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재발견]
         관악산 6개 국기봉 종주
         사당역-관음음사위 국기봉(1)-낙타바위 국기봉(2)-하마바위-마당바위-
         관악문(솔봉)-연주대-자운암능선 국기봉(3)-제3왕관바위-학바위능선 국기봉(4)-
         삿갓승군바위-장군바위-8봉능선 국기봉(5)-6봉능선 국기봉(6)-불성사-
         서울대 수목원 만남의 다리-삼성산 중턱 상불암 갈림길-안양 예술촌

     
     [사당역 4번 출구]
     5월의 마지막 토요일인 30일 오전 8시에 '사당역 4번 출구'에 도착하여
     그 동안 두번의 도전에도 완주하지 못한 "관악산 11개 국기봉 종주"를 하려고
     관악산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 디뎠습니다.
     날씨는 다행히 제법 산행하기에 적합한 구름이 약간있는 맑은 날씨였습니다.
  
     [관음사 가는 길]
     관악산 사당능선 들머리는 
     사당역 4번 출구에서 남태령 방향으로  약 100m쯤 올라 가면
     우측으로 "승방길"이라는 골목길이 똑 바로 뻗어 있는데
     그 길로 똑 바로 끝까지 올라 가면 됩니다
     
     [관음사 입구 - 산행 들머리]
     사당역 4번 출구에서 약 15분 정도 오면 "관음사" 입구가 나오며,
     이곳이 산행 들머리입니다.
     일요일엔 많은 산객들로 붐비는 곳인데, 오늘은 토요일 이른 시간이라 한산합니다.
     중요한 것은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가면 "관음사"이고,
     "사당능선 등산로"는 다리를 건너서 자동차 있는 곳 조금 위에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있습니다
     
     [관악산 등산 안내도]
     오늘 삼성산과 호암산의 국기봉까지 합쳐 모두 11개 국기봉을 종주하려했지만
     중간에 열열 팬들로인해 관악산에 있는 국기봉 6개만을 종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안양예술공원까지 갔습니다, 그곳에 술집이 많으니까요. ㅎㅎ
     산객들의 능력에 따라, "관악산 6개 국기봉 종주"도 좋은 코스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총 걸린 시간이 10시간이니 오늘 제가 가는 코스도 11개 국기봉 종주하는 시간과
     비슷하게 걸리니 참고 하세요
     여하튼 11개 국기봉을 한꺼번에 종주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룹니다
  
     [등산로]
     관음사 입구 다리를 건너 약 30m쯤 오르면 우측으로 등산로 입구가 나옵니다.
     물론 "관음사"로 올라가도 다시 이길과 만날수있으니 어느쪽을 선택해도 무방합니다
     다만 관음사길은 포장도로이라는 것이....
     
     [관음사]
     능선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아랫쪽에 "관음사'가 보이고....
     
     [관음사 뒤 헬기장]
     우측으로 헬기장이 있습니다.
     여기서 산행 준비를 하고 출발합니다
     사당역에서 여기까지 약30분 정도 걸립니다
     
     [관악산 사당능선]
     헬기장을 벗어 나면 곧바로 황홀한 관악산 "사당능선 암릉길"이 펼쳐집니다
     여기서부터 "관음사 위 국기봉"까지는 매우 힘든 된비알입니다
     처음 오시는 분들은 이렇게 힘들면 어떻게 연주대까지 가느냐고 미리 겁을 먹습니다.
     그러나 너무 겁먹을 필요없습니다. 
     어느 산이나 꽁짜로 정상을 허락하는 산은 없습니다
     힘들지 않는다면 산에 올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집에 있으면 편합니다
     힘들기 때문에 산을 오르고...그래서 더 힘든 산을 찾아 나서고....
     
     [관음사 위 국기봉]
     헬기장에서 가파른 암릉구간을 오르면 앞에 "관음사 위 국기봉"이 장엄하게 나타납니다
     태극기는 가장 높은 봉우리에 꽂혀있지않고 오른쪽 가장 낮은 봉우리에 꽂혀있습니다
     저 봉우리를 오르는게 워밍업이 덜된 상태이기도 하고 가파르기 때문에 무척 힘듭니다
     하지만 저 봉우리만 올라 가면 그 다음부터는  비교적 쉬운 코스이니 희망을 가지고
     오르시기 바람니다.
     
     [관음사 위 국기봉 오르는 암릉구간]
     급경사 암릉길을  치고 오릅니다. 
     관악산에서는 산행길에서 흙을 밟으며 걷는 곳이 별로 없고 대부분 암릉길을 걷습니다
     
     [관음사 위 국기봉 오르는 암릉구간]
     이런 암릉구간은 의외로 힘들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ㅎㅎ    네발로 걷기에 힘이 분산되 힘들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암릉구간을 오릅니다.
     
     [한강, 목멱산(남산), 삼각산(북한산)]
     절벽을 땀을 흘리며 조금 오르면 대한민국의 首都 서울이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앞에 마을이 관악구 봉천동 사당동 일대이며
     뒤로 한강이 유유히 흐릅니다
     한강 뒤로 검게 보이는 조그만 동산이 그 유명한 "목멱산"입니다. 우리가 주로 南山이라하죠
     "목멱산" 뒤로 "삼각산"과 "도봉산"이 서울을 지키는 파숫꾼인듯 자애롭게 지키고있습니다
     그리고 그 우측으로 희미하게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입니다
     
     [우면산]
     동쪽 방향은  앞에 삼각형 절벽같은 곳이 "南泰嶺"이며 그 뒤로 "우면산"이 펼쳐져있습니다
     "우면산"은 "牛眠山'으로 소가 엎드려 눈감고 편히 쉬고 있는 형상이라고 붙여졌답니다.
     그렇게 보이시나요?
     제 설명을 듣고 보면 그럴듯하지요? ㅎㅎ
     "南泰嶺"은 "여우고개"로 유명하지요?
     "南泰嶺"이란 이름에 대한 내력은 아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앞으로 산행을 하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여의도 방향]
     북서쪽 방향으로는 여의도 63빌딩이 보입니다
     사진의 좌측에 보이는 높은 빌딩은 목동의 SBS등의 건물입니다
     사진을 뽀샵처리를 조금 했는데도 서울 하늘에 껴있는 매연이 선명하군요
     
     [관음사 위 국기봉]
     가파른 릿지구간을 오르면 예고없이 태극기가 휘날립니다.
     이름하여 "관음사 위 국기봉"이라고 산객들이 임의로 붙인 이름입니다
     첫번째 국기봉에 오릅니다
     
     [관음사 위 국기봉]
     서울 -
     '雪울타리'에서 비롯된 '雪울'이 서울이 됬다는 說은 제가 여러번 언급한바 있습니다
     全世界가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 - 서울
     오랜만에 자랑스런 우리의 서울을 마음껏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관음사 위 국기봉에서 바라보는 '낙타바위 국기봉']
     두번째 국기봉의 태극기가 이곳에서 보입니다.
     가까운듯 보이지만 이곳에서 S자로 봉우리를 몇개 넘어야 갈수있습니다
             
             [관음사 위 포대봉 정상 오르는 길]
              국기봉에서 정상으로 다시 올라 가야하는데 '관음사 위 국기봉'은  세개의 봉우리로서
              태극기가 있는 봉우리가 제일 낮아서 하나 더 올라 가야 정상에 오를수 있습니다
              가파른 릿지구간을 오릅니다
     
     [관음사 위 포대봉 정상 오르는 길에서 뒤 돌아 본 국기봉]
     릿지구간을 올라 뒤돌아 봤습니다.
     태극기 보이시죠? 국기봉이 낮은 봉우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90도 각도의 절벽이 실감납니다. 밧줄이 있으니 염려없습니다
     
     [관음사 위 포대봉 정상]
     관음사 뒷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은 戰時에 대비해 설치된 대공포 진지인데 현재는 사용하고 있지 않는 시설입니다
     
     [포대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연주대]
     이곳에 오르면 드디어 관악산의 정상인 연주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초보산객들은 "아직도 저렇게 많이 가야하느냐?"하고 푸념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적당한 곳에서 내려 가자"고 조르기 시작합니다. ㅎㅎ
     두번째 국기봉인 "낙타바위 국기봉"은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올라서 가야합니다
     
     [포대봉 정상에서 바라 보는 '낙타바위 국기봉']
     '낙타바위 국기봉'이 손에 잡힐듯 잘 보입니다
     그러나 제법 멀리 있습니다
             
             [낙타바위 오르는 암릉]
              관악산은 京畿五岳, 즉 가평에 있는 화악산, 포천의 운악산, 파주의 감악산,
              개성의 송악산, 서울의 관악산 중에서 관악산이 가장 "악!" 소리 나는 岳山입니다
     
     [우면산]
     낙타바위 가는 봉우리에 올라 뒤 돌아 보니 "우면산"이 잘 보입니다.
     "우면산"과 "관악산"을 잇는 고갯길 "남태령"을 자동차가 다니기 쉽게 절개를 했군요.
     좌측 중간에 시뻘건 삼각형 모양의 암벽 절개지가 보이시나요
     우면산과 관악산을 잇는 산줄기는 교통편의를 위해 이렇게 짤렸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지역에 여시골이나 여우고개라고 불리는 고개가 있는데, 
     이는 그만큼 인적이 드물고 산세가 험해 여우의 출몰이 심했던 까닭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여우고개는 이곳 남태령(南泰嶺)이었답니다 
     이 고개를 여우고개라고 부르게 된 것은 호랑바위가 있는 골짜기에 여우가 많이 출몰하므로 
     여우골이라 하였는데, 옛날 천년묵은 여우가 사람으로 변신하여 이 고개에 나타났다는 데서 
     유래한 설이 있는데 믿어도 그만 믿지 않아도 그만입니다.
     일반적으로 여우같은 도둑놈들이 출몰해서 붙여졌다고 보는게 더 타당성이 있을 것입니다 
     
     [청계산]
     남동쪽으로 과천과 청계산이 잘 보입니다
     남태령南泰嶺은 서울과 과천의 경계이며 관악산과 우면산 사이의 고개로 
     그 유명한 효성이 극진한 정조임금이 수원에 있는 선친 사도세자 능(陵)을 자주 참배하러 다녔는데, 
     어느날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갈 때 "이 고개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과천현 이방 변씨가 엉겁결에 "남태령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에 그를 시기하던 자가 "이 고개 이름은 본래 여우고개인데 어찌 거짓을 고하느냐?" 라고 힐책하자 
     "고개 이름은 본래 여우고개이지만 신하로서 임금께 그와 같은 쌍스러운 말을 여쭐 수가 없어 
     서울에서 남쪽으로 맨 처음 큰 고개이기에 남태령이라 했습니다"라고 아뢰니 정조가 이를 칭찬하였으며, 
     그 후부터 남태령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믿어도 될만한 내력입니다
     그러나 南泰嶺이라는 말은 광해군 때 만들어진 춘향전에 이미 나오고 있다는군요 
     그러니 정조 이전에 이미 南泰嶺이라고 불리어졌으리라고 추측 됩니다
     
     [관악산 정상-연주대]
     관악산 정상-연주대가 조금씩 다가 옵니다.
     절묘한 岩陵길을 걷는 기분은 "못해본 사람들은 말을 하지마슈~"
     綠陰芳草勝花時
     "푸른 나무와 향기로운 풀이, 꽃피는 시절보다 낫다"
     
     [낙타바위 국기봉]
     "낙타바위 국기봉"도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낙타바위 국기봉 가는 길]
     奇岩怪石이 산행길을 더욱 즐겁게 합니다
     관악산을 遊山해 보지 않고는 외국으로 산행 갈 필요없습니다
     
     [갈림길]
     삼거리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관악산 정상은 좌측으로 바로 가면 됩니다만
     "낙타바위 국기봉"은 우측으로 잠깐 갔다가 와야합니다
     
     [헬기장에서 바라 보는 '낙타바위 국기봉']
     갈미길에서 오른쪽으로 헬기장이 있으며,
     국기봉이 지척에 보입니다.
     
     [낙타바위 국기봉]
     낙타바위 국기봉에 올랐습니다.
     발 아래로 봉천동과 여의도 방향이 잘 조망됩니다
     
     [낙타바위 국기봉에서 뒤 돌아 본 '관음사 위 국기봉']
     이곳에서 지나온 "관음사 위 국기봉"을 되돌아 봤습니다
     
     [하마바위]
     "낙타바위 국기봉"에서 조금 전진하면 "하마바위"가 나옵니다
     거대한 바위이기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다름니다만.....
     
     [하마바위]
     하마바위 옆으로 올라 갑니다
     
     [하마바위 위 거북바위]
     거대한 하마바위 위에는 또다른 바위들이 여럿 있는데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제일 먼저 눈에 띄지요
     
     [사당능선]
     가운데 S자로 이루고있는 사당능선 산줄기
     아름답습니다
     
     [서울대학교]
     '하마바위를 지나 사당능선의 중간쯤 오니 우측으로 "서울대학교"가 대규모로 펼쳐집니다
     관악산을 산행하면 서울대학교를 구경하는것은 기본입니다만
     정작 서울대 학생들은 설문조사에서 관악산을 올라 본 경험이 대부분 없더군요
     공부하는라고 바빠서 이겠지요
     
     [마당바위]
     왠만한 산에는 대부분있는 마당바위가 관악산에도 여러군데 있습니다
     넓직하게 마당모양을 하면 모두 마당바위이죠
     대부분의 마당바위는 쉼터입니다
     
     [연주대]
     관악산 정상이 점점 다가 옵니다
     온통 암석으로 포장된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리며 전진합니다
     관악산 정상은 주변 어느곳에서나 알아 볼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상에는 엄청난 크기의 송신탑이 솟아있고,
     서울지역의 기상상태를 관측하는 기상레이다가 있기때문입니다
     
     [암릉코스]
     다음 봉우리를 오릅니다.
     관악산은 여름에 산행하기가 좋습니다.
     암산이기에 능선에는 숲이 없어 사방으로 조망이 좋기 때문입니다.
     여름철에 肉山을 가면 숲에 파뭍혀 외부를 조망하기 어려워 갑갑하지요
     
     [관악문(솔봉)과 연주대]
     관악산 정상을 오르기 전에 올라야하는 "관악문"이 있는 "솔봉"을 올라야합니다.
     
     [관악문(솔봉)]
     冠岳門이 있는 솔봉은 경사가 심한 뾰쪽한 봉우리이기에 오르기 힘듭니다
     그래서 우회로가 있는데 우회로를 이용하는 사람은 아직 못봤습니다
     힘들어도 모두 관악문을 오릅니다.
     관악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관악산 사당능선을 종주했다고 할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앞으로 오실 분들도 반드시 올라 "관악문:을 통과하시기 바람니다
     
     [관악문 오르는 길]
     솔봉의 관악문 오르는길 - 된비알입니다
     
     [관악문 오르는 길에 있는 기암괴석]
     땀 흘리며 오르면 반드시 보상 받습니다.
     아름다운 경관으로.....
     
     [관악문 오르는 길에 있는 전망대]
     땀흘리지 않고는 이런 경치를 구경할수 없지요.
     오르는 자만의 특권입니다
     
     [冠岳門]
     솔봉의 정상에 있는 冠岳門이 그 모습을 나타냅니다
     冠岳山으러 가는 關門이라고 붙여진 이름인듯합니다
     다른 산에있는 이런 형태의 문은 주로 "通天門"이라고 하지요?
     
     [冠岳門]
     "관악문"이라고 바위 밑에 써놨습니다
     
     [지도바위]
     冠岳門을 지나 뒤돌아 보면 "지도바위"가 관악문 위에 놓여 있습니다
     관악문을 통과하시면 잊지 마시고 반드시 뒤돌아 보기 바람니다
     
     [코끼리 바위와 횃불바위]
     冠岳門을 지나면 앞에 "아기 코끼리 바위"가 있으며
     그 뒤로는 "횃불바위"가 있습니다.
     이 바위도 놓칠수없는 구경거리입니다.
     "횃불바위"를 촛대바위"라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 눈에는 촛대라기 보다는
     횃불처럼 보여 저는 "횃불바위"라고 합니다
     
     [관악문에서 바라보는 청계산과 과천]
     과천시내와 "서울대공원" 그 뒤로 청계산 망경대가 가깝게 보입니다
     "망경대"는 望京臺"로 "서울을 바라 보는 곳"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라합니다
     
     [연주대 응진전]
     기상레이다와 송신철탑 사이에 "기와집" 보이시는가요?
     저곳이 "연주대"이며 "연주대"에는 "응진전應眞殿"이라는 절간이 있습니다
     불교도들이 기도하는 곳입니다.
     앞으로 더욱 자세히 설명 드림니다
     
     [관악산 정상 오르는 길]
     가파른 경사의 암벽을 타고 오릅니다
     
     [관악산 정상 오르는 길에 내려다 본 "제3왕과바위능선의 국기봉"]
     연주대 바로 앞에 있는 봉우리에 올라 주변을 조망합니다
     오른쪽 북서방향으로 세번째로 가야할 국기봉인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이 보입니다
     "제3왕관바위능선"은 서울대 신공학관 뒤에서 연주대까지 뻗어 있는 능선인데
     "자운암"이라는 조그만 절이 능선상에 있어 "자운암능선"이라고도 합니다
     
     [관악산 정상 오르는 길에 내려다 본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전경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서울대는 규모가 우리나라 최대이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아탑이지요
     캠퍼스가 워낙 넓어 캠퍼스에는 셔틀버스 십여대가 운행되고,
     일반시내버스와 마을버스가 캠퍼스 안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지하철2호선 "서울대입구역"과 "낙성대역"에서 버스로 환승하고 서울대로 들어 갈수 있습니다
             
             [연주대 응진전]
             관악산의 상징을 말하라고 하자면 아마도 "연주대 응진전 戀主臺 應眞殿"이라고
             해도 이의를 다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戀主臺 應眞殿은 하늘 향해 치솟은 절경 속의 작은 절이라고 말합니다
             [경기도 지정 기념물 20호]인데 연주대는 관악산정 연주봉의 죽순처럼 솟아있는 바위틈에 
             30m의 축대를 쌓고 응진전 應眞殿을 지었습니다.
             [관악산 연주암지]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17년(677) 의상조사가 한강남쪽에 유화(遊化)하다가 
             관악산의 명미수려함을 수하여 산정에 의상대를 창건하는 동시에 
             관악사(冠岳寺)를 개산하다"고 기록되어 있다고합니다
             현재는 "의상대"는 "연주대 응진전"으로, "관악사"는 "연주암"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관악산 정상 오르는 길에 바라본 '제3왕관바위능선']
      관악산 정상을 올랐다가 다시 "제3왕관바위능선"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관악산 정상 오르는 암벽]
     오늘 암벽등반의 하일라이트가 이곳입니다.
     오늘은 토요일이고 이른 시간이라 산객들이 많지 않지만
     일요일에는 人山人海를 이루는 곳입니다.
     오르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뒤엉겨 병목현상이 나타나는 곳이지요
     
     [관악산 정상에 올라 올라오는 사람을 촬영]
     정상에 올라 올라오는 산객들을 촬영했습니다.
     좁은 문을 통해 정상에 오르기 때문에 병목현상은 심한 곳입니다
     
     [관악산 정상]
     드디어 관악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하늘이 닿을듯하고 왕관을 쓴듯합니다
  
     [관악산 정상에서 막걸리 한잔]
     땀을 흘리고 올라서 시원한 막걸리를 한잔했습니다
     원래 저는 이런 곳에서 이런 것들은 잘 사 먹지 않습니다만,
     동행한 山友들이 한잔 하자고해 곁들여 한잔했습니다
     그런데 한잔에 3,000원씩이나 받아 먹으며 막걸리에 물을 많이 타 물맛이었습니다
     앞으로 가실 분들은 절대 이곳에서 막걸리 사먹지 마시고 미리 준비해 가지고 올라 가세요
     관악산엔 여러 곳에 노점상이 있으나 다른 곳은 값도 2,000원이고 물도 덜 탓는데
     여기는 정상이라고 그런지는 모르나 횡포가 심했습니다
     
     [관악산 정상]
      가운데 "연주암 戀主庵"이 보이고  '방송3사송신탑'이 보입니다.
     '방송3사송신탑'이 있는 봉우리는 "학바위능선"의 최고봉이기도 하며 '케이블카'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제3왕관바위능선"으로 내려가 "국기봉"을 찍고 서울대 공학관 뒷길까지 가서
     다시 저쪽 "학바위능선"으로 올라야합니다.
     
     [관악산 정상 人工웅덩이]
     王都南方之火山 '서울 남쪽에 있는 불산'
     관악산은 연주대부터 '팔봉능선'까지의 "관악산 주능선"에 솟아 있는 바위들이
     불꽃모양을 하고 있어 멀리서 보면 불타는 산 처럼 보이기도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 - 무학대사와 정도전의 의견 대립
     고려를 멸망 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수구 세력들이 우굴대는 개성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 首都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제일 먼저 계룡산으로 천도하려고했으나 '하 륜'등 공신들의 강력한 반대로
     삼각산 앞으로 漢陽을 세우려고 할때 무학대사와 '삼봉 정도전' 사이에 의견대립이 있었습니다
     무학대사는 王都南方之火山인 관악산이 있어 반대 입장이었으나
     '삼봉 정도전'은 王都南方之火山은 인정하지만 앞에 한강이 가로 막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태조 이성계가 어느 선사의 이야기를 듣고 천도를 결심합니다.
     어느 선사의 이야기는 "관악산에 火氣를 누르는 우물을 파고 천도를 하시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호암산에 '한우물'을 팟다는 설이 있습니다.
     여기 사진에 보이는 웅덩이는 대원군이 팟다고 합니다
     경복궁이 자꾸 화재가 일어나 화재의 원인이 관악산에서 火魔가 온다고 보고
     보시는 바와 같은 웅덩이를 파서 火氣를 눌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이런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이 웅덩이를 지나칩니다
     
     [연주대 공식 안내]
     자세한 내용은 사진 속의 글을 읽어 보세요
     
     [연주대 응진전]
     30m 낭떨어지 위에 지어진 "연주대 응진전 戀主臺 應眞殿"은
     하늘 향해 치솟은 절경 속의 작은 절입니다
     경기도 지정 기념물 20호인 戀主臺 應眞殿은 관악산정 연주봉의 죽순처럼 솟아있는 바위틈에 
     30m의 축대를 쌓고 응진전 應眞殿을 지은곳을 말합니다. 
     의상대義湘臺가 연주대戀主臺로 바뀐데 대하여는
     고려가 멸망하자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오빠 강득용(康得龍:묘가 과천시청 뒤에 있음)이 
     서견,남을진 등과 같이 두문동72인의 행적을 본따 불사이조(不思二朝)의 뜻을 품고, 
     관악산 의상대에 올라 송경(개성)을 향해 통곡을 하며 고려를 연모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부처의 제자 16나한에게 기도하면 효험을 얻는다고 하여 기도사찰이라고 하는 응진전에는 
     철종때 김완송스님이 16나한을 봉안하여 나한전이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들려 기도를 하고 봉양을 합니다.
     진짜로 효험이 있을까요?
     
     [관악산 왕관과 기상레이다]
     戀主臺 應眞殿에서 소원을 빌고있는 사람들을 바라 보니 묘한 생각이 듭니다
     '박완서씨가 쓴《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 납니다
 
          요새도 남의 과거를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점쟁이를 심심찮게 봅니다. 
          그들은 특히 행복한 사람보다는 불행한 사람의 과거를 집어내는데 명수지요. 
          점쟁이는 그렇게 팔자 사나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다음 처방을 내립니다.
          언제 더 나은 남편감이 나타날 거라는 둥, 언제쯤은 큰돈이 생길 거라는 둥, 
          점쟁이의 특징은 과거를 알아맞히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간사한 욕망을 부추겨 더욱 목마르게 하는데 있습니다. 
          목마른 자를 골라잡아 소금물로 처방을 하는 식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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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冠岳山 정상석]
     冠岳山 정상석은 자연석을 정상석으로 활용하고있습니다
     629m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덩치가 커서 매우 큰 산으로 느껴집니다
 
              戀主臺 應眞殿에서 소원을 빌고있는 사람들을 보니 불쌍하기까지 합니다
              관악산 정상석 앞에 서니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 갑니다
              자기의 과거를 굳이 점쟁이에게 물어볼 이유가 있을까요?
              자기 과거는 자기 자신이 더 속속들이 잘 알지 않습니까? 
              왜 자기의 과거를 점쟁이에게 물어 봅니까?
              자기의 미래도 점쟁이에게 물어볼 것 없습니다. 
              앞을 헤쳐가는 것도 결국 자기 자신이니까요. 
              성공도 실패도 점쟁이의 몫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몫입니다
              제발 자신의 인생을 남에게 기대려 하지 마세요
                                           종교까지도 믿지않는 -파란문-
 
     
     [관악산 정상]
     관악산 정상에서 '연주암'으로 가는 길은 많은 산객들로 포화상태입니다.
     사진을 촬영하는 이곳이 "제3왕관바위능선"으로 가는 진입로입니다
     그러므로 정상에서 내려오다 첫번째 오른쪽으로 내려 가야 "제3왕관바위능선"으로
     갈수 있습니다. 이 길 이외는 없습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가는 길]
     바로 이 길입니다.
     이 길이 아니면 "제3왕관바위능선"으로 갈수 없습니다
     꼭 기억해 두어야합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길을 나아 가면 좌측에 헬기장이 있고 "제3왕관바위능선"이 펼쳐집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이 능선은 서울대 공학관에서 연주대를 가장 빨리 오를수 있는 코스입니다만
     급경사로 위험구간이 많습니다.
     이 코스로 내려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
     급경사 암벽을 타고 내려가니 "제3왕관바위능선"의 "국기봉"이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국기봉을 "자운암 위 국기봉"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자운암'이라는 절이 아주 작은 절이기에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이라고 합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
     국기봉의 태극기가 보입니다
     내려오는 길이 급경사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합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 오르는 암벽]
     급경사를 내려와 다시 국기봉 암벽을 타고 오릅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
     태극기가 릿지를 해야 올라 갈수 있는 곳에 꽂혀있습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
             다른 사람들이 오르 내리는 코스를 보고 올라야합니다
             왠만하면 그냥 지나쳐도 됩니다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에서 바라보는 "삼성산"]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에서 바라 보는 "삼성산"
      삼성산도 관악산의 일부로 봅니다. 삼성산 옆 호암산도 관악산의 일부로 봅니다.
      그래서 관악산 11개 국기봉은 삼성산의 국기봉 2개와 호암산의 국기봉 3개를 합치고 
      관악산의 국기봉 6개를 합쳐서 11개 국기봉이라합니다.
      저는 오늘 원래 11개 국기봉을 종주하려했는데 중간에 환영 나온 친절하신 펜들 때문에
      관악산 6개 국기봉만 돌고 안양 유원지로 탈출했습니다
      이때에 전화가 두군데서 왔습니다
      앞으로 사연을 알게 됩니다. ㅎㅎㅎ
     
     [국기봉에서 내려다 보는 "제3왕관바위"]
     "제3왕관바위능선 국기봉"에서 내려다 보는 "제3왕관바위"
     "제3왕관바위"는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여러개의 바위가 합쳐져
     신라 왕관같은 모양을 하고있는게 특징입니다
     
     [제3왕관바위]
     가까이 다가 가니 왕관처럼 보입니까?
     가장 왕관 같은 바위는 8봉능선에 있는 '제2왕관바위'가 가장 그럴듯합니다
     
     [제3왕관바위 중 하나의 바위]
             
             [제3왕관바위 중 하나의 바위]
              제3왕관바위봉우리에 올라 갔습니다
              왕관을 이루고 있는 바위중에 하나를 볼수 있는데 멋있지요?
              어떻게 보면 '북한의 포스타'에 등장하는 것 같기도하고....
               
               [제3왕관바위 이정표]
     
     [제3왕관바위에서 올려다 본 연주대와 방송송신탑봉우리]
     연주대 송신철탑에서 내려왔습니다.
     아직도 더 내려 가서 다시 우측 방송3사송신철탑이 있는 봉우리를 
     "학바위능선"을 타고 올라야합니다
     오늘 "관악산'을 두번 오르는 것입니다
     
     [제3왕관바위에서 서울대 신공학관 뒷길로 하산]
     제3왕관바위에서 서울대 신공학관 뒷길까지는 더 내려 가야 합니다.
     연주대에서 완전히 하산이라고 봐도 무관합니다
     
      [서울대 신공학관 뒷길까지 하산]
      서울대의 각 건물이 가깝게 다가 옵니다
      서울대는 제가 대학을 다닐때에는 여러곳에 산재해 있었습니다
      현재의 서울대 자리는 옛날에 "관악 골프 C.C"였지요
      여러 곳에 흩어져있는 단과대들을 이곳으로 합쳐 옮긴것은 70년대이지요
     
     [토끼바위]
     이 토끼바위도 제법 유명한 관악산의 명물입니다
     
     [기암괴석]
     
     [기암괴석]
     
      [서울대 신공학관]
     
     [서울대 신공학관 뒷길과 만나는 삼거리]
     이곳이 중요한 지점입니다.
     만약 호암산 삼성산에서 올때에는 이곳을 잘 찾아야 연주대로 쉽게 올라 갈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올라 가야합니다
     오른쪽은 서울대 신공학관으로 하산하는 길입니다
     
     [서울대 신공학관 뒷길을 따라 주계곡으로 가는 길]
     삼거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제법 넓은 길을 따라 조금 걸어 갑니다.
     
     [관악공원(서울대입구)에서 연주대 깔닥고개 오르는 계곡길]
     그러면 서울대입구 관악공원에서 올라오는 계곡 등산로를 만납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이 코스로 깔딱고개를 넘어 연주암으로 올라 갑니다
     이 등산코스는 남녀노소 누구나 오르내리는 쉬운 관악산의 대표코스이기도합니다
     
     [연주대 깔닥고개 오르는 길과 "학바위능선" 갈림길]
     조금 오르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 오른쪽이 "학바위능선"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똑바로 올라 가면 깔딱고개를 넘어 연주암으로 갑니다.
     우리는 "학바위능선"으로 가야합니다
               
               [연주대 깔닥고개 오르는 길과 "학바위능선" 갈림길 이정표]
                이곳에는 이정표가 확실히 길안내를 하고 있으니 혼동되지 않습니다
                오른쪽 "학바위능선"으로 오릅니다
     
     [학바위능선 가는 길]
     완만한 경사로 걷기에 편한 관악산 옆구리를 횡단합니다
     "학바위능선"으로 치고 오를때에 다소 경사가 있습니다.
     
     [학바위]
     "학바위 능선"에 오르면 오른쪽으로 "학바위"가 보입니다
     오른쪽 "학바위"로 가면 않됩니다
     왼쪽 "학바위능선 국기봉"으로 가야합니다.
     저의 山友는 길을 혼돈해 '학바위'를 다녀왔습니다. ㅎㅎ
     다른 분들도 조심하세요. 알바하기 쉽습니다
     
     [학바위능선 국기봉]
     '학바위능선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조금 올라 가면 "학바위능선 국기봉"이 나타납니다
     
     [학바위능선 국기봉]
     네번째 국기봉인 '학바위능선 국기봉'을 오릅니다.
     제가 "제3왕관바위능선"을 걷고 있을때에
     "홍어와 무인도" 애독자 두분으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습니다
     한분은 "미리내"라는 아이디를 가지신 분인데 국기봉 종주를 반대로 하고 있어 중간에서 만나
     함께 식사하자고 한곳이 이곳 "학바위능선 국기봉"입니다
     그리고 또 한분은 "채트치"라는 아이디를 가지신 분인데 "홍어와 무인도"의 열렬한 애독자이지요
     제가 산행이 끝날즈음에 만나 뒷풀이를 함께할 목적으로 11시쯤 서울대입구에 왔는데
     저에게 전화를 했더군요. 그래서 그러지말고 "학바위능선 국기봉"에서 만나 함께 점심 먹고
     나머지 산행을 함께하자고 했더니 열심히 이곳에 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학바위능선 국기봉]
     학바위능선 국기봉에서 처음으로 만난 "미리내님'과 기념사진을 한컷했습니다
     대단한 산꾼이더군요. 
     만나서 반가웠구요. 앞으로는 함께 다니자구요
     
     [점심식사]
     "삿갓승군바위" 아래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나머지 두분은 "6봉 국기봉"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학바위능선 국기봉에서 바라보는 관악산 정상]
     
     [삿갓승군바위]
     '삿갓승군바위'를 돌아 '방송3사 송신탑 봉우리'로 올라 갑니다
     '삿갓승군바위'를 완전히 릿지로 오를려면 조금 위험하니 우회하시기 바람니다
     
     [삿갓승군바위]
     '삿갓승군바위'를 돌아 올라 갑니다
     
     [방송송신탑]
     드디어 '방송3사 송신탑'이 있는 "관악산 주능선'에 다시 올라 왔습니다
     
     [방송송신탑에서 바라 본 연주대]
     
     [방송송신탑 고개 갈림길]
     이곳이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연주암"입니다.
     오른쪽으로 가야 "8봉 국기봉"으로 갈수 있습니다
     
     [방송송신탑]
     송신탑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솟아있어 올려다 보는데 고개가 아플 정도
     이 시설을 끼고 돌아 나아 가야합니다
     
     [관악산 주능선]
      방송송신탑을 끼고 돌아 나오면 화려한 "관악산 주능선"이 펼쳐집니다
     이곳에서 "8봉 국기봉"까지는 정말 아름다운 奇岩怪石이 널려있습니다
     
     [관악산 주능선에서 뒤돌아 본 방송송신탑]
     요즘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 관악산 주능선을 걸으며
     "풍장"이라는 詩를 함께 느껴 보고자 합니다.
     서울대 영문과 교수를 끝으로 정년 퇴임하신 황동규교수님의 詩입니다
     황동규 시인은 너무나도 유명한 "소나기"라는 소설을 쓰신 황순원씨의 아들입니다
     황동규교수님은 "시인 황동규"보다 "황순원의 아들'이라는 소개가 가장 극복하기 어려웠다고
     할 정도이지만 황동규교수님의 시는 정말 독특해서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저의 "가야산 산행기"에서 소개해 드린 시는 소유언시(小遺言詩)였지요
     
     [관악산 주능선에서 보이는 "6봉국기봉"]
     "풍장"이라는 시는 14년동안 70편의 연작으로 쓰여진 연작시입니다
     모두를 소개해 드릴수는 없고 오늘은 1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풍장1 
                    죽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관악산 주능선에 있는 전망대]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관악산 주능선에서 보이는 "6봉능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8봉 국기봉]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化粧도 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장군바위]
     황동규교수님의 "풍장"이라는 시에 대해 나름대로 쓴 작자 미상의 글을 첨부하겠습니다
 
     1. 오독에 대한 변론
     한 번씩 죽음에 대해 집착할 때가 있다. 
     어릴 때 나는 내 어머니가 죽는다는 사실이 무서웠고, 
     그 무서움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더욱 겁을 냈었다. 
     그러나 죽음은 정확하지 않은 것, 하여 정확한 것이라면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장군바위에서 바라보는 8봉 국기봉]
 
     죽은 자는 이미 현실로부터 봉인된 자다. 
     닫힌 몸 어디로 들어가 죽음에 대한 증언을 들을 수 있겠는가. 
     모든 죽음에 대한 정의는 결국 불확실할 수밖에 없고, 
     역으로 그 불확실함에 근거하여 완전해지기도 한다. 
     아무도 죽음을 본 자가 없다는 것은 죽음을 맞이하고 살아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살아 있는 자 누구도 죽음에 대해 완전한 정의를 내릴 수 없으면 
     또한 내려진 정의들에 대해 실증적인 반론을 제시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8봉 국기봉]
 
     하여, 나는 죽음이라는 부담스럽고도 오래된 원형의 수수께끼 앞에서 자유로와 지고자 한다. 
   「風葬 1」에서 내가 본 죽음과 시 밖에서 보게 된 죽음, 
     그리고 나의 오독을 통해 보여질 또 다른 죽음의 모습이 서로 겹치고 어긋나며 교차하는 지점에서 
     저마다 각자가 생각하는 죽음을 꺼내놓고 마주하게 될 것이다.
 
     
     [6봉 국기봉 주점]
 
     2. 산자의 문턱, 죽은 자의 문턱
     죽음은 한 세계의 끝과 또 한 세계의 시작에 존재하는 문턱이다. 
     그리고 그 문턱은 우리의 삶 어디에나 존재한다. 
     예전 어른들이 문턱을 밟지 못하게 하는 미신 속에는 섣불리 밟으면 안 되는 
     죽음의 공간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가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내 할머니가 느끼던 죽음과 지금의 내가 느끼는 죽음은 같은 것일까? 
     그것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것이, 내 할머니에게는 경외감이 더 컸다면, 
     내게는 두려움에 무게가 더 실려 있기 때문이다.
 
          
          [6봉 국기봉]
 
           내 할머니가 느끼던 죽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현실의 공간 속에서 무수히 있는 문턱과 같은 존재, 
           그것을 밟지 않는 행위 속에는 죽기 싫은 두려움 보단 죽음에 대한 경건함, 
           깨끗한 죽음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황동규의 풍장을 읽으면서, 나는 그 두려움과 경외, 
           미신처럼 내 할머니를 사로잡았던 깨끗한 죽음을 본다. 
           그것은 가장 편안한 죽음이고,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된 죽음이기도 하다
 
     
     [6봉 국기봉]
     오늘 산행에 함께한 '고갈산님"과 "채트치님"
     "홍어와 무인도"의 열렬한 애독자이시지요.
     "채트치님"은 지난 "여성봉-오봉-칼바위-우의암"을 함께한 분이지요
     오늘도 저녁식사에 홍어회까지 완전히 책임져 주었습니다
 
     
      [6봉능선]
 
     매일 매일 우리들이 무수히 넘나들던 문턱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를 현실 밖의 세계로 데려다 놓을 지도 모른다. 
     내 두려움은 그 느닷없음에 있고, 
     내 할머니의 경외감은 그 불확실한 존재의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있다.  
     할머니가 보면, 단번에 잔망스런 계집애란 소리를 듣겠지만, 
     나는 지금 할머니가 그토록 금기시 하던 문턱에 올라앉아서 
     턱을 괴고 길게 숨을 내 쉬며 죽음을 만날 준비를 한다. 
     내가 밟고 있는 것이 산 자의 문턱인지, 아니면 죽은 자의 문턱인지는, 
     시를 내려놓는 순간까지 아무도 모른다. 
 
     
      [6봉능선에서 바라보는 "광교산"-"백운산"]
     희미하게 수원의 "광교산과 백운산"이 보이며, 이어 "바라산"과 "우담산"이 보입니다.
 
     3. 풍장 - 죽음과의 유희
     풍장은 사람이 죽으면 우선 나무로 비가 조금 샐 수 있을 정도의 얼기설기한 집을 만들고 
     그 안에다 시체를 묻고 풀로 덮는 장례 형태이다. 
     오래되면 그 시체는 썩고 뼈만 남게 되면 다시 땅에 묻는다. 
     시인이 대학 시절에 보았던 이러한 풍장의 모습은 오랜 기간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그의 나이 45살, 바로 이 시를 처음으로 분출되기 시작한다.  
     풍장은 해안이나 섬 지방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봉분을 만들 땅의 여유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고기잡이를 나가면 보통 보름이상 씩 걸리는 그들의 생활형태에서 
     그 사이 부모가 죽는 경우 땅에 묻으면 얼굴마저 볼 수 없기 때문에 생긴 풍속으로 보여진다. 
     온전히 드러낸 죽음의 형태, 시인은 풍장을 통해 완전한 죽음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불성사]
     遊冠岳山記를 쓰신 번암 채재공선생이 길을 잃고 찾아와 하룻밤을 묵었던
     佛性寺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불성사]
 
     이 시의 1연에서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란 구절을 읽어 내려가면 
     시인이 꿈꾸는 죽음이 삶과의 분리 형태로 존재하는 일반적 두려움의 대상「죽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떠한 극적인 형태도 아닌, 다만 자연스러운 죽음. 
     지치고 오래된 몸을 위해 휴식을 취하듯이 맞이하는 이러한 죽음의 형태는 
     시속에서 바람을 통해 가벼워지고 마냥 스스럼없어진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와 같은 모순적인 일상어가 
     환기시키는 죽음의 무게가 얼마나 가볍고도 사소한지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죽음에 대해 무언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시인은 폼 잡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가방 속에서 다리를 오그리고 있는 자는 죽은 자이기에,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빌어 쓰던 몸은 몸에게 돌려주고 영혼은 웅크린 몸에 
     편안히 기대어 선유도를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통, 배 지나가는 소리마저 지나갈 수 있게 된다. 
     앞에서 선유도와 무인도를 지나는 것이 몸이라면 
     영혼은 통통통, 울리는 뱃고동 소리마저 지나가고 있다. 
     소리를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이 시 속의 죽음은 이미 가벼워져 있다. 
     무엇이 시인에게 이토록 죽음을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게 했을까? 나는 잠시 궁금해진다.
 
     
     [불성사 계곡]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일본 영화를 본 것이. 
     '나라야마'란 70이 넘은 노인들을 버리고 오는 산으로 일종의 우리나라 고려장과 비슷한 
     일본의 옛 풍속이다. 잘 계산된 죽음에 대한 각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나는 감동하고 말았는데, 아들의 등에 업혀 나라야마를 오르는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버리고 내려와야 하는 아들 사이에 적용되는 금기, 
     결코 나라야마에 오르기까지는 아무말도 해선 안 된다는 설정에 넘어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침묵이 들려주는 장엄한 음성, 관객들은 자신의 가슴속에 키우고 있던 죽음을 슬며시 꺼내어
     화면 속에서 아무런 배경 음악도 깔리지 않고 진행되는 두 사람의 의식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나라야마에 오르는 길고도 어려운 과정을 통해 
     이미 어머니와 아들은 죽음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황동규의 풍장은 '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영화가 들려준 침묵의 오케스트라와는 또 다른, 
     마치 휘파람처럼 귀를 간지럽히는 죽음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영화와 시 속의 죽음이 어딘가에서 맞물려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죽음에 대한 거창한 해석 이전, 온전히 죽음의 형태로 드러나는 알몸의 죽음을 만나게 한다는 점이다. 
     시속 화자도, 영화속 주인공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죽음을 받아들인다. 
     매일 계속되던 일상 속의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듯이 죽음은 詩속을 천천히 걸어다닌다. 
 
     
     [서울대 수목원 "만남의 다리"]
 
     영혼은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몸은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눕혀진다. 
     영혼은 잠시 잃었던 정신을 차리며 온전히 세상 앞에 제 몸을 드러내고 있는 죽음을 본다. 
     자신을 담았던 몸이 거기 누워 있다. 
     죽음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빌어 쓰던 몸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을, 영혼은 비로소 깨닫는다. 
     그리하여 죽음과의 동거, 썪어 가는 육체 속에 기꺼이 함께 하며 
     살이 말라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지켜본다. 
     그리고 손목시계가 부서질 때, 남 몰래 시간을 떨어트린다. 
     이제야 몸의 죽음만이 아니라 영혼의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8봉능선]
 
     나는 이 지점에 이르러 나즉한 탄성을 지른다. 
     행여, 몰래 떨어트린 그의 시간이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영혼이 육체와 함께 바람에 날리는 것을 지켜본다.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씨들이 튕겨져 나오고 그것을 무연히 바라보는 
     나와 안 보이듯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짧게 교차한다. 
     죽음은 어금니에다 백금 조각을 박고 차가운 겨울 볕 아래 빛나고 있다. 
     이불 덮듯 바람을 덮고서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고 싶은 죽음의 유희. 
     화장도 해탈도 없는, 미화되지 않은 죽음이 보여주는 담백한 아름다움, 
     시인은 그런 정직한 죽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삼성산 "성불암 위 국기봉" 가는 길]
 
     시를 빠져 나오면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쩌면 없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서 우리들이 생각하는 죽음이란 너무 지나치게 무거워진 것이 아닐까?
     풍장은 아직까지도 시인이 집착하는 화두이다. 
     가장 자연스럽고 담백한 죽음의 모습을 나는 풍장을 통해 볼 수 있었다.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거창하거나 심오한 단어들을 끌어오지도 않고, 
     시인은 평범한 일상어들을 조합하여 죽음이라는 단단한 관념의 세계를 현실 속에 펼쳐 놓았다. 
     또 다른 시에서 시인은 '죽음 앞에서 파괴되지 않는 것은 아름답다고' 노래했다. 
     모든 인간적인 것이 죽음 앞에서 파괴되고 소멸될 수 밖에 없는 명백한 사실을 통해, 
     시인은 그런 깨달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아름다움이 역으로 죽음마저 초월하고 있음을, 나는 이 시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쉼터]
 
     그리고 다시 묻는다. 
     내가 밟고 있는 문턱은 결국 산자의 문턱인지 아니면 죽은 자의 문턱인지. 여전히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이제는 문턱에서 내려와야 할 뿐, 발을 디디는 순간 
     또 다시 일상 속을 걷고 있는 나를 마주하기를 희망할 뿐이다. 
     아직도 나는 죽음이 두려운 것을 보니, 내 죽음에 대한 준비는 한 참 덜 된 듯 하다. 어쩌겠는가, 
     나는 시인처럼 담담해 질 수 없는 것을. 하여 무수히 많은 문턱마다 혹시 디딜세라 성큼 뛰어 넘는 것을.
 
     
     [안양예술공원 - 산행 날머리]
     마지막으로 황동규 시인의 연작시 "풍장" 중에서 "풍장 28"을 소개해 드림니다
 
               풍장 28 
          내 마지막 길 떠날 때 
          모든 것 버리고 가도, 
          혀 끝에 남은 물기까지 말리고 가도, 
          마지막으로 양 허파에 담았던 공기는 
          그냥 지니고 가리. 
          가슴 좀 갑갑하겠지만 
          그냥 담고 가리. 
          가다가 잠시 발목 주무르며 세상 뒤돌아볼 때 
          도시마다 사람들 가득 담겨 시시덕거리는 것 내려다보며 
          한 번 웃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번 배 잡고 낄낄대기 위해 
          지니고 가리
 
     
     [안양예술공원 음악회]
     안양예술공원에 내려 오니 색스폰 연주를 하는데 색스폰 소리가 계곡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관악산 6개 국기봉"을 종주하고 이곳까지 온 우리를 반겨 주는듯했습니다
     삼성산과 호암산에 있는 국기봉까지 11개 국기봉을 한꺼번에 종주 하는 것도 의미있으나
     산행에 자신이 없으신 분들은 "관악산 6개 국기봉 종주"부터 하시면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고갈산님'과 '채트치님'이 빨리 내려가 한잔 하자고 아우성을 쳐서 삼성산 호암산도 중요하지만
     사람사는 얘기를 주고 받는 인연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안양예술공원으로 내려 왔습니다
     "사당역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하여 안얀예술공원에 오후 6시에 도착하였으니 
     장장 10시간이 걸렸습니다.
     
     [뒷풀이]
     뒷풀이는 닭도리탕을 안양예술공원에서 먹고,
     다시 안양시장 안에 있는 홍어회집으로 가 무지하게 퍼 마셨습니다
     뒷풀이는 모두 '채트치님'이 책임졌습니다.
     에구~ 고마워서 어쩐다유.......
     
     [산행 개념도]
     오늘 너무 무거운 주제 "풍장'으로 가라앉아있을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제가 자주 써먹는 유머 하나 들려드리면서 산행기를 마침니다
     무뚝뚝하기로 세계적인 경상도 남자와 여자의 대화 하나를 
     유머로 소개 해 드리겠습니다
     漢陽夫婦와 慶尙道夫婦의 差異 一話
     서울부부와 경상도부부가 배를 타고 여행을 가고 있었다.
     서울부인이 마침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고 애교스런 음성으로 
     "자기야~ 저기 저 달 너무 예쁘다 그지?”하고 말하자 
     서울 남편은 “아냐, 자기가 더 예뻐~”
             
     이걸 옆에서 보고 있던 깅상도부인
             
     "자기야, 달이 참 밝제?” 하자
            
            
      깅상도 남편이 하는 말
               .
               .
               .
      “와, 달이 니보고 뭐라 카더나”
 

파란문印   ★살며..느끼며..서로 사랑하며 ☆홍어와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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