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槐山 寶賠山-七寶山을 가다 서당골-보배산-청석재-칠보산-구봉능선-떡바위 11월 14일(토) 母校 京畿南部校友會 山岳會가 조금 발전된 산행을 주문하여 평소에 가 보고 싶었던 槐山의 寶賠山-七寶山으로 나들이를 했습니다. [槐山 雙谷溪谷 入口] 槐山 雙谷溪谷을 찾아 가기가 의외로 쉽고 간단하더군요. 1.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안성 JC"에서 '평택-음성 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대소분기점"에서 중부고속도로로 다시 바꿔 "증평IC"에서 나갑니다. 그리고 [34번 국도]를 타고 증평, 괴산을 지나 '연풍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면 윗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雙谷溪谷 入口가 나옵니다. 시간도 서울에서 약2시간30분이면 충분합니다. 2. 한편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연풍IC"에서 나와 괴산 방향으로 [34번 국도]를 타고 조금만 오면 雙谷溪谷 入口가 나옵니다. (괴산IC에서 나오면 좁은 국도를 많이 타야합니다) [槐山 雙谷溪谷 入口]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여름철 피서지로 계곡을 꼽으라면 어디를 우선시 하겠습니까 '화양동 계곡"?, "선유동 계곡"?, "雙谷溪谷"? 어디가 더 좋다고 따질 필용도 없이, 화양동계곡과 선유동계곡, 쌍곡계곡이 모두 괴산의 이곳에 있으니 괴산의 계곡 속으로 푹 잠기기만 하면 됩니다. [34번 국도] 雙谷溪谷 入口에는 제법 거창하게 雙谷溪谷 入口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槐山 雙谷溪谷 入口] 雙谷溪谷 入口에서 계곡을 바라보니 우측으로 "군자산"이 위용을 자랑하며 구름 속에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우측 봉우리리 뒤에 있는데 구름으로 가리워졌습니다) 좌측으로는 오늘 우리가 오를려고하는 "보배산과 칠보산"이 있는 산줄기의 출발점이 쬐끔 맛뵈기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雙谷溪谷 入口에는 '금호가든'이라고 하는 음식점과 수퍼, 주유소가 있습니다. 8시 45분쯤 도착해서 식사하고 9시 30분쯤에 이곳에서 아침을 '올갱이국'으로 하고 출발했습니다. [槐山 雙谷溪谷 入口] 괴산군 전체면적의 90% 가까이가 임야, 즉 산이라서 내 세울건 산과 계곡이 거의 전부라는 충청북도 槐山郡....그리고 여기 쌍곡계곡이 있는 칠성면...... 보이는건 온통 산과 계곡 그래서 산과 계곡을 안내하는 관광 안내판이 엄청 크게 걸려있습니다. [산행 개념도] 오늘은 원래 계획에서 길을 잘못들어 일반적인 길이 아닌 약간 어려운 길로 "보배산" 바로 옆 봉우리로 올랐습니다. "서당말"에서 "도마재"로 올라야 하는데, '송화팬션'을 약간 지나가는 바람에 일반인들의 흔적이 거의 없는 길을 개척하며 올라서, 이해를 돕기위해 먼저 '산행 개념도'부터 보여드리는것입니다. [산행 들머리] '서당말 마을회관'에서 300m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송화팬션'이 나오는데, '송화팬션' 앞, 즉 좌측으로 길을 틀어 올라가야하는데, 직진을 한것입니다. 직진을 약500m쯤하니 이런 수련원같은 영업집이 나오고, 조그만 운동장 뒤로 "보개산 산행로"를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었습니다. [산행 시작] [입산금지]라는 경고판과 함께...."보개산 산행로"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어서 아무른 의심없이 이길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보배산"을 이곳에서는 모두 "보개산"으로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엄청 쎈 된비알을 올랐고, 보배산 정상석은 못봤습니다. 에구~ 여하튼 9시 50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마당바위] 약20분쯤 오르니 넓직한 바위가 하나 나왔습니다. 그냥 이름하여 "마당바위"....칠보산에도 "마당바위"가 있더군요 산행후 집에와서 알게 ㄷ지만 이 산행코스는 "예당골"로 오르는 보배산 등로였습니다. 우리는 "도마재"로 오를려고 했는데 계획과 실제가 틀려져 함께 산행한 교우들에게 미안한 느낌이 산행 내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산은 이리도 올라보고 저리도 돌아가 보고 하는 것이니 반드시 계획 루트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당바위에서 내려다 본 '서당말'] 마당바위에 올라 내려다보니 '서당말'이 보입니다. 아마도 저곳에서 산행을 시작했나 봅니다. "서당말"은 이 마을에 '서당'이 있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철조망을 덮어 쓴 무덤] '마당바위'에서 약10분쯤 다시 오르니 아주 특이한 무덤이 있습니다. 무덤은 거의다 파헤쳐져 있었고 철보망이 씌여져 있었습니다. 잔듸 대신에 철조망 씌여져 있는 무덤은 처음 봅니다. 저의 추측으로는 아마도 산짐승들, 특히 멧돼지들이 묘를 자꾸 파 헤치니까 주인이 철조망을 씌워 놓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뒤로 가운데 보이는 뾰쪽한 산이 "보배산" 인줄 알았는데, 보배산정상은 좌측 봉우리였습니다. 우리는 제일 멋있는 봉우리인 가운데 봉우리를 향해 올랐습니다. 앞으로 확실히 알게 되겠지만, "보배산"은 큰 봉우리가 세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은게 두개 [휴식] 급경사를 약 35분 정도 오르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휴식을 취하는 이곳부터는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는 원시림이었습니다. 물론 "보배산"은 '자연휴식연제', 상수원 보호등의 이유로 출입금지 지역이기에 산객들의 흔적 찾기도 어렵고, 등산로도 매우 희미했는데 경사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된비알] 입산금지 지역이라 사람들의 발자취도 없는 급경사 오르막을 치고 오릅니다. 간혹 선답자들의 표지기도 보입니다. [된비알] 경사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나시나요? 이런 된비알을 한시간 정도 오릅니다. [된비알] 산행 들머리에서 보았던 봉우리인 멋있는 봉우리로 오르니 암석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전망 바위 오르는 길] 보배산에는 3개의 큰 봉우리가 있었습니다. 가운데 봉우리로 오르는데, 산행 들머리에서 보았던 , 우리가 "보배산 정상"이라고 믿었던 급경사 대슬랩 구간을 옆으로 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대슬랩 암봉 위에 전망대가 있었습니다. [전망바위에서 내려다 본 '서당말'] 전망대에서 지나온 길을 내려다 보니 "쌍곡계곡"과 "서당말" "예당말"이 보입니다. [전망바위에서 바라 본 '군자산'] 우측으로는 "보배산 정상"으로 오르는 산줄기가 보이고, 건너편에 "군자산 君子山"이 보입니다 [전망바위에서 바라 본 '남군자산'] 南西쪽으로는 "작은 군자산"이라고도 하는 "남군자산"이 쌍곡계곡을 만들고 있습니다 "쌍곡계곡은 이렇듯 군자산 산줄기와 보배산-칠보산 산줄기가 만들어 내는 계곡입니다. 그러니 계곡은 깊고 수려할수 밖에 없는가 봅니다. [전망바위에서 바라 본 가야할 '칠보산'과 '구봉능선'] 전망바위에 서니 南쪽으로는 우리가 가야할 "칠보산 七寶山"이 "구봉능선 九峰稜線"을 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곱가지 보물"을 가지고 있다는 七寶山 ~! 여기서 바라보니 정말 뭔가 있을듯하군요 이 암봉 전망대에서 四位를 모두 조망할수 있었습니다. [709m봉] 우리가 오른 봉우리는 '보배산 정상'이 아니라 "709m봉이었습니다. 3개의 큰 봉우리중 가운데 봉우리를 오른 것입니다. "709m봉 정상"이 다가 옵니다. [709m봉] "709m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우리가 "보배산 정상"이라고 믿었던 봉우리입니다. 올라와 보니 아무래도 이상해서... [寶賠山] 좌측 능선을 따라 나아가니 더 높은 진짜 "보배산 정상"이 보였습니다. 775m 높이의 보배산이니 당연히 조금 더 높아 보입니다. 갔다 오려면 15분씩 왕복 30분 정도가 걸릴듯합니다. 오늘 산행을 함께한 교우들 중에는 위암 수술을 한 후배도 있어 무리하지 않도록 '보배산 정상'을 버리고, 바로 "칠보산"으로 전진해 갔습니다. 다른 분들의 산행사진을 보니 출입금지 지역이라 가봐야 좁은 정상이 있을 뿐이었기에 못 올랐다고 후회되지는 않습니다. [寶賠山 능선] "보배산 능선"이 예상외로 아름다웠습니다. 능선은 아주 얇은 칼날처럼 東西를 갈라놓고, 奇岩怪石과 절묘한 나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귀한 물건을 '보배'라고 하는데 그 진정한 의미를 알고 쓰는 사람들은 흔치 않습니다 '보배 寶賠'의 '배'는 한자음으로 '패'...즉 '조개 패'를 말합니다 '보배'는 어느 나라에서 온 말일까요? '보 寶'자는 '보배 보寶'자라고 해서 한자임에 틀림이 없지만, '배'는 무엇일까요? '배'도 역시 한자음인데, 우리나라 한자음으로는 '패'로 읽지요. 즉 '조개 패'자입니다. 이 '보패'가 중국음으로서는 '보배'가 되어 우리나라에 그대로 전래된 것이지요. 한자로 된 중국의 단어를 받아들일 때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중국의 발음을 원음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의 음운규칙에 따라 우리나라 음으로 받아 들이는 경우의 두 가지가 그것입니다. '보배'는 바로 전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전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것의 대표는 '다홍 치마'의 '다홍'입니다. '클 대大, 붉을 홍紅'이라서 우리나라 음으로는 '대홍'이지만, 중국음으로는 '다홍'입니다. [寶賠山 능선 위의 "고사목 봉우리"] 다음 봉우리로 올라 가니 아주 멋있는 古死木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산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산봉우리를 올라보면 때론 허무하기도 합니다. 멀리서는 어떤 신비함마져 감돌던 산봉우리가 가보면 우리 주변에서 늘 보는 그런 나무와 돌맹이들입니다. 하지만 이 봉우리는 아주 오래된 古死木이 멋지게 서 있었습니다. [寶賠山 능선상의 고사목 봉우리에서 뒤 돌아 본 '보배산'과 '709m봉'] "古死木 봉우리"에서 뒤 돌아 보니 이제야 모든 의문이 확연해 졌습니다. 좌측 앞 봉우리가 우리가 올랐던 "709m봉"이고, 뒤의 높은 산이 "보배산"입니다. 이렇듯 "보배산"은 능선위에 여러 봉우리를 거닐고 있습니다. [寶賠山 능선상의 고사목 봉우리에서 하산] "古死木 봉우리"를 내려 가는 하산길도 꽤 급경사입니다. 이 암벽들이 멀리 산 아래에서 보았을때는 멋져부렸습니다. 직접 체험하면 힘들기만 합니다. [寶賠山 능선상의 고사목 봉우리에서 하산] "古死木 봉우리"는 우리가 쌍곡계곡 '서당말'에서 올려다 볼때엔 "보배산 정상"으로 오인하는 멋진 봉우리였습니다 [서당말에서 계곡따라 오르는 등로와 만나는 안부] "古死木 봉우리"에서 내려오니 안부가 있었는데 '서당말'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 오는 登路로 생각됩니다. 참고로 우리는 '서당말'에서 능선을 따라 709m봉으로 올랐습니다. [寶賠山 능선상의 '칼날봉' 오르는 길] 안부에서 다시 봉우리를 오릅니다. 이와 같이 보배산에서 칠보산까지의 능선에는 많은 봉우리가 있습니다. '고사목 봉우리'에서 칼날같은 바위로 이루워진 '칼날봉'으로 오릅니다 [寶賠山 능선상의 '칼날봉 정상'] 이렇게 생겨서 '칼날봉'이라고 임의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앞은 천길 낭떨어지 직각으로 서있는 봉우리입니다. 조심해야합니다 [寶賠山 능선상의 '칼날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가야할 '칠보산'] '칼날봉'에 서니 가야할 "칠보산"이 가까이 보입니다. 쌍곡계곡에서 올려다 볼때는 보배산과 칠보산 2개의 산봉우리만 있는듯하지만 올라와 보니 보배산에서 칠보산까지는 여러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가운데 봉우리와 '칠보산' 사이에 "떡바위"에서 칠보산으로 오르는 "청석재"가 있습니다. ['칼날봉' 내려가는 험로] '칼날같은 봉우리' 다웁게 내려가는 길도 험로였습니다. 여기서 옛날 군대시절 유격을 좀 하고.... ['칼날봉' 내려가는 험로] 네발을 이용해서 하는 산행도 재미있습니다. 무었보다 인적이 전혀없는 "보배산"을 우리가 완전히 전세내어 섭렵했으니 우리가 보배를 모두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예당고개' 가는 길] 이곳에는 소나무가 아주 많았으며 수령도 오래된 것들이 많았고 赤松이었습니다 모양새도 다양해서 그 수많은 세월을 한순간에 느낄려면 한참을 감상해야 했습니다 ['예당고개' 가는 길에서 뒤 돌아 본 '고사목봉'과 '보배산'] 이 사진으로 "보배산"의 전모를 어느 정도 알수 있습니다. 가운데 가장 높게 보이는 봉우리가 "古死木 봉우리"이고, 그 뒤로 "709m봉"이며 맨 끝이 "보배산 정상 봉우리"입니다. 이렇듯 "寶賠山"은 큰 세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칠보산으로 가서 조망하면 더욱 선명해 집니다. [예당고개] "칼날같이 생긴 봉우리"를 지나 전진하니 "예당고개"가 나옵니다. 이곳은 '쌍곡계곡'의 "예당마을"에서 올라 오는 산행로와 만나는 안부입니다. [청석재 가기전 봉우리] "예당고개"에서 "청석재"로 가는 사이에는 이름 모를 큰 봉우리가 있습니다. 이 봉우리를 넘어야 "청석재"로 갈수 있습니다. 산행로는 비교적 뚜렸하고 외줄기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청석재 가기전 봉우리에 있는 전망대] 청석재 가지전에 있는 이름 모를 봉우리도 아름다웠습니다. 운무만 없었으면 전망이 좋아 선명한 사진 촬영을 할수 있었을 텐데... [청석재 가기전 봉우리] 앞에는 천길 낭떨어지이고 쌍곡계곡은 잘 조망되었습니다. [청석재] 이름 모를 봉우리를 내려 오니 바로 "청석재"가 나왔습니다. 이곳에 도착하니 12시 45분이었습니다. 서당말에서 약3시간 걸려 왔습니다 여기서 부터는 정식으로 개방된 산행로입니다. "청석재"는 쌍곡계곡에서 "청석골"로 넘어 가는 고개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 고개를 넘어 '청석골'로 가는 사람은 아무도없고 쌍곡계곡 "떡바위"에서 "칠보산"을 오르는 산행로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칠보산의 주 등산로" 입니다. [청석재] "청석재 이정표"가 서있는 뒤쪽 "보배산 능선"에서 왔습니다. 여기에도 "보배산 출입금지"를 알리는 경고판이 있습니다. 칠보산 정상까지 600m라고 하는데 ... [청석재에서 '칠보산 가는 길] 이정표에는 "칠보산"까지 600m라고 표기해 놨습니다만 체감적으로는 훨신 먼 거리였습니다. 쉽게 볼 코스가 아닙니다. [안장바위] '청석재'에서 조금 오르니 "안장바위"가 나왔습니다. [안장바위] "안장바위"는 말 안장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인듯... 뒤로 지나온 "보배산 능선"이 줄을 서 있습니다. [안장바위에서 뒤 돌아 본 지나온 '보배산 능선'] "안장바위"에서 지나온 "보배산 능선"을 뒤돌아 봅니다. 오늘 산행을 실감하게 해 줍니다. 우리의 산행로는 도욱 확실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가실 분들은 많은 참고가 될것입니다. 글로 쓰는 산행기 보다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사진으로 보는게 더욱 확실합니다 [七寶山 오르는 길] "청석재 이정표"가 '칠보산'까지 600m라고해서 가까운지 알고 이번 오르막만 오르면 '칠보산'인줄 알고 올랐는데....정상은 그냥 쉽게 내 주지 않더군요. [바위 위로 뻗은 뿌리들] 칠보산으로 오르는 登路는 가파르기도 하지만, 赤松들의 나무 뿌리들이 암반위로 이리저리 지나가고 다양한 바위들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 왔습니다. [중절모 바위] 조금 오르니 중절모를 닮은 "중절모 바위"가 나왔습니다. 중절모 같나요? [끈질긴 생명력] 암반위로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소나무 뿌리들이 이리 저리 뻗어져 생명수를 끌어 올리고... [七寶山 정상으로 오르는 길] 전혀 지루하지 않은 오르막을 오릅니다. [七寶山 마당바위] 여러 산행기에서 보았던 "칠보산 마당바위"가 나타났습니다. '마당바위' 뒤로 "칠보산 정상"이 보입니다. [七寶山 마당바위] '마당바위에서 동북쪽 방향의 "덕가산 산줄기"가 보입니다. 경치가 끝내 줍니다 [七寶山 마당바위에서 뒤 돌아본 "보배산 산줄기'] 뒤 돌아 보면 볼수록 "보배산"은 보배같았습니다. [七寶山 정상으로 오르는 길] '마당바위'에서 한숨 돌리고 정상을 향해 갑니다. [岩盤 위의 무덤] 조금 올라 가니 정말 특이한 무덤이 하나 있습니다. 원~세상에 岩盤 위에 무덤을 만들어 놨습니다. 무덤은 거의 소실되어 없어질 위기에 놓여 있는데.... 관은 어디에 있을까요? 岩盤을 파내어 암반 속에 안치했을까요? 아니면 가묘일까요.... 성묘 한번 하려면 이곳까지 올라야하는데 어찌 이런곳에 묘를 썼을까... [무덤같은 바위] 오늘은 보배산 오르는 중턱에서 철망을 씌어논 무덤을 보았는데, 기억나세요? 칠보산에서는 암반위에 있는 무덤을 보니 보이는 암봉들이 모두 무덤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 바위는 진짜 무덤같지요? [?] 무덤을 만들려면 이런곳에 관을 안치하고 위에 봉분을 쌓으면 좋을 텐데... [七寶山 정상으로 오르는 길] 막바지 정상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칠보산에서는 산객들을 제법 만날수 있었습니다. [七寶山 정상으로 오르는 길] 어디쯤일까...정상은....하고 오르는데 [七寶山 정상] 아주 싱겁게 "七寶山 정상"이 나타났습니다. "七寶山 정상"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직진하면 "쌍곡폭포"로 내려 가는 계단이 있고, 우측으로 가면 "구봉능선"으로 가는 길입니다. [七寶山 정상석] "七寶山 정상석"은 칠보산의 명성에 비하면 초라합니다 778m 높이 "七寶"는 일곱 가지 주요 보배를 말하는 단순한 단어인듯합니다만 일곱가지 보배가 무었이냐고 물으면 대답하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단순히 어렴푸시 "많은 보배"라고 느끼고 슬쩍 지나갑니다. 일곱가지 보배는 무었일까? [七寶山 정상에서 뒤 돌아본 "보배산 산줄기"] 오늘 여러 봉우리를 지나며 "보배산"을 뒤돌아 봤는데, "칠보산" 정상에서 뒤 돌아 보니 "보배산"과 "칠보산"의 산줄기가 더욱 확연해집니다 앞 가운데 약간 흰 평평한 부분이 "칠보산 마당바위"입니다. [七寶山 정상에서 "구봉능선"으로 하산하는 길] 七寶山 정상에서 "구봉능선"으로 하산하는 길은 출입금지 지역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곡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조금 어렵고 출입이 제한 된 곳이지만 "구봉능선"을 타고, "떡바위"로 내려 가기로 했습니다. [쌍곡폭포에서 오르는 登路] 쌍곡폭포로 내려 가려면 '칠보산' 정상까지 설치된 계단을 따라 동남쪽으로 내려 가면 됩니다. 이쪽으로 가면 거북바위와 쌍곡폭포가 있습니다 [七寶山 정상에서 기념사진] 휘문고등학교 경기남부교우회 산악팀들입니다. 20명이 넘는데 오늘 산행에 함께하지 못한 교우들이 많았습니다. [七寶山 정상에 있는 이정표] [九峰능선] 九峰능선으로 나아가니 더 이상 가지 못하도록 줄을 쳐 놨습니다. 하지만 재미없는 계곡길 보다는 비록 출입금지 지역이지만 구봉능선으로 갑니다. [九峰능선으로 하산] 처음부터 릿지코스입니다. 암벽을 타고 내려 갑니다. 네발로 하는 산행도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힘도 덜듭니다. 네발로 힘을 분산 시키니까요 [九峰능선으로 하산] 아기자기한 암봉들을 타고 넘습니다. [九峰능선에 있는 奇岩怪石] 재미있게 생긴 바위들도 만나고... "七寶"는 불교적 용어로 '무량수경'에서는 금·은·유리·파리·마노·거거·산호를 이르며, '법화경'에서는 금·은·마노·유리·거거·진주·매괴를 이른다고 합니다. [九峰능선에 있는 안부]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안부도 만나고... 또한 "七寶"는 다른 용어로는 '전륜성왕'이 가지고 있는 일곱 가지 보배를 말하는데 윤보, 상보, 마보, 여의주보, 여보, 장보, 주장신보를 이른다고 합니다. [九峰능선에 있는 奇岩怪石] 생각대로 생각하면 되고..... 제가 산행기에서 자주 언급합니다만 불교용어들은 대부분 인도의 옛글자 '산스크리트語'를 한자로 音譯하고 음역된 한자를 다시 우리말로 音譯해서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전혀 알수 없는 단어를 모르고 그냥 사용하고 있지요 "전륜성왕"에 대해 잠간 언급하자면, 한자로 "轉輪聖王"이라고 쓰는데 이 또한 산스크리트 cakra(輪)와 vartin(轉)이 합성되어 파생된 말로서 '자신의 전차바퀴를 어디로나 굴릴 수 있는' 곧 '어디로 가거나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통치자를 뜻한 답니다. 간단히 이야기 해서 "전세계를 통치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九峰능선에서 바라본 남쪽방향 - 대야산] 남쪽으로 멀리 희미하게 "대야산 大耶山"이 "중봉"과 함께 보입니다. 지난해 9월에 "중봉"과 "대야산 大耶山"을 오르고 용추계곡으로 산행을 했지요 백두대간이 지나는 '대야산'입니다. [九峰능선을 버리고 계곡으로 하산] 九峰능선 중간에서 능선을 버리고, 계곡으로 떨어 졌습니다. 이 계곡이 "떡바위"에서 올라 오는 계곡이었습니다. [계곡 하산길] "떡바위 앞 계곡"도 다양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七寶"에 대한 또 다른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예가 있지요? 금, 은, 구리 따위의 바탕에 갖가지 유리질의 유약을 녹여 붙여서 꽃, 새, 인물 따위의 무늬를 나타내는 공예 또는 그 공예품을 "七寶"라고 하지요 [칠보산 하산 경로] 현재 내려가고 있는 산행로를 임의로 구성해서 보여드림니다. 원지도에는 '구봉능선'이 출입금지 구역이니 표기를 해 놓지 않았습니다. [계곡 하산길에서 내려다 본 "떡바위" 산행 날머리] ""떡바위" 산행 날머리겸 들머리가 보입니다. 좌측 '구봉능선'과 우측 청석재로 오르는 능선이 선명하며 "떡바위" 앞 팬션들이 보입니다. 그 뒤로 군자산이 보입니다. [슬랩] 계곡이라고 해서 물이 흐르는 계곡만 있는게 아닙니다. 슬랩구간도 있고.... [슬랩] 살슴 살금 슬랩구간을 내려 오고.... [떡바위로 하산하는 길] 계곡을 내려 갑니다. 알아두면 유식하다는 소리를 들을수 있는 흔치 않은 얘기 하나 들려 드릴까요? '고양이'를 왜 '나비야!'하고 부를까요? '고양이'를 모르시는 분은 안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양이의 어원을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고양이'를 더 이상 분석해 보실 수 있나요? '고양 + 이'로 분석하시렵니까? '-이'가 붙는 단어가 많으니까 말입니다. '매미'가 '맴맴' 운다고 해서 '맴'에다가 접미사 '-이'를 붙여서 '매미'를 만들었으니까, '고양이'도 '고양고양'하고 우는 소리에다가 '-이'를 붙인 것은 아닌가 해서 위와 같이 분석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고양이'가 '고양고양' 울던가요? 아니면 '야옹야옹'하고 울던가요? '고양이'는 어원적으로는 더 이상 분석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절대로 '고양고양' 울어서 거기에다가 '-이'를 붙인 것이 아닙니다. '고양이'는 '괴 + -앙이'로 분석됩니다. 옛말에서 고양이는 '괴'였거든요. 그런데 이 '괴'는 '고이'로 발음되던 이중모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꼭 '고이'와 발음은 같지 않았습니다.) '괴앙이'가 음운변화를 일으켜서 오늘날의 '고양이'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양이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보통은 '나비야!'하고 부르는데, 이 '나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추측은 할 수 있겠지요. 고양이가 원숭이처럼 나무 등을 잘 타니까, 원숭이의 옛말인 '납'을 (지금은 잔나비, 또는 잰나비) 비유하여 그렇게 불렀다는 추측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추측은 금물입니다. 왜냐 하면 아직까지 그러한 근거를 찾을 수가 없거든요 [떡바위로 하산하는 길] 절묘한 경관을 만들어 냅니다 [계단 시설] 새로운 시설들이 계속 산객들을 편하게 합니다. [떡바위 계곡 계단에서] 오늘 함께한 교우들은 경기남부산악회를 이끌고 나가는 열성파들입니다. ["떡바위" 산행 날머리]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떡바위"마을이 보입니다. [떡바위 계곡에서 족탕] 쌍곡계곡의 떡바위계곡에서 족탕을 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떡바위 산행 들머리겸 날머리] 다른 분들의 산행기에서는 이제까지 볼수 없었던 계곡을 건너는 다리도 보입니다. [떡바위 앞 雙谷溪谷] 다리 위에서 "떡바위 앞 雙谷溪谷"을 바라봅니다. 말로만 들어 오던 "雙谷溪谷"을 직접 접하니 여름엔 피서를 오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자연이 살아있는 계곡인듯합니다 하지만 겨울의 문턱이라 그런지 생각보다는 큰 계곡이 아니군요. [떡바위 산행 날머리겸 들머리] 조금만 유명해 지면 그런곳엔 여지없이 화려한 팬션이 지어지고 규모가 큰 음식점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쌍곡계곡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지어도 여름철엔 방 구하기가 어렵다고하지요? 겨울에도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갈것이 아니라 이런 곳으로와서 가족들과 호젓한 산행도 즐기고 겨울 계곡도 음미하면 좋겠습니다. [떡바위] 앞에 보이는 넓직한 바위가 "떡바위"랍니다. 생각보다는 그다지 크지 않고 명성에 비하면 초라합니다. 다른 분들의 산행기를 보면 모두 저 물을 건너 떡바위로 산행을 시작했더군요. 지금은 멋진 다리를 놓아 길 찾기도 쉽고 건너기도 편리합니다. [뒤돌아 본 "떡바위 산행 날머리겸 들머리] "떡바위" 팬션 앞에서 지나온 계곡을 뒤돌아 보니 경치가 제법입니다. [떡바위에서 올려다 본 "七寶山"] "떡바위"에서 올려다 보는 "七寶山" 여인이 옷을 벗고 누워있는듯합니다. [떡바위에서 올려다 본 "寶賠山"] "寶賠山"의 모양이 쌍곡계곡에서 올려다 보니 또한 새롭습니다. 왼쪽 능선으로 올라야 할것을 가운데 봉우리 능선으로 올랐으니 경가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추억에 남는 "寶賠山"과 "七寶山"을 산행 했습니다. 특히 함께한 휘문경기남부교우회 교우들은 금지구역이나 길없는 곳으로의 산행이 처음인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번에 새로운 산행의 묘미를 느꼈으리라 생각됩니다. [떡바위에서 올려다 본 "君子山"] 조만간 "君子山"과 "南君子山" 종주를 할 예정입니다. 주로 겨울에 쌓여있는 눈길을 걷는 산행지로 유명하더군요. [구글어스로 본 산행 괘적도] 보배산을 붉은 선인 좌측선을 따라 "도마재"로 오르지않고 가운데 봉우리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우측 "쌍곡계곡"으로 하산하지 않고 어려운 '구봉능선'과 "떡바위 앞 계곡"으로 내려왔습니다 * 산행시작 : 오전 9시 50분 서당말 * 산행종료 : 오후 3시 45분 떡바위 * 총산행시간 : 5시간 55분 [뒷풀이] 괴산을 지나 증평으로 나와 증평시장 안 어느 음식점에서 뒤풀이를 하고 돌아 왔습니다. 산행을 함께한 교우 여러분들에게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길 빕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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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城山 할미城山 遊山記 龍仁市廳-통화사-石城山-魔城터널위-할미城山-동백중학교 石城山을 넘어 할미城山으로 11월 7일(토) 내일 빗님이 내린다는 일기 예보로 '계방지맥3구간' 산행이 연기되어 한주를 쉴수도 없고하여 가까운 곳으로 갑자기 산행계획을 잡았습니다 "한남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경기도 龍仁의 鎭山인 '石城山'과 영동고속도로 상습 정체구간인 '마성 魔城터널' 위를 지나 '할미城山'으로 산행코스를 잡았습니다. 요즈음 날씨는 늦은 가을 날씨 답지 않게 구름이 많이 끼고 비가 자주 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구름이 잔뜩 끼어 기분까지 음침하게 만들었습니다. [석성산 주변 지도] 오늘 산행코스는 붉은 선으로 "용인시청"에서 "동백지구" "동백중학교"까지 입니다. "漢南正脈"의 마루금을 대체로 걷는 것입니다. [산행 개념도] "漢南正脈"의 마루금은 "멱조고개(일명:메주고개)"로 통합니다만, 저는 일반 산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를 따라 갑니다. "용인시청"에서 "통화사", "석성산 정상"을 오르고, "마성터널 위 "작고개"를 지나 "할미성산"을 다시 오르고 "향린동산" 정문 앞으로 난 영동고속도로 굴다리를 통해 "동백지구 동백중학교" 앞으로 갑니다. 거리는 약 10km정도로 대략 네시간이 걸렸습니다. [용인 시청] ‘山川開闢의 상징’이라고도 할수 있는 龍仁市廳 廳舍가 하늘을 찌르며 우리나라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최고로 크고 넓은 廳舍임을 자랑하며 솟아 있습니다. 아예 이름도 "용인행정타운"이라고 글자 그대로 '타운'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의 비아냥 소리를 들었을 법도 한 과도한 제집 만들기 행정관청은 근무지 사무실에 쏟아 부을 돈으로 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사용하기를 기대합니다 갑작스런 산행으로 산행으로는 다소 늦은 오전 11시 30분에 "용인행정타운" 정문 앞에 내렸습니다. 일반 대중교통이 서울에서, 수원에서 분초를 다투며 다니기에 접근성이 매우 좋습니다 [용인시청 본관앞에서 좌측] [용인 처인구 보건소] "석성산 등산로"는 "용인행정타운" 정문을 통해서 본관 앞으로 올라 갑니다. 그리곤 본관 앞에서 좌측으로 "용인 처인구 보건소" 건물로 갑니다. "보건소" 건물을 지나 나가면 도로가 나옵니다. [석성산 산행 들머리] "보건소" 건물 뒤에 "석성산 산행 들머리"는 찾기 쉽게 이렇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용인시청 본관 앞을 통과해 올것인지, 바로 이곳으로 올것인지는 스스로 판단하세요. 저는 초행길이라 시청본관 앞을 통해 보건소 뒤로 나왔습니다. [석성산 산행 들머리]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골프장이 있고, 날로 발전하는 용인시 다웁게 세금이 많이 들어 온다죠? 그래서 이러한 문화 체육시설도 잘해 놨는가 봅니다. 제발 세금이 좋은 곳에 효과적으로 쓰여 지길 앙망합니다. 앞으로 오실 분들은 만남의 장소를 여기로 하면 편리하겠습니다. [산행 개념도] 조금더 확실하게 "석성산 산행코스"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제 이곳이 어디인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하는지가 머릿속에 그려지시죠? 그러면 저와 함께 "석성산과 할미성산"으로 떠나 볼까요 11시 45분 산행을 시작합니다. [석성산 산행로] 용인시청 보건소 뒤 산행 들머리를 들어서면 이렇게 산행로가 잘 뚤려있습니다. 회색빛 콘크리트 도심 속에서 이렇게 自然의 맛을 느낄수 있는 山行路가 있다는 것이 용인시가 자랑 할수 있는 최고의 자랑거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큰 건물이 얼마나 많고, 인구가 얼마나 많고 하는 그런 것들 보단, 自然입니다. [첫번째 쉼터] 산행 들머리에서 약 15분쯤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면 첫번째 쉼터가 나타납니다. 여기쯤 오면 약간 더워집니다. 두터운 겉옷은 여기서 벗어야 할것입니다. [첫번째 쉼터] "석성산"에 대해 안내를 하는 안내판이 있으며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와 고산자 김정호선생의 "대동여지도"등을 보여주며 친절한 설명인지, 용인 석성산의 자화자찬인지를 길게 해놨습니다. 山에 관심 없으신 분들은 뭔말인지 잘 모르는 大幹, 正脈, 枝脈등으로 설명해 놨습니다 제가 앞으로 산행을 하며 이해하기 쉽게 설명 해 드리도록하겠습니다. [두번째 쉼터로 가는 길] 용인시민들에겐 "건강 산행 코스"로 아주 적합한 코스라고 말씀드릴수 있겠습니다 경사가 완만하고, 숲으로 둘러 쌓여 조용하고, 낙엽들로 登路는 푹신푹신하고.... 첫번째 쉼터에서 두번째 쉼터까지는 매우 가깝습니다. 그래서 두번째 쉼터는 소개해 드리지 않습니다. [세번째 쉼터로 가는 길] 주말 가족 나들이에 최고!~ 주말이면 리모콘을 보물인양 거머쥐고 소파 위에서 뒤적거리며 채널 돌리기 하다 와이프와 말다툼이나 하시는 분들은 아이들 데리고 "석성산"으로 오세요 산이 시시껍질하다구요? 천만에~ 이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 보시면 아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나올겁니다. ㅎㅎ 꼭 높고 험준한 산을 가야 산을 가는건가요? [세번째 쉼터] 첫번째 쉼터에서 약15분 쯤 오르면 두번째 쉼터가 나옵니다. 두번째 쉼터에서 다시 10분쯤 가면 세번째 봉우리이자 쉼터가 나옵니다 정상까지 2km가 남았다는 친절한 안내가 보이는데, 초보 산객들은 아마도 여기쯤에서 물도 마시고, 휴식도 약간은 취해야 할것입니다. [정상으로 가는 길] 登山路라고 해서 마냥 오르막만 있는게 아닙니다. 조그만 봉우리를 하나 오르면 다시 조금 내려 가고를 반복하면서 점차적으로 정상을 향해 감으로 석성산 산행은 건강산행코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메주고개 갈림길] 세번째 봉우리이자 쉼터를 지나 조금 더 가면 "메주고개"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漢南正脈" 마루금을 만나 마루금을 따라 "할미산성"까지 갑니다. "메주고개""멱조고개"라고 더 알려져 있는듯한데, 여기서는 "메주고개"라고 해 놨군요. 이 고개는 용인정신병원에서 용인시내로 들어 오는 고갯마루를 말하는 것인데, 한남정맥을 종주하는 산객들은 대부분 "멱조고개"라고 합니다. 이 고개에 얽혀있는 전설은 석성산 '군부대봉'에 올라 알려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메주고개 갈림길에서 바라본 '석성산 정상'] '메주고개 갈림길" 봉우리에 올라서면 드디어 "石城山 정상"이 보입니다. 제법 멀리 보이지만 2km가 채안되는 거리이니 염려할바는 못됩니다. 오늘 산행 중에서 저 '석성산 정상' 올라 가는 짧은 구간만 된비알입니다. [석성산 군부대-통화사 갈림길] '메주고개 갈림길"에서 다시 조금 전진하면 시멘트 포장 도로를 만납니다. 여기는 조금 중요한 곳이므로 설명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1.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가면 軍通信部隊입니다. 원래 이 코스가 "漢南正脈" 마루금이며 쉽게 석성산 정상으로 갈수 있는 길이지만 軍通信部隊가 진을 치고 있어 갈수가 없습니다. 2. '석성산 정상'으로 쉽게 가려면 오른쪽 "통화사"입구로 가야합니다. 다시 말해 이 길은 군부대 우회로인 것입니다. [석성산 군부대-통화사 갈림길] 3. "통화사" 입구를 통해 "통화사 석탑삼거리"까지 가서 석성산 정상으로 쉽게 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軍通信部隊 정문 앞에 있는 봉우리에 올라 "멱조고개", 즉 "메주고개"를 비롯해 용인시내와 지나온 산줄기를 조망하고 싶으신 분들은 "통화사 입구"로 가지 않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군부대쪽으로 약50m올라 갑니다. [석성산 군부대봉 가는 길] 4. 약50m쯤 올라 가면 오른쪽으로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은 등산로가 나옵니다. "漢南正脈" 마루금입니다만 軍通信部隊 정문까지만 갈수 있습니다. [석성산 군부대봉-통화사 갈림길] "漢南正脈" 마루금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Y자 삼거리가 희미하게 나옵니다. 왼쪽으로 군부대봉을 올라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야합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직진하면 "통화사 입구 진입로"를 다시 만납니다. 이곳을 잘 기억해야 길을 잃지않을수 있읍니다. [석성산 軍通信部隊] 옛날 석성산 정상에는 한양 남산 봉수대와 통하는 "봉수대 烽燧臺"가 있었답니다. 지금은 초현대화된 軍通信部隊가 정상을 점령하고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석성산'이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通信의 요충지임을 알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군부대 정문의 초병에게 길을 물어 이곳에서 용인시내를 조망하고 다시 아까 "통화사 진입로 갈림길"을 통해 "통화사"로 갔습니다. [석성산 軍通信部隊 전망봉] 軍通信部隊 정문 앞에는 이러한 전망 봉우리가 있습니다. 이곳에 올라 보고 가시기 바람니다. [석성산 軍通信部隊 전망봉에서 본 지나온 능선] 軍通信部隊 정문 앞 전망봉에서 오늘 지나온 산줄기를 모두 볼수가 있었습니다. 雲霧가 껴서 희미하지만 그래도 용인시청이 멀리 보이고, 지나온 산줄기가 "龍仁'을 상징히는 의 몸체같이 꾸불거리고 있습니다. ['멱조고개' 방향] 軍通信部隊 정문 앞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漢南正脈" 마루금인 삼가리 '멱조고개', 일명 '메주고개"방향을 내려다 봅니다. 수원,신갈,동백지구에서 용인시내로 들어 오는 고개입니다. 지금은 편리한 자동차 교통을 위해 고갯길은 절개되어 큰 고개가 아닌듯 하지만, 길이야 어찌됐든 옛부터 내려오는 전설 속에 '멱조고개'는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있답니다. 42번국도 멱조고개 뒤쪽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용인대를 감싸고 있는 "부아산 負兒山"입니다. "부아산 負兒山"도 한남정맥을 이루는 산중에 하나입니다. ★負兒山(부아산)과 覓祖峴(멱조고개) 효부이야기★ 옛날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부부가 저 건너편 부아산(負兒山)에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부역 때문에 집을 비우게 되었고, 시아버지가 대신 나무를 장에 내다 팔았다고 합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돌아올 때면 아이를 업고 고갯마루에서 기다렸는데, 어느 날 밤이 깊어도 오지 않는 시아버지가 걱정이되어 찾아 나서다가 길을 잃었다고 합니다. 한참을 헤매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혹시나 하여 달려갔더니 그곳에는 시아버지가 배고픈 호랑이를 만나 목숨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답니다. 이를 본 며느리는 호랑이에게 배가 고프다면 내 아이라도 줄 터이니 시아버님을 다치게 하지 말라며 아이를 던져주자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정신을 차린 시아버지가 자신은 늙었기에 죽어도 한이 없을 텐데 어찌하여 어린 손자를 죽게 했느냐고 꾸짖자, 며느리는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으나 부모는 어찌 다시 모실 수 있겠느냐며 모셔왔다고 합니다. 이후 시아버지도 며느리가 더욱 마음 아파할 것을 걱정하여 겉으로는 슬픈 내색을 하지 않았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살았다고 합니다. "멱조고개 覓祖峴"는 이렇듯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사연과 함께 '찾을 멱覓,할아버지 조祖,고개峴'으로서 ‘할아버지를 찾아 넘던 고개’라는데서 연유했답니다 그리고 '부아산 負兒山''업을 부負, 아이 아兒'로서 아이를 업은 산이라는 뜻입니다 [줌인한 삼가리 '멱조고개' 방향] ‘할아버지를 찾아 넘던 고개’라는 데서 연유했다고하는 "멱조고개覓祖峴"을 줌인해 봤습니다 지금은 폭 넓은 차선의 큰 길로 쭉 뻗은 포장된 길이지만 모두 아시다시피 예전에는 편도 1차선 도로로 꾸불꾸불 굽은 길이었습니다. 수원에서 인천까지를 연결하는 "水仁線 수인선"과 함께, 우리나라 첫 협괘열차인 수원에서 여주까지 연결하는 "수여선 水驪線"철도가 운행됐던 "멱조고개". 이 "멱조고개'는 일제시대 때 사설철도회사인 ‘조선경동철도’에서 여객열차와 화물열차를 운영하던 것으로 주로 이천쌀과 소금을 운반하는 데 쓰였다고 합니다 1930년 개통해 삼박골과 김량천교를 건너 용인으로 들어갔던 이 열차는 새로운 교통 메카니즘에 밀려 1972년 적자운영으로 모습을 감췄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이 "멱조고개"가 높고 가파라 열차가 걷다시피 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고개를 절개하여 평평하고 큰 길이 새로 났으며, 성능 좋은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고, 더더욱 그 길 위로는 고가도로에 첨단 모노레일 경전철 공사를 하고 驛舍를 짓고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낄수 있습니다. 경전철이 곧 완공 된다고하지요? [통화사-석성산 가는 길] 軍通信部隊 정문 앞 봉우리에서 조망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내려 옵니다. 그리고 軍通信部隊 봉우리의 옆구리를 따라 우회하여 갑니다. [통화사-석성산 가는 길] 그러면 아까 "통화사 입구 삼거리"에서 오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다시 만나고 "통화사"로 갑니다. [사당] "통화사"로 가는 중간에 사당이 하나 있습니다만, 안내판이 없어 누구의 것인지 모릅니다. [통화사 앞 '석탑삼거리'] 오후 1시 15분에 통화사 석탑삼거리에 왔습니다. 그러니까 용인시청 들머리에서 1시간반이 걸렸습니다. 왼쪽으로 가면 바로 "석성산 정상"으로 가는 登路입니다만, 여기까지 왔으니 "통화사"는 구경하고 가야겠지요? 오른쪽으로 가면 "통화사"로 갑니다. 아주 가깝습니다. 50m정도.... [통화사 석탑] 왜 "석탑삼거리"라고 했는지 이제 확실히 아시겠죠? 최근에 만든듯한 석탑이 하나 서 있고 우측은 주차장입니다. 이곳까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차량이 다니고 있다는걸 증명합니다. [통화사] 특별히 알려 드릴만한 얘깃거리가 없는 '통화사'도 제법 큰 절이더군요. 중요한것은 "석성산 石城山"이라는 地名이 이 있는 산 山이라는 것인데 그 城을 돌로 쌓은 城이라고 "석성산 石城山"이라고 한것이랍니다. 그러므로 이곳에는 이 있는데 그石城東門이 이 절 앞에 있었다고 합니다. [통화사] 특별히 할말이 없습니다 [석탑삼거리 '석성산 등로'] '통화사"에서 나와 다시 "석탑삼거리"로 왔습니다. 여기서부터 조금 가파른 된비알을 오릅니다. 여느 산이나 정상부근은 경사가 가파른 깔닥고개가 있지요. [석성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石城山 정상부근에 오니 이제서야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샘터로 가는 길] 정상 바로 애래에는 샘터가 있었는데 샘터로 오르는 길입니다. [정상 아래 샘터] 저 위가 샘터가 있는 쉼터입니다. [정상 아래 쉼터, 샘터] 산성은 석성산 7부 능선에 축조됐다고 합니다. 산성축조에 필요한 석재도 널려 있는데, 군사들의 주둔을 위한 필수조건인 물이 있어야하는데 석성산 정상 바로 아래에는 "샘"이 있더군요. 그리고 지금은 산객들의 쉼터로 이용되는 이곳이 옛날 고구려시대에는 천연의 요새였겠지요? 현재는 이곳에서 산악인들이 매년초에 시산제를 지내는 곳으로 유명하다군요. [샘터] [정상으로 올라 가는 길] 城안에는 5개의 샘터가 있다고 하는데 확인 할수 있는것은 이곳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수질이 좋지않아 마실수 없다는 경고판이 붙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 샘 위에있는 군부대 때문이 아닐까?? 이 샘에는 전해 내려 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 샘은 서울에 사는 벼슬아치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모실 명당을 찾아 지관과 용인을 지나다가 석성산에서 명당을 발견하고 이곳에 묘를 쓰려고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날을 잡아 가묘를 쓰려고 땅을 팠더니 그 속에서 물이 솟구쳐 나왔다는군요. 그 물이 그치지 않고 솟구쳐 산 아래는 홍수가 났답니다. 과장이 좀 심하지만 믿거나 말거나... 벼슬아치는 크게 놀라 지관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산 형상이 호랑이 형상인데 호랑이의 눈인 눈물샘을 건드려 물이 쏟아진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냥두면 산 아래 마을에 물난리가 난다며 이일을 막으려면 저기 큰 바위로 막아야 한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위의 큰 바위로 물을 막았다고 합니다. 위에 누르고 있는 바위 보이시나요? 그러자 물은 막히고 바위틈에서 조금씩 물이 흘러 지금의 약수터가 됐다고 하는군요. ㅎㅎ [석성산의 유래] 사진 속 설명을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친절히 요약해 드리면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 개로왕을 죽이고 만든 성이라 추측된답니다.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오르막인 계단을 오릅니다.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더 이상 올라 갈곳이 없어 집니다. [석성산 정상 헬기장] 계단을 올라 서면 헬기장이 나오고, 왼쪽 남쪽으로는 軍通信部隊가 점령한 봉우리가 있고... [石城山 정상] 헬기장 오른쪽으로는 석성산 石城山정상이 보입니다. "용인8경" 중에 제1경이 이곳 석성산 정상에서 日出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石城山 정상] 정상에 조금 더 가까이 가서 촬영했습니다. 구름이 잔뜩낀 날씨에도 산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군요. "용인8경" 중에 제2경은 "어비낙조"라고 합니다. 저의 산행기 "쌍령산-시궁산-미리내"를 참고 하시면 "어비낙조"에 대해 사진과 함께 설명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용인의 "시궁산"에서 "어비리"에 있는 저수지에 비치는 洛照를 말합니다. 저는 실제 봤는데 멋있더군요. 오후4시 이후 "시궁산"을 올라 보세요 [石城山 정상] 石城山 정상에는 정상석과 망원경까지 설치해 놨습니다. 더욱 독특한것은 '구급약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산에서는 볼수 없는 것인데.... 石城山 정상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1시 30분에 도착했으니 1시간 45분 걸려서 올랐습니다. [石城山 정상석] 471.3m 높이를 알려주는 石城山 정상석 [石城山 정상] 석성산 정상에는 가족끼리 오른 팀이 많았습니다. 정상에서 먹는 것들은 모두 맛있지요 땀 흘리며 오르지 않은 이들은 절대 느낄수 없는 맛입니다. 모두 정상에 올라 건강도 챙기고, 기막힌 이 맛도 느껴 보시길.... 그리고 새벽에 올라 日出광경을 감상하시기 바람니다. 용인8경중에 제1경이라하니... 저도 시간나면 한번 오겠습니다. [石城山 정상에서 바라 본 '할미산성'] 石城山 정상에서 조망해 보겠습니다. 먼저 북쪽으로 앞으로 가야할 "할미城山"과 그 뒤로 희미하게 "향수산"이 보입니다. '향수산' 뒤로 조측에 "법화산"이 쬐끔 보이는군요 앞에 보이는 능선이 "漢南正脈 마루금"입니다. 그리고 왼쪽 아래 '영동고속도로" 마성터널 입구가 보입니다. [용인 '동백지구'] 서쪽으로는 "동백지구"가 펼쳐지는군요. '용인행정타운'을 비롯해 '멱조고개'부터 '어정리'를 지나 '판교'로 이어지는 길 곳곳은 최근 입주한 "동백지구"로 연결되며 그길옆에는 온통 대규모 아파트들이 마천루처럼 솟아있습니다. 그러니 옛'영남대로'를 비롯해 풍수지리에서 명당이라는 명당은 모두 용인에 있다고 하던 그 땅 구석구석에는 향수어린 정겨운 아름다움은 찾아 볼길 없고.그 정취는 간곳 없이 황막합니다. 옛날 그 마을 이름들은 지금의 아파트단지 이름으로 변했고, 마을 앞을 지키고 서있던 장승들은 간곳없고 장승들이 있던 길목엔 대형마트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 삭막함과 애절함을 뒤로하고 조금이라도 위안을 삼으려면 "석성산"에 올라 보시라~ 自然이 왜 보존되어야 하는지를 조금이라도 느낄수 있으리라~ 그리고 "석성산"에서나마 自然을 만끽하시라~! [영동고속도로 '용인 I.C.'] 동북쪽으로는 영동고속도로 "용인 I.C."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날씨 때문에 선명한 사진을 찰영하지 못해 아쉽군요 [石城山 下山] 석성산 정상에서 하산을 합니다. 가파른 곳에는 계단을 설치해 놔서 산행하기에 불편이 없습니다. 앞에 보이는 강아지도 석성산 정상까지 올랐다가 내려 갑니다. 누구나 즐겁게 오를수 있는 석성산입니다. 지금까지 올라 볼까 말까 망서리시던 분들은 이제 자신감을 갖고 오를수 있겠지요? 저한테 고맙다고 하셔야 하는데 돈은 받을수 없고..ㅎㅎ 댓글이나 달고 가세요 [동백지구 '호수마을' 산행로 갈림길]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 "동백지구 호수마을"과 "마성터널"로 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동백지구에 사는 분들은 대부분 이곳으로 건강 산행을 하더군요. 앞 사진의 강아지도 이곳으로 올랐더군요. 그 강아지도 오르니 왠만한 사람은 모두 오를수 있습니다. [뒤돌아 본 石城山] 다음 봉우리에 와서 "석성산 정상"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이쪽에서 보니 삼각형이군요. [점심식사] 정상에서 볼때에 바로 앞에 볼록 솟은 봉우리에 와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좋은 자리는 다른 분들이 이미 차지했더라구요. 50분 정도 식사와 휴식을... [ 마성 I.C.와 향수산] 식사후 마성터널 방향으로 내려 가면서 조망합니다. 앞에 보이는 길이 옛'영동고속도로'이고, 그 뒤로 '할미성산'과 "향수산"이 보입니다. 틈나면 "향수산"도 한번 가보고.... 앞으로 시간 날때 "할미성산"에서 "88 C.C.클럽하우스"와 "향린촌" 사이 지맥 분기점으로 가서, "법화산"을 지나 "불곡산"으로 가 "태재"에서 끝나는 "검단지맥 1구간"을 갈 예정입니다. 2구간이 "태재"에서 '남한산성"까지이고, 3구간이 "남한산성"에서 "은고개"를 지나 "용마산" "고추봉" "검단산" "팔당댐앞"까지인데 1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2~3구간들은 이미 종주 한바있습니다. ['동백지구'와 '할미산성' 갈림길] 동백지구 산행로가 한군데 더 있습니다. 마성과 할미산성은 계속 직진입니다. 길은 외줄기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漢南正脈] 호젓한 석성산 산행길 漢南正脈 마루금을 밟으며 어렵지 않게 내려 갑니다. 漢南正脈은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분기하여, '안성의 칠장산'으로 금북정맥과 함께 옵니다. 그리고 칠장산에서 금북정맥과 헤어져 북서진하여 용인의 문수산 부아산 멱조고개를 지나 석성산과 할미성산을 하늘로 솟게하고, 수원의 광교산을 지나고, 인쳔의 계양산을 다시 지나, 김포반도의 끝 김포 문수산에서 그 맥을 다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줄기 중에 하나입니다. 漢南正脈은 글자 그대로 "한강"의 남쪽 산줄기입니다. [작고개] [마성 톨게이트]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성고개"라고 하는 "작고개"가 보이고 "마성 톨게이트"도 가깝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성 톨게이트] "에버랜드" 출입구 같은 "마성 톨게이트"를 줌인해 봤습니다. 전국 어느 곳에서도 볼수 없는 독특한 톨게이트입니다. [작고개 - 마성터널 위 석성산 날머리] "석성산 산행 날머리"인 "작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이 고개는 원래 ‘잣고개’로 잣나무로 만든 배가 지나갔다는 전설과 잣나무가 많았다는 고개로 한자로 "백현 栢峴"이라 합니다. 동백지구에 "백현"은 한자로 "백현 柏峴"으로 전대리에서 어정으로 넘던 고개라고 합니다. "잣고개"의 栢峴은 "잣마무 "이며, 동백지구 柏峴은 "동백나무 "이니 혼동하지 마시기 바람니다. 오후 2시 40분에 도착했으니, 석성산을 종주하는데 약3시간이 걸렸습니다. 식사시간이 50분 정도였으니 실제 걸은 시간은 2시간 10분이 되겠습니다. [石城山 들머리겸 날머리] "石城山 들머리겸 날머리"에는 "마가실 서낭"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할미성 원주 대동굿 보존회가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실 서낭' 표지석 뒷면] '마가실 서낭'은 원래 '터키군참전기념비'가 있는곳에 커다란 서낭목과 돌무덤으로 있었는데, 과거에 서울로 가던 행인이 삼남대로로 갈때 무사안녕을 빌던 곳이랍니다 "대동굿"에 대해 공부하고 넘어 가겠습니다. "대동굿"은 온 마을의 주민들이 모여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펼치는 굿으로 경기도 일대에서 전승되고 있는 "도당굿"과 같은 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용인 할미성 대동굿은 일반적인 경기도 도당굿의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마을의 풍장패가 길놀이 풍물굿을 먼저 친 다음 他洞에서 동참하기 위해서 오는 풍물을 맞아 들이는 것이 색다른 모습인데 그 규모가 크다고 하여 "대동굿"이라 부른답니다. "할미성 도당굿"은 용인 석성산 산신령(魔姑仙人)을 받들어 모시고 내려와 모든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한마당 "대동굿"을 펼치는 화합의 굿판으로 용인에 거주하는 무당 "전옥기"씨(女)에 의해서 수 년 동안 진행되다가 중단되었던 것을 그의 신아들 남무(男巫) "유성관"씨에 의해 보존 계승되고 있다합니다. *yahoo blog posbackho님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영동고속도로 굴다리] "영동고속도로"가 터널이 뚤려 이 "작고개"로 넘나드는 차량이 많지 않다 하더라고 고속도로는 고속도로이니 무단횡단하는것은 위법이며, 무엇보다 매우 위험합니다. 석성산 날머리인 "마가실 서낭 표지석" 앞에는 "영동고속도로 밑으로 지나 갈수 있는 왼쪽으로 굴다리가 있습니다. 반드시 이 굴다리를 이용하시기 바람니다 사진의 왼쪽에 '터어키軍 참전기념탑"이 보여서, 저곳으로 가 구경을 하고 다시 이곳으로 와 고속도로 밑을 통과하려고 합니다. [터어키군 참전 기념비] 자세한 내용은 사진 속의 설명을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터어키군 참전 기념비] 머나먼 이국땅에 까지 와서 왜 이토록 목숨을 바치며 싸워야 했는가 저들이 목숨 바치며 도와 준것을 그냥 잊고 살지는 않는지.... 전세계 역사 속에서 2,000,000여명이라는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6.25 다시는 이 땅에 그런 전쟁은 없어야 할텐데.... ['할미산성' 들머리] '터어키軍 참전 기념비' 고속도로 건너편에 "할미城山" 오르는 들머리가 보입니다. '한남정맥' 마루금이기도한 들머리임으로 잘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앞의 '영동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할 필요없이 아까 '석성산 날머리' 옆에 있는 고속도로 밑의 굴다리를 통해서 건너편으로 건너면 비교적 안전합니다. [영동고속도로 지하통로] [마성 톨게이트] 지하통로인 굴다리를 지나갑니다. 굴다리를 지나면 바로 "마성 톨게이트"가 나옵니다. [마성 톨게이트에서 뒤돌아 본 '石城山'] '마성 톨게이트"에서 뒤 돌아 본 '石城山'과 한남정맥 마루금이 선명합니다. ['할미성산' 산행 들머리] "할미성산" 산행 들머리는 영동고속도로 옆에 안내판도 없이 있습니다. "양보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올라 갑니다. 저의 山友가 올라 가는게 보이시죠? 오후 2시 50분에 "할미성산 들머리"를 오릅니다 [할미城山 오르는 길] 사람들의 흔적이 별로 없는 할미성산을 오릅니다. 제가 "할미성산"이라고도 하고 "할미산성"이라고도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山을 지칭할때에는 할미城이 있는 山이라 할미城山이라하고, 을 강조할때엔 할미山에 있는 城이라 할미山城이라 하는것이니 구별해서 사용해야합니다. [할미山城] '할미城山' 들머리에서 약10분 정도 오르면 바로 할미山城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城인지 뭔지 모르고 보는데 가까이 가면 城임을 알수 있습니다. [할미山城 城壁] [할미산성은 사유지] "할미山城 城壁"이 윤곽을 분명히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게 뭔 금지판입니까?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곳 "할미城山" 땅의 대부분이 "향린촌"이라는 곳의 사유지이더군요. 아무리 사유지라 해도 특별히 사람의 출입을 금지할 필요도 없는, 오히려 많이 와 달라고 홍보해야 할것 같은데 땅 많다고 땅 자랑하는지 '땅 땅'거리며 출입금지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허~참~ [할미山城] 어느 분이 출입금지판을 보고 읊은 글이 있어서 소개해 드림니다. "할미성산 오름길 성터를 막은 무지함이여 네 털 난 양심을 모아 이룬 가시 철망이 무섭고나 이 땅에 만들어진 私有란 본디 모든 이의 자유를 다치지 않아야하는 법이거늘 어찌하여 문화 유적의 길 마저도 홀로 차지하려는고.. 정의란 재능의 차이를 인정하고, 기회의 균등에서 나오는 법이거늘 어찌하여 조금 앞선 기회로 도덕을 무시하느뇨 오늘날 정의란 罪를 벌하고 功을 상주는 것만이 아닐터.. 공평하게 나누어 살게하고 제 몫은 되돌려 주어야 정의로운 법 저 개발의 일터에서 조금 힘들어도 맥길 살리는 지혜가 아쉽구나 어찌하여 그리도 잘 난 자들의 재산만 보호하는 자유주의런가.. 내 삶이 저리도 바쁜 길을 따라 오고 가야 하건마는 나는 내 영혼의 길을 잃고 또 어디서 그 길을 보상받을 수 있을꼬.. 원래 있었던 그 자연의 길을 찾아 헤매는 발길이 안스럽다" [할미山城] 뚜렸한 城郭의 흔적을 보며 할미성곽 입구에서 약15분 정도 오릅니다. 오늘 '할미山城'에서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할미城山 정상] 오후 3시 15분 '할미城山'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영동고속도로 들머리에서 고작 25분만에 정상에 올랐습니다. 참 쉽지요~이-ㅇ '할미城山' 정상에는 할미산성의 유래 안내판이 있으며,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할미산성 개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아마도 "할미山城"을 개축 하려는가 봅니다. [할미城山 정상] 또한 정상에는 "한남정맥" 종주자들의 표지기가 걸려있으며, "향수산"까지 3.3KM라고 친절히 안내해 주는 삼국지 산우회 표지판도 있습니다. 감사 [할미山城 유래] "할미山城 유래"에 대해서는 사진 속 설명을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모두 쓰잘데 없는 불확실한 이야기들이고,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것 정도만 알면 되겠습니다. [할미山城] 할미山城의 西쪽에는 성벽이 확실하게 남아 있습니다. 신라시대에 만들어 진것이 이렇게 남아 있다니 놀랍습니다. [할미山城 下山] 내려 가는 길입니다. 사진은 않올립니다만, 이 능선에 "향린촌"에서 설치한 쓸모없는 철조망이 끝없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의미없는 철조망 - 오히려 이 철조망 속에 사는 자기들을 옭아 맨 철조망이었습니다. 그러면 "향린촌"이란 어떤 곳인가? [운동시설] '향린촌"은 우측 산골자기와 능선에 걸쳐 있는데 넓이가 76만344㎡이라고 하며, 단독주택과 빌라 300여 가구가 한가로이 들어서 있고, 야외 수영장과 테니스장, 운동장 등이 갖춰져 있어 전혀 딴 세상에 와 있는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할미城山 거의 대부분이 "향린촌" 소유라고 합니다. [이정표] 이곳에서 "향린촌" 사이의 포장도로로 '한남정맥길'을 가는데 저는 바로 "향린촌" 정문 앞으로 하산했습니다. [산행 날머리] '향린촌" 정문 입구와 "동백지구"로 나가는 영동고속도로 굴다리로 내려 갑니다. [날머리에서 바라본 '石城山'] 새로히 영동고속도로를 2배로 확장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이곳에 "동백지구" 인터채인지를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멀리 "石城山"이 용인의 진산 다웁게 우뚝 서 있습니다. [동백지구-향린촌 갈림길] 동백지구로 가는 굴다리 사거리가 앞에 보입니다. 사거리의 좌측이 "동백지구"로 가는 굴다리가 있는 곳이며, 우측이 "향린촌" 정문으로 가는 길입니다. [향린촌 정문] "향린동산"의 개발 역사는 무려 3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1970년 향린교회 교인 30명을 포함해 초기 회원 100여명이 개인당 회비 30만원씩 걷어 자금을 마련한 후 황무지였던 야산을 개간해 지금의 향린동산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정문의 경비 아저씨에게 물으니 현재 이곳에 사는 사람중에 수준이 가장 낮은 사람이 변호사라고 하더군요. 지금은 왕년의 군사정권시절의 실세였던 사람들이 주로 산다는군요. 완전히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자기들 끼리만 옹기종기 산다고 합니다. 누가 누구를 통제하는가!~ 들어 오라고 해도 가지 않는다~! 너희들도 나오지 마라~ [동백지구로 가는 영동고속도로 굴다리] 고속도로 굴다리로 나오면 "바로 "동백지구 아파트촌"입니다. [동백지구] [동백중학교] 굴다리 앞에는 "동백중학교"가 있습니다. 3시 55분에 도착했습니다. 용인시청에서 이곳까지 4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식사시간 50분 포함) [동백지구에서 바라본 '石城山'] 동백지구 아파트촌 바로 옆에 있어서 이곳 사람들은 자주 이용할수 있겠군요. [동백지구 중앙로] 동백지구 중앙로에 나와 치킨에 생맥주로 목을 추기고 있는데, 이곳에 사는 山友이며 외과의사인 "홍도토리님"이 제가 자기 동네에 왔다고 퇴근과 동시에 불이 나게 뛰어 왔습니다. 함께 시원한 쏘맥을 하며 동백지구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구글어스로 본 산행괘적] 이해가 쉽습니까? [동백지구 탁구 동호회 회원님들과...] 山友이며 외과의사인 "홍도토리님"은 동백지구 탁구 동호인 모임의 회원이더군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운도 많은 '파란문'은 동백지구 탁구 동호인 모임 회원님들의 환영을 받고 늦게까지 한잔했습니다. 福도 많지요? ㅎㅎㅎ 모르는 사람을 알고 느끼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 '동백지구 탁구 동호인' 여러분들을 만나 즐거웠습니다. 앞으로 운동 계속하시며 건강도 챙기고 또한 두터운 이웃 사랑을 일궈나가시길 바람니다. 그리고 이 산행기를 참고하시어 앞으로 "石城山" 산행을 많이 하시기 바람니다 "石城山"은 여러분 곁에 있는 여러분들의 산입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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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처녀가 시집 못가는 이유"





















"삽자루 신앙"

목사님이 설교하시면

맞어 우리 시어머니가 들어야 해!
맞어 우리 신랑이 들어야 해!
맞어 우리 며느리가 들어야 해!











"이순신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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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嶽山 恐龍稜線 遊山記 소공원주차장-비선대-금강문-마등령- 恐龍稜線(나한봉-큰새봉-1,275m봉-노인봉-1,184m봉-신선봉)- 무너미고개-희운각-천불동계곡-비선대-소공원주차장 "설악산" "'한가위'에 내리기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서야 사라지기 때문에 雪嶽이라 한다" -동국여지승람- 그저 학창시절 수학여행으로 비선대 울산바위를 다녀 왔으면서 설악산을 가 보았다고 말할수 있을까~ 많은 경비를 들여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설악산을 올라보고 가는가~ 우리의 山河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깊어 가는 가을에 雪嶽山 恐龍稜線으로 '파란문'과 함께 가 볼까요? [산행 개념도] 개념도 맨 아래 '주차장'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이 주차장으로 돌아 옵니다. '소공원'을 지나 '신흥사' 그리고 "비선대"에 도착합니다 "비선대"에서 오른쪽 "금강굴"쪽으로 올라 "마등령"으로 갑니다. 그리고 恐龍稜線을 탑니다. 恐龍稜線을 타고난 후에는 "무너미고개"에서 "천불동 계곡"을 거닐며 하산하여 다시 "비선대"로 와 소공원 주차장으로 돌아 옵니다 [경기도 광주의 어느 한정식집] 10월23일(금) 오전 11시 50분에 양재동 서초구청과 외교안보연구원 사이의 골목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경기도 광주 한강변 어느 한정식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속초로 출발하였습니다. 雪嶽山 恐龍稜線을 산행하는것이 주목적이지만, 이런 여행도 즐거운 일이라 부러움을 느끼시라고 7,000원짜리 한정식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ㅎㅎ [속초 한화콘도] 광주의 한정식집에서 두어시간 걸려 오후 4시경에 속초 한화콘도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내일 아침 일찍 雪嶽山 恐龍稜線으로 가려고 합니다. [속초 한화콘도] 한화콘도에 책크인을 하고 잡은 객실에서 바라보이는 동해 바다와 한화프라쟈 골프장. 옛날에 자치기하러 이곳에 자주 왔었는데, 이제는 산행을 하기 위해 왔습니다. [속초 동명항 앞바다] 시간이 많이 남아 속초 동명항으로 나갔습니다. 이곳까지 왔으니 동해 바닷바람 냄새는 맡아보고 가야지요 [속초 동명항 회센타] 얼마전까지만해도 동명항의 방파제 앞에는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난전이 있었는데 이제는 깨끗하게 정리 정돈이 되고, 대신에 현대식 회센타 건물이 보시는 바와 같이 거창하게 세워졌습니다. 저는 저곳에 가서 들어 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상점 주인들의 "호객행위"가 도를 넘어 회를 사 먹어 주고 싶은 마음이 싸~ㄱ 없어지고, 짜증만 나 그냥 나왔습니다. 옛날 창녀촌에서 창녀들이 호객행위를 하는것 보다 더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나와 주차장 입구쪽 방파제 위에서 해녀 할머니가 파는 멍개만 조금 사들고 콘도로 돌아 왔습니다 콘도에서 준비해온 고기를 구워 저녁식사와 함께 한잔하고 일찍 잠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누구나 그렇듯 이런 힘든 큰 행사가 있는 전날밤에는 깊은 잠을 못자지요? 23km나 되는 공룡능선을 가서 힘든것보다 잠을 설쳐서 피곤한게 더 문제이지요. ㅎㅎ [산행 출발] 새벽 4시에 일어나 산행 채비를 차리고 콘도를 4시 30분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24시간 영업을 하는 "옥돌 순두부"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설악동 주차장에 5시 15분에 도착했습니다. 화장실등 용무를 마치고 5시 25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아직도 깜깜한 밤중입니다. *옥돌 순두부집 : 한화콘도에서 설악동 가는 길로 약500m쯤 가면 오른쪽에 있음 [신흥사 정문] 신흥사 정문을 통과하며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되돌아 올것을 다짐합니다. '비선대' 지나 금강굴 입구까지 깜깜한 밤이라 사진이 없습니다. [금강굴 입구 - 장군봉] '비선대 갈림길"을 6시 5분에 통과하여, 6시 30분쯤 "금강굴 입구"에 올라 가니 그때서야 날이 밝아오기 시작합니다 "금강굴"이 장군봉 중턱에 뚤려있습니다. 오른쪽은 "금강굴"로 올라 가는 길이고, "마등령"은 왼쪽으로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 옆구리를 오르며...]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 옆구리로 치고 오르며 뒤 돌아 보니 "권금성"이 보입니다.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 옆구리를 오르며...] 왼쪽 능선으로는 벌써부터 설악산이 "악산 岳山"이라는 걸 보여 줍니다. 절묘한 조각품같은 奇岩怪石들이 눈을 즐겁게 합니다.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 옆구리를 오르며...] 날이 많이 밝아 오기 시작합니다만 雲霧로 日出을 보지 못했습니다. 비선대 계곡으로 내려다 보는데 단풍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해발 700m 정도 까지만 단풍이 조금 남아 있고 그 이상에는 이미 겨울로 가고 있었습니다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 옆구리 고개] '비선대'에서 앞에 보이는 고개까지가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된비알이었습니다. '비선대'에서 저곳까지가 700m이었는데, 50분이 걸렸습니다. 알고 봤더니 이곳까지 오르는 코스 이외에는 앞으로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등령"까지는 줄기차게 오르막이었으니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 옆구리 쉼터-이정표] 6시 55분에 장군봉 옆 고개 쉼터에 올랐습니다. '비선대' 700m, '마등령' 2.8km를 알려 줍니다. '비선대'에서 50분, 주차장에서는 1시간 30분 걸렸습니다.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 고갯마루 쉼터에서는 '장군봉' 정상이 매우 가깝습니다 '장군봉'은 암벽타기를 하는 곳입니다만, 이곳에서는 쉽게 장군봉을 오를수 있겠습니다 이 岩峰의 중간에 "금강굴"이 있습니다. [장군봉 쉼터에서 내려다 본 '천불동 계곡'] 고갯마루 쉼터에서 내려다 보는 "千佛洞 계곡". 날이 더욱 밝아졌습니다 계곡 건너편의 능선이 그 유명한 "화채능선 華彩稜線"입니다. 지금은 자연휴식년제로 들어 갈수 없는 곳입니다. 오른쪽 능선이 "恐龍稜線"의 "노인봉"에서 뻗어 내려오는 능선인데 이 능선에 유명한 "天花臺"가 있습니다. [장군봉 쉼터에서 보이는 우측 수직절리 - 책바위] 垂直節理 柱狀節理는 무등산의 입석대, 서석대, 광석대로 대표되는 기둥 모양으로 생긴 돌기둥에 금이 가 짤려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곳의 垂直節理는 기둥모양은 아니지만 柱狀節理와 비슷한 개념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柱狀節理는 화산활동으로 용암이 분출되어 나오다 갑작스런 냉각으로 균열이 일어나 만들어지지만 垂直節理는 수없는 세월동안 비바람과 작렬하는 태양볕과 寒波로 풍화된 것입니다. [장군봉 쉼터에서 '마등령'으로 오르는 길] 너덜 길을 치고 오릅니다. 나무들은 옷을 벗고 단풍닢은 점점 사라져 갑니다. ['세존봉'으로 가는 쉼터에서 내려다 본 설악동 소공원과 우측 '권금성'] 해발 800m쯤 오르니 나뭇닢은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들만 보이기 시작합니다. 좌측 계곡이 신흥사가 있는 설악동 소공원이 있는 곳이고, 우측 가운데에 보이는 암봉이 케이블-카가 다니는 "권금성"입니다. 대한민국 성인이면 대부분 "권금성 權金城"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가 보았을 것입니다. "설악산 화채능선"의 끝 봉우리입니다. "권금성 權金城"은 權氏와 金씨가 城을 쌓았다고 붙여진 이름이죠? ['세존봉'으로 가는 쉼터에서 바라본 '화채능선'] "화채능선 華彩稜線"이 "권금성 權金城" 위로 길게 뻗어 있습니다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 자연휴식연제로 출입이 제한되고 있는데도 "화채능선 華彩稜線"을 몰래 '토왕성 폭포' 옆으로 산행을 하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저도 언젠가 "화채능선 華彩稜線"을 종주 할것입니다. 가운데 암봉 위에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 소나무 ! 아~! 어떻게 저런 불모지에서 생명을 유지할수 있을까 존경스럽습니다 ['세존봉' 오르는 길] '비선대'에서 '마등령'으로 오르는 登路는 비교적 잘 정비되 있습니다. 그리고 외줄기 임으로 갈림길이 없어 오직 한길만 따라 가면 "마등령"입니다.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습니다. [외국인 연수생들] 상당히 많은 외국인들이 벌써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 저것 물어 보았지요. "어디서 온 사람들이냐?" "세계 각국에서 모인 젊은이들이다. 미국, 카나다,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 "그런데 언제 어디로 올랐기에 왜 벌써 내려 오느냐?" "새벽 3시 30분에 설악동에서 어디가 어디인줄 모르고 올라 갔다가 내려 오는 중이다" "ㅎㅎ 그건 산행이 아니고 고생 아니냐? 깜깜한 밤중에 올랐다가 이제 해가 뜨는데, 이제 볼게 많아지는데 내려 오면 뭣하러 올랐느냐?" "스케줄이 타이트해서 집행부에서 그렇게 계획을 짰나보다. 아쉽다. 그래도 아름답다" "다음에 다시 한국을 찾을 때에는 등산준비를 갖춰 와서 진정한 설악산 등산을 해라" "그런 기회를 꼭 만들고 싶다. 감사하다. 즐거운 시간 되길 바란다" "알차고 행복한 한국에서의 시간을 갖기 바란다" [새바위 고개 오르는 길] "새바위"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볼때는 "새바위 모양"으로 보여 그냥 이름 붙였습니다. 저 고갯마루에 있는 바위를 가리킵니다. 이런 작은 고개가 몇개 있습니다. [새바위] 새처럼 보이십니까? 아니라구요? 그럼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저도 나름대로 붙인것이니까요 왜 이름을 붙일려고 하느냐하면 저 고개부터 대망의 "恐龍稜線"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공룡능선이 보이기 시작] '새바위 고개'를 넘어 서니 이제서야 "공룡능선 恐龍稜線"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오늘 최고로 아쉬운 점이 雲霧로 시야가 트이지 않아서 깨끗한 사진을 찍을수 없었고, 특히 원거리 정경은 거의 찍지 못해 아쉬움을 더했습니다. 그러나 나름 최선을 다해 촬영했으나.....언제 다시 올것인가~! [세존봉] '새바위 고개'를 넘어 전진하니 "세존봉"이 우측에 보입니다. 어느 지도상에는 "진대봉"이라고 표기해 놨더군요 높이는 1,025m입니다. [공룡능선] '마등령'으로 오르는 登路에는 크고 작은 고개가 몇개 있습니다. 고개 고개 마다 전망을 할수 있는 전망대가 있으며 쉼터로 이용하기에도 적합해서 크게 힘든줄 모르며 오를수 있어 좋았습니다. 恐龍이 수억~수천만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벌덕 일어나 장엄하게 다가 올듯합니다. [세존봉 아래 안부] "세존봉' 아래 이정표에 오면 이젠 한숨 돌려도 됩니다. 그리고 펼쳐지는 恐龍稜線을 감상하다 보면 힘든 줄 모르며 '마등령'까지 올라 갈수 있습니다 [恐龍稜線] 아!~ 恐龍稜線 ! 雪嶽속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恐龍 수억년의 영겁을 벗고 이제 나에게로 다가 오는구나 오늘 나와 함께 달콤한 입맞춤으로 즐거운 하루를 보내자꾸나~! 오른쪽 큰 봉우리가 "큰새봉", 그리고 "1,275m봉" 좌측으로 뾰쪽뾰쪽한 "天花臺"가 "하늘꽃" 모양을 하고 반깁니다 [恐龍稜線] 恐龍稜線의 우측 '마등령'방향을 올려다 보며 사진 찰영을 했습니다 [금강문 오르는 길] "金剛門"으로 오르는 登路도 조금 가파랐습니다 하지만 恐龍을 배알할 욕심에 힘든줄 모르고 올랐습니다. [금강문] "金剛門"은 저 바위 사잇길입니다. '비선대'에서 '마등령'을 오르는 등로에서는 유명한 地名입니다. [金剛門] "金剛門"에 왔습니다. 제법 門같은 느낌을 줍니다 양쪽에 四天王이 守門을 하고 있는듯합니다. [金剛門에서 바라 보는 '마등령'] "金剛門"에서 '마등령'을 올려다 보는데 안개와 구름이 더 몰려왔습니다 날씨가 맑았으면 저도 좋고 애독자들도 좋았을텐데..... "金剛門"에서 "마등령"은 지척이었습니다. [뒤 돌아 본 金剛門] "金剛門"을 나와 '마등령'으로 오르며 뒤 돌아 봤습니다. 사진에는 평지로 나오는데 "金剛門"에서 밑으로 쑥 내려갔다가 올라옵니다 등산로는 아주 잘 정비되 있습니다. [金剛門 위 전망대 오르는 계단]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이듯 정상부근이 다가오면 더욱 가파라지기 시작합니다 "金剛門"에서 '마등령' 사이에는 "전망대"가 설치되 있습니다 [金剛門 위 전망대] 전망대에 왔는데.... [金剛門 위 전망대] 지도가 동서남북을 잘못 계산해 설치를 해서 한참 들여다 봐야 위치를 파악할수 있더군요 [金剛門 위 전망대] 雲霧가 엄습해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까 "金剛門" 아랫고개에서 "恐龍稜線"을 촬여하지 못했다면 천추의 한을 남길뻔 했습니다. 이렇듯 설악산의 날씨는 변심한 여인네처럼...... ['마등령' 오르는 길] 철계단을 따라 '마등령'을 오릅니다 ['마등령'을 오르며 뒤돌아 본 '전망대'와 '금강문'] '마등령' 오르는 철계단에서 뒤돌아 보니, 조금전 전망대 안내판이 보이고, 그 뒤로 "金剛門"이 안개 속에 신비하게 보입니다. ['마등령' 오르는 마지막 계단] '마등령' 오르는 마지막 계단. 이 계단의 끝이 "마등령 정상"입니다. ['마등령' 정상] "마등령" 정상에 올랐습니다. 9시 25분에 올랐으니, 비선대에서 3시간 20분이 걸렸고, 주차장에서 4시간정도 걸렸습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국토의 정기가 흐르는 "백두대간 白頭大幹"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미시령방향 백두대간 마루금은 자연보호를 위해 길을 막아놨습니다 무단침입하면 벌금이 50만원입니다. ['마등령' 정상에 있는 이정표와 안내도] '마등령'은 1,320m높이에 있으며 "말등"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마등령' 정상] '말등"처럼 생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앞의 말등바위에 올라가 '마등령' 안부를 촬영했습니다 멀게만 느껴지고 미지의 세계같던 '마등령'은 이렇게 우리 곁에 다가 왔습니다 힘들게 오른것에 비하면 초라하지요. 이곳에서 약25분정도 쉬고 9시 50분에 출발했습니다. [공룡능선과 '오세암' 갈림길] '마등령 정상"에서 공룡능선을 가려면 직진하여 넓은 길을 따라 200m쯤 가야합니다. 그러면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은 "공룡능선-오세암" 갈림길 안부가 나옵니다 오른쪽이 "오세암" 가는 길이고, 왼쪽이 "공룡능선" 가는 길입니다. ['공룡능선' '오세암' 이정표] [공룡능선 입구] "공룡능선"은 오른쪽 "희운각 대피소" 방향으로 가며, 여기서 부터 "恐龍稜線"이 시작됩니다. [공룡능선 입구에서 내려다 본 "금강문"] 雲霧때문에 먼곳은 조망이 되지 않습니다. 다행이 "金剛門"은 잘 보입니다. '비선대'에서 '마등령'까지 오르는 산줄기와 "천화대" 산줄기 사이 계곡이 "설악골 계곡"입니다. [恐龍稜線 속으로 출발] 恐龍稜線으로 출발하는데 ......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어린이처럼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의 접근은 어렵다고 하던 恐龍稜線은 어떤 모습을 하고 기다리고 있을까 오늘 구름과 안개가 쉽게 恐龍稜線을 보여 주지 않을듯해 걱정도 하며 恐龍稜線 속으로 들어 갑니다 [나한봉] 恐龍稜線으로 들어 서면 첫번째 큰 봉우리가 "나한봉"입니다. "나한봉"은 1,246m높이이지만 '오세암' 갈림길의 해발이 1,240m쯤되니 "나한봉" 오르는것은 간단합니다. "나한"은 인도의 옛글자 산스크리트語로 부처의 16 제자를 일컷는 말이지요 [시루떡 바위] "나한봉"의 옆구리를 돌아 바위를 넘어 가서 뒤돌아 보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바위가 나타는데 꼭 시루떡을 올려 놓은듯해서 제가 '시루떡 바위'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이 그냥 지나치는데 꼭 뒤돌아 보아야 볼수 있습니다. [나한봉 옆구리 통과] 만약 "나한봉" 정상을 넘어 간다면 갈수 가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봉우리는 옆구리를 통해 갈수 있도록 고속도로를 만들어놔서 누구나 쉽게 갈수 있었습니다. 잘한 일인지....못한 일인지..... 산을 좀 탄다는 사람들은 접근 할수 있는 자격있는 산꾼들을 위해 "공룡능선" 만큼은 자연상태를 유지 해 놔야 한다고 하고, 산꾼이 아닌 일반인들은 누구나 쉽게 접근해 감상할수 있도록 이렇게 길을 잘 만들어 놔야 한다고 할것입니다. [이름을 알수 없는 봉우리] '나한봉' 옆구리를 지나가면 끝임없이 다가오는 岩峰과 奇岩怪石 이렇게 공룡의 등지느르미처럼 울퉁불퉁, 삐쭉 빼쭉 암릉은 계속됩니다 [뒤돌아 본 '나한봉'] '나한봉'을 지나와 이름을 알수 없는 다음봉우리에서 뒤돌아 본 "나한봉". 대머리 밑에 나무를 만나는 옆구리를 돌아 왔습니다. "공룡능선"은 많은 봉우리를 올랐다가 내려가고 내려갔다간 다시 오르고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큰 봉우리는 6개입니다. "나한봉", "큰새봉", "1,275m봉", "노인봉", "1,184m봉", "신선봉" 사이 사이에 작은 봉우리는 많이 있습니다. [무명봉 옆구리를 통과하며 뒤 돌아 본 '나한봉'] 오르락 내리락 하며 전진합니다. 그리곤 뒤돌아 보고... 공룡능선에선 수억년의 풍화작용을 거친 기괴한 암석 구경에 관심을 가지며 산행을 해야 후회가 없습니다. [무명봉 앞으로 보이는 恐龍稜線] 작은 공룡의 지느르미는 수없이 많습니다 [급경사 내리막] 봉우리를 오르면 반드시 급경사 내리막이 있습니다. 산객들이 많을때엔 이런 곳에서 병목현상이 나타납니다. [恐龍 지느러미] 거대한 공룡은 두발로 보행이 가능했다고 하죠? 육중한 몸을 두발로 성큼성큼 걸어 다녔다고하는데 공룡은 영어로 'dinosaur'라고하는데 "무서운 도마뱀"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지요 지금의 도마뱀은 두발로 걷지 못하지만, 거대한 몸집의 옛날 공룡은 두발로 걸었다니.... [恐龍稜線 길] 성능이 미약한 디카로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모두 표현 한다는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좋은 카메라를 사고 싶긴한데 무거워서 산행하기에 거북하고...비싸고 [큰새봉] 구름을 뚤고 神秘하게 "큰새봉"이 다가 옵니다. 1,278m높이의 이 봉우리는 큰 새를 닮았다고 "큰새봉"이라 한답니다 恐龍稜線은 '백두대간' 마루금입니다. 그리고 속초시와 인제군을 가르는 경계선 역활을 하며, 설악산을 '내설악'과 '외설악'으로 구분짓는 역활도 합니다. [奇岩] 설악산은 6천5백만년 이전, 중생대 말경 지층변화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이후 눈과 비, 바람과 햇빛에 시달리면서 독특한 모양을 만들어 왔다고합니다 설악산도 늙은 산이죠 [큰새봉] '큰새봉'이 다가 옵니다. 雲霧 속으로 보이는 모습이 더욱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큰새봉 옆 통과] '큰새봉' 옆구리로 지나갑니다. 이곳을 지나 갈때는 이곳이 어디인지도 몰랐습니다. 온통 쏱아질듯한 바위들 밑으로 오르고 내려가고를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큰새봉'] '큰새봉' 정상부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세월의 부침이 느껴지시나요? ['큰새봉' 아래 이정표] 恐龍稜線 5.1km중에 이제 1.1km와서, 앞으로 희운각까지 4.km가 남았습니다 '마등령'에서 여기까지 30분이 걸렸습니다 [恐龍稜線 길] 恐龍은 지구 역사에서 중간쯤에 해당하는 중생대의 '주라기'와 '백악기'에 주로 서식했다지요 "중생대" 그러니까 약2억 2,500만년전~6,500만년전 사이 동안 번성한 육상동물로 중생대 끝무렵에 지구와 행성의 대충돌로 멸종한 대형파충류(大型爬蟲類)의 무리라고 하지요 [恐龍稜線] '중생대 말'에 지구에 생존하던 식물과 동물이 멸종상태에 이른 원인은 아직도 연구중이지만, 지구에 행성이 떨어져 대충돌이 일어나, 먼지와 높은 온도로 지구의 기후가 완전히 바뀌어 멸종되었다는것이 일반적인 학설입니다. [恐龍稜線에서 유일하게 흙을 볼수있는 쉼터] 恐龍稜線은 거의 대부분 암석으로 이루어져있어 흙을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神秘한 岩峰] 그런데 어느 학자들은 지구 생물의 멸종이 매2,600만년마다 한번씩 일어 났다고 주장합니다. 우주의 대이변은 찰라를 살다가는 우리로서는 크게 관심 가질 필요는 없겠지요 갈때 가더라도 오늘은 아름다운 공룡능선을 즐기자!~ [奇怪한 바위] "큰새봉"에서 "1,275m봉"까지 능선이 "공룡"의 진면목을 보여 줍니다 ["1,275m봉" 가는 恐龍稜線 길]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恐龍 ["1,275m봉" 가는 恐龍稜線 길] 雲霧까지 끼어 恐龍은 더욱 신비롭게 다가 옵니다. ["1,275m봉" 가는 恐龍稜線 길] 산행길은 정말 고속도로였습니다. 산행코스의 길이가 약23km로 길어서 다소 문제이지만, '비선대'에서 '마등령'만 오르면, 恐龍稜線은 무시무시한 길이 아니라 高速道路여서 누구나 걸을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조금만 큰마음 먹으면 "恐龍稜線"을 정복할수 있겠습니다. 여러분 ~! 도전하십시요. ["1,275m봉" 가는 恐龍稜線 길] 이런 구경은 직접해야 묘미를 느낄수 있습니다 북한산 의상봉 코스를 오를수 있는 능력의 산객이라면, 충분히 恐龍稜線을 오를수 있습니다. 아~! 이런 구경 직접하고 싶지 않으세요? ["1,275m봉" 가는 길에 있는 神秘한 岩峰] 恐龍稜線길은 산봉우리를 오르내리지는 않습니다. 일반인들은 올라 갈수도 없습니다. 친절하게 거의 모든 봉우리는 옆구리를 우회하도록 만들어져 있어 쉽다는 것입니다. 물론 몇개 구간은 급경사를 오르 내려야 합니다만..... 전체적으론 "북한산 주능선" 정도 이라 생각됩니다. 길이 정비되기 전에는 일반인들의 접근이 매우 어려웠던 곳이랍니다 [시루떡 岩峰] 평생을 먹어도 못먹을 시루떡 ["1,275m봉" 가는 恐龍稜線 길] 이렇게 고속도로를 달려가니 금세 "1,275m봉 고갯마루"가 다가 옵니다. 사진의 좌측 암봉이 "1,275m봉"의 일부 입니다. 거대하지요. "1,275m봉"은 恐龍稜線의 핵심 봉우리입니다. 그런데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이 없는 이유를 제가 여러곳을 조사해 보았는데, 확정적인것은 없었지만 이런 說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1,275m봉"은 恐龍稜線의 핵심이어서 그 중요함과 아름다움을 그 어느 이름으로도 표현 할수가 없어 이름을 짖지 않고 그냥 "1,275m봉"이라고 남겨 두었다』 恐龍稜線의 중앙부에 위치한 "1,275m봉"은 恐龍稜線을 대표합니다. ["1,275m봉"의 옆구리 神秘한 岩峰] 거대한 "1,275m봉" 옆구리에 있는 神秘한 조각품 ["1,275m봉 고갯마루" 오르는 길] 고속도로 恐龍稜線을 가다보면 어느새 恐龍稜線의 중앙부인 "1,275M봉 고갯길"에 다달읍니다 [1,275m봉 고갯마루] 이 고갯마루가 우리들에겐 "1,275m봉"의 정상입니다. 물론 이 고개에서 "1,275m봉 정상"까지 올라 갈수 있습니다만, 생명은 책임져 주지 않는다고 하니 올라 가고 싶으신 분들만 올라 가세요. 제가 이곳 고개 정상에 약15분정도 있었는데 올라 가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고개에는 물개같은 바위가 오가는 사람들을 뚤어져라 쳐다보고 있습니다 [1,275m봉 고개 이정표] 11시 30분에 "1,275m봉 고갯마루"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마등령'에서 1시간 40분 걸렸습니다. '희운각 대피소'까지가 조금 더 멀지만, 시간은 앞으로 많이 더 걸립니다. 이제까지는 쉬지않고 왔기 때문이지만, 곧 식사도 해야하므로 2시간 30분이 걸립니다. 하지만 앞으로 갈길이 내리막이 많아 더 쉽다는 의미입니다. [1,275m봉] 고갯마루에서 "1,275m봉" 정상을 올려다 봤습니다. 雲霧까지 껴 올라갈 엄두를 못내겠더군요 하지만 올라 갈수는 있다고 합니다 [1,275m봉 고개 주변] "1,275m봉" 고갯마루에서 조금 쉬면서 주변을 보는데 국립공원안에서 불을 피우며 라면을 끓이는 사람들이 잘난척을 하고 있더군요. 편서풍이 쎄게 부는 설악의 공룡능선에선 언제 세찬 바람이 돌풍처럼 불지 모르는데 불을 피우다니.... [1,275m봉 하산] "1,275m봉"을 하산합니다. [독대바위] "1,275m봉"을 내려 가면 곧바로 "독대바위"가 나타납니다. '촛대바위'라고도 한다는데.... 왜 독대바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노인봉'과 "天花臺"] '독대바위"를 지나면 '노인봉'과 그 유명한 "天花臺"가 황홀하게 나타납니다. "하늘에서 꽃이 내려와 피었다" "천가지 꽃이 피어 나는 곳", "하늘에 피어나는 꽃", "땅에서는 볼수 없는 하늘꽃" 등등등 찬사가 터지는 "天花臺" ['노인봉'과 "天花臺"] 恐龍稜線의 "노인봉,1,120m"에서 분기하여 "飛仙臺"로 내리 뻗은 능선이 "天花臺"입니다 맑은 날씨가 아닌 雲霧에 쌓인 "天花臺"가 더욱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天花臺"의 "범봉"] [天花臺 개념도] "노인봉"에서 "飛仙臺"로 내리 뻗은 "天花臺"에 최고 걸작은 "범봉"이라 합니다. 오른쪽 제일 높은 암봉이 "범봉"입니다. 혹자들은 "범봉"이 恐龍稜線의 하일라이트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이곳 "天花臺"는 20여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는 岩稜이랍니다. 좌측 "설악골"과 우측 "잦은 바위골" 사이에 솟아있으며, 유명한 "석주길", "염라길", "흑범길"등의 岩稜길이 있다고합니다 개념도를 자세히 보시면 "석주길", "염라길", "흑범길"을 알수 있습니다. "석주길"을 "서주길"이라고 잘못 표기했군요. 멀리 좌측에 "울산바위"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노인봉' 가는 길에서 바라 본 '울산바위'] 그래서 "울산바위"를 가운데로 다시 잡아 보았습니다. 줌인한 사진이 아니고 실제 거리 사진입니다. "울산바위"에 대한 전설은 대부분 아시지요? 금강산이 전국에 있는 뽐내는 바위들을 뽑겠다고 방을 내었더니, 울산에 있던 이 바위도 참가하러 갔는데 몸집이 너무 커 무거워 느려 너무 늦게 도착했습니다 도착하니 이미 12,000봉을 뽑고 난 후에나 도착하여 지각으로 불합격하고 울산 고향으로 되돌아 가려고 했으나 돌아 가면 고향 사람들에게 챙피할까봐 고향으로 돌아 가는 도중 이곳에 주저 앉아버렸다는 전설....... 그러나 "울산바위"의 한자는 "鬱山바위"로 경남의 "울산 蔚山"하고는 한자가 틀림니다. "鬱山바위"의 "鬱"은 "울타리 "울 鬱"로서, "설악산의 울타리" 역활을 하는 바위산이라는 정설도 알고 전설도 믿읍시다. 전설은 재미로...정설은 꼭 기억하시길... 제가 '도봉산 산행기'에서 "서울"의 語原에 대해서 이야기 한적이 있는데, "서울"은 "설울 雪鬱", 즉 "눈울타리"에서 음운변화를 거쳐 생성된 것이란 것 기억하시나요? ['노인봉'과 "天花臺"] 도솔천의 하늘을 걷는듯한 恐龍稜線 雲霧가 오히려 더 도움이 되는듯합니다 공룡능선에서는 단풍 구경은 할수 없고 벌써 겨울이 찾아 왔습니다 대한민국의 능선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설악산 恐龍稜線 그 공룡능선에서 갈라져 나간 "天花臺 천화대" 그리고 그곳에는 어느 연인들의 꿈과 아픔이 서려있는 "석주길"이라는 루트가 있습니다 설악산을 다녀본 분들이면 대부분 아시는 "석주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노인봉'으로 가며 뒤돌아 본 "1,275m봉"] '노인봉'으로 가며 뒤돌아 보니 恐龍稜線의 핵심 "1,275m봉"이 부끄러운듯 얼굴은 보여 주지 않습니다만 웅장하게 공룡능선을 굽어 봅니다. "석주길"에 얽힌 이야기 1969년 당시 요델산악회의 송준호, 엄홍석, 신현주 세 사람은 서로 자일 파트너였고 동시에, 절친한 친구이자 연인 사이 (아마도 3각관계) 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송준호는 사랑보다는 우정을 지키기 위해, 다시 말해 세 사람의 순수하고 소중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 엄홍석과 신현주의 곁을 홀연히 떠납니다. 송준호가 떠난 얼마 후 엄홍석과 신현주는 연인 사이가 되었고, 두 사람은 설악산 천화대 "천당폭"으로 빙벽등반을 하러 갑니다. 그러나 빙벽을 오르던 중 신현주가 그만 실족을 하자 당시 빌레이(확보)를 보던 엄홍석은 연인인 그녀의 추락거리를 줄이기 위해서 빙벽 아래로 자신의 몸을 날립니다. 그러나 빙벽에 설치한 확보물이 하중을 견디지 못했고 두 연인은 한 자일에 묶인 채 추락하여 목숨을 잃고 맙니다.... [노인봉으로 가는 길] 천화대의 분기봉인 노인봉으로 갑니다 그 후 두 친구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은 송준호는 69년 설악골에서 천화대로 이어지는 암릉길을 처음으로 개척했고, 그 루트의 이름을 ‘석주길’이라 붙였습니다. 의형제 엄홍석과 그의 여인 신현주의 이름 끝자인 ‘석’과 ‘주’를 따온 것입니다.. 그리고 ‘석주길’이라고 새긴 동판을 만들어 천화대와 만나는 바위봉우리의 이마 부분에 붙여 두 사람의 영전에 바쳤습니다. [석주길 동판] [석주길 동판이 있는곳] 하지만 송준호 역시 1973년 초 토왕폭을 단독으로 오르다가 실족하여 먼저 간 두 친구의 영혼을 뒤따르게 되고, (그가 부치지 못한 그리움이 담긴 편지를 유서처럼 남기고, 단독 등정 한 이유가 자살이 아닐까?하는..) 그의 시신은 그토록 사랑하던 친구인 엄홍석과 신현주의 곁에 뭍히게 됩니다. 그렇게 "석주길"의 신화가 설악산에 태어났던 것입니다..... ['노인봉' 오르는 길] '노인봉'에서 "천화대"가 좌측으로 분기하는 모양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天花臺"는 저렇게 아름답지만 "석주길"같은 슬픈 내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 산사나이들은 왜 그토록 산에 목숨을 거는가~! 밧줄 하나에 매달리는게 그렇게 즐거울까....?? 무식한 놈은 의심만 많은걸까... 나처럼 적당히 다니시지.....구경하며...산행기 쓰며... ★['노인봉' 오르는 길에서 뒤 돌아 본 恐龍稜線]★ 오늘 恐龍稜線을 산행하며 찍은 사진중에 최고의 사진이라고 생각됩니다 雲霧로 시야가 막혀 전체적인 사진을 촬영하지 못했는데, 운좋게 한컷 살렸습니다 가운데 우뚝솟은 봉우리가 "1,275m봉"이고. 여기서 보니 꼭대기 가운데 고갯마루도 높은 곳이지요? 그 뒤로 "큰새봉 1,278m", 가운데 고갯마루를 통과했지요 맨끝이 "나한봉 1,246m" 지나온 봉우리들이 "恐龍稜線은 어떤 稜線"인지를 확실하게 보여 줍니다 평탄한듯하지만 높낮이가 있고, 모든 봉우리가 붙어 있는듯하지만 떨어져 있고, 큰봉우리만 있는듯하지만, 작은 봉우리와 혼재해 있고..... 지나 올때는 잘 몰랐는데 와서 뒤돌아 보니 골자기도 매우 깊습니다. ["노인봉"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암봉들] 天花臺의 岩峰들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노인봉] '노인봉'도 정상까지 올라 가지 않고, 가운데 고갯마루를 넘어 갑니다. [노인봉]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비춰지는 恐龍稜線의 봉우리들 노인봉도 또 멀리서와는 다르게 보입니다. ["天花臺"] "天花臺"를 이제부터는 남쪽에서 북쪽방향으로 보게 되겠습니다. 天花臺 암릉이 뻗어있습니다. ['노인봉'에서 바라 보는 "1,184m봉"] '노인봉'에서 멀지 않은 곳에 "1,184m봉"이 있습니다. 사진으로는 높낮이 거리감이 없습니다만, 이 봉우리를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야 합니다. ['노인봉'에서 바라 보는 "1,184m봉"] 방향을 틀어서 보면 완전히 다른 모양이 되는 봉우리들... 예술입니다. ["1,184m봉"] 또 방향이 바뀌면 "1,184m봉"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릴 반깁니다. 저 봉우리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1,184m봉"에서 바라 보는 "龍牙長城"] 恐龍稜線 "1,184m봉"에서 바라보는 "龍牙長城" 雲霧 속에서 현실에는 없는 "용의 이빨"을 보여줍니다. "龍牙長城" 뒤로는 "서북능선"이 보입니다. 언젠가 가능한 빨리 저 능선들을 종주해야 할텐데..... 龍이 승천하려고 꿈틀대는듯합니다 ["1,184m봉"에서 뒤돌아 본 "天花臺"] "1,184m봉"에서 뒤돌아 보니 "天花臺"가 더욱 멋있습니다 그리고 이쪽에서 바라보니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글재주없는 저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天花臺" 뒤로 "1,275m봉"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1,184m봉"에서 바라본 "神仙峰"] 이제 恐龍稜線의 마지막 봉우리인 "神仙峰"을 "1,184m봉"에서 바라봅니다. 저 봉우리 가운데 고갯마루를 넘으면 "무너미고개"와 "희운각 대피소"가 나옵니다. 그리고 恐龍稜線은 끝납니다. ★["神仙峰"으로 가며 뒤돌아 본 "天花臺"]★ 아!~ 天花臺 오늘 제가 찍은 사진 중에 두번째로 마음에 드는 사진입니다. "神仙峰"으로 가며 뒤돌아 보면서 "天花臺"를 찍었습니다. "天花臺" 뒤로 공룡능선의 핵심 봉우리 "1,275m봉"이 天堂 옥황상제의 궁궐처럼 하늘을 찌르고 솟아 있습니다. 이때까지 보았던것은 부분 부분만 보았는데, 입체적으로 볼수 있어 이 사진이 자랑스럽습니다. 박수 쳐 주세요. 어느 산행기를 가도 이 사진같은 것은 못볼것입니다. ㅎㅎ ["神仙峰" 밑에 있는 화려한 岩稜] 와우~ '神仙峰'으로 가는 도중에 "잦은 바위골"에 화려하게 꽃피어 있는 거대한 암봉. 이름이 있을텐데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神仙峰"에서 천불동으로 내리 뻗은 "칠형제봉능선"] "神仙峰"에서 천불동으로 내리 뻗은 능선이 "칠형제봉능선"인데 저 능선과 "화채능선" 사이에 설악산계곡의 하일라이트 "千佛洞 계곡"이 있습니다 건너편에 "화채능선이 희미하게나마 보입니다 ["神仙峰" 고갯마루] "神仙峰" 고갯마루까지 오르는 登路는 제법 가파랏습니다 "神仙峰"도 꼭대기까지 올라 가지않고 고갯마루까지만 올라 갑니다. ["神仙峰"] 神仙峰 정상을 올려다 보기만하고.... ["神仙峰" 북쪽 전망대] 恐龍稜線에서 조망이 가장 좋다는 곳이 "神仙峰"이라고 합니다 ["神仙峰" 북쪽 전망대] 재수 없게 제가 올라 갔을때에는 운무가 앞을 가리웠습니다. 에구~ 운도 지지리도 없지.... 언제 또 다시 온다구 앞을 가로막냐~ ["神仙峰" 남쪽 전망대] 남쪽 "희운각 대피소" 방향은 그래도 조금 시야를 확보해 주었습니다. "희운각 대피소"가 "대청봉"으로 올라 가는 중턱에 보입니다. 그리고 가운데 계곡 안부가 "무너미고개"이며, "무너미고개"의 좌측이 "천불동계곡"이고, 우측이 "가야동계곡"입니다. "가야동계곡"은 "백담사"로 내려 가는 계곡입니다 ["神仙峰"에서 '무너미고개'로 하산] 恐龍稜線을 뒤로하고 "무너미고개"로 내려 갑니다 한편으로 시원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神仙峰"에서 '무너미고개'로 하산] "神仙峰"을 내려 가는 길도 급경사가 있었습니다. [칠형제봉 능선] 이제 '천불동 계곡"쪽이니 "神仙峰'에서 분기하여 "飛仙臺"로 달려가는 "칠형제봉 능선"이 보입니다. [샘터] '무너미고개" 가는 길에 수량이 제법 풍부한 샘터가 있습니다 "공룡능선"이 끝나니까 너무나 한가로운듯한 하산길이 그림 같습니다 ['무너미고개'로 가며 뒤 돌아 본 "神仙峰"] 지나와 뒤돌아 보면 어떻게 저곳에서 내려왔는지 의아스럽습니다. '공룡능선"의 마지막 봉우리를 보며 "공룡능선 산행"을 마침니다. [무너미 고개] 오후 2시 정각에 "무너미고개"에 도착했습니다. '마등령'에서 '무너미고개'까지 5.1km거리의 恐龍稜線을 4시간 10분에 주파했습니다 산행기 때문에 사진찍고 감상문 쓰고 하는 시간을 빼고 오로지 걷기만 한다면 3시간에도 주파할수 있겠더군요, "恐龍稜線'는 그렇게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무너미 고개 이정표] 이곳이 "千佛洞 계곡"으로 하산하는 길과, 恐龍稜線, "대청봉" 갈림길입니다. [무너미 고개 안내판] "무너미"라는 말은 모내기 철에 논에 물을 댈때에, 아랫 논두랑 끝에 물이 넘치면 흘러 넘어 가라고 높이를 약간 낮추어 놓은 곳이 있죠? 그곳이 바로 "무너미"인데, 원래 "물넘이"에서 음운 변화를 거친 순수 우리말입니다 "무너미고개"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로 이해하시기 바람니다. 전국 곳곳, 백두대간이나 정맥, 지맥등 여러곳에 "무너미고개"가 많이 있습니다. [喜雲閣] '무너미고개"에서 "喜雲閣 대피소" 까지는 매우 가까이 있어 5분 정도면 갈수 있습니다 [喜雲閣] 1969년2월14일.. 이곳 우측 계곡인 대청봉에서 내려오는 설악산 "죽음의 계곡"이라는 곳에서 한국산악회 소속 제1기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고자 훈련을 하던 원정대의 젊은 산악인 10명이 눈사태로 전원 목숨을 잃는 큰사고가 있었답니다. 이 사고를 접한 서예가이자 사업가이던 최태욱씨(1920~1991, 경북 청도)가 산악인들을 위한 대피소를 이곳에 세웠는데, 최태욱씨의 호가 "喜雲"이어서 "喜雲閣"이 되었답니다 [喜雲閣 현판과 유래] [喜雲閣 상품가격표] [喜雲閣 앞 "대청봉" 가는 길] 설악산의 최고봉인 "대청봉" 가는 길 [喜雲閣 앞] 화장실과 취사장이 있습니다 [칠형제봉 능선] 1969년 2월 14일 '죽음의 계곡'에서 발생한 사고로 오늘날의 등산학교를 설립하는 계기가 되기도하고 산행문화에 일대 변화가 왔다고 합니다. ["千佛洞 계곡과 오른쪽 "화채능선"] 1969년 2월 14일 '죽음의 계곡'에서 발생한 사고를 애도하며 산을 좋아하는 이정훈이라는 분이 지금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설악가"를 작사 작곡하여 설악산을 사랑하는 산악인들에게 불후의 명곡으로 남게 했답니다 이정훈씨는 지금 경기도 하남시에서 치과개업중 이라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華彩稜線"] 喜雲閣 앞 '무너미고개에서 바라보는 "華彩稜線" ['무너미 고개'] 다시 "무너미고개"로 돌아 와서 "千佛洞 계곡"으로 내려 갑니다. '무너미고개"의 해발이 1,020m이니 설악동까지 해발은 약1,000m를 내려 가야하고, 거리는 8.3km이니 무척 먼 거리입니다. 2시 15분에 하산을 시작합니다. ["千佛洞 계곡"으로 하산] 해발 1,000m를 내려 가는데도 큰 경사가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주변에 펼쳐지는 경치가 숨돌릴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千佛洞 계곡"에서 처음 만나는 구름다리] "千佛洞 계곡"에 걸어 다닐수 있는 시설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장관을 구경 할수 없을겁니다. 워낙 계곡이 깊고 험해서 다니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설치한 다리가 나오는 곳부터 숨쉴틈 없이 펼쳐지는 경치는 8.3km를 잊어 버리게 합니다. ["千佛洞 계곡"] 계곡 우측으로 "화채능선"이 千佛洞을 호위하고.... [이름 없는 폭포] 왠만한 폭포는 폭포로 취급도 않해 주지만, 처음으로 나타나는 폭포라 소개합니다 높은 곳이라 단풍은 이미 끝났습니다 ["千佛洞" 峽谷속으로] '천당폭포"로 가는 길입니다. 우측 계곡이 천당폭포 상단입니다. ["천당폭포" 위] "천당폭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봅니다 [天堂瀑布] 우측으로 "天堂瀑布"가 보입니다. 다리를 설치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어렵게 이곳까지 올라야 했겠지요. 그래서 이곳까지 오면 꼭 天堂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하며, 뽀나스로 폭포까지 우렁차게 반겨 "天堂瀑布"라고 했다는군요. [天堂瀑布 앞 구름다리] "天堂瀑布"를 정면에서 볼수 있도록 계곡을 가로질러 다리를 설치해 놨습니다. [天堂瀑布] [天堂瀑布 앞에서 함께한 山友들과 기념사진] 오늘 생사고락을 함께한 山友들..........수고했어요 [天堂瀑布 앞 峽谷] 설악동 소공원에서 관광객들도 여기까지는 쉽게 올수 있습니다 속초 바닷가에만 나갈것이 아니라 이곳을 올라 보세여~ [陽瀑布] "陽瀑布" 위에서 내려다 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陽瀑布"는 앞으로 튀어 나와있고, 위쪽엔 속에서 떨어지는 "陰瀑布"가 있어 "陰陽"을 나타낸다고 붙여진 이름이라합니다. [陽瀑布 앞 계곡] 우리나라에 이런곳이 있을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陽瀑 대피소] 陽瀑布 앞에는 "陽瀑 대피소"가 있는데 대피소라기 보다는 음식점이지요 [陽瀑 대피소 앞 이정표] 오후3시에 도착했습니다 "무너미고개"에서 약2km정도 내려 왔으며, 45분 정도 걸렸습니다. 앞으로도 6km 이상을 내려 가야합니다만, 내려 가는 길은 편합니다 [칠선골 입구로 가는 길] 千佛洞 溪谷은 우리나라 계곡중에 최고로 꼽는 곳이지요. 저는 바보같이 이번에 처음으로 왔습니다. 아직도 찾지 못하신분들은 이곳 千佛洞 溪谷만이라도 가을엔 들려 보세요. [千佛洞 溪谷] "千佛洞 溪谷"은 계곡 양쪽이 奇岩絶壁에 天態萬象의 바위와 나무들이 한결같지 아니하고 제각각 다른 모습과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天態萬象의 광경을 불교적으로 "천개의 불상들이 늘어서 있는 모양"이라고 "千佛洞"이라고 했답니다 [千佛洞 溪谷 - 오련폭포] 奇岩絶壁에 天態萬象의 形象 그리고 계곡에 흐르는 玉水에 지대가 낮아지니 아직도 단풍이 어우러집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다섯개의 폭포가 연이어 있다고 "오련폭포" [칠선골 입구 앞 이정표] 천불동계곡의 지류인 "七仙골"을 알리는 이정표 [七仙골] 七仙골은 천불동계곡에서 남서쪽으로 대청봉을 향해 있습니다. [七仙골입구에서 "귀면암" 가는 千佛洞 溪谷] ["鬼面岩"이 있는 천불동 게곡] "千佛洞 溪谷"의 입구를 지킨다는 "鬼面岩"이 우측 암벽입니다. 암벽의 모양이 귀신을 닮았다고 "鬼面岩"이라고 한다는데.... 그랜드캐넌보다 훨씬 아름다운 "千佛洞 溪谷" 왜 이제서야 이곳에 왔을까?~ ㅠㅠ ["鬼面岩" 고개] 이 "鬼面岩" 고개를 넘어 가면 "飛仙臺"입니다. 이 고개와 鬼面岩이 "千佛洞 溪谷"의 守門將이랍니다. [飛仙臺 앞 "장군봉"] 드디어 새벽에 어둠을 뚫고 오른 飛仙臺 앞 "장군봉"이 보입니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장군봉 암벽에는 "금강굴"이 있고, 락클라이머들이 암벽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飛仙臺] 飛仙臺 출입관리소에 내려 왔습니다. 해발이 낮아 아직 단풍닢이 남아있습니다. 화려한 색을 띄고 밝게 맞이합니다. 보름 정도만 일찍 왔어도 오색찬연한 설악의 단풍을 만끽할수 있었을 텐데.... 내년엔 10월초에 다시 와야겠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어떻습니까? [飛仙臺 갈림길] 좌측 철조망문을 통해 내려 왔습니다. 그러니까 "千佛洞 溪谷"의 입구이기도 합니다. 새벽 6시 5분에 이곳을 통과하여 우측으로 "마등령"을 향해 올라 갔었습니다. "공룡능선"과 "千佛洞 溪谷"을 지나 이곳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4시25분. 그러니까 飛仙臺-飛仙臺는 10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飛仙臺 갈림길 이정표] [飛仙臺 출입관리소] 옛날 입장료를 받던 곳이니 이제는 쓸모없는 곳입니다. [飛仙臺] "麻姑仙女"가 저 아래 臥仙臺에 누워서 주변 경관을 감상하다가 하늘로 올라 갔다고 "飛仙臺"라고 부른답니다. [飛仙臺 앞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과 형제봉, 선녀봉] 장군봉(일명:미륵봉), 형제봉, 선녀봉이 나란히 있으며, 장군봉에는 원효대사가 수련을 했다는 "금강굴"이 있습니다. 아직도 장군봉에는 암벽타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러다 '석주길'로 가실려나? [飛仙臺] 대부분의 수학여행단이 여기까지 올라 왔다가 가는 곳이지요 [飛仙臺 휴게소] [하산] 부지런히 하산합니다. 무서운 속도로....서울을 빨리 가려면 [權金城과 케이블-카] "화채능선"의 끝봉우리인 "權金城"에 케이블-카가 다니고 있습니다. "權金城" 정상은 구름에 덮여 보이지않는군요. "權金城"은 權氏와 金氏 두 장사가 난을 당하자 가족들을 피신시키고, 적들과 싸우기 위해 하룻밤만에 城을 쌓았다고 하지요. 좀 과장이 심하지만...믿읍시다!~ 1254년 고려 고종41년에 몽고의 침입이 있었을때 백성들의 피신처로 사용하기도 했다는군요. 해발 850m의 정상에는 봉화대가 있고, 봉화대를 중심으로 길이 2.1km의 山城이 있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동해바다와 공룡능선 대청봉 울산바위 등을 조망할수 있습니다 모두 최소 한번씩은 올라 가 봤지요? [신흥사 석가여래상] [신흥사 정문] [설악동 소공원] 사유지이기 때문에 돈을 받는다고 신흥사 사유지 영역을 크게 지도로 표기해 놨더군요. 2,500원을 문화재 관람료로 받았는데 절간 구경한 산객은 단 한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흥사 중들은 밖으로 나올때 자기네 땅이 아닌 땅으로 나오니까 상응하는 입장료를 내야 하는것 아닙니까? 중들아!~ 밖으로 나올 때 돈 내고 나오라!~~ 한발자국 땔때마다 돈 내라~!! 싫으면 나오지 마라~! 그 속에서 잘먹고 잘 살아라~! [설악동 주차장] 오후 5시 5분에 설악소공원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 왔습니다. 11시간 40분이 걸려 꿈에도 그리던 "恐龍稜線"을 다녀왔습니다 총거리 : 약23km 출 발 : 새벽 5시 25분 도 착 : 오후 5시 5분 총산행시간 : 11시간 40분 본 산행기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허가 없이 사용 할수 없습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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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한옥마을』전통혼례식
         
          깊어 가는 가을
          그동안 한번도 가보지 못한 서울 한복판의『남산한옥마을』
          시월의 세번째 토요일인 17일 오후 12시반경에 찾았습니다
          먼 곳을 가야만 여행이라고하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게 해준      
         『남산한옥마을』전통혼례식장이었습니다
          함께 가 볼까요
     
     [지하철 3호-4호선 충무로역 3번 출구]
     『남산한옥마을』을 찾아 가려면 지하철이 최고 입니다.
     지하철 3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충무로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만 나오면
     바로 약200m지점에 남산한옥마을이 보기좋게 있습니다.
     "남산한옥마을"이라고 해서 "南山 중턱"에 있을듯한 느낌이 들지만
     충무로 길가에 있었습니다. 
     
     [남산한옥마을 입구]
     '충무로역 3번 출구로 나와 남산 방향으로 틀면 
     바로 "남산한옥마을 정문"이 보입니다
     
    [남산한옥마을 정문을 들어 서니...]
     한옥마을 정문에 들어 서니 잘 조성된 정원이 펼쳐지고
     남산타워가 하늘 높이 솟아있는 광경이 그림같습니다.
     
     [남산한옥마을 안내판]
     조선시대 한양의 이곳 저곳에 있었던 대표적 한옥을 이곳에 모아 복원해 놨습니다
     누구의 집이었고 누구에 의해 지어졌는지는 특별히 알 필요도 없습니다.
     옛날 집안 형편이 좋았던 고관대작들의 집들이니까요
     
     [전통한옥 - 혼례식장]
     제가 오늘 이곳을 찾게된 동기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전통혼례를 올리는 예식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한옥 - 혼례식장 입구]
     신랑 : 워렌
     신부 : 나 하나
     우리나라 전통혼례식장에서 국제결혼식이 열리고 있어 많은 賀客들과
     전통혼례를 구경하려는 관람객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신랑 Mr.Warren은 저의 산행기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와 山行을
     몇번 함께해서 잘 알고 있는 사이이고,
     신부 '나 하나'양은 백두클럽의 산행대장님의 따님이라 이 결혼 식장을
     찾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농악대들이 요란스런게 축제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습니다
     
     [전통혼례식장]
     전통혼례식장도 일반 예식장과 마찬가지로 신랑 신부 가족들이
     하객들을 맞고 있었습니다.
     
     [禮式壇]
     禮式壇에는 박제 숫탉과 암닭이 살아있는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대추를 비롯한 과일들과 다과가 먹음직스럽게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합환주로 사용할 빠져서는 않될 술이 양쪽에 있습니다.
     
     [전통국악단]
     대청마루 앞에는 전통국악대들이 아름다운 선율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농악대]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농악대 많큼 요란스럽게 연주하는 음악대는 없다고 합니다
     여하튼 흥을 돋구는데는 우리나라 농악대가 세계 최고입니다. ㅎㅎ
     
     [賀客과 관람객]
     賀客과 관람객이 많이 오셨는데, 신랑이 외국인이라 외국인 하객들이 많았습니다
     일본인 관람객들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농악대와 賀客]
     농악대들이 한바탕 혼례식장의 흥을 돋구고 나갑니다.
     예식이 시작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賀客과 관람객석]
     어렸을 때에 시골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T.V에서나 보던 전통혼례식을 오랜만에 보게 됬습니다.
     
     [禮式 시작]
     禮式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거행되는 전통혼례는 경기지방의 전통혼례 모형으로 진행 된다는 주례선생의
     설명이 있었고, 이어서 신랑이 나와 신부를 모시러 가는 절차를 밟더군요
     
     [新婦를 맞으러 新郞이 찾아감]
     먼저 新郞이 新婦가 있는 방으로 가서 절을 하고 新婦가 나와 줄것을 요청합니다
     
     [新婦를 모시고 나옴]
     그러니까 新婦가 얼굴을 가리고 나옵니다.
     화려한 색깔의 예복도 아름답습니다.
     
     [新郞 입장] 
     먼저 新郞이  입장하고....
        
     [新婦 입장]
     이어서 新婦가  많은 박수를 받으며 입장합니다
     
     [新婦 新郞 입장 완료]
     
     [新郞에게 절하는 新婦]
     조금 특이한 것은 新婦가 新郞에게 먼저 절을 하더군요.
     이것에 대해 주례선생의 설명이 있었는데,
     '남존여비' 때문에 新婦가 新郞에게 먼저 절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음 양 陰陽"에 따라 여자인 新婦가 新郞에게 먼저 절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더군요. 그런데 사실 옛날에는 좀 그랬지요? ㅎㅎ
     
     [新郞에게 절하는 新婦]
     이라는 한자를 뜯어 보면
     子와 , 즉 男子가 이 되는 것입니다.
     은 해석이 다양한데 "날을 잡는다"라고 하기도 하고,
     "두쪽이 하나가 된다"라고도 해석 하더군요
     여하튼 여자와 남자가 하나 됨을 의미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황혼 할때의 혼은 어두울 昏을 쓰지요? 昏 앞에 女가 빠져 있습니다. 
     여자가 없는 남자는 얼마나 깜깜하고 쓸쓸하겠기에 그렇게 표기 했을까요
     婚 -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잘 섬겨야 겠습니다
     
     [新郞에게 절하는 新婦]
     
     [新婦에게 절하는 新郞]
     
     [흐뭇한 모습의 新婦 父母]
     딸을 시집 보내는 부모는 조금 서운할테인데
     종일 흐뭇해 하는 新婦 父母님들 ㅎㅎ
     외국인에게 시집 보내는게 기쁜 모양이죠?
     
     [흐뭇한 모습의 新郞 父母]
     Mr.Warren의 집은  아일랜드에 있습니다.
     그러니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머나먼 한국까지  Mr.Warren의 부모님이
     왔습니다.  Mr.Warren은 아빠 엄마를 반반씩 빼 닮았더군요.
     엄마가 미인이지요?
     물론 저도 인사했습니다. 미인을 보면 못참으니까 ㅎㅎ
     
     [독특한 의상의 하객들]
     외국인들 하객이 많았습니다만 역시 다양한 옷차림이 눈길을 끕니다.
     한국 전통 혼례식장에 상체를 거의 드러낸 외국여성이 이채롭죠?
     
     [賀客들에게 감사 인사 하기전에 주례선생의 당부를 듣는 신랑]
     결혼식을 올리는 곳을 예식장이라고 하죠?
     결혼식장은 禮를 올리는 장소이기에 禮式場이라고 합니다.
     結婚 = 禮를 갖추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일반결혼식장에 가보면 저같이 오래된 사람들은 무척 당황합니다.
     '禮를 올리는 장소'라기 보다는 '축제장' 같습니다.
     장난치는 듯한 행동들이 난무하고 코메디언들 까지 동원해 웃기는 놀이터 같은
     禮와는 거리가 먼 광경들이 눈쌀을 찌푸리게 합니다.
     백년가약을 하는 중요한 자리이므로 엄숙하고 경건하게 禮式을 올렸는데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너무하는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 결혼이니  툭하면 이혼하고.... 또 재혼하고....이혼하고....
     결혼이 장난인가요
     
     [賀客들에게 감사 인사 하기전에 주례선생의 당부를 듣는 신부]
     오늘 이렇게 전통혼례를 올리는 Mr.Warren과 나 하나양이 
     너무나 보기 좋았으며 많은이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결혼 할 젊은이들은 이 혼례식이 많은 참고가 되었으면...
     
     [감사 인사 드리는 新郞 新婦]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결혼식 다운 결혼식을 하는듯합니다.
     아마도 이들은 서로를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밀것입니다.
     그리고 절대 이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賀客들의 축하]
     賀客들의 박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감사인사를 직접하는 신랑]
     한국말로 진행된 복잡하고 어려운 혼례식을 끝내고 
     신랑이 직접 영어로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앞으로 열심히 서로 사랑하며 살겠다고 선서를 했습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신랑 부모]
     Mr.Warren이 영어로 찾아주신 하객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결혼후 열심히 잘 살겠다고 포부를 밝히자,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Mr.Warren 부모님이 무슨 말인지 이제서야 알아 듣고
     감격의 눈물울 흘립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올리는 아들의 결혼식에 감회가 남달랐겠지요.
     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인간의 감성은 똑 같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앗!~ 전통혼례식장에서 무슨 키스?]
     ㅎㅎ
     아무리 한국전통혼례식을 해도 국제적인건 어쩔수 없는가 보죠?
     하지만 한국전통혼례식이 끝난후  키스는 오히려 보기 좋았습니다.
     "Good Luck!"
     
     [전통혼례식장에서 보이는 남산]
     
     [한옥마을의 정원]
     
     [한옥마을을 나오며...]
     "남산한옥마을"을 한바퀴 둘러 보고 나오며
     괜히 저도 즐거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깊어 가는 가을에 좋은 구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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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邱 八公山 遊山記 수태골입구-동봉-비로봉-삼성봉-서봉-수태골 저수지 八公山 낮과 밤을 묶어 하루라 하듯 즐거움과 괴로움을 묶어 인생이라한다니 그러니 이렇게도 살아 보고 또 저렇게 뒤집어서도 살아 보자 인생살이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서로 알아 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산에서 그런 즐거운 일들이 일어난다면 그것도 화려한 색갈로 터질것같은 팔공산에서 일어 난다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뛰어 가지 않을까요? [동대구역] 10월 18일(일) 오전 9시 14분 살면서 비교할수 없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이,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나와 다른 그 사람들의 새로운 삶의 면면을 느끼는 것이니 오늘은 그런 사람들을 만나 팔공산에서 하루를 함께 하고자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렸습니다. 날씨까지 도와줍니다 [동대구역] 정말 오랜만에 대구에 왔습니다. 십여년전이나 지금이나 동대구역은 크게 변한게 없는듯 하지만 감회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 옵니다 이렇게 이런식으로 다시 대구에 올줄은 몰랐으니까요. 모든것이 즐거운듯 동대구역은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팔공산] 대구 올뫼 산악회가 저를 팔공산으로 초대해 주었답니다. 대전 정암 카페와 함께 이번에는 대구 팔공산에서 하루를 보내며 이 가을의 깊은 맛을 느끼며 소풍같은 산행을 하려합니다. 팔공산으로 가는 차안에서 '팔공산'을 촬영했습니다. 팔공산 능선은 꽤 길었으며 대구의 진산 다웁게 높이와 규모가 대단했습니다 [팔공산 동화사로 가는 길] 팔공산 동화사로 올라 가는 진입로는 연인들의 드라이브코스로 손색이 없이 이제 새로운 야한 옷으로 갈아 입으며 도열해 있는 가로수들이 산객들을 어서 오라고 반기고 있습니다. [팔공산 동화사, 케이블-카 타는 입구] 동대구역에서 약30분정도 걸려 '팔공산 동화사'입구에 왔습니다. 주차장은 물론 도로 양쪽에는 차량들로 가득 차 있었으나 '팔공산 케이블-카'를 타는 이곳 '동화사' 입구는 한산 했습니다. 왠일인지 알아 보았더니 이곳에서는 '팔공산'으로 오르는 산객들이 많지 않고 '수태골'로 주로 오르기 때문이랍니다. [수태골 - 등산로 입구] '동화사, 케이블-카' 입구에서 조금 올라 가니 "수태골" 등산로 입구가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이곳에서부터 팔공산 산행을 시작하더군요. 동화사 입구에서는 문화재 관람료 2,500원을 받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등산로는 이곳이 더 아름답기 때문이랍니다. [팔공산 등산코스 안내도] 붉은 선이 오늘 산행 하는 코스입니다. 산행 거리는 약 10km 일반적으로 약 5시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만, 오늘 우리는 유유자적 7시간을 걸으며 소풍을 즐겼습니다 [산행 시작] 오전 10시 35분 산행을 시작합니다 八公山은 大邱의 진산으로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있는 규모가 매우 큰 산입니다 그래서 팔공산을 제대로 알려고 한다면 약18km정도되는 팔공산 산줄기를 종주해야 한다고 합니다. 최소한 '한티재'에서 파계재-파계봉-톱날바위-서봉-오도재-비로봉-동봉-염불봉-태실봉- 인봉-노족봉을 지나 '관봉'까지는 가야 팔공산을 올랐다고 할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수태골입구에서 동봉-비로봉-서봉을 오르고 서봉 아랫쪽 암봉능선을 따라 내려 오려고 합니다. [수릉봉산계 표석 - 綬陵封山界 標石] 제가 이제까지 여러 산을 돌아 보았으나 이런 標石은 처음 봅니다. "綬陵封山界 標石"이라고 하는데 '綬陵'은 조선왕조 헌종의 어버지인 "익종"의 릉을 말한답니다 '封山界'는 '綬陵'의 유지관리와 제사에 쓰이는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서, 이 산의 산림자원을 이용하여 그 비용의 확보를 위해, 일반인의 출입과 벌목을 막으려고 출입금지를 시키는 경계선 임을 알리는 푯말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왕릉 보존 비용을 이산의 나무를 팔아 조달함으로 여기 들어 오지 말라는 출입금지 표지판입니다. '팔공산'은 옛날엔 들어 가면 안되는 산이었군요. [슬랩 - 암벽등반 연습장] 25분쯤 평탄한 길을 오르니 암벽등반 연습장이라는 '슬랩'이 나왔습니다. 오늘은 연습하는 클라이머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넓적바위' 오르는 등로] 고도가 높아 질수록 나뭇닢은 화려한 색깔로 변해 갑니다. 자연의 섭리 인간은 추워지면 옷을 입는데 나무들은 거꾸러 옷을 벗습니다 그런데 나무들은 옷벗기 전에 이렇게 야한 색깔로 주면을 한번 유혹하고 벗지요? 옷벗는 것만 보자면... 어찌보면 인간이랑 별로 틀린게 없는듯하고.... 그래서 산은 남성이라기보다는 여성에 가깝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넓적바위' 쉼터] 우리들은 산행중에 주로 넓은 바위가 나타나면면 쉼터로 이용하지요, 그리고 넓은 바위를 '마당바위'라던가 '멍석바위', '거북바위'등으로 부르는데 이곳의 넓은 바위는 대구 지방의 터프한 말투 다웁게 "넓쩍바위"라고 하더군요. ㅎㅎ 하여간 넓은 바위가 50분 정도 걸은 산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해 줍니다 여기서 잠시 쉬며 과일도 먹고.... ['동봉, 서봉 갈림길] 12시 정각에 "東峰"과 "西峰"으로 갈라지는 약숫터가 있는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약숫터는 가뭄으로 메말라 약숫물을 볼수 없었습니다. 좌측으로 올라 가면 "西峰"으로 바로 간다고합니다만, 우리는 오른쪽으로 "東峰"을 오르고, "비로봉"을 거쳐 "西峰"으로 갈 예정입니다. [안부 - 동학사에서 오르는 직코스] 이 안부가 중요한 지점이 되겠습니다. 이 산줄기는 "팔공산 케이블-카"가 오르 내리는 곳의 능선이며, '동화사'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동화사와 케이블-카에서 올라 오는 산객들과 합류하는 지점이므로 이곳부터는 더욱 많은 산객들로 붐볏습니다. [東峰 오르는 등로] 정상부근에 오르니 암벽들이 산의 모양을 바꾸어 줍니다. 단풍은 점점 더 화려해 집니다. 지금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곡은 모두 잘 아시는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라는 노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메기의 추억"으로 더 알려져 있지요 그럴듯한 창작 가곡 한곡없던 시절에는 이런 외국노래를 번안하여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런 노래를 부를때엔 이런 노래가 우리 전통 가곡인줄 알았지요. 평안하고 풍성할 틈이 없었던 시절까지 너무 어렵게 살아 노래를 부를만한 여유가 없었을테니 우리에 맞는 가곡을 창작해 내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동안 전해 내려 오는 노래라 해봐야 거의 한맺힌 타령이 많았으니 이런 외국곡이라도 번안해서 현대적 음악세계를 접하는 것이 즐거움이었습니다. [東峰 오르는 등로] "메기의 추억"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 이 곡은 캐니다의 시인 '조지 존슨'이 1866년에 '단풍잎'이라는 시집을 통해 발표한 詩입니다. 이 詩는 '조지 존슨'이 일찍이 사별한 부인 '메기 클락'에 대한 추억을 그린 것이지요. '조지 존슨'은 토론토대학을 졸업하고 토론토대학 교수로 교편을 잡게 되었는데 이 학교에서 운명은 시작됩니다. '메기 클락'은 '조지 존슨'의 제자 였습니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 사랑을 하게 되고 급기야 약혼까지 합니다. 그들은 자주 '메기 클락'의 집 근처 개울가에서 데이트를 즐겼고, 1864년 10월 결혼해서 오하이오주의 클리브랜드로 이사를 하고 '조지 존슨'은 그 곳 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랑하던 '메기'는 결혼한지 1년도 못되어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꽃다운 나이 겨우 24살때였습니다. '메기'를 잃고 난 아픔을 벗어나기 위해 '조지 존슨'은 '메기'와의 추억이 어려있는 클리브랜드를 떠나서 다시 캐나다의 토론토로 돌아옵니다. '조지 존슨'은 사랑하는 '메기'에 대한 추억과 애상을 시로 써 냈으며, 그는 미국 디트로이트에 사는 친구 '제임스 버터필드'에게 이 아름답고도 슬픈 詩에 알맞은 멜로디를 붙여 줄 것을 부탁하는데, 그 詩를 '버터필드'가 곡을 붙인 것입니다. 이 노래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메기의 추억' 입니다. [東峰 오르는 등로]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않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야 희미한 옛 생각 동산수풀 없어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메기, 내사랑하는 메기야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않아서 놀던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야 희미한 옛 생각 지금 우리는 늙어지고 메기 머린 백발이 다 되었네 옛날의 노래를 부르자 메기 내사랑하는 메기야 [조우] 東峰이 가까워 오는 산중턱에서 대전에서 오신 '晶巖교수님'팀을 따라 잡았습니다. 그리고 반가운 조우를 하였습니다. 교수님은 원인 모를 배탈로 컨디션이 매우 나쁜데도 다른 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먼저 도착하여 천천히 먼저 올랐던 것입니다. 저는 지난 갈기산 산행 이후 처음으로 뵈었습니다. [西峰] 東峰으로 오르는 중턱에서 좌측으로 西峰이 보입니다. 西峰에 갔을 때에 西峰에는 "삼성봉"과 "西峰"이 붙어서 있었는데, 산행기를 쓰면서 이 사진을 보니 이제서야 이해가 갑니다. [東峰] 조금 오르니 우측으로는 東峰이 보입니다. 가을에 많이 부르는 노래 중에 "깊어 가는 가을 밤"이라는 노래가 있죠" "깊어가는 가을 밤" 깊어가는 가을 밤에 낫설은 타향에 외로운맘 그지없이 나홀로 서러워 그리워라 나살던 곳 사랑하는 부모형제 꿈길에도 방황하는 내 정든 옛고향 이 노래도 우리 가곡이 아닌 미국 카우보이들의 노래이지요 우리가 빌려와 우리 노래인듯 부르고 있지만.... 소몰이 직업을 가진 카우보이들이 고향을 떠나 미국 남부에서 북부로 가면 한해가 저물어 가지요. 머나먼 타향에서 고향과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가 이 노래였습니다 미국놈이나 인디안이나 우리나 모두 같은 감성인 것입니다. [조망대] 대구공항이 조망되는 전망바위가 있어 잠시 머물렀습니다. 대구시내는 잘 보이지 않았고, 대구공항만 조금 보였습니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멀리 대구의 '앞산'이라하는 '대덕산'이 보였습니다 [東峰 오르는 등로] 정상이 가까워 질수록 登路는 점점더 가파라집니다. 힘들기 위해 오르는 것이니 오르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비로봉] 된비알을 치고 오르니 드디어 팔공산에서 가장 높은 "비로봉"이 모습을 드러 냅니다. 팔공산도 제일 높은 곳에는 방송국과 통신사들의 철탑이 온통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비로봉-東峰 갈림길] 처음 오시는 분들은 이곳 삼거리를 유의 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우측으로 東峰을 올랐다가, 東峰을 구경하고 나서는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 '비로봉'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로봉-東峰 갈림길 이정표] 東峰을 구경하고 나서는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비로봉'으로 갈수 있습니다. [東峰 오르는 길] 동봉으로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정상부근에는 낙엽이 벌써 떨어져 나무가지가 드러 나고 있습니다. [東峰 오르는 계단] 질서 정연하게 東峰 정상으로 오릅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우리나라 수준 높은 나라 산행문화, 교통문화 등등등...... 많이 발전했습니다. [東峰 정상] 12시 45분에 팔공산 東峰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러니까 '수태골 입구'에서 2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소풍같은 산행이니 시간은 별 관심없습니다만.... [東峰 정상석] 東峰 정상은 초만원이었습니다. 팔공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비로봉"이 약60년간 통제되어 들어 갈수 없었는데 이번 10월부터 일부 지역을 해제하여 정상까지 갈수 있도록 했답니다. 그 이전까지는 이곳 東峰이 팔공산을 대표해 왔다고 합니다. [東峰 정상에서 동쪽 '갓바위' 방향] 東峰 정상에서 동서남북을 조망해 보겠습니다. 우선 동쪽. 동남쪽 방향을 바라 봅니다. "팔공산 종주 코스"의 동쪽으로 염불봉, 태실봉, 인봉, 노족봉, 관봉등이 줄을 서 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東峰 정상에서 보아는 '팔공산 C.C'] '갓바위' 가는 방향으로 '팔공C.C'가 조망됩니다. 예전에 저곳에 가서 골프를 친적이 몇번 있는데 여기서 내려다보니 감회가 다르군요 [東峰 정상과 비로봉] 염불봉으로 가는 코스에서 뒤돌아 본 '東峰 정상'과 '비로봉' [東峰 정상에서 바라보는 '비로봉'] 지난 10월초부터 일반인에게 개방한 "비로봉"이 철옹성 요새처럼 보입니다. 東峰과 비로봉은 매우 가까이 있으며 약700m정도 거리이라 합니다. [東峰 정상에서 바라보는 西峰] '비로봉'에서 '西峰'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선명합니다. 저 산줄기는 "팔공지맥 마루금"입니다. 가운데 西峰을 지나 '톱날능선', '파계봉', '파계재'를 지나 '한티재'로 가며 결국 상주시 중동면 새띠마을까지 가서 낙동강과 위천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끝나는 "팔공지맥"입니다. [東峰 정상의 이정표, 하산] '한티재'에서 '갓바위'까지는 15.6km이고, 갓바위에서 주차장까지 약2km이니 총 18km는 걸어야 팔공산 종주를 했다고 할수 있겠군요. 언제 시간 나면 '팔공산종주코스'를 완주하고 싶습니다.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 동봉을 내려와 비로봉으로 가는 길에 이상한 바위가 앞을 가로 막습니다. 알고봤더니 이것이 유명한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이라는 것이었습니다. "藥師如來"는 불교에서 서열 5위쯤되는 神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교는 '석가모니'를 모시는 종교라고 생각하는데 "석가여래"도 불교의 여러 神중에 하나이지요. "藥師如來"는 모든 중생들의 병을 고쳐주는 神입니다. 곳곳의 절간에 "藥師如來"가 있어도 병원은 언제나 환자들로 만원입니다.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 뒤에서 보는 것과 앞에서 보는 것은 완전히 틀림니다. 앞에서 보니 완벽한 조각상입니다. 이 "藥師如來" 조각상은 약6m 높이라고하며, 대구유형문화재 20호라고하는군요. 조각된 여러 형태를 보면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것으로 추정한다고합니다. [八公山 東峰 石造藥師如來立像] '약사여래 조각상' 뒤로 東峰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약사여래 조각상'은 東峰과 '비로봉' 사이에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는 조그만 헬기장이 있고.... [목탁 바위] '약사여래 조각상' 앞에있는 일명 "목탁바위"라고 합니다. 이 바위는 두들기면 목탁소리가 났습니다. 산부인과 의사님이 직접 두들겨 봤습니다. 신기하더군요. 바위의 울림이 목탁소리와 비슷했습니다. 약사여래가 사용하던 목탁인가봐요. ㅎㅎ 무지 큰 목탁이죠? [비로봉] '비로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이번 시월부터 새로이 개방된 길이라고 합니다. 모두 처음으로 '비로봉'을 오릅니다. 사진 속의 노란옷을 입은 아주머니가 제가 서울말씨를 쓴다고 자기가 듣기엔 말투가 우습다고 웃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주머니 깅상도 말투가 더 웃긴다고 했더니 서로 피장파장이라고 함께 웃었습니다. ㅎㅎ [비로봉 정상] 1시 20분에 '비로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제천단 표석'이 있는 곳에서 '비로봉 정상'을 올려다 봅니다. 불과 얼마전 9월까지만해도 오를수 없었던 '비로봉'을 오릅니다. 저는 행운아인가 봅니다. [비로봉 정상] 비로봉은 한자로 毘盧峯이라고 씁니다 옥편을 찾아 보면 毘 도울 비,盧 성 로(노)/목로 로(노), 峯 봉우리 봉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毘盧峯'을 한문의 뜻을 찾아 접근하려고하면 무슨 말인지 알수없습니다 왜냐하면 毘盧는 제가 저의 산행기에서 자주 언급하는 "뜻글자"가 아니라 "소리글자"인데 외국어를 한자로 音譯한것이기 때문입니다. 毘盧비로자나 毘盧蔗那를 줄인 말인데 인도의 옛글자인 '산스크리트語'로서 Vairocana를 中國語로 音譯한 것입니다. 毘盧蔗那의 중국 발음으로는 Vairocana에 가까운데, 우리나라에선 단순히 中國語로 音譯한 毘盧蔗那를 우리말로 그대로 音譯하여 '비로자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로자나'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산스크리트語' Vairocana의 뜻을 알면 됩니다 Vairocana는 "태양"이라는 뜻이며, 佛經에서는 '두루 빛을 비추는 자'라는 뜻입니다. 불교 종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불교에서 최고의 부처로 "비로자나佛"을 꼽습니다. '아미타佛' '관세음佛' '약사여래佛'등과 함께 종파에 따라 최고로 모시는 부처라는 말입니다. 毘盧峯은 이런 배경을 가진 최고의 봉우리라는 의미로 붙여진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금강산의 최고봉도 毘盧峯입니다. 소백산의 비로봉도 같은 한자인 毘盧峯입니다. 참고로 치악산의 "비로봉"은 한자가 "飛盧峯"입니다. [毘盧峯 제천단] 毘盧峯에는 초라한 돌무덤으로 제단을 쌓아 놨는데 이것이 "제천단"이랍니다. 옛날에 이곳에서 國泰民安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답니다 [毘盧峯 정상에서 바라본 서쪽 방향 - 西峰] 毘盧峯 정상에서 사방을 조망해 보겠습니다. 서쪽으로는 아까 동봉에서 설명드린데로 '팔공지맥' 마루금이 지나고 있으며, 가운데 "西峰"이 완벽하게 조망됩니다. 우리는 저곳 "西峰"에서 좌측 능선으로 하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西峰"뒤로 멀리 '파계봉'까지 보이는군요. [毘盧峯 정상에서 바라본 북쪽 방향 - 군부대 1,213m봉] 북쪽으로는 군부대가 진을 치고 있는 1,213m봉우리가 보입니다. "팔공지맥"의 마루금이 오는 봉우리입니다. "팔공지맥"은 "낙동정맥"의 청송군 부근 "가사봉"에서 분기하여, 청송,영천,군위 경계인 석심산까지 와서 다시 '화산', '시루봉'을 거쳐 앞에 보이는 1,213m봉으로 와 비로봉을 오르고, 서봉, 한티재, 상주시까지 갑니다 조만간 '팔공지맥'과 '보현지맥'을 종주 하겠습니다 [毘盧峯 정상에서 바라본 북쪽 방향 - 군부대 1,213m봉] [毘盧峯 정상에서 바라본 동쪽 방향 - 東峰] 동쪽으로는 당연히 "東峰"이 보입니다. 가운데 산허리에는 "약사여래 조각상"이 쬐끔 보입니다. [점심식사] 저는 점심을 준비 해 가지 않았습니다. 경험에 의하면 이런 모임에는 점심을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준비해 가면 오히려 애물단지가 됩니다. 왜냐하면 모두 정성껏 준비해 오기 때문에 선수는 젓가락만 있으면 되니까요. ㅎㅎ 그래야 이것 저것 골고루 여러 지방 특산물까지 먹을 수 있습니다. 쎌러드에서 들깨가 들어간 무우국까지 배 터지게 먹었습니다. 준비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말로나마 감사드림니다. [비로봉-동봉-서봉 갈림길 이정표] 약 1시간 정도 점심식사를 하고 西峰으로 향합니다. 2시30분에 다시 동봉, 서봉, 비로봉 갈림길로 내려 왔습니다. [西峰 가는 길] 팔공지맥 마루금을 따라 西峰으로 갑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西峰입니다. [西峰 오르는 계단] 친절하게 곳곳에 계단을 만들어놨습니다. [西峰 오르는 계단에서 뒤돌아 본 '비로봉'과 東峰] [119 구조헬기] 西峰으로 가는데 갑자기 119 헬기가 나타나 부상자를 실어 나릅니다. 알아보니 큰 부상은 아니고 아마도 인대가 좀 늘어난 모양입니다. 산에서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합니다. 그리고 하산길에는 스틱을 꼭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무릎관절 보호와 부상 방지를 위해서 필수입니다. 스틱은 두자루를 사용해야 효과가 있으며, 너무 비싼것 사지 마세요 이번에 오신 분들 스틱은 대부분 무지 비싼 독일제 "렉키"를 가지고 다니시더군요 "렉키" 두자루면 제것같은건 30자루 살수 있습니다 그런거 가지고 다닌다고 등산 잘하나? ㅎㅎㅎ [西峰 갈림길 이정표] 팔공산 종주 코스와 '팔공지맥 마루금은 '파계봉' 방향으로 가야하고, 서봉은 남쪽 '부인사' 방향으로 조금 갑니다. [삼성봉] 西峰에는 두개의 봉우리가 붙어 있는데 첫번째가 "삼성봉"입니다. 서울의 "숭례문"을 일반적으로 "남대문"이라고하는데 혹시 西峰의 본명이 "삼성봉"이 아닌지..... [西峰] 3시에 西峰 정상에 올랐습니다. 비좁은 정상에는 정상석이 모두 차지 하고 있는듯... [西峰 정상석] 팔공산에는 유명한 절들이 있습니다. 동쪽에는 '은해사'가 있고, 남쪽에는 '동화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서쪽에는 '파계사'가 있으며, 북쪽으로는 국보 109호인 "삼존석굴"이 있습니다 [西峰에서 보이는 '팔공C.C.'] 西峰 정상석과 함께 '팔공C.C.'가 조망됩니다. [西峰에서 바라보는 '비로봉', 東峰,] 팔공산에 오르며 지겹도록 본 방송국과 통신사들의 송수신 철탑. 그리고 군부대 어느 산을 가던 제일 높은 의미있는 산봉우리에 꼭 저런 쇠말뚝을 박는다니까요. 조금 비켜서 저런 말뚝을 박을수도 있을텐데..... 일본놈들 일제시대에 우리나라 정기를 끊는다고 산맥에 쇠말뚝을 박았다는데 이제는 우리가 우리나라 중요 산봉우리에 엄청난 쇠말뚝을 박고 있으니..... [西峰에서 기념사진] 오늘 함께한 여러 횐님들의 만남의 절창 언제나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12월에는 제가 주선하는 서울에서의 산행이 있겠습니다. 송년산행으로 12월20일(셋째주 일요일)로 잠정 정했으니 기억해 두시기 바람니다. (정암교수님이 꼭 주선하라고 등 떠밀려...ㅎㅎ) [西峰 巖陵코스] 西峰에서 하산하는 코스가 오늘 산행의 압권이었습니다. 암릉길이라 다소 위험했지만 서로 도우며 하산하는 재미가 더 있었습니다. 암릉길에 있는 奇岩怪石이 볼거리를 더욱 제공해 주었습니다. [西峰 巖陵코스] 오늘 산행을 함께한 모든 분들에게 詩 한수 선사합니다. 제가 산에 다니며 가장 잘 읊는 詩입니다. 산에게 나무에게 김남조 산은 내게 올수없어 내가 산을 찾아 가네 나무도 내게 올수 없어 내가 나무 곁에 서 있네 산과 나무들과 내가 친해진 이야기 산을 거기에 두고 내가 산을 내려 왔네 내가 나무를 떠나 왔네 그들은 주인 자리에 나는 바람 같은 몸 산과 나무들과 내가 이별한 이야기 [西峰 巖陵코스] 아기자기한 암릉길을 내려 갑니다. 가운데 보이는 바위를 제가 이름 지었는데...."도깨비 바위"라고.... 비슷합니까? ㅎㅎ [도깨비 바위] "도깨비 바위"를 줌인하여 촬영했습니다 확실히 도깨비를 닮지 않았습니까? 도깨비를 본적이 없다구요? 그럼 저게 도깨비 입니다. [도깨비 바위에서 뒤돌아 본 西峰 巖陵코스] '도깨비 바위'에서 뒤돌아 보니 지나온 암릉길과 좌측으로 서봉에서 한티재로 가는 '팔공지맥'의 "톱날능선"이 보입니다. [西峰 巖陵코스] 西峰에서 내려가는 巖陵코스 아랫쪽 계곡의 이름이 "바위골"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암릉코스 아래에 있다고 붙여진 이름인듯합니다. [西峰 巖陵코스] 생명력은 끈질기게 이 세상을 끌어안고 최선을 다해 살아 갑니다. 한포기 풀도 나무도.... [西峰 巖陵코스에서 바라 보는 '팔공산 케이블카'] 가운데 산줄기 봉우리에 있는 하우스가 "팔공산 케이블-카" 상부 정거장입니다. 하부 정거장은 저 아래에 주차장 같은 곳입니다. 팔공산을 쉽게 오를려면 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되겠군요 [西峰 巖陵코스] 설악산을 축소해 놓은듯 곳곳에 기암괴석이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줍니다 [西峰 巖陵코스에서 조망] [奇巖怪石] [랏지코스]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았던 정암교수님이 유격대 폼을 잡고 내려 가고 있습니다. 컨디션이 좋아 지신듯...다행입니다. [사다리] 갖출건 다 갖추고 있는 팔공산 [계곡길 하산] 가을이 무러익어가는 계곡길도 환상적이었습니다. [하산하며 뒤 돌아 본 西峰] 5시 45분 산행들머리였던 "수태골입구" 저수지 옆으로 내려왔습니다 오늘 소풍 시간은 무려 7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ㅎㅎ 그래서 소풍이라고 하는것입니다. 함께한 횐 여러분 즐거웠고요..다음 12월에 서울 북한산에서 다시 만나요~~ 그때도 맛있는거 많이 싸 가지고 오시고~~ㅎㅎ [산행 개념도] 저녁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ㅎㅎ 저는 대전까지 와서 대전역에서 KTX타고 막차로 집에 들어 왔습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 - Foster & 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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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교산 산행과 메뚜기 파티  
     
     [경기대 정문 입구]
     10월 10일(토) 오전 9시에
     경기남부 교우회의 산악회 선후배님들과
     경기대 정문에서 만나 광교산 산행을 했습니다.
     
     [산행 시작]
     날씨는 청명한 전형적인 가을날씨로 쾌적했습니다
     경기대 정문 뒤로 산행로가 새로이 정비되었더군요
     오늘은 지난해와 달리 '산행팀'과 '메뚜기잡이팀'으로 나누워
     산행팀은 산행을 하고 난뒤에 메뚜기잡이팀하고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메뚜기잡이팀은 미리 들판으로 가서 메뚜기를 잡고
     또한 여러 먹을거리들을 미리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형제봉 가는 길]
     언제나 그렇듯 가을 정취를 흠뻑 느끼려고 많은 산객들로 광교산은 만원이었습니다
     
     [형제봉]
     
     [형제봉에서 바라 보는 '비로봉'과 '시루봉']
     오늘은 메뚜기잡이가 있는 날이어서
     비로봉에서 상광교로 내려가 산행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비로봉 오르는 계단]
     지난해에는 없던 계단이 새로이 설치됫더군요
     
     [비로봉 정상 팔각정]
     
     [비로봉에서 바라 보는 '수리산']
     가운데 멀리 지난주에 올랐던 '수리산'이 보입니다
     
     [비로봉에서 기념사진]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
     광교산에서 메뚜기를 잡으러 고색동 들판으로 갔습니다
     산행 대신에 메뚜기를 열심히 잡은 메뚜기팀 교우님들 덕에
     산행팀은 매뚜기를 직접 잡지도 않고 먹기만 할수 있었습니다
     
     [수원시 권선구 "고현초등학교"]
     고현초등학교에 자리 깔고 준비한 음식들을 맛나게 먹었습니다.
     
     [메뚜기 볶음]
     금년에도 메뚜기를 제법 많이 잡았지요?
     요리 할줄 모르는 사람들이 무작정 후라이판에 볶았습니다만
     그런데로 맛은 괜찮았습니다.
     
     [건배]
     "메뚜기~!!"
     "뚜기~ 뚜기~뚜기~" ㅎㅎ
     
     [기념사진]
     준비해주신 집행부에 감사드리며
     특히 석선배님 메뚜기 잡느라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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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방지맥] 계방산 구간 운두령-1496m전망대-계방산 정상-1551m봉- 1462m봉 갈림길[계방지맥 본기점]-가라치 桂芳山 10월 11일(일) 맑은 날씨에 최고의 가을을 알리는 기온의 쾌적한 날에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노동리와 홍천군 내면 사이에 있는 桂芳山으로 향했습니다. [계방지맥] 계방지맥(桂芳枝脈)은 계방산 동쪽 1462.3m봉에서 영월에 이르는 약 80Km의 능선을 말하는데 남한강의 최상류인 동강과 서강을 가르는 산줄기입니다 [계방지맥1구간] 계방지맥(桂芳枝脈)의 실제 들머리는 '桂芳山 정상'에서 한강기맥을 따라 '오대산' 방향으로 가서 1462.3m봉 바로 앞에서 남쪽 영월 방향으로 가는 삼거리 갈림길입니다. 그러므로 계방지맥(桂芳枝脈)을 가려면 우선 '桂芳山 정상'을 올라 1462.3m봉까지 가야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계방지맥1구간]은 "가라치"까지 입니다. 총거리 약 15km [구글어스로 본 '계방지맥1구간'] 구글어스로 본 桂芳山 일반 등산로와 桂芳枝脈 '가라치'까지의 산행로. 오늘도 만만치 않은 산행이 되겠습니다. '운두령'에서 오르는 "桂芳山 일반 등산로"는 많은 산객들이 다니는 코스이니 쉽지만 1462.3m봉에서 시작되는 桂芳枝脈은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는 길이니까요 [이승복 기념관] 서울 서초구청과 외교안보연구원 사이의 골목에서 7시 5분에 출발하여 특이하게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지나 '춘천-원주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에서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바꿔타고 "속사"로 갔습니다. "속사"에서 "운두령"으로 가는 길에 있는 "이승복 기념관"을 잠깐 들렸습니다. '이승복 기념관'은 옛날 이승복이 다니던 초등학교가 폐교가 되어 그곳에다 '이승복 기념관'을 지었더군요. [이승복 기념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 한마디 외침으로 무장 공비들에게 입이 찢겨 살해 당했다는 "이승복" 60년대 말, 그러니까 1968년 12월 9일 삼척 울진에 침투하여 이곳 두메 산골 - 계방산 골자기 '노동리'까지 온 무장 공비들에게 당시 9살이던 이승복 어린이는 과감하게 항거하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답니다 조선일보의 노모 기자는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의 "반공 제일 주의"에 어떻게 호응을 한것인지는 몰라도 조선일보에 대서 특필하면서 두메산골 9살 이승복 어린이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신화"로 또한 "반공의 횃불, 민족적 영웅"으로 부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범정부적으로 이승복 영웅화는 진행되어 이런 기념관까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승복 상] 60년대 말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은 "3선 개헌"을 앞두고 반대 세력을 잠재울 방안들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군사독재 정권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민주화"였으니, 이용할수 있는 것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과장 시켜 용공조작으로 민주화 세력을 억누르는 "반공"이 최고 무기였고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은 "빨갱이"로 내몰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도 좀 그런 면들이 있나요? "이승복 어린이"에 대한 논란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얼마전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났습니다만, 판결 내용이 또 애매하여 더욱 불씨를 지피고있습니다 38년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이승복 사건"은 알만한 사람들에겐 "조작"이라고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다가 "이승복의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조선일보 기사'는 신문기사가 아니라 신문소설을 썼다는 타 매체의 보도가 잇따르고 급기야 언젠가 MBC에서도 방영을 하면서 명예홰손혐의등으로 법정 싸움까지 간 이상한 사건이 됩니다. [이승복 생가(복원)] 60년대말 그러니까 그 당시 이곳 계방산 밑에 있는 '노동리(路洞里)'라는 지금도 몇집 살지 않는 두메산골에는 TV는 커녕 전기도 없어 정치권력과 북한의 동향등 시사적인 뉴스를 알려 주는 방송매체는 접하기 어렸웠던 곳이었습니다 그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란 9살 이승복 어린이가 어떻게하여 그렇게 까지 반공정신이 투철하여 온갖 무기로 중무장한 공비들에게 맨몸으로 항거하며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칠수 있었을까요? 만약 진짜 그랬다면 칭송받아 아까울게 없지만, 고속도로도 없던 낙후된 비포장 도로를 달려 당시에 어떻게 신문기자가 계방산 산골자기까지 신속하게 찾아가 취재를 할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기사를 쓴것이 아니라 소설을 썼다는 얘기들이 識者들 사이에 난무했던 것입니다 [이승복 기념관 내부] 당시에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까지 이승복의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이 실리고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이승복 어린이의 반공정신을 배우라고 교육까지 했습니다 어쩐 일인지 민주화가 된 90년대말에 와서는 교과서에서 슬그머니 삭제됬지만..... 박정희 군사정권과 전두환 군사 정권들 까지는 '이승복'을 무척 많이 울궈 먹었지요 중앙정보부의 용공조작으로 억울하게 간첩이 된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서야 무죄를 선고 받고 지나간 세월을 한스럽게 보낸 백성들은 국가권력의 범죄행위를 어떻게 해야 할지.... 현재도 국가권력의 범죄행위는 과연 없는가 북한과 전쟁을 하며 싸워 나갈 것인가? 아니면 동족으로서 상생의 길을 찾을것인가 정권 연장의 수단으로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지는 않았는가 '이승복'은 어쩌면 '이데올로기'의 영웅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희생자'가 되지는 않았는가 어서 빨리 '이데올로기'문제로 국론이 분열되는 옥신각신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런 씁쓸한 느낌을 가지고 계방산으로 산행을 떠납니다 [雲頭嶺] 오전 10시 45분경 "雲頭嶺"에 도착했습니다.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노동리와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를 잇는 우리나라에 있는 자동차가 다니는 최고 높은 고갯길이랍니다 해발 1,086.7m 桂芳山의 높이가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산인 1,577.4m인데 雲頭嶺의 높이가 1,086.7m이니 약500m의 산을 오른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雲頭嶺 휴게소] 雲頭嶺에는 크지 않은 휴게소가 있어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복잡했습니다. 앞으로 보이는 길이 "한강기맥"의 산줄기가 계방산을 지나, "보래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雲頭嶺 桂芳山 들머리] 桂芳山과 桂芳支脈의 산행 들머리는 雲頭嶺 우측에 계단으로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10시 50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들머리 계단을 올라와 내려다 본 雲頭嶺] 산행 들머리 계단을 올라와 雲頭嶺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고개 중에서 가장 높은 고개랍니다. [들머리 계단을 올라와 내려다 본 雲頭嶺 계곡과 고갯길] 계단을 올라와 雲頭嶺 계곡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높이도 올라 왔군요. 제일 높은 고개 다웁게 계곡도 깊습니다. [桂芳山 첫번째 쉼터 오르는 길] 桂芳山을 오르는 등로는 경사가 완만하여 산행을 즐기는 꾼들은 주로 겨울에 와서 桂芳山의 눈 산행을 즐긴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桂芳支脈이 주목적이기에 겨울에는 곤란하겠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음을 만끽하며 "계수나무가 꽃방울"을 터트리는 桂芳山을 오릅니다 [桂芳山 첫번째 쉼터] 40분쯤 오르니 첫번째 쉼터가 나왔는데 아마도 1,236m봉인듯합니다. 오늘 전국에서 많은 산객들이 몰려 왔습니다 [桂芳山 첫번째 쉼터 이정표] 첫번째 쉼터 뿐만 아니라 곳곳에 이정표와 산행안내판이 있어 편리했으나 桂芳山은 안내판이 없어도 길을 못찾을 염려는 없는 onE WAY였습니다 [1496m 전망대봉] 쉼터를 벗어나 조금 오르니 "1,496m 전망대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처음에 저 봉우리가 정상인줄 알았습니다 어느 산이나 그렇게 쉽게 정상을 내주지는 않지요? ㅎㅎ 그래도 명색이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산인데.... [1496m 전망대봉 오르는 등로] 가을 속으로의 여행 산행이 가을을 만끽할수 있는 최고의 여행이지요 아직은 약간 덜 무러익은 가을 단풍이지만 桂芳山은 울긋불긋한 색동치마를 둘러 입고 도심의 어리뱅뱅이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1496m 전망대봉 오르는 길] 1,496m 전망대 봉우리가 가까이 다가 옵니다 새로운 넓은 세계가 펼쳐집니다. [1496m 전망대봉] 처음에 정상인줄 알았던 1,496m 전망대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이때 시간이 12시 5분이었으니, 운두령에서 이곳까지 1시간 15분 걸렸습니다 [1496m 전망대봉에서 올려다 보는 桂芳山] 전망대봉에 올랐으니 사방을 조망해 보겠습니다. 우선 남쪽으로 "桂芳山 정상"이 가까이 조망됩니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약 20분이 걸렸으며,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완만한 경사이며 거리도 가까웠습니다. [1496m 전망대봉에서 바라 보는 '오대산'] 동쪽으로는 "오대산"이 백두대간의 품속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으며 오대산에서 부터 뻗어 오는 "한강기맥"이 선명하게 산줄기를 보여 줍니다 "계방지맥"은 가운데 능선 끝봉우리에서 남쪽으로 분기합니다. [1496m 전망대봉에서 바라 보는 '설악산'] 북동쪽으로는 안내판을 보고서야 알았지만 여하튼 "설악산"이랍니다. 산줄기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하늘의 구름은 일렁이는 파도에서 포말로 솟아 오른 솜사탕 같습니다. [1496m 전망대봉 안내판과 이정표] 桂芳山 정상까지 700m 약 20분이 걸렸습니다 [桂芳山 정상으로 가는 길] 高原地帶 다웁게 나무들이 더 이상 키높이를 못하는것 같습니다 [桂芳山 정상으로 가는 길] 오늘 서울에서 이곳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산산산"이라는 아이디를 가지신 횐님이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저의 무릎에 蜂針을 놔주었습니다. 효과가 있는지 여부는 앞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효과가 있다고 제가 알려드리면 그때 蜂針을 맞으세요 산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 효과가 있는 걸로느껴집니다만 확실한 임상결과를 듣고 맞으세요 제가 임상실험맨입니다.ㅎㅎ [桂芳山 정상] 이제 더이상 이 산꼭대기 위엔 오를 곳이 없어집니다. '계' 계수나무 桂, '방' 꽃다울 芳 계수나무 꽃다운 山이란 말인가요? "桂樹나무"는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동요 '반달'이라는 노랫가사에만 나오는 전설적인 나무로 그저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반달'은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로서 윤극영선생이 작곡한 동요입니다 일본 군가로 짖밟힌 일제침탈시대에 우리나라 음악을 새로이 정립시킨 분이 '윤극영선생'이지요 저의 교동초등학교 대선배님이기도한 윤극영선생은 소파 방정환선생과 함께 '색동회'를 창립한 우리나라 어린이날을 만든 어린이 사랑이 출중한 분중에 한분이십니다. [桂芳山 정상] 桂芳山 정상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산객들이 진을 치고 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반달≫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이 노래에 대한 해석은 여러 사람들이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해석 두가지를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이 노래가 밤하늘의 '반달'을 노래한 것이지만 정치적인 이미지가 많이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 노래가 만들어 지던 때가 일제침탈의 식민지 시대여서 친일적 색채가 강하다는 것입니다. 즉, "푸른하늘 은하수"는 태평양을 상징하고 "하얀 쪽배"는 태평양의 쪽배같이 닮은 일본열도이며, 쪽배 위에 "토끼 한 마리"는 일본열도 위쪽에 놓인 한반도로 상징화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계수나무 한 나무"라는 것은 토끼 위에 놓인 만주지역에서 산동반도를 잇는 중국 땅 동쪽 대륙을 연상하게 한다고도 합니다. 다소 배타적 비판적 사고를 가지신 분들이 해석하는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당시에 음악을 한 음악가들이 대부분 친일행위를 했기 때문이며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되는 국민동요 "고향의 봄"을 만든 '이원수씨'는 대표적 친일파였으니 다른 분들도 싸잡아 친일파로 매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윤극영선생은 친일파는 아니었습니다. [桂芳山 정상석과 정상탑] 桂芳山은 높이가 1,577m로서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덕유산(1,614m)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산입니다. 桂芳山에는 칡넝쿨이 없다는데 그 이유에 대한 전설이 있더군요. 옛날 용맹스럽고 무서운 '권대감 산신령'이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용마를 타고 달리던 중에 칡덩쿨에 걸려 넘어지자 화가난 '권대감 산신령'이 부적을 써 이산에 던진후부터 모든 칡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호~~오 [桂芳山 정상에서 내려다 본 雲頭嶺 계곡]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동요를 작곡한 윤극영선생을 높이 보는 사람들은 윤극영선생이 '반달'을 작곡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새벽 하늘에 떠있는 반달이 나라 잃은 자신의 모습처럼 보였고, 조선 민족의 처량한 운명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달'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기도 한답니다. 나라 잃은 조선 민족을 망망 대해에 떠도는 한 조각의 조각배로, 갈 곳 없이 하늘을 떠도는 슬픈 새벽달과 같이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돛대도 없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에서 서쪽 나라란 해방의 나라를 의미 했다고 합니다. 저는 친일파 목록에도 없는 '윤극영선생'이기에 '반달'의 의미를 '나라 잃은 슬픔'과 '해방'을 기다리는 묵언의 암시였다고 생각합니다. [桂芳山 정상의 산행 안내] "桂樹나무"는 원산지가 일본입니다. 물론 중국에도 있다고 합니다만 우리나라에 있는 "桂樹나무"는 거의 대부분 일본에서 들여 온것들이랍니다. 그래서 동요 '반달' 속의 '계수나무'는 친일적인 것이라고 흘뜯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桂芳支脈 갈림길 가는 길] 桂芳山 정상을 떠나 "桂芳支脈"으로 갑니다. 지금부터 등산로는 한산해 지기 시작합니다. 대부분 운두령으로 되돌아 가기에.... 앞에 펼쳐지는 오대산이 그림같습니다. [1551m봉에서 뒤 돌아본 "桂芳山 정상"과 "1496m 전망대봉"] 계방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1,551m봉에 와서 뒤돌아 보니 "桂芳山 정상"과 "1496m 전망대봉"을 잇는 능선이 한마리의 龍이 승천하려고 꿈틀대는 듯합니다 [桂芳支脈 갈림길 가는 길] 봉우리를 두어개 더 넘어야 "桂芳支脈 분기점"을 갈수 있습니다. [桂芳山 일반 등산로 하산 갈림길] 12시 45분에 계방산 하산 일반 등산로 갈림길에 왔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강기맥'을 따라 직진할수 없다고 등산로 폐쇠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 오른쪽 '오토캠핑장'으로 하산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직진해야 "桂芳支脈 분기점"을 갈수 있기에 전진을 해야합니다. [桂芳山 일반 등산로 하산 갈림길에 있는 "주목나무"] 갈림길에 있는 "주목나무"는 보호수이더군요. 이쪽으로 내려가면 계방산 주차장이 나옵니다. [1462m봉으로 가며 뒤 돌아 본 "桂芳山 정상"과 "1496m 전망대봉"] "桂芳支脈 분기점"이 있는 1,462m봉으로 가면서 다시 뒤돌아 봤습니다. "桂芳山 정상"과 "1496m 전망대봉"이 더욱 평화롭습니다. 이산이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산 맞어요? ㅠㅠ [1462m봉과 "계방지맥"]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1,462m 桂芳支脈 분기점"이 있는 봉우리입니다. 우측으로 桂芳支脈이 분기하기 시작합니다. [桂芳支脈] 사진의 가운데 이어진 산줄기가 "桂芳支脈" 산줄기입니다. 선명하게 보이시죠? [자작나무 군락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자작나무와 박달나무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지요? 산행대장인 '개살구님' 회원이 여기서 자작나무로 지팡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1462m봉] "桂芳支脈" 분기점을 이루는 "桂芳山"의 "1,462m봉 정상"을 옆구리로 돌아 나아 갑니다. [한강기맥과 桂芳支脈 갈림길] 오후 1시 30분경에 드디어 "桂芳支脈 분기점"에 왔습니다 여기서 직진하면 한강기맥 오대산 방향이고, 우측으로 "桂芳支脈"입니다. [桂芳支脈으로 출발하며 바라 본 "桂芳山 정상"과 "1551m봉"] "桂芳支脈 분기점"에서 약 45분 정도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후 2시 15분경에 출발합니다. 우측으로 桂芳山 정상과 1,551m봉이 보입니다. [桂芳支脈 속으로....] 이제부터 우리팀 이외에는 어느 누구의 그림자도 볼수 없는 桂芳支脈 속으로 들어 갑니다. 복잡한 계방산 일반 등산로에서 벗어나, 산행의 즐거움이 이제서야 소록소록 생겨납니다. [깊어 가는 가을] 이곳 산줄기가 "오대산 국립공원의 경계선"에 있는 桂芳山 줄기입니다. 현재는 "오대산 국립공원" 안을 걷고 있는 것이지요 다양한 색깔의 미니 스캇트를 입고 유혹하고 있는 산 산 산...... [1602m봉] 오후 3시에 1,602m봉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독도를 다시하며 다시 가을 속으로 빠져 듭니다. 계방지맥 단풍길 저산 넘어엔 자작나무 한그루 빨간 잠자리 근심도 걱정도 모두 잊고서 놀기도 잘도 논다 대자연 속에서 ㅎㅎ '반달'을 표절해서 가사 하나 지었는데 어떠세요? 괜찮으니 동요 하나 만들라구요? ㅎㅎ [1,102m봉 삼각점] "계방지맥" 산행길에는 특이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이런 삼각점을 만나고, 정상적인 길을 가고있는지 독도를 다시하고.... 그래서 지맥분기점에서 3시간 40분이 걸린 "가라치"까지의 산행길의 이모저모는 특이한 것이 없어 산행기에 간단하게 씁니다 대자연 속에서 그저 열심히 걷기만 합니다. 어느 산봉우리에서 마지막 한잔을 합니다. 이 맛은 ......않갈켜줍니다 ㅎㅎ 그리고 여기서 야생 벌을 한마리 잡아 무릎에 다시 봉침을 한방 더 맞았습니다. 양봉하는 꿀벌보다 훨씬 더 쌘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산행기를 쓰는 지금 무릎은 퉁퉁 부어 있습니다만, 어떤 통증은 없습니다. 다만 약간 가렵더군요 [이승복 생가로 내려 가는 갈림길] 평창군 봉평면 노동리(路洞里) "이승복 생가"로 내려 가는 삼거리입니다. 빨리 하산 할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직진해야 합니다. 이름 모를 산봉우리의 삼각점을 지나 갑니다 봉우리 이름이나 높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동서남북을 잘 가리며 길을 잃지않고 빨리 가는 것 뿐입니다. 계방지맥 1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1,108m봉을 지나 갑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가 알바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독도에 조심해야 할 곳입니다.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가라치] 계방지맥 1구간의 종착역 "가라치"가 내려다 보입니다. '가라치'는 산줄기를 심하게 절개를 하여 절벽이었습니다. 여기서 조심해서 내려 가야합니다. [가라치 절개지 내려 가는 길] 처음 계획은 "운두령"에서 이곳 "가라치"를 지나 영동고속도로가 있는 "속사리재"까지 가려고 했습니다만, 지맥 분기점에서 여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 '가라치'를 1구간의 날머리로 정했습니다. [가라치] 봉평면 속사리(束沙里)에서 진부면 척천리(尺川里)로 넘어 가는 고갯길입니다. 이 고개 넘어 바로 척천리(尺川里)에는 초정약수와 함께 유명한 "방아다리 약숫터"가 있지요 오후 5시 50분에 도착하였습니다 [뒷풀이] 라면에 돼지고기에 김치에 쇠주에......ㅎㅎ [계방산 산행코스] 빨간 색으로 표시된 선이 오늘 산행 코스입니다 산행거리 약 15km 산행시간 약 7시간 [蜂針 전문가 '산산산님'] 蜂針 전문가 '산산산님'은 산에만 다니는 줄 알았더니, 약초에 대해서도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고 蜂針과 뱀에 대해서도 모르는게 없었습니다. 돌아 오는 차안에서도 蜂針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돌아 오는 차안에서 蜂針을 한방 더 맞아 3방을 오늘 왼쪽 무릎에 맞았습니다 결과는 앞으로 일주일에 한번 쓰는 산행기에서 중계방송을 해 드릴 예정입니다. 그러니 임상실험맨인 제가 효과를 보면 그때 '퇴행성 관절염' '디스크' '탈모'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蜂針을 시도해 보시기 바람니다. [蜂針 맞을 때(좌측 사진 - 봉침 보이십니까?)와 맞은 후(오른쪽 사진의 왼쪽 무릎이 부어 오릅니다)] 사진 색깔이 다른 이유는 오전 자연광에서 찍은 사진과 밤에 돌아 오는 버스 안에서 플레쉬로 찍어서 붉은 색을 나타 내는데 약간 부어 붉어지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저의 경험에 의하면 蜂針은 맞을 때 따끔하게 아픕니다. 벌의 자기 생명과 바꾸는 마지막 저항이니 오죽하겠습니까 그리고 2~3분간 우리하게 매우 아픈 통증을 느낌니다만, 주사 맞는 정도라고 생각 됩니다. 그리곤 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한시간 이상 지나면 부은 자리가 약간 가렵기 시작합니다. 약 3일간 붓기가 빠지지않다가, 3일이 지난후 붓기가 빠지기 시작합니다. 퇴행성 관절염이 치료되는지는 앞으로의 산행기를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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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 도립공원 종주] 명학역-175m봉-관모봉-태을봉-병풍바위-칼바위- 429m봉-슬기봉-수암봉-335m군철문-병목안공원 修理山 京畿道立公園 경기도에는 세개의 도립공원이 있습니다 첫번째가 1971년에 지정된 "남한산성 도립공원"이고, 두번째가 2005년에 지정된 가평의 "연인산 도립공원"입니다. 그리고 금년에 세번째로 "修理山"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修理山이 京畿道立公園으로 지정되었다기에 그럴만한 값어치가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 직접 찾아 보았습니다. 저와 함께 修理山으로 함께 가 볼까요? [修理山 京畿道立公園 종주 개념도] 修理山은 군포시 속달동(4.3㎢), 안양시 안양동(2.55㎢), 안산시 수암동(0.12㎢)에 걸쳐 있고 주말 기준으로 1일 1만4천명, 연간 140만명이 이용하는 도심속 녹색섬이라고 자랑합니다. 京畿道立公園으로 지정되어서 산을 공원으로 가꾸는데 관련 예산 약116억원이 앞으로 집중 투입된다고하니 몇년후에는 더 많은 산객들이 찾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修理山 京畿道立公園 종주 개념도]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수리산 종주 개념도를 보여 드림니다. 전철 1호선 "명학역"에서 바로 산행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관모봉, 태을봉, 슬기봉, 수암봉을 돌아 안양 "병목안골"로 내려오는 제법 긴 거리입니다. [명학역] 추석연휴에 산행을 못해, 10월 5일(월)에 짬을 내어 "명학역"으로 갔습니다 '명학'은 "울 鳴"에 "학 鶴"이니 "鶴이 소리내어 우는 곳"이라는 의미이겠죠 조금 늦은 오전 11시 40분에 명학역에 내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바로 걷기 시작합니다 산행 들머리를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멀리서 산은 보이지만 어디로 들어 가야하는지는 잘 모르기에 가고 싶어도 산행 들머리를 몰라 못가시는 분들이 많으실겁니다 이제부터 저와 함께하면 그런 걱정은 완전히 없어 질 것입니다 [명학역 앞 도로] 명학역에서 서쪽문으로 나와, 수원방향으로 약150m정도 갑니다. 그러면 조금 넓은 도로와 만나는 삼거리가 나옵니다. [성결대 입구 사거리] 삼거리에서 우측을 보면 "성결대입구 사거리"가 바로 앞에 보입니다. 사거리 뒤로 오늘 오르고자 하는 "수리산"이 어서 오라고 반기며 손짓하고 있습니다. 이 "성결대입구 사거리"를 대각선으로 건너 갑니다. [산행 들머리 가는 길] [수원쪽 첫번째 골목] 성결대입구 사거리를 대각선으로 건너 "수원 방향"으로 약 300m쯤 가면,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우측으로 첫번째 골목이 나옵니다 이 골목 좌측 길건너에는 "OIL BANK 주유소"가 있습니다. [명학 아파트] [효행1로] 첫번째 골목으로 들어가 50m쯤 가면 "4층짜리 명학 아파트"가 나오며, 명학아파트에 "효행1로" 안내표지가 있는 우측 골목으로 들어 갑니다. 그러니까 '명학아파트'를 끼고 아파트 뒤로 돌아 가는 것입니다 [명학아파트 뒤 산행 들머리 철계단] 명학아파트 뒤에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철제 사다리 계단"이 "수리산 종주 산행 들머리"가 되겠습니다. [산행 들머리] 철제 사다리 계단을 오르면 바로 수리산 등산로가 펼쳐집니다. 이제 설명을 들으니 길 찾기가 쉽지요? 설명 없이는 도져히 찾아 갈수 없지만....ㅎㅎ 도심 속에 수리산이 있기 때문에 수리산 산행 들머리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데 왜 이곳을 특별히 산행 들머리로 하는지 궁금하신가요? "수리산 종주"를 하는 경우엔 이곳이 가장 동쪽 끝에 있으므로 이곳에서 출발하여야 종주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더 느낄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갈림길 - 175m봉 가는 길] 수리산의 산행로는 도심 속에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왕래로 등산로가 잘 나있습니다. 또한 사방이 도시이기 때문에 갈림길이 무척 많았습니다. 산행 들머리에서 "관모봉"까지는 갈림길에 유의 해야겠더군요. 사진에서 보이는 희미한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올라 가면 175m봉을 오르고 가는 길이며 직진을 하면 175m봉을 오르지 않고 바로 가는 길입니다. 두 길은 결국 다시 만납니다. 저는 종주를 하기 때문에 175m봉으로 좌측으로 올라 갑니다. [175m봉에서 바라 보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175m봉에 오르니 요란한 자동차 소리가 산을 진동 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옆에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아래에 "산본 I.C."가 있는데 숲으로 잘 보이지 않습니다 좌측엔 "외곽순환고속도로"와 우측에는 "성결대학교 캠퍼스"를 양쪽에 두고 "관모봉"까지 올라 간다고 생각하면되겠습니다 [175m봉에서 바라보는 "태을봉"] "수리산"도 전체적으로 肉山이기때문에 숲이 울창하여 외부 조망이 쉽지 않습니다. 175m봉에서 처음으로 수리산의 "태을봉"이 조망되었습니다. 좌측에는 "산본 I.C."와 "수리터멀" 입구가 있습니다 [5번 송전철탑] 12시 30분에 "5번 송전철탑"을 지나 갑니다. 등로는 비교적 양호합니다 [두번째 갈림길] '5번송전철탑'을 지나면 두번째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해야 합니다. 좌측으로 가면 산본으로 내려 가는 길이라고 하더군요. 추석명절을 바로 지난 월요일 오후여서 산객들이 많지않아 길 묻기가 어려웠습니다. 주말에 가면 아마도 엄청난 산객들로 붐빌것 같습니다. [관모 쉼터] 12시 40분에 "관모 쉼터"에 도착했으니, '명학역'에서 1시간 걸렸습니다. [관모 쉼터] [이정표] "관모 쉼터"는 이 산의 봉우리 이름이 "관모봉 冠帽峰"이기에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부터는 이정표가 잘 설치되 있습니다. '수리약수터'는 산본신도시 방향에 있으며, 안양쪽 '수리약수터'도 있더군요. [관모봉 오르는 길] 제법 가파른 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관모봉 정상부] 관모봉 정상부근에 오르면 암릉길이 시작됩니다. [관모봉 정상] 12시 50분에 "관모봉"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명학역에서 1시간 10분 걸렸습니다. 태극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수리산의 봉우리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곳은 이곳 "관모봉" 뿐입니다 [관모봉 정상] 冠帽峰 정상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먼곳에서 보면 "관이나 모자"를 쓴 봉우리로 보여 글자 그대로 冠帽峰이라고 한답니다. [관모봉 정상석과 이정표] [관모봉 내력] 관모봉에 대해서는 사진 속의 설명을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관모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山本과 軍浦"] "수리산"의 봉우리들 중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이 이곳 "冠帽峰"이었습니다. 사방을 조망하겠습니다. 먼저 남쪽 방향에는 "山本과 軍浦"가 펼쳐지고..... [관모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山本과 모락산", 수원 광교산] 동남쪽으로는 "山本과 의왕시"가 펼쳐지며, 가운데 "모락산"이 의왕시를 지키며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리고 모락산 뒤로 "백운산"과 "광교산"이 "한남정맥" 산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관모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坪村"과 "청계산"] 동쪽으로는 "안양 坪村"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그 뒤로 멀리 "청계산"과 "우담산"이 보이며 그 사이에 "하우고개"가 보입니다. 우측 바로 앞에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산본인터체인지"가 보이며, 수리산 터널 속으로 들어 가고 있습니다. 외곽순환로 옆의 산줄기를 타고 올라 온것입니다. [관모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安陽과 삼성산,관악산"] 동북쪽으로는 "安陽市內"와 그 뒤로 "삼성산과 관악산"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장관입니다. 이렇게 조망이 좋을 줄은 미쳐 몰랐고, 관악산에선 이 산을 바라 보면서도 이 산이 무슨 산이지도 몰랐으니...... 이 사진을 보니 "수리산 관모봉"을 오르고 싶은 생각이 솟아나지 않나요? [관모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안양 병목안 청박골"] 북쪽으로는 안양시 "병목안" '청박골'의 아파트가 보입니다. 저 아파트가 있는 삼거리가 오늘 산행의 날머리가 되겠습니다. [관모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태을봉"] 서쪽으로는 가야할 "태을봉"이 보입니다. "태을봉"은 수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입니다만 완만한 경사여서 오르기 쉽습니다. "태을봉"으로 가는 첫번째 우측 봉우리가 "475m봉"입니다. [노랑바위 안부] "관모봉"과 "태을봉" 사이에는 두군데 안부가 있는데 "노랑바위" 안부가 눈길을 끕니다 그래서 "노랑바위"에 대해 조사를 해 봤습니다. "노랑바위"는 이곳에서 산본쪽으로 내려가는 길 중턱에 산신제당 위쪽에 있는 바위로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더군요 옛날에 어느 임금이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그에게는 불혹이 넘도록 왕통을 이를 왕자가 없었답니다 지극 정성으로 기원하여 드디어 하늘이 감복했는지 기골이 장대한 왕자가 태어납니다. 왕자가 세 살이 되던 해 전란이 일어나자 궁궐을 떠나 강화도로 피난가기 위해 나룻배를 탔으나 심한 폭풍우를 만나 배가 난파하려는 순간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나 왕자를 구해 태우고 육지로 나와 은신처를 찾던 중에 이곳까지 다다라 관모봉 중턱까지 왔답니다. 거북이의 등에 업혀 며칠을 굶다보니 왕자의 몰골은 말이 아니어서 왕자에게 드릴 음식을 구하기 위해 거북이는 마을로 내려갔고, 거북이의 뜻을 모르는 왕자는 거북이가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것으로 오해하여 분한 마음과 배신감에 사로잡혀 바위를 힘껏 주먹으로 내리쳤다고 합니다.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위가 무너지면서 왕자를 덮쳤다는군요. 바위에 깔린 왕자는 노란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두었고, 마을로 내려간 거북이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바위를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왕자의 피가 흐른 이 바위를 ‘노랑바위’라 불렀고, 근처 광정마을에 안양군의 신도비가 세워진 바위를 ‘거북바위’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습니다. [태을봉 오르는 길] '475m봉'을 지나 태을봉으로 오릅니다. 경사는 비교적 완만합니다. [太乙峰 정상]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수리산의 최정상인 "太乙峰" 정상에 오릅니다. [太乙峰 정상] 太乙峰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으며, 월요일 오후인데도 제법 산객들이 보입니다. 1시 20분에 도착했으니, 명학역에서 1시간 40분이 걸렸습니다 [太乙峰 정상석] [太乙峰 설명] 太乙峰에 대해선 사진 안의 설명을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太乙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안양과 삼성산,관악산"] 太乙峰 정상에서의 조망은 "관모봉"보다는 못했습니다. 동북쪽으로 안양과 삼성산, 관악산이 보입니다. [太乙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서울 금천구" 방향] 북쪽으로는 서울 금천구 방향이 보입니다. [太乙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인천 송도" 방향] 북서쪽으로는 인천 송도신도시가 보입니다. [太乙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줌인한 "인천 송도" 방향] 송도신도시는 물론 인천 앞 바다까지 잘 보이는군요 [太乙峰 정상에서 "슬기봉" 가는 길] 이런 유명 산에서도 오늘 알바를 했습니다. 여기 태을봉에서 슬기봉 가는 길에서 알바를 했으니 앞으로 가실 분들은 유의하시기 바람니다. 태을봉 정상에서 슬기봉으로 가려면 서쪽으로 가야 합니다. 사진의 우측입니다. [병풍바위] 太乙峰 정상에서 조금 가면 곧 바로 "병풍바위"가 나옵니다. 특별히 병풍처럼 생겼다고는 느껴지지않는 바위입니다만, 육산인 수리산에서 이런 바위는 흔치 않기 때문에 병풍바위란 이름이 붙여졌나봅니다 [병풍바위] 병풍같나요????? [슬기봉 가는 길] 이 로프가 쳐진 내리막길에서 바로 좌측 능선으로 붙어야 "슬기봉"으로 가는 능선을 탈수 있습니다 그런데 좌측 능선이 잘 보이지 않더군요. 제 눈에는.... 그래서 계속 내려가게 됫습니다. [계곡길 - 알바 구간] 태을봉을 중턱까지 내려갔으니 .... 민망하게 알바를 한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태을봉을 두번 오르는듯한 산행을 하게 됬습니다. [계곡 갈림길 이정표] [수리산 옆구리 길] 길을 잘못들었다고 느낀때는 이 이정표를 보고나서입니다. 이 계곡을 따라 계속 내려가면 '병목안'이 바로 나오는 곳이더군요. 여기서 좌측으로 산옆구리를 따라 "제2만남의 광장"방향으로 다시 올라 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이 수리산 옆구리 횡단로이더군요. [수리산 옆구리 횡단로] 횡단로를 따라 전진하면 '병목안'에서 올라 오는 길을 다시 만나는데 여기서 좌측으로 가야합니다. 능선을 탓으면 간단한걸 어렵게 갑니다. ㅎㅎ 하지만 이런것도 산행의 재미중에 하나입니다. 이 정도의 알바는 '지맥"에서는 애교 정도입니다. [수리산 옆구리 횡단로에서 보이는 "슬기봉"과 "꼬깔봉(군레이다봉)"] 횡단로에서 좌측으로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 가야합니다. 얼마나 엉뚱한 길로 왔는가를 이제서야 알수 있습니다. 하지만 등산은 더 많이합니다. [삼거리 갈림길] 중간에 갈림길을 만나는데 직진합니다. 내려가면 "제2만남의 광장"으로 하산 하는 것입니다. [삼거리 이정표] "순환지점" 방향으로 직진합니다 [태을봉에서 슬기봉 가는 능선 삼거리] 아까 太乙峰 "병풍바위" 바로 지나서 좌측 능선길에서 오는 수리산 능선을 다시 만납니다. 이제부터 다시 능선길로 산행을 계속합니다. [능선 갈림길 이정표] [슬기봉 가는 길] 이곳에 도착하니 오후 2시 정각이었습니다. 太乙峰에서 40분이 걸렸군요. 능선길로 왔으면 650m이니 20분 정도면 올수있었는데.... 머리가 나쁘면 다리가 고생을 합니다. [슬기봉 가는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외곽순환고속도로"] 외곽순환고속도로 '수리터널'과 '수암터널' 사이에 있는 "수리교"가 아래에 보입니다. 다리 뒤의 산줄기를 타고 저 '수리교'로 내려 가야합니다. [슬기봉 가는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줌인한 "외곽순환고속도로"] 修理橋를 줌인했습니다. 왜냐고요? 수리산 능선을 종주하고 저 계곡을 따라 내려 가야하는 오늘 산행의 날머리가 되겠습니다 '수리교'가 있는 저 계곡이 "병목안"인데, 말발굽 모양으로 생긴 수리산 가운데 계곡입니다. 흡사 호리병의 목 안에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병목안"이라는 이름이 지어 졌다는군요 그래서 조선시대에 천주교를 박해 할때 천주교 신자들이 몰래 숨어 들어 담배를 재배하며 살았다고 '담배촌'이라고도 하더군요 "병목안 계곡"은 안양의 유명 피서지이자 유흥음식점들이 많이 있는 곳이란걸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칼바위 부근길] 이곳에서 '슬기봉'까지의 능선이 암릉길이었습니다 [칼바위 안내판] [칼바위에서 바라 보는 "꼬깔봉(軍레이다봉)"] '칼바위'에 오니 "병목안"을 만들고 있는 산봉우리들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봉우리는 451m높이의 軍레이다 돔이 있는 봉우리였습니다. 저 봉우리는 "꼬깔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더군요. 송나라의 대문호 "소동파"는 여산廬山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지요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건 내가 이 산 속에 있어서라네 修理山 속에 들어 오니 소동파의 노래와 달리 저는 修理山의 眞面目을 알수 있을듯합니다...아름답습니다 [칼바위에서 바라 보는 "수암봉"] 그리고 북서쪽으로 "수암봉"이 보입니다. '수암봉'은 안산쪽에서 올려다 보면 "독수리"모양을 하고 있답니다. '수암봉'은 '빼어날 秀, 바위 岩'이라는 한자를 씁니다 이 산의 이름이 "수리산"으로 지으지는 결정적 역활을 한 봉우리가 "수암봉"이었답니다 "수리산"이 독수리산에서 온 것이라고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가운데 계곡이 '병목안'이며, '수리산 산림욕장'입니다. [칼바위] 이곳 칼바위는 석영암이더군요. 다른 산에 있는 대부분의 칼바위는 능선을 이루고 있는데 수리산의 칼바위는 딸랑 이거 하나 [슬기봉으로 오르며 뒤돌아 본 "칼바위"] 슬기봉으로 오르며 뒤 돌아 본 "칼바위" [밧줄바위] 칼바위에서 조금 더 가면 '밧줄바위'가 나오는데 특이한 것은 없습니다. 오로지 밧줄이 있다는 이유로 밧줄바위가 된듯..... [밧줄바위 에서 바라보는 "작은 슬기봉"과 "슬기봉", "꼬깔봉(軍레이다 돔峰)"] 바로 앞 봉우리를 오르면 "슬기봉"이라고 실제 표기해 놨습니다. 429m 높이의 이 봉우리는 실제 "슬기봉"이 아니고, 사진의 가운데 있는 475m 높이의 봉우리가 실제 "슬기봉"입니다. 그런데 밑에 작은 봉우리를 "슬기봉"으로 표기해 놓은 이유는 진짜 "슬기봉"에는 군부대 시설이 있어 올라 갈수가 없어서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아랫 봉우리에 "슬기봉"으로 표기하고 "슬기봉"에 대한 설명이 있는 안내판을 설치해 놨더군요. 그래서 저는 편의상 "작은 슬기봉"과 "슬기봉"으로 표기했습니다. [작은 슬기봉 오르는 길] 작은 슬기봉을 오르는 등로에는 최근에 설치한듯한 계단이 곳곳에 있습니다. [작은 슬기봉 정상] 429m 높이의 '작은 슬기봉'에 올랐습니다. 오후 2시 30분경이었습니다. 휴식과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작은 슬기봉 정상] 정상에는 안내판과 전망설명판이 설치되 있었습니다. '작은 슬기봉'에는 이곳이 진짜 "슬기봉"으로 설명해 놨습니다. 하지만 이 봉우리는 진짜 '슬기봉'이 아니고 "작은 슬기봉"입니다. [슬기봉 설명] 슬기봉에 대한 설명이 있는 안내판에 높이가 475m라고 써놨는데, 뭘좀 아는 분이 숫자를 뭉개놨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앞에서 설명한데로 이 봉우리는 475m 높이의 진짜 슬기봉이 아니고, 429m 높이의 작은 슬기봉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아시는 분이 숫자를 뭉개 놓은듯합니다. [작은 슬기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山本] 남쪽방향 [작은 슬기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山本] 동남쪽방향 山本 新都市가 잘 조망됩니다. [작은 슬기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山本과 의왕시 모락산, 수원 광교산] 山本과 의왕시, 모락산, 멀리 수원의 광교산과 백운산이 보입니다. [작은 슬기봉 정상에서 "슬기봉" 가는 길] ["작은 슬기봉"과 "슬기봉" 사이에 있는 안부와 "슬기봉" 오르는 길] [슬기봉 정상] 실제 "슬기봉" 정상에 왔습니다만, 정상부에는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어 더 이상 올라 갈수없고 대신에 우회 통로 데크를 만들어서 편의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슬기봉"은 수리산에서 489m 높이의 "태을봉" 다음으로 높은 475m입니다. [슬기봉 정상에 있는 우회 데크 통로] '수리산 修理山'이란 이름의 유래는 몇가지가 전해져 내려 오고 있는데 빼어난 山峰의 바위가 마치 독수리와 같아 수리산이라 했다는 설이 있고 신라 진흥왕때 (539∼575) 창건한 절이 信心을 닦는 聖地라 하여 修理寺라 하였는데 그후 山名을 수리산이라 칭하였다는 설이 있으며 또 조선조 어느 때 어느 왕손이 이 산에서 수도를 했기 때문에 李氏가 修道한 산이라 해서 '수리산(修李山)'으로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슬기봉 정상에 있는 우회 데크 통로] "수리산" 이름의 유래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1. 세종실록 지리지 (1454년간행) : 京畿 南陽郡 都護府 案山郡편을 보면 高麗開爲安山郡... 本朝因之. 鎭山. 曰鷲岩(在郡東)... 2. 동국여지승람(1481년간행) : 案山郡 山川에 보면 修理山 : 군동쪽 1리되는 곳에 있으며 일명 견불산(見佛山)이라 한다고하며. 鷲 岩 : 수리산에 있다라고 쓰여있습니다.. 3. 大東地志(1864년간행) : 安山郡 山水에 보면 修理山 : 東五 一云太乙山 一云見佛山 頗峻高 有鷲岩峯 方言 謂鷲爲修理 "동5리에 있는 산을 일러서 태을산 또 일러서 견불산이라고 한다. 자못 크고 높은 취암봉(수암봉)이 있는데 독수리 취자를 일컬어 사투리로 수리修理라고 한다." [슬기봉 정상 우회 데크 통로에서 뒤 돌아 본 태을봉] "태을봉"에서 능선을 따라 간단하게 올수있는 길을 중턱까지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 왔으니 '머리가 나쁘면 다리가 고생을 하죠' 여하튼 산줄기가 멋있습니다. 능선 가운데에 "칼바위"가 있었습니다. [슬기봉 정상 우회 데크 통로에서 바라 본 "꼬깔봉(軍레이다峰)"] 앞에 보이는 레이다 돔이 있는 봉우리가 "꼬깔봉"입니다. 그리고 "漢南正脈"이 좌측 산줄기를 타고와 "수암봉"으로 가는 시작 봉우리이기도 합니다. 공군부대가 점령하고 있어 꼬깔봉은 오를수 없고 우회로를 따라 가야합니다 [슬기봉 정상에 있는 우회 데스크 통로] 슬기봉의 우회 데스크 통로는 잘 설치해 놨습니다. 홍콩의 "OCEAN PARK" 오르는 에스컬레이트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軍用道路] '슬기봉' 우회 데스크 통로가 끝나는 지점에 軍用道路가 잘 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슬기봉" 정상까지 자동차가 다닐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軍部隊정문] [수암봉 가는 길] 軍用道路에 나와 좌측을 보면 바로 軍部隊정문이 보이며 갈수 없고, 우측 아랫쪽으로 가야 합니다. [軍레이다 돔] 내려가는 軍用道路에서 보이는 '軍레이다 돔' 멀게만 느껴졌던 '軍레이다 돔' 바로 아래를 지나고 있습니다. [뒤돌아 본 "슬기봉"과 "우회 데크 통로"] 軍用道路에서 뒤돌아 본 "슬기봉"과 "우회 데크 통로" 우회 데크 통로가 잘 만들어져 있지요? 그리고 진짜 "슬기봉" 정상에는 군시설물들이 있어 갈수 없다는 사실도 확인 가능하구요 [수암봉 갈림길] 軍用道路를 따라 조금 내려 오면 갈림길을 만납니다. 직진하면 "병목안"으로 빨리 하산 할수 있습니다 "수암봉"으로 종주를 하지 않으려면 여기서 내려 가는게 제일 쉽습니다. [수암봉 이정표] "秀岩峰"은 좌측으로 갑니다. [수암봉 가는 길] 갈림길 좌측에는 "수암봉 가는 길"이라는 계단과 팔각정이 있습니다 [수암봉 가는 길] 수암봉 가는 길은 찾기가 매우 쉽습니다. 안내를 잘 해 놨기 때문이며 시설물이 제법 특징이 있게 공을 들였습니다 [군포 갈림길] '수암봉 가는 길'로 "꼬깔산" 옆구리를 타고 오르면 처음으로 "한남정맥 마루금"을 만나는데 이곳이 '군포 軍浦'와 '수암봉'으로 가는 갈림길입니다. 수암봉은 우측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진행 합니다. [가야할 "수암봉"]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나아 가면 멀리 가야할 "수암봉"이 빼어난 암봉을 자랑하고 어서 오라고 손짓합니다. 독수리를 닮아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취암 鷲岩이라고 했다고 앞에서 설명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리면 高麗開爲安山郡... 本朝因之. 鎭山. 曰鷲岩 독수리처럼 보이시나요? 안산 쪽에서 올려다 봐야 더욱 실감이 난답니다. [안산 갈림길] 군부대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 다시 갈림길이 나옵니다 좌측이 안산으로 내려 가는 길이고, 직진이 "수암봉" 가는 길입니다 [안산 갈림길에서 바라 보는 안산과 "시화호"] 시흥에서 화성까지 바다를 막아 호수를 만들었다고 "시화호" 아주 가깝게 보입니다. [수암봉 앞 사거리] 수암봉 오르기 직전에 사거리 안부가 있는데 현재 공사중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안부가 많은 산객들을 유치하겠더군요. 왜냐하면 왼쪽이 안산, 오른쪽이 안양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합쳐지는 곳이기 때문 [수암봉 앞 사거리 이정표] 이정표의 거리 표시는 정확하지 않은듯했습니다. 안양시, 군포시, 안산시가 따로 자기 구역에 자기가 만든 이정표를 따로 설치했기 때문에 3개市가 함께 협조하며 거리 측정을 하지 않아 서로의 거리표시가 부정확한듯....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수암봉"] 사거리 안부에서 조금 오르면 바로 헬기장이 나오며 "수암봉"이 눈앞에 다가 옵니다. [수암봉 오르는 길] 안부 사거리에서 20분이면 수암산 정상까지 오를수 있도록 계단을 설치해 놨습니다 [수암봉 오르는 계단] 제법 긴 계단을 오릅니다 [수암봉 정상부에서 바라 보는 "태을봉"과 "수리터널"] "수암봉"에 오니 "修理山'의 "太乙峰", 칼바위가 있는 능선이 완벽하게 조망됩니다. 그리고 "수리터널"과 "수리교"가 그 모양을 뽑냅니다. [수암봉 정상부에서 바라 보는 "슬기봉"과 "꼬깔봉(軍레이다돔峰)" - 漢南正脈] 칼바위 능선에 연이어 "작은 슬기봉", "슬기봉", "꼬깔봉(軍레이다돔峰)"이 선명하며, 수암봉으로 오는 漢南正脈마루금도 뚜렸합니다. 안부 사거리에서 올랐던 헬기장이 바로 앞에 내려다 보입니다. 修理山 속에 들어 오니 소동파의 노래와 달리 저는 修理山의 眞面目을 알수 있을듯합니다...아름답습니다 [秀岩峰 정상] 오후 4시 "빼어날 秀, 바위 岩"을 쓰는 秀岩峰 정상에 올랐습니다. '명학역'에서 4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秀岩峰 정상석] 秀岩峰은 글자 그대로 빼어난 岩峰입니다. 395m높이로 높지는 않지만 서해가 가까운 이곳에서는 보기 드문 岩峰이기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오고 있다고하네요 [秀岩峰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남분기점"] 秀岩峰 정상에서는 조망도 일품이었습니다. 우선 서북쪽으로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이 秀岩峰을 관통하여 나아가 "서해안고속도로"와 만나는 "조남분기점"이 조망됩니다. 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고 지나 다니면서 언제나 한번 올라 갈려는지 했는데 오늘 드디어 올라서 내려다 보고있습니다. 감개무량~ 이 맛에 산을 오르기도 하지요 [秀岩峰 정상에서 바라보는 "태을봉"과 "수리터널", 그리고 멀리 "관악산"] 좌측 능선을 따라 하산하여 저 "수리교"로 갈 예정입니다. 여기서 약 한시간 정도 걸려 '병목안'으로 내려가 버스정류장까지 갔습니다. [秀岩峰 정상에서 바라보는 "시화호"] 秀岩峰 정상에는 대단한 규모의 전망대를 설치하고 있었습니다. 도립공원 지정으로 돈을 바르는 중인듯 합니다 서해로 기우는 태양의 빛을 반사하며 '시화호'가 빛나고 있습니다 [秀岩峰 정상 이정표] 秀岩峰 정상에는 이런 이정표가 친절히 설치되 있습니다. '소나무 쉼터'를 지나 "순환지점(통제지점)"이라는 곳까지 가야합니다. 여기도 漢南正脈 마루금입니다 [秀岩峰 정상에서 바라보는 "" 순환종점봉우리] 표시를 해 놓은 조그만 봉우리가 "순환지점(통제지점)"이라는 곳입니다. 저곳에서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 가야 합니다. ["소나무 쉼터" 가는 길] "소나무 쉼터" 가는 길에도 온통 소나무들이 빽빽히 서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소나무 쉼터] 秀岩峰에서 약 15분이 걸려 "소나무 쉼터"에 왔습니다 추석을 바로 지낸 월요일 오후인데도 건강산행을 하는 주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소나무 쉼터 이정표] "순환지점"이라는 곳으로 계속 직진합니다 [수리산 335m순환봉 가는 길] 아주 완만한 경사를 여유롭게 오릅니다. [수리산 335m순환봉] 더 이상 직진할수 없는 335m봉우리에 왔습니다 군부대 출입금지 철조망이 쳐져있어 더 이상은 갈수 없고 "수리산 종주 코스"는 여기서 우측 능선을 탑니다. ["병목안골"로 하산] '335m순환봉'에서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하산합니다. [갈림길] 조금 내려 가면 또다시 군부대출입통제구역 갈림길 삼거리가 나옵니다. 여기서 "수리산종주능선"과 "漢南正脈 마루금"을 버리고 "병목안" 계곡으로 내려 갑니다 [갈림길 이정표] [병목안으로 하산하는 길] '순례자 성당" 방향으로 내려 갑니다. 이 "병목안 계곡"에는 천주교 박해 당시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 담배를 재배하며 목숨을 연명하던 천주교 신자들이 살았다고 앞에서도 설명드린바 있습니다. "병목안 계곡"은 숨어 살기에는 좋은 곳 같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제법 알려진 '순례자 성당'이 있다는군요 [음식점] 산길을 벗어 나면 바로 음식점 두곳이 나옵니다. 이런 곳에 있는 음식점들은 대부분 오리나 닭을 팔지요 [태을봉을 바라 보며 포장도로를 따라 하산] 포장길으 따라 조금 내려 오면..... [외곽순환고속도로 "수리터널"과 "수리교"] 태을봉에서 부터 슬기봉 수암봉을 돌때까지 보이던 외곽순환고속도로 "수리터널"과 "수리교"가 드디어 나타납니다. [외곽순환고속도로 "수리교"] 저 다리 안쪽으로 대형 주차장이 있으며, 안양에서 오르는 수리산 산행들머리 "만남의 광장"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수리산의 봉우리를 오르려면 이 곳에서 시작하면 쉽습니다. [병목안골]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 가는데 45분이 걸렸으니 제법 긴 거리입니다. 이런 날머리가 지루하고 재미없지요 ["안양 병목안 공원"과 "안양 한증막"] 40분 정도 내려 가면 우측으로 "안양 한증막"이 큰규모로 있고, 앞에는 "안양 병목안 시민 공원"이 조성되 있습니다. [안양 병목안 공원] '안양 병목안 공원'의 규모가 상당했습니다. 시간 관계상 들어 가 구경은 못했습니다. [병목안 청박골 - 버스 타는 곳] 오후 5시 10분에 "병목안 청박골" - 버스 타는 곳으로 내려 왔습니다 저 앞 아파트가 있는 삼거리에 안양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수시로 다니고 있더군요 [병목안 청박골 삼거리에 있는 "병목안 공원 입구"] 공원 정문 입구 삼거리에 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금정역'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나왔습니다 걸은 거리는 잘 모르겠으나 대략 12~3km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왜냐하면 제가 산행을 평균 1시간에 2.2km정도를 걷기 때문에 역산해서 나온 수치입니다. (오르막, 내리막, 휴식, 식사 시간을 모두 포함하여 평균을 낸 속도입니다) 명학역에서 오전 11시 40분에 출발하여 오후 5시 10분에 '병목안 청박골'에 도착했으니 "수리산종주"에 5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하루 산행으로 아주 적당한 건강 산행 코스로 강력 추천 드림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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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지맥 마지막구간] 배후령-688m봉-784.6m봉-661m버섯바위- 水利峰-양통고개-546m헬기장-牛頭山 兜率枝脈 6월13일부터 격주로 진행해온 兜率枝脈의 마지막 구간에 왔습니다. 굽이치는 산줄기는 강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며 하늘 아래에선 파도처럼 출렁거렸습니다. 금강산에서 부터 굽이친 兜率枝脈은 이제 춘천의 두물머리에서 긴 허리를 펴고 물속으로 잠김니다 [도솔지맥 개념도] 6월 13일 : [도솔지맥1구간]돌산령-도솔산-대암산-광치령 6월 28일 : [도솔지맥2구간]광치령-개골령-907m봉 군부대-두무동고개 8월 30일 : [도솔지맥3구간]두무동고개-양구터널-봉화산-공리고개 7월 26일 : [도솔지맥4구간]공리고개-越北峴-1031m봉-四明山-1004m봉-817m봉-추곡약수 9월 23일 : [도솔지맥5구간]배후령-오봉산-부용산-종류산-죽엽산-운수령 9월 27일 : [도솔지맥6구간]배후령-水利峰-양통고개-546m헬기장-牛頭山 금강산에서 부터 시작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우리가 갈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아 兜率枝脈을 종주 했다고 자부심을 갖습니다 [背後嶺] 9월 27일(일) 오전 9시20분에 강원도 춘천시와 화천군의 경계인 "배후령"에 다시 왔습니다. 背後嶺이라는 한자를 보면 이곳의 뒤에는 뭔가 뒷끝이 찜찜하게 괴뢰군이 곧 쳐 내려 올듯한 느낌이 스치고 지나 갑니다. 兜率枝脈이 지나는 해발 600m의 고갯마루이므로 산객들은 이곳이 시작과 끝이 됩니다 이어져 있어야 할 산줄기는 도로를 내기 위해 가운데를 절개했으니 兜率枝脈은 인간들에 의해 허리가 잘렸습니다. 앞으로 이 아래에 背後嶺 터널이 뚤리면 저 산줄기를 다시 이어 주기를.... [背後嶺 - 38선] 南과 北이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도우며 살아 간다면 세계 최고의 일류 국가가 될 韓國이라 확신하는데.... 저런 경계석만 보면 괜히 씁쓸해지는건 저 뿐만이 아니겠지요. [背後嶺 휴게소 - 오봉산수] 背後嶺에 있는 휴게소 "오봉산수"입니다. 五峰山이 바로 옆에 있어 '배후령휴게소'가 아닌 '五峰山水'라고 했나 봅니다. 背後嶺은 조금 기분 나쁜 느낌을 주니 '五峰山水'라고 지은건 잘했다고 생각됩니다 이곳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출발합니다. [背後嶺에서 바라보는 양구] 背後嶺에서 지나온 산줄기를 바라 봤습니다. 양구를 감싸고 도는 '도솔지맥'이 파도처럼 일렁입니다. [背後嶺 산행 들머리] '五峰山水' 휴게소 바로 옆으로 산행 들머리를 잡습니다. 9시 35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背後嶺 산행 들머리] '五峰山水' 휴게소에서 50m쯤 오르면 "용화산-수리봉" 산행로를 알리는 이정표가 우리를 반깁니다. [수리봉, 용화산 가는길] 용화산 7.4km 수리봉 7.8km 도솔지맥은 '용화산'으로 가지않고, '수리봉'으로 갑니다 [전망바위] 배후령에서 약 10분 정도 오르면 背後嶺을 내려다 볼수 있는 전망바위가 나옵니다 [688m 전망바위에서 바라 보는 "배후령"과 "경문산"] 전망바위에서 背後嶺을 내려다 봅니다. 背後嶺 뒤에 솟은 산이 "경문산"인데, "오봉산"보다 더 높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五峰山을 "경문산"이라고도 했답니다. 五峰山의 원래 이름은 '산경표'에서 "淸平山"이라고 표기되 있습니다 경문산 좌측으로 五峰山 산줄기가 시작 됩니다. [688m 전망바위에서 바라 보는 "춘천시내"] 오늘 안개가 많이 끼어 조망이 매우 흐립니다. 아쉽습니다. [688m봉에서 보이는 가야할 653m봉] 앞으로 가야할 봉우리들이 나무닢 사이로 조금씩 보입니다. [도솔지맥 마루금] 653m봉 가는 등로입니다. 오늘은 산행기에 특별히 길 안내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구간은 길이 명확하게 잘 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정표도 중간에 필요한 곳에 잘 설치되 있기 때문입니다. [653m봉 중턱에서 뒤 돌아 본 지나온 산줄기] 아까 배후령을 조망했던 688m 전망바위가 있던 봉우리가 가운데 있으며, 그 뒤로 "경문산"이 선명하게 솟아 있습니다. 그리고 좌측으로 '오봉산'능선이 펼쳐집니다. [653m봉 중턱에서 뒤 돌아 본 "오봉산"] 五峰山이 다섯봉우리를 조막조막하게 보여줍니다. 五峰山 좌측 뒤로 "부용산 芙蓉山"이 보입니다. 제가 부용산 산행기에서 김부용의 칠언절구 詩를 알려드렸지요? 다시 한번 감상해 볼까요? 成川芙蓉何事能 성천에 사는 '부용'은 무슨 일을 잘 할까요. 能歌能舞詩詞能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고, 글 또한 잘 짓지요. 能之能中唯一能 잘 하고 잘 하는 가운데 더욱 잘 하는 한 가지는 夜半三更歡夫能 밤 깊은 삼경에 '남정네를 즐겁게 하는 것'이오. [책 바위] 이쪽 구간에는 가끔 바위들이 보였습니다. 책을 쌓아 논듯한 바위이군요 [怪岩] 이름 붙여 주세요 [745m봉] 745m봉에 올랐습니다. 대체적으로 肉山이기 때문에 외부 조망이 어렵습니다. [745m봉에서 바라 보는 춘천방향 - 삼악산] 멀리 "삼악산"이 보이는군요. [784.6m봉 오르는 길의 소나무] 두 소나무가 연리지처럼 서로 껴안고 서 있습니다. [수리봉 - 용화산 갈림길] "수리봉과 용화산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가 784.6m봉입니다. 10시 50분에 이곳에 도착했으니 배후령에서 1시간 15분 걸렸습니다 [수리봉 - 용화산 갈림길 이정표] 수리봉까지 5km가 남았습니다. 그리고 수리봉에서 우두산까지는 또 13km정도 가야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졸업구간이고, 춘천시내구간은 枝脈종주에 큰 의미가 없으므로 생략하고 오랜만에 "졸업파티"를 "춘천 닭갈비집"에서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약11km정도를 걷고 '도로 트랙킹'은 생략하려고 합니다 [수리봉 - 용화산 갈림길 봉우리 - 784.6m봉] 784.6m봉우리를 올라가서 "용화산"으로 갈수도 있습니다. 아까 있었던 갈림길은 784.6m봉을 오르지 않고 우회해서 빨리 가는 길이었습니다 [水利峰 가는 길] 용화산-수리봉 갈림길봉우리를 지나 완전히 남쪽방향으로 꺽어 水利峰으로 갑니다 [661m봉 버섯바위] 도솔지맥 마지막구간에서 만날수 있는 독특한 바위가 있는 661m봉입니다. 11시 5분에 도착했으니 배후령에서 1시간 30분 걸렸습니다. [버섯바위] 버섯바위? 뭐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꼭 기억하시고 이름을 붙이세요~~ㅎㅎ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대화 중에서.....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에게 "개눈엔 똥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중생이 모두 부처로 보인다" [638m봉 가는 길] 크고 작은 봉우리는 계속 이어집니다. 내려가고 올라 가고를 반복합니다. [638m봉] 이렇게 심심산꼭대기에 묘를 써 놨습니다 어떻게 성묘를 다닐려고....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고.... 12시 10분에 출발합니다 [출입금지구역] 특별한 국가시설이 없는데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통과합니다. 사람들의 통행이 뜸한 이런 지맥길을 걸어 보세요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그런 유명 산들보다 산행의 즐거움을 새롭게 해 줍니다 때론 길을 잃고 헤메이고.... 깊은 산속에서 만나는 새로운 산의 형상들을 만나며 가는 산행 이런 묘미에 한번 빠지면 산꾼이 되는 것입니다 [水利峰] 통행통제구역을 통과하면서 보이는 오늘 산행의 핵심 봉우리인 "水利峰"이 보입니다 [水利峰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마루금] 우측 뒤 봉우리가 "경문산"이고, 그 좌측 가운대가 "오봉산"이며, 맨 뒤에 "부용산"이 보입니다. 배후령에서 우리가 "C"자로 산줄기를 따라 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통행통제구역이 제법 범위가 넓습니다. [출입통제구역 탈출] 출입통제구역이 산봉우리 두개 사이인듯.... [水利峰] 水利峰이 가까이 다가 옵니다 [용화산] 水利峰 오르는 길목에서 보이는 花川의 龍華山 조만간 용화산은 꼭 가봐야겠습니다. [水利峰 오르는 등로] 가파른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水利峰] 水利峰 정상에 올랐습니다. 특별히 볼꺼리는 없고, 정상석과 이정표만이 산객들을 반깁니다. [水利峰] 水利峰은 춘천시 신북읍 발산2리의 뒷산이더군요. [水利峰 정상석과 이정표] "수리봉"은 전국에 수없이 많지만, 일반적으로 "독수리"처럼 생겼다고 "수리봉"이라고 하는데, 이곳의 "수리봉"은 독특하게 "水利峰"이라고 하는군요. 호반의 도시이기 때문에 아마도 물과 관계가 있는듯합니다. [水利峰에서 내려다 본 춘천] 발산리가 내려다 보입니다. [水利峰에서 "양통고개"로 하산] [양통고개 이정표] 화천쪽으로 "양통리"가 있더군요. [546m봉 헬기장으로 오르는 길]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546m 헬기장 봉우리로 오릅니다 오늘은 明太祖 朱元璋의 조부 묘가 춘천에 있다 라는 1990년 12월 31일자 스포츠 서울 신문에 대서 특보로 난 기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無子孫千年香華之地(무자손천년향화지지)라. 즉 손이 없어도 천년동안 향내가 끊이지 않는다는 '천하 명당'의 묘가 이땅에 두곳 있는데 그중 하나가 춘천에 있는 "주원장 할아버지의 묘"라는 기사입니다. [546m봉 헬기장으로 오르는 길] "無子孫千年香華之地"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나라의 朱氏에 대해 알아 보아야 이해가 쉽게 갑니다. 우리나라의 신안 朱氏는 중국에서 도망쳐 온 중국인들입니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오게되는 당시 상황은 이렇습니다. 宋나라를 멸망시킨 元나라는 宋나라의 많은 학자와 정치가들을 앞세워 통치 하려 하였으나 不仕二君의 뜻을 굽히지 않고 불응한 한림학자 중 주자 朱子의 증손 주잠 朱潛은 1224년(고려 고종 11)에 1남 1녀와 7 학사(섭공제,조창,진조순,주세현,유응규,두행수,도성차)를 대동하고, 高麗 지금의 전라남도 능주 땅에 몰래 밀항하여 상륙하게 됩니다. 이것을 안 元에서는 군대를 보내어 무등산에 진을 치고 망명한 이들을 수색하여 일부(섭공제,조창)는 잡히여 元으로 압송되고, 대부분은 고려 땅 사방으로 흐터져 숨어 살면서 자손을 낳게 되니 이들이 "동국시조 청계공(주잠 朱潛 - 주원장 할아버지)"의 후손으로 한반도에 朱氏의 뿌리가 된 것이랍니다 [546m봉 헬기장으로 오르는 길] 다시 신문에 난 기사 내용 추적하여 보면 1320 년대 "주오사"라는 한 젊은 이는 춘천 牛頭山(우두산) 기슭 어느 대가에서 머슴살이 할때 그집에 손님으로 와 여러 날을 묵던 한 노인이 나아가며 계란 한줄을 사다 달라고 하며 계란을 사다가 쇠죽 쑤는 부뚜막 위에 놓고 쇠죽을 다 쑨 뒤에야 그 노인이 들어와 계란을 건내 주었다 다음 날 새벽 그 노인은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그 계란과 삽을 들고 나가는 것이 이상해서 뒤따라 가 살펴 본즉 우두산 기슭 양지 바른 곳에에 그 계란을 파묻고 간뒤 여러 날 뒤에 다시 찾아 와서 매일 계란 묻은 땅에 귀를 대고 듣곤 하다가 "이상하다 이자리가 틀림 없는데"하며 허탈하게 돌아 간뒤에 다시 오지 않았다 이때 주오사는 생각 했다 옛부터 명당에는 계란이 부화 할 만치 온기가 있어 훈기가 난다 하였는데 그 계란은 쇠죽 쑤는 부뚜막에서 이미 죽었기에 부화 할리 없었다고 ..... [546m봉 헬기장 정상]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546m봉우리"입니다. 이곳은 매우 중요한 갈림길이며, 지맥길은 좌측으로 직각으로 꺽여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별로없기에 직진하기 쉬운 곳입니다. "도솔지맥"은 좌측 남쪽으로 내려 가야합니다. [546m봉 헬기장 정상에서 바라 본 "용화산"] 龍華山이 가장 아름답게 조망되는 곳입니다. [546m봉 헬기장 정상에서 바라 본 "춘천 시내"와 "우두산"] 사진의 가운데 검게 길게 뻗어 있는 숲줄기가 "도솔지맥"입니다. 그리고 "昭陽江" 건너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이 보입니다. [546m봉 헬기장 정상에서 줌인한 "우두산"] "도솔지맥"의 끝인 "牛頭山"을 줌인하였습니다. "昭陽江"과 "北漢江"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우두평야"가 펼쳐져 있고, 그리고 "牛頭山"이 소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금강산에서부터 내리 뻗은 "도솔지맥"은 이곳까지 흘러와 "牛頭山"에 점을 찍고 "昭陽江"과 "北漢江"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산줄기를 뭍습니다. 明太祖 朱元璋의 조부 묘가 춘천에 있다라는 전설은 바로 저곳 "牛頭山"에 있다는 것입니다. [546m봉 헬기장에서 하산하며 바라본 "도솔지맥"의 마지막 마루금] 다시 신문에 난 기사 내용 그후 '주오사'는 자신의 아버지 묘를 계란을 묻었던 곳에 이장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살다가 1328년에 아들을 낳으니 그 아들이 주중팔(朱重八), 송 나라를 물리친 원 나라를 멸망시키고 40세 되던 해, 1368년에 명나라를 세운 태조 朱元璋이다 주오사가 중국으로 떤난뒤에 춘천에서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우두산 양지 바른 곳에 난데 없이 묘가 생겨나니 아이들의 놀이 터가 되기도 하고 소를 매어 놓아 그 묘를 짓 밟아 무너지면 그 다음 날 번듯 하게 다시 솟아 나기를 반복 하니 사람 마다 이상히 여기고 신통한 묘로 생각하고 묘 이름을 '솟을묘'라 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믿고 돌보기 시작 하였다 신통한 묘에 치성하면 재수가 좋고 병도 떨어지며 아기없는 여인도 애기를 갖게 된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니 너나 할것 없이 벌초땐 서로 벌초 하려고 새벽부터 모여들고 한식과 추석에도 향을 올리고 제향 올리 다가 사방에서 사람이 몰려와 일년 내내 묘를 돌보며 향을 올리게 되니 이 소문이 전국에 퍼져 한양에서도 풍수 대가들이 찾아와 지형을 보고 나름대로 풍수지리적 견해를 論 하였다 현재 충혼탑이 서있는 우두산 정상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소가 머리를 들고 강물을 건너는 형국 인데, 묘자리는 그 소의 콧등에 해당하고 맞은편에 있는 봉이산은 신하가 朝禮(조례)하는 형국이라, 황제가 날 명당 중 명당 자리라하며 無子孫千年香華之地 라 하였다 말대로 이 묘는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돌보는 후손은 없어도 지방 사람들에 의해 잘 가꾸어 져 내려 오고 있다 [줌인한 "우두산"] 다시 신문에 난 기사 내용 춘천에 있는 주원장이 탄생한 1328년과 주원장의 아버지가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고 중국으로 건너 간것을 추적하여 년대를 추정해 보면 대략 朱門의 7세손과 비슷 한것을 발견 할수 있다 한편 중국에서는 역대 태조의 5대조(현조)까지 생가와 묘를 찾아 廟號(묘호)와 始號(시호)를 추증하고 묘를 황능으로 크게 단장하였는데 명나라 태조 朱元璋의 선대의 능은 없고 묘호만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동국시조 청계공 朱潛"과 "명나라 시조 朱元璋"과의 관계는 더욱 흥미를 끌게 된다 ** 참조** 1130년 朱喜(朱子) 新安朱氏 1世祖 탄신 1224 4世 朱潛(주잠) 일남일녀와 7학사 대동 고려로 망명 1242 7세 정숙공(인장) 탄생 1246 7세문간공 (인원)탄생 1248 7세 첨의부사(인환)탄생 1268 주원장(명태조) 조부 탄생(주원장 탄생년-60) 1298 주원장 부친,주오사 탄생,(주원장 탄생년-30) 1328 주원장 중국에서 탄생(할아버지묘가 춘천에 있음) 아무리 신문에 난 기사라 하더라도 설화임을 기억해 두시기 바람니다 [546m헬기장봉에서 하산하는 길] 지맥길을 따라 하산하는 이곳은 길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외길이므로 무작정 똑바로 내려 가기만하면 됩니다. [하산길에서 바라 보는 춘천 소양강] "소양강"은 "밝을 昭"에 "태양 陽"을 쓰는 강이니 매우 환하게 밝은 江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숲을 뚤고...] 숲을 헤치고 나아 갑니다. [묘지] 숲을 헤치고 내려가면 이런 묘지가 나옵니다. [묘지에서 뒤돌아 본 도솔지맥 오르는 숲] 내려와서 뒤돌아 보았습니다. 이쪽에서 역으로 올라 갈때에 길찾기가 쉽지는 않겠더군요 [춘천시 신북읍 중리 - 403번 지방도] 묘지에서 조금 내려 오니 조경원이 나왔고 "403번 지방도"가 나옵니다. "도솔지맥" 마지막 구간은 이곳에서 마감합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野山과 도로를 따라 트랙킹하는 코스이기에 단축하고 대신에 "도솔지맥 졸업 파티"를 "춘천 닭갈비집"에 가서 열기 위해서 입니다. 이곳에 도착하니 오후 3시였습니다. 그러므로 배후령에서 5시간 25분이 걸렸습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산행을 마감합니다. [牛頭山 정상 - 조양루] 버스를 타고 바로 "牛頭山 정상"으로 올랐습니다. "牛頭山 정상"까지 도로가 개설되있어 쉽게 올라 갈수 있었습니다. "牛頭山 정상"에 오르면 "충렬탑"과 사진에서 보이는 "조양루 朝陽樓"가 보입니다. [솟을묘] 朝陽樓 앞에는 그 전설 속의 묘가 쓸쓸히 허전하게 있습니다. 중국 明나라를 세운 "朱元璋"의 할아버지 묘라는 전설은 어딘가 허무맹랑한듯한 느낌이... 그래서 여기저기 자료를 검색해 사실여부를 객관적으로 조사해 봤는데, 다행이 믿을만한 공식적인 설명이 "춘천시 공식 홈 페이지"에 나와 있어서 소개해 드림니다. [솟을묘와 우두산 운동시설] 牛頭山은 이곳 주민들의 건강산책코스인듯합니다. 운동시설도 잘 되 있습니다. 우두산과 솟을묘에 대한 전설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춘천시 공식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전설을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우두산과 솟을묘에 대한 전설 '우두 牛頭'를 우리말로 풀으면 '쇠머리'가 된다. 그런데 이 '쇠머리'와 음차로서 비슷한 '솟을 묘'에 대한 전설이 있다. 우두산에 고총이 있는데 그곳에 소를 매면 소 발자국에 무덤이 푹푹 들어가 엉망이 되었다가 하루밤만 자고 나면 도로 솟아나서 소를 맨 흔적이 전혀 없다고 하여 이 우두산의 무덤을 '솟을 묘', '솟을 뫼'라고 하였다 한다. 그런데 근년에는 이웃 사람들이 이를 시험해 보고자 소를 매니 소가 봉분을 뿔로서 파헤쳐 놓았다. 다음 날 무덤에 가보니 파헤친 흔적이 없어져 신비로운 '솟을 묘'라고 널리 알려졌다 한다. 그리고 이 무덤은 아들이 없는 여인이 이 무덤에 와서 몰래 정성껏 벌초를 하면 틀림없이 득남 한다고 알려져 아들이 없는 부인들이 밤새 벌초한다는 얘기도 있다. [朝陽樓] [朝陽樓와 "慶氏묘"] 朝陽樓 앞에는 "솟을묘"보다 더 눈에 띄는 묘가 있었는데 "경주 慶氏" 묘가 있었습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경주 慶氏"도 흔한 性氏는 아닌데..... [朝陽樓에서 내려다 본 "솟을묘"] "솟을묘"에 대한 전설은 정말로 진짜일까? 당연히 현대 과학으로 증명 할수 없는 단순한 설화일 뿐이 아닐까요? "춘천시 공식 홈페이지"에는 다시 궁금증을 풀어 줍니다 이 무덤의 이러한 유래에 대하여 이 지방민들은 재미있는 주석을 달기도 한다. 이 솟을 뫼의 주인 내외는 애당초 자손이 없을 것 같아서 이 무덤을 오랜 뒷날까지 보존하기 위해 한 꾀를 생각해 냈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무덤이 솟아 난다는 솟을 뫼의 전설을 퍼뜨리고 아울러 아들이 없는 부인이 몰래 와서 정중히 벌초를 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소문을 입심 좋게 퍼뜨렸다고 한다. 이 문제의 솟을 뫼는 동리 야산에 자리하고 있어 이웃 사람들이 자주 와서 소를 매든가 아니면 아이들이 짓밟아 놓든가 하여 훼손이 잦았다고 한다. 이렇게 낮동안 무덤이 훼손될 때 마다 이 무덤의 자손은 밤 사이에 무덤을 원상태로 손질해 놓고 솟을 뫼에 대한 전설을 퍼뜨리면서 신비스러운 무덤이라고 일깨워오고 아울러 아들이 없는 사람이 이 무덤을 몰래 벌초를 하면 감쪽같이 아들을 낳는다는 애기도 곁들였다. 세월이 지나 이 자손이 이사를 갔는데도 아들이 없는 사람들이 밤마다 와서 몰래 무덤을 고쳐놓고 가는 바람에 솟을 뫼의 전설은 점점 빛을 보게 되고 솟을 뫼 무덤은 후사가 없어도 건재 하더라는 것이다. 머리 좋은 자손이 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아이디어 였던 것입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할아버지 묘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이야기 꺼리로는 재미있습니다. [朝陽樓에서 내려다 본 충렬탑 방향] [忠烈塔] 牛頭山은 6.25 전쟁때에 勝戰地로도 유명하더군요 [기념사진] "도솔지맥"을 마감하며 기념사진을 忠烈塔 앞에서 찍었습니다. [춘천 소양1교를 건너며 바라본 "소양강처녀"] 牛頭山에서 춘천시청으로 이동하면서 버스 안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지나는 다리가 "昭陽橋"이며, 호반은 "의암호"입니다. 그리고 "의암호 가운데 분수시설과 좌측에 "소양강 처녀" 동상이 서 있습니다. [춘천시청과 봉의산] "춘천시청" 안으로 들어와 주차를 합니다. 뒤로 "봉의산"이 보입니다. [춘천시청 정문] 춘천시청 정문에는 '신문고'를 크게 세워놨습니다.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을 찾아 가려면......... 우선 춘천시청을 찾아 갑니다. 그리고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문으로 나옵니다. 앞에 보이는 큰 빌딩 좌측 골목으로 나아 갑니다. 그리고 중앙로 큰길을 건너가면 됩니다.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주변 분들에게 물어 보면 간단합니다. 하여간 춘천시청 찾아 가는것은 잊으면 않됩니다.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 입구] 전국적으로 유명한 "춘천 닭갈비 골목"입니다. 오른쪽으로 들어 갑니다.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 많은 "닭갈비집"이 있는데 아무 곳이나 선택해서 들어 가면 됩니다.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 골목 바닥에는 이런 동판을 깔아 놨습니다. [춘천 명동 닭갈비] 춘천 닭갈비를 먹으며 "도솔지맥"을 졸업했습니다. 1인분 9,000원이고 여러명이 갈때에는 조금만 시키세요. (예, 5명이 가면 3~4인분만 시켜도 충분한 양이니, 많이 시켜서 남기지 말도록...ㅎㅎ) [구글어스로 본 산행 괘적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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