 
          음악에 사랑을 담아 살아 가고 있는 김영수를 찾아
          강원도 고성으로 설레이는 발길을 옮겼습니다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시외버스터미날]
     휘문총교우회 회보에 62회 대표 교우들을 자랑하라는 부탁을 받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62회도 다른 기수들 못지않게 자랑할만한 교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역량을 발휘하며 명성을 날리고 있는 동창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알려진 동창생들보다 어느 시골에서 음악으로 사랑을 심으며 외로운
     이웃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진정으로 사람 냄새 풍기는 동창생을 소개해 드리기 위해
     태백준령을 넘어 달려 갔습니다.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읍내]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에 살고 있는 '휘문고등학교 62회 김영수'를 찾아 그의 사는 모습을
     우리 모두에게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김영수는 학창시절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불었습니다.
     서강대 화학과를 들어가고 포항제철에 입사하여 직장생활도 하였답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사업을 하다 모두 접고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에 빈털털이로 동기동창 친구인 함규상이와 
     태백준령을 무작정 넘어 우리나라의 동북쪽 끝에 있는 고성으로 왔답니다.
     
     [대영하우징]
     인문계 고등학교인 휘문을 나온 사람이 20여년전 타향인 이곳 강원도 고성땅에서 할수 있는 
     일이 없었는데 '쇳덩어리와 물장사'가 사업성이 있다는 옛얘기를 떠올리며 쇳덩어리를 짜르고 
     붙이는 공부를 하였답니다. 처자식은 외갓집에 맡기고 홀홀 단신으로 살기 위한 몸부림을 
     쳤던것이지요. 그리고 외로울 때엔 바닷가에 나가 학창시절부터 취미로 연주하던 트럼펫을 불며 
     삶의 애환을 달래곤 했답니다.
     
     [대영하우징]
     현재는 고성지역에서는 제일 알아주는 철공소가 되었답니다. 억척스럽게 일궈낸 결과물입니다.
     고성에서 가장 큰 회사가 고성군청이라고 하니 척박한 사업 환경이 어떤지 가히 짐작 할수 있습니다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 인문계 고등학교 출신이 "아기 만드는 일 이외에는 무었이던 만들어 낸다"고
     자신감 넘치는 자랑을 하더군요. 이 지역에선 그래도 사업으로도 올라 섯다는 것입니다
     
     [김영수 상봉]
     햇볕에 그을린 검은 얼굴빛이 그가 얼마나 억척스럽게 살아 가고 있는지 느끼게 했습니다.
     까까머리 고삐리였던 그도 세월의 공격을 많이 받아 절대 늙지 않을듯하던 모습이 이젠
     점점 빛을 잃어 가는듯 합니다. 하지만 밝은 웃음에서 베어 나오는 포근함은 어진 성군 같았습니다
     
     [고성군 장애인 지원센타]
     "사업은 취미, 본업은 밴드"라고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김영수는 타향땅 고성에서 사업보다도
     지역사회를 위해 열정을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고교시절 밴드부였고 군복무시절엔 수도경비사령부
     군악대 출신인 그가 이곳 지역사회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은 음악을 보급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몇몇 음악인들과 밴드를 만들어 양로원으로 위문 공연을 많이 해 오다가, 조금 더 영역을 넓혀
     고성군청과 협의하여 고성군 장애인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무료 강습소를 이곳에 열게되었답니다
     
     [고성군 "한소리음악동아리"]
     철구조물 공작가인 본인 스스로가 고성군 장애인 지원센타 옆에 건물을 지어 "한소리음악동아리"라는
     음악무료강습소를 열었답니다. 서울 같으면 구청에 문화원이 있어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여
     지역사회 발전에 노력을 경주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최북단 강원도 고성에는 이곳이 '문화원' 역활을 
     한다고 하니 지역차를 실감할수 있었습니다
               
               ["한소리음악동아리"]
               휘문 출신 다웁게 이름도 잘 지었습니다. "한소리음악동아리"
               여러 소리를 하나로 조화시켜 새로운 소리를 탄생 시키는 오케스트라 같은
               "한소리음악동아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꿈은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김영수]
     얼마전 6월23일에는 "KBS 아름다운 TV"라는 프로에 김영수가 등장합니다.
     프로그램 내용을 간략히 알려 드리면, 김영수에게서 노래를 배워 "전국장애인노래자랑"에서
     대상을 받은 최여름(23)이라는 1급 시각장애인이 선생님에게 감사의 밥상을 차려 드리는
     흐뭇한 내용이었습니다.
     
     ["한소리음악동아리" 실내]
     어느날 '한소리음악동아리'를 찾아 온 최여름양을 지도하기 시작하여, "KBS 전국장애인노래자랑"에
     나가기 까지 열과 성으로 지도를 하였답니다.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연습을 하고 있던 어느날 
     우리 동창 장민기가 들렸다가 이 아가씨의 노래를 듣고 감탄하며 대회에 나갈 때 사입으라고 의상비를 
     찬조하기도 했답니다. 이런 응원에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연습을 할수 있었다고하며,
     찬조해준 그 옷을 입고 스승의 마음을 졸이게하며 참가한 최여름양이 대상을 받게 되는것입니다.
     얼마나 감개무량했겠습니까. '말아톤'이란 영화에서 지체장애인이 42.195km를 완주 한 것보다
     더욱 값진 것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전국의 각지역 방송국의 예심을 거쳐 올라온 300여명 중에서 대상이니 대단하다 아니할수 없습니다
                    
                    [자랑스런 휘문인 62회 김영수]
                    고민 끝에 조그만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니 더욱 많은 사랑을 베푸시길....
     
     [트럼펫 연주]
     자신을 찾아준 우리를 위해 즉석에서 트럼펫 연주를 해 주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 나서 이 친구가 연주하는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꿈결같았습니다
     물론 처음입니다.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는 사랑으로 엉어리 져 방울방울
     하늘로 날라 가는듯했습니다
     
     [트럼펫 연주]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추억의 팝송을 꺼리김없이 시원스럽게 불어주는 이 친구
     카네기 홀에서 연주하는 세계적인 그 어느 누구보다 더 자랑스러웠습니다
     
     [트럼펫 연주]
     고성군청에서 지원해준 여러 음악장비들이 후학 양성에 제법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아직도 부족함이 많다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어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바다추억 횟집]
     
     [바다추억 횟집]
     지금도 허름한 "한소리음악동아리"에선 80여명이 김영수선생의 지도하에 음악공부를 하고 있답니다
     사업보다 음악을 무료로 가르치는게 본업이라고 할 정도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있는 이 친구가
     휘문고등학교 62회를 대표 할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되어 
     많은 훌륭한 동창들을 제치고 가장 자랑하고 싶은 휘문62회로 선정되었으니 많이 축하해 주십시요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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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지맥2구간』 遊山記 광치령-개골령-907m봉 군부대-두무동고개 [산행 개념도] [광치령 터널] 2009년 6월 28일(일)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도솔지맥2구간"의 산행 들머리인 "광치령 廣峙嶺"에 도착했습니다 [광치령 휴게소] 오늘 늦게 도착하게 된 이유는 양재역 서초구청에서 출발도 늦었지만 뒤풀이용 음식물들을 사느라고 더 많이 늦었습니다. 그리고 관광버스 운전기사가 가는 길을 잘 몰라 빙빙 돌아 가느라 많이 늦었는데 또한 "광치령 廣峙嶺" 터널 위 마루금까지 버스가 올라 가는 길을 찾다가 못찾아 추가로 더 늦었습니다. [진갑 Celemony] '서울백두클럽' 회원님 중에 "산깜님"이 오늘 진갑을 맞아 간단한 "진갑잔치"를 조촐하게나마 마음으로 열었습니다. 스스로를 산에 대해 깜깜하다고 "산깜"이라고 아이디를 지으셨다는 "산깜님'이 진갑을 맞았지만 앞으로도 더욱 즐겁고 안전한 산행을 하시기를 기원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깜깜한 산도 잘 다니신다고 "산깜"이라 지은게 아닌지 산을 잘 타십니다 [축가와 답사] "서울백두클럽"의 회원님들의 나이 분포도는 다양하여 우리들의 과거의 모습과 미래의 모습을 현존하는 회원님들로부터 볼수있습니다. 우리의 과거와 미래가 상존하는 "서울백두클럽'은 이렇게 따뜻한 情으로 뭉쳐 山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삶도 사랑합니다. 조그만 케익이 우리가 차린 소박한 '진갑상'의 모두 이지만 함께하지 못한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까지 흐뭇함이 느껴지실겁니다. [광치터널 위로 오르는 길] 11시 15분 산행을 바로 시작합니다 바로 휴게소 뒷편으로 가파른 길없는 길을 치고 오릅니다. 광치령 터널 위 마루금으로 오르는 길은 '옛길'로 오르면 많이 돌아야하기 때문에 휴게소 뒷쪽으로 뚜렸한 길이 없는 벼랑을 기어 올라야 합니다 [광치터널 위로 오르는 길] 산가태가 난 비탈길로 치고 오르는데 落石을 조심해야합니다. [광치터널 위로 오르는 길] 휴게소에서 광치령 터널 위로 오르는 길이 오늘 산행에서 가장 가파른 된비알입니다 약 25분 정도 숨을 몰아 쉬며 '광치령 옛길'로 오르면 오늘 산행의 고생은 끝입니다 [광치령 옛길] 25분 정도 벼랑을 기어 오르면 "광치령 옛길"이 나옵니다. 사진 가운데 보이는 이동통신탑이 있는 광치령 터널 위로 갑니다 [광치령 위 "도솔지맥 마루금"] 이동통신탑 우측 '광치터널 위'로 "도솔지맥2구간 마루금"이 열립니다. 11시 35분 '광치터널' 위에서 도솔지맥 마루금을 밟기 시작합니다 [광치터널 위 첫번째 헬기장] 이동통신탑에서 조금 가면 광치터널 위에 헬기장이 있으며, 앞으로 가야할 산봉우리들이 나타납니다. [林道 - 마루금] '도솔지맥2구간'은 거의 대부분이 "林道'로 걷기에 매우 편했습니다. 그리고 길찾기도 매우 쉬워 알바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길찾기는 이곳 앞에 보이는 삼거리에서 직진하는 것과 세번째 헬기장이 있는 909m봉과 "두무동고개'로 내려 가는 낭떨어지만 유의하면 됩니다. [두번째 헬기장] 광치령 첫번째 헬기장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두번째 헬기장이 나옵니다 산행 시작 한시간이 넘으니 두번째 헬기장이 있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909m봉 아래 갈림길 - 세번째 헬기장] 지도상에 '개골령'이 있는데 찾을 수가 없었고 두번째 헬기장에서 몇km 정도 전진하니 세번째 헬기장이 나왔습니다. 이곳이 갈림길인데 유의해야 하는 곳입니다. [909m봉 아래 갈림길 - 세번째 헬기장에서 뒤 돌아 본 909m봉] 유의 해야할 곳이라 온 길을 뒤돌아 보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좌측에서 왔는데,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헬기장이 있는 곳으로 와야합니다. 뒤에 보이는 산봉우리가 "909m봉"입니다. 여기까지가 "林道"이고, 앞으로는 희미한 마루금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907m봉 군부대 가는 길] 헬기장에서 직진하여 숲속으로 들어 가야합니다. 이제부터는 산길을 걸어야 합니다. [907m봉 군부대 가는 길] 세번째 헬기장에서 907m봉 군부대까지 이런 산길입니다. 구경거리 하나 없는 '도솔지맥2구간'은 임도와 이런 숲길과 임도의 연속이었습니다. 마루금을 따라 걷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특이한 것이 없었습니다 [907m봉 군부대 가는 길] 숲에 포위되어 외부를 조망할수 있는 그런 곳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간혹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보일 뿐.... [점심식사] 12시 45분쯤 되니 회원님들이 점심 식사를 하려고 자리를 잡습니다 [점심식사] 식사시간은 언제나 즐겁지요 오늘 "도솔지맥2구간"을 종주하는 산객은 우리 이외에는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고목] [907m봉 군부대 가는 길] 909m봉 헬기장에서 군부대가 있는 907m봉까지만 이런 숲속길입니다. 그리고 거리도 짧습니다. [907m봉 군부대] 외부 세계를 조망할수없는 갑갑한 숲속을 헤메이다 갑자기 하늘이 보이니 바로 철조망이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군부대였습니다. [907m봉 군부대] 철조망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한 군부대 안으로 개구멍 같은 비좁은 틈새로 기어 들어 갔습니다. 사실 이곳으로 들어 가면 안되는 곳이었고, 이런 불법행위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철조망이 앞을 가로 막으면 철조망 옆으로 희미한 우회하는 길이 있습니다. 이 우회 길을 따라 나가면 군부대 정문이니 앞으로 가실 분들은 우회로를 이용하시기 바람니다. [군부대 철조망] 겁도 없는 '서울백두클럽'은 군부대 안으로 무단 침입했습니다 무단 침입하여 온 길을 뒤돌아 봤습니다. 앞에 보이는 산봉우리들을 지나 이곳으로 왔는데 앞의 철조망 아랫쪽으로 우회길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아직도 철조망 밑으로 기어 들어 오는 회원이 있습니다. ㅎㅎ [907m봉 군부대] 군부대 안으로 들어 오니 이제는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모두 모여 지도를 펴고 길을 찾았는데 부대 안을 통과하지 않고는 갈수가 없더군요. 명성지맥2구간에서 탱크 사격 훈련장 안으로 들어가 마루금을 따라 가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이런건 따라 하지 마세요~~ㅎㅎ [907m봉 군부대] 각종 군시설들이 있는데 군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907m봉 군부대] 차라리 군인이 나오면 길이라도 물어보고 사정을 이야기하며 양해를 구하겠는데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아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으나, 후미에서 늦게 오는 회원들을 함께 데리고 이곳을 탈출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기다리며 마루금을 찾았습니다 [907m봉 군부대] 지도를 펴고 독도를 하니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통과해야 하더군요. "우리나라 군대는 '우리'를 위해 존재 하는 것이니 무단 침입을 이해해 주리라"ㅎㅎ [907m봉 군부대] 앞 봉우리를 따라 내려 가니 군부대 안이었고 길은 양호하게 열려 있습니다 [907m봉 군부대] 간 큰 회원님들은 누굴 믿고 군부대 안을 유유히 걸어 내려 가시나? ㅋㅋ 하여간 대책은 없고 무작정 내려 갔습니다. [907m봉 군부대에서 바라 본 "양구"] 처음으로 "양구읍내"가 보입니다. 양구와 화천에서 군생활을 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양구와 화천은 "하늘 천평, 땅 천평"이라고 하더군요. 그 이유를 물었더니, "산이 높아 부대가 천평이면 하늘도 그 많큼 천평"밖에 보이지 않는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하더군요. 주변 산들이 얼마나 높은지를 간접적으로 말해 줍니다. [907m봉 군부대] 도솔지맥2구간 마루금은 이 군사도로가 "두무동고개"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산행이 아니라 트렉킹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군부대 철조망을 밑으로 기어 들어오긴 왔는데, 나갈수가 없었습니다. 정문이 잠겨있고 주변으로는 탈출구가 전혀 없었습니다. 에구~ [907m봉 군부대 정문 통과] 다행이 왕년에 군수사기관에서 직업군인생활을 하신 "홍목선생님"이 군부대 상황실로 올라가더니 열쇠를 든 군인을 한명 데리고 왔습니다. 우왝? ㅎㅎ 그리고 군부대 정문은 열렸고 우리는 탈출할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했길래 문을 열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홍목선생이 "내가 누구냐?"하고 웃으시더군요. ㅎㅎ 덕분에 군부대 탈출 아까 군부대 철조망에서 우회하면 이 정문 앞으로 올수 있으니 군부대를 무단 침입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두무동고개로 하산] 군부대에서 '두무동고개'까지는 군사도로였습니다. [두무동고개로 하산하는 중에 휴식] 군사도로도 매우 길어 다리가 아파 도로 위에 주저 앉아 쉬기도 하며 내려왔습니다 [두무동고개로 하산] [林道 갈림길 - 두무동고개 가는 마루금] 군사도로를 따라 1시간 20분 정도 내려 오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우로 굽은 도로를 만나는데 이곳이 중요합니다. 1. 군사도로를 따라 내려 가도 "두무동 고개"로 갈수 있습니다. 단지 상당히 돌아 내려가 다시 두무동 고개로 올라 와야합니다. 2. 여기서 직진하면 바로 "두무동 고개"입니다. 약 100m정도 단지 "두무동 고개" 절개지 급경사 낭떨어지를 내려 가야 함으로 길이 나쁨니다 정식 마루금은 여기서 직진 하는 것입니다. [두무동고개 가는 마루금] 직진하여 군사도로를 벗어 나면 바로 무덤이 있는 '두무동 고개' 가는 길이 나옵니다 [두무동 고개 절개지 급경사] 급경사 절개지를 내려 갑니다. 위험하니 조심해야 합니다. [두무동 고개] 아래로 "두무동 고개"가 보이며 우리 관광버스가 보입니다. 여기서부터 낭떨어지이니 조심해야하며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 가야합니다 [두무동 고개 절개지 급경사] 회장님이 엉덩이로 낭떨어지를 내려 옵니다. ㅎㅎ [두무동 고개] 드디어 "두무동 고개"에 도착 했습니다. 4시 25분에 도착했으니 광치령에서 5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원래 계획은 여기서 다시 "양구터널"이 있는 "작은 도라지 고개"까지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구간이 다소 짧은 구간이라 여기서 2구간을 끊고, 나머지를 다음 3구간에 보태기로 하며.....2구간 산행을 마쳤습니다 [두무동 고개] "두무동 고개"에는 멋진 표지석이 "斗武里"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도솔지맥3구간"은 이 표지석 뒤로 올라 갑니다. [뒷풀이] 斗武고개 위에서 '서울백두클럽'의 자랑, 뒷풀이가 시작됬습니다 삼겹살이 지글거리고, 갓 익은 김치가 두무동고개를 오염시킴니다. 이 맛은 안먹어 본 사람들은 말을 하지 마세요~ ['산깜'님과 '평원'님] 오늘 진갑을 맞으신 "산깜님"과 새로이 서울백두클럽에 합류하신 "평원님'이 한껏 업그레이드 된 기분으로 한잔 했습니다. 다시 한번 '산깜님'의 진갑을 축하 드리며, 알고 봤더니 산을 엄청 사랑하시는 "평원님"도 계속 함께 할수있기를 기대합니다 "건배~~!!" [뒷풀이] 오늘 산행으로 뺀 살을 도로 갖다 붙여야겠다고 삼겹살을 싹쓸이하시는 女山客들 [뒷풀이] 언제나 이 순간만 같아라~~!!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시는 횐님들 새로운 얼굴들도 보입니다. 앞으로도 늘 함께 하시길... [국수역] 돌아 오는 길이 너무 막혀 국수역에서 내려 중앙선 전철로 갈아 타고 집으로 돌아 올수 있었습니다. "도솔지맥2구간"은 경치나 구경거리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행기도 부실합니다 그러나 다음 3구간부터는 아마도 멋진 풍경이 펼쳐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좌측으로는 "소양호", 우측으로는 "파로호"가 펼쳐질테니까요. 그리고 춘천, 홍천, 인제, 양구가 모두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 "사명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3구간에서 환한 얼굴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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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기산』 遊山記
         
         간이 주차장-헬기장-갈기산 정상-말갈기능선-558m봉-
         545m봉-차갑고개-소골 계곡-간이 주차장

     
     [산행 개념도]
     충청북도 영동군 양현면 호탄리에 있으며, 충청남도 금산군의 경계에 있는
     "갈기산"
     미리 말씀 드리자면, "갈기산" 산행기는 재미 없을 것입니다
     역사적 얘깃거리도 없고, 경치가 수려해 볼거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시고 산행기를 접하시기 바람니다. ㅎㅎ
     
     [대전역]
     2009년 6월 21일(일) 오전 8시 15분
     금년들어 두번째로 대전역에 내렸습니다.
     전날까지 많은 비가 쏟아졌고, 남쪽에는 장마가 시작 된다는 날.
     하지만 막 쏟아질듯 했던 비는 내리지 않았고, 
     푹푹 찌는 삼복 더위처럼 숨쉬기도 어려운 날씨였는데
     때맞춰 일년중에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인 날이었습니다
     
     [대전역 광장]
     대전역 광장으로 나와 바로 택시를 타고 "충남대 의과대학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정확히 8시 30분에 도착하여  초대해 주신 鼎巖교수님의 환영을 받으며
     일행들과 함께 "갈기산"으로 향하는 승용차를 탓습니다
     
     ['금산' 톨게이트]
     대전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남대전 톨게이트"를 들어 서 대진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금산 톨게이트"에 도착했습니다
     "금산 톨게이트" 뒤로 오늘 오르려고 하는 "갈기산"이 오른쪽 끝에 보입니다
     대전지역에서 山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山戰水戰 다 겪으신 素山선생님이 함께 동행하셔서
     이 한장의 사진을 건질수 있었습니다
     "갈기산"은 충북 영동군에 있지만, 영동읍에서 갈기산으로 가는 것보다, 
     금산에서 가는 게 보시는 바와 같이  훨씬 가깝고, 
     그러므로 대전에서 금산I.C.를 통해 가는게 시간이 덜 걸린다고하니 위치를 짐작할수 있겠습니까?
     
     [자지산]
     "금산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잠깐 동쪽 영동방향으로 진행하니 말로만 듣던 "자지산"이
     좌측에 보였습니다.
     발음이 좀 그렇지만 무척 아름다운 말이라고 素山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자지산"紫芝山으로 "자줏빛 영지버섯"을 의미하는 산이니
     인류가 그 존재의 의미를 찾게 해준 '거시기'로 생각하면 무식하다는 말을 들으니
     꼭 알아 두어야 할 산이름입니다. ㅎㅎ
     
     [갈기산 간이 주차장 - 산행 들머리]
     8시 40분에 충남대 의대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이곳 갈기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9시 20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40분 걸렸군요.
     
     [갈기산 간이 주차장 - 산행 들머리]
     "갈기산" 입구는 이렇게 간이 주차장만이 있는  조그만 곳이었으며,
     그 흔해빠진 가게 하나 없는 황량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아시겠지만 단체 등산객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뒤로 "갈기산 정상"이 보입니다.
     
     [기념사진]
     오늘 산행은 충남대 의대 鼎巖 김광진교수님이 주선하였으며,
     대구의 "올뫼 산악회" 회원님들과 대전에 사시는 鼎巖교수님 지인들이 함께 했습니다
     저는 이런 뜻깊은 자리에 초대받아 고맙기 그지 없었구요
     그래서 이른 새벽부터 전철을 타고 기차를 타고 택시를 타고...ㅎㅎ
     
     [산행 들머리]
     "산행 들머리"에서 素山선생님의 갈기산 산행 정보와 유의사항을 듣고 출발합니다
     9시 55분 출발
  
     [된비알]
     산행 들머리로 들어 서자마자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날씨는 후덥지근하게...왜 기분 더럽게 나쁜 그런 날씨 있죠
     땅에서는 습기와 함께 地熱이 올라 오고, 바람 한점 없고......
     거기에 처음부터 워밍업 할 겨를도 없이 급경사 오르막...... 휴~
     악조건은 모두 갖추고 갈기산을 오릅니다
     
     [안자봉과 월영산]
     조금 오르니 우측으로 시야가 열림니다.
     그리고 "월영산"이 바로 조망됩니다.
     저는 갈기산을 오르고 '성인봉을 지나, 저 "月迎山"을 오르고 원점 회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산행이 정암교수님을 아시는 분들의 친선산행이라 혼자 별도 행동을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되어 함께 생사고락을 하기로 했습니다. ㅎㅎ
     "月迎山"은 다음 기회를 위해 남겨 두고...
     "月迎山" 앞 봉우리가 "안자봉"이며, "안자봉"에서  "月迎山 정상"까지는 거리가 제법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된비알]
     다시 급경사 오르막을 오릅니다.
     처음으로 하늘이 보이는 봉우리가 나오는데.....
     
     [헬기장]
     산행들머리에서 20분 정도 오르니 처음으로 "헬기장"이 나왔습니다.
     일반적으로 30여분 올라야 이런 쉼터가 나오는데 '갈기산 헬기장'은
     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일찍 나와 주는가 봅니다
     헬기장에서는 남쪽과 서쪽방향이 조망되었는데...
     앞에 보이는 산봉우리가 "갈기산 정상"입니다.
     그러니 "갈기산"까지만 오르는 건 참 쉽지~요~ㅇㅣㅇ
     
     [헬기장에서 바라 본 '성인봉'과 '자사봉']
     헬기장에서 남서쪽으로 보이는 "聖人峰"과 "자사봉입니다.
     갈기산은 말발굽 모양으로 원점회귀 산행을 할수 있는 좋은 산입니다.
     제가 지금 올라 온 길로 올라와 '갈기산'-말갈기 능선'-'558m봉'-'545m봉'-
     '차갑고개'-'성인봉'-'자사봉'-'안자봉'-'월영산'-'안자봉'-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면 적당한 산행코스라고 생각됩니다.
     이 코스를 돌면 약 5시간 정도 걸리겠더군요
     
     [헬기장에서 바라 본 '안자봉'과 '월영산']
     서쪽으로는 "월영산"이 "안자봉"과 포개져 하나로 보입니다
     
     [첫번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금강']
     헬기장을 지나 능선길을 따라 조금 가니 좌측 동쪽으로 그 유명한 "금강"이
     나무가지 사이로 엷은 미소를 띄며 땀이 흐르는 산객들을 반깁니다
  
     [두번째 전망대 오르는 길]
     전망대와 전망대 사이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두번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금강"과  "호탄리"]
     조금 더 오르면 좌측으로 전망대가 또 나오며 "금강"이 다른 각도에서 펼쳐집니다
     좌측의 마을이 영동군 양현면 호탄리이며, 금강 가운데 다리가 "호탄교"라고합니다
     
     [두번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금강"과  "호탄리"]
     영동군이 "영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통일신라시대 때 부터라고 합니다
     "영동"은 "永同"으로 영동읍내를 흐르는 주곡천 主谷川양정천 陽亭川의
     두 물줄기, 즉 二水가 합쳐 永同川을 이루고 있는데, 
     이 二水를  하나의 글자로 표기하면 "永"자가 된다고 합니다.
     신라시대 '吉同'"吉"도 이두문자로 발음하면 "吉=永"이 되어
     永同二水'吉同'에서 유래하였답니다.
     신라초에는 '吉同'으로 불리워지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永同으로 불리워졌답니다
     
     [두번째 전망대에서 바라 보는 "천태산"]
     "갈기산"과 마주보며 있는 산이 유명한 "천태산"입니다.
     천태산은 고려시대 불교 천태종의 본산이었기 때문에 산 이름도 ‘천태’가 된 영동의 명산으로 
     ‘충북의 설악’이라 불릴 정도로 산세가 빼어난 산이라고 하는데 저는 아직 못 가 봤습니다
      천년사찰인 영국사(寧國寺)가 자리 잡고 천년역사의 숨결이 곳곳에 배여 있다는데.....
     
     [세번째 전망대로 오르는 길]
     이제부터는 경사가 다소 완만해 지며 주변 경관이 눈에 들어 오니 피로를 잊기 시작합니다
     정상 부근으로 다가 갈수록 기암괴석들이 나타납니다
     
     [세번째 전망대로 오르는 길]
     함께 산행을 시작한 일행들은 보이지 않고 
     주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산객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경상도 산객들이 많이 찾는 산인듯
     
     [세번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금강"]
     이제 높은 곳으로 올랐으니 조망이 더욱 좋아 집니다.
     갈기산의 최고 구경거리가 "금강 錦江"을 보며 오르는 것이 하나이고,
     "말갈기 능선"을 감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좋게 말하면 구경거리가 두개이고, 뒤집어 말하면 구경거리가 두개 밖에 안됩니다
     
     [세번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금강"과 "호탄리"]
     "호탄리"
     그냥 지나 갈수는 없지요? 그래서 조사를 해 봤습니다.
     충청북도 영동군 양현면 호탄리이며, 내력은 다음과 같더군요.
     "호탄리"는 전래되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 경주 김씨 금희라는 효자가 이곳에 살고 있었답니다 
     효성이 극진하기로 소문난 사람으로 연로하신 부친이 병이 들었는데 이 양반  동지섣달 추운 겨울에 
     아들에게 딸기가 먹고 싶다는 말을 합니다. 부모로서 할 말이 아닌것 같은데.....
     하지만 부모 명을 거역한 일이 없는 효자는 딸기를 구하려는 마음으로 갈기산 산속을 헤맵니다. 
     헤매는 중 갑자기 그 효심을 알았는지 친절한 곰이 나타나 곰의 인도로 딸기를 구하는 행운을 얻습니다
     해는 저물고 금강은 얼어 붙어 금강을 건널 수 없어서 애를 태우고 있을 때.. 짠~어떤 호랑이가 나타나 
     효자를 호랑이 자신의 등에 태우고 여울을 건너 집 앞에 내려주고 사라졌다는군요 
     곰과 호랑이 덕택으로 병안 중의 그 아버지는 딸기를 먹고 병이 낳았다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효성이 지극한 아들보다, 욕심 많은 아버지를 다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요즘이야 겨울에도 딸기를 구할수 있지만 옛날에는 말이나 되는 요구사항입니까?
     에구~ 나는 늙으면 그러지 말아야지~ (장담 할수 없지만...ㅎㅎ)
     그후 3년을 호랑이는 여막에서 김효자를 보호했다하여 
     "범 호虎, 여울 탄灘"을 써  "호탄리 虎灘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그후 함창 김씨 상진 처 '단양우씨'가 남편의 뒤를 따라 순절하는 열녀가 태어나므로
     마을에 효의 표본으로 비문을 새겨 후세에 남기며 "효의 마을"이라고 자랑하고 있답니다.
     
     [세번째 전망대에서 올려다 본 갈기산 정상]
     세번째 전망대에서 정상은 지척에 있습니다.
     
     [갈기산 정상 오르는 길]
     잠시 걸어 올라 갑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상이 멀지 않습니다.
     단지 날씨가 더워 땀이 많이 났습니다.
     
     [갈기산 정상]
     갑자기 예고도 없이 조그만 암벽 릿지 코스가 나오는데 이곳이 "갈기산 정상"입니다.
     이곳에 10시 50분에 도착했으니 산행 들머리에서 55분 걸렸습니다.
     처음으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일행을 한시간 가까이 기다리며.....
     그런데 이곳은 처음 오는 산객들에겐 혼동을 주기에 충분한 곳이더군요.
     느낌상으로는 암벽으로 오르지 않고 오던 방향에서 직진을 해야 할듯한 느낌을 줍니다.
     많은 산객들이 직진을 해서 여기서 교통정리를 하며 길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직진이 아니고 좌측으로 "갈기산 정상"을 오르고, 
     갈기산 정상을 넘어 "말갈기 능선"으로 바로 가야 합니다
     
     [갈기산 옆 봉우리에서 바라 본 '갈기산 정상']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심심해서 건너편 산봉우리에 가서
     "갈기산 정상"을 촬영했습니다.
     갈기산 정상은 암벽 위에 솟아 있는 좁은 공간이라 매우 협소합니다.
     
     [갈기산 옆 봉우리에서 바라 본 "말갈기 능선"]
     옆봉우리에서 바라 보는 "말갈기 능선"이 전체적 조망이 좋다고해서 한컷 했습니다
     '말갈기' 같은 가요?
     신록이 우거져 여기서는 '말갈기'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갈기산 정상]
     일행들이 도착하여 정상으로 올랐습니다
     
     [갈기산 정상]
     좁은 정상에는 많은 산객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갈기산 정상석]
                    예쁘장한 정상석이 이채롭습니다.
     
     [갈기산 정상에서 바라 본 "금강"과 "호탄리"]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이라고 합니다
     "금수강산"이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대변하는 말이라는 건 모두 알아도 
     무슨 말인지 자세히 말하라면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金水江山이 아니고 錦繡江山입니다
     "비단 錦"에 "수 놓을 繡"
     "비단에 수를 놓은 듯한 江과 山"이라는 뜻인데........
     이 한장의 사진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바로 이것을 두고 錦繡江山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요?
     錦江마을이 어우러져 진짜 錦繡江山을 보여 줍니다
     
     [갈기산 정상에서 바라 본 "금강", "천태산"과 "서대산"]
     북쪽으로 "천태산"이 마주 보이며 그 너머로 충청남도에서 제일 높다는 "서대산"이 보입니다
     그림 같습니다.
     
     [갈기산 정상에서 바라 본 "말갈기 능선"]
     앞으로 가야할 "말갈기 능선"이 펼쳐집니다.
     '갈기산'의 백미라 할수있는 "말갈기 능선"을 이제부터 집중 탐구 하겠습니다.
     
       [갈기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백두대간"과 "민주지산"]
     호~ 좋은 것 알았습니다.
     素山선생님이 주변 산들에 대해 알려 주었습니다.
     동쪽으로 끝에 검은 능선이 보이시죠?
     바로 "백두대간"이며 "민주지산"이 보이고 옆에 뾰쪽 솟은 산이 "석기봉"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은 설명 없이는 알수 없는 것입니다
     김천과 영동 사이의 "괘방령"에서 황악산 우두령 민주지산 덕유산으로 가는 백두대간이
     검푸른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하늘을 떠 바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토의 등뼈입니다.
     
     [素山 김홍주선생님과 鼎巖 김광진 교수님]
     지난 "계룡산" 산행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없어 이번에는 두 선생님과 함께 잊지 않고 한컷..
     무척 유명하신 분들이시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素山 김홍주선생님(붉은 티셨츠)은 아직 일흔여섯 밖에 않되시는 "산 사나이"이십니다.
     평생을 교직에 몸담으시며 후진 양성에 청춘을 불 사르시고
     현재 '산행문화연구소'를 운영하시며 올바른 산행문화 정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우리십니다
     각종 등산 잡지와 특히 월간 "산"에 산행기를 연재하시는데 여러모로 바쁘신 중에도 
     오늘 시간을 내 주셔서 함께한 모든 일행들에게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鼎巖 김광진 교수님(검은 색 옷)은 재작년까지 충남대 의대 교수님으로 재직하시다 정년 퇴임하셨는데
     아직도 몇개 대학에 강의를 나가시며, 최소 일주일에 한번 이상 산행을 하십니다
     鼎巖교수님의 '산 사랑'은 素山선생님 못지 않습니다.
     "山은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정도로 산행을 즐기시며, 
     그러니 저 같은 '산 날라리'도 초대해 주셔서 높은 산행의 즐거움과 건강생활을 배우고 느낍니다
     鼎巖교수님은 또한 문학에도 경지에 도달해 詩人이자 수필가이십니다.
     여러 매체에서 鼎巖교수님의 감칠 맛 나는 산행기를 접했을 것입니다.
     어휴~ 또한 성악에도 프로이신데 현재 '대전 대덕R&D특구 합창단'에서 맹활약 중이십니다
     의학은 물론이고 산과 문학과 성악에서도 프로이시니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대단하다구요? ㅎㅎ
     鼎巖교수님의 카페 주소는 http://cafe.daum.net/jeungam 이니 찾아 들어 가
     다양한 산행기와 글들을 접해 보시기 바람니다. 꽁짜입니다. ㅎㅎ
     
     [갈기산 하산]
     갈기산 정상을 탈출하여 갈기산의 백미라는 "말갈기 능선"으로 향합니다
     
     [말갈기 능선]
     무언가 멋진 것들이 펼쳐질듯한 예감을 받으며 "말갈기 능선'으로 조심스럽게 나아 갑니다
     
     [말갈기 능선에서 뒤 돌아 본 "갈기산 정상"]
     '말갈기 능선'으로 조금 나아 가 뒤돌아 보며 "갈기산 정상"을 바라 봤습니다.
     그냥 "갈기산 정상'을 촬영해도 되지만 이 기회에 대구에서 오신
     "대구 올뫼 산악회" 회장님(오른쪽, ID 용담)과 회원님을 소개해 드림니다.
     원래 산행기에 개인 사진들을 올리면 다른 많은 독자들이 개인 기록담이냐고 싫어하는데....
     이분들은 美人들이라 괜찮지요? ㅎㅎ
     산악회 회장님이 미인이라 그런지 "대구올뫼산악회"는 아주 활발한 활동을 하고있답니다
     대구에 사시는 분들은 "대구올뫼산악회"에 참여하시고요.
     카페 주소는 "여기 클릭 http://cafe.daum.net/allmoeaplihe" 이니 찾아가 보세요
     
     [말갈기 능선]
     '말갈기 능선"은 글자 그대로 "말갈기"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다른 산의 "칼바위 능선"이나 계룡산의 "자연성능"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말갈기 능선]
     '말갈기 능선"에는 두개의 큰 봉우리가 있는데 별도의 이름은 없고
     첫번째 높은 봉우리가 "558m봉"이고, 두번째가 545m봉입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558m봉"이며 저곳에서 점심 식사를 합니다.
     
     [말갈기 능선에서 바라 본 "성인봉"]
     '말갈기 능선'을 지나 "차갑고개"에서 계속 능선을 돌아 가려면 저 앞의 "성인봉"을
     지나 "자사봉" 안자봉" "월영산'으로 갑니다.
     오늘은 "차갑고개"에서 계곡 "소골"을 따라 하산하니 저곳은 가지 못합니다
     
     [말갈기 능선에서 바라 본 "안자봉"과 "월영산"]
     윗 사진의 "성인봉"에서 게속 가면 "안자봉"과 "월영산"이 나옵니다.
     다음 기회에 종주를 해 보겠습니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말갈기 능선]
     암릉이 날카롭게 뻗쳐져있어 말(馬)이 달릴때의 "말갈기" 같은 모양을 나타낸다고
     붙여진 이름인듯 합니다.
     
     [말갈기 능선]
     능선길은 칼날 위를 걷는듯 아주 좁았습니다
     
     [릿지 코스]
     "갈기산"에는 릿지코스가 있는데 이 지역 유일의 릿지코스라고 합니다.
     '관광농원'에서 갈기산으로 오르는 암벽타기 코스가 한눈에 들어 옵니다
     
     [말갈기 능선]
     날씨가 아주 더워 땀을 많이 흘립니다.
     날씨 얘기가 나오니 이 기회에 자동차와 에어컨에 대해 몇자 적고자합니다
     자동차를 타고 바로 에어커을 켜지 말라고 하는데 왜일까? 특히 여름철에는 더...
     생활의 지혜 하나를 과학적 근거와 함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바로 에어컨을 틀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발암물질인 "벤진"때문입니다.
     "벤진'은 우리가 주로 환경호르몬이라고 하며 석유화학제품이지요.
     자동차 속의 플라스틱 제제에 열이 가해질때 나는 냄새가 벤진 냄새입니다.
     자동차의 계기판이나 의자, 공기 방향제는 벤진을 발생시키죠.
     허용 벤진양은 50mg/sq.ft 으로 알고있는데요, 
     하지만 자동차 문을 닫은채 실내 그늘에 주차했을때 차 안의 '벤진'양은 400 ~ 800mg이였고, 
     화씨60도이상 옥외의 햇볕에 자동차를 주차했을 때, 벤진 양은 2,000 ~ 4,000mg로 
     허용치의 40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여기에서 벤진은 우리몸에 치명적입니다. 
     암 뿐만아니라, 빈혈 및 백혈병, 임산부에게는 유산의 원인이 되기도 하구요. 
     간이나 신장에도 나쁜영향을 미칩니다.
     에어컨을 켠다고 창문을 모두 꽉꽉 닫아 밀폐시키면 
     차안의 사람들은 이런 "벤진의 독"을 흠뻑 들이 마시게 되는 거거든요..
     차를 타면 반드시 창문을 열어두고 환기를 시킨후에 에어컨을 틀어주세요~
     그리고 중간 중간에도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켜 주어야합니다.
     
     [말갈기 능선에서 뒤 돌아 본 "갈기산 정상"]
     자동차 에어컨은 어느 정도 연료 손실을 가져 오는가
     손등에 알코올을 묻히면 알코올이 기화되면서 열을 빼앗아가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에어컨은 내부의 냉매가스가 응축됐다가 다시 기화되는 일을 반복하며 실내 온도를 낮춥니다. 
     이때 냉매가스를 압축시키는 기계장치 ‘컴프레서’가 필요한데, 
     바로 이 장치 '컴프레서'를 돌릴 때 많은 동력이 소모된다고 합니다. 
     현대자동차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에어컨을 켰을 때 준중형·중형차는 0.82~8.54마력, 
     2,000cc급 디젤SUV는 1.03~9.38마력의 동력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정도 출력이면 125cc급 오토바이가 전속력으로 달릴 때의 힘 정도를 
     자동차 에어컨 돌리는 데 전부 쓰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고 합니다.
     
     [말갈기 능선의 "558m봉" 정상]

     기름값 아끼는 카에어컨 사용법
     1. 에어컨 모드는 ‘내부 순환’으로 놓을 것 
     2. 처음 켰을 때는 창문을 열고 세게 튼 뒤 창문 닫고 저단으로 바꿈 
     3. 언덕이나 추월 때는 잠깐 꺼둔다 
     4. 내리기 10분쯤 전에 미리 에어컨을 끈다 
     5. 엔진 회전수가 3000~4000rpm 이상일 때 껐다 켰다 하지 않는다 
     6. 가능하면 땡볕인 야외에 주차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연료를 최대 20% 정도 줄일수 있다고 하니
     이번 여름에는 꼭 실천 해 보시기 바람니다

     
     ["558m봉"에서의 점심식사]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궁극적 목적은 이런 저런 좋은 말 많이 붙이며 유식한척 하지만
     결국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산에 오릅니다.
     대구 대전 에서 모이신 산객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사회 통합이 이루어지는듯....ㅎㅎ
     
     [점심식사]
     저도 쇠주 한잔하고....
     약 한시간에 걸친 식사와 환담
     정말 괜찬은 만남이었습니다.
     공자의 인생삼락을 들먹이지 않아도
     세상에 와서 우리에게 가장 즐거운 것을 말하라면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서로 알고 느껴 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이 넓은 세상의 바다에서 만나 서로를 알수 있었겠습니까
     자리를 만드신 정암교수님과 함께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림니다
     저도 산을 이곳 저곳 다녀 보니 우리나라가 그렇게 넓지는 않아 어느 곳에서나 만날수 있더군요
     앞으로도 어느 곳에서나 자주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말갈기 능선의 "545m봉" 가는 길]
     오늘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詩 한수 들려 드리겠습니다
     이 詩를 모르면 대포집에서 대화가 힘들었을 정도로 유명한 詩이죠 
     "서정윤님의 홀로서기"
                   
                    홀로서기   
                                   서정윤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545m봉"으로 가는 "말갈기 능선"]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뒤돌아 본 "갈기산 정상"과 지나온 "말갈기 능선"]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할 수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어느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차갑고개"로 내려 가며 바라 본 "월영산"]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멀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차갑고개" 내려 가는 길에서 바라 본 "서대산"]
     가운데 제일 먼곳에 검게 보이는 산이 충남에서 제일 높다는 "서대산"
 
                           5.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어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차갑고개]
     오른쪽이 "소골"계곡으로 하산하는 길이며
     직진은 "성인봉" - "자사봉" - "안자봉" - "월영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6.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 서기>를 익혀야 한다. 

  
     ["소골" 계곡으로 하산]
 
                           7.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 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 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소골"에서 물놀이]
     무지 무지 무더운 날 갈기산의 계곡 "소골"에서
     차가운 맑은 계곡물에 더위를 식혔습니다
     
     ["소골"에서 물놀이]
     보시는 분들도 시원해 지시나요?
     산행 후 이런 물놀이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약 30분 정도 더위를 식히고....
     
     ["소골" 내려 가는 길]
     계곡길을 따라 내려 갑니다
     
     ["소골" 야영장]
     갈기산 계곡 "소골"에는 조그만 야영을 할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놨습니다
     여름 피서철에는 아는 사람들만이 몰래 찾아와 피서를 즐기고 갈듯합니다.
     
     ["소골" 입구]
     "차갑고개"에서 하산 하는데는 물놀이 시간 약 30분을 합쳐 1시간30분 정도 걸렸습니다.
     
     [갈기산 간이 주차장 - 원점 회귀]
     오후 3시 30분에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했으니
     오늘 산행 총 시간은 5시간 35분이 걸렸습니다.
     어느 정도 산행 능력이 있으신 분들이면 월영산까지 종주를 하는데 5시간 정도 걸리겠더군요
     
     ["자지산" 앞쪽 인공폭포]
     이쪽에서 유명한 "자지산" 앞 부엉이산에는 인공폭포가 물줄기를 흩날리고 있습니다
    "갈기산"과 "자지산" 사이의 錦江변에는 음식점들이 많은데
     대부분 "어죽"을 파는 음식점들이었습니다.
     
     [도리뱅뱅]
     인공폭포 앞 어느 유명한 "어죽"을 파는 음식점에 들어가 뒷풀이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죽"이 나오기 전에 "도리 뱅뱅"이라는 피래미졸임이 사진과 같이 나오는데
     피래미를 동그랗게 돌려 놓았다고 "도리뱅뱅"이라고 하더군요.
     하여간 이지방의 맛자랑 메뉴이랍니다.
     
     [우주여행비]
     대전으로 돌아와 대전역에서 열차를 타려고 하는데
     鼎巖교수님이 '세종대왕' 두분을 주머니에 넣어 주시는데
     이런 문화에 익숙치 못한 필자는 극구 사양했는데도 제가 졌습니다.
     앞으로 우주를 여행할때 긴요하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진달래*

진정으로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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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지맥1구간] 돌산령-도솔산-대암산-광치령 돌산령-도솔산-1304m봉 군부대-작은 용늪-큰 용늪-대암산-광치령 [도솔지맥] "도솔지맥 兜率枝脈" 요즘 우리나라 산에 흠뻑 젖어 산줄기를 찾아 다니는 열혈산객들이 "여암 신경준선생"이 쓴 "산경표"를 기본으로 하면서 임의로 붙인 산줄기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국토지리원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름도 아니니 지도에는 없습니다 "도솔지맥 兜率枝脈"은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에는 금강산과 진부령 사이의 "회전령檜田嶺"에서 분기하여 "해안산亥安山"을 거쳐 "도솔산兜率山"으로 와 "광치廣峙"를 건너 "사명산四明山" - "청평산淸平山" - 용화산龍華山(春川北百里) - "수청산水淸山" - "우두산牛頭山" - "백로주白鷺州"까지로 표기되 있습니다. "백로주白鷺州"에 대해선 "春川西七里新津韶陽江會干西南永平南十一里"라고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산경표"에 나와 있는 이름과 현재의 이름이 같은 것은 도솔산兜率山, 광치廣峙, 사명산四明山, 용화산龍華山, 우두산牛頭山입니다. "해안산亥安山"은 현재 양구군 "펀치볼"로 유명한 "해안면亥安面"이 있습니다만 山이름으로 "해안산亥安山"은 남아있지 않은데 "해안면亥安面"을 빙 둘러싸고있는 山을 의미하는듯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현대의 정확한 지도를 놓고 "山自分水嶺"원리에 입각하여 산줄기를 이어본 결과 신경준선생의 "山經表산경표"는 약간의 오류가 있다는걸 발견하고 "도솔지맥 兜率枝脈"은 금강산 위의 백두대간 "매자봉"에서 분기하여 "매봉"-"가칠봉加七峰"- "대우산大愚山"-"도솔산兜率山"-"대암산大岩山"-"광치령廣峙嶺"-"사명산四明山"-"우두산牛頭山"으로 재해석하여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 다니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솔지맥 兜率枝脈"은 약120km 구간 중에 북한지방에 약40km가 있고 남쪽지방 약80km에도 대부분 휴전선 근처 '군사지역'이라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워 아직까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며 완주를 한 산객들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이한 것은 "山經表"에는 명확히 나와있는 용화산龍華山(春川北百里)을 현대에선 빼고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요즘 산객들이 산줄기보다 산행하기 편한 "마루금"枝脈으로 편한데로 산행코스로 잡는데 있다고 느껴집니다. 분명한 것은 枝脈산줄기이므로 面積이 있고, 마루금으로 面積이 없습니다. 다시말해 '산줄기' 모두가 枝脈인 것입니다. [돌산령-도솔산-1304m봉 군부대-작은 용늪-큰 용늪-대암산-광치령 지도] 양구에서 해안면 "펀치볼"로 넘어 가는 고개인 "돌산령"에서 "도솔지맥 兜率枝脈"을 시작합니다 "돌산령"위로는 군사분계선이 있는 민통선 안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산객들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도상거리 약20km이며 실제 산행거리는 약25km인 도솔지맥1구간을 시작합니다 ["펀치볼" 주변 위성사진] 우리가 산행을 시작하는 "도솔지맥 兜率枝脈" 1구간 "돌산령" 주변은 매우 유명한 곳입니다 펀치볼 Punch Bawl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해안면 亥安面이 있고, 우리나라 해병대가 "무적해병",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칭호를 받은 "도솔산전투"를 벌여 勝戰한 도솔산兜率山이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고냉습지 高冷濕地대암산 "용늪"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행기의 서두에 위성사진을 편집해 이해를 도울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지역을 어느정도 감 잡을수 있겠습니까? 대답 좀 해봐요~!! 맹그느라 고생했는데...ㅎㅎ 세부사항은 산행을 하며 실제 사진과 함께 설명을 추가로 더 드림니다. [해병대 도솔산지구 전투 위령탑] 2009년 6월 13일(토) 밤 12시 양재역 서초구청 앞에서 모여 준비물 준비하고 2009년 6월 14일(일) 01시에 출발하여 새벽 3시45분에 "돌산령 해병전적비" 앞에 도착했습니다 몇시간 눈을 붙였다 땟다하다가 오전 7시경에 라면 끓여먹고, 산행 준비를 합니다 날씨는 밤새 비가 내렸으며 오전에는 간간이 가랑비가 흩뿌렸습니다 [略史文] "도솔산 兜率山"은 6.25戰爭때 우리나라 海兵隊가 큰 勝戰을 한곳입니다. 海兵隊가 이곳 戰鬪에서 勝戰하여 "無敵海兵", "귀신잡는 海兵"이라는 칭호를 얻은 곳이지요. 海兵隊가 바다가 아닌 내륙지방에서 전투를 하여 "無敵海兵"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좀 이상하지요? 海兵隊는 글자 그대로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싸우는 군대이기에 이곳에도 왔으리라 생각됩니다 필자인 '파란문'은 70년대 중반에 海兵隊에 入隊해 軍生活을 해서 저도 '海兵隊 出身'입니다. ㅎㅎ 당시엔 海兵隊라기 보다 犬兵隊(개병대)라고 불리웠답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기억하지요? 그래서인지 대부분 '파란문'이 해병대 출신이라면 잘 믿지 않으려합니다. 아마 느껴지는 인상이 '잔인무도한 해병대'보다는 '얌전한 민병대' 수준으로 보이는가 봅니다. ㅎㅎ 사실 저는 아주 얌전한 학구파이니까요~ 저는 해병대 훈련병 시절에 얼핏 '도솔산전투'가 있었다는 강의를 받은듯하기도 한데 고달픈 훈련병의 귀에는 가물가물한 관심없는 전설같은 이야기였을 뿐이어서 기억하지 못했는데 이곳에 와서 충혼탑을 바라 보니, 어렴푸시 괜히 폼잡고 자기가 한 일인것처럼 자랑하던 선임수병들의 이야기가 기억 나기도합니다. 海兵隊가 자랑하는 3大 戰鬪가 "도솔산전투", "인천상륙작전", "월남 '짜빈퉁' 상륙작전"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쫄병들 앞에서 자랑하던 그 선임수병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해병대 도솔산지구 전투 위령탑] "도솔산전투"는 "미국 해병대 제5연대"가 공격을 했다가 실패하고 난 다음 "한국 해병대 1연대"가 美海兵隊作戰地域을 인계 받아 바로 공격하여 16일만에 勝戰한 곳입니다 그래서 더욱 명성을 얻은 전투인데, 해발 1,300m가 넘는 동해안 준령에는 안개가 많이 끼어 심한 안개 속에서 그것도 밤중에 돌격하여 적군을 완전 섬멸하여 "귀신잡는 海兵""無敵海兵" 이라는 칭호를 이승만 대통령으로 부터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적군 3,265명을 사살하고 포로로 700여명을 잡고, 해병대는 123명이 전사했으며 부상자가 600여명이었다고 합니다. [해병대 상륙함 LVT] '해병대 수륙양용 LVT함"은 사실 이곳과는 아무른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로지 상륙작전 때에 사용하는 것인데 이곳에 전시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海兵隊"의 상징이 "수륙양용 LVT함"이라 해병대를 상징하기 위해 첩첩산중에도 "LVT함"을 전시해 놨는가 봅니다. 물론 "海兵隊"는 바다와 육지 모두에서 전투를 하는 軍隊입니다. 바다와 육지가 가까이 있고 가장 민감한 지역인 "西部戰線"은 "海兵隊"가 방어하고 있습니다 "西部戰線"은 김포에서 백령도까지를 주로 말합니다 저는 "西部戰線" "청룡부대"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장승] '도솔산으로 오르는 登路는 軍作戰地域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있습니다 이곳 '해병대 충혼탑'이 있는 곳에서 도솔산을 오르는 등로에는 해병대를 충혼하는 장승들이 줄지어 서있습니다 도솔산은 앞에 보이는 철문을 열고 올라 가야 합니다. [산행 출발] 해병대 충혼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도솔지맥 1구간"을 완전 점령하려고 합니다 봄에 내리는 비는 '보슬보슬' 내린다고하죠? 여름에는 '주룩주룩' 내린다고하고... 가을엔 부슬부슬... 6월의 초여름인데도 봄비처럼 청승스럽게 보슬부슬 비가 내립니다. [도솔산 들머리] 오늘 함께하는 '서울백두클럽'은 '도솔지맥1구간'을 정규코스로 완주하기 위해 관할 군부대에 공문을 보내 출입허가를 사전에 받았습니다. 아마도 공식적으로 "도솔산-대암산"을 오리지날 마루금을 밟으며 종주하는 산악회는 "서울백두클럽"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돌산령(양구 팔랑리 방향)] 해병대 충혼탑에서 내려다 본 돌산령 고갯길입니다 양구군 팔랑리 방향을 촬영했습니다 [돌산령 (양구 해안면 "펀치볼" 방향)] 이 사진이 '도솔지맥'을 종주 하는 산객들에게는 의미있는 사진입니다. 앞에 보이는 산줄기가 오리지날 '도솔지맥 마루금'인데, 군부대가 점령하고있어 이곳 '해병대 충혼탑'에서 도솔산을 오르는 것입니다. 저 위가 오리지날 돌산령이며, 돌산령을 넘으면 유명한 펀치볼 - 해안면입니다 [도솔산 등로] 7시 55분 산행을 시작합니다. 도솔산 중턱까지는 군사도로가 잘 나 있으며 철문을 통과하면 바로 "도솔산 兜率山"이 좌측에 보입니다. "도솔산 兜率山"은 1,147.8m 높이의 높은 산인데, "돌산령"이 해발 940m정도 되니 "돌산령"에서 약25분 정도면 오를수 있는 산이 되겠습니다. 너무 쉽지요~이~잉 [돌산령] 도솔산을 오르며 동쪽방향 "돌산령 정상"을 바라 봤습니다 북쪽에서 뻗어 내려오는 "도솔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돌산령" 고개가 선명하게 보이며 마루금 위에는 군부대가 점령하고 있는 것이 애처롭게 보입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하고 보기 어려운 것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돌산령" 너머 멀리 끝에 높은 "검은 능선"이 보이십니까? 바로 "백두대간"의 "설악산"구간입니다. "공룡능선" "설악산"이 선명히 보였는데 사진에는 희미하게 나왔군요. 도솔산과 설악산 사이에 "인제, 원통"이 있지요? 그러니 도솔산에서 설악산은 매우 가깝게 있습니다 [양구군 팔랑리] 서쪽으로는 양구군이 펼쳐져 있는데 구름으로 가리워져 오리무중이군요 아래에 보이는 마을은 "팔랑리"입니다. "팔랑리"는 조사해 봤더니 "八郞里"이더군요. "팔랑리 민속마을"과 전쟁 기념관등이 있는 제법 알려진 마을입니다. "팔랑리 전설" 조선 중엽 어느 때 함경도에 살던 전주 이씨인 이학장이라고 하는 도사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남으로 내려오면서 방방곡곡을 두루 돌아다녔답니다. 그가 태백산맥의 골짜기를 더듬어 오다가 양구 동북방 도솔산 남쪽에 있는 동면 팔랑리에 이르렀답니다. 이곳 산수가 가히 자기의 뼈를 뭍을 만 한 곳이라고 생각한 그는 몇몇 친족들과 함께 여기에 터를 닦고 살게 되었던 것이라 합니다. 이 도사가 맞아들인 부인의 가슴에는 괴상하게도 유방이 네게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몹시 괴이하게 생각하기는 했으나 그는 아무런 말없이 그 부인과 백년을 해로하기로 마음먹고 여기에서 살았답니다. 그 뒤 아기를 가진 부인은 달이 차자 해산을 했더니 놀랍게도 네 쌍둥이씩 여덟을 계속 낳았답니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 부인의 유방이 네 개가 달려 있는 수수께끼를 풀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그와 그 부인은 온갖 정성을 다해 그 팔형제를 잘 길렀고, 기골이 장대한 그들은 장성해서 모두 나란히 낭관 벼슬을 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이 마을을 팔랑리라고 불리우게 되어 지금까지 그 이름이 내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八郞里" [도솔산 오르는 길] 도솔산 오르기는 너무 쉽지요~잉 앞에 가는 회원들이 짐을 짊어지고 오르고 있지요? 젊은 대원들이 짐을 짊어졌습니다. 오늘 대암산 정상에서 국토방위에 힘쓰고 있는 군장병들에게 전달하려는 "위문품"입니다. "도솔지맥 1구간"을 오리지날 루트로 종주하기 위해 출입신청하여 허가를 받았으니 이 기회에 "위문품"도 전달하여, 감사의 표시를 하기로 하여 "위문품"을 준비한 것입니다 "위문품" 준비보다 짊어 지고 대암산까지 오르는 일이 장난이 아닙니다. 저도 헌책을 별도로 준비하여 15권을 짊어 지고 오르는데 무척 힘들었습니다. 자세한 위문품 내역은 대암산 군부대에 올라서 보여드림니다. [도솔산을 오르면서 뒤 돌아 본 '도솔산 등로'] 도솔산을 오르며 뒤돌아 보니 뒤따라 오르는 회원님들의 행렬이 멋있습니다. 그리고 출입허가를 받지 않고 도솔산을 오르는 산객들은 앞의 헬기장 뒤에서 몰래 올라 오더군요. 하지만 금방 군인들에게 발각 되어 쪼껴납니다 [도솔산 오르는 길] 비교적 완만한 登路를 오릅니다 이런 등산만 하면 몇일이라도 하겠습니다. ㅎㅎ [도솔산 정상] 잠깐 오르니 벌써 "도솔산 정상"입니다. '돌산령 해병대 충혼탑'에서 약25분 정도 걸렸으니 쉽게 올랐습니다. 오늘 등산이 시시하게 모두 끝난 기분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광치령까지 걸린 시간이 9시간이었으니.... 상상만 해 보시라~휴~ [도솔산 정상에서 뒤돌아 본 '登路'] 올라와 내려다 보니 지나온 등로가 제법 그럴듯하게 멋있습니다 그리고 건너편에 높은 산이 도솔지맥이 지나는 "대우산 大愚山"입니다 [海兵隊 兜率山 戰積碑] 도솔산 정상에는 "海兵隊 兜率山 戰積碑"가 크게 세워져 있습니다. 아래 돌산령에 있는 것은 전사한 해병대를 충혼하는 "위령비"이며 이것은 戰積碑입니다. [海兵隊 兜率山 地區 戰積碑] 海兵隊 兜率山 地區 戰積碑라고 쓰여있습니다 저도 이곳에 서니 海兵隊 출신임이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빨간 바탕에 노란 글씨의 명찰" "팔각모"..... 선임수병들의 피땀으로 덩달아 우쭐댑니다. 추~ㅇ 서~ㅇ [海兵隊 兜率山歌] 하늘의 우뢰소리 땅 위에 아우성 불바다 피투성이 새우기 몇밤 이 나라 해병대가 명예 걸메고 목숨 내건 싸움터 도솔산일세 오 오 도솔산 높은봉 해병대 쌓아 올린 승리의 산 오늘도 젊은 피 불길을 뿜는다 [돌산령과 "펀치볼"] 도솔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돌산령"과, "돌산령" 너머 "펀치볼"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해안면 亥安面"이 조망됩니다. 그리고 "도솔지맥 마루금"을 따라 군사도로가 선명하게 나있는 북녁이 애처러웁게 잘 보이는데 "도솔지맥 마루금"을 따라 좌측으로 "대우산 1178.5m"과 "가칠봉 1242.2m"이 보입니다. "가칠봉"은 加七峰으로 금강산의 한 봉우리인데 금강산의 최남단에 있는 봉우리입니다. 그 뒤로 희미하게 "김일성 고지"와 "금강산"이 보입니다 "펀치볼"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해안면"에 대해선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도솔산에서 바라 본 "대암산 1304m봉"] 앞으로 가야할 "대암산 大岩山 1304m봉"이 구름을 이고 솟아있습니다 저 봉우리는 대암산 정상이 아니고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대암산 1304m봉입니다 출입허가를 받지 않으면 저 봉우리를 절대 통과할수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군인이 나와 우리를 안내합니다. [도솔산 정상] "도솔산"의 "도솔"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듣기는 많이 들었어도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은 사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겠지요. ㅎㅎ 모르는게 당연 할것입니다. 왜냐하면 "도솔 兜率"은 외국어 이기 때문이며, 그것도 현재는 사용치 않는 인도의 옛글자 "산스크리트語"이기 때문입니다 佛經이 처음으로 쓰여진 글자이니 불교 학자들이나 아는 "산스크리트語"이기에 모르는게 당연 대암산 1304m봉을 오르며 알려 드리겠습니다 [도솔산 정상 이정표] 이곳의 이정표는 혼동을 주기에 충분하게 "대암산"이 북쪽방향으로 표기되있습니다 윗 사진에서 본 "대암산 1304m봉"을 향해 남쪽으로 가야하는데 반대로 되있습니다. 물론 북쪽으로 내려가서, 다시 남쪽으로 틀면 되겠지만.... [뒤돌아 본 '도솔산 정상'] 도솔산 정상을 내려와 뒤돌아 봤습니다. 도솔산 정상은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군요 兜率이라고는 사용하는 경우가 없고, 兜率天이라고 주로 씁니다. 兜率天 은 불교에서 욕계(欲界) 6천(六天) 가운데 제4천(第四天)을 일컷는데 인도의 옛글인 산스크리트語의 tusita를 한문으로 音譯한것이며, 한문으로 音譯된것을 다시 우리말로 音譯한것이 "도솔"이니.... 이게 뭔말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도솔산 능선] 오늘 "도솔지맥1구간"에서는 "도솔산에서 대암산"까지의 山路가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환상적인 산행길이었습니다 [뒤돌아 본 '도솔산 정상'] "兜率天"은 미륵보살이 사는 하늘나라 궁전을 의미합니다 "佛國天國" 이제 이곳 "兜率山'이 어떤 의미로 이름 지어졌는지 짐작할수 있겠지요? '미륵보살'이 사는 山이라는 의미이겠지요 "미륵彌勒" "친구"를 뜻하는 산스크리트語 미트라(mitra)에서 파생한 마이트리야(Maitreya)를 音譯한 것으로 사랑의 동반자로서 모든 중생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보살을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홍어와 무인도"에 와야 알수 있는 것들이지요 ㅎㅎ [구름이 넘나드는 '도솔산 능선'] 東海와 인접해 있는 준령이라 날씨변화가 많았습니다. 구름이 잔뜩 몰려왔다간 다시 햇볕이 나고, 비도 오락가락했습니다. 정말 "兜率天"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도솔산 능선] 서정주선생이 쓴 詩 중에 "춘향유문"이라는 詩가 있지요. 얼핏 생각나는데... 이 싯귀중에 "도솔천'이 등장하는데 그래서 오랜만에 이 詩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춘 향 유 문 - 서정주 -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어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여요 [도솔산 능선 이정표] 이런 모양을 한 이정표는 여기까지이고 앞으로는 사람들의 흔적이 별로 없는 산길을 가야합니다 [도솔지맥 마루금] 대암산으로 오르는 길은 구름과 안개로 도솔천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춘향유문은 춘향전 속에서 발쵀하여 詩로 표현한 유명한 서정주선생의 詩이지요 춘향가에서는 쑥대머리로서 감옥에 갖혀 한양간 이도령을 애절하게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이고, 춘향유문은 한양가서 소식없는 이도령을 그리워하며 遺言을 남기는 서정주 시인의 詩입니다. 모두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한 죄로 감옥에 갖혀, 애절한 그리움을 표현한 노래와 詩입니다 [龍바위] 숲속을 헤메며 걷고있는데 숲사이로 잠깐 보이는 龍바위 못보고 지나친 분들이 대부분일겁니다. 정말 龍이 昇天하는듯하군요 대암산의 "늪" 이름이 "龍늪"인데..... [지나온 길을 뒤돌아 봅니다] 아주 오래전 고교시절 국어 참고서에 나와 외웠던 것을 주섬주섬 간추려 가며 춘향유문 春香遺文을 나름대로 감상해 보겠습니다 춘향이 그처럼 많은 소릿꾼이나 시인들에 의해 美化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주는 "인간의 영원한 주제-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이유이기도하고, 春香이라는 봄내음 풍기는 듯한 여인이 한국 여인의 절개와 미모를 대변하는듯하기도 해서이겠지요 [대암산 오르는 길] 춘향은 시대적 제약 속에 있는 한 인간의 모습으로서보다는 시대를 초월한 사랑의 화신으로서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춘향 유문 春香遺文"도 시대적인 특수성이 희석된 사랑의 노래입니다. 유언(遺言) 형식으로 쓰여진 이 시는, 현실 속에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달은 한 여인의 독백을 통해 '저승'을 비춰 줍니다.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이라는 인사말은 헤어지기 싫은 현실을 파라독스로 깜짝 놀라게 합니다 '저승'이라는 詩語와 만나서, 그것이 예사로운 인사말이 아니고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토하는듯 하지 않습니까? 죽음 앞에서도 오히려 초연할 수 있는 春香은, 저승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사랑보다 먼 '딴 나라'에 가 있다고는 생각치 않는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음을...죽음의 세계조차도 그의 사랑 안에 있음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춘향의 이 도령에 대한 사랑이 생사와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극대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암산 1304m봉] 서정주선생의 春香遺文이라는 詩는 학교때 "輪廻思想"이 근간을 이룬다고 배웠습니다. 춘향이가 죽어서 천길 땅밑에 검은 물로 흐르던 도솔천의 하늘, 즉 저승에 가더라도 결국은 도련님 곁으로 돌아 온다는 믿음. 물이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이 다시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라는 끝없는 춘향의 사랑을 "輪廻思想"을 배경에 깔고 인간이 최후로 하는 遺言을 빌어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는 "사랑 이야기"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도솔산에서 대암산까지는 정말 경치가 아름다운 코스였습니다. 경사도 완만해서 걷기에도 편했으며, 인간의 손때가 뭍지않은 깨끗한 自然이 이렇게도 잘 보존되있다는 것에 놀라며, 보존의 힘이 남북분단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애처롭기 그지없습니다 [뒤돌아 본 "도솔산과 도솔지맥 마루금"] 뒤 돌아 보니 지나온 "도솔산"이 가운데 검은 색깔을 띠고 그 뒤로 대우산, 가칠봉이 이어져 있습니다. [펀치볼 - 해안면] "펀치볼"로 유명한 "해안면 亥安面"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만 구름으로 이 사진이 유일한 사진이 되고 말았으니 안타깝습니다. "해안면 亥安面" 양구군에 속해 있는 국내 유일의 "분지 盆地" 하나가 面이 된곳이랍니다 이곳은 약 4,500만년전에 우주를 날던 운석이 떨어져 커다란 盆地가 만들어 졌으며, 움푹 패인 盆地에는 물이 고여, 바다와 같은 넓은 호수를 이루었다고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海安"이었다고합니다. 지금도 亥安面을 둘러 싸고 있는 산에선 조개류와 해초류가 발견되고있다고합니다 세월이 흘러 물이 빠지고 인간이 마을을 이루고 살기 시작했는데 이 지역에 유독히 뱀이 무지무지 많아, 생활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뱀의 천적인 돼지를 키우니, 돼지가 뱀을 모두 잡아 먹어 뱀도 없어지고, 돼지도 잘 자라서 돼지의 수도 무지 늘어나 부유한 마을이 되었답니다 그후 "돼지(亥)가 마을에 평안(安)을 가져왔다"라고 亥安面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답니다 '亥'는 돼지 '해'입니다.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그리고 亥安面을 펀치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6.25때에 미군이 이곳에 왔을때에 亥安面의 모양이 "화채 그릇" 모양을 하고 있다고 "Punch Bowl"이라고 불렀답니다 그 이후 亥安面의 닉네임은 펀치볼이 되었답니다. "Punch Bowl"에 대해서 영어영문학과를 건성으로 다니다 나온 '파란문'이 조금 더 설명을 하겠습니다. 우선 "Punch"는 모두 아시는 '주먹'이라는 뜻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지요? 그리고 칵테일의 일종인 "술·설탕·우유·레몬·향료를 넣어 만드는 음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주로 여름철에 우리는 이 음료에 수박 참외 딸기 토마토등을 썰어 넣어 "화채"를 만들어 먹지요 그 화채 그릇이 유리나 크리스탈로 만든 평평한 넓직한 그릇이지요 그릇, 주발을 "Bowl"이라고 합니다. 스포츠 볼링 할때도 Bowling을 씁니다. 이때의 Bowl은 나무공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Punch Bowl"은 영어의 합성어로서 "주발 모양의 분지(盆地)"라는 의미를 본래부터 가지고 있습니다. 하와이의 국립현충원의 이름도 하와이 화산 분지 안에 있어 "Punch Bowl"이라고 합니다.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 휴식] "서울백두클럽" 회원님들은 한시간 이상을 걸어야 한번 쉼니다 이곳에 도착하니 9시 20분이었으니 1시간 25분만에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들입니다. 이것도 군인이 안내하러 오니 모두 멈추라는 지시를 받아서 멈춘것이지 경사가 완만하다고 그냥 자꾸 올라 가려고만 합니다 ㅎㅎ [군부대 출입 안내 군인] 드디어 "육군 원사님"이 나타났습니다. 사전에 연락을 받았다고 환영해 주었습니다. [군부대 출입 안내] 그리고 간단하게 주의사항을 듣고 산행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금년 10월부터는 이곳을 정식으로 개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개방을 하면 천연자연이 졸ㅈㅣ에 쑥대밭이 되지 않을까 염려 되기도 합니다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공식적으로 처음으로 우리가 군인의 안내를 받으며 오르는듯합니다 기분이 진짜로 兜率天을 오르는 기분이었습니다 [대암산 1304m봉 '군부대' 오르는 길] 정상이 다가 오면 언제나 깔닥 고개는 있는 법 [뒤돌아 본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아!~ 兜率天을 오르는 기분 글자 그대로 환상적입니다 [군사적전 도로] 군부대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저 아래 군작전도로로 빙빙 돌아 가야합니다 [군사적전 도로] 군부대의 출입허가를 받지않으면 저 군작전도로를 걸어 우회해서 대암산을 가야하니 저 길을 걸을바에는 이곳에 올 필요가 없겠지요. 아무른 의미가 없습니다 동네 뒷산을 오르는게 더 나을것입니다. 출입신청을 하면 왠만하면 허가를 해주고 안내를 해 준다고 하니 앞으로 가실 분들은 참고하세요. [대암산 1304m봉 오르는 길] 대암산 1,304m봉이 다가 옵니다. 대암산 1304m봉은 민둥산이라 구경거리가 없는데 다행이 여러 형태의 안테나들이 민둥산을 그나마 품위있게 만들어 줍니다 [대암산 1304m봉 정상] 대암산 1,304m봉우리는 넓은 분지를 이루고 있더군요 이 사진을 보니 육군 군대생활을 여기서 한 사람들은 감개무량이겠지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춥고 눈이 제일 많이 온다는 최전방 중에 한곳입니다. 여름에도 서늘해서 모기가 없기로 유명하며,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필요없는 곳이 이곳 대암산이라고 합니다 [대암산 1304m봉 정상 - 군부대 초소] 완전무장을 하고 "철통방위" 보초를 서고 있습니다 [대암산 1304m봉 정상 - 군부대 兵舍] 방문 기념사진 [서울백두클럽이 준비한 위문품] 이번 도솔산-대암산 산행에 출입허가를 해준 군부대에 감사도 드릴겸, 또한 이때까지 남들이 하는 위문을 T.V로 구경만 했는데 직접 위문도 하려고 회원님들이 조금씩 분담하여 조촐한 위문품을 준비했습니다. 조촐하지만 마음이 담긴 위문품이니 의미가 있길 바람니다. [위문품 전달] 서울백두클럽 회장님이 위문품을 전달합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기분이 좋지요? 저도 수동태로 살다가 모처럼 능동태로 전환하여 기쁜 일 하나 했습니다 [위문품 전달] 저의 아들 둘은 몇년전에 육군 병장으로 이미 전역했습니다 [장병들과 기념촬영] 장병 여러분!~ 건강하게 그리고 추억에 남는 군생활 하시기 바람니다 남자들의 군생활은 일평생 얘깃꺼리로 술집의 단골 안주입니다 [안내해 주신 원사님] 오늘 안내를 해주신 주임 원사님과 한컷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 나올때 연락 주시면 대포 쏘겠습니다. 대암산에서 국토방위에 전념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림니다 [점심식사] 대암산 부대에서 점심식사를 손수 준비하여 저희들을 대접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짬밥' 정말 오랜만에 먹어 보았는데, '돈까스'를 준비해 주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제가 군대생활을 할때엔 고기 구경하기가 어려웠는데.... 부럽지요? 등산하고...짬밥도 얻어 먹고...ㅎㅎ [대암산 "용늪" 가는 길] 대암산 "용늪"은 군부대 兵舍 바로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군부대 안에 "용늪"이 있는 것입니다. [작은 용늪] 좌측으로 "작은 용늪"이 넓게 펼쳐집니다. [작은 용늪 안내판] 지구의 온난화와 토사의 난입으로 "용늪"은 자꾸 육지화 되어 가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고하네요. 이곳 "용늪"에 대해서는 "큰용늪"에 가서 상세히 설명하겠습니다 ["큰 용늪" 가는 길] 깨끗하고 아름답게 정비한 "큰용늪" 가는 길이 다정스럽습니다. ["큰 용늪" 전망대] "큰용늪"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있어 조망하기가 매우 좋았습니다. 앞에 산봉우리 끝에 조금 보이는 봉우리가 "대암산 정상"입니다. [큰 龍늪] 전망대에서 바라 보는 "큰용늪" 가운데 나무가 없는 곳이 "늪"입니다 이 "늪"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있으며, 1,280m 高地帶에 있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高冷濕地"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 자연생태계보존지구 "람세스"에 가입되있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군부대 초소 - 큰 용늪과 대암산 정상 입구] 이곳이 군부대 입구이기도 하며, "용늪"과 "대암산 정상" 입구이기도 합니다 "큰용늪"은 좌측 안이며 "대암산 정상"은 이길 똑 바로 갑니다 [큰 龍늪] 안내를 받으며 큰용늪으로 들어 갔습니다. [큰 龍늪] 짐작했던것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자연생태계보존지구"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큰용늪"은 하늘로 올라 가는 龍이 잠시 쉬었다 올라 가는 곳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큰 龍늪] 이 늪은 약4,200년 전에 만들어 진것으로 조사 되었다고 하며 용늪의 바닥에는 채 썩지 않은 식물들이 쌓여 스펀지처럼 물컹한 지층을 이룬 이탄층이 발달해 있고 보통 식물이 죽으면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땅 속에 묻히게 되는데 기온이 낮고 습기가 많은 습지에서는 식물이 죽은 뒤에도 썩거나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쌓여 연못 같은 형태로 짙은 갈색의 층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이 "이탄층"이라고한답니다 [큰 龍늪] 용늪에 만들어진 '이탄층'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1m 깊이이며 깊은 곳은 1m 80㎝나 된다고 합니다. 용늪의 이탄층에서 꽃가루를 추출하여 분석한 결과, 용늪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4천2백년 전 쯤으로 이탄층의 밑바닥에서는 포자가, 그 뒤 1천년 동안 더 쌓인 지층에서는 신갈나무가, 그리고 2천년 정도 더 흐른 지층의 윗부분에서는 소나무 꽃가루가 발견되었다고 하는군요. 이것으로 그 시대의 자연 환경을 알수있다고 하니 이 지역 역사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곳이랍니다 [대암산 정상 입구] 큰용늪을 구경하고 입구로 나와 대암산 정상을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와야합니다 이 때 시간이 11시 50분 저 멀리 뒷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대암산 정상입니다 [대암산 정상 가는 길] 대암산 주변은 모두 "미확인 지뢰지대"입니다 그래서 길이 아닌 곳으로는 가면 책임 질수 없답니다. [대암산 정상 가는 길]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별로 없습니다. [대암산 정상 가는 길] 봉우리를 하나 넘어 다음 봉우리가 대암산 정상이니 쉽게 생각해선 않됩니다 [대암산 정상 오르는 암릉] 대암산은 글자 그대로 큰바위가 있는 大岩山입니다 그러니 정상 부근에는 온통 바위였습니다. [대암산 정상] 대암산 정상은 바위들로만 우뚝 서있는 뾰쪽한 봉우리입니다 [대암산 정상] 안전시설이 없어 매우 위험한 대암산 정상 [大岩山 정상] 大岩山 정상에 오르니 12시 25분이었으니 입구에서 35분 걸렸습니다. 정상석도 없고 안내판도 없습니다 높이는 1,310m [大岩山 정상] 大岩山 정상에서 설악산을 촬영하려고 했는데 구름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큰용늪, 대암산 입구] 다시 큰용늪 입구로 되돌아 오니 12시 55분이었으니 대암산을 갔다 오는데 구경하는 시간을 합쳐 1시간 5분 걸렸습니다. [큰용늪에서 廣峙嶺가는 길 지도] 지도의 맨 위 대암산 갈림길이 윗 사진입니다. 여기서 "광치령"까지는 구경꺼리 하나 없는 지루한 길입니다. 지맥 마루금이 산속에서 군사도로로 들락날락하면서 4시간 이상을 갑니다. 지긋지긋한 지루한 산행길이 시작됩니다. 행복은 여기까지이고 이제부터 고생길입니다. [廣峙嶺 가는 군작전도로 - 林道] 군작전도로는 광치령까지 잘 나있습니다. 마루금을 탈 자신이 없으신 분들은 이 도로를 4시간 정도 내려 가면 "광치령"입니다. 도솔지맥 마루금은 여기서 약300m 앞에 우측으로 산악회 표지기가 달린 곳으로 들어 갑니다 [廣峙嶺 가는 '도솔지맥 마루금'] 숲으로 시야가 꽉막힌 도솔지맥 마루금은 길을 잃고 알바하기 쉽습니다 매우 조심하여야 목적지까지 갈수 있습니다 [廣峙嶺 가는 '도솔지맥 마루금'] 어디가 어디인지 오로지 지도와 나침판으로만 진로를 결정하고 진행합니다. 구경거리도 없고 외부가 보이지도 않습니다. 여름철 肉山 마루금을 타는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길찾기가 어렵습니다. [지나온 '도솔지맥 마루금'] 1218m봉에 올라 지나온 마루금을 잠시 볼수 있었습니다 구름에 비까지 내려 외부를 조망할수 없었습니다 [廣峙嶺 가는 군작전도로 - 林道] 마루금이 다시 군작전로로 나와 모두 모였습니다. 일행을 놓치면 큰일 나기 때문에 바짝 바짝 붙어서 가야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여기까지는 전부가 잘 왔습니다만 이제부터 흩어지기 시작하여 알바하는 분들이 늘어 나기 시작합니다. [廣峙嶺 가는 '도솔지맥 마루금'] 군작전도로를 조금 따라 가면 다시 마루금으로 올라 가는 입구가 나옵니다 길 찾기에 자신 없으신 분들은 여기서 도로를 따라 광치령으로 갑니다. [廣峙嶺 가는 군작전도로 - 林道] 여기서 저는 도로를 따라 광치령으로 갑니다. 군사도로는 걷기에 편합니다만 거리가 마루금보다 훨신 더 깁니다. [廣峙嶺 舊道路 - 대암산 입구] 약 4시간을 걸어 내려 오니 "광치령 옛길"을 만나며, 이곳에서 대암산 용늪까지 12km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광치령 휴게소"를 가려면 우측 "광치령 옛길"로 가야합니다 참고로 여기까지 버스가 올라 올수 있었는데 몰라서 휴게소에 기다리라고해 많은 회원들이 여기서 휴게소 가는데 많은 알바를 하였습니다 [마루금을 약간 벗어나 군작전도로로 온 길] 붉은색 선이 마루금을 벗어나 군사도로로 걸어 온 길입니다 왠만하면 군사도로를 이용하시기 바람니다 [廣峙嶺] 이동통신탑이 있는 "廣峙嶺" 에 왔습니다. 여기까지도 버스가 올라 올수 있으니 다음 2구간에는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올라 와야하겠습니다. <지도 참조> [廣峙嶺] 도솔지맥 2구간은 앞으로 직진하여 "광치터널" 위로 가야 합니다 광치령 휴게소를 가려면 우측 옛길을 따라 조금 가다가 왼쪽으로 비탈을 따라 내려 갑니다. 여기서도 휴게소 가는데 일부 회원들이 광치터널을 건너 하산하느라고 알바를 많이 하고 고생을 했더군요 [廣峙嶺 舊道路에서 휴게소로 하산하는 길] 휴게소로 내려 가는 길은 없고, 대략 알아서 내려 가야하며 경사가 장난이 아닙니다. [廣峙嶺 舊道路에서 휴게소로 하산하는 길] 몇번 미끄럼을 엉덩이로 하며 내려 갔습니다 [廣峙嶺 뒷쪽으로 하산] 휴~ 휴게소가 나오며 우리 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廣峙嶺 터널] 서울에서 춘천을 가는 "춘천가도"가 46번 국도입니다. 그 46번 국도가 춘천을 지나 이곳 광치령으로 와서 "인제, 원통'을 지나 "진부령"을 넘어 동해안 "고성"으로 가서 끝납니다 길이 좋아져 서울에서 여기까지 2시간이면 올수있습니다 [廣峙嶺 휴게소 앞에서 양구 방향] [뒷풀이] 오후 5시 30분에 도착하였으니, 오늘 총산행 시간은 9시간 35분이 걸렸습니다 총산행 거리는 약25km 휴게소 바닥에 주져앉아 라면에 쇠주 한잔 쭉 마시고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다음 "도솔지맥 2구간"에서 다시 만나요~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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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鶴山-高臺山 遊山記
         
         동송시외버스터미날-철원여고-금학정-매바위-金鶴山-
         대소라치-보개봉-高臺山-삼각봉--보광봉-말등바위-주차장-신탄리역
        일시 : 2009년 6월 6일(토)
        총산행시간 : 8시간

     
     [산행 개념도]
     
     [수유역 4번출구]
     오전 8시 '수유역 4번 출구'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철원방향 시외버스 터미날"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함께하는 山友와 "금학산-고대산"을 다녀 오기 위해서입니다
     날씨는 의외로 맑고 시원하였으며 가시거리도 길고 바람도 적당했습니다
     초여름 날씨 치고는 산행하기에 좋은 날씨
     
     [수유역 시외버스터미날]
     "금학산-고대산 종주"를 하기 위한 대중교통수단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 수유역 4번출구 옆 "동송"행 직행버스를 타고 "동송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바로 금학산을
         오르는 방법이 있으며 우리는 오늘 이 방법으로 갑니다.
         버스 요금은 8,100원. 
         운행 시간은 약 1시간 40분
         배차간격은 다음 버스 시간표 참고
     2. 전철 1호선을 타고 "동두천역"까지 가서 "경원선 열차"로 갈아 타고 "신탄리역"까지 갑니다.
        경원선 열차는 동두천역에서 매시 50분에 출발합니다. 
        한시간에 한번이니 시간을 잘 맞춰야합니다.
        운임은 1,000원이니 매우 쌉니다.
        신탄리에서 고대산으로 산행을 시작하여 금학산으로 가면됩니다
        금학산부터 먼저 산행을 시작하려면 신탄리역 앞에서 "동송행 시내버스"가 
        기차 도착 시간에 맞춰 한시간 간격으로 있으니 이 버스를 타고 동송으로 가 
        산행을 시작하여 금학산-보개봉-고대산-신탄리역으로 다시 오면 됩니다.
        신탄리역에서 동송까지 시내버스 운행 시간은 약 30분입니다
               
               [수유역 버스운행시간표]
               8시 20분 출발하는 동송행 무정차 직행버스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동송행 버스는 자주 있습니다
     
     [동송 시외버스터미날]
     무정차 하고 동송까지 가는 줄 알았는데 중간에 몇군데 서고 동송으로 가더군요
     "동송 시외버스 터미날"에 정확히 10시 정각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꼭 1시간 40분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곳 터미날에서 바로 걷기 시작합니다
     오늘 산행 시작은 10시 정각이 되는 것이고, 
     신탄리역에서 기차를 타는 시각이 오후 6시였으니 정확히 8시간을 걸었습니다
     
     [동송시내]
     동송 시외버스 터미날 앞 거리 모습입니다
     우리들에게는 "구철원"이 더 익숙한 "동송"이라는 도시
     "신철원"을 "철원"이라 하고, "구철원"은 "동송"이라고 한답니다
     
     [산행 들머리 - 철원여고 입구]
     "동송시외버스터미날"에서 나와 바로 오른쪽 방향으로 약 30m정도 가면
     "철원 여자 중*고등학교"와 "금학체육공원" 가는 길안내 표지판이 보이는
     들머리를 만납니다. 길찾기 참 쉽지요~~이~잉
     
     [산행 들머리 - 철원여고 가는 길]
     "철원 여자 중고등학교" 가는 길로 끝까지 가면 됩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길이 똑 바로 잘 나있지요? 끝까지 가면 됩니다
     길 찾기 참 쉽지요 ~~이~잉
     
     [金鶴山]
     "철원여고"를 향해 가면 "철원여고" 뒤로 "金鶴山"이 우뚝 솟아있으며
      드디어 "金鶴山"이 산꾼들의 마음을 들썩거리게 합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山勢가 가파릅니다
      파란문의 산행기를 보고도  다음에 금학산을 찾지 못하시는 분은 집에서 쉬세요
      파란문의 산행기를 즐겨 찾으시는 분들이 많은데.. 
     산행기 보고 정작 댓글 하나 달아 주는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보고 그냥 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아직 댓글 습관이 정착하지 못한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아유~ 왠만하면 댓글도 하나 남겨 주시고 가세요. ♬ ㅎㅎ
     댓글 남겨 주시면 제가 즐겁지요..
     
     [철원여고 교문]
     철원여고 교문 좌측 "금학정" 가는 길로 올라 갑니다
     "동송"에 "철원 여자 중고등학교"가 있으니, "동송"이 오리지날 "철원"입니다.
     
     [산행들머리 - 금학정 가는 길]
     철원여고 교문 좌측 바로 옆으로 "金鶴亭" 가는 길로 계속 올라 갑니다.
     길은 계속 쭉~ 뻗어있습니다
     
     [산행들머리 - 금학정 가는 길]
     공사중인 갈림길이 나오는데, 공사중인 길로 바로 올라 갈수도 있으며 시간은 단축됩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金鶴亭"을 구경하고 올라 가려면 좌측으로 갑니다
     
     [金鶴亭]
     "金鶴亭"에 왔습니다.
     "金鶴亭"은 체육시설인데 "國弓場"이었습니다. 활쏘는 곳이란 말입니다
     요즈음 양놈들 올림픽에 가면 국산 엽전들 때문에 자존심에 똥칠하지요?
     우리나라 사람이 세계에서 西洋활을 제일 잘 쏘지요
     國弓은 세계대회가 없으니 아직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아마 당연히 세계 1위일겁니다.
     "로빈 훗"보다 우리나라 양궁선수들이 더 잘 쏘니 대단한 민족임에 틀림없습니다
     
     [金鶴亭]
     "金鶴亭"은  "國弓場"으로 우리나라 활을 쏘는 곳이었는데....
     아마도 제 추측에는 이곳이 옛날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도읍을 정하고
     "태봉국"을 세워 역사 속에서 "궁예"가 아직도 숨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궁예"는 한자로 "弓裔"이기때문입니다. 
     조금 더 설명을 드리면 아시다시피 "궁예"는 "신라 47대 헌안왕"의 아들이니 "신라의 왕자"였습니다.
     신라의 왕자가 "고구려"를 계승하는 "후고구려"를 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弓裔"라고 했으니
     그가 얼마나 신라에 대한 원한이 많아 복수의 칼날을 세웠는지 알수 있습니다
     "弓裔""궁 弓""활"이라는 뜻이고, "예 裔""후손"이라는 뜻이지요. "활의 후손"
     의 종주국은 高句麗였으니 新羅에 강력히 대항하는 의미로 이름까지 "弓裔"라 한것입니다
     "弓裔"를 지역의 상징적 인물로 부각시키고있는 철원이니 이런 "國弓場"이 "金鶴山" 아래에
     있는듯했습니다. "弓裔"는 바로 이곳에 "태봉국" 도읍을 지을려고 했었습니다.
     
     [金鶴亭 뒤에서 동송 방향으로 촬영]
     金鶴亭 뒤 주차장으로 가면 등산로 올라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올라 가 金鶴亭을 조망했습니다.
     옛날 "궁예"가 '태봉국'을 세울때 어느 선사가 "궁예"에게 도읍을 "金鶴山" 아래에 정하라고 했는데
     그러면 나라의 운명이 300년은 가고, 그렇지 않을 경우 30년도 못 간다고 조언을 해 줍니다
     그러나 "궁예"는 그 말을 듣지 않고 현재 휴전선 안에 있는 곳에 "궁예산성"을 쌓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태봉국"은 정권이 18년만에 "왕건"에게 작살이 나버립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이곳 "동송"에 도읍을 정했다면 .......
  
     [금학체육공원 가는 길]
     금학정 뒤 주차장 위로 올라가 다시 포장도로로 올라 갑니다
     삼국사기에 공식적으로 나온 궁예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원문을 인용해 검토해 보겠습니다
     "弓裔 新羅人 姓金氏 考第四十七憲安王誼靖 母憲安王嬪御 失其姓名 
      或云 “四十八景文王膺廉之子” 以五月五日 生於外家 "
     [궁예(弓裔)는 신라 사람으로 성은 김씨이고, 
     아버지는 제47대 헌안왕 의정(誼靖)이며
     어머니는 헌안왕의 후궁이었는데 그 성과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또는 48대 경문왕 응렴(膺廉)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5월 5일에 외가에서 태어났다]
     위의 삼국사기에서 궁예를 "47대 헌안왕의 아들일수도 있고 48대 경문왕의 아들일수도 있다"고 했는데
     한 나라의 '왕자'인 궁예의 아버지도 고의적으로 애매하게 기록하는 불분명한 역사책, "삼국사기" 
     김부식이는 왜 유독 "궁예"에 대해 이런 불명확한 기록을 남겼을까요?
     쿠데타를 일으켜 '궁예'를 죽이고 정권을 잡은 '왕건의 高麗' 입장에서 쓴 기록이니 
     그러하다 할수 있겠죠. 즉 勝者의 기록이기에 敗者인 '궁예'를 비하 시킨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저의 "명성지맥2구간 산행기"를 참고 하세요
     
     [금학체육공원]
     "금학체육공원"에 도착했습니다.
     "동송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여기까지 약 30분이 걸렸습니다.
     산행에 필요한 물건도 사고, 금학정 구경도 하며 왔기 때문입니다.
     "산행에 필요한 물건"이 뭔지 궁금하세요? ㅎㅎ ......쇠주 ㅋㅋ
     
     [약수]
     금학산에 올때는 집에서 미리 물을 준비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금학산-고대산 종주 코스에는 여기에만 샘물이 있으니 여기서 충분히 준비 해야 합니다
     요즘같은 초여름엔 3리터 정도의 물을 준비 해야합니다
     
     [산행 들머리]
     금학산은 이곳 정자를 지나 정자 뒤로 올라 갑니다
     정자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10시 30분에 출발합니다
     
     [된비알]
     체육공원 정자에서 무척 가파른 된비알을 약 10분 정도 치고 올라 갑니다
     갑자기 경사가 심해 당황합니다
     이런 경사라면 금학산 정상까지 갈수 있을까?하는 의구심까지 드는데 염려하지 마세요
     
     [비상도로 사거리]
     약 10분 정도 오르면 "비상도로"를 만납니다
     이곳은 휴전선 근방이기에 군작전도로가 잘 나 있고, 이 도로는 아마도 정상 부근까지
     이어져 있는 걸로 알고있습니다.
     
     [비상도로 사거리 이정표]
     산객은 비상도로를 버리고 "등산로"를 따라 올라 갑니다
     여기서 947m높이의 金鶴山 정상까지 쉴틈없는 급경사 오르막이었습니다
     단단히 마음 먹고 출발해야합니다.
  
     [매바위 진입로]
     비상도로에서 등로로 처음엔 완만한 길을 오르지만....
  
     [매바위 오르는 된비알]
     숲속에 갖혀 외부 조망도 없는 터널을 오르는데 엄청 경사가 심합니다.
     모든 잡념을 버리고 그저 꾸준히 걷고 걸어야 덜 갑갑합니다
     
     [처음 만나는 바위]
     숲으로 둘러 쌓인 숲터널을 뚤고 올라 가면 처음으로 이런 바위를 만납니다
     중간 기착지점인 "매바위" 근처에 온 것입니다
     
     [처음 만나는 바위에서 올려다 보는 "매바위"]
     登路에서 처음으로 하늘이 열리고 갑갑한 가슴이 시원해 지는 곳이 "매바위"입니다
     처음 만나는 이름 모를 바위에서 위쪽을 바라 보면 "매바위"가 보입니다
     이제서야 한숨 돌립니다
     동송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여기까지 1시간 35분 걸렸습니다
     
     [매바위]
     '매바위"
     "매"처럼 보이십니까?
     보는 사람들 마음대로 감상해도 무방합니다
     제 눈에는 "강아지"가 서서 저를 반기는 둣 했습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실겁니다. ㅎㅎ
     
     [매바위에서 조망하는 "동송시내"]
     "매바위"가 "강아지 바위"로 보이지 않나요? ㅎㅎ
     金鶴山의 "매바위"는 매우 유명합니다. 
     모든 금학산 산행기에는 반드시 이 "매바위"는 등장하기에 유명한것으로 느낍니다만
     그 이유는 제 생각에는 金鶴山에서 볼거리는 "매바위"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과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궁예"의 옛 활동지역인 "동송"을 조망하기에 최적의 위치이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바위' 자체는 그저 그렇습니다
     
     [매바위에서 조망하는 "동송시내"]
     "弓裔"의 넋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듯합니다
     오른쪽으로 바로 "궁예"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통곡해서 붙여 졌다는 유명한 "명성산"이 보이고
     가운데 멀리 한북정맥의 "광덕산"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광덕산-각흘산-명성산-여우봉-사향산-관음산-불무산-보장산으로 이루어진 '명성지맥"의 대표산인
     "명성산"에 대해서는 저의 옛 산행기를 참고하세요
     
     [매바위에서 올려다 본 "금학산"]
     금학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눈에 보이면 두려움이 없어지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하지만 여기서 정상까지도 엄청 된비알이었습니다
     
     [매바위에서 금학산 정상 오르는 길]
     매바위에서 부터는 가끔 바위들이 나타났습니다.
     구경거리들이 좀 있어 지루하지는 않더군요
  
     [매바위에서 금학산 정상 오르는 길]
     최근에 등로를 인공시설로 많이 개선했더군요
     급경사에는 계단을 만들어 놨습니다
               
               [금학산 정상 오르는 계단]
               제법 긴 계단이 튼튼하게 설치되 있습니다
               이런 계단이 없었을 때에는 고생이 심했을듯....
  
     [금학산 정상부 능선 이정표]
     급경사와 계단을 오르면 능선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능선에는 이정표도 있습니다. 여기서 한숨 돌리고....
     
     [능선에서 올려다 본 금학산 정상]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금학산 정상에 오를수 있겠습니다
     "금학산-보개봉-고대산" 종주에는 금학산 오르는 등로가 제일 힘듭니다.
     경사가 심하고 높이가 947m이니 대략 짐작이 가시죠?
     나머지 구간은 비교적 쉽습니다
     여기만 오르면 오늘 고생 끝 ~
     
     [금학산 정상 오르는 길에 있는 "무명 바위"]
     여기에도 "매바위" 같은 바위가 있숩니다
     금학산에는 산객들이 많지 않았습니다만 이 부근에서 벌써 하산하는 산객들을 만났는데
     대부분 여자 들이었고, 고등학생들과 선생님들도 있었는데...부지런하기도 하시지...
     
     [군 토치카]
     하늘이 열리는 것으로 보아 정상 부근에 왔다는 것을 직감할수 있습니다
     군 토치카가 곳곳에 설치되 있는데....
     
     [군 토치카 위의 화생방 타종시설]
     군 토치카 위에 오르니 화생방 타종시설이 있으며
     "동송" 시가지가 잘 조망되었습니다
     
     [금학산 정상 - 헬기장과 토치카]
     드디어 金鶴山 정상부에 올랐습니다
     정상부 아래에는 모두 군시설들이었습니다
     
     [금학산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정상]
     정상에 오르니 헬기장이 제일 먼저 반기고
     정상석이 있는 곳에는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곳곳에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동송시외버스 터미날에서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금학정'에서는 두시간 정도 걸린샘입니다
     
     [모노레일 카]
     헬기장 바로 옆에 "모노레일 카"가 있더군요.
     그러니까 이곳 정상까지 화물을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이 있는 것입니다.
     군부대의 여러 물품들과 음식물을 실어 나르는 "모노레일 카"가 신기합니다.
     "요즘 군대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편리해 졌으니.....
     이런 "모노레일 카"가 없었던 시절에 군복무를 한 사람들은 그 당시 얼마나 고생 했겠는지 
     가희 짐작이 가시나요? 먹어야 싸울수 있으니 먹기 위해 식자재들을 지고 
     이 높은 금학산을 오르 내렸을 테니....에구~
     겨울에는 이곳의 기온이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 가는 곳이란거는 모두 아시죠?
     옛날에 비하면 요즘은 꽁짜로 여행 온듯한 기분으로 군대생활한다니...
     아무튼 잘된일입니다
  
     [헬기장에서 정상 가는 길]
     군부대 시설을 만들고 있는듯 '금학산 정상'은 온통 공사판이었습니다
     금학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는 군부대가 있어 갈수 없고 정상석을 이곳에 세워 놨습니다
     군부대 안에 갔다가 돌아 왔습니다
     
     [金鶴山 정상]
     헬기장 바로 윗 봉우리에 정상석을 세워 놨습니다.
     오늘 저와 함께한 山友입니다. 멋있죠?
     이 사진 보고 또 소개 시켜 달라는 여자분들이 많겠는걸...
               
               [金鶴山 정상석]
              金빛을 내는 鶴이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지었다는 金鶴山
              947m로 제법 높은 산이며, 특히 궁예가 도읍을 정하려고했던 鎭山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金鶴山 정상에서 바라 보는 高臺山]
     金鶴山 정상에 서니 앞으로 가야할 高臺山이 확실하게 조망됩니다.
     이제까지 막연하기만 했던 金鶴山-보개봉-高臺山이 펼쳐집니다
     이 광경을 보고 나니 쉽게 고대산까지 갈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 산행기를 보시는 분들도 자신감이 생기시죠? ㅎㅎ 
     
     [金鶴山 정상 헬기장에서 高臺山 가는 길]
     金鶴山 정상에서 高臺山으로 가려면 다시 헬기장으로 내려와 西北쪽으로 내려 가야합니다
     다른 분들의 산행기에서 알바를 많이 하는 곳이라고 주의를 주고 있으니 참고 하시길...
     
     [金鶴山 정상 헬기장에서 내려다 본 '동송']
     삼국사기에 적혀 있는 궁예의 理想을 알아 보면
     "天復元年辛酉, 善宗自稱王, 
     謂人曰: "往者新羅請兵於唐, 以破高句麗, 故平壤舊都鞠爲茂草, 吾必報其"
     [천복(天復: 唐 昭宗의 연호) 원년(서기 901년) 신유(辛酉)년에 선종(善宗=궁예)이 
     왕을 자칭하고 사람들에게 일렀다. 
     "옛날에 신라가 당(唐)에 군사를 청하고 고구려를 파(破)하였기 때문에 
     평양 옛 도읍이 황폐하여 풀만 무성하다. 내가 반드시 그 원수를 갚으리라!"]
     궁예의 법명이 선종善宗입니다
     외세를 끌어 들여 자신들의 정권 연장에 이용한 신라 왕조에 대한 반감이 하늘을 찌를듯합니다
     신라의 왕자인 자신을 버린 신라를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金鶴山을 하산하며 뒤돌아 본 金鶴山 정상]
     "궁예"가 애꾼눈이 된 사연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 글은 제가 "명성지맥2구간 산행기"에 올렸던 글인데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다시 올려드립니다
     
     [보개산에서 고대산으로 뻗은 능선]
     '보개봉'에서 '고대산'까지는 완만한 능선으로 쉽게 갈수 있을듯 보이는데
     직접 가보니 여기서 보는것과 달리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었습니다.
     대체적으로는 평이했습니다

     궁예가 애꾸눈이 된 사연
     궁예의 아버지는 신라 제47대 헌안왕이고, 어머니는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후궁이었습니다
     삼국사기에서 48대 경문왕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기록은 47대 헌안왕이 48대 경문왕에게
     완전이 호구 잡혀 꼭두각시 왕만 하다가 왕위를 48대 경문왕에게 그냥 물려줬기 때문입니다
     궁예의 탄생은 삼국사기에서 5월 5일에 외가에서 출생하였다고 기술해 놨습니다 
     탄생 설화에 나타나 있는 이 때의 상황을 제가 시나리오로 꾸며 보겠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약 1,140여년전 5월5일 단오날이었습니다
     일관(日官)이라고 하는 나랏일에 대해 점(占)보는 일을 맡아보는 벼슬을 가진 놈이 
     신라 왕실에 허겁지겁 뛰어 옵니다. 그리고 후에 48대 왕이 되는 예비 경문왕에게 아룁니다
     日官 : (뛰어 와 허리를 굽히고 숨을 헐떡이며...) 전하!!~~ 큰일 났습니다
     王   : 호들갑 떨지 말고 자세히 아뢰어라!
     日官 : 아이구 숨차~ 전하! 기이한 점괘가 나왔습니다
     王   : (놀라며) 무슨 점괘냐?
     日官 : (건너편 왕궁을 가리키며) 저쪽 47대 헌안왕 세칸드 침소에서 왕자가 한명 탄생했습니다
     王   : 무어라?  아들 하나 낳은게 뭔 큰일이라고 호들갑이냐? 내가 그깟 아들 하나를 무서워 하겠냐?
     日官 : 아닙니다. 전하!~ 47대 헌안왕의 아들이 탄생하면서 부터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王   : 어떻게 예사롭지가 않다는것이냐? 궁둥이에 뿔이라도 있느냐?
     日官 : 이 왕자 쎄끼가 나면서 부터 이빨이 나고, 얼굴에는 이상한 瑞光이 비취고
             아이큐가 무지 좋아 벌써부터 또릿또릿한게 큰 인물이 될것 같습니다
     王   : (놀라며) 그래? 앞으로 내가 왕이 되는데 걸림돌이 될것이란 말이지?
     日官 : 넵! 그렇게 사료 되옵니다
     王   : (벌떡 일어 서며 화낸 목소리로) 여봐라!~~ 이거이 않되겠다. 그 애새끼 죽여버려!!~~
     (호위병들이 급하게 뛰어 나간다)

 
     [금학산 정상에서 "대소라치"고개로 하산]
     급경사 내리막인데 "모노레일'이 인상적입니다

     (장소가 바껴 47대 헌안왕의 세칸드 침실)
     (호위병들이 침입하는 소리가 들린다)
     (위기에 처한 왕후가 아들을 강보에 싸서 부랴 부랴 안고 방안의 숨을 곳인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군사들이 방문을 박차고 쳐 들어 온다)
     (다급해진 왕후가 다락문을 열고 밖에 있는 유모에게 아이를 던진다)
     (유모가 아래에서 아이를 받는데, 이때 유모가 잘못하여 손가락이 아이의 눈을 찌른다)
     (눈에서 피가 나는 아이를 안고 허겁지겁 도망을 친다)
     궁예가 애꾸눈이 되는 과정을 제가 기록을 토대로 이해하기 쉽게 꾸며 봤습니다
     이해가 쉬운가요? ㅎㅎ
     궁예는 엄마가 다락에서 유모에게 던질때에 유모의 손가락에 눈이 찔려 애꾸눈이 됩니다

     
     [대소라치]
     金鶴山과 高臺山의 경계인 "대소라치" 고개가 보입니다.
     건너편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보개봉"입니다.
     高臺峯은 오른쪽 끝에 보입니다
  
     [대소라치 군시설]
     최전방이기에 군사시설이 곳곳에 있습니다
     
     [대소라치]
     "대소라치" 고개로 내려 갑니다
     이 도로들은 모두 군사도로입니다.
     
     [대소라치에서 바라보는 "담터계곡"과 "지장산"]
     "대소라치'에서 남쪽으로 "담터계곡"이 길게 뻗어 있으며 
     오른쪽 끝으로 "지장산"이 보입니다.
     "지장산 - 보개봉 - 고대산" 종주를 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대소라치 방호벽]
     인적이 없는 고갯길에도 전쟁을 염두에 둔 방호벽은 육중한 모습을 하고 서 있습니다
     탱크들이 못 넘어 오게 설치한 방호벽은 이젠 익숙한 시설물이지요
     
     [대소라치에서 보개봉 가는 길]
     이 길은 산 입구에서 군 참호통로로 끊겨있어  참호통로를 건너 가야 합니다
     직접 가 보시면 뭔말인지 알수 알수있습니다
     
     [보개봉 올라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대소라치"와 金鶴山]
 
     "궁예"의 와이프 "강씨왕후"에 대해 쬐끔 알려드립니다
     "강씨왕후"는  무지무지 미인이었고 똑똑한 여자였답니다
     그렇기에 '왕건'의 쿠데타 세력들은 "궁예와 강씨왕후"를 폄하 시켜야 자신들의 돋보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궁예와 강씨왕후"를 씹어 댔습니다
     高麗史에서도 여러 군데서 "강씨왕후"를 폄하시키고 있는 것들이 보입니다
     그러니 패망한 "궁예"라 할지라도 "궁예"가 무척 두려운 존재였을 것이고
     "강씨왕후"는 파란문의 추측으로는 "빼어난 미모에 지성까지 갖춘 여인"이어서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高麗의 사학자들은 "궁예와 강씨왕후"를 폄하하기 위한 설화를 지어내 퍼뜨렸습니다
     '후고구려' 세력을 완전히 무력화 시키기 위해서이죠
     그 대표적인 것이 <"궁예와 구미호">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승자가 패자를 어떻게 폄하하는지 그 단면을 확실히 들여 다 볼수 있는 "궁예와 구미호"
     "궁예와 구미호"에서 궁예가 사람을 많이 죽인 이유를 
     구미호가 "강씨왕비"를 잡아먹고 그 탈을 쓴 구미호가 왕인 궁예를 홀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인이 생기길 천하일색으로 생겼는데 웃는 벱이 없어. 좋아하는 벱이 없어. 
     거 사람 죽이는 것만 보면 깔깔 웃어,”
     왕비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궁예가 사람을 계속 죽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궁예는 본래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한 폭군은 아니라는 것인데 
     이렇게도 나쁜 놈을 만들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대단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구미호"는 둔갑을 자유자재로 하는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일 수도 있고, 
     또는 왕을 홀려 정치를 등한시하게 하여 결국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요사스런 여인의 상징일 
     수도 있습니다. 구미호가 어떤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든, 이것은 임금으로서의 궁예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보다는 여색에 빠져 정치를 등한시한 망국의 군주로서의 궁예를 파렴치한 놈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 파렴치하고 권모술수에 능했던 인간은 오히려 쿠데타 정권인 "왕건"이었다고 전해져 내려 옵니다
     궁예와 강씨왕후를 폄하 시키고 '삼족구'라는 세개의 다리를 가진 개를 등장시켜 구미호를 제압하는데
     여기서 '삼족구'는 '왕건'을 암시하며, 난세에 영웅 출현을 의미하며 '왕건'을 띄웁니다
     이야기가 요즘 정치판하고....좀 ..그렇지요? ㅎㅎ
 
     
     [보개봉 가는 길에 처음 만나는 갈림길]
     "대소라치"에서 "보개봉" 올라 가는 길에는 두번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모두 "왼쪽"으로 가야합니다. 알바 많이 하는 곳이니 주의해야합니다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많이 붙어 있는 곳이 "왼쪽"이니 꼭 "왼쪽"으로 가세요
     느낌으로는 꼭 직진해야하는 것으로 느껴지기에 알바를 많이하는거죠
     
     [점심식사]
    지금까지 산에 다니며 준비한 점심식사 중에 최고였습니다
    김밥, 불고기, 청양고추, 피클, 토마토, 던킨 도넛, 쇠주......
    약 1시간 정도 쇠주에 점심식사를 하고....
  
     [보개봉 올라 가는 길]
     '보개봉'까지 경사가 다소 심한 오르막을 3~40분 정도 오릅니다.
     숲으로 뒤덮힌 肉山이라 외부를 조망할수 없어 길을 잃을 염려가 많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 드린데로 갈림길 두군데에서 "왼쪽"으로만 가면
     보개봉 정상으로 어렵지 않게 갈수 있습니다
     
     [보개봉 정상]
     어느 산이나 하늘이 보이면 대체로 정상입니다
     '보개봉' 정상도 시멘트 포장이 되있는 헬기장입니다
     
     [보개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高臺山"]
     보개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헬기가 앉을수 있는 넓은 시멘트 포장 공간이 있으며
     앞으로 가야할 "高臺山"이 가깝게 보입니다.
     
     [보개봉 정상에서 뒤 돌아 본 "金鶴山"]
     "金鶴山"이 작지만 가파른 높은 산이란걸 느낄수 있습니다
 
     지금 배경 음악으로 흐르고 있는 곡은 모두 잘 아시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입니다
     이 곡은 멕시코 출신의 3인조 트리오 "로스 트래스 디아멘테스"가 발표하여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라틴음악의 고전이죠?
     맥시코의 '트리오' 라고 하면 'Trio Los Panchos 트리오 로스 판초스'가 먼저 생각 납니다만
     사실 Los Tres Diamantes도 만만치 않은 라틴음악의 대표들입니다
 
     
     [보개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지장산"]
 
     이 노래의 원명은  "Luna Llena"로서 영어로 하자면 "Full Moon"이며
     우리말로 직접 번역하자면 "滿月"이라고 해야겠지요
     "滿月"을 '불루벨스'는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로 번안 했는데 번안 하는 사람 맘대로 이겠지만
     '불루벨스'가 부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순전히 우리식으로 번안한 것입니다
 
     
     [보개봉 정상에서 내려다 본 "담터계곡"과 "지장산"]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푸른 저 달빛은 호숫가에 지는데
          멀리 떠난 그 님의 소식 꿈같이 아득하여라
          차가운 밤이슬 맞으며 갈대밭에 홀로 앉아
          옛사랑 부를때 내 곁엔 희미한 그림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여 
          차가운 밤이슬 맞으며 갈대밭에 홀로 앉아
          옛사랑 부를때 내 곁엔 희미한 그림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여 
    
     이 곡은 세계의 여러나라에서 나름대로의 감성에 맞게 개사되어 불려지는 노래이며 
     듣는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멜로디가 아름다운 곡으로 
     언제 들어도 감미롭고 아름다운 노래로 느껴집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아마도 모두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가 있지요? ㅎㅎ
     없으신 분들은 인간도 아녀~~누구나 있는 벱이여~ㅎㅎ
     
     [보개봉 정상에서 "高臺山" 가는 길]
     "보개봉"에서 "고대산" 가는 능선은 겉으로는 평평해 보이지만
     직접 가 보니 오르락 내리락 했습니다
  
     [고대산 가는 능선]
     다른 산객들은 거의 만나기 어렵고 산객들의 흔적도 별로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고대산'과 "금학산"을 종주 하지 않고 고대산이나 금학산만 오르고
     가기 때문이라 생각 됩니다.
     이 능선에선 산객 두사람을 만났을 뿐입니다
     
     [고대산 가는 능선에서 뒤돌아본 "보개봉"과 "금학산"]
     고대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뒤돌아 보니 '보개봉'과 "金鶴山'이 그림같습니다
     
     [高臺峯]
     능선에서 숲 사이로 보이는 "高臺山"의 "高臺峯"
    
     오늘은 요즘 유행하는 "워매... G랄이야~"라는 유머를 전하겠습니다
    
     여름철에 베짱이는 놀기만하고 개미는 열심히 일했는데, 
     겨울이 오니까 개미들이 전부 얼어죽고.... "워매... G랄이야~"
    
     
     [高臺峯]
     우측이 高臺山의 정상인 "高臺峯", 좌측이 "삼각봉", 그 좌측이 "대광봉"
    
     사냥꾼에 쫓기던 사슴, 
     나무꾼한테 숨겨달라고 애원하고숨었는데 나무꾼 고자질하고.... "워매... G랄이야~"
    
  
    [高臺峯 올라 가는 길]
     高臺峯 올라 가는 마지막 오르막을 오릅니다.
     
       광한루에서 그네타는 아리따운 춘향이를 불러오라구 
       방자에게 시켰더니 향단이를 데려오고 ....  "워매... G랄이야~"
    

     [高臺峯]
      高臺峯 턱 밑에 까지 왔습니다
      
     암행어사 출두요!하는 소리에 춘향이가 기뻐서 고개를 들었는데 
     암행어사가 이도령이 아니고 박문수고.... "워매... G랄이야~"

     
     [高臺峯 오르는 길]
     高臺峯 정상은 우측으로 돌아 올라 갑니다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뛰어들었는데, 
     그 때 바닷물이 갈라지고.... "워매... G랄이야~"

     
     [高臺山 제3코스]
     우측으로 돌아 올라 오면 "高臺山 제3코스"를 만납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나무꾼이 산에서 나무하다가 그만 도끼를 연못에 빠뜨렸는데
     이 도끼가 연못에 가라앉지 않고 둥둥뜨고  .... "워매... G랄이야~"

     
     [高臺山 정상]
     高臺峯으로 올라 갑니다
     이곳에도 '모노레일"이 깔려 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했는데... 
     토끼가 낮잠을 안자고 .... "워매... G랄이야~"

     
     [高臺山 정상 갈림길]
     高臺峯 바로 아래에 갈림길 이정표가 있으며,
     高臺山 정상을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와서 제2등산코스를 따라 하산해야합니다
     
     [高臺山 정상]
     南쪽에서 北으로 갈수 있는 등산이 허용된  휴전선에 가장 가까이 있는 高臺山정상에 올랐습니다.
     高臺山은 철원군과 연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인데 
     高臺山은 주로 '연천군 신탄리'에서 오르기 때문에 연천군의 산으로 느껴지고있습니다
     
     [高臺山 정상석]
     高臺山 정상에서 가장 잘 보이는 산은 역시 "金鶴山" 입니다
     철원평야와 한국전쟁 때의 최대 격전지였던 "백마고지"를 비롯하여 ,"지장산"등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高臺山은 골이 깊고 산이 높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만
     원래는 "방고래"에서 유래했다는 군요.
     옛날 온돌방에는 불이 들어 가는 아궁이에서 방바닥 밑으로 '방고래'가 지나가지요?
     그 '큰 방고래'에서 유래하여 "고대산"이 되었다고 안내판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高臺山 정상석 아래에 있는 '열쇠부대' 팻말]
     
     [高臺山 정상에서 뒤돌아 본 "보개봉"과 "金鶴山"]
     
     [高臺山 정상에서 바라 본 "담터계곡"]
     
     [高臺山 정상에서 바라 본 北쪽 방향 "고대산 제3등산코스"]
     북녁으론 "백마고지", 우측으로는 철원평야와 동송의 '학저수지'가 보이는군요
               
               [삼각봉 이정표]
               高臺峯에서 제2등산코스를 따라 조금 오니 바로 "삼각봉"이었습니다
               高臺山에는 등산코스가 세개 있었는데, 주로 "제2등산코스"를 이용하더군요.
               제1등산코스는 대광리에서 오르는 길이고
               제3코스는 高臺山의 북쪽 계곡을 따라 오르는 코스였습니다
               제2코스가 신탄리에서 능선을 따라 오르는 가장 유명한 코스였습니다.
               처음으로 고대산에 가시는 분들에게는 "제2등산코스"를 추천해 드림니다
     
     [삼각봉에서 뒤돌아 본 "高臺峯"과 "金鶴山"]
     삼각봉에서 뒤돌아 보니 "高臺峯"과 "金鶴山"이 가깝게 느껴지는군요
      
     땅으로 떨어진 제비새끼의 다리가 부러졌다 
     흥부가 애써 치료해줘서 날려 보냈는데 이듬해 안오고.... "워매... G랄이야~"

     
     [삼각봉에서 내려다 본 "대광봉"]
     앞으로 가야 할 "대광봉"이 보입니다.
      
     별주부가 온갖 천신만고끝에 토끼를 찾았는데 
     아 이 토끼 경주 하자고.... "워매... G랄이야~"

               
               [대광봉 이정표]
               "대광봉"에 왔습니다
               "고대봉"과 "삼각봉", 그리고 "대광봉"은 나란히 가까이 있습니다
     
     [대광봉]
     '고대산 제1등산코스"인 대광리에서 오르는 등로와 만나는 "대광봉"입니다.
      
     겨우 용궁에 데리고 가서 토끼를 데려왔다고 알리니 
     아.. 용왕이 벌써 죽고.... "워매... G랄이야~"

     
     [대광봉에서 뒤돌아 본 "삼각봉"]
      
     나무꾼이 선녀옷을 훔칠라고 선녀탕에 몰래 숨었는데
     웬..수염난 산신령이 목욕하고 있고.... "워매... G랄이야~"

     
     [제2등산로 하산]
     하산은 팻말을 보고 "제2등산로"를 따라 가야합니다.
      
     다음날 나무꾼이 젤 이쁜 선녀옷 감추기에 성공했는데 
     빨가벗은채 하늘로 걍 올라가고.... "워매... G랄이야~"

  
     [제2등산로 하산]
     제2등산로는 좁은 능선길입니다
     아기자기한 코스이며 "신탄리와 고대봉"을 조망하기에도 좋은 코스였습니다
      
     춘향이 옥에 갇혀서 이도령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이넘이 과거에 떨어져 재수 삼수 계속하고.... "워매... G랄이야~"

     
     [제2등산로 하산하는 길]
     좁은 능선인 "제2등산로"를 따라 내려 가면 "신탄리"가 잘 조망 됩니다.
     신탄리 新炭里는 연천군 신서면에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무지 무지 유명한 곳이지요
     왜냐하면 서울과 북한의 원산을 잇는 철로 "경원선"의 남쪽 마지막 역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죠
     금강산 가는 철길 - 경원선의 마지막 역.......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 한시간이면 갈수 있는 금강산을 오고 갔으면.....
     
     [제2등산로 하산하는 길]
     아기자기한 능선을 따라 하산합니다
     경치가 아주 끝내줘요~~
     
     [신탄리]
     "신탄리"는 한자로 "新炭里"로서 6.25 이전까지는 이곳에 "참숯"이 많이 생산되어
     "참숯"으로 유명하였답니다. 그래서 신탄리라고 했다는 군요.
     이는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숯을 만들수 있는 산림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이라합니다
     
     [제2등산로 전망대]
     능선 중간에는 친절하게 조망대를 만들어 놨기에 구경하기에 좋았습니다
      
     이도령이 드뎌 장원급제해서 남원으로 내려왔는데 
     춘향이 변사또하고 이미 살림차리고.... "워매... G랄이야~"

     
     [제2등산로 전망대에 있는 안내도]
      
     지나가던 스님이 공양미 삼백석만 바치면 눈 뜰수 있다고 했는데 
     심봉사가 그 말에 놀라 바로 눈 뜨고.... "워매... G랄이야~"

     
     [高臺山 내력]
      
     심청이 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인당수에 뛰어 들라고 하는데 
     청나라 상인이 뒤에서 껴안더니 타이타닉 흉내내고.... "워매... G랄이야~"

     
     [말등바위 가는 길]
      
     심청이 왕비가돼서 심봉사를 궁궐로 초청했는데 
     뺑덕어멈이 대신오고.... "워매... G랄이야~"

               
               [말등바위 이정표]
     
     [말등바위]
     "말등바위"?  
     말馬은 어림 짐작할수 있지만 "말등'을 직접 관심있게 본 사람 있나요?
     그리고 "말등"이 어떤 특징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러니 이름 짓는 사람 맘대로 지은게 아닌지~~
     
     [말등바위]
     말갈기 같네요
     
     [제2등산로 들머리겸 날머리]
     高臺山 산행을 끝내는 날머리에 왔습니다.
     신탄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겐 들머리가 되겠습니다
     
     [고대산 주차장 가는 길]
     고대산 날머리에 5시 45분경에 도착하여 뛰기 시작했습니다
     왜냐고요?
     동두천 가는 경원선 기차가 매시 정각에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6시 이전에 도착해야하니 뛸수밖에...8시간 걷고 또 뛰고...ㅎㅎ
     
     [고대산 매표소와 주차장]
     신탄리에서 고대산을 오를려고하면 입장료를 내야한답니다
     금학산은 입장료가 없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高臺山 入口와 高臺山]
     지나온 高臺山을 바라 보며 뿌듯한 성취감을 느낍니다
     
     [신탄리역 가는 길]
     6시 기차를 타려면 뛰어야합니다. 아니면 또 한시간을 기다려야합니다
     신탄리역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습니다
     
     [신탄리역]
     남쪽에서 북으로 가는 경원선 마지막역 "신탄리역"
     
     [신탄리역]
     철로는 여기서 끈겨있고
     동두천으로 가는 기차가 출발하려고 부르릉거리고 있습니다
     어떤 이별의 종착역 같은 느낌이 괜히 드는데.....
     묘한 느낌을 주는 "신탄리역"입니다
      
     [경원선 열차안]
     경원선 열차를 타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연천군의 경치를 감상하며 산행을 마침니다
     경원선은 차비가 전구간 1,000원으로 매우 쌉니다.
     동두천에서 전철1호선으로 갈아 타고 의정부 부대찌개집에서 뒷풀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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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산재발견]
               관악산 6개 국기봉 종주
               사당역-관음음사위 국기봉(1)-낙타바위 국기봉(2)-하마바위-마당바위-
               관악문(솔봉)-연주대-자운암능선 국기봉(3)-제3왕관바위-학바위능선 국기봉(4)-
               삿갓승군바위-장군바위-8봉능선 국기봉(5)-6봉능선 국기봉(6)-불성사-
               서울대 수목원 만남의 다리-삼성산 중턱 상불암 갈림길-안양 예술촌
      
           
           [사당역 4번 출구]
           5월의 마지막 토요일인 30일 오전 8시에 '사당역 4번 출구'에 도착하여
           그 동안 두번의 도전에도 완주하지 못한 "관악산 11개 국기봉 종주"를 하려고
           관악산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 디뎠습니다.
           날씨는 다행히 제법 산행하기에 적합한 구름이 약간있는 맑은 날씨였습니다.
        
           [관음사 가는 길]
           관악산 사당능선 들머리는 
           사당역 4번 출구에서 남태령 방향으로  약 100m쯤 올라 가면
           우측으로 "승방길"이라는 골목길이 똑 바로 뻗어 있는데
           그 길로 똑 바로 끝까지 올라 가면 됩니다
           
           [관음사 입구 - 산행 들머리]
           사당역 4번 출구에서 약 15분 정도 오면 "관음사" 입구가 나오며,
           이곳이 산행 들머리입니다.
           일요일엔 많은 산객들로 붐비는 곳인데, 오늘은 토요일 이른 시간이라 한산합니다.
           중요한 것은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가면 "관음사"이고,
           "사당능선 등산로"는 다리를 건너서 자동차 있는 곳 조금 위에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있습니다
           
           [관악산 등산 안내도]
           오늘 삼성산과 호암산의 국기봉까지 합쳐 모두 11개 국기봉을 종주하려했지만
           중간에 열열 팬들로인해 관악산에 있는 국기봉 6개만을 종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안양예술공원까지 갔습니다, 그곳에 술집이 많으니까요. ㅎㅎ
           산객들의 능력에 따라, "관악산 6개 국기봉 종주"도 좋은 코스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총 걸린 시간이 10시간이니 오늘 제가 가는 코스도 11개 국기봉 종주하는 시간과
           비슷하게 걸리니 참고 하세요
           여하튼 11개 국기봉을 한꺼번에 종주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룹니다
        
           [등산로]
           관음사 입구 다리를 건너 약 30m쯤 오르면 우측으로 등산로 입구가 나옵니다.
           물론 "관음사"로 올라가도 다시 이길과 만날수있으니 어느쪽을 선택해도 무방합니다
           다만 관음사길은 포장도로이라는 것이....
           
           [관음사]
           능선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아랫쪽에 "관음사'가 보이고....
           
           [관음사 뒤 헬기장]
           우측으로 헬기장이 있습니다.
           여기서 산행 준비를 하고 출발합니다
           사당역에서 여기까지 약30분 정도 걸립니다
           
           [관악산 사당능선]
           헬기장을 벗어 나면 곧바로 황홀한 관악산 "사당능선 암릉길"이 펼쳐집니다
           여기서부터 "관음사 위 국기봉"까지는 매우 힘든 된비알입니다
           처음 오시는 분들은 이렇게 힘들면 어떻게 연주대까지 가느냐고 미리 겁을 먹습니다.
           그러나 너무 겁먹을 필요없습니다. 
           어느 산이나 꽁짜로 정상을 허락하는 산은 없습니다
           힘들지 않는다면 산에 올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집에 있으면 편합니다
           힘들기 때문에 산을 오르고...그래서 더 힘든 산을 찾아 나서고....
           
           [관음사 위 국기봉]
           헬기장에서 가파른 암릉구간을 오르면 앞에 "관음사 위 국기봉"이 장엄하게 나타납니다
           태극기는 가장 높은 봉우리에 꽂혀있지않고 오른쪽 가장 낮은 봉우리에 꽂혀있습니다
           저 봉우리를 오르는게 워밍업이 덜된 상태이기도 하고 가파르기 때문에 무척 힘듭니다
           하지만 저 봉우리만 올라 가면 그 다음부터는  비교적 쉬운 코스이니 희망을 가지고
           오르시기 바람니다.
           
           [관음사 위 국기봉 오르는 암릉구간]
           급경사 암릉길을  치고 오릅니다. 
           관악산에서는 산행길에서 흙을 밟으며 걷는 곳이 별로 없고 대부분 암릉길을 걷습니다
           
           [관음사 위 국기봉 오르는 암릉구간]
           이런 암릉구간은 의외로 힘들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ㅎㅎ    네발로 걷기에 힘이 분산되 힘들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암릉구간을 오릅니다.
           
           [한강, 목멱산(남산), 삼각산(북한산)]
           절벽을 땀을 흘리며 조금 오르면 대한민국의 首都 서울이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앞에 마을이 관악구 봉천동 사당동 일대이며
           뒤로 한강이 유유히 흐릅니다
           한강 뒤로 검게 보이는 조그만 동산이 그 유명한 "목멱산"입니다. 우리가 주로 南山이라하죠
           "목멱산" 뒤로 "삼각산"과 "도봉산"이 서울을 지키는 파숫꾼인듯 자애롭게 지키고있습니다
           그리고 그 우측으로 희미하게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입니다
           
           [우면산]
           동쪽 방향은  앞에 삼각형 절벽같은 곳이 "南泰嶺"이며 그 뒤로 "우면산"이 펼쳐져있습니다
           "우면산"은 "牛眠山'으로 소가 엎드려 눈감고 편히 쉬고 있는 형상이라고 붙여졌답니다.
           그렇게 보이시나요?
           제 설명을 듣고 보면 그럴듯하지요? ㅎㅎ
           "南泰嶺"은 "여우고개"로 유명하지요?
           "南泰嶺"이란 이름에 대한 내력은 아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앞으로 산행을 하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여의도 방향]
           북서쪽 방향으로는 여의도 63빌딩이 보입니다
           사진의 좌측에 보이는 높은 빌딩은 목동의 SBS등의 건물입니다
           사진을 뽀샵처리를 조금 했는데도 서울 하늘에 껴있는 매연이 선명하군요
           
           [관음사 위 국기봉]
           가파른 릿지구간을 오르면 예고없이 태극기가 휘날립니다.
           이름하여 "관음사 위 국기봉"이라고 산객들이 임의로 붙인 이름입니다
           첫번째 국기봉에 오릅니다
           
           [관음사 위 국기봉]
           서울 -
           '雪울타리'에서 비롯된 '雪울'이 서울이 됬다는 說은 제가 여러번 언급한바 있습니다
           全世界가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 - 서울
           오랜만에 자랑스런 우리의 서울을 마음껏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관음사 위 국기봉에서 바라보는 '낙타바위 국기봉']
           두번째 국기봉의 태극기가 이곳에서 보입니다.
           가까운듯 보이지만 이곳에서 S자로 봉우리를 몇개 넘어야 갈수있습니다
                   
                   [관음사 위 포대봉 정상 오르는 길]
                    국기봉에서 정상으로 다시 올라 가야하는데 '관음사 위 국기봉'은  세개의 봉우리로서
                    태극기가 있는 봉우리가 제일 낮아서 하나 더 올라 가야 정상에 오를수 있습니다
                    가파른 릿지구간을 오릅니다
           
           [관음사 위 포대봉 정상 오르는 길에서 뒤 돌아 본 국기봉]
           릿지구간을 올라 뒤돌아 봤습니다.
           태극기 보이시죠? 국기봉이 낮은 봉우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90도 각도의 절벽이 실감납니다. 밧줄이 있으니 염려없습니다
           
           [관음사 위 포대봉 정상]
           관음사 뒷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은 戰時에 대비해 설치된 대공포 진지인데 현재는 사용하고 있지 않는 시설입니다
           
           [포대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연주대]
           이곳에 오르면 드디어 관악산의 정상인 연주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초보산객들은 "아직도 저렇게 많이 가야하느냐?"하고 푸념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적당한 곳에서 내려 가자"고 조르기 시작합니다. ㅎㅎ
           두번째 국기봉인 "낙타바위 국기봉"은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올라서 가야합니다
           
           [포대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낙타바위 국기봉']
           '낙타바위 국기봉'이 손에 잡힐듯 잘 보입니다
           그러나 제법 멀리 있습니다
                   
                   [낙타바위 오르는 암릉]
                    관악산은 京畿五岳, 즉 가평에 있는 화악산, 포천의 운악산, 파주의 감악산,
                    개성의 송악산, 서울의 관악산 중에서 관악산이 가장 "악!" 소리 나는 岳山입니다
           
           [우면산]
           낙타바위 가는 봉우리에 올라 뒤 돌아 보니 "우면산"이 잘 보입니다.
           "우면산"과 "관악산"을 잇는 고갯길 "남태령"을 자동차가 다니기 쉽게 절개를 했군요.
           좌측 중간에 시뻘건 삼각형 모양의 암벽 절개지가 보이시나요
           우면산과 관악산을 잇는 산줄기는 교통편의를 위해 이렇게 짤렸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지역에 여시골이나 여우고개라고 불리는 고개가 있는데, 
           이는 그만큼 인적이 드물고 산세가 험해 여우의 출몰이 심했던 까닭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여우고개는 이곳 남태령(南泰嶺)이었답니다 
           이 고개를 여우고개라고 부르게 된 것은 호랑바위가 있는 골짜기에 여우가 많이 출몰하므로 
           여우골이라 하였는데, 옛날 천년묵은 여우가 사람으로 변신하여 이 고개에 나타났다는 데서 
           유래한 설이 있는데 믿어도 그만 믿지 않아도 그만입니다.
           일반적으로 여우같은 도둑놈들이 출몰해서 붙여졌다고 보는게 더 타당성이 있을 것입니다 
           
           [청계산]
           남동쪽으로 과천과 청계산이 잘 보입니다
           남태령南泰嶺은 서울과 과천의 경계이며 관악산과 우면산 사이의 고개로 
           그 유명한 효성이 극진한 정조임금이 수원에 있는 선친 사도세자 능(陵)을 자주 참배하러 다녔는데, 
           어느날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갈 때 "이 고개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과천현 이방 변씨가 엉겁결에 "남태령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에 그를 시기하던 자가 "이 고개 이름은 본래 여우고개인데 어찌 거짓을 고하느냐?" 라고 힐책하자 
           "고개 이름은 본래 여우고개이지만 신하로서 임금께 그와 같은 쌍스러운 말을 여쭐 수가 없어 
           서울에서 남쪽으로 맨 처음 큰 고개이기에 남태령이라 했습니다"라고 아뢰니 정조가 이를 칭찬하였으며, 
           그 후부터 남태령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믿어도 될만한 내력입니다
           그러나 南泰嶺이라는 말은 광해군 때 만들어진 춘향전에 이미 나오고 있다는군요 
           그러니 정조 이전에 이미 南泰嶺이라고 불리어졌으리라고 추측 됩니다
           
           [관악산 정상-연주대]
           관악산 정상-연주대가 조금씩 다가 옵니다.
           절묘한 岩陵길을 걷는 기분은 "못해본 사람들은 말을 하지마슈~"
           綠陰芳草勝花時
           "푸른 나무와 향기로운 풀이, 꽃피는 시절보다 낫다"
           
           [낙타바위 국기봉]
           "낙타바위 국기봉"도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낙타바위 국기봉 가는 길]
           奇岩怪石이 산행길을 더욱 즐겁게 합니다
           관악산을 遊山해 보지 않고는 외국으로 산행 갈 필요없습니다
           
           [갈림길]
           삼거리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관악산 정상은 좌측으로 바로 가면 됩니다만
           "낙타바위 국기봉"은 우측으로 잠깐 갔다가 와야합니다
           
           [헬기장에서 바라 보는 '낙타바위 국기봉']
           갈미길에서 오른쪽으로 헬기장이 있으며,
           국기봉이 지척에 보입니다.
           
           [낙타바위 국기봉]
           낙타바위 국기봉에 올랐습니다.
           발 아래로 봉천동과 여의도 방향이 잘 조망됩니다
           
           [낙타바위 국기봉에서 뒤 돌아 본 '관음사 위 국기봉']
           이곳에서 지나온 "관음사 위 국기봉"을 되돌아 봤습니다
           
           [하마바위]
           "낙타바위 국기봉"에서 조금 전진하면 "하마바위"가 나옵니다
           거대한 바위이기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다름니다만.....
           
           [하마바위]
           하마바위 옆으로 올라 갑니다
           
           [하마바위 위 거북바위]
           거대한 하마바위 위에는 또다른 바위들이 여럿 있는데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제일 먼저 눈에 띄지요
           
           [사당능선]
           가운데 S자로 이루고있는 사당능선 산줄기
           아름답습니다
           
           [서울대학교]
           '하마바위를 지나 사당능선의 중간쯤 오니 우측으로 "서울대학교"가 대규모로 펼쳐집니다
           관악산을 산행하면 서울대학교를 구경하는것은 기본입니다만
           정작 서울대 학생들은 설문조사에서 관악산을 올라 본 경험이 대부분 없더군요
           공부하는라고 바빠서 이겠지요
           
           [마당바위]
           왠만한 산에는 대부분있는 마당바위가 관악산에도 여러군데 있습니다
           넓직하게 마당모양을 하면 모두 마당바위이죠
           대부분의 마당바위는 쉼터입니다
           
           [연주대]
           관악산 정상이 점점 다가 옵니다
           온통 암석으로 포장된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리며 전진합니다
           관악산 정상은 주변 어느곳에서나 알아 볼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상에는 엄청난 크기의 송신탑이 솟아있고,
           서울지역의 기상상태를 관측하는 기상레이다가 있기때문입니다
           
           [암릉코스]
           다음 봉우리를 오릅니다.
           관악산은 여름에 산행하기가 좋습니다.
           암산이기에 능선에는 숲이 없어 사방으로 조망이 좋기 때문입니다.
           여름철에 肉山을 가면 숲에 파뭍혀 외부를 조망하기 어려워 갑갑하지요
           
           [관악문(솔봉)과 연주대]
           관악산 정상을 오르기 전에 올라야하는 "관악문"이 있는 "솔봉"을 올라야합니다.
           
           [관악문(솔봉)]
           冠岳門이 있는 솔봉은 경사가 심한 뾰쪽한 봉우리이기에 오르기 힘듭니다
           그래서 우회로가 있는데 우회로를 이용하는 사람은 아직 못봤습니다
           힘들어도 모두 관악문을 오릅니다.
           관악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관악산 사당능선을 종주했다고 할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앞으로 오실 분들도 반드시 올라 "관악문:을 통과하시기 바람니다
           
           [관악문 오르는 길]
           솔봉의 관악문 오르는길 - 된비알입니다
           
           [관악문 오르는 길에 있는 기암괴석]
           땀 흘리며 오르면 반드시 보상 받습니다.
           아름다운 경관으로.....
           
           [관악문 오르는 길에 있는 전망대]
           땀흘리지 않고는 이런 경치를 구경할수 없지요.
           오르는 자만의 특권입니다
           
           [冠岳門]
           솔봉의 정상에 있는 冠岳門이 그 모습을 나타냅니다
           冠岳山으러 가는 關門이라고 붙여진 이름인듯합니다
           다른 산에있는 이런 형태의 문은 주로 "通天門"이라고 하지요?
           
           [冠岳門]
           "관악문"이라고 바위 밑에 써놨습니다
           
           [지도바위]
           冠岳門을 지나 뒤돌아 보면 "지도바위"가 관악문 위에 놓여 있습니다
           관악문을 통과하시면 잊지 마시고 반드시 뒤돌아 보기 바람니다
           
           [코끼리 바위와 횃불바위]
           冠岳門을 지나면 앞에 "아기 코끼리 바위"가 있으며
           그 뒤로는 "횃불바위"가 있습니다.
           이 바위도 놓칠수없는 구경거리입니다.
           "횃불바위"를 촛대바위"라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 눈에는 촛대라기 보다는
           횃불처럼 보여 저는 "횃불바위"라고 합니다
           
           [관악문에서 바라보는 청계산과 과천]
           과천시내와 "서울대공원" 그 뒤로 청계산 망경대가 가깝게 보입니다
           "망경대"는 望京臺"로 "서울을 바라 보는 곳"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라합니다
           
           [연주대 응진전]
           기상레이다와 송신철탑 사이에 "기와집" 보이시는가요?
           저곳이 "연주대"이며 "연주대"에는 "응진전應眞殿"이라는 절간이 있습니다
           불교도들이 기도하는 곳입니다.
           앞으로 더욱 자세히 설명 드림니다
           
           [관악산 정상 오르는 길]
           가파른 경사의 암벽을 타고 오릅니다
           
           [관악산 정상 오르는 길에 내려다 본 "제3왕과바위능선의 국기봉"]
           연주대 바로 앞에 있는 봉우리에 올라 주변을 조망합니다
           오른쪽 북서방향으로 세번째로 가야할 국기봉인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이 보입니다
           "제3왕관바위능선"은 서울대 신공학관 뒤에서 연주대까지 뻗어 있는 능선인데
           "자운암"이라는 조그만 절이 능선상에 있어 "자운암능선"이라고도 합니다
           
           [관악산 정상 오르는 길에 내려다 본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전경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서울대는 규모가 우리나라 최대이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아탑이지요
           캠퍼스가 워낙 넓어 캠퍼스에는 셔틀버스 십여대가 운행되고,
           일반시내버스와 마을버스가 캠퍼스 안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지하철2호선 "서울대입구역"과 "낙성대역"에서 버스로 환승하고 서울대로 들어 갈수 있습니다
                   
                   [연주대 응진전]
                   관악산의 상징을 말하라고 하자면 아마도 "연주대 응진전 戀主臺 應眞殿"이라고
                   해도 이의를 다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戀主臺 應眞殿은 하늘 향해 치솟은 절경 속의 작은 절이라고 말합니다
                   [경기도 지정 기념물 20호]인데 연주대는 관악산정 연주봉의 죽순처럼 솟아있는 바위틈에 
                   30m의 축대를 쌓고 응진전 應眞殿을 지었습니다.
                   [관악산 연주암지]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17년(677) 의상조사가 한강남쪽에 유화(遊化)하다가 
                   관악산의 명미수려함을 수하여 산정에 의상대를 창건하는 동시에 
                   관악사(冠岳寺)를 개산하다"고 기록되어 있다고합니다
                   현재는 "의상대"는 "연주대 응진전"으로, "관악사"는 "연주암"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관악산 정상 오르는 길에 바라본 '제3왕관바위능선']
            관악산 정상을 올랐다가 다시 "제3왕관바위능선"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관악산 정상 오르는 암벽]
           오늘 암벽등반의 하일라이트가 이곳입니다.
           오늘은 토요일이고 이른 시간이라 산객들이 많지 않지만
           일요일에는 人山人海를 이루는 곳입니다.
           오르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뒤엉겨 병목현상이 나타나는 곳이지요
           
           [관악산 정상에 올라 올라오는 사람을 촬영]
           정상에 올라 올라오는 산객들을 촬영했습니다.
           좁은 문을 통해 정상에 오르기 때문에 병목현상은 심한 곳입니다
           
           [관악산 정상]
           드디어 관악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하늘이 닿을듯하고 왕관을 쓴듯합니다
        
           [관악산 정상에서 막걸리 한잔]
           땀을 흘리고 올라서 시원한 막걸리를 한잔했습니다
           원래 저는 이런 곳에서 이런 것들은 잘 사 먹지 않습니다만,
           동행한 山友들이 한잔 하자고해 곁들여 한잔했습니다
           그런데 한잔에 3,000원씩이나 받아 먹으며 막걸리에 물을 많이 타 물맛이었습니다
           앞으로 가실 분들은 절대 이곳에서 막걸리 사먹지 마시고 미리 준비해 가지고 올라 가세요
           관악산엔 여러 곳에 노점상이 있으나 다른 곳은 값도 2,000원이고 물도 덜 탓는데
           여기는 정상이라고 그런지는 모르나 횡포가 심했습니다
           
           [관악산 정상]
            가운데 "연주암 戀主庵"이 보이고  '방송3사송신탑'이 보입니다.
           '방송3사송신탑'이 있는 봉우리는 "학바위능선"의 최고봉이기도 하며 '케이블카'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제3왕관바위능선"으로 내려가 "국기봉"을 찍고 서울대 공학관 뒷길까지 가서
           다시 저쪽 "학바위능선"으로 올라야합니다.
           
           [관악산 정상 人工웅덩이]
           王都南方之火山 '서울 남쪽에 있는 불산'
           관악산은 연주대부터 '팔봉능선'까지의 "관악산 주능선"에 솟아 있는 바위들이
           불꽃모양을 하고 있어 멀리서 보면 불타는 산 처럼 보이기도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 - 무학대사와 정도전의 의견 대립
           고려를 멸망 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수구 세력들이 우굴대는 개성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 首都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제일 먼저 계룡산으로 천도하려고했으나 '하 륜'등 공신들의 강력한 반대로
           삼각산 앞으로 漢陽을 세우려고 할때 무학대사와 '삼봉 정도전' 사이에 의견대립이 있었습니다
           무학대사는 王都南方之火山인 관악산이 있어 반대 입장이었으나
           '삼봉 정도전'은 王都南方之火山은 인정하지만 앞에 한강이 가로 막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태조 이성계가 어느 선사의 이야기를 듣고 천도를 결심합니다.
           어느 선사의 이야기는 "관악산에 火氣를 누르는 우물을 파고 천도를 하시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호암산에 '한우물'을 팟다는 설이 있습니다.
           여기 사진에 보이는 웅덩이는 대원군이 팟다고 합니다
           경복궁이 자꾸 화재가 일어나 화재의 원인이 관악산에서 火魔가 온다고 보고
           보시는 바와 같은 웅덩이를 파서 火氣를 눌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이런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이 웅덩이를 지나칩니다
           
           [연주대 공식 안내]
           자세한 내용은 사진 속의 글을 읽어 보세요
           
           [연주대 응진전]
           30m 낭떨어지 위에 지어진 "연주대 응진전 戀主臺 應眞殿"은
           하늘 향해 치솟은 절경 속의 작은 절입니다
           경기도 지정 기념물 20호인 戀主臺 應眞殿은 관악산정 연주봉의 죽순처럼 솟아있는 바위틈에 
           30m의 축대를 쌓고 응진전 應眞殿을 지은곳을 말합니다. 
           의상대義湘臺가 연주대戀主臺로 바뀐데 대하여는
           고려가 멸망하자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오빠 강득용(康得龍:묘가 과천시청 뒤에 있음)이 
           서견,남을진 등과 같이 두문동72인의 행적을 본따 불사이조(不思二朝)의 뜻을 품고, 
           관악산 의상대에 올라 송경(개성)을 향해 통곡을 하며 고려를 연모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부처의 제자 16나한에게 기도하면 효험을 얻는다고 하여 기도사찰이라고 하는 응진전에는 
           철종때 김완송스님이 16나한을 봉안하여 나한전이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들려 기도를 하고 봉양을 합니다.
           진짜로 효험이 있을까요?
           
           [관악산 왕관과 기상레이다]
           戀主臺 應眞殿에서 소원을 빌고있는 사람들을 바라 보니 묘한 생각이 듭니다
           '박완서씨가 쓴《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 납니다
       
                요새도 남의 과거를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점쟁이를 심심찮게 봅니다. 
                그들은 특히 행복한 사람보다는 불행한 사람의 과거를 집어내는데 명수지요. 
                점쟁이는 그렇게 팔자 사나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다음 처방을 내립니다.
                언제 더 나은 남편감이 나타날 거라는 둥, 언제쯤은 큰돈이 생길 거라는 둥, 
                점쟁이의 특징은 과거를 알아맞히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간사한 욕망을 부추겨 더욱 목마르게 하는데 있습니다. 
                목마른 자를 골라잡아 소금물로 처방을 하는 식이지요.
      .
       
           
           [冠岳山 정상석]
           冠岳山 정상석은 자연석을 정상석으로 활용하고있습니다
           629m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덩치가 커서 매우 큰 산으로 느껴집니다
       
                    戀主臺 應眞殿에서 소원을 빌고있는 사람들을 보니 불쌍하기까지 합니다
                    관악산 정상석 앞에 서니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 갑니다
                    자기의 과거를 굳이 점쟁이에게 물어볼 이유가 있을까요?
                    자기 과거는 자기 자신이 더 속속들이 잘 알지 않습니까? 
                    왜 자기의 과거를 점쟁이에게 물어 봅니까?
                    자기의 미래도 점쟁이에게 물어볼 것 없습니다. 
                    앞을 헤쳐가는 것도 결국 자기 자신이니까요. 
                    성공도 실패도 점쟁이의 몫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몫입니다
                    제발 자신의 인생을 남에게 기대려 하지 마세요
                                                 종교까지도 믿지않는 -파란문-
       
           
           [관악산 정상]
           관악산 정상에서 '연주암'으로 가는 길은 많은 산객들로 포화상태입니다.
           사진을 촬영하는 이곳이 "제3왕관바위능선"으로 가는 진입로입니다
           그러므로 정상에서 내려오다 첫번째 오른쪽으로 내려 가야 "제3왕관바위능선"으로
           갈수 있습니다. 이 길 이외는 없습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가는 길]
           바로 이 길입니다.
           이 길이 아니면 "제3왕관바위능선"으로 갈수 없습니다
           꼭 기억해 두어야합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길을 나아 가면 좌측에 헬기장이 있고 "제3왕관바위능선"이 펼쳐집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이 능선은 서울대 공학관에서 연주대를 가장 빨리 오를수 있는 코스입니다만
           급경사로 위험구간이 많습니다.
           이 코스로 내려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
           급경사 암벽을 타고 내려가니 "제3왕관바위능선"의 "국기봉"이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국기봉을 "자운암 위 국기봉"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자운암'이라는 절이 아주 작은 절이기에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이라고 합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
           국기봉의 태극기가 보입니다
           내려오는 길이 급경사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합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 오르는 암벽]
           급경사를 내려와 다시 국기봉 암벽을 타고 오릅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
           태극기가 릿지를 해야 올라 갈수 있는 곳에 꽂혀있습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
                   다른 사람들이 오르 내리는 코스를 보고 올라야합니다
                   왠만하면 그냥 지나쳐도 됩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에서 바라보는 "삼성산"]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에서 바라 보는 "삼성산"
            삼성산도 관악산의 일부로 봅니다. 삼성산 옆 호암산도 관악산의 일부로 봅니다.
            그래서 관악산 11개 국기봉은 삼성산의 국기봉 2개와 호암산의 국기봉 3개를 합치고 
            관악산의 국기봉 6개를 합쳐서 11개 국기봉이라합니다.
            저는 오늘 원래 11개 국기봉을 종주하려했는데 중간에 환영 나온 친절하신 펜들 때문에
            관악산 6개 국기봉만 돌고 안양 유원지로 탈출했습니다
            이때에 전화가 두군데서 왔습니다
            앞으로 사연을 알게 됩니다. ㅎㅎㅎ
           
           [국기봉에서 내려다 보는 "제3왕관바위"]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에서 내려다 보는 "제3왕관바위"
           "제3왕관바위"는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여러개의 바위가 합쳐져
           신라 왕관같은 모양을 하고있는게 특징입니다
           
           [제3왕관바위]
           가까이 다가 가니 왕관처럼 보입니까?
           가장 왕관 같은 바위는 8봉능선에 있는 '제2왕관바위'가 가장 그럴듯합니다
           
           [제3왕관바위 중 하나의 바위]
                   
                   [제3왕관바위 중 하나의 바위]
                    제3왕관바위봉우리에 올라 갔습니다
                    왕관을 이루고 있는 바위중에 하나를 볼수 있는데 멋있지요?
                    어떻게 보면 '북한의 포스타'에 등장하는 것 같기도하고....
                     
                     [제3왕관바위 이정표]
           
           [제3왕관바위에서 올려다 본 연주대와 방송송신탑봉우리]
           연주대 송신철탑에서 내려왔습니다.
           아직도 더 내려 가서 다시 우측 방송3사송신철탑이 있는 봉우리를 
           "학바위능선"을 타고 올라야합니다
           오늘 "관악산'을 두번 오르는 것입니다
           
           [제3왕관바위에서 서울대 신공학관 뒷길로 하산]
           제3왕관바위에서 서울대 신공학관 뒷길까지는 더 내려 가야 합니다.
           연주대에서 완전히 하산이라고 봐도 무관합니다
           
            [서울대 신공학관 뒷길까지 하산]
            서울대의 각 건물이 가깝게 다가 옵니다
            서울대는 제가 대학을 다닐때에는 여러곳에 산재해 있었습니다
            현재의 서울대 자리는 옛날에 "관악 골프 C.C"였지요
            여러 곳에 흩어져있는 단과대들을 이곳으로 합쳐 옮긴것은 70년대이지요
           
           [토끼바위]
           이 토끼바위도 제법 유명한 관악산의 명물입니다
           
           [기암괴석]
           
           [기암괴석]
           
            [서울대 신공학관]
           
           [서울대 신공학관 뒷길과 만나는 삼거리]
           이곳이 중요한 지점입니다.
           만약 호암산 삼성산에서 올때에는 이곳을 잘 찾아야 연주대로 쉽게 올라 갈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올라 가야합니다
           오른쪽은 서울대 신공학관으로 하산하는 길입니다
           
           [서울대 신공학관 뒷길을 따라 주계곡으로 가는 길]
           삼거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제법 넓은 길을 따라 조금 걸어 갑니다.
           
           [관악공원(서울대입구)에서 연주대 깔닥고개 오르는 계곡길]
           그러면 서울대입구 관악공원에서 올라오는 계곡 등산로를 만납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이 코스로 깔딱고개를 넘어 연주암으로 올라 갑니다
           이 등산코스는 남녀노소 누구나 오르내리는 쉬운 관악산의 대표코스이기도합니다
           
           [연주대 깔닥고개 오르는 길과 "학바위능선" 갈림길]
           조금 오르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 오른쪽이 "학바위능선"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똑바로 올라 가면 깔딱고개를 넘어 연주암으로 갑니다.
           우리는 "학바위능선"으로 가야합니다
                     
                     [연주대 깔닥고개 오르는 길과 "학바위능선" 갈림길 이정표]
                      이곳에는 이정표가 확실히 길안내를 하고 있으니 혼동되지 않습니다
                      오른쪽 "학바위능선"으로 오릅니다
           
           [학바위능선 가는 길]
           완만한 경사로 걷기에 편한 관악산 옆구리를 횡단합니다
           "학바위능선"으로 치고 오를때에 다소 경사가 있습니다.
           
           [학바위]
           "학바위 능선"에 오르면 오른쪽으로 "학바위"가 보입니다
           오른쪽 "학바위"로 가면 않됩니다
           왼쪽 "학바위능선 국기봉"으로 가야합니다.
           저의 山友는 길을 혼돈해 '학바위'를 다녀왔습니다. ㅎㅎ
           다른 분들도 조심하세요. 알바하기 쉽습니다
           
           [학바위능선 국기봉]
           '학바위능선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조금 올라 가면 "학바위능선 국기봉"이 나타납니다
           
           [학바위능선 국기봉]
           네번째 국기봉인 '학바위능선 국기봉'을 오릅니다.
           제가 "제3왕관바위능선"을 걷고 있을때에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 두분으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습니다
           한분은 "미리내"라는 아이디를 가지신 분인데 국기봉 종주를 반대로 하고 있어 중간에서 만나
           함께 식사하자고 한곳이 이곳 "학바위능선 국기봉"입니다
           그리고 또 한분은 "채트치"라는 아이디를 가지신 분인데 "홍어와 무인도"의 열렬한 애독자이지요
           제가 산행이 끝날즈음에 만나 뒷풀이를 함께할 목적으로 11시쯤 서울대입구에 왔는데
           저에게 전화를 했더군요. 그래서 그러지말고 "학바위능선 국기봉"에서 만나 함께 점심 먹고
           나머지 산행을 함께하자고 했더니 열심히 이곳에 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학바위능선 국기봉]
           학바위능선 국기봉에서 처음으로 만난 "미리내님'과 기념사진을 한컷했습니다
           대단한 산꾼이더군요. 
           만나서 반가웠구요. 앞으로는 함께 다니자구요
           
           [점심식사]
           "삿갓승군바위" 아래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나머지 두분은 "6봉 국기봉"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학바위능선 국기봉에서 바라보는 관악산 정상]
           
           [삿갓승군바위]
           '삿갓승군바위'를 돌아 '방송3사 송신탑 봉우리'로 올라 갑니다
           '삿갓승군바위'를 완전히 릿지로 오를려면 조금 위험하니 우회하시기 바람니다
           
           [삿갓승군바위]
           '삿갓승군바위'를 돌아 올라 갑니다
           
           [방송송신탑]
           드디어 '방송3사 송신탑'이 있는 "관악산 주능선'에 다시 올라 왔습니다
           
           [방송송신탑에서 바라 본 연주대]
           
           [방송송신탑 고개 갈림길]
           이곳이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연주암"입니다.
           오른쪽으로 가야 "8봉 국기봉"으로 갈수 있습니다
           
           [방송송신탑]
           송신탑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솟아있어 올려다 보는데 고개가 아플 정도
           이 시설을 끼고 돌아 나아 가야합니다
           
           [관악산 주능선]
            방송송신탑을 끼고 돌아 나오면 화려한 "관악산 주능선"이 펼쳐집니다
           이곳에서 "8봉 국기봉"까지는 정말 아름다운 奇岩怪石이 널려있습니다
           
           [관악산 주능선에서 뒤돌아 본 방송송신탑]
           요즘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 관악산 주능선을 걸으며
           "풍장"이라는 詩를 함께 느껴 보고자 합니다.
           서울대 영문과 교수를 끝으로 정년 퇴임하신 황동규교수님의 詩입니다
           황동규 시인은 너무나도 유명한 "소나기"라는 소설을 쓰신 황순원씨의 아들입니다
           황동규교수님은 "시인 황동규"보다 "황순원의 아들'이라는 소개가 가장 극복하기 어려웠다고
           할 정도이지만 황동규교수님의 시는 정말 독특해서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저의 "가야산 산행기"에서 소개해 드린 시는 소유언시(小遺言詩)였지요
           
           [관악산 주능선에서 보이는 "6봉국기봉"]
           "풍장"이라는 시는 14년동안 70편의 연작으로 쓰여진 연작시입니다
           모두를 소개해 드릴수는 없고 오늘은 1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풍장1 
                          죽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관악산 주능선에 있는 전망대]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관악산 주능선에서 보이는 "6봉능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8봉 국기봉]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化粧도 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장군바위]
           황동규교수님의 "풍장"이라는 시에 대해 나름대로 쓴 작자 미상의 글을 첨부하겠습니다
       
           1. 오독에 대한 변론
           한 번씩 죽음에 대해 집착할 때가 있다. 
           어릴 때 나는 내 어머니가 죽는다는 사실이 무서웠고, 
           그 무서움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더욱 겁을 냈었다. 
           그러나 죽음은 정확하지 않은 것, 하여 정확한 것이라면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장군바위에서 바라보는 8봉 국기봉]
       
           죽은 자는 이미 현실로부터 봉인된 자다. 
           닫힌 몸 어디로 들어가 죽음에 대한 증언을 들을 수 있겠는가. 
           모든 죽음에 대한 정의는 결국 불확실할 수밖에 없고, 
           역으로 그 불확실함에 근거하여 완전해지기도 한다. 
           아무도 죽음을 본 자가 없다는 것은 죽음을 맞이하고 살아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살아 있는 자 누구도 죽음에 대해 완전한 정의를 내릴 수 없으면 
           또한 내려진 정의들에 대해 실증적인 반론을 제시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8봉 국기봉]
       
           하여, 나는 죽음이라는 부담스럽고도 오래된 원형의 수수께끼 앞에서 자유로와 지고자 한다. 
         「風葬 1」에서 내가 본 죽음과 시 밖에서 보게 된 죽음, 
           그리고 나의 오독을 통해 보여질 또 다른 죽음의 모습이 서로 겹치고 어긋나며 교차하는 지점에서 
           저마다 각자가 생각하는 죽음을 꺼내놓고 마주하게 될 것이다.
       
           
           [6봉 국기봉 주점]
       
           2. 산자의 문턱, 죽은 자의 문턱
           죽음은 한 세계의 끝과 또 한 세계의 시작에 존재하는 문턱이다. 
           그리고 그 문턱은 우리의 삶 어디에나 존재한다. 
           예전 어른들이 문턱을 밟지 못하게 하는 미신 속에는 섣불리 밟으면 안 되는 
           죽음의 공간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가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내 할머니가 느끼던 죽음과 지금의 내가 느끼는 죽음은 같은 것일까? 
           그것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것이, 내 할머니에게는 경외감이 더 컸다면, 
           내게는 두려움에 무게가 더 실려 있기 때문이다.
       
                
                [6봉 국기봉]
       
                 내 할머니가 느끼던 죽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현실의 공간 속에서 무수히 있는 문턱과 같은 존재, 
                 그것을 밟지 않는 행위 속에는 죽기 싫은 두려움 보단 죽음에 대한 경건함, 
                 깨끗한 죽음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황동규의 풍장을 읽으면서, 나는 그 두려움과 경외, 
                 미신처럼 내 할머니를 사로잡았던 깨끗한 죽음을 본다. 
                 그것은 가장 편안한 죽음이고,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된 죽음이기도 하다
       
           
           [6봉 국기봉]
           오늘 산행에 함께한 '고갈산님"과 "채트치님"
           "홍어와 무인도"의 열렬한 애독자이시지요.
           "채트치님"은 지난 "여성봉-오봉-칼바위-우의암"을 함께한 분이지요
           오늘도 저녁식사에 홍어회까지 완전히 책임져 주었습니다
       
           
            [6봉능선]
       
           매일 매일 우리들이 무수히 넘나들던 문턱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를 현실 밖의 세계로 데려다 놓을 지도 모른다. 
           내 두려움은 그 느닷없음에 있고, 
           내 할머니의 경외감은 그 불확실한 존재의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있다.  
           할머니가 보면, 단번에 잔망스런 계집애란 소리를 듣겠지만, 
           나는 지금 할머니가 그토록 금기시 하던 문턱에 올라앉아서 
           턱을 괴고 길게 숨을 내 쉬며 죽음을 만날 준비를 한다. 
           내가 밟고 있는 것이 산 자의 문턱인지, 아니면 죽은 자의 문턱인지는, 
           시를 내려놓는 순간까지 아무도 모른다. 
       
           
            [6봉능선에서 바라보는 "광교산"-"백운산"]
           희미하게 수원의 "광교산과 백운산"이 보이며, 이어 "바라산"과 "우담산"이 보입니다.
       
           3. 풍장 - 죽음과의 유희
           풍장은 사람이 죽으면 우선 나무로 비가 조금 샐 수 있을 정도의 얼기설기한 집을 만들고 
           그 안에다 시체를 묻고 풀로 덮는 장례 형태이다. 
           오래되면 그 시체는 썩고 뼈만 남게 되면 다시 땅에 묻는다. 
           시인이 대학 시절에 보았던 이러한 풍장의 모습은 오랜 기간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그의 나이 45살, 바로 이 시를 처음으로 분출되기 시작한다.  
           풍장은 해안이나 섬 지방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봉분을 만들 땅의 여유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고기잡이를 나가면 보통 보름이상 씩 걸리는 그들의 생활형태에서 
           그 사이 부모가 죽는 경우 땅에 묻으면 얼굴마저 볼 수 없기 때문에 생긴 풍속으로 보여진다. 
           온전히 드러낸 죽음의 형태, 시인은 풍장을 통해 완전한 죽음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불성사]
           遊冠岳山記를 쓰신 번암 채재공선생이 길을 잃고 찾아와 하룻밤을 묵었던
           佛性寺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불성사]
       
           이 시의 1연에서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란 구절을 읽어 내려가면 
           시인이 꿈꾸는 죽음이 삶과의 분리 형태로 존재하는 일반적 두려움의 대상「죽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떠한 극적인 형태도 아닌, 다만 자연스러운 죽음. 
           지치고 오래된 몸을 위해 휴식을 취하듯이 맞이하는 이러한 죽음의 형태는 
           시속에서 바람을 통해 가벼워지고 마냥 스스럼없어진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와 같은 모순적인 일상어가 
           환기시키는 죽음의 무게가 얼마나 가볍고도 사소한지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죽음에 대해 무언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시인은 폼 잡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가방 속에서 다리를 오그리고 있는 자는 죽은 자이기에,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빌어 쓰던 몸은 몸에게 돌려주고 영혼은 웅크린 몸에 
           편안히 기대어 선유도를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통, 배 지나가는 소리마저 지나갈 수 있게 된다. 
           앞에서 선유도와 무인도를 지나는 것이 몸이라면 
           영혼은 통통통, 울리는 뱃고동 소리마저 지나가고 있다. 
           소리를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이 시 속의 죽음은 이미 가벼워져 있다. 
           무엇이 시인에게 이토록 죽음을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게 했을까? 나는 잠시 궁금해진다.
       
           
           [불성사 계곡]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일본 영화를 본 것이. 
           '나라야마'란 70이 넘은 노인들을 버리고 오는 산으로 일종의 우리나라 고려장과 비슷한 
           일본의 옛 풍속이다. 잘 계산된 죽음에 대한 각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나는 감동하고 말았는데, 아들의 등에 업혀 나라야마를 오르는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버리고 내려와야 하는 아들 사이에 적용되는 금기, 
           결코 나라야마에 오르기까지는 아무말도 해선 안 된다는 설정에 넘어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침묵이 들려주는 장엄한 음성, 관객들은 자신의 가슴속에 키우고 있던 죽음을 슬며시 꺼내어
           화면 속에서 아무런 배경 음악도 깔리지 않고 진행되는 두 사람의 의식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나라야마에 오르는 길고도 어려운 과정을 통해 
           이미 어머니와 아들은 죽음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황동규의 풍장은 '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영화가 들려준 침묵의 오케스트라와는 또 다른, 
           마치 휘파람처럼 귀를 간지럽히는 죽음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영화와 시 속의 죽음이 어딘가에서 맞물려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죽음에 대한 거창한 해석 이전, 온전히 죽음의 형태로 드러나는 알몸의 죽음을 만나게 한다는 점이다. 
           시속 화자도, 영화속 주인공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죽음을 받아들인다. 
           매일 계속되던 일상 속의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듯이 죽음은 詩속을 천천히 걸어다닌다. 
       
           
           [서울대 수목원 "만남의 다리"]
       
           영혼은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몸은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눕혀진다. 
           영혼은 잠시 잃었던 정신을 차리며 온전히 세상 앞에 제 몸을 드러내고 있는 죽음을 본다. 
           자신을 담았던 몸이 거기 누워 있다. 
           죽음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빌어 쓰던 몸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을, 영혼은 비로소 깨닫는다. 
           그리하여 죽음과의 동거, 썪어 가는 육체 속에 기꺼이 함께 하며 
           살이 말라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지켜본다. 
           그리고 손목시계가 부서질 때, 남 몰래 시간을 떨어트린다. 
           이제야 몸의 죽음만이 아니라 영혼의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8봉능선]
       
           나는 이 지점에 이르러 나즉한 탄성을 지른다. 
           행여, 몰래 떨어트린 그의 시간이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영혼이 육체와 함께 바람에 날리는 것을 지켜본다.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씨들이 튕겨져 나오고 그것을 무연히 바라보는 
           나와 안 보이듯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짧게 교차한다. 
           죽음은 어금니에다 백금 조각을 박고 차가운 겨울 볕 아래 빛나고 있다. 
           이불 덮듯 바람을 덮고서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고 싶은 죽음의 유희. 
           화장도 해탈도 없는, 미화되지 않은 죽음이 보여주는 담백한 아름다움, 
           시인은 그런 정직한 죽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삼성산 "성불암 위 국기봉" 가는 길]
       
           시를 빠져 나오면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쩌면 없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서 우리들이 생각하는 죽음이란 너무 지나치게 무거워진 것이 아닐까?
           풍장은 아직까지도 시인이 집착하는 화두이다. 
           가장 자연스럽고 담백한 죽음의 모습을 나는 풍장을 통해 볼 수 있었다.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거창하거나 심오한 단어들을 끌어오지도 않고, 
           시인은 평범한 일상어들을 조합하여 죽음이라는 단단한 관념의 세계를 현실 속에 펼쳐 놓았다. 
           또 다른 시에서 시인은 '죽음 앞에서 파괴되지 않는 것은 아름답다고' 노래했다. 
           모든 인간적인 것이 죽음 앞에서 파괴되고 소멸될 수 밖에 없는 명백한 사실을 통해, 
           시인은 그런 깨달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아름다움이 역으로 죽음마저 초월하고 있음을, 나는 이 시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쉼터]
       
           그리고 다시 묻는다. 
           내가 밟고 있는 문턱은 결국 산자의 문턱인지 아니면 죽은 자의 문턱인지. 여전히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이제는 문턱에서 내려와야 할 뿐, 발을 디디는 순간 
           또 다시 일상 속을 걷고 있는 나를 마주하기를 희망할 뿐이다. 
           아직도 나는 죽음이 두려운 것을 보니, 내 죽음에 대한 준비는 한 참 덜 된 듯 하다. 어쩌겠는가, 
           나는 시인처럼 담담해 질 수 없는 것을. 하여 무수히 많은 문턱마다 혹시 디딜세라 성큼 뛰어 넘는 것을.
       
           
           [안양예술공원 - 산행 날머리]
           마지막으로 황동규 시인의 연작시 "풍장" 중에서 "풍장 28"을 소개해 드림니다
       
                     풍장 28 
                내 마지막 길 떠날 때 
                모든 것 버리고 가도, 
                혀 끝에 남은 물기까지 말리고 가도, 
                마지막으로 양 허파에 담았던 공기는 
                그냥 지니고 가리. 
                가슴 좀 갑갑하겠지만 
                그냥 담고 가리. 
                가다가 잠시 발목 주무르며 세상 뒤돌아볼 때 
                도시마다 사람들 가득 담겨 시시덕거리는 것 내려다보며 
                한 번 웃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번 배 잡고 낄낄대기 위해 
                지니고 가리
       
           
           [안양예술공원 음악회]
           안양예술공원에 내려 오니 색스폰 연주를 하는데 색스폰 소리가 계곡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관악산 6개 국기봉"을 종주하고 이곳까지 온 우리를 반겨 주는듯했습니다
           삼성산과 호암산에 있는 국기봉까지 11개 국기봉을 한꺼번에 종주 하는 것도 의미있으나
           산행에 자신이 없으신 분들은 "관악산 6개 국기봉 종주"부터 하시면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고갈산님'과 '채트치님'이 빨리 내려가 한잔 하자고 아우성을 쳐서 삼성산 호암산도 중요하지만
           사람사는 얘기를 주고 받는 인연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안양예술공원으로 내려 왔습니다
           "사당역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하여 안얀예술공원에 오후 6시에 도착하였으니 
           장장 10시간이 걸렸습니다.
           
           [뒷풀이]
           뒷풀이는 닭도리탕을 안양예술공원에서 먹고,
           다시 안양시장 안에 있는 홍어회집으로 가 무지하게 퍼 마셨습니다
           뒷풀이는 모두 '채트치님'이 책임졌습니다.
           에구~ 고마워서 어쩐다유.......
           
           [산행 개념도]
           오늘 너무 무거운 주제 "풍장'으로 가라앉아있을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제가 자주 써먹는 유머 하나 들려드리면서 산행기를 마침니다
           무뚝뚝하기로 세계적인 경상도 남자와 여자의 대화 하나를 
           유머로 소개 해 드리겠습니다
           漢陽夫婦와 慶尙道夫婦의 差異 一話
           서울부부와 경상도부부가 배를 타고 여행을 가고 있었다.
           서울부인이 마침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고 애교스런 음성으로 
           "자기야~ 저기 저 달 너무 예쁘다 그지?”하고 말하자 
           서울 남편은 “아냐, 자기가 더 예뻐~”
                   
           이걸 옆에서 보고 있던 깅상도부인
                   
           "자기야, 달이 참 밝제?” 하자
                  
                  
            깅상도 남편이 하는 말
                     .
                     .
                     .
            “와, 달이 니보고 뭐라 카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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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장의 미아리 고개 
           "단장의 미아리 고개"라는 노래를 들으면 그냥 '슬픈 노래'라고만 생각하며  지나칩니다.
           "단장"이 뭔 말이여?하면 대충 얼버무립니다
           그래도 조금 아는 척 하시는 분들은 '6.25때 파괴된 미아리 고개를 예쁘게 단장 한거지..'
           '아녀 뭔 소리...단장에 있는 미아리 고개라는 뜻이여~ 미아리 고개가 있는 곳이 단장이여~'
           한문 좀 안다는 분들은 
           '짧을 短에 지팡이 杖으로 짧은 지팡이를 짚고 넘은 슬픈 미아리 고개라는 말이여~'
           허~ 점점 그럴듯해지는 듯하군요
           이 노랫말의 뜻을 알고 부른 신세대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아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半夜月선생이 작사한 곡이며 이재호씨가 작곡하고 이해연씨가 부른 노래입니다
           이 노랫말은 半夜月선생의 實話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그의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우선 半夜月선생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半夜月선생은 1917년생이시며 아직도 살아 계십니다. '翁'이 되셨지요. 하지만 여전히 건강하십니다
           본명이 朴昌吾선생이며 우리나라 가요를 대표하시는 불세출의 음악인 중 한분이십니다
           헤아릴수 없는 곡을 쓰셨지만 그중에서도 대표작으로는 〈산장의 여인〉·〈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넘는 박달재><산유화>등 우리들이 아직도 노래방에서 목이 터져라부르는 것들이 이분의 노래입니다.
           특히 半夜月선생은 가수 생활로 시작을 하셨죠. "진방남" 기억하시나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KBS 가요무대에 등장하여 노래도 부르고 대담도하고 하셨습니다.
           "진방남"의 대표곡 <불효자는 웁니다> 기억 나시죠?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
           半夜月선생은 그의 자서전에서 일생의 恨이 세가지 였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22세때 악전고투 끝에 드디어 태평레코드사의 전속가수가 되어 일본 오사카로 녹음하러 가자마자
           '모친별세'라는 전보를 받고 눈물범벅 속에 '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른게 첫번째 한이요...
           두번째는 6.25전쟁때 남북이산가족으로 운명 지워진 큰누이 작은누이와의 생이별이고...
           세번째 한은 바로  저 세상으로 먼저 간 딸 '수라'입니다...
           세번째 恨 - 딸 '수라'에 대한 얘기
           半夜月선생은 전쟁이 터지자 음악을 하는 연예인이기에 가족을 두고 먼저 피난을 떠났답니다. 
           그의 부인은 바로 남편의 뒤를 따라 피난에 합류하기로 했으나 어쩌다 빠져 나오지 못하고 각자
           몸을 피하게 되었답니다. 애타게 찾았지만 전쟁중이라 어쩔수 없었는데 9.28 수복 때 서울에서
           아내를 극적으로 만날수 있었답니다. 얼싸안고 좋아 했으나 잠깐뿐 ...
           "우리 딸 수라가 죽었어요. 전쟁의 북새통에 죽 한그릇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려있던 수라가
           미아리 고개를 넘어 오다 자욱한 화약연기 속에 숨을 헐떡이며 죽어 갔어요. 
           저의 손으로 뼈만 남은 4살짜리 딸 수라를 입은 옷 그대로 호미로 땅을 파고 언덕에 묻고 넘어 왔어요"
           半夜月선생은 딸의 명복을 빌고 원한을 달래 주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전공인 노래로 승화 시키려했고
           아무런 죄없이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 사라져간 딸의 모습을 그리며 노랫말로 만든 것이
           바로 이 노래 "단장의 미아리 고개" 라는 것입니다.
           이 노랫말은 남편과 아내의 생 이별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가엽게 사라진 딸 '수라'의
           숨결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의 단장은 '끊을 斷, 창자 腸', 즉 창자를 끊는 아픔이라는 의미입니다.
           창자가 끊어 지면 어떤 고통이 오겠습니까? 상상 할수 없는 고통 - -
           미아리 고개에서 격는 이별의 아픔을 '斷腸의 미아리 고개'라 한 것입니다
           "斷腸"에는 중국 고사가 있습니다. 제법 유명한 이야기이라 아시는 분들도 있으실겁니다.
           중국의 진(晉:東晉, 317∼420) 나라의 환온(桓溫)이 촉(蜀) 땅을 정벌하기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를 나누어 싣고 양자강 중류의 협곡인 삼협(三峽)을 통과할 때 있었던 일이라 합니다.
           환온의 부하 하나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서 배로 가지고 갔답니다. 
           어미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를 찾기 위해 뒤따라왔으나 물 때문에 배에는 오르지 못하고 
           새끼를 바라보며 강가에서 슬피 슬피 울부짖었답니다. 
           배가 출항하자 
           어미 원숭이는 낭떨어지 깊은 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배를 쫓아 헤엄쳐 갔답니다. 
           100여리 이상 항해해 간 뒤 강기슭에 배가 나룻터에 닿았을 때 
           어미 원숭이는 서슴없이 새끼를 찾기위해 배에 뛰어올랐습니다
           그러나 기진맥진 너무나 지쳐 그대로 죽고 말았답니다.
           선원들이 죽은 그 어미 원숭이의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와 이상해 갈라 보니 
           너무나 애통한 나머지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답니다. 
           이 사실을 안 환온은 크게 노하여 원숭이 새끼를 붙잡아 배에 실은 그 부하를 
           동물보다 못한 놈이라고 매질하며 반 죽여버렸답니다.
           동물도 저 토록 자식을 사랑하는데 하물며 인간이야 어디 비유하겠습니까....
           동물도 사랑하고..모두 모두 사랑 하자구요
           "斷腸의 미아리 고개"를 회상하며 모두 6.25를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참혹한 6.25와 같은 전쟁은 없어야 겠습니다
           6.25 한국전쟁에서 죽은 사람만 약 2,500,000명 정도입니다.
           북한이 약1,130,000명, 남한이 약1,000,000명, 
           중공이 약200,000명, 미국도 약55,000명이 죽어 베트남 전쟁때보다 더 심했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흩어진 가족이 20,000,000명이 넘습니다.
           전세계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수 없는 참혹한 6.25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은 절대 하면 않됩니다
           요즘 핵실험이다 보복이다 재제다..뭐다하며 또 냉기류가 흐를려고 합니다. 
           제발 좋은게 좋으니 사이 좋게 놉시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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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마지맥4구간]
              먹치고개-갑산-새재고개-적갑산-철문봉-예봉산-
              율리봉-예빈산 견우봉-직녀봉-천주교 묘역-능내리
      
           
           [산행 개념도]
           
           [중앙선 이촌역]
            5월24일(일)
            天摩枝脈의 마지막 구간인 제4구간을 종주하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날씨는 약간의 안개를 빼고는 매우 좋은 날씨였습니다.
            오랜 세월 서울에 살면서도 처음으로 내려보는 "중앙선 전철 이촌역"
            지하철 4호선과 환승하는 역으로 환승하는 거리가 짧고 편했습니다.
            이촌동은 二村洞으로 西氷庫과 東氷庫 사이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덕소역-팔당역-국수역"가는 중앙선 전철로 8시경에 환승했습니다
           
           [남양주시 '와부읍'과 조안면'의 경계인 "먹치고개"]
           중앙선 "덕소역"에서 9시 30분에 출발하는 [88-3번] 시내버스를 타고
           "천마지맥 4구간" 들머리인 "먹치고개"로 갔습니다.
           [88-3번] 시내버스는 약 한시간에 한대꼴로 있으니 시간을 반드시 맞추어야합니다
           덕소역에서 먹치고개까지 약 25분 정도 걸렸습니다
           
           [남양주시 '와부읍'과 조안면'의 경계인 "먹치고개"]
           지난 5월 10일(일) "천마지맥 3구간'의 날머리이기도한 "먹치고개"
           남양주시 와부읍과 조안면 時雨里의 경계이기도 한 "먹치고개'는 
           마석에서 양수리로 바로 갈수있는 新作路입니다
           
           [먹치고개에서 바라 보는 "갑산"]
           "甲山'이 손에 잡힐듯 보입니다.
           4구간 산행은 의외로 쉬웠습니다
           지난 3구간에 저 "甲山"을 넘어 "새재고개"까지 가려고했는데, "알바"라는 복병을
           여러 대원들이 만나 이곳 "먹치고개"에서 끊었었지요.
           그런데  오늘 4구간을 이어 종주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종주 하실분들은 먹치고개에서 3구간 4구간을 끊어 종주하시기 바람니다.
           
           [먹치고개 산행 들머리]
           오늘도 "서울백두클럽" 회원님들과 함께 합니다.
           오전 10시 정각 산행 준비를 하고 출발합니다
           전날까지 비가 와서 모든 自然이 깨끗하고 맑았습니다
           
           [갑산 오르는 길]
           귀신처럼 천마지맥 마루금을 찾아 산행을 합니다.
           제가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닮고 싶은 인물 - 茶山 정약용 선생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퇴계 이황선생님이시고, 닮고 싶은 인물은 茶山 정약용 선생입니다
           오늘은 "茶山 정약용 선생"의 생가가 있는 팔당댐 바로 앞 능내리에서 "天摩枝脈"을 졸업합니다
           그래서 遊山을 하며 자연스럽게 茶山 정약용 선생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갑산을 오르며 뒤 돌아 본 "먹치고개"]
           甲山으로 조금 올라 뒤돌아 본 '먹치고개"
           뒤로 마치고개에서 "栢峰山'을 넘고 "수레넘이고개"를 지나, '해비치 골프장'과 "고래산"을 점령하고
           내려왔던 "천마지맥3구간" 마루금이 선명합니다
           
           [갑산 오르는 길]
           오늘 제4구간은 거리는 제법 긴 약14km 정도입니다만, 급경사 오르막이 별루여서
           산행하기에는 "천마지맥 네개 구간" 중에서 제일 쉬운 구간인듯했습니다
           "먹치고개"에서 "갑산" 정상 오르는 길이 경사가 가장 심한 정도이니 짐작 할수 있겠나요?
           약 30분간만 된비알을 오르면 됩니다
           
           [능선 쉼터]
           '먹치고개'에서 약 30분 정도 오르면 처음으로 능선을 만나고 한숨 돌릴수있는 쉼터가
           나오는데 사실 여기까지가 제일 급경사였으니 오늘은 遊覽山行입니다.
           
           [437m봉 삼각점 갈림길]
           능선 쉼터에서 능선을 따라 조금 가니 처음으로 '삼각점'이 있는 갈림길인 437m봉이 나오며,
           이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합니다
           
           [갑산 정상 부근 쉼터]
           甲山 정상 바로 밑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오늘은 길을 잃고 헤메일 염려는 없습니다.
           甲山만 통과하면  '새재고개'부터는 대부분 이미 여러번 산행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산객들이 우굴대는 유명한 '적갑산-예봉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막걸리도 한잔씩 하며 여유를 부림니다
           일반 산객들과는 차별화 되고 싶어하는 '서울백두클럽'이기에....
                
                [갑산 정상]
                甲山 정상에는 정상 표지석 대신에 기상관측대가 우뚝 솟아 있으며
                조그마한 '팻말'이 甲山의 정상임을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甲山까지는 일반 산객들이 이용하지 않는다는 걸 암시합니다
                에구~ 우리같은 오지 산줄기를 따라 다니는 산꾼들이나 이런 곳을 다닙니다
                     
                     [갑산 정상 표지판]
                      정상 표지팻말이 조금은 안스럽게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나타나는 이정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만들어 설치했다고 생각되는
                      멋진 이정표들이 산객들을 즐겁게 해 줍니다.
                      그러니 甲山은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관계 공무원이 세금을 아꼈으리라
                      甲은 제일이라는 의미이기도하지요
                      그러므로 甲山은 최고의 山이라는 의미인데.....여기는 좀..
           
           [갑산 정상부 갈림길]
           甲山 정상을 조금 지나면 멋진 이정표가 甲山 정상과 주변 지리 안내를 잘하고 있습니다
                
                [갑산 정상부 갈림길 이정표]
                山水甲山
           
           [헬기장]
           甲山 정상에서 '새재고개' 사이에 헬기장이 하나 있습니다
           
           [운길산]
           甲山 정상 헬기장에서 바라 보는 "雲吉山"
           여암 신경준선생이 쓴 "산경표"에는 이 산줄기의 끝이 저기 보이는 "雲吉山"으로 나옵니다.
           백두대간과 13정맥, 그리고 수많은 기맥, 지맥, 분맥은 여암 신경준선생이 쓴 "산경표"를 
           표준으로 해서 현대인들이 나름대로 선을 그어 산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론에 따르면 우리는 "雲吉山"으로 가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봉산-예빈산"을 거쳐 능내리로 가는 것은  산줄기의 끝을 찾아 가는
           일반 지맥 산객들의 임의적인 발상일 뿐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봉산-예빈산"을 거쳐 두물머리로 가는 산길이 더욱 아름다워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암 신경준선생은 "산경표"에서  "산줄기"를 포괄적으로 산이름과 고개로 열거 해 놨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탄력적으로 재해석하는데 그렇게 해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새재고개로 하산하는 길]
           甲山에서 '새재고개'로 하산하는 길은 급경사였습니다
           
           [새재고개]
           '새재고개'가 반깁니다
           '새재고개'는 남양주시 瓦阜邑 陶谷里에서 鳥安面 時雨里로 넘어 가는 고개입니다.
           '재'라는 말이 '고개'라는 말이니 그냥 "새재"라고 하던지 "새고개"로 하는 것이 맞는 말입니다
           영남지방이라는 이름을 만든 고개가 문경에 있지요?  "聞慶새재" 鳥嶺이라고도하지요
           새가 울고 넘는 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곳의 "새재"도 아랫 동네의 이름이 鳥安面이니
           분명히 날아 다니는 새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새재고개 이정표]
           매우 멋진 이정표가 예빈산까지 안내합니다
           한가지, 남양주시 瓦阜邑 陶谷里의 瓦阜는 瓦는 기와를 뜻하는 '와'이고,
           阜는 언덕을 뜻하는 '부'이지요?. 그리고 陶谷里의 陶谷은 陶가 질그릇 '도'이니...
           이 지역에서 기와나 도자기를 굽는 가마터가 많았던게 틀림없습니다
        
      [도곡리 버스정류장 안내]                               [와부읍 도곡리 하산길]
           새재고개를 이용해 예봉산이나 운길산을 오르는 코스도 권장 할만합니다
           "중앙선 전철 덕소역"까지 마을버스가 30분 간격으로 다니고있기에
           교통이 편리합니다.
           그리고 이 코스는 MTB코스로도 유명합니다
        
      [조안면 時雨里 가는 길]                                 ["갑산" 가는 길]
                
                [적갑산-예봉산 오르는 길]
                 赤甲山 정상을 향해 된비알을 오르는데 거리는 짧아 간단히 오를수 있습니다
                
                 [적갑산을 오르며 뒤돌아 본 "새재고개"]
                 赤甲山 정상을 오르며 뒤 돌아 본 "새재고개"와 "甲山"
                
                [적갑산 오르는 길]
                 '새재고개'에서 적갑산 능선까지 약15분 정도 오릅니다
           
           [운길산과 예봉산 갈림길]
           잘 알아 두어야하는 갈림길.
           예봉산에 오시는 일반 산객들은 주로 "팔당역-예봉산-철문봉-행글라이드 활공장-
           적갑산"을 거쳐 이곳으로 옵니다.
           그리고 "雲吉山"- 水鐘寺로 종주를 하는데 여기가 갈림길이니 잘 기억해 두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친절하죠? ㅎㅎ
        
           [운길산과 예봉산 갈림길 이정표]                             [류시화시인의 詩]
           "雲吉山"- 水鐘寺로 가시는 분이나 "도곡리"로 하산 하실 분들은 여기서 갈라져야합니다
           이곳 이정표에는 詩가 한수씩 걸려있어 산객들에게 신선함을 더해 줍니다.
           남양주시 관계 공무원은 "遊山"을 아는 분인듯....
                         새와 나무
                                             류시화
       
                       여기 바람 한 점없는 산 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무가지 하나만 움직인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 없이 살아가는 뭇 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적갑산 가는 능선]
           지난 해에 왔을 때만 해도 이 산길은 울퉁불퉁 사람들의 흔적이 별루였습니다
           "중앙선 전철" 개통으로 "예봉산-운길산" 종주 코스가 각광을 받으며
           수많은 산객들이 찾아와 이렇게 산길이 고속도로가 되었군요
           
           [적갑산 가는 능선에서 바라 본 "운길산"]
           "雲吉山"이 이젠 앞 얼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암 신경준선생이 쓴 "산경표"에 등장하는 산이름입니다.
            그리고 "雲吉山"에는 "水鐘寺"라고 하는 유명한 절이 있지요
            수양대군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했다는 이유인지는 모르나 
            그는 평생 피부병에 시달렸지요. 우리도 어렸을 때에 종기가 많이 났었는데 요즘은
            종기 나는 얘들을 보기 쉽지 않습니다.
            하여튼 '세조"는 피부병 치료를 위해 오대산 상원사를 찾아 갔다가 돌아 오며
            이곳 "두물머리"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게 됩니다.
            그런데 잠을 자고 있는데 어디선가 쇠북소리가 들려와 어디인지 찾아 올라 갑니다.
            그곳을 찾아 가니 동굴 속에서 "물망울 떨어 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었답니다
            그리고 그곳에 조그만 절간이 하나 있어 "세조"가 신기하고 경치도 좋아 절간을 중창해 주고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쇠북 소리같다하여 "水鐘寺"라 했다고하는 유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茶山 정약용선생이 쓴 "遊水鐘寺記"도 매우 유명합니다
           
           [적갑산 가는 능선]
           능선길이기에 편안한 산책길입니다.
           요즈음 수많은 산객들이 예봉산-적갑산-운길산으로 찾아 오는 이유는
           중앙선 전철 개통으로 편리한 교통 접근성과 이런 편한 산행길 때문일 것입니다
           
           [적갑산 정상]
           赤甲山 정상은  능선길에서 조금 높은 곳에 있어 힘들지 않게 오릅니다
           길을 가다 불숙 나타나는게 赤甲山 정상입니다
           
           [적갑산 정상]
           "적갑산'의 유래는 절터가 있어서 예로부터 적골(절골의 변음)이라 했던 곳이며 
           절골산-적골산 이었는데 일제시대에 이런 유래를 모르고 적갑산으로 기록한 것이 
           현재까지 전해진다고 합니다. 남양주시청 홈페이지에서 인용했습니다
                     
                     [적갑산 정상석]
                      지난해에는 없던 정상석이 새로이 설치 되었군요
           
           [적갑산 정상에서 패라글라이딩 활공장 가는 길]
            가족끼리 함께하는 산행지로 추천 드리며, 회사 행사로 하는 산행에도 좋은 코스입니다
           
           [점심식사]
            적갑산을 조금 지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시간은 언제나 즐겁지요
           
           [적갑산에서 패라글라이딩 활공장 가는 길]
           적갑산에서 패라글라이딩 활공장까지는 매우 가깝습니다
           
           [패라글라이딩 활공장 가는 길에 바라 본 "雲吉山"]
           雲吉山은 태조 이성계가 '이 산에는 구름이 많아 구름도 쉬어 가는 吉地'라고 지어진 이름이라는군요
           그리고 일찍이 서거정이 동방의 사찰 중 전망이 제일이라고 격찬했을 정도의 절경을 가진 水鐘寺.
           그리고 水鐘寺에서 바라 보는 "두물머리'라고 합니다.
           운길산 앞으로 흐르는 북한강이 보이시죠? 가운데 마을이 조안면 진중리입니다
           <수종사중수기>에는 雲吉山으로 나오고, 또한 여암 신경중선생의 산경표에도 雲吉山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그보다 오래된 <동국여지승람>에는 "鳥谷山"이라고 적혀있답니다
            水鐘寺까지 승용차가 올라 갈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데이트 코스로 이용하더군요
           
           [페라글라이딩 활공장]
           적갑산에서 조금 가면 "패라글라이딩 활공장"이 나옵니다
           이 활공장은 남양주시 공식 활공장이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차와 술을 파는 허름한 카페가 있습니다
           
           [페라글라이딩 활공장]
            제가 도착하는 순간에 한사람이 패라글라딩을 타고 막 떠났습니다
            저는 아직 경험이 없어 모르지만, 아마도 창공을 나는 기분은 타본 사람들이나 알겠죠
            "안 타봤으면 말들을 하지 마~"
           
           [페라글라이딩 활공장]
           다음 사람이 활공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 어떻게 하늘을 나는지 지켜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두명이 동시에 타는 것이라 크기가 엄청나더군요
           
           [페라글라이딩 활공장]
           혼자서는 도저히 탈수 없고 여러 사람이 도와 주어야 하늘로 날라 오를수 있더군요
           
           [페라글라이딩 활공장]
           날개를 펼치고 맞바람이 불어 올때에 힘차게 낭떨어지로 뛰어 내리더군요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 보다 훨신 더 높은 예봉산의 철문봉에서 낭떨어지로 뛰어 내릴수 있는 
           분들만 하늘을 날수 있겠습니다. 저는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저는 구경이나 하렵니다. ㅎㅎ
           
           [페라글라이딩 활공장]
           창공을 가르고 날라 갑니다.
           구경하기에는 시원한 느낌을 줍니다.
           
           [페라글라이딩 활공장에서 바라 본 "한강"]
           패라글라이딩이 한점이 되는 창공 속으로 날아 갈때 이젠  한강이 시야에 들어 옵니다
           한강 건너편 '하남시'가 펼쳐집니다
           
           [喆文峰]
           패라글라이딩 활공장에서 또 조금 가면 "철문봉'이 나옵니다.
           '철문봉'은 조그만 봉우리이지만 무척 유명한 봉우리입니다
           그 이유는....
        
           [이정표]                                                    [산행 안내도]
           茶山 정약용선생과 그의 형제들 , 둘째 형인 정약전과 셋째 형인 정약종이 어린 시절에
           건강 단련을 위해 자주 오르던 봉우리입니다
           정약용선생은 이후에도 전국의 많은 산을 遊山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遊山記를 남기셨습니다
                     
                     [철문봉 내력]
                     정약용 삼형제가 자택인 능내리에서 여기까지 왕복하려면 5시간 이상이 걸렸겠지요
                     이곳에 와서 학문(文)의 道를 밝혔다(喆)고 하여 이 봉우리의 이름을
                     "喆文峰"이라고 하였답니다
           
           [철문봉과 예봉산 사이의 헬기장]
           茶山 정약용선생은 1762년에 이곳 능내리 마재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진주부사라는 관직까지 한 정재원이라는 분이며, 본부인은 정약현을 낳고  일찍 죽어
           세칸드인 海南 尹氏에게서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그리고 누이 까지 네명이 태어 납니다.
           물론 다른 여러 형제가 있으나 모두 일찍 죽었습니다.
           어머니 海南 尹氏는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를 지은 "고산 윤선도"의 6세손이고,
           "고산 윤선도"의 증손인 詩·書에 두루 능했던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손녀입니다.
           이러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정약용선생은 어려서 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일곱살때에 선생의 최초의 漢詩인 "山"이라는 詩를 지었으니 천재임을 입증해 줍니다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으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라네' 
           
           [헬기장에서 바라 보는 "검단산" "고추봉" "용마산"]
           '한남정맥"의 석성산에서 분기하여 뻗어 나오는 "검단지맥"의 마지막 산줄기인
           "검단산"이 한강 건너에 선명히 보입니다. 그 뒤로 "고추봉"과 "용마산"이 맥을 잇고...
           "은고개"를 지나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으로 검단지맥은 이어져있습니다.
           저는 "검단지맥"을 이미 종주한바 있습니다
           
           [예봉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다산 정약용선생이 10세 이전에 지은 詩文을 모은 『삼미자집(三眉子集)이 있다고하니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三眉"라는 말은 "眉"가 눈섶이라는 뜻이죠. 눈섶이 세개라는 의미이니,
           정약용선생은 자신을 "三眉子"라고도 했던 것입니다. '눈섶이 세개인 놈"이라는 말이지요
           정약용선생은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눈섶 사이에 흉터가 생겨 눈섶이 떨어져 
           눈섶이 세개로 보여 해학적으로 스스로를 "三眉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정약용선생은 곰보 였던 모양입니다. 옛날엔 곰보가 많았지요?
           
           [예봉산 정상]
           예봉산 정상이 하늘을 열고 나타납니다.
           遊山을 엄청나게 좋아한 茶山 정약용선생
           산 오르는 것을 매우 좋아한 다산 정약용선생도 당시로서는 대단한 장수를 하셨죠. 
           칠십오세까지 사셨으니.....
           우리 역사 속에서 높은 관직에 오르고 좋은 역사적 평가를 받으시는 분들은 
           거의 모두 등산을 하셨습니다. 등산을 않하면 출세가 의미 없는거죠? 
           밑빠진 독에 물 부어 봤자..건강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거죠
           정조대왕의 가정교사였고 영의정을 지낸  번암 채제공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은 
           다산 정약용선생인데 당시 여러 직위를 맡으시고 영의정까지 하신 번암 채제공 선생의 
           관악산 산행기인 "遊冠岳山記"는 무지 무지 유명합니다. 저의 관악산 산행기를 참고하세요
           당시 예순일곱살에 관악산을 종주 했기에 더 유명한것입니다.
           최고령으로 여든넷에 관악산을 종주 하신분이 숙종 때에 서인의 수괴 송시열과 쌍벽을 이루던  
           남인의 총수 허목 선생이죠. 퇴계선생보다도 더 등산을 좋아하셨습니다
           채제공 선생이 존경한 분이 바로 허목 선생이고 허목 선생이 존경한 분이 퇴계 이황선생이지요
           이 분들 모두 등산을 엄청나게 좋아 해서 방통 황희 선생이 팔순까지 사시고, 
           퇴계 이황선생이 칠순, 미수 허목 선생이 여든일곱, 번암 채제공선생이 팔순까지 사셨으니 
           당시로는 대단한 장수이지요. 관직은 지금의 국무총리인 영의정까지 모두 하신 분들이지요
           정약용 선생은 학문적으로 성호 이익선생을 스승으로 하며,
           정치적으로는 번암 채제공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그의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예봉산 정상]
                 태극기가 휘날리는 禮峰山 정상
           
           [예봉산 정상]
           150여년전에는 정약용 형제들만이 이 산을 오르내리며 풍운의 꿈을 키웠으리...
           지금은 많은 산객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낌니다
                
                [예봉산 정상석]
                이 정상석도 지난해 까지는 없던 것입니다
           지난해 예봉산 산행기에 이미 언급했던 얘기 다시 들려드리겠습니다
           저를 자주 만나는 분들은 저의 주장을 귀가 아플 정도로 많이 듣고 상당 부분 공감하는 게 있는데..
           '영종도 인천 국제공항'의 이름을 '정약용 국제 공항'으로 고쳐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 최고의 만물박사 -미술, 음악, 건축, 의학, 과학,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르네상스시대 당시 세계 최고라 할수 있는 사람 - 레오나르드 다빈치 -
           이 사람에 대해선 더이상 설명 할 필요가 없지요? 
           정약용선생이 이테리의 '레오나르드 다빈치'와 견줄수있는 세계 유일의 인물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이테리의 수도인 로마의 국제공항 이름이 '레오나르드 다빈치 공항'이기 때문에
           우리도 편협한 지역 지명으로 공항 이름을 지을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붙여 '정약용 국제공항'이나 '세종 국제공항'등으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뉴욕의 국제 공항은 '존 에프 케네디 공항',  파리는 '드골 공항',  런던은 '히드로 공항', 
           이미 말했듯이 로마는 '레오나르드 다빈치 공항'입니다. 모두 지역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동양 쪽에서나 지역 지명을 붙입니다.
           '인천 국제 공항'은 사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항인데도 인천 지역적 이미지가 짙습니다.
           특히 외국인들에겐....
           
           [예봉산 정상에서 북쪽방향의 雲吉山]
           우측 앞이 '운길산'이며 좌측 이 지나온 '甲山'이며 가운데 멀리 보이는 산이 '고래산'
           그 뒤로 '축령산'등이 어렴푸시 보입니다.
           
           [예봉산 정상에서 동쪽방향의 한강의 "두물머리"]
           예봉산의 眞價는 이곳에서 "두물머리"를 바라 보는 것입니다.
           北漢江과 南漢江이 만나는 곳 - 두물머리 兩水里
           이곳에 다시 서게되면 꼭 이 詩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려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와도 약간의 인연이 있는 "박후자 詩人"의 "두물머리에서"라는 詩인데
           <문예한국>을 통해 등단한 "박후자 詩人"은 <이대문인회>,<한국시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그림자를 세워 집을 짓는다"등이 있습니다.
           제가 이전에 편집한 것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두물머리에서  
                             박후자  
           만남의 절창이다
           물속으로 숲과 구름이 만나고
           파란 하늘의 풍금 소리
           고요한 오후와 만난다
           강물 일렁이는 슬픔
           햇볕이 다독이는 강변에
           물방개 발자국 따라 퍼져가는 동심원
           파장이 크다
           저기 떠내려온 붉은 잎
           어느 먼 골짝을 돌아왔는가
           상처 난 단풍잎 하나 동심원에 갇혀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돌다가
           물결 따라 떠내려가는
           이별의 선창가다
      
      
      [예봉산 정상에서 남서쪽방향의 팔당과 한강 건너 하남시] 박후자 시인의 "두물머리"에서"라는 詩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詩라고 여겨집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것을 '만남의 절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마도 '絶唱'이라는 한자이리라~ "어느 먼 골짝을 돌아왔는가. 상처 난 단풍잎 하나" 꼭 제가 살아온 인생길을 말해주는듯.... 여기 두물머리에서 지나온 세월을 한번쯤 추억하고 떠나는 이별의 선창가 - 두물머리 [예봉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동남쪽의 "예빈산"] "천마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앞으로 가야할 "예빈산'이 보입니다 '예빈산"에서 바라보는 "팔당호"와 "두물머리"는 더욱 아름답습니다 앞으로 "두물머리'는 계속 보여 드림니다 [예봉산에서 하산] 정약용선생이 일곱살에 지었다는 漢詩 "산"에 대해 느낌을 조금더 피력해 보렵니다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으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라네' 엄청 철학적인 詩를 일곱살에 지었습니다. 해석은 제 마음대로이니 믿거나 말거나...ㅎㅎ 가까이 있는 작은 산 때문에 멀리 있는 큰 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그가 작은 산 뒤에 있는 큰 산을 보고 있다는 뜻이라 여겨집니다. 직관력(直觀力)입니다. 평범한 저같은 인간은 '근시안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작은것 때문에 더 큰것을 보지 못합니다 더 큰것을 놔두고 좁은 생각으로 작은 것을 탐하며 살지는 않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산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그것은 내면화 된 정신의 눈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니 바둑으로 따지자면 9단의 수읽기 경지에 도달한듯한 詩라 생각 됩니다 일곱살에 이런 직관력(直觀力)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 천재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너무 칭찬하는건가요? ㅎㅎ 제가 가장 닮고 싶어하는 분이니 이해해 주세요 [예봉산에서 율리봉 가는 길] 다산 정약용선생이 집필한 책은 750권이 넘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운 것들은 '목민심서","흠흠심서","경세유표"등등이 유명하지요 기억나는 "목민심서" 중에 한구절 - 돈 쓸줄 모르면 친척도 배반한다 절약만 하고 쓸 줄을 모르면 친척도 배반할 것이니, 덕을 심는 근본은 선심쓰기를 즐기는 데 있는 것이다. 가난한 친구나 곤궁한 친족들은 제 힘을 헤아려 두루 돌보아 주도록 하라. 제 집 광에 남아도는 물건이 있거든 남에게 주어도 좋거니와 공유 재산으로 몰래 남의 사정을 돌보아주는 것은 예가 아니다. 또한 권문세도가를 지나치게 후히 대우해서는 안 된다. 정약용선생은 검소함과 절제를 강조하면서도 여유가 있을 때 남을 도와주는 것을 즐기라고 가르칩니다. 여유가 없을 때에도 다른 사람을 돕고 배려하라는 말에 담긴 뜻이 깊게 느껴 집니다 [예봉산과 율리봉 사이의 안부 - 팔당역 코스] 다산 정약용선생이 재물에 대해서 언급한 글들을 추려보겠습니다 정약용 선생은 1810년 9월 유배지에서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보낸 편지에서, 재물을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한 부분이 있는데, 이런 구절이 눈에 띕니다. "꽉 쥐면 쥘수록 더욱 미끄러운게 재물이니, 메기같은 물고기라고나 할까?" [이정표] [율리봉 오르는 길] 1816년 5월 큰 아들 학연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 하나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이라는 저울, 다른 하나는 이익과 손해라는 저울, 이 두 개의 저울에서 네가지 등급이 생겨난다. 최상은 옳은 것을 지키면서 이익도 얻는 것이다.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를 입는 것이고, 그 다음은 그른 것을 추구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다. 최하는 그른 것을 추구하다 해를 입는 것이다" [율리봉 정상] 자식에게 유산 遺産을 남겨 주는데 현금이나 부동산등을 남겨 주지 않고 "글자"를 遺産으로 남겨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마도 정약용선생 뿐일것입니다 그 유명한 정약용선생의 遺産 전문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는 논밭을 너희들에게 남겨 줄 만한 벼슬을 못했으니 오직 두 글자의 신비로운 부적을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이것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부지런함과 검소함, 이 두 글자는 좋은 논밭이나 기름진 토지보다 나은 것이니 평생을 두고 필요한 곳에 쓴다 할지라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근(勤)’부지런함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에 할 일을 저녁 때까지 미루지 말라.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끌지 말며, 비오는 날에 해야 할 일을 날이 갤 때까지 늦추어서는 안된다. 집안 식구들이 한 사람도 놀고 먹는 사람이 없게 하고, 한순간도 게으름이 없는 것을 부지런함이라 한다. 또 ‘검(儉)’검소함이란 무엇인가. 한 벌의 옷을 만들 때마다 이 옷을 먼 훗날까지 입을 수 있는지 헤아려 보라. 가는 베로 만들면 머지않아 해어지고 말테니 질박한 천으로 만들어 입으라. 음식도 목숨을 이어가면 그것으로 족한 줄 알거라. 맛있고 기름진 음식을 탐하면 결국 변소에 가서 대변보는 일에 정력을 소모할 뿐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당장의 어려운 생활조건을 극복하는 일시적인 방편이 아니라, 여유있는 가정일지라도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바르게 하는 항구적인 생활 규범이다. 그러니 가슴깊이 새겨 두라고 거듭 당부한다." 여러분들도 혹시 아시려는지.... 정약용선생은 정학유와 정학연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으며, 이 아들이 아버님의 훌륭한 가르침으로 후에 조선시대의 大學者가 되지요? [율리봉 정상] 장약용선생의 아들 "정학유 丁學游"는 그 유명한 "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를 지었지요 "農家月令歌"에 대해 잠깐 공부좀 할까요? 農家月令歌는 긴 노랫말입니다. 장편가사라 하지요 시골의 농부들이 농사 지을 때 잊어버리지 않도록 쉽게 노래로 만들어 보급한 것인데 "24절기"에 농부들이 절기에 맞춰 시기를 놓치지 않고 농사를 짓도록한 노랫말입니다. 다시말하자면, 1년을 12달로 차례대로 맞추어 나가며 농가에서 할 일을 읊은 노래로 농가의 행사를 월별로 나누어 그 달의 자연, 기후 상태와 관련 지어 농촌 풍속과 농사짓는 모습을 노래하였으며, 생활에 교훈이 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율리봉 정상]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전사한 이곳 출신 정화성 선사가 지은 "강역산유기"에서 "율리봉"은 栗里峰으로 밤나무가 많아 붙여진 산봉우리이라 합니다 [예빈산 가는 길] [율리고개 가는 길에서 올려다 본 "예빈산의 직녀봉"] "天摩枝脈"의 마지막 산인 "예빈산"이 보입니다. "예빈산"은 큰 봉우리 두개가 있는데 "직녀봉"과 "견우봉"입니다 [율리고개 가는 길] [율리고개 가는 길에서 보이는 "두물머리"] 아!~~ 두물머리 금강산에서 흘러 흘러 오는 북한강과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검용소'에서 발원하여 흘러 흘러 오는 남한강이 다시 바다로 손잡고 나가기 위해 모이는 곳 - 두물머리 [율리고개 가는 길] [율리고개] [율리고개] "율리고개"에서 오른쪽으로 '중앙선 팔당역"으로 하산 할수 있으며, 왼쪽으로 내려가면 '중앙선 운길산역'으로 갈수 있습니다. '팔당역'이 훨신 가깝습니다 [이정표] [정약용선생이 쓴 詩] 이정표에 정약용선생이 쓴 詩팻말이 보이니 정약용선생의 생가가 가까워 오는듯합니다 "소내 집에 돌아 오다"라는 詩인데 이 詩에 대해서는 원문과 내력을 알려드리겠습니다 還苕川居라는 詩인데 우선 원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還苕川居 소천(苕川)집에 돌아 오다 茶山 다산 정약용 忽已到鄕里 갑자기 고향 마을에 이르고 보니 門前春水 문 앞에선 봄물이 흐르고 있네 欣然臨藥塢 기쁜 듯 약초밭에 다다라 보니 依舊見漁舟 예전처럼 고깃배 눈에 보여라 花煖林廬靜 꽃들이 어우러져 산집은 고요하고 松垂野徑幽 솔가지 늘어진 들길은 그윽하다 南遊數千里 남녘 땅 수천 리를 노닐었으나 何處得玆丘 어디메서 이런 언덕 찾아보리요 [예빈산의 직녀봉 오르는 길] 還苕川居는 정약용선생이 16세에 아버지가 전라도 화순현의 현감으로 부임하여 아내와 함께 형님들을 모시고 임지에 따라가 지내다가, 과거공부를 하라는 아버지 명령으로 18세의 봄에 고향 마을에 도착하여 지은 시입니다 "苕川"은 이곳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정약용선생의 생가가 있는 마을의 옛 이름입니다. 苕川 소천으로 읽어야하나, "川"이 "내"라는 우리말로 바껴 "소내"라고 한답니다 [예빈산의 직녀봉 오르는 길] 경사가 제법있는 된비알을 오릅니다 고향은 언제나 마음의 안식처입니다. 언제나 자고 먹으며 살아가는 고향집도 아늑하고 따뜻함을 느끼지 않을 때가 없건만, 오랫동안 객지에서 노닐다가 돌아온 고향집은 더욱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안락의 거처입니다. 경기도 광주군의 소내(苕川)는 지금은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재마을로 호칭되는 곳인데, 바로 이곳이 다산 정약용선생이 태어나서 자라고 학문을 익히며 화목하게 가족들과 생활했던 고향집이 있는 곳입니다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예빈산의 정상인 "직녀봉"이 나타납니다 정약용선생이 15세에 서울의 회현동 홍씨집안으로 장가들어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고, 마음이 맞고 뜻이 통하는 당대의 신진사류들과 교제하면서 청운의 뜻을 키우던 곳은 서울이었습니다. 하지만 벼슬살이와 귀양살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세월을 보냈던 곳이 바로 고향 마을 "소내"에 있는‘여유당’이라는 선생의 집이었습니다.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 "天摩枝脈"의 마루금을 이곳에서 능내리 '다산 기념관'이 있는 곳으로 연결짖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 '직녀봉'에서 좌측 급경사 내리막길로 가야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이곳 '직녀봉'에서 '견우봉'으로 가 '천주교 묘역'으로 가는 큰 산줄기가 "天摩枝脈"의 마루금이라 확신하고, "天摩枝脈"은 "팔당댐" 바로 위에서 한강 속으로 잠긴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해석이 제각각인 이유는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에는 자세한 안내가 없기 때문이며, 또한 마지막 산이 "雲吉山"이라고 표기 해 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던 "天摩枝脈"의 마루금을 벗어 나는 것은 아니기에 어느쪽으로 가던 상관없다는 생각입니다.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 '직녀봉' 정상은 제법 넓은 공터가 있군요. 그 옛날, 아니 그렇게 옛날도 아닌 150여년전에 세계 최고의 천재 정약용선생이 웅지와 기상을 일깨우던 곳에 서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특히 저는 정약용선생을 '레오나드 다빈치'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기에...... [직녀봉의 내력] 예빈산은 건너편 검단산등과 함께 한성백제 시대에 영토를 수비하던 "와오성" 산이었고 조선조에는 나라굿 기우제를 지내던 명산이라고 합니다. 정약용선생 형제들과 정화성선사, 몽양 여운형선생등의 얘기들이 전해 온다고 하는군요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남서쪽방향 "팔당대교"]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쪽방향의 지나온 "예봉산"] 지나온 "天摩枝脈"의 산줄기 - 뒤돌아 보니 그 동안 4구간으로 나눠 진행한 天摩枝脈이 다시 그립기 까지 하군요 天摩枝脈도 서서히 한강물속으로 잠기려 합니다. 주금산 철마산 천마산 백봉산 고래산 갑산 적갑산...그리고 예봉산이 그립군요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남쪽방향의 "검단산-고추봉-용마산"] 하남시와 서울의 강남, 강동구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검단산"이 위용을 자랑합니다 뒤로 '고추봉'과 '龍馬山'이 "나도 산이니 많이 오시라~!"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저의 산행기 "검단산-고추봉-용마산 산행기"를 찾아 읽어 보시면, 산행에 도움이....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북쪽방향의 "天摩山"] '예빈산의 직녀봉'에서는 天摩枝脈의 대표산인 "天摩山"이 아련히 보입니다. 좌측 앞이 "운길산"이며, 天摩枝脈이 길게 뻗어 있습니다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북쪽방향의 "天摩山"- 줌인한 사진] 그래서 "天摩山"을 줌인합니다 줌인하니 "天摩山" 뒤로 "鐵馬山"도 희미하게 보이는군요 [예빈산의 직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동남쪽방향 가야할 예빈산의 "견우봉"] 정약용 형제가 웅지를 불태우며 오르 내렸던 산줄기가 능내리까지 뻗어 있습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견우봉"입니다. 견우봉을 지나는 이 산줄기가 天摩枝脈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예빈산의 "견우봉" 정상] '견우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특별한 것은 없고 이정표와 돌무덤이 하나 있습니다 [예빈산의 "견우봉" 정상에서 하산] 견우 직녀(牽牛織女)는 중국, 한국, 일본에 전해지는 전설이지요? 한국에서는 견우직녀(牽牛織女)의 전설로, 중국은 우랑직녀(牛郎織女)의 이야기로 내용은 각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여름의 별자리인 견우, 직녀와 관련이 있지요. 한국의 칠월칠석과 일본의 타나바타(七夕) 등의 풍습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예빈산의 "견우봉"에서 보이는 "八堂湖"] 견우 직녀(牽牛織女) 이야기의 내용은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견우와 베를 짜 옷을 짓는 직녀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七月七夕)에만 까마귀와 까치가 놓아 준 오작교 위에서 만난다는 이야기이지요. "오작교"는 한자로 "烏鵲橋"로 씁니다. 까마귀와 까치가 만든 다리 [예빈산의 "견우봉"에서 보이는 "두물머리"] 두물머리는 일반명사이기에 전국 곳곳에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은 모두 두물머리이지요 세 물줄기가 만나면 세물머리가 되는 샘이니까... 유관순 누나가 만세운동을 펼친 곳이 "아우내 장터"이지요? "아우내"도 "병천"의 순 우리말입니다. 정선의 '아우라지'와 비슷한 말이지요 '열수洌水',양수兩水, 병천竝川, 두물머리, 아우내, 아우라지..등등이 거의 비슷한 말입니다 [예빈산의 "견우봉"에서 보이는 능내리 "정약용선생 생가"] 茶山 정약용선생의 생가와 기념관, 그리고 묘소가 양수대교 옆 팔당호로 툭 튀어 나온 저곳 능내리 마재 마을에 제법 규모가 크게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茶山 정약용선생을 떠올리면 전남 강진의 草堂을 생각합니다. 그곳이 곧 茶山 정약용선생의 本家같은 느낌을 받습니다만,그곳은 생각하기도 끔찍한 유배지였습니다. 그곳에서 18년간이라는 유배 생활을 하며 외롭게 지냈는데 왜 그토록 그곳이 더 각광 받을까요? 사실은 이곳 능내리 마재 마을이 本家이며 生家이니 이곳이 더 각광 받아야 당연한데도.... 전라남도와 강진군의 공무원들이 업무를 잘해서일까요? 아마도 그곳이 각광 받는 이유는 그곳에서 정약용이라는 실학자가 일생의 최대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겠죠. 500여권이 넘는 책을 그곳에서 집필하였고 사연도 많았기 때문일것입니다 이런 비슷한 일들은 정약용선생의 호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정약용선생의 호는 사암(俟菴)이며,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인데 '겨울 내를 건너고 이웃이 두렵다는 의미'를 따서 지었다고 합니다. 사암(俟菴)은 정약용선생이 가장 좋아한 호였다고 합니다. 사암은 "백세이사성인이불혹(百世以俟聖人而不惑)" 즉 "뒷날의 성인을 기다려도 미혹함이 없다."라는 기다림의 의미가 있고, 뒷날의 성인에게도 학문적 질책을 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자신감과 떳떳함이 배어있는 가장 선생다운 호라는 것입니다 사암(俟菴) 정약용이라 불러야하는데..... [八堂湖] 여유당(與猶堂)은 뭔 여유있게 사색을 즐기려고 지은게 아니고, 선생의 불우했던 정치적 환경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선생은 요즘 말로 하자면 사상범이었습니다. 천주교를 접했다는 이유 하나입니다. 그 이유로 유배생활 18년... 물론 정조대왕을 정점으로 한 진보 개혁파가 정조대왕의 의문의 죽음으로 보수 수구세력인 서인 벽파들로부터 처참한 정치보복을 당한 것이지만... 그로인해 조선왕조는 세도정치로 멸망의 길로 접어 들기 시작하지만.... "與猶"의 與는 머뭇거릴 '여'이며, 猶는 망서릴 '유'로 즉 망설이기를 사방을 두려운 마음으로 살피듯이 조심하면서 살아가겠다는 뜻이랍니다 선생의 호로 茶山이 많이 쓰이는건 전남 강진의 유배지 뒷산이 조그마한 '茶山'이라는 地名이어서 茶山에 사는 정약용을 나타낼때 쓰셨는데 이것이 후세에 그냥 '호'로 자리 메김하고 말았습니다. 선생이 유배생활을 끝내고 여기 本家에 왔을 때는 "洌水" 정약용이라고 했습니다. 당시엔 이곳 '두물머리'를 '洌水 열수'라고 했기에 '洌水 열수'에 사는 정약용을 나타 낼때 사용했는데 그의 자서전에는 '洌水 열수' 정약용이 쓰다...라고 되 있습니다. 이렇듯 정약용선생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후세엔 모두 "茶山" 정약용이 되 버리고 말았습니다. [八堂댐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 [예빈산의 견우봉 하산] [체육시설이 있는 전망대봉] 마지막 봉우리가 되겠습니다 [체육시설이 있는 전망대봉에서 바라 보는 "두물머리"] 정약용선생의 가족 사랑은 끝이 없었습니다 18년간의 유배생활 유배지에서 그리워하는 아내에 대한 사랑 표현은 극치를 이룹니다 如夢令寄內이라는 사랑詩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如夢令寄內 - 꿈속에서 본 아내에게 하룻밤 사이에 지는 꽃이 헤아릴수 없는데 산비둘기와 어미제비가 지붕을 맴도네. 외로운 나그네 돌아간다 말 못하니 언제나 침실에서 아름다운 인연 맺을까나. 그리워 말자 그리워 말자. 슬프고 서글픈 표정의 꿈속에서 본 아내 얼굴을 [체육시설이 있는 전망대봉에서 바라 보는 "雲吉山"과 北漢江] 정약용선생은 75세까지 사셨는데 당시로서는 대단히 장수 한것입니다 그리고 15살에 결혼해서 결혼 60주년까지 사시는데 이런 것을 회혼 回巹이라고 하지요? 부부가 함께 결혼60주년까지 살아야 하니 매우 어려운 경우입니다 그런데 불행이도 회혼례 回巹禮를 올리려는 날 아침에 돌아 가십니다. 정약용선생은 돌아 가시기 전에 回巹詩를 남겼습니다 또 친절하게 소개해 드립니다. ㅎㅎ [체육시설이 있는 전망대봉에서 바라 보는 완벽한 "두물머리"] 回巹詩 六十風輪轉眼翩 穠桃春色似新婚 生離死別催人老 戚短歡長感主恩 此夜蘭詞聲更好 舊時霞帔墨猶痕 剖而復合眞吾象 留取雙瓢付子孫 회혼시 육십 년 세월, 눈 깜빡할 사이 날아갔는데도 짙은 복사꽃, 봄 정취는 신혼 때 같구려. 나고 죽는 것과 헤어지는 것이 사람 늙기를 재촉하지만 슬픔은 짧았고 기쁨은 길었으니 성은에 감사하오. 이 밤 〈목란사〉 소리 더욱 좋고 그 옛날 치마에 먹 자국은 아직도 남아 있소. 나뉘었다 다시 합하는 것이 참으로 우리의 모습이니 한 쌍의 표주박을 자손에게 남겨 줍시다 [두물머리] '칼의 노래' 김훈 작가 아시죠? 저의 고등학교, 대학 4년 선배되시고 일산에서 같은 동네에 살았는데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라고 해도 이의를 다는 분은 없을것입니다 그의 저서 '자전거 여행'에서 여기 "두물머리"를 노래한것이 있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수종사 마당에서 산하는 크게 열린다. 산하는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굽이치며 다가와 다시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흘러나간다. 내륙의 산악과 평야를 파행으로 흘러 온 남한강과 북한강이 눈 아래서 합쳐지고, 거기까지 강을 따라온 산맥들이 다시 여러갈래로 모이고 흩어져 하구를 향하는 대오를 갖춘다. 어디서부터 몰려오는 것인지, 산맥들의 대오는 푸르고 강성해서 하늘 밑을 가득 출렁대는데, 그 푸른 기세의 먼 변방으로 낮은 봉우리들을 거느리고 품어서 자애롭다." [천주교 묘역] '열수'강은 '열수'마을을 3면으로 휘감고 크게 굽이치면서 돌아나간다. 그 강 건너편 광주시 퇴촌면 앵자산 밑에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의 선각자들인 이벽(1754~1786), 권철신(1736~1801), 권일신(1751~1791), 이승훈(1756~1801), 정약종(1750~1801)이 묻혀있다. 그들은 모두 총명하고 반듯했던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의 젊은 날은 서학을 통해서 새롭게 열리는 세계와 미래의 모습으로 설레었다. 그들은 평등과 보편의 신세계를 향해 개안했다. 그들의 청춘은 찬란하고 치열했다. 그리고 그들의 최후는 이단과 대역을 다스리는 형장에 으깨져 죽었거나 망나니의 칼에 베어졌고 그 사체는 거리에 버려졌다. *'열수'는 설명드린데로 "洌水"로 이곳 한강 두물머리를 옛날에는 '열수 洌水'라고 했답니다 [천주교 묘역] 강물이 합쳐져서 앞으로 향하는 그 두물머리 남쪽 깊은 산속의 작은 암자에서 전환하려는 꿈과 전환되지 못하는 세계의 참극은 비롯되었다. 수종사 마당에서 합쳐지는 강물을 사이에 두고 정다산의 고향과 강 건너 퇴촌면 천진암 언저리가 한눈에 보인다. 강물에 실려오는 전환과 신생의 꿈이 아직도 그 양쪽 유적지 사이를 흐른다. 합치고, 굽이쳐서 기어이 바다로 나아간다." [천주교 묘역] [천주교 묘역 정문] [봉안대교 아래 산행 날머리- 45번 국도] [매운탕집 "오성회관"] [오성회관 안 계곡에서 알탕] [뒷풀이] 山行을 하며 苦樂을 함께한 "서울백두클럽" 회원들과 졸업식을 매운탕으로 자축했습니다 아무른 사고없이 전구간을 함께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림니다 [구글어스로 본 산행도] [天摩枝脈 개념도] 4월12일 "한북정맥"의 '운악산'과 '수원산' 사이의 명덕고개에서 시작한 天摩枝脈. 서파고개-鑄錦山(814m)을 지나 "금단이 고개"를 지나고, 4월18일에는 鐵馬山 北峰(780.8m)-鐵馬山 南峰(710m)-과라리 고개- 배랭이 고개- 멸도봉-天摩山(812m)-磨峙고개. 5월10일에는 柏峯山(590m)-수레넘이고개-고래산(542m)-먹치고개 그리고 오늘 5월24일에는 먹치고개에서 갑산-새재고개-적갑산-철문봉-예봉산- 율리봉-예빈산 견우봉-직녀봉-천주교 묘역-능내리까지 산행했습니다 총산행 거리는 약 65km 천마지맥 마루금은 53.9km 총산행시간 약30시간 天摩枝脈을 졸업합니다. 다음부터는 "도솔지맥"을 종주할 예정입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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