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기맥
黃梅山 區間 山行記
구름재-박덤-삼봉-하봉-중봉-황매삼봉-황매봉-떡갈재-작은황매산-소야리
집중호우가 퍼붓는 장마철
7월17일(금) 밤 10시 30분경 경부고속도로 죽전 버스정류장에는
굵은 빗줄기가 차량들의 전조등에 더욱 빛을 토하며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장마철 산행에 대해 많은 주윗분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진양기맥8구간 黃梅山 區間" 을 종주하기 위해 무박으로 길을 떠납니다.
[산행 개념도]
이 지도를 잘 봐둬야 이해하기 쉽습니다
[합천댐 앞 "합천댐 관광단지"]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회양리
합천댐 바로 앞에 있는 "합천댐 관광단지"에서 바라보는 합천호 주변 경관입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산이 "악견산"이며 옆 계곡에 '합천댐'이 있습니다
이 주변 地理는 황매산에 오르며 사진으로 자세히 보여 드림니다.
이 사진을 찍은 시간이 오전 6시30분경이었습니다
[송옥가든]
합천관광단지에 있는 전망이 가장 좋은 음식점인 "송옥가든"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식사도 했습니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산 이름이 지도에도 나오는 "금성산"이라고 주인이 알려주었답니다
[송옥가든]
서울에서 빗길을 뚫고 이곳까지 약 4시간이 걸려 도착하니 밤 2시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송옥가든에서 무료로 방을 빌려 주었고, 아침식사비만 받았습니다.
서너시간 잘수 있어서 황매산을 종주 할수 있었고, 따뜻한 된장찌개 아침식사가
산행에 큰 도움을 준것은 틀림없습니다.
앞으로 무박산행시에는 민박이나 펜션을 예약해 전날 미리 내려가 이런식으로
숙식을 하고 이른 아침 산행을 하는 방법을 적극 활용하면 더 많은 회원님들이 참여 할듯..
[송옥가든 앞 "합천댐 관광단지 축구장"]
이곳에는 합천군이 설치한 축구장이 있었는데 제법 유명한 축구대회가 열리고,
각급학교 축구부들의 합숙 훈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관광객을 끄는 방법 중에 하나이라고 하며 이곳의 명소라고하네요
[황매산 만남의 광장]
승용차로 약 10분정도 이동하여 "황매산 만남의 광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황매산은 산청군과 합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등산코스도 산청군과 합천군에
각각 있는데 이곳은 합천군 대병면에 있는 황매산 들머리입니다.
[기념촬영]
[황매산 만남의 광장]
오전 7시에 도착하여 약 10분 정도 주변 사진을 찍고 산행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반 등산로로 산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
"진양기맥" 마루금을 따라 산행을 하므로 마루금을 찾아 마루금으로 이동해야합니다.
[구름재]
"진양기맥 황매산 구간 마루금"이 지나는 "구름재"에서 정식으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황매산 만남의 광장"에서 황매산 등산로로 들어 오는 중간에 마루금이 지나 갑니다.
일반 등산로로 황매산을 오르실 분들은 이 길로 더 들어 가서 쉽게 오를수 있습니다.
황매산은 앞으로 아시겠지만 거의 정상까지 포장도로가 잘 나 있습니다.
[산행시작]
진양기맥을 걷는 우리는 "구름재"에서 숲속으로 들어 갑니다.
오전 7시 10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좋은 등산로를 놔두고 길도 없는 마루금으로 들어 가는 특이한 사람들
[헬기장]
'구름재"에서 희미한 등로를 따라 조금 오르니 헬기장이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일반등산로 "박덤 갈림길"까지 길없는 길을 갔습니다.
가시덤불과 숲을 헤치고 약 30분을 악전고투하며 오릅니다.
너무 험한 길이라 숲속 사진은 한장도 찍을수 없었습니다
[박덤]
"구름재"에서 약30분 정도 숲을 헤치고 나아가면 임도를 만남니다.
다시 임도를 따라 약15분 정도 오르면 "박덤 이정표"를 만남니다.
여기서부터 황매산을 지나 "떡갈재"까지는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는 좋은
산행길이었습니다.
"삼봉"방향으로 올라 가야합니다.
[삼봉으로 가는 갈림길]
넓직한 임도를 따라 오르면 길안내를 잘해 놓은 이정표를 수시로 만납니다.
황매산 등산은 합천군 대병면 "황매산 만남의 광장"에서 시작하여
"박덤-삼봉-하봉-중봉-황매삼봉-황매봉"코스를 강력 추천합니다
황매산의 모든 것이 이 코스에 들어있다고 생각됩니다
[삼봉 오르는 길]
합천군 대병면 만남의 광장에서 오르는 등산코스에는 지도에 "삼봉"이 두개 있습니다.
"박덤'에서 오르면 첫번째 봉우리가 "삼봉"인데, 사실 표지석이 없어 어느 봉우리가
"삼봉"인지 잘 알수 없었고, 대략 그러려니하고 올랐습니다.
하지만 "하봉"과 "중봉"을 지나 나타나는 "삼봉"은 표지판도 있고 설명 안내판도 있어
확실히 알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삼봉"은 "황매삼봉"으로서 "황매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황매산의 하일라이트였습니다
[무명봉]
하늘이 열리는 봉우리로 처음 올라서니 "황매산"이 장엄하게 나타납니다.
"황매산"이 보이기 시작하는 이 봉우리에서 진정한 황매산 산행이 시작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곳부터 황매봉까지 화려한 산행코스가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전혀 지루하지 않게 황매산을 遊山합니다.
[황매산의 주 능선]
펼쳐지는 저 산봉우리들을 모두 점령하고 대자연과 함께 하리라~~
지난 밤까지 퍼붓던 장대비는 언제였는지 더욱 맑아진 공기와 하늘은
가을 날씨같았으니 우리는 너무 행운이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산행 개념도]
"삼봉 - 하봉 - 중봉 - 황매삼봉 - 떡갈재 갈림봉 - 황매봉"
순서를 알고 산행기를 읽으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삼봉 오르는 길] [삼봉 입구]
합천 대병면에서 오른 코스에서 처음으로 맞는 봉우리가 "삼봉"인데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봉우리의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하며 암릉구간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삼봉 오르는 암릉]
처음으로 암릉을 오릅니다.
[삼봉]
아마도 아랫쪽 "삼봉"이라고 생각되는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처음으로 황매산의 안쪽 바깥쪽을 두루 살펴 볼수 있는 전망이 좋은 봉우리였습니다.
구름이 수시로 황매산을 덮었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구름 이외에는 좋은 날씨입니다.
[삼봉에서 내려다 보는 "합천호"]
처음으로 "합천호"가 보입니다.
합천호는 합천댐이 준공되면서 생긴 호수로 면적이 785만 평, 댐 높이 96m, 길이 472m,
총 저수량이 7억 9천만 톤의 인공 호수로 1988년 12월 준공된 다목적 댐이라고 합니다
[하봉 가는 능선]
오늘은 합천군 대병면과 산청군 가회면의 경계인 "구름재"에서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실제 "황매산"은 산청군의 산이라고 말하는데 무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면적에서 산청군이 훨씬 많이 차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봉]
실제 "하봉"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상표지석도 없고, 대략 알아서 생각하면 됩니다
돌무덤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중봉]
드디어 봉우리 다운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아마도 이곳이 "중봉"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는 돌탑이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우뚝 솟아있고, 안내판도 있습니다.
이 능선은 山城이었답니다.
山城의 이름은 "黃梅山城"이었는데 구전되어 오면서 음운변화를 거쳐 "할미산성"으로
변형되어 지금까지 전해 진다고 합니다.
[중봉에서 바라보는 "황매봉"]
황매산의 정상인 "황매봉"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구름 위에 떠있는 "황매봉"이 글자 그대로 梅花같습니다.
주변의 풍광이 활짝 핀 매화꽃잎 모양을 닮아 마치 매화꽃 속에 홀로 떠 있는 듯 신비한
느낌을 주어 "황매산"이라 부른다고 산청군은 자랑하고 있습니다.
[할미산성과 "치마 덤" 내력]
이 "할미산성" 아래에 넓은 바위가 있는가 봅니다.
그래서 그 바위를 "치마 덤"이라고 한다는데 그곳에서 선녀가 목욕을 하고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군요.
"덤"이 무슨 뜻인지 경상남도 지역 이외의 지역 사람들은 잘 모를것입니다
"덤"은 경남지방 특히 경남 내륙지방의 사투리로 "바위"라는 말입니다
제 고향이 이쪽이라 확실합니다.
[중봉에서 바라보는 "황매삼봉"]
"황매산"은 효의 산이며 3무(無)의 산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사연을 알아 보니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는 군요.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무학대사가 황매산에서 수련을 했다고 합니다.
무학대사가 수련을 할 때 무학대사의 어머니가 뒷바라지를 위해 산을 오르내렸는데
오르내릴때에 칡덩굴과 땅가시에 발등이 긁혀 넘어져 상처가 나고 뱀에 놀라는 것을 본 뒤
황매산 산신령에게 지극 정성으로 100일 기도를 드렸다고합니다.
무학대사의 기도가 산신령을 감동 시켰는지 그 이후 지금까지 "뱀"과 "땅가시",
그리고 "칡덩굴"이 자라지 않아 "3무(無)의 산"이라 불리워지고 있으며,
무학대사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의 실천과 사랑은 천년의 시공(時空)을 넘어 전설로
이어져 오고있답니다.
불교를 믿는 무학대사가 석가에게 기도를 해야지,
'산신령'에게 기도를 했다는게 조금 이상하군요. 맘대로 놀아라~~ㅎㅎ
[중봉에서 내려다 보는 "합천호"]
"황매산"에서 "합천호"를 바라 보는 광경이 압권입니다.
요즘 장맛비가 많이 내렸는데도 합천호의 水位는 중간 정도를 보여주고있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가물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황매삼봉 오르는 길에 있는 삼거리]
"중봉"과 "황매삼봉" 사이에 있는 삼거리입니다.
이 산줄기의 좌우에서 올라 오는 등산코스와 만나는 곳입니다.
[황매삼봉으로 가는 길]
人類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말을 꼽으라면 무슨 말을 꼽으시겠습니까?
사람들에 따라 꼽고 싶은 말이 다소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쏘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를 꼽으면 크게 반대 하실 분은 없을듯합니다.
그런데 우리같은 산객들에겐 "너 자신을 알라~"보다
'쟝 쟈크 루쏘'가 말한, "자연으로 돌아 가라!~"가 더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산꾼은 아무래도 "山"이 대표로 지칭되는 "自然"이 더 마음에 와 닿을겁니다.
이런 산행기에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조금 있으면 알게 될것입니다.
"자연으로 돌아 가라!~"
[황매삼봉 오르는 길]
우선 "쟝 자크 루쏘"에 대해 간략히 얘기하면....
18세기 계몽사상가요,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인 루쏘(Jean Jacques Rousseau)는
"자연은 인간을 선량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었으나,
사회는 인간을 죄악에 젖게 하고 노예로 만들어 불행을 초래케 하였다.
그러므로 자연으로 돌아 가라~!"고 외치며 일어나 프랑스 대혁명의 먼 원동력이 되고,
근대 민주주의에 이론적 터전을 마련해 준 세계 역사의 은인이기도 합니다.
[황매삼봉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 본 "합천호"]
쏘크라테스에 버금가는 출중한 인물인 "쟝 자크 루쏘"가 웃기는 짜장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쟝 쟈크 루쏘"는 노출증(exhibitionism) 환자였습니다
노출증(exhibitionism)이란 육체의 일부, 특히 성기를 일부러... 특히 여성 앞에다 노출시키는
충동적 행위를 말하는데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합니다
[황매 삼봉 오르는 길에서 바라 본 "황매평전"]
드디어 황매산의 대명사인 "황매평전"이 시야에 들어 오기 시작합니다.
매년 5월 하순이면 저 앞에 보이는 도로를 따라 수많은 자동차들이 행렬을 이루고
철죽이 뒤덮은 "황매평전"이 인간들의 화려한 등산복으로 더욱 붉게 물들이는 곳이
저 "황매평전"입니다.
자동차가 황매산의 정상부까지 올라 올수 있어 날나리 산객들이 산행이 아닌 관광을
전국에서 오기 때문에 엄청난 人山人海를 이룬다고 합니다.
[황매삼봉]
수년 전 홍대 앞 카페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던 젊은 연예인 두 명이
공연 도중 갑자기 성기를 드러내는 바람에 생중계방송 중이던 방송사가
시청자 앞에 사과성명을 내는 등 해프닝이 있었다는것 기억하실겁니다
정열적인 음악 삼매경에 도취돼 정신이 좀 느슨해졌던 것 아닌가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 성기를 내 보이고 그것으로 쾌감을 얻는 "노출증"인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노출증의 대명사로 곳곳에서 나타났던 '바바리맨'이 있었던것도 기억하실겁니다
요즘은 포르노 수준의 영화들이 케이블 TV의 채널을 주름 잡아 '바바리맨'이 쌕수얼한 이슈가
되지 못하고 개그프로의 개그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노출증"이 변태적인 성행위에서 벗어나 있는 듯도 하지만,
아직도 정상적인 인간에게는 호기심 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ㅎㅎ
[황매삼봉 오르는 계단]
노출증(exhibitionism)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유치한 노출증 충동이 고학력군 젠틀맨들에게 많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저는 저학력군에 속하기에 '노출증' 환자는 절대 아닙니다. ㅎㅎ
전세계 역사에서 알려져 있는 '노출증 환자'는 그 대표적 인물이 다름아닌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 지주인 "자연으로 돌아 가라~"라고 한 "쟝 자크 루소"입니다
그는 노출증이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자서전이라 할수 있는 "참회록"에 상세히 고백해 놓았습니다.
그 이후 의학계에서는 노출증이 속칭 ‘가방 끈 긴 사람이 주로 걸리는 질병'이라는 닉네임을
갖게 되었는데 대체적으로 고학력군에서 이런 노출증 환자가 나타난답니다
재미있나요? ㅎㅎ 이 이야기는 '황악산 산행기'에서 이미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갈림길 - 가회덕만 주차장에서 오르는 길]
젊은 시절의 정신적 방황에 대해 용서를 비는 루소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조명이 안 된 컴컴한 골목이나 행인이 드문 곳에 대기하다
지나가는 여인을 만나면 그 여성들 앞에 자신의 성기를 노출시키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그 여성들의 당황한 모습을 즐겼다고 분명하게 써놨습니다.
또 자신의 페니스를 여성에게 보이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뭉클한 쾌감이 전신을 엄습했다는 사실도 고백해 놓았습니다.
이런 등산로는 노출증 환자들에게 더욱 좋은 장소가 될수 있겠습니다. ㅎㅎ
그런데 정상적인 사람들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해도 그런 충동은 느끼지 않나요?
[삼봉 정상부 갈림길]
드디어 "황매삼봉"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중봉", "하봉" 아래에 있던 "삼봉"과는 구별해야합니다.
이미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이 등산코스에는 "삼봉"이 두군데에 있는데
"박덤"에서 오르면 처음 만나는 "삼봉"과 "하봉","중봉"을 지나 만나는 "삼봉"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황매산의 정상인 "황매봉"까지 펼쳐지는 능선에 있는 세개의 봉우리를 "삼봉"이라
하는데, 구별하기 위해 "黃梅三峰"이라 한답니다.
[삼봉 정상부 갈림길]
루소의 솔직한 젊은 날의 참회처럼
노출증 환자는 자기의 성기를 보였을 때 여성이 당황해 쩔쩔매는 태도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성적 만족을 느끼며 그러한 희열을 맛보는 것으로 그 여성을 직접 범한 것과 같은,
즉 그 여성과 섹스를 한 것 같은 흡족한 기분이 든다고 하는 군요.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쟝 쟈크 루쏘'가 노출증 환자였다니.......
제가 이 "노출증" 이야기를 왜 하는지 잠시 뒤에 알게 됩니다.
[황매삼봉 정상에 있는 팔각정]
"黃梅三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에는 "팔각정"이 벼랑 위에 세워져있습니다.
"황매평전"에서 불어 오는 하늬바람이 오장육부를 써늘케 합니다.
먼저 도착한 횐님들은 팔각정 안에서 午睡를 늘어지게 즐기고 있습니다.
절묘한 위치에 팔각정을 지어놨습니다.
[황매삼봉 팔각정에서 내려다 보는 "황매평전"]
"黃梅坪田"
봄이었으면 더 좋았을 "黃梅坪田"을 내려다 보며 오늘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아!~~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 -
천하가 모두 내 발 아래에 있습니다.
정말 장쾌한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황매 삼봉 팔각정에서............]
"가방끈 긴 사람들"이 주로 한다는 exhibition 노출을 했습니다. ㅎㅎㅎ
팬티를 내리고 불어 오는 하늬바람에 땀으로 쩔은 '거시기'를 말렸습니다.
黃梅山의 정기를 받아 더욱 솟아나는 정력!!~~
그리고 집에 전화를 걸어 와이프에게 "지금 황매산에서 황매산 정기를 받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뭔 말인지 모르고 그져 조심해서 다녀 오라는 말만 남겼지만 속으로 재미있었습니다.
장마철이라 이 코스로 오늘 산행을 한 사람들은 우리 뿐이었습니다.
혹시.......
가운데 '파란문'의 팬티를 보고 여성분들이 울 남푠도 저 팬티 사입혀야겠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혹시 '파란문' 비슷한 그런 ..그런 쎈 사람이 되지 않을까?해서...ㅎㅎㅎ
이나저나 '파란문' 날씬하죠?
[황매 삼봉 팔각정에서............]
우웩? ㅎㅎ
단체로 아예 홀라당 벗고 黃梅山의 정기를 받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사진이 인터넷에 올려지면 문제가 될까요?
음란물 유포로 감옥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다소 문제는 될수 있지 않을까 염려됩니다만
그져 재미로 봐 주시기 바람니다.
요즘 영화나 케이블 TV에는 진짜 완전 홀라당 아닙니까?
그리고 "장 쟈크 루쏘"처럼 '노출증 환자'도 아니고 그저 '거시기'를 좀 말렸을 뿐입니다.
황매산을 오르느라 온몸이 땀으로 젖어서....ㅎㅎ
그리고 여성분들 진정하세요~~
[황매 삼봉 팔각정에서 황매봉까지 능선]
이제부터 가야할 "黃梅三峰" 능선이 펼쳐집니다.
다소 쉬운 코스이지만 이 능선에 "황매산"이 다 들어 있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팬티를 올리고 반바지를 입고 황매산 정상을 향하여 다시 길을 떠납니다.
[황매 삼봉 능선]
아기자기한 "黃梅三峰" 능선이 가는 길을 즐겁게 해 줍니다.
[황매삼봉에 있는 다른 한 봉우리]
황매산의 황(黃)은 부(富)를, 매(梅)는 귀(貴)를 의미하며
전체적으로는 풍요로움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또한 누구라도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하면 1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여
예로부터 뜻 있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산청군과 합천군은 홍보하고 있습니다.
[황매삼봉 능선에 있는 한 봉우리에서 바라 본 황매봉]
황매산의 정상인 "황매봉"이 가까워 옵니다.
요소 요소에는 휴식 시설이 설치되 있습니다.
[황매 봉 능선]
"黃梅三峰"
이곳을 이미 다녀 가신 분들은 저의 산행기를 보며 기억이 더욱 새로울 것입니다.
정말 멋진 곳입니다.
[황매삼봉 안내]
황매산의 황(黃)은 부(富)를, 매(梅)는 귀(貴)를 의미하며
전체적으로는 풍요로움을 상징한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정말 "부(富)귀(貴)山"이라해도 뭐라 할 사람 없겠습니다.
[황매 삼봉 능선]
"黃梅三峰"을 이곳 사람들은 설악산의 "공룡능선"의 축소판이라고 한답니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肉山이 많은 남쪽지방에서는 그런 느낌도 ...
[황매 삼봉 능선]
"黃梅三峰"능선을 걸을때엔 전혀 지루함을 느낄수 없었습니다.
변화무쌍한 암릉길이 산행의 묘미를 더욱 느끼게 해 줍니다
[황매삼봉 능선에서 뒤돌아 본 "황매삼봉"]
"黃梅三峰"능선을 모두 지나와 뒤돌아 봤습니다.
이렇게 "黃梅三峰"은 세개의 봉우리로 능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제가 팬티를 내린곳이 끝에 있는 봉우리의 팔각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황매 삼봉 능선에서 뒤돌아 본 "황매삼봉"의 팔각정 - 줌인한 사진]
나도 "쟝 자크 루쏘"처럼 노출을 해 봤던 팔각정이 있는 "黃梅三峰" 봉우리를
줌인하여 촬영했습니다.
이제 어디에서 팬티를 벗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상상이 갑니까? ㅎㅎ
'거시기' 말리기에는 최고의 명당이었습니다.
[황매삼봉 끝에서 바라 본 "황매산 정상-황매봉"]
방향에 따라 보이는 황매봉이 변화무쌍합니다
[황매산 정상으로 가며 뒤 돌아 본 황매삼봉의 끝봉]
봉우리 세개가 모두 巖峰입니다.
[황매산 정상과 "떡갈재" 갈림길 봉우리 - 무지개터]
앞에 보이는 평평한 봉우리가 "진양기맥"을 종주 하실 분들에게는 중요한 봉우리입니다.
저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진양기맥 마루금"은 나있습니다.
황매산의 정상인 '황매봉'은 왼쪽으로 갔다가 되돌아 와야합니다.
그리고 저 봉우리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명당자리 "무지개터"라고 하는군요.
오전에 산행을 시작했던 "황매산 만남의 광장" 앞에 세워져있는 안내판에
"무지개터"라고 명당을 소개하는 글이 있어서 그런가보다하고 소개해 드리는 것입니다.
[황매산 정상과 "떡갈재" 갈림길 봉우리로 가는 중턱에서 바라 본 "황매산 정상"]
이제 황매산의 정상인 '황매봉'과 키 높이가 같아졌습니다.
모든 산행이 끝난 기분이었습니다.
["황매봉"과 "떡갈재" 갈림길 봉우리]
'진양기맥'을 종주하시는 분들은 여기에 베낭을 두고 "황매봉"을 갔다가 돌아 와야합니다.
"떡갈재"는 우측으로 내려 가고,
"황매봉"은 왼쪽으로 갔다 와야합니다.
["황매봉"과 "떡갈재" 갈림길 이정표]
이곳이 합천군과 산청군의 경계이기도 합니다.
["떡갈재" 가는 길]
'진양기맥'을 종주 하실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 강조해 드림니다.
이 사진은 오른쪽이 "황매삼봉"에서 올라온 길입니다.
왼쪽이 "떡갈재" 가는 길인데, 왜 다시 소개해 드리는지 이해가 가십니까?
바로 V字로 꺽어지기 때문에 길 찾기에 혼동이 올수 있어서 친절하게 알려 드림니다.
["떡갈재" 갈림길에서 바라 본 "황매산 정상"]
약100m쯤 앞에 있는 "황매산 정상"을 밟아 보고 가야겠지요
[황매산 정상인 "황매봉" 가는 길]
잠깐이면 "황매산의 정상"인 "黃梅峰"을 갔다 올수 있습니다.
[황매산 정상인 "황매봉" 가는 길]
먼저 간 횐님들이 벌써 올라 가 있습니다
[황매산 정상인 "황매봉"]
우리 횐님 중에 '솔개'라는 닉을 가진 산꾼이 있는데
이 분은 "황매봉" 이곳에서도 '거시기'를 건조 시키고 있더군요. ㅎㅎ
이 분은 오늘 이곳을 산행하고 다시 이어 "호남정맥"으로 달려가 3일간을 무박으로
등산을 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체력입니다. 그래서 거시기도 말리나? ㅎㅎㅎ
부인한테는 꼼짝도 못하는거 같던데......켁켁켁
[황매산 정상석]
오전 11시 10분에 黃梅山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러니 "구름재"에서 4시간이 걸렸습니다. (중간에 너무 많이 쉬었지요..말리느라구 ㅎㅎ)
"태백산맥(太白山脈)의 마지막 준봉인 山"
1,108m 높이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서 인기 순위 약20위 정도를 하는 인기있는 산이랍니다.
오르기 쉽고, 아기자기해서 초보 산객들에게 더욱 추억에 남는 산이랍니다
[황매봉에서 뒤 돌아 본 "황매삼봉"]
지나온 "黃梅三峰"을 뒤 돌아 보니 왜 "黃梅三峰"이라 하는지 실감납니다.
[황매봉에서 바라 본 서쪽 방향]
일반 등산객들이 황매산 중턱 이상까지 차를 타고 와 오르는 코스입니다.
아주 쉽게 오를수 있는 코스여서 등산객들 보다는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코스랍니다
오른쪽 계곡이 '산청군 차황면'이며 "단적비연수", "임꺽정"등 영화를 촬영했던
"황매산영화주제공원"이 보입니다
['단적비연수'등 영화 촬영장]
그래서 "황매산영화주제공원"을 줌인하여 촬영했습니다.
계절 따라 번갈아 가며 수십만평의 고원에 깔리는 철쭉의 융단과 억새
그리고 다섯 남여의 애절한 사랑이 남아 있는 영화 ‘단적비연수’의 촬영장은
또 다른 환상을 느끼게 해주어 줌인하여 촬영을 하였습니다.
[황매평전]
"黃梅坪田"에는 목장도 있으나, 봄에는 철쭉이 화려한 불꽃쑈를 하여
전국의 관광객들과 등산객들이 모여 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가을에는 들국화가 아가씨들의 마음을 설래이게 하며,
또한 억새가 석양에 흔들리며 감상을 자아 내는 곳이랍니다.
[황매봉에서 바라 본 "떡갈재 갈림길"]
이제 黃梅山 등정을 마치고 '진양기맥'을 따라 가야합니다.
하지만 黃梅山은 많은 볼거리와 감명을 주어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떡갈재 갈림길"에서 점심 식사]
점심식사를 이곳에서 했습니다.
["떡갈재"로 가는 "진양기맥 마루금"]
황매산 산줄기를 뒤로하고 "떡갈재"로 하산합니다.
하지만 "떡갈재"에서 다시 843m 높이의 "작은황매산"을 올라야 합니다.
산 하나를 오르고 다시 다음 산을 오를때가 힘이 들기 시작합니다.
"작은황매산"을 오르고 난 다음에 엄청난 알바를 했습니다.
'작은황매산'에 가서 알려 드림니다.
여기까지는 '고속도로'였습니다.
["떡갈재"로 가는 마루금에서 뒤 돌아 본 "황매산"]
합천군에서 바라 보는 "黃梅山"은 또 다른 감회를 느끼게 합니다.
["떡갈재"로 가는 마루금에서 뒤 돌아 본 "황매삼봉"]
이쪽에서 올려다 보는 "黃梅三峰"이 또 다른 모양으로 다가 옵니다.
[영화마을로 가는 갈림길]
山靑郡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의류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 시켜 잘입고 잘살수 있도록
자신의 목숨을 걸고 목화씨를 숨겨온 역사적 인물인 "문익점선생"이 탄생된 곳이기도 하며,
근현대에서 가장 존망받은 스님인 "성철스님"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또한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균 보다도 더욱 빛나는 인물 - 허균의 스승으로 나오는
神醫 유의태선생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저의 고향이 산청 바로 위 함양이기도 하니 이 일대에 출중한 인물이 많이 나온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고 山水가 좋아 깨끗한 대자연 속에서 살기에
머리 좋은 훌륭한 분들이 많이 나온것입니다. ㅎㅎㅎ
[영화마을로 가는 갈림길 - 이정표]
문익점선생을 단순히 목화씨를 훔쳐온 도둑놈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즁국 원나라 입장에서는 나쁜 도둑놈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구세주입니다.
신념있는 테러리스트 안중근 의사와 같은 맥락입니다.
오히려 안중근의사보다 더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필자인 파란문은 생각합니다
천박한 의류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 시킬수 있었으니 그 공로는 계산 할수 없습니다
그 동안 주로 삼베옷으로 여름 겨울을 모두 견뎠는데 더운 봄-여름에는 시원한
삼베옷을 입고,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면옷을 입을수 있게 되었으니 의류문화를
완전히 변화 시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었으니 그 어느 누구보다도 고마운 분입니다
당시에는 부유층만 중국에서 광목을 수입해서 입었었습니다.
[문익점선생 생가와 목화 시배지 - 자료사진]
문익점선생은 1331년 고려 충혜왕 원년에 이곳 산청군 단성면에서 태어 났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 가고 1363년 공민왕 13년에는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로 사신이 되어 갑니다.
이때 고려에는 쿠데타가 일어나지요. 최유등 무신정권들이 공민왕을 폐위하고
덕흥군을 옹립하는 모사를 벌이는데, 이런 모사를 바로 잡기 위해 날조된 관련 서류들을
불태우고 공민왕 폐위의 부당함을 알리며 신하로서 절개를 지키다가 원나라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중국에 억류되 있다가 돌아 오는 길에 문제의 "목화씨"를 훔쳐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성계가 고려를 깨부수고 "조선"을 개국하는데
쿠데타정권에 빌붙어 일할수 없다고 영원히 벼슬을 그만 둔 충절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두문동 72현"과 같이 이성계와 이방원이의 부름을 여러번 받았으나 끝끝내 관직을 사양한것입니다.
"한 신하가 두 임금을 모실수 없다"라고 하면서....
목화씨 훔쳐 온 사람으로만 알고 있다면 생각을 바꾸세요
생육신 - 사육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충신이었다고....
[활타기 - 씨아기 작업] [고치말기]
1364년 공민왕 13년에 원나라에서 돌아 올때 잘 아시다시피 붓뚜껑에 목화씨 10개를
숨겨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장인인 "退軒 장천익선생"에게 주었습니다.
"退軒 장천익선생"이 재배를 했는데 오로지 하나의 씨에서 꽃을 피웠고, 우리나라에
목화가 재배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됩니다.
목화씨를 훔쳐온 사람은 문익점선생이고 재배를 한 사람은 그의 장인인 "퇴헌 장천익선생"인것입니다.
[실뽑기] [베짜기]
'퇴헌 장천익선생'은 재배에 성공한 이후 목화씨를 전국으로 나눠져 대량생산에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베를 짤수 있는 기계들을 발명해냈는데 바로 목화씨를 분리시키는 "씨아"와
실을 쉽게 굵게 감을수 있는"물레"등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 태종과 세종대왕은 문익점선생과 장천익선생에게 각별한 예우를 해 주었으며
특히 세종대왕은 문익점에게 "의정부 영의정"을 추서하고 부민후富民候로 追封하였답니다
세종대왕은 大王소리를 들을 만하지요? 인재를 알아보고 예우를 해 줄줄 아는 王이었으니까요
요즘 정치하는 인간들하고는 완전히 틀림니다.
요즘 넘들은 백성들을 위해서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밥그릇 채우기를 위해 정치를 하니까
자기보다 똑똑한 인재를 추겨 세우는게 아니라 깔아 뭉개 죽일려고 하니 완전히 틀림니다.
[황매산 등산로]
[영화마을 갈림길에서 뒤 돌아 본 "황매산"]
"황매산"을 뒤돌아 보는 기분이 조금 야릇합니다.
문익점선생에 대해 '점필재 김종직선생'이 쓴 詩가 있는데....
우리나라 열린지 몇천년인가
백성이 옷입는것 다 이유있네
선생이 가져온 그 물건
재화되어 오래도록 영원하다
[영화마을 갈림길에서 내려다 본 "합천호"]
오늘 '합천호'는 확실히 감상했습니다.
동쪽에는 "합천호', 서쪽에는 '황매평전'을 두고 진양기맥 마루금을 걸었습니다.
[영화마을 갈림길에서 너백이재 가는 길로 가는 마지막 봉우리]
황매산에서는 마지막으로 주변 경관을 구경했습니다.
[너백이재 - 쉼터]
'영화마을'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 갑니다
[너백이재 이정표]
'장박마을' 옆으로 '영화마을'이 있더군요
[떡갈재로 하산]
'떡갈재'로 내려 가는 길은 숲터널이었습니다.
[떡갈재]
우리들 이외에는 사람 구경할수 없는 조용한 '떡갈재'에 왔습니다.
[떡갈재]
'떡갈재'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45분경이었으니
오늘은 일찍 산행을 시작해서 일찍 서울로 올라 갈수 있겠다고
여유를 부리며 휴식을 취합니다.
그러나.......닝기리~~ 오후 6시30분이 되서야 서울로 출발했으니....
이제부터 얼마나 산속을 헤메는지 알만하지요?
[떡갈재에서 작은황매산 오르는 마루금]
오늘은 빨리 집으로 갈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843m 높이의 작은황매산"을 힘차게 오릅니다.
[작은황매산 가는 길]
"작은황매산"은 뾰쪽한 삼각형의 산이라 경사가 장난이 아닙니다
[작은황매산]
대략 800m 정도 되는 한 봉우리를 올라 가니, 다시 올라야 할 "작은황매산"이 나타납니다.
이때부터는 힘들기 시작합니다.
바로 "작은황매산"인줄 알았는데 또 올라야하니 맥이 빠집니다.
[뒤돌아 본 "황매산"]
'작은황매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黃梅山"
잘있거라 ~~ 이제 언제 다시 오겠는가~
하지만 나의 산행기 속에서 언제나 함께 할것이니라~~
[작은황매산]
'작은황매산' 정상이 다가 옵니다.
[작은황매산 정상]
'작은황매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산객들의 흔적이 별로 없었으나, '진양기맥' 종주자들의 표지기가 많이 걸려있었습니다
힘들이며 오른 댓가가 너무 초라합니다.
하지만 이제 2시간 정도만 더 걸으면 오늘 산행이 끝나므로 크게 상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알바를 하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여기서 좌측 서쪽으로 완전히 틀어 내려 가야하는데,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많이 달려있는 북쪽으로
힘차게 전진하는 바람에 어마어마한 알바를 했습니다.
앞으로 '진양기맥'을 종주 하실 분들은 이곳에서 독도를 조심해야합니다
[작은황매산 정상석]
843m 높이라는 정상석이 외롭게 서있는데
오늘 "843m 높이의 작은황매산"을 두번 오릅니다. 에고~
북쪽으로 완전히 하산했다가 마루금을 잃고 다른 산봉우리들을 넘고
몇개의 계곡을 건너 다시 이곳으로 올라 오게 됩니다.
[산행 개념도]
얼마나 알바를 했는지 상상만 해 보시라..
두시간 이상 헛다리 짚고 다니다 결국 되돌아 왔으니 에구~~
연두색 선이 알바한 코스입니다.
[작은황매산에서.....]
'작은황매산'에서 직진하여 산속을 헤메이며 정신없이 다니느라고 사진도 못찍었습니다.
사진을 찍을 특이한 곳을 발견 할수도 없었습니다.
온통 잡풀과 나무, 계곡, 봉우리들 뿐이었으니...
그래서 알바코스에서는 사진이 없습니다.
[작은황매산 정상에 되 돌아 오다]
'작은황매산'에 되 돌아 왔습니다
이때가 이미 오후 3시 50분이었습니다.
오후 1시 45분에 떡갈재에서 이곳에 올랐으니 약 2시간 정도 알바를 했습니다.
[작은황매산에서 "밀치" 가는 길]
'작은황매산'에서 '밀치' 가는 길도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는 '길없는 길'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을수 없을 정도로 잡풀과 나무가 우거져 있었습니다.
枝脈을 가면 보통 이런 길이지만 ...그리고 이런 길을 각오하고 가지만.....
이번에는 "황매산 구간"이 너무 쉽고 아름다운 길이어서, "작은황매산 구간"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안이하게 준비도 하지않고 독도도 하지 않으며 진행한것이 큰 오산이었습니다
枝脈길을 갈때엔 언제나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하면서도 큰 실수를 했습니다.
[밀치 아래 개울에서]
거창군 신원면 소야리로 내려와 어느 계곡에서 알탕을 하고
거창 시내에서 오리로스로 저녁 식사를 하고 서울로 올라와 집에 들어 가니
밤 2시였습니다.
[산행 개념도]
파란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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