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年山行 大關嶺-陵景峰-고루포기산-오목골 山行記 세월은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닙니다 시간 속에 사는 우리가 가고 오며 변하는 것일 뿐입니다. 세월이 덧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예측 할수 없는 의미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덧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자신의 덧없는 삶도 세월 탓으로 돌리며 살아 가고 있습니다 세월도 뭐도 모두 "자신의 탓입니다" 새해엔 한번쯤 뒤집어 보며 살자구요 길은 떠나 가기 위해 있는게 아니라 돌아 오기 위해 있는 거라구..... 2010년 1월 3일(일) 新年 첫산행은 母校山岳會인 "徽山會"와 함께 大關嶺 陵景峰 고루포기山으로 갔습니다. [산행지도]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과 강릉시 왕산면에 걸쳐있는 陵景峰 고루포기山으로 갔습니다 [구글어스로 본 "대관령-능경봉" 구간] 이해를 돕기위해 구글어스로 "대관령 휴게소 - 능경봉"까지의 코스를 보여드림니다. 西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는 "대관령 휴게소 - 능경봉"까지입니다 [구글어스로 본 "대관령-능경봉" 구간] 東北쪽에서 南西쪽을 바라보는 "대관령 휴게소 - 능경봉"까지의 코스를 구글어스로 보는 곳입니다. [大關嶺] 오전 7시 40분 잠실 롯데백화점 앞을 출발한 버스는 2시간 45분이 걸려 10시 25분에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현재의 지방도로보다 못한 옛 영동고속도로 大關嶺 정말 오랜만에 大關嶺 휴게소에 내렸습니다. [大關嶺] "大關嶺 휴게소" 수많은 차량들이 굉음을 토하며 엉금엉금 넘어 한숨 돌리며 쉬어 가던곳 이제는 이렇게 산객들이나 찾아오는 한산한 휴게소가 되었습니다. "大關嶺"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大關嶺西四十五里 卽州之 鎭山自女.." 즉, "대관령은 강릉 서쪽 45리에 있으며 이주(강릉부)의 진산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강원도 평창군 횡계리와 강릉시 어흘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99曲을 이루는 험지이나 대관령 정상부 서쪽은 평탄한 고을을 이루며 서울로 가는 큰 길이 있다고 문헌에 적고 있습니다. [大關嶺] "大關嶺 휴게소" 큰 규모의 휴게소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변한것은 풍력발전기가 큰 규모를 자랑하며 덤성덤성 서있는 것입니다. "大關嶺"에는 설화도 많이 전해 져 오는데, 대표적인 것은 강릉에서 대관령방향은 험하여 "대굴대굴 구르는 고개"라는 뜻에서 “대굴령”이라 하였고 이것이 변음되어 "대관령"으로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 오며, 그래도 정설은 영서지방에서 영동지방 으로 오는 “큰 관문이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대관령"이라 한다고 구전되어 온답니다 [大關嶺] "大關嶺 휴게소" 전날은 新年日出 구경꾼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하고 다음날 그러니까 1월 4일에는 아시다시피 사상 최대의 눈이 내려 전국이 눈으로 몸살을 알았는데, 운도 좋은 "徽山會"는 3일에 빈틈을 잘도 파고들어 *적절한 적설량을 즐기고 *바람한점 없는 화려한 날씨 속에서 백두대간길을 遊覽하듯 거닐고 *뻥~뚫린 고속도로를 삽시간에 달려 귀경을 했으니 어찌 재수가 좋은 "徽山會"라 하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위령탑] 10시 40분 강릉방향 대관령 휴게소에서 "고속도로 건설 위령탑"을 산행 들머리로 하며 "능경봉-고루포기산" 산행을 시작합니다. [위령탑] '위령탑'에 올라서서 휴게소방향으로 촬영했습니다. 오늘은 전국에서 많은 산객들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徽山會"는 오늘 평시보다 적은 인원이 참가하여 버스 세대로 왔습니다 [위령탑에서 바라 본 "능경봉"] 바로 앞에 보이는 산봉우리가 "陵景峰"입니다 우리들이 첫번째로 오를 산봉우리이기도 합니다. "陵景峰"은 1,123m 높이로서 "陵, 즉 큰 무덤"같이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규모가 상당한 王陵같아 보이지요? [대관령 해발과 산행안내도] "陵景峰"의 높이가 1,123m로서 높은 山입니다만, 이곳 大關嶺의 높이가 865m이니 실제 산행은 해발로 258m를 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쉽게 오를수 있고, 해돋이 구경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새해에는 이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산행겸 '해돋이' 구경을 하는 곳이랍니다. [강릉과 동해] 위령탑에서 강릉시내와 동해 바다를 조망했습니다. 日出을 보지 못해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만, 바람으로 유명한 대관령에서 바람이 없는 맑은 날씨여서 '해돋이'에 대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산행시작] 10시 53분 "陵景峰"을 향해 긴 행렬이 이어집니다. "陵景峰"까지는 긴 행렬로 누가 더 잘 걷고, 못 걷고가 없이 줄을 서서 걸어야했습니다 대체로 경상도 지방에서 오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빨리 올라 가라카이~"...... [靈泉과 산행통제소] 10시 56분 잠깐 즉 3분 정도 줄을 서서 올라 가니 바로 "靈泉"과 산행통제소가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좌측 林道로 가면 "제왕산"으로 가는 길이고, "능경봉"은 산행통제소 뒷쪽으로 올라 갑니다. [靈泉앞 이정표와 능경봉 오르는 길] 통제소 뒷쪽 登路를 따라 "능경봉"으로 갑니다. "능경봉"까지는 완만한 경사로 어린이들까지 쉽게 오를수 있는 코스입니다. [헬기장 - 쉼터] 11시 33분 산행통제소에서 약 35분 정도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오르면 헬기장이 나옵니다. "능경봉" 바로 아래에 있는 헬기장이니, 여기까지 오면 이미 "능경봉" 산행은 끝난것입니다. 너무 쉽지요~이-ㅇ [陵景峰 정상] 11시 38분 앞 사람들 뒷꽁무니만 바라보며 오르다 보면 금새 "陵景峰 정상"입니다. 약간 허무한 생각이 들 정도로 쉽게 "陵景峰 정상"에 오릅니다 많은 산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입니다. 줄을 서서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새치기 하면 욕먹습니다 [陵景峰 정상석과 이정표] 날씨가 맑으면 울릉도까지 보인다는 곳입니다. "陵景峰"은 한자음에서 알 수 있듯이 "능(陵)처럼 둥글게 보인다"는 뜻에서 온 것으로 "능정산(陵頂山)"으로 불리기도 한다는군요 [陵景峰 정상에 있는 산행 안내도] "陵景峰"은 "능정출일(能政出日)"이라 하여 "頂上에서 바라보는 동해의日出"은 그 아름다움이 제일이라 횡계팔경(橫溪八景)중 하나이랍니다 [陵景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제왕산"] '능경봉' 바로 아래에는 "제왕산"이 보입니다. "제왕산"에는 슬픈 역사가 서려있는 곳이지요 고려 말, 어명을 어기고 '위화도 회군'을 감행한 이성계는 북으로 가 적군을 치지 않고, 돌아와 쿠데타를 일으키지요. 정권을 찬탈한 이성계는 전두환 시절의 최규하 같은 어린 "우왕"을 꼭두각시로 앉히고, 정권을 장악했는데, 그 마져도 모자른다고 "우왕"을 저 "제왕산"으로 귀양을 보냈습니다. '제왕산'에 유배된 "우왕"은 城을 쌓고 두달 동안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근처 마을 이름이 "왕산리 王山里"가 되었으며, '제왕산' 아랫산이 "왕산 王山"이 되었답니다 [강릉 저수지] '제왕산" 뒤로 저수지가 보이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줌인했습니다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백두대간 서쪽, 즉 '고루포기산'과 용평스키장 실버코스 출발점이 있는 "발왕산" 사이에 흐르는 "도암천 都岩川"을 막아 그 물을 15.6km 굴을 파서 백두대간을 관통하여 동쪽으로 落河시켜 수력발전을 하는 "강동수력발전소"가 있는 곳입니다. "白頭大幹", "正脈", "枝脈"등 옛 우리 국토의 母體를 이루는 산줄기들은 기본 원리가 "山自分水嶺" 원칙에 있는데, 이제는 "白頭大幹"에도 구멍을 뚫어 물이 흘러 다니게 하고 있으니, 여암 신경준선생도 고개를 떨구고, 고산자 김정호선생도 울고 있으리라 이제는 물론 '물구멍' 뿐만 아니라 터널도 파고, 강에는 다리도 놓아 옛 산줄기 중심의 지도는 큰 의미를 주지 못하는데, 더더욱 아예 산을 까뭉게서 아파트를 짖고 골프장을 만들고 있지요 [구글어스로 본 "대관령-능경봉" 구간] 대관령 휴게소에서 능경봉으로 올라온 방향으로 본 구글어스. 대관령 휴게소에서 능경봉까지는 쉽게 올랐습니다만, 이제부터가 "고루포기산"까지 긴 산행을 해야합니다 [행운의 돌탑] 12시 정각 '능경산 정산"에서 잠깐 하산하면 바로 "행운의 돌탑"이 나옵니다. 말이 "행운의 돌탑"이지 실제 등산로에 걸리는 돌맹이들을 주워 한곳에 모으라고 꼬시는 발상으로 만든 것이지요? 그래서 "행운의 돌탑"은 윗사진 설명으로 대신합니다 읽어 보시고 돌맹이 줏어서, 이곳에 버리세요~ ["행운의 돌탑"에서 바라 본 "고루포기산"] 앞으로 가야할 "고루포기산"이 장엄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여기서부터 약 3시간을 가야합니다. 물론 식사시간 30분 정도 포함하여.... [능경봉 하산] "행운의 돌탑"을 지나 '능경봉'을 완전히 하산합니다. [능경봉] 12시 20분 '능경봉'을 내려와 뒤 돌아 봅니다. 제법 내려 왔지요? '행운의 돌탑'에서 20분 걸렸습니다.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1터널" 위] '능경봉'을 내려 오면 좌측으로 "新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제1 터널"이 지나가는 위에 서게 됩니다.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으로는 눈이 올때엔 3시간 이상씩..또는 아예 못다녔는데 지금은 15분이면 백두대간, 태백준령을 지나 갈수 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영동고속도로 대관령구간] 그래서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1터널에서 2터널로 가는 길을 조금 줌인해서 촬영했습니다. 보이시죠? 많이 발전했습니다. 우리나라~ [구글어스로 본 "능경봉-샘터 구간"] "능경봉"에서 "샘터"까지의 구글어스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곳의 지형을 확실히 알수 있겠지요? 고속도로가 능경봉 옆구리를 관통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도 보여 주고....친절하지요? ㅎㅎ [샘터] 12시 40분 대관령 1터널위에서 5분 정도 전진하면 "샘터"가 나옵니다. "샘터"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고, 산객들의 쉼터 정도였습니다. 한가지, 이정표의 거리 표시는 '전망대'와 '행운의 돌탑'이 바뀐듯합니다. '행운의 돌탑'에서 '샘터'까지 정확히 40분 정도만 걸렸으니..... [무명봉] '샘터'를 지나 조그만 이름 모를 봉우리를 올라 갑니다 쉴만한 장소가 있는 곳엔 산객들로 만원입니다. [무명봉에서 올려다본 "고루포기산"] "고루포기산"이 성큼 다가 옵니다. ['왕산골 갈림길' 가는 길] 무명봉에서 완만한 능선을 타고 유유히 나아 갑니다. 저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전망대'가 있는 봉우리입니다. [왕산골 갈림길] 1시 04분 '전망대'가 있는 봉우리로 오르기 바로 전에 "왕산골 갈림길"이 있습니다. 힘드시는 분들은 이곳에서 "왕산골"로 하산 할수 있습니다. [점심식사] "왕산골 갈림길"에서 약45분간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전망대' 봉우리로 오르는 길] 1시 50분 오늘 산행코스에서 경사가 가장 심하다고 할수 있는 '전망대' 봉우리를 올라 갑니다. 점심식사까지 해서 몸이 무거울 때이기도 하기에 체감적 피로도는 높습니다. ['전망대' 봉우리로 오르는 중턱에서 뒤돌아 본 "陵景峰"] '전망대' 봉우리로 오르는 중턱에서 뒤돌아 본 "陵景峰"은 진짜 거대한 왕릉 같았습니다 ['전망대' 봉우리로 오르는 길] 하얀 눈이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모두 가려서 모든 것이 새하얗게 보이는 "고루포기산"을 오릅니다. [連理枝 안내] 2시 15분 "왕산골 갈림길"에서 30분 정도 오르니 "連理枝 안내판"이 나타 납니다. 이런 안내판이 없으면 그냥 지나 칠수 밖에 없습니다. 連理枝에 대한 설명이 너무 초라하고 부족해서 제가 추가 설명을 드릴려고 합니다 이글은 제가 "남한산성에서 불곡산까지"라는 검단지맥2구간 산행기에서 쓴적이있습니다 連理枝는 두 그루 이상의 나무들이 서로 붙어서 공존하는 나무를 일커러 連理枝라고 하지요? 완전히 붙어서 영양분까지 서로 공유해야 連理枝라고 합니다. [連理枝] "連理枝"라는 단어가 인간의 끝없는 사랑을 노래하는 단어로 자리 메김한 무지무지 유명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중국 당나라의 왕 '현종' 모두 아시죠? 모른다면 공부를 싫어한 사람입니다 아들의 와이프 - 즉 며느리를 시아버지가 빼앗아 자기 마누라로 만든 당나라 왕 '현종'을 몰라요? 그 며느리가 그렇게도 유명한 "양귀비" 아닙니까~~시아바지랑 새 살림차린 뇨자 ㅋㅋㅋ 이제야 무릎을 치며 아~~! 그 년놈들~~? 하지요? ㅎㅎ 그 유명한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로맨스는 심하다 못해 당나라의 운명이 다할 정도였죠 楊貴妃에게 완죤히 푹 빠진 玄宗이 정치는 나몰라라하고 everyday and night 둘이 붙어 놀았습니다 하루 종일 아방궁에서 사랑 놀이만 하고 놀아 났습니다. 국가는 망해가는데도 後宮에서는 떡치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국가의 안위를 깊이 있게 생각하는 충신들은 이런 양귀비를 가만 놔두고만 있을 수는 없었겠지요? 나라를 생각해서인지 자신의 정권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선진 몰라도 "안 녹산"이라는 충신이 쿠데타를 일어키지요? 이름하여 "안녹산의 난"이 일어납니다. 楊貴妃 저 뇬 부터 죽여야 한다고.... 권력을 잃은 현종은 어쩔수 없이 눈에 집어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양귀비를 자신의 목숨과 바꿀수 밖에 없어 비참하게 목메달아 죽게합니다. 에구 아까버라~~ [連理枝] 楊貴妃가 죽고 난 다음에도 현종은 楊貴妃를 잊을 수 없어 왕실의 詩人인 백락천(白樂天)에게 양귀비와의 사랑얘기를 詩를 지어 노래하라고했는데 그것이 무지무지 유명한『장한가(長恨歌)』입니다.엄청 슬프다는 뜻이죠? 長恨이니.... 白樂天이 쓴 長恨歌의 일부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7월 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和語時(야반무인화어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 있는데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이 한 끝없이 계속되네. 玄宗은 '안녹산의 난'으로 꽃다운 나이에, 그것도 非命에 간 楊貴妃를 잊지 못해 늘 이 詩를 되뇌었다고 합니다 모르는 단어 설명해 드리죠 "비익조 比翼鳥" 모르겠지요? "비익조 比翼鳥"는 날개가 각기 한쪽만을 가지고 있는 전설 속의 새가 두마리가 서로 완전한 한몸이 되게 붙어야 양 날개를 쓸수 있어 날수있다는 중국의 전설 속의 새이며, "연리지 連理枝"는 이미 말씀 드린바와 같이 두 나무 가지가 완전히 붙어 서로 영양 공급까지 공유하며 사는 나무를 말하는 것이니 - 比翼鳥도 連理枝와 같은 한몸덩어리가 되어 떨어 지지 말자는 의미로 하늘에서는 比翼鳥, 땅에서는 連理枝가 되자고 현종과 양귀비는 약속 했다는것 아닙니까 사랑의 표현도 이 정도는 해야 하는것 아닌가요? 연애편지 쓸 분들 참고하세요 그런데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던 양귀비가 죽었으니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 - 그래서 長恨歌입니다 [구글어스로 본 "샘터-고루포기산 구간"] 連理枝를 지나 "고루포기산"까지의 구글어스를 참고하세요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連理枝를 지나 가면 백두대간의 오른쪽으로 평창군 횡계리가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전망대] 2시 26분 '전망대'가 있는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전망대] 많은 산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는 전망대에 비집고 들어 갑니다. 그래야 조망을 할수 있고, 조망을 해야 사진 촬영을 할수 있고, 사진 촬영을 해야 여러분들이 책상 앞에서 편안하게 "고루포기산"을 감상할수 있기에... [전망대에서 바라본 "陵景峰"과 "大關嶺"] 전망대에서 바라 보니 역시 전망대였습니다. 지나온 "大關嶺"과 "陵景峰"이 동양화처럼 펼쳐 집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선자령' 방향] 백두대간 끝으로 "선자령" 방향을 바라보니 옛 생각이 많이 납니다. "선자령"은 神仙의 아들이 넘나드는 고개라고 "仙子嶺"이라 한답니다 지금은 仙子보다는 바람이 풍력발전기를 돌리고 지나가는 고개인듯.... [용평 스키장 앞마을 - 횡계] 땀 흘리며 이곳에 오르지 않고는 볼수 없는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가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2018년 동계 올림픽 유치를 꿈꾸고 있나 봅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용평스키장'] 발왕산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용평스키장이 나무 가지 사이로 쬐끔씩 보입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고루포기산"] 전망대에서 1km 떨어진 "고루포기산"이 손에 잡힐듯 가까이 있습니다. [전망대 앞 이정표] 전망대에서 '고루포기산'까지도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입니다. [고루포기산 정상으로 가는 길] "大自然 속으로의 旅行" 제가 아주 좋아 하는 말입니다. 눈을 밟는 소리 촉감 맑은 바람과 햇빛 "大自然 속으로의 旅行"을 못해본 사람들은 '말을 하지마세요~' [오목골 갈림길] 2시 43분 전망대에서 15분 정도 올라 가면 중요한 갈림길이 나타 납니다. 이곳이 "오목골 갈림길"로서 "고루포기산 정상"을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 와야 합니다 [오목골 갈림길 이정표] 정상까지 500m를 알리는 '오목골 갈림길"로 반드시 돌아 와야합니다 이곳과 정상 사이에도 갈림길이 하나 있으니 잊지 말고 이곳으로 돌아와 "오목골"로 하산하여야 합니다. ['고루포기산' 정상으로 가는 길] "오목골 갈림길"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이런 갈림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내려 올때 이곳에서 하산을 하면 고생을 조금 더 하니, 반드시 "오목골 갈림길"까지 내려 가서 하산 하시기 바람니다. ['고루포기산' 정상으로 가는 길] 저도 물론 이곳을 한번 지나 간적이 있습니다. 닭목령을 거쳐 삽당령으로.... ['고루포기산' 정상] 아무른 극적인 아슬아슬함도 없이 "고루포기산 정상"은 나타납니다. ['고루포기산' 정상] 2시 55분 1,238m높이의 고루포기산 정상에 섯습니다. 정상석도 없고 어떤 암봉 위에 솟아 있는 정상도 아닌 그져 그렇고 그런 정상입니다. ['고루포기산' 안내] "다복솔이 많아 고루포기라 칭해졌다" 그렇다면 '다복솔=고루포기'라는 뜻인데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 먹는 소리인가! 또한 많은 사람들이 '고로쇠 나무가 많아 고루포기산'이라 한다고 믿고 있는 듯합니다. 말도 않되는 논리입니다. '고루포기'는 얼핏 일본어 같지 않습니까? '고또 분지로'가 일제 강점기 시대에 만든 5만분의1 지형도에는 “カルミ峯”으로 표기 하였는데 쬐끔 유식한척 하는 인간들이 자기 맘대로 해석 한것들을 이곳 공무원들까지 자세한 조사도 하지 않고 안내판을 만들어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고루포기'에 대해 확실히 알려 드리지요.... ['고루포기산' 정상에 있는 이정표] '고루포기'는 순수 우리말입니다. 이 산의 남쪽 산 기슭에 있는 마을이 "고루포기" 마을입니다. '고루포기'는 "골패기"에서 온 말입니다. "골패기"는 "골짜기"의 강원도 사투리입니다. "골패기"가 연음현상으로 "고루포기"가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깊은 산골짜기라고 지어진 것인데 지금은 고냉지 채소밭으로 유명해 졌습니다 또한 주변에는 목장들이 셀수 없을 정도로 들어 섯지요 격세지감을 느끼겠죠? ['고루포기산' 정상 - "닭목령" 가는 길] 백두대간 "닭목령" 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지리산 천왕봉까지 갑니다 "닭목령"은 "鷄項嶺"이라고도 하지요. '項'이 목덜미 '항'입니다. 돼지고기 먹을 때 '항정살' 좋아 하는 분 계시죠? 돼지 목덜미살을 '항정살'이라하죠? '목아지'와 '목덜미'는 구별해야 합니다. ['고루포기'] 이 산 기슭이 '고루포기 마을'로서 현재는 고냉지 채소를 주로 재배하는 산간오지입니다. 이 산 기슭에는 아직도 '만인의 피난지지'라는 5덕(五德)의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괴비데기" - 고비고사리가 많은 언덕 "안반데기" - 떡을 칠 때 쓰는 나무판처럼 넓고 평평한 지형 "장두데기" - 길고 긴 언덕 "황정데기" - 황장 소나무가 서식하는 언덕 "황철데기" - 황철나무가 많이 서식하는 언덕 심심산골이었던 고루포기산 산기슭은 지금은 세상이 다 알아 주는 "고냉지 채소밭"으로 변하고, 또한 목장으로도 탈바꿈하여, 피난이나 다니던 곳에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고루포기산' 정상에서 바라 본 "陵景峰"과 "大關嶺"] '고루포기산' 정상에서 "陵景峰"과 "大關嶺"을 조망 하지 않을수가 없지요. 간신히 나무가지 사이로 촬영에 성공했습니다. "陵景峰"과 "고루포기산" 사이의 계곡이 "큰골"입니다. 강릉의 식수원이 되는 강릉 저수지로 흘러 가는 上水源입니다. [발왕산] 용평스키장 실버코스 출발지인 "발왕산"을 촬영하려고 노력했으나 어렴푸시 이렇게 밖에 못 찍어서 아쉽습니다. [오목골 갈림길로 회귀] '고루포기산' 정상에서 '오목골 갈림길'로 다시 내려 갑니다. 오늘 눈 구경은 한꺼번에 몽창 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산행기를 쓰고 있는 4일에는 사상 최대의 폭설이 다시 퍼 부었지요? 폭설 때문에 이제는 봄이 올때까지 '고루포기산'은 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다녀와서 기분 좋습니다. [오목골 갈림길] 3시 13분 '오목골 갈림길'에 돌아 오니 친절하게 우리 후배들이 길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우리 "휘산회"의 집행부를 많이 칭찬하고 싶은데, 다른 핵교 나오신 분들이 자가발전 너무 한다고 핀잔을 줄까봐 자제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따뜻한 마음으로 선후배들을 대하는 집행부를 저는 사랑합니다. [오목골로 하산] 백두대간에서 횡계로 하산하는 길은 무척 가파랏습니다. 고루포기산을 올라 가는 것보다 내려 가는게 더 어려웠습니다. 고루포기산을 하산하며, 조선시대 최고 장수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으니 참고 하시고 건강에 유의하여 즐거운 산행을 오래 오래 하시기 바람니다. [오목골로 하산]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유달리 장수(長壽)에 관심이 많았던 조선 11대 왕 중종은 전북 순창에 사는 122세의 조씨(趙氏) 할머니의 장수 비결이 몹시 궁금했답니다. 중종은 조 할머니를 만나 장수의 비법을 직접 듣고 싶었으나 나이가 많은 탓에 거동이 불편해 만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조에서 똑똑한 김시원이라고 하는 관리를 뽑아 순창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장수 비법을 알아 오라고.... 한편, 순창에 122세의 할머니가 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그 비법을 알고자 구름떼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나 모두 허사였답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로도 그 할머니의 장수 비법을 살 수는 없었답니다. [오목골로 하산] 왜? 조 할머니의 장수 비법을 알수 없었느냐 하면.... 조 할머니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마 행곤 馬行坤"이랍니다. 마 행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할머니를 만나게 해 달라고 졸라대서 일종의 시험에 합격한 자들에게만 조 할머니의 장수 비법을 알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마 행곤은 3가지 문제를 냈는데 맞추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행곤은 중종 임금의 명을 받고 내려온 김시원에게도 "사람의 수명은 하늘이 내린 것이오. 내가 이를 함부로 알려주면 천기누설에 해당하니 아무에게나 쉽게 가르쳐 줄 수 없소. 만약 당신이 내가 낸 3가지 문제를 풀 수 있다면 당신은 자연히 답을 얻게 될 것이오" 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었던 문제를 냈습니다. [동물 이동 펜스] 첫번째 문제는 조 할머니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먹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김시원은 궁리 끝에 다음 날 아침 쟁반에 물을 한 사발 떠가지고 갔습니다. 결과는 '딩동댕'이었고 그 이유를 묻자 김시원은 "순창의 옛 지명은 옥천이라 하여 물이 맑은 곳이어서 이를 오래 마시면 몸이 윤택해지고 모발이 희어지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아들 마행곤은 빙그레 웃으며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식전에 물을 드신다"며 "여기까지 맞힌 사람들은 많다"며 두 번째 문제로 이어갔습니다. 한때 조 할머니는 육종(암)에 걸린 적이 있는데 이를 치료한 약이 순창에 있으니 찾아오라는 두번째 문제에 김시원은 느닷없이 밥상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밥상의 보자기를 걷어내니 그 상에는 흰죽과 된장을 이용한 탕, 고추, 고추장, 무장아찌, 호박무침뿐이었습니다. 김시원이 "이 고을에서 며칠 머물며 보니 80세 넘은 노인들이 많았고 그들이 끼니마다 먹는 것이 바로 이런 음식들이었소. 음식을 숙성시키면서 그만큼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이니 보약보다 무엇이 못하겠소. 그리고 소식하면서 배부르게 먹기에는 밥보다는 죽이 더 좋을 것 같았다"고 말하자 아들 마행곤은 "어머니는 젊었을 때부터 흰죽을 먹었으며 병이 난 뒤에도 흰죽과 채소만 드셨고, 그래서 병이 나았다"며 무릎을 쳤습니다. 마지막 과제는 김 시원에겐 생각보다 쉬운 듯했습니다. 그저 마씨 가족들이 노모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지 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씨 가족은 4대가 함께 살고 있어 식구만 해도 30명이 넘었답니다. 며느리는 떡을, 둘째 아들은 비녀를, 손자는 천자문을 읽어 드렸습니다. 가족들이 노모에게 주는 것이 서로 다른 것이어서 김시원은 도대체 무엇을 선물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증손자는 아무것도 들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노모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웃음소리와 함께 무엇인가가 김시원의 뇌리를 '탁'하고 스쳐지나 갔습니다. 그는 다음날 매실 하나를 들고 노모를 찾아 갔습니다. 아들 '마 행곤'은 "그대가 가져온 답은 매실입니까?"라고 물었고, 김시원은 "아닙니다. 제가 가져온 것은 효(孝)입니다"라고 답했답니다. 아들 '마 행곤'은 "맞다"며 "아무리 귀하고 몸에 좋은 음식이 있으면 무엇하겠습니까? 자식이 효 孝를 다해 부모가 걱정이 없다면 신선도 부럽지 않고 마음이 편안하니 천수를 누리는 것입니다"라며 김시원의 손을 잡고 좋아했답니다. 그렇게 '김시원'의 지혜로 조씨 할머니의 장수 비법은 세상에 드러났다고 합니다. [오목골 등산 들날머리] 4시 13분 1시간에 걸쳐서 하산했습니다. 하산하는 코스는 급경사여서 특히 겨울철에는 시간이 더 걸리겠습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 4시 30분 횡계 관광버스 주차장으로 내려 가며, 양떼목장 갈림길에서 '고루포기산'을 뒤돌아 보며 하산하였습니다. [횡계]
  
     나의 과거와 미래가 상존하는 校友會, 그리고 徽山會
     선배님들은 나의 미래의 모습이고
     후배님들은 나의 과거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2010年 新年山行을 
     대자연 속으로 여행을 하며 끝냈습니다.
     사랑하는 선후배님들
     그리고 "홍어와 무인도"를 아껴 주시는 횐님들
     "새해 福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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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밤과 꿈 - 슈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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