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재발견 - 호암산의 한우물
가을 장마라는 철이른 이상 기후에도
광복절 연휴라고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강으로 떠난 8월16일 토요일에
아직도 가보지 못한 호암산의 한우물을 가보기 위해
관악벽산타운에 사는 친구를 불러내 길안내를 시키고 궂은 날씨에 길을 나섰습니다
[금천구 관악벽산타운 5단지 501동 앞]
호암산 한우물을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쉽게 오르는 코스가 아파트단지 안에 있다는 친구의 친절한 안내가
다른 곳에 사시는 분들에겐 제법 도움이 될수 있을 듯하여
관악벽산타운 5단지 501동 앞으로 갔습니다
전철 1호선 시흥역에서 마을버스 1번을 타고 벽산타운 5단지 앞에서 내리면 됩니다
501동 좌측에 '칼바위조망소' 오르는 계단을 오릅니다
계단을 오르면.............................. 우측으로 지하보도가 있습니다
지하보도를 따라 나가면................. 반대편 벽산타운 501동과 호암1터널이 보입니다
지하보도 계단을 오르면 바로 호암산의 한우물로 오르는 "시흥계곡" 등산로가
새로이 단장되어 산객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이곳 등산로는 최근에 금천구청에 의해 단장되었다고하는군요
벽산타운에 사시는 분들은 바로 옆에 이런 훌륭한 건강산행 코스를 가지고있어 부럽기도합니다
언제나 자유롭게 오를수 있고, 또 피서지로도 훌륭하여 가족들과 나들이 하기도 좋았습니다
이 산에는 우물이 많기로도 유명한데, 그래서인지 곳곳에 샘이 있었습니다
아파트촌과 이웃하고있어 곳곳에 생활체육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더군요
등산로 입구에서 바로 오르면 한우물까지 삼십여분이면 오를수 있기에
우리는 산행시간도 늘리고 주변 경관도 조망하기 위해
시흥계곡을 따라 '금지산'을 한바퀴 빙돌아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시흥계곡을 벗어나니 안부가 나왔는데 이곳에 대해선 부연 설명을 하겠습니다.
[시흥계곡 위 안부 이정표]
호암산 등산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코스중 대표적 코스가
전철1호선 관악역이나 석수역에서 '한마음선원' 뒷능선을 따라 오르는 코스인데
한마음선원에서 오르는 코스가 이곳에서 만나는 안부가 되겠습니다
석수역이나 관악역에서 오르는 등산코스가 주능선이기에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똑바로 오르면 바로 호암산 한우물로 간다고하며, 금방 오를수 있기에
우리는 우측으로 돌아 삼성산을 조망하고 '성벽천'이라고하는 약수터를 돌아
한우물로 가려고 합니다
우측 산허리로 나아 가니 시야가 확 트이고 KTX 광명역이 보입니다
호암산도 관악산의 일부이기에 岩山이라 곳곳에 깍아 지른 암벽이 멋을 더했습니다
전철1호선 석수역과 관악역 사이의 삼성산 삼막사로 가는 계곡길
뒤로 안양시내가 보이며 관악역과 석수역이 계곡이 넓어지는 곳쯤에 있습니다
삼성산 정상과 그 밑에 삼막사로 가는 주차장이 보입니다
삼성산 호암산에 대해서는 저의 산행기 [관악산의 재발견 - 삼성산 호암산]을 참고하세요
산허리를 돌아 나가는 山路는 포근한 피난처 같았습니다
"성벽천"이라는 샘이 있었는데 식수로 사용을 권장하는 두곳이 윗쪽에 있었고
아랫쪽엔 세수등 허드렛물로 사용하라고 위치를 구분해 놓았습니다
이 샘의 이름을 "성벽천"이라 하였는데
이 샘은 관할 구청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박현순이라는 개인이 순전히 자비로
여러해에 걸쳐 만들었다고하며 그 기록을 碑로 만들어 놨더군요
그 분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깨끗하게 사용하여야겠습니다
성벽천"은 아마도 호암산성의 성벽 아래 있는 샘이라고
"성벽천"이라 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오르막
이쪽편은 등산객들이 별루라 조용하고, 그래서인지 자연상태가 양호했습니다
주능선길에 올랐습니다
아까 시흥계곡 안부에서 바로 오는 길을 다시 만난것입니다
[제2 한우물]
'제2한우물'은 한우물에서 동남쪽으로 300m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남북 18.5m, 동서 10m, 깊이 2m로 1990년 발굴결과 밝혀졌으나 아직 복원되지 못하고있답니다
[제2 한우물]
제2 한우물 가운데는 세월을 말해 주는듯 가운데 어느 무덤이 덩거렇게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제2 한우물]
외곽에서는 무성한 풀숲으로 여기가 우물인지 알수 없으나
가까이 가 보니 확실히 옛날에 우물터 였음을 알려주는 석축등 인공 시설이 있더군요
제2 한우물에서 북쪽으로 300m정도 조금 갑니다
[한우물]
생각보다 매우 큰 규모의 "한우물'이 우리를 반깁니다
한우물의 '한'은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웠지요~ 한아름이라 할때의 '한'으로서 "큰"이라는 의미이니
한우물은 "큰우물"이라는 뜻이겠죠
'한우물'이 있는 산이름은 오리지날이 "금지산(衿芝山)"입니다.
호랑이 모양을 한 虎巖山의 지맥으로 호랑이의 머리에 해당한다고 虎頭巖이라고 불리워지는
衿芝山은 높이가 284m로 동그랗고 볼록한 봉우리입니다
그리고 호압사가 있는 곳이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라합니다
衿芝山은 "衿川에 있는 靈芝가 많이 나는 산"이라고 衿芝山이라 지어졌다고하니
옛날에는 영지가 많이 자라는 곳이었나 봅니다
[한우물과 불영암]
울진의 불영사와 같은 이름의 불영암은 부처의 그림자가 한우물에 비치는듯...
한우물은 천정, 용복 또는 용초로 불리워졌으며, 통일신라시대(6∼7세기경)축조되고
그후 조선시대에 서쪽으로 약간 이동하여 다시 축조하였다고합니다.
통일신라시대 때에는 그 규모가 동서17.8m, 남북 13.6m, 깊이 2.5m였으며,
조선시대에 축조된 우물은 동서 22m, 남북 12m, 깊이 1.2m였다고합니다
이 우물의 용도에 대해선 세가지 설이 전해 오고 있다는군요
.
이 우물은 가뭄때에는 기우제를 지냈고 전시에는 군용으로 사용되었다고하며
조선왕조 건국시에는 제가 관악산 산행기를 쓰면서 여러번 언급한바 있는
한양성과 경복궁의 화재발생을 막기 위해 관악산의 火氣를 누르기 위해 팟다고합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우리나라 장군 선거이(宣居怡)가 진을 치고
행주산성의 권율장군과 함께 왜군과 대응해 전투를 하면서 이 우물을 군용수로 사용하였으며
「동국여지승람」에 「虎岩山 有固城 城內有一池 天早祈雨」라 기록하고 있어
가물 때에는 기우제를 지냈음을 알수 있답니다.
그리고 무학대사와 삼봉 정도전의 의견다툼등 한양성 천도시 설화도 한몫합니다
이런 巖山 산꼭대기에 있으면서도 늘 물의 양이 변함없고,
항상 맑은 상태로 고여있어 신비로움을 더합니다.
정말 신기하지 않으세요?
한우물 바로 옆에는 헬기장이 있으며
친구의 증언에 의하면 이곳 불영암과 한우물을 대대적으로 개보수 하면서
모든 자재를 이 헬기장을 이용해 헬기로 옮겼다고하는군요
[불영암 대웅전]
불영암은 딸랑 이 대웅전 하나 였습니다
[조망대]
한우물 앞에는 서울의 남서쪽 방향으로 조망대를 만들어 놨습니다
지금의 금천구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백제가 다스렸다고 하나 정확한 고증자료가 없다고하며,
4세기말부터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어 잉벌노현(仍伐奴縣)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잉벌로란 ``뻗어나가는 땅`` 또는 ``넓은 들``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이 명칭은 이후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고 경덕왕 16년(757년)에
곡양현(穀壤縣)으로 개명될 때까지 사용되었다는군요.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태조23년(940년)에 금주(衿州)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이때부터 "옷깃" 금(衿)자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줄곧 금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13년(1413년)에 금천현(衿川縣)으로 개칭되었답니다.
금천현이란 이름은 이후 정조 19년(1795년) 시흥현(始興縣)으로 변경될 때까지 380여년간 불리워 졌다는군요.
조선시대의 금천현 관할구역은 동쪽으로는 과천현(果川縣), 서쪽으로는 부평부(富平府),
남쪽으로는 안산군(安山郡), 북쪽으로는 노들나루(露梁津)까지 미치는 매우 광활한 지역이었답니다.
여지도서(與地圖書)에 의하면 조선후기 금천현은 가호수가 1,873호에 인구는 7,763명이고
행정구역은 6개면 39개 동리였다고합니다.
조선 정조 19년(1795년)에 시흥현(始興縣)으로 다시 명칭이 바꾸었고
다시 1895년에 시흥군(始興郡)으로 승격되었는데
관할구역은 지금의 금천구와 영등포구, 동작구, 관악구, 구로구 및 안양시와 광명시의 일부지역까지
포함하고 있었으며 군청은 지금의 시흥5동 지역에 있었다고하네요.
조망대 바로 아래가 관악벽산타운 아파트 단지이며
시흥동, 독산동, 광명시가 한눈에 들어 옵니다
북쪽으로 北漢山이 선명하게 들어 오는군요
오늘은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이지만 가시 거리는 좋습니다
남서쪽으로 기아자동차 시흥공장이 보입니다
북서쪽으로는 양천구 목동이 보이는데 삐쭉삐쭉 솟은 빌딩이 보이는 곳이
목동신시가지입니다
[석구상]
한우물 윗쪽에는 "석구상"이라고 하는 개 조각물이 있으니 꼭 구경하고 가야 합니다
[石狗像]
석구상에 대해서는 아래 안내 설명서 사진을 참고하세요
석구상에 대한 설명
절묘합니다
확실히 섬세하게 조각한 조각품임을 알수 있습니다
한우물이 있는 금지산에서 호암산 정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금지산과 호암산 사이의 능선입니다
호암산 정상 방향으로 와서 뒤돌아 본 한우물이 있는 금지산
호암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모두 암능입니다
이제 관악산의 지맥 다웁지요?
여기저기 온통 나름대로 멋을 자랑하고 있는 바위들
호암산 정상 방향으로 와서 또 다시 뒤돌아 본 한우물이 있는 금지산
호암산의 호랑이 머리 부분이라는 龍頭巖 느낌이 오시나요?
저는 옵니다..ㅎㅎ
제가 어떻게 하면 호랑이 모습을 만들어 볼까하며 찍은 사진인데
호랑이 같습니까? ㅎㅎ
호암산 정상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이곳부터는 지난번 [관악산 재발견 - 삼성산 호암산]산행기에 이미 소개 되었기에
오늘은 그 때 소개해 드리지 못했던 것들만 골라 소개해 드립니다.
자세한 것들을 원하시면 저의 [관악산 재발견 - 삼성산 호암산]산행기를 참고하세요
호암산의 정상 - 민주동산의 헬기장
[호암산 -민주동산 국기봉]
호암산의 정상부 이름을 '민주동산'이라 명명하였고 높이는 해발 342m로서 삼성산의
지맥이라할수 있습니다.
[호암산 민주동산의 조망대]
지난번에도 왔던 곳이나 그때는 구름 때문에 서울 대학교를 조망할수 없었습니다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서울대학교 캠퍼스가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에 있습니다
오늘도 이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국기봉 앞의 망둥이 바위
국기봉 앞의 달팽이 바위
국기봉 앞의 흔들바위
호암산 정상인 민주동산 국기봉
호압사로 하산하며 찍은 衿芝山
이 사진 자세히 보세요
비 오는 곳과, 비가 오지 않는 곳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상황을 운 좋게 찍었습니다
이런 사진 찍기가 쉽지 않은데 운이 좋았습니다
절묘하지 않으세요?
호압사가 있는 곳으로 하산하고 있는 중인데 올라 오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호압사가 있는 안부
오른족으로 가면 서울대, 왼쪽으로 호압사와 관악벽산타운으로 가는 길입니다
[벽파 김철진 시인 詩碑]
호압사가 좌측이고 우측이 호암산 등산로 입구인 이 곳
공중전화박스 위 허름한 건물 밑에 시비가 있었습니다
지난번 이곳 산행시에 지나친 벽파 김철진 시인의 시비를 이번에-ㄴ 꼭 들려 보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갔는데, 또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저 아래 시장안의 순대국집에서
밥먹다가 생각이 나 다시 올라와 찾아 보았습니다. 다시 오르려면 얼마나 힘드는지 아시죠?
그래서 아무리 등산을 잘하는 저라 할지라도
할수없이 친구의 승용차를 이용해 호압사까지 다시 올랐습니다. ㅎㅎ
다시 올라 찾은 詩碑는 보시다시피 주변이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왕 돈들여 세운 시비라면 그후 관리도 잘해야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텐데
무슨 수사중인지 들어가지 못하도록 줄을 쳐놨습니다.
벽파 김철진 시인의 "연꽃향기 묻은 바람이"이라는 시비
詩碑 관리가 어떻던 글이 좋으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읽으며 음미하겠지요
글씨가 잘 않보이는 분들을 위해 제가 다시 올려드리겠습니다
연꽃 향기 묻은 바람이
碧波 金 哲 鎭
까치 소리 푸른 산빛을 깨치면
진달래 발그레 귓불 붉히고
은행나무 천 살에도 열매를 맺는
햇살 맑은 반야(般若)의 터
연꽃 향기 묻은 바람이
천 년 서라벌 잉벌노(仍伐奴)의
하늘빛 풀어 놓고 간
호암산 호암산성 한우물
슬기롭고 착한 눈빛의
마음과 마음 적셔 흘러
다시 또 천 년 나달
살아나는 신령스런 호랑이의 얼
이제 호압사 호암약수로 솟아
이 땅 금천(衿川)의 사람들
밝은 마음 깊은 사랑으로
무량겁(無量劫) 이어 흐르리니
호압사는 지나번 산행기에서 자세히 기술했으므로 오늘은 생략합니다
호압사를 뒤로하고....
내려 오는 길에 있는 절묘하게 생긴 나무
벽산타운 앞 호암산 입구로 내려와 산행을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