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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 恭尊 - 共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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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문(李栗榮)의 산행기가
     "월간 등산 8월호"에 올랐습니다
 
     하필이면 제일 재미 없었던 산행기부터 올려 졌군요. ㅎㅎ
     
     [월간 등산 8월호 표지]
     표지에 
     산 사람들의 산이야기 
     "도솔지맥2구간 遊山記"
     보이시나요? ㅎㅎ
     
     [본문]
     저의 산행기를 글자 한자 빠뜨리지 않고 올렸으나 사진은 뒤풀이하는 장면등 몇장은
     빼고 올렸더군요.
     편집이 사진과 글이 순서대로 올려져야 하는대 사진 따로 글 따로 올려져
     사진과 글이 함께 주는 산행기의 진정한 맛이 많이 떨어졌으며,
     아마 장문의 산행기를 책에 축소해서 게재하기가 어려워 이렇게 편집했나 봅니다.
     
     
      "서울백두클럽"은 여하튼 광고 많이 되었고.....
     
     앞으로 더 좋은 산행기를 써야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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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지맥5구간] 배후령-오봉산-부용산-건천령- 종류산-추곡령-죽엽산-운수령 9월 13일(일) 오전 7시 10분에 양재역 서초구청을 출발한 버스는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달려 '도솔지맥5구간' 산행 들머리로 막힘 없이 갔습니다 긴 여름 동안 휴식기로 산행을 함께하지 못한 회원님들을 반갑게 다시 만나 가을 정취를 흠뿍 느끼며 함께 할수 있어 더욱 즐거웠습니다. [구글어스 산행 괘적도] 우선 오늘 산행한 괘적을 구글어스를 통해 알려 드리고 산행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큰 산을 4개를 넘는 긴 코스이기 때문에 산행 괘적을 먼저 알고 산행기를 읽으면 이해가 쉬울수 있다고 생각해서 먼저 올립니다. 강원도 춘천시와 화천군의 경계인 "배후령"에서 "오봉산"을 넘고 "백치고개"로 갑니다. 그리고 두번째 산인 "부용산"을 올라 "건천령"을 지나 갑니다. 다시 "종류산"을 오르고 "추곡령"으로 갑니다. 추곡령에서 "회곡령"을 지나 "죽엽산"을 오르고 "운수령"에서 산행을 마감합니다. 긴 코스이기에 산행기도 길어 질수 밖에 없지만, 최대로 줄여 올리려고 합니다. [배후령-오봉산-백치고개-부용산까지 산행 안내도] 배후령에서 오봉산을 오르는 산행코스는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있는 코스입니다. 우리는 "오봉산 정상"에서 "청평사"로 가지 않고, "백치고개"로 내려가 다시 "부용산"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오봉산 정상을 지나자마자 바로 "부용산 갈림길"을 유의해야합니다 [배후령] 오전 9시10분경 "배후령"에 도착했습니다. 강원도 "춘천시 新北邑"에서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로 넘어 가는 유명한 고개입니다. 특히 휴전선 이전에 남북의 경계선이었던 "38선"이 있는 곳이라 역사적으로도 우리들의 기억에 남는 고개입니다. 背後嶺이라는 한자를 보면 이곳의 뒤에는 뭔가 뒷끝이 찜찜한 느낌을 주는 검은 그림자가 뒤에서 서성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하신 분들은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며 背後嶺을 넘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가히 짐작이 갑니다. ㅎㅎ [배후령] 옛부터 사고가 많이 나는 背後嶺 아래로 터널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완공 예정이나 예산 부족으로 2011년에도 개통이 불확실하다고 합니다. 길이는 5,057m로 2차선 양방향 단선터널로 건설되고 있다는데, 국내 최장대 단선 터널이랍니다 '배후령'에는 휴게소도 있습니다만, 터널이 개통되면 주말에 산객들이나 이용하는 황량한 곳으로 변하게지요 "화천군"은 "물의 나라"라고 광고하고 있습니다. 아마 "파로호"를 안고 있어서 자기들의 상징으로 활용하는듯.... 제 생각에는 "花川"을 순수 우리말로 하자면 "꽃 내"이니 "파로호"로 "물의 나라"보다는 "꽃잎이 흐르는 강"을 더 부각 시켰으면 좋겠는데 화천군 관계자는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배후령 산행 들머리] "도솔지맥의 오봉산 구간"의 산행 들머리는 '배후령 정상'에 있습니다. "오봉산"의 높이가 779m입니다. 한편 "배후령"의 높이는 해발 600m입니다. 그러니 버스 타고 '배후령'까지 올라서 '오봉산'을 오르니 이곳에서 '오봉산' 오르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식은 죽 먹기이죠~ ㅎㅎ [오봉산 오르는 길] 779m의 산을 해발 600m에서 오르니 누구나 "五峰山"을 오를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말이면 많은 산객들이 이곳을 찾아, '배후령'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오봉산'을 오르고 "청평사"로 내려가 소양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소양댐으로 갑니다. 인기있는 코스이죠. 산행들머리에서 약 10분정도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단지 10분입니다. 10분~ ㅎㅎ 그러면 고생 끝입니다. [오봉산-경문산 갈림길] 배후령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이런 삼거리 공터가 나옵니다. 이곳이 경문산과 오봉산 갈림길입니다. '오봉산'은 왼쪽으로 갑니다. [오봉산 가는 길] 다섯개의 봉우리를 넘어 "五峰山"으로 갑니다만, 그다지 높지않은 완만한 경사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봉산의 1봉-2봉-3봉] 오늘 일교차가 커 안개가 많이 꼈습니다 안개 사이로 다섯개의 봉우리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다섯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있어 산 이름을 "五峰山"이라고 지었다고하니, 지금부터 하나 하나 다섯개 봉우리를 감상하며 갑니다. 하지만 평범한 봉우리들이라 특별히 의미를 두고 가는 산객들은 별루인듯... [오봉산의 1봉 나한봉 오르는 길] "五峰山"은 제4봉과 5봉을 제외하곤 나머지는 평범한 그저그런 봉우리입니다 [오봉산의 1봉 나한봉 정상] "五峰山"은 제1봉을 "나한봉"이라 하고, 제2봉은 "관음봉", 제3봉은 "문수봉", 제4봉은 "보현봉", 제5봉은 "비로봉"이라 합니다. 모두 불교적 냄새를 풍기는데, 이 산 아래에 천년 사찰인 "청평사"가 있기 때문일것입니다. [오봉산의 1봉에서 바라보는 3봉-4봉] 안개 때문에 오늘 "五峰山" 사진이 흐릿합니다 [오봉산의 1봉에서 바라보는 4봉-5봉] 짐작했던것보다 "五峰山"은 초라해 보였습니다. 화려한 암봉들은 없었고, 그저 평범한 어느 곳에서나 볼수 있는 산봉우리들이었습니다 [오봉산의 2봉] "五峰山"의 다섯봉우리를 의미를 두며 갈 필요는 없겠습니다. 왜냐하면 평범한 봉우리들이고 실제 산행을 하면 어느 봉우리가 2봉인지 3봉인지 알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4봉과 5봉만 알면 됩니다. [3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4봉과 5봉] 제4봉에는 "五峰山"의 명물인 "청솔바위"가 있습니다 "청솔바위" 이외에는 여느 산과 별 다를게 없습니다 [2봉에서 3봉으로 가는 길] 2봉에서 3봉으로 가는 길에는 다리를 설치해 놨습니다 [3봉 정상] 3봉 문수봉은 우횟길이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을 뿐이며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각 산악회의 표지기가 많이 붙어 있군요 [3봉에서 바라보는 4봉] 3봉에서 4봉 보현봉으로 가는 길에서 올려다 본 4봉 보현봉 오른쪽 뾰쪽한 바위가 "청솔바위"입니다. ['청솔바위' 오르는 길] 암릉구간 [청솔바위] [청솔바위 표지석] 혹평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봉산'에서 볼거리는 이것 뿐인가 합니다. 바위 위로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바위 아래에 보이시나요? '소나무 뿌리' 소나무 뿌리는 꿈틀대는 뱀처럼 땅속으로 뻗어 수액을 빨아 올리고 있습니다. 끈질긴 생명력을 상기시킴니다 [4봉 오르는 길에 있는 추모비] 북한산 靈峰 아시지요? '인수봉' 앞에 있습니다. 그곳에는 인수봉 암벽타기를 하다 꽃다운 청춘을 날려버린 영혼들을 기리는 '진혼비'가 수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약 150여기. 산화해간 영혼을 애도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국립공원에 진혼비들이 난립해 있어 공동묘지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산객들이 '국립공원'에 왠 묘지이냐?라고 항의를 해 금년 봄부터 철거를 시작했는데 그 이후는 가보지 못해 확인은 못했습니다만... 아마 정리가 됬겠죠? 이런 평범한 산에서 등산하다가 죽었다면 조심성이 없는 사람이었던가 봅니다. 하지만 '인수봉'이 아닌 이런 평범한 산에서도 조심 하세요 "안전제일" [4봉에서 뒤돌아 본 1봉-2봉-3봉] 4봉 보현봉에 오르니 지나온 봉우리들이 윤곽을 나타냅니다. [5봉 오르는 길] [5봉에서 뒤돌아 본 1봉-2봉-3봉] 5봉 비로봉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 보니 제1봉 제2봉 제3봉이 확실히 보입니다. 저런 정도의 봉우리를 의미있게 보지는 않는데, 오로지 "五峰山"이라니까 봉우리를 세게 되는군요 [오봉산 정상] "五峰山"의 정상 "제5봉 비로봉"에 올랐습니다 오전 10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배후령'에서 정확히 1시간 걸렸군요 간단하게 "五峰山"의 정상 "제5봉 비로봉"에 올랐습니다 [오봉산 정상] 서울에서 경춘선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와 소양강댐으로 갑니다. 그리고 소양강댐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청평사'로 뱃놀이를 합니다. 천년 사찰 '청평사'와 아홉가지 소리를 낸다는 "九聲瀑布"를 구경하고 "오봉산"을 오릅니다. 그리고 '배후령'으로 가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갑니다. 옛날 학창시절에 한번인가 왔다간 기억이 나는군요 [오봉산 정상석] '여암 신경준'선생이 쓴 "산경표"에는 이 산 이름이 "청평산"으로 표기되 있습니다. 오봉산이라던가 팔봉산이라던가 구봉산등등 숫자를 사용한 산들은 모두 일반명사가 고유명사로 된 경우인데 본명이 있는데도 널리 불리워지기 시작하면 일반명사를 고유명사화 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남대문을 '숭례문'으로 본명을 찾아 주려고 노력하듯이 북한산도 '삼각산', 오봉산도 '청평산'으로 본명을 찾아 주어야하겠습니다. [오봉산 정상] 안타깝게도 오늘 안개가 끼어 조망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봉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없습니다. [등산 안내도] 도솔지맥은 청평사로 내려가지 않고 '백치고개'를 건너 '부용산'으로 갑니다. [부용산-청평사 갈림길] 오봉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 '부용산'과 '청평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옵니다. 도솔지맥 부용산은 이곳에서 왼쪽으로 꺽어 내려 갑니다. 이제부터 진짜 숨찬 산행이 시작됩니다. [백치고개로 하산 하는 길에서 바라 본 '부용산'] 오봉산에서 백치고개로 하산하며 바라본 도솔지맥 '부용산'과 '종류산'이 안개를 뚫고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온 길이 약 5분의 1 정도 되니 앞으로 5분의4를 가야합니다 이제부터 힘든 구간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백치고개로 하산 하는 길에서 바라 본 '화천군 간척리 看尺里'] 도솔지맥의 오봉산, 부용산, 종류산, 추곡령 구간의 좌측으로는 "화천군 간척리 看尺里"가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 도솔지맥이 看尺里를 감싸 돌고 있는 것입니다. [백치고개로 하산 하는 길에서 바라 본 '부용산'] 백치고개로 조금 더 하산하며 바라 본 "부용산" 어떻습니까? 芙蓉꽃이 활짝 피어있는듯 한가요? 芙蓉이라는 단어는 듣기는 많이 들었으나 확실하게는 몰랐습니다. 그저 예쁜 꽃이겠거니하며 이럭저럭 살아 왔습니다. 오늘은 芙蓉山을 오르며 芙蓉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芙蓉을 백과사전에서 찾아 보았더니 "아욱과(―科 Malvaceae)에 속하는 낙엽관목"이라고 나와 있더군요. "모습이 "무궁화"와 비슷하며 관상용으로 흔히 심는다. 키는 1~3m이고, 가지에 별처럼 생긴 털이 있다. 잎은 단풍나무 잎처럼 5~7갈래로 갈라지면서 어긋난다. 꽃잎이 5장인 담홍색의 꽃이 8~10월에 잎겨드랑이에 1송이씩 달려 핀다." 간단하게 말해 "芙蓉"은 무궁화 無窮花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보면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연꽃"을 "부용꽃"이라고 부르기도하지요? 그래서 "연꽃"은 "水芙蓉"이라고 하며, "부용"은 "木芙蓉"이라고도 한답니다 [백치고개로 하산] 오봉산에서 백치고개로 하산하는 코스는 급한 경사면으로 약35분정도 걸립니다. [백치고개와 '부용산 산행 들머리'] 오봉산 정상에서 약35분이 걸려서 내려온 "白峙고개" "山自分水嶺" 산은 스스로 물과 고개를 나눕니다. 이 고개도 떨어지는 빗물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는 곳입니다. 오른쪽으로 떨어지면 '소양호'로 갑니다. 그러나 쪼끔이라도 왼쪽으로 떨어지면 '파로호'로 갑니다. 하얀 자갈이 많아서 "白峙"가 되었다고 춘천시에서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하얀 자갈을 볼수는 없습니다. 이 길 오른쪽으로 내려 가면 "청평사"와 "九聲瀑布", "소양호"가 나옵니다. [부용산 오르는 된비알] 오늘 산행 중에서 가장 힘든 된비알이었습니다. "백치고개"에서 "부용산 정상"까지 1시간5분이 걸렸는데, 숨돌릴 틈없이 된비알을 치고 올라야합니다. [부용산 정상] 12시 정각에 芙蓉山정상에 올랐습니다. '배후령'에서 '오봉산'을 지나 '백치고개'를 건너 이곳까지 2시간 40분이 걸렸습니다 芙蓉山 정상에는 조그만 헬기장 같은 공터가 있을뿐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사방이 숲으로 막혀있어 외부 조망도 할수없는 肉山입니다. 이곳에서 알바하기 쉬운데, 느낌으로는 직진해야 할듯하지만, 왼쪽으로 가야합니다. [부용산 정상 표지] 이쁜 산 이름을 가진 芙蓉山 정상에는 어느 산악회가 붙여놓은 정상표지만 있을 뿐.. [부용산 하산] 芙蓉山 정상에서 부터는 '도솔지맥' 마루금이 희미해 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길로 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길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해가 가나요? ㅎㅎ 지루한 하산길을 걸으며 조선시대에 유명한 "평안도 성천의 기생 '부용 金芙蓉' 이야기"를 하나 들려 드릴려고 합니다. 유명한 얘기이라 아시는 분들도 있을법합니다만.... [부용산 하산, 임도] 부용산 중턱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어디인지도 잘 모르는 "건천령"을 지나면 "임도"가 오른쪽에 나타납니다. 조선 시대, 어느 해 겨울, 신임 평안감사는 부임 전부터 명기가 많다는 평안도 성천에서, 기생중에 기생 "부용(芙蓉)"이 특히나 유명하다는 소문을 이미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답니다요. 세상 남정네 모두 그렇듯 이쁜 것들 보면 꼴리는것은 그도 똑같았습니다. 신임 감사는 그 소문이 정말인지를 알아보려고 잠시 틈을 내어 '부용'을 찾아갔답니다. 은은한 달빛이 술잔을 감싸고 도는 밤 평안감사는 몇잔의 술에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芙蓉'이 글솜씨도 유창하다는 소문을 이 기회에 확인해 보려고, 지필묵을 청하여 '能八'이라고 써서 '부용' 앞에 내밀면서 "여러 방면에 뛰어난 명기라 들었다. 글도 잘 지을 터인 즉, '能' 8자를 넣어 칠언절구를 지어 보라."고 청하였답니다 ....... [임도에서 뒤돌아 본 '부용산'] 아무리 평안감사라 해도 자신을 시험하려는 것에 '芙蓉'은 자존심이 쬐끔 상했지만 공자 앞에서 문자를 논하는 것을 탓하기라도 하듯 '일필휘지'를 날렸습니다. 평안도 성천의 '부용'이라는 기생이 쓴 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能' 8자를 잘 생각하며 읽어 보시기 바람니다. 成川芙蓉何事能 能舞詩詞能 能中唯一 夜半三更歡夫 분명하게 여덟자는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무슨 뜻인지 모두 모르시죠? ㅎㅎ 제가 윗글의 뜻을 알려 드리면 기분이 묘해 질겁니다. 成川芙蓉何事能 성천에 사는 '부용'은 무슨 일을 잘 할까요. 能歌能舞詩詞能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고, 글 또한 잘 짓지요. 能之能中唯一能 잘 하고 잘 하는 가운데 더욱 잘 하는 한 가지는 夜半三更歡夫能 밤 깊은 삼경에 '남정네를 즐겁게 하는 것'이오. [임도 삼거리] 임도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 임도의 이름이 "富貴林道"였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이 도솔지맥 마루금의 오른쪽이 '춘천시 북산면 富貴里'여서 지어진듯.... 이 임도의 왼쪽길을 따라 가면 "추곡령"까지 쉽게 갈수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이길을 임도라고 하지만 "추곡터널"이 뚤리기 전까진 "추곡령"을 넘는 일반 국도였으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가늠해 볼수있기도 합니다 남자에게 다가오는 원자폭탄보다 더 강렬하고 위력적인게 뭔줄 아십니까? 바로 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여자의 잠자리 유혹"입니다. 특히 이쁜 여성의 유혹은 허리케인도 무색할 정도로 남자에겐 위력적인것입니다. 조물주가 절묘하게 그렇게 유혹에 약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그러니 인류는 존재 하고 진화할수 있었던 것인데..... 만약 남성이 여성의 유혹을 강건너 불보듯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후세가 만들어 질수 있겠습니까? 이렇듯 남녀는 절묘한 관계로 서로의 존재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임도 삼거리 '종류산 들머리'] 도솔지맥은 임도 삼거리의 가운데 능선으로 올라 갑니다. 이제부터는 "종류산"으로 가는 길이 되겠습니다. 成川芙蓉何事能 성천에 사는 '부용'은 무슨 일을 잘 할까요. 能歌能舞詩詞能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고, 글 또한 잘 짓지요. 能之能中唯一能 잘 하고 잘 하는 가운데 더욱 잘 하는 한 가지는 夜半三更歡夫能 밤 깊은 삼경에 '남정네를 즐겁게 하는 것'이오. 자신이 청한대로 '能'을 8자 넣어 글을 지었으며, 내용도 삼삼한데다가, 기승전결도 잘 맞는 데 감탄을 하지않을수 있었겠습니까? 특히 마지막 구절에서는 야릇한 감정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였답니다. ㅎㅎ 七言絶句詩의 절정을 맛보는 듯 합니다. 이런 글을 받아 본 평안감사의 기분은 애들이라도 알아 볼수 있겠지요? ㅎㅎ 그래서...계속 이어집니다. 더욱 흥미진진해 집니다. [종류산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죽엽산"과 "추곡령"] 우리 횐님들은 이곳에서 "죽엽산"과 "추곡령"을 바라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칩니다. 저 "竹葉山"을 넘어 "雲水嶺"으로 가야하니 앞으로도 많이 가야합니다. [종류산 오르는 길에서 줌인하여 바라본 "죽엽산"과 "추곡령"] 줌인하였더니 "죽엽산"과 "추곡령"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만나겠지만 SK이동통신송수신탑도 선명하게 보이는군요. [종류산 오르는 길] 평안감사가 '부용'으로부터 한방 크게 얻어 맞은후 얼마 뒤, 눈 쌓인 밖을 내다보던 감사의 눈에, 저만큼 떨어진 산에서 곰이 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감사는 내친 김에 다시 '부용'의 글짓기 능력을 한번 더 확실히 테스트 하려고 방금 본 광경, 즉 '눈 쌓인 남쪽 산에서 곰이 달리는 것'을 '南山雪積能走走' 라고 스스로 써서 '부용'에게 내밀면서 댓구(對句)를 청했답니다. 역시 七言絶句詩를 요구했습니다. *곰은 한자로 "熊"인데, "能"으로 잘못 쓴 것을 주목해 두시기 바람니다 그래야 다음 글들을 이해 할수 있습니다 [종류산 783m갈림길봉] 잠시 감사의 글귀를 훑어보던 '부용'은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띠는가 싶더니 곧 한치의 멈칫거림없이 댓구를 적어 올렸습니다. '北村人歸大吠吠 ' (吠 : 개짖을 폐) '부용'의 댓구를 받아든 감사는 뭔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부용에게 물었습니다. "'北村人歸, 북쪽 마을에 사람들이 돌아오고'는 알겠는데 '大吠吠'라니 무엇이 크게 짖는다는 말이냐, 혹시 잘못 지은 것이 아니냐?" 부용은 감사의 그 물음에는 답을 하지 않고 그 대신에, '大監惠給熊四足 小妾何惜犬一耳' (대감께서는 황공하옵게도 곰 네 다리를 주셨는데, 제 어찌 그까짓 개 귀 하나를 아끼오리까?) 라고 적어 올렸습니다. 대답 대신 받은 '부용'의 글귀를 한동안 주시하던 감사는 그제서야 무릎을 치고 호방하게 웃으며 "역시 자네는 듣던대로 명기임에 틀림없네. 자네를 시험하려 한 내가 부끄럽네."라며 사과를 겸하여 크게 칭찬을 했다고 합니다. 부용은 살포시 웃을 뿐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 달빛이 술잔에 부셔지는 밤에, '부용'이 감사의 수청을 들었는지는 저도 알 길이 없수다~ㅋㅋ 알아도 안 갈켜준다~ [종류산 783m갈림길봉] "종류산 갈림길봉"에서 "종류산"까지 갔다 오는데 30여분 걸린답니다. 그러나 "운수령"까지 가야하는 우리는 "종류산"은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생략했습니다. "종류산"의 모든 봉우리가 모두 "종류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북한산의 '백운대'만이 북한산은 아니고 여러 봉우리들이 모두 북한산이듯이, 이 갈림길봉도 '종류산'이라 자위하며 갑니다. [종류산에서 바라 보는 "사명산"] 그런데 위에서 '부용'이 적어준 글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北村人歸大吠吠'와 이글의 의미를 모르겠다고 하는 감사의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하는 다음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大監惠給熊四足 小妾何惜犬一耳' (대감께서는 황공하옵게도 곰 네 다리를 주셨는데, 제 어찌 그까짓 개 귀 하나를 아끼오리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요? 이 말의 뜻을 알아야 '부용'의 능력을 잘 알고 무릎을 칠수 있습니다 ["추곡령"으로 하산 하면서 바라 본 "죽엽산"] 친절하게 알기 쉽게 해설해 드리겠습니다. 감사가 '부용'에게 댓구를 청하는 글귀 "南山雪積能走"를 주는데 남쪽 눈 쌓인 산에 곰이 다니고 있으므로 "熊(곰 웅)"자를 써야할 것을 감사가 실수로 네 점을 빠뜨리고 "能"이라 쓴 것을 단번에 알아차린 부용은, 감사의 그 실수, 즉 곰 熊자 밑에 점 4개를 빼먹은 것을 "곰 네 다리를 주셨다."고 꼬집으면서, 거기에 맞추어 자기도 일부러 의 점 하나를 뺀 로 써 '개 귀 하나를 드린다.'고 한 것입니다. 자기의 글솜씨를 시험하려는 감사에게 은근히 그리고 재치있게 일침을 준 것이라 아니 할수 없습니다. 金芙蓉의 재치는 가히 칭찬할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ㅎㅎ 재미 있었나요? 이글은 정비석선생의 "명기열전"에 나오는 내용을 필자가 조금 각색해서 알려 드린것입니다. 언젠가 앞으로 "정비석" 선생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北으로 월북하셨기에 그의 문학까지 가버린 현실을 반추해 보려고요..... 많이 기대해 주세요, 엄청난 얘깃거리를 가지고 가신 분입니다. ["추곡령"으로 하산 하면서 바라 본 "사명산"과 "운수령"] "김부용"의 호는 雲楚이며 그녀의 무덤은 천안 광덕산 자락에 있습니다. 저는 다녀 왔습니다만, 천안 광덕산 가는 길 있으면 한번 들려 보세요. "장군바위"에서 "광덕사"로 내려 오는 길에 있습니다. 김부용이 19살때에 77살의 '淵泉 김이양'을 만나 소실이 되었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나요 "김부용"은 호탕한 여인으로 기생에는 뜻이 없어 기생을 그만 두고 금수강산을 유람하며 여생을 보내다, 부용은 淵泉 김이양'이 죽은 후에 기생으로 수절하다가 김이양의 묘 옆에 뭍히고 싶어 천안 광덕산 자락으로 찾아와 뭍혔다는 애뜻한 사연도 제가 광덕산을 찾았을 때에 알수 있었습니다 김부용이 쓴 시집 "芙蓉集"에는 약 150수의 시가 수록되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김부용의 최고의 詩 부용상사곡 芙蓉想思曲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추곡령"으로 하산 하면서 뒤돌아 본 "오봉산"과 "부용산"] 성천기생 김부용의 시와 사 랑 애타게 그리움과 기다림에 지친 부용은 지루함을 달래면서 "탑시" 형식의 시를 짓습니다. 한 글자로부터 시작해서 각 구마다 한 자씩 더하여 마지막에는 16자까지 되어 탑 형태를 이루는 저 유명한 회문체의 "芙蓉相思曲"이라는 시를 써 내려갑니다. ["추곡령"으로 하산 하면서 뒤돌아 본 "종류산"]
芙蓉相思曲 김부용 (塔詩) 別 思 路遠 信遲 念在彼 身留玆 羅巾有淚 紈扇無期 香閣鍾鳴夜 鍊亭月上時 倚孤枕驚殘夢 望歸雲悵遠離 日待佳期愁屈指 晨開情札泣支頤 容貌憔悴對鏡下淚 歌聲烏咽對人含悲 提銀刀斷弱腸非難事 躡珠履送遠眸更多疑 昨不來今不來郎何無信 朝遠望夕遠望妾獨見欺 浿江成平陸後鞭馬騎來否 長林變大海初乘船欲渡之 別時多見時少世情無人可測 惡緣長好緣端天意有誰能知 雲雨巫山行人絶仙女之夢在某 月下鳳臺簫聲斷弄玉之情屬誰 欲忘難忘强登浮碧樓可惜紅顔老 不思自思頻倚牡丹峰每傷緣鬢衰 獨守空房淚縱如雨三生佳約焉有變 孤處深閨頭雖欲雪百年定心自不移 罷晝眠開紗窓迎花柳少年總是無情客 推玉枕挽香衣送歌舞同春莫非可憎兒 千里待人難待人難甚矣君子薄情如是耶 三時出門望出門望哀哉賤妾苦心果如何 惟願寬仁大丈夫決意渡江舊緣燭下欣相對 勿使軟弱兒女子含淚歸泉孤魂月中泣長隨 이글의 해석은 "홍어와 무인도" 카페의 "향그러운 음악과 글"란에 있습니다
[추곡령 楸谷嶺] 오후 3시 25분에 도착했으니 '배후령'에서 6시간 5분 걸렸습니다. "추곡령"은 "楸谷嶺"으로 쓰는데 "楸"가 "개오동나무 楸"라고합니다. 아마도 개오동나무가 많은 곳이라 지어진 이름인듯..... 추곡령의 오른쪽 아랫마을 이름이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추곡리"이기 때문에 "추곡령"이고, 왼쪽이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여서 이곳 사람들은 "간척령"이라고 부른 답니다 아무튼 화천군과 춘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며, 옛날에는 이 고개를 넘어 서로 왕래를 하였으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습니다. 이곳에서 아까 "종류산 입구 임도 삼거리"에서 좌측길로 오면 이곳에서 만납니다. "富貴林道"라는 이름이 오묘합니다 택시도 이곳에 왔다 가더군요. 차량 통행이 아직도 제법 있는듯 합니다. [추곡령에서 "죽엽산 산행 들머리"] 추곡령에서 "죽엽산"을 오르는 들머리는 "富貴林道"를 따라 '상추곡리' 방향으로 30m쯤 내려 가면 좌측으로 길이 열림니다 [추곡령 위 'SK 이동통신 송수신탑'] 추곡령에서 조금 올라 가면 "SK이동통신송수신탑"을 정면으로 만나는데 탑 정문 앞 좌측으로 우회로가 있습니다. [죽엽산으로 오르며 뒤 돌아 본 'SK이동통신송수신탑'과 뒤로 "종류산"] 통신탑 뒤로는 지나온 "종류산"이 우뚝 서 있습니다. 그리고 도솔지맥이 한눈에 보입니다. [회곡령 灰谷嶺 근처] 지도상에 나와 있는 "灰谷嶺" 쯤 묘지에서 올려 다 본 "竹葉山" [회곡령 灰谷嶺 근처에서 올려다 본 "죽엽산"] 여기서 휴식을 취하며, 쇠주 한잔하고 엄청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해발 859.2m 죽엽산을 오르니 더욱 힘듭니다 [죽엽산 중턱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지나온 "종류산"과 "추곡령"] 죽엽산 중턱에 오르니 지나온 모든 산줄기가 한눈에 보이는 기막힌 전망대가 있었습니다 피로가 단번에 날라가는듯 펼쳐지는 경치가 장관입니다. [죽엽산 중턱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지나온 "도솔지맥의 오봉산-부용산"] 지나온 도솔지맥 좌측으로부터 '부용산', '백치고개', 오봉산', '배후령', 앞의 마을은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 [죽엽산 중턱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지나온 "종류산"과 "추곡령"] 부용산에서 종류산을 지나 추곡령..그리고 죽엽산 줄기가 한눈에 보입니다. [죽엽산 오르는 된비알] 마지막 힘을 쏟아 죽엽산 정상으로 향합니다. [죽엽산 정상 바로 앞 삼거리] "죽엽산" 정상을 약 30m쯤 앞두고, 희미한 삼거리가 있습니다. 제가 이 사진을 특별히 올리는 이유는 이곳에서 알바를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죽엽산 정상을 갔다가 반드시 이곳으로 되돌아 와야합니다. 죽엽산 정상에서 직진하기 쉽기 때문에 강조해 드리는 것입니다. [죽엽산 정상 竹葉山] 희미한 삼거리를 지나면 곧바로 "죽엽산 竹葉山"정상입니다. 사방이 숲으로 막혀 시야가 트이지도 않습니다. 뭘 위해서 이곳에 올랐는지 .... 후회되기도 하는 그런 죽엽산 정상입니다. 오후 5시 10분에 도착했습니다. [죽엽산 삼각점과 증명사진] 죽엽산 정상에는 삼각점 하나가 덩그렁 놓여있고, 몇개의 산악회 표지기가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회원들이 포기한 이곳까지 오른 대단한 용사들의 증명사진입니다. [죽엽산 정상에서 살짝 보이는 "파로호"를 줌인] 나무가지 사이로 간신히 줌인하여 촬영한 '파로호' [죽엽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춘천시 북산면 상추곡리"] 죽엽산 정상에서 약30m쯤 되돌아 나와, 도솔지맥 마루금을 타고 "운수령"으로 향합니다. 우측으로는 "상추곡리"가 시골풍경을 멋들어지게 펼쳐집니다. [죽엽산 정상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부용산-종류산-추곡령-죽엽산 줄기"] 더욱 확실하게 보이는 지나온 도솔지맥 그림 같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저 산들을 모두 넘어 왔다고 생각하니.... [운수령으로 하산] 날이 어두워 집니다. 어두워 지기 전에 운수령을 가야함으로 발길을 재촉합니다 길도 희미한 지맥길은 길고 긴 하산길이었습니다. [운수령 雲水嶺] 산그림자가 기울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오후 6시 15분경 "옛 운수령"에 도착했습니다. 새로운 도로들이 뚤리기 전까지는 이런 곳으로 넘나 들었겠지요. 서글프게 보이는 "옛 雲水嶺" [운수령 雲水嶺] 雲水嶺에는 이런 돌담을 쌓은듯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운수령에서 新雲水嶺으로 가는 마지막 651m본] 봉우리는 끝없이 계속되는듯 넘으면 나오고 또 나오고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마지막 봉우리 651m봉으로 오릅니다. [新雲水嶺] 651m봉을 간신히 넘어 내려오니 "新雲水嶺"이 이렇게 버티고 서 있습니다. 어느듯 어두워진 "신운수령"에 오후 6시 50분경에 도착했습니다 춘천시 추곡리에서 화천군 운수골로 넘어 가는 고갯길입니다. [新雲水嶺] 친절하게 버스가 여기까지 올라와 주어 조금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뒷풀이] 소주 한병, 라면 한그릇 순식간에 해치우고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돌아 오는 길에 '고갈산님'과 분당에서 또 한잔하고.....ㅎㅎ [구글어스 산행 괘적도] 총산행 거리 : 약 17km 총산행 시간 : 약 9시간 30분 평균 오르막 속도 : 약 1.4km/h 평균 내리막 속도 : 약 2.21km/h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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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來峰-會靈峰 遊山記 9월 첫주에는 徽山會 정기산행에 참가했습니다. 특히 "봉평효석문화재"를 참관할수 있는 곳에 있는 山이기에 一石二鳥, 도랑치고 가재잡는 기회여서 다른 계획을 포기하고 강원도 봉평으로 갔습니다. [올림픽대로에서 바라보는 올림픽대교와 한강] 9월6일(일) 오전 7시50분경에 올림픽대로를 달려 강원도 봉평으로 가는 차안에서 한강과 올림픽대교를 촬영했습니다. [보래령 터널] 오전 10시30분경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보래동에 있는 "寶來嶺터널"에 도착했습니다 "寶來嶺터널"은 공사중에 있었으며 곧 개통될듯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보래봉-회령봉 산행 개념도] 오늘 산행은 "寶來嶺터널"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 ""寶來嶺"을 경유해서 "寶來峰"을 오르고, "한강기맥과 會靈峰 갈림길"을 지나 "會靈峰"을 돌아 "연지기"로 원점 회귀하는 코스입니다. 식사시간 포함해서 4시간 30분쯤 걸리는 짧은 코스이며, 경사도 완만해서 초보산객들도 쉽게 오를수 있는 그런 코스입니다. [보래령 터널앞] "寶來嶺터널" 바로 앞까지 버스가 올라와 산행시간이 더욱 단축되겠습니다. 평상시에는 "寶來峰"- "會靈峰"코스가 산객들에게 인기있는 산행코스는 아닙니다. '한강기맥'을 종주하는 산객들이 운두령에서 '보래령'-보래봉'을 거쳐 흥정산갈림길로 스쳐 지나가는 단순한 코스여서 봉평을 찾아 오르는 산객들은 별로 없습니다. 오늘은 왜 이렇게 수많은 관광버스들이 많이 왔는가? 그 이유는 9월4일부터 9월14일까지 열리는 "봉평효석문화제" 때문입니다. 이 효석문화제가 열리는 때에 등산도 하고 효석문화제도 구경하려고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드는 것입니다. 저도 다른 산행계획이 있었으나 이런 기회가 아니면 "봉평효석문화제"를 구경할수없어 만사 제쳐두고 "휘산회"에 따라 붙었습니다. 사실 저는 "보래봉-회령봉" 산행보다 "봉평효석문화제"에 더 관심이 있어 온 것입니다. [보래령 터널앞에서 바라 본 "보래봉"] 산행들머리인 '보래령터널' 앞에서 '보래봉 정상'은 바로 올려다 보입니다. [보래령 터널앞-산행 들머리] 오전 10시40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휘산회" 참여 교우들의 수가 조금 적은듯합니다. 버스가 4대만 왔으니까요 [보래령 터널앞-산행 들머리] 보래령터널 우측 옆으로 치고 오릅니다. 여기서 "보래령" 고개까지 약 30분 정도 걸리며 경사는 완만합니다. "보래령"에서 "보래봉"까지는 사람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30분정도 걸립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보래봉 정상"까지는 1시간 정도면 충분히 오를수 있습니다. [보래령 오르는 산행 들머리] 봉평이라는 곳은 강원도 평창군의 북서쪽에 위치한 하나의 面입니다. 그런데 왜 봉평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가. 그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현대문학에서 도져히 뺄수없는 "이 효석"이라고하는 作家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최고 힛트작인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단편소설의 무대이기도 해서 일것입니다. [보래령 오르는 길] '보래령터널' 옆으로 접어 들면 바로 울창한 숲이 햇볕을 가려주며 시원한 등로를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보래봉-회령봉을 산행 하는 모든 구간에서 외부를 전혀 조망 할수 없습니다. 숲속을 거닐다 오는 것이지요, 어디가 어디인지 전혀 모르고 오로지 숲속을 거닐다 내려 오니 뒷동산을 걷는지...킬리만자로를 걷는지 알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같은 경우는 이런 肉山에 올때는 주로 겨울에 옵니다. 그래야 외부를 조망할수있어 내가 어디에 왔는지 알수 있기때문입니다. 보래봉에서는 오대산과 계방산, 흥정산, 용문산등이 조망되는 곳입니다. 오늘은 여름철이라 숲으로 외부를 전혀 볼수 없어 산행기 쓸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이효석 빼고는 이야기 꺼리가 없어 산행기는 간단하게 마무리됩니다. 재미없는 산행기를 양해해 주시고....2부에 계속되는 "봉평효석문화제"를 기대해 주세요 [寶來嶺] 30분 정도 오르면 금새 "寶來嶺"에 오릅니다. 寶來嶺은 옛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던 곳이랍니다. 평창군 봉평면 사람들과 홍천군 내면 사람들이 험준한 산들을 피해 가장 빨리 넘나 들수 있는 고개여서 많이 이용하던 고개였답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운두령"에 차로가 뚤려 이 산고개를 넘나 드는 사람들은 봉평 홍천 사람들은 한명도 없고, 오로지 멀리서 온 산꾼들만 찾는 곳이 되었답니다. 봉평 홍천 사람들은 현재 공사중에 있는 "보래령터널"이 개통되면 아예 이곳-보래령을 잊어 버릴것입니다. [寶來嶺] 이곳 - 보래령은 "漢江岐脈"의 마루금이 지나는 곳입니다. "漢江岐脈"이란 북한강과 남한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줄기라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북한강과 남한강 사이를 달리는 산줄기여서 "한중기맥(漢中岐脈)"이라고도 부르며, 두 물줄기를 더 강조하여 "양수기맥(兩水岐脈)"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寶來峰 오르는 된비알] "보래령"에서 "보래봉"까지 두 구간에 약간의 된비알이 있습니다. 7분짜리 하나와 5분짜리의 된비알이 있으니 아주 간단히 정상까지 갈수 있습니다. 어느 산이나 정상부에는 된비알 - 깔딱고개가 있는데 이곳은 아주 간단합니다. [寶來峰 정상] 잠시 오르면 금새 하늘이 열리고 "보래봉" 정상이 나타납니다. 정상같지 않은 정상이 성큼 다가 옵니다. 너무 쉽지요~이~잉~ㅇ [寶來峰 정상] '보래봉 정상'에는 정상석도 없습니다만, 대신에 이정표를 하나 세워 놨습니다. 보래봉과 회령봉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을 서-북쪽에서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이며, 그 중 보래봉은 한강기맥 상에 있는 봉우리로서 봉평면과 홍천군 내면의 경계에 위치해 있습니다 山勢가 肉山이라 아기자기한 볼거리는 없고 더더욱 여름철에는 숲때문에 눈에 뵈는게 없습니다 [寶來峰 이정표] 이 이정표가 그래도 '보래봉 정상'을 알려 주는 표지라고 이곳을 오르는 산객들은 이정표를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습니다 1,324m높이이면 울나라에선 매우 높은 산입니다만, 보래령 터널의 표고가 해발 700m가 넘으니 간단하게 오를수 있는 것입니다. [점심식사] 즐거운 식사시간 우리 62회는 보래봉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 시원한 숲속에서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한강기맥-회령봉 갈림길 가는 길] "漢江岐脈"은 오대산의 두로봉(1,422m)에서 백두대간으로부터 갈라져 나와 오대산 비로봉(1,563.4m)과 호령봉(1,560m)을 지나 계방산(1,577.4m)을 거쳐 운두령과 보래령을 넘어 보래봉으로 이어져오는 산줄기입니다. 두로봉에서부터 보래봉까지는 공식적인 현대표기산맥으로 "차령산맥"과 일치합니다. 보래봉을 지나 계속 서남진하는 한강기맥은 "회령봉 갈림길"과 "흥정산 갈림길"을 지나 대학산(875.4m), 용문산(1,157m)을 거치고, 지난 7월 야유회 산행을 했던 어비산 옆에 있는 유명산(866m)과 소구니산(790m)을 거쳐 청계산(685.4m)에 도달하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두물머리에서 한강 속으로 가라 앉는데 오대산 두로봉에서 양수리까지의 구간거리가 160km에 달합니다. "한강기맥"을 종주하는 산꾼들은 이 160km의 구간을 주로 10구간 정도로 끊어 산행을 합니다 [한강기맥-회령봉 갈림길 가는 길] 이처럼 우리나라 중부권을 가로지르는 한강기맥은 어느 정맥이나 대간 못지 않게 많은 명산을 거느리고 있으며, 영동고속도로와 대체로 나란히 달리고 있어서 접근하기도 용이하므로 많은 산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한강기맥-회령봉 갈림길] 보래봉과 회령봉의 산행은 봉평 보래령터널앞에서 원점회귀 산행을 할 수도 있고, 계방산 들머리이기도 한 운두령에서 출발하여 1,381m봉을 지나 '보래령'을 통과하여, "보래봉"을 지나 이곳 -"한강기맥과 회령봉 갈림길"로 와서, "회령봉"을 돌아 "연지기-보래령터널"로 종주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차편만 마련된다면 운두령에서 유장한 한강기맥을 종주하면서 1,381m봉을 넘고, 다시 보래령을 지나 보래봉과 회령봉,두 봉우리를 차례로 거쳐 내려오는 게 산행의 묘미를 더할수 있겠습니다. 갈림길에서 한강기맥은 오른쪽 산로가 약간 희미한 길로 가며, 회령봉은 왼쪽 뻥뚤린 길로 갑니다 [회령봉 가는 길] "한강기맥과 회령봉 갈림길"에서 '한강기맥' 마루금을 벗어나 "회령봉"으로 갑니다. 외부는 숲으로 조망할수 없습니다. [會靈峰 정상] '한강기맥 갈림길'에서 '회령봉' 방향으로 조금 가면 금새 "회령봉"이 나옵니다 [會靈峰 정상표지] 會靈峰 1,331m 山神靈들이 모두 모여 會議를 하는 곳 근거 있는 얘기이냐구요? 대략 한자를 보면 알수 있는거 아니에요? 뭘 꼬치 꼬치 따집니까 저도 산에 좀 다니다 보니 대략 이런 정도는 감으로도 알아 차립니다. 山神靈들이 모두 모여 會議를 하는 곳이니 구름위 天上樂園 같아야 할텐데 이름에 비해 형편없는 산세와 정상석 하나없는 초라한 모습에 실망을 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會靈峰 정상에서 기념사진] 아니 ~ 山神靈들이 여기 있었군요 이제야 왜 이 산봉우리 이름을 會靈峰으로 지었는지 알겠군요..ㅎㅎ 요즘 山神靈들은 하고 다니는 폼도 각양각색이군요 ㅎㅎ 어~ 女山神靈들도 있네요? ㅋㅋ [하산] 숲으로 갑갑한 감옥같은 터널 안을 뚤고 하산합니다. 눈 덮힌 겨울에 오시면 외부도 잘 조망되고 걷는 운치도 더합니다 "봉평효석문화제"만 아니었다면 저는 이 산에 이 여름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산 갈림길] 조금 더 돌아 능선으로 하산하는 코스와 조금 빨리 하산하는 코스와 갈리는 갈림길입니다. [1,381m봉] 거의 다 내려 왔을 때에 "운두령 雲頭嶺"에서 "보래령 寶來嶺"넘어 올 때 넘는 산봉우리인 1,381m봉이 이제서야 쬐끔 조망되는군요. [하산] 다시 숲을 헤치고.... [급경사 하산길] 오늘 산행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급경사 내리막길을 줄을 서서 내려 갑니다. 이 구간이라도 있었으니 쬐끔 등산하는 기분이 났습니다. [급경사 하산길] 이 구간을 내려 오면 바로 날머리입니다 [보래령 터널로 회귀] 좌측으로 오전에 산행 들머리였던 "보래령터널"이 보이고.... 우측으로 '연지기' 앞으로 버스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때 시간이 오후 3시 30분경이었습니다. 이제부터 "봉평효석문화제"가 열리는 봉평행사장으로 가서 구경하고, 뒷풀이를 할 예정입니다. [보래령 계곡에서...] 1급수 맑고 시원한 개울물에서 깨끗하게 씻고 바로 "봉평효석문화제" 행사장으로 갑니다. "봉평효석문화제" 遊覽記는 별도로 올릴 예정이오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홍어와 무인도"를 찾아 보세요~ [보래봉-회령봉 산행 개념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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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지맥 3구간 烽火山 區間 山行記 두무동고개-양구터널-봉화산-공리고개 지난 2009년 7월 12일(일)에 도솔지맥3구간 종주를 위해 양구의 공리고개로 갔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정상적인 산행을 할수가 없었고 특히 사진 촬영을 할수 없어 산행을 접고 소양강 근처 횟집에서 아침부터 오후 6시까지 퍼 마시다가 왔습니다. 오늘은 그때 하지 못한 산행을 다시 하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산행기를 씁니다 [도솔지맥 1~4구간 개념도] 지금까지 진행해 온 '도솔지맥 1구간~4구간을 정리했습니다 이미 '추곡약수'까지 진행하였으나 "3구간"만을 폭우로 답사하지 못해 이번에 3구간을 별도로 다시 산행을 하였습니다. [도솔지맥 3구간 산행 개념도] '3구간'만을 별도로 개념도를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가실 분들은 이 지도에 빨간 색으로 표기된 봉우리와 산행기를 함께 보시면 참고가 될것입니다. 등로가 희미하고 갈래길이 많아 길을 놓치기 쉬운 코스이기에 주의가 필요한 구간입니다. [양구 '두무동 고개'] 8월30일(일) 오전 11시에 두무동고개에 도착했습니다. 다소 늦은 산행이나 단촐한 식구이기에 산행 준비를 간단히 하고 11시 15분에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두무동고개' 산행 들머리] '두무리' 표지석 바로 뒤 전봇대가 있는 산행 들머리로 들어 섭니다. 좋은 등산로 놔두고 이런 길도 희미한 숲속으로 기어 들어 가는 것을 우리는 더 좋아 합니다. ㅎ 다른 일반인들이 보면 조금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만 가 보지 못한 길을 가 본다는 단순한 호기심도 자신에겐 보람으로 느껴지기에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그런 유명한 등산로는 피하고 이런 지맥을 가는 것입니다 [542m봉] 두무동고개에서 30분쯤 오르면 첫번째로 조금 높은 봉우리가 나타나는데 이 봉우리가 542m봉이며 ....여기서는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숲속에 들어 서면 방향감각이 무뎌져 자칫 길을 잃는 때가 많은데 특히 '도솔지맥'은 사람들의 흔적이 별로 없는 구간이 많아 매우 조심해야합니다 [578m봉] 독도에 매우 조심해야하는 곳입니다. 느낌으로는 우측으로 가야하는듯하지만 좌측으로 가야합니다. 선답자들이 이곳에서 알바를 많이 하였더군요 [580m봉] 두무동고개에서 양구터널까지 코스에는 선답자들이 길을 헤맨 흔적이 뚜렸이 남아 있었습니다. 표지기도 엉뚱한 곳에 붙여 놓은 것도 많았습니다. 독도에 자신 없으신 분들은 매우 조심하여야 하는 코스이더군요 [580m봉에서 헬기장까지] 새벽6시에 집을 나섯는데, 분당에서 '고갈산님'을 태우고,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구리 도농역으로 가서 다시 '개살구님', '교감샘님'과 합류하여 추억의 46번국도를 드라이브하듯이 여유롭게 달리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가을을 느끼며 북한강을 끼고 춘천으로 가서 순댓국에 쇠주 한잔씩 하고 두무동고개로 가니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헬기장 봉] 평범한 봉우리 몇개를 넘어 가니 제법 높은 봉우리가 나타났습니다 숲으로 앞뒤가 꽉 막힌 육산에서 처음으로 하늘이 열림니다 [헬기장] 헬기장에 도착하니 12시 40분 정도 되었으니 두무동고개에서 약 한시간반정도 걸렸습니다. 새벽에 집을 나설 때에는 가랑비가 내렸고 춘천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양구로 접어 들자 비는 그치고 산행하기 좋은 시원한 날씨로 변했으니 확실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가 봅니다 [565m봉] 헬기장에서 조금 가니 양구터널 위 565m봉이 나왔는데 좌측으로 임도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지난 비오는 산행때 임도를 타고 온 횐님들이 아마도 여기서 길을 잘못들어 오히려 편하게(?) 두무동고개로 직행한듯합니다 양구터널에서 두무동고개로 가실 분들은 임도를 타면 편하게 갈수 있습니다 [양구터널 위로 내려 가는 길] 565m봉에서 양구터널 위로 내려 가는데 산불감시초소가 보입니다. [양구터널 위 산불감시초소] 산불감시초소 아래로 46번국도 '양구터널'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도솔3구간에 있는 유일한 산불감시초소이니 이것이 보이면 양구터널 위입니다 [양구터널 위에서 바라 본 양구 청리] 원래 46번 국도는 조금전 산행 들머리였던 "두무동고갯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양구터널이 뚤리면서 '46번국도'는 이곳이 되었으며 "두무동고갯길"은 이제 지방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옛날에는 얼마나 불편한 교통지역이었는지 상상이 가십니까? 옛날에는 '강원도 운전 면허"가 최고라는 때가 있었습니다. 양구에서 인제로 넘어 가는 꼬불꼬불 비포장 산비탈길을 다녔으니 운전 솜씨는 강원도 운전면허가 최고라고 했던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양구와 인제 속초를 넘어 가는 길들은 거의 고속도로 수준입니다 꼬불꼬불한 길은 터널을 뚤어 시원하게 직선화 하였습니다. [양구터널 위 헬기장] 양구터널 위에는 헬기장이 또 하나 있습니다. [헬기장에서 46번 구도로로 내려 가는 길] 이동통신 안테나가 있는 곳에 양구터널 위와 46번국도를 연결하는 통로가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비포장 도로가 아주 옛날 '46번국도'였답니다 오후 1시에 도착했습니다. [양구터널 위 "46번 국도" 옛길 - 도리지고개] '도리지고개' '옛 46번 국도' '이동통신 안테나 전봇대 옆으로 터널 입구로 내려 가는 길' 아~! 이길로 선조들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겨내며 지나 다녔을까~ 이제는 우리같은 산객들이나 얼씬거릴 뿐 아무도 다니지 않는 이 길이 옛날에는 ..아니 그다지 옛날도 아닌 70년대 까지도 이 고개를 넘나 들었을테니.. [되레지 고개] '도리지 고개'에 대해선 그 의미를 알기 위해 많은 조사를 해 봤습니다 '양구 지명의 유래'에 간단하게 소개되 있어서 보물을 찾은 듯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지도에는 "도리지고개", "작은 도리지 고개"로 표기되 있습니다 양구군 공식 홈페이지에는 "되레지 고개"로 표기되있더군요. 이 고개 아래에 "도촌리"가 있는데 挑村里로 한자표기를 하고 그리고 분명하게 挑村里되레지 또는 도리곶(桃里串)이었는데 복숭아가 많이 나오는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명이 되있습니다 되레지고개(桃村峴)【고개】되레지에서 원리로 넘어가는 큰 고개 작은 되레지 고개(小桃村峴)【고개】되레지고개 아래쪽에 있는 작은 고개 [되레지고개] 이제는 쓸모없는 탱크 방호벽이 쓸쓸히 '되레지고개'를 지키고있습니다. [되레지고개에서...] 양구터널 위 되레지고개에서 소양호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 한장 저와 함께 있는 분이 닉네임 '개살구'이신데 진정 산꾼 중에 산꾼이라고 생각됩니다. '진정한 산꾼'이라는 말이 좋은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 같은 '날라리 산꾼'이 볼 때는 하늘같은 존재감을 주는 强者입니다. '백두대간'을 4번 완주하고.... '9정맥'은 당연 완주했으며 요즘은 산행 가이드로 수시로 또 다니고.... 제가 왜 '진정한 산꾼'이라는 말이 좋은 말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느냐하면 이 양반은 산에 다니느라 주말을 가족들과 함께 할수 있는 시간이 과연 있었겠는지 물어 보지 않을 수 없어서입니다. ㅎㅎ '대간과 9정맥'을 한번 완주하는데도 족히 10여년은 걸립니다. 산을 좋아 하는 우리 '개살구님'은 '진정한 산꾼'으로 가정생활도 잘 챙기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시간상 도저히 다정한 아빠와 사랑스런 남편은 힘들겠다고 여겨집니다...ㅎㅎ 하여간 이 어려운 도솔지맥3구간을 지도 한장 달랑들고 알바없이 완주를 했습니다 저는 지도 아니라 네비게이션을 갖다 줘도 길을 잃고 헤메였을 텐데... 수많은 경험 없이는 우리같은 쫄병을 데리고 홀로 지도 한장으로 길안내를 할수 없습니다. 정말 대단한 독도 능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9월부터 다시 '낙동정맥'을 간다는데.... 소양호가 양구터널 앞까지 쳐 들어 와 있습니다. 등산 그만하고 낚싯대 들고 빨리 여기로 오라고 하는 듯 합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 간다는데 봉화산으로 향하는 우리는 사공인가? 산꾼인가~ [되레지고개의 봉화산 들머리] 양구터널 위에서 봉화산으로 가는 지맥 들머리는 전봇대가 있는 바로 저곳입니다. 많은 경험없이는 산행 들머리를 바로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개살구님'은 척척 찾아 냅니다. 마치 전에 와 본적이 있는듯이.... [봉화산 들머리] 가파른 들머리를 치고 오릅니다. 언젠가 '개살구님'에게 왜 하필이면 그 많은 좋은 닉네임 놔두고 '개살구'라고 지었냐고 물어 보았더니, 웃으며 특별히 의미를 두고 지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산행인생이 '빛좋은 개살구' 같데나 뭐래나~ ㅎㅎ 개살구라는게 먹을 수있는 과일은 아니나 보기에는 얼마나 먹음직스럽고 탐서러워 보입니까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자신의 '山行 人生'과 비슷하다고.... 청춘을 산에서 보냈는데 남은 것도 없고.... 또한 화려한 산행 경력이 삶에서는 '빛 좋은 개살구' 같다구~~ 그러면서도 또 오늘 저와 함께 산행을 하고 있으니.....개살구 맞어~ ㅎㅎ 알콜중독자 등급처럼 산중독 등급을 메긴다면 개살구님은 4기~ ㅎㅎ 저도 2기는 넘었나 봅니다만... [봉화산 들머리로 올라 서서 내려다 본 "46번 국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피천덕 선생'이 번역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생각 납니다. 저는 대학 영문과에 진학 해서 "The Road Not Taken"을 원문으로 접하고 이 시가 어떤 의미를 주는지 더욱 깊이 느끼게 되어서 아직도 기억합니다 옛길을 옆에 두고 새로이 뚤린 '46번 국도' 길은 길에 연이어 끝이 없으므로......... 가지 않은 길 Robert Frost - 피천득 譯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피천득선생은 연세가 100살이 다되 가는데 아직도 살아 계시더군요 [545m봉] 양구터널 위 되레지고개에서 15분 정도 오르니 545m봉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우측으로 가기 쉬운데 반드시 좌측으로 가야합니다. Robert Frost는 두갈래 길에 서서 어느 길을 선택 할것인지 고민을 했습니다 인생의 길은 한번 가면 되돌아 올수 없는 길이기에 .... 그는 실제 "농부의 길"과 "시인의 길"을 놓고 고민을 했답니다 그는 결국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적은 "시인의 길"을 걸어 갔고 자신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우리는 언제나 갈림길을 만나고 어느 길을 갈것인지 결정하며 살아야하죠. 그래서 "인생은 갈림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양구 도촌리 전경] 양구터널을 지나 545m봉에 오르니 양구읍내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아랫 마을이 그 유명한 "국토 정중앙 천문대"가 있는 "양구 도촌리"입니다 저는 오늘 산행에 최고 포인트로 이곳을 촬영하려고 미리 준비했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한번에 "국토 정중앙 천문대"를 찾아 냈습니다 바로 아래 가운데 있는데.... [국토 정중앙 천문대] 줌인하여 촬영했습니다. 분명하게 보이시죠? 봉화산 위에서 "국토 정중앙 천문대"를 촬영한 사진을 아직까지 못봤습니다. 봉화산에서 촬영하기로는 아마 제가 처음 일것입니다. 오늘 산행기의 하일라이트인 "國土 正中央"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것을 烽火山 정상에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갈대숲을 헤지고 삼각점이 있는 607.5m봉] 545m봉에서 키보다 높은 숲을 헤치고 전진하여 오르니 삼각점이 있는 607.5m봉이었습니다. 이 봉우리부터 시야가 확 터이고 봉화산을 오르는 의미를 덤북 안겨 줍니다. [607.5m봉] 607.5m봉에 오르니 "봉화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운데 우뚝 뾰쪽하게 솟은 산이 "烽火山"입니다 여기서 이제 저 두봉우리만 점령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정상은 그렇게 쉽게 내 주지 않더군요. 저 두 봉우리 사이에 여러 봉우리가 또 있었습니다. 가까운듯 보이는데 엄청 먼 거리였습니다. [607.5m봉에서 바라 본 대암산 산줄기] '도솔지맥 1구간' 돌산령과 대암산 능선이 검푸르게 보입니다. [몇개의 봉우리를 넘어 670m봉] 오후 3시 30분경에 몇개의 봉우리를 넘어 670m봉에 오릅니다 [670m봉에서 송전철탑이 있는 곳으로 하산] 670m봉에서 송전철탑이 있는 곳으로 내려 가는데 낙원 A.P.C.산악회 회원님들을 만났습니다. 오늘 봉화산 구간에서 처음 만나는 산객들입니다. 원래 우리와 함께 '도솔3구간'을 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각자 출발했었습니다. 낙원 A.P.C.산악회 회원님들은 공리고개에서 양구터널로 진행하고 우리는 두무동고개에서 양구터널을 지나 공리고개로 역으로 진행하였기에 중간에서 만날수 있었습니다 인적없는 산속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습니다. ["낙원 A.P.C.산악회" 회원님들] 낙원 A.P.C.산악회樂園 Alpine Club이라고 하며 산행을 엄청 좋아하는 산꾼들의 모임으로서 정예 회원님들로 구성되있답니다 백두대간 9정맥은 물론 기맥 정맥을 찾아 다니는 프로 산꾼들이지요. 樂園 Alpine Club은 비 오는 날에는 절대적으로 산행을 자제하고 산행 중에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답니다 언제나 즐겁고 안전한 산행 하시길 기원합니다. [송전철탑] 여느 산행기에나 등장하는 '송전철탑'을 만납니다. 이제 오늘 산행거리의 반 정도 온듯합니다. 이제부터 봉화산을 치고 오르는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652m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송전철탑'과 '670m봉'] 다음 봉우리 652m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송전철탑'과 '670m봉'입니다. 저 산 중턱에서 "낙원 A.P.C.산악회" 횐님들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 산(670m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보이는 능선으로 가기 쉬운데 직진해야 합니다. 알바 많이 하는 곳이랍니다 [봉화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봉화산 정상'이 다가 오니 곳곳에 일반등산객의 편의를 위해 계단을 설치해 놨습니다. 가파른 된비알을 오릅니다. [봉화산 일반 등산로 안부] 오후 3시 40분경 봉화산 일반 등산로 안부에 도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봉화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은 도촌리에서 이곳 안부로 올라 봉화산 정상을 밟고 심포리로 내려 간다고 합니다. 오른쪽에 도촌리에서 올라 오는 등로가 있습니다 [봉화산 정상까지 660m가 남았다는 "국토정중앙답사코스" 안내판] 이곳 안부에서 정상까지는 660m가 남았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산길 오르막 660m는 평지 3km정도에 해당합니다. [봉화산 정상부] 드디어 하늘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정상이 다가 왔다는 신호입니다. [봉화산 정상부] 고사목과 바위들이 제법 그럴듯한 정상임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고사목 뒤에 보이는 암봉이 '봉화산 정상'입니다. [봉화산 정상부에서 바라 본 소양호 신남 부근] 고사목이 있는 정상부에서 소양호가 시원스레 보입니다.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 열여덟 딸기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져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 [소양호 신남 선착장] 줌인하였더니 신남부근이었습니다. 동백꽃 피고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서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가슴에~♪ 떠나고 안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봉화산 정상] 烽火山 정상이 다가 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 섬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동서남북 4극지점을 잡아 이 4극지점을 기준으로 중앙경선과 중앙위선의 교차점이 우리 국토의 정중앙지점이라는데 그 정중앙지점이 바로 이곳 강원도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 48번지 - 봉화산 일대라는 것입니다 그 좌표는 동경 125'02'02.5', 북위 38'02'37.5'이라고 합니다. [봉화산 정상] 우리는 우리나라 국토의 정중앙에 섯습니다. 감개무량이지요. '개살구님'과 '교감샘님'이 우리 국토를 내려 깔고 우쭐대며 서있습니다. 땀 흘리며 오른 보상이 이것입니다. "옴파로스"라는 말 어디서 많이 들은것 같지요? 네, 여성복 남성복 상표, 즉 의류 브랜드로 알고 있겠지요? 그런데 "옴파로스"라는 말의 뜻을 알고 옷을 사입는지 모르겠습니다. "옴파로스"는 무척 중요한 단어입니다. "옴파로스"는 라틴어로 OMPHALOS 세계의 중심, 방패의 중심돌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따지자면 신체의 중심인 "배꼽"을 의미합니다. [그리스 델포이市 박물관에 남아 있는 실제 "대지의 배꼽-옴파로스"] "대지의 배꼽 - 옴파로스 OMPHALOS"는 어디에 있을까? "지구의 배꼽 - 옴파로스 OMPHALOS"는 그리스 역사(신화) 속에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보관되어 전시되고 있습니다. 윗 사진입니다. "대지의 배꼽 - 옴파로스 OMPHALOS"는 기원전 3~4세기에 그리스의 델포이市에 세워진 '아폴로신전' 지하에 아폴로에 의해 만들어져 보관되어 왔는데 현재는 델포이市 박물관에 윗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전시하고 있답니다 델포이市는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170km 떨어진 험준한 산악지역에 있습니다 '파란문'이 친절하게 '옴파로스 실물 사진'을 쎄비해와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델포이市에 역사적 유물인 "대지의 배꼽 - 옴파로스 OMPHALOS"가 보관되 있습니다. !! 어느 나라나 모두 자기 나라가 대지의 중심이라고 주장할수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느 나라나 자기 나라의 중심-배꼽-옴파로스는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대지의 중심-배꼽-옴파로스"가 이곳 봉화산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봉화산 아래 도촌리에 國土正中央天文臺를 세웠다고합니다 [봉화산 정상] 대한민국의 옴파로스인 이곳 烽火山을 와 보지 않고는 산객 자격이 있겠습니까? ㅎㅎ 이제부터 대한민국의 옴파로스-烽火山 정상에서 동서남북을 조망해 보겠습니다. 우선 정상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烽火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전국에 무수히 많습니다. 춘천에만도 세개가 있으며, 경남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뒷산도 봉화산입니다 헤아릴수 없이 많은 烽火山중에서 가장 유명한 산이 바로 이곳 양구의 烽火山입니다. 우리나라 국토의 정중앙에 위치하기 때문이며, 와서 보니 산세도 좋고, 주변 풍광이 너무나 화려하게 조망되어 더욱 유명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봉화산 정상 '봉화대'] 烽火山정상에는 쓸데 없는 돈을 들였더군요. 최근에 烽火臺같은 것을 흉내만 내서 만들어 놨으나 너무 생각이 짧은 듯합니다. 아무리 흉내만 냈다하더라도 이런 우물 형태의 봉화대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차라리 이것 대신에 그럴듯한 정상석을 하나 세우는게 더 나을 듯 합니다. 도솔지맥 마루금이 우물같은 인공봉화대 뒤로 뻗어 있습니다. 뒤로 보이는 산봉우리가 870m봉이며 앞으로 저 봉우리를 넘어 하산 할 예정입니다. [봉화대 안내와 "국토정중앙답사 안내"] [봉화산 정상에서 뒤 돌아 본 지나온 '도솔지맥'] 지나온 '도솔지맥' 산줄기가 그림같습니다. 사진의 맨 끝 가운데 검게 솟은 백두대간 설악산구간이 검은 파도처럼 일렁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끝에 '가리봉'이 솟아있습니다. [봉화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양구 전경] 양구를 정확히 보려면 양구의 진산인 烽火山을 올라야 합니다. 화천댐으로 만들어진 "파로호"가 양구읍내까지 들어 와 있습니다. 좌측 산줄기가 도솔지맥4구간 사명산 구간이고, 우측 멀리 대우산이 보입니다 바로 앞이 '포사격훈련장'입니다. 양구에 비행장이 있는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양구읍내 가운데에는 활주로가 길게 뻗어 있습니다. [양구 비행장 활주로] 그래서 '양구 비행장 활주로'를 줌인하여 촬영했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천혜의 자연을 유지하고있는 이곳 양구의 파로호 주변에 별장을 짓고 자가용 비행기로 저 비행활주로를 이용하면 매우 편리하겠습니다. 빨리 돈 벌어서 자가용 비행기를 사야겠습니다. 에구~ 숫돼지 새끼 낳을 때를 기다리는게 더 낫겠다구요? ㅎㅎ [봉화산 정상 바로 아래 "포사격훈련장"] 봉화산 바로 아래는 '포사격훈련장'입니다. 그래서 봉화산 정상에서 870m까지와 주변 산등성이에는 "防火線"이 쳐져있습니다. 防火線에 대해서는 870m봉에 가서 다시 설명합니다. 봉화산은 양구 남쪽에 솟아 있어서 양구에서는 봉화산의 북쪽 사면이 언제나 보입니다. 북쪽 사면이기에 겨울이 지나도 눈이 잘 녹지 않아 봄까지도 봉화산은 눈으로 덮여 있답니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이 '스키장'으로 개발하자고 여론이 높아 가고 있다고 하네요 이 사진을 보니 어떻게 느껴 집니까? 스키장 만들어도 되겠지요? 특히 '춘천-서울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해져서,북새통 영동지방보다 경쟁력이 더 있을 듯 생각됩니다. 스키장 만들면 함 가봐야지~ 오늘의 추억을 씹으며.... [봉화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사명산"] "四明山"이 위용을 자랑합니다. 지난 7월 26일(일)에 저 산줄기-도솔4구간을 9시간 30분이 걸리며 추곡약수까지 완주 한바 있습니다. 당시 외국인 4명이 함께 했는데 그들은 "다시는 서울백두클럽과 같이 등산 않한다"고...ㅎㅎ 관악산만 다니다가 이런 오지 지맥을 가니 혼줄이 났다고.... [정상주] 왜? 산을 오르느냐? 많은 사람들로부터 제일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그런 질문 하는 사람들에게는 " 너는 무슨 취미있냐?"라고 질문하면 됩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취미가 있습니다. 취미조차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런 사람은 가까이 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고.... 다른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기 취미와 다르다고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아주 잘못된 사고방식입니다. 이렇게 땀흘려 산을 오르고 정상에서 정상주 한잔 하며 펼쳐지는 주변 경관을 감상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가는 것이 즐거움이고 나의 취미입니다 [870m봉] 봉화산 정상에서 내려와 건너편 870m봉으로 올라 갑니다 [870m봉 헬기장에서 뒤 돌아 본 '봉화산 정상'] 870m봉 헬기장에서 봉화산 정상을 뒤 돌아 바라 봅니다 정상과 이곳 사이에는 나무들을 벌목하여 민둥산을 만들어 놨습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명성지맥2구간 - 각흘산'에서 설명드린바 있습니다만 이것이 "防火線"입니다. 봉화산 아래에 있는 포사격장은 사격훈련시에 산불이 일어 날 가능성이 큼니다 그래서 산불이 일어 나더라도 이곳까지만 불타게하기 위해 나무와 풀을 모두 제거한것입니다 여름철이라 풀들은 자라고있는데 겨울철에는 풀까지 제거합니다. [870m봉에서 764m봉 갈림길로 가는 길] 870m봉에서 하산을 시작합니다. 하산이라 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무지 힘들게 많은 시간이 걸려 하산했습니다. 거리도 장난이 아니었고, 경사가 매우 가파랐습니다. 하산이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예삿길이 아니어서 심리적으로 더욱 힘들었습니다 [764m봉 아래 갈림길] '서울백두클럽' 표지기를 만났습니다 지난 7월 12일(일) 비가 억수로 퍼붓던 날 산행을 감행한 '서울백두클럽'의 누구인가가 부착시켜 놓았을 표지기를 만나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급경사 하산길] 봉화산에서 공리고개로 하산하는 코스는 급경사 내리막이었습니다. 봉화산 정상에서 공리고개까지 하산하는데 3시간이 걸렸습니다. 왠만한 산은 거의 한시간이면 하산할수 있는데 ....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어 길 찾기도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임도] 2시간 정도 깊은 숲속을 헤메이다 간신히 빠져 나가니 임도가 나왔습니다. 이제서야 한숨 돌릴수 있었습니다. [임도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코스] 임도에서 뒤돌아 보니 봉화산 어디로 내려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다 왔는줄 알았는데 이제부터 또 1시간 정도를 더 가야 했습니다. 에구~ [임도 삼거리] 임도를 따라 내려 가니 임도 삼거리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도솔지맥3구간 마루금은 가운데 나무가 서있는 숲속으로 들어 가야합니다. 오른쪽 임도로 내려 가면 심포리로 바로 갈수 있으며, 왼쪽으로 가면 공리고개 아래 소양호 근처 석현리로 떨어집니다. [임도 삼거리에서 다시 마루금] 임도 삼거리에서 다시 마루금을 올라 타고 숲속을 헤메이며 갑니다. 이 길은 오로지 지맥을 걷는 사람들만 다니는 곳인듯 합니다. [큰 바위 위에 올라 뒤돌아 본 "봉화산"] 숲속을 거니는데 큰 바위가 하나 나타났습니다. 이 구간에서 볼수있는 유일한 큰 바위였습니다. 이 바위에 올라 가서 지나온 '봉화산'을 어렵게 촬영했습니다. 내려온 마루금 능선이 포사격으로 허옇게 까진 능선의 우측 능선입니다. [시멘트 포장 도로] 이제 공리고개인가 했더니 다시 시맨트 포장도로가 나왔습니다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 가면 웅진터널에서 나오는 新46번국도와 공리고개에서 내려 가는 舊46번국도가 만나는 심포리 삼거리입니다. [공리고개 '항일의병전적비'] 시멘트 포장로에서 직진하여 조그만 동산을 넘으니 공리고개가 나왔으며 '항일의병 전적비'가 나왔습니다. [공리와 심포리 삼거리] 항일의병전적비에서 택시를 타기위해 내려 가는 시간은 어느듯 저녁 7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두무동고개'에서 여기까지 꼬박 8시간이 걸렸습니다. 양구 콜택시를 전화로 불렀으나 전화를 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요일 저녁에는 장병들의 귀대로 택시가 잠시도 멈춰있을 시간이 없어 우리를 데리러 올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양구는 군부대 때문에 먹고 산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어렵사리 지나는 봉고를 얻어 타고 양구 시외버스터미날로 갈수 있었고 그곳 순대집에서 순대와 떡뽑기에 소주, 맥주 한잔씩 걸쳤는데 저는 마시지 않았습니다. 만약 마셨더라면 저는 운전면허 취소 당할뻔 했었기 때문입니다. 음주운전 단속을 곳곳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두무동고개'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승용차를 끌고 돌아 왔습니다. [도솔지맥 1구간~4구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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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편히 쉬세요 우리 어머니가 태어 나실 때에는 세상의 여느 아이들 처럼 우리 어머니 혼자 울고 있었고.... 우리 어머니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미소 짓고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우리 어머니는 혼자 미소짓고 있었는데.... 살아있는 주위 사람들이 모두 울고 있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고 우리들이 스스로 보고 싶어 하게 하시며 우리들의 눈물을 밟고 웃으시며 가셨습니다 어머니 그토록 원하시던 하나님 곁으로 가셔서 편히 쉬소서 불효자는 이제서야 울고 불고 야단입니다. 어머니 이 불효자를 용서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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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지맥 4구간 四明山 區間 山行記 공리고개-592.3m봉(dndwls3xjsjfdnl)-갈탄리고개-806m봉-越北峴-1031m봉- 四明山-1180m봉-1004m봉-817m봉-추곡약수 장마철 치고는 맑은 날 7월 26일(일) 이번에는 4개국 외국인들까지 합세하여 "서울백두클럽"의 勢가 더욱 막강해 지는 가운데 "도솔지맥 四明山 區間" 을 종주하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산행 개념도] 공리고개-592.3m봉(웅진3터널위)-갈탄리고개-806m봉-越北峴-1031m봉- 四明山 1198.6m-1180m봉-1004m봉-門바위-817m봉-추곡약수 枝脈 圖上거리 - 약17km, 총거리 - 약20km, 총산행 시간 - 약 9시간30분 [경춘고속도로 가평휴게소] 새로 탄생된 "京春高速道路"를 처음으로 타고 시원하게 달리다가 "가평휴게소"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民資로 만들어져 통행료가 비싸다고 논란도 많은데, 요즘 도로 나들목 차량 예측을 잘못해 교통체증을 일으킨다고 이용자들의 불만이 많다고 하는데, 갈때는 몰랐는데 올때 무지 막히더군요 [공리고개] 오전 9시50분경에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공리恭里"에 있는 "공리恭里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장마철인데도 맑은 날씨에 시야가 확트이는 날씨였습니다만 바람이 없어 매우 더운 날씨였습니다 [공리고개 - 항일의병전적비] "공리恭里고개"에는 항일 의병 전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碑는 1978년에 강원도에 의해 건립되었다고하며, 일제침탈의 시대에 이 지역 출신인 유인석, 이강년, 최도환등의 의병장들이 이 지역 주민들과 합세해 쪽바리들을 무찔렀다고 기념하기 위해 戰積碑를 세웠다고 합니다. [공리고개 - 산행 들머리] 이 도로는 "46번 국도"입니다. 요즘은 꼬불 꼬불하던 도로를 터널을 뚤어 길을 쫘악 펴서 양구로 직진하도록 되있어 옛길인 이 46번 국도에는 차량의 통행이 거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46번 국도"는 무지 유명한 國道이지요? 학창시절 한번쯤은 데이트를 하며 달려 보았을 "京春街道"가 "46번국도"이지요 "46번 국도"는 인천의 월미도에서 서울과 春川을 거쳐 이곳을 지나 진부령을 넘어 고성으로 가는 우리나라 허리를 가로 지르는 중요한 국도입니다만, 고속도로가 뚤리고 터널들이 생겨 터널 위 옛도로들은 썰렁합니다. [서울백두클럽 기념사진] 오늘 산행에는 외국인들이 4명 참석했는데, 미국 캐나다 영국 우즈벡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 2월 "명성지맥4구간"에 참가했던 Mr.Warren이 친구들과 함께 참가하여 5개국이 합동 산행을 하게 된것입니다. 세계적 산악동호회로 거듭나고있는 "서울백두클럽"의 위상이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파이팅~!" [산행 출발] 10시 정각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유명한 등산코스를 찾아 다니는 산악동호회가 아니고 길도 험한 "枝脈"을 찾아 다니는 조금은 독특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오늘도 長行을 시작합니다. [웅진터널 위 592.3m봉으로] "도솔지맥" 마루금을 따라 오르는 四明山산행코스에는 우리 일행 이외에는 다른 사람들을 단 한명도 볼수 없었고, 한여름 장마철이여서인지 산행이 끝날때까지 다른 산객은 단 한명도 만날수 없었습니다. [四明山 안내 이정표] 조금 오르니 이정표가 나타나서 길안내를 해줍니다. 등산객 한명 없는 이곳에 이정표를 친절하게도 세워 놨습니다. 사람들이 다닌 흔적도 거의 없습니다 [四明山 안내 이정표] 四明山까지 10.5km라고 친절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곳하고 四明山은 일반산객들에게는 관련이 없는 먼 곳인데도 우리같은 지맥종주자들을 위해서인지 안내를 해 놨습니다 가는데 10km, 내려 오는데 10km였으니 얼마나 긴 거리인지 짐작이 가십니까? [웅진터널 위 592.3m봉으로] 산마루까지 올라 가는 길은 언제나 급경사로 땀이 납니다. 登路를 잘 정비해놔서 오르기는 쉬웠으나, 초보산객들인 외국인들이 완주를 할수 있을려는지 많이 염려 되었습니다. [웅진터널 위 592.3m봉] "46번국도 웅진3터널" 위에 있는 592.3m봉우리에 올랐습니다. '공리고개'에서 여기까지가 급경사 오르막이고, 여기서부터는 마루금을 따라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전진합니다. [학조리방향 이정표] '鶴鳥里' 방향으로 갑니다. [四明山] 마루금에 오르니 왼쪽으로 四明山이 위용을 보여줍니다. 四明山까지 C字 뒤집은 모양으로 빙돌아 10km를 가야하니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583m봉] 크고 작은 봉우리, 높고 낮은 봉우리들을 수없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四明山을 갑니다. [갈탄리 고개 가는 길] 이런 길을 걸으면 내리막이 싫습니다. 왜냐고요? ㅎㅎ 그 많큼 또 기어 올라야하쟌아요~ [무명봉] 제법 높은 봉우리.... [四明山] 肉山은 여름철엔 울창한 숲으로 외부 조망이 어렵습니다. 조금 높은 봉우리에 올라야 운 좋게 외부를 잠깐 조망할수있습니다 왼쪽에 四明山을 보며 4시간 정도 걷습니다 [갈탄리 고개 가는 길] 월남전에 파병되었던 회원님들이 계셨는데, 월남에 파병되기 전에 맹호부대등이 이곳 "四明山"에서 훈련을 받고 갔다고 하더군요. 월남의 정글 속에서 전투를 하기위한 훈련이었다니 그 강도를 짐작하면 얼마나 괴로웠을까....... 오늘은 사서 고생을 하는데 그 때와 비교 된다고....가슴 뭉클하겠지요 [635m봉] 삼각점이 있는 635m봉은 "갈탄리 고개" 바로 앞에 있는 봉우리입니다. 그리고 이 봉우리를 지나 "四明山과 鶴鳥里 갈림길"이 나오니 지금부터 유의해야합니다 [학조리방향 이정표] 이곳에서 약800m앞에 갈림길이 있는데, '학조리' 방향이 아닌 좌측 방향으로 가야 四明山으로 갈수 있습니다. 四明山 방향 길은 희미하기에 강조합니다 [헬기장] 635m봉과 "갈탄리고개" 사이에 헬기장이 하나 있었고.... [양구읍내 전경] 오른쪽으로 "양구읍" 시가지가 잘보입니다 저쪽 비봉산 기슭에는 우리나라의 세계적 화가인 "박수근 화백"의 미술관이 있습니다. 몇년전에 가 본적이 있는데 멋있게 건립해 놨더군요. 박수근 화백의 화법은 "마티에르기법"이라고 하는 점을 이용해 그리는 화법이지요 박수근 화백의 그림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비싼 값으로 경매가 되니 가짜 그림들이 출현해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법정으로까지 가 있죠 돈이 된다면 무슨 짓이던 하는 사람들이 "박수근 화백"을 욕되게 하는데 그 가운데에 박수근화백의 장남이 관련되있다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까발렸지요 그 놈도 자기 아버지의 화법인 "마티에르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더군요 SBS는 그 장남이 그린 그림을 아버지의 그림이라고 속여 팔아 묵고 있다는 의심을 강력히 하고 있었습니다. 믿을 놈 없는 세상이죠? [점심식사] 산에 왜 오르느냐구요? 유식한척하는 사람들 많지요.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등등..... 솔직히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고 말하는게 바른 말 아닐까요? ㅎㅎ 너무 형이하학적이라구요? ㅋㅋ 그래도 묵어야 걸을 수 있지요. 저 외국넘들은 비스켓에 참치를 포개서 먹더라구요. 그게 잴 맛있다나? 그거 묵고 어찌 앞으로도 6시간을 더 걷겠냐고 했더니 그제서야 제가 권하는 김밥과 반찬을 부랴 부랴 먹더라구요 "먹어야 오를 수 있고, 오르기 위해 먹는다~" 했더니 고개를 끄떡끄떡 [학조리-사명산 갈림길] 유일하게 갈림길이 있고, "사명산"방향은 길이 희미해 알바하기 쉬운 곳이니 앞으로 오실 후답자들은 유의 해야하는 곳입니다. [갈탄리고개] 고개 다운 고개가 처음으로 나오는데 이곳이 "갈탄리 고개" 입니다. 오늘 산행 거리의 4분의 1 정도 되는 지점입니다. [갈탄리고개 이정표] 에고 이제 5km걸었군요. 사명산 정상까지 앞으로도 오르막 5km가 더 남았네요 날머리인 "추곡약수"까지는 약15km가 더 남았으니....어휴~ [806m봉 헬기장] 높고 낮은 봉우리를 몇개 지나면 제법 높은 봉우리인 "806m봉 헬기장"을 만납니다. 여기에선 "사명산" 정상이 쪼끔 보입니다. 사명산 정상부도 여러개의 높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越北峴] 오후 2시 정각에 "월북현 越北峴"에 도착했습니다. "공리고개"에서 4시간이 걸렸군요 이제 정상까지 3km 남았다고하니 여유가 생깁니다만, 지금부터 힘든 된비알을 본격적으로 올라야 합니다. [越北峴] 양구군 "웅진리 雄津里"에서 "양구읍"으로 넘어 가는 옛 도로가 잘 나 있습니다. 지금은 터널화로 쉽게 양구읍으로 가지만 옛날에는 어떠했는지..... 오죽하면 "越北 고개"라고 했겠습니까 이곳에서 부터 실제 "四明山 등산로"입니다. [사명산 오르는 길] 1시간 50분을 올라야 사명산 정상에 오를수 있었으니 새로 등산을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4시간을 걷고 다시 된비알을 1시간 50분 오르면...힘좀 들겠지요? ㅎㅎ [독버섯 구별법] [웅진리 등산로 삼거리] 소양호에 접해있는 雄津里에서 오르는 등로와 만나는 곳입니다.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사명산 일반등산코스"입니다. 雄津里는 글자 그대로 소양호에 붙어있는 큰 나룻터라는 동리입니다. 대부분의 일반 등산객들은 雄津里에서 사명산을 오릅니다. 그러면 약5시간 코스라고 하네요. [1031m봉 헬기장] '사명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1031m봉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정상까지 약2km 남았습니다. [정상을 향해...] 사명산 정상이 보입니다. [소양호] 야호~~ 처음으로 "소양호"가 조망됩니다. "四明山"에 오르면 꼭 보아야 할 것이 "소양호"와 "파로호"의 장관입니다. 왜냐하면 "四明山"이 소양호와 파로호 사이에 있기 때문에 동시에 두곳을 볼수있습니다. 동시에 두곳을 함께 조망할수 있는 곳은 "四明山 정상" 뿐이더군요. [도솔산-대암산 방향] 멀리 "도솔지맥"이 검은 능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웅진리 등산로 삼거리] 雄津里에서 올라 오는 일반등산로가 두곳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명산 정상까지는 500m정도이니 대부분 이곳으로 오르리라 [웅진리 등산로 삼거리 이정표] [등산코스 안내도] 우리는 오른쪽 아래 "공수리"라는 곳쯤에서 붉은 선을 따라 올라 온 것입니다. 무지 걸었지요? 앞으로도 이많큼 더 걸어야합니다. 에구~ [四明山 정상] 드디어 하늘이 가슴에 와 닿고, 더 이상 아무것도 높은게 없는 정상에 왔습니다. 이때가 오후 3시 50분. "공리고개"에서 약 5시간 50분 걸렸습니다. [四明山 정상석] 좁은 사명산 정상에는 정상석이 우람하게 서 있고 춘천, 화천, 양구, 인제까지 네곳이 모두 잘 보인다고 지어 졌다는 四明山이 지친 산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四明山 유래]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본 "대암산" "도솔산" 방향] 검은 능선이 "도솔지맥"입니다. "돌산령"에서 "도솔산"을 지나 군부대에서 짬밥을 먹고 "대암산 용늪"을 구경하고 "광치령 터널" 옆으로 하산했던 1구간이 아득히 보입니다.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본 "봉화산" 방향] 지난 7월 12일에 찾았던 "도솔지맥 3구간"에 있는 "봉화산 烽火山"이 잘 조망됩니다. 애석하게도 그날 엄청난 장맛비로 도중에 산행을 포기했었습니다. 비가 무서워 산행을 포기한게 아니라 카메라가 작동을 하지않고, 구름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산행의 의미를 찾을수 없어서였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가는 것은 뒷동산을 가는 것과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산행기를 쓸수 없는 산행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필자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조만간 저 "봉화산 烽火山"구간은 별도로 산행 할 예정입니다. 오른쪽에 높은 산봉우리가 "봉화산 烽火山"입니다. 왼쪽 흰 부분이 양구읍내입니다.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본 "소양호"] 우리나라 최대의 담수호인 "소양호"가 자기 모습을 조금 보여 줍니다. "반야월선생"이 이곳 출신 가수 지망생인 어느 처녀의 집을 찾았다가 作詞했다는 국민 애창곡 "소양강 처녀"가 저절로 흥얼거려집니다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져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동백꽃 피고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서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가슴에 떠나고 안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본 "파로호"]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보는 파로호 破虜湖 우리나라 최초의 북한강 水界의 다목적 댐으로 형성된 破虜湖 "花川댐"에 의해 생겨난 인공호수이니 花川湖라고 해야하는데 유별나게 이곳만은 댐의 이름을 따지 않고 "파로호 破虜湖"라고 합니다. "花川댐"은 일제 강점기 때에 쪽바리들이 대륙침략을 위한 군수산업 목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파로호 破虜湖는 6.25전쟁 때에 중공군과 북한군들을 이곳에서 물리치고 "花川湖"에 수장시켰다고,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 破虜湖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오랑캐 虜입니다. 즉 오랑캐들을 쳐부셔 수장시켰다고 "花川湖" 대신에 "破虜湖"라 한것입니다 이젠 평화 지향시대가 왔으니 전쟁적인 느낌을 주는 "파로호 破虜湖보다 필자는 그 본래의 이름인 "花川湖"로 불리워지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름도 아름답쟌아요? "花川湖" [四明山 정상에서 바라 본 앞으로 가야할 "도솔지맥 마루금"] 앞으로 이곳 四明山 정상에서 추곡약수까지 가야하는데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산이니 이젠 쉽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머나먼 하산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봉우리도 너무 많았습니다. 구경거리도 없고.... [1180m봉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소양호"] 반야월선생이 작사하시고 이호선생이 작곡한 국민 애창곡 "소양강 처녀" 이 노래의 주인공인 "소양강 처녀"는 윤기순(尹基順)이라는 아가씨였습니다. 몇년전에 "KBS 스페샬"에서 방영한 다큐멘타리를 보아서 어렴푸시 기억나 다시 그 동영상을 찾아 "소양강 처녀"가 만들어 지는 배경을 알게됬습니다. 윤기순(尹基順)이라는 아가씨는 가수 지망생으로 반야월선생이 일하고 있던 명보극장 근처 `한국가요반세기 가요작가 동지회`에 찾아가 여사무원으로 근무하며 가수의 길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자신의 집 소양호로 음악가들을 초대해 소양강에서 어부로 생계를 유지하던 아버지가 잡은 고기로 매운탕을 잘 대접했나 봅니다 이때 이 주변 경관과 윤기순(尹基順)이라는 아가씨의 사연을 묶어 작사를 했다는군요 현재 윤기순(尹基順)이라는 아가씨는 할머니가 되었는데도 광주에서 야간업소 가수생활을 하고 있다는군요 [이정표] 이 이정표에 속은 기분입니다. 왜냐하면 "추곡약수"까지 거리표시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다지 멀지 않으니 거리표시를 하지 않았겠지...라고 생각한것이지요. 그래서 이제 거의 다 왔겠구나라고 생각한게 결과적으로 더 큰 심리적 압박감이 되었습니다 "추곡약수"에 가서 생각해 보니, 여기서 너무 멀어서 거리를 미리 측정하지 못해 거리표시를 못한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무지무지 멀었습니다. 가깝겠지하는 심리적인 문제도 한몫하구요.. 저녁 7시20분에 "추곡약수"에 도착했으니...닝기리~ [1180m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도솔지맥 마루금"] 앞에 보이는 산줄기를 조금 따라 내려가 좌측이 "추곡약수"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도를 책크해도 그럴듯하고요... 그런데 실제는 저 산즐기 많큼 한칸 더 가야 했던것입니다. 저 산줄기 뒷산줄기 뒤에 "추곡약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1180m봉 하산] 산봉우리들도 높아 보통 1,000m가 넘으니 내리막도 고달픕니다. 이미 체력은 소진되어 자동으로 걷는 것이었습니다. 초보 외국인들은 무릎에 이상이 오기 시작합니다. 우즈벡에서 온 양반은 이미 119 구조대에 의해 "웅진리"로 하산 시켜진 상태입니다. 어떤 상황인지 대략 짐작이 가시지요? [1004m봉 갈림길] 이곳이 중요한 지점입니다. 웅진리로 바로 내려 갈수 있는 마지막 갈림길이었습니다. 5시 10분에 이곳에 도착했으니 날이 저물기 시작하고 숲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1004m봉 갈림길 이정표] 이 이정표에도 거리 표시가 없습니다. 또 이제 가까우니까 거리표시를 하지 않았겠지....라고 생각 했는데.... 여기서 "추곡약수"까지 2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에구 ["門바위" 위 탑] "1004m봉 갈림길"에서 약 10분정도 가니 "門바위"가 나왔습니다. "門바위"가 어디있나 찾으며 왔는데 이제서야 나타납니다. "門바위"는 사명산 정상 부근에 있는줄 알았기에 못보고 이미 지나 갔는줄 알았는데 이제서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도 색다른 경관을 보여주는 "門바위"는 우리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하산하는 구간에 이 "門바위" 마저 없었다면 너무 삭막한 사막과 같았을 것입니다 소양강 위에 서있는 12층 석탑이 신비한 느낌까지 주었습니다 ["門바위" 위 "구름다리"] "門바위" 위에는 사람이 다닐수 없는 나무로 엮은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단순히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이 다리에 술취한 놈이 올라 가지나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명산에서 만난 대표 볼거리였습니다 ["門바위" 위에서 내려다 보는 "소양호"] 오늘 힘겨운 산행길을 모두 잊게해주는 경치가 펼쳐집니다. "소양호"가 내려다 보이는 "門바위"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만끽합니다. 사랑의 소야곡을 불러주던 님이시여 풋가슴 언저리에 아롱진 눈물 얼룩져 번져나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춘천, 화천, 홍천 이 도시 이름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공통점 같은게 느껴 지지 않습니까? 순전히 파란문의 생각입니다만, 틀림없이 이 세 도시는 연관성이 있을듯합니다. 春川 봄이 흐르는 강 - - - 花川 꽃이 피어 어우러지는 강 - - - 洪川 봄꽃을 맞이하는 넓은 강 - - - 어떻습니까? 무언가 연관이 있지 않을 까요? 어떻던 여기는 봄날에 찾아 꽃구경을 해야 제맛이 아닐까요? [門바위] "門바위"는 큰 바위 두개가 양쪽에 서있어 門처럼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더군요 門바위를 통해 하산합니다. [뒤돌아 본 "門바위"] '門바위'이여~ 안녕~ 이제 언제 다시 널 찾아 문을 열고 들어 가겠냐만은 고달픈 사명산 하산길에서 나에게 보여준 그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급경사 내리막] 門바위에서 급격한 내리막이 시작되었습니다. 약 1시간 정도를 내려가고, 다시 한봉우리를 오릅니다. [817m봉 정상] 지도상에 나오는 "817m봉"에 올랐습니다. 이곳 정상은 삼거리 갈림길인데 도솔지맥은 우측으로 가야합니다. 여기에서 확실한 "추곡약수"의 위치를 알았습니다. 또한 여기서 1시간을 걸어 "추곡약수"를 갔습니다. [추곡약수] 7시 20분에 추곡약수터에 왔습니다. 우선 약숫물부터 한바가지 들이켰습니다. 그런데 물맛이 완전히 틀렸습니다. 탄산수였으며 철분이 많이 함유된 "초정리약수"나 "방아다리약수"와 같은 맛이었습니다 이 물로 밥을 지으면 색깔이 푸른색을 띤다고 합니다. [추곡약수 입구 마을] [뒷풀이] 추곡 계곡에서 알탕을 하고 뒷풀이를 했습니다. 초보 외국인들도 뒷풀이는 즐거운듯...ㅎㅎ 무릎이 아파서 앞으로는 절대 "서울백두클럽"과 함께는 등산 못가겠다고 아우성...ㅎㅎ [뒷풀이] 여하튼 완주를 하고 고생스러웠던 기억도 스스로 자랑스러움으로 느끼며 "Cheers!!~~"를 외쳤습니다. [산행 개념도] 공리고개-592.3m봉(웅진3터널위)-갈탄리고개-806m봉-越北峴-1031m봉- 四明山 1198.6m-1180m봉-1004m봉-門바위-817m봉-추곡약수 枝脈 圖上거리 - 약17km, 총거리 - 약20km, 총산행 시간 - 약 9시간30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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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기맥 黃梅山 區間 山行記 구름재-박덤-삼봉-하봉-중봉-황매삼봉-황매봉-떡갈재-작은황매산-소야리 집중호우가 퍼붓는 장마철 7월17일(금) 밤 10시 30분경 경부고속도로 죽전 버스정류장에는 굵은 빗줄기가 차량들의 전조등에 더욱 빛을 토하며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장마철 산행에 대해 많은 주윗분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진양기맥8구간 黃梅山 區間" 을 종주하기 위해 무박으로 길을 떠납니다.

             
             [산행 개념도]
             이 지도를 잘 봐둬야 이해하기 쉽습니다
     
     [합천댐 앞 "합천댐 관광단지"]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회양리
     합천댐 바로 앞에 있는 "합천댐 관광단지"에서 바라보는 합천호 주변 경관입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산이 "악견산"이며 옆 계곡에 '합천댐'이 있습니다
     이 주변 地理는 황매산에 오르며 사진으로 자세히 보여 드림니다.
     이 사진을 찍은 시간이 오전 6시30분경이었습니다
  
      [송옥가든]
     합천관광단지에 있는 전망이 가장 좋은 음식점인 "송옥가든"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식사도 했습니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산 이름이 지도에도 나오는 "금성산"이라고 주인이 알려주었답니다
    
     [송옥가든]
     서울에서 빗길을 뚫고 이곳까지 약 4시간이 걸려 도착하니 밤 2시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송옥가든에서 무료로 방을 빌려 주었고, 아침식사비만 받았습니다.
     서너시간 잘수 있어서 황매산을 종주 할수 있었고, 따뜻한 된장찌개 아침식사가
     산행에 큰 도움을 준것은 틀림없습니다.
     앞으로 무박산행시에는 민박이나 펜션을 예약해 전날 미리 내려가 이런식으로
     숙식을 하고 이른 아침 산행을 하는 방법을 적극 활용하면 더 많은 회원님들이 참여 할듯..
     
     [송옥가든 앞 "합천댐 관광단지 축구장"]
     이곳에는 합천군이 설치한 축구장이 있었는데 제법 유명한 축구대회가 열리고,
     각급학교 축구부들의 합숙 훈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관광객을 끄는 방법 중에 하나이라고 하며 이곳의 명소라고하네요
     
     [황매산 만남의 광장]
     승용차로 약 10분정도 이동하여 "황매산 만남의 광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황매산은 산청군과 합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등산코스도 산청군과 합천군에
     각각 있는데 이곳은 합천군 대병면에 있는 황매산 들머리입니다.
     
     [기념촬영]
 
     [황매산 만남의 광장]
     오전 7시에 도착하여 약 10분 정도 주변 사진을 찍고 산행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반 등산로로 산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
     "진양기맥" 마루금을 따라 산행을 하므로 마루금을 찾아 마루금으로 이동해야합니다.
     
     [구름재]
     "진양기맥 황매산 구간 마루금"이 지나는 "구름재"에서 정식으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황매산 만남의 광장"에서 황매산 등산로로 들어 오는 중간에 마루금이 지나 갑니다.
     일반 등산로로 황매산을 오르실 분들은 이 길로 더 들어 가서 쉽게 오를수 있습니다.
     황매산은 앞으로 아시겠지만 거의 정상까지 포장도로가 잘 나 있습니다.
     
     [산행시작]
     진양기맥을 걷는 우리는 "구름재"에서 숲속으로 들어 갑니다.
     오전 7시 10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좋은 등산로를 놔두고 길도 없는 마루금으로 들어 가는 특이한 사람들
     
     [헬기장]
     '구름재"에서 희미한 등로를 따라 조금 오르니 헬기장이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일반등산로 "박덤 갈림길"까지 길없는 길을 갔습니다.
     가시덤불과 숲을 헤치고 약 30분을 악전고투하며 오릅니다.
     너무 험한 길이라 숲속 사진은 한장도 찍을수 없었습니다
  
     [박덤]
     "구름재"에서 약30분 정도 숲을 헤치고 나아가면 임도를 만남니다.
     다시 임도를 따라 약15분 정도 오르면 "박덤 이정표"를 만남니다.
     여기서부터 황매산을 지나 "떡갈재"까지는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는 좋은
     산행길이었습니다.
     "삼봉"방향으로 올라 가야합니다.
     
     [삼봉으로 가는 갈림길]
     넓직한 임도를 따라 오르면 길안내를 잘해 놓은 이정표를 수시로 만납니다.
     황매산 등산은 합천군 대병면 "황매산 만남의 광장"에서 시작하여
     "박덤-삼봉-하봉-중봉-황매삼봉-황매봉"코스를 강력 추천합니다
     황매산의 모든 것이 이 코스에 들어있다고 생각됩니다
  
     [삼봉 오르는 길]
     합천군 대병면 만남의 광장에서 오르는 등산코스에는 지도에 "삼봉"이 두개 있습니다.
     "박덤'에서 오르면 첫번째 봉우리가 "삼봉"인데, 사실 표지석이 없어 어느 봉우리가
     "삼봉"인지 잘 알수 없었고, 대략 그러려니하고 올랐습니다.
     하지만 "하봉"과 "중봉"을 지나 나타나는 "삼봉"은 표지판도 있고 설명 안내판도 있어
     확실히 알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삼봉"은 "황매삼봉"으로서 "황매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황매산의 하일라이트였습니다
     
     [무명봉]
     하늘이 열리는 봉우리로 처음 올라서니 "황매산"이 장엄하게 나타납니다.
     "황매산"이 보이기 시작하는 이 봉우리에서 진정한 황매산 산행이 시작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곳부터 황매봉까지 화려한 산행코스가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전혀 지루하지 않게 황매산을 遊山합니다.
     
     [황매산의 주 능선]
     펼쳐지는 저 산봉우리들을 모두 점령하고 대자연과 함께 하리라~~
     지난 밤까지 퍼붓던 장대비는 언제였는지 더욱 맑아진 공기와 하늘은
     가을 날씨같았으니 우리는 너무 행운이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산행 개념도]
     "삼봉 - 하봉 - 중봉 - 황매삼봉 - 떡갈재 갈림봉 - 황매봉"
     순서를 알고 산행기를 읽으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삼봉 오르는 길]                                                   [삼봉 입구]
     합천 대병면에서 오른 코스에서 처음으로 맞는 봉우리가 "삼봉"인데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봉우리의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하며 암릉구간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삼봉 오르는 암릉]
     처음으로 암릉을 오릅니다.
     
     [삼봉]
     아마도 아랫쪽 "삼봉"이라고 생각되는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처음으로 황매산의 안쪽 바깥쪽을 두루 살펴 볼수 있는 전망이 좋은 봉우리였습니다.
     구름이 수시로 황매산을 덮었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구름 이외에는 좋은 날씨입니다.
     
     [삼봉에서 내려다 보는 "합천호"]
     처음으로 "합천호"가 보입니다.
     합천호는 합천댐이 준공되면서 생긴 호수로 면적이 785만 평, 댐 높이 96m, 길이 472m, 
     총 저수량이 7억 9천만 톤의 인공 호수로 1988년 12월 준공된 다목적 댐이라고 합니다
  
     [하봉 가는 능선]
     오늘은 합천군 대병면과 산청군 가회면의 경계인  "구름재"에서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실제 "황매산"은 산청군의 산이라고 말하는데 무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면적에서 산청군이 훨씬 많이 차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봉]
     실제 "하봉"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상표지석도 없고, 대략 알아서 생각하면 됩니다
     돌무덤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중봉]
     드디어 봉우리 다운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아마도 이곳이 "중봉"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는 돌탑이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우뚝 솟아있고, 안내판도 있습니다.
     이 능선은 山城이었답니다.
     山城의 이름은 "黃梅山城"이었는데 구전되어 오면서 음운변화를 거쳐 "할미산성"으로
     변형되어 지금까지 전해 진다고 합니다.
     
     [중봉에서 바라보는 "황매봉"]
     황매산의 정상인 "황매봉"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구름 위에 떠있는 "황매봉"이 글자 그대로 梅花같습니다.
     주변의 풍광이 활짝 핀 매화꽃잎 모양을 닮아 마치 매화꽃 속에 홀로 떠 있는 듯 신비한 
     느낌을 주어 "황매산"이라 부른다고 산청군은 자랑하고 있습니다.
     
     [할미산성과 "치마 덤" 내력]
     이 "할미산성" 아래에 넓은 바위가 있는가 봅니다.
     그래서 그 바위를 "치마 덤"이라고 한다는데 그곳에서 선녀가 목욕을 하고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군요.
     "덤"이 무슨 뜻인지 경상남도 지역 이외의 지역 사람들은 잘 모를것입니다
     "덤"은 경남지방 특히 경남 내륙지방의 사투리로 "바위"라는 말입니다
     제 고향이 이쪽이라 확실합니다.
     
     [중봉에서 바라보는 "황매삼봉"]
     "황매산"은 효의 산이며 3무(無)의 산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사연을 알아 보니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는 군요.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무학대사가 황매산에서 수련을 했다고 합니다.
     무학대사가 수련을 할 때 무학대사의 어머니가 뒷바라지를 위해 산을 오르내렸는데
     오르내릴때에 칡덩굴과 땅가시에 발등이 긁혀 넘어져 상처가 나고 뱀에 놀라는 것을 본 뒤 
     황매산 산신령에게 지극 정성으로 100일 기도를 드렸다고합니다.
     무학대사의 기도가 산신령을 감동 시켰는지 그 이후 지금까지 "뱀"과 "땅가시",
     그리고 "칡덩굴"이 자라지 않아 "3무(無)의 산"이라 불리워지고 있으며, 
     무학대사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의 실천과 사랑은 천년의 시공(時空)을 넘어 전설로 
     이어져 오고있답니다.
      불교를 믿는 무학대사가 석가에게 기도를 해야지,
      '산신령'에게 기도를 했다는게 조금 이상하군요. 맘대로 놀아라~~ㅎㅎ
     
     [중봉에서 내려다 보는 "합천호"]
     "황매산"에서 "합천호"를 바라 보는 광경이 압권입니다.
     요즘 장맛비가 많이 내렸는데도 합천호의 水位는 중간 정도를 보여주고있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가물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황매삼봉 오르는 길에 있는 삼거리]
     "중봉"과 "황매삼봉" 사이에 있는 삼거리입니다.
     이 산줄기의 좌우에서 올라 오는 등산코스와 만나는 곳입니다.
     
     [황매삼봉으로 가는 길]
     人類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말을 꼽으라면 무슨 말을 꼽으시겠습니까?
     사람들에 따라 꼽고 싶은 말이 다소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쏘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를 꼽으면 크게 반대 하실 분은 없을듯합니다.
     그런데 우리같은 산객들에겐 "너 자신을 알라~"보다
     '쟝 쟈크 루쏘'가 말한, "자연으로 돌아 가라!~"가 더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산꾼은 아무래도 "山"이 대표로 지칭되는 "自然"이 더 마음에 와 닿을겁니다.
     이런 산행기에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조금 있으면 알게 될것입니다.
      "자연으로 돌아 가라!~"
  
     [황매삼봉 오르는 길]
     우선 "쟝 자크 루쏘"에 대해 간략히 얘기하면....
     18세기 계몽사상가요,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인 루쏘(Jean Jacques Rousseau)는
     "자연은 인간을 선량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었으나, 
     사회는 인간을 죄악에 젖게 하고 노예로 만들어 불행을 초래케 하였다.
     그러므로 자연으로 돌아 가라~!"고 외치며 일어나 프랑스 대혁명의 먼 원동력이 되고, 
     근대 민주주의에 이론적 터전을 마련해 준 세계 역사의 은인이기도 합니다.
     
     [황매삼봉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 본 "합천호"]
     쏘크라테스에 버금가는 출중한 인물인 "쟝 자크 루쏘"가 웃기는 짜장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쟝 쟈크 루쏘"는 노출증(exhibitionism) 환자였습니다
     노출증(exhibitionism)이란 육체의 일부, 특히 성기를 일부러... 특히 여성 앞에다 노출시키는 
     충동적 행위를 말하는데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합니다
     
     [황매 삼봉 오르는 길에서 바라 본 "황매평전"]
     드디어 황매산의 대명사인 "황매평전"이 시야에 들어 오기 시작합니다.
     매년 5월 하순이면 저 앞에 보이는 도로를 따라 수많은 자동차들이 행렬을 이루고
     철죽이 뒤덮은 "황매평전"이 인간들의 화려한 등산복으로 더욱 붉게 물들이는 곳이
     저 "황매평전"입니다.
     자동차가 황매산의 정상부까지 올라 올수 있어 날나리 산객들이 산행이 아닌 관광을
     전국에서 오기 때문에 엄청난 人山人海를 이룬다고 합니다.
     
     [황매삼봉]
     수년 전 홍대 앞 카페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던 젊은 연예인 두 명이 
     공연 도중 갑자기 성기를 드러내는 바람에 생중계방송 중이던 방송사가 
     시청자 앞에 사과성명을 내는 등 해프닝이 있었다는것 기억하실겁니다
     정열적인 음악 삼매경에 도취돼 정신이 좀 느슨해졌던 것 아닌가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 성기를 내 보이고 그것으로 쾌감을 얻는 "노출증"인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노출증의 대명사로 곳곳에서 나타났던 '바바리맨'이 있었던것도 기억하실겁니다
     요즘은 포르노 수준의 영화들이 케이블 TV의 채널을 주름 잡아 '바바리맨'이 쌕수얼한 이슈가
     되지 못하고 개그프로의 개그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노출증"이 변태적인 성행위에서 벗어나 있는 듯도 하지만, 
     아직도 정상적인 인간에게는 호기심 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ㅎㅎ
     
     [황매삼봉 오르는 계단]
     노출증(exhibitionism)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유치한 노출증 충동이 고학력군 젠틀맨들에게 많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저는 저학력군에 속하기에 '노출증' 환자는 절대 아닙니다. ㅎㅎ
     전세계 역사에서 알려져 있는 '노출증 환자'는 그 대표적 인물이 다름아닌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 지주인 "자연으로 돌아 가라~"라고 한 "쟝 자크 루소"입니다
     그는 노출증이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자서전이라 할수 있는 "참회록"에 상세히 고백해 놓았습니다. 
     그 이후 의학계에서는 노출증이 속칭 ‘가방 끈 긴 사람이 주로 걸리는 질병'이라는 닉네임을 
     갖게 되었는데 대체적으로 고학력군에서 이런 노출증 환자가 나타난답니다
     재미있나요? ㅎㅎ 이 이야기는 '황악산 산행기'에서 이미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갈림길 - 가회덕만 주차장에서 오르는 길]
     젊은 시절의 정신적 방황에 대해 용서를 비는 루소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조명이 안 된 컴컴한 골목이나 행인이 드문 곳에 대기하다 
     지나가는 여인을 만나면 그 여성들 앞에 자신의 성기를 노출시키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그 여성들의 당황한 모습을 즐겼다고 분명하게 써놨습니다. 
     또 자신의 페니스를 여성에게 보이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뭉클한 쾌감이 전신을 엄습했다는 사실도 고백해 놓았습니다.    
     이런 등산로는 노출증 환자들에게 더욱 좋은 장소가 될수 있겠습니다. ㅎㅎ
     그런데 정상적인 사람들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해도 그런 충동은 느끼지 않나요?
   
     [삼봉 정상부 갈림길]
     드디어 "황매삼봉"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중봉", "하봉" 아래에 있던 "삼봉"과는 구별해야합니다.
     이미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이 등산코스에는 "삼봉"이 두군데에 있는데
     "박덤"에서 오르면 처음 만나는 "삼봉"과 "하봉","중봉"을 지나 만나는 "삼봉"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황매산의 정상인 "황매봉"까지 펼쳐지는 능선에 있는 세개의 봉우리를 "삼봉"이라
     하는데, 구별하기 위해 "黃梅三峰"이라 한답니다.
     
     [삼봉 정상부 갈림길]
     루소의 솔직한 젊은 날의 참회처럼 
     노출증 환자는 자기의 성기를 보였을 때 여성이 당황해 쩔쩔매는 태도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성적 만족을 느끼며 그러한 희열을 맛보는 것으로 그 여성을 직접 범한 것과 같은, 
     즉 그 여성과 섹스를 한 것 같은 흡족한 기분이 든다고 하는 군요.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쟝 쟈크 루쏘'가 노출증 환자였다니.......
     제가 이 "노출증" 이야기를 왜 하는지 잠시 뒤에 알게 됩니다.
     
     [황매삼봉 정상에 있는 팔각정]
     "黃梅三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에는 "팔각정"이 벼랑 위에 세워져있습니다.
     "황매평전"에서 불어 오는 하늬바람이 오장육부를 써늘케 합니다.
     먼저 도착한 횐님들은 팔각정 안에서 午睡를 늘어지게 즐기고 있습니다.
     절묘한 위치에 팔각정을 지어놨습니다.
     
     [황매삼봉 팔각정에서 내려다 보는 "황매평전"]
     "黃梅坪田"
     봄이었으면 더 좋았을 "黃梅坪田"을 내려다 보며 오늘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아!~~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 -
     천하가 모두 내 발 아래에 있습니다.
     정말 장쾌한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황매 삼봉 팔각정에서............]
     "가방끈 긴 사람들"이 주로 한다는 exhibition 노출을 했습니다. ㅎㅎㅎ
     팬티를 내리고 불어 오는 하늬바람에 땀으로 쩔은 '거시기'를 말렸습니다.
     黃梅山의 정기를 받아 더욱 솟아나는 정력!!~~
     그리고 집에 전화를 걸어 와이프에게 "지금 황매산에서 황매산 정기를 받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뭔 말인지 모르고 그져 조심해서 다녀 오라는 말만 남겼지만 속으로 재미있었습니다.
     장마철이라 이 코스로 오늘 산행을 한 사람들은 우리 뿐이었습니다.
     혹시.......
     가운데 '파란문'의 팬티를 보고 여성분들이 울 남푠도 저 팬티 사입혀야겠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혹시 '파란문' 비슷한 그런 ..그런 쎈 사람이 되지 않을까?해서...ㅎㅎㅎ
     이나저나 '파란문' 날씬하죠?
     
     [황매 삼봉 팔각정에서............]
     우웩? ㅎㅎ
     단체로 아예 홀라당 벗고 黃梅山의 정기를 받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사진이 인터넷에 올려지면 문제가 될까요?
     음란물 유포로 감옥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다소 문제는 될수 있지 않을까 염려됩니다만
     그져 재미로 봐 주시기 바람니다.
     요즘 영화나 케이블 TV에는 진짜 완전 홀라당 아닙니까?
     그리고 "장 쟈크 루쏘"처럼 '노출증 환자'도 아니고 그저 '거시기'를 좀 말렸을 뿐입니다.
     황매산을 오르느라 온몸이 땀으로 젖어서....ㅎㅎ
     그리고 여성분들 진정하세요~~
     
     [황매 삼봉 팔각정에서 황매봉까지 능선]
     이제부터 가야할 "黃梅三峰" 능선이 펼쳐집니다.
     다소 쉬운 코스이지만 이 능선에 "황매산"이 다 들어 있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팬티를 올리고 반바지를 입고 황매산 정상을 향하여 다시 길을 떠납니다.
     
     [황매 삼봉 능선]
     아기자기한   "黃梅三峰" 능선이 가는 길을 즐겁게 해 줍니다.
     
     [황매삼봉에 있는 다른 한 봉우리]  
     황매산의 황(黃)은 부(富)를, 매(梅)는 귀(貴)를 의미하며 
     전체적으로는 풍요로움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또한 누구라도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하면 1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여 
     예로부터 뜻 있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산청군과 합천군은 홍보하고 있습니다.
     
     [황매삼봉 능선에 있는 한 봉우리에서 바라 본 황매봉] 
     황매산의 정상인 "황매봉"이 가까워 옵니다.
     요소 요소에는 휴식 시설이 설치되 있습니다.
     
     [황매 봉 능선] 
       "黃梅三峰" 
     이곳을 이미 다녀 가신 분들은 저의 산행기를 보며 기억이 더욱 새로울 것입니다.
     정말 멋진 곳입니다.
     
     [황매삼봉 안내]
     황매산의 황(黃)은 부(富)를, 매(梅)는 귀(貴)를 의미하며 
     전체적으로는 풍요로움을 상징한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정말  "부(富)귀(貴)山"이라해도 뭐라 할 사람 없겠습니다.
     
     [황매 삼봉 능선] 
     "黃梅三峰"을 이곳 사람들은 설악산의 "공룡능선"의 축소판이라고 한답니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肉山이 많은 남쪽지방에서는 그런 느낌도 ...
     
     [황매 삼봉 능선]  
     "黃梅三峰"능선을 걸을때엔 전혀 지루함을 느낄수 없었습니다.
     변화무쌍한 암릉길이 산행의 묘미를 더욱 느끼게 해 줍니다
     
     [황매삼봉 능선에서 뒤돌아 본 "황매삼봉"]
     "黃梅三峰"능선을 모두 지나와 뒤돌아 봤습니다.
     이렇게 "黃梅三峰"은 세개의 봉우리로 능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제가 팬티를 내린곳이 끝에 있는 봉우리의 팔각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황매 삼봉 능선에서 뒤돌아 본 "황매삼봉"의 팔각정 - 줌인한 사진]
     나도 "쟝 자크 루쏘"처럼 노출을 해 봤던 팔각정이 있는 "黃梅三峰" 봉우리를
     줌인하여 촬영했습니다.
     이제 어디에서 팬티를 벗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상상이 갑니까? ㅎㅎ
     '거시기' 말리기에는 최고의 명당이었습니다.
     
     [황매삼봉 끝에서 바라 본 "황매산 정상-황매봉"]
     방향에 따라 보이는 황매봉이 변화무쌍합니다
     
     [황매산 정상으로 가며 뒤 돌아 본 황매삼봉의 끝봉]
     봉우리 세개가 모두 巖峰입니다.
     
     [황매산 정상과 "떡갈재" 갈림길 봉우리 - 무지개터]
     앞에 보이는 평평한 봉우리가 "진양기맥"을 종주 하실 분들에게는 중요한 봉우리입니다.
     저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진양기맥 마루금"은 나있습니다.
     황매산의 정상인 '황매봉'은 왼쪽으로 갔다가 되돌아 와야합니다.
     그리고 저 봉우리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명당자리 "무지개터"라고 하는군요.
     오전에 산행을 시작했던 "황매산 만남의 광장" 앞에 세워져있는 안내판에
     "무지개터"라고 명당을 소개하는 글이 있어서 그런가보다하고 소개해 드리는 것입니다.
     
     [황매산 정상과 "떡갈재" 갈림길 봉우리로 가는 중턱에서 바라 본 "황매산 정상"]
     이제 황매산의 정상인 '황매봉'과 키 높이가 같아졌습니다.
     모든 산행이 끝난 기분이었습니다.
     
     ["황매봉"과 "떡갈재" 갈림길 봉우리]
     '진양기맥'을 종주하시는 분들은 여기에 베낭을 두고 "황매봉"을 갔다가 돌아 와야합니다.
     "떡갈재"는 우측으로 내려 가고,
     "황매봉"은 왼쪽으로 갔다 와야합니다.
  
     ["황매봉"과 "떡갈재" 갈림길 이정표]
     이곳이 합천군과 산청군의 경계이기도 합니다.
     
     ["떡갈재" 가는 길]
     '진양기맥'을 종주 하실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 강조해 드림니다.
     이 사진은 오른쪽이 "황매삼봉"에서 올라온 길입니다.
     왼쪽이 "떡갈재" 가는 길인데, 왜 다시 소개해 드리는지 이해가 가십니까?
     바로 V字로 꺽어지기 때문에 길 찾기에 혼동이 올수 있어서 친절하게 알려 드림니다.
     
     ["떡갈재" 갈림길에서 바라 본 "황매산 정상"]
     약100m쯤 앞에 있는 "황매산 정상"을 밟아 보고 가야겠지요
     
     [황매산 정상인 "황매봉" 가는 길]
     잠깐이면 "황매산의 정상"인 "黃梅峰"을 갔다 올수 있습니다.
     
     [황매산 정상인 "황매봉" 가는 길]
     먼저 간 횐님들이 벌써 올라 가 있습니다
     
     [황매산 정상인 "황매봉"]
     우리 횐님 중에 '솔개'라는 닉을 가진 산꾼이 있는데 
     이 분은 "황매봉" 이곳에서도 '거시기'를 건조 시키고 있더군요. ㅎㅎ
     이 분은 오늘 이곳을 산행하고 다시 이어 "호남정맥"으로 달려가 3일간을 무박으로
     등산을 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체력입니다. 그래서 거시기도 말리나? ㅎㅎㅎ
     부인한테는 꼼짝도 못하는거 같던데......켁켁켁
               
               [황매산 정상석]
               오전 11시 10분에 黃梅山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러니 "구름재"에서 4시간이 걸렸습니다. (중간에 너무 많이 쉬었지요..말리느라구 ㅎㅎ)
               "태백산맥(太白山脈)의 마지막 준봉인 山"
               1,108m 높이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서 인기 순위 약20위 정도를 하는 인기있는 산이랍니다.
               오르기 쉽고, 아기자기해서 초보 산객들에게 더욱 추억에 남는 산이랍니다
     
     [황매봉에서 뒤 돌아 본 "황매삼봉"]
     지나온 "黃梅三峰"을 뒤 돌아 보니 왜 "黃梅三峰"이라 하는지 실감납니다.
     
     [황매봉에서 바라 본 서쪽 방향]
     일반 등산객들이 황매산 중턱 이상까지 차를 타고 와 오르는 코스입니다.
     아주 쉽게 오를수 있는 코스여서 등산객들 보다는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코스랍니다
     오른쪽 계곡이 '산청군 차황면'이며 "단적비연수", "임꺽정"등 영화를 촬영했던
     "황매산영화주제공원"이 보입니다
     
     ['단적비연수'등 영화 촬영장]
     그래서 "황매산영화주제공원"을 줌인하여 촬영했습니다.
     계절 따라 번갈아 가며 수십만평의 고원에 깔리는 철쭉의 융단과 억새 
     그리고 다섯 남여의 애절한 사랑이 남아 있는 영화 ‘단적비연수’의 촬영장은 
     또 다른 환상을 느끼게 해주어 줌인하여 촬영을 하였습니다.
     
     [황매평전]
     "黃梅坪田"에는 목장도 있으나, 봄에는 철쭉이 화려한 불꽃쑈를 하여
     전국의 관광객들과 등산객들이 모여 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가을에는 들국화가 아가씨들의 마음을 설래이게 하며,
     또한 억새가 석양에 흔들리며 감상을 자아 내는 곳이랍니다.
     
     [황매봉에서 바라 본 "떡갈재 갈림길"]
     이제 黃梅山 등정을 마치고 '진양기맥'을 따라 가야합니다.
     하지만 黃梅山은 많은 볼거리와 감명을 주어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떡갈재 갈림길"에서 점심 식사]
     점심식사를 이곳에서 했습니다.
     
     ["떡갈재"로 가는 "진양기맥 마루금"]
     황매산 산줄기를 뒤로하고 "떡갈재"로 하산합니다.
     하지만 "떡갈재"에서 다시 843m 높이의 "작은황매산"을 올라야 합니다.
     산 하나를 오르고 다시 다음 산을 오를때가 힘이 들기 시작합니다.
     "작은황매산"을 오르고 난 다음에 엄청난 알바를 했습니다.
     '작은황매산'에 가서  알려 드림니다.
     여기까지는 '고속도로'였습니다.
     
     ["떡갈재"로 가는 마루금에서 뒤 돌아 본 "황매산"]
     합천군에서 바라 보는 "黃梅山"은 또 다른 감회를 느끼게 합니다.
     
     ["떡갈재"로 가는 마루금에서 뒤 돌아 본 "황매삼봉"]
     이쪽에서 올려다 보는 "黃梅三峰"이 또 다른 모양으로 다가 옵니다.
     
     [영화마을로 가는 갈림길]
     山靑郡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의류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 시켜 잘입고 잘살수 있도록
     자신의 목숨을 걸고 목화씨를 숨겨온 역사적 인물인 "문익점선생"이 탄생된 곳이기도 하며,
     근현대에서 가장 존망받은 스님인 "성철스님"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또한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균 보다도 더욱 빛나는 인물 - 허균의 스승으로 나오는 
     神醫 유의태선생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저의 고향이 산청 바로 위 함양이기도 하니 이 일대에 출중한 인물이 많이 나온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고 山水가 좋아 깨끗한 대자연 속에서 살기에
     머리 좋은 훌륭한 분들이 많이 나온것입니다. ㅎㅎㅎ
     
     [영화마을로 가는 갈림길 - 이정표]
     문익점선생을 단순히 목화씨를 훔쳐온 도둑놈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즁국 원나라 입장에서는 나쁜 도둑놈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구세주입니다.
     신념있는 테러리스트 안중근 의사와 같은 맥락입니다.
     오히려 안중근의사보다 더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필자인 파란문은 생각합니다
     천박한 의류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 시킬수 있었으니 그 공로는 계산 할수 없습니다
     그 동안 주로 삼베옷으로 여름 겨울을 모두 견뎠는데 더운 봄-여름에는 시원한
     삼베옷을 입고,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면옷을 입을수 있게 되었으니 의류문화를
     완전히 변화 시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었으니 그 어느 누구보다도 고마운 분입니다
     당시에는 부유층만 중국에서 광목을 수입해서 입었었습니다.
  
     [문익점선생 생가와 목화 시배지 - 자료사진]
     문익점선생은 1331년 고려 충혜왕 원년에 이곳 산청군 단성면에서 태어 났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 가고 1363년 공민왕 13년에는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로 사신이 되어 갑니다.
     이때 고려에는 쿠데타가 일어나지요. 최유등 무신정권들이 공민왕을 폐위하고
     덕흥군을 옹립하는 모사를 벌이는데, 이런 모사를 바로 잡기 위해 날조된 관련 서류들을
     불태우고 공민왕 폐위의 부당함을 알리며 신하로서 절개를 지키다가 원나라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중국에 억류되 있다가 돌아 오는 길에 문제의 "목화씨"를 훔쳐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성계가 고려를 깨부수고 "조선"을 개국하는데
     쿠데타정권에 빌붙어 일할수 없다고 영원히 벼슬을 그만 둔 충절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두문동 72현"과 같이 이성계와 이방원이의 부름을 여러번 받았으나 끝끝내 관직을 사양한것입니다.
     "한 신하가 두 임금을 모실수 없다"라고 하면서....
     목화씨 훔쳐 온 사람으로만 알고 있다면 생각을 바꾸세요
     생육신 - 사육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충신이었다고....
  
     [활타기 - 씨아기 작업]                                      [고치말기]
     1364년 공민왕 13년에 원나라에서 돌아 올때 잘 아시다시피 붓뚜껑에 목화씨 10개를 
     숨겨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장인인 "退軒 장천익선생"에게 주었습니다.
     "退軒 장천익선생"이 재배를 했는데 오로지 하나의 씨에서 꽃을 피웠고, 우리나라에
     목화가 재배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됩니다.
     목화씨를 훔쳐온 사람은 문익점선생이고 재배를 한 사람은 그의 장인인 "퇴헌 장천익선생"인것입니다.
  
     [실뽑기]                                                          [베짜기]  
     '퇴헌 장천익선생'은 재배에 성공한 이후 목화씨를 전국으로 나눠져 대량생산에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베를 짤수 있는 기계들을 발명해냈는데 바로 목화씨를 분리시키는 "씨아"와 
     실을 쉽게 굵게 감을수 있는"물레"등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 태종과 세종대왕은 문익점선생과 장천익선생에게 각별한 예우를 해 주었으며
     특히 세종대왕은 문익점에게 "의정부 영의정"을 추서하고 부민후富民候로 追封하였답니다
     세종대왕은 大王소리를 들을 만하지요? 인재를 알아보고 예우를 해 줄줄 아는 王이었으니까요
     요즘 정치하는 인간들하고는 완전히 틀림니다.
     요즘 넘들은 백성들을 위해서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밥그릇 채우기를 위해 정치를 하니까 
     자기보다 똑똑한 인재를 추겨 세우는게 아니라 깔아 뭉개 죽일려고 하니 완전히 틀림니다.
     
     [황매산 등산로]
     
     [영화마을 갈림길에서 뒤 돌아 본 "황매산"]
     "황매산"을 뒤돌아 보는 기분이 조금 야릇합니다.
     문익점선생에 대해 '점필재 김종직선생'이 쓴 詩가 있는데....

     우리나라 열린지 몇천년인가
     백성이 옷입는것 다 이유있네
     선생이 가져온 그 물건
     재화되어 오래도록 영원하다


     
     [영화마을 갈림길에서 내려다 본 "합천호"]
     오늘 '합천호'는 확실히 감상했습니다.
     동쪽에는 "합천호', 서쪽에는 '황매평전'을 두고 진양기맥 마루금을 걸었습니다.
     
     [영화마을 갈림길에서 너백이재 가는 길로 가는 마지막 봉우리]
     황매산에서는 마지막으로 주변 경관을 구경했습니다.
     
     [너백이재 - 쉼터]
     '영화마을'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 갑니다
  
     [너백이재 이정표]
     '장박마을' 옆으로 '영화마을'이 있더군요
  
     [떡갈재로 하산]
     '떡갈재'로 내려 가는 길은 숲터널이었습니다.
     
     [떡갈재]
     우리들 이외에는 사람 구경할수 없는 조용한 '떡갈재'에 왔습니다.
     
     [떡갈재]
     '떡갈재'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45분경이었으니 
     오늘은 일찍 산행을 시작해서 일찍 서울로 올라 갈수 있겠다고
     여유를 부리며 휴식을 취합니다.
     그러나.......닝기리~~ 오후 6시30분이 되서야 서울로 출발했으니....
     이제부터 얼마나 산속을 헤메는지 알만하지요? 
     
     [떡갈재에서 작은황매산 오르는 마루금]
     오늘은 빨리 집으로 갈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843m 높이의 작은황매산"을 힘차게 오릅니다.
  
     [작은황매산 가는 길]
     "작은황매산"은 뾰쪽한 삼각형의 산이라 경사가 장난이 아닙니다
     
     [작은황매산]
     대략 800m 정도 되는 한 봉우리를 올라 가니, 다시 올라야 할 "작은황매산"이 나타납니다.
     이때부터는 힘들기 시작합니다.
     바로 "작은황매산"인줄 알았는데 또 올라야하니 맥이 빠집니다.
     
     [뒤돌아 본 "황매산"]
     '작은황매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黃梅山"
     잘있거라 ~~ 이제 언제 다시 오겠는가~
     하지만 나의 산행기 속에서 언제나 함께 할것이니라~~
     
     [작은황매산]
     '작은황매산' 정상이 다가 옵니다.
     
     [작은황매산 정상]
     '작은황매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산객들의 흔적이 별로 없었으나, '진양기맥' 종주자들의 표지기가 많이 걸려있었습니다
     힘들이며 오른 댓가가 너무 초라합니다.
     하지만 이제 2시간 정도만 더 걸으면 오늘 산행이 끝나므로 크게 상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알바를 하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여기서 좌측 서쪽으로 완전히 틀어 내려 가야하는데,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많이 달려있는 북쪽으로
     힘차게 전진하는 바람에 어마어마한 알바를 했습니다.
     앞으로 '진양기맥'을 종주 하실 분들은 이곳에서 독도를 조심해야합니다
               
               [작은황매산 정상석] 
               843m 높이라는 정상석이 외롭게 서있는데
               오늘 "843m 높이의 작은황매산"을 두번 오릅니다. 에고~
               북쪽으로 완전히 하산했다가 마루금을 잃고 다른 산봉우리들을 넘고
               몇개의 계곡을 건너 다시 이곳으로 올라 오게 됩니다.
     
     [산행 개념도]
     얼마나 알바를 했는지 상상만 해 보시라..
     두시간 이상 헛다리 짚고 다니다 결국 되돌아 왔으니 에구~~
     연두색 선이 알바한 코스입니다.
     
     [작은황매산에서.....]
     '작은황매산'에서 직진하여 산속을 헤메이며 정신없이 다니느라고 사진도 못찍었습니다.
     사진을 찍을 특이한 곳을 발견 할수도 없었습니다. 
     온통 잡풀과 나무, 계곡, 봉우리들 뿐이었으니...
     그래서 알바코스에서는 사진이 없습니다. 
     
     [작은황매산 정상에 되 돌아 오다]
     '작은황매산'에 되 돌아 왔습니다
     이때가 이미 오후 3시 50분이었습니다.
     오후 1시 45분에 떡갈재에서 이곳에 올랐으니 약 2시간 정도 알바를 했습니다.
     
     [작은황매산에서 "밀치" 가는 길]
     '작은황매산'에서 '밀치' 가는 길도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는 '길없는 길'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을수 없을 정도로 잡풀과 나무가 우거져 있었습니다.
     枝脈을 가면 보통 이런 길이지만 ...그리고 이런 길을 각오하고 가지만.....
     이번에는 "황매산 구간"이 너무 쉽고 아름다운 길이어서, "작은황매산 구간"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안이하게 준비도 하지않고 독도도 하지 않으며 진행한것이 큰 오산이었습니다
     枝脈길을 갈때엔 언제나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하면서도 큰 실수를 했습니다.
     
     [밀치 아래 개울에서]
     거창군 신원면 소야리로 내려와 어느 계곡에서 알탕을 하고
     거창 시내에서 오리로스로 저녁 식사를 하고 서울로 올라와 집에 들어 가니
     밤 2시였습니다.
     
     
     [산행 개념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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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와 무인도 지킴이 '하루'에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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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魚飛山』 遊山記
         
               물고기를 타고 산을 넘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어비계곡]

     칠월 첫주 일요일에는 "휘산회 정기산행"에 따라 붙었습니다.
     주말이면 산에 다니기 바쁜 필자는 원래 다른 산행계획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산행은 산행이라기 보다는 먹고, 마시고, 노는 여름 피서 여행 같은 것이어서 
     이 기회에 보고싶었던 선후배님들을 만나 보고 싶어서 였습니다.
     특히 모처럼 "띠동갑 50회" 선배님들이 대거 참석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또한 몇몇 후배님들과 한잔 하고 싶어서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띠동갑 74회" 후배님들도 요즘 참여하는 인원이 많이 늘었고
     "86회 띠동갑"들까지 참여하고 있으니 이곳에 가면 정말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그런 "나의 과거와 미래"가 상존하는 그런 곳이니 어찌 지상낙원이라
     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어비계곡]

     오전 8시에 잠실 롯데월드 시계탑을 출발한 약250여명의 교우님들이 관광버스 6대에 분승해
     도착한 곳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어비계곡 魚飛溪谷"이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물고기가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산을 넘나든다는 魚飛山을 간단하게 오르고
     수많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1급수 맑은 물의 魚飛溪谷에서 휘문교우 선후배님들이
     친목 야유회를 연다고 하니 이곳으로 가지 않고 어디로 떠돌아 다니겠습니까?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어비계곡]

     산행에 앞서 준비운동과 산행대장의 산행안내를 간단히 들었습니다.
     한가지 하고픈 말은 250여명의 제법 많은 인원이고, 70대 나이의 선배님들부터
     30대 나이의 후배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운집해 있는 속에서 산행안내를 하는
     산행대장이 그다지 목청을 높이지 않고 이야기 하는데도 모두가 조용히  경청하는
     선후배님들의 학습태도와 질서의식은 역시 좋은 학교이구나 하는 느낌을 새삼 받았습니다
     다른 핵교들은 거의 대부분 스피커를 들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질러도 듣는둥 마는둥 하는데
     무지 비교되지 않습니까? 
     이 산행기는 다른 핵교 나오신 분들도 많이 보시기 때문에 그런 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쬐끔 자랑하는거 이해해 주실수 있죠?.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기념사진]

     저의 산행기를 계속 보신 분들은 "徽山會"가 어느 정도 위상을 가지고 있는
     산악회인지 아시지만....추가 설명 필요없이 이 사진을 보시면 대략 아시겠죠? ㅎㅎ
     전국의 수많은 고등학교가 부러워하는 "徽文高 졸업생들의 山岳會"입니다
     지금까지 177회 산행에 약16,000여명이 참여했다고하니 그 열기를 짐작 할수 있습니다
     매월 첫째주에 한번 하는 산행이니 開山한지가 어느듯 15년정도가 되는군요
     얼마나 단합이 잘되는지 아시겠죠? 이런 동문 산악회는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산행 개념도]

     오늘 산행은 결과부터 말씀들여 魚飛山 정상까지 1시간 15분 걸려 올랐습니다
     하산하는데 45분 걸렸으니 2시간짜리 산행이었고, 이미 언급했다시피 魚飛계곡에서
     '야유회'가 주목적인 그런 산행이었기에 무척 간단한 산행이었습니다.
     魚飛山을 산행 하려면,어비산(822m)-유명산(864m)-소구니산(800m)-중미산(834m)을 
     연계해서 돌아야 산행다운 산행이 됨으로 앞으로 오실 분들은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산행 들머리]

     10시 20분에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산행대장의 안내에서 먹고 마시는데 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올라 가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 주었습니다만, 모두  魚飛山을 오릅니다.
     또다시 魚飛山을 별도로 찾아 오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보시는 바와 같이 산행 들머리에서 부터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魚飛山 오르는 된비알]

     魚飛山의 이 등산코스는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가파른 코스였습니다.
     워밍업 할 겨를도 없이 들머리부터 된비알이니 체감적으로는 무척 힘드는 어려운
     등산코스로 느껴집니다. 

     
     [魚飛山 오르는 된비알]

     날씨는 안개가 많이 낀 맑은 날에, 기온은 높고 바람 한점없는 전형적인 무더운 
     여름 날씨였습니다. 계곡도 아닌 능선을 타고 오르는데도 바람 한점 없었으니 
     초보 산객들에게는 무척 힘든 산행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정상까지 오르지않은 교우들이 제법 많이 있는듯했습니다.
     즐겁기 위해 하는 등산인데 괴로우면 빨리 중단하는게 최상책이며 현명한 판단입니다

     
     [魚飛山 오르는 된비알]

     산행들머리에서 제1봉화대가 있는 725m봉우리까지가 가파른 된비알입니다
     바람 한점없어 더욱 땀을 많이 흘리게 한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약40분 정도 오릅니다

     
     [725m봉-제1봉화대]

     약 40분 정도 쉬지 않고 오르면 처음으로 봉우리가 하나 나타납니다.
     이 봉우리가 725m봉으로 제1봉화대가 있었다는 봉우리입니다.
     이 봉우리까지만 오르면 약간의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가니 한결 편해 집니다

     
     [725m봉-제1봉수대]

     "725m봉"에는 옛날 봉화대가 있었다는 설이 있는데 올라가 보니 흔적은 있는듯하고
     구체적인 시설은 확인할수 없었습니다.
     이 봉화대는 서울 경복궁과 같은 위도에 놓여져 있어 강원도 '정동진' 방향 지역과
     연락을 하던 봉화대였다라고 합니다.
     그런 내력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산객들은 휴식을 취하는 쉼터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725m봉-제1봉수대에서 바라 보는 "유명산"]

     "725m봉"에 올라 서니 건너편에 그 유명한 "유명산"이 안개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유명산"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유명산"이라는 지명에 있습니다. 
     원래 지형도상에는 "유명산"이라는 산이름이 없었다고 합니다.
     "유명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는 동기가 조금 의아스럽습니다.
     1973년 당시 '엠포르 산악회'라고 하는 산악회가 '국토자오선종주'를 하면서 
     그 산악회의 일행 중에 유일한 여자였던 '진유명'씨라고 있었던가 본데 그 여자의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 "유명산"이라는 이름의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유명산"이 유명하게 된것은 오로지 산 이름이 '유명산'이라서 유명해 진것이니
     사람이던 동물이던 사물이던 이름을 잘 지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에는 이곳 일대에서 "말을 길렀다"하여 '마유산'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니, 근간에 어떤 여자가 올랐다고 산이름을 그 여자 이름을 따 마음대로 
     지을 게 아니라, 역사적인 기록을 토대로 본명을 찾아 주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제1봉화대에서 제2봉화대 사잇길]

     725m봉에서 정상까지는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내리막과 오르막을 걷는
     매우 편한 능선길입니다. 이곳까지 오르지 못하신 분들은 이 사진을 보고
     "에구~ 올라 갈껄~, 조금만 더 갔으면 되는건데..."라고 아쉬워 하실겁니다. 

     
     [785m봉-제2봉화대]

     725m봉-제1봉화대에서 약 10분쯤 더 가면 두번째 봉우리인 "785m봉-제2봉화대"가 나옵니다
     이곳에서도 봉화대의 흔적을 발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단지 봉우리임으로 산객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다음 봉우리가 정상 봉우리이니, 어비산 등산코스에는 세개의 봉우리가 있는 셈입니다
     "725m봉-785m봉-829m정상"

     
     [魚飛山 정상으로 가는 길]

     魚飛山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아름드리 赤松이 눈길을 끌었으며, 이제서야 산행을 즐깁니다.
     청개구리는 시키는 일에 반대로만 한다는 이야기를 초딩때부터 들으며 살아 오셨죠?
     그 이야기가 최초로 나온 곳이 바로 이곳 "가평군 옥천면"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의 원본을 들려 드리며 산행을 하겠습니다.

     
     [魚飛山 정상으로 가는 길]

     고등학교 때에 "이괄의 난"이라고 배웠지요? 가방 끈이 짧다구요?
     듣긴 들은 듯한데 자세한 내용은 모르시겠다구요? 정답입니다.
     대부분 "이괄의 난"은 아는데 "이괄의 난"의 내용은 모르실겁니다. 
     벌어 먹고 살아 가는데 별로 도움도 주지 않으니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이겠지요? ㅎㅎ
     "이괄"이 이 동네 출신인듯합니다. 그러니 전래동화가 있겠지요.
     먼저 "이괄"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드리지요.
     "이괄"은 무지 똑똑해서 과거시험의 무과에 급제를 하고 정치계에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바로 조선 선조때입니다. 그리고 광해군 시절에는 높은 관직에 오르고
     잘 아시는 "인조반정"의 핵심 인물로서 성공한 쿠데타 세력의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쿠데타 세력 끼리의 자리 싸움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나니 기분이 더럽게 나빳겠죠? 몇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만
     "이괄"은 자신이 쿠데타로 만든 왕에게 다시 쿠데타를 일으키니 이것이 바로 "이괄의 난"입니다
     이 쿠데타는 성공을 합니다만, 성공한 다음날 바로 반격을 당해 실패로 끝나고 말지요.
     간단하게 말해 "이괄의 난"은 조선 인조시절에 실패한 쿠데타입니다.

     
     [魚飛山 정상으로 가는 길]

     쿠데타 역사는 勝者의 전유물로 남고 패자는 혹독하게 비하 당합니다.
     실패한 쿠데타 "이괄의 난"으로 "이괄'은 철저히 나쁜 놈으로 묘사 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 진 것이 "청개구리 이야기"이고 역사의 勝者가 패자를 역사적으로
     매장 시키게 됩니다. 역사의 勝者가 만들어 낸 "청개구리 이야기"를 들려 드림니다

     
     [魚飛山 정상으로 가는 길 - 돌무덤]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청개구리 이야기"는 당연히 여러분들도 아는 얘기인데
     이것이 "이괄"을 비하시키기 위해 역사의 勝者가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이괄은 어려서부터 말썽꾸러기여서 아버지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다 반대로 하였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죽게되자 이괄의 아버지는 또 이괄이 반대로 할 줄 알고,
     "내가 죽거든 바로 묻어다오."하고 죽었다.
     이괄의 아버지는 반은 용이고 반은 사람이라 거꾸로 묻으면 죽어서 용이 되어 승천할 것이라, 
     바로 묻어 달라고 하면 이괄이 거꾸로 묻어 줄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괄은
     "내가 여태까지는 무조건 반대로 하였지만, 아버지 마지막 길인데 내가 반대로 나갈수가 있느냐?"
     하고, 아버지를 부탁대로 바로 묻어 드렸다.
     이렇게 해서 이괄의 아버지는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뒷날 "이괄의 난"이 실패하였다

      이 이야기는 앞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경기도 가평군 옥천면 옥천리'의 전래동화입니다.

     
     [魚飛山 정상]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합니다
     1시간 15분이 걸려 "魚飛山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특별히 정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 평평한 정상이었습니다.

               
               [魚飛山 정상 이정표]

                "魚飛山 정상'에는 이정표가 서 있었으며, 
                '유명산"으로 가는 갈림길이기도 했습니다

     
     [魚飛山 정상]

     魚飛山 정상에는 물고기는 보이지 않고 우리 교우님들이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은빛 물고기는 우리 교우님들이 날아 오른 후 환생한듯 보입니다.
     魚飛山 정상에서 약50분 정도 머무르며 주로 후배님들이 따라 주는 차가운 막걸리로
     魚飛山 등정을 만끽했습니다

     
     [魚飛山 정상석]

     魚飛山은 한자만 봐도 알수 있드시 '물고기가 날라 다닌 산"이라는 뜻입니다
     魚飛山은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강과 남한강 사이에 있는 산인데 남한강에 홍수가 나면 남한강의 물고기들이
     이곳의 "魚飛계곡"을 따라 올라 "魚飛山'을 넘어 북한강으로 건너 가고, 북한강에 홍수가 나면
     반대로 이곳을 날아 남한강으로 건너 간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디서 확인한 설이냐구요? 제가 쬐끔 상상의 날개를 펴 봤습니다. 따지지 맙시다~

               
               [魚飛山 정상석]

               829m높이의 산이면 제법 높은 산입니다
               그런데 1시간 15분만에 올라 왔다면, 이 산은 뾰쪽한 산이라  산행거리는 짧고,
               경사는 매우 가파르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
               산객들이 싫어하는 등산코스가 이런 코스입니다.
               魚飛山은 山보다 계곡이 좋더군요.

     
     [魚飛山 정상에서 총동창회장님과...]

     100년이 넘는 역사의 휘문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님과 단둘이 사진촬영을 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수 있는 그런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휘문고 총동창회장 하기가 보통 인물로는 어림도 없는 자리이기에 그 위엄을 생각하면
     왠만한 후배는 함께 사진 박기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함께 사진을 박았으니 저도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걸 강조 하고싶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교우회를 위해서 아주 말뚝 박고 계속 회장직을 수행해 주시면 어떨지요
     농담입니다. 언제나 친근하게 대해 주시는 회장님께 감사 드림니다

     
     [魚飛山 정상 근처 전망대에서 바라 본 "유명산"]

     하산하는 길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 보는 "유명산"이 안개 속에서 신비한 모습을
     살짝 보여 줍니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은 안개로 "용문산"을 촬영하지
     못한 것이었고, 소구니산(800m),중미산(834m)을 또한 촬영하지 못한 것입니다.
     산행에 일가견을 가지신 분들은 魚飛山에 올때에 "魚飛山(826m)-유명산(864m)-
     소구니산(800m)-중미산(834m)을 연계해서 종주 하시면 산행의 기쁨이 배가된다고
     선답자들이 알려 주더군요. 약 6시간 정도 소요 된다고 하니 그렇게 긴 코스가 아니랍니다

     
     [갈림길]

     어비산장 들머리에서 올라 오던 길로 내려 가다 삼거리를 만나는데
     친절한 후배 산행 리더들이 길 안내를 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곳은 안내해 주지 않으면 바로 알바를 합니다.
     좌측으로 내려 갔습니다.

  
     [늘푸른쉼터로 하산하는 길]

     '늘푸른쉼터"로 하산하는 코스는 올라 올 때의 경사도를 유지 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가파랏습니다.

     
     [늘푸른 쉼터]

     정상에서 약45분쯤 걸려 하산하니 "늘푸른쉼터"가 바로 나왔습니다.

     
     [뒷풀이 - 늘푸른 쉼터]

     "늘푸른쉼터"가 있는 "魚飛계곡"에는 야영을 할수 있는 시설들이 많이 있었고,
     벌써부터 여름 휴가를 온 가족들이 방갈로를 모두 차지하여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뒷풀이 - 늘푸른 쉼터]

     260여명의 교우들을 위한 야유회 장소입니다.
     집행부에서 미리미리 준비를 잘 해서 아무른 불편함없이 바로 먹고 마시고 놀수 있었습니다

     
     [뒷풀이 - 늘푸른 쉼터]

     전문 출장 부페업을 하는 교우가 준비한 점심식사가 부페식으로 차려져 있고
     특히 무제한으로 공급되는 L.A갈비가 지글지글 연기를 내며 굽혀지고 있습니다.
     "魚飛계곡"을 오염시키는 갈비 냄새....L.A.갈비 무지 많이 먹었습니다.

     
     [뒷풀이 - 늘푸른 쉼터]

     각 기수별로 때론 선후배가 합석하여 따뜻한 정을 나누었습니다.
     저를 알아봐 주시는 선배님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인사 올림니다. 내내 건강하소서~~

 
     [아직도 건재 하다구...]

     아직도 청춘이시라구 힘겨루기를 하시는 선배님들도 있었습니다
     승패를 떠나 아직도 질수 없다는 선배님들이나, 이제는 않된다는 후배님들의 힘겨루기는
     보는 이들에게 훈훈한 즐거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사진으로 보셔도 왠지 즐겁지 않습니까?

     
     [魚飛계곡에서 휴식]

     魚飛계곡에서 260여명이 부페식으로 점심식사와 반주를 하고 魚飛계곡의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추억의 학창시절 애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늘푸른 쉼터]

     늘푸른쉼터에서의 야유회는 즐거웠습니다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집행부에 거듭 감사를 드림니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띠동갑 50회 선배님"들이었습니다.
     오늘 소풍 가는 기분으로 참석하셨다고 하시며 "50회 동창회"를 자랑하셨습니다.
     6.25전쟁중에 미아리고개에서 건물도 아닌 천막 학교에서 공부한 기수 중에 한 기수이랍니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SKY대학에 제일 많이 들어 간 기수이고, 250여명이 졸업했는데
     현재 150여명이 연락이 되어 활발한 동창회 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국회의원이 2명, 육군 대장이 한명, 경찰청장 한명, 재벌 경영인 6명을 배출했다고
     저에게 자랑하셨습니다. 정말 자랑해도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50회 동창회"의 자랑은 뭐니뭐니해도 "70세 생신 축하연"을 공동으로 개최하였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물고기가 하늘을 날라 다닌다는 魚飛山을 遊山하면서
     저의 과거와 미래를 볼수 있었습니다.
     후배님들은 저의 과거의 모습이고
     선배님들은 저의 미래의 모습입니다.
     국적은 바꿀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수 없는 것이지요
     끈질긴 인연, 도저히 땔수 없는 이 인연은 영원 할것입니다.
     훈훈한 정이 魚飛山과 魚飛계곡을 가득 채워 넘쳐 하늘로 날라 가는데
     나의 과거와 미래를 마음 속에 안고 아쉬움을 남기며 7월 첫주 산행을 마감했습니다
     '띠동갑' 4代가 함께한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Ich liebe d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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