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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문

          도드람산-설봉공원 

       산 이름이 독특해서 한번 가보고자했던
       경기도 이천의 도드람산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여러 자료를 검색해 보았으나 대중교통 수단을 찾을 수 없어서
       할수없이 승용차를 몰고 모처럼 드라이브를 즐기며 떠나는 산행
       지난 이틀간 오랜만에 제법 내린 가을비로 거리엔 온통 낙엽이 딩굴고....
       이상 고온으로 안개가 난무했던 지난주까지와는 달리
       하늘은 그야말로 투명한 거울 같이 맑고 상쾌했습니다
     
     [도드람산 입구 교차로]
     도드람산 가는 길을 확실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알고 보니 너무 간단하더군요
     1.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가장 빨리 갈수 있습니다 
        중부고속도로 '서이천' 톨게이트를 빠져 나오자 마자 우회전하여 용인 방향으로 조금 가
        앞에 보이는 중부고속도로  밑 차도를 지나면
        바로 위와 같은 이정표가 있는 교차로 오른쪽 SKT 연수원 입구입니다
     2.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덕평'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이천방향으로 조금 가면 위와 같습니다
     저는 신갈에서 국도를 이용하여 이천 방향으로 갔습니다
     
     [산행 들머리 - 도드람산 사거리 안쪽 SKT연수원 앞]
     산행 들머리가 도로와 붙어 있습니다
     주차는 이 곳에서 적당한 곳 찾아 하면 됩니다
     
     [산행 들머리]
     산행 들머리는 대부분이 이용하는 앞에 보이는 SKT연수원 반대편 우측으로 올라 갑니다
     
     [산행 들머리]
     
     [도드람산의 상징 - 멧돼지]
     산행 들머리 바로 옆에 도드람산의 상징인 멧돼지상을 세워놨습니다
     '효자 멧돼지'는 효자와 멧돼지로 해야 할듯...앞으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도드람산의 유래에 대한 안내판]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 고을에 효자가 한명 있었는데 어머니가 병환으로 눕게 되어 암울해 하고 있는 차에
     어느 스님이 효심을 가상하게 여겨 이 산의 바위에 자라는 '석이버섯'을 따다 먹이라고 해
     석이버섯을 따러 갔습니다. 아시다시피 석이버섯은 주로 절벽에 자라지요?
     절벽에 매달려 석이버섯을 따고 있는데 돼지 울음소리가 들려 제빨리 중단하고 올라 가보니
     밧줄이 거의 끊어 질 상황에 놓여 있더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돼지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돋(돼지)울음산으로 불리워지던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도드람산으로 변했다고하며,
     한자로는 저명산(豬鳴山)이라고 쓴답니다
     
     [운동장]
     산행 들머리 좌측에는 운동장이 있으며 화장실도 큰 규모로 있어 편리합니다
     아마 SKT에서 만들어 놓은듯...
     
     [산행 들머리]
     산행 들머리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산행로]
     [제2,3산행로]는 비교적 잘 정비 되있었습니다만 [제1산행로]는 사람들의 흔적이 별로였습니다
     
     [갈림길]
     조금 올라 가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우측으로는 '영보사'절 방향으로 가서 '제1등산로'로 가는 길이며
     좌측은 제2,3 등산로'로 가는 길입니다
     
     [갈림길 이정표]
     우측 '영보사' 방향 '제1 등산로'는 암릉구간입니다
     암릉 릿지로 바로 정상으로 가는 코스이기에 가장 빨리 올라 갈수 있습니다만 
     경사가 좀 심하고 암릉길이라 초보자들에게는 조금 위험합니다
     좌측 '제2 등산로'는 계곡으로 안전하게 오르는 코스이며, 
     도드람산 제1봉에서 제1코스와 만납니다
     좌측 '제3등산로'는 완전히 계곡으로 '제3봉'과 정상까지 오르는 안전 코스입니다
     
     [영보사]
     SKT 연수원 정문 바로 옆으로 '영보사' 정문을 통해 올라 갈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일반 등산로를 따라서 영보사 절에 들렸습니다
     특별한 그 무엇이 있는 절은 아닌 듯...
     
     ['영보사' 뒤 '제1 등산로'로 오르는 들머리]
     제1등산로는 영보사 뒷쪽에 있습니다
     
     [제1 등산로 입구]
     저는 '제1 등산로'로 오르기로 하고 '영보사'를 잠깐 들리고 다시 와 오릅니다
     
     제1 등산로는 바로 급경사 오르막이며
     산객들의 발자취가 거의 없더군요
     대부분 '제2 등산로'와 '제3 등산로'를 이용하더군요
     하지만  등산을 좋아 하시는 분들은 '제1등산로'로 올라 '제3등산로'로 하산하는게 좋을듯..
     
     조금 오르니 건너편 이천의 진산 '설봉산'이 보입니다
     
     제1 등산로'는 모두 암릉 코스 입니다
     암릉 코스이기에 바깥 조망이 매우 좋습니다
     
     승용차를 주차하고 산행 출발을 했던
     산행 들머리인 SKT연수원과 국도, 중부고속도로가 잘 조망됩니다
     제1중부고속도로의 "서이천" 휴게소가 바로 앞에 있군요
     
     친절한 해설
     확실히 알수 있겠죠?
     특히 '치킨대학'을 눈여겨 보세요. 우리나라엔 '치킨대학'도 있습니다
     치킨대학에선 닭에 대해 배우겠지만......??    설봉산 산속에 자리 잡고....
     
     암릉을 타고 계속 제1봉을 향해 갑니다
     암릉으로만 갑니다
     
     암릉 구간은 조금 어렵지만 재미있습니다
     
     앞의 뾰쪽한 암릉 끝이 '제1봉'입니다
     
     '제2등산로'로 올라온 산객들이
     '도드람산 제1봉'을 오르기 위해 오르는 코스입니다
     손잡이를 만들어 놔 편리합니다. 도드람산은 암릉구간에 곳곳에 이런 손잡이를 설치해놨습니다
     
     [도드람산 제1봉]
     암릉코스를 오르면서 이곳이 '제1봉'인지 몰랐습니다만,
     밑을 내려 보니 이곳이 '제1봉'이더군요. 싱겁게 '제1봉'에 올랐습니다
     
     [도드람산 제1봉]
     밑을 내려다 보니 '제1봉'이더군요
     이분들은 '제2 등산로'로 오른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제2,3 등산로를 이용하는데, 제가 추천 한다면 '제2 등산로'를 추천하겠습니다
     단지 '제2,3 등산로'는 '영보사'를 볼수 없습니다
     
     [도드람산 제1봉]
     큰 산만 다니시던 분들이 보면 '도드람산 제1봉'은 싱겁습니다
               
          도드람산 이름의 유래 는 아까 산행 들머리 안내판에 공식적으로 표기해 놨습니다
          돼지가 울었다고 돼지 에 운다는 울음을 합쳐 돋울음 이 
          도둘음 - 도두름 - 도드람으로 음운변화가 되어 지금의 도드람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음운변화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말도 않되는 괴상한 발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도드람산 제1봉]
     '도드람산 제1봉'에 오니 산객들을 제법 많이 만날수 있었습니다
     돼지중에 집돼지는 돈豚이라 하고 멧돼지는 저豬라고합니다
     라는 한자가 멧돼지豬이지요
     안내판의 돈豚을 적당히 이라 한듯합니다
     돈豚은 집에서 사육하는 돼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울음'은 한문으로 지난 명성산 산행기에서도 나왔던 울 鳴입니다
     그러므로 도드람산은 설명대로라면 돼지 돈豚울 鳴을 합친
     돈명산豚鳴山이 되어야하는데
     안내판에서 공식적으로  저명산(豬鳴山)으로 표기하고 있어 커다란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豬鳴山은 이산의 공식적 한자 이름이라고 정상석에도 쓰여 있으므로 
     돈 울음 또는 돋 울음에서
     음운변화해서 도드람이 �다는 것은 정말 터무니 없는 해석이라 생각됩니다
     
     제2봉을 향해 갑니다
     5분 거리에 있습니다
     저돌적豬突的이다라고 할때 한자가 멧돼지 저豬입니다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내닫거나 덤빌때 쓰는 말이 멧돼지의 행동에서 온 말입니다
     집에서 키우는 돼지와 산에서 자생하는 멧돼지는 근본적으로 틀림니다
     
     [도드람산 제2봉]
     제1봉'에서 가까운 거리에 '제2봉'이 있는데, 1봉보다는 조금 더 큰 봉우리입니다
               
          豬鳴山의 순 우리 말이 돈(돋)울음에서 도드람으로 음운 변화했다고 하는 변화는
          저는 도저히 동의 할수가 없습니다
          古文에 대해 아는 것도 별루지만 고등학교만 나왔어도 이런 것은 상식적으로 알수 있쟌습니까?
          이런 음운변화는 터무니 없는 껴맞추기식이란 걸 알수 있을 듯하군요.
          그렇다면 진실은 어떤 것일 까요?
          도드람바위가 돋아있다라는 말이 합쳐져
          돋을 암(岩)이 합쳐져 돋을암 - 도들암 - 도드람으로
          音韻 변화 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훨씬 국문학적이지 않습니까? 저는 확신이 듭니다만 믿거나 말거나....ㅎㅎ
          이 산은 보시는 바와 같이 岩이 돋아 있는 산입니다
     
     [제2봉에서 바라 보는 호법 I.C.]
     도드람산은 중부고속도로와 건너편 설봉산을 확실히 조망할수 있습니다
     
     [제2봉에서 올려다 보는 제3봉]
     도드람산은 조그마한 산이지만, 아기자기합니다
          
          제3봉을 오르르면 암벽릿지로 오를수 있습니다만
          우회로도 있으니 암벽에 익숙치 못하신 분들은 우회로를 이용 할수 있습니다
     
     제3봉 오르는 우회로
     
     제3봉을 직접 오르는 코스
     
     [제3봉]
                    
                     [제3봉 정상석]
                     이 동네에서 자라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한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에는 이 산에 진짜로 멧돼지들이 많았다고 증언했습니다
     
     [도드람산 제3봉]
     곳곳에 고속도로가 놓이고 건물을 지어 산허리는 끊어지고, 동물들은 옮겨 다닐수가 없어져
     산짐승들을 찾아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제3봉에서 바라 보는 '이천과 설봉산]
     우측에 보이는 산이 이천시의 진산인 '설봉산'입니디
     오늘 도드람산과 설봉산을 종주 하려했습니다. 그러나...못했습니다. 왜냐구여? ㅎㅎ
     곧 알게 됩니다
     
     [제3봉에서 내려다 보는 제2봉]
     좌측 중부고속도로 '서이천 휴게소'가 보입니다
     중부고속도로 '서이천 휴게소'를 이용 할때에 '도드람산'을 한번 올려다 보세요
     
     [제3봉에서 올려다 보는 정상 봉우리]
     도드람산은 아담 사이즈 산입니다
     그래서 회사 동료들의 친목 산행이나, 야유회겸 산행지로 안성맞춤인듯합니다
     오르 내리는데 아무리 못걷는 사람도 2시간30분이면 가능하고
     제3등산로를 이용하면 안전하고, 산 정상을 오르면 쾌감도 맛보고....
     
     제3봉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 안내
     앞에 서쪽으로 트인 전망대로 나가....
     
     덕평 양지 방향을 조망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이 너무 많습니다
               
     
     [도드람산 정상]
     간단하게 정상에 도달했는데....
     물도 두모금 마시고 올랐으며. 50분 정도 걸렸나 봅니다
     
     [도드람산 정상]
     도드람산 정상은 '효자봉'이라고 최근에 명명했나 봅니다
          
     [도드람산 정상석]
         
     [도드람산 정상석]
     "돼지와 효자"를 이곳 저곳에서 무척 강조하고 있는 도드람산
     그러나 이 정도의 효심을 그렇게 까지 강조 하며 울궈 먹을 정도의 "효자"인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병든 어머니를 위해 간호하는 하는 것은 '효심'이라고 강조 할 정도의 행위가 아니고 당연지사입니다
     어머니가 병들었는데 가만히 있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경우 어머니를 간호하는것은
     천륜을 배반한 놈이 아니면 모두 간절히 간호 하는 것입니다. 별 짓을 다해서 간호합니다
     
     물론 절벽에 올라 위험을 무릎쓰고 '석이버섯'을 따다 어머니를 간호한 것을 
     "효도"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효도"라고 강조 할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당연히 할일 했다고도 볼수 있지 않습니까?
     진정 효도라고 울궈먹을려면 '심청'이 처럼 목숨을 걸고 하는 효도 정도는 되야 울궈먹는것 아닙니까?
     지방 공무원들이 이런 공식적 안내판을 만들어 설치하려면
     깊이 있게 조사해서 공식적 안내를 해야하는데도 
     몇사람들의 터무니 없는 구전동화를 듣고 그것이 잔짜인양, 잘하는 일인양 아무렇게나 해서
     혈세를 낭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동의 하시죠? ㅎㅎ
     
     [도드람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중부고속도로]
     시원한 중부고속도로와 중부제2고속도로가 호법인터체인지로 뻗어 갑니다
     
     [도드람산 정상]
     도드람산은 가족이나 단체 야유회 목적으로 오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승용차 몇대에 나들이 산행겸 야유회
     적당한 등산과 친목....그리고 이천 쌀밥 먹거리....이천 온천욕....
     
     [돼지굴 방향의 암릉지대]
     도드람산 정상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조금 가면 돼지굴 암릉지대가 나옵니다
     
     도드람산은 정상을 오르는 일보다
     이곳 '돼지굴'과 '효자문'을 둘러 보는 산행이 클라이막스이더군요
     지금부터 구경거리가 좀 있습니다
     이곳에서 직진하여 바로 암릉 구간을 릿지로 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측 '효자문'을 지나 '돼지굴'을 보고 올때에 앞의 암릉구간으로 오면 더 좋더군요
     
     [앞의 암릉구간]
     앞에 보이는 암릉구간으로 가면 '돼지굴'이 나옵니다만
     우측으로 '효자문'을 먼저 들리고 돌아서 '돼지굴'을 구경하고 
     앞의 암능구간으로 올라 되돌아 오는 코스를 추천해 드림니다
     바로 앞 계곡 아래에 '효자문'이 있습니다
     
     [효자문]
     암릉구간 우측으로 '효자문' 표지판이 있습니다
     이곳으로 갑니다
     
     [효자문]
     '효자문'은 계곡에 있어 철제 계단 시설을 해 놨습니다
     계단을 따라 내려 갑니다
     
     계단을 내려 가다 뒤돌아 봤습니다
     
     [효자문]
     계곡 사이의 틈새가 '효자문'입니다. ㅎㅎ
     왜 '효자문'인지는 설명이 없어 확실히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이곳으로 "그때 그사람 효자"가 지나 가서 '효자문'이라고 하는 듯 합니다. 
     에구~ 제가 지나 갔으니 이제부터는 "불효문"이 되겠군요 ㅎㅎ    
     여하튼 '효자문'을 통과하면 불효를 사면해 주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앞으로 효도를 많이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통과합니다
     이 산행기를 읽으시는 분들은 모두 효자 효녀이시죠? 
     孝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만 쉽고도 어려운게 孝가 아닐련지....
     
     [효자문]
     '효자문' 전경입니다
     안전시설인 계단을 설치해 놔서 위험하지 않은데 위험 표지판을 별도로 크게 세워 놨군요
     
     [효자가 '석이버섯'을 따던 암벽]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암벽 타기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 효자를 닮기 위해서인지.....
     '석이버섯'은 눈씻고 찾아 봐도 없고...
     그래도 그런 효도의 의미를 되새기며 암벽에 메달리는 것은 좋게 해석됩니다
     요즘 젊은이들 중에 이런 젊은이 들도 있군요
     전설따라 삼천리를 다니며 암벽타기를 하며 그 감회에 젖어 본다는 것...좋습니다
     
     조금 가면 '돼지굴 입구'가 나옵니다
     이곳이 도드람산 산행의 끝이며 이젠 되돌아 가야 합니다
     
     [돼지굴]
     왔던 길로 되돌아 가지 않고 이 거대한 바위를 올라 돌아 갈수 있습니다
     친절하게 계단이 설치되있어 전망대까지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돼지굴]
     돼지굴은 굴이라기 보다는 "바위 틈"입니다
     이곳에 멧돼지들이 살림을 차렸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때 그 효자"가 암벽에 메달려 '석이버섯'을 딸때 밧줄이 끊어질 위험이 있다는
     신호를 돼지가 울음소리로 여기서 보냈나 봅니다
     
     [돼지굴]
     돼지굴에서 전망대로 오르는 길
     계단을 이용해 쉽게 오를수도 있으며, 최소한 '방위' 출신 이상이라면
     이 코스로 오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전망대]
     돼지굴을 오르면 '전망대'가 나옵니다
     서북방향을 바라 보며 가을 풍경을 만끽합니다
     
     암릉구간으로 되돌아 갑니다
     재미있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다시 '돼지굴'과 '효자문' 계단을 이용하여 되돌아 갈수 있으니 염려 할 필요없습니다
     
     돼지굴 위 암릉에 올라 '전망대'를 뒤 돌아 봤습니다
          
          암벽에 손잡이 시설을 해놔 불편하지 않습니다만 조심해야합니다
          특히 물병을 베낭 옆에 꽂아 놓고 이런 암릉구간을 오르 내리면 모두 잃어버립니다 ㅎㅎ
          물병이 떨어 진줄도 모르고 가기에, 저는 이곳에서 물병 무지 많이 줏었습니다
          
          도드람산의 山行別味는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방위병 출신 이하라도 누구나 오르 내릴 수 있으니 도전해 보세요
          
          암릉 코스가 제법 길지요?
          오르고 내리고를 여러번 합니다
          도드람산 산행은 정상 봉우리를 오르는데에 50분 정도 걸렸습니다만
          이곳 릿지 구간에서 30여분 소요됩니다
     
     손잡이를 요소요소에 잘 설치해 놨습니다
          
          아까 '효자문'에서 암벽타기를 하려는 젊은이들이 오를려고 하는 절벅입니다
          옛날 '효자'는 이곳의 절벽에서 '석이버섯'을 따기 위해 매달렸으리라~
     
     계곡 밑에 '효자문'이 있는 계곡을 건너 암릉 구간 산행을 마침니다
     
     '돼지굴'을 돌아 다시 정상 봉우리에 돌아 오니 산객들이 많이 늘어 났습니다
     여기 저기 옹기종기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제3 등산로'를 이용하여 하산 하는데
     이제서야 많은 산객들이 올라 오고 있습니다
     
     제3 등산로를 이용하여 하산하는데 35분 정도 걸렸으니
     산의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수 있겠지요?
     제3등산로를 이용하면 정상에 올라야만 외부를 조망 할수 있는 단점이 있습니다
     
     거의 다 내려 오니 제2등산로와 제3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갈림길이 있더군요
     
     오전에 출발했던 삼거리 '영보사' 갈림길로 되돌아 왔습니다
     
     마지막 하산로
     
     오전에 출발 햇던 SKT 연수원 앞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내려와 이제서야 도드람산을 올려다 보니 전체가 감이 잡혔습니다
     제1봉, 2봉, 3봉, 정상이 나란히 있습니다
     
     오늘 산행 개념도
     
     산행이 너무 싱거워 설봉산을 오르려고 이천의 '설봉공원'으로 승용차를 몰고 갔습니다
     '설봉공원'으로 가면서 '도드람산'을 정면에서 바라 봤습니다
     '돼지굴'이 있는 암릉까지 잘 보이는 군요
     아담한 산입니다
     
     [설봉공원]
     '설봉공원'을 처음으로 와 봤는데 상당한 규모의 공원에 놀랐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이천 쌀 축제"가 열리고 있는 날이더군요
     입구에서 부터 차량 행렬로 주차 할곳이 없어서 할수 없이 차 안에서
     사진만 몇장 찍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씁니다
                    
     
     [설봉호수]
     설봉공원은 이쁘게 꾸며져 있었으나 주차문제로 구경도 못하고 설봉산 산행도 못했습니다
     이천이라는 도시 이름이 뭔가 재미있는 사연이 있을 듯해서 알아 봤습니다
     이천의 유래를  문헌에서 찾아보면, 
     고려 이전에는 南川(남천),南買(남매), 黃武(황무) 등으로 불리어 오다가 
     고려 왕건이 후백제군과 일전을 벌이기 위하여 福河川(복하천)에 이르렀을 때 
     홍수(洪水)로 인하여 내를 건널 수 없는 상황에서 徐穆(서목)이라는 사람이 인도하여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福河川(복하천)은 이천 시내를 관통하여 남한강으로 흐르는 개천입니다
     후에 왕건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가상히 여겨 
    『利涉大川(이섭대천)』 이라는 글귀에서 첫글자 『利』와 끝글자 『川』을 따와 『利川』이라는 
     명칭을 왕건이 하사한 이래 오늘날까지 불리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동국여지승람 누정편) 
     또한 일설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남정(南征)길에 올라 이천에 주둔하고 점을 쳐보았더니,
    『利涉大川』점사(占辭)를 얻어 역시 『利川』이라는 명칭을 내렸다고도 합니다.(동국여지승람 고적편)
     
     [설봉공원]
     설봉공원은 일방통행으로 호수를 한바뀌 빙 돌아 나오도록 되 있습니다
     이천은 어의적(語義的)으로는 『큰 내(大川)를 건너 이로웠다』는 것입니다. 
     주역 (周易)에 의하면 『利涉大川』이라는 글귀가 14번이나 나오는데 
     대체적으로 『학문과 덕을 쌓고 몸을 기르면 험난한 과정이라 할 수 있는 大川을 건너 
     큰 공(功)을 세울 수 있었으며 온 天下가 이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쌀 축제가 열리는 곳에 가서 이천쌀밥을 먹고 가려고 했는데...에구
     아쉬운 발길을 돌렷습니다
     그러나 이천 설봉공원이 이렇게 생겼구나!!~~라는 것은 큰 소득이었습니다
파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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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느끼며..홍어와 무인도☆ 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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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龍鳳山 山行記 

              낮과 밤을 묶어 하루라 하듯
              즐거움과 괴로움을 묶어 인생이라한다니
              그러니 이렇게도 살아 보고
              또 저렇게 뒤집어서도 살아 보자고.....
              오늘은 정말 독특한 산악회를 따라
              그 동안 꼭 한번은 찾아 보려했던 龍鳳山으로 향했습니다

              朝夕間에 일교차가 커  안개가 심하게 깔려있는 2008년 10월15일 수요일
              서해안 홍성군에 위치한 龍鳳山으로 버스는 속력을 냈습니다
     
     [산행 들머리 - 용봉초등학교]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안성에서 평택으로 가는 새로운 고속도로를 타고
     다시 서해안 고속도로로 접어 들어 '서산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하고
     홍성 I.C를 지나 龍鳳山산행 들머리인 '용봉초등학교' 정문 앞에까지
     신속 친절하게 우리를 옮겨다 놓았습니다
     
     [용봉초등학교 앞 - 상산리 버스 정류장]
     평면TV에 성능 좋은 오디오 시설을 갖춘 관광버스는
     안락하고 쾌적하고 넓직한 의자는 편안함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홀로 시외버스를 타고 기차를 갈아 타고, 길에 길을 물어 다니는 산행을 주로 하다
     목적지 - 산행 들머리까지 친절하게 실어다 주는 관광버스를 이용하니
     이 또한 색다른 산행의 감흥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용봉초등학교]
     충남 홍성군 홍북면 상하리에 위치한 '용봉초등학교'
     상하리는 上下里로 용봉산을 기준으로 산의 윗쪽 동네를 上山里, 아래를 下山里라 하는군요
     교문은 활짝 열려 있었으며, 수업중인지 학교는 매우 조용했습니다
     학교 뒤로 보이는 龍鳳山은 새로운 도전 의욕을 불러 일으키고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을 다짐하며 10시 15분경에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용봉초등학교' 좌측 산행 들머리를 따라 대부대가 이동을 시작합니다
     용봉산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는듯합니다
     
     '용봉산'은 입장료를 받고 있더군요
     국립공원의 입장료도 없어 진지 오래인데 이런 조그만 산에 입장료를 받는 것은 특이합니다
     어른 1,000원이며 단체는 800원이더군요
     
     [용도사]
     산행 들머리에서 조금 오르니 '용도사'라는 절이 나왔습니다
     절간은 근간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안내판에는 이 절의 내력은 알수없는 절이라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으며
     수덕사의 말사라고 합니다
     
     [홍성 상하리 미륵불]
     이 미륵불은 자연 암석을 바로 조각한 미륵불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하는 듯했습니다
     고려 중기에 조성된 충청도 지방의 불상 양식이 잘 표현되 있다고 하며
     이 미륵불은 먼 훗날 이 땅에 출현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미래의 부처'라고 하는군요
     저 돌부처가 앞으로 우리를 구제해 줄려는지...구제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ㅎㅎ
     
     [용도사]
     용도사에서 龍鳳山 정상이 바로 보입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이 절을 그냥 지나치더군요
     
     [등산길]
     용도사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잘 열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부터 본격적인 글자 그대로 登山입니다
     경사가 가파른 登山路를 1시간 30분 정도 올라야합니다
     
     '용도사'를 벗어나니 바로 외부 세계를 조망 할수 있었습니다
     서해안의 산들은 아시다시피 30억년의 풍상 속에서 너무 늙어
     허리가 꼬부라지고 단단하던 암반은 흙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용봉산은 아직 岩陵이 살아있는 서해안의 몇 안되는 젊은 산입니다
     岳山 다웁게 외부 조망이 한결 좋습니다
     
     약 30여분 오르니 여기쯤에선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친절하게도 여기쯤에서 쉬어 갈수 있도록 정자를 만들어 놨더군요
     '쉼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쉼터 정자]
     산악회팀은 처음엔 한팀으로 뭉쳐서 시작하였으나
     산행 능력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분들이 혼합해 있어
     이후 부터는 제각각 산행을 즐기고......ㅎㅎ 
     이 쉼터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건너편 산이 '백월산'입니다
     용봉산백월산 사이의 마을 이름이 '소향리'이고....
     
     단체 산객들과 떨어져 龍鳳山을 느끼며 오릅니다
     용봉산백월산에 관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 오는 이야기를
     산행을 하며 재미로 읽으시라고 전해 드립니다
     
     [홍성군 홍북면 상산리 마을]
     오늘 안개가 너무 심해 사진이 깨끗하지 못해 아쉽습니다만
     또 그런대로 신비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군요
     이 이야기는 이 고을 문화원 사무국장이라는 김경식씨에 의해 전해진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슬슬 시작해 볼까요?

     용봉산과 백월산 장수의 싸움 이야기
     우리 고장에 용봉산과 백월산이 있잖어. 저기 저 산 말여. 
      저 두 산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잖어. 
     (손으로 백월산과 용봉산을 가리키며) 저기 저 산 좀 봐. 
     두 산에 크고 재미있게 생긴 돌들이 참 많잖어. 
     특히 용봉산에는 온통 돌이 뒤덮이다시피 했단 말여. 
     그리고 이 두 산 사이에 소향리라고 하는 마을이 있단 말여. 
     소향리는 백월산이 있는 홍성읍 소속이구 말여. 여기에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
     옛날에 저 용봉산과 백월산에 장수가 각각 살고 있었다는구먼. 
     그런데 용봉산과 백월산 사이에 소향이라고 하는 아주 예쁜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는 거여. 
     이 두 장수가 소향 아가씨를 짝사랑했었대. 그런데 건너편 산에 있는 장수가 눈에 가시란 말여. 
     '저놈만 �으면(없으면) 소향 아가씨는 내 차지가 될 텐데!' 하고 말여.
     두 장수는 서로 상대편 산에 있는 장수를 경계하며 눈치만 살피고 있었어. 
     그러다가 마침내 큰 싸움을 벌이게 되었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어. 
     자기 쪽 산에 있는 돌을 집어서 상대편 산 쪽으로 던지기 시작했어.

     
     [투석봉에서 바라 보는 최영장군 활터]

     "에잇 받아라 이놈아!" 
     두 장수는 상대편 장수를 쓰러뜨리기 위해 쉬지 않고 돌을 던졌어.
     힘 센 장수들이 던지는 돌이니께 얼마나 정신없이 날아갔겠어? 
     아마도 쌩쌩 소리를 내며 포탄처럼 날아갔겠지. 
     그렇게 치열한 싸움을 벌인 것이 얼마나 지났는지 물러(몰라). 한 일주일 쯤은 싸운 모양이여. 
     점점 두 산에서 던지는 돌이 용봉산 쪽에 많이 쌓이기 시작했어. 
     백월산 장수가 돌을 더 많이 던졌기 때문이지. 
     마침내 치열하던 싸움이 끝났어. 백월산 장수가 싸움에서 이긴 거여. 
     그 덕분에 백월산에는 그 많던 돌들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는 거여. 
     하지만 용봉산에는 백월산 장수가 던진 돌들이 많이 쌓여서 기암괴석이 많게 되었다는구먼. 
     결국 두 산의 가운데 살았던 소향 아가씨는 백월산 장수의 차지가 된 거지. 
     그 바람에 홍성군 홍성읍과 홍성군 홍북면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던 소향리도 
     백월산이 있는 홍성읍의 차지가 되었구 말여.
     하지만 요즘은 용봉산으로 돌들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지 물러. 
     전국에서 사람들이 사시사철 몰려든다구. 
     용봉산 장수가 싸움에서 지기는 했지만 그 덕분으로 돌이 많이 쌓여서 유명한 관광지가 된 거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는 얘기는 재미로 읽는 이야기이니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읽습니다만
     뻥이 좀 쎄지요? ㅎㅎ
     
     [투석봉]
     "투석봉"의 이름이 왜 "투석봉"인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백월산 장수와 맞서, 용봉산 장수가 백월산으로 돌을 던진 곳입니다
     그래서 投石峰입니다.
     
     [용봉산 정상에 다가 가며 바라 본 최영장군 활터와 전망대]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라던 최영장군이 이 고장 홍성 출신입니다
     아마 무술 연마를 할때 이 곳에서 한 모양인데.....
     
     [용봉산 정상]
     1시간 20여분 만에 너무 쉽게 龍鳳山 정상에 올랐습니다
     화려한 경관이 오른이들에게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 냅니다
     양쪽의 경비병들이 도열하여 용봉산 정상 등극을 축하라도 하는듯하군요
     사진의 가운데 '용봉산 정상석'이 하얗게 보입니다
     
     [용봉산 정상]
     山 이름에 '봉'자가 들어 가면 일반적으로 '峰'이라는 한자를 쓰는데
     용봉산은 용龍자와 봉황鳳자를 씁니다.
     분명히 龍과 鳳凰에 대한 전설이 있을 듯해 알아 봤습니다
     이곳에서 자라나 살고 있는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인 '한상숙선생님'의 구연으로
     들려드리겠습니다

     저 용봉산은 원래 용과 봉황이 살았던 산이라는구먼. 
     그래서 용봉산이라는 이름이 생긴 유래가 재미있게 전해지고 있어.
     용봉산에는 원래 산꼭대기 대나무 숲에 봉황새가 살았었대. 
     그리고 용봉산 아래 연못에는 커다란 용이 한 마리 살었었고 말여. 
     하느님은 봉황에게는 육지를 다스리도록 했었대. 
     그리고 용에게는 물 속을 다스리도록 했었고 말여. 
     땅위에서는 들짐승과 날짐승들이 봉황의 다스림을 받아서 평화로운 시절을 보냈다는 거여. 
     물론 물 속에서도 많은 물고기들이 용의 다스림을 받으며 평화로운 시절을 보냈고 말여.
     하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시절도 오래가지 못했어. 
     오래도록 가뭄이 들면서 평화가 깨어지기 시작했어. 
     어느 해부턴가 갑자기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거여. 
     산천초목이 말라붙고 연못까지도 물이 없어서 심한 고통을 겪게 된 거지. 
     육지에 사는 동물들은 물론이고 연못에 사는 물고기들도 걱정이 태산같이 쌓이게 된 거여. 
     요즘에 비가 안 와서 걱정이 많듯이 말여. 
      "안되겠다. 내가 비를 몰아와야겠구나."
     드디어 용봉산 아래 연못에 사는 용이 용기를 내었어. 내가 비를 몰고 오겠다고 말이지.
     용이 뛰쳐나와서 하늘로 올라갔어. 
     그리고 하느님께 사정사정 해서 비를 몰고 온 거여. 비가 오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좋겠어? 
       "와아. 우리 용왕님이 제일이다."
     모두들 용을 위해서 만세를 불렀겠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어. 
     한 번 내리기 시작한 비는 몇 달이 되도록 그칠 기미가 안 보이는 거여. 
     더군다나 육지에 있는 들짐승과 날짐승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 
     물 때문에 어디 가서 제대로 쉴 수가 없단 말여. 
     하지만 물 속에서 사는 물고기들이야 무슨 걱정이 있겠어? 아무리 홍수가 나도 걱정이 없는 거지. 
     태평가를 부르며 물 속을 헤엄치고 다니는 거여.
     육지에 사는 짐승들이 물고기들을 보니까 괘씸하기 짝이 없거든. 
     자기들은 물 때문에 고생하는 줄도 모르고 좋아서 날뛰는 모습이 한없이 괘씸하단 말여.

     
          [용봉산 정상석]

     상하리 쪽에서 본 용봉산
      "우리들은 이렇게 고생하는 줄도 모르고 좋아서 날뛰다니."
     짐승들은 용봉산 꼭대기에 있는 봉황에게 괘씸한 얘기를 일러바쳤단 말여. 
     이 말을 들은 봉황도 괘씸하거든. 물고기들의 소행이 말여.
       "에이 괘씸한 것들 같으니라고. 내가 이것들을 그냥 두지 않을 테다."
     봉황이 화가 잔뜩 나서 소리쳤어.
       "여봐라. 지금부터 육지에 있는 모든 새들을 불러모아라."
     봉황은 힘이 세고 부리가 날카로운 새들을 불러모았단 말여. 
     그리고는 짐승들을 시켜서 물고기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오도록 했어.
     육지의 새들이 물고기들을 잡아간다는 소식은 곧바로 연못에 사는 용에게 전해졌어.
       "뭐라고? 새들이 물고기들을 모두 잡아간다고? 봉황이 시킨 일이란 말이지?"
     이 소식을 들은 용이 몸을 부르르 떨었어. 자연히 용과 봉황이 서로 감정이 격해졌단 말여. 
     그러다가 싸움이 벌어졌어. 이 싸움은 치열하기가 이를 데 없었어. 
     용봉산 꼭대기와 아래를 오르내리며 싸움을 했어.
       이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던지 푸르고 아름답던 산은 포탄을 맞은 것처럼 변해가기 시작했어. 
     뾰족뾰족한 돌들만 앙상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거여. 
     산 위에서 흘러내린 흙더미로 산 아래 연못도 점점 묻혀갔고 말여.
       얼마 후에 하느님은 봉황과 용이 싸운다는 소식을 들었어. 
     화가 난 하느님은 당장 봉황과 용을 이곳에서 내쫓았다는구먼. 
     그 뒤로 봉황이 살았다는 용봉산은 대숲만 덩그라니 남게 되었다는구먼. 
     용봉산 아래 하산 마을에 용이 살았다는 연못도 텅 비고 말여. 
     지금은 조그맣고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데 사람들은 이 연못을 '용못'이라도 부르고 있어.

     
     [용봉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최영장군 활터]
     홍성 출신 역사적 인물을 꼽으라면 최영장군과 사육신 중 한분인 성삼문선생과
     독립군 대장으로 잘 알려 진 김좌진 장군을 꼽는답니다
     대부분 '최영장군'을 떠 올리면 "황금보기를 돌 같이 하라"라는 유명한 말이 생각납니다
     이 말은 최영장군이 한 말이 아니고, 그의 부친 최원직(崔元直)으로부터 받은 유훈(遺訓)입니다
     최영장군은 이 유훈(遺訓)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실천하여서 유명한 것이지요
     '말 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강조 할때 쓰는 말인 "황금보기를 돌 같이 하라"라는 말이  
     '말 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라는 말 보다 더 유명해 진것입니다
     저는 절대 황금을 돌로 보지 않습니다. 
     황금은 황금으로 보며 오히려 황금을 찾아 헤메며 이 세상을 살죠. ㅎㅎ 과연 속물일까요?
     최영장군은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풍채가 늠름했으며 용력이 출중하여 
     문신 가문에 태어났으면서도 병서를 읽고 무술을 익히어 무장의 길을 걸었습니다
     아마도 저 곳에서 무술을 연마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으리라
     그는 16살에 장군이 되어 고려시대 말 元나라와 홍건적을 물리치고 
     쪽바리 왜구들까지 얼씬도 못하게 한 名將입니다만
     그 유명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의한 쿠데타로 무신정권에서 물러나며 처형당해 죽습니다
     
     [용봉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악귀봉]
     용봉산은 병풍처럼 나란히 옆으로 봉우리들이 나열 되 있는 듯하게 보입니다만
     봉우리들이 지그재그로 있더군요. 물론 멀리서 보면 나란히 있는 듯 보입니다
     
     [용봉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홍북면 상하리 마을]
     안개 속에서 龍과 鳳凰이 나올듯 하군요 ㅎㅎ
     안개가 시야를 가리지만 또한 신비스런 그런 느낌도 주는군요
     이곳 출신 역사적 인물들은 출생지에 대한 논란이 많이 있습니다
     최영장군의 출생지로 지목되는 곳은 강원도 철원군 어운면과 
     경기도 고양시,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인데 서로 자기 고장 출신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용봉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앞으로 가야 할 봉우리들]
     '노적봉' '악귀봉' '전망대봉' '병풍바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백두대간에서 흘러 내린 정맥과 지맥들이 서해바다로 사그러 들어 가기에
     대부분의 서해안 산들이 山勢는 미약하기 그지없으나 
     '용봉산'은 아직도 그 젊은 기백이 살아 있는 듯 쌩쌩합니다
     
     용봉산은 기암괴석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아직 죽지 않았슴을 만천하에 공표하는듯하군요
     
     [노적봉으로 내려 가면서 바라 본 '최영장군 활터 능선']
     '용봉산 정상'에서 바로 하산할수 있는 코스가 저 능선입니다만
     보시다시피 하산길이 평탄치 않으므로 '용봉산과 노적봉 사이의 안부'를 이용하면 편합니다
     
     [사자바위 능선]
     '최영장군 활터 능선' 좌측으로 '사자바위 능선'이 있으며, '사자바위도 있습니다
     사자바위는 육안으로는 조그만하게 보였으나 카메라에는 담지는 못했습니다
         
     '용봉산'과 노적봉' 사이에 안부가 있으며, 
     힘드신 분들은 여기서 '청소년수련원' 방향으로 용봉산을 탈출 할수 있습니다
     노적봉은 직진합니다
     
     노적봉 올라 가는 길에 서있는 奇岩怪石들
     저는 최영장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보이시나요? ㅎㅎ
     
     노적봉은 여러 산에 있습니다만, 북한산의 '노적봉'이 유명하지요?
     이곳 용봉산의 노적봉은 다른 산의 노적봉과는 완연히 틀리는군요.
     왜냐하면 노적봉은 노적가리를 쌓아놔 둥그런 모양을 해야 하는데
     용봉산의 노적봉은 둥그런 모양을 볼수 없습니다
     
     [노적봉 정상]
     지금 배경 음악으로 흐르고 있는 曲은 Charlie Landsborough가 부르는
     What Colour Is The Wind? Daddy입니다
     앞 못보는 한 어린이가 세상을 상상속에 그리는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곡입니다..
     "아빠!~ 바람의 색깔은 뭐에요?"
     두 눈을 가지고 이 아름다운 용봉산의 경치를 즐길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느끼시라고
     배경 음악을 이 노래로 정했습니다
     
     [노적봉에서 뒤돌아 본 '용봉산 정상']
     봉우리들이 능선으로 이어져 있는게 아니고, 각자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어
     오르락 내리락 해야하니 운동이 많이 됩니다
     
     노적봉 봉우리는 岳山이라서 초보산꾼들을 위해 계단시설을 친절히 해 놨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즐길수 있더군요
     
     [노적봉에서 바라 보는 '악귀봉']
     '악귀봉'은 이곳에서 바라 봐야 그 진면목을 볼수 있더군요
     아마도 '악귀봉'은 岳鬼峰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귀신처럼 솟아있는 큰 岳山
     
     노적봉의 바위들
     서로 기대고 귓속말을 하는듯...."나 너 좋아해~~"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박우현
                  이십대는
                  서른이 두려웠다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있었다
                  마흔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삼십 대에는 마흔이 무서웠다
                  마흔이 되면 세상 끝난 줄 알았다
                  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멀쩡했다
                  쉰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예순이 되면 쉰이 그러리라
                  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노적봉을 내려 갑니다
     
     노적봉 난간을 다시 오르고...
     이 고장 출신 김좌진 장군에 대해 아는대로 좀 나열해 볼까합니다
     김좌진 장군은 홍성출신이 확실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좌진 장군은 만주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무찌른 독립군 장군으로만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청산리 전투가 그 많큼 유명해서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백야 김좌진선생은 군인이라기 보다는 文人이었으며 사업가로도 성공한 분입니다
     김좌진 선생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재산이 많았는데 그 재산을 모두 처분해
     홍성 최초의 新學文을 배울수 있는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 학교 이름이 '호명학교'입니다
     이때의 나이가 불과 18살이었습니다. 
     20세 때에는 이봉창과 같이 서울에 고아원을 설립하여 무의무탁 고아들을 양육하는 한편, 
     한성신보의 이사로 취임하였고, 관철동 대관원자리에 이창 양행과 신의주에 염직회사를 설립하여
     사업에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군인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죠?
     
     노적봉 사이 사이로 돌고 돌아 내려 가는 길이 미로찾기 같습니다
     나라 잃은 설움을 통탄하며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위한 노력이 독립운동으로 시작됩니다
     文人이 鬪士가 됩니다.
     31세가 되던 해에 서백리아에 출전중이던 일본의 '가납'이 이끄는 연대 3,000명을 
     화룡현 청산리로 유인하여 연대장 '가납' 이하 1,200명을 함몰시키고 
     천수백명을 전상자로 만든 싸움이 그 유명한 1920년 10월 21에 있었던 청산리 전투입니다
     
     노적봉을 내려와 뒤돌아 봤습니다
     내려와 보니 멋있게 생겼더군요
     김좌진 장군은 '청산리 전투' 이후에도 우리나라 만주 독립군의 여러 주요한 요직을 거치며
     많은 활동을 하였습니다. 
     40세가 되던해에 중국의 항일세력과 연합전선을 결성하고 대일항전을 위하여 준비를 하던 중,
     1930년1월24일 하오 2시 중동 산시역부근 정미소에서 고려공산청년당원의 흉탄으로 
     일세의 풍운아 - 백야 김좌진 장군은 생의 장막을 내렸습니다.
     오호~ 통재라~
     
     안부를 지나 '악귀봉'으로 올라 갑니다
     김좌진 장군은 또한 그의 아들 '김두한'으로도 유명세를 타고있지요?
     김두한은 비록 깡패이지만 反日깡패로 한 시대를 풍미하고,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까지 �으며
     국회에서 싸우는 여야 정치인들이 더럽다고 파고다공원 공중변소에서 똥을 퍼다
     국회에서 정치인들에게 퍼 부은 사건으로도 유명합니다
     그의 딸 탈렌트 '김을동'여사, 김을동여사의 아들 탈렌트 '송일국'
     모두 김좌진장군의 피를 이어 받은 사람들이죠
     
     악귀봉을 오르는 곳엔 모두 '岳鬼'들이 모여있는듯
     바위들도 모두 괴상망측하게 생겼습니다
     
     악귀봉의 奇岩怪石들로 오늘 本錢 몇배 뽑았습니다
     산악회 회비가 15,000원이었는데 거의 꽁짜로 용봉산 산행을 했습니다
     
     [악귀봉에서 뒤돌아 본 '노적봉'과 '용봉산 정상']
     용봉산은 웅장한 산은 아니지만 매우 아기자기하고 오손도손하며
     주머니에 넣어도 쏙 들어 갈듯한 그런 아담싸이즈 산이었습니다
     
     [하늘 다리]
     악귀봉 정상에는 '하늘 다리'가 걸려 있었습니다
     근심걱정의 속세에서 하늘나라로 건너 가는 속세와 이별하는 다리 같았습니다
     俗離橋....
     
     악귀봉에서 보이는 봉우리들은 또 새로운 감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멋진 경치에 몇번이고 감탄했습니다
     서해안에 있는 조그만 산이라고 우습게 보면 큰일 나겠더군요
     비록 381m의 산이지만 해발 381m이며 바로 해수면에서 시작하므로 매우 높은 산입니다
     높이는 서울의 북한산 정도 되는듯합니다
     
     앞으로 가야 할 전망대봉과 '병풍바위'가 아득히 보입니다
     산꾼들은 저런 봉우리가 펼쳐지면 "아우~ 멋있다~!  빨리 가 봐야지~!"라고 하는데
     아마추어들은 "어머 저렇게 멀어~ 어떻게 가지? 지름길은 없어?"라고 하지요 ㅎㅎ
     
     [하늘 다리]
     악귀봉의 하늘다리를 건넙니다
     용봉산까지 와서 '하늘다리'를 건너보지 못하고 가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저의 이 산행기로 대리만족하세요 ㅎㅎ
     
     건너와서 뒤돌아 본 '하늘 다리'
     요즈음 미국발 신용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하며 고생하고있습니다만
     이 '하늘 다리'를 건너 인간사 근심걱정 다 잊어버리고 다시 생업으로 돌아 가시기 바람니다
     
     악귀봉을 하산하고 있습니다
     저 보다 연세가 훨신 많은 할머니라고 하면 화 내실것 같은 그래서 아주머니라고 부르기로한
     아주머니들이 저와 동행하며 끝까지 완주하였습니다. 대단한 산행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알고봤더니 저와 같은 아파트 옆동에 사시는 분들이더군요
     오늘 좋은 산행을 하셨다고 즐거워했습니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악귀봉의 쉼터]
     악귀봉 봉우리에서 조금 내려 가니 쉼터 정자가 설치되있었습니다
     앞에 보이시는 분은 모 자동차회사 판매 대리점을 하시는 사장님이신데
     아주머니들과 함께 오늘 '龍鳳山'을 마음껏 즐기며 함께 했습니다
     이 쉼터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했으며, 저는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언제 다시 함께 산행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도 즐거운 산행 많이 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람니다
     
     악귀봉을 하산하고 있습니다
     이제 뒤따라 오던 일행들과 합쳐져 식구가 늘었습니다
     
     숨은 벽 사이로 가야 할 '전망대봉'이 보입니다
     
     악귀봉과 전망대봉 사이의 안부를 지나갑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 가면 '용봉사'로 바로 갈수 있더군요
     
     전망대봉을 오르고 있습니다 
     전밍대봉은 용봉산과 같은 地脈을 이루고 있는 수암산으로 가서 
     덕산온천으로 가는 갈림길입니다
     
     전망대봉은 보기보단 높지 않았으며
     가는 길에 용봉산에서 가장 유명한 바위인 "용바위"가 있더군요
     
     가파른 오르막을 잘 오르고 있는 아주머니들
     이렇게 땀 흘려 오른 후의 성취감은 오르지 않고는 느낄수 없지요
     
     [龍바위]
     龍바위 龍을 닮았습니까? ㅎㅎ
     龍바위를 바라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모양이 많이 다르겠습니다만..글쎄요...ㅎㅎ
     저의 산행기는 많은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개인 사진은 잘 올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오늘은 우리 아파트 옆동에 사시는 아주머니들이 저를 열심히 따라
     용봉산을 즐기며 완주 하셨기에 그 기념으로 용봉산에서 용봉산을 상징한다는 
     龍바위를 배경으로 촬영하여 저의 산행기에 올려드림니다
     앞으로도 즐거운 산행 많이 하시고 내내 건강하시기 바람니다
     
     [전망대봉]
     전망대봉우리에 왔습니다
     전망대 봉우리에는 쉼터 정자가 있었으며 
     북쪽으로 수암산과 덕산온천 방향을 조망할수 있으며,
     서쪽으로는 덕숭산과 수덕사, 가야산 도립공원을 조망 할수 있는데
     오늘은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동쪽 방향으로 가야할 "병풍바위" 봉우리가 잘 보입니다
     아름답습니다
     
     북서쪽으로 수학의 계절 가을이 익어가는 들판을 보여 줍니다
     
     북쪽으로는 수암산이 보입니다
     
     용봉산과 수암산, 덕산온천 위치도
     용봉산을 찾는 산객들은 이곳 전망대 바위에서 수암산을 지나 덕산온천으로 산행을 계속해
     온천욕을 즐기고 집으로 돌아 간다고하는군요
     
     전망대봉에서 내려와 병풍바위쯤에서 뒤돌아 보았습니다
     "龍바위"와 전망대 팔각정이 보입니다
     
     [병풍바위]
     기암괴석은 병풍바위에 제일 많았습니다
     보이는 봉우리는 병풍바위에서 제일 높은 곳인데, 낙타바위가 있군요
     찾아 보세요
     
     꿈보다 해몽이라 했으니 제가 이 바위를 해몽해 볼까요?
     ㅎㅎ 아빠가 아들을 야단치고 있는듯합니다
     "공부 좀 해라~!!"
     
     낙타바위가 보입니다
     
     낙타바위에 올라 가서 내려다 보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가운데 바위는 저 아래에서 보니까...ㅎㅎ 더욱 남자 그것처럼 보이더군요
     옆의 소나무와 바위들이 어우러져 음탕한 생각을 갖게 하는군요 ㅎㅎ
     
     
     이 바위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정말 절묘합니다
     
     병풍바위를 내려 갑니다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소나무가 분재처럼 서 있습니다
     우리 집에 옮길수 있으면 그 가치는 어마어마하겠는데....
     옆의 바위가 수줍은듯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습니다
     
     병풍바위를 내려 오면서 낙타바위가 있던 곳의 '기묘한 바위'를 올려다 보니
     더욱 그렇게 보이지요? ㅎㅎ 찾았어요? ㅎㅎ
     
     천길 낭떨어지 바로 위에 있는 이 소파같은 바위에는 아마도 龍이 앉아 있었을 듯합니다
     
     천길 낭떨어지에서 얼굴을 쑥~내밀고 있는 이 바위는 하늘로 오르려는 이무기 같기도하고
     外界에서 온 E.T.같기도 합니다
     자연만이 만들어 낼수 있는 절묘한 조각품입니다
     
     용봉사로 하산하고 있습니다
     
     [병풍바위]
     저 멀리 악귀봉에서 병풍처럼 보이던 "병풍바위"가 이제서야 그 참모습을 드러냅니다
     가까이서 보니까 병풍이라기 보다는 삼국지의 영웅 호걸들이 모여 있는듯합나디
     제갈공명, 유비, 관우, 장비, 조조......
     
     [병풍바위]
     가까이서 보니
     병풍하고는 거리가 먼 병풍바위는 절묘한 독특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군요
     
     병풍바위를 끝으로 산행은 마감됩니다
     용봉사로 내려 갑니다
     
     [용봉사]
     용봉사가 나무 사이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용봉사]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은 용봉사가 산행에 지친 산객들을 맞아 줍니다
     
     [용봉사]
     용봉사 뒤로 병풍바위가 보이는데, 용봉사를 감싸고 있어서 '병풍바위'라고 하는듯하군요
     용봉사의  역사는 알수 없다고 솔직히 안내판에 써놨으며, 수덕사의 말사라고 합니다
     
     [용봉사에서 내려 가는 길]
     우측에 '마애석불'이 있습니다
     
     [마애석불]
     불상의 오른 쪽에 '정원(貞元)15년'이란 글이 새겨져 있어, 신라 소성왕 원년 (799년)에
     만들어 졌다는 걸 알수 있다는군요
     '마애불상'라는 말도 쉽게 표현 할수 있는데 어려운 말을 계속 쓰고있어 좀 그렇군요
      암벽의 단면을 애[崖]라고 하고, '마'는 한문으로 [磨]이니 갈고 다듬는다는 의미이죠
      그러므로 '암벽의 단면을 음각으로 조각한 불상'이라는 말이 마애불상이니
      얼마던지 이해하기 쉽게 표현 할수 있는데도 계속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신비주의?
     
     龍鳳寺 일주문을 나섭니다
     현판에 '용봉' 한문을 그냥 보면 알아 볼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곳이 용봉산이라 '용봉산 용봉사'라고 대략 추측해서 넘어 가지 
     다른 곳에 저렇게 써 놓으면 알아 보는 사람이 별루일겁니다
     불교도 일반인들에게 가깝게 접근 할려면 어려운 한문부터 쉽게 고쳐 써야 할것입니다
     
     휴양림이라고 입장료를 받는다는군요
     
     아기자기해서 재미있었던 용봉산 산행을 마침니다
     산행과 휴식을 모두 합쳐 약4시간이 걸렸습니다
     
     山은 어느 山이나 나름대로의 멋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동네 이름도 심상치 않은 禮山, 德山, 瑞山, 洪城에 걸쳐있는 "龍鳳山"은
     언제나 잊혀지지 않을 듯합니다
     
     
     오늘 용봉산 산행 개념도입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홍어와 무인도☆ 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What Colour Is The Wind - Charlie Landsbor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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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사항은 언젠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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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교산 산행과 메뚜기 잡이 

          錦繡江山에 계절의 흐름을 알리는 가을이 깊어 가니
          열차를 타면 종착역까지 가고 싶어지게하고
          산행을 하면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무조건 오르고 싶어집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母校 경기남부교우회의 정기산행에 참여했습니다
          이런 모임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왔고, 특별한 관심도 없었지요
          또 어렴푸시 알았어도 나와는 상관없는 그런 집단들의 행사라 여겼었습니다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이면 만남이 있고 관계가 있습니다만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 하나로 
          만나고 함께하는 교우회의 여러 모임들이  각 지역별로도 있어 
          삭막한 세상살이에 다양한 오아시스로 찾아 옵니다

     
     깊어 가는 가을날
     아침 일찍 아파트를 나서 광교산으로 향합니다
     푸른 하늘에서 맑은 물이 쏟아질듯한 깨끗한 아침입니다
     
     [수원 경기대 입구]
     시내버스에서 내려 일평생에 경기대를 처음 들어가 봅니다
     살다 보니 여기저기 많이 다니게 되는군요.
     특히 산행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런 경험은 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요즈음 대학들도 많은 가을행사들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겠지요
     대학시절에 맞는 인생의 최고 아름다운 날들 - 대학 축제
     
     [수원 경기대 정문]
     경기대 정문도 다른 곳에선 보기 어려운 독창적인 모양을 뽐내고 있습니다
     대학생이 된 기분으로 경기대 정문을 통과했습니다
     
     [경기대]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경기대안을 조금 둘러 보았습니다
     오전 8시 20분경이라 그런지 잘 가꾸워진 캠퍼스가 조금 한산해 보입니다
     
     [경기대]
     경기대도 규모가 제법이었고 계속 건물을 짓고있더군요
     
     [경기대]
     수원의 진산인 광교산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있는 경기대는
     광교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많이 이용되는 곳이더군요
     
     [경기대 정문 옆]
     경기대 정문 경비실옆이 경기남부교우회의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준비운동을 하며 산행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산행 들머리]
     경기대 정문 바로 옆 뒷길로 광교산 산행 들머리가 있습니다
     저는 지난번 '반딧불이 화장실'에서 출발하였는데, 오늘은 경기대 정문에서 시작합니다
     교우들이 이곳에서 출발하는 이유를 알아 봤더니, 
     승용차를 몰고 오는 사람들이 경기대 안에 주차를 안전하게 할수있기 때문이랍니다
     주차료가 하루에 3,000원(?)이라고 하는듯하더군요
     
     [광교산 등산코스 안내도]
     등산코스 안내도가 여기에도 설치되 있습니다
     다시말해 여기도 정규코스임을 알려 주는것이지요
     
     [삼거리 안부]
     '반딧불이 화장실'에서 올라 오는 길과 바로 만나더군요
     여기서 부터는 저의 [광교산-백운산 산행기]를 찾아가 보세요
     이미 광교산-백운산 종주 산행기는 썼으므로 오늘은 광교산 산행기를 쓰지않습니다
     선후배 교우들과의 야유회같은 산행이기때문입니다
     
     [형제봉으로 가는 산행길]
     광교산은 무척 평이한 '건강산행코스'입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건강산행을 할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산이라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형제봉 오르는 길]
     지난 봄에 왔을 때엔 공사중이던 계단이 완공되어있군요
     광교산에서 경사가 제일 급한 곳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곳 빼고는 경사가 완만하므로 누구나 쉽게 오를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하이힐을 신고 오르는 아가씨가 있을 정도이니...
     
     형제봉 봉우리가 보입니다
     광교산에서 암벽은 이 형제봉이 유일할듯...ㅎㅎ
     우회로도 있습니다
     
     [형제봉]
     형제봉 암벽도 아가씨들까지 쉽게 오를수 있어 모두 이 암벽을 오릅니다
     
     [형제봉]
     올라 오는 사람들을 촬영했는데, 짧은 코스이므로 간단하게 올라옵니다
     
     [형제봉 정상]
     광교산은 늙은 肉山이라 숲이 우거져 외부 조망이 어렵습니다만,
     이곳 형제봉에 오르면 수원시내를 처음으로 조망할수 있습니다
     
     [형제봉]
     오늘 함께한 교우는 총 18명이었는데 다양한 코스로 오른 사람들과
     오후반이 있어 한자리에 모이기가 어렵더군요
     눈에 보이는 사람들끼리 우선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형제봉을 내려 가고 있습니다
     비로봉과 광교산의 정상인 시루봉을 향하여....
     
     휴식과 간식
     형제봉을 조금 지나 오른쪽 무덤있는 곳에서 휴식과 간식을....
     
     휴식과 간식
     점심식사는 산행이 끝나고 광교산에서 유명한 '보리밥집'에서 하기 때문에
     간식을 준비 하지 않았다고하는게 이렇게 많더군요.
     학교때 모두 모범생들이었는지 술도 대부분 자제하고 있어 술꾼은 좀 괴롭더군요...ㅎㅎ
     
     휴식과 간식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더니
     제수씨들과 함께 2진이 도착하더군요.
     모두 처음 만나는 제수씨들이지만 평상시 자주 만나는 사람들처럼 꺼리낌이 없는 것은
     나와 그들 신랑들과의 學緣때문이겠지요
     정치판에선 學緣, 地緣 따지지 말라하지만, 이것 빼고 사는 세상은 창문없는 집에서
     사는 것과 다름아니라고 하지요?
     선배 후배 모두 단지 같은 학교 다녔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자연스럽게 서로 믿고
     서로 돕고, 뭉칠수 있다는건 한국인들의 특징이자 문화이기도하죠
     
     [비로봉(종루봉)]
     형제봉 다음 봉우리가 비로봉(종루봉)입니다
     광교산에서 유일하게 정자가 있는 봉우리입니다
          
     비로봉 정자에는
     山中好友林間鳥, 世外淸音石上泉 이라는 漢詩가 걸려있습니다
     좋은 학교 나오신 분들은 모두 음미 할수 있는 내용이라 해석은 생략합니다
     그리고 지난 무등산 산행기에서 소개해 드렸던 '나옹선사'의 詩가 여기에도 걸려있군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비로봉에서 바라 보는 방송송신탑
     '한남정맥'의 마루금이 지나는 경기도의 대표적인 산 - 광교산
     안성의 칠장산에서 한남정맥이 독립하여 북진하여 영동고속도로 마성터널 위를 지나
     다시 서북진하여 도마치고개를 지나 광교산의 형제봉으로 온 '한남정맥'은
     이곳 비로봉, 시루봉, 통신대, 백운산을 찍고 광교헬기장을 거쳐 지지대고개로가
     모락산, 인천의 계양산, 김포반도의 끝 문수산까지 뻗어 그 수명을 다합니다
     
     비로봉을 내려가 시루봉으로 향합니다
     
     [토끼재]
     비로봉을 지나니 '토끼재'가 나옵니다.
     옛날엔 예쁜 토끼들이 넘나들었겠지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광교산은 능선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무조건 상광교리이더군요
     14번째 광교산 정기산행이라 산행능력에 따라 산행하고 
     최종 집합 장소는 이미 자기들끼리는 다 알고 있더군요
     이곳에서 전날 '주님'을 너무 가까이 하셨던 교우들이 
     점심 준비를 미리 하겠다는 핑개로 하산을 먼저 하고...ㅎㅎ '酒님'입니다
     그래서  미리 하산하는 교우들과
     '오후반' - 즉, 산행은 않고 음식점으로 직접와 어울리다 가는 교우들의
     최종 집합장소가 상광교리에 있는 어느 보리밥집이더군요. ㅎ
     
     시루봉을 오르며 제수씨들
     사진이 잘 나오면 올리고 별루이면 올리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올려주고 괜히 안좋은 소리 듣는건 아닌지...
     (포토삽 처리 한게 이거에요..ㅎㅎ)
     
     [광교산의 정상 - 시루봉]
          
     [광교산 정상석]
     
     광교산 시루봉에서 바라 보는 관악산
     
     광교산 시루봉에서 바라 보는 청계산
     다음 달 11월 정기산행은 광교산-청계산 종주를 한다고합니다
     10시간 이상을 걸어야하는 긴 코스입니다만 가볼만한 코스이니 모두 도전하세요
     경기남부가 아니라해도 누구나 참가 할수 있다고하니 다른 곳에 사시는 교우들도
     시간 나시면 도전해 보세요
     저의 산행기 [광교산 지지대 고개에서 청계산 트럭터미날까지]를 참고하세요
     
     
     시루봉을 내려 가고 있습니다
     
     [노루목 대피소]
     
     [억새밭]
     억새밭에 억새는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옛날에는 많았는데 산림이 우거져 억새는 거의 사라졌답니다
     
     [억새밭]
     '억새밭'의 돌탑과 방송송신탑이 어우러져 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여기서 상광교리로 하산을 하는데, 바로 앞길로 내려 가지 않고
     통신대 방향으로 조금 가다가 좌측으로 난 경사가 완만한 오솔길로 가더군요
     무릎이 저처럼 신통치않으신 분들에게는 좋은 하산로가 되었습니다
     
     억새밭에서 상광교리로 내려 가는 길에 있는 소나무
     한번 앉아보고 갔습니다
     
     [마당바위]
     휴식과 전망을 함께 할수 있는 마당바위가 있읍니다
     광교산도 더 다녀 봐야 좋은 곳을 알수 있겠더군요
     
     [상광교리]
     도심 속에 아직도 이런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 자연 그대로를 자랑하며
     산객들의 메마른 감성을 자극합니다
          
     [다슬기 화장실]
     수원 광교산의 유명세보다 더 유명한곳이 '반딧불이 화장실'과 '다슬기 화장실'입니다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를 진일보 시키는 계기가 된 화장실입니다
     '다슬기 화장실'은 처음 와 봅니다. 화장실 내부는 특이한 것은 없고..그냥 화장실입니다 ㅎㅎ
     
     점심 식사 음식점
     보리밥집인데 손님으로 발디딜 틈이 없더군요
     
     집행부가 한쪽편에 예약을 미리 해 놔서 18명이 한자리에서 즐길수 있었습니다
     경기남부지회 회장님의 인사말씀과.....
     오늘 가장 많은 교우들이 모였다고 싱글벙글하면서....더 발전 시키자고.....
     다음 11월 산행은 '광교산-청계산 종주'를 하자고....
     음식 맛도 있고 함께하는 술한잔도 더욱 즐거웠습니다
     메뚜기 잡이 이야기가 나와서 식사후 메뚜기 잡으러 가자고 의견투합되었습니다
     그래서 건배의 구호를 "메뚜기~!!"하며 건배 제의를 하면
     모두가 "뚜기~뚜기~뚜기~!!"라고 하며 건배를 했습니다
     앞으로 경기남부교우회의 건배 구호는 
     "메뚜기~~!!"
     "뚜기~!! 뚜기~!! 뚜기~!!"로 하기로 했으며 특허청에 특허등록을 하기로했습니다
     
     점심식사후 고현초등학교 앞으로 갔습니다
     
     저는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으나
     여하튼 '고현초등학교 앞'의 들판이 메두기 잡이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메뚜기가 나를 잡지 안을까? 의심하면서 정말로 오랜만에 메뚜기 잡으러 나갔습니다
     메뚜리를 직접 잡아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 오래 된듯합니다
     농약으로 메뚜기가 사라졌다가 요즈음 유기농으로 다시 메뚜기가 나타났지요
     
     뿔뿔이 흩어져 메뚜기를 잡았습니다
     교우들 대부분의 생활권이 수원쪽이라 메뚜기잡이 경험이 있는 교우들이 좀 있더군요
     
     제수씨들이 자주 등장하게 되는군요
     메뚜기는 안잡고 사진에 열중하면 안되는데...ㅎㅎ
     
     바보같은 메뚜기들이 저에게 잡혔습니다
     예상했던것 보다 많이 잡았지요?
     후배들은 많이 잡아서 안주거리로 충분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이 시대에 메뚜기가 도심 속의 이런 논에 살고 있고, 또 잡히는게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서울 촌놈이니...
     
     들판 옆 보도에 등산용 돋자리를 깔고 술판을 벌였습니다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길가에 앉아서 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도심 속에서 이런 이벤트는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냥 앉아 있기만해도 깊어 가는 가을이 아까울 정도인데
     메뚜기를 직접 잡고...
     길가에 퍼질러고 앉아서....
     잡은 메뚜기를 안주 삼아 마시는 맥주는 정말 흐~음~   상상만 하시라~~!
     
     잡은 메뚜기를 볶아 왔습니다
     이 중에 제가 잡은 것도 몇마리 있을 겁니다
     공해에 찌들지 않은 살아있는 메뚜기를 이런 곳에서 이렇게 먹다니....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경기남부교우회는 앞으로 무궁한 발전이 있을것입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여흥을 즐겼습니다
     다른 곳에 사시는 교우님들!~
     부럽지요? 부러우면 이곳으로 이사 오세요~
     
     앞의 횟집에서 회를 시켜 쇠주에 쏘맥에....
     분위기가 너무 좋아 취하지도 않더군요
     
     밤이 깊어 가는데도 교우님들과의 만남은 끝날줄 몰랐습니다
     함께한 교우님들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끈적끈적한 緣을 이어 가자구요~
                즐거웠어요~~

              낮과 밤을 묶어 하루라 하듯
              즐거움과 괴로움을 묶어 인생이라한다
              이렇게도 살아 보고
              또 저렇게도 살아 보세~!!
파란문印   ★살며..느끼며..홍어와 무인도☆ 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가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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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모스가 뭔 기분이 그리 좋은지 온통 싱글벙글합니다
     분명 가을은 또 사랑에 허기진 처녀 총각처럼 찾아 왔습니다
     그냥 보내기 아쉬운 가을에 가을의 색깔을 수놓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1944년도에 발표되고 Charlie Landsborough가 불러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게기를 만들었던 곡 
     "What Colour Is The Wind..."를
     영어 실력없는 제가 나름대로 번역을 해서  들려 드림니다
     앞 못보는 한 어린이가 세상을 상상속에 그리는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곡입니다..
     "아빠!~ 바람의 색깔은 뭐에요?"

        What Colour Is The Wind....

                           Charlie Landsborough

What colour is the wind                 바람은 무슨 색깔이에요?
Daddy                                   아빠
Is it yellow red or blue                노랑, 빨강 아니면 파랑?
When he's playing with my hair          바람이 내 머리칼을 흔들때
Daddy                                   아빠, 그건 아빠가 내 머리를
Does he do the same to you              쓰다듬을때와 같은거에요?
When he's dying does                    바람이 약해지면
his colour fade                         색깔도 없어지는거에요?
Is a gentle breeze a lighter shade      부더러운 훈풍과 그림자는
Just like his friend the sea            그 친구 바다를 닮았어요?
The wind feels blue to me               바람은 푸른색처럼 느껴져요
When the blackbird starts to sing       검은새가 노래를 시작하면...
Daddy                                   아빠, 
Do the flowers hear him too             바람이 마음을 쏟아내며 노래할때
When he's pouring out his heart         꽃들도 역시 그 노랠 듣겠지요?
Daddy                                   아빠
Tell me what do roses do                장미꽃은 어떻게 하는지 말해줘요
Do they cast their scent upon the air   하늘로 그들의 향기를 뿜어낼때...
And is fragrance just a rose in prayer  한송이 장미가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Giving thanks to God above              감사 기도를 드릴때 향기가 나나요?
For the blackbird's song of love        검은새의 사랑 노래를 위해
Blow wind  blow                         바람아 불어다오~ 
Wild and free My Daddy says             강하고 자유롭게 불어 다오
You're a lot like me                    아빠는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 말하죠
I know each colour                      난 각각의 색깔과 
Its shape and size                      모양과 크기를 알고있죠
I know that grass is green              잔듸가 초록색이란것도 알지요
Daddy                                   아빠
I've touched it with my toes            난 발가락으로 잔듸의 색깔을 느껴요
And snow is purest white                그리고 눈은 정말 하얗죠
Daddy                                   아빠
I've felt it with my nose               눈 색깔은 코로 느껴왔었지만
But my favorite colour has to be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The colour of your love for me          나를 사랑해 주시는 아빠의 사랑색깔
And Daddy                               그리고 아빠
I've been told                          사랑의 색깔은 언제나 황금색이라고
That love is always gold                늘 들려 주셨죠


     가을이면 
     마음도 몸도....
     지천에 나부끼는 코스모스도...
     흔들리는데
     가을의 그런것들을 너무도 단순 명쾌한 필치로 표현해준
     황의천시인의 詩 "흔들지 마라"를 소개해 드림니다
     알차고 멋진 가을 보내시길 바라며.....
 
          흔들지 마라
                         황의천
          흔들지 마라
          흔들지 않아도 흔들린다
          강변에 나부끼는 갈대처럼
          가을엔 흔들리지 않은 것이 없다
          강물도 흔들리고
          강물에 비춘 달도 흔들리고
          달에 잡힌 흰 구름도 흔들린다
          흔들지 마라
          흔들지 않아도 떨어질 날 멀지 않다
          빨간 홍시는 까치밥 되고
          푸른 배추잎은 무서리에 삭고
          빈 밤송이는 밤나무 아래로 떨어진다
          마음이 약하다
          독한 가시나무도 가시를 잃었다
          어설픈 밤 그림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흔들리는
          가을밤이 서럽다
          흔들지 마라  
          흔들릴 일만 남았는데
          풀죽은 은행잎도
          물들만 하면 떨어진다 
          저 한량한 코스모스도
          제 자리에 못 박은 채
          흔들리다 흔들리다 하루를 보낸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홍어와 무인도☆ 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What Colour Is The Wind - Charlie Landsbor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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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無等을 기다리며 無等山을 오르다  

          너와 나 비교해 무었하랴
          온갖 욕심 다 가지고 살아 가면서 아닌척하는 사람들아 ~
          無等山으로 가라
          손바닥 안에서 넙죽넙죽 대며 잘난체하며 사는 사람들아 ~
          無等山으로 가라
          그 곳엔 等數가 없으니 너와 나 비교되지 않는다
          똑같이 한걸음 한걸음 오르지 않고는 無等을 알수 없고
          똑같이 땀방울 흘리지 않고는 오른이의 감상을 접할수 없도다
          無等山 장불재에 펼쳐지는 육천오백만년의 비밀
          그 비밀이 '無等'이로다
                                 파란문

     금년도 벌써 시월로 접어 들어 어떤이들은 가을맞이로 싱글벙글하고
     어떤이들은 가는 시간을 매몰차게 느껴며 한순간 한순간을 아끼려합니다
     지난달에 이어 이번 시월에도 모교 산악회 '徽山會'를 따라
     民主化의 聖地 - 빛고을 光州의 鎭山 無等山을 찾아 나섰습니다
          
     [무등산 공원관리 사무소 - 원효사 앞]
     무등산의 높이가 1186.8m이라 하니 무척 높은 산입니다
     1186.8m의 산을 오르려면 보통 실력으로는 많은 시간이 걸리며, 힘도 듬니다
     그러나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는 광주시내의 교통체증을 어렵사리 뚤고, 무등산을 마냥 올라갑니다
     3일간의 황금연휴 첫날인 10월 3일(금)이라 교통체증으로 12시가 되어서나 광주에 도착하여
     시간이 없어 등산코스를 단축시킬려는 집행부의 의도가 있는지 의심할 정도로
     무등산 중턱까지 버스는 계속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이곳 - 공원관리사무소 - 원효사 앞이 일반 등산인들을 위한 산행 들머리였습니다
     꽁짜로 해발 450m정도까지 올라 와서 산행을 시작하니 한결 가벼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1186.8m를 낮 12시에 출발하여 등정하고 서울까지 다시 간다는건 누가봐도 무리였는데
     이렇게 450m를 깍아주니 북한산 비봉 정도 오르는 기분으로 올라 갈수 있었습니다
     
     [산행 들머리 - 공원관리 사무소 앞]
     산행 들머리에서 보이는 무등산이 그 높이와 크기를 자랑하듯 폼잡고
     '흐흠~ 아해들아! 빨리 오너라~'하는듯합니다
     '짜씩~! 無等이라 해 놓고  오르기도 전에 벌써 等數 메기며 사기를 죽이는군~'
     '그러나 오늘 분명 너와 나 無等임을 증명하고 가리라~!'
     
     [준비운동]
     약 120여명의 교우들이 산행 준비 운동을 합니다
     無等山과 無等이 되기 위해선 준비운동을 많이 해야 겠죠? 
     
     [준비운동]
     무등산 중턱에서 하는 체조는 여느 때와 달리 신중해 보이는듯했습니다
     無等山과 맞짱뜨기 위해...
     
     [공원관리소 앞 이정표]
     오른쪽 장불재로 올라 무등산을 한퀴 삥 돌아 규봉암을 거쳐 
     좌측 꼬막재로 내려와 다시 이곳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입니다
     
     [산행도]
     붉은 선이 오늘 산행코스입니다
     
     [산행 들머리]
     교통체증으로 이곳 도착이 다소 늦어 서둘러
     무등산 산행 들머리를  출발합니다
     무등산은 정상까지 자동차 도로가 개설되있어 차도를 따라 올라 갈수도 있더군요
     등산로는 앞에 보이는 자동차가 있는 곳의 좌측으로 나 있습니다
     12시 15분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등산로 입구]
     車路가 아닌 등산로는 좌측으로 나있습니다
     대부대가 이동을 시작합니다
     다른 여느 산악회와는 차림새부터 차이가 납니다.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핵교 출신 다웁게 깔끔하고 세련돼 보임니다만
     산에 가면 산을 잘 타야지, 산에 가서 페션 자랑이나 수영실력 자랑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산행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유심히 지켜 보겠습니다. ㅎ ^*^
     
     등산로는 車路를 가로질러 감으로 車路로 가는것보다 시간은 많이 단축됩니다만
     경사도가 있어 힘은 많이 듭니다
     
     [늦재 삼거리]
     등산로를 조금 오르면 돌아오는 車路를 다시 만나고
     車路를 건너 다시 등산로로 접어 듭니다
     
     [늦재 삼거리] 해발 490m
     나중에 알았습니다만 등산코스는 무척 단순했습니다
     공원관리사무소에서 '동화사터'까지가 경사가 있는 오르막이었고
     '동화사터'에서 '중봉' - '장불재'까지는 거의 평지였으며
     장불재에서 '꼬막재'까지는 무등산의 옆구리를 질러 가는 코스이고
     꼬막재에서 다시 공원관리사무소까지는 내리막이었습니다
     길찾기도 쉬워 길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었습니다
     단순 간단한 무등산 등산코스 - 어쩌면 단순 무식한 코스란 느낌도 들었습니다
     
     동화사터까지는 제법 경사가 가파랐습니다
     그러나 선배 일수록 잘 오르시는데
     후배들이 오히려 땀을 더 흘리는 듯했습니다
     휘산회에 참가하시는 선배님들은 오랫동안 등산을 즐겨 오신 경험이 많은 분들이실테고....
     후배들 - 특히 7자 기수들이 땀을 많이 흘리는 듯했습니다
     아마도 제 생각엔 7자 기수들은 한참 세상살이에 몰두해야하는 사십대 나이이다 보니
     평상시 운동보다는 벌어 먹고 사는 문제에 치중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임에도 선배님들 보다 더 힘들어 하는듯합니다
     그래도 '휘산회'에 참가하는 후배들은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확신합니다
     세상살이에 바쁜 틈을 아껴 이런 산행에 참가하려는 그 의지가 보통 정신상태가 아니고는
     저의 경험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산행의 즐거움' - 표현이야 쉽지만 젊었을 땐 쉽고 간단한 얘기가 아니죠
     늙어 봐야 젊음의 의미를 안다는게 산행을 해봐야 더욱 절실히 느껴진다는군요
     
     여느 산에나 소위 '너덜'이라고 하는 '너덜겅'은 있습니다만
     무등산엔 더 많은 듯했습니다
     너덜을 조금 정비해 등산로를 만들어 놔 걷기에 도움이 많이 됬습니다
     
     無等이란 반야심경의 절대평등인 無等等에서 유래된것이라고 하는데 
     평등이상의 평등 즉, 完全한 平等을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完全한 平等을 향한 노력
     독재정권에 맞짱 뜬 光州市民들의 平等主權을 향한 투쟁은
     세계사에도 남는 자랑스런 민주화 운동이라 생각됩니다
     빛고을 光州의 아픔과 기쁨을 감싸며 묵묵히 우뚝 서 있는 무등산은 
     산 모양새처럼 어머니와 같은 넉넉한 포근한 산인 듯 하더군요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100만이 넘는 인구가 있는 도시내에 
     이처럼 1,100미터가 넘는 산이 있는 곳은 그리 흔치 않답니다. 
     
     [동화사 하단]
     1시 10분에 이 곳에 올랐습니다. 그러니까 이곳까지 55분이 걸렸군요
     
     [동화사터]
     동화사 하단이라는 이정표에서 15분 정도 오르막을 올랐습니다
     肉山의 숲터널을 뚤고 오르느라 외부 전망은 커녕 하늘 한번 쳐다보지 못했는데
     이곳 동화사터에 오니 가슴이 확 터이며 天地가 열리는 듯합니다
          
          [동화사터 이정표]
          오늘 등산 오르막 고생은 여기서 1시간 10분만에 싱겁게 끝나더군요
          하지만 트랙킹이 약 다섯시간 정도 더 있으니 힘들기 보다는 다리가 아프더군요
          동화사가 얼마나 큰 절이었는지 관심은 '동화사'라는 절이었습니다만
          어느 곳에서도 설명 안내판을 볼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동화사터에서 바라 보는 빛고을 광주시내]
     光州市가 한눈에 들어 옵니다
     光州廣域市의 면적은 501.31㎢라 하며  인구는 142만명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큰 도시라는군요
      光州 사람들은 여러 분야에서 자부심을 많이 갖고있어
      '전라도 광주'라고 말하는 걸 매우 싫어 한다는군요
      光州는 光州이지 '전라도 광주'가 아니라는거죠.
      그러면서 서울 사람들에게 '경기도 서울'이라고 하면 좋겠냐?하더군요 ㅎㅎ 
     한때...지금도 좀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地域感情이 팽배하던 시절에
     光州나 전라도 사람들 중에 부모님 고향은 전라도인데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자신은 서울사람이라고 술먹다 우기는 사람들이 좀 있었죠?
     그때 제가 말 한마디에 조용하게 만들었는데....ㅎㅎ
     "진돗개가 서울 오면 서울개 되냐?  진돗개는 서울에서 태어 나도 진돗개라구~"
     
     ['동화사터'라는 곳에서 바라 본 '중봉'과 무등산 정상]
     동화사는 아까 '동화사 하단'이라는 곳에서 걸어 이곳까지 15분 걸렸을 정도로 먼데
     이곳에서 다시 사진의 저 앞 중간의 다소 흰색을 띄는 억새가 많은 조그만 봉우리까지
     동화사가 있었다니 얼마나 큰 절이었나 짐작케 했습니다만.....
     
     동화사터라는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뒤 따라 오는 분을 자연스럽게 촬영해 저의 산행기에 올립니다
     저의 산행기엔 개인 사진은 잘 올리지 않는다는것은 이미 아시겠지만
     이번 '무등산 산행기'에 특별히 이 사진의 주인공들을 소개해 드림니다
     특별히 이분들을 올리는 이유는 아마 몇몇분들만 아시리라...ㅎㅎ
     "여인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죽을수 있고
     사나이는 자기를 인정 해 주는 이를 위해 죽을수 있다" ㅎㅎ
     
     중봉을 향하여 갑니다
     앞에 방송송신탑이 있는 봉우리가 '중봉'입니다
     사진에서 보시는바와 같이 무등산은 중봉과 좌측의 천왕봉이 있는 무등산 정상으로
     크게 두 봉우리로 나눌수 있을듯합니다
     
     [동화사터]
     옛날 '동화사'가 얼마나 큰 절이었는지 중봉이 있는 이 산마루는 '동화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랍니다. 산에 억새가 널려있으면 그곳은 불이 났었던 곳이랍니다.
     물론 전부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거의 대부분 그렇다고 보면 됩니다
     이곳은 분명 동화사라는 엄청 큰 규모의 절이 있었고, 그 절은 화재로 소실 되었을
     가능성이 거의 100%일것입니다.
     
     중봉 근처에 와서 뒤돌아 보았습니다
     옛 동화사터에 구름지어 피어있는 억새가 부귀영화 흥망성쇠를 알려 주는듯하군요
     이곳에 언젠가 산불이 났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방송 송신탑]
     중봉에는 방송송신탑이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또한 등산객들의 위치도 알려주고있습니다
     1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으니 여기까지 1시간반이 걸렸군요
     
     [중봉의 송신탑이 있는 곳에서 바라 보는 무등산 정상]
     무등산은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혁혁한 전과를 올린 '김덕령 장군'으로  유명한 곳이더군요
     김덕령장군을 '무등산의 사나이'라고 한다는군요
     앞에 보이는 무등산과 중봉 사이의 원효계곡 중간쯤에 "주검동"이라는 곳이 있답니다
     이곳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2년전인 1590년에 이미 國難을 예견하고 전투태세를 갖추기 위해
     김덕령 장군이 이곳에 세개의 대장간을 만들어  칼과 창, 화살, 갑옷등 무기를 만들고
     장정들을 모아 전투훈련을 시킨 곳이랍니다
     '주검동'은 죽음을 의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를 만들었다는 鑄劍洞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계곡에는 쇳덩어리가 출토된다는군요
     또한 "광주읍지 고적조"라는 책에는
     "주검동은 무등산 서석대 밑 계곡에 있는데 김덕령장군이 거사할 때 여기서 칼을 치니 
     뇌성과 같은 소리가 산에 울리고 흰 기운이 계곡에서 하늘에 솟아올라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여기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답니다.
     
     [무등산 정상]
     무등산 정상을 줌인하였습니다
     무등산 정상은 天王峰, 地王峰, 人王峰등 세개의 봉우리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벌써 눈썰미가 있는 분들은 봉우리 이름에서 무등산은 "天地人"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 차렸을 것입니다. 오로지 제 개인 생각입니다만....
     그렇습니다. "하늘과 땅, 그 어느 곳에서도 인간은 평등"하다는걸 상징하는 듯 합니다
     한국인들의 애창곡 '울고 넘는 박달재'에 나오는 천등산. (천둥산으로 아는 분들도 많더군요)
     제천 넘어가는 박달재 고개 위에 있는 이 천등산은 노래 때문에 '천등산'만이 있는 것으로 알고있으나
     天登山, 地登山, 人登山 세개의 산이 서로 삼각형을 이루며 天地人山으로 서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이 우리나라의 '천하명당'중에 하나라고 옛부터 首都를 세울 곳으로 수없이 검토된 곳이랍니다
     여기 무등산의 정상 봉우리도 天,地,人을 의미하니 예사스럽게 보이지않는군요
     
     중봉의 방송송신탑에서 멀리 장불재 위 송신탑을 바라 봅니다
     무등산이 높고 전라남도의 중앙부에 있어서인지, 모든 방송국의 방송송신탑과
     이동통신회사들의 무선통신 송수신탑들이 모두 모여 있더군요
     自然美를 심히 홰손시키고 있습니다만, 이정표 역활 많큼은 확실히 하고 있더군요
     
     중봉의 남쪽면을 즐기는 사람들
     무등산의 증심사와 조선대학교가 있는 방향을 바라 보았으나
     엷은 안개로 잘 보이지 않는군요
     
     중봉의 방송송신탑에서 바라 보는 경관
     멋쪄부려~   우웅이 아~~범 멋쪄 부려~
     "갈대와 억새"
     구분 못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오늘 이 기회에 확실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갈대와 억새"는 모두 "외떡잎식물 벼목 벼과의 여러해살이 풀"입니다
     
     "갈대와 억새" 차이점은
     "억새"는 들판이나 산에서 자라며 머리(꽃수술)가 비단결 같이 부더럽고 하얗습니다
     그리고 키가 1~2m로 갈대에 비해 많이 작습니다. 무등산에 있는 것은 모두 '억새'입니다
     "갈대"는 냇가, 습지, 모래밭에서 주로 자라며 키가 2~3m로 사람 키 높이 보다 높아
     억새보다 훨신 크고, 머리(꽃수술)가 적갈색을 띄고 있습니다.
     영어로 reed라고 하는게 갈대이며, 줄기는 수공예품이나 돗자리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합니다
     
     눈부신 억새밭에서.....
     무등산의 억새밭에 오니 하얀 눈이 내린 겨울 같았습니다
     햇빛에 빤짝이는 억새꽃을 보니 정 일근 시인의 詩가 생각 납니다

                           가을 억새 
                                   정일근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가스등 켜진 추억의 플랫홈에서 
                    마지막 상행선 열차로 그대를 떠나보내며 
                    눈물 젖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어둠이 묻어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터벅터벅 긴 골목길 돌아가는 
                    그대의 뒷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 없는 시대의 이별이란 
                    코끝이 찡해오는 작별의 악수도 없이 
                    작별의 축축한 별사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총총 
                    제 갈 길로 바쁘게 돌아서는 사람들 
                    사랑 없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이제 누가 이별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겠는가 
                    이별 뒤의 뜨거운 재회를 기다리겠는가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중봉의 군부대입구 삼거리 봉우리]
     무등산은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수 있는 평이한 산입니다
     칠천만년의 풍상을 격으며 살아 온지라... 산은 늙어서 어느 곳이나 모진데 없고, 
     산은 온통 둥글고 부드럽습니다만 
     몇곳엔 질긴 수명을 자랑하며 솟아 있는 늙은 柱狀絶理가 서 있습니다
     
     [중봉 군부대입구 삼거리]
     중봉 군부대입구 삼거리에서 무등산 정상을 바라 봅니다
     天地人 세개 봉우리가 있는 정상부 '서석대'와 오른쪽 '입석대'가 있는 봉우리가 잘 보입니다
     앞에 나있는 길이 있는 곳엔 옛날에 군부대가 있었는데 산객들을 위해 철거했다고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고선 자화자찬하는 안내판이 있는 곳이 실제 '중봉'의 봉우리인듯합니다
     
     [중봉 군부대입구 삼거리에서 뒤돌아 본 중봉의 방송 송신탑]
     언제 가파른 오르막을 올랐는지 잊어 버리고
     펼쳐지는 억새평전을 감상합니다
     이곳에 못 오신 분들은 이 산행기를 보며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이번 기회에 따라 갔다 오는건데...닝기리~" ㅎㅎ
     "다음 천관산 산행에는 꼭 따라 붙어야지~!"라고 결심 맹세하고 있습니까? ㅎ
     11월 첫번째 일요일에는 이 근처 '천관산'을 간답니다
     저도 참가 할 예정이니 많이 오세요~~
     
     [중봉 군부대입구 삼거리에서 내려다 본 증심사, 조선대 방향]
     토끼등 중머리재에서 오는 길이 이곳에서 만나더군요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중봉 군부대입구 삼거리에서 가야할 옛 군부대 자리 억새밭]
     無等山은 백제이전 까지는 무돌이나 무당산으로 불리웠고,
     통일신라때는 무돌의 이두音인 무진악 또는 무악으로 표기하다가,
     고려때 부터 瑞石山이라는 별칭과 함께 無等山으로 불리게 된것으로 본답니다
     先人들의 무등산 산행기는 대부분 遊瑞石山記로 되있습니다
     
     [중봉 군부대입구 삼거리에서 무등산 억새길]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평화롭습니다. 
     감상을 하며 산행을 해야하는데 무조건 전진만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 억새길은 장불재에서 바라 보니 거대한 '댐'처럼 보이더군요
     기억해 두셨다가 제 말이 맞는지 확인해 보세요~~기억력 테스트
     
     옛 군부대터를 건너와 중봉 군부대입구봉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억새와 함께 부더러운 늙은 능선이 평화롭군요
     무등산이 無等을 나타내 주는 듯.......
     
     [장불재 가는 길]
     중봉에서 옛군부대터를 건너 오니 공원관리사무소 입구에서 오는 車路를 만납니다
     많은 산객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장불재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중봉 능선]
     지나 온 억새 길이 '댐'같아 보이기 시작합니다
     
     [장불재 가는 길]
     초등학생들까지 무리를 지어 장불재까지 올랐더군요
     완만한 차로를 따라 15분정도 갑니다
     
     [장불재]
     호남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장불재가 나타납니다
     
     [장불재]
     이 고개는 무등산의 여러 곳으로 흩어져 가는 고개이더군요
     오른쪽이 '스님 머리'를 닮아 '중머리재'라고 하는 증심사로 가는 고갯길로 가는 길이며
     직진이 호남정맥길인 '백마능선'과 '안양산'으로 가는 길이며
     왼쪽이 '지공너덜'과 '규봉암'으로 해서 꼬막재, 공원관리 사무소로 돌아 가는 길입니다
     
     [장불재]
     장불재는 한자로 "長佛재"입니다. 
     장불재는 무등산을 찾는 사람들의 휴식처 공원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더군요
     해발 900m 이니 정상까지는 120m 정도의 높이로 더 가야 겠습니다
     불교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長佛재'에서 간단한 점심 식사와 휴식을 취했습니다
     교우님들은 각 기수별로 뿔뿔이 흩어져 제각각 산행과 휴식, 식사를 하더군요
     저는 무등산을 감상하며 사진 촬영을 하느라 외톨이로 산행을 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산행을 하면 잡담하느라 산행기를 쓰는데 막대한 지장을 주기 때문에
     중요한 곳에서는 '홀로 산행'을 하고 그냥 놀때에만 어울릴수밖에 없습니다
     
     [장불재]
     장불재에서 바라 보는 무등산 정상부
     無等山이 있는 자리는 원래 거대한 '湖水'였답니다
     육천오백만년전 호수에서 엄청난 요동을 치며 火山이 솟아 올랐답니다
     검은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고 붉은 용암이 솟아 흘러내렸답니다. 
     호수 위로 흘러 내리는 용암은 급격한 온도변화로 냉각수축하여 용암은 수직의 균열이 생기고,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을 겪으며 지금의 無等山과 瑞石臺, 立石臺, 廣石臺(圭峰)등의  
     남한 최대의 柱狀節理帶를 만들어 냈습니다. 
     무등산은 유문암과 안산암, 석영안산암 등 화산활동 때 분출된 용암으로 이뤄져 있으며, 
     특히 석영안산암질로 이뤄진 柱狀節理帶는 해발 1,100미터를 전후해 형성이 돼 
     당시 이 일대가 호수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입니다
     화산암은 일반적으로 현무암, 즉 개스 분출로 구멍이 숭숭 난 물에도 뜨는 돌들이 주를 이룹니다만
     무등산 화산은 원자탄처럼 펑하고 폭발한것이 아니라 호수에서 용암이 분출되며
     호숫물로 바로 냉각수축하여 쌓여지며 견고한 석영안산암이 주를 이뤄
     瑞石臺, 立石臺, 廣石臺(圭峰)등의 柱狀節理帶가 만들어 질수 있었답니다
     오늘 무등산의 역사와 지질등 별의 별것들을 다 공부하지요?
     이런 걸 저는 어떻게 잘 아느냐구요? ㅎㅎ
     제가 우리나라 최대의 모 광업회사 해와자원개발실에 근무한적이 있어 지질에 대해
     쬐끔 줏어 들은게 있습니다. 그래서 자료 검토를 거쳐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瑞石臺]
     瑞石臺와 立石臺는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 늙어서 온몸이 부실해 고사위기에 놓여있답니다
     그래서 주로 희귀 동식물들에게나 지정하여 국가가 관리하는 '천연기념물'로 돌덩어리인
     瑞石臺, 立石臺를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늙어 비틀여져 가는  瑞石臺, 立石臺에 일반인 접근금지를 시키고, 
     여러 보호망 시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갈수 없어 할수 없이 줌인하여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瑞石臺가 정상부에 있어 고려시대 이후 상당 기간을 무등산을 瑞石山이라했으며
     수많은 先人들이 무등산 산행기를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1533(중종 28)~1592(선조 25).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의병장으로 
     임진왜란 때 6 0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싸우다 전사한 고경명(高敬命)장군이 쓴
     「서석 유람록遊瑞石錄」이 유명합니다
     또한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茶山 정약용선생이 쓴 遊瑞石山記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저의 이 山行記도 후대에 유명해지겠죠? ㅎㅎ
     
     [立石臺]
     瑞石臺와 立石臺를 보호하기 위한 공사로 가까이 가 볼수 없어 무지무지 아쉬웠습니다
     이제 언제 다시 무등산을 찾아 올지 모르기에 왠만하면 출입금지를 무시하고 갔다 오려했습니다만
     무단으로 들어 가다간 벌금이 오십만원이라고 경고하고 있어 돈이 아까워 포기했습니다 ㅋㅋ
     우리나라에는 한탄강과 포항, 제주도 중문 앞 바다 등등 여러 곳에 주상절리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柱狀節理帶중에는 뭐니뭐니해도 금강산 해금강의 총석정이 최고라고하죠?
     그곳에 저는 못 가봤습니다만 사진과 '겸재 정선'선생의 그림으로 봤습니다
     송강 정철선생이 쓴 그 유명한 '관동별곡'에서 이렇게 총석정의 柱狀節理를 노래하죠
     고등학교 고문시간에 골머리를 아프게 했던 송강 정철선생의 글 소개합니다
     
     좋은 학교 나온 사람들은 모두 뭔 뜻인지 알겠지만, 
     불행이도 핵교 때 시간이 없어 공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실력없는 제가 해석을 해 드림니다
     친절도 하셔~
     금강산 총석정에 柱狀節理가 우뚝 솟아 있는 광경을 보고 송강 정철선생이 노래 하는 대목입니다
        금란굴 돌아들어 총석정에 올라가니, 
        옥황 상제가 거처하던 백옥루의 기둥이 네 개만 서 있는 듯하구나. 
        옛날 중국의 명장(名匠)인 공수(工垂 )가 만든 작품인가? 
        조화를 부리는 귀신의 도끼로 다듬었는가? 
        구태여, 육면으로 된 돌기둥은 무엇을 본 떴는가?
     해석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알만한 사람이 없을터이니 믿거나 말거나 제 맘대로 해석했습니다 ㅎㅎ
     (마지막줄 '구태여 육면으로 된 돌기둥은 무엇을 본 떴는가?'는 남자의 그것을 은연중 암시? ㅎㅎ)
     
     [장불재의 KBS 송신소와 KT 이동통신 송수신철탑]
     장불재에서 '호남정맥'의 마루금을 잇는 '백마능선'으로 가는 길에 있는 송수신소
     
     [KBS, KT 송수신소에서 바라 본 무등산 정상부]
     '청화산인' 이중환선생이 쓴 世界最古最高 인문과학지리서 "택리지"에 따르면 
     無等山은 산 위에 긴 바위가 가지처럼 뻗은 것이 수십개나 공중에 배열되어 있어 
     훌륭한 '홀'같고 산세가 지극히 준엄하여 온 도를 위압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홀'은 왕과 사대부가 정복 차림으로 큰 행사나 제향을 할때 손에 쥐는
     길죽한 주걱처럼 생긴 것으로서, 요즈음 군대 지휘관의 지휘봉 같은 역활을하는 것이 '홀'입니다
     왕은 옥으로 만든 '홀'을 쥐었는데 이것을 '圭'라하고 
     그 밑의 신하들이 쥐는게 '홀'이었습니다.
     앞으로 갈 규봉(圭峰)이 玉으로 만든 '홀'처럼 생긴 돌들로 이루어져 圭峰이라합니다
     규봉에서 다시 설명 드림니다
     
     [KBS, KT 송수신소에서 바라 본 중봉과 옛군부대터 능선]
     중봉에서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옛군부대터의 능선이 '댐'처럼 보이지 않나요?
     기억하세요? 중봉에서 기억해 두시라고햇는데...기억력 테스트 한다고...ㅎㅎ
     억새와 함께 멋진 풍경을 연출합니다
     이곳에 집짓고 살고 싶어요~
     
     동남쪽 방향으로 호남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백마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사진에 보이는 봉우리가 '안양산'인줄 알았는데....
     저 봉우리는 백마능선의 한 봉우리이고 '안양산'은 저 봉우리 뒤에 있더군요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시작하여 전북 장수의 장안산을 거쳐 서북쪽으로 뻗어 
     팔공산, 성수산, 마이산, 부귀산으로 이어져 무주의 주화산까지 약 65~70Km에 이르는 줄기가
     '금남호남정맥'입니다.
     '호남정맥'은 '금남호남정맥'의 무주의 주화산에서 다시 南西방향으로 내려가 내장산을 만나며 
     내장산에서 계속 남진을 하여 장흥의 재암산에 이르며, 무등산 천왕봉과  장불재를 지나
     저 백마능선과 안양산을 지나갑니다
     다시 남해를 끼고 동북쪽으로 진행을 하다 광양 백운산까지 이르는데 
     이 산줄기를 '호남정맥'이라하며 거리는 약 380~420Km이르는 긴 정맥입니다
     '호남정맥'은 섬진강을 감싸고 뻗어내리는 산줄기를 말합니다
     즉 백두대간과 호남정맥 사이에 '섬진강'이 있는 것입니다
     
     [장불재에서 줌인하여 바라 본 立石臺]
     고경명(高敬命)장군이 쓴「서석유람록遊瑞石錄」에 나오는 立石臺에 관한 글을 인용해 드림니다

     "석양에 立石庵에 닿으니 양사기(중국 명나라 초의 문인, 정치가)의 시에 이른바 十六峰藏寺라는 곳이
     바로 여기로구나 싶다. 암자 뒤에는 마치 봄에 죽순이 다투어 머리를 내미는듯하고,희디 희어서
     마치 연꽃이 처음 필때와도 같다. 멀리서 보면 마치 높은 관모를 쓰고 몸이 큰 귀인이  단정하게
     홀을 쥐고 공손히 읍하는 모습같기도하다. 가까이 가서 보면 마치 철옹성과도 같은 튼튼한 요새에 
     일만의 병사가 숨어 있는 듯하다. (중략)
     생각컨데, 혼돈에서 천지개벽이 이루어질때 기가 무심하게 엉켜 우연히 이렇게도 괴상하게 만들어진것일까?
     아니면 神工鬼匠이 바람과 우뢰를 명하여서 이런 교활한 농간을 부린 것일까?  아 아, 누가 구어냈으며
     누가 지어부어 만들었는지 , 또 누가  갈고 누가 잘라냈단 말인가? 
     아미산의 옥으로 된 문이 땅에서 솟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성도의 석순이 海眼을 둘러 진압한 것이 아닐까?  알수 없는 일이로다"

     
     [광주와 화순 경계]
     2시 20분에 장불재에 도착하여 '백마능선'을 갔다 오고
     장불재에서 머무르며 식사와 휴식을 취하고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 있다가
     3시 20분에 장불재에서 규봉암으로 갑니다
     백마능선에 있는 900m가 넘는 멋진 봉우리가 '안양산'으로 착각하게합니다
     장불재를 넘어서면 전남 화순군입니다
     이 고갯길은 단순히 등산로가 아니고 옛부터 일반인들이 광주와 화순을 넘나드는 지름길 고개였다는군요
     
     장불재를 지나 규봉암으로 가는 길은 무등산 옆구리를 가로질러 가기에
     경사가 거의 없어 걷기에는 편합니다
     
     무등산은 肉山이기에 정상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숲입니다
     
     [너덜겅]
     일반적으로 우리가 '너덜'이라고하는 말은  '너덜겅'이 정확한 말이더군요
     너덜은 국어사전에 분명히 '너덜겅'의 속어로 나와 있습니다만 모두 너덜이라하니 저도 너덜이라 합니다
     또한 사전에는 '너덜'이 '너덜거리다'의 어간으로 나와있습니다
     무등산 정상부의 柱狀節理가 무너져 산 계곡으로 솥아져 내린 것이 '너덜', '너덜겅'입니다
     
     무등산에는 너덜지대가 크게 '덕산너덜'과 지공너덜'이 있는데 
     이곳이 지공너덜지대입니다
     무등산의 동쪽은 대부분 너덜지대이며
     장불재에서 규봉사이의 모든 너덜이 "指空너덜"입니다
     
     장불재와 규봉암 사이에 조그만 암자와 약수터가 있습니다
     쉬어 가기도 좋아 사람들로 북적댐니다
     
     [지공너덜]
     너덜이 가장 많이 쏟아져 있는 곳에 "指空너덜"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설명의 내용을 간추리면 "지공대사에게 설법을 듣던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명명한것으로 지공대사가 여기에 석실을 만들고 좌선 수도하면서 그 법력으로
     억만개의 돌을 깔았다"라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안내판을 만들어 설치 할때에는 아무리 전해 오는 전설이라해도
     또 아무리 재미로 하는 얘기라 해도, 어느 정도는 사실에 가까운 안내를 해야하는데
     이것은 터무니 없는 속설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것이라고 단정합니다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지공너덜]
     '指空스님'에 대해 알아야합니다
     指空스님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인디안'입니다. 
     指空스님의 본명은 "디야나바드라(Dhyanabhadra·提納薄陀)"로 인도의 마가다국(摩竭提國) 출신입니다
     당시 인도에는 불교가 거의  몰락하고 힌두교가 성행 할때여서 
     아직도 불교를 믿는 나라로 탈출여행을 한것인데 
     그는 히말라야산맥을 넘고 원나라 수도 연경을 거쳐 충숙왕 13년(1326년)에는 고려에 들어와 
     불교를 國敎로 믿는 고려에서 ‘환생한 부처’로 극진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은 우리나라에 약3년 정도만 머물렀습니다
     바빠서 이곳 저곳 다닐 시간도 없었고 특히 당시의 교통수단으로는 개성에서 광주까지 오기도 힘들었고
     오지도 않았으며, 무등산에 들어가 굴 속에서 좌선 수도할 여가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이 양반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우리나라에 남아 있습니다
     指空의 행적은 '목은색'이 지은 '지공의 회암사 부도비명 병서'에 자세히 전합니다
     '회암사(檜巖寺)'는 경기도 양주시 등산코스로도 유명한 천보산에 있으며,
     조선시대 우리나라 최대의 절이었는데 소실되어 현재 복원하기 위한 발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공, 나옹, 무학대사의 부도와 碑가 보물로 지정되어 남아 있습니다
     기록에는 '지공스님'의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하성(蝦城)에서는 이교도들로부터 얻어맞아 이가 부러졌으며, 
     중국의 양자강 상류에 속하는 대독하(大毒河)에서는 도적을 만나서 알몸으로 도망가기도 했답니다
     그도 많고 많은 이 세상의 한 인간이었을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불교도들은 저의 이런 글들을 싫어하시겠지만 아무리 종교라 해도 뭘 좀 알고 믿어야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민족이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자화자찬하면서도 
     많이 뒤떨어지는 '인디안'을 神으로 모시는 분들이 엄청 많습니다. '석가모니'도 인디안이죠?
     
     [지공너덜]
     고려시대 말년에 지공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불법을 배운 제자가 유명한 '나옹선사'와 '무학대사'입니다
     지공스님은 우리나라에 3년 정도만 머무르고 중국의 연경으로 갔기에 이들은 지공스님을 따라가
     공부하고 지공스님이 죽자 고려로 돌아와 '나옹선사'는 공민왕의 왕사(王師)가 되고, 무학대사는
     이성계의 策師가 되어 조선 건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지요
     사실 기록으로 보면 공민왕의 王師인 나옹선사가 개성에서 왕을 보필 하기도 바빳을 텐데
     멀고 먼 무등산 산삐알 너덜지대까지 와 그 돌더미 속에서 수도 할 시간과 여유가 있었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직무유기죄'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나옹선사'가 쓴 유명한 시조는 저도 무척 좋아 합니다
     '홍어와 무인도'를 사랑해 주시는 횐님들을 위해 특별히 읊어봅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말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없다 하지 않네
        번뇌도 벗어 놓고
        욕심도 벗어 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 하네

     
     [普照石室]
     지공너덜 사이엔 한국 불교에 큰 빛을 남긴 普照國師가 송광사를 창건하기 전에
     이곳에서 좌선했다고해서 普照石窟이라고 한다는군요
     아니 이런 사람들은 건강에도 좋지않은 더럽고 어둡고 습기 많은 굴같은 곳에 들어 가서 座禪을 할까요?  
     禪이 아니라 오히려 병걸려 죽겠는데...
     거지들이나 들어 가 사는 곳에 國師가 궂이 들어가 수도 할 까닭이 있을까요?
     
     [廣石臺-圭峰]
     무등산의 三大 柱狀節理帶중에 하나인 圭峰에 왔습니다
     그 양반들 이런 곳에서 座禪 修道를 하면 얼마나 좋아!~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곳을 바로 옆에 두고 빙신들 굴속에서 뭘하냐구~ㅎㅎ
     이해가 않되죠? ㅋㅋ
     그런데 대략 제 생각에는 후세의 땡중들중 상당수가 
     위대한 스님들이 자기와 무슨 큰 상관이 있는 것처럼 묶어 제자인척해야
     信徒들이 모이니 벌어 먹고 살기 위해 先師들을 팔아 묵은게 아닌지....
     우리나라 대부분의 절은 '원효, 의상'이 지었다고 자랑하는데, 
     원효와 의상은 중이 아니고 절지으러 다니는 목수입니까? 이산 저산 돌아 다니는 산꾼입니까?
     너 나 할껏없이 원효 의상이 거의 모든 절을 창건했다고 하니 원~
     이쪽 동네는 또 지공이니 나옹이니를 많이 팔아 묵고 있군요
     
     [廣石臺-圭峰]
      고경명(高敬命)장군이 쓴「서석 유람록遊瑞石錄」에 나오는 廣石臺-圭峰에 대한 글 일부를 소개합니다
     "산을 휘감아 동쪽으로 나오니 곧 圭峰이다. 
     '김극기'의 "비단을 마름질하여 암석 모양을 만들었고, 홀을 쪼아 봉우리의 기세를 이루었다"라는 
     싯구가 정말로 헛말이 아니었다. 돌의 기이하고 오래됨이 立石과 대등하지만, 
     그 자리의 넓고 높음과 모양의 빼어남과 훌륭함은 역시 立石이 감히 흉내 낼 바가 아니었다"
     
     [廣石臺-圭峰]
     "천관산, 팔전산, 조계산, 모후산등 여러 산들이 모두 눈 아래에 있다. "
     정말 아름답습니다
     고경명 장군도 입석대와 서석대보다 이곳 圭峰이 훨신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규봉암 들어 가는 길]
          규봉암을 정문으로 들어 가지 않고 옆문으로 들어가는 중입니다
          중국 少林寺를 들어 가는 듯 신비롭게만 느껴집니다
     
     [규봉암]
     규봉암과 뒤에 정렬 해 있는 廣石臺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무등산 제일의 경관을뽐내고 있습니다
     규봉암은 의상대사가 규봉에 왔다가 규봉 사이의 암벽에서 셈이 솟아나 기이하게 여겨
     규봉암을 지었다는군요. 의상대사 원효대사 안들어 가면 절이 장사가 않되나 봅니다
     
     [규봉암]
     제가 닮고 싶은 분 茶山 정약용선생 (저의 '예봉산-적갑산-운길산-수종사 산행기'를 참고하세요)
     그분이 쓴 遊瑞石山記에서
     "가운데 봉우리의 정상에 서면 날듯이 세상을 가볍게 보고 홀로 특별히 다른 길을 가는 기분이 들어
     인생의 고락은 마음에 둘것이 못됨을 깨닫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중국의 황산에 와 있는 듯합니다
     
     [문바위]
     문바위에는  김덕령장군과 애마에 얽힌 전설이 있더군요
     임진왜란 시 의병대장 김덕령 장군이 무술을 연마할 때 일로, 자신의 愛馬에게 
     “내가 큰일을 하려면 너부터 잘 달려야 할 것인즉 이제 내가 활을 쏠 터인데 
     화살이 건너편   마실리에 이르기 전에 네가 먼저 거기에 당도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네 목을 치겠노라”고 하였답니다. 
     백마도 주인의 말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고 합니다. 
     마실리는 문바위에서 5리가량 되는 화순땅이랍니다. 
     이윽고 화살이 김덕령장군의 활시위를 떠나자마자 백마도 김장군을 태운채 쏜살같이 달렸답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김장군은 화살이 보이지 않자 화살이 말보다 먼저 날아와 어딘가에 박혀있는 줄 알고 
     칼을 뽑아 애마의 목을 치려고 하였답니다. 김장군도 성질 더럽게 급한 양반인가 봅입니다
     그 순간 허공에서 “윙‘하는 소리와 함께 그때서야 화살이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마터면 愛馬를 
     죽일뻔했다는 전설이 있더군요.
      아무리 김덕령장군을 미화 시킬려고 지어낸 이야기라고 해도 뻥이 너무 쎄죠? ㅎㅎ
     
     가까이서 촬영한 문바위
     요즘같으면 자연홰손으로 잡혀 갈 낙서가 많았습니다
     이 글자 중에 김덕령장군의 愛馬이야기가 쓰여있다는군요
     
     [범종루와 일주문]
     규봉암을 옆문으로 들어와 정문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범종루와 일주문]
     고경명장군도 인용했던 고려시대의 문인 김극기(金克己)는 규봉암에 오른 감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합니다. 
     “돌 모양은 비단을 말하는 듯 봉우리는 옥을 다듬어 낸 듯, 
     어떻게 속세의 인연을 끊을까 가부좌틀고 무상을 배우노라"
               
               [범종루와 일주문]
               규봉암은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합니다만 이제 믿거나 말거나 이죠? ㅎㅎ
               저의 산행기를 많이 읽으면 無神論者가 됩니다 
               圭峰菴을 圭峰寺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저의 지난 산행기에서 여러번 알려 드린바 있습니다만
               다시 한번 알려 드리면 菴은 수련을 목적으로 지은 것이고, 寺는 종교활동을 위해 지은 것입니다
               圭峰菴은 종교활동 하는 곳이 아니고 스님들의 수련장이란 걸 이름에서도 알수 있습니다
     
     [규봉암에서 바라 본 화순 방향]
     저 곳 화순에 赤壁이라는 경치 좋은 곳이 있다는군요
     
     규봉암을 나와 꼬막재 방향으로 가는 길의 너덜지대에서 바라 본 화순 방향
     한가로운 듯한 가을 정취가 흠벅 느껴집니다
     赤壁은 삼국지에서 조조가 되지게 깨지는 赤壁大戰의 赤壁과 같은 이름인데....
     
     너덜지대를 지나니 山路가 한결 좋아 집니다
     
      화순 이성영평 방향으로 가는 안부를 만나고....
      이곳에서 화순 이성영평 방향으로 내려가면 무지무지 유명한 곳이 있답니다
      화순의 赤壁에 있는 "勿染亭"이라는 곳이 있다는데 그곳의 경관이 무척 좋다고합니다. 
      저도 아직 못 가봤지만 조만간 꼭 가 보고 여행기를 써야 할 곳으로 점 찍어 놓은 곳입니다. 
      왜냐하면 방랑시인 김삿갓 아시죠? 본명이 김 병연이지요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세상을 등지고 방랑하며 살다가
      생을 마치기 전 이곳이 너무 아름다워 눌러 앉아 죽은 곳이  赤壁의 "勿染亭"이랍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전국 방방곡곡을 방랑하다 전라남도 화순땅에서 죽은 방랑 시인 김삿갓
      그의 詩한수 읊어 드림니다

     배를 띄우고 취해서 읊다                           (泛舟醉吟 - 범주취음) - 난고 김병연 지음 - 
     강은 적벽강이 아니지만 배를 띄웠지.                (江非赤壁泛舟客 - 강비적벽범주객) 
     땅은 신풍에 가까워 술을 살 수 있네.                (地近新豊沽酒人 - 지근신풍고주인 )
     지금 세상에 영웅이 따로 있으랴, 돈이 바로 항우이고  (今世英雄錢項羽 - 금세영웅전항우) 
     변사가 따로 있으랴, 술이 바로 소진이지.            (當時辯士酒蘇秦 - 당시변사주소진 )
     
     무등산 동쪽 옆구리를 돌아 서쪽으로 틀기 시작하는 북쪽에 신선대가 있습니다
     "무등산 사나이"라고 하면 김덕령 장군입니다
     김덕령장군은 임진왜란 때에 의병장으로서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는데도
     의심 많기로 전세계 최고인 '선조'에게 역모에 가담했다는 오해를 받아 엄청난 고문으로 옥사하고 맙니다
     이순신장군도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어 왕권이 위협 당한다고 견제한 '선조'이니 우리나라 왕들 중에 최고 죠다입니다
     김덕령장군은 스물아홉살에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데 나중 정조대왕이 사면 복권시켜주지요
     김덕령장군은 감옥에서 자신의 무죄를 끝까지 주장하다가 죽기전에 詩한수를 남기는데
     그 詩가 유명한 취시가(醉時歌)입니다

     醉時歌                       한 잔 하고 부르는 노래 한 곡조
     此曲無人聞                  듣는 사람 아무도 없네
     我不要醉花月                나는 꽃이나 달에 취하고 싶지도 않고
     我不要樹功勳                나는 공훈을 세우고 싶지도 않아
     樹功勳也樹浮雲              공훈을 세운다니 이것은 뜬 구름
     醉花月也是浮雲              꽃과 달에 취하는 것 또한 뜬 구름
     醉時歌                      한 잔 하고 부르는 노래 한 곡조
     此曲無人知                  이 노래 아는 사람 아무도 없네
     我心只願長劍奉明君          내 마음 다만 원키는 긴 칼로 밝은 임금 받들고자
     醉時歌에 답하는 詩가 권필에 의해 부리워집니다
     
      將軍昔日把金戈           지난 날 장군께서 쇠창을 잡으셨더니
      壯志中최奈命何           장한 뜻 중도에 꺾이니 천명을 어찌하리
      地下英靈無限恨           돌아가신 그 넋의 그지없는 눈물
      分明一曲醉時歌           분명한 한 곡조 취시가로 읊으셨네
     
     신산대 로 나아 갑니다. 앞에 보이는 산이 北山입니다
     저 北山을 지나 이곳으로 '호남정맥'의 마루금이 지나와 
     다시 무등산을 지나 백마능선 안양산으로...계속 광양 백운산으로 갑니다
     
     [神仙臺]
     이제까지 무등산을 오르며 아직까지도 꼬불쳐 온 쇠주 한병을 꺼냈더니 
     동기동창들이 무척 좋아했습니다. 
     저의 산행기에선 잘 올리지 않는 개인 사진입니다만 
     참가한 62회 전원의 사진을 기념으로 남깁니다
     쇠주 한잔씩 걸치고 억새밭에서 '나 잡아 봐라~' '쪼아~ 냅따 오슈~~' '조아부려~'
     너무 웃겨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ㅎㅎㅎ
     
     [꼬막재]
     무등산 옆구리를 돌아 오는 길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길은 평이하지만 거리가 있어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꼬막재의 내력]
     에구~ 글쓰기도 힘듭니다. 꼬막재의 내력은 사진 속에 쓰여 있는 글을 참고 하세요
     
     [공원관리사무소 앞]
     산행 들머리였던 '공원관리사무소'와 원효사 앞으로 회귀했습니다
     꼬막재에서 이곳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리더군요
     오후 6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써비스
     개인적으로 무등산을 찾을 분들은 광주역까지 오시면 [1187번 시내버스]를 타시고
     무등산 중턱인 이곳 공원관리사무소까지 바로 올수 있으니 대중교통수단을
     많이 이용하시기 바람니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홍어와 무인도☆ 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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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산 8개 국기봉 종주 

     기상청의 날씨 예보는 서울지역에 5mm 정도의 비가 내린다는 것이어서
     날씨는 무시하고 "관악산 11개 국기봉 종주"를 하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9월 20일 토요일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관악공원 입구]
     관악산을 찾는 산객들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서울대 입구 바로 옆에 있는
     관악공원 입구는 관악산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코스라고 저는 느낌니다
     
     [관악공원 입구 광장과 주차장]
     관악공원 입구 광장의 시계탑이 7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평시보다 산객들의 수가 적어 보이는 이곳에서 바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주차장 끝에 있는 호암산 삼성산 가는 길]
                11개 국기봉을 종주하는 방법은 수를 헤아릴수 없이 많겠지만
                가장 일반적인 길이 호암산-삼성산-관악산의 순서로 알려져 있어
                호암산-삼성산의 국기봉부터 돌기 위해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관악 문화관과 도서관]
     관악공원으로 가지 않고 관악 문화원과 도서관이 있는 길로 접어 들어 올라 갑니다
     
     [관악산 맨발 공원]
     관악 도서관을 지나 똑 바로 올라 가면 '관악산 맨발 공원'이 나옵니다
     그리고 정자 뒷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올라 갑니다
          
     '관악산 맨발공원'의 정자 뒷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등산로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별로 이용하지않는 등산로입니다만, 저는 이 등산로가 관악공원 옆길 보다
     훨씬 더 좋다고 강조합니다
     
     [쉼터]
     10여분 오르면 본격적 산행 준비를 할수 있는 쉼터가 나옵니다
     
     쉼터에서 살짝 보이는 관악산 연주대
          
     본격적으로 암릉을 오릅니다
     쉼터에서 별 어려움 없이 암릉을 다시 15분정도 오르면...
     
     [옥문봉 국기봉]
     첫번째로 나타나는 국기봉이 [돌산 국기봉]이라고도 하는 [玉門峰 국기봉]입니다
     
     [옥문봉 국기봉]
     첫번재 국기봉은 쉽게 찾아 올랐습니다
     저도 처음 와 보는 곳입니다
     이곳 등산로가 의외로 좋아 놀라며, 이 등산로를 왜 많이  이용하지 않는지 의아해 했습니다
     서울대 옆구리 계곡으로 오르는 깔딱고개가 있는 주 등산로 보다 훨씬 더 좋았습니다
     
     [옥문봉 국기봉에서 바라 보는 서울대학교와 관악산]
     서울대 캠퍼스와 관악산을 조망하기에 최고의 자리라 여겨집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 다웁게 그 규모가 대단하군요
     이렇게 가까이서 서울대 전경을 구경하기도 처음입니다
     
     [서울대학교 정문 방향의 전경]
     산행 들머리였던 서울대 정문방향과 운동장등....정말 대단한 규모입니다
     윗 사진과 이 사진에 나오는 관악산 안의 모든 건물이 서울대 건물입니다
     
     [옥문봉 국기봉]
     너무 쉽게 만난 '옥문봉 국기봉'을 뒤로 하고....
     
     다음에 갈 칼바위 국기봉을 향하여 옥문봉 국기봉을 내려 갑니다
     
     앞으로 가야할 [칼바위 국기봉]과 호암산 [민주동산 국기봉]
     가운데 산 중턱에 [칼바위 국기봉]이 있으며,  그 뒷쪽의 제일 높은 봉우리가 '장군봉'이며
     장군봉 우측으로 솟은 봉우리가  [호암산 민주동산 국기봉]입니다
     
     [관악공원과 신림동을 가는 안부]
     옥문봉 국기봉에서 조금 내려 가면 좌측으로 관악공원으로 가는 길과
     우측으로 신림동으로 내려 가는 안부가 나옵니다
     
     건강산행코스로는 강력 추천하고 싶은 등산로입니다
     이런 코스가 많이 소개 되지 못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소외된것이 아깝습니다
     
     이 코스도 암릉지대를 지나기에 외부 시야가 확 터여서 갑갑하지가 않더군요
     그리고 관악산 다웁게 거의 모든 코스에 암릉미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바위를 타고 가는 기분은 정말 좋고, 
     지루하지 않고 재미가 솔솔~
     
     멀리 칼바위 국기봉과 장군봉이 보입니다
     물개가 표호하는듯한 바위 "나도 가고 싶어~!!"하는 듯
     
     분재
     요걸 울집으로 가져가면 수억짜리는 될텐데...
     
     [동물원 같은 바위]
     어떤 동물과 물고기들이 있는지 헤아려 보세요
     숨은 그림 찾기 ㅎㅎ
     
     칼바위 능선을 오릅니다
     
     완만한 경사와 급경사가 골고루 있어 등산의 재미가 있습니다
     
     [곰바위]
     '옥문봉 국기봉'에서 약 30분정도 오르면 [곰바위]가 나오며
     [곰바위] 바로 뒤가 [칼바위 국기봉]입니다
          
          [곰바위]
          곰같이 보입니까?
     
     [곰바위에서 바라 본 칼바위 국기봉]
     
     칼바위는 릿찌를 해서 올라야합니다
     '칼'이라는 이름 다웁게 날카롭습니다
     
     [칼바위 국기봉]
      뒤로 장군봉이 보입니다
     
     [칼바위 국기봉에서 바라 본 호암산 민주동산 국기봉]
     
     칼바위 국기봉을 내려 갑니다
     조금 위험합니다
     
     칼바위를 즐기며...릿찌 좋아하시는 분들은 직벽으로 내려오고,
     간떨리는 분들은 우회로를 이용할수도 있습니다
     
     칼바위는 글자 그대로 칼같습니다
     
     장군봉 중턱에서 뒤돌아 본 '칼바위 국기봉'과 서울대학교
     아름답습니다
     
     [칼바위 능선]
     칼바위는 많은 산에 있습니다
     칼처럼 날카롭게 생기면 무조건 칼바위라고 하고 칼바위 능선이라 하는가 봅니다
     
     [활터 갈림길]
     칼바위 능선을 지나면 비교적 평지를 이루는 장군봉의 능선을 따라 
     [활터 갈림길]을 지나 '장군봉'까지 갑니다
     
     [장군봉]
     장군봉 봉우리입니다
     앞의 바위가 장군처럼 생겼다고 장군봉이라 하는듯합니다
     [호암산 민주동산 국기봉]을 가려면 여기 [장군봉]을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난 샛길을 따라
     가야합니다
     
     장군봉 다음 봉우리리
     장군봉에서 10m쯤 가면 이런 돌무덤이 나오는데 이 돌무덤 못미쳐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민주동산 국기봉]으로 가장 빨리 갈수 있습니다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나가면 헬기장이 나오고...
     
     [호암산 정상 가는 길]
     장군봉과 호암산 민주동산은 거의 평지로 이어져 있습니다
     
     [호암산 민주동산 헬기장]
     이곳이 호암산의 정상입니다.
     호암산 정상의 이름을 민주동산이라하고 있더군요
     
     [호암산 민주동산 국기봉]
     9시 20분에 도착
     이곳은 저의 산행기 "관악산 재발견 - 삼성산 호암산 산행기"와
     "관악산 재발견 - 호암산 한우물"에 자세히 소개 된바 있습니다
     
     [호암산 민주동산 국기봉]
     서울대입구 관악공원 시계탑에서 여기까지 1시간 35분만에 올랐으니
     이 등산코스도 많이 이용하시기 바람니다. 경치 좋고, 거리 부담없고....
     
     [민주동산 흔들 바위]
     
     [민주동산 달팽이 바위]
     
     [민주동산 망둥이 바위]
     망둥이 바위 뒷봉우리가 '장군봉'입니다.
     우측 능선을 따라 민주동산으로 왔으며, [찬우물]을 가지 않고 빨리 다음 국기봉을
     가고싶으신 분들은 다시  온길로 돌아가면 시간이 많이 단축됩니다
     
     다양한 이름을 붙일수 있는 바위
     맘대로 이름을 붙이세요
     
     [민주동산 조망대]
     민주동산에는 조망대를 만들어 놨으며 서울 시내를 두루 조망할수 있습니다
     앞의 능선이 지나온 좌측 끝[옥문봉 국기봉]과 우측 끝 올록뽈록한[칼바위 국기봉]이 있는 능선이고,
     뒤로 서울대학교가 보입니다
     
     민주동산 국기봉을 내려서 [찬우물]로 가는 길에 물개같은 바위가 있습니다
     
     
     민주동산 국기봉에서 찬우물로 내려 가는 길
     우측 봉우리가 한우물이 있는 금지산입니다
     
     유명한 [고래 바위]
     
     [호압사]
     저의 '관악산 재발견 - 삼성산 호암산 산행기'에서 이미 자세한 설명이 있었으므로
     설명은 생략합니다
     
     [찬우물]
     이곳에서 식수를 보충합니다
     이곳에 도착하니 9시 30분이었으니 1시간 45분만에 여기까지 왔군요
     
     찬우물에서 조금 가면,
     장군봉에서 바로 오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찬우물을 들리지 않는 분들은 민주동산국기봉에서 바로 이곳으로 오시면 시간이 
     단축됩니다
               
               [운동장 바위]
     
     [운동장 바위]
     운동장 같지 않은 운동장 바위
     
     호암산을 하산합니다
     
     서울대입구와 시흥방향으로 가는 안부를 만나는데 이곳이 호암산과 삼성산을
     구지 구분하라면 구분하는 경계입니다만 별 의미는 없습니다
     
     삼성산 [K48국기봉]으로 오릅니다
     
     삼성산 K48국기봉 가는 길
     
     삼성산 K48국기봉 가는 마지막 릿찌구간
     우회로도 옆으로 있으나 이곳으로 오르면 시간이 많이 단축됩니다
     
     
     이 절벽을 오르면 바로 국기봉으로 가는 길이 열림니다
     
     [K48국기봉]
          
          [K48국기봉]
     
     [K48국기봉]에서 바라 본 서울대
     
     [K48국기봉]에서 바라 본 건너편 관악산
     저 곳으로  가야합니다. 힘든 종주입니다
     
     [K48국기봉]에서 바라 본  송신탑이 있는 [삼성산 정상]과 그 뒷봉우리가
     가야할 [삼성산 상불암 위 국기봉]입니다
     
     [경인교육대학교]
     
     국기봉을 내려갑니다
     
     K48 국기봉을 지나 조금 가면 [거북바위]가 나옵니다
               
               [거북바위]
     
     [거북바위]
     거북 모양이라기 보다는 바위 모양이 거북등처럼 생겨서 거북바위라 하는듯합니다
     
     [거북바위] 앞에 車路가 있으며 이 車路 오른쪽으로 가면 [삼막사]로 가고
     산불감시소가 있는 콘테이너 좌측으로 가면 서울대로 내려 가는 길이며
     직진하면 삼성산 정상으로 갑니다
     
     삼성산 정상을 오르며 뒤돌아 본 K48 국기봉
          
          [삼성산 정상의 송신탑]
     
     [삼성산 정상의 송신탑]의 오른쪽 옆구리를 돌아 나갑니다
     
     삼성산 정상 송신탑에서 상불암 위 국기봉까지 능선이 아름답습니다
     저의 산행기 '관악산 재발견 - 삼성산 호암산'을 참고하세요
     저 멀리 끝봉우리가 [상불암 위 국기봉]입니다
     
     못 가 보신 분들은 꼭 한번 가 보세요. 정말 좋아요
     
     이곳의 암릉미도 그 어느 곳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걷기에 재미 있습니다
     구경거리가 많으니까요
     
     
     뒤 돌아 본 삼성산 정상의 송신탑
     
     가야할 관악산의 위용이 엄청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구름이 몰려 오기 시작했습니다~~에구
     오늘 일기예보는 5mm정도의 비가 오후 늦게 온다고 했는데.....
          
          [상불암 갈림길]
           상불암으로 가는 삼거리 갈림길을 만나는데.....
           직진하여 [상불암 위 국기봉]을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와서
           이 계곡길을 끝까지 내려 가야합니다
           그러면 삼성산과 관악산의 경계 계곡이 나옵니다
     
     [상불암 위 국기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국기봉 가는 길도 '칼바위' 같은 암릉을 지나야합니다
         
          [상불암 위 국기봉]
           삼성산 호암산에 있는 5개 국기봉의 마지막 다섯번째 국기봉입니다
           상불암 위 국기봉에 도착하니 구름이 하늘을 뒤덮기 시작합니다
           가야할 길이 앞으로 무지하게 많이 남았는데 걱정이 됩니다
           관악산에 있는 6개 국기봉을 모두 돌아야하는데....
          
          상불암 위 국기봉을 다시 되돌아 내려 가는데...          
          이곳에서 삼성산 정상 송신탑까지 능선이 정말로 절경입니다
     
     마당바위
     구름이 점점 걱정이 됩니다
     비가 많이 오면 잘못하면 오늘 完走를 못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상불암]
     상불암은 조그마한 절이었습니다
     국기봉 바로 아래에 있더군요
     삼성산이 삼성산이라고 칭하게 된 이유가 세명의 聖人이 이곳에서 수련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 것은 지난 산행기에서 언급했습니다
     다만 추가로 이곳 상불암에서 聖人중 한분이 수련했다고 하는데 그 분이 "윤필거사"였답니다
     "윤필거사"는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이름인데....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의상대사의 여동생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라는 얘기를
     얼핏 들은듯한데....사실여부는 확인 못했으니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세요
     
     상불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안양 유원지
     상불암이 전망이 아주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더군요
     
     상불암을 들렸다가 다시 계곡길로 내려 오면 [우물]이 있습니다
     상불암 우물은 수량이 풍부한 깊은 우물이었습니다
     이곳의 우물에는 물을 떠 올리는 두레박을 절묘하게 만들어 놨는데
     정말 머리 좋은 사람이 만든듯합니다.
     물을 떠 먹는 여자 산객들과 함께 아이디어에 감탄하며 웃었습니다
     
     이 우물이 있는 곳에서 무조건 계곡을 따라 내려갑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계곡을 따라 30여분 내려 가면  관악산과 삼성산을 가로 지르는 안양유원지 계곡이 나옵니다
     
     이 개천의 이름이 '삼성천'인데 안양유원지로 내려 가는 개천입니다
     이 개천 건너편에 안양유원지로 내려 가는 큰길이 나있으므로 그 길을 따라
     서울대 수목원 담장까지 내려갑니다
          
          서울대 수목원 철조망이 나오는 바로 앞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여기서 왼쪽 "불성사" 가는 길로 불성사까지 갑니다
          12시 40분에 이곳을 통과했습니다
          서울대 정문에서 호암산 삼성산을 돌아 이곳까지 약5시간정도 걸렸습니다
          관악산 11개 국기봉을 완주하는데 시간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는데
          5mm 온다는 비가 무지하게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기상청'을 '구라청'이라 한다지만 너무 심합니다
          완주를 할수 없을 것같은 예감이 밀려옵니다
     
     비를 맞으며 관악산 불성사 계곡을 오릅니다
     이 계곡은 좌측이 관악산 8봉능선이고 우측이 안양5봉능선입니다
     이 계곡길을 '선녀의 길'이라하고 안양5봉능선을 '나뭇꾼의 길'이라 한다는군요
     모두 관악산 육봉능선의 제1봉 국기봉으로 가는 길입니다
     
     [불성사 입구]
     빗속을 뚫고 불성사 입구에 왔습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가면 팔봉능선으로 가며 직진하면 불성사입니다
     
     사진에는 비가 별루인듯하지만 무지하게 쏟아집니다
     비내리는 불성사에 왔습니다
     
     1시 10분에 도착하여 40분간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했습니다
     많은 산객들이 비를 피해 이곳 법당 옆에서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불성사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육봉능선의 국기봉으로 갑니다
     비가 잠시 멈춘 틈을 이용해 올랐습니다
     
     [육봉 국기봉]으로 오르는 길
     
     관악산 주 능선의 암릉들이 우릴 반깁니다
     비가 다시 세차게 내리기 시작합니다
     
     지나온 불성사를 내려다 보고....
     
     남동쪽으로 [육봉 국기봉]이 검은 구름 아래에서 어서 오라고 손짓합니다
     
     저 멀리 지나온 삼성산의 송신탑과 불성사 계곡이 지도책처럼 잘 알려 주는 사진입니다
     우측 맨끝의 희미한 호암산 능선을 지나  가운데 삼성산 모든 봉우리를 거치고, 
     다시 하산하여 여기 [관악산 육봉]까지 왔으니 많이 걸었군요
     사진의 우측 능선이 [팔봉능선]입니다
     
     [육봉 국기봉]
     저의 산행기 '관악산 재발견 - 6봉 8봉 삼성산 종주기'를 참고하세요
       
     증명사진 - 필자와 동행한 山友
     
     [육봉 국기봉]에서 바라 본 "청계산"과 과천
     비내리는 관악산 육봉에서 청계산을 바라 보니 더욱 감회가....
     
     [6봉 능선]
     관악산에서 자연미가 가장 잘 살아 있는 곳이 6봉능선인듯합니다
     이곳에는 말뚝하나 로프하나 설치되 있지않은 완벽한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저의 지난 산행기를 참고하세요
     조선시대 등산의 대가 이익선생의 산행기 "遊冠岳山記"에서
     이익선생은 관악산이 네개의 자하동으로 되있는데, 서울대가있는 北紫霞洞, 과천쪽의
     東紫霞洞, 안양 유원지 방향의 南紫霞洞과 삼막사 부근의 西紫霞洞으로 나뉘어 구분했는데
     그 중에서 관악산의 가장 아름다운곳으로 과천의 육봉능선 쪽 東紫霞洞을 꼽았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지점으로는 연주대를 꼽았더군요
     관악산 호수공원에 있는 정자의 이름이 紫霞亭인데 그 유래는 바로 紫霞洞에서
     온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관악공원을 다니시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紫霞는 자줏 빛 에 노을 인데
     효자동 지나 세검정 넘어 가는 한양성의 城門 紫霞門도 있지요?
     저의 인왕산-북악산 산행기에 설명이 자세히 기술되 있습니다
     
     6봉에서 바라 본 관악산 주 능선과 방송송신탑, 연주대
     
     [8봉 국기봉]
     비가 내려 사진 촬영을 자주 못했습니다
     6봉국기봉에서 8봉국기봉까지의 경치는 저의 산행기 6봉-8봉-삼성산 종주 산행기를 참고하세요
     관악산 국기봉 중에서 국기가 사라진 유일한 국기봉이 8봉 국기봉입니다
     
     [8봉 국기봉에서 바라 본 관악산 주 능선의 장엄한 경치]
     정말 멋있습니다
     토요일 관악산은 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만
     오늘은 비가 내려 산객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렵습니다
     비가 업청나게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도처히 정상적으로 진행할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학바위능선 국기봉]까지 한시간이내에 갈수 있는 곳을 2시간반이 걸렸습니다
     이곳에서 홀로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길을 묻는 산객을 만나 같이 내려왔습니다
     
     내리는 비를 뚫고 나가기에 급해 아름다운 경치는 다음 문제였습니다
     
     [장군바위]
     
     방송송신탑 아래로 뻗은 [학바위 능선]으로 다가 갑니다
     '구라청' 이 개쎄이들을 성토하며....
     요즘 우리나라가 가물어 비가 오긴해야하나 이렇게 기상 예보가 틀리면
     나는 어떡하라구!!~~구라청~!! 이 개쎄히들아 말 좀 해봐라
     많이 온다고 했으면 "관악산 11개 국기봉 종주"를 다음으로 미루었을거아냐~~!!"
     
     
     [삿갓승군 바위]
     구름에 가려 바위들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관악산 11개 국기봉 종주"는 아무 때나 쉽게 할수 있는 코스가 아닙니다
     정말 낮의 길이가 긴 여름철에나 가능한 긴 코스입니다
     많은 준비를 해서 나선 길인데 '구라청' 때문에 헛고생으로 끝나는듯합니다. 닝기리~
     
     [삿갓승군 바위]
     사진에는 내리는 비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또 조금 내릴때 사진을 찍을수 있기에 비가 잘 보이지 않는군요
     비핑개를 어떻게던 많이 대고 싶은데..ㅎㅎ
     비는 계속 오락가락했습니다
     
     
     [학바위 능선에서 바라 본 관악산 주봉 연주대]
     구름 속에 가리워져있습니다
     
     [학바위 능선의 국기봉]
     잠시 비가 주춤하는 사이에 [학바위 능선의 국기봉]이 보입니다
     건너편 지나 온 삼성산의 [K48 국기봉]도 보입니다
     멀고 먼 길을 왔습니다만 아직도 3개의 국기봉이 남아 있고,
     거리는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학바위 능선의 국기봉]
     평시 주말이면 이곳엔 발디딜틈도 없이 많은 산객들로 붐비는 곳입니다만
     오늘은 비가 와서 우리만이 외롭게 다녀갑니다
     
     [학바위 능선 국기봉]에서 바라 보는 삼성산]
     검은 먹구름이 빨리 하산하라고 우리를 다그칩니다
     
     국기봉에서 바라 본 [학바위]
     가운데 "학바위"와 뒤로 삼성산이 보입니다
     
     학바위능선의 국기봉에서 학바위 사이의 안부인 [학바위 능선2]입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관악산 주계곡을 지나 서울대 공학관 쪽으로 횡단해야
     자운암 뒤 제3왕관바위 능선의 국기봉으로 가서 연주대를 올라
     다시 [낙타바위 국기봉]과 사당동 쪽 [관음사 위 국기봉]으로 갈수있습니다
     이제까지 8개 국기봉을 완주하고 나머지 3개를 남겨 두고 ....
     
     [연주약수]
     이곳에서 비를 피하며 휴식을 취했습니다만
     이곳에 도착하니 4시였습니다
     앞으로 4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3개 국기봉을 남겨 두고 있는데....
     아깝다
     시간상 도저히 완주 할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夜登을 각오하고 夜登할 준비는 모두 해 왔습니다만
     비만 오지 않더라고 夜登을 하며 완주를 할텐데.....
     비오는 밤 산행, 특히 바위로만 이루어진 관악산은 더욱 위험합니다
     
     
     [서울대 신공학관]
     자운암 뒤 [제3왕관바위 능선위 국기봉]을 향해 다시 연주대로 올라야 하는데
     폭우로 인해 너무 늦어 완주를 포기하고 서울대 신공학관 앞으로 내려왓습니다
     
     [서울대 신공학관 앞 버스 종점]
     아쉬운 마음만을 남기고 비 내리는 버스 종점을 떠났습니다
     또 언제 11개 국기봉을 완주할지.....
     
     낙성대역 근처 감자탕집에서 하산주를 마시고
     아쉬운 산행을 마쳤습니다
     제일 아쉬운 것은 제목을 [관악산 11개 국기봉 종주]라고 붙이지 못한 것입니다
     
     '블랙호프님'이 올려 달라고 부탁한 산행지도 만들어 올려드립니다
      녹색선이 산행한 루트이고 청색이 가야할 루트였는데 비로 못간 루트입니다

      서울대 정문, 관악공원입구 - 관악문화관, 관악 도서관 - 맨발공원 - 옥문봉 국기봉[1] - 
      곰바위 - 칼바위 국기봉[2] - 장군봉 -  호암산 민주동산 국기봉[3] - 찬우물 - 
      K48 국기봉[4] - 거북바위 - 삼성산 정상, 송신탑 - 상불암 위 국기봉[5] - 상불암 -
      삼성산과 관악산 사이 계곡(안양 유원지 상류) - 불성사 입구 - 불성사 계곡 - 불성사 - 
      6봉 국기봉[6] - 8봉 국기봉[7] -  관악산 주 능선 - 방송3사 송신철탑 - 삿갓승군 바위 - 
      학바위 능선 국기봉[8] -학바위능선2 갈림길 - 연주약수 -  관악산 주계곡 - 
      자운암 가는 길 - 서울대 공학관으로 하산 (여기까지가 오늘 걸은 길, 8시간 걸림)
       자운암 가는길 - 제3왕관바위 능선 국기봉[9] - 연주대 - 관악문 - 하마바위 - 
       낙타바위 국기봉[10] - 관음사 위 국기봉[11] -  관음사 - 사당역
       (완주를 위해선 더 가야할 길, 3시간 정도 더 가야함)
       아마추어가 완주를 위해선 일반적으로 11시간 30분 정도 걸림
파란문印   ★살며..느끼며..홍어와 무인도☆ 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The Road to Freedom - Chris De Bur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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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요산 역사 속으로....
5월10일(토)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우리나라 불교의 巨聖 원효스님의 숨결이 깃든
동두천 "逍遙山"을 찾아 나섰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특집 산행을 하려고...ㅎ

                    
                    동두천역

                    소요산 역까지 전철이 연결되어 소요산 가기가 무척 쉬워졌으며
                    그로인해 산객들의 수가 몇배 늘었다고 합니다
                    중앙선 팔당역이 신설되어 예봉산-적갑산-운길산-수종사가 
                    새로운 등산 코스로 각광 받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전철의 운행 간격이 40분 이상이라 시간표를 잘 맞추어야 하며,
                    시간을 놓치면 2~3분 거리 때문에 오랜 시간을 동두천역에서 기다려야하오니
                    전철 시간표를 인터넷을 이용하여 확인 하시고 출발하시기 바람니다
 
                    
                    소요산역

                    40여분 이상의 간격을 두고 전철이 도착하기에, 도착하는 열차의 승객들은 한거번에
                    왕창 쏟아져 나오고.........또 그런 간격으로 산객들이 소요산으로 들어 갑니다


소요산역

40여분의 간격으로 �아져 나오는 산객들로 잠시 동안 소요산역은 북적댑니다
편의 시설은 화장실을 비롯해 초만원을 이루더군요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줄을 오랜동안 섰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됫지만 화장실은
소요산 자재암 일주문까지 여러군데에 깨끗한 시설로 줄을 서 있으니 복잡한 소요산역에서
줄을 서 기다릴 필요는 없었으니 참고 하시기 바람니다


소요산역앞 횡단보도

앞의 수퍼옆 노랑 현수막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소요산을 감으로 휩쓸려 가도 무방할듯합니다

골목을 따라 조금 가면 견본 하우스가 있는 이런 양갈래길이 나오는데....
우측으로 갑니다

좌측은 소요산 산림욕장 입구입니다
(입장료 아까우신 분들은 여기로...하지만 자재암 구경은 못합니다)

소요산 자재암 입구를 알리는 바위 이정표와 잘 포장된 길이 나옵니다
이 길을 따라 약 30여분 트랙킹을 해야 자재암을 지나 등산코스로 들어 설수 있으니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워밍업을 하며 걷습니다


소방서,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앞

소요산역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화장실은 곳곳에 설치되있으니 복잡한 소요산역은
피하셔도 무방합니다. 또한 집이나 가게에서 물을 미리 준비 할 필요도 없더군요.
곳곳에 물을 준비 할수 있는 급수대가 있었습니다


소요산 관리 사무실 앞

저는 오늘 우리나라 불교 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을 비롯해 불교의 종주국인 인도에 까지
佛法을 전파하시고 聖人으로 우뚝 서신 '원효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산행 중에
이런 저런 각도에서 음미 해 보려 합니다
물론 여러 기록들을 읽고 역사적 기록이나 현대 학자들의 저서등을 참고 하여 읖조리지만
나름대로 주관적 의견이나 생각이 많이 있으므로 재미삼아 그냥 읽어 보시기 바람니다
     

소요산 등산 안내도가 큼직하게 길 가운데에서 안내하며,
안내도 바로 뒷쪽으로 "요석궁터"가 있었다는 안내와 함께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들어 놨다는
안내판을 만날수 있습니다


요석궁터

오늘 소요산을 거닐며 가장 많이 나올 인물이 원효와 요석공주(瑤石公主)가 
되리라는 것은 벌써 짐작 가시죠? ㅎㅎ
그렇습니다. 인류 역사상 흔치 않은 스님과 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오늘 산행 내내
소요산 기슭을 수놓을 것입니다

소요산은 어떤 거창한 의미가 있는게 아니고 단순하게
"소요[逍遙] : [명사]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님"이라는 뜻입니다
이 산에서 소요[逍遙]한 사람들중에 유명한 선인들은 
화담 서경덕, 봉래 양사언, 매월당 김시습이 있으며 소요산의 절경에 취해
자주 소요하였다는 기록들이 있듯이,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제가 올라 본 결과 그렇게 만만하게 소요할만한 산은 아닌듯합니다


매표소

어른 2,000원.........좀 과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오로지 자재암 문화재 관람료라 합니다.
조금 있다 알게 되겠지만 '자재암'이라는 절간은 그간에 새로 지은 볼품없는 초라한
절간같지 않은 절이었습니다. 알려진 명성에 비하면 정말 초라했습니다.
그래서 역앞 골목 음식점 종업원들이 입구에서 입장료 내지 않고 가는 코스를 알려 주며
하산후에 자기 집을 들리라고 영업행위도 했습니다만, 저는 초행길이라 입장료를 내고
대다수가 이용하는 길을 갈수밖에 없으므로 다음부터는 "소요산삼림욕장입구' 쪽으로
이용 할것입니다. 앞에 사진으로 소개해 드렸죠? 


트랙킹을 제법 합니다..약30여분

산을 다니다 보면 절간을 만나고, 만나는 절간의 거의 대부분은 원효와 의상이 開山했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분들 원효와 의상스님은 스님이 아니라 절간을 지어러 다니는 
건축가들이라고 해야 할 정도 아닌가요?. 
직접 짓기도 했겠지만 "해동국의 석가"라는 칭호를 들었으니
절간을 짓는 자들이 너도 나도 할것없이 원효와 의상을 팔아 먹었을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소요산자재암 일주문

대한불교조계종 "소요산 자재암"
그 밑에 "京畿小金剛"이라는 안내판이 보이시나요?
소요산은 경기도의 작은 금강산이라 칭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하는 얘기겠죠
글쎄요...저는 그렇게까지는 아니라 여겨 집니다만, 아름다운 곳은 틀림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절간은 이름뒤에 절寺자를 붙이는데 여기는 自在庵이라 한것에 의문이
가시는 분은 아마 저와 같이 탐구열이 있는 분이시죠..ㅎㅎ
왜? 自在寺라고 하지 않고 自在庵이라 했는가?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寺자가 붙는 절간은 종교활동을 하는 곳이고 이렇게 庵자가 붙은 곳은 수련을 목적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원효스님은 수련을 하였지 종교활동을 한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곳 자재암은 지금은 종교활동 뿐만 아니라 입장료까지 징수하고 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원효스님이 수련했다는 원효굴이 규모가 상당하게 나타납니다
제가 생각 할때는 수련 할때 굴속은 오히려 수련에 도움이 되지 않을 듯 합니다
습도도 높으며,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각종 벌레들이 서식하기 때문에 건강에 해로울 듯 합니다
소요산을 올라 보니 수련하기 좋은 장소가 한두 곳이 아니더군요..물론 제 관점에서..ㅎ


원효굴 오른쪽으로 "俗離橋"가 나옵니다

저는 불교신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단지 한때 종교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불교와 기독교를 공부하고
분석해 보기도 했습니다. 대학시절 공부한답시고 덕유산 용추사에 들어가 7개월정도 있으며
불교에 대해 아주 쬐끔 들은바 있으며, 기독교는 약10년정도 교회를 다닌적이 있습니다
종교는 종교로 믿어야하는데, 종교의 본질을 파헤치려했기에 종교적인 인간이 되지 못하고 
평범한 인간으로 물건너 불보듯 이렇게 비판적 시각으로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俗離橋"를 건널땐 世俗의 번뇌와 근심 걱정을 완전히 이별하고싶었습니다.
무지 무지하게 이기주의적이죠? ㅎ

"俗離橋"를 지나면 삼거리 이정표 - 등산코스 상세 안내도가 환하게 나타납니다
여기서 선택해야 합니다 왼쪽으로 갈려는지..오른 쪽으로 갈려는지...
소요산 등산코스는 U자 모양의 말발굽 모양으로 생겨서
어느쪽으로 가던 이곳으로 다시 내려옵니다.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왼쪽 코스를 따라 자재암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나한대 - 의상대 - 공주봉을 거쳐 이곳으로 오기로 하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왼쪽 계단으로 오릅니다. 그리 오래 오르지 않습니다

길지 않은 계단을 오르면 "自在庵"이 그 자태를 내 보입니다.
규모가 의외로 작은데 놀랍니다.
그리고 건축물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근간에 지었다는 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거의 전부입니다
원래 寺가 아니고 庵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좌측 건물이 원효스님이 기거했던 초막 자리였다하며, 오른쪽이 대웅전 같지 않은 대웅전
건물은 달랑 윗 사진의 두체와 좌우에 최근에 지은 듯한 부속 건물 두체가 더 있었을 뿐이며
규모가 너무 작았습니다. 그래서 축소 사진으로 올림니다

대웅전만 확대해서 다시 보여드림니다.
초파일이 모래이기에 법회가 열리고 있었으며,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는 스피커를 타고
산행하는 소요산 골자기에 내내 울려 퍼졌습니다.
소요산 등산 능선은 말발굽처럼 생겨 한바퀴 뺑 돌기에 어느 곳에서나 목탁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웅전 뒤에 "三聖閣"이라는 조그만 건물이 하나 더 있어 올라 가 봤습니다.
三聖은 七星, 山神, 獨星을 가리키는 말이죠?
七星은 도교의 북두칠성이 불교화한 것으로 壽命長生 한다는 별이고,
山神은 불교와 관련없는 우리나라 민족 고유의 산악신앙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나 만사형통을 주관하는 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獨星은 스승 없이 혼자 깨달은 聖子를 말하지요. 
이 三聖은 모두 불교 밖에서 수용한 신이기 때문에 건물은 전(殿)이라 하지않고
각(閣)이라 하는데 여기엔 그런 설명이 없어서 제가 계룡산 갑사에 있는
삼성각의 설명서를 참고하여 여기 알려 드림니다.

    
삼성각 현판과 내부

한두평 될듯한 좁은 곳에서 공양을 하고 절을 하며 소원을 비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三聖이 누군지 뭐하는 神인지 아는지 모르는지..그저 자기 잘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고 있는 듯했습니다만...종교란 뭐 그런거니

     
삼성각에서 내려다 본 自在庵전경과   나한전 동굴 밖의 암벽
나한전은 아래 사진을 보시고 위에서 내려다 본 사진을 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나한전

컴퓨러에는 나한전의 "나"자가 한문으로 없으니 사진의 한문을 참고하세요
참고하고 뭐고 할것도 없이 "나한"이라는 말의 뜻은 제가 여러번 저의 산행기에서
언급한바 있습니다. 석가모니의 16 제자들을 이르는 말이며, 인도 옛말(티벳트語)를 중국어로
音譯한것이라고 말한적 있습니다. 
이 곳 '나한전'은 석모니의 16제자와 부처를 모신 殿이며, 바로 우측 옆에
원효약수가 있습니다


동굴 속의 나한전 내부 모습

동굴 속에 수많은 촛불로 공기가 별루이고...습기
석가 제자들이 좀 괴로울듯

나한전을 끝으로 自在庵을 모두 둘러 보고 본격적으로 登山을 시작합니다
나한전 바로 왼쪽 옆으로 등산로는 곧 엎어질듯 날카로운 각도를 세우며
체력에 자신있는 분들만 오르라고 경고를 주고 있습니다
禮佛을 드리러 왔거나 관광차 오신 분들은 여기까지가 모든 여정입니다
당찬 마음을 가지고 올라야합니다

경사도는 평균 60~70도 정도 될 정도로 급경사이며 '하백운대'까지 계속 되며, 
이 구간이 오늘 등산 코스 중에 가장 힘든 코스가 되겠습니다

뒤따라 오시는 분들을 봅니다.
급경사가 실감 나시나요?

숨가쁘게 오르면 첫번째 휴식을 취할수 있는 전망대가 나오며
건너편에 오늘 등산의 하일라이트가 될 "나한대"와 소요산의 최고봉인 "의상대"가
울창한 숲을 뚫고 보입니다.
여기서 보고 정상이 가까운 줄 알았습니다만, 뒷쪽으로 다섯개의 산봉우리를
오르고 내리고 오르고를 해야 정상에 갈수 있었습니다.

소요[逍遙]하며 산행 했다는 말은 진실이 아니란걸 느끼며
글자 그대로 登山을 합니다

장난 아닙니다.
멋 모르고 따라 올랐던 자재암 구경왔던 사람들은 중도에서 대부분 하산합니다
땀이 나고, 숨이 차기 시작합니다.
숨이 차고 땀이 나기 시작 할 무렵부터 이럴때 등산하는 신체적 기분은 점점 더 좋아 집니다.
이런 기분은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되었죠?

달리기이던 등산이던 무슨 운동이던 30여분 이상 계속하면 숨이 차고 땀이 날때쯤에
기분이 좀 좋아지고 "이제 몸이 좀 풀리기 시작하는군"이란 말을 많이 하죠?
그 이전까지는 제일 힘들고 괴롭습니다만.....
숨이 차고 땀이 날때쯤에 우리 몸속에서 "세파 엔돌핀"이란 호르몬이 분비 된다고하죠.
이 호르몬이 기분을 좋게하고 모든 근육을 부드럽게 해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운동을 하려면, 최소한 30분이상 땀이 날때까지 해야 효과가 있다는거죠
    
소요산 등산코스의 장점은 고비마다 휴식을 취할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서
차근 차근 오르면 그렇게 괴롭지는 않겠더군요...점점 소요[逍遙]의 의미를
터득해 갑니다.

서너번의 전망 휴게터를 지나야 '하백운대'에 오를수 있습니다
'하백운대'까지가 가장 경사가 심합니다

소요산도 肉山에 속한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정상봉우리들과 칼바위 능선을 제외하고는 흙이라 숲이 우거져 바같 세상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자재암이 있는 계곡을 뒤돌아 보며...오르고 또 오름니다

소요산은 화강암, 퇴적암, 편무암등 다양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듯한 산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산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만, 여기는 봉우리마다
암석의 종류가 다른듯했습니다. 저도 옛날에 모 광업회사 해외자원개발실에 근무한적이 있어
지질에 대해 쬐끔 줏어 들은 초보적인 지식은 있습니다. ㅎㅎ

하백운대 정상이 보입니다
소요산 전철역에서 여기까지 이곳 저곳 자재암들을 구경하며 올라 1시간30분 정도
걸린듯합니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고 저는 말합니다. 제가 등산을 홀로 하는 이유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산행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악회나 동반자가 있으면 아무래도 단체 생활에 동조 해야하기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진도 찍어야하고, 내력이나 사연도 자세히 알아 봐야하기에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마시고 싶을 때 퍼질러 앉아 세월아 네월아 할수 있기때문입니다.
대자연을 감상도하고, 세상살이 스트레스도 풀며, 소리도 지르고, 잠도 자고.....
                
                이정표를 스테인레스로 만들어 놓은 것이 독특했습니다


'하백운대 정상'

왜 백운대라 했는지는 조사하지 못했습니다만, 여느 산이나 같이 하얀 구름이 걸려
쉬어 가고, 또한 그 雲海를 위에서 내려다 보며 감상도 하는 그런 곳이라 이름 했겠죠
여기에도 막걸리를 올려 판매하시는 분이 있더군요. 대단한 생존노력입니다


'하백운대'를 내려 '중백운대'로 향합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듯한데 이곳 쯤에 風穴이 있다고 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여름엔 시원한 바람이 나오고 겨울엔 상대적으로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고 하던데...
그리고 개발 예정이라는 이야기까지 기억 납니다만, 찾을 수가 없었고
다른 분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아시는 분들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본의 아니게 되버렸습니다..ㅎㅎ

이제부터 소요산 자재암의 핵심 이야기를 산행을 하며 얘기 하렵니다
아시는 분들도 많으실겁니다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함께 하시죠...
원효스님에 대해 알아 보고, 원효와 요석공주와의 三日夜話 얘기를 하겠습니다.
원효는 아시다시피 佛敎를 나라 통치 이념으로 佛國을 이룰려고 했던 新羅時代의
진평왕 39년(617년)에 지금의 대구옆 경산시에서 태어 났습니다
아버지는 '설 담날'이라는 분이고 벼슬을 했는데 지금으로 따지자면 6급 공무원쯤 되는
신라시대 관직 서열 17계급중에 열한번째 서열인 육두품 내마(奈麻)의 지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4 원효불기(元曉不羈)에는 원효에 대해 7가지 설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백운대를 향하여...

7가지 설화중에 첫번째가 원효의 탄생에 관한 것입니다
앞으로 쓰는 글들은 물론 기록에 기초를 두고 쓰지만 저의 주관적 상상력과 개인 의견이
많이 가미되어 다소 사실과 다를수도 있으며, 과장 허무맹랑 할수도 있으니 참고적으로
그저 재미로 읽어 주시길 바라며 종교적 다툼은 별 의미가 없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원효의 아버지 설 담날과 어머니 사이에는 자식이 없어서 오랜 동안 고민하며, 
자식을 얻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이던 어느날 밤....
부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떴습니다.
아직 날이 새지 않은 그런 시각이었습니다.
"그럼.....내가 꿈을 꾸었단 말인가?
이건 예사 꿈이 아니야. 너무나도 생생한꿈 이렇게 멋진꿈은 처음이야."
사리부인은 자신의 마음이 설레는것을 느꼈습니다.
놀랍고도 기이한 예감이 부인의 몸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어둠속이었지만 부인의 마음은 조금도 어둡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환한 꽃밭에라도 서 있는 느낌,
아니면 귀하고 아름다운 꽃가마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느낌이었다할수있습니다.
부인은 자고있는 남편을 흔들었다.
"여보,여보."
사리부인이 흔들었지만 남편, 설담날은 끄덕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인은 다시 흔들었습니다. 그제야 남편은 겨우 눈을 떠며...
깅상도 남편 무뚝뚝한건 예나 지금이나 뭐 변하겠소만
"왜 그러오? 날이 새려면 아직 먼 것 같은데..." 설담날은 돌아 누웠습니다.
"여보, 내 말 좀 들어봐요.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응, 으응........." 설담날은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글쎄, 여보. 하늘의 별 중에서 큰 별 하나가 새가 날아들듯 내 몸속으로 떨어졌어요."
" 지금 뭐라고 했소?"
설담날은 홱 몸을 돌리며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아무리 무뚝뚝하기로 세계적인 깅상도 냄편도 이런건 짱구가 획 돌아 가죠
잽싸게 이불 뒤집어 쓰고 '내 아 나~도~'하며 작업을 했겠죠?
이렇게 원효는 잉태됩니다요~
어머니가 원효(元曉)를 잉태(孕胎)하여 만삭이 되었을 때
불지촌의 북쪽 율곡의 밤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홀연 산기를 일으켜
남편의 옷을 나무에 걸고 그 안에 자리를 마련하고 해산하였답니다. 
그래서 그 밤나무를 '사라수(沙羅樹)' 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 나무의 열매가 보통과 달랐으므로 '사라밤' 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중백운대가 보입니다
 하,중,상 백운대 중에서 중백운대의 경치가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밤에 관한 이야기인데
옛날 절을 주관한 이가 절의 종 한 사람에게 하룻저녁에 밤 두 개씩을 끼니로 주었더니,
종은 불만을 품고 관가에 송소하였답니다. 관가에서 그 밤을 가져다가 살펴보았더니, 
한 개가 바구니 하나에 가득 차는 큰 밤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관리는 도리어 종 한 사람에게 한 개씩을 주도록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 나무가 있는 골짜기를 율곡(栗谷)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 군요
여기서 제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 들려 드릴까요?
제 아버님이 제 이름을 지을 때 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살아 생전에 말씀 하신적이 있습니다
꿈의 내용인즉 
"깊은 산속에 밤나무가 무지하게 많았는데, 그 밤나무들이 모두 갑자기 꽃을 활짝 피우더니
그 밤꽃 사이로 네가 홀연이 나오더라~ 그래서 밤栗자에 영화榮자를 택했노라~"
ㅎㅎ 세월이 흘러 제가 원효 전기를 읽어 본 다음...
"음~~아버님이 내 이름 지을 때 원효 탄생설화를 컨닝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제시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신 분이 이러한 컨닝을 했다면 의미있다고...
왜냐면 컨닝도 뭘 쬐끔이라도 알아야 컨닝하는거 아닌가요? ㅎㅎ
돌아 가신지 30년이 넘었으니 저도 아버지 없이 여기까지 홀로 왔습니다
이제와서야 아버님이 자꾸 그리워지는군요..세월 가봐야 쬐끔 철든다더니....제가 그렇습니다
훗날.....제 아들들에게도 그리운 아빠가 되어야 할텐데....
      
세번째 이야기
원효의 어머니가 일찍 유성(流星)이 품안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원효(元曉)를 잉태하였는데
해산할 때가 되자 오색 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원효(元曉)는 천성이 남달리 총명하여 스승 없이 학문을 깨쳤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을 獨聖이라 하지요
일연스님이 삼국유사에서 중국 송나라의 찬영이 쓴 '송신라고승전 원효편'등을 참고하여
이런 설화를 썼다고 하니, 이미 원효와 의상대사는 신라의 聖人일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에 까지 그 명성이 자자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럴때 한국인으로 태어 난걸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중백운대의 소나무들은 수령도 오래되고 험난한 지형에서 자라고 있어 모양도
험난하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숱한 북풍한설에 시달려 북쪽에서 남쪽으로 줄기와
가지가 기울었더군요
네번째 이야기가 원효와 요석공주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산행기의 핵심이므로 별도로 올리겠습니다
다섯번째 이야기는 원효가 요석공주와의 간통 사건으로 파계승이 되어 거리로 나가
거지, 창녀들과 어울리며 양아치 행세를 하다 깨우침을 느끼고 귀족불교에서
민중불교, 즉 대승불교의 길을 걷는 과정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여섯번째 이야기는 원효(元曉)는 바다 龍의 권유에 따라 노상(路上)에서
조서(詔書)를 받고 ≪금강삼매경소 金剛三昧經疏≫를 소의 두 뿔 위에 놓고 저술하여 
이것을 ‘각승(角乘)’이라고 불렀는데 본각(本覺)과 시각(始覺), 
두 가지 깨달음의 미묘한 뜻을 나타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곱번째 이야기는 원효의 입적을 다루고 있습니다
원효(元曉)가 입적하였을 때 
아들 설총(薛聰)이 유해를 부수어 진용을 빚어 분황사에 안치하였다고 하며
설총(薛聰)이 절을 하니 원효상(元曉像)이 문득 돌아보았다고도 합니다
소상은 그 이후 돌아보는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전합니다. 


상백운대를 향하여 중백운대를 하산하고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4 원효불기(元曉不羈)에 기록되 있는 네번째 이야기가
三日夜話로 유명한 원효와 요석공주와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원효는 의상대사의 9년 선배이고, 
지금은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소장되 있는 우리의 보물인 "왕오천축국전"의 저자인
혜초스님들과 한 시대 사람이었지요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순교자 이 차돈과 원광스님, 자장율사를 흠모하며
불교에 귀의합니다


상백운대를 향하여....

원효와 요석공주에 대한 저의 글은 물론 역사적 기록에 근거를 두고 씁니다만
매우 주관적 시각에서 드라마 극본같은 흥미 위주로 과장되고 비유되며 기술하오니
그저 재미로 읽어 주시기 바라며 종교적 시각으로는 제발 보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본명이 '설 서당'인 원효는 중이 되기 전에 그 유명한 신라의 화랑이었습니다.
화랑이 되려면 어느 정도의 신분도 있어야 했지만, 수능시험 400점 만점에
380점 이상은 얻어야하고, 강건한 체력과 무예도 있어야 들어 갈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
요즘 우리나라 SKY대학에 사관학교를 합친 그런 곳에 들어 갈수 있는 능력이
있는 그런 자들이어야 했답니다.
이 당시 요석공주는 공주가 되기 전이었습니다.
김춘추의 둘째딸인 요석은 사실 이 때에 이미 원효인 설 서당과 눈에 불이 붙어 
오가는 눈길 속에 ♥♡♥ 요런게 발산되고 있었습니다
새삼스럽게 요석궁에 들어 간게 아닙니다. 이미 짝사랑 연애질을 했던거죠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요...
로미오와 쥴리엣이 신라시대에도 왔다 갔단 말입니까.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 !!~~ 양희은이 이들을 두고 그 노래를 부르진 않았겠죠? 
하지만 이들은 처녀 총각으로서는 사랑을 이루지 못합니다
요석은 원효와 같은 화랑이었던 '진 여랑'이라고 하는 다른 고위직 자녀와 정략적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당시 정치적 상황은 신라, 백제, 고구려가 최후의 막바지 땅따먹기 시합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석의 신랑 '진 여랑'과 원효는 백제와의 전투에 참여하고, '진 여랑'은 그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요석은 봄철 버들강아지에 물오르듯 한창 나이에 청산과부가 됩니다요~~ 아깝다 에구
한편 살아 남은 '설 서당'은 전투에서의 참혹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보고, 
인간사의 허무를 느끼고   머리 깍고 중이 됩니다............
아까운 청산과부 요석을 완전히 과부로 홀로 남겨 두고...


상백운대로 가는 능선은 암반 위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인상적입니다

스님이 되어 돌아 온 원효
또 이 뭔 웃기는 일이란 말입니까. 
세익스피어의 희곡 속에나 나올법한 母女가 한 남자를 서로 짝사랑하는 일이 일어 납니다
요석공주와 요석공주의 엄마인 왕비는 원효를 서로 짝사랑 했습니다. 사실입니다.
옷길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사실은 삼국유사에는 없지만 野史에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원효에게 서로 잘 보일려고 두 母女가 경쟁적으로 노력합니다.
어느날 왕비가  설법을 듣는 다는 핑개로 스님이 된 원효를 宮으로 불러 드립니다
이런 일은 자주 있었답니다.
남자 맛을 아는 왕비와 공주는 원효가 스님이 아니라 멋진남자 화랑으로만 느껴지고
소녀시절 첫사랑의 연민과 사랑했던 이에게 가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이루어질수 없는 스님과의 속세의 인연을 끊으려 긴긴밤을 보내지만 끊을수 없었답니다
그래서 요석 공주는 원효를 위한 법복과 행장을 만들어 선물도 하고...
연꽃도 꽃꽂이 잘 하여 선물하고..
점점 속내를 원효에게 알리고 있었습니다. 
요석공주도 이미 현대 여성과 같은 적극성을 보였습니다
여성들이 자기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여성상위시대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역사에서 신라시대가 절정기라 할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역대 왕조에서 女王을 둘이나 배출한 유일한 王朝이니까요
한편 머리 빡빡 깍고 면도질까지해서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머리에 모양을 내고 스님이 된 원효.
스님이 되면 뭣합니까? 스님 되면 인간의 본성도 사라집니까? 
억제 할 뿐이지 절대 본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동양, 서양, 아프리카, 아메리카 어느 곳의 그 어느 누구도 인간의 본성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청춘의 첫사랑 요석과의 열정이 아직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던 원효 - 
눈을 감지 않아도 눈 앞에 아른 거리는 어여쁜 과부 요석공주가 적극적으로 대쉬해 오는데
아무리 스님이라도 아직 넷떼루도 떼지 않은 화랑 출신 원효의 마음은 상상에 맡겨도 되겠지요
    
요석공주는 아빠인 무열왕에게도 속내를 드러내고 졸랐습니다. 원효와 결혼 시켜달라고....
이렇게 홀로 짝사랑만 하고 사느니 죽는게 더 낫겠다고 엄포도 넣습니다
아마 이런 얘기는 처음 들으시는 분들이 많으실겁니다.
이글을 쓰는 '파란문'이 너무 오바 하는 거 아님감? 하면서 의문시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그 동안 모두 우리나라 불교의 巨聖 원효스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싶으신 분들이
이런 저런 속들여다 보이는 그런 내용들의 이야기들은 감추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이 많이 감추었다죠
오로지 원효에 의해 요석공주가 당했다고만 알고 있지요?
신라시대 많큼  여성 상위시대는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시대 보다 더한 시대 였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여왕들을 배출한 유일한 왕조이니까요..시대적 상황도 고려하며...


상백운대가 보입니다
그리고 여기까지도 막걸리 올려다 파는 분이 계십니다. 삶에 대한 대단한 집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먹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길이나 물어 보고 그냥 가더군요.ㅉㅉ

날이 갈수록 사모하는 마음이 더해 가는 요석공주와 스님이기 전에 한 남성인 원효.
세상에 이런 시나리오가 지구상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내면의 번뇌는 연민과 사랑...
그리고 부처님의 계율과 승려로서의 명예등 참으로 많은 것들 속에서 
고뇌하는 원효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원효 아니라 석가모니라도 고민 않할수있겠냐?라고 하신다구요? ㅎㅎ


상백운대

원효 - 세로운 세계를 만나다

고뇌와 번민 속에서 나날을 보내던 원효에게 새로운 깨달음의 기회가 옵니다
깨달음인지 술수인지 핑게인지 기록이 없어 확실히 알수는 없습니다만
제가 생각컨데 분명 원효는 '묘수'를 찾을려고 노력했을꺼라 확신합니다
깨달음인지 술수인지 모르지만 원효는 행동에 나섭니다
바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남산의 거지 땡초 대안대사와의 만남과
그 유명한 요석공주와의 3일간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상백운대 정상

여러분~!
이 이야기는 기록된 자료에 의존 하거나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통해 진실여부를 떠나서 
우리가 이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우며 현실의 자기 삶 속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지 살펴보는 일이라고 여겨 저는 매우 감명 깊게 느끼는 이야기이니
아시는 얘기라 할지라도 한번 더 음미 해 보시길 권합니다

상백운대에서 나한대로 가는 길목에 "칼바위 능선"이 있습니다
소요산의 압권이라 할수 있는 멋진 곳이니 가시면 꼭 감상 하시기 바람니다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그냥 지나치더라구요
원효에게 요석공주와의 결합에 결정적 역활을 하게 되는 대안대사와의 일화는 중요합니다
경주의 남산 작은 토굴에 사는 거지같은 대안대사는 말 그대로 타락한 땡초의 모습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홀로 도인인 것입니다 
원효는 왕실에서 설법을 하는 왕실의 고승대덕이고. 
대안대사는 중생들의 눈에는 타락한 중(땡초)의 모습이니 둘은 서로 극과 극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느날, 원효를 좋아하는 왕비의 부름을 받고 설법하러 왕궁으로 교자를 타고 가는 도중에
 대안 대사와 운명적으로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대안 대사는 술에 취해 거지꼴을 하고서는 가마위의 원효대사에게 씨부립니다
"부처님 말씀에 위도 없고 아래도 없으며, 있음도 없고 없음도 없는데. 
어떤 놈은 복이 많아 사람위에 사람이 타고 가며 (사람을 가마에 태우고 가는 것을 빗대)
좋은 옷을 걸치고 , 좋은 곳만 들락거리느냐……?"큰 소리로 조롱합니다
"어떤 놈은 천지가 내 집이고, 내 법당이니 걸림도 없고, 막힘도 없으며,
천지가 다 내 것인데 어떤 놈이 더 편한가! 어디 한번 해보자 "하며 고함을 치니 
그 소리가 원효에게는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로 들렸고 
다른 사람들은 술 먹은 미친 중놈의 미친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원효는 자기 신분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날따라. 비가 부슬 부슬 내렸고...... 
왕실에서 설법을 하는데. 요석공주 이 싸가지 없는 과부가 비에 젖은 옷을 입고
속살이 살짝 살짝 들여다 보이는 요염한 자태로  나 좀 잡아 잡슈~~ 우~하며 있는게 아닌가
세상의 남자가 아무리 스님이라 하더라도 동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집에 와서 별짓을 다해도 동하는 그 마음을 삭힐수는 없었습니다


칼바위 능선의 소나무들

다음날. 
원효는 대안대사를 찾아 나섭니다
토굴 안에는 죽은 어미 곁에 오소리 새끼인지 호랑이 새끼인지 새끼 한마리가 끙끙대며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원효는 그 슬피 울고 있는 소리가 너무 애처롭고 슬퍼서  그를 위해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이때 대안대사가 돌아와 목탁을 치고 있는 원효를 보며 
"당신!!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앙?" 성질 버럭 내며 물었습니다 
원효는 "어린 이것이 어미가 죽어 울고 있기에 불쌍해서 염불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대안대사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완전히 비웃으며
"쯔쯔쯔...배고플 때는 밥을 주는 것이 염불이니라……" 하며 아랫마을에서 동냥해온 젖을 물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원효는 또 한번 대안대사에게 쇠망치로 매를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며 혼자 중얼거립니다.
"아~하. 미친 승이 아니라...고승 대덕 이로구나. 내가 고승대덕이 아니고 이 분이 고승대덕이로다~"
원효는 정식으로 무릎을 꿇고 자초지종 자신의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대안대사는  "좋다. 좋다. 날 따라와라 ~!"


칼바위 능선  정말 아름답고 멋있고....

대안대사는 원효를 데리고 서라벌의 어느 대포 집에 들어가 여자 둘을 사이에 두고 술을 마십니다. 
원효는 '술은 않먹습니다. 여자도 멀리합니다' 하며 안절부절 하고 있었습니다.
술에 취한 대안 대사 
"진리를 가는 데는 마음 따로 몸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니라~"
극락을 갈려면 추락을 맛보아야지 극락을 가는 거야……. 
원효에게 이래도 법에 걸리고 저래도 경계에 걸려서는  영원히 한발자락도 나갈 수 없을 것이야.
요석이 꾀거든.하루 밤을 보내고. 
목탁을 쳐 주거라……
그리고 그걸 뛰어 넘어라……"


칼바위 능선 - 

원효는 요석공주를 사모하는 마음과 이름 있는 승려의 신분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으리라~~
어떤 놈이고 갈등 하지 않을 남성이 있겠는가!!
의상이 내성적이라면 원효는 외향적 성격이라 할수 있습니다
호탕하고 판단이 서면 과감히 실행에 옮기는 그런 성미였습니다
고민과 번민........속에서 살아 오다가 대안대사로 부터 완벽한 해법을 찾아 낸 원효는
 "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
“누가 내게 자루 없는 도끼를 주겠는가?  내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라"
이 유명한 말이 이렇게 탄생 되고 이 말을 서라벌 거리 거리에서 씨부리고 다닙니다
요즈음 개그콘써트식으로 말하자면
"도끼가 도끼 다울려면 도끼 구멍에 또끼 자루를 끼워야지~~
자루 없는 도끼가 도끼인가? 구멍에 박히지 않은 자루없는 도끼가 도끼인가~~!!" ㅎㅎ
그런데 이 방식은 요석공주의 고모가 되는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를 업어 가는
백제의 무왕이 신라 서라벌에서 한번 써 먹은 방법과 유사한 방법이지요?
이것이 그 유명한 향가로서 最古 오래된 "서동요(薯童謠)"이지요?
동요(후에 백제 무왕이 됨)가 선화공주를 업어 갈려고 서라벌에서 스캔들을 떠벌리고 다니죠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시집가 놓고 
서동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한마디로 스캔들을 인위적 의도적으로 뿌리고 다녀 스캔들이 현실화 된다는 얘기입니다
백제 무왕이 신라의 공주를 왕비로 삼을려고 사용한 스캔들 뿌리기이었죠
이 '서동요'는 내용이야 스캔들이지만 국문학사에서는 이두문자 연구에 최고로 꼽지요


칼바위 능선의 바위들은 이렇게 칼처럼 생겼습니다
편마암이라고 하나요? 세월의 풍상을 견디며 살아 온 흔적이 낭자합니다

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
원효가 퍼트리고 다니는 의도적 스캔들 "도끼자루와 도끼구멍 이야기"를 알아 들을 사람은
요석공주와 무열왕, 그리고 왕비 밖에 더 있었겠슈?
"짜식이 이제야 정신 차리고 꼬심을 당했군~~!!"이라 생각 한 무열왕은 
"짜식이 명색이 스님인데 파계승까지 될 각오로 내 딸을 만족 시켜줄까?"라고 의심도 하며
거리를 떠돌고 있는 원효를 모셔 오라고 신하를 보냅니다.
월정교..문천교라고도 하더군요. 서라벌의 남산 밑에 있다는데..저는 못 가봤습니다
짠~~ 무열왕의 신하가 월정교를 건널 때, 이미 올줄 알고 있었던 원효가 쑈를 벌입니다.
원효의 짱구도 여색 앞에선 아주 잘 돌아 갑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안대사를 만났는지도 모름니다. 그렇다면 대단한 고수일텐데..ㅋㅋ
갑자기 발을 헛디디는 척 하며 월정교 아래로 떨어져 옷을 모두 적십니다.
왜그러는지 모두 아시져?
중이라도 간통을 하려면 옷은 벗어야 할테니....
내 옷 벗겨 줘~~나 이젠 중 안할래~~파계승, 그러니  요석공주와 간통 할테야~~라는 신호였던 것입니다

     
상백운대와 나한대 사이의 이정표
이젠 이런 소요산 사진은 눈에도 안들어 오죠? ㅎㅎ
3일간의 사랑

요석궁에 들어가게 된 원효는 자연스럽게 적셔진 승복이 요석공주에 의해 벗겨지고
수많은 나날을 독수공방으로 보내 온 두 남녀에게 촌음도 아까워하며
알몸으로 모든 것을 주고 받는 열정적인 정사는 벌어집니다...
뭇세상 사람들은 간통이라 폄하하지만
제가 생각컨데 절대 간통은 아니고 '스님과 공주의 정사'라고....
세계사에 남는 희귀한 로멘스라 여깁니다
중이 고기 맛을 보면 벼렁빡에 벼룩도 남아 나지 않는다~라는 옛말이 있죠. 속담인가?ㅎ
이들이 하루로 족하겠습니까? 3일 밤낮을 붙어 떨어 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3일 밤낮을 이 소요산의 소나무처럼 붙어 있었다니까요~~

결혼을 목적으로 같이 3일밤낮을 붙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과부와  중이 성행위 만을 하고 헤어 진다면 무슨 법에 접촉 될까요?
에구~ 이런 사례가 없어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옥소리가 헌법재판소에 간통이 뭔 죄인가요?하며 헌법소원을 냈던데..
옥소리의 얘기는 "내가 내몸 이불 속에서 뭔짓을 하던 국가가 왠 참견이여?"
"국가가 언제 날 만족 시켜준적있어?" "내 성행위를 니네들이 왠 참견이야!!~~"
"내가 니네들에게도 피해 줬어?..닝기리~" 이렇게 항변하고 있죠
시대가 바꼈다고 판결이 합법적으로 나지 않을까~한다는 신문기사들이 있더군요
로마제국의 멸망의 원인 아십니까?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로마 시민의 문란한 성생활이었답니다
세계 방방곡곡 식민지에서 들어 오는 엄청난 富
그 다음 갈곳은 인간이 갈수 있는 최후 최고의 오락 SEX라고 하더군요
로마에는 화려한 공중 목욕탕이 수없이 들어 서고 문란한 性狂亂은 시작 되었죠
그 결과 로마 시민의 40%이상이 성병에 결려 종족 보전을 할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죠
그래서 콘스탄티니우스 대제는 로마를 버리고 터어키 이스탄불로 도읍을 옮기는 거지요.
소위 말하는 동로마 제국이 로마가 아닌 터어키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문란한 성생활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고 우리나라와 우리 역사를 좌우하는 문제 일수 있습니다
짧은 한 순간을 살다 가는 하루살이로 인간을 평가하면 않된다고 강조합니다
(저의 블로그 '역사의 숨결'란에 "간통과 로마제국의 멸망"이라는 글이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찾아가 보세요~)
애 못낳는 여자가 절에 가서 백일 기도 드리면 애를 낳는다는 말이 있는데
정자와 난자가 만나지 않아도 애가 탄생 될수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생각컨데 애못낳는 여자가 백일 동안 절에 있으면
분명 뭔 일이 벌어지지~~~그러니 애를 낳지~~라고 입방아를 찧습니다
3일이 지난 후, 원효는 이별을 고합니다..요석공주에게...
"단물 쓴물 다 빨아먹고 떠난다구? 이 땡중아!!~"라고 요석공주가 말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요석공주는 원효대사 가슴을 만지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딜 가시든지 태산보다도 높고 바다보다도 깊고 넓은 이 가슴속에 
티끌보다도 작은 먼지보다도 적은 내가 어느 한구석 기댈 데는 없는지요?"라고 묻습니다
그런 물음에 원효는 대안대사에게서 배운 말을 써 먹습니다
요런 잔머리는 잘 돌아 갑니다
" 있다도 없고 없다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더불어 나도 없는데. 그대가 어디 머물 자리가 있겠느냐?
요석공주는 원효를 그렇게 떠나보냅니다 . 아 무정한 땡중~
에구~ 아까버라~단 3일간의 사랑만 남기고 놈은 떠나가고~~
남은게 사랑만 남았겠습니까? 영자 숙자.....정자도 남아서
그 유명한 신라시대 최고의 학자 중 한사람인 "설 총"을 낳습니다

원효는 3일간의 정사 후....
한바탕 꿈이요. 허깨비 였구나 라고 뇌이며 
이름 모를 어느 산속으로 가서 승복을 벗고 불목한이 되어 
다시 행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수행을 했답니다
그곳이 바로 이곳 
경기도 소요산 자재암이었답니다


칼바위 능선에서 나한대 가는 계곡에 있는 하산하는 길 안내 이정표
  '소요산'의 정상인 ''나한대-의상봉'으로 갑니다.

     
나한대를 오르고 있습니다


나한대를 오르는 길도 경사도가 좀 있습니다

원효는 소요산 자재암에 들어 오기 전에 
스님으로서 요석공주와 간통하여 수행의 길 - 불교-를 파계했으니
자기 자신을 ‘아랫것 중의 아래’라는 뜻의  소성거사(小姓居士)라 하며 무아행을 폈습니다.
즉 저잣거리에 나가 거지, 창녀, 기층민중들 속에서  
표주박에 걸림이 없다는 '무애(無碍)'라는 글을 새겨 천촌만락(千村萬落)을 돌아다니며, 
하층 민중들과 더불어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염불을 외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교화하며 떠돌았다합니다
이 때부터 불교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이것이 대승불교의 시발이 됩니다


뒤돌아 보며....

이는 <화엄경>의 
"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모든 것에서 거리낌없는 사람이라야 한 길로 삶과 죽음을 벗어날 수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 것이랍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오도적 삶을 크게 확대하고 사상의 깊이를 심화시켰으며, 
오로지 일심사상으로 돌아가 널리 중생을 이익 되게 하였던 것이라고 한다는데...
     


나한대 정상



나한대 정상엔 구경거리가 별루입니다


나한대에서 의상대는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나한대에서 의상대로 향합니다


의상대 근처는 암석이 석영 같았습니다
 

의상대 가는 길도 절경입니다
산행 내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소요산의 최고봉 - 의상대
 

의상대사는 여기 온적도 없고 원효가 와서 수행했는데....
왜 소요산의 최정상 봉우리를 원효봉이라 하지 않고 의상대라고 했을까....??

의상대 정상에서 주위를 관망합니다

의상대 아래는 천길 낭떨어지이고


의상대에서 바라 본 '공주봉'

저 공주봉이 요석공주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요석공주는 저 봉우리를 바라 보며 원효가 잘 되기를 기도했답니다

의상대에서 공주봉으로 내려 가는 길도 경사가 심합니다
이쪽으로 올라 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계단이 길었고 경사가 심합니다


의상대와 공주봉 사이의 계곡에서 점심 식사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이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쇠주 한잔 했습니다
           오늘도 지난주와 같이 사태볶음 안주였으며 다른 것은  청양고추와 고추장이었습니다
 

공주봉으로 향합니다


만만하게 봤던 공주봉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공주봉이라서인지 공주 오르기가 힘든다고 지나는 뭇남성들이 우스개 소리를 합니다

힘들게 공주봉을 오릅니다
힘든 이유는 이제까지 많이 걸었고 소주도 한잔 해서 더욱 힘들어 나타나는 현상이겠죠

공주봉 정상이 나옵니다만 이곳은 장소가 협소했구요....

원효와 헤어진 요석공주는 일년후쯤 아들을 낳습니다
아시다시피 "설 총"입니다
요석공주가 그냥 청산과부로 어린 아들 하나 데리고 살 여자는 아니었나 봅니다
요석공주가 누구입니까?  원효라는 당시 國僧을 꼬셔서 3일 동안 정사를 벌인 여자 아닙니까?
"중 따먹는 여자"는 공식 기록으로는 요석 공주가 유일하지 않을까요?
보통 여자는 아니었을 것이 확실합니다


공주봉 정상 휴게소는 옆에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요석공주는 애만 하나 만들어 놓고 떠나 버린 서방을 찾아 나섰습니다
신라시대에 서라벌에서 여기 소요산까지 오려면 고생 깨나 했을 것입니다
땡중이던 뭐던 요석에게는 서방이었기에 어떤 고난도 마다하지 않고 
서방 찾아 삼천리는 시작됩니다


소요산 산행 중에 미국인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이유가 있더군요 

제 개인 생각으로는 원효가 여기 소요산에 몰래 홀로 들어와 수행하지는 않았을 걸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요석공주가 서라벌에서 여기까지 찾아 올려면 거주지를 확인 했기에 가능 했을 걸로 짐작되기 때문. 
요즘처럼 헨드폰이나 스마트폰이 있었겠습니까? 1,300년 전인데...KTX나 자가용이 있었겠습니까
즉, 원효가 슬쩍 요석공주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면 도져히 이곳 '소요산 자재암'을 알수 없었겠죠


공주봉 정상은 넓직하게 꾸며져 있어 놀기 좋았습니다

요석공주가 천신만고 끝에 찾아 온 소요산
아휴~ 이젠 서방 곁에서 닐리리~하며 살아야지..하고 생각 했겠지요
하지만 원효는 요석공주를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했답니다
이제는 佛僧으로 돌아가 수행에 만전을 다하겠으니, 공주는 돌아 가라고 냉정하게 뿌리칩니다
이래도 되는겁니까?
요즈음 같았으면 어쩌면 혼인빙자간통혐의로 쇠고랑을 찻을수도 있는데
머나먼 길을 온갖 고생을 다하며 찾아 온 여자에게 너무 합니니다~♬ 김수미가 曲을 할일


공주봉에서 바라본 미군 기지와 동두천 시가지

앞에 보이는 계곡 전부가 유명한 미군부대 동두천 사령부입니다
소요산에 미국사람이 많은 이유를 아시겠죠?
그런데 이 미군부대가 모두 평택으로 이전한다고 하지요
미군들로부터 나오는 딸라로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떡하나....
밤의 환락가로 라스베가스 같은 밤이 된다는 동두천이 이젠 다른 산업으로
경제를 일으켜야 할텐데....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무지하게 발전했습니다

     
정상 오른쪽으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조금 내려 가니 전망대가 나오더군요

원효는 냉혹하게 요석공주를 뿌리치며 자재암에 올라 두문불출을 하니
요석공주는 에~라 이쌔끼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라고 생각했는지
오전에 올라 올때 봤던 일주문 밖 "요석 궁터"에 별궁을 짓고 살았답니다.
요새끼 꼴려서 밤에 내려 오면 국물이라도 주나 봐라~~!!
설마 이런진 않았겠죠?ㅎㅎ  하지만 궁을 짓고 살았다는 것은 확실한 모양인데......
오늘 산행에는 가지 못했던  이정표로만 보았던 "선녀탕"의 전설이 있는데
요것이 묘하게 혹시 선녀를 요석공주로 분하여 우회적으로 원효 위상을
업-그레이드 시킨게 아닌가합니다. 분명 제 생각입니다.
선녀탕과 자재암의 유래를  들려 드림니다


전망대에서 의상대를 올려다 보고...

이곳 自在庵에는 元曉가 머물 때 觀音菩薩을 親見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元曉가 庵子에서 혼자 수도할 때 비바람이 부는 어느 날 밤에
낯선 젊은 여자가 찾아와 하룻밤을 묵고 갈 것을 청했다고합니다 
元曉는 비내리는 밤이므로 그 여인을 되돌려보낼 수가 없어 하룻밤 묵어 가도록 허락했습니다. 
침침한 등불에 비친 그 여인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수도승인 元曉는 공연히 여자를 맞아들였다고 뉘우쳤지만 이미 허락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미 여자 맛을 본 원효인지라 눈을 감아도 이 여인의 모습이 떠올라 元曉는 精進을 할 수 없었습니다. 
남자라면 당연한 일이고 아무렇지도 않다면 인간이 아닙니다


석영암으로 이루어진 절벽 아래를 내려다 보니 천길 낭떨어지....

元曉는 "모든 것은 마음에 따라 일어나는 법이다. 내가 色心이 없다면 이 여인은 목석이나 다름없다. 
나의 오랜 修道를 이 여인으로 인하여 하룻밤 사이에 무너뜨릴 수 없다"고 되뇌면서 
비에 젖은 여인을 따뜻한 곳으로 눕히고 손으로 차가운 몸을 주물러 녹여주었다고합니다 
元曉는 묘한 느낌이 일어나지만 마음속으로 念佛을 하면서 유혹을 물리쳤다고하는데....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아무리 설화라 한다 하더라도...
원효 업그레이드 시킬려고 꾸민 이야기 냄새가 물씬 물씬 납니다만 계속합니다


내려가는 길의 경사도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자재암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던 왼쪽 - 즉 공주봉부터 먼저 오르던
힘들기는 같을 듯 합니다

얼마 후 몸이 풀린 여인은 자리에 일어나 앉아 元曉에게 요염한 눈길을 보내고 접근해왔습니다.
여자란 다 이런 가요?
저는 이 여인이 요석공주라고 확신합니다만....설화에서는 절대 아니랍니다 
元曉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밖으로 뛰쳐나갔다고합니다.
삥~신..옛날 거지 땡초 '대안대사'한테 배운건 요석공주한테만 써먹으라고 갈켜줬나? 아니면
이젠 인간세계를 떠나 진짜 해탈의 경지로 간다는 말인가

새벽녘에 元曉는 간밤에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난 계곡에 옷을 벗고 목욕을 하였답니다. 
맑은 물에 몸을 담구어 간밤에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서 
유혹을 물리친 佛心으로 기쁨에 젖어 있었다고하는군요
마침 그때 우연히 앞을 바라보니 아침 햇살에 비친 그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갑자기 보여 
元曉는 가까이 오지 말도록 나무랐다.고 하는데....그때 그 여인은 
"제가 스님을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님이 저를 꼬시는거 아닙니까?"하고 대꾸하였다네요.ㅎㅎ
맞는 말입니다. 밤중에 이 여인 몸을 주물러 주물탕으로만 녹여만 주고 ..만족 시켜주지는 않고...
새벽녁에 혼자 밖에 나가 홀라당 벗고 보는 앞에서 목욕을 해?  이게 여자 몸 달구는게 아니고 뭐여?
元曉는 이 말을 듣고 난 뒤 눈이 캄캄해지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답니다. 
 또 업그레이드 시킵니다..ㅎ


옛절터가 나왔으며 그 규모는 커지 않았을듯..

잠시 후 정신을 차려 자신을 되돌아보니 광명을 찾은 듯 그의 눈에는 주위 사물이 밝게 보였다는군요 
元曉는 "나는 이제 깨달았다." 하면서 물 속에서 나와 옷을 벗은 채로 여인 앞으로 지나갔답니다
이거이 틀림없이 한탕 하고 난 다음의 일이라 여겨지는데 어떻던 설화는 그렇습니다..ㅎㅎ


절터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무슨 절이었는지도 안내가 없었습니다

그때 그 여인은 더 이상 요염한 여자가 아니라 
금빛 찬란한 後光을 띈 관세음보살(觀音菩薩)이 되어 폭포 위로 사라졌다는군요
ㅋㅋ 이거 말 됩니까? 여하튼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여인은 요석 공주를 빗대서 나타난 여인으로
생각합니다
觀音菩薩이 元曉의 佛心을 시험하기 위해 잠시 인간으로 現身한 것이랍니다. 
이 절 이름을 自在庵이라고 고쳐 불렀던 이유는 
"아무거리낌 없이 마음과 뜻을 다스릴 수 있었다"는 元曉의 깨달음에서 비롯된다고 하는데
원효에겐 여자 멀리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세음 보살 여인은 요석공주 같지 않으세요? ㅎㅎ

하산이 끝나갈 무렵 
뭔가 했더니 '자연보호 헌장' 비석이더군요
               
오전에 소요산을 오르며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했던 자재암 입구 삼거리에 다시 내려 왔습니다

오후가 되니 그림자가 땅바닥에 들어 눕기 시작합니다
오전에 들어 왔던 일주문을 나서며 트랙킹 코스를 내려 갑니다

입장료가 비싸게 느껴졌던 매표소를 지나고....
입장료 수입만 한달에 10억이 넘겠더군요..일년에 백억..억..억..
원효 덕으로 입장 수입을 벌어 들인다면 薛氏 집안이 혜택을 받아야 할텐데
조계종이 싹쓸이 하겠지요


心生卽種種心生 心滅卽種種心滅 
如來大師云 三界虛僞 唯心所作

한 생각이 일어나니 갖가지 마음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사라지니 갖가지 마음이 사라진다. 
여래께서 이르시되, 삼계가 허위이니 오직 마음만이 짓는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 특집
오늘 산행을 마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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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길에 연이어 끝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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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耶山 종주 산행기 

          가을이 왔다라기 보다는 여름은 갔습니다
          기온은 아직 여름 같은 한낮을 알리지만
          하늘빛은 분명 가을을 알리고 있습니다
          푸르런 하늘빛이 어느 곳으로나 다녀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주는 날 --
          9월의 첫 일요일은 大耶山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인연 - 모교 교우님들과 함께......

     
     [잠실 롯데월드 시계탑 앞 - 모여들기 시작하는 교우들]
     9월의 첫번째 일요일인 7일 오전 7시경
     잠실 롯데월드 시계탑앞으로 조심스런 몸가짐으로 나갔습니다
     왜냐구요?
     평상시 관심있게 가까이 하지 않던
     하늘같은 선배님들 --
     바다같은 후배님들을
     같은 땅 위에서 함께 노니여야 한다고 만나 뵈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산행은 저의 모교인 휘문고등학교 산악회 "徽山會"의 정기산행에 함께하기 위해
     밤잠도 설치며 사는 곳이 잠실과는 먼 거리에 있어 새벽부터 서둘러 길을 나섰습니다
     평상시 단체 행동을 하여야하는 단체 산행을 매우 싫어하지만 
     大耶山은 大耶山의 위치상 단독 산행하기엔 교통편이 무지 무지 불편하여 미루고 있었는데
     때마침 교우회 "徽山會"의 정기산행이 있어 평상시 얼굴도 내밀지 않다가 자기 필요하다고
     뻔뻔스럽게 참여하게되니 다소 송구스럽기도 하더군요
     
     [잠실 롯데월드 시계탑 앞에서 120명 버스 3대에 승차]
     저의 이번 휘산회 참여는 휘산회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알려져서인지
     이기주의자의 출현에도 많은 선후배님들이 반겨 주었습니다
     내심 미안함을 반가움으로 변화 시켜주는 끈없는 끈인 母校와 校友는 
     바람 불어 출렁이는 험난한 세속에서도 언제나 그리운 존재인가 봅니다
     
     [槐山邑內]
     버스는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를 차례로 지나
     槐山 나들목을 나서 槐山邑內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저는 槐山을 처음으로 지나가 봅니다.
     평상시 이 고을 이름을 왜 괴상한 槐山으로 지었을까?라고 궁금해 했습니다
     더 이쁘고 멋있는 단어가 어디 한두개이겠습니까만 궂이 槐山으로 지은 이유가
     궁금했습니다만 어느 곳에서도 그 이유를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槐山의 槐자가 홰나무 槐자라는 것 정도...
     槐자는 나무木변에 귀신 鬼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상형문자이기에
     홰나무를 심어 키우면 귀신이 얼씬도 하지 못한다는 풍설이 전해 내려 오고있습니다
     槐山은 우리나라 중앙부에 위치하며, 백두대간의 속리산 국립공원의 무수한 산으로
     槐山郡은 자기 면적의 거의 모두가 山으로 뒤덮여있는 곳이지요
     농사나 공장을 짓기에는 척박한 땅이라 인구도 36,000여명으로 매우 적은 郡이라합니다
     잠실 운동장에 야구 구경하러 오는 하루 관중수만도 못한 인구입니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3리 대야산 들머리]
     버스는 이리저리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길을 물어  찾아 찾아서 대야산 들머리로 왔습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약30여분 늦게  11시 정각에 도착 했습니다만 
     이 정도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진 곳에 대야산은 있었습니다
     
     [대야산 위치도]
     
     [산행 지도]
     학교 역사가 100년이 넘다 보니 선배와 후배사이의 중간쯤이 저희 기수들 쯤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대야산의 산행코스는 저의 선배님들과 또한 동행한 휘문여고생들로 한팀을 이뤄
     문경의 용추계곡에서 원점회귀하는 "A"코스(산행지도의 붉은 선)와
     어정쩡 중간 기수인 저희 62회부터 후배님들은 암벽코스가 많아 다소 위험하다는
     그러나 암벽등반의 묘미를 느낄수 있다는 "B"코스(산행지도의 푸른색 선)로 나뉘어
     최종 문경의 선유동계곡에서 다시 만나는 2팀으로 나뉘어 진행했습니다
     "A"코스는 버스 2대, "B"코스는 버스 한대에 승차한 교우들이 코스 공략에 나섰습니다
     나이가 들어야 산을 더욱 찾는다는 말이 저의 주변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저의 아랫 기수들은 선배님들에 비해 매우 적은 인원이 참여하고 있군요
     
     [괴산군 청천면 삼송3리 - 대야산 들머리]
     버스에서 내리니 저 멀리 오늘의 산행지 중 하나인 대야산의 '중대봉'이 보입니다
     무한히 펼쳐지는 대자연 속으로 오늘도 여행을 떠납니다
     가슴 설래며 즐거움이 험뻑 찾아 오고 있습니다..아~~!! 大耶山
     
     [청천면 삼송3리 농바위 마을]
     괴산군 청천면의 동네 - 즉 里가 35개 里인데 인구가 모두 5,000명 정도라니
     한개 里에 140명 정도가 살고 있는 인구밀도가 무척 낮은 아주조용한 동네인듯합니다
     그러나 더러운 인간들은 없고 푸른 山과 맑은 江이 한데 어우러져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장수한다니 이렇게 좋은 곳을 놔두고
     매연에 찌든 철근 콩크리트 속으로 찾아 들어 가 살려고 한다니 아이러니합니다
     
     [농바위 마을의 역사를 알리는 느티나무 - 槐木]
     이곳 농바위 마을은 우리나라에서 최장수 마을 중 한곳으로 소문 나 있는 곳입니다
     이렇게 공기와 물이 맑으니 밥없이 공기와 물만으로도 살수 있을 듯 합니다
     얼마전 이곳이 모 우유회사의 CF 촬영지였습니다. 이 나무 보시면 혹시 기억나지 않나요?
     허연 수염을 늘어떠린 할아버지가 건강한 모습으로 이 나무를 배경으로 웃으시는.....
     
     [준비운동]
     건강의 상징 농바위마을의 지킴이 槐木아래에서 준비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할건 다하고 지킬건 다 지키는군요
     그래서 학교는 좋은 학교를 나와야하는가 봐요~~ ㅎㅎ (농담 ㅋㅋ)다른 학교도 다 하죠?
     
     "B"코스 주자들의 단체 기념사진을 기록으로 남기며....
      안전한 산행, 즐거운 산행을 다짐했습니다
      (이 산행기 필자는 사진의 오른쪽 서있는 줄의 앞줄 첫번째(전체로는 두번째 - 혹시 궁금해 하실까해서..ㅎㅎ 
      저의 산행기이기에  찍사인 필자는 앞으로 나오지 못하므로 미리 참석 증명서로 알려드림  ㅎㅎ)
     
     [산행 시작]
     "B"코스 그룹에서는 제일 늙었다고 62회부터 출발하라고 하네요
     제일 못 걸을꺼라고 예견해서이리라고 생각하니 듣는 62회 기분 더럽게 나쁘더군요.
     62회는 저쪽 "A"코스 그룹으로 가면 제일 쫄병 어린이들인데....닝기리~~ㅎㅎ
     여튼 줄을 잘 서야 설움을 안받지요 ^*^
          
     논밭을 지나 물을 건너 대야산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오늘은 9월의 기온으로는 제법 높은 더운 날씨입니다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듯 점점 산이 우리를 삼키려합니다
     하지만 대자연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마음은 즐겁기만 합니다
     
     [갈림길 - 중대봉 산행 들머리]
     이 언덕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곳에 도착하니 11시 40분 - 산행 시작지점에서 40분 걸렸습니다
     이곳은 중대봉으로 향하는 들머리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직진해서 가면 '밀재'를 지나 문경 가은면으로 갑니다
     여기서 수건도 꺼내고 물도 조금 마시며 '슬랩등반'을 준비합니다
          
     [중대봉 산행 들머리]
     길바닥에 조그만하게 놓여있는 안내판이 고작인 '중대봉' 산행 들머리를 따라
     본격적인 오르막 '登山'이 시작됩니다
     
     중대봉 산행 들머리에서 급격한 경사를 이루는 오르막
     이제부터는 걷기의 실력차가 나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사진을 찍고 이곳 저곳을 관찰하느라 항시 조금씩 늦어집니다만
     저의 동기생들은 계속 일등으로 저만치 잘 가고 있었습니다. 파이팅!!~~
     
     조금 오르니 바깥세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 산의 가운데 부분이 '밀재'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대야산 정상을 밟고 저 '밀재로'로 내려와 다시 문경쪽 '용추계곡'으로 내려 갈것입니다
     
     '중대봉'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시작이랍니다. 갈길이 멀게만 느껴지는군요..벌써 숨이 차 오는데....
     
     [좁은 門]
     이 좁은 岩門이 "大슬랩"구간의 시작임을 알려 주더군요
     여기서부터는 워킹때의 신발끈보다 더 타이트하게 메 주어야합니다
     
     [小슬랩 구간]
     조그만 암벽이 우리를 워밍업 시키며 대슬랩을 준비시키더군요
     대야산은 커리큘럼이 잘 되있어요~ ㅎㅎ
     
     [大슬랩구간]
     본격적으로 슬랩구간이 펼쳐집니다.
     경험이 별루 없는 분들이 겁을 먹고 간을 졸이지만.....
     어쩔수 없이 암벽에 붙으면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모를 정도로 잘 올라갑니다
     걱정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암벽은 외관상 겁을 줄 뿐이며 실제 매우 온순한 놈들입니다
     
     이제 암벽타기의 묘미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두려움은 완전히 가시고, 오르는 방법을 연구해 가며, 또 선배들의 조언을 들으며
     흐르는 땀을 훌터 내며 재미를 느껴갑니다
     
     자신의 안전도 생각하지만 
     자기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에 대한 안전까지도 생각하며 
     서로 서로 연구 토론 조언을 해가며 오릅니다
     
     [大슬랩]
     "슬랩"이라는 단어를 확실히 아는 분들이 계시기도 하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이 기회에 슬랩에 대해 간단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slap은 일반적으로는 여러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만
     여기서는 전문용어로서의 "slap"을 알려드리도록하겠습니다
     전문용어 - 즉 스포츠용어로서 
     등산에서 오목 볼록한 부분이 별로 없어 미끄러지기 쉬운 바위를 말합니다
     대야산 중대봉의 대슬랩코스는 새끼에 지나지 않는 아주 조그만한 평이한 코스입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최고 슬랩코스가 북한산의 "인수봉"입니다
     30억년의 나이를 자랑하는 인수봉은 한자로 仁壽峰이라합니다
     
     [중대봉 대슬랩]
     말이 대슬랩코스이지 그냥 서서 걸을수 있을 정도로 경사는 완만합니다
     이 글을 보시는 "A"코스로 가신 선배님들은 아마 후회하실겁니다.
     이렇다면 "B"코스로 갈껄...괜히 겁먹고 ~~이그~~ ^*^ ^.^ ^&^
     
     처음에 겁먹고 주저하던 모든 분들이 이젠 여유를 부립니다 ㅎㅎ
     그러나~~                    암벽이 여기만 있는게 아닙니다    기대하시라~~
     
     위에서 내려다 보며 올라 오는 분들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보기엔 아찔합니다만 실제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경험하는거죠
     
     [곰바위 밑]
     중대봉의 중간쯤에 위치한 '곰바위' 아래에서 중대봉을 조망합니다
     아직 갈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곰바위]
     대야산 중대봉의 명물 '곰바위'입니다
     이런 바위는 '꿈보다 해몽'이라고 느끼는 분들 마음대로 생각해도 됩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곰이라기 보다는 두꺼비에 가깝다고 느끼더군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이십니까
     저는 이 곰바위 보다 곰바위 뒤로 보이는 조항산과 청화산이 더 멋있어 보이는데...
     사람에 따라 보는 시각이 차이 나죠? 곰바위를 보시는 분들의 눈엔 곰바위만 보입니다
     무학대사와 이성계 사이 대화가 생각 납니다. ㅎㅎ
     "개 눈엔 똥만 보이고 부처의 눈엔 중생이 모두 부처로 보인다"ㅋㅋ
     
     [곰바위에 오른 후배님들 - 65회 이 용주, 안 영원]
     저의 산행기에는 개인 인물 사진을 올리지 않습니다. 왜냐면 많은 사람들은
     개인 인물 사진 - 즉 '자기 관광기념기'가  아니라 '모두 공감하는 山行記'를 원하기 때문이죠.
     후배라 해봐야 3년 후배이니 같이 늙어 가는 주제에 도토리 키재기입니다만
     이번엔 특별히 저의 산행기에 후배님들의 개인 사진을 올립니다.
     왜냐하면 오늘 저를 무척 반갑게 맞아 주었거던요~~ㅎ 그래서 보답으로~
    ㅎ 이런 정도의 재량권은 있어야죠..
     산행기 쓰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나요? 등산 보다 훤씬 더 힘들어요
     
     [곰바위에서 내려다 본 대슬랩]
     보기보단 경사가 완만합니다
     누구나 오를수 있으니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걷기가 편하죠
     
     [곰바위에서 바라 본 중대봉 오르는 길]
     여기도 차그차근 오르면 아무른 문제 없습니다
     
     대슬랩 구간을 지나고 다소 평이한 숲길을 지나면.....
     
     [유격 훈련장 코스]
     대슬랩 구간을 지나 암벽은 이제 끝났겠지~라고 안도 했을 때 쯤....
     진짜로 힘든 암벽코스가 나옵니다.
     이곳은 경사가 가파라서 로프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오르기 힘듭니다
     다시 말해 로프를 이용해 오르면 또 별거 없는 구간입니다
     함께 올라 가 볼까요?
     
     [유격 훈련장 코스]
     중대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직벽코스
     제가 시범으로 먼저 오르고 올라 오는 분들을 촬영했습니다
     전부 잘 올라왔습니다.
     사실 이런 로프를 타는 코스가 전체적 힘은 덜 듭니다
     왜냐하면 다리로만 걷다가 네발로 걸으니 힘이 분산되 한결 편합니다
     
     팔도 이용해 네발로 걸으니 한결 편하지만....
     아마도 집에서 이 산행기를 읽으시는 이 코스에 올랐던 분들은
     아직까지도 아마 팔과 어깨가 갑작스런 운동으로 뻑쩍지근하시죠? ㅎㅎ
     
     중대봉 정상쯤 오를때 내려다 보니
     산행을 시작한 농바위 마을이 아득히 보입니다
     도시의 아스팔트 콘크리트 숲이 좋으신지....
     사람들의 모습 찾기가 쉽지않은 온통 산과 숲뿐인 이곳이 좋으신지....
     槐山이 자랑할수 있는게 두가지라고 힘주어 괴산군청 홈페이지는 자랑하더군요
     자랑할것이 두개라~~
     흠 얼마나 자랑할게 없으면 이런걸 자랑할까~~불쌍한 맘까지 드는군요
     바로 대학옥수수와 괴산고추였습니다
     
     괴산군청 홈피에서 쎄비해 왔습니다
     
     또다시 앞을 가로막는 암벽을 옆으로 돌아 오르니....
     
     중대봉 정상이 나타났습니다
     
     [중대봉 정상]
     중대봉 정상에 오르니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여러 산악회에서 온 산객들과 우리 '휘산회' 교우들이 함께 올랐기에
     좁은 중대봉 정상은 만원이었습니다
          
          [중대봉 정상석]
          도착하니 오후 1시 5분 - 2시간 5분이 걸려 중대봉에 올랐습니다
          산의 위용보다는 상대적으로 초라한 정상석
          정상석 뒤에 보이는 이정표의 안내 時間을 믿으면 고생합니다
          프로 산꾼들이나 저 시간에 갈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산이정표가 비슷한 양상을 띄고있습니다만
          초보 산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기 위해 프로들의 시간을 표기했으리라
          참고로 저는 여기서 상대봉인 대야산 정상까지 1시간 15분 걸렸습니다
     
     [점심식사와 휴식]
     중대봉 정상에서 점심식사와 휴식을 약 20분정도...
     
     [중대봉 하산]
     대야산 정상을 가기 위해선 다시 하산을 해야합니다
     이럴때가 매우 힘듭니다.
     2시간 이상의 등산을 하고, 또 점심식사를 했는데 능선으로 가지않고
     다시 하산하여 또 올라야 할때가 가장 피로를 느낄때이죠?
     점심 먹은게 소화가 잘 안됩니다
     
     하산을 하면 다시 등산을 해야하지요?
     그런데 경사가 보통이 아닙니다
     대야산 정상까지 크고 작은 봉우리를 여러개 넘어야합니다
     멀리서는 한두개로 보입니다만....
     
     다양한 코스가 있어 절대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힘이 들 뿐입니다 ㅎㅎ
     
     무명 바위
     해몽을 해 볼까요?
     어떻게 보이십니까?
     저는 어느 만화책의 주인공이 누워 있는듯한데...만화책 제목은 기억이 않납니다
     
     대야산 정상으로 가는 사이에 있는 봉우리들
     중대봉 정상에서는 보이지 않던 봉우리들이 갈수록 자꾸 나타납니다
     에구~ 이제서야 더 힘들기 시작합니다
     
     건너편 봉우리에 와서 뒤돌아 본 '중대봉'
     중대봉의 '대슬랩' 구간이 확연히 보이는군요.
     저 구간을 지나고 보면 성취감에 젖어 자기 자신을 자랑 스럽게 느끼게됩니다  
     이런 맛에 홀려 자꾸 자꾸 산을 찾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좁은문]
     대야산은 뚱뚱한 비만인 사람은 오를수 없도록 좁은 문을 만들어 놨습니다 ㅎㅎ
     뚱뚱한 사람은 힘들어서도 못오르겠지만 이 '좁은 문'은 그들에게 하는 경고가 되겠습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산에 오르며 주변 구경은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특히 힘든 구간에는 더욱 주변을 돌아 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모두 아시지요? 네~ 힘들어서 주변을 관찰할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힘든 구간일수록 볼꺼리가 더욱 많습니다
     대부분의 산객들이 이 좁은 문으로 그냥 통과하더군요
     이 좁은 문의 오른쪽 바위로 올라 가면....
     
     [해골바위]
     일명 외계인바위라고도 하는 해골바위가 있었습니다
     세계 그림 경매사상 최고의 가격으로 팔렸다는 노르웨이의 화가 에르바르트 뭉크가 그린
     "절규"라는 그림에 나오는 인물 같습니다
     이런게 여기 있는 줄을 저는 어떻게 아느냐구요? ㅎㅎ
     저는 산행계획을 세우면 그 산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조사를 하고 공부를 미리 합니다
     언제 또다시 갈지 모르는데 하나라도 중요한 것들을 놓치면 평생 후회하기 때문입니다
     " 아는 많큼 보인다~"미리 공부하고 산을 오르세요!~~공부해서 남주나!~ㅎㅎ
     
     해골바위 위에서 바라 본 정상으로 가는 다음 봉우리
     봉우리가 제법 많습니다. 고로 볼꺼리도 많습니다
     
     [해골바위에서 바라 본 속리산 백두대간 능선]
     맨뒤에 보이는 속리산 백두대간 능선이 공룡의 등지느러미 같이 위용을 보여 줍니다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아마도 좌측으로 조항산 청화산일듯...
     우리 나라를 왜 '금수강산'이라고 하는지 아세요?
     아니 금수강산의 뜻을 확실히 아십니까? 뭐~ 아름답다는 거겠지~정도로 그냥 느끼고 있죠?
     확실히 알려드리면 비단 錦자에 수 놓을 繡입니다. 비단으로(에) 繡를 놓은 듯한 江과 山 - 
     그래서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대변하는 사자성어가 된것입니다
     
     [해골바위에서 바라 본 대야봉 정상으로 가는 능선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
     
     [청화산]
     세계 최초
     세계 유일의 인문 과학 지리서- "택리지"를 쓴 이중환
     30년에 걸쳐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이듬해 생을 마감한 이중환선생
     이중환선생의 호가 무엇인지 아세요? 
     산에 다니시는 분들 - 자칭 산꾼이라고 말하고싶어 하시는 분들은 꼭 알아 두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산꾼을 꼽으라면
     택리지를 쓴 이중환, 산경표를 쓴 신경준, 대동여지도의 김정호...등등등
     자동차 비행기 측량기도 없던 시절에 오로지 걸어서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닌 사람들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합니다. 존경스럽습니다
     그 중에서도 택리지를 쓴 이중환 선생을 얘기하지 않을수 없죠
     다른 학문적 얘기는 차지하고 이 엄청난 인물 이 중환 선생의 호가 무었인가!~~
     다른 호도 있습니다만 이 중환선생이 매우 좋아한  호는 바로 靑華山人입니다
     저 앞에 보이는 문경과 상주 사이의 靑華山을 가 보고 靑華山이 주는 아름다움과
     풍수지리적 터전으로서도 최고로 느꼈다고 합니다
     靑華山이 주는 山水의 아름다움에 반해  자신의 호를  스스로 靑華山人이라 했답니다
     세계 최초 최고의 인문지리서 -擇里志를 쓴 이중환선생의 호가 靑華山人이니
     휘산회 관계자 여러분 언젠가 靑華山으로 산행을 계획 해 보심이 어떨지....
     저도 책에서 읽기만 했지 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해골바위 옆으로 아주 좁은 벼랑길을 지나고....
     
     [대야산 정상으로 가는 능선 갈림길의 이정표]
     백두대간이 지나는, 형식적 기준선이 지나는 대간길에 왔습니다
     백두대간을 線으로 알고 반드시 지도에 표기되있는 백두대간 線만이 백두대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幹은 줄기 幹입니다. 다시 말해 산줄기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대야산 전체가
     백두대간에 들어가 있는것입니다
     幹은 면적이 있고 線은 면적이 없습니다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바라 본 대야산 정상]
     중대봉과 상대봉(대야산 정상)으로 갈리는 삼거리에서 정상은 또 가야 하더군요
     이곳이 정상인줄 알았는데....
     백두대간 종주자들의 기념 리본들이 짜릿한 멋을 풍깁니다
     
     에구~ 또 내려가고 올라 가고를 몇번 반복합니다
     
     마지막 암벽을 오르니....
     
     [대야산 정상]
     대야산 정상이 어렵게 어렵게 나타났습니다
     명산다운 정상이라 여겨집니다
     오르기 어려울수록 그 정상은 더욱 빛나는 것이니까요
     
     [대야산 정상]
     대야산 정상엔 정상석과 함께 이정표가 있는게 특징입니다
     대부분의 산정상엔 이정표가 없습니다. 필요가 없을테니까요
     그러나 이곳은 백두대간 종주자들에게 중요한 포인트이기에
     그들은 이 대야산 정상을 가로질러 다시 저 멀리 촛대봉과 악휘산 
     조령산 문경새재 3관문을 넘어 하늘재와 포암산으로...백두산까지...가야할테니까요
          
          [大耶山 정상석]
          대야산의 내력에 대해 많은 관련 자료들을 조사해봤습니다만
          대야산이라고 이름 지은 사연은 찾아 볼수 없었습니다
          耶라는 한문이 알려주는 것은 語助詞라는 것뿐
          쭝국사람들이 말할때 말끝에 "야~야~"라고 하는 語助詞
          그러므로 대야산은 "큰산이야~" 라는 뜻 정도로 생각됩니다
     
     [대야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북동쪽 백두대간]
     최고의 인문과학지리서 -擇里志를 저술하신 靑華山人 이중환선생은
     그의 저서 擇里志에서 이 대야산에 대해 설명을 해 놨더군요
     택리지에선 대야산을 仙遊山으로 표기 해 놨습니다
     다시말해 대야산은 대동여지도가 제작 될 쯤에서부터 불리워지게 된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擇里志에서 이중환선생은 이 仙遊山의 북서쪽에는 槐山의 仙遊洞이 있고 
     동쪽에는 聞慶의 仙遊洞이 있어 그 아름답기가 神仙이 노니는 山이라 仙遊山이라했답니다
     괴산쪽 仙遊洞과 앞으로 하산시 가 볼 "용추계곡"이 있는 문경쪽 仙遊洞은 
     현재도 전국적 명승지로 손꼽히며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大耶山은 분명 仙遊山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고 사료됩니다
     
     [대야산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바라 본 조항산과 청화산]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사진의 오른쪽 끝에 보이는 산이 靑華山인듯합니다
     
     [대야산 정상에서 바라 보는 북동쪽]
     하늘재 넘어 포암산은 산에 布-이불을 널어 놓은듯하다고 포암산이라고 한다는데
     저 멀리 암벽을 허옇게 드러낸 산이 어쩌면 포암산이 아닐까~백화산인가?잘 모르겠습니다
     중요한건 아니니 틀렸더라도 꾸짖지는 마세요~
     사실 저는  책에서 이 주변에 35개의 명산이 있다고 보았는데
     실제 와서 보니 뭐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칠보산, 보배산, 군자산, 남군자산, 악휘봉, 희양산, 덕가산, 막장봉, 
     백화산, 조항산, 청화산 등등등을 다녀 보고 산행기를 쓸때엔 잘 쓰겠습니다
     
     오르면 내려가야지요
     "고작 그 짧은 순간을 위해 힘들게 올랐단말인가!~~"라고 등산을 폄하하는 분들이 
     주로 하는 말이죠. 그럴때마다 저는 
     오르지 않고는 오른이의 감상을 접할수 없으니 올라 보라~"라고 말합니다
     등산을 폄하하던 사람들이 어쩌다 산에 오르고 나면 거의 100% 저의 말에 공감을 하더군요
     "흠~ 올라 보니 좋군~!!" "다음부턴 좀 불러 주라~!!"
     
     '밀재' 방향으로 하산하는데 이쪽도 경사가 만만치 않군요
     어디 한군데도 꽁짜가 없습니다
     
     [119 구조 헬기]
     밀재 방향으로 하산하고 있는데 갑자기 굉음을 울리는 119 구조 헬기가 머리위를 지납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어느 여성 등산객이 정상부근에서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119 구조 헬기가 와서 구조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119 구조 헬기가 와서                        문을 열고 구조 준비를 합니다
          
     119 구조대원이 내려와                      부상자를 들것에 묶어 올립니다
          
     구조후 구조대원도 헬기에 탑승하고 조속히  떠납니다. 빨리 병원으로 가야겠죠?
     이 사진은 저의 후배 65회 연동철교우가 세심하게 촬영한것을 제가 빌려와서
     포토� 처리를 하여 연속상영을 하는것입니다
     
     119 구조 헬기가 구조후 떠날 때에 저는 밀재 방향으로 많이 내려와 있을 때입니다
     이 사진은 물론 제가 촬영한것입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하면~ ㅎ
     농바위 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할때
     62회 보고 제일 늙었다고 먼저 가라고 한 장본인들이 도토리 키재기인 65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 62회인 우리가 스스로 젊다고 주장하는 65회보다  산행 실력은 
     훨 앞선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ㅎ
     65회 연동철 교우가 사진을 찍은 곳은 대야산 정상 부근이고
     우리는 이미 '밀재' 방향으로 한참 내려와 있는 상태이므로 우리가 많이 빠르다는 것을
     증명함으로 이것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자랑하고 싶어서입니다. ㅎㅎ
     앞으로는 65회가 제일 먼저 출발 하라우~ ㅋㅋ
     
     [밀재로 꺽이는 삼거리]
     처음 가시는 분들은 여기를 조심해야합니다
     저도 여기서 직진하여 많은 거리를 알바를 했습니다. 그리고 되 돌아 왔습니다
     느낌으로는 꼭 직진해야 할듯한 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야하니 혼동 할수 밖에 없지요
     헤프닝이 여기서 발생했는데....
     "A"코스 그룹들은 용추계곡에서 피아골로 대야산 정상을 밟고 난후
     하산하는 코스는 이곳으로 해서 '밀재'를 지나 용추계곡으로 내려가는 원점회귀 코스로
     하산하는 코스는 "A"그룹과 "B"그룹이  같기 때문에 이곳에서 모두 왼쪽으로 가야합니다만
     이곳에서 길안내를 잘못한 교우가 있어 상당수의 "A"그룹 이 직진하여 "B"그룹이 산행들머리로
     출발한 '농바위 마을'로 가버렸습니다. 에구~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버린거죠
     그리고 "A"그룹이 누굽니까? 모두 하늘 같은 대선배들 아닙니까?
     선배들을 길안내 잘못해 삼천포로 빠지게 했으니 길안내 잘못한 후배는코가 석자나 빠져
     멀리 토껴서 고속버스를 타고 가야지 함께 갔다간  선배님들에게 매맞아 죽는다고
     산에서 내려 오지를 안더군요..ㅎㅎ
     그런데 이 후배가 "A"그룹으로 산행을 함께한 62회 아니겠습니까~에구 ㅎㅎ
     
     삼거리 안부에서 직진했더니 이런 길이 나왔습니다
     저는 한참을 가다가 아닌듯해서 되돌아 왔습니다 알바만 하고...ㅎ
     그런데 선배님들은 그냥 못먹어도 GO를 했던것입니다. 그러니 농바위 마을이 나온거죠 ㅋㅋ
     이거 하늘같은 선배님들이 하는 산행 맞습니까?
     후배들과 산행하다 그렇게 �으니 후배 탓으로 돌리며 그냥 넘어 가지요 
     만약 다른 사람들과 산행할때 이랬으면 그 사람들로부터 멍청하다는 말 들었을 겁니다 ㅋㅋ
     다행이 저희 관광버스가 괴산쪽 농바위 마을로 가서 모두 태워 
     다시 문경쪽 용추계곡 주차장으로 모셔와 합류했습니다
     헤프닝 치고는 제법 씨어리얼하죠? ㅎㅎ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밀재'방향으로 20~30m 내려가니 이제서야 이정표가 나오더군요
     이런 중요한 이정표를 이정표가 필요없는 외줄기 길에다 왜 설치했을까요?
     닝기리~~아까 20~30m전의 삼거리에 설치해 놨더라면 우리 하늘같은 선배님들이나
     우리도 고생을 안했을텐데....
     혹시 이 글을 대야산 관계자가 읽는 다면 제발 이정표 설치 다시 해 주세요!~삼거리에...
     다시 설치 안하면 앞으로 무지하게 많은 산객들로부터 같은 불만의 소리를 들을 것이며
     잘못하면 목아지 짤리지않는다고 장담할수 없겠지요?
     통촉해 주십시요
     
     바위 위에 조금의 흙을 발판으로 살고있는 이끼들이 흙이 떨어질까 두려워하며
     흙을 꼭 감싸고 있는 듯한 강인한 생명력을 봅니다
     
     '밀재'로 하산하는 길엔 또 무수히 많은 볼꺼리들이 널려있었습니다
     농바위 마을로 하산하신 선배님들은 이 사진 보며 위안을 삼으세요
     
     삼거리 안부에서 직진하여 알바를 해 기분이 조금 상했었지만
     하산길에 만나는 아름다움에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즐거운 산행을 했습니다
     
     [불끈 돌기둥]
     큰바위 밑으로 갔더니 절묘한 돌기둥이 큰바위에 붙어 있더군요
     감상은 하는이의 자유입니다. 마음대로 상상하세요~ㅎ
     [불끈 돌기둥]은 제가 맘대로 지어낸 것이니 오해 하지마세요
     
     [삼거리 안부]
     용추폭포로 바로 내려가는 계곡코스와 밀재를 경유하여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오더군요
     계곡코스는 하산할때엔 괴롭습니다. 
     장시간의 등산으로 다리도 후들거리는데 산길로 내려 가면 다칠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밀재에서 내려 가는 길은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괴산에서 문경으로 넘나들던 길이므로
     길이 잘 나 있습니다. 그래서 하산길로는 안성맞춤입니다. 저는 미리 공부를 했기에
     '밀재'를 경유하는 코스로 내려 갔습니다
     
     삼거리 안부 위에서 뒤 돌아 본 "불끈 돌기둥'이 붙어 있는 큰바위가 새롭게 보입니다
     경치 좋습니다
     맨위 봉우리 바로 넘어 대야산 정상이 있습니다
     
     '밀재'까지의 하산길도 경사가 가파랐습니다
     올라 올려면 고생께나 하겠더군요
     
     [밀재]
     더디어 '밀재'가 나왔습니다. 반갑다~밀재야!~
     오른쪽이 농바위 마을이 있는 괴산 방향이고
     왼쪽이 용추계곡이 있는 문경 방향이며 행정구역상의 충북과 경북의 경계입니다
     직진하면  조항산, 청화산,속리산 방향 백두대간으로 갑니다
     
     이런 안내도는 처음 봅니다.
     뭘 강조하려는지...과태료?
     산행 안내를 해야지 과태료 안내를 해?...ㅉㅉ
     자연보호를 위해 출입금지 지역을 안내해야하기도 하겠지만 이 안내판으로는
     어디가 금지 지역인지 잘 알수가 없습니다. 
     금지지역을 알리려면 출입지역을 함께 알려야 이해가 쉬운법인데....공부 한참했어유ㅠㅠ
     
     [친절한 밀재의 이정표]
     이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대야산 방향은 과태료 안내판을 참고하면 출입금지 지역이더군요
     그러나 친절하게 대야산을 안내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무수히 많은 산객들이 아무른 제재나 죄의식 없이 금지지역을 왕래하고 있습니다
     저도 돈 벌었지요? 과태료 많큼
     
     용추계곡으로 하산합니다
     밀재를 기점으로 동쪽 계곡은 오후이기에 산그림자에 매우 어두웠습니다.
     카메라가 자동 플레쉬를 터트리더군요
     
     하산길 용추계곡 상류에서 알탕하는 후배들
     저는 손발과 세수만했지만 같이 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더군요
     저는 더 이상 어두워 지기 전에 내려가 용추 폭포를 촬영해야하기에
     혼자 서둘러 먼저 내려 갔습니다
     그러나 용추폭포까지 무지 멀더군요. 가도 가도 폭포 비슷한것도 나오지않았습니다
     
     [떡바위]
     왜 떡바위인지...떡처럼 생겨서이겠지만 비슷한 모양을 연상 할수 없었습니다
     
     내려 갈수록 용추계곡이 그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계곡의 모양을 갖춰 나가는데....
     
     산길을 나무로 포장해 놓고 전망대까지 설치해 놓은 곳에 왔습니다
     틀림없이 그 유명한 "용추폭포"가 있는 곳이리라~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용추폭포]
     龍湫瀑布가 틀림없습니다
     사진에서만 보던 龍湫瀑布를 실제로 보게�습니다
     
     [龍湫瀑布]
     출입금지선을 뚤고 龍湫瀑布에 접근했습니다. 오로지 저의 블로그 횐님들을 위해...ㅎㅎ
     절묘합니다
     하트 모양을 한것 같기도하고
     여인의 히프 같기도하고....
     聞慶八景 
     
     [龍湫瀑布]
     어느 분은 요강 같다고 요강폭포라고도 하더군요 ㅎㅎ
     여하튼 절묘합니다
     얼마나 많은 세월 속에서 저렇게 변했을까
     龍湫瀑布 앞에 서니 이런 글귀가 생각 납니다
              세월은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니며 
              시간 속에 사는 우리가 
              가고 오고 변하는 것일 뿐이다.
              세월이 덧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덧없는 것이다
     
     [龍湫瀑布]
     왠지 음탕한 생각까지 들게하는 龍湫瀑布는 
     이 계곡 최고의 볼거리였습니다
     
     [龍湫瀑布에서 내려다 본 용추계곡]
     조선시대 대학자였던 상주 출신 우복 정경세가 
     용추계곡이 있는 仙遊洞의 산수의 기묘함과 수려함에 감탄하여 이르기를
     "가이완장운(可以浣腸云)"이라고 읊었다고하는군요. 
     浣腸이란 "창자가 시원"할 정도라는 의미이니 이 계곡이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그래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계곡 입구의 마을 이름이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라는군요
     한문이 같은 '완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우연의 일치는 아닌듯...
     
     [용추계곡]
     문경쪽에서 오르는 용추계곡은 문경8경 중에 하나입니다
     
     [용추계곡]
     浣腸하는 용추계곡 선유동을 내려 왔습니다
     엄청나게 긴 계곡이었습니다
     
     [선유동 용추계곡 입구의 대야산 산행 들머리이자 날머리]
     용추계곡은 엄청나게 길었습니다
     대야산 정상에서 여기까지 세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왠만한 산은 보통 1시간30분 이내에 대부분 하산완료하는데 용추계곡으로의 하산은
     두배정도 걸렸으니 얼마나 긴 계곡인지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주차장을 못찾아 30분을 또 알바를 했습니다. 에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저녁 6시 10분
     오늘 총 산행 시간은 7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에구 알바를 총 한시간 정도 했으니...
      머리가 나쁘면 다리가 고생을 하지요
     하지만 大耶山
     만만치 않은 산입니다
     간신히 주차장을 찾아 마무리 체조하고
     하산주 몇잔 하곤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大耶山!~ 큰산이로구나!~   

     저의 이 산행기는 틀림없이 많은 교우님들도 보겠지요
     처음으로 함께한 "휘산회" 대야산 산행
     너무나 즐거웠고 에피소드가 많아 더욱 재미 있었습니다 
     母校가 있어 이런 산악회가 있고 이런 산악회가 있어 든든하고 
     언제 어디서나 동문수학한 校友라는 이유 하나로  반갑게 맞아 주니 고마웠습니다
     제가 자주 사용하는 말 한마디를 전하며 산행기를 마칩니다

     國籍은 바꿀수 있어도 學籍은 절대 바꿀수 없다
파란문印   ★살며..느끼며..홍어와 무인도☆ 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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