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기맥3구간]晋州 集賢山을 가다 청현고개-삼면봉-집현산-삼면봉-무너미고개-진주 집현산- 내리실고개-서낭재-동현고개-막고개

晋州라 天里길 - 이천구년 봄바람이 급하게 불어 오는 晋州라 天里길을 달려 갔습니다 晋州의 鎭山 "集賢山"을 정점으로 [진양기맥3구간]을 찾아 보고 '길없는 길'에서 봄향기와 함께 남쪽나라 晋州에 안기고 왔습니다

     
     [대전-통영고속도로 '덕유산 휴게소']
     2009년 3월28일(토)
     꽃 소식과 함께 봄향기 불어 오는 南쪽 나라 晋州를 향해 떠났습니다
     대전과 통영을 잇는 고속도로 휴게소 "덕유산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진양기맥3구간"으로 신나게 달렸습니다
     
     [서울백두클럽]
     오늘도 "진양기맥"을 종주하고 있는 "서울백두클럽"과 함께 합니다
     오늘이 진양기맥의 3구간이라 1 - 2구간은 참여하지 못하고 3구간부터 참여합니다
     앞으로도 모든 구간은 참여하지 못하고 몇 구간은 빠질수 밖에 없으며
     가지 못하는 몇구간은 다음에 시간을 내어 별도로 가야하겠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오지 산행을 주특기로 하는 "서울백두클럽"은
     정말 특징있는 산악동호회입니다.
     산객들로 뒤범벅이 된 유명한 산으로 산행을 하는 것보다 오지 지맥길을 더욱 사랑하며
     산행의 즐거움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그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진짜 산 나그네 들이지요 
     
     [靑峴 고개]
     서울에서 약4시간을 달려서 진주에 도착하였습니다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서, 산청군 신안면 청현리로 넘어 가는 고개인
     靑峴 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전 11시 30분경 출발~~!! 산으로~
     
     [靑峴 고개]
     靑峴 고개는 진주의 산악마라톤코스의 반환점이 되는 곳이더군요
     晋州에서 가장 높은 山인 集賢山의 고갯길  靑峴으로 마라톤 건강달리기를 하는 곳
     
     [靑峴 고개]
     '靑峴'의 이 '고개'라는 뜻이므로 "靑峴고개"라 하는 것은 "驛前앞"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므로 그냥 '靑峴'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지만, 사람들은 峴, 峙. 재, 坡등의 고개를 의미하는
     단어에 다시 '고개'를 붙이는 습관이 생겨 이제는 일반화 되었습니다
     문헌을 찾아 보니 靑峴은 임진왜란 때에 큰 승리를 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더군요
     임진년 10월 9일 김준민장군이 이끄는 500여 군사가 진주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진군하는 길에 
     이곳에서 커다란 승전고를 올렸더군요
     임진왜란하면 이순신장군의 海戰만 생각나는데, 陸地에서도 곳곳에서 피흘리며 싸웠습니다
     진주 근처에 와 봐야 그 때 그 처절했던 임진왜란을  상기하기 쉽습니다
     
     [첨단양돈연구소]
     청현고개 아래 계곡에는 경상남도 첨단양돈연구소가 83ha 넓이의 면적에 개설되어 
     이 지역 양축농가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경상남도는 국내 최초로 지방자치 단체가 125억원을 투입하여 관내 양돈농가들의 품종개량, 
     유전자 및 생명공학연구, 냉장육 중심의 고품질 돼지고기 생산과 선진기술보급 등을 목적으로 
     첨단 양돈연구소를 2001년 10월 26일 준공하고, 주로 지리산 흙돼지 종자의 보존과 증식으로
     일본으로 수출을 지원하고 있다는군요
     오른쪽 능선이 집현산 정상에서 내리 뻗은 줄기입니다
  
     [靑峴고개 '진양기맥3구간' 들머리]
     진양기맥2구간 '광제산'에서 흘러온 산줄기는 이곳 "청현"에서 집현산으로 옮겨갑니다
          
          [송전철탑]
           급한 된비알을 잠시 치고 오르면 송전철탑이 앞에 버티고 서 있습니다
     
     [송전탑에서 바라보는 '광제산']
     '진양기맥2구간'의 대표산인 "광제산 廣濟山"이 조망됩니다
     
     [송전탑에서 바라보는 산청군 신안면 청현리]
     조금전 '청현'에서 보았던 '첨단양돈연구소'와 산청군 신안면 청현리가 보이며
     오른쪽 멀리 아득히 "황매산"이 보이는군요.
     앞으로 저 '황매산'을 통과하여 남덕유산으로 갈것입니다
     '남덕유산'에는 아마 가을쯤 도착할것입니다
  
     [集賢山 오르는 된비알]
     오늘 산행에서 가장 경사가 심한 된비알을 30분정도 치고 오릅니다.
          
          [쉼터 무덤]
          숨이 턱에 차오를 때쯤되니 무덤이 있는 쉼터가 나옵니다
          죽으란 법은 없습니다. 반드시 쉼터는 나옵니다. ㅎㅎ
  
     [集賢山 오르는 된비알]
     무덤에서 약15분정도 다시 된비알을 오릅니다
       
     [三面峰]
     '靑峴'에서 45분정도 급한 경사면을 오르니 "삼면봉 三面峰"이 길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12시 15분경에 도착했으니 '청현'에서 45분 걸렸습니다
     集賢山은 7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래서 七峰山이라고도 한답니다.
     이 三面峰 봉우리도 7개 봉우리 중에 하나입니다.
     이 봉우리는 553m봉우리로서, 진주시 명석면과 산청군 생비량면, 산청군 신안면의 경계가
     되는 지점이라고 일명 三面峰이라고한답니다
  
     [三面峰 이정표]
     集賢山 정상은 좌측으로 500m 지점에 있어, 集賢山 정상을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 와야합니다. 약 10분정도 걸리더군요. (왕복 20분)
     集賢山 정상은 진양기맥 마루금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集賢山에 와서 集賢山정상을
     밟아 보지 않고 간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集賢山 정상 가는 길]
     集賢山 정상 가는 길은 오솔길 같았습니다.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기에 갔다 옵니다
     
     [集賢山 정상]
     集賢山 정상이 신선한 모양으로 다가 옵니다
     神仙이 앉아 놀기 쉽도록 친절하게 암봉 위에 평상까지 만들어 놨습니다
     
     [集賢山 정상]
     老松이 그늘을 이루고 集賢山 일곱봉우리가 뱅그르 보이는 集賢山 정상의 모습입니다
     남쪽지방에 소나무 숲이 인상적입니다
          
          [集賢山 정상석]
          集賢山의 높이가 577m라고 큼지막하게 표기해 놨습니다
          集賢山의 높이는 572.2m인데 577m라고 표기한 이유가 있더군요.
          集賢山은 산청군과 진주시에 걸쳐 있는 산인데, 가장 높은 봉우리가 이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산청군에 있습니다.
          진주시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앞으로 갈 集賢山의 진주集賢山이 가장 높은 산인데, 
          그 봉우리의 높이는 실제 548m입니다. 그런데 진주시에서 그곳의 정상석에 572,2m로
          표기해 놨습니다. 진주의 鎭山을 더 돋보이게 하고 싶어서 허위 표기를 한것이죠
          기분이 나빠진 산청군은 진짜 集賢山의 최고봉인 이곳의 높이를 "진주集賢山"의
          거짓 높이 보다도 높은 577m로 또 거짓으로 표기하게 됬다고합니다.
          지방자치단체 끼리 감정싸움으로 산높이가 허위로 표기된 사연이랍니다
     
     [集賢山 정상]
     '三面峰'에서 후미 그룹이 올라 오고 있습니다
     
     [集賢山 정상에 바라 보는 集賢山 봉우리들]
     集賢山은 말발굽 모양으로 생겻습니다.
     가운데 분지를 뱅그르 돌아 가면서 일곱개의 봉우리가 솟아있습니다
     우측의 봉우리가 진주사람들이 우기고 높이까지 548m를 572.2m로 표기하며 자랑하는
     "진주 집현산"입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집현산 東峰"입니다
     
     [集賢山 정상에서 점심 식사]
     集賢山 정상은 점심식사 장소로는 최고 神仙名堂이더군요
     
     [三面峰으로 회귀]
     진양기맥 다음 길을 가기 위해 三面峰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무너미 고개]
     '진주 집현산'으로 가는 고갯길의 이름이 "무너미 고개"입니다
     무너미에 대해 혹시 아시나요?.
     '무너미'라는 단어는 실제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입니다
     논에 물을 데고 일정 水位가 되면 넘쳐 흘러 나가도록 논뚝보다 약간 낮게
     만들어 놓은 '물빼는 곳'이 있지요?. 즉 "물 넘어 가는 곳".
     물 넘어 가는 곳이 순수 우리말로 "물넘이"입니다.
     "물넘이"가 지방에 따라 음운변화를 거쳐 "무너미"로 불리워 진것입니다.
     "무너미"는 전국의 곳곳에 있는 일반명사인것이죠.
     이곳 "무너미"는 천지개벽 당시에 물이 넘나 들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무너미 고개]
     '무너미'를 지나 가파른 526m봉 된비알을 치고 오릅니다
     
     [526m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集賢山과 三面峰]
     526m봉을 오르며 뒤돌아 보니 지나온 좌측의 三面峰과 우측의 集賢山정상이 보입니다
  
     [526m봉 삼거리]
     526m봉 봉우리는 집현산의 五峰이라 부리워진다는데,
     특별히 봉우리라고 느껴지지않고, "진주 집현산 등산로" 삼거리가
     526m봉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晋州의 鎭山 "晋州集賢山" 오르는 길]
     526m봉에서 晋州의 鎭山 "晋州集賢山" 오르는 길은 아름다웠습니다
     
     [晋州의 鎭山 "晋州集賢山" 정상]
     12시 25분경 "晋州集賢山" 정상에 올랐습니다
     산불감시초소에 감시원 아저씨가 근무를 하고 있었으며, 동서남북이 확터여
     주변 경치를 모두 감상할수 있었습니다
  
     [晋州의 鎭山 "晋州集賢山" 정상석과 안내도]
     "晋州集賢山"의 실제 높이는 548m입니다. 
     조금전, 진짜 572.2m 높이의 집현산 정상에서 설명 드린바와 같이 높이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지방자치단체들간의 감정싸움의 결과입니다
  
     [晋州의 眞山 "晋州集賢山"  제단]
     晋州集賢山 정상은 옛부터 "기우제"를 주로 지내던 곳이었답니다.
     전설도 있었는데 '기우제'에 관한 소설같은 말도 않되는 이야기들이라 생략합니다
     제단은 헬기로 최근에 옮겨와 설치했다고 산불감시원이 알려줬습니다
     
     [晋州의 鎭山 "晋州集賢山" 전망도]
     晋州의 산객들이 즐겨찾는 등산코스라고 하는데 등산객은 몇명 정도만 보였습니다
     
     [晋州의 眞山 "集賢山"에서 바라 본 南쪽 "晋州"]
     아주 희미하게 멀리 남쪽으로 보이는 산이 "사천의 와룡산"이라고 합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南海가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晋州에 왔는데 논개가 생각 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촉석루로 유명한 晋州城에 논개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의기사(義妓祠)"에서 많은 사람들이
     '논개'의 영정을 구경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논개'를 기생으로 알고있을 것이며, 좋게 말해 "義妓" 정도로 알고 있을것입니다
     오늘은 "논개"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며 산행을 하겠습니다 
     
     [晋州의 鎭山 "晋州集賢山"에서 바라 본 東쪽 "의령 자굴산"]
     "자굴산"은 앞으로 가야할 산입니다.
     "논개"에 대해선 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593(선조 26).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1593년(선조 26) 진주싸움에서 전사한 경상우병사 최경회(崔慶會) 혹은 충청병사 황진(黃進)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1593년 6월 김천일(金千鎰)·최경회·황진·고종후(高從厚) 등 관군과 의병의 결사적인 항전에도 
     불구하고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등이 
     이끄는 일본군에게 진주성이 함락되었다. 
     일본군이 진주성을 유린하고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른 것에 의분한 논개는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벌인 주연에 기녀로서 참석하여 술에 만취한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毛谷村文助]를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었다.
     이때부터 논개가 떨어졌던 바위를 의암(義巖)이라 부르게 되었다

     
     [晋州의 鎭山 "진주集賢山"에서 바라 본 北쪽 "산청 황매산"]
     황매산도 지척에 보입니다. 앞으로 넘어야할 산입니다

     論介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論介는 경상도 진주 여자가 아닌 전라도 덕유산 밑에 있는 장수에서 태어난 전라도 여자입니다
     요즘으로 따지자면 여자도 아니고 소녀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죽은 나이가 18살이었으니까요. 물론 옛날엔 일찍 시집을 갔지만....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나이는 시대를 막론하고 같은 성장발육을 함으로 같다고 봐야합니다
     백과사전에 까지 여러 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만, "KBS역사스페샬"과 모 대학교수의 논문을
     참고하여 제가 요약 정리를 하여 論介의 삶을 간략히 알려드리겠습니다

     
     [晋州의 鎭山 "진주集賢山"에서 바라 본 西쪽 "지리산 천왕봉"]
     아~~!!
     지리산~!! 천왕봉~!! (반드시 "천왕봉"이라고 해야합니다. 쪽바리들이 '천황봉'이라한것입니다)
     똑똑한 산이라고 智理山이라고 하며,
     白頭山에서 부터 흘러 왔다고 頭流山이라고도 한다지요?
     
     [晋州의 鎭山 "集賢山"에서 바라 본 東쪽 "集賢山 東峰"]

     논개가 1574년 9월 태어나 1593년 7월 죽었으니 18살에 남강 의암에서 떨어져 죽은 것입니다
     論介의 성은 氏이므로 이름은 朱 論介입니다. 
     논개의 성을 처음 아시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주 달문"이고 어머니가 "함양 박씨"입니다
     집안이 가난한 천민이라는 설이 난무하지만 아버지 "주달문"은 漢學에 능통해서
     장수에서 청년자제들의 훈학에 종사한 훈장이어서 천민이 아니라는것입니다
     논개는 양반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천민도 아니었다는 반증입니다
     더더욱 기생은 아니였답니다

     
     [集賢山 東峰으로 가는 길에 있는 헬기장]
     멀리 '의령의 진산 자굴산'이 보입니다

     論介가  진주 촉석루에서 임진왜란 때에 쪽바리 "게야무라 후미스케[毛谷村文助]"를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은 과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論介가 14살 나던해 1587년, 아버지가 돌아 갔습니다.
     집안 살림이 당연히 어려워졌지요. 
     논개의 작은 아버지 - 주문달이라는 천하건달이 있었는데
     이 틈을 이용해 숙부인 주문달이 논개를 부자집에 팔아 먹었다고 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논개의 어머니가 관아에 고발을 했는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이 사건을 맡은 현감이 다름아닌 당시 무주-장수현감이었던 최경회崔慶會이었습니다
     최경회가 논개의 사건 전말을 알아보고, 가정생활이 어려운 '논개'를 찾아 자신의 집에서
     병약하여 병상에 누어있는 자기 부인의 병 간호를 맡게했다고 합니다

  
     [集賢山 東峰으로 오르는 길]

     논개는 열심히 일하고 부인의 병간호를 정성껏 하였답니다
     최경회의 부인이 논개의 외모와 마음 씀슴이에 감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병으로 목숨이 다해 가는 부인은 남편인 현감 최경회에게 
     논개를 소실로 맞을 것을 제안하였고,
     부인이 죽고 난 다음 최경회는 논개를 소실로 맞아 들였답니다
     소녀는 졸지에 현감의 와이프가 되었으니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밀물처럼 몰려와 썰물처럼 사라지는 것이란 말인가~ 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경회는 1593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승진하여 
     진주로 떠나는데 논개도 함께 따라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말이 승진이지 전장터로 가는 것이 승진이겠습니까?
     전라도 장수의 시골 소녀가 경상도 진주로 가게 되는 사연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쪽바리들의 戰力은 陸地에서 막강하여
     임진왜란 3대 大戰인 진주성전투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등이 이끄는 쪽바리軍에게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논개의 남편인 최경회도  전사합니다.
     에구~ 슬퍼라~

     
     [중요한 갈림길]
     集賢山 東峰으로 오르면 集賢山 東峰정상으로 가는 길과 하산하는 길 - 갈림길이 나옵니다
     集賢山 東峰정상은 직진하지만, 진양지맥길은 오른쪽으로 90도 꺽어 내려 가야합니다 
  
     [集賢山 하산하는 길]

     남편을 잃은 論介는 슬픔을 넘어 분노로 변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좋은 말로 표현하자면
     쪽바리들에게 짖밟힌 조국과 비참하게 죽어 간 남편의 복수를 위해 
     기생으로 변장하여 촉석루 연회장에 참석한답니다
     "너 죽고 나 죽자"고 외장 "게야무라 후미스케 (主谷村六助)"를 껴안고
     강낭콩꽃 보다도 더 푸른 남강에 몸을 던집니다
     몸 바쳐서~

  
     [集賢山 하산하는 길]
     논개의 행동은
     핵교 때 모두 열심히 읽고 외우고 했던 "변영로 시인"의 詩를 탄생 시킵니다

            논개  
                      변 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 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集賢山 하산하는 길에서 내려다 본 '응석 저수지]

     논개의 행동을 후세에 "義妓"라고 칭송합니다
     그러나 당시 논개의 나이가 18살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여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수 있는 애국심을 가졌었단 말인가!~
     남편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처절하게 할 정도의 무서운 집념의 괴기 소녀였단 말인가!~
     사실이라면 꿈에서도 생각하기 싫은 섬짓한 소녀이지만
     여하튼 좋게 해석한 후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복수심과 진정한 애국심으로 믿겠습니다. 말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ㅎㅎ

     
     [林道]
     집현산을 벗어나니 林道를 만납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갑니다
     
     [월명암 갈림길]

     우리나라의 '논개'와 비슷한 여인으로는 이스라엘에도 있었고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우리나라의 논개와 같이 추앙을 받는 여인이 있습니다
     "유디트"
     무척 유명한 여인이지요?
     특히 신정아 사건 기억 나시나요? 
     미국 예일대 박사학위 받았다고 허위 학력으로 동국대 교수까지 된 처녀.
     청와대 정책기획실장 변양균과의 연애 편지 속에 등장해서 저도 알게 됬습니다만....
     편지 속에 이런 구절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저도 그에 대한 글을 쓰기도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The Kis"와 같이 당신과 키스하고 싶고, "유디트"와 같은 정사를
     하고 싶어요"
     제가 쓴 글 "신정아가 하고 싶었던 그 키스"라는 글을 제 블로그에서 찾아 볼수있습니다
     신정아의 편지 속에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유디트"라는 그림 속의 인물 "유디트"
     '유디트'라는 여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태인 과부로 
     아시리아군(軍)에 포위되었던 페르시아의 마을을 구하기 위해, 
     적장인 호로페르네스에게 접근했던 여인이었습니다. 
     호로페르네스는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연회에 초대했답니다. 
     연회가 끝나고 단둘이 있게 되자 유디트는 호로페르네스를 술 취하게 하고 
     그의 목을 짤라 포대에 넣어서 페르시아로 가져왔다고합니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섬짓한 이런 여자를 유태인들은 
     '유디트'를 충성스럽고 고귀한 여성으로 여기고있답니다.
     우리나라 '논개'와 같은 맥락으로 봐도 되겠죠?
     하기사 "안중근"도 일본놈들 입장에서는 한낱 비겁한 '테러리스트'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선 "義士"로 불리워 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信念있는 테러리스트는 義士"라고 하지요
.
          
          지난 2005년 5월 진주 촉석루 의기사에 있던 논개영정이 시민단체들에 의해 떼내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영정을 그린 화가가 친일파 "김은호 화백"이 그렸기 때문이라고합니다
          일본놈들을 향해 복수심을 불태우며 산화해간 "논개"의 영정을 친일파가 그렸다는 것은
          논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참지 못할 수치였던 모양입니다.
          사실 18살의 소녀치고는 성숙해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윤여환 화백"이 그린 영정이 걸려 있다는군요

  
     [월명암 갈림길 이정표] 
     이곳이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진양기맥 마루금은 정수리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집현산의 명소라는 "月明庵"이 있다고 해서 올라가 보고 다시 이곳으로 옵니다  
     
     [月明庵]
     月明庵은 조그마한 암자였습니다
  
     [진양기맥 마루금 가는 길]
     마루금은 '정수리 가는 길'인 林道를 따라 갑니다
     
     [진양기맥 마루금에서 뒤 돌아 본 '月明庵']
     마루금 비포장로를 따라 가다가 뒤 돌아 보았습니다
     
     [진양기맥 마루금 중요한 갈림길]
     길찾기 어려운 '진양기맥 마루금'이 이곳에서 좌측 조그마한 능선으로 가야하기에
     조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똑바로 가면 진주 집현면으로 가버립니다
     좌측 능선을 따라 내려 가야 미천면 "내리실 고개"로 갈수 있으니 매우 유의 해야할 곳입니다
     
    [길 없는 길 - 진양기맥 마루금]
     길없는 길을 헤치고 나아 갑니다
     이번 진양기맥3구간에서 지도의 필요성을 매우 느꼈습니다
     앞으로 독도법을 공부하여 이런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최소한 나침판과 지도는 필수라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진양기맥 마루금 - '내리실 고개' 가는 길]
     좌측 임도를 아래에 두고 계속 가야합니다
     결국 '내리실고개'에서 이 임도와 만나더군요.
 
     [진양기맥 마루금 - '내리실 고개' 가는 길]
     산객들의 자취가 거의 없는 마루금을 따라 
     길을 찾으며 가야합니다
     
     ['내리실 고개' - 33번 국도]
     내리실고개가 드디어 보입니다.
     
     ['내리곡 고개' - 33번 국도]
     잡풀숲을 헤치고 고개로 내려 갑니다
     
     ['내리실 고개' - 33번 국도]
     33번 국도는 아직 공사중에 있었으며, 차량들은 아직 구도로를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곧 개통을 하겠더군요.
     
     ['내리실 고개' - 33번 국도]
     내리실고개 구도로와 공사중인 신도로를 건너 건너편 210m봉으로 갑니다
           
          [210m봉 오르는 길]
          벌써 몇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다리가 힘들어 지기 시작합니다
     
     [210m봉 오르는 길]
     
     [210m봉에 오르며 뒤 돌아 본 '내리실 고개'와 지나온 마루금]
        
     ['서낭재'와 210m봉 오르는 길]
     
     [서낭재]
     '서낭재'라고 하기에 제법 멋있는 곳인줄 알았더니 이런 쬐끄만 고개였습니다.
     실망~
     
     [서낭재에서 바라 본 "33번국도"와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경상남도 중앙부에 자리 잡은 오지입니다.
     정말 아주 시골이지요.
     경상도는 이렇게 지형이 농업에 적합하지 않아 
     먹을 게 항상 부족하여 옛부터 전라도를 쳐들어 갔나 봅니다
     
    [가야할 221m봉]
     
     [東向고개와 가양할 221m봉]
     
     [東向고개]
     東向고개는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였으며 마을 이름이 東向里여서 붙여진 이름인듯합니다
     
     [東向 저수지]
     221m봉을 오르며 내려다 본 東向 저수지
     
     [221m봉 부근]
     이곳에서 휴식과 쇠주 한잔했습니다.
     이제 한 고개만 넘으면 종착지이기 때문입니다
     
     [막고개 가는 길]
     오른쪽 '250m봉'을 넘어야 합니다
     
     [250m봉 정상]
     이곳에서 알바하기 쉽습니다.
     왼쪽으로 가야 "막고개"로 갈수 있습니다.
     우리 일행 일부도 여기서 오른쪽으로 내려 가 알바를 했으니 유의 해야합니다
     
     [막고개 - 1007번 지방도]
     드디어 막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를 싣고온 관광버스가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습니다.
     
     [뒷풀이]
     
     [뒷풀이]
     "서울백두클럽"의 독특한 뒷풀이는 오늘따라 더욱 독특했습니다.
     여느 산악회에서는 느껴 볼수 없는 따뜻한 사랑이 뭍어있는 뒷풀이이니까요
     오늘은  산거북님과 봉자언냐가 맛있는 육계장 20명분을 미리 준비해 왔습니다.
     진주 미천면 "막고개"에서 펼치는 육계장 뒷풀이는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서울백두클럽"만의 자랑이겠습니다.
     
     [생일 축하 파티]
     또한 오늘이 산거북님 생일이라 생일 축하 파티도 함께 열였습니다.
     어둠이 깊어 가는 "막고개"에서 생일 축하를 받는 "산거북님"은 무척 즐거워 보였으며
     이 세상에 태어나 이런곳에서의 생일파티는 아마도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색다른 생일파티까지 함께한 "산거북님과 봉자언냐님" 앞으로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산을 아끼시고 즐기시길 기원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 파란문 올림-

 
    [구글어스 산행 괘적도]
     총산행 거리 : 약 14km
     총산행 시간 : 약 6시간 40분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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