石城山 할미城山 遊山記 龍仁市廳-통화사-石城山-魔城터널위-할미城山-동백중학교 石城山을 넘어 할미城山으로 11월 7일(토) 내일 빗님이 내린다는 일기 예보로 '계방지맥3구간' 산행이 연기되어 한주를 쉴수도 없고하여 가까운 곳으로 갑자기 산행계획을 잡았습니다 "한남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경기도 龍仁의 鎭山인 '石城山'과 영동고속도로 상습 정체구간인 '마성 魔城터널' 위를 지나 '할미城山'으로 산행코스를 잡았습니다. 요즈음 날씨는 늦은 가을 날씨 답지 않게 구름이 많이 끼고 비가 자주 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구름이 잔뜩 끼어 기분까지 음침하게 만들었습니다. [석성산 주변 지도] 오늘 산행코스는 붉은 선으로 "용인시청"에서 "동백지구" "동백중학교"까지 입니다. "漢南正脈"의 마루금을 대체로 걷는 것입니다. [산행 개념도] "漢南正脈"의 마루금은 "멱조고개(일명:메주고개)"로 통합니다만, 저는 일반 산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를 따라 갑니다. "용인시청"에서 "통화사", "석성산 정상"을 오르고, "마성터널 위 "작고개"를 지나 "할미성산"을 다시 오르고 "향린동산" 정문 앞으로 난 영동고속도로 굴다리를 통해 "동백지구 동백중학교" 앞으로 갑니다. 거리는 약 10km정도로 대략 네시간이 걸렸습니다. [용인 시청] ‘山川開闢의 상징’이라고도 할수 있는 龍仁市廳 廳舍가 하늘을 찌르며 우리나라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최고로 크고 넓은 廳舍임을 자랑하며 솟아 있습니다. 아예 이름도 "용인행정타운"이라고 글자 그대로 '타운'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의 비아냥 소리를 들었을 법도 한 과도한 제집 만들기 행정관청은 근무지 사무실에 쏟아 부을 돈으로 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사용하기를 기대합니다 갑작스런 산행으로 산행으로는 다소 늦은 오전 11시 30분에 "용인행정타운" 정문 앞에 내렸습니다. 일반 대중교통이 서울에서, 수원에서 분초를 다투며 다니기에 접근성이 매우 좋습니다 [용인시청 본관앞에서 좌측] [용인 처인구 보건소] "석성산 등산로"는 "용인행정타운" 정문을 통해서 본관 앞으로 올라 갑니다. 그리곤 본관 앞에서 좌측으로 "용인 처인구 보건소" 건물로 갑니다. "보건소" 건물을 지나 나가면 도로가 나옵니다. [석성산 산행 들머리] "보건소" 건물 뒤에 "석성산 산행 들머리"는 찾기 쉽게 이렇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용인시청 본관 앞을 통과해 올것인지, 바로 이곳으로 올것인지는 스스로 판단하세요. 저는 초행길이라 시청본관 앞을 통해 보건소 뒤로 나왔습니다. [석성산 산행 들머리]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골프장이 있고, 날로 발전하는 용인시 다웁게 세금이 많이 들어 온다죠? 그래서 이러한 문화 체육시설도 잘해 놨는가 봅니다. 제발 세금이 좋은 곳에 효과적으로 쓰여 지길 앙망합니다. 앞으로 오실 분들은 만남의 장소를 여기로 하면 편리하겠습니다. [산행 개념도] 조금더 확실하게 "석성산 산행코스"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제 이곳이 어디인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하는지가 머릿속에 그려지시죠? 그러면 저와 함께 "석성산과 할미성산"으로 떠나 볼까요 11시 45분 산행을 시작합니다. [석성산 산행로] 용인시청 보건소 뒤 산행 들머리를 들어서면 이렇게 산행로가 잘 뚤려있습니다. 회색빛 콘크리트 도심 속에서 이렇게 自然의 맛을 느낄수 있는 山行路가 있다는 것이 용인시가 자랑 할수 있는 최고의 자랑거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큰 건물이 얼마나 많고, 인구가 얼마나 많고 하는 그런 것들 보단, 自然입니다. [첫번째 쉼터] 산행 들머리에서 약 15분쯤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면 첫번째 쉼터가 나타납니다. 여기쯤 오면 약간 더워집니다. 두터운 겉옷은 여기서 벗어야 할것입니다. [첫번째 쉼터] "석성산"에 대해 안내를 하는 안내판이 있으며 여암 신경준선생의 "산경표"와 고산자 김정호선생의 "대동여지도"등을 보여주며 친절한 설명인지, 용인 석성산의 자화자찬인지를 길게 해놨습니다. 山에 관심 없으신 분들은 뭔말인지 잘 모르는 大幹, 正脈, 枝脈등으로 설명해 놨습니다 제가 앞으로 산행을 하며 이해하기 쉽게 설명 해 드리도록하겠습니다. [두번째 쉼터로 가는 길] 용인시민들에겐 "건강 산행 코스"로 아주 적합한 코스라고 말씀드릴수 있겠습니다 경사가 완만하고, 숲으로 둘러 쌓여 조용하고, 낙엽들로 登路는 푹신푹신하고.... 첫번째 쉼터에서 두번째 쉼터까지는 매우 가깝습니다. 그래서 두번째 쉼터는 소개해 드리지 않습니다. [세번째 쉼터로 가는 길] 주말 가족 나들이에 최고!~ 주말이면 리모콘을 보물인양 거머쥐고 소파 위에서 뒤적거리며 채널 돌리기 하다 와이프와 말다툼이나 하시는 분들은 아이들 데리고 "석성산"으로 오세요 산이 시시껍질하다구요? 천만에~ 이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 보시면 아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나올겁니다. ㅎㅎ 꼭 높고 험준한 산을 가야 산을 가는건가요? [세번째 쉼터] 첫번째 쉼터에서 약15분 쯤 오르면 두번째 쉼터가 나옵니다. 두번째 쉼터에서 다시 10분쯤 가면 세번째 봉우리이자 쉼터가 나옵니다 정상까지 2km가 남았다는 친절한 안내가 보이는데, 초보 산객들은 아마도 여기쯤에서 물도 마시고, 휴식도 약간은 취해야 할것입니다. [정상으로 가는 길] 登山路라고 해서 마냥 오르막만 있는게 아닙니다. 조그만 봉우리를 하나 오르면 다시 조금 내려 가고를 반복하면서 점차적으로 정상을 향해 감으로 석성산 산행은 건강산행코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메주고개 갈림길] 세번째 봉우리이자 쉼터를 지나 조금 더 가면 "메주고개"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漢南正脈" 마루금을 만나 마루금을 따라 "할미산성"까지 갑니다. "메주고개""멱조고개"라고 더 알려져 있는듯한데, 여기서는 "메주고개"라고 해 놨군요. 이 고개는 용인정신병원에서 용인시내로 들어 오는 고갯마루를 말하는 것인데, 한남정맥을 종주하는 산객들은 대부분 "멱조고개"라고 합니다. 이 고개에 얽혀있는 전설은 석성산 '군부대봉'에 올라 알려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메주고개 갈림길에서 바라본 '석성산 정상'] '메주고개 갈림길" 봉우리에 올라서면 드디어 "石城山 정상"이 보입니다. 제법 멀리 보이지만 2km가 채안되는 거리이니 염려할바는 못됩니다. 오늘 산행 중에서 저 '석성산 정상' 올라 가는 짧은 구간만 된비알입니다. [석성산 군부대-통화사 갈림길] '메주고개 갈림길"에서 다시 조금 전진하면 시멘트 포장 도로를 만납니다. 여기는 조금 중요한 곳이므로 설명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1.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가면 軍通信部隊입니다. 원래 이 코스가 "漢南正脈" 마루금이며 쉽게 석성산 정상으로 갈수 있는 길이지만 軍通信部隊가 진을 치고 있어 갈수가 없습니다. 2. '석성산 정상'으로 쉽게 가려면 오른쪽 "통화사"입구로 가야합니다. 다시 말해 이 길은 군부대 우회로인 것입니다. [석성산 군부대-통화사 갈림길] 3. "통화사" 입구를 통해 "통화사 석탑삼거리"까지 가서 석성산 정상으로 쉽게 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軍通信部隊 정문 앞에 있는 봉우리에 올라 "멱조고개", 즉 "메주고개"를 비롯해 용인시내와 지나온 산줄기를 조망하고 싶으신 분들은 "통화사 입구"로 가지 않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군부대쪽으로 약50m올라 갑니다. [석성산 군부대봉 가는 길] 4. 약50m쯤 올라 가면 오른쪽으로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은 등산로가 나옵니다. "漢南正脈" 마루금입니다만 軍通信部隊 정문까지만 갈수 있습니다. [석성산 군부대봉-통화사 갈림길] "漢南正脈" 마루금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Y자 삼거리가 희미하게 나옵니다. 왼쪽으로 군부대봉을 올라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야합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직진하면 "통화사 입구 진입로"를 다시 만납니다. 이곳을 잘 기억해야 길을 잃지않을수 있읍니다. [석성산 軍通信部隊] 옛날 석성산 정상에는 한양 남산 봉수대와 통하는 "봉수대 烽燧臺"가 있었답니다. 지금은 초현대화된 軍通信部隊가 정상을 점령하고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석성산'이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通信의 요충지임을 알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군부대 정문의 초병에게 길을 물어 이곳에서 용인시내를 조망하고 다시 아까 "통화사 진입로 갈림길"을 통해 "통화사"로 갔습니다. [석성산 軍通信部隊 전망봉] 軍通信部隊 정문 앞에는 이러한 전망 봉우리가 있습니다. 이곳에 올라 보고 가시기 바람니다. [석성산 軍通信部隊 전망봉에서 본 지나온 능선] 軍通信部隊 정문 앞 전망봉에서 오늘 지나온 산줄기를 모두 볼수가 있었습니다. 雲霧가 껴서 희미하지만 그래도 용인시청이 멀리 보이고, 지나온 산줄기가 "龍仁'을 상징히는 의 몸체같이 꾸불거리고 있습니다. ['멱조고개' 방향] 軍通信部隊 정문 앞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漢南正脈" 마루금인 삼가리 '멱조고개', 일명 '메주고개"방향을 내려다 봅니다. 수원,신갈,동백지구에서 용인시내로 들어 오는 고개입니다. 지금은 편리한 자동차 교통을 위해 고갯길은 절개되어 큰 고개가 아닌듯 하지만, 길이야 어찌됐든 옛부터 내려오는 전설 속에 '멱조고개'는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있답니다. 42번국도 멱조고개 뒤쪽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용인대를 감싸고 있는 "부아산 負兒山"입니다. "부아산 負兒山"도 한남정맥을 이루는 산중에 하나입니다. ★負兒山(부아산)과 覓祖峴(멱조고개) 효부이야기★ 옛날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부부가 저 건너편 부아산(負兒山)에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부역 때문에 집을 비우게 되었고, 시아버지가 대신 나무를 장에 내다 팔았다고 합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돌아올 때면 아이를 업고 고갯마루에서 기다렸는데, 어느 날 밤이 깊어도 오지 않는 시아버지가 걱정이되어 찾아 나서다가 길을 잃었다고 합니다. 한참을 헤매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혹시나 하여 달려갔더니 그곳에는 시아버지가 배고픈 호랑이를 만나 목숨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답니다. 이를 본 며느리는 호랑이에게 배가 고프다면 내 아이라도 줄 터이니 시아버님을 다치게 하지 말라며 아이를 던져주자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정신을 차린 시아버지가 자신은 늙었기에 죽어도 한이 없을 텐데 어찌하여 어린 손자를 죽게 했느냐고 꾸짖자, 며느리는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으나 부모는 어찌 다시 모실 수 있겠느냐며 모셔왔다고 합니다. 이후 시아버지도 며느리가 더욱 마음 아파할 것을 걱정하여 겉으로는 슬픈 내색을 하지 않았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살았다고 합니다. "멱조고개 覓祖峴"는 이렇듯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사연과 함께 '찾을 멱覓,할아버지 조祖,고개峴'으로서 ‘할아버지를 찾아 넘던 고개’라는데서 연유했답니다 그리고 '부아산 負兒山''업을 부負, 아이 아兒'로서 아이를 업은 산이라는 뜻입니다 [줌인한 삼가리 '멱조고개' 방향] ‘할아버지를 찾아 넘던 고개’라는 데서 연유했다고하는 "멱조고개覓祖峴"을 줌인해 봤습니다 지금은 폭 넓은 차선의 큰 길로 쭉 뻗은 포장된 길이지만 모두 아시다시피 예전에는 편도 1차선 도로로 꾸불꾸불 굽은 길이었습니다. 수원에서 인천까지를 연결하는 "水仁線 수인선"과 함께, 우리나라 첫 협괘열차인 수원에서 여주까지 연결하는 "수여선 水驪線"철도가 운행됐던 "멱조고개". 이 "멱조고개'는 일제시대 때 사설철도회사인 ‘조선경동철도’에서 여객열차와 화물열차를 운영하던 것으로 주로 이천쌀과 소금을 운반하는 데 쓰였다고 합니다 1930년 개통해 삼박골과 김량천교를 건너 용인으로 들어갔던 이 열차는 새로운 교통 메카니즘에 밀려 1972년 적자운영으로 모습을 감췄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이 "멱조고개"가 높고 가파라 열차가 걷다시피 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고개를 절개하여 평평하고 큰 길이 새로 났으며, 성능 좋은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고, 더더욱 그 길 위로는 고가도로에 첨단 모노레일 경전철 공사를 하고 驛舍를 짓고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낄수 있습니다. 경전철이 곧 완공 된다고하지요? [통화사-석성산 가는 길] 軍通信部隊 정문 앞 봉우리에서 조망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내려 옵니다. 그리고 軍通信部隊 봉우리의 옆구리를 따라 우회하여 갑니다. [통화사-석성산 가는 길] 그러면 아까 "통화사 입구 삼거리"에서 오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다시 만나고 "통화사"로 갑니다. [사당] "통화사"로 가는 중간에 사당이 하나 있습니다만, 안내판이 없어 누구의 것인지 모릅니다. [통화사 앞 '석탑삼거리'] 오후 1시 15분에 통화사 석탑삼거리에 왔습니다. 그러니까 용인시청 들머리에서 1시간반이 걸렸습니다. 왼쪽으로 가면 바로 "석성산 정상"으로 가는 登路입니다만, 여기까지 왔으니 "통화사"는 구경하고 가야겠지요? 오른쪽으로 가면 "통화사"로 갑니다. 아주 가깝습니다. 50m정도.... [통화사 석탑] 왜 "석탑삼거리"라고 했는지 이제 확실히 아시겠죠? 최근에 만든듯한 석탑이 하나 서 있고 우측은 주차장입니다. 이곳까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차량이 다니고 있다는걸 증명합니다. [통화사] 특별히 알려 드릴만한 얘깃거리가 없는 '통화사'도 제법 큰 절이더군요. 중요한것은 "석성산 石城山"이라는 地名이 이 있는 산 山이라는 것인데 그 城을 돌로 쌓은 城이라고 "석성산 石城山"이라고 한것이랍니다. 그러므로 이곳에는 이 있는데 그石城東門이 이 절 앞에 있었다고 합니다. [통화사] 특별히 할말이 없습니다 [석탑삼거리 '석성산 등로'] '통화사"에서 나와 다시 "석탑삼거리"로 왔습니다. 여기서부터 조금 가파른 된비알을 오릅니다. 여느 산이나 정상부근은 경사가 가파른 깔닥고개가 있지요. [석성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石城山 정상부근에 오니 이제서야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샘터로 가는 길] 정상 바로 애래에는 샘터가 있었는데 샘터로 오르는 길입니다. [정상 아래 샘터] 저 위가 샘터가 있는 쉼터입니다. [정상 아래 쉼터, 샘터] 산성은 석성산 7부 능선에 축조됐다고 합니다. 산성축조에 필요한 석재도 널려 있는데, 군사들의 주둔을 위한 필수조건인 물이 있어야하는데 석성산 정상 바로 아래에는 "샘"이 있더군요. 그리고 지금은 산객들의 쉼터로 이용되는 이곳이 옛날 고구려시대에는 천연의 요새였겠지요? 현재는 이곳에서 산악인들이 매년초에 시산제를 지내는 곳으로 유명하다군요. [샘터] [정상으로 올라 가는 길] 城안에는 5개의 샘터가 있다고 하는데 확인 할수 있는것은 이곳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수질이 좋지않아 마실수 없다는 경고판이 붙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 샘 위에있는 군부대 때문이 아닐까?? 이 샘에는 전해 내려 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 샘은 서울에 사는 벼슬아치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모실 명당을 찾아 지관과 용인을 지나다가 석성산에서 명당을 발견하고 이곳에 묘를 쓰려고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날을 잡아 가묘를 쓰려고 땅을 팠더니 그 속에서 물이 솟구쳐 나왔다는군요. 그 물이 그치지 않고 솟구쳐 산 아래는 홍수가 났답니다. 과장이 좀 심하지만 믿거나 말거나... 벼슬아치는 크게 놀라 지관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산 형상이 호랑이 형상인데 호랑이의 눈인 눈물샘을 건드려 물이 쏟아진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냥두면 산 아래 마을에 물난리가 난다며 이일을 막으려면 저기 큰 바위로 막아야 한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위의 큰 바위로 물을 막았다고 합니다. 위에 누르고 있는 바위 보이시나요? 그러자 물은 막히고 바위틈에서 조금씩 물이 흘러 지금의 약수터가 됐다고 하는군요. ㅎㅎ [석성산의 유래] 사진 속 설명을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친절히 요약해 드리면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 개로왕을 죽이고 만든 성이라 추측된답니다.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오르막인 계단을 오릅니다.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더 이상 올라 갈곳이 없어 집니다. [석성산 정상 헬기장] 계단을 올라 서면 헬기장이 나오고, 왼쪽 남쪽으로는 軍通信部隊가 점령한 봉우리가 있고... [石城山 정상] 헬기장 오른쪽으로는 석성산 石城山정상이 보입니다. "용인8경" 중에 제1경이 이곳 석성산 정상에서 日出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石城山 정상] 정상에 조금 더 가까이 가서 촬영했습니다. 구름이 잔뜩낀 날씨에도 산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군요. "용인8경" 중에 제2경은 "어비낙조"라고 합니다. 저의 산행기 "쌍령산-시궁산-미리내"를 참고 하시면 "어비낙조"에 대해 사진과 함께 설명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용인의 "시궁산"에서 "어비리"에 있는 저수지에 비치는 洛照를 말합니다. 저는 실제 봤는데 멋있더군요. 오후4시 이후 "시궁산"을 올라 보세요 [石城山 정상] 石城山 정상에는 정상석과 망원경까지 설치해 놨습니다. 더욱 독특한것은 '구급약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산에서는 볼수 없는 것인데.... 石城山 정상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1시 30분에 도착했으니 1시간 45분 걸려서 올랐습니다. [石城山 정상석] 471.3m 높이를 알려주는 石城山 정상석 [石城山 정상] 석성산 정상에는 가족끼리 오른 팀이 많았습니다. 정상에서 먹는 것들은 모두 맛있지요 땀 흘리며 오르지 않은 이들은 절대 느낄수 없는 맛입니다. 모두 정상에 올라 건강도 챙기고, 기막힌 이 맛도 느껴 보시길.... 그리고 새벽에 올라 日出광경을 감상하시기 바람니다. 용인8경중에 제1경이라하니... 저도 시간나면 한번 오겠습니다. [石城山 정상에서 바라 본 '할미산성'] 石城山 정상에서 조망해 보겠습니다. 먼저 북쪽으로 앞으로 가야할 "할미城山"과 그 뒤로 희미하게 "향수산"이 보입니다. '향수산' 뒤로 조측에 "법화산"이 쬐끔 보이는군요 앞에 보이는 능선이 "漢南正脈 마루금"입니다. 그리고 왼쪽 아래 '영동고속도로" 마성터널 입구가 보입니다. [용인 '동백지구'] 서쪽으로는 "동백지구"가 펼쳐지는군요. '용인행정타운'을 비롯해 '멱조고개'부터 '어정리'를 지나 '판교'로 이어지는 길 곳곳은 최근 입주한 "동백지구"로 연결되며 그길옆에는 온통 대규모 아파트들이 마천루처럼 솟아있습니다. 그러니 옛'영남대로'를 비롯해 풍수지리에서 명당이라는 명당은 모두 용인에 있다고 하던 그 땅 구석구석에는 향수어린 정겨운 아름다움은 찾아 볼길 없고.그 정취는 간곳 없이 황막합니다. 옛날 그 마을 이름들은 지금의 아파트단지 이름으로 변했고, 마을 앞을 지키고 서있던 장승들은 간곳없고 장승들이 있던 길목엔 대형마트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 삭막함과 애절함을 뒤로하고 조금이라도 위안을 삼으려면 "석성산"에 올라 보시라~ 自然이 왜 보존되어야 하는지를 조금이라도 느낄수 있으리라~ 그리고 "석성산"에서나마 自然을 만끽하시라~! [영동고속도로 '용인 I.C.'] 동북쪽으로는 영동고속도로 "용인 I.C."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날씨 때문에 선명한 사진을 찰영하지 못해 아쉽군요 [石城山 下山] 석성산 정상에서 하산을 합니다. 가파른 곳에는 계단을 설치해 놔서 산행하기에 불편이 없습니다. 앞에 보이는 강아지도 석성산 정상까지 올랐다가 내려 갑니다. 누구나 즐겁게 오를수 있는 석성산입니다. 지금까지 올라 볼까 말까 망서리시던 분들은 이제 자신감을 갖고 오를수 있겠지요? 저한테 고맙다고 하셔야 하는데 돈은 받을수 없고..ㅎㅎ 댓글이나 달고 가세요 [동백지구 '호수마을' 산행로 갈림길]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 "동백지구 호수마을"과 "마성터널"로 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동백지구에 사는 분들은 대부분 이곳으로 건강 산행을 하더군요. 앞 사진의 강아지도 이곳으로 올랐더군요. 그 강아지도 오르니 왠만한 사람은 모두 오를수 있습니다. [뒤돌아 본 石城山] 다음 봉우리에 와서 "석성산 정상"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이쪽에서 보니 삼각형이군요. [점심식사] 정상에서 볼때에 바로 앞에 볼록 솟은 봉우리에 와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좋은 자리는 다른 분들이 이미 차지했더라구요. 50분 정도 식사와 휴식을... [ 마성 I.C.와 향수산] 식사후 마성터널 방향으로 내려 가면서 조망합니다. 앞에 보이는 길이 옛'영동고속도로'이고, 그 뒤로 '할미성산'과 "향수산"이 보입니다. 틈나면 "향수산"도 한번 가보고.... 앞으로 시간 날때 "할미성산"에서 "88 C.C.클럽하우스"와 "향린촌" 사이 지맥 분기점으로 가서, "법화산"을 지나 "불곡산"으로 가 "태재"에서 끝나는 "검단지맥 1구간"을 갈 예정입니다. 2구간이 "태재"에서 '남한산성"까지이고, 3구간이 "남한산성"에서 "은고개"를 지나 "용마산" "고추봉" "검단산" "팔당댐앞"까지인데 1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2~3구간들은 이미 종주 한바있습니다. ['동백지구'와 '할미산성' 갈림길] 동백지구 산행로가 한군데 더 있습니다. 마성과 할미산성은 계속 직진입니다. 길은 외줄기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漢南正脈] 호젓한 석성산 산행길 漢南正脈 마루금을 밟으며 어렵지 않게 내려 갑니다. 漢南正脈은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분기하여, '안성의 칠장산'으로 금북정맥과 함께 옵니다. 그리고 칠장산에서 금북정맥과 헤어져 북서진하여 용인의 문수산 부아산 멱조고개를 지나 석성산과 할미성산을 하늘로 솟게하고, 수원의 광교산을 지나고, 인쳔의 계양산을 다시 지나, 김포반도의 끝 김포 문수산에서 그 맥을 다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줄기 중에 하나입니다. 漢南正脈은 글자 그대로 "한강"의 남쪽 산줄기입니다. [작고개] [마성 톨게이트]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성고개"라고 하는 "작고개"가 보이고 "마성 톨게이트"도 가깝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성 톨게이트] "에버랜드" 출입구 같은 "마성 톨게이트"를 줌인해 봤습니다. 전국 어느 곳에서도 볼수 없는 독특한 톨게이트입니다. [작고개 - 마성터널 위 석성산 날머리] "석성산 산행 날머리"인 "작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이 고개는 원래 ‘잣고개’로 잣나무로 만든 배가 지나갔다는 전설과 잣나무가 많았다는 고개로 한자로 "백현 栢峴"이라 합니다. 동백지구에 "백현"은 한자로 "백현 柏峴"으로 전대리에서 어정으로 넘던 고개라고 합니다. "잣고개"의 栢峴은 "잣마무 "이며, 동백지구 柏峴은 "동백나무 "이니 혼동하지 마시기 바람니다. 오후 2시 40분에 도착했으니, 석성산을 종주하는데 약3시간이 걸렸습니다. 식사시간이 50분 정도였으니 실제 걸은 시간은 2시간 10분이 되겠습니다. [石城山 들머리겸 날머리] "石城山 들머리겸 날머리"에는 "마가실 서낭"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할미성 원주 대동굿 보존회가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실 서낭' 표지석 뒷면] '마가실 서낭'은 원래 '터키군참전기념비'가 있는곳에 커다란 서낭목과 돌무덤으로 있었는데, 과거에 서울로 가던 행인이 삼남대로로 갈때 무사안녕을 빌던 곳이랍니다 "대동굿"에 대해 공부하고 넘어 가겠습니다. "대동굿"은 온 마을의 주민들이 모여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펼치는 굿으로 경기도 일대에서 전승되고 있는 "도당굿"과 같은 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용인 할미성 대동굿은 일반적인 경기도 도당굿의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마을의 풍장패가 길놀이 풍물굿을 먼저 친 다음 他洞에서 동참하기 위해서 오는 풍물을 맞아 들이는 것이 색다른 모습인데 그 규모가 크다고 하여 "대동굿"이라 부른답니다. "할미성 도당굿"은 용인 석성산 산신령(魔姑仙人)을 받들어 모시고 내려와 모든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한마당 "대동굿"을 펼치는 화합의 굿판으로 용인에 거주하는 무당 "전옥기"씨(女)에 의해서 수 년 동안 진행되다가 중단되었던 것을 그의 신아들 남무(男巫) "유성관"씨에 의해 보존 계승되고 있다합니다. *yahoo blog posbackho님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영동고속도로 굴다리] "영동고속도로"가 터널이 뚤려 이 "작고개"로 넘나드는 차량이 많지 않다 하더라고 고속도로는 고속도로이니 무단횡단하는것은 위법이며, 무엇보다 매우 위험합니다. 석성산 날머리인 "마가실 서낭 표지석" 앞에는 "영동고속도로 밑으로 지나 갈수 있는 왼쪽으로 굴다리가 있습니다. 반드시 이 굴다리를 이용하시기 바람니다 사진의 왼쪽에 '터어키軍 참전기념탑"이 보여서, 저곳으로 가 구경을 하고 다시 이곳으로 와 고속도로 밑을 통과하려고 합니다. [터어키군 참전 기념비] 자세한 내용은 사진 속의 설명을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터어키군 참전 기념비] 머나먼 이국땅에 까지 와서 왜 이토록 목숨을 바치며 싸워야 했는가 저들이 목숨 바치며 도와 준것을 그냥 잊고 살지는 않는지.... 전세계 역사 속에서 2,000,000여명이라는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6.25 다시는 이 땅에 그런 전쟁은 없어야 할텐데.... ['할미산성' 들머리] '터어키軍 참전 기념비' 고속도로 건너편에 "할미城山" 오르는 들머리가 보입니다. '한남정맥' 마루금이기도한 들머리임으로 잘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앞의 '영동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할 필요없이 아까 '석성산 날머리' 옆에 있는 고속도로 밑의 굴다리를 통해서 건너편으로 건너면 비교적 안전합니다. [영동고속도로 지하통로] [마성 톨게이트] 지하통로인 굴다리를 지나갑니다. 굴다리를 지나면 바로 "마성 톨게이트"가 나옵니다. [마성 톨게이트에서 뒤돌아 본 '石城山'] '마성 톨게이트"에서 뒤 돌아 본 '石城山'과 한남정맥 마루금이 선명합니다. ['할미성산' 산행 들머리] "할미성산" 산행 들머리는 영동고속도로 옆에 안내판도 없이 있습니다. "양보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올라 갑니다. 저의 山友가 올라 가는게 보이시죠? 오후 2시 50분에 "할미성산 들머리"를 오릅니다 [할미城山 오르는 길] 사람들의 흔적이 별로 없는 할미성산을 오릅니다. 제가 "할미성산"이라고도 하고 "할미산성"이라고도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山을 지칭할때에는 할미城이 있는 山이라 할미城山이라하고, 을 강조할때엔 할미山에 있는 城이라 할미山城이라 하는것이니 구별해서 사용해야합니다. [할미山城] '할미城山' 들머리에서 약10분 정도 오르면 바로 할미山城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城인지 뭔지 모르고 보는데 가까이 가면 城임을 알수 있습니다. [할미山城 城壁] [할미산성은 사유지] "할미山城 城壁"이 윤곽을 분명히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게 뭔 금지판입니까?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곳 "할미城山" 땅의 대부분이 "향린촌"이라는 곳의 사유지이더군요. 아무리 사유지라 해도 특별히 사람의 출입을 금지할 필요도 없는, 오히려 많이 와 달라고 홍보해야 할것 같은데 땅 많다고 땅 자랑하는지 '땅 땅'거리며 출입금지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허~참~ [할미山城] 어느 분이 출입금지판을 보고 읊은 글이 있어서 소개해 드림니다. "할미성산 오름길 성터를 막은 무지함이여 네 털 난 양심을 모아 이룬 가시 철망이 무섭고나 이 땅에 만들어진 私有란 본디 모든 이의 자유를 다치지 않아야하는 법이거늘 어찌하여 문화 유적의 길 마저도 홀로 차지하려는고.. 정의란 재능의 차이를 인정하고, 기회의 균등에서 나오는 법이거늘 어찌하여 조금 앞선 기회로 도덕을 무시하느뇨 오늘날 정의란 罪를 벌하고 功을 상주는 것만이 아닐터.. 공평하게 나누어 살게하고 제 몫은 되돌려 주어야 정의로운 법 저 개발의 일터에서 조금 힘들어도 맥길 살리는 지혜가 아쉽구나 어찌하여 그리도 잘 난 자들의 재산만 보호하는 자유주의런가.. 내 삶이 저리도 바쁜 길을 따라 오고 가야 하건마는 나는 내 영혼의 길을 잃고 또 어디서 그 길을 보상받을 수 있을꼬.. 원래 있었던 그 자연의 길을 찾아 헤매는 발길이 안스럽다" [할미山城] 뚜렸한 城郭의 흔적을 보며 할미성곽 입구에서 약15분 정도 오릅니다. 오늘 '할미山城'에서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할미城山 정상] 오후 3시 15분 '할미城山'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영동고속도로 들머리에서 고작 25분만에 정상에 올랐습니다. 참 쉽지요~이-ㅇ '할미城山' 정상에는 할미산성의 유래 안내판이 있으며,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할미산성 개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아마도 "할미山城"을 개축 하려는가 봅니다. [할미城山 정상] 또한 정상에는 "한남정맥" 종주자들의 표지기가 걸려있으며, "향수산"까지 3.3KM라고 친절히 안내해 주는 삼국지 산우회 표지판도 있습니다. 감사 [할미山城 유래] "할미山城 유래"에 대해서는 사진 속 설명을 참고하시기 바람니다. 모두 쓰잘데 없는 불확실한 이야기들이고,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것 정도만 알면 되겠습니다. [할미山城] 할미山城의 西쪽에는 성벽이 확실하게 남아 있습니다. 신라시대에 만들어 진것이 이렇게 남아 있다니 놀랍습니다. [할미山城 下山] 내려 가는 길입니다. 사진은 않올립니다만, 이 능선에 "향린촌"에서 설치한 쓸모없는 철조망이 끝없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의미없는 철조망 - 오히려 이 철조망 속에 사는 자기들을 옭아 맨 철조망이었습니다. 그러면 "향린촌"이란 어떤 곳인가? [운동시설] '향린촌"은 우측 산골자기와 능선에 걸쳐 있는데 넓이가 76만344㎡이라고 하며, 단독주택과 빌라 300여 가구가 한가로이 들어서 있고, 야외 수영장과 테니스장, 운동장 등이 갖춰져 있어 전혀 딴 세상에 와 있는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할미城山 거의 대부분이 "향린촌" 소유라고 합니다. [이정표] 이곳에서 "향린촌" 사이의 포장도로로 '한남정맥길'을 가는데 저는 바로 "향린촌" 정문 앞으로 하산했습니다. [산행 날머리] '향린촌" 정문 입구와 "동백지구"로 나가는 영동고속도로 굴다리로 내려 갑니다. [날머리에서 바라본 '石城山'] 새로히 영동고속도로를 2배로 확장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이곳에 "동백지구" 인터채인지를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멀리 "石城山"이 용인의 진산 다웁게 우뚝 서 있습니다. [동백지구-향린촌 갈림길] 동백지구로 가는 굴다리 사거리가 앞에 보입니다. 사거리의 좌측이 "동백지구"로 가는 굴다리가 있는 곳이며, 우측이 "향린촌" 정문으로 가는 길입니다. [향린촌 정문] "향린동산"의 개발 역사는 무려 3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1970년 향린교회 교인 30명을 포함해 초기 회원 100여명이 개인당 회비 30만원씩 걷어 자금을 마련한 후 황무지였던 야산을 개간해 지금의 향린동산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정문의 경비 아저씨에게 물으니 현재 이곳에 사는 사람중에 수준이 가장 낮은 사람이 변호사라고 하더군요. 지금은 왕년의 군사정권시절의 실세였던 사람들이 주로 산다는군요. 완전히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자기들 끼리만 옹기종기 산다고 합니다. 누가 누구를 통제하는가!~ 들어 오라고 해도 가지 않는다~! 너희들도 나오지 마라~ [동백지구로 가는 영동고속도로 굴다리] 고속도로 굴다리로 나오면 "바로 "동백지구 아파트촌"입니다. [동백지구] [동백중학교] 굴다리 앞에는 "동백중학교"가 있습니다. 3시 55분에 도착했습니다. 용인시청에서 이곳까지 4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식사시간 50분 포함) [동백지구에서 바라본 '石城山'] 동백지구 아파트촌 바로 옆에 있어서 이곳 사람들은 자주 이용할수 있겠군요. [동백지구 중앙로] 동백지구 중앙로에 나와 치킨에 생맥주로 목을 추기고 있는데, 이곳에 사는 山友이며 외과의사인 "홍도토리님"이 제가 자기 동네에 왔다고 퇴근과 동시에 불이 나게 뛰어 왔습니다. 함께 시원한 쏘맥을 하며 동백지구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구글어스로 본 산행괘적] 이해가 쉽습니까? [동백지구 탁구 동호회 회원님들과...] 山友이며 외과의사인 "홍도토리님"은 동백지구 탁구 동호인 모임의 회원이더군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운도 많은 '파란문'은 동백지구 탁구 동호인 모임 회원님들의 환영을 받고 늦게까지 한잔했습니다. 福도 많지요? ㅎㅎㅎ 모르는 사람을 알고 느끼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 '동백지구 탁구 동호인' 여러분들을 만나 즐거웠습니다. 앞으로 운동 계속하시며 건강도 챙기고 또한 두터운 이웃 사랑을 일궈나가시길 바람니다. 그리고 이 산행기를 참고하시어 앞으로 "石城山" 산행을 많이 하시기 바람니다 "石城山"은 여러분 곁에 있는 여러분들의 산입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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